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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경호의 시시콜콜] 내 안에 갇힌 제1야당의 비극

    [진경호의 시시콜콜] 내 안에 갇힌 제1야당의 비극

    찬바람 머리 전까지 들불처럼 번졌던 아이스버킷 챌린지는 다들 아는 대로 루게릭병 환자들을 위한 행사다. 근육이 점점 마비돼 나중엔 눈꺼풀만 간신히 움직이다 끝내 숨 쉴 힘마저 잃는, 내 안에 갇힌 나를 끝내 끄집어내지 못하고 목숨을 내려놓는 천형(天刑)의 비극적 생들을 위해 지난여름 많은 이들이 얼음물을 뒤집어썼다. 다섯 달 만에 온 나라를 두 동강 낸 세월호 참사 정국의 한쪽에서 시끌벅적한 ‘온정의 물결’이 활짝 웃는 인증 샷과 함께 번지는, 분열과 대립, 화해와 온정이 뒤엉킨 이 부조화의 현실은 추석 연휴 광화문 광장에서 벌어진 ‘피자와 개밥의 충돌’만큼이나 불편한 비극적 희극으로 다가온다. 광화문 광장 세월호 유족들의 농성장 앞에 극우세력 인사들이 떼로 몰려나가 피자와 치킨을 시켜다 먹고, 이에 진보단체 회원들이 그들을 향해 개밥 사료를 내놓으며 벌인 저주의 굿판은 통제 불능의 대립 속에서 느끼는 서로에 대한 공포의 메타포였을 것이다. 두렵지 않다면 피자를 시켜다 먹지도, 개밥을 내놓지도 않았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 다섯 달을 맞아 슬픔이 분노로, 분노가 증오로, 그리고 이제 그 증오가 더 이상 우리가 우리를 통제하지 못하는 극한 대립의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공포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농성을 벌이는 쪽이나, 이를 깨려는 쪽이나 저마다 사라진 정치를 대신해 직접 서로 맞부닥쳐 싸워야 할지 모를 현실에 떨고 있는 것이다. 루게릭 상태에 놓인 정치가 깨어나야 한다. 특히 자신에게 갇혀 옴짝달싹 못하는 제1야당, 새정치민주연합이 깨어나야 한다. 제 다리에 걸려 넘어지곤 ‘기울어진 운동장’을 탓하는 자가당착에서 그만 벗어나야 한다. 당 비상대책위원회를 이끌고 있는 박영선 원내대표가 외부인사를 비대위원장으로 영입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애석하게도 장고(長考)의 흔적을 찾기 어려운 하책이다. 안철수도 못한 당 혁신을 누구에게 맡긴다는 말인가. 한 줌의 세력도 없는 외부인사가 의원총회 공포증까지 만든 강경파들의 완력을 어떻게 이겨낼 것으로 본단 말인가. 설령 이런저런 혁신안을 마련한들 그것으로 바닥으로 내려앉은 당을 추슬러 일으킬 수 있다고 보는가. 외부인사 수혈은 시간 연명의 투석(透析)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 정치생명을 걸고 당을 이끌든가, 힘에 부친다면 당의 실질적 대주주에게 자리를 넘겨 책임을 지우고 원내대표직에 전념하는 게 명료하다. 그게 그나마 머리와 팔, 다리가 따로인 정치적 루게릭 상태에서 조금이라도 빨리 벗어날 길이다. jade@seoul.co.kr
  • 서울대 교수 시국 선언 “국민 보호 못하는 정부 존재 이유 없다”(전문 포함)

    서울대 교수 시국 선언 “국민 보호 못하는 정부 존재 이유 없다”(전문 포함)

    서울대 교수 시국 선언 “국민 보호 못하는 정부 존재 이유 없다”(전문 포함) 서울대 교수들이 시국선언에 동참했다. 연세대, 성균관대에 이어 서울대 교수들까지 시국선언에 나서 학계와 대학가에 시국선언이 이어질지 주목된다. 서울대 교수들이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국민을 보호하지 못하는 정부는 존재 이유가 없다”며 박근혜 정부를 질타했다. 서울대 민주화교수협의회(의장 최영찬)는 20일 오전 서울대 관악캠퍼스 교수회관 제3회의실에서 성명을 통해 “대통령은 정부의 최고 책임자로서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주기보다는 해경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일방적 담화문을 발표하는 등 무책임함의 극치를 보여주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교수협의회는 “적폐의 온상은 현 정부의 비민주성과 무능, 무책임성이고, 그 정부를 이끌고 운영하는 사람들이 ‘적폐’ 그 자체”라며 “구시대적인 적폐의 근원이 되고 있는 청와대 비서실장, 국정원장, 안보실장, 홍보수석, 그리고 검찰총장의 자리를 쇄신하는 것이 개혁의 출발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정부는 자신의 무능은 아랑곳 하지 않고 언론과 국민 여론을 통제하고 사건을 축소·은폐하려고 했고, 사복경찰을 동원하여 피해자 가족의 동정을 살피고 심지어 대화를 몰래 녹음하는 등 피해 가족 및 시민들을 부당하게 감시했으며, 비판자들에게 압력과 협박을 가하여 국민의 알 권리를 제약하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고 정부의 행태를 강하게 비판했다. 서울대 교수들 시국선언 마지막에는 “세월호 사건의 뿌리는 지난 정권부터 계속된 무분별한 친기업 규제 완화”라며 “정부는 제2의 참사를 예고하는 과잉친기업 정책을 즉각 폐기하고 생명과 안전을 중심에 두는 국정을 운영해야 한다”고 마무리했다. 지난 14일 연세대, 15일 성균관대에 이어 서울대 교수들도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정부를 규탄하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해 이같은 움직임이 학계와 대학가를 중심으로 확산될지 주목된다. 네티즌들은 “서울대 교수 시국 선언, 맞는 말 했네”, “서울대 교수 시국 선언, 교수들 시국 선언 들불처럼 일어나나”, “서울대 교수 시국 선언, 대단하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다음은 서울대교수 시국선언 전문 ”국민을 보호하지 못하는 정부는 존재 이유가 없다” 차마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 일어났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믿고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던 천진난만한 학생들, 무고한 시민들이 배와 함께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 것을 가족들과 함께 온 국민이 지켜보아야 했다. ‘나라초상’을 당하여 참으로 ‘숨쉬기도 미안한 사월, 오월’이었다. 무책임한 어른들 때문에 졸지에 자신의 꿈을 난파당한 어린 영혼들이 저 세상에서나마 평화와 안식을 얻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그 어떤 위로의 말도 유가족들의 고통을 덜어줄 수 없겠지만, 300명이 넘는 희생자를 낳은 이 대재난을 근원적으로 성찰하는 길만이 희생자들에 대한 최선의 애도이고, 또 이 땅에 살아가는 지식인으로서 져야 할 최소한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세월호 참사는 한국 사회가 지닌 문제들을 총체적으로 드러냈다. 세월호 침몰에는 생명과 안전을 도외 시하고 오직 돈만을 추구한 ‘청해진 해운’의 천박한 기업행태와 함께, 감독기관의 부패와 행정 공백, 그리고 ‘기업하기 좋은 나라 만들기’를 위한 정부의 규제완화 정책이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했다. 더 근본적으로 온갖 종류의 ‘관피아’로 지칭되는 일련의 ‘연줄관계망’의 구조적 폭력과 이윤, 결과, 속도, 효율성만을 강조해온 신자유주의적 자본축적의 논리가 이번에도 어김없이 작동했다. 하지만 국민을 진정으로 분노하게 만든 것은 세월호 구조과정에서 드러난 정부의 무능과 ‘국가’의 부재였다. 승객들과 선박을 돌보지 않고 제일 먼저 탈출한 선장을 비롯한 승무원들은 스스로 ‘재난의 컨트롤 타워(관제탑)’임을 부정한 청와대의 대응과 판박이거니와, 사고 발생 직후 해양경찰의 초기 대응 실패는 이번 참사가 무엇보다도 인재(人災)임을 보여준다. 정부의 재난관리시스템은 전혀 작동하지 않은 채 해양경찰이 해군 및 민간잠수사의 활동을 방해하고, ‘언딘’이라는 일개 민간업체가 구난과 구조 업무를 사실상 이끌었으니 해양경찰과 해양수산부는 직무유기를 넘어 그 존재가치를 스스로 부정하였다. 이는 그간 정부 자체가 공공성을 허물면서 ‘기업 프렌들리’를 외쳐온 ‘기업국가’의 필연적인 결과가 아닐 수 없다. 그러니 ‘이것도 나라인가?’ 하는 자조가 국민의 분노를 부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고 이후 정부 및 정권의 대응은 분노를 넘어서 정부와 국가에 대한 신뢰기반을 송두리째 무너뜨리고 있다. 정부는 자신의 무능은 아랑곳 하지 않고 언론과 국민 여론을 통제하고 사건을 축소·은폐하려고 했고, 사복경찰을 동원하여 피해자 가족의 동정을 살피고 심지어 대화를 몰래 녹음하는 등 피해 가족 및 시민들을 부당하게 감시했으며, 비판자들에게 압력과 협박을 가하여 국민의 알 권리를 제약하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 심지어 일부 정부 관리와 여당 의원, 언론사 간부는 유족들과 실종자 가족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막말도 서슴지 않았다. 대통령은 정부의 부실하고, 무능하며, 무성의한 사태 해결 노력에 대해 정부의 최고 책임자로서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주기보다는 유족 대신 조문객을 위로하는 보여주기식 정치와 행정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정부의 구조 행위에 대하여 ‘살인행위’라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지만, 대통령과 정부는 자신들이 져야 할 책임의 몫을 과거 정부로 떠넘기며 적폐(積弊)를 운운하고 있다. 현 정권 들어서 국정원의 선거 개입, 간첩 조작 등 민주주의 근간을 위협하는 사건이 연이었고, 그에 대해 우리 사회는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시종일관 요구했지만 그러한 국민적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위기의 징후는 곳곳에 있었으나 그 경고음을 현 정부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현 정부에 의한 민주주의의 훼손과 비판·감시 기능의 상실이야말로 적폐를 키울 수 있었던 배경이었다. 적폐의 온상은 현 정부의 비민주성과 무능, 무책임성이고, 그 정부를 이끌고 운영하는 사람들이 ‘적폐’ 그 자체이다. 세월호 참사는 한국 언론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세월호 참사를 취재하던 기자들이 희생자 가족들은 물론 온 국민으로부터 ‘기레기’ 취급을 받았고, 유가족들은 국내 언론을 불신하고 외국 언론을 상대하였다. 해외 교포들은 세월호 참사에서 나타난 한국 정부와 언론의 행태를 비판하는 전면광고를 세계적으로 유수한 신문들에 게재하기에 이르렀다. 사태를 이 지경까지 만든 데 대해 언론인들의 자성과 자기개혁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시급한 것은 정부의 언론 통제 철폐와 권언유착의 고리를 끊는 것이다. KBS 사태에서 드러나듯이 정부의 방송 장악 기도, 언론 통제와 권언 유착의 실상이 낱낱이 폭로되고 있지만 청와대를 비롯하여 관련 기관 어느 곳도 사실을 인정조차 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대통령 인수위원회 관여 인물을 방통심의위원장에 내정하는 등 정부의 언론 장악 획책은 지칠 줄을 모른다. 이제 국민들은 언론을 정부의 홍보 대행기구, 선전도구 정도로 여기게 되었다. 실상이 그렇다면 국민의 언론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한 것 역시 당연한 일이다. 세월호 참사 수습의 중심에 언론 통제 철폐와 언론 개혁이 있다. 많은 분들이 현 대통령의 복지 공약을 보고 그녀를 대통령으로 선택했다고 한다. 그러나 현 정권의 복지공약은 어디로 갔는가? 현 정부는 복지는커녕 국민의 생명과 안전도 책임지지 못하는 무능한 정부임을 세월호 참사가 증명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만큼 중요한 안보가 어디 있을 것이며, 그 조차 지키지 못한다면 정부로서 자격도 없는 것이 아닌가. 또 현 정부는 대선부정 문제를 비롯하여 자신들의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은 종북으로 몰거나, 전 검찰총장의 실례에서 보듯 개인적 문제를 트집 잡아 인격살인을 통해 비판자를 몰아내는 일 따위를 자행함으로써 사회구성원들이 사회적 현안에 대해 정당한 문제제기를 하고 자기교정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거해 왔다. 정부가 돌아봐야 할 것은 과거의 적폐나 일개 기업의 비리, 한낱 선장의 무책임한 행동이 아니라, 자신들의 무능력과 공약 위반, 그러한 사태를 낳은 자신들의 허물과 국정철학, 그리고 집권 이래 현 정부가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를 훼손해가며 쌓고 있는 적폐들이다. 이번 참사는 근본적인 인적 쇄신 없이 부서 이름 바꾸기 차원의 재난 대응과 말만 번지르르 한 안전대책들로 수습될 문제가 아니다. 담당 부서와 안전대책들이 없어서 눈앞에서 어린 영혼들을 수장시킨 것이 아니지 않는가? 대통령이 뒤늦게 책임을 인정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해경해체만으로 모든 책임을 면하려는 태도는 스스로의 책임을 전가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철저한 진상 조사와 잘못된 시스템에 대한 진단을 통해서 책임소재를 밝히고, 그에 상응한 개혁을 즉각 실시할 것을 요구한다. 그 전에 이 정부의 국정을 파탄으로 몰아가고 있는 청와대와 권력기관들의 인적쇄신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구시대적인 적폐의 근원이 되고 있는 청와대 비서실장, 국정원장, 안보실장, 홍보수석, 그리고 검찰총장의 자리를 쇄신하는 것이 그 시작이 될 것이다.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숨 쉬기도 미안한 4월, 또 미래세대의 교육을 담당한 사람으로서 제자들 얼굴 보기가 부끄러운 5월을 보내고 있다. 침몰 현장에서 인명 구조를 위해 대기했던 민간 잠수사들, 진도에서 유가족들과 함께 밤을 지새운 자원봉사자들, 분향소마다 길게 줄을 이어 늘어선 조문객들, 어린 영혼들과 유가족들을 위해 전국 각지에서 켜진 촛불들, 그리고 이 모든 사태를 묵묵히 지켜본 우리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앞장서서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켜줄 줄 아는 정부, 의사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고 언론통제가 없는 나라, 그리고 이 땅의 모든 부모형제들이 더 이상 슬픔과 분노로 자신의 눈자위가 붉어지지 않는 사회이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온 국민의 비탄과 공분을 받들어 우리는 다음 사항을 요구한다. 1. 해경해체 등 조직개편 이전에 철저한 진상규명이 우선이다. 정부는 진상 조사의 주체 이전에 조사 대상이니 유가족 대표와 시민 대표가 주도하는 진상조사단을 구성하고, 좌초와 침몰의 원인, 각 단계별 인명구조가 지연되고 실패한 원인, 무책임한 정부 대응을 한 점 의혹 없이 규명해야 한다. 1. 청와대부터 정부 각 부처에 이르기까지 전면적이고 철저한 인적 쇄신이 이루어져야 한다. 1. 정부는 그동안 자행한 언론 통제에 대해서 사과하고, 언론 통제 철폐를 약속해야 한다. 또한 전국 각지와 해외에서 일어나고 있는 국민들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억압해서는 안 된다. 1. 세월호 사건의 뿌리는 지난 정권부터 계속된 무분별한 친기업 규제 완화이다. 정부는 제2의 참사를 예고하는 과잉친기업 정책을 즉각 폐기하고 생명과 안전을 중심에 두는 국정을 운영하여야 한다. 1. 대통령은 이번 사고 대처에서 나타난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에 대한 최고책임자일 뿐만 아니라 이번 참사의 근원적인 수습에 대해서도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 위의 요구들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다면 대통령은 다시 국민적 사퇴 요구에 부딪힐 것이다. 2014년 5월 20일 서울대 민주화 교수협의회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어른들 탐욕으로 가치관 무너져” 목회자들 ‘나부터 회개’ 잇단 외침

    “어른들 탐욕으로 가치관 무너져” 목회자들 ‘나부터 회개’ 잇단 외침

    진도 앞바다에 침몰한 세월호 참사의 수습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종교계에 회개와 각성 운동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개신교계를 중심으로 원로 목사들이 종교와 교회의 각성을 촉구하면서 대규모 행사를 열 계획인데다 각 기관과 지도자·목회자들이 ‘나부터 회개’를 잇달아 외치고 나서 주목된다. 한국기독교원로목사회(대표회장 최복규 목사)의 ‘나부터 회개운동’은 개신교계 안팎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움직임이다. 원로 목회자들을 중심으로 교회 갱신을 촉구하고 있는 한국기독교원로목사회는 최근 “공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엎드려 회초리로 자기를 때려 회개하며 나부터 먼저 변화하자”고 공식 천명했다. 강영선 목사는 “한국교회와 목회자들의 타락으로 빚어진 무고한 어린 희생자들을 생각할수록 마음이 너무 아프다”며 “침몰한 세월호는 나 자신이요, 한국교회”라고 전했다. 김진옥 목사도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바로 서지 못하는 바람에 정치, 사회, 교육이 무너지고 있다”며 “하루속히 회개의 자리에 나서는 길만이 회복될 수 있는 비상구”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오는 7월 7일 서울 종로구 연지동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 대강당에서 ‘한국교회 갱신을 위한 회초리 기도대성회’를 열겠다고 공표해 놓고 있다. 이를 위해 오는 15일 서울역 앞에서 전국의 교회와 목회자들에게 ‘회초리 대성회’ 동참을 촉구할 방침이다. 대성회 이후에도 전국 지역별 지회를 구축해 회개운동을 확산시킬 계획이다. 진보적 성향의 교단들이 모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도 회개운동에 동참했다. 지난달 30일 ‘세월호 참사에 대한 한국교회의 입장’을 통해 “우리는 돈벌이가 생명에 우선하는 사회를 방기하고 조장했다”고 고백한 데 이어 최근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실행위원회를 열어 “교회 역시 이번 사고에 대한 사회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교회의 자성을 촉구하고 나섰다. 개신교계 지도자와 목회자들의 회개·각성을 향한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분당우리교회 이찬수 목사는 지난 4일 주일예배를 통해 “현실의 자녀교육이 영육 간 자녀들을 고통으로 몰아가지는 않는지 돌아보고 회개하자”고 전했다. 이 목사는 “어른들의 탐심과 탐욕으로 가치관이 무너지고 신음하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우리가 울어야 한다”며 “우리 자신들은 불합리하고 부패한 이 세상에 동조하고 살아가지 않았는지 돌아보고 회개하자”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손봉호 고신대 석좌교수는 한 종합편성채널에 출연, “세월호 참사에 종교계가 큰 책임을 져야 한다”고 종교계에 직격탄을 날렸다. 손 교수는 “비뚤어진 가치관을 바로잡는 역할을 하지 못한 종교계는 그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불교계와 천주교계는 희생자들의 극락왕생 기원과 실종자 가족의 정서적·영적 돌봄에 힘을 쏟고 있다. 지난 부처님오신날 법요식을 희생자 추모법회 형식으로 진행한 조계종은 전국 사찰에서 기도회와 천도재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진도군 실내체육관과 팽목항에서 릴레이 기도 정진을 이어가고 있는 조계종 재난구호봉사본부는 스님들의 기도 동참을 연일 독려하고 있다. 본당별로 기도회와 미사를 이어가고 있는 천주교계도 교구별 상담을 통한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사고가 발생한 진도 지역을 관할하는 광주대교구는 팽목항과 진도실내체육관에 부스를 마련, 매일 두 차례씩 미사를 봉헌하며 실종자 가족들을 위로하고 있으며 상장례 지도사들로 구성된 가톨릭상장례봉사자회는 팽목항에서 희생자 시신을 수습하는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초점]USA투데이 인용 보도 ‘심판 양심선언 오역 소동’ 배경은

    [초점]USA투데이 인용 보도 ‘심판 양심선언 오역 소동’ 배경은

    [초점]USA투데이 인용 보도 ‘심판 양심선언 오역 소동’ 배경은 2014 소치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금메달리스트 아델리나 소트니코바 편파 판정 가능성을 지적한 USA투데이 보도가 화제다. 보도 내용은 이후 ‘심판 양심선언 오역 소동’으로 비화됐다. 그러나 USA투데이 보도를 초기에 접한 대다수 국내 언론 보도에는 “심판이 양심선언했다”는 문장이 단 한부분도 포함돼 있지 않았다. 사실상 ‘심판 양심 선언’ 오역 소동은 일부 언론의 과열 경쟁이 빚어낸 해프닝이었다. 초기 보도는 주로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 참가한 국제 피겨계 고위관계자가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경기의 판정이 편향됐다고 밝혀 향후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는 내용을 담았다. 실제로 미국 USA투데이는 22일(한국시간) 익명을 요구한 피겨계 고위관계자가 여자 피겨 싱글 심판진의 구성이 “러시아의 아델리나 소트니코바에게 유리하게 돼 있었다. 이것이 러시아의 힘”이라고 지적했다고 보도했다. ‘심판진’의 구성에 문제가 있어 편파판정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내용이었고, ‘심판’이 양심선언했다는 내용은 단 한줄도 없었다. 그러나 일부 언론은 거두절미하고 ’심판 양심선언’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이는 네티즌 사이에서 “심판이 양심선언했다”는 내용으로 빠르게 와전됐다. 대부분의 보도 내용에는 ‘심판 양심선언’이라는 부분이 없었지만 제목 때문에 ‘오역 소동’이 된 것이다. 이번 사안의 핵심은 ‘심판 양심선언 오역 소동’이 아니라 실제로 김연아에게 불리한 판정이 나올 가능성이 있었다는 점이다. 심판 중에 러시아피겨협회 회장의 부인과 예전에 판정 시비로 자격정지를 당했던 사람이 포함됐다는 점은 분명히 문제로 지적해야 할 부분이다. 때문에 김연아의 2연패에 긍정적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USA투데이는 피겨계 고위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심판 중에 러시아피겨협회 회장의 부인인 알라 셰코브세바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경기가 끝난 뒤 셰코브세바와 소트니코바가 껴안는 장면까지 포착되면서 비난여론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USA투데이는 “두 사람이 포옹했다는 것만으로 김연아가 금메달을 도둑맞았다고 볼 수는 없다”고 전제하면서도 “앞으로 몇 년간 판정 논란을 지속시킬 촉매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끔찍한 장면”이라고 비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제주 말싸움 못 봅니다

    제주 말싸움 못 봅니다

    ‘소싸움은 되고 말싸움은 안 된다.’ 제주도가 동물학대 논란 등으로 중단했던 제주 목축문화의 유산인 말사랑 싸움놀이 부활을 추진했으나 정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말싸움이 공식 무대에서 사라지게 됐다. 3일 제주도에 따르면 국무총리실 제주특별자치도지원위원회는 최근 제주도 5단계 제도개선안을 심의, 확정하면서 제주도가 건의한 제주 말사랑 싸움놀이 특례 도입을 수용하지 않기로 했다. 도는 경북 청도 소싸움과 같이 제주말사랑 싸움놀이를 법적으로 허용하는 특례를 도입, 제주 명물 민속놀이로 육성키로 하고 말싸움 허용을 건의했다. 제주 말사랑 싸움놀이는 소싸움처럼 단순 힘겨루기가 아니라 암말을 차지하기 위한 수말끼리의 사랑 다툼으로 1990년대 중반부터 제주 들불축제 등 제주의 민속 축제 등에서 선보여 관광객에게 이색적인 볼거리를 제공해 왔다. 하지만 2008년 동물보호법이 개정되면서 동물학대 논란 등으로 중단됐다. 당시 개정된 동물보호법은 도박, 광고, 오락, 유흥 등의 목적으로 동물에게 상해를 입히는 행위를 금지시켰고 자치단체장이 주관하는 민속 소싸움 경기만 유일하게 제외했다. 제주도는 그동안 동물 학대 논란 등을 피하기 위해 말의 입에 재갈을 물리거나 가면을 씌우는 방법으로 경기 방식을 순화해 재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정부는 결국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도 관계자는 “제주 말싸움은 동물의 본능, 생리적 행동으로 동물 학대 행위가 아니라는 사실을 설명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앞으로 공식적인 무대에서는 말싸움을 영영 보지 못하게 됐다”고 말했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원단(元旦) 세종로/김성호 문화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원단(元旦) 세종로/김성호 문화부 선임기자

    갑오년 원단(元旦). 아직 채 날이 밝지 않은 어둑어둑한 도심 속 세종로는 너무나 고요하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철도노조 파업과 관련해 경찰과 시위대가 뒤섞여 고함이 난무하던 거리. 언제 그랬느냐는 듯 차분하기만 한 이 거리를 내려다보는 신년 감회가 새롭다. 말 중에서도 가장 진취적이고 활발하다는 청마(靑馬)의 해. 그 역동적인 갑오년에 이 세종로에는 또 얼마나 많은 일들이 생기고 없어질까. 세계 어느 도시를 둘러봐도 서울 세종로만큼 역동적이고 활발한 거리는 없을 것이다. 적어도 담론·공론의 표출과 집단의 몸짓에서 말이다. 지난 시절 민주화운동이 거셀 무렵 숱하게 이어지던 노제, 2002년 한·일 월드컵 기간 중 세계를 놀라게 한 ‘붉은 물결’은 그 집단 결집의 대표적인 표상이다. 굳이 지난날을 들먹이지 않아도 요즘 세종로에는 매일같이 이어지는 가지가지의 집회며 시위가 태반이다. 그런가 하면 온갖 문화행사며 캠페인이 펼쳐지는 편안한 대중의 세종로이기도 하다. 어둑어둑한 세종로, 그 진짜 얼굴은 무엇일까. 올 한 해도 세종로는 틀림없이 그 역동의 결집과 대중의 편안한 휴식을 함께 받아들이고 담아낼 것이다. 이른 아침 그런 세종로를 내려다보는 심정의 엇갈림은 역시 소통과 단절의 경계 때문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집단 결집의 공간 세종로에 더 마음이 박히는 까닭은 아무래도 우리 사회의 고질적 부정의 화두인 ‘불통’이다. 넘쳐나는 스마트폰과 인터넷의 홍수에서도 굳이 물리적인 결집과 표출을 불러대는 그 단절의 해악 말이다. 지난해 인기리에 방송됐던 드라마 ‘응답하라 1994’며 오락 프로그램 ‘꽃보다 할배’는 소통의 물꼬를 튼 대중문화로 기억된다. 세대와 시대를 넘나드는 이해와 섞임으로 버무린 역발상의 크로스오버. 적어도 수도 서울 한복판의 세종로가 그런 이해와 융합의 용광로 같은 공간이라면 어떨까. 날 선 대립과 충돌의 최전선이 아닌…. 그런가 하면 철도노조 파업의 초미에 한 대학에서 시작해 들불처럼 번져간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열풍은 기성세대도 그냥 넘길 수 없는 단절의 아픈 흔적일 것이다. 각 종교 지도자들은 갑오년 신년사에서 한결같이 상생과 화합을 으뜸의 화두로 세웠다. 혼란한 세속에선 한 발자국 비켜선 종교계 수장들이 마치 입을 맞추기라도 하듯이 한 가지로 겨냥한 세태는 분열과 단절이다. 그리고 그 분열과 단절을 극복하는 방편은 배려와 이해로 모아진다. 전국의 대학교수 617명은 새해 희망의 사자성어로 ‘전미개오’(轉迷開悟)를 꼽았다고 한다. 미망에서 돌아 나와 깨달음을 얻자는 뜻의 불교 용어. 역시 혼탁한 한국사회를 겨냥해 ‘나로부터의 반성’을 촉구한 뜻의 결집일 것이다. ‘나쁜 것을 막아주는 풍요와 다산의 신비로운 동물’ 청마의 해에 세종로가 ‘나로부터의 반성’이 결집하는 평화의 지대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제 동이 터 밝아진 어둠의 세종로도 다시 살아났다. 오고 가는 인파와 차량들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세종로, 전미개오.’ kimus@seoul.co.kr
  • [씨줄날줄] 산 문화, 죽은 문화/서동철 논설위원

    ‘김장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됐다는 아제르바이잔발(發) 뉴스는 그동안의 어떤 세계유산 등재 소식보다 반가웠다. 죽은 문화유산이 아닌 살아 있는 문화유산, 그것도 발전시켜 나갈 여지가 무궁무진한 미래지향적 문화유산이 김장이기 때문이다. 푸른 잎채소가 나지 않는 춥고 긴 겨울을 건강하게 버틸 수 있게 하는 창의적 음식 저장 문화가 김장이다. 올해도 국민의 90% 이상이 김장했다고 한다.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가 사전 심사에서 만장일치로 등재를 권고한 것도 무형유산으로서 김장문화의 생명력을 인정하는 국제적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김장문화의 영어 표기는 ‘Kimjang ; Making and Sharing Kimchi in the Republic of Korea’(김장, 한국의 김치 담그기와 나눔)이다. 김치를 앞세우지 않은 것은 음식은 등재하지 않는다는 현실을 감안한 전략이다. 실제로 ‘궁중음식’의 등재를 추진했다가 실패한 전력도 있다.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나눔’의 의미를 강조한 것은 절묘하다. 김장 김치를 어려운 이웃과 나누는 것은 전통이면서 김장문화의 바람직스러운 미래상이기도 하다. 우리도 국제사회를 설득하는 방법을 제대로 터득해 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무형유산위도 김장문화 등재신청서가 ‘무형유산의 본질을 이해하고 이를 설명하기 위한 영감을 주는 모범 사례’라고 칭찬했다고 한다. 살아 있는 문화유산이어야 공감대도 넓어진다는 것을 보여준 김장문화의 사례는 ‘아리랑’에도 시사점을 던져준다. 아리랑은 지난해 인류무형유산에 먼저 이름을 올리며 붐을 일으키고 있다. 3대(大) 아리랑의 정선, 진도, 밀양은 물론 많은 지방자치단체가 아리랑의 고장을 자처하며 각종 행사와 사업에 뛰어들었다. 정부 차원에서도 문화융성위원회가 ‘아리랑의 날’을 제정하고, 아리랑 축제를 여는 등 아리랑을 민족 공동체의 아이콘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아리랑이 생명력을 상당 부분 상실한 상태라는 것은 걱정스럽다. 무형유산은 민초(民草) 사이에 들불처럼 번져가면서 생명력을 얻는 속성을 갖는다. 아리랑 역시 누가 부르라고 해서 부른 노래가 아니다. 그러니 정부가 할 일은 새로운 변주곡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리랑이 국민 사이에 다시 불릴 토양을 만드는 것이다. 현실의 버거움을 은유적이거나 때로는 직설적으로 표출하면서 마음을 다잡는 노래가 아리랑이다. 정부부터 삶의 무게에 눌려 있는 사람들의‘ 쓴소리 아리랑’까지 수용하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아리랑의 생명력을 되살리는 실마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대한민국 지역브랜드 대상] 종합 대상 수상 제주시

    [대한민국 지역브랜드 대상] 종합 대상 수상 제주시

    대한민국 지역브랜드 종합 대상을 받은 제주시는 제주도의 관문으로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2010년 민선 5기 출범 이후 인구가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최근 4년간 평균 1.7%(1.4~1.8%)에 이르는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이는 세종시 다음으로 높은 것이다. 청정 자연환경에다 첨단과학단지 조성, 귀농·귀촌 유치, 읍면 지역 정주 여건 개선 등의 정책이 효과를 거둔 것이다. 1.8%의 인구 증가율이 지속되면 2020년 제주시는 인구 50만 시대를 맞는다. 지난해 인구는 44만명이었다. 인구의 지속적인 유입은 지역경제가 그만큼 활기차다는 것을 방증한다. 시는 전통시장 활력 회복 및 강소기업 육성, 1차산업 경쟁력 강화, 일자리 창출 및 시민 생활 안정 등의 경제 정책을 꾸준히 펼치고 있다. 17개 전통시장 평균매출액이 11% 이상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고 문화관광형 시장으로 개발된 민속 오일장에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전통시장에 중국인 관광객을 유인하기 위해 통역 도우미도 배치하고 상인들의 중국어 교육도 지원하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지난 7월 전국 157개 시·군을 대상으로 조사한 1차 산업 농업 경쟁력에서 제주시가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제주 농업프런티어리더 전문교육 등을 통해 정예인력 양성에 힘을 쏟고 밭농업수급가격 안정기금설치 조례 등을 통한 300억원의 기금 조성 등 밭 농업 경쟁력 강화시책을 펼친 결과다. 농업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귀농 귀촌 인구는 2009년 45명에서 지난해 207명으로 급증했다. 고품질 제주 감귤 생산을 위한 육성 사업도 야심차게 추진 중이다. 비가림 시설 등 생산시설 현대화와 광센서 선과기 설치 등 유통시설 현대화 지원도 아끼지 않고 있다. 화산섬 제주만의 향토 자원을 활용한 1, 2, 3차 융·복합 산업도 키우고 있다. 구좌 향당근, 우도 땅콩, 조천 블랜진미 등 분야별 브랜드도 개발, 전국에 알리고 있다. 제주 관광의 새로운 트렌드인 녹색 생태 관광 활성화를 위한 인프라 확충도 의욕적으로 추진 중이다. 람사르 습지로 지정된 조천읍 선흘리 동백동산 일대를 생태관광지로 육성하고 오름(기생화산) 전체를 태우는 들불축제로 유명한 애월읍 봉성리 새별오름의 사계절 관광자원화 사업도 벌이고 있다. 동백동산에는 관 주도가 아닌 마을 주민과 손잡고 생태마을을 조성해 지난 5월 세계환경보전연맹이 세계 최초로 람사르 습지 시범마을로 선정했다. 제주가 자랑하는 절물 자연휴양림은 전국에 있는 39곳의 휴양림 중 3년 연속 이용객과 수입면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전국 최고의 명품 숲이란 명성을 쌓아가고 있다. 제주의 가치를 살린 문화예술 기반 조성 사업도 활기차다. 옛 제주대 병원 인근에 문화예술 창작, 체험공간, 빈집 아트하우스 프로젝트, 소규모 전시공간 조성 등으로 원 도심 인구 유턴과 동네 골목 경제 활성화를 꾀하고 있다. 섬 속의 섬 우도에는 독특한 우도 문화마을을 조성, 예술가들에게 창작·전시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탐라 입춘굿 축제, 용연 선상음악회, 한여름밤의 예술축제 등 특성화된 전통축제엔 해마다 관광객과 시민들의 참여가 활발하다. 한 박자 빠른 생활 민원 해결도 시가 공을 들이는 분야다. 바람이 많은 시의 특화된 쓰레기 수거정책인 클린하우스는 시민평가단 등을 통해 청결 관리 실태를 꼼꼼히 점검, 깨끗한 제주 만들기에 한몫하고 있다. 아기 출생 카드 제작 배부는 제주시의 히트행정으로 꼽힌다. 제주는 무상 보육료 예산 편성률이 100%로 전국 평균 81.1%를 크게 웃돌고 전국 최초로 출산·육아 용품 대여센터도 운영 중이다. 출산율 2.0플랜의 착실한 이행으로 2009년 4002명이었던 출생아 수는 2010년 4294명, 2011년 4255명, 지난해 6672명으로 증가 추세다. 셋째아 이상 출생아 수도 2011년 766명에서 지난해 820명으로 늘어났다. 병의원이 없는 도서지역에는 24시간 진료체계를 구축, 더욱 안전한 보건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뿌리 깊은 제주의 매장 문화 개선을 위해 전국 최초 자연장지인 한울누리공원도 조성해 2011년 현재 화장 증가율이 전국 최고(6.5%)를 기록했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씨줄날줄] 침묵의 위기관리/박현갑 논설위원

    ‘침묵은 금, 말은 은’이라는 말이 있다. 말을 가려 할 줄 아는 신중함과 경청의 중요성을 지적한 것이다. 권력형 비리사건으로 지탄받는 지도층 인사들의 침묵처럼 자기방어를 위한 ‘쓰디쓴 금’도 있기는 하다. ‘고기는 씹어야 맛이고, 말은 해야 맛’이라는 말도 있다. 할 말은 해야 한다는 것으로 소신과 용기가 요구된다. 갈수록 복잡해지는 현대사회에서는 이런 금언이 더 적절해 보인다. 글이 생긴 이후 말의 중요성은 상대적으로 약해졌다. 하지만 민주주의 시대, 정치에서 말 만큼 중요한 소통수단은 없어 보인다. 정치는 말로 하는 예술이다. 특히 위기상황이라면 더욱 그렇다.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국정원 사건 수사를 맡은 검찰은 수사 외압 시비로 신뢰를 잃고 있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거론치 않는다 하더라도 여론을 인위적으로 손대려 한 일은 민주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상황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조짐들이다. 국민이 대통령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하는 이유이다. 박근혜 대통령 집권 이후, 위기상황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을 엿볼 수 있는 사례가 몇 가지 있다. 집권 초 국무총리 후보자 등 자신이 지명한 공직 후보자가 줄줄이 낙마했던 적이 있다. 언론은 ‘인사참사’로 규정했다. 대통령은 두 달 가까이 ‘무대응 전략’으로 일관했다. ‘공격적 무시전략’도 보였다.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수사로 정치권이 시끄러울 때, 지난 대선 때 국정원의 도움받은 것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수동적 수용전략’도 구사했다. 노인연금 축소 등 복지공약 후퇴로 나라가 혼란스러웠을 때 사과하고 증세를 고려할 수 있다는 발언을 했다. 위기상황에 대한 책임소재의 유무에 대한 판단과 사회적 파장에 따라 대응 전략이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위기상황에 대한 판단에 따라 대응은 달라질 수 있다. 위기의 책임소재를 따져본 결과, 나와 무관하다면 ‘강 건너 불구경하듯’ 무시할 수 있다. 향후 국정운영에 문제가 된다고 판단하면 대응할 것이다. 여론이 좋다고 판단하면 “검찰 수사를 지켜보자”는 등 해명중심의 관리전략을 구사할 것이다. 이렇게 해서 수습이 힘들다고 보면 “철저히 개혁하겠다”며 사과하는 단계를 밟을 것이다. 자기표현의 통로가 다양해지면서 현대사회는 허튼 소문과 과대포장 등 부작용도 많아지고 있다. 말의 절제가 요구되는 때이다. 하지만 위기 상황에서는 말의 리더십이 발휘됐으면 좋겠다. 국정원이 트위터로 선거개입을 시도했다는 검찰 공소장 내용에 국민들은 다시 한 번 청와대를 쳐다보고 있다. 박현갑 논설위원 eagleduo@seoul.co.kr
  • [‘내란 음모’ 이석기 구속] “진보당 당권파가 독선·패권주의 야기… 진보정치, 과거 관성 끝내는 계기 될 것”

    [‘내란 음모’ 이석기 구속] “진보당 당권파가 독선·패권주의 야기… 진보정치, 과거 관성 끝내는 계기 될 것”

    “이석기 의원이 어제 지리산 산자락만 봐도 설렌다고 말했는데 헌법가치의 부정을, 조국을 사랑한다는 식으로 합리화해서는 안 된다.” 천호선 정의당 대표는 5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의 내란 음모 혐의와 관련, “국민이 합의한 법적 토대를 인정해야 한다”며 이같이 비판했다. 이 의원 등 통합진보당 당권파에 대해서는 “1980년에 박제된 것 같다”고 진단했다. 정의당은 2011년 12월 통합진보당과 통합했다가 4·11 총선 비례대표 부정선거 사태를 계기로 지난해 9월 결별했다. 다음은 일문일답.→정의당이 이 의원 체포동의안에 찬성 당론을 결정한 배경은. -당내에서도 체포동의안 찬성이 국가정보원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냐면서 기권하자는 주장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체포동의안 포결은 이 의원의 특권을 인정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문제다. 그건 부차적인 문제다. 기권이라는 모호한 태도는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어제 체포동의안 처리에 동의했다고 해서 그게 국정원에 찬성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 것이다. →진보당의 대응도 결정에 영향을 줬나. -국정원의 녹취록이 사실에 가깝다는 것은 진보당도 인정하지 않았나. 이 의원이 절두산 성지를 결전의 성지로 바꿨다고 해명했지만 이는 국민을 우습게 아는 것이다. 녹취록 전문의 전후 맥락을 보면 왜곡됐는지 아닌지를 안다. 하지만 진보당은 한 번도 진실대로 말하지 않았다. 사과한 적도 없다. 이정희 대표는 정당의 발언에 유념하겠다고 말했지만 안이한 인식이다. 국회의원의 특권 뒤에 숨으려고만 했다. →진보당이 이른바 종북세력으로 치부되면서 정의당도 힘들어진 것 아닌가. -우선 진보당 전체가 종북은 아니라고 본다. 종북의 개념도 명확지 않다. 북한과 연계되어 있다는 것인지, 아니면 정치인식이 북한과 유사하다는 것인지 불분명하다. 아울러 진보당원 대다수가 이 의원과 같은 생각은 아닐 것이다. 진보당을 주도하는 일부 세력의 행태지 당원 대다수는 아닐 것이다. 진보당과 정치노선이 다르고 패권주의로 인해 당을 나왔다. 그들과는 다른 세력이라는 선언이다. 안타까운 것은 당의 인지도가 낮아서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조금의 정보라도 알게 되면 국민이 충분히 구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진보정치권도 책임이 있다. 그들이 저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기정화나 세력이 대체되면 해결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번 문제가 진보정치에도 악영향을 준 것 아닌가. -하나의 집단(진보당 당권파)이 두 개의 문제를 일으킨 것이다. 하나는 독선과 패권주의다. 우리는 옳다, 우리가 어떤 방식을 사용하더라고 권력을 잡는 것이 곧 진보라고 믿는 것이다. 지난해 비례대표 부정경선도 마찬가지다. 당시 우리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잘못이 있으니 모두 사퇴하자고 주장했지만 이를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였다. 당시에는 이 의원의 저런 위상도 몰랐다. 아마 이 의원의 사퇴는 고려 대상도 아니었을 것이다. 내용도 문제다. 사상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폭력이나 무력을 인정해서는 안 된다. 선을 그어야 한다. 지난해에 이은 두 번의 문제로 진보정치가 과거의 관성을 끝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앞으로 진보는 국민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하나. -당대표 출마 슬로건이기도 하고 지난해 분당 과정에서도 밝힌 현대적 진보정당이다. 우선 마르크스·레닌 주의와 1980년대 운동주의의 잔영을 없애야 한다. 21세기에 맞는 시민의식을 갖고 사회개혁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두 번째는 헌법 정신을 지켜야 한다. 정당은 헌법을 기반으로 성립돼 활동한다. 세금도 지원받는다. 그렇다면 헌법 정신을 지키는 것이 민주주의 정신이다. 헌법도 개정돼야 할 부분은 있지만 그렇다고 헌법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국정원 개혁에 영향은 없나. -국정원이 정치에 공공연히 개입하고 있다. 이번 문제로 국정원의 개혁 목소리가 줄어들 수 있다. 그렇다고 촛불이 꺼지지는 않을 것이다. 정부가 끝까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촛불이 들불처럼 일어날 것이다. 잠시 가려졌지만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다. 김효섭 기자 newworld@seoul.co.kr
  • [서울광장] 이제는 선택할 때, 영리병원 허용하자/안미현 논설위원

    [서울광장] 이제는 선택할 때, 영리병원 허용하자/안미현 논설위원

    서비스업 전도사를 자처하는 박병원(행시 17회) 은행연합회장은 이런 말을 자주 한다. “온 국민이 일자리를 외치면서 정작 관광호텔 짓는다고 하면 눈을 부라린다. 자동차나 반도체 공정은 기계가 사람을 대체해도 침대보는 사람이 갈아야 한다. 그 많은 침대보를 갈아 끼우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필요하겠나.” 박 회장은 여러 단체들을 ‘꼬드겨’ 서비스산업총연합회라는 조직까지 만들었다. 그에게 ‘세뇌’당한 후배 관료들이 기획재정부에 적잖게 포진해 있는 터라 정부가 ‘서비스산업 활성화 대책’을 내놓겠다고 했을 때 내심 기대가 컸다. 혹시나는 역시나였다. 영리병원(투자개방형 의료법인), 원격진료, 전문업종 간 동업 허용 등 핵심은 죄다 빠졌다는 비판이 쇄도했다. 영리병원에 반대하는 진영은 침묵했다.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굳이 핏대를 세울 필요가 없어서였다. 영리병원이 포함됐다면 들불처럼 일어났을 것이다. ‘따거’(큰형님)로 불리던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조차 끝내 ‘전재희(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벽’을 넘지 못한 데서 보듯 영리병원은 호락호락한 대상이 아니다.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우리 경제는 재작년 2분기부터 8분기 연속 전기 대비 0%대 성장에 머무르고 있다. 잠깐 1%대로 올라선 2011년 1분기를 빼면 2010년 3분기부터 계속이니 3년 가까이 제자리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형국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에도 제로 성장(0.3%)으로 곤두박질쳤다가 이듬해 수직 상승(6.3%)했다고? 외환위기 때도 그랬으니 한국인 특유의 ‘빨리빨리’ 근성이 이번에도 놀라운 성장 복원력을 보여줄 것이라고? 안타깝게도 과거의 신화는 오롯이 자력(自力)만은 아니었다. 금융위기 때는 미국 등 선진국들이 무제한 돈을 살포해 줬고, 외환위기 때는 우리와 달리 세계 경기는 멀쩡했다. 지금은 돈 풀기도 한계에 이르렀고, 미국·유럽·일본 등 전 세계가 불황이다. 중국 경제마저도 아슬아슬하다. 바깥만 쳐다보고 있기에는 우리 경제 사정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지난해 수출의 성장 기여도는 0.8% 포인트, 내수는 1.1% 포인트였다. 추계방식을 바꾸면 결과가 달라진다는 주장도 있으나 수출의 성장 기여도가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수출을 떠받쳤던 제조업의 취업자 수는 최근 12년간 21만명 줄었다. 같은 기간 서비스업 취업자 수는 423만명 늘었다. 국내 고용의 70%를 책임지고 있는 게 서비스업이다. 국내총생산(GDP)에서 서비스업 부가가치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9년 기준 60.3%다. 미국(79.4%)은 물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70.6%)에도 한참 못 미친다. 뒤집어 보면 성장 여력이 그만큼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음식숙박업·도소매업 등 전통 서비스업은 진입장벽이 낮아 이미 포화 상태다. 그렇다면 답은 자명하다. 의료, 광고, 교육, 콘텐츠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을 키워야 한다. 영리병원에 반대하는 진영은 병원들이 ‘돈 되는’ 환자만 가려 받아 비급여(의료보험 미적용) 진료가 늘어나게 될 것이고, 이는 의료 공공성 훼손과 국민건강권 위협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일리 있는 걱정이다. 그러니 정부는 이러한 우려와 불안에 귀를 최대한 열고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보완책을 강구해야 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 하여금 급여·비급여 실태를 비롯해 병원별 진료 행태를 상세히 공개토록 해 병원이 무조건 영리만 좇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시민단체도 두 눈 부릅뜨고 감시하자. 국공립병원 등 공공의료도 강화해야 한다. 복지부 자료를 인용하더라도 우리나라의 공공의료 비중은 지난해 말 현재 기관 수 기준 5.8%, 병상 수 기준 10.0%에 불과하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이제는 선택을 해야 한다. 계속 손 놓고 앉아 일본식 20년 불황의 늪을 걱정만 할 것인지, 아니면 웅덩이가 있어도 일단 가능성이 엿보이는 길을 떠나볼 것인지. hyun@seoul.co.kr
  • ‘한국민주주의전당’ 건립 유치 뜨거운 3파전…새달 서울·창원·광주 중 한 곳 확정

    ‘한국민주주의전당’ 건립 유치 뜨거운 3파전…새달 서울·창원·광주 중 한 곳 확정

    4·19혁명, 5·18 광주항쟁, 부마항쟁, 6·10 민주항쟁 등 한국 현대사 속 민주화운동을 기념하고 계승하기 위해 건립을 추진중인 ‘한국민주주의전당’의 유치를 둘러싸고 서울·창원·광주 등 세 지방자치단체의 경쟁이 뜨겁다. 반면 200여억원에 이르는 정부 예산 확보가 쉽지 않아 예정대로 착공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안전행정부는 23일 “한국민주주의전당 건설을 차질 없이 시작하기 위해 기획재정부에 용역비, 설계비, 건축비 등 내년 예산 146억원을 신청했다”면서 “9월 정기국회에서 최종 확정될 예정이지만 지난해 전액 삭감된 바 있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국회 예결위까지 거쳐 어렵사리 78억원의 예산을 확보했지만, 막판 복지예산에 밀려 전액 삭감됐다. 올해에도 1차 심의에서 152억원의 예산을 요구했지만 일단 제외됐다. 현재 한국민주주의전당 유치에 발벗고 나선 지자체는 서울과 창원, 광주다. 각 지자체마다 역사 속 민주주의 기여를 내세우며, 민주주의 교육 및 국제적 교류 용이성, 민주주의 상징성, 국가균형발전 등을 들어 유치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서울시로 굳어지는 분위기였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정성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이 만나 옛 중앙정보부가 있던 서울시청 남산 별관을 리모델링해 한국민주주의전당을 짓기로 합의하고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건립을 추진하기 위해 정 이사장, 김상근 목사, 함세웅 신부 등 시민사회 원로 10명으로 꾸려진 민주주의전당건립범국민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단에서도 이 같은 내용으로 진행했으나 지난 2월 급제동이 걸렸다. 4·19혁명의 들불을 지핀 곳이자 부마민주항쟁의 도시인 마산(통합창원시)에서 민주주의전당 유치를 강력히 추진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새누리당은 이미 지난 대선에서 경남에서 민주주의전당 유치를 지역공약으로 내세우기도 했다. 지역시민사회와 지방정부 등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에 앞서 5·18민주화운동의 도시 광주 역시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 당시 광주를 찾아 공약으로 걸어 5년 내내 기대를 부풀렸으나 무위로 그쳤다. 하지만 민주주의전당 서울 건립이 흔들리자 다시 유치 경쟁에 가세했다. ‘5·18 광주 정신의 세계화’ 등을 명분으로 삼고 있다. 공동위원장단은 이달초 민주주의전당 건립을 둘러싼 세 지역의 입장 및 부지 확보 등 진행 상황을 확인했고, 다음 달 중으로 건립 지역을 확정지을 계획이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관계자는 “일단 안정적으로 부지를 확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간담회 등을 통해 지역 의견도 충분히 수렴할 계획”이라면서 “민주시민 교육, 국제교류 등 본질적인 사업 자체가 중요한 만큼 깊이있는 논의를 거쳐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1%의 이익 늘면 99%의 이익도 는다는데… 진짜, 진짜, 진짜일까

    1%의 이익 늘면 99%의 이익도 는다는데… 진짜, 진짜, 진짜일까

    ‘세계 도처의 거리에서 대중적 시위가 분출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우리 마음속에서 솟아나는 의문이 있다. 언젠가는 미국에서도 저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우리나라는 중요한 몇 가지 측면에서 곤경에 처해 있는 먼 나라들과 똑같은 처지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소수의 상위 계층, 다시 말해 인구의 상위 1%가 거의 모든 부문에서 통제권을 장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석학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2011년 5월 ‘베너티 페어’지에 이런 글을 썼다. 그 즈음 튀니지와 이집트를 휩쓴 ‘아랍의 봄’ 민주화 시위를 보면서 갈수록 불평등이 심화되는 미국의 상황을 우려한 것이다. 예측은 적중했다. 그해 9월 뉴욕 맨해튼에서 ‘월가 점령 시위’가 일어났다. 빈부 격차 심화와 금융기관의 부도덕성에 반발한 시위는 순식간에 미 전역은 물론 전 세계로 들불처럼 번져 나갔다. 시위대는 스티글리츠 교수의 기고문 제목인 ‘1%의, 1%에 의한, 1%를 위한’을 인용해 ‘우리는 99%다’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정보 비대칭성의 결과에 대한 연구로 노벨상을 받았지만 불평등 연구를 평생의 학문 주제로 삼아온 스티글리츠 교수는 이를 계기로 불평등의 측면에서 미국의 상황을 철저히 분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해서 나온 책이 지난해 출간돼 최근 국내 번역된 ‘불평등의 대가’(이영희 옮김, 열린책들 펴냄)다. ‘분열된 사회는 왜 위험한가’라는 부제가 일러주듯 이 책은 불평등이 우리 사회 전반에 끼치는 악영향을 하나하나 따진다. 흔히 불평등의 해악을 정의나 윤리의 관점에서 뭉뚱그려 비난하기 쉬운데 저자는 시장주의자들이 가장 중요한 미덕으로 선전하는 효율성의 관점에서 불평등을 비판한 점이 독특하다. 저자는 불평등이 얼마나 빠르게 심화돼 왔는지를 우선 설명한다. 미국 상위 1%는 2008년 금융위기 이전 호황기에 국민 소득의 65% 이상을 가져갔다.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불평등은 더욱 심화됐다. 2009년에 비해 2010년에 추가로 창출된 소득의 93%가 상위 1%에 돌아갔다. 또한 지난 30년간 하위 90%의 임금은 15% 증가한 반면 상위 1%의 임금은 150%나 늘었다. 무엇보다 ‘미국=기회의 땅’이라는 오랜 신화가 무너진 점은 치명적이다. 불균등한 교육 기회로 개천에서 용 나는 일이 불가능해지면서 가진 것 없어도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은 신기루가 돼 가고 있다. 그럼에도 상위 계층은 자신에게 이로운 일이 나머지 99%에도 이롭다며 교묘한 논리를 퍼트린다. 상위 계층에 더 많은 돈을 몰아주면 성장의 효과가 하위 계층에도 퍼진다는 낙수 이론과 파이 조각의 상대적인 크기를 따지지 말고 절대적인 크기를 따져야 한다는 파이 이론이 대표적이다. 저자는 하지만 “상위 1%의 이익과 99%의 이익은 명백히 다르다”고 잘라 말한다. 저자는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원인으로 정치를 지목한다. 경제 게임의 규칙은 정치에 의해서 결정되는데 경기장이 이미 상위 1%에게 유리한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정치 시스템이 상위 계층의 이익에 민감하게 반응할 경우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는 정치 권력의 불균형 심화로 이어지고 정치와 경제의 사악한 결합을 낳는다”고 지적했다. 이제 이 책의 핵심 주장을 살펴볼 시점이다. 불평등은 왜 비효율적인가. 저자는 갈수록 심화되는 과도한 불평등 때문에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주장한다. 경제 시스템은 안정성과 효율성이 떨어져 성장 둔화를 겪고 있고, 이는 실업의 고통을 가중시킨다. 경제뿐 아니라 정치·사회적으로도 치러야 할 대가가 크다. 민주주의의 약화, 공정성과 정의의 가치 훼손, 국가적 정체성의 위기 등이 그것이다. 저자는 “심각한 불평등을 완화시키기 위해서는 평등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시장의 힘을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며 “높은 국민 소득, 수많은 기회, 민주주의는 시장의 도덕성 회복을 통해서 탄생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지금의 불평등 구조를 지탱하는 사회·정치적 기득권 구조를 바꾸는 것은 쉽지 않지만 낙관적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고 함께 노력할 때 다른 세상은 가능해진다”고 독려한다. 스티글리츠 교수가 책에서 지적한 불평등에 관한 모든 상황 진단과 원인 분석, 미래 전망은 고스란히 한국 사회에도 적용된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민주화 정책을 둘러싼 논의가 분분한 요즘, 일독해 볼 만한 책이다. 2만 5000원. 이순녀 기자 coral@seoul.co.kr
  • 우후죽순 강원 골프장… 들불 민원에 ‘OB’

    우후죽순 강원 골프장… 들불 민원에 ‘OB’

    “하나 해결하면 또 하나 불거지고…, 끝없이 이어지는 진흙탕 싸움 같은 골프장 민원이 언제쯤 끝날지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지방세수 등을 늘리기 위해 우후죽순으로 허가해 준 강원지역 골프장들이 끝없는 민원의 온상이 되면서 일선 자치단체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8일 강원도에 따르면 시·군은 지방세수 확충과 관광자원 확보, 고용 효과 증대 등을 위해 2006년을 전후해 앞다퉈 골프장을 인허가해 줬다. 그러나 분양시장이 얼어붙고 봇물처럼 터지는 민원으로 골치를 앓고 있다. 또 골프장 운영의 어려움으로 지자체 납부 수수료 감액 주장까지 불거지며 자칫 애물단지로 전락하지나 않을까 걱정이 태산이다. 지금까지 강원 지역에는 71곳의 골프장이 인허가됐다. 이 가운데 53곳(4727만 1535㎡)이 운영 중이고 18곳(2320만 6963㎡)이 공사 중이다. 하지만 공사 중인 골프장 가운데 강릉, 원주, 홍천 등 8곳에서 민원이 끊이지 않고 있다. 2년 전부터 농성을 벌여 온 강릉 구정 골프장 관련 주민시위는 최근 잠잠해졌다. 업체가 주민 요구를 받아들여 골프장 사업을 포기하고 관광휴양·주거형 복합단지를 조성하기로 어렵게 합의했기 때문이다. 원주 구학리 골프장도 시와 의회가 취소 절차에 드는 비용을 마련하고 나섰지만 갈 길이 멀다. 홍천지역 골프장 건설 반대 주민들은 최근 군수실을 점거하는 등 군청에서 84일째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반대 주민들은 ‘강원도 골프장문제 해결을 위한 범도민대책위원회’ 등과 연대해 동막리 골프장의 공사 중단과 훼손된 묘지 원상회복, 팔봉리 묘지의 원상복구와 토지 강제 수용 철회, 괘석리 준공 승인의 중단과 두촌면민 상수도 보호대책 마련 등을 요구하고 있다. 또 월운리 개발계획 전면 백지화와 갈마곡리 골프장 인허가 취소 등 6개 항목의 요구 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노숙을 계속 하겠다는 입장이다. 최근에는 골프장 반대 참가 주민이 당직 공무원을 위협하고 폭행하는가 하면 군청 내 시설을 파손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급기야 홍천군이 천막농성을 자진 철거하지 않으면 강제 철거하겠다고 통보하고 폭행 주민에 대해서는 공무집행방해 혐의 등을 들어 경찰에 고발하는 등 갈등의 골마저 깊어지고 있다. 지방세수 확보에도 비상이 걸렸다. 지난해 개장한 강릉 메이플비치 골프장은 ‘적자를 내고 있다’며 해마다 시에 내야 하는 골프장 운영 위탁 수수료 조정을 요구해 왔다. 이에 대해 김정필 강릉시 체육청소년과 체육시설 담당은 “개장 초기 어려움을 감안해 납부 위탁수수료 15억원을 5년 동안 절반 수준인 7억 5000만원으로 경감해 줬는데 또다시 감액해 달라는 것은 당초 협약 사안에도 없다”고 일축했다. 홍천군 담당자는 “부동산 경기 침체 속에 분양이 안 돼 앞으로 사업을 포기하는 골프장들도 생겨날 것이고 기존 운영 골프장들도 수입이 줄면서 지방세 납부도 어려워질까 벌써 지자체들이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영주 도 체육진흥과 체육시설 담당은 “봇물처럼 불거지는 골프장 민원과 앞으로의 세수확보 어려움 등이 예상되면서 지자체들이 골치를 앓고 있다”면서 “도에서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특별위원회까지 만들어 민원 해결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지만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춘천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명사가 걸어온 길] (9)평생을 민중의 아이콘으로 살다 백기완(하)

    [명사가 걸어온 길] (9)평생을 민중의 아이콘으로 살다 백기완(하)

    백기완(80)의 마음은 찰랑거린다. 가득 차서 찰찰찰 흘러넘친다. 부조리에 대한 울분만은 아니다. 그는 “혁명이 늪에 빠지면 예술이 앞장서는 법”이라고 했다. 시와 이야기, 영화를 빼놓고 백기완의 삶은 성립하지 않는다. 시집만 네 권을 썼다. 그는 “샘물이 콸콸 넘쳐서 메마른 땅을 적시듯, 엄마가 우물에서 뜬 물동이 찰찰 넘치듯 찰랑찰랑 넘치는 것이 시인의 마음”이라고 했다. 첫 시는 어린 시절 냉이의 싹을 보고 썼다. 나물 캐던 어머니는 “비바람을 이기고 살아남는 목숨들, 너무나 수북해 보듬어 주고 싶은 싹에는 손을 대는 게 아니다”라며 싹은 뽑지 않았다. 시심(詩心)이 싹텄다. 그는 “그런 걸 보고 어떻게 시가 안 나오겠느냐”고 했다. 예술을 향한 그의 사랑은 민초(民草)에 대한 사랑만큼 깊다. 찰랑거림의 시작은 이야기다. 이야기는 그의 민중 미학을 이루는 알맹이다. 그도 자신이 이야기꾼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좌중은 그의 이야기에 발을 동동 구르며 자지러지거나 왈칵 눈물을 쏟아낸다. 그 화산 같은 입심의 근원은 무엇일까. “어렸을 때 우리 집은 하루가 멀다 하고 쌀이 떨어졌어요. 아무리 밥 달라, 떡 달라 해봐야 어떡해요, 쌀이 없는데. 할아버지는 왜놈들한테 매를 맞고 돌아가셨지요. 쫄딱 깨진 아픔과 배고픔에 내가 만날 우니까 엄마랑 할머니가 달래느라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어요.” 그래서 그의 이야기는 배고픈 민중을 닮아 있다. 학교에서 배운 글보다는 거리에서 체득한 말에 가깝다. 이야기의 주체도 ‘머리’가 아닌 ‘몸’이다. 몸으로 사는 민중을 이해하지 않고 그의 민중 미학을 파악하기는 어렵다. “가진 거라고는 알통밖에 없는 무지렁이 민중들이 뭘 흘려요. 땀밖에 흘릴 게 더 있겠어요. 흘린 땀은 땅으로, 자연으로 갑니다. 흘러서 넘치는데 네 것 내 것이 없지요. 자본주의 문명이 몸으로 일한 사람들의 열매까지 뺏어 먹는 것과는 달라요. 땀 흘리는 사람들은 병들고 배고파서 죽고 약 올라서 죽고 대들다가 반역자로 몰려서 죽어요. 이런 민중들이 꾸는 꿈을 ‘바랄’이라고 합니다. 이 바랄의 세계가 이야기입니다. 온몸으로 일구지 않으면 바라던 사람이 죽는 게 바랄이에요.” 그가 땅과 대륙을 자주 입에 올리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땅은 민중들의 한 자락 꿈인 동시에 몸으로 일구는 대상이다. 민중은 땅을 일구듯 이야기를 일군다. 장준하 선생과 문익환 목사는 백기완을 두고 “대륙적 정서를 가졌다”고 평했다. 그는 ‘저치 가는 이야기’를 했다. “옛날에 아무리 일을 해도 살 수 없는 무지렁이들이 거역의 등불을 치켜들었습니다. 조정에선 그 들불을 끄려고 오랑캐를 끌어들였지요. 뿔대 돋힌 젊은이 6만명이 오랑캐를 물리치고 같이 압록강을 건너가요. 이 땅별(지구)을 손아귀에 넣으려고? 아니에요. 그 자리에 사랑과 나눔과 영원을 상징하는 진달래와 밤나무, 은행나무를 심으면서 가요. 남이 뚝 자른 손바닥만 한 땅에서 서로 죽기 살기로 싸우고 그 안에서도 ‘나는 몇 평이다’, ‘나는 몇 뙈기다’ 하면서 ‘짜나리’(좀팽이)처럼 배배 꼬지 않아요. 그 넓은 대륙의 마음이 ‘저치’예요.” 민중은 몸으로 이야기한다. 그는 이야기의 고유한 성질로 ‘말림’을 꼽았다. 말림은 소리꾼이 몸짓으로 상황을 연출하는 ‘발림’과 가깝다. “소설은 머리로만 쓰지만 이야기는 온몸으로 한다. 본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소설과 이야기를 비교하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하다”는 설명을 덧붙인다. 말을 잇는 그의 목소리가 격해진다 “내가 지금 이야기하는 게 어때요? 눈빛도 이상하고 손가락도 막 움직이고 발가락도 쑤시고. 어떻게 보면 깡패 같기도 하고 우악스럽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춤추는 것 같기도 하고. 온몸으로 이야기하는 것, 그게 말림이에요. 말림은 듣는 사람과 이야기하는 환경에 따라 달라져요. 뼈대는 그대로지만 정서는 달라지는 거예요. 뒷골목에서 이야기하느냐 시장 바닥에서 이야기하느냐, 듣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 게 민중들의 이야기예요.” 백기완은 “재워주고 밥 준다는 사람에게 이야기를 해주면서 젊은 시절을 보냈다”고 했다. 주머니 가벼운 사람들이 모이는 서울 명동의 뒷골목에서 이야기판을 벌이며 술을 얻어 마시기도 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이심이 이야기’를 여러 번 되풀이했다. “전쟁이 끝난 뒤 이기주의와 정신적 허무주의가 판을 쳤다. 그 막판에 ‘용이냐, 이심이냐’를 들이대고 싶었다”고 했다. “이심이는 착하고 힘없는 바닷물고기예요. 힘센 물고기들에게 부대끼다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맞아요. 용왕을 찾아갑니다. 용왕은 ‘힘센 놈이 힘없는 놈을 먹는 게 용궁의 법도’라며 ‘저놈 잡으라’고 내쫓아요. 오갈 데 없어진 이심이는 목숨을 걸고 싸우기로 하지요. 싸우다 보니 온몸에 쇠비늘이 하나둘 생겨나요. 다시 용왕에게로 쳐들어가니 어이쿠 놀란 용왕이 팍삭 상어로 변해 버려요. 그 대단한 줄 알았던 용왕이 고작 상어라니…. 용왕을 물리친 이심이는 힘없는 물고기들을 위한 ‘벗나래’(세상)를 만들고 함께 살아갑니다.” 그는 “썩은 수챗구멍에서 구슬이 생기기만을 기다리며 용꿈만 꾸는 것은 출세주의의 환상”이라면서 “그 환상을 깨부수고 부정과 싸우는 이심이에게서 배우자는 이야기”라고 덧붙인다. 모질게 고통받다 벼랑 끝에서 삶을 이겨 낸 장산곶매의 또 다른 변주 같다. 민중은 그의 영화에서도 중요한 소재다. 그가 영화에 깊은 애정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영화야말로 오늘의 종합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단돈 만원’, ‘대륙’, ‘쾌지나 칭칭나네’ 등 영화 대본도 3편 썼다. 그가 영화에 처음 눈을 뜨게 된 계기도 민중의 활력 때문이었다. “1954년 경기도 여주에 농민 운동을 하러 갔어요. 농부들하고 열심히 일을 하는데 웬 아낙네가 딸이랑 절구질을 하는 모습이 보이더라고. 아낙은 서른 서넛, 딸은 열일곱이나 되었을까. 둘 다 젖가리개가 없어요. 어머니는 서른서넛밖에 안 돼도 그때는 애 키운 뒤니까 젖이 출렁출렁, 딸은 탱탱하고 포동포동해요. 둘이 번갈아가면서 쿵, 쿵, 쿵, 쿵 맞절구질을 하는데, 그 역동성에 깜짝 놀랐어요. 쿵, 쿵 절구를 찧을 때마다 출렁이는 음악적인 그림. 내가 그 모습을 잡아야 한다고 그랬어요. 이 땅의 농기구가 움직이는 모습을 다 영상으로 꾸려보자 했는데 그때 뭐 카메라가 있어 필름이 있어 돈이 있어. 그래서 대신 ‘농민’이라는 시를 썼어요.” 1965년 한·일 협정 때도 백기완은 영화를 만들 생각을 했다. 독립군을 도와 일제에 맞서 싸우다 숨진 어린 엿장수 이야기였다. 그때만 해도 드물었던 16㎜ 카메라를 동성영화사에서 빌렸다. 백기완은 “어떤 놈이 술 먹겠다고 카메라를 몰래 가져가 술집에 잡혀먹는 바람에 영화를 만들지 못했다”고 했다. “그렇게 영화의 꿈은 깨졌지만 지금도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젊었을 때는 배는 고프고 할 게 있나, 나 혼자 영화 이론 책을 뒤적거리고 그랬어요. 다시 영화를 만든다면 ‘들쑥이’ 이야기를 하려고 해요. 들쑥이는 열일곱 먹은 어여쁜 춤꾼인데 깡패들이 잡아다 양놈한테 팔아버리려고 하거든. 순결을 지키려고 끝까지 싸우다가 두 다리가 부러져요. 그래도 ‘짓밟혀도 일어나 이 세상을 휘젓는 춤을 다시 빚으리라’ 하며 온몸으로 춤을 춰요. 지금도 떠올리기만 하면 눈물이 나는 실화예요. 사람의 몸짓, 말림이 뭔지 보여주려고 해요. 지금은 몸이 아니라 다 돈으로 움직이잖아. 들쑥이의 일생을 영상 언어로 꾸리겠다는 생각은 지금도 버릴 수가 없어요.” 길을 돌아 영화에서 시로 다시 온다. 백기완은 “참된 예술은 찰(시)밖에 없다. 영화는 찰을 오늘의 예술로 만드는 일”이라고 했다. 백기완의 예술 세계에서 시와 이야기와 영화는 환상(環狀)을 이룬다. 그는 “시는 걸레 짜듯 쥐어짜는 게 아니다. 사람의 역사적 삶에서 나온다”고 했다.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사람들이 ‘시’라는 말을 압니까. 시라는 말도 모르고 써본 적도 없어요. 민중들은 사는 게 괴로워요. 혼자만 울어요. 샘물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샘이 곧 자기 땀샘이라. 자기가 보여요. 뭔가 퍼뜩 끓어 넘쳐요. 그게 시예요.” 그가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감옥에서였다. “배알이 튕겨져 나올 만큼 모질게 맞았다”는 차디찬 옥에서 무슨 뜨거운 것이 그리 넘쳤을까. 그는 “굳이 가장 아끼는 시를 말하라면 감옥에서 군사 양아치들한테 매를 맞고 죽음의 숨결을 먹으로 삼아 썼던 ‘묏비나리’와 별 볼품은 없지만 ‘아, 나에게도’를 꼽겠다”고 했다. 백기완은 온몸을 들썩이며 감옥에서 처음으로 쓴 시를 읊었다. 모이면/ 논의하고 뽑아대고/ 바람처럼 번개처럼/ 뜨거운 것이 빛나던 때가 좋았다 (중략) // 추렴거리도 없이 낚지볶음 안주 많이 집는다고/ 쥐어박던 그 친구가 좋았다/ 우리는 두려운 것이 없었다/ 헐벗고 굶주려도/ 결코 전전하지 않았다 (중략)// 그렇다 내 이십대 초반/ 민족상잔 직후의/ 강원도 어느 화전민 지대였지/ 열 여섯쯤 된 계집애의/ 등허리에 핀 부스럼에서/ 구데기를 파내주고/ 우리는 얼마나 울었던가 (중략)// 백번을 세월에 깎여도/ 나는 늙을 수가 없구나/ 찬바람이 여지없이 태질을 한듯/ 다시 끝이 없는 젊음을 살리라/ 구르는 마룻바닥에/ 새벽이 벌겋게 물들어 온다 (‘젊은 날’ 중) 그는 오랜 시간의 인터뷰 중 몇 번이나 시를 읊고 노래를 부르고 눈물을 글썽였다. “아, 나에게도 회초리를 들고 네 이놈 내려칠 어른이 한 분 계셨으면”(‘아, 나에게도’) 하고 외기도 했다. “사람은 늘 그리움으로 산다. 어떻게 하면 사람다운 사람이 되고 사람 이상의 사람이 되느냐 하는 그리움이 예술이고 문화”라는 말도 덧붙인다. 이야기를 마치는 그의 마음은 가만히 찰랑인다. “내 이야기를 듣고 발을 구르던 젊은이들이 지금은 다 뭘하는지…. 내가 죽는다 산다 해도 전화 한 번 없네. 그런 면에서 보면 내 이야기꾼의 삶은 실패라고 볼 수도 있겠지. 그러나 나는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좋은 이야기를 하고 그걸 듣는다고 꼭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법은 없으니까. 가슴에 심어주는 게 중요하지 반드시 성공하는 게 중요한 것은 아니에요. 거두지 못했다고 해서 실패의 역사는 아닙니다. 심어주는 것 자체가 성공의 역사라고 믿는 것, 그게 진보 사상이고 이야기예요.”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 주요 작품 <시집> 1982년 젊은 날 1985년 이제 때는 왔다, 해방의 노래 통일의 노래 (공저) 1989년 백두산 천지 1996년 아, 나에게도 <극본> 1994년 단돈 만원 1995년 대륙 1996년 쾌지나 칭칭나네 <이야기·소설> 1991년 이심이 이야기 2004년 장산곶매 이야기 2009년 따끔한 한 모금 2012년 하얀 종이배 (시나리오 작업 중)
  • ‘국정원 수사 축소·은폐’ 논란에 뒤숭숭한 경찰

    국정조사까지 예고된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에 대한 경찰 고위층의 은폐 의혹이 나오면서 경찰 조직이 술렁이고 있다. 이번 기회에 수사의 원칙과 정치중립성을 담보할 제도적 장치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어 주목된다. 황정인 서울 강남경찰서 수사과장은 21일 “경찰은 2007년 한화 사건 때 충분히 반성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당시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보복 폭행에 대한 수사가 경찰 고위층의 압력에 의해 청탁, 로비, 짜맞추기로 왜곡됐던 것으로 드러났지만 경찰 고위층은 징계 통보 선에서 사실상 면죄부를 받았다. 황 과장은 “부당한 수사 개입을 뿌리 뽑는 유일한 방법은 고위층의 부당한 개입을 세상에 드러내 당사자가 회생 불능의 파멸을 맞는다는 전례를 확립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양영진 마산 동부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장은 페이스북에 “국정원 사건을 계기로 그간 무분별하게 이뤄진 경찰 내부의 수사 개입, 부당 지시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면서 “현재 범죄수사규칙(경찰청 훈령) 제15조의 수사지휘는 서면 수사지휘의 대상과 절차를 규율하고 있을 뿐 그 대상, 범위, 절차, 한계가 상세히 규정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장기적으로는 수사부서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것, 예를 들어 수사차장제 도입, 광역수사체제 도입 등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고위층이 수사를 압박했다는 주장에 경찰 내부의 탄식과 분노가 들불처럼 일어난 것이다. 경찰 윗선의 부당 수사 개입을 폭로한 권은희 현 송파경찰서 수사과장 역시 지난달 사석에서 “국정원 사건은 경찰 내 좌우 싸움이 아닌 신구 싸움”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일부에서 제기한 조직 내 사상·이념 대결이 아니라 정치권 눈치를 보며 물타기, 줄서기 하는 경찰 지휘부와 수사의 원칙을 고수하려는 젊은 경찰 세력 간의 갈등으로 봐야 한다는 얘기다. 경찰은 불거진 의혹에 대해 “언론 내용에 대해 수사 실무자에게 보도 경위와 판례를 묻거나 ‘확인되지 않은 사안을 비공식적으로 언론에 유출하지 말라’는 취지로 주의를 준 사실은 있다”면서도 “사건을 축소, 은폐했다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이성한 경찰청장은 지난 20일 오전 지휘부 티타임에서 언론 보도 내용을 공유하고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상황에 대비할 것을 주문했다. 권 과장에 대한 감찰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한편, 인터넷에서는 양심선언을 한 권 과장을 향한 응원이 줄을 이었다. 권 과장을 응원하는 서명운동이 벌어진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에는 21일 자정 현재 6000명이 넘는 누리꾼이 지지 글을 남겼다. “조직 내 따가운 시선 속에서 진실을 말하는 용기에 경의를 표한다”, “국민을 위한 내부 고발자는 국민이 응원합니다” 등 칭찬 일색이다. 조은지 기자 zone4@seoul.co.kr
  • 제주 들불축제 8일 개막…새별오름서 힐링하세요

    제주의 대표적인 축제인 들불축제가 8∼10일 애월읍 봉성리 새별오름에서 ‘2013 무사안녕, 힐링 인 제주’라는 주제로 열린다. 들불축제는 소와 말 등 가축을 방목하고자 마을별로 늦겨울에서 초봄 사이 들판에 불을 놓았던 제주의 전통 풍습인 ‘방애’(화입)를 현대적 감각에 맞게 재현한 문화관광축제다. 축제는 첫날 도민 대통합 줄다리기로 시작해 1000만명 관광객 유치 기원제, 무사안녕 횃불 대행진, 태고의 제주 탄생 아트 쇼 등이 이어진다. 둘째 날에는 넉둥베기(윷놀이) 경연, 집줄놓기 경연, 제주어 말하기 경연, 제주 농요 공연, 제주 힐링 콘서트 등이, 마지막 날에는 말춤 페스티벌, 오름 정상 화산분출 쇼와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오름 불놓기가 펼쳐진다. 특히 도민과 관광객이 함께하는 열린 무대인 말춤 페스티벌은 1시간 30분간 계속돼 축제장을 뒤흔들 전망이다. 시는 올해 주차공간을 1만대로 확대하고, 무료 셔틀버스를 운영하는 한편 진입로 포장, 산책로 정비, 고정 화장실 등의 기반시설을 확충했다. 휠체어, 모유수유실, 키즈카페 등 장애인과 노약자를 위한 편의시설도 늘리고, 바가지를 근절하기 위해 음식점 가격표시제도 도입했다. 들불축제는 매년 음력 정월 대보름에 개최돼 왔으나 기상악화로 파행 운영되자 시기를 올해부터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이 속하는 주의 금~일요일로 변경했다. 시 관계자는 “축제 기간 국내외 관광객 등과 도민 등 20여만명이 축제장을 찾을 것으로 기대된다”며 “오름 전체를 태우는 들불놀이는 관광객들에게 환상적인 모습을 안겨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오늘 3·1절 기념행사 참여해요] 민족대표 33인의 고귀한 정신 기리며

    [오늘 3·1절 기념행사 참여해요] 민족대표 33인의 고귀한 정신 기리며

    1919년 3월 1일 일본에 항거해 전국 방방곡곡에서 들불처럼 일어나 외쳤던 독립만세의 함성이 강북구에 다시 울려 퍼진다. 강북구는 제94주년 3·1절을 맞아 1일 오전 10시 독립운동의 발원지인 우이동 봉황각에서 ‘제10회 봉황각 3·1 독립운동 재현행사’를 개최한다. 의암 손병희 선생이 일제에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자 3·1 독립운동을 준비했던 곳인 봉황각을 후손들에게 알리고 그 정신을 되새기는 행사다. 이번 행사는 오전 10시 북한산 도선사에서 민족대표 33인을 기리는 추모 타종식을 시작으로 우이동 솔밭공원~봉황각~도선사 2㎞ 구간을 당시 복장을 입은 자원봉사 학생 700여명이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거리행진을 재현한다. 낮 12시부터 오후 2시까지 행사장 주변에서는 독립선언문 인쇄 시연, 만세 주먹밥 만들기, 추억의 먹거리 체험, 곤장체험 등 다채로운 시민 참여행사가 열려 3·1절 의미를 되새길 예정이다. 박겸수 구청장은 “청소년들에겐 선열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알리고, 시민들에겐 3·1절 독립정신을 널리 알리는 기회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종로구 ‘그날의 만세 함성’ 거리 축제로

    종로구 ‘그날의 만세 함성’ 거리 축제로

    종로구는 다음 달 1일 제94주년 3·1절을 맞아 인사동 남인사마당에서 ‘3·1 만세의 날 거리축제’를 개최한다. 종로문화원이 주관하고 서울시와 서울북부보훈지청이 후원하는 행사는 남인사마당 야외무대에서 오전 10시 시작하는 태극기 퍼포먼스와 역사노래 음악회로 막을 올린다. 천도교 원로로 독립선언에 참여한 이종훈(1856~1931) 선생의 자손인 이흥철옹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김영종 구청장의 선창에 따라 만세삼창을 하는 행사도 열린다. 기념식이 끝나면 대형 태극기를 선두로 한 민족대표 33명과 3·1만세 운동 당시 의상을 입은 청소년 자원봉사자 500여명, 지역 주민, 시민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행진을 재현한다. 행렬은 남인사마당에서 출발해 종로2가 금강제화, YMCA 앞을 지나 보신각까지 약 600m를 행진한다. 정오에는 보신각 앞 광장에서 보신각 33회 타종 행사를 갖는다. 행렬이 떠난 남인사마당 야외무대에서는 태평무, 경기민요 등 전통무용 공연이 펼쳐지며 야외무대 주변 인사동 거리에서는 태극기 그리기 행사가 오후 3시까지 진행된다. 이번 행사는 시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행사에 참여하는 시민에게는 소품인 태극기를 무료로 제공한다. 원활한 행사 진행을 위해 오전 9시부터 인사네거리~남인사마당 구간 차량을 통제한다. 김 구청장은 “이번 행사가 들불같이 일어났던 선조들의 강인한 독립정신을 느끼고 체험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면서 “특히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역사의식을 심어주고 애국선열의 정신을 추모하는 뜻깊은 자리가 되도록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주말 인사이드] “왜 울어, 넌 성폭행당했을 뿐이야”…22분마다 성폭행…명예살인

    [주말 인사이드] “왜 울어, 넌 성폭행당했을 뿐이야”…22분마다 성폭행…명예살인

    지난해 12월 인도 전역을 분노로 들끓게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남자친구와 심야 버스를 타고 귀가하던 여대생 조티 싱 판데이(23)가 버스 운전사를 포함한 6명의 남성으로부터 버스에서 한 시간 동안 집단 성폭행을 당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내장 파열 등 심한 충격을 입은 판데이는 인도에서 치료를 받다가 싱가포르의 장기이식 전문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끝내 싸늘한 주검으로 고국에 돌아왔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인도 전역에서 성폭행 관련 처벌 강화를 위한 법 개정을 주장하는 시위가 들불처럼 번졌다. 수도 델리에서는 22분마다 성폭행이 발생한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로 인도에서 성폭행은 빈번하게 일어난다. 그러다 보니 인도의 성폭행 피해 여성들은 경찰로부터 “왜 울어. 넌 단지 성폭행을 당했을 뿐이야”라는 말을 듣는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만큼 남성 중심의 인도 사회가 여성의 인권에 무관심하다는 증거다. 전문가들은 인도에서 성폭행이 자주 발생하는 것은 여성을 남성의 소유물로 보는 사회적 통념이 여전히 뿌리깊은 데다 성범죄를 신고해도 사건과 소송을 담당할 경찰 및 재판관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실제로 통계에 따르면 인도 경찰에 접수된 성폭행 건수는 1970년대 3000건에서 2010년 2만건으로 급증했지만 성폭행 사건의 유죄 선고율은 1974년 39%에서 2011년 26%로 감소했다. 법원에 계류 중인 성폭행 사건만 4만~10만건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네팔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다. 해외에서 근무를 마치고 귀국한 한 20대 네팔 여성이 카트만두 국제공항에서 출입국 공무원들에게 돈을 빼앗긴 후 경찰관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피해 여성이 성폭행으로 임신을 했다고 밝히면서 전국적으로 시위가 확산됐다. 네팔 인권변호사인 만디라 샤르마는 BBC와 가진 인터뷰에서 네팔에서는 정부 관계자가 범죄에 연루되어 있는 경우 성범죄 소송이 진행되기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정의는 얼마나 조사를 착실히 하는지에 달려 있지만, 경찰은 정부와 정치인들의 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면서 여성 인권에 무관심한 사회현실을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인도에서 발생한 시위는 네팔, 스리랑카,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 서남아시아 지역 여성들의 인권 향상을 주장하는 기폭제가 됐다. 인도의 대규모 시위와 맞물려 이 지역에서도 여성의 권익 향상을 주장하는 시위가 이어졌다. 시위대는 가정 폭력을 비롯한 성폭력에 대해 말을 꺼내는 것조차 쉽지 않은 나라들에서 이 같은 시위 움직임이 확산됐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고 평하고 있다. 인도의 일부 시위대는 판데이 사건과 관련해 성폭행 피의자들에게 화학적 거세와 사형 등 강력한 처벌을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 역시 자국 시위대의 항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자 판데이 사건을 최근 설립된 ‘신속 처리’ 특수법원으로 넘겨 재판 절차에 속도를 내고 있다. 첫 공판은 오는 21일(현지시간)에 열릴 예정이다. 아시아와 중동 지역에서는 관습이라는 미명하에 ‘명예살인’도 종종 발생하고 있다. 명예살인이란 집안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가족 구성원을 직접 살해하는 것을 말한다. 특히 간통을 하거나 부모가 결정한 결혼을 거부한 여성 가족 구성원이 명예살인의 주요 표적이 된다. 2000년 유엔 통계에 따르면 파키스탄을 비롯한 이라크, 요르단, 레바논, 아프가니스탄, 인도 등 전 세계에서 명예살인이 연간 5000건 이상 발생하고 있다. 최근 이라크 키르쿠크에서 아버지가 10대 딸 세 명에게 뜨거운 물을 뿌리고 총격을 가해 두 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아버지는 법정에서 딸들이 남성과 관계를 맺어 명예를 더럽혔기 때문에 이 같은 일을 벌였다고 진술했다. 현지 활동가들에 따르면 이라크에서 일반 살인사건의 경우 사형 선고를 받지만 유독 명예살인에 대한 처벌은 관대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두 딸을 살해한 이 아버지 역시 징역 2년형을 선고받는 데 그쳤다. 이와 관련해 이라크 여성부는 성폭행 관련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지만 의회 구성원이 대부분 남성인 데다 가족이나 부족과 같은 집단의 명예를 개인의 명예보다 더 중시하는 가부장적 문화가 법 개정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2004년 요르단 국회에서는 명예살인에 대해 엄격한 형사 처벌을 부과하자는 법안이 제기됐지만 보수성향 남성 의원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파키스탄 역시 2006년 명예살인을 금지하자는 법안이 국회에 제출됐으나 기각됐다. 정부나 정치인들이 사건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은 채 방관하는 자세로 일관하면서 여성의 목숨을 위협하는 불안한 환경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 서남아시아 여성들은 무장세력이 벌이는 테러의 주요 표적이 되기도 한다. 지난해 10월 여성의 교육받을 권리를 주장한 15세 인권운동가 말랄라 유사프자이가 탈레반으로부터 총격을 당했다. 두 달 뒤인 12월에는 소아마비 퇴치 운동을 벌이던 여성 활동가들이 탈레반의 총격에 잇따라 사망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이처럼 극단적 이슬람주의를 기반으로 한 탈레반은 교육, 보건 등 인권 개선사업에 참여하는 여성들을 겨냥한 테러를 자행하고 있다. 총격을 당했음에도 병상에서 기적적으로 회복한 유사프자이는 전 세계를 감동시켰다. 동시에 여전히 열악한 세계 여성의 권리를 재조명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실제로 전 세계에서 유사프자이와 그가 벌이는 여성 권익신장 운동에 대한 응원의 메시지가 쇄도했고, 파키스탄에서는 유사프자이의 뒤를 따라 여성인권 운동을 하겠다는 소녀 운동가도 등장했다. 그러나 유사프자이 총격 이후에도 인도, 네팔, 파키스탄에서는 여전히 성폭행과 명예살인의 악습이 끊이지 않고 있다. 다른 나라 여성들처럼 ‘보통의 삶’을 살기를 원하는 서남아시아와 중동 여성들의 작은 소망이 실현되기에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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