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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높은 것이 아름답다”…하늘에 가장 가까운 인공물 ‘부르즈 할리파’ 문 열다[지구촌 소사]

    “높은 것이 아름답다”…하늘에 가장 가까운 인공물 ‘부르즈 할리파’ 문 열다[지구촌 소사]

    14년 전 오늘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이라는 말을 듣는 최고 높이 빌딩이 문을 열었다. 2004년 9월 첫삽을 떴는데, 우리나라 삼성물산이 시공사에 선정돼 더욱 유명해졌던 건물이다. 2010년 1월 4일(현지시간) 석유부국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최대도시 두바이에서 ‘부르즈 할리파’가 개장해 세계인의 탄복을 불렀다. 2004년 9월 21일 착공해 5년 10일 만인 2009년 10월 1일 완공됐다. 인간이 만들어낸 어떤 구조물보다도 높다. 이전엔 건물이 아닌 구조물이었던 폴란드 바르샤바 라디오 송신철탑(646m)이 최고 높이였는데 이것을 부르즈 할리파가 추월했다. 완공 이전에는 부르즈 두바이(두바이의 탑)으로 불렸지만, 이후 UAE의 대통령 할리파 빈 자이드 알나하얀(1948~2022)에게서 이름을 새로이 따 붙였다. 아부다비 국왕으로 UAE 최고권력자인 셰이크 모하메드(75) 두바이 통치자는 이날 부르즈 할리파 앞 야외 특설무대에서 열린 개장식에서 “오늘 우리는 인류 최고 높이의 건물을 갖게 됐다”며 “이처럼 위대한 프로젝트엔 위대한 인물의 이름을 붙이는 게 합당하다”고 말했다. 그가 “이제 부르즈 할리파의 개장을 선포한다”고 외친 뒤 UAE 국기를 뜻하는 ‘녹·흑·적·백’ 4색의 낙하산들이 셰이크 모하메드의 거대한 초상화 위에 착륙함과 동시에 외부 벽 구조를 공개해 박수를 받았다. 이름 교체는 개장식 직전까지 극비 사안으로 다뤄졌다. 이날 오전 공식 보도자료에도 모든 문서에 나오는 건물 이름을 부르즈 두바이로 표기했다. 두바이가 채무 상환 압박 속에서 UAE 수도 아부다비의 지원을 받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건물명 변경은 대통령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읽힌다. 아부다비 정부는 세 차례에 걸쳐 두바이에 250억 달러(약 32조 7500억원)를 지원했다. 부르즈 할리파는 과연 마천루, 글자 그대로 하늘을 닦는 누각이라고 할 만하다. 기존 최고 건물 타이베이101(508m)보다 320m나 높다. 내부에만 모두 57개 엘리베이터를 갖췄다. 특히 124층에 위치한 전망대 전용 엘리베이터는 지상층에서 최고층까지 무려 829.8m를 1분 남짓에 손님을 모시는 초고속을 자랑한다. 부르즈 할리파에는 10000실의 호텔, 586세대의 주거용 공간, 3㏊의 공원, 19개 이상의 주거 타워와 두바이 몰, 12㏊의 인공 부르즈 할리파 호수 등이 있다. 122층에 자리한 ‘엣.모스피어(At.mosphere)’는 411m 상공에 위치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레스토랑으로 이름을 올렸다. 또한 부르지 할리파는 층수(163층) 부문에서도 2001년 9·11 테러 때 붕괴된 뒤 재건립해 2014년 11월 개장한 미국 뉴욕 맨해튼 세계무역센터(110층)를 따돌리고 1위에 올랐다. 2011년 할리우드 영화인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에 출연한 월드스타 톰 크루즈(62)가 이곳에서 스턴트 장면을 촬영해 더욱 명성을 높였다. 부르즈 할리파는 2019년 사우디 아라비아 ‘제다 타워’에 세계 최고 높이라는 명예를 빼앗길 뻔했다. 영어로는 제다 타워라고 하지만, 건설 기획단계에서는 ‘킹덤 타워’로 불렸으며, 아랍어로는 여전히 ‘부르즈 알 마물라카’(왕국의 탑)라는 이름을 달았다. 그러나 높이 1000m를 웃돈다던 해당 건물은 2013년 4월 공사를 시작한 뒤 언제쯤이나 마무리될지 기약도 없다. 이미 여러 이유로 우려를 샀던 터다.
  • “강서 신경제축 조성… ‘다 같이 살기 좋은’ 서울 서남권 중심도시로”[2024 새해 포부 서울 단체장에게 듣는다]

    “강서 신경제축 조성… ‘다 같이 살기 좋은’ 서울 서남권 중심도시로”[2024 새해 포부 서울 단체장에게 듣는다]

    진교훈 서울 강서구청장은 석 달 전 국민적 관심을 받으며 당선됐다. 22대 총선 민심을 가늠할 수도권 유일의 보궐선거에서 여당 후보이자 전임 강서구청장을 17.15% 포인트의 압도적인 득표율 차로 눌렀다. 화제의 주인공이었지만 진 구청장은 취임식도 생략하고 쇄도하는 언론 인터뷰도 고사한 채 구정에 몰두했다. 하루라도 빨리 업무 공백을 메우는 게 선택해 준 구민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함께 더하는 미래, 같이 나누는 강서’를 구정 슬로건으로 제시한 진 구청장은 지난달 27일 서울신문과의 신년 인터뷰에서 “전세사기 피해자를 실질적으로 돕기 위한 세심한 정책을 마련하고 안전 인프라를 확충해 강서를 서울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로 만들겠다”고 밝혔다.진 구청장은 취임 80여일 중 가장 인상 깊은 현장으로 전세사기 피해자 전수 실태조사 결과보고회를 꼽았다. 지난달 5일 늦은 시간에도 100여명의 피해자가 진 구청장을 만나기 위해 구청을 찾았다. 그는 “지난 5월 전세사기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피해자들은 실효성 없는 대책이라고 비판한다”며 “국가가 정한 법과 제도를 믿고 전세계약을 체결한 피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경제적 재난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국의 전세사기 피해자는 1만 256명으로 이 가운데 596명이 강서구민이다. ‘주사 행정’, ‘순경 치안’이라는 말처럼 주민들의 답답함과 억울함을 풀어 줄 촘촘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는 게 진 구청장의 생각이다. 그는 “전세사기 피해자가 피해 주택을 경매로 매입할 때 절차를 신속하게 해 주고 저리 대출, 취득세 감면 등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며 “특별법 개정을 위해 정부와 국회를 설득하겠다”고 밝혔다. 구 차원의 행정력도 최대치로 동원할 계획이다. 강서구는 지난 7월 피해자 지원 조례를 제정하고 전세보증금 반환 보증료와 긴급주거 이사비 및 청년 월세를 지원한 데 이어 지난달 조례 개정을 통해 소송 수행 경비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진 구청장은 “일주일 만에 144명이 소송비 지원을 신청했다”며 “피해자들이 현실적인 지원책에 얼마나 목말랐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강서구는 주거환경이 열악한 노후 저층 주거지 일대 정비사업이 효율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올해 전문성을 갖춘 재개발·재건축 지원센터를 설치한다. 마곡지구 중심의 북측 지역과 화곡동 중심의 남측 지역의 균형 발전을 위해 화곡동, 등촌동, 방화동 등 원도심 지역개발을 중점적으로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주민 의견을 수렴하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면서 정비사업 추진을 단계별로 지원하는 원도심 활성화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지난해 10월부터 노후 공동주택 재건축 안전진단 비용을 100% 무이자로 지원한다”며 “주민 부담을 줄여 재건축을 조속히 추진할 수 있는 추가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진 구청장은 후보자 시절부터 33년 경찰로 근무한 경험을 살려 강서구를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도시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각종 범죄와 사회적 재난으로부터 시민 생명을 보호하는 일은 중앙정부, 지방정부 가리지 않고 최우선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엊그제 산책하다 아파트 단지 내 재활용품 수거장에 불이 난 상황을 우연히 보게 됐다”며 “소방과 구청 당직실에 연락을 유지하면서 불이 꺼질 때까지 지켜봤다”며 “다른 지역에서 벌어지는 아파트 화재 사건과 같은 뉴스를 볼 때면 남 일이 아닌 것 같고 대비책을 고민하게 된다”고 털어놨다. 진 구청장은 취임 후 경찰, 소방, 자율방범대, 의용소방대 등이 모인 지역치안협의회를 활성화하고 둘레길, 등산로 등 인적이 드문 곳에 폐쇄회로(CC)TV를 우선 확충하기로 했다. 또한 2018년부터 운영한 공원보안관 제도를 개선해 둘레길에 방범 인력을 배치할 계획이다. ‘다 같이 살기 좋은 강서구’는 진 구청장이 가장 강조하는 구정 철학이다. 서울 서남권의 중심지로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강서구의 지속적인 발전을 추진해 그 혜택을 모든 주민에게 골고루 전달하는 게 그의 바람이다. 그는 “균형발전도시를 위해 대장~홍대선 조기 착공과 강서구 준공업지역 발전방안을 위한 용역을 추진할 예정”이라며 “또한 김포공항과 마곡, 가양 CJ 부지를 잇는 강서 신경제축을 조성하고 강북횡단선과 전통시장 디지털 전환을 통해 미래경제 도시로 발돋움하겠다”고 강조했다. 구는 어르신 일자리 창출, 야간·주말 운영 소아 진료기관 추진, 주거취약계층 맞춤형 지원주택 공급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책을 추진하고 마곡 M융합캠퍼스와 종합체육공원 및 한강 변을 잇는 명품 숲 둘레길도 조성할 계획이다. 지역 사업을 과감히 추진하기엔 재정 여건이 녹록지 않은 게 부담이다. 강서구의 재정자립도는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19위이며 재정자주도는 최하위이다. 서울시의 도움이 없으면 사업을 추진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진 구청장은 “문제가 있으면 해결책도 있다”며 “1700여명의 강서구 공무원과 함께 선택과 집중을 통해 숙원사업을 해결하고 구민의 삶이 더 나아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 총선 뛰어든 부장검사, 출판기념회 예고해 내부 ‘부글부글’[서초동 로그]

    오는 4월 총선 출마를 위해 사의를 표명했다가 추가 감찰을 받고 있는 김상민 대전고검 검사(사법연수원 35기)가 오는 6일로 정한 출판기념회를 예정대로 진행하기로 해 논란이 되고 있다. 검찰 내부에서는 ‘부끄럽다’, ‘이러니 정치검찰 소리를 듣는다’는 등 부글부글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김 검사는 지난 2일 출근한 뒤 휴가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총선을 겨냥한 것으로 논란이 된 출판기념회는 6일 강행할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대검찰청은 김 검사에 대해 정치적 중립을 훼손했다는 이유로 서울중앙지검에서 대전고검으로 좌천성 전보 조처를 내렸지만 제재할 방법은 없는 셈이다. 김 검사는 경남 창원에서 국민의힘 측 경선에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 검찰 관계자는 “검사들이 국회의원 선거에 도전하는 경우가 많긴 했지만, 검찰 조직 핵심인 중앙지검 부장검사가 바로 뛰어드는 경우는 없었다”면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하는 검찰 내부 인사들이 많다”고 전했다. 자칫 현직 검찰이 수행하는 수사와 기소까지도 ‘정치적 의도’를 의심받는 등 신뢰성이 저하될 수 있다는 우려다. 다만 일각에서는 대검의 강력 징계 의사가 결국 제스처로 끝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야당도 아니고 집권 여당으로 출마한다는데 검찰로서도 나쁠 것 없다고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검사는 대검이 감찰 절차를 늦추며 사직서를 수리하지 않는 데 대해 ‘선거 개입’이라며 반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검사는 지난해 추석 연휴를 앞두고 지인들에게 “저는 뼛속까지 창원 사람”이라는 등 문자메시지를 보낸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됐다. 이에 대해 김 검사는 ‘정치적 의미가 없는 안부 문자였다’고 해명해 ‘검사장 경고’ 처분으로 끝나는 듯했다. 그러나 김 검사가 다시 총선 출마 의사를 밝히며 출판기념회를 연다는 내용의 게시물을 올렸다가 삭제하면서 대검은 김 검사에 대한 추가 감찰과 징계를 예고했다.
  • 조성명 강남구청장, 환경미화원들과 새해 첫 업무

    조성명 강남구청장, 환경미화원들과 새해 첫 업무

    조성명 강남구청장이 환경미화원 10명과 함께 거리 청소를 하며 현장의 소리를 듣는 것으로 2024년 새해 첫 업무를 시작했다. 구는 조 구청장이 2일 오전 첫 업무 일정으로 강남역 여명길에서 거리청소를 한 뒤 수서종합사회복지관에서 어르신 무료급식 봉사를 하며 새해 인사와 덕담을 나눴다고 3일 밝혔다. 이어 개포2동주민센터를 방문해 전국 최초로 구축한 스마트강남 동장실을 점검하고 내년 3월 준공 예정인 수서동 730번지 로봇플러스 실증 개발지원센터를 방문해 공사 진행 상황을 파악했다. 준공 후 산업통상자원부 국책 공모사업이 본격 추진되면, 구는 이에 발맞춰 정부 부처 공모사업과 로봇 기업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로봇 사업을 더 활성화시키겠다는 계획이다. 현장 일정을 마친 후 도산공원에 있는 안창호 선생의 묘역을 참배하며 새해 초심을 다졌다. 조성명 강남구청장은 “갑진년 청룡의 해를 맞아 용기와 희망을 상징하는 용의 기운을 받아 구민 모두가 뜻하신 바를 이루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며 “앞으로도 변화와 혁신을 이어나가 지난 50년을 뛰어넘는 강남, 대한민국의 미래 100년을 선도할 강남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 “구로 경제거점 ‘G밸리’ 60주년… 4차 산업 동력 찾는 원년 될 것” [2024 새해 포부-서울 단체장에게 듣는다]

    “구로 경제거점 ‘G밸리’ 60주년… 4차 산업 동력 찾는 원년 될 것” [2024 새해 포부-서울 단체장에게 듣는다]

    디지털산단 등에 3만 5000명 근무정보기술전시회 MWC 참가 추진연쇄부도 최소화 채권 보험료 지원‘구로차량기지’ 이전 계획 재추진권익위 청렴도 평가 2년 연속 1위 서울 구로구 구로디지털산업단지를 포함한 G밸리가 새해 60주년을 맞는다. ‘따뜻한 동행, 변화하는 구로’를 기치로 4차산업을 선도하는 첨단 산업도시로의 변화를 강조해 온 문헌일 구로구청장의 발걸음에 새해엔 더욱 힘이 실린 배경이다. 문 구청장은 지난해 12월 28일 서울신문과의 신년 인터뷰에서 “G밸리는 구로구 경제활동의 거점”이라며 혁신 기술 육성 사업 추진 계획 등을 밝혔다. 40년 넘게 구로에 살고 있는 토박이이자 정보통신기술(ICT) 기업 경영자 출신인 문 구청장은 재개발·재건축을 통한 G밸리 배후 주거 지구 조성도 빼놓지 않았다. 구로차량기지 이전에 대해서도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다음은 문 구청장과의 일문일답.-첨단 산업도시로의 변화를 위한 계획은. “G밸리는 3100여개 기업에 3만 5000명의 근로자가 출퇴근하는 구로구 경제활동의 거점이다. G밸리가 잘돼야 지역 경제가 활성화되고 주민의 삶의 질도 높아질 수 있다. 지난해 10월 관내 기업과 ‘해외시장개척단’을 꾸려 참가한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자이텍스(GITEX)에서 해외 바이어의 적극적인 호응을 보면서 구로구의 미래가 4차산업 관련 기술과 해외시장 진출에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올해는 세계 3대 정보기술(IT) 전시회 중 하나인 라스베이거스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에 참가할 계획이다. 또 이노비즈 인증과 컨설팅을 골자로 한 혁신 기술 기업 육성 사업을 서울시 자치구 중 최초로 선보일 예정이다. 기업들의 연쇄 부도 위험을 줄이기 위해 매출 채권 보험료 지원 사업도 준비 중이다.” -ICT 인재 양성도 강조해 왔는데. “지난해 시작한 G밸리 재직자 대상 석박사학위 과정 프로그램, 재직자 교육 사업 등을 이어 갈 뿐만 아니라 근로 여건 개선에도 나선다. 올해는 2020년부터 추진되다가 토지 사용 문제로 중단된 디지털 올레길의 최종 구간을 연결할 예정이다. 문제의식에 공감해 준 주변 지식산업센터와 합심한 결과다. 남구로역에서 G밸리로 출퇴근하는 근로자들뿐만 아니라 주변 주민의 편의를 높일 수 있다. G밸리 다목적 체육관도 준공된다. G밸리로 인해 주변 지역의 개발 필요성이 높아진 것처럼 G밸리가 활성화되면 경제 효과와 인프라 투자가 주변 지역에 퍼져나가게 될 것이다.” -지난해 재개발·재건축 사업지원단을 구성했는데 올해 기대되는 성과는. “재개발·재건축 관련 인허가가 늘면서 신속한 추진에 대한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서울 서남권 관문 지역인 온수역 주변의 럭비 구장이 이전하고 40층 규모 업무·주거·문화 복합단지를 조성하기로 하면서 오류동에서 환골탈태하는 수준의 눈에 띄는 변화가 시작될 것이다. 지난해 오류고도지구도 해제됐다. 낡은 시설을 정비하고 주거와 상업, 일자리를 갖춘 복합단지로 재정비가 본격화될 것이다. 또 G밸리의 배후 주거지로 낙후한 주거단지가 밀집한 가리봉동을 서울시 신속통합 기획을 통해 명품 주거 지역으로 바꾸는 작업도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 또 가리봉동 구시장 부지에는 청년임대주택이 포함된 복합시설이 올해 착공될 예정이다. 지원단은 올해 소규모 재건축 사업장을 대상으로 설명회, 방문 상담 등을 이어 갈 예정이다.”-구로차량기지 이전 해법은. “구로차량기지 이전이 지난해 기획재정부 심사를 넘지 못하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지만 재추진을 위한 민관정 협의체를 꾸리는 등 착실히 준비해 왔다. 국토교통부의 5차 국가철도망 구축 계획에 반영하기 위해서 사전 타당성조사 용역 결과를 상반기 국토부에 제출할 계획이다. 이젠 구로구민의 숙원사업일 뿐만 아니라 시민 전체의 관심사다. 어떻게든 성사해야 한다. 특히 구로역을 포함해 지하철 1호선의 지하화 법안이 국회에서 논의 중인 마당에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다. 복합 건물 등 장래 활용 방안을 준비할 수 있도록 별도 팀을 만들려고 한다.” -구로구가 국민권익위 발표에서 2년 연속 종합청렴도 1등급을 받았다. “구청장 임기를 시작한 직후 2년 연속 종합청렴도 1등급을 받았다. 특히 2년 연속 받은 자치구는 구로구가 전국에서 유일하다. 그동안 소신껏 일하고 원칙에서 벗어나는 일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는데 직원들 전부가 노력한 결과를 인정받아 기쁘다. 3년 연속 청렴도 1위를 위해 노력하겠다.” -3년 차를 맞는 소감은. “얼마 전 16개 동을 모두 방문하는 ‘구청장의 동행(洞幸)’ 행사에서 만났던 한 어린이집의 아이들이 며칠 전 응원하는 편지를 보내와 기특한 마음과 함께 큰 책임감을 느꼈다. 어린이들의 밝은 미래는 안전한 사회와 충분한 교육 여건뿐만 아니라 경제 활력을 유지하는 일자리에도 달려 있다고 본다. 새해에는 구로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노력이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겠다.”
  • 새해 경남도민이 바라는 도정 방향은

    새해 경남도민이 바라는 도정 방향은

    2024년 새해 각계각층 도민이 모여 올해 도정에 반영했으면 하는 정책을 쏟아냈다. 경남도는 2일 올해 첫 공식행사로 개최한 ‘새해 도정에 바란다’ 2부에서 도민이 바라는 경남 미래와 정책제안을 들었다.행사에서 구수룡 ㈜삼백육십오 대표는 경력단절여성·시니어 채용이 활성화할 수 있도록 중소기업 지원책 마련과 비제조업 분야 스타트업 판로 개척, 대기업 협업기회 확대를 요구했다. 채도운 보틀북스 대표는 요식업에 한정된 공공배달앱 대상 상품을 다양화하고 공공배달앱 수수료 부담 완화를 제안했다. 김현모 진주문화관광재단 대리는 현재 주차장으로 쓰이는 창원 F3 경기장을 자동차 관련 축제장으로 활용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김서영 삼홍기계 선임은 50주년을 맞은 창원국가산단이 대한민국 최고 산단 영광을 되찾을 수 있도록 새로운 미래비전 제시와 함께 소형모듈원자로(SMR) 등 원전제조 기술 활성화를 건의했다. 오천호 에코맘산골이유식 대표는 도민에게 혜택을 주는 사업에 지자체와 지역 소상공인이 협업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달라고 했다. 이재훈 양산 웅산청년회의소 회장은 아동학대 의심신고 후속절차 제도 개선을, 양소윤 사천청년네트워크 대표는 지역특화 청년 일자리 사업 활성화·지방정부 역할 확대를 요구했다. 2부에 앞서 1부에서는 스타트업 대표, 기업인, 지역방송인, 경적단절 경험이 있는 도민이 참여해 지역 문화콘텐츠 개발, 토양 복원 사업 확대, 수도권-지역기업 법인세 차등화 추진 등 올해 포부와 계획을 밝혔다. 원거리에 있는 도민과 연결해 산업 현장 이야기를 듣는 시간도 있었다. 박완수 도지사는 “도민을 위한 도정이 운영될 수 있도록 열심히 달려나가겠다”고 밝혔다.
  • 미래는 죽은 사물의 시간- 안태운·황유원의 시(①)/박민아[서울신문 2024 신춘문예 - 평론]

    1. 멸종위기종 낭송하기 랩스 프린지 림드 청개구리(Ecnomiohyla rabborum) 브램블 케이 멜로미스(Melomys rubicola) 포오울리(Melamprosops phaeosoma) 크리스마스섬집박쥐(Pipistrellus murrayi) 콰가(Equus quagga quagga) 세실부전나비(Glaucopsyche xerces) 스텔러바다소(Hydrodamalis gigas) 타이완구름표범(Neofelis nebulosa brachyura) ―안태운, ‘생물종 다양성 낭독용 시’ 중에서 멸종위기종을 지칭하는 아름다운 이름들. 이 호명이 꽤 아름답고 문학적이라고 느껴진다면 그것은 선언과 낭송의 효과이자 맹점일 것이다. 위 시에서 나열하고 있는 것들은 당연히 멸종위기에 처한 생물종의 명칭이다. 우리가 이 “절멸”의 위기에 처한 “생물들의 이름을 반복해서 되뇌”는 때 “크리스마스섬집박쥐”나 “세실부전나비”는 있지만, 당연하게도 ‘러브버그’(Lovebug)나 ‘빈대’(Bedbug) 따위는 없다. 이는 어쩌면 당연하다. 러브버그의 충격이 두 계절이 채 지나기도 전에 이번에는 빈대가 기승이고, 이 벌레들은 인간의 생활권 내에서 인간에게 직접적으로 위해를 가하(가한다고 여겨지)는 존재들이다. 이 때문에 인간종이 이들의 박멸을 궁리하면서 동시에 멸종을 걱정하는 일은 난센스에 가깝다. 이 낭독의 대열에 ‘각다귀’나 ‘깔따구’가 없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그런데 각다귀 입장에서는 조금 억울한 것이, 각다귀는 모기와 비슷하게 생긴 데다 크기도 커서 ‘왕모기’로 종종 오해받는데, 기존 인간의 편의대로 손쉽게 구분해 보자면 각다귀는 일단 익충에 가깝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서조차 각다귀를 “남의 것을 뜯어먹고 사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정의하는데, 이 때문인지 흔히 고전문학에서 각다귀는 백성의 고혈을 빨아 먹는 탐관오리와 같은 부정적 대상으로 비유돼 왔다. 그런데 이를 차치하고, 어느 생물종의 유해함과 무해함을 나누는 기준이 인간에게 끼치는 영향에 불과하다면 이는 어딘가 좀 이상하지 않은가. 과거 인천 수돗물에서 발견된 깔따구 유충이 수질 오염의 지표인 것처럼 지목됐으나 실제로 깔따구 유충은 수생태계의 중요한 분해자에 해당한다. 또 인간의 편의대로 분류해 보자면 깔따구 역시 익충인 셈인데 여기서 다시금 제기될 수밖에 없는 중요한 질문은, 깔따구는 왜 매번 인간종에게 자신의 존재 이유를 증명해야 하는가일 것이다.(②) 벌레는 그 개체수만으로 따지자면 실질적으로 지구를 점유하고 있는 종에 가깝다. 이 실질적 지배자들에 대한 익충 혹은 해충으로의 분류는 다분히 인간중심적이다. 위 시에서 멸종위기에 처한 보호해야 할 종들을 열거하는 ‘낭독’의 방식은 분명 선언적이고 아름다운 데가 있지만 이 아름다운 대열에 끼지 못한, 호명되지 못한 나머지 존재를 누락시킨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현재 지구에는 1000조에서 1경 마리의 곤충이 존재하지만, 수십 년 안에 사라질 멸종위기종 중 절반은 곤충이 될 것으로 보인다.(③) 이 글은 위 시에서의 선언의 정치성이나 효과, 의의를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라, (최근 시인들 사이에서 릴레이처럼 수행되는) 호명과 열거의 과정에서 배제되거나 배제될 가능성이 있는 개체들을 환기하자는 의도에 가깝다. 기실 최근 안태운의 시는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생물종을 ‘당신’으로 호명하며 그 존재의 희미해지는 몸짓을 기억하고, 복구하고, 기록하고자 시도하면서 사유 대상의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기억 몸짓’) 그러나 여전히 인간 세계에서 ‘벌레 같은’ 류의 비유(“당신에게는 깊은 공감 능력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벌레 같은’이라는 관용구를 그 뜻도 모르면서 아무렇게나 사용하는 당신”, 황유원, ‘밤의 벌레들’)가 작동하는 원리를 상기해 본다면 인간이 벌레에게 빚진 바를 우리는 매 순간 의심하고 점검해야 할 것이다. 20세기 초입 카프카의 벌레로의 변신 모티프는 꽤나 강렬해서 인간과 벌레를 둘러싼 상상력에 지대한 공헌을 한 바 있다. 이 모티프는 이후 세대의 문학에 있어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함과 동시에 인간종과 벌레종의 교점에 관해 인간이 행할 수 있는 상상력의 방식을 사실상 결정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카프카 문학과의 상호텍스트적 접목을 자주 시도했던 김행숙의 경우 변신 모티프를 아래와 같이 전유한 바 있다. 벌레의 굴욕인가, 밟아도 꿈틀거리며 일어나는 휴머니즘의 진부한 레퍼토리인가. 벌레로서의 벌레는 대체 어디로 가버렸단 말인가. 55킬로그램의 인간* 그레고르 잠자는 왜소했으나, 55킬로그램의 뼈와 살과 피의 새로운 조합으로 탄생한 이 거대한 벌레 앞에서라면 누구든지 경악의 외마디와 함께 뒷걸음질을 치다가 엉덩방아를 찧게 된다. 다시 말해 그 누구든지 우스꽝스러워지는 것이다. 당신은 지금 막 외계의 생명체를 본 것이다. 당신은 온 우주에 뉴스를 전파하고 싶지만, 공포와 흥분으로 전신이 떨리고 특히 턱이 빠질 듯이 달달달달 떨리게 된다. 나는 완벽한 벌레의 꿈이다. *55kg은 1920년 7월 29일 자 카프카의 몸무게다. (…) ―김행숙, ‘변신’(‘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 부분 위 시에서는 카프카의 소설 속 그레고르 잠자가 결국 벌레로서 비극적인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던 결말을 전복시켜 크기가 줄어들지 않은 “55킬로그램의” “거대한” 벌레가 오히려 가족을 내쫓고 공간을 점유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카프카적 사건 혹은 계기라 할 수 있는 인간종의 벌레종으로의 변신은 이 시에서 세계의 질서를 재편하고자 하는 데 기여하는 물질적 작용으로 전환된다. 이 시에서 벌레의 행위는 들뢰즈-가타리적인 ‘동물-되기’, 즉 ‘탈영토화’의 가능성에 대한 사유 방식으로 대입해 읽어도 무리가 없다. 하지만 이 지극히 인간적인, ‘인간화된 벌레’는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대치까지 멀리 가는 데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그 과정에서 진짜 ‘벌레’는 실종했다. 그리고 벌레 덕분에 인간은 한없이 자유로워졌지만 비인간으로서의 벌레는 여전히 너무나 인간적인 영역에 머물러 있다. 인간종에게 해악을 끼치는 해충을 박멸하자는 입장이나 인간에게 주는 효용을 고려해 적절히 잘 이용하자는 입장 모두 곤충 입장에서는 같은 결과가 예고돼 있다. 뉴질랜드 한 대학 식품과학 연구팀은 최근 곤충이 식품 공급원으로 적합하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④) 곤충종에 대한 인간의 기대와 혐오라는 상이한 정동은 모두 곤충의 입장에서는 그 개체의 죽음이라는 같은 결과를 낳는다. 어떤 개체에 대한 이 도구적 쓰임은 한편으로 근대적 인간에 대한 회고, 자기 생산물로부터의 고립을 초래했던 어떤 소외를 연상시킨다. 그러니까 이 곤충들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충분히 소외돼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소외된 벌레종에 대해 무엇을 알 수 있고, 또 알아야 할까. 낭송은 아름답고 낭독은 선언적이지만 이는 다시 존재들의 경계를 부각한다는 측면에서 한계가 있다. 이것만으로는 무언가 부족하다. 2. 개미와 여치의 음악성에 대해서라면, 황유원은 뭘 좀 아는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황유원은 꽤나 전문적으로 이를 향유할 줄 안다. 유해와 무해라는 인간의 기준을 잠시 접어 두고, 이들이 내는 소리에 집중해 보자. 인간의 어떤 의지는 때로 어떤 생물종에 유해하다. 인간의 아무 의지도 개입시키지 않고 소리의 배치에 주목해 보면, 슬플 때 슬퍼할 줄 알고 기쁠 때 기뻐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비록 사람이 아닐지라도 개미에게는 개미의 블루스를 여치에게는 여치의 블루스를 ―황유원, ‘블루스를 부를 권리’ 부분 쇤베르크 이래로 ‘소음’으로 여겨졌던 불협화음이 자유를 얻으면서 이후 소음 자체가 음악의 중심에 자리하게 된 것이 이상하지 않은 일이 됐다. 심지어 존 케이지는 ‘4분 33초’의 침묵 역시 음악이 될 수 있음을 알려 주기도 했다. 소음으로 치부돼 오던 것들이 음악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은 이후 피에르 셰페르에 이르러 더욱 구체화되기도 한다. 기존 음악에서 노이즈는 제거의 대상이었지만 셰페르는 소음 자체를 음악의 재료로 활용한 것이다.(⑤) 그러나 이는 여전히 인간-청자를 기준으로 한다. 우리는 인간에게 인간의 언어 및 인간의 음악이 있는 것처럼 다른 종들에게도 그들의 언어와 음악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한여름 매미의 노이즈가 인간의 귀에 음악으로 들리지 않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청각적 신호를 통해 보이지도 않는 상대에게 보내는 메시지, 황유원은 그것이 개미의 블루스가 아닐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당연하게도 인간의 거주 공간은 무균실이 아니다. 코로나19 이후 인간의 몸은 근대적 의미에서의 봉쇄된 육체가 아니라 세계와 환경과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는, 봉쇄가 해제된 몸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⑥) 이러한 존재들의 열림과 마주침, 얽힘에 대한 사유는 이 수많은 존재들의 배치에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생물종의 고정된 경계가 없고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라는 애나 칭의 주장은 이 때문에 퍽 설득력 있다.(⑦) 황유원은 ‘밤의 벌레들’에서 인간이 불을 켜는 사건을 일으키기 전에 그 공간을 구성하고 있었을 배치를 상상한다. 가령 “당신이 불을 켜기 전” “벌레들”은 “어둠” 속에서 “얼마나 아늑하고 그윽한”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을지, “당신이 불을 켜기 전” “벌레들”이 “얼마나 천천히” “얼마나 우아하게 이 욕실 바닥 위를 기어다니고 있었”을지, “세상 편안한 마음으로 스멀스멀 기어다니고 있었을” 벌레들의 평화로운 배치가 깨지는 건, 단지 인간이 그 공간에 불을 켜는 것만으로도 발생 가능한 일임을 상기시킨다. 우리는 세계와 회통하고 있으므로 서로의 배치에 얼마간의 방해와 간섭이 일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 시가 환기하는 것은 타자의 갑작스러운 침입에 대한 벌레의 생경한 낯섦이라는 감각에 우리가 그간 얼마나 무심하거나 무지했는지에 대한 각성이다. 하지만 이때 경계해야 할 것은 타자를 이해하기 위해 동원되는 수단 역시 인간의 감각이나 사유 체계 내에서만 비롯되고 있다는 한계에 대한 자각일 것이고, 이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타자의 감정이나 감각을 익숙한 인간의 언어로 치환하고 있다는 것, 이 때문에 비인간에 인간화된 관점을 투영할 우려에 대해서도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이때 환원된 것이 개념 자체인지, 아니면 비인간의 행위성을 적극적으로 발견하기 위한 재현인지에 대해서는 숙고가 필요하다. 이 시에서 인간화된 생경함과 놀라움이 벌레 입장으로 치환된 것은 평화로운 배치 상태를 깨는 인간의 침입이라는 의미를 구체화하기 위한 설정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블루스를 즐기는 개미와 여치는 너무나 인간적이다. 인아영은 인간과 비인간의 신비화되지 않은 조우로서 유계영의 시 ‘두고 왔다는 생각’을 사례로 든다. 이 시에서 개는 세계의 표면과 이면의 차이에 몰입해 있는, 사색하는 철학자로 그려지고 있으며 이는 ‘나’의 생각과 공명한다. 이때 종 차별주의의 핵심적인 기준인 ‘이성적인 사고 능력’을 유계영 시의 ‘사색하는 개’가 갖추게 되면서 인간과 동물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저수지가 보이는 카페”에서 각자의 “생각에 도취되어 있”(‘두고 왔다는 생각’)는 사람과 개는 “애정의 경제로 묶여 있지 않으며, 섣부른 접촉으로 서로의 세계를 침범하지” 않으면서 “고요하게 지켜주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인간과 비인간의 구별이 의미 없어지며 인간과 비인간이라는 대립 역시 긴장을 잃는다고 인아영은 주장한다.(⑧) 그런데 이 “저수지가 보이는” 카페는 물어볼 것도 없이 반려견 입장이 가능한 카페여야 할 것이며 이 카페에 입장하는 순간 개는 카페의 규율에 내재(종속)된다. 개와 인간이 ‘사색’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종 차이가 쉽게 무화될 수 있는 것인지와는 별개로 이때 인간의 지위 혹은 동일한 타자의 지위를 획득하는 데 기여했던 개의 ‘사색’이 과연 개의 고유한 특성이자 개의 일, 그러니까 개가 해야 할 일인 것일까. 애나 칭은 인간과 유기체의 배치와 상호작용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대부분의 동물 연구에서 “그들(비인간-인용자)이 인간과 동등한 자질(의식하는 주체로서, 의도를 지닌 의사소통자로서, 또는 윤리적 주체로서)이 있음을 보일 필요가” 있어 왔음을 지적한 바 있다.(⑨) 개에 대한 애정과는 별개로 개가 인간적인 사색을 거듭하는 것, 개와 인간의 공생을 개를 인간화하는 방식으로 대체하는 것은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이 아닐뿐더러 문제의 핵심에서도 멀어지는 방식이다. 3. 소진하는 인간, 공터의 흰 개 안태운의 시는 인간과 비인간이 각자의 생각에 잠겨 있다는 착각을 초래하게 만드는 이러한 연출된 상태를 문제시한다. 동물과의 공생 문제가 대두되면서 익숙하게 소비됐던 낯익은 ‘장면’이 어쩌면 인간의 의식화된 ‘풍경’의 일종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기획 의도에 맞는 일련의 행위들이 인간과 비인간에 의해 자연스레 수행되다가 어느 순간 문득 찾아오는 퍼포먼스의 중지는 인간화된 의도가 노출되는 지점이자 그 공허함이 발설되는 문제적 대목이 된다. 안태운은 인간과 비인간이 각자의 생각에 잠길 뿐이라는 인간-동물 간의 이상적 관계에 대한 설정 역시 인간적인 모종의 어떤 열망이 개입된 것임을 감지하고, 이 연출된 장면을 메타적 관점에서 관찰자의 시선으로 해체한다. 개의 활동 반경을 조금 넓혀 ‘공터’로 개를 데리고 간 안태운의 경우를 보자. 흰 개가 있어. 나와 함께 공터를 산책한다. 흰 개는 나의 개이자 공터의 개 그러므로 나와 함께 공터를 산책하지. 산책하며 서로 사라지기도 하지. 나는 흥얼거리며 흰 개를 두고 달렸다. 흰 개는 나를 따라 달렸다. (…) 나는 공터를 산책하고 있지. 공터를 돌면서 흥얼거린다. 공터의 흰 개, 사람들의 흰 개 그러니 나는 흰 개와 멀어져서 공터를 돌고 있다. 흰 개가 없으니 빨리 달려도 괜찮아 (…) 문득 내 뒤로 아무도 따라오지 않는 게 슬퍼졌지. 아무도 내 뒷모습을 바라보지 않는 게 낯설었다. 흰 개는 어디에 있나. 나는 흰 개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고 싶어. 나를 잊었으려나. (…) 흰 개는 공터를 돌았어. 공터를 끝도 없이 돌 것처럼 돌며 돌다가 공터 밖으로 뛰어나가고 있다. 공터를 벗어나자 흰 개는 일어섰다. 일어나서 아주 천천히 걸어 나갔다. ―안태운, ‘흰 개를 통해’ 부분 위 시에서 공터의 개는 저수지를 바라보며 철학자의 사유를 따라가야 하는 고난을 겪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이 시에서 나와 흰 개는 명백히 인간과 비인간이 행할 수 있는 일련의 행위들을 행하거나 지위를 바꿔서 패러디하고 있다. 인간과 동물은 물론 개별적이고 특수한 관계를 형성하지만, ‘공터’라는 사회적 장으로 나왔을 때 이들은 사람과 개로서 행할 수 있는, 혹은 기대되는 코드화된 행위들을 수행하는 퍼포머가 된다. 공터에 들어서는 순간 인간과 비인간 행위자는 사회적 기대에 노출된다. 인간과 개가 행위하는 특성으로 규정지어진 이 공터는 인간과 비인간 모두에게 특정 행위만을 요청한다. 이제 ‘공터’는 특정 목표의 전시장이 되고 때문에 공터에서 할 일은 말 그대로 공터에서 ‘할 수 있는’ 일밖에 없다. 이는 다시 말해 인간-비인간이 공터에서 행할 수 있는 ‘가능한 일’은 공터가, 혹은 공터를, ‘가능하게 하는 일’뿐이라는 말이다. 이것이 우리가 말하는 인간-비인간의 공생일까. 이에 대해 안태운은 아니라고 답하는 듯하다. ‘흰 개를 통해’의 마지막 장면에서 흰 개가 “일어나서 아주 천천히 걸어 나”가는 장면에 주목해 보자. 송현지는 이 시에 대해 “개가 누군가의 소유물이 아니라 독립적인 존재임을 드러내기 위한 우화”로서 읽을 가능성을 제시한 바 있다.(10) “흰 개가 더이상 자신의 존엄성에 손상을 입지 않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식”으로서 “주어진 장소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선택한 것”이고, “이미 세계 밖으로 사라진 비인간들은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임을 안태운은 직감”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 자발적으로 사라질 수 있는 비인간의 거주지를 “세계 밖”으로 상정하고 있는 것은 여전히 비인간 존재의 육체나 물질성을 고려하지 않은 관념적 차원의 해방에 불과하다. 비인간은 왜 그들의 구체적 삶의 공간, 즉 주어진 장소로부터 벗어나야 하며 이때 그들이 사라질 수 있는 세계 밖은 과연 어디인가. 공터를 잃었네. 있었는데. 옆 사람과 흰 개와 함께 공터 밖을 서성이고 있었는데, 공터를 잃었고 옆 사람은 회상하고 있다. 흰 개는 잃은 공터를 향해 짖고, 못내 짖다가도 지치기를, 나는 바라며 기다렸지만 이내 흰 개를 내버려둔 채 옆 사람과 함께 공터 밖을 산책한다. 둘레의 움직임을 만들면서 걷고 걷다가 내가 바라보는 건 과거의 공터, 고개를 천천히 돌리면 옆 사람을 텅 비우는 공터, 계속 걷자 공터를 처음 잃었던 지점에 도착했는데, 흰 개는 없었다. 짖음도 없었고, 흰 개야. 아무도 없어서, 흰 개가 어디로 갔는지 물어볼 사람도 없어서 나는 흰 개마저 잃어버렸네. 옆 사람은 나를 쓰다듬었지, 상심하지 말라고, 엎드려 흰 개의 흉내를 내며. ―안태운, ‘공터를 통해’ 전문 앞서 살펴본 시 ‘흰 개를 통해’와 위의 시 ‘공터를 통해’는 서로를 반영하는 관계에 놓여 있다. 이 시에서 “공터”와 “옆 사람”, “흰 개”, 그리고 “나”는 한때 “있었”다는 공통적인 속성을 지닌다. 한때 “있었”으나 지금은 “잃어”버린 것들은 “공터”와 “흰 개”이고, 남겨진 것들은 “나”와 “옆 사람”이다. 그런데 공터와 흰 개를 잃어버리고 남아 있는 “옆 사람”과 “나”의 마지막 행위를 보면 “옆 사람은” “상심하지 말라고” “나를 쓰다듬”는가 싶더니 “엎드려 흰 개의 흉내를” 낸다. 앞서 옆 사람이 나를 위로하며 “쓰다듬었”기 때문에 이때 “엎드린 흰 개”를 “나”에 대입해 읽어도 어색하지 않다. 공터와 흰 개가 사라지고 남은 것은 분명 “나”와 “옆 사람”이지만 이들은 공터를 공터이게 했던 행위를 여전히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이때 존재가 사라진 곳에서 무의미한 행위만이 부각되고 오히려 행위의 의미는 지워진다. ‘흰 개를 통해’의 마지막 장면을 다시 주목해 보면 “끝도 없이 돌 것처럼 돌며 돌다가 공터 밖으로” 벗어난 “흰 개는” “일어나서 아주 천천히 걸어 나”간다. 공터가 사라지자 흰 개도 사라지고, 공터에서 벗어나자 흰 개도 흰 개의 행위를 벗어난다. 이 장면은 베케트 부조리극의 소진된 인간을 연상시킨다. 들뢰즈에 의하면 “소진된 인간은 모든 가능한 것을 소진하는 자”로서 “가능한 것을 실현하지 않고 가능한 것과 유희”하는 인물들을 가리킨다.(11) 안태운의 시는 베케트 극의 인물들처럼 의미 없는 행위를 돌출시키는 방식으로 공터와 인간과 비인간에게 요구됐던 행위를 점검하고 재사유하게 한다. 이 무의미한 반복은 존재가 사라진 후에도 텅 빈 행위가 지속되는 공간이 돼 버린 기이한 공터의 작위성을 가시화한다. 존재는 지워지고 행위만 남아 있는 공간, 이것이 공터의 본질인 것이다. 하지만 소진하는 인간은 공터를 말 그대로 ‘빈’ 공터의 장으로 재진입시키고 공터의 잠재적 역량을 추동한다. ‘가능한’ 공터의 모든 것을 소진해 버림으로써 공터는 “인간 너머의 드라마가 이루어지는 장소”이자 “인간의 자만심을 해체하는” ‘풍경’으로 거듭난다. 애나 칭에 의하면 풍경은 역사적 행위의 배경이 아니라 그 자체로 활동적이다. “풍경이 형성되는 것을 지켜보면 세계 형성에서 인간이 살아 있는 다른 존재에 합류한다는 사실을 보게 된다.”(12) 안태운의 시에서 소진의 의미는 결국 잠재적 공터, 무엇이 실현되기 이전의 공터, 인간과 비인간이 무엇으로 규정되기 이전의 상태, 즉 인간과 비인간의 행위를 결정하기 이전의 공터를 복구하려는 시도에 가깝다. 이는 어쩌면 도래할 미래를 위한 재귀적 움직임이다. 4. ‘공통 세계’의 주민들-듣는 법 연습하기 황유원은 ‘침대벌레’에서, “파리 배낭여행” 중 ‘나’의 피를 “빨아먹은 벌레”가 “나 없는 침대에서 배를 빵빵히 불린 채/한숨 늘어지게 자고 있을 모습”을 “자꾸 마음속에 그려” 본다. 피부에 피가 날 정도로 “긁어대면서도”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흡족한 이미지”로 침대벌레를 연상하는 ‘나’는 이를 루브르박물관의 온갖 명화들보다도 생생한 감각으로 느끼면서 내 피를 먹고 배가 빵빵한 벌레의 모습을 “내 머릿속 한구석에 걸려 있”게 한다. 이 그림의 제목은 “침대벌레”이면서 시의 제목이 되기도 한다. 벌레는 벌레의 일을, 나는 나의 일을 했다는 안도감인 것일까, 후에도 ‘나’는 가끔 이 기억에 숙면을 취한다. 이를 인간과 비인간의 공생이나 그 가능성으로 점치는 것은 지나친 낙관주의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의 이 흡족함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가령 이 흡족함이 ‘공통 세계’(13)의 자각에 따른 것이라는 가정은 어떨까. 배부른 벌레의 휴식과 그에 대한 나의 이상하리만치 계속되는 연상을 인간과 비인간종의 필연적인 마주침의 흔적 정도로 볼 수 있다면, 공통 세계에서 인간과 비인간은 결국 무균실의 존재가 아니라 서로 교차하고, 서로를 침범하면서 같은 공통 세계를 이루는 하나의 요소들인 것이다. 앞서 보았던 ‘밤의 벌레들’의 후반부를 ‘밤의 풍경들’로 치환해 다시 읽어 보자. 자, 다시 한번 잘 생각해봅시다/ 당신이 불을 켜기 전 벌레들을 뒤에서/옆에서 앞에서/ 감싸고 있던 그/ 그윽한 고독과 어둠을/ 그 어둠의 우월함에 대해 한번 말입니다/ (…) / 당신은 거실에서 혼자 눈감고 음악을 듣고 있었는데/ (…) / 사라지는 음악을 두 손으로 움켜잡아 보지만/ 그 음악은 이미 찬바람의 손에 잡혀 갈가리/ 찢겨진 후……/ (…) /그러니 한번 두 눈을 감고/ 이미 다 사라져버린 벌레들을 마음속으로 뒤쫓아가/ 그 단단한 껍질 속으로 들어가봅시다/ 벌레가 되어/ 벌레의 절망감을 조금이나마 나눠 가져봅시다/ 벌레의 내장 깊은 곳에 조금은 남아 있을 어둠을 찾아/ 그 속에 들어앉아/ 아직 채 가라앉지 않은 떨림 속에서/ 아까 듣던 그 음악을/ 계속/ 이어서 들어봅시다 ―황유원, ‘밤의 벌레들’ 부분 황유원은 불의의 습격을 당한 벌레의 황망함을 인간의 입장에 대입해 보기를 권한다. “어둠 속 고독”의 상태에서 밥 대신 깨끗한 음악을 즐기고 있는 순간 찾아온 느닷없는 침입이 무엇보다 문제적인 것은, 두 손으로 움켜잡을 수도 없이 “갈가리” 찢겨지고, “사라지는 음악”에 대해 벌레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황유원은 그러니 이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자고, “깊이 공감해” 보자고 권하고 있는 것이다. “벌레가 되어”, 벌레가 처한 사태를, “벌레의 절망감”을 “나눠 가”지고, 아직 소멸하지 않았을 벌레의 어둠과 고독과, “떨림 속에서” “듣던 그 음악”을, “이어서 들어” 보자는 것이다. 인간과 벌레는 결국 일정한 공간을 공유해야 하는 공통 세계의 주민들이다. 공통 세계의 존재들은 서로의 존재 방식을 방해하거나 협력하면서 지내 왔고, 또 어떤 존재들은 자신들이 같은 장소에 있다는 사실을 이제 막 인지하게 됐을 수도 있다. ‘배치’가 “존재하는 방식이 모인 것”(14)이라면 이 시에서의 ‘밤의 배치들’에는 벌레뿐만 아니라 불을 켠 “당신”은 물론 이 사태를 전달하는 화자까지 관여하게 된 셈이다. 결국 이들은 서로의 주거지를 조금씩 침범하면서, 또 조금씩 오염시키면서 ‘배치’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이때 존재들은 복수의 리듬과 존재 방식을 형성한다. 존재들이 일으키는 각자의 리듬과 각자의 음악은 얼핏 불협화음처럼 들릴 수 있겠으나 이 “다운율의 배치를 연구”함으로써 배치를 “거주 적합성의 공연”으로 인식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15) 쇤베르크는 흔히 다성음악을 지칭하는 ‘폴리포니’(polyphony)의 원리에서 화성법의 해방을 발견하고자 했다. 이는 관습적 화음의 폐기가 동반돼야 가능한데, 이때 불협화음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화음은 더욱더 ‘폴리포니적’이 된다.(16) 방금 떠난 벌레의 “떨림”을 잊지 않고, 벌레가 들었을 음악을 “이어서” 들어 보자는 제안은 각자의 음악과, 복수의 음악이 일으키는 불협화음에 귀를 기울이면서, 또 조율해 가면서 밤의 배치를 이해해 보고자 하는 시도에 가깝다. 따라서 우리는 이제 무엇보다 “듣는 법을 연습”(17)해야 한다. 5. 나의 과거가 아닌 ‘너의 미래’ “안데스산맥에서 케추아어를 말하는 사람들”은 “과거란 우리가 아는 것이므로, 볼 수 있고, 따라서 앞에, 바로 코앞에 놓여 있는 것”으로, “미래는 뒤에 놓여 있”는 것으로 여긴다.(18) 이는 인간의 오래된 관습적 시간관을 뒤집는 측면이 있는데, 우리는 이를 통해 과거·현재·미래의 작동 방식이 고정된 것이 아니고 인간의 인식 체계나 방법에 의해 변화할 수 있는 유동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 놀라워, 내가 느낄 수 있다는 것/ 어느 가을, 당신은 계속 자라나고 있었다/ (…) / 어느 여름, 조카가 생기고 나서는 버스를 타고 가는 중 학생을 보며 그는 내 과거가 아니라 조카의 미래라고 문득 여겨졌고/ (…) / 어느 봄, 옛 기억 속 장면에서는 나를 삼인칭으로 인식하게 되고/ 어느 여름, 끝말잇기를 하는 인간/ 아이의 냄새를 맡는다. 아이가 냄새를 맡는다/ 어느 가을, 반딧불이와 노루와 버들치를 알았다/ 어느 겨울, 사슴벌레와 망초와 물범을 알았다/ (…) / 모르는 것이 많았다/ 몸짓들/ 다르고 같다는 걸 알았다/ 같고 다르다는 걸 알았다/ 기억 속에서 어느 날 우리가 여럿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잠들고 꿈꾸고 깨어나는 우리가 여럿이라고 생각하니/ 드넓어지는 마음을 알아챘다/ 우리가 여럿이어서 할 수 있는 걸 하기로 다짐했다/ 우리가 여럿이라 슬펐다 기뻤다 하염없었다/ 그것/ 흐르는 강물/ 둘레/ 산란과 예감/ 탄성/ 감각들/ 우연/ 시간이 흐르고 있다/ 시간이 흐른다 되돌아온다/ 기척이 스민다 ―안태운, ‘기억 몸짓’ 부분 ‘나’는 나의 과거와 유사한 기억 혹은 장면과 대면하지만 아이를 알고부터는 그것이 나의 과거가 아닌 아이의 미래로 대체된다. 세계의 중심에 아이가 자리하면서부터 “기억 속 장면”에서 ‘나’는 “삼인칭으로 인식”되고 미래의 모든 계절은 아이의 시간, 아이의 감각에 의존하게 된다. 미래의 아이는 “어느 가을” “반딧불이와 노루와 버들치”를, “어느 겨울” “사슴벌레와 망초와 물범을 알”아 간다. 이에 더해 계절이 바뀔 때마다 아이는 자신을 둘러싼 공통 세계의 “존재”들을 알아 갈 것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은 존재들의 “다르고” 또 같은 “몸짓들”, “같고”도 다른 “우리가 여럿이라는 사실”, “잠들고 꿈꾸고 깨어나는 우리가 여럿”이라는 사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가 여럿이어서 할 수 있는 걸 하기로 다짐”할 수 있고, “여럿이라 슬펐다 기뻤다”하는 그 마음은 “하염없”다. 분명 안태운의 “시간”은 “흐르고 있”다. 안태운은 시간의 운동성, 즉 “시간이 흐른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흘러간 시간은 반드시 “되돌아온다”, 기억과 함께. 이처럼 안태운이 그리는 미래는 어딘가 재귀적이다. 돌은 걸어갔다, 물론 어느 식당에서건 떠나서. 풍경을 보면서는 순간마다 무언가가 옆에 있다고 깊이 지각할 수 있었는데, 그것들이 귀여워 보였다. 그래서 말 걸고 싶기도 했다. 그중 척삭동물문이며 조강인 까치가 마음에 남아 말 걸고 싶었다. 으흠, 흐음. 까치의 부리와 발가락이 귀여워서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이윽고 돌은 생각했다. 그 부리와 발가락을 쥘 수 있을까.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곧바로 놔줘야지, 하고 혼잣말했는데…… 기억하는 게 미래 같았다. ―안태운, ‘돌과 구름’ 부분 미래는 ‘추측’을 통해 현재에 들어온다. 시간의 이러한 사유 방식은 추측된 미래를 위해 기꺼이 나의 현재를 재구성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한다. 미래는 되돌아와 나에게 영향을 준다. 안태운은 이 “살아 있는 미래”(19)를 자신을 구성하는 모든 세계와 함께 나눌 준비를 하고 있다. “돌”로서 사유하고, ‘풍경’을 인식하고, 공통 세계의 주민들을 “귀여워”하면서, “말 걸고 싶”어 하면서 “오랫동안 바라”본다. 하지만 의도적인 접촉은 ‘생각’만으로 접어 두고, 이 모든 일련의 행위들을 “미래”로서 “기억”한다. 이것이 안태운이 나의 과거가 아닌 ‘너의 미래’로서의 “미래”를 기꺼이 증식시키고자 하는 방법이다. 콘에 의하면 ‘미래’는 어쩌면 살아남는다는 것(to survive)이면서 생명을 넘어서는 것 혹은 삶을 넘어서는 어떤 것(super+vivre)이기도 하다. 또한 미래에 살아남는다는 것은 수많은 부재와 관계하는 것, 즉 다른 죽음, 다른 사건 이후에도 계속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20) 시인은 미래의 ‘죽은 사물’이 될 시를 현재의 지평에서 생성한다. 이 ‘죽은 사물’은 시가 끝나도 계속 날아간다. 어쩌면 시가 내재한 뜻밖의 물질성은 미래를 위한 새로운 경로를 만들어 낼지도 모른다.(“나는 그만 이 시를 끝내지만/ 이 시는 끝나고도 계속 날아가고 있다/ 밤의 행글라이더는 밤의 행글라이더”, 황유원, ‘밤의 행글라이더’) ①안태운의 시는 시집 ‘감은 눈이 내 얼굴을’(민음사, 2016), ‘산책하는 사람에게’(문학과지성사, 2020) 외에 ‘시보다 2022’(문학과지성사, 2022), ‘시보다 2023’(문학과지성사, 2023)에서 발표한 작품 역시 논의의 대상으로 한다. 황유원의 시는 시집 ‘이 왕관이 나는 마음에 드네’(현대문학, 2019), ‘초자연적 3D 프린팅’(문학동네, 2023)에 수록된 시들을 논의 대상으로 삼는다. 이하 본문에서 시를 인용할 경우 시의 제목만 밝힌다. ②박현주, ‘천하무적이던 곤충이 도처에서 쓰러지고 있다’, 우리교육(2023년 가을), 76쪽. ③우리가 그 종이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도 전에 일어나는 멸종을 일컫는 용어는 ‘센티넬라 멸종’(Centinelan Extinction)이다. 위의 글, 77~81쪽 참조. ④뉴질랜드 한 대학 식품 과학 연구팀은 최근 곤충이 식품 공급원으로 적합하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곤충, 단백질 함량이, 소고기, 닭고기보다 높아…’, 나침반 36.5도(2023년 9월호), ㈜삼십육점오커뮤니케이션즈, 104쪽. ⑤신예슬, ‘음악의 사물들: 악보, 자동 악기, 음반’, 작업실유령, 2019, 179~185쪽 참조. ⑥김홍중, ‘코로나19와 사회이론: 바이러스, 사회적 거리두기, 비말을 중심으로’, 한국사회학 제54집 제3호, 한국사회학회, 2020, 177~180쪽 참조. ⑦애나 로웬하웁트 칭, ‘세계 끝의 버섯’, 노고운 옮김, 현실문화, 2023. ⑧인아영, ‘개와 나무와 양말과 시’, 문학동네(2022년 봄호), 129쪽. ⑨애나 로웬하웁트 칭, 앞의 책, 280쪽.(10)송현지, ‘어느 순례자로부터 온 편지-안태운론’, 2023 신춘문예 당선평론집, 정은출판, 2023.(11)질 들뢰즈, ‘소진된 인간’, 이정하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3, 23~26쪽. (12)애나 로웬하웁트 칭, 앞의 책, 271쪽. (13)스티븐 샤비로, ‘사물들의 우주’, 안호성 옮김, 갈무리, 2021, 118쪽. (14)애나 로웬하웁트 칭, 앞의 책, 58쪽 각주. (15)위의 책, 279쪽. (16)테오도르 W 아도르노, ‘신음악의 철학’, 문병호·김방현 옮김, 세창출판사, 2012, 96~97쪽 참조. (17)애나 칭은 “통일된 화음”과는 반대되는 개념인 다운율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다운율을 이해하려면 각각의 선율을 따로 듣고 그 선율들이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화음이나 불협화음으로 합쳐지는 것 또한 모두 들어야 한다. 바로 이러한 방식처럼 우리는 배치를 이해하기 위해 배치가 존재하는 개별 방식을 주시함과 동시에 산발적이지만 그 결과로 발생하는 조율을 통해 그 선율들이 어떻게 합쳐지는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 이제 이러한 방식으로 듣는 법을 연습하고자 한다.”, 애나 로웬하웁트 칭, 앞의 책, 280쪽. (18)어슐러 K 르 귄, ‘세상 끝에서 춤추다’, 이수현 옮김, 황금가지, 2021, 250~251쪽. (19)에두아르도 콘, ‘숲은 생각한다’, 차은정 옮김, 사월의책, 2018, 331쪽. 콘은 생명과 미래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성을 퍼스의 “살아 있는 미래” 개념에서 끌어와 사유한다. ‘미래’에 관한 논의 중 일부는 이 책의 6장 ‘살아 있는 미래(그리고 죽은 자의 가늠할 수 없는 무게)’를 참조했다. (20)위의 책, 370~373쪽.
  • 북바인딩 수업/이지혜 [서울신문 2024 신춘문예 - 단편소설]

    북바인딩 수업/이지혜 [서울신문 2024 신춘문예 - 단편소설]

    책방 안에 희미하게 레몬빛이 돌았다. 창문에는 아이보리색 커튼이 드리워졌고, 형광등과 보조등에서 퍼져나온 빛이 커튼 위로 어우러져 따듯하면서도 산뜻했다. 윤재는 사람들과 함께 반대편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내 기척을 느낀 몇 사람이 얼굴을 돌렸고 윤재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나는 줄지어 선 책장을 지나쳐 테이블 쪽으로 걸었다. 중앙에 자리 잡은 매대 위에는 윤재가 만든 책들이 놓여 있었다. 여기 있어요, 오래된 자리, 쓰고 만듦. 이모의 환갑을 열흘 앞두고 윤재는 나에게 다시 연락해왔다. 휴대폰 액정에 윤재에게 온 메시지 알림이 떴을 때 나는 윤재가 환갑잔치 일정을 알려주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메시지에 이모 이야기는 없었다. 윤재는 내가 사는 곳 근처 책방에서 북바인딩 수업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날짜는 이틀 뒤였다. - 민정아, 와줄 수 있어? 나는 답장하길 망설였다. 윤재와는 한동안 거리를 두며 소원하게 지내고 있었다. 반년 만에 온 윤재의 연락이 반갑기보다는 어색했다. 윤재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느꼈다. 여섯 살 때 아빠가 돌아가신 뒤 엄마는 나를 이모에게 부탁했다. 동생만 외할머니 집에 데려가 함께 살면서 식당에서 종일 일하며 돈을 벌었다. 아빠가 남긴 유산은 없고 병원비와 빚만 쌓여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고 훗날 엄마는 설명해 주었다. 일이 년 돈을 모아서 방이라도 얻을 수 있게 되면 나를 데리러 올 예정이었다고 덧붙였다. 엄마의 결정과 계획을 당시에는 알지 못한 채로 나는 이모네 집에 들어갔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사촌인 윤재와 함께 자랐다. 윤재가 한 살 많았지만 나는 어느 순간부터 윤재를 오빠라고 부르지 않았다. 윤재의 형인 윤석을 꼬박꼬박 오빠라고 부른 것과 달리 윤재는 이름으로 부르며 친구처럼 대했다. - 이모 환갑은 어떻게 할 거야? 내가 되묻자 윤재는 만나서 얘기하자고 답장했다. 만나서 이야기하자는 말을 우리는 반년 전에도 나눴다. 당시 그렇게 말한 건 나였고 윤재는 알겠다고 우선 만나자고 선뜻 대답했다. 그때 윤재도 속으로는 내키지 않았을지 모르겠다. 윤재에게 답장을 보내 책방으로 가겠다고 말해 놓고도 나는 마음이 불편했다. 오늘 점심을 먹으면서도 올까 말까 망설였다. 이런 마음을 모르는 윤재는 웃으면서 나에게 손짓했다. 유난히 하얗고 마디가 굵은 윤재의 손. 어린 시절엔 지금보다 훨씬 작은 손으로 윤재가 내 등을 쓸어내렸던 적도 있었다. 처음 이모네 집에 들어갔을 때 나는 잘 웃지 않았다. 울거나 떼를 쓰지도 않았다. 엄마가 나를 데리러 오지 않을까 봐 걱정했고, 괜히 말썽을 부렸다가 이모네 집에서 쫓겨나게 될까 봐 불안해했다. 이모나 이모부가 나에게 눈치를 줬거나 윤재나 윤석과 사이가 나빴던 것도 아니었는데. 이모부는 이 년 동안 나를 거두어 키우면서도 싫은 기색을 비치지 않았다. 어려운 상황에 놓인 아이를 돕는 일은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 같다. 하지만 윤재와 윤석을 대할 때는 태도가 엄격했고, 자녀의 교육과 생활 지도에 대한 자기만의 기준이 확고했다. 거기 어긋나거나 미치지 못하면 납득이 될 때까지, 원하는 말을 들을 때까지 사람을 몰아세웠다. 왜 그렇게 했니. 말해봐, 왜. 앞으로는 어떻게 할 거야. 왜 말을 못 해. 어떻게 할 거냐니까. 윤석은 공부나 생활 면에서 이모부의 기대만큼 해내는 편이었고 이런 말을 듣는 건 대체로 윤재였다. 이모네 집에 들어간 지 세 달쯤 지났을 때 윤재가 이모부에게 크게 혼났다. 그날은 이모부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높았다. 도중에 이모부가 윤재를 때리려고 해 이모가 말리는 소리도 들려왔다. 공부방으로 들어온 윤재가 테이블 앞에 주저앉았다. 윤재 눈에서 눈물이 한두 방울 떨어지는가 싶더니 줄줄 흘러내렸다. 소리 없이 우는 윤재를 보다가 나도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왜 그랬는지 윤재가 하는 것처럼 숨죽여 울었다. 한번 터진 울음은 쉽게 멈춰지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누군가 내 등을 다독이는 게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자 윤재가 테이블 앞으로 몸을 숙인 채 내 등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윤재의 눈에서도 계속 눈물이 흘렀다. 간식을 들고 온 이모가 우리 둘 사이에서 눈가를 훔치는 모습을 나는 봤다. 와달라는 윤재의 요청을 끝내 거절하지 못한 것, 머뭇거리면서도 뒤돌아 책방에서 나가지 못한 것, 이게 다 그 순간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날 이후 나는 자주 울었고 또 웃기도 했으니까. 단지 그것뿐이라고 속으로 되뇌며 윤재에게 손을 흔들었다. 모두 여섯 사람이 색지와 실, 송곳 등이 놓인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모서리가 둥근 사각 테이블은 밝은 갈색의 원목 상판과 흰색과 검은색이 섞인 철제 다리로 이루어져 있었다. 벽면 스크린 앞에 서 있던 윤재가 목을 가다듬었다. “저는 책 만드는 박윤재예요. 제 목소리가 좀 작은 편이죠? 혹시 안 들리시면 바로 말씀해 주세요.” 빔 프로젝트 화면을 넘기자 윤재가 만든 세 권의 책이 스크린에 올라왔다. “그동안 이 책들을 만들었고요. 여러 책방에서 북바인딩 수업을 진행해 왔어요. 첫 번째 책을 만든 게 벌써 칠 년 전이네요.” 윤재는 책들을 소개했다. 무엇을 말하고 싶었고, 어떤 상황에서 만들었으며, 독립출판으로 책을 만들고 판매하는 어려움은 또 어떻게 해결했는지, 하는 내용을 하나씩 이야기했다. 낮고 느린 목소리에서 나름대로 강약이 느껴졌다. 가끔 참여자들이 소리 내어 웃기도 했는데 사람들 앞에서 술술 이야기하는 윤재가 나는 좀 낯설었다. 윤재는 참여자들에게도 자기소개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첫 번째 참여자는 프랑스어를 전공하는 학생이었다. 곧 어학연수에 갈 예정이라며 거기서 보고 느낀 것들을 책으로 펴낼 거라고 했다. 두 번째 참여자는 입을 열기 전, 옆에 앉은 세 번째 참여자를 잠깐 봤다. 알고 보니 두 사람은 사내 커플이었다. 퇴근 후 함께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는 걸 즐긴다고 했다. “우리가 같이 보낼 시간을 책에 기록하고 싶어요.” 두 번째 참여자가 말하자 세 번째 참여자가 잘 부탁드린다며 인사했다. 다른 사람들은 웃으며 박수했고 윤재도 따라서 손뼉을 쳤다. 나는 타이밍을 놓쳐 고개만 끄덕거렸다. 속없이 웃는 윤재가 내심 못마땅했다. 내 차례가 왔을 때 나는 나를 뭐라고 소개해야 할지 몰라 말문이 막혔다. “저는 호텔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일하던 호텔에서는 팬데믹 시기에 나와야 했고, 요즘 다른 호텔에서 아르바이트한다는 말을 덧붙일 순 없었다. 윤재의 사촌이라는 것은 밝히지 않았다. 그렇게 간단히 설명할 수 있는 관계도 아니었다. 그 후 대화가 어떻게 이어졌는지 제대로 듣지 못했다. 마지막 참여자가 평소에 책을 좋아해서 신청했다고 말하는 것만 귀에 들어왔다. 내가 처음 호텔에서 일하기 시작한 때는 윤재가 첫 번째 책을 만들 무렵이었다. 당시 나는 인턴으로, 정확하게는 프리인턴으로 호텔에 입사했다. 육 개월간의 프리인턴 과정을 통과한 사람만 일 년제 인턴이 될 수 있었다. 처음에는 호텔이라는 공간이 꽤 그럴싸해 보였고 그 안에서 유니폼을 맞춰 입고 구성원이 되면 든든한 소속감을 느끼게 될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반년이 지나가고 인턴 전환 시험이 다가왔다. 개별 면담과 지필 시험, 조별 면접까지 마치고 며칠간 결과를 기다렸다. 어느 날 쉬는 시간, 직원 로커룸에서 친한 동기가 가방을 꾸리고 있었다. 내가 뭐 하냐고 묻자 동기는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나 집에 가.” 오후 세 시가 되기도 전에 동기는 양손 가득 짐을 들고 로커룸을 나갔다. 다음 날 나는 인턴이 되어 출근했고 평소처럼 유니폼을 입은 채 일했지만 호텔이라는 공간, 특히 매일 지나는 길고 어두운 직원 통로가 좀 무서워졌다. 나는 이런 일들을 그때그때 윤재에게 알렸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엄마는 이모네 집 가까이에 셋집을 얻었다. 윤재와 따로 살면서도 같이 밥을 먹고 숙제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나는 이미 엄마보다는 이모를, 동생보다는 윤재를 더 친밀하게 느끼고 있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윤재와 가깝게 지냈고,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윤재에게 연락했다. 내 친구들이 윤재와 내가 연인 같다고 놀린 적도 있었지만, 처음에는 그런 말에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호텔에서 있었던 일들을, 윤재는 책 만드는 작업을 주로 이야기했다. 내가 인턴으로 전환되었다는 사실을 알리자 윤재도 첫 번째 작업에 대해 소식을 전해왔다. 윤재가 처음으로 만든 책 <여기 있어요>는 서울아트시네마가 많은 사람의 후원과 노력에도 낙원상가에서 철수하고 서울극장 삼 층에 단일 상영관으로 축소되어 자리 잡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었다. 윤재는 일이 벌어지는 과정을 꼼꼼하게 기록했다. 위치를 옮긴 서울아트시네마가 오픈하던 날부터 백 일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곳에 갔다. 많은 사람이 거기 서울아트시네마가 들어섰다는 데 신경도 쓰지 않았다. 하지만 그곳에선 여전히 특별기획 프로그램이 진행됐고 새로운 독립영화가 상영됐고 또 누군가는 계속 극장을 찾았다. 나는 윤재의 책을 통해서 그런 일들을 알게 되었다. 당시 윤재는 대학교 사 학년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윤재가 색지를 테이블 가운데로 옮겨서 색깔별로 펼쳤다. “이 두꺼운 색지는 여러분이 만들 책의 표지가 될 거예요. 좋아하는 색으로 두 장씩 골라주세요.” 같은 크기로 잘린 흰 종이도 색지 옆에 꺼내두었다. “눈에 띄는 색이 없으실까 봐 걱정인데요. 그러면 흰 종이에 색연필이나 펜으로 표지를 꾸미셔도 좋을 것 같아요.” 마음에 드는 표지를 만드실 수 있으면 좋겠네요. 윤재가 혼잣말하듯 덧붙이고 뒤통수를 긁적였다. 여러 색의 색지들은 다 손바닥만 한 크기로 준비되어 있었다. 나는 진달래색 표지 두 장을 손에 들었다. 조금 촌스러운가 생각했지만 그대로 내 앞에 가져왔다. 진달래색 색지는 묘하게 기시감이 들었는데 생각해 보니까 내 매니큐어 색깔과 비슷했다. 며칠 전 나는 발톱에 짙은 분홍색 매니큐어를 발랐다. 꽃잎을 그려 넣듯 하나하나 두 번씩 덧칠했다. 매니큐어가 마른 발을 보면서 색이 참 예쁘다고 생각했고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손을 보며 조금 씁쓸했다. 이제 정직원도 아닌데 적당히 넘어가도 되는 규정을 철저히 지키는 내가 답답하기도 했다. “이 얇은 종이들도 열 장씩 가져가세요. 이건 책의 내용을 담을 내지가 될 거예요.” 윤재는 표지와 같은 크기인 흰색 종이들도 테이블 위에 죽 늘어놓았다. 어차피 내지는 다 똑같은 흰 종이라 열 장씩 나눠줘도 될 텐데 한 장 한 장 직접 골라서 가져가라고 했다. 참여자들은 테이블 중앙에 세 줄로 놓인 종이들을 훑어보다가 한 장씩 집었다. 옆 사람이 고르기를 기다렸다가 가져가기도 했고 앞 사람과 손가락이 부딪히기도 했다. 그 과정이 나는 좀 번거로웠는데 옆에 앉은 연인 참가자들은 서로 종이를 골라주며 재미있어했다. 나는 윤재를 흘끔 봤다. 윤재는 테이블 반대쪽에서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윤재가 나를 왜 이곳에 불렀는지 알 수 없었다. 이모 환갑잔치 일정은 전화로도 충분히 알려줄 수 있는 내용이라서 나는 윤재가 그걸 핑계로 나에게 연락해 관계를 회복하려는 게 아닌가 짐작했다. 그런데 막상 와 보니 윤재는 나에게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다 하셨으면 이렇게 표지 사이에 내지를 넣어 보세요. 벌써 책 같은 모양이 됐죠?” 다들 윤재가 말한 대로 표지 사이에 내지를 넣어서 앞뒤로 살폈다. 나도 앞에 놓인 종이들을 한 손에 잡고 어떤 책이 완성될지 가늠해 보았다. 잘 그려지지 않았다. 윤재가 실뭉치와 송곳 두 개를 테이블 가운데로 가져오더니 이제 구멍을 뚫을 차례라고 말했다. 이미 묶어둔 견본을 펼쳐서 우리에게 보여줬다. “구멍을 잘 뚫는 게 중요해요. 그 구멍으로….” 그때 책방 문이 열리고 세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의 대화 소리가 커서 윤재의 말이 끊겼다. 책방 직원이 다가가 수업 중이니 목소리를 낮춰달라고 말했다. “수업이요? 무슨?” 한 사람이 이쪽을 건너다보며 물었다. “책 만드는 수업을 하고 있어요.” 책방 직원이 목소리를 낮춰가며 대답했고 세 사람은 한 마디씩 말을 보탰다. 책이요? 그래, 책을 만든대. 그런 수업도 하는구나. “그걸 어떻게 만드는데?” 셋 중 한 사람이 물었고 실내가 조용해졌다. 세 사람은 서가 앞에 서서 이쪽을 들여다보더니 테이블 위를 둘러보고 윤재와 참가자들도 훑어봤다. “저렇게 만드는가 보네.” 그런가 보다고 몇 마디를 더 주고받고는 책방 직원을 향해 그러면 다음에 오겠다고 말했다. 문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세 사람이 나간 뒤 닫힌 문 너머로 목소리가 들렸다. “근데 저걸 왜 만들지.” 발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윤재는 서너 차례 목을 가다듬었다. 잠깐 내 눈치를 살피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곧 견본을 손에 잡고 테이블 앞으로 내밀었다. “구멍을 잘 뚫는 게 중요하다고 말씀드렸죠? 그 구멍으로 한 장 한 장의 낱장들이 모이고 묶여야 책이 되는 거니까요.” 목소리가 조금 흔들리는가 싶었지만 윤재는 막힘없이 말을 마무리했다. 당황하는 기색은 없었고 마음이 상한 듯해 보이지도 않았다. 당황하고 마음이 흔들린 쪽은 오히려 나라는 것을 깨닫고 있을 때 윤재는 표지를 자세히 보라며 견본을 들어 올렸다. 구멍 사이의 간격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모두 다섯 개의 구멍을 뚫어야 했다. 모든 구멍은 왼쪽 끝을 기준으로 가로 0.5cm를 띄워놓아야 했으며, 첫 번째 구멍은 왼쪽 끝 윗면에서 세로 1cm의 간격을 둬야 했고, 두 번째 구멍부터는 세로 2.5cm의 거리가 필요했다. 그렇게 간격을 유지하다 보면 마지막 다섯 번째 구멍은 자연스럽게 네 번째 구멍과는 세로 2.5cm, 종이의 아랫면과는 첫 번째 구멍과 마찬가지로 세로 1cm의 거리가 생겼다. 표지에 윤재가 알려준 간격대로 점을 찍어 두었다. 송곳이 나에게 넘어오길 기다리면서 다른 사람들이 책 만드는 모습을 둘러봤다. 옆에 앉은 커플은 알맞은 위치에 점을 잘 찍었는지 서로 확인하는가 싶더니 책을 바꿔 상대방의 책에 구멍을 뚫어주고 있었다. “제일 끝에 있는 구멍은 잘 안 되는데? 잘못했다간 종이 찢어질 것 같아.” “이리 줘. 내가 해볼게.” 여자가 마지막 구멍을 뚫어서 남자에게 건넨 뒤 나에게 송곳을 전해줬다. 여자가 몸을 돌렸고 두 사람은 테이블에 놓인 하늘색 표지 위로 손을 포갰다. 나는 내 앞에 놓인 송곳을 잡았는데 무언가에 찔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벼려진 바늘 끝으로 오래된 흉터를 짓누르는 기분. 송곳을 고쳐 쥐었다. 진달래색 표지와 흰색 내지들을 모아서 왼손에 잡고 오른손으로 송곳을 들어 첫 번째 구멍으로 가져갔다. 종이 위에 찍어 둔 점을 송곳으로 누른 뒤 힘을 줬지만 종이는 뚫리지 않았다. 테이블 위에 종이를 내려놓고 왼손 손바닥으로 고정한 채 송곳을 좌우로 돌렸다. 손의 힘이 풀려 낱장들이 자꾸 흩어졌다. 윤재가 내 쪽으로 다가오더니 손을 내밀었다. 윤재는 앞 장 표지만 가져가 송곳을 살살 돌려가며 구멍을 뚫었다. 뾰족한 송곳 끝이 표지 반대편으로 빠져나오자 내지를 서너 장씩 집어서 같은 위치에 구멍을 만들었다. 송곳을 돌리는 윤재의 손. 가까이서 보니까 작은 흉터가 많았다. 윤재가 종이를 다시 내게 건넸다. 가지런히 뚫린 다섯 개의 구멍이 흠집 같았고 그 자체로 고리 같아 보이기도 했다. 윤재는 사람들이 잘 따라오고 있는지 살펴보며 테이블을 한 바퀴 돌았다. 송곳 두 개를 한쪽에 모아놓고 실뭉치를 풀었다. 미리 준비해 둔 실을 손에 잡고 그 길이에 맞춰서 한 줄씩 잘라나갔다. “이제 구멍 사이에 실을 넣어서 책으로 엮어 볼게요. 실 한쪽 끝에 매듭을 만들어 주세요. 구멍에 매듭이 고정될 수 있도록이요.” 참여자들이 그 말에 따라 매듭을 묶고 있을 때 윤재 앞에 놓인 휴대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윤재는 한동안 테이블을 내려보다가 빠르게 말했다. “급한 전화라 잠깐 받고 올게요.” 테이블에서 조금 떨어져 통화를 시작하는가 싶더니 곧 몸을 돌려 책방 서가를 가로질렀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윤재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닌지 걱정됐다. 반년간 왕래 없이 지내는 동안 윤재에게도 많은 일이 생겼을 것이다. 그전엔 윤재와 이렇게 오래 연락이 끊긴 적이 없었다. 윤재는 만들고 싶은 책이 떠오르면 나에게 아이디어를 이야기하며 작업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워나갔고, 책이 나오면 나에게 제일 먼저 보여줬다. 그런 행동이 어떤 의미인지는 윤재도 나도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함께 있는 게 그저 좋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내가 느끼지 못한 동안 윤재와의 거리가 점점 벌어지고 있었던 것인지도 몰랐다. 대학을 졸업한 뒤 윤재는 내가 어디냐고 물을 때마다 대개 카페나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하거나 도서관에서 책을 보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나도 한 번은 윤재를 만나러 도서관에 갔다. 윤재는 열람실에서 책을 읽다가 나를 만나러 밖으로 나왔다. 어디로 가지, 우선 나갈까? 내가 묻자 윤재는 여기에도 식당이 있다며 내려가 보자고 했다. 우리는 도서관 지하 식당에서 라면과 김밥을 사 먹었다. 내가 내려고 하는 걸 여기까지 왔는데 그럴 수 없다며 윤재가 막아섰다. 내가 한 번 더 나서자 윤재는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이럴 땐 좀.” 식사 후에는 자판기에서 뽑은 커피를 마시며 일 층 만남의 광장에서 조용조용 얘기를 나눴다. 윤재는 당시 구상 중이던 책에 대해 계속 이야기했다. 내가 딴생각을 하지 않는지 가끔 눈치를 살피면서도 말을 멈추지 않았다. 아마 멈추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질문을 부지런히 삼켰다. 그때는 내가 정규직이 된 지 육 개월쯤 지난 시기였다. 인턴 때에 비하면 생활이 조금 나아졌고 해고에 대한 불안감은 없어졌다. 하지만 유니폼이 마치 내 일부인 듯 익숙해지면서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나는 뭘 놓치고 있는지 생각하지 않은 채 애꿎은 매니큐어만 사서 모으고 있었다. 남들이 하는 것처럼 립스틱이나 아이섀도 같은 값이 더 나가는 것은 사지 못했고 가끔 퇴근길에 매니큐어를 샀다. 화장대 위에 올려둔 매니큐어들이 하나둘씩 늘어나더니 두세 달이 지나자 두 줄 세 줄로 길어졌다. 업무 규정 때문에 손톱에는 바를 수 없어서 나는 발톱에만 매니큐어를 발랐다. 그날 도서관에서 윤재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도 화장품 가게에 들러 매니큐어를 하나 더 샀다. 일하지 않은 날 매니큐어를 산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내가 윤재를 사랑하는 마음이 발톱에만 바를 수 있는 매니큐어 같다는 생각도 그날 처음으로 했다. 이런 시간이 윤재와 나 사이에 난 구멍처럼, 적당하지 못한 간격처럼 느껴졌다. 구멍을 뚫는 건 종이에 손상을 주는 일인데도 그 구멍을 통과해야 낱장들이 하나로 묶여서 책이 된다는 윤재의 말을 곱씹었다. 지난 반년 새 우리 사이에는 확실히 거리가 생긴 것 같았다. 나는 윤재에게 호텔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지내는 근황을 알리지 못했고 어쩌면 윤재도 나한테 전하지 못한 일들이 있을 것이다. 전화를 받으러 나간 윤재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불만을 내비치는 사람은 없었지만 하나둘씩 핸드폰을 꺼내기 시작했다. 십 분쯤 지났을 때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장실에 가는 척하며 밖으로 나왔다. 복도는 어두웠고 아무도 없었다. 계단을 내려가려는데 층계참에서 방향을 꺾고 뛰어 올라오는 윤재가 보였다. “미안, 많이 늦었지?” 윤재가 숨을 고르며 말했다. 방금 들은 말과 계단을 뛰어 올라오는 윤재의 모습이 어디선가 본 듯 낯익었다. “아니야, 다들 신경 안 써. 무슨 일이야?” 윤재는 발을 멈추고 주저하다가 그게, 하면서 입을 열었다. 나무라는 사람은 없었지만 윤재는 참여자들에게 여러 차례 사과했다. “일이 생겨서 시간이 지체됐어요. 죄송합니다.” “그럴 수도 있죠. 괜찮아요. 근데, 괜찮으신 거예요?” “그래요. 작가님 별일 없으면 됐어요.” 참여자들에게서 괜찮다는 반응과 무슨 일이 있는 게 아니냐는 걱정이 이어졌다. 윤재는 고맙다고 고개를 숙이면서도 거듭 시간을 확인했다. “매듭을 만드는 데까지 했죠? 이어서 나가볼까요?” 윤재가 테이블을 훑더니 작업하던 것을 위로 올렸다. “이제 표지 뒷장 두 번째 구멍에 바늘을 넣어서 매듭으로 고정해 주세요.” 두 번째 구멍에서 나온 실로 책등을 한 바퀴 돌려서 묶고 두 번째 구멍으로 다시 돌아왔다. 세 번째 구멍으로 이동해서 또 책등을 한 바퀴 돌리고 한 번 더 옆으로 바늘을 움직였다. 윤재의 손을 따라서 나도 구멍 안으로 바늘을 넣었다. 낱장의 종이들을 묶으려고 하니까 표지와 내지가 모이는가 싶다가도 금방 실이 풀려 흩어지고 말았다. “헐거워지지 않도록 적당한 힘으로 당겨주는 게 중요해요.” 윤재의 말을 듣고 손에 더 힘을 줬다. 다시 옆으로 바늘을 돌려 책등을 만들고 아래로 이동해 나가며 종이를 엮었다. “이걸 이렇게 하는 게 맞나.” 옆에 앉은 사람이 혼잣말했다. 여러 방향을 오가며 구멍에 바늘을 넣었다가 빼야 하는 과정이라 헷갈려 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시간이 지체된 것 때문인지 윤재는 윤재대로 조급해 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통화 내용이나 나와 나눈 이야기 때문에 집중력이 흐트러졌을지도 몰랐다. 윤재는 사람들 사이를 분주하게 오갔는데 일의 진도는 빨라지지 않았다. 내 옆에 앉은 사람도 같은 자리에서 바늘을 넣었다가 빼기만 계속 반복하고 있었다. “도와드릴까요? 순서가 바뀐 것 같아요.” 내가 손을 내밀자 그는 나에게 자신의 책을 건넸다. 오렌지색 표지 끝부분에 자리 잡은 구멍으로 실을 빼내고 윤재가 알려줬던 순서로 다시 바늘을 넣었다가 뺐다. 다른 사람의 책을 들고 있다는 게 왠지 긴장돼서 조심히 손을 움직였다. 복도에서 윤재에게 들은 얘기가 떠오를 때마다 심호흡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맞은편에 앉은 사람도 나에게 도움을 청했다. 우선 느슨해진 매듭을 꽉 묶어두고 바늘로 구멍과 구멍을 옮겨가며 그의 책을 엮었다. 팽팽히 묶인 책을 건네고 나자 반대쪽 테이블에서 참여자들을 도와주던 윤재가 고개를 들었다. 몸을 세우며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방식은 동양식 바인딩이라고 말한 뒤 이쪽으로 다가왔다. 옆을 지날 때 윤재가 내 어깨에 잠깐 손을 올렸다. 두 시간 전에 고른 열두 장의 종이가 제법 책의 틀을 갖췄다. 단단하고 부드러운 표지를 만지작거리고 있을 때 윤재가 입을 열었다. “이제 여러분 책에 내용을 채워 보도록 할 건데요. 책의 제목은 <북바인딩 수업>이라고 정해볼게요. 이 시간 동안에 여러분께 생긴 일, 느낀 감정, 떠오른 생각 등을 자유롭게 적어주세요.” 윤재는 내지 첫 장에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책을 옆으로 돌려서 그 내용에 대해 각자 하고 싶은 말을 적어주는 것으로 책 속 내용을 채워 나가자고 제안했다. “우리가 여기서 함께 시간을 보낸 건 맞지만, 다 같은 시간을 보낸 건 아닌 것 같거든요. 이 수업에 대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좋으니 솔직하게 써볼까요.” 참여자들은 손에 색색의 책을 한 권씩 들고 있었다. 색연필을 나눠준 뒤 윤재는 내 맞은편에 와서 앉았다. 옆에 놓인 책장을 곁눈질로 가리켰는데 거기엔 윤재의 세 번째 책이 진열되어 있었다. 윤재가 나에게 색연필을 건넸다. 글씨 쓰기 편하도록 끝이 뾰족하게 깎여 있었다. 윤재는 나를 향해 살짝 웃더니 몸을 돌렸다. 앞에 놓인 책의 표지를 넘기고 하얀 바탕을 채워 나가기 시작했다. 세 번째 책으로 윤재는 독립출판 작가들의 인터뷰집을 만들었다. 다섯 작가의 인터뷰를 싣고 마지막에는 자신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 책을 만들기 직전, 윤재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윤재는 카페 아르바이트 휴무일에 물류 창고 일을 하러 갔다가 허리를 다쳐 원래 하던 아르바이트도 못 하게 됐다. 당시 나는 정규직 사 년 차로 호텔의 중식 레스토랑과 베이커리를 거쳐 연회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각종 포럼이나 세미나를 위해 준비해야 했고, 결혼식이 주말마다 하루에도 두세 번씩 열렸다. 나는 손님들에게 웃으며 인사하다가 또 상사에게 웃으며 고개 끄덕이길 반복했다. 정신이 없을 땐 명찰을 착용하는 것도 잊었다. 내가 호텔 얘기를 하면 이모는 그만둬도 괜찮다고 말했다. 이모가 윤재에게도 같은 말을 했다는 건 나중에 전해 들었다. 뭘 선택해도 길은 있을 거라고. 하지만 나는 우리가 어떤 길을 선택했든 윤재도 나도 마음껏 살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였을까. 윤재가 마지막 통원 치료를 받았다며 전화를 걸어와 독립출판 작가들을 인터뷰해서 책을 만들 거라고 얘기했을 때 나는 윤재가 답답하다고 느꼈다. 윤재가 책을 만들수록 윤재와 함께할 수 있는 미래가 멀어지는 것 같았다. 애초에 쉬운 관계도 아닌데. 불쑥 눈물이 나왔다. 이번에는 참을 수 없었다. “그걸 왜 만드는데?” 윤재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 “나도 잘 모르겠어.” 윤재가 다시 입을 닫았고 나도 다른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냥, 그냥 내가 남았어.” 윤재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처음에는 이런저런 이유가 있었지. 근데 지금 와서 보니까, 그냥 책을 만드는 내가 남았어. 나는 책이 남는 건 줄 알았지.” 윤재는 설명하기 어렵다는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테이블 위에는 손바닥만 한 책이 아홉 권 놓여 있었다. “다 적으셨으면 다른 사람의 책을 같이 완성해 봐요.” 책들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윤재 앞에 오른쪽에서 넘어온 책이 놓였고 나도 옆 사람이 만든 책을 건네받았다. 내 앞에 차례로 전해지는 책들은 이 시간에 대한 서로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어떤 책에는 책방 공간에 대한 묘사와 거기서 얻은 느낌들이 적혀 있었고, 다른 책에는 책 만드는 과정과 재미있었던 점이 쓰여 있었다. 참여자들과 겪은 에피소드를 적어둔 페이지에서 나에 관한 내용을 읽었을 때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느새 윤재의 책이 내 앞에 도착했다. 나는 민트색 표지를 넘겼다. 막상 쓰려고 하니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그래서 그냥 솔직하게 써봤어요.) 앞으로 북바인딩 수업을 쉬려고 했거든요. 책 만드는 것도 그만하려고 했고요. 엄마가 아프셔요. 큰 병은 아니지만 수술을 받고 잘 관리해야 한대요. 엄마 컨디션 때문에 일정이 당겨져서 오늘 수술을 받으셨는데 다행히 경과가 좋다고 연락이 왔어요. 한동안 엄마 옆에 있으려고 해요. 그래도 북바인딩 수업은 계속해야 할 것 같아요. 오늘 서툴게 진행한 부분이 있어서 이번 참여자분들은 다음 수업에 한 번 더 오실 수 있도록 할게요. (그만 사과하라고 하셨지만 정말 죄송해요.) 책, 책이요. 책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또 솔직하게 써보자면) 어영부영 책 만든다고 놓치고 산 게 많아요. 우선 옆에 있는 사람들을 돌보고 싶어요. 못 본 척해 온 것을 이젠 제대로 보고 싶고요. (더 솔직하게는) 할 수 있는 한 마음껏 사랑하며 살아보고 싶어요. 오늘 끝까지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모가 아프다는 말은 복도에서 들었지만 윤재가 그런 생각을 하는 줄은 몰랐다. 오늘로 북바인딩 수업을 그만하려는 줄은. 그래서 나에게 와달라고 한 건가. 예전에 윤재에게 책을 만들어 보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그 말을 윤재가 기억하고 있었던 것 같다. 책 만드는 걸 쉬겠다는 윤재의 말도 뜻밖이었다. 페이지를 넘기자 참여자들이 남긴 메시지가 이어졌다. 어머님 쾌차하실 거예요, 작가님 팬인데 책도 계속 만들어 주세요. 다음에 또 뵐 수 있다니 좋네요, 같은 말들이 페이지 가득 적혀 있었다. 내가 윤재에게 어떤 말을 남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지금 병원에 있을 이모가 걱정됐다. 아까 복도에서 윤재가 한 말이 떠올랐다. “수술 전에 엄마가 괜히 겁을 내면서 나한테 당부하더라고. 너를 잘 챙기라고.” 이모는 어째서 윤재에게 나를 부탁했을까. 어째서 윤재에게 다른 사람도 아닌 나를. 어째서 엄마나 동생이 아닌 윤재에게 나를. 그래도 우선은 수술이 잘 끝난 게 다행이었다. 얼마 전 엄마가 두 번 연달아 전화를 걸어왔는데 아마 이모 소식을 전하려던 것 같았다. 호텔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뒤로 나는 엄마의 전화를 피하고 있었다. 그날도 일이 바쁘니 다음에 전화하겠다고 문자를 보냈는데 답장은 없었다. 선뜻 색연필을 들지 못하다가 윤재의 글을 다시 읽어봤다. 아까는 급하게 읽느라 놓친 것인지 이번에 유독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윤재는 못 본 척해 온 것을 이젠 제대로 보고 싶다고 썼다. 나는 윤재가 어떤 일을 말하는지 알 것 같았다. 반년 전 그날은 이른 장마가 끝난 직후라 여름 한복판에 들어선 듯 무더웠다. 나는 아침에 윤재에게 불쑥 전화해 만나자고 했다. 윤재가 무슨 일이냐고 물어와도 만나서 얘기하자고 대답했다. 그동안 만나왔던 루트를 벗어나 윤재와 새로운 곳에 가보면 좋을 것 같았다. 처음 가는 곳에서 윤재와의 관계를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다. 우리는 우선 경복궁역에서 만나 같이 버스를 타기로 했다. 윤재가 잠깐 도서관에 들러 책을 반납한 뒤 오겠다고 해서 나는 십 분 정도를 더 계산해 집을 나섰다. 십 분 정도 늦게 나가면 시간이 딱 맞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한 시간이 지나서도 윤재는 오지 않았다. 경복궁역 앞 잡화점에서 시간을 때우다가 밖으로 나와 다시 십여 분을 기다렸다. 윤재는 일이 좀 꼬인다며 금방 온다고만 말했다. 금방 온다고 하지 않았다면 어디 카페에라도 가서 기다렸을 텐데 윤재는 곧 도착할 것 같다고 했고 나는 윤재와 새로운 곳에 가려고 했으므로 땡볕을 참았다. 원래 약속했던 시간보다 삼십여 분이 지나서야 윤재가 지하철 역사 안쪽에서 뛰어 올라왔다. 내 얼굴을 보자마자 미안하다고 했는데 왜 늦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나는 제대로 된 사과를 받지 못했다고 느꼈다. 아니, 윤재가 정말 미안해하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이미 기분이 상해서 윤재가 사과할수록 서운함만 더 커졌다. “뭐 하느라 늦었어?” “미안해.” “왜 늦었는데?” 진짜 궁금한 건 그게 아니었다. 윤재는 대답이 없다가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그게 버스 때문에.” “버스?” “딴생각하다가 정거장을 놓쳐서. 괜히 좀 돌아오느라. 생각보다 오래 걸렸어.” 윤재의 답은 계속 늘어졌고 종종 끊겼다. 둘러댈 말을 찾는 것 같기도 했다. “너 지하철로 왔잖아.” 내 목소리가 한층 높아졌다. “그래도 왔잖아.” 윤재는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중간에 갈아탔어. 너무 오래 걸려서.” 말을 마치자마자 입을 다물었고 나를 앞질러서 걸어 나갔다. 윤재가 입은 파란색 티셔츠 위에 등을 따라 흐른 땀자국이 남아 있었다. 우리는 그날 가려고 했던 새로운 곳에 가지 않았고 나는 하려던 말을 하지 않았다. 근처 프랜차이즈 카페에 가서 늘 마시던 아메리카노를 시켜 놓고 마주 앉았다. 윤재는 유독 말이 없었고 내가 나서서 평소에 하던 얘기라도 해보려고 했는데 그마저도 잘되지 않아 곧 일어났다. 그 후로 한동안 윤재와 연락하지 않았다. 뜸하게 업데이트되는 윤재의 SNS 피드를 보며 나는 혼잣말했다. 그냥, 나를 보듯 너를 보며 살아야 했을까. 그날 내가 하려던 말이 무엇인지 윤재는 모를 거라고 생각했다. 윤재의 글을 한 번 더 읽었다. 색연필을 손에 잡고 새로운 페이지를 열었다. 하얀 종이 위에 윤재의 이름을 썼다. 윤재를 부르고 나니까 쌓여 있던 말들이 술술 풀려 나왔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쓸 수 있는 대로 모두 적었다. 나만 너무 길게 쓰는 게 아닌지, 내용이 너무 튀는 게 아닌지, 윤재를 난처하게 할 만한 말은 없는지, 신경을 쓰느라 자주 주저했지만 멈췄다가도 다시 적어나갔다. 그동안 못한 이야기들을 모두 적고 나서 추신을 남겼다. - 너의 다음 책이 또 뭘 남길지 궁금해. 색연필을 내려놓고 앞을 봤다. 윤재도 조금씩 손을 움직여 가며 누군가의 책에 메시지를 적고 있었다. 윤재가 잠깐 고개를 들었을 때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내가 어떤 책에 답글을 적고 있는지 윤재가 볼 수 있도록 앞에 놓인 윤재의 책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윤재가 쓰던 것을 멈추고 책을 덮었다. 나는 윤재의 책을 두 손으로 잡았다가 내려놓고 민트색 표지 위에 내 손을 포개어 올렸다. 나를 바라보던 윤재의 눈매가 조금씩 휘었다. 윤재의 입술이 살짝 열렸다. 우리가 함께 만든 첫 번째 책이야,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 1월 1일마다 소환…우주소녀 ‘이루리’, 5년째 차트 역주행

    1월 1일마다 소환…우주소녀 ‘이루리’, 5년째 차트 역주행

    걸그룹 우주소녀의 ‘이루리’(As You Wish)가 5년 연속 새해 음원 차트 정상에 올랐다. 주문을 외우듯 새해의 희망을 노래하는 가사의 힘이 크다. 소속사 스타쉽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우주소녀의 ‘이루리’가 1일 국내 주요 음원 사이트 멜론, 지니, 벅스 등에서 실시간 차트 1위를 차지했다. 2019년 11월 발매된 이후 2020년 1월 1일 실시간 차트 첫 1위를 기록하는 등 올해까지 5년째 역주행 인기몰이 중이다. MZ세대 사이에서 새해에 듣는 첫 곡이 한 해의 운을 결정한다는 속설이 퍼지면서 매년 1월 1일마다 소환되는 신년곡이 됐다. 우주소녀의 대표곡으로 2021년 멜론차트 28위, 2022년 12위, 지난해 31위에 올라 ‘새해 연금송’의 입지를 굳혔다. 특히 ‘이제 좋은 일들만 이렇게/ 네가 바라는 대로/ 느낌이 오는 대로’, ‘이루리 이루리 La/ 모두 다 이뤄질 거야’ 등의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가사가 입소문을 탔다. 우주소녀는 소속사를 통해 “2024년의 시작도 ‘이루리’와 함께해 주신 많은 분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이루리’ 노래처럼 올해에도 소망하는 모든 일들 이루시기를 바란다”고 새해 인사를 전했다. 2016년 데뷔한 우주소녀는 ‘모모모’, ‘비밀이야’, ‘해피’, ‘언내추럴’ 등의 히트곡을 내며 그룹 활동과 더불어 멤버 각자의 매력이 돋보이는 유닛 우주소녀 쪼꼬미, 우주소녀 더 블랙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멤버 설아는 오는 23일 데뷔 8년 만에 팀 내 첫 솔로 앨범을 발표한다.
  • “주민 위하는 ‘스마트 행정’… 사고 싶은 강남을 살고 싶은 강남으로”[2024 새해 포부-서울 단체장에게 듣는다]

    “주민 위하는 ‘스마트 행정’… 사고 싶은 강남을 살고 싶은 강남으로”[2024 새해 포부-서울 단체장에게 듣는다]

    조성명 서울 강남구청장은 강남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강남에서 살고 있는 최초의 강남 출신 강남구청장이다. 지난해 12월 29일 서울신문과 신년 인터뷰를 진행한 조 구청장은 2022년 취임 이후 처음으로 온전히 한 해를 보냈던 2023년은 구민들에게 다가가는 기간이었다고 돌이켰다. 새로운 2024년은 가까워진 구민들과의 신뢰를 바탕으로 ‘사고 싶은 강남’ 이 아닌 ‘살고 싶은 강남’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첨단 스마트기술을 도입한 행정으로 주민들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어려움을 겪는 주민들은 걱정 없도록 빈틈없는 도시를 만드는 데 집중하겠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조 구청장과의 일문일답.-지난해 11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스마트시티 엑스포 월드 콩그레스(SCEWC) 2023’에서 안전·회복 분야 최우수 도시에 선정됐다. “디지털 기술을 행정서비스에 접목하는 일은 취임 때부터 꾸준히 추진한 사업이다. 첨단기술을 통해 단순하고 반복되는 업무의 효율을 높이면 직원들의 일손을 덜 수 있고 그만큼 구민들에 대한 행정서비스의 질도 높아진다. 지난해 1월 첫 조직개편에서 ‘디지털도시과’를 신설하고 4월엔 제1회 오픈 이노베이션 ‘강남, 디지털을 품다’를 개최한 것도 그 연장선이다. 그중 가장 노력한 분야는 ‘사회·안전’이다. 강남도시관제센터의 폐쇄회로(CC)TV에 AI를 결합해 실종자 찾기와 인파밀집사고 예방 등에 활용하고 있으며 생체신호를 감지하는 스마트센서를 홀몸어르신이나 거동이 불편한 1인가구에 설치해 고독사를 막고 있다. 현장에서 보니 전 세계 주요 도시들과 글로벌 기업들도 도시 행정에 첨단기술을 도입해 사회·안전을 강화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세계 무대에서 강남의 이런 노력을 좋게 평가해 준 것 같아 뿌듯하고 감사하다.” -테헤란로 배달 로봇 실증사업과 수서·세곡동 로봇거점지구 등 로봇 관련 사업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강남구는 로봇산업 육성에 유리한 조건을 가졌다. 안정적 로봇 주행을 위해 잘 정비된 도로와 다양한 서비스 수요, 대전 창원 등 로봇산업 육성 지역과의 교통 연계도 잘 돼 있다. 이런 조건을 활용해 로봇산업을 강남의 성장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수서·세곡동의 로봇거점지구는 오는 3월 수서동에 준공 예정인 ‘로봇플러스 실증 개발지원센터’에 이어 개포4동에는 로봇교육센터를 설치할 계획이다.” -지난해 의료관광 사업의 성과는 어떤가. “소이증을 앓고 있던 몽골 소녀에게 예쁜 귀를 만들어 줬던 나눔의료 사업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어려운 가정환경으로 치료받지 못하던 소녀가 커서 의사가 되겠다며 좋아했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러한 홍보 활동을 비롯해 강남은 외국인 환자 유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초 베트남 호찌민에서 열린 헬스 분야 전시회 ‘베트남 메디팜’에서는 6500명이 부스를 방문했고 95건의 개별 환자 상담을 진행했다. 몽골에서는 울란바토르에서 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베트남과 몽골에서만 연간 90억원의 환자 유치 성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한다. 지난해 6월부터 운영 중인 압구정동 강남메디컬투어센터는 하루 평균 30~40명의 외국인 의료관광객이 방문할 만큼 강남 의료관광객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학여울역 세텍(SETEC) 부지 내 행정문화복합타운 건립 사업의 진행 상황이 궁금하다. “행정문화복합타운은 민선 8기 공약이자 구민들의 염원 사업이다. 올해 서울시에서 진행 중인 ‘학여울역 일대 거점형 복합개발 기본구상 수립 용역’에는 강남구 신청사 건립을 포함해 줄 것을 건의한 상태다. 조만간 용역 결과가 나온다. 아울러 시에서도 강남구에 세텍 부지 일부를 분할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구민들의 바람대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믿는다. 다만 시에서 세텍 부지에 중소기업을 위한 전시장 건립을 계획하고 있어 건립 기획 단계부터 긴밀한 협의가 필요하다. 전시장 건물을 철거하고 본공사에 돌입하기까지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 따라서 신청사 건립 전까지 현재 각지에 흩어진 부서를 모으는 등의 방안도 고민 중이다.” -올해 세수 감소로 인한 재정적 어려움이 있을 텐데. “강남구는 2023년 국민권익위원회 주관 전국 498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한 청렴도 평가에서 종합청렴도 1등급을 달성했다. 전년 대비 2단계가 상승한 기록이고 민선 8기 구정을 반영한 첫 평가에서 최고의 종합청렴도를 기록한 ‘청렴 강남’ 시대가 된 것이다. 청렴도를 인정받은 만큼 이제는 내실과 효율화를 추구해야 한다. 단순히 사업을 없애거나 줄이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 강남구 인력을 보다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강남 내 기업들과의 협업을 통해 주민 혜택을 늘리는 방안도 다양화하려 한다. 지난 7월 포스코와의 업무협약을 통해 포스코 사옥 외부 공간을 시민 휴식공간으로 개방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재정 안정과 함께 주민들에게 돌아가는 혜택 감소를 최소화하는 데 집중하겠다.”
  • “한국 경제 좀 낫겠지만, 큰 기대 금물… ‘반도체 부활’ 증시는 낙관”

    “한국 경제 좀 낫겠지만, 큰 기대 금물… ‘반도체 부활’ 증시는 낙관”

    2023년 한국 경제는 1%대 성장이라는 어둡고 긴 터널에 머물렀다. 올해 우리 경제는 저성장 터널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 세밑(지난해 12월 21일~28일) 서울신문은 우리나라 경제전문가 20명에게 ‘2024년 경제전망’을 물었다. ‘지난해보다는 나아질 것이다, 아주 조금’. 2024년 경제를 조망한 20인 전문가의 한 줄 평은 대략 이렇다. 희망을 노래하기는 이르다는 이야기다. 지독하게 어려웠던 지난해보다는 사정이 조금 좋아지겠지만, 큰 기대는 하지 말라는 전망이 대부분이었다. 경제성장률은 한국은행 전망치(2.1%)를 밑돌 것이라는 예상에 힘이 실렸고, 부동산 경기는 지난해와 비슷할 것이라는 관측이 과반이었다. 그나마 주식시장은 낙관하는 목소리가 더 컸다.경제성장률이 1%에 머물 것이라고 답한 전문가가 12명으로 절반을 넘었다. 10명이 ‘1.5% 이상 2.0% 미만’ 성장을 예상했고, 2명은 1.5% 성장도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올 경제성장률을 ‘1% 이상 1.5% 미만’으로 내다본 이정환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반도체 말고는 성장률을 끌어올릴 동력이 별로 없다. 거기에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화 여파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끝 보이지 않는 터널 ‘경제성장률’12명 “1%대 성장에 머물 것”부동산PF 부실 여파 여전 나머지 8명은 모두 ‘2% 이상 2.5% 미만 성장’을 택했다. 한국은행이 2.1%,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3%, 국제통화기금(IMF)·한국개발연구원(KDI)·아시아개발은행(ADB)이 2.2% 성장을 전망한 것을 생각하면 2% 이상을 택한 전문가들 역시 2%대 초반 성장을 염두에 뒀을 가능성이 높다. 2.5% 이상 성장할 것이라고 답한 전문가는 없었다. 전반적 경제 상황은 지난해와 비슷하거나 약간 개선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65%에 해당하는 13명이 ‘다소 나아지겠지만 정도는 미미할 것’이라고 답했으며 4명이 ‘비슷할 것’이라고 했다. 2명이 더 나빠질 것이라고 했다. 확실히 나아질 것으로 본 전문가는 1명뿐이었다. 경기 흐름에 대한 시각은 제각각이었다. ‘상저하고’(상반기에 나빴다가 하반기에 좋아질 것)라는 응답이 절반(10명)이었는데 ‘상고하저’(상반기에 좋았다가 하반기에 나빠질 것)라는 대답도 7명으로 적지 않았다. 2명이 ‘상저하저’(상·하반기 모두 나쁠 것)로 매우 부정적이었으며, ‘상고하고’(상·하반기 모두 좋을 것)는 1명에 불과했다. 성한경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는 “상반기까지는 고금리가 지속될 것이다. 하반기 금리가 내려가면서 경기가 살아날 것”이라고 말했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해 하반기가 너무 안 좋았기 때문에 상반기에는 그보다는 조금 나을 것”이라면서도 “세계 경기가 나아지고 있지만 우리 물건이 생각보다 많이 팔리지 않는 상황이다. 하반기에는 좋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이정환 교수는 “부동산 PF가 관건이다. 건설업계가 잘 버티면 다행이겠지만, 문제가 터지면 상저하저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정부 역점 정책 ‘가계부채 연착륙’GDP 대비 부채 100% 넘어OECD 회원 중 유일 국가 정부가 올해 가장 역점을 둬야 할 정책을 세 개 꼽아 달라는 요청에는 ‘가계부채 연착륙’이 가장 많은 11표를 받았다. 좀처럼 줄지 않는 가계부채를 의식한 답변으로 풀이된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1.4%로 13개월 연속 100%를 웃돌았다.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00%를 넘긴 것은 OECD 회원국 중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저출산·고령화 문제 해결’이 9표로 뒤를 이었다. 인구 감소와 급속한 고령화 위기감을 반영한 결과로 보인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출산율은 0.72명에 그칠 전망이다. 올해 출산율은 0.68명으로 0.7명 선이 무너지고, 내년에는 0.65명까지 떨어질 전망이다. 한 국가가 인구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 출산율은 2.1명이다. 초고령화 문제도 심각하다. 지난해 11월 기준 65세 이상 인구는 약 970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18.9%를 차지했다. 올해 말에는 비율이 20%를 넘어 본격적으로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이 밖에도 부동산 경기 안정화(8표), 수출회복(7표), 잠재 성장률 제고(6표), 신성장 동력 창출(5표) 등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르면 2분기 ‘美금리 인하’ 전망韓금리 0.5~1%P 내릴 듯물가상승률 2.5~3% 전망 미국 기준금리는 올 2분기, 늦어도 3분기에는 내려갈 것으로 전망했다. 절반(10명)이 2분기부터 미국 금리가 내려갈 것이라고 했고, 7명은 3분기에 인하될 것으로 봤다. 2명이 1분기 인하를 예상했고 1명은 답하지 않았다. 우리나라 기준금리는 3분기부터 내려갈 것이라는 답변이 절반(10명)이었다. 2분기 인하가 5명, 1분기 인하가 2명, 4분기 인하가 1명이었다. 1명은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고 1명은 응답하지 않았다. 우리나라 기준금리 인하폭은 0.5% 포인트에서 1% 포인트 사이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이경수 메리츠증권 리서치센터장 등이 0.75% 포인트 인하를 내다봤고, 신진영 자본시장연구원장은 1% 포인트 인하를 전망했다. 유종우 한국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하반기 두 차례 인하할 것이다. 인하폭은 0.25% 포인트 수준일 것”이라고 답했다. 박희찬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길게 보면 한국, 미국 모두 2% 전후 수준까지 내려야 한다”고 했다. 물가상승률은 ‘2.5% 이상 3% 미만’이 12명으로 한은 전망치 2.6%와 대체로 비슷했다. 6명은 물가상승률이 2.5% 미만일 것이라고 답했다. 2명은 물가가 3% 이상 오를 것으로 봤다. 한은은 “연말로 갈수록 물가상승률이 2% 부근으로 근접해 갈 것”이라면서 올 상반기 물가상승률 3.0%, 하반기 2.3%를 제시한 바 있다.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미국은 금리를 가파르게 올려 물가를 한 번 꺾었지만, 우리나라 금리는 그 정도로 높지는 않다. 금리 인하가 있기 전까지는 현재 물가인 3%에서 3.5%를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동산 경기는 올해와 비슷할 것이라는 의견이 11명으로 가장 많았지만, 올해보다 나쁠 것이라는 전망도 7명으로 적지 않았다. 서서히 좋아질 것이라는 의견이 1명, 바닥을 치고 다시 상승할 것이라는 의견이 1명이었다. 신진영 원장은 “부동산 경기는 4분기부터 활성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부동산 경기 활성화 방안으로는 ‘금리 인하’가 8명의 선택을 받았다. 이 밖에도 ‘공급확대’, ‘실거주 의무 폐지 등 각종 규제완화’가 각각 2명의 선택을 받았다. ‘정책 대출상품 확대’, ‘양도세·취득세 감면 연장’이 필요하다고 각각 1명이 답했다. 반면 5명은 활성화 대책이 필요 없다고 했다. 신진영 원장은 “이미 부동산 가격이 너무 높기 때문”이라고 했다. 성한경 교수 역시 “아직도 부동산 가격은 높은 편”이라면서 “당분간 하향 안정화로 가야 자산 가격의 불균형이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다”고 밝혔다. 윤성훈 보험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부동산 경기가 활성화되면 가계부채 감소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했다. 반등 계기 보이지 않는 ‘부동산’‘경기 활성화’ 감세 등 제안“여전히 집값 높아” 반박도 역대 최대 수준의 GDP 대비 가계부채는 올해에도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될 것이라는 전망이 13명으로 절반을 넘었다. 4명은 가계부채가 오히려 불어날 것이라고 답했다. 오태동 NH농협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기준금리 인상이 마무리되면서 부채 규모가 늘어날 것”이라고 했고,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을 중심으로 부채가 늘 것”이라고 전망했다. 가계부채 감소를 전망한 전문가는 3명이었다. 전문가 20명 전원이 ‘반도체’를 수출 유망 업종으로 꼽았다. 수출 부진이 우려되는 업종으로는 14명이 석유·화학을 택했다. 조영무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반도체 사이클은 바닥을 지났거나 지나는 중이다. 올해부터는 나아질 것”이라면서 “석유·화학 쪽은 대중국 수출이 상당히 중요하다. 중국 성장률이 낮을 것으로 보여 석유·화학도 낙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자동차 수출 전망은 전문가 사이에서도 엇갈렸다. 9명은 유망 업종으로, 6명은 부진 우려 업종으로 자동차를 택했다. 조영무 연구위원은 “지난해 꽤 선전한 자동차는 올해는 어려울 것이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 중심으로 마일드한 경기 침체 양상을 보여 자동차가 올해만큼 팔리기는 어렵다”고 내다봤다. 20명 전원 수출 유망 ‘반도체’ 꼽아“바닥 지났거나 지나는 중”석유·화학 업종 부진 우려 원·달러 환율을 올해와 비슷할 것으로 예상했다. 12명은 환율이 1250원에서 1300원 사이에 머물 것으로 내다봤다. 5명은 1300원에서 1350원 사이, 2명은 1200원에서 1250원을 예상했다. 1명은 답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반도체 업황 개선을 근거로 올 증시를 낙관했다. 15명이 제시한 코스피 예상 등락범위(밴드)는 2200~3000이었다. 고점 평균은 2830이었다. 신진영 원장과 윤성훈 선임연구원이 각각 올 코스피 밴드를 2500~3000으로 가장 밝게 봤다. 이경수 센터장과 이정환 교수의 상단이 2700으로 가장 낮았다. 올 한 해 세계 경제를 둘러싼 불확실성은 지난해보다 커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대다수(16명)가 올해 세계 경제 불확실성이 지난해보다 커질 것으로 봤다. 중국 경기 둔화 지속(9명)과 글로벌 경기 침체(6명)를 올 한 해 세계 경제를 위협하는 요소로 지목했다. 정희수 하나금융경영연구소장은 “중국, 미국 경기와 관련된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미중 갈등, 중국·대만 갈등과 같은 지정학적 리스크가 상존한다”면서 “글로벌 공급망 재편, 보호무역주의 강화 등으로 인한 글로벌 교역과 관련된 불안 요인도 확산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박태상 IBK기업은행 경제연구소장은 “인공지능(AI)의 일자리 대체 등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의 영향으로 올해뿐 아니라 앞으로는 뉴 앱노멀(새로운 비정상·New abnormal)이 초래하는 불확실성이 확대될 것”이라고 밝혔다.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 더 커져미중 갈등 속 40개국 선거美 우선주의 심화 가능성 미국 대선의 불확실성(4명)을 꼽은 전문가들도 적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재선이 현실화되면 미국 우선주의가 극심해질 가능성이 높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미국을 포함해 올해 세계 40여개 국가에서 국가적인 선거가 치러진다. 거기에 중국 경제의 불확실성도 커지고 있다. 미국 경제가 그간의 호조를 이어 갈지도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윤석모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미국 대선과 중국 부동산 침체 리스크 등 예측하기 어려운 이벤트 때문에 글로벌 경기의 불확실성이 커질 것”이라고 밝혔다. ▶설문에 참여해 주신 분들(가나다순)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 김지산 키움증권 리서치센터장, 박태상 IBK기업은행 경제연구소장, 박희찬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장, 성한경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 신진영 자본시장연구원장, 오태동 NH농협증권 리서치센터장,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유종우 한국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윤석모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 윤성훈 보험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경수 메리츠증권 리서치센터장, 이정환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 정희수 하나금융경영연구소장, 조영무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 한동환 전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장, 황승택 하나증권 리서치센터장,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
  • 지루할 틈 없는 화려한 복수극의 고전…뮤지컬 ‘몬테크리스토’

    지루할 틈 없는 화려한 복수극의 고전…뮤지컬 ‘몬테크리스토’

    화려한 무대연출과 통쾌한 복수의 서사 그리고 짜릿하게 감기는 음악까지. 지루할 틈 없이 관객들을 이야기의 끝으로 몰아간다. 대중적인 재미만 따진다면 흠잡을 곳이 없어 보인다. 2010년 초연 이후 여섯 번째 시즌으로 돌아온 뮤지컬 ‘몬테크리스토’의 총평이다. 원작 소설인 알렉산드르 뒤마의 ‘몬테크리스토 백작’이 압도적인 대중성만으로 고전 반열에 오른 것과도 묘하게 닮았다. 뮤지컬은 원래 2002년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에서 세부적인 설정을 따왔다. 그러나 이번 시즌에서는 ‘서사’에 더 힘을 주기 위해 소설의 설정도 일부 가지고 왔다고 한다. 악역인 ‘당글라스’, ‘빌포트’, ‘몬데고’의 장면과 대사가 더해졌고 넘버(노래) ‘펜, 잉크, 종이’도 추가됐다. 덕분에 관객들은 주인공 ‘에드몬드’가 행하는 복수에 조금 더 깊이 공감하게 된다. 단순히 뮤지컬을 ‘듣는’ 걸 넘어 ‘보는’ 재미까지 선사하겠다는 제작진의 의도라 하겠다. 그래서 이번 시즌 제목에는 완전히 새로워졌다는 의미의 수식어 ‘올 뉴’가 붙기도 한다. 앞날이 창창한 젊은 선원 에드몬드가 주변 인물들의 음모로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 생활을 하던 중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하면서 복수에 나서는 것이 극의 핵심 뼈대다. ‘그리스도의 산’을 뜻하는 ‘몬테크리스토’에서 억만금의 보물을 찾아내고 ‘몬테크리스토 백작’으로 이름을 바꾼 에드몬드는 자신을 모함한 악역들에게 그에 걸맞은 짜릿한 ‘맞춤형 복수’를 선사한다. 에드몬드와 약혼했으나, 그가 죽은 줄로만 알고 결국 몬데고와 결혼해버린 약혼녀 ‘메르세데스’를 향한 감정은 다소 복잡하다. 하지만 복수라는 감정에 언제까지나 사로잡혀 살 순 없다. 결국 용서와 화해로 나아가야 한다는 게 뮤지컬의 메시지다. 지금껏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된 복수극들의 원형으로 꼽히는 이야기다. 처절한 복수를 펼치면서도 곳곳에서 유쾌한 유머를 잃지 않고 있다는 점도 매력 포인트다. 뮤지컬과 연극, 드라마를 넘나들며 활약하는 배우 이규형의 에드몬드는 노래뿐만 아니라 능청스러운 대사로 감옥에서의 스승 ‘파리아 신부’, 몬데고와 메르세데스의 아들인 ‘알버트’와의 ‘티키타카’를 완벽하게 소화한다. 360도로 회전하는 무대는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보여주고 있다. 특히 몬테크리스토의 하이라이트이기도 한 넘버 ‘너희에게 선사하는 지옥’(이른바 ‘지옥송’)에서는 회전무대가 최대로 높아지는데, 무대 밑에서 앙상블(코러스)이 등장하며 지옥의 입구가 실제로 열리는 듯한 이미지를 구현했다.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오는 2월 25일까지 공연된다.
  • 우주소녀, 5년째 새해 1일 역주행 정상…‘이루리’ MZ 신년 연금송

    우주소녀, 5년째 새해 1일 역주행 정상…‘이루리’ MZ 신년 연금송

    걸그룹 우주소녀의 ‘이루리’(As You Wish)가 5년 연속 새해 음원 차트 정상에 올랐다. 마치 주문을 외치듯 새해의 희망을 노래하는 가사의 힘이 크다. 소속사 스타쉽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우주소녀 ‘이루리’가 1일 국내 주요 음원 사이트 멜론, 지니, 벅스 등 실시간 차트 1위를 차지했다. 2019년 11월 발매된 이후 2020년 1월 1일 실시간 차트 첫 1위를 기록하는 등 올해까지 5년째 역주행 인기몰이 중이다. MZ세대 사이에서 새해에 듣는 첫 곡이 한 해의 운을 결정한다는 속설이 퍼지면서 매년 1월 1일마다 소환되는 신년곡이 됐다. 우주소녀의 대표곡으로 2021년 멜론차트 28위, 2022년 12위, 지난해 31위에 올라 ‘새해 연금송’의 입지를 굳혔다. 특히 ‘이제 좋은 일들만 이렇게/네가 바라는 대로/느낌이 오는 대로’, ‘이루리 이루리 La/모두 다 이뤄질 거야’ 등의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가사가 입소문을 탔다. 우주소녀는 소속사를 통해 “2024년의 시작도 ‘이루리’와 함께해 주신 많은 분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이루리’ 노래처럼 올 한 해도 소망하시는 모든 일들 이루시길 바란다”라고 새해 인사를 전했다. 2016년 데뷔한 우주소녀는 ‘모모모’, ‘비밀이야’, ‘해피’, ‘언내추럴’ 등 히트곡을 내며 그룹 활동과 더불어 멤버 각자의 매력이 돋보인 유닛 우주소녀 쪼꼬미, 우주소녀 더 블랙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멤버 설아는 오는 23일 데뷔 8년 만에 팀 내 첫 솔로 앨범을 발표한다.
  • 슬럼프도 부상도 못 막아… 빛나는 태극 마크에 장애는 없다

    슬럼프도 부상도 못 막아… 빛나는 태극 마크에 장애는 없다

    “이다빈 선수와 겨루기를 하면 이길 수 있냐는 질문을 많이 듣는데 경기 영상을 보니까 힘들 것 같더라고요.”(주정훈) “같은 체급이라고 가정해도 장애인 태권도 규칙으로 겨루면 제가 못 이기죠.”(이다빈) 부상과 침체, 인내, 재기 그리고 새로운 도전. ‘장애인 태권도의 희망’ 주정훈(30·SK에코플랜트)과 ‘비장애인 태권도 간판’ 이다빈(28·서울시청)의 지난 1년을 관통하는 공통 키워드다. 두 선수는 지난달 영국 맨체스터에서 열린 2023 월드그랑프리 파이널에서 각각 장애인 남자 80㎏ 이하급 2위, 비장애인 여자 67㎏ 초과급 1위를 차지하며 파리행 티켓을 따냈다. 2023년은 더 큰 도약을 위한 과도기였다. 슬럼프에 빠져 지난해 5월 세계선수권에서 예선 탈락한 이다빈은 발목 인대 부상을 안고 9월 항저우아시안게임에 출전했다. 그는 개인전 은메달을 목에 걸고 눈물을 펑펑 흘린 시상식에 대해 “3연패 욕심이 났는데 훈련하지 못하는 상황이 답답했다. 나쁜 일이 한꺼번에 닥치는 느낌이었다”고 전했다. 무릎을 다친 상태로 항저우아시안 패러 게임 금메달을 품에 안은 주정훈은 “무조건 우승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통증을 견뎠다”고 설명했다. 코치진을 통해 격려와 응원을 주고받는 두 선수는 지난달 19일 서울 올림픽회관에서 진행한 합동 인터뷰에서 2024 파리올림픽, 패럴림픽에 대한 각오를 밝혔다. -지난해 마지막 대회인 그랑프리 파이널 성적이 좋았다. 다빈 중압감이 심한 대회인데도 즐겁게 준비했다. 계기가 있었다. 1년 동안 제 기량에 대한 의심의 연속이었다. 그랑프리 2주 전 국제대회에서 3등에 그쳐 선수 생활을 멈추고 싶었다. 감독님께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 말씀드렸는데 한숨도 못 자고 오셔서 ‘실패해도 감독은 옆에 있으니까 가진 기량을 모두 펼쳐 봤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털어놓으니까 마음이 풀렸고 감독님 뜻을 아니까 더 간절해졌다. 정훈 그랑프리를 통해 정신을 다잡았다. 연초엔 랭킹을 올려야 패럴림픽을 나갈 수 있어서 대회마다 벼랑 끝에 선 각오로 임했다. 출전 확정 명단에 포함되고 나서 참가한 그랑프리에선 이기겠다는 다짐보다 다치지 말자는 생각이 커서 경기 내용이 좋지 않았다. 감독님께 마음가짐을 뜯어고쳐야 한다는 조언을 듣고 반성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서로 교류할 기회는 있나. 다빈 접점이 없다. 태권도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선을 나누는 것 같다. 같은 국제대회에 출전해도 장애인 선수들이 먼저 일정을 치르고 떠난 다음 비장애인 선수들이 도착한다. 태극마크를 단 태권도 선수들을 하나로 묶으면 한두 명씩 대회에 나서는 장애인 선수들에게도 든든한 지원군과 응원단이 만들어진다. 주어진 조건이 다를 뿐 똑같은 ‘올림피언’이라고 생각한다. 정훈 우수 선수 사업으로 비장애인 실업팀과 함께 훈련했는데 얼굴 발차기가 없는 장애인 태권도와 차이가 크더라. 겸손한 자세로 많이 배우고 있다. 영국은 장애인, 비장애인이 같이 국가대표 합숙 훈련을 받는다. 대회에서 붙어 보니 그 선수들 기량이 많이 늘었다. 한국도 같이 한다면 장애인 선수들은 실력이 향상되고 비장애인 선수들은 더 열심히 운동할 동기가 생길 수 있다. -패럴림픽, 올림픽에 나서는 각오는. 정훈 비장애인은 유소년부터 엘리트 교육을 받는다. 반면 장애인들 사이엔 아직 격투기에 도전하길 두려워하는 분위기가 있어 선수층이 얇다. 최근 장애가 있는 초등학생이 저를 보고 태권도를 시작했는데 그 친구에게 ‘항상 응원한다’는 메시지를 받으면서 롤 모델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운동으로 이뤄 낸 가치 있는 성과를 더 많은 사람에게 보여 주고 싶다. 철저히 준비한 뒤 우승까지 다다를 수 있는 길만 보고 질주하겠다. 다빈 선수 생활에서 마지막으로 출전하는 대형 이벤트다. 1년 동안 정말 힘들게 달려서 티켓을 따냈다. 도쿄올림픽을 통해 간절함과 운 모두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주정훈 선수처럼 준비 과정, 결과, 대회 자체까지 즐길 수 있는 여유를 갖는 게 목표다. 더 중요한 건 은메달은 따 봤다는 것이다. 이번엔 금메달을 목에 건 기분을 느끼겠다.
  • [단독] “얼마 받고 키우냐” “무슨 덕 보자고 남의 애를” 가시가 박혀도…“아이 덕분에 다른 삶” “와줘서 고마워” 울타리가 되어 준 가족들[잠시만 부모가 되어주세요]

    [단독] “얼마 받고 키우냐” “무슨 덕 보자고 남의 애를” 가시가 박혀도…“아이 덕분에 다른 삶” “와줘서 고마워” 울타리가 되어 준 가족들[잠시만 부모가 되어주세요]

    어른의 잘못으로 홀로 남겨진 아이는 갈 곳이 없다. 의사 표현은 물론 아직 걸음도 떼지 못한 아이들은 그렇게 죄없이 세상의 냉대 속에 던져진다. 할아버지·할머니 등 친인척이 맡는 경우를 제외하면 이런 아이들을 품는 위탁가정은 2022년 기준 974가구, 이들에게 맡겨진 아이는 1126명이다. 서울신문에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 170명의 위탁부모들은 그런데도 하나같이 “아이 덕분에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 고마운 건 오히려 우리”라고 했다.#소망이의 ‘꿈’ 끈에 묶여 있던 장애아 끈질긴 치료로 호전돼 “경찰관이 되고 싶대요” 2013년 생후 14개월의 소망(13·가명)군을 마주한 박정자(61)씨는 마음이 무거웠다. 둘째 딸을 입양한 뒤 느꼈던 행복과 보람만큼 위탁부모로서의 역할도 해 보려 했지만 막상 아이를 맡으려니 망설여졌다. 소망이는 당시 대한사회복지회 입양기관에 있던 14명의 아이 중 아무도 원하지 않아 돌봐 줄 가정을 찾고 있던 마지막 남은 장애아동이었다. 하루 종일 빨아 손가락이 벌겋게 짓무르고, 한순간도 가만히 있지 못했던 소망이는 안전상의 이유로 기둥에 묶여 있었다. 소망이는 태어나자마자 사회복지협회에 맡겨졌다. 지적 장애를 앓고 있던 소망이의 친모는 특별한 주거지 없이 지하철역과 공원 등 길에서 노숙 생활을 했다. 태어난 직후 돌봄을 받지 못한 소망이는 뇌전증을 얻게 됐다. 장애가 있다 보니 누구도 선뜻 맡으려 하지 않았고, 돌도 지나지 않은 갓난아이는 시설에만 있어야 했다. 박씨처럼 학대 아동이나 장애가 있는 아동을 돌보는 전문 위탁부모의 수는 아주 적다. 2022년 기준 전체 9330명의 위탁아동 가운데 전문 위탁부모에게 맡겨지는 아동은 2.5%인 237명에 그친다. 학대나 장애가 있는 아이들은 훨씬 많지만, 전문 위탁부모가 그 수치를 따라가지 못한다. “나이도 있으신데 어떻게 감당하려고 하시나요.” 소망이와 함께 처음 병원을 찾았을 때 의사가 던진 말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박씨에게 상처로 남아 있다. 박씨는 “나이 많은 부모인 우리 집에 왔다는 이유만으로 아이가 그런 말을 듣는 게 화가 났다. 기어코 제대로 키워 보겠다고 마음을 먹게 됐다”고 했다. 소망이가 두 돌쯤 되자 박씨는 서울 강남과 경기 안산 등 전국의 유명한 소아청소년과를 다니면서 치료를 시작했다. 언어치료, 그림치료, 놀이치료 등 소망이에게 도움이 된다면 어디든 찾아갔다. 이런 노력에도 소망이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유치원에 다닐 땐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초등학교 입학 직전에는 발달 지연 판정을 받았다. 10년 넘게 이어진 가족들의 꾸준한 돌봄 덕분일까. 이제 초등학교 5학년이 된 소망이는 글씨도 쓰고, 구구단도 외운다. 같은 나이대의 다른 아이들보다는 더디지만, 문제 행동은 대부분 사라졌다. 그리고 최근에는 박씨에게 “경찰관이 되고 싶다”며 꿈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박씨는 “다른 건 못 해 줘도, 돈은 부족해도 가족이 돼 줄 순 있다는 마음으로 소망이를 키웠다”며 “돌이켜 보면 오히려 치유받는 건 저와 가족들이었다. 이제 소망이가 잘 자라서 자신이 받은 사랑을 되돌려주는 사람이 됐으면 하는 게 제 남은 꿈”이라고 말했다. #셋째의 ‘장애’ 생후 8개월 친모에 학대 신생아처럼 목 못 가눠 “우리도 평범한 가족이죠” 경남 지역에서 아이 둘을 키우고 있던 유제희(43)씨는 3년 전인 2021년 갑작스레 ‘위탁’을 맡아 세 아이의 엄마가 됐다. 당시 이 지역에는 학대 피해 아동을 맡을 수 있는 전문 위탁부모가 유씨를 포함해 2명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유씨 품에 안긴 서희(4·가명)는 생후 8개월에 친모에게 학대당해 응급실로 실려 온 아이였다. 얼굴과 몸에 멍자국이 가득했던 서희는 뇌 일부가 손상돼 중환자실에서 치료받기도 했다. 서희의 친모는 “부부싸움 도중 화가 나 (서희를) 때렸다”고 경찰 조사에서 진술했다고 한다. 서희의 이야기를 들은 유씨는 외면할 수가 없었다. “가정위탁지원센터에서 전화가 와서 맡아 줄 사람이 저밖에 없다고 하는데 어쩌겠어요. 9개월짜리 갓난아이가 그래도 누군가의 품에 있어야지.” 서희는 이제 40개월이 됐다. 친부모의 폭력에서 벗어났지만 상처는 남았다. 한창 어린이집을 다녀야 하는 나이지만, 서희는 여전히 목을 가누지 못한다. 눈도 보이지 않는다. 유씨는 “지금도 신생아 수준이다. 병원에서 처음 만났을 때는 콧줄로 분유를 먹고 있었다”며 “뇌가 손상돼 기능을 제대로 못 한다. 수술로도 고칠 수 없다고 하는데 속상하기만 하다”고 했다. 그래도 서희는 이제 젖병으로 분유를 먹는다. 대부분의 아이에게 당연한 이 일이 서희에게는 아직 쉽지 않다. 한 시간 내내 젖병을 물리고 있어도 서희가 먹는 분유는 10㎖ 남짓. 사레가 들려 토하면 그걸 닦고 다시 젖병을 물려야 그 정도를 먹는다. 인터뷰하는 3시간 동안 유씨의 한 손에는 서희의 머리가, 또 다른 손에는 젖병이 들려 있었다. 유씨는 장애가 있는 서희를 키우는 고단함보다 불신의 눈초리와 주변의 시선이 더 힘들다고 했다. 서희를 데려온 2021년부터 지금까지 6개월마다 서희에게 쓴 물품 등은 영수증을 따로 모아 주민센터에 제출한다.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서희를 키우지만 유씨는 장애인 주차구역에도 주차할 수 없다. 유씨 같은 위탁부모는 ‘부모’가 아닌 ‘동거인’으로 등록돼서다. 전문 위탁가정들이 일반·일시 위탁가정과 달리 월 100만원의 보호비를 지원받는다는 점이 오해와 불신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사실 가장 가슴 아픈 건 ‘얼마 받고 키우느냐’는 질문을 들을 때예요. 월 100만원이라는 돈을 받아서 서희를 키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사랑으로 하는 일이지 돈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닌데요.”비혈연 위탁부모 170명이 참여한 실태조사에서는 제도의 한계를 지적하는 안타까움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주위 사람들이 가정위탁 제도를 알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정확히 알고 있지 않다’, ‘제도 자체를 모른다’고 답한 위탁부모가 72.9%나 됐다. “평범한 가족”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유씨의 꿈은 여느 부모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유씨는 “서희가 건강하게만 자라줬으면 좋겠다. 크면서 더 나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해 그게 가장 걱정”이라며 “서희가 아장아장 걸어오는 꿈을 꿀 때마다 언젠가는 이뤄질 거라고 생각하고 마음을 다잡는다”고 했다. #50대 부모 돌 때 맡아 어느새 열여덟 일주일을 내리 울던 아이 “스스로 극복해줘 고맙죠” 위탁부모도 사람인 만큼 아이를 키우기까지 수백 번 고민한다. 실태조사에 참여한 위탁부모들은 “아이가 너무 사랑스럽고 예쁘지만 과연 내가 잘 키울 수 있을까 걱정됐다”, “막상 아이를 마주하니 겁이 났다”고 회상했다. 이들은 아이를 처음 만났을 때 느낀 감정으로 사랑스러움(60.0%), 반가움(47.1%), 설렘(42.9%)만큼이나 안쓰러움(60.6%), 걱정(50.0%), 안타까움(34.7%)을 많이 꼽았다. 아이 부모의 사정이 나아지고 아이가 안정을 찾을 동안만이라도 잠시 가족이 돼 주려고 시작한 위탁이 친부모의 사정이 나아지지 않는 등의 이유로 길어지면서 아이들이 훌쩍 커버리는 경우도 있다. 지환(18·가명)군은 갓 돌이 됐을 때인 2007년 주재옥(69)씨의 집으로 왔다. 지환군은 친부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세상에 홀로 남겨졌다. 당시 지환군이 다니던 어린이집 교사였던 주씨의 아내는 혼자가 된 지환군을 외면할 수 없었다. 주씨는 “당시만 해도 정년을 8년 정도 앞두고 있었는데, 아내의 제안에도 처음엔 한 아이의 인생을 내가 책임질 수 있겠냐는 부정적 생각이 컸다”고 했다. 갓난아이를 키우기엔 나이가 많은 50대 부모였지만 주씨는 지환군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왔다. 지환군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부터는 자신이 위탁부모라는 것을 밝히는 편지를 새 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담임 선생님에게 보냈다. 주씨는 “친부모는 없지만 적어도 사랑받고 자랐다는 생각이 들 수 있게끔 노력했다. 그래도 젊은 부모들보다는 부족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학교 입학 전 자신이 위탁아동이라는 걸 알게 된 지환군은 일주일을 내리 방 안에서 울기만 했다. 주씨가 지환군을 키우는 동안 가장 가슴 아팠던 때였다. “말주변이 없어 너는 가슴으로 낳은 내 아들이고, 누구보다 소중하고 사랑하는 존재라며 위로했어요. 한참을 울던 지환이가 다행히도 스스로 극복해 줘서 고마웠어요.” 올해 고등학교 3학년이 되는 지환군은 물리학과 진학을 목표로 학업에 매진하고 있다. 주씨는 “성적이 우수해 장학금도 받고 있다”며 여느 부모와 다를 바 없이 아들 자랑에 진심이었다. 위탁부모들은 아이들을 키우면서 스스로가 바뀐다고 한다. 위탁부모들은 아이와 함께 있을 때 주로 느끼는 감정으로 사랑스러움(75.3%), 행복(71.2%), 고마움(62.9%), 기쁨(58.8%)을 가장 많이 언급했다. ‘아이의 상태가 나아져서’, ‘아이에게 내가 더 사랑받고 있어서’, ‘웃을 수 있는 날이 많아서’ 위탁부모들은 행복하다고 했다. 특히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들을 꼽아 달라는 질문에 위탁부모들은 ▲아이가 처음 엄마, 아빠라고 불렀을 때 ▲사랑한다고 말할 때 ▲주변에서 잘 컸다고 칭찬할 때를 주로 꼽았다. #사랑을 배우다 중2 극심한 사춘기 겪어 과학고 졸업 ‘자립 준비’ “입양보다 더 가치 있죠” “과학고를 나온 우리 셋째아들 민우가 이제 ‘화이트 해커’가 되려고 하는데 쉽지가 않네요.” 송순향(64)씨도 삼수생인 막내아들 민우(21·가명)씨 자랑에 여념이 없었다. 송씨는 2003년 당시 생후 8개월이었던 민우씨를 처음 만났다. 가정위탁 제도가 도입된 첫해 만난 이들은 그렇게 21년을 함께했다. 민우씨는 이제 위탁아동이 아닌 어엿한 ‘자립준비청년’이 됐다. “무슨 덕을 보겠다고 남의 애를 키우냐.” “미친 짓이다. 당장 그만둬라.” 가정위탁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전무했던 그 시절 민우씨를 키운다고 하자 주변에서는 너도나도 송씨를 말렸다. 하지만 송씨의 결심은 꺾이지 않았다. 지금도 송씨는 민우씨가 가족 분위기를 더 화목하게 만든 ‘복덩이’라고 생각한다. 실태조사에 참여한 위탁부모들도 ‘이후의 삶의 변화’를 유독 강조했다. 위탁부모들은 “아이가 집으로 온 이후 기존의 자녀들을 포함한 가족들이 모두 성장했다”,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이전보다 늘었다”, “웃음과 대화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아졌다”고 했다. 가정위탁은 위탁아동에게 ‘가족’의 의미를 알려주지만, 아이를 맡는 가정에도 마찬가지로 그 의미를 다시 일깨워 준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일이 늘 행복하고 기쁜 일로만 가득하지는 않다. 송씨는 가장 힘들었을 때로 민우씨가 사춘기를 맞아 정체성의 혼란을 겪던 중학교 2학년 시절을 꼽았다. 이전부터 자신이 위탁아동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민우씨는 당시 “쓰레기 같은 집에서 태어난 쓰레기 인생, 부모에게 버림받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러다 극단적 선택을 하려고 학교 옥상에 올라가기도 했다. 송씨는 “사실 그때는 죽도록 힘들었는데, 돌이켜 보면 이만큼 크려고 성장통을 아주 호되게 앓은 것만 같다”며 “민우가 이렇게 견뎌 준 것만 해도 고맙다”고 했다. 그 이후 민우씨는 송씨에게 종종 입양할 의향이 없는지 물어보기도 했다. 송씨는 그럴 때마다 항상 이렇게 대답했다. “엄마는 좋지만 민우는 친부모님이 있잖아. 그분들에게서 아들을 뺏고 싶지 않아. 어른이 돼서도 네 마음이 변하지 않으면 모여 사는 것뿐 아니라 법적으로도 가족이 되자.” 원가정 복귀가 가정위탁의 목적인 만큼 위기에 놓인 아이를 잘 보듬은 뒤 자립할 수 있게 만든다면, 그게 입양만큼이나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게 송씨의 생각이다. 가정위탁 제도가 도입된 첫해부터 지금까지 제도의 역사와 함께한 송씨는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위탁부모라는 게 사실 대단한 일도 아니고 특별할 것도 없어요. 다만 보호가 필요한 아이 중 더 많은 아이가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컸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더 많은 사람이 이 제도를 알고 관심을 가져야 해요. 그게 우리의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알려졌으면 하는 이유예요.”
  • [단독]“다른 건 못 해줘도 가족이 되어줄 순 있다는 마음으로”…위탁부모 170명의 이야기[잠시만 부모가 되어 주세요]

    [단독]“다른 건 못 해줘도 가족이 되어줄 순 있다는 마음으로”…위탁부모 170명의 이야기[잠시만 부모가 되어 주세요]

    어른의 잘못으로 홀로 남겨진 아이는 갈 곳이 없다. 의사 표현은 물론 아직 걸음도 떼지 못한 아이들은 그렇게 죄없이 세상의 냉대 속에 던져진다. 할아버지·할머니 등 친인척이 맡는 경우를 제외하면 이런 아이들을 품는 위탁가정은 2022년 기준 974가구, 이들에게 맡겨진 아이는 1126명이다. 서울신문에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 170명의 위탁부모들은 그런데도 하나같이 “아이 덕분에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 고마운 건 오히려 우리”라고 했다. #소망이도 이제 ‘꿈’이 생겼습니다 2013년 생후 14개월의 소망(12·가명)군을 마주한 박정자(60)씨는 마음이 무거웠다. 둘째 딸을 입양한 뒤 느꼈던 행복과 보람만큼 위탁부모로서의 역할도 해 보려 했지만 막상 아이를 맡으려니 망설여졌다. 소망이는 당시 대한사회복지회 입양기관에 있던 14명의 아이 중 아무도 원하지 않아 돌봐 줄 가정을 찾고 있던 마지막 남은 장애아동이었다. 하루 종일 빨아 손가락이 벌겋게 짓무르고, 한순간도 가만히 있지 못했던 소망이는 안전상의 이유로 기둥에 묶여 있었다. 소망이는 태어나자마자 사회복지협회에 맡겨졌다. 지적 장애를 앓고 있던 소망이의 친모는 특별한 주거지 없이 지하철역과 공원 등 길에서 노숙 생활을 했다. 태어난 직후 돌봄을 받지 못한 소망이는 뇌전증을 얻게 됐다. 장애가 있다 보니 누구도 선뜻 맡으려 하지 않았고, 돌도 지나지 않은 갓난아이는 시설에만 있어야 했다. 박씨처럼 학대 아동이나 장애가 있는 아동을 돌보는 전문 위탁부모의 수는 아주 적다. 2022년 기준 전체 9330명의 위탁아동 가운데 전문 위탁부모에게 맡겨지는 아동은 2.5%인 237명에 그친다. 학대나 장애가 있는 아이들은 훨씬 많지만, 전문 위탁부모가 그 수치를 따라가지 못한다. “나이도 있으신데 어떻게 감당하려고 하시나요.” 소망이와 함께 처음 병원을 찾았을 때 의사가 던진 말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박씨에게 상처로 남아 있다. 박씨는 “나이 많은 부모인 우리 집에 왔다는 이유만으로 아이가 그런 말을 듣는 게 화가 났다. 기어코 제대로 키워 보겠다고 마음을 먹게 됐다”고 했다. 소망이가 두 돌쯤 되자 박씨는 서울 강남과 경기 안산 등 전국의 유명한 소아청소년과를 다니면서 치료를 시작했다. 언어치료, 그림치료, 놀이치료 등 소망이에게 도움이 된다면 어디든 찾아갔다. 이런 노력에도 소망이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유치원에 다닐 땐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초등학교 입학 직전에는 발달 지연 판정을 받았다. 10년 넘게 이어진 가족들의 꾸준한 돌봄 덕분일까. 이제 초등학교 5학년이 되는 소망이는 글씨도 쓰고, 구구단도 외운다. 같은 나이대의 다른 아이들보다는 더디지만, 문제 행동은 대부분 사라졌다. 그리고 최근에는 박씨에게 “경찰관이 되고 싶다”며 꿈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박씨는 “다른 건 못 해 줘도, 돈은 부족해도 가족이 돼 줄 순 있다는 마음으로 소망이를 키웠다”며 “돌이켜 보면 오히려 치유받는 건 저와 가족들이었다. 이제 소망이가 잘 자라서 자신이 받은 사랑을 되돌려주는 사람이 됐으면 하는 게 제 남은 꿈”이라고 말했다. #우리 셋째는 ‘장애’가 있습니다 경남 지역에서 아이 둘을 키우고 있던 유제희(42)씨는 2년 전인 2021년 갑작스레 ‘위탁’을 맡아 세 아이의 엄마가 됐다. 당시 이 지역에는 학대 피해 아동을 맡을 수 있는 전문 위탁부모가 유씨를 포함해 2명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유씨 품에 안긴 서희(3·가명)는 생후 8개월에 친모에게 학대당해 응급실로 실려 온 아이였다. 얼굴과 몸에 멍자국이 가득했던 서희는 뇌 일부가 손상돼 중환자실에서 치료받기도 했다. 서희의 친모는 “부부싸움 도중 화가 나 (서희를) 때렸다”고 경찰 조사에서 진술했다고 한다. 서희의 이야기를 들은 유씨는 외면할 수가 없었다. “가정위탁지원센터에서 전화가 와서 맡아 줄 사람이 저밖에 없다고 하는데 어쩌겠어요. 9개월짜리 갓난아이가 그래도 누군가의 품에 있어야지.” 서희는 이제 40개월이 됐다. 친부모의 폭력에서 벗어났지만 상처는 남았다. 한창 어린이집을 다녀야 하는 나이지만, 서희는 여전히 목을 가누지 못한다. 눈도 보이지 않는다. 유씨는 “지금도 신생아 수준이다. 병원에서 처음 만났을 때는 콧줄로 분유를 먹고 있었다”며 “뇌가 손상돼 기능을 제대로 못 한다. 수술로도 고칠 수 없다고 하는데 속상하기만 하다”고 했다. 그래도 서희는 이제 젖병으로 분유를 먹는다. 대부분의 아이에게 당연한 이 일이 서희에게는 아직 쉽지 않다. 한 시간 내내 젖병을 물리고 있어도 서희가 먹는 분유는 10㎖ 남짓. 사레가 들려 토하면 그걸 닦고 다시 젖병을 물려야 그 정도를 먹는다. 인터뷰하는 3시간 동안 유씨의 한 손에는 서희의 머리가, 또 다른 손에는 젖병이 들려 있었다. 유씨는 장애가 있는 서희를 키우는 고단함보다 불신의 눈초리와 주변의 시선이 더 힘들다고 했다. 서희를 데려온 2021년부터 지금까지 6개월마다 서희에게 쓴 물품 등은 영수증을 따로 모아 주민센터에 제출한다.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서희를 키우지만 유씨는 장애인 주차구역에도 주차할 수 없다. 유씨 같은 위탁부모는 ‘부모’가 아닌 ‘동거인’으로 등록돼서다. 전문 위탁가정들이 일반·일시 위탁가정과 달리 월 100만원의 보호비를 지원받는다는 점이 오해와 불신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사실 가장 가슴 아픈 건 ‘얼마 받고 키우느냐’는 질문을 들을 때예요. 월 100만원이라는 돈을 받아서 서희를 키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사랑으로 하는 일이지 돈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닌데요.” #우리는 ‘평범한 가족’입니다 비혈연 위탁부모 170명이 참여한 실태조사에서는 제도의 한계를 지적하는 안타까움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주위 사람들이 가정위탁 제도를 알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정확히 알고 있지 않다’, ‘제도 자체를 모른다’고 답한 위탁부모가 72.9%나 됐다. “평범한 가족”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유씨의 꿈은 여느 부모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유씨는 “서희가 건강하게만 자라줬으면 좋겠다. 크면서 더 나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해 그게 가장 걱정”이라며 “서희가 아장아장 걸어오는 꿈을 꿀 때마다 언젠가는 이뤄질 거라고 생각하고 마음을 다잡는다”고 했다. 위탁부모도 사람인 만큼 아이를 키우기까지 수백 번 고민한다. 실태조사에 참여한 위탁부모들은 “아이가 너무 사랑스럽고 예쁘지만 과연 내가 잘 키울 수 있을까 걱정됐다”, “막상 아이를 마주하니 겁이 났다”고 회상했다. 이들은 아이를 처음 만났을 때 느낀 감정으로 사랑스러움(60.0%), 반가움(47.1%), 설렘(42.9%)만큼이나 안쓰러움(60.6%), 걱정(50.0%), 안타까움(34.7%)을 많이 꼽았다. 아이 부모의 사정이 나아지고 아이가 안정을 찾을 동안만이라도 잠시 가족이 돼 주려고 시작한 위탁이 친부모의 사정이 나아지지 않는 등의 이유로 길어지면서 아이들이 훌쩍 커버리는 경우도 있다. 지환(17·가명)군은 갓 돌이 됐을 때인 2007년 주재옥(68)씨의 집으로 왔다. 지환군은 친부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세상에 홀로 남겨졌다. 당시 지환군이 다니던 어린이집 교사였던 주씨의 아내는 혼자가 된 지환군을 외면할 수 없었다. 주씨는 “당시만 해도 정년을 8년 정도 앞두고 있었는데, 아내의 제안에도 처음엔 한 아이의 인생을 내가 책임질 수 있겠냐는 부정적 생각이 컸다”고 했다. 갓난아이를 키우기엔 나이가 많은 50대 부모였지만 주씨는 지환군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왔다. 지환군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부터는 자신이 위탁부모라는 것을 밝히는 편지를 새 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담임 선생님에게 보냈다. 주씨는 “친부모는 없지만 적어도 사랑받고 자랐다는 생각이 들 수 있게끔 노력했다. 그래도 젊은 부모들보다는 부족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학교 입학 전 자신이 위탁아동이라는 걸 알게 된 지환군은 일주일을 내리 방 안에서 울기만 했다. 주씨가 지환군을 키우는 동안 가장 가슴 아팠던 때였다. “말주변이 없어 너는 가슴으로 낳은 내 아들이고, 누구보다 소중하고 사랑하는 존재라며 위로했어요. 한참을 울던 지환이가 다행히도 스스로 극복해 줘서 고마웠어요.” 올해 고등학교 3학년이 되는 지환군은 물리학과 진학을 목표로 학업에 매진하고 있다. 주씨는 “성적이 우수해 장학금도 받고 있다”며 여느 부모와 다를 바 없이 아들 자랑에 진심이었다. 위탁부모들은 아이들을 키우면서 스스로가 바뀐다고 한다. 위탁부모들은 아이와 함께 있을 때 주로 느끼는 감정으로 사랑스러움(75.3%), 행복(71.2%), 고마움(62.9%), 기쁨(58.8%)을 가장 많이 언급했다. ‘아이의 상태가 나아져서’, ‘아이에게 내가 더 사랑받고 있어서’, ‘웃을 수 있는 날이 많아서’ 위탁부모들은 행복하다고 했다. 특히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들을 꼽아 달라는 질문에 위탁부모들은 ▲아이가 처음 엄마, 아빠라고 불렀을 때 ▲사랑한다고 말할 때 ▲주변에서 잘 컸다고 칭찬할 때를 주로 꼽았다. #아이와 함께 가족을, 사랑을 배웁니다 “과학고를 나온 우리 셋째아들 민우가 이제 ‘화이트 해커’가 되려고 하는데 쉽지가 않네요.” 송순향(63)씨도 삼수생인 막내아들 민우(20·가명)씨 자랑에 여념이 없었다. 송씨는 2003년 당시 생후 8개월이었던 민우씨를 처음 만났다. 가정위탁 제도가 도입된 첫해 만난 이들은 그렇게 20년을 함께했다. 민우씨는 이제 위탁아동이 아닌 어엿한 ‘자립준비청년’이 됐다. “무슨 덕을 보겠다고 남의 애를 키우냐.” “미친 짓이다. 당장 그만둬라.” 가정위탁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전무했던 그 시절 민우씨를 키운다고 하자 주변에서는 너도나도 송씨를 말렸다. 하지만 송씨의 결심은 꺾이지 않았다. 지금도 송씨는 민우씨가 가족 분위기를 더 화목하게 만든 ‘복덩이’라고 생각한다. 실태조사에 참여한 위탁부모들도 ‘이후의 삶의 변화’를 유독 강조했다. 위탁부모들은 “아이가 집으로 온 이후 기존의 자녀들을 포함한 가족들이 모두 성장했다”,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이전보다 늘었다”, “웃음과 대화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아졌다”고 했다. 가정위탁은 위탁아동에게 ‘가족’의 의미를 알려주지만, 아이를 맡는 가정에도 마찬가지로 그 의미를 다시 일깨워 준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일이 늘 행복하고 기쁜 일로만 가득하지는 않다. 송씨는 가장 힘들었을 때로 민우씨가 사춘기를 맞아 정체성의 혼란을 겪던 중학교 2학년 시절을 꼽았다. 이전부터 자신이 위탁아동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민우씨는 당시 “쓰레기 같은 집에서 태어난 쓰레기 인생, 부모에게 버림받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러다 극단적 선택을 하려고 학교 옥상에 올라가기도 했다. 송씨는 “사실 그때는 죽도록 힘들었는데, 돌이켜 보면 이만큼 크려고 성장통을 아주 호되게 앓은 것만 같다”며 “민우가 이렇게 견뎌 준 것만 해도 고맙다”고 했다. 그 이후 민우씨는 송씨에게 종종 입양할 의향이 없는지 물어보기도 했다. 송씨는 그럴 때마다 항상 이렇게 대답했다. “엄마는 좋지만 민우는 친부모님이 있잖아. 그분들에게서 아들을 뺏고 싶지 않아. 어른이 돼서도 네 마음이 변하지 않으면 모여 사는 것뿐 아니라 법적으로도 가족이 되자.” 원가정 복귀가 가정위탁의 목적인 만큼 위기에 놓인 아이를 잘 보듬은 뒤 자립할 수 있게 만든다면, 그게 입양만큼이나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게 송씨의 생각이다. 가정위탁 제도가 도입된 첫해부터 지금까지 제도의 역사와 함께한 송씨는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위탁부모라는 게 사실 대단한 일도 아니고 특별할 것도 없어요. 다만 보호가 필요한 아이 중 더 많은 아이가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컸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더 많은 사람이 이 제도를 알고 관심을 가져야 해요. 그게 우리의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알려졌으면 하는 이유예요.”
  • 기술이 부족해도, 일이 아니어도 괜찮은 목공[김기자의 주말목공](연재 종료)

    기술이 부족해도, 일이 아니어도 괜찮은 목공[김기자의 주말목공](연재 종료)

    토요일 오전 9시. 집을 나서는 발걸음이 가볍다. 차 시동을 켜고 라디오 버튼을 누른다.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를 주로 듣는다. 음악을 흥얼거리다 보니 어느새 공방이다. 아무도 없는 공방 문을 열면 목재 향이 알싸하다. 지난번 만들다 둔 작은 수납장을 작업대 위에 올린다. 오늘은 서랍을 만들어야 한다. 12㎜ 두께 삼나무 목재를 켜고 잘라 그렇게 수납장의 속을 채워간다. 5년 동안 주말이면 나무를 만졌다. 재밌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목공 기초를 배운 뒤 거실에 둘 6인용 테이블을 처음 만들었다. 투바이포(2X4) 목재로 아이들의 침대도 짜줬다. 텔레비전을 바꾸며 여기에 맞춰 대형 수납장을 만드는 일은 또 어땠나. 무언가를 배우는 건 머릿속에 지도를 그려 가는 일과 마찬가지다. 배우면 배울수록 지도는 더 선명해진다. 몸은 이에 맞춰 좀 더 익숙해진다. 예전에는 쩔쩔맸던 일을 이제는 척척 해내니 그저 즐겁다. 목공을 하다가 문득, 취미가 일이 될 수 있을까 고민해본다. 자주 가는 온라인 목공 카페에 ‘창업하고 싶다’는 글이 종종 올라온다. ‘목공이 너무 좋아 지금 하는 일을 그만두고 직업으로 삼고 싶다’고 한다. 작은 공방 하나 차려놓고 주문받아 가구를 만들겠다는 소박한 꿈. 목공을 처음 배울 때 그런 생각을 얼핏 해본 적이 있다.좋아하는 것과 업으로서의 일은 별개일 터다. 가구 구조를 배우겠다며 일산에 있는 이케아를 틈날 때 가곤 했다. 목공을 배우기 전에는 ‘저가의 조립식 가구’ 정도로 얕잡아 봤다. 직접 배워보니 그게 아니었다.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 단단한 구조, 낭비 없는 목재, 그리고 저렴한 가격. 이케아 혹은 한샘 같은 대형 회사가 만드는 가구보다 내가 잘 팔릴 가구를 만들 수 있는지 질문해야 한다. ‘김윤관 목수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목수 김윤관이 한 잡지에 올린 글의 일부다. “가구 목수인 ‘소목’이 되는 기간을 물어볼 때, ‘인맥이 좋은 경우 최소 3년, 그렇지 않다면 5, 6년 예상하면 된다. 만약 그 기간 안에 직업 목수로 자리를 잡는다면 굉장히 빠른 것’이라고 답한다. 당연한 말을 했는데 그들의 표정이 너무 어두워진다”고 했다. 손재주를 익히는 시간은 오래지만, 기술의 발전은 빠르다. 한 목공 장인이 공방에 온 적이 있다. 그는 공방에 있는 CNC(computer numerical control)가 작동하는 모습을 보고 탄식했다. “목수들 이젠 밥 벌어먹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며. 이 기계는 도면 그대로 목재를 파낸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목재를 깎아내는 모습을 보면 기가 찰만하다. 최근엔 작은 목공방에서도 점차 CNC를 들이는 추세다. 어중간하게 마음먹어서는 명함도 못 내밀게 됐다. 제대로 손기술을 갖추기까지 투입해야 하는 시간은 참 아득한데, 최신 기술도 익혀야 한다.그러나 걱정하지 말길. 굳이 잘하지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만 배워도 목공은 삶에 큰 도움이 된다. 그런 점에서 학교에서 목공 기초를 가르치면 어떨까 제안해본다. 임마누엘 칸트는 ‘손은 밖으로 나온 뇌’라고 했다. 전인 교육으로 유명한 독일 발도르프학교에서는 모든 학생에게 목공을 가르친다. 우리 교육과정에는 목공이 없다. 국어, 영어, 수학은 배우는데 왜 목공은 배우지 않을까. 왜 창의적체험활동으로 도마 만들기 정도에서 그치는 것일까. 살아가는 데 이렇게 큰 도움이 되고 기쁨이 되는데. 기술을 등한시하는 고루한 문화 탓은 아닐는지. 머리의 지혜와 손발의 경험이 조화를 이뤄 멋진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은 교육적으로도 가치 있는 일일 텐데. “취미가 목공”이라고 하면 “나중에 목수 해도 되겠네요”라는 말이 여전하다. 이젠 그냥 웃으면서 넘긴다. 그렇게 되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어서다. 우리 애들, 그리고 남는 시간 친한 이들에게 기꺼이 내 손재주를 발휘해 무언가를 만들어 줄 수 있는 정도까지만 하고 싶다. “10년 안에 이루고 싶은 꿈이 뭐냐”고 묻는다면 “25평 안팎의 개인 공방을 차리는 것”이라 답한다. 그 꿈을 항해 이번 주말에도 공방으로 가 손기술을 다듬는다.그동안 서울신문 온라인에 연재한 [김기자의 주말목공]은 올해 4월 ‘서랍장의 새 출발’을 시작으로 30편을 이어왔다. 주로 초보자들에게 유용한 글을 올리는 데 주력했다. 목공을 어디서 어떻게 배워야 할지, 그리고 초보를 막 벗어난 뒤 열쇠공방 찾는 방법, 원데이클래스 고르기 등을 소개했다. 목공하는 이들도 별생각 없이잘못 쓰는 전동 드릴과 전동 드라이버, 비트와 나사 등에 대한 글의 반응이 좋았다. 공구 고르는 법, 도움 될만한 유튜브와 서적, 그리고 목재 이야기 등 정보성 글도 많이들 읽었다. 온라인이지만 일간지 사이트였던 터라 에세이성 글에 ‘일기는 일기장에 쓰라’, 정보성 글에도 ‘이게 기사냐’라는 댓글이 달리곤 했다. 기자생활 오래 한 덕에 댓글에 익숙해졌다. 전혀 개의치 않는다. 다만 30편의 글이 모쪼록 목공에 대한 흥미를 돋우는 시간이 됐길, 목공을 시작한 이들에게 작게나마 도움이 됐길 바랄 뿐이다. 이번 글로 연재를 마무리한다.
  • [만평] 조기영의 세상터치 2023년 12월 30일

    [만평] 조기영의 세상터치 2023년 12월 30일

    쥐 36년생 : 건강 상태 잘 챙겨야. 48년생 : 조급해하지 말고 여유를 가져라. 60년생 : 일의 성과가 빛나겠다. 72년생 : 안정이 중요하니 앞장서지 마라. 84년생 : 마음을 비워야 일도 처리된다. 소 37년생 : 지출을 줄이고 근신함이 좋다. 49년생 : 동업은 별로 이득 없겠다. 61년생 : 새로운 운이 펼쳐진다. 73년생 : 근심거리 생길 수 있으니 조심하라. 85년생 : 아직도 기회는 많다. 호랑이 38년생 : 돈과 연이 있겠다. 50년생 : 적극적으로 밀고 나가라. 62년생 : 실수하지 않도록 조심. 74년생 : 변동운이 좋다. 86년생 : 결정은 천천히 내려야 길하다. 토끼 39년생 : 주변 사람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라. 51년생 : 인내심을 발휘하라. 63년생 : 자신감을 잃지 마라. 75년생 : 말보다는 행동으로 옮겨라. 87년생 : 적당한 휴식이 필요한 때. 용 40년생 : 너그러운 마음 지녀야 대인관계 원만하다. 52년생 : 무슨 일이든 방심하면 큰코다친다. 64년생 : 차근차근 경험 쌓으면 이득. 76년생 : 마음은 하나인데 생각은 변화무쌍하다. 88년생 :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면 대길. 뱀 41년생 : 서두르지 말고 기다려라. 53년생 : 겸손하면 큰 소득 있다. 65년생 : 관록을 얻거나 성공을 거둔다. 77년생 : 무리하면 다툼수 생기니 주의하라. 89년생 : 어려운 일이 연달아 생기니 조심. 말 42년생 : 집에서 안정을 취함이 길이다. 54년생 : 일이 잘되면 소득이 크다. 66년생 : 대인관계가 원만치 못하다. 78년생 : 서두르지 말고 기회를 노려라. 90년생 : 전화위복의 멋진 날이다. 양 43년생 : 노력한 만큼 성과 얻는다. 55년생 : 명예와 이익이 있으니 여유롭다. 67년생 : 기쁜 소식을 듣는다. 79년생 : 집안에 경사가 넘쳐난다. 91년생 : 금전운이 가득하니 풍족한 하루. 원숭이 44년생 : 기쁜 소식을 듣는다. 56년생 : 문서 등으로 기쁜 일 생긴다. 68년생 : 주위에 도움을 청하라. 80년생 : 수고한 만큼 얻는 이득이 있다. 92년생 : 명예와 이익이 있으니 여유롭다. 닭 45년생 : 감언이설에 넘어가지 마라. 57년생 : 베풀고 나쁜 소리 듣겠으니 조심. 69년생 : 새로운 일 도모해도 좋겠다. 81년생 : 주변 상황이 자신에게 유리하다. 93년생 : 집안에 경사가 넘쳐난다. 개 46년생 : 생활도 안정되고 가정도 화목. 58년생 : 다음 기회를 기다리는 게 좋겠다. 70년생 : 이동, 변동에 행운 따른다. 82년생 : 매사에 주의가 필요한 날. 94년생 : 과로는 금물이다. 돼지 47년생 : 기쁜 소식 들으니 행복한 하루. 59년생 : 결단력이 필요한 날. 71년생 : 욕심만 버리면 커다란 행운. 83년생 : 매사에 주의해야겠다. 95년생 : 노력하는 자를 이길 자 없다.
  • 제1회 올댓뷰티아카데미 출신 서경대 총동문회 발대식 개최

    제1회 올댓뷰티아카데미 출신 서경대 총동문회 발대식 개최

    올댓뷰티아카데미(대표 최지형)가 지난 27일 엘레나호텔 컨벤션홀에서 ‘제1회 올댓뷰티아카데미 출신 서경대학교 총동문회 발대식’을 개최했다고 밝혔다. 제1회 올댓뷰티아카데미 출신 서경대 총동문회 발대식은 수강생들이 대학 생활 및 향후 사회생활에서 선후배 간의 돈독한 관계를 형성해 뷰티업계 인재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뷰티아카데미 업계 최초로 진행됐다. 이번 발대식에는 올댓뷰티아카데미 출신 수강생 중 2024학년도 서경대 미용예술대학 합격생과 학부모, 재학생, 그리고 올댓뷰티 운영진과 강사 등 100여명이 참석해 소통의 장을 가졌다. 동문회 닉네임 ‘올뷰서플(올댓뷰티 서경대 피플)’ 소개를 시작으로 서경대 합격을 축하하는 시상식을 진행했으며, 합격자 배출에 기여한 올댓뷰티아카데미 강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후 선후배 축사를 통해 서로 격려하고 소통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도 진행됐으며 해당 영상들은 추후 올댓뷰티아카데미 유튜브 공식계정과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 인터뷰 영상에는 서경대 미용예술대학 합격자에게 듣는 ‘합격 꿀팁’과 재학생에게 듣는 ‘서경대학교 학교생활’, 학부모들의 ‘입시 서포트 노하우’, 강사들의 ‘합격생 배출 강의 노하우’ 등 실질적으로 입시 및 대학 생활에 도움이 되는 내용들이 담겨 있다. 올댓뷰티아카데미 최지형 대표는 “서경대 동문회 발대식은 수강생들이 향후 대학 생활에서 서로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 보다 돈독한 관계를 형성하고, 훌륭한 인재로 계속 성장해 나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개최됐다”며 “서경대에 합격한 올댓뷰티아카데미 수강생들에게 진심으로 축하의 말을 전하며 이번 행사를 계기로 앞으로 더욱 진전된 네트워크를 형성해 올댓뷰티아카데미 서경대 동문의 학업과 소통, 그리고 취업의 길라잡이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올댓뷰티아카데미 부문장 한옥규 전무는 “올댓뷰티아카데미는 이번 행사 외에도 향후 수강생과 수료생을 대상으로 다방면으로 지원 영역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며, 올댓뷰티아카데미만의 교육 서비스 만족도를 지속해서 강화해 나가겠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현재 미용학원 올댓뷰티아카데미 학원은 강남, 신촌, 부산, 인천, 대구, 대전, 수원, 광주, 일산, 노원, 천안 등 총 11개 지점을 운영하고 있으며, 7년 연속 서경대 수시전형 실기 합격생을 배출하고 있다. 메이크업, 네일아트, 에스테틱, 헤어 등 미용 분야 진출을 희망하는 수강생을 대상으로 다양한 미용학원 교육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2025학년도 서경대 입시 대비반을 운영할 예정이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학원 문의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사설] 과학 인재 시급한데 미적분Ⅱ 대학 가서 배우라니

    [사설] 과학 인재 시급한데 미적분Ⅱ 대학 가서 배우라니

    교육부가 현 중2 학생이 치르는 202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국어와 수학, 탐구 영역 선택과목을 폐지하는 내용의 대입 개편안을 어제 발표했다. 지금까지와 달리 통합사회와 통합과학을 일괄적으로 치러야 하고, 수학은 상위권 이공계 학생들이 필수적으로 치렀던 ‘미적분Ⅱ’와 ‘기하’를 뺀 현 문과 수준의 수학 시험만 보게 한다는 내용이다. 정부는 “공정한 수능과 학생의 학습 부담을 고려했다”고 취지를 밝혔다. 그러나 과학기술 인재 양성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우려된다. 앞서 교육부는 대입 개편 시안을 발표하면서 미적분Ⅱ와 기하를 심화수학으로 추가하는 안을 국가교육위에 검토 요청했었다. 교육위는 학생들의 학습 및 사교육 부담을 우려해 두 분야를 추가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그러나 첨단 과학기술을 배울 이공계 희망 학생들에게 문과 수준의 수학 실력만 요구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미적분Ⅱ엔 수열의 극한과 미분법·적분법이, 기하에는 이차곡선과 평면벡터, 공간도형 등이 나온다. 수능에 포함된 미적분은 사실상 개념 이해 수준에 불과하다. 학계는 “미적분을 모르면 인공지능의 기본 원리도 가르치기 어렵다”, “기하를 모르면 대학 1학년 때부터 듣는 기초 물리·화학 과목도 수강할 수 없다”며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미적분Ⅱ와 기하가 심화수학이라기보다는 이공계 지원 학생들에겐 필수과목이라는 것이다. 교과 항목이 빡빡한 대학 이공계에서 이들 과목을 처음부터 가르쳐야 하는 소모적 요소도 크다. 입시 부담에 대해서도 학원가에선 “변별력 유지를 위해 시험을 어렵게 출제해야 해 미적분Ⅱ와 기하를 빼도 줄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내년 2월 확정되는 최종안에 이런 우려를 해소할 보완책이 반드시 포함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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