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득표율
    2026-08-08
    검색기록 지우기
  • 유엔 AI 허브
    2026-08-08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4,685
  • 동독,오늘 첫 자유총선/사민ㆍ독일동맹 선두경쟁 치열할 듯

    ◎과반획득 힘들어 연정 불가피 【동베를린=김진천특파원】 독일통일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맞게 될 것으로 예상되는 동독 최초의 자유총선이 18일 전국 15개 선거구 2만2천개 투표소에서 일제히 시작된다. 이번 총선에서는 1천2백만명의 유권자들이 4년 임기의 의원4백명을 뽑게 된다. 개표결과는 서독의 선거때 사용된 컴퓨터로 집계돼 18일 밤 늦게부터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보이지만 정확한 내용은 19일 저녁때쯤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총선에는 모두 24개의 정치단체가 참여하고 있으나 동독기민당(CDU) 독일사회동맹(DSU) 민주주의자각당(DA)등이 결성한 「독일동맹」과 서독 사민당의 강력한 지원을 받고 있는 동독사민당(SPD) 전공산당이 개명한 민사당(PDS)등 3개 정치세력이 가장 치열하게 선거운동을 펼치고 있으나 어느 정당도 50% 지지율을 확보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돼 선거후 연립정부가 들어설 것으로 보인다. 한스 모드로브총리를 정점으로 한 현 집권 민사당은 통독후 노동자 권익보호를 내세워 득표전을 벌이고 있으나각종 여론 조사결과 사민당ㆍ「독일동맹」에 훨씬 뒤진 채 3위를 달리고 있어 야당으로 전락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이번 선거방식은 후보를 놓고 투표하는 것이 아니라 지지하는 정당에 기표하도록 돼 있다. 의석수는 전국 투표자의 정당별 지지율에 따라 결정되며 지방의회의 경우 전국득표율과는 상관없이 15개 선거구별로 당해 지역에서 얻은 득표율에 따라 의석수가 결정되는 이른바 니마이어방식이 적용된다.
  • 소 선거 개혁파ㆍ민족주의자 우세/급진파 옐친 72% 득표

    ◎3개공 중간개표/인민전선 후보 거의당선권/리투아니아공서도 민족전선 의석 62% 차지 【모스크바 외신 종합】 4일 실시된 소련의 3개 공화국 인민대표대회 선거에서 급진개혁파 정치인 보리스 옐친이 러시아 공화국에서 큰 득표율로 당선됐으며 우크라이나와 백러시아공화국에서는 개혁주의자와 민족주의자들이 우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수백개의 선거구에서는 50%이상 득표자를 내지못해 2주후 18일 결선투표를 치러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러시아 선거위원회 연맹의 관리인 아나톨리 모이셰프는 예비 집계결과 스베르들로프스크시에서 옐친이 11명의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72%를 득표했다고 밝혔다. 러시아공화국내 제2도시인 레닌그라드에서 인민전선회원은 민주진영의 후보들이 여론조사에서 우세를 보였다며 승리를 예상했다. 옐친은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선거 결과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직을 놓고 공화국 인민대표대회에 출마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은 자동적으로 소연방 공산당 정치국원이 된다. 우크라이나 공화국에서는 개혁파와 민족주의자가 승리를 거둘 것으로 잠정 집계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민족전선 RUKH의 지도자 이반 드라흐와 12년간의 수형생활을 마치고 87년 풀려난 미하일 호린이 당선됐다. RUKH의 회원인 아나톨리 도트센코는 우크라이나공화국 수도 키에프시의 22개 선거구 가운데 19개 선거구에서 개혁파와 민족주의자가 앞서고 있다고 전했다. 백러시아에서도 인민전선지도자 제논 포즈니악이 수도 민스크시에서 바로 당선됐으며 인민전선은 서부 그로드노시에서도 당선자를 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지난달 1차투표를 치렀던 리투아니아공화국에서도 4일 결선투표가 치러졌는데 2차선거 28석 가운데 민족전선 사주디스가 16석을 차지,전체 1백41석중 88석을 차지했다고 공화국 선관위 조세프 블라바스가 5일 최종 결과를 발표했다. 그는 1차 선거에서 4석을 확보한 정통 공산당은 2차선거에서는 단 1석도 확보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 거취 유보 민주의원들의 「민자」합류 급선회 배경

    ◎각개 설득 주효… 이탈 진통 조기 진정/김 총재,옛정 호소ㆍ자리보장 언질/민정 유력인사들의 지원도 한몫/잔류파,원내 세 확장 중단… 원외에 미련 남겨 민주자유당(가칭) 참여문제로 진통을 겪던 민주당은 일부 동요의원들이 김영삼총재를 따르기로 결정함으로써 일단 내부동요를 수습하고 큰 탈없이 「거대여당」에 합류할 수 있게 됐다. 민주당은 이기택총무의 야권잔류선언을 계기로 여당으로의 변신에 갈등을 느껴온 일부 의원들이 크게 흔들리는 등 한때 위기를 맞는 듯 했으나 김영삼총재의 각개격파식 선무작업이 주효하면서 이탈의원을 5명으로 묶고 탈야당과정에서의 1차관문을 통과한 것이다. 이로써 김총재는 3당통합을 추진하며 표방해온 「구국적 결단」의 명분이 일을 시작도 하기 전에 안방에서 훼손당할 위험에서 벗어났다고 볼 수 있다. 당초 거취표명을 유보해온 김재광국회부의장,최형우 전총무,박종률의원,신상우보사위원장 등 중진들과 김동주,정정훈의원 등이 모두 야권잔류를 선언했을 경우 원내교섭단체 구성도 불가능하지만은 않다고기대했던 신야당추진모임은 더 이상의 원내의석확보 노력을 포기하고 신야당 결성의 구체적 작업에 나서고 있다. 한때 만만치 않은 세를 과시하던 신야당 돌풍이 이처럼 급속히 진화되게 된 원인은 김영삼총재가 동요의원들을 최소한 한차례 이상씩 만나 인간적 호소와 신여권내에서의 자리보장 약속 등을 통해 이들의 마음을 돌려놓았기 때문이다. ○큰 탈없이 관문 통과 김재광국회부의장과 박종률의원의 경우 『당신들이 떠나면 나의 정치생명은 끝난다』는 김총재의 극구만류로 신당참여를 결정했으며 특히 김재광부의장은 고위 국회직에 대한 언질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민주연구모임 소속의 김동주의원에 대해서는 민자당내의 당직보장이 있었으며 지역구내서의 기득권도 계속 유지될 것이라는 약속이 있었다는 후문이다. 그리고 동요의원에 대한 설득과정에서 민정당 유력인사들의 직ㆍ간접지원도 있었던 것이 감지되고 있다. 그러나 김총재의 측근들은 『무엇보다 김총재의 저력이 아니었으면 불가능 했었을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김총재는 설득과정에서 서독 기민당과 사민당의 연정을 예로들며 앞으로 자신의 위상정립 방향을 시사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나치시절 외무부 고위관리를 지낸 경력의 키신저 당수가 이끄는 여당 기민당의 연정제의를 야당인 사민당 당수 브란트가 받아들였을 때 원내총무를 포함한 많은 의원의 반대가 있었고 5분의1 이상의 의석이 이탈했으나 차기선거에서 최대의석 정당으로 발돋움하고 브란트 자신은 수상이 됐다는 점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또 이로써 브란트가 동방정책을 펼칠 수 있었고 이는 궁극적으로 동독의 변화를 가능케 했으며 당시 고도성장 끝에 침체기를 맞은 서독경제를 중흥시켰던 것과 김총재 자신의 선택을 비교시켰다고 전해진다. 이와함께 동요의원들이 민자당 참여를 결심한 계기는 김총재쪽으로 돌아서는 의원들이 지난주말을 고비로 늘어나면서 원내교섭단체 구성이 불가능해진 데 따르는 역도미노현상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한편 입장유보 의원들이 전원 김총재와의 동행을 결정함에 따라 신야당추진모임도 그동안의 원내 세확장노력을중단하고 의사결정기구인 집행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나름대로의 본격적인 창당작업에 착수하는 모습이다. ○저력 재확인의 계기 신야당추진모임은 민자당의 창당 수순이 신여권의 향후 정국운영계획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을 것으로 보고 민자당의 창당작업에 보조를 맞추는 것이 상황변화에 대한 효율적 대처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이다. 이에따라 신야당추진모임은 민자당내에서의 입지마련에 불안감을 느끼는 원외위원장들을 포섭,우선 정당창당에 필요한 법정지구당 결성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신야당결성은 전도가 험난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민자당은 신야당이 목표로 하는 비호남지역에서의 지지기반 확보계획에 결정적으로 이해가 맞부닥치는 상대다. 또 평민당은 신야당이 김영삼총재를 집중공격하며 민자당을 괴롭힐 것이란 점에서는 제휴관계를 성립시킬 수도 있는 대상이다. 그렇지만 신야당이 비호남지역에서의 민주당에 대한 대체정당으로 성장할 경우 평민당의 탈호남전략이 차질을 빚게되며 김대중총재의 퇴진압력 가중을 의미하는 만큼원내에서 최소한의 협력외에는 기대하기 힘들 것 같다. ○지자제 선거에 총력 그러나 신야당추진모임측은 김영삼총재의 여당변신에 대한 여론의 반향이 긍정적이지만은 않다고 주장하며 거대여당 출현에 따르는 유권자의 반사심리인 야당육성 필요성 인식에서 입지를 마련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들은 야당으로서의 선명성과 도덕성을 바탕으로 한 지원호소 노력을 계속할 경우 지자제선거에서 7석의 원내점유율(2%)를 크게 상회하는 득표율을 올림으로써 질의 승리를 거둘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다. 민주당내의 민자당 참여그룹 및 야권 잔류그룹의 구분이 분명해짐에 따라 더이상의 내부진통은 없어졌으며 앞으로 참여파는 신여권내에서의 개혁주도,잔류파는 신야당결성에 대한 공감대 확산이라는 나름대로의 과제를 각각 안게 됐다고 해야겠다.
  • 27개월 만에 간판내린 공화당/여야 넘나들며 4당정국 “조정역할”

    ◎5공청산엔 강경… 3야 결속의 촉매역/중평반대… 평민ㆍ민주 선명경쟁 무력화/영을 재선거 때 한계 실감… “3당통합 산파” 자청 신민주공화당이 통합신당 창설의 삼각파트너인 민주ㆍ민정 양당에 이어 당의 깃발을 내렸다. 공화당은 5일 임시전당대회를 열어 민정ㆍ민주ㆍ공화 3당의 통합을 의결한 뒤 당정리를 위한 수임기구로 당무회의를 지정함으로써 사실상 당활동을 마감했다. 이른바 「박정희시대」로 상징되는 구공화당 이념과 유업의 계승자로 자임,지난 87년 10월30일 「재건」된 뒤 2년 3개월만에 스스로 당간판을 내린 것이다. 공화당의 짧은 이력은 80년 신군부세력의 등장 이후 7년 동안 「무위와 침묵을 강요당했던」 JP(김종필총재)의 정치재개와 이후 그의 정치적 입지를 확대해나가는 시기로 압축된다. 87년말 대통령선거와 이듬해 4ㆍ26총선이 구공화당시절에 대한 국민적 심판을 통해 지난날을 재평가받는 무대였다면 4ㆍ26총선 이후 1년 9개월의 기간은 새 정치 틀에 대한 JP구상과 당의 활로를 모색한 시험기였던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JP는 87년 가을 정계복귀를 선언하면서 공화당을 창당,곧바로 대통령선거에 출마해 1백80만표를 얻음으로써 그의 정치적 앞날에 대한 가능성을 확인했다. 「1노2김」에 비해 득표율에서는 크게 뒤졌지만 구공화당의 전력이 일방적으로 매도당하고 「민주대 반민주」,「독재대 반독재」의 대결논리가 극에 달했던 당시의 상황을 감안해볼 때 상당한 선전으로 평가됐다. 공화당은 이어 4ㆍ26총선에서 원내교섭단체 구성을 위한 의석확보(20석)가 어려울 것이라는 당시 정가의 예상을 깨고 35석(전국구 7석 포함)을 획득,원내입지를 확고히 마련했다. 4당구조하에서 캐스팅 보트를 쥔 정당으로서 「시시비비론」을 내세워 때로는 야권공조의 대열에서 민정당을 견제하는 데 동참하고 때로는 여권과의 정책연합 등을 통해 평민ㆍ민주 양당의 투쟁일변도의 선명경쟁을 무력화시키는 「조정역」을 향유해왔다. 88년말과 89년초 정치권의 태풍의 눈이었던 중간평가를 반대했고 ▲전교조 결성반대 ▲서경원 문익환 입북사건 등 공안사건에 대한 엄정한 사법처리 요구 ▲통일문제에 대한 과도한 욕구분출 반대와 정부의 신중자세 촉구 등의 입장을 피력했던 부분들을 여권과 인식을 같이했던 현안들로 당관계자들은 분류하고 있다. 또 정호용의원의 공직사퇴와 두 전직대통령의 국회증언요구등 5공청산 방안제시와,경찰중립화법,국민의료보험법,지방자치법 등 쟁점법안처리를 위한 야3당안 마련 등을 통해 야권의 결속력을 과시했다. 요컨대 민주화 과정에서 정책정당의 위상을 확인하면서 여야간 극한대립을 해소,정국안정에 기여한 점 등이 공화당 족적의 밝은 면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공화당이 출범 당시부터 야당다운 자세를 포기,민주화작업을 더디게 하는데 「상당몫」을 했다는 비판적인 시각도 만만찮게 제기되고 있다. 기본적으로 여권성향을 가진 구성원들의 속성으로,국가보안법,안기부법 등 주요 정치성 법안처리 등에 항상 소극적인 태도를 취해 민주개혁을 그만큼 지연시켰다는 일부 야권의 비난이 그것이다. 공화당은 특히 지난해 여름 공안정국을 겪으면서 정부여당보다 더 보수적이고 강경한 입장을 고집,평민당과의 틈새가 회복 불능상태에까지 벌어졌고 영등포을 재선거에서의 참패를 통해 말석정당의 한계를 실감했다. 4당구도의 재편이 이뤄지지 않고는 당의 활로를 모색할 수도 정국안정을 기대할 수도 없다는 판단이 JP의 정계재편 추진작업을 가속화시킨 것으로 추론된다. 결국 JP는 지난해 9월 한달동안의 칩거기간을 거쳐 차기 정국구도에서 우선권을 YS(민주당 김영삼총재)에게 양보하는 방안을 민주당측에 제시,민정ㆍ민주ㆍ공화 3당합당의 시나리오를 완성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제 거대여당에 동승한 공화당이 정치적 안정과 민주화작업을 마무리하는 데 기여했던 정당으로 기록될지 지역간ㆍ계층간의 정치적 갈등을 심화시킨 부정적 이미지의 정치집단으로 평가될지는 앞으로 신당의 정치역량과 밀접한 함수관계를 가질 것으로 예상된다. 신여권인사들과 JP의 구상대로 건전야당이 자리를 잡아 정치적 안정의 틀이 잡힌다면 공화당의 긍정적 역할이 돋보일 것으로 보이지만 정개재편으로 새로운 정치적 격동과 갈등이 심화될 경우 민주화 흐름을 타고 탄생했다가 민주화 완성을 저해시키고 사라진 정당으로 평가절하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 정치자금 80%는 의석비 배분

    ◎국고보조 20%만 교섭단체에 균분/15인위,이달 임시국회서 법개정 추진 「민주자유당」(가칭)으로 통합을 추진중인 민정ㆍ민주ㆍ공화 3당은 31일 2월 임시국회에서 정치자금법을 개정,국고보조금중 40%를 의석을 가진 4당에 균분키로 된 현행 규정을 원내교섭단체로 등록된 정당에만 균분하도록 고치기로 했다. 「민자당」은 이와 함께 국고보조금중 균분토록 되어있는 비율을 현행 40%에서 20%로 낮추고 나머지 80%를 의석수 및 득표율에 따라 배분하는 방안도 검토중이다. 「민자당」 15인 통합추진위의 한 고위관계자는 이날 『현행 정치자금법은 4당 구조를 감안해 국고보조금중 60%는 의석수 및 득표율에 따라,나머지 40%는 4당에 분균키로 규정했으나 「민자당」 창당으로 이의 개정이 불가피하다』면서 『균분대상을 원내교섭단체로 한정하고 균분비율도 줄여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