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드레스덴
    2026-03-29
    검색기록 지우기
  • 스페이스
    2026-03-29
    검색기록 지우기
  • 광역단체
    2026-03-29
    검색기록 지우기
  • 국책은행
    2026-03-29
    검색기록 지우기
  • 아쿠아리움
    2026-03-29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546
  • 국경 넘나드는 전파가 통독앞당겼다/양독기자들이 본 통독과 언론역할

    『독일통일과 언론의 역할』을 주제로한 세미나가 23일 하오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한국언론연구원(원장 한동원)주최의 이날 세미나에는 통독 이전 서독과 동독에서 각각 기자생활을 경험한 게르하르트 담프만씨(마인즈 요하네스 구텐베르크대 TV저널리즘교수·전 서독ZDF방송 동아시아특파원)와 볼프강 크라인베흐터씨(라이프치히 칼 마르크스대 국제커뮤니케이션학교수·전 동독 드레스덴신문기자)가 주제발표를 맡았다. 동서독의 통일과정에서 언론이 어떤 역할을 했는가는 우리의 통일문제와 관련,흥미를 끄는 대목이다. 이들의 주제발표 내용을 요약,소개한다. ◎동독국민 80%가 서독TV 즐겨/당 통제받는 방송에 염증… “시청률 5%” 89년 가을까지 동독의 대중정보현황은 첫째,완전히 빗나간 동독의 정보정책과 둘째,서독의 대중정보수단,그중에서도 특히 라디오와 TV의 동독에서의 영향력이라는 관점에서 파악할 수 있다. 우선 동독정부의 정보정책은 완전히 중앙의 통제하에서 이뤄지고 있었으며 중앙당의 정보담당서기의 결정하에 어떤 내용이 어떻게 언제 알려질 것인가가 결정되고 있었다. 따라서 비판적인 내용이나 분석은 있을 수 없으며 사회주의 국가에서의 문제점들,예를 들자면 비능률적인 경제제도,자연오염현상,인권침해 등은 삭제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보도되었다. 서방세계에 대한 보도는 일률적이고 적대감정을 유발시키는 내용으로 보도되었다. 그러나 국민들은 이러한 보도들을 믿지 않았다. 당의 직접지휘하에 제작되는 뉴스인 「악투 엘레 카메라」(시사뉴스)가 5%의 시청률을 기록하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다. 이러한 정보정책은 객관적인 정보전달이나 국민의 관심사와는 전혀 무관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이처럼 국민의 관심사와 정보정책의 차이에서 빚어진 공백을 서독의 언론이 채워주고 있었던 것이다. 지리적인 조건때문에 동독국민들은 서독의 수많은 라디오·TV방송을 쉽게 시청할 수 있었다. 서독의 국영방송인 ARD와 ZDF는 약 80%의 동독국민이 시청할 수 있었다. 서독 TV뉴스프로는 동독에서 평균 시청률이 50%이상 이었다. 이때문에 동독주민들은 동서독이나 유럽등지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을 자세히 알 수 있었다. 헝가리의 국경개방과 프라하·부다페스트의 서독대사관에 동독인 대량진입 등이 동독국민들에게 알려졌고,이것은 동독내 저항운동세력의 힘을 북돋워주었으며 89년 가을 마침내 동독의 스탈린주의적인 제도의 붕괴를 가져왔다. 동독의 사회변혁과 함께 언론체제도 바뀌기 시작했다. 그 변혁과정은 3단계로 구분될 수 있다. ①변혁의 시초기:89년 가을부터 90년 3월18일 선거까지로 이 기간중에 국민의회에서 의사표현,정보·언론의 자유를 결의해서 당과 무관한 독자기업으로 변신했고 옛간부들이 퇴진,젊은 기자들도 새 편집체제를 구성했다. ②전환기:선거이후 10월3일 통일까지의 시기로 서독언론체제로의 전환기였다. 서독출판사들이 동독으로 진출하고 방송에 광고가 등장했으며 경제적인 측면의 경쟁체제가 등장했다. ③통합시기:10월3일의 통독으로 형식적인 통합은 이뤘으나 물질적·정신적인 실질통합까지는 많은 과정이 남아있다. 동서독 언론이 함께 경쟁하는 상황에서 동독의 조그마한 도시의 지방지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동·서독 사회모습 거짓없이 전달/72년 동독에 특파원 상주뒤 실상보도 어떤 다른 정보전달매체도 TV만큼 독일통일에 중요한 역할은 하지 못했다고 나는 확신한다. 어떤 다른 매체도 TV만큼 동독공산당(SED)에 위협적인 것은 없었다. 동독과 서독간의 긴 국경선은 서독의 TV방송전파에 유리했다. 또 서베를린은 동독의 한 가운데 섬처럼 놓여있어 TV방송은 사방으로 전달될 수 있었다. 특히 정치 엘리트와 인문과학자 및 예술가들의 대다수가 살고 있는 동베를린으로 TV전파가 쉽게 발사될 수 있었던 것이다. 동독공산당정권은 정치적 선전을 위해 진실을 왜곡하고 있는 동독TV에 비해 진실된 보도를 위해 노력하는 서독TV의 위험성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동독공산당은 처음에는 서독전파의 수신을 방해했었다. 심지어는 과격한 젊은이들을 내세워 서쪽으로 세워진 안테나를 철수하도록 했다. 그러나 모든 것은 허사로 돌아갔다. 동독사람들은 그들이 신뢰할 수 있는 유일한 정보공급처로서 서독TV수신을 위해 평화적이면서도 꾸준한 투쟁을 계속했다. 드디어 동독공산당은 전파방해를 단념하고 방해공작을 포기했다. 지배층과 피지배층간의 대립이 위험수위를 넘도록 증폭시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동독인들이 서독TV에 이렇게 큰 관심과 신뢰를 보인 것은 이들 프로그램이 동독인들을 위해 특별제작된 것이 아니라는 점 때문이었다고 생각된다. 동독인들이 서독TV방송에서 보는 것은 서독인들을 위한 보통의 정규TV 방송프로였다. 이들 프로들은 국가적인 선전에 의해 조작되거나 의도적인 해설이 담겨있지 않았다. 공산당 선전에 염증을 느낀 동독인들이 서독의 TV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은 대체로 아주 다양하고 서로 논쟁을 벌이는 모습이었다. 이는 동시에 살아움직이고 있는 복합적인 사회,그리고 논쟁이 가능한 민주주의의 모습이었다. 서독특파원들이 동독에 상주(72년말)하게된 이후 서독언론의 동독에 대한 보도는 질적 양적으로 크게 향상되었다. 서독특파원 상주사실을 안 동독인들이 편지나 전화로 개인적인 압박과 핍박으로부터 체제에 반감을 갖고 저항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보를 제공해왔다. 동독의 지식인 작가들과도 긴밀히 접촉할 수 있었다. 그래서 서독TV는 동독시민들에게 동독상황의 참모습을 자세하게 전해주는 새로운 역할을 수행해 나갈 수 있었다. TV방송은 장벽을 넘어 서독의 밝고 어두운 모든 면들을 동독에 보여주었고 동독 매체들과는 달리 동독의 점진적인 몰락을 동독내에 거짓없이 전파했다. 따라서 동독공산당 지도부가 동독과 관련한 국민감정을 형성하지 못한데에는 서독TV에 상당한 원인이 있었다.
  • 통독뒤 경제여건 악화 우려 동독서 수만명 시위

    【동베를린 AP 연합】 동독 교사,섬유노동자ㆍ농부 등 수만여명은 10일 통독과 함께 도입될 자유시장경제체제내에서 자신들의 경제여건 악화를 우려,직업보장과 기득권 보호 등을 요구하며 전국 각 주요 도시에서 시위를 벌였다. 의회에서 통독방법론과 열악한 동독경제여건에 대한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것과 때맞춰 수시간여 동안 계속된 이날 시위로 10여개 주요 도시의 학교,공장들이 상오 한때 문을 닫았으며 농부들은 트랙터로 동ㆍ서독을 잇는 주요 간선도로를 차단하기도 했다. 동독관영 ADN통신은 동베를린 교사 2천여명이 의사당앞까지 가두행진을 벌인 것을 비롯,프랑크푸르트,마그데부르크,노이브란덴부르크 등 주요 도시의 초ㆍ중ㆍ고교사 수천여명이 직업 및 기존혜택 보장을 요구하며 상오중 2∼4시간동안 파업과 함께 시위를 벌였다고 보도했다. 이와 함께 라이프치히,드레스덴,쳄니츠 등 주요 산업도시 피혁ㆍ섬유 노동자 수천여명도 서독수입품 쇄도로 인한 실업가능성에 대한 우려와 함께 대책을 요구하는 항의 파업을 벌였으며 농부들도 국영농장의 자영화가 초래할 실업문제에 대한 대책요구시위를 벌였다. 한편 대서독 통독협상을 이끌고 있는 동독국회사무총장 귄터 클라우제는 현재 동독이 연간 3백66억달러의 재정적자와 함께 급속한 인플레 현상을 보이고 있다.
  • 「21세기의 세계」 미ㆍ소 두 석학 강연 요지

    20세기의 마지막 10년을 앞두고 세계는 동구와 소련의 변혁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과연 동구의 격변은 앞으로의 국제질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이같은 문제를 점검해 보기 위한 강연회가 「21세기의 세계」라는 주제로 1일 하오 서울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렸다. 이날 강연회에는 최근 「강대국의 흥망」이라는 저서에서 미국의 몰락을 예언,세계적인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미 예일대의 역사학자인 폴 케네디교수와 소련의 저명한 역사학자이자 개혁파 정치인이기도 한 유리 아파나셰프 모스크바 국립 역사자료대학총장이 강연했다. 다음은 이들 두학자의 강연요지이다.(편집자주) ◎미래사회 3요소는 「민주ㆍ도덕ㆍ생산성」/통신혁명으로 「북한 폐쇄」 지탱 힘들어/폴 케네디교수 우리들은 혁명적인 변화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그동안 역사를 통해 볼때 단일사건이 엄청난 변화와 불안을 야기시킨 경우가 많이 있다. 동구와 다른 곳에서 일어난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런 맥락에서 그 배경을 살펴봐야 한다.우리들은 헝가리에서 다당제가 실시되고 차우셰스쿠 전 루마니아 독재자가 처형되고 베를린장벽이 붕괴된 단일사건에 대해 알고있지만 이러한 것이 있게된 장기적인 요인은 무엇인지에 대해 얘기하겠다. 먼저 경제적인 요인을 들수 있겠다. 이것은 마르크스경제와 서구의 자유시장 경제사이에 경제성장 및 생활수준 등에서 격차가 더욱 커졌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80년대의 세계는 놀랄만한 경제성장을 했지만 선진국과 후진국의 격차는 심해졌다.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사회주의(마르크스) 국가들은 쇠퇴했으며 그밖의 지역은 성장을 기록했다. 마르크스주의는 아이로니컬하게도 과학적 사회주의가 노동자 시민들에게 높은 생활수준을 약속했지만 이것이 실패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통신의 혁명도 간과할 수 없는 요인이다. 70∼80년대는 마르크스국가에서 많은 사람들이 스탈린시대와 비교해서 많이 해외로 여행을 하게 되었다. 학생 기업인 등은 세계의 여러나라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소련인들은 영국의 BBC와 미국의 소리방송 등을 통해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지난 80년대초 동독정부는 일부 관료를 드레스덴으로 이주시키려고 했지만 이들의 반대에 봉착하였는데 이는 이 지역에서는 서독 미국의 TV방송을 시청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동독 폴란드인들은 서방의 방송을 통해 자국이 후퇴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으며 서구에서 누리고 있는 부를 그들이 누리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은 성공을 거둘것인지 아니면 인종분규 보수파의 반발 등으로 실패,동구에 악영향을 미칠것인지 주목되고 있지만 어떤 사태가 일어나더라도 마르크스사회는 결코 89년이전의 상황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변화는 세계적인 현상이며 성공한 사회와 실패한 사회가 공존하고 있다는 것과 통신의 혁명등 2가지 기본요소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 요소는 상호작용을 하고 있으며 변화가 평화적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등은 평화적이었지만 중국은 지난해 천안문 사건에서 보듯 개혁운동을 물리적으로 탄압했다. 그러나 물리적인 탄압은 변화의 속도를 늦출뿐 개혁과 자유를 바라는 국민들의 욕구를 말살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변화물결을 초래한 통신혁명은 북한에도 영향을 미쳐 김일성체제는 오래갈 수 없게 될 것이다. 현대 사회는 다음과 같은 도전을 받고 잇다. 첫째,놀랄만큼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기술발전 둘째,산업의 자동화로 인한 직업의 안정문제 셋째,생명공학의 발달에 따른 농민들의 생존위협 넷째,전세계적인 기온상승 다섯째,선후진국간의 인구변동 등이다. 이런 도전들은 상호 상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오늘날은 통신기술이 발달되고 로봇과 산업자동화의 발달로 많은 국민의 실직사태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이같은 문제에 무관심한 정부는 경제적 문제뿐 아니라 정치적ㆍ이념적으로 큰 도전을 받게 된다. 그 예는 동구와 중남미사태에서 잘 보아왔다. 마지막으로 21세기초 성공적인 사회가 되자면 효과적인 제조업 생산기반을 갖춰야 한다. 민주주의만으로는 성공적인 사회를 충분히 갖출 수 없다. 자립할 수 있고 생활수준을 높일 수 있는 상품생산기반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하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제조업 능력이 부족해도 의료업 호텔업등 서비스업으로 이를 커버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나는 이같은 견해에 반대한다. 결론적으로 미래의 성공적인 사회는 건전한 도덕적 윤리적 기반과 함께 굳건한 산업생산기반을 갖춰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89년의 동구사태는 도덕적인 면과 경제적인 면 모두에서 파산됐을 때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가를 세계 여러 나라에 보여준 좋은 경종이었다. 동시에 물질적 풍요와 도덕적 기반이 잘 갖추어진 사회는 미래에 대한 걱정이 없다는 교훈도 주고 있는 것이다. ◎사회주의 유토피아건설 완전 포기/소련의 동ㆍ서양결합의 중계자역할 기대/유리 아파나셰프 공산권국가에 대한 세계의 이목집중은 이제 우연한 일이 아니다. 체르노빌원전 사고,원자력잠수함화재 및 핵무기ㆍ화학무기 등은 결코 한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소련의 질낮은 생활수준ㆍ국경선폐쇄ㆍ소련공화국들의 탈소움직임도 그 대상이 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러한 변화는 현존 세력균형 질서를 붕괴시키고 새로운 세계질서를 탄생시킬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현재 소련과 동유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이 변화가 세계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줄것인지 얘기하고 싶다. 변화는 상호연관이 있다고 하지만 현재 이들 국가에서 발생하고 있는 각종 변혁들은 시작과 종결을 동시에 의미한다. 지금까지의 인류역사상 가장 거대하고 지속적인 대규모의 사회실험이 끝나고 있다. 마르크스ㆍ레닌이즘이 종결됨과 동시에 현대판 거대 러시아제국이 종말을 맞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양적 공업화에 대한 종결인지도 모른다. 결국 이같은 현상들은 전후 2개의 진영으로 갈라놓은 얄타체제의 붕괴를 의미한다. 최근 소련의 각계에서는 소련사회를 어떤 방향으로 건설할 것인가에 대해 수많은 논의를 해왔다. 사회주의ㆍ비사회주의ㆍ반사회주의ㆍ스탈린주의등 뿐아니라 정의를 내리기 어려운 수많은 단어들이 난무하고 있는 것도 우리의 고민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여하튼 이런 논란들은 의식적으로 계획된 행위의 결과다. 소련의 현체제는 볼셰비즘 혁명 이후 72년간 지속된 사회주의,정통 마르크시즘의 부산물이다.물론 이 사회주의 실험이 수많은 희생자를 내지 않았거나 외국에 피해를 주지도 않았더라면 긍정적으로 볼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사회주의 유토피아 건설을 완전히 포기했다. 소련 사회조직의 기본요소는 경제적으로는 국유생산,시장경제폐지,상품경제 청산,중앙집중화된 계획경제,사유재산 몰수였다. 사회적으로는 정부권력이 인간생활의 모든 영역에 간섭을 해 국민들에게 무력감을 심화시켰다. 즉 생산에 대한 관심보다 소비ㆍ분배문제에 우선을 두었다. 그리고 사회계층도 노멘클라투라(특권층)와 「분배를 받을 권한이 있는 사람」으로 양분됐다. 소련사회의 국유화는 칼 마르크스의 견해와는 달리 사유재산제도의 「극복」이 아니라 「폐지」에 문제가 있다. 또한 권력과 정보에 대한 당의 독점,노동의 결과에 대한 당의 독점,다당제부재,허울좋은 헌법제도,형식적인 선거제도 등도 소련사회가 안고 있는 고민거리다. 인간화ㆍ민주화를 부정하는 이같은 제반 요소들은 정통마르크시즘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인위적ㆍ작위적 사회주의의 결과요 부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사회주의의 이상실현은 최근 10년간 크게 왜곡돼 그릇된 방향으로 치닫게 됐다. 소련의 양적 경제발전은 한계점에 이르러 뒤로 후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같은 위기상황은 자연환경파괴도 마찬가지다. 지난 85년 고르바초프 등장이후 추진되고 있는 페레스트로이카(개혁)도 소련사회의 난치병을 치유하지 못하고 부정적인 측면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페레스트로이카가 전혀 불필요하다는 것은 아니다. 현재 소련의 모든 불행과 재난에는 페레스트로이카에도 상당한 책임이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소련국내에서는 요즘 페레스트로이카에 대한 찬ㆍ반 논의가 분분한데 1천9백만명의 소련 공산당원중 9백만명가량이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에 반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같은 사실로 미뤄 소련사회의 개혁은 급진적ㆍ과격한 방법으로 추진되지 않으면 안된다. 고르바초프는 집권초기에는 개혁방향을 제대로 잡았으나 최근엔 이를 번복,대외정책 뿐아니라 「인간적 가치」에 대한 생각도 많이 바뀐 느낌이다. 특히 현재 경제ㆍ문화ㆍ윤리 등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잇는 소련에서 가장 난제는 민족문제 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따라서 현재 소련사회에서 표출되고 있는 제반현상들이 21세기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예측하기는 어렵다. 다만 사학자로서 소련이 어떤 방향으로 가서는 안된다고는 말할 수 있겠다. 즉 21세기에는 제국주의 국가로서 소련이 차지할 자리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양의 동서에 정신적ㆍ문화적 바탕을 공유하고 있는 소련은 향후 동서양을 결합시키는 좋은 중계자 역할은 할 것으로 본다.
  • “양독화폐 등가교환” 기대부푼동독인(특파원 코너)

    ◎개인구좌 가져야 “가족예금 분산러시/인플레·실업률 증가등 부작용도 많아 요즘 동독에서는 두셋만 모이면 으레껏 등장하는 「단골 화제」가 있다. 『동독 마르크화의 가치는 얼마나 되는 것일까』 『헬무트 콜 서독총리의 호언장담은 지켜지는 것일까』 동서독화폐의 교환비율에 관한 얘기들이다. 3·18동독총선이후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통독논의가 소강국면에 들어서자 관심의 초점이 동독마르크의 「돈값」에 모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미 기정사실화된 통독과정의 첫 절차로 잡힌 것이 통화통합이며 화폐단일화를 위한 첫 걸음이 바로 양쪽화폐의 교환비율결정 문제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여기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이유는 이 문제의 처리방식이 통독작업의 앞길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될 뿐만아니라 동독 경제나 국민들 개개인의 이해에도 직접 영향을 미치게 되기때문이다. 지난 2월7일 동독에 대해 아무런 예고도 없이 콜 서독 총리가 불쑥 동서독의 통화통합을 제안한이래 양쪽 화폐간의 교환비율에 관한 갖가지 추측과 가정만 무성히 떠돌뿐 아직은 아무런 윤곽도 잡히지 않고 있는게 현금의 실정이다. 단지 오는 7월1일부터 시행토록 하겠다는 본 정부의 약속이 고작일 뿐. 충격요법을 즐겨쓰는 콜총리는 지난번 동독총선 지원유세기간중 양쪽 화폐의 교환비율을 1대1로 하겠다고 공언했고 이 약속은 현재까지도 유효한 것으로 동독 국민들에게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이 약속의 실천여부에 대해 동독 국민들이 의구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그것이 너무나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서독은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되고 있는 동독 마르크화의 대서독마르크화 교환가치를 높여줌으로써 동독국민들에게 기대감과 안정감을 주어 서독으로의 이주사태를 막고 낙후된 경제 상황을 호전시킬 수있는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계산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 하지만 유럽의 경제전문가들은 서독이 내놓은 등가환율안은 동서독 양쪽경제에 모두 나쁜 영향을 미칠 염려가 크다고 지적하고 있다. 우선 서독 정부 관계자들도 이 경우 20∼30%의 인플레를 피할수 없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또 서독국민들은연간 2백50억마르크의 세금을 더 내야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는 계산도 나오고 있다. 왜냐하면 우선 첫해에 소요되는 1천2백억 서독 마르크화를 서독중앙 은행이 찍어내 메워야 되기 때문이다.결국 통화팽창에 따라 서독마르크화는 약세화를 면치못하게 되며 서독의 경제성장률도 급속히 떨어질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현재 동서독 마르크화의 공식환율은 3대1이나 암거래 시세는 6대1이다. 이를 콜총리의 약속대로 1대1로 맞바꾸게 될 경우 동독경제에 가해지는 충격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등가환율의 실시는 가격의 자유화 또는 가격체계에 대한 정부의 불간섭이 전제돼야 하는데 이같은 시장경제체제가 실시되면 경쟁력이 약한동독의 기업들은 살아남기 힘들 것이며 많으면 60%정도가 도산의 운명에 처하게 될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럴 경우 동독의 실업인구는 급증,5백만명선에 달하게 되며 현재 서독의 절반수준에 머물고 있는 근로자들의 봉급은 그냥 절반이 잘려 나가는 결과가 초래되게 된다. 또한 예금의 많고 적음에 따라 경제적 불균형이 심화되고 식료품이나 주택임대료등 기본생활 수요에 대한 부분적인 통제마저 실시되지 않을 경우 자유경쟁 가격체계에 맡겨진 물가는 엄청나게 치솟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번 총선지원유세에서 콜총리가 『동·서독화폐의 1대1교환을 약속 하자』고 청중들은 『콜,동쪽에도 기적을!』이라는 주문으로 화답했었다. 동독 국민들의 소원대로 등가환율제가 「엘베강의기적」을 가져올 것인지 등가환율제가 과연 실시될 것인지 아직은 누구도 장담을 할 형편이 못된다. 이에 대해 서독정부는 막강한 경제력으로 대응하면 못할일만도 아니라고 장담하고 있다. 우선 중앙은행의 발권력으로만 동독경제를 지원하는게 아니라 민간부분이 상당한 몫을 떠맡게 될 것이라는게 서독정부측의 견해다. 서독정부관계자들은 그 실례로 지난해 베를린장벽 개방이후 지금까지 벌써 1백여개의 서독기업들이 동독에 투자를 했거나 계획하고 있는 사실을 들고 있다. 또한 지난해 일본을 앞질러 세계1위를 기록한 1천3백40억마르크의 무역수지 흑자만보아도 동독을 받아들여 떠안게 되는 경제적 부담을 충분히 해결해낼수 있는 경제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자신만만해 하고 있다. 동·서독 화폐의 등가교환은 양독일뿐아니라 유럽경제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며칠전 체코 중앙은행은 자국화폐인 크로네의 가치를 80%평가 절하했다. 이는 동독 마르크화가 태환화하여 중부유럽에서 강세통화가 될 것에 대비하기 위한 조치였다. 전문가들은 동·서독 화폐통합이 국제금리를 올리는 요인으로 또한 현재 EC가 추진중인 유럽경제및 금융통합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요즈음도 동독의 드레스덴이나 라이프치히의 은행앞에는 긴 행렬이 꼬리를 물고 있다. 은행예금을 가족들 개개인앞으로 분산시켜 두기위해서이다. 1인당 일정액의 예금에 대해서만 1대1의 교환을 해준다는 소문이 그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번 3·18총선결과를 두고 동독의 한 유명인사는 『동독유권자들이 서독의 마르크화에 기표했다』고 꼬집었다. 이는 기민당을 선택한 것이아니라 콜총리의 「동·서독화폐의 1대1교환 약속」에 표를 몰아준 결과라는 비아냥이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통독을 서둘러온 콜총리의 서독정부가 어떤 방안을 선택할지에 관심이 모아지고있다.〈파리=김진천특파원〉
  • 동독,서독에 「단합경원」요청

    ◎60억∼90억불… 오늘 정상회담서 논의 【서베를린 AP 연합 특약】 동독은 12일 서독측에 대해 50억∼90억달러의 재정지원을 요청했다. 동독을 이끌고 있는 전국정치협상회의는 이날 동베를린에서 12차 회의를 갖고 13일 있을 모드로브 동독총리와 헬무트 콜 서독총리와의 정상회담문제를 논의,서독측에 1백억∼1백50억 마르크의 「기부금」을 요청키로 결정했다. 동독측은 콜총리가 지난해 12월 드레스덴 동ㆍ서독 정상회담에서 원조를 약속했다고 지적했다. 이 협상회의는 이 돈을 위기에 직면한 동독경제를 돕기 위한 「단합의 기여금」이라고 성격을 규정했다.
  • 동독 시위대,비밀경찰본부 습격/“즉각해체”요구

    ◎전국서 수십만 반정집회 【동베를린 AFP UPI 로이터 연합】】 동독 전역의 여러 도시들에서 15일 정부의 민주화조치 확대와 통일을 요구하는 반정부시위와 경고성 파업이 발생하고 수도 동베를린에서는 10여만의 시민들이 집회를 갖던 도중 일단의 시민들이 비밀경찰 슈타시본부에 난입,파괴와 약탈행위를 벌임으로써 동독 정국에 일대 파란을 불러일으켰다. 동베를린에서는 이날 하오 정부와 야권 대표간의 제7차 원탁회의가 열리는 것에 맞춰 재야단체 노이에스 포룸의 주도로 10여만명의 시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으며 시위가 진행되는 도중 비밀경찰 해체작업의 지연에 항의하는 수천명의 시민들이 갑자기 슈타시 본부를 급습,이를 점거하고 서류와 사무집기 등을 파괴했다. 한편 동베를린에서 이처럼 예기치 못한 사태가 벌어진것과 함께 동독민주화의 요람지 라이프치히에서는 10만,드레스덴과 남부도시 카를 마르크스 슈타드에서 각각 15만의 시민이 반정부 시위나 집회를 가진 것을 비롯,에르푸르트와 로스토크,할레등 여러도시들에서도 이날중 소규모의시위가 잇따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