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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가위 祝詩/ 추석

    추석에는 교외선을 타자 자갈들이 일어서서 우는 이 나라의 시골길을 너와 지붕의 돌담길과 깨어진 비석을 미루나무가 서 있는 냇가,서낭당 버려진 무덤을 찾아서 추석에는 교외선을 타자 힘있게 흐르는 강물이 천리 강산을 달려와서 몇 평의 모래 밭을 만드는 것을 산에 마음 주며 네 자랐던 곳 서울서 기차를 타고 여섯 시간 하늘 가까이 내려오다 멈춘 동네 백로의 날갯짓과도 같이 때에 절고 한숨에 전 동네 오랜만에 저 빈 집 빨랫줄에도 기저귀 널리고 애기똥풀꽃이 피어 웃음소리 화안하구나 추석에는 교외선을 타자 황토와 자갈과 그리고 말오줌내 엎질러져 이따금 하얀 질경꽃들이 피어 흔들리는 길 천 년을 그렇게 살아온 나의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뒷모습… 우리들 흙 속에 바람 속에 잠들어 있는 그윽한 숨결을 찾아서 추석에는 교외선을 타자 남끝동 초록저고리 옥색치마의 한 주름에도 서러운 이 나라의 역사와 한숨이 배인 여인아 너와 나는 이슬 묻은 어느 산자락 항아리처럼 누워서 가을볕 아래 질펀히 흘러가는 저 모래톱이며 강물을 보자 추석에는 우리 다 함께 교외선을 타자 저 허공 위에 빗장구름 펄펄 날리며 도라지 풀 초롱꽃 더윗술 걸러 마시고 어느 여울물에 손발을 씻자 손발을 씻어 새 힘으로 뭉쳐서 돌아오자. 송수권. *한가위 祝詩·祝畵 작가. ◆축시 송수권 시인 송수권(宋秀權·60) 시인은 전남 고흥 출생으로순천사범학교와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1975년 월간 ‘문학사상’에 ‘산문(山門)에 기대어’외 4편으로 등단했으며 이후 시집 ‘산문에 기대어’ ‘꿈꾸는 섬’ ‘초록의 감옥’ ‘수저통에 비치는 노을’ 등을 발간했다.소월시 문학상,정지용 문학상,김달진 문학상 등을 수상.현재 순천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박대성 화백 소평(小平) 박대성(朴大成·55) 화백은 경북 청도에서 출생했으며 1974년 대만에서 첫 개인전을 연 뒤 1979년 ‘상림(霜林)’으로 제2회 중앙미술대전 대상을 수상했다.북한 화문(畵文)기행을 다녀왔으며 최근 가나아트센터에서 초대전을 열었다.동양회화에 대한 투철한 인식과 혁신적인 감각을 아우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올림픽 5회연속 10강 반드시 해낸다”

    ‘우리는 시드니로 간다,5회 연속 종합 10위를 향해’-. 시드니올림픽에 출전하는 한국선수단 본진이 8일 오후 현지로 떠났다.이상철 선수단장 등 본부 임원 39명을 포함해 야구 배구 유도 육상 등 14개 종목 224명은 공항에서 기념촬영을 한 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편으로 나뉘어 현지로 향했다. 선수단 본진은 9일 오전 현지에 도착하며 10일 낮 12시 입촌식을 갖고 본격적인 적응훈련을 시작한다.개막 하루전 스페인과 첫 예선전을치르기 위해 지난 7일 애들레이드에 도착한 축구대표팀은 선수촌에입촌하지 않고 올림픽 첫 8강 진출에 성공하면 시드니에서 합류한다. 또 8년만에 금메달에 도전하는 이봉주 정남균 백승도 등 마라톤팀과사이클 조호성은 시드니 근교에서 마무리 훈련을 한 뒤 대회 중간에선수촌에 입촌할 계획이다.나머지 선수단은 10일 남자핸드볼,11일 탁구 여자핸드볼 여자하키 등 종목별 경기일정에 따라 20∼50명씩 나뉘어 21일까지 차례로 출발한다. 한국은 28개 정식종목에 300개 금메달이 걸린 시드니올림픽에서 첫정식종목이 된 태권도와 유도 레슬링 양궁 배드민턴 마라톤 등에서 12개 안팎의 금메달을 따낸다는 목표다. 이 선수단장은 “태릉선수촌에서 흘린 땀의 열매를 수확할 때가 왔다”며 “선수들이 이국 땅에서 힘을 낼 수 있도록 애정어린 관심을가져달라”고 당부했다. 남자 주장을 맡은 펜싱의 이상기는 “4번째로 출전하는 시드니올림픽에서 꼭 메달을 목에 걸고 싶다”고 각오를 밝혔으며 여자 주장 김수녕(양궁)은 “88서울올림픽에 이어 12년만의 금메달을 자신한다”고 말했다. 팬들의 기대를 한껏 모으고 있는 야구 ‘드림팀 Ⅲ’의 주장 김기태는 “태극마크를 다니 각오가 새롭다”며 “정신력으로 똘똘뭉쳐 올림픽 첫 금의 숙원을 일궈 내겠다”고 믿음직 스러운 다짐을 했다. 배드민턴 혼합복식에서 금메달이 유력시되는 김동문은 “최상의 컨디션인만큼 최선을 다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여자역도 첫 금을 노리는 김순희 역시 “자신과의 싸움에 충실하겠다”고 당찬 출사표를 던졌다. 오병남기자 obnbkt@. *'화려한 고별' 꿈꾸는노장들. 연륜이 쌓이면 ‘뒷모습’이 아름다워야 한다고 말한다.처음보다는끝이 더 좋아야 한다는 것.인생의 황금기를 땀과 눈물로 적신 선수들에게도 ‘아름다운 퇴장’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희망사항이다. 오는 15일 막을 올리는 시드니올림픽에서도 한 시대를 풍미한 많은노장들이 ‘화려한 고별’을 꿈꾼다.사격의 이은철(33)과 부순희(33),탁구의 김택수(30),역도의 김태현(31),체조의 여홍철(29) 등이 대표적인 케이스. ‘사격천재’로 불리며 92바르셀로나올림픽 소구경소총 복사에서 금메달을 따내는 등 20여년동안 정상을 누린 이은철은 5번째 올림픽무대인 시드니에서는 공기소총으로 주종목을 바꿔 출전한다.한 때 총을놓았다 지난해말 공기소총으로 전향한 뒤 7월 애틀랜타월드컵에서 본선 1위를 차지하는 등 빠른 적응을 해 “역시 큰 선수”라는 평가를받는다. 올림픽에 세번째 출전하는 ‘주부 총잡이’ 부순희는 “결코 여한을 남기지 않겠다”며 스포츠권총 간판스타의 자존심 회복을 벼른다.결선에 강한데다 최근 588∼589점을 꾸준히 쏴 “페이스만 유지하면 금”이라는 기대를 모은다. 체조선수로는 환갑을 넘긴 ‘뜀틀황제’ 여홍철은 협회 추천선수로어렵게 시드니행에 합류한 미안함을 금메달로 만회할 각오다.올림픽이 끝나면 오랜 꿈인 대학교수가 되기 위해 학업에 전념할 생각이다. 아시안게임 3연패를 이룬 역도 무제한급의 김태현은 아시아선수로는 첫 메달의 쾌거를 이루겠다고 시들지 않는 투혼을 불사른다.98아시안게임 탁구 남자 단식 챔피언인 김택수는 금메달을 목에 건 뒤 지도자로 ‘제2의 탁구인생’을 시작할 계획이다.이밖에 여자농구의 ‘주부선수’ 정은순(29) 전주원(28),남자 핸드볼의 조치효(30),여자 유도 조민선(28) 정성숙(28),레슬링 자유형 양현모(29) 등도 시드니에서 ‘마지막 불꽃’을 태울 각오에 차 있다. 오병남기자
  • 93세 노모·北送아들 애끊는 이별

    “꾹 참고 안 울어.내가 눈물 보이면 아들이 맘 편히 못가잖아.아들하고 훈련했어” 먹장구름이 낮게 드리워진 1일 낮 서울 종로구 계동의 한 음식점 앞.북송을 하루 앞둔 신인영(辛仁永·71)씨의 노모 고봉희(高鳳喜·93)씨는 주름진 손으로 연방 눈자위를 부비며 애써 눈물을 참았다. 집을 나오기 전 “골수암으로 투병 중인 아들에게 내 손으로 지은따뜻한 밥을 먹이며 함께 있었던 것만으로도 행복했다”면서 “한번도 못본 며느리와 손주들 얼굴을 보는 게 마지막 소원”이라고 말하며 정갈하게 다린 와이셔츠를 챙기던 고씨였지만 막상 헤어질 때가되자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며느리에게 보내는 한복과 40년 동안 간직한 금브로치 등 선물, 아들의 짐꾸러미를 챙기며 마음을 다잡았지만 허전한 마음을 달랠 수없었다.지난 밤에는 아들과 마지막으로 한 잠자리에 들어 손을 잡고밤을 새다시피 했다. 전북 부안이 고향인 신씨는 서울대 상대 재학 중 6·25때 인민군에징집돼 월북,김일성대를 졸업한 뒤 지난 67년 공작원으로 남파,검거됐다.3남5녀의 장남인신씨가 98년 3월까지 30여년 동안 옥살이를 하는 동안 노모는 옥바라지를 하면서 아들과 함께 살 날만을 기다려 왔다. 다른 장기수들과 함께 식사를 마친 뒤 통일부가 지정한 장소로 떠날 때가 되자 신씨는 “어머니,이렇게 헤어지지만 다시 만날 날이 있을 거예요”라면서 “내년 봄 북으로 초대할 때까지 건강하세요”라고어머니를 위로했다. 고씨는 “그래,그래 나는 서운하지만 네가 좋아하는 곳으로 가니 나는 괜찮아” 하면서도 아들 신씨가 얼마 전 선물한 금반지를 낀 손으로 계속 눈자위를 훔쳤다.신씨가 “제 생각이 나시면 이 반지를 보세요”라면서 ‘만수무강 신인영’이라는 글자를 새겨 선물한 두 돈짜리 금반지다. 신씨는 배웅나온 형제와 친지들에게 “다시 만날 때까지 어머니를잘 모셔달라”고 신신당부한 뒤 뒤돌아섰다.아들의 뒷모습을 힘 없이바라보는 구순 노모의 눈가에는 눈물이 하염없이 내리고 있었다. 안동환 홍원상기자 sunstory@. *비전향장기수 北送 의미. 북송을 희망하는 비전향 장기수 63명이 2일 송환되는 것은 반세기동안 우리 민족을 옥죄고 있던 냉전구조의 해체를 본격 촉진한 ‘사건’으로 역사에 기록될 전망이다. 북송자 63명은 해방 전후 빨치산으로 활동했거나 60년대 남파된 간첩들이 대부분이다.이러한 인물들을 기꺼이 보내주기로 한 것은 우리사회의 자신감이 그만큼 성숙했다는 반증으로 여겨진다. 정부는 체제 선전에 집착하는 북측의 오랜 숙원을 ‘화끈하게’ 풀어줌으로써 앞으로 국군포로,납북자를 포함한 넓은 의미의 이산가족문제가 순조롭게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환영행사 할까 93년 3월 이인모(李仁模·현재 83세)씨 송환때 북측은 판문점에서 대대적인 환영행사를 벌여 우리를 당혹스럽게 했다.정부는 최근의 남북 화해 분위기를 감안,이번엔 자극적인 행사를 자제토록 북측에 당부했다는 후문이다.그러나 평양으로 향하는 연도변이나 평양 시내에서는 대대적인 행사가 상당 기간 잇따를 전망이다.63명이 무더기로 ‘이념의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것은 북측으로서는주민들을 사상적으로 결속시킬 최대의 호재랄 수 있다. ■어떤 대우 받을까이인모씨의 전례에 비춰 보면 63명은 북한에서최상의 대우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북한은 이씨에게 ‘김일성훈장’과 ‘국가훈장 1급’을 주고 ‘공화국 영웅’ 칭호를 부여했다.그가다녔던 양강도 파발인민학교를 ‘이인모학교’로 개칭했으며,이 학교에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친필 비석과 이씨의 반신상을 세우기도 했다.병 치료를 위해 96년 그를 미국에 보내기도 했다. 이씨는 현재 부총리급 간부들에게 제공되는 2층짜리 단독주택에서 살고 있다. 김상연기자 carlos@
  • 제19회 미술大展 구상계열…대상에 정용근씨 ‘여정’

    한국미술협회(이사장 박석원)가 주최한 제19회 대한민국 미술대전(2부 구상계열:한국화,양화,판화,조각)에서 양화 ‘여정’을 출품한 정용근씨(48)가영예의 대상을 차지했다. 우수상 수상자로는 한국화 ‘삶-U(유)턴(Turn)은 없다’의 박만규(38),양화‘생명 2000’의 설희자(46),판화 ‘그 여인’의 조혜경(45), 조각(실내부문) ‘생존/우리는 진화해야 한다’의 신현준씨(30)가 선정됐다.이번 미술대전에는 한국화 610점,양화 928점,판화 48점,조각 62점 등 1,648점이 응모해 특선과 입선을 포함해 323점이 수상했다. 1,2차 심사위원장인 오승우,김경인씨는 “이미지의 참신성,다양성,작품성을추구하고 창의성이 있는 작품들을 중심으로 수상작을 선정했다”면서 “대상을 받은 작품은 기법과 독창성이 뛰어나 수채화라는 비교적 미약한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수상작으로 뽑았다”고 밝혔다. 수상작은 9일부터 19일까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되며,시상식은 개막에 앞서 9일 오후 3시에 열린다. ■특선자 명단은. ▲한국화 이주율 강위종 전영숙 윤미영 정군태 이승숙 천태자 박문수 박주생이동환 김희남 유흥수▲양화 박정실 김병남 윤석수 임종헌 김용대 조천호최중섭 정 희 송현화안창표 조안석 권영석▲판화 김이진 김양훈 남궁정화▲조각 (실내)김정모 박대규 (야외)김성기 정연우. *대상 수상 정용근씨 “고단한 원로화가 예술혼 형상화”. “그림속의 두 모델은 부산 미술계에 큰 발자취를 남긴 원로 서양화가입니다.고단한 전업작가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 그분들에게서 나의 미래를읽었습니다” 제19회 대한민국 미술대전(2부 구상계열)에서 양화 ‘여정’으로 대상을 수상한 정용근씨(48·부산 서구 동대신동)는 지난해 겨울 강원도 영월에 스케치여행을 갔을 때 원로화가 한상돈(94),이상국(67)씨의 뒷모습을 보고 묘한감동을 받아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정규미술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그는 25세때부터 6년동안 엔지니어 설계사로 직장생활을 하면서 방송대학 국문과를 마치고,29세에 늦깎이로 그림을 시작했다. 또 불혹이 넘어 장로회 신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페이스크리스천대학에서 3년동안 기독미술 이론을 전공했다. 현재는 부산 기독미술협회 서양화 분과위원장과 부산수채화협회 운영위원등을 맡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평소에 낙동강 하구 등 풍경화를 주로 그린다는 그는 “수채화의 매력은 맑고 순수함에 있다”며 “아직도 백지를 마주 대하면 두려움이 앞선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인물,풍경 등 다양한 소재들을 새로운 시각에서 그리고 싶다”는 포부를 내비쳤다. 세 딸의 아버지로 17년전 직장을 그만둔 뒤 아내가 대신 직장일을 하며 생계를 돕고 있다. 김종면기자
  • [현장] 약국에 약이 없다니..

    “의약분업을 한다고 한 지가 언제인데 아직 준비조차 안한겁니까.의사나약사나 모두 분업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의약분업 시행 첫날인 1일 오전 11시쯤 홍옥엽씨(57·여·서울 마포구 성산동)는 갑자기 다리가 붓고 허리 통증이 심해 서울 서대문구 신촌의 동네병원인 K내과를 찾았다. 평소 진찰과 조제를 함께 해주던 의사는 의약분업 원칙에 따라 진찰을 끝내고 홍씨에게 ‘stopen,perison,tilcotil’ 등 5개의 진통소염제가 적힌 처방전을 내주며 “집 근처 동네약국에 가면 약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씨는 의사의 말을 믿고 집 근처 약국으로 갔다.이때부터 고단한 ‘약 찾아 헤매기’가 시작될 줄은 미처 몰랐다. 홍씨는 버스에서 내린 뒤 처음 발견한 M약국으로 들어가 처방전을 내밀었다.그러나 약사는 “우리 약국은 규모가 작아서 아직 의약분업에 필요한 약을다 준비하지 못했다”며 다른 약국을 소개했다. 홍씨는 할 수 없이 M약국에서 멀리 떨어진 H약국으로 갔다.그러나 H약국약사는 “의사가 약품명을 너무 흘려 썼기 때문에무슨 말인지 알아볼 수가없다”며 불평을 늘어 놓았다.홍씨는 의사에게 전화를 걸어 약의 영문 알파벳을 하나 하나 받아 적고 다시 약사에게 약을 지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약사는 “죄송하지만 우리 약국도 처방전대로 조제할 5가지의 약을모두 준비하지 못했다”면서 “신촌에 있는 큰 약국으로 가라”고 말했다.지칠대로 지친 홍씨는 한여름 뙤약볕 속에서 다시 신촌으로 갔다.그러나 신촌일대 약국 5곳을 모두 뒤졌으나 결국 약을 구하지 못했다. 화가 난 홍씨는 포기하고 집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하지만 약을 찾아 헤맨 4시간이 아까워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연세대 세브란스병원과 처방전을 교류하는 Y약국의 문을 두드렸다.이 약국에는 이미 10여명의 환자들이 약을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었다.30분쯤 기다린 홍씨는 조심스럽게 처방전을 내밀었다. 약사는 “죄송합니다.약이 없으니 의사에게 다시 찾아가 대체 처방전을 받아 오십시오”라고 말했다.순간 홍씨는 쓰러질 뻔했다. 홍씨가 “약국에 약이 없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따지자 약사는 “종합병원에서는 약품 리스트를 정리해 주기 때문에 그런대로 문제가 없으나 개인병원 의사들은 약국에 약이 있는지 확인하지 않고 무작정 처방전을 쓰기 때문에어쩔 수 없다”고 변명했다. “의약분업이 정착될 때까지는 아파도 참아야 할 것 같다”며 퉁퉁 부은 다리를 이끌고 K의원으로 다시 가는 홍씨의 뒷모습은 너무 안쓰러웠다. 사회팀 이창구기자 window2@
  • [발언대] 억지웃음 강요 방송의 질 떨어뜨려

    가끔 극장에서 영화를 보다보면 전체 흐름과 관계없이 수시로 웃음을 터뜨리는 젊은 관객들 때문에 도무지 영화 볼 맛이 사라진다.내 생각이 너무 굳어 있는 걸까,아니면 저들 젊은이의 사고가 낙천적이고 유연한 걸까. 그런데 얼마전 일이다.동물의 세계를 퀴즈로 풀어보는 KBS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 내용 중 기린 한 마리가 사자 4∼5마리를 떼어내려 안간힘을 쓰는 장면이 나왔다.기린은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고,사자도생존을 위해 사력을 다해 달라붙는 치열하고 끔찍한 현장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자못 긴장한 채 숨죽이며 그 장면을 보고 있는데 TV에서 자지러지는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사자를 떼어내기 위해 바삐 다리를움직이며 뒤뚱뒤뚱 뛰어가는 기린의 뒷모습을 보던 방청객들이 웃음을 터뜨린 것이다.스튜디오 현장에 동원된 몇몇 방청객들이 웃은 것인지 아니면 제작진이 집어넣은 효과음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순간 황당함에 기가 막혔다. 죽느냐 사느냐 생존의 갈림길에서 두 생명체가 치열하게 맞붙은 모습이 그들에게는 그저 한바탕 웃음거리 ‘쇼’밖에는 안된단 말인가.뿐만 아니다.요즘 TV의 각종 프로를 보면 정말 제작진들의 소양을 의심하게 되고 방청객들의한심한 태도에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감성이 결여되고 감각만 발달한 젊은방청객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깊어진다.한편으론 제작물 전체의 흐름을 읽어 내기보다는 한 순간 장면에 희희낙락해 단 1분도 참지 못하고 ‘우’‘와’ 소리를 질러대는 그들을 탓하기 전에,그들의 경박한 웃음과 환호소리를 요구하고 있는,그들을 그렇게 만든 기성세대들이 먼저 반성해야 할 것이라는 원론적인 생각도 들었다. PD를 비롯한 방송국 제작진들에게 부탁한다.스스로 프로그램의 질을 떨어뜨리는 저질스런 웃음 덩어리를 요구하지도,내용 중에 삽입하지도 말기를 말이다. 인간은 스스로 사고하는 동물이다.억지웃음을 강요하거나 유치하고 가벼운환호성을 편집해 넣는다고 해서 그 프로그램의 질이나 시청률이 높아지는 것은 아닐게다.젊은이는,특히 신세대는 미래의 기둥이다.우리사회의 기둥은 차갑고 딱딱한 성질의 시멘트보다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광택이 나고 주위와어우러지는 생명력있는 나무로 자라나야 한다.TV가 신세대들에게 일과성 감각 못지않게 감성을 키워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양경욱[서울 양천구 신정동]
  • 한국화가 사석원 개인전 16일까지

    동물의 형상을 해학적 미술언어로 표현해온 작가 사석원(40).그는 “동물을 꼭 그리고자 해서가 아니라 그리다 보니 동물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붓 가는 대로,마음 가는 대로’ 그려서일까,그의 동물그림은 퍽 친근하게 다가온다.동물 연작으로 널리 알려진 한국화가 사석원이 ‘애정과 유머그리고 생명력’이란 제목으로 개인전을 열고 있다.16일까지 서울 인사아트센터(02-736-1020). 부엉이,수탉,당나귀,호랑이,까치,독수리,소,돼지,양,개구리….작가의 화폭에는 온갖 동물이 오른다.우리에 갇혀 사육되는 것이 아니라 야생상태 그대로의 모습이다.자연 그대로의 거친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동물들의 표상은 정겹기만 하다. 작가는 한지에 수묵채색으로 조선시대 민화에서나 느낄 법한 넉넉함과 친근함을 담아낸다.그의 그림에서 ‘카메라의 눈’으로 사물을 그려낸 흔적은 찾아내기 힘들다.기교가 없고 서툴러 보이지만 예스럽고 담박하다.‘고졸함의미학’이다.그것은 우현 고유섭이 한국미술의 특질로 표현한 ‘무기교의 미’‘적조(寂照)의 미’와도통한다. 동물을 소재로 한 때문인지 그의 그림은 한 편의 동화 같다.특유의 익살로웃음을 자아내는 재치가 만만찮다.웃음이 말라버린,어느 시인의 시구처럼 병이 들어도 아픈 줄 모르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그의 그림은 여유와 운치를 안겨준다.예컨대 한 마리의 호랑이를 그리더라도 그의 손에 들어가면 민화의 그것처럼 풍자와 해학의 대상이 된다.닭을 머리에 이고 있는가하면,모란꽃에 파묻혀 있기도 하다. 전시에는 ‘당나귀’‘호랑이’시리즈 등 평면작품 40여점과 오브제 3점이나와 있다.이번 작품들은 예전처럼 두텁고 풍부한 마티에르를 보여주지 않는다.그 대신 색채의 향연을 펼친다.수묵의 유연함과 원색의 강렬함,그리고 간간이 섞인 파스텔톤의 은근함은 색에 예민한 작가의 미적 감수성을 엿보게한다. 그에게 가장 큰 예술적 영감을 주었던 것은 오지 여행.특히 실크로드 답사여행중 중앙아시아와 소아시아 지방에서 만난 동물들의 잔상은 아직도 생생하다.“몇년전 이란의 한 사막에서 껌정 당나귀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서서히 사라져가는 그 껌정이의 뒷모습을 보며 블루스의 음울한 곡조를 읊조렸지요.다시 그 당나귀를 만나 우수와 사랑,구름과 무지개,운명 등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작가는 말없는 동물과의 교감,그것을 ‘당나귀블루스’라고 이름 붙였다.이번 전시에는 ‘닭과 당나귀’‘꽃과 당나귀’‘소나기를 맞는당나귀’ 등 당나귀 그림이 유난히 많이 나와 있다. 김종면기자
  • ‘까망천사’ 토월극장 무대 오른다

    현대무용가 최상철이 춤과 영상,라이브 연주를 결합시킨 멀티미디어댄스 ‘까망천사’를 공연한다.11∼13일 오후8시,예술의전당 토월극장(02)766-5210지난해 여자가 심심함을 극복하기위해 시도하는 여러 현상을 이미지화한 즉흥무용 ‘심심한 여자’로 ‘유쾌한 안무자’‘위트와 유머넘치는 무용가’라는 찬사를 받은 그는 이번 공연에서도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무대를 꾸민다. 제목처럼 내용도 재기발랄하다.현실도피를 꿈꾸는 인간들이 천사의 날개를얻어 새로운 삶을 살려하지만 흑천사의 음모로 서로 싸우다 결국 날개가 부러져 추락하고 만다는 줄거리.만화적 상상력을 무대위에 효과적으로 형상화하기위해 영상을 끌어들였다.36개의 대형 멀티큐브를 세워 미리 촬영한 영상을 보여주는 한편 무대 중앙에 카메라를 설치해 관객의 시야에 들어오지않는 무용수의 뒷모습을 보여준다.영상은 ‘박철수필름’과 비디오아티스트인 올리버 그림(홍익대 영상디자인과 교수)이 제작했다. 틀에 박힌 무용동작보다는 일상적인 몸짓에 더 관심이 많은 평소 스타일대로 ‘까망천사’에서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익숙한 제스처들이 유머러스하게 등장한다.틀을 깨기는 테크노바 현장에서 캐스팅된 무용수 김설리씨도 마찬가지.뚱뚱한 몸매의 김씨는 출중한 춤솜씨를 인정받아 귀여운 천사역을 맡게됐다.뉴욕에서 활동중인 전연희,안영준 등이 호흡을 맞춘다. 음악은 ‘심심한 여자’에서 즉흥연주를 했던 작곡가 임동창과 전자바이올리니스트 유진 박이 함께 작업한다.한편 공연실황은 2001년 완성예정인 국내첫 멀티미디어소설 ‘댄싱 인 서울’(박철수필름 제작)에 수록될 예정이다. 이순녀기자
  • [외언내언] 평양교예단

    어린 시절 서커스는 동경과 공포의 대상이었다.어느날 문득 나타난 서커스단이 천막을 치고 울긋불긋한 만국기를 내걸면 읍내 전체가 흡사 마술에라도걸린듯 들뜬 분위기가 됐다.그러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묘기가 모진 학대와 혹독한 훈련의 결과이며 신참 단원의 유연성을 유지하기 위해 식초만 먹인다는 소문은 막연한 두려움을 안겨주었다.그 공포는 나중 찰리 채플린의‘서커스’에서처럼 “착취계급의 돈벌이 수단”이 된 이들에 대한 연민으로 바뀌고,다시 자생력을 잃고 사라져가는 서커스 그 자체에 대한 형언할 수없는 비애감으로 바뀌었다. 서커스에 대한 이 복잡한 상념은 베이징 아시안 게임 당시 중국 교예단 공연을 관람하면서도 다시 떠올랐다.중국의 교예는 우리 서커스처럼 낡고 촌스러운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떠나는 자의 쓸쓸한 뒷모습을 얼핏 본 듯했고,도저히 사람의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기기묘묘한 포즈들은 저 어린 시절의 공포를 다시 일깨웠다.식초만 먹는 어린 단원들의 안쓰러운 모습과 함께…. 그러나 지난달 금강산 관광길에온정리에서 관람한 평양 모란봉 교예단 공연은 무언가 달랐다.물론 처음엔,단원들이 고난도 기술을 익히기 위해 얼마나 고되고 오랜 훈련을 받았을까 생각하느라 환호하는 다른 관객들처럼 공연에 몰입할 수 없었다.공연이 시작되기 전 생음악 반주를 맡은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꾸역꾸역 밀려드는 관광객들을 바라보는 눈길에 가슴이 아려 온 탓도있었다. 그러다가 “선입견이나 복잡한 생각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는 쪽으로 마음을 정리했다.사라져 가는 것의 쓸쓸함도,공포의 그로테스크함도 없이 다가오는 압도적인 어떤 힘 때문이었다.그 힘은,북한의 교예가전용 극장과 전문인력 양성기관까지 지니고 단원들이 최고의 예술가로 대우받는 데서도 기인하겠지만 단순한 묘기나 오락을 넘어선 치열함과 건강함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싶다. 첫 남북정상회담을 축하하는 평양교예단의 서울 공연이 4일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열려 1만2,000여 객석을 가득 메운 남측 관객들로부터 열렬한 환호와기립박수를 받았다. 모란봉 교예단보다 한수 위로 알려진 평양교예단의 이날공연에 대해 한 기자는 “강인한 의지와 순결하면서도 소박한 정신이 뭉쳐만들어 낸 어떤 ‘기’로 남한 사람들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보도하고 있다.80∼90년대 이루어진 남북적십자회담이나 남북고위급회담 당시에는 남측 대표단이 평양교예극장과 인민군교예극장 등에서 북한 교예공연을 관람했다.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대표단보다 먼저 장애인과 소년소녀가장,군위안부 출신할머니들을 포함한 남쪽의 일반시민들이 북한 교예단 공연을 관람한다는 것또한 뜻깊은 일이다. 임영숙 논설위원. @
  • 2000 서울 환경사진전, 금상에 김미자씨 ‘수질오염’

    대한매일신보사와 서울시가 공동주최한 2000 서울환경사진전에서 영예의 금상은 탄천에 설치된 오일펜스에 엉긴 거품덩어리를 담아 서울의 젖줄인 한강물의 오염실태를 고발한 김미자씨(전북 전주시 완산구 삼천동)의 ‘수질오염’에 돌아갔다.은상은 나일규씨(서울 중랑구 신내동)의 ‘재활용 작업’과조평훈씨(서울 강북구 미아5동)의 ‘자연과 개발’이 차지했다.동상은 ‘사슬’(박인섭·경기 구리시 교문1동)과 ‘벽보홍수 Ⅱ’(김기갑·서울 동작구상도5동) ‘광화문 거리축제’(정희광·서울 관악구 신림본동) 등 3작품이받았다. 올해로 5회째를 맞은 이번 환경사진전에는 모두 212점이 출품돼 40점이 입상작으로 선정됐다.시상식은 6월 2일 시청 대회의실에서 거행되며 입상작은이날부터 11일까지 지하철 시청역 지하전시장에서 일반에 전시될 예정이다. 한편 총 241점이 출품된 제2회 서울환경포스터 공모전에서는 조정환군(서라벌중 1년)이 금상을 차지한 것을 비롯해 모두 36명이 입상했다. ■환경사진전 가작 및 입선작▲가작 동대문의 뒷모습(손아롱)청둥오리가족(강봉수) 만추(한순애) 올림픽공원의 가을(강길순)▲입선 도심의 가을(정종근) 한강 그리고 낙원(정인식)정오의 명동(박재관) 설경(윤호원) 산호랑나비(이전근) 농약병의 오염(정경순) 한강변의 메밀꽃 필 무렵(김동일) 한강의 휴식처(박행길) 휴식(박행길)낙서(김영모) 서울의 봄(이강주) 잿더미속의 새생명(조은상) 정성(이재형)향원정(이재형) 여의도의 봄(이재형) 밤섬의 겨울(한순애) 여름(박경화) 자연학습장 정경(이우화) 오염지역(하근호) 집회가 끝난자리인가(박순회) 버려진 양심(황인옥) 한강의 여름(강길순) 남산골 한옥촌(강길순) 올림픽공원(정병규) 난지도를 푸르게(정희광) 노을(이태인) 재생준비(강명운) 굿이 끝난자리(오이천) 유채꽃밭에서(장기옥) 자연학습(장기옥)■환경포스터 입상자▲은상 김지선(선화예술중) 송지선(덕수중)▲동상 황인상(신천중) 조승연(성재중) 고은나(배화여중)▲가작 박혜영(동일여중) 한원정 백경선 원경연(이상선화예술중) 조은경(청량리중)
  • EBS 특집다큐 3부작 ‘선생님 세우기’

    EBS가 스승의 날을 맞아 16일부터 18일까지 3부작 특집 다큐멘터리 ‘선생님 세우기’(오후8시)를 방송한다. EBS는 ‘학교는 붕괴되었는가’라는 질문에 ‘아니다’라고 답한다.800만학생이 학교에서 교육받고,40만 교사들이 학교를 지키고 있는 것이 그 이유다.학교의 한 축이면서도 교육위기가 나올 때마다 책임자로 비난받는 교사들이 고민하는 문제와 학교의 존재이유,진정한 교육 등에 대해 알아본다. 1부 ‘선생님 어디 계세요-지은이의 촬영일지’는 경기 분당 서현고등학교방송반 학생들이 만든 다큐 ‘선생님 세우기’ 촬영기다.방송반 학생들은 학생들과 교사들의 인터뷰를 담아가면서 그동안 몰랐던 교사들의 뒷모습을 탐색해 간다.방송반은 교사가 학생보다 더 심한 입시 스트레스에 갇혀 있지 않는가를 자문해 보기도 한다. 학생들도 수긍할 수 있는 체벌,주위 교사들의 반대에도 담임반 학생들의 야영을 이끌어내는 교사,교무실에서 보여지는 교사들의 인간적 삶 등이 담겨있는 ‘선생님 세우기’ 시사회를 통해 학생들은 교사와 학생을 이어주는 끈을 확인하고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친다. 2부 ‘2000년 5월 한국에서 교사로 살기’에서는 부산 해운대여중 곽태훈교사를 담는다.곽선생은 교단일기,학급앨범 등으로 꾸며진 인터넷 홈페이지(myhome.netsgo.com/step2002)를 운영하고 있다.곽선생은 “교단일기를 통해아이들에게 미처 얘기하지 못했던 것들,힘든 것들을 이야기할 수 있어 너무좋다”고 한다. 1박2일 수련회에서 학생들에게 보여줄 캉캉춤을 연습하는 교사들을 통해 아이들에게 다가가려고 선생님들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아이들에게 사랑을 쏟다가도 자신들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모습을 볼 때면 힘이빠진다는 곽선생의 허탈감 등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3부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을 찾아서’는 한 교사의 해외학교 탐방기다.장승중 안승문 교사는 세계적 실험학교인 러시아 톨스토이학교와 독일 헬레네랑에학교를 찾아가 새로운 교육의 패러다임에 대해 고민한다. 톨스토이학교는 각종 행사를 학생들 스스로 준비,기획하고 수업내용이 상황에 따라 많이 바뀌는 등 교사와 학생의 자율권이 대폭보장돼 있다.헬레네랑에학교는 한 주제를 4∼6주 동안 집중적으로 다루는 프로젝트 수업,기업에서이뤄지는 현장실습 등을 통해 학생 스스로 수업을 이끌어가는 체험학습을실현하고 있다. 전경하기자 lark3@
  • LA타임스 ‘비키니여성 등 모델’ 판촉광고 물의

    [로스앤젤레스 연합] 미국 로스앤젤레스 타임스가 16일부터 각종 발행물,광고게시판,TV 등에 게재키로 한 판촉광고가 여성권익옹호 및 이슬람단체들로부터 강한 반발을 사고 있다. ‘우리를 타임스와 연결하기(Connecting Us To Times)’로 명명된 이 광고캠페인은 16일자 LA 타임스 생활면 하단에 가로 5단 세로4단 크기로 실렸는데,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백인 여성 3명의 뒷모습과 검은색의 이슬람교 전통여성복장을 한 2명을 대비시키고 있다.또 앞으로 선보일 광고 가운데 하나는 캘리포니아 남부의 교통정체와 파키스탄의 전차를 대비시켜 타임스를 보면 세계를 한 눈에 알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이들 광고는 LA 인근 마리나 델레이 소재 광고회사 ‘그라운드 제로(GZ)’가 제작한 것으로 LA 타임스는 판촉을 위해 총 1,500만달러를 투입했다. 그러나 미-이슬람관계협의회(CAIR)와 여권신장재단(FMF) 등은 LA 타임스 새광고가 여성과 이슬람교에 ‘매우 모욕적’이라며 광고게재를 중단할 것을요구했다.후삼 아일루시 CAIR 남가주지부 사무국장은“광고 메시지가 이슬람인을 서양문명에 반하는 것으로 대비시키고 있다”며 “이는 매우 유감스런 일”이라고 말했다. 타임스 편집국 안에서도 200여명의 기자들이 문제의 광고 중단을 요구하는청원서에 서명하는 등 내부 비판도 일고 있다.
  • [굄돌] 포니를 기억하며

    포니를 보았다.신문로의 대저택들이 끝나는 곳에서,정계 드라마에 가끔 등장하는 H요리점 앞에서. 포니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그것이 외제 차인 줄 알았다.껑충하고 덜 기교적으로 보이는 뒷모습 때문이었다.마주 오는 미술관 셔틀 버스에게 길을 양보하느라 포니가 눈앞에서 멈췄을 때,탈탈거리는 차의 뒷모습을 무심코 바라보다 나는 조금 놀랐다.그 차는 이미 오래 전에 단종되었다. 포니를 보자 과거의 순간들이 향낭(香囊)처럼 펼쳐졌다.20여년 전,내가 위험을 감수하며 난생 처음 히치하이커가 되었을 때 선뜻 차를 세워 태워줬던사람의 차도 포니였다.그러고 보니,정말 그런 시절이 있었다.여행중에 버스가 끊겨 어깨를 늘어뜨리고 터벅터벅 걸어갈 때 막 지나쳐간 차가 멈춰 후진을 하고 “어디까지 가세요?”하고 묻던 따뜻한 사람들을 종종 만날 수 있던 시절….이젠 너무도 까마득하여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실감나지않는다. 내가 본 차는 90년에 단종된 포니 2가 아니라 82년도에 생산이 중단된 포니였다.포니 2를 못본 지도 오래인 것 같은데,그냥 포니라니,차를 자주 바꾸는 문화에 익숙해져 있던 터라 눈앞의 포니는 신기하다 못해 기괴하기까지 했다.그 차는 유지비가 많이 들고 수리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며 매연도 만만찮게 내뿜을 것이다.차 주인에게 편집증이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불순한 생각이 스친 것도 우리 시대를 곪게 하는 개인의 병폐인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몇년 전,마포대로에서도 포니를 보았다.일년 남짓 다니던 직장에서 퇴근해 버스를 기다리고 있을 때,붉은 빛을 띤 포니가 눈앞을 지나갔다.그땐 동행이 있었는데,우리는 한동안 포니를 몰고 당당하게 서울 시내를 활보하는 사람의 건전한 소비 성향과 뚜렷한 주관을 오래도록 칭송했다.그후오래지 않아 IMF가 왔다. 모두들 우리 경제가 깊은 수렁에서 벗어났다고 믿는 이 순간,포니를 생각하니 이 도시 어딘가에서 폐쇄되었던 창이 하나 열린 듯하다.잊고 살던 풍경들이 눈앞에서 물결친다. 조은 시인
  • [외언내언] ‘만추의 여인’ 문정숙

    그 유명한 영화 ‘만추’(李晩熙 감독)를 나는 보지 못했다.깊어가는 가을의 공원,쓸쓸한 벤치.주변엔 낙엽이 딩굴고 또 바람에 우수수 지고...바바리코트 깃을 올리고 벤치에 앉아 누군가 기다리는 우수에 젖은 여인.그가 기다리는 사람은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만추’를 본 사람들의 가슴을 아직도촉촉하게 적셔주는 이 장면을 보지 못한 것이다.이 영화가 개봉됐던 60년대에는 영화관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없는 학생신분(게다가 한심한 ‘범생’)이었고 성인이 되고나서도 한참동안 한국영화에 대한 불신이 컸던 탓이다.그럼에도 이 영화의 주인공이었던 배우 문정숙(文貞淑)씨의 서늘한 눈매,우수와 정열이 공존하는 독특한 분위기는 내 가슴속에도 뚜렷한 각인을 남겼다. 그가 출연한 영화의 스틸 사진만으로도 강렬한 인상을 안겨준 드문 배우였기때문이다.‘7년만의 외출’에서 지하철 환풍구 위에 선 마릴린 먼로의 모습도 강렬하지만 문씨의 경우는 뒷 모습을 담은 한 컷의 사진 만으로도 숨을멈추게 한 미국의 현대무용가 마사 그레이엄과 더 닮았다고 할수 있다. 새봄이 오는 길목을 ‘만추’의 여인이 떠나갔다.한국영상자료원이 6일부터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영상자료원 시사실에서 ‘문정숙 회고전’을 열려던 참에 주빈이 개막식에 참석도 못하고 간 것이다.‘만추’의 여인에겐 그것이 더 어울리는 모습일 수도 있겠지만 남은 사람은 그 뒷모습에 또 다시가슴이 젖는다.문씨의 별세를 전하는 기사들은 그가 1927년 평북 선천에서태어나 북한의 공훈배우까지 지낸 언니 문정복씨의 영향으로 연극무대에 섰다가 영화에 데뷔해 300여편의 영화에 출연했다고 쓰고 있다.그러나 지난 80년대 초 한 신문인터뷰에서는 400여편에 출연했다고 그 자신이 말한 것으로나온다.데뷔작품도 52년 신상옥(申相玉) 감독의 ‘악야’와 56년 유현목(兪賢穆) 감독의 ‘유전의 애수’ 등 각각 다른 기록이 뒤섞여 있어 혼란스럽다.아직 체온이 느껴지는 스타의 기록이 이처럼 부정확한 것 또한 쓸쓸한 느낌을 안겨준다. 기록에 무관심한 우리 국민의 한 사람으로써 워낙 많은 작품에 출연한 탓에데뷔작을 그 자신 착각했을 가능성도없지 않다.그러나 생전에 그가 자신의대표작으로 꼽은 작품이 ‘만추’가 아니라 같은 감독의 ‘시장’이었다는사실은 흥미롭다.‘만추’는 홍성기(洪性麒) 감독의 ‘실락원의 별’‘애원의 고백’,이강천(李康天) 감독의 ‘나는 속았다’,권영순(權寧純) 감독의‘흙’,이만희 감독의 ‘주마등’‘귀로’‘검은 머리’‘7인의 여포로’ 등과 함께 “기억되는 작품들” 중 하나로 꼽았을 뿐이다.‘만추’도 ‘시장’도 네가필름이 없어져 버려 고인의 뜻을 헤아리기 어렵게 됐지만 그를 다듬어 낸 이만희 감독처럼 그도 한국영화의 한 신화(神話)가 될 것은 분명하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임영숙 논설위원
  • 대한매일 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작(II)

    ◆이슬털기-편혜영고양이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라니.그는 짧은 대답을 마치고 운동화의 끈을 여덟 개 구멍에 천천히 넣어 X 자 모양으로 만든 후에 이제 모든 준비가 다 끝났다는 듯이 현관에서 발을 몇 번 굴렀다.오랫동안 물청소를 하지 않은현관에서 뿌옇게 잔먼지가 일었다.남편이 먼지를 없애기 위해 손사래를 치면서 현관을 나섰다. 남편이 아파트 단지까지 산책을 갔다가 돌아오는 것을 실은 한 번도 본 적이없었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남편의 츄리닝 바지춤에서 부석거리는 잔모래가 떨어지거나,바지 끝에 풀섶 이슬이 묻어 있거나,저 아파트 앞으로는 8차선 도로공사를 하고 있어,라거나,아파트 외벽이 이만큼이나 높아졌어,팔을 벌리며설명하는 것을 듣고는 짐작했을 뿐이었다. 산책을 나가지 않고 집에 있을 때도 남편은 곧잘 베란다 창을 통해 새로 시공 중인 아파트 단지를 바라보았다.남편은 지은 지 20년이 다 되어 간다는,좁은 마당에 쥐가 들끓어 고양이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이 아파트 단지를끔찍하게 여겼다. 베란다 창문을 뚫고 들여오는쥐며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들을 때마다 남편은 쥐새끼는 소리라도 안 내는데 저 놈의 도둑 고양이 새끼가 질러대는 소리는 시끄러워서 살 수가 없다고 투덜거렸다. 고양이들은 아파트 마당을 소리없이서성여 대다가, 발정기가 되면 길고 끊이지 않는 소리로 암컷을 불러 대곤했다.그 소리는 부쩍 떨어진 기온으로 잔뜩 냉랭해진 아스팔트 위로 길게 솟구쳐 올랐다.야생에 사는 쥐는 스스로 독초를 먹는다는 거야,부엉이나 올빼미가 얼씬하지 못하도록 내성을 기르는 거지.아파트 마당에다가 먹고 죽지 않을 정도로 쥐약을 뿌려야겠어,결국 쥐약을 먹은 쥐를 잡아먹다가 고양이가 죽게 될꺼야,그러면 저 지겨운 소리를 안 들어도 될테지,남편은 시선을 이제 반 너머 지어지고 있는 길 건너 아파트 단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남편이 시선을 거둘 줄 모르는 아파트는 최신 설계에 따라 시공 중이며 아파트 내부는 입주자가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고 했다.높은 층에 살꺼야,베란다를 아주 넓게 하고,창은 아무 소리도 새어들지 않게 5mm 유리를 두장 쯤달겠어.남편은 밤이면 철근 뼈대가 그대로 드러나 보여 괴괴하기 짝이 없는 아파트 단지를 보며 꿈에 부푼 아이처럼 유리에 입김을 불어 조감도를 그리기도 했다.저 아파트 말이야,35평 분양가가 1억 4천이라는 거야,어디 급전쓸 데 없을까? 그는 꼭 내게라고 할 것 없이 베란다 유리창에 바짝 붙어 서서 시선을 여전히 주공 아파트 단지에 고정한 채 말했다.나는 그 말에는 대꾸하지 않고 몸 속에 켜켜이 쌓이는 독약을 어쩌지 못하고 자꾸 쓴 침만 삼켜대는 쥐를,그 쥐를 먹고 고통스러워 할 고양이를 상상하며 몸서리쳤다. 그러나 아파트 공사는 중단된 지 두 달이나 되었다.남편은 그것을 모르는 걸까.산책을 나갔다 오면 어김없이 저 아파트 말이야,마치 그쪽으로 산책을 나갔다 온 사람처럼 얘기를 했다.오늘은 저기 뒷동의 외벽이 유난히 높아 보이는 거야,어쩐지 퇴근 무렵에 인부들이 유난히 몰려 있더라고.현장 사람들이그러는 데 석달 정도면 외관 공사는 마무리 될 것 같다는군,석달이면 말이야. 나는 이미 8층에 사는 반장 여자를 통해,저 아파트 공사장에서 인부가 하나떨어져 죽었는데,회사측에서 보상액을 턱없이 낮게 책정하는 바람에 임금 노동자들이 반발하고,노동쟁의까지 일으키는 바람에 일손을 놓고 있다고,게다가 회사 간부가 계약자들한테 받은 착수금을 갖고 해외로 도망쳐서 회사측에서는 더할 수 없이 자금란을 겪고 있다는 것을 들어 알고 있었다.그런데도,나는 남편의 말에 간혹 대거리까지 해가며 짐짓 그 사실을 모른 척 했다. 수정이 나를 부르러 왔다.마당에 상청이 다 마련되었다고 했다.울었는지 수정의 눈이 잔뜩 충혈되어 있었다. 병풍을 친 마당에는 조상상과 망자를 위한 상이 따로 놓여 있었다.무녀는 도사중의 영력으로 임신하여 ┌欲屛? 제석님네 맏딸아기가 아들을 낳아 남편을 찾아간다는 내용의 소리를 하고 있었다.맏딸아기가 찾아가자 곧 제석이 중노릇을 파하고 큰 법당은 헐어내어 몸채 팔간을 짓고 큰 장삼은 뜯어내어 홑이불이 제격이며 목탁은 쪼개내어 장종지로 쓰고 장죽장은 분질러서 부지깽이로 쓰시어어,하는 긴 소리의 사설이 이어졌다.소리가 끝나자 무녀가 관중과고인을 상대로 재담을하기 시작했다.주발 뚜껑을 땡땡 치면서 염불도 하고,업도 불러들이고,바라춤을 추기도 했다.마당에 둥굴게 모여 구경을 하던 마을 사람들도 무녀와 하나가 되어 신나게 춤을 추었다.고인들도 아까의 오열을 잊고 일어나 어느 샌지 흐흐 웃음을 흘리며 덩더쿵,사람들과 함께 춤을추었다.수정도 박수로 박자를 돕고 있었다.나도 어색하게 두리번거리다가 수정을 따라 박수를 쳤다.춤은 사람들의 웃음 속에 한참이나 계속되었다. 춤을 추고 난 후에 무녀가 천막을 친 기둥에 무명 한 끝으로 쌀 담은 주발을 묶어 맨 후 나머지 헝겁에 일곱 개의 매듭을 만들었다.무녀는 신칼을 들고 서서 고풀이 무가를 잠시 불렀다.불쌍하신 최씨망제,최씨망제가 새앵전에 매애치인하안으을 고오로로 푸우러러 가시오오,축원한 후 고를 들고 춤을 추며 너울지게 흔들어서 하나씩 매듭을 풀어갔다.왠일인지 고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이승에서 풀지 못하고 저승까지 가져간 한을 뜻한다는 고를 풀기 위해 애쓰는 무녀를 보자,아직 예 남아 있는 그의 영혼이 저 고를 놓지 않는가 보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은이도 왔구나. 누군가 어깨를 툭,치며 알은 체를 했다.강호 선배였다.나는 반가운 마음보다 강호 선배가 왔으면 은미도 오지 않았을까 싶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가까이에 은미는 보이지 않았다. 예정일이 언제니,배가 많이 나왔다,은미도 임신해서 못왔어. 강호 선배는 내가 왜 두리번거렸는지를 알아채고 말했다.은미와 강호선배는 작년에 결혼을 했다. 강호 선배 어디 있었어요?수정이 다가왔다.아까 수정이 그의 방 문앞에서 만난 사람이 강호 선배였던듯,수정과 강호 선배는 오랜만일텐데도 안부 인사가 없었다.아직도 무녀가 쩔쩔매며 풀리지 않는 매듭을 잡고 있자,그의 큰 누이가 나가 고를 푸는 것을 도왔다.드디어 첫 번째 고가 풀렸다.사람들이 와아,길게 환호성을 질렀다. 첫번째가 풀리니 나머지는 쉬웠다.무녀가 모두 풀어진 고를 든 채 염불로 망자의 극락왕생을 빌고 식구들을 축원해 주었다. 드디어 고가 풀렸다고,정말로 그가 생전에 한이라도 남기고 갔으면,다 풀렸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덩달아 박수를 쳐대다가 나는 다시 배를 잡고 허리를 구부렸다.뭔가가 뭉클,아랫도리로 쏟아지는 느낌이 났다. 나는 다시 그의 방으로 왔다.수정은 강호선배를 내보내고,마당에서 아까 나를 부축했던 아주머니를 찾아 데리고 왔다.아주머니는 내게 밑에 뭐시 묻었소? 라고 물었다. 나는 축축한 팬티를 벗어 보았다.피가 섞인 끈적끈적하고 맑은 점액 덩어리가 묻어 있었다. 이슬이라요,이것이.아가 나오기 전에 자궁이 벗개지면서 쪼께 피가 나는 것이요,배 많이 아프요? 곧 아가 나올 수도 있겠어라요.나는 몸을 활처럼 휘고 잠깐 누워 있었다.마당에서 다소 느린 흘림 장단이 들려왔다.나는 이미 사라져버린 진통을 털고 문을 열었다.수정이 바람도 찬데,나오지 말라고 두꺼운 이불을 꺼내어 덮어 주려고 하였으나,나는 마당으로 나갔다.영혼으로라도 그가 돌아가는 것을 보고 싶었다. 그가 갑작스럽게 며칠 전,그는 잔뜩 신이 나서 임신 4개월 밖에 안 된 주제에 아기의 배냇저고리를 사겠다고 남대문 시장을 돌아 다녔다.나는 아기를 가졌다는 말 이후로 몰라보게 달라진 그가 환멸스러워서 모든 것이시큰둥해 있었다.그게 그거인 좁은 시장통을 몇 바퀴 도는 동안 너무 지쳐 버려서 세 시간쯤이 되자 아무 옷이나 사 버렸다.커다란 테디 베어가 조악하게 프린트된 옷이었다.순면도 아니어서,갓난아기에게는 도무지 입힐 수가 없는 것이었다. 신세계 백화점 앞에서 나는 아기의 배냇 저고리가 담긴 비닐 봉투를 그의 손에 쥐어주고,아기 지울꺼야,혼잣말처럼 중얼거리고 마침 도착한 좌석 버스를 탔다.그가 버스를 타려는 나를 잡았으나 있는 힘껏 그의 팔을 뿌리치고 재빨리 뒷좌석에 몸을 파묻고 눈을 감았다.버스는 바로 출발했다.눈을 떴을 때 그가 지하보도로 느릿느릿 걸어들어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점점 어두운 구멍 속으로 빠져 드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너 때문에 충분히 불행하다 ,네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나쁜 공기처럼 늘 우리 곁을 떠돌게 마련인 죽음의 신에게 음울하고 갈라진 목소리로 중얼거리고는 곧 병원으로 가 수술을 받았다. 그런데 정말 그가 죽어 버렸다.횡단보도에서 유아들을 태운 12인승 미니 버스에 치이던 날 같이 있던 성우선배는 이상하다고,건너 편에 선 나를 보고 길을 건너던 기환이가,갑자기 판화처럼 멈추어 서더라고,그리고는 가깝게 다가오는 노란색 버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고,신호등도 없는 횡단보도여서 사람들은 기환의 곁을 빠르게 걸어 지나갔다고,그런데도 기환은 조금도 움직이려 들지 않았다고 그의 학생증 사진을 확대해서 만든 영정 사진 앞에서 울먹이며 말했다. 그가 죽자 없던 입덧이 생겨났다.입덧이라니.터무니없었다.이미 내 자궁은 내게 음식 냄새를 거부할 만한 어떤 것도 담고 있지 않았다. 수술은 봄날의 낮잠처럼 짧고도 평온한 것이었다.얇은 가운만을 걸친 채 벌린 다리가 수술대의 차가운 난간에 가끔씩 부딪쳤다.그럴 때마다 나는 언젠가 과학잡지에서 보았던,혈관이 그대로 드러날 정도의 얇은 살갗을 가진 16주된 태아가 씨앗같은 눈을 감고 있는 사진을 떠올리며 몽롱하게 마취되어 갔다.4개월 된 태아의 죽음에는 암울한 흑백 사진도,값싸고 아린 만수향내도 나지 않았다.눈물도 아까울 만큼 수술은 금방 끝났다. 나는 우욱,먹은 것을 토해내고 질질 침을 흘렸다.대학 병원 전체가 장례식장인 듯 어딜가나 전을 지지는 기름내와 비릿한 육계장 냄새,만수향내가 났다. 포르말린 냄새가 지독해서 물도 마시지 못하다가 그의 하관식 날,나는 정신을 잃었다. 굿을 시작하면서 안방의 병풍에 걸려 있던 그의 한 벌뿐인 양복을 내려 마치 산 사람이 입은 것과 꼭 같이 만들어서 가마니 위에 펼쳐 놓고 이를 말아 일곱 매듭을 묶어 세웠다.그 위에 술을 만드는 누룩을 놓고 다시 사람 모양으로 오린 넋을 놋쇠 주발 속에 넣어 뚜껑을 덮은 다음 그 위에 바가지를 덮었다. 무녀가 신칼로 솥뚜껑을 두드렸다.저승문을 두들겨 여는 것이라고 했다. 선배가 가려나 보다. 나직하게 한숨짓는 목소리로 수정이 말했다. 나는 그가 가는 길은 어딘가,혹 그가 죽은 후,마음 속으로 그의 무덤 곁에묻었던 우리의 4개월 된 아이와 함께 가는 것은 아닌가,아득하게 눈을 돌려 영혼이 올라간다는 바닷길이 있는 쪽을 보았다가,먼 하늘에 돛대도 없는 쪽배인 듯 조금 차 오른 상현달을 보았다.무녀가 그의 옷을 넣어 만든 영돈을 쑥물,향물,청계수 순서로 빗자루에 묻히어 머리로부터 아래로 씻겨가기 시작했다.진양조의 긴 소리가 이어졌다.나야아 시러어어어 에에 헤이이이히로오 넋이로오오고나아아아 넋이이로오고나아.장구와 징만으로 된 진양조의 가닥이 슬프게 들리는지 그의 작은 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그의 어머니가 손을 맞대고 빌면서,부디 이승에서 맺힌 원한풀고 맑은 물로 깨끗이 씻겨 극락왕생하소서 기구하는 짧은 소리를 했다.망자는 마르고 깨끗해야 환생할 수 있는데 망자의 원한이 이슬이 되어 젖어 있기 때문에 이를 씻겨 주어야만 극락왕생할 수 있다고 해서 이슬털기라고 한다는,씻김이 지나가고 있었다. 사람들 꿈에 선배가 나타난대,그의 어머니도 여러 번 꿈을 꾼 모양이야,아무래도 선배가 떠나지 못하는 것 같다고 굿할 날을 받았다는 거야,실은 우리가 떠나보내지 못한 걸텐데 말이야.수정이 잠깐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나도 선배의 꿈을 꾼 적이 있어,꿈에 선배가 얼마나 인상을 쓰고 있던지 무서워서 잠이 깼어,그 눈이 얼마나 무서운지,아직도 가끔 생각이 난다.나도 딱한 번,꿈 속에서 그를 만났다.꿈 속의 그는 나를 등지고 서서 어디론가 걸어 가고 있었다.뒷모습에 불과한 남자의 영상을 그라고 생각한 것은,내가 그의 이름을 부르자,사내가 멈칫 걸음을 멈추고,이내 서서히 돌아섰기 때문이었다.나는 돌아서는 남자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잠이 깨었다.지은아,가자,난선배 넋도 풀고,빚진 것 같은 내 마음도 풀고 와야겠다.너한테 수술하라고 다그친 게 내가 아니니.아무래도,선배가 그것 때문에 넋을 놓고 죽어 버린것 같아서 말이야.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수정의 목소리가 조금씩 잦아들었다. 무녀가 솥뚜껑을 연 후에 신칼로 바가지를 쳐서 독에 담긴 물 위로 떨어지게 하였다. 넋이 담긴 주발을 다시 한 번 쑥물 향물 비누 맑은 물로 씻기고 바가지 위에 얹어 놓았다.바가지는 배가 되고 독안의 물은 저승으로 가는 강이 된 것이다.망자는 쪽박 배를 타고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가는 것이다.천천히 무녀가 신칼로 바가지를 돌리자 무녀를 돕던 다른 무녀가 아,배삯을 내야 저승으로 가지,하고 소리를 질렀다.그의 누이와구경꾼 몇이 바가지 속에 돈을 놓으니 쪽배는 금방 속력을 내어 빠른 속도로 회전하며 저승으로 가버렸다.그는잠깐이라도 들렀던가,다시 빠른 속도로 떠나 버렸다. 진통은 언제라도 내게 닥칠 수 있다는 기미를 팬티에 흘려 놓고 사라져 버렸다.사방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처럼 때없이 닥치는 진통으로 나는 미처 내게닥친 진통이 몇 분 간격인가를 헤아리지 못하다가,진통은 20분이 채 못되는시간꼴로 한 번씩 오는 것을 깨달았다.만약 여기서 아기를 낳는다면…나는갑자기 두려워져서 가만히 방으로 들어가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이미 새벽세 시가 가까워오고 있었고,긴 산책 후 돌아와서는 깊은 잠에 골아 떨어지는 남편은 전화도 받지 않았다.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주지 않는 남편을 잠깐원망하며 나는 어두운 방에 오도카니 앉아 치마 아래로 이슬이 비친 팬티를 벗어 버리고 몽골한 새 팬티로 갈아 입었다.그 때,진동으로 해두었던 핸드폰이 울렸다.남편이었다.자다 깬 듯 졸려운 목소리였다. 이왕 간 거니 어쩔 수 없쟎아,조심해서 있다 오라구. 굿이 끝나는 대로 출발할 생각이예요. 재촉하려는 뜻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도 나는 지레 그렇게 대답했다.아니야,한숨도 못자고 운전하는 당신 친구도 생각하라구.다만 몇 시간이라도 좀 자 둬. 나 때문에 깬 거예요?미안해 할 필요 없어,산책을 안갔다 와서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고 있었어.당신,산책을 안 나갔어요?좀 의심스럽다는 듯이 되물었다. 그래,고양이 죽이는 일도 지겨워,사방에 쥐약 뿌리는 짓을 몇 번 했더니 어제는 드디어 죽은 고양이를 네 마리나 보았어,당신 생각대로 신축 아파트 공사장 따위는 가지도 않았다구.애기가 저 고양이 소리를 안 듣게 되서 기분이 좋아.난 좀 자야겠어,당신도 좀 자두지 그래.남편이 선하품을 하며 전화를 끊었다.나는 밤이슬 젖은 풀섶을 뒤적이며 쥐는 죽지 않을 만큼,종내는 고양이가 죽을 만큼의 쥐약을 흩뿌리고 있었을 남편을 떠올려 보았다.어이없고 황당한 마음 한켠으로 고양이 소리 따위에 마음 속에서 확확 불길이 치솟는 그의 마음을 몰랐던 것 같아 안쓰러워지기도했다. 무녀가 대바구니 속에 쌀이며 망자의 옷,넋을 담고 지전으로 장식한 넋상자를 다리 위에 올려 놓고 쌀을 천 위로 뿌리면서 신칼을 들고 소리를 했다.안방에서는 그의 작은 누이가 무명천으로 만든 질베의 한 끝을 잡고 마당에서는 동네 아주머니가 한 끝을 잡고 있었다.무녀가 신칼과 넋상자를 다리 위로 조금씩 움직여 닦으면서 염불을 했다. 가족에게 하직 인사를 하고 저승 고개를 넘어가는 것이라고 했다.넋상자를 질베 밑으로 넣어 한 바퀴 돌린 후 망자가 편히 저승에 갈 수 있도록 길을 닦은 후 마당 쪽에서부터 베를 걷어 안방에서 들고 가족들 축원을 잠깐 했다.이제 망자는 극락으로 천도했고,자손들 발복하게 축원도 했으니 한 번 놀고 가자면서 무녀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동네 사람들도 덩달아 장단을 맞추며 춤을 추었다. 춤은 오랫동안 계속 되었다.수정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선배며 후배들을 만나고 있는 모양이었다.사람들이 하도 많아서이기도 했지만,사람들마다 춤사위가 워낙 커서 나는 점점 뒤로 밀리고 있었다.옆에 서 있던 아주머니 한 분이 발을 구르고 크게 팔을 내두르는 손짓에 슬쩍배가 맞았다.팽팽한 고무줄처럼 바짝 조여 있던 배가 약하게 떨려 왔다.무녀가 굿상의 음식을 조금씩떼어 바가지에 담고 있었다.왼손에 바가지 오른손에는 빗자루에 손대를 들고 마당에 서서 굿에 따라든 잡귀에게 풀러 먹인 후 대문을 활짝 열고 바깥에다 버렸다.나는 가늘게 밑에서부터 거슬러 올라오는 통증에 잠깐 휘청였다. 마당 가운데 그의 옷 넋을 태우기 위한 불꽃이 길게 퍼져 올랐다.벌써 저편으로 연하게 동이 터 오고 있었다. 그의 어머니가 불꽃 속에 그의 옷가지며 책들을 던져 넣었다.그의 누이가 누런색 곰인형을 들고 나오더니 거리낌없이 불길 속에 던져 버렸다.인형은 솟아오르는 불기둥 근처에 떨어져 타박타박,날라오는 불씨에 조금씩 타고 있었다.나는 허적이며 인형을 향해 손을 뻗쳤다.인형은 태우지 마세요,말은 입속에서만 크게 울렸다.사람들 몇이 춤을 추다 말고 나를 쳐다보았다.그 때,몸이 찢겨지는 듯한 통증이 다시 아래로부터 솟아올랐다.진통은 아까보다 더 지독한 것이었다.나는 휘청거리는 것으로는 막지 못하고 바닥에 스러져버렸다.초겨울 바람에 잔뜩 얼어 있던 땅이 임부복을 입고 있는 내 몸에 닿자,나는 진통 때문인지 추위 때문인지 다시 한번 몸을 웅크렸다.아슴하게 사람들이 서서히 내게로 다가오는 게 보였다.진통은 멈추지 않았다.누런 곰인형은 여전히 날아드는 불씨에 조금씩 타 올라 이제는 불꽃을 내뿜는 전설 속의 용처럼 온통 붉은 빛을 발하고 있었다.아랫도리로 뭔가가 뭉텅,빠져나오는 느낌이 들면서 원피스가 따뜻하게 젖어갔다.왠일인지 흙바닥이 더이상 차갑게 느껴지지 않았다.다리 사이에서는 뜨거운 액체가 연신 흘러나오고 있었다.나는 따뜻하게 젖어가는 땅 위에서 혼몽하게 정신을 놓칠 것만 같아서,이를 꽉 물고 내게로 다급하게 모여드는 사람들을 쳐다 보았다.누군가,어째야 쓰까나,양수가 터져 버렸네,크게 소리를질렀다.자꾸만 감기는 눈을 똑바로 뜨고 나를 안아 일으키려는 얼굴을 바라보려고 미간을 찌푸렸다. 누군지,그 사람의 얼굴 뒤로 보이는 달은 아까보다 조금 더 차오른,상현이다.
  • [굄돌] 아름다운 사람

    70년대 어두웠던 시절,사람이 아름답다고 김민기는 노래했다. “어두운 비 내려오면,처마 밑에 한 아이 울고 서있네.그 맑은 두 눈에 빗물 고이면,아름다운 그 이는 사람이어라.새 하얀 눈 내려오면 산 위에 한 아이 우뚝 서 있네.그 고운 마음에 노래 울리면,아름다운 그 이는 사람이어라”(김민기 글·곡) 앙상한 나뭇가지 아래로 급히 걸어가는 사람의 뒷모습이 아름답다.멀리 사는 친구가 보고싶고 누군가를 만나 오래도록 이야기하고 싶다.누구를 오래기다리는 사람은 아름답다.아무 이유 없이 누군가에게 꽃을 건네는 사람도,집안을 깨끗이 윤 내는 사람도 아름답다.아는 이를 위해 먹을 것을 준비하느라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도 아름답다. 감옥에 있는 아들을 위해 면회 가는 어머니의 발걸음도 아름답다.눈물 흘리는 사람도 아름답다. 문익환 목사는 몸바쳐 통일 운동하면서 두 동강이 난 한반도 땅과 그 위에사는 사람들에 대한 뜨거운 사랑의 노래를 불렀다. “고마운 사랑아,샘솟아 올라라.이 가슴 터지며 넘쳐나 흘러라.새들아,노래를 노래를 불러라.난흘러 흘러 적시네.메마른 강산을.사랑은 고마워.사랑은 뜨거워.쓰리고 아파라.피멍든 사랑아.살갗이 찢기워,뼈마디 부수어져 이 땅을 물들인 물들인 사랑아” 고인이 된 그 분의 넋이 목터지게 부르는 노래소리이다.이천년여의 세월동안 작고,가난한 동네에 태어난 한 아기를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도 한 가지일 것이다.누군가를 가슴 설레며 기다리는 사람 역시 행복하고 아름답다.우리시대의 시인 김용택은 다음과 같이 기다린다. “당신,당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곱게 지켜/곱게 바치는 땅의 숨결/그 설레이는 가슴/보드라운 떨림으로/쓰러지며 껴안을/내 몸 처음 열어/골고루 적셔 채워줄 당신/혁명의 아침 같이/산굽이 돌아오며/아침 여는 저기 저 물굽이 같이/부드러운 힘으로 굽이치며/세상 깨우는/먼 동 트는 새벽빛/그 서늘한 물빛,고운 물살로/유유히,/ 당신,당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12월에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이 아름답다. 김미경 서양화가
  • 미 FBI 실체 국내 첫 공개

    1995년 4월 미 오클라호마 연방건물의 폭탄테러 참사현장에 5분만에 나타나화제가 된 미 연방수사국(FBI)의 실체가 국내 언론사상 최초로 KBS-1TV에 의해 공개된다. 17일 밤12시 방영되는 ‘수요기획’은 루이스 프리 국장의 내한에 발맞춰 공개되기를 극도로 꺼려온 대테러 진압부대 SWAT(전술화기 특수부대)의 최신장비와 훈련장면 등 FBI의 실상을 카메라에 담는 데 성공했다. 물론 FBI측은 “ABC나 CBS같은 미국의 유수 방송사에게도 2∼3일밖에 취재를 허용하지 않았다”며 취재진을 감시하는 요원을 붙이는 조건으로 보름동안의 취재를 허가했다. 이 과정에서 결정적인 도움을 준 사람이 SWAT의 사격교관으로 일하는 한국인 최재범(33)씨와 워싱턴 지부에서 근무하는 김경미(31)씨 부부였다. 제작진은 엄격한 보안을 요구하는 FBI 속성상 김씨의 뒷모습만을 카메라에담을 수 있었고 몰래카메라로 찍으려다 들켜 얼굴을 붉힌 적도 있었다. 버지니아주 콴티코 해병대기지 안에 있는 FBI아카데미에서는 영화 ‘양들의침묵’에 나온 호건스 앨리라고 불리는 특수훈련장,유전자 연구소 등을 촬영했다.이 연구소의 유전자 감식기법은 현재 전세계에서 통용된다. 지난 93년 발생한 미 중앙정보국(CIA)정문 앞 총기난사 사건을 CIA에 앞서해결해 FBI의 수사력을 입증한 범죄학박사이자 수사관인 브래드 가랫을 인터뷰,세계 최고의 수사기관으로 인정받기까지의 험난한 과정을 들어본다. 외주제작사인 트라이엄프의 이인수PD는 “FBI요원은 4년제 대학을 졸업한 법학·회계학·어학 전공자 또는 대학졸업후 3년,석사 취득후 2년이상 취업경험이 있는 사람 가운데서 선발된다”며 “엄격한 선발과정을 거친만큼 이들은 일반 시민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부드럽고 친절하기 이를 데 없었다”고부러워했다. 임병선기자 bsnim@
  • [외언내언]‘슈퍼땅콩’

    ‘슈퍼 땅콩’으로 불리는 김미현이 골프채를 휘두르는 모습을 보노라면 엉뚱하게도 표현주의 화가 뭉크의 그림 ‘절규’가 떠오른다.이른바 풀 스윙자세의 그는 뭉크의 ‘절규’처럼 절절한 느낌을 준다.1m53㎝라는 작은 키의 단점을 극복하고 자신의 역량을 120% 끌어내기 위한 그 자세는 금방 허물어질 듯 위태로워 보이면서도 묘한 여운을 남긴다.눈물겨운 투지와 집념이 그속에 응축돼 있기 때문인 듯싶다. 뒷모습만으로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별하기 힘든 당당한 체구의 박세리와달리 김미현은 실제 나이(22세)보다 더 어린 소녀처럼 보인다.우승컵을 안아 들고 짓는 깜찍한 미소는 꼬옥 껴안아 주고 싶을 만큼 귀엽다.게다가 그에게는 기울어가는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대학을 중퇴하고 프로 골프계에 뛰어들었다는 애잔한 이미지마저 붙어 있다.비행기와 호텔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 중고 미니밴으로 이동하며 때로는 햄버거로 끼니를 때운 채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 참가해 왔다는 것이다.팬 서비스 정신 또한 투철해 국내 대회에 열심히 참가하는것도 그가 특별한 인기를 모으는 한 요인인 듯싶다.오는 22일 시작되는 스포츠서울투어 최종전인 제1회 바이코리아여자오픈에도 그는 참가한다. 김미현이 11일 LPGA투어에서 두 번째 우승을 거머쥐었다.지난 9월 스테이트팜레일 클래식에서 첫 승을 거둔 데 이어 퍼스트유니언 베시킹 클래식에서또다시 우승한 것이다.그는 이제 더이상 동정의 눈길을 받는 선수가 아니라국제무대에서 실력으로 인정받는 ‘확실한 스타’로 발돋움했고 밤잠을 못자며 그의 경기를 지켜 본 골프 팬들은 잠시 시끄러운 세상살이를 잊고 마음껏 기뻐했다.“이러다가 미국 LPGA투어에서 한국 선수끼리 1,2,3등 하게 되지않을까”하며 행복해하는 팬들도 있다.지난해 박세리가 메이저 대회 2승을포함해 LPGA 투어 4승 행진을 한 데 이어 김미현이 다시 한국 여자 프로골퍼의 실력을 과시한 데다 내년에는 박지은의 활약이 예약돼 있는 터다.박지은은 김미현이 우승하던 날 LPGA 2부 투어인 퓨처스투어에서 준우승과 ‘올해의 선수’ 타이틀을 안았다.그가 박세리와 김미현처럼 LPGA 신인왕이 돼 3년연속 우리 선수들이 이 타이틀을 획득하는 기록을 세울 가능성도 높다. 광활한 국토에 잔디밭이 잘 자랄 수 있는 기후조건을 갖춘 미국에는 전세계 골프장보다 많은 골프장이 있다.지난 94년 미국 골프협회 통계에 의하면 정규코스만 1만4,600개에 달하고 동호인도 2,400만명에 달한다.그에 비하면 현재 정규코스 100여개,동호인 250만명 정도로 추산되는 한국은 국제 골프계의 땅콩에 불과한 셈이다.그럼에도 우리 선수들이 잇따라 LPGA대회에서 우승하는 모습은 참으로 자랑스럽다.슈퍼 땅콩 만세!임영숙 논설위원
  • [문명자 회고록] 비화3共의 실세들(8) 귀국 기내에서

    69년 8월 샌프란시스코에서 박정희-닉슨 한미정상회담이 끝난 후 나는 박정희 대통령의 동행 제의를 받아들여 그 일행과 함께 한국에 왔다.출발하는 날 아침 박정희는 인사하러 오는 사람들 때문에 아침 먹을 시간도 없는 것 같았다.전세기가 뜨는 미 공군기지 캐슬 에어 베이스로 가기 위해 각료들과 수행기자들이 모두 버스 한 대에 올라탔다.나는 기자들과 함께 앉았는데 앞쪽에 있던 김동조 주미대사가 내 옆으로 와 앉으면서 “우리 얘기 좀 합시다”하는 것이었다.평소 그를 좋지 않게 생각하고 있던 나는 일부러 비꼬아 말했다. “아니 저 앞에 부인도 앉아 계신데 왜 이러세요?” 그는 내가 대통령 전세기에 함께 타고 서울로 간다는 것을 알고 대통령에게 자신에 대한 얘기를 좀 잘 해달라고 부탁하러 온 참이었다.나는 어이가 없어 물었다. “무슨 얘긴데요?” “대통령께서 만일 이 실장(이후락)과 나와의 관계에 대해 물으시면 나는절대로 이 실장 측근이 아니라는 것만 전달해 주시오” 나는 내심 ‘아니 이 사람이?’ 싶었다.김동조는 이후락의 사람이었다.이후락 맏아들의 결혼식을 자신의 대사관저에서 치러주었다.그런 사람이 자신과이후락이 관계가 없다고 말해 달라니‘이제 이후락의 권세가 끝난 모양이다’싶었다. “이번에 HR(이후락)이 목 달아납니까?” 그는 그 말에 대한 대답은 없이 자기 부탁만 되풀이했다(실제로 3선개헌후이후락과 김형욱은 비서실장과 중앙정보부장 자리에서 각각 물러났다).나는“김 대사께 들은 이야기 그대로 전달하겠습니다”고 말하자 그는 “아이고,그러면 안되고…”하며 당황해했다. 김동조는 원래 일제때 일본 규슈(九州)제국대학을 나와 고등문관시험 행정과에 합격,일제때 관리를 지내기도 했다. 일본제국주의에서 이승만에게로,이승만에서 박정희에게로,거기서 다시 이후락에게로 이어진 김동조의 ‘줄서기’는 또다시 누구에게로 계속될지.제자리로 돌아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속으로 “약속을 지키마”하고 중얼거렸다. 전세기에 올라 나는 다른 기자들과 함께 비행기 꼬리부분에 있는 수행기자실에 앉아 있는데 육 여사의 통역관 겸 비서 나은실이 찾으러 왔다. “각하께서 문 기자님을 접견실에 앉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박정희 부부와 몇 시간동안 마주보고 앉아 가게 되었다.얼마뒤 식사가 나왔다.포크,나이프를 갖다놓는데 보니 물론 도금을 한 것이겠지만온통 황금색으로 번쩍번쩍 한데 대통령 휘장이 박혀 있었다.내가 말했다.“이거 하나 째빌까요(슬쩍 집어넣는다는 경상도 사투리)? 이런 걸로 밥먹기는제 일생에 처음인데…” 육 여사가 웃으며 말했다. “다 세어 놓았을 거예요” 이번에는 메뉴판을 가지고 오는데 보니 그것도 대통령 휘장을 금색으로 박아 멋지게 만든 것이었다. “그럼 여행기념으로 이거 하나 주십시오”.그러자 박정희는 메뉴판에 ‘문명자여사를 위하여, 박정희’라고 쓰더니 나에게주었다.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오빠와 박정희가 대구사범 동기동창이었다. 박정희도 오빠를 기억하고 있었다.세상은 이렇게 좁은 것이었다.이야기 중에 김동조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나는 “세상에 별 웃기는 일도 많습니다”하고는 버스안에서 있었던 일을 그대로 전했다.그말을 들은육 여사는 한숨섞인 소리로 “아휴”했다. 식사를 마치고 박정희가 담배 한 대를 피워 무는데 역시 신탄진이었다.칠이 벗겨진 지포 라이터를 쓰고 있었다.미국에서 지포 라이터는 주로 GI(미군병사나 하사관)들이나 쓰는 것이었다.그래서 물었다. “왜 하필 사병들이나 쓰는 지포라이터를 쓰십니까?” “옛날에 미국놈에게 선물 받은 것인데 바람이 불어도 불도 안꺼지고 참 좋아요” 박정희는 꼭 ‘미국놈’이라고 말하는 버릇이 있었다.그러다가 박정희가 갑자기 물었다. “문 기자는 3선 개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드디어 ‘본론’이 나오는구나 싶었다.나는 정색을 하고 말했다. “안됩니다.오로지 나만이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절대로 안됩니다.이승만 박사를 보십시오” 그러자 육 여사가 내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제 생각도 그래요” 박정희는 아무 말없이 고개를 창쪽으로 돌리더니 담배를 피워물고 연기를길게 내뿜었다.그리고 다시 말했다.“그러니까 문 기자는 한국실정을 모른다는 말이요.이번에 가서 한국실정을 좀 잘 둘러보시오” “한국실정이 어떻든 저는 3선은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샌프란시스코-서울 간을 나는 14시간의 비행동안 박정희는 비서실장 이후락을 단 한번 불러 물었다. “이 실장,이번 정상회담 성과에 대해 어떻게들 보고 있소?” 나는 이후락이 박정희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나 유심히 보았다.더없이 공손한 태도로,그러나 급한 성질은 어쩔 수가 없었던지 이후락은 말을 더듬으면서 듣기좋은 소리를 늘어놓았다. “가가각하,이번 한미정상회담은 모두들 대성공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대성공이라니.박정희는 주한미군 철수정책을 변경시키러 닉슨을 만나러 간다고 했지만 닉슨은 전혀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다.나는 하마터면 이후락에게 “도대체 누가 그렇게 평가합디까?”하고 소리칠 뻔했다.그 순간 박정희를 힐끗 쳐다보니 그 역시 이후락의 보고가 듣기좋은 소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눈치였다. 정리 정운현기자 jwh59@
  • ‘脫한국성’ 속에 숨겨진 치열한 예술혼

    한국의 예술가는 빠르든 늦든 ‘한국적’이란 문제와 운명적으로 맞닥뜨린다.이 운명적 문제를 바쁜 길을 막는 바윗돌인 냥 요리조리 피하기만 하는예술가도 있지만 어떤 이들은 오히려 보편적·세계적 예술성의 광활한 하늘로 솟구치는 그네로 삼으려 한다. 바윗돌이 가뿐한 그네가 되기 위해선 예술가는 자기와 피나는 싸움을 벌여야 한다.미술 작품이 이런 내면투쟁의 아름다운 뒷모습일 때 보는 이는 즐겁다. 갤러리 현대는 ‘최선호-시적 변용’과 ‘박윤정-팽이:시간·공간’ 두 전시회를 나란히 20일부터 연다.흔한 그룹전도 만남전도 아닌 두 전시회는 우연히 물리적 전시공간만 같은 ‘따로따로’ 전처럼 보이나 양 작가는 ‘한국’ ‘한국적’이란 관점에서 우연찮은 인연과 기맥 상통함을 보여주고 있다. 최선호는 한국화를 가운데 두고 두번의 변신을 단행한 작가다.70년대 말 대학 전공을 도중에 서양화에서 동양화로 바꾸었으며 한국미술 전문인 간송미술관에서 10년동안 동양화를 연구하다가 다시 미국으로 가 서양미술을 공부했다. 뉴욕에서 한국화를 버리고 미술을 새로 시작한 것이 아니라 전통회화와 전위적 서양미술의 접목을 꾀한 것이나 그의 작품은 얼핏 서양화,그것도 선과 색의 단순화에 온 힘을 기울이는 미니멀 아트로 다가온다. 작가의 이력은 작품을 보다 진정하게 감상하는 데 방해가 될 수도 있다.그러나 서양화 같은 외양이 작가의 한국화에 대한 열정에서 솟아난 변신임을알 때 그림이 더 가깝게 다가온다.실제 어떤 거리를 지키려는 절제력이 돋보이는 그의 미니멀 아트적 그림은 조금 있으면 온기가 느껴진다.캔버스에 아크릴릭으로 그냥 채색한 것이 아니라 한지를 배접하듯 부치고 그 위에 염료와 아크릴릭을 혼합 사용했고 한국 전통적 색상인 쪽빛,노란 치자색,다홍을주로 쓰고 있다.모시나 삼베를 겹쳐서 생겨나는 촉감과 헝겁을 이어서 생기는 선의 느낌이 잘 표현되어 있다고 평자들은 말한다. 이번 전시회 그림은 주로 직선을 사용하고 있지만 따뜻하고 인간적인,가공되지 않고,다듬어지지 않은 선들로 오히려 푸근하게 느껴진다(박규형 갤러리현대 아트디렉터)는 것이다. 이처럼 최선호가 한 줄의 직선긋기를 통해 한국화의 새 지평을 열려고 끈기있게 노력하고 있다면 60년대 말 한국을 떠난 뒤 한국에서 첫 전시회를 갖는 박윤정의 ‘한국’은 한번만 정통으로 겪으면 끝인 무지막지한 격통같은 것이다. 한국 대학원에서 도예를 공부한 그는 미국유학과 동시에 한국에서 배운 미술공부를 비롯 한국적 미개념에 일대 혼란을 느꼈고 절망과 방황 끝에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한국’은 저 밑 내면으로 침전된 지 오래였다. 30여년 간 미국에서 9회의 전시회를 열고 현재 샌디에이고 시립대 교수로재직하고 있다.박윤정의 흙을 이용한 조각,부조,설치작업은 한국적 관점에서 보면 이국적일 만큼 주변이나 남의 시선에 괘념치 않은 강렬한 집중력을 내비친다. 박윤정의 이번 전시회 주제는 팽이로 작가는 “팽이가 만든 자국은 우리 인생의 흔적이요,팽이가 주는 그림자는 시간의 흐름이다”고 말한다.우주 공간에서의 인간 모습을 팽이에 비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단순하나 스케일 큰 개념,소수의 강한 색채,단호하고 자신에 찬 형상 등이 어필하는박윤정의 팽이에서 우리는 한국과 상관된 주저흔이나 여백을 발견하지 못한다.한국전시회에서 강조될 수 밖에 없는 박윤정의 이같은 ‘탈’한국성은 작위적인 망각이아니라 드문,보다 생산적인 기억상실로서 오히려 상큼해 보인다. 9월2일까지.(02)732-6111. 김재영기자 kjykj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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