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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강칼럼] 종마의 꿈

    40대 중반쯤의 말쑥한 신사가 병원을 들어선다.뭔가 결심을 한 표정이다.얘기를 나눠보니 음경이 너무 작다는 것이 그의 고민이었다.그런 문제로 고민할 나이를 넘은 것 같아 넌지시 물었다.“부인께서 불평하시나 보죠?”“그게 아니라 아들놈하고 목욕탕 가기가 창피해서요.”“아니,왜요?”“그 놈이 엄마를 닮아 키가 큰 건 좋은데,아,글쎄 그게 저보다 훨씬 크지 않겠습니까?중학생보다 작으니 영 체통도 서질 않고…”. 이처럼 남자의 성기는 더러 신체 이미지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사춘기 애들은 털이 곰실곰실 돋는 친구와 화장실에서 성기를 맞대며 자란다.그러다 제 것이 좀 작아보이면 이유없는 열등감도 느낀다.사춘기 발육은 사람마다 차이가 커 조숙한 애에 비해 조금 늦은 애의 성기가 작은 것은 당연한데도….대개는 자라면서 인격이 성숙해져 ‘인간의 가치는 신체의 사이즈와 무관하다.’는 자각과 함께 이런 갈등에서 벗어난다. 그러나 이런 갈등이 내면의 상처가 돼 성기 크기를 두고두고 고민하는 환자도 종종 대할 수 있다.적어도 과학적으로는 발기때 길이가 4㎝만 되면 성교가 가능하며,성적 만족감은 성기의 크기와 별 관계가 없다.경험이 없는 여성의 경우 너무 큰 성기가 통증을 일으키기도 한다.그러나 성기가 작아 콤플렉스를 느낀다면 의사는 마땅히 진지하게 얘기를 들어주고,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수술로 성기의 크기를 늘려 주기도 한다. 솔직히 나 자신 의사이지만,다른 사람들과 같은 세상을 사는 인간으로서 극히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성기확대술을 선호한다.대부분의 환자는 수술 결과에 만족하지만 크기가 만족스럽지 않다며 불평하는 환자도 더러는 있다.그들에게는 아무리 자료를 들이대며 설득해 봐야 공염불이다.병은 마음에 있기 때문이다. 임상 경험이 늘고 나이가 들어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음경성형술을 받고 돌아가는 환자의 뒷모습이 무서워진다.그들이 등 돌리고 돌아올 때의 표정을 짐작할 수 없어서다.이제는 그들이 종마처럼 멍에없이 마음껏 초원을 달려보기를 바랄 뿐이다. 김영철 선릉 힐비뇨기과 원장
  • [스포츠 라운지] K리그 떠나 자연인으로 돌아온 김 호·이회택

    연말의 분주함에도 불구하고 두 거장을 한 자리에서 만나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이젠 두 사람 모두 ‘실업자’니까. ‘고독한 야인’ 김호(59)와 ‘그라운드의 풍운아’ 이회택(57).얼마 전까지 프로축구 수원과 전남의 사령탑으로 K-리그에서 피를 말리는 경쟁을 펼친 두 거장은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자연인’이 됐다. 산전수전 다 겪은 한국축구의 산 증인들이 모처럼 만나 맹숭맹숭하게 차나 한잔 할 수는 없는 일.이회택 전 감독이 정한 강남의 ‘모처’에서 저녁 늦게 만났다.김호 전 감독도 잘 아는 곳이다. 먼저 도착해 있던 두 거장은 이미 얼굴이 불콰했다.사석에서 둘이 만나기는 1년 만의 일.축구쟁이끼리 만났으니 당연히 축구얘기가 화제였을 터.수인사를 나누자마자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느냐.”고 물었다.직선적인 이 전 감독이 예상대로 “축구얘기”라고 하자,김 전 감독은 “실업자들끼리 뭘 하면 좋을지 논의 중”이라며 술잔부터 권했다. ●“우선 유소년 축구 육성에 전념” 현역 시절이나 지도자 시절이나 한국축구를 대표한두 거장의 퇴역은 ‘세대교체’를 의미할까.스타플레이어 출신으로 지도자로서도 성공한 흔치 않은 경력을 지녔기에 더 그런 생각이 들었다.두 거장을 한 자리에서 보자고 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 같진 않았다.“우리 선배들(대구의 박종환 감독이나 성남의 차경복 감독)도 아직 현역 감독으로 있지 않으냐.”며 “임기가 다 됐고,팀으로서도 변화가 필요했을 뿐”이라고 단순화했다.기회가 오면 다시 감독으로 복귀할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언제쯤이냐.”는 물음엔 즉답을 못했다.“한동안 ‘실업자’로 지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게 돌아온 대답. 자신의 별칭대로 ‘고독한 야인’이 된 김 전 감독은 고향인 통영으로 내려가 당분간 어린 선수들을 지도하며 지낼 생각이고,고문직을 수락한 이 전 감독은 새 감독이 된 이장수 감독이 필요로 한다면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광양에 들러 조언을 해주거나 고향 김포에서 10년째 운영중인 ‘어린이축구교실’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일 생각이다. ●‘센터포워드 이회택,풀백 김호’ 분위기가 무르익자 화제는 자연스럽게 옛날 얘기로 이어졌다.서로의 호칭도 ‘회택이’와 ‘호야형’으로 바뀌어 있었다.현역 시절 김 전 감독은 수비수로,이 전 감독은 공격수로 이름을 날렸다.당대 최고의 축구선수들이었다.대표팀엔 김 전 감독이 1964년,이 전 감독이 2년 뒤에 합류해 73년까지 한솥밥을 먹었다.물론 이 전 감독은 그 뒤로 2년을 더 대표선수로 지냈다. 국가대표팀 감독은 이 전 감독이 앞섰다.90년 이탈리아월드컵을 2년 앞두고 감독 선임 문제가 불거지자 언론들은 그해 프로리그에서 우승한 팀의 감독을 대표팀 감독으로 선발하자고 분위기를 몰아갔다.그해 우승은 이 전 감독이 맡고 있던 포철이 차지했고,김 전 감독이 이끈 현대는 준우승에 그쳤다.자연스럽게 이 전 감독이 대표팀 감독이 돼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하지만 이 전 감독은 두려웠단다.자신을 아끼고 돌봐주던 당시 포항제철 박태준 회장도 “대표팀 감독을 맡지 말라.”고 조언을 하기에 사람들을 피해 절로 피신하기까지 했다.하지만 절까지 찾아온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들과 만난 이 전 감독은 결국 대표팀 감독직을 수락하고 만다.처음 듣는 얘기다. 사실 이 전 감독은 지금까지 그 당시에 대해 말을 아껴왔다.이탈리아월드컵 본선 조별리그에서 3전 전패의 수모를 당하고 돌아와서는 축구에 입문한 뒤 처음으로 말할 수 없는 시련을 겪었기 때문이었다.“다시 태어나 축구를 해도 감독만은 안 하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김 전 감독은 4년 뒤 미국월드컵 때 대표팀 감독에 선임됐다.이 전 감독을 포함해 여러명의 후보들과 경합 끝에 최초의 전임감독이 된 그는 예선 과정부터 위기에 몰렸다.93년 카타르 도하에서 치러진 최종예선에서 일본에 지고도 마지막 경기에서 이라크가 일본과 비기는 바람에 다행히 본선행 티켓을 따냈지만,일본에 졌다는 것만으로도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일본은 지금도 당시를 이른바 ‘도하의 비극’으로 부르며 잊지 않고 있다. 어쨌든 94년 미국월드컵 본선까지 간 그는 조별리그에서는 2무1패의 성적으로 역시 16강 진출을 못 이룬 채 돌아왔지만 예선 과정에서의 비난 대신 ‘명장’이라는 호칭을 얻었다. ●멈출 수 없는 축구 사랑 지도자로서 영욕을 모두 경험한 그들이니만큼 움베르투 코엘류 현 대표팀감독이나 ‘코엘류호’에 대해 할 말이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는 할 말이 없다.그저 불쌍할 뿐이다.”는 대답이 돌아왔다.대신 축구협회와 프로축구연맹에 대한 당부의 말들이 쏟아졌다.특히 김 전 감독이 할 말이 많았다.“시도때도 없이 각급 대표팀에 선수들을 내줘야 하는 프로구단이나 한해에 프로와 대표팀을 오가며 60경기 가까이 뛰어야 하는 선수들 모두 힘든 상황이다.협회와 연맹이 적절히 조절해 줘야 하는데 책임을 안 진다.”고 성토한 그는 축구인들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는 협의체를 구성할 생각도 내비쳤다. 이 말에 현재 축구협회 이사이기도 한 이 전 감독이 발끈했지만 김 전 감독의 축구사랑에는 그도 동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래도 “모든 게 입장이 달라지면 다르게 보이는 것”이라는 말은 잊지 않았다.두 거장의 견해 차와 설전은 서로 알고 지내온 시간만큼이나 오래된 것이기도 하다. ‘실업자’임에도 불구하고 두 거장은 지난 21일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소아암 어린이 돕기’ 한·일올스타 자선경기 때 ‘사랑’팀과 ‘희망’팀 사령탑으로 맞섰다. 경기에 앞서 “일생일대의 경기가 될 것”이라며 잔뜩 힘을 줬지만 결과는 이 전 감독이 지휘한 ‘희망’팀의 4-3 역전승.그러나 “축제는 축제로서 의미가 있다.”는 두 감독의 지론처럼 결과는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하고 싶고,듣고 싶은 얘기가 더 남아 있었지만,설전을 끝내고 자리를 마무리하는 그들의 뒷모습은 한국축구의 거목답게 당당했다. 글 곽영완기자 kwyoung@ 사진 남상인기자 sanginn@
  • [씨줄날줄] 남편의 폭탄주

    ‘josua’씨. 한국은행 직원의 부인이라고 밝힌 님께서 지난 21일 한은 게시판에 폭탄주를 강요하는 남편의 상사를 추방해 달라고 총재에게 띄운 글이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님께서 글을 띄운 시간이 오전 8시14분.아마 술이 덜 깬 채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출근하는 남편의 뒷모습을 지켜보면서 ‘이대로는 안 된다.’고 분노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즐거운 성탄절 게시판에는 아직도 많은 대글이 올라오고 있더군요.인터넷 게시판이 늘 그러하듯 무례한 글도 많지만 너무 노여워 마십시오.때가 때이니 만큼 적절한 이슈를 제기한 때문이라고 생각하십시오. 폭탄주는 왜 마실까요.‘폭탄주 그거 왜 마시는데?’의 저자인 대한매일 이상일 경제부장에 따르면 스무가지나 되는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님께서 총재에게 혼내달라고 말한 직장 상사의 입장에서는 두가지 이유를 우선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하나는 앉자마자 폭탄주를 돌리면 금방 취하고,안주도 많이 먹지 않기 때문에 술값이 덜 듭니다.둘째로는 술잔을 돌리는 우리네 술문화에서는 아무래도상사에게 잔이 집중됩니다.하지만 폭탄주는 술잔이 돌아가기 때문에 상사로서는 술이 집중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죠. 폭탄주는 일종의 평준화적 발상에서 출발합니다.대부분 예외없이 잔이 돕니다.그러나 결과는 불평등합니다.약한 고리(술이 약한 사람)가 가장 큰 타격을 받습니다.대신 강자는 여유가 있습니다. 폭탄주는 감점주의 문화입니다.마시면 당연하고 못 마시면 눈총을 받거나 분위기를 썰렁하게 만드는 사람이 됩니다.전날 술자리를 ‘복기’하는 대화가 오갈 때도 목소리가 작아집니다.오륙도 사오정 삼팔선이라는 신조어가 뭇 샐러리맨들의 가슴을 차갑게 할퀴고 다니는 요즘 윗사람이 권하는 폭탄주를 거부하기는 쉽지 않겠지요. 그렇다고 마냥 폭탄주에 찌들어 살 수도 없는 일이지요.요원의 불길처럼 번지고 있는 폭탄주를 어떻게 제어할 수 있을까요.다년간의 현장 경험으로 미뤄볼 때 폭탄주의 불길을 잡는 첫 소화기는 ‘지부지처’(자기가 붓고 자기가 먹는다) 문화라고 생각됩니다.주당들의 대오각성이 앞서야 하겠지만,이땅의 모든 주부들이 ‘잔 돌리고 온 입에는 키스를 사양한다.’고 선언이라도 하면 어떨까요.같이 고민해 봅시다. 강석진 논설위원
  • 인생행로 바꾼 2인의 성공스토리

    올해 국내경기는 바닥을 모를 만큼 침체일로를 치달았다.56세까지 근무하면 도둑이라는 ‘오륙도’와 45세가 정년이라는 ‘사오정’은 이미 옛날 얘기로 치부됐다.직장인이 38세면 명퇴 대상이라는 ‘삼팔선’이 신조어로 떠올랐고,이십대의 태반이 실직자라는 ‘이태백’도 나왔다.그러나 역경을 도전의 계기로 삼아 새로운 성취를 이룬 사람들도 많았다.연말을 맞아 1997년 외환위기 때 직장을 그만 두고 난 다음,험난한 사회 적응기를 거쳤던 30·40대 이웃 2명의 ‘성공 스토리’를 들어본다. ■제과점 운영 김유중씨 김유중(42)씨는 새벽 5시에 하루를 시작한다.벌써 5년째다.겨울 새벽 바람을 가르는 그의 얼굴에는 어느새 미소가 번진다.김씨가 도착한 곳은 서울 도봉구 창동의 제과점 ‘브레드 이쉬(Bread Yysh)’.언제 봐도 든든한 이름이다.네가족 이름의 영문 앞글자만을 따서 지은 간판을 보면 피로도 잊고 흐뭇해진다.제과점을 오픈한 지 벌써 2년이 지났다.지난해 9월에는 상계역 앞에 2호점까지 냈다.직원만 8명,신선한 빵으로 인근에서는 이미 소문이자자하다. 그는 원래 빵과는 인연이 없었다.1988년 LG반도체에 입사,생산기술팀장을 맡을 때까지만 해도 안정된 직장이었다.그러나 97년말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생활은 꼬이기 시작했다.당시 현대반도체와 합병이 이뤄지면서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이뤄졌고,김씨는 한 가족처럼 지내온 자신의 팀원을 내보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그는 가슴앓이를 하다 결국 사표를 냈다.부인은 충격으로 앓아누웠지만 그의 결심을 꺾을 수 없었다. 그러나 막상 할 일이 없었다.전문성을 살릴 만한 재취업의 길은 어디에도 없었다.이런 그에게 둘째 형이 ‘힘들지만 해볼만한 일’이라며 제빵업을 권했다.팔순 노모는 학원비에 보태라며 쌈짓돈을 모은 100만원을 쥐어줬다.3개월 만에 제빵기술자격증을 땄지만 경험 부족으로 개업은 무리였다.그는 제과점을 전전하며 허드렛일을 하는 직원으로 경험을 쌓아나갔다.월급 60만원에 매일 아침 5시에 출근해 밤 8∼9시까지 일해야 하는 열악한 여건이었지만 빨리 배워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청소에서 설거지,빵판 닦기,재료 나르기 등닥치는 대로 배웠다. 그러나 60만원으로는 생활이 너무 어려웠다.연봉 4000만원 이상 받았던 생활에 비하면 입에 풀칠조차 하기 어려웠다.새벽마다 신문 배달을 위해 몰래 집을 나서는 아내의 뒷모습에 울음을 삼켰다.그 때마다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2년 후 그는 개업을 결심했다.그러나 유명 브랜드 체인점을 열기에는 자본금이 턱없이 모자랐다.그는 대신 발로 뛰었다.사람이 많이 모이는 ‘목 좋은’ 곳을 찾아 여름 뙤약볕 아래 3개월을 헤맸다.결국 권리금도 없고 전세금도 비교적 싼 곳을 찾을 수 있었다. 지난 2001년 7월 창동에 1호점을 연 뒤 최근에는 2호점까지 냈지만 그의 열정은 식을 줄 모른다.그는 “어떤 일을 하더라도 직접 땀흘려가며 배우면 못할 것이 없다.”면서 “내가 만든 빵만 고집하는 마니아들이 있는 빵가게를 운영하는 것이 꿈”이라며 포부를 다졌다. ■공인회계사 한신석씨 한신석(37)씨는 요즘 새로운 계획에 한껏 부풀어 있다.조만간 동료 회계사들과 함께 회계법인을 출범할 예정이다. 그가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딴 것은 지난 7월.‘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하루에도 수십번씩 했지만 결국 이뤄내고야 말았다. 그는 5년 전만 해도 평범한 회사원이었다.대학을 졸업하고 1994년 삼성그룹에 입사,신라호텔에서 직원 교육 업무를 담당했다. 그러나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하는 데는 한계가 많았다.불만이 쌓이다보니 업무에도 충실하기 어려웠다. 그는 결국 지난 97년 MBA유학을 결심하고 회사를 떠났다.하지만 사정은 여의치 않았다. 곧바로 불어닥친 외환위기에 유학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내는 건강이 좋지 않아 세번째 유산을 했다. 당장 먹고 살 길을 찾아야 했던 그는 선배를 통해 보습학원 강사 일을 시작했다.힘든 생활이었지만 재기의 꿈을 버리지 않았다. 99년 9월 태어난 첫 아이를 볼 때마다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각오를 다졌다. 지난 2000년 초 그는 공인회계사에 도전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유학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서 국내에서 할 수 있는 길이었다. 그러나 직장생활로 책과 멀어진그에게 시험 준비는 만만찮았다.국사학과라는 대학 전공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동네 도서관과 독서실을 전전했지만 늦깎이 수험생을 바라보는 시선은 싸늘하기만 했다.학교를 가고,도서관을 가도 항상 외톨이였다.스터디 모임에 끼고 싶었지만 사전 지식이 부족해 같이 하자는 말도 꺼내지 못했다. 자신과의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그에게 큰 힘이 되어 준 것은 가족이었다.아내는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해보자.경제적인 문제로 포기한다면 나중에 후회가 될 것”이라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2001년 첫 시험에 낙방한 뒤 2002년 1차에 합격한 데 이어 올해 7월 2차시험까지 통과했다.3년 만에 일군 성과였다. 그는 “미래를 위해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앉아서 생각만 하지 말고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용기가 중요하다.”면서 “쉽게 회사를 그만두거나 불만을 털어놓기보다는 여유를 갖고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김재천기자 patrick@
  • [오늘의 눈] 김혁규 前지사의 뒷모습

    김혁규 전 경남지사가 19일 퇴임식을 갖고 정들었던 도청을 떠났다.떠나는 김 전 지사 내외나 보내는 직원들 모두 섭섭함에 눈시울을 붉혔다. 오전 9시 도청 도민홀에서 열린 퇴임식은 10년간 도정을 이끌면서 수많은 업적을 남긴 도지사를 떠나보내는 자리 치고는 너무 쓸쓸했다.도의회의 의사일정 변경,한나라당의 항의시위 등 예상되는 마찰을 피해 행사시간을 앞당겼지만 도내 기관·단체장은 물론 시장·군수들조차 한명도 참석하지 않아 허전함을 더했다.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경찰이 행사장 주변을 경계,긴장감마저 돌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후광을 업고 관계에 들어온 김 전 지사는 지난 93년 12월 임명직 도지사로 부임한 이래 행정에 경영기법을 도입,주목을 받았다. 그는 지사로 재임하는 동안 ‘주식회사 경남’의 최고 경영자(CEO)임을 자처하면서 수출촉진과 외자유치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했다.외환위기를 맞았을 때는 “외자유치만이 위기극복의 지름길”이라며 외자유치에 주력,제조업 분야로는 건국이래 최대 규모인 경남태양유전을 비롯,세계 유수의 기업을 경남에 유치했다.그리고 부산시가 단독으로 추진하던 경마장유치에 뛰어들어 공동사업으로 만들어 내는 뚝심도 보였다.그는 부하들에게 큰소리 한번 안 냈을 정도로 온화한 성품이지만 자신에게는 엄격했다.그리고 자기의 말에 책임질 줄 알았으며,무엇보다 깨끗했다. 그런 그가 새로운 정치문화를 창출하기 위해 지사직을 던지는 과정에서는 도민들에게 실망감을 안겼다.사퇴하기 사흘전까지 말바꾸기를 했으며,퇴임식도 당당하지 못했다.이성을 잃은 한나라당과 도의회가 퇴임식에 재를 뿌리려 한다고 이를 피해 돌아가는 모습에서 그가 말한 열린 정치,큰 정치를 찾을 수 없었다. 320만 도민의 환송도 모자랄 판에 ‘도둑장가’ 가듯 서둘러 퇴임식을 끝내고,경찰의 보호아래 도청 문을 나서는 김 전 지사의 뒷모습을 보면서 연민을 느낀 것은 기자만이 아닐 것이다. 이정규 전국부 기자 jeong@
  • 다큐멘터리 사진작가가 본 풍경/서울 선화랑 ‘매그넘 풍경사진’展

    세계적인 사진작가들의 단체인 매그넘(MAGNUM) 소속 작가들의 작품은 보통 다큐멘터리 사진으로 잘 알려져 있다.세계 각지의 분쟁지역,오지 인간들의 삶,대도시의 뒷골목 등 흔히 눈에 띄지 않는 것에 주로 앵글을 맞춰 왔다.그러나 매그넘은 예술사진 분야에서도 탁월한 수준을 자랑한다.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열리고 있는 ‘매그넘 풍경사진’전은 다큐멘터리 보도사진에 매달려온 매그넘으로서는 좀 생소한 ‘풍경사진’의 진수를 보여준다.매그넘 창립 멤버인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조지 로저,로버트 카파를 포함해 질 페레스,알렉스 웹,브루스 데이비드슨,스티브 매커리,조지프 쿠델카 등 매그넘 정회원 40여명의 풍경 사진 130여점이 전시중이다.이번 전시는 1997년 매그넘 창립 50주년을 맞아 기획,1999년부터 시작한 세계 순회전의 하나다.전시작들은 1938년부터 1996년까지 시기적으로 50여년에 걸쳐 있다. 작품들은 풍경사진이지만 시대와 밀접한 연관성을 지닌다.산업화와 도시 풍경,전쟁과 폐허의 풍경 등을 통해 시대정신을 고스란히 드러낸다.사진은 ‘풍경 바라보기’‘실재하는 풍경’‘재발견된 풍경’‘풍경 속의 인간’‘전쟁 풍경’ 등 다섯 가지로 나뉘어 걸렸다.‘풍경 바라보기’는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구성된 풍경사진들을 보여준다.원경에 풍경이,근경에는 이를 바라보는 이들의 뒷모습이 놓인다.‘실재하는 풍경’은 특정한 지역의 아름다움을 드러낸다.‘재발견된 풍경’은 건설하고 파괴하기에 바쁜 현대사회의 시각적인 기호와 메시지를 담은 작품들을 모았다.‘풍경 속의 인간’은 엑스트라가 아니라 풍경의 주인공으로서의 인간의 모습을 표현한다. ‘전쟁 풍경’은 전쟁의 참화로 일그러진 도시,국경지대의 난민 등 인간 유린에 대한 기억과 평화에 대한 염원을 표현한 작품들로 꾸며졌다. 미국 뉴욕에 본부를 두고 있는 매그넘은 2차대전 직후 설립돼 지금까지 전쟁의 목격자 역할을 해왔다.창립자인 로버트 카파는 베트남 취재중 지뢰를 밟아 숨졌고,또 다른 창립 멤버인 데이비드 세이무어는 수에즈 전선에서 이집트군의 기총 소사로 유명을 달리했다. 매그넘의 사진들은 사진가 개인의독특한 스타일로 기록되고 해석되고 재발견된다.그런 점에서 매그넘 회원들은 리포터라기보다는 작가에 가깝다.전시 기간 중에는 매주 토요일 오후 2시 사진평론가 이기명씨가 전시작품들을 설명하는 행사를 마련해 일반의 이해를 돕는다.내년 2월28일까지.(02)734-0458. 김종면기자 jmkim@
  • 노인 연쇄살해 점퍼를 잡아라/100벌 유통… 현장 CCTV에 잡혀

    서울 혜화동 노인살해 사건을 수사중인 동대문경찰서는 지난달 18일 사건 당시 피해자 김모(87)씨 집에서 없어진 검정색 점퍼와 같은 옷을 입은 남자의 뒷모습이 찍힌 폐쇄회로(CCTV) 화면을 공개했다.이 CCTV는 사건 현장에서 50m 남짓 떨어진 건물에 설치된 것이다. 경찰은 화면에 찍힌 168㎝의 키에 30대로 추정되는 남자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전국에 수배했다.또 화면을 찍은 전단지 1만여장을 전국 관공서와 경찰서 등에 배포하고 현상금 5000만원을 내걸었다. 경찰수사 결과 용의자가 입은 검정색 점퍼는 지난해 9월말 이후 생산되지 않고 있으며,100벌 정도만 시중에 유통된 제품인 것으로 밝혀졌다.동대문경찰서 김동규 형사과장은 “인근 주민을 탐문한 결과 화면 속의 남자가 주민은 아닌 것으로 결론지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경찰 관계자는 “범죄 수법과 현장에 남은 족적 등 정황으로 미루어 지난 10월 삼성동 노교수 부부 살해사건과 혜화동 사건이 동일범의 소행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유영규기자 whoami@
  • “가고싶은 고국 땅이건만 ‘자수서’와 바꿀순 없었소”재일 통일운동가 정경모 씨

    ‘이승만 대통령의 장학생’에서 유신 치하의 망명객에 이어 5·6공화국의 ‘국사범’으로 아직도 일본을 떠돌고 있는 ‘통일운동가’. 그 파란만장한 인생의 주인공은 정경모(79)씨다.10여년 전 민족주의자 고(故) 김구·여운형·장준하 등이 저승에서 나누는 대화 형식을 빌려 반민족행위자들을 통렬하게 꾸짖은 ‘찢겨진 산하’(거름 펴냄)로 국내에 알려진 그의 삶은 일그러진 우리 현대사를 웅변으로 보여준다. ●‘이승만 장학생' 에서 ‘국사범'으로 최근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주관한 ‘해외 민주인사 한마당’ 행사에 송두율 교수 등과 함께 초청돼 귀국을 준비하다 ‘자수서’를 내라는 정부 제안에 “비굴한 형식을 거치느니 거부하겠다.”며 끝내 귀국을 포기해 화제가 됐다.초청인사 50명 중 입국을 거부한 두 사람이 정씨와 그의 부인이었다.일본 도쿄에서 작은 학숙(學塾)을 세워 제일교포 2세들과 일본인에게 한국어와 역사를 가르치다 건강이 안 좋아져 지금은 요코하마(橫濱)시 히요시(日吉)에 사는 그를 히요시역 근처 찻집에서 만났다. “‘준법서약서’ 안 써도 된다고 해서 관계자를 만났더니 자수서를 쓰라고 해.차라리 여기서 그대로 살다가 꺼졌으면 꺼졌지 그런 수모는 받아들일 수 없었어.내가 자수서를 쓰면 문익환 목사를 부인하고 나를 파괴하는 거야.” 정씨의 귀국을 막고 있는 것은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이다.89년 문익환 목사와 방북해 김일성 당시 주석을 만났고,그전에도 문 목사의 방북을 준비하러 평양에 갔었다.95년엔 문 목사의 부인 박용길 장로와 함께 방북했다. “방북 당시 문 목사와 허담씨가 서명한 ‘4·2 공동성명’은 남북화해의 초석이었어.거기에 놀란 노태우 정권이 당황해 ‘남북기본합의서’(91년 12월)를 내놓았는데 ‘4·2성명’을 계승한 거야.2000년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발표한 6·15 성명도 당시 성명에서 연유한 것이지.그런데 어찌 ‘실정법을 어긴 죄인임을 자인하고 깊이 반성한다.’는 자수서를 내미는가 말이야.” ●판문점 통역일로 문익환목사와 인연 그가 문익환 목사를 사주해 방북을 권유했다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문 목사와의 인연은 50년 전에 맺어졌다.1924년 서울에서 태어난 정씨는 경기중·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의대를 다니다 미국 에모리대학으로 유학을 가 화학을 전공한 뒤 대학원에 진학했다.당시만 해도 환전이 불가능해 친분이 두터웠던 이승만 대통령의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가 학비를 대주기도 하고 송금도 도와주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장면 주미 대사가 “당신 같은 사람은 공부만 할 게 아니라 조국을 위해 뭔가 해야 한다.”고 권유해 미국 국방부 직원이 돼 도쿄 극동군최고사령부에 근무하면서 ‘유학파’로 같은 일을 하러온 문익환을 만났다.두 사람은 정전협정이 논의되던 판문점에서 통역장교로 함께 일했다. 통역일은 정씨의 인생을 180도로 바꾸었다.좌익이 데모하는 게 보기 싫어 유학을 갈 정도의 보수적 학생이었던 정씨는 중국의 펑더화이 사령관 등을 만나면서 한반도 정세를 공부할 필요성을 느껴 에드거 스노의 ‘중국의 붉은 별’을 비롯한 동북아 현대사 서적을 탐독하며 ‘미국의 정체’를 파악했다.그러던 정씨는 1970년 박정희 독재 정권에 환멸을느껴 일본으로 망명을 감행했다. 정씨에게 송두율 교수 입국이 오버랩되는 건 당연하다.송 교수를 둘러싼 파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인텔리티까지 망가지는 모습을 보면 인간적으로는 안타깝기도 하지만 국정원 능력을 과소평가한 거지.모든 자료를 다 갖고 있다가 증거를 들이미니 그때마다 시인할 수밖에.차라리 황장엽씨의 폭로 등 모든 것을 털고 귀국하는 게 나았을 거야.” 내친 김에 국가보안법의 존재 자체는 부정할 수 없는 게 아니냐고 물어보았다.“국정원의 입장은 이해해.하지만 실정법 위반 이전에 문 목사와 나의 방북 의미를 생각해야 돼.그리고 늙으면 고향에 묻히고 싶은 게 인간의 본성이고.자수서에 이름 석자 써넣으면 고국에 갈 수 있지만 살아온 의미를 부정할 수는 없잖아.” ●‘장길산' 일본어 번역 내년7월 마무리 화제를 바꿔 황석영씨의 소설 ‘장길산’의 일본어 번역에 대해서 물었다.황씨는 86년에 “제 작품 번역은 선생님 이외에는 해낼 분이 없다는 것을 알고 찾아왔습니다.”라고 부탁했다고 한다.이미 ‘한씨 연대기’ 등을 통해 황씨에게 매료된 상태였고 ‘장길산’을 읽느라 전철역을 지나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어서 선뜻 동의는 했지만,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 일역 등으로 짬을 못내다가 밀입북했던 황씨가 귀국해 구속된 93년부터 ‘마음의 빚’에 눌려 번역을 시작했다.94년 1권 번역 출간에 이어 1년에 1권꼴로 9권을 번역한 상태다.내년 7월이면 완역한다.(정씨는 ‘장길산’ 일역 관련 일화 등을 최근 창비사가 낸 ‘황석영 문학의 세계’에 ‘황석영과 나’라는 글에서 밝혔다.)꼿꼿하게 원칙을 지켜온 삶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나처럼 살라고 강요할 수는 없지만 그런 사람이 하나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만해 한용운 선생 빼고 독립선언문 쓴 33인이 모두 넘어갔잖아.그런 지조를 지킨 ‘최후의 1인’이 있었기에 다른 사람들이 일제와 싸울 수 있지 않았겠어.” 인터뷰를 마칠 즈음 갑자기 비가 내렸다.댁까지 바래다드리겠다는 기자의 말에 손사래를 치면서 지팡이에 의지해 발걸음을 옮기는 그의 뒷모습에는 평생 신념을 지키며 산 올곧음이 배어나는 것 같았다. 요코하마 이종수특파원 vielee@
  • 옆구리 허전한데 남자나 꾀어볼까/ 연애9단 두 여우 의 달콤쌉싸름한 사랑게임

    구구한 설명이 필요없는 할리우드의 ‘문제적’ 여배우 니콜 키드먼과 르네 젤위거가 로맨틱 드라마로 다시 팬들을 찾아온다.‘버스데이 걸’(Birthday Girl·10일 개봉)과 ‘다운 위드 러브’(Down with Love·17일 개봉)가 그들의 새 영화.‘연애 9단’이 된 두 여배우의 달콤쌉싸름한 사랑게임이 초가을 극장가를 달굴 것 같다. #니콜 키드먼의 ‘버스데이 걸’ 출연하는 영화마다 화제작으로 띄워올리는 할리우드 대형배우 니콜 키드먼도 때로는 부담없이 영화를 찍고 싶을 게다.‘버스데이 걸’은 그녀가 모처럼 쉬어가는 영화다. 영국의 신인감독 제즈 버터워스가 연출한 이 영화는 키드먼이라는 빅카드를 내세움으로써 더욱 각별해졌다.더군다나 영화속의 키드먼은 ‘한탕’을 위해 순진한 남자의 순애보를 훔치는 뻔뻔스러운 러시아 여자다. “평생의 동반자를 이웃에서 찾는 건 끔찍한 일”이라고 굳게 믿는 성실한 은행원 존(벤 채플린)이 인터넷으로 신부를 ‘주문’한 게 사단이다.평소 말주변이 없어 친구가 없던 존은 말벗이 돼줄 애인을 원했건만 정작 공항에 ‘배달’돼온 여자는 한마디도 소통할 수 없는 러시아인 나디아(키드먼).고민끝에 그녀를 돌려보내려 하지만 적극적인 육탄공세에 눌려 얼렁뚱땅 한집에 살게 된다. ‘그렇고 그런’ 로맨틱 코미디인가 싶지만 러시아에서 나디아의 사촌오빠가 찾아오면서 영화는 진로를 살짝 바꾼다.사촌 유리(마티유 카소비츠)가 나디아와 한통속인 인터넷 사기중매꾼이란 사실을 귀띔한 뒤 돈가방을 목표로 쫓고 쫓기는 코믹 범죄드라마 색채를 덧칠해간다. 순진한 ‘바른생활맨’ 남자주인공이 의사소통할 대상을 찾다가 은행절도범으로 내몰리는 해프닝은 생각없이 웃어넘기기엔 메시지가 꽤 진지하다.전라의 키드먼 뒷모습이 공개되는 것도 무시못할 감상포인트.줄담배에 뚝뚝 부러질 듯 투박한 러시아어를 구사하는 키드먼의 대사연기도 영화의 질감을 한결 생생하게 다듬는다. #르네 젤위거의 ‘다운 위드 러브’ 르네 젤위거가 이완 맥그리거와 한판 로맨스를 엮는 영화.싱겁고 맨숭맨숭하게 들릴 것이다.하지만 ‘다운 위드 러브’를 압축하기에 이보다 더 효율적인 표현은 없다.소박하고 수수한 캐릭터로 승부를 걸어오다 뮤지컬 영화 ‘시카고’에서 화려한 끼를 검증받은 젤위거.그녀가 이번엔 ‘찜’한 남자의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고도로 치밀하게 계산된 인생을 사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사랑을 거부하다.’란 뜻의 영화제목은 극의 주인공 바바라 노박(젤위거)이 쓴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출간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된 책의 내용은,여자도 사랑에 얽매이지 말고 자유롭게 섹스를 즐기며 사회적 성공을 노리자는 것.자유연애와 여권신장을 외치는 페미니스트 명사가 된 그녀에게 유력 남성잡지의 스타기자이자 소문난 바람둥이인 캐처 블락(맥그리거)이 인터뷰를 요청한다.그런데 무슨 연유에선지 뻣뻣하게 콧대만 세운다. 세상의 주목을 받는 미모의 페미니스트와 천하의 바람둥이 매력남이 옥신각신 펀치를 주고 받다가 사랑에 빠지는 것이 영화의 얼개.1960년대 뉴욕의 야경 위로 보름달이 장난처럼 붕 떠오르거나 배우들의 과장된 제스처·대사가 뮤지컬처럼 색다른 감흥을 안긴다.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노박의 숨겨진 사연이 ‘깜찍한’ 반전이다.패션모델 뺨치게 화려한 배우들의 의상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본전 생각은 나지 않을 영화다. 황수정기자 sjh@
  • 송두율 파문 / 宋교수 부인의 ‘못다한 얘기’

    지난 5일 밤 본지와 단독인터뷰를 가진 재독 철학자 송두율 교수의 부인 정정희씨는 6일 “어지럽던 마음을 털어놔 마음이 홀가분하다.”고 말했다. 정씨는 인터뷰에서 두 아들의 얘기를 많이 털어놓았다.아버지가 겪었던 아픔을 고스란히 두 아들이 넘겨받는 것 같다며 인터뷰 도중 몇차례나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정씨는 “두 아들이 한국말을 못하고 한국 문화를 영원히 잊게 되는 것이 가장 두려웠다.”면서 “공부를 1,2년 늦게 마치더라도 뿌리를 찾아주고 싶어 큰 아들은 서울대 어학당에 추천서까지 보냈었다.”고 말했다. 정씨는 두 아들이 먼저 독일로 떠나기 전인 지난 3일 밤 송 교수의 다큐멘터리 ‘경계도시2’ 편에 출연해 “이 영화가 우리 젊은 세대들에게 한반도의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며 남긴 말을 몇번이고 떠올린다고 말했었다. 정씨는 송 교수가 수십년 동안 해외 민주화운동의 상징으로 불리는 동안 항상 그늘에 가려져야 했다고 털어놨다. 정씨는 “1974년 유럽지역의 민주인사들이 민주사회건설협의회를 만들 때 나도 창립멤버였다.”면서 “하지만 신변의 위협을 느낄 만큼 불안한 날이 많아 아이들 교육에만 신경을 쏟아부었다.”고 말했다.정씨는 1966년 독일 뮌헨대에서 독문학과 도서관학을 공부했고 30년 남짓 베를린예술대학에서 사서로 일하고 있다. 정씨는 한국에서 사서가 박봉에 시달릴 정도로 낮은 대우를 받는 직업으로 여겨지는 것을 의아해했다.독일 대학의 사서는 단순히 책을 빌려주는 역할에만 그치지 않는다.해당학과 교수와의 협의 절차를 거쳐 사서를 선정할 정도로 중요한 위치라는 것이다. 지난달 22일 귀국한 이후 자고 일어나면 들려오는 ‘추방’과 ‘사법처리’소식에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날이 이날로 보름째인 정씨는 “남편의 뒷모습이 요즘처럼 쓸쓸해 보인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정씨는 “모든 것이 잘 풀리기만 바란다.”면서 “검찰 수사가 끝나고 여건이 허락되면 남편이 유년시절을 보냈던 광주에 가서 좋은 사람들과 만나 따뜻한 고국의 정을 느끼고 싶다.”고 말했다. 구혜영기자 koohy@
  • 낯뜨거운 리얼리티프로 봇물/CATV, 섹스·불륜소재 해외프로 잇단 방영

    케이블 TV에 시청자들의 엿보기 심리를 교묘히 활용한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넘쳐나고 있다.갈수록 정도가 심해져 섹스나 불륜을 소재로 한 선정적인 내용도 안방까지 버젓이 전달한다.미국과 캐나다의 케이블TV 프로그램을 그대로 들여온 것이 대부분이라,미국식 성문화의 침투를 가속화시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일고 있다. 지난주 화요일 밤 12시 다큐전문 Q채널에서 방송을 시작한 미국의 ‘현장고발!치터스(배신자)'가 대표적인 예.출연자의 의뢰로 배우자의 불륜을 추적한다는 설정 자체도 상식 이하지만 내용은 더욱 황당하다.밀회를 나누는 은밀한 장면도 일부 모자이크 처리만 한 채 그대로 방송됐다. GTV가 매일 오후 11시 내보내는 ‘섹스 카운슬링’도 그런 사례의 하나.캐나다TV의 ‘선데이 나이트 섹스쇼’에 한글 자막만 덧붙였다. 간호사 출신의 수 존슨 할머니가 시청자들의 성과 관련한 각종 고민을 전화로 해결해주는 구성인데 오럴섹스 등 얼굴이 화끈거릴 만한 내용이 아무렇지 않게 흘러나온다.선정성을 의도한 프로그램은 아니라지만 성관념 차이를 감안하면 시기상조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지난 1일 개국한 영화·오락채널 XTM은 스타들의 뒷모습을 파헤치는 ‘스타 파파라치’,평범한 사람을 등장시켜 예기치 못한 상황에 대한 반응을 살피는 ‘리얼리티쇼!오 마이 갓!’‘빅 브라더’ 등 세계적으로 인기있는 해외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대거 편성했다.미국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는 ‘제리 스프링거 쇼’도 빠지지 않는다.충격적인 내용으로 끊임없이 저질시비가 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영화채널 캐치온은 지난 금요일부터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의 ‘부적절한 관계’로 유명해진 모니카 르윈스키가 진행하는 짝짓기 프로그램 ‘미스터 퍼스낼리티’를 방송하고 있다. 이순녀기자 coral@
  • 이승엽 홈런 아시아 新 / 이승엽선수 부인 이송정씨

    야구팬이 아니더라도 많은 국민들은 요즘 들어 TV 앞에 앉는 일이 잦았다.‘국민타자’ 이승엽의 시즌 최다홈런 아시아 신기록을 기대하는 열망을 안고 TV 앞을 지키던 이들은 간간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관중석에 앉아 이승엽의 플레이를 지켜보는 여성을 목격하곤 했다. 비록 홈런은 아니지만 이승엽이 안타라도 치면 수줍게 웃는 표정을 짓기도 하고,상대 투수가 어이없는 투구로 공을 쳐내지 못하도록 할 때는 마치 자신이 타석에 선 것처럼 화난 표정을 짓기도 하는 등 TV 화면에 나타난 그녀는 관중석에 앉은 또 다른 이승엽 같았다. 하지만 좀체 환한 표정을 짓지 않던 그녀의 얼굴이 2일 밤 비로소 활짝 펴졌다.이승엽의 아내 이송정(21)씨.“그동안 홈런을 못 치고 돌아서는 뒷모습을 볼 때 제 가슴도 아팠어요.마음이 얼마나 안타까운지 다른 사람들은 알기 어려울 거예요.” 지난달 28일 SK전 이후로 5경기째 남편 이승엽을 따라다니며 관중석에서 남편의 모습을 지켜본 이씨는 이날 대구구장에서 열린 롯데전에서 그렇게 기대하던 홈런이 터지자 그동안쌓였던 마음 고생을 털어놓았다. 최근 이승엽이 악몽에 시달리며 밤잠을 설쳐 견디기 어려웠다는 이씨는 “차라리 홈런을 치지 말라고까지 말했다.”며 “며칠 전 호랑이가 품안에 들어오는 꿈을 꿔 예감이 좋았으며,지금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남편의 홈런기록 경신에 대한 주변의 기대 때문에 최근 1주일은 1년처럼 길게 느껴졌다는 이씨는 “솔직히 제 마음이 더 떨려서 집에서 TV로 보고 싶었지만,직접 경기장에 와서 응원하면 남편이 더 힘이 날 것 같아 운동장에 나가게 됐죠.”라고 심정을 토로했다. 하지만 홈런은 터지지 않았고,게다가 원정경기에서는 경기가 끝나면 선수단은 바로 지정 숙소로 가기 때문에 이씨는 이승엽의 얼굴을 잠깐 보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전화로나마 위로를 했다.“심야통화로 꼬박꼬박 남편의 목소리를 듣는데 어제(1일)는 56호 홈런을 앞두고 마음에 부담이 되는 것 같았어요.하지만 이제는 후련하고 남편이 자랑스러워요.” 결혼한 지 1년9개월째인 이씨는 결혼할 당시만 해도 야구의 ‘야’자도 몰랐으나이제는 매일 아침 신문의 야구기사를 꼼꼼히 읽을 정도로 열렬한 야구팬이 됐다.지난달 10일 53호 홈런을 친 뒤로 극심한 슬럼프에 빠진 이승엽에게 “밀어치세요.”라며 조언을 해줬을 정도로 이젠 타법에 일가견(?)을 갖췄다.이승엽은 아내의 말을 들었는지 지난달 21일 잠실 LG전에서 밀어쳐서 54호 홈런을 뽑아냈다.여고시절 패션모델로도 활동했고 중앙대 연극학과 2학년에 재학중인 이씨는 172㎝의 늘씬한 키와 미모로 이승엽 못지않은 인기를 끌고 있기도 하다.25일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에는 ‘이쁜이 이송정의 카페’(cafe.daum.net/leesj1004)가 개설돼 7일 만에 회원 수가 2400명을 넘어섰을 정도. 일본 공영방송 NHK가 야구장에서 응원중인 그녀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가 그녀의 얼굴은 국제적으로 알려지기도 했다.다음주부터 방송될 아파트 CF 촬영을 마쳐 광고모델로도 데뷔했다. 대구 이창구기자 window2@
  • [마당] 지친 대학강사들의 뒷모습

    “대학강사 5년이면 총기자율화를 주장하고,대학강사 10년이면 전쟁이나 천재지변의 징후를 반가워한다.” “대학강사 5년이면 반항인 되고,대학강사 10년이면 폐인 된다.” 대학강사 시절 강사들끼리 주고받던 자조적인 농담들이다. 자가발전적으로는 ‘프리랜서’,자기부정적으로는 ‘일용잡직’,자기관찰적으로는 ‘보따리장사’.한 외국인 교수는 ‘상아탑의 노예’라고도 했던가.대학강사는 대학 수업의 50% 이상을 담당하지만 대학 교직원에 속하지 않는다.의료보험은 물론 월급(월급이 아니라 시간강사료라 한다.)도 없고 그러니 수당도 상여금도 퇴직금도 없다. 대학강사는 가방이 많다.요일별,대학별,과목별로 출석부와 교재와 강의안과 과제물 등을 가방별로 구분해서 넣고 다녀야 한다.연구실이 없는 대학강사들은 벤치나 차안이 연구실이다.그곳에서 식사를 하고,강의 준비를 하고,심지어 잠깐 눈을 붙이기도 한다.대학강사는 ‘구멍난’ 모든 과목을 가르친다.자신의 전공이 아니면 공부하면서 가르친다.그러나 그 구멍이 메워지면 다음 학기로 그만이다.대학강사는 강사료로 먹고살지 못한다.평균 연봉이 800만원이니 배우자들이 생계를 책임지기 일쑤고,돈이 되는 그밖의 부업을 해야 한다. 열혈 신참강사를 만나면 노련한 고참강사는 반농담 삼아 일갈한다.“야,야,힘빼지 마라,받는 만큼만 가르쳐!”라고.시간당 평균 강사료가 3만원을 밑도니,수강생이 100명이라면 1인당 300원어치만 가르치면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게다가 강의 시간의 서너배,경우에 따라서는 열배에 해당하는 수업준비 및 수업 운영 및 평가에 투자되는 시간까지를 합친다면.이런! 나는 이해할 수 없다.같은 학위와 같은 연구실적을 가지고 운좋게 교수가 된 사람과 교수가 되지 못한 강사의 연봉이 10배나 차이 나는 현실과,자신감과 자존심으로 연구와 교육에 몰두해야 할 시기에 생활고와 줄서기로 소진해야 하는 이 현실을.만년 강사가 이혼의 사유가 되기도 하는 현실과 6만명의 강사들이 자녀들에게 자신의 직업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현실을.“평생 대학강사나 해먹고 살아라.”가 가장 큰 욕이 되고 있는 이 현실을. 조금 과장한다면 박사 2명 중 1명이 실업자이고,인문학 박사나 여성 박사는 그 배를 넘어서 4명 중 3명이 실업자에 육박해 있다.대학교육 이외에도 무려 5년에서 10년을 진골이 빠지도록 공부해서 최저 생계비조차 책임질 수 없다면 누가 이 지루하고 초라한 자리를 지키겠는가.명석하고 명민한 젊은이들이 모두 이 자리를 기피한다면 우리 사회의 지식 인프라는 붕괴될 것이고 창조력은 고갈될 것이 뻔하지 않은가. 오늘의 교육이 내일의 사회를 낳는다.특히 대학은 사회가 필요로 하는 가장 전문적이고 가장 실용적인 미래 교육을 담당한다.그렇다면 대학교육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는 대학강사들의 비전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비전을 퍼뜨릴 수 있는 포자가 아니겠는가.보다 우수한 인재들이 자긍심을 가지고 학문과 교육에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여건 마련과 그 제도적 개선은 우리 사회의 시급한 과제이다. 얼마 전에 읽은 대학강사 시인이 쓴 시구절이 떠오른다.“강의동 현관의 ‘잡상인 출입 금지’ 푯말 앞에서/속이 뜨끔해지는 선생”,“가르치기는 하되 ‘쯩’이 없는사람/이 생 전체가 집행유예이고 무임승차”인 사람,“가판대에서 뉴 밀레니엄 복권을 사는 선생/연말은 언제나 파산지경인데 새천년인데”(이영광 ‘함박눈’)… 정 끝 별 시인 열린사이버대 교수
  • [길섶에서] 체벌 유감

    필부(匹夫)들의 생각이 늘 그렇지만,수험생인 아들에게 “뭐 힘이 될 일이 없을까.” 찾다가,승용차로 등교를 도와주기로 했다.10분이 조금 넘는 짧은 거리이지만,처음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그런데 요즈음은 차에 오르면 아들은 아예 자버린다.“꿀맛이겠지.” 싶어 등교시간이 조금 이르다 생각되면 2∼3분쯤 걸리는 학교 근처 아파트단지를 한바퀴 더 돌곤한다. 그날 따라 너무 피곤해 보여 아파트단지를 한바퀴 더 돌려고 들어섰는데,마침 공사중이었다.서투른 운전솜씨에 뒤로 나오다 보니 시간이 꽤 걸렸고,등교시간을 2분정도 넘긴 것 같았다.뛰어가는 아들녀석의 뒷모습이 안쓰러워 ‘혹여’하는 생각에 학교안으로 들어섰다.서 너명의 학생들이 운동장을 뛰고있는 게 아닌가.“지각생들인가.” 아들녀석을 발견한 순간,계단에 회초리를 들고 서있는 한 남자선생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고 확 열이 받쳤다.“아니 밤새 공부하느라 피곤한 애들에게 체벌이라니…” 막무가내로 한번 따져보려다 ‘아들사랑’과 ‘제자사랑’이 조금은 다를 것 같아 힘들었지만,그만뒀다. 양승현 논설위원
  • [대한포럼] 뒷모습이 아름다우려면

    노동자 출신인 룰라 브라질 대통령이 지난 23일 리우 데 자네이루의 갈레앙 공항에서 열린 한 추모식에 참석했다.아난 유엔사무총장도 참석한 행사에서 그는 “유엔은 가장 뛰어난 외교관을 잃었고,브라질은 상징을 잃었습니다.”라며 슬퍼했다.브라질 국기에 덮혀 영면의 길을 떠난 이는 지난 19일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테러공격으로 사망한 데 멜루 유엔특사였다. 바그다드의 그 날 이후 미국은 이라크내 유엔의 역할을 늘리고 다국적군을 구성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지만 국제사회에서 선뜻 호응을 못받고 있다.‘잘 안 되니까 뒤늦게 여기저기 손을 벌린다.’는 빈정거림을 듣는 처지다.전쟁을 시작하기는 쉽지만 끝내기는 얼마나 어려운가.전쟁 때마다 기염을 토하는 정밀무기를 앞세워 쉽게 이라크를 굴복시켰지만 아랍권 ‘전사’들이 속속 집결하고 있는 이라크에서 미국은 전쟁 기간보다 전쟁이 끝난 후 더 많은 희생을 치르게 생겼다. 뒷모습이 어수선하다는 점에서 남북정상회담도 닮았다.민족의 화해,분단사의 종식을 위한 결단이었던 정상회담도 불법송금사태가 터져 나오면서 빛이 바랬다.재판을 받고 있는 정치인들은 역사가 평가할 것이라고 생각할 터이고 이런 생각에 동의할 사람도 많지만 불법 송금과 비자금 의혹이 남긴 생채기가 흉터로 남게 된 것 또한 사실이다. 양길승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 파문은 청와대가 처음 조사할 때 제대로 조사하고,결과에 걸맞은 조치를 취했다면 이렇게 덧나지 않았을 것이다.2차 조사 결과가 나오기 직전 청와대 관계자들은 “2차 술값이 40여만원밖에 나오지 않았다.”면서 의문을 제기하는 언론에 대해 분한 마음을 울컥울컥 쏟아내곤 했다.결국 우스꽝스럽게 돼 버린 거짓말로 인해 나라 전체가 에너지를 얼마나 소모하고 있나.괜스레 그를 봐준다는 게 거꾸로 나라와 개인 모두에 시련을 안겨주고 말았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지만 끝도 반이다. 28일이면 미국의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유명한 ‘꿈’ 연설을 한 지 40년이 된다.“나는 꿈이 있습니다.”로 반복되는 그의 연설은 미국인 더 나아가 전세계인의 영혼을 난타하는 커다란 북이었다.그가 남긴 꿈은 완성을기다리는,아니 완성을 재촉하는 꿈으로 아직도 우리를 두드린다.그가 걸어온 인생을 두고 ‘시작은 한미하였어도 끝은 심히 장대하리라.’는 성경 구절을 인용해도 망발이라고 흉볼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지구촌 여기저기를 오가는 이야기 속에 다시 우리 주변으로 시선을 돌려보자.청주지검에 대한 대검의 감찰 결과가 발표됐지만 지검 내부 압력에 대한 의혹은 가시지 않고 있다.구속된 김도훈 전 검사의 변호인단은 내부 압력을 입증하겠다고 벼른다.또 청주지검의 수사 과정에서 향응이 있었던 K나이트클럽의 사장 이원호씨 계좌에서 수억원이 빠져 나간 것으로 드러나 사용처를 수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양길승씨 파문의 복사판이 될지 국민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사법부 개혁도 이제 시작이다.시간을 벌었다고 어물어물거리다간 더 큰 개혁의 태풍 앞에 놓일 것이다. 참여 정부의 첫 6개월이 혼돈 속에 지나갔다.이 정부가 끝까지 이러한 혼돈 속에 있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뒷모습을 생각하면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궁리가 트일 것이다.공식석상에서 대통령을 개구리에 비유해 국민의 귀를 더럽힌 야당도 마찬가지다.볼썽사납게 상대를 헐뜯은 결과는 선거 패배와 낮은 지지율이 아닌가. 지도자들이여.문을 열고 들어갈 때의 위풍당당한 모습만이 아니라,문을 나설 때 뒷모습이 어떠해야 할지를 늘 생각하십시오.끝도 절반입니다. 강 석 진 논설위원 sckang@
  • [길섶에서] 뒷모습

    어린 시절 친구 한 녀석은 뒷모습 예찬론자다.출퇴근길 버스나 지하철에서 사람들의 앞모습보다 뒷모습을 유심히 관찰하는 것이 그의 버릇이다.뒷모습은 어색한 시선이 부딪혀야 하는 곤혹에서 벗어날 수 있고,숱한 상상력을 자극한다는 것이다.가끔 뒷모습에서 삶의 이력이 확인되기도 한단다.그리고 관찰 결과,앞모습보다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 훨씬 많다고 자신한다. 오늘도 낯익은 얼굴들이 간혹 어색한 표정으로,때로는 억울하다는 시늉을 지으며 구치소행 승용차에 오른다.좌석에 기댄 이들의 뒷모습에는 체념과 불안의 기운이 짙게 배어 있다.또 한번도 얼굴을 마주친 적이 없는 이들은 앞으로 온갖 나쁜 짓을 하다가 카메라만 들이대면 뒷모습을 내세운다.어떤 시인은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은 늘 한결같았던 사람이었다.’고 노래했다.그는 ‘유난히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을 본다는 것은 여름날 석양의 지는 해를 보는 것’이라고 했다.하지만 친구와 시인의 뒷모습 예찬론은 먼 나라 얘기처럼 느껴진다. 우득정 논설위원
  • [21세기 한국을 읽는다]방민호 교수가 만난 문학지성 (4)이청준

    오로지 소설가로 남기 위해 일찍이 대학 교수직을 버리고 서재 속으로 들어간 사람,사십 년 세월을 오로지 이야기 쓰기로만 일관해 온 사람,이데올로기와 정치적 견해를 떠나 지역과 성별을 떠나 누구나 그가 한국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고 감동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직조해 내는 사람,그가 바로 이청준이다.문학에서 장인다운 장인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한국의 문학과 예술이 완성으로 가는 길을 찾아,그것이 사람들에게 해(害)나 독이(毒) 아니라 오로지 미(美)와 이(利)가 되는 길을 찾아 남도인 이청준을 찾아 가자.남쪽으로 가자. 서울 양재동 허름한 커피숍 2층으로 선생을 안내하여 자리를 잡자마자 선생은 담배를 꺼내 피워 문다.그리고 어딘가 못 올 데 와 있다는 심정을 표현하는 듯한 부자연스러운 동작으로 메모지를 꺼내놓고는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갈 태세다.무엇이든 예정하지 않은 일은 피하려 하는,조심스럽다고나 할까 섬세하다고나 할까,자리를 가리지 않는 선생의 소탈함은 그런 까다로움을 감추기 위한 포즈라고나 할까.나는 선생의불편한 심정을 덜어드리고 싶어 단도직입하기로 한다. “서울을 떠나셨는데 무슨 이유라도……,있으신지요?” “삶이나 문학이나 밤 산길 가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거든요.결국 헤맨다는 건데,헤매다 보니 문학 사십 년이더군요.지금은 내가 어디에 있는지 자리를 확인해보고 싶고,그러려니 주변 공간을 정리하고 싶어졌어요.예를 들면 온 집안에 흐트러져 쌓인 책 같은 거 말이에요.그 책들 좀 정리해서 제대로 만나고 싶은 거……” “올해 펴내신 장편소설 ‘신화를 삼킨 섬’을 읽다보니 옛날 ‘이어도’가 생각났습니다.감명 깊게 읽던 대학 시절이 그리워지더군요.신화나 무속세계에 천착하시는 이유가 무엇인지요?” “우리 현재의 삶을 이끌어가는 원리가 있는데,하나는 꿈이고,다른 하나는 그 꿈을 실현하는 힘이겠지요.꿈은 내일에 대한 이념이랄까요? 이것을 공적으로 실현하는 힘은 권력으로 귀착되는 것 같아요.삶이 이렇게 진행된다면,그것을 뒷받침해주는 것은 정신인데,그 정신이 태어나고 거(居)하는 곳은 우리의 역사지요. 우리는 지금까지 역사에 대한 논의를 수없이 해왔어요.그렇지만 실제 우리 삶이 얼마나 행복해졌느냐,값지게 살고 있느냐,이런 문제로 들어가 보면 제자리걸음을 해왔다는 생각이 들어요.뭔가 빠져 있고 겉돌고 있는 것 같아요.이런 생각 끝에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유전적으로 가지고 나오는 어떤 심성,즉 영적인 차원과 넋의 문제에 대한 천착이 결여되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그 부분을 빼 놓고 역사의 차원,과거 경험의 차원에서만 소설을 써서는 안 되겠다,더 깊은 근원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는데 그게 바로 신화의 세계죠.그 가운데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게 우리 무속이죠.그 무속 혹은 신화에 우리들이 이어온 넋의 요소가 가장 많이 내포되어 있지 않았느냐 하는 이야기입니다.” “선생님의 문학관이라고 보아도 될까요?” “글쓰기라는 것이 결국에는 하늘이에요.하늘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문제라는 거죠.달리 이야기하면 그것은 우주관이지요.현실이나 역사는 어떻게 보면 특수성입니다.보편으로서의 하늘,곧 신화를 확대해가면 우주적 통합에 다다를 수도 있다고 봅니다.” “사람들은 선생님 작품 가운데 ‘서편제’를 가장 잘 알고 있을 듯한데요.아마 임권택 감독 덕분이시겠지요.그러나 그것이 ‘남도사람’이라는 연작소설집의 한 부분이고 또 ‘언어사회학 서설’이라는 다른 연작소설집과 연결됐다는 것은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우리 삶에서 신화적인 요소는 늘 중심 역할을 해왔고,문학도 그런 요소를 배제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남도 사람’은 그런 세계를 찾아다닌 과정과 결과를 보여준 것이고 ‘언어사회학 서설’은 세속적이고 도회적인 삶에 대한 반성을 시도한 것이었습니다.이렇게 도시와 시골을 왕복하는 속에서 삶의 균형,즉 삶의 현장성과 근원적인 것 사이에 균형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신화적인 세계는 현실적인 삶의 겹을 이루어줄 요소라는 것이지 그것 자체로 돌아가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나는 이쯤에서 내가 정작 여쭈어 보고 싶었던 이야기로 들어가기로 한다.선생은 남도의 예인,장인이고 한(恨)의 초극과 승화를 보여주는 예술가다. “우리 문화예술의 가장극명한 특징 가운데 하나로 한의 정서를 드는데요.그것이 무얼까요?” “이렇게 정리해봅니다.사람이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를 잃어버리고,자기가 누려야 할 몫을 누리지 못했을 때 겪게 되는 감정의 부조화라고.부조화로 인해 겪게 되는 삶의 정서라는 것이지요.흔히 한 맺힌다는 것은 심한 일을 당했다는 거거든요.가령 광주 항쟁 이후의 문제같은 것은 광주 사람들이 시민의 자리에서 쫓겨나 부당한 대우를 받았기 때문에,시민으로서 누려야 할 몫을 못 누린 때문에 생겨난 한의 문제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그런데 이렇게 한을 정리해놓고 보면 원한도 될 수 있지요.이것을 풀어 다시 정상으로 되돌아가려면 그것을 씻어내야 하는데 그럴 요량으로 만든 것이 우리네 굿이죠.그것을 남에게서 풀려고 하면 앙갚음이 되고 복수가 되죠.일종의 폭력이 되는 것이죠.그것을 자기 안에서 자기가 풀 때 원한은 원한에 그치지 않고 창조적으로 승화되는 거지요.용서하고 받아들여서 자기 삶의 에너지로 전환시킨단 말이죠.그러려면 굉장히 내면적인 자기 결단이 필요하죠.그리고 그 부분이 문학같은 예술의 몫이지요.문학의 몫이라는 게 결국은 우리 정신이나 정서를 답답하게 굳히기보다는 그것을 풀어서 넓게 열려고 하는 탄력성과 관련이 있는 것이지요.” “선생님께서는 바로 그렇게 한을 씻는 문학을 해 오신 셈인데요.” “힘과 힘의 대결로 인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주는 일,힘에 의해서 자꾸 휘둘리는 삶을 원래의 삶의 자리로 돌려주는 것이 문학이겠지요.”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면 어떤 신념이 느껴집니다.오늘같은 시대에 한국문학은 어디로 가야 할까요?” “나는 신념이라는 말을 경계합니다만…… 우선 지금은 대량 첨단정보 유통시대이지요.그러다 보니 그 넓은 정보의 바다에서 익사하는 현상이 나타납니다.정보를 제대로 검색하거나 선택하지 못함으로써 나타나는 가치관의 혼란을 잡아주어야겠지요.둘째로 이상과 현실의 대립 구조 속에서 배제의 현상,배제의 사고,배제의 담론이 범람하고 있습니다.예를 들면 현재는 과거를 배제해요.또 미래는 현재를 배제하고.젊은 사람들은 늙은이를 기성세대라고 해서 배제하고.정치에서도 그런 현상이 나타나지요.자기 독선을 넘어서 보다 넓은 가치를 추구해야 하겠습니다.” “지금 우리의 문화예술은 유통주의자들의 천국처럼 보이는 측면도 없지 않습니다만……,과연 장인정신이라는 것이 오늘같은 세상에도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겠는지요?” “장인의 세계는 원창조의 세계여서 어느 시대나 그런 세계를 요구하게 마련이지요.장인이 같은 물건 만드는 법은 없어요.나는 그런 생각을 하죠.삶의 벼랑에서 이 작품을 쓴다.이것 쓰고 나면 더 못쓸 것이다,하는 각오로 쓰고…….그러니까 장인들 세계라는 것은 죽을 각오로 만들어진 세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벼랑으로 떨어지지 않고 자기 끝을 아니까 한 걸음을 더 나갈 수가 있는 거지요.자기 삶의 끝에 서있지 않으면 그 삶에 묻혀버리죠.그런 장인의 세계는 원정보 생산이고 진짜 창조의 핵이기 때문에 오늘 같은 세상이라고 해서 버려질 수가 없을 겁니다.유용성과는 좀 떨어져 있는 비물질적·정신적 가치의 세계를 이루면서 우리 삶의 근저를 형성해 주는 거지요.” “젊은 예술가들은 지금 어떤 과제를 짊어지고 있는 걸까요? ”우리 시대에 제일 문제가 된 것은 개인·개성·자유였어요.그 후 개발독재로 산업사회화 과정을 거치면서 평등의 문제가 대두되었지요.그것이 1990년대까지 계속되었어요.이후로는 양상이 달라졌어요.지금은 인류사의 두 개 사상 틀,즉 자유를 보수하여 연결짓고 평등의 요소를 확대하는 두 가지 요소 사이에 균형을 이루고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문학에서는 특히 그렇지요.인문적 가치에 대해 고민하고 우리 사회에 가장 취약한 그러한 부분을 획득해 가야만 삶의 가치가 더 넓어지고 높아질 수 있습니다.“ 생은 연신 담배를 물고 한 가닥 연기를 내 쪽으로 연신,느리고 길게,흘려보내고 있었다. ”평소에 궁금했던 일이 하나 있습니다.소설 쓰시려고 교수직을 버리신 적이 있으신데요? “소설은 모든 지식정보에서 자유로워지려고 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는데 교수는 지식정보가 신전이에요.그러니까 그 두 개가 다 부딪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인터뷰를 마치자점심때가 되었는데 선생은 당뇨때문에 바깥에서 식사를 하기 어려운 몸이 되었다며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나는 그런 선생을 막을 수가 없다.선생은 허름한 커피숍 문을 더듬더듬 열고 나가서는 우산을 들고 빗속으로 멀어져 갔다.나는 그 뒷모습을 보면서 겸허라는 두 글자를 떠올리고 있었다. 문학평론가·국민대교수 ■방교수가 본 이청준 ●겸허가 밴 장인의 삶 김유정(金裕貞)이 세상을 떠나자 그의 둘 없는 친구인 소설가 안회남(安懷南)은 그를 기려 ‘겸허(謙虛)’라는 소설을 썼다.가난과 폐병에 시달리던 친구의 생애를 슬퍼한 그 소설에는 김유정의 머리 맡에 겸허라는 두 글자가 붙어 있더라는 사연이 적혀 있다. 용인까지 어떻게 찾아오냐며 서울 양재동 서초구민회관이라고 있는 데 그 앞에서 만나 어딘가로 가자고 하셔서 일손이 줄겠다는 마음에 덜컥 응했다.비는 내리는 데 내가 오히려 늦게 돼 선생이 약속 장소에서 두리번거리고 계셨다.서둘러 비 그을 곳을 찾는 데 오전인지라 다들 문을 닫고 허름한 커피숍 하나만 겨우 들어갈 만했다. 너무 누추해서 어떻게 하느냐고,다른 곳을 찾아 드리겠다고 했는데,선생은 괜찮다고,당신은 담배만 피울 수 있으면 된다고,주섬주섬 뭔가 종이쪽을 꺼내시는데,보니,팩스로 넣어드린 질문 용지다.오늘 하실 말씀을 빼곡하게 메모해 놓으신 그 종이쪽이 왜 그리 귀해 보였는지.담배를 피워 물고 앉으신 선생의 모습은 어딘가 이유도 없이 내게 미안스러워하는 것 같았는데.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것이 바로 선생의 겸허였다. ●남도 멋에 한국 미학 구축 1939년 전남 장흥 출생인 이청준은 남도 예술의 멋과 향취를 한껏 뿜어내는 예인·장인이다.열 살에 뒤늦게 국민학교에 들어가 4·19가 일어난 1960년에 서울대 문리대 독문과에 입학하여 4학년 재학중에 당대 지식계를 대변하던 ‘사상계’를 통해서 문단에 나왔으니,김현·김승옥 등이 중심이 된 ‘산문시대’ 동인들과 함께 4·19세대 작가라고 할 것이지만,독보적인 길을 걸었다. 어렸을 때 형제와 부친이 세상을 뜨는 등 외롭고 가난한 삶 속에서 소설을 쓴 그는 ‘병신과 머저리’(1966),‘매잡이’(1968) 등으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1970년대에서 1980년대에 이르는 동안 ‘언어사회학 서설’과 ‘남도사람’으로 대변할 수 있듯이 그의 작품은 시민사회가 제시하는 합리성의 모순에 대한 반성,그것을 뛰어넘는 진정한 인간상의 탐구로 이어졌다.‘당신들의 천국’(1974-5),‘이어도’(1974),‘서편제’(1976),‘눈길’(1976),‘낮은 데로 임하소서’(1981),‘가위 밑 그림의 음화와 양화’(1984),‘씌어지지 않은 자서전’(1985) 등 숱한 화제작을 남겼다. ‘흰옷’,‘축제’,‘신화를 삼킨 섬’ 등 근년 작품들은 시민사회의 합리주의적 도구성에 대한 반성,한국 사회와 역사의 비극성에 대한 인식에 바탕해 용서와 화해,신화와 근원에 대한 탐구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최인훈이 한국 현대사를 서구적 지성으로 날카롭게 응시하면서 ‘표현주의적’ 모던함을 추구한 작가였다면 이청준은 그러한 문학사를 바탕으로 한국적인 미학을 구축한 문제적인 작가라고 할 것이다.
  • [길섶에서] 부부싸움

    수유리 4·19 묘역은 요즈음 푸른 바다 같다.‘눈이 부시게’ 짙푸른 숲의 물결을 보는 것만으로도 한여름의 무더위를 식히기에 족하다.산책을 하다보면 길 옆 화단에는 산원추리,큰산꼬리풀,좀비비추,각시풀들이 수줍게 여름을 나고 있다. 사람의 발길이 뜸한 기념관 뒤편 벤치에 앉아 잠시 쉬고 있었더니,3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부부가 찾아 귀퉁이 벤치에 앉는다.목소리가 그리 크지 않았지만,조금뒤 숲의 정적을 깨뜨리며 티격태격 말싸움을 한다.애써 듣지 않으려고 했는 데도,주위가 조용해 다투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최근 남편의 귀가가 늦었던 모양이다.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주의 운운하면서 눈물을 글썽거렸다.또 여자의 섬세한 면을 도통 몰라준다며 울먹이는 목소리다.남편이 곁눈질로 내 눈치를 살피더니 빙그레 웃으면서 “민주화 성역에서 다투지 말자.”며 아내의 손을 슬그머니 이끈다. 부부의 뒷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라는 데,살가운 일요일 오후를 보냈으리라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양승현 논설위원
  • [씨줄날줄] 몰카 부메랑

    요즘 유명 호텔 야외 수영장에 비상이 걸렸다고 한다.선탠으로 갈색 피부를 가꾸려는 미녀 고객을 호시탐탐 노리는 몰래 카메라(몰카)로부터 보호하지 못했다간 올여름 낭패를 볼 것이기 때문이다.몰래 찍은 뒷모습 사진 한 장이라도 인터넷에 오르내렸다가는 회복할 수 없는 결정타를 입는다.문제는 비방이 없다는 데 있다.휴대전화하면서 눌러 대면 은밀한 장면을 감쪽같이 찍을 수 있다.폰카라 불리는 고성능 카메라가 내장된 휴대전화가 야속할 뿐이다. 몰카가 바람을 일으킨 것은 1992년일 게다.TV 방송의 코미디 프로그램이 다른 사람의 가식없는 모습을 영상에 담은 몰래 카메라 코너로 인기몰이를 했다.거짓과 위선으로 은폐한 세상의 치부를 공개하는 무기가 됐다.말이나 글로 할 수 없는 사이비 종교 집단 행태며 어린이 학대 실상을 낱낱이 들춰냈다.탐욕에 눈이 멀었거나 눈앞의 향응에 빠져든 그들을 고발하는 데 몰카는 한껏 위력을 보여 주었다.바늘 하나 들어갈 틈만 있으면 몰카가 장착될 수 있다니 디지털 문명이 대단하기는 대단하다. 요즘 세계는 총기 사고에 전전긍긍하고 있다.지구촌에서는 1분에 1명이 총에 맞아 쓰러진다.화승총이라고 휴대할 수 있는 총이 모양을 갖춘 때는 1450년쯤이다.총의 효용성은 대단했다.사냥에 요긴하게 쓰였다.괴한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유용한 수단이었다.완력이 세지 않더라도 방아쇠만 당기면 자기 주장을 관철시킬 수 있었다.휴대용 총은 인류의 3대 발명품이라는 화약 문명의 총아였다.그런데 몇백년이 지나면서 그 총이 사람을 죽이고 있다. 문명의 이기는 효용성에 합당한 윤리적 성숙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파멸의 부메랑이 된다.우리는 폰카의 몰카 공포에 당황하고 있다.옷을 뚫고 속살을 찍어 대는 투시형 무비 캠의 공포를 추스르기도 전에 폰카가 들이닥쳤다.지하철,백화점 에스컬레이터,목욕탕 심지어 안방마저도 몰카의 안전지대가 아니다.한 청와대 비서관은 일거수일투족을 촬영한 몰카에 사표를 던지고 말았다.옛날에 총이 그랬듯 아직은 몰카가 순기능도 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정신을 황폐화시키는 총알을 쏟아 낼지 모른다.이쯤에서 디지털 윤리를 한번생각해 볼 일이다. 정인학 논설위원
  • “판에 박힌 말투 피하고 개성있게”/축구협, 대언론 행동지침 마련 선수들 인터뷰 요령등 담겨있어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은 이제 그만.” 대한축구협회가 남녀 국가대표팀과 올림픽대표팀,청소년대표팀(17세·20세 이하),유소년대표팀(15세 이하) 등 모두 8개 대표팀 선수들을 위한 ‘대언론 행동지침’을 마련해 눈길.이 지침에는 선수들의 품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신세대 선수들의 ‘톡톡 튀는’ 인터뷰를 통해 팬들의 관심을 유도하기 위한 내용이 담겨 있다. 협회는 10일 파주트레이닝센터(NFC)에 소집된 여자대표팀부터 이 지침을 적용키로 했다. 실제 인터뷰에서는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또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식의 판에 박은 듯한 말투는 되도록 지양하고 개성을 돋보이게 하는 표현으로 관심을 환기시켜야 한다는 것이 주내용.경조사 등 개인적인 얘깃거리를 화두로 꺼내면 인터뷰 내용이 풍부해진다는 요령도 귀띔했다.말은 짧고 간결하게 하되 간혹 경기에 져서 영 인터뷰할 기분이 아니거나 자신이 없을 때는 미리 미디어 담당관에게 양해를 구해 정중히 거절하는 편이 낫다는 충고도 곁들였다.골을 뽑아낸 직후에는 골포스트 옆사진기자 구역으로 뛰어가 세리머니를 할 것을 권고하는 등 카메라 포즈 요령도 포함됐다.흥분한 나머지 반대 쪽으로 내달려 뒷모습만 나오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것. 최병규기자 cbk91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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