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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기의 수능] 초등학생·사법연수생도 ‘곁눈질’

    [위기의 수능] 초등학생·사법연수생도 ‘곁눈질’

    올해 수능시험에서 온 나라를 충격으로 몰아간 대규모 입시부정 사건은 ‘인생역전’을 부추기는 한탕주의 사회가 빚어낸 예고된 파국이었다.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커닝을 배우는 아이들. 이는 ‘반칙’과 ‘편법’이 판치고 커닝을 무용담으로 여기는 사회와 ‘시험 지상주의’가 결합한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일선 교육 현장에 파고든 ‘도덕불감증’의 실태를 진단하고 수능시험 제도의 대안을 모색한다. 초·중학교에서 커닝은 우정을 확인하는 빗나간 방편이다.‘나만 하는 것도 아닌데‘라며 별다른 죄의식 없이 장난삼아 커닝에 가담한다. 분당 A초등학교 6학년 최모(11)군은 “커닝을 거부하면 건방지다는 손가락질을 받거나 왕따를 당한다.”면서 “친구가 되려면 ‘확인’이 필요한 것 아니냐.”고 되묻는다. 서울 B초등학교 2학년 윤모(9)양은 “초등학생들이 많이 보는 한자검정시험에서는 거의 대부분이 커닝을 한다.”고 말했다. ●커닝 같이 안 하면 왕따 교사들에게도 책임이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교사들이 시험의 위상을 떨어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강남의 한 학부모는 “일부 교사는 반 성적을 올리기 위해 자기 반 감독 때 학생들에게 답을 넌지시 가르쳐주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유치원도 예외는 아니다. 서울 서초동에 사는 학부모 김모(37·여)씨는 최근 영어유치원에 다니는 아들(7)이 커닝 쪽지를 챙기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김씨는 “선생님이 ‘점수가 나쁘면 엄마가 슬퍼할 것’이라는 말을 했다는 아이의 말을 듣고 씁쓸했다.”고 전했다. 내신 경쟁이 불붙는 고교 교실은 불신과 상실감에 따른 반목의 불씨다. 은평구 C여고 3학년 김모(18)양은 “커닝한 친구가 서울의 한 대학에 수시로 합격했을 때 뒷말이 많았다.”면서 “공부 좀 한다는 애들이 커닝하고 대학까지 가면 화가 나고 상실감마저 느껴진다.”고 말했다. 수법도 다양하다. 손목시계를 이용한 ‘초치기’와 ‘발치기’,‘펜들기’도 많이 쓰인다. 강남의 D고 유모(16)군은 “‘쪽지돌리기’와 청·녹·적 3가지 색깔의 펜으로 답을 전달하는 ‘펜들기’가 일반적인 수법”이라고 털어놨다. ●한국 유학생은 ‘커닝 블랙리스트’ 한국 학생들은 외국에서도 요주의 대상이다. 커닝이 적발돼 낙제하는 사례 가운데 한국 학생들이 유난히 많다. 뉴질랜드 조기유학생인 최모(17)군은 “우리 학교에 재학 중인 한국 학생 50명 중 10여명은 커닝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2월에는 예비 법조인인 사법연수원생 50여명이 윤리시험에서 집단으로 부정행위를 저질러 충격을 줬다. 집단 커닝을 한 서울대생들이 발각돼 재시험을 치르기도 했다. 대학생들의 커닝은 ‘투명(OHP)필름’이 가장 많이 사용된다. 책상과 같은 색깔이어서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대학가 ‘대리수강’ 경매부터 석사논문 대리집필 대학을 입학하는 순간부터 졸업할 때까지 ‘대리행위’는 일상화되다시피 하고 있다. 출석, 리포트 제출, 졸업 논문마저 돈만 주면 얼마든지 대행이 가능하다. 서울지역 대학 교정에서는 ‘5000원에 대리 출석을 해준다.’는 광고지를 손쉽게 볼 수 있다. 대학생 이모(25)씨는 “건당 5000원에서 1만원이면 채플수업과 강의 등을 대리수강하는 아르바이트생이 많다.”고 밝혔다. 서울 Y대 대학원생 윤모(27)씨는 “지정좌석제에서는 한 학기 20만원이면 대리수강 아르바이트를 구할 수 있다.”면서 “때로는 서로 아르바이트생을 구하려고 한 학기 출석에 리포트까지 패키지로 묶어 ‘경매’에 부치기도 한다.”고 말했다. 학사·석사 논문을 대행하는 ‘기업형 사이트’까지 등장, 대학 학사가 돈벌이 대상으로 전락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20년 ‘무감독 고사’ 전통 무너진 영동일고 “지금은 순진하게 아이들을 믿을 수 있는 세대도 상황도 아니다.” 서울 송파구 영동일고는 대규모 커닝이 적발되면서 20년 ‘무감독 고사’의 전통이 끝내 깨졌다. 지난해 교내 시험에서 학생 10여명이 공모한 부정행위가 적발된 것. 영동일고는 설립 후 이사장의 제안으로 기말·중간고사에서 감독교사 없이 자율시험을 치렀다. 혹시 있을지 모를 부정행위는 학생들의 ‘양심 설문조사’로 관리했다.‘무감독 고사’는 신뢰감 형성은 물론 학교의 자부심을 키우는 전통이 됐지만 결국 입시경쟁 속에서 무너졌다. 유영규 유지혜 이효연 나길회기자 whoami@seoul.co.kr
  • [사설] 청와대 외압의혹 해명 석연찮다

    객관성과 공정성이 결여된 인사는 뒷말이 따르게 마련이다. 인사가 오죽 어려우면 한 명을 만족시키고 열 명을 불만스럽게 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임명권자에 의한 전횡을 막기 위해 도입된 공모제의 경우, 투명성과 공정성은 생명이나 다름없다. 통합거래소 초대 이사장 후보 3명이 엊그제 뚜렷한 이유를 밝히지 않은 채 사퇴했다. 후보추천위원 중 한 사람인 모대학 교수는 전직 청와대 간부로부터 특정후보에 대한 부정적인 발언을 삼가라는 압력성 청탁이 있었다고 폭로했다. 청와대측은 “통합거래소 이사장 선임은 청와대의 인사사항이 아니며, 이 문제를 논의한 바도 없다.”고 해명하고 있다. 그러나 3명의 후보가 사퇴한 직후, 청와대 정찬용 인사수석이 “재경부 출신의 독식에 문제 있다.”고 한 발언은 예사롭지 않다. 이사장 공모절차가 시작되기 두어달 전부터 특정인을 이사장으로 교통정리를 해놓았다는 소문도 나돌고 있다.10여명의 자천타천 응모자 가운데 추천된 3명의 후보들은 사퇴 직전까지만 해도 자신들이 최적임자라고 자임했던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들이 석연찮게 물러난 배경에 청와대가 있지 않나 하는 의혹을 갖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공기업 대표의 공모제와 관련해 청와대가 세간의 의혹을 산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9월엔 내년 초 출범할 철도공사의 사장 공모를 놓고 청와대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당시 1차 공모에서 5명의 후보가 선정됐는데, 최종 평가에서 적임자가 없다는 이유로 재공모를 실시해 1차 5순위에 빠졌던 인물이 선임됐다. 청와대가 금융·증권기관장에 특정 부처 출신 인사들의 독식에 제동을 건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주요 자리의 공모때마다 정권 핵심부가 개입했다는 잡음이 나오는 것은 볼썽사납다. 청와대는 이번에야말로 진상을 소상히 밝히는 게 국민에 대한 도리일 것이다. 그것은 참여정부의 도덕성과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 남재준 총장 누구

    남재준 총장 누구

    육군 장성 진급비리 괴문서 사건과 관련된 군 검찰의 수사에 대해 사상 초유의 전역지원서 제출로 맞선 남재준(59) 참모총장은 매사에 철두철미한 군인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4월 임기 2년의 총장에 임명될 때도 청와대로부터 청렴성과 도덕성에서 큰 점수를 얻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부 고위층에서 국방장관감으로 여기고 있다는 설이 돌 정도였다. 하지만 지나치게 ‘원칙주의자’인 탓에 주위 사람들이 부담스러워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훌륭한 성품에도 불구하고 육군 최고 수뇌인 총장의 자질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이후 수차례 군 수뇌부들을 초청해 골프를 함께 쳤지만, 그때마다 육군에서는 골프를 안 치는 남 총장 대신 ‘대타’가 나왔다고 한다. 또 지나치게 보수적인 성격인 남 총장은 참여정부의 군 사법개혁과 문민화, 비무장지대(DMZ)내 선전물 제거 등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표출, 현 정부와는 ‘코드’가 맞지 않는다는 뒷말이 나오기도 했다. 물론 이번에 남 총장은 노 대통령으로부터 재신임 성격의 언질을 받아 일단 임기를 채울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그의 성향이나 스타일로 볼 때 경우에 따라서 사퇴 파동이 재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분석하는 이들도 있다. 남 총장은 지난 8월31일 육군 간부회의 석상에서 국방부 문민화와 군 검찰 독립 등의 사안과 관련, 고려시대 ‘정중부의 난’까지 거론하며 반대했다는 근거없는 소문이 유포돼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육사 25기인 남 총장은 한·미연합사 부사령관과 합참 작전본부장, 수도방위사령관 등을 역임했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軍투서’ 수사 장성급 확대…인사장교 소환

    ‘軍투서’ 수사 장성급 확대…인사장교 소환

    육군장성 진급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국방부 검찰단은 창군 이래 처음으로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에 대한 전격적인 압수수색을 벌인 데 이어 24일 전·현직 인사참모부 소속 영관급 장교 2명을 참고인 자격으로 잇따라 소환조사하는 등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군 검찰은 이날 준장 진급 심사때 실무 역할을 맡았던 이들을 상대로 투서에 적시된 진급 부적격 사유를 심사 과정에서 확인했는지 등을 집중 추궁했다. 특히 이날 소환된 대령의 경우 지난해 인사참모부에 근무할 때 장성 진급심사를 앞두고 투서에 등장하는 준장 진급이 예정된 대령의 음주운전 관련 기록을 조작한 혐의를 일부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군 검찰은 문제점을 확인하고도 진급을 시켰다는 단서가 확인될 경우 영관급 장교의 상관으로 수사를 확대한다는 방침이어서 장성급 ‘줄소환’ 사태로 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군 일각에서는 육군본부에 대한 군 검찰의 압수수색에 반발하는 기류가 나타나고 있어 과거 문민정부의 ‘하나회 척결’ 때 이후 군 내부에서 가장 큰 파문을 일으킬 가능성도 있다. 특히 윤광웅 국방부 장관의 군 개혁에 따른 갈등설도 불거져 나오고 있어 청와대-국방부-군 수뇌부간 갈등으로 비화할지 주목된다. 이와 관련, 열린우리당은 진급비리 사건의 국회 국정조사를 검토하기로 했다. 육군의 한 장성은 “진급 인사를 하다 보면 항상 인사의 뒷말은 있는데도, 검찰이 익명의 음해성 투서를 놓고 압수수색부터 실시한 것은 지나친 처사”라고 반발했다. 국방부의 다른 장성은 “이번 사안은 윤 장관과 육군 수뇌부간의 갈등이 결국 폭발한 것”이라며 “윤 장관이 육군 수뇌부를 개혁의 걸림돌로 보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진급장성의 경우 인사 줄대기 차원을 넘어 음주운전·축첩 등 접수된 투서 내용이 워낙 구체적이어서 군검찰에 확인하도록 한 것”이라면서 “인사 고과 과정에서 이런 내용을 고의로 누락했는지를 당연히 점검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남재준 육군참모총장은 자료협조를 지시했으나, 실무선에서 자료제출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장관은 군 수뇌부간 갈등설로 비화하고 있는 것에 대해 “이번 사건이 수뇌부간 갈등설로 비쳐지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고 신현돈 국방부 공보관이 전했다. 박정현 조승진기자 jhpark@seoul.co.kr
  • [여의도 IN] 한, ‘靑만찬’ 격론

    24일 한나라당 최고위원·중진 연석회의에서 모처럼 격론이 벌어졌다. 평소라면 각자 준비한 ‘연설 원고’를 낭독하며 “자세한 것은 비공개 때 논의하자.”고 미뤘을 참석자들이 이날은 서로 앞다퉈 한마디씩 거들었다. 화두는 청와대 만찬 참석 여부였다. 박근혜 대표가 당내 이견을 인식한 듯 “가야 하느니, 안 가야 하느니를 말하는 것 자체가 정치 구태”라고 먼저 손을 썼다. 그러자 5선(選)의 강재섭 의원은 “아무 조건 없이 대통령 얘기를 들어보는 게 좋다.”고 일단 옹호하면서도 “그렇지만 박 대표가 타이밍을 봐서 ‘대통령의 LA발언이 골목대장 수준’이라고 지적해야 한다. 할 말은 해줬으면 한다.”고 요청했다. 그는 “대통령과 야당 대표가 만나 정치 얘기를 안 한다면 정말 치졸한 것이고, 아직 구태를 벗지 못했다는 것”이라며 ‘쓴소리’도 보탰다. 바통을 이어받은 이규택 최고위원은 직설적으로 “반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여러 사람 초청하는데 곁다리로 제1야당을 끼워넣어 부르는 자리에 가면 안된다.”,“자존심이 상한다.”,“갔다 와서 뒷말이 조금 있으면 의총에서 시끄러울 것”이라는 ‘협박성’ 발언도 곁들였다. 박희태 부의장도 “제1야당을 ‘원 오브 뎀(One of Them)’으로 취급하는데 엄청난 실망”이라고 성토했다. 그럼에도 박 대표는 거듭 “저는 가겠다.”고 못을 박았다. 그리고는 답답하다는 듯 “국민에게 보고하는 형식인데, 야당이 참석하지 않는다면 (국민이)어떻게 생각하겠는가.”고 강조해, 옆자리에 있던 이강두 최고위원으로부터 “박 대표 심정이 이해가 된다. 국민 보고 정치하는 것이다.”는 지원을 받아냈다.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투서 한장에…“軍 문민화 진통”

    투서 한장에…“軍 문민화 진통”

    ■ 육군 인사비리수사 파문·배경 육군 장성 진급과 관련된 투서 파문이 갈수록 확산되면서, 배경을 놓고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 투서에 등장하는 비위 내용의 사실 여부도 또다른 관심사다. ●군 수뇌부 ‘개혁 갈등’ 군내에서는 군 검찰의 전격적인 수사로 파문이 확산된 이번 사안을 군 수뇌부간 ‘개혁 갈등’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순수한 군 문제라기보다는 ‘정치성’이 개입됐다는 게 요지다. 지난 7월 취임 일성으로 ‘군의 문민화’를 표방한 윤광웅 국방장관은 현 정부가 추진 중인 군 개혁의 ‘전도사’로 군 안팎에서 인식되고 있다. 물론 현 정부 출범과 함께 임명된 남재준 참모총장 역시 당시에는 청렴성과 개혁성을 높이 인정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윤 장관이 추진해 온 ‘국방 문민화’와 육군의 축소가 불가피한 육·해·공군 ‘3군 균형 발전방안’ 등에 대해서는 현 육군 수뇌부가 다소 탐탁지 않은 반응을 보여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결국 남 총장은 최근의 이런 상황들 때문에 개혁의 ‘걸림돌’로 인식됐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번 사안이 지난 12일 청와대에 접수된 첩보를 군 검찰에 이첩해 즉각 수사에 착수토록 한 점이나 육군본부에 대한 군 검찰의 전격적인 압수수색도 이런 정황을 뒷받침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남 총장이 군 검찰의 위상 강화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군 사법개혁에 비판적이었던 점을 들어 군 검찰과 남 총장간 갈등으로 보는 시각도 없지 않다. 실제로 남 총장은 지난 9월 간부회의 석상에서 군 검찰 독립을 “인민무력부 안에 정치보위부를 두자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발언을 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장성 일부 반발… 수사배경에 의구심 국방부는 일단 군 검찰의 수사 착수가 투서 내용의 신빙성이 높은 데 따른 게 아니라고 말했다. 국방부 신현돈 공보관은 “확인 차원에서 이뤄지는 수사일 뿐”이라고 진화하고 나섰다. 하지만 군 주변에서는 투서 내용 가운데 일부는 사실에 근거한 내용일 가능성도 있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합동참모본부에 근무하는 한 중령은 “투서의 표현이 다소 자극적인 데다, 부풀려진 측면이 없지는 않지만 일부 사안의 경우 좋지 않은 관행으로 남아있는 게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투서에 거론된 특정인의 행위가 실제로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음주운전 사고자나 업무 능력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 진급하는 경우는 종종 있다고 한다. 특히 과거보다 정도는 많이 약해졌지만 요즘도 일부 전방 근무자들의 경우 아내를 상관의 부인에게 ‘인사’시키는 행위 등은 지금도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이와 함께 투서에 ‘인사 3인방’으로 거론된 이들과 친한 사람들이 대거 진급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지금도 군 조직에서 진급과 관련해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알려진 ‘근무연(勤務緣)’과 연관지어 해석하는 이들도 많다. 군에서는 지연과 학연 이외에 같은 시기에 같은 부대에 근무한 인연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어, 인사 때마다 근무연에 대한 뒷말이 무성하다. 투서 내용의 사실 여부에 따라 군 수뇌부의 물갈이 등으로까지 이어질 수도 있는 엄청난 사안이 현재로선 군 검찰의 손에 달려 있는 셈이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장성진급심사 어떻게 육군 장성 진급 심사는 외형상 ‘4심제’로 불리는 다단계의 심사 과정을 거친다. 해·공군도 대체로 비슷한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선발위→총장→장관→대통령 재가 심사가 까다로운 탓에 군에서는 대령에서 준장 진급하는 것을 놓고 말 그대로 ‘하늘의 별따기’라고 한다. 매년 10월 정기 인사를 앞두고 장성 진급과 관련해 병과별 정원이 확정되면 서로 독립적인 갑·을·병 3개의 선발위원회와 선발심의위원회가 구성돼 후보 심사를 하게 된다. 갑 선발위는 중장인 위원장에 4명의 소장이, 병 선발위는 소장인 위원장에 소장 4명, 병 선발위는 소장 위원장에 준장 4명으로 각각 구성된다. 선발심의위는 중장이 위원장을, 또다른 중장이 부위원장을 맡고 갑·을·병 선발위원장이 참여하게 된다. 갑·을·병 3곳에서 모두 추천된 후보가 1순위,2곳 또는 1곳에서 추천된 사람은 선발심의위에서 별도의 조율 과정을 거친다. 이렇게 선발된 진급 후보자들은 육군참모총장의 추천, 국방부의 제청심의위원회, 국방장관의 제청, 대통령의 재가 과정 등을 거쳐 최종 진급자로 확정된다. ●南총장 ‘인사검증委’ 별도 운영 특히 육군은 남재준 총장 체제가 들어선 지난해 4월부터 인사검증위원회라는 별도의 보조장치를 만들었다. 군 당국이 진급 심사와 관련, 이처럼 다양한 검증 기구를 운용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인사 때만 되면 ‘잡음’이 반복되고 있다. 군에서는 현재의 군 진급 심사는 제도보다는 운용에 문제가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4심제라는 구색은 갖추고 있지만 제대로 운용되지 않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를테면 각 선발위원장 및 위원들의 경우 사실상 총장이 내정할 수 있는데, 이는 투서에서 총장 측근들이 대거 진급했다는 주장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우리당, 국정조사 검토 육군 장성 인사 비리 의혹이 터지자 정치권은 일제히 ‘철저한 진상 규명’을 촉구하고 나섰다. 특히 열린우리당은 국정조사 추진까지 타진하는 등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국방위 소속인 열린우리당 안영근 제2정조위원장은 “이번 기회에 군 진급비리 의혹을 확실히 규명하고 발본색원해 군내 기강을 세워야 자주 국방의 기틀도 확실하게 다질 수 있을 것”이라면서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고 지켜본 뒤 미진할 경우 국정조사를 통해서라도 확실히 진급비리 문제를 척결해야 한다.”고 의지를 밝혔다. 한나라당 임태희 대변인은 논평에서 “군의 비리나 잘못된 관행은 고쳐야 하지만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군을 흔드는 결과를 낳아선 안된다.”고 말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지금 출판가는 ‘삼국지 전쟁’

    거침없는 작가 장정일(42)이 10권짜리 ‘삼국지’(김영사·각권 8900원)를 냈다. 이에따라 출판가에 ‘삼국지 열풍’이 거세질 조짐이다. ●숨겨진 인물복원 ‘우리식 판본’ 5년여의 산통 끝에 나온 장정일 버전의 ‘삼국지’는 나름의 차별점을 찍고 있다. 기존의 ‘삼국지’들이 ‘나관중본’ ‘모종강본’ 등을 재해석한 번역판본이었다면 이번엔 영웅 중심에서 벗어나 숨겨진 인물들을 복원시켜 소설에 가깝게 이야기를 재구성했다는 대목에서다.“춘추사관, 춘추필법, 한족 중심의 중화주의에서 벗어난 ‘우리 판본’”이라고 출판사측은 강조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출판가 안팎의 시각이 환영일색만은 아니다.“돈벌이 기획출판”이라고 대놓고 비판의 화살을 꽂는 목소리도 있다. 한 출판사 대표는 “유명 작가 몇몇의 삼국지가 국내 양대 메이저 출판사를 먹여살리다시피 하는 현실 아니냐?”며 꼬집었다.“기획출판에 순발력 있기로 소문난 김영사로서도 그런 계산이 없지 않았을 것”이라는 견해도 덧붙였다. 실제로 국내 서점가를 평정한 대표 삼국지는 이문열의 ‘삼국지’(민음사·전10권)와 황석영의 ‘삼국지’(창비·전10권).1988년 출간된 이문열의 것은 지금까지 무려 1500만부를 팔아치웠다. 지난해 6월 나온 황석영의 것도 현재 100만부 판매실적을 올린 상태. 민음사 정대용 영업부장은 “IMF사태 여파로 95년 이후 판매량이 떨어지던 것이 지난해는 100만부까지 올라갔고, 올해는 60만부 판매가 가능할 것 같다.”면서 “지난해 황석영 삼국지의 가세로 오히려 시너지 효과를 봤다.”고 말했다. ●“돈벌이用 기획출판” 비난 목소리도 삼국지 출판시장 규모는 지난해의 경우 약 200만부. 유행에 민감한 여타 출판물들과는 달리 삼국지 시장은 끊임없이 신규독자들을 포섭해내는 특징이 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박종화 김구용 김홍신 이지함 조성기 등 ‘버전이 다른’ 삼국지들이 그야말로 백화제방(百花齊放)이다. 시장이 혼전양상을 띠다 보니 이래저래 괴담성 뒷말도 무성하다.“어떤 책은 서문을 쓴 이가 진짜 평역자이고, 그 작가는 이름만 빌려줬다더라.”는 식의 허탈한(?) 소문까지 나돌 정도다. 국내 서점가의 ‘삼국지’ 유형은 크게 둘로 나뉘어진다.‘나관중본’‘모종강본’을 원전삼아 번역에 충실한 ‘정역’, 필요한 부분을 변형·재구성한 ‘평역’이 그것. 김구용·조성기 버전은 전자에, 이문열·황석영 버전은 후자에 들어갈 만하다. 이들 책을 요리조리 뜯어 오류를 지적하거나 설명을 붙인 해설서도 한 흐름을 이룬다. ●우리시대 대표판본 어디에 그러나 독자들의 삼국지 감상 취향은 몇몇 인기작가들의 작품 쪽으로 지나치게 편향돼 있는 게 현실이다. 삼국지를 수십년 연구했기로 유명한 김구용의 정역 삼국지를 펴낸 솔출판사 관계자는 “작가의 독특한 세계관과 색깔을 담아낼 수 있다면 삼국지는 얼마든지 다시 쓰여져도 좋을 것”이라면서 “그러나 지금까지의 사례로 보면 삼국지가 오락적 책읽기의 한 텍스트로 활용된 경향이 짙다.”고 주장했다. 지난 2000년 솔출판사에서 3차 개정판으로 나온 김구용의 삼국지는 한문의 고졸한 언어감각을 충실히 살린 책으로 꼽힌다. 현재는 인터넷 무료 다운으로 e북으로 볼 수 있게 해 사실상 시장판매는 포기한 상태다. 하지만 불황으로 맥빠진 출판가에 어떤 계기로든 운동이 일어난다는 건 반가운 일이다. 개성있는 세계관을 담아 작가의 이름값을 해주는, 명실공히 ‘우리시대 판본’으로 남을 삼국지를 또 기다려볼 일이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부패·전과자 장성진급” 괴문서

    지난달 중순 단행된 군 장성 진급 및 보직 인사 과정에 대규모 비리가 있었다는 내용의 괴문서가 나돌아 군 당국이 진상 조사에 착수했다. 국방부 신현돈 공보관은 22일 “국방부 청사 인근의 장교숙소인 레스텔 건물 지하 주차장에서 이날 오전 수십장의 투서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OO 동기회’와 ‘국방부 및 육군본부 대령 연합회’ 명의로 된 A4용지 2장 분량의 괴문서에는 올해 준장진급 대상자인 육사 34·35기 동기생 대표들이 진급 및 보직 인사의 문제점을 논의한 결과라고 적혀 있다. 15~16명 실명이 적시된 괴문서에는 참여정부의 실세 인사들과 친분이 두터운 2명이 부패에 연루됐거나 하자가 있는데도 준장에 진급했다는 내용이 들어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진급에 치명적인 음주 전과자들이 상당수 장성에 진급했으며, 부인이 남편을 진급시키기 위해 인사 과정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모 중장의 가정집에서 ‘식모살이’를 했거나, 전문성이 떨어지는 인사들이 특정 직위에 보임됐다는 주장들도 제기됐다. 국방부 검찰단도 유사한 내용의 투서를 접수한 청와대의 지시로 내사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방부측은 일단 이번 인사 결과에 불만을 품은 세력이 군을 음해하기 위해 장성 진급자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괴문서를 살포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군 당국은 이번 인사 이후 인사권자의 측근이 대거 진급했다는 등 뒷말이 많았던 점 등으로 미뤄 일부 내용은 사실일 수 있다고 보고 진상조사를 벌일 방침이다. 한편 이번 정기인사 직전인 9월 말에는 해군 장성급 인사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내용의 투서가 나돌아 군 당국이 출처 조사에 나서기도 했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儒林(224)-제2부 周遊列國 제5장 良禽擇木

    儒林(224)-제2부 周遊列國 제5장 良禽擇木

    제2부 周遊列國 제5장 良禽擇木 공자와 제자간의 갈등은 주유열국의 후반기 내내 계속된다. 공자에게는 그 어떤 정치적 박해보다도 제자들로부터의 불만과 불신이 가장 큰 고통인 것처럼 보이고 있는데, 공자가 채나라에 온 후에도 이 갈등은 계속 확산되어 마침내 최고조에 이르게 된다. 이때 공자는 13년에 걸친 고달픈 순회 기간 중에 가장 중요한 전기를 맞게 된다. 사기에는 공자가 ‘왕도를 밝히려고 70여 나라에 유세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실제로 공자가 유세한 나라는 위나라와 진나라 등 대여섯 국에 지나지 않는다. 그중에서 채나라와 섭나라는 독립된 나라라고 볼 수 없는 강대국의 속령이었고, 만난 임금 중에서도 위나라의 영공을 빼놓으면 제대로 된 임금이라고 말할 수 없는 권력자에 불과한 사람들이었다. 공자가 만난 임금 중 영공만이 가장 강력한 군주였으나 공자를 등용할 듯 할 듯 하면서도 끝내 하지 않았던 우유부단한 인물이었다. 그런데 공자가 섭나라에서 채나라로 떠나와 3년쯤 되던 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최고의 임금으로부터 초빙을 받게 된다. 이 최고의 임금은 바로 초나라의 소왕(昭王). 물론 소왕도 공자에 대한 소문은 익히 듣고 있어 만나기를 원하였지만 워낙 멀리 떨어져 있어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뜻하지 않게 공자가 머물고 있는 채나라와 가까운 진나라로 군사를 이끌고 친정에 나섰다가 그 기회에 공자를 초빙하였던 것이다. 공자 역시 소왕이 어진임금이라고 칭찬한 적이 있을 만큼 소왕의 인격과 능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는데, 공자가 소왕을 칭찬한 데에는 다음과 같은 유래가 있다. “어느 날 무리를 이룬 붉은 새 같은 구름이 해를 끼고 사흘간이나 하늘에 떠 있었다. 이를 본 소왕은 제후들 밑에서 주왕실에서 내린 전적을 맡아보고 천문을 관장하는 태사(太史)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도록 하였다. 그러자 태사는 대답하였다. ‘그것은 왕에게 재앙이 있을 징조입니다. 만약 제사를 지낸다면 그 재난을 신하들인 영윤(令尹)과 사마(司馬)에게로 옮길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을 들은 소왕은 고개를 흔들며 대답하였다. ‘그것은 몸속의 병을 떼어다가 팔다리에 옮겨놓는 것과 같은 짓인데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 내게 큰 잘못이 없는데도 하늘이 나를 일찍 죽게 하는 벌을 내리게 하겠는가. 또한 죄를 졌다면 마땅히 내가 벌을 받아야지 그 벌을 누구에게 옮겨놓는단 말이냐.’” 소공의 이 말은 죄가 있으면 마땅히 하늘로부터 벌을 받아야하며 벌을 받으면 마땅히 자신이 받아야지 어떻게 팔다리와 같은 신하에게 대신 받게 할 수 있겠느냐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던 것이다. 소공이 말하였던 ‘팔다리와 같은 신하’는 바로 ‘고굉지신(股肱之臣)’을 가리키는 말. 이 말은 어진 황제로 잘 알려진 순(舜)임금이 어느 날 신하들에게 말하였던 데서 비롯된다. “나에게 만약 어긋남이 있을 때에는 그대들이 나를 보살피며 규정(規正)해 달라. 내 앞에서 순종하는 척하다가 물러간 뒤에 이러쿵저러쿵 뒷말을 할 것이 아니라 직접 그 자리에서 충고해 달라. 또한 좌우의 동료들과 서로 협력하여 예의에 어긋남이 없도록 하라.” 그러고 나서 순임금은 다음과 같이 강조하여 말하였다. “그대들과 같은 신하는 짐의 팔과 다리요, 눈과 귀로 내가 백성들을 위해 돕고자 하니 그대들이 대신해달라.(臣作朕股肱耳目 子欲左右民汝翼)” 순임금의 이 말에서 ‘팔다리처럼 가장 믿고 중히 여기는 신하’라는 뜻의 ‘고굉지신’이란 성어가 나온 것이었다.
  • 금통위 ‘운영방식’ 논란

    금통위 ‘운영방식’ 논란

    ‘알 수 없는 금융통화위원들.’ 금융통화위원들이 도마위에 올랐다. 지난 11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콜금리를 3.5%에서 3.25%로 0.25%포인트 전격 내린 이후 금통위원의 역할과 기능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콜금리 결정은 내리든 올리든 금통위원의 고유권한으로 논란의 여지가 없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한은 집행부의 경제지표 분석을 무시한 일방적인 처사라는 해석도 있다. 의사록, 녹취록 등을 전혀 공개하지 않는 금통위의 현행 운영방식에도 곱지 않은 시선이 쏠리고 있다. ●궁금증 낳는 금통위 결정 금통위는 콜금리를 결정하기 하루 전에 통상 한은의 주요 국실장 등으로부터 거시·금융 등 경제동향을 면밀히 보고받는다. 이 때 다음날 결정될 콜금리의 향방이 정해진다. 물론 철저히 비밀리에 이뤄진다. 지난 10일에도 금통위원들은 콜금리 결정을 하루 앞두고 한은 집행부의 동향 분석보고를 받았다. 동결에 무게를 둔 듯한 한은의 시각과 인식에 큰 이견차를 보이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다음날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박승 한은 총재는 “시장의 예측과 금통위의 결정이 번번이 달라 혼선을 부추긴다.”는 일부 지적에 “내 혼자 하는 일이 아니지 않으냐.”면서 이례적으로 “미안하다.”고 말했다. ●금통위,“문제없다” 금통위 관계자는 “금통위원들은 독립적으로 활동하고 있고, 내부적으로 입을 맞추는 일은 전혀 없다.”며 “이번 일은 금통위원 각자의 의견이 종합된 결과로 전혀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현 경제상황을 고려할 때 누가 보더라도 콜금리 동결보다는 인하에 무게를 뒀을 것”이라며 “결과가 어떻든 이러쿵 저러쿵 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입다문 한은 한은은 금통위원의 고유 권한으로 언급해서는 안될 일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번 일은 금통위원이 한은의 뒤통수를 친 꼴”이라며 “회의때마다 찬반으로 의견이 갈리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이번처럼 입이라도 맞춘 듯 뒤집은 것은 한은 역사상 처음있는 일”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금통위원 실명제 도입해야 한 금융전문 애널리스트는 “금통위의 결정이 시장의 예측과 매번 엇갈리다 보니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이라며 “금통위의 결정이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B증권 고위 관계자는 “금통위원들이 소신 있고, 책임감 있는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찬·반 위원들의 명단을 공개하는 미국의 제도를 검토해 볼 만하다.”며 “현행 금통위원들의 역할과 기능은 ‘권한은 있고, 책임은 덜 한’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어 “금통위원을 선정할 때도 후보들이 종전에 보였던 정책적 노선과 소신 등을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주병철기자 bcjoo@seoul.co.kr
  • 사과·유감 절충한 ‘묘수’

    이해찬 국무총리가 9일 발표한 사과 성명은 즉각적으로 무성한 뒷말을 낳았다. 그만큼 이 총리의 사과 형식과 타이밍은 예상을 벗어난 것이었다. 그동안 정치권의 관심은 이 총리가 과연 ‘사과한다.’는 표현을 쓸지 여부였다. 사과라는 표현은 상대방에게 너무 굴복하는 것처럼 비쳐지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식의 표현은 너무 미온적이라는 이유로 야당의 반발을 살 가능성이 커 처음부터 빠졌다. 그런데 이 총리는 ‘사의’라는 뜻밖의 표현을 사용했다. 사의의 사전적인 의미는 첫번째로 ‘남의 호의에 대한 감사의 뜻’과 부차적으로 ‘자신의 잘못에 대한 사과의 뜻’이 있다. 물론 이 총리는 후자를 염두에 두고 사용한 것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이 총리는 사과와 유감 사이의 중간 지점에서 고민하다가 사의라는 ‘절묘한’ 단어를 찾아낸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이 이 총리의 사과 표명에 대해 확실한 수용도 거부도 않고 판단을 유보한 것이 사의라는 표현이 갖는 애매한 성격을 방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왜 사과 발표를 직접 안 했나 정치권에서는 당연히 이 총리가 카메라 앞에 나와 입장을 밝힐 것으로 예상했었다. 다만 정부청사에서 할지, 국회에 와서 할지 장소가 관심거리였다. 그런데 이 총리는 이날 이강진 공보수석을 통해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이것은 자신이 사과하는 장면이 국민에게 직접 각인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택한 ‘탈출법’인 것으로 보인다. 국회에서 한나라당과 대놓고 논쟁을 벌이는 장면이 국민에게 알려진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고개를 숙이는 장면이 나가는 것은 총리로서의 권위 손상은 물론 향후 대야 관계에 두고두고 발목을 잡을 수도 있는 문제라고 판단한 듯하다. 일각에서는 “이 총리가 어쩔 수 없이 사과하는 형식을 취했지만, 진심이 아니기 때문에 카메라 앞에 서지 않은 것”이라는 관측과 함께 “이 총리가 앞으로 큰 꿈을 염두에 두고 책잡힐 장면을 피한 것 같다.”면서 대권과 연결시키는 시각도 나온다. ●사과 시기 왜 앞당겼나 이 총리가 사과 시기를 앞당긴 것은 열린우리당의 강력한 요청 때문으로 보인다. 정기국회 회기가 한 달밖에 남지 않은 지금 내년도 예산안과 ‘한국형 뉴딜’ 관련 법안,‘4대 법안’ 등 국회에서 처리할 안건은 산더미같이 쌓여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마냥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여당만 손해라는 인식이 이 총리에게 전달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천정배 원내대표는 최근 사석에서 “국회 파행으로 여당만 손해다.”라고 토로했다고 한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공직문화를 바꾸자] ⑤학연따라 지연따라

    [공직문화를 바꾸자] ⑤학연따라 지연따라

    “정부 인사에서 혈연·지연·학연을 완전히 무시하라는 것은 한국사람에게 김치를 먹지 말고 살라는 것과 같다.” 미국 정부의 인사시스템을 살펴보려고 지난 9월 워싱턴을 찾았던 정찬용 청와대 인사수석은 당시 언론사 워싱턴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이런 말을 했다. 연줄을 배격하고, 균형잡힌 인사를 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강조한 말이지만, 역설적으로 공무원 사회에서 학연·지연이 얼마나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나를 여실히 보여준다. 공직사회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특정지역·특정고교 출신이 실세로 급부상하는 구태가 반복되고 있다.TK(대구·경북)·PK(부산·경남)라는 말이 일반 명사화한지 오래됐고, 경북고·경남고·경복고·광주고·전주고 등 집권자나 그 주변의 실력자가 나온 특정학교 출신들이 정권교체와 맞물려 한껏 세를 누려왔다. 때문에 공무원도 지역이나 학교를 중심으로 뭉쳐왔고, 이런 현상은 고위직일수록 정도가 심했다. ●지역색 기승… 승진에 큰 영향 사회부처의 A서기관은 “공무원 조직은 누가 수장이 되느냐에 따라 본인의 신분도 엄청나게 바뀐다.”면서 “특히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공직사회는 출렁일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다른 부처의 B서기관도 “부처의 경우, 장관의 출신지에 따라 부서장·국장·과장까지 영향을 받는다. 인사관련 부서에서 알아서 기는 셈”이라면서 “장관과 같은 지역 출신을 인사부서에서 지역배려라며 알아서 요직에 앉히는 관행도 수십년 동안 지속돼 왔다.”고 인정했다. 겉보기엔 다같은 공무원처럼 보여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천갈래 만갈래로 헤쳐 모이고 있다.▲중·고교·대학·대학학과 ▲출신지역·고향 ▲고시·비고시 ▲출신 근무부처 ▲출신 군경력 등 굵직굵직한 구분 기준만 들이대도 10여개는 족히 된다. 그나마 1970년대 후반 고교평준화가 된 이후 명문고의 의미가 사라지면서, 이른바 특정고교를 중심으로 한 학연은 주로 1∼3급 정도에만 해당되고,4급 이하에서는 많이 사라진 게 다행일 정도다. 하지만 지역을 연고로 한 모임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고, 이런 지역색은 승진 등 인사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때문에 자의든 타의든 공무원들 사이에서도 ‘줄서기’를 강요하는 분위기가 퍼져 있다. 인사 때마다 뒷말이 무성하고 루머로 엉뚱한 피해자가 생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최근 1급으로 승진한 사회부처의 C씨가 대표적인 경우. 고시 선배들을 제치고 승진한 그는 청와대의 한 실력자와는 고교 동기동창, 행정부의 최고위층과는 대학 학과 동기동창이다. 업무능력만 보면 ‘승진’을 하고도 남을 만하다는 안팎의 평가를 받아왔지만, 이런 배경(?)탓에 “줄이 좋아 덕을 본 게 아니냐.”는 일부의 시샘을 감수해야 했다. ●노동·복지·농림부 호남인맥 강해 학연만 놓고 보면 ‘엘리트’들의 총집합 장소인 재정경제부의 경기고 동문이 대표적. 그러나 고교평준화 이후 세력을 크게 잃어 가고 있고, 참여정부 들어 주변을 의식해 소모임도 자제하고 있다. 대신 지역에 기반을 둔 신흥 명문고교 출신들의 공직 입문이 늘면서 새로운 소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산업자원부에는 주요 보직국장에 서울고 인맥이 있다. 국장 이상만 7명이나 되는데다, 핵심보직으로 꼽히는 주미 상무관을 선·후배가 서로 돌아가면서 맡는 기연을 이어가고 있다. 노동부는 광주일고 인맥이 눈에 띈다. 업무 특성상 보건복지부는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출신이, 농림부는 서울 농대 출신들이 많다. 이 세 부서는 모두 호남인맥이 강한데,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부터 정권 차원에서 호남인력을 중용했기 때문이다. 또 고시출신이 오기를 꺼려 다른 부처보다 ‘비고시’출신들의 파워가 센 편이다. 대전청사 철도청의 경우, 철도고·철도대 등 철도관련 학교 출신들과 호남인맥이 주류을 이루고 있다. 법조인들은 서울대 출신이 절반이 넘기 때문에 ‘소수정예’의 만남이 이뤄질 수 있는 특정고교 중심의 모임이 많은 편이다. 한 지방 명문고 출신 법조인들의 경우 판사·검사·변호사 등 ‘법조3륜’이 매월 정례모임을 갖는다. 이들은 모임을 통해 각종 정보를 교류하고 친목을 다지는 계기로 활용하며, 각종 인사청탁이 이뤄지기도 한다는 게 법조계 인사들의 귀띔이다. ●재향경우회 회원 120여만명 경찰내 지연모임은 대한민국재향경우회가 대표적. 회원수 총 120여만 명의 조직을 가지고 있다. 전체 회원중 정회원(퇴직경찰관, 퇴역 전·의경) 105만명, 명예회원(현직 경찰관 및 전·의경) 15만명이다. 시·도 중심의 지부는 19개로 지방경찰청 단위를 중심으로 하고, 지회(경찰서 단위) 269개, 분회(파출소 단위) 2323개로 실로 방대한 조직이다. 사회복지·봉사활동, 회원 상부상조 및 협동정신 함양을 목적으로 활동하지만 실제로는 지역별 친목 성격이며, 선거철이면 정치적 성향을 강하게 드러낸다. 김성수 강충식 유영규기자 sskim@seoul.co.kr
  • [씨줄날줄] 공무원 특채/오풍연 논설위원

    공무원의 인기가 날로 치솟고 있다. 신랑·신부감으로도 단연 인기다. 신분이 보장돼 있는 데다 보수 역시 민간기업에 비해 뒤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공무원 되는 것도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렵다. 임용시험 경쟁률은 수십대 일, 수백대 일이 다반사다. 올 하반기 978명을 뽑는 서울시 지방공무원 임용시험에도 9만 909명이 지원해 92대1의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12명을 뽑는 보건직 9급 에는 3461명이 도전장을 내밀어 무려 288대1의 경쟁률을 나타냈다. 공무원들은 이처럼 공채(公採)를 통해 대부분 충원한다. 누구나 똑같이 필기시험을 보는 만큼 뒷말이 없다. 특정인을 봐주는 것도 용납되지 않는다. 시험부정을 않는 한 원천적으로 끼어들 여지가 없는 탓이다. 반면 특채(特採)는 서류전형과 면접만으로 합격자를 가려낸다. 그것도 5급 사무관 이상을 뽑으니 기득권층의 저항과 반발이 만만치 않다. 행정고시에 합격하지 않고 사무관이 되려면 꽤 오랜기간 초급관료 생활을 해야 한다. 실제로 20∼30년을 근무한 뒤 6급 주사로 공직생활을 마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특채의 원조는 이른바 ‘유신(維新)사무관’. 박정희 정권 시절부터 1980년대까지 육군사관학교 출신자들을 대상으로 중앙부처 사무관에 상당수 특채한 것이다. 이는 곧 군 출신에 대한 특혜로 비쳐졌다. 이들은 개인적 역량이 뛰어났더라도 ‘무임승차’‘특혜’라는 여론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권력자의 통치기반 강화라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따라서 공직사회 착근에 실패한 경우가 더 많았다. 이 제도는 80년대 초반 폐지됐다. 당시 ‘작전’을 결행한 주인공은 전윤철(현 감사원장) 경제기획원 예산총괄과장과 정문화(전 부산시장) 총무처 인사과장이었다. 중앙인사위가 내년 하반기부터 총·학장으로부터 성적이 우수한 대학생 50명을 추천받아 6급 공무원으로 정식 임용할 계획이라고 한다. 학교 성적이 상위 3∼5%에 들어야 하고, 영어 토익 775점(토플 560점) 이상이 대상이다. 지역별·성별 배려도 철저히 지킬 것이라고 하니 기대된다. 시험 만능주의의 폐단을 없애는 측면에서도 긍정적이다. 그러나 ‘특혜’시비가 일지 않도록 치밀하게 대비해야 할 것이다. 오풍연 논설위원 poongynn@seoul.co.kr
  • [뻥뚫린 DMZ 철책] “달밝은 밤 월북?…軍 소설 쓰나”

    [뻥뚫린 DMZ 철책] “달밝은 밤 월북?…軍 소설 쓰나”

    “민간인 1명이 비무장지대(DMZ) 안의 3중 철조망을 뚫고 월북한 것으로 추정된다.” 26일 발생한 강원도 철원군 최전방 철책선 절단 사건과 관련해 군 당국이 내놓은 합동신문 결과다. 하지만 이같은 군 당국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사건이 쉽게 마무리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일반 시민들과 네티즌들은 오히려 허술한 군의 경계태세를 질타하고, 군의 발표 내용에 대해서조차 의혹의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군 당국으로서도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다. ●지뢰 널린 최전방 접근 불가능 일반 시민들이 가장 의아해하는 것은 민간인이 지뢰가 널려 있는 최전방 지역을 어떻게 접근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나아가 3중 철조망을 뚫고 월북한다는 것도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된다고 한다. 정신 이상자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그런 시도를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월북자가 철책선을 절단한 것으로 추정한 시각(25일 야간과 26일 새벽 1시 사이)에 대해서도 뒷말이 무성하다. 사전에 철저한 준비를 했을 월북자가 달빛이 밝은 날을 택했을 리 없다는 것이다. 군 당국이 철책선 절단이 이뤄졌다고 추정한 날은 음력 13일로 달빛이 무척 밝았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군 당국이 철책선 절단 시각 등을 숨기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지난해 전역했다는 한 네티즌은 국방부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중부전선의 험난한 정도는 민간인이 상상하는 것보다 100배 이상이다. 북한군이 침투전술을 이용해도 비무장지대를 극복할 수 있는 확률은 희박한데 민간인이 월북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절단 현장 언론 공개 검토 군 당국의 엉성한 경계태세를 놓고 군을 꾸짖는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민간인 한 명도 못 막으면서 어떻게 북한군에 대항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한 네티즌은 “민간인이 월북했다면 무장간첩 침투보다 더 큰 문책이 이뤄져야 한다. 군이 소설을 쓰고 있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사건에 대한 의혹이 계속되자 군 당국은 27일 오후 합동신문에 대한 보충설명을 했다. 군 당국은 절단된 남측 철책에서 30∼40m 후방에 민간인과 군인들의 출입이 잦은 영농지가 있으며, 월북자는 이 곳에서 3∼4일간 숨어 있다가 월북을 시도했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또 최전방 추진철책은 동쪽으로 200m만 가도 우회가 가능한 데 굳이 철책을 절단한 점 등이 간첩 소행으로 보기 어려운 점이라고 밝혔다. 군 당국은 경우에 따라 현장을 언론에 공개하는 방안도 신중하게 검토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어떻게 결론 날까 이번 사건에 대한 수많은 의혹이 풀리고 쉽게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북한이 남한 민간인의 월북사실을 발표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실제로 군 당국은 북측이 이와 관련, 금명간 입장을 밝힐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북측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북한의 최근 대남 전략을 감안할 때, 북한이 이번 사건과 관련해 그런 입장을 취할 가능성은 비교적 적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군 관계자는 “과거에는 월북자가 생기면 북한당국이 체제 홍보 차원에서 ‘의거 월북 사실’을 대대적으로 알렸으나, 지금은 사정이 다르지 않으냐.”고 지적했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빚내 대체농토 샀는데 웬 날벼락…

    빚내 대체농토 샀는데 웬 날벼락…

    “대통령더러 우리 땅 사가라 그래유.” 충남 연기군 남면 갈운리의 김옥태(48·여)씨는 기자를 만나자마자 털썩 주저앉으면서 울음부터 터뜨렸다. 김씨와 남편 임재호(50)씨는 행정수도가 들어와 토지가 수용될 것이라는 정부의 정책을 믿고 이웃들과 서면 아촌리에 8억원을 들여 집과 축사를 사들였으나 헌법재판소의 위헌판결로 재산을 날리고 빚까지 떠안은 채 살아갈 처지가 됐기 때문이다. 땅과 집 값이 크게 떨어질 것이 뻔하고, 설령 싸게 내놓는다고 해도 사려는 사람이 없을 테니 울며 겨자먹기로 이자를 물어내며 갖고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대유. 뭐 이런 게 다 있슈. 이래서는 안 되는 일이여유.” 김씨는 연방 분통을 터뜨렸다. 김씨가 땅을 사들인 것은 신행정수도 예정지가 결정되고 대통령이 강력한 추진의사를 밝힌 직후인 지난 8월. 김씨는 “처음엔 대대로 살아온 고향을 버린다는 게 쉽지 않아 반대하다가 정부 의지가 워낙 강력해 어쩔 수 없이 고향과 가깝고 수용이 안 되는 서면에 앞으로 살아갈 땅을 샀다.”면서 “우리가 돌았어….”라고 되뇌었다. 김씨네가 이웃과 함께 산 부동산은 주택과 축사가 딸린 2600평짜리 논·밭이다. 평당 30만원으로 주변보다 조금 비쌌지만 집과 축사가 오롯이 지어져 있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김씨와 이웃집은 현재 소유하고 있는 집, 축사, 논·밭과 새로 사들인 부동산까지 모두 담보로 잡히고 농협에서 3억원씩 빚을 냈다. 나머지 1억원은 직장에 다니는 딸들이 빚을 냈다고 한다. 김씨는 “내년 1월부터 보상이 나오면 이 정도 빚은 너끈히 갚고도 남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가슴을 쳤다. 김씨 부부는 700평의 논·밭을 일구고 소 20마리를 기르며 알뜰하게 살아와 그동안에는 누구에게도 빚을 져본 일이 없었다고 했다. 남편 임씨는 2년전 틈틈이 건축일을 다니다 다리를 다친 뒤에는 농사에만 전념했다. 김씨도 식당에 나가고 있다. 김씨는 “우리처럼 열심히 산 사람도 없는데 이게 웬 날벼락이냐.”고 눈물을 쏟았다. 남편 임씨는 전날 한숨도 못자고 “소 먹일 짚 가지러 간다.”며 아침 일찍 나가서는 소식이 없었다. 김씨 부부는 지난 3월 폭설로 축사 지붕이 무너졌지만 ‘행정수도가 온다는데 뭘 고치냐.’는 이웃의 얘기에 일부만 고치고 나머지는 손도 대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김씨네와 함께 땅을 산 성기정(54·여)씨도 “난 초등학교도 제대로 못나와 TV를 봐도 잘 이해하지 못하지만 어제 무슨 토론인가를 보니까 헌법에 대해서만 얘기하던데 그게 문제라면 진작에 얘기를 했어야 하지 않았느냐.”며 화를 삭이지 못했다. 성씨와 남편 임정철(55)씨는 대지 1000평의 집과 축사,1200평의 논·밭을 갖고 있다. 이것과 서면에 산 부동산도 모두 농협에 부채 담보로 잡혔다. 농협에서 얻은 3억원 말고도 나머지 1억원은 사채를 얻어 충당했다. 두 집이 내야 하는 이자만 매달 500만원이 넘는다고 했다. 소 20마리를 기르고 있는 성씨는 “조상 대대로 살던 고향인데 행정수도가 오지 않으면 왜 다른 곳에 땅을 샀겠느냐.”면서 “영국에서 유학하고 있는 작은아들 보내주느라고 이전에도 8000만원의 빚이 있었는데 큰 일”이라고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성씨는 “이웃 마을에 사는 친척을 비롯해 부여 등에 농토를 산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성씨는 “떨어진 콩 한톨이라도 모두 주워 된장을 만들어 팔고 뼈빠지게 농사를 지어도 1년에 겨우 천만원밖에 벌지를 못하는데 이 많은 빚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성씨는 “이자를 못내 전 재산이 경매에 넘겨지면 우린 죽는 수밖에 없지 않으냐.”고 하소연했다. 성씨는 “강아지도 몰아대면 빠져나갈 구멍을 찾는다.”며 이같은 일을 자초한 대통령과 국회가 나서 해결해줄 것을 바랐다. 연기군 남면 한문수 면장은 “농민들이 더 오르기 전에 다른 곳에 농사지을 땅을 마련하려 빚을 내면서 우리 면에서만 지난해 말 이후 300억원이 대출된 것으로 안다.”면서 “지금 땅과 새로 산 땅을 모두 날릴 판”이라고 걱정스러워 했다. 22일 오후 충남 공주시 장기면. 마을 입구와 면사무소, 농협에 내걸렸던 ‘행복 1번지로 통하는 행정수도 이전’,‘아름다운 행정수도 이전 운동’ 등의 플래카드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면 직원은 “주민들이 속이 뒤집어진다고 해서 아침 일찍 떼어버렸다.”면서 “일이 이렇게 된 마당에 계속 놔둬 본들 비웃음밖에 더 사겠느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면사무소 주변에 밀집한 부동산 중개업소 20여곳 가운데 문을 연 곳은 1곳뿐이었다. 그나마 중개업자는 기자가 접근하자 “서울에 계신 높으신 양반들은 순진한 사람들 놀리는 게 그렇게 재미있느냐.”면서 “외지 사람과는 말도 섞기 싫다.”고 문을 닫아걸었다. 이날 면사무소 직원들은 하루종일 각 마을을 돌며 주민들을 위로해야 했다. 이주를 준비하다 낭패를 본 주민들은 “우리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기에 이런 꼴을 당하느냐.”며 공무원을 향해 분통을 터뜨렸다. ●면직원들 마을돌며 주민 위로 장기면 당암리에서 태어나 25년 동안 돼지와 소를 키워온 윤종환(50)씨는 행정수도가 들어서면 옮겨 가기 위해 지난달 이웃한 의당면에 축사부지 3000평을 사들였다. 이전하는 날짜가 가까워질수록 땅값이 뛸 것이 걱정돼 은행에서 3억원을 대출받고 쌈짓돈까지 모두 털어 5억여원을 마련했다. 이주 보상금을 받고 새 축사에서 열심히 일하면 빚은 어렵지 않게 갚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무산된 지금은 당장 대출이자를 갚을 일에 밤잠을 설친다고 했다. ●대출받아 새축사 마련했는데… 윤씨는 “배운 것이 소·돼지 치는 일밖에 없어 미리 준비를 한 것인데 이 일을 어떻게 하느냐.”면서 “우리가 수도 이전을 원한 것도 아닌데 왜 피해를 봐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근처 축산농가들도 우리와 사정이 모두 비슷할 것”이라면서 “이제 당장 먹고 살 일이 막막하다.”고 한숨지었다. 장기면 봉안리에서 평생을 살아온 최은철(48)씨는 논 옆에 농가주택을 지으려고 형질변경 허가 신청을 냈다가 지난 6월17일 정부가 개발행위와 건축허가 등의 제한을 고시하는 바람에 12월 말까지 허가를 연기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최씨는 “집을 짓기 위해 준비를 하다 형질 변경에서 가로막혀 반년 가까이 땅을 놀렸다.”면서 “애들 장난 같은 수도이전 싸움에 괜한 손해를 봤다.”고 억울해했다. 당암리 토박이 김모(60)씨는 행정수도 이전 소식에 욕심을 내 봄부터 채소 비닐하우스를 5동에서 15동으로 늘렸다. 은행에서 6000여만원을 대출받았으나 보상금을 받으면 어떻게든 메울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한 것. 하지만 꿈은 한순간에 날아가버렸다. 그는 당장 대출금과 이자 상환금 마련 때문에 곤란한 처지에 놓인 것은 물론이고, 이웃들로부터 “한몫 잡아보려 투기를 했다가 저 지경이 됐다.”는 뒷말까지 듣는다고 했다.●“정부서 모른 척하지 않을것” 하지만 주민들은 아직도 ‘정부가 우리를 완전히 모른 척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품고 있다. 정부가 ‘미안해서라도’ 다른 공공기관을 옮겨주지 않겠느냐는 것. 장기면 도계1리 토박이인 박모(65·상업)씨는 “주민들이 크게 실망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렇게까지 돌아가는 마당에 적어도 대전으로 옮겨갔던 도청이라도 공주에 되돌려주지 않겠느냐.”면서 “정부에 대한 불신이 커졌지만 그만큼 후속조치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고 분위기를 설명했다. 공주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연기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체니딸 레즈비언 거론 ‘뒷말’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존 케리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13일(현지시간) 밤 조지 W 부시 대통령과의 3차 TV토론에서 동성애와 관련한 질문에 답변하면서 딕 체니 부통령의 레즈비언 딸 매리를 거론한 것이 논란이 되고 있다. 체니 부통령은 14일 플로리다 유세에서 “여러분은 당선을 위해서라면 어떤 말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을 봤다.”면서 “케리 후보는 선을 벗어났으며 완전히 부적절한 발언이었다.”고 공격했다. 그의 부인 린도 전날 피츠버그에서 지지자들과 함께 토론회를 시청한 뒤 “천박한 정치 술수”라면서 “결론은 케리는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난하고 나섰다. 공화당측은 케리 후보측이 체니 후보 캠프에서 일하는 매리를 겨냥함으로써 부시 캠프 전체를 흔들어보려 한 것으로 믿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동성애자 결혼을 반대하는 조항을 헌법에 포함시키려 하고 있으며, 체니 부통령은 이 문제를 두고 부시 대통령과 이견을 보인 바 있다. 일부 언론은 케리 후보의 발언을 비판하면서 그의 발언이 감표 요인이 될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보수적 논객인 팻 부캐넌은 “부시 대통령이 케리 후보의 이혼 경력을 거론하면 좋겠냐.”고 반문했다. 이에 대해 케리 선거본부측은 “토론에 지고 나서 새로운 논쟁거리를 만드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dawn@seoul.co.kr
  • 국민銀감사 자리 ‘뒷말’ 무성

    국민은행 상근 감사로 내정됐던 금융감독원 이영호 부원장보가 이틀 만인 7일 저녁 돌연 고사하면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특히 국민은행의 이번 감사 선임에는 감독당국의 입김이 적잖이 작용했던 것으로 알려져 구태(舊態)가 재연됐다는 지적이다. 이 부원장보는 8일 “회계처리 기준위반 관련 징계로 최근 금감원과 국민은행간 갈등이 있었고,금감원 출신들이 금융기관 감사직을 독식하고 있다는 언론보도로 사회적 분위기도 안 좋아 국민은행 감사직을 맡지 않기로 했다.”고 설명했다.내년 초 현직 임기만료를 앞두고 있는 이 부원장보로서는 좀체 하기 어려운 결단을 내린 셈이다. 김정태 국민은행장은 지난 5일 갑자기 부행장들을 저녁식사 자리에 불렀다.김 행장은 여기서 “오는 29일 주주총회를 앞두고 지난 5월 이성남 전 감사가 금융통화위원으로 자리를 옮긴 뒤 오랫동안 공석이었던 감사직에 이 부원장보를 선임하자.”고 제안했다.금감원과의 껄끄러운 관계,금감원 출신 낙하산 인사에 대한 비판여론을 들어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이 부원장보가 오래 전부터 차기 감사로 ‘사실상 내정’돼 있었기 때문에 큰 논란 없이 통과됐다. 금융권 관계자는 “국민은행에서 바뀐 주변상황을 들어 이 부원장보의 선임을 망설였으나 금융감독 당국이 예정대로 추진할 것을 주문했다.”면서 “감독당국 윗선에서 움직였기 때문에 이 부원장보 자신도 돌아가는 상황을 정확히 알지 못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 부원장보도 “감사 내정을 사전에 전혀 알지 못했다.”면서 “국민은행측이 지난 5월 차기 감사 자리를 제안해 와 수락은 한 상태였지만 금감원장이 바뀌고 김정태 행장의 연임이 불가능해지는 등 상황이 급변해 감사 선임건은 물건너간 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이 부원장보의 말대로라면 윗선의 공연한 ‘배려’ 때문에 당사자만 생채기를 입은 꼴이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 [폴리시 메이커] 김광재 건교부 항공정책심의관

    [폴리시 메이커] 김광재 건교부 항공정책심의관

    “국제항공과장으로 재직 중이었던 1992년,타이완과 국교가 단절되면서 정기항공노선이 끊겼습니다.이제 12년 만에 담당국장으로서 민간항공협정 체결을 이끌어내 감회가 남다릅니다.” 최근 체결된 한국∼타이완간 민간항공협정의 숨은 주역인 건설교통부 김광재(48) 항공정책심의관.양측간 민간항공협정 체결로 12년 동안 끊어졌던 비행기 길을 다시 이었다. “타이완과는 국교가 수립돼 있지 않고,중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내세우고 있어 양측간 항공협정 체결에 난관이 많았습니다.그래서 국가간 협정이 아니라 민간끼리 항공협정을 체결토록 한 것입니다.타이완측이 막판까지 협상체결을 꺼려 애를 먹었습니다.” 김 국장의 노력에 힘입어 그동안 중국이나 필리핀 영공으로 우회 운항했던 비행기가 타이완 영공을 통과할 수 있게 돼 연간 330억원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게 됐다.특히 서울∼타이베이간 여객 주 18회,화물 주 2회 개설 등을 협의,연간 항공사 수입 약 250억원 증대와 연 1200억원 이상의 관광수입 증대가 기대된다. “항공협정 체결로 자연스럽게 노선 배분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원칙에 따라 노선을 배분해 뒷말이 나오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김 국장은 “12년 전 서울∼타이베이 노선의 단항 원인이 정부 때문이었다는 점과,이번 항공협정이 신규협상이라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라면서 “여기에다 양 항공사의 운항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이번 주 안에 노선배분을 마무리짓겠다.”고 밝혔다. 특히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자존심을 걸고 노선배분에 큰 관심을 갖고 있지만,서울∼타이베이 직항로 개설보다는 타이베이 영공 통과로 인한 경제적 이득에 더 큰 의의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 국장은 최근들어 또 하나의 현안에 매달리고 있다.국제민간항공기구(ICAO) 이사국 재선 추진이다.오는 28일부터 다음달 8일까지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리는 ICAO총회에서 우리나라의 이사국 재선을 위해 뛰고 있다. 96년 남북항로 개설시 우리측 수석대표로 활동하기도 했던 그는 국제적 항공업무 전문가다.행정고시 24회로 공직생활을 시작,건교부 국제항공과장·국제항공담당관·운수정책과장·수송물류정책과장 등을 지냈다.93년부터 2년 동안 ICAO에서 파견근무하기도 했다. 김용수기자 dragon@seoul.co.kr
  • [영화평론가 이효인의 스크린나들이] 그리운 배우 허장강

    내게는 직업과 연관된 두 개의 추억 뭉치가 있다.하나는,내가 실제로 겪지 못했지만 훗날 나름대로 재조립한 과거의 한국 영화,‘1950,60년대 한국영화’이고,다른 하나는 1980년대 영화(운동)를 중심으로 맺었던 ‘인연’이다.50,60년대 한국 영화들은 누추함과 비루함,그리고 어설픔이 있지만 진실과 고뇌가 있다. 당시 한국 영화계의 주류에 속했던 원로 영화인들은 자주 이런 말을 한다.“요즘 영화들은 겉만 화려할 뿐 과거 한국 영화가 가졌던 혼이 없다.” 나 역시 부분적으로는 그 말에 동의한다.이야기가 정교하고,화면이 풍부한 90년대 이후 대부분의 영화들은 정작 보고 나면 잘 만든 이야기 한편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주제 의식도 뚜렷하고 화면도 매끄럽지만 지속적인 울림을 주지 못하는 80년대 이후의 유럽 영화들과 어떤 면에서는 닮은꼴이다.하지만 오해마시길.과거 영화가 현재의 영화보다 낫다는 말은 아니다.한 측면을 얘기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오히려 앞서 언급한 원로 영화인들의 발언의 근저에는 ‘당신들의 시대’를 살아버린 분들의 미련과 섭섭함,그리고 현재에 대한 시기와 질투의 감정 또한 있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배우 허장강을 떠올리노라면 50,60년대 한국 영화는 보다 선명해진다.‘돼지꿈’에서는 영어를 구사하는 사기꾼으로,‘김약국집의 딸들’에서는 아편쟁이로,‘서울의 지붕밑’에서는 엉큼한 점쟁이 노인으로,그리고 또다른 영화에서는 냉혹한 뒷골목 사나이로,그는 김승호만큼 아니 어쩌면 김승호보다 더 연기의 진수를 보여 준다.그 연기 속에는 정말 ‘혼’이 있다.그것은 요새 배우들이 아직은 해내지 못하는 것이다. 반면,지금 한국 영화계를 움직이는 사람들은,투자자 등을 제외하곤,거의가 80년대 산물이다.난세가 영웅을 만든다는 말을 과장되게 끌어들이지 않더라도,그들은 단지 나이만으로 현재의 한국 영화계를 움직이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충무로 영화계의 합리와 비합리,대화와 억지,개방성과 폐쇄성 사이를 비집고 개방적으로,대화하는 태도로,합리를 이끌어낸 것은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다.하지만 80년대 그들은 충무로에서 점심 끼니를 걱정하던 사람들이었다.그것을 두고 “옛날에 걔 내 밑에 있을 때 이러저러했다.”라고 비아냥대는 사람들도 있지만,그런 말이야말로 패배자들의 뒤통수 때리기에 불과하다.그때 슬리퍼 끌고 삼류극장에서 영화를 본 후 더운 여름에 닭발 안주에 소주를 마시면서,그들 혹은 우리는 영화를 얘기했다.주로 영화의 힘과 영화와 사회와의 관계에 대해 말했던 것 같다.아버지의 영화들이 놓친 것들에 대해 말했던 것이다. 그 가운데에 장선우 그리고 박광수 등이 있다.그들 또한 사람인지라 작업 과정에서 적지 않은 뒷말을 남겼고,작품에 대한 평가 또한 고르지 않다.하지만 한국 영화 역사 전환기의 그 선명함과 영향력만은 평가해야 할 것이다.과거의 이데올로기를 감춘 채 던진 ‘너에게 나를 보낸다’와 ‘거짓말’,자신의 한계마저 고스란히 드러내면서 고집을 굽히지 않은 ‘그들도 우리처럼’ 등은 여전히 우리 영화의 보물이기 때문이다.그들이 그립다.영화로 행복해지고 싶다.
  • [창간 100년 DMZ 51년 생태계-그 빛과 그림자](1) 산양부부의 사투

    [창간 100년 DMZ 51년 생태계-그 빛과 그림자](1) 산양부부의 사투

    ‘비무장지대(DMZ)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서울신문은 창간 100주년을 맞아 이런 물음을 던졌다.휴전선 155마일을 경계로 남북을 각각 2㎞씩 뒤로 물린 정전협정(1953년 7월 27일)에 따라 포성이 멈추고 DMZ가 생겨났다.그로부터 51년.인간의 발길이 끊어진 DMZ일대에 자연의 생명력은 힘차게 꽃피어 올랐다.남과 북이 세운 철책선은 곧 DMZ 생태계의 삶의 울타리였다.그러나 민족의 환경유산,생태계의 보고(寶庫)란 수식어가 미래의 DMZ까지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서울신문 탐사대는 민간인이 갈 수 있는 최북단인 남방한계선 일대를 각계 전문가와 함께 보름여동안 샅샅이 훑었다.총 20회의 연재를 통해 펄떡이며 살아숨쉬는 DMZ 생태계의 풍경과 보전대책,바람직한 미래상을 그려본다. (편집자 주) ‘목이 탄다.철책 아래 흘러내리는 물을 들이켜도 갈증은 더해만 간다.자유의 목마름….아내도 지친듯 힘없이 몸을 기대온다.물로 허기를 달랜지 오늘로 나흘째.깊은 밤,네온 불빛에 홀려 이중철책 안으로 뛰어든 것이 실수였다.철망은 물어뜯어도,몸을 부딪쳐도 도무지 끄떡없다.그래,이제는 알겠다.남과 북을 가르는 저 철책의 단단함을,넘지못할 그 높이를….’ ●살아있는 화석,산양을 찾아서 6월 14일 강원도 고성 고진동 계곡.12일간의 탐사활동이 어느덧 끝자락에 이르면서 탐사대의 조바심도 점점 고조됐다.‘끝내 산양을 촬영하지 못하고 돌아가는 건 아닐까….’ 200만년을 내리 살아오면서 여전히 태고적 모습을 간직한 녀석.‘살아있는 고대동물’ ‘화석(化石)동물’이란 별칭이 붙은 건 그런 연유에서다.서울신문 100주년 탐사의 중요 ‘표적’이 아니될 수 없었다. 그러고보니 사흘 전 양구군 백암산 자락에서 우연히 마주쳤던 어린 산양이 못내 아쉽기만 했다.4륜구동 취재차로 덜컹대며 전방부대 비포장길 커브를 돌자 화들짝 놀라면서 쏜살같이 내빼던 산양….80도는 족히 됨직한 경사진 바위 비탈을 너무도 가뿐하게 뛰어올랐다.놀라기론 탐사대도 못지않았다.취재차에서 내려 부랴부랴 카메라를 들이댔지만 토실토실 살찐 녀석의 모습을 담진 못했다.비명을 지르는 새소리 같은 험악한 울음으로 탐사대를 을러댄 뒤 서둘러 숲속으로 몸을 숨겼기 때문이다. 아쉬운 기억을 떠올리며 육군 ○○사단 ‘율곡부대’에 절박한 취재협조 요청을 냈다.하지만 정훈공보참모 박영희 중령은 선뜻 고개를 끄덕이지 않는다.“이 시기는 힘듭니다.(눈에 쉽게 띄는)겨울철이면 몰라도….” 맞는 말이다.그동안 여러 기관의 수많은 탐사·조사에도 불구하고 ‘여름 산양’의 자태가 제대로 드러난 적은 없었다.그러나 희망의 끈을 놓을 순 없었다.“지난 5월 고진동 골짜기에서 산양 10여 마리를 봤다.”는 인근 주민들의 목격담도 힘이 됐다.6월 14일,그런 실낱같은 기대를 안고 고진동 남방한계선을 찾았다. ●철책 안의 산양,운명같은 조우 분위기가 좀 이상했다.철책선 수문보강공사 중인 고진동 ‘라맨교’ 옆 GOP 초소.전방을 주시하던 초병에게 “요새 산양을 본 적 있느냐.”고 묻는데 웬일인지 눈길을 피한다.갑자기 바로 옆 이중철책 안에서 ‘두두두’ 땅이 울린다. ●철책 너머엔 어린 산양 한마리가 무언가가 획∼하니 번개처럼 지나간다.산양이었다.이중철책 사이 폭 2m 정도의 좁은 통로를 산양 2마리가 거침없이 내달리고 있었다.전혀 뜻밖이었다.어떻게 철책 안에 갇혔을까.의문부호와 함께 녀석을 살폈다.잿빛 단단한 몸에 80㎝ 정도의 키다.검은 갈기가 등을 달리고 꼬리와 발굽 털은 새하얗다.‘뿔 나이테’로 추정되는 나이는 4살.암수 한쌍이다. “오늘로 사흘째입니다.어디를 어떻게 통해선지 철책 안으로 들어왔지만 나가는 구멍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산양의 불운은 탐사대엔 행운이었다.초병의 설명을 귓전으로 들으며 카메라 렌즈는 연신 녀석의 얼굴과 꽁무니를 좇았다.이중철책 안은 경계를 위해 제초작업을 해 둔 곳이다.그러니 녀석은 꼬박 사흘동안 굶으며 자기 모습을 노출시킨 셈이다.카메라 렌즈에 들어온 산양의 큼직한 두 눈엔 좌절과 당혹감이 묻어났다. 철책 북쪽 너머론 막 돌을 넘겼음직한 어린 산양 1마리가 서 있었다.탐사대와 동행한 박그림 설악녹색연합 대표가 옆에서 연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아무래도 어린 새끼인 듯합니다.산양은 가족끼리 몰려다니는 습성이 있거든요.” 초병들도 그제야 “새끼 산양이 사흘째 철책 안의 산양들과 보조를 맞추며 근처를 배회하고 있다.”고 귀띔했다.그렇다면 녀석들은 또 하나의 이산가족인 셈이다.사람의 간섭을 막는 생명의 울타리였을 철책선이 이제는 분단의 빗장이 되어버렸다. ●나흘간의 사투 그리고 탈출 6월 15일 탐사대는 다시 고진동 현장을 찾았다.철책 안의 산양은 이제 달리기를 멈췄다.며칠동안 통로를 따라 야트막한 언덕을 수백번 오르내리며 탈출구를 찾았단다.철책을 사이에 두고 2m 앞까지 다가가도 도망가지 않는다.던져주는 풀을 받아먹지도 않는다.때때로 멍한 눈길로 철책 너머 새끼를 바라보곤 한다. 십여년 남짓 설악산 속에서 살다시피 하며 산양보호운동을 펼쳐 온 박 대표가 한숨을 섞어가며 뒷말을 이었다. “이 산양들의 처지가 DMZ 생태계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지금처럼 DMZ 안의 야생동물들이 남과 북의 철책을 넘지 못하고 계속 근친교배를 반복하면 열성 유전이 심화돼 멸종의 위험도 점점 높아집니다.특히 산양처럼 개체수가 적은 동물일 경우는 더욱 문제가 심각하죠.남과 북 사이의 야생동물 이동통로 마련 등 실질적인 해결책 고민이 시급합니다.” 하늘이 도운 것일까,산양가족의 애처로움이 수문공사 인부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일까.산양 부부는 감금 나흘째인 15일 오전 ‘우연히’ 생겨난 수중철책 사이의 틈새를 발견하곤,그 사이로 큼직한 몸채를 밀어넣었다.철책 너머 기다리던 새끼와 합류한 이들은 뒤도 한번 돌아보지 않고 곧장 가까운 산림 속으로 훌훌 사라져 버렸다.나흘동안 가둔 철책을 온전히 남북한 사람들의 숙제로 남기고…. 고성 채수범기자 lokavid@seoul.co.kr ■ 특별탐사대 명단 ●전문가 김귀곤 서울대 농생대 교수(탐사대장),서재철 녹색연합 자연생태국장,신준환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생태과장,심재환 광주서강정보대 교수,최승호 전북대 생물다양성연구소 연구교수,박그림 설악녹색연합 대표,박희정 환경부 자연정책과장 ●기자 염주영 편집부국장,한만교 수도권부 차장,이종원 사진부 차장,손원천 사진부 기자,조한종·채수범 사회교육부 기자,박은호 공공정책부 기자 ■전문가 칼럼 지난해 늦가을 고진동 계곡 철책 앞에 서서 산양 암수 한 쌍이 짝짓기 놀음하는 것을 지켜보았다.쫓기면서도 싫은 기색이 별로 없던 암컷과,죽어라 쫓아가던 수컷의 모습이 떠오른다.올 봄에 태어난 새끼는 지금쯤 커다란 눈망울을 굴리면서 호기심 어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것이다.그 녀석이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산양속(屬)은 파키스탄과 인도의 히말라야 지역에서부터 미얀마,태국,중국을 거쳐 러시아 극동지방에 걸쳐 살고 있다.이 곳의 종(種)의 학명은 Naemorhedus caudatus로 4아종을 포함하는데,우리나라와 중국 두만강유역,연해주에 살고 있는 아종은 Naemorhedus caudatus raddeanus다.영명은 Amur goral.국제적으로 ‘멸종위기에 있는 야생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의 부속서Ⅰ에 올라있는 멸종 위기종이다.나라 안에서는 천연기념물 제217호로,멸종 위기종으로 지정해 1968년부터 보호하고 있다.강원도의 비무장지대와 민통선지역,그리고 백두대간을 따라 내려가면서 향로봉·매봉,설악산·오대산,삼척 가곡지역,경북 울진 지역에 걸쳐 600∼700마리쯤 살아가는 것으로 보고된 매우 드문 짐승이다. 산양이 살아가는 곳은 삶터의 바탕이랄 수 있는 바위절벽과 풀밭이 함께 있는 곳이며 여름철에는 그늘진 숲속이나 바위 아래에서 지내고,겨울철엔 쉽게 눈이 녹아 먹이를 구할 수 있는 바위 비탈의 햇볕이 잘 드는 곳에서 살아간다.계절에 따라 옮겨다니며 봄철에서 가을철까지는 주로 초본류를 먹이로 삼고 겨울철에는 목본류를 주로 먹는다.산양은 야생에서 평균수명이 15살쯤이며 수컷 한 마리가 여러 마리의 암컷을 거느리며 10∼11월에 짝짓기를 하고 이듬해 5∼6월 1마리의 새끼를 낳는다.태어난 새끼는 1년 반에서 2년쯤 어미를 따라 다니며 살아가는 방법을 익히고 2살쯤 되면 어미 곁을 떠나 독립해서 가족을 이루고 살아간다.가장 많은 수가 살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곳은 아무래도 사람들의 간섭이 없는 비무장지대와 간섭이 덜한 민통선 지역이다.그러나 백두대간 여기저기 흩어져 살고 있는 다른 산양의 무리들은 사람들의 끊임없는 간섭으로 그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천적으로는 호랑이,표범,반달곰,늑대,담비,삵이지만 이 종들은 멸종되었거나 매우 드문 종으로서 우리나라에서는 사람이 가장 큰 천적이다.어린 산양의 눈에 비친 세상이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기를 꿈꾼다. 박그림 설악녹색연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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