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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그너 악극 6시간 꼼짝 않고 보던 아이 ‘무터’를 꿈꾸다

    바그너 악극 6시간 꼼짝 않고 보던 아이 ‘무터’를 꿈꾸다

    독일에서 유학하던 성악 전공 부부는 딸 이름을 클라라로 붙였다. 독일 작곡가 슈만의 아내이자 브람스의 마음을 흔들어 놓은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이름에서 딴 것. 걸음마도 떼기 전 음악은 소녀의 심장을 보듬었다. 일곱 살 터울 언니는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두 살 위 오빠는 첼로를 배웠다. 언니, 오빠의 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두 돌을 넘긴 아기에게 ‘산타클로스’는 바이올린을 선물했다. 4살 때 독일 만하임음대 예비학교에 최연소로 입학했다. “어릴 때부터 속눈썹 끔뻑거리는 바비인형류는 질색이었어요. 두 살 때 아빠랑 바이로이트 페스티벌(1951년부터 바그너의 성지에서 열리는 음악축제)에 가서 여섯 시간짜리 바그너 악극을 꼼짝도 하지 않고 봤대요. 유별났던 거죠(웃음).” 이듬해 함부르크 인근 뤼베크음대로 옮겨 자하르 브론을 사사했다. 그해 함부르크 심포니와의 협연으로 공식 데뷔했다. 국내에서는 사라 장의 스승으로 유명한 도러시 딜레이의 제안으로 언니, 오빠와 함께 1995년 미국 줄리아드음대 예비학교에 전액 장학금을 받고 입학했다. “천재라고요? 오히려 평범하고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대단한 부모(아버지 강병운 서울대 교수는 아시아인으로는 처음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주역으로 섰다. 어머니 한민희씨도 유럽에서 오페라 주역으로 활약한 소프라노다.) 밑에서 태어났고 어릴 때부터 음악을 했으니까요.” ●‘마왕 변주곡’ 등 난해한 곡 대거 포함… “큰 도전, 즐겁게 했다”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24·한국 이름 강주미)의 얘기다. 최근 첫 솔로 앨범 ‘모던솔로’를 발표한 그를 서울 중구 태평로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170㎝가 넘는 큰 키에 화장품 광고모델로 발탁될 만큼 수려한 미모. ‘엄친아’가 많은 클래식계에서도 그의 존재는 도드라진다. 앨범 얘기부터 물었다. 체코 작곡가 빌헬름 에른스트(1814~1865)의 ‘여름의 마지막 장미’와 ‘마왕 변주곡’ 등 웬만한 연주자들은 도전조차 꺼리는 무반주 바이올린 곡을 첫 솔로 앨범에 대거 포함시켰다. “‘여름의 마지막 장미’와 ‘마왕 변주곡’을 한 음반에 넣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음악적 깊이보다는 기교가 중시되는 곡이어서 큰 도전이었는데 즐겁게 녹음했어요.” 강주미의 새끼손가락은 약지(藥指) 길이의 절반을 조금 넘는다. 왼쪽 새끼손가락으로 튕기고 짚어야 하는 기교를 소화하기엔 어려움이 많다는 얘기다. 또 다른 ‘아픔’도 있다. 열두 살이 되던 1999년 9월, 거장 다니엘 바렌보임이 이끄는 미국 시카고 심포니와의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협연이 잡혔다. 호사다마였을까. 학교에서 농구를 하다가 다른 학생에게 밀려 철조망 보호막에 몸이 부딛혔다. 하필 새끼손가락이 눌렸다. 손가락이 철사처럼 엉뚱한 방향으로 꺾였다. 두 차례나 전신마취를 하고 철심을 박는 대수술을 했다(그의 새끼손가락은 지금도 약간 뒤틀렸다). 바이올린을 다시 잡기까지 3년이 걸렸다. “무대에서 하는 실수는 다 새끼손가락 때문이에요. 비가 오면 쑤시고 무겁죠. 솔직히 인터뷰 때마다 손가락 얘기를 하는 건 싫어요. ‘부상을 딛고 재기한 아무개’란 식으로 보도되면 왠지 대중들에게 그걸 감안하고 들어 달라는 것 같거든요.” ●짧고 뒤틀린 새끼손가락 극복… 22일 ‘무한독주’ 공연 김남윤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의 제안으로 2004년 한예종으로 ‘역(逆)유학’을 왔다. 2009년부터 승전보가 이어졌다. 2009년 독일 하노버콩쿠르 2위에 이어 지난해 일본 센다이콩쿠르와 세계 3대 바이올린 콩쿠르로 꼽히는 미국 인디애나폴리스콩쿠르 우승을 거푸 차지한 것. 인디애나폴리스콩쿠르의 부상으로 시가 35억원짜리 1683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를 4년간 쓸 수 있게 됐고, 내년 5월 미국 케네디센터에서 독주회도 갖는다. 그의 롤모델은 ‘바이올린 여제’ 안네조피 무터(48)다. 강주미는 “무터는 무대에 걸어나오는 순간 관객을 사로잡는다.”면서 “무터처럼 한계가 없는, 질리지 않는 연주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어릴 때부터 용돈을 모아 패션잡지를 사 볼 만큼 패션과 미용에 대한 관심도 컸다. 하지만 모델일이나 화보 촬영은 어디까지나 ‘취미’라고 말한다. 그는 오는 22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올림푸스홀에서 ‘강주미의 무한독주’란 제목으로 공연한다. (02)6255-3270.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인간의 잔인함에는 한계가 없다? 개 학대장면 충격

    인간의 잔인함에는 한계가 없다? 최근 들어 세계 곳곳에서 잔인하게 동물을 학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또 한명의 동물학대 여성이 포착돼 비난을 받고 있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2일자 보도에 따르면, 린다 존스(51)라는 여성이 데본주 바닷가 인근에서 고의로 개를 집어 던지는 모습의 사진이 인터넷에 퍼지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학대를 당한 게는 테리어 종의 ‘제스’(4). 제스는 공중에서 목이 뒤틀린 채로 딱딱한 바닥과 바닷물에 빠져 허우적대다 뭍으로 나오기를 반복했고 목과 머리, 등에 큰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린다 존스의 남편은 이를 보고도 어떤 제지도 하지 않았다. 결국 이들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체포돼 법정에 섰고, 동물을 잔혹하게 학대한 혐의로 유죄가 선고됐다. 린다 부부는 재판에서 “우리는 개를 바다에 집어 던진 적이 없다. 개가 스스로 수영을 하러 물에 들어갔을 뿐”이라고 주장했지만, 당시 해변에 여행을 왔다 이를 목격한 관광객의 사진이 증거로 채택되면서 결국 죗값을 치르게 됐다. 법정은 이들 부부에게 실형 12주와 더불어 10년 간 어떤 동물도 함께 살아서는 안된다는 명령을 내렸다. 사진을 본 네티즌들은 끔찍한 사고를 겪은 제스에 안타까움을 표하는 한편, 린다 부부에 대한 비난을 멈추지 않고 있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손예진 ‘오싹한 연애’로 컴백…그녀, 인생을 말하다

    손예진 ‘오싹한 연애’로 컴백…그녀, 인생을 말하다

    낯가림이 심했다. 새로운 일에 대한 경계심과 두려움도 컸다. 대중 앞에 모든 것이 까발려지는 배우란 직업을 하기에 적합한 천성은 아니다. 그런데 중학교 때였나. 말로는 표현 못 할 기운을 느꼈다. 어린 나이였지만 평범한 직장생활 하면서 살 팔자는 아니란 걸 직감했다. 소녀는 배우를 꿈꿨다. 열일곱 살에 화장품 모델로 데뷔했다. 열아홉 살에 드라마 ‘맛있는 청혼’으로 연기를 시작했다. 2002년 영화 ‘취화선’ 조연으로 충무로로 영역을 넓혔다. 두 번째 영화 ‘연애소설’부터는 줄곧 주연만 했다. 배우라면 한 보따리씩 가진 무명 시절 고생담과는 거리가 멀었다. “밖에서 보는 것처럼 운이 좋았을지도 몰라요. 다들 니가 무슨 슬럼프가 있었느냐고 해요. 그런데 십몇 년 동안 끊임없이 복기하고 자책하고 후회하고,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지…. 항상 도돌이표 같은 고민을 해요.” # 상대역 캐스팅 안 됐지만 시나리오만 믿고 로맨틱 코미디 ‘오싹한 연애’로 2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배우 손예진(29)을 지난 24일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새달 1일 개봉하는 ‘오싹한 연애’는 로맨틱 코미디란 ‘도’에 호러란 ‘토핑’을 얹은 독특한 영화다. 기를 쓰고 쫓아다니는 귀신 때문에 연애는커녕 가족·친구로부터 버림받은 여자 여리(손예진)가 마술사 조구(이민기)를 만나 벌이는 달콤살벌 연애담을 다뤘다. 영화는 ‘백야행-하얀 어둠 속을 걷다’ 이후 2년 만이다. 데뷔 이후 한해도 영화를 거르지 않은 점에 비춰 의외의 행보. 손예진은 “드라마 ‘개인의 취향’을 하고 나서 (강제규 감독의) 영화 ‘마이웨이’를 하기로 했었는데 시나리오가 바뀌면서 아예 빠졌다. 그 무렵 ‘오싹한 연애’를 받았는데 묘하게 새롭고 재밌었다.”면서 “내가 멜로나 로맨틱 코미디의 좋은 작품들을 했다고 자부하는데 좀 더 업그레이드된 걸 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신인감독, 게다가 상대배우 캐스팅도 안 된 상태에서 시나리오만 보고 결정했다. 전작 ‘개인의 취향’에서 5세 연하인 이민호에 이어 3세 연하인 이민기와 커플연기를 했다. 영화를 끌고나가는 건 오롯이 그녀의 몫. 손예진은 “그동안 (최민식·배용준·김주혁·김명민·한석규·정우성 등) 선배님들과 호흡을 맞추다 영화에선 처음으로 후배와 찍었다. 관객 입장에선 검증이 안 된 신인감독이니까 책임감이 더 심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 영화에선 처음으로 후배와 호흡 맞춰가며 그래서일까. 언론 시사 전날 1시간밖에 잠을 못 이뤘다. “하하하, 늘 최악의 경우를 가정하고 시사회에 가요. 발가벗겨진 채로 도마 위에 놓인 느낌 같다고나 할까요. 기자 분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에 따라 옷이 입혀질 수도 있고, 계속 발가벗겨진 채로 있을 수도 있는 거죠. 다행히 웃을 대목과 무서워할 대목에서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반응이 나온 것 같아요.” 손예진에겐 ‘로맨틱 코미디의 여왕’이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작업의 정석’ ‘아내가 결혼했다’ 같은 로맨틱 코미디에서 물을 만난 고기처럼 청순미와 섹시한 매력을 발산했기 때문. 물론 그녀가 과감한 연기변신을 시도했던 ‘외출’ ‘무방비도시’ ‘백야행’ 같은 영화의 흥행성적이 좋지 못했던 탓도 있다. “로맨틱 코미디는 두세 작품밖에 안 했는데 그 인상이 강하게 남았나 봐요(웃음). ‘외출’은 치정극도 아니고, 허진호 감독님 특유의 미묘한 감정선이 중요한 영화잖아요. ‘무방비도시’는 손익분기점은 넘었고. ‘백야행’은 워낙 특별하고, 뒤틀린 사랑 얘기여서…. 처음부터 대박과는 거리가 먼 걸 알았지만 선택한 거죠.” 곧 말을 이었다. “내가 새롭고 즐겁지 않으면 관객들이 재밌을 수 없잖아요. 변신을 위해 억지로 꿰맞춘 옷을 입고 싶진 않아요. 하지만 나를 감싼 껍질을 끊임없이 깨뜨리고 싶어요. 장르적으로는 똑같은 멜로, 똑같은 로맨틱 코미디라고 해도 그 안에서 다른 모습을 보여야죠.” 손예진은 “두 번의 슬럼프가 있었다.”고도 했다. 2003년 드라마 ‘여름향기’를 끝낸 직후와 2008년 드라마 ‘스포트라이트’를 찍을 때였다. 두 번 모두 쉬어야 할 타이밍이었지만, 작품 욕심에 일을 강행했던 게 패착. 정신적·육체적으로 패닉상태에 이르렀지만, 이겨냈다. # 나를 감싼 껍질을 깨뜨리고 싶었답니다 “결국 시간이 약인 것 같아요. 힘들긴 하지만 고민하는 시간은 나에게 주어진 몫인 거죠. 그런데 그 고비를 넘기고 나면 세상이 달라 보여요.”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만큼 ‘연기관’도 달라졌다. “한 번 사는 인생인데 평생 연기만 하며 살아야 하는 걸까란 회의가 문득 들어요. 뭘 할까 고민하다 음악을 좀 배워 볼까란 생각도 했어요. 그런데 이걸 배워서 음악영화에 출연할 때 써먹으면 좋겠구나란 생각으로 연결돼요(웃음). 이 세상에 사는 이상 연기를 하지 않는 나는 재미없을 것 같아요.” 그녀는 또한 “연기를 할 때 철저하게 외롭지만 그 외로움은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런데 자연인 손예진으로 돌아올 때 느끼는 허탈함은 컨트롤이 안 된다. 나를 알아가는 즐거움과 고통, 욕망, 그 모든 것이 연기의 매력인 것 같다.”고 부연했다. 이혼녀(‘연애시대’), 소매치기(‘무방비도시’), 기자(‘스포트라이트’), 팜므파탈(‘백야행’) 등 폭넓은 스펙트럼의 역할을 소화한 그녀가 도전하고 싶은 역할은 무엇일까. 그녀는 “30대에는 진한 여자들의 우정, 여성 캐릭터의 깊이를 더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델마와 루이스’나 ‘밴디트’ ‘몬스터’ 같은 영화에 끌린다.”고 털어놓았다. # 변신하려고 억지로 꿰맞춘 옷은 싫으니까요 조만간 전혀 다른 옷을 입고 우리 앞에 나타날 모습이 기대된다. 물론 피 흘리고, 재투성이가 된 손예진을 먼저 만나게 된다. 그녀는 요즘 생애 첫 번째 블록버스터 재난영화 ‘타워’현장에서 설경구, 김상경 등과 함께 재투성이에 피범벅으로 촬영 중이다. 배우 손예진의 껍질깨기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나는 18년간 성노예로 살았습니다”

    “나는 18년간 성노예로 살았습니다”

    “무척 가슴이 아프다. 이 책을 쓰기가 얼마나 힘든지 새삼 깨닫게 된다. 이쯤에서 그만 멈추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때의 심리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이 괴롭고 속이 뒤틀린다. 쓰면 쓸수록 더욱 힘들어진다. 하지만 계속 쓰고 싶기도 하다. 쓰지 않으면, 나를 유괴하고 강간한 범인을 계속 보호해 주는 꼴이 될 테니까.” ‘도둑맞은 인생’(제이시 두가드 지음, 이영아 옮김, 문학사상 펴냄)은 11살 때 납치되어 18년간 성 노예로 살다가 구출되어 세상을 경악시킨 한 여성이 직접 쓴 책이다. 두가드는 1991년 6월 10일 여느 때와 같은 월요일 아침 학교에 가다가 납치된다. 스턴 총(전기충격기)에 감전된 채 담요로 뒤덮여 낯선 집에 가게 된다. 어린 소녀를 납치한 남자는 스턴 총으로 해코지한 것도 모자라 옷을 벗기고 알몸으로 샤워를 시킨다. “나는 강간당했던 바로 그곳에서 계속 지내야 했다. 그땐 그게 뭔지도 몰랐다. ‘강간’이란 단어가 있는지도 몰랐으니까. 지금은 그 순진한 어린 소녀가 지독히도 가엾다. 그 소녀는 아직도 나의 일부이며, 때때로 밖으로 튀어나와 또 한 번 나를 움츠러들게 하고 무력하게 만든다. 강간이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다는 것밖에는 모른다. 그 일이 벌이질 때마다 나는 그가 끝낼 때까지 마음속으로 ‘달아나는 법’을 배웠다. 머릿속에서 이야기를 지어내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그 시절에는 공상의 세계로 달아나기가 쉬웠다. 원래부터 워낙 몽상가였던 나는 딴생각을 많이 하는 아이였다. 시간 감각이 모호해졌고 그 덕분에 미치지 않을 수 있었다.” 2008년 8월, 29살이 되어서야 구출된 두가드는 그동안 14살에 첫딸, 17살 때 둘째 딸을 낳았다. 두가드를 성폭행하고 18년간 어린 소녀의 인생을 훔친 필립 가리도는 431년 형을, 납치에 동조한 그의 아내 낸시 가리도는 36년 형을 선고받았다. 두가드는 “필립을 증오하는 마음은 없다. 미워해서 좋을 것이 없다. 증오를 품고 사는 사람들은 원망하며 인생을 낭비하느라 좋은 것들을 전부 놓치고 만다. 지난 일은 돌이킬 수 없다.”고 털어놓는다. 하지만 두가드가 묘사하는 ‘달리기’는 끔찍하기 그지없다. ‘달리기’란 가리도가 마약을 흡입하고 며칠 동안 두가드를 성 노예로 학대한 일을 가리킨다. 심지어 가리도는 이 달리기 행위를 비디오로 촬영하기까지 했다. “‘달리기’ 시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끔찍한 순간들이었다. ‘달리기’가 끝나도 좋았던 적은 없었다. 다음이 또 있으리라는 걸 알았으니까. 끝이 보이지 않았다.”고 담담히 이야기하는 두가드의 문장에는 글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 배어 나온다. 초등학교 5학년까지밖에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두가드는 가리도의 인쇄 사업을 거의 도맡아 생활을 꾸리고, 학교를 보내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학습자료를 만들어 공부시켰다. 감금 생활에서 풀려날 수 있었던 것은 버클리대 경찰관 덕분이었다. 유괴범, 강간범, 소아성애자에 마약중독자인 필립 가리도의 피해망상증은 날로 심해졌다. 이미 전과가 있었던 탓에 정기적으로 보호관찰관들이 가리도의 집을 방문하던 중 수상한 낌새를 알아차린 이들에 의해 18년간의 비밀이 드러나게 된다. 두가드는 “실수일지도 모른다는 위험을 무릅쓰고 의견을 밝혀 옳은 일을 했다. 나 혼자서는 할 수 없었던 일을 해준 그들에게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고 도움을 준 경찰에 대한 심경을 밝혔다. 감금에서 막 풀려났을 때 두가드는 자신의 이름을 밝히기를 두려워했다. 심지어 납치범에게 성적 학대를 받으면서도 극도의 외로움 탓에 가리도로부터 위로를 받기도 한다. 이제 두가드는 두 딸을 학교에 데려다 주고 도시락을 싸 주며 평범한 일상의 기쁨을 느끼고 있다. 물론 심리치료도 받고 있다. 책의 판매수익금은 두가드가 유괴와 학대로 고통받는 가족들의 치료를 위해 세운 ‘JAYC’(Just Ask Yourself to Care)재단에 기부된다. 악몽 같은 세월을 더듬어 나가는 두가드의 글에는 괴로워하는 어린 소녀와 당시의 세월을 돌아보며 그 소녀를 연민하고 상처를 치유해내는 어른이 함께 있다. 인간이 인간을 어쩌면 이렇게 잔인하게 다루었는지 새삼 울분이 치밀어 오르면서도 저자의 놀랄 만한 의지에 감탄하게 된다. 1만 4500원.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CSI 따라잡을 한국식 정통 수사극

    CSI 따라잡을 한국식 정통 수사극

    ‘슈퍼스타K 3’가 막을 내리면서 그 빈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금요일 밤의 경쟁이 치열하다.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특수사건전담반 텐’(이하 ‘텐’). 가장 풀기 어려운 10% 강력 범죄에 맞선 상위 10% 특급 형사들의 악전고투를 그린 9부작 드라마다. 18일부터 매주 금요일 밤 12시에 영화채널 OCN을 통해 방송된다. ‘텐’은 잔악하고 풀기 어려운 사건일수록 초동 단계부터 특수전담반을 투입해야 한다는 가정에서 시작한다. 피해자와 가해자 입장에 서서 ‘어떻게’가 아닌 ‘왜’에 초점을 맞춘다. 단순히 누가 누구를 어떻게 죽였는지를 밝혀내는 흥미 위주의 수사물이 아니란 얘기다. 출연진도 제법이다. 드라마 ‘자이언트’ ‘파라다이스 목장’ 등을 통해 주연급으로 자리매김한 주상욱이 특수사건전담반 리더 여지훈 역을 맡아 이지적이고 냉철한 캐릭터를 연기한다. 전직 광역수사대 에이스이자 현직 경찰교육원 교수이기도 한 그는 ‘괴물 형사’란 별명답게 뛰어난 실력과 감각으로 강력 범죄를 뿌리 뽑는다. 주연을 머쓱하게 하는 충무로 최고의 ‘명품 조연’ 김상호는 연기 생활 18년 만에 첫 주연을 맡았다. 24년차 베테랑 형사 백도식 역인데 한번 문 사건은 절대 놓지 않고 끝까지 해결하다고 해서 ‘백독사’로 불린다. 홍일점 조안은 뛰어난 관찰력으로 타인의 심리를 추리하는 능력을 지닌 프로파일러(범죄심리 분석관) 남예리 역을 맡았다. 드라마 ‘짝패’에서 주인공 이상윤의 어린 시절을 연기하며 성공적인 데뷔를 치른 뒤 ‘폼나게 살 거야’ ‘뿌리깊은 나무’에 거푸 발탁된 신인배우 최우식이 신참 형사 박민호로 출연한다. ‘텐’에는 수사 드라마의 새 지평을 연 ‘별순검’ 제작진이 참여해 더 눈길을 끈다. 이승영(시즌1·3 연출) 감독과 남상욱(시즌1 기획·시즌3 집필), 이재곤(시즌3 집필) 작가가 의기투합했다. 영화 ‘이끼’(2010) ‘특수본’(2011)의 이태훈 미술감독까지 가담해 음습한 범죄 세계와 심리적으로 뒤틀린 인물의 내면을 묘사한다. 이승영 감독은 “미국 드라마 ‘CSI’의 성공을 보며 시청자들의 한국식 수사물에 대한 열망을 느꼈다.”면서 “‘별순검’ 제작 이후 현대적인 수사물 장르를 더욱 탄탄하게 구축하고 싶어서 ‘텐’을 기획 제작하게 됐다.”고 밝혔다. 1화 ‘테이프 살인사건’은 2004년 광주 여대생 테이프 사건을 모티프로 각색했다. 국내 케이블 드라마 사상 처음 120분짜리 영화 버전으로 편성된다. ‘24’ 등 미국의 유명 드라마들이 새 시즌 시작에 앞서 시청자들의 관심을 사로잡으려고 종종 쓰는 방법이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인간성 잃은 도시인의 뒤틀린 삶 정조준

    소설가에게 분방한 상상은 탓할 일이 아니다. 그 상상이 현실을, 특히 우리가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살아 온 암울하고 모순되고 부조리한 삶을 기반으로 할 때에 특히 그렇다. 현실 세계를 직시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고, 이를 통해 삶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을 하게 만든다면 오히려 상을 받을 일이다. 박석근(49) 작가의 첫 번째 소설집 ‘남자를 빌려드립니다’(민음사 펴냄)를 읽으면 이런 생각이 들 법하다. 작가는 1995년 문학사상으로 등단한 후 장편소설 ‘외로운 사람들은 바다로 간다’, ‘숨비소리’ 등을 선보이며 유토피아를 꿈꾸는 젊은이들의 열정과 방황, 고뇌와 좌절을 그려 왔다. 이번 소설집에서는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현대 도시와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간성과 자존감을 버린 도시인을 조준했다. 표제작 ‘남자를 빌려드립니다’에서 인간성의 상실 혹은 소외에 대한 탐구라는 작가의 주제의식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실직과 이혼, 감옥살이로 자주적인 삶을 거세당한 주인공은 인력소개사이트에 가입해 하나의 물건처럼 필요한 사람들에게 배달되어 소비되는 삶을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까다로운 고객의 대역 남편 일을 맡게 된다. 갓 이사 온 집의 벽에 못을 박고, 기울어진 장롱의 수평을 맞추고, 무거운 침대를 옮기는 등 집안에서 남자가 해야할 일을 해준다. 그러다가 어느덧 저녁식사 후 와인 잔을 부딪치는 사이가 된다. 진짜 남편처럼. 심지어 아이의 학교에 가서는 아빠 역할까지 훌륭하게 한다. 감정이 깊어진 그가 여자에게 진짜 남편이 되고 싶다고 고백을 한다. 그러자 여자는 태도가 돌변해 ‘주제도 모르고’라며 독설을 내뱉는다. 잠시 잊고 있었던 비참한 현실이 되살아나고 내면에 웅크리고 있던 그의 자아는 하이에나처럼 그녀를 공격한다. 일곱 편의 단편은 뒤틀린 현실 세계의 목격담 같다. 부를 이룬 사람들은 모두가 부러워하는 번듯하고 전망 좋은 집으로 이사하지만 오히려 불안함을 느끼고 몇 개월이 되지 않아 집을 떠난다(‘전망좋은 집’). 실력 있는 경제 연구원이 사이버공간에서 만난 아바타 연인을 진짜처럼 여기며 현실과 가상의 세계를 혼동한다(‘아바타를 사랑한 남자’). 옛 가구를 아끼며 상실한 정체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해 장삿속을 채우는 사람이 결국 자기 꾀에 넘어간다(‘장군의자’). ‘그림자’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그림자는 실재의 허상이며 하나의 이미지다. 이미지는 실재를 왜곡할 뿐 아니라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세계를 만든다. 이제 내 카메라 앵글은 그 그림자를 정조준할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의 성찰과 실험의 기록이 바로 그의 소설이다. 1만 1500원. 함혜리 문화에디터 lotus@seoul.co.kr
  • [주말 영화]

    ●호우시절(KBS1 토요일 밤 12시 55분) 건설중장비회사 팀장 박동하. 중국 출장 첫날, 우연히 관광 가이드를 하고 있는 미국 유학 시절 친구 메이와 기적처럼 재회한다. 낯섦도 잠시. 둘은 금세 그 시절로 돌아간다. 키스도 했었고, 자전거를 가르쳐 주었다는 동하와 키스는커녕 자전거는 탈 줄도 모른다는 메이. 같은 시간에 대한 다른 기억을 떠올리는 사이 둘은 점점 가까워지고 이별 직전 동하는 귀국을 하루 미룬다. 너무나 소중한 하루,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좋은 첫사랑의 느낌. 이 사랑은 때를 알고 내리는 좋은 비처럼 시절을 알고 온 걸까. 누구나 한번 쯤 스스로에게 던져보았음 직한 “그때가 아니고 지금이었더라면.”이란 사랑에 관한 진부한 질문에 대해 상큼한 해답을 제시하는 영화 ‘호우시절’을 만나 본다. ●메밀 꽃 필 무렵(EBS 일요일 밤 11시 40분) 장돌뱅이 허생원은 장이 서는 곳이면 어디든지 나타나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이다. 평생을 함께 지내온 조선달, 윤봉운과 함께 오늘도 봉평장에서 장사를 하고 있다. 이제는 죽음을 눈앞에 둔 나이에도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몸을 이끌고 하루에도 몇 십리 길을 다녀야 하는 처지다. 평생을 장돌뱅이로 지내다 보니 모아 놓은 재산조차 변변치 않은 이들. 신세를 한탄하며 술이나 한잔 하기 위해 충주집에 들른 세 사람은 충주댁이 젊은 장돌뱅이인 동이와 놀아나는 것을 보게 된다. 괜스레 마음이 뒤틀린 허생원은 동이의 뺨따귀를 후려치고는 내쫓아버리고 만다. 한편 메밀꽃 밭을 지나던 세 사람은 우연히 옛 추억을 떠올리다 허생원의 과거 이야기를 듣게 된다. ●천군(OBS 일요일 밤 11시 15분) 남북한 공동으로 극비리에 개발한 핵무기 비격진천뢰가 미국 측에 양도되기로 결정된다. 이에 불만을 품은 북한장교 강민길은 핵 물리학자 김수연을 납치하고, 비격진천뢰를 연구소에서 빼내 탈출을 시도한다. 지구를 지나는 엄청난 혜성이 한반도 상공을 통과하고, 강민길 일행과 그를 추적하던 남한장교 박정우 일행은 압록강에서 대치 중인 상태에서 갑작스러운 회오리 돌풍과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정신을 차린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여진족들의 도끼와 화살이 허공을 가르는 무자비한 살육의 현장이다. 일행은 본능적으로 총을 들게 된다. 최첨단 현대무기의 위력에 놀란 여진족은 물러가고 일행은 동굴로 숨어든다. 그날 밤 동굴로 잠입해 무기들을 훔쳐가는 괴사내가 나타난다. 그의 이름 이순신. 그들이 만난 이순신은 그해 무과에 응시했다 낙방한 채 허랑방탕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내였다.
  • 지창욱 “유승호와의 경쟁이요? 즐기고 있죠”

    지창욱 “유승호와의 경쟁이요? 즐기고 있죠”

    순수하고 바른 이미지의 ‘국민 손자’가 거칠고 활달한 매력의 ‘국민 무사’가 되어 돌아왔다. SBS 월·화 드라마 ‘무사 백동수’에서 타이틀롤(제목과 같은 이름의 주연)을 맡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탤런트 지창욱(24)의 이야기다. 이 드라마는 100억원대 대작 드라마 MBC ‘계백’의 등장에도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며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달리고 있다.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촬영에 여념이 없는 그를 지난 1일 경기 일산 SBS 탄현제작센터에서 만났다. “솔직히 ‘계백’의 등장에 저와 저희 팀 모두 불안해했던 것이 사실이에요. 하지만 이서진(‘계백’ 주인공) 선배님과의 대결에 신경쓰기보다는 제가 하는 백동수 역이나 열심히 하자고 생각했습니다. 시청률이 잘 나오면 좋지만, 안 나올 수도 있는 거잖아요. 결과에 연연하지 말자는 생각으로 작품에 임했죠.” 시청률에 초연한 척했지만, 그의 별명은 ‘40% 사나이’다. 그가 출연한 KBS 주말극 ‘솔약국집 아들들’과 일일극 ‘웃어라 동해야’가 모두 시청률 40%를 넘기는 데 성공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운이 좋았어요. 너무 좋은 분들과 함께 작업했기 때문에 시청률이 잘 나왔습니다. ‘무사 백동수’도 대본이 탄탄해요. 초반에 아역 배우들이 잘 해줬고, 선배 연기자들이 명품 연기로 떠받쳐준 덕도 큽니다.” 자신이 사극을 할 것이라고는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지창욱. 그가 ‘웃어라 동해야’로 스타덤에 오른 뒤 첫 미니시리즈 도전작으로 ‘무사 백동수’를 선택한 것은 시원한 액션 연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전광렬과 최민수의 캐스팅 소식에 흥분됐기 때문이다. “‘연기의 달인’으로 불리는 두 분과 함께 작품을 한다는 설렘이 무척 컸습니다. 평소에 제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선배님들이기도 하고요. 극 중에서 제 스승으로 나오는 전광렬(김광택 역) 선배님은 호흡 조절 등 연기 지도도 해주시고 항상 자신감을 많이 불어넣어 주셔서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드라마에서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제 멘토시죠.” 카리스마로 유명한 두 배우와의 첫 만남을 물으니 “처음엔 좀 무서웠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최민수 선배님께 인사를 드렸는데 그냥 고개만 끄덕이셨어요. 하지만 두 분 모두 평소엔 장난기 있는 모습도 많아요.”라며 웃었다. 최근 ‘무사 백동수’는 청년 동수와 여운(유승호)이 입궐한 뒤 각종 임무를 해결하며 극에 탄력이 붙고 있다. 하지만 극 초반엔 전작 드라마의 완벽한 동해에 비해 어설퍼 보인다는 지적도 있었다. “동해가 착하고 바른 청년이었다면, 동수는 개구쟁이처럼 천방지축이지만 안으로는 상처와 콤플렉스가 있는 인물입니다. 까불대고 생각이 없어 보일 때도 있지만, 천재적인 면이 있는 친구죠. 초반엔 밝은 동수가 지닌 이면의 모습을 잘 표현하지 못한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앞으로 동수가 무사로 성장해가면서 단단해지는 과정을 입체감 있게 표현해 볼 생각입니다.” 실존 인물인 백동수(1743~1816)는 팔다리가 뒤틀린 기형을 안고 태어났지만, 장애를 극복하고 조선 최고의 무관이 된다. 그만큼 백동수의 화려한 액션 연기는 드라마의 중요한 요소다. 충북 제천, 경북 문경, 전북 부안 등지의 산속을 옮겨다니며 촬영하고 있는 그는 첫 사극 도전에 모든 것이 어색하지만, 승마와 검술을 갈고 닦으며 시원하고 통쾌한 액션 연기를 보여주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감독님 앞에서 텀블링을 몇번 했더니 만족해하셔서 무술 연기를 할 때는 거의 대역 없이 촬영을 하고 있어요. 최대한 실제 인물에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서 액션 연습을 많이 합니다. 무게만 잡는 것이 아니라 정의로우면서도 소탈하고 친근한 민중의 영웅을 표현하고 싶어요. 처음엔 긴 머리 가발을 붙이고 칼을 휘두르는 사극 연기가 어색했는데 이젠 많이 익숙해졌네요.” 앞으로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게 될 ‘국민 남동생’ 유승호와의 대결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아역 배우 출신인 유승호는 지창욱보다 여섯 살 어리지만, 연기 경력에서는 한참 앞선 대선배다. “라이벌 의식이요? 있기는 있죠. 하지만 굳이 욕심을 내고 싶지는 않아요. 과하면 오히려 연기에 방해가 될 것 같아서요. 솔직히 대결 구도가 부담스럽긴 했는데, 함께 작업을 하는 동료이자 친구로서 즐겁게 경쟁하고 있습니다. 승호는 착하고 배울 점이 많아요. 처음엔 둘다 낯을 많이 가려 어색했는데, 이젠 현장에서 서로 장난도 잘 치고 친하게 지내요. 승호는 저를 형이라고 부르며 잘 따르지만, 제게는 형 같은 동생이죠.” 지창욱은 어느날 갑자기 탄생한 벼락 스타가 아니다. 그 흔한 길거리 캐스팅 제안조차 한번 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연기자의 꿈을 품고 대학(단국대 공연영화학과)에 진학해 아침 드라마, 주말·일일극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 데뷔 4년 만에 미니 시리즈 주연에 올라섰다. 학창 시절엔 주로 단편 영화에 출연하며 연기 경력을 쌓았다는 그는 “아직도 재능이 많은데 빛을 보지 못하고 고생하는 대학 친구들을 보면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털어놓았다. “배우로서 욕심이 많아요. 어떤 롤모델이 있다기보다 선배님들을 볼 때마다 닮고 싶은 점이 많습니다. 아직은 저만의 장점과 개성을 찾고 있는 중입니다. 앞으로 어떤 역을 맡든 작품에 몰입하고 캐릭터에 잘 녹아드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증오의 고리 끊어야 폭력도 멈춘다”

    “증오의 고리 끊어야 폭력도 멈춘다”

    21일 개봉한 ‘그을린 사랑’(원제: Incendies)은 두고두고 곱씹어 볼 영화다. 캐나다 출신의 드니 빌뇌브(44) 감독은 한 여인의 삶을 짓이긴 전쟁과 폭력의 잔혹함, 대물림되는 상처와 그에 얽힌 진실을 좇는다. 감독은 영화 말미의 소름 끼치는 반전을 통해 관객에게 묻는다. 당신들도 증오의 고리를 끊을 수 있겠느냐고. 원작은 레바논 출신의 와이디 무아와드가 연출한 4시간짜리 동명 연극이다. 빌뇌브 감독은 최근 서울신문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2004년 5월 27일 캐나다 몬트리올 소극장에서 연극을 처음 봤다. 그리스 비극의 현대판과 같은 참혹한 이야기였고, 모든 관객들이 공연 내내 숨죽인 채 관람해 극장 내 산소가 부족한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평생 잊지 못할 강렬한 경험에 기립박수를 치면서 영화로 만들기로 결심했다.”고 설명했다. 4시간짜리를 고스란히 스크린으로 옮기는 것은 의미가 없을 터. 빌뇌브 감독은 “연극적인 요소들을 털어버리려고 원작을 아예 뇌리에서 지웠다.”고 말했다. 특히 원작의 결말 부분에 나오는 재판 장면을 통째로 들어냈다. 원작에서는 니하드가 크파르 리아트 감옥에서 저지른 일(여성 정치범을 고문·강간)에 대해 법의 심판을 받는 장면이 나오지만 영화에서는 사라졌다. 그는 “재판 장면을 살렸다면 상영 시간은 3시간이 넘었을 것(영화 상영 시간은 2시간 10분)”이라면서 “대신 현실에서 가져온 이야기로 대체했다. 레바논에서 고문을 당했던 여성이 몇 년 후 캐나다의 어느 거리에서 자신을 고문했던 사람과 마주쳤다는 실화를 들은 적이 있는데 내 관점에서는 이 결말이 더 잔인했다.”고 밝혔다. 정황상 레바논으로 추정되는 ‘중동 어딘가’를 다루면서도 영화는 공간을 특정하지 않는다. 빌뇌브 감독은 “원작자와 이야기할 때 우려했던 점도 ‘존재하지 않는 공간을 어떻게 스크린 위에서 보여줄 것인가’였다.”면서 “코스타 가브라스의 ‘제트’와 로만 폴란스키의 ‘진실’을 떠올리면서 가상의 공간을 배경으로 하는 위험을 감수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어 “원작은 레바논 내전 중 실제로 일어난 사건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현실적 맥락으로부터 이야기를 떼어내 시적인 변용을 가미했다.”면서 “증오의 고리를 비판하는 작품이 도리어 현실 정치에 기름을 붓는 것은 옳지 않다. 주제를 제대로 표현하려면 비정치적이어야 했다.”고 덧붙였다. 영화의 결말은 논쟁의 여지가 있다. 뒤틀린 운명의 무게를 감안하면 너무 급작스럽게 화해와 용서를 말한다. 이에 대해 빌뇌브 감독은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영화 속 인물들이 운명을 받아들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 사이에는 아주 오랜 침묵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그 침묵은 평화로운 침묵일 것”이라고 말했다. 빌뇌브 감독은 10살 때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보고서 감독을 꿈꿨다. 데뷔작 ‘지구에서의 8월 32일’(1998)로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를 비롯한 35개 국제영화제에 초청되면서 주목받았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자본주의 탐욕에 사로잡힌 하류 인생들

    ‘일장환몽’(一場幻夢)이다. 현실 세태와 묘하게 뒤엉킨 판타지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전형화시킨 인물들은 자본주의가 뿜어대는 욕망의 찌꺼기를 받아들이며 그것으로 자본주의를 지탱시키는 이들이다. 인간의 깔끔한 삶은 오물을 처리하는 하수구를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듯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감추려 한다. 자본주의 역시 탐욕이 뒤엉켜 풍기는 악취와 추함을 애써 외면한다. 작가는 우리 사회의 모순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동물 사회와 차별성이 없는 약육강식의 공간으로 묘사함으로써 오히려 현실 그 자체와 일정한 거리를 두게 한다. 신장현의 두 번째 장편소설 ‘돼지 감자들’(삶이보이는창 펴냄)은 한국의 자본주의가 축약된 서울 강남을 배경 삼아 자본주의가 축약된 서울 한복판의 만화경을 담아냈다. ‘두섭’은 카드 채권추심업자다. 신용카드로 뒤틀린 욕망을 우선 충족한 이들을 협박하고 갈취하는 일이나 하는 주제다. 한데 입만 열면 ‘신용사회의 파국’이라며 언죽번죽 떠들어댄다. ‘잉걸’은 장기 밀매 브로커다. 그 또한 라이선스는 없지만 병원의 코디네이터와 마찬가지라고 자위하며 산다. 또 다른 인물 ‘영아’는 피라미드 판매업자, ‘울프’는 퇴폐 마사지 기술을 앞세워 강남의 부유한 여인의 등을 치는 사기꾼이자 전직 폭력배다. 여기에 한때 몸을 팔았으나, ‘엉뚱하게’ 개과천선해 순수한 장기 기증으로 잉걸을 당황하게 만드는 여인 ‘오해란’이 등장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도무지 승자가 될 수 없는 인간들이 승자가 되기 위해 벌이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싸움이다. 소설은 피해자에 대한 값싼 동정은 없다. 가해자에 대한 도덕적 비판도 없다. 처음부터 피해와 가해의 주체는 서로 얽혀 있을 뿐 구분되지 않는다. 결국 모두가 피해자인 탓이다. 신장현은 6년 전 펴낸 단편소설집 ‘강남개그’를 통해 이미 강남의 추악한 세태를 조롱하듯 냉소하면서도 통렬히 비판한 바 있다. 작품은 인간 사회의 야만성을 육식 문화로 비유한다. 채권추심업자들은 독종 근성이 나약해질 때면 고기를 먹는다. 반면 악어는 육식을 포기하고, 동물원 호랑이는 플라타너스 나무껍질을 씹어 먹으며, 토끼들은 쓰레기통을 뒤져 닭다리를 뜯어먹는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리얼리즘과 핍진함을 벗어던지면서 오히려 모순의 지점을 명확히 짚어내고 있다. 신장현은 판타지가 오히려 현실을 구현해내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는 우려와 기대가 뒤섞인 전망에 힘을 실어준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온통 깨지고 뒤틀린 매춘 주부의 삶

    온통 깨지고 뒤틀린 매춘 주부의 삶

    소설 ‘환영’의 분홍색 표지 속 여성은 성장(盛裝)한 채 하이힐을 매만지며 문밖으로 나선다. 하지만 그녀를 ‘환영’하는 것은 끔찍한 현실이다. 김이설(36)의 신작 ‘환영’(자음과모음 펴냄)은 책 마지막 문장인 ‘다시 시작이었다.’란 일곱 글자에서 시작된 소설이다. 그 시작이란 간암으로 죽은 아버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 번번이 낙방하고 다리 불구가 된 남편, 두 돌이 되어가도 걷지 못하는 아기 때문에 몸을 팔아야 하는 현실의 반복일 뿐이다. 200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김이설은 ‘나쁜 피’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 등을 통해 극한에 몰린 사람들에 대해 주로 이야기했다. 작가는 “장동건의 아들이나 김희선의 딸처럼 가진 것이 많고 예쁜 사람을 다룬 소설은 삶을 반추하게끔 하기 어렵다.”며 “다 알지만 숨기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환영’의 주인공은 가진 것이 몸밖에 없어 물가의 백숙집 별채에서 몸을 파는 여성 윤영이다. 윤영의 매춘을 알선하는 이는 백숙집 왕 사장이다. 1930년대 식민지 현실을 다룬 김동인의 소설 ‘감자’에서 여주인공 복녀의 몸을 사고 끝내 복녀를 죽인 왕 서방을 떠올리며 왕씨란 성을 붙였다고 작가는 설명했다. 요즘 화제인 드라마 ‘최고의 사랑’에서는 역시 1930년대 소설인 김유정의 ‘동백꽃’을 통해 남녀의 사랑을 꽃과 감자로 그려냈다. 이에 비해 김이설의 ‘환영’ 속 윤영은 80여년이 지나도 복녀와 하등 다를 바 없는 지독한 현실을 전전한다. 유독 여성의 인생에 관심이 많다는 작가는 “소설이란 세상이 살 만한 것인가, 나는 잘사는 것인가 하고 자문하고자 읽는 것”이라며 “그래서 생을 놓지 않는 숙명적인 인물의 이야기를 쓴다.”고 설명했다. 등단할 당시 소비 지향적인 문화를 다룬 소설이 많아 오히려 현실에 가까이 가는 작업에 집중했다고 덧붙였다. 소설 속 현실은 지독하지만 책 자체가 풍기는 분위기는 절절하거나 퀴퀴하지 않다. 짧고 건조한 문장을 선호한다는 작가는 결코 감정을 강요하거나 자극하지 않는다. 작가는 큰 아이를 가졌을 때, 노숙을 하는 소녀가 몸을 파는 이야기인 첫 소설 ‘열세 살’을 썼다. 작가의 아이는 이제 일곱 살이 되어 엄마가 쓴 소설의 파지를 가지고 논다고 한다. 김이설은 “10년쯤 지나면 아이에게 엄마가 쓴 소설을 읽어보라고 할 생각인데 그때도 아마 소설 속 끔찍한 현실은 여전히 유효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직제왜곡 비판한 이형기 바른교회아카데미 연구위원장 “사역자가 권력 되면서 한국 교회가 무너졌다”

    직제왜곡 비판한 이형기 바른교회아카데미 연구위원장 “사역자가 권력 되면서 한국 교회가 무너졌다”

    지난 18일 서울 명동 청어람에선 이색 제언이 나와 관심을 끌었다. 바른교회아카데미가 한국교회를 향해 공식적으로 낸 ‘한국교회 직제 개선을 위한 제안’. 모두 7개항의 이 제안은 계급·신분화한 직제로부터 교회 공동체성을 회복할 것을 비롯해 직제가 사도의 신분이 아닌 사역 혹은 직무를 이어받은 사실을 명심할 것과 개인의 임의적 결정보다 집단적 협의와 합의를 통한 결정에 철저하게 따를 것을 주문하고 있다. 지금 개신교 위기의 근본적 이유를 교회 직제의 왜곡에 집중한 제안인 만큼 큰 파장이 예상된다. “한국교회에 만연한 직제의 왜곡은 위험 수위를 훨씬 넘었다. 항간에선 교회를 위한 직제가 아닌, 직제를 위한 교회라는 말이 무성할 정도다. 사정이 이런데도 교회에선 직제 왜곡을 거론하는 게 금기시 돼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직제를 위한 교회’라는 말까지 지난 23일 서울 광진구 장로회신학대(장신대) 교정에서 만난 이형기(73) 바른교회아카데미 연구위원장(장신대 명예교수)은 “무너져 내리는 한국교회가 지금처럼 왜곡된 교회 직제를 바로잡지 않는다면 개선과 회생을 기대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한국교회의 직제라면 전문 사역자인 목사·감독과 일반 사역자인 장로·집사·권사를 말한다. 목사·감독이 말씀과 성례집행을 담당한다면 장로는 목사를 도와 치리와 돌봄을 진행한다. 그런가 하면 집사는 사랑과 자비의 행위에 치중하며 한국교회에만 있는 독특한 사역형태인 권사는 여성 지도력 계발과 함께 기도·권면을 강조한다. 문제는 이 직제가 분화된 사역의 형태가 아니라 신분과 계급으로 고착화돼 권력과 파워(힘)의 상징처럼 변질됐다는 점이다. 사실 개신교계엔 ‘일개 집사가 목사에게 왜 이래라 저래라 하느냐’는 식의 강압과 힘의 행정이 다반사다. 당회 등에서 모든 교권이 목사에 집중되거나 거꾸로 목사와 제직회가 허수아비로 전락한 채 전횡에 가까운 장로체제로 유지되는 교회도 적지않다. 집사·권사가 그저 전문 사역자의 시중쯤으로 전락한 교회도 적지않다. ●“일개 집사가 감히…” 강압도 “모든 신자와 사역자는 복음 신앙에 바탕한 같은 하나님 자녀로서 동등한 신분이라고 봐야한다. 그런 가운데 공동체 차원의 직제가 주어지는 것이다.” 전문 사역자라면 단지 열두 제자와 사도들의 말씀 선포와 성례집행을 위한 사역을 물려받은 것뿐인데 마치 그 제자·사도들의 유일무이한 신분을 물려받은 것처럼 행동하는 게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이 교수는 말한다. “종교개혁은 가톨릭의 전문사역자들이 평신도와 구분되는 성직자 계급을 형성한 것을 비판했고 그 연장선상에서 개신교는 존재한다.”는 이 교수는 그래서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조용기 원로목사와 가족들의 교회 사유화 논란이나 한국 최대의 교회연합체인 한기총 내홍도 뒤틀린 교회 직제의 교정 노력을 통해 정리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개신교 낳은 종교개혁 되살려야 “교회는 이제 성경과 기독교 전통에 대한 새로운 해석에 입각해 교회의 본질적 사명인 복음선교 말고도 공적인 영역에서의 빛과 소금을 담당할 중차대한 입장에 있다.” 교회 밖에서 하나님의 선교를 연대 진행해야 할 교회가 개인의 영성과 구원에 몰입하는 기복주의와 사사(私事)화의 깊은 늪으로 빠져드는 모습을 참을 수 없단다. 이미 오래 전부터 교회 직제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을 해 왔다는 이 교수. “교회들을 향해 어렵게 주문한 직제 개선에 대한 당장의 반응을 기대하기란 어렵다.”면서도 목회자들의 인식 개선을 위해 지속적인 순회강연과 홍보활동을 편뒤 ‘한국교회 개혁 지침서’를 내겠다고 벼른다. 글 사진 김성호 편집위원 kimus@seoul.co.kr
  • 37살 동갑내기가 쓴 아주 다른 이야기

    37살 동갑내기가 쓴 아주 다른 이야기

     서른일곱 동갑내기인 두 여성 소설가가 비슷한 시기에 성격이 다른 소설집을 펴냈다. 김숨과 백영옥의 단편소설집 ‘간과 쓸개’, ‘아주 보통의 연애’는 제목처럼 소설의 성격이나 소재가 판이하다. 등단 시기는 다르지만 왕성한 작품 활동으로 한국 문학계를 이끌어 갈 것으로 기대되는 두 작가의 작품은 찬찬히 비교해서 읽어 볼 만한 재미가 있다. 차분한 문체로 되살린 삶의 어두운 풍경[간과 쓸개]  1997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와 1998년 문학동네 신인상에 연이어 당선되며 문단에 나온 김숨은 2005년 ‘투견’을 시작으로 해마다 한권씩 꼬박꼬박 책을 내고 있다.  표제작인 ‘간과 쓸개’(문학과지성사 펴냄)는 아픈 노인의 이야기다. 간암에 걸린 예순일곱의 ‘나’는 30여년 전에 산 경기 평택 땅을 팔아 돈을 자식들에게 나눠 준다. 통원 치료를 받으면서 몸무게가 점점 줄어드는 ‘나’는 복부에 구멍을 뚫고 호스를 끼워 쓸개즙을 빼내야 하는 큰 누님을 만나러 가야지 가야지 하면서도 번번이 기회를 놓친다.  그러다 친구에게서 받은 골목(榾木)에 버섯이 열린 것을 보고 마침내 누님을 찾아가게 된다. 어렸을 때 누님을 따라 저수지에 갔을 때 그 속을 알 수 없는 검은 물빛을 바라봤던 두려움에 대해 이야기하다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만다.  간과 쓸개가 아픈 두 노인은 ‘죽은 것도, 그렇다고 살아 있는 것도 아닌 골목’과 같다. ‘나’가 어렸을 때 본 검푸른 저수지의 물빛은 누님의 간과 심장과 위와 대장을 썩어들게 하고 있다는 쓸개즙 색과 흡사하다.  소설가 하성란은 “‘간과 쓸개’는 김숨의 소설일까 싶게 현실적”이라며 “기괴한 환상이 교차하던 이전 소설들과 비교하면 땅 위로 안착한 듯하지만 환상이 사라진 그의 소설은 여전히 쓸개즙처럼 쓰디쓸 뿐”이라고 말했다.  ‘간과 쓸개’뿐 아니라 소설집 곳곳에는 병든 인물들이 등장한다. 거동이 자유롭지 않아 유폐되듯 갇혀 살아가는 노인(‘북쪽 방’), 네 번째 뇌수술을 앞둔 사내(‘내 비밀스런 이웃들’) 등 죽음의 이미지와 그 안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필사의 삶을 사는 사람들 이야기가 담겨 있다.  하성란은 “내가 아는 김숨은 ‘가만히’ 있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김숨 자신도 “하루의 거의 모든 시간을 집에서 보낸다.”고 말한다. 숨조차 가만가만 쉴 듯한 작가는 어쩔 수 없는 질병이나 가난에 사로잡힌 소설 주인공들을 통해 뒤틀린 인간의 존재방식을 드러낸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가족을 포함한 타인의 무관심은 아프게 감지된다.  소설집에는 귀뚜라미가 두번 등장한다. ‘간과 쓸개’의 나는 수도 계량기통 속에서 죽은 귀뚜라미들을 나무젓가락으로 건져 낸다. ‘흑문조’에서는 부모님에게 빚까지 지워가며 마련한 집이 귀뚜라미 천지가 된다.  뒤엉켜서 서로 다리와 더듬이를 질근질근 물어뜯고 있을 것만 같은 귀뚜라미처럼 ‘살아 있다는 것이, 더할 수 없이 구차스럽고 징글징글하기만’한 것인지도 모른다. 특히나 몸이 아프고 물질적 조건이 풍족하지 못하다면 더욱더. 하지만 살아남으려면 죽을 힘을 다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김숨의 소설은 쓸개즙처럼 쓴 현실에서 건져 올린 이야기들이다. 유쾌한 문장으로 드러낸 처절한 욕망과 진심[아주 보통의 연애]  2006년 단편 ‘고양이 샨티’로 문학동네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백영옥은 드라마로 만들어져 화제를 뿌린 장편 소설 ‘스타일’로 이름을 알렸다.  ‘스타일’에는 패션 잡지 기자로 일했던 작가의 전력이 일정 정도 담긴 듯하지만 ‘아주 보통의 연애’(문학동네 펴냄)에는 잡지사 관리팀 직원,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청첩장 디자이너, 출판사 편집자, 갈비집 사장, 인터넷 서점 직원 등 다양한 직업이 등장한다.  소설집 제목에서 이번에도 현대 여성의 사랑을 다루었겠거니 지레짐작한다면 재능 넘치는 백영옥 소설의 재미를 느낄 기회를 놓칠 것이다. 연애 소설이라 굳이 이름 붙인다면 표제작인 ‘아주 보통의 연애’ 정도만 해당하고, 나머지는 추리 소설, 미스터리 등 다양한 성격을 띠고 있다.  특히 ‘가족드라마’에는 바람이 나서 딴살림을 차리고 유방암에 걸려 3개월 시한부 인생이 된 아버지, 드라마 중독자 어머니, 세번 이혼하고 로또 1등 당첨금 15억원을 모두 사기당한 도박 중독자 삼촌, 똥인지 된장인지 구별 못 하는 여동생, 삼류 포르노 잡지에서 섹스 기사를 쓰는 나까지 ‘막장 드라마’보다 더 막장인 인생이 나온다.  하지만 벼랑 끝까지 몰린 가족은 인생은 비극보다는 희극이라고 이야기한다. ‘고생 끝에 오는 건 낙이 아니라 병’이라고 말하는 주인공과 가족은 시트콤보다 더 웃기면서 슬픈 한편의 드라마 같은 소설을 완성했다.  단편 ‘푹’은 전문 몽타주 요원인 ‘나’가 고교 시절 자신을 성폭행한 남학생들에게 복수한 여성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그렸다. 지방의 소도시에서 눈에 띄게 예뻤던 여학생은 머리는 있지만 양심은 없는 남학생들의 희생양이 된다.  남학생들은 자라서 의사, 교사, 금융회사 간부가 되고 각각 결혼과 약혼을 앞두고서 반지를 낀 손가락이 잘리는 사고를 당한다. 경찰서에서 만난 이들은 고3 때 그들이 저지른 악행을 떠올리지만 “전부 다 미쳐 있었다. 기계처럼 공부만 했다. 러미널 같은 각성제까지 수십알씩 먹어 가며”라고 입시 스트레스 탓으로 돌린다.  문학평론가 정여울씨는 “명함과 프로필 뒤로 자신의 맨 얼굴을 숨긴 사람들의 연약한 내면과 상처 입은 자의식의 풍경 속으로 우리를 초대한다.”고 백씨의 소설에 대해 설명했다. 저마다 자신의 ‘역할’ 뒤로 숨어 버린 사람들의 은밀한 욕망과 누구에게도 이해 받지 못한 진심이 소설 속에 펼쳐지는 것.  ‘가족드라마’의 아버지는 외롭고 고통스럽게 죽어 가지만 가족 누구도 아버지의 사연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청첩장 살인사건’의 청첩장 디자이너는 아무 연고자도 없는 결혼식에 참여해서라도 가족사진에 담기고 싶어했지만 결국 연쇄 살인 용의자로 몰린다.  현대 여성에서 발전해 다양한 현대인들의 욕망을 천연덕스럽게 그려 낸 ‘아주 보통의 연애’를 읽고 나면 백영옥의 다음 소설이 가슴 뛰도록 기다려진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뒤틀린 이슬람교리에 갇힌 여성

    뒤틀린 이슬람교리에 갇힌 여성

    “전지전능하신 신께서는 성욕을 열 가지로 나누어 창조하셨다. 그리고 그중 아홉가지를 여성에게, 한 가지를 남성에게 주셨다.” 무함마드(모하메트)의 사촌이자 사위인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의 말이다. 그는 흔히 ‘강경파’로 분류되는 이슬람 시아파의 창시자다. 해석 여하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는 말이지만, 이슬람권에서는 이를 ‘여성은 성욕이 강하고 조절능력이 떨어지는 존재’로 해석하는 경향이 우세하다. 여성이 자신을 드러내는 것은 남성을 성적으로 탈선하도록 유혹하는 것이며, 이는 사회 혼란의 원인으로 작용한다고 본다. 이슬람 여성들이 외출시 ‘당연히’ 히잡을 쓰거나 차도르, 부르카 등으로 온몸을 꽁꽁 동여매야 하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심지어 성기 절제 등 여성들의 인권을 유린하는 각종 관습과 정책들도 버젓이 용인된다. ‘이슬람 여성의 숨겨진 욕망’(제럴딘 브룩스 지음, 황성원 옮김, 뜨인돌 펴냄)은 이슬람 세계에서 종교가 어떤 방식으로 왜곡돼 여성들을 억압하고 있는지 고발한 책이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민완 여기자인 저자가 월스트리트저널의 해외 통신원으로 보스니아와 소말리아, 중동 지역에서 6년 동안 지내며 만난 이슬람 여성들의 삶을 담았다. 만리장성보다 두꺼운 히잡과 차도르 속에 감춰진 여성들의 애환과 욕망 등 복잡한 정서를 날것 그대로 그려내고 있다. 책의 일관된 정서는 세 문장으로 요약된다. ‘신은 정의롭다. 다만 왜곡되었을 뿐이다. 남성에 의해.’ 저자는 이슬람이 원래 해방적 성격의 종교로, 여성에게 할례와 은둔생활을 강요하거나, 종교적 의무를 수행하는 데 남녀의 구분을 두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무함마드의 딸 파티마가 아버지가 죽고 난 뒤 권력투쟁을 진두지휘한 것에서 보듯, 초기 이슬람 여성들은 남성의 뒤에 숨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남성 기득권층이 코란의 해석권을 독점하면서 가장 폭력적인 방법으로 여성을 정치사회적 목적에 이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책은 전반부를 통해 유독 여성에게 가혹한 이슬람의 성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헤친다. 아직도 5명 가운데 한 명의 이슬람 소녀가 겪고 있다는 여아의 성기 절제와 명예 살인 등 믿기 힘든 처참한 실상이 낱낱이 드러난다. 후반부에서는 정치와 경제, 사회 등에까지 지평을 넓힌다. 여성 운전 금지 조치에 저항한 여교수들, 남녀 분리의 원칙을 무시하고 직장생활을 감행한 여기자 등 남성 중심의 권력체제에 도전한 이슬람 여성들을 통해 작지만 소중한 희망을 발견한다. 최근 북아프리카와 중동을 뒤흔들고 있는 ‘재스민 혁명’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 중 하나가 여성들의 적극적인 시위 참여라는 분석이 있다. 독재정권들이 단기간에 무너진 배경에 여성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었다는 해석도 나온다. 책이 더욱 시의적 무게를 갖는 이유다. 1만 8000원.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특파원 칼럼] 교수윤리 과목을 개설하자/이종락 도쿄특파원

    [특파원 칼럼] 교수윤리 과목을 개설하자/이종락 도쿄특파원

    7년 전 미국의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UNC) 저널리즘스쿨에서 방문연구원으로 생활할 때였다. 이 학교는 방문연구원에게도 교수들과 똑같은 연구실을 제공해 상당한 편의를 봤다. 기자의 연구실 바로 왼쪽은 언론인 출신 척 스톤 교수의 방이었다. 흑인 최초로 백악관 출입기자라는 명성을 쌓은 이 교수는 이국만리에서 온 기자를 살갑게 대해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복사실에 들렀는데 스톤 교수가 강의 자료를 복사하고 있었다. 대뜸 “그런 보잘것없는 일은 조교에게 시키면 되지 왜 교수인 당신이 직접 하느냐.”며 잔뜩 장난기 어린 표정을 하곤 캐물었다. 하지만 그의 즉답에 나는 몸이 얼어붙었다. 그는 “이런 사소한 일을 왜 조교에게 시키느냐.”며 나를 뚫어지게 봤기 때문이다. 기자는 그 뒤로 교수와 기자의 표상으로 척 스톤 교수의 예를 자주 든다. 기자로서 NBC와 공영방송인 PBS의 뉴스 진행자와 ‘필라델피아 데일리’의 시니어 에디터를 거친 언론인 대선배였지만 늘 겸손했던 그의 태도를 말이다. 교수들이 학생들을 상대로 폭언과 폭행을 일삼아 문제가 되고 있는 한국 상아탑(象牙塔)의 슬픈 현실이 들려올 때마다 스톤 교수를 떠올린다. 제자 폭행·티켓 강매·학사 비리·금품 수수의 의혹을 받고 있는 서울대 음대 김인혜 교수가 파면되고, 고려대 의대 조교가 교수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웃지 못할 일들을 스톤 교수에게 얘기해 주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자못 궁금하기까지 하다. 일각에서는 최근 교수들의 일탈행위가 ‘도제(徒弟·apprentice)식 교육’의 폐해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서울대 김 교수도 “(교수들로부터) 그런 게 당연하다고 배워 왔고 또 그렇게 가르쳐 왔다.”며 도제식 교육에 대한 몰이해라고 항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도제식 교육이 일본의 교육문화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냐는 문의도 받았다.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상당히 권위적인 일본 교육을 도입한 결과가 아니냐는 추측이다. 하지만 일본 대학원생들은 한결같이 고개를 내젓는다. 도쿄대 대학원의 경우 석사나 박사과정의 학생들이 교수들을 위해 복사나 도시락 심부름, 운전기사 노릇을 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지도교수가 주최하는 심포지엄에 참석해 안내나 보조역할을 맡아도 한국과 달리 시간당 약 1000엔의 수고료를 받는다. 한국 유학생이 교수로부터 일본어 번역을 맡으면 논문 1쪽당 1500~2000엔의 사례비를 받는다. 와세다 대학원도 마찬가지다. 교수들이 대학원생들을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시킬 때는 상응한 보수를 지급한다. 학생의 인권을 도외시한 채 주종(主從) 관계로 뿌리내린 뒤틀린 관행은 한국에서만 존재한다는 얘기다. 언론대학원에는 저널리즘 윤리(ethics)라는 과목이 개설돼 있다. 기자들이 취재활동에서 저지를 수 있는 각종 병폐에 대해 거론하며 언론인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과목이다. 사실 윤리를 논하면 기자만큼 억울한 직종도 없다. 매월 기자들이 납부하는 회비로 운영되는 기자협회와 언론인노동조합은 ‘기자협회보’와 ‘미디어 오늘’을 통해 언론인들의 일탈 행위를 감시하며 혹독한 비판을 가한다. 기자도 20년째 월급에서 두 단체 회비를 자동 납부하고 있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회비로 운영되는 단체가 소속 회원의 권익보다는 행위를 신랄하게 꾸짖고 감시하는 회보는 이 두 신문밖에 없을 것이다. 쉽게 말하면 우리를 잘 봐달라는 취지에서 돈을 납부하는 게 아니라, 이 돈으로 신문을 운영해 나를 더욱 엄혹히 채찍질해 달라는 뜻이다. 교수사회에도 교수신문이 있다. 하지만 이 신문은 일반회사가 운영하는 유가지다. 교수들 자신을 감시할 수 있는 협회보를 만드는 게 어렵다면 교수윤리 과목을 개설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학생들을 상대로 교수들의 일탈행위에 대한 케이스 스터디(사례연구)를 하며 끊임없는 자기반성을 할 수 있을 테니까. jrlee@seoul.co.kr
  • 관훈클럽 출판 지원 언론인 선정

    관훈클럽 신영연구기금(이사장 문창극)은 21일 2011년도 상반기 언론인 저술·번역 출판 지원 대상자 11명을 선정했다. 다음은 지원 대상자 명단과 책 제목(가제). ▲남현호(연합뉴스 광주전남취재본부 차장대우·‘붉은 제국의 부활’) ▲정창교(국민일보 사회2부 인천주재 부장기자·‘공정사회를 위한 문화복지’) ▲권경복(조선일보 국제부 차장대우·‘현대 러시아호를 이끄는 푸틴과 파워엘리트들’) ▲이하원(조선일보 정치부 차장대우·‘오바마 이후의 미국, 그리고 세계’) ▲손해용(중앙일보 경제부문 기자·‘한국 현대 경제사 오디세이’) ▲김효순(한겨레 대기자·‘뒤틀린 한일관계의 근원을 생각한다’) ▲조계완(한겨레 Economy Insight 국내편집장·‘우리 시대 노동의 생애’) ▲이대현(한국일보 논설위원·‘3개의 눈으로 본 한국영화’) ▲김지영(매일경제 시티라이프부 차장·‘위대한 여성들에게 배우는 알파우먼의 자격’) ▲김기진(부산일보 지역사회부 부장·‘히로시마 원폭, 한 맺힌 65년’) ▲조동오(전 동아방송국 아나운서·‘큰 소리로 읽는 한국어’).
  • [영화프리뷰] ‘센티미엔토 : 사랑의 감각’

    [영화프리뷰] ‘센티미엔토 : 사랑의 감각’

    어시장에서 밤새도록 생선을 손질하는 류(왼쪽·기쿠치 린코)의 또 다른 직업은 전문 킬러. 아무리 짜내도 1%의 수분도 없을 듯한 메마른 표정의 류의 유일한 친구는 백발의 음향기사(다나카 민)뿐이다. 짬짬이 방아쇠를 당기고, 일터에서는 생선을 손질하는 단조로운 일상을 보내던 류에게 어느 날 새로운 일감이 들어온다. 딸 미도리가 손목을 긋고 세상을 등진 후 식음을 전폐한 아버지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연인이었던 스페인 남자 친구 데이빗(오른쪽·세르지 로페즈)을 세상에서 지워달라는 것. 류는 평소대로 ‘타깃’인 데이빗의 와인숍을 찾아갔지만, 운명적인 하룻밤을 보내면서 모든 것이 뒤틀린다. ‘격정 로맨스’란 타이틀을 달았지만 ‘시각적인 격정(?)’만 기대한다면 실망할 지도 모른다. 이 영화의 매력은 죽여야 할 남자를 사랑하게 된 여자의 미묘한 심리와 관계의 변화를 소리를 통해 접근한다는데 있다. 내레이션을 맡은 화자가 음향기사인 것과 무관하지 않을 터. 류와 데이빗이 처음 만난 날, 일본 라면을 먹으면서 데이빗은 류에게 “소리를 내지 않고 먹는 게 (일본에서는) 결례란 건 알지만 스페인에서는 매너를 지키는 일이다.”라고 말을 건넨다. 하지만 영화 말미에 데이빗은 홀로 라면을 먹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후루룩~’ 소리를 낸다. ‘당신을 찾아오는 그 여자(류)가 누구냐.’고 묻는 동료에게 ‘아무도 아니다.’(She´s nobody)라고 말했지만 이미 데이빗은 류에게 맞춰가고 있던 셈이다. 현실에선 성큼 떨어진 사랑 얘기다. 미국 할리우드의 기승전결에 익숙해진 관객에게는 친절하지도 않다. 그럼에도 영화에서 눈을 뗄 수 없는 까닭은 상당 부분 여주인공에 있다. 결코 미인은 아니다. 카리스마도 없다. 하지만 미묘한 손끝의 떨림부터 입가의 흔들림까지, 그의 연기는 열 마디 대사 이상을 표현해 낸다. 1981년생. 일본에서 15살 때부터 연기를 시작했지만 그가 영화팬들에게 이름을 알린 건 2007년 브래드 피트와 함께 출연한 미국 영화 ‘바벨’을 통해서다. 할리우드 데뷔작인 이 영화에서 청각장애인의 복잡한 내면 연기를 무난하게 소화해 그 해 골든글러브와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4월 국내에서 개봉 예정인 무라카미 하루키 원작의 일본 영화 ‘상실의 시대’에서는 주인공 나오코 역을 맡았다. 스페인의 국가대표 감독인 페드로 알모도바르가 인정했다는 아자벨 코이셋 감독의 연출력도 두고봐야 할 대목이다. 굳이 ‘여성감독 특유의 섬세함’이란 표현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감정선과 소리를 엮는 그의 솜씨는 특별하다. 엔딩 자막이 올라간 뒤에도 재일교포 출신 고(故) 미소라 히바리 버전의 ‘라 비 앙 로즈’(장밋빛 인생)는 이명처럼 귓가에 남는다. 24일 개봉. 109분. 18세 관람가.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소비자 “순대값 2배 폭등” 상인 “매출 반토막”

    소비자 “순대값 2배 폭등” 상인 “매출 반토막”

    가수 아이유의 3단 고음도 아니고 순대 가격이 몇달 사이에 세번이나 올랐네요.” 순대를 일주일에 한번은 꼭 먹는다는 회사원 최소영(28·여)씨는 최근 치솟는 순대값에 혀를 내둘렀다. 순대 1인분 가격이 2000원, 2500원, 3000원을 거쳐 지금은 4000원까지 폭등한 것이다. 게다가 최씨가 좋아하는 내장은 이제 없어서 못 먹을 지경에 이르렀다. 구제역이 서민들의 주요 먹거리에 직격탄을 날렸다. 가히 ‘테러’라고 부를 만큼 여파는 강했다. 서민들은 식생활에 지급해야 할 비용 부담이 더욱 커져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고기 상인들은 고육지책으로 가격을 올리지만, 뒤틀린 상황은 되돌릴 수 없을 만큼 깊은 상처로 다가오고 있다. 구제역 파동을 틈타 중간 유통상인들이 고기값을 담합해 폭리를 취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은 그들을 두번 죽이고 있다. 10일 정오 점심시간, 서울 신림동 순대타운은 파리만 날렸다. 손님은 딱 2명뿐이었다. 식당 직원의 호객행위는 더욱 적극적이었다. 메뉴판에 종이를 오려 붙이거나 매직으로 고쳐 쓴 순대·곱창 가격이 그 이유를 말해 줬다. 천 단위 앞 숫자가 2씩 더해져 있었다. 20년째 순대를 팔아 온 오광옥(66·여)씨는 “평소 하루 매출이 80만원 정도였는데 지금은 40만원도 채 안 된다.”며 울분을 토했다. 다른 가게 곽송자(58·여)씨는 “구제역이 터지기 이전에 곱창 3.7㎏에 3만 2000원씩 들여왔는데, 지금은 5만 2000원에 들여온다.”고 밝혔다. 곽씨는 “양배추, 고추장, 기름 등 가격이 안 오른 식자재가 없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강대동(69)씨는 “밤 11시에 문을 닫았는데 지금은 오후 1시에 셔터를 내리기도 한다.”말했다. 족발로 유명한 장충동, 이곳 사정도 딱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원조 1호로 유명한 한 족발집은 족발 소(小)자 가격을 2만 5000원에서 3만원으로, 중(中)자는 3만원에서 3만 5000원으로, 대(大)자는 3만 5000원에서 4만원으로 각각 인상했다. 설렁탕은 5000원에서 6000원으로, 파전은 1만원에서 1만 2000원으로 올렸다. 가격변동이 없는 음식점도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가장 저렴한 소(小)자를 없애고, 음식량을 줄이는 방법으로 수지를 맞추고 있었다. 인근 분식점 메뉴에서도 구제역 여파가 여실히 드러났다. 제육덮밥은 5500원에서 6000원으로, 돈가스는 5500원에서 6500원으로 올랐다. 돈가스 메뉴에 ‘X’표시가 돼 있는 음식점도 부지기수였다. 중화요리집 탕수육도 사이즈별로 2000원씩 인상됐다. 식당주인 양모(56)씨는 “1근 3600원하던 고기값이 9000원으로 세배 가까이 껑충 뛰는 바람에 인상이 불가피했고 앞으로 더 오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국민메뉴’인 삼겹살 1인분(국내산 200g)은 1만원에서 1만 3000원으로 오른 집이 많았다. “마장동에서 들여오는 고기 가격이 세졌다.”는 게 인상 이유였다. 순대국밥집을 운영하는 김순옥(53·여)씨는 “머릿고리를 달라고 마장동에 열번 전화를 해도 안 받더라. 고기가 없으니까 자기네도 전화 받기가 난처하겠지.”라고 말했다. 서울 마장동 축산물 시장을 관통하는 찬바람은 여느 날보다 유독 싸늘했다. 시장 한쪽에는 일손을 놓은 상인 5명이 돼지고기 볶음과 떡볶이를 안주 삼아 소맥 폭탄주를 들이키고 있었다. 상인들은 “IMF·광우병보다 구제역이 더 독해.”라면서 “구제역 파동에 축산 농가들은 보상받지만 우리 같은 중간 유통상인들은 보상받을 길이 없다.”면서 한숨을 내뱉었다. 일손이 남아 벌써 종업원 3명을 ‘읍참마속’한 고깃집도 있었다. 이영준·김진아·최두희기자 apple@seoul.co.kr
  • [현장르포]”순대·족발 장사 20년에 이렇게 힘들기는 처음”

     “가수 아이유의 3단 고음도 아니고 순대 가격이 몇달 사이에 세 번이나 올랐네요.” 순대를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먹는다는 회사원 최소영(28·여)씨는 최근 치솟는 순대값에 혀를 내둘렀다. 순대 1인분 가격이 2000원, 2500원, 3000원을 거쳐 지금은 4000원까지 폭등한 것이다. 게다가 최씨가 좋아하는 내장은 이제 없어서 못먹을 지경에 이르렀다.  구제역이 서민들의 주요 먹거리에 직격탄을 날렸다. 가히 ‘테러’라고 부를 만큼 여파는 강했다. 서민들은 식생활에 지급해야 할 비용 부담은 더욱 커져 그 시름이 더해가고 있다. 고기 상인들은 고육지책으로 가격을 올리지만, 뒤틀린 상황은 되돌이킬 수 없을 만큼 깊은 상처로 다가오고 있다.  구제역 파동을 틈타 중간 유통상인들이 고깃값을 담합해 폭리를 취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은 그들을 두 번 죽이고 있다.  10일 정오 점심시간, 서울 신림동 순대타운에는 파리만 날렸다. 손님은 딱 2명 뿐이었다. 식당 직원의 호객행위는 더욱 적극적이었다. 메뉴판에 종이를 오려붙이거나 매직으로 고쳐 쓴 순대·곱창 가격이 그 이유를 말해줬다. 천 단위 앞 숫자가 2씩 더해져 있었다.  20년째 순대를 팔아 온 오광옥(66·여)씨는 “평소 하루 매출 80만원정도였는데 지금은 40만원도 채 안 된다.”며 울분을 토했다. 다른 가게 곽송자(58·여)씨는 “구제역 터지기 이전에 곱창 3.7㎏에 3만 2000원씩 들여왔는데, 지금은 5만 2000원에 들여온다.”고 밝혔다. 또 그는 “양배추 값, 고추장, 기름 등 가격이 안오른 식자재가 없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강대동(69)씨는 “밤 11시에 문을 닫았는데 지금은 오후 1시에 셔터를 내리기도 한다.”말했다.  족발로 유명한 장충동, 이 곳 사정도 딱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원조 1호로 유명한 한 족발집은 족발 소(小)자 가격을 2만 5000원에서 3만원으로, 중(中)자는 3만원에서 3만 5000원으로, 대(大)자는 3만 5000원에서 4만원으로 각각 인상했다. 설렁탕은 5000원에서 6000원으로, 파전은 1만원에서 1만 2000원으로 올랐다.  가격변동이 없는 음식점도 있었다. 하지만 이 곳은 가장 저렴한 소(小)자를 없애고, 음식량을 줄이는 방법으로 수지를 맞추고 있었다.  인근 분식점 메뉴에서도 구제역 여파가 여실히 드러났다. 제육덮밥은 5500원에서 6000원으로, 돈가스는 5500원에서 6500원으로 올랐다. 돈가스 메뉴에 ‘X’표시가 돼 있는 음식점도 부지기수였다. 중화요리집 탕수육도 사이즈별로 2000원씩 인상됐다.  식당주인 양모(56)씨는 “1근 3600원하던 고깃값이 9000원으로 세배 가까이 껑충 뛰는 바람에 인상이 불가피했고 앞으로 더 오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국민메뉴’인 삼겹살 1인분(국내산 200g)은 1만원에서 1만 3000원으로 오른집이 많았다. “마장동에서 들여오는 고기 가격이 세졌다.”는 게 인상 이유였다.  순대국밥집을 운영하는 김순옥(53·여)씨는 “머릿고리를 달라고 마장동에 전화 열 번을 해도 전화를 안받더라. 고기가 없으니까 자기네도 전화 받기 난처하겠지.”라고 말했다.  서울 마장동 축산물 시장을 관통하는 찬바람은 여느날 보다 유독 싸늘했다. 시장 한 켠에는 일손을 놓은 상인 5명이 돼지고기 볶음과 떡볶이를 안주삼아 소맥 폭탄주를 들이키고 있었다. 상인들은 “IMF·광우병보다 구제역이 더 독해”라면서 “구제역 파동에 축산 농가들은 보상 받지만 우리같은 중간 유통상인들은 보상 받을 길이 없다.”면서 한숨을 연신 내뱉었다. 일손이 남아 벌써 종업원 3명을 ‘읍참마속’한 고깃집도 있었다.  이영준·김진아·최두희기자 apple@seoul.co.kr
  • [서울광장] 새해 인생 대청소를 해보자/이춘규 논설위원

    [서울광장] 새해 인생 대청소를 해보자/이춘규 논설위원

    일본에서는 지난해 ‘단샤리’(斷捨離), ‘단샤리 권유’ 등의 책이 짧은 기간 10만권 이상 팔리며 베스트셀러가 됐다. 단샤리는 물건이나 생각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마음의 평온상태를 찾으려는 요가철학에서 따온 말이다. 10여년 전 제안될 때는 주목받지 못했지만 불황이 장기화되고, 정치도 혼돈을 거듭하자 단샤리가 주목받게 되었다. 쓰지 않는 물건은 필요한 곳에 돌려주자는 새 환경운동과도 맞물렸다 단샤리. 물질의 홍수 속에서 필요없는 것을 차단하고(斷行), 쓰지도 않으면서 쌓아둔 물건들을 버려 정리하고(捨行), 물질에 대한 소유욕이나 집착에서 한 걸음 떨어져야(離行) 여유 있는 스스로를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대중소비시대 물질의 홍수 속에서 살아 온 일본인들이 복잡한 것을 정리해야 한다고 공감한 것이다. 그래서 개인은 단샤리 사고, 기업은 단샤리 경영에 주목한다. 인터넷 포털에는 책들과 관련된 수많은 블로그가 개설됐다. 많은 토론마당도 생겼다. 동호회도 우후죽순의 기세다. 주변을 정리하면서 생활한다는 ‘단샤리하다.’라는 말도 탄생했다. 일본열도에 가히 단샤리 열풍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바람이 거셌다. 단샤리 경영 기법에 따라 다케다약품은 적자가 아닌데도 성장 전망이 없는 사업을 접었다. 많은 일류기업이 정체된 사업을 단샤리했다. 단샤리 관련 책의 저자들은 젊은이들에게 “미래를 예측하기 힘든 시대다. 20대가 한 회사에서 평생 근무할 확률은 극히 낮다. 회사가 인수·합병돼 다른 일을 하거나 파견될 확률도 높다. 어떤 업무에서도 적응할 수 있게 강점은 강화하고, 약점은 보완하라.”고 주문한다. 불황으로 고민하는 기업들에는 경쟁력이 낮은 사업은 정리하고 강한 분야에 경영을 집중하라고 권고해 혼다 등이 채택했다. 아울러 지난달 중순 공영 NHK 방송이 단샤리 특집을 통해 ‘인생 대청소를 하는 사람들’을 소개해 반향이 컸다. 누리꾼들은 찬반논쟁이 매우 뜨겁다. 대체로 ‘자신의 강점을 살릴 분야에 힘을 집중하고 그 밖의 것은 버리자. 주체적으로 생각해서 선택하자. 대인관계 등 주변을 개선하는 작업, 즉 인생 대청소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40~50대를 중심으로 인생 대청소에 공감대가 컸다. 반론도 있었다. 일본인은 물건을 잘 보존한다. 기록하는 민족이다. 가끔 방문했던 일본인 집에는 오래된 물건들을 쌓아두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꼼꼼히 기록하고 옛 물건을 소중히 보관해 인문·사회과학은 물론 자연과학적 성과 창출의 토대로 활용했다. 다수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원동력이 됐다. 따라서 소중한 자료가 될 수 있는 것들을, 인간관계를 굳이 정리할 필요가 있느냐고 반박한다. 그래도 연말 대청소는 일본인의 문화다. 집안 구석구석을 대청소한다. 인간관계도, 마음속 번민도 대청소한다. 연하장을 보내 답신이 없으면 즉각 관계를 정리해 버린다. 목표를 재설정한다. 집착은 버리려 한다. 오해를 청산하고, 마음속 때를 씻어낸다. 단순하게 정리정돈하는 것. 어느새 인생 대청소는 이 시대 일본인의 화두가 됐다. 시대와 나라가 달라도 사람들은 연말연시 주변정리를 한다. 일본과 유사한 사회문제들을 안고 있는 우리나라도 지금 ‘생각 버리기 연습’이라는 일본 책 번역본이 베스트셀러가 됐다. 내용은 잡념·집착을 버리라는 것이 핵심이다. 인생 대청소와 유사하다. 우리 조상들도 연말 대청소를 통해 버릴 건 버리고, 정리할 건 정리했다. 용서할 사람은 용서하고, 오해는 털어냈다. 신변 대청소 형식이다. 풍요의 시대 많은 사람들은 버려도 괜찮은 물건들을 껴안고 산다. 사물도, 인간관계도 과잉의 시대다. 꼬인 인간관계를 개선하고 싶은 열망은 강하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상사와 동료, 지인 관계도 뒤틀린 경우가 많지만 발전적으로 정리하는 것이 어렵다. 새해 한번쯤 인생 대청소를 해 보자. 해 보는 것만으로도 발걸음이 경쾌해질 것이다. taein@seoul.co.kr 상사와 동료, 지인 관계도 뒤틀린 경우가 많지만 발전적으로 정리하는 것이 어렵다. 새해 한번쯤 인생 대청소를 해보자. 해 보는 것만으로도 발걸음이 경쾌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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