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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광장] 美 바짓가랑이라도 붙들라/이목희 논설위원

    [서울광장] 美 바짓가랑이라도 붙들라/이목희 논설위원

    한반도 상공에 ‘2차 한국전쟁’의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백범 김구 선생이 살아계신다면 이렇게 말씀할 것 같다. “나의 첫번째 소원은 전쟁방지요, 두번째·세번째 소원도 완전한 전쟁방지다.” 한반도 전쟁 발발을 막는 일은 절대명제다. 비핵화가 중요하지만 수십만, 수백만명의 희생을 감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전쟁방지를 최고가치로 확고히 올려놓으면 북한핵을 풀어가는 수순은 비교적 단순해진다. 북핵이 쟁점화된 후 김영삼(YS)·김대중(DJ) 전 대통령에 이어 노무현 대통령까지 3번의 정권교체가 있었다. 세 정권 모두 민족협력을 앞세웠다.YS는 취임사에서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더 나을 수 없다.”는, 당시로선 엄청난 말을 했다.DJ는 줄곧 대북 포용노선을 견지했다. 노무현 정부는 좌파적이라는 시선을 끊임없이 받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 세 정권은 핵에 관해 북한으로부터 뒤통수를 맞았다. 북한은 YS정권이 출범하자마자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했다.DJ는 취임 첫해 북한 금창리 지하핵의혹시설 파문을 겪었다. 노 대통령 집권 후 상황은 전쟁 일보직전까지 갔던 YS때보다 심각하다. 북한은 지난 2월 핵무기 보유를 공식선언하고 나섰다. 북한에게 핵은 남한 정권과의 담판거리가 아니다. 미국이 김정일체제 전복을 추구하고 있다는 공포에 남한 정권이 진보든, 보수든 안중에 없다. 따라서 남측의 선택폭은 극히 좁다. 민주적 협의절차를 가진 미국을 우선 설득하는 편이 그래도 성공 가능성이 높음을 역사가 보여주고 있다. 미국은 지금 북핵을 유엔 안보리로 가져가는 수순을 밟고 있다. 하지만 북핵은 안보리에서 해결되지 못한다. 거부권을 가진 중국과 러시아가 동의하지 않으면 경제제재도 어렵다. 기껏해야 의장성명 정도가 나올 것이다. 수개월 이상을 그러는 동안 한반도 긴장이 높아지고, 우리 경제에 나쁜 영향을 미칠 게 불 보듯 뻔하다. 결국 이라크에서처럼 미국이 유엔틀 밖의 군사행동으로 북핵을 저지할지 선택이 남게 된다. 1994년 북핵위기때도 그랬다. 유엔 제재가 여의치 않자 미국은 영변 핵시설을 제한폭격하는 도상연습까지 했다. 당시 YS정부는 남한을 따돌리는 북한이 미웠다. 그러나 전쟁은 막아야 했다.YS정부의 요청이 받아들여졌다는 설과 미국 스스로 철회했다는 설이 혼재하지만 북폭은 실천되지 않았다. 경수로건설을 지원하고 궁극적으로 북·미수교까지 하자는 제네바협정이 타결됨으로써 위기는 진정됐다. 전쟁방지라는 대전제를 깔면 패키지 딜을 통한 제2의 제네바협정이 지금도 해답이다. 미국이 1994년 협정보다 진전되고, 실천력 있는 대북제안을 내놓고 6자회담을 통해 관련국이 동참할 때 북핵은 풀린다. 한국이 해야 할 일은 미국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라도 ‘대담한 대북 제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동북아균형자니, 뭐니 미국의 신경을 건드리는 수사(修辭)보다는 통사정이 효율적일 수 있다.7000만 생명이 달렸는데, 자존심을 뛰어넘어야 한다. 한국과 중국 외교장관은 어제 회담을 갖고 북·미에 대한 양비론의 일단을 표출했다. 미국을 달래도 시원찮을 판에 또 오해를 부르고 있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미국에 ‘대담한 제안’을 요구하고, 북한판 마셜플랜을 거론했다. 경제지원, 불가침약속, 북·미수교, 북·일수교 등과 북한의 핵동결 및 폐기를 단계적으로 맞춰나가는 협상안에 반대할 국내 정치세력은 별로 없다. 정부는 대북 온건·강경을 넘나드는 태도부터 바꿔야 한다. 정부의 주된 외교상대는 북한이 아니라 미국이다.“노력했는데 안 된다.”고 하지 말고, 그야말로 대미 총력외교에 나서야 한다.8일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한·중 정상회담과 새달로 예정된 한·미, 한·일 정상회담에서 가시적 성과를 얻어내야 한다. 전쟁위기가 고조되면 다른 국정을 아무리 잘 관리해도 만사휴의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평검사도 조직적 반발 조짐

    사법개혁추진위원회(사개추위)가 추진하고 있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에 대한 검찰의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일선 검찰청 평검사들이 잇따라 내부회의를 열어 사개추위안의 문제점을 성토하는 등 ‘제2의 검란’ 국면으로 치닫는 양상이다.30일 사개추위의 마지막 토론회가 이번 사태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평검사 회의 잇따라 개최 29일 검찰에 따르면 전날 인천지검, 대전지검 천안지청, 광주지검 순천지청 검사들이 내부회의를 가진데 이어 30일에는 대전지검 공주지청 검사들이 회의를 갖기로 했다. 천안지청과 순천지청 평검사회의에서는 “사개추위안 대로라면 뇌물사범, 조폭, 성범죄자 등 범법자들이 거리를 활개치고 다니게 된다.”며 사개추위를 성토하는 분위기였던 것으로 전해졌다.“사표를 내자.”는 강한 의견도 제기됐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 김종빈 검찰총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피고인 인권 강화와 투명하고 공정한 재판 보장을 목표로 추진중인 사법개혁 노력에 원칙적으로 동의한다.”면서도 “하지만 균형된 수사와 재판을 위해서는 사개추위 개정안의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검찰은 ▲사법방해죄 신설 △플리바게닝(유죄협상제도) 도입 등의 보완책을 요구했다. ●졸속 추진 논란 검찰 고위관계자는 이날 “당초 지금 문제가 된 형사소송법상의 증거법은 가을쯤 논의할 것으로 예정돼 있었다.”면서 “우선 배심·참심제를 운용하면서 형소법상 증거법을 일부 적용해 보기로 했는데, 위헌 소지 등의 문제로 사개추위에서 이번에 한꺼번에 증거법 부분을 일괄 개정키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시급하지 않은 사안이라고 판단, 천천히 대처하려 했는데 ‘뒤통수’를 맞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사개추위측은 “출범 때부터 사법개혁안은 올 정기국회에 상정키로 예정돼 있었다.”면서 “증거법 부분을 따로 다룰 계획은 전혀 없었다.”고 반박했다. ●검찰 내부게시판은 ‘벌집’ 전날에 이어 이날도 검찰통신망인 ‘이프로스’ 게시판에는 사개추위의 형소법 개정안이 적용됐을 때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이 잇따라 올랐다. 개정안을 적용, 소설 형식으로 ‘가상재판’을 묘사한 글도 실렸다.K검사가 쓴 ‘김미모씨 성폭행 무죄사건’이라는 제목의 가상소설은 이렇게 전개된다. 200자 원고지 80장 분량의 이 가상소설을 읽은 일선 검사들은 ‘대검에서 형사 모의재판을 해보자.’ ‘만화로 그려 홍보하자.’ 등의 대글로 공감을 표시하고 있다. 게시판에는 또 정부기관중 한 곳이 전방위적 대처를 통해 위기 극복에 성공한 사례를 소개하며 “검사장을 단장으로 검사 30명, 계장 및 주임 120명, 여직원 30명, 기타 20명 등 모두 200명으로 가칭 ‘민주적 형사사법제도 연구단’을 조직, 구체적 대응에 나서자.”는 글도 올라왔다. 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베트남전 종전 30주년] 끝나지 않은 40년전 악몽…반전운동·종교 귀의

    베트남 전쟁이 끝난 지 30년이 흘렀지만 전쟁의 상처는 완전히 아물지 않았다. 한국은 32만여명을 파병, 전사 5099명, 부상 1만 1232명이라는 희생을 안았다. 한국군에게 피해를 당한 베트남 사람들도 악몽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두 나라는 1992년 수교한 뒤 서로의 상처를 보살펴 주며 과거의 악연을 씻고 있는 중이다. 베트남전 종전 30주년을 맞아 전쟁 희생자들의 고통 속에서도 돈독해지고 있는 양국 관계를 살펴봤다. ■ 참전 생존자들의 고통 “1년에 몇번씩은 퀴논의 그 지긋지긋한 전략촌을 찾아갑니다. 손에는 M1 소총을 들고 있죠. 그리고는 저의 오발로 밀림에서 죽은 30대 여인의 치켜뜬 두 눈과 목에서 분수처럼 피를 쏟아내던 정 일병이 겹쳐집니다. 소리치며 깨어나면 가슴이 콱 막혀 숨을 못 쉬겠어요.40년이나 지났으면 잊혀질 법도 하련만….” 지난 28일 오후 서울 명동의 커피숍. 떨리는 목소리로 40년 묵은 악몽을 얘기하던 박정익(가명·59·목사)씨의 눈가가 젖어든다.1965년 12월3일. 이 날은 박씨의 가슴에 핏빛 화인(火印)으로 남아 있다. ●밀림 헤매는 ‘김상사’ 박씨에게 베트남 전쟁은 현재진행형이다.1946년 경기도 안성에서 태어난 박씨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농사를 거들다 65년 10월 맹호부대 기갑연대 3중대 소속으로 베트남 중부 캄란 땅을 밟았다. 전쟁보다 가난이 더 무섭던 시절.1년만 버티면 집 두 채를 산다는 말에 자원했다. 하지만 전장에 나서기엔 박씨는 너무나 여렸다. 실전 투입 한달도 안돼 퀴논 지역 작전에서 동료를 잃었다.“살아서 소 몰고 고향에 같이 가자.”고 약속했던 친구였다.“그때는 눈이 뒤집혀서 움직이는 것을 보면 무조건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저 자신이 점점 ‘짐승’이 돼 갔지요.” 이듬해 11월 무사히 귀환해 수원에서 큰 포목점을 열었지만 전쟁의 악몽은 베트남 해변가의 안개처럼 머릿속을 짓눌렀다. 그를 ‘구원’한 건 신앙의 힘이었다. 뒤늦게 신학대학에 진학해 개척 교회를 열었다. 하지만 친구들에게도 베트남의 상처를 말하지 못했다.“퀴논에서 목회를 하면 용서받을 수 있을까요.” ●짙은 그림자 남긴 베트남의 악몽 강인용(가명·부산)씨는 전쟁으로 인한 정신적 외상이 자기와 가족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보여주는 전형이다. 베트남에서 귀환해 가정을 꾸렸지만 정상적인 생활을 해나가지 못했다. 스트레스와 불안에 가족들을 괴롭혔고 결국 아들과 부인이 차례로 목숨을 끊었다. 현재 강씨는 세상과 연락을 끊은 채 살고 있다. ●속죄의 길로 택한 반전 운동 베트남의 기억이 삶의 방향을 완전히 다른 쪽으로 바꾼 경우도 많다.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이사 김용삼(55)씨는 ‘추악한 전쟁’의 경험을 바탕으로 왜곡된 현대사 바로잡기에 뛰어들었다. 해병대 5중대 소속으로 68년 7월 전쟁터에 뛰어든 그는 이듬해 4월 최전방이던 호이안 지역 전투에서 오른손에 총알 관통상을 입고 제대했다. 우연찮게 백범 김구 선생의 묘소를 돌보게 됐고 이를 계기로 한국 근현대사는 물론, 베트남 전쟁의 본질 규명에 나섰다. 경남 마산의 시민사회단체 열린사회희망연대 대표 김영만(59)씨는 해병대 포병 3대대 11중대 소속으로 참전했다.67년 2월14일 ‘짜빈동 전투’에서 코에 총상을 입고 기적적으로 살아 남았다.200명의 해병대는 짜빈동 전투에서 월맹군 3000여명을 격퇴했다. 해병 전투사는 이를 ‘베트남전 최고의 해병 전투’로 기록한다. 김씨 역시 ‘학살’의 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짜빈동 전투 이틀 전 30대 남자 포로의 뒤통수에 총알을 박았다. 당시 포로 즉결 심판은 일상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잠시 후 죽은 포로의 어머니가 찾아와 ‘아들을 찾아달라.’고 울며 애원했다.“고향에 계신 친할머니 같았어요. 순간,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베트남에 오기 전의 정상적인 청년으로 돌아온 거죠.” 김씨는 화랑무공훈장도 보훈 혜택도 마다하고 제대한 뒤 모든 것을 잊고 ‘희망의 땅’ 미국으로의 이민을 추진했다. 그러나 이민 준비를 위해 호텔 견습생으로 들어갔다가 척추를 다쳤다.30대의 대부분을 하반신 불구로 보냈고 부인은 행상에 나섰다. 2003년 3월 그는 배상현씨 등 열린사회희망연대 회원들을 전쟁을 막기 위한 ‘인간방패’로 이라크에 파견했다. 김씨는 “이라크 파병은 우리 민족이 베트남전의 비극을 되풀이하는 잘못된 결정”이라면서 “전쟁을 없애는 것이 베트남에서의 죄갚음을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고엽제후유증 8만명 고통 PTSD는 치료도 못받아 “포탄 날아온다. 모두 피하라.” 2003년 5월 미국 캘리포니아 LA의 USC 부속병원. 낯선 한국말 고함이 병동의 새벽 정적을 깼다.“여보, 제발 정신 좀 차려봐요.”눈을 뒤집은 채 병상에서 소리치고 있는 목사 김모(58)씨의 손을 잡고 부인 김모(56)씨가 눈물로 애원했다. “여기가 어디야. 또 월남 아니야.”김씨는 결국 꽁꽁 묶여 정신병동으로 갔다. 원인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백마부대 소속으로 1968년 9월부터 15개월을 베트남에서 보냈던 그는 현재 중풍과 PTSD 증세로 대소변도 못 가눌 정도가 됐다.PTSD는 전쟁 등 극단적인 사건에 노출된 뒤 나타나는 불안 장애. 헛것이 보이거나 비명 소리가 들리는 등 충격을 현실처럼 느끼기도 하고 한없이 차가워지기도 한다. 미국은 베트남전에 의한 PTSD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PTSD로 150만여명이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2만여명이 자살을 택했다. 우리 나라에서도 많은 파월 장병들이 PTSD에 시달리고 있다. 대구·경북지역 고엽제 환자 280명 중 60%가 우울증을 겪고 있는 것으로 조사돼 있다. 그러나 보상은커녕 치료마저 요원하다.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병상 일지에 관련 증세를 보였다는 기록이 있어야 전투와 연관된 상해로 인정받기 때문에 PTSD 전상자는 공식적으로 없다.”면서 “미국처럼 PTSD 환자를 위한 특별한 조치가 없는 한 구제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연쇄살인범 유영철의 아버지는 PTSD로 고통받았고, 그 고통이 유영철에게 정신적 외상으로 전이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고엽제의 고통도 끝나지 않았다.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고엽제 후유증 환자와 후유의증 환자는 8만여명. 그러나 판정 조건이 너무 엄격하다. 진단받은 사람 가운데 17.9%만이 후유증으로 판정받고, 이중 58.3%만이 국가유공자 대우를 받는다. 고엽제는 참전자 2세의 생명도 위협하고 있다.2000년 182명의 부산·경남지역 고엽제 후유증 환자 2세 연구에 의하면 선천성 기형이 15건, 전신 허약이 12건이나 나타났다. 절반 가까운 사람들이 건강 장애를 보였다. 고엽제 피해로 미국뿐 아니라 호주와 뉴질랜드도 2억 4000만달러를 보상비로 챙겼다. 그러나 미국에 이어 가장 많은 32만여명을 보낸 한국은 한 푼도 못 받았다. 이두걸 이효용기자 douzirl@seoul.co.kr ■ 당시 주월 한국군사령관 채명신 예비역중장 “주한美軍 차출 막으려 파병” “주한미군을 자꾸 나가라고 하는 우리 사회 분위기가 패망 직전의 월남과 비슷하다는 얘기를 주위로부터 많이 듣고 있어요.” 주월 한국군사령관으로 5년 가까이 파병부대를 지휘한 채명신(80) 예비역 육군 중장은 베트남전 종전 30주년과 관련해 이 전쟁이 주는 교훈이 뭐냐고 묻자 대뜸 이렇게 말했다. 반미 분위기로 몰아가고 있는 사회 일각의 풍조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시했다. 요즘 그는 베트남참전동지회와 6·25 유공자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 강의차 지방출장도 자주 다니고 있으며, 옛 전우들도 자주 만난다고 했다. “올해가 월남전 종전 30주년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전투부대 파병 40주년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전 주월 한국군 사령관답게 그는 종전보다는 전투부대 파병에 더 큰 의미를 두는 듯 했다. 월남 파병을 ‘용병(傭兵)’으로 보는 시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하자 파병의 불가피성을 들었다. ●朴대통령 “쉽지 않은 전쟁” 고민 “당시 파병은 주한미군 철수와 연계돼 있었습니다. 미국이 월남에 지상군을 확대해 나간다는 방침을 밝혔을 때 주한미군을 빼는 것은 시간문제였지요. 미국 본토에서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은 제한적이었거든요.” 당시 우리보다 GNP가 많고 군사력도 월등한 북한이 오판할 가능성이 높았던 만큼 파병은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물론 국가 경제발전과 5·16 이후 불편했던 미국과의 관계 등도 고려됐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파병 직전 박정희 대통령이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이던 자신을 불러 전투병 파병을 논의했었다는 얘기도 털어왔다. 육본 작전참모부장은 전투수행에 관한 한 군의 최고 전문가다. 당시 파병에 대한 반대여론이 높았던 만큼 박 대통령도 적잖은 고민을 한 것 같았다고 그는 말했다. 그 자리에서 그는 박 대통령에게 월남에 파병되면 게릴라전을 수행해야 하는데, 뚜렷한 목표의식과 인간적인 존경을 받는 카리스마의 리더십, 은신과 보급이 가능한 지리적 환경 등을 호찌민부대가 갖추고 있어 싸움은 쉽지 않겠지만 미국을 붙들기 위해서는 불가피하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민간인 무차별 총질 결단코 없었다” 최근 월남전과 관련해 이따금씩 보도되고 있는 베트남 양민학살 문제에 대해서는 참전 의미를 훼손하려는 의도적인 비난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예컨대 주민으로 가장한 베트콩들이 많은 마을에서 수색작전을 하는 과정에 수류탄을 던지고 달아나는 일부 주민들과 교전을 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아무런 혐의도 없는 민간인들에게 무차별 총질을 한 적은 결단코 없다고 그는 단언했다.100명의 베트콩을 놓치는 한이 있어도 1명의 양민을 보호하라는 게 당시 사령부의 지휘방침이었다고도 했다. 실제 그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당시의 전과(戰果)를 거론했다. 당시 한국군은 사살자의 절반 가량에 해당하는 무기를 노획하는 전과를 올렸으며, 베트남에 주둔하는 8년간 4만명 이상을 사살했는데 총이나 수류탄도 대략 2만정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베트콩들은 동료가 쓰러지면 시체보다 총을 먼저 챙길 정도로 무기를 생명처럼 여겼는데 이 정도로 많은 무기를 노획한 것은 한국군이 얼마나 알뜰하게 베트콩만 골라서 공격했는지에 대한 증거라는 것이다. 미군과의 작전지휘권 문제에 대해서는 다소간의 문제가 있었다고 털어놨다. 파병 직전 박 대통령도 현지에서 미군의 지휘를 받는 게 더 좋지 않겠느냐는 말을 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작전 지휘권만은 양보할 수 없다고 고집, 결국 그의 뜻대로 됐다. “미군은 당시 한국군 병력이 2만명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미군의 통제를 받으라고 강요했지만, 애초에 미국의 (월남전) 개입이 잘못됐고, 잘못된 군사전략에 우리가 휘말려서는 안된다는 게 내 신념이었습니다.” ●용병 논란 우려 독자 작전권 고집 한국군이 미군의 지휘를 받게 되면 ‘용병 논란’이 생길 게 뻔하고, 미군도 전쟁을 청부했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한국군이 독자적으로 작전권을 가질 때만 이 전쟁의 성격 문제가 해결된다는 논리로 설득했더니, 의외로 미군들도 수긍을 하더라는 것이다. 베트남전이 결국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쳤느냐는 질문에 그는 경제개발을 첫 손에 꼽았다. 파병 이후 국제사회에서 한국을 점차 인정하게 됐다는 것이다. 세계금융기구에서 경제개발계획에 필요했던 차관을 선뜻 내준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 또 현대건설 등 월남전 특수에 힘 입은 것도 분명한 사실 아니냐고도 했다. 그는 ‘고엽제’ 등 전쟁의 부작용의 대해서도 적잖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사실 고엽제 후유증이 그렇게 심한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고엽제 부작용 이렇게 심할줄을” 문민정부 때부터 고엽제 ‘후유의증’ 환자를 후유증으로 해달라고 정부에 요구해 왔다. 현재 1만 2,000명이 후유증 판정을 받았으며,3만명은 의증 판정을 받은 상태다. 참전유공자회 책임자를 맡은 만큼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해서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철군한 이후 베트남을 방문하지 않다가 수년전 관광차 하노이만 잠깐 한차례 들렀다고 한다. 또 월남전과 관련해 제작된 각종 영화 등도 관심있게 봤다. 하지만 상당수 작품의 경우 허구가 지나쳐 고개를 돌린 적도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요즘 베트남전과 한국군 파병 등에 대해 회고록을 집필중이다. 잘 하면 올 연말쯤이면 책이 나올지도 모른다며 그는 나중에 책을 한번 읽어보라고 권했다. 그는 현지 사령관을 마친 뒤 귀국, 군사령관을 마치고 군문을 떠났으며, 이후 스웨덴과 그리스, 브라질 등의 대사를 지내기도 했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기업 1000여곳 진출… 한류열풍 한국사람으로서 지금 베트남에 간다면 자신감을 만끽할 수 있다. 이제 한창 ‘성장’의 맛을 들인 이 후발 개도국에서 한국의 이미지는 경제적·문화적으로 선망의 대상이다. 불과 30년전 총부리를 겨눈 적(敵)이었다는 역사는 애시당초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 2005년 베트남의 정서는 친(親)한국 일변도다. 하노이 도심 곳곳에서는 ‘SAMSUNG’과 ‘LG’와 같은 한국 기업의 간판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마티즈, 매그너스 등의 승용차는 30년전 탱크가 밟고 다녔을 법한 도로를 거침없이 질주한다. 한국 제품이란 사실이 부각돼야 시장 점유율이 올라갈 만큼 베트남에서 한국의 경제적 이미지는 ‘선진국급’이다. 한국의 베트남 투자는 가속의 궤도에서 이탈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까지 총투자액이 40억달러를 넘었고 최근 3년간 투자금액은 타이완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다.KOTRA 하노이 무역관에 따르면, 한국 기업들은 농업을 뺀 베트남 전체 취업 인구의 3%(35만명)를 고용하고, 베트남 수출액의 10% 이상을 기여하고 있다. 베트남에 ‘진주’한 한국 기업은 1000개는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섬유·의류·신발 등 노동집약적 산업으로 출발한 우리 기업의 베트남 진출은 90년대 중반부터 철강·통신·사회간접시설을 향해 정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우리가 정작 주목해야 할 부분은 양국간 교류 확대가 ‘돈벌이’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1997년 드라마 ‘의가형제’로 시작된 한류 열풍은 이제 완전한 문화현상으로 자리잡았다. 현재 베트남의 주요 TV채널에선 저녁 황금시간대에 ‘파리의 연인’과 ‘리멤버’ 등 한국 드라마끼리 시청률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 뉴스도 경제뿐 아니라 스포츠·문화·사회현상과 같은 시시콜콜한 영역까지 보도돼 서울과의 시차를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다. 한국 유학이나 한국 기업 취업을 위한 ‘한국어 배우기’ 붐이 뒤따르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해외에선 드물게 한국어 인증시험이 치러지는 곳이 베트남이다. 응시생이 월 200∼300명에 이른다.TV에서 한국어 강좌가 방영되고, 호찌민과 하노이의 주요 7개 대학에 한국어 학과가 개설돼 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일본 얼라들 땜에 억쑤로 열받아” “요로코롬 말해분게…고맙쇼잉”

    “일본 얼라들 땜에 억쑤로 열받아” “요로코롬 말해분게…고맙쇼잉”

    영·호남 국회의원들이 28일 모처럼 진땀을 뺐다. 짧게는 38년, 길게는 64년 동안 익숙해진 토박이말 대신 낯선 사투리로 연설한 까닭이다. 국회 지방자치발전연구회가 마련한 ‘사투리 어울림 한마당’에서였다. 의원들은 외국어라도 하듯 비지땀을 쏟았다. 급한 마음에 고향 말씨도 섞여 ‘국적 불명’의 사투리도 적지 않았다.‘영남 표준말’에선 ‘억쑤로’가 맞는데, 호남 의원은 ‘억씨로’라고 실수하는 식이었다. 반면 영남 의원들은 ‘∼잉’으로 끝나는 호남 말투가 영 어색한지 목소리가 떨렸다.‘어’ ‘여’를 ‘아’ ‘야’로 헷갈리게 말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독도 문제·저출산 대책 등 다채로운 주제로 청중들에겐 폭소를 안겨주었다. ●“갱상도 표준말, 억씨로 불편해 죽겠네예.” 전북 전주덕진 출신의 열린우리당 채수찬 의원은 “채수찬 ‘어원’(의원)입니다.”라는 말로 폭소부터 이끌었다. 영남권에서 ‘으’,‘어’ 발음을 구별하기 힘든 것을 ‘벤치마킹’한 것. 그는 특히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다며 “60년대 새마실운동 만키로 9시만 되불만 전기를 끄나∼삐고,10시부터는 통행을 금지시캬, 아를 만들도록 해야 합니더. 이거이 에나지도 줄이고, 일석이조 아입니꺼.”라고 주장했다. 평소 구성진 호남 사투리로 유명한 열린우리당 주승용 의원은 “일본 얼라들이 독도를 저거 땅이라고 하니깐 억쑤로 열이 받아가꼬 마 요새 잠을 설친다 아잉교. 일본 아∼들 다리 몽둥이를 다 뿌라삐고, 뒤통수 쎄게 한대 쌔리뿔고 나서 독도뿐만 아이라 대마도도 마 우리땅이라꼬 큰 소리로 해불고 싶드라고예.”라고 외쳤다. 광주 출신인 열린우리당 양형일 의원은 억센 영남 말을 빌려 본회의장 좌석 배치를 바꾸자고 말했다. 그는 “문희상 의장하고, 박근혜 대표하고 나란히 앉차∼야 됩니데이. 니캉내캉 이 얘기 저 얘기 하믄 국민들도 좋다 할 낍니다.”면서 “생각해 보이소. 억씨게 생긴 문 의장하고, 곱상한 박 대표 나란히 앉차∼노믄 누가 덕 보겠습니꺼.”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하이고, 허불나게 어려워라이.” 영남권 사투리가 ‘모국어’인 의원들도 ‘호남 표준말’에 도전했다. 경남 통영·고성의 한나라당 김명주 의원은 유창한 호남 사투리로 고향 자랑을 실컷 한 뒤 이순신 장군의 시 구절을 패러디해 “한산섬, 저 뭐다냐, 그 바닷가에 혼자 앙거서, 질로 큰 칼을 허리춤에 차뿔고, 시름에 잠겨 있는 시방…워데서 한 가락 피리가락이…”라고 능청을 떨어 웃음보를 터뜨리게 했다. 부산 출신인 열린우리당 조성래 의원은 영화 ‘황산벌’을 본떠 “쥐뿔도 없음시로, 툭하믄 군사를 내라 말아라 허는 거여?”,“워메 왕이 욕을 허여야? 쪼까 웃긴당께.”라고 1인2역에 도전했다. 경북 봉화 출신인 한나라당 김충환 의원은 “선거법이 거시기 된 다음부터는 정치인이 겁나게 성가시게 되부랐소. 오늘 요로코롬 말해분게 속이 시원해부러잉. 고맙쇼잉.”이라며 최근 관련법 위반혐의로 조사를 받은 사실을 해명하기도 했다. ●“말은 달라도, 우리는 하나” 사투리 바꿔치기에 출전한 ‘선수’들은 ‘원어민 교사’가 녹음해준 테이프를 반복해 들었다고 입을 모았다. 연설 내용은 이미 다 외웠지만, 혹시나 실수할까 두려워 발표 직전까지 마음을 졸이며 원고를 들여다보기도 했다. 주승용 의원은 “‘슨거’ 때만 되믄, 지역 감정을 악용했는디 이제는 경상도 전라도는 아름다운 친구라는 거 보여드릴 낍니더.”라고 장담했다.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儒林 속 한자이야기] (67)

    曠夫(광부) 儒林 316에는 ‘曠夫’(빌 광/지아비 부)가 나오는데, 이 말은 孟子(맹자) 梁惠王(양혜왕) 下篇(하편)의 다음 이야기에서 유래하였다. 惠王(혜왕) 자신은 女色(여색)을 너무 좋아하여 탈이라는 話頭(화두)를 꺼냈다. 이에 대하여 孟子(맹자)는 “남자로서 女性(여성)을 좋아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이다. 다만 與民同樂(여민동락)해야 할 王(왕)의 신분이기 때문에 백성들의 苦痛(고통)을 외면한 채 혼자만 여색을 탐하는 것이 잘못일 뿐이다. 따라서 善政(선정)을 베풀어 짝을 이루지 못하였거나 짝 잃은 怨女(원녀:과부를 뜻함)와 曠夫(광부:아내에게 충실하지 못한 남편, 혹은 홀아비)가 없도록 한다면 王道政治(왕도정치)의 구현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라는 趣旨(취지)의 應答(응답)을 하였다. ‘曠’자는 ‘해가 넓게 비추어 밝다’에서 派生(파생)하여 너무 넓어 ‘공허하다’는 뜻을 나타낸 것이다. 이밖에도 曠에는 ‘헛되이 지내다, 요원하다’의 뜻이 있다.用例(용례)에는 ‘曠官(광관:벼슬아치가 직무를 게을리함),曠年(광년:오랜 세월),曠野(광야:텅 비고 아득히 넓은 들),曠日持久(광일지구:오랜 세월을 견디어 냄)’ 등이 있다. ‘夫’자는 우뚝 선 어른의 상형인 ‘大’와 어른들의 뒤통수에 꽂은 동곳을 가리키는 ‘一’을 합한 글자로, 본래의 뜻은 ‘성인 남자’인데 ‘지아비, 힘든 노동을 하는 사람, 다스리다, 돕다’의 뜻으로도 쓰였다.用例로는 ‘匹夫(필부:신분이 낮고 보잘것없는 사내),夫子(부자:남편이나 스승, 혹은 존경하는 사람을 높여 이르는 말),大丈夫(대장부:건장하고 씩씩한 사내)’ 등이 있다. 大丈夫는 매사에 正正堂堂(정정당당)하고 떳떳하여 道理(도리)와 信義(신의)를 중시한다. 남의 失手(실수)를 春風(춘풍)처럼 따스하게 대하지만 자신의 過誤(과오)에 대해서는 秋霜(추상)과도 같이 嚴格(엄격)하다. 孟子의 定義(정의)에 따르면,大丈夫는 큰 뜻을 품고 부단히 노력하기 때문에 時俗(시속)에 흔들리지 않는다. 뜻을 이루더라도 驕慢(교만)하지 않고, 뜻을 이루지 못해도 卑屈(비굴)하지 않다.孟子의 기준으로 볼 때,魏(위)나라 사람 公孫衍(공손연)과 張儀(장의)와 같은 사람은 말 한마디로 천하의 諸侯(제후)들을 左之右之(좌지우지)할 만큼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진정한 의미의 大丈夫는 아니다. 대장부라면 모름지기 천하의 가장 넓은 곳에 살면서 천하의 가장 바른 지위에 서서 천하의 가장 큰 도를 행하여 백성들의 지지를 얻으면 백성들과 함께 그 도를 행한다. 설령 백성들의 지지를 얻지 못한다 하더라도 묵묵히 홀로 그 도를 행한다. 그러므로 富貴(부귀)가 放蕩(방탕)하게 하지 못하고,貧賤(빈천)이 뜻을 바꾸게 하지 못하며,威勢(위세)와 暴力(폭력)이 그의 뜻을 꺾을 수 없다.反面(반면)에 肉體的(육체적)인 삶에 執着(집착)하는 사람은 富貴를 얻게 되면 그보다 더 큰 기쁨이 없으므로 그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여 放蕩하게 되며,貧賤하게 되면 그보다 더 큰 슬픔이 없으므로 거기서 벗어나기 위하여 무슨 짓이든 서슴없이 한다. 이런 삶에 집착하는 사람을 小人(소인), 또는 拙丈夫(졸장부)라고 한다. 김석제 경기 군포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 “日, 美에 업혀 우경화 등돌리면 자멸 할것”

    “日, 美에 업혀 우경화 등돌리면 자멸 할것”

    최근 일본의 우경화 경향을 언급하면서 가장 많이 거론되는 문제는 바로 미국이다. 일본의 우경화 뒤에는 한·미·일 삼각동맹이 있고, 삼각동맹의 허브는 결국 미국이기 때문이다. 평가는 엇갈린다. 진보진영은 삼각동맹을 냉전적 구도로 치부하면서 한국이 동북아 평화의 중심축이 돼야 한다는 전망을 도출한다. 반면 보수진영은 삼각동맹의 현실성에 더 점수를 주면서 지금 단계에서 이 틀을 깨서는 안된다는 데 무게추를 더 달아준다. 이른바 자주파와 동맹파, 민족파와 국제파간 대립도 여기서 나온다. 이런 양론 가운데서 ‘미국으로 흥한 일본, 미국으로 망하리라.’는 색다른 접근법으로 일본 우익에 경고장을 던진 학자가 있어 눈길을 끈다. 주인공은 이채언 전남대 경제학부 교수. 영국에서 좌파경제학을 공부하고 진보적 경제학자들의 모임인 한국사회경제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미국이 일본의 우경화를 부추기고 있는 측면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러나 강조점은 일본 우익 역시 미국의 입맛에 딱 맞는 세력은 아니라는 데 있다. 이는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일본과 밀월관계를 즐기다 태평양전쟁으로 뒤통수를 맞은 1940년대의 역사적 경험에서도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이 교수는 특히 일본이 보유한 미국 채권이 2500억달러에 이른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그는 “그런 일본이 미국에 제대로 된 목소리를 못내는 것도 결국은 미국의 군사력과 패자적인 지위 때문”이라면서 “일본이 독자적 무장 행보를 내디딘다면 과연 미국이 이를 묵과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한마디로 미국이 마냥 든든한 배경이 되어주리라는 것은 일본 우익의 ‘착각’이라는 주장이다. 이는 지금 동북아의 최대 현안 가운데 하나인 북핵문제와도 연결되어 있다. 북핵의 존재를 부인할 수 있는 수단이 지금 미국에는 없다. 겉으로 북한은 벼랑끝 전술을 포기하지 않고, 미국은 계속 이리 저리 을러대면서 대립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핵을 순순히 포기할 리도 없고 중국·러시아 협조없이 미국 혼자 택할 수 있는 압박수단도 없다. 이는 그 누구보다 미국 스스로가 잘 안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미국이 으르렁대는 것은 동북아에 아직도 미국의 존재가 필요하다고 각인시키기 위함이다. 그런 의미에서 북핵은 미국에 위협이라기보다 축복이다. 미국은 어차피 냉전 해체 뒤 정보조작과 날조를 통해서라도 적절한 수준의 적을 생산해내야 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 교수가 보기에 미국이 바라는 바는 바로 이 지점, 적절한 위협을 생산해내는 정도까지다. 이 선을 넘어 정말 분쟁이 발생하는 것은 미국이 바라지 않는 바다. 이 교수는 일본 우익이 지금 이 ‘레드라인’을 아슬아슬하게 타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는 “국제분쟁 한가지를 제대로 해결하는 것도 힘든데 지금 일본은 독도에, 센카쿠열도에, 사할린 문제 등을 연속적으로 건드리고 있다.”면서 “일본 우익이 이런 식으로 밀어붙이다가 결정적인 순간 미국이 등을 돌리면 자멸하는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단 그 ‘결정적인 순간’이 언제 올 것인가에 대해서는 조건이 따라붙는다. 일본 우익의 행동에 대해 한국을 포함한 주변국들의 단호한 대처다. 그래서 일본 우익의 행동이 결코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줘야 한다는게 이 교수의 주장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깔깔깔 ^0^]

    ●왕자병에 대한 보고서 * 왕자병 초기 증상 1. 모든 여자들이 날 보고 있는 것 ‘같다’. 2. 모든 여자들이 내 얘기를 하는 것 ‘같다’. 3. 저 여자가 나에게 반한 것 ‘같다’. 4. 모든 여자들이 날 알고 있는 것 ‘같다’. * 왕자병 중기 증상 1. 모든 여자들이 날보고 있다. - 버스정류장에 도착만 하면 시선이 나에게로 쏠렸다. 가볍게 눈웃음 한 방 쏴준다. 복도를 지날 때면 뒤통수가 따가웠다. 앞을 보고 조용히 손만 올려 흔들어 준다. 2. 모든 여자들이 내 얘기 한다. - 정류장에 들어가면 후배들이 뭔가를 얘기하다가 멈추곤 했지. 알면서도 모르는 척 ‘씨익’ 웃고 넘어갔다. 3. 저 여자가 내게 반했다. -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4. 모든 여자들이 날 안다. -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손을 흔들어 주는 넓은 마음. * 왕자병 말기 증상 1. 모든 여자들이 내 사진을 몰래 찍는다. 2. 모든 여자들이 나에 관한 일기를 쓴다. 3. 저 여자는 내 팬클럽 회원 중 한 명이다. 4. 모든 여자들이 날 사랑한다. ●현실과 드라마 * 약속이 있어 시내에 나갔다. 드라마 : 어디를 가도 주차할 곳이 꼭 있다. 현실 : 주차할 곳을 찾아다니느라 시내를 3바퀴 이상 돌아다닌다. * 삼각관계 드라마 : 자연스럽게 경쟁하고 그럴듯하게 괴로워한다. 현실 : 양다리 걸쳤다가는 애인에게 뺨 맞고 솔로되기 일쑤다. * 집에서의 옷차림 드라마 : 아주 화사한 남방에 조끼 걸친 아버지와 곗날에나 입는 투피스 차림의 엄마. 현실 : 담뱃재 때문에 구멍 뚫린 내복 입은 아버지와 늘어난 티셔츠를 아무렇게나 걸친 엄마. * 저녁식사 후 가족 대화 드라마 : 거실에 모여 과일을 먹으며 담소를 나눈다. 현실 : 아버지는 피로가 겹쳐 일찍 주무시고, 어머니는 드라마 보면서 누구와 누구를 결혼시키라고 혼잣말…. * 이별 드라마 : 혼자 한강변에서 소주병 들고 폼 잡거나, 고급 술집에서 양주 마시다 외로워 보인다고 하는 어떤 이를 만난다. 멋있게 기물을 파손해도 아무일 없다. 현실 : 혼자 또는 친구와 새벽까지 술먹고, 질질 짜거나 욕을 팍팍 해댄다. 아무리 멋있게 간판을 걷어차도 가게 주인한테 얻어맞고 집에 전화해서 변상해야 한다.
  • 한나라 ‘내분 봉합’ 새 전기

    4일 김덕룡(DR) 원내대표의 사퇴로 행정도시 특별법 통과에 따른 한나라당의 내분사태가 새로운 상황을 맞게 됐다. 김 원내대표의 사퇴가 지도부에는 수습의 명분을, 반대파에는 당내 투쟁 중단의 명분을 주면서 내분이 봉합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하지만 반대파 의원들은 박근혜 대표를 제외한 모든 당직자들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어 조기 수습 여부는 미지수다. ●與서 ‘빅딜설’ 흘리자 사퇴 결심 DR는 이날 사퇴 기자회견 뒤 기자와 만나 “당을 안정시킨 뒤에 사퇴할 수도 있지만 보다 빨리 혼란을 수습하고 당을 안정시키기 위해 사퇴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 측근은 “사실은 어제 사퇴하겠다고 했는데 측근들이 당의 혼란을 수습한 뒤에 물러나야 한다고 만류했다.”면서 “그런데 오늘 측근들조차 인간적인 모멸감을 느낄 만한 갖가지 상황과 억측이 난무했다.”며 사퇴 배경을 밝혔다. DR는 전날 열린우리당 정세균 원내대표가 ‘빅딜설’을 흘리자 즉시 사퇴를 결심했다고 한다. 측근들은 “DR가 고향 후배나 다름없는 정 원내대표에게 뒤통수를 맞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정 원내대표의 해명으로 사퇴 결심을 한때 접는 듯했지만 반대파 의원들이 ‘빅딜설’을 기정사실화하며 물고 늘어지는 등 안팎의 공세에 모멸감마저 느낀 것으로 알려졌다. ●반대파 “무효화 투쟁과 별개” 반대파를 이끌고 있는 이재오 의원은 김 원내대표의 사퇴 후 기자간담회를 갖고 사퇴 요구 대상에서 박 대표를 제외시킬 것임을 분명히 했다. 박 대표를 제외한 당직자 총사퇴를 요구하고 있지만 그다지 무게가 실리지는 않은 분위기다.‘총사퇴’라는 극약 처방을 주문했지만 박 대표가 재신임하면 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박 대표의 자진 사퇴까지 요구할 경우 행정도시법 무효화 투쟁이 ‘박 대표 축출’을 노린 것으로 해석되는 상황이 그 이유다. 하지만 반대파들은 지도부 인책 요구와 행정도시법 무효화투쟁은 별도의 사안이라는 입장이다. 사실상 박 대표와의 대립각이 쉽사리 무디어지긴 어려운 상황이 되는 셈이다. 김문수 의원은 “김 원내대표의 사퇴가 당내 갈등 봉합의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하다.”고 수습 국면 전환을 시사했다. 그러면서도 “수도지키기투쟁위원회의 수도분할법 무효화 투쟁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분명히 했다. ●당내 주도권 싸움 치열할 듯 한나라당은 이번 사태로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박세일) 등 당 3역에 이어 국제위원장(박진), 전략기획위원장(심재철) 등 중·하위 당직자들까지 줄줄이 사퇴하는 전대미문의 ‘당직 공백사태’를 맞았다. 최병렬 전 대표가 퇴진할 때도 이런 상황은 아니었다. 박 대표는 당직 공백사태를 조기 수습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후임 인선이 그리 쉬울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당헌·당규상 오는 11일 이전에 치러질 원내대표 경선은 어느 때보다 치열할 전망이다. 박 대표를 비롯한 주류측과 반대파 모두에게 양보할 수 없는 자리다. 개인적으로는 차기 당권이나 대권 도전, 서울시장 등 광역단체장 출마를 염두에 둔 재선 이상 의원들의 각축이 예상된다. 현재로서는 ‘박근혜 옹호론’을 펴고 있는 강재섭·맹형규 의원과 ‘반박(反朴)’ 진영을 이끌고 있는 권철현·김문수 의원의 ‘4파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北 核무기 보유 공식선언] 적대정책 포기 美압박 ‘폭탄 선언’

    10일 북한이 6자회담 불참 선언과 함께 핵무기 보유를 기정사실화하면서 제4차 6자회담 개최가 당분간 불투명하게 됐다. 문제는 북한 외무성의 이날 발표가 명확한 6자회담 불참 의사인지 북한 특유의 ‘벼랑끝 전술’인지 여부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북한이 6자회담에 참가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이에 앞서 미국측의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압박”이라는 분석을 조심스럽게 내놓고 있다. 특히 이날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북핵문제 해결을 주된 의제로 방미 일정에 들어간 시점이라 오는 14일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과의 회담에서 6자회담 조기개최와 협상방안에 대해 북한측의 입장을 반영한 안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潘외무 방미 맞춰 ‘뒤통수 치기’ 북한 당국은 이번 성명을 발표하면서 부시 2기 행정부가 대북 압박정책을 선언한 것으로 평가하고 6자회담의 무기한 참가 중단 및 핵무기 제조·보유를 ‘공식화’하고 앞으로 자위의 차원에서 핵무기 확대 정책을 취하겠다고 선언하고 나섰다. 정부는 당혹해하는 모습이 역력한 가운데 북한측의 진의 파악에 분주한 분위기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지금까지 6자회담 틀 자체를 부정하지 않았는데 발언 이면을 전반적으로 파악해봐야 될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이 6자회담을 언제까지나 회피하지는 못하겠지만 지금처럼 미국이 ‘선 핵포기’입장을 고수하는 한 6자회담에 참석해봤자 실익이 없을 것으로 일단 판단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지는 핵 실험 테스트를 하지 않아 확인할 수 없지만 실제일 가능성이 높은 것을 뜻하고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이를 기정사실화하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같은 맥락에서 “국제정치역학상 끝까지 6자회담을 거부할 수는 없지만 동결 대 보상이라는 원칙을 고수하기 위해 미국측의 양보를 얻어내려는 강력한 압박”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을 비롯한 6자회담 참가국들의 대응은 신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미국측의 ‘선 핵포기론’과 북한측의 ‘동결 대 보상’입장이 팽팽하게 맞서온 만큼 미국측이 과감한 양보를 하지 않는다면 북한측의 6자회담 조기 참가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美등 6자회담 참가국 신중한 반응 이에 따라 10∼14일로 예정된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과 미국 외교안보팀과의 북핵 협의내용도 크게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회담에서도 6자회담 조기개최와 실질적인 진전방안이 주요 의제로 잡혀있지만 그동안 미국이 북한에 대해 ‘폭정의 전초기지’,‘자유화의 대상’이라는 입장을 유지해온 이상 반 장관이 미국으로부터 전향적인 메시지를 가지고 오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전현준 통일연구원 기획조정실장은 “북한은 미국이 체제전환 의사를 분명히 했다고 보기 때문에 핵을 무기로 방어하겠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최대한 미국을 압박해 6자회담이 열리더라도 적대정책을 포기하는 등의 진전된 카드를 갖고 나오라고 경고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그 영화 어때?] 여보랑 설후유증 풀어볼까

    [위험한 대결] ●감독/배우/등급/장르 브래드 실버링/짐 캐리·메릴 스트립/전체/팬터지 ●어떤 영화 화재사고로 고아가 된 천재 삼남매와 이들의 막대한 유산을 가로채려는 올라프 백작의 대결을 그린 팬터지 어드벤처. 삼남매는 올라프 백작의 음모를 번번이 무산시키지만 올라프는 탁월한 변장술로 이들을 쫓아다니는데…. ●이게 좋아 상상력을 자극하는 그로테스크한 정서. ●이건 ‘꽝’ 아이들에겐 다소 지루할 수도. ●누구와 함께 아이들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 어른들이라면 반드시 봐야 할 영화. [우디 앨런의 애니씽 엘스] ●감독/배우/등급/장르 우디 앨런/제이슨 빅스·크리스티나 리치·우디 앨런/15세/로맨틱코미디 ●어떤 영화 친구의 연인과 사랑에 빠진 남자, 한참 사귀다 다시 ‘뒤통수’ 맞다. ●이게 좋아 우디 앨런 특유의 알 듯 말 듯한 지적인 ‘속사포’ 대사의 맛. 유쾌하고 재미있는 인물 관계들. ●이건 ‘꽝’ ‘말’많은 영화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와 함께 뭔가 결정해야 할 시기에 들어선 연인끼리. [콘스탄틴](8일 개봉) ●감독/배우/등급/장르 프랜시스 로렌스/키아누 리브스/15세/액션·드라마 ●어떤 영화 인간의 형상을 한 혼혈천사와 혼혈악마가 존재하는 세상. 태어날 때부터 이들을 구분하는 능력을 타고난 존 콘스탄틴은 천국과 지옥의 경계를 넘나들며 세상에 존재하는 악을 지옥으로 돌려보내는 임무를 수행한다. ●이게 좋아 ‘매트릭스’이후 또다시 세상을 구하는 영웅으로 돌아온 키아누 리브스의 매력. ●이건 ‘꽝’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스토리와 영상. ●누구와 함께 ‘매트릭스’류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클로저] ●감독/배우/등급/장르 마이크 니콜스/줄리아 로버츠·주드 로·나탈리 포트만·클라이브 오언/18세/멜로 ●어떤 영화 길을 걷다가 낯선 사람과 사랑에 빠지다. 하지만 ‘낯선 유혹’은 둘의 사랑을 엇갈리게 하는데…. ●이게 좋아 할리우드 최고 스타들 한자리에. 변화하는 사랑, 혹독한 질투심 등 섬세한 감정의 결이 살아있는 ‘감성’멜로. ●이건 ‘꽝’ 인간의 심리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노골적인 대사가 가슴을 찌를 수도. ●누구와 함께 ‘사랑이 무엇일까.’라고 고민하는 성인남녀 모두. [피닉스](4일 개봉) ●감독/배우/등급/장르 존 무어/데니스 퀘이드·지오반니 리비시·미란다 오토/12세/액션·재난 ●어떤 영화 모래폭풍 속 사막 한가운데로 추락한 항공기. 살아남은 10명, 필사의 탈출을 계획하는데…. ●이게 좋아 광활한 사막이 펼쳐진 스펙터클한 화면과 재난영화 특유의 흥미진진한 긴박감. ●이건 ‘꽝’ 위기의 순간에도 그다지 변하지 않는 인간들. 그래서 ‘착한’영화가 됐지만 다소 평면적으로 보이기도. ●누구와 함께 친구, 연인, 가족끼리. [하울의 움직이는 성] ●감독/배우/등급/장르 미야자키 하야오/기무라 다쿠야(목소리)/전체/애니메이션 ●어떤 영화 모자가게에서 일하는 소녀 소피는 마녀의 저주로 하루아침에 80세 노파로 변한다. 집을 나온 소피는 황야를 걷다가 마법사 하울이 사는 성에 다다르고, 베일에 싸인 꽃미남 마법사 하울과 불꽃 악마 캘시퍼, 꼬마 마법사 마르클과 기묘한 동거를 시작한다. ●이게 좋아 반전, 자연친화의 메시지에 러브스토리까지. ●이건 ‘꽝’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는 못미치는 감동과 영화적 재미. ●누구와 함께 연인이나 가족 모두 OK.
  • 1인3역 짐 캐리 좌충우돌 팬터지

    동명의 베스트셀러를 영화화한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감독 브래드 실버링)은 ‘해리포터’시리즈와는 또 다른 매력을 선사하는 팬터지 영화다. 알록달록한 꼬마인형들이 등장해 익숙한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을 보여주는 듯하다가 뒤통수를 치는 도입부는, 이 영화가 분홍빛 솜사탕처럼 말랑말랑한 영화가 아님을 재치있게 보여준다. 의문의 화재로 졸지에 고아가 된 삼남매 바이올렛, 클라우스, 서니. 부모로부터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았으나 성인이 되기 전에는 한푼도 쓸 수 없게 된 이들은 후견인이 되어줄 먼 친척 올라프 백작을 만난다. 가여운 아이들을 제 자식처럼 대해주면 좋으련만 사악한 올라프 백작은 돈에 눈이 어두워 아이들을 없애려 한다. 그러나 상대가 아이들이라고 해서 만만하게 봤다간 큰코 다치기 십상. 게다가 보들레어가의 삼남매는 알고 보니 저마다 남다른 재능을 지닌 천재였다. 무엇이든 발명해내는 발명가 바이올렛, 엄청난 독서량으로 모르는 게 없는 클라우스, 그리고 한번 문 건 절대 놓지 않는 막내 서니. 이쯤 되면 변장술은 뛰어나지만 두뇌는 허술한 올라프 백작과 삼남매의 대결은 위험한 수준을 넘어 치명적인 지경에 이르게 된다. 영화의 그로테스크한 정서를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미술은 단연 돋보인다. 호수 한쪽 절벽위에 아슬아슬하게 지어진 조세핀 숙모집이나 온갖 파충류들이 득시글거리는 몽티 삼촌의 저택은 절로 탄성을 자아낸다. 제작진은 상상력의 최대치를 표현하기 위해 80여개의 세트를 만들어 촬영했다. 짐 캐리가 올라프 백작을 비롯한 1인3역으로 변신의 귀재임을 다시 한번 입증했고, 메릴 스트립은 신경과민증 조세핀 숙모역으로 열연했다. 실루엣으로만 등장하는 극중 화자, 레모니 스니켓의 목소리는 요즘 가장 잘 나가는 배우 주드 로다. ‘스텝맘’으로 낯익은 클라우스역의 리암 에이켄을 비롯해 세 아역배우의 자연스러운 연기도 눈길을 끈다. 원작은 현재 11권까지 출간됐고, 전세계에서 2700만부가 팔렸다. 전체 관람가.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하프타임] 고종수 “전남서 제2의 탄생”

    프로축구 수원에서 전남으로 트레이드된 고종수(27)가 ‘제2의 탄생’을 선언했다. 고종수의 에이전트인 곽희대씨는 13일 “트레이드 발표 전날까지 구단측과 이적료를 논의했는데 갑작스레 사실이 알려지면서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면서 “이 때문에 고종수가 트레이드를 거부하겠다는 소문까지 나온 것 같다.”고 밝혔다. 곽씨는 “그러나 고종수가 마음을 다잡고 전남에서 잘해 보겠다는 뜻을 밝혔고, 반드시 부활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 유혹의 기술2/벳시 프리올뢰 지음

    만일 당신이 성실하고 순종적인 딸을 원한다면 절대 이 책을 보게 해선 안 될 것이다.‘유혹의 기술2’(벳시 프리올뢰 지음, 강미경 옮김, 이마고 펴냄)는 창조적이고 독립적인 사고를 지니고 자유롭게 사랑할 줄 알았던 모험심 많은 여성들이 고대 그리스부터 현재까지 어떻게 남자들을 매혹시켜 왔는지를 파헤친 책이다. 2년 전 나왔던 책 ‘유혹의 기술’이 총체적인 사회관계 속에서 유혹의 기술을 조명했다면 이 책은 그중에서도 ‘사랑의 기술’에 집중하고 있다. 지은이(맨해튼대 교수)는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우지 못했던 위대한 유혹녀들의 용감무쌍하고 도발적인 삶의 이야기를 복원함으로써 지금까지 우리가 문화적으로 습득해온 여성의 역할, 즉 ‘현숙한 성녀’와 그와 대립되는 ‘탕녀’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여지없이 깨부순다. 그리고 이같은 사고가 횡행한 사회에서 탕녀로 배척당했던 유혹녀들을 21세기의 진취적인 여성의 모델로 제시한다. 책이 소개하는 유혹녀 50인의 사례는, 남자를 매혹시키는 것이 육체적으로 아름다워야 했던 것이 아님을 명백히 밝혀준다. 프랑스 샹송가수 에디트 피아프는 결코 미인은 아니었지만 카리스마와 열정으로 남성들에게 충격과 엑스터시를 주었으며, 마흔이 넘은 디아 드 프아티에는 젊은 왕비를 제치고 왕 앙리2세를 15년간이나 독점하며 실질적인 왕비노릇을 했다. 지적 매력이나 정치적 카리스마로, 또는 예술가로서의 창의력과 감성, 혹은 모험가적 용기로 남성들을 사로잡은 유혹녀들도 많았다. 이들은 남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느끼고 즐기기 위해 자신의 성적 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으며, 남성의 노예가 아니라 남성 위에 군림했다. 지은이는 이같은 엄격한 기준으로 볼 때 남자들의 노리개로 전락한 마릴린 먼로나, 종종 뒤통수를 얻어맞곤 했던 창부 파멜라 해리먼 같은 ‘거짓 유혹녀’들은 과감히 배제했다.2만 5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뒷골목 맛세상] 인사동의 작은 맛집들

    [뒷골목 맛세상] 인사동의 작은 맛집들

    인사동은 흔히 ‘거리의 박물관’이라고 불린다. 화랑에서부터 공예품이며 골동품을 파는 가게에 이르기까지 고급스러운 문화의 향취가 풍겨난다. 더군다나 얼마 전부터 관광특구로 지정돼 거리 미화작업이 진행되고, 기다렸다는 듯이 문화자본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인사동은 더욱 세련되고, 멋들어졌다. ●음식점 상호엔 멋들어진 우리말 화가나 도예가, 공예인, 문인 같은 예술인들이 터전을 삼아 노니는 곳에 어찌 멋이 뒤따르지 않겠는가. 그들의 발자취가 두루 머무는 곳에 멋이 빠진다면 그야말로 속빈 강정에 다름 아닐 터이다. 멋스러운 거리에 자리를 잡은 먹고 마시는 맛집들 또한 어찌 멋들어지지 않겠는가. 인사동의 맛집들은 우선 상호에서부터 맛이 다르다. ‘오늘같이 좋은 날,千강에 비친 달, 바람 부는 섬, 소금인형, 황금비늘, 두레멍석, 오 자네 왔는가, 툇마루, 놀부가 기가 막혀, 흥부가 기가 막혀, 북치구 장구치구, 사람과 나무, 우리 그리운 날은, 평화만들기, 달고둥, 보릿고개추억, 조각하늘, 좋은 씨앗, 달새는 달만을 생각한다, 뜰 앞에 잣나무, 아빠가 어렸을 적에, 낮에 나온 반달, 완자무늬, 머시 꺽정인가, 모깃불에 달 끄슬릴라, 풍경소리….’ 얼핏 둘러봐도 가히 그 멋들어짐은 시인의 상상력을 넘어선다. 멋들어진 것이 어디 상호뿐이랴. 다양한 먹을거리 또한 멋들어져서, 은정이나 선천, 사천, 이모집 같은 전통 한정식에서부터 재첩 요리만을 전문으로 하는 섬진강, 다슬기 요리만을 전문으로 하는 풍류사랑, 홍어만을 전문으로 하는 홍어가 막걸리를 만났을 때, 홍어천하, 사찰음식 전문의 산촌, 녹차대나무쌈밥이며 녹차너비아니 등 밥이며 요리에 녹차를 이용한 차이야기, 야채 커리나 마살라 같은 인도 요리의 작은 인디아, 된장비빔밥의 툇마루에 이르기까지 불쑥 어느 집에 들어가도 멋들어지지 않은 요리가 없다. 어쩌면, 인사동에 한 가지 흠이 있다면 바로 그 멋들어짐이 너무 지나치다는 데에 있는지도 모른다. 멋이 멋으로만 머물지 않고 멋 자체가 상품화되어 거리에 넘쳐난다면 그런 멋은 이미 멋이 아니다. 멋들어짐이 지나치면 곧바로 건들거리는 법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건들건들, 건들거리면 자칫 사람 냄새를 잃고 만다. 만약 인사동 거리가 죄다 사람 냄새를 잃고 건들거리고 있다면? 인사동에 언제부터인가 40대 언저리의 중년여인이 있는 듯 없는 듯 모습을 드러냈다. 그이는 인사동 네거리에서 안국동 방향으로 10미터쯤 오르는 왼편 골목에 역시 있는 듯 없는 듯 조그만 맛집을 냈다. 작은 뜨락(02-739-2218)이라는 상호인데, 원래 건물 옆에 버려진 골목이었던 것을 위는 차양으로 가리고, 건물 벽에 의지해 폭 1미터에 길이 5미터 남짓한 공간을 마련했다. 폭이 너무 좁아 일반 탁자를 놓을 수가 없어서 벽에 긴 나무판대기를 붙이고, 바닥에는 겨우 엉덩이를 걸칠 만한 간이의자를 놓았다. 이 집에서 먹고 마시기 위해서는 한껏 몸을 웅숭그린 채 본의 아니게 면벽을 해야 한다. ●인사동 풍류객들의 ‘참새 방앗간’ 한 마디로 멋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맛집에다가 주인 되는 노인자씨도 멋하고는 아예 담을 쌓은 이였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한 주먹 움켜잡아 뒤통수에 질끈 동여맨 꽁지머리, 아무렇게나 차려입은 차림새. 한 술 더 떠, 먹고 마시는 소위 물장사가 난생 처음이어서 음식을 마련하고 상을 차리고 셈을 헤아리는 일도 서툴다. 그야말로 엉망이었다. 손님이 “여기 얼마요.”하면 “몰라요. 먹은 만큼 알아서 주세요.”가 대답이고, 대구와 동태라는 생선을 구별하지 못해 대구를 동태로 파는가 하면 손님이 계산을 않고 나가도 숫제 알아내지를 못했다. 멋대가리라고는 없는 작은 뜨락의 진가를 인사동의 눈 밝은 이들이 못 알아볼리 없었다. 툇마루의 바깥주인이자 ‘집도 절도 주민등록증도 없이’ 떠도는 시인 박중식, 동숭동에서 작가폐업이라는 카페를 운영하는 예사롭지 않은 작가 배평모, 누구나 알아주는 시대의 낭만주의자인 시인 김사인, 한국판 비용으로 통하는 시인 김신용, 인사동 화단의 마당발 화가 장경호,588여인들의 사진전으로 이름을 날린 사진작가 조문호, 십수 년에 걸쳐 인도를 헤맨 끝에 ‘우리는 지금 인도로 간다’는 인도 안내서를 내고 아울러 ‘인도로 가는 길’이라는 여행사를 운영하고 있는 인도전문가 정무진 등 소위 인사동의 풍류객으로 통하는 이들이 마치 고양이가 생선냄새를 맡고 찾아오듯 차례로 작은 뜨락에 모여들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노인자씨는 물장사만 난생 처음인 것이 아니라 돈을 버는 일 또한 처음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난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돈이라고는 벌어본 적이 없는 노인자씨는 돈을 쓰는 일에는 누구보다도 화려한 이력이 붙은 이였다. 일찍이 불교계의 내로라하는 큰스님 아래서 포교사 비슷하게 아시아 각국이며 유럽을 거쳐 아프리카까지 돌아다녔는데, 세 번이나 말라리아에 걸려가며 아프리카를 종단하여 굶주린 현지인들을 위해 아낌없이 돈을 썼다. 이를테면 몸과 마음 전체를 바쳐 30년 가까이 중생구제라는 보살행을 해온 셈이었다. 그런 그이가 어느 날 획하고 머리가 돌아 그만 맛집을 차려 돈을 버는 일을 하고 말았다. 인사동의 눈 밝은 풍류객들이 맨 먼저 알아본 것은 다름 아닌 주인 되는 이의 사람냄새였을 터이다. 그런 그이들로서는 적어도 작은 뜨락이 그대로 망하는 꼴은 두고 볼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이들은 주인을 대신하여 나름대로 작은 뜨락을 살리는 일에 나섰다. 이를테면 셈이 어두운 주인을 대신해 모자를 돌려 자신들이 먹고 마신 만큼 돈을 거두어 스스로 셈을 헤아리고, 한 접시에 5000원을 넘지 않는 한도에서 입맛에 맞는 안주를 개발해내고, 무엇보다도 작은 뜨락을 연락처 삼아 주인이 있든 없든 하루에 한 두 번은 꼭꼭 들렀다. 그리고 그이들은 마침내 작은 뜨락만의 규칙을 만들었다. 술과 안주는 한 사람이 1만원을 넘지 않는 선에서 1차를 마감한다. 만일 차수를 변경하여 2차로 넘어가면 다시 모자를 돌려 1만원을 추가하는데, 절대로 외상은 없다. ●사찰음식 전수받은 된장찌개·들깨탕 작은 뜨락은 4000원짜리 우거지 해장국이 있어서 식사도 할 수 있다. 술안주는 서산에서 이틀에 한번 꼴로 택배로 부쳐오는 어리굴젓과 자연산 생굴이 있는데, 배춧속에다가 생굴을 쌈 싸먹는 맛이 신선하다. 그밖에 조기며 자반고등어 같은 생선구이며 생선찌개도 있다. 작은 뜨락에 처음 가는 이라면 마땅히 조심해야 할 것은 자칫 요술 같은 시간의 흐름에 휘말리는 일이다. 우연히 합석하게 된 풍류객들과 잠시잠깐 웃었는데, 낮술 한 잔이 어느 새 2차,3차를 넘어 다음날 새벽까지 이어진다. 인사동 네거리에서 종로 2가 쪽으로 몇 걸음 걷지 않으면 덕원 갤러리 옆 골목 깊숙이 고샅길(02-734-3371)이라는 한식 전문집이 역시 있는 듯 없는 듯 멋 부리지 않고 있다. 한옥의 사랑채를 개량한 듯 주방까지 합쳐 10평 남짓한 실내에 대여섯 개의 식탁이 있는 작은 집이다. 출입문 쪽의 벽을 터서 통유리창을 달고 거기에 진열해놓은 종발 같이 앙증맞은 도기들이 무슨 꽃들이라도 재잘거리며 피어나듯이 아름답다. 뿐만 아니라 좁은 공간에 매달아놓은 화분들이며 실내장식들은 어디에서나 주인의 깔끔하고도 섬세한 손길이 그대로 묻어나와 은은한 향기를 풍긴다. 고샅길 주인 되는 이는 박진숙·경숙 두 자매인데, 이중에서 언니 되는 박진숙씨가 도예가여서 이들 종발이며 요리에 쓰이는 접시와 그릇들을 모두 포천에 있는 작업실에서 직접 구워낸 것이다. 동생인 경숙씨는 식품영양학과 출신으로 원래부터 음식 솜씨가 뛰어났는데, 솜씨를 아낀 언니의 권유로 인사동까지 나서게 되었다. 고샅길의 특징은 요리에서 밑반찬에 이르기까지 어느것 하나 정갈하면서도 깊은 맛이 우러나지 않는 것이 없다는 점이다. 그중에서도 고샅길된장찌개(5000원)와 산사들깨탕(1만원)이 일품이다. 메주를 쓰지 않고 알콩 자체를 띄워 만드는 절에서만 전해오는 비법으로 담근 된장을 원료로 한 된장찌개는 한 입 넣는 순간, 어떻게 이런 맛이 날 수 있을까 싶게 그 정갈하면서도 깊은 맛에 대뜸 매료된다. 스님들의 보양식에서 비롯되었다는 산사들깨탕 또한 예사로운 맛이 아니다. 곱게 간 들깨에 배추, 호박, 버섯, 두부, 거두절미한 콩나물을 넣고 약간 되직하게 끓인 산사들깨탕은 육식을 좋아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특히 별미일 터이다. 얼핏 보면 지극히 평범하지만 먹을수록 감탄사가 나오는 이 두 가지 요리는 실제로 쌍계사에 있던 무산스님으로부터 전수받았다는데 무산스님은 출가하기 전에는 한의사 출신으로 평소에도 사찰음식에는 깊은 조예가 있는 이였다. 이밖에도 5000원짜리 동태찌개와 야채비빔밥이 있고, 술안주로는 버섯전골(2만원)이며 닭매운탕(2만원)이 있는데, 서너 명이서 너끈히 즐길 수 있는 양이다. ■ 인정으로 우려내는 전통찻집 인사동 네거리에서 안국동 방향으로 한참을 올라와 쌈지박 어름에서 왼편 길로 접어들면 산타페 입구 옆에 초당(02-738-4154)이라는 전통찻집이 또한 있는 듯 없는 듯 멋 부리지 않고 있다. 탁자 세 개가 전부인 작은 공간의 한 쪽에 주인 되는 최정해씨가 평생을 바로 그 자리에 있었던 듯 그림 같은 자세로 신비한 미소 지으며 앉아 있다. 결코 적지 않은 나이와는 상관없이 곱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자태다. 무언가 알 수 없는 향기와 빛깔이 은근하게 배어나오는 듯한 자태는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마치 오랜 세월을 잊혀졌다가 어느 날 불쑥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고려청자나 이조백자처럼 정지된 시간 속에서 깊어진 향기며 빛깔이다. 삶의 무엇이 한 여인을 저렇듯 깊게 만들었을까. 참으로 막막한 무슨 기다림 같은 것은 아닐까. 손님이야 하루에 한 명이 들든 두 명이 들든 별로 개의치 않는다. 중요한 것은 바로 최정해씨가 지키고 있는 자리이다. 벌써 20년 가까이 그 자리에서 어쩌다 든 손님들에게 깊은 손길로 차를 만들고 차를 따른다. 아주 잊혀진 듯 참으로 오랜만에 오는 손님이면 연꽃 모양의 작은 촛불을 물이 담긴 자기 잔에 켜서 차와 함께 탁자 위에 올려놓는다. 촛불에 어둑한 실내가 일순 은은하게 밝아지면서, 그것을 지켜보는 손님의 어둑한 마음 또한 어쩔 수 없이 밝아지기 마련이다. 그렇듯 밝아진 마음으로 차를 들어 한 모금 입안에 넣으면 저 안으로 깊이 흘러들어가는 것은 비단 차만은 아니다. 홍삼말차라는 초당만의 특이한 차가 있다. 녹차 가루에 홍삼가루를 섞어서 약간 되직하게 물을 넣은 흡사 맑은 죽 같은 느낌의 차인데, 이것을 사발에 넉넉하게 마시고, 다음에 바위에서 나는 대나무의 어린 순으로 만든 연둣빛 석죽차와 석류빛 오미자차를 마시고, 이어 솔바람차며 매실차까지 마신다. 차를 바꾸는 틈틈이 편강, 쥐눈이콩강정, 오미자 양갱으로 입가심을 해가며 대여섯 가지의 차를 마시고 나면, 삶의 무엇이 우리를 그다지 애면글면 안타까워하게 하랴. 이런 식으로 차를 순례하고 초당을 나설 때 잠자코 1만원짜리 한 장을 식탁에 놓아두는 것을 잊지 말 일이다.
  • 전공노파업 후유증 ‘골머리’

    행정자치부가 전국공무원노조 파업 후유증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공무원노조 파업에 대해 초강경 대응으로 초기 진압에는 성공했지만, 잇단 강경책이 부메랑으로 돌아와 행자부를 거꾸로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천차만별인 징계수위도 엄청난 부담으로 행자부의 향후 대응이 주목된다. ●“지자체에 令이 안 서” 행자부를 가장 곤혹스럽게 하는 것은 민주노동당이다. 민노당 출신인 이갑용 울산 동구청장과 이상범 북구청장이 파업 참가 공무원에 대한 정부의 중징계 방침을 정면으로 치받으며 징계 거부 또는 경징계 요구를 하고 나오자 매우 부담스러워 하고 있는 눈치다. 같은 사안에 대해 전국의 250개 지자체 중 246곳은 정부의 방침에 따라 징계를 하는데 유독 울산지역 4개 지자체만 전혀 이행을 하지 않아 형평성 문제는 물론 행정력에 한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대두되고 있다. 행자부는 울산지역 공무원 징계와 관련, 뒤통수를 맞았다는 반응이다. 행자부는 1일 오전 “지난달 30일까지 울산시에 이 동구청장을 형사고발하고 울산 동·중·남·북구 등 4개 자치구가 정부방침대로 징계절차를 밟도록 요구했으나 울산시가 며칠 여유를 달라고 해 좀더 지켜 보겠다.”고 밝혔다. 해외 출장 중인 박맹우 울산시장이 귀국하면 결단을 내리지 않겠느냐고 판단했던 것이다. 행자부는 이 동구청장 문제만 해결하면 나머지 3개 자치구는 정부 방침을 따를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이날 오후 울산 북·남·중구가 정부의 중징계 방침과 완전히 다른 경징계 위주로 징계요구를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예상했던 대로 ‘형평성 논란’이 제기되자 매우 난감한 반응을 보였다. 구청장이 한나라당 소속인 남구에서 파업을 주도한 5명에 대해 중징계 요구를 하고 나머지 296명은 경징계를 요구하자 전혀 예상치 못한 듯 당황했다. ●장관발언에 민노당 ‘발끈’ 행자부는 공무원노조 파업 이후 전개되는 상황에 대해 적극 대응하고 있지만 여건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허성관 행자부 장관은 전날 밤 국회앞에서 단식농성 중인 민노당 권영길 의원에게 사과를 하러 갔다가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킨 꼴이 됐다. 권 의원은 지역구 사무실에 경찰이 들어와 농성중인 공무원노조 간부를 연행한 데 대해 이해찬 총리 사과와 허 장관 해임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벌여 왔다. 하지만 허 장관을 맞은 권 의원이 “사과를 하려면 조용히 와서 하면 될 것이지 보도자료를 뿌리고 사진기자까지 부른 것이 무슨 사과냐.”며 오히려 불쾌해 하자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게다가 권 의원의 농성장을 찾은 허 장관이 단식 농성에 대해 “다이어트 하는 줄로 알았다.”는 농담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민노당이 발끈하자 어쩔 줄 몰라 했다. 행자부 관계자는 “허 장관과 권 의원은 사적으로 상당한 교분이 있는 사이”라며 “평소 친분이 있어 농담을 한 것인데 이상한 방향으로 사태가 흘러가고 있다.”고 답답해 했다. 공무원노조 지도부가 이날부터 징계철회를 요구하며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간 것도 악재다. 조덕현기자 hyoun@seoul.co.kr
  • 전공노 징계수위 ‘갈팡질팡’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 파업 참가자에 대한 정부의 징계 수위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열린우리당 이부영 의장이 우회적으로 제동을 걸고 나왔기 때문이다. 행정자치부의 강경입장에 제 목소리를 못내던 지자체는 ‘원군(援軍)을 만났다.’는 입장인 반면, 행자부는 “어디에 장단을 맞춰야 하느냐.”며 우왕좌왕했다. 그러나 일부 지자체는 예정대로 중징계 조치를 내리기도 했다. ●“대량 징계사태 바람직하지 않다” 이부영 의장은 22일 “전공노 조합원들이 공무원 신분을 망각하고 파업에 참가했다고 해도 대량 징계·구속 사태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우리당의 인식”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행자부는 오후 긴급 간부회의를 열고 입장정리를 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아직 출근하지 않은 주동자 가운데 스스로 나와 조사에 협력하는 인사들은 정상참작해야 하며, 단순가담자에 대해서는 징계수위를 최대한 조절해야 할 것”이라는 이 의장의 입장은 ‘단순 가담자까지 중징계하겠다.’는 정부 방침과는 차이가 난다. 행자부는 그동안 ‘15일 오전 9시 현재 파업 참가자’는 모두 중징계하라고 전국 지자체에 시달했다. 이해찬 국무총리까지 참석한 회의에서 이같은 방침을 거듭 확인하고, 이를 어기면 국책사업 배제와 특별교부세 삭감 등 불이익을 주겠다고 강조했다. ●행자부,“할말 없어” 행자부는 뒤통수를 맞은 듯했다. 이 의장의 발언 이후 오전 청와대와 의견 조율을 했고, 오후에는 문원경 차관보 주재로 대책회의를 했다. 이어 권오룡 행자부 차관이 행자·노동·법무부 등 관계기관 국장들과 대책회의를 가졌다. 정부는 23일 열리는 국무회의에서 최종 입장을 정할 예정이다. 정부의 ‘중징계’ 방침에 따라 “이번엔 전교조 때와 다를 것”이라는 주장을 폈던 상당수 공무원들은 “이래서 복지부동이 생긴다.”고 불만을 표출했다. 일부에선 “정치권에서 (정부가)물러설 명분을 만들어준 것”이라고 해석했고, 또 다른 측에선 “(이의장이)정부의 입지를 더욱 힘들게 했고, 국가기강 확립은 없을 것”이라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반면 전공노측은 “전면철회가 아닌 선별 징계 방침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대구시 3명 파면·6명 해임 대구시는 이날 파업 관련자 36명에 대한 인사위원회를 열고 집회를 주동하거나 하루종일 파업에 참가한 3명은 파면하고 6명은 해임키로 결정했다. 또 단순가담자 20명에 대해서는 정직 결정을 내렸고 단순참가자 중 개전의 정이 뚜렷한 4명은 감봉처분했다. 충북도는 인사위원회를 열었으나 결론을 내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조덕현·대구 황경근기자 기자 hyoun@seoul.co.kr
  • [길섶에서] 대륙 미녀/이목희 논설위원

    TV채널을 돌리다가 중국 특집프로를 보게 됐다. 베이징, 상하이를 중심으로 경제발전상을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무심히 눈길을 주다가 뒤통수가 갑자기 뜨끔했다. 중국 여성들이 저렇게 예뻐졌나. 늘씬한 키, 뚜렷한 이목구비…. 원래 한족(漢族)은 저랬구나. 한동안 못살아 꾀죄죄해 보였구나. 영양과 치장만 뒷받침되면 몰라보게 변하는구나. 신문사에 들어와 외국을 꽤 다녔다. 동아시아권에서 한국 여성들의 미모가 최고라는 생각을 버린 적이 없었다. 그런데 ‘대륙 미녀’가 이렇듯 빨리 다가오다니. 한류(韓流)열풍이 곧 한류(漢流)열풍으로 바뀌지는 않을까. 최근 중국 지도자들까지 파노라마처럼 엮여진다. 후진타오 국가주석, 왕이 전 외교부 부부장…. 중국 남성들도 변하고 있었다. 외모만이 아니다. 그들이 풍기는 자신감이 두려워졌다. 술자리에서 이런 얘기도 자주 나온다.“지난 20∼30년은 반만년 우리 역사에서 유일하게 중국을 아래로 봤던 시기다.”다시 오기 어려운 역사체험이 아주 끝난 것일까. 이성적으론 그럴 수도 있을거야 하면서도, 마음은 “아직은 아니야.”라고 외치고 있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금통위 ‘운영방식’ 논란

    금통위 ‘운영방식’ 논란

    ‘알 수 없는 금융통화위원들.’ 금융통화위원들이 도마위에 올랐다. 지난 11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콜금리를 3.5%에서 3.25%로 0.25%포인트 전격 내린 이후 금통위원의 역할과 기능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콜금리 결정은 내리든 올리든 금통위원의 고유권한으로 논란의 여지가 없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한은 집행부의 경제지표 분석을 무시한 일방적인 처사라는 해석도 있다. 의사록, 녹취록 등을 전혀 공개하지 않는 금통위의 현행 운영방식에도 곱지 않은 시선이 쏠리고 있다. ●궁금증 낳는 금통위 결정 금통위는 콜금리를 결정하기 하루 전에 통상 한은의 주요 국실장 등으로부터 거시·금융 등 경제동향을 면밀히 보고받는다. 이 때 다음날 결정될 콜금리의 향방이 정해진다. 물론 철저히 비밀리에 이뤄진다. 지난 10일에도 금통위원들은 콜금리 결정을 하루 앞두고 한은 집행부의 동향 분석보고를 받았다. 동결에 무게를 둔 듯한 한은의 시각과 인식에 큰 이견차를 보이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다음날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박승 한은 총재는 “시장의 예측과 금통위의 결정이 번번이 달라 혼선을 부추긴다.”는 일부 지적에 “내 혼자 하는 일이 아니지 않으냐.”면서 이례적으로 “미안하다.”고 말했다. ●금통위,“문제없다” 금통위 관계자는 “금통위원들은 독립적으로 활동하고 있고, 내부적으로 입을 맞추는 일은 전혀 없다.”며 “이번 일은 금통위원 각자의 의견이 종합된 결과로 전혀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현 경제상황을 고려할 때 누가 보더라도 콜금리 동결보다는 인하에 무게를 뒀을 것”이라며 “결과가 어떻든 이러쿵 저러쿵 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입다문 한은 한은은 금통위원의 고유 권한으로 언급해서는 안될 일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번 일은 금통위원이 한은의 뒤통수를 친 꼴”이라며 “회의때마다 찬반으로 의견이 갈리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이번처럼 입이라도 맞춘 듯 뒤집은 것은 한은 역사상 처음있는 일”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금통위원 실명제 도입해야 한 금융전문 애널리스트는 “금통위의 결정이 시장의 예측과 매번 엇갈리다 보니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이라며 “금통위의 결정이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B증권 고위 관계자는 “금통위원들이 소신 있고, 책임감 있는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찬·반 위원들의 명단을 공개하는 미국의 제도를 검토해 볼 만하다.”며 “현행 금통위원들의 역할과 기능은 ‘권한은 있고, 책임은 덜 한’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어 “금통위원을 선정할 때도 후보들이 종전에 보였던 정책적 노선과 소신 등을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주병철기자 bcjoo@seoul.co.kr
  • 이규형감독 새 영화 ‘DMZ, 비무장지대’ 도쿄 시사회

    이규형감독 새 영화 ‘DMZ, 비무장지대’ 도쿄 시사회

    80년대 청춘영화를 대표하는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의 이규형(47) 감독이 10여년 만에 공포와 평화가 아슬아슬하게 동거하는 비무장지대로 관객을 초대했다.26일 국내 개봉에 앞서 지난 9일 도쿄 긴자의 마루노우치 극장에서 월드 프리미어 시사를 가진 영화 ‘DMZ, 비무장지대’는 79년 DMZ 수색병으로 활동하던 감독의 자전적 체험이 녹아든 작품. 최근 DMZ의 3중 철책선이 뚫린 현실과 묘하게 오버랩돼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규형 감독 “25년을 바쳤다” 한류열풍을 증명하듯 시사 전부터 극장 앞에는 일본 관객 수백명이 길게 늘어섰다. 한국을 사랑하는 모임 등에서 초청된 이들은 한국문화에 특히 애착이 많은 관객들인지라 시사도중 눈물을 흘리는 이들이 많았다. 일본의 유명 액션 배우 마쓰카타 히로키와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그 남자 흉폭하다’‘하나비’ 등에 출연한 재일교포 배우 백룡 등도 눈에 띄었다. 이규형 감독은 “외국인이 내 영화를 보고 우는 것 자체가 감동적”이라면서 “이것이 문화의 힘”이라고 강조했다. 사실 시사회 내내 이 감독은 벅찬 감동을 길어올릴 만했다.94년에 시나리오를 완성한 뒤 제작이 몇 번씩 좌절됐으며, 촬영만 3년이 걸렸고 그 와중에 주연배우도 바뀌었던 영화. 어쩌면 25년 동안 감독의 머릿속에서만 존재했을지도 모를 세계를 스크린에 펼쳐보이는 지금 이 순간, 이 감독은 그 어느 누구보다 행복했을지 모른다. “제작비 문제로 영화를 접은 다음 ‘JSA, 공동경비구역’을 보고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죠. 무슨 일이 있어도 영화를 완성시키고 싶었습니다.” 실제 지뢰가 터져 눈앞에서 전우 11명이 죽는 것을 목격한 적도 있다는 이 감독은 “언젠간 꼭 좋은 군대영화를 만들어서 그 친구들이 정말 명예로웠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면서 “정치적인 것을 떠나서 인간대 인간으로 사랑하자는 것이 영화의 주제”라고 설명했다. ●‘DMZ’라는 제목이 어울리지 않는 영화 하지만 그 오랜 시간 공을 들이며 쏟아넣은 감독의 노력이 관객에게까지 와닿을지는 미지수.DMZ 수색대인 영화학도 지훈(김정훈)과 이병장(박건형)의 체험기를 보여주는 영화는 제목처럼 묵직한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웃기려는 에피소드는 맥락과 동떨어져서 겉돌고, 긴장감이 감도는 장면은 서로 이어지지 못한 채 툭 끊긴다. 오히려 바뀌기전 제목인 ‘호텔 코코넛’이 코믹한 웃음과 공포가 혼재하는 아이러니한 현실의 분위기를 잘 표현해주는 듯하다. 그래도 결말 부분은 영화적으로는 억지스럽긴 해도 감독의 진정성 때문인지 나름의 감동을 낳는다. 일본인에게도 그 정서가 먹혔을까.‘실미도’의 배급을 맡았던 일본의 도에이가 영화의 제작이 거의 끝나갈 즈음 일본내 마케팅과 배급을 맡겠다고 나섰다. 이번 월드 프리미어의 시사회도 도에이의 힘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도에이의 구사나기 슈헤이 전무는 “이 영화는 ‘실미도’와 달리 액션, 눈물, 웃음의 3대 요소가 다 들어있다.”면서 “일본에서는 내년 4·5월에 개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도쿄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3집 ‘포 더 모멘트’ 낸 휘성

    3집 ‘포 더 모멘트’ 낸 휘성

    “2집 타이틀곡 ‘위드 미(With Me)’에 대한 부담감이 너무나 컸다.” 목소리가 그리워질 때쯤 3집 앨범 ‘포 더 모멘트(for the moment)’를 들고 돌아온 휘성. 그에게 지난 9개월만큼 고통스러운 시기는 없었다.“죽음이었다.”는 표현을 쓸 정도로.“정말 고민이 많았어요.‘이렇게 하면 ‘위드 미’보다 나을까’ 하는 생각이 앨범 작업 내내 따라다녔죠. 자살충동까지 느낄 정도였다니까요.”1집에서는 발라드를,2집에서는 미디엄 템포의 R&B로 대중을 매료시켜온 그가 3집에서는 본격적인 흑인음악을 보여주고 있다. ●본격적인 흑인음악 선보여 대중의 반응은 좋지만, 요즘 흑인음악이 강세인 터라 뚜렷한 차별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얘기도 나온다. 일부 ‘골수 팬’들은 실망했다고도 한다. 휘성에 대한 기대치가 그만큼 높아졌다는 얘기다.“‘더 이상 기대할 게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제 앨범을 못 듣게 하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났어요. 원래 소심하거든요.(웃음)” 그는 이번 앨범을 “과도기”라고 말했다.“아직 저는 모험할 시기가 아니에요. 더 강한 것, 사람들이 접해 보지 않은 음악을 해보고 싶지만 (음반시장의 불황 탓에)지금 모험을 하는 것은 스스로 목을 찌르는 것과 같아요.” 현재의 자신은 일반 대중 취향에 부합하는 대중가수라고 못박는다. 하지만 언젠가는 “흑인음악이든 어떤 음악이든 나에게 맞고, 잘 할 수 있는 장르를 찾아서 감동을 주는 음악을 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다. 이번 앨범에는 그가 하고 싶은 음악에 대한 복선이 깔려있다.“‘Outro’가 앞으로 하고 싶은 스타일의 음악 방향을 제시한다고 볼 수 있죠.”이번 앨범이 전작과 차별화되는 것은 업템포의 곡들이 눈에 띈다는 점. 한창 뜨고 있는 타이틀곡 ‘불치병’은 가슴 아픈 사랑을 읊고 있지만 멜로디는 흥겹다. 목소리는 보다 유연해졌다.“‘내지르기만 하는 가수’라는 이미지를 탈피하고 싶었죠. 힘이 빠졌다고 하는데 ‘불치병’이 ‘위드 미’보다 음역이 높아요.”제일 좋아하는 곡은 ‘탈피’.“비트가 입에 짝짝 달라붙고 곡을 맘대로 갖고 놀 수 있어서 좋아요.” ●비트 흥겨운 곡 ‘탈피’ 가장 좋아해 그는 정신적으로만 힘든 게 아니었다. 앨범 작업과 동시에 수없이 라이브 무대에 서야 했기에 체력도 목소리도 바닥까지 떨어졌다.‘리얼 슬로’라는 자신의 예명과 달리 눈코뜰새 없는 일정을 소화하느라 지쳐 보였다. 라이브에 강한 가수라는 명성이 무색할 정도로 무대 위에서 여러 번 망가졌다.“제 노래는 곡의 난이도가 높아요. 컨디션이 최악인 상황에서도 무대에 서다 보니 (노래를)망친 적이 수도 없죠.”“이제 무뎌져 간다.”고 포기하듯 툭 내뱉었지만 “정말 굉장한 라이브 무대를 마련해서 나에게 실망했던 사람들의 뒤통수를 치고 싶다.”며 웃는다. 음악적인 끼가 정말 많지만 아직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는 휘성. 그의 욕심이 채워지는 날, 음악팬들도 더욱 즐거워지지 않을까. 글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사진 강성남기자 sn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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