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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北, 남북교류마저 끊자는 건가

    북한이 더이상 남북 이산가족 상봉은 없다고 선언했다. 핵 개발과 미사일 발사도 모자라 인도적 차원에서 진행되어온 이산상봉까지 일방적으로 끊겠다고 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한국은 어떡하든 대화로 문제를 풀어보려고 하는데 북한이 거듭 찬물을 끼얹고 있다. 남북관계마저 이렇게 경색시킨다면 북한은 더욱 고립무원의 처지에 빠지게 된다는 것을 평양당국은 깨달아야 한다. 북한은 남한이 쌀과 비료 지원을 거부해 이산상봉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국제사회의 강력 경고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장거리미사일 발사를 강행했다. 북한을 두둔하던 중국도 유엔 안보리 대북 결의안에 결국 찬성했다. 이런 상황에서 남한이 어떻게 대규모 쌀·비료 지원을 할 수 있겠는가. 쌀·비료 지원이 절실했다면 도발 행위를 자제해야 마땅했다. 북한은 지난주 열린 남북장관급회담에서 그들의 선군(先軍)정책이 남측을 지켜준다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그 대가로 쌀·비료를 달라는 식이었다. 대북 동정론의 싹을 꺾는 억지 주장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어제 안보장관회의에서 “불필요한 긴장과 대결국면을 조성하는 일각의 움직임은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미국·일본의 과도한 대북제재 추진에 제동을 걸었다. 그러나 북한은 몇시간 뒤 이산상봉, 특별화상상봉, 금강산면회소 건설을 중단하겠다고 남측에 통보했다. 정부가 뒤통수를 맞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남북간 의사소통 채널이 너무 부실한 것도 문제였다. 미국은 대북 경제제재 복원을 검토하고, 해외에 분산되어 있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통치자금’을 단속할 뜻을 레비 재무차관을 통해 우리 정부에 전달해왔다. 정부 당국자는 부인했지만, 북한이 개성공단·금강산관광으로 벌어들인 달러를 미사일개발에 전용할 가능성을 미국이 우려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미·일의 전면적 대북제재 추진과 북한의 극한 반발이 한반도 위기를 고조시키지 않도록 한국·중국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할 때다.
  • 휴가지 ‘머스트-해브’ 아이템5

    휴가지 ‘머스트-해브’ 아이템5

    월드컵이 끝나니 이제 여름 휴가로 관심이 옮겨간다. 지치고 피곤한 일상에서 벗어나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휴가 시즌. 휴가 일정과 장소를 정했다면, 다음은 휴가의 기쁨을 두 배로 만들어 주는 아이템들을 고려해야 한다. 평소에 시도하지 못했던 화려한 치장이나 옷차림, 행동들이 모두 용서되는 휴가지에서는 어떤 점을 고려해야 할까. 올 여름 패션 트렌드와 맞물려 더욱 멋스러운 패션을 만드는 아이템 5가지를 꼽았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1) 선글라스-크면 클수록 좋다 여름 선글라스의 핵심어는 ‘크다’,‘화사하다’, 그리고 ‘독특하다’이다. 가능하면 자외선이 얼굴에 닿는 부분을 최소화해야 하기 때문에 여름철 선글라스는 큰 게 각광받는다. 멋스러운 것과 실용적인 부분이 맞닿으면서 올여름 큰 선글라스의 인기는 계속된다. 가장 눈에 띄는 커다란 선글라스 디자인은 단연 보잉 스타일. 비행기 조종사를 위한 디자인이라 ‘에비에이터(aviator)’라 불리기도 한다. 비, 이효리, 세븐 등 스타가수들이 즐겨 사용해 젊은 층에게 특히 사랑받는다. 올해는 기본에 충실한 보잉 스타일뿐만 아니라 분홍, 노랑 등 밝은 색상과 부드러운 프레임(안경테)으로 여성을 겨냥한 디자인도 상당수 나와 있다. 커진 렌즈와 함께 다채로운 프레임 색상도 특징이다. 검정, 갈색, 금색 등의 무난한 색상은 기본. 의류의 트렌드의 중심인 ‘화이트 무드’에 힘입어 쓰는 것만으로도 확 튀는 하얀색 선글라스도 다양하게 나와 있다. 노랑, 주황, 분홍 등 발랄한 색상은 의상에 즐거움을 더한다. 렌즈와 안경다리의 이음새 부분 장식은 더욱 화려한 패션을 완성한다. 렌즈의 양 옆부터 템플(안경다리)까지 자연스럽게 와이(Y)자 형태를 이루는 디자인은 광대뼈가 도드라진 얼굴 형태를 커버할 수 있다. 브랜드 개성을 드러내는 독특한 이음새도 눈에 띈다. 돌체앤가바나는 링 귀고리와 같은 큰 원형 이음새로, 불가리는 반짝이는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로, 또 페라가모는 손뜨개를 한 듯한 모양으로 화려함을 내세웠다. ■ 도움말:룩소티카, 룩옵틱스 (2) 신발-물에 강한지 살펴보라 많이 걷는 배낭여행이나 느긋한 휴식을 취하는 리조트에서나, 편안하고 멋스러운 차림을 만드는 데 신발을 빼놓을 수 없다. 휴가지에서 어떤 활동을 할 것인지에 따라 적어도 두 종류의 신발을 챙겨가는 것이 좋다. 아쿠아슈즈는 신은 채 물놀이를 즐길 수 있고, 빨리 마르므로 물가에 가는 여행이라면 하나쯤 들고 가야 한다. 시원한 망사 소재와 고무 밑창으로 미끄러짐을 방지하는 기능을 갖추고 있어 유용하다. 발을 그대로 감싸는 디자인에서, 스니커즈 형태를 띠는 것도 있어 선택의 폭도 넓다. 도심 여행에는 가벼운 캔버스화로 패션에 포인트를 주자. 다양한 색상과 디자인이 있는 캔버스화는 멋진 옷차림을 마무리한다. 끈이 없는 슬립온 스타일이나 발목 부분까지 올라오는 하이컷 모두 여름철 코디에 좋다. 여성의 경우 짧은 치마나 바지에 입으면 귀엽고 활동적인 이미지를 준다. 해변이나 가까운 곳에 여행을 갈 때는 조리 샌들을 신으면 딱이다. 코코넛, 젤리, 왕골, 실크 등 가지각색의 소재에 큐빅이나 꽃으로 장식해 화려하다. 천연 코코넛 소재로 만든 것은 항균 기능으로 발냄새가 거의 나지 않는다. 천연소재의 탁월한 발수 및 통기성을 갖추고 있어 물에 젖어도 빨리 말라 물가에서 신어도 좋다. ■ 도움말:ABC마트 반스·호킨스 (3) 헤어-헝클어진 머리가 더 매력넘친다 여기저기 흘러내린 잔머리, 하나로 질끈 묶은 포니테일…. 맨 얼굴이 예뻐야 진짜 미인이라며 소위 ‘쌩얼’이 유행하는 것처럼 이제는 머리 모양도 안꾸민 듯 자연스럽게 연출하는 것이 인기다.‘다소 헝클어진 머리’는 자유를 만끽하는 휴가지에서 연출하기에도 매력적인 스타일이다. # 머리 묶어 올리기 긴머리라면 헐렁하게 뒤통수부터 땋은 머리를 연출해도 되고, 비녀로 돌돌 말아 올려도 멋스럽다. 보다 깨끗하고 단정한 느낌을 원할 때는 앞머리까지 모두 빗어넘긴 포니테일 스타일이 제격이다. # 비녀 사용하기 ‘머리를 돌돌 말아 비녀를 척 꽂은’ 스타일은 쉬워보이지만 단단히 고정하기가 다소 어렵다. 하지만 공식만 알면 예쁘게 올라가고,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는 잔머리가 환상의 조화를 이루는 모양으로 만들 수 있다. 아무래도 약간의 곱슬기가 있을 때 연출이 더욱 쉽고 완성도가 높아진다. 파마를 하지 않은 생머리라면 고데기나 세팅기로 웨이브를 주고 시도해보자. ■ 도움말:박은경 원장(박은경 뷰티살롱) (4) 네일-큐빅으로 치장해도 좋아 손톱과 발톱에 온갖 꽃그림, 하트모양, 물방울 무늬를 그리거나, 손톱·발톱을 길러 달랑거리는 큐빅을 다는 등 여름에는 손과 발 끝에도 한껏 멋을 부려도 좋다. # 집에서도 전문가처럼 손톱관리하기 손톱깎이를 이용해 손톱을 자르면 손톱 모양을 예쁘게 만들기 힘들다. 손톱이 많이 길다면 손톱깎이로 적당한 길이로 자르고, 손톱 모양을 다듬을 때는 파일을 이용한다. 손톱의 물기를 없애고 면봉에 리무버(네일컬러를 지우는 액체)를 묻혀 손톱의 유분기와 각종 먼지를 닦는다. 전문도구인 푸셔(pusher)나 면봉에 큐티클을 관리해주는 제품을 묻혀 손톱에 있는 각질을 제거한다. 큐티클을 제거하는 니퍼(nipper)로 큐티클을 조심스럽게 다듬는다. 손톱 보호를 위해 베이스 코트를 바르고, 위에 네일컬러를 칠한다. 두번 정도 바르면 본래의 색상을 만들 수 있다. 톱코트를 바르면 네일컬러가 더욱 오래간다. # 초보자를 위한 색상 선택법 손이 하얗다면 어떤 색상도 다 잘 어울린다. 그 중에서도 우윳빛을 섞은 듯 밝고 부드러운 파스텔 컬러가 최상이다. 누렇게 떠 보이는 손은 차분한 파스텔 색상이 가장 좋다. 연한 분홍, 회색이 감도는 파랑, 진한 살구색이 딱이다. 검고 칙칙한 손이라면 밝은 빨강이나 검정, 금·은색 등 원색적인 것이 좋다. 파스텔 색상은 초라해 보일 수 있다. 마디가 굵은 손가락은 사선으로 라인을 넣거나, 손톱 끝에 장식을 붙여 시선을 분산시키는 게 좋다. 짧고 통통한 손가락이라면 손톱 끝에 펄, 큐빅 등을 붙인다. 사선으로 색상을 바르는 프렌치 스타일은 손을 조금 길어보이게 한다. 일자 프렌치는 손이 더 짧아 보인다. # 발톱은 시원하게 발톱을 꾸미는 페디큐어를 할 때 손톱과 같은 방법으로 관리를 해준다. 발톱 색상은 진하고, 조금 튀는 것으로 하는 게 좋다. 빨강, 노랑, 파랑 등 원색으로 개성있는 연출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 도움말:DHC코리아·금강제화 (5) 모자-차양이 다시 커지고 있다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휴가지에서 스타일과 자외선 차단,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면 ‘모자’를 잊어서는 안된다. 가장 쉽게 떠오르는 모자는 트러커(머리 부분을 망사로 처리한 야구모자), 창만 있는 선캡 등. 이외에도 여름철 휴가지에서 쓰면 멋스럽고 시원한 모자는 많다. 여름하면 떠오르는 소재는 바로 밀짚이다. 밀짚을 엮은 것은 통풍이 잘 돼 시원한 느낌을 더한다. 서로 다른 색상의 소재로 엮은 것은 독특한 색상을 만들어내 더욱 멋스럽다. 이국적인 풍경 속에서 화려함을 부각시킨다. 대표적인 여름철 소재로 꼽히는 마, 면으로 만든 모자도 자연스러운 색상과 시원한 질감으로 휴가지에서 쓰기에 좋다. 중절모 디자인은 정갈한 멋을, 헌팅캡 스타일은 활발함을 드러낸다. 차양이 넓은 것은 확실하게 자외선을 차단해 주면서 여성스러운 멋을 낸다. 크고 넓은 차양의 모자는 한때 ‘너무 공주스럽다’는 이유로 외면당했지만 이제는 다르다. 더욱 폭이 넓어진 ‘복고’의 유행에 따라 크고 넓은 차양의 모자가 ‘우아한 여성미’의 표현이 됐다. ■ 도움말:플랫폼 캉골
  • [北 미사일 발사] 北 의도와 파장은

    [北 미사일 발사] 北 의도와 파장은

    한반도가 또 다시 북한 미사일 폭풍의 한 가운데에 섰다. 지난 5월 초 미사일 발사 시도 징후가 포착된 이후 2개월간 정부와 국제사회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결국 발사를 강행함으로써 남북관계는 물론, 북핵 6자회담, 나아가 동북아 안보구도 전반에 난기류가 흐르고 있다. 2002년 10월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탈퇴 이후 다시 대북 유엔 안보리 제재론이 힘을 얻고 있고, 정부도 국제사회의 압박 기류에 휩쓸려들 수밖에 없는 분위기다. 오는 15일 모스크바서 열릴 서방선진8개국(G8)회의에서도 북한의 미사일·납치 문제를 겨냥해 파고가 강해질 전망이다. 북한이 미국의 독립기념일(7월4일)에, 그것도 미본토에 도달가능하다는 장거리 미사일인 대포동 2호를 비롯,10여기의 각종 미사일을 폭죽처럼 발사한 것은 북한 특유의 전술이다. 즉 미국이 이란·이라크 문제에만 매달린 채 북한에 대해선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금융조치 등으로 압박하며 외면하고 있다고 판단, 양자회담을 촉구하는 특유의 벼랑끝 전술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다양한 미사일을 한꺼번에 쏜 것 역시 ‘미사일’충격요법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미사일 판매시장인 중동시장에서 최근 북한제의 성능에 대해 회의론이 일자 기술력을 과시할 목적도 함께 담아 발사했다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북한의 셈법이 98년 미사일 도발때처럼 이번에도 주효할지는 미지수다. 클린턴 행정부와 부시 행정부는 다르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군사적 제재를 배제하고 있는 미국이 결국은 북한과 협상에 나설 것이란 게 대체적 관측이다. 그러나 “나쁜 행동에 보상할 수 없다.”는 원칙론이 대세여서 돌파구가 마련될 때까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제까지 벼랑끝 전술에 응대해준 결과가 계획적·조직적인 미사일 도발로 이어졌다는 주장이 강해지면서 북한은 상당기간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는 처지다. ‘미사일 뒤통수’를 맞은 정부의 입장도 발사 전과는 사뭇 다르다. 서주석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수석이 성명에서 “이번 발사로 야기되는 사태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고 밝혔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와 압박에 한국정부가 어느정도 발맞춰나갈 것이란 점을 분명히 한 셈이다. 미국은 최근 중국이 제의한 선양에서의 비공식 6자회담 수석대표 회동에 대해 긍정 검토 중이라는 답을 보내온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부 당국자는 “미·북 양자 대화 촉구 주장도 당분간은 대북 강경론에 묻힐 것”이라고 전망했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6자회담은 6개월에서 1년간 물건너 갔다.”고 진단했다. 중국의 권위손상도 향후 회담 재개에 큰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과 한국 등 참가국은 북한에 대해 “6자회담에 돌아오면 된다.”며 퇴로는 열어놓고 있다. 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길섶에서] 뒷모습/우득정 논설위원

    “혹시 여기에서 머리 깎았습니까?”점심시간에 들른 목욕탕의 이발사가 묻는다. 얼굴을 보니 족히 예순은 넘은 것 같다. 아니라고 하자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머리를 주억거리며 머리는 이렇게 깎는 게 아니라며 시범을 보이겠단다. 가위에 기름칠을 하더니 깎고 또 깎는다. 옆자리에 손님 두명이 바뀔 동안 가위질이 멈추질 않는다. “아저씨처럼 머리가 희끗희끗해가는 사람은 앞모습 못지 않게 뒷모습도 중요합니다. 지난 번에는 누가 깎았는지 모르지만 기계로 듬성듬성 밀어놓은 게 보기에도 아주 흉해요.”그러면서 거울을 머리 뒤에 갖다대며 자신이 만든 작품을 내비친다.‘이발한 뒤 누가 뒷모습까지 보나요.’라고 말하려다 “아주 마음에 드는데요.”라고 맞장구쳤다. 그러자 이발사는 흡족한 표정으로 목소리를 깔며 “길거리를 가다가도 사람들의 앞모습보다는 뒷모습을 훨씬 더 많이 보게 되잖아요.”라며 나의 무신경을 질타한다. 목욕탕을 나서면서 괜히 시선이 남의 뒤통수를 향한다. 이젠 앞모습으로는 부족해 뒷모습까지 들이밀며 존재의 가치를 알려야 하나 하는 생각이 불현듯 치솟았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새영화] 28일 개봉 ‘아랑’

    원혼에게서 날아온 저주의 이메일, 이어지는 의문의 살인.28일 개봉하는 ‘아랑’(제작 DRM엔터테인먼트·더드림&픽쳐스)은 최근 선보여온 공포영화들을 통해 익숙해진 소재들을 또 한번 차용했다. 그러나 오랜 전설(밀양의 아랑 설화)을 공포의 기제로 끌어와 과거와 현재를 묘한 뒷맛으로 버무려냈다는 점은 충분히 신선하다. 여형사 소영(송윤아)과 신참 현기(이동욱)는 연쇄살인 사건을 함께 수사하게 된다. 범죄현장에서 발견되는 유일한 단서는 피해자의 컴퓨터에 떠있는 민정이란 소녀의 홈페이지. 의문의 죽음을 당한 세 남자들이 모두 친구 사이이며, 홈페이지의 민정과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두 형사가 캐나가는 과정에 이야기의 초점이 모아진다. 유력한 용의자가 조사를 받던 도중에 의문의 살인을 당해 수사가 오리무중에 빠지는 등 ‘보이지 않는 무엇’의 존재감을 증폭시키며 영화는 공포의 강도를 높여 나간다. 성폭행으로 죽은 억울한 원혼을 통해 사회적 메시지도 함께 던지는 영화는 촘촘한 드라마, 배우들의 맺힌 데 없는 연기 등 완성도의 기본요건들을 무리없이 갖췄다. 그러나 문제는 공포강도 조절력이 크게 떨어진다는 점이다. 초반부터 후반까지 마치 팝업창처럼 일정 시간 간격으로 쉼없이 출몰하는 여자귀신은 ‘무섭고 싶었던’ 관객들에겐 오히려 독이다. 뒤통수를 치는 세련된 충격요법을 기대하는 공포 마니아에게 흡족함을 안겨주기엔 아무래도 힘이 달린다는 아쉬움은 그래서 남는다. 의문의 홈페이지에 떠오르는 바닷가의 스산한 소금창고, 억울한 죽음을 호소하는 듯 떠도는 여자아이 등 수수께끼 같은 주변장치들은 세련미와 입체감을 갖춘 공포물로 다듬는 데 주효했다. 소금창고(촬영지는 안면도)를 배경으로 전개되는 이야기 접근법은 최근 선보인 고만고만한 공포물들 사이에서 꽤 돋보인다. TV드라마 ‘회전목마’‘부모님 전상서’‘마이걸’ 등에 출연했던 이동욱이 첫 스크린 나들이에 나섰다. 안상훈 감독의 장편 데뷔작.15세 이상 관람가.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주말탐구] 아마추어 격투기

    [주말탐구] 아마추어 격투기

    지난 14일 아침 수원시 정자동의 한 아파트 단지로 짧은 머리에 탄탄한 체격의 젊은이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대낮에 웬 ‘깍두기’들이냐고? 천만의 말씀. 몸과 몸이 부딪치는 매력에 푹 빠진 초보 파이터들이 제9회 ‘스피릿 아마추어리그’에 출전하기 위해 모여든 것. 유일의 아마추어대회인 스피릿리그는 종합격투기에서 잔뼈가 굵은 ㈜엔트리안이 지난해 9월 첫 대회를 연 뒤 입소문을 탔다. 이날도 수도권은 물론 대전과 대구, 전주 등에서 100여명이 집결했다. ●‘H-3’ 계체와 신체검사 출전선수는 모두 42명. 도장 관계자들과 가족, 친구들로 체육관은 이내 북적거렸다. 대회 시작 3시간 전부터 긴장감이 감돌았다. 링 위에 설지를 결정하는 신체검사와 계체가 기다린다. 링닥터인 김명(27·가명)씨가 꼼꼼하게 선수들의 건강상태를 체크한다. 강원도에서 공중보건의로 복무중인 김씨는 개인 의료활동을 할 수 없지만 격투기를 워낙 좋아하는 터라 익명으로(?) 링닥터를 맡게 됐다. 닥터 체크를 통과한 선수들은 체중계로 이동했다. 제한 중량을 100g만 초과해도 한 달간 흘린 땀이 물거품되기 때문에 선수들의 표정은 굳어있다. 페더급(-63㎏)에 출전한 김영택(19·대경대)은 1차 계체에서 300g을 초과했다. 잠시 얼굴빛이 어두워졌지만 이내 준비한 겨울파카를 입고 뛰기 시작했다.“3일 전부터 오이만 먹었어요. 어제는 물 두 컵 마셨고요.”라며 안타까워했다.2차 계체에선 100g을 오버. 지켜보던 동료는 “영택아! 팬티까지 벗어라. 상대가 얼마나 센데 여기서 힘 빼면 어떻게 해.”라며 면박을 준다. 하지만 10분동안 땀을 뺀 김영택은 다시 돌아왔고 3차 계체에서 가까스로 63㎏을 맞춘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계체가 끝난 한 편에선 주린 배를 채우느라 정신이 없다. 간단하면서도 열량이 높은 바나나와 초콜릿, 김밥이 인기 메뉴. 다른 편에선 셔츠를 벗고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프로필에 들어갈 ‘파이팅 포즈’를 촬영했다. 이때만큼은 프로선수가 부럽지 않다. ●사각의 링, 물러설 순 없다 오후 2시 황치훈-황준성의 헤비급 경기로 대회의 막이 올랐다.50여명의 열혈 팬들이 내지르는 괴성 속에서 장내 아나운서가 두 선수를 소개한다. 주심과 2명의 부심이 있고 모바일 업체에 제공할 동영상을 촬영하기 위해 6㎜ 카메라가 분주하게 이곳저곳을 훑는다. 아마추어대회지만 구색을 모두 갖춘 셈. 딱 한 가지 빠진 것은 라운드걸이다.‘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이 많은 분이라면 아쉽겠지만 이 곳 팬들은 개의치 않는다. 관중석도 없이 체육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봐야 하지만 링과 불과 5m 거리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아마추어대회의 최고 매력. 선수들의 거친 숨소리, 주먹과 킥이 꽂히면서 ‘퍽퍽’거리는 타격음,‘암바(팔 십자꺾기)’에 걸려 고통스러워하는 선수의 표정까지 고스란히 전달된다. 귀를 쫑긋 세우면 세컨드의 지시 내용까지 들을 수 있는 것은 또 다른 보너스.‘자칭 전문가’들이 많다보니 곳곳에서 작전지시가 이어졌다.“머리 바짝 붙이고 목을 밀어내야지.”,“로킥 때려주고 카운터 노려.” 선수와 세컨드, 관중이 내지르는 함성이 엉켜 체육관은 후끈 달아올랐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계체에서 진땀을 뺐던 김영택과 왼팔이 없는 핸디캡을 딛고 아마추어리그 2연승을 달리는 ‘장애인 파이터’구양회(24)의 대결. 몸 속에 남아있는 땀 한 방울까지 다 쏟아내도록 둘은 혈전을 벌였다. 판정 끝에 승리는 구양회의 몫이었다. 두들겨 맞아 얼굴이 벌겋게 부어올랐지만 김영택의 표정은 여전히 밝았다. 그는 “직업선수에는 관심없어요. 경찰특공대가 꿈인걸요.”라며 “혼자 운동하면 질리는 데 대회에 나와서 한번씩 겨뤄 보면 너무 재밌어요.”라고 아마추어대회의 매력을 털어놨다. 대회를 주관하는 ㈜엔트리안의 박광현 대표는 “격투기 인기가 높아지면서 체육관 등록인구도 늘었다. 그런데 동기부여가 안 돼 3개월이 지나면 80% 정도는 그만두곤 한다.”고 말했다.“현장의 관장들과 얘기하다 보니 인프라를 키우기 위해선 아마추어대회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취지를 밝혔다. 아마추어대회에는 프로 지망생도 있지만 취미삼아 운동하다 실력을 검증해 보고자 나온 선수들이 대부분. 무소속으로 나온 왕초보 남자친구의 세컨드를 여자친구가 봐주는 일도 더러 있다. 리모컨을 돌려대며 격투기를 즐기는 시대는 끝났다. 가까운 체육관을 찾아 사각의 링에 직접 도전해보면 어떨까. 삶의 활력소를 찾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출전문의는 ㈜엔트리안 02-565-0956∼7. 수원 글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사진 이호정기자 hojeong@seoul.co.kr ■ 격투기 기술 배워봅시다 격투기를 현장에서 보든 TV를 통해 접하든 순식간에 승부가 판가름나 팬들로선 기술이 들어가는 메커니즘을 알기 어렵다. 종합격투기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기본기인 ‘암바’와 ‘길로틴 초크’에 대해 알아보자. ●암바(십자꺾기) 상대 팔을 뻗게 한 뒤 팔꿈치 위쪽을 지렛대 삼아 반대 방향으로 꺾어 제압하는 기술. #1단계 몸 위에 올라탄 상태에서 펀치를 날려 상대의 팔이 올라오도록 유도한다. 팔을 잡아누른 뒤 꺾고자 하는 팔을 상체에 바짝 붙인다.(사진 (1)) #2단계 팔을 감싸안고 양다리로 상대의 목과 가슴을 제압한 뒤 엉덩이를 얼굴에 밀착시킨다.(사진 (2)) #3단계 순간적으로 상체를 뒤로 젖히면서 허리를 곧게 편 상태에서 팔을 가슴 쪽으로 쭉 잡아당긴다.(사진 (3)) ●길로틴 초크 상대의 목을 잡고 경동맥을 압박해 항복을 이끌어내는 기술. 상체의 완력보다는 허리 힘과 무게 이동이 더 중요하다. #1단계 태클이 들어올 때 목을 팔로 감싸안고 오른쪽 겨드랑이 밑으로 밀착시킨다. 다리는 뒤쪽으로 빼야 한다.(사진 (4)) #2단계 목에 두른 두 손을 확실하게 맞잡은 뒤 순간적으로 뛰어오르며 두 다리로 허리를 감싼다.(사진 (5)) #3단계 다리로 상대의 몸을 끌어당기는 동시에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해 허리를 펴며 목을 조른다.(사진 (6)) 사진제공 ㈜엔트리안 ■ 프로와 아마의 차이 ‘아마추어 격투기는 위험하다?’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격투기는 위험한 스포츠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번이라도 현장에서 지켜본다면 편견을 털어버리게 된다. 전문적인 기술이 부족하고 어느 시점에서 포기해야 할지 판단력이 떨어지는 아마추어들을 보호하기 위해 안전장치가 마련돼 있다. 프로에선 관절을 꺾거나 조르는 기술이 들어갔을 때 ‘탭아웃(항복 의사)’를 밝혀야 경기가 중단된다. 하지만 아마추어에선 기술이 제대로 먹혔다고 판단되면 탭아웃이 없어도 심판 재량으로 경기를 중단시킨다. 상대 안면에 대한 ‘스템핑킥’(뛰어올라 밟기)과 ‘사커킥’(축구하듯 발로 차기)은 물론 ‘힐훅’(발뒤꿈치 꺾기)도 금지돼 있다. 물론 상대 뒤통수와 허리를 다치게 할 수 있는 ‘슬램’(몸통을 통째로 들어올려 내려찍기) 기술도 쓸 수 없다. 안전을 위해 프로에선 볼 수 없는 각종 보호장비가 총동원된다. 복싱용 헤드기어와 글러브, 팔꿈치와 무릎·정강이보호대까지 착용해야 링에 선다. 보통 5분 3라운드로 치러지는 프로와 달리 2분 2라운드로 끝낸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여고2년 격투소녀 김지연 ‘그녀를 모르면 간첩.’ 아마추어 격투기판에서 김지연(17)은 유명인사다. 우락부락한 모습을 떠올릴지도 모르지만 쉴새 없이 웃음보를 터뜨리고 장난기 많은 여느 여고생과 똑같다. 연예인 조정린을 닮았다고 했더니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쑥쓰러워했다. 지연이의 꿈은 경찰관이다. 그런데 경찰관을 꿈꾸는 이유가 좀 별나다. 중학교때 좀 놀아봤기(?) 때문에 ‘비행청소년’들의 동선과 아지트, 행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어떻게 선도해야 할지 감이 온다고 했다. 지연이는 ‘이중생활’을 하고 있다. 인천 가정고 2학년에 다니면서 보충수업도 빼먹지 않는 나름대로(?) 성실한 학생이다. 성적을 물었더니 “비밀인데. 상위권은 아닌 정도로만 해주세요.”라며 배시시 웃는다. 주말엔 부회장을 맡고 있는 청소년적십자(RCY) 활동을 하고 교회에도 다닌다. 밤이 되면 지연이는 체육관으로 달려간다. 녹초가 되도록 샌드백을 두들기고 격렬한 스파링을 하는 ‘격투소녀’로 변신한다.‘야자’는 빠지기로 담임선생님의 양해를 구했단다. 체육관도 2곳이나 다닌다. 한 곳에선 종합격투기를 익히고 다른 곳에선 대학 특기생 진학을 위해 우슈를 배운다. 온몸에 멍이 풀릴 날이 없지만 마냥 재미있단다.“한번은 스파링을 하다가 코피가 터졌는데 막 웃었거든요. 주위에서 변태 아니냐며 놀리더라고요.”라고 말할 정도. 물론 링 위에선 한 번도 운 적이 없다.“맞아서 울진 않았는데 제 뜻대로 시합이 안 풀려 분해서 운 적은 있어요.”라며 승부사 기질을 드러냈다. 지연이가 사각의 링에 뛰어든 것은 신현여중 2학년 때. 무에타이 TV중계에 푹 빠져 있었는데 여자가 한 명도 없는 것을 보고 결심했다. 어머니는 펄펄 뛰셨지만 집요한 설득 끝에 체육관에 등록했다. 운동 시작 1년 만에 데뷔전을 치른 지연이는 지금까지 입식에서 4승, 종합격투기에서 1승 등 통산 5전전승에 3KO를 기록 중이다. 한참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수다를 떨 나이인 지연이가 격투기에 빠진 이유는 뭘까.“가장 뒤끝이 없는 스포츠 같아요. 링에선 죽기 살기로 싸우다가도 끝난 뒤에 언니들하고 서로 안아주고 격려해 주거든요.” 수원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잔잔한 한 편의 문학작품 듣는 기분”

    “오랫동안 뒤통수만 보고 흠모하던 이가 뒤돌아보며 따뜻한 눈길을 보내준 짜릿한 기억처럼, 저 혼자만의 밀실에 두고 삶이 진부하고 지루해질 때마다 꺼내보고 위안을 삼겠습니다.” 17일 오전 서울대에서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받은 소설가 박완서(75·여)씨의 A4 두장짜리 답사가 화제다. 행사에 참석한 사람들은 “잔잔한 한 편의 문학작품을 읽는 기분”이라고 이구동성으로 언급했다. 서울대는 그동안 대부분 정치·경제계 인사들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해 오다 이번에 처음으로 문인(文人)인 박씨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이태수 대학원장은 박씨의 답사에 대해 “단어 하나하나가 선생의 마음을 너무나 잘 표현하고 있다. 서울대가 지금까지 받은 답사 가운데 가장 훌륭한 것 같다.”면서 “기록관에 영구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웃으며 말하기도 했다. 1950년 6월 서울대에 입학한 박씨는 6·25전쟁이 발발할 때까지 단 며칠밖에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박씨는 답사를 통해 입학 당시를 회상하며 “문리대 동숭동의 그 해 5월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면서 “아마도 그게 내 청춘의 마지막 5월이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시만 해도 서울대 문리대를 대학의 대학이라고 부르면서 인문학에 대한 자부심이 높았다.”면서 “그 충천하던 젊음을 생각하면 마음이 저리고 아파 견딜 수 없다.”고 언급했다. 박씨는 또 “모든 것을 초토화시키는 전쟁을 겪은 이후 동족상잔에 대한 혐오와 이념에 대한 허망감에 대해 말함으로써 사람 노릇을 하고 싶어 많은 작품을 쓰게 됐다.”고 설명하기도 했다.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서울광장] 여권이 흔들리는 진짜 이유/이목희 논설위원

    [서울광장] 여권이 흔들리는 진짜 이유/이목희 논설위원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 언행에 뒤통수를 맞은 느낌을 경험한 이가 필자만은 아닐 것이다. 노 대통령과 정치분석가 사이의 갭이 왜 이렇듯 생길까.‘5·31’ 지방선거 이후의 정국은 제대로 예측할 수 있을까. 상당한 식견을 가진 분과 함께 고민해 봤다. 노 대통령의 지역주의 타파 집념을 간과하면 이번에도 그의 정치행위를 정확히 전망하기 힘들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노 대통령과 가끔 만나는 인사는 “대통령이 퇴임 후 부산에서 국회의원 출마를 생각해보겠다는 얘기를 해서 깜짝 놀랐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바보 노무현’이란 말을 들어가며 지역주의에 대항해왔다. 그를 바탕으로 대통령에 올랐다. 지역주의를 깬 지도자로 역사에 기록되기 위해서는 체면과 상식에 연연하지 않는다. 지역주의 타파의 당위성은 누구나 인정하고 있다. 노 대통령의 노력 또한 평가받아야 한다. 그러나 과도한 집착이 국정과 정치를 왜곡시킨다면 속도와 방법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 지역주의 타파에서 노 대통령은 일관성이 있을지 모른다. 그것이 열린우리·민주당 분당 등 뺄셈정치로 갔다가 한나라당과의 대연정 제안으로 선회하는 등 무리한 방식으로 나타나는 게 문제다. 여권 내부가 흔들리고 지지율이 정체되는 부작용이 심각하다. 그 결과 지역주의 타파는커녕 정권의 힘만 약화시키고 개혁 전반이 지지부진한 상황을 만들고 있다. 참여정부가 좌측 깜빡이를 켠 채 우측으로 가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 근본원인이 된다. 보수파는 좌측 깜빡이를 보고 노무현 정권을 비난한다. 진보파는 우측으로 가는 정책을 보고 지지를 철회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지방선거가 임박하자 열린우리당 인사들은 호남표를 크게 의식하고 있다. 영남에서는 지역감정 타파를 외치며, 호남에서는 지역주의에 편승하려는 이율배반적 행태를 보이는 지경에 이르렀다. 정체성 혼란이 가중될 뿐이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여당의 지방선거 성적표는 초라할 것 같다. 선거 패배는 자초한 측면이 크므로 어쩔 수 없다고 치자. 지방선거 이후가 관건이다. 노 대통령이 고집을 누그러뜨리지 않는다면 나라가 다시 회오리에 휩싸이게 된다. 지방선거 후 노 대통령이 정계개편을 시도할 것이라는데 정치전문가들의 견해가 일치한다. 임기단축을 내세운 개헌이나 남북정상회담을 통한 판흔들기 관측이 나온다. 어떤 형식이든 지역주의 타파라는 분석요소의 가중치는 여전히 높다고 봐야 한다. 노 대통령을 둘러싼 일부 영남권 참모들은 ‘영남정권 재창출론’을 펴고 있다. 그래야 지역주의가 타파된다고 주장한다. 호남출신인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의 대권획득은 정권재창출 의미가 약하다고 여긴다. 비슷한 맥락에서 고건 전 총리 영입에 소극적이다. 유시민 복지부 장관과 김두관 전 행자부 장관을 집중적으로 키우고 있는 배경이 된다. 한명숙 총리, 김근태 의원 등 비호남권 출신도 검토대상에 올려 놓았다. 반면 여당의 상당수 중진들은 민주당과의 재결합을 추진할 뜻을 굳혔다고 한다. 지방선거 후 여권이 또 분열할 위기에 처한 셈이다. 노 대통령과 핵심참모들은 지나온 3년을 반추해 보길 바란다. 이제부터는 지역주의 타파라는 명제에 너무 집착해 국정 전체를 왜곡시키거나 나라를 혼란스럽게 하지 않았으면 한다. 일거에 지역주의를 깨겠다는 것은 과욕이다. 초석을 까는 심정으로 접근할 때 오히려 결과가 좋아질 수 있다. 상식과 순리, 그리고 개혁의 마무리가 집권 후반의 좌표가 되어야 한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길섶에서] 자수성가/오풍연 논설위원

    맨손으로 큰 뜻을 이룬 사람들은 늘 존경의 대상이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출한 까닭이다. 흔히 자수성가했다고들 한다. 그러나 그들의 성공 뒤안에는 피·땀·눈물이 배어 있다. 대가를 치르지 않고 어떠한 결과도 도출해 낼 수 없다. 그것이 세상의 이치다. 그래서 이들의 지난 날을 듣노라면 어느새 콧잔등이 시큰해진다. 지난해 만난 공기업 임원 A씨는 매사에 자신만만하다. 추진력이 대단한 데다 언변도 좋다. 기자는 그의 학력이 상당할 것으로 판단했다. 서울에서 유명 대학을 나왔거니 했다. 다른 공기업 임원 B씨도 기자와 생각이 같았단다. 그러나 정규 최종 학력은 초등학교였다. 말을 듣는 순간 뒤통수를 한 대 맞는 느낌이었다. 학구열도 남못지 않았다.S대 최고경영자 과정도 3전4기 끝에 수료했다고 들었다. 보통 사람 같으면 한두번 도전하다가 물러설 판이다. 그는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오기와 집념으로 오늘을 일군 셈이다. 인간의 능력은 무한대다.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기회를 잡을 수 있다. 때문인지 A씨에게 정이 더 간다. 그에게서 풍기는 희망 때문이리라. 오풍연 논설위원 poongynn@seoul.co.kr
  • [코드로 읽는책] 서양신화에 더 익숙한 우리를 반성하며…

    여기, 지난 50년간 한국인의 삶과 사랑, 죽음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해온 노학자가 있다. 반만년 우리 신화와 전설에서 길어올린 한국인의 모습을 추적해온 석학 김열규 서강대 명예교수.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를 통해 한국인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 그가 이번에는 한국인의 맵짠 삶과 미학을 담은 한국인의 ‘한국인의 자서전’(웅진지식하우스 펴냄)을 써냈다. 저자는 한국인의 절박한 삶과 정신세계를 찾기 위해 전국 곳곳에 분산된 문헌들을 조사하고 지역 사람들을 만나 잊혀져가는 우리 신화와 전설을 채록했다. 마르지 않은 상상력을 통해 신화와 전설 속에 담긴 한국인의 정체성과 정신세계를 탁원한 논리와 날카로운 예지를 통해 풀어내면서, 위트와 유머를 통해 존재론적 성찰까지 유도한다. 신화와 전설의 언어(뮈토스)를 푸는 데는 몇가지 열쇠가 있다. 저자는 뮈토스를 바탕으로 주체할 수 없는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글을 읽다보면 명확해지는 상징 속에서 질박한 한국인의 삶이 절로 그려진다. 혹독하고 애절한, 순박하고 해학이 넘치는 한국인의 숨결이 곳곳에 스며있는 것. 뮈토스의 세계에서 추려낸 주옥같은 상징들은 ‘어머니’로 시작해 ‘탄생’‘자라고 크고’‘사랑’‘결혼’‘세상살이’‘죽음’ 등을 통해 생명을 유지하며 집단 자서전의 원재료 역할을 수행한다.이렇게 길어올린 상징에는 현실과 희망을 잇는 ‘영혼의 동아줄’을 찾고 싶었다는 저자의 가치관과 세계관이 담겨 있다. 상징의 세계 곳곳에 담긴 다양한 신화들은 흥미롭다. 저자는 우리네 어머니들이 신에게 아기를 점지해 달라며 거대한 남근석에 ‘몽돌’을 비벼댄 ‘아기 빌이’를 비롯, 버려져서 영웅이 된 ‘바리데기’, 죽은 아기를 나뭇가지에 매달아놓은 ‘번데기무덤’ 등을 통해 열망과 사랑, 시련과 아픔, 순환론적 죽음론 등을 웅변한다. 또 우리의 첫 어머니인 물과 산을 시작으로 흘러가다 보면 어느새 깊은 굴속에서 고해의 시간을 보낸 웅녀를 만난다.우리 옛 여인들의 입술신화를 넘어 선덕여왕의 ‘섹스담론’을 듣는 대목에서는 뒤통수를 치는 혜안과 해학도 느껴진다. 저자는 “우리의 자서전이 여기서 끝나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한국인의 맵고 짠 근성을 다져준 고난과 인내를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집단 자서전은 더 많이, 널리 쓰여지고 읽혀져야 한다는 것이다.‘그리스 로마신화’나 ‘삼국지’는 잘 알면서도 정작 우리 옛이야기에는 무관심한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오래된 우리 상징의 세계를 쉽고 재미있게 전달함으로써 우리 문화의 우수성과 고유성을 알려주려는 노력이 담겨져 있는 책.1만 2000원.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데스크시각] 의정비 재의요청 유감/김성곤 지방자치뉴스부 차장

    서울시가 시의원 의정비에 대해 재의를 요청했다. 지난달 26일의 일이다. 시의회는 불만을 터뜨렸지만 모처럼 만에 서울시가 속시원한 일을 했다는 격려가 쏟아지기도 했다. 청계천 개통 이후 처음(?) 있는 격려라는 얘기도 있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뒷맛이 개운치 않다. 시의회의 결정에 대한 재의요청은 서울시의 고유권한이다. 지금까지 서울시는 이 ‘재의 권한’을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해왔다. 가끔은 이 보도를 휘두르기도 했다.6대의회 4년여 동안 10차례의 재의요청을 했다. 물론 받아들여진 경우도 있었고, 그러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이 과정에서 “재의요청을 하겠다.”는 서울시의 엄포(?)만으로도 시의회가 알아서 의안을 수정하기도 했다.2종일반 주거지역의 평균 층수를 16층으로 한 것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서울시가 15층으로 평균층수를 도입하겠다고 하자 시의회가 20층안을 들고 나왔고, 이에 대해 서울시가 ‘만약 시의회가 20층안을 강행하면 재의를 요청하겠다.’고 맞서 16층으로 낮춰서 조례를 통과시키기도 했다. 서울시는 그 전가의 보도를 이번에 또 빼들었다. 시의원 의정비가 너무 많은 만큼 재의를 해달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지나친 월정수당의 격차는 지방의원간·지역주민간 위화감을 조성하는 등 건전한 지방자치의 발전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고, 국가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지역균형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도 곁들였다. 백번 지당한 지적이다. 의정비 6804만원이 과도하게 많다는 것이 여론이었고, 여론으로부터 응분의 질타도 당했다. 이것을 낮추라는 데 누가 이의를 달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런 주장을 좀더 일찍 제기할 수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은 지울 수가 없다. 시의원 의정비는 서울시와 서울시의회가 5명씩 추천한 의정비심의위원회가 지난 2월16일부터 3월24일까지 40일가량 논의를 거쳐서 내놓은 안이다. 이 과정에서 6차례의 회의도 있었다. 물론 서울시와 시의회의 물밑 조율도 이뤄졌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나온 것이 6804만원이다. 이 금액은 서울시와 시의회에 각각 통보를 했다. 양쪽 다 군말이 없었다. 그리고 이같은 의정비 안은 3월24일부터 4월13일까지 20일동안 공고를 거쳤다. 이 과정에서 시민단체들의 비난이 빗발쳤다. 하지만 서울시는 강건너 불구경하듯 가만히 있었다. 서울시가 의정비에 대해 재의를 요청하자 시의회가 “실컷 같이 논의해 결정해 놓고 여론의 비판이 거세지자 이제 와서 뒤통수를 친다. 공고기간에도 가만히 있더니 이게 무슨 덤터기냐.”라고 반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서울시가 반발의 빌미를 준 셈이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것은 과연 서울시가 의정비를 낮출 생각이 있느냐는 것이다. 의정비가 확정되는 과정에서 몇차례 의견개진을 할 기회가 있었지만 이를 외면한 서울시다. 또 서울시가 재의를 요청했다고 해서 시의회가 이를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그것도 순진한 생각이다. 이 재의요청은 오는 6월28일 임기말을 불과 며칠 앞두고 열리는 시의회 본회의에서 다뤄지게 된다. 이미 선거도 끝나고 ‘맞을 매는 다 맞은´ 상태에서 시의회가 의정비를 인하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일각에서는 이를 모를 리 없는 서울시가 재의요청을 해서 여론의 박수를 받는 실속을 챙기고, 시의회는 또 다른 차원의 실속을 챙기는 양수겸장을 두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 어느 때보다 원칙(原則)과 대도(大道)가 요구된다. 의정비는 6월말에 조정되더라도 1월분부터 소급적용된다. 김성곤 지방자치뉴스부 차장 sunggone@seoul.co.kr
  • 주말마다 황사·비 “봄날은 없다”

    주말마다 황사·비 “봄날은 없다”

    ‘혹시 이번에도?’ 하는 생각으로 오는 주말(6∼7일) 일기예보를 확인한 이은영(29·여·회사원)씨는 역시나 실망을 했다. 또다시‘전국이 흐리고 비’라니. 그동안 비나 황사 때문에 못했던 남편과의 봄 나들이를 또 미뤄야 할 판이다. 벌써 여섯번째다. 올초 결혼해 신혼인 이씨는 남편과의 봄 나들이를 잔뜩 기대해 왔다. 맞벌이 부부인 이씨에게 주말은 유일한 나들이 기회다. 주말 봄볕 보기가 이렇게도 어려울까. 상춘객들에게 올 봄은 유독 잔인하다. 적어도 이번 주말까지는 그럴 것 같다. 지난달 모두 다섯 차례 주말이 있었지만 맑은 날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잔인한 4월’은 매 주말 사람들에게 황사와 비 혹은 구름을 선사했다. ●‘잔인한 4월’주말 비 아니면 황사 기상청은 1일 주간예보를 통해 “주말인 6∼7일은 기압골의 영향으로 흐리고 비가 오는 곳이 있겠다.1∼5일은 대체로 맑지만,6일부터 차차 흐려져 전국적으로 비가 내리고,7일 오후에 점차 개겠다.”고 밝혔다. 지난달부터 계속된 흐린 주말의 시작은 비였다. 지난달 첫 주말인 1∼2일 전국적으로 많은 비가 내렸다. 서울지역 강수량이 16.5㎜였다. 꽃샘 추위의 여파도 있어 서울지역 최고기온이 11.6도에 머무는 등 봄날씨 치고는 꽤 쌀쌀했다. 하지만 이날 비는 가뭄 속에 내린 것이어서 고마운 ‘단비’였다. 최악의 주말 날씨는 지난달 둘째주에 나타났다.8∼9일은 바람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에 최고 기온이 20.7도까지 치솟는 등 상춘객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기 충분했다. 그러나 문제는 황사였다. 사상 최악의 ‘슈퍼급’ 황사였다. 황사주의보가 발령되는 강한 황사의 농도는 500㎍/㎥이다. 그러나 이날 황사의 농도는 2000㎍/㎥ 이상이었다. 게다가 기상청의 경보도 늦어 황사가 없을 것이란 예보만 믿고 봄날 완상에 나섰던 사람들은 뒤통수를 얻어맞았다. ●맑은 평일, 흐린 주말 대조 셋째주 주말(15∼16일)에는 비교적 날이 괜찮았다. 하지만 이번의 악재는 일교차였다. 서울의 아침기온이 2.9도로 지난달 주말 중 가장 낮았던 반면 최고기온은 16.2도까지 올라 지난달 가장 큰 폭의 일교차(13.3도)를 보였다. 이날 정오 따뜻한 봄볕에 속아 얇게 입고 외출했다가 다음날 코를 훌쩍거려야 했던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넷째 주말과 다섯째 주말에는 비와 황사가 동시에 찾아왔다. 지난달 22일에는 전국적으로 비가 왔다. 서울지역 강수량은 3.5㎜. 다음날인 일요일에는 황사가 나타났다. 지난달 마지막 토요일인 29일에도 전국적으로 점차 흐려져 밤에 비가 내렸다.30일에는 구름이 많이 끼고 약하지만 황사가 나타났다. 현재까지는 ‘잔인한 4월’이 이달에도 이어진다는 예보가 나왔다. 기상청 직원들을 빼고는 모두 이 예보가 틀리기를 바라고 있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마이너리티 리포트] (9) 어느 전과자의 편지

    [마이너리티 리포트] (9) 어느 전과자의 편지

    혈기왕성한 스무살 때 사람을 죽이려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한순간 화를 참지 못해서죠. 다행히 그 사람은 죽지 않았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교도소를 제 집 드나들듯 했습니다. 따져보니 복역기간만 26년 정도 되더군요. 그동안 저는 단 한번도 제 삶을 반성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또 다른 ‘한탕’만을 노렸죠. 그러나 2년전 저를 믿어준 유일한 사람인 지금의 아내를 만난 이후 달라졌습니다. ●“믿어주세요. 정말 변했습니다.” 제 이름은 권영덕(56)입니다. 가명이 아닙니다. 태어나자마자 고아원에 맡겨질 때 제 손에 꼭 쥐어진 쪽지에 적힌 이름입니다. 저는 살인미수·폭력·사기 등으로 26년 정도를 교도소에서 보낸 전과자입니다. 보통 다른 전과자들은 자신이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해 이름을 밝히는 것을 꺼려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의 아내를 만나기 전에는 신분을 속이기 급급하며 ‘거짓말 인생’을 살았지만, 아내를 만나면서 달라졌습니다. 아내를 알게 된 이후 저는 단 한 건의 사소한 법규도 어긴 적이 없습니다. 거짓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취직을 위해 면접을 할 때도 전과자임을 밝히고 숨기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원양어선을 탔다느니, 섬에 들어가 살았다느니 하며 자신의 과거를 숨기기 바쁘더군요. 아무튼 저는 면접에서 번번이 탈락했습니다. 아내와 노무현 대통령, 천정배 법무부 장관에게 보내는 세 통의 유서를 쓰고 자살을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마음을 바꿔먹었습니다. 전과자 가운데도 괜찮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일용직 취업 이틀만에 혼자만 해고당해 아내를 만난 이후 처음으로 갱생보호공단이란 곳을 찾았습니다. 저의 진심을 이곳을 통해서라도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다행히 이곳 팀장, 과장님들은 제 진심을 알아주시더군요. 이곳을 통해서 지난해 9월 일용직 잡부지만 지하철 공사 현장에 취직도 됐습니다. 생애 첫 취직을 아내와 함께 기뻐했던 시간들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단 이틀 만에 잘렸습니다. 업체 측에서는 현장 인원이 너무 많아 부득불 인원감축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당시 현장에는 일손이 부족한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저와 함께 들어온 다른 4명은 그대로 둔 채 저만 해고 대상이 됐습니다. 대한민국 법무부 산하 갱생보호공단에서 저의 신분을 보장하고 추천했는데도 일선 현장에서 전과자라는 벽은 너무 높았습니다. 해고를 통지하는 소장의 멱살을 잡고 싶었습니다.“왜 하필 나입니까. 저는 정말 달라졌습니다. 기회를 주세요.”라고 소리치고 싶었습니다. 심장을 휘감고 돌아 터져 나오는 울분을 가까스로 참아냈습니다. 그리고 작업복을 벗고 조용히 돌아섰습니다. 아직 내 업보가 다 가시지 않은 모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전과자 멍에를 벗고 싶습니다.” 저는 전과자라는 멍에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더 노력하기로 했습니다. 지난해 12월에는 공단에서 보내주는 운전면허 학원에 다녀 1종 대형 면허도 취득했습니다. 이때부터 운전기사 자리를 알아보고 있습니다. 저는 비교적 좋은 인상 때문에 처음에는 면접관들의 태도가 호의적입니다. 또 교도소에서 몇 년간 펜글씨를 연습했기 때문에 제 필체를 본 면접관들은 글씨도 잘 쓴다며 좋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단 한칸도 채우지 못한 이력란을 보고, 제 스스로 전과자라는 사실을 밝히는 순간 낯색이 변합니다. 그분들을 탓하진 않습니다. 다만 어떻게 해야 그분들이 저를 믿게 만들 수 있는지 그 방법을 모르겠습니다. 갱생보호공단이나 법무부에서 철저한 심사를 통해 신분을 보장해 주는 제도를 마련해주는 것은 어떨까요. 저는 더 이상 아무 것도 숨기지 않습니다. 저는 제 아내를 만나면서 저의 바보 같던 모든 과거를 편지로 써서 준 적이 있습니다. 저는 고아입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고아원에서 살았습니다.4학년 첫 등교하는 날 엄마 손을 잡고 가는 1학년 아이가 너무 부러워 ‘짱돌’을 아이 뒤통수에 던진 뒤 그 길로 바로 고아원에서 도망쳤습니다. 걸인처럼 이곳저곳 방황하다 17살이 될 때까지 성매매 여성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이후로 사고에 사고를 거듭하며 2004년 7월까지 출소와 복역을 반복했습니다. 그 사이 춤도 배워 카바레에 다니며 ‘사모님’들 사기도 몇 번 쳤습니다. 한때 외제차 벤츠를 몰고 다닌 적도 있고 한 벌에 1200만원 하는 양복을 입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렇게 살지 않으렵니다. 교도소에서는 저를 개과천선(改過遷善)시키지 못했지만, 저를 믿어주는 아내로 인해 제가 개과천선되는 모습을 꼭 보이겠습니다. 정리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매년 10만 출소자 중 취업 3000명뿐 교도소에서 출소한 사람들의 사회 적응을 돕는 한국갱생보호공단은 1995년 6월에 설립됐다. 법무부 산하 기관으로 서울에 본부를 두고 각 지방 검찰청 소재지 등에 14개 지부와 9개 출장소 및 6개 쉼터를 두고 있다. 공단에서 하는 일은 크게 출소자들에 대한 ▲숙식제공 ▲직업훈련 ▲취업알선 ▲기타 자립지원 등으로 구분된다. 공단은 지난해 전국적으로 2690명에게 숙식을 제공했다. 설립 첫해 1900여명 수준에서 꾸준히 증가한 수치다. 이들은 대부분 가족이 없거나 가족들로부터 외면받는 사람들로 공단 각 지부에서 최장 9개월까지 숙식을 제공받는다. 숙식 제공과 함께 공단이 가장 치중하고 있는 부분은 직업훈련을 통한 취업알선이다. 출소자들의 조속한 자립을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일자리다. 취업 가능성 여부가 출소자들의 사회적 지체를 극복하고 사회에 적응토록 해 재범을 줄이는 것과 직결돼 있다. 공단은 현재 전국 302개 기업체와 취업알선 후원회를 구성하고 있다. 이곳에서 채용해 주는 인원을 포함, 공단을 거쳐 취업에 성공한 출소자들은 매년 3000명 정도다. 매년 10만여명의 출소자 가운데 10% 정도인 1만여명이 공단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인데, 공단을 통해 취업한 인원을 뺀 나머지 7000여명에 대한 대책은 전무한 상태다. 신선호 공단 보호과장은 “기업에 혜택 없이 무조건 채용해 달라고 부탁만 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면서 “국가에서 출소자를 채용하는 기업에 일정 정도의 세금 혜택을 주는 방식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공단은 최근 전과자들에 대한 사회의 편견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으로 지역내 독거노인과 극빈자들을 위한 ‘사랑의 빨래방’을 운영하고 있다. 출소자들이 직접 빨래 자원봉사에 참여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이웃과의 접촉을 늘려나가고 주민들의 편견을 해소하려는 목적이다. 안용석 공단 이사장은 “도움이 필요한 출소자를 그대로 사회에 방치할 경우 반드시 재범으로 이어져 그 피해는 국민들에게 다시 돌아간다.”면서 “물론 모든 출소자들이 다 변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공단에서 추천하는 사람만큼은 믿어주길 바란다.”고 부탁하기도 했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우디 앨런의 ‘매치포인트’ 14일 개봉

    우디 앨런의 ‘매치포인트’ 14일 개봉

    인생의 불가해성을 이야기하는 영화는 숱하다. 아니, 어쩌면 세상의 모든 영화들이 그 주제를 향해 변주되는 것일 수도 있다. 우디 앨런 감독이라면 어떨까.13일 개봉하는 ‘매치 포인트’(Match Point)는 그가 만들었지만 편견은 금물이다. 자의식에 기우뚱 기댄 예술영화 쯤으로 속단하지 말라는 얘기이다. 세속적 욕망과 격정적 사랑 사이에서 위태롭게 줄타기하는 남녀의 이야기를 그렸는데, 한참동안 고개가 갸웃거려진다.‘쉬어가는 영화’라는 결론이 일찌감치 내려질 만큼 중후반까지 일정규격의 보폭만 유지하는 무난한 드라마이다. 신분상승을 꿈꾸는 테니스 강사 크리스(조나단 라이 메이어스)는 런던의 갑부 집안 아들 톰(매튜 굿)과 사귀면서 자연스럽게 그의 여동생 클로에(에밀리 모티머)와도 가까워진다. 자신에게 첫눈에 반한 클로에가 적극적으로 구애해오자 이를 받아들이지만, 처음부터 크리스의 속마음은 딴 데 가 있다. 톰의 약혼녀이자 육감적인 외모를 가진 배우지망생 노라(스칼렛 요한슨)에게 매혹당한 채 위험천만한 애정행각을 이어간다. 이건 감독의 넘치는 자신감 혹은 오만인지도 모르겠다. 압축미 없이 시시콜콜 이야기를 늘어놓는 화법은 얼핏 욕망과 사랑을 주제로 한 주말연속극을, 불륜과 치정의 은밀한 욕망으로 화면을 긴장시키는 일련의 대목들은 TV드라마 ‘부부클리닉’의 스크린 버전 같다. 꿈에 그리던 상류사회에 진입한 크리스가, 격정적 사랑을 포기하지 못해 노라와의 위험한 밀회를 이어가며 수위를 높여가는 구도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이 있다. 빤한 이야기가 지지부진 너무 길다는 불평이 나올 중후반 어느 지점에서 영화는 핸들을 확 꺾으며 관객의 뒤통수를 친다. 스릴러 아닌 평이한 치정극에 등장하기엔 너무나 색다른 반전이 후반부에 놓였다. 크리스의 아이를 임신한 노라가 크리스의 손에 살해된 이후 결론부에서 감독은 ‘이 영화를 왜 이런 방식으로 만들었는지’ 참았던 의도를 밝힌다. 크리스는 어떻게 됐을까, 그에게 어떤 결론이 적용돼야 인생의 공식에 맞는 걸까. 위로인지 조소인지, 감독의 괴짜기질이 극장을 나서는 관객의 등을 툭툭 친다. 바둥댈 거 뭐 있어? 인생 그거 운(運)이야, 운!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당신 아내가 어느날 남성이라고 판정받는다면?

    진짜 ‘완전한 양성인(兩性人)’이 존재하는 걸까? 중국 대륙에 단순히 심정적,또는 기질적인 것이 아닌 육체적으로 거의 완벽에 가까운 양성인이 등장,화제를 모으고 있다. 중국 동중부 안후이(安徽)성에 살고 있는 한 여성이 최근 염색체 등의 검사를 여러차례 실시한 결과 육체적으로 거의 완전에 가까운 양성인인 것으로 판정났다고 중국 양자만보(楊子晩報)가 3일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화제의 주인공은 결혼한지 3년이 된 20대 후반의 여성인 란란(蘭蘭·가명).허리 양측에 남성 고환이 각각 하나씩 숨겨져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물론 지금까지 란란 자신도 모르고 있었던 사실이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충격을 받고 있다. 이 여성을 진단한 상하이(上海)시 셰허(協和)의원 왕리쥔(王麗君) 박사는 “현재 그녀가 양성인이라는 컴플렉스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신체적·정신적 치료를 도와주고 있다.”면서 “이번 진단은 결혼을 하기 전에 보다 꼼꼼하게 각종 질병이나 성별 등의 검사가 필요하다는 점을 일깨워주고 있다.”고 충고했다. 란란씨의 양성인 진단은 지난해 국경절 연휴기간(10월 1∼7일)에 이뤄졌다.당시 란란씨 부부는 결혼한지 3년이 넘겼지만 아기가 생기지 않아 진찰을 받기 위해 상하이시 셰허의원을 찾았던 것이다. 검은 색의 긴 생머리가 매력적인 데다 동양적인 미모까지 갖춘 란란씨는 담당의사의 진단 결과에 대한 설명을 듣고 몽둥이로 뒤통수를 맞는 듯한 큰 충격 속으로 빠져들었다. 란란씨는 생식기 등의 부분에서는 여성적 특징이 비교적 명확하게 보인 반면,임신을 위해 필요한 자궁과 난소 등이 보이지 않는다는 판정을 받은 까닭이다. 특히 염색체 검사를 해본 결과 남성 염색체를 갖고 있었을 뿐 아니라,허리 양쪽에 각각 하나씩의 남성 고환을 몰래 숨겨져 있었다.따라서 란란씨는 ‘고환 여성화 종합증’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선천성 질환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란란씨의 이같은 선천성 질환은 그녀의 어머니가 그녀를 임신한지 3개월안에 약물을 복용했거나 호르몬류 미용품을 남용했던가,환경오염에 노출됐을 가능성 등이 태아에 영향을 미쳐 기형적으로 발육하게 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란란씨의 남편은 충격을 받은 것은 불문가지.그토록 사랑스러웠던 아내가 어느날 갑자기 자신과 같은 남성이라는 사실을 들은 그녀의 남편은 도저히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 집을 나가버렸다. 크게 상심하고 있던 란란씨는 이 때문에 자살까지 시도를 했다.이에 담당 의사인 왕 박사는 6개월여 동안 이리저리 알아본 결과 그녀의 남편과 연락이 닿아 설득했다. 왕 박사는 그녀의 남편이 너무나 끔찍히 아내를 사랑한다는 점을 간파,“란란씨가 남성 고환제거 수술을 받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하다.”고 여러차례 강조하는 등 설득해 남편으로부터 가까스로 고환절제 수술에 대한 동의를 받았다. 절제 수술을 성공적으로 받은 란란씨는 남편과 함께 왕 박사를 찾아와 “정말 감사하다.”며 “고아를 입양해 키우겠다.”고 말해 안심시켰다고 한다.왕 박사도 “정말 어려운 선택을 했다.”며 힘차게 박수를 치며 이들의 앞날을 격려했다. 온라인뉴스부
  • 정부 ‘ILO 권고안’ 거부

    정부가 “공무원에게 단결권과 단체행동권을 인정하라.”는 국제노동기구(ILO) 권고안에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일단 강경대응한다는 방침을 세웠지만, 올 가을 부산에서 열리는 ILO 아시아·태평양 지역총회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노동부는 30일 “권고안이 지나치게 편파적이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내용의 답변서를 30일 ILO에 제출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이번 권고안은 미국, 일본 등 노동 선진국들조차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사안”이라면서 “ILO 이사회에 파견된 국제 노동자대표들도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공무원노조가 아직 ‘장내’로 들어오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ILO 권고안이 노동단체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노총은 이날 “전임자 임금을 노사자율로 결정하고, 소방관 및 5급 이상 공무원의 노조가입을 허용하라는 ILO 권고를 환영한다.”면서 “정부는 즉각 권고안을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노동부는 ILO에 적지 않은 ‘섭섭함’까지 느끼고 있는 듯하다. 오는 8월29일부터 9월1일까지 부산에서는 제14차 ILO 아시아·태평양 지역총회가 열린다. 이번 총회에는 ILO 사무총장을 비롯해 전 세계 43개국에서 60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정부는 노동행정 및 노사관계 발전상을 적극 홍보해 ILO 내에서 위상을 높이는 계기로 활용한다는 계획이었다. 이에 따라 노동부 국제협력국장 등 정부 대표단이 스위스 제네바의 ILO 본부를 찾아 총회 개최 협정서에 서명한 것이 지난 27일.ILO 권고안이 나오기 불과 이틀전이었다. 정부는 총회에 15억원의 예산을 지원한다는 방침을 세워놓은 만큼 그야말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꼴이 됐다는 것이다. 이동구기자 yidonggu@seoul.co.kr
  • [새영화] ‘달콤, 살벌한 연인’

    새달 6일 개봉하는 ‘달콤, 살벌한 연인’(제작 싸이더스FNH·MBC프로덕션)은 오랜만에 장르적 실험이 돋보이는 국산 영화이다. 로맨틱 드라마와 스릴러의 특장을 반반씩 섞어 절묘하게 재조합한 덕분에 변종장르의 묘미를 한껏 발산한다. 거기에 규모의 실험까지 동반했다. 순제작비가 20억원이 채 안되는 초경량급으로, 촘촘한 드라마 운영에 올인하려 한 두둑한 배짱이 눈에 띈다. 한류스타이지만 국내 활약은 상대적으로 빈약했던 박용우, 역시 ‘여고괴담’‘행복한 장의사’ 등 몇편의 영화에 출연했으나 선굵은 인상을 남기지 못했던 최강희의 조합은 그래서 더욱 의미심장해 보인다. 주연배우들의 이미지에 구구한 정보가 덧칠돼 있지 않아 관객이 영화 속 캐릭터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은 분명 장점이다. 대학 영문과 강사이지만 서른이 넘도록 연애 한번 못해본 황대우(박용우). 오피스텔 엘리베이터에서 오며가며 만나는 여자 미나(최강희)에게 마음이 쏠리고, 그녀 역시 순진하게 다가오는 남자에게 이끌린다. 남녀 캐릭터를 펼쳐 보이는 도입부의 아주 잠깐 동안만 영화는 로맨틱 드라마의 전형을 허락한다. 낯선 남녀가 상대방을 탐색하고 그 과정에서 자잘하고 유쾌한 돌발 해프닝을 빚는 설정 등은 관객의 팔짱을 풀어놓는 데는 효력이 그만이다. 이 영화의 ‘진맛’은 남녀의 사랑만들기가 급속히 가속을 붙여나간 그 이후에 포착된다. 연애담에서 스릴러로 안면을 싹 바꾸고서도 맺힌 데 없이 천연덕스럽게 굴러가는 극의 흐름에 무방비 상태의 관객들은 뒤통수를 얻어맞는 즐거움을 맛본다. 귀엽고 청순한 이미지로 일관하던 여 주인공이 순간순간 캐릭터를 재해석하는 대목들이 이 영화의 가장 강력한 에너지원이 됐다. 예컨대 여주인공이 오피스텔로 찾아와 추근거리는 건달 남자친구를 감쪽같이 처리(?)해 버리는 장면 등은 장난기 전혀 없이 정색한 스릴러의 외양을 갖췄다. 하지만 순식간에 허를 찔린 관객들에겐 그런 설정들이 번번이 색다르게 변주된 코미디로 감상포인트를 찍게 되는 셈이다. 선남선녀가 토닥토닥 해피엔딩을 엮어가는 로맨틱 드라마의 공식을, 스릴러의 살벌한 기습공격이 와장창 박살내버리기를 반복하는 흥미진진한 작품임에 틀림없다. 살인자 여주인공의 달콤한 연애담에 초점을 맞춘 드라마 얼개가 지나치게 만화적이라고 꼬집힐 여지는 물론 있다. 그러나 몇 안되는 단출한 등장인물만으로 이렇다할 기복없는 드라마에 집중하게 만드는 영화의 재능은 박수받기에 충분하다. 로맨틱 드라마의 전형에서라면 쉽게 상상이 안 되는 기발한 대사들, 몸에 꼭 맞는 옷을 입은 듯 편안히 캐릭터를 흡수하는 박용우의 여유만만한 연기선이 영화에 윤기를 입혔다.2000년 부천국제영화제 화제작 ‘너무 많이 본 사나이’의 손재곤 감독이 연출했다.‘재밌는 영화’의 각본으로 주목받기도 했던 감독은 이번에도 시나리오를 직접 썼다.18세 이상 관람가.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씨줄날줄] 바람의 아들/염주영 수석논설위원

    1990년 이탈리아에서 열린 제14회 월드컵의 브라질·아르헨티나전은 축구사 최고의 명장면을 연출한다. 아르헨티나는 브라질의 위세에 눌려 단 한번도 슈팅다운 슈팅을 날려보지도 못하고 89분을 허비한다. 마지막 1분. 마라도나는 공을 잡자마자 브라질 골문을 향해 길게 내찬다. 바로 거기에 무명의 10대 선수 카니자가 바람처럼 나타나 기적같은 한 골을 선사한다. 이어 휘슬이 울리고 경기는 1:0 아르헨티나의 승리로 끝난다. 브라질 선수들은 “우리가 왜 졌는지 모르겠다.”며 뒤통수를 얻어맞은 표정으로 퇴장한다. 카니자는 이 한 골로 세계축구팬들로부터 ‘바람의 아들’이란 별명을 얻게 된다. 이후 마라도나와 환상의 콤비를 이루며 아르헨티나 축구의 새로운 신동으로 떠오른다.‘바람의 아들’이란 별명을 가진 스포츠 스타가 한둘이 아니지만 카니자의 스피드는 올림픽 단거리 육상선수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빠른 발은 속도를 중시하는 축구 경기에서 승패를 좌우하는 핵심 병기다. 어디선가 바람처럼 나타나 빠른 발로 수비수를 따돌리고 골문을 향해 돌진할 때의 짜릿한 흥분은 축구경기 관전의 진수다. 그런 순간 스피드가 뛰어난 선수에게 ‘바람의 아들’이라는 칭호가 붙여지곤 한다. 기동력을 중시하는 야구에서도 ‘바람의 아들’이 있다. 엊그제 온 국민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 넣은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한·일전.0대0의 팽팽한 투수전으로 맞서던 8회 원아웃에 주자를 2·3루에 두고 이종범이 타석에 들어섰다. 파울 타구에 발목을 맞아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던 그의 방망이가 거침없이 허공을 갈랐다.4강 진출을 확정짓는 주자 일소 2타점 2루타가 작렬했다.‘바람의 아들’이 진가를 여지없이 발휘하는 순간이었다. 이종범은 공격, 수비, 주루 3박자를 완벽하게 갖췄다. 그중에도 7시리즈를 뛰면서 352개의 도루를 해내는 주루플레이는 신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평을 듣는다. 그러나 한국야구의 전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4강전 세번째 일본대첩을 앞두고 있다. 한국야구가 세계야구의 본산인 미국에서 새로운 전설을 이어가기를 기대해 본다. 월드컵에서도,WBC에서도 꿈은 이루어진다. 염주영 수석논설위원 yeomjs@seoul.co.kr
  • ‘더블 러브콜’ 강금실의 선택은

    ‘더블 러브콜’ 강금실의 선택은

    때 아닌 ‘구애전’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열린우리당 2·18 전당대회를 후끈 달구고 있다. 고건 전 총리와 강금실 전 법무장관을 둘러싼 정동영(DY)·김근태(GT) 후보의 움직임이다. 러브콜의 배경엔 DY의 ‘대세 굳히기’와 GT의 ‘막판 뒤집기’ 전략이 자리잡고 있다. 지난 2일 예비선거 이후 GT의 지지율이 DY와 10%포인트 안팎으로 벌어지면서 비상이 걸렸다.DY의 강점인 연설과 조직표 다지기가 주효한 것이다. 다급해진 GT측은 “이대로 밀리면 끝장”이라고 판단, 지난 8일 고건 전 총리와의 전격 회동을 성사시켰다는 전문이다. 대반격이 시작된 것이다. 일단 ‘고건 효과’가 나타났다는 것이 GT측 주장이다. 최측근인 우원식 의원은 10일 “이번 회동으로 DY와 GT의 지지율 격차가 5%포인트 정도로 좁혀졌다.”고 강조했다.GT의 범민주·양심세력 연대론이 ‘빈말’에 그치지 않고, 피부에 와닿는 ‘현재 진행형’이란 기대감을 대의원들에게 심어줬기 때문이다. ‘러브콜 2탄’은 강 전 장관을 향했다. 대세 굳히기 들어간 DY 진영은 GT-고건 회동으로 뒤통수를 맞았지만 곧바로 반격에 나서는 과정에서 나온 카드다.DY가 최근 강 전 장관을 직접 만났고 구체적인 입당 절차를 논의했다는 것이 측근들의 주장이다. “우리가 강 전 장관에 가장 근접해 있다.”는 GT측의 주장도 같은 맥락이다.GT는 유세 때마다 “강 전 장관과 접촉하고 있다. 당의장이 되면 함께 갈 것”이라며 한껏 친밀도를 강조한다. 강 전 장관이 범민주세력 연합론에 상당히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이야기도 나돈다. 문희상 당 인재기획단장도 최근 강 전 장관과 접촉하는 등 그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는 중이다. 반면 DY측은 “2004년 총선 때부터 DY가 강 전 장관에게 공을 들여왔는데 뒤늦게 GT가 가로채려 한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이러한 DY-GT의 과열된 러브콜에 당내 시선은 그리 곱지 않은 것 같다.“어쩌다가 우리가 고 전 총리나 강 전 장관에게 목을 매는 처지가 됐느냐.”는 자조 섞인 넋두리도 들린다. 정작 강 전 장관 본인은 고민에 빠져 있다는 후문이다. 개인적으로는 DY와 가깝고, 강 전 장관의 주변인사들은 GT와 친분이 두텁다는 것이 중론이다. 강 전 장관을 향한 구애전은 5·31지방선거와 무관치 않다. 강 전 장관은 여권의 강력한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 중이다. 그의 영입 성공 여부는 당의장 선출을 좌우할 수도권 대의원의 표심을 움직이는 호재인 것이다. 하지만 GT에겐 고건·강금실 카드는 전당대회를 위한 1회용이 아닌 듯하다. 지방선거 이후 복잡한 대권구도까지 바라보는 포석이다.‘반(反) DY 고립전선’의 구축을 염두에 뒀다는 지적도 나온다.“주파수는 공개적이고 열려 있다.”는 고 전 총리의 말처럼 DY-GT 구애전의 승리자는 아직 미지수로 남아 있다. 오일만기자 oilman@seoul.co.kr
  • ‘조세개혁안 유출’ 재경부국장 보직해임

    재정경제부는 중장기 조세개혁 자료가 외부에 유출된 것과 관련,7일 윤영선 조세개혁실무기획단 부단장을 보직 해임했다고 밝혔다. 또 기획단장을 맡고 있는 김용민 세제실장에 대해서는 엄중경고를, 실무책임자인 김형돈 과장에는 주의조치를 각각 내렸다. 이 같은 인사 조치에 재경부의 일부 국·과장들은 “말도 안된다.”며 술렁이고 있다. 김교식 재경부 홍보관리관은 “단장인 세제실장에게 보고하지 않고 스스로 판단해 자료를 외부(조세연구원)에 줬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윤 부단장도 “함께 일하는 과정에서 줬지만 책임을 그 쪽에만 뒤집어 씌울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러나 고위 관계자들은 이번 인사조치를 ‘재경부의 최대 위기’로까지 해석한다. 국장을 보직해임해서가 아니다. 어차피 누군가 책임을 진다면 재경부로서는 재발 방지 차원에서 ‘읍참마속’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문제는 자료 유출을 발단으로 중장기 조세개혁안이 표류하고 경제 부총리까지 국회를 오가며 머리를 조아렸다는 점이다. 선거를 앞두고 ‘표밭’을 의식해 여권이 재경부를 질타하면 군소리도 못하고 ‘대외 과시용’으로 국장을 자를 만큼, 경제정책 총괄부서인 재경부의 위상이 추락했느냐는 것이다. 재경부 고위 관계자는 “외환위기 당시에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고 말한다. 다른 관계자는 “책임을 묻는다면 대통령도 증세 논란의 한 가운데에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과장급 직원들의 반응은 더 노골적이다.“뒤통수를 맞은 기분이다. 윤 국장이 자료를 빼돌렸냐. 책임 소재를 가린 뒤 징계해도 되지 않나. 일할 맛이 나지 않는다. 희생양에 불과하다.” 김교식 홍보관리관은 “외부 요청에 의한 결정은 아니다.”면서 “자료 유출은 연구원을 포함해 재경부의 외부”라고 밝혔다.‘신상필벌’의 원칙이라고 하지만 다분히 정치권을 의식한 징계라는 게 재경부 안팎의 해석이다. 한 관계자는 “정치권에서 그같은 징계를 요구했더라도 장·차관이 몸으로 막았어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조직 기강도 중요하지만 이번 결정은 대중심리를 이용한 인민재판과 유사하다.”고 비판했다.백문일기자 mip@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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