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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그래서 하는 얘긴데… 단돈 몇 푼이라도 노잣돈을 구처할 수 없겠는가?” 그때서야 모꺾어 앉아 있던 계집은 고개만 돌리고 두 눈을 똑바로 뜨고 길세만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았다. “그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요? 나더러 노잣돈 내놓으란 것이요?” “몇 푼이나마 있으면 발굽이라도 뗄 수 있지 않겠나.” “진서 글도 잘하시고 대국 일도 잘 아시는 분이 좆 같은 소리 그만하시오. 지금까지 공다지로 먹은 식대부터 내놓고 노잣돈 타령하시오. 갖은 갈롱을 떨어가며 잔허리가 부러져라 하고 삭숭이를 받쳐준 해우채는 언제 건네줄 텨?” 처음 만날 때부터, 계집의 얼굴이 동글납작하고 콧등 주위에 깨알 같은 점들이 오종종하게 박히고 입술도 얇아 심지가 깊지 못하고 수다스러울 것 같았으나, 며칠 데리고 놀 계집에게 별 주책이다 싶었다. 그런데 그 걱정이 이런 행티를 부리게 된 것이었다. “허어… 이 사람 보게. 돌림병에 까마귀 울음소리라더니 천생 그 짝일세. 임자 그 시답잖은 불두덩 아랫구멍으로 들어간 돈이 얼만데 지금 와서 염치없게 해우채 타령인가. 올곧은 정신 가진 계집이라면 내 앞에서 그런 악증 부리는 게 아닐세. 하긴 내가 자기 단속이 부족하고 대가 물러서 못 쓰겠다는 평판을 듣는 사람일세. 그로써 갈보한테 노잣돈 구걸하는 하찮은 신세가 되었지만, 자네가 지금까지 끽소리 한마디 없이 밑엣품을 팔아온 날 업신여기고 되반들거리는 낯짝을 쳐들고 방색하는 꼴을 보자 하니 지금 당장 칼을 물고 엎어지고 싶구먼. 달포 가까이 서로 격의 없이 나누었던 정분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그때였다. 계집이 발딱 몸을 일으키더니, 부엌으로 내달았다. 그리고 금방 봉노로 돌아왔는데 손에는 어느새 식칼이 들려 있었다. 그것을 길세만의 턱밑에 바싹 들이대고 들까불면서 쏘아붙였다. “어디 칼 물고 엎어지는 꼴을 구경 한번 해봅시다.” 계집의 태도가 부글거리던 가슴속에 불을 댕기고 말았다. 눈에 불꽃이 튀는 듯했던 길세만은 더이상 입씨름을 참지 못하고 계집의 귀쌈을 찢어져라 후려치고 말았고, 그 사품에 계집은 칼질을 당한 갈대처럼 풀썩 꺾이어 주저앉고 말았다. 따귀 한 대에 기절을 해버렸는지 한동안 깨어나지 못하고 부들자리 위에 엎드려 일어나지 못했다. 계집편성에 또 무슨 소동을 벌일까 싶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소슬히 바라보는데, 어느덧 계집의 어깨가 겨울 사시나무처럼 떨리며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문득 서글픈 생각이 폐부를 파고들었다. 중놈의 바랑 속에 들어 있는 빗처럼 쓸모없는 목숨, 티끌 같은 목숨을 부지하자고 이토록 팍팍한 세상을 의지할 곳 없이 떠도는 신세는 계집이나 길세만이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새우는 대대로 곱사등이더라고, 알고 보면 세상으로부터 업신여김 당하면서 살아가긴 매한가지가 아닌가. 못된 소행머리로 기광을 부렸다 하지만, 손찌검까지 가지 말았어야 했다는 후회가 가슴을 쳤다. 행렬 잃고 땅에 떨어진 기러기도 매한가지, 성깔이 어긋나서 식칼을 들고 들어와 턱밑에 들이댄 것도 모두가 이처럼 각박한 세상을 견디며 살아가려 했으니 얻어진 악증이 아니던가. 마음이 흔들비쭉하여 죽이라고 악지를 부리며 지다위하고 대들지 않았던 것이 오히려 다행이었다. 투전판에서 전대를 털린 것도 모두가 미련했던 자신의 탓이었지, 정분을 나누었던 계집이 사주해서 얻은 횡액은 아니었지 않은가. 잠깐 부린 소행머리가 괘씸하다 해서 손찌검을 한 것은 백번 돌이켜보아도 잘못된 일이었다. 길세만은 계집의 흔들리는 어깨를 가만히 안아주며 말했다. “내가 잘못했네. 요사이 이르러 기운도 탈진하고 형세가 기울다 보니, 하지 말아야 할 짓을 저지르고 말았네. 이제 진정하고 일어나 앉게. 두 번 다시는 데데하게 노잣돈 구처해 달라는 얘기는 않겠네.” “기운이 남았거든 더 때리세요. 투전판에서 돈 잃고 뜨내기 계집에게 노잣돈 구걸하는 사내가 부끄럽지도 않소?” “어허… 겸연쩍게 왜 또 그러나. 내 그럴 의향이 없다니까 그러네.” “그동안 거웃이 쓰리고 아파도 군소리 한마디 없이 육공양을 암팡지게 대접해온 터에 이런 괄시가 없소. 그동안 건네준 해우채가 분수에 넘치도록 과람했다 하나 내가 생트집으로 주머니를 발긴 적은 없지 않소.” “잘 알고 있네. 얼혼이 빠진 내가 형장 맞을 짓을 하였네.” “해우채로 건네준 돈은 벌써 똥 된 지 오래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뒷간에 오래도록 앉아 살펴보지 않았소. 뒷간에서 뭘 찾느라고 그토록 오래 앉아 있었소?” “이제 그만하게. 뒷간에 똥밖에 더 있었겠나.” 길세만이 몇 번이나 다짐을 두고 사죄한 덕분인지 계집은 더이상 모질게 파고들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그날 밤은 오줄없는 계집처럼 육공양을 해서 길세만을 아주 노골노골하게 만들었다. 침통하고 소슬하여 심신이 지친 터라, 평소와는 달리 일합을 치른 후에는 녹아떨어져 코까지 골았다. 그가 다시 눈을 뜬 것은 가슴을 바위가 짓누르는 듯한 거북함을 참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섬뜩하여 눈을 떠보니 어섯눈에도 시꺼멓게 보이는 한 장정이 자신의 가슴 위에 올라타 있었다. 이게 어인 도깨비인가 싶어 벌떡 상반신을 일으키는데, 가슴을 타고 앉은 자가 반사적으로 목덜미를 누르고 있어 여의치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언제 잡도리하였는지 아갈잡이까지 되어 있었다. 적당을 모두 소탕하였다는데, 이건 또 어디서 나타난 산적이며 무뢰배인가 싶었다. 수시로 드나들었던 투전판의 타짜꾼들은 아닐 것이었다. 안면을 트고 지내는 사이는 냄새로도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뱃구레를 깔고 앉은 위인은 길세만이 잠에서 깨어났다는 것을 알아챘을 것인데도 일언반구 말이 없었다. 그때 문득 뒤통수를 치는 상념이 있었다.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겨우 기신을 차리고 일어나긴 하였으나 주눅이 들어 시무룩하던 천봉삼의 얼굴이 일순 밝아졌다. “그렇게만 된다면 시생도 홀가분하게 누명을 벗고 다시 생업에 종사하게 될 날이 있겠습니다. 제발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궐자가 잡히면, 노형께선 매야에서 고초령을 넘는 상로에서 생업을 도모할 길을 찾게 될 것이오. 임소의 반수 어른과 도감 성님께서도 그렇게 약조가 된 듯합니다. 노형도 익히 알고 있겠지만, 우리 원상들은 동무 중에 밑천을 날린 동무가 있으면 십시일반으로 추렴하여 밑천을 만들어주는 풍속이 있지 않소. 열명길에 든 동무가 있으면 갹출하여 부의금을 전달하고, 행상길에 질병에 걸리면 반드시 구완하고, 폭리를 취하면 응징하지 않았소.” 곽개천이 걱정했던 대로, 길세만은 울진 소금 상단이 윤기호를 회칠하여 회술래를 돌릴 때 내성 색주가에 처박혀 있었다. 저잣거리에서 빈둥거리던 잡살뱅이들과 아녀자들이 구경이 생겼다 하고 길거리로 몰려나가는 북새통을 벌였으나, 길세만은 투전판을 빠져나와 색주가의 측간으로 가서 북새통이 가라앉을 때까지 숨어 앉아 있었다. 지린내와 구린내가 코를 들쑤셨으나 그 와중에 가뭇없이 숨을 곳이 있다면 측간뿐이었다. 혹간 측간에 소피를 보러 오는 갈보들도 길거리로 떼거지로 몰려나가고 없었기 때문에 그만한 은신처가 없었다. 차제에 소금 상단 동무들에게 발각된다면 지금 윤기호가 치르는 것처럼 곱다시 장문을 당해서 굴신을 못하도록 얻어맞고 상단에서 쫓겨날 것이 분명했다. 저잣거리에서 풍속을 어지럽혔다가는 지체 없이 징치를 당하였다. 장감고(場監考)가 두량을 조금이라도 농간하였다가는 임소에서 잡아들이게 되어 있었고, 술주정하는 자는 심하고 심하지 않고를 막론하고 비록 얼굴이 붉게 변하는 데 그치더라도 여축없이 잡아들였다. 서로 때리고 다투는 자는 먼저 성을 내어 구타하기 전에 비록 언쟁하는 데 그치더라도 적발되면 잡아들였다. 더욱이 잡기나 투전판을 벌여 서로 언쟁하거나 손찌검이 시작되면 원상이고 아니고를 불문하고 잡아들였다. 지금에 이르러 그 엄격함이 해이하게 된 측면도 없지는 않으나, 길세만의 경우는 색주가의 갈보들과 은근짜들에 빠져 전대를 몽땅 털리고 밑천까지 탕진하고 말았으니, 그런 행적이 낱낱이 밝혀지면 즉시 장문으로 다스려질 것이었다. 천생 숨어살며 비렁뱅이로 연명하지 않으면 살아날 가망이 없게 되었다. 구린내가 등천하는 측간에 앉아 그런 생각을 하노라니, 그만 똥통에라도 빠져 죽고 싶었다. 그러나 그마저 결기가 없어 사추리 아래 똥통을 멀거니 내려다보기만 했을 뿐 몸을 던질 수는 없었다. 그는 길거리의 소동이 얼추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가만히 측간을 빠져나왔다. 그러나 지금 당장 갈 곳은 투전방뿐이었다. 불똥 디디는 걸음으로 봉노로 다가갈 동안 색주가의 좁은 마당에는 개미 새끼 한 마리 눈에 띄지 않았다. 문득 까닭 없는 서러움이 가슴으로 밀려와 울컥하고 울음이 터져나오려 하였으나 꿀꺽 삼켰다. 울음을 삼켰으나 그 사품에 눈물이 팍 쏟아지고 말았다. 때 묻고 해진 옷소매로 삽시간에 인중까지 흘러내린 눈물을 닦았다. 외짝 지게문을 열고 봉노로 들어갔다. 언제 돌아왔는지 윤기호의 길거리 회술래 구경 갔던 은근짜가 돌아와 있었다. 봉노 안 윗목에는 계집이 뒷물하던 소래기와 호박씨 반 접시가 휑뎅그레하게 놓여 있었다. 계집을 발견하자 와중에도 문득 반가워 한마디 던졌다. “임자…… 언제 왔나?” “구경 갔다가 금방 돌아왔어요.” 아랫녘장수 계집으로 말하면 그와는 달포 가까이 살송곳을 박아주었던 사이였다. 미천한 계집이었지만, 요분질이 어찌나 지독하고 달콤했던지 한번 희학질을 치르고 나면 한동안은 뒤통수가 찡하고 머릿속이 어찔어찔하여 걸음을 떼어놓아도 휘청휘청 뒤뚱뒤뚱하였다. 홍합* 대접이 그처럼 아주 착실하고 자별하였는데, 투전판에서 전대를 깡그리 털리고 말았다는 것을 눈치채고 난 뒤부터는 그때마다 앙칼지게 냉갈령을 쏘아붙이며 곁을 주려 하지 않았다. 이러저러한 일로 길세만은 말구멍이 막히도록 기가 질려 있었다. 그러나 길세만이 봉노로 들어섰을 때 어찌된 셈인지 계집은 보란 듯이 고쟁이만 걸친 채 씹거웃이 환하게 들여다보이도록 가랑이를 벌리고 앉아 있었다. 거북했던 길세만이 문득 고개를 돌리며 구경나갔던 저잣거리의 사정을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구경할 만하던가?” 계집이 힐끗 곁눈질하더니 시큰둥하게 대꾸하였다. “내로라하던 어물 객주도 낯짝에 회칠을 하고 나니…… 찌그러진 모색이 염소 새끼나 다름없어 보기에 민망합디다. 얇은 바지에 윗도리는 발가벗은 채로 작은북을 등에 지고 두 다리를 질질 끌고 걸으면서 나는 도둑의 접주입니다. 나는 장물을 팔아 구린 돈을 챙긴 죄인입니다 하고 중얼거리면서 아이들이 던지는 돌을 그대로 맞고 걸어가는데, 혹간 목소리가 속으로 기어들면 뒤에 따라가는 사람들이 회초리로 등을 쳐서, 다시 그가 고개를 들어 나는 도둑입니다 하고 목청을 돋워 외치게 합디다. 차마 눈뜨고 못 볼 일입디다.” “눈뜨고 보고 왔으면서 못 보았다고 시치미를 떼는가. 상단 사람들도 많던가?” “어디서 몰려왔는지…… 이녁 빼고는 모두 모였습디다. 오랜만에 저잣거리에 나가보았더니…… 장꾼보다 풍각쟁이가 더 많습디다.” “그게 무슨 소린가 하면, 원상들보다 왈짜 무뢰배가 더 많다는 뜻일세.” “나야 풍각쟁이가 누군지 원상이 누군지 알 게 무어요. 전대 두둑한 사내면 그만이지……” “그런데 나도 맥을 놓고 여기서 묵새기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소동이 가라앉기를 기다려서 기동을 해봐야 하겠네.” “내키는 대로 하기요.” *홍합:여자의 하문을 빗대어 이르는 말
  • “넌 너무 예뻐!” 미모 때문에 무차별 폭행 당한 여중생

    “넌 너무 예뻐!” 미모 때문에 무차별 폭행 당한 여중생

    여느 날처럼 등교한 10대 여학생이 하굣길에 무자비한 폭행을 당하고 입원했다. 질투가 날 정도로 예쁘다는 게 피해학생이 얻어맞은 이유였다. 가해학생은 살인미수로 고발을 당했다. 사건은 아르헨티나 지방도시 투쿠만이의 주도 근교에서 최근 발생했다. 아르카디아라는 지역에서 한 여학생이 같은 중학교에 다니는 또 다른 여학생을 무차별 구타했다.가해학생이 피해학생의 머리채를 낚아 잡고 바닥에 쓰러뜨리면서 두 여학생은 뒹굴기 시작한다. 피해학생이 사력을 다해 저항하자 가해학생은 머리채를 잡고 바닥에 뒤통수를 여러 번 찧어버린다. 바닥은 일부 깨져 있는 아스팔트다. 피해여학생의 머리가 바닥을 때릴 때마다 둔탁한 소리가 들린다. 주변에는 두 사람의 친구로 보이는 여학생 십수 명이 둘러싸고 있지만 싸움을 말리기는커녕 “발로 차버려라”라면서 오히려 가해자를 응원하고 있다. 위기에 몰린 피해학생을 구한 건 길을 걷던 남학생들이었다. 남학생 3명이 나타나 두 사람을 떼어내고 싸움을 말렸다. 피해여학생은 집으로 돌아간 뒤 쓰러져 지역병원에 입원했다. 여학생의 부모는 가해학생을 살인미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은 “정확한 내용은 아직 파악하지 못했지만 피해자가 지나치게 예쁘다는 이유로 매를 맞은 것으로 보인다”면서 정확한 사건경위를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문제의 사건은 현장에 있던 한 여학생이 핸드폰으로 촬영, 인터넷에 올리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사진=가세타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한나무재에서 결박해온 적굴 사람들에게 혹독한 징벌을 내리는 대신, 접소 근처의 숫막에다 우선 사처 잡고 수용하였다. 그들 대부분이 아녀자와 늙은이들인데다 사고무친으로 올데갈데없는 처지였고, 적굴에 인질로 잡혀 있어도 죄를 저지른 흔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들 대다수는 결옥이 되지 않고 접소 근처 숫막의 중노미 노릇으로 박히거나 여염에서 더부살이로 안접을 시켰다. 소금장수 상대로서는 혹 떼러 갔다가 혹 붙여서 돌아온 셈이었다. 해토머리가 되면서 관아의 감옥은 옥바라지하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그러자니 옥전 거리는 행로가 번다한 비석거리 못지않게 구메밥을 파는 밥장수며 떡장수와 죽장수들로 북적거렸다. 관아에서 결옥된 죄수들을 먹일 양곡을 내는 법이 없었으니 가족이 없는 죄수들은 옥리들이 먹다 남긴 턱찌꺼기를 주워먹고 연명하거나, 감옥 바닥에 깔아둔 섬거적을 뜯어 짚신을 삼아 팔아 연명하다가 종국에 가서는 굶어죽는 수밖에 없었다. 천만다행으로 굶주림을 이겨낸다 할지라도 밤이 되면 또 다른 질곡이 뒤따랐다. 허기지고 병추기가 되어도 맘대로 잘 수 없는 것이었다. 빈대, 각다귀, 바퀴, 모기, 당비루, 쉬파리, 사면발이 같은 지독한 물것들이 창궐하여 온전히 잠을 이룰 수 없는 것은 그렇다 치고, 만약 쪽잠이라도 자다가 옥졸들에게 발각되면 난장 박살을 겪어야 했다. 대갈통이나 뱃구레며 팔다리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얻어터지다가 죽을 지경이 되면 시체방에 갇히게 되고 숨을 거두면 감옥 밖의 쓰레기 더미에 내던져 태워버렸다. 얼어 죽어도 태워서 버렸고, 굶어 죽어도 태워서 버렸다. 적굴에 잡혀 있으면 대궁밥을 얻어먹든 풀뿌리를 캐먹든 그럭저럭 죽지 않고 연명할 만했다. 그런데 정작 관아의 감옥에 갇히면 굶어 죽는 일이 허다하였으니, 차라리 적굴 생활로 되돌아가야겠다는 말이 헛소리 아니게 되었다. 정한조가 그들을 결옥하지 않았던 연유도 거기에 있었다. 그뿐만 아니었다. 결옥이 되면 옥졸이 다가와 죄수의 애꿎은 사정도 소상하게 알아보지 않고 무턱대고 곡식이나 무명을 낼 수 있느냐고 묻고, 죄수가 고개를 내저으면 다짜고짜 발길질이었다. 신참 행하도 못 낼 놈이 화적질은 왜 했느냐고 눈알이 쑥 빠지도록 뒤통수를 내리쳐서 기절시키는 일이 다반사였다. 늙은이들을 그런 감옥에 처넣는다는 것도 또한 내키지 않았다. 울진 관아에서도 그런 사정을 빤히 알고 있으면서 도방에 찾아와서 아무런 내사가 없었다. 배고령은 발설하면 쥐똥 같은 소릴 한다고 면박을 들을까봐 주저하다가 손톱여물만 썰 수는 없어서 정한조에게 나직하게 일렀다. “회정길에 샛재 월천댁을 들렀습니다.” “거기서 하룻밤 유숙하고 왔다면서 뭘 새삼스럽게 얘길 하나?” “월천댁이 도감 어른께 만기와 구월이의 혼인이 성사되도록 중신애비 노릇을 해달라는 청탁을 넣었다는 얘길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월천댁이 그러던가?” “아니올시다.” 불쑥 말을 해놓고 나서야 아뿔싸하였다. 그런 내밀한 얘기였다면 월천댁 아니면 구월이만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미 쏟아진 물그릇이었다. 주저주저하다가 엉뚱한 사람을 둘러대고 말았다. “노닥다리 중노미가 그럽디다.” 정한조는 어설프게 둘러대는 말을 곧이듣고 중노미를 나무랐다. “그 늙은이는 주둥이가 나불나불 헤픈 사람이 아닌데, 임자하고는 자별한 사이인가보군. 월천댁이 그런 말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말 같잖은 소리여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네…… 그런데 남의 혼사에 임자가 어째 안달인가.” “안달이 아니라, 만기로 말하면 다소 굼뜬 게 병통이긴 하나 사내로서 의젓하고 말수도 적어서 그만한 신랑감을 찾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구월이도 산중 처자치고는 외양도 반반하고 총기도 있어서 만기의 평생 반려로서 손색이 없지 않습니까.” “두 사람의 속내를 소상하게 꿰고 있다면 임자가 중신애비로 나서보면 어떨까?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릴세. 월천댁도 임자 때문에 한시름 놓게 되었군.”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혹 떼러 왔다가 혹 붙인 꼴이 되었다. 육허기는 채우게 되었으나 구월이와 초례청을 차리지 않으면 큰 소동이 벌어질 것이 뻔한데 난데없는 만기가 그 길을 가로막고 있었고, 만기가 멀쩡하게 살아 있는 한 월천댁에게 무릎을 꿇고 빈다 해도 혼인을 쉽사리 허락할 리 없었다. 이튿날 새벽 말래로 발행하는 배고령의 발걸음은 그래서 천근같이 무거웠다. 세상에는 예상에 없었던 변고와 재난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사람의 일도 당장 내일조차 예측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사뭇 뒤통수를 쳤다. 그처럼 울적한 감회로 말미암아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해 오랜만에 심란하기 그지없었다. 말래 접소에 당도했으나 벌써 상대는 다시 행장을 꾸리며 내성 발행을 서둘렀다. 말래에서 해물 저자인 흥부장까지는 보통 걸음으로는 한식경이지만, 소금 짐을 진다면 내왕 행보에 꼬박 하루가 걸렸다. 뒤늦게 당도한 배고령이 상대의 걸음을 뒤따라잡기는 어려웠다. 할 수 없이 접소에서 3, 4일은 양류밥을 먹으며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뿐만 아니었다. 접소에 남아 있기로 작정한 사람 중에는 정한조도 있었다. 길세만을 찾지 못했다는 말에 정한조는 예상했던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받아넘겼다. “붙잡히면 장문을 당할 게 뻔한데, 임자하고는 막역한 사이라 할지라도 나 여기 있네 하고 쉽사리 낯짝을 내밀 것 같은가.” “허물없이 지낸 지 오래된 사이라 시생이 나서면, 필경 찾아낼 수 있으리라 믿었습니다.” “나도 사정은 알고 있었네. 하지만 이번의 일로 내성 저잣거리며 색주가의 속사정을 소상하게 기찰하지 않았나. 나중 가면 그것도 적지 않은 소득이 될 것이야.” “그럼 당분간 도감 어른을 수행해야 하겠군요.” “운수납자로 가장했다는 천봉삼 내외를 다른 숫막에 거처를 정해주고 바라보는 참일세. 근본이 원상이었으니, 나로선 설분만 할 수 없는 형편일세. 게다가 저지른 일에 대해서 일호의 속임도 없이 실토정을 하고 처분만을 기다리는 처지라, 거칠게 대접할 수 없고 그 내자 되는 아낙네는 국량이 깊은 여인네라 언사가 순박하여 본데없이 굴지 않으니, 두고 보았다가 도타할 징조만 보이지 않는다면 백방하려는데 임자 생각은 어떤가?” “도감 어른 어취를 듣자하니 진작에 놓아줄 생각을 가졌네요. 시생도 같은 염의를 갖고 있습니다만, 그냥 놓아주는 것보다, 우리가 놓쳐버린 그 두령이란 놈을 찾으라는 분부를 내려서 놓아주면 어떻겠습니까. 궐놈의 사정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천봉삼 아니겠습니까.” “그럴싸한 생각일세. 천봉삼이란 자가 이태 동안이나 풍상을 겪었으나 적굴놈들을 비롯해서 무뢰배들과 동고동락으로 지냈다면 그 패거리의 속사정에도 밝을 테니 추쇄를 시켜보면 두령의 행방뿐만 아니라, 어쩌면 길세만의 거처까지 밝혀낼지도 모르겠군.” “설마… 길세만이가 적굴 놈들과 결탁을 했을까요.” “그야 모르지, 사람이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목숨을 부지하자면 무뢰배들과 어울려 지내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을 고쳐먹을 수도 있지 않겠나.” “내성에서 오동나무골 생달에 정처를 정하고 산다는 상단을 만나 몇 마디 나누었는데, 곧은재 아래에 있는 검은돌 마을에 그곳 붙박이 떨거지들이 진을 치고 있다가 태백이나 영월의 험구들을 넘어온 상단을 등쳐먹는다 합니다. 숫막에 앉아 술과 고기를 실컷 시켜 배를 불리고 수월찮은 식대를 상단에게 떠넘기는 것을 예사로 저지른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세가 불리한 상단은 울며 겨자 먹기로 그들을 접대하고 있답니다.” “우리 소금 상단은 모르는 일이 아닌가?” “우리 상단에게는 감히 덧들이지 못했겠지요.” “횡행하는 무뢰배들과도 한통속이겠구만.”
  • “수술 주위 뼈 녹았지만… 병원은 3년간 리콜 사실 숨겨”

    “몸이 아픈 것보다 뒤통수를 맞은 느낌에 충격이 더 크네요.” 2009년 서울 지역 대학병원에서 존슨앤드존슨 자회사인 드퓨이의 ‘ASR 인공고관절’ 제품을 이식받았다가 지난달 부작용으로 재수술을 받은 김병준(39)씨는 14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해당 제품의 리콜 사실을 3년여 동안이나 전혀 모르고 있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김씨는 2008년 남미에서 당한 추락 사고로 왼쪽 골반뼈가 부서지고 고관절이 탈구되는 중상을 입었다. 지인의 소개로 찾은 대학병원 측은 “이식하는 인공고관절의 수명이 20년 정도여서 50세쯤에 한번 교체하면 된다”며 수술을 권했다. 김씨는 “수술을 받은 직후부터 불편한 느낌이 있었지만 ‘수술을 받았는데 당연히 불편할 것’이라는 생각에 물리치료를 받으며 참았다”면서 “하지만 지난해부터 한 시간도 앉아 있기가 힘들어 병원을 찾았다”고 말했다. 병원은 김씨의 수술 부위를 검사한 결과 “수술받은 부위 주변의 뼈가 녹고 있다”고 진단했고 재수술을 결정했다. 김씨는 “병원 측에서 인공고관절을 만든 회사가 보상해 줄 것이라고 말했을 뿐 리콜에 대해 자세히 얘기해 주지 않았다”면서 “이상하게 생각해 계속 물어보니 그제야 해당 제품이 2010년에 리콜됐다는 사실을 알려줬다”며 당시의 황당함을 전했다. 의료기에 문제가 있어 리콜됐지만 병원과 제조사가 방치해 지난 3년간 몰랐다는 것이다. 김씨는 “매년 검진을 받으러 병원에 갔는데 한 번도 설명을 들은 적이 없다”면서 “많은 환자들이 ‘수술을 받았으니 불편하겠거니’ 하고 영문도 모른 채 참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지난달 말 퇴원해 현재 집 근처 정형외과에서 재활 치료를 받고 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정권 해바라기’ 감사원] 양건에 뒤통수 맞은 MB

    4대강 사업에 대한 감사 논란을 계기로 이명박 전 대통령과 양건 감사원장의 인연에도 관심이 쏠린다. 이 전 대통령 입장에서는 자신이 발탁한 양 원장에 의해 자신의 최대 역점 사업이 ‘대국민 사기극’으로 평가받는 ‘부메랑’을 맞은 셈이다. 양 원장은 MB정부 출범 이전 헌법학 분야 권위자로 꼽혔다. 한양대 법대 교수로 20년 이상 재직했던 그는 2008년 3월 초대 국민권익위원장(장관급)에 임명되면서 공직사회에 처음 발을 들였다. 한 친이(친이명박)계 재선 의원은 양 원장에 대해 “(이명박) 대선후보 시절 조언그룹에 속하지 않았고 대통령 당선 이후 인수위원회에도 관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전 대통령이 정권 출범 후 발탁한 인물로 풀이된다. 양 원장은 그러나 국민권익위원장 임기를 1년 7개월여 남겨둔 2009년 8월 돌연 사퇴했다. 후임 위원장에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이 선임되면서 “정권 실세에게 길을 내줬다”는 의혹을 샀다. 감사원장에 선임된 것은 그로부터 1년 반 후인 2011년 3월. 이 전 대통령은 당시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의 중도사퇴 정국을 돌파하기 위해 양 원장 ‘카드’를 꺼내 들었다. 야권에서는 ‘회전문·보은 인사’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또 다른 친이계 인사는 “청와대 참모진 사이에서 의견이 엇갈렸지만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할 수 있는 ‘무난한 인물’이라는 점을 감안했다”고 전했다. 결국 무난한 인물이 의외의 결과를 만들었다. 양 원장 취임 전인 2011년 1월 발표된 4대강 감사 결과는 “문제 없다”가 핵심이었지만, 지난 1월과 지난 10일 공개된 감사에서는 각종 부실이 드러났다. 이 전 대통령도 최근 두 차례의 감사 결과를 보고받은 후 크게 화를 낸 것으로 전해졌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유임된 양 원장의 임기는 2015년 3월까지다. 장세훈 기자 shjang@seoul.co.kr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배고령은 차인꾼 한 사람과 동행하여 길세만을 찾아나섰다. 정한조의 말대로 그의 성품이나 버르장머리를 속속들이 꿰고 있는 사람은 행중에서 배고령 한 사람뿐이었다. 행중 사람들이 짐작했던 것처럼 투전판보다는 색주가 갈보들에게 혼이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면 갈보는 그의 전대가 완전히 거덜나서 먼지가 풀썩풀썩 날 때까지는 사타구니에 끼고 뱉어내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평소 길세만은 장삿길보다는 간색에 정신이 팔려 실성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는 성품이었고, 장가도 들지 않은 형편이어서 고향에 공양할 사람도 없었다. 애틋하게 아끼는 계집사람도 없는 형편이어서 애써 번 푼돈이라도 아낄 줄 몰랐다. 필경 담벼락에 용수를 내걸고 떡 벌어진 술청을 차린 소문난 색주가보다는 고샅길 안쪽에 숨어 있는 허름한 선술집 뒷방에 계집과 함께 홀딱 벗고 누워 있을 게 분명했다. 보부상들은 자나깨나 한결같이 옷을 벗고 잠을 청한 적이 없기 때문에 물것들을 몸에 달고 살아 옷 한 번 벗고 자는 것이 평생소원이기도 했다. 일행 중에서도 길세만이 걸핏하면 옷을 벗었다. 그러나 낮 동안 윤기호의 훼가출송으로 내성 저잣거리가 발칵 뒤집힐 정도로 야단법석을 떨었는데, 그것까지 나 몰라라 하고 계집을 사타구니에 끼고 누워 있을 만치 그의 배짱이 두둑했을까. 그런 의심까지 들었으나, 배고령은 차인꾼을 데리고 색주가를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번 일로 길세만이 소금 상대에서 윤기호처럼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뒤통수를 짓눌렀다. 계집을 좋아하는 병통이 있어서 곧잘 빈축을 사긴 하지만, 사람의 심덕 한 가지는 무던해서 남을 해코지하는 일은 저지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날씨를 알아맞히는 재간은 일행보다 하루이틀이 빨랐다. 보통 비가 내릴 조짐이 있으면 지렁이가 땅 위로 올라온다든지, 고추잠자리가 낮게 난다든지, 개구리가 지악스럽게 운다든지 하는 징조가 보이지만 길세만의 한마디보다 정확하지는 않았다. “보게 배고령. 내 어깨가 결리는 것을 보니, 내일은 비가 오겠는걸.” 한마디하면 내일쯤은 반드시 비가 내렸다. 소금 섬이나 건어물과 미역 짐을 지고 다니는 소금상단에서는 언제 비가 내리고 눈이 내리는지 하루나 이틀 전에 알아맞히는 사람이 행중에 있다면, 시세를 결단하고 점락(漸)이나 안매(安賣)를 막는 데 크게 한몫을 하는 셈이었다. 그래서 정한조도 날씨가 수상해 보이거나 말래를 발행할 임시에는 반드시 길세만을 불러 어깨가 아프지 않느냐고 묻곤 했다. 이러저러한 연유로도 길세만의 은신처를 반드시 찾아내야 했다. 그러나 두 사람만 내성에 떨어뜨리고 소금을 곡물로 바꾼 상단은 다시 말래로 떠난 지가 이틀이 지났다. 이틀 동안 서캐 잡듯 내성과 현동 저자의 술청거리를 뒤졌으나 길세만의 행방은 오리무중이었다. 보통 울진의 흥부장 쪽에서 온 소금 상단이 떠나면 내성의 색주가는 비교적 한산한 편이었고 7, 8일 후에 소금 상단이 다시 회정하면 색주가는 다시 초파일의 절간처럼 야단법석이 되었다. 배고령은 이틀 동안이나 길세만을 찾아 동분서주하던 끝에 어떤 허름한 숫막 봉노에서 10여 명이나 되는 상대들과 마주쳤다. 면목을 찬찬히 살펴보았으나 안면이 익숙한 사람을 찾아내지는 못했다. 그들은 좁은 봉노를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거동이 살얼음 밟듯 조용조용한 편이었는데, 입성들이 중구난방인 소금 상단들과 달리 매우 깨끗하고 언사도 차분했다. 그중 행수로 보이는 자가 문밖에서 궁싯거리며 숫막을 살피는 배고령을 보고 물었다. “노형께서는 사람을 찾으시오?”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두령을 포박하지 못했다면, 지금 당장 암자로 가서 그놈부터 옭아야 합니다. 민첩하기가 쏜 화살과 같거든요.” “정말이냐?” “뉘 앞이라고 거짓 발명하겠습니까.” “그놈 기특하네.” 텃밭에서 괭이 든 놈과 대거리하던 행중이 그때서야 아뿔싸, 하였다. 억죽박죽 두서없이 몰려다니는 경황 중에 암자의 땡추란 놈을 미처 포박하지 못한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두 번 다시 위인과 대거리를 나누기도 전에 행중 동무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르르 앞다투어 암자 쪽으로 날뛰었다. 두령이란 놈을 잡아야 행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다른 낭패가 그곳에 기다리고 있었다. 암자에는 누가 언제 포박하였는지 땡초란 놈이 암자 기둥에 단단히 결박되어 있던 것이었다. 일행은 다시 한번 아연하여 우두망찰하였다. 땡추가 실토정한 말은 텃밭에서 괭이질하던 바로 그자가 이 산채의 두령이란 것이었다. 어느 놈의 말을 곧이들어야 할지 맹랑한 지경에 빠지고 말았다. 일행은 다시 한번 아연하였다. 홧김에 묶여 있던 땡추란 놈만 애꿎은 몽둥이질을 당하고 말았다. “하품에 딸꾹질이라더니…망신살이 뻗쳤군.” 뒤통수를 얻어맞은 정한조는 낙심천만으로 얼굴이 파랗게 질리고 말았다. 두령이란 자가 심상하게 볼 위인이 아니라는 것은 짐작하고 있었으나, 똥 마려운 계집 비설거지하듯 갈팡질팡 몰려다니다가 그놈 농락에 놀아나게 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산채로 되돌아가 봤자 그놈은 이미 멀리 도망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정한조는 두 사람을 암자에 남게 하고 산채로 돌아갔다. 예상했던 대로 전혀 조급한 기색도 없이 괭이질하던 놈은 진작 자취를 감추고 보이지 않았다. 박원산의 넋두리처럼 “똥 싼 놈은 달아나고 방귀 뀐 놈만 잡은” 꼴이어서 제 발등이라도 찍고 싶었으나 여럿 앞에서 내색할 수 없었다. 잡은 늙은이들과 계집들을 닦달해보았더니 이구동성으로 도망한 위인이 바로 두령 행세하던 놈이란 것이었다. 정한조가 그들을 꿇리고 물었다. “달아난 놈이 천봉삼이란 자가 아니냐?”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던 늙은이가 놀란 눈으로 정한조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으리, 그 달아난 사람은 천봉삼이 아니올시다. 스님으로 가장하고 암자에서 기거하던 사람이 바로 천봉삼이올시다.” “그 독두가?” “그렇습니다. 그 내자 되는 계집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이봐 늙은이, 땡추라 하지만 명색이 스님인데 어찌 내자를 두고 있더란 말인가?” “머리는 스님으로 행세하기 위해 배코를 친 것이지요.” “그놈과 무릎맞춤을 해도 틀림없겠다?” “면질(面質)을 시킨다 해도 틀림없습니다.” 그러고는 봉두난발에 얼굴에는 검댕이가 주렁주렁 매달리고 뒤축 없는 짚신을 질질 끌던 계집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늙은이가 자기를 가리켜 땡추의 내자라고 일러바치는데도 궐녀는 미동도 않고 맨땅에 꿇어앉아 망연자실이었다. 갖은 경난 끝에 얻어낸 초연함으로 다만 먼산바라기로 일관하는 듯했다. 정한조는 그 계집을 대뜸 일으켜세우지 않고 힐끗 일별했다. 문득 궐녀를 고자질한 늙은이의 언사에 계집에 대한 적의를 느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정한조는 다시 한번 계집을 눈여겨보았다. 오합잡놈들 사이에 끼어 앉은 계집의 남루한 행색은 가위 길거리에서 욕받이로 연명하는 비렁뱅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눈여겨보노라면, 어딘가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결기가 있어 보였다. 계집을 일으켜세워 다짐을 받아내려다 말고 그때까지도 산적들이 취탈한 복물짐 숨겨둔 곳간을 찾겠다고 눈이 시뻘건 곽개천을 불렀다.
  • [깔깔깔]

    ●며느리들의 애환을 담은 시 2 허리 한번 펴고 싶네 한 시간만 눕고 싶네. 그래 봤자 얄짤없네 입 다물고 지짐 굽네. 남자들은 티비 보네 뒤통수를 째려봤네. 주방에다 소리치네 물 떠달라 지랄 떠네. 속으로만 꿍얼대네 같이 앉아 놀고 싶네. 다시 한번 가부좌네 음식할 게 태산이네. 꼬치 꿰다 손 찔렸네 대일밴드 꼴랑이네. 내색 않고 음식하네 말했다간 구박이네. 꼬치 굽고 조기 굽네 이게 제일 비싸다네. 맛대가리 하나 없네 쓸데없이 비싸다네. 남은 것은 장난이네 후다다닥 해치우네. 제삿상이 펼쳐지네 상다리가 부러지네. 밥 떠주고 한숨쉬네 폼빨 역시 안 난다네. 음식장만 내가 했네 지네들은 놀았다네. 절하는 건 지들이네 이내몸은 부엌 있네. 제사 종료 식사하네 다시 한번 바쁘다네.
  • [시론] 관치금융 청산은 금융위 개혁에서부터 시작해야/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

    [시론] 관치금융 청산은 금융위 개혁에서부터 시작해야/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

    관치금융 청산은 이번 정부가 해결해야 할 해묵은 숙제다. 관치금융을 청산하기 위해서는 금융감독체계를 개편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금융감독에서 모피아가 손을 떼고 공적 민간기구가 금융감독을 담당하는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정부는 금융산업 발전을 위한 산업정책 차원을 신경쓰면 된다. 그런데 사태가 참 묘하게 흘러가고 있다. 금융감독체제 개편이 핵심은 제쳐 두고 부분적인 논점에만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상황은 대략 이러하다. 우선 지난 3월의 정부조직법 개편에서 금융위원회의 조직 개편은 제외되었다. 따라서 ‘자리 보전’에 성공한 모피아는 남은 과제인 ‘금감원 쪼개기’를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금융소비자 보호를 확실하게 하기 위해 금융소비자 보호기구를 금감원에서 분리·독립시키자는 것이다. 금감원을 쪼개면 금융위가 조금 더 확실히 금융기관을 좌지우지할 수 있고, 설사 실패해도 큰 문제는 없다. 어차피 쪼개기를 반대하는 금감원은 금융소비자 보호보다 조직논리를 앞세우는 파렴치한 집단으로 각인되고 말 것이니까. 꽃놀이패가 따로 없다. 이런 배경 속에서 금융위원장이 위촉한 금융감독체계 선진화 태스크포스(TF)는 지난 6월 21일 ‘금융감독체계 선진화 방안: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를 중심으로’라는 감독체계 개편 방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 개편 방안은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본격적인 감독체계 개편은 ‘사회적 실험’이어서 조심해야 하고, 금융소비자 보호는 너무 과도하게 하면 “금융산업의 발전이 저해”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나중에 또 이런 논의를 할 것이니 그때 가서 다시 논의하자는 것이다. 도대체 뭘 하자는 것인지 말자는 것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급기야 대통령까지 나서서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해 금감원의 조직 분리를 강력하게 촉구하고 나서야 조금 가닥이 잡혔다. 그렇다면 이제 다 잘된 것인가. 여기가 바로 “묘한” 부분이다. 사실 금감원 쪼개기는 지난 2009년 하반기부터 금융위가 추진해 온 사업이었다. 그 첫 번째 가시적 표현이 당시 정무위원장이었던 김영선 의원이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해 금감원을 쪼개는 내용의 법안을 의원입법 형태로 발의한 것이다. 그런데 당시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가 금융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국은행에 금융 안정의 책무와 감독권한 강화를 부여하는 한국은행법 개정을 독자적으로 추진하던 시기였다. 금융위의 전략은 지급결제에 관한 법률이라는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쏴서 한은법 개정을 법사위에 묶어 두고, 다른 한편으로는 금융소비자 보호기구를 분리하는 법률을 제안토록 해서 금감원의 뒤통수를 치는 것이었다. 전략은 적중했다. 당장 통과될 것 같던 한은법 개정안은 2년의 세월이 지나고 ‘영선 대 영선’의 결투를 거쳐 당초보다 후퇴한 기형적인 모습으로 2011년 8월 말에야 국회를 통과했다. 그 후 다시 2년이 지난 지금 남은 반쪽의 과제인 금감원 쪼개기가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지난 4년의 계산서를 뽑아 보면 비록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약간 체면을 구기고 TF에 참여한 교수들은 왕창 체면을 구겼지만, 이익집단으로서의 모피아는 잃은 것은 하나도 없이 얻을 것을 다 챙긴 모습이 됐다. 금융소비자 보호는 물론 해야 한다. 그리고 필자는 이를 위해 금감원을 건전성 감독 부문과 행위규제 부문으로 쪼개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큰 그림을 고치지 않은 채 변죽만 울려서는 전체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갈 수 없다. 모피아의 관치금융과 이권 추구를 통제하지 않은 채 그 밑에 금융소비자 보호 부서를 붙이건 분리하건 무슨 큰 차이가 있겠는가. 지금이라도 금융감독체계는 그 밑바닥부터 제대로 다져야 한다. 그 출발은 금융위를 해체하고 정부가 할 산업정책과 공적 민간기구가 해야 할 금융감독 업무를 제대로 구분하는 것이다.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비틀거리며 쪽마루를 내려온 주모는 뒤축이 닳아 없어진 승혜를 질질 끌고 뒤꼍으로 다가갔다. 동무가 정한조에게 속삭였다. “뒷간으로 들어가거든 지체 없이 박을 내질러 아갈잡이하게.” “그러다가 숨통 끊어지면 어떡하지요?” “그게 걱정되면 임자가 대신 죽어주게나.” 아니나 다를까 주모는 뒷간의 거적문을 들치고 안으로 들어섰다. 나이가 이팔의 청춘도 아닌 터에 오줌줄기 떨어지는 소리가 유월 장마에 한대중으로 내리는 소낙비 소리처럼 요란했다. 동무 하나가 그때를 놓치지 않고 뒷간으로 들이닥쳐 고쟁이도 수습하지 못한 주모를 덮쳐 순식간에 아갈잡이하고 말았다. 밖으로 끌고 나와서 뒷간 흙담 아래 주질러 앉혔다. 동무가 재갈 물린 주모를 보고 이죽거렸다. “주모, 한 번 보면 초면이요 두 번 보면 구면인데, 우리는 여러 번 대면하였으니 십 년 지기나 다름없네. 봉노로 돌아가서 저 놈들에게 만수받이하며 지내느니 밖에서 나와 같이 별이나 헤면서 밤을 새도록 하세.” 얼마 지나지 않아 봉노에서 술추렴하던 패거리 중 한 놈이 외짝 자게문의 돌쩌귀가 부러져라 세차게 열어젖히면서 목 터지게 술어미를 불렀다. “주모…소피보러 나간다더니, 정낭 귀신에게 뒤통수 맞고 똥통에 빠졌나, 모가지가 부러졌나? 이보게 주모….” 목청 돋워 부르는데도 이렇다 할 대꾸를 듣지 못하자, 궐자는 신발도 신지 않고 뒤꼍으로 장금장금 걸음을 옮겨놓았다. 내친김에 뒷간의 거적문을 들치고 살피는데 그때를 놓치지 않고 등뒤에서 기다리고 있던 몽둥이 하나가 궐자의 박을 터져라 하고 내려쳤다. 궐자는 단 한 발짝도 떼어놓지 못한 채 된 신음을 토하며, 붙잡고 있던 거적문을 그대로 움켜잡고 똥통 속으로 꼬꾸라지고 말았다. 그와 때를 같이하여 바깥 봉노에서는 화승 터지는 소리가 장작불에 불꽃 튀는 소리처럼 요란하였다. 적당들은 피가 뜨겁고 용력이 세차다 할지라도 때아닌 방포 소리에 어마지두 놀란 나머지 제풀에 부들자리 위로 나둥그러졌다. 어떤 놈은 닭 끌어안은 구렁이처럼 오그라져 버둥거리다가 코를 박고 쓰러졌다. 다른 한 놈은 죽을 고비에 한 가닥 살길을 찾겠다고 동저고리 바람으로 바람벽의 바라지문에 대룽대룽 기어올라 달아나려다가 등뒤에서 상투를 뒤틀어잡고 획 끌어당기자, 구들장이 꺼져라 하고 그대로 나동그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담도 벽도 의지할 곳이 없게 된 놈들의 머리 위에 물미장과 박달나무 몽둥이가 범 춤을 추는데, 부엌 지게문 앞에서는 다시 한번 자지러지는 듯한 방포 소리가 들렸고, 몽둥이로 박을 내려찍는 소리에 살려달라는 외마디 소리가 삼이웃이 떠나갈 듯하였다. 워낙 순식간에 들이닥친 기습이라, 괴춤에 찔러둔 요도를 뽑아 휘두른다 하여도 사위가 칠흑같이 어두운 야밤에 눈에 보이는 것이 없으니, 버마재비가 수레 앞을 가로막는 꼴이었다. 날고 긴다는 비당(匪?)의 무리들은 그래서 칼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한 채 곱다시 멸구를 당하고 만 것이었다. “이놈 봐라, 개구리 삼시랑이 붙었나. 폴짝폴짝 뛰기는…뛰어봤자 벼룩이다, 이놈아.” 다행히 쪽마루 끝까지 기어나간 한 놈은 행중 동무에게 뒷덜미가 낚아채이자 분하고 억울하여 대성통곡이 저절로 튀어나오는데, 동무는 궐자의 엉덩이를 걷어차서 오줌통으로 쓰는 구유에 냅다 꼰질러박으면서 걸죽하게 엄포를 놓았다. “이놈아, 쪽마루로 기어나와 보았자, 쪽박 쓰고 벼락 피하기다. 곡지통을 내쏟는다고 될성부르냐? 울음소리 냉큼 그치지 않으면 입살을 쪼개서 쌍언청이를 만들어줄까 보다.” 눈에 불똥이 튈 것 같은 상단의 동무들은 창졸간에 얼살을 먹은 놈들의 윗도리를 벗기고 뒷결박을 지웠다. 봉노에 있던 산적들은 단 한 놈도 가로새지 못하고 요절이 나고 말았다. 그런데도 서푼 결기는 남아 있어 눈꼬리가 팽팽하게 당기는 놈이 발견되면 등에서 누린내가 나도록 두들기고 밟아 아예 어육을 만들어버렸다. 그때가 벌써 동이 훤하게 밝아올 새벽녘이었다. 그러나 내성 색주가에서 원진을 치고 있던 적당들을 섬멸하였다 해서 모든 소동이 평정된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다급하게 된 것은 그들의 소굴을 찾아내는 일이었다. 그 일을 한나무재에서 일당들을 결박하여 말래에 있는 접소에 넘긴 곽개천이 도맡아야 했다. 접소에서는 그때까지 천봉삼을 사칭하던 자를 붙잡아 두고 있었다. 그를 지금까지 구완했던 송만기와 행중 두 사람이 궐자의 곁을 떠나지 않고 수직하고 있었다.
  • [당신의 책]

    엄마 에필로그(심재명 지음, 마음산책 펴냄) 온몸이 굳어가는 루게릭병을 앓던 엄마를 떠나보낸 딸이 7년이 지나서야 마음속에 담아뒀던 엄마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그래야 엄마에 대한 미안함과 자신의 슬픔이 옅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영화 ‘접속’부터 ‘건축학 개론’에 이르기까지 한국 흥행영화의 계보를 쓴 제작자 심재명이 엄마 얘기로 첫 책을 냈다. 나이 오십에 문득 지금 내 나이의 엄마를 생각하는 첫 대목부터 60년 넘은 엄마의 숟가락을 유품으로 간직하는 순간에 이르기까지, 떠나보낸 뒤에야 깨닫게 되는 엄마의 한없는 사랑과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상실감이 가슴절절하게 다가온다. 176쪽. 1만 1500원. 티베트 비밀역사(박근형 지음, 지식산업사 펴냄) 우리나라 학자가 쓴 첫 티베트 통사다. 티베트와 우리는 역사적으로 별 연관이 없다고 여기기 쉽지만 고려시대 몽골을 통해 건너온 티베트 불교,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묘사된 티베트와 청나라의 모습 등을 통해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고받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중국 쓰촨(四川)대학에서 티베트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개국 신화부터 반중 독립운동까지 우리가 미처 몰랐던 티베트 역사를 폭넓게 서술한다. 망명정부를 이끌고 있는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와 중국 통치에 저항하는 승려들의 잇단 분신 등 외신으로 전해지는 단편적 정보 이면에 놓인 티베트의 유구한 역사를 통해 그들의 강렬한 독립 열망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를 살펴본다. 564쪽. 2만 9000원. 중국화하는 일본(요나하 준 지음, 최종길 옮김, 페이퍼로드 펴냄) 눈길을 끄는 제목만큼 독창적인, 또는 도발적인 주장을 담고 있다. 일본의 소장파 학자이자 아이치현립대 역사문화학과 교수인 저자는 “(동일본)지진이 일어나기 전부터 일본 사회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고 진단하면서 그 원인으로 당나라 때까지는 중국을 의식적으로 모방하려 한 일본이 송나라 때부터는 중국의 것을 별로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중국은 송나라 때 이미 기술적으로나 사상적 측면에서 서양의 근세 수준에 도달했으며 현재 중국의 부상 역시 이른바 “세계가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가고 있을 뿐”이라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그러면서 일본이 1000년 전에 글로벌 스탠더드인 중국화의 기회를 놓쳐버렸다면서 이제라도 중국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일본 출간 당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310쪽. 1만 4800원. 사물의 역습(에드워드 테너 지음, 장희재 옮김, 오늘의 책 펴냄) 인공 젖꼭지는 턱을 사용하지 않고 입으로만 빨아도 우유가 나오기 때문에 효율적이라고 여겨져왔다. 하지만 이렇게 인공 젖꼭지 수유 습관에 젖은 유아는 본능적으로 입을 크게 벌리지 않으려 해서 정작 모유 수유에는 어려움을 겪는다. 전장에서 부상을 막는 군사 도구로 사용됐던 헬멧은 광부, 건설 노동자, 소방관 등의 안전을 지키는 도구일 뿐 아니라 영유아의 질식 위험을 낮추는 동시에 뒤통수가 눌리지 않도록 도와주는 유아 헬멧의 특이한 형태로 발전했다. 국립미국사박물관의 수석연구원인 저자는 이 외에 운동화, 안락의자, 건반, 안경 등 인류가 고안하고 발전시킨 9가지 물건에 얽힌 숨겨진 기발한 이야기들을 풀어놓는다. 408쪽. 1만 6500원. 이순녀 기자 coral@seoul.co.kr
  • [커버스토리-열정 노동 강요하는 사회] 남보다 3배 더 일하고 월급은 3분의1

    [커버스토리-열정 노동 강요하는 사회] 남보다 3배 더 일하고 월급은 3분의1

    지난해 한국국제협력단(KOICA) 해외봉사단에 지원했다가 떨어진 신모(25·여)씨는 고민 끝에 올해 지원을 포기했다. 지난번 경험에서 학교나 종교단체 등을 통한 해외봉사 경력이 없으면 서류 통과도 어렵다는 점을 깨달았다. 신씨는 28일 “다들 소규모 해외봉사단에 참여한 뒤 그 경력을 디딤돌 삼아 더 큰 기관이 주관하는 해외봉사를 하더라”고 말했다. 해외봉사단 지원 수요가 늘다 보니 봉사활동에도 주관 기관에 따라 ‘급’이 생긴 셈이다. 지난해 현대차·LG·포스코·G마켓 등 기업 주관 해외봉사단의 평균 모집 경쟁률은 50대1을 넘었다. 해외봉사단이 인기인 이유는 자기소개서에 쓰는 ‘한 줄’로 기업이 원하는 열정을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4년제 대학 졸업 후 구직 중인 김모(28)씨는 “아무리 좋은 스토리를 준비해도 첫 질문에서 면접관 마음을 얻지 못하면 면접 내내 질문을 못 받는다”면서 “해외봉사단 경험은 서류 전형 통과에도 유리하고, 면접에서 인상적인 첫 대답을 할 때 좋은 예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해외봉사단 경험이 ‘선택’이라면 요즘 청년인턴제는 ‘필수’ 덕목으로 여겨진다. 이미 인턴 경험이 있지만 올해 또 인턴을 지원한 강인(27)씨는 “요즘은 다들 인턴 경력이 있어서 인턴을 하지 않았다면 그 직종에 대한 열정이나 준비가 부족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1990년대 세계화 구호와 함께 영어 학습 바람이 불면서 기업이 토익 점수를 요구하고, 곧이어 구직자 영어 점수 인플레이션 현상이 생겼던 것처럼 인턴 역시 구직의 필수 코스가 된 셈이다. 실제 통계청에 따르면 2008년 5월 10만 2200여명 수준이던 청년층 인턴 경험자는 2010년 22만 7400명, 2011년 162만 7000명으로 급증했다. 정부와 기업은 인턴 직원에게 ‘열정’을 기대하지만, 청년들의 열정은 사실 억지 춘향인 측면이 있다. 인턴제가 본격 활성화되던 2011년 인크루트가 20대 구직자 659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41.6%가 인턴제의 단점으로 ‘저임금 노동착취’를 꼽았다. 이어 25.5%가 ‘정규직이 되지 못했을 때 받는 물리적·심리적 피해가 매우 크다’고 답했다. 지역 언론사에서 3개월간 인턴을 한 김모(29)씨는 이 단점들을 모두 경험했다. 김씨는 인턴 기간을 “잃어버린 3개월”이라고 불렀다. “큰 이변이 없는 한 채용될 것”이란 회사 측의 설명을 들으며 100만원 남짓 월급에 쉬는 날 하루 없이 일했고 근무 성적도 좋았지만 최종 탈락했다. 탈락 이유가 지방대 출신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김씨는 “지방대가 ‘큰 변수’라고 미리 말해 줬다면 도를 넘는 부당한 근무 지시는 거부하고 당당하게 경험 삼아 일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씁쓸해했다. 인턴 경험은 짧게는 3개월, 길게는 10개월 정도 이어진다. 편법이지만 2년 가까이 인턴으로 고용되는 경우도 있다. 구직자들은 인턴 경험을 살려 정규직으로 입사하기를 꿈꾼다.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 일자리를 갖게 될 경우 중산층 이상 생활이 어렵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턴 경험 기간 자체가 이들이 공포스러워하는 ‘임금을 턱없이 적게 받지만 열정으로 버티는 기간’이 되고 있고, 인턴 이후 정규직 처우가 크게 개선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연예기획자를 꿈꾸며 지난해 인턴으로 연예기획사에서 일하던 이모(27·여)씨가 결국 꿈을 포기한 이유는 자신의 사수였던 정규직 대리의 월급이 자신과 몇십만원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씨가 “생활이 나아질 것이란 희망도 없고, 1년 내내 주말 없이 일하니 건강이 나빠졌다”며 사표를 내자 회사 측은 “열정을 높이 샀는데 안타깝다”고 대꾸했다. 회사 선배들이 “이번 생은 아닌가 보다”라며 스스로를 ‘열정 노동자’로 칭하는 것을 귓등으로 들었던 이씨이지만, 사표를 만류하는 단어로 ‘열정’이란 말이 나올 줄은 몰랐다. 김정근씨 등이 쓴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라는 책에서 유래한 ‘열정 노동자’는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열정을 보답으로 생각하며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를 이르는 말이다. 게임 업계 역시 일꾼들의 열정을 볼모로 열악한 근무 환경이 유지되는 일터로 분류된다. 게임 회사에서 캐릭터 디자인과 3D 화면 구축 업무를 담당하는 4년차 디자이너 윤모(32)씨는 “내 캐릭터에 대한 애착과 디자인을 하면서 느끼는 즐거움이 이 업계에 아직도 남아 있으려는 이유”라고 말한다. 거꾸로 말해 근무환경과 직원에 대한 복지는 이 일을 그만두고 싶은 이유 중 하나다. 게임 출시 반년 전부터는 매일같이 야근과 특근, 주말 근무가 이어지지만 초과수당은 먼 나라 얘기다. 윤씨는 “이런 열악한 환경을 뻔히 아는 상사들은 오히려 ‘다 알고도 들어온 것 아니냐’고 묻는다”고 말했다. ‘면접 때는 붙여만 주면 회사에 뼈를 묻겠다고 하더니’로 시작되는 상사들의 우스갯소리는 열정을 저당 잡힌 윤씨의 뒤통수를 때린다. 이씨와 윤씨는 “아직 결혼도 안 했고 그렇게 사는 게 힘들지는 않았다”면서도 “그래도 남들보다 3배는 더 일하면서 3분의1의 보상도 받지 못하는 것은 극복하기 어려웠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처럼 제대로 보상이 이뤄지지 않는 열정은 잘못이라는 ‘각성’이 일어나기까지 20년 가까이 걸렸다. 1995년부터 실용음악과, 방송연예과, 사진학과 등 문화 서비스 관련 이색 학과가 우후죽순 신설될 당시만 해도 1990년대 ‘신(新)인류’가 ‘신(新)직업인’으로 진화할 것이란 기대가 넘쳤다. 2001년 굶주려 사망한 최고은 감독도 당시 새로 생긴 학과에서 전문적인 교육을 받았다. 최 감독의 죽음 뒤 강우석 영화감독은 “영화계가 다 수용하지 못할 만큼 너무 많은 인력이 공급되는 것이 현실”이라고 한탄했다. “영화 쥐라기공원 한 편으로 버는 달러가 승용차 150만대 수출액과 맞먹는다”는 분석에 모두 스필버그를 꿈꾸었을 뿐 ‘돈벌이’란 현실 문제를 논하면 열정이 모자란 것처럼 취급한 관행이 문제라는 것이다. 비단 영화계뿐이 아니다. 수도권 4년제 사진학과 졸업생(29)은 “졸업 직후 60% 정도는 사진과 관계없는 일을 한다. 쇼핑몰을 운영하거나 PC방을 차리기도 하고, 시민단체로 가기도 한다. 사진으로는 먹고살기 어려우니 교수님들도 다양한 직업을 생각해 보라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사회에서 고등학생이 꿈을 좇아 사진학과를 선택한 것 자체가 열정을 증명한 일 아니냐”면서 “하지만 입학할 때 예술사진을 찍고 싶어 하던 열정가들은 작가로 성공한 선배를 봐도 생활이 어렵고 사람 자체도 어두우니 점점 회의를 느낀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꿈에 대한 열정 자체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던 학과생들의 자부심은 취업 준비와 함께 사라지기 일쑤다. 기업은 공식적으로 “스펙보다 열정”이라고 하지만, 토익과 경영학 전공 이수 과목이 없는 이들은 초라한 ‘스펙’ 때문에 열정을 보여 줄 면접 기회조차 갖기 어렵다. 이 때문에 예술대 취업률은 50%대인 일반 대학 취업률 평균의 반 토막 수준이다. 최근에는 폐과되는 영화학과도 생겨 영화 관련 학과 수는 2010년 100곳에서 2011년 99곳, 2012년 96곳으로 줄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가 열정을 찬미하며 개인에게 한시도 쉬지 않는 폭주기관차 인간이 되기를 바라고 있는데 이것이 가능한가”라면서 “사회가 적절한 보상 없이 개인에게 열정을 강요하는 건 의도가 순수하지 못하다. 폭주기관차는 언젠가 열을 받아 폭발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열정 노동처럼 한 사람에게 과도한 노동을 요구하는 건 개인의 노동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나누는 요즘 시대 상황과도 맞지 않다. 박근혜 대통령이 내놓은 창조경제도 창의성을 통해 사회 시스템을 바꾸겠다는 뜻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윤샘이나 기자 sam@seoul.co.kr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서울광장] ‘그들만의 리그’에서 호루라기 불기/최광숙 논설위원

    [서울광장] ‘그들만의 리그’에서 호루라기 불기/최광숙 논설위원

    미국 수사·정보 당국의 민간인 사찰, 원전 비리, 조세피난처 명단 공개 파장, 황우석 사태. 이들 사건의 공통점은 휘슬 블로어(whistle blower: 조직의 부정·비리를 호루라기로 불어 세상에 알린 내부고발자)에 의해 숨겨졌던 어마어마한 진실이 천하에 드러났다는 것이다. 에드워드 스노든 전 CIA 직원의 폭로가 없었다면 미 국가안보국(NSA)이 개인 정보를 불법 수집했다는 사실을 어찌 알겠는가. 조세피난처에 페이퍼 컴퍼니를 만든 이들의 면면이 드러난 것도 호주의 한 언론인에게 익명의 내부고발자가 조세피난처 정보를 보냈기에 가능했다. 원전 부품도 워낙 전문적 분야여서 내부 제보가 있기 전까지는 ‘완전 범죄’에 가까울 정도로 비리가 노출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논문조작 사건도 그와 일하던 한 연구원의 제보가 출발점이 됐다. 세상이 복잡해지고 전문화되면서 각 집단은 저마다 견고한 ‘성’(城)을 쌓고 살아간다. 그 성 안의 부정과 부패의 커넥션은 좀처럼 바깥에 드러나지 않는다. 내부고발자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으로 곪아가는 부패의 고리를 끊어내 정상으로 되돌리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내부고발자를 보는 시선은 극단적으로 엇갈린다. 스노든을 두고도 미국에서 ‘영웅’ 또는 ‘배신자’라는 상반된 평가가 나온다. 해당 기관에선 조직에 흠집을 낸 ‘밀고자’라고 비판한다. 내부고발자는 폭로한 내용의 중대성과 폭발성에 비해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라크 주둔 미군의 민간인 살해 등을 폭로한 브래들리 매닝 일병은 간첩죄 등 혐의로 3년간 구금됐다가 최근 재판을 받고 있다. 정권 비리를 폭로한 이문옥 감사관, 군 부재자 투표 부정을 고발한 이지문 중위 등 우리의 내부고발자 역시 직장에서 쫓겨나고 공무상 기밀누설 혐의 등으로 구속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만의 리그’에 속해 있던 이가 양심과 정의의 호루라기를 힘껏 불어 조직의 부정·부패·비리 등을 외부에 알림으로써 정의를 바로 세우고, 부정·부패를 추방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순기능이 더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내부고발자들의 용기와 희생이 없었더라면 중요한 ‘진실’들은 영원히 땅속에 파묻히고, 크고 작은 ‘정의’들도 불의에 굴복했을지 모를 일이다. 사위의 불륜 상대로 의심한 여대생을 미행하다 청부 살해해 무기징역 선고를 받은 회장 사모님이 4년여 동안 교도소 대신 병원의 VIP 병실에서 지낸다는 사실도 병원의 한 직원이 “살인범이 저래도 되나” 하는 마음으로 제보를 했기 때문에 이를 단죄할 수 있는 계기가 생겼다. 어디 그뿐인가. 한 공기업 직원들이 민원인 행세를 하며 고객 만족도 조사에 응해 기획재정부로부터 190억원의 성과급을 받았다가 적발된 것도 내부 직원의 양심 신고 덕분이었다. 부부가 동네 의원과 약국을 운영하면서 진료기록과 약국 내방일 수를 거짓으로 늘려 수억원의 의료급여 비용을 부당청구한 사실을 적발한 배경에도 내부 제보가 있다. 원전 비리에서 보듯 공공부문이든 민간부문이든 공익을 해치는 행위는 점차 은밀화·구조화·지능화되어 간다. 내부 구성원들의 정보 없이는 감독기관이나 수사기관의 노력만으로 각종 비리의 결정적 증거를 확보해 바로잡는 게 쉽지 않다. 내부고발자 중에는 불순한 개인적 동기로 폭로를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내용이 거짓이 아니고, 신고와 관련해 금품이나 어떤 특혜를 요구하는 등 부정한 목적으로 신고한 경우가 아니라면 사회적 보호를 받아야 할 것이다. 요즘 나라 안팎의 사건들을 보면 더욱 폭넓고 정교한 내부 고발자 보호 대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더 중요한 것은 내부고발자들이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는 사실은 잊은 채, 그들을 은연중 ‘믿지 못할 사람’ ‘조직에 뒤통수를 친 사람’이라고 삐딱하게 보는 시선을 거두는 일이다. bori@seoul.co.kr
  • “北, 2·29 합의+α 이행하라” 한·미·일, 비핵화 강경 압박

    한국, 미국, 일본은 19일(현지시간) 북한이 ‘2·29 북·미 합의’보다 더 높은 의무를 이행해야 북한과의 대화에 나서겠다는 강경 입장에 합의했다. 북핵 6자회담 한국 측 수석대표인 조태용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미국 측 수석대표인 글린 데이비스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 일본 측 수석대표인 스기야마 신스케 아시아대양주 국장은 이날 미국 워싱턴에서 가진 3자 회동에서 대북 대화 재개의 전제 조건으로 “2·29 합의보다 더 강한 의무가 북한에 부과돼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고 조 본부장이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지난해 2월 북·미 간에 타결된 2·29 합의는 핵·미사일 실험 중지(모라토리엄),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 중단,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 허용 등 3가지를 북한의 비핵화 사전 조치로 규정한 바 있다. 결국 이 3가지 사전 조치+알파(α)를 한·미·일이 새롭게 대화 재개의 전제 조건으로 제시한 것이어서 북한과 중국의 반응이 주목된다. 조 본부장은 21일 중국을 방문해 우다웨이 중국 측 수석대표에게 이 같은 입장을 전달할 것으로 알려졌다. 조 본부장은 이날 한국 특파원 간담회에서 ‘+α’의 내용에 대해 “현재 생각하고 있는 것은 있지만 북한, 중국 등 협상 상대자와 먼저 얘기해야 하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고 답했다. 다만 +α 제기 배경에 대해서는 “지난해 북한이 2·29 합의를 깨고 핵실험 등을 하면서 신뢰가 떨어졌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볼 때 다시 대화를 하려면 북한이 더 강화된 의무를 이행해야 ‘북한이 이번에야말로 진지하게 임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겠느냐”면서 “2·29 합의는 이제 최소한의 의무이고, 그보다 더 나가야 6자회담이 재개되더라도 진전될 가능성이 있다는 데 3국이 공감했다”고 설명했다. 외교 소식통은 “북한의 2·29 합의 파기로 뒤통수를 맞은 미국 정부는 북한과의 대화 재개에 아주 부정적인 입장”이라고 전했다.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 “장애인체육회 코치, 선수 폭행·성희롱”

    지난해 9월 런던 장애인올림픽 지도자들이 국가대표 선수들을 상습적으로 폭행, 성희롱하고 금품까지 갈취한 사실이 국가인권위원회의 직권조사 결과 드러났다. 인권위는 당시 보치아 종목에서 국가대표팀 수석코치가 선수를 폭행하고 금품을 갈취했다는 의혹이 언론에 보도되자 대한장애인체육회와 가맹단체에 대한 직권 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인권위는 장애인 국가대표 선수들에 대한 지도자들의 인권침해 사실을 확인하고, 장애인체육회와 문화체육관광부에 선수들의 인권 보호를 위한 대책 마련을 권고했다고 19일 밝혔다. 인권위가 장애인 국가대표 감독과 수석코치, 선수 등 18명을 조사한 결과 A수석코치는 대표팀이 8강 단체전에서 패한 다음 날 개인전 출전을 독려한다며 선수의 뒤통수를 때렸다. A수석코치는 평소 습관적으로 1급 뇌병변 장애인 등 선수들에게 욕설을 하고 경기 결과가 좋지 않을 때에는 뒤통수를 때리거나 주먹과 공으로 몸을 때리는 등 이들을 폭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B코치는 자신의 지시에 불손하게 대응했다는 이유로 선수의 뺨과 가슴 등을 때린 사실이 드러났다. 지도자가 선수들을 성희롱한 사실도 확인됐다. C코치는 여성 선수에게 “활동 보조인이 지원되지 않으면 내가 목욕도 시켜 주고 용변도 처리해 주겠다”고 말해 선수에게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했다. D코치는 훈련 중 선수들에게 자세를 설명하다 특정 선수에게 “가슴이 크면 유리하다”고 말했다. 일부 지도자는 선수로부터 금품을 뜯기도 했다. E수석코치는 선수와 선수 누나에게서 휠체어 등 훈련용품 구입비 조로 2010년부터 2년 동안 아홉 차례에 걸쳐 565만원을 자신 명의의 통장으로 송금받았다고 인권위 조사에서 시인했다. 장애인체육회의 부실한 조치도 지적됐다. 장애인체육회는 지난해 10월 폭력 진상조사단을 꾸려 조사를 벌였고, 가맹단체에 확인된 관련자에 대한 징계를 요구했다. 하지만 장애인체육회는 지도자에 대한 징계처분 과정에서 피해 사실을 신고한 선수 이름을 노출해 선수들에게 2차 피해를 끼치는 등 부적절하게 조치한 것으로 밝혀졌다. 인권위는 이 같은 직권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장애인체육회장에게 지도자 양성 과정에서 장애인 인권교육과 성희롱 예방 교육을 진행하고 장애인 인권침해 전문상담가를 배치하도록 권고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北의 말보다 행동으로 평가할 것”

    북한의 지난 16일 북·미 고위급 회담 제의에 대해 미국이 즉각적으로 냉랭한 반응을 보여 주목된다. 케이틀린 헤이든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은 16일(현지시간) “미국은 항상 대화를 선호한다”면서도 “신뢰할 수 있는 협상이 되려면 북한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을 준수하는 것을 포함해 국제 의무를 지켜야 한다”고 밝혔다. 데니스 맥도너 백악관 비서실장도 비슷한 시간 CBS 방송에 출연해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대화를 지지한다는 것은 아주 명백한 일”이라면서도 “대화는 실질적이어야 하며 북한은 핵무기, 밀수, 기타 문제를 포함해 의무를 준수한다는 점에 바탕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은 어제 북한이 말한 그럴듯한 말보다 행동으로 그들을 판단할 것”이라면서 “분명한 점은 북한이 번지르르한 말로 전통적인 두 동맹국인 러시아와 중국의 지지를 받는 안보리 제재를 피하지 못한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백악관의 이 같은 반응은 북한이 회담을 제의한 지 12시간도 안 돼 나온 것이어서 이례적이다. 그만큼 미국 정부는 북한의 이번 회담 제의를 제재를 모면하기 위한 진정성 없는 대화 제스처로 판단하고 있다는 얘기로 해석된다. 외교 소식통은 “오바마 행정부는 지난해 2·29 북·미 합의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북한이 장거리 로켓을 발사하는 식으로 뒤통수를 친 이후 북한을 믿지 못하는 트라우마가 생겼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백악관이 “대화의 문은 항상 열려 있다”고 여지를 남긴 점을 들어 시간이 좀 흐른 뒤 올해 안에 미국이 전격적으로 회담에 응할 가능성이 있다는 시각도 아주 없지는 않다. 실제 지난해 2·29 합의 때도 미국은 합의가 힘들 것처럼 시치미를 떼다가 전격적으로 발표한 바 있다.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 새누리 “비핵화도 의제 다뤄야” 민주 “정상회담까지 이어가야”

    국회 대정부질문 이틀째인 11일 여야는 남북당국회담을 관계 정상화의 계기로 활용할 것을 주문했지만 각론은 달랐다. 외교·통일·안보 분야 질문에서 새누리당은 이번 회담에서 비핵화도 의제로 다뤄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민주당은 회담을 발판 삼아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고 정상회담까지 이어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은 “새 정부 출범 이후 첫 책임 있는 당국 간 대화로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첫 단추를 끼우는 것”이라면서도 “하루 전날까지 우리 수석대표의 상대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있다면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에 정홍원 국무총리는 “남북대화를 통해 낮은 단계부터 신뢰를 쌓아가면 큰 협력 관계가 이뤄질 것”이라면서 “신뢰를 구축하고 진실성을 확인해 앞으로 협력관계로 발전해 나가는 데 뜻이 있다”고 말했다. 정 총리는 남북정상회담 추진 가능성에 대해서는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이산가족 상봉 문제 등에 진전이 있을 것으로 본다”고 기대하면서 진성준 민주당 의원이 6자 회담 복원을 강조하자 “6자 회담을 위한 회담은 의미가 없다. 우리와 미국이 요구하는 것은 진지성과 비핵화 의지, 진실성 담보”라고 답했다. 조명철 새누리당 의원은 라오스의 탈북 청소년 강제 북송에 대해 “북한은 군사작전을 벌이듯 탈북 청소년을 평양으로 보냈고 우리는 ‘정보 먹통’ 상태로 공작에 허를 찔렸다”고 비판하면서 “대라오스 유무상 지원액이 1억 7000만 달러나 되는데 최소한 뒤통수는 맞지 말아야 할 것 아니냐”고 따졌으며, 정 총리는 “근본적으로 라오스에서 약속한 것을 지키지 않았으나 우리 정부로서도 충분히 예측하지 못한 것은 고쳐나가겠다”며 유감을 표시했다. 한편 국가정보원의 불법 선거개입 수사에 대한 황교안 법무장관의 수사개입 의혹과 관련, 정 총리는 “수사 중인 사건을 알아볼 입장이 아니라 잘 알지 못하지만 황 장관이 부당한 압력을 행사할 사람은 아니다”라고 두둔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아이언맨보다 매력적… 로다주 긴장해야 할 겁니다”

    “아이언맨보다 매력적… 로다주 긴장해야 할 겁니다”

    “영화 ‘아이언맨’ 같은 영웅담이지만 훨씬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배우들,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주인공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긴장해야 할 겁니다.” 지난 3일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에서 열린 뮤지컬 ‘스칼렛 핌퍼넬’의 기자간담회에서 배우 한지상(31)은 재치 있는 발언으로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프랑스 혁명기의 영웅담을 소재로 다음 달 국내 초연되는 뮤지컬 ‘스칼렛 핌퍼넬’에 그는 배우 박건형, 박광현과 함께 트리플 캐스팅됐다. 안방극장으로, 스크린으로 종횡무진 활약하는 두 배우들한테도 결코 밀리지 않는다. 선명한 이목구비, 강렬한 눈빛에서 뿜어나오는 그의 ‘포스’가 예사롭지 않다. ‘스칼렛 핌퍼넬’은 영국 작가 바로네스 오르치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낮에는 영국의 한량 귀족 퍼시로, 밤에는 로베스 피에르 공포정권의 감옥에 갇힌 사람들을 구출하는 비밀결사대의 수장 스칼렛 핌퍼넬로 이중생활을 하는 영웅의 이야기다. 프랑스의 여배우 마그리트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지만 퍼시는 마그리트를 프랑스의 첩자로 오해하면서 돌아서고, 로베스 피에르의 수하인 쇼블랭과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벌인다. 한지상은 주인공 캐릭터를 ‘완벽하진 않지만 개성 있는 영웅’이라고 소개했다. “한량 귀족이면서 능구렁이 같은 퍼시는 모두가 우러러볼 영웅은 아니에요. 하지만 악에 맞서는 과정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뻔한 영웅담을 풀어놓지 않는다는 점이 매력있어요.” 또한 사랑에 빠져 앞뒤 가리지 않고 헌신하다 배신으로 뒤통수를 맞는, 지금까지의 영웅담과는 달리 로맨틱한 부분이 유달리 많다고도 덧붙였다. 그가 빚어낼 스칼렛 핌퍼넬은 어떤 매력일까. 그의 새 무대에 특히 여성관객들이 거는 기대는 뜨겁다. 9일 막 내리는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에서 예수를 배반하고 고뇌에 빠지는 유다 역으로 크게 호평을 받았다. 섬세한 내면 연기, 폭발적인 가창력에 여성 팬들은 “‘한유다’의 섹시함에 정신줄을 놓았다”며 열광하고 있다. 대형 뮤지컬 스타 등극이 눈앞의 현실이 됐는데도 그는 오히려 덤덤하다. “인터넷 검색은 잘 하지 않아요. 그냥 주변사람들이 얘기해주니 아는 정도예요.” 분명한 사실은 ‘지저스’가 그를 배우로 우뚝 세운 결정적인 전환점이 됐다는 것이다. “무대에서 좀더 자유로워질 수 있었어요. 맡은 캐릭터를 제가 원하는대로 표현해도 거리낌이 없게 됐다고 할까요.” 천상 배우인 듯 재능이 넘쳐나는 그이지만 고교시절까지만 해도 그저 평범한 학생이었다. 수줍은 성격에 모범생 소리만 들었다. 그러다 “공부가 아닌, 내 속의 무언가를 끌어내는 일을 하고 싶어” 성균관대 연극영화과에 진학했다. 그 후 대학교 2학년이던 2005년 시험 삼아 뮤지컬 ‘그리스’ 오디션을 보러 갔다 덜컥 합격해 무대에 데뷔했다. 배우라는 이름표가 좋아 군복무를 할 때도 무대(서울경찰홍보단 호루라기연극단)를 떠나지 못했다. ‘넥스트 투 노멀’ ‘서편제’ ‘환상의 커플’ ‘완득이’. 최근 2년여 쉬지 않고 다작을 하면서 스스로 일중독자가 된 느낌도 든다. 그런 그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처방이 무엇일지 물었다. 역시, ‘배우 중독’ 증세가 심각하다. “미치도록 한 여인을 사랑하는, 세상에 다시 없는 로맨티시스트 연기를 해보고 싶네요”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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