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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때렸다”…서장훈, 폭행 사건 90도 사과

    “때렸다”…서장훈, 폭행 사건 90도 사과

    프로농구 선수 출신 서장훈이 후배 하승진에게 사과했다. 11일 JTBC ‘아는 형님’에는 전 농구선수 하승진, 전 배구선수 김요한, 개그맨 허경환이 출연했다. 이날 서장훈은 “농구 팬들은 아는 일”이라며 2009년 4월 플레이오프 경기 도중 하승진의 뒤통수를 가격한 사건을 언급했다. 서장훈은 “당시 하승진이 공을 잡으면 팔꿈치가 내 얼굴을 쳤다”며 “‘승진아 팔’이라고 말하다가 세 번째 맞았을 때는 화를 참지 못하고 뒤통수를 때렸다”고 고백했다. 이어 “그때도 그렇고 미안하게 생각한다”며 90도로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이에 김희철은 “지금까지 가해자의 시점이나 피해자의 시점에서 들어보겠다”고 하승진에게 당시 상황을 설명해달라고 했다. 하승진은 “굉장히 치열한 대결이었고, 의도적으로 때린 건 아닌데 내가 팔꿈치를 들면 그 위치다. 순간 느꼈다”고 설명했다. 그는 “내가 이렇게 자리를 잡으면 서장훈 선배가 불편한 걸 느꼈다”면서도 “일부러 팔꿈치를 내릴 수 없지 않냐. 그러다가 팔꿈치 공격을 의도치 않게 몇 번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장훈 선배가 제 팔을 잡아서 내가 신경질적으로 팔을 확 뺐다. 그러고 나서 서장훈 선배가 나를 빡 때린 건데”라고 억울해했다. 이에 서장훈은 “이유가 어찌 됐든 어린 승진이한테 내가 화를 못 참고 때린 건 잘못”이라고 사과했다.
  • 폴리 사운드/홍성구[서울신문 2025 신춘문예 - 소설]

    폴리 사운드/홍성구[서울신문 2025 신춘문예 - 소설]

    텔레비전과 비디오가 결합된 제품이었다. 이름은 비디오 비전. 검고 매끈한 TV 수상기 밑에 VHS 투입구가 달린 모델이었다. VHS 투입구에 손을 넣었다 빼면 미지의 세계로 안내하는 관문처럼 마구 펄럭였다. 나는 그게 마치 누구의 손짓 같아서 그 문이 금세 닫힐 것 같은 조바심에 손을 넣었다 뺐다 넣었다 뺐다, 반복했다. 하지만 매번 편지 한 통 없는 우편함처럼 미지의 그곳은 텅 빈 공백으로 열렸다 닫힐 뿐이었다. 비디오테이프를 밀어 넣으면 어딘가 멋진 곳으로 안내받을 수 있을 텐데. 그러나 집에는 어린이용 비디오테이프는커녕 호환 마마보다 무섭다는 불량·불법 비디오테이프 하나 없었다. 그래도 나는 끈질기게 그 일을 멈추지 않았다. 집에서는 딱히 할 일이 없었으니까. 그날은 평소에 뽑혀 있던 케이블이 비디오 비전의 본체와 콘센트 사이에 연결돼 있었다. 미지의 세계 관람권인 비디오테이프는 없었지만, 입장권을 들고서 문 앞에서 돌아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TV 전원을 켰다. 리모컨을 든 나는 놀이공원 앞에 서 있던 게 분명하다. 그러나 환해진 직사각 화면에는 기대와 다르게 회색의 담벼락이 펼쳐졌다. 황량한 공장의 경계를 드러내는 콘크리트 담. 공장 담벼락 같아서였을까. 소음이 들렸다. 치이이-익. 치이이—익. 11번으로 9번으로 7번으로 채널을 바꿔도 소용없었다. 방송이 송출되지 않는 낮 시간대였다. 실망을 금치 못한 나는 리모컨 버튼을 이것저것 만지작거리면서도 전원 버튼 근처는 누르지 않았다. 은밀한 일탈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회색 소음이 진동하였다. 나는 속수무책으로 멍해져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들어 버렸다. 회색 소음과는 다른 소음을. 삐-------이. 삐—————————익. 회색 소음보다 높고 날카로운 소음이었다. 귀에 거슬려 TV를 끄려다 소음의 정체에 의문이 생겼다. 회색 소음은 회색 화면에 어울리는, 공중에 스크래치가 그어지는 소리였다. 그러나 높고 날카로운 소음은 회색 스크래치와 이질적이었다. 저 소음을 방송국에서 보낸 것일까. TV 스피커에 귀를 갖다 대고 나서야 알아차릴 수 있었다. TV 스피커에서 높고 날카로운 소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모기가 귓가를 스치는 정도로 시작되는 데시벨은 금세 한여름 매미 떼의 데시벨로 거세지고는 했다. 나는 당연히 아버지와 누나도 소음에 시달릴 거라고 생각했지만, 두 사람은 TV를 볼 때 별다른 말이나 반응이 없었다. 소음을 듣지 못하는 건 수리기사도 마찬가지였다. 평범하게 생긴, 그리 크지 않은 귀를 스피커에 갖다 댄 수리기사는 고개를 몇 번 갸웃했다. 수리기사의 고갯짓에 아버지는 그것 보라는 눈빛을 나에게 던졌다. 나는 초조해져서 열 손가락을 움직이다가 매미 떼가 맹렬히 힘줄을 튕길 때 지금이라고 외쳤다. 수리기사는 평범한 귀를 다시 스피커에 밀착했고 아버지도 그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러나 그들은 끝내 소음을 듣지 못했다. 아버지는 나를 예민한 아이로 치부하며 미안하다고 말했고, 수리기사는 공구함 한 번 열지 않았다며 출장비를 사양했다. 거실에 혼자 남은 나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매미의 합주를 들었다. 이렇듯 분명히 울리는 소리를 나만 듣는다는 게 답답하거나 억울하기보다는 어쩐지 서글펐다. 그때였을 것이다. 나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명백히 혼자라고 느꼈다. 사운드 디자이너라고 하면 고민 없이 부풀어 오른 질문들이 날아든다. 음악하세요, 아니 디자이너니까 미술 쪽인가. 사운드를 디자인화하나요, 디자인을 사운드화하나요. 청각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공감각의 예술인가. 나는 내가 하는 일이 고요한 공중에서 날개를 퍼덕이는 잠자리를 몰래 잡아채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포획의 목적은 잠자리가 아니다. 잠자리의 소리다. 그물망에 든 잠자리를 조심히 빼서 사각의 채집통에 넣어 두고 귀를 연다. 잠자리의 날개끼리 충돌해서 나는 타닥타닥 소리. 그 소리는 점점 허물을 벗어 잠자리에서 탈피한다. 사운드 디자이너는 잠자리의 소리를 다른 무언가의 소리와 연결하는 사람이다. 대개 이런 식으로 설명하면 사람들은 다시 묻는다. 그러니까 대체 뭘 어떻게 한다는 거예요. 사실 뭘 어떻게 인위적으로 한다기보다는 사물에 있는 것을 튀어나오도록 하면 된다. 숨어 있는 물성이 드러나도록 상황을 마련하는 게 나의 일이다. 적막한 설산을 걸을 때는 굵은 소금이 뿌려진 바닥을 밟으며 밀가루 포대를 손으로 주무른다. 수풀이 바람에 휘날릴 때는 릴테이프 더미를 양손 사이에 놓고 비빈다. 중세 시대의 굳게 닫혀 있던 성문이 열릴 때는 콘크리트 벽돌들을 포개어 놓고 두 벽돌을 맷돌 돌리듯이 간다.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게 아니다. 있는 것을 끄집어내면 된다. 채집하고 발견하는 셈이다. 순서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채집하려면 발견이 우선 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 일은 채집이 먼저이다. 채집한 후에야 발견할 수 있다. 조선시대 사극에 매달려 있던 때였다. 그 작업은 현대에서는 접하기 힘든 소리의 연속이었다. 그중 가장 힘든 것은 활시위가 당겨지는 소리였다. 적을 물리치겠다는 일념하에서 적장을 향해 팽팽해진 활시위의 탄력과 긴장을 어떻게 해야 소리로 튀어나오게 할 수 있을지 고민이 깊어졌다. 활시위와 연결할 수 있는 사물이 떠오르지 않아 활 자체로 가능할지 시도해 봤다. 하지만 실제로 눈을 밟는 것보다 소금을 밟는 소리가 사람들 머릿속의 눈 발자국 소리에 더 가깝다는 사실은 아이러니다. 수풀보다 릴테이프가 더 실감 나는 것이다. 활을 아무리 팽팽히 당겨도 소용없었다. 내가 당긴 활시위에서는 음률이 없는, 맥 빠진 거문고 줄 소리가 났다. 가죽가방과 고무장갑 따위를 비틀고 늘려도 소득은 없었다. 뭘, 그렇게 발길질당한 강아지마냥 낑낑대요? 고무장갑의 탄성 한계 때문에 경련을 일으키는 두 팔을 채아가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스튜디오에서 녹음과 믹싱 작업을 맡고 있는 채아는 내 입에서 난다는 소리를 자주 타박했다. 힘을 쓸 때나 뭔가에 몰두할 때나 밥을 먹을 때도 개 같다고 했다. 선배에게 개 같다니 참 맹랑한 말이지만, 나는 내가 소리를 낸다는 게 더 신경 쓰였다. 남의 소리는 그렇게 잘 들으면서 어떻게 자기 소리는 못 들을 수 있어요. 무슨 소리를 내냐고 반문했을 때, 채아는 내 직업적 소양이 의심된다며 따졌다. 가벼운 발길질이 아냐. 늘씬하게 얻어맞은 것 같아. 무심결에 또 어떤 소리를 냈을까. 궁금했지만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금방이라도 숨 꼴딱거릴 것처럼 혀 내밀고 있지 말고 수분 보충 좀 해요. 선배를 계속 개 취급하는 못된 버르장머리에 대해 한마디 하려다가 채아가 건네는 맥주캔을 넙죽 받았다. 거절하기에는 맥주캔의 표면이 얼음장처럼 시원했다. 나는 모래가 쌓여 있는 바닥에 널브러졌다. 이게, 이럴 때는 백사장 같네. 나는 손으로 모래를 뒤적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모래 옆에는 나무 옆에는 대리석 옆에는 소금 바닥이 있었다. 왜요? 휴가 못 가는 삶이 처량해요? 채아가 자신의 맥주를 들고 옆에 앉았다. 채아는 엉뚱하게 넘겨짚는 구석이 있었지만, 캐묻지 않고 넘겨짚는 포즈를 취한다는 점에서 그리 나쁘지 않은 파트너였다. 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맥주를 마셨다. 알코올의 독성이 빈속을 찔렀다. 불법을 저지른 듯한 짜릿함. 백사장이 아닌 모랫바닥에서라도 잠시 쉬고 싶었다. 나는 금세 침묵에 이르렀고 내 마음을 넘겨짚었는지 채아도 보조를 맞췄다. 창고라고 불리는 작업실에는 철가방, 문손잡이, 깡통, 톱, 바이올린 활, 구두, 로프, 용수철, 자동차 문짝이 나름의 질서 속에 존재했다. 스스로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지만, 물성을 깨우는 힘에 연주하는 악기들. 악기들은 지휘자가 없다는 듯 고요했다. 소리에 민감한 사람에게 고요는 휴식 또는 죽음과 같다. 스르르 눈이 감겼다. 그러나 곧 수면의 문턱을 넘다 정강이가 쾅, 부딪혔다. 뭐야. 미안해요. 블루투스가 꺼진 줄 모르고 볼륨을 키웠네. 끌게요. 아니야, 끄지 마. 본능적으로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다가가자 채아는 스마트폰 화면을 내밀었다. 채아가 무안할 만큼 거친 손길로 스마트폰을 뺏어 들었다. 화면 속 영상에서 판다 한 마리가 죽순을 맛있게 뜯고 있었다. 선배도 얘 알아요? 선배가 알 정도면 푸바오가 인기긴 인긴가 보네. 나는 스마트폰을 던지듯이 채아에게 떠넘기고 진열장을 뒤적였다. 구석에 처박혀 있던 것을 찾아 꺼낼 때는 낮게 탄성이 배어 나왔다. 갑자기 죽도는 왜 꺼낸 거예요? 나는 채아의 말에는 신경 쓰지 않고 샷건마이크 앞에 섰다. 대나무로는 텅텅, 비어 있는 소리만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판다의 날카로운 이빨과 단단한 턱은 예상치 못한 대나무의 물성을 깨우고 있었다. 판다가 씹는 게 죽순이 아니라 겉과 속이 단단한 뼛조각처럼 느껴졌다. 죽도를 두어 번 바닥에 내려쳤다. 탁탁. 대나무를 다른 사물에 부딪치는 것으로는 부족했다. 나는 죽도를 감싸고 있는 줄을 칼로 끊어 버리고 붙어 있는 네 쪽의 대나무에 칼집을 내어 서로 떨어뜨렸다. 그러고는 떨어진 대나무들을 한 손에 감싸고 가볍게 비볐다. 부드득. 귀가 열리는 기분이었다. 죽도를 샷건마이크에 더 가까이 대고 온 힘을 다해 두 손으로 대나무들을 비볐다. 부드드드드드드득. 대나무에서 소리가 튀어 올랐고, 활시위를 당기는 팽팽한 팔뚝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사물의 성질은 마찰에 의해 드러난다. 우리가 외부와 마찰을 빚을 때 나를 인식하는 것처럼. 소리를 발견한 쾌감에 대나무를 비비는 나의 팔뚝은 한껏 부풀어 오르는 것 같았다. 사극 작업이 끝나고 몇 개월 뒤에 스튜디오를 그만두었다. 사극은 흥행에 성공했고 입소문이 났는지 작업 물량이 컨베이어벨트처럼 이어졌다. 줄지어 운반되는 의뢰를 수하물로 적재하고 물품을 의뢰서에 맞게 포장한 후에 다시 컨베이어벨트로 출하하는 기계적인 시간이 계속됐다. 과로나 질식이 원인은 아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내가 소리를 단순 제조하는 업자가 되리라는 두려움이 찾아들었다. 납품 기한을 맞추기 위해 기존에 녹음해 둔 파일들을 대강 믹싱하는 일들이 빈번해졌다. 나는 발자국 소리에도 캐릭터가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인을 만나러 달리는 그리움이 실감되도록 수십 번을 달리고 또 달리고, 도회적인 세련 아찔한 피로 흔들리는 일상이 전해지도록 하이힐을 신고 균형을 잡던 시간이 떠올랐다. 당분간 멈춰야 했다. 휴가를 가랬더니 휴식에 들어가네. 채아는 내가 내민 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물끄러미 보았다. 채아의 눈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머뭇거림이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뭔가를 넘겨짚었는지 다가와서는 자신의 두 손으로 내 손을 감쌌다. 나는 계획하지 않고 쉬는 계획을 세웠다. 눈이 감길 때 자고 눈이 떠질 때 일어나고 때가 이르거나 늦게 식사하고 술을 가볍게 또는 취하도록 마시고 느릿느릿 산책하고 레고 블록으로 별이 빛나는 밤을 조립했다. 집 근처를 돌거나 여행을 떠나서 풀벌레, 지하 터널, 경운기, 야적장, 항만, 오일장, 밤바다에 붐마이크를 갖다 댔다. 녹음 파일들을 순서대로 차곡차곡 쌓았고, 녹음한 소리를 들으며 잠들었다. 시간은 왜곡 없이 흘렀고 나는 날짜와 요일 감각을 잃었다. 일상에 파동이 없었다. 파동이 없으므로 외부에 닿는 주파수도 없을 터였다. 송신하지 않고 수신하지 않는 생활. 나는 자유로이 고립되었다고 느꼈다. 누나에게서 연락이 오기 전까지는. 돌아가셨다. 누나의 말에 잠시 정적이 돌았다. 누나와는 일 년에 한 번 연락할까 말까 하는 사이였으므로 액정 화면에 뜬 두 글자에 나는 이미 예감했던 것 같다. 그래서였을까. 내가 한 말은 고작 알겠다, 였다. 아버지의 장례식은 조촐했다. 친척은 남보다 못한 사람들이어서 코빼기도 볼 수 없었고, 아버지가 은퇴한 지 십여 년쯤 지나서 대표이사가 보내는 화환조차 없었다. 나는 주로 국화가 장식된 제단 옆에 앉아 있었고, 한 번쯤 봤거나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과 맞절했다. 둘째 날 오후, 누나가 식탁으로 나를 불렀다. 주변 식장은 조문객들로 붐볐지만 장례 도우미를 제외하고는 누나와 나만 식장을 지키고 있었다. 누나는 대뜸 앉으라고 말했다. 누나는 군말하는 법 없이 할 말만 하는 사람이므로 나는 군말 없이 누나와 마주 앉았다. 일 미터쯤의 간격조차 어색한 사이였지만 누나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기억 속 어느 날에는 없었을 주름과 기미가 보여 열 살의 터울이 새삼스러웠다. 미처 상의하지 못한 장례 절차에 대해 말하겠거니 생각하고 있던 내게 누나는 구겨진 편지 봉투를 내밀었다. 반으로 접힌 편지 봉투는 살짝 불룩했다. 너한테 필요할 거다. 누나의 단정에 나는 편지 봉투에 든 것을 꺼냈고, 내 손에 쥐어진 것은 카세트테이프였다. 겉면 라벨에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고 손때와 볼펜 얼룩이 낀 낡은 상태였다. 카세트테이프를 보자마자 나는 그게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있었고, 누나의 말처럼 내게 필요하리란 것도 알 수 있었다. 아버지의 장례식이 끝나고 나서 나는 일산으로 이사했다. 아파트 단지로 개발되지 않은 땅에 창고가 딸린 농가주택이 비어 있었다. 창고를 작업실로 쓰면 되겠다는 심산에 덜컥 결정을 내렸다. 파동 없는 삶의 관성에서 벗어난 것이다. 벗어나려고 했다기보다는 벗어날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아버지의 죽음이 빚은 진동이 나를 다시 작업실로 이끌었다. 나는 일산의 공사장, 분리수거장, 고물상을 돌아다니며 눈에 띄는 물건들은 모두 채집하였다. 농기구와 농약, 비료 포대 등이 있었을 창고는 각목, 글러브, 밥솥, 스케이트보드, LP, 유리컵, 프라이팬, 사기그릇, 고무 팩 등이 있는 작업실로 탈바꿈되었다. 작업실의 윤곽이 자리잡힌 날, 양쪽에 테이프 플레이어가 장착된 더블 데크 카세트 플레이어를 진열장에서 꺼냈다.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발견한 괜찮은 매물이었다. 예상외로 쓸 일이 없다가 이사 오기 전에 쓰고 이번이 두 번째였다. 편지 봉투에 담긴 테이프가 자리를 바꿔 플레이어에 담겼다. 달칵, 버튼이 눌리면서 테이프는 돌아가고 슥삭슥삭, 과도에 사과 껍질이 벗겨지고 있었다. 큼큼. 부스럭 부스럭. 이게 맞나. 탕. 텅. 아, 아. 아버지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통기타를 쳤다. 장롱 위에 뿌연 먼지를 덮어쓴 커버에 담겨 있던 통기타이리라. 나는 아버지가 통기타를 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어린 나는 연주되지 않고 진열되지 않은 채 장롱 위에 방치된 통기타의 존재성이 의아했다. 통기타의 쓸모를 알 수 없던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연주가 녹음된 테이프를 들으면서 나는 통기타는 방치되었던 것이 아니라 안치되었던 것이 아닌가 짐작하였다. 가슴에 묻어 둔 열망이 장롱 위에 놓이는 방식으로 드러난 게 아닐까. 눈에 보이면 마음이 근질거리고 눈에 안 보이면 마음이 서걱여서 대강의 형태로 보이게 놓아둔 것은 아닌지. 동그란 스피커에서 가리워진 길이 울려 퍼졌다. 아버지의 노래는 후렴에 이르러 그대를 애타게 불렀지만, 핸드폰 벨소리가 울려 길을 터 줄 그대를 더 호출하지 못했다. 장례식이 끝나고 일주일쯤 지났을 때는 여기까지 들었다. 나는 마음먹은 대로 더 듣기로 한다. 여보세요. 아버지의 음성이 저랬구나. 아버지가 스피커에서 멀리 떨어졌는지 통화 내용은 잘 들리지 않았다. 1분도 지나지 않아 통화는 끝났고 아버지는 다시 통기타를 들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줄 한 번 튕기지 못하고 통기타를 놓쳤다. 바닥에 나동그라지는 통기타는 소음을 일으켰지만, 뒤이어 터져 나온 소리에 소음은 배경음으로 밀려났다. 격렬한 기침 소리. 콜록콜록, 쿨룩쿨룩 따위로는 표현할 수 없는 소리가 진동하였다. 숨이 차고 흉통에 경련하는 병색이 선명하게 들렸다. 아버지의 생전에는 들은 기억이 없는 소리였다. 아버지의 기타 소리를 들었다면 아버지의 기침 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까. 아버지는 다감하지 않았고 나는 살갑지 않았다. 그렇다 해도 나는 왜 그리 아버지의 소리에 둔감했을까. 일시 멈춤 버튼을 눌렀다. A면인지 B면인지 모를 면이 끝났고, A면인지 B면인지 모를 면이 남았다. 휴지(休止)가 필요했다. 커피를 끓이러 싱크대 쪽으로 향하는데, 양은 주전자가 발에 차여 시끄러웠다. 주전자가 내게 말하는 것 같았다. 째그랑 일을 벌여 놓고, 뭐하는 거야 째쟁쨍. 작업실에 쌓인 도구들이 매립지에 버려진 고물처럼 낡아 보였다. 이대로 뒀다가는 달걀 썩는 듯한 매립지 냄새가 진동할지 모를 일이었다. 나는 스마트폰 화면을 켰다. 아, 이게 누구신가요? 나를 헌신짝으로 만든 그분 아닌가요? 채아와 거의 일 년 만의 통화였다. 가끔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았지만 서로 생존을 확인하는 용도일 뿐이었다. 버려지긴 누가 버려져. 내가 도망친 거지. 그럼, 멀리 가버릴 것이지 웬일로 연락했어요? 나, 얼마 전에 일산으로 이사했어. 일산? 왜? 거기로 왜 갔는데요? 이제는 잭을 다시 만나 볼까 하고. 누구요? 잭? 아, 난 또 누구라고. 잭 폴리? 내 말뜻을 알아들은 채아는 잠시 침묵하다 말했다. 이제는 도망가지 말아요. 나는 그럴 일 없을 거라고 답했다. 앞으로는 도망가지 않겠다는 것, 그것이 채아에게 연락한 첫 번째 이유였다. 채아에게 알리지 않고 프리랜서로 활동하면 또 프리하게 때려치우지 말란 법이 없으니까. 두 번째 이유는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일감 때문이었다. 나는 일을 할 때 의뢰인과의 소통은 채아에게 맡겼었다. 소리만 잘 만들면 그만이라는 게 대외적인 사유였지만, 인맥이라든지 비즈니스적 관계에 반응하는 알레르기 때문이었다. 채아는 메신저로서 역할을 잘했고 사교적이어서 업계 관계자들과 친분이 있었다. 나이가 들어서 때가 묻은 것인지, 생계의 절박함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채아를 통하면 일감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이번에도 다행스럽게 채아는 나를 넘겨짚었다. 채아의 주선으로 맡은 첫 복귀작은 돌침대 광고였다. 별 다섯 개가 돌침대에 박히는 효과음을 내 주세요. 광고 제작사 측에서 보내 준 영상에 등장한 돌침대 사장은 이마에 별 다섯 개를 달고 손가락 다섯 개를 좍 펴고 있었다. 별이 돌침대에 박히는 일은 당연히 실제로는 불가능하다. 사람들의 관념에 있을 법한 소리를 뽑아내야 했다. 별이라는 거대 물질이 흔들림 없이 단단한 돌침대와 부딪치는 상황이었다. 자동차 문짝을 해머로 치고 외날의 서양톱을 바이올린 활로 켜서 고음부를 녹음했고, 샌드백에 아령을 두들기고 대리석 바닥에 모래주머니를 떨어뜨려서 저음부를 녹음했다. 녹음된 고음과 저음을 믹싱하니 별이 우주에서 날아와 돌에 꽂히는 듯한 효과음이 완성되었다. 광고는 마케팅 비용의 한계로 공중파에서는 송출되지 못하고 케이블TV의 프리미엄 시간대가 아닌 아침과 낮에 방영되었다. 하지만 빨간 별 다섯 개를 이마에 박은 돌침대 사장이 인터넷상의 밈이 되어 제품의 매출이 대폭 올랐다. 그 덕분에 돌침대 하나가 작업실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광고 이후로 어린이 애니메이션과 단막극 등의 의뢰가 들어왔고, 지루하거나 지치지 않을 정도의 딱 알맞은 속도로 작업이 이어졌다. 내게 맡겨지는 작업이 폭설로 쌓이거나 진눈깨비로 흩날리지 않고 사람들이 오가는 길의 잔설로 덮이던 즈음의 어느 날, 모르는 번호로 연락이 왔다. 스팸이겠거니 무시하려는데, 부재중 통화가 2건 찍히고도 벨은 멈추지 않았다. 광고성 전화라고 하기에는 상도덕이 없다고 할 정도의 집요함이었다. 보이스 피싱도 이렇게 한 번호를 공략하지 않을 텐데. 집 나간 가족을 찾는 연락인가. 죄송합니다. 이채아 디자이너님이 이렇게 해야 받으실 거라고 하셔서. 젊은 여자는 사과부터 했다. 문자는 언제 확인할지 모르니 받을 때까지 전화를 걸라고 하는 채아의 음성이 들리는 듯했다. 그럼, 채아를 통해 연락하면 되지 않나. 회장님께서 직접 연락드리라고 당부하셨습니다. 회장이라는 말에 묘한 호기심이 일었다. 요새는 낯 모르는 아무 행인에게 선생님이라고 한다는데, 회장님이야 등산회, 친목회 등 각종 모임으로 인해 길거리에 널린 직위가 된 지 오래되었다. 하지만 여자의 절제된 말투와 주변의 정제된 소음이 여자가 말하는 회장이 TV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던 회장을 지칭하고 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하필, 왜 저인가요. 회장님은 사극 마니아이십니다. 사극이라면 영화든 드라마든 가리지 않는 회장이 내가 디자인한 활 소리에 감탄했고, 수소문한 끝에 내가 일하던 스튜디오를 알아내고 채아를 통해 나를 찾았다는 것이다. 사연의 개연성은 문제가 없어 보였다. 있을 만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회장이 의뢰한 작업은 수긍하기 어려웠다. 회장이 투자하는 사극 영화에 사운드를 디자인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면 금세 납득했을 것이다. 그러나 회장은 사극과 관련이 없고 굳이 내가 하지 않아도 될 만한 사운드를 디자인하기를 바랐다. 작업은 간단했고 받는 금액은 과도했다. 이 정도의 일로 그 정도의 돈을 받는 건 직업윤리에 어긋나는 일 아닌가. 뭔가 대단한 꿍꿍이가 있지 않고서야 그런 제안을 할 리가 없을 텐데.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에요. 상상력이 많이 필요할 겁니다. 회장 비서의 말은 곧이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몇 차례 거절하다가 일을 맡기로 했다. 결국 회장이 거부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금액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액수가 아니었다. 회장은 왜 그렇게 큰돈을 들여서까지 이 작업을 성사하려는 것일까. 회장에게 필요한 소리가 어떤 것인지 궁금해진 게 문제였다. 영상은 3분 30초 정도로 짧았다. 그것은 20대 초반의 여자가 자신의 일상을 기록한 브이로그처럼 보였는데, 별다른 촬영이나 편집 기술이 동원되지 않은 평범한 영상이었다. 여자의 브이로그는 시종일관 무성(無聲)으로 진행되었다. 의도하였든 의도하지 않았든 촬영할 때 음소거 기능이 활성화되어 있었을 것이다. 소거된 음(音)은 일상적이고 보편적이었다. 문이 열리고 닫히고 아이섀도 브러시가 화장대에 떨어지고 헤어드라이어에 머리카락이 흩날리고 옷장 속 옷을 뒤적거리다 여러 벌에서 한 벌을 꺼내는. 실감 나게 소리를 입히는 일이 그다지 어렵지 않아 보였고, 도대체 어디에서 상상력을 펼쳐야 할지 모를 지경이었다. 반나절 만에 작업을 끝냈고 바로 보내기가 민망해 이틀 묵혔다가 보냈다. 소리가 빈 부분이 있다고 하십니다. 비서의 말에 뭔가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 소리가 비어 있다? 알맹이가 드문 과자 봉지를 질소로 과포장했다는 비난처럼 들렸다. 사실, 과포장이라는 말은 적합하지 않다. 비서를 통한 회장의 의사는 내가 과포장하는 성의조차 없이 볼품없고 납작한 소리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화가 났다. 화가 나지 않는다면 아티스트로서의 자질이 의심스러울 만한 도발이었다. 몇 번이나 비서에게 연락해서 계약금을 돌려주려고 했다. 그러나 이대로 그만두는 건 어딘지 모르게 찜찜했다. 회장의 말은 자존심을 긁었지만, 작업이 생각보다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오히려 마음을 돌려놨다. 다른 급한 작업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나는 이 일을 끝내기로 했다. 브이로그를 여러 번 돌려 봤다. 작업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심정으로 세부를 살폈다. 내가 놓친 게 무엇일까에 초점을 맞췄지만, 어디가 비어 있다는 것인지 그 공백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영상에서 일어나는 충돌, 마찰 등의 물리 작용에는 그에 합당한 소리-내 판단으로는 그렇다-가 들렸다. 회장은 인식하는데 나는 인식하지 못하는 소리는 무엇일까. 내가 영상을 보고도 인식하지 못한다면, 그 소리는 화면 밖에서? 의자에 앉아 있던 나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러나 곧 주저앉았다. 무성으로 촬영된 영상의 화면 밖 소리를 듣는 게 가능한가. 불가능하다. 그럴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회장은 무엇을 지적한 걸까. 혹시 비어 있다는 것은 있어야 할 소리가 없다는 게 아니라 소리에 부족함이 있다는 것 아닐까. 영상 속 여자, 누굽니까? 대뜸 던진 말에 비서는 평소와 다르게 뜸을 들였다. 질문하지 않는 데에 동의하신 것 아니었나요? 그랬다. 계약서에 있던 내용이다. 그랬죠.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어요. 제 소리가 실감 나지 않는다는 거잖아요. 소리의 주체를 모르고 만들었는데 소리에 어떻게 실감이 있겠어요. 그렇다고 해도 회장님의 뜻을 어길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빈 소리를 메꿀 방법은 없겠죠.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이틀 후에 비서에게서 이메일이 왔다. 내 질문에 대한 회장 측의 답은 이랬다. 그녀는 수백 개의 딤플로 뒤덮인 골프공 같습니다. 겉은 매끄러우면서 울퉁불퉁합니다. 속은 타이어를 만드는 고무처럼 질기고 튼튼합니다. 그녀는 가볍지만 단단합니다. 간단히 한 손에 올릴 수 있지만 그 세계는 견고해서 함부로 부술 수 없습니다. 그녀의 본질은 공이어서 굴릴 수 있고 던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닥에 부딪혀도 농구공처럼 통통 튀기지는 않습니다. 드라이버를 풀 스윙하면 그녀는 멀어집니다. 드라이버와 마찰을 일으키고 그 반발력으로 멀어지는 그녀는 딤플의 수만큼 더 멀리 날아갑니다. 수많은 딤플로 비거리는 늘어납니다. 주인공을 알고 싶다는데 웬 골프공 타령이람. 초보자를 위한 골프 교본도 아니고 무슨 저의로 알쏭달쏭하게 의미를 엮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처음에는 계약서 조항을 어긴 데 대한 장난성 조롱으로 읽혔다. 그러나 몇 번씩 읽으면서 드는 의문이 있었다. 그녀는 왜 공일까. 많고 많은 공 중에서 왜 하필 골프공일까. 골프공을 뒤덮고 있다는 딤플이 무엇인지 찾아봤다. 딤플은 골프공 표면에 오목하게 파인 홈으로 일반적으로 골프공에는 300~500개의 딤플이 파여 있다. 드라이버 스윙으로 날아가는 골프공에는 공기 저항이 생기는데, 공기 저항은 골프공 앞뒤 표면의 압력 차에 의해 발생한다. 이때 딤플은 주위에 작은 회오리를 일으키고 이로 인해 공기가 뒤섞여 공 뒤쪽 압력이 떨어지지 않아 비거리를 늘린다. 흠집이 난 골프공의 비거리가 늘어난다는 것을 우연히 발견하고 나서 골프공에 흠집을 내어 사용한 것이 딤플로 자리잡았다고 한다. 골프공의 겉과 속. 가벼움과 단단함. 딤플과 비거리. 비로소 나는 비서의 말에 동의할 수 있었다. 상상력이 필요했다. 나는 그녀 캐릭터에 집중했다. 골프공 같은 그녀를 수없이 떠올렸다. 작지만 단단하고 가볍지만 통통 튀지 않는. 캐릭터가 머릿속에 그려지자 그녀에게 합당한 소리가 튀어나오는 듯했다. 그러나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입에서 계속 딤플이 맴돌았다. 딤플은 보조개라는 뜻이 있지만 외모의 특징을 표현한 말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에게 흠집이 많다는 뜻일까. 하지만 딤플은 비거리를 늘린다고 했으므로 결함의 의미로 쓰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목하게 파인 흠집이 결함이 아니라면, 떠오르는 단어는 하나밖에 없었다. 상처. 나는 상처의 비거리를 생각했다. 그녀는 문을 (힘없이 덜컥 탁) 여닫으며 방에 들어선다. 암막 커튼이 처진 방에 (딸깍) 빛을 부른다. 그녀의 손이 화장대 의자를 (그윽) 끌어당기고 다른 손에 들고 있는 스마트폰이 흔들린다. 초점 없는 화면이 360도로 돌아가고-슬픔이 블랙홀로 빠져드는 것 같다-스마트폰을 (드득) 거치대에 고정시키고 다시 돌아온 화면에서 수건이 (스르르) 풀리면서 그녀의 젖은 머리카락이 보인다. 그녀는 화장대의 거울을 응시하다가-그녀의 얼굴은 뒤통수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헤어드라이어 버튼을 (틱탁) 누른다. (경쾌함 없이 심란하고 무거운 위이잉) 헤어드라이어는 돌아가고 그녀의 손길에 머리카락이 부서진다. 이윽고 헤어드라이어의 작동은 (탁) 멈추고 상반신을 거울 쪽으로 수그린 그녀의 손길이 분주하다. 그러다가 (툭) 아이섀도 브러시가 화장대에 떨어진다. 그녀는 브러시를 집다가 다시 (툭) 떨군다. 화장을 멈춘 그녀는 뭔가를 결심한 듯 (드윽) 의자에서 일어나 스마트폰을 (트특) 거치대에서 뽑아 손에 든다. 옷장을 (탕) 열고 (드르륵) 옷을 휘적이다가 고른 하나를 침대에 (툭) 던져 놓는다. 나는 그녀의 영상에 소리를 입혔고 소리에 그녀의 상처가 묻어나도록 노력하였다. 볼륨과 톤을 조정하여 모든 음은 낮고 둔탁하였다. 그녀가 찍은 영상에 대한 작업은 끝났지만, 작업이 모두 끝나지는 않았다. 회장 측에서 보낸 파일에는 부가 영상이 있었다. CH 02 2023/10/30 11:27:11 그녀가 잔디밭 위 돌길을 걷는다. CH 01 2023/10/30 11:27:15 ~ 11:28:07 그녀가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CCTV 화면이었다. 그녀의 마지막 모습일 듯한 장면이었다. 그런 생각에서 비롯된 것인지 나는 CCTV 화면에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소리가 있지 않을까, 궁리하였다. 특히, 대문의 화면이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1번 채널의 카메라에서 그녀는 잠깐 나타났다가 대문을 열고 나간 뒤로 볼 수 없다. 대문 위에 포치가 있어 그녀는 흔적 없이 사라진 것 같다. 여기에서는 그녀의 멀어지는 발소리만 남게 될까. 1분이 채 되지 않는 마지막 부분을 돌리고 또 돌려봤다. 그러다가 영상이 끝나기 몇 초 앞두고 그녀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멀어지는 것을 보았다. 회장으로부터 연락이 온 건 작업을 마친 지 2주가 지나서였다. 이번에는 비서를 통하지 않고 직접 나와 통화하였다. 회장은 정중하게 집으로 초대하면서 감사의 의미임을 분명히 했다. 회장 집 대문 앞에 도착한 나는 벨을 누르려다가 경사진 이면도로로 내려섰다. 그러고는 몇 발짝 걸은 후에 뒤를 돌아 위를 올려다봤다. ㄱ자 형태 집의 가로획에 해당하는 곳 벽면에 CCTV가 부착되어 있었다. 노트북으로 봤던 1번 채널 화면의 각도가 한눈에 들어왔다. CCTV 쪽에 고정한 시선을 아래로 내리는데, 옆으로 그녀의 멀어지는 그림자가 보이는 듯했다. 해의 시선이 거둬지는 시각이었다. 나는 그녀를 배웅하듯이 잠시 서서 그녀의 비거리가 얼마쯤이었을지 생각했다. 2번 채널 화면에서 그녀가 걷던 잔디밭 위 돌길의 끝에 현관문이 있었다. 일하는 사람의 안내를 받아 집 안으로 들어섰다. 회랑 같은 널따란 복도의 끝 오른편에 낮은 계단이 놓여 있었다. 아래로 깊고 편평하게 펼쳐지는 공간이 높은 층고와 어우러져 새로운 세계로 들어서는 느낌을 자아냈다. 정면으로 보이는 통유리창을 왼편에 둔 소파에 회장이 앉아 있었다. 회장은 나를 통유리창을 마주 보고 있는 소파에 앉게 했다. 벨로드미코프, 좋아하시나요? 꽤 긴장했던 탓인지 실내에 음악이 울려 퍼지고 있다는 사실을 회장의 말로 깨달을 수 있었다. 언젠가 들어 본 적 있는 운율의 바이올린 협주곡이었다. 클래식에는 문외한에 가깝습니다. 회장은 의외라는 듯 팔걸이에 올려 둔 손을 턱에 대고 입을 오므렸다. 입 주변의 주름이 엷게 도드라져 보였다. 그런가요? 나는 벨로드미코프를 들으려고 저런 짓도 한 사람이오. 회장은 통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정원의 구석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전봇대가 서 있었다. 나만을 위한 전봇대를 설치한 거요. 공동 전봇대는 남들과 전기를 공유하는 탓에 아무리 좋은 오디오에서도 이런저런 노이즈가 들리길래 정원에다 저렇게 세워 놨어요. 그랬더니 벨로드미코프가 내 앞에서 연주하는 것 같더구려. 화구 박스가 매립된 벽난로 옆에 오디오, 앰프, 스피커가 양쪽으로 놓여 있었다. 얼핏 봐도 고가의 장비임을 눈치채게 하는 것들이었다. 회장은 오디오와 벨로드미코프에 관한 말을 늘어놓았다. 사운드에 대한 회장의 마니아적 열성은 순수한 애호와 성공한 자의 과시 사이를 오고 가는 듯했다. 어색함을 눅이는 커피가 잔 바닥에 엷은 띠를 남기고 있을 즈음 회장은 저녁 식사를 제안했다. 그러나 나는 급한 작업이 있다며 한사코 거절했다. 의뢰인을 이런 식으로 만나는 게 나에게는 예외적인 일이었고, 차 한잔 마시는 정도가 예외의 한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회장은 이번 초대의 메인을 거절하면 어떡하느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고 나서 사업가답게 상대방이 거절하기 힘들도록 다시 제안하였다. 그럼, 식사 후 대접하려던 위스키 한 잔쯤 구경하시는 게 어때요. 과실향이 은은히 퍼지다가 끝에 스모키향이 감도는 위스키였다. 회장은 위스키 애호가이기도 한 듯했다. 위스키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설파하면서 자신만의 리듬으로 위스키를 마셨다. 어느덧 회장은 세 번째 잔에 접어들었고 내 위스키 잔도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마지막 화면의 철 덜그럭거리는 소리, 덜그럭대다 쿵쿵거리는 소리, 그건 뭡니까? 굳게 닫혀 있던 가게 문에 철제 셔터가 열릴 때처럼 회장의 표정이 빗장을 푼 듯했다. 거래와 계약으로 묶여 있는 관계성을 술이 허물어뜨렸는지 말투도 다소 부드러워졌다. 마지막 영상 속의 여자는 대문을 나서는데, 화면에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영상의 49초 지점에서 그녀가 나타납니다. 그림자로 나타난 그녀는 3초 뒤 모습을 감춥니다. 대문을 열고 나가는데 2초, 대문에서 CCTV가 보이는 지점까지 3초, 그림자로 보이는 부분이 3초, 영상의 총길이가 52초니까 그녀는 대문 앞에서 44초를 머물렀을 겁니다. 회장은 들고 있던 위스키 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유리들이 따깍, 울렸다. 그 머무름은 머뭇거림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멀리 떠나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아마 미련이 조금 남았겠죠. 대문을 손으로, 발로, 툭툭, 그래서 덜그럭거리고 쿵쿵거리지 않았을까요. 회장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나 곧 느슨해진 상반신을 바로잡았다. 집의 창고를 수리하는 날이었소. 대문 앞에 시멘트 가루가 떨어져 있길래 인부 하나가 부주의했구나, 생각했지. 그런데 대문에 누가 시멘트 묻은 발로 찬 것 같은 자국이 있었소. 그것도 인부 잘못이라고 생각해서 업체 사장을 나무란 기억이 나오. 그 애의 흔적일 수 있다는 생각은 못 했소. 냉정히 떠난 줄 알았지. 머뭇거렸을 줄은. 이제부터 그 애가 집을 떠나기 전에 미련이 남아 머뭇거렸다고 생각할 거요. 그래야 나 자신을 더 나무랄 수 있을 거 아니오. 나는 소리에 예민한 사람이오. 하지만 그 애가 떠날 때까지, 마지막 순간까지도 나는 그 애의 소리를 듣지 못했소. 마지막 위스키 잔은 다 비워지지 않았다. 회장 집을 나서려고 할 때, 각얼음들이 녹으면서 달그락. 달그락. 천장 높은 거실을 울렸다. 아버지가 남긴 카세트테이프의 A면인지 B면인지 모를 면을 들은 다음날, A면인지 B면인지 모를 면의 다른 면을 들었다. 테이프에는 아무것도 녹음되지 않은 듯 한동안 테이프 감기는 소리만 들렸다. 그러다가 의외의 인물이 등장했다. 아버지, 지금 뭐하세요. 누나였다. 녹음하면 들릴까 해서. 아들내미 예민한 거 하루 이틀이에요. 걔가 지금 시위하는 거라니까요. 자기만 힘든 줄 아나. 그래도 혹시 모르잖니. 아버지와 누나의 대화는 거기에서 끝났다. 다시 테이프 감기는 소리만 들렸다. 아버지는 TV 스피커에 카세트를 대고 TV에서 나는지 모를 소리를 녹음한 것이다. 나에게 들렸던 TV 소음을 아버지와 누나는 듣지 못했다. 당시 인기 TV 프로그램에서 10대만 들을 수 있는 고주파 영역의 소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만 들을 수 있었구나, 고개를 끄덕이다가 열아홉 살인 누나는 왜 못 듣나, 의아했다. TV 스피커에서 나오는 고주파 소음을 나만 들은 것일까, 아니면 아버지와 누나의 생각처럼 나의 마음이 단단하지 못해 환청이 들린 것일까. 나는 그때도 지금도 잘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왜 하필 그날 이전에는 들리지 않던 소음이 그날부터 들렸을까. 그날은 어머니가 영영 집을 떠난 날이다. 나는 마치 들을 수 있기라도 한 듯 카세트 플레이어의 스피커에 귀를 가까이 댄다.
  • “독재적 경향 尹, 진짜 이럴 줄은”…환호하던 서방, 뒤통수-로이터

    “독재적 경향 尹, 진짜 이럴 줄은”…환호하던 서방, 뒤통수-로이터

    한국 내부의 정치적 불협화음에는 관심을 줄이고 국내 문제에 대한 간섭으로 비치는 것을 주저한 결과, 윤 대통령이 12·3 비상계엄을 발동했을 때 한국의 파트너들은 ‘뒤통수를 맞았다’(blindsided)로이터통신 서방이 대북·대중 강경 노선을 표방한 윤석열 대통령의 대외정책에 환호하느라 정작 한국의 국내 정치에서 쌓여가는 문제의 징후들을 간과했다는 외신 분석이 나왔다. 결과적으로 고도화된 민주주의 국가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비상계엄 선포로 자유·인권·법치를 내세우던 ‘가치외교’는 무색해졌고, 동맹국들은 향후 한국의 대외정책 노선 변화 가능성에 직면했다는 것이다. 19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은 “서방에 유리해 보이는 외교정책에만 초점을 맞춘 채 한국 내부의 정치적 불협화음에는 관심을 줄이고 국내 문제에 대한 간섭으로 비치는 것을 주저한 결과, 윤 대통령이 12·3 비상계엄을 발동했을 때 한국의 파트너들은 ‘뒤통수를 맞았다’(blindsided)”고 보도했다. 로이터는 윤 대통령이 ‘자유·평화·번영에 기여하는 글로벌 중추국가’라는 국정목표를 제시함으로써 서방의 광범위한 찬사를 받았다고 소개했다. 이는 대만이나 남중국해 문제, 우크라이나 문제 등과 관련해 한국이 미국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등 서방과의 관계에 무게중심을 둔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미국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에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도합 55차례 언급했고, 올해 초에는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한국에서 주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윤 대통령의 대외적 수사에 내부적으로 커지는 문제가 가려졌다는 것이 로이터의 분석이다. 야당 의원들에게 ‘친북’이나 ‘반국가세력’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비판적인 언론에 강압적으로 접근해 언론단체들의 비판을 받은 점 등을 로이터는 사례로 들었다. 이는 최대 우방국인 미국조차 전혀 낌새를 알아채지 못한 채 비상계엄이 선포되고, 뒤늦게 유감을 표시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영국 킹스칼리지 런던의 한국 전문가 라몬 파체코 파르도는 “윤 대통령이 미국의 대중국 정책이나 서방의 대러시아 정책에 동조하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에 그의 구시대적 발언이나 강압적인 성향이 무시됐다”고 진단했다. 시카고 글로벌어페어즈카운슬 소속 한국 전문가 칼 프리드호프는 “미국에 있는 윤 대통령의 동맹들이 관심을 가졌던 것은 오직 하나, 미국의 국가 안보였다”며 “내가 한국의 내치 문제를 제기했을 때 돌아온 답은 ‘그게 왜 중요해?’ 였다. 이제 우리는 왜 중요한지 이유를 알게 됐다”고 꼬집었다. 필립 터너 전 주한 뉴질랜드 대사는 지난 총선 이후 윤 대통령이 부분적으로 ‘독재적 경향’을 보이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전형적인 정치적 힘 과시에 그칠 것이라고 봤다고 털어놓았다. 터너 전 대사는 “윤 대통령의 지지자들을 포함한 많은 한국인과 마찬가지로 어떤 외교관도 근거 없는 계엄령이 선포될 것이라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이는 민주주의의 수호자를 자임한 전직 검사에게는 용납될 수도, 변명할 수도 없는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윤 대통령 개인의 성격이 더 큰 영향을 미친 이번 사건에서 서방의 ‘간과’를 문제 삼기는 어렵다는 반론도 있다. 헨리 해거드 전 주한미국대사관 정무 공사참사관은 “우리는 윤 대통령이 한국의 옛 독재시절에 대한 향수를 느끼는지 여부와 무관하게 이번 결과를 예상할 수 없었다. 왜냐면 어떤 대통령이라도 한국인 대부분이 시계를 과거로 돌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리라 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미국 워싱턴의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빅터 차 한국석좌는 “너무 일찍 많은 말을 하면, 정부를 지지하는지 반대하는지와 상관없이 간섭주의자로 보인다. 반면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냉담하고 안일하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런 발언은 미국의 입장에서는 한국의 내정과 관련해 운신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었으리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 “여친도 기대했는데… 크리스마스 예약 식당에 뒤통수 맞았습니다”

    “여친도 기대했는데… 크리스마스 예약 식당에 뒤통수 맞았습니다”

    크리스마스 일주일 앞두고 ‘날벼락’식당 측, 메뉴 변경·가격 인상 안내 크리스마스를 불과 일주일 앞두고 한 식당에서 돌연 메뉴를 변경하고 가격을 올린 뒤 예약금 입금을 요구했다는 사연이 전해져 네티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지난 17일 온라인 커뮤니티 ‘에펨코리아’에는 ‘크리스마스 식당 뒤통수 당했다’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 A씨는 “12월 초에 크리스마스 데이트할 식당을 알아봤다. 다들 크리스마스라고 특별 코스 만들어서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팔길래 코스 없이 평소처럼 운영하는 식당을 예약했다”고 배경 설명을 했다. 그런데 크리스마스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이날 A씨가 예약한 식당에서 갑자기 메뉴를 변경하기로 했다는 안내 문자가 날아왔다. A씨가 공개한 문자 대화 내용을 보면 식당 측은 “긴 토의를 거친 결과 원활한 서비스를 위해 단일 세트 메뉴로 진행하기로 결정됐다. 죄송한 마음에 세트 구성을 알차게 했다”면서 “예약금 1인당 3만원을 입금해달라”고 알려왔다. 식당 측은 애초 예약받은 메뉴를 스테이크가 포함된 1인당 8만 5000원짜리 ‘크리스마스 세트’로 바꾸고, 예약금으로 1인당 3만원을 미리 입금해달라고 한 것이다. 식당 측이 A씨에게 보낸 크리스마스 메뉴 이미지를 보면 이브인 24일은 3부, 당일인 25일은 4부로 서빙이 구성돼 있다. 메뉴는 포카치아와 샐러드, 감자 뇨끼, 안심 스테이크, 티라미수로 이어지는 2인 코스다. A씨는 “크리스마스에 여기 하나 예약하고 기다렸는데 갑자기 이렇게 진행하시면 어쩌라는 거냐. 다른 집들은 이미 (예약이) 다 차 있는데 장난치냐”고 항의했지만, 식당 측에서는 “일반 메뉴로는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염치 불구하고 연락드렸다. 죄송하다. 메뉴를 통일해 손님들의 기다림을 최소화하고, 스테이크를 주문하는 분들이 평소에 많아서 그런 부분을 감안했다”고 답했다. A씨는 커뮤니티에 올린 글에서 “진짜 열받는 건 처음 보낸 문자에 가격 정보 표기 없이 예약금만 안내한 것”이라며 “여자친구도 엄청 기대하고 있었는데 열받아서 거긴 도저히 못 갈 듯하다”며 커뮤니티 이용자들에게 예약 가능한 다른 식당 추천을 부탁했다. 사연을 접한 네티즌들은 “예약했는데 가격을 올린다고?”, “정해진 인원 예약을 받았는데 왜 감당이 안 되나. 남들 비싸게 받는 거 보면 배 아플 게 감당이 안 되는 거겠지”, “저 구성에 인당 8만 5000원을 받는다고?”, “한철 장사하고 문 닫을 생각인가” 등 반응을 보였다. A씨는 이후 해당 식당에서 전화로 사과를 해왔다는 후기를 전했다. A씨는 18일 추가로 올린 글에서 “방금 가게 매니저랑 통화했는데 사장이랑 매니저 포함해서 게시글이랑 댓글 다 확인했다고 하더라. 자기네 잘못 100%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했다. ‘방문하면 제대로 보여주겠다’고 하는데 기분이 이미 상해서 ‘그냥 괜찮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요즘 다들 힘들고 불경기라 오죽하면 그랬을까 싶기도 하다”면서 “여친한테 말했더니 크리스마스 당일엔 ‘그냥 동네 카페 가서 빵 먹어도 괜찮다’고 하더라. 덕분에 올해는 무난하게 넘어갈 것 같다”고 덧붙였다.
  • ‘박근혜 변호인’ 유영하 “더럽게 뒤통수”…탄핵 찬성 의원 직격

    ‘박근혜 변호인’ 유영하 “더럽게 뒤통수”…탄핵 찬성 의원 직격

    ‘박근혜 변호사’로 널리 알려진 유영하 국민의힘 의원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찬성한 자당 의원들을 향해 “비겁한 자들과 당을 같이 할 수는 없다”고 했다. 유 의원은 지난 14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우아한 그대들은 그냥 떠나라. 구질구질하게 국회의원직을 탐내지 말고 떠나라”고 했다. 이어 “당신들은 여기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며 “지금부터 그대들은 사선을 같이 넘을 수 있는 동지들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하루라도 빨리 떠나라”고 했다. 이는 지난 14일 윤 대통령에 대한 2차 탄핵소추안에 부결 당론을 이탈하고 찬성표를 던진 여당 의원들을 겨냥한 발언으로 보인다. 유 의원은 또 다른 게시글에서 “의총을 열어 결정한 당론이 애들 장난인가. 아무 말 없이 당론을 따를 것처럼 해놓고 그렇게 뒤통수치면 영원히 감춰질 줄 알았나”라고 했다. 유 의원은 “멋진 그대들아. 절대로 변명하지 말고 숨지 마라. 그대들은 나라를 구한 영웅이고, 오늘 탄핵을 반대한 우리는 내란의 공범이자 방조범이지 않은가. 그대들의 이름은 청사에 길이 빛날 것인데 왜 숨는가. 길이길이 그 자랑스러운 이름들이 기록되고 평가될 것”이라며 “떳떳하게 커밍아웃하라”고 했다. 그러면서 “기억해라. 하늘이 그대들의 정치생명을 거두어들일 것이다. 단언컨대, 그대들의 정치생명은 끝났다”고 했다. 유 의원은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심판 당시 박 전 대통령의 개인 변호를 맡았다. 또 지난 총선을 통해 원내에 입성하기 전 박 전 대통령의 법률대리인을 수행했다.
  • “윤석열, 잘했다!” 이지성, 언론 향해 “여자는 건드리지 말라” 분노

    “윤석열, 잘했다!” 이지성, 언론 향해 “여자는 건드리지 말라” 분노

    당구선수 차유람의 남편 이지성 작가가 윤석열 대통령의 지난 3일 비상계엄 선포 사태와 관련해 “잘했다. 멋있다”고 말한 뒤 논란이 불거지자 이를 보도한 언론을 향해 비난을 쏟아냈다. 11일 이 작가는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이게 무슨 대단한 말이라고 어제 여기저기 실시간 검색 1위는 다 찍은 듯”이라며 “기레기(기자비하표현)들 늘 그렇듯 앞뒤 싹 자르고 황당한 제목 붙이고, 언론 공개 처형도 여러 번 당하니까 관록이 붙는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기레기 ××들아 가족은 건드리지 말자. 그것도 여자는 건드리지 말라”며 “인간의 탈을 쓴 짐승처럼 살지 말자. 짐승처럼 살더라도 발언 당사자인 나만 물어뜯어라”고 강조했다. 논란이 불거진 뒤 아내인 차유람이 거론되자 이에 대해 불쾌감을 드러낸 것이다. 이어 “윤통(윤 대통령) 정치적으로 좋아한 적 없고 의대 증원 사태도 거의 제일 먼저 비판했으며, 김건희 여사도 늘 비판했다. 비상계엄도 그날 새벽에 비판했다”며 “하지만 내가 찍은 대통령이다. 이재명 찍을 수 없어서 피눈물 흘리며 찍었지만 어쨌든 내가 찍은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 사람이 잘못된 판단으로 망했고 이제 모든 게 끝났는데 그런 사람에게 돌 던지는 것을 나는 안 한다. 윤통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라며 “상황이 바뀌었다고 입장 바꾸고 뒤통수치고 배신하는 그런 나를 보게 되는 건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다. 침묵하는 것 또한 내겐 비슷하게 느껴진다”고 설명했다. 이 작가는 “그래서 유튜브 좀 했는데 이 난리법석”이라며 “진정 이 나라에 의리, 신의 이런 가치는 실종된 것인가. 남자다움? 이런 건 영화 속에서나 존재하게 된 거냐. 어쩌다 이렇게 배신을 밥 먹듯이 하는 잡놈들이 판치는 나라가 된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앞서 이 작가는 지난 9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윤석열 잘했다. 남자답다. 멋있다’라고 적힌 섬네일이 담긴 영상을 올리며 비상계엄에 대해 “실패해서 안타깝다”라는 발언으로 논란을 빚었다. 그는 “비상계엄 잘했다”며 엄지를 치켜세운 뒤 “윤 대통령의 계엄이 실패했고 너무 안타깝지만 계엄의 취지는 옳고 잘했다”며 “물론 부작용은 있다. 국민의 최대 90%는 윤 대통령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아예 이야기를 못 해서 그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일각에선 윤 대통령이 자기 마누라 지키려고 그랬다는데 당연히 남자라면 자기 여자를 지켜야 하는 것 아니냐”며 “자기 마누라도 못 지키면 어떻게 나라를 지키냐? 나도 그렇게 하겠다. 자기 가족, 여자를 지켜야지 그게 멋진 남자”라고 덧붙였다. 또한 “계엄이 성공했으면 대한민국 경제가, 환율이 올라가고 잠깐 망할 수 있겠지만 그 과정을 거쳐야 대한민국이 궁극적으로 잘 되는 거다. 대한민국이 살아나는 것”이라며 “지금 제가 이런 방송을 하는 건 사회적 자살이다. 원래 이런 놈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 마음껏 하는 사람”이라며 영상을 마무리했다. 차유람은 지난 2022년 5월 국민의힘에 입당해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문화체육 특보로 활동했다. 이 작가는 충남 천안시 동남구 재능교육연수원에서 열린 2022 국민의힘 국회의원 연찬회에 참석해 여성 정치인의 외모를 품평하는 발언을 했다 여야 모두에게 비판을 받았다.
  • [최여정의 아침 산책] 여의도에도 광장이 있었다

    [최여정의 아침 산책] 여의도에도 광장이 있었다

    탄핵 투표 불성립으로 끝난 그 밤, 차가운 거리의 밤들이 길어지겠구나라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지난 토요일, 여의도로 향했다. 국회 정문 쪽으로는 접근이 어려워 이리저리 인파에 휩쓸려 다니다 보니 그래도 2016년 광화문 시위가 훨씬 수월했구나 싶었다. 경복궁 정문부터 시청광장까지 이어지는 T자 대로가 자연스레 집결 대오를 만들고 광화문광장과 시청 서울광장이 허파처럼 커다랗게 시위 인파를 품어 안아서 이동의 흐름이 원활했다. 무엇보다 한 손을 들어 인파를 굽어살피는 세종대왕과 큰 칼 옆에 찬 이순신 장군의 수호를 받으니 든든했다. 도시의 역사는 광장의 역사다. 하지만 동서양에서 광장의 역할은 달랐다. 서양 역사에서 광장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 대화와 토론으로 화합하는 곳이었다. 그리스 아고라(Agora)에서 시작돼 로마의 포럼(Forum), 중세도시의 플레이스(Place)로 계승된 광장을 중심으로 도시가 형성됐다. 하지만 동양 역사에서 광장은 권력자의 권위를 상징하고 국민을 억압하는 폐쇄적인 장소였다. 지금의 광화문광장이 들어선 태평로 일대는 조선시대 궁문 앞 거리로 왕에게 고할 거리가 있는 백성 누구나 올 수 있는 곳이라 했다지만 제한된 신분만 출입 가능했다. 무려 100만명 집결이 가능한 중국 톈안먼 광장 역시 청대까지 일반인은 출입할 수 없었다. 공개된 이후에도 국가의 권위를 상징하는 제등식과 열병식의 장소였다. 하지만 톈안먼 광장은 대중정치의 발화점으로 바뀌었다. 광장에 모인 국민은 집회와 시위를 통해 정부의 정책 결정에 참여했다. ‘광장의 정치’가 탄생한 것이다. 우리 국민들이 ‘광장의 정치’를 경험한 것은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시위부터였다. 광화문광장에 모인 국민들은 한목소리를 내었고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했다. 그런데 이번엔 여의도다. 대한민국 제1호 계획도시 여의도에도 사실 광장이 있었다. 1971년 조성된 ‘5.16광장’이다. 비행기 이착륙이 가능한 거대한 공간에 200만명 수용이 가능했으니 톈안먼 광장보다 더 큰 규모였다. 권력자의 욕망을 전시하던 거대한 아스팔트는 1990년대 말 여의도공원으로 바뀌어 녹색 숲을 이루었다. 국민들은 지난 계엄령 때 무장군인에게 침투당한 국회 앞으로 모여들었다. 그런데 국회 정문부터 여의도역까지 향하는 길이 광화문 대로보다 좁으니 거리가 인파를 감당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혼란한 와중에도 발걸음을 돌리는 이들은 없었다. 일방통행처럼 앞사람의 뒤통수만 보고 떠밀려 가다가 누군가의 “되돌아가세요! 길이 없어요! 위험해요!”라는 외침에 모두가 다시 방향을 바꾸려니 인파가 말 그대로 파도처럼 위태롭게 출렁였다. 같은 시간 광화문에서는 보수단체 시위가 있었다. 사대문 안팎은 갈등으로 치닫는 국민들로 나뉘었다. 2016년 광화문과 2024년 여의도, 국민들은 다시 광장에서 섬으로 떠돈다. 그해 겨울 광화문광장보다 올해가 더 춥다. 여의도에 몰아치는 매서운 한강 바람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최여정 작가
  • 태국서 마사지 받고 숨진 20대 여성, 사인은?

    태국서 마사지 받고 숨진 20대 여성, 사인은?

    태국에서 목을 비트는 전통 마사지를 받은 여성 가수가 전신 마비 등 후유증으로 숨졌다. 9일(현지시간) 방콕포스트 등에 따르면 태국 전통가요(룩퉁) 가수인 핑 차야다(본명 차야다 쁘라오 홈·20)가 전날 오전 6시쯤 태국 북동부 우돈타니주의 한 병원에서 혈액 감염과 뇌부종으로 사망했다. 차야다는 지난달 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지난 10월 5일부터 약 한 달 동안 우돈타니주의 한 마사지 가게에 세 차례 갔고 그 후 몸에 마비가 왔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처음 갔을 때 목을 트는 마사지를 받았고 이틀 뒤 뒤통수에 통증이 생겼고 일주일이 지나자 팔다리가 마비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두 번째 마사지를 받은 지 2주가 지났을 때 몸이 뻣뻣해지고 통증이 심해져 침대에서 몸을 뒤집을 수 없을 지경이 됐다. 이 때문에 진통제를 먹었지만, 너무 아파서 거의 잠을 잘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차야다는 “내 어머니는 마사지사이고 나는 어렸을 때부터 태국 마사지를 공부했다”면서 “마사지를 너무 좋아해서 의심하지 않았고 (전신 통증이) 단순히 내가 마사지를 다시 받은 결과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세 번째 마사지를 손힘이 강한 마사지사에게 받은 뒤 온몸에 붓기와 멍이 들었다고 전했다. 이어 몸통까지 감각 마비가 와 2주 뒤에는 오른팔을 들어 올릴 수 없게 됐으며, 페이스북에 글을 올릴 때는 몸의 절반 이상을 움직일 수 없게 됐다고 했다. 차야다는 “나는 회복해야 한다. 일하고 싶다”면서 “내 이야기가 마사지를 많이 받는 사람들에게 교훈이 되기를 바란다”고 남겼다. 이후 차야다는 지난달 18일 상태가 더욱 나빠져 침대에 누워 움직일 수 없게 됐다. 그의 남자친구는 마사지 가게에 대해 법적 조치를 취하고 싶지만, 그렇게 할 증거가 충분한지 확신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태국 보건부 관계자는 “우리가 살펴봐야 할 점은 마사지업체 측이 (사망자에게) 제공한 마사지 서비스가 올바른 시술인지, 태국 전통 마사지의 표준 패턴에 부합하는지 여부”라면서 가게가 관련 면허를 받았는지 확인하겠다고 말했다. 또 “현재 일부 태국 마사지사들은 다양한 기술을 사용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기준에 미달하거나 부상을 일으킬 수 있는 서비스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지 신경외과 전문의 티라밧 헤마추다 랑싯대 동양의과대 교수는 스트레칭이나 운동, 마사지 도중에 목을 격렬하게 비틀거나 튕기면 경동맥이나 척추동맥이 손상돼 몸이 마비될 위험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머리를 비틀거나 튕기거나 돌릴 때의 힘에 따라 위험이 증가한다”면서 “이런 활동을 오랫동안 반복하면 신경뿐만 아니라 목의 혈관에도 문제가 발생한다”고 덧붙였다.
  • ‘목 비트는’ 태국 마사지 받고 전신마비 온 여가수, 결국 숨져 [핫이슈]

    ‘목 비트는’ 태국 마사지 받고 전신마비 온 여가수, 결국 숨져 [핫이슈]

    태국에서 목을 비트는 전통 마사지를 받은 여성 가수가 전신 마비 등 후유증으로 숨졌다. 9일(현지시간) 방콕포스트 등에 따르면 태국 전통가요(룩퉁) 가수인 핑 차야다(본명 차야다 쁘라오 홈·20)가 전날 오전 6시쯤 태국 북동부 우돈타니주의 한 병원에서 혈액 감염과 뇌부종으로 사망했다. 차야다는 지난달 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지난 10월 5일부터 약 한 달 동안 우돈타니주의 한 마사지 가게에 세 차례 갔고 그 후 몸에 마비가 왔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처음 갔을 때 목을 트는 마사지를 받았고 이틀 뒤 뒤통수에 통증이 생겼고 일주일이 지나자 팔다리가 마비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두 번째 마사지를 받은 지 2주가 지났을 때 몸이 뻣뻣해지고 통증이 심해져 침대에서 몸을 뒤집을 수 없을 지경이 됐다. 이 때문에 진통제를 먹었지만, 너무 아파서 거의 잠을 잘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차야다는 “내 어머니는 마사지사이고 나는 어렸을 때부터 태국 마사지를 공부했다”면서 “마사지를 너무 좋아해서 의심하지 않았고 (전신 통증이) 단순히 내가 마사지를 다시 받은 결과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세 번째 마사지를 손힘이 강한 마사지사에게 받은 뒤 온몸에 붓기와 멍이 들었다고 전했다. 이어 몸통까지 감각 마비가 와 2주 뒤에는 오른팔을 들어 올릴 수 없게 됐으며, 페이스북에 글을 올릴 때는 몸의 절반 이상을 움직일 수 없게 됐다고 했다. 차야다는 “나는 회복해야 한다. 일하고 싶다”면서 “내 이야기가 마사지를 많이 받는 사람들에게 교훈이 되기를 바란다”고 남겼다. 이후 차야다는 지난달 18일 상태가 더욱 나빠져 침대에 누워 움직일 수 없게 됐다. 그의 남자친구는 마사지 가게에 대해 법적 조치를 취하고 싶지만, 그렇게 할 증거가 충분한지 확신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태국 보건부 관계자는 “우리가 살펴봐야 할 점은 마사지업체 측이 (사망자에게) 제공한 마사지 서비스가 올바른 시술인지, 태국 전통 마사지의 표준 패턴에 부합하는지 여부”라면서 가게가 관련 면허를 받았는지 확인하겠다고 말했다. 또 “현재 일부 태국 마사지사들은 다양한 기술을 사용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기준에 미달하거나 부상을 일으킬 수 있는 서비스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지 신경외과 전문의 티라밧 헤마추다 랑싯대 동양의과대 교수는 스트레칭이나 운동, 마사지 도중에 목을 격렬하게 비틀거나 튕기면 경동맥이나 척추동맥이 손상돼 몸이 마비될 위험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머리를 비틀거나 튕기거나 돌릴 때의 힘에 따라 위험이 증가한다”면서 “이런 활동을 오랫동안 반복하면 신경뿐만 아니라 목의 혈관에도 문제가 발생한다”고 덧붙였다.
  • [특파원 칼럼] 사도 유감

    [특파원 칼럼] 사도 유감

    간이 의자에 깔린 식순을 다시 읽어 봐도 ‘추도사’(追悼の辞)가 없었다. 추도사 없는 추도식이라니 뒤통수를 세게 맞은 기분이었다. 지난달 27일 반쪽짜리 사도광산 추도식이 열린 일본 니가타현 사도섬 아이카와 주민센터에는 무거운 공기가 감돌았다. 무성의한 일본 측 태도에 우리 유족과 정부 관계자가 하루 전 불참을 통보한 터였다. 추도식은 일본이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등재를 위한 한국의 동의를 얻겠다며 매년 열기로 약속한 행사다. 그러나 첫 추도식부터 엇박자가 났다. 일본 정부가 3일 전 참석시키겠다고 통보한 이쿠이나 아키코 외무성 정무관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둘러싼 진실 공방에 휩싸였고, 무엇보다 추도사의 내용과 형식을 두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결국 반쪽짜리 추도식이 치러졌다. 일본은 추도사를 ‘인사말’로 대체했고, 행사명에도 ‘강제 동원’은 빠졌다. 한국 측 유족이 앉을 예정이었던 빈 의자를 치워 달라는 우리 대사관의 요청도 묵살됐다. 일본 측이 강행한 추도식은 “너희가 원하는 차관급 인사까지 참석시켰는데 도대체 뭐가 문제냐”고 묻는 듯했다. 나카노 고 실행위원장은 개회사에서 “사도광산이 세계의 보물로 인정된 것을 보고할 수 있게 돼 기쁘다”고 했다. 논란의 이쿠이나 정무관은 ‘전쟁이라는 특수한 사회 상황’이라는 점을 언급했다. 행사가 강제 동원된 조선인 노동자를 위한 진정성 있는 추도식이 아니란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순간이었다. 이튿날 유족은 한국 정부가 마련한 조선인 기숙사 터에서 별도의 짧은 추모식을 가졌다. 엄숙해야 할 추도식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일본 기자 중 일부는 “한일 번역본을 제공하라”며 쏘아붙였고 우리 대사관은 침묵을 지켰다. 한국과 일본 취재진 사이에도 냉랭한 긴장감이 흘렀다. 상황은 더 황당하게 흘러갔다. 일본 정부가 교도통신의 2년 3개월 전 보도를 추도식 파행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한 것이다. 교도통신도 입을 맞춘 듯 이쿠이나 정무관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보도가 ‘오보’였다며 사죄문을 냈다. 마치 한국이 이쿠이나 정무관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이력만을 두고 잘못된 판단을 했다고 몰아가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찝찝한 마음이 이어지는 사이 사도에서 택배가 도착했다. 호텔방에 놓고 온 노트북 충전기와 작은 기념품, 손글씨로 쓴 엽서가 담겨 있었다. 엽서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다시 한번 사도를 방문해 주세요. 늘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이번 파행으로 이득을 본 자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다시 한번 머리를 때렸다. 한동안 시끄러울 것 같던 한일은 추도식 파행과 한일 관계를 분리하고 서둘러 수습에 나선 모습이다. 승자 없는 이번 기싸움에서 누가 가장 큰 상처를 받았을지는 너무나 분명해 보인다. 양국은 매년 사도섬에서 추도식을 열기로 약속했다. 한 번은 실수일 수 있지만 두 번부터는 누군가의 고의거나 무능이다. 일본의 무성의와 한국의 무기력이 내년 추도식에서는 되풀이되지 않길 바란다. 명희진 도쿄 특파원
  • ‘선’ 넘는 도발의 연속… 솔직함에 뒤통수 맞다

    ‘선’ 넘는 도발의 연속… 솔직함에 뒤통수 맞다

    야한 것을 넘어 엽기적인 시어 속 난무하는 성(性)과 성(聖)의 역설규범·윤리마저 모욕한 ‘호랑말코’시를 쓴 작가인가 읽는 독자인가 시집을 다 읽은 뒤 머릿속에 ‘도발’이라는 단어가 번쩍 떠오른다. 이건 아마도 시어의 솔직함에서 오는 관성적인 반응일 것이다. ‘섹스’나 ‘똥구멍’ 같은 단어는 비교적 얌전한 편이다. 성기를 뜻하는 속어를 비롯해 거친 언어가 범람한다. 요컨대 ‘선’을 넘나드는 시집이라고도 하겠다. 하지만 선을 넘는다는 게 도대체 무엇인가. 그 선은 누가 그어 놓았는가. 김언희(71)의 새 시집 ‘호랑말코’가 던지는 물음이다. “내 인생은 모종의/어질리티야//개와 사람이 짝이 되어 벌이는 장애물 경기//내 짝은 검은 핏불/핏불테리어//우린 미증유의 게임 체인저가 될 거야//핸들러가/개거든”(‘어질리티’ 전문·9쪽) 그어진 선을 넘나들다 보면 금을 밟기 마련이다. 밟힌 금은 지워진다. 반복된 경계 허물기의 사유는 앞과 뒤, 위와 아래 같은 이분법의 구분을 무너뜨린다. 첫 번째 시부터 강렬하다. 개와 사람이 짝이 돼 장애물을 넘는 어질리티 경기에서 시인은 ‘핸들러’의 지위를 개에게 넘긴다. 인간과 동물, 주(主)와 종(從)의 위계는 호떡처럼 뒤집힌다. 이 ‘뒤집음’을 휘어잡고 시집으로 들어가면 다채로운 세계가 열리기 시작한다. “금보다 비싼 걸 똥으로 싸지르는 향유고래의 금요일, 물구나무를 서서 오줌을 갈기는 덤불개의 금요일, 내 오줌으로 나를 침례하는 금요일, 깨물 게 따로 있지, … 뒤통수를 맞는 금요일, … 제가 저를 겁탈하는 말미잘의 금요일, 내가 나에게서 멀어져 가는 시속 20만 킬로, 그 속도감을 만끽하는 금요일, 진균문자낭균류의 금요일, 1조개의 포자를 품고 있는//금요일, 聖 유다의/불가항력의/금요일”(‘성 금요일’ 부분·43쪽) 주종을 넘어 성스러운 것과 악한 것의 관계도 뒤집는다. 성경에서 금요일은 불길한 날이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날이라서다. 그런 금요일 앞에 성(聖)을 떡하니 붙여 버린다. 심지어 예수를 배신한 제자 유다 앞에도. 물구나무를 서서 오줌을 갈기는 덤불개는 이런 ‘성스러운 금요일’에 무척 어울리는 존재다. 뒤집힌 존재니까. “보노보처럼 살면/안 될까?//좋은 아침!/섹스하고//죄송함다!/섹스하고//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수신도 섹스로, 제가도 섹스로/치국도 섹스로//평천하도//패거리들을 빙 둘러 세운 채/우두머리끼리 화끈한 섹스로 뒤끝 없이 해결하는 보노보”(‘팬 패니스쿠스—보노보의 학명’ 부분·21쪽) 시인의 말대로 보노보처럼 ‘화끈하게’ 살면 어떨까. 웃음이 터져 나오는 시지만 곰곰 생각해 보자. “날깃날깃하도록 해젖히다 보면 만사가/나른해져서//핵탄두가/다/뭐냐”(같은 시·22쪽)고 말하는 시인의 주장은 꽤 일리가 있어 보인다. ‘핵탄두’가 상징하는 죽음과 전쟁의 시대, 시인의 농담 섞인 제안은 생각보다 힘이 센 통찰처럼 읽힌다. 김언희는 1989년 ‘현대시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올해로 시력(詩歷) 35년을 맞는다. 시어의 급진성에 있어 김언희는 절대 타협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그것을 야하고, 더럽고, 엽기적이라고 해도 끝까지 밀어붙인다. 표제작인 ‘호랑말코’는 사회의 규범이나 윤리, 예절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모욕하는 말이라고 한다. ‘호랑말코’는 누구인가. 김언희인가, 독자인 우리인가. “우리가 조물주의 창조물일 리가 없다. 배설물이라면 모를까. 우리를 배설해서 이 황막한 우주에 영역 표시를 해둔 거라면 모를까.”(‘호랑말코’ 부분·74쪽)
  • 韓 뒤통수 치고 ‘휙’ 돌아선 日…“당했다” 비판에 외교 장관 “책임 지겠다”

    韓 뒤통수 치고 ‘휙’ 돌아선 日…“당했다” 비판에 외교 장관 “책임 지겠다”

    ‘외교 참사’라는 지적이 나온 사도 광산 반쪽 추도식과 관련해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어떠한 책임이라도 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조 장관은 2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일본과의 협의에서 우리 주장을 관철시키지 못하고 마지막 순간에 추도식 불참이라는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게 된 데 대해 외교부 장관으로서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추도사 내용을 포함한 준비사항에 대해 24일 추도식 전날까지 치열한 협의를 진행했지만 이견이 좁혀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우리 정부는 일본 추도사에 조선인 노동자 강제노동에 대한 사항이 담기지 않는 등 한일 합의 정신에 어긋난다는 판단에 따라 행사 하루 전 불참을 통보했다. 사도 광산은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 노역의 역사가 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이를 외면하고 유산 대상 기간을 16~19세기 중반으로 한정했다. 한국 정부가 일본이 꼼수를 써가며 사도 광산을 세계유산에 등재하려던 것을 반대하던 입장을 철회하면서 결국 등재가 이뤄지게 됐지만 정작 일본이 우리에게 약속했던 추도식 관련 사항을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서 외교 참사라는 비판이 나왔다. 조 장관은 “이번 사안은 지난 7월에 끝낸 협상을 통해 일본이 한국과 국제사회를 상대로 한 약속을 제대로 이행했느냐 아니냐에 대한 판단의 문제”라며 “일본이 그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기에 앞으로 정부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합의 이행에 관한 문제를 계속 제기해 나가고자 한다”고 했다. 이번 사태에서 가짜뉴스 또한 논란이 됐다. 일본 정부 대표 이쿠이나 아키코 외무성 정무관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이력 보도가 나왔는데 교도 통신이 뒤늦게 오보였다고 정정했다. 조 장관은 추도식 불참의 결정적인 이유로 ‘추도사’를 꼽고 “강제동원의 성격에 관한 내용이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쿠이나 정무관의 과거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이력에 관한 교도통신의 보도는 추도식 불참 결정 시 고려 요인 중 하나이긴 했으나 이 보도가 없었다 하더라도 정부는 추도식 불참을 결정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 장관은 유네스코 측에 추도식 문제에 관해 경과를 설명하며 유감과 우려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그는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의 관련 질의에 전날 공공문화외교국 심의관이 주유네스코 대사와 함께 파리에서 유네스코 관계자를 만나 이같은 입장을 전달했다며 “이미 액션을 취한 상태고 앞으로 추가적으로 어떤 것들이 필요할지 계속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향후 일본에 더 강경하게 대응할 방법을 묻는 인요한 국민의힘 의원 질의에는 “강경하게 대응한다고 하더라도 일본이 자세를 고치지 않으면 안 되는 부분이 더 크다”면서 “그 문제는 우리가 해야 될 몫이 있고 일본이 감당해야 될 몫이 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이런 식으로 (일본의 약속이) 성실하게 이행되지 않는다면 그로 인한 국제사회에서의 이미지라든가 평판에 대한 부담은 일본이 져야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본 측 추도식에 불참하는 대신 한국은 박철희 주일 한국대사의 주관으로 자체 추도식을 진행했다. 조 장관은 이 배경에 대해 “사도 광산 강제 동원 피해자 유족들은 정부의 추도식 불참 결정을 한 당일 오전에 이미 출국한 상황이었다”면서 “별도의 자체 추도식을 개최하는 방안에 대해 유족들과 상의한 결과 유족들도 충분히 이해하고 기꺼이 추도식에 참석하겠다는 의향을 밝혀 주셨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가 자체 행사를 연 것을 두고 “과거사에 대해 일본 측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확고한 의지의 표현”이라며 “정부 대표로 추도식에 참석한 박 대사는 추도사에서 사도 광산에 강제로 동원돼 가혹한 노동에 지쳐 쓰러져 간 한국인 노동자들의 역량에 깊은 애도를 표하고 사도 광산이 아픈 역사와 계속 기억될 수 있도록 한일 양국이 노력해 나가야 한다고 발언했다”고 덧붙였다. 조 장관은 일본 측에 합의의 성실 이행을 지속 촉구하되 내년 국교정상화 60주년을 앞두고 공들여온 한일 관계에 악재가 되지 않도록 양국이 노력하기로 했다는 입장도 밝혔다. 그는 “정부는 일본이 내년부터는 진정성 있는 추도식을 개최할 수 있도록 촉구해 나가겠다”며 “사도 광산 세계유산 등재 관련 일본의 후속 조치에 관한 경과보고서가 내년에 유엔에 제출하도록 돼 있는 만큼 정부는 세계유산위원국으로서 일본이 세계유산위의 결정을 이행하는지 지속 점검하고 성실한 이행을 촉구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 나폴레옹 그림 속에 숨은 병사들 [으른들의 미술사]

    나폴레옹 그림 속에 숨은 병사들 [으른들의 미술사]

    나폴레옹은 1799년 11월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잡고 제1통령으로 임명되었다. 통령으로서 나폴레옹이 처음 내린 군사적 결정은 오스트리아가 점령한 영토를 탈환하는 것이었다. 나폴레옹 군은 오스트리아를 반격하기 위해 제네바에 집결했다. 그러나 이미 오스트리아 군이 제네바를 포위하고 있었다. 오스트리아를 피해 이곳을 재빨리 빠져나가는 방법은 알프스 산맥을 넘는 것뿐이었지만 한겨울 춥고 험한 알프스 산맥을 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행동하는 지도자 나폴레옹역사상 알프스 산맥을 넘어 적의 뒤통수를 공격해 성공한 사례는 단 두 번 뿐이었다. 하나는 기원전 3세기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이었고, 다른 하나는 9세기 신성로마제국 황제 샤를마뉴 대제다. 이 역사적 순간을 기록하기 위해 자크루이 다비드는 왼편 아래에 ‘보나파르트, 한니발, 샤를마뉴 대제’ 세 인물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 ‘알프스 산맥을 넘는 나폴레옹’은 사나운 말을 타고 진군하는 최초의 도상이다. 그동안 말 탄 지도자 초상은 대개 말 등 위에 앉아 평온하게 팔로 한 방향을 가리키는 유형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나폴레옹 기마상은 포효하는 말을 타고 험한 산맥을 넘어 진군하는 지도자를 표현했다. 역사가 기록하지 못한 병사들나폴레옹의 신박한 공격을 기록한 이 초상화에는 나폴레옹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배경에 힘겹게 숨을 몰아쉬며 대포를 나르는 병사들이 보인다. 홀몸으로 알프스 산맥을 오르기도 벅찬데 병사들이 해체된 대포를 나르고 있다. 고단하게 산맥을 넘는 그들은 멋지게 말을 타고 가는 나폴레옹의 그림자들이다. 역사는 1등만 기억할 줄 알지 수많은 그림자의 노고는 기록하지 않는다. 전쟁은 이렇게 비정하다.
  • “반일병 지긋지긋하다”는 日…서경덕 “역사왜곡이 더 지긋지긋”

    “반일병 지긋지긋하다”는 日…서경덕 “역사왜곡이 더 지긋지긋”

    일본 우익 성향 매체인 산케이신문이 지난 24일 열린 일본 정부의 사도광산 추도식에 한국 정부가 불참한 것을 두고 “한국의 반일병(病)은 지긋지긋하다”고 맹비난한 데 대해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가 “일본의 역사왜곡이 지긋지긋하다”고 일침했다. 서 교수는 2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잘 아시듯 야스쿠니 신사는 태평양전쟁의 A급 전범이 합사된 곳”이라면서 “이런 곳을 참배하는 것은 과거 일본이 저지른 침략전쟁을 부인하는 꼴 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그러면서 “무엇보다 한국인들은 일본의 역사 왜곡병이 정말로 지긋지긋하다”면서 “그 중심에는 늘 산케이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산케이는 한일 관계를 논하기에 앞서 언론으로서의 기본적인 정도(正道)를 지키길 바란다”면서 “역사를 올바르게 대하는 자세부터 배워야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산케이신문은 지난 26일 ‘한국의 반일병은 어이없다’는 제목의 사설에서 사도광산 추도식에 한국 정부가 불참한 배경으로 이쿠이나 아키코 외무성 정무관이 과거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는 언론 보도로 자국 내 반발이 커졌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산케이신문은 그러면서 “일본 정치인이 전몰자를 모시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것은 당연하고 외국으로부터 비판받을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산케이신문은 그러면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국회의원이 정부 요직에 취임하는 것은 예삿일”이라며 한국 정부가 일본과 제대로 관계를 맺을 의지가 없다고 비난했다. 서경덕 “日, 조선인 ‘강제노역’ 표현 안 해” 앞서 서 교수는 일본이 사도광산의 조선인 강제 노동을 제대로 알리지 않는 것은 물론 조선인을 비하하는 내용의 전시를 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서 교수는 지난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최근 사도광산을 답사하고 돌아왔는데, 사도광산 인근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에서도 조선인의 가혹한 노동은 기술돼 있지만 ‘강제성’ 표현은 전혀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특히 ‘반도인(조선인)은 원래 둔하고 기능적 재능이 극히 낮다’, ‘반도인 특유의 불결한 악습은 바뀌지 않아’ 등 오히려 조선인을 비하하는 내용을 전시하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서 교수는 “군함도 등재 당시 일본은 희생자를 기리는 정보센터 설치를 약속했지만, 센터를 현장이 아닌 1000㎞ 떨어진 도쿄에 설치하고 강제성을 부인하는 자료를 전시하는 것에 이어 또 뒤통수를 맞은 꼴”이라고 비판했다. 서 교수는 이같은 일본의 행태를 유네스코 측에 고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쪽짜리’ 추도식 놓고 신경전 사도광산 추도식은 일본 사도광산에서 일제강점기에 강제 동원된 조선인 노동자들을 기리기 위해 개최되는 행사다. 사도광산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때 일본 정부가 약속한 후속 조치 중 하나다. 당초 우리 정부는 일본 측에서 차관급 정무관이 참석할 것을 요청해왔는데, 일본 측 참석자인 이쿠이나 아키코 외무성 정무관이 2022년 8월 15일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는 일본 교도통신 보도가 문제가 됐다. 다만 추도식 이후 교도통신은 이쿠이나 정무관이 취임 이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사실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채 보도했다며 오보를 인정했다. 한국 외교부는 추도식 하루 전인 23일 불참을 결정하고는 그 배경에 대해 “양국 외교 당국 간 이견 조정에 필요한 시간이 충분치 않아 합의에 이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추도사 등 협의 과정에서 일본의 진정성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는 입장이다. 일본 정부는 24일 일본 니가타현 사도섬 인근 아이카와 개발종합센터에서 한국 정부가 불참한 가운데 ‘반쪽짜리’ 추도식을 열었다. 우리 정부는 다음날 사도섬 사도광산 인근에 남아 있는 조선인 기숙사 터에서 외교부 주최로 별도 추도식을 열었다. 추도식 이후에도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는 신경전을 벌였다. 한국의 추도식 ‘보이콧’에 대해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관방장관은 25일 “한국 정부와 정중한 의사소통을 해 왔는데 안타깝다”며 유감의 뜻을 밝혔다. 또 이쿠이나 정무관의 추도식 참석에 대해 “문제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외교부는 이날 밤 주한일본대사관을 통해 일본 정부에 유감을 표명했다. 외교부는 “이 문제가 더 이상 불필요한 갈등으로 비화하지 않고, 개별 사안으로 관리될 수 있도록 긴밀히 소통할 것을 당부했다”고 밝혔다.
  • 韓뒤통수 치고 ‘휙’ 떠난 전직 女아이돌…분노 일으킨 日이쿠이나는 누구

    韓뒤통수 치고 ‘휙’ 떠난 전직 女아이돌…분노 일으킨 日이쿠이나는 누구

    24일 오후 일본 니가타현 사도시 아이카와개발종합센터에서는 한국이 불참한 ‘사도광산 추도식’이 열렸다. ‘반쪽짜리 추도식’이 진행되는 데 가장 큰 원인을 제공한 인물은 야스쿠니신사 참배 논란이 인 일본 정부 차관급 인사인 이쿠이나 아키코 정무관이다. 일본 정부 측은 이쿠이나 정무관이 취임 이후 신사를 참배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이날 검은 정장 차림으로 등장한 이쿠이나 정무관은 묵념, 인사말, 헌화 순으로 진행된 행사에서 강제노역이나 강제동원 등 ‘강제’라는 단어를 한 차례도 언급하지 않았다. 사도광산에서 일한 수많은 노동자들 가운데 한반도 출신 노동자도 있었다는 수준의 언급이었다. 이쿠이나 정무관, 2년 전 정계 입문한 ‘아이돌’정무관은 통상 정치인이 맡는 자리로, 한국의 차관급~국장급으로 여겨진다. 부처에선 대신·부대신 다음이다. 외무성에는 부대신 2명과 정무관 3명이 있다. 2년 전 정치권에 발을 들인 이쿠이나 정무관은 원래 ‘오냥코 클럽’이라는 1980년대 아이돌 걸그룹으로 얼굴을 알렸다. 오냥코는 ‘귀여운 고양이’라는 의미로, 이 그룹에서 멤버로 활동한 여자 아이돌은 50여명에 달한다. 이쿠이나 정무관은 18~19세이던 1986~1987년에 1년 3개월간 활동했다. 오냥코 클럽 회원 ‘넘버 40’이었다. 오냥코 클럽 해산 후에는 가수로 활동하면서 드라마에도 출연했다. 1996년엔 세미누드 사진집을 내기도 했다. 그는 지난 2011년 암에 걸리면서 연예인이 아닌 사회인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해 43세 생일에 유방암 통보를 받고 2013년까지 수술과 재수술을 거듭한 경험을 담아 2016년에 ‘오른쪽 가슴, 고마웠다. 그리고 안녕… 다섯 번의 수술과 유방 재건 1800일’이라는 책을 출판했다. 2022년 당시 자민당 최대 파벌이었던 ‘아베파’의 하기우다 고이치 의원은 이쿠이나 정무관의 인지도가 높아지자 그를 정치권에 불러들였다. 당시 아베파는 참의원 선거에 나갈 인지도 높은 여성 신인을 찾는 중이었다. 이후 이쿠이나 정무관은 2022년 참의원(상원) 선거에서 6년 임기의 의원에 처음 당선됐다. 그는 이달 외무성 정무관으로 취임했고, 사도광산 추도식에 일본 대표로 참석했다. 日, “이쿠이나, 신사 참배 안해” 부인했지만그러나 이쿠이나 정무관이 참의원 의원 당선 직후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다는 보도가 나와 논란이 일었다. 교도통신은 지난 2022년 8월 15일 “이쿠이나 의원 등 국회의원 20여명이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다”고 보도한 바 있고, 산케이신문도 “이쿠이나 정무관이 2022년 8월 15일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다”고 24일 전했다. 다만 교도통신은 25일 “이쿠이나 정무관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보도는 오보였다”고 정정보도를 냈다. 통신은 “당시 이쿠이나가 경내에 들어가는 것을 봤다는 보고가 있었지만 본인에게 직접 확인하지 않은 채 기사화했다”고 설명했다. 통신은 그러면서도 2022년 이전 이쿠이나 정무관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여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25일 기자회견에서 사도광산 추도식에 한국이 불참한 데 대해 유감의 뜻을 표하면서 이쿠이나 정무관에 대해서는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하야시 장관은 이쿠이나 정무관의 파견 경위에 대해 “정부는 종합적 판단을 통해 외무성에서 홍보·문화와 아시아·태평양 정세를 담당하는 이쿠이나 정무관 참석을 결정했다”며 “문제는 없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쿠이나 정무관이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다는 보도와 관련해서는 “취임 이후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다는 사실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논란 속 추도식을 마친 이쿠이나 정무관은 기자들 질문도 받지 않고 행사장을 급히 빠져나갔다. 한일 양국 기자들은 그를 둘러싸고 야스쿠니신사 참배 여부 등에 질문했으나, 그는 답하지 않은 채 뒷문을 통해 나가 미리 대기한 차를 타고 떠났다.
  • 사도광산 ‘반쪽 추도식’… 日, 진정성도 사과도 없었다

    사도광산 ‘반쪽 추도식’… 日, 진정성도 사과도 없었다

    ‘야스쿠니 참배’ 인사에 우리측 불참유가족 등 오늘 현지서 별도 추도식외교부 “과거사 타협 없다는 의지”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인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와 관련해 한일 정부가 합의한 추도식이 ‘반쪽짜리’로 전락했다. 정부는 세계유산 등재까지 계속 한 발씩 양보하며 일본의 진정성과 성의를 기대했지만 일본이 부응하지 않으면서 ‘외교 실패’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최근 훈풍이 불던 한일 관계가 다시 삐걱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일본 사도광산 추도식 실행위원회는 24일 오후 니가타현 사도시 아이카와개발종합센터에서 ‘사도광산 추도식’을 개최했다. 한국 정부 대표와 피해자 유가족들은 불참했다. 외교부는 전날 오후 “추도식을 둘러싼 양국 외교당국 간 이견 조정에 필요한 시간이 충분치 않아 추도식 이전에 양국이 수용 가능한 합의에 이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며 불참을 결정했다. 전날 사도섬으로 떠난 사도광산 강제동원 피해자 유가족 9명은 25일 오전 9시 사도광산 조선인 기숙사 터에서 박철희 주일대사 등 한국 정부 관계자들과 별도 추도 행사를 갖는다. 유족들은 70대 안팎의 고령으로 당초 11명이 참석하려다 건강상의 이유로 2명은 출국하지 않았다. 외교부는 “자체 추도 행사 개최는 과거사에 대해 일본 측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확고한 의지의 표현”이라고 밝혔다. 협의 과정 내내 매끄럽지 않았던 추도식을 ‘보이콧’하기로 한 결정적인 계기는 추도식 이틀 전 일본 정부 대표로 발표된 이쿠이나 아키코 외무성 정무관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이력 탓이다. 그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한국 정부가 더 양보해야 한다”는 극우 주장도 펼친 바 있다. 외교부의 부실 대응도 도마 위에 올랐다. 일본 측에 일관되게 중앙정부의 고위 인사 참석을 요구했고, 차관급인 외무성 정무관이 참석하기로 하자 그대로 수용한 것이다. 그러다 정무관 3명 중 아시아태평양 담당인 이쿠이나 정무관의 신사 참배 이력을 뒤늦게 확인하고 추도사 내용 등을 우려해 불참하기로 했다. 정부는 지난 7월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에 찬성하는 조건으로 추도식 등을 일본과 합의했다. 2015년 하시마(군함도)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당시 일본이 후속 조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뒤통수’를 맞은 전례가 있어 이번에는 그나마 선방을 한 협상이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그러나 7~8월쯤으로 약속한 추도식은 계속 미뤄졌고 겨우 확정된 ‘사도광산 추도식’ 명칭에서는 추모 객체도 불분명했다. 형식만 주최 측 초청이지 유가족 참석 경비도 한국 정부가 부담했다. 조선인 노동자 관련 전시물도 사도광산 인근 아이카와 향토박물관 안에 설치는 됐지만 약속했던 ‘강제’라는 표현이 없어 논란이 됐다. 한일 관계는 윤석열 정부의 핵심 외교 성과로 꼽혔다. 내년 국교정상화 60주년을 앞두고 더욱 가시적인 성과가 나올 것이란 기대가 큰 상황에 이번 추도식 파문은 찬물을 끼얹은 꼴이 됐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전날 MBN에 출연해 “단일성인 어떤 문제가 전반적인 양국 관계 흐름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도록 양국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일본 측 조치가 실망스럽고 아직도 한국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이 확인됐다”면서도 “한국 정부 등도 일본의 진정성을 얻어내기 위해 충분히 설명하고 노력했는지 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 일본, 군함도 이어 사도광산 추도식까지 ‘뒤통수’ 쳤다

    일본, 군함도 이어 사도광산 추도식까지 ‘뒤통수’ 쳤다

    일본 정부가 사도광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와 관련해 열리는 강제동원 피해자 추도식에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 극우 성향 정치인을 앞세워 논란이 일고 있다. 태평양전쟁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인물이 일제강점기 한국인 강제노동 피해자를 추모하는 자리에 일본 정부 대표로 오는 건 한국인 유족에겐 모욕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도광산은 일제강점기 1200∼1500명의 조선인이 동원돼 강제노역했던 아픈 역사가 서린 곳이지만, 일본은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면서 이를 외면하고자 대상 기간을 에도시대가 중심인 16∼19세기 중반으로 한정했다. 뿐만 아니라 추도식에는 한국인 유족이 초청됐지만 숙소·항공편 등 소요 예산을 전부 한국 외교부가 부담하는 형태인 데다, 정식 명칭도 누구를 추도하는지조차 모를 ‘사도광산 추도식’으로 정해졌고, 추도사에 조선인 노동자를 위로하는 내용이 담길지도 행사 직전까지 공개되지 않았다. 한국 정부는 일본의 태도에 진정성이 결여됐다고 판단,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인 사도광산 추도식을 하루 앞둔 23일 전격적으로 불참을 결정했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이날 MBN 뉴스와이드에 출연해 “그런 문제(야스쿠니 신사 참배 이력) 포함해서 여러 가지 외교 당국 간 이견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며 합의에 이르기엔 시간이 촉박하다고 불참의 이유를 밝혔다. 한국 정부는 지난 2015년 군함도 등재 때에 이어 연이어 일본 측으로부터 뒤통수를 맞은 모양새가 되면서 외교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군함도 당시 일본은 희생자를 기리는 정보센터 설치를 약속했지만, 센터를 현장이 아닌 도쿄에 설치하고 강제성을 부인하는 자료도 다수 전시하는 등 아직도 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
  • [사설] 하청업체 기술 탈취, 중소기업 등치는 ‘갑질’ 발 못 붙이게

    [사설] 하청업체 기술 탈취, 중소기업 등치는 ‘갑질’ 발 못 붙이게

    보일러 등을 제조하는 종합에너지회사 귀뚜라미가 원가 절감을 위해 하청업체 기술을 빼돌렸다가 적발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그제 하도급법 위반 혐의로 귀뚜라미에 시정명령과 과징금 9억 5400만원을 부과하고 법인을 고발하기로 했다. 귀뚜라미그룹의 지주회사인 귀뚜라미홀딩스도 검찰에 고발한다. 중견기업인 귀뚜라미는 2020~2021년 센서 기술을 중국 업체에, 2022년 전동기 기술을 국내 업체에 넘겼다. 중국 기업은 센서 납품에 성공했고 국내 기업은 제품 생산에까지 이르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도 하청업체가 원청업체를 믿고 넘긴 기술자료를 경쟁사에 무단 유출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귀뚜라미는 기술자료 제출을 요구하면서 요구 목적, 권리 귀속 관계, 대가 등이 적힌 요구 서면도 교부하지 않았다. 중국은 호시탐탐 한국 업체의 기술뿐만 아니라 상표도 노리고 있다. 일부 중소업체들은 중국 공장에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으로 생산을 주문했다가 뒤통수를 맞기도 한다. 국내에서 상표권 심사가 지연되는 사이 중국 업체들이 똑같은 제품을 만들어 온라인에서 버젓이 판매하는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은 대기업과 달리 신상품 출시 전 상표등록을 미리 끝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특허청의 상표심사 평균 처리기간이 2020년 9개월에서 2023년 13개월로 늘어난 만큼 중소기업의 어려움도 늘어나고 있다. 원청업체의 지위를 악용해 고군분투하는 중소기업의 기술을 도둑질하는 것은 기술 생태계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일이다. 기술은 한번 유출되면 되돌릴 수 없고, 기업은 막대한 피해를 본다. 검찰은 신속한 수사로 철저히 진상을 밝혀 경종을 울려야 한다. 특허청 또한 상표 심사 기간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겠다. 21대 국회 종료로 폐기된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도 22대 국회에서 서둘러 논의해야 한다. 기업 기술과 상표 보호막을 든든하게 만드는 일은 국가경제를 살리는 일이다.
  • “싸다고 샀더니 하, 진짜”…연말 뒤통수 치는 해외직구 사기 주의보

    “싸다고 샀더니 하, 진짜”…연말 뒤통수 치는 해외직구 사기 주의보

    한국소비자원이 연말을 맞아 잇따라 열리는 글로벌 할인 행사를 앞두고 해외직구 소비자 피해주의보를 발령했다. 소비자원은 지난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접수된 해외직구 온라인 물품 구매 상담 건수 총 2만 9834건 가운데 글로벌 할인 행사가 집중된 11~12월에 19.8%(5916건)가 몰렸다고 18일 밝혔다. 올해 역시 미국의 블랙프라이데이(11월 29일), 사이버먼데이(12월 2일), 영국 박싱데이(12월 26일) 등 행사가 연말에 집중적으로 열리므로 해외직구를 할 때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소비자원은 해외직구 이용 시 정품 브랜드 또는 공식 유통업자 운영 쇼핑몰인지를 반드시 확인하고 사기 피해에 대비해 현금 대신 신용카드나 체크카드를 사용해달라고 당부했다. 연도별 상담 건수를 살펴보면 증가 추세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2021년 9681건, 2022년 9610건, 2023년 1만 543건으로 해마다 늘어났다. 상담 사유를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취소·환불·교환 지연 및 거부가 24.2%로 가장 많았다. 뒤이어 미배송과 배송 지연이 21.5%, 제품 하자·품질·사후관리 문제가 19.8%를 차지했다. 품목별로는 의류와 신발 관련 피해가 49.8%로 절반에 육박했다. 이어서 IT·가전제품 9.9%, 가사용품 7.0%, 취미 용품 6.9% 순이었다. 피해 유형도 다양했다. 높은 할인율로 소비자를 유인한 후 제품을 배송하지 않거나, 가품 또는 저품질 제품을 배송한 뒤 연락을 끊는 사례가 많았다. 일부 사기성 쇼핑몰은 아예 사이트를 폐쇄했다. 소비자원은 특히 유명 브랜드를 사칭한 사기성 쇼핑몰을 주의하라고 당부했다. 브랜드 명칭이나 로고, 제품 사진을 무단으로 도용하고 공식 홈페이지와 유사한 웹 디자인과 인터넷 주소를 사용해 소비자들이 깜빡 속을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소비자원 관계자는 “피해 사례 대부분이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 광고를 통해 해당 쇼핑몰에 접속한 경우가 많아 SNS 이용시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해외직구 이용 중 피해가 발생한 경우 ‘국제거래 소비자포털’을 통해 상담받을 수 있다.
  • ‘도둑’이 침입해 때렸는데 사망, “정당방위 아니다”[전국부 사건창고]

    ‘도둑’이 침입해 때렸는데 사망, “정당방위 아니다”[전국부 사건창고]

    새벽 귀가하니 도둑이 서랍장 뒤져발로 차고 빨래 건조대 내리쳐도둑 ‘식물인간’, 집주인 ‘기소’2014년 3월 8일 오전 3시 15분쯤 강원 원주시 명륜동의 한 단독주택. 이 집에 사는 최모(당시 19세)군이 귀가하고 있었다. 전날 경기 의정부시에서 입영 신체검사를 받고 돌아와 오후 8시부터 이튿날 새벽까지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오던 길이었다. 1층에 외할아버지·할머니, 2층에 최군과 어머니가 살았다. 어머니는 매일 밤 10시부터 근처 설렁탕집에서 밤새워 일했고, 가끔 들르는 누나가 이날 온다는 말도 없었다. 그런데 그 시간 2층에 불이 켜져 있었다. 최군은 술에 취했지만 이상하게 생각하며 2층으로 올라가 현관문을 열었다. 그 순간 낯선 남성이 서랍장을 뒤지고 있었다. 도둑(김모씨-당시 55세)이었다. 방에서 거실로 나오던 김씨와 마주쳤다. 최군은 “누구냐”고 물었다. 3m 거리. 김씨는 대답을 얼버무리며 도망가려고 했다. 최군은 잽싸게 달려들었다. 주먹으로 수차례 세게 폭행했다. 김씨는 눈가에 피를 흘리면서 최군 엄마와 누나가 쓰는 방 앞에 쓰러졌다. 무릎을 꿇고 엎드려 있던 그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일어서려고 했다. 최군은 다시 주먹과 발로 김씨의 얼굴 등 온몸을 여러 차례 폭행했다. 당시 최군 휴대전화는 정지된 상태여서 쓸 수 없었다. 최군이 1층으로 내려가 집 전화로 경찰에 신고하려고 2층 현관문을 여는 순간, 김씨가 몸을 반쯤 세우고 거실의 장롱 앞쪽으로 기어가는 게 보였다. 최군은 ‘신고하고 돌아올 때까지 도망가지 못하도록 완전히 제압하자’(판결문 기록)고 마음먹었다. 운동화 발로 김씨의 뒤통수를 수차례 밟고 걷어찼다. 이어 알루미늄 빨래 건조대로 몇차례 내리치고, 자기 가죽 벨트를 풀어 버클을 잡고 띠 부분으로 또 때렸다. ‘정당방위’를 놓고 갑론을박이 뜨거웠던 이 사건에 대해 재판부는 “이미 제압한 도둑을 추가로 폭행한 것은 ‘정당방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인정하지 않았고, 최군은 유죄로 벌을 받아 피해자에서 졸지에 가해자가 됐다. 도둑 형 ‘동생 병원비 부담’ 목숨 버려김씨를 폭행하며 지르는 소리를 듣고 잠자던 외할머니가 2층으로 올라왔다. 그때가 오전 3시 20분쯤, 최군이 귀가한지 5분여 흐른 시점이었다. 최군은 외할머니 휴대전화로 112에 전화를 걸어 “이상한 남자가 집에 들어와 있어 때렸다”고 신고했다. 친구들에게도 “도둑이 들었으니 좀 와달라”고 연락했다. 최군은 경찰이 금세 오지 않자 다시 전화했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119 구급대를 불렀다. 당시 김씨의 얼굴과 옷, 거실 바닥에는 피가 흥건했다. 얼굴은 퉁퉁 부어 있었다. 훔친 물건을 담을 가방이나 흉기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최군은 경찰에서 “뒤진 흔적은 있었지만 크게 어지르지 않은 것으로 볼 때 김씨가 침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와 마주친 것 같다. 흉기를 꺼내거나 내게 달려들 기세는 없었다”며 “112에 신고할 때 김씨는 피를 흘리면서 엎드린 채 아무런 움직임 없이 코를 골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의식을 잃은 김씨는 곧바로 원주 모 병원 중환자실로 이송됐다. 의료진은 뇌출혈과 외상 등에 따라 생명이 위독한 것으로 판단하고 즉시 두개 감압술과 혈종 제거술 등 수술을 실시했다. 하지만 그는 끝내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고, ‘뇌사’ 상태에 빠졌다. 검찰은 최군을 집단·흉기 등 상해 혐의로 기소했다. 사건이 발생한지 1개월 후 김씨의 보호자 역할을 하던 형은 동생의 병원비가 당시 2000만원에 이르자 괴로워하다가 숨진 채 발견됐다. 집주인, 1심 징역 1년 6개월…“정당방위 한도 넘었다”구속 7개월 만에 ‘보석’ 석방징역 1년 6개월·집유 3년 확정1심을 진행한 춘천지법 원주지원 박병민 판사는 2014년 8월 최군에게 “절도범을 제압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아무런 저항 없이 도망가려고 했던 김씨의 머리 부위를 장시간 심하게 때려 식물인간 상태로 만든 것은 방위행위의 한도를 넘어섰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며 “나아가 김씨의 형이 목숨을 끊어 유족이 된 형의 아들이 최군의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고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사건 발생 9개월 만에, 1심 선고 4개월이 지난 그해 12월 25일 김씨는 ‘식물인간’으로 요양병원에서 치료받다 끝내 숨졌다. 검찰은 최군의 공소장을 상해치사 혐의로 변경했다. 최군은 “알루미늄 빨래건조대는 위험한 물건이 아니다. 내 집에 침입한 도둑을 제압한 행위는 정당방위에 해당한다”고 항소했다. 최군의 변호인도 “최군의 행위는 정당방위가 당연하고, 도둑을 다소 과도하게 제압했더라도 과잉방위에 해당해 처벌할 수 없다”면서 “최군의 폭행과 도둑이 9개월이 지나 폐렴으로 사망한 것에는 다른 요인이 개입될 수 있어 직접적 인과 관계를 확증할 수 없는 만큼 상해치사는 무죄”라고 주장했다. 최군은 보석을 신청했고, 법원이 방어권 보장 차원에서 받아들여 구속 7개월 만인 이듬해 3월 석방됐다. 최군은 “김씨가 엄마와 누나가 쓰는 방에서 나오고 현관에 엄마 신발이 있는 것을 보는 순간, ‘엄마·누나를 강도하거나 성폭행한 것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면서 “또 김씨가 거실의 부엌에서 흉기를 들고 달려들지 모른다고 생각해 공격했다”고 자기 행위의 정당성을 강변했다. 그러면서 “김씨가 크게 다칠 것이라고 생각도 못했다”며 “군대도 가고, 대학도 가고 싶다. 반성하고 선처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대항 안 할 때 도둑의 침해는 종료”“발단은 도둑이 제공, 500만원 공탁”항소심을 진행한 서울고법 춘천 제1형사부(부장 심준보)는 2016년 1월 최군에게 1심을 파기하고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구속하지 않는 대신 재범 방지를 위해 240시간 사회봉사를 명령했다. 재판부는 “김씨 사망진단서에 직접 사인은 폐렴이지만 그 발병 원인은 두부 손상 후유증”이라며 “국가가 개인 침해를 보호하기 어려운 급박한 상황에서 스스로 구제하는 것은 감경 요인이지만 사적 보복이나 공격의 한도를 넘은 것이 분명한 행위는 정당방위뿐 아니라 과잉방어로도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김씨가 최군 집을 침입해 훔칠 물건을 물색한 것은 부당한 침입이 인정되나, 최군과 마주치자 대항하지 않고 도망가려는 태도를 보이면서 그의 부당한 침해는 종료됐다”면서 “최군은 김씨가 ‘몸을 반쯤 일으켜 이동하며 침해할 것을 예방하려고 추가 폭행했다’고 주장하지만 공격이 임박한 상황이라고 도저히 볼 수 없다”고 했다. 이어 “1차 폭행과 최군이 1층으로 내려가려다 추가 폭행한 것은 지쳐서 잠시 중단했다가 다시 싸우는 것과 다른 이질적 행위이고, 그때는 흥분상태도 가라앉았다고 볼 수가 있다”며 “최초 폭행과 추가 폭행을 하나의 연속 행위로 묶어 동일한 행위라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여론조사 76% “정당방위다”한국은 ‘정당방위’ 매우 엄격…“도둑은 죽여도 된다” 우려재판부는 “최군 측은 ‘외국의 일부 국가는 (범인을) 총으로 죽여도 정당방위로 처벌받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같은 내용의 진정서도 들어왔다”고 밝힌 뒤 정당방위 관련 외국 사례를 들었다. 영국은 ‘치명적인 힘을 행사하려면 (범인 공격으로 인한) 후퇴가 있어야’, 기본적으로 정당방위가 성립된다. 오히려 “남의 집에 침입한 사람이 집주인의 과격한 공격을 방어한 걸 정당방위로 인정한 사례도 있다”고 했다. 독일은 ‘경미한 (자신의) 법익을 보호하려고 사람을 살해하는 것은 법감정 및 자연법에 반한다’고 엄격히 제한하고, 프랑스는 “공격의 심각성에 비례하지 않는 방위 수단을 쓰거나 공격에 직면한 순간이 지난 뒤 방위를 개시한 경우 형사 책임을 피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일본은 “심각한 상황에 직면해 ‘어쩔 수 없이 취한 행위’가 아닐 경우 맨손 공격 침입자를 위험한 물건으로 살상하면 정당방위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했다. 재판부는 “최군이 김씨의 도주를 막을 의도였다면 집에 흔한 전선, 테이프, 넥타이 등으로 손발을 묶어두는 대체 수단으로도 가능했다”며 “구태여 빨래 건조대의 위험성을 판단하지 않더라도 최군이 김씨의 머리를 발 등으로 집중 공격했고, 사망할 수도 있다는 것을 충분히 예견했다고 봄이 옳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최군의 행위가 정당방위는 아니지만 김씨가 사건의 발단을 제공했고, 그를 제압하려고 흥분한 나머지 우발적으로 범행한 점은 충분히 참작할 수 있다”며 “징역형을 유예하되 사회봉사를 명한다”고 했다. 집행을 유예한 이유로 최군이 ▲어려운 형편에도 김씨 유족을 위해 500만원을 형사 공탁하고 ▲스스로 정신적 충격을 받아 치료받았고 ▲아직 젊은 나이인 데다 형사처벌 전력이 없고 ▲최군 어머니와 외조모, 이모 등 가족과 지인들이 한결같이 선처를 탄원하며 선도를 다짐하는 점을 들었다. 선고 후 법정을 나선 최군은 “돌아가신 김씨에게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고개를 숙였다. “어떤 피해를 끼칠지 모르는데,가만 보고만 있으란 거냐” 비난도둑이 든 피해를 당한 집주인이 가해자로 바뀌어 처벌받자 여론이 달아올랐다. “내 집에 침입한 도둑이 어떤 피해를 끼칠지 모르는데, 가만히 보고만 있어야 하느냐”는 댓글이 달렸고, 범죄자에게 총을 쏘는 일이 빈번한 미국을 예로 들며 “한국은 도둑·강도를 모셔야 하는 동방예의지국”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한 언론이 리얼미터에 의뢰해 조사한 여론조사에서는 76.2%가 최군의 행위에 대해 ‘정당방위’라며 ‘무죄’ 판결이 내려져야 한다고 답했다. ‘지나치게 대응해 유죄가 맞다’는 의견은 10.9%밖에 안 됐다. 법률 전문가 중에도 “도둑이 크게 다치지 않았거나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이 됐다면 좀 더 다른 판결이 나왔을 것”이라며 “한국은 정당방위에 엄격하다”고 하는 이들이 적잖았다. 1988년 성범죄 남성의 혀를 깨물어 자른 여성이 구속됐다 2심에서 무죄로 뒤집힌 것과 같은 정당방위 인정 사건은 많지 않다. 최군 변호인은 “술에 취하고 극도의 공포를 느낀 상황에서 도둑을 제압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폭행이) 과했다면 과잉방위로 봐야 한다”며 “가족을 지키려던 행위를 단순 범죄로 판단한 건 이해할 수 없다”고 상고했다. 대법원 제2부(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2016년 5월 “항소심에서 정당방위 등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없다”고 기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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