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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영석 공식입장 “루머 내용 모두 거짓..선처 없을 것” [전문]

    나영석 공식입장 “루머 내용 모두 거짓..선처 없을 것” [전문]

    나영석 PD가 자신을 둘러싼 루머에 대해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18일 나영석 PD는 “해당 내용은 모두 거짓이며, 최초 유포자 및 악플러 모두에게 법적인 책임을 물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나영석은 “제 개인 명예와 가정이 걸린 만큼 선처는 없을 것임을 명백히 밝힌다. 고소장 제출을 준비 중”이라며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이어 “어제의 소문들이 오늘의 진실인 양 둔갑하는 과정을 보며 개인적으로 깊은 슬픔과 절망을 느꼈다”며 심경을 전했다. 다음은 나영석 PD 공식입장 전문. 안녕하세요, 나영석 PD입니다. 저는 현재 차기 프로그램 장소 답사차 해외 체류 중입니다. 늦었지만 두 가지 건에 관하여 제 입장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알쓸신잡3> 관련하여 전영광 작가님의 사진을 저희 프로그램에서 무단으로 도용한 건입니다. 이것은 명백히 저희 제작진의 잘못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제가 책임지고 작가님께 적절한 사과와 보상 방법을 논의할 것을 약속드리며, 다시 한번 지면을 빌려 사과의 말씀을 전합니다. 둘째. 저와 관련한 근거 없는 소문에 관한 건입니다. 해당 내용은 모두 거짓이며, 최초 유포자 및 악플러 모두에게 법적인 책임을 물을 예정입니다. 저 개인의 명예와 가정이 걸린만큼 선처는 없을 것임을 명백히 밝힙니다. CJ ENM 및 변호사가 이와 관련한 증거를 수집 중이며, 고소장 제출을 준비 중입니다. 다만 한가지 슬픈 일은 왜, 그리고 누가, 이와 같은 적의에 가득 찬 가짜 뉴스를 생산하고 퍼뜨리는가 하는 점입니다. 너무 황당해서 웃어넘겼던 어제의 소문들이 오늘의 진실인 양 둔갑하는 과정을 보며 개인적으로 깊은 슬픔과 절망을 느꼈습니다. 관련한 사람 모두에게 법적인 책임을 물을 것임을 다시 한번 약속드립니다. 사진=뉴스1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공식입장] 나영석 PD “소문은 모두 거짓… 제 명예와 가정 걸린 일 선처 없을 것”(전문)

    [공식입장] 나영석 PD “소문은 모두 거짓… 제 명예와 가정 걸린 일 선처 없을 것”(전문)

    나영석 PD가 ‘알쓸신잡3’의 사진 무단도용 논란과 사생활 루머에 대해 입장을 밝혔다. 18일 나영석 PD는 소속사 CJ CNM을 통해 공식입장을 전했다. 그는 무단 도용 건에 대한 사과하고 루머에 대해서는 법적 책임 단호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현재 차기 프로그램 장소 답사차 해외 체류 중”이라고 운을 뗀 나영석 PD는 “‘알쓸신잡3’ 관련해 전영광 작가님의 사진을 저희 프로그램에서 무단으로 도용한 건은 명백히 저희 제작진의 잘못”이라며 “제가 책임지고 작가님께 적절한 사과와 보상 방법을 논의할 것을 약속드린다”고 말했다. 지라시를 통해 돌았던 사생활 루머에 관한 입장도 밝혔다. 나영석 PD는 “저와 관련한 근거 없는 소문에 관한 건의 해당 내용은 모두 거짓이며, 최초 유포자 및 악플러 모두에게 법적인 책임을 물을 예정이다”고 강조했다. 또 “개인의 명예와 가정이 걸린만큼 선처는 없을 것임을 명백히 밝힙니다. CJ ENM 및 변호사가 이와 관련한 증거를 수집 중이며, 고소장 제출을 준비 중”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너무 황당해서 웃어넘겼던 어제의 소문들이 오늘의 진실인 양 둔갑하는 과정을 보며 개인적으로 깊은 슬픔과 절망을 느꼈다”는 심정도 털어놨다. [나영석 PD 공식입장 전문] 안녕하세요, 나영석 PD입니다. 저는 현재 차기 프로그램 장소 답사차 해외 체류 중입니다. 늦었지만 두 가지 건에 관하여 제 입장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알쓸신잡3> 관련하여 전영광 작가님의 사진을 저희 프로그램에서 무단으로 도용한 건입니다. 이것은 명백히 저희 제작진의 잘못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제가 책임지고 작가님께 적절한 사과와 보상 방법을 논의할 것을 약속드리며, 다시 한번 지면을 빌려 사과의 말씀을 전합니다. 둘째. 저와 관련한 근거 없는 소문에 관한 건입니다. 해당 내용은 모두 거짓이며, 최초 유포자 및 악플러 모두에게 법적인 책임을 물을 예정입니다. 저 개인의 명예와 가정이 걸린만큼 선처는 없을 것임을 명백히 밝힙니다. CJ ENM 및 변호사가 이와 관련한 증거를 수집 중이며, 고소장 제출을 준비 중입니다. 다만 한가지 슬픈 일은 왜, 그리고 누가, 이와 같은 적의에 가득 찬 가짜 뉴스를 생산하고 퍼뜨리는가 하는 점입니다. 너무 황당해서 웃어넘겼던 어제의 소문들이 오늘의 진실인 양 둔갑하는 과정을 보며 개인적으로 깊은 슬픔과 절망을 느꼈습니다. 관련한 사람 모두에게 법적인 책임을 물을 것임을 다시 한번 약속드립니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낭만 조선, 설레다 - 용인 한국민속촌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낭만 조선, 설레다 - 용인 한국민속촌

    “이놈, 거지놈 주제에 손님들 삥(?)을 뜯다니. 매우 쳐라. 광년아! 너두 같이 쳐라” 주말 오후가 되면 한국 민속촌 관아 앞마당에는 왁자지껄 관람객들의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사또가 거지를 붙잡아 심문(?)을 하면 거지는 마지못해 툴툴거리며 관람객들에게서 받은 과자나 잔돈을 던지고 도망간다. 그러면 다시 관람객들이 거지를 잡아 사또 앞에 데려다준다. 우스꽝스러운 심문은 또 시작되고 사람들은 연신 웃음꽃을 피운다. 한국 민속촌에서는 사또나 거지 이외에 다양한 캐릭터들이 있어 방문 재미를 더한다. 장사꾼, 화공, 주정뱅이, 광년이, 주모, 포졸들, 기생 자매, 흥부 둘째아들, 중매쟁이, 무사, 속촌아씨, 스파르타 군인, 이놈 아저씨, 관상가, 구미호 등등의 활약상은 유투브나 페이스북, 트위터 및 각종 SNS에서도 이미 유명하다. 이들의 등장으로 먼지 켜켜이 쌓였을 듯한 민속촌이 단번에 핫플레이스가 되었다. 70,80년대 역사 체험 장소에서 지금은 전통 종합테마파크로 제대로 자리 잡은 용인의 한국 민속촌이다. 한국 민속촌은 진짜다. 집도 진짜, 사람들도 진짜, 하물며 직접 농기구를 만들고 농사도 직접 짓는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아 한국 민속촌을 배경으로 사극이라도 촬영하는 날이면 배우나 스태프들의 고생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만한 세트장은 눈을 뜨고 찾으려도 찾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이곳은 모든 것들이 진짜이기 때문이다. 한국 민속촌의 설립 배경은 이러하다. 1970년대 도시화 물결 속에서 전통 기와집들과 민가들이 사라지고 있었다. 이에 노산 이은상 선생과 몇몇 문화계 인사들이 한국의 전통문화를 지키고자 전국에 산재한 230여 채의 집들을 이곳에 모은 뒤 1974년 10월 3일 한국 민속촌을 개관하였다. 현재 한국민속촌의 총면적은 54만 5,490m2 이며 기와집이 132채, 초가집은 143채가 들어서 있다. 이 외에도 옹기 공방, 관아, 사극체험장, 양조장, 제주도 민가, 공연장 등도 아울러 있어 명실상부한 국내 최고이자 유일한 전통문화 테마파크로 확실히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국민속촌의 입구를 들어서면 제일 먼저 보이는 문은 내삼문(內三門)으로 문 옆 돌탑에는 소원종이를 걸어두는 곳이 있다. 안으로 들어서면 한국 민속촌 내의 각종 캐릭터들이 분주하게 관람객들의 눈길을 잡아끈다. 이들을 따라가다 보면 장승 동산, 옹기 공방, 대장간, 양반가 혼례식장, 양조장, 물레방아, 선비집, 나룻배 선착장, 마상 무예 공연장, 줄타기 공연장 등등 반나절이 아니라 한나절 다녀도 다 돌아볼 엄두가 안 날 정도의 다채로운 행사와 볼거리가 다양하다. 이중에서 줄타기, 마상무예, 전통 혼례 관람은 늘상 인기 최고의 이벤트여서 관람객들의 자리 잡기 경쟁도 대단하다. 이외에 먹거리장터에는 경기도 무형문화재 2호로 지정된 동동주를 비롯하여 민속촌 내에서 손수 지은 식재료로 만든 전통 음식들도 한 가득이어서 가족이나 친구, 지인들과의 단체 방문지로 한국 민속촌은 으뜸인 곳이다. <한국민속촌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 원래 민속촌의 설립 목적이 전통 문화의 보존이기에 아직도 그 역할에 충실한 곳이다. 제대로 된 방문지다. 2. 누구와 함께? - 가족 단위, 연인들 3. 가는 방법은? -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민속촌로 90 / 288-0000(031) - 신논현역 5001-1 직행좌석, 강남역 1560 직행좌석, 종각옆 5500-1 직행좌석 - 수원역 37번, 10-5번, 죽전역 30번 4. 감탄하는 점은? - 단순한 놀이 체험 공간이 아니라 전통이 제대로 숨쉬고 있는 역사 지구.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 주말이면 인산인해. 대중 교통을 이용하는 편이 낫다. 6. 꼭 봐야할 장소는? - 줄타기, 마상무예, 전통체험, 각종 캐릭터들의 활약 7. 토박이들이 추천하는 먹거리는? - 먹거리 장터에는 경기 지방 특유의 맛을 간직한 음식들이 많다. 장터국밥, 순대국밥, 빈대떡, 동동주 등등. 8. 홈페이지 주소는? - http://www.koreanfolk.co.kr/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 에버랜드, 교통박물관, 경기도 어린이 박물관, 백남준 아트센터 10. 총평 및 당부사항 - 단순한 놀이 공간이 아닌 전통 문화의 재미를 새롭게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조선의 재발견. 입장료는 홈페이지에서.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세종로의 아침] 김창호의 히말라야/임병선 체육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김창호의 히말라야/임병선 체육부 선임기자

    다정다감한 그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들은 것은 지난 6월 러시아월드컵 출장을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였다. 마침 알래스카를 다녀와 막 활주로에 내렸다고 했다. 그 얼마 전 북한산 인수봉에서 변을 당한 80대 여성 산악인 황국희씨와의 인연을 함께 나눴다. 많이 안타까워하던 그의 목소리가 지금도 생생하다.최근 네팔 히말라야 다울라기리 산군에서 생애 마지막 등반의 첫발을 떼기도 전에 8명의 대원과 함께 스러진 김창호 대장이다. 누구보다 꼼꼼하게 안전한 산행을 준비하던 그를 아는 터라 지난 주말 이틀 동안 원정대가 당한 참변이 믿기지 않아 괴로웠다. 히말라야를 등반하던 한국 산악인 5명이 실종됐다는 1보를 들었을 때도 그의 이름을 떠올릴 수가 없었다. 그 뒤 그의 성향, 준비성과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참변의 정황이 전해질 때마다 믿기지 않는다는 말을 되풀이해야 했다. 불가항력의 변을 당했다고 믿는다. 그의 얼굴을 마지막 본 것은 지난 2월 신문사 1층 커피숍에서였다. 남들이 만들어 놓은 루트가 아니라 한국인이 왜 ‘코리안웨이’를 앞장서 만들어야 하는지, 작게 효율적으로 해나갈 것인지 다소곳하지만 결연한 눈동자로 들려줬다. 그리고 한 달 뒤 이른 새벽 유명산 등산로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는 코리안웨이 도전에 함께할 후배들과 함께 용문산을 출발해 유명산 아래 부모님 집에 들러 후배들의 영양 보충을 시켜 줄 참이라고 했다. 약속한 시간이 한참 지나도 오지 않아 전화를 걸었더니 생각보다 지체돼 여전히 용문산 근처라고 했다. 미안하다고 어쩔 줄 몰라했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미국 서부의 존 뮤어 트레일 간다고 하면 자신이 아끼던 침낭을 빌려주려고 선배 집까지 찾아와 건넸다. 코리안웨이를 진행하면서도 짐을 네팔인 셰르파들과 동등하게 나눠 지게 하고 대장도 대원들과 똑같이 조리 순번이 돌아오게 했다. 대기업 후원을 받으면 원정대를 꾸리기 쉬웠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자신이 선배들에게 받았듯이 자신이 이룬 것들을 후배들에게 물려주면 그 후배들이 새끼치듯 전수하는 코리안웨이를 고집했다. 아니 그래야 한다고 믿었다. 그의 기록은 정교했다. 선배들과 많이 달랐다. 원로 산악인 김영도 선생이 누누이 강조하듯 그 이전 산악인들은 경험과 직관에 의존했지만 그는 철저한 정찰과 준비, 기록을 중시했다. 젊은 시절 그가 6년 동안 머무르며 파키스탄 거벽들을 기록한 자료들은 외국 산악인들이 앞다퉈 빌려 달라고 할 정도였다. 안타까운 것이 둘 있다. 인터넷 댓글이다. 평지에 사는 이들은 고산과 거벽을 오르는 이들을 이해하지 못한 채 폄하한다. 정신과 기상을 잃은 민족은 오래가지 못한다. 함부로 PC방에서 키보드 두들겨 깎아내리지 않았으면 한다. 둘째는 가족이다. 뒤늦게 결혼해 세 살 딸이 있다. 딸이 다섯 살쯤 되면 캐나다 유콘강에 세 가족이 카약 타러 가는 게 꿈이라며 눈을 빛내던 김 대장이었다. 그에게 궁극의 히말라야는 가족의 품이었다. 산행의 목표는 늘 안전한 귀가라고 되뇌었던 이유다. 딸이 아빠의 웅혼한 뜻을 이해하며 씩씩하게 자라길 바랄 따름이다. bsnim@seoul.co.kr
  • [길섶에서] 알레르기와의 전쟁/임창용 논설위원

    날씨가 쌀쌀해지자 어김없이 불청객이 찾아왔다. 30년째 괴롭혀 온 알레르기성 비염이다. 일어나면 밤새 참고 기다렸다는 듯이 득달같이 심한 재채기를 유발한다. 코가 시큰하고 눈물이 날 정도다. 반복되는 재채기는 새벽 단잠에 빠진 아내까지 깨워 미움을 산다. 알레르기 증상이 처음 나타난 것은 스물여덟 살 때다. 단독주택에 살다 아파트로 이사한 직후다. 수시로 병원에 가고, 한의원에서 약도 제법 지어 먹었다. 하지만 병원 치료 효과는 그때뿐이었고, 한약은 아무런 차도가 없었다. 알레르기 유발 원인을 제거한다고 청소에 각별히 신경 쓰고 침구도 바꿔 봤지만, 마찬가지. 생각해 보니 아파트 환경이 원인인 것 같았다. 이사 전엔 전혀 증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전원주택으로 이사 갈까 하고 1년 가까이 집과 땅을 보러 다녔다. 몇 년간 마치 알레르기와의 전쟁이라도 치르는 듯했다. 그런 와중에 증상이 완화되면서 아파트에 눌러앉았고, 지금까지 살고 있다. 불운하게도 두 아이가 내 알레르기 형질을 물려받았다. 큰아이는 아토피성 피부염, 둘째는 비염으로 고생한다. 아이들이 괴로워하는 걸 보니 슬슬 투쟁의식이 발동한다. 이제라도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가야 하나? sdragon@seoul.co.kr
  • 러월드컵 테크니컬 보고서 결론 “똑똑하게 뛰어야 한다”

    러월드컵 테크니컬 보고서 결론 “똑똑하게 뛰어야 한다”

    잉글랜드는 러시아월드컵 준결승에까지 이르렀지만 세트피스 말고는 골을 넣지 못했고, 창의적인 미드필더가 부족했으며, 톱클래스 팀에 상대가 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받았다. 그러나 잉글랜드만 그런 게 아니었다. 국제축구연맹(FIFA)의 테크니컬 스터디 리포트에 따르면 대회 전체에 일관된 경향이었다. 브라질의 1994년 월드컵 우승을 이끌었던 카를로스 알베르토 파레이라와 네덜란드 공격수 출신 마르코 반바스텐이 주도한 보고서는 점유율이 얼마나 과대평가되고 있는지, 얼마나 세트피스가 효율적일 수 있는지, 왜 플레이메이커가 중요한지 보여주고 있다고 영국 BBC가 16일(현지시간) 소개했다.먼저 점유율. 스페인과 독일보다 더 많은 점유율과 패스 횟수를 기록한 팀은 없었지만 두 팀 모두 조별리그에서 일찌감치 쫓겨났다. 우승팀 프랑스는 점유율 48%에 그쳐 호주, 튀니지, 모로코보다 낮았다. 경기당 460회 패스를 기록해 스페인(804회)의 절반에 가까웠다. 하지만 패스 성공률은 70%였다. 달리 말하면 패스 횟수가 적을수록 성공률이 높았다. 파이널 서드(final third, 한쪽 진영을 3등분했을 때 마지막 구역) 진입은 공동 17위, 페널티지역 진입은 공동 18위, 크로스 횟수는 공동 28위에 그쳤지만 프랑스보다 더 많은 골을 넣은 팀은 벨기에 뿐이었다. 한 골을 넣기 위해 몇 개의 슛이 필요했느냐 따지니 프랑스는 6개로 러시아(4.5개)보다 조금 많았다. 독일은 무려 36개가 필요했다. 효율성과 결정력에서 단연 앞섰다.둘째 러브 트레인 사랑. 잉글랜드 미드필더 출신의 감독 글렌 호들은 잉글랜드 대표팀의 코너킥 접근법을 1970년 오제이스(The O‘Jays)의 디스코 고전에 착안해 ‘러브 트레인(Love Train)’이라고 했다. 해리 매과이어, 존 스톤스, 해리 케인 등이 수비 뒤쪽에 줄지어 서 있다가 튀어나와 한 방 먹였다. 이렇게 세트피스로 뽑아낸 것이 9골, 그 중 4골이 코너킥 상황에서 나왔다. 대회 전체를 통틀어도 이 루트로의 득점 비중이 늘었다. 코너킥 29개 가운데 한 골은 터져 2010년 남아공 대회 때 67개 가운데 한 골, 4년 전 브라질 대회 때 36개 가운데 한 골보다 이 득점 루트가 각광받았다.셋째 무작정 많이 달려도 안 된다. 기나긴 시즌이 끝나고 짧은 기간 많은 대회를 치러야 해 체력이 관건이었다. 크로아티아 대표팀과 AC 밀란의 미드필더 출신 즈보니미르 보반 FIFA 사무부총장은 “압박 플레이가 이전보다 덜 넘쳐났다. 월드컵 같은 대회에는 에너지를 아끼고 정신적 예민함을 가능한 한 유지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조언했다. 경기당 101㎞를 뛴 프랑스보다 적은 거리를 커버한 팀은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 멕시코, 파나마 네 팀뿐이었다.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세르비아가 이 부문 1위였는데 무려 113㎞를 뛰었다. 잉글랜드는 107㎞로 7위였다. 스프린팅을 비교하면 프랑스의 순위는 조금 더 올라간다. 시속 25㎞였는데 킬리안 음바페 덕분이었다. 이 속도 이상으로 커버한 거리가 2007m였는데 17위였다. 흥미롭게도 스페인은 1588m로 꼴찌 스웨덴의 바로 다음이었다.넷째 대회 169골은 32개국 본선 가운데 1998년 프랑스와 4년 전 브라질 대회 다음으로 많은 골이 터졌다. 64경기 가운데 무득점 경기는 덴마크-프랑스 한 경기 뿐이었는데 브라질 대회 때는 다섯, 남아공 대회 때는 일곱 경기였다. 파레이라는 “공격자 정신이 있었다”고 갈파했다. 페널티지역 밖에서의 골이 많이 터졌다. 중거리 슈팅 29개당 한 골이 터져 브라질 대회 때의 42개당 한 골보다 훨씬 좋아졌다. 남아공 대회 때보다 이 지역에서의 슈팅이 32% 감소했는데 이유는 타이트하고 정교한 수비 때문이었다. 프랑스는 이 거리에서 9.5개의 슈팅을 날려 한 골을 집어넣어 러시아 다음이었다. 크로아티아는 54개를 날려 한 골에 그쳤고, 독일은 36개를 날려 한 골도 넣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이번 대회에는 이렇다 할 플레이메이커가 나오지 않았다. 골든볼을 수상한 루카 모드리치와 폴 포그바는 결승으로 이끈 견인차였다. 2006년 독일 대회 우승을 이끈 안드레아 피를로(이탈리아), 2010년 남아공 우승을 지휘한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와 사비(스페인), 4년 전 브라질 우승을 이끈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독일)만큼 활약하지 못했다. 8강전 네 경기만 비교해도 잉글랜드는 “수비에서도 탄탄했던 두 선수가 공격에서도 잘 연결됐다”고 표현한 반면 벨기에는 “타고난 기량에다 믿기지 않는 다재다능함”을 갖고 있다고 했다. 전술적 유연성과 명쾌한 작전 계획이 러시아 대회의 성공 요소로 지적됐지만 어느 코치도 이를 그라운드 위에서 직접 지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파레이라는 플레이메이커가 있다는 것은 “경기 템포를 높이거나 낮추고, 스위치 플레이, 그외 많은 일들을 일어나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하며 이런 일을 감당할 선수가 있고 없고가 많은 차이를 낳았다고 덧붙였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큰스님 담다 깨달음 닮다

    큰스님 담다 깨달음 닮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1981년 조계종 제6대 종정에 추대된 성철(1912~1993) 스님이 해인사에서 대중에게 내린 취임 법어이다. 오랜 선(禪) 수행을 통해 크게 깨달은 마음 경지를 설한 이 법문은 일반에게 가장 흔히 회자된다. 이 오도의 일침 말고도 성철 스님은 숱한 명언을 남기며 제자, 신도들에게 ‘속이지 말고 자기 수행을 하라’고 당부했다. 수행과 생활 모두에서 자신과 남에게 가혹할 만큼 엄격했던 성철 스님. 그래서 현대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선지식(善知識) 성철 스님에겐 늘상 ‘가야산 호랑이’란 별명이 따라붙는다.그렇다면 가까이에서 제자와 신도들이 겪고 느꼈던 ‘가야산 호랑이’는 어떤 인물일까. 일반인들이 알고 있듯이 그저 늘 “3000배를 하라”며 호통만 치는 ‘산중 호랑이’였을까. 백련불교문화재단(이사장 원택 스님)이 성철 스님 25주기(28일)를 맞아 세상에 낸 ‘성철 큰스님을 그리다’(유철주 지음, 장경각 펴냄)는 성철 스님을 친근하게 드러내는 인터뷰집으로 눈길을 끈다. 성철 스님을 가까이서 시봉했거나 가르침을 받은 직계 상좌(제자) 16명과 출가하지 않은 재가 제자 20명의 회고담이 새삼스럽다.그중에서도 일반에겐 생소한 맏상좌 천제 스님(성철스님문도 회장)과 둘째 상좌 만수 스님(대구 금각사 주지)의 전언은 특별하다. 천제 스님은 시봉 10년 만에 상좌가 된 제자. “평생 상좌를 두지 않겠다”던 성철 스님의 결심을 무너뜨린 주인공이다. 경남 통영 천제굴부터 시작해 성철 스님의 수행처가 바뀔 때마다 곁을 지켰다. 암자 주변에 철조망을 친 뒤 정진에만 집중한 전설적인 ‘성전암 동구불출’ 때도 만수 스님과 함께 성철 스님 곁을 지킨 천제 스님. 그는 “부처가 되기를 거절하는 천제가 되라”던 스승의 역설적인 인연담을 떠올린다. “수행자는 모름지기 가난을 배워야 한다”는 스승의 말씀을 전한 스님은 “큰스님은 빈부귀천의 차별이 없었으며 누구든 자기 기도는 자기가 해야 함을 강조하셨다”고 말을 맺는다. “공부한다고 여기 왔지만 바로 중이 되는 것은 아니다. 빨리 중 되고 싶으면 다른 곳으로 가도 좋다.” 평생 오로지 성철 스님만을 보고 정진했다는 만수 스님이 전한 입산 초기의 인연담이다. “지금 생각하면 수행자로서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절대로 하지 말라는 것을 강조하신 것 같다”는 만수 스님은 묻는다. “요즘 스님들이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고 다녀 얼마나 많은 문제가 있습니까.” 원융·원타·원택·원영·원행·원암 스님 등 성철 스님의 수행 전통을 지켜오고 있는 제자들의 면면이 눈길을 끈다. 백련암으로 출가해 성철 스님을 생전 20년, 열반 후 20년을 모신 원택 스님은 스승의 가르침을 이렇게 전한다. “중은 평생 정진하다가 논두렁 베고 죽을 각오를 해야 한다.” 성철 스님의 가르침을 수십 년간 받고 ‘나 자신’을 다잡아온 재가 불자들의 이야기도 피부에 와닿는다. 출가승은 아니지만 성철 스님의 가르침을 따르며 수십 년간 매일 3000배를 올리거나 100일간 1만배를 꼬박 올린 신도들의 수행 정진담이 흥미롭다. 성철 스님 제자와 재가 불자들을 일일이 만나 인터뷰한 유철주 불교전문작가는 “큰스님은 재가자도 성불할 수 있으며 자기 수행과 사회적 실천을 함께하라고 강조하셨다”며 특히 “재가불자의 권위를 떨어뜨렸다는 등 성철 스님을 둘러싼 오해가 있지만, 인터뷰를 하면서 큰스님이야말로 재가불자 수행 정진의 표본을 제시하셨다는 걸 느꼈다”고 밝혔다. 한편 책은 비매품으로 발간됐다. 불가에서 전해 내려오는 ‘무상 법보시’의 전통을 따른 것이다. 백련불교문화재단은 오는 24일부터 4일간 해인사 백련암에서 진행되는 추모 법회와 27일 사리탑에서 이어지는 추모 삼천배 정진, 28일 해인사 대적광전에서 봉행되는 25주기 추모제 참여 대중들에게 무료로 배포할 예정이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2호선까지 건설 땐 연간 1300억 적자”

    “2호선까지 건설 땐 연간 1300억 적자”

    지난 16년간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광주도시철도 2호선 건설은 미래세대에 큰 부담이자 애물단지가 될 것이다. 이런 탓에 건설되면 안 된다.첫째, 지하철 2호선은 고비용 저효율로 경제성이 크게 떨어진다. 건설비 2조 579억원 가운데 시비 부담이 8232억원에 이른다. 또한 올해 도시철도 1호선 적자는 454억원으로 2호선을 건설할 경우 연간 1300여억원의 적자가 예상된다. 재정이 취약한 광주시가 청년 일자리 창출, 중소기업·소상공인 지원, 저출산 대책 등 많은 기회사업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만들 것이다. 둘째, 과다하게 책정된 수송수요 오류다. 2호선은 좌석 수 36석, 수용 인원 114명의 달랑 2칸짜리 초미니 경전철이다. 시는 하루 이용객을 43만명이라며 왜곡된 선전을 하나 실제로는 하루 14만명 정도로 예측된다. 교통수송 분담률은 약 5%로 추정된다. 1호선도 기본계획에서 2018년도 이용객을 30여만명으로 예측했으나, 이제 5만여명을 겨우 넘어섰을 뿐이다. 향후 인구 감소 추세 등을 감안하면 도시철도는 미래세대에 막대한 부담을 주는 애물단지로 전락한다. 셋째, 공사하는 10여년 동안 겪게 될 시민들의 고통이다. 교통 혼잡과 체증, 소음과 진동, 분진, 건물 균열, 지반 침하 등으로 시민들은 일상생활에서 막대한 지장을 받게 된다. 천문학적인 건설 비용과 운영적자, 낮은 교통수송 분담률, 공사 기간 불편함 등 고비용 저효율의 지하철 건설은 광주의 미래교통 대책이 될 수 없다. 승용차 중심의 교통정책에서 버스, 1호선, 택시, 자전거 보행을 결합한 사람 중심의 ‘5위 일체’ 대중교통 체계로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한 때다.
  • [손성진의 우리가 잘 모르는 독립운동가] 서간도 독립운동 선구자…반일 군사항전 이끌었던 거목

    [손성진의 우리가 잘 모르는 독립운동가] 서간도 독립운동 선구자…반일 군사항전 이끌었던 거목

    “나라 없는 몸 무덤은 있어 무엇하느냐. 내 죽거든 시신을 불살라 강물에 띄워라. 혼이라도 바다를 떠돌면서 왜적이 망하고 조국이 광복되는 날을 지켜보리라.”‘만주벌 호랑이’ 일송(一松) 김동삼. 평생을 만주 벌판과 밀림을 누비며 조국 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선생은 이런 유언을 남겼다. 독립운동 연구가들은 김구, 안창호보다 김동삼 선생을 더 높이, 최고로 받든다. 선생의 호(號) 때문인지 ‘일송정(一松亭) 푸른 솔은 늙어 늙어 갔어도’로 시작되는 가곡 ‘선구자’의 실제 모델이 선생이라는 설도 있다. 서간도 독립군기지 개척의 선구자이며 만주의 독립전쟁을 이끌었던 선생은 1878년 6월 23일 경북 안동 임하면 천전리(川前里) 278에서 태어났다. 행정 지명처럼 선생이 나고 자란 마을 이름은 ‘내앞마을’이다. 마을 앞에는 낙동강 지류인 반변천이 굽이쳐 흐른다.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한강 두물머리처럼 안동에서 물길이 갈라지는데 북동쪽으로 안동호와 이어지는 강이 낙동강 본류이고 동쪽으로 임하호로 연결되는 하천이 반변천이다.경북독립기념관이 있는 마을 어귀에서 차를 내려 200여m 들어가니 선생의 생가가 있다. 원형을 잃었고 평생을 헌신한 독립운동가의 생가로서는 관리 상태가 좋지 않았다. 300m쯤 더 들어가 선생의 족숙(族叔)이며 석주 이상룡의 처남인 독립운동가 백하 김대락의 고택인 ‘백하구려’(白下舊廬)를 찾았다. 김대락의 후손인 김시중(81)씨가 기거하며 집을 돌보고 있었다. 김씨는 “김대락을 필두로 임신부와 아이들까지 의성 김씨 일족 150여명이 한꺼번에 만주로 독립운동을 하러 떠났다”면서 “‘3000석 부자’였던 백하 선생이 멀리는 강원도까지 흩어져 있던 많은 토지를 50일 동안 처분했는데 헐값에 팔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김동삼은 일제의 침략과 만행이 본격화된 1907년 유인식, 이상룡과 3년제 중등학교 ‘협동학교’를 세웠다. 퇴계 이황의 학통이 면면히 내려오는 유학의 본고장에서 영어와 수학 등 신학문을 가르친 협동학교는 완고한 유림의 극렬한 반발을 샀다. 초대 교장 유인식은 부자 절연, 사제 절연을 당했다. 김대락 또한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마음을 바꾸어 백하구려를 교사(校舍)로 내주었다. 보수 유림은 의병을 가장해 학교로 사용되던 백하구려를 덮쳐 교사 2명 등 3명의 목을 치는 사건을 저질렀다. 경술국치 넉 달 후인 1910년 12월 말 김대락은 65세의 나이에 일가를 이끌고 망명길에 올랐다. 얼어붙은 압록강을 걸어서 건너고 만주에서는 수레를 타고 이동하는 험난한 여정이었다. 협동학교 1회 졸업생이 배출될 무렵인 1911년 초 김동삼도 애국청년 20여명과 함께 중국으로 망명했다. 김동삼은 길림성 유하현 삼원포에 도착, 이회영, 이상룡, 이동녕 등과 서간도 독립운동기지 건설에 착수했다. 그해 4월 군중대회를 열어 경학사라는 자치단체를 결성했다.김동삼은 한겨울에도 싸이혜라는 만주족의 여름 신발을 신고 어깨에 담요 한 장을 둘러멘 채 만주 전병으로 끼니를 이으며 광야의 모랫길을 매일 100여리나 걸어 동포들을 독려했다. 만주 생활은 초기부터 고난의 길이었다. 혹독한 추위, 참혹한 흉년, 목숨을 앗아 가는 풍토병, 중국 마적의 약탈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행이 이어졌다. 김동삼은 농지를 개척해 이주민들의 정착을 돕는 한편 신흥강습소를 설립했다. 서간도 독립운동의 요람인 신흥무관학교의 전신이다. 1914년 무렵 선생은 극심한 재정난 등 시련을 견뎌가며 신흥강습소 졸업생들과 함께 백두산 서쪽 고원에 백서농장이라는, 사실상의 독립군 병영을 만들어 장주(庄主)로서 조직을 이끌었다. 중국에서도 조소앙이 기초한 ‘대한독립선언서’가 발표됐다. 서명자 39명에 선생도 들어 있다. 그 무렵 남만주에는 이미 수십만명의 동포가 이주해 있었다. 경학사는 부민단, 한족회로 확대 개편됐다. 한족회는 독립군을 지휘할 군사조직으로 서로군정서를 설치했다. 독판(督辦)에는 이상룡을 추대하고 김동삼은 참모장을 맡아 반일 군사항전에 뛰어들었다. 신흥무관학교 졸업생과 백서농장, 서로군정서 출신은 봉오리·청산리전투를 이끈 주역이 됐다. 서로군정서 독립군들은 국내로 잠입해 주요 기관을 습격하고 일제의 경찰과 밀정을 처단했다. 독립군과 맞붙어 대패한 보복으로 일제는 1920년 10월부터 적어도 3700여명의 무고한 한국인을 잔인하게 학살하는 경신참변을 일으켰다. 이때 삼원포 삼광학교 교장이었던 선생의 동생 김동만도 붙잡혀 말꼬리에 묶여 끌려다닌 끝에 살해당했다. 가족을 멀리하던 선생도 사흘 밤낮을 걸어 삼원포로 가서 애통해 마지않았다. 김동만의 부인은 충격을 받고 정신병을 앓았다. 임시정부 통합을 모색하기 위해 1922년 1월 3일 상하이에서 국민대표회의가 개최됐다. 김동삼은 의장에 선출됐다. 안창호, 윤해가 부의장이었다. 통합을 외친 김동삼의 노력에도 충돌은 수습되지 않았고 그는 의장직을 사임하고 만주로 돌아왔다. 김동삼의 통합 노력은 만주에서 빛을 발했다. 통합단체인 대한통군부에 이어 대한통의부를 출범시켜 김동삼은 최고지도자인 총장에 추대됐다. 통의부는 정의부로 재탄생, 김동삼은 참모장으로서 무장투쟁을 지휘했다. 초산, 벽동, 철산 등 함경도와 평안도 지역의 일제 경찰서와 주재소를 습격해 일경을 사살,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1925년 7월 내각책임제로 바뀐 임정의 초대 국무령 이상룡은 김동삼을 국무위원으로 발령했다. 그러나 선생은 끝내 사양하고 만주를 떠나지 않았다. 김동삼은 정의부, 참의부, 신민부 3부의 통합을 주도하면서 민족유일당 조직에도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1931년 어느 날 김동삼은 하얼빈의 옛 동지인 의사(醫師) 정진영 집에 들렀다가 일경에게 체포되고 말았다. 항일운동의 거목에게 일제는 악랄한 고문을 서슴지 않았다. 전기고문을 하고 양팔을 등 뒤로 결박해 공중에 매단 뒤 코에 물을 부었다. 단식을 하자 영양주사를 놓으며 고문을 계속했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굴하지 않았다. 동지들의 이름을 팔지 않았고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민족의 아픔으로 받아들였다. 가족을 동원한 회유에도 “이제 더 살아서 무엇 하겠느냐”고 단호히 말했다. 면회 온 맏아들 정묵에게도 이렇게 말했다. “이런 일정한 자리에서 죽게 되는 것도 과분한 일이다. 독립군이라면 대개 풀밭이나 산 가운데서 죽는 것이다.” 선생은 1937년 4월 13일 59세의 나이로 싸늘한 감방에서 쓸쓸히 영면했다. 만주 독립운동 최고 지도자의 비통한 최후였다. 만해 한용운이 시신을 서울 정릉 심우장으로 옮겨 장례를 치렀다. 유해는 유언대로 화장해 한강에 뿌려졌다. 한용운은 단 한 번 눈물을 흘렸는데 선생의 장례 때였다. 후손들도 비극적인 삶을 살았다. 장남 정묵의 큰딸은 북한에서 폭격으로 사망했고 큰아들, 즉 김동삼의 장손자는 서울에서 대학에 다니다 실종됐다. 셋째 아들은 정신 이상으로 사망했다. 정묵의 부인인 선생의 큰 며느리 이해동(1905~2003) 여사가 둘째 아들 김중생(2016년 사망)씨와 1989년 1월 근 80년 만에 조국 땅을 다시 밟았다. ‘만주생활 77년’이란 여사의 수기에 형극의 삶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이 여사는 “시아버지를 세 번 뵈었는데 결혼 2년 후, 첫 손자를 낳았을 때, 일제에 붙잡혀 감금돼 있을 때였다”고 썼다. 정부는 1962년 선생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글 사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고전의 향연-옛 선비들의 블로그] “천하에 가장 두려운 존재는 백성뿐”… 민본·신분제 타파 외친 혁명가

    [고전의 향연-옛 선비들의 블로그] “천하에 가장 두려운 존재는 백성뿐”… 민본·신분제 타파 외친 혁명가

    “역적 허균, 하인수, 현응민, 우경방, 김윤황을 서쪽 저잣거리에서 사형에 처하였다.” 조선왕조실록 광해군 10년(1618년) 8월 24일 기사에는 허균의 마지막을 이렇게 기록한다. 그의 나이 50세 때의 일이다. 허균의 처형 소식이 전해지자 한때 정치적 동지였던 기자헌은 “예로부터 매를 치며 심문하지도 않고, 사형을 결정하는 최종 문서도 작성하지 않은 채 단지 진술 내용만을 가지고 사형에 처해진 죄인은 없었으니, 훗날 반드시 다른 논의가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의 사관은 기자헌의 이 말을 허균의 죽음에 이어 실록에 기록해 두었다. 이렇듯 당시에도 허균의 역모사건에 대해 많은 의문이 제기됐고, 현재까지도 그 진위에 대해 여러 의견이 존재한다. 그러나 실제 역모를 도모했는지 아니면 억울한 누명을 썼는지를 떠나, 허균의 의식 속에는 분명 당시의 사회질서 체계를 바꾸고자 했던 혁명의 뜻이 있었던 듯하다.#백성을 ‘항민’·‘원민’·‘호민’으로 구분 허균의 ‘호민론’(豪民論)은 “천하에 두려워해야 할 존재는 오직 백성뿐이다(天下之所可畏者 唯民而已)”라는 말로 시작된다. 이 글에서 허균은 백성을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했다. 일상에 매여 순순히 윗사람이 시키는 것을 따르는 ‘항민’(恒民), 수탈에 고통받으며 윗사람을 탓하는 ‘원민’(怨民), 평소에는 본모습을 감추고 있다가 혹 시대적 변고가 일어나면 자신의 바람을 이루려고 일어나는 ‘호민’(豪民). “호민이 나라의 빈틈을 엿보며 일을 실행할 만한가를 살펴 밭두둑 위에서 팔을 치켜들어 한번 소리치면 ‘원민’이란 자들이 그 소리를 듣고 모여 서로 계획하지 않았는데도 함께 소리치고, ‘항민’이란 자들도 살길을 찾아 호미, 고무래, 창 자루 등을 들고 그들을 따라가 무도한 자들을 죽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중략)… 하늘이 임금을 세운 것은 백성을 잘 살게 하기 위함이지 한 사람이 위에서 방자하게 눈을 부릅뜨고서 끝도 없는 욕심을 채우게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중략)… 견훤과 궁예 같은 사람이 나와 몽둥이를 휘두른다면 시름하고 원망하던 백성들이 그를 따르지 않는다고 어찌 보장할 수 있겠는가.”(호민론 중) 백성을 위하지 않는 임금은 하늘의 뜻을 따르지 않는 사람이니, 더이상 임금으로서 존재 가치가 없는 혁명의 대상에 불과하다. 허균은 그 혁명의 지도자인 호민의 출현을 갈구했다. 어쩌면 자신이 그러한 호민이 되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시대가 품지 못한 주변의 인물들 허균의 아버지인 허엽(1517∼1580)은 대사성, 부제학 등을 지냈다. 큰형인 허성(1548∼1612)은 이조판서까지 지낸 인물이다. 양천 허씨 명문가에서 태어났고 자신 또한 재주가 뛰어났기에 당시 사회 질서에 적절히 순응했다면 높은 벼슬에 오르는 것도 어렵지 않았을 것이고, 문장으로도 당대에 이름을 날렸을 것이다. 그러나 허균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고 또 그만큼 허균 자신도 많은 애정을 쏟았던 인물들은 당시 사회가 감당하기 어렵거나 제도적으로 품어 안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다. 허균보다 18살 많았던 둘째 형 허봉은 허균에게는 형님이자 스승이었다. 22세 젊은 나이에 문과에 급제할 정도로 뛰어난 재주가 있었지만, 임금에게까지 바른 말을 서슴없이 할 수 있었던 강직함으로 인해 결국 귀양을 갔고 더이상 관직을 제수받지 못한 때 술로 세월을 보내다 38세로 생을 마감했다. 바로 위 누이인 허초희는 ‘왜 조선에 태어났는가’, ‘왜 여자로 태어났는가’, ‘왜 김성립의 아내가 되었는가’라는 세 가지 불행 속에서 자신의 재주를 펼치지 못한 채 27세의 짧은 생을 마쳐야만 했다. 형과 누이를 차례로 보내며 허균은 능력을 펼칠 수 없는 사회에 절망했을 것이다. 또 뜻을 같이해 교유한 사람 중에는 서얼들이 많았다. 서얼 출신의 이달을 스승으로 모시기도 했고, 자신이 영달했을 시절에는 항상 불우했던 서얼 친구들을 후원하며 가까이 지냈다. 허균은 이들과 편견 없이 마음을 주고받으며 시대에 강한 문제제기를 했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오랜 시간이 지났고 천하는 넓은데, 서얼 출신이라고 하여 그의 훌륭함을 버렸단 말은 듣지 못하였고, 어머니가 개가하였다고 하여 그 재주를 쓰지 않았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아 어머니의 신분이 천하거나 개가한 사람의 자손은 모두 벼슬에 나아갈 수가 없다. …(중략)… 하늘이 내렸는데 사람이 버린다면 이는 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다. 하늘을 거스르고서, 하늘에 빌어 나라를 영원히 보존할 수 있었던 자는 있지 않다.”(유재론 중)#‘장생전’ 등 소설 속에서 이룬 이상사회 자신은 정통 양반으로 아무런 제약이 없었지만 신분에 대한 차별 문제를 적극적으로 거론하며 당시의 질서에 도전하고 있다. 허균의 시선은 여기에만 그치지 않았다. 비렁뱅이 천민의 신이한 이야기를 다룬 ‘장생전’(蔣生傳), 중인으로 도술에 능한 인물을 다룬 ‘장산인전’(張山人傳) 등 그가 ‘전’(傳)이라는 양식으로 형상화한 인물들은 모두 신분적으로 미천한 사람이었다. 허균이 꿈꾸던 이상사회는 이러한 사람들에 대한 차별 없는 사회가 아니었을까, 미루어 생각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앞서 언급했듯, 허균이 실제 역모를 도모했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그의 많은 글과 행적을 살펴보면 그가 혁명을 꿈꾸고 있었음은 분명해 보인다. 그가 그렸던 혁명은 단순히 왕조의 성씨만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구조 자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그래서 함께할 동지들은 당시 사회에서 소외됐던 서얼 등이었다. 하지만 공고한 신분제 질서 속에서 꿈을 현실화하지는 못하고 소설이라는 가상 세계에서의 구현에 만족해야만 했다. 작자에 대한 다소의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허균의 삶의 궤적과 주장을 살펴볼 때에 ‘홍길동전’을 허균의 작품이라 하는 데는 무리가 없는 듯하다. 서얼이라는 이유로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던 홍길동이 세력을 형성해 정의를 구현하고, 결국 병조판서에 올랐다가 무리를 이끌고 나라를 떠나 따로 율도국을 세웠다는 이야기는 허균이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혁명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세상과 타협 거부한 채 ‘자유분방한 삶’ 26세에 과거에 급제하고 뛰어난 재주로 중국의 문단에까지 이름을 널리 알렸으나, 그의 벼슬길은 순탄치 않았다. 행실이 경박하고 규범에 맞지 않는 처신을 한다고 번번이 파직을 당했다. 삼척부사에 부임했을 때에는 불과 13일 만에 파직되기도 하는 등 부침의 반복이 광해군 집권 초기까지 이어졌다. 이후에는 광해군의 신임을 받아 동부승지, 형조판서, 좌참찬 등에 오르는 등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결국 아무런 변명도 소용없는 역모라는 죄명을 받고서 형장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허균은 자신의 호를 ‘교산’(蛟山)이라 했는데, 출생지인 강릉에 있는 뒷산의 이름을 딴 것이다. ‘교’(蛟)는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를 뜻한다. 소설 ‘홍길동전’에서의 홍길동은 아버지 홍 판서가 청룡의 꿈을 꾸고 낳았다고 묘사했는데, 결국 꿈을 이루고 용이 됐다고 하겠다. 허균은 홍길동처럼 용이 돼 하늘에 오르지 못하고 이무기로 남았지만, 세상과의 타협을 거부한 채 끝까지 자신이 옳다고 믿는 길을 걸으며 자신의 삶을 살았다. 예의 가르침이 어찌 나를 구속하리오 禮敎寧拘放 인생의 부침을 그저 마음에 맡길 뿐 浮沈只任情 그대들은 그대들의 법도를 따르시게 君須用君法 나는 스스로 나의 삶을 이루겠노라 吾自達吾生. -‘파직 소식을 듣고서 짓다(聞罷官作)’ 이정원 한국고전번역원 책임연구원■성소부부고(惺所覆藁)는 허균이 자신의 글 정리한 문집…총 64권 중 필사본 26권만 남아 문집은 일반적으로 저자 사후에 문인이나 후손들이 남겨진 글을 모아 간행한다. 그러나 허균의 문집은 허균이 생전에 직접 자신의 저작을 간추려 편집하고 문집의 이름까지 지어두었다. 43세인 1611년 귀양지에서 시(詩), 부(賦), 문(文), 설(說)의 4부로 나누어 64권으로 엮어 ‘부부고’(覆藁)라고 명명했다. 이 문집에 ‘호민론’ 등이 실려 있다. ‘성소’(惺所)는 허균의 호이고, ‘부부’(覆)는 장독 덮개라는 말이며, ‘고’(藁)는 원고이니, 성소부부고는 ‘허균이 지은 장독 덮개로나 쓰일 변변치 못한 글들’이라는 뜻이다. 장독을 덮는다는 것은 자신의 글에 대한 일종의 겸사이지만, 실상은 중국의 대문장가인 양웅에게 자신을 빗댄 것으로 볼 수 있다. ‘부부’란 말이 양웅이 지은 ‘태현경’(太玄經)을 지칭해 쓴 말이기 때문이다. 허균은 역모로 탄핵을 받은 50세에 앞날을 예측했는지, 자신의 편집 원고를 사위인 이사성에게 보내 보관하게 했다. 이후 역적으로 몰려 죽은 탓에 정식 간행은 하지 못한 채 필사본만이 남게 됐다. 편차와 수록 내용도 원래의 모습과 다소 달라진 채 26권이 전해진다.
  • ‘명품 새우젓’ 맛깔난 성찬 차렸습니다

    ‘명품 새우젓’ 맛깔난 성찬 차렸습니다

    마포나루 역사·문화 상징인 ‘새우젓’ 마술·서커스 공연 등 문화예술 접목 청춘노래자랑·새우쿠킹 콘서트도 열려“명품 새우젓을 시중보다 15~20% 싸게 살 수 있고,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70여개 프로그램도 즐길 수 있는 마포의 대표 축제, ‘마포나루 새우젓축제’를 보러 오세요!” 유동균 서울 마포구청장은 서울시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마포나루 새우젓축제가 오는 19일부터 3일간 서울월드컵공원 평화의 광장에서 열린다고 15일 밝혔다. 조선시대부터 한국전쟁 이전까지 매해 10월이면 전국에서 젓갈배가 몰려들던 마포나루가 새우젓을 구하러 온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던 전통에 착안해 기획한 행사로 올해가 11회이다. 유통 이윤을 없애 질 좋은 새우젓을 싸게 제공하고 동시에 농어촌 주민에게도 이익을 돌려주는 윈윈 축제인데 올해는 민선 7기 출범을 맞아 현대적 프로그램을 대거 가미한 게 특징이다. 새우젓 수익만 매해 4억원이 넘으며, 매해 60만명이 다녀갈 만큼 인기가 높다. 축제는 19일 오전 10시 30분 마포구청 앞 광장에서 서울월드컵공원 평화의 광장까지 이어지는 포구문화 거리퍼레이드로 막이 오른다. 황포돛배와 가마 탄 사또 행차, 풍물패, 지역 주민 등 500여명이 참여한다.퍼레이드가 메인 무대인 평화의 광장에 도착하면 난지연못에서 새우젓을 실은 황포돛배가 입항하고 고을사또의 새우젓 검수가 시작된다. 만선과 풍년, 번영을 기원하는 마당극도 있다. 이어 마술과 서커스 공연, 외국인 김치담그기 행사, 버스킹 무대도 감상할 수 있다. 야간 수변 무대에서는 발광다이오드(LED)를 이용한 멀티미디어쇼인 ‘마포이야기’가 펼쳐진다. 둘째 날인 20일 오전 9시 30분에는 마포구민 건강 걷기대회가 열린다. 낮 12시에는 새우젓 경매체험이 진행된다. 어린이들을 위한 캐릭터 뽀로로 인형극, 남녀노소를 위한 청춘노래자랑도 열린다. 21일에는 비보이 공연, 새우를 재료로 하는 요리 쇼와 가수의 공연을 결합한 새우쿠킹 콘서트도 열린다. 이외에 옛날 동헌 체험을 비롯해 유기점, 옹기점, 포목점 등 옛 상점을 구경할 수 있고 짚풀공예, 한지공연, 투호, 윷놀이, 연 만들기 등 전통놀이를 체험할 수 있다. 드론과 로봇공연, 가상현실(VR) 체험, 인스타그램 포토존 등 미래 프로그램도 있다. 유 구청장은 “마포나루 새우젓축제는 마포의 역사와 문화를 축제로 승화시킨 행사”라면서 “마포구와 농어촌이 상생하고, 축제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마포의 문화예술을 느낄 수 있도록 더욱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말했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 3000만원까지 주는 출산장려금… 농촌지역 ‘헛돈’ 논란 가열

    3000만원까지 주는 출산장려금… 농촌지역 ‘헛돈’ 논란 가열

    7개 광역시 저출산 개선에 일부 도움 9개 道에서는 돈 줘도 출산율 떨어져지방자치단체들이 너도나도 앞다퉈 도입한 출산장려금 제도가 농촌지역 저출산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지자체들이 출산장려금을 경쟁적으로 도입한 탓에 신생아 1명에게 3000만원을 지급하는 곳도 있지만 지난해 전국 평균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 수)은 1.05명으로 가장 낮았다. 올해는 마지노선으로 여겨졌던 ‘합계출산율 1명’이 깨질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어 출산장려금 효과에 대한 논쟁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15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제출된 ‘광역자치단체의 출산지원예산이 출산율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세종시를 뺀 16개 광역지자체의 ‘출산지원예산’은 전반적으로 출산율 제고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거나 불명확한 것으로 분석됐다. 출산지원예산은 출산장려금을 비롯해 의료비 지원, 보육시설 확충 예산 등이 포함됐다. 특히 7개 광역시의 출산지원예산은 출산율 개선에 일부 도움이 된 반면 9개 도는 출산지원과 무관하게 출산율이 하락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종하(조선대)·황진영(한남대) 교수팀은 “광역지자체의 출산지원사업이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지역에서 상대적으로 큰 효과를 나타낸 반면, 인구 밀도가 낮고 고령화가 심각한 농·산·어촌 지역에서는 사업과는 무관하게 출산율이 하락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충북 청원군이 2002년 처음 시행한 출산장려금 제도는 전국 대부분의 지자체가 도입할 정도로 지역의 핵심 저출산 정책으로 통한다. 인천 연수구가 올해 전국 최초로 다섯째아 출산 가정에 3000만원을 지원하는 등 지원금 경쟁에 불이 붙을 정도다. 그러나 한편으로 ‘먹튀’ 논란도 커지고 있다. 실제로 2012~2016년 5년간 전남 22개 시·군에서 출산장려금을 받은 뒤 다른 지역으로 전출한 인원이 1584명이나 된다. 가임기 여성 부족과 만혼(晩婚), 비혼(非婚) 확산으로 혼인 건수와 첫째아 출산이 급감하는 상황에서 둘째아나 셋째아에게 집중된 출산장려금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겠느냐는 지적도 적지 않다. 다둥이 가정도 점차 줄어드는 추세여서 출산장려금 예산이 ‘생색내기’에 그친다는 분석도 나온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태어난 첫째아는 18만 7854명, 둘째아는 13만 3855명으로 전년보다 각각 11.8%, 12.4% 급감했다. 셋째아 이상도 3만 4962명으로 11.8%나 줄었다. 올해는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올해 7월 출생아 수는 지난해보다 8.2% 감소한 2만 7000명으로 2016년 4월부터 28개월 연속 최저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물벼락 갑질’ 조현민, 결국 무혐의…한진家 경영비리 혐의는 법정으로

    ‘물벼락 갑질’로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 한진그룹 둘째 딸 조현민(35) 전 대한항공 전무에게 불기소 처분이 내려졌다. 대기업 총수 일가의 ‘갑질’에 대한 처벌 여론이 우세했으나 법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했다. 서울남부지검 형사4부(부장 최재민)은 15일 조 전 전무에게 제기된 특수폭행·업무방해 혐의는 ‘혐의 없음’, 폭행 혐의는 ‘공소권 없음’ 처분을 내렸다고 밝혔다. 조 전 전무는 지난 3월 대한항공 본사에서 광고업체 팀장이 자신의 질문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소리를 지르며 유리컵을 던지고 종이컵에 든 매실 음료를 참석자들을 향해 뿌린 혐의를 받는다.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폭행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검찰은 증거가 부족하다며 반려했다. 이에 경찰은 업무방해 혐의만 적용해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로 넘겼다. 하지만 검찰은 업무방해 혐의도 성립되기 힘들다고 본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유리컵을 사람이 없는 방향으로 던진 것을 신체에 대한 유형력 행사로 볼 수 없기 때문에 특수폭행 혐의는 인정되지 않고, 반의사불벌죄인 폭행 혐의는 피해자 2명이 처벌을 원치 않아 공소권이 없다고 판단했다”며 “업무방해 혐의 역시 해당 광고의 총괄 책임자인 조 전 전무가 업무적 판단에 따라 시사회를 중단시킨 것으로 볼 수 있어 타인의 업무를 방해한 것으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물벼락 갑질’은 무혐의로 마무리됐지만 한진그룹 총수 일가의 각종 비리 혐의를 드러내는 실마리가 됐다는 점에선 의미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같은 지검 형사6부(부장 김영일)는 이날 조양호(69) 한진그룹 회장을 국제조세조정에 관한 법률 위반,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사기 등으로 불구속 기소했다. 2013년부터 올해 5월까지 대한항공 납품업체들로부터 항공기 장비와 기내 면세품을 사들이며 트리온 무역 등 명의로 196억원 상당의 ‘통행세’(중개수수료)를 챙겨 대한항공에 손해를 끼친 혐의 등이다. 조 회장의 횡령·배임 규모는 274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역시 갑질 논란이 불거진 조 회장의 부인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은 특수상해 혐의로 검찰에 송치된 상태다. 장녀인 조현아 전 부사장은 가사 도우미 불법 고용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한진 총수 일가의 밀수 혐의도 수사가 진행 중이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캠핑카 안에 숯불화덕 놓고 자던 80대 아버지와 50대 아들 2명 숨진채 발견

    캠핑카 안에서 숯불이 남아있는 화덕을 들여놓고 잠을 자던 80대 아버지와 50대 아들 2명이 숨진채 발견돼 경찰이 정확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경남지방경찰청은 15일 경남 창원시 진해구 바닷가 공터에 주차돼 있던 캠핑카 안에서 김모(82)씨와 아들 2명(57·55세)이 숨져있는 것을 119 구급대원이 발견했다고 밝혔다. 경찰조사결과 김씨와 두아들, 딸과 사위(58) 등 5명은 지난 14일 밤 캠핑장에서 숯불에 고기를 구워 먹으며 놀다가 이날 새벽 0시 30분쯤 딸과 사위는 집으로 돌아가고 김씨와 두 아들은 캠핑카에서 잠을 잤다. 집으로 돌아간 사위 부부가 다음날 김씨 부자와 연락이 되지 않자 캠핑장으로 찾아가 캠핑차 문이 잠겨 있는 상태로 인기척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112로 신고를 했다. 경찰은 119 구급대가 출동해 캠핑카 문을 강제로 열고 안으로 들어가 싱크대위에 숯이 모두 타 재만 남은 화덕이 놓여 있고 김씨 부자 3명이 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발견당시 창문도 닫겨 있었고 외부 침입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 둘째 아들이 캠핑카를 갖고 있어 김씨와 아들 등 가족들은 이전에도 함께 캠핑을 했다. 사위와 딸 부부는 경찰조사에서 “최근 부인과 사별한 아버지를 위로하기 위해 자녀들이 캠핑자리를 마련해 좋은 분위기속에 시간을 보냈으며 캠핑카안에는 3명만 잘 수 있어 우리 부부는 집으로 돌아갔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김씨 부자가 캠핑카 안을 따듯하게 하기 위해 불씨가 남아 있는 숯불화덕을 차안에 들여 놓고 잠을 자다 숯불에서 발생한 일산화탄소 때문에 질식해 저산소증으로 숨진 것으로 보고 정확한 원인을 조사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숨진 김씨 등 3명에 대해 정확한 사망원인을 밝히기 위해 16일 부검을 할 예정이다. 창원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여든에 40대 아들 뒷바라지… 노인 빈곤 부르는 청년 빈곤

    여든에 40대 아들 뒷바라지… 노인 빈곤 부르는 청년 빈곤

    # “한 달에 많이 벌 때는 300만원도 벌었지.” 서울 강북에서 둘째 아들과 함께 사는 유모(80)씨는 수도 배관공으로 일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금세 풀이 죽은 표정으로 “이놈의 몸뚱아리가 요새는 말을 안 들어”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4년 전 뇌졸중 진단을 받은 뒤로 마비 증세가 오면서 일을 전혀 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는 푸념이다. 아내는 17년 전 먼저 세상을 떠났다. 둘째 아들(46)은 어릴 때 똑똑하다는 소리를 제법 들었지만 고등학교 졸업 후 삼수까지 했는데도 대학 진학에 실패하면서 의욕을 많이 잃었다며 아쉬워했다. 번듯한 직장을 가지지 못한 아들은 끝내 배우자를 구하지 못했다. 그렇게 집에 눌러앉았다. 유씨는 14일 “매달 나오는 노인연금과 큰아들이 보내주는 용돈 10만원 가지고 근근이 버틴다”면서 “용돈을 더 받으면 좋겠지만 큰아들도 손주들 공부시킨다고 빠듯한데 용돈을 더 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 일찍이 남편과 사별한 박모(69·여)씨는 두 아들을 힘겹게 키웠다. 평생 공사장에서 고된 일을 해 허리가 90도 가까이 꺾였지만 그렇게 번 돈으로 경기 의정부에 전용면적 84㎡(약 25평) 규모의 아파트도 샀다. 고등학교 졸업한 뒤 곧바로 취업을 했지만 안정된 직장과는 거리가 멀었던 두 아들은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그러던 중 큰아들(42)이 뒤늦게 장가를 가면서 박씨는 둘째 아들(39)과 함께 집에서 쫓겨나오다시피 했다. 며느리가 “어머니, 시동생과 한 집에서 도저히 못 살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박씨는 둘째 아들과 함께 고시원 생활을 하면서 아파트 건설 현장에 나간다. 일감이 없는 날에는 파출부 일을 한다. 박씨는 “자식들이 자리를 잡지 못하는 한 죽을 때까지 일만 할 팔자”라고 하소연했다.취업에 실패하고 부모의 품에 사는 ‘캥거루족’이 고령화되면서 부모의 부담도 가중되고 있다. 노인 빈곤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른 상황에서 청년 빈곤이 부모 세대의 빈곤을 가속화시키는 악순환은 막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고서 ‘청년빈곤의 다차원적 특성과 정책대응 방안’(2017)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빈곤율(가처분소득 기준, 농·어가 제외)은 46.7%인 반면, 청년(19~34세)의 빈곤율은 7.6%로 나타났다. 노인 빈곤율은 전체 빈곤율(13.8%)에 비해 32.9% 포인트 높은 반면, 청년 빈곤율은 6.2% 포인트 낮았다. 빈곤율은 중위소득의 절반(빈곤선)을 밑도는 사람의 비율을 말한다. 이 수치에 따르면 노인 빈곤율은 사회적으로 심각한 수준이지만 상대적으로 청년 빈곤율은 아직 염려할 정도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부모와 함께 사는 청년들이 많을수록 청년 빈곤율이 낮게 나올 수 있다는 점이 맹점이다. 보건사회연구원이 부모 동거 여부에 따라 청년 빈곤율을 계산한 결과 부모와 함께 사는 청년 빈곤율(2016)은 5.7%인 반면, 따로 떨어져 사는 청년 빈곤율은 10.1%로 나타났다. 부모와 함께 사는 청년들은 부모 소득을 공유하면서 빈곤율이 낮게 나온 것이다. 김문길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청년 빈곤이 지표상으로 드러난 것보다 더 심각하다”면서 “부모한테 주거, 경제력을 의존하는 청년들이 많아질수록 부모들도 덩달아 노후 빈곤에 빠질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서울신문이 아르바이트 포털 ‘알바몬’과 함께 지난달 10일부터 14일까지 20세 이상 성인 남녀 1514명(단기계약직, 취업준비생, 취업포기자)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학자금 등 채무가 있나’라는 질문에 42.3%(640명)가 “그렇다”고 답했다. 부채 규모는 ‘100만~500만원 미만’이 12.4%(187명)로 가장 많았지만, ‘2000만원 이상’이라는 응답자도 6.3%(96명)나 됐다. ‘부모의 노후 대비 수준’을 묻는 질문에는 “생활비 마련을 위해 소일거리는 해야 한다”는 답변이 35.9%(544명)로 가장 높았다. “부모 건강 등의 이유로 자녀가 부양해야 한다”는 답변도 8.0%(121명) 나왔다. ‘취업 후 부모에게 용돈을 드릴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월 20만~30만원을 드릴 계획”이라는 답변(23.7%, 358명)이 가장 많았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자녀가 부모를 부양해야 될 시기에도 부모가 자식을 돌보는 가정이 적지 않다. 최모(78·여)씨는 서울 용산 미군 부대에서 건설 잡부로 일하다 기지 이전으로 경기 평택으로 가게 된 아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함께 평택에 갔다. 며느리는 두 자녀 교육 때문에 서울에 남을 수밖에 없다고 해서 최씨가 아들을 따라간 것이다. 최씨는 평택 변두리의 다가구 주택에서 세 들어 살며 아들이 출근하면 인근 양계장에 가서 허드렛일을 한다. 최씨는 “다른 친구들은 모여서 등산도 가고 맛집도 찾아다니는데 나는 그런 호사를 누릴 수 없는 게 아쉽다”고 말했다. 자녀의 부모 의존이 심해지면 가족 간 갈등으로 번지기도 한다. ‘취업을 못 해 겪는 어려움이 무엇인지’를 묻는 설문조사에서도 가족 간 갈등을 꼽은 답변(23.2%, 351명)이 불안·압박감 등 스트레스, 경제적 어려움에 이어 세 번째로 많았다. 취업준비생 김모(27)씨는 “집에 있는 모습을 싫어하셔서 아침 일찍 집을 나와야 한다”면서 “갈수록 잔소리가 늘어간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너한테 들어간 돈이 지금까지 얼마인 줄 아느냐”, “너 독립해서 단 둘이 살면 관리비, 생활비 적게 드는 좁은 집으로 옮길 수 있다”면서 빨리 취직하라고 압박한다는 것이다. 김씨는 “젊은층의 취업 시기가 점차 늦어지고 있으니 부모님 세대도 부담이 될 것 같다”면서 “부모님 세대가 안쓰럽다”고 했다. 다만 그는 결혼 자금을 모아야 한다는 이유로 결혼 전까지 독립할 계획은 없다고 못박았다. 청년 빈곤이 심각한 또 다른 이유는 부모 세대의 빈곤으로 옮아 가기 때문이다. 취업준비생 아들과 재수 학원에 다니는 딸을 둔 이모(54)씨는 자녀한테 들어가는 돈이 한 달에 500만원 넘게 들자 결국 적금을 해지했다. 20년 된 가전제품도 망가지기 전까지는 버리지 않고, 외식 한 번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허리띠 졸라 모아 둔 적금을 자녀의 앞날을 위해 깬 것이다. 이씨는 “자녀들이 독립하면 손 떼겠다는 말을 하면서도 자식이 힘들어 보이면 또 도와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중산층에 속한 부모 세대는 자신들의 노후는 건사할 수 있었는데 자녀들의 대학, 취업 지원에 노후 자산을 쏟아부으면서 힘들어졌다”며 “빈곤 노인층이 늘어나면 사회적으로 복지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세수 호황에 유류세 인하 카드…부유층 혜택 커 양극화 우려

    세수 호황에 유류세 인하 카드…부유층 혜택 커 양극화 우려

    올 8월까지 세수 작년보다 23조 더 걷혀 유류세 비중 휘발유 54.6%·경유 45.9% 휘발유값 3년여만에 최고·인건비 부담도 정부가 올해 안에 유류세를 한시적으로 내리면 2008년 이후 10년 만이다. 당시 고유가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서민 등 취약계층 지원책으로 발표됐으나 실제 고소득층이 더 많은 혜택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세수 호황’에 기반한 ‘고육지책’이라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14일 한국석유공사의 유가 정보 서비스인 ‘오피넷’에 따르면 10월 둘째 주 전국 주유소에서 판매된 보통 휘발유 가격은 전 주보다 ℓ당 15.4원이나 오른 1674.9원이었다. 이는 2014년 12월 둘째 주 이후 약 3년 10개월 만에 가장 높은 가격이다. 우리나라가 주로 수입하는 두바이유는 전 주보다 배럴당 0.9달러 내린 82.0달러를 기록했다. 당초 기획재정부가 전망한 올해 국제 유가는 두바이유 기준 배럴당 70달러였다. 최저임금이 올라 주유소의 인건비 부담이 오른 상황에서 유가가 배럴당 80달러를 넘으면서 소비자가 내야 하는 기름값이 오르고 있다. 현재 휘발유와 경유에는 교통·에너지·환경세와 자동차세, 교육세가 부과된다. 휘발유에서 유류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54.6%, 경유는 45.9%다. LPG와 부탄에는 개별소비세에 교육세, 부가가치세가 부과돼 전체 가격의 29.7%를 차지한다. 정부는 오는 22~26일쯤 발표할 고용대책과 거시경제 활력 대책에 유류세 인하 방안을 포함시킬 계획이다. 유류세 인하 규모는 정해지지 않았으나 2008년 상황을 고려해 10% 인하가 유력하다. 유류세 인하는 시행령을 고쳐 탄력세율을 조정하면 된다. 정부는 경기 조절과 가격 안정, 수급 조정 등 필요한 경우 기본세율의 30% 범위에서 유류세에 탄력세율을 적용할 수 있다. 정부가 유류세 인하에 나서는 또 다른 배경은 세수 호황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 1~8월 세수는 지난해보다 23조 7000억원 더 걷혔다. 연간 유류세는 26조원 수준인데 유류세가 10% 내리면 2조 6000억원 세수가 줄어든다. 또한 한시적인 인하로 시행기간에 따라 세수 감소 폭은 더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유류세 인하 혜택은 저소득층보다는 고소득층이 더 많이 받는다. 한국지방세연구원의 2012년 보고서에 따르면 유류세 인하는 서민층보다 부유층에 6.3배 이상 큰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간접세는 높을수록 상대적으로 역진성을 보인다”면서 “휘발유가 관련된 자동차를 보유하는 계층을 꼭 고소득층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 현대경제연구원 주원 경제연구실장은 “서민들은 고소득층보다 차량 운행을 덜 하기 때문에 유류세 인하로 소득 양극화가 심화하는 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체조 요정’ 여서정, 전국체전 3관왕 오르며 한수 위 기량 뽐내

    ‘체조 요정’ 여서정, 전국체전 3관왕 오르며 한수 위 기량 뽐내

    여서정(16·경기체고 1학년)이 처음 출전한 전국체전에서 3관왕에 오르는 괴력을 뽐냈다. 여서정은 14일 전북 전주 화산체육관에서 열린 제99회 전국종합체육대회 기계체조 여자고등부 도마, 마루운동 결선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다. 전날 단체전 금메달과 개인종합 은메달을 목에 건 여서정은 2·3학년 언니들을 제치고 이번 대회 3관왕에 등극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도마 종목에서 한국 여자 기계체조에 32년 만의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안겼던 여서정은 전국체전에서도 한 수 위의 실력을 과시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남자 도마 은메달리스트 여홍철(47) 경희대 교수의 둘째딸이기도 한 여서정은 이번 대회 체조 선수 중 단연 돋보였다. 어린 나이인지라 쏟아지는 관심에 긴장할 법도 했지만 침착하게 자신의 플레이를 선보였다. 이날 열린 도마 결선에서 1·2차 시기 평균 14.038점으로 2위 함미주(12.900점· 경기체고), 3위 양세미(12.650점·남녕고)에 크게 앞섰다. 여서정의 1차 시기는 14.550점이었으며 2차 시기는 13.525였다. 1~2차 시기를 통틀어 13점대 이상의 성적을 거둔 선수는 여서정이 유일했다. 이어서 열린 마루운동에서도 여서정은 13.000점을 차지하며 또다시 금메달을 추가했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홍영기 혼전 임신 고백 “인생 망했다’ 생각했다”

    홍영기 혼전 임신 고백 “인생 망했다’ 생각했다”

    ‘얼짱’ 출신 쇼핑몰 CEO 홍영기가 결혼스토리를 공개했다. 13일 방송된 MBN 예능 ‘속풀이쇼 동치미’에는 홍영기가 출연해 이야기를 나눴다. 홍영기는 이날 “남편이 만 17세, 내가 만 20세 때 혼전 임신해 결혼했다”며 “지금 내 나이는 27세다. 첫째는 6살이고 둘째는 4살”이라고 밝혔다. MC 박수홍이 “고등학생이랑 결혼한다고 했을 때 주변 반응이 어땠냐“고 묻자, 홍영기는 ”아이가 돌 때, 남편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알렸다“며 ”임신 테스기에 두 줄이 나와서 ‘난 인생이 망했구나’ 했는데 남편은 되게 좋아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어 ”많은 분 의견이 있었다. ‘축복한다’, ‘옳은 행동이다’ 한 분들도 있었지만, ‘말도 안 되는 행동이다’, ‘어떻게 키울 거냐’,‘이 부부는 언젠가 헤어질 거다’ 하는 말도 많았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시어머니께서 완전 반대를 많이 하셨다. 남편이 고등학생이지 않나. 나도 아들이 있다 보니까 말도 안 되는 일이더라. 그때는 내 생각만 했었지만 지금 보니 말도 안 되는 말이다. 날벼락인 거다”라며 솔직한 심경을 전했다. 홍영기는 또 “당시 저희 엄마는 방에서 3일 동안 안 나오고 우셨다. 엄마도 엄마대로 슬프고 시어머니도 시어머니 나름 힘들어서 남편이 집에서 쫓겨났었다. 고등학생 때 쫓겨나서 제 친구 집에 살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서 남편에게 ‘네가 공부도 열심히 하겠다. 반에서 10등 안에 들겠다고 어머님께 말해라’고 했다. 그래서 10등 안에 들었다. 컴퓨터 일러스트 학원도 다니면서 미래에 대해 공부도 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홍영기는 지난 2009년 코미디TV 프로그램 ‘얼짱시대’에 출연해 얼굴을 알렸다. 현재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국내 휘발유 가격 일주일새 15.4원 급등…1년 9개월 만에 최대폭 상승

    국내 휘발유 가격 일주일새 15.4원 급등…1년 9개월 만에 최대폭 상승

    국내 휘발유·경유 가격이 한주 만에 나란히 ℓ당 15원 이상 급등하며 연중 최고치를 또 바꿨다. 13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 서비스인 ‘오피넷’에 따르면 이달 둘째주 전국 주유소에서 판매된 보통 휘발유 가격은 전주보다 ℓ당 무려 15.4원이 오른 1674.9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 2014년 12월 둘째주(1685.7원) 이후 약 3년 10개월 만에 가장 높은 가격이다. 올해 6월 넷째주 이후 무려 15주 연속 올랐고, 특히 지난해 1월 첫째(16.4원) 이후 약 1년 9개월 만에 일주일새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 보통 휘발유 가격은 최근 한달 동안에만 ℓ당 50원 이상 급등하면서 운전자들의 부담을 무겁게 하고 있다. 자동차용 경유도 전주보다 16.5원이나 오른 1477.9원에 판매되고 있어 1480원선에 근접했다. 실내 등유는 987.7원으로 12.3원 급등했다. 상표별로는 알뜰주유소의 휘발유 가격이 ℓ당 평균 13.8원 오른 1648.2원으로 가장 낮았고, 가장 비싼 SK에너지는 15.4원 상승한 1690.8원으로 1700원선을 곧 넘을 전망이다. 지역별로는 서울의 휘발유 가격이 평균 14.1원 오른 1758.9원으로 전국에서 가장 높았다. 최저가 지역인 대구는 14.5원 상승한 1649.1원을 기록해 서울보다 109.8원 싼 것으로 나타났다. 석유공사는 “국제유가는 미국 증시 급락,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9월 생산량 증가, 석유 수요 증가세 전망 하향 등의 요인으로 하락했다”면서 “그러나 최근 7주 연속 상승분이 시차를 두고 반영됨에 따라 국내 제품 가격은 당분간 오름세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가 주로 수입하는 두바이유는 전주보다 배럴당 0.9달러 내린 82.0달러를 기록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사설]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방해 MB 때부터 시작됐다니

    5·18 기념식의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방해가 이명박 정권 초기부터 시작된 것으로 국가보훈처의 ‘위법·부당행위 재발방지위원회’의 조사 결과 드러났다. 재발방지위원회는 이 전 대통령이 참석한 2008년 28주년 기념식 이후 행진곡 제창에 대한 청와대 의전비서관실의 부정적인 의견과 지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문건으로 확인했다. 이에 따라 노래 제창은 이듬해 29주년 행사부터 공식 식순에서 빠졌다. 지금까지는 노래 제창과 관련한 파행이 박근혜 정권 때 일어난 것으로 알려져왔다. 제창 못하게 공연요소 넣은 치밀함까지 보훈처는 2011년 31주년 행사부터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를 때 정부 대표나 참석자들의 기립이나 제창을 막기 위해 사전 준비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32주년 공연 계획안에는 참석자들의 기립과 제창을 차단하기 위해 ‘첫 소절은 연주 및 무용만(2분), 둘째 소절은 합창(빠르게, 1분30초), 또는 전주(1분30초) 도입, 무용, 특수효과 등의 공연 요소를 추가하여 기립·제창의 시점을 잡을 수 없게 진행’하겠다는 치밀함까지 보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2013년 6월 27일 국회가 기념곡 지정 촉구 결의를 한 뒤에도 보훈처는 공정한 의견수렴을 하지 않았다. 구두나 전화로 의견을 물은 뒤 이 가운데 반대의견만을 부각시키는가 하면 전문기관의 여론조사 결과 기념곡 찬성이 43%, 반대가 20%로 찬성이 반대의 두배를 넘었는데도 불구하고 찬성이 절반에 못미쳐 국민공감대 형성이 미흡하다는 부정적인 의견을 냈다. 또한 보훈처는 행진곡의 기념곡 지정을 저지하기 위해 보훈단체의 2014년 4월 9일자 모 보수신문의 반대광고를 사전에 계획했으며, 기념곡 지정을 포함한 ‘5·18 민주화 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에도 반대활동을 벌인 것으로 확인됐다. 5·18 기념재단에 따르면 ‘임을 위한 행진곡’은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 대변인으로 1980년 5월 27일 최후 항쟁 과정에서 전남도청에서 최후를 맞이한 윤상원과 노동·야학 운동을 하다 1978년 사망한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이 창작의 계기가 됐다. 1981년 광주 운암동의 소설가 황석영씨의 자택에 김종률씨 등이 모인 가운데 오월항쟁을 추모하고 윤상원, 박기순의 영혼을 기리기 위한 창작 노래극을 만들자는 제안이 나왔다. 황씨는 백기완씨가 80년 서대문 구치소에서 지은 장시 ‘묏비나리’를 개작하여 노랫말을 만들고 김종률씨가 곡을 붙이면서 82년 노래가 완성됐다. 이 노래는 테이프로 녹음되어 대중에 배포되면서 급속히 시위 및 집회 현장 등에 확산됐다. 내년 5.18 기념식에는 지정곡되도록 법제화해야 1983~1997년 5·18 유공자유족회에서 추모제를 지낼 때 노래를 제창한 데 이어 1997년부터는 정부 주관 기념식 때 제창을 해오다가 이명박 정권 출범 이듬해부터 파행을 겪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5월 12일 37주년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할 것을 지시해 파행은 일단락됐다. 보훈처가 뒤늦게나마 ‘임을 위한 행진곡’의 파행 진상을 밝히고, 조사결과에 따라 기념곡 지정을 추진한다고 하니 만시지탄이지만 다행한 일이다.  현재 국회에는 ‘5·18 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의 기념곡 지정 개정안이 계류돼 있다. 보훈처는 내년 5·18 기념식에는 행진곡이 지정곡으로서 제창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국회 또한 협력해야 한다. 만에 하나 법 개정이 야당 반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시행령 제정을 통해 기념곡 지정을 제도화하는 방안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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