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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들 결혼비용 없어 고민/부도 중기대표 목매 자살

    13일 상오 3시쯤 서울 송파구 가락동 삼환아파트 10동 1101호 임인섭씨(60) 집 거실에서 임씨가 벽에 박힌 못에 커텐끈으로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부인 김모씨(53)가 발견했다. 김씨는 “남편이 운영하던 D건영이 지난해 9월 부도가 나고 오는 17일 살던 집마저 경매에 부쳐지면서 둘째아들의 결혼비용 마련이 어렵자 자주 술을 마시며 괴로워 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부인 김씨의 말에 따라 임씨가 사업실패로 자녀의 혼수비용을 제대로 대지 못하는 것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
  • IMF 한파/선물용 금반지 인기 하락

    ◎금 모으기 운동 확산에 값까지 올라/돌·백일때 옷·장난감 선물로 대체 【청주=한만교 기자】 국제통화기금(IMF)한파를 이겨내기 위해 금모으기 운동이 범국민적으로 전개되면서 돌과 백일잔치 선물 관행이 바뀌고 있다. 돌과 백일용 선물로 최고의 인기를 끌어 온 반돈,한돈짜리 금반지가 순위에서 뒷전으로 밀려나고 대신 장난감 유아복 등이 1위 자리에 올라서고 있다.이 때문에 평소 돌과 백일 선물용 금반지로 짭짤한 재미를 보았던 금은방들이 울상이다.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 1가 B금은방의 경우,지난해 11월까지 하루 10개 이상 돌 또는 백일 선물용 금반지를 팔았으나 IMF 한파가 불어 닥치면서 지난 한달간 1개도 못팔았다. 상당구 북문로 1가 보람당 주인 유지헌씨(41)는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금 시세가 환율 폭등으로 1돈당 20% 가량 오른데다 장롱속 금모으기 운동이 확산되면서 선물용 금반지를 찾는 고객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고 말했다. 정용만씨(25 회사원 청주시 흥덕구 복대동)는 “지난 5일 직장 상사의 아들 돌잔치 선물로 금반지를 사려다 요즘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주변의 의견에 따라 아예 현금으로 전달했다”고 말했다. 지난 3일 둘째아들 백일잔치를 치른 이미경씨(31 주부 흥덕구 가경동)는 “첫 아이 백일잔치 때는 금반지를 선물로 받았으나 이번에는 옷과 장난감이 대부분이고 금반지는 3개 뿐이었다”고 소개했다.
  • “최후 승부처” 민심잡기 묘안 부심/3후보 TV토론 준비/D­4

    ◎이회창­포용력·덕 갖춘 지도자상 부각 주력/김대중­스톱워치 없애고 결론부터 말할것/이인제­리허설 2∼3차례… 부동층 잡기 총력 한나라당 이회창,국민회의 김대중,국민신당 이인제 후보 진영은 14일 저녁의 마지막 TV합동토론회를 승부처로 보고 하루전부터 거의 모든 공식 행사를 중단한 채 준비에 몰두했다. ○…한나라당은 이미 이회창후보가 논리적으로나 국정운영에 대한 비전제시에서 앞서 있다고 보고 이번에는 토론 태도나 답변 모습에 보다 신경을 쓰기로 했다.이제껏 국정운영에 대한 소신 피력과 정책 제시 측면에서는 다른 후보를 능가했으나 답변때 ‘뭔가 단단히 오해’ 등 가벼워 보이는 용어선택 등으로 상대후보를 추월하는 데는 실패했다고 보고있다. 따라서 이번 토론에서는 웃는 여유로운 모습과 포용력 및 덕을 갖춘 지도자상 부각에 진력한다는 구상이다.강용식 TV대책본부장은 “이후보의 웃음과 여유로운 분위기로 안정감을 불어 넣어주는데 주력할 생각”이라고 전했다.그러나 각 후보진영은 마지막 TV토론회인 만큼 병역면제 시비와 사채파문 등에 대한 상대후보의 공세가 만만치 않을 것으로 판단,쟁점에 대해서는 더욱 단호하고 과감하게 대응한다는 전략이다.또 사교육 대책 등 주요 정책 현안에 대해서도 분명한 공약을 천명,타후보와 차별화의 계기로 삼겠다는 복안이다.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진영 역시 TV토론이 승패의 마지막 분기점으로 보고 13일 하오부터 비상준비체제에 들어갔다. 김후보측은 이번 사회·문화분야 토론에서도 IMF관리체제 편입등 경제실정이 설전의 주소재가 될 것으로 본다.때문에 기조연설에서부터 집권시 IMF협상 이행할 의사를 명백히 함으로써 당초의 재협상 주장으로 인한 불필요한 오해를 씻는데 주력할 방침이다. 특히 ‘재협상론’에 대한 이회창 후보의 공격에 대해 공세적 방어로 나설 참이다.일단 “협상의 골격을 이행하는 범위 안에서 세부적인 ‘추가협상’을 하자는 것”이라고 해명키로 했다.그 바탕위에서 “그런데도 계속 시비를 거는 등 정치적으로 써먹는게 오히려 국가신인도를 떨어뜨리는 일”이라고 역공한다는 것이다. 토론스타일도 병렬형 설명조에서 결론부터 말하는 두괄식으로 바꾸기로 했다.지난번 토론에서 부자연한 이미지를 심었다는 평가를 받은 스톱워치도 사용치 않기로 했다.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는 13일 청와대 회담을 마치고 곧바로 토론준비에 들어간 다른 후보와는 달리 영남권 버스투어를 강행했다.부득이 참모진들과 버스로 이동중에 정책실에서 마련한 자료를 검토해야 했다.이후보는 14일 귀경,가두유세를 쉬고 자문교수단과 리허설을 2∼3차례 가질 예정이다. 이후보의 마지막 토론회전략은 20∼30%에 달하는 부동층을 흡인,막판 뒤집기를 시도한다는 것이다.국가부도사태를 극복할 분명한 대안을 가지고 있고,경제를 회생시킬 가장 양심적이고 깨끗한 세력임을 부각시켜 흔들리는 중산층과 비이인제층의 지지를 유도할 방침이다.따라서 2차토론때처럼 네거티브한 공세는 가급적 자제하되,이회창 후보의 경제실정 책임론은 유권자들에게 분명히 각인시킨다는 각오다.사채시장에서 5백억원 차입을 시도한 한나라당의 의도도 추궁한다는 생각이다. 반면 이회창 후보가둘째아들 수연씨 키 조작의혹을 제기했던 이후보에게 후보사퇴론으로 공격해올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장남 정연씨 등 가족들의 병역면제 의혹으로 맞대응한다는 계획이다.
  • 막판 부동표 공략 총력/’97선택 D­10

    ◎3후보 오늘부터 본격 지역득표전 15대 대통령선거가 열흘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한나라당과 국민회의,국민신당은 7일 경제파탄 책임과 오익제씨 편지사건,이인제 후보 및 이회창 후보 두 아들의 병역기피 의혹등을 놓고 상대 후보에 대한 정치공세를 강화하며 선거전 막바지의 민심을 잡기위한 총력전에 들어갔다. 3당 후보는 이날 정치분야 합동토론이 끝남에 따라 8일부터는 본격적인 지역별 득표전에 나설 예정이다. 한나라당은 이날 맹형규 선대위대변인의 성명을 통해 “김대중 후보는 월북한 오익제씨와의 관계를 밝히기 위해 안기부의 조사에 적극 협력하라”고 촉구했다. 맹대변인은 이에앞서 6일 “이인제 후보는 지난 72년 4월18일 입영소집에 불응,대전지방병무청으로부터 입영기피자로 분류돼 수배받았다”면서 이후보의 병적기록표를 공개하고 “이인제 후보의 두 형도 장기대기 소집면제로 병역을 면제받은 의혹이 있다”고 주장했다. 국민회의는 7일 오익제씨 편지사건을 ‘이회창후보를 돕기 위한 야당후보에 대한 음해’라고 규정하고 비상기획위원회 회의를 열어 김영삼 대통령과 권영해 안기부장 등에 대해 책임을 추궁하기로 했다. 국민신당은 한나라당이 제기한 이인제 후보 형제의 병역면제 및 징병기피의혹에 대해 “대학졸업뒤 고시 공부를 하느라 몇차례 입영을 연기한 적이있으나 육군 병장으로 만기제대했다”고 밝히고 “이회창 후보는 둘째아들 수연씨를 귀국시켜 병역의혹의 흑백을 가리자는 제의를 즉각 응하라”고 반격했다.
  • 3당 상호비방전 가열/한나라당 “호남서 ‘DJ시계’ 살포” 포문

    ◎국민회의 “시계 본적 없다” 역공작 반박 한나라당,국민회의,국민신당은 3일에도 상호 비방전을 계속했다.먼저 한나라당 김영순 부대변인이 이른바‘DJ시계’로 포문을 열었다.김부대변인은 성명에서 “국민회의가 김대중 후보의 이름이 새겨진 손목시계를 호남지역을 중심으로 무차별 살포하고 있다”면서 국민회의 마크와 김후보의 이름이 새겨진 시계를 공개했다.그는 “이같은 사실은 전남 순천의 한 시민이 우리당에 제보해옴으로써 밝혀졌다”면서 “국민회의는 국민에게 실망을 주는 불법·탈법 선거운동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그러나 국민회의는 “그 시계를 아무도 본 적이 없다”면서 ‘역공작’이라고 반박했다. 이날 한나라당의 공격은 지난 1일 국민회의가 “한나라당이 당원용 명목으로 ‘이회창 만년필’을 돌리고 있다”는 공격에 대한 반격인 셈이다.당시는 그러나 한나라당이 선관위의 유권해석을 거쳐 당원용으로 제작한 ‘적법한’것으로 밝혀졌었다. 한나라당은 또 손대희중령의 ‘시국선언’에 대해서도 국민신당을 겨냥,집중포화를 날렸다.맹형규 선대위대변인은 “이인제 후보는 신선한 군을 정치에 끌어들여 안보태세를 흐트리는 허위사실을 유포토록 거당적으로 나서서 조종하는 중대하고도 엄청난 반국가적 이적행위를 저질렀다”면서 이후보의 사퇴를 거듭 촉구했다.맹대변인은 “이후보와 국민신당은 공동정범”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국민신당은 “이회창 후보가 병역문제라는 결정적 결함에 쫓긴 나머지 우리당에 대한 정치공세를 벌이고 있다”면서 “일선 지휘관이 특정당사주에 의해 움직여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 군과 지휘관의 의식과 인격을 모독하는 처사”라고 맞받아쳤다.김충근 대변인은 “이회창 후보는 70만 군을 납득케 하기 위해서는 미국에 있는 둘째아들을 조속히 귀국시켜 의혹을 밝혀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 민심 끌어안기 ‘대안 제시’ 준비/2차TV토론 대책

    ◎한나라당­정책제시 주력·타당공격 자제/국민회의­경제위기 집권당 책임론 역점/국민신당­병역면제 의혹 집중공략 채비 한나라당과 국민회의,국민신당은 2일 전날밤 경제분야 합동TV토론에 대한 자체 평가·분석과 함께 여론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웠다.아울러 이를 토대로 오는 7일 정치분야 2차 토론전략 준비에 만전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한나라당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가라앉았다.이회창 후보가 상대적으로 잘했다는 자체평가를 내리면서도 아쉬워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처음부터 전략을 잘못 세웠다는 비판도 제기됐다.다음 정치분야 토론회 준비는 보다 완벽해야 한다는 자성론이 팽배한 기류다. 최병렬 선대위원장은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이 정책토론은 안하고 싸움만한 꼴”이라고 불만을 토로하고 “국민들은 토론내용 자체에 크게 실망할 것”이라고 단언했다.최위원장은 이어 “국가적 과제로 등장한 고용불안에 대한 좋은 정책은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고 지적하면서 3후보의 토론자세 변화를 촉구했다. 맹형규 선대위대변인은 “국민들은 세 후보의 경제분야 식견을 듣고자 했으나 타당 후보들의 이회창 후보에 대한 인신공격과 경제난 책임공방에 많은 실망을 느꼈을 것”이라며 “한나라당은 계속 이후보의 철학을 알라는데 주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국민회의는 경제분야 토론이 평균점 이상이라는 평가다. 우선 경제위기에 따른 집권당 책임론이 유권자들에게 먹혀들었다는 자체분석이다.특히 이인제 후보가 이회창 후보 때리기에 앞장섬으로써 김후보의 이미지 관리에 도움이 됐다고 본다. 따라서 국민회의로선 7일 토론회까지 이 기조를 유지한다는 방침이다.이를위해 경제 쟁점화의 불씨를 계속 살릴 예정이다. 7일 정치분야 토론회에서도 병역시비등 대 이회창 전선의 전면에는 가능한한 이인제 후보를 세우고 정치이슈에 경제쟁점을 적절히 가미해 토론의 기선을 잡는다는 전략이다. 다만 상대후보들이 이른바 DJP합의사항인 내각제 약속을 집중 공격할 것으로 보고 방어논리 개발에 신경을 쓰고 있다. ○…국민신당의 이인제 후보는 2차토론회의 주타킷도 이회창 후보로 설정했다.주제가 정치분야인 만큼 이회창 후보의 두 아들 병역면제 의혹을 최대한 부각시킨다는 생각이다.이후보 사퇴를 촉구한 손대희 중령의 시국선언문 발표사건 등의 사례를 적절히 섞어 공략하고 둘째아들 수연씨의 키 조작의혹과 관련,미국유학중인 수연씨를 즉각 귀국시키지 않는 이유도 따지기로 했다. ‘국가부도사태’에 대한 한나라당의 공동책임론 추궁이 1차토론에서 미흡했다고 판단,김영삼 대통령과의 주례회동 및 당정협의 건수나 날짜 등을 적시해 조목조목 공박할 방침이다.또 김대중 후보 비자금의혹을 폭로하면서 이후보 진영이 어떻게 금융자료를 입수했는지에 초점을 맞춰 ‘부도덕한 대통령후보’라는 점을 부각시킬 계획이다.
  • 영 여왕부처 오늘 금혼식/유럽 왕실인사 축하행사에 대거 참석

    ◎4자녀중 3명 이혼… 가정생활 낙제점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71)이 20일 필립공(76)과의 결혼 50주년을 맞는다. 다이애나의 죽음으로 신화같은 비극을 연출한 맏아들 찰스 왕세자를 비롯,맏딸 앤공주,둘째아들 앤드루 등 4자녀 가운데 3명이 모두 이혼을 함으로써 가정생활면에서 왕실의 모범을 보이지 못했던 엘리자베스 여왕.그래서 그녀의 금혼식은 더욱 세상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철저히 ‘여왕’으로 길러진 엘리자베스가 망명 그리스 왕실가족의 일원이었던 필립공과 백년가약을 맺은 것은 2차대전 복구가 한창이던 1947년 11월 20일.필립공이 다트머스해군대학 사관생도로 있을때 엘리자베스가 이 곳을 방문하면서 두사람의 만남은 시작됐다.엘리자베스가 스포츠로 단련된 매력적인 미남 필립공에게 첫눈에 반한 것으로 알려져있다.26살 필립과 21살의 이지적인 황녀 엘리자베스의 결혼은 전후 영국인들의 사기를 높이기에 충분했다. 여왕부부에게도 불화설이 없진 않았다.그러나 구체적인 사실들이 언론에 보도되지는 않았으며 분명한 것은 이들이 공적,사적 생활에서 서로에게 가장 충실한 지원자였다는 사실.필립공은 다른 사람들과 얘기할 때는 군주인 아내를 ‘여왕님’으로 지칭하고 사적인 자리에서는 ‘릴리벳’으로 부르는 것으로 전해진다.필립공은 측근들에게 자신의 임무가 ‘여왕이 쓰러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여왕을 애정으로 지원해왔다. 왕실은 여왕부부의 금혼식 행사로 19일 기념오찬회와 음악회,20일밤 윈저성에서 비공식 무도회를 열며 공식행사로 20일 오전 웨스트민스터사원에서 축하예배를 개최한다.웨스트민스터 행사에는 1952년 여왕 대관식 이래 최대 규모의 외국 왕실인사들이 참석할 예정.예배가 끝난 후에는 정부 주최의 공식오찬회가 열린다.
  • 뿌리고 땀흘린 만큼 거둔다지만(박갑천 칼럼)

    올해같은 우순풍조의 해가 달리 또 있을까 싶다.때맞춰 내린비,여느해에 비기자면 수해도 없었던 편이다.거기에 따가운 햇볕은 얼마나 잘 내리쬐었던 것인가.곡식 살찌는 소리에 과일 단물괴는 소리가 들리는 양했다.한때 가슴죄게도 했지만 태풍까지 비켜가 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황금 들녘에는 금빛물결이 일렁인다.환하게 웃는 농민은 여름내내 흘린 땀의 의미를 생각한다.그렇지.이 보람 이 기쁨을 위해 씨뿌리고 땀흘렸지.씨뿌리고 땀흘린만큼 거둔다는,한뉘를 두고 터득한 진리를 한번더 확인한다.그리고 하나더….그렇게 흘린 땀방울위에 다시 하늘의 웃음이 따라야 비로소 풍년의 기쁨을 맛볼수 있다는 것을 또한번 확인한다. 뿌리고 땀흘린만큼 거둔다는 것은 농사뿐아니라 세상만사에 통하는 이치.거기에 다시 하늘이 웃어 주느냐 않느냐에 따라 희비가 엇갈린다는 것까지도 통한다.내가 얼마나 땀흘려 학업을 닦았느냐에 따라 나의 미래는 달라진다.얼마나 베풀었냐에 따라 그만큼 과보가 오고 얼마나 몹쓸짓 했냐에 따라 그만큼 죄업도 찾아든다.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처럼 보이는게 인생사다.어찌하여 안연같이 어진 선비는 요절하고 도척같이 무작스런 악당은 고종명하는 건지 누가 안다고 할일 인가. 가령 고상안의 〈효빈잡기〉에 나오는 문홍도는 뿌린죄업만큼 죄를 받는 사례다.유성룡을 모함한 옰으로 입술에 종기가 나서 죽는다니 말이다.두아들까지 비명에 가는 것도 “종자를 없애려는 하늘뜻”이라고 그는 손톱저긴다.그러면 성현이 〈용재총화〉에서 한탄하는 그의 방조 독곡(성석린)의 경우는 어떤가.“평생을 인으로 살았으니 여경이 있어야 했다”.하건만 맏아들은 후손이 없고 둘째아들은 뱃속에서부터 장님인데 그 아들에 손자까지 뱃속장님이었다.이에대해 성용재는“천도란 헤아릴 수 없다”면서 한숨짓는다. 〈열자〉(천서편)에는 “천지도 전공없다”는 말이 나온다.완전 무결할 수 없다는 뜻이다.그래서 뿌린만큼 거두게 하지 않는 걸까.아니면 그것이 완전무결한 저울질인 것을 다만 사람이 모른다는 걸까.아무튼 과학문명 난만한 이 시대에도 씨뿌리고 땀흘려봤자 하늘이웃어주지 않으면 풍년을 기약할 수는 없다.이수확의 계절은 그대목도 생각해보게 한다.〈칼럼니스트〉
  • ‘캄 의대’의료장비 지원길 참변/베트남 여객기 추락­희생자 주변

    ◎원광대 의대팀 6명/“자매결연 앞두고 비명에…” 동창들 충격 “내전중인 캄보디아에 인술을 베풀기 위해 그렇게 애썼는데…” 원광대 의대 동창회장 김봉석씨(37·충남 장항 반석의원 원장)와 원광대병원 레지던트 3년차 이성민씨(32) 등 일행 6명이 사고여객기에 탑승한 것으로 알려지자 원광대 의대 및 동창회는 충격과 슬픔에 휩싸였다.김씨와 이씨는 동서지간이어서 주위 사람들의 마음을 더 아프게 했다. 김씨 일행은 오는 5일 프놈펜 의대 대학원 개원식에 이어 원광대 의대와 프놈펜의대의 자매결연식에 참석할 예정이었다.문영호 원광대 의대학장의 감사패와 3천여만원 어치의 컴퓨터와 의료기기 등도 전달할 계획이었다. 전북일보 신용철 기자(34)는 자매결연식을 취재하려고,권용호씨(41·의료기 상사)는 프놈펜의대와 의료기기 계약을 체결하려고 동행했다.김씨의 친구인 송경렬씨(36·전 국회의원 비서관)는 자매결연식 행사를 돕기 위해 함께 떠났다. 김씨는 캄보디아가 오랜 내전으로 많은 의사가 숨진데다 의료시설과 교육시설도 부족해 어려움을 겪는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 해부터 캄보디아를 4∼5차례 다녀오는 등 모교와 프놈펜의대의 자매결연에 힘써 왔다.지난해 1월에는 원광대 의대학장 등 교수 4명이 현지를 방문,의학서적 50여권을 전달하고 의료장비 지원에 합의하기도 했다. ◎선교사일가 4명도 희생/오형석씨 캄 내전 피해 귀국했다 다시 출국/둘째아들 구조 4시간만에 숨져 안타깝게 베트남 여객기 추락현장에서 생존 상태로 구조된 사람은 오성혁군(5)과 태국의 파이 분군(2) 등 어린이 2명.하지만 오군은 병원으로 옮겨진지 4시간30분만인 하오 8시쯤 숨져 주위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오군은 이날 인천 부평 동부장로교회 부목사인 아버지 오형석씨(34)와 어머니 곽혜진씨(34),형 중엽군(7)과 함께 사고기에 탑승했다.아버지 오씨는 선교를 위해 캄보디아로 가던 중이었다. 지난 1월 프놈펜에 교회를 설립,선교활동을 펼치던 오씨는 캄보디아 내전이 격화되자 지난 7월25일 한국으로 일시 귀국했다.이후 내전이 잠잠해졌다는 현지 소식을 들고 이날 프놈펜행 항공기에몸을 실었다. 오씨는 89년 대구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총신대 신학대학원에 입학했다.92년부터 총신대 선교연구원에서 선교사 훈련을 받으면서 캄보디아어를 배웠다. 94년 대학원을 졸업하고 인천시 부평구 부평 동부장로교회에 부목사로 부임했으나 캄보디아에 선교활동이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95년 2월 프놈펜으로 파견됐다. 부평장로교회 박명철 전도사(32)는 “오목사는 한국에 일시 귀국했을때도 프놈펜 교회에 대한 생각 뿐이었다”면서 “출국 전날 함께 저녁식사를 하며 선교활동에 힘쓰자고 약속했었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한국인 탑승객 21명 명단 이날 베트남항공 사고기에 탑승한 것으로 보이는 한국인 21명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서울서 탑승 ▲소방수(56·회사원·군산시 나운동 현대2차아파트 62동523) ▲강영식(39·회사원·군산시 구암동 현대아파트) ▲박광작(25·학생·서울 관악구 신림9동 255의97) ▲김영모(39·회사원·제주시 연동 266의6) ▲홍성철(40·회사원·성남 분당구 수내동 72 푸른마을 201의 1821) ▲김봉석(36·의사·서천군 장항읍 창선 1리) ▲이성민(31·의사·익산시 영등동 비사벌아파트 105동205호) ▲김종성(41·회사원·성남시 분당구) ▲신용철(34·전북일보 서울주재기자·서울 강서구 방화3동 삼익아파트 401의102) ▲권용호(40·사업·서울) ▲송경렬(35·국회사무처 연구원·서울 서초구 반포4동 현대동궁아파트 101동 1113호) ▲오형석(34·선교사·대구 서구 평리4동 1226의10) ▲곽혜진(34·선교사·여·구리시) ▲오중엽(7·대구 서구 평리4동 1226의10) ▲오성혁(5·대구 서구 평리4동 1226의10) ▲박정준(40·여·서울 광진구 자양동 한양아파트 5동1101호) ▲정영화(13·학생·서울 광진구 자양동 한양아파트 5동1101호 ▲박상철(74·무직·광진구 자양동 한양아프트 5동1101호) ◇호치민서 탑승 ▲김성철 ▲변영달 ▲현조애.
  • “수연씨 부모이름 동직원 오기/가족관계 확인뒤 수정한듯”

    ◎김 병무청장,이 대표 아들 병적기록표 해명 김길부 병무청장은 31일 국민회의가 신한국당 이회창 대표 둘째아들 수연씨의 병적기록표 가필의혹을 제기한 것과 관련,“85년 당시 동사무소 직원이 호적부를 보고 기록표를 작성할 때 가족관계란에 부모의 이름을 백부와 백모의 이름으로 잘못 적어 넣어 징병검사전 수정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관련기사 5면〉 김청장은 이날 국회 기자실에서 이대표 두 아들의 병적기록표 원본을 공개하고 “애초에 잘못 작성한 병적기록표는 이후 동사무소의 다른 직원이나 징병검사 전 병무청의 적성분류관이나 수연씨로부터 가족관계를 확인하고 수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명했다. 김청장은 또 “국민회의 천용택 의원에 제출한 자료에서 키 179㎝로 면제처분 받은 명단에서 정연씨가 빠진 것은 정연씨가 징병검사에서 면제받은게 아니라 입영부대에서 면제처분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입영부대 면제처분자의 경우 아직 전산처리가 되어 있지 않고 입영부대 귀향자가 90∼96년사이 160만명에 이르므로 정연씨의 기록을 찾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김청장은 “국무총리나 국방장관이 국회에서 밝힌 것은 모두 진실”이라면서 “실무자에게 보고를 받아본 결과 이대표 두 아들의 병역문제에는 한점 의혹이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3김시대 마감” 대쪽신화 막오른다/이회창 후보 선출­누구인가

    ◎정계입문 18개월만에 집권당 평정/소신·원칙 앞세워 정계 새바람 기대 ‘대쪽총리’ 이회창이 신한국당 차기대통령 후보로 선출됐다.오랜 공직생활 동안 원칙과 소신으로 일관한 이후보는 3김정치의 청산을 기치로 새로운 정치 한마당을 펼쳐 나갈 전망이다.그것은 21세기 선진대국을 향한 화합과 통합의 정치로 요약된다.그의 일대기와 정치철학,국가관 등을 2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죽룡(대쪽 용)의 승천­.‘정치인 이회창’신화의 막이 올랐다. 지난해 1월 정계 입문 이후 불과 18개월만에 그는 집권 여당의 차기대통령 후보로 선출되는 영광을 안았다.그를 선택하기 위해 21일 열린 신한국당 전당대회에서 그는 인물위주의 새로운 정치마당을 마련하려는 ‘이회창식 정치 실험’을 선언했다.파벌과 지역주의로 대변되던 ‘3김시대’의 종언을 알리는 전주곡이었다. 이대통령후보는 로마의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평생의 애독서로 삼고 있다.그는 전쟁터를 옮겨 다니던 마르쿠스 황제를 “위태로운 권력 암투 속에서도 맑은 샘물처럼깨끗하게 자신을 지켜내고자 노력했다”고 평가한다.이전투구의 정치판에서 소신과 초심을 지켜 나갈 그의 행보가 기대되는 대목이다. ○이회창식 정치실험 선언 이후보의 호는 경사­‘곧은 역사’다.호에 걸맞게 그는 타협해서는 안될 것과 타협하지 않고 굴복하지 말아야 할 것에 당당했다.때문에 60년 25세의 나이로 인천지법 판사로 임관한 이후 30년이 넘는 공직생활 기간동안 항상 ‘대쪽’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녔다.서슬퍼런 5공시절 대법관으로서 주심을 맡은 전원합의체 사건 16건중 10건에 ‘소수의견’을 낼 정도로 소신과 원칙이 뚜렷했다. 문민정부의 초대 감사원장으로 발탁된 그는 ‘소신 감사’를 밀어붙이다 청와대와 갈등끝에 백의종군한다.당시 그는 청와대 비서실,감사원,안기부 등 ‘성역’을 감사의 도마에 올렸다.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도 평화의 댐,율곡감사와 관련해 서면조사를 받아야 했다.93년 국무총리로 기용된 뒤에는 통일안보정책조정회의 운영 등 헌법상 총리의 역할과 대통령과의 관계를 둘러싸고 마찰을 일으켜 4개월7일만에 다시 사표를 던진다. 그러나 그의 강성이미지에도 불구하고 지인들은 그를 “가슴이 따뜻한 사람” “만나면 편한 사람”이라고 말한다.아랫사람에게 결코 화내는 일이 없고 무슨 말이든 경청하는 습관이 있어 그를 상관으로 모신 사람들은 그를 후하게 평가한다. 판사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판결도 유명사건이 아니라 배추장사를 하던 어느 청년의 절도혐의를 벗긴 것이었다.경찰서장 집 도난사건과 관련,혐의를 받던 젊은이에게 당시 이판사는 “범인이 아니라면 진실을 제대로 밝힌 재판제도에 감사해야 하지만 범인이라면 판사를 용케 속였다고 좋아할게 아니라 스스로 부끄러워 해야 한다”고 무죄를 선고했다.“항상 약자를 눈여겨 보고 약자가 부당하게 억울함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틈만나면 그는 후배 법관들에게 충고를 잊지 않았다고 한다. ○불의와 타협않는 성품 이후보는 35년 6월2일 황해도 서흥에서 아버지 이홍규옹(93)과 어머니 김사순씨(86)의 4남1녀중 2남으로 태어났다.고향은 선영이 있는 충남 예산이다.본관은 전주이며 조선조 태조 이성계의 고조부인 목조 안사공의 셋째형 영습공을 중시조로 분파되었다. 이후보의 큰 아버지 이태규 박사(1902∼1992)는 우리나라 자연과학계의 태두이며 아버지 이옹은 서울법대의 전신인 경성법전 출신으로 검찰지청 사무원으로 일하다 해방후 광주지검검사로 특임,20년간 봉직했다.이옹은 충북도지사 구호물자 횡령사건,장면 부통령 저격 사건 등을 담당하면서 강직한 소신을 보였고 이승만 대통령과 친한 충북지사를 구속하는 바람에 괘씸죄에 걸려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조사받기도 했다. ○노부모와 매주말 식사 어머니 김사순씨(86)는 전남 담양의 천석꾼 집에서 태어났다.외삼촌 3명이 모두 이 지역에서 국회의원을 지낸 뼈대있는 가문이다.형 회정씨(65)는 삼성의료원 병리학과장이고 서울대 상대를 나온 동생 회성씨(52)는 에너지경제연구원 고문이다.막내동생 회경씨(48)는 연세대와 미국 뉴욕주립대 경제학박사를 거쳐 현재 과학기술원 교수로 재직중이다.형제들은 요즘도 매주 토요일 저녁 혜화동성당에서 노부모와 함께 미사를 드리고 식사도 같이 할 정도로 효성이 지극하다. ○부인과 슬하에 2남1녀 어린 시절 이후보는 아버지의 잦은 전근으로 이사를 자주 다녔다.그는 광주 서석초등학교에 입학,5학년때 월반해 광주서중학교에 진학했다가 곧바로 청주중학교로 전학했다.그리고 경기중학 2학년에 편입,경기고를 거치게 된다.그는 청주중학 시절 가출경험을 자주 회고한다.60점 만점의 수학시험에서 20점을 받고 그 길로 조치원역 대합실에서 밤을 새우다 헌병에게 발견됐다.헌병의 연락을 받고 달려온 아버지가 아무 말없이 자신을 가슴에 안았던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크고 넓고 따뜻한 가슴으로 기억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되뇌었다고 한다. 이후보는 부인 한인옥씨(59)와 2남1녀를 두고 있다.큰 아들 정연씨(35)는 서울대 수학과를 거쳐 대외경제연구원에서 근무중이며 둘째아들 수연씨(32)는 동국대를 졸업,유학준비중이다.딸 연희씨(34)는 출가했다. 이후보는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당내 지지위원장이 10명 미만이었다.그러나 그 숫자는 불과 6∼7개월만에 1백40여명으로 불어났다.쿠데타나 민중봉기가 아니면 이처럼 단기간에 집권당을 ‘접수’한 사례는 세계 정치사에 유례가 없다고 한다. 정가에서는 이를 이후보의 독특한 퍼스낼리티와 정치권의 기대심리가 묘하게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해석한다.이후보가 단기필마로 당에 몸을 담긴 했지만 이미 ‘대쪽’ 이미지가 긍정적으로 각인돼 있었고 정치권내에서도 3김정치에 대한 염증으로 새로운 정치구도의 등장에 대한 컨센서스가 물밑에서 형성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주요 고비마다 운도 따라 특히 주요 고비마다 시운은 이후보의 편에 섰다.대표 임명 과정이나 정치발전협의회(정발협)와의 마찰때도 그랬고 경선후보간 전선이 ‘이대 반이’로 단순화되는 바람에 한결 승부가 쉬웠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김심의 중립도 이후보에게는 큰 힘이 됐다.지금까지 이후보의 정치역정은 김대통령과 묘한 공조관계를 유지해 왔다.김대통령은 민주계와 이후보의 ‘불편한 관계’를 의식하면서도 정치고비때마다 ‘대쪽’에게 중책을 맡겼고 4·11총선 이후 대망을 품은 이후보도 김대통령에게서일정 거리 이상 벗어나지 않았다. 이후보가 문민정부 초대 감사원장으로 발탁되면서 시작된 두사람의 인연은 93년 쌀파동과 대형사고 등 곤혹스런 정치상황 속에서 이후보가 총리에 전격 기용되면서 계속 이어졌다.6·27 지방선거에서 대패한 김대통령은 4·11 총선직전 삼고초려끝에 ‘대쪽’을 당 선대위의장으로 영입했고 지난 3월 노동법사태와 한보사건으로 최대의 위기에 봉착했을 때도 김대통령은 예상을 뒤엎고 그를 당 대표에 앉혔다. 이후보는 학창시절 체구가 작아 권투와 당수를 배웠다.골프와 테니스,탁구실력은 수준급이다.독실한 천주교도인 그의 세례명은 ‘올라프’.노르웨이 수호성인 이름이다.정치 고비때마다 “사람이 못하면 하느님이 할 것”이라며 앞날을 낙관하는 것도 깊은 신앙심때문으로 여겨진다.
  • 4세아 유괴 4일만에 구출/2억요구 전화 추적… 2명 검거

    경기도 성남 분당경찰서는 15일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다 유괴됐던 이명근군(4)을 납치 4일만에 구출한데 이어 이군을 데리고 있다 달아난 유괴범 임영호(33)를 미선년자 약취유인 등의 혐의로 긴급 체포했다. 경찰은 이날 상오 유괴범 조래철씨(25)를 붙잡아 조사하는 과정에서 임씨부부와 범행을 함께 했다는 진술을 받아내고 강원도 횡성군 동원농장 골방에 갇혀 있던 이군을 구출했으나 임씨부부는 놓쳤었다. 경찰은 서울 성동구 금호동 임씨의 누나집 앞에 잠복해있다 골목길을 서성거이던 임씨를 하오 10시10분쯤 붙잡았다. 경찰 조사결과 임씨는 양계농장 운영자금 마련을 위해 지난해 3월쯤 동원농장에서 일을 하다 알게된 조씨와 공모,11일 하오 4시40분쯤 분당 삼성아파트 놀이터에서 자전거를 타고 놀고 있던 이한성씨(38·농촌진흥원 연구원)의 둘째아들 명근군을 유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조씨는 서울 용산구 갈월동 공중전화 앞에서 이씨집에 전화를 걸어 몸값 2억원을 요구하다 발신지를 추적한 경찰에 붙잡혔다.
  • 장한 어버이로 뽑힌 군산 이흥덕 할머니

    ◎날품팔이로 7남매 훌륭히/“에미로서 당연한 일… 잘 자라줘서 고마울 뿐” 『에미로서 당연한 일인데 훈장까지 받으니…』 평생을 날품팔이 등으로 7남매를 훌륭하게 키운 70대 할머니가 올해의 어버이날 장한 어버이로 선정돼 8일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는다. 전북 군산시 회현면 학당리에 살고있는 이흥덕 할머니(79). 『가난때문에 그 흔한 과외한번 못시켰는데 제대로 모두 잘 자라줘서 그저 고마울 뿐입니다』 19살의 나이에 전북 옥구군(현재의 군산시) 회현면의 가난한 농가로 시집와 남편과 자식수발에만 평생을 매달려온 이할머니의 삶은 땀과 눈물로 점철돼 있다. 농사일을 열심히 해도 가난은 쉽게 떨어지지 않아 시간만나면 날품팔이와 가마니짜기 등에 손을 댔다.살기가 힘든 탓도 있었지만 7명이나 되는 자식들의 교육때문이었다.학비를 제때 마련못하면 빚을 내야했고 그 빚을 갚기위해 또 가마니를 짜며 하루가 멀다하게 밤을 지샜다.80년 남편이 병으로 세상을 버리면서 고생은 더욱 심해졌다. 그러나 자녀들은 어머니의 모정에보답이라도 하듯 반듯하게 자랐다. 장남인 김재주씨(54)는 현재 (주)인천제철의 상무이사로,둘째아들인 동주씨(50)는 대구지검 김천지청장으로 재직중이다. 세째 세주씨(48)는 삼양중기에,넷째 정주씨(45)는 호남식품 과장으로,막내인 강주씨(37)도 대한송유관공사 과장으로 근무중이다.
  • 월남참전용사 10대 두아들/고엽제 후유증 「대물림 사망」

    고엽제 후유증으로 지난해 숨진 월남 참전용사의 두 아들이 숨진 아버지와 같은 증세를 보이다 최근 사망한 사실이 30일 뒤늦게 밝혀졌다. 월남참전전우회 충북지부는 고엽제환자로 96년 4월 52세로 사망한 오영수씨의 둘째아들 장운군(17·충북 청주시 흥덕구 사직동)이 지난 26일 보훈병원에서 패혈증으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오군은 8살때인 지난 89년부터 다리마비·뼈 무력증 등 고엽제 후유증상으로 청주시내 병원과 보훈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왔다. 이에앞서 지난 87년 형 성택(당시 13세)군도 비슷한 증세로 숨졌다.
  • 페루 수도 리마(세계 문화유산 순례:28)

    ◎침략자 유적에 가려 잉카의 영화는 전설로/정복자에 유린된 찬란한 「황금의 도시」/태양의 제전에는 이방인유적 번듯이/산마르틴 광장에는 유럽·남미문명이 함께 호흡 중남미 광대한 대륙에는 마야문명 말고 또다른 신비의 잉카(Inca)문명이 있다.그 문명의 중심지 페루로 떠나기에 앞서,마야문명을 뒤로 한다는 아쉬움에서 선인장으로 만든 술 데킬라 몇잔을 마셨다.지도로 본 리마는 멕시코시티에서 그리 멀지않은 것처럼 보였다.그러나 멕시코시티를 떠나 페루의 수도이기도한 리마까지는 비행기로만 꼬박 7시간이 걸렸다. 밤늦은 시각리마에 닿았다.경제사정이 어렵고 사회가 안정되지 않은 탓인지 숙소로 가는 도중에 만난 사람들 표정은 밝지 않았다.그러나 리마라는 도시 자체는 날이 밝은뒤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리마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역사유적지구라서 그야말로 고색창연했다.그런만큼 많은 유적들을 간직했거니와,스페인 식민지시절(1532년∼1824년)만들어진 건물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었다. 리마는 크게 산 마르틴(San Martin)광장을 중심으로 하는 구시가지와 20세기 들어 개발한 신시가지로 구분됐다.지금은 일종의 우범지역으로 변해버렸지만 구시가지는 한때 리마의 중심지였다.산 마르틴 광장 한가운데는 당당한 모습으로 말위에 올라앉은 남미 해방의 영웅 산 마르틴 장군의 동상이 우뚝했다.잉카와 스페인,오늘의 남미가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산 마르틴 광장은 「히론 데 라 우니온」(Jiron de la Union)이라 이름붙여진 길을 따라 남쪽으로 통했다.약 1㎞에 이르는 이 길 주변에는 각종 상가건물이 빼곡히 들어섰다.마치 서울 명동거리가 연상됐다.길이 끝나는 곳에는 대통령궁·시청 청사 등이 관아가를 이루었고,바실리아 대성당 등 주요 건물들도 함께 자리했다. 대통령궁은 식민지시대 건축물 양식을 그대로 보여주었다.1532년 잉카제국을 무너뜨린 스페인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거처했던 곳이기도 했다.대통령궁은 항상 걔방돼 관광객들이 늘 붐볐다. 입구를 지나 중앙통로를 따라 들어섰다.2층의 대통령 집무실로 향하는 계단 양쪽으로 남미 해방의영웅 볼리바르 장군과 산 마르틴 장군의 흉상이 서있다.두 사람은 베네수엘라와 아르헨티나에서 각각 독립운동을 일으켜 남미대륙 전체에 해방의 기쁨을 안긴 인물들이다.그리고 그 아래 로비 대리석 바닥에는 잉카의 상징인 태양 문양이 각인돼 있었다.300년에 걸친 속박의 사슬을 끊어냈던 해방 당시의 모습을 상징한 것이다. 왼쪽으로 난 통로를 따라갔다.중간쯤에 170여년전 페루 최초의 대통령이 타던 프랑스제 마차가 고풍스런 모습으로 진열됐다.그리고 여러 개의 고급스러운 방이 주위를 빙둘러 이어졌다.1535년 스페인 특산물 타일로 장식한 화려한 벽화가 있는 접견대기실,남미 최고품인 니카라과산 나무 장식장 등으로 치장한 기자회견실도 그 주위에 있다.기자회견실에는 잉카제국 마지막 왕 망코의 둘째아들로 스페인에 맞서 최후까지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호세 가브리엘 곤도르칸키 케초아의 대형초상화가 걸렸다.베르사이유 궁전을 본따 장엄하고 화려한 바로크 양식으로 꾸몄다는 귀빈대기실은 관광객들이 탄성을 자아낼 만큼 호화스러웠다. 대통령궁 앞에서 날마다 벌어지는 위병교대식은 흥미로운 것이었다.매일 상오 11시30분이면 푸른색과 흰색 위주의 전통의상을 차려입은 어린이들이 먼저 등장했다.어린이들이 전통민속춤을 추고나면 위병교대식이 진행됐다.그 의식은 근엄하기 보다는 국민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서려는 페루의 또다른 모습이기도 했다. 페루 역시 남미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카톨릭의 영향을 받아 성당 건축물들을 많이 남기고 있다.대통령궁 왼쪽에 자리잡은 바실리아 성당도 그중 하나다.1535년에 시공돼 남미 최초·최대의 성당이기도한 바실리아 성당은 1586년과 1746년·1940년 등 세차례에 걸쳐 지진을 겪고서도 끄떡없이 버티고 있다는 것이다.그래서 리마 사람들의 자랑이 대단했다. 이 성당에는 스페인 정복자 피사로의 미라가 머리와 몸통이 분리된채 유리관 안에 전시됐다.피사로는 1546년 자신의 심복의 손에 죽음을 맞았는데,미라 옆에는 고향에서 가져왔다는 한줌의 흙을 보관했다.정복자의 수구초심을 읽으면서 흥망성쇠를 안고 돌아가는 역사의 수레바퀴 소리를 듣는듯했다. 대통령궁에서 3블럭 정도 동쪽의 산 프란시스코(San Francisco)성당과 부속 수도원 역시 장관을 연출했다.1620년 바로크 양식으로 건축한 이 성당은,남미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꼽힌다.성당 전면을 장식한 돌조각은 스페인의 세비야에서 들여온 것으로 그 아름다움은 극치를 이루었다.이 성당의 지하무덤 카타콤(Catacombs)은 유명했다.1788년에 지하 4층 규모로 만든 카타콤에는 성당건립에 기여한 사람들이나 성직자 4만여명이 잠들어 있다. 식민지시대 유적들에 가려 잉카의 흔적들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세계 어느 지역보다도 황금이 많아 엘도라도로 불렸다는 잉카제국.시내 중심가에서 동쪽으로 30분 거리에 있는 「황금박물관」을 맨 먼저 들렀다.풍요로웠던 잉카문명의 역사가 어렴풋이나마 마음속에 들어왔다.태양이 신성한 숭배의 대상이었던 잉카인들에게 황금은 태양이 흘린 눈물을 의미했다. 잉카의 황금유물은 기원전(BC) 4세기에서 기원(AD)2세기까지 융성했던 비쿠스 문명에 뿌리를 두었다.그후 차빈·모체·나스카·와리·치무를 거쳐잉카문명기에 접어들어 더욱 활짝 피어났다.박물관에 전시된 목걸이·반지·코걸이·귀걸이·옷핀 등 장신구와 왕관·악기 등이 모두 황금제품이다.심지어 우의까지 금으로 제작한 것을 보면 황금을 다룬 솜씨인 연금술은 고도의 경지에 이르렀던 모양이다.그러나 풍부한 황금은 유럽 정복자들을 유혹했고,그 문명을 정복자들에게 내주는 비극을 불러들였다. ▷여행가이드◁ 페루의 화폐단위는 솔(Sol)로 미화 1달러당 2.2솔 정도다.시내에 크고작은 숙박시설이 많으나,안전을 고려해 호텔에 투숙하는 것이 좋다. 세비체·로모살타타·안티쿠초 등 페루 전통음식은 15달러로 조금 비싼 편.그러나 일반식당에서 당일 내놓는 메뉴를 주문하면 3달러 정도면 해결할 수 있다.한국식당의 웬만한 음식은 15달러 이상.물론 음료수와 물은 별도 주문이다.팁은 음식값의 10%.리마는 사막위에 세워진 도시인 탓에 지하철이 없고,출퇴근시간에는 교통난이 심한 편이다. 재미있는 것은 리마 시내를 돌아다니는 자동차의 30%정도가 한국산 자동차라는 사실이다.대통령궁이나 성당 등에 들어갈 때는 4∼5솔의 입장료를 내야 한다.
  • 문학동네,불 크리스티앙 자크 역사소설 순차 발간

    ◎「람세스」의 왕위계승 비화·정복사/배신·음모·도전 뿌리친 BC13세기 애 통치자/신화·역사 성찰… 당대의 문명과 삶 꼼곰히 복원 프랑스 현지에서 2백만부 넘게 팔려나갔다는 역사소설 「람세스」(크리스티앙 자크 지음)가 국내독자들과 만난다.문학동네 출판사는 제1권 「빛의 아들」(김정란 옮김)을 이번주 펴내는 것을 필두로 몇주마다 한권씩 덧붙여 전5권을 모두 선보인다. 람세스는 기원전 13세기 이집트 통치자였던 람세스 2세를 지칭한다.그는 불타는 정복욕으로 누비아와 히타이트족,시리아며 레바논 등을 제압,이집트 영토를 극대화했고 치적을 후대에 전하려 나라 곳곳에 거대한 건축물을 축조하는 등 영토며 건축,종교 등 모든 면에서 이집트 전성기를 꽃피웠던 인물.소설은 선왕의 둘째아들로 천덕꾸러기에 불과했던 소년 람세스가 배신과 음모를 뚫고 후계자로 올라서는 과정,모략과 도전을 뿌리쳐나간 잔혹한 정복사,또 여섯명 이상의 왕비를 두고 100명이 넘는 후손을 낳은 달콤한 연애담 등을 담아낼 예정이다. 작가인 크리스티앙 자크는 소르본느 대학에서 이집트학을 전공한 이집트학자.원래 철학과 고전문학을 공부하다가 신혼여행길에 맛본 이집트의 정취를 잊지못해 고고학과 이집트학으로 방향을 튼뒤 고향처럼 이집트를 드나드는 「이집트광」이 됐다.전에도 「이집트인 샹폴리옹」「태양의 여왕」 등 짬짬이 이집트 관련 소설을 썼지만 95년 나오기 시작한 「람세스」로 일약 프랑스 최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이같은 이력에서도 알 수 있듯 소설속엔 이집트 신화와 역사에 대한 작가나름의 성찰,당대의 문명과 삶의 세부에 대한 꼼꼼한 복원이 풍부하게 담겨있다.스스로 신의 경지를 꿈꾼 영웅의 호쾌한 정복사와 여성편력을 빠른 전개에 담은데다 이집트 지식까지 박물지처럼 곁들여 읽는 재미에다 지적 호기심,이국취향까지 만족시켰다는 점이 성공요인으로 작용한 듯 보인다. 람세스2세의 90여년에 걸친 삶에서 1권은 람세스가 23세로 왕위에 오르는데까지를 그리고 있다.람세스는 장자로 선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던 형 세나르로부터 강력한 경계를 받고 아버지인 세티왕에게선 각종 단련을 받는 등 죽음을 무릅쓴 통과제의를 거친다.그의 곁엔 신분은 미천해도 재능있고 심지 곧은 친구들이 하나 둘 모이며 그중엔 영화 「십계」의 주인공 모세도 있다.재색을 겸비한 숱한 미녀들의 유혹을 마다하고 운명적 여인 네페르타리와 사랑을 싹틔우는 계기도 그려지고 있다.
  • “김현철씨 혐의 못찾아”/검찰 귀가조치

    ◎김씨 “국민·아버님께 심려 껴쳐 죄송”/한보 정태수씨 네아들도 돌려보내 한보 사건을 수사중인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최병국 검사장)는 22일 김영삼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를 상대로 그동안 제기된 현철씨 관련 각종 의혹들에 대해 26시간에 걸쳐 광범위하게 조사했으나 별다른 혐의점을 찾아내지 못하고 돌려보냈다. 정태수 총회장의 종근(41·목재그룹회장)·원근(35·제약그룹회장)·보근(34·그룹회장)·한근씨(32·금융그룹회장) 등 아들 4형제도 모두 귀가시켰다. 최중수부장은 『현철씨를 상대로 특혜대출 압력 등 언론 등에서 제기한 각종 의혹을 광범위하게 조사했으나 뚜렷한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어 『검찰로서는 더이상 의심할 부분이 없기 때문에 현 상태에서 현철씨를 다시 부를 생각은 없다』고 말해 추가 소환 계획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최중수부장은 그러나 『앞으로 국회 국정조사특위가 현철씨를 고발하거나 국민회의 등에서 현철씨의 혐의 사실을 적시한 자료를 제출하면 다시 소환할 수는 있다』고 덧붙였다. 현철씨는 조사를 마치고 검찰청사를 떠나면서 『본의 아니게 국민 여러분과 저의 아버님께 심려를 끼쳐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라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현철씨는 검찰조사에서 한보 정태수 회장의 셋째 아들인 정보근 한보그룹 회장과 95년 서울시내 음식점에서 학교 선배와 함께 식사한 적이 있으며 둘째아들 정원근 제약담당회장과는 95년 가을 고려대 동문모임에서 만나 식사를 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정원근 회장과는 이어 96년 서울 강북의 한정식집에서 같은 모임으로 만났고 지난 1월 학교 후배의 결혼식장에서 우연히 만나는 등 모두 3차례 만났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총회장과 맏아들 정종근 목재그룹회장,넷째아들 정한근 금융그룹회장은 전혀 모른다고 진술했다. 현철씨는 『그러나 정원근·정보근씨를 혼자 만나지 않았고 대출 등과 관련해 청탁을 받은 적도 없다』고 밝혔다고 최중수부장은 전했다. 검찰은 현철씨가 한보철강 당진제철소에 두차례 갔다는 국민회의측의 주장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정보근 회장을 만났다는 주장도 출입국 관리대장을 확인한 결과 체류 날짜가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 김영진씨 둘째아들 해광군의 탈북기/우리가족 로정의 일기 전문:Ⅰ

    ◎“탈북=지도자 배신” 생각들어 갈등/농촌일손 가들랴 폐품 모으랴… 공부시간 몇이나/기차안서 굶주려 사람 보고 “누구때문” 울분 22일 귀순한 김영진씨 일가의 탈북기록인 김씨의 둘째아들 해광군의 「우리가족 로정의 일기」는 우리 맞춤법에 틀리거나 낯선 북한용어도 있지만 생생한 분위기를 전하기 위해 원문을 그대로 살려 게재했습니다. 나는 애어린 14살 아이이지만 살길을 찾아떠나가는 노정을 기록하여 어느때에 이사실이 세상에 공개되며 북조선 나의 동무들이 이 글을 볼 수 있을까 손꼽아 기다리며 한자 두자 일기로 적고저 한다.내가 살던 고향 집 앞에는 들판,뒷산 옆에는 4월,5월이 되면 과수나무들이 흰색옷을 입는듯 만발한 꽃으로 봄을 알리는 배나무들이 지켜섰습니다. 아름다운 내고향과 정다운 동무들을 버리고 나는 왜 떠나야 했는지,…. 그것는 배고픔에 못이겨서인지 아니면 북조선의 무상교육 무상배려가 좋은데 내가 일년에 공부하는 시간이 도대체 몇날,몇시간이 되었던가. 북조선에서는 한창 배울 나이에 공부를 배우는 시간보다 농촌자원에 동원했고 폐철모우기 폐유리모우기 폐고무 폐동 등등,모우기를 하루도 그칠날이 없으니 그런것이 어디에 있으량 하는수없이 나의 동무들은 선생님의 성화에 못이겨 공장,농장 주민의 것을 훔치지 않으면 안되었다. 결국 그것이 도리어 나라에 좋은일 한다는 것이 학생들에게 도적질을 배워주는 것과 다름이 없다.우리 학급 인원은 42명이다. 거기서 학교에 오는 동무들은 하루에 절반밖게 못온다.절반숫자의 동무들은 왜 학교에 오지 못하였던가? 그것은 참기어려운 배고픔때문이다. 나는 정말 배우고 싶은 심정이다.어디로 가야 배움의 길을 찾을 수 있을까? ◇1996년3월18일 월요일 날씨 맑음 이날은 정든고향,정다운 동무들과 이별하고 3월19일 기차를 타고 함경북도 무산군으로 향하였다. 기차에 오른 사람들은 왜 이다지도 많은지? 이 많은 사람들은 무엇을 목적으로 집을 떠나 다니는지 알고 싶은 마음이었다. 침침컴컴한 기차에 올라서니 사람들이 밀고당기고 힘내기를 하는 바람에 나는 넘어질듯 하였다. ◇1996년3월20일 수요일 이날도 기차안에서 무대기였다. 이루 헤아릴 수 없이 사람들이 서로 붐비면서 자기보따리를 찾는 사람,아이들이 배고파 우는소리,여성들이 신경질적으로 아우성치는 소리에 기차간은 그야말로 난장판 수라장이었다. 더욱이 내가 목격한 것은 굶주림에 시달려 숨을 방금 지울듯한 한 청년이 기차한막판에 누워 있었다. 그누구도 그사람을 동정과 위안해주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끝내 그사람은 굶주림에 못이겨 숨을 거두고 말았다.그때 나는 어린 마음에도 처참한 참상을 보고 울분을 금할수 없었다.나는 처음으로 어린 나이에 내눈으로 직접 사람이 죽는 것을 보았다. 나는 학교에서 공산주의 도덕교양을 받을때 웃사람을 존경하고 아래 사람을 사랑하며 곤란한 사람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교양을 받은 나로서 아직도 그참상은 나의 눈앞에 생생이 나마있다. 어째서 이 비참한 참상,한 인간의 운명을 보고도 모르는 척 하는가? 아직 나로서는 이해되지 않는다. 과연 누구탓이며 누구 때문인가? ◇1996년 3월21일 목요일 지루함을 느끼면서 타고온 기차는어느덧 끝내 목적지 무산읍에 도착하였다. 이날은 마을이 서글퍼서 인지 하늘 그름을 뭉게뭉게 나의 마음을 쓸쓸하게 한다. 목적지인 외할머니네 집에 들어서니 할머니는 없었고 누나가 우리를 맞이하였다. 무산에서는 외할머니네 생활처지는 내고향의 생활처지와 다름이 없었다. 피곤한 나머지 나는 할머니가 들어서 오시는줄도 모르고 잠에 골아 떨어졌다. ◇1996년 3월22일 금요일 날씨(맑음) 아침 새벽에 나는 잠결에 할머니와 어머니 간에 말씀하는것을 들으니 먹을것이 없어 풀뿌리로 끼니를 채우며 겨우 장사를 하여 하루하루 살아가는데 너희들이 또왔으니 반가움대신 근심이 된다고 걱정하는것이 였다.나는 비롯 나어린 마음이지만 또다시 마음속 충격을 받았다. ◇1996년 3월23일 토요일 맑음 아침에 깨여나 보니 벌써 할머니는 장사를 나가고 없었다.나의 아버지니와 어머니는 한숨을 쉬며 무슨 토론을 하고있었다.그때나는 무슨 내용인지 모르지만 어머니는 앞으로 우리들의 살길을 찾는 심정에서 모데기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되였다. 나는 아버지어머니한테 묻고 싶었지만 어른들의 말에 참여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아침을 강냉이 뿌리로 만든 국수로 대충끼니를 하고 우리 온가족은 두만강 구멍을 나갔다. 두만강 기슭을 따라 얼마쯤 내려가니 유달리 화려한 집이 두만강 건너에 있었다. 후에 알아보니 그집은 남조선 사람들이 와서 지은집이라고 하였다. 나는 이때에 믿어지지 않았다. 어떻게 되여 남조선 사람이 자기 나라도 아닌 중국땅에 와서 훌륭한 집을 지을수 있는가고 생각하여 나는 이사실을 알고 싶었지만 부모님한테 선듯 묻지 않았다. 이때 아버지께서 하는 말씀이 이제는 더는 북조선에서 살길이 막막하여 더는 살수없으니 너희들이 보다시피 할머니에 집도 생활이 구차하며 하루하루끼니를 이어가는 형편인데 너희들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고 묻는 것이었다. 이때 나는 아버지에게 정확한 대답을 올리지 못했다.아버지께서는 우리가 살길은 다만 남조선에 가야만이 너희들은 공부도 마음대로 할수있고 마음놓고 배불리 먹을수도 있고 희망의 날개를 펼칠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였다. 이때 나는 아버지가 나라를 배반하고 친애하는 지도자품을 떠나자고 여기로 데리고 왔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이때 나는 나의 아버지이지만은 나쁜 사람이 아닌가고 생각되어 내 생각대로 절대로 친애하는 지도자 선생님품을 떠나서는 살수 없다고 아버지께 말씀올리었다. 이때 나의 형님 누나는 이구동성으로 나의 말을 찬성하였다.우리 행동을 보신 아버지께서는 먼 남쪽하늘만 쳐다보며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쉬였다. 침묵을 지키며 서로 얼굴만 쳐다보던중 어머니께서는 그러면 너희들은 어디로 갔으면 좋겠는가? 우리는 집도없고 재산도 다 팔고 할머니를 크게 믿고 왔댔는데 보다시피 할머니네 집 신세역시 구차하여 먹을것이 없어 하루살이로 생명을 유지하는데 우리까지 어떻게 같이 있겠는가고 하였다. 어머니 말을 듣고 우리 형님은 우리를 데리고 한쪽에 가서 말을 좀 하자고 하였다. 나의 형님은 우리보고 너희 생각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고 물어보는 것이였다. 이때 나와 누나는 한결같이 우리는 절대로 지도자동지품을 떠날수 없다고 말하였다. 우리 형제 사이에는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이때 아버지께서는 우리들의 침묵을 깨뜨리면서 하는 말씀이 너희들은 지도자 동지품이 좋다고 하지만 우리 온집안을 거처하여 먹여 살릴수가 없을 뿐만아니라 아버지는 이제는 고향으로 갈래야 갈수가 없는 몸이라고 말하였다.내가 왜서인가고 물으니 아버지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몇년전부터 남조선 방송을 들으면서 남조선은 자유세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씀하시었다. 또한 15명을 조직하여 북조선정치는 불모순 정치며 남조선정치는 자유정치라는 것을 선전하던중에 아버지는 노출되어 갈 수 없는 문제라고 알기싶게 이해시키는 것이었다. 이때 형님은 잘돼도 우리아버지 못돼도 우리아버지인데 아버지 뜻을 따르자고 말하였다. 나는 이때 생각이 많았다. 하나는 나의 아버지이고 하나는 조국의 품이었다. 이 갈림길에서 나의 심정은 아버지와 이별하고 싶지 않고 친애하는 지도자선생님의 품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그러나 현실은 하나의 길만 선택하여야 했다.하지만 현실은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기본 선차적 문제로 생각할때 아버지를 따라가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마음 상에서는 그리 달갑지 않았다. 이런 환경에서 아버지께서는 명령하다싶이 요구성을 높여 무조건 남조선으로 가야만이 삶의 길이라는 것을 결심하면서 너희들은 꼭 부모들의 의향대로 움직이라고 강박하는 것이었다.아버지께서 결심하신 그날 저녁 밤10시부터 중국도강준비에 들어갔다. 음력 2월6일이라 조각달은 지고 두만강 기슭옆에 캄캄한 밤 아버지를 따라 두만강 기슭에 가깝게 접근하였다.은밀히 접근하여 새벽2시까지 정찰하면서 보호병 움직임,조명등,불바침의 시간적으로 하산하여 아버지께서 명령을 내리시었다. 우리 자식들을 생각하는 부모님들은 우리를 꼭 살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백포로 우리를 위장시켜 한치 한치 두만강을 도강하기 시작했다. 끝내 새벽 3시30분에 성공하여 중국땅을 밟게 되었다. ◇1996년 3월 24일 일요일(맑음) 이날은 유달리 날씨도 쨍쨍하게 맑은 날씨였고 하늘도 우리를 도와주는듯 기분이 상쾌하게 날씨가 맑았다. 새벽4시에 중국 조과향에도착하여 산에 오르기 위하여 사람들의 눈을 피해 50도가량인 벼랑급한 산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산에 오르자니 급한 벼랑에서 아차 한발 실수하면 죽음을 면치 못하는 아슬아슬한 벼락산이었다.이때에 어린 여자의 몸으로 산을 오르는 나의 누나는 기진맥진하여 겨우 형님의 도움을 받으며 산등성이에 올라 섰을때 새벽 6시30분이 되었다. 마을에서는 집집마다 아침식사 준비에 굴뚝에서 연기들이 뭉게뭉게 하늘로 오르고 있었다. 그때 나의 정든 고향 생각을 하며 다시한번 강건너 북조선을 바라보았다. 이때 어머니께서는 사람들이 볼수없는 산에 좀더 들어가 불을 피우고 아침식사를 하자고 하는 말에 우리는 발길을 돌렸다. 또다시 우리 일행은 지친 발길을 돌리며 눈이 무릎까지 오는 북쪽 산으로 향했다. 1시간쯤 눈길을 걸어 나무가 우거진 깊은산에 불을 피울장소를 찾았다. 우리들은 불을 피우고 젖은옷을 말리며 아침식사를 하게 되었다. 물이 없어 눈을 녹이며 물을 만들어 먹었다.식사를 끝낸후 피곤에 몰려 나도 모르게 잠에 떨어져 꿈나라로 갔다. 꿈속에서 나의 동무들이 나를 보고 나라를 배반한 변절자라고 손가락질을 하고 있을때 나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이런 꿈을 꾸고 있을때 어머니께서 나를 깨우는 바람에 깨어보니 꿈이었다. 이때 나무하러온 조선족 중국부부가 올라오고 있었다.그들이 하는 말이 북조선에서 온 사람이 아닌가? 물어볼때 우리 온가족은 어쩔바를 몰라 몹시 당황하였다. 그런데 생각과는 달리 자기는 나쁜사람이 아니라고 하며 북조선 생활정황을 잘알고 있으니 우리를 동정하여 말하면서 자기 집으로 내려가자고 하였다.우리는 중국집에 들어섰을때 나는 아주 놀라며 이집은 중국에서 제일 부유한 부자 집이 아닌가고 생각하였다. 집에 들어서니 한눈에 안겨오는 것이 냉동기 텔레비전 재봉기 등 가정품들이 일제히 꾸려져 있었다. 나는 이집 주인님이 여기에서는 이밖에 고깃국을 정상적으로 먹는다고 할때 크게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이때 어머니께서는 이것이 사실인가 믿어지지 않는다고 다시 물어보시었다. 주인은 웃으며 중국은 개방이후 발전되어 백성들의 생활이 보다시피 좋다고,집집마다 생활형편이 모두가 이정도는 된다고 하면서 우리집은 보통 생활이라고 말하였다. 나는 중국땅을 처음 밟았을때 중국에서 사는 조선족 부부가 나에게 준 첫인상은 정말로 내가 상상도 하지못한 인상이었으며 자연적으로 중국과 조선을 대비해 보지 않으면 안될 정도였다. 중국땅에 처음와서 만난 사람은 담배농사를 지으며 산에서 나무를 해다 불을 때어 온실관리를 하고 있는 집이다. 밤11시가 되도록 주인님의 말을 들으니 정국정황을 다소나마 알게 되었다. 집주인은 우리에게 중국 낡은 옷이지만 조선옷과 바꾸어 입혀주면서 화룡현까지 갈 차비를 주어 우리일행은 버스를 타고 화룡까지 수월히 오게 되었다. ◇1996년 3월 25일 월요일 (맑음) 화룡시에 들어서니 북조선에서 볼수없는 휘황하고 유명한 시장거리,사람마다 웃음이 가득찬 거리,생기발랄하고 환희가 넘치는 얼굴들.그모든 모습들.없는것없이 차려놓은 시장과 과일류,복장류,당가루류 등등 없는 것없이 그득히 차려놓는 시장거리 그야말로 영화의 한장면을 펼쳐 놓은듯 하였다. ◇1996년 3월26일 화요일 (흐림) 우리일행은 노비가 떨어지며 화룡시에서부터는 도보로 걸어가기 시작하였다. 상오 9시30분부터 걷기 시작한것이 어찌 피곤하고 힘들던지 저녁 10시에 서성명함에 도착하였다.한밤중에 낯설고 물설은 이국땅에 오니 잠자리가 근심이 되어 아버지 어머니께서는 한집에 들어가 길가는 손님이니 하룻밤 쉬고 가자고 애원하고 사정하였다.첫집에서는 안되고 열집만에 애원하던중 11번째 집에서는 우리를 받아들여 밥도 주고 잠도 잘수 있게 되었다. ◇1996년 3월27일 수요일 우리일행은 도보로 걸어서 연길시내에 도착하였다. 연길시내에 들어서 아버지에게 물어보니 한국사람만 만나면 도움을 받는다고 하여 한국사람을 찾았다. 한국 대사관에 전화를 하려고 공동전화 하는 곳에 가니 한아주머니가 우리를 보고 북조선에서 오지 않았는가 하며 자초지종을 물으며 반갑게 대하는 것이었다.그는 북한에 오빠가 있다고 하며 북한실정을 물어 우리는 북한생활 형편을 말하며 우리는 망명자가 아니라,중국에 친척방문왔다고하였다. 박아주머니는 우리는 북조선돈 3천원을 가지고 중국돈도 바꾸어주어 90원을 생활에 보탰다. ◇1996년 3월 28일 목요일 연길시 장백공사 리화의 김래삼아저씨네 집에서 하루 묵게 되었다. 이집은 채소농사를 하며 살아가는 집이었다. 우리를 반갑게 대해주면서 하는말이 어째서 온 가정이 한창 공부시킬 나이에 아이들까지 데리고 먼길을 떠나왔는가? 하는 것이었다. 어머니께서는 흑룡강 오상현에서 빚에 시달려 빚재촉에 못견디어 살수없어 연변에 친척을 찾아온다고 말하였다. 살수없이 연변에 친척 찾아 온다고 말하였다. (이말은 로라를 처음 만났던 부부가 이렇게 알려 주었다)
  • 두 가족 탈출경로

    ◎김씨,남한방송 듣고 “자유세계 품으로” 꿈 착실히 키워/지난해 3월 자식들엔 숨긴채 국경부근 장모댁 이동/24일 새벽녘 도강성공→조선족 보호 받으려 은신생활 22일 귀순한 북한주민 두가족 가운데 김영진씨(50)가족은 지난해 3월 북한을 탈출,중국에 머무르면서 10월에는 둘째아들 해광군(13)이 일가족의 북한 탈출기를 담은 일기를 MBC에 보내 방송됐던 것으로 밝혀졌다.유송일씨(46)가족과는 중국에서 만나 행동을 같이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MBC에 보도된 해광군의 일기를 토대로 김씨 가족의 탈출과정을 재구성해본다. 김씨 일가족이 고향인 평남 문덕군을 떠나 부인 김찬옥씨(46)의 어머니가 사는 함북 무산군으로 향한 것은 지난 96년 3월19일이었다.김씨는 남한의 방송을 들어오면서 자유세계의 꿈을 키워왔다.식량난으로 집까지 팔아치운 처지에 드디어 탈북키로 하고 국경 부근에 있는 장모의 집으로 떠났다.아내의 양해는 얻어냈지만 해룡(16),해광(13) 두 아들은 아직 모르고 있었다.두 아들은 외할머니가 있는 무산에 가면 최소한 굶지는 않을거라고 생각했다. 김씨 가족은 아이들이 배고파 우는 소리등으로 아수라장인 기차안에서 꼬박 이틀동안 부대꼈다.해광군은 기차안에서 굶주림에 시달린 한 청년이 기차에 누워있다 숨을 거두자 충격을 받았다.사람 죽는 것을 처음 봤다. 3월 21일 무산역에 도착한 김씨 가족을 장모는 반갑지 않은 기색으로 맞이했다.배는 곯지 않겠지 하는 기대감에 찾아갔지만 외가의 사정도 별로 다를바 없었다.해광군은 잠결에 외할머니가 어머니에게 「먹을 것이 없어 풀뿌리로 끼니를 때우는데 너희들까지 왔으니 걱정거리」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실망감 밖에 들지 않았다. 김씨는 탈출하기 위해 가족들을 데리고 국경까지 왔지만 정작 국경에서 결심이 서지 않았다.그러나 배고픔에 울먹이는 아들들을 생각하곤 마음을 다잡아먹었다.김씨는 두 아들에게 『이제 살길은 남조선으로 가는 것 뿐』이라며 『그래야 너희들도 공부를 할 수 있고 배불리 먹을 수도 있다』고 설득했다.해광군은 아버지가 나라를 배반하자고 국경 부근으로 우리를 데리고온 나쁜 사람으로 생각됐다.해룡군도 아버지의 설득에 맞서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지도자 김정일 선생님의 품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고 말했다.어머니 김찬옥씨도 아들들을 설득했다.두 아들은 결국 아버지를 따르기로 했다. 김씨 가족은 23일 밤 10시부터 두만강을 건널 준비를 하고 두만강기슭에 가까이 접근했다.상오 2시까지 은밀히 정찰을 하면서 보초병과 조명 등의 움직임을 살폈다.조각달도 지고 캄캄한 야밤이었다.살아도 두 아들을 먼저 살리겠다며 김씨는 두 아들을 흰포대로 위장해 포복으로 강을 건넜다.도강에 성공,중국땅을 밟은 것은 24일 새벽 3시30분이었다. 중국국경 부근에 사는 조선족 부부가 경계심을 표하는 김씨 가족을 환대했다.해광군에게 중국땅은 먹을 것도 많고 어린이들이 재미있게 학교에 다니는 등 놀라움 투성이었다.더욱이 남조선이 아주 잘 살고 자유가 있으며 자기의 희망을 마음껏 꽃피울 수있는 지상낙원이라는 것을 듣고 더욱 놀랐다.한국으로 빨리 가서 훌륭한 사람으로 자라나 조국통일에 조금이나마 이바지하고 싶다는 것이 해광군의 간절한 소망이었다.
  • 김영진씨 둘째아들 해광군의 탈북기­우리가족 로정의 일기 전문:Ⅱ

    ◎“남행이 살길” 언제나 북서 알까요/외할머니 찾아가니 “끼니 걱정 돋우려 왔구나”/“쥐약 먹고 죽겠다”던 이모님 살고나 계신지 ◇1996년 3월 29일 금요일 (맑음) 이날도 역시 갈데가 없어 사정하여 이집에서 하루 더 묶게 되었다. ◇1996년 3월 30일 토요일 (약간흐림) 이날도 한국사람을 찾다가 찾지 못하고 날이 저물어 잠자리와 거처할 집이 없어서 기차역전에서 하룻밤 지내었다. ◇1996년 3월 31일 일요일 (맑음) 아침 일찍 우리 일행은 또다시 한국사람을 찾으러 나섰다.또 어느덧 날이 저물어 잠자리를 구하기 위해 어느 과수원 초막에서 하루 잠을 잤다. ◇1996년 4월 1일 월요일 (맑음) 오늘도 백산호텔에 한국사람이 많이 온다기에 백산호텔 앞에서 3시간 가량 있다가 수사 경찰이 다니기 때문에 위험해서 자리를 뜨지 않을 수 없었다.우리 일행은 걷고 또걸어 하오3시가 되어도 점심도 먹지 못한채 우리는 흥안향 흥안촌에 들어섰다. 우리 일행은 초두부집에 들어섰다.초두부집에서는 각종음식을 다하였다.우리는 밤과 초두부를 청하여 편안하게 식사를 나누고 식당에서 나와 한동안 밖에서 가족끼리 토론하였다.시간은 어느덧 흘러 저녁이 되었다.저녁이 되어서 어머니는 잠자리를 찾느라 서둘렀다.초두부집 주인이 퍽 마음이 후하여 우리를 보고 북조선에서 왔다고 하면서 초두부집 아주머니가 들어와 여기서 쉬라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초두부집 아주머니가 우리를 따뜻이 대해주면서 마음속으로 동정하는 것을 보았을때 마치 고향의 이모 생각이 그리워지며 친이모와 같은 감을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1996년 4월 2일 화요일 (흐림) 하루밤 푹 자고 난 우리 일행은 또다시 기약없는 길을 걷지 않으면 안되었다.이때 초두부집 주인장이 들어와 북조선에 대해 구체적으로 물어보시며 친척에 어디에 있는가.(없다).돈은 얼마나 있는가(15원 있다). 주인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12월에 북조선에 갔다왔다고 하면서 실정을 구체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 이렇게 온가족이 목숨을 내걸고 외국땅에 아이들까지 왔는가 하면서 우리를 크게 고무하고 동정하였다. 이때 우리 가족은 근심어린 심정으로 있으니 식당주인이 우리 심정을 알고 절대 시름놓고 살라고 목숨을 내걸고 두만강을 건너왔으니 살아야 한다고 하며 이제부터는 근심을 말라고 다시한번 위로의 힘을 주었다.그러면서 살아갈 방도를 같이 찾아보자고 하였다.이때 나의 마음은 북한에 있는 나의 할머니도 몇년 있다 만나는 손자를 반갑게 맞이하지 않는데 아무런 인연이 없는 이집 주인이 우리의 불행을 자기의 불행으로 여기고 몹시 가슴아파 하는가.진정으로 친혈육으로 맞이하여 주는가? 왜 북한에서는 친혈육도 모르게 되는가? 또한 기차간에서 숨지고 있는 그 청년보고 그 누구도 구원의 손길을 주려고 하지 않는가.이 두 현실도 무엇때문에 너무도 판이하게 차이 나는가? ◇1996년 4월 3일 수요일 (약간흐림) 우리 가족은 이틀동안 북조선에서 맛보지 못한 음식들을 먹으면서 북한실정 나의 다정한 동무들이 지금 굶주려 학교에도 가지 못하고 있는것이 눈앞에서 선히 떠올랐다. ◇1996년 4월 4일 목요일 맑음 나는 아침밥을 푸짐히 먹고나서 또 북한 생각뿐이었다.우리 떠나올때 옆에살던 이모네 집에서 요즘 어떻게 하루하루 살고 있는지? 너무 먹을것이 없어 온가족이 쥐약을 먹고 죽자고 하는 것을 물을 먹고 살어라도 죽어서는 안된다고 고무하여 주고 떠났는데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지? 걱정이 된다. ◇1996년 4월 5일 금요일 (맑음) 초두부집 주인을 만난때로부터 벌써 5일이 지났다.오늘도 역시 우리 가족은 하는것 없이 대접을 잘 받았다. 먹지 못했다가 잘 먹어서인지 설사를 만나 약까지 쓰면서 대접을 받았다. ◇1996년 4월 6일 토요일 (갬) 나는 설사치료로 하여 밥을 먹지 않았다.먹고싶은 고깃국과 이밥을 먹지 못하고 하루종일 집에 누워 치료를 받았다.누워서 북한에 있는 모든 어린이들이 잘먹고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또 생각해 보았다. ◇1996년 4월 7일 일요일 (맑음) 주인님은 오늘은 일요일인데 시내에 구경을 가자고 하시었다.나는 너무좋아 어쩔바를 몰라 기쁨을 감출수 없었다. 연길시 백화상점 시장거리 모든것은 눈이 모자라 못볼 정도였다.가계에는 전기용 가마며,전자계산기 등 수없이 많은 것이 진열되어 있었다. 북조선에서는 돈이 있어도 물건이 없어 살수 없는데 여기에는 정말 없는 것이라는건 찾아볼래야 찾아볼수가 없었다. 나는 북조선에서 텔레비전을 볼때마다 세계에서 제일 잘살고 살기좋은 나라는 북조선이라고 알고 있었다. 내가 여기와 내눈으로 직접 보니까 현실과 너무나도 차이가 엄청나게 있었다. 식당주인이 말하기를 남조선은 중국보다 훨씬 더 경제가 발전하고 공업이 발전하여 세계 아세아의 4번째에 손꼽힌다고 하기에 나는 실지 그렇다면 한국에 꼭 가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다. ◇1996년 4월 8일 월요일(약간흐림) 월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밖에 나가 나도 모르게 어제 일요일 하루 시내구경을 갔던 생각이 떠오르던 나머지 자꾸자꾸 떠오른 것이 아버지께서 떠나오실때 북조선과 남조선을 러무도차이가 있다고 하시던 말씀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며 우리 일행은 꼭 한국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한국으로 가 희망으로 나래를 떨치고 싶다. ◇1996년 4월 9일 화요일 맑음 우리 아버지께서 우리 가족은 무조건한국으로 갈 욕망이라고 말하니 주인님께서는 한국으로 가는 것이 수월하지 않다고 하면서 천천히 방도를 구해보자고 하시었다. 정말로 한국으로 가기 힘들단 말인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한단말인가? ◇1996년 4월 10일 수요일 (비) 이날은 비가오니 우리 5식구만 집에있게되었다. 창밖의 비가 내리니 쓸쓸한 기분으로 우리 가정이 걸어온 노정에 대해 더듬어보게 되었다.내가 떠나올때 정다운 동무들과 이별할때 우리는 식량구하러 함북도 무산군으로 간다고 하며 헤어지던 일이 오늘도 나의 눈에 삼삼하게 떠오른다. 나는 중국에 와서 고마운 분을 만나 생일을 매일같이 맞다시피 하는데 북조선의 나의 동무,○○ ○○ 지금 먹을 것을 제대로 먹고 학교에 다니는지 아 그립구나. ◇1996년 4월 11일 목요일 (맑음) 유달리 날씨는 화창하고 하늘을 쳐다보니 하늘에는 구름 하나 없이 해도 나만이 비치는듯 싶었다.나는 해를 보며 해는 하나이지만 무엇때문에 북조선어린이들이 헐벗고 굶주림에 시달려 배고픔을 참아야 하는가. 이것이 바로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용사로운 품인가? ◇1996년 4월 12일 금요일 (맑음) 이날은 우리형님이 강가로 놀러나가자고 하여 우리3형제는 강가로 향했다. 강가로 나가는 우리의 마음을 기뻤다. 강가의 나무들도 우리를 반겨주는 것만 같았다.우리 3형제는 강변에 앉아 조용히 이야기를 했다.이때 형님이 민들레꽃 한송이를 뜯으며 북한에서는 이 민들레꽃이 피기도전에 다 뜯어먹는다고 하였다.나는 형님의 말을 들을때마다 북조선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지 않을수 없었다. ◇1996년 4월 13일 토요일 (흐림) 아버지 어머니는 오늘도 한국사람을 만나러 시내갔다가 끝내 한국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왔다. ◇1996년 4월 14일 일요일 (맑음) 집주인은 우리들 거처를 찾자고 안도현으로 갔다고 하였다.우리는 한국을 못가고 안도현으로 가면 장차문제는 어떻게 되겠는가고 생각하였다.몹시 근심속에 하루를 보냈다. ◇1996년 4월 15일 월요일 (맑음) 이날은 내가 이국땅 중국에 왔지만 북조선 생각이 간절하다.왜냐하면 이날은 어버이 수령님께서 탄생하신 날이라북조선 어린이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다.이날은 어린이들이 소망이 풀리는 날이다.왜냐하면 1년동안 먹어보지못한 사탕,과자를 먹어보기 때문이다. 나의 동무들에게도 차례가 가겠지. 동무들아.오늘은 너희들도 기쁘겠구나. 내눈에 선하다. 금철이 성국이 너희들은 지금 사탕과자를 먹으며 좋아하는 것이 눈에 삼삼하다. ◇1996년 4월 16일 (흐림) 오늘 아침은 북경으로 간다고 아버지 어머니가 기뻐하시었다. 처음 우리아버지께서는 한국 대사관으로 가보자고 주인께 말하니 주인께서는 대사관 가보나마나 한국가기 힘든데 이왕 목숨을 내걸고 온바에야 한번 대사관에 가는 것이 옳은것 같다고 하시면서 가기로 결정했다. ◇1996년 4월 17일 수요일 (갬) 식당집 아주머니께서는 북경으로 갈때 차안에서 먹을 도중식사도 준비하느라고 바삐 다니시었다. 주인집 아저씨는 아버지 어머니에게 한국에 가야 한다고 하면서 돈 500원을 동무네 집에서 꾸어주면서 이번에 북경에 가면 말도 모르니 찾아가기 힘들다고 하며 자기 아들과 같이 가라고 하시었다.이날저녁 아버지,어머니께서 북경으로 떠나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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