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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사람] 아동출판 외길 33년만에 식물원 여는 나춘호 예림당 회장

    [이사람] 아동출판 외길 33년만에 식물원 여는 나춘호 예림당 회장

    도서출판 예림당 나춘호(63) 회장을 만나면 ‘계영배’(戒盈杯)가 생각난다. 계영배는 술을 3분의2 이상 따르면 밑으로 새어 나가도록 독특하게 만든 술잔. 가득차 넘치게 되면 건강도 해치고 남에게 실수도 하므로 경계하도록 고안된 잔이다. 나 회장은 결코 적지 않은 성공을 거두었으면서도 상대가 들어설 만한 여유가 있고, 안색이나 몸짓이 넘치지 않는 품새를 지니고 있다. 그래선지 그는 70년대 초 불모지였던 아동출판에 뛰어들어 상당한 부를 이루었음에도 ‘한눈’ 팔지 않고 33년째 아동출판 외길을 걸어 왔다. 돈이 되는 책이면 종류를 가리지 않고 일단 찍어내고 보는 요즘의 출판 풍토와는 거리가 멀다. 그런 그가 경기도 여주에서 엄청난 규모의 식물원을 가꾸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다. 뒤늦게 본격적인 ‘외도’에 나선 것인가, 넘치지 않는, 항상 여백을 남겨 두었던 인생을 포기하고 그마저 외형과 높이의 경쟁에 뛰어든 것인가 하는 의혹을 품고서. ●‘식물원 인생’은 출판의 연장 여주군 산북면 상품리 산 30-1 해여림식물원. 삼면이 산자락에 둘러싸여 아늑하게 자리잡은 그의 식물원은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었다. 따사로운 햇볕이 가득한 식물원 구석구석엔 봄기운이 꿈틀거렸다. 나 회장과 함께 식물원 구석구석을 거닐며 두 시간에 걸쳐 나눈 이야기끝에 얻은 결론은 ‘식물원 인생’이 꼭 외도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식물원은 그에게 출판의 연장이요, 그 중심엔 여전히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 아이들 책을 내면서 가장 마음이 아팠던 것은 ‘우리 책’이 없다는 것이었어요. 우리의 그림이 아닌 외국 복사본이 다였어요. 식물·동물 도감도 없었어요. 그래서 도감을 내려고 하는데 정작 콘텐츠인 식물을 모아놓은 ‘세트’, 즉 식물원이 없는 거예요. 일일이 산과 들을 뒤져 그릴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난감했지요. 우여곡절끝에 어린이 식물도감을 국내 처음으로 내긴 했지만, 그때부터 아이들 책을 위한 인프라의 필요성을 절감했습니다.” 그래도 남들이 손을 대지 않았던 어린이책을 꾸준히 낸 덕분에 그의 출판사업은 순조로운 편이었다. 출판사 외형이 커지고 돈도 많이 벌면서 일반 도서 출판의 유혹을 강하게 받았다. 하지만 나 회장은 어린이책 전문 출판인으로서의 고집을 꺾지 않았다. ●어린이들 우리 꽃 잘 몰라 안타까워 아이들을 위한 출판을 시작했고, 아이들로 인해 돈을 벌었으니, 번 돈도 아이들을 위해 써야 한다는 마음을 굳힌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식물원이다. 그의 ‘사회환원 의식’은 상당히 깊고 강하다. 출판 초기부터 도서벽지 어린이들을 위한 도서 기증운동을 펼쳐오면서 100만권 이상의 책을 보냈다. 또 중국·러시아와 중앙아시아 등에 거주하는 한민족 아이들을 위해 꾸준히 책을 보내주고 있다. 또 식물원이든 출판사든, 그는 부동산째 자식에게 넘겨주지 않겠다는 뜻도 세웠다. 모두 그의 개인 재산이기에 앞서 사회의 재산, 즉 아이들의 재산이란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출판사는 큰아들 성훈(35)씨가 운영중이고, 둘째아들 도연(32)씨는 식물원 운영을 돕고 있다. 하지만 이들도 아버지의 뜻을 존중해 어디까지나 운영자, 경영인일 뿐 오너의 자리까지 고스란히 물려받지는 않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다. 이미 오래전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을 내면서 식물의 중요성을 절감한 그에게 식물원은 출판 33년 꿈의 결실이기도 하다. 입시경쟁과 취업 등 생존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점점 자연과 멀어지는 청소년들에게 자연친화적인 삶을 되찾아 주자는 것. 나 회장은 “30여년간 아이들 책을 내면서 우리 식물은 의외로 다양한데 어린이들의 식물에 대한 이해는 너무나 부족함을 느꼈다.”고 했다. 토끼풀꽃을 국화꽃으로 대답하는 예가 몇몇 어린이가 아닌 일반적 경향이라는 사실에 아연해지더라는 것이다. 책을 통한 지식 전달에 한계가 있다는 것도 절감했다. 이런 고민끝에 그가 내린 결론은 아이들이 식물을, 자연을 직접 체험하면서 정서적 효과도 낼 수 있는 것, 바로 식물원 조성이었다. 4년간의 공사끝에 마무리를 앞둔 식물원은 오는 5월 말쯤 문을 열 예정. 나 회장이 기획한 식물원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한 마디로 처음부터 ‘기획된 식물원’이라는 점이 국내 다른 식물원과 다릅니다. 국내 모든 식물원은 조그맣게 시작해서 차츰 외형을 키우고 종류도 다양화하는 ‘진화된’ 식물원이거든요. 해여림식물원은 처음부터 국내 최대인 5만여평의 관람면적을 갖고 있고, 지하에 오수관과 배수관, 전기·수도장치, 스프링클러 등 완벽한 설비를 갖추었습니다.” 식물원이 자리한 곳은 일찍이 세종대왕릉 후보지로도 올랐다는 명당자리. 계곡과 습지가 많고 뒤로 산자락이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아늑함을 자랑한다. 오랫동안 사람의 손을 타지 않아 다양한 수목과 초화류과 풍부하고, 중부고속도로 곤지암 IC에서 가까워 접근이 편리한 것도 고려되었다. 나 회장이 식물학자들과 함께 전국의 산과 들을 누비며 답사한 끝에 찾은 곳이다. 식물원을 구상하면서 매년 4∼5회씩 외국에 나가 유명식물원도 꼼꼼히 둘러보았다. 일본 오키나와와 독일 베를린에서 본 식물원이 가장 인상적이었고, 해여림식물원을 기획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진화된’ 식물원 아닌 ‘기획된’ 식물원 ‘해여림’이란 온종일 해가 머무르는 여주의 아름다운 숲이란 뜻.‘해’와 ‘여림’(麗林)을 합성해 나 회장이 지은 이름이다. 갖가지 자생식물들이 자라는 기획식물원, 자연생태 그대로의 환경을 재현해 4000여종의 식물을 갖춘 생태식물원, 다양한 테마에 따라 설계한 테마식물원이 해여림의 뼈대를 이루고 있다. 국내는 물론 외국의 목본류와 초화류까지 골고루 갖춰 명실상부한 종합식물원으로서 면모를 갖췄다.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관람로와 산책로 길이가 10㎞나 된다. 나 회장은 점차적으로 관람면적을 현재의 5만평에서 30만평까지 확대하고, 연구 및 레저기능까지 갖출 계획이다. “미래의 삶은 자연과의 거리를 얼마나 좁히느냐에 따라, 즉 얼마나 자연친화적 삶을 살 수 있느냐에 성공여부가 달려 있다고 봅니다. 식물원이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배움터로서 아이들이 행복한 미래를 설계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맨주먹으로 시작해 손꼽히는 출판인으로 성공한 나 회장이 얼마나 차별화된 식물원 원장으로 거듭날지 자못 기대가 크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재계인사이드] 둘째아들 사장취임… 김우중家 재기?

    부활 날갯짓? 성마른 모정?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둘째아들 선협(36)씨가 골프장 사장으로 취임한 것을 둘러싸고 해석이 분분하다. 김우중가(家)의 조심스러운 부활 날갯짓으로 보는 관측과 아직 김 전 회장에 대한 사법처리와 여론이 정리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시기상조라는 부정적 관측이 엇갈린다. 게다가 김 전 회장은 최근 프랑스에서 또 고소를 당했다. 30일 재계에 따르면 선협씨는 경기도 포천의 포천아도니스CC 사장으로 승진했다. 그룹 해체후 조그만 벤처회사를 경영하던 그는 지난해 1월부터 실질적으로 어머니(정희자) 소유인 이 골프장 이사로 근무해왔다. 법원은 지난달 이 골프장이 “김 전 회장이 아닌 가족들 재산”이라고 판결, 채권단과의 소유권 분쟁은 일단락된 상태다. 대우그룹의 2세가 최고경영자(CEO)로 경영 전면에 본격 나선 것은 처음이다. 어머니 정희자(65) 전 대우개발(현 필코리아리미티드) 회장의 의사가 강하게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전임 CEO가 나이를 이유로 은퇴 의사를 밝히자 이번 기회에 “기가 죽어 있는” 자식들을 위해 사장 자리를 맡겼다는 후문이다. 정 전 회장과 가까운 일부 인사들은 “아직은 때가 아니다.”라며 만류했으나 정 전 회장이 고집을 꺾지 않았다고 한다. 셋째아들 선용(30)씨는 미국 하버드대를 나와 외국에 머물고 있다. 미혼으로 아직 이렇다 할 직함이 없는 상태다. 아트선재센터 부관장을 지낸 맏딸 선정(40)씨는 프리랜서 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큰아들 선재씨는 교통사고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선협씨는 포천아도니스CC 입구에 짓고 있는 C&H호텔도 맡을 것으로 알려졌다. 미술관, 수영장, 사우나 등을 갖춘 5층짜리 이 호텔(76실 규모)은 5월께 개장할 예정이다. 일각에서는 이를 발판으로 김우중가가 재기를 모색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김 전 회장에 대한 ‘사면설’이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정 전 회장이 며칠전 여당의원 3명에게 후원금을 낸 것도 이같은 관측에 힘을 실어준다. 정 전 회장은 경주힐튼호텔의 지분도 9% 갖고 있다. 옛 대우맨들이 만든 ‘하이대우’ 홈페이지도 최근 들어 부쩍 내방객이 늘었다. 김 전 회장에 대한 재평가와 ‘거자필반’(去者必返·떠난자는 반드시 돌아온다)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많다. 얼마전에는 김 전 회장의 비밀 귀국설이 제기돼 한바탕 소동이 인 적도 있다. 그러나 김우중가의 이같은 움직임을 곱지 않게 보는 시각도 있다. 김 전 회장은 분식회계 등의 혐의로 기소유예된 상태다. 프랑스 로렌지방의 옛 대우전자 공장 근로자들은 지난 25일 “회사 파산을 초래한 김 전 회장 때문에 막대한 피해를 봤다.”며 김 전 회장을 현지 검찰에 고소했다. 김 전 회장은 1999년 10월 출국한 이후 줄곧 해외에 머물고 있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③-현대·기아차 그룹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③-현대·기아차 그룹

    정몽구(67^MK) 현대·기아차그룹 회장과 격의없이 지내는 지인들은 정 회장을 이렇게 평가한다. “곰같은 외모에 뱀같은 머리를 지녔으며 여우같은 행동가이다.” 이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는 현대의 한 고위임원은 서슴없이 정 회장을 ‘지략가’라고 정의했다. “현대차는 현대차, 기아차, 현대정공, 현대차써비스 네 집안이 합쳐진 회사다. 그런데도 큰 잡음이 없다. 카리스마만 갖고서는 이렇게 이끌 수가 없다.MK가 대단한 지략가라고 평가받는 이유다.” 이어지는 그의 얘기.“햇볕도 잘 들지 않는 땅(서울 원효로)에서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을 만든 이가 MK다. 다른 아들들이 아버지(고 정주영 명예회장)한테 기업을 물려받은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는 사실상 창업자나 마찬가지다.” 현대·기아차그룹의 비약적인 성장이 결코 요행이나 우연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실제 정 회장은 2000년 9월 그룹에서 독립한 지 불과 4년만에 현대차를 세계 6위 반열에 올려놓았다. 독립 당시 10개에 불과하던 계열사 수는 28개로 불어났으며, 종업원 수도 10만명을 넘는다. 총자산 규모 67조원(3월14일 현재)에 올해 매출목표액 85조원, 재계 서열 3위다. ‘싸구려 현다이’라고 비웃던 세계 자동차 메이커들은 이제 현대차를 두려움의 존재로 인식한다. ●갤로퍼 신화에서 품질경영까지 서울 경복고와 한양대 공업경영학과를 나온 정 회장은 현대건설에 평사원으로 입사했다. 현대자동차써비스(74년)와 현대정공(77년)을 잇따라 설립하면서 일찌감치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났다. 이후 기아차를 인수해 자동차 전문그룹을 만들기까지 평생을 차(車)와 함께 했다. 그를 가까이서 본 고위임원의 얘기다.“세상 사람들은 보여지는 외모와 어눌한 말투만 보고 MK의 저력을 더러 간과한다. 그러나 현대정공 시절, 그는 일일이 차를 뜯어보고 조립하면서 갤로퍼 신화를 만들어냈다. 차에 관한 한 누구보다 전문가다.” 그런 정 회장이 충격을 받은 사건이 발생했다.98년 미국 JD파워의 신차 품질조사에서 현대차가 꼴찌를 한 것이다. 이듬해, 그 이듬해에도 꼴찌권을 맴돌았다. 엄청난 모멸감에 휩싸인 그는 “이제부터 등수는 잊어라. 대신 무조건 품질을 끌어올려라.”라고 일갈했다. 현대·기아차의 보도자료에서 ‘세계 톱5 진입’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현대차와 기아차의 품질본부가 즉각 하나로 합쳐지고, 회장이 직접 주재하는 품질 회의가 꾸려졌다. 올초 쏘나타는 ‘세계에서 가장 결함이 적은 차’로 선정(컨슈머 리포트지)됐다. 몇년 전의 수모를 보기 좋게 설욕한 것이다. ●부인 이정화여사 실질적 맏며느리 정 회장은 평범한 ‘실향민’ 집안의 셋째딸(이정화·66)과 결혼해 1남3녀를 두었다. 고향이 이북인 부인 이씨는 손위동서인 이양자씨가 91년 암으로 세상을 뜨자 이때부터 집안의 실질적인 맏며느리 역할을 도맡아 했다. 시아버지 생전에 서울 한남동 자택에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새벽 3시30분이면 청운동 시댁으로 달려가 아침을 준비하곤 했다. 시어머니(변중석)가 이 무렵 거동이 불편해져 병원 신세를 졌기에, 대식구의 아침 준비는 오롯이 며느리들 몫이었다. 틈날 때마다 현대아산병원을 찾아 시어머니를 돌보는 일도 맏며느리인 그의 몫이다. 시어머니가 그랬듯, 공식행사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거의 없다. 이렇다할 직함도 없다. 굳이 찾자면 그룹 계열사인 ‘해비치 리조트’(제주도 다이너스티 골프장과 콘도 등을 운영하는 회사)의 개인 대주주라는 정도다. ●외아들 의선… ‘ES 시대’ 개막 그룹의 핵심인 자동차는 정 회장의 막내 외아들이자 현대가의 종손인 의선(35·ES)씨가 한 축이 돼 이끌고 있다. 이달초 현대·기아차 기획총괄본부 담당 사장 겸 기아차 대표이사 사장이 됐다. 그룹의 지주회사격인 현대모비스(자동차부품 전문회사) 부사장도 맡고 있다. 본텍·글로비스·엠코 등 비상장 계열사의 최대 주주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오너 3세’의 프리미엄만을 업고 사장에 오른 것은 아니다. 휘문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나온 그는 미국 샌프란시스코대학에서 경영학 석사학위(MBA)를 받았다. 정 회장이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을 갖고 있다는 ‘현대정공 자재부’에 94년 과장으로 입사, 현장감각을 익혔다. 이후 기아차 슬로바키아공장 건설 등 굵직한 해외 프로젝트를 성사시키면서 차세대 리더로서의 잠재능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얼마전 기아차 수출 500만대 돌파 기념식때는 임원들의 넥타이를 기아차 상징색인 빨간색으로 즉석에서 통일시켰을 만큼 회사에 대한 애착과 감각이 남다르다. 자기생각을 당당하게 말하면서도 상대에게 겸손하다는 느낌을 준다. 직원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며 우스갯소리도 곧잘 해 평이 좋다. 생전에 정주영 회장이 지선(정몽근 현대백화점 회장의 장남)씨와 더불어 가장 예뻐했던 손주이기도 하다.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의 사촌여동생이 미국에 유학을 오자 본격적으로 ‘작업’에 들어가 95년 결혼에 성공했다. 훗날(2000년) INI스틸에 흡수된 당시 강원산업 정도원 부회장의 딸 지선(32)씨가 부인이다. 스물다섯, 스물둘의 나이에 일찌감치 결혼한 두사람은 딸 진희(9)양과 아들 창철(7)군을 두고 있다. ●의사집안 대 잇는 큰사위 정 회장의 큰딸 성이(43)씨는 저명한 정형외과 전문의 고 선호영 박사의 둘째아들 두훈(48)씨와 결혼했다. 역시 의사인 두훈씨는 현재 대전 선병원 이사장을 맡고 있다. 목동 선병원, 중촌 선병원, 선치과병원, 건강증진센터, 유성 선병원 등이 모두 같은 계열이다. 서울집(한남동)과 대전을 오가며 병원 일을 보고 있다. ●금융 사업 이끄는 둘째 사위 93년 현대차 원효로 사옥에서 프로젝트팀 형태의 현대오토파이낸스㈜로 출발한 현대캐피탈은 우리나라에 자동차할부 금융업을 처음 선보였다. 그러나 ‘카드 사태’ 등으로 현대카드가 어려워지자 ‘구원투수’로 투입된 이가 정태영(45) 현대카드·현대캐피탈 사장이다. 정경진 종로학원장의 아들이자 MK의 둘째딸 명이(41)씨의 남편이다. 한 임원의 얘기다.“그 분(정태영 사장)은 스스로를 오너의 사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전문경영인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아깝다며 골프조차 안친다. 회사가 안정될 때까지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골프에 할애할 시간이 어디 있느냐는 식이다.” 당장의 실적에 연연하지 않고 착실히 손실을 털어낸 덕분에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은 올해 ‘동반 흑자’ 전환을 앞두고 있다. 서울대 불어불문학과와 미국 MIT(매사추세츠공과대) 경영대학원을 나왔다. 궁금한 게 있으면 실무자에게 직접 휴대폰을 걸어 물어봐 직원들을 긴장시키기도 한다. 현대차 근무시절 함께 호흡을 맞췄던 제갈걸(53) 부사장, 옛 현대그룹 문화실장을 지낸 김상욱(52) 전무 등이 그와 함께 금융소그룹을 이끄는 핵심 브레인들이다. ●꿈의 철강 라인업 셋째 사위-조카 한보철강(현 당진공장) 인수를 계기로 그룹은 열연(당진공장)-냉연(현대하이스코)-스테인리스(INI·BNG스틸)로 이어지는 철강 풀라인업을 달성했다. 이 꿈의 라인업에 정 회장의 셋째 사위와 조카들이 포진하고 있다. 김원갑(53) 부회장과 함께 현대하이스코(옛 현대강관)를 이끌고 있는 신성재(37) 사장은 현대정공에 근무하던 시절, 정 회장의 동갑내기 셋째딸 윤이씨를 만나 결혼했다. 미국 페퍼다인대학 MBA 출신이다.98년 현대하이스코로 옮겨 수출부장, 영업본부장 등을 거쳐 이달초 사장으로 승진했다. 영업본부장 시절에 1조원대에 머물던 연간 매출액을 2조 3000억원대로 끌어올려 ‘장인’의 인정을 받아냈다. 김 부회장은 78년 현대건설 경리부로 입사해 건설과 자동차에서 잔뼈가 굵은 재무 전문가다. 이계안 현 열린우리당 의원이 2001년 7월 현대차에서 물러날 때 함께 사표를 냈지만 정 회장이 다시 발탁했다. INI스틸(옛 인천제철) 김무일(62) 부회장도 빼놓을 수 없는 철강 인맥이다. 정통 철강맨은 아니지만 취임하자마자 한보철강 인수를 보기좋게 성공시켜 정 회장의 신임을 확실하게 굳혔다. 지난해 4월 현대·기아차 구매총괄본부장(부사장)에서 사장을 거치지 않고 곧장 INI스틸 부회장으로 승진 이동했다.‘수처위주 입처개진’(隨處爲主 立處皆眞·언제 어디서건 그 곳의 주인이 돼라)이 좌우명이다. 김 부회장이 지인에게 털어놓은 현대차의 타이어사업 진출 무산 뒷얘기가 재미있다.90년대 초반 현대차는 현대정공을 통해 타이어사업 진출을 모색했다. 그러나 정주영 명예회장이 “공예산업(타이어에 홈을 파는 작업을 공예에 비유)은 안된다.”고 하는 바람에 막판에 철회했다고한다. ●LS전선·김&장과의 혼사 BNG스틸은 젊은 나이에 타계한 동생 몽우씨를 생각해 MK가 조카들에게 대부분 맡긴 회사다. 몽우씨의 세 아들이 모두 이 회사에 있다. 큰아들 일선(35)씨가 대표이사 사장이다. 그룹이 2000년 말 삼미특수강(BNG스틸의 전신)을 인수할 때 실무를 맡아 내부사정에 밝다. 철강의 꽃으로 불리지만 유통구조는 낙후된 스테인리스 업계에 서비스센터(코일센터)를 도입해 새 바람을 일으킨 이도 그다. 운동을 워낙 잘해 그룹사 축구시합때면 직접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를 누빈다. 사촌인 의선씨와는 생일이 일주일 밖에 차이 나지 않아 어려서부터 유난히 친했다. 유학중에 ‘어린 신부’를 만난 것도 똑같다. 고려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조지워싱턴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하던 일선씨는 같은 대학 심리학과로 갓 유학온 여섯살 연하의 구은희씨를 만나 96년 결혼했다. 현대가 내로라하는 재벌 집안과 처음 혼사를 맺는 순간이기도 했다. 은희씨는 구자엽 희성전선 부회장의 딸로, 구태회 LG전선(현 LS전선) 명예회장의 손녀이다. 결혼할 때 스무살이었다. 지금은 세 아이(창현·진주·창민)의 엄마다. 일선씨의 동생 문선(31)씨도 화려한 결혼식을 올렸다. 김&장 법무법인 김영무 대표변호사의 딸 선희(31)씨가 부인이다. 재정부에서 이사로 근무하다 미국 연수길에 올라 현재 미시간대학에서 MBA 과정을 밟고 있다. 올 연말에 귀국한다. 미국 버클리대학 회계학과를 나온 막내 대선(28)씨는 지난해 11월 품질혁신부 대리로 BNG스틸에 합류했다. 아직 미혼이다. ●MK의 용병술 현대차그룹의 인사 시스템은 ‘예측 불허’다. 그런데도 떠난 사람들 가운데 그룹을 욕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한 전직 고위임원의 분석이다. “MK는 아버지를 몹시 어려워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자신 아버지와 몹시 닮았다. 우선 그룹내에서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현대차그룹에는 2인자가 없다. 웬만한 간부는 회장에게 모두 직접 보고한다. 충성 경쟁을 유발하는 셈이다.” 그는 “빈번한 패자부활과 적절한 견제도 MK 용병술의 특징”이라고 했다. 이를 그룹내 파벌싸움의 산물로 보는 이도 있지만 ‘권위에 대한 도전’을 용납지 않는 MK의 치밀하게 계산된 행보라는 분석이 더 많다. ●자동차 전문인맥 ‘탱크 박사’ 김동진(55) 현대차 부회장이 단연 눈에 띈다. 서울대 기계공학과 출신의 전문 엔지니어로 국방연구소에서 ‘K1탱크’ 국산화를 주도하다가 78년 정 회장에 영입됐다. 정의선 사장과도 가깝다. 중국시장을 거의 개척하다시피하고 있는 화교 출신의 중국통 설영흥(60) 부회장과 ‘갤로퍼 신화’의 숨은 조력자 전천수(59·생산노무담당)사장, 정동영 통일부 장관 등 정·재계에 발이 넓은 채수일(52·방송인 이숙영씨 남편) 고문도 빼놓을 수 없다. 이사대우 5년 만에 사장이 된 MK의 대학후배 최한영(53·전략조정실장겸 마케팅총괄본부장)사장은 한때 ‘MK의 입’으로 불렸었다. 본인은 “99년 해외출장중에 갑작스럽게 홍보실 컴백 명령이 나 사표쓸 생각까지 했었다.”그렇지만, 곧이어 터진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누구보다 MK의 의중을 정확히 짚어내 파격 승진을 거듭했다. GE캐피탈과의 자본제휴, 글로비스 지분 매각 등을 주도한 재무통 채양기(52·기획총괄부본부장)부사장도 향후 행보가 주목되는 이다. 그가 쓴 ‘채권관리 실무교본’은 지금도 채권 전문가들 사이에 필독서로 꼽힌다. 그룹 ‘암행어사’ 인 이전갑(58·감사실장)사장, 품질경영 전도사인 서병기(58·품질본부장)사장, 신차 기술개발 주역인 김상권(59·연구개발본부장)사장, 미국시장 공략의 중책을 맡고 있는 최재국(57·국내외 영업기획담당)사장, 김수중 전 사장의 계보를 잇는 ‘영업의 귀재’ 이문수(57·내수영업본부장)부사장, 치밀한 홍보맨 이용훈(55)부사장 등도 현대차를 이끄는 중추세력이다. 기아차의 선두주자는 단연 김익환(55) 사장이다.‘오너 아들’과 대표이사를 같이 맡고 있어 적잖은 부담이지만 도약의 기회이기도 하다. 영업·수출·홍보를 두루 거쳐 실무에 밝다. 외모만큼이나 선이 굵다. 양쪽 날개로는 구태환(50·재경본부장)부사장과 김용환(49·해외영업본부장)부사장이 있다. ●‘오랜 동반자’ 정공 인맥 현대·기아차 출신들이 ‘신측근’으로 분류된다면, 현대정공과 현대차써비스 인맥은 ‘전통가신’으로 분류된다. 유홍종-박정인-김동진-김익환으로 이어지는 정공 인맥의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화 한토막. 언젠가 MK가 해외출장지에서 뜬금없이 막걸리를 찾았다. 현대차 출신들은 난색을 지었다. 정공 출신들은 “어떻게든 구해보겠다.”며 나가 정말로 막걸리를 구해왔다. 유홍종(67) BNG스틸 회장은 MK와 양궁 신화를 함께 써내려간 정공 인맥의 대부다. 그 뒤를 잇는 박정인(62) 현대모비스 회장은 현대차써비스가 일개 사업소(현대차 원효로사업소)에 불과했던 72년,MK를 처음 만났다. 이후 자재부장과 경리담당 대리로 황금콤비를 이루면서 30년 넘게 MK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다. 인터넷 화상회의·전자결재 등을 정착시킨 ‘스피드 경영’으로도 유명하다.“맹꽁이”가 부하직원들을 나무라는 가장 심한 욕일 만큼 점잖지만 허점이 너무 없어 오히려 겁날 때도 있다는 게 아랫사람들의 얘기다. 서울 양재동 사옥을 사들일 때 점쟁이까지 불러 감정한 것으로 유명한 이중우(57) 다이모스(자동차부품회사) 사장, 등산 마니아인 김평기(60) 로템·위아 사장, 이여성(55) 서울시메트로 구호선 사장, 정석수(53) 현대파워텍 사장 등도 정공이 ‘뿌리’다. 서비스업체(해비치리조트) 사장에서 하루아침에 그룹의 신생 건설사업을 책임진 김창희(52) 엠코 사장도 시선이 쏠리는 인물이다. hyun@seoul.co.kr ■ 인간 정몽구회장 술을 많이 마시면 다음날 아침 꼭 라면으로 해장하는 버릇이 있다. 폭탄주 20잔도 끄떡없을 만큼 주량이 세지만 절제력이 강해 실수하는 일이 없다. 개인적으로는 폭탄주보다 소주를 즐긴다. 해외출장길에 수행원들이 맨먼저 챙기는 것도 소주와 라면이다. 아버지(고 정주영 명예회장)를 닮아 먹성이 소탈하다. 특별한 일정이 없는 날에는 서울 양재동사옥의 지하2층 중역식당을 애용한다. 임원들의 구내식당행도 개의치 않는다. 이는 아버지와 다른 면이다. 왕 회장은 임원들이 구내식당에 나타나면 “밖에 나가 사람들 만나라고 접대비를 줬더니 기껏 안에서 먹는다.”며 불호령을 내리곤 했다. 가정적인 면모도 아버지와는 딴판이다. 주말이면 아들딸 사위들과 함께 곧잘 산을 찾는다. 대신 골프는 별로다. 좋아하지 않다보니 실력도 그저 그렇다. 여느 현대가 사람처럼 ‘새벽형 인간’이다. 새벽 4시에 일어나 5시에 아침을 먹고 6시30분쯤 출근한다. 대신 밤 10시면 잠자리에 든다. 그를 가까이서 본 사람들의 공통된 얘기는 “겉 인상과 달리 마음이 매우 여리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을 잘 자르지 못한다. 현대차는 한때 이사만 100명에 이르렀었다. 더는 버틸 수 없는 포화상태에 이르러서야 MK는 “진급한 숫자만큼 자르라.”며 지난해 구조조정을 지시했다. 어눌한 말투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 처음 그를 접하는 사람들은 말뜻을 해석하느라 진땀을 흘린다. 해석이 쉬워질 때쯤이면 “참모들보다 서너배는 빠르다.”는 그의 머리회전에 진땀을 흘리게 된다고. 어떤 이는 이를 “아버지의 ‘방목’과 형제간 경쟁과정에서 터득한 본능적인 생존지수”로 해석했다. 효심도 남다르다. 한 현직임원의 얘기다.“일을 하다 보면 종종 과거에 잘못 벌여놓은 일과 마주치게 된다. 그럴 때면 MK는 ‘이거 참 잘못됐다고 할 수도 없고 잘했다고도 할 수 없고‘하며 말을 흐린다. 한번도 대놓고 선친때 일을 지적한 적이 없다. 경영권 승계과정에서 섭섭한 감정이 남아 있을 텐데도 말이다. 형제들 일도 마찬가지다. 장남으로서의 원초적 책임감 내지 부담감을 늘 갖고 있는 느낌이다.” 경영권 분쟁때 동생(정몽헌)과 그토록 부딪쳤건만, 그 동생이 2003년 8월 계동사옥에서 몸을 던졌을 때 맨먼저 사고현장에 달려가 시신을 수습한 이도 그였다. 한 전직 임원은 “빈소 뒤에서 나를 붙잡고 우시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hyun@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최광숙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아버지 이중섭 스크린에 담고 싶다”

    이중섭(1916∼1956) 화백의 둘째아들 태성(일본명 야스나리·56)씨가 처음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이 화백의 50주기를 기념하는 사업계획을 밝혔다. 태성씨는 22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망우리 공동묘지에 있는 부친의 묘소 이전 문제와 이중섭 일대기를 다룬 영화제작 계획 등에 관해 설명했다. 일본 도쿄에 거주하고 있는 태성씨는 이날 회견에서 부친의 묘소를 많은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장소로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말했다. 이 화백은 사망한 뒤 화장한 유해의 일부가 망우리 공동묘지에 묻히고 또 일부는 부인인 야마모토 마사코(한국명 남덕·83) 여사에게 전달됐다. 유족은 이 유해의 일부를 도쿄의 묘지에 안치하고 매년 참배하고 있다고 태성씨는 전했다. 망우리의 묘소는 묘지사용시한이 다 돼 이장을 해야 할 상황. 이 화백 작품을 취급해온 서울옥션 측은 이 화백이 작품생활을 했던 제주도 서귀포로 이장할 것을 권하고 있다. 이 화백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는 한국의 튜브픽쳐스와 일본의 마크 엔터테인먼트가 공동 제작할 계획으로 현재 시나리오 작업중이다. 태성씨는 “너무 어렸을 적에 헤어져 기억이 별로 남아 있지 않지만 아버지가 53년 선원자격증으로 일본에 건너와 열흘 간 함께 보내면서 나를 꽉 안아 주었던 느낌이 아직도 남아 있다.”면서 “아버지의 진실한 일대기와 어머니 마사코와의 사랑을 담아낼 이 영화를 통해 아버지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한국야구의 아버지’ 질레트 후손 찾았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미국 미네소타주립대 YMCA센터를 통해 한국 근대체육의 아버지인 필립 질레트(Phillip Gillette)의 혈육을 수개월간 수소문한 끝에 외손자인 로런스 허버드(63)를 찾아냈다고 16일 밝혔다. 지난 1901년 한국YMCA 초대 총무로 태평양을 건너 온 질레트는 1905년 야구용품을 들여와 황성기독교 청년회원들에게 규칙과 기술을 가르치며 처음으로 국내에 야구를 보급했다. 비록 선교 수단이었지만 질레트는 야구 외에도 농구 복싱 스케이팅 등 각종 스포츠를 보급해 한국 근대체육의 토대를 만들었다. 그러나 1913년 일제에 항거하다 중국으로 쫓겨난 질레트는 이후 한국 땅을 밟지 못했고, 슬하에 두 딸을 남긴 채 사망했다. KBO가 확인한 자료에 따르면 질레트의 첫딸 앨리스는 젊은 나이에 사망했고, 허버드는 둘째딸 엘리자베스의 3남1녀 중 둘째아들인 것으로 밝혀졌다. 어렵게 질레트의 후손을 찾은 KBO는 31일 한국야구 100주년 기념행사에 허버드를 초청, 공로패를 수여할 예정이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①-창업주 故정주영회장 일가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①-창업주 故정주영회장 일가

    보는 이마다 다르겠지만 현대를 삼성보다 앞세우는 사람들은 현대의 창업 정신을 강조한다. 현대는 남이 일궈놓은 기업을 인수하기보다는 밑바닥에서부터 하나하나 주춧돌을 올렸다. 건설이 그랬고, 자동차가 그랬으며, 중공업이 그랬다. 창업주인 고(故) 정주영 회장은 이를 평생의 긍지요, 자랑으로 여겼다. 서슬 퍼렇던 군사정권 시절, 국보위(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에 끌려가서도 “사정상 어쩔 수 없었던 인천제철만 제외하고는 어느 하나 내 손으로 말뚝을 박고 길을 닦아 시작하지 않은 공장이 없다.”며 기업 강제 통·폐합에 맞섰을 정도였다. 1947년 5월25일 서울 중구 초동의 허름한 자동차 수리공장 한 귀퉁이에 ‘현대토건사’라는 간판을 내건 지 60여년. 삼성보다 10년 가까이 늦은 출발이었지만 현대는 이내 1위 기업으로 우뚝 섰고,‘경영권 다툼’이 일어났던 2000년까지 그 지위는 차돌만큼이나 단단했다. 이때 현대그룹의 자산규모가 87조여원. 계열사 수만 40개가 넘었다. 비록 그룹이 쪼개지면서 외형상의 규모가 작아지고 재계 서열은 떨어졌지만, 경제 전문가들은 ‘전화위복’이라고 입을 모은다. 자동차(현대차그룹), 유통(현대백화점), 해운·제조(현대그룹), 조선(현대중공업), 금융(현대해상·현대기업금융) 등 각자 전문그룹의 길로 나서면서 경쟁력은 더 강화되고 동반 부실의 위험은 현격히 줄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다른 그룹들이 이제서야 계열분리 등으로 홍역을 앓는 동안 현대의 대표주자들은 세계를 상대로 싸우고 있다. 현대산업개발,KCC, 한라, 성우 등 창업주의 형제들이 이끄는 그룹들도 각자 독자영역을 굳혀가고 있다. 언뜻 봐도 느껴질 만큼 현대에 뿌리를 대고 있는 기업들은 유난히 굴뚝업종이 많다. 고용된 인원과 딸린 부품·협력업체가 많다는 얘기다. 국민경제 기여도로 따지면 현대가 여전히 1위라는 말은 그래서 나온다. 또 한 가지, 현대를 얘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현대정신’이다. 현대에는 일단 해보자며 덤비는 정신, 밀어붙이는 힘이 있다. 때로는 비합리성을 낳기도 하지만 현대맨들은 이를 “맨바닥에서부터 기업을 일군 현대만의 저력”이라고 자부한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는 이를 “진정한 기업가(起業家) 정신”이라고 불렀다. 제각각 ‘마이 웨이’를 걷고 있는 오늘날의 현대가를 묶는 보이지 않는 끈이기도 하다. ●담(淡)한 혼맥… 후한 연애결혼 다른 재벌가에 비해 현대의 혼맥은 의외로 소박하다. 낭만을 즐겼던 고 정 회장이 자식들의 연애에도 너그러웠던 영향이 가장 크다.‘왕 회장’이라는 별칭으로 더 자주 불렸던 그 자신, 강원도 통천의 평범한 고향처녀(변중석)와 결혼해 평생을 함께했다. 슬하에 9남매(8남1녀)를 두고 동생이 일곱(한명은 어려서 사망)이나 됐지만 눈에 띄는 혼사는 손가락을 꼽는다. 직계가족 중에 굳이 꼽자면 다섯째아들 고 몽헌(MH)씨와 여섯째아들 몽준(MJ)씨를 들 수 있다. 몽헌씨는 신한해운 현영원 회장의 딸 정은씨와, 몽준씨는 김동조 전 외무장관의 막내딸 영명씨와 각각 결혼했다. 오랜 세월 재계를 주름잡았던 현대의 위상에 견줘 혼맥이 조촐한 데는 창업주의 성공과정과도 무관치 않다.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 태어나 부두 막노동꾼을 거쳐 대기업 총수에 오른 그는 살아생전 “세상에 공짜란 없다.”며 담(淡)한 마음을 갖자고 입버릇처럼 강조하곤 했다. 권력이나 부(富)를 결코 싫어하지 않았지만 굳이 혼사줄까지 대가며 공짜를 탐할 이유 또한 없었던 것이다. 정략결혼의 흔적이 적은 대신에 유난히 많은 손(孫)과 맞닥뜨리는 게 현대라는 집안이다. 이런 현대가 대(代)를 건너뛰면서 LG, 롯데, 한진, 이건, 비비안 등 내로라하는 그룹들과 사돈을 맺은 점은 흥미롭다. 현대가의 2세들이 ‘몽(夢)’자 돌림이라면 3세들은 딸이 ‘이(伊)’, 아들은 ‘선(宣)’자 돌림을 쓴다.4세는 ‘진’자(딸),‘창’자(아들) 돌림이다. ■ 현대의 핵심축 아들들 ●장남 몽필… 쌍용가와 인연 큰아들 몽필씨는 나이 50도 안돼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국영 적자기업 인천제철을 인수해 정상화에 여념이 없던 1982년 4월 어느날, 울산에서 서울로 올라오던 고속도로에서 그가 탄 승용차가 트레일러를 들이받았다. 이 때가 마흔아홉살. 수도여대 출신의 부인 이양자씨와 두 딸 은희·유희씨는 망연자실했다. 몽필씨가 떠난 지 한달 뒤, 정주영 회장은 동서산업 공장장이던 이영복씨를 사장으로 파격 승진시켰다. 이씨는 몽필씨의 처남, 즉 이양자씨의 친동생. 졸지에 가장을 잃은 장남 가족에 대한 배려였다. 하지만 이양자씨마저 91년 위암으로 눈을 감고 말았다. 큰딸 은희씨는 최근 미국에서 귀국했다. 둘째딸 유희씨는 김석원 쌍용양회 명예회장의 장남 지용씨와 결혼해 두 아들(진석·진하)을 두었다. 지용씨는 현재 용평리조트 상무를 맡고 있다. ●2남 몽구… 글로벌 현대차그룹 리더 몽필씨의 죽음으로 사실상 집안의 장남 역할을 도맡아 한 이는 둘째아들 몽구(MK)씨였다. 유희씨가 결혼할 때 부모 역할을 대신 한 사람도 몽구씨 부부였다.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 사장 시절,‘갤로퍼 신화’를 만들어낸 그는 기아차마저 인수해 지금의 현대·기아차 그룹을 이끌고 있다.2000년 자동차전문 그룹으로 출범한 지 몇 년도 안돼 그룹을 세계 6위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출범 당시 10개였던 계열사 수는 28개로 불어났다. 그룹의 올해 매출 목표액은 지난해보다 17% 늘어난 85조원.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미국의 ‘소비자 보고서(컨슈머 리포트)’는 최근 현대차의 뉴쏘나타를 세계에서 가장 결함이 적은 차로 선정했다. 갤로퍼 신화 때부터 MK가 강조해온 ‘품질 경영’의 힘이다. MK는 평범한 집안의 딸 이정화씨와 결혼해 3녀1남을 두었다. 큰딸 성이씨는 저명한 정형외과 의사이자 영훈의료재단을 설립한 고 선호영 박사의 아들 두훈씨와 결혼했다. 둘째딸 명이씨는 정경진 종로학원장의 아들 태영씨와, 셋째딸 윤이씨는 미국 MBA(경영학석사) 출신인 신성재씨와 결혼했다. 둘째사위와 셋째사위는 그룹 계열사인 현대카드·캐피탈 사장, 현대하이스코 사장을 각각 맡고 있다. 막내이자 외아들인 의선씨는 지난 11일 기아차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했다. 그룹내 직함은 현대·기아차기획총괄본부 담당 사장으로 기아차의 기획, 재무, 수출, 연구·개발(R&D) 등 핵심 업무를 관장하고 있다. 일찍 결혼해 슬하에 1남 2녀를 두고 있다. 부인은 정도원 강원산업 부회장의 큰딸 지선씨다. ●3남 몽근… 소리없이 유통명가 키워 셋째아들 몽근씨는 일찌감치 유통을 넘겨받아 현대백화점 그룹을 이끌고 있다.‘빅3’(MK·MH·MJ)에 가려 조명은 덜 받았지만, 묵묵히 외길을 걸으면서 소리없이 유통 명가로 키워낸 주인공이다. 현대백화점, 현대H&S(非 백화점 계열), 현대홈쇼핑 등 주력 계열사를 토대로 지난해 5조 50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전문 최고경영자(CEO)들이 소신있게 일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면서도 거의 매일같이 매장을 둘러봐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바로 위 형 몽구씨와는 고등학교(경복고)-대학교(한양대) 동문인 데다 선굵은 외모까지 비슷하다. 옛 현대그룹에서 고문을 지낸 우호식씨의 딸 경숙씨가 부인이다. 두 아들은 각각 부회장, 기획담당 이사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큰아들 지선씨는 고 황산덕 전 법무장관의 손녀인 서림씨와 결혼했다. 둘째아들 교선씨는 자동차부품 전문기업인 대원강업 허재철 부회장의 큰딸 승원씨와 지난해 말 깜짝 결혼식을 올렸다. 교선씨의 결혼식에는 큰아버지인 정몽구 회장을 비롯해 집안 어른들이 대거 참석해 모처럼 우애를 다지기도 했다. 현대가는 한때 딸만 남기고 떠난 몽필씨의 대를 잇기 위해 지선씨를 양자로 입양하는 방안을 의논했었다. 유교식 법도대로라면 바로 아래 동생인 몽구씨의 아들을 입양해야 했으나 의선씨가 외아들인 탓에 지선씨가 선택된 것. 하지만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실제 입적은 이뤄지지 않았다. 정주영 회장의 장례식때 의선씨가 ‘종손’ 자격으로 고인의 영정을 든 것은 이 때문이었다. ●외사위 희영… 천마산스키장 운영, 이건·비비안과 사돈 현대가는 자손이 많은데도 딸은 귀한 편이다. 외동딸 경희씨는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재원. 그러나 바깥 활동은 없다. 대신 남편(정희영)이 선진종합㈜ 회장이다. 공교롭게 고 정주영 회장의 여동생 희영씨와 이름이 똑같다. 서울대 상대 출신으로 1965년 현대건설 공채로 입사했다. 이명박 서울시장이 입사 동기다. 조선 수주에서 뛰어난 수완을 발휘, 창업주의 눈에 들어 사위가 됐다. 정주영 회장은 딸 경희씨가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자 희영씨를 도쿄법인 이사로 발령내 자연스러운 교제를 유도했다고 한다. 이후 희영씨는 조그만 해운회사(선진해운) 하나를 갖고 독립, 장인의 그늘에서 벗어났다. 천마산 스키장은 오롯이 그가 독립해 만든 회사다. 외아들 재윤씨가 선진종합㈜ 상무다. 두 딸은 각각 이건그룹과 비비안그룹으로 시집갔다. 큰딸 윤미씨의 남편이 이건창호 박승준 상무, 둘째딸 윤선씨의 남편이 비비안 남석우 부회장이다. ●4남 몽우… BNG스틸 통해 부활 넷째아들 몽우씨는 숙명여대를 떠들썩하게 했던 ‘미인’ 이행자씨와 연애결혼했다.40대에 현대알루미늄 회장을 맡은 그는 그러나 심한 우울증을 앓았다. 결국 1990년 4월 45세의 젊은 나이에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남겨진 유족을 돌보는 일도 사실상의 장남 몽구씨의 몫이었다. 조카 셋을 모두 현대차그룹의 계열사인 BNG스틸(전 삼미특수강)에 입사시켰다. 큰조카, 즉 몽우씨의 장남인 일선씨는 경영능력을 인정받아 최근 BNG스틸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했다. 일선씨에 이르러 비로소 현대는 내로라하는 재벌가와 사돈관계를 맺는다. 일선씨의 부인은 구자엽 희성전선 부회장의 딸 은희씨다. 구 부회장은 구태회 LG전선 명예회장의 아들이자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조카이다. 일선씨의 동생 문선씨는 김영무 김&장 법무법인 대표변호사의 딸 선희씨와 결혼했다. ●5남 몽헌… 못다 이룬 꿈, 현 회장이 힘찬 날갯짓 ‘비운의 황태자’ 몽헌씨는 1998년 그룹 공동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화려한 비상을 시작했다.1983년 현대전자(현 하이닉스반도체)를 설립해 4년 만에 흑자로 돌려놓으면서 아버지 정주영 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끌어냈다.2000년에는 형들을 제치고 그룹 단독 회장에 추대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북 송금’ 사건에 연루돼 검찰 조사를 받던 중, 극심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2003년 8월4일 서울 계동사옥에서 몸을 던지고 말았다. 그렇다고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부인 현정은씨가 경영에 뛰어들었다. 급작스러운 남편의 죽음으로 황망히 그룹을 물려받았지만 사업가 집안의 딸답게 배포와 합리적 리더십으로 1년 만에 그룹을 정상궤도에 올려놓았다. 사상 최대 호황을 누리고 있는 현대상선, 올해 첫 흑자를 넘보고 있는 현대아산, 주가 1000시대의 수혜주 현대증권 등을 축으로 재계 10위권 진입(현재 19위)을 눈앞에 두고 있다.2010년까지 매출 20조원을 달성해 10위권에 진입한다는 ‘2010’ 프로젝트를 가동중이다. 현 회장은 고 정주영 회장이 직접 ‘점지한’ 며느리로도 유명하다. 현 회장이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결혼 뒷얘기는 이렇다.“당시 현대상선 회장이던 아버지(현원영)를 따라 선박 명명식차 울산에 내려갔다가 남편을 처음 만났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명예회장(정주영)께서 나를 선보러 미리 내려오셨었다. 명예회장께서 중매를 서신 셈이다.” 큰딸 지이씨는 현대상선 재정부 대리로 근무 중이다. 아버지를 잃었을 때 고3 수험생이었던 외아들 영선씨는 졸업후 미국 유학을 준비중이다. ●6남 몽준… 세계1위 현대중공업 ‘건조’ 지금은 정치인의 이미지가 더 강하지만 세계 일류 현대중공업의 뒤에는 기업인 몽준씨가 있다. 형제중에 학벌(서울대-미국 MIT 경영대학원)이 가장 좋아 ‘신문대학’(소학교만 졸업한 정주영 회장은 신문을 통해 지식의 대부분을 얻었다며 자신을 신문대학 출신이라고 소개하곤 했다) 출신인 왕 회장이 유난히 예뻐했다는 몽준씨는 31세에 현대중공업 사장으로 전격 발탁되면서 집중 조명을 받았다.1988년 금배지를 처음 달면서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시도했다. 경영은 CEO에게 맡기고 자신은 대주주로서 회사의 중요한 의사결정만 내리고 있는 것. 지금도 현대중공업의 어떤 직함도 갖고 있지 않다. 공식 직함은 5선의 국회의원이자 축구협회 회장. 아버지의 뒤를 이어 2002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다.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현대중공업의 올해 매출 목표액은 10조원. 웬만한 그룹과 맞먹는다. 부인 김영명씨와는 미국 유학시절에 만나 결혼했다. 큰아들 기선씨는 연세대 경제학과를 나와 올해 학사장교(ROTC)로 임관했다. 이로써 부자(父子)가 ROTC 선후배가 됐다. 두 딸 남이씨와 선이씨는 미국 유학 중이다.‘월드컵 베이비’로 유명한 늦둥이 아들 예선씨는 초등학교 4학년이다. 우리나라가 98년 프랑스 월드컵 예선전을 최종 통과한 것을 기념해 이름을 ‘예선’으로 지었다고 한다. ●7남 몽윤… 현대해상으로 컴백 몽윤씨는 지난해 말 업계 2위의 손해보험회사인 현대해상의 등기이사 겸 이사회 의장으로 돌아왔다.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지 8년 만의 전격 복귀였다. 방카슈랑스(은행상품과 보험상품의 교차판매) 확대 시행 등 변화하는 금융환경에 맞춰 공격적인 경영 행보를 보이고 있다.1981년 김진형 부국물산 회장의 딸 혜영씨와 연애결혼해 정이양과 경선군을 두었다. ●8남 몽일… 할부금융으로 내실 막내아들인 몽일씨는 미국 조지워싱턴대학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마친 뒤 현대상사 등에서 근무하다가 2000년 현대기업금융을 차려 독립했다. 기업대출 등을 주로 취급하는 회사다. 권영찬 현대파이낸스 회장의 딸 준희씨와 결혼해 고등학생인 현선(영국 유학중)군과 중학생인 문이양을 두고 있다. ■ 현대의 또 다른 축 형제들 고 정주영 회장의 형제들은 동생이기 이전에 창업 동지요, 사업 동료였다.6·25전쟁 직후 고령교(대구와 거창을 잇는 교량) 복구 공사를 덜컥 떠맡았다가 부도 직전까지 내몰렸을 때, 내남없이 살던 집을 팔아 돈을 내놓은 것도 동생들과 매제였다. 이 때문에 20명이 넘는 대식구가 한 집(돈암동)에 모여 살아야 했지만 누구 한 사람 불평하지 않았다. 지금은 모두 독립해 각자의 그룹을 이끌고 있다. ●옛 영화 꿈꾸는 한라·성우 동아일보 외신부 기자로 활동하던 첫째 동생 인영씨는 1953년 현대건설 전무로 입사하면서 경영에 본격 합류했다.75년 말 중동 진출 때 신중론을 펴 형과 이견을 빚을 때까지 그룹의 초석을 닦았다. 당시 독립해 만든 한라그룹은 한라건설·한라시멘트·한라중공업·만도기계 등을 거느리며 재계 서열 12위로까지 도약했다. 그러나 외환위기 때 자금난이 가중되면서 그룹이 부도나는 시련을 겪었다. 지금은 둘째 아들 몽원씨가 한라건설 회장을 맡아 재기를 꿈꾸고 있다. 큰 아들 몽국씨는 94년 아버지가 동생을 그룹 후계자로 지목하자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한때 배달학원 이사장을 맡았으나 지금은 개인사업을 하고 있다. 부인 이광희씨는 배달학원 계열인 한라대 총장을 지내기도 했다. 현대시멘트·성우종합건설·성우리조트·현대종합금속 등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 성우그룹은 둘째 동생 순영씨 일가가 이끌고 있다. 순영씨는 명예회장으로 물러앉고 2세 경영을 정착시켰다. 큰아들 몽선씨가 현대시멘트와 성우종합건설을, 둘째아들 몽석씨가 현대종합금속, 셋째아들 몽훈씨가 성우전자, 넷째아들 몽용씨가 성우오토모티브를 각각 맡고 있다. 몽선씨는 사촌인 정몽윤 현대해상 이사회 의장과 함께 정몽헌 회장의 부검을 임관하기도 했다. ●‘기계박사’가 일군 한국프랜지 자동차부품회사인 한국프랜지공업의 김영주 명예회장은 고 정주영 회장의 유일한 매제다. 정주영 회장은 ‘이 땅에 태어나서’라는 두 번째 자서전에서 “그가 다가가기만 해도 기계가 저절로 고쳐졌다.”며 매제를 ‘기계박사’라고 불렀다.1946년 정주영 회장이 미 군정에서 불하받은 토지에 ‘현대’(현대자동차공업사)라는 상호를 처음 내걸었을 때, 감격적으로 지켜본 이도 영주씨였다. 두 사람의 인연은 이로부터 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인기직종이던 운전기사 출신의 영주씨는 황해도 홀동광산에서 역시 운수업을 하던 정주영 회장과 뜻이 맞아 사업을 같이 도모했고, 매제까지 됐다. 부인 정희영씨는 2001년 정주영 회장이 노환으로 세상을 떴을 때 “대통령 한번 못해보고… 우리 오빠 불쌍해서 어쩔거나.”하며 가장 서글프게 울었던 동생이다. 장남 윤수씨가 회사를 물려받아 한국프랜지공업 회장으로 있다. 둘째아들 근수씨는 독립해 울산화학·퍼스텍 등의 계열사를 거느린 후성그룹 회장을 맡고 있다. 윤수씨의 장남 용석씨가 프랜지공업 계열사인 서한산업(자동차부품회사) 대표이사 사장이어서 3세 경영체제를 갖춰 가고 있다. 둘째아들 용범씨는 이름을 용태로 바꿨다. ●‘포니 정’ 부자(父子)의 변신 ‘포니 정’이라는 별칭으로 유명한 넷째 동생 세영씨는 외아들 몽규씨와 함께 1999년 3월 현대그룹에서 독립해 건설시장에서 영역을 확실하게 굳혔다. 꼼꼼한 시공과 치밀한 분양으로 현대산업개발을 국내 도급순위 4위 업체로 키워놓았다.‘포니 정’이라는 별명은 1976년 누구나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국산 고유모델 자동차 1호 ‘포니’를 만들어낸 데서 붙여졌다. 이같은 열정과 헌신을 인정받아 87년 형에게서 현대그룹 회장직을 물려받기도 했다. 분가한 뒤로는 현대산업개발 경영에만 매달렸다. 몇 년 전 폐암수술을 받았지만 지난해 희수연을 치렀을 만큼 건강을 되찾았다. 회사 경영은 아들 몽규(회장)씨가 책임지고 있다. 지금의 서울 삼성동 사옥은 몽규씨가 직접 지었다. 지나칠 정도로 꼼꼼하다는 게 주위의 평가다. 현대가 맺은 최고위층 사돈도 세영씨 집안에서 나왔다. 큰딸 숙영씨가 노신영 전 국무총리의 장남 경수(서울대 교수)씨와 결혼한 것. ●“아… 신영아”-교통사고 아닌 병으로 요절 다섯째 동생 신영씨는 고 정주영 회장이 가장 자랑스러워했던 동생이다. 서울대를 나와 동아일보 기자로 있다가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함부르크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과정을 밟던 중 병으로 세상을 떠난 것이 1962년. 처음에 어떤 기자가 교통사고사로 쓰면서 오랜 세월 세상에 잘못 알려졌지만 정확한 사인은 지병이라고 유족은 본지에 밝혔다. 당시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잠시도 일에서 떠나본 적이 없는 정주영 회장이 일주일을 손놓았을 만큼 가족의 슬픔은 컸다. 서울대 음대 출신의 첼리스트였던 미망인 제수씨(장정자)에게 현대학원(현대고)을 경영토록 했다. 지금도 현대학원 이사장을 맡고 있는 장정자씨는 남북이산가족 상봉때 대한적십자사 부총재로 남한측 방문단장을 맡았었다. 장홍선 전 극동도시가스 회장의 누나다. 신영씨는 1남1녀를 두었다. 아들 몽혁씨는 32살의 젊은 나이에 현대정유(현 현대오일뱅크) 대표이사로 취임해 인천정유(구 한화에너지)를 인수하고 오일뱅크라는 브랜드를 만드는 등 두각을 드러냈다. 그러나 외자유치와 함께 2002년 전문경영인에서 물러나 그 해 건축자재 유통회사 ‘에이치애비뉴앤컴퍼니’를 설립해 돌아왔다. 부인 이문희씨는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은 동원 이홍근 선생의 손녀이다. 사업가이자 문화재 수집가였던 동원 선생은 평생 모은 문화재 4941점을 1980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딸 일경씨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블룸버그대학 회계학과 교수인 남편 임광수씨와 함께 미국에서 살고 있다. ●‘리틀 정주영’이 이끄는 KCC 막내동생인 상영씨는 ‘불에 타지 않는 바닥재’ 등으로 유명한 자재 전문그룹 KCC를 이끌고 있다. 불도저 같은 추진력과 성격 등이 고 정주영 회장을 가장 많이 닮아 ‘리틀 정주영’으로 불린다. 큰형과 나이 차이가 21살이나 나 아버지처럼 따랐다. 장조카 몽구씨와도 2살밖에 차이나지 않는다. 또 다른 조카인 고 정몽헌 회장이 자금난에 몰렸을 때 200억원을 선뜻 내놓았을 만큼 의리도 강하다. 그러나 조카의 죽음 이후 현정은 회장과 경영권 다툼을 벌이면서 다소 빛이 바랬다. 그룹 경영은 두 아들에게 맡긴 상태다. 큰아들 몽진씨가 대표이사 회장, 둘째아들 몽익씨가 대표이사 부사장이다. 셋째아들 몽열씨는 계열사인 금강종합건설 사장을 맡고 있다.KCC는 몽익씨를 통해 롯데·한진그룹과 사돈으로 연결된다. 몽익씨의 부인 은정씨가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외조카(신 회장의 여동생인 정숙씨의 딸)이다. 은정씨의 언니 은영씨는 한진해운 조수호 회장의 부인이다. 몽익씨와 조 회장이 동서지간인 셈이다. ●현대가의 여자들 현대가의 딸이나 며느리들은 ‘소리’가 나지 않는다. 이화여대(정경희-이양자-현정은-김혜영-정유희 등) 출신에 해외유학(김영명-정지선-황서림-허승원 등)까지 다녀온 재원들이 적지 않지만 경영에 참여하거나 대외활동에 나서는 사람이 거의 없다. 하다못해 남편을 따라 공식행사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도 드물다. 유일한 경영자인 현정은씨도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는 ‘전업주부’였다. 오너 일가를 가까이서 들여다본 한 관계자는 “지금도 명절 때면 청운동 집(정주영 회장이 생전에 오랫동안 살던 집)에 몇 대에 걸친 며느리들이 모두 모여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음식을 직접 장만한다.”면서 “옷차림들도 수수하고 인상이 소박해 언뜻 봐서는 재벌가 며느리란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한결같이 미인들이다. 어떤 이는 그 이유를 ‘유난히 많은 연애결혼’에서 찾는다. ●그룹분리 가속화시킨 ‘경영권 분쟁’ 2000년 ‘형제간 다툼’은 현대가를 정신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핵분열시킨 결정적 계기였다.99년 12월 마지막 날, 고 정몽헌(MH) 회장쪽 인사로 분류되던 박세용 당시 그룹 구조조정본부장이 정몽구(MK) 회장 계열의 현대차 회장으로 전격 발령나면서 시작된 형제간의 경영권 갈등은 그룹 후계자로 MH를 지목한 고 정주영 회장의 육성 테이프가 공개되기까지 석달여에 걸쳐 숨막히게 전개됐다. 효심이 남달랐던 MK는 아버지의 육성이 공개되자 깨끗이 승복하고 자동차 계열사를 이끌고 그룹에서 나왔다. 이 과정에서 아픔도 적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현대의 지배구조를 선진화시키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오는 21일 왕 회장의 4주기에 모처럼 형제들 모두가 함께 제사를 지낼 예정이다. 이날은 공식적으로 가족화합이 됐음을 안팎에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현대가에 정통한 소식통은 전했다. hyun@seoul.co.kr ■ 정주영 회장의 ‘빈대론’ 창업주인 고 정주영 회장은 ‘해당화가 찬란하고 눈(雪)이 많은’ 강원도 통천군 송전면에서 1915년 6남 2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죽어라고 일해도 콩죽을 면할 길이 없는 농군이 진절머리나게 싫고 지겨워”(첫번째 자서전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에서) 소학교를 졸업한 열네살 무렵부터 줄기차게 가출을 시도했다. 무작정 길을 나서 보기도 하고, 아버지의 소 판 돈을 훔쳐도 봤다. 그러기를 네번째. 열아홉살 마지막 가출에 성공해 인천부두 막노동꾼으로 새 삶을 시작했다. 한 푼이 아까워 몸을 기댔던 곳이 노동자 합숙소. 뼈가 으스러지는 중노동으로 누가 떠메고 가도 모를 만큼 고단했지만 좀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빈대들의 공격 때문이었다. 궁리 끝에 밥상 위에 올라가 잠을 잤다. 빈대들의 공격이 잠시 뜸해지는 듯싶었다. 하지만 이내 밥상다리를 타고 기어올라와 온 몸을 물어 뜯었다. 다시 머리를 써야 했다. 무릎을 탁 칠 만한 묘안이 떠올랐다. 밥상다리 네 개를 물 담은 양재기 넷에 하나씩 담근 뒤 그 위에 올라가 잔 것이다. 빈대를 밥상다리로 유도해 양재기 물에 익사시키자는 계략이었다. 쾌재를 부른 것도 이틀여. 빈대들은 또다시 물어뜯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떻게 양재기 물을 건넌 것일까. 자다 말고 벌떡 일어나 불을 켜본 젊은 정주영 회장은 기겁을 하고 말았다. 빈대들이 밥상다리 대신 벽을 타고 천장으로 올라가 사람을 겨냥해 뚝 떨어져 목적 달성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후 역경에 부딪칠 때마다 정주영 회장은 ‘빈대의 노력’을 떠올렸다.“난관은 극복하라고 있는 것이지, 걸려 넘어지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든지 “빈대만도 못한 놈”이라는 단골 지청구는 모두 여기서 비롯됐다. 아무것도 없는 백사장(울산 염포리) 사진 한 장 달랑 들고 조선소 투자금액을 유치할 때나,20세기 최대 역사(役事)로 꼽히던 중동 주베일 공사 입찰전에 뛰어들 때나, 직원들이 불가능하다고 도리질칠 때면 “이봐, 해봤어?”라고 불호령을 쳤던 것도 빈대의 집요한 노력을 떠올리면서였다. “자본가가 아니라 부유한 노동자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정의했던 정주영 회장은 근검과 노력을 평생의 신조로 삼았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평등한 자본금” “한강에 기적은 없다. 성실하고 지혜로운 노동이 있을 뿐” “고선지부지설(苦蟬之不知雪;여름철 서늘한 나무 그늘에 앉아 노래만 하다 겨울이 오기 전에 없어지는 매미는 한겨울 펑펑 쏟아지는 눈을 알 수 없다)” ‘아산 정주영 어록’에 실려있는 그의 유명한 말들이다. hyun@seoul.co.kr ■ ‘현대家 대모’ 변중석 여사 열여섯살에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여섯살 연상의 고향총각 정주영에게 시집온 변중석씨는 현대가의 산 증인이다. 올해로 84세. 젊어서 남편이 사준 재봉틀 하나를 자신 소유의 유일한 재산으로 여기며 한결같은 근검과 후덕함으로 ‘현대가의 여자’라는 상징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고 정주영 회장이 매일 새벽 5시의 ‘밥상머리 교육’을 통해 동생들과 자식들에게 근검을 가르쳤다면, 변씨는 새벽 3시반부터 손아래 동서·며느리들과 아침 준비를 함께 하면서 “언제나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겸손하라.”고 일렀다. 가혹하리만치 자식 교육에 엄격했던 정주영 회장이 아이들을 자가용으로 등교시키는 며느리들을 보고 “젊었을 때 콩나물 버스에 시달려봐야 나중에 자가용을 샀을 때의 기쁨을 안다.”며 역정을 내자 “손주녀석들 키우는 문제에까지 시아버지가 잔소리를 할 거냐.”며 막아준 이도 변씨였다. 칭찬에 인색했던 정주영 회장도 아내를 가리켜 “늘 통바지 차림에 무뚝뚝하지만 60년을 한결같고 변함이 없어 존경한다.”고 자서전에서 고백했을 정도다.“아내를 보며 현명한 내조는 조용한 내조라는 생각을 굳혔다.”고도 했다. 그러나 자식을 먼저 땅에 묻는 참척의 고통과 여자로서의 마음고생을 거치면서 ‘살아있는 보살’도 탈이 났다. 거동이 불편해 10년 가까이 병원(현대아산병원) 생활을 하고 있다. 사실상 맏며느리인 이정화씨 등 며느리들이 틈날 때마다 병실을 들여다보고 있다. hyun@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최광숙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재계 경영권 승계 ‘봄날’

    재계가 경영권 승계에 관한 한 ‘봄날’을 맞았다. 약속이나 한 듯 2,3세 등에게 경영권을 잇따라 물려주거나 핵심요직에 속속 앉히고 있다. 대주주 책임경영이라는 긍정적 평가와 무임승차 친족경영이라는 부정적 평가가 맞선다. 이런 가운데 시민단체가 현대차그룹을 지배구조 모니터링 강화대상에 넣겠다고 선언해 주목된다. ●참여정부 해빙기류 틈타 봇물 최근 들어 가장 공격적으로 후계 구도를 다지고 있는 기업은 현대차그룹이다.1일 정몽구 그룹 회장의 외아들인 의선씨는 기아차, 셋째사위인 신성재씨는 철강회사인 현대하이스코, 조카인 일선(고 정몽우 회장의 장남)씨는 BNG스틸(옛 삼미특수강) 사장이 됐다. 정 회장의 둘째사위(정태영 현대카드·캐피탈 사장)와 일선씨의 동생들(문선·대선)도 경영에 가세했다. 그러자 정 회장의 삼촌인 정상영 케이씨씨(옛 금강고려화학) 명예회장도 최근 주총을 통해 둘째아들 몽익(부사장)씨를 대표이사로 끌어올려 큰아들(정몽진 대표이사 회장)을 보좌하도록 했다. 현대백화점도 정몽근(정몽구 회장의 첫째동생) 회장의 장남(정지선 부회장)과 차남(정교선 이사)을 잇따라 승진시킨 뒤 안정적인 지분율 확보에 열올리고 있다. LG전선그룹도 최근 3대 핵심계열사에 대한 교통정리를 끝냈다. 구태회 LG전선 명예회장의 큰아들인 자홍씨가 LG산전 등 그룹을 총괄 책임지고 있는 가운데, 구 회장의 셋째아들인 자명씨는 LG니꼬 동제련을, 구평회(구태회 회장의 동생) E1명예회장의 큰아들인 자열씨는 LG전선을 각각 책임지고 있다.LG그룹에서 떨어져나온 GS그룹도 허창수 회장의 친인척들이 핵심 계열사를 장악하고 있다. 허 회장의 삼촌인 허승조 사장은 GS유통을, 사촌형인 허동수 회장은 GS칼텍스정유를 이끌고 있다. ●엇갈리는 평가 최근 들어 재벌가의 경영권 승계가 유난히 집중되고 있는 것은 지금이 주총 시즌이기 때문이다. 연말연시 정기인사 때는 세간의 시선 등을 의식해 오너 일가의 승진 발탁을 자제했지만 정기주총까지 때를 놓치면 적잖은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한다.‘경제 살리기’가 참여정부의 최우선순위로 떠오르면서 재벌들에 대한 대립각이 느슨해진 것도 기업들의 대담한 경영권 이양을 이끌어냈다. 물론 친인척 그룹간의 상호자극 및 견제심리도 작용하고 있다. 해당 그룹들은 “과거처럼 총수 일가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경영 전면에 나서서 책임감을 갖고 투명경영을 하겠다는 의지”라고 주장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이규황 전무도 “중요한 것은 경영능력이지, 누구의 아들 딸이냐가 아니다.”라고 강변했다. 그러나 경영능력 평가는 시장의 몫이라는 반박도 적지 않다. 참여연대는 1일 ‘현대차그룹의 친족경영 강화를 우려한다’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내고 “정의선 사장의 과도한 등기이사 겸직(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은 이사의 충실의무를 저해하고 이해상충 문제를 낳을 수 있다.”고 비판했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재계 인사이드] KCC ‘형제 경영’ 성공할까

    [재계 인사이드] KCC ‘형제 경영’ 성공할까

    범 현대가인 금강고려화학이 ‘쌍두마차 형제경영’ 체제를 구축해 눈길을 끌고 있다. 회사 이름도 케이씨씨(KCC)로 바꿨다. 28일 케이씨씨에 따르면 이 회사는 지난 25일 정기총회를 열어 정몽익(43) 부사장을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이에 따라 몽익씨는 ‘친형’인 정몽진(45) 현 대표이사 회장, 전문 경영인인 김춘기 현 대표이사 사장과 함께 ‘독립적인’ 대표이사로서 나란히 케이씨씨를 이끌게 됐다. 몽진씨와 몽익씨는 정상영 케이씨씨 명예회장의 첫째, 둘째아들이다. 정 명예회장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막내동생으로 현대가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관심이 집중되는 대목은 장남인 몽진씨가 대표이사 회장을 맡고 있는 상황에서 차남을 대표이사로 추가 선임한 배경이다. 케이씨씨측은 “대주주 책임경영을 강화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몽익씨의 공식 직함은 대표이사 총괄부사장 겸 관리본부장. 다른 두 명의 부사장(해외본부·생산기술본부) 업무를 총괄하고, 재무·인사·총무 등 회사 안살림을 책임지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몽진씨와 몽익씨가 걸어온 길이 쌍둥이처럼 똑같다는 점이다. 두 살 터울인 두 사람은 나란히 서울 용산고를 나와 고려대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미국 조지워싱톤대학에서 MBA(경영학 석사학위)를 딴 것도 같다. 둘 다 재무쪽에 밝다. 그룹 입사는 몽익씨가 2년 빨랐다.1989년 ㈜금강에 입사했다. 몽진씨는 91년 고려화학㈜으로 들어왔다.2000년 4월 정 명예회장이 순리대로 장남에게 경영권을 넘겨주면서 회장으로 승진했다. 지분도 일단 몽진씨가 가장 많다. 지난 17일 공시한 케이씨씨의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몽진씨가 17.62%, 몽익씨가 8.81%를 갖고 있다. 정 명예회장은 10.0%, 정 명예회장의 막내아들인 몽열(금강종합건설 사장)씨는 5.29%를 갖고 있다. 케이씨씨측은 “정몽진 회장이 그룹을 실질적으로 이끄는 현 경영구도에는 별 변화가 없을 것”이라면서 “이번 대표이사 추가선임을 통해 형제간의 공조가 더욱 굳건해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현대차의 의선(정몽구 회장의 외아들)씨와 현대백화점의 지선·교선(정몽근 회장의 아들)씨 등 집안의 그룹들이 후계구도를 조기 구축하고 있는 것도 이번 인사의 한 자극제가 된 것으로 풀이된다. 현대가에 대한 세간의 시선을 깨고, 케이씨씨의 형제 경영이 성공할지는 더 두고볼 일이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씨줄날줄] 29만원의 진실/우득정 논설위원

    2003년 4월28일 전두환 전 대통령은 서울지법 서부지원에 진돗개 등 재산목록을 제출하면서 예금채권은 29만 1000원뿐이라고 했다.“돈이 없는데 골프는 어떻게 치느냐.”는 판사의 추궁에 “전직 대통령은 무료”라면서 주변사람들과 자식들이 여행경비와 생활비를 도와준다고 주장했다. 그후 인터넷 포털사이트에는 전씨가 화폐 도안인물로 자리잡은 29만원권 지폐가 등장하고,‘내 전 재산은 29만원뿐’이라는 전씨의 주장은 2003년을 장식한 거짓말 랭킹 5위에 올랐다. 그렇다면 29만원은 어떻게 해서 나온 것일까. 당시 재산목록 제출시한을 앞두고 전씨 측근들이 대책회의를 가졌다고 한다. 어느 정도 ‘성의’를 표시해야만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겠느냐가 핵심 쟁점이었다. 대부분의 측근들은 ‘2억원’정도를 제시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씨의 법률대리인인 이양우 변호사가 강력히 반대했다고 한다.‘지금까지 한푼도 없다는 것이 공식 입장이었는데 느닷없이 2억원이 있다고 하면 공연히 의심을 사지 않겠느냐.’는 것이 반대요지였다. 그 결과, 전씨가 사용하지 않는 통장(휴면계좌)들에 남은 잔돈을 합친 29만 1000원이 예금채권의 총액으로 기재됐다는 것이다. 이것이 29만원의 실체다. 그러나 그후 전씨의 부인 이순자씨가 골프 홀인원 기념으로 수백만원짜리 기념식수를 하고 전씨가 연초 세뱃돈으로 100만원을 준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 재산이 29만원뿐이라고 했던 전씨가‘는 단골 수식어가 돼 버렸다. 이 말이 빌미가 되어 전씨의 둘째아들 재용씨의 괴자금 추적과정에서 전씨 비자금 의혹이 다시 불거지면서 이순자씨는 자신의 표현대로 ‘알토란’같은 130억원을 눈물을 쏟으며 남편 대신 헌납해야 했다. ‘배째라’식 대응을 주청했다가 ‘29만원’이라는 역풍을 불러들인 이 변호사에 대해 전씨가 심한 역정을 냈다거나, 이로 인해 이 변호사가 측근 그룹에서 ‘왕따’됐다는 소문도 있다. 하지만 전씨측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노년에 말벗 하나가 아쉬운 전씨가 수십년 측근인 이 변호사를 내치지는 못할 것’이라고 단언한다. 검찰이 재산 허위 명시 고발에 대해 무혐의처분을 내렸지만 ‘29만원’은 전씨에 대한 분노를 되살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래서 판단이 중요하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儒林(289)-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儒林(289)-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그뿐 아니라 입맛도 간밤의 음식처럼 딱 맞았다. 이를 신기하게 여기며 막 출발하려는 퇴계에게 젊은 주인이 두 손으로 무슨 물건 하나를 바쳐 올리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 무엇인가.” 퇴계가 묻자 젊은 주인이 대답하였다. “먼 길을 떠나시는데 발이 편하시라고 버선을 가져 왔습니다. 이 버선으로 갈아 신으시지요.” 그것은 족의(足衣)라고 불리는 버선이었다. 집안의 어른이 먼 길로 출타할 때 보통 부인이나 며느리들이 정성스럽게 밤을 새워 무사히 다녀오라고 버선을 만들어 올리는 것이 법도로 되어 있지만 이처럼 객지에서 그것도 생면부지의 하룻밤 길손으로 묵은 퇴계에게 버선을 바쳐 올리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무슨 이런 물건까지 주십니까. 하룻밤 신세진 것만 해도 고마운데.” 극구 퇴계가 사양하자 젊은 주인이 손을 내저으며 말하였다. “나으리의 존함은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습니다. 나으리께서 누추한 저희 집에서 하룻밤 묵은 것만으로 가문의 영광이나이다.” 버선은 솜을 넣어 누빈 겹버선이었다. 광목으로 만든 백포버선이었으나 퇴계가 버선을 신자 신기하게도 치수를 잰 것처럼 꼭 맞았다. 버선은 특히 발을 넣었을 때 뒤꿈치부터 앞목에 이르는 회목부분이 딱 맞아야 편안한데, 신기하게도 그 버선은 한 치의 빈틈도 없이 꼭 맞았던 것이다. 순간 퇴계는 자신이 떠나보낸 새아기를 떠올렸다. 둘째아들 채(寀)가 죽고 집에 머문 것이 불과 몇 달 되지 않았으나 워낙 음식솜씨와 바느질솜씨가 뛰어나서 퇴계의 수발을 도맡아하던 새아기가 아니었던가. 그제서야 퇴계는 어째서 음식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찬들로만 채워져 있고, 자신의 입에 꼭 맞았는지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고, 또한 버선이 자로 잰 듯이 정확하게 치수가 맞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던 것이었다. 틀림없이. 버선을 신으며 퇴계는 생각하였다. 이 버선은 며늘아기가 만들어준 것이었다. 한때 자신의 시아버지였던 이퇴계가 하룻밤 길손으로 묵게 되었다는 말을 남편에게서 전해듣고 정성껏 음식을 장만하고 밤을 새워 버선을 만들었을 것이다. 저고리의 깃을 잘라 파의함으로써 엄격한 조선의 율법을 깨고 자유의 몸을 만들어준 고마운 시아버지께 한때의 며느리로서 보은을 한 것이었다. 퇴계는 며느리가 만들어준 새 버선을 신고 한양으로 출발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떠나는 이퇴계의 눈으로 처마 밑에서 몸을 감추고 서서 눈물을 흘리는 며느리의 모습이 보였다던가, 어쨌다던가. 그 여인의 등에는 갓난아이가 업혀서 칭얼댔다던가, 어쨌다던가. 이 에피소드는 한갓 전해오는 야담일지 모른다. 그러나 정혼을 하고 혼례식을 올리지 못하여 출가외인의 생과부가 된 둘째며느리를 파의하여 친정으로 돌려보냄으로써 삼종지의의 엄격한 계율을 깨뜨려버린 이퇴계의 통렬한 행동은 분명한 사실이었을 것이며, 며느리를 ‘길가는 사람 보듯 하지 아니하고’ 한 조상에서 온 똑같은 한 뿌리의 자손으로 본 퇴계의 박애정신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일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피우던 담배를 끄며 생각하였다. ―이퇴계와 두향의 상사는 틀림이 없는 사실일 것이다.
  • 儒林(287)-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儒林(287)-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퇴계는 둘째아들 채의 장례식에 참석할 수도 없었다. 전해오는 기록에 의하면 가난하여 장례 치를 형편이 못되어 장비를 빌려 쓸 지경이었으며,2월의 봄추위인데도 눈보라가 심하여 가매로 묻어 놓고 뒤에 이장키로 했다고 한다. 그러나 채의 무덤은 사후 10년 후에야 외할아버지 선산에 이장될 수 있었는데, 지금의 경상남도 의령군 의령읍 무하리 고망봉 산기슭에 묻혀 있다고 전해오고 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둘째아들 채와 정혼을 했던 며느리였다. 비록 혼례를 올리진 못하였지만 정혼을 한 처지였으므로 며느리는 어쩔 수 없이 생과부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조선시대의 법도는 ‘여자는 삼종(三從)의 의리가 있어 다시 결혼하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즉 결혼 전에는 아버지를 따르고, 결혼 후에는 남편을 따르고, 남편이 죽으면 자식을 기르며 아들을 따라야 했는데, 이를 삼종지도(三從之道)라고 했던 것이다. 따라서 며느리는 혼례를 올리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정혼을 한 이상 퇴계의 집식구였던 것이다. 이 사실에 대해 퇴계는 가슴 아파하였다. 자신이 성리학의 대가였으므로 이를 어찌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퇴계는 뒤채를 거닐다가 며느리 방에서 인기척이 있는 것을 느끼고 깜짝 놀란다. 방안에서 며느리가 어떤 사람과 나누는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퇴계는 크게 놀라 가까이 다가갔는데, 방안에서는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어서오세요. 얼마나 보고 싶었는 줄 아세요.” “나도 당신을 보고 싶었소.” 그렇다면 뒤채에 홀로 살고 있는 며느리가 외간남자를 불러들여 정이라도 통하고 있단 말인가. 크게 놀란 이퇴계는 문틈으로 방안을 엿보았는데, 잠시 후 벌어진 방안의 풍경은 실로 충격적인 것이었다. 며느리는 베개에다 남편의 옷을 입혀놓고 밥상을 차려 베개에 숟가락으로 음식을 떠주며 혼잣말을 하면서 슬피 울고 있었던 것이다. “서방님 이 음식은 아주 맛이 있어요. 식기 전에 어서 드세요.” 며느리는 다시 혼잣말로 남자 목소리를 흉내 내며 혼자서 대답하였다. “역시 당신의 음식솜씨는 최고요.” “그러니 이제 자주 오세요.” 현진건의 ‘P사감과 러브레터’를 연상시키는 이 장면이 실제로 있었던 사실이었던가 아니면 다만 야담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인가는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로부터 며칠 뒤 이퇴계가 며느리를 친정으로 되돌려 보냈다는 것이다. 물론 당시에는 아내를 버리거나, 내보내거나, 쫓아버리거나 하는 일은 있어도 이혼하는 일은 없었다. 다만 사정파의(事情罷議)라 하여서 의절하여 내보내는 일은 있었던 것이다. 이때는 의절의 증표로 아내가 입던 저고리의 깃을 자르는데, 이를 할급휴서(割給休書)라 했던 것이다. 원래는 남편이 아내가 입던 저고리의 깃을 자르는 것으로 소유권을 포기하는 의식이었는데, 아들은 이미 죽었으므로 퇴계는 은밀히 며느리를 불러 혼례 때 입으려고 미리 준비하고 있던 며느리의 갑사저고리의 깃을 자신이 직접 가위로 잘라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서 퇴계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고 전해오고 있다. “이제 너는 우리 집 귀신이 아니라 자유의 몸이 되었다. 이로써 너는 부부로서 인연을 끊고 새사람이 되었다. 그러니 이제 다시는 우리 집으로 돌아오지 않아도 된다. 멀리 떠나서 새생활을 하도록 하여라.”
  • 儒林(286)-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儒林(286)-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나는 선원에게 내가 찾아온 목적을 자세하게 설명하였다. 선원은 귀를 기울여 들은 후 내게 말하였다. “이곳에서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제가 군청에 연락을 해 보겠습니다.” 선원은 휴대전화를 들고 통화를 하기 시작하였다. 나는 난간에 몸을 기대고 담배를 피우며 쪽빛으로 푸른 호수를 바라보았다. 관광객들은 쉴 새 없이 계단을 내려와 표를 사고 유람선에 차곡차곡 승선하고 있었다. ―사실이었을까. 나는 눈부신 봄 햇살이 끓어오르고 있는 수면을 바라보며 생각하였다. ―이퇴계와 두향의 사랑은 과연 사실이었을까. 불과 9개월의 짧은 재임기간 동안 퇴계와 기생 두향의 상사(相思)는 과연 무르익을 수 있었을까. 퇴계가 그처럼 다정다감한 풍류객이라 할지라도 두향은 한갓 미천한 신분의 기생.9개월의 짧은 만남이 500년의 세월을 뛰어넘은 세기의 로맨스가 될 수 있었을까. 어쩌면 이는 과장된 후세의 조작이 아니었을까. 이퇴계는 당대 최고의 거유이자 명신으로 ‘해동공자(海東孔子)’라고까지 불렸던 성인이었다. 그러한 이퇴계가 쉰에 가까운 ‘지천명(知天名)’, 즉 ‘하늘의 뜻을 알았던 나이’때 미천한 기생 두향과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이 가능하였을까. 퇴계언행록에 기록된 대로 ‘남녀간의 사랑이 비도 오고 바람이 부는 만물의 생성(生成)’과도 같은 것이라 할지라도 퇴계는 과연 엄격한 신분을 초월할 수 있었을까. 만약 퇴계와 두향의 상사가 떠도는 풍문에 불과한 것이라면 나는 지금 헛소문을 따라서 두향의 무덤을 찾아가고 있음이 아닐 것인가. 그때였다. 문득 내 머릿속으로 하나의 상념이 떠올랐다. 그것은 마치 인도 특유의 세습적인 신분제도인 카스트를 능가하는 엄격한 조선의 신분계급 속에서도 비교적 너그럽고 자유로웠던 이퇴계의 에피소드였다. 인간에 대한 박애정신으로 가득 찼던 휴머니스트 이퇴계. 율법과 형식에 초월하였던 자유주의자 이퇴계. 이퇴계의 그러한 면모를 엿보게 하는 야사 하나가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나는 담배를 피워 물며 그 야사의 내용을 더듬어 보았다. 퇴계가 단양의 군수로 부임한 것은 1548년 정월. 그러나 부임한 지 한 달 만에 이퇴계는 뜻밖의 불행을 겪게 된다. 이때의 고통을 이퇴계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몸이 쪼개지듯 아프다. 지탱하기 힘들다. 원통함을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퇴계를 이처럼 고통스럽게 하였던 것은 다름 아니라 그의 둘째아들 채가 21세의 젊은 나이로 갑자기 급사하였기 때문이었다. 퇴계가 둘째아들 채의 죽음을 특히 슬퍼하였던 것은 채가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생모이자 퇴계의 첫 번째 부인이었던 허씨가 죽어 유모 손에서 고아처럼 자랐기 때문이었다. 성장해서는 퇴계와 떨어져 외할아버지의 농사일을 감독하며 농사꾼으로 외롭게 자랐다. 그런데 더욱 슬픈 것은 정혼을 해 놓고도 혼례를 올리지 못한 채 숫총각으로 세상을 떠난 것이었다. 이때의 비통함을 퇴계는 조카사위에게 다음과 같이 호소하고 있다. “단양군에 와서 좋은 일이라고는 없고 자식을 잃어 병만 더욱 심하다. 오래 있고 싶지 않아서 두세 번 감사에게 사직을 청하였으나 들어주지 않는다.”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①삼성그룹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①삼성그룹

    어느 시대에나 나라와 집단을 움직이는 인맥은 있다. 과거 권위주의적인 시절에는 권력 중심의 인맥이 조명을 받았지만, 요즘은 자본을 토대로 형성된 인맥집단이 눈길을 모은다. 지난해 말 단행된 주요 그룹 인사에서 창업자의 2,3세들이 사장이나 임원으로 속속 승진하면서 재계의 ‘가계도’가 주목받고 있는 것도 무관치 않다. 사실 재계의 인맥과 가계에 대한 관심은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다. 빈부격차가 커지면서 계급간 갈등이 악화되는 현실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가 발전해 왔듯이 90년대 이후 재벌가문의 인맥도는 정략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게 중론이다. 한국의 주요 그룹들이 창업에서부터 2세,3세로 내려오면서 어떻게 가업을 승계해 왔고, 총수와 더불어 대그룹을 일군 주역들이 누구인지를 주 1회씩 연중 기획으로 조명해 본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후원자인 메디치가, 근세유럽 최고의 명문가로 알려진 합스부르크왕가, 미국의 케네디·부시가 등 서양에는 그 사회가 인정해 주는 명문가가 있다. 한국에도 수백년 내력의 명문가문이 존재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존재가 미약하다. 대신 일제치하와 근대화 과정을 거치며 자본을 축적한 ‘재계 명문가’들이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권력이 최우선이었던 시대가 지나고 금력의 위력이 커질수록 재계 명문가의 위상도 커지고 있다. 재계 명문가를 일군 창업주들은 대부분 좋은 집안 출신도 아니고 고등교육을 받지도 못했지만 대를 내려오면서 후손들은 명실상부한 상류층의 자격을 갖추게 된다. 한국의 몇 안되는 ‘상류층 클럽’의 최정점에 재벌 2,3세들이 서 있고 또 그 정상에는 삼성가의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다는 데 의문을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다. 고 호암 이병철 회장이 일군 ‘삼성가’는 오늘날 대한민국 재계의 대표 가문이라는 칭호를 받고 있다. 이 회장은 1938년 29세때 자본금 3만원과 은행자금 20만원으로 ‘삼성상회’를 설립했다. 만주에 청과물과 건어물을 수출하고 제분업을 병행하면서 1년 만에 두배의 이익을 거뒀고 이를 토대로 연산 7000석 규모의 ‘조선양조장’을 매입하며 삼성의 기틀을 세웠다. 현재 삼성은 자산규모 92조원으로 공기업인 한국전력에 이어 2위다. 하지만 지난해 자산을 꾸준히 늘려 올 4월 공정거래위원회의 발표가 나면 명실상부한 재계 1위로 부상할 전망이다. 삼성은 지난해 매출 136조원, 세전이익 19조원이라는 경이로운 경영성과를 이뤄냈다. 직접 수출만 527억달러로 우리나라 전체 수출(2542억달러)의 21%를 차지했다. 삼성그룹의 시가총액은 한때 120조원을 넘었다가 현재 94조원에 달한다.2위인 LG그룹(36조원)과 비교해 보면 그 비중을 짐작할 수 있다. 삼성은 또 CJ, 신세계, 한솔, 새한그룹과 연결돼 있고 중앙일보그룹, 보광그룹과도 인연을 맺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신세계 5조 2000억원(21위),CJ 4조 9000억원(23위), 한솔 3조 4000억원(36위), 중앙일보·보광 1조원 등을 더하면 ‘범 삼성가’의 자산은 106조 5000억원에 달한다. ●다양하지만 화려하지 않은 혼맥 이런 위상에도 불구하고 삼성의 혼맥은 의외로 담백하다. 특히 이건희 회장대로 내려오면서 특별한 집안을 ‘간택’하지 않았다. 이미 재계 최고의 반열에 올라선 삼성가로서는 더 이상 혼맥을 통해 뭔가를 기대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이병철 회장 사후 삼성은 91년 11월 신세계와 전주제지(한솔),93년 6월 제일제당(CJ),95년 7월 제일합섬(새한),99년 중앙일보 등을 독립시키며 세포분열을 거듭했다. 새한을 제외하고는 각자의 영역에서 안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병철 회장은 8명(3남 5녀)이나 되는 자녀를 분가시켰지만 명성만큼 화려한 혼맥은 아니었다. 이맹희씨가 그의 회고록에서도 밝혔듯이 이 회장은 혼사를 통해 권력층과 줄을 잇는 체질이 아니었다. 다만 자유당 시절 법무장관과 내무장관을 역임한 고 홍진기씨 집안과 사돈(이건희 회장)을 맺은 것이나 둘째딸 숙희씨를 LG의 창업주인 구인회 회장의 3남인 구자학씨에게 시집보낸 것 정도가 눈에 띈다. ●비운의 장손가, 화려한 부활 장남 이맹희씨는 어릴 적부터 약조가 돼 있던 손영기 전 경기도 지사의 딸 손복남씨와 결혼했다. 한때 17개 계열사 경영을 맡으며 장남의 역할을 다했지만 일찌감치 그룹 경영에서 발을 빼야 했다. 맹희씨의 존재는 항상 껄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는 ‘묻어둔 이야기’,‘하고 싶은 이야기’ 등의 회고록에서 “고 이병철 회장이 제일제당·제일모직 등 ‘제일’자 계열과 안국화재(현 삼성화재)를 나에게 넘기기로 했었다.”고 발언,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맹희씨는 현재 대구와 부산을 오가며 살고 있다. 당대에 이루지 못한 맹희씨의 꿈은 지난 2002년 장남인 이재현씨가 CJ그룹의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어느 정도 풀렸다. 고려대 법대 출신인 이 회장은 삼성과 무관한 씨티은행에 공채를 통해 입사했다. 그러나 이병철 회장이 제일제당 경리부로 자리를 옮기도록 했다. 그는 이후 93년 잠깐 현재 이재용 상무 자리인 삼성전자 전략기획실 이사로 일한 것을 제외하고는 줄곧 제일제당과 함께 했다. 이 회장은 비록 CJ그룹이 삼성그룹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 차이가 나지만 삼성가의 장손으로 그 위상이 만만치 않다. 이병철 회장의 부인인 박두을 여사도 2000년 타계하기 직전까지 서울 장충동에서 이 회장과 함께 살았다.87년 이병철 회장 장례식때 영정을 들고 앞장선 사람도 이 회장이었다. CJ그룹은 지난해 말 인사에서 미국에 머물던 이 회장의 누나인 미경씨를 CJ엔터테인먼트,CJ CGV,CJ미디어 및 CJ아메리카 담당 부회장에 임명했다.CJ는 이 회장의 외삼촌 손경식 회장이 공동회장을 맡고 있다. ●새한의 도전과 좌절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일본인인 이영자씨와 연애 결혼한 차남 창희씨는 91년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한비사건(사카린 불법유통사건)으로 한때 수감생활을 하기도 했고 67년 삼성이 인수한 새한제지(전주제지) 이사로,68년에는 삼성물산 이사로 일했지만 그룹 경영에서는 한발 비켜서 있었다. 창희씨는 고 이병철 회장과 이건희 회장의 와세다대 동문이다. 창희씨 사후 새한은 부인 이영자씨를 회장으로 97년 새 CI를 선포하며 독립그룹으로 발을 내디뎠지만 곧바로 경영위기를 겪고 만다.2000년부터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돌입했는데 채권단에 따라 ㈜새한 계열과 새한미디어 계열로 나눠졌다. 새한미디어는 현재 론스타로의 매각설이 흘러나오고 있다. 새한은 99년 일본 도레이사와 3대7 합작을 통해 도레이새한을 출범시켰다. 2000년 지분을 채권단에 양도한 이영자 전 회장과 아들인 이재관 전 부회장은 현재 미국에 체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새한은 삼성의 분가그룹 가운데 유일하게 몰락하고 말았지만 혼사만큼은 화려했다. 장남 재관씨는 동방그룹 김용대 회장가의 딸인 희정씨와 중매로 결혼했다. 재관씨는 ㈜동방 주식 1만 6000여주를 갖고 있지만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고 있다. 재찬씨는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의 딸인 선희씨, 재원씨는 김일우 서영주정 사장의 딸과 결혼했다. 막내딸인 혜진씨도 조내벽 전 라이프그룹 회장가로 시집갔다. ●글로벌 삼성을 만든 이건희 회장 3남인 이건희 회장이 삼성그룹의 2대 회장이 된 것은 유교적 전통과 장자승계가 원칙인 한국에서 의외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이병철 회장은 70년대에 이미 ‘3남 후계’ 방침을 확정했다. 이병철 회장은 ‘호암자전’에서 “장남 맹희는 주위의 권고와 본인 희망대로 그룹 경영을 일부 맡겨 봤지만 6개월도 못가 맡겼던 기업은 물론 그룹 전체가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면서 “창희는 그룹 산하의 많은 사람을 통솔하고 복잡한 대조직을 관리하는 것보다는 알맞은 회사를 건전하게 경영하고 싶다고 희망해 희망대로 해주었다.”고 밝혔다. 이건희 회장에 대해서는 “와세다대 1학년때 중앙매스콤을 맡아보라고 했더니 본인도 좋다고 했는데 조지워싱턴대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그룹 경영에 차츰 참여하기 시작했다. 내가 겪은 기업경영이 하도 고생스러워 중앙일보만 맡았으면 하는 심정이었지만 본인이 하고 싶다면 그대로 놔두는 것이 옳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양녕대군, 효령대군 대신 3남인 충녕대군(세종)을 택한 태종의 결단과 닮은 꼴이다. 87년 11월19일 이병철 회장이 타계한 뒤 12일 만인 12월1일 삼성의 2대 회장에 취임한 이 회장은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17년 만에 삼성의 차원을 바꾸는 데 성공했다. 이 회장이 취임한 1987년 매출 13조 5000억원과 비교하면 14년 만에 매출이 10배로 늘어났다. 세전이익은 1900억원에서 19조원으로 100배나 늘었다. 원달러 환율이 100원 이상 절상된 올해도 삼성은 매출 140조원, 세전이익 14조 6000억원을 목표로 세웠다. 이 회장의 ‘신경영 전도사’라는 평가를 받는 이학수 삼성 구조조정본부장은 최근 이 회장의 ‘17년 경영’을 이렇게 평가했다. “반도체 투자 같은 천문학적인 액수는 보통의 최고경영자(CEO)들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한때 잘나갔던 일본 반도체 업체들도 CEO들이 결단을 내리지 못해 투자시기를 놓쳤다. 반면 삼성은 이 회장이 전략을 제시하고 투자를 결정해 줌으로써 강력한 리더십이 생긴다. 계열사 사장들은 회장의 비전 제시를 책임감 있게 충실히 이행하고 구조본은 이 과정에서 정보분석 등 보좌업무를 수행한다. 삼성의 힘은 이같은 ‘3각 경영시스템’에서 나온다고 자타가 공인하고 있다. 사장을 비롯해 임직원들이 ‘우리 회장’을 진심으로 따르고 승복하니까 이같은 영향력이 나오는 것이다.” 이 회장과 홍라희 여사의 만남은 부친들끼리 미리 약조가 돼 있는 상태에서 66년 일본 도쿄 하네다 공항에서 처음 이뤄진 뒤 7개월 뒤인 67년 5월 결혼으로 이어졌다. 홍 여사는 당시로는 큰 키(165㎝)에 미모와 지성을 갖춘 재원으로 이후 한국 재계의 ‘퍼스트레이디’로 자리매김했다. 서울대 미대(응용미술학과) 출신인 홍 여사는 79년 막내 윤형씨를 낳고 난 뒤인 83년 현대미술관회 이사로 ‘대외활동’을 시작했다. 67년 삼성으로 시집온 뒤 이건희 회장의 후계구도가 확정된 71년부터는 삼성그룹의 사실상 ‘안방마님’이었지만 서열상으로 엄연히 형님(맹희·창희씨 부인)들이 있고 위로 시누이가 넷(인희·숙희·덕희·순희씨)이나 있어 편하기만 한 상황은 아니었을 것이다. 홍 여사는 85년부터 98년까지 친정아버지(고 홍진기씨)가 회장으로 있는 중앙일보 상무로 재직했다.95년 호암미술관장으로 취임한 홍 여사는 96년에는 삼성문화재단 이사장까지 맡았지만 98년 이사장직을 남편인 이 회장에게 돌려줬다. 지난해 4월 현대미술관회 부회장으로 선임됐고 같은 해 11월에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 ‘승지원’ 옆에 국내 최고 수준의 미술관인 ‘리움(Leeum)’을 개관, 관장으로 취임했다. 해외활동도 활발해 93년부터 CIMAM(국제근현대미술박물관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뉴욕 현대미술박물관 국제이사회 회원, 영국 테이트갤러리 국제이사회 회원이다. 이같은 활동을 인정받아 96년 프랑스 문학예술훈장인 ‘코망되르’를 받았고 2003년에는 제57회 자랑스런 서울대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딸들의 맹활약 삼성가는 딸들의 경영활동이 활발하기로 유명하다.5명의 딸 가운데 덕희(숙명여대)씨를 제외하고는 모두 이화여대 출신이다. 장녀인 이인희씨는 경북지방의 대지주였던 조범석가로 시집갔다. 남편인 조운해씨는 고려병원(현 강북삼성병원) 원장·이사장 및 병원협회장을 역임했다. 현재도 맏사위 자격으로 삼성에버랜드 주식을 일부 갖고 있다. 인희씨는 91년 삼성에서 분리,92년 한솔그룹으로 이름을 바꾸며 새 출발했다. 한때 계열사가 16개에 이르는 등 승승장구했지만 외환위기를 겪으며 현재는 8개 계열사로 줄었다. 장남인 조동혁 회장에 이어 현재 그룹 경영은 3남인 조동길 회장이 맡고 있다. 차남인 조동만 전 한솔PCS 회장은 PCS 사업매각 관련 비리로 비운의 주인공이 됐다. 차녀인 숙희씨는 LG가로 시집을 갔다. 남편인 구자학씨는 해군 소령으로 예편한 뒤 제일제당, 동양TV 이사, 호텔신라 사장, 중앙개발 사장 등 처가에서도 활발한 경영을 펼쳐 눈길을 끈다. 그는 삼성이 전자사업에 진출한 것을 계기로 본가로 돌아간 뒤 금성사 사장,LG반도체·LG건설 회장 등 굵직한 자리를 맡다 지난 2000년 외식산업인 ‘아워홈’을 갖고 독립했다. 지금도 LG가에서 구자학 회장은 ‘구씨답지 않게 낭만적이면서도 미스터리한 인물’로 회자된다.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삽입형 생리대인 ‘탐폰’을 국내 처음으로 내놓는 등 여성적인 섬세함은 ‘LG가’보다는 ‘삼성가’에 가까운 모습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숙희씨의 아들 본성씨도 한때 삼성 계열사에서 일했다. 딸인 명진씨는 고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의 막내아들인 조정호 메리츠증권 회장과 결혼했다. 3녀 순희씨는 대학교수와 결혼,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다. 4녀 덕희씨는 삼성가의 고향인 경남 의령의 대지주 이정재씨 집안으로 시집갔다. 마산고와 서울대 상대를 나온 남편 이종기씨는 중앙일보 부회장, 제일제당 부회장을 거쳐 삼성화재 회장까지 지내다 은퇴했다. 그는 지금도 삼성전자 주식 8만주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큰손’이며 동서인 조운해씨와 마찬가지로 에버랜드 주식도 갖고 있다. 삼성가의 딸들 가운데 가장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사람은 5녀 이명희 신세계 회장. 이 회장의 시아버지는 4·5대 국회의원과 삼호방직·삼호무역 회장을 지낸 정상희씨로 남편인 재은씨가 차남이다. 남편인 정재은씨는 경기고·서울대 공대를 졸업하고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수학한 엘리트. 삼성항공·삼성종합화학 부회장, 삼성전기 회장, 삼성전자 대표이사 등을 역임하며 삼성그룹에서 맹활약하다 분가와 함께 삼성을 떠났고 현재 신세계 고문직을 갖고 있다. 신세계가의 후계자인 정용진 부사장은 미스코리아 출신 고현정씨와 결혼했다가 2003년 이혼했다. ●최고의 사돈감,‘소박한’ 결혼 이건희 회장은 홍 여사와의 사이에서 재용(삼성전자 상무), 부진(호텔신라 상무보), 서현(제일모직 부장), 윤형(학생)씨를 낳았다. 이재용 상무는 경복고와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거쳐 일본 게이오대,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을 마쳤다.91년 삼성전자에 입사했으며 차분히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현재 삼성전자 전략기획실 중장기 전략담당인 이 상무는 최근 소니와의 7세대 LCD(액정표시장치)합작사인 ‘S-LCD’의 등기이사로 등재돼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S-LCD는 삼성과 소니가 ‘명운’을 걸고 시작한 사업. 차기 CEO로 꼽히는 구타라기 겐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 대표를 이사로 내세운 소니는 삼성측에 이 상무의 이사 등재를 특별히 부탁했다. 이 상무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첨단기술에 관심이 많아 혼자서도 사업장을 둘러보고 관련 전문가들에게 전문지식을 습득하는 등 열심히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는 평이다. 이 상무는 98년 대상그룹 임창욱 회장의 장녀인 세령씨와 결혼해 1남 1녀를 두고 있다. 당시 ‘미원-미풍 전쟁’을 벌였던 삼성과 대상이 사돈을 맺었다는 점과 연세대(경영학과 2학년)에 재학중이었던 세령씨의 빠른 결혼, 영호남 대표기업의 혼사 등이 화제를 모았었다. 임씨는 삼성가 며느리라는 지위 외에도 ㈜대상 주식 10.22%를 보유하고 있는 등 만만치 않은 재력을 자랑한다. 세령씨의 서문여고 동창들에 따르면 학창시절부터 말수 없이 조용한 데다 미모를 갖춰 일찌감치 ‘최고의 신부감’으로 꼽혔다고 한다. 지난해 초 호텔신라 상무보로 승진한 부진씨는 연세대 아동학과 출신으로 99년 삼성 계열사의 평범한 회사원 임우재씨와 결혼했다. 임씨는 현재 삼성전자 소속으로 미국 유학중이다. 미국 뉴욕의 패션전문학교 파슨스 출신인 둘째딸 이서현 제일모직 부장은 2000년 동아일보 사주인 김병관 회장의 차남인 재열씨와 결혼했다. 재열씨는 지난해 초 제일모직 상무로 승진했다. 아직 미혼인 막내 윤형씨의 배필이 누가될지 벌써부터 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화여대 불문과 98학번인 윤형씨는 지난해 싸이월드에 개설한 미니홈피가 소개되면서 화제가 됐었다. 당시 윤형씨는 재벌가의 딸답지 않는 소탈하고 귀여운 글을 많이 남겨 ‘삼성가’에 대한 세인들의 궁금증을 어느정도 풀어줬다. 지금은 활동이 중단됐지만 ‘다음’의 윤형씨 팬카페(이뿌니 윤형이네) 회원수가 1만 2000여명이 넘을 정도로 연예인 못지 않은 인기를 누렸다. ●이씨가와 홍씨가 LG가 구씨-허씨의 ‘합작품’이라면 삼성은 이씨와 홍씨가 함께 이끌어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 홍진기 회장의 장남인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최근 각을 세워왔던 노무현 정부의 주미대사로 내정됨에 따라 현 정권과 중앙일보, 삼성가로 이어지는 관계가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다. 고 이병철 회장과 고 홍 회장의 인연은 4·19 직후 홍 회장이 3·15 부정선거와 관련해 옥고를 치르고 있을 때 이 회장이 면회를 가면서 시작됐다. 전 국무총리 신현확씨의 소개로 이뤄졌는데 신현확씨도 이후 삼성물산 회장까지 지내며 삼성과 돈독한 인연을 유지했다.87년 이병철 회장 사후 이건희 부회장을 2대 회장으로 추대한 회의도 신현확씨가 주재했다. 홍 회장은 65년 라디오서울(동양방송 전신) 개국 4개월 뒤 경영을 맡았는데 80년 신군부에 동양방송을 ‘강탈’당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오늘날의 중앙일보를 일궈냈다. 홍 회장이 삼성그룹에서 직접 경영한 것은 중앙일보(66∼67년,68∼86년)밖에 없지만 그가 삼성에 끼친 영향은 말로 다하기 어려울 정도다. 삼성의 언론사업에는 비화가 있다.‘호암자전’과 ‘삼성 60년사’에 따르면 이병철 회장은 60년대 초 정계 투신을 결심했었다. 기업가의 사회적 공헌이 전적으로 무시되고 오히려 ‘부정축재자’,‘정치적 희생양’이 되는 경우가 많은 현실(한비의 국가 헌납 등)에 환멸을 느낀 이 회장이 직접 정치를 하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1년간의 고심 끝에 정치보다는 언론사업을 택했다. 이른바 ‘정권은 유한하지만 언론은 무한하다.’는 세간의 ‘이치’를 일찌감치 간파한 셈이다. 홍 회장은 이병철 회장의 타계 직전인 86년 먼저 세상을 떠났는데 이 회장은 조사를 통해 “당신은 내 일생을 통해 제일 많은 시간을 접촉한 평생의 동지요, 삼성을 이끌어 온 같은 임원이요, 사업의 반려자였고, 가정적으로는 나의 사돈이었다.”며 진한 애정을 감추지 않았다. ●관·언·재의 홍씨 4형제 홍씨 가문은 네 아들을 뒀는데 하나같이 훤칠한 용모에 좋은 머리를 갖고 있다. 주미대사로 내정된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은 서울대 전자공학과와 미 스탠퍼드대 경제학 박사 출신의 엘리트로 30대(39세)에 세계은행(IBRD)의 이코노미스트를 지냈고 이후 청와대 비서실장 보좌관,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등 정부쪽 일도 수행했다. 홍 회장은 삼성코닝 상무·부사장으로 경영일선에서 뛰다 99년 중앙일보의 계열분리를 계기로 중앙일보 회장에 취임했다. 아시아인 최초로 세계신문협회(WAN) 회장에 올라 국제사회에도 그 이름을 알렸다. 홍 회장의 장인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 검찰총장, 법무부장관, 중앙정보부장을 지낸 고 신직수씨다. 사시 18회인 둘째 홍석조 인천지검장은 경기고,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서울지검 남부지청장(현 남부지검장), 법무부 검찰국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홍 지검장은 차기 검찰총장 후보로도 거론되고 있다. 홍 지검장의 부인은 양택식 전 서울시장의 동생 양기식씨의 딸이다. 서울대 사회학과 출신인 홍석준 삼성SDI 부사장은 86년 미 노스웨스턴대 경영학 석사를 마친 뒤 삼성코닝 이사로 입사했다.95년 삼성전관(현 삼성SDI) 상무로 이동, 기획홍보팀장을 거쳐 2002년 부사장(경영기획팀장)으로 승진했다.‘로열 패밀리’임에도 불구하고 직원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꿰고 있을 정도로 자상한 면모를 갖고 있다. 선친때부터 살아 온 서울 성북동 집을 지키고 있다. 4남인 홍석규 보광그룹 회장은 지난해 말 인사에서 회장으로 승진, 오너 경영을 본격화했다. 경기고와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한 홍 회장은 79년 제13회 외무고시에 합격, 외무부 의전과에서 외교관 생활을 시작했다. 홍 회장 역시 형과 마찬가지로 청와대 비서실에서 근무했다.95년 외무부 기획조사과장을 끝으로 공직생활을 마감한 홍 회장은 보광 상무이사로 경영활동에 뛰어들었다. 제8대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회장, 대한스키협회 부회장, 한국광고업협회 부회장, 서울대 기성회 회장 등 외부활동도 활발하다. 보광그룹은 아직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편의점인 보광훼미리마트, 자판기 유통업체인 휘닉스벤딩서비스, 보광창업투자, 휘닉스커뮤니케이션즈, 문화상품권 발행사인 한국문화진흥 등을 계열사로 두고 있다.PDP(플라스마디스플레이패널) 부품업체인 휘닉스PDE, 반도체 관련 업체인 휘닉스디지탈테크, 반도체패키지 제조업체인 STS반도체통신 등 전자 계열사들은 사돈기업인 삼성전자, 삼성SDI 등과 거래가 활발하다. 특히 지난해 코스닥에 등록된 휘닉스PDE는 홍 회장이 13.89%, 홍석조 인천지검장, 홍석준 삼성SDI 부사장, 홍라영씨가 나란히 10.89%를 보유해 눈길을 끈다. 홍씨가의 주력은 중앙일보 그룹이지만 실제 ‘자금줄’은 보광그룹임을 짐작할 수 있다. 앞으로 보광이 주요그룹으로 성장한다면 정·관계, 언론계를 주름잡은 이 가문이 재계에서도 능력을 검증받게 된다. 막내인 홍라영씨는 노신영 전 국무총리의 둘째아들인 철수씨와 결혼했다. 노 전 총리의 장남 경수씨는 현대산업개발 정세영 명예회장의 큰딸 숙영씨, 차녀 혜경씨는 ㈜풍산 류진 회장과 결혼했다. 이대 불문과, 미국 뉴욕대 예술경영학 석사 출신인 라영씨는 95년 삼성문화재단 기획실로 입사, 현재 삼성미술관 부관장직과 한국박물관협의회 부위원장 등을 맡고 있다. ukelvin@seoul.co.kr ■ 이병철 회장의 경영어록 ●“사장이라고 하더라도 잘 모르는 경우에는 가리지 말고 물어봐야 한다. 그렇게 해서 2∼3년이 지나면 물어보는 횟수가 차츰 줄어들 것이 아니겠는가. 나 역시 혼자 삼성 전체를 경영하는 것이 아니라 삼성 전체가 과거 오랫동안의 경험을 살려서 움직여 나가는 것이다.”(1983년 6월 반도체회의) ●“인재제일, 인간본위는 내가 오랫동안 신조로 실천해온 삼성의 경영이념이자 경영의 지주이다. 기업가는 인재양성에 온갖 정성을 쏟아야 한다. 인재양성에 대한 기업가의 기대와 정성이 사원 한사람 한사람의 마음에 전달되어 있는 한 그 기업은 무한한 번영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1982년 10월 기고문) ●“사람을 관찰해 보면 세 부류가 있다. 첫째 어려운 일은 안 하고 쉬운 일만 하며 제 권위만 찾아 남만 부리는 사람, 둘째 얘기를 해도 못 알아듣는 사람, 셋째 알아듣긴 해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1982년 9월 사장단 오찬회의) ●“모든 설비투자계획에 있어서 5년 정도만 내다보고 세우지 말고 10년 이상 50년 정도의 장기 안목 위에서 세워야 한다.”(1977년 6월 삼성조선 건설현장) ●“미국에서는 사람의 후천적 교육에 치중하고 소질은 별로 평가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나는 선천적 소질 내지는 능력에 60%를 두고 교육에 40%를 둔다. 사람은 노력 여하에 따라서 달라진다. 하지만 아무나 노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노력할 수 있는 능력은 따로 있다고 봐야 옳을 것이다.”(1976년 6월 ‘재계회고’) ●“일이 잘돼 나갈 때 오히려 다가올 불행을 각오해야 한다. 기업가도 뜻하지 않은 좌절을 겪어본 기업가가 좌절을 모르고 자라난 기업가보다 훨씬 더 강인한 기업경영 능력을 갖고 있다.”(1975년 9월 ‘최고 경영자와의 대화’) ■ 이건희회장의 경영담론 ●“그동안은 세계의 일류 기업들로부터 기술을 빌리고 경영을 배우면서 성장해 왔으나, 이제부터는 어느 기업도 우리에게 기술을 빌려 주거나 가르쳐 주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우리는 기술 개발은 물론 경영 시스템 하나하나까지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자신과의 외로운 경쟁을 해야 한다.”(2005년 1월3일 신년사) ●“반도체 사업 진출 당시 경영진들이 ‘TV도 제대로 못 만드는데 너무 최첨단으로 가는 것은 위험하다.’고 만류했지만 우리 기업이 살아남을 길은 머리를 쓰는 하이테크산업밖에 없다고 생각해 과감히 투자를 결정했었다. 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반도체에서 시기를 놓치면 기회손실이 큰 만큼 선점투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2004년 12월 반도체 30년 기념식) ●“4∼5위에서 2∼3위로 가는 것하고 2∼3위에서 1위로 가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르다.”(2003년 11월 휴대전화사업 격려 자리에서) ●“행정규제, 권위의식이 없어지지 않으면 21세기에 한국이 일류 국가로 될 수 없다. 우리나라의 정치는 4류, 관료와 행정조직은 3류, 기업은 2류다.”(1995년 4월 중국 베이징 특파원 오찬간담회) ●“선친이 장사하는 것을 보며 세살 때부터 주판을 갖고 놀았다. 정치보다 장사를 잘 알고 거기에 맞는 사람으로 키워졌다. 난 양복과 잠옷만 있고 중간 옷이 없다. 잠옷 입고 있는 시간이 더 많은데 잠옷을 입고 정치할 수는 없지 않으냐.”(94년 10월 마이클 헤슬타인 영국 상공부 장관과 만찬자리에서 정치 참여에 대해) ●“변하는 것이 일류로 가는 기초다. 앞으로 5년이면 회장 취임 10년인데 10년 해서 안 된다면 내가 그만두겠다. 자기부터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마누라하고 자식만 빼고 모두 바꿔라.”(93년 6월 신경영 선포)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최광숙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재벌 2·3세 경영 참여…능력 인정? 핏줄 특혜?

    재벌 2·3세 경영 참여…능력 인정? 핏줄 특혜?

    최근 재벌 2·3세들의 경영 참여가 부쩍 잇따르면서 ‘경영권 세습’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체계적인 경영수업과 능력에 토대한 ‘실력 이양’이라는 주장과, 시장 검증을 거치지 않은 무책임한 ‘핏줄 상속’이라는 비판이 맞선다. 대우·한보사태에서 보듯 재벌의 흥망은 국가경제와 직결되는 만큼 부(富)의 승계와 경영권 승계는 명백히 구분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재계는 지금 상속중 4대 재벌은 3세 경영체제를 굳혔거나 굳혀가고 있다.LG 구본무(59)·SK 최태원(44) 회장이 경영권을 이미 물려받았고, 삼성 이재용(36) 상무·현대차 정의선(34) 부사장은 임원으로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4대 재벌에서 뻗어나온 방계그룹도 경영권 이양이 한창이다. 구평회 LG 창업고문의 둘째아들인 구자용(49) E1 부사장은 28일 사장으로 승진했다. 구자열(LG전선 부회장), 구자균(LG산전 부사장), 구자은(LG전선 상무), 구자민(LG전자 부사장), 구본진(LG상사 상무) 등 범 LG가(家)의 후손들이 속속 전진 배치되고 있다. 현대백화점 정몽근 회장의 아들인 지선씨와 교선씨,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의 큰딸 현아씨와 외아들 원태씨도 차례로 입사하며 3세 체제 발판을 마련했다.CJ그룹 이재현 회장-이미경 부회장 남매, 롯데그룹 신동빈 부회장-신동주 전무 형제, 현대상선 정지이씨,BNG스틸 정일선 부사장-정문선 이사 형제 등도 총수의 아들딸들이다. ●박용성 회장,“경영능력이 중요” 전국경제인연합회 이규황 전무는 “경영능력만 있으면 총수의 아들이든 삼촌이든 무슨 상관이 있느냐.”며 “삼성 이건희 회장과 현대차 정몽구 회장도 창업주의 아들이지만 그룹 규모를 10배 이상 키우며 경영능력을 입증했다.”고 주장했다. 두산그룹 2세인 박용성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사석에서 “(하버드대 비즈니스 스쿨을 나온)이재용 같은 인재는 돈주고 모셔올 판”이라며 재벌 2·3세를 덮어놓고 삐딱하게 보는 세간의 색안경을 경계했다. 최근 총수 자녀들의 승진인사를 낸 그룹들도 한결같이 “혈연관계에 앞서 전문지식을 갖췄다.”고 강변했다. ●이헌재 부총리 “경영권 세습은 곤란” ‘따뜻한 시장경제주의자’를 자처하는 이헌재 경제부총리는 “재산이야 자신들이 번 것인 만큼 세금만 제대로 낸다면 얼마든지 세습해도 되지만 경영권은 딸린 임직원과 식솔들,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엄청난 만큼 세습은 곤란하다.”고 못박았다. 권영준 경희대 교수는 “우리나라 국민들은 시장에서 전혀 검증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국가경제의 상당부분을 맡겨야하는 운명”이라고 반박했다. 권 교수는 “지금처럼 재벌 2·3세들이 입사에서부터 승진까지 시장원리가 아닌 특혜를 적용받게 되면 경영실패 때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 들게 된다.”고 우려했다. 최근 공개된 재벌들의 지분 족보에서 드러났듯 적은 지분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소유지배 구조 아래서는 이같은 폐해가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는 경고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우영희의 출동!요리구조대] 아이를위한 웰빙피자

    [우영희의 출동!요리구조대] 아이를위한 웰빙피자

    초등학교 2·4학년생 두 아들의 엄마입니다. 먹성 좋은 두 아들의 간식을 마련하는 것이 걱정인 행복한 엄마입니다. 매일 학교 급식표를 보고 겹치지 않도록 간식을 준비합니다. 인스턴트 식품은 몸에 좋지 않다고 해서 간식으로 피자를 잘 만드는 데 제대로 맛이 나지 않습니다. 어린이 간식용 피자를 맛있게 만드는 방법 좀 알려주세요. -용산에서 피자 반죽을 버벅대는 주부 박연순 아이들 간식을 직접 만들어 준다는 박연순씨의 사연을 접한 우영희씨,“간식을 직접 만들어 주신다고요? 대단하시네요!” 칭찬으로 수업을 시작했다. 박씨는 알뜰한 주부답게 한마디라도 더 듣겠다는 다부진 자세.“피자를 몇차례 만들어 봤는데 도대체 맛이 안나요. 이스트를 넣은 피자 밑판 도(dough)반죽이 너무 어려워요..” ‘과외교사’ 우씨는 “버터를 듬뿍 넣은 피자 밑판 대신 담백하고 깔끔한 맛의 피자를 만들게요.” “그럼 반죽부터 해야겠네요.”박씨는 급한 마음에 밀가루부터 꺼냈다. “시간도 없고, 또 피자 반죽에 자신이 없다면서요? 이럴 땐 ‘멕시코 빈대떡’인 토르티야를 피자 빵으로 써요.”‘비장의 카드’ 토르티야에 박씨는 놀란 토끼 눈이다.“얇은데 피자가 되나요?” “그럼요, 바삭거리면서 얼마나 맛있는데요, 토르티야는 크기가 다양해 원하는 사이즈의 피자를 만들 수 있어요.”우씨는 수입식자재 전문점에서 토르티야를 살 수 있다고 덧붙였다. “피자 도를 다 만들었으니 피자를 한 세판 정도 굽지요.”우씨의 파격적인 제안에 박씨는 또 한번 놀랐다. 아이들이 좋아할 버섯햄피자, 어른들이 좋아할 김치피자, 날치알과 깻잎이 들어간 웰빙피자가 실습과목이다. 요리 지도를 받는다는 소식에 ‘견학’온 옆집 아줌마. “날치알이 들어간 피자!, 톡톡 터지는 맛이 정말 맛있겠는데요.”라며 한 수 더 뜬다. “날치알은 특유의 비린 맛이 있는데, 청주에 담갔다가 쓰면 비린 맛이 없어져요. 이번엔 생크림에 담갔다가 쓸 거예요. 그러면 비린 맛은 없어지면서 고소한 맛도 나지요.”깻잎을 잘 게 썰 것을 주문한 우씨는 “깻잎은 우리 ‘한국의 허브’예요, 건강에도 좋고 잡냄새를 잡을 수 있지요.”라며 깻잎을 예찬했다. “모차렐라 치즈는 집에서 썰기가 복잡하니깐요, 가능하면 슬라이스된 것을 쓰세요.”치즈 사는 요령도 귀띔했다. “어머, 벌써 토핑이 끝났어요?너무 고민됐는데….”청강생 박씨보다 ‘도강생’옆집 아줌마가 더 열심이다. 다음은 적당히 익은 김치를 잘게 썰어 토르티야 위에 얹고 치즈를 뿌렸다. “너무 쉬워요.”라며 박씨가 감탄사 연발하자, 우씨는 “요리는 쉬워야 해요.” 힌트 하나. 남은 불고기가 있다면 김치와 함께 골고루 뿌리면 곧바로 불고기 피자가 된단다. 아이들 간식은 버섯햄 피자.“애들은 보통 버섯을 잘 안 먹잖아요. 익히면 졸깃해 그 맛이 고기와 비슷해 애들이 잘 먹지요.”우씨의 멘트다. “버섯을 얇게 썬 다음 강한 불에 익혀요. 약한 불에 익히면 버섯 고유의 맛이 달아나거든요. 꼭 강한 불에 익히고요, 소금을 쓸 일이 있으면 반드시 나중에 넣으세요.”햄은 동그랗게 썰어 구워냈다. 토르티야 위에 케첩을 바르고 버섯과 햄을 차례로 올렸다. 모차렐라 치즈로 토핑을 완성했다. “피자 만들기 너무 간단하지요.”피자 세판을 190∼200도로 예열한 오븐에서 10분간 구워냈다. 피자를 학수고대하던 박씨의 두 아들. 둘째아들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맛있다.”를 연발했다. ●버섯·햄 피자 재료 토르티야 1장, 느타리·표고·양송이버섯 등 150g(버섯 종류는 기호대로), 햄 ⅓쪽(둥글고 얇게 저며 썬다.), 모차렐라 치즈 1컵, 케첩 2큰술 순서 (1)버섯은 팬에 기름을 두르고 센 불에서 볶아 준비한다. (2)햄도 살짝 익혀낸다. (3)토르티야에 케첩을 고르게 바르고 햄을 듬성듬성 얹고 버섯을 올린다. (4)모차렐라 치즈를 뿌린 다음 190도의 오븐에서 10분간 구워낸다. (5)피자 치즈가 녹아 색이 노릇노릇하면 오븐에서 꺼낸다.fm> ●날치알·깻잎 웰빙피자 재료 토르티야 1장, 날치알 2큰술(생크림 3큰술에 재운다.), 깻잎 5장(0.5㎝ 넓이로 썬다.), 모차렐라 치즈 1컵. 순서 (1)생크림에 재워둔 날치알을 토르티야 위에 바른 후 깻잎 썬 것을 고루 펼쳐 얹는다. (2)모차렐라 치즈를 고르게 펴 덮는다. (3)190∼200도로 예열된 오븐에서 10분간 구워낸다. ●김치피자 재료 토르티야 1장, 김치 ¼포기(속을 털어내고 물에 살짝 헹궈 다져 썰어 물기를 제거한다.), 모차렐라 치즈 1컵. 순서 (1)토르티야 위에 썬 김치를 고르게 펼친다. (2)그위에 모차렐라 치즈를 올려 190∼200도로 예열된 오븐에서 10분간 구워낸다. ‘우영희의 출동!요리구조대’는 독자 여러분이 참여하는 페이지입니다. 맛있는 요리비법을 원하시는 분들은 사연을 인터넷으로 보내세요. 서울신문(www.seoul.co.kr) ‘우영희의 출동!요리구조대’ 또는 푸드채널(www.foodtv.co.kr) ‘우영희 아름부엌’. 푸드채널 ‘우영희의 아름부엌’에서 복습하세요.12월27일 오전 10시20분, 방송됩니다.
  • “아버지는 저에게 슈퍼 히어로였죠”

    역도산의 실제 아들 모모타 미쓰오(55)가 영화 ‘역도산’의 월드프리미어가 열린 6일 용산CGV에 들러 관객들과 인사를 나누며 아버지와 영화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 역도산의 두번째 부인의 둘째아들로 일본 현역 프로레슬러인 그는 영화 ‘역도산’ 개봉에 대해 “개인적으로 기쁘고 아버님도 기뻐하실 것”이라고 밝혔다. 영화 내용과 관련해서는 “아직 영화는 못 봤지만 시나리오는 전부 읽었다.”며 “실록이라기보다는 픽션이 많아 뭐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남자로서 역도산의 길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버지에 대한 인상에 대해서는 “일본에서 수많은 관중이 몰려든 큰 경기장에서 아버님이 레슬링을 하고 있으면 파도 치는 듯한 분위기 속에서 모두가 아버지를 성원했다.”며 “아버지로서의 느낌도 있지만 슈퍼 히어로로서의 객관적인 느낌이 더 크다.”는 말을 남겼다. 고등학교 졸업후 18세에 레슬러가 됐다는 그는 “일본에서는 아직도 프로레슬링이 인기가 많은데 역도산을 일본 프로레슬링의 창시자로 알고 있다.”며 “영화가 일본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연합
  • [좋은도시 만들기](3)’담장’ 쌓은 임대·일반아파트

    [좋은도시 만들기](3)’담장’ 쌓은 임대·일반아파트

    “한 단지에 살지만 아이들의 등하굣길조차 서로 달라 불편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무엇보다 성격이 비뚤어질까 걱정됩니다.” 2000여가구가 모여 사는 성북구 길음동 임대주택 동부아파트의 주민 정이선(43·여·가명)씨는 요즘 매일같이 단지내 이웃 주민들과 감정싸움을 벌이고 있다. 인근의 미아초등학교에 다니는 둘째아들의 등하굣길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주기 위해서다. ●5분거리 학교를 20분 돌아서 다녀 동쪽으로 난 임대 아파트 정문만 통해서 다닐 수 있지 서쪽을 향하고 있는 일반분양 아파트의 정문을 이용하지 못하는 것. 임대아파트와 일반아파트사이에는 철망 형태의 담이 설치돼 주민의 이동이 불가능하다. 이로 인해 임대아파트에 살고 있는 초등생 80여명이 단지를 빙돌아 학교에 가는 불편을 겪고 있다.5분거리를 20여분정도 더 돌아다니는 것이다. 정씨는 아이들의 등하굣길 불편을 덜어주고 싶어 실랑이를 벌이지만 혹시 아이들에게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의 갈등으로 비쳐져 더 큰 마음의 상처를 안겨주지 않을까 마음이 아프다. 이 곳 아파트내 300가구의 임대아파트 주민들은 아이들의 이런 불편함을 덜어주기 위해 벌써 2개월 넘게 한 단지내 일반아파트 주민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쪽문설치를 요구하는 집회도 해보고 서명작업도 펼쳐봤지만 좀처럼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사유지’ 핑계 쪽문설치도 반대 주민 대표로 나선 이정원(50·여)씨는 “위험하다, 사유지라서 안 된다는 등 갖가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거부당하고 있다.”며 “이는 임대아파트 주민들을 같은 단지의 이웃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라고 분개하고 있다. 이씨의 말처럼 임대아파트에 살고 있는 주민 대부분은 이런 억울함과 불편을 삭이며 살고 있는 게 현실이다. 실제로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관악 드림타운, 두산아파트 등지에서도 여전히 임대와 일반아파트 주민들을 분리시키는 담장과 주차장 등으로 주민간에 갈등을 빚고 있다. 용산구 도원동의 삼성 래미안아파트도 일반아파트와 임대아파트를 높은 담장과 서로 다른 출입구로 단절시켜 놓아 보는 이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임대=저소득층’ 편견 만연 우리나라에서는 ‘임대아파트=저소득층거주아파트’라거나 임대아파트 지역내의 학교는 문제가 있다는 식의 잘못된 편견까지 작용하고 있다. 임대와 일반아파트 주민간에는 재산상의 격차만큼이나 높은 장애물이 놓여 있는 것이다. 최근 서울시의회는 임대아파트를 별도로 배치하지 않도록 하는 ‘서울시도시 및 주거환경정비조례중개정조례안’을 의원발의로 상정, 통과시키는 등 임대와 일반 아파트주민간의 갈등을 없애는 노력을 다각도로 펼치고 있다. 조례안을 발의한 정호동(한나라당·노원1)의원은 “같은 단지내 어린이들도 임대와 일반아파트를 구분해 따로 어울리는 게 현실”이라며 “개선책 찾기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도시연구소는 임대·일반아파트 주민간 갈등의 원인은 ‘집값 하락’을 이유로 가난한 사람들과 같이 섞여 살기 싫어하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남원석 연구원은 “선진 외국의 경우 임대주택 주민들의 역량 개발을 위해 직업교육 및 공동체 프로그램 등을 지원하고 있다.”고 밝히고 “이웃이라는 공동체의식을 심어줄 수 있는 문화행사나 봉사활동 등을 적극 지원해주는 행정적 뒷받침과 사회적 분위기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동구기자 yidonggu@seoul.co.kr ■ ‘더불어 살기’ 은평뉴타운 첫 시도 다양한 계층이 모여사는 ‘소셜 믹스(Social Mix·더불어 살기)’가 국내에서도 시도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 대한 찬반론도 팽팽하다. ●같은 棟에 임대·분양가구 동시 배치 서울 은평뉴타운이 주목받는 이유중의 하나는 국내에선 처음으로 분양주택과 임대주택을 섞어 짓기 때문이다. 은평 1구역의 아파트는 18∼60평형으로 다양하게 구성됐다. 분양아파트(2750가구)와 임대아파트(1471가구) 비율이 6대 4 정도이다. 특히 같은 동에 분양 및 임대가구가 동시에 들어서는 아파트도 상당수 배치됐다. 서울시 이건기 뉴타운사업반장은 “기존 재개발아파트도 임대아파트를 일정부분 포함하고 있지만, 단지가 다르고 상호교류가 단절된 상태여서 사실상 별도의 아파트로 간주해야 할 것”이라면서 “진정한 의미의 소셜 믹스는 은평뉴타운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건설교통부는 국민임대단지안에 일반아파트와 임대아파트를 섞어 짓도록 할 방침이다. 내년 4월부터는 재건축단지내 임대아파트 건설을 의무화하기로 했다. 또 지난 11월 경기도 시흥능곡지구 실시계획을 승인하면서 첫 블록은 일반, 그 다음 블록은 임대아파트를 짓도록 했다. 찬성론자들은 여러 계층이 조화와 통합을 이룰 방법론적 대안을 ‘소셜 믹스’에서 찾고 있다. 서울시립대 건축도시조경학부 박철수 교수는 “현재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 주민들은 라이프스타일과 성장단계에 따라 유목민처럼 이사를 반복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면서 “소셜 믹스가 이뤄지면 정주성을 확보할 수 있고, 정주성이 지속되면 자발적인 커뮤니티가 형성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커뮤니티 형성” “시장원리” 찬반양론 그러나 소셜 믹스는 부동산가격 하락 등을 우려하는 기득권층과 상대적 박탈감이 커질 것이라는 소외계층의 현실적 주장에 막혀 공론화되지 못하고 있다. 건설업체 관계자는 “오히려 떨어져 사는 게 나아 보인다.”면서 “건축과정에서 소셜 믹스를 꺼리는 시장원리를 무시할 수 없는 실정”이라고 털어놨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장영희 박사는 “임대료를 임대주택의 종류가 아닌 입주자의 소득수준에 따라 차등화하면 다양한 규모와 형태의 가족이 함께 거주할 수 있다.”면서 “여기에 ‘쿼터제’를 도입해 특정 소득계층이 몰리는 현상을 보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다만 인위적인 소셜 믹스는 자제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평택대 도시계획학과 윤혜정 교수는 “신도시를 개발할 때는 소셜 믹스를 시도할 수 있지만, 재개발이나 재건축 과정에서는 기존의 커뮤니티가 유지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서울 시범·시민·시영아파트 현황 시범·시민아파트에는 현재 전형적으로 저소득층이 살고 있다. 이들 주민은 국·공유지를 빌려 자신들의 아파트를 지은 대신 대부료를 내야 하나 지금까지 30여년간 한푼도 납부하지 않았다. 공공용지 사용 대부료는 연간 공시지가의 5%이다. 또 공공용지를 무단으로 점유했을 경우 대부료의 20%를 얹은 변상금을 물어야 한다. 지방재정법은 채무의 소멸시효를 5년으로 규정, 서울시 등은 적어도 이 기간 동안의 대부료를 청구할 수 있지만 청구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계약서에 관련규정을 담지 않아 (대부료를 납부하지 않아도 되도록) 관행적으로 굳어진 것 같다.”고 털어놨다.‘잘못 꿰어진 첫 단추’를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바로잡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시민아파트는 지난 1969년 국·공유지에 난립한 무허가건물을 정비하기 위해 서울시가 건물의 골조만 지어 분양한 아파트로 모두 32개 지구에 434개동 1만 7353가구가 지어졌다. 이후 안전상의 문제가 발생하자 서울시가 건물을 매입해 현재 대부분 철거가 이뤄졌고, 주민들에게는 택지개발지구내 아파트 우선입주권이 주어졌다. 완공 1년만인 1970년 4월 붕괴돼 대형 인명피해를 낳은 마포구 창전동 와우아파트도 시민아파트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서울시는 시범아파트를 짓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범아파트는 시민아파트와 달리 일반아파트와 동일한 방식으로 분양이 이뤄져 안전관리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은 주민들에게 있지만 문제는 부실이 크게 진행되는 데도 서울시가 주민에게 책임을 미루는 데 있다. 안전점검에서 지자체가 개입할 의무가 있는 D등급이하가 나오지 않았다고 위안만 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시영아파트는 건물뿐 아니라 토지까지 주민에 팔아 완전 민영방식으로 분양된 아파트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대우 해체 5년… 김우중사단 움직인다

    대우 해체 5년… 김우중사단 움직인다

    5년전 이맘때 김우중 당시 대우그룹 회장이 한국을 떠났다. 그룹 계열사는 산산이 해체됐고, 대우맨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그로부터 5년후. 대우맨들의 움직임이 재졌다. 김 회장의 귀국설도 좀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른바 ‘김우중 사단’들은 “귀국보다 명예회복이 먼저”라고 입을 모은다. ●귀국설 솔솔, 측근은 일축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9월말 카자흐스탄을 방문했을 때, 이 곳 대통령이 김우중 회장의 거취를 물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귀국설이 급속도로 번지기 시작했다. 대우인터내셔날(옛 ㈜대우) 등 대우3사가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을 속속 졸업한 것도 귀국설에 불을 붙였다. 그러나 김 전 회장의 측근인 백기승 유진그룹 전무는 “5년전 대우 해체를 주도했던 이헌재 경제부총리·강봉균 국회의원 등이 현직에 있는 한 컴백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귀국설을 일축했다. 백 전무는 “정치권에서 김 전 회장의 거취를 두고 여론을 탐색했으나 이 부총리 등이 부정적 의견을 전달하면서 흐지부지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설사 정치적 사면이 이뤄지더라도 채권단 손해배상 소송 등 실정법이 있어 귀국은 당분간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 대우그룹의 주채권기관인 우리은행은 김 전 회장 등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지난 23일 60억 8000만원의 배상판결을 끌어냈다. 김 전 회장은 현재 독일에 머물고 있다. 지금도 장(腸) 협착으로 고생중이지만 수술은 받지 않았다.‘수구초심’인지라, 내심 귀국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계열사 CEO 모임 정례화 추진 이동호 대우자동차판매 사장 등 대우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은 지난달말 경기도 포천의 아도니스골프장에서 회동을 가졌다. 모임의 정례화를 추진중이다. 옛 대우맨들이 모여 만든 ‘대우인회’(회장 박태웅 전 대우차 부사장)도 활발하게 모임을 갖고 있다. 회원수가 1000명을 넘는다. 서울역앞 대우재단빌딩에 마련된 사무실은 오며가며 들르는 대우맨들로 늘 북적인다. 김 전 회장의 둘째아들 선협(35)씨도 지난해 11월 어머니 정희자씨가 운영하는 대우재단에 ‘소리없이’ 이사로 등재했다. 선협씨는 대우차에서 경영자 수업을 받다가 1999년 그룹이 해체되면서 대우를 떠났다. 이후 자동차 관련 소규모 벤처업체를 운영해왔다. ●대우맨들“해체과정 재조명해야” 백 전무는 “최근의 일련의 움직임을 두고 대우그룹의 화려한 부활이니 말들을 많이 하는데 부활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그룹 해체과정이 정당했는지 재조명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투자도 부채로 간주하며 획일적인 부채비율 잣대에 따라 기업을 쳐냈던 구조조정이 과연 정당했는지 묻고 싶다.”면서 “5년이 지난 지금에는 한번쯤 재평가 작업을 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재평가가 이뤄지면 결론이 달라질 것이라는 자신감을 깔고 있다. 그러나 당시 대우 해체를 주도했던 정부 관료들은 “한국경제를 망친 장본인이 명예회복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불쾌해했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대형손보사 ‘통합형 보험’ 뜬다

    대형손보사 ‘통합형 보험’ 뜬다

    수십 가지의 보험상품을 단 한개의 보험증권으로 대체할 수 있는 ‘통합형 보험’이 인기를 끌고 있다. 소비자들은 각종 보험에 따로따로 가입하는 번거로움을 덜고 보험료도 비교적 적게 들기 때문에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 보험사들은 가입자의 모든 위험보장을 종합적으로 관리하면서 거액의 보험료를 한꺼번에 챙길 수 있어 새 상품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적게 내고도 많은 혜택을 직업군인인 유모(39)씨의 가족 4명은 모두 6개 보험에 가입하고 한달에 19만 5590원의 보험료를 내고 있었다. 유씨는 운전자보험과 암보험을, 아내 김모(35)씨는 상해보험과 암보험을 들었다. 첫째아들(9)과 둘째아들(6) 명의로 각각 어린이보험도 들었다. 유씨 가족이 거래하는 보험사는 S화재,L생명,S생명,D화재 등 4개 회사다. 월 보험료는 1만 1640∼5만 1200원이다. 유씨는 최근 주변의 권유로 유씨 자신의 암보험(10년만기·월 1만 1640원)을 제외한 5개 보험을 해약하고 20년 만기의 통합보험에 새로 가입했다. 월 보험료는 5개 보험을 해약하지 않았을 때에는 18만 3950원이었으나, 통합보험 가입 이후엔 15만 9280원으로 2만 4670원이 줄었다. 보험료가 줄었는데도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보장 범위는 더 넓어졌다. 통합보험에 가입함에 따라 1억원을 보상하는 화재보험에도 자동으로 가입됐다. 암보험의 보장 범위도 사망뿐만 아니라 ‘치료시 1억원’이 추가됐다. 두 자녀도 혜택을 받는다. 현재 수준의 보험혜택을 받기 위해 이전처럼 각각의 보험에 따로 가입했다면 월 30만원 이상 들어간다. ●전담자만 찾으면 모두 해결 4인 가족은 4∼5개의 보험에 가입하는 예도 많다. 자동차, 암보험, 자녀보험 등 필수적인 상품에만 가입해도 한달에 20만원은 족히 들어간다. 그러나 막상 사고가 나거나 심하게 다쳤을 때에는 어떤 회사의 보험에 어떤 조건으로 가입했는지를 정확히 모를 수 있다. 보험금 지급 규정이 복잡하고 보험사마다 제각각이어서 혜택은 고사하고 보험금만 믿고 있다가 낭패를 볼 수 있다.. 통합보험 가입자는 사고시 전담관리자만 찾으면 된다. 전담관리자가 최대 70가지의 혜택을 검토해 해당되는 보험금을 알아서 지급해 주기 때문이다. ●가입자 몇개월 만에 26만명 통합형 보험은 최근 온라인보험이나 방카슈랑스(은행이 취급하는 보험상품)가 인기를 끌면서 이에 맞서기 위해 출시된 전략상품이다. 일본 도쿄해상이 ‘초(超)보험’이라는 이름으로 내놓은 것을 지난해 12월 삼성화재가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했다. 올 상반기 들어 다른 보험사들도 잇따라 출시, 불과 몇개월 만에 5개 보험사의 가입자 수가 26만 9061명, 판매액은 536억 8800만원에 이르고 있다. 동양화재의 ‘웰스라이프보험’은 상해·질병·자동차·화재 등 63가지를 보장한다. 국내 체류중 사고 외에 해외출장, 군복무 등도 보장 범위가 적용된다. 가족에는 배우자, 부모, 배우자의 부모, 자녀 외에 사위와 며느리까지 포함된다. 필요 시기에 따라 보험료를 조절할 수 있다. ‘삼성슈퍼보험’은 판매량이 매월 50% 이상씩 늘고 있다. 계약기간중 결혼, 출산, 주택마련 등 목돈이 필요한 일이 생기면 보장 범위를 변경할 수 있다.‘LG웰빙보험’은 보험혜택 외에 국내 병원의 주치의와 간호사를 배정하고, 필요하면 1차 진료기록을 외국의 유명병원에 보낼 수 있다. 보험사들은 가입자들이 월 20만원 안팎의 많은 보험료를 내면서 모든 위험보장을 한 곳에 믿고 맡기는 점을 감안, 노련한 설계사들로 구성된 1000여명의 전담인력을 육성하고 있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길섶에서] 어머니의 키/이용원 논설위원

    어머니가 입원하셨다. 독감 예방주사를 맞은 게 덧나 한쪽 무릎이 크게 부어오른 것이다. 무릎 부위를 제외하고는 이상이 없다는데도 연세 때문인지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아내와 함께 병원으로 찾아 뵈니 어머니는 여전히 활기차고 당당하셨다. 여든이 다 되셨지만 사회활동·종교활동을 적극적으로 하셔서인지 문안오는 이가 적지 않았다. “길도 먼데 뭣하러 찾아와. 형하고 형수가 아침 저녁으로 들르니까 너희는 안 와도 돼. 큰 병도 아닌데….” 형 부부와 함께 사시는 어머니는, 열흘 사이에 두번째 찾아 뵙는 게으른 둘째아들 부부에게 나무라듯이 말리신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 안다. 그 전날 미리 전화를 드렸더니 “절대 올 생각하지 말라.”고 엄명하셔서 결국 가지 않았다. 하지만 형수 얘기로는 문병객이 부쳐온 빈대떡 몇장을 따로 싸놓고 기다리셨다는 것이다. 어머니가 혼잣말처럼 말씀하셨다.“입원할 때 재니까 키가 또 줄었어. 젊을 때보다 10㎝나 작아.” 아무리 당당해도 어머니는 여든 다된 노인네일 뿐이다. 자식들 키우느라 줄어든 키를 우리 삼남매 어찌 채워드릴 건가. 이용원 논설위원 ywy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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