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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제 대한민국을 땀으로 적실 것”

    손학규 경기지사는 16일 “지금까지 경기도를 땀으로 적셔왔던 자세로, 이제 대한민국을 땀으로 적시고자 한다.”며 대권 도전을 분명히 했다. 손 지사는 이날 오전 경기도 중소기업종합지원센터에서 연두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고 “그러나 임기가 종료되는 날까지 지사로서 역할에 충실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적 시대적 흐름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1970∼80년대식 낡은 사고방식으로 정치와 행정을 한다면 나라에는 실패를, 국민에게는 고통을 줄 뿐”이라며 “이제는 분열의 상처를 치유하고 미래를 위해 씨를 뿌리며 함께 땀을 흘리는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 지사는 “이같은 시대적 과제는 세계를 이해하는 글로벌 안목과 실사구시적인 혁신자세를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다.”면서 “대한민국의 축소판인 경기도는 나름대로 역할을 통해 선도행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지난 3년반동안 경기도는 10년·20년후의 먹을거리를 만드는 데 역점을 두었으며 특히 136억달러에 달하는 첨단 외국기업의 투자유치와 IT,BT,NT 등 미래 성장동력 산업 육성은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100만개 일자리 창출, 교육지원, 영어마을 설립, 신빈곤층 대책, 둘째아이 보육지원, 남북상생 등도 임기중 성과로 꼽고 “교육지원정책, 리스타트사업, 네이버워치 등을 통해 사회안전망뿐 아니라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의 망’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의 낮은 지지율에 대해 “최근 언론으로부터 ‘저평가 우량주’로 평가받고 있으나 우량주는 제대로 평가받을 날이 반드시 올 것이며 경기지사로서 한 역할이 국가적인 차원에서 평가 받을 날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황우석 파문’과 관련해서는 “진실 규명은 계속돼야 하지만 연구능력을 뿌리째 뽑아서는 안 된다.”며 “검찰의 조사는 조사이고 연구는 계속돼야 하기에 황우석 바이오장기이식센터 건립 사업 등은 계획대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수원 김병철기자kbchul@seoul.co.kr
  • 오승윤화백 투신자살

    한국 근대화단의 거목 오지호 화백(1905∼1982)의 둘째아들이자 한국 서양화단의 거장인 오승윤(66) 화백이 투신자살했다. 13일 광주서부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오전 11시38분쯤 누나와 매형이 살고 있는 광주 서구 모 아파트 화단에 오 화백이 떨어져 숨져 있는 것을 경비원이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오 화백은 유서에서 ‘판화는 그대로 둬라. 재판시 증거로 놔둬라.’라는 글과 함께 ‘사회는 너무 냉정했다.’ 등의 말로 심정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오 화백은 작품인생을 정리하는 의미로 지난해 11월 화집 발간과 12월 서울의 한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열 예정이었으나 발간 작업 지연과 자신의 작품을 회수하지 못해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아 소송도 준비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영결식은 15일 오전 10시 조선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광주·전남 미술인장(장례위원장 황영성 화백)으로 치러진다.(062)231-8901.광주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儒林(499)-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21)

    儒林(499)-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21)

    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21) 그러므로 23세 되던 해 봄. 처갓집인 성주를 떠나 바닷가를 따라 강릉으로 먼 길을 떠나던 율곡의 마음은 노친을 봉양하기 위해서 과거를 보아 벼슬길에 나갈 것인가(進), 아니면 공맹의 바른 길을 찾아 학문의 길에 정진할 것인가(退)하는 양자택일의 문제에도 노심초사하고 있었던 풍운의 계절이었다. 그뿐인가. 율곡은 지난해 9월 혼인을 함으로써 비로소 가장이 되었다.22살의 나이에 정혼을 하였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만혼이었다. 율곡의 절친한 친구였던 성혼이 17살에 벌써 결혼을 하고 처자까지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22살의 나이에야 비로소 혼인하였던 율곡은 그만큼 혹독한 방황의 계절을 보내고 있었던 듯 느껴진다. 게다가 율곡의 정부인이었던 노씨 부인은 어린시절부터 폐질(오늘날의 병명으로는 폐결핵)을 앓아 건강한 몸은 아니었다. 율곡과는 6살의 차이가 있어 혼인할 당시 16살이었으나 매우 병약한 몸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혼례식을 올리고 나서 성혼의 아버지였던 청송 선생에게 보낸 율곡의 짤막한 편지내용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금년 봄에 혼씨(渾氏:성혼을 가리킴)와 함께 공부를 하고자 했건만 아내의 병이 심하여 서울에 올라가지 못함을 한탄할 뿐입니다.” 결혼을 하자마자 한참 신혼생활을 즐길 무렵에 벌써 아내의 병을 걱정하여야 했던 율곡. 그로 인해 아내의 곁을 차마 떠나지 못하고 성주에서 한겨울을 보내야만 했던 율곡. 율곡과 노씨 부인의 결혼생활도 결코 행복한 것은 아니었다. 노씨는 남편 율곡을 극진히 사랑하였으나 둘 사이에는 아이가 없었다. 율곡 자신도 젊은 시절 위와 폐를 앓아 건강이 좋지 못하였으나 아무래도 폐질에 걸려 각혈을 하는 병약한 노씨에게서 아이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인 듯 보여진다. 율곡의 문인이었던 김장생(金長生)이 지은 행장에 의하면 율곡의 나이 43세에 이르러서야 노씨와의 사이에서 딸 하나를 낳았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보면 율곡과 노씨 부인은 어떻게 해서든 두 사람 사이에서 소생을 보기위해 노력했던 것처럼 느껴진다. 노씨 부인 사이에서 소생이 없자 율곡은 그 당시의 관례에 의해서 소실을 얻어 율곡의 나이 39세 때 첫아들 경림(景臨)을 낳고,44세 때에는 둘째아들인 경정(景鼎)을 낳는다. 따라서 율곡의 정실부인이었던 노씨는 소실이 낳는 아들을 지켜보면서 적잖이 마음고생을 했을 것이다. 더구나 43세 때 어렵게 얻은 딸은 낳은 지 얼마 안 되어 잃어버리는 불행을 맞게 된다. 그러면서도 노씨 부인은 소실의 몸에서 나온 두 아들을 언제나 친자식처럼 대하였으며, 율곡의 사후에도 율곡이 그토록 고민하였던 성질 사나운 시어머니를 극진히 모셨으며, 일가일족이 함께 사는 데도 늘 화목을 도모하고 온 집안은 평화로웠다고 한다. 노씨 부인의 이러한 현숙하고 검소한 생활은 물론 아버지 노경린의 엄격한 훈육을 받고 자란 이유 때문이겠으나 시어머니인 신사임당을 본받으려는 의지 때문이었으니, 그런 의미에서 노씨 부인은 또 하나의 신사임당으로 불려질 만한 현모양처인 것이다.
  • [재테크 칼럼] 보험가입에도 효율성을 따져야

    대기업에 다니는 김석환(35) 과장은 연말정산을 준비하다 고민에 빠졌다. 자동이체를 통해 매월 빠져나가는 보험료가 80만원이나 되는 사실을 새삼 깨달은 것이다. 연봉이 4700만원이지만 이 정도면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더구나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는 보장성 보험료의 한도가 연간 100만원뿐이어서 한숨이 나왔다. 김 과장은 보험설계를 다시 하기로 하고 본사에 리모델링을 의뢰했다. 김 과장의 보험 내역을 보자. 본인이 총각 때 가입한 ▲암보험(20년 보장·20년납, 월 4만 5000원), 아내의 ▲암보험과 건강보험(20년 보장·10년납, 각각 월 4만원,4만 5000원), 결혼 직후 주변의 권유로 가입한 본인과 부인의 ▲종신보험(종신,80세 보장·20년납, 본인 15만원, 부인 8만원)이 있다. 또 첫째와 둘째아이의 ▲어린이보험(18세 보장·10년납, 각 월 7만원), 김 과장의 부모로부터 받은 ▲교육보험(23세 보장·10년납, 월 10만원), 한 달 전에 가입한 ▲연금보험(월 20만원)으로 모두 9건, 월 80만원 규모다. 인(人)보험 상품이 보장하는 분야는 크게 사망(일반·재해)과 질병(암, 성인병, 성별 특정질병과 관련된 진단·입원·수술·치료 비용)으로 나뉜다. 이는 보상 형태에 따라 정액보상(암 진단비 2000만원 등)과 실손보상(MRI 촬영비 등 전액)으로 나뉜다. 따라서 모든 보험구성은 적절한 사망·질병 보장의 균형과 함께 정액·실손 보상의 상호 보완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김 과장의 사례는 정액보험 보장에만 치중하고, 각종 검사비용 및 투약, 주사비 등까지 보장되는 실손보험 에 대해선 무시한 행태다. 암, 건강 등으로 세분화된 보험은 종신보험의 특약을 활용함으로써 충분히 보험료를 아낄 수도 있었다. 결론적으로 암보험, 건강보험, 어린이보험을 과감히 정리하고 본인 및 아내의 종신보험에 ‘특약중도부가제도’를 활용하는 게 좋다. 또 ‘통합보험’에 가입, 실손보상의 장점을 살리고 부족한 보장성을 해결할 수 있다. 전 가족 보장성 보험의 총액은 29만원이다. 또 납입만기 시점이 곧 닥치는 교육보험(10만원)은 그대로 유지하되, 한달 전에 가입한 연금은 소득공제를 위해 개인연금저축보험이나 변액유니버설보험(20만원)으로 과감하게 전환할 필요가 있다. 통합보험은 보통 4인가족 가입시 질병·상해 입원비용 보장(3000만원 한도), 통원비용 보장(10만원 한도), 암관련 특약(진단 3000만원, 입원 10만원, 수술 600만원), 성인병 보장(뇌출혈 등 진단 1000만원) 등의 특약을 가족구성원 모두에게 부여해도 월 5만∼6만원이면 가능하다. 손석우 보험컨설팅 KFG 스타지점 부지점장
  • 故이수일씨 고향 완주에 안장

    국정원 2차장을 지낸 호남대 총장 고 이수일(63)씨의 유해가 23일 오후 고향인 전북 완주군 구이면 항가리 선영에 안장됐다. 이날 오전 광주 호남대에서 학교장으로 영결식을 마친 고인의 운구 행렬은 오후 1시쯤 항가리 원항가마을에 도착했다. 유족과 지인, 호남대 관계자, 지역 정치인 등 200여명은 마을 어귀에서 분향, 헌화 등 간단한 노제를 지낸 뒤 마을 뒤편 선산으로 이동했다. 고인의 둘째아들 주용(31)씨가 영정을 들고 장례 행렬 앞에 섰고 호남대 학군단 10여명이 유해를 장지까지 운구했다. 유족들은 최명희씨의 대하소설 ‘혼불’ 10권을 유해와 함께 안장했다. 유족 대표는 “평소 고인이 ‘혼불’을 즐겨 읽었고 세상을 떠나기 전 지인들에게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고 말해 책을 함께 묻게 됐다.”고 말했다. 국민의 정부 시절 국정원 국내 담당 2차장을 지낸 고인은 2003년부터 호남대 총장을 맡아왔으며 최근 도청사건과 관련, 검찰 수사를 받아오던 중 지난 20일 광주 서구 쌍촌동 관사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수도권플러스] 경기도 내년 예산안 9조6000억

    경기도는 11일 총 9조 6375억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을 편성해 도의회에 제출했다. 내년도 예산은 일반회계 7조 8547억원, 특별회계 1조 7828억원으로 올해 본예산 8조 5728억원보다 1조 647억원(12.4%) 늘었다. 주요 분야별로는 경기바이오센터 등 차세대 전략산업 육성사업을 위해 2336억원이 투자되고, 간선급행버스(BRT)시스템 구축에 242억원이 신규 투자되는 등 대중교통 인프라 구축사업에 976억원의 도비가 투입된다. 또 일반가정의 2세 미만 둘째아이 보육비 74억원, 치매·중풍노인 보호시설(50개소) 확충에 78억원을 신규 지원하는 등 고령화 및 저출산문제와 관련한 복지사업에도 2678억원을 투자한다.
  • [11일 TV 하이라이트]

    ●생방송 60분-부모(EBS 오전 10시) 생모에 대한 안타까운 기억을 안고 있는 아이들의 새 엄마가 되어 이들을 가슴으로 키워낸 정영심씨. 큰딸이 5학년, 둘째아들이 1학년일 때 처음 만나 어느덧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살아 온 지 10여년. 가슴으로 낳은 아이들을 키워낸 팥쥐 엄마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와 독특한 자녀교육 노하우를 들어본다.   ●신동엽의 있다!없다?(SBS 오후 7시5분) 만삭인 엄마 뱃속의 태아가 발도장을 찍을 수 있는지 없는지 확인해 본다. 또 산모의 배에 선명하게 찍힌 태아의 발자국을 추적한다. 송은이가 결혼식장에 여간첩처럼 하고 간 적이 있을까, 없을까. 결혼식 기념사진 속의 하객 송은이 모습은 과연 합성된 것일까, 그 진실을 가린다.   ●글로벌 비전(YTN 오후 1시20분) 케냐에서는 남편이 죽으면 가족과 재산에 대한 여자의 소유권이 없어진다. 대신 다른 남자가 가족과 재산을 보호해 주는 관습이 있어 여자는 반드시 재혼을 해야 한다. 이에 따라 여자는 에이즈에 감염될 확률이 높다. 재혼을 거부할 수 있으면 에이즈 감염률을 낮출 수 있고 폭력까지 뿌리 뽑을 수 있다는데….   ●맨발의 청춘(MBC 오후 8시20분) 기석이 체육관을 그만뒀다는 것을 알게 된 경주는 놀란다. 기석은 경주에게 심장병 사실을 말하지 못하고 속만 끓인다. 순옥은 화장지가 없는 화장실에 들어간 화숙이를 보고는 몰래 숨죽여 웃는다. 한편 기석은 경주가 일하는 호텔로 놀러가고, 경주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기석을 대하지만 표정이 굳어진다.   ●청춘 신고합니다(KBS1 오후 7시30분) 입체 고속 기동전의 핵심 부대인 `육군 항공작전사령부´. 헬기를 이용한 항공작전을 수행하여 지상전에서의 하늘을 책임진다. IVY, 춘자, 서지영이 함께한다.`소원수리 프로젝트 행복초소´에서는 상사의 여자친구를 공개 모집하는 병사, 어머니의 행복을 비는 병사 등의 소원이 솔직하게 드러난다.   ●윤도현의 러브레터(KBS2 밤 12시15분) 7집을 마지막으로 활동 중단을 선언한 국민가수 `god´와 지난 시간의 추억을 함께 나누고, 데뷔 이전 힘든 시기를 회상하며 만든 뮤지컬도 선을 보인다. 최근 베스트 음반을 발표한 데 이어 데뷔 25주년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심수봉´은 힙합가수 `부가킹즈´와 함께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를 열창한다.
  • [열린세상] 한국민과 일본국민이 만나야 할 지점/이덕일 역사평론가

    고이즈미 정권의 3차 내각에 문제성 인물들이 다수 포진해 논란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관방장관과 “군대위안부에 강제성은 없었다.”는 망언의 주인공 아소 다로(麻生太郞) 외상이 그런 인물들이다. 아베 신조는 아사히신문 여론조사에서 33%, 마이니치신문의 여론 조사에서도 28%를 획득해 21%에 그친 고이즈미 총리까지 따돌릴 정도로 일본 국민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그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는 만주국 상공대신을 지내다가 종전 후 A급 전범으로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기사회생해 총리가 된 인물이고, 부친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郞) 전 외상도 총리직까지 거의 다가갔다가 1991년 췌장암으로 사망하면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아소 다로 외상의 조부인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전 총리는 1954년 총리 재직시 “다행히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나 덕을 봤다.”는 망언의 주인공이다. 이처럼 현재 활약 중인 일본 극우 세력들은 과거 일본의 해외침략에 일조했거나 그에 동조했던 선조들의 후예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들의 또 다른 특징은 자신들을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로 인식한다는 점이다.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의 원폭 투하를 피해자로 둔갑시키는 도구로 자주 이용하는데, 정작 피폭자 중 약 10%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은 애써 외면하는 데서 그런 인식의 자의성은 쉽게 드러난다. 히로시마의 피폭사망자 중에는 고종의 손자이자 의친왕(義親王) 이강(李堈)의 둘째아들인 이우 공(公)까지 있었다. 일본 국민들의 이런 이중적 역사 인식은 과거의 군국주의 세력을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1946년 1월1일 일왕의 ‘신일본 건설에 대한 조서’, 즉 이른바 일왕의 ‘인간선언’은 ‘신적 권위를 버리고 민주주의 사회·국가의 일원으로 국민과 함께 존재한다.’는 선언이지만 이는 사실상 동아시아와 태평양 일대를 전쟁으로 몰아간 최고 전범에 대한 면죄부였다. 아베 신조의 높은 인기의 배경은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 처리문제에서 강경론을 펼쳤기 때문이다. 자국민이 납치된 비문명적 야만행위에 대한 그의 분노는 이해할 만하지만 그 분노는 일본의 과거 행위에 대한 반성의 토대 위에 서 있을 때만 동아시아 국민들의 공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일본의 보통 국민들이 생각해야 할 점은 그 자신들도 과거 군국주의 세력의 희생자였다는 사실이다.1940년 12월∼1945년 8월에 이르는 태평양전쟁 동안 아시아 각국의 국민들도 큰 고통을 받았지만 평범한 일본 국민들도 큰 상처를 입었다.‘태평양전쟁 동안 아국(我國:일본)의 피해종합보고서(太平洋戰爭我國被害總合報告書)’에 따르면 일본 육군은 114만여명이 전사했으며, 해군은 41만여명, 군인군속은 155만여명, 일반국민은 185만여명이 전사했다. 도합 495만여명이니 대단한 피해가 아닐 수 없다. 더 중요한 점은 이 수많은 사람들이 점령당한 아시아인들의 저주 속에서 죽어갔다는 점이다. 오늘날 일본의 평범한 국민들이 생각해야 할 점은 왜 자신의 부친과 오빠, 형들이 이역만리 타국에서 저주 속에 죽어가야 했는가 하는 점이다. 그들을 전쟁의 광기로 내몬 일본 군국주의 세력에 그 모든 책임이 있다. 곧 일본의 군국주의는 아시아의 모든 시민들과 일본의 평범한 시민들이 함께 싸워야 할 공동의 적인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한국의 건강한 시민과 일본의 보통 시민들이 만나는 것, 이것이 현재 일본이 보여주고 있는 우려스러운 진로에 대한 근본적인 대응일 것이다. 이덕일 역사평론가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양그룹(2)-대잇는 가족경영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양그룹(2)-대잇는 가족경영

    “재계 랭킹 몇 위 어쩌구 하는 언어의 마술에 홀려 방만한 기업경영을 해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고 도리어 나라 발전에 걸림돌이 되는 그런 기업은 되지 않았다.” 김상홍 삼양그룹 명예회장의 자서전 ‘늘 한결 같은 마음으로’에 나오는 글이다. 김 명예회장의 심정은 삼양그룹 경영의 핵심을 그대로 드러낸 말이기도 하다. 올해로 81년째를 맞는 삼양그룹은 흔히 ‘돌다리도 수없이 두드려 본 뒤 건너가는 기업’이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우보(牛步)경영’ ‘내실경영’ ‘보수경영’ ‘정도경영’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세계적으로 기업 평균 수명이 30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저력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수식어의 이면에는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지 못해 성장동력을 놓쳐 재계 50위권으로 처져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함께 담겨져 있다. ●역대 정권과 긴장관계, 성장경영 꿈도 못 꿔 삼성석유화학 허태학 사장은 강연때마다 삼양사의 사례를 들곤 한다. 허 사장은 “삼양사가 일제시대와 해방 이후 국내 최고의 기업 중에 하나였지만 적극적인 경영을 하지 못해 중견기업으로 뒤처졌다.”며 삼양식의 경영방식에 부정적 평가를 내린다는 게 주위의 전언이다. 그러나 삼양그룹의 시각은 이와는 다르다. 삼양사는 역대 정권과 갈등 관계를 유지하느라 회사를 크게 키울 수 없었다고 반박한다. 실제로 삼양사는 이승만 대통령 재직시 창업주 김연수 회장의 형인 ‘인촌’ 김성수씨가 부통령까지 지내며 이 대통령의 라이벌로 활동해 집중 견제를 받았다. 김 창업주는 1951년 제당공장을 짓기 위해 울산에 부지를 확보했지만 정부가 공장 공사대금으로 활용할 외화 사용 승인을 3년이나 늦게 내줘 고초를 겪기도 했다.3공화국때도 인촌이 창간한 ‘야당지’ 동아일보를 지원하느라 정부의 눈 밖에 나 있었다. 정부의 금융지원 같은 특혜는 꿈도 꾸지 못했다는 게 삼양그룹측의 주장이다. 삼양사 문성환 부사장은 “60∼70년대 급성장한 기업들의 성장동력은 정치권과 야합해 무차별적인 차입경영에 있었다.”며 “그러나 삼양사는 역대 정권과 긴장관계를 유지해 정경유착에 나설 형편이 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전통기업을 묵묵히 지켜온 2세 기업인 이런 안정 지향적인 기업 경영은 외환위기(IMF)때 빛을 발했다. 부채비율이 높았던 대부분의 기업은 무너졌지만 삼양그룹은 그때나 지금이나 탄탄한 재무구조를 유지하고 있다.2004년 12월 현재 삼양그룹의 매출액은 2조 7180억원에 머물러 있지만 부채는 8537억원으로 부채비율 60%를 유지하고 있다. 같은 기간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삼양사는 매출 8902억원, 부채 2799억원, 부채비율 40%다. 이런 이유로 삼양그룹은 지난 9월 재정경제부와 신산업경영원이 주최하는 재무경영종합대상을 수상했다. 삼양그룹이 튼실한 경영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데는 김상홍(83) 명예회장의 공이 크다. 김 명예회장은 1956년 34세에 삼양사 사장에 취임했다. 부친 김연수 회장으로부터 회사를 물려받은 것이지만 80년이나 넘게 기업을 온전히 지켜온 ‘수성’(守城)이 그의 최대 업적이다. 김 명예회장이 우리나라 대표 기업을 지켜온 데는 어렸을 때부터 부친으로부터 철저하게 받은 경영수업 덕이 컸다. 창업주는 1944년 일본 와세다대에 재학 중이던 김 명예회장을 만주로 불러 삼양사가 운영하던 매하구 농장에서 일을 시켰다. 사장 아들이라고 특혜를 베풀지 않고 농장 직원들과 똑같이 숙식하고 생활하도록 지시했다. 그는 해방 이후 고국으로 돌아와서는 호텔 경영인의 꿈을 꾸기도 했다. 이때 창업주는 “무슨 일이든 성공해 맨 윗사람이 되려면 우선 그 분야의 제일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하면서 기초를 익혀야 된다.”며 조선호텔에서 접시닦기와 객실담당(벨보이)부터 맡도록 권했다. 이후 1947년 제헌의원이던 나용균씨의 추천으로 수도경찰청(내무부 치안국) 경위로 특채돼 경찰에 입문했다. 그는 4년간 경찰관으로 복무하다 1952년 큰아버지인 김성수씨가 부통령직에서 사임하자 총경직에서 퇴직했다. 이때부터 김 명예회장은 경영인으로서 길을 걷기 시작했다. 당시 창업주는 장남 상준씨를 비롯해 둘째 상엽, 넷째 상돈씨에게는 해리염전을 포함한 ‘삼양염업사’를 맡겼다. 김 창업주가 직접 경영하는 삼양사는 셋째인 김 명예회장과 다섯째 상하씨가 일을 하도록 교통정리를 했다. ●밑바닥부터 배워라 김 명예회장은 부친에게 받았던 경영수업이 혹독하리만큼 철저했다고 회고한다. 회사의 맨 밑바닥 일부터 배우라고 지시했는데 주산, 부기, 기장은 물론 고용노무작업, 구매자금조달 등 실무 업무부터 맡아야 했다. 김 명예회장은 일본 와세다대, 상하 회장은 서울대를 졸업했지만 상업고교 출신처럼 주산을 열심해 배워야 했다. 이런 전통으로 인해 삼양그룹은 사무직 신입사원이 입사하면 우선 공장에서 현장 연수를 하는 것으로 회사생활을 시작한다. 김 명예회장은 50세가 넘어서도 창업주 앞에서는 의자에 마주 앉는 일조차 삼갔다고 한다. 부친을 지근 거리에서 모셨지만 “아버지 그림자도 안 밟겠다.”며 어려워했다. 지금도 사무실에 부친의 흉상을 두고 ‘무언의 조언’을 듣고 있다고 말할 정도다. 이처럼 혹독한 ‘문하생’ 생활을 보낸 김 명예회장은 1950년대 제당사업을 전개할 때는 부친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설탕 영업의 골간을 만들었다.70년대 제당업이 정상에 오르자 경영 다각화의 일환으로 금융업에 진출, 삼양종합금융을 인수했다. 그러나 그는 삼양종합금융은 물론 1대 주주였던 전북은행에도 삼양사 직원을 단 한명도 파견하지 않는 등 자율과 원칙을 지킨 경영인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김 명예회장은 삼양그룹의 장수비결에 대해 “욕심내지 않고 우리가 잘하는 것만, 그것도 능력이 닿는 범위내에서만 사업을 해왔다.”며 “정말 힘든 일이긴 했지만 우리가 잘하는 제조업체에만 집중하면서 넘치지도 않고 부족함도 없는 중용정신을 지켜왔다.”고 말했다. 이처럼 그의 경영철학은 ‘제조업을 통해 건전하게 돈을 벌어야 하고, 수익성이 좋다고 아무 사업이나 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집약된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맡았던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부회장을 함께 맡았던 김 명예회장에 대해 “과묵 침착하며 절제를 아는 선비, 중용의 참뜻을 실천해온 외유내강형의 단아한 신사”라고 평가했다. 김 명예회장은 1996년 동생인 상하씨에게 그룹회장직을 넘겨주고 자신은 명예회장으로 물러 났다. ●삼양의 제2탄생을 마무리 김상하(80) 그룹회장은 상홍 명예회장과 함께 창업주로부터 물려받은 회사를 성장 궤도에 정착시킨 주역이다.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김 그룹회장은 1949년 삼양사에 몸 담은 뒤 줄곧 부친과 상홍 회장을 도왔다.1952년 일본 도쿄사무소 첫 주재원으로 파견돼 삼양사 공장설계와 전문가 채용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경영일선에 뛰어들었다. 상홍 명예회장과 상하 회장은 형제간이긴 해도 서로 닮은 점보다는 다른 점이 더 많았다. 상홍 회장이 조용히 지내기를 좋아하는 반면 상하 회장은 적극적인 사회활동을 했다. 상홍 회장이 사람을 가려서 만난다면 상하 회장은 이런저런 사람을 폭넓게 사귀는 성격이다. 취미도 상홍 회장은 단조로움을 즐겼던 반면 상하 회장은 스포츠와 여행을 좋아했다. 때문에 그룹 경영에 있어서는 꼼꼼한 상홍 명예회장이 관리를 맡고, 활동적인 상하 그룹회장이 영업전선에 나서는 등 형제간 역할분담을 이뤘다. 실제로 상하 회장은 유창한 일어 실력과 깨끗한 인품으로 재계에서는 국제 감각이 뛰어난 대표적인 일본통으로 꼽혔다. 특히 1988년부터 12년간 최장수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역임하는 등 많게는 100여개의 대외 직함을 수행할 정도로 전방위 활동을 벌였다. 상하 회장은 이런 왕성한 대외활동을 바탕으로 제조업 중심으로 삼양의 성장을 진두지휘했다. 폴리에스테르 사업의 경우 10년에 걸친 증설을 이끌어 국내 최대 폴리에스테르 업체로 위상을 높였다.1980년대에 집중된 화학, 의약 등의 사업 다변화에도 주도적 역할을 수행했다. 또한 폭넓은 대외 교분을 토대로 미쓰이, 미쓰비시화학과의 각종 기술제휴 및 합작이 추진돼 삼양화성, 삼남석유화학을 설립했다. ●외유내강의 기업인 상하 그룹회장은 소탈하면서 모가 없는 성품이지만 그룹경영에 있어서는 진퇴를 명확히 제시하는 ‘외유내강형’의 기업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90년대 국내 폴리에스테르 업체들이 신·증설을 활발하게 진행했지만 그는 화학섬유 사업의 한계를 감안해 대규모 증설 프로젝트를 중단했다. 또한 섬유본부에서 신사업으로 오랫동안 검토해 샘플 제작까지 끝낸 폴리에스테르 필름 사업도 사업의 구조적인 경쟁력과 취약성을 들어 사업을 중단하는 어려운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그는 상홍 명예회장을 모시는 데도 깍듯했다. 상홍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는 물러났지만 세세한 부분까지 수시로 의견을 구했다. 상하 회장은 서울 성북동에 형집과 담장 하나 사이를 두고 함께 살고 있다. 담장 중간에 쪽문을 해놓고 수시로 오갈 수 있는 ‘핫라인’까지 설치해 놓고 있다. 상홍 명예회장은 자서전에서 “동생과 집을 나란히 짓고 살게 된 것은 동생이 스스로 땅을 함께 사고 집도 순서대로 나란히 짓고 살아온 덕”이라며 “아우는 본래 2층집을 짓고 싶었는데 순전히 나 때문에 일조권을 염두에 두고 단층집을 짓고 산다.”며 돈독한 형제애를 소개했다. 상하 회장은 2004년 3월 상홍 회장의 장남이자 조카인 김윤 삼양그룹 부회장에게 ‘대권’을 물려줬다. 아들인 원씨는 삼양사 사장에 나란히 취임했다. 이로써 1975년부터 30년간 지속된 2세 형제경영에 이어 3세 사촌 형제간 공동경영 시대의 막이 올랐다. ●숨은 주역들 김 명예회장과 그룹회장은 삼양그룹이 81년의 전통을 이어온 데는 동생들과 매제의 역할히 컸다고 회고한다. 김 명예회장은 “나는 아우들과 함께 회사를 경영하면서 크고 작은 일에 신중을 거듭했다. 아우들과 수시로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선친께서 잡아놓은 틀을 잡는 데 힘썼다.”고 말했다. 김 명예회장은 회사 발전에 공을 세운 일등공신으로 지난 2002년 작고한 김상응 막내 동생을 손꼽는다. 서울대 외교학과와 미국 유타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상응씨는 96년부터 삼양사 회장으로 재직하며 외환위기 등 창업 이래 최고의 시련기를 뚝심으로 돌파하는 경영 수완을 발휘했다고 떠올린다. 부인 권명자(53)씨와 4남 1녀인 자식들은 남편이 죽은 뒤 미국으로 이주해 살고 있다. 김 명예회장은 또 막내 여동생 희경(66)씨의 남편 김성완(66)씨의 공헌도 높이 평가했다. 김씨는 미국 유타대 교수로 생체고분자 및 약물전달시스템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김 교수는 김 명예회장에게 “기업이 발전하려면 연구개발에 많은 투자를 해야 하는데 장래성이 좋은 분야는 의약계통에서 찾아야 한다.”는 점을 수차례 강조했다. 결국 김 명예회장은 김 교수의 의견에 따라 1993년 충남 대덕 연구단지에 ‘삼양그룹연구소’를 설립했다. 이 연구소는 삼양그룹이 중점사업으로 키우고 있는 화학, 식품, 의약부문의 성장동력을 제공하고 있다. ●이제는 공격경영 김윤(53) 회장은 부친 상홍 명예회장, 상하 그룹회장과 같이 바닥부터 경영수업을 받았다.1979년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LG그룹 계열인 반도상사에 취직했다. 자신의 회사를 경영하기에 앞서 다른 회사 직원으로 영업전선을 두루 체험해 보라는 부친의 의도였다. 이를 두고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은 “김상홍 회장님의 큰자제가 2년간 반도상사에 근무한 일이 있었는데 내게는 그런 사실을 전혀 귀띔도 해주지 않았다.”며 “나는 훗날에야 그 사실을 알고 한쪽으로는 좀 서운하면서도 또 한편으론 상홍 회장님의 인품을 새삼 느꼈다.”고 회고했다. 김 회장은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MIIS(Monterey Institute of International Studies)에서 MBA 석사를 취득한 뒤 곡물회사인 루이스 드레푸스에서 2년간 근무하며 국제적인 경영감각을 익혔다. 또 삼촌인 상하 그룹회장처럼 도쿄지점에서 2년간 주재하며 삼양그룹의 해외진출 사업을 손수 챙기며 경영인으로서의 자질을 다져 나갔다. 고국에 귀국한 뒤에는 울산공장 기술수출팀을 시작으로 이사(90년)-상무(91년)-대표이사 전무(93년), 대표이사 사장(96년)-대표이사 부회장(2000년) 등을 거치며 착실히 경영수업을 쌓았다. 2004년 삼양사 회장에 취임한 김 회장은 차분하고 안정적인 경영 스타일로 삼양의 전통을 중시하는 한편 보수적인 관행을 하나씩 제거해 나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 회장은 취임 일성으로 “삼양그룹은 보수적이고 안정 위주의 경영전략을 구사해 성장이 정체돼 있었다.”며 “앞으론 사고방식을 진취적으로 전환해 그룹의 성장을 도모하겠다.”는 포부를 밝혀 재계의 주목을 받았다.2010년까지 2조원을 투자해 매출액 6조원을 달성하고 자본수익률 20% 이상으로 끌어올린다는 청사진도 제시했다. 이를 위해 화학, 식품, 의약, 신사업 등 4대 부문을 핵심 성장 사업군으로 설정했다. ●다시 세계로 진출 2004년에는 중국 상하이에 전기전자, 부품소재 등을 생산하는 삼양공정소료 유한공사를 설립, 창업주인 할아버지가 만주에 진출한 데 이어 68년 만에 중국에 현지법인 형태로 재진출했다. 향후 중국을 기점으로 인도, 중남미 등 생산기지를 다각화해 글로벌 네트워크를 형성, 세계적인 전문 화학회사로 육성한다는 복안이다. 또한 식품부문을 총괄하는 통합 브랜드로 ‘큐원’(Qulity No.1)을 출범시켰다.47년간 사용해 오던 대표 브랜드 ‘삼양설탕’을 과감히 버리고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식품소재기업으로 성장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김윤 회장의 이런 자신감은 1996년부터 삼양사 사장과 부회장을 거치며 길러졌다. 과감한 추진력은 외환위기를 거치며 발휘됐다. 사장 시절이던 1998년 사업실적이 저조한 금융업과 무선통신사업을 포기하고 계열사를 섬유·식품·화학 등을 핵심 사업군으로 재편했다. 특히 삼양사의 주축이었던 폴리에스테르 사업부문을 과감히 정리,2000년 SK케미칼과 통합법인 휴비스를 설립했다. 이후 삼양그룹 직원들은 단 한명의 구조조정과 한 푼의 임금삭감 없이 경영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김 회장은 이런 경영능력을 인정받아 지난 19일 서울대 산학협력재단이 주최한 ‘제1회 한국을 빛낸 CEO’에 이명박 서울시장, 정운찬 서울대 총장,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 허동수 GS칼텍스 회장, 이지송 현대건설 사장 등과 함께 뽑혔다. 또 2001년 전경련 부회장에 선임됐고 한·일경제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3세에도 공동경영 상하 그룹회장의 장남인 김원(48) 사장은 선대 회장들처럼 사촌 형인 김윤 회장을 도와 삼양그룹을 이끌고 있다. 그러나 3대 경영의 주역들은 선대 회장들과는 달리 서로 상반된 성격을 지녔다. 윤 회장은 부친인 상홍 명예회장이 내성적인데 반해 활발한 활동으로 재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반면 원 사장은 전방위 대외활동을 펼친 부친 상하 그룹 회장과는 달리 묵묵히 사촌형을 챙기고 있다. 원 사장은 연세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유타대에서 재료공학과 산업공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윤 회장처럼 도쿄지점 부장을 거쳐 삼양이 의약부문으로 사업을 확장하던 1993년 개발부장으로 자리를 옮겨 의약사업의 기초를 닦았다. 이후 연구개발 부문을 관장하면서 이사, 상무로 승진한 뒤 1997년 연구개발본부장(전무)에 오르는 등 ‘테크노 경영인’으로 각인되고 있다.1999년 부사장 승진에 이어,2000년 8월 대표이사 사장에 선임됐다. 이공계 출신으로 매사에 치밀하며 경영분석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외 영업에 치중했던 부친과 달리 관리쪽에 무게가 실리는 경영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다. ●결혼도 자식 뜻대로 상홍 명예회장과 상하 그룹회장은 창업주처럼 자식들의 결혼과 관련해 정략 결혼을 요구하기보다는 본인들의 의사를 최대한 들어주는 스타일을 지켰다. 상홍 명예회장의 장남 김윤 회장은 친구들 모임에서 부인 김유희(46)씨를 처음 만났다. 김 회장은 이화여대를 졸업한 김씨를 보고 첫눈에 반해 데이트를 신청했다고 한다. 김 회장은 김씨가 상당한 미모를 갖추고 있는데다 집안 대대로 친척들이 이대 출신이 많다는 점도 맘에 들었다고 고백한다. 김 회장은 부인을 웬만한 행사에는 동행할 정도로 ‘부인사랑’이 남다르다. 지금도 사석에서 김 회장의 18번인 ‘만남’을 두 부부가 함께 부른다고 한다. 김원 사장도 친구들끼리의 모임에서 부인 배주연(41)씨를 만나 열애끝에 결혼에 성공했다. 반면 김량(51) 삼양제넥스 사장과 김정(46) 삼남석유화학부사장은 중매로 배필을 만났다. 김량 사장은 김정렬 전 국방부 장관의 중매로 부인 장영은(46)씨와 혼인했다. 상홍 명예회장과 김 전 장관의 집안이 오래전부터 친해 자연스레 연결됐다. 김 전 장관은 영은씨의 부친인 장지량 전 공군참모총장과 막역한 사이어서 혼인을 주선했다. 김정 부사장은 어머니 박상례(75)씨가 자영업을 하는 친구의 소개로 안혜원(39)씨를 만났다. 안씨 부친이 안상영 전 부산시장이어서 흔쾌히 혼담이 오갔다. jrlee@seoul.co.kr ■ 막강한 손녀사위들 김연수 삼양사 창업주는 부인 박하진씨와의 사이에 7남6녀 13명의 자녀를 두었다. 김 창업주는 2세들보다 3세들의 혼사를 통해 혼맥을 이뤘다. 재계, 정계, 언론계, 법조계 등 매우 다양하다. 이 가운데 손녀사위들은 대학교수, 의사, 경영인 등의 전문 직업군을 이루며 삼양가(家)의 명망을 잇고 있다. 둘째아들인 김상협 전 국무총리는 1남3녀를 두었는데 3명의 사위가 모두 교수인 것이 이채롭다. 김 전 총리는 형제 중에서 공부를 가장 잘했다고 한다.5년제였던 경복중학교를 4년 만에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대(당시는 도쿄제대) 법학부 정치학과를 나올 정도의 수재였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김 전 총리는 학자 사위들을 좋아했다. 김 전 총리의 장녀 명신(58)씨 남편 송상현(65)씨는 서울대 법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송씨는 송진우 전 동아일보 사장의 손자다. 둘째딸 영신(56)씨는 정성진(58) 서울대 공대 교수와 결혼했다. 정씨는 정태섭 전 변호사의 아들이다. 막내딸 양순(52)씨의 부군 이양팔(59)씨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다. 또 상홍(83) 명예회장의 장녀 유주(56)씨도 윤영섭(59)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와 혼인했다. 창업주의 넷째딸인 정유(73)씨는 외동딸인 원경(43)씨를 한정수(48) 전 충남대 교수와 결혼시켰다. 손녀사위들의 ‘의사 파워’도 만만치 않다. 김 창업주의 둘째딸 상민(78)씨는 둘째딸인 이정현(41)씨를 백완기(47) 인하대병원 흉부외과 의사와 인연을 맺어 줬다. 김 창업주의 셋째딸 정애(75)씨 장녀 조경미(47)씨의 부군 주춘희(47)씨도 캐나다에서 병원을 운영 중이다. 그러나 삼양가가 전문 경영인 집안이어서인지 손녀사위들도 전문 경영인이 많다. 김 창업주의 장남 상준씨의 장녀 정원(62)씨의 남편 김선휘(68)씨는 삼양염업사 부회장으로 재직하며 처가의 가업을 잇고 있다. 둘째딸 정희(58)씨는 김준기(62) 동부그룹 회장과 결혼했다. 또 셋째딸 정림(57)씨도 윤대근(59) 동부아남반도체 대표이사 부회장이자 동부그룹 소재분야 부회장과 결혼해 유달리 ‘동부그룹’과 인연이 많다. 창업주의 둘째 김상협 전 총리가 교육자 집안으로 꾸렸던 것에 비해 장남 상준씨는 전형적인 경영인 가족을 형성한 셈이다. 넷째 상돈(81) 삼양염업사회장은 외동딸 희진(45)씨를 오광희(49) 전 나이스 정보통신 전무와 결혼시켰다. 다섯째 상하(80) 그룹회장도 외동딸 영난(44)씨를 송하철(45) ㈜ 항소 사장과 혼인시켰다. 송씨는 송삼석 모나미 회장의 막내다. jrlee@seoul.co.kr ■ 계열사 사장들 ‘전문적 경험’ 풍부 삼양그룹의 현 계열사 사장들은 경영전면에 나선 창업주의 3세들을 지원하는 것에 역할이 주로 맞춰져 있다. 분야별로 전문적 경험이 풍부해 경영 승계가 무리없이 이뤄지도록 돕고 있다. 박종헌(66) 삼양사 사장은 40년동안 영업, 해외업무, 인사, 재무, 기획분야를 두루 거쳤다. 광주제일고와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한 박 사장은 법학도답게 매사 논리적이고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그룹을 이끌고 있다. 이영훈 대법원장과 서울법대 동기동창이다. 김량(51) 삼양제넥스 사장은 김상홍 명예회장의 차남으로 경방유통에서 16년간 재직하며 사장으로 퇴임할 때까지 유통부문의 핵심 역량을 쌓아왔다.2002년 삼양제넥스에 입사해 제조업 유통부문의 경영 노하우를 성공적으로 접목시키고 있다. 김 사장은 창업주의 손자이지만 직원들과 자주 소주잔을 기울이며 대화를 즐기는 소탈한 성격의 소유자다. 김경원(62) 삼남석유화학 사장은 전주 폴리에스테르 공장 설립때부터 중앙연구소 소장, 화성본부장, 삼양화성 사장 등 화학, 섬유, 폴리카보네이트 등을 두루 지낸 전문 경영인이다. 폴리에스테르 부문의 대가로 ‘폴리머 김’ 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김 사장은 엔지니어 출신으로 ‘연구통’이다. 송창기(63) 삼양중기 사장은 인사관리분야에서 15년간 일해온 ‘인사통’이다. 총무부장, 인사부장, 관리본부장을 지냈다. 송 사장은 삼양중기에서 기계부문 4개사로의 분사와 주물사업부문 합작사 설립을 성공리에 추진했다. 박호진(59) 삼양화성 대표는 도쿄지점을 거쳐 전주공장에서 20년 동안 현장 경험을 쌓았다. 지난 3월 대표로 선임돼 사원간에 가족적인 유대감을 높이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이규한(58) ㈜삼양밀맥스 대표는 판매와 현장을 두루 거친 식품부문 전문가다. 경영과 마케팅 감각을 두루 갖췄고 비전팀을 만들어 내부 혁신활동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변수식(55) 삼양데이타시스템 대표는 전사적자원관리(ERP)팀장,IT전략팀장, 경영혁신(PI)팀장 등 프로세스 이노베이션 업무를 주로 맡았다. 변 대표는 IT부문의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한 ‘IT통’이다. 김상익(59) 삼양웰푸드 대표는 경리부, 삼양제넥스 경영지원팀장을 거치는 등 25년 동안 경리와 관리를 맡았다.2004년 대표로 선임돼 원칙과 현장을 중시하는 현장 밀착형 경영을 중시한다. jrlee@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고침 서울신문 17일자 15면에 게재된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양그룹편에서‘송진우 전 동아일보사장의 아들인 상현 서울대 법대교수’는 ‘송 전 사장의 손자’이기에 바로잡습니다.
  • 엄마의 파업…美주부 “가족들 가사 안도와”

    미국의 40대 주부가 가족들이 집안일을 거들어주지 않으며 자신의 기여에 고마워할 줄 모른다며 ‘가사 파업’을 선언하고 집 앞 잔디밭에 나앉았다. 인디애나주 프랭크포트에 사는 레지나 스티븐슨(41)은 지난 18일(현지시간)부터 ‘엄마는 파업중’이라고 쓴 팻말을 들고 앞마당에 종일 앉아만 있다고 AP통신이 20일 보도했다. 남편과 7∼19세의 4자녀 가운데 두 딸과 둘째아들, 며느리, 돌도 안 지난 손자까지 함께 살고 있는 스티븐슨은 “아이들이 착하고 남편도 종종 도와주지만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하다. 가족들이 스스로 정리하고 내게 감사하는 법을 배울 때까지 청소, 빨래, 요리 등 집안일을 일절 하지 않을 것”이라고 ‘파업 사유’를 밝혔다. 스티븐슨은 17일 하루 동안 남편의 출퇴근을 돕고 병원에 다녀오느라 무려 160㎞를 운전했다는 점을 애써 강조했다. 그는 몇년 전부터 파업에 돌입할 수 있음을 가족들에게 경고해 왔다고 덧붙였다. 집 앞을 지나는 운전자들은 손을 흔들고 경적을 울리며 ‘주부 파업’에 지지를 보냈으며 친정어머니도 “외손주들을 사랑하지만 그들도 우리 딸의 노고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고 ‘저널 앤드 쿠리어’는 전했다. 며느리 역시 “나도 집안 청소를 거들지만 하루만 지나면 엉망진창이 된다.”며 “시어머니를 비난할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다.”고 거들었다. 파업이 시작되자 가족들은 전보다 집안일을 더 많이 하고는 있지만 그는 가족들의 삶의 질이 결정적으로 위협받기 전까지는 파업을 이어나갈 각오를 밝혔다고 통신은 덧붙였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서울이야기] (26) 여성의 문화·여가활동

    [서울이야기] (26) 여성의 문화·여가활동

    # 사례 1 세 살된 아이를 키우는 가정주부 김미란(30)씨는 친구와 전화통화 후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미혼인 친구들이 모처럼 모여 음악회를 가기로 했다며 함께 할 수 있는지를 물어왔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지휘자에 즐겨듣는 곡들로 구성된 공연이었다. 결혼전에는 곧잘 공연장이나 미술관을 찾아다녔던 김씨이다. 문화예술에 별 관심이 없던 남편도 이런 김씨 덕분에 연애시절에는 공연이나 전시장에 종종 갈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결혼 후 아이 낳고 키우느라 직장까지 그만 둔 김씨는 공연장과 미술관은커녕 동네 가까운 영화관에 가 본 기억도 아물아물하다. 김씨의 남편은 간혹 직장 동료들과 함께 화제작인 영화를 보러가기도 하는데 회사에서 영화비를 주고, 관람 후에는 동료들과 한잔하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란다. ●서울 여성의 문화생활 수준 서울시에 거주하는 만 20세 이상 성인남녀 조사에 의하면 여성들은 남성에 비해 여가문화활동에 대한 관심은 더 크나, 현재 자신의 여가문화활동에 대한 불만족은 남성에 비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서울시정개발연구원,2004년). 서울 남성과 여성 모두 문화행사에 자주 참여하는 편은 아니다. 연극의 경우 서울 여성의 26%가 일년에 한편 이상 연극을 보며, 서울 남성은 이보다 약간 낮은 22%이다. 미술전시회의 경우, 서울 여성의 27%가 1년에 한번 이상 전시장을 찾은 적이 있으며, 남성은 이보다 적은 21%가 전시장을 갔다. 음악 공연의 경우 장르별로 대중음악공연을 일년에 1회 이상 본 서울 여성은 19%, 서울 남성은 20%로 별 차이가 없다. 뮤지컬의 경우 서울 여성의 12%가, 서울 남성의 10%가 일년에 일회 이상 관람하였다. 클래식, 오페라는 이 보다 저조하여 서울 여성의 8%, 서울 남성의 7%가 일년에 한번 이상 클래식, 오페라를 관람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시민이 가장 적게 접하는 공연은 무용으로 서울 여성의 3%, 서울 남성의 4%만이 일년에 한번 이상 무용 공연을 관람했다. 서울 시민이 가장 손쉽게 접하는 문화활동은 역시 영화 관람으로 여성과 남성 74%는 일년에 한편 이상의 영화를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화행사 참여도만을 볼 때 서울 여성은 서울 남성에 비해 근소하나마 문화생활을 더 향유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서울 여성의 60%는 왜 현재의 문화여가생활에 불만족한 것일까. # 사례 2 토요일 오후 집안일을 겨우 끝낸 이미경(42)씨는 서둘러 쇼핑길에 나섰다. 중학생과 고등학생 아이를 둔 이씨는 맞벌이를 하고 있다. 결혼 후 집 장만을 위해 힘들기는 했으나 맞벌이를 했는데, 아이들에게 들어가는 사교육비가 이제 만만치 않아 당분간 맞벌이를 계속해야 할 것 같다. 올해 들어 주 5일제 근무가 시작되었으나, 이씨는 오히려 주말에 더 바빠졌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최근 병원에 입원한 시어머니에게 들어가는 비용도 늘어나고 있다. 주 5일제가 되면서 집안일을 봐주던 파출부를 그만 오게 하고, 대신 자신이 주말에 밀린 집안일들을 하고 있다. 시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한 이후로는 일요일마다 병문안을 간다. 만약 여가시간이 나면 집에서 TV를 보거나 잠을 자면서 휴식을 취한다. 앞으로 시간과 돈에 여유가 생기면 여행을 가고 싶고, 연극도 보러가고 싶다. ●서울 여성의 여가생활 양식 서울 시민은 남녀 모두 약 60%가 여가 시간을 주로 TV 시청과 잠자는 것으로 보내고 있어 일반적으로 문화생활과는 거리가 멀다고 말할 수 있다. 서울 시민이 문화예술행사에 참여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남녀 모두 시간이 없어서이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자녀와 부모를 돌보느라, 또는 돈이 없음을 이유로 드는 경우가 많은데, 특히 30∼40대 여성의 경우 그러한 경향이 더하다.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여가 늘어나면서 어린 아이가 있는 취업여성들이 문화여가생활에서 더욱 소외되는 경향이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04년 생활시간조사 결과에 의하면 맞벌이 가구의 주부는 남편에 비해 평일 가사노동시간이 약 1시간 많으며, 취업 주부의 가사노동 시간은 주말에 오히려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미취학 자녀가 있는 취업여성은 평일 9시간 50분을 일하고, 일요일에도 6시간 56분을 일하고 있어, 경제활동과 가사노동에 대한 이중 부담을 크게 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가활용방법에서 여성과 남성간에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가사와 스포츠 활동이다. 여성의 경우 여가시간에 46%가 주로 가사를 하며, 스포츠를 주로 한다는 여성은 4%에 불과하다. 반면 남성은 여가시간에 주로 가사를 한다는 경우는 13%이며, 스포츠를 주로 하는 사람은 15%였다(통계청,2002). 서울 여성의 대부분은 여가를 주로 집에서 TV를 보거나 휴식, 가사 등으로 소극적으로 현재 보내고 있으나, 여가를 여행이나 스포츠 레저활동, 공연관람으로 적극적으로 보내기를 희망하고 있다. # 사례 3 이번 토요일 구민문화예술회관에서 동호인 그룹 전시회를 갖게 될 박정란(35)씨는 마음이 약간 들떠 있다. 첫 전시회라 긴장도 되지만, 성취감과 함께 생활에 활기가 생겼다.2년전 구민문화예술회관이 완공되면서 여러가지 강좌가 개설됐다. 마침 평소에 박씨가 하고 싶던 유화 실기가 교육과정에 있었다. 그러나 초등학교 취학전인 둘째아이를 마땅히 맡길 곳이 없어서 포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올해 초 여성이 구민문화예술회관 관장으로 오면서, 구민문화예술회관 내에 어린이 놀이터와 독서실 공간을 만들었다. 박씨가 유화 실기를 하는 동안 둘째아이는 어린이 놀이터 내에서 보내고 있다. 저렴한 수업료에 강좌시간에는 아이까지 돌봐주는 구민문화예술회관이 없다면 자신에게 이 처럼 투자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주부들이 집에서 자신의 작업공간을 확보하기 어려운 것을 배려하여 구민문화예술회관에서는 작지만 공동작업실을 제공해 주었다. 공동작업실을 꾸준히 이용하던 몇몇 여성들이 서로 용기를 북돋워 주면서 작업을 하다 뜻을 모아 전시회를 열기로 했다. 구민문화예술회관에서는 이들에게 흔쾌히 전시공간을 대여해 주기로 했다. 박씨는 첫 전시회 작품을 자신의 할머니와 어머니의 삶을, 그리고 자신의 자화상으로 구상했다. 자신이 누구인지 작품으로 표현하는 과정을 통해 박씨는 새로운 삶의 자신감이 생겨남을 느끼고 있다. # 사례 4 요즘 최정아씨 가족은 대화가 많아졌다. 가족들이 최근 각자 좋아하는 문화행사에 참여하는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어제 구민문화예술회관의 국악 공연을 보고 오셨는데, 구민문화예술회관에서 하는 국악 공연은 빠지지 않고 이제 가겠다고 하신다. 중학교 다니는 딸은 오늘 저녁 구민문화예술회관에서 하는 청소년 연극제에 가기로 되어있다. 내일은 초등학교 아들이 좋아하는 만화 영화를 상영한다고 한다. 저녁 시간에 요가반이 개설되면서 직장생활을 하는 최씨 같은 여성들도 드디어 구민문화예술회관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구민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리는 일요일 가족음악회에는 온 가족이 함께 한다. 최씨가 특히 구민문화예술회관을 좋아하는 이유는 여성을 배려해 시설물이 설계됐기 때문이다. 우선 여자화장실이 넓고 아이를 동반한 여성을 배려하고 있다. 가족음악회 중간 휴식시간에 이곳은 다른 문화시설과 달리 여자 화장실의 줄이 짧은 편이다. 그리고 어린아이를 위한 놀이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휠체어를 탄 채로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공간도 있고, 통로도 계단이 아닌 나지막한 경사로 되어 있다.1층 로비에는 안락의자가 놓여 있고, 음료를 파는 작은 매점도 있다. 구민문화예술회관 주변은 사방으로 탁 트인 전망에 아름답지만 밝은 조명으로 편안한 기분이 든다. 여름에는 매점이 밖으로 나와, 저녁 늦게까지 한다. 이런 점 때문에 최씨도, 딸아이도 저녁 시간에도 안심하고 구민문화예술회관을 이용하고 있다. ●여성친화적인 문화시설과 운영 방식 1998년 스톡홀름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문화정책회의에서는 인간의 존엄성을 위해 문화권(Cultural Rights)이 인권만큼 본질적으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여성의 경우 문화예술을 향유하거나 문화 예술적 재능을 발휘하는 데 장애요인이 많으므로 여성의 문화기관 접근성, 여성의 문화예술활동을 지원 장려하는 정부 차원의 문화정책을 촉구하고 있다. 그럼 여성친화적인 문화시설과 문화정책으로 어떤 사례들이 있는가를 알아보기로 하자. 우선 여성들은 가깝게 이용할 수 있는 지역사회 문화시설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서울 여성의 경우 서울 남성에 비해 지역사회 문화시설인 구민회관, 공공도서관, 구민체육센터, 구민문화예술회관, 문화의 집 등을 더 많이 이용하고 있다. 문화시설을 이용할 때 여성들은 남성에 비해 대중교통이나 도보로 가는 경우가 많다. 지역사회 문화여가시설이 교통이 불편하거나 외진 장소에 있다면 여성들은 남성에 비해 시설 이용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크다. 이런 점에서 최근 서울시가 목표로 하고 있는 지역문화예술회관 건립 지원, 소규모 공공도서관 확충사업, 학교시설에 체육스포츠센터나 문화공간을 확보하는 학교시설 복합화 사업은 여성친화적인 문화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지역사회 문화시설을 여성이 많이 이용하는 만큼, 시설 설계나 운영이 이를 고려해서 건립될 필요가 있다. 최근 여성경제활동이 증가하고 있는 만큼, 이들 직장 여성을 위한 운영 방안이 필요하다. 영국의 글래스고시는 시민조사를 통해 여성의 72%가 직업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을 위한 프로그램이 낮 시간에 제공되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이 조사 결과를 토대로 시에서는 취업여성들을 위한 저녁 스포츠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보급하고 있다. 일부 시설에서는 저녁시간 스포츠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기혼취업여성들을 위해 다림질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여자 청소년과 여성은 남성에 비해 문화여가시설의 쾌적함과 안전에 대해 민감한 편이다. 따라서 시설이나 주변환경이 쾌적하거나 안전한 느낌이 들지 않을 경우, 이용을 꺼리게 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스포츠 시설의 경우 탈의실 같은 남녀별 이용시설 표식을 분명하게 하거나, 시설 안팎으로 조명을 밝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영국에서는 여성과 여자 청소년들이 선호하는 체육시설을 조사하고, 여성친화적 시설운영지침을 만들기도 하였다. 유럽, 캐나다, 미국의 문화시설에서는 전통적으로 무시되거나 과소평가 받아온 여성예술가나 여성 작품을 발굴하고 이를 알리는 사업을 하고 있다. 미국의 국립여성미술관은 여성 예술가의 작품을 전문적으로 소장한 세계 최초의 여성 전문 미술관이다. 이 미술관에서는 다양한 가족 문화예술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으며, 어린 관람객에게 여성 예술가의 공헌에 대해 교육하며, 다양한 예술분야에서 성공한 여성들과 여자 청소년 여성을 연계하는 멘토링 프로그램도 하고 있다. 이밖에 문학, 음악, 영화, 무용 등의 분야별로 여성 예술가 중심의 행사와 교육프로그램을 열고 있다. 유네스코는 한 사회의 문화적 창의성은 문화 다양성에서 나오므로 여성 예술가와 여성 작품을 재평가하며, 여성의 창작 활동을 지원하는 문화정책에 각 정부가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여성친화적인 문화시설 운영과 관련해 유럽이나 미국, 캐나다의 경우 정책적으로 문화시설의 운영위원이나 고위직의 경우 여성과 남성의 참여율이 50대50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동작구에는 여성을 위한 문화복지시설인 서울여성플라자가 있다. 이곳은 여성들이 문화 및 교육활동에 참여하는 동안, 아이들은 그들을 위한 놀이터에서 재미있게 지낼 수 있다. 이곳에서는 여성 관련전문자료를 찾아볼 수 있다.2003년부터 서울여성플라자에서는 유쾌한 치맛바람이란 주제로 서울여성문화축제를 매년 열고 있다. 2005년 5월에는 유쾌한 치맛바람 가족風(풍)을 주제로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문화행사를 했다. 여성문화예술활동에 관심이 있거나, 또는 아이와 함께 온 가족이 문화생활에 빠져 들고 싶다면 서울여성플라자의 행사일정을 찬찬히 챙겨 본다면 유용할 것이다. 서울여성플라자의 프로그램은 홈페이지(www.seoulwomen.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신경희 서울시정개발연구원 도시사회연구부 연구위원
  • [인간시대] 유인촌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

    [인간시대] 유인촌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

    지난 9월 14일 오후 9시 서울 마포구 동교동 주택가 골목길에 낯익은 인물이 학생들이나 들고 다닐 법한 가방을 X자로 메고 나타났다. 낯선 음악가들의 곡들이 담긴 콤팩트디스크(CD)가 가득 담긴 가방에다….20대에게나 어울릴 것 같은 옷차림으로 봐선 50을 넘긴 사람이라고는 생각지 못할 일이었다. 이곳 저곳에서 “어, 유인촌이다.”라는 말이 들려왔고,20여명의 젊은이들이 몰려들어 너나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긱 라이브하우스’에서 열리는 인디그룹 ‘오 브라더스’의 공연을 보러온 이명박 서울시장과 함께한 자리였다. ●“대표직은 정치적”은 오해 서울문화재단 유인촌(53) 대표이사를 12일 남산 자락에 자리한 중구 예장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가 총연출한 청계천 새물맞이 축제를 떠올리는 듯 ‘파아란 점퍼’ 속에 하얀 티셔츠 차림을 한 그는 “최근 몸살을 심하게 앓았는데 쉴 짬을 내지 못하고 늘 피곤에 찌들어 있다.”면서 “하늘이 일을 하라는 운명을 내게 주신 것 같다.”고 웃었다. 이 시장과의 인연을 물어봤다. 지난해 봄 부임하기 전부터 문화단체 등으로부터 그의 등용을 둘러싸고 ‘정치적’이라는 말이 오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답은 2년 전이나 지금이나 ‘네버’(Never·절대 아니다)이다. “돌아가신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먼저 인연이 있어요. 이 시장께서 들으면 서운하시겠지만, 이 시장만 보고 이 일에 뛰어든 것은 아닙니다. 이 시장 역시 워낙 냉철해 단지 잘 아는 사람이라고 쓸 분은 아니죠.” 텔레비전 드라마 ‘전원일기’를 ‘정주영 회장’이 빠지지 않고 시청한 게 연이 닿은 계기였다고 한다. 자주 제작진과 출연진을 불러 저녁을 샀다는 것이다. 이 자리에 당시 현대건설 회장인 이명박 시장도 함께했다. 그러나 조순·고건 전 시장 재임 때부터 장묘개혁위원회 위원으로 일했기 때문에 서울시와 인연은 훨씬 이전부터 싹텄다. 중앙대 출신으로 모교 강단에서 후배들을 가르치며 아트센터 소장을 맡는 등 문화와 관련된 일을 했고, 극단 운영 등 실물에도 밝다는 점을 눈여겨봤는지 이 시장이 초대 대표이사로 발탁했다는 게 주변 이야기다. “탤런트 일에 전념하면 돈도 생기고 명예도 챙길 수 있는데, 왜 오해까지 사가며 이 일을 하겠어요.” 아직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진행하느라 밤이면 방송국으로 달려가고 재단 대표이사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느라 24시간이 빠듯하고 늘 피곤해 있다는 그는 아침 6시면 일어나 스트레칭과 줄넘기로 몸을 푼다. “배우라는 직업에 매달릴 때에는 직업의 특성상 생활이 매우 불규칙했어요. 한번 공연에 들어가면 밤새는 일도 잦았고요. 그 때는 내가 할 일만 하면 되고 자유롭게 생활해서 특별히 스트레스도 없었죠. 그러다 처음으로 짜여져 있는 조직생활을 해보니 느낀 점이 많습니다. 매일 아침 9시에 출근해 오전에는 주로 회의와 업무를 보고, 오후에는 전시장, 저녁에는 공연장 순회와 관련 인사들을 많이 만나요.” 유 대표는 공연기획 등 밖에서 일했을 때에는 관청에서 지원하는 게 푼돈이라는 생각으로 차라리 주지나 말지라는 불평도 했지만 이젠 이해된다고 했다. 공무원들은 안팎으로부터 이런저런 오해를 받기 싫어 ‘소액 다수’식으로 지원금을 내려보낸다는 설명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회 제공 “1000만명이 사는 서울에 문화예술 여건은 열악하기 짝이 없습니다. 경제적 사정이 나빠져 먹고 살기도 팍팍한데 무슨 문화냐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아요. 배 부른 뒤에야 눈돌릴 분야라는 사고방식이 발전을 늦추는 것입니다.”“생활에 활기가 있어야 다른 분야의 발전도 이끌 수 있기 때문에 문화예술은 아주 중요합니다. 문화예술은 삶의 밑바닥이자 밑천을 이루는 보석상자입니다. 작으나마 역량을 쏟아부어 서울만의 문화 브랜드를 마련하는 바탕을 다지고 떠나겠습니다.” 그가 밝히는 구호는 ‘모두 다 함께 즐기는 문화’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주는 것이다. 유 대표는 요즘 마라톤에 한창 빠져 있다. 남산 산책로 입구에서 석궁(石弓) 터인 석호정, 국립극장을 돌아오는 왕복 7㎞ 코스를 수요일마다 뛴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이마저도 빠듯한 일정 때문에 잘 안된다며 눈을 비볐다. 강단으로 돌아가는 일이 늦어져 제자이자 후배들에게 가장 미안하고, 다음으로는 가족들에게 마음과 달리 잘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그는 아들 둘을 뒀다. 부인은 소프라노 강혜경(46) 중앙대 성악과 교수로 서로를 격려해주는 학계의 동반자이기도 하다. 유 대표는 몇년 전 홀아비 신세를 자청하기까지 했다. 부인을 이탈리아로 유학 보내고 아들을 키운 것이다. 서로의 예술세계를 키워주기 위해 애쓰는 점이 인정돼 정부로부터 ‘명예 평등부부’로 선정된 적도 있다. ●연극서 악역 처음 맡아 지금 문화재단 업무 외에 가장 힘쓰는 일은 극단 10주년을 기념하는 연극 준비다. 오는 12월 9일부터 18일까지 서울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 무대에 톨스토이 원작 ‘어느 말(馬) 이야기’가 올려지는데 그는 사람이 아닌 말 역할을 맡게 된다. 문화예술 30년 인생을 걸다시피 한 연극은 퇴임 직후인 내년 6월 가질 생각이다.‘햄릿 2006’에서 그는 형을 독살하고 형수를 빼앗는 악한 클로디어스 역을 맡는다. 드라마 전원일기에서 마음씨 좋은 양촌리 김회장댁 둘째아들 역할을 하는 등 코흘리개도 알 정도로 유명한 그는 “아마 악역을 맡기는 처음이 아닌가 싶다.”면서 “관능적인 인물로 묘사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儒林(450)-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26)

    儒林(450)-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26)

    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26) 그런 의미에서 맹자가 공자의 적자였다면 양자 역시 노자의 적자였다. 양자 역시 백가쟁명시대에 있어 노자의 ‘무위사상’을 통해 난세를 구원하려던 치열한 선각자였던 것이다. 열자의 ‘설부편(說符篇)’에는 이러한 양자의 사상가로서의 고뇌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어느 날 양자가 사는 이웃집의 양 한 마리가 달아났다. 그래서 그 이웃 사람은 자기 집 사람들을 다 동원하여 양을 찾으러 나서도록 한 후 양주에게도 찾아와 사람을 보내달라고 도움을 청하였다. 그러자 양주는 이렇게 물었다. “허허, 양 한 마리를 찾는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필요하단 말이오.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웃 사람이 대답하였다. “양이 갈림길이 많은 길 쪽으로 달아났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들은 양자는 갑자기 근심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하루종일 말도 하지 않고 웃지도 않았다. 이때 제자 맹손양(孟孫陽)이 여쭈었다. “선생님, 양 한 마리는 그렇게 중요한 물건이 아닙니다. 또 선생님 소유의 양을 잃어버린 것도 아닌데 어찌 말도 않으시고 웃지도 않으십니까.” 하지만 양자는 여전히 가만히 있을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맹손양은 자신의 선배인 심도자(心都子)를 찾아가 앞서 있었던 일을 말하자 역시 궁금해진 심도자는 맹손양과 함께 다시 양자를 찾아와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하며 자문을 하였다. “선생님, 옛날에 삼형제가 제나라와 노나라에 유학 가서 같은 스승을 모시고 유가의 도를 배우고 돌아왔습니다. 아들들이 돌아오자 그 아버지는 ‘너희들이 배운 것이 무엇이냐.’하고 물었습니다. 그때 삼형제는 ‘인의에 대해서 배웠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아버지가 다시 물었습니다.‘그러면 도대체 무엇이 인의인가.’ 아버지의 질문에 큰아들은 ‘자기 몸을 아끼고 명예를 뒤로 돌리는 것’이라고 대답했고, 둘째아들은 ‘자기 몸을 죽여서 명예를 이루는 것’이라고 했으며, 셋째아들은 ‘자기의 몸과 명예를 다 보전하는 것’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이처럼 세 사람의 대답은 각각 다르지만 모두 한 유가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옳고, 누가 그른 것입니까.” 제자 심도자의 질문을 받은 양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옛날 바닷가에 사는 어떤 어부가 자맥질을 잘해서 많은 이익을 얻었다. 즉 바다 속으로 들어가 자맥질을 하여서 온갖 고기와 보물을 얻어 큰부자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자 그에게 자맥질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떼를 이루었다. 하지만 그 사람 중 태반이 자맥질을 배우다가 물에 빠져 죽었다. 그러면 내가 묻겠다.” 양자는 심도자에게 물었다. “그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배우기 위해서 그 어부를 찾아간 것이냐. 물에 빠져 죽는 것을 배우기 위함이었더냐. 아니면 자맥질하는 법을 배워 바다 속에 들어 있는 온갖 보물을 꺼내기 위함이었더냐.” 스승의 질문에 심도자가 대답하였다. “그야 물론 자맥질을 배워 바다 속에 들어 있는 온갖 보물을 꺼내기 위함이었겠지요.”
  • “셋째 낳으면 500만원 줍니다”

    농촌 지역 지방자치단체들이 끝없이 추락하는 인구감소를 막기 위해 눈물겨운 출산 장려에 나서고 있다. 파격적인 출산 장려금과 축하금에서부터 양육비 지원까지 경쟁적으로 출산 장려 인센티브를 내놓고 있다. 29일 경남도 등 지방자치단체 등에 따르면 경남 함안군은 올부터 지역에서 출생한 셋째 아이를 대상으로 출산장려금 500만원씩을 지원중이다. 현재까지 셋째아이를 낳은 부모 31명에게 출산장려금을 전달했다. 셋째아이 출산장려금은 1차로 200만원씩을 지급하고 이후 6개월마다 100만원씩 나눠 지급하고 있다. 이 같은 지원책은 넷째부터도 똑같이 적용되며 셋째아이가 쌍둥이면 1인당 500만원씩 별도 계산해 모두 1000만원을 지급한다. 군은 이와 별개로 상반기 중에 둘째아이를 낳은 부모 46명에게도 각 50만원씩을 지급했다. 남해군도 지난 4월부터 출산장려금으로 300만원씩을 지급하고 있으며, 하동군은 110만원, 의령군은 100만원씩 지원하고 있다.특히 고성군은 셋째아이의 보육료 절반씩을 지원하고 있다. 보육원에 다니는 만 4세부터 7세까지가 대상이다. 고성지역 보육료가 월 17만∼20만원선인 점을 감안하면 1인당 모두 400만∼480만원씩 지원받는 셈이다. 경북 군위군도 지난 99년부터 실시한 출산장려금을 10만원에서 지난해 50만원으로, 올해 다시 100만원으로 대폭 올렸다. 인구 1만명대로 전락할 위기에 놓인 영양군도 지난해 전국 최초로 영유아지원조례를 제정하고 올부터 첫째 아이 출산시 매월 3만원, 둘째는 5만원, 셋째는 10만원씩 1년간 지원하고 있다. 이밖에 영주시는 학기당 174만원의 농자녀 학자금 지원과 출산시 72만원의 육아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울릉군은 첫째, 둘째, 셋째 가리지 않고 낳기만 하면 무조건 50만원씩의 출산장려금을 지급하고 있다. 이들 지자체는 출산장려금 외에도 전문 산부인과에 산전·산후 진찰을 비롯해 초음파, 기형아검사, 산모 영양제 지급, 영유아 기본접종 등도 덤으로 지원하고 있다. 지자체 관계자들은 “출산장려금 지원은 급격한 인구 감소를 막기 위한 차원”이라며 “인구 늘리기를 위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갖은 묘안을 짜내고 있다.”고 말했다.대구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자녀와의 대화 ‘이해’와 ‘훈계’ 80대20 지켜라

    자녀와의 대화 ‘이해’와 ‘훈계’ 80대20 지켜라

    “엄마 아빠랑은 말이 안 통해!”아이들이 툭 하고 내뱉는 말에 부모는 쉽게 분노하고 상처받곤 한다. 하지만 부모들은 자녀를 과연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자녀와 마음을 터놓고 대화를 시도한 적은 얼마나 될까.TV와 인터넷 발달로 점점 대화가 단절되기 쉬운 환경이 되고 있지만, 부모와의 대화는 자녀를 건강하게 키우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다.‘자녀와 효과적으로 대화하는 법’을 연세대 의대 소아정신과 신의진 교수의 도움말로 알아본다. 자녀와의 대화는 사회생활의 다른 대화와는 다르다. 관계가 태생적으로 수평적이지 않다는 점과 아이의 인생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 때문이다. 인생의 ‘멘토(현명하고 신뢰할 수 있는 상담자, 스승)’로서의 부모가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모든 것의 시작이 ‘대화’라고 한다. 자녀와의 대화는 왜 중요하며, 어떤 점을 주의해야 할까. ●부모가 가진 편견을 깨라 아이의 능력과 인격은 대화로써 완성된다. 어떻게 대화하느냐에 따라 아이의 능력을 개발해 줄 수도 있고, 인격 형성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흔히 “우리 아이는 말을 참 잘 들어요.” 하고 자랑하는 부모들이 있다. 하지만 이는 돌려 생각하면 일방적인 의사소통이 계속되고 있다는 뜻이다. 대화가 원활하지 않을 경우 아이는 심하게 반항하며 이상행동을 하기도 하지만, 도리어 부모의 말을 따르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스스로 억압하기도 한다. 학술용어로 ‘순종하는 병’이라고 진단하는데, 이 경우 자유로운 생각과 행동을 하지 못하고 결국 커 가면서 문제가 드러나게 된다. 수평적·상호적인 의사소통이 필요한 이유다. 아이를 대할 때 부모들이 쉽게 가지는 편견도 문제다.‘내가 하는 말은 다 아이 잘 되라고 하는 말이다.’‘아이는 무조건 내 말을 들어야 한다.’ 하는 생각을 은연중 하는 부모가 많은데, 이 때문에 대화를 망치는 경우가 잦다. 또한 말로써 하는 것만이 대화가 아니라는 점도 중요하다.“예쁘다.”고 말은 하면서도 표정이나 감정표현이 그렇지 않다면 그 대화는 실패하는 것. 아이와의 대화에서는 비언어적인 부분이 70% 이상을 차지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얘기다. ●자녀 이해하기가 중요하다 자녀와 대화가 잘 되고 있지 않다면 일단 그 책임은 99% 부모에게 있다고 인정해야 한다. 부모는 자녀가 태어나 보아온 세상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의 감정에 둔감하거나 잔소리를 참지 못하지는 않는지, 아이가 자신의 말을 어기는 것을 못견뎌하거나 자식에게 하소연을 일삼지는 않는지 돌아보는 것이 시작이다. 또한 ‘내 아이를 바른 길로 인도해야 한다.’는 절대적인 책임감이나 날마다 같은 얘기를 되풀이하는 버릇도 대화를 가로막는 장벽이다. 자녀와 대화할 때 지켜야 하는 원칙 중 하나가 ‘80대20의 법칙’이다. 아이를 이해하는 대화와 아이에게 부모의 가치를 전달하는 대화가 80대20의 비율을 이루어야 한다는 뜻. 예를 들면 아이가 “심심해”라고 했을 때 “놀아줄 친구가 없어서 정말 심심하겠구나.” 위로할 수도 있고,“계획을 세워 공부하라.”고 조언을 할 수도 있다. 이런 대화는 둘 다 꼭 필요하지만, 후자가 너무 강조되면 안 된다는 것. 오히려 모든 대화에서 자녀를 이해하는 대화가 80% 정도가 돼야 나머지 20%의 조언·훈계·설득·가르침이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체면을 살려주고 적당히 말을 삼킬 것 자녀와의 대화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우선 아이의 체면을 살려줘야 한다. 잘못을 지적하는 데 급급해 아이의 체면을 손상시키면 부정적인 자아상을 갖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추궁하며 몰아붙이는 것보다는 함께 해결책을 의논하는 인내가 필요하다. 때로는 적당히 말을 삼킬 필요도 있다. 반복되는 잔소리보다 말없이 지켜보다가 던지는 말 한마디가 훨씬 잘 먹힌다. 아이의 태도를 늘 관찰하는 것도 중요하다. 대화를 피한다든가 의도적으로 말을 듣지 않고 반항하는 것은 아이가 보내는 무언의 메시지다. 이에 대한 해결없이 대화는 무의미하다. 부모가 잘못했을 때는 미안하다는 말을 아끼지 않는 것도 교육적 효과가 크다. 자녀에게 부모의 감정을 충분히 ‘설명’은 해 주되 감정적인 언행은 금물이다. 가족회의나 휴대전화·편지 등을 통해 대화 시간을 확보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연령별 효과적 대화 이렇게 자녀의 성장 단계에 따라 대화하는 방법도 달라져야 한다. 영아, 유아, 초등 저·고학년의 시기별 특성을 파악해 대응하는 것이 핵심. 연령별 자녀와의 대화법을 소개한다. ●0∼4세-대화의 바탕 만들기 아직 두뇌가 발달하지 않고 말도 잘 못하는 이 시기 아이들과 대화다운 대화는 힘들다.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부모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말을 배우면서 토막말로 감정 표현을 시작하면 우선 그것을 북돋워줘야 한다.“나 화났어. 엄마 미워”라고 하더라도 “그렇구나. 생각을 말해줘 고마워”라고 일단 들어준다.“왜?”냐고 다그치면 아이들은 자신이 옳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표현을 꺼리게 된다. 혼내는 사람보다는 “기분이 나빴구나.” 하고 인정해 주는 사람에게 아이는 더 쉽게 이야기를 계속한다. 섣부른 훈계는 금물이다. 왜 그래야 하는지 설명도 없이 “예의바른 아이가 돼라.”는 식으로 훈계를 하면 ‘예의’라는 개념조차 분명치 않은 아이는 감정만 상한다. 그보다는 엄마가 행동으로 보여줄 때 아이들은 금방 따라한다.‘엄포’도 결코 효과 없다. 무서움에 의한 행동은 일시적일 뿐이며, 장기적으로는 악영향이 크다. 자아가 싹트는 시기로, 아이의 감정과 행동을 인정하고 자율성을 갖게 해 주는 것이 향후 대화 양상에 큰 영향을 미친다. ●5세∼초등 2학년 이 시기 아이들은 나름대로 규칙을 지키려 애쓰고 감정조절 능력도 어느 정도 완성된다. 또한 잘 한 일에 대해 자랑하고 싶어하는 것이 특징이므로 이를 적절히 살려주어야 한다. 예를 들어 아이가 동생에게 무언가를 양보하고 “엄마, 나 잘했지?”라고 했을 때 “형이 양보하는 게 당연하지.”라고 하기보다는 “참 착하구나.”라고 ‘공치사’를 해 주면 아이는 자신감과 함께 엄마와의 유대감을 가질 수 있다. 지적능력을 개발해 주는 대화도 중요하다.“왜 그렇게 하고 싶은데?”“그러면 어떻게 될까?” 하는 식으로 자꾸 물으면 아이는 스스로 논리를 세우고 해결책을 찾게 된다. 특히 모르는 것을 물어올 때가 절호의 기회다. 함께 백과사전과 인터넷을 뒤지며 지적 호기심을 채워 준다. 이 시기 아이들은 때때로 거짓말을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악의는 없다. 잘못하고는 혼날까봐 불안한 마음에 거짓말을 하는 것. 지나치게 다그치면 더 불안해져 습관적인 거짓말로 이어질 수 있다. 거짓말의 이유를 찾아내고 부모가 솔선해 절대 거짓말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초등 3학년∼사춘기 부쩍 어른스러워지는 아이들이 자신만의 생각을 가지면서 부모로부터 배운 가치를 의심하기 시작하는 시기다. 때때로 부모에게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기도 한다. 이 때 ‘무조건 억누르기’는 절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고 초연하게 대처할 것. 아이가 어렸을 때 혼났던 일 등을 뜬금없이 끄집어내 따져묻거나 한다면 은연중 아이에게 상처가 남았다는 증거다. 잘 들어주고 사과할 것이 있으면 사과하고 설명한다. 아이가 이렇게 불만을 표현하는 것은 오히려 대화가 열려 있다는 뜻이므로 반갑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할 때는 반드시 책임을 지운다.“난 자유롭게 살고 싶어요.”라고 한다면 “그로 인해 일어나는 일은 네 책임”이라는 것을 분명히 해 둔 뒤 실천한다. 등교시간에 깨우거나 준비물을 챙기거나 하는 엄마의 구속에서 ‘자유롭게’ 해 주면 아이는 곧 지각 등으로 불편을 체험하면서 자신의 논리가 틀렸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무엇보다 사춘기의 변덕이나 친구들과 세계를 인정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부모 외의 조언자를 만들어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신의진 연세대 의대 교수 경험담 “상담과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입장에서도 엄마로서 아이들과 대화하는 것은 매우 어렵더군요. 이 점을 인정하고 노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소아정신과 전문의로 ‘현명한 부모들이 꼭 알아야 할 대화법’이라는 책을 쓴 신의진 연세대 의대 교수는 “문제가 있는 아이일수록 부모와의 대화만이 아이를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사춘기에 접어든 큰아들과 잠시 겪은 갈등이 대화의 중요성에 주목한 계기”라면서 “무조건 통제하려 하지 말고 아이를 이해하려는 자세가 기본”이라고 지적한다. 신 교수는 큰아들 경모(14)가 초등학교 6학년 무렵쯤부터 자신의 말에 심하게 화를 내곤 해 당황했다고 한다. 곰곰이 이유를 생각한 결과 ‘일하는 엄마’로서 아이와의 대화가 항상 “숙제 다 했니.” 라는 식의 통제를 내포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때부터는 ‘쓸 데없는 통제는 안 하기’를 원칙으로 삼았다. 통제가 필요한 일은 과외선생님 등 다른 사람을 시키고, 대신 함께 놀러 갈 얘기며 엄마의 일에 대한 얘기를 많이 했다. 그러자 조금씩 말이 통하고 지금은 원만한 관계를 회복했다. 둘째아들 정모(10)는 사소한 거짓말이 문제였다. 유달리 엄마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성격 탓에 잘 한 일만 얘기하려 하고 불리한 얘기는 좀처럼 안 하려고 드는 것. 그래서 신 교수는 ‘탐정처럼 슬슬 꼬드기는’ 방법을 썼다. 아이의 말을 하나씩 앞뒤를 맞춰가며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하는 식으로 무심한 듯 물어가면 결국 ‘이실직고’ 한다는 것. 그럴 때 감정을 억제한 채 잘못은 지적하고 해결책을 함께 찾았다. 신 교수는 “상담을 해 보면 부모의 무지로 아이들을 분노시키거나 언어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도 많다.”면서 “아이는 몰아붙인다고 개선되는 것이 아니므로, 감정에 못이겨 아이를 혼내고 싶을 때 그것을 수첩에 쭉 적어 나중에 읽어보는 식으로 부모의 태도를 돌아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어떻게 지내세요] 두번 사기당하고 농부로 정착한 탈북 귀순자 김만철씨

    “내레 이제 농부가 됐시요. 우리 집 닭들은 아주 토실토실 합네다.” 김만철(65)씨. 지난 1987년 1월 청진의대에서 의사로 근무 중 11명의 가족을 이끌고 탈북, 귀순했다. 특히 소형선박 청진호를 이용, 일본과 타이완을 거쳐 25일 만에 남녘땅을 밟은 각본없는 드라마는 북한판 엑소더스를 예고하며 당시 엄청난 화제를 모았다. 또한 귀순 일성으로 “따뜻한 남쪽나라에 가고 싶어 왔다.”고 말해 온 국민의 심금을 울렸다. 그의 표현대로 김씨 가족들은 귀순후 남쪽의 따뜻한 섬인 남해에 정착했다.‘평화의 집’이라는 찾아가는 선교병원을 세워 선교활동에 나서는 등 제2의 삶을 착실히 살았다. 그러나 주변에서는 그들을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뜻하지 않게 두번의 사기극에 휘말려 전 재산이나 마찬가지인 ‘평화의 집’이 경매처분되는 시련을 겪었다. 결국 김씨 가족은 5년전 따뜻한 남쪽에서 북쪽인 경기도 광주시의 한 산골짜기로 이사했다. 수소문 끝에 김씨의 집을 찾았다. 비포장 도로로 꾸불꾸불 이어지는 외딴 곳. 입구에는 고추를 심은 텃밭이 군데군데 보였고, 토종닭 수십마리가 초가을 햇살 아래 평화롭게 떼지어 다녔다. 때마침 김씨는 정장차림으로 네살된 외손녀와 함께 인근 병원에 막 다녀오는 길이었다. 이유를 물었더니 외손녀의 변비 때문이란다. 부인 최봉례(60)씨는 “이런 누추한 곳에 다 왔느냐.”고 하면서 인터뷰를 마다하고 고추밭으로 나가버린다. 탈북 당시 11명의 가족들은 어떻게 변했을까. 우선 슬하의 3남2녀 소식부터 들었다. 큰아들 광규(40)씨는 홍익대 미대를 나와 연애결혼했다. 아이 셋을 낳았으며, 모 공기업 홍보실에서 근무 중이다. 큰딸 광옥(36)씨는 화물차 운전기사인 남편, 자녀 둘과 경기도 일산에서 행복하게 지낸다. 둘째아들 명일(33)씨는 모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노동을 하며 밑바닥 인생을 경험하라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의자 만드는 공장에 다닌다. 부인은 동해출신으로 연애결혼했으며, 자녀 둘을 낳아 경기도 수원에 살고 있다. 둘째딸 광숙(31)씨는 지난 95년 강원도 화천 지역을 통해 탈북한 한용수(31)씨와 결혼, 딸 하나를 낳고 경기도 역곡에서 지낸다. 셋째아들 광호(29)씨는 아직 미혼으로 미국에서 고등학교와 대학(UCLA)을 나와 현재 서울대 대학원에서 천체물리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김씨는 “18년전 탈북 당시 식구 11명에서 지금은 스물대여섯으로 늘었다. 손자·손녀를 보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라고 했다. 그러나 가족 전체가 모일 수 있는 것은 1년에 한번꼴이어서 귀순 당시에 견주면 격세지감. 이어 “지난 세월, 남한에서 살아오는 동안 사기를 당하는 등 혹독한 적응기를 거쳤다.”면서 여생을 땅의 진리를 터득하며 살겠단다. 김씨는 남해에서 가지고 온 미니 포클레인으로 직접 집을 짓고 텃밭을 일궜다. 또 한마리, 두마리 키우기 시작한 닭이 지금은 100여마리로 늘었다. 고추농사는 닭들이 헤집고 다니는 바람에 실패를 거듭했고 대신 그걸 먹고 자란 닭들만 살쪘다고.“기왕이면 완전 토종인 우리 닭들이나 선전을 좀 잘 해달라.”며 웃는다. 북한에 있는 가족 얘기가 나오자 “위로 형들이 몇분 있는데 어렵게 산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어떻게든 돕긴 도와야 하는데….”라며 말끝을 흐린다. 김문기자 km@seoul.co.kr
  • 8일개봉 영화 ‘가문의 위기’

    코미디 영화를 즐겁게 볼 수 있으려면 다음 두가지 항목 가운데 하나가 해결돼야 한다. 우선, 작품 자체의 코미디 순도가 흠잡을 데 없이 높아야 할 것. 이건 말할 것도 없이 가장 바람직한(?) 코미디의 충분조건이다. 만약 이 조건이 충족되지 못했을 때 남은 방법은 딱 하나. 관객 스스로가 ‘따지지 않고 웃어주리라’ 감상자세를 적극형으로 바꾸는 것이다. 8일 개봉하는 국산 코미디 ‘가문의 위기’(제작 태원엔터테인먼트)는 후자 쪽이다. 신원준·김원희가 ‘웃기는 커플’이 되어 고군분투하는 영화는, 웃음을 흡수하려는 적극형 관객에게는 크게 나무랄 데 없는 코미디일 듯하다. 재기발랄하게 허를 찌르는 고급 유머를 기대하긴 힘들지만, 질펀한 유머를 이끌어내려 낮은 포복으로 고군분투하는 자세가 오히려 순진한 매력으로 다가오는 작품이다. ‘가문의 영광’의 속편 격인 영화의 이야기 얼개는 그대로 전편의 연속구도를 띤다. 여수의 소문난 조폭 집안이 명문대 법대생을 사윗감으로 들어앉히는 과정의 우여곡절을 담은 게 1편이었다면, 이번엔 역할 전환극이다. 여수의 조폭 명가 백호파의 두목 홍덕자 여사(김수미)가 가업을 물려줄 맏아들 장인재(신현준)의 신부감을 물색하다, 후보 며느리로 폭력배 검거 전담인 여검사(김원희)를 만나면서 온집안이 뒤죽박죽이 되고마는 줄거리. 영화는, 쉼없이 잔재미를 쏟아내는 ‘캐릭터 백화점’을 연상케 한다. 김원희가 모처럼 스크린에 얼굴을 내밀었다는 점이 무엇보다 신선한데다 백호파의 바람둥이 둘째아들 역의 탁재훈, 등에 거대한 문신을 새기고 세 아들에게 쩌렁쩌렁 호령하는 홍여사 역의 김수미 등이 코미디의 질감을 풍성하게 일구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 그러나 영화는 극단적 평가를 이끌어낼 여지를 가졌다. 맺힌 데 없이 술술 터져나오는 웃음은 시종 통쾌하지만, 난무하는 욕설과 남발되는 섹스 코드에는 자주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한다. 공형진, 정준호, 정준하, 김효진, 신이 등 끝없이 이어지는 ‘카메오 스타 퍼레이드’는 관객들이 딴생각할 겨를없이 스크린에 시선을 고정하게 만든다. 지난해 공포영화 ‘인형사’로 데뷔했던 정용기 감독의 두번째 장편.15세 이상 관람가.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우리 아이 좋은 공부습관 이렇게

    우리 아이 좋은 공부습관 이렇게

    요즘 엄마들은 스스로 자녀의 ‘매니저’라 부른다. 입시제도를 꿰뚫고 발빠르게 학원 정보 등을 수집해 자녀에게 최상의 학습 환경을 만들어 준다는 뜻이다. 하지만 막연히 반복적으로 ‘공부하라.’고 강요하거나, 학원을 억지로 보내는 식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공부를 습관처럼 하도록 해야 스스로 알아서 공부를 하고 효과도 배가된다는 것이다. 자녀에게 좋은 공부습관을 들여주는 방법을 알아본다. 자녀의 성적이 오르기를 바라는 부모는 아이가 책상 앞에 앉아만 있으면 일단 마음이 놓인다. 그러나 이렇게 성적에 일희일비하고 조급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장기적으로 볼 때 자녀의 실력을 키워주는 데 도움이 안된다고 한다.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자연스럽게 깨우쳐 주고 공부와 친숙한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근본적인 방법이다. 자녀들에게 좋은 공부습관을 들여주기 위해 부모가 알아야 할 점들을 전문가들에게 들어봤다. ●동기부여·목표설정이 가장 중요 가장 중요한 것은 ‘왜 공부를 해야하는지.’를 알려주는 것이다. 동기 부여다.“좋은 대학을 나와야 출세한다.”는 식의 무조건적 동기 부여가 아니라 “네가 좋아하는 컴퓨터게임을 잘 하기 위해서는 어떤 공부가 필요할까.”“그렇게 좋아하는 게임을 만드는 개발자가 된다면 얼마나 즐거울까.”하는 식으로 구체적인 동기를 넌지시 알려주는 식이다. 고려대 교육학과 박도순 교수는 “스스로 공부하고 싶은 마음을 갖도록 하는 ‘내적 동기’ 부여가 가장 중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때때로 상벌과 같은 외부 자극도 필요하다.”면서 “칭찬이 가장 좋은 동기유발 요소”라고 설명했다. 성과만을 놓고 다그치거나 다른 아이와 비교하지 말고 세심하게 관찰해 적절한 칭찬을 해 주면 흥미와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 또 공부를 하면서 스스로 성취감과 보람을 맛보게 하면 “공부란 즐거운 것”이라는 인식을 하게 된다. 목표를 설정하도록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아이가 하고 싶어하는 것을 잘 듣고 그 목표를 실현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비행기 조립하는 일을 좋아한다면 “이런 장난감 말고 진짜 비행기를 만든다면 멋진 일이겠지. 날다가 떨어지지 않는 안전한 비행기를 만들려면 여러가지 수치 계산을 잘 해야 할거야. 그리고 사람들에게 네가 만든 비행기를 많이 알리려면 똑부러지게 말하는 연습도 필요하겠지?” 하는 식이다. 단 낮은 단계부터 차근차근 하도록 해야지, 너무 거창한 목표를 던져주는 것은 부담을 줄 수 있으니 주의한다. ●책과 친해지도록…분위기 조성 공부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도 중요한 부분이다. 그렇다고 해서 하루종일 공부를 강요하라는 것이 아니라, 마치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친구와 놀듯 공부도 자연스럽게 하나의 생활로 몸에 배도록 하는 것이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책과 친하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 박혜란 공동대표는 “방·식탁·화장실 할 것 없이 온 집안에 책을 널려 놓고, 책이 장난감이자 친구이자 선생님이 되도록 해주는 것이 지속적인 지적 자극을 줘 학습 효과를 극대화시킨다.”고 설명했다. 여성학자이면서 가수 이적씨를 비롯해 세 아들을 모두 서울대에 보내기도 한 박 대표는 “의도적으로 책을 들이민 것이 아니라 부모가 스스로 책읽기를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이책 저책을 뒤적이기 시작하게 된 것”이라면서 “책을 공부의 도구로 인식하기 이전에 친구처럼 받아들인 덕에 세 아들 모두 과외나 학습지 한번 안하고 좋은 성적을 냈다.”고 말했다. 바른 생활습관과 시간관리 능력을 키워주는 것도 공부하는 분위기와 연결된다. 목표를 설정했으면 이를 잘게 나누어 월 단위, 주 단위, 일 단위로 계획을 세우고 스스로 시간을 관리하게 하는 것이다. 이화여대 초등교육과 조연순 교수는 “아이가 먼저 계획을 짜도록 하고 ‘실제 해보니까 숙제를 다 하기에 조금 시간이 모자라던데 조금 늘려보면 어떨까.’ 하는 식으로 수정해 나가는 것이 좋다.”면서 “짜여진 시간표를 주고 지키도록 하는 것은 실천도도 떨어지고 스스로 공부에서 주도권을 놓게 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선행학습은 흥미 잃게 해 오히려 ‘독’ 학원 등에서 주로 하는 선행학습은 공부 습관이라는 면에서는 전혀 도움이 안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어설프게 알게 된 지식이 학교 수업에 흥미를 잃게 해 오히려 ‘독’이 된다는 지적이다. 박도순 교수는 “예습 수준을 넘어선 선행학습은 당장은 앞서나가는 것 같지만 ‘다 아는 것이니 재미 없다.’는 생각을 불러일으켜 오히려 내적 동기를 해친다.”면서 “교육학적으로 보면 선행학습은 어떤 경우에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단언했다. 박혜란 대표도 “선행학습은 뭘 먹고싶은지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도 모르는 아이에게 엄마가 숟가락을 들고 무조건 떠먹여주는 것과 마찬가지”라면서 “독서가 가장 근본적인 선행학습이며, 한두학기씩 앞서가며 배우는 것은 잠깐 성적은 오를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아이를 망치게 된다.”고 말했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이정숙씨의 ‘자녀 교육법’“좋은 공부 습관만 들여주고 나면 그 다음엔 아이 키우기 정말 쉽죠.” ‘잔소리하지 않고 유쾌하게 공부시키는 법(나무생각)’의 저자 이정숙씨는 ‘물고기를 주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두 아들을 미국 명문대에 보낸 엄마이기도 한 이씨는 “어렸을 때 바른 생활·공부습관을 잡아준 뒤에는 한번도 ‘공부하라.’고 잔소리 한 기억이 없다.”며 ‘습관’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이씨가 아이들을 키우는 원칙은 스스로 하고 싶어할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것. 책과 가깝게 해 주고 계획을 세워 지키도록 하는 것도 물론이다. 그러나 이씨 역시 조급한 마음에 딱 두번 아이들이 싫다는 것을 억지로 시켜본 적이 있었다. 초등학교 때 둘 다 산수를 너무 못해 억지로 주산 학원에 보냈더니, 숙제도 전혀 하지 않고 수업 중에도 딴짓만 했다. 주산 학원에 다니지 않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진지하게 대화를 나눈 뒤 결국 1주일 만에 그만두게 했다. 이때 ‘설득 없이 억지로 하는 건 역효과만 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둘째아들은 바이올린을 억지로 가르치자 5년 만에 ‘절대 못하겠다.’고 버텨 끝내 그만두더니, 스스로 재능을 찾아낸 피아노는 용돈을 아껴 레슨을 받고 대학에서 전공까지 했다. 본인이 동기를 얻고 하고 싶어야 비로소 효과가 있다는 것. 대화를 통해 합리적으로 의견을 나누면서도 생활 습관은 따끔하게 가르쳤다. 큰아들이 6세 때 시장에서 장난감을 사달라면서 발버둥을 치며 떼를 쓰자 몇번 경고를 한 뒤 ‘혼자 집에 찾아오라.’고 하고는 사라졌다.30분간을 울며 엄마를 찾던 아이는 이후에는 절대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중학교 1·2학년이던 두 아들을 데리고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했던 이씨는 “뉴욕 맨해튼 일부 지역에 우리나라 대치동이나 청담동 같이 엄마들이 아이 공부에 더 열을 올리는 경우도 있긴 하다.”면서 “그러나 어려서부터 함께 책을 읽고 원칙을 지키도록 습관을 만들어준 뒤 학창시절에는 오히려 간섭하지 않는 미국인 부모들의 교육법이 훨씬 인상적었고 또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이씨의 큰아들 창연(25)씨는 미시건대 건축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전액 장학생으로 대학원에 다니고 있다. 둘째 승연(24)씨는 뉴욕대 경영학과와 줄리어드 음대를 동시에 다니면서 ‘공부기술(중앙M&B)’이라는 책을 써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이씨는 “분위기에 휩쓸려 선행학습이다 뭐다 하는 것에 조급증을 내기 보다는 적극적이고 자기주도적인 습관을 들여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이렇게 하면 ‘효과 두배’뭐가 좋은지는 알면서도 잘 안되는 것이 자녀교육이다. 공부 잘하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 당장 따라해 볼 수 있는 방법들을 소개한다. ●질문할 때마다 백과사전 활용 아이들이 말을 배우고 호기심을 갖기 시작하면 부쩍 질문이 많아진다. 이럴 때 아는 대로 대충 대답해주거나 얼버무리지 말고 함께 백과사전을 찾아본다.“눈은 왜 와요?” 하고 묻는다면 함께 ‘눈’을 찾아보고 스스로 물음에 대한 답을 찾도록 유도한다. 흥미를 자극하고 다양한 배경지식을 쌓는 데 더없이 좋은 방법이다. ●국어사전을 항상 옆에 두기 국어실력은 모든 공부에 기본이다. 바른 언어습관은 생활 태도에도 영향을 준다. 책이나 TV를 보다가 잘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그때그때 국어사전을 찾아보도록 한다. 사전을 통해 어휘력과 문장력이 풍부해져 말과 글쓰기에 자신감을 갖게 된다. 또한 이런 습관이 들면 외국어 공부도 훨씬 수월하게 할 수 있다. ●재래시장 자주 데려가기 책상 앞에서 하는 것만이 공부가 아니다. 때때로 재래시장에 데려가는 것은 아이의 오감을 자극하는 쉽고도 효과적인 방법이다. 시장통에서 생선을 자르는 아주머니,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일하는 청년들의 생동감 넘치는 모습을 보며 사회성, 생활력, 호기심, 기초적 경제관념을 키울 수 있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잇단 낙마… CEO들 ‘수난의 여름’

    ‘박용오, 윤창번, 김윤규….’ 최근 대표이사직에서 ‘낙마’한 국내 간판급 최고경영자(CEO)들이다. 낙마한 CEO들의 퇴출 사유는 기존 대주주와의 갈등. 오너체제 하에서 전문 경영인의 ‘한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지적도 있고 지나친 욕심이 화를 불렀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여기에 윤맹철 전 레이크사이드 대표이사, 한우봉 전 한성항공 대표이사 등 주주간 갈등으로 대표이사에서 ‘쫓겨난’ 사례가 적지 않다. 박용오 전 두산그룹 회장은 오너이면서도 ㈜두산 대표이사 회장, 두산산업개발 대표이사 회장 등 화려한 CEO 경력을 자랑했지만 지난달 22일 ㈜두산과 두산산업개발 이사회에서 대표이사 해임이 결정됐다. 두산측은 박 전 회장이 오랜기간 두산산업개발 대표이사를 지내면서 자신의 지분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마치 자기 회사인 것처럼 ‘착시현상’을 일으켰다고 주장한다. 박용성 회장이 이번 ‘형제의 난’을 ‘두산산업개발 경영권 탈취 미수 사건’이라고 명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박 전 회장은 두산건설 시절인 98년부터 두산산업개발 대표이사를 맡아 왔다. 등기이사는 93년부터 시작했다. 둘째아들인 중원씨도 두산산업개발 상무로 일했었다. 2003년 하나로통신(현 하나로텔레콤)의 ‘구원 투수’로 등장했던 윤창번 하나로텔레콤 회장은 지난 11일 이사회에서 ‘자진 사퇴’ 형식으로 대표이사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그의 사퇴 배경은 최대 주주인 AIG-뉴브리지 컨소시엄(지분 39.6%)과의 ‘경영 철학’ 차이가 갈등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외국계 대주주의 반대로 휴대인터넷 ‘와이브로’ 사업권을 반납했을 때부터 갈등설이 불거진 터였다. 오너와 전문경영인의 갈등이 어떤 결말로 이어지는지 가장 확실한 답을 보여준 것은 지난 19일 김윤규 부회장의 대표이사 퇴진을 결정한 현대아산 이사회였다. 김 부회장은 98∼2001년 현대건설 대표이사 사장을 지냈고 99년부터 현대아산 대표이사 사장을 맡아온 대표적인 CEO. 지난 3월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표면적으로는 ‘영전’했지만 공동 대표이사 체제로 전환되면서 퇴출 수순을 밟아왔다. 김 부회장 퇴진의 ‘도화선’이 된 것은 그룹의 경영감사에서 적발된 ‘개인비리 의혹’이지만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측과의 갈등이 더욱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그동안 승승장구하던 ‘스타 CEO’들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영광으로 해석할 수 있는 ‘장수 CEO’로 분류되는 것도 극도로 꺼려한다. 특히 최근 눈부신 실적 속에 거의 이동이 없었던 삼성그룹의 사장단 인사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올해는 실적이 예년만 못한 데다 연예인 X파일,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방해, 헌법소원,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X파일 등 숱한 악재가 쏟아져 나와 분위기 쇄신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삼성측도 “인사수요가 많이 누적됐다.”고 인정한다. 재계 관계자는 “대표이사를 오래 맡았고 크게 주목받는 전문 경영인들은 자칫 오너의 영역을 침범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이 경우 오너측의 견제를 받아 낙마하기 쉽다.”고 말했다.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 [낮은소리] 키 작은 사람들의 애환

    [낮은소리] 키 작은 사람들의 애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모든 것은 마음 먹기에 달렸다고 한다. 행복과 불행은 키가 큰 사람에게도, 작은 이들에게도 찾아드는 법이지만 마음 먹기는 다른 것 같다. 작은 키 때문에 비관하고 부모를 원망하는가 하면, 이같은 ‘단점’을 잘 이겨내 사회의 거울이 된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키가 크면서도 늘이려는 사람이 적지 않다. 작은 키를 ‘사회적 장애’로 만들어버리는 주변의 시선, 매스컴과 계급사회 등 각종 시스템이 낳은 비뚤어진 세태 탓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책표지를 보고 책을 판단하지 않는 법’(Don’t judge a book by a cover)이라는 서양 격언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작은 키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 또 ‘작지만 야무진 포부’와 훌륭하게 극복한 사례를 살펴 본다. “제 나이는 17세이고 몸무게 75㎏에 키 168㎝랍니다. 키가 작아서 고민입니다. 키를 늘일 수 있는지….” “미국 미시간주에서 대학을 마치고 공군에 입대하려 했는데…키 160.4㎝로 반올림 해도 161㎝가 안된다며 불합격 판정을 내리더군요. 정말이지 또 한번 죽고 싶었습니다.” 신체의 키와 관련된 기관·단체 등에 쏟아지는 질문 가운데에서 꼽아본 내용이다. 이와 유사한 걱정 섞인 하소연 사례가 유관단체에 많게는 하루 수십건씩이나 들어오기도 한다. 심지어 신장이 170㎝대이면서도 또래끼리 잘 비교하는 사춘기 청소년, 취업·결혼과 같은 중대사를 앞둔 사람들이 이런 걱정을 해오는 경우도 적잖다. 모두 키 순서로 줄을 세우는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영웅상’ 탓이다. ●‘숏다리’-그들은 누구 “전 180㎝가 안되면 키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친구들은 모두 180㎝를 넘는다고요. 그 정도는 돼야 모델이나 탤런트를 할 수 있거든요.” 한 대학생이 쏟아낸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큰 키라고 여기고, 특히 160㎝에도 못미치는 사람이 들으면 그야말로 속터질 소리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과연 어느 정도가 작은 키인가 하는 화두가 나올 법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마음 먹기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키란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굳이 따진다면 같은 나이에서 어떤 수준이냐를 살펴볼 수 있다. 키는 보통 계속 자라다가 고교에 입학할 나이인 17세 이후에는 멈추기 때문에, 그 이전엔 예측 가능한 신장과 17세의 평균신장을 잡아보면 된다. 우리나라 17세 청소년들의 평균 키는 남자 173.6㎝, 여자는 161㎝이다. 그러나 정형외과 측면에서 보면 ‘작은 키’란 또래 100명을 나란히 세웠을 때 작은 순서로 3번째 안에 들어갈 경우를 가리킨다. 키 순서로 출석번호를 매기는 학교의 현실도 작은 키를 탓하는 풍조에 한몫 거든다. 부산에 사는 K(21)씨는 “150㎝로 고교때 늘 1번을 달고 다녔다.”면서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더 열심히 공부해 이른바 명문대에 들어왔는데, 요즘 작은 키 때문에 고민이 커졌다.”고 귀띔했다. 저신장의 원인은 부모의 키가 작은 경우와 연골무형성증, 골형성부전증 등 뼈나 성장판 연골에 선천적으로 질환을 앓는 경우, 성장호르몬이나 갑상선호르몬 결핍, 만성신부전, 염색체 이상인 터너증후군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반란’ 꿈꾸는 ‘다윗’ 고려대 서울구로병원 ‘키 크기 클리닉’의 송해룡(49) 박사는 작은 키의 원인과 관련,“부모의 키가 작은 가족력이 전체의 70∼80%”라면서 “이런 경우 결코 질환으로 볼 수 없다.”고 말한다.“나아가 비록 키가 작더라도 스스로 강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내면의 아름다움을 가꾸는 등 자기영역을 개척하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원인도 모르는 유전자 변형으로 보다 심각한 기형을 갖고 태어난 사람도 있는데, 키가 작다고 해서 자신조차 낮춰보는 것은 또 하나의 죄악이라는 설명이다. ‘한국 작은 키 모임’(LPK) 김동원(47·자영업) 회장의 사례를 보자. 이 모임은 키 150㎝ 이하인 남녀와 그들의 피붙이를 포함해 회원이 110가족,300여명에 이른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것이며, 지방에도 비슷한 규모의 모임이 있다. 김회장은 유전자 변형으로 키가 자라지 않는 둘째아들 승철(12·초등학교 6년·125㎝)군을 뒀다. ●“약자 보호해줘야 성숙한 사회” 그는 “회원들은 단지 일상생활에서 불편할 뿐 비정상인 것은 아니다.”면서 “제도권 교육체계 등 사회의 냉대 때문에 따돌림당하고 있다.”고 씁쓸해 했다. 극소수일지언정 약자들을 다수가 보호해줘야 성숙한 사회라고 할 수 있는데, 아직은 아니라는 것이다. 자신과 아들이 겪은 일도 들려줬다.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교실배정 문제로 학교측과 다퉜단다. 체구가 자그마한 아들이 높은 곳을 오르내리기 힘들어해서다. 그러나 “왜 소수를 위해 다수가 희생돼야 하느냐.”는 항의만 들었단다. 또 아이들끼리 하는 운동에 참여하면 교사까지 “너 때문에 졌다.”는 등의 핀잔이 쏟아졌다. 김회장은 요즘 자신들의 처지를 잘 아는 저신장 법학 전공자를 사회복지사로 고용, 교실 옷걸이와 책상을 비롯해 각종 시설의 높이를 아들처럼 작은 사람을 위해 낮추는 등 ‘인권 되찾기 투쟁’에 열중하고 있다. 글 사진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왜소증 극복할 수 없나 키가 눈에 띄게 작다고 다 환자는 아니다. 증(症)이란 말 때문에 잘못 알려졌지만 왜소증 가운데 질환 비율은 20∼30%뿐이다. 통상 남성의 경우 145㎝, 여성은 140㎝ 이하가 왜소증에 들어간다.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2500여명이 왜소증으로 추정된다. 보통 어린이는 연간 5㎝이상 자란다. 사춘기가 끝나지 않았는데 1년에 4㎝이하로 자라면 성장장애가 의심돼 상담을 받는 게 좋다. 부모에 비해 지나치게 작거나, 미리 자신의 키를 예측해 성인때 신장이 여아 150㎝, 남아 160㎝이하일 것 같을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성인 때의 키를 예측하는 방법은 남성의 경우 (아버지의 키+어머니의 키)×0.5+6.5, 여성의 경우 (아버지의 키+어머니의 키)×0.5-6.5로 계산하면 나온다. 전문의들은 “성장 호르몬은 밤 11시부터 새벽 2시 사이에 평소에 비해 40배 이상 분비된다.”면서 “이 시간에 수면을 충분히 취하도록 도와줘야 키가 제대로 클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수영과 댄스, 배구, 농구, 조깅, 맨손체조 등 가벼운 운동을 하루 20∼30분씩 1주일에 5회이상 하면 좋다. 같은 이치로 몸을 쭉 펴주는 스트레칭도 권할 만하다. 몸무게로 인해 압박된 척추나 성장판에 적당한 자극을 주기 때문이다. 평소 바른 자세를 갖추는 것도 필요하다. 구부정한 자세로 컴퓨터나 TV를 장시간 가까이 하게 되면 원래 키 보다 작아보일 뿐만 아니라, 실제 척추가 비뚤어져 척추 질환의 위험도 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키 작은 영웅들 작은 키 때문에 속타는 사람이 많지만, 잘 이겨내면 오히려 부러움을 살 수 있다는 점을 역사가 말해준다. ‘얼굴 예쁘고 재주도 있는데 키만 조금 더 컸더라면’이란 말에는 키가 작다는 이유로 깎아내리는 심리가 숨었다.‘역시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은 칭찬에 가깝다. 그래서 ‘슈퍼 땅콩’ ‘울트라 슈퍼 땅콩’ 등의 별칭으로 유명해진 이도 많다.‘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말과도 통한다. 최근 세계 최고의 무대인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브리티시오픈 우승컵을 안은 장정(25)은 귀국 인사말에서 “제 키는 151(㎝)이 아니라 153(㎝)이랍니다.”라며 활짝 웃었다. 작은 키를 훌륭하게 극복하고, 이젠 자랑거리(?)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사실을, 세상에 그대로 보여준 대목이었다. 이어 ‘울트라 슈퍼 땅콩’이라는 별명을 ‘작은 거인’으로 바꿔 불러달라는 애교 섞인 말을 했다. 자신감이 배어 나온다. 장정이 그런 별명을 얻은 배경도 작은 키와 뗄 수 없는 인연이 있다. 바로 같은 프로골퍼인 김미현(28)이 먼저 국제무대에 두각을 나타내면서 ‘슈퍼 땅콩’이란 별명을 선취(?)했기 때문에 엇비슷한 신장을 빗대고 수식어를 덧대 별명을 붙여준 것이다. 중국의 위대한 지도자로 추앙을 받는 덩샤오핑(鄧小平·1904∼77년)에게는 키 때문에 벌어진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온다. 각국 수장들과 나란히 서서 대화를 할 때면 깔판을 딛고 마주 봤다고 한다. 1972년 미국 리처드 닉슨(1913∼94) 대통령과 베이징에서 정상회담을 갖던 때가 좋은 사례다. 하지만 그는 150㎝의 단구로 10억 인구의 중국은 물론, 지구촌을 호령했던 불세출의 인물로 손꼽히고 있다. 프랑스 황제 보나파르트 나폴레옹(1769∼1821년) 역시 157㎝로 평균적인 서양인에 비해 ‘프티’(Petit·프랑스 말로 작다는 뜻)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한때 유럽을 손안에 넣었던 작은 거인이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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