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두 아이 아빠
    2026-04-26
    검색기록 지우기
  • 모바일 카드
    2026-04-26
    검색기록 지우기
  • 청년 간담회
    2026-04-26
    검색기록 지우기
  • 최순실 특검
    2026-04-26
    검색기록 지우기
  • 샌디에이고
    2026-04-26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3,599
  • “남편 눈물 흘리며 발작…모더나 2차 접종 하루 만에 사망”

    “남편 눈물 흘리며 발작…모더나 2차 접종 하루 만에 사망”

    5살과 11살 자녀를 둔 40대 가장이 모더나 백신 1차 접종 후 부작용을 겪고도 2차를 권고 받아 접종한 결과, 하루 만에 숨졌다는 사연이 전해졌다.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43세 두 아이의 아빠가 모더나 2차 접종 후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사망했습니다’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왔다. 인천시에 거주 중인 청원인 A씨는 “남편은 평소에 혈압약을 복용하고 있었으나 혈압은 잘 조절되고 있었고, 그 외에 특별한 지병은 없었다. 매우 건강한 사람으로 혈압약 처방 말고는 병원에 가지 않을 정도로 건강했다”며 “하는 일이 건설 쪽이라 백신을 맞지 않으면 현장 출입에 제한이 생겨 어쩔 수 없이 백신 접종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A씨에 따르면 남편 B씨는 지난 9월 19일 모더나 백신 1차 접종을 마쳤다. B씨는 1차 접종 이후 약 3주가 정도 지났을 때부터 가슴에 불이 타는 듯한 통증이 발생했다고 한다. 인근 병원에서 식도염 진단을 받은 뒤 약을 먹었지만 증상은 호전되지 않았다. 이후 지난 10월 24일 모더나 2차 접종 예약일이 다가왔고, B씨는 그간 겪었던 증상으로 인해 접종을 망설였지만 병원 측에서는 2차 접종을 권장했다. 결국 접종을 마친 B씨는 오한과 고열을 호소하다가 다음 날인 25일 심정지로 숨졌다. A씨는 “구급차에 실려 가던 남편은 눈물을 흘리며 발작했다. 응급실에 도착해서 곧바로 심폐소생술을 하러 들어간 남편은 결국 심정지로 인해 영원히 떠나갔다”며 “사망 선고를 받은 남편의 몸에는 아직도 온기가 남아 있는데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이제는 영원히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다는 현실이 저와 우리 아이들은 아직도 믿을 수가 없다”고 했다. 이어 “정부에서는 백신 접종 이후 이상 증상이 생기면 진료를 받으라고 하면서 막상 증상이 생겨 병원에 내원하면 추가 접종이 불가능하다는 의사 소견서를 어느 곳에서도 발급해 주지 않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며 “애초에 부작용으로 2차 접종이 불가능하다는 의사 소견서만 받았더라면 백신패스 제도가 도입돼도 무리 없이 일상생활을 이어가며 살아있었을 것 같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A씨는 “부검 결과는 최소 한 달에서 6개월까지 있어야 나온다고 한다”며 “제발 남편의 억울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이 험한 세상을 아이들이 구김 없이 잘 자랄 수 있도록, 제발 많은 분이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인천시 관계자는 “A씨의 사망과 백신 접종 간 인과 관계에 대해 역학조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조사가 끝나면 질병관리청에 자료를 넘길 예정”이라고 밝혔다.
  • “43세 남편, 모더나 2차 접종 후 사망했습니다” 靑 국민청원

    “43세 남편, 모더나 2차 접종 후 사망했습니다” 靑 국민청원

    두 아이를 둔 40대 가장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2차 접종 이후 숨졌다는 내용의 국민청원이 올라왔다. 지난 6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43세 두 아이의 아빠가 모더나 2차 접종 후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사망했습니다”라는 제목의 국민청원 글이 올라왔다. 사망자의 아내라고 밝힌 글쓴이는 “남편은 하는 일이 건설 쪽이라 백신을 맞지 않으면 현장 출입이 제한돼 접종할 수밖에 없었다”며 “1차 접종 후 20일이 지난 뒤부터 가슴과 귀의 심한 통증으로 힘들어해 약을 지어 먹었다”고 말했다. 이어 “남편이 2차 접종을 예약한 병원에 그동안 증상과 약 복용 내역 등을 말했으나 접종이 가능하다고 했다”며 “후유증으로 백신을 맞고 싶지 않았지만, 부작용을 호소해도 2차 접종이 가능하다는 게 현재 상황이라 어쩔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글쓴이는 “남편은 평소 잠을 늦게 잤는데 접종 날에는 아이들과 자려고 방으로 일찍 들어왔고 첫째의 등을 쓸어줬다”며 “다음날 아침 8시쯤부터 증상이 심해져 괴로워하던 남편은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도착했지만, 심정지가 왔다”고 덧붙였다. 해당 청원글은 이날 오후 5시 30분 기준 7500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인천시에 따르면, 사망자 A(43)씨는 인천시 서구 모 병원에서 지난 9월 19일 모더나 백신 1차 접종을, 지난달 24일 2차 접종을 했다. 평소 고혈압 증세로 관련 약을 먹고 있었던 A씨는 다른 지병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2차 접종을 마친 다음날 오전 7시쯤부터 오한과 가슴 통증 등을 호소했으며, 같은날 오전 9시 30분쯤 119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구급대에 의해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인천시 관계자는 “현재 A씨의 사망과 백신 접종 간 인과 관계에 대해 역학조사 중이며 조사가 끝나면 질병관리청에 자료를 넘길 예정”이라고 말했다.
  • “내 딸의 주검에 그런 짓을” 영국 어머니 흉기 들고 경찰서로

    “내 딸의 주검에 그런 짓을” 영국 어머니 흉기 들고 경찰서로

    어떤 어머니라도 이런 충동에 사로잡히지 않을까 모르겠다. 영국의 한 어머니가 딸의 시신을 능욕한 60대 남성이 구금돼 있는 경찰서에 몰래 흉기를 갖고 들어왔다가 체포된 일이 있었다. 잉글랜드 켄트주의 한 병원 시신보관소에서 일하던 데이비드 풀러(67)는 런던 북부 콜린데일 경찰서에 수감돼 있는데 조사 과정에서 12년에 걸쳐 모두 99구의 시신을 능욕하는, 인간 이하의 짓을 벌였다고 자백했다. 이에 따라 경찰은 희생자들의 유족을 찾아 풀러의 끔찍한 소행을 알리며 심리치료 등 도움을 주는 방안을 통보했는데 자신의 죽은 딸이 그런 일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 네브레스 케말이란 여성이 부엌에서 쓰던 흉기를 들고 경찰서에 달려와 응징하려다 실패한 것이라고 미국 매체 인사이더 닷컴이 7일(이하 현지시간) 보도했다. 그녀는 영국 일간 데일리 메일에 풀러를 “응징하겠다”고 다짐했다며 “그가 내 눈에 띄었으면 그의 가슴에 흉기를 똑바로 찔러줬을 것을 99.99% 확신한다. 왜냐하면 그가 내 가슴을 똑같이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8~9명의 경관들이 수갑을 채우고 체포하는 바람에 계획이 망가졌다고 덧붙였다. 케말의 딸 아즈라는 99명의 희생자 가운데 한 명이었다. 케말은 지난달 이 소식을 처음 들었는데 경찰은 잉글랜드 남동부 켄트와 서섹스, 에섹스에 흩어져 있는 희생자 유족들을 찾아 이 고통스러운 소식을 전하고 정신적 돌봄을 제공한다는 안내를 해줄 연락관 150명을 모집하고 운영하는 데 150만 달러(약 17억 7975만원)를 투입했다. 이렇게 해서 지금까지 81명의 신원이 확인된 이들의 유족들에게 참담한 소식을 전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그런데 적어도 99구의 시신일 뿐,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시신을 상대로도 풀러가 더 많은 범죄를 저질렀을 가능성도 있어 이들 연락관이 찾아야 할 유족은 더 늘어날 수 있다. 죽어서도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한 이들 가운데 가장 적은 나이가 아홉 살, 가장 많은 이는 100세 여성이라고 스카이 뉴스는 전했다. 풀러의 범행 중에 가장 경악스러운 것은 1987년 살해된 케말의 딸 아즈라 등 두 여성의 시신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리며 자랑한 것이다. 풀러의 가족들도 경악했다고 미국 일간 뉴욕 포스트는 전했다. 아내였던 길 팔머는 영국 일간 더선과의 인터뷰를 통해 “너무 끔찍하다. 나도 감당하기 어렵다. 아이들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아이들은 평정심을 완전히 잃었다. 들려오는 일들은 완전 충격적이다. 여러분이 말하는 사람이 그들의 아빠”라고 말했다. 그런데 2년 동안 풀러와 함께 일했다는 익명의 간호사는 영국 대중지 선데이 미러와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은 그를 “보통의 조용한 남자, 완벽한 신사”로만 여기고 있었다며 “내가 그런 참담한 짓을 벌인 누군가와 연결돼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무섭다. 난 운이 좋아 그가 날 죽이지 않았을 뿐”이라고 말했다. 영국 국민건강보험(NHS)는 독자적인 조사를 벌여 풀러가 어떻게 이런 범죄를 저지르고도 빠져나갈 수 있었는지 규명하겠다고 밝혔다. 사지드 자비드 보건부 장관은 BBC 방송에 시신 접근 권한과 부검 참여자들의 작업 관행에 문제점이 없는지 감사에 들어가겠다고 약속했다. 그렉 클라크 의원을 비롯한 여러 의원들은 어떻게 이런 인권 유린이 오랜 기간 발각되지 않고 자행됐는지 규명하기 위한 공공조사를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 9세 딸을 55세 남성에게 판 아프간 아빠…애절한 마지막 당부

    9세 딸을 55세 남성에게 판 아프간 아빠…애절한 마지막 당부

    아프가니스탄에 사는 9세 소녀 파르와나 말릭은 지난달 말, 평상시와 다름없이 친구들과 논 후 집에 돌아왔다가 낯선 남성과 마주쳤다. 55세의 이 남성은 고작 9살인 말릭을 신부로 ‘사기 위해’ 찾아온 사람이었다. 말릭의 부모와 상의를 마친 그는 말릭에게 조만간 데리러 오겠다는 말을 남긴 뒤 집을 떠났다. 말릭은 지난달 22일 미국 CNN과 한 인터뷰에서 “(말릭을 부모로부터 산) 그 남자가 나를 때리거나 강제로 일을 시킬까봐 겁이 난다”고 토로했다. 낯선 남자에게 딸을 판 말릭의 부모는 “방법이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 4년간 말릭의 가족은 정부 지원금과 노동으로 하루에 단 몇 달러를 벌며 간신히 입에 풀칠을 해 왔다. 하지만 지난 8월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한 뒤 삶은 더 어려워졌다. 정부 지원금이 끊기고 국가 경제가 붕괴되면서 식량과 같은 기본 생필품조차 구할 수 없었다. 결국 말릭의 부모는 몇 달 전 12세에 불과한 말릭의 언니를 같은 방법으로 팔아야 했다.언니가 팔려간 뒤 생긴 돈으로 몇 달을 버틸 수 있었지만 돈은 금새 바닥이 났다. 결국 말릭의 부모는 남은 딸마저 팔기로 결정했다. 말릭은 아프간의 어린이 인권이 무너지면서 조혼에 희생되는 수많은 소녀 중 한 명이 됐다. 현지의 인권운동가인 모하메드 나이엠 나젬은 “아프간에서 자녀를 파는 가정이 갈수록 늘고 있다. 식량과 일자리가 부족한 상황에서, 부모는 결국 (자녀를 파는) 이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팔려가기 싫어 울부짖는 소녀…내다 판 부모도 고통스럽다 자녀를 파는 부모들도 뼈아픈 고통을 느끼기는 마찬가지다. 말릭의 아버지 압둘 말릭은 CNN과 한 인터뷰에서 “우리는 딸을 팔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일자리를 찾기 위해 먼 지방까지 가기도 했고, 친척들로부터 많은 돈을 빌리기도 했다. 아내는 난민캠프의 다른 주민들에게 음식을 구걸한 적도 있다”면서 “하지만 8명의 가족을 먹여살리려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죄책감과 수치심, 걱정 등으로 잠을 이룰 수가 없다”고 말했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낯선 남성에게 팔린 말릭은 “(그가 나를 데리러 오기 전에) 부모님의 마음을 바꾸고 싶다. 나는 선생님이 되고 싶고, 공부를 포기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지만 소용없었다. 말릭 가족이 CNN과 인터뷰를 진행한 지 이틀이 지난 후. 약속했던 날이 찾아왔다. 그는 말릭의 아버지에게 현금과 가축 등을 건넨 뒤 아이를 데려갔다. 말릭의 아버지는 그에게 “이 아이는 당신의 아내다. 제발 아이를 때리지 말아달라”는 마지막 부탁을 남겼다. CNN은 “남성이 말릭을 데려가려하자, 아이는 발을 흙에 파묻고 끌려가지 않으려 애썼지만 소용없었다. 말릭의 아버지는 이 모습을 문 앞에서 지켜보고 있었다”고 전했다. 식량과 생필품, 의료품 부족한 아프간, 더 잦아지는 비극 문제는 식량과 생필품, 의료품 부족 사태를 겪고 있는 아프간에서의 이런 비극적인 일은 더욱 빈번하게 발생할 수 있다는 예측이다. 이번 주에 발표된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아프간 인구의 절반 이상이 심각한 식량 불안정에 직면해 있다. 앞으로 몇 달 안에 5세 어린이 300만 명 이상이 급성 영양실조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는 “이런 상황은 재앙과 다름없다. 우리는 이 비상사태를 저지할 만한 몇 달 또는 몇 주 조차의 여유도 없다”면서 “빈곤이 증가하면서 많은 어린 소녀가 어쩔 수 없이 결혼을 선택할 수 밖에 없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말릭의 아버지는 “우리에게는 미래가 없다. 만약 우리 가족의 재정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나는 아마 고작 두 살인 다른 딸을 또 팔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거리 미술관]21. 행복한 순간

    [거리 미술관]21. 행복한 순간

    ‘박물관이 살아있다’는 미국의 코미디 영화 시리즈가 있었다. 뉴욕 맨허튼에 있는 미국 자연사 박물관의 전시물들이 밤이 되면 살아나 시·공간을 거스른채 종횡무진한다. 구경하기에 재미없고 딱딱할 수 있는 박물관에 대한 인식을 즐겁고 신나는 공간으로 바꾼 기억에 남는 영화였다. 5000년 역사를 간직한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은 어떨까? 관람목적에 따라 다르겠지만 가벼운 마음으로도 찾아볼 만한 하다. ‘사람, 숫자 : 인구로 보는 한국현대사’라는 특별전이 박물관 3층 기획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는 지난 8월 20일부터 시작해 다음달 21일까지 이어진다. 가족계획 포스터, ‘가정의 벗’ 창간호 등 258건 300점의 전시자료를 통해 인구변화와 삶의 변화를 시기별로 살펴볼 수 있다. 또 하나 볼거리는 박물관 앞 조각작품들이다. 벤치에 마주 앉아 사랑을 속삭이는 젊은 남녀, 함께 자전거를 타며 행복해하는 나들이 가족, 두 손을 하늘로 치켜든 아들을 목말 태운 아빠가 빨간 스카프와 하트를 날리며 엄마에게 달려가는 모습 등 정겨운 조각작품들이다.모두 김경민(49) 조각가의 작품이다. 역사박물관은 인구 특별전 취지에 부합하는 조형물로 가족을 테마로 작품활동을 해온 김 작가에게 작품 설치를 의뢰했다. 조각품들은 인구 특별전이 끝나도 연말까지 계속 볼 수 있다. 작품은 모두 청동을 재료로 해 우레탄 도장처리를 했다. 김 작가는 주부작가다. 아이 셋을 키우면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자연스레 자신이나 아이 등 가족이 작품의 주인공으로 나온다. “일산 호수공원에서 아이들과 자전거를 즐겨 탔다”는 김 작가는 자전거를 타고 즐겨워하는 가족 나들이 작품을 특히 좋아한다. 김 작가가 그려낸 인물은 모두 늘씬한 몸매에 경쾌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그는 “예술이 관람객들에게 사회 이슈를 소재삼아 무거운 테마를 던지는 것도 좋지만 어릴 때 시간가는 줄 모르고 본 한 편의 만화처럼 나의 소소한 일상이나 추억, 가치관을 그렇게 직관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우스꽝스럽게 보이는 자세나 바람에 뒤로 날리는 머리카락, 하늘로 향한 시선 등은 그의 꾸밈없는 일상의 증표들인 셈이다. 조각 속 남녀가 모두 날씬한 것은 의도한 것인지 궁금했다. “초기 때보다 사람형체가 가늘어지고 길어진 건 발레리나들이 무용할 때 몸동작으로 언어를 표현하듯 저도 형태를 통해 표현하려다 보니 자연스레 그렇게 된 것같다. 손 끝, 발 끝에 감정을 담아내려고 했다“고 말한다. 유독 발이 크게 보인다고 하자 “예술의 대중화를 위해서였다”고 말문을 연다. “중세시대 때부터 내려온 서구 상류사회의 특권으로서의 예술에 공감하기 힘들었다”는 그는 “비싼 입장료를 내야 들어갈 수있는 갤러리의 문턱을 없애듯 작품을 길바닥에 툭 내려 놓고 싶었다. 좌대도 없애고 싶었다. 작품의 무게중심을 고려해 발을 크게 만든 측면도 있지만 예술이 대중화됐으면 좋겠다는 의도가 커다란 발에 담겨 있다”고 덧붙인다.코로나 방역 규제로 사람간 소통은 뜸해지고 삶은 지쳐만 간다. 이럴수록 소소한 일상에서 가족과 사랑의 소중함을 확인하며 재충전을 할 필요가 있다. 가벼운 마음으로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나들이를 가보자. 1970년대 영상이나 당시 시대상을 알 수 있는 사진 등 인구 특별전시물은 물론 김 작가의 조각작품도 우리의 삶을 반추해볼 수 있는 기록들이다.
  • “열 없지만 땀 흥건했다”…모더나 맞고 헬스트레이너 3일만에 사망

    “열 없지만 땀 흥건했다”…모더나 맞고 헬스트레이너 3일만에 사망

    청와대 국민청원 올라온 사연“건강한 동생 백신 맞고 3일만에 사망” 33세 건장한 청년이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모더나 백신 2차를 맞은 지 3일 만에 숨졌다. 유족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백신과 인과관계를 밝혀 달라고 호소했다. 28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33살 건장한 제 동생이 모더나 2차를 맞고 3일 만에 사망했다’라는 제목의 청원글이 눈에 띈다. 사망한 동생은 지난 22일 오전 용인의 한 병원에서 모더나 백신 2차를 맞고 오한이 왔고 식은땀을 흘렸으며 식욕부진에도 시달렸다. 그는 접종 이틀 뒤인 24일 저녁 8시쯤 육아를 하느라 친정에서 지내고 있는 부인을 만났고 2시간 뒤인 밤 10시쯤 친구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메시지를 주고받은 뒤 연락이 되지 않았다. 고인의 누나라고 밝힌 청원인은 “남동생은 키 178㎝에 85㎏로 건장한 청년”이라며 “이제 갓 10개월 된 아들을 두고 있는 아이 아빠이자 직업은 헬스트레이너”라고 소개했다. 남동생은 지난 22일 모더나 백신 2차 접종을 마치고 24일 가족들과 식사를 가졌다. 청원인은 “접종 후 2일째 되는 날 친정 아빠의 생신이었다”며 “그게 마지막 식사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식사 후 (남동생이) 저에게 열은 없지만 등에 식은땀이 난다며 만져보라기에 만져봤는데 땀이 흥건했다”고 설명했다. 남동생은 이날 오후 10시쯤 친구와 마지막 메시지를 주고받은 뒤 연락이 되지 않았으며, 다음날인 25일 부인이 자택을 방문했을 때 숨진 상태로 발견됐다.“흔한 감기도 잘 걸린 적 없던 건강한 동생” 청원인은 “(남동생은) 평소 기저질환자도 아니었고 헬스트레이너라는 직업 특성상 매일 운동을 하는 건강한 남자였다. 어릴 때부터 잘 아픈 적도, 흔한 감기도 잘 걸린 적이 없다”며 “담배는 안 하고 술은 가끔 한 잔씩 먹던 아이”라고 전했다. 아울러 “이제 갓 돌 되는 아이와 올케는 하루아침에 가장을 잃었다”며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착하디착한 제 동생에게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고는 꿈도 못 꿨다”고 울분을 토했다. 또 “부검을 해도 백신으로 인한 사망 관계를 확인하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라며 “백신 후 사망 관계를 확실히 밝힐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용인시 등에 따르면 이 남성은 지난 22일 오전 용인의 한 소아청소년과 의원에서 모더나 백신 2차 접종을 했다. 이후 오한, 식은땀, 식욕부진 등에 시달렸다고 전해졌다. 이후 3일이 지난 25일 숨진 채로 발견됐다. 남성은 이상 반응과 관련해 병원 진료 기록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으며, 현재 경찰의 부검과 보건 당국의 역학조사가 진행 중이다.
  • 스크린 속 비극이 묻는다… ‘가족’의 의미를

    스크린 속 비극이 묻는다… ‘가족’의 의미를

    한 가정에 닥친 비극을 계기로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묻는 영화 두 편이 27일 동시에 개봉한다.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어 했던 ‘나쁜 아버지’와 사라진 아버지의 빈자리를 메우고자 분투하는 의붓어머니 이야기가 가을철 스크린을 빛낼 것으로 보인다. 올해 제74회 칸국제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아네트’(2021)는 ‘퐁네프의 연인들’(1991)로 유명한 프랑스 출신 레오 카락스 감독의 첫 뮤지컬 영화다. 오페라 가수 안(마리옹 코티야르 분)과 인기 코미디언 헨리(애덤 드라이버 분)가 결혼하고 ‘아네트’라는 딸을 낳은 뒤 벌어지는 가정의 비극을 담았다. 헨리는 관객들을 웃기지 못하는 퇴물로 취급받고 아내와 성공의 격차가 벌어지자 충동적으로 안을 살해한다. 안이 죽은 직후 마법처럼 엄마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물려받은 아네트는 헨리의 강압으로 세계 무대에 올라 스타가 되지만, 노래할 때는 꼭두각시처럼 줄에 묶인 채 입을 벙긋거린다. 카락스 감독은 실제 목각 인형으로 꼬마 아네트를 연출해 학대받은 아이에 대한 연민을 자극한다. 열등감이 사랑을 이길 때 어떤 비극이 일어나는지 보여 주는 이 영화는 “아빠는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아네트의 일침을 통해 부와 명예로 포장된 가족의 행복이 허상이라는 점을 꼬집는다. 상영시간 141분 동안 현실과 초현실을 넘나드는 연출과 몽환적 노래 15곡이 버무려져 귀가 즐겁다.요시다 야스히로 감독의 ‘가족의 색깔’(2018)은 한 남성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하루아침에 가족이 된 세 사람 이야기다. 주인공 아키라(아리무라 가스미 분)는 남편 슈헤이(아오키 무네타카 분)가 세상을 떠나자 슈헤이가 사별한 전처와의 사이에 둔 아들 야와 단둘이 남게 됐다. 슈헤이로부터 빚만 물려받은 이들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슈헤이의 아버지 세츠오(구니무라 준 분)를 무작정 찾아간다. 야는 아빠에 대한 그리움으로 학교에도 잘 적응하지 못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지만 아키라는 베테랑 철도 기관사 세츠오와 철도를 좋아하는 야를 위해 기관사가 되려는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인간의 심연과 주체성을 몽환적으로 묘사한 ‘아네트’와 달리 ‘가족의 색깔’은 할아버지와 손자, 아들의 연인이던 싱글맘이 함께 살며 서로의 상처를 보듬는 따뜻한 내용이다. 이를 통해 피가 섞이지 않아도 충분히 진정한 가족으로서 성장할 수 있다는 걸 시사한다. 일본 규슈 가고시마를 배경으로 한 고즈넉한 기차역과 푸른 바다의 풍경 등 영상미가 돋보인다.
  • 딸 죽음 덮어버린 경찰… 아빠는 23년째 진범을 쫓고 있다

    딸 죽음 덮어버린 경찰… 아빠는 23년째 진범을 쫓고 있다

    트럭에 치여 숨진 딸 성폭행 피해 의심경찰, 단순 교통사고로 급하게 마무리 800쪽 분량 수사기록 2001년에 입수뒤늦은 국과수 분석·각종 진술서 담겨성범죄 정황 입 닫았던 경찰에 배신감 檢, 2013년 범인으로 스리랑카인 검거증거 부족 무죄… 강간 공소시효도 지나정씨 “의심 용의자 있는데 수사 안 해”23년 전 정현조(73)씨는 맏딸 은희씨를 잃었다. 대구 계명대 1학년이었던 딸은 1998년 10월 16일 학교 축제를 마치고 귀가하던 길에 사라져 다음날 새벽 5시 10분 대구 구마고속도로(현 중부내륙고속도로)에서 23t 트럭에 치여 숨진 채 발견됐다. 사고 전 성폭행 피해를 입은 정황이 발견됐는데도 경찰은 단순 교통사고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강간살인’에 대한 의심을 거둘 수 없었던 정씨는 그날로 생업을 접었다. 10년 넘게 전국을 다니며 직접 조사를 했고 수백건의 탄원서와 고소장을 썼다. 그 결과 2013년 재수사에서 스리랑카인이 검거돼 재판에 넘겨졌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났다. 그러나 정씨는 처음부터 “진범은 따로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구 여대생 성폭행 사망 사건’에 대한 경찰의 부실수사 책임이 인정되면서 법원은 지난달 17일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부모에게 각각 3000만원, 형제 3명에게 각각 500만원씩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서울신문은 지난 20일 대구 수성구의 한 빌라에서 경비 업무를 하는 정씨를 만났다. ●“검경 못 믿어”… 직접 수사 나섰던 아버지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한 소감을 묻자 정씨는 “그동안 줄기차게 부실수사를 지적했지만 ‘네가 뭘 아느냐’는 식이었다. 과거 수사기관의 잘못이 인정되니 응어리가 조금은 풀렸다”면서도 “경찰이든 검찰이든 누구 하나 사과하는 사람은 없었다”고 말했다. 2017년 9월 제기된 소송은 가족들이 상고를 포기하면서 4년 만에 마무리됐다. 서울고법 민사15부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경찰이 단순 교통사고로 성급히 판단해 현장조사와 증거 수집을 하지 않고 증거물 감정을 지연해 극히 부실하게 초동수사를 한 것은 위법하다”고 판시했다. “신속하게 현장에서 유품과 증거물을 수거해 피해자의 몸과 속옷에서 정액이나 지문을 확인했더라면 이 사건을 성범죄 등 강력 사건으로 판단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고, 피해자 주변인과 행적 등에 대해 강도 높은 수사를 벌여 신속하게 범인을 잡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유족의 지속적인 진정에도 불구하고 사고 경위와 성범죄 관련 여부가 적시에 제대로 규명되지 않아 긴 시간 정신적 고통을 받으며 원한과 의구심이 해소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초동수사에 손 놓은 경찰을 대신한 것은 가족들이었다. 시장에서 채소 장사를 하던 정씨는 딸의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뛰어간 날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아프다는 말만 듣고 응급실로 갔더니 삼 남매가 “영안실로 가야 한다”며 울고 있었다. 영안실에서 아이 얼굴만 잠시 보고 나온 정씨는 다른 가족들과 함께 사고 현장으로 향했다. 계명대에서 집과는 반대 방향으로 7㎞ 떨어져 있는 고속도로인 것부터가 석연치 않았다고 한다. 30m 인근에서 딸의 속옷과 소지품이 흩어져 있었다. 그 길로 다시 영안실로 가 확인했더니 딸은 속옷이 벗겨진 채 상의와 바지만 입고 있었다. 직원은 그제야 말을 바꿔 “부검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사망 이틀 뒤 경북대에서 진행한 부검 결과 피해자의 체액을 광학현미경으로 관찰했을 때 정자가 발견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경찰은 국과수 정밀 감정을 의뢰하지 않았다. 주요 물증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놓친 셈이다. 1998년 12월 달서경찰서는 이 사건을 단순 교통사고로 종결했다. 가족들이 사고 현장에서 발견한 속옷 역시 한참 동안 ‘증거’로 인정받지 못했다. 정씨는 “같은 속옷을 선물받았던 동생이 맞다는데도 경찰은 ‘아줌마 속옷’이라면서 딸의 것이 아니라고 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언론에 초동수사의 문제가 보도된 1999년 3월에야 속옷을 국과수로 보냈다. 당시 정액이 검출됐지만 시료 오염으로 혈액형이 감정되지 않아 피해자의 속옷이라고 판단하기 어렵다는 결론이 났다. 이듬해 6월 경찰이 다시 국과수에 유전자(DNA) 분석을 의뢰하면서 피해자의 것이 맞다는 감정을 받았다. “처음에는 ‘알아서 안 해 주겠나’ 믿었는데 안 해 주더라고요. 경찰이 수사를 해야 하는데 아무리 말을 해도 오지를 않고. 그러니 내가 직접 가야겠다, 다 스스로 해야겠다 마음먹게 됐죠. 그때부터 장사도 다 접고 봉고차를 사서 전국을 다 다녔어요.” 정씨는 일을 그만두고 진상 규명을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아내는 반찬가게를 하며 생계를 이었고, 정씨는 2011년부터 경비 일을 다시 시작했다. 그는 검찰청, 법원, 여성가족부, 청와대, 대구시 등을 상대로 100건이 넘는 진정과 민원을 넣었다. 트럭 운전수를 의심해 강간살인 혐의로, 때로는 성명불상의 진범을 고소하며 재수사를 촉구했다. 하지만 모두 각하되거나 무혐의로 끝났다.●스리랑카인 검거했지만… “진범 따로 있다” 이 사건은 2013년 청와대가 정씨의 민원에 응답한 것을 계기로 대구지검이 재수사에 돌입하면서 전환점을 맞았다. 검찰은 그해 9월 국과수에서 보관 중이던 피해자 속옷에서 검출된 정액의 DNA와 성범죄 전과가 있는 스리랑카인 A씨의 DNA가 일치한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사건 당시 인근 공단에서 산업연수생으로 일했던 A씨가 공범 두 명과 함께 피해자의 현금을 훔치고 집단으로 성폭행한 뒤 달아났고, 이후 피해자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었다. 대구지검은 A씨를 특수강도강간 혐의로 재판에 넘겼지만 2017년 7월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가 확정됐다. 특수강간·강간 혐의는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할 수 없었다. 이후 검찰은 ‘스리랑카 공조수사 전담팀’을 꾸렸고 스리랑카로 추방된 A씨는 본국에서 숨진 은희씨를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돼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정씨에게 딸의 사건은 아직 ‘미제 사건’이다. 10년 넘게 사건 관계자들을 쫓아 나름대로 탐문을 벌였던 그가 내린 결론은 애초 “스리랑카인은 진범이 아니고 진범은 따로 있다”는 것이었다. 정씨는 과거 딸의 사망 전날 함께 술을 마신 대학 친구들과 사고를 낸 운전자, 앰뷸런스 후송 직원, 119 구급대원, 부검에 참여한 의사를 직접 찾아다녔다. 몇 달을 수소문해 간신히 만나면 궁금한 것을 묻고, 또 다른 이의 행방을 쫓아다닌 나날이었다. “경찰이 국과수에 넘긴 딸의 속옷 사진은 불로 태운 것처럼 검었어요. 사건 직후 우리가 현장에서 수거한 것과 다르게 훼손된 거죠. 거들도 원래 것과 모양이 달랐어요. 거기서 유전자가 어떻게 검출이 됐다는 건지 믿을 수 있겠어요. 유전자 조사 과정을 다시 검증하고 확인시켜 달라고 했지만 소용없었죠.” 정씨는 “초기 수사 때 부검을 하면서 피해자의 체액에서 DNA 채취를 하지 않아서 진상 규명이 더 어려워졌다”면서 “진범을 잡지 못하게 사건을 은폐한 책임자를 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무엇이든 스스로 한다는 정씨는 환갑이 넘어 인터넷을 배웠다. 온라인 공간에서 딸의 사건을 알리기 위해서다. 그는 2019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도 “딸의 친구들과 주변인의 진술에 비춰 의심 가는 용의자가 있었는데도 경찰은 수사를 하지 않았다”고 썼다. 이에 대해 유족 측 소송 대리인은 재판부에 낸 준비서면에서 “유독 아버지인 원고가 의문을 버리지 않는 것은 그동안 조사 탐문해 온 내용에 허다한 의혹이 있고 그것이 풀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이 역시 일종의 매우 중차대한 정신적 피해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정씨는 “범죄 피해자 가족의 알권리를 위해 수사 정보를 일정 부분 공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씨는 2001년 달서경찰서장을 직무유기로 고소한 사건으로 헌법소원까지 냈다가 얻게 된 수사 기록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800쪽 분량의 기록에는 부검의 감정서와 경찰이 뒤늦게 국과수에 의뢰한 딸의 속옷 분석, 각종 진술서가 있었다. 경찰이 그간 유족에게 한 번도 말해 주지 않았던 성폭행 의심 정황을 보면서 배신감을 느꼈다. 딸을 보내지 못하는 아버지는 23년째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다. “이제 할 만큼 했다는 사람들도 있어요. 어차피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고요. 그런데 계란으로 바위를 치면 바위가 더럽혀지잖아요. 닦아도 또 더럽혀지고, 나는 그렇게라도 계속하고 싶어요.”
  • “11월 출산 앞둔 고등학생 커플”...코로나19 확진 판정[이슈픽]

    “11월 출산 앞둔 고등학생 커플”...코로나19 확진 판정[이슈픽]

    고등학생 신분으로 ‘임신’ 유튜버 커플“11월 출산 앞둔 고등학생 커플”코로나19 확진 판정...네티즌 걱정 고등학생 부부 유튜버 ‘현쥐팥쥐’가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을 전했다. 현재 아내 심현지씨가 임신 중이라 네티즌이 걱정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현쥐팥쥐는 22일 유튜브 커뮤니티란에 “수요일에 영상 업로드 예정이었지만 일요일부터 발열과 기침, 두통이 있어 감기 증세로 생각하며 쉬고 있었다. 이후 증세가 심해져 코로나로 의심되어 월요일 오전에 선별진료소에서 검사 후 자택에서 대기하고 있었다”고 적었다. 이어 “화요일 아침 보건소에서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고 당일에 병원으로 이송됐다”며 “현재 입원 중에 있으며 빠른 시일 내에 건강을 회복해 새로운 영상으로 찾아뵙겠다”고 알렸다.글을 본 유튜브 이용자들은 “너무 걱정된다”, “아기도 임산부도 힘들 텐데 잘 이겨냈으면 좋겠다”, “빨리 회복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보길 기도하겠다”, “만삭이신데 어떡하냐. 꼭 쾌차하시길 바란다”등 반응을 보였다. 유튜브 ‘현쥐팥쥐’는 아내 17살 심현지씨와 남편 19살 윤재식씨가 함께 운영하는 채널이다. 아직 미성년자인 심씨는 임신 9개월 차로 11월 출산을 앞두고 있다.”17세에 임신 18주차...” 당당한 10대 부부의 일상 공개 현쥐팥쥐는 최근 Q&A 영상을 통해 자신들에 대해 시청자들이 궁금해하는 사항들에 대해 거리낌 없이 밝혔다. 현쥐팥쥐는 “처음 임신을 알았을 때 심경이 어땠냐”는 질문에 심씨는 “저희가 피임을 열심히 했는데 임신돼서 당황했다. 무서웠지만 내 삶보다 봄빛(아이 태명)이 더 중요해 낳기로 했다. 아이 지우는 건 생각만 해도 마음이 아팠다”라고 말했다. 부모님 반응에 대해서는 “두 분 다 많이 속상해하며 크게 실망했다”고 털어놨다. 특히 시아버지는 “청춘을 바쳐도 후회 안하겠냐. 더 생각해보고 결정해라. 너희 뜻에 따르겠다”라고 조언해주셨다고 밝혔다.학교는 어떡하냐는 질문에 심씨는 “아이 아빠는 곧 졸업이라 학교에 다니고 있고, 저는 몸이 덜 힘들 때만 틈틈이 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경제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대부분 남편이 열심히 벌어온다. 시아버지도 도와주신다”고 답했다. ‘앞으로 계획이 뭐냐’는 질문에 윤씨는 “졸업하면 안정적인 직장에서 돈을 벌 생각이다. 지금은 미성년자라 그게 잘 안된다”라고 전했다. 한편 현쥐팥쥐는 최근 만삭 사진을 공개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고등학생 신분으로 곧 부모가 될 예정인 두 사람은 아직 나이 요건 등에 걸려 혼인신고를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 [나우뉴스] 아빠 목숨값인데…사망보험금, 게임에 탕진한 초등생 형제

    [나우뉴스] 아빠 목숨값인데…사망보험금, 게임에 탕진한 초등생 형제

    모바일 게임에 빠진 초등학생 형제가 부친 사망 시 수령한 수천만 원을 모바일 게임 아이템 구매에 탕진한 것이 알려져 안타까움을 샀다. 중국 허난성 주마뎬시 정양현에 거주하는 10, 11세 형제가 얼마 전 수령한 부친 사망보험금 22만 위안(약 4000만원)을 대부분 모바일 게임에 탕진한 것. 사건은 지난 2019년 근무 중 교통사고로 현장에서 사망한 A씨의 보험금 수령자인 허 씨 형제의 일탈로 시작됐다. 수년 전 사망했지만, 사망 보험금 지급이 늦어지면서 불과 3개월 전에야 보험금을 수령한 형제는 해당 금액 전액을 게임 계정과 유료 아이템에 탕진했다. 초등학교에 재학 중인 두 형제의 양육을 책임진 고모 왕 씨는 지난달 휴대폰 요금 명세서에 무려 22만 위안 상당의 비용이 청구된 것을 확인했다. 왕 씨는 남동생 A씨가 사망한 지난 2019년부터 두 형제의 양육을 전적으로 담당해왔다. 왕 씨의 거주지 정양현 인근 초등학교 3, 4학년에 재학 중인 형제는 부친 사망 보험금 22만 위안을 수령, 왕 씨는 아이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사망 보험금 전액을 관리할 계획이었다. 문제는 왕 씨도 모르는 사이에 형제들이 휴대폰 소액 결제로 무려 22만 위안 전액을 모바일 게임 충전에 사용한 점이다. 명세서를 보면 어린 형제는 인터넷 쇼핑몰에 입점한 한 업체로부터 성인 명의의 모바일 게임 계정을 구매하는데에만 약 5만 위안 상당의 비용을 지출했다. 미성년자 게임 접속 시간을 제한한 미성년자 게임보호법을 피하기 위해 불법 업체로부터 성인 계정을 구매했던 것. 실제로 최근 규정된 미성년자 게임법에 따르면 중국의 미성년자는 1일 1시간 30분, 법정 공휴일에는 3시간 이내로만 게임 접속이 가능하다. 또, 당일 22시부터 이튿날 오전 8시까지는 게임 사이트의 접속 자체가 불가한 상황이다. 또, 모바일 게임 중독을 방지하기 위해 8~16세 미만의 미성년자는 하루 최고 충전 금액 50위안으로 제한, 매월 200위안 미만의 비용만 충전할 수 있도록 하는 강력한 제한 정책을 시행 중이다. 16세 이상의 미성년자라도 1회 충전 시 100위안 미만, 월 누적 최고 충전 금액은 400위안을 넘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이 같은 규정을 피하기 위해 온라인 유통업체를 통해 불법으로 성인 계정을 구매한 형제는 이후에는 고모 왕 씨의 주민번호를 몰래 도용해 추가 유료 충전을 하는 방식으로 거액의 비용을 탕진했다. 이같은 방식으로 형제가 불법으로 구매한 모바일 게임 성인 계정만 총 5개에 이른다. 또, 남아있던 아버지 사망보험금 중 대부분은 모바일 게임 내에서 유료 아이템을 구매하기 위해 소비했다. 이 사실을 확인한 왕 씨는 해당 모바일 게임 업체에 정식으로 항의, “동생의 죽음의 대가로 수령한 보험금”이라면서 “유가족 누구도 그 돈 중 단 1원도 손대지 못할 정도로 가슴 아픈 돈이다. 동생의 죽음을 목격한 어머니는 이 돈으로 단 1원 짜리의 생수도 사 먹지 못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왕 씨의 강력한 항의로 모바일 게임 업체 측은 허 씨 형제가 탕진했던 비용 중 14만 위안 상당의 비용을 환불하겠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업체 측은 이 비용을 빠르면 15일 이내에 고모 왕 씨의 계좌로 환불할 것이라고 재차 입장문을 공고했다. 하지만 온라인 유통 업체를 통해 불법적으로 구매한 성인 계정 판매 업체 측은 추가 비용에 대해 환불 조치 등의 입장문을 표명하지 않은 상태다. 임지연 베이징(중국) 통신원 cci2006@naver.com 
  • [여기는 중국] 아빠 목숨값인데…사망보험금, 게임에 탕진한 초등생 형제

    [여기는 중국] 아빠 목숨값인데…사망보험금, 게임에 탕진한 초등생 형제

    모바일 게임에 빠진 초등학생 형제가 부친 사망 시 수령한 수천만 원을 모바일 게임 아이템 구매에 탕진한 것이 알려져 안타까움을 샀다. 중국 허난성 주마뎬시 정양현에 거주하는 10, 11세 형제가 얼마 전 수령한 부친 사망보험금 22만 위안(약 4000만원)을 대부분 모바일 게임에 탕진한 것. 사건은 지난 2019년 근무 중 교통사고로 현장에서 사망한 A씨의 보험금 수령자인 허 씨 형제의 일탈로 시작됐다. 수년 전 사망했지만, 사망 보험금 지급이 늦어지면서 불과 3개월 전에야 보험금을 수령한 형제는 해당 금액 전액을 게임 계정과 유료 아이템에 탕진했다. 초등학교에 재학 중인 두 형제의 양육을 책임진 고모 왕 씨는 지난달 휴대폰 요금 명세서에 무려 22만 위안 상당의 비용이 청구된 것을 확인했다. 왕 씨는 남동생 A씨가 사망한 지난 2019년부터 두 형제의 양육을 전적으로 담당해왔다. 왕 씨의 거주지 정양현 인근 초등학교 3, 4학년에 재학 중인 형제는 부친 사망 보험금 22만 위안을 수령, 왕 씨는 아이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사망 보험금 전액을 관리할 계획이었다. 문제는 왕 씨도 모르는 사이에 형제들이 휴대폰 소액 결제로 무려 22만 위안 전액을 모바일 게임 충전에 사용한 점이다. 명세서를 보면 어린 형제는 인터넷 쇼핑몰에 입점한 한 업체로부터 성인 명의의 모바일 게임 계정을 구매하는데에만 약 5만 위안 상당의 비용을 지출했다. 미성년자 게임 접속 시간을 제한한 미성년자 게임보호법을 피하기 위해 불법 업체로부터 성인 계정을 구매했던 것. 실제로 최근 규정된 미성년자 게임법에 따르면 중국의 미성년자는 1일 1시간 30분, 법정 공휴일에는 3시간 이내로만 게임 접속이 가능하다. 또, 당일 22시부터 이튿날 오전 8시까지는 게임 사이트의 접속 자체가 불가한 상황이다. 또, 모바일 게임 중독을 방지하기 위해 8~16세 미만의 미성년자는 하루 최고 충전 금액 50위안으로 제한, 매월 200위안 미만의 비용만 충전할 수 있도록 하는 강력한 제한 정책을 시행 중이다. 16세 이상의 미성년자라도 1회 충전 시 100위안 미만, 월 누적 최고 충전 금액은 400위안을 넘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이 같은 규정을 피하기 위해 온라인 유통업체를 통해 불법으로 성인 계정을 구매한 형제는 이후에는 고모 왕 씨의 주민번호를 몰래 도용해 추가 유료 충전을 하는 방식으로 거액의 비용을 탕진했다. 이같은 방식으로 형제가 불법으로 구매한 모바일 게임 성인 계정만 총 5개에 이른다. 또, 남아있던 아버지 사망보험금 중 대부분은 모바일 게임 내에서 유료 아이템을 구매하기 위해 소비했다. 이 사실을 확인한 왕 씨는 해당 모바일 게임 업체에 정식으로 항의, “동생의 죽음의 대가로 수령한 보험금”이라면서 “유가족 누구도 그 돈 중 단 1원도 손대지 못할 정도로 가슴 아픈 돈이다. 동생의 죽음을 목격한 어머니는 이 돈으로 단 1원 짜리의 생수도 사 먹지 못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왕 씨의 강력한 항의로 모바일 게임 업체 측은 허 씨 형제가 탕진했던 비용 중 14만 위안 상당의 비용을 환불하겠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업체 측은 이 비용을 빠르면 15일 이내에 고모 왕 씨의 계좌로 환불할 것이라고 재차 입장문을 공고했다. 하지만 온라인 유통 업체를 통해 불법적으로 구매한 성인 계정 판매 업체 측은 추가 비용에 대해 환불 조치 등의 입장문을 표명하지 않은 상태다.
  • “양육비는 아이의 생존권… 나쁜 부모 명예보다 중요”

    “양육비는 아이의 생존권… 나쁜 부모 명예보다 중요”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의 사진과 신상을 공개했던 사이트 ‘배드파더스’가 20일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는다. 지난 7월 법 개정에 따라 정부가 배드파더스의 역할을 이어받게 되자 더 이상 사이트를 유지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해서다. 서울신문은 지난 14일 경기 화성에서 배드파더스 구본창 대표를 만나 마지막 소회와 양육비 이행법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들었다. 은퇴 후 필리핀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구 대표는 코피노(한국인과 필리핀인의 2세) 아이들의 양육비 미지급 문제가 심각하단 사실을 깨닫고 양육비 소송 지원을 시작했다. 2016년 ‘We Love Kopino’라는 코피노 아빠찾기 사이트도 만들었다. 그러나 소송에서 이겨도 돈을 받기란 쉽지 않았다. 구 대표는 “법원에서 판결을 받았는데 양육비를 못 받는 현실이 이해가 안 갔다. 이후 한국에서도 70% 이상이 못 받는다는 사실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구 대표는 2018년 한국에서 양육비 해결을 위해 만든 사이트 배드파더스의 일원으로 합류했다. 활동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신상이 공개된 부모들에게 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고소·고발된 건만 24건이다. 지난해 1월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구 대표는 검찰의 항소에 따라 이달 29일 항소심 첫 재판을 앞두고 있다. 그럼에도 구 대표는 아이들의 생존권을 위해 계속 활동해왔다. 구 대표는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무책임한 부모의 명예와 아이들의 생존권 두 가지가 충돌한다면 후자를 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3년 동안 배드파더스가 신상을 공개하겠다는 사전 통보로 해결한 건이 약 700건, 신상을 올린 후 해결된 건이 약 220건이다. 대략 1000명의 아이가 배드파더스 덕분에 생존권을 지킬 수 있었던 셈이다. 지난 7월 개정된 양육비 이행 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양육비 이행법)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털어놓았다. 양육비 이행법은 미지급자에 대해 ▲신상공개 ▲운전면허 정지 ▲출국금지 ▲형사처벌을 골자로 한다. 이에 따라 최근 1억원 이상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은 부모 2명에 대해 출국금지가 이뤄졌다. 구 대표는 이에 대해 “출국금지 기준이 완화됐다면 이보다 더 많은 미지급자에 대한 출국금지가 벌써 이뤄졌을 것”이라면서 “운전면허 정지 기한이 3개월이라 너무 짧고, 운전을 생계로 하는 자는 제외됐다는 점에서 법의 취지와 모순된다. 신상공개도 대상에 사진이 빠지면서 효과가 의문인데다가 동명이인 피해도 우려된다”고 말했다. 구 대표가 기대를 거는 부분은 형사처벌 정도다. 절차가 복잡하다는 점도 문제다. 구 대표는 “판사의 양육비 지급 판결에도 이행명령소송, 감치소송을 또 거쳐야 양육비 이행법에 따른 조치를 취할 수 있다”면서 “이러면 양육자는 지쳐 나가떨어지게 된다. 절차를 간소화해 소송부담을 덜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구 대표는 이제 다시 코피노 아이들에게로 돌아갈 생각이다. 그는 “3년 동안 너무 힘들어서 이제 문을 닫는다니 후련하다. 배드파더스 사이트가 닫고 나면 코피노 양육비 문제 쪽을 계속 할 것 같다”고 밝혔다.
  • [여기는 동남아] 점쟁이 말 믿고 11살 친딸 성폭행한 비정한 아빠

    [여기는 동남아] 점쟁이 말 믿고 11살 친딸 성폭행한 비정한 아빠

    처녀와 성관계를 해야만 생명을 위협하는 사고를 피할 수 있다는 점쟁이의 말을 믿고, 11살 된 친딸을 성폭행한 싱가포르 남성이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싱가포르 언론매체 더스트레이츠타임스는 18일 친딸을 성폭행한 혐의로 50살 남성 A씨가 징역 23년을 선고받았다고 전했다. A씨는 지난 2018년 9월 점쟁이로부터 생명을 잃을 수 있는 사고를 피하기 위해서는 처녀와 잠자리를 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점쟁이는 650 싱가포르달러(한화 약 57만원)를 내면 처녀를 소개해 줄 수 있다고 제안했지만, A씨는 이를 거절하고 11살 된 친딸과 성관계를 갖기로 계획했다. 그의 범행은 지난 2018년 10월에서 12월 사이에 발생했다. 침실 4개가 있는 아파트에서 아내, 아들, 두 딸과 함께 살던 A씨는 지난 2018년 10월부터 12월 사이 막내딸이 안방에서 자고 있던 틈을 타 범행을 저질렀다. 그는 딸에게 "절대 아무에게도 말해선 안 된다"고 강요했다. 이후에도 그는 아내와 큰딸이 장을 보러 외출한 사이 안방으로 가서 막내딸에게 몹쓸 짓을 저질렀다. 어린 딸은 부모가 이혼하는 것을 원치 않았고, 엄마에게 혼이 날까 봐 피해 사실을 숨겨왔다. 하지만 마음 둘 곳 없던 딸은 술, 담배에 손을 댔고, 학교 상담사가 아이와 상담하는 과정에서 A씨의 범행 사실이 드러났다. 학교 상담사는 즉각 이 사실을 경찰에 신고해 A씨는 경찰에 체포됐다. 재판에서 변호사는 "A씨가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으며, 예언된 비극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고통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검사는 "A씨는 딸을 성적 대상으로 보았을 뿐 아니라, 자신을 위험에서 구할 수 있는 값싼 대안으로 여겼다"면서 "그의 범행은 처음부터 계획적이었다"고 지적했다.
  • “아빠 왜 안 와…신랑 죽음 꿈이길” 모더나 맞고 하루만에 사망

    “아빠 왜 안 와…신랑 죽음 꿈이길” 모더나 맞고 하루만에 사망

    “아이들은 ‘아빠 지금 어디 갔냐. 왜 안 오냐’고 보채는데 어떻게 말을 해줘야 할지 막막합니다. 황망한 신랑의 죽음이 꿈이길 바랍니다.” 전북 군산시에서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한 30대 가장이 하루 만에 숨지자 인과관계를 규명해달라는 국민 청원이 올라와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17일 ‘모더나 백신 접종 이후 황망한 죽음을 풀어달라’는 제목의 글이 게시됐다. 고인의 아내라고 밝힌 청원인은 “두 아이의 아빠이자 평생 동반자라고 굳게 믿었던 신랑이 지난 16일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며 글을 시작했다. 청원인은 “(신랑은) 15일 오후 2시쯤 군산의 한 병원에서 모더나 백신 2차 접종을 했다”며 “소중한 가족을 지키기 위해 25t 덤프트럭 기사로 일하는 신랑은 접종 다음 날 출근했는데 몇 시간 뒤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다’는 전화를 받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직장 동료가 점심때 (신랑의) 얼굴색이 안 좋아 병원에 가보라고 했는데 점심시간이 지난 뒤에도 신랑이 운전하는 덤프차 움직임이 없어 문을 열어보니 의식이 없었다고 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특히, 청원인은 “남편은 술, 담배 한 번도 하지 않았고 지금까지 병원 내원도 손에 꼽힐 정도였다. 기저질환 환자도 아니고, 누구보다 건강했던 사람이었는데 병원으로 갔더니 이미 사망 선고가 돼 있었다”고 전했다. 이어 “발견 당시 심정지 상태였고 병원까지 40분 정도 걸렸는데 심폐소생술에도 미동이 없었다는 말만 전해 들었다”고 토로했다. 전북도 보건당국이 코로나19 모더나 백신을 맞은 뒤 하루 만에 숨진 30대 가장의 사망 원인 조사에 나서 귀추가 주목된다. 전북도 보건당국은 시신 부검을 통해 백신 접종과 사망의 연관성 여부를 확인하기로 했다고 17일 밝혔다. 부검 1차 소견은 1∼2주 이내에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전북도 보건당국은 “부검과 함께 역학조사관이 해당 병원 등에서 의료 자료를 받아 조사할 계획”이라며 “최종 결과가 나오면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 “모더나 접종한 남편, 하루 만에 사망...건강했던 사람”

    “모더나 접종한 남편, 하루 만에 사망...건강했던 사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모더나 백신을 접종한 30대 가장이 하루 만에 숨졌다는 내용의 청원이 올라왔다. 17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모더나 백신 접종 이후 황망한 죽음을 풀어달라’는 제목의 청원 글이 게시됐다. 고인의 아내라고 밝힌 청원인은 “두 아이의 아빠이자 평생 동반자라고 굳게 믿었던 신랑이 16일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고 말했다. 청원인은 “(신랑은) 15일 오후 2시쯤 군산의 한 병원에서 모더나 백신 2차 접종을 했다”며 “소중한 가족을 지키기 위해 덤프트럭 25t 기사로 일하는 신랑은 접종 다음 날 출근했는데 몇 시간 뒤에 ‘신랑이 위급해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다’는 전화를 받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같이 일한 동료들의 말을 들어보니 점심때 (신랑의) 얼굴색이 안 좋아 병원을 가보라고 했고, 신랑 또한 퇴근 이후에 내원할 예정이었다고 했다”며 “그런데 점심시간이 지나고 신랑이 운전하는 덤프차 움직임이 없어 대기하던 동료 기사분이 문을 열어보니 의식이 없었다고 했다”고 말했다. 청원인은 “부랴부랴 신랑이 있다는 병원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갔으나 이미 사망선고가 돼 있었다”며 “발견 당시 심정지 상태였고 병원까지 이송이 40분 정도 걸렸는데 심폐소생술에도 미동이 없었다고 전해 들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저희 자상한 남편은 술, 담배 한 번도 하지 않았고 지금까지 저와 살면서 병원 내원도 손에 꼽힐 정도”라면서 “기저질환 환자도 역시나 아니고, 누구보다 건강했던 사람이다”고 전했다. 청원인은 “아이들은 ‘아빠 지금 어디 갔냐. 왜 안 오냐’고 보채는데 어떻게 말을 해줘야 할지 너무 막막하다”며 “황망한 신랑의 죽음이 지금도 꿈같다. 아니 꿈이길 바라고 있다”고 호소했다.
  • 13살 가출소년 빼돌린 경찰···“우리는 왜 맞아 죽어야 했나요” [형제복지원 생존자, 다시 그곳을 말하다]

    13살 가출소년 빼돌린 경찰···“우리는 왜 맞아 죽어야 했나요” [형제복지원 생존자, 다시 그곳을 말하다]

    12년간 수용인원 총 3만 8000여명, 공식 사망자 513명. 1970~1980년대 국가 최대 부랑인 수용시설이었던 ‘부산 형제복지원’에서 벌어진 인권 유린 사태는 1987년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34년이 지난 지금,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진상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 생존자 13명은 지난 5월 20일 국가를 상대로 첫 손해배상 소송에 나섰다. 법원에 낼 진술서를 쓰는 과정 또한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반드시 쓰여져야 할 글이었다. 서울신문은 지난 5개월 간 매주 1편씩 이들의 증언을 기록으로 남겼다. 그 마지막 순서로, 소송을 주도한 이향직(50)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 집행위원장의 진술서를 소개한다.“고마 저거라도 델꼬 가뿌소”···경찰이 끌고 간 형제원 이향직(50)씨는 중학교 1학년 때 파출소에 맡겨졌다가 형제복지원에 끌려가 3년간 수용 생활을 했다. 가정폭력을 피해 가출을 한 이씨를 길에서 만났던 아버지가 경찰에게 돈 몇 푼 찔러주고 “금방 장을 보고 올 테니 겁 좀 주면서 데리고 있어 달라”고 했을 뿐이었다. 경찰은 파출소로 온 선도반에게 “오늘은 뭐 없네예. 고마 저거라도 델꼬 가뿌소”라면서 홀로 남은 이씨를 가리켰다. 장을 보고 돌아온 아버지에겐 “아이가 도망갔다”고 했다고 한다. 지옥 같은 나날의 연속이었다. 이씨는 아동소대와 청소년소대를 전전하면서 매일 벌레 섞인 밥을 먹었고, 그마저도 ‘선착순’(밥을 먹고 소대에 복귀하는 순서대로 기합)을 하는 날에는 밥을 움켜쥐고 달렸다. 배가 고파 살아있는 지네와 뱀을 먹은 날도 있다. 매일 군대식 훈련을 받으면서 기합과 폭행에 시달렸다. 하도 맞아서, 오히려 맞지 않는 날에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런 날은 손에 꼽았다. 명절 당일과 크리스마스 뿐이었다. 형제원에서는 10대 어린 아이들도 흙이 잔뜩 담긴 마대자루를 나르거나 봉제공장에서 강제노동을 했다. 돈은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조금이라도 소대장의 비위를 거스르면 몽둥이로 매질을 당했다. 하루는 봉제공장 옆 자리에서 일하는 친구와 떠들었다는 이유로 코뼈가 주저 앉아 얼굴이 피범벅이 되도록 맞았다. 의무실에 갔더니 마취도 없이 생살을 꿰맸다. 이씨는 “형제원에서 맞아 죽어나간 이들도 많이 보았다”고 했다. 이씨는 1987년 형제복지원이 폐쇄될 무렵에야 그곳을 벗어났다. 형제원 꼬리표를 떼기 위해 주경야독하며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 그럼에도 그가 형제원 출신이라는 걸 알게 된 사람들로부터 “네가 그러니까 형제원에 끌려갔지”라는 말을 듣고 상처받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도 트라우마를 벗어나는 건 쉽지 않았다. 경찰을 비롯해 제복 입은 사람들만 보면 숨을 제대로 쉬기 힘들었다. 반에서 1~2등하던 이씨의 딸은 한때 경찰을 꿈꿨지만 아버지의 상처를 알게된 후 진로를 바꿨다. 그는 7년 전부터 가족과 함께 상담 치료를 받으며 약을 먹고 있다. 고통으로 얼룩진 30여년을 보상받고 싶어서, 이씨는 용기 내 법정에 섰다.아래는 이씨의 진술서 전문. ※원문에서 일부 표현만 다듬어 그대로 옮겼습니다. [진 술 서] 제목: 형제복지원 피해자 진술서 성명: 이향직 진술내용: 존경하는 판사님께. 저희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이 약자의 ‘최후의 보루’라고 할 수 있는 법원을 통해 국가로부터 합당한 배상을 받고, 그렇게 해서라도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전달되기를 바라면서 이 글을 씁니다. 저는 형제복지원 수용 시절 ‘84-2934’라는 수용번호를 받았던 이향직이라고 합니다. 즉, 1984년에 2934번째로 입소했다는 뜻입니다. 1984년 6월, 저는 부모님 허락 없이 집에 있던 제 저금통을 털어서 몰래 친구들과 교회 수련회에 갔습니다. 수련회가 끝나고 집에 돌아가지 않고 신문보급소 숙소에서 자고 사직동 야구장에서 프로야구를 보고 돌아가던 중 아버지를 만났습니다. 아버지는 시장에 장을 보러 가던 길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도망갈 것 같은 불안감이 드셨는지 부전역전 파출소로 저를 데리고 갔습니다. 아버지가 경찰과 밖에 나가 짧은 대화를 나누고 만원짜리 몇 장을 주는 걸 보았습니다. 그리곤 아버지는 빵과 우유를 사다주고는 사라지셨습니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고 경찰관은 다른 사람으로 교대해 있었습니다. 파란색 츄리닝을 입고 ‘선도’라고 적힌 노란 완장을 찬 사람들이 와서 경찰관에게 물었습니다.선도: 오늘 뭐 쫌 있어예? 경찰: 오늘은 뭐 없네예. 그리곤 경찰관이 무릎 꿇고 손들고 있는 저를 보더니 경찰: “니는 요 와 이라고 있노?” 저: “아부지가 요 있어라 했어예” 경찰: “니 요 아이씨들 따라갈래? 그 가먼 학교도 보내주고 철마다 옷도 주고 밥도 주고 간식도 주고 다 해준다.” 대답을 안 하고 머뭇거리니 경찰관이 선도들한테 말했습니다. “고마 저거라도 델꼬 가뿌소.” 매일 새벽 5시 강제 기상···맞아 죽어나간 아이들 그렇게 해서 형제복지원에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훗날 아버지 말에 의하면 저를 데리고 시장에 장을 보러 다니면 중간에 또 도망을 갈까봐 파출소에 돈 몇 푼 주고 “겁 좀 주고 있어 달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파출소로 다시 저를 데리러 왔더니 경찰관은 “애가 도망갔다. 미안하다”고 했다고 합니다. 지금의 택배차와 비슷하게 생긴 차에 7~8명이 타고 있었습니다. 형제복지원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는 순간 파란색 츄리닝을 입은 아저씨들이 “똑바로 서! 동작 봐라! 빨리 안하지!”라고 하면서 큰 몽둥이를 들고 마구잡이로 두들겨 팼습니다. 저는 아이라 그랬는지, 한쪽에 무릎을 꿇고 손을 들고 있으라고 해서 그날은 맞지 않고 넘어갔습니다. 이후 신입소대에 들어갔는데 그곳에서는 비교적 덜 맞았던 것 같습니다.27소대(아동소대)에 보내지면서 진짜 지옥이 시작됐습니다. 매일 아침 5시에 강제 기상해 예배를 드려야 했습니다. 주기도문, 사도신경, 십계명, 찬송가 등을 외우지 못하면 기합을 받았고 빠따를 맞아야 했습니다. 이불도 칼각을 잡아 개야 했고 사물함에 옷도 칼각, 식사시간 전에는 운동장 구보를 했고 군대식 제식 훈련을 받았습니다. 중간 중간 기합이라고 불리는 고문들도 당했고 시도 때도 없이 단체 빠따를 맞았습니다. 조장과 서무들이 화가 나면 마구잡이로 몽둥이를 휘둘렀고 더 맞으면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때렸습니다. 실제로 어느날 밤 한 아이는 의식을 잃고 몸이 굳어가다가 밤에 실려나갔습니다. 다음날부터 일주일 가량 칠판에 ‘외부입원 1명’이라고 적혔지만, 나중에는 ‘귀가 1명’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그날 소대에서 귀가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밥 먹고 선착순 달리기를 한 달 내내 시킨 적도 있습니다. 아동소대 각 소대원 인원이 80~100명 정도인데 밥을 먹고 소대에 들어오는 순서 10등까지는 안 맞고, 11등부터는 무조건 빠따와 고문을 당했습니다. 선착순을 할 때는 밥을 먹고 소대에 들어가는 아이가 거의 없었습니다. 밥을 손에 한 웅큼 집어들고 식당에서 뛰어나가면서 입에 밀어넣는 것이 그나마 밥을 챙겨먹는 요령이었습니다. 벌레 섞인 밥, 굶주린 소년들은 뱀을 삼켰다 1985년 초부터는 청소년 소대였던 13소대로 보내졌습니다. 3개월 후쯤 9소대로, 다시 한 달 뒤에는 10소대로 전방을 갔고, 10소대에서 머물다 1987년 4월 23일 소년의집으로 전원을 가면서 형제원을 퇴소할 수 있었습니다. 형제원에서는 안 맞는 날이 거의 없었습니다. 심지어 매를 맞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밥, 국, 반찬에는 벌레 사체가 없는 날이 없었고 우리는 굶지 않으려 그것을 먹어야 했습니다. 철부지 같은 나이에 우리는 마대자루에 흙을 담아 산꼭대기 교회 옆으로 퍼 날랐고, 그 작업 또한 선착순이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매질을 덜 당하려면 흙자루를 짊어지고 뛰어다녀야 했습니다. 이제 갓 국민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이 와이셔츠를 만드는 봉제공장에서 월급 한 푼 받지 않고 일을 했습니다. 불량품 없이 목표량을 달성하면 라면, 초코파이, 산도, 캬라멜 등 상을 주었고 목표량을 못 채우면 혹독한 기합을 당했습니다. 형제복지원에서는 숨 쉬는 것만 빼고는 모든 일이 위법, 불법이었고 위헌이었습니다.우리가 왜 새벽 5시에 일어나야 했나요? 우리가 왜 썩은 음식을 먹어야 했나요? 우리가 왜 강제로 특정 종교를 믿어야 했나요? 우리가 왜 학교를 못 다녀야 했나요? 우리가 왜 흙을 지고 산으로 뛰어 다녀야 했나요? 우리가 왜 매일 고문을 당해야 했나요? 우리가 왜 맞아야 했나요? 우리가 왜 강간을 당해야 했고 우리가 왜 맞아 죽어야 했나요? 그곳은 지옥 이었습니다. 나무젓가락 만한 크기의 살아있는 새까만 지네를 통째로 씹어 먹어보셨나요? 살아있는 뱀을 통째로 뜯어 먹어보셨나요? 아니, 그런 장면을 보신 적은 있으신가요? 우리들은 누구나 다 그렇게 살았습니다. 5살부터 14살 먹은 아이들이 그렇게 살아야 했습니다. 형제복지원 사망자 수가 551명이라구요? 저희 피해생존자들은 웃기지 말라고 말합니다. 미확인 사망자수는 1000명이 넘을 것이라고 장담합니다. 형제원 내부 봉제공장에서 같이 일하던 친구와 장난을 치다가 조장에게 걸려서 몽둥이로 죽도록 맞다가, 코뼈가 부러지고 살이 찢어지고, 얼굴은 피범벅이 된 적이 있습니다. 의무실에 꿰매러 갔더니 마취도 안하고 생살을 꿰매주었습니다. 내무반에서 소대장의 담배가 분실돼 단체 기합을 받다가 무릎이 찢어져 의무실을 갔을 때도 그냥 생살을 꿰맸습니다. 지금도 코와 무릎에 흉터가 남아있고, 34년이 지난 지금도 수시로 무릎이 쑤시고 아픕니다. 그 시절 보통의 가정집 아이들은 명절 하루 전날에 쉽사리 잠을 잘 수가 없었지요. 명절 음식이 많아지니 설레었을 테니까요. 우리는 명절 당일과 크리스마스 당일에 잠을 제대로 못 잤습니다. 왜냐하면 1년 중 유일하게 몽둥이로 안 맞는 날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퇴소 후에도 ‘형제원’ 꼬리표···7년 전부터 트라우마 치료 1987년에 형제복지원의 실상이 일부분이나마 세상에 알려지면서 저는 형제원을 나왔습니다. 그때부터 전과자도 아니고, 단 한 번의 범죄도 저지른 적 없는 저였지만 경찰관, 군인, 보안요원 등 제복을 입은 사람들 앞에 서면 눈치가 보이고 숨이 가빠지고 호흡 곤란이 오는 트라우마가 생겼습니다.박인근 원장은 경찰에 잡혀가서 재판을 받을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습니다. 사람이 수없이 죽어나갔으니 당연히 사형, 모든 재산 또한 압류 당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 악마가 가벼운 벌을 받고 풀려났다는 걸 알게된 게 불과 6~7년 전이었습니다. 사회에 나온 뒤로 낮에는 봉제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야간학교를 다니면서 최선을 다해 살았습니다. 형제복지원 입소 전에 다녔던 학교에 찾아가 사정했지만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편입을 시켜주지 않았습니다. 독학으로 공부해 고입과 고졸 두 번의 검정고시를 모두 합격했습니다. 그런데도 내가 형제복지원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게된 사람들은 내가 작은 실수라도 하면 말 끝마다, “거지같은 새끼. 네가 그러니까 형제원에 끌려갔지, 괜히 갔겠냐.” 그렇게 형제복지원 출신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아야 했습니다. 제 아내는 7년 전부터 매주 토요일마다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내가 형제복지원 출신인 것을 아내가 알게된 시기도 그 무렵입니다. 그때부터 저도 오랜 트라우마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인해 아내와 함께 상담치료와 약 처방을 받고 있습니다. 저에겐 스물 셋 딸아이가 있습니다. 학교다닐 적 매 시험마다 학과 1~2등을 다투며 자격증도 10개 넘게 취득했습니다. 그런 딸아이의 장래희망은 중학교 3학년 때까지 경찰공무원이었습니다. 그러나 고등학교 2학년 때 그 꿈을 접었습니다. 아빠가 경찰관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존경하는 재판장님! 우리 피해자들이 원하는 것은 부귀영화가 아닙니다.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고, 사람답게 살고 싶을 뿐입니다. 피해자 대부분은 어린 나이에 세상에 내던져졌고, 그 악마의 재판이 있는 줄도 몰랐고 알았더라도 당연히 사형 또는 무거운 형벌을 받았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땐 너무 어렸고 함부로 나섰다가 또다시 어딘가로 끌려갈 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컸습니다. 그 악마가 그토록 가벼운 형벌을 받은 것을 인지한 시점은 불과 7~8년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저희에겐 억울하다고 항변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박인근 일가가 저지른 범죄의 시효는 아직도 남아 있다는 것이 우리 피해자들의 주장입니다. 아울러 국가가 우리에게 가한 폭력과 범죄 행위의 시효 역시 남아있다고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국가에서 규정한 내무부 훈령 410호를 근거로 마구잡이로 잡아가서 우리에게 가한 폭력은 물론, 그 지옥 속에서의 인권유린, 감금, 폭행, 성추행, 성폭행, 노동착취 등등 이 모든 것들을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도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하루하루를 전쟁터 안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부디 저희들을 살려주시길 온마음을 다해 호소합니다. 짧은 글로서 우리의 억울함과 현실을 모두 담기엔 저의 글재주가 부족함에 아쉬움이 많이 남지만 이만 줄입니다. 재판장님, 부디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을 살려주십시오.형제복지원 사건 어디까지 왔나 형제복지원을 운영한 고(故) 박인근 원장은 1989년 특수감금 혐의에 대해 무죄가 확정됐다. 2018년 문무일 전 검찰총장은 무죄 판결을 취소해 달라며 비상상고를 신청했지만 지난 3월 대법원에서 기각됐다. 다만 재판부는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했고 정부에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당부했다. 형제복지원 사건과 관련해 국가를 상대로 첫 손해배상 소송에 제기한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는 현재 2차 소송을 이어하고 있다. 1차 소송에 참여한 13명은 모두 입·퇴소 증빙자료가 준비돼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이러한 증거가 없어 피해사실 입증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는 비용 부담 때문에 소송 참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피해자들을 위해 후원금을 모금하고 있다.
  • 총기 방치해 두 살 아들이 화상회의 엄마 오발케 만든 미 아빠 기소

    총기 방치해 두 살 아들이 화상회의 엄마 오발케 만든 미 아빠 기소

    두 살배기 아들의 백팩 안에 총기를 아무렇게나 보관해 아들의 오발 사고로 엄마의 목숨을 빼앗게 만든 혐의로 미국 플로리다주의 20대 아빠가 체포돼 기소됐다. 베온드레 에이브리(22)는 지난 8월 11일(이하 현지시간) 실탄이 장전된 총기를 아들의 백팩에 넣어둔 채로 외출했다. 어쩌다 총기는 침대 아래 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호기심에 총기를 집어 만지던 아이는 방아쇠를 당겨버렸다. 단 한 발의 실탄이 그대로 발사돼 회사 동료들과 줌 화상회의에 열중하던 아이 엄마이자 에이브리의 여자친구인 샤마야 린(21)의 등을 맞혔다. 총소리 같은 것이 들리고 린의 몸이 갑자기 뒤로 넘어져 쓰러지자 화상회의 로 이를 지켜본 동료가 경찰에 신고했다. 현지 언론이 입수한 통화 녹취록에는 회사 동료가 “그녀가 의식을 잃었다. 카메라는 계속 그녀를 향해 있다. 그녀의 아이가 뒤에서 울고 있다”고 말하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 알타몬테 스프링스 경찰은 에이브리가 총기를 안전하게 관리하지 않아 이런 변을 초래했다며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했다. 법원에 제출된 문서에 따르면 그는 아직 변호사도 구하지 못해 변론 절차에 들어가지 않았다. 미국에서는 과실치사도 최고 징역 15년형에 처해질 수 있는 중범죄인데 실형을 적게 선고받더라도 15년의 보호관찰 명령과 함께 1만 달러(약 1183만원)의 벌금이 선고될 수 있다고 영국 BBC가 15일 전했다. 지역신문 올랜도 센티널 보도에 따르면 에이브리가 귀가해 여자친구가 바닥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한 뒤 응급 출동 서비스에 “제발 서둘러달라”고 애원했다. 이렇게 통화하는 중에도 그는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깨닫지 못했으며 그녀에게 심폐소생술을 시도하는 소리가 녹음돼 있었다. 응급의료진은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그녀가 사망했다고 선언했다. 알타몬테 스프링스 경찰청의 로베르토 루이스 경관은 지난 12일 기자회견 도중 “여러분의 결정은 늘 결과가 따르기 마련”이라며 “총기 소유자로서 책임을 갖고 총기류를 조심히 다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커플의 다른 두 자녀도 당시 집에 함께 있었지만 누구도 다치지 않았다. 두 자녀는 현재 다른 가족의 돌봄을 받고 있다. 에이브리는 다음달 23일 법원에 다시 나올 전망이다. 총기 규제를 옹호하는 시민단체 ‘에브리타운 포 건 세이프티’에 따르면 2015년 이후 미성년자의 의도하지 않은 총격 사고로 879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올해만 114명이 비운에 스러졌다.
  • 송선미의 눈물 “남편 피살 사건, 딸에겐 ‘우주여행 갔다’고”

    송선미의 눈물 “남편 피살 사건, 딸에겐 ‘우주여행 갔다’고”

    배우 송선미(47)가 남편과 사별 후 아이에 대한 걱정과 고민을 전했다. 송선미는 지난 8일 방송된 채널A ‘오은영의 금쪽상담소’에 출연해 5년 전 불의의 사고로 떠나보낸 남편에 대해 언급했다. 송선미는 “아이가 7세가 돼서 곧 초등학생이 되는데 그 나이가 되니까 걱정이 하나 되더라”며 입을 열었다. 그는 “내가 알려진 인물이다 보니까 가정사도 다 드러나게 되는데 남편 사건이 기사로 다 남아있다”고 말했다. 이어 송선미는 “(남편 사건을) 기사로 접하게 됐을 때 아이가 받을 상처를 어떻게 완화 시켜줄 수 있을까”라며 “뭐라고 아이한테 말하고 아이의 마음을 다독여줘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많이 걱정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딸이 너무 어려서 ‘우주여행을 갔다’고 얘기 했다” 딸에게 남편 사건을 어떻게 인지시켜줬냐는 질문에 송선미는 “당시 딸이 너무 어려서 ‘우주여행을 갔다’고 얘기를 했었다. 3~4세 때는 아빠는 대체 언제 오냐고 하더라”라며 “7세가 된 지금은 상황을 인정하게 된 것 같더라. 며칠 전에 딸이 ‘편지를 놀이터에 붙여 놓으면 바람이 하늘나라로 가져다줄까’라고 하더라. 나중에 곱씹어 보니까 (아빠를) 많이 그리워하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송선미는 “아빠에게 일어난 사건을 어떻게 표현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더라. 아빠와 혈연관계에 있던 사람이 물질적인 욕심 때문에 다른 사람을 시켜서 아빠한테 이걸 했다 했을 때 아직 어린 딸이 사람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이 아닌 부정적인 마음을 가져야 할까. 또는 우리 가족이 그런 일을 했다는 것을 어디까지 어떻게 표현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다”고 솔직한 심경을 전했다. 송선미는 2006년 3세 연상인 영화 미술감독 출신 A씨와 결혼했다. 두 사람은 2015년 딸을 낳으며 행복한 가족을 꾸렸으나, 2017년 8월 A씨는 서울 서초구의 한 법무법인 사무실에서 흉기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됐다.송선미 남편 살인교사한 사촌, 항소심도 ‘무기징역’ 경찰 조사 결과 그는 친할아버지 재산을 두고 갈등을 빚은 사촌 형 B씨의 지시로 청부 살해됐다.청부살해를 의뢰한 B씨는 항소심에서도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서울고법 형사5부 심리로 지난 2018년 열린 선고공판에서 살인교사 등의 혐의 기소된 B씨에게 1심과 같은 무기징역이 내려졌다. B씨의 의뢰를 받아 살인을 저지른 C씨는 1심의 징역 22년보다 감형된 징역 18년이 선고됐다. B씨는 지난해 8월 20대인 C씨를 시켜 송선미의 남편인 자신의 사촌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B씨는 재일교포 1세인 자산가의 장손으로, 부친 및 법무사와 공모해 조부가 국내에 보유한 600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가로채려고 증여계약서나 위임장 등을 위조하고 예금 3억여원을 인출한 혐의 등도 받고 있다. 송선미의 남편은 할아버지의 요청으로 재산환수를 돕던 중 2017년 8월 서울 서초동 한 법무법인 회의실에서 참변을 당했다.
  • 옐로스톤 노천온천 뛰어든 반려견 구하려다 20세 여성 화상

    옐로스톤 노천온천 뛰어든 반려견 구하려다 20세 여성 화상

    지난 4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노상 온천을 찾은 20세 여성이 반려견을 구해내려다 온몸에 2도 화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다. 반려견은 거의 끓는 물 수준인 섭씨 93도의 온천 물에 뛰어들었다가 결국 목숨을 잃었다. 워싱턴주 출신인 이 여성도 큰일 날뻔했지만 재빨리 아버지가 딸을 끄집어내 목숨을 잃지는 않았다고 영국 BBC가 7일 전했다. 부녀가 반려견과 함께 메이든스 그레이브 온천에 당도했을 때 반려견이 차에서 뛰어내려 온천을 향해 달려갔고, 그녀도 깜짝 놀라 뒤따랐다는 것이다. 결국 그녀는 어깨부터 다리 사이에 화상을 입고 말았다. 이 여성은 곧바로 아이다호주 병원으로 후송됐다. 공원 측은 신원을 밝히지 않았으나 고펀드미 모금 페이지에는 이 여성이 라이하 슬레이튼으로 치료 비용을 모금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그녀의 언니(또는 여동생) 카밀라는 인스타그램에 자매가 대략 8초 정도 물과 접촉해 2도 화상을 입었다면서 “우리 아빠가 미칠 정도로 재빨리 그녀를 빼냈다는 뜻이다. 그녀는 억세게 운이 좋았다. 아빠가 목숨을 살렸다”고 적었다. 옐로스톤 공원 관리들은 제발 정해진 탐방로 외에는 들어가지 말라고 늘 경고하고 있다. 반려견은 문제의 구역에 동반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올해 벌써 두 번째로 온천 지역에서 화상을 입는 피해가 발생했다. 지난달에도 19세 여성이 옐로스톤에서 가장 인기있는 간헐온천인 올드 페이스풀 근처에서 온몸의 5% 정도에 2~3도 화상을 입었다. 지난해에도 세 살 배기가 트레일을 벗어나 작은 온천에 떨어져 부상을 입은 일이 있었다. 이 공원 홈페이지에 따르면 지금까지 온천 쪽에서 화상으로 숨진 사람만 20명이 넘는다. 벼락을 비롯한 자연재해로 숨진 사람보다 훨씬 많은 숫자다.
  • 7년째 안 보이던 송종국…해발 700m 약초 캐며 살아[이슈픽]

    7년째 안 보이던 송종국…해발 700m 약초 캐며 살아[이슈픽]

    이혼 후 7년째 산골생활이혼 질문하자 “자격 없는 행동”송종국의 눈물 “후회와 자책 뿐” 이혼 후 7년째 산에서 생활하고 있는 전 국가대표 축구선수 송종국(42)의 근황이 전해졌다. 27일 TV조선 ‘스타다큐-마이웨이’에서는 송종국의 모습이 담긴 예고편이 공개됐다. 영상에는 강원도 홍천 산골에서 홀로 지내고 있는 송종국의 모습이 담겼다. ‘뒤늦은 고백’이라는 자막도 함께 올라와 송종국의 솔직한 심경 고백에 대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송종국은 산속 생활을 택한 이유에 대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사람 만나는 것 자체가 싫더라,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다”고 밝혔다. 이어 전처인 배우 박연수와의 이혼과 관련해 “1년 정도 아예 연락 안했다. 자격이 없는 행동이었으니까”라고 말하며 눈물을 보였다.“산에 온 지 7년”…해발 700m 산골에 송종국 앞서 지난 7월에도 송종국의 근황이 공개된 바 있다. 당시 MBN ‘현장르포 특종세상’에서는 해발 700m 깊은 산골에서 살고 있는 송종국의 모습이 전파를 탔다. 송종국은 등산복에 밀짚모자, 팔토시를 입고 산속을 돌아다니며 약초 등을 캤다. 그는 산에서 약초를 캐며 반려견들과 생활하고 있었다. 송종국은 도망치듯 산에 들어와 한동안 누구와도 연락하지 않고 산속에서 집을 짓고 혼자 살고 있다고 밝혔다. 당시 송종국은 “산에 온 지 7년 정도 됐다. 가장 친한 주위 친구들이 있지 않나. 그 친구들과 연락을 안 할 정도로 1년 동안 여기 들어와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개인적으로 제가 정신이 강하다고 생각했다. 잘 이겨낼 줄 알았는데 당시에 정말 힘들었다. 이대로는 못 버티겠다고 생각해서 아무도 없는 데로 사라지자고 생각했다. 다 접고 들어왔다”고 털어놨다. 아이들에게 미안함뿐이라는 송종국은 “(이혼 당시) 애들 엄마하고 많이 부딪히다 보니 아이들에게 더 안 좋았다. 싸우는 모습을 보이는 게 아이들에게 가장 치명적인 것 같았다. 그래서 그때는 싸우는 모습을 보이는 것보다 따로 있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양육권 포기, 아이들을 버렸다’ 세간의 편견 억울” ‘양육권도 포기하며 아이들을 버렸다’는 세간의 편견에는 억울함을 드러냈다. 송종국은 “아이들을 데리고 있는 쪽에서 친권을 갖게 된다. 양육권을 같이 갖고 있으면 나중에 서류 뗄 때 불편하다고 하고, (다른 사람도 아닌) 엄마가 키우는 거니까 그렇게 하자고 했는데 나중에 난리가 났다. 애들도 버리고 친권도 버렸다고 하더라”며 속상한 마음을 드러냈다. 송종국은 “저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의 공격들이 끝이 없다. 이혼이라는 게 부부간의 일이고 개인적인 일이지 않나. 아무리 친한 사람도 두 사람의 관계는 100% 알지 못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다는 송종국은 “그전까지 사람들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았다. 당시 제가 방송 일도 하고 축구 교실 일도 했다. 이후에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 싹 접고 들어왔다”고 털어놨다.한편 2001년 부산 아이파크를 통해 K리그에 데뷔한 송종국은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 중 하나다. 월드컵 이후 네덜란드 페예노르트에 진출해 유럽 무대를 밟았고, 수원 삼성, 알 샤밥(사우디), 울산 현대, 톈진 테다(중국) 등에서 뛰었다. 은퇴 이후에는 해설위원과 K리그 홍보대사로 활약했다. 이후 2014년 MBC “아빠! 어디가?”에 딸 지아, 아들 지욱이와 함께 출연해 가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2015년 배우 박연수와 이혼 소식을 전했다. 현재 딸과 아들은 박연수가 키우고 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