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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삼 정부 30개월/김 대통령 어록

    ◎“개혁중단 주장은 손으로 강물 막으려는 것”­93년 4월 15일/“세계화는 구각 탈피,새로 태어나려는 결단”­95년 1월 26일/깨끗한 부는 부끄러움이 아니라 자랑이 될것­93년 8월 12일/국제사회엔 적도 친구도 없고 경쟁자만 있다­94년 11월 10일 문민정부는 역대 어느 정권보다 「개혁과 변화」에 대한 대통령의 열의가 높았다.그래서인지 시선을 끈 대통령의 「말」도 유달리 많았다.김영삼 대통령의 「말」을 살피면 문민정부의 통치이념과 철학을 엿볼 수 있으며 국정의 전반적인 기류도 읽을 수 있다.집권 전반기 김대통령의 어록을 간추려본다. ▷93년◁ ▲『부정부패의 척결에는 성역이 있을 수 없다.단호하게 끊을 것은 끊고 도려낼 것은 도려내야 한다.신한국 창조에는 눈물과 땀이 필요하고 고통이 따른다』­2월25일 대통령 취임사. ▲『부처간 이기주의나 책임을 방기하는 행위는 결코 용납될 수 없다』­2월27일 첫 국무회의. ▲『추석 때 떡값은 물론 찻값도 받지 않겠다』『정치자금을 포함해 어떠한 이유로도 돈을 한푼도 받지 않겠다』­3월5일 기자간담회. ▲『혁명은 누구를 제척하거나 떼어낼 수 있지만 개혁은 모든 것을 끌어안아야 한다』­4월1일 동아일보 회견. ▲『공직사회에서 돈많은 사람이 부끄러운 시대가 오고 있다』­4월13일 재외공관장을 위한 연설회. ▲『「개혁을 중단해야 한다」,「속도를 늦춰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으나 이는 「손으로 강물을 막으려는 것」과 마찬가지다』­4월15일 대전의 주요인사 접견. ▲『토지·건물 등 부동산을 갖고 있는 것이 고통이 되도록 하겠다』­4월16일 신경제계획민간위원 조찬. ▲『5·18광주 민주화운동의 진상규명은 훗날 역사에 맡기는 것이 도리라고 믿는다』­5월13일 5·18관련 담화문. ▲『우리사회의 부정부패는 뿌리가 깊어 단시일안에 치유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따라서 개혁은 결코 일과성,또는 한시적인 것일 수가 없다』『5·18 문제는 「잊지는 말되 용서하자」는 방향으로 매듭지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7월16일 전남일보 회견. ▲『금융실명제 없이는 정치와 경제의 검은 유착이 단절될 수 없으며 활력이 넘치는 자본주의도 꽃피울 수 없다.이제 깨끗한 부는 부끄러움이 아니라 자랑이 될 것이다』­8월12일 금융실명제 실시 담화문. ▲『정당도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자생력을 가져야 한다.정치개혁을 위해 정치자금은 투명해야 하고 정치지도자들도 자기희생이 필요하다』­9월21일 정기국회 연설.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갖가지 배타적인 집단 이기주의가 분출하고 있다.국민에게 고통을 주는 집단행동은 한국병 중의 한국병이다』­10월5일 신경제추진회의. ▷94년◁ ▲『개가 짖는다고 뒤를 돌아볼 여유가 없다.공허한 논쟁에 매달릴게 아니라 실질적인 일에서 옳은 것을 구해야 한다』­1월1일 신년 하례서. ▲『세계화와 국제경쟁은 이제 더 이상 사치스런 말이 아니라 우리 앞에 다가온 현실이다』­1월6일 연두기자회견문. ▲『정치권이 거듭나지 않고는 진정한 국가경쟁력을 높일 수 없다.더 이상 허송세월할 여유가 없다』­2월15일 민자당 창당 기념연설. ▲『가야할 길은 멀고 달라져야 할 것은 너무도 많은데 지난 날의 체질과 관행이 우리의 발목을잡고 있다』­2월25일 취임1주년 기자회견문. ▲『야망을 가진 사람에게 무한경쟁은 절호의 기회다.그러나 야망은 잠자지 않고 있는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꿈이다』­2월26일 서울대졸업식 치사. ▲『변화와 개혁을 거부하는 집단에게는 멸망의 길밖에 없다』­4월17일 신한국인과의 오찬. ▲『나는 필사즉생,필생즉사의 각오로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4월28일 현충사 다례행제. ▲『교육개혁은 국민학교 교실에서부터 이뤄져야 한다』­5월2일 전국교육장 연수. ▲『경제외적인 이유로 기업이 고통받는 일은 없을 것이며 정치적 배려로 특혜를 받는 예는 더욱 없을 것이다.그러나 국가와 국민에 누를 끼치는 기업은 도태될 수 밖에 없다』­6월22일 건설진흥촉진대회. ▲『정부는 기본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명심해 주기 바란다』­8월9일 신경제 추진회의. ▲『세무조사에 성역이 있어서는 안되며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엄정한 조사를 받아야 한다』­8월17일 국세행정 실무자 오찬. ▲『모든 것이 다 깨끗하게되기는 참 어렵다는 것을 느꼈다.이 나라의 부정부패는 너무도 뿌리가 깊게 박혔다.로마제국이 망한 것은 외침이 아니라 내부의 부정부패 때문이었다』­9월17일 세계한인 상공인 접견. ▲『비용이 많이 드는 정치는 필연적으로 부정부패를 수반할 수 밖에 없다』­10월14일 전국여성대회 치사. ▲『성수대교 붕괴사고는 「일어난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것」이라는 관점에서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이제 「빨리빨리」와 「적당히 그냥」에서 벗어나도록 하겠다』­10월24일 특별담화문. ▲『오늘의 국제사회에서는 적도 없고 친구도 없으며 오직 경쟁자만이 있다』­11월10일 APEC정상회담 출국인사. ▲『모든 나라들이 오늘을 살아남기 위해,또 차세대의 번영을 위해 뛰고 있다.이 대열에서 한발짝이라도 뒤지면 우리는 후손들에 의해 「역사의 죄인」으로 기록될 것이다』­11월19일 APEC정상회담 귀국인사. ▲『위대한 국민일수록 역사를 창조하고 불행한 국민은 역사에 끌려다닌다』­12월24일 청와대 국무회의. ▷95년◁ ▲『내가 야당을 하던 시절에는민주주의가 없고 언론의 자유도 없었다.지금은 언론의 자유가 너무 많고 아무거나 쓴다』­1월6일 연두기자회견. ▲『세계화는 새로운 시대를 맞아 「옛 껍질을 깨고 새로 태어나고자」하는 결단이며 차세대를 위한 개혁이다』­1월26일 세계화구상 관련 연설.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사람은 후회하는 사람이다.나는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지난 2년동안 혼신의 힘으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2월25일 취임2주년 기자간담회. ▲『지방선거는 정치인이 아니라 살림꾼을 뽑는 것이다.지방자치제가 결코 정치투쟁의 무대가 돼서는 안된다』­4월17일 서울시순방. ▲『가장 개혁이 안된 곳이 정치와 언론이다.언론은 오보하고도 사과하지 않는다』­4월25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오찬. ▲『임기동안 헌법을 개정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4월26일 기자간담회. ▲『신문사들은 20∼50%를 무가지로 찍어 전부 쓰레기로 버리고 있다.신문사가 쓰레기를 줄이자고 한 말은 거짓이다』­6월9일 확대경제장관회의. ▲『차기 대통령은 세대교체된 새인물 중에 나올 것이 확실시된다.또 남북이 분단된 상황에서는 강력한 대통령제가 적절하다』­6월19일 미국 타임지 인터뷰. ▲『지방선거의 결과는 내 부덕의 소치다.변화와 개혁을 계속 추진하되 국민과 함께 하겠다』­7월5일 민자당 의원과의 청와대 조찬. ▲『국민의 대다수가 정치지도층의 세대교체를 갈망하고 있다.국민적 열망에 비춰 이를 실현하는 것이 나의 책무다』­7월21일 미국 비즈니스위크 인터뷰. ▲『개혁으로 소수 불이익을 받는 사람이 이의를 제기한다면 싸워서 이겨야 한다』­7월27일 워싱턴주재 한국특파원과의 간담회. ▲『두려움없이 변화와 개혁을 통해 대도와 정도를 걸어가겠다는 생각에 변함없다』­8월1일 민자당 상근당직자 및 당무위원 초청 조찬회.
  • 통일 외교안보 정책/전문가 대담(문민정부 후반기 과제:2)

    ◎장기적 관점서 교류확대 꾸준히/교차승인 대비 4강외교 강화를/대북정책 국민적 지지기반 넓혀야/정당 지도자간 비공개 협의 제도화를 성급한 낙관주의는 북 개방에 역효과/「북·미 평화협정 주장」 주변국의 변용 수용 경계해야 문민정부는 출범직후의 북핵문제와 김일성사망등 돌출변수들로 해서 능동적 대북정책을 활기 있게 펴나가는데 여러 어려움을 겪었다.대북 쌀지원등 우리측의 끈질긴 평화노력에도 불구하고 북은 당국간 대화를 회피,한반도 상황은 정체국면을 벗어나지 못했다.김영삼 대통령이 임기 반환점을 도는 시점에서 바람직한 통일외교 안보정책 추진방향을 김학준 단국대 이사장과 정용길 교수(동국대 행정대학 원장)의 대담을 통해 검색해 본다. ▲김학준 이사장=광복과 분단 50주년을 맞는 벅찬 기대와는 달리 남북관계는 아직 경색국면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문민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의욕적인 대북정책을 펼쳤으나 김대통령이 집권 전반기를 마감하는 오늘의 시점에서 남북관계는 오히려 어려운 국면에 빠져들고 있는 인상입니다.근본적으로는 우리의 선의를 다른 방향으로 이용하는 북이 문제라 하더라도 남북관계 전개 과정에서 우리측이 너무 유화적이었다거나 저자세 협상을 했다는 비판이 없지 않은 형편입니다. ▲정용길교수=통일과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한 점은 인정하지만 대북정책이 혼선을 빚은 점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특히 성향이 다른 통일부총리가 지난 2년반 동안 5명이나 교체된 것은 정부의 대북정책이 그만큼 일관성을 결여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아울러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는 노력도 부족했습니다.결과적으로 지난 2년반 동안의 대북정책은 정부의 관계개선의지에도 불구하고 실행과정에서 세련되지 못한 부분들이 적지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이사장=북한에 대한 안이한 낙관주의가 남북관계에 있어서 우리의 입장을 약화시킨게 아닌가 생각합니다.북한에 동포로서 무엇인가를 베풀어주고 민족주의에 호소하면 쉽게 호응해오리라고 보는게 문민정부 통일정책의 기본 발상이 아니었던가 싶습니다.그러나 북한은 취할 것은 다 취하고 양보할 것은 양보하지않는 녹록하지 않은 존재였습니다.이는 경수로협상 과정과 인공기 강제게양사건,삼선 비너스호 억류사건등을 빚은 쌀 지원 과정에서 여실히 입증됐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대북정책의 국민적 지지기반 내실화가 어느 때보다 강조되어야 할것 같습니다.키신저는 교수시절에 쓴 「대외정책의 국내구조」에서 『대내적 지지기반이 확고하지 않으면 대외정책을 제대로 추진할 수 없다』고 갈파했는데 이는 대북정책의 국민적 지지기반의 중요성과 관련하여 오늘날 우리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훌륭한 교훈입니다. 이같은 맥락에서 이제는 국민과 함께 가는 대북정책을 추진해야 할 때라고 생각 합니다.물론 대북정책 추진시 기밀성과 보안의 중요성도 무시할 수는 없겠죠.때문에 최소한 국회에서의 비공개 토론이나 정당지도자간의 협의를 제도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 합니다. ▲정교수=동감입니다.통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내정치의 안정과 남북관계개선,주변국의 지원등 3박자가 제대로 맞아야 한다는 점입니다.북한의 내부사정을 볼 때 당장 통일이이뤄지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국내적으로도 통일비용을 부담스러워 하는 여론이 적지 않습니다.결국 대북정책은 당장의 통일보다 단계적으로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쪽으로 추진돼야 할 것입니다. ▲김이사장=북한당국은 현재 통일에 관심을 갖고 있다기 보다 내심 통일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봅니다.지난 8월초 남북학자 통일학술회의 석상에서 한 북한대표의 발표에서도 이를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그는 『우리는 독일식 흡수통일도,베트남식 무력통일도 반대할 뿐 아니라 돈으로 상대를 녹여내는 방식도 반대 한다』고 말했습니다.이는 남북경협을 통해 남쪽의 막강한 자본주의가 북한을 변화시켜 체제가 와해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의 표현일 겁니다. 북한은 개혁·개방을 하더라도 극히 제한된 범위내에서만 진행시킬 것으로 관측 됩니다.따라서 북한을 개혁·개방의 무대로 이끌어내려는 우리측의 노력이 얼마 만큼 빛을 볼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정교수=평양은 통일을 두려워하고 서울은 전쟁을 두려워 한다고들 합니다.특히 북한은 동독이 서독에 흡수되는 과정을 보면서 통일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성급한 통일작업 보다는 꾸준히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이를 위해서는 독일의 통일방식을 원용할 필요가 있습니다.즉 인적·물적교류를 꾸준히 확대하는 「작은 걸음 정책」이 필요 합니다.통일에 대한 환상에서 깨어나 차근차근 접근해나가자는 자세가 중요합니다.김대통령이 광복50주년 기념사를 통해 『통일에 대해 환상적인 기대도 성급한 포기도 금물이며 꾸준한 인내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것도 남북한 모두 당장 통일을 맞이할 조건이 성숙돼 있지 않다는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김이사장=현정부 뿐만 아니라 과거 우리의 역대정부,심지어 야당지도자들까지도 한건주의식으로 대북 문제에 접근해 과오를 범하는 사례가 없지 않았습니다.이제는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우리의 속담처럼 북한문제를 다루는데 있어서 지도자나 국민 모두가 흥분하지 말고 참을성 있게 서서히 접근해야 할 때입니다. ▲정교수=그동안 정부의 통일외교정책 기본틀은 한·미공조관계 속에서 남북관계를 풀자는 것이었습니다.그런데 최근 북한과 미국·일본간 수교문제가 대두되면서 우리가 다소 소외되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였습니다.이는 앞으로 한반도 주변 6개국의 교차승인이 이뤄지면 남북한간에 외교적 경쟁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예고해 주는 것입니다.지금의 한반도 주변상황은 구한말 때 보다 외교적으로 더욱 어려운 실정입니다.한반도 주변국들은 당시보다 더욱 막강한 정치·경제적 영향력을 한반도에 행사하고 있습니다.남북한의 자주적 평화체제 구축노력이 어느 때 보다 절실합니다. ▲김이사장=최근 들어 한반도문제가 다시 국제화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우리 민족 스스로의 자결권이 약화되지 않나 하는 우려를 갖게 됩니다.물론 남북한과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4강의 동시수교가 이뤄지면 평화가 제도적으로 이뤄진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없는 것은 아니겠죠.그러나 남북 모두가 경각심을 갖고 남북대화를 다시 시작해 한반도문제를 「한민족화」해 나가야 할 시점이라고 봅니다. ▲정교수=남북한과 미국·일본·중국·러시아간의 교차승인이 이뤄지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가능성은 한층 높아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그러나 기본적으로 평화체제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남북한 스스로가 남북기본합의서나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등 기존의 남북한 합의사항을 존중하는 자주적 노력이 긴요합니다.그런데도 북한은 핵문제나 쌀선박 인공기게양사건,쌀선박 억류등에서 나타난 것처럼 인도적 차원의 협조에 대해서 조차 그 의미를 희석시키려 하고 있어 유감입니다.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북한이 성의있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입니다. ▲김이사장=한반도의 새 평화체제 구축은 남북 기본합의서등 이미 합의한 남북간 합의를 성실히 이행하는 것이 핵심입니다.문제는 북한이 현정전협정이 남북당사자간이 아닌 북·미간에 의한 평화협정으로 대체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현재로선 미국·중국등 국제사회가 모두 이에 반대하고 있지만 정부는 앞으로 새로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문제가 논의되는 과정에서 20여년 동안 지속된 이같은 북한의 주장이 국제사회에 의해 변용 수용될 가능성을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정교수=현정부 전반기의 통일외교정책을 정리해 본다면 선진한국을 건설한다는 목표아래 외교다변화와 경제실리외교를 전개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특히 대북정책에서는 관계개선의 물꼬를 트기 위해 진보와 보수,강·온전략을 병행하는 정책을 구사해 왔습니다.그러나 대북정책이 당장 실효를 거두지는 못했습니다.이는 우리 정책의 혼선에도 원인이 있겠지만 급작스런 변화를 원치 않는 북한 자체에 근본 이유가 있습니다.까닭에 당장 남북관계개선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만큼 우선 통일에 대한 환상을 깨고 국내정치의 안정을 바탕으로 인적·물적 교류를 확대하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봅니다. ▲김이사장=통일을 중장기적 과제로 본다는 전제하에서 우선 우리 대한민국을 성숙한 민주 복지국가로 육성하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통일의 기틀을 다지는 길일 것입니다.아울러 주변 4강외교,특히 중국등 아시아 이웃들과의 외교을 강화하는 것도 통일의 터전을 닦는 첩경이라고 봅니다.
  • 유에스뉴스지 「우리의 세기」 특집

    ◎미,평균수명 100년간 29세 늘어/20세기에 「번영·풍요」 아메리칸 드림 실현/마차·빨래판서 우주왕복선·세탁기 변화 미국인에게 있어서 20세기는 두려움에서 희망을 가져다 주었고 부정적 성향을 긍정으로 전환시켰으며 곪아 있던 문제들을 해결한 시기로,어떤 현명한 예언가들의 예측보다도 항상 훨씬 낫게 발전해온 세기로 정의됐다. 이같은 정의는 미국 시사주간지 유에스뉴스 & 월드리포트지가 최근호(8월28일자)에서 마련한 40여페이지에 달하는 「우리의 세기」라는 특집의 결론으로 내려졌다. 20세기에 이뤄졌던 변화들은 집중 조망하고 다음 세기의 변화를 예측하기위해 현재 미국에 1세기 이상을 생존하고 있는 1백세 이상 인구 5만2천명 가운데 26명을 선정,집중 인터뷰를 했다. 이들은 마차에서 우주왕복선까지, 빨래판에서 자동세탁기까지, 깃대꽃힌 펜에서 컴퓨터까지의 엄청난 물질문명의 변화는 물론 두차례의 세계대전과 공산주의의 발흥과 몰락, 인권평등과 연권신장 등의 격동기를 겪어 온 세대로 그들의 인생역정과 경험이야말로 아메리칸드림을 현실의 번영과 풍요로 가꾼 「가장 고귀한 국가적 보물」이라고 리포트지는 평가했다. 한편 사회적 지표로 볼때 이들 세대는 인구 7천6백만에서 2억6천2백만, 평균수명은 47.3세에서 76.3세의 격차를 함께 살아왔다. 의료기술의 현저한 발달로 인구 1천명당 사망률은 17.2명에서 8.7명으로 줄어들었으며 유아사망률은 1천명당 99.9명에서 8.3명으로 낮아졌다. 경제적으로는 인구의 70% 가량이 빈곤선 이하에 살았으나 현재는 한자리 이하의 숫자로 떨어졌으며 GNP(국민총생산)는 1백87억달러에서 6.7조달러로 3백58배나 증가했다. 리포트지는 특히 놀라운 것은 인터부한 1백세 이상의 노인들 가운데 반수 가량은 아직도 자신의 「일」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 중국의 얼굴/나이젤 카메론 등 지음(화제의 책)

    ◎서구인 눈에 비친 19세기 중국 모습 19세기 서구인의 눈에 비친 중국의 모습을 담은 사진 68컷과 참고도판,이와 관련된 글 4편을 엮었다.사진작가는 펠리스 비토,존 톰슨 등이다. 자희황태후(일명 서태후)가 악명높은 내시장 이연영과 함께 자금성에서 찍은 사진,아편전쟁 때 폐허가 된 이화원의 모습,북경으로 진주하는 서양연합군을 찍은 사진 등 희귀한 자료가 많이 소개돼 있다.또 중국인 상류층의 집 내부와 가족,하녀를 거느린 만주족·한족의 여인,범죄자 처형 등 중국인의 생활상과 풍속도 두루 등장한다.양자강의 고산,절강성 남부의 사원 등 절경도 곁들였다. 그러나 이 사진집은 단순히 자료집으로서만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이 사진들에서는 당시 동양문화에 대해 우월감에 넘쳤던 서구인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곁들여 미지의 세계인 중국에 대한 호기심과 두려움도 뒤섞여 있다. 따라서 이 책을 편역한 미술사학자 이영준씨는 『이 사진들이 중국을 찍었다는 이유만으로 서양사진의 주변적 영역으로 볼 것이 아니라 사진의 역사를 이해하는중요한 자료로서 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열화당 5천원.
  • 신세대 시각(21세기 한­일 새 지평:5·끝)

    ◎한일 공존을 위해 풀어야할 숙제들/우월의식·불신 제거로 과거치유를/상호신뢰 넓혀 「갈등 역사」 청산/청년층 격의없이 자주 만나야/김홍진 ▲75년생 ▲서울대사범대 국민윤리교육과 2년 1995년 8월15일.우리는 「광복」이라 하고,현해탄 건너 일본에서는 「패망」이라고 부르는 사건이 일어난 지 만 50년이 되는 날이다.하지만 일본의 식민지배가 남긴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은 채 남아 있다. ○과거책임은 분명 우선 분단과 통일의 문제를 생각지 않을 수 없다.식민지배가 낳은 분단이라는 고통은 여전히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근대적 민족국가 건설을 원천적으로 봉쇄당한 민족의 불행과 주권상실의 아픔을 하나의 유전형질로까지 간직하게 된 우리는 까닭도 모르는 채 분단이라는 비극도 떠맡아왔다. 그동안 각자의 길을 달려온 남과 북은 이제 민족의 동질성 회복마저 운운해야 하는 정도까지 이르렀다.36년간 이어진 일본 제국주의의 지배를 힘겹게 떨치고 난 후에도 아득한 절망과 끊임없는 도전 속에서 살아온 것이다. 참된 광복은 통일이라는 주장은 그래서 타당성을 갖는다. 과거청산도 아직 풀리지 않는 역사적 과제로 남아 있다.한민족의 지난 50년은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청산의 역사인 반면 우리에게 빚을 진 일본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만해져만 갔다.해방 이후 한·일 역사는 마뜩한 뒷풀이가 없었다는 것을 삼척동자도 알 것이다. 이처럼 식민지배와 분단으로 왜곡된 역사를 바르게 풀어나갈 주체와 방향은 어떤 것일까. 기나긴 역사에 비해 인간의 삶이 제한적인 만큼 식민지배의 고통을 직접 당한 기성세대가 일본의 죄값을 추궁하는 역사가 언제까지나 이어질 수는 없다.이제는 청년학생이 주축이 되어 한·일관계의 새 지평을 열어나가야 할 때다. 앞으로 한·일관계의 새로운 장을 열어나갈 청년은 「신세대」로 불린다.일본도 이미 80년대에 기존세대와 가치관의 단절을 고한 「신인류」의 출현을 맞이했다. 신세대 혹은 신인류가 오도된 역사를 바로잡는 역할을 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앞으로의 역사도 알력과 대립으로만 점철돼서는 안될 일이다.다가올 세기는 하나된 한반도의 젊은이와 국제사회의 중추로 자리잡은 섬나라 젊은이의 공존의 시대이어야 한다. ○젊은이 역할 중요 이를 위해서는 두 민족간의 오랜 원한과 그릇된 우월의식,상호신뢰를 허무는 어줍잖은 영웅의식,이를 기반으로 등장하는 극단적 민족주의,공동이익을 저버리는 일방적인 국가행위 등을 극복해야 한다. 한반도와 일본의 정황은 아직도 이같 기대를 충족시킬 만큼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한반도는 아직 불안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상태이고 일본도 이같은 긴장상태가 지속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제국주의자의 망언은 최근까지 계속되면서 한·일관계를 이간질하고 있다.최근에는 자위대증강,핵물질보유 등 군사력 신장과 극우파의 창궐로 『일본에서 군국주의가 부활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마저 불러일으키고 있는 실정이다. 국민감정도 아직 완전히 치유되지는 않았다.일본에서는 얼마전 염한론이 한창 회자됐다.『얼마나 더 사과해야 되나』『이제 한국이라면 지긋지긋하다』는 소수 일본국민의 반한감정이 드러난 형태였다. 우리 국민도 대일감정을 묻는다면 열에 아홉은 싫다고 말한다.그것은 과거에 대한 혐오일 수도 있으나 일본이 보여주는 반성의 태도에 수긍할 수 없다는 불만 때문이기도 하다.그들이 보여주는 지나친 민족우월의식은 거부를 넘어 두려움의 대상이기까지 하다. ○영웅의식 극복을 이같은 현실을 극복하고 한·일관계의 새 지평을 열기 위해 정부는 좀더 대범하고 적극적인 대일외교를 수행,한국과 일본 양국이 헌법에서 밝힌 바대로 인류공영에 이바지하는 역사적 대의에서 주도권을 쥐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일본도 제국주의의 꿈을 버리지 않은 채 지역패권을 추구,공존해야 할 이웃국가에게 수고를 끼친다면 이는 21세기를 살아가는 방법이 아닐 것이다. 아울러 한·일 양국이 다가올 세기의 공존과 번영을 이끌어갈 청년학생에 대한 투자도 잊지 않았으면 한다.양국의 청년이 바른 역사관을 세우고 양국의 미래를 생각할 수 있는 꾸준한 만남의 장이 조속히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참 공영의 미래향한 선결과제/상대 바로알기가 선린우호 첫 걸음/무지·몰이해서 오해·마찰 비롯/교육·문화 등 교류확대 급선무/나카가와 도시히코 ▲71년생 ▲일 무사시대 사회학과 4년 「한국은 도대체 어떤 나라인가」라는 질문을 받고 「이런 나라다」라고 답할 수 있는 일본의 젊은이들은 어느 정도나 될까. 김치,치마저고리,메이드 인 코리아 운동화·T셔츠 등으로 밖에 이미지를 떠올리지 못하는 지식의 모자름.나 자신 이런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가까운 나라이면서도 알려지지 않은 먼 나라.왜 그런가.그 답을 찾기 위해 올해 봄 한달 반동안 한국에 단기 유학했다. ○부정적 생각 깊어 솔직히 말해서 한국에 대해서는 좋은 인상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그저 누님 내외가 서울에 살고 있다는 관계밖에 없었다.좋은 인상을 갖고 있지 않았던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알지 못한다」.이 한 마디로 집약되는 것이 아닐까. 역사 문화 그리고 말.고대 불교와 유교의 전래,고려청자와 이조백자가 일본의 도예에 기초를 제공했다는 것,도쿠가와 막부와 조선의 교류 등 일본에 문화적 영향을 주어왔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지고 있는 전쟁책임에 따른 부채를 의식하고 있기 때문일까,아무래도 한일관계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되고 말았다. 종군위안부문제 등 전후처리에 관련된 일도 잘 이해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현실감을 갖지 못한 채 「전후책임」이라는 네글자가 눈 앞을 그냥 지나쳐 「부채」라는 프레셔만이 남아 있는 것이다.그래서 나는 한국에 대해서 막연한 혐오감을 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언어와 문법에 대해서는 상당한 정도로 닮았다는 것을 유학에 임해서 처음 알았다. 또 이러한 문제이전에 한국인을 잘 알지 못했고,한국인들이 속마음으로 일본인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도 몰랐다. 서울에 머무르는 동안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씨의 강연에 찾아가 볼 기회가 있었다.예상이상으로 관심이 높았기 때문에 나는 강연장에 들어갈 수 없어서 포기하고 돌아갈까 할 때,입장을 할 수 없었던 한국인은 대단히 사납게 주최자측에 따지고 들어 어떻게 해서든 강연장에 들어가려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고 있었다.조금이라도 빈틈이 있으면 문을 향해서 밀려 들고 밀려나오면 또 나아갔다. ○서로의 고민토로 혼잡을 빚는 사람에 시달리면서 나는 한국인의 과격함에 압도당해 강연의 건은 아무렇게 돼도 좋게 됐다. 또 한국에 가기 전 내가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혐오감을 받게 되지 않을까하고 내심 불안했지만 그것은 지나친 생각이었다.특히 같은 세대의 한국 젊은이들과 해외의 문화의 유입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서양문화를 모방하는데 지나친 것은 아닐까라고 서로 닮은 고민을 말할 수 있었던 것이 대단히 기뻤다. 그러나 지하철에서 일본어 책을 읽고 있을 때 나이 많은 남자가 일본어로 나에게 「일본과 한국의 관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물어와 나는 이 질문에 대해 명확한 생각을 말해 줄 수가 없었다.그 남자가 너무 유창한 일본어를 말하고 있어서 「일본은 한국에 대해 거듭 전쟁책임을 져야한다」등등 가볍게 말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앞으로 서로 나라를 짊어지고 나아가는 것은 우리들 세대다.서로 알지 못하고 있는데도 알고 있는 듯이 하면서 전후 50년의 문제를 한번에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문화가 다르면 이런저런 부분은 받아들여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이 허용하기 어려운 부분을 줄여나가는 것부터 시작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교육 문화교류 등 방법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깊은 이해심 필요 다른 나라와의 오해와 마찰은 상대국에 대한 지식부족,무이해로부터 생긴다.일본인도 노력이 부족하지만 한국의 국민들도 일본이라는 나라를 다양한 각도에서 보아주기를 바란다. 한일 양국민은 감정적으로 의미도 없이 서로 혐오하기보다는 오히려 서로를 잘 안 뒤에 양자가 이르지 못한 부분을 서로 지적할 수 있도록 하는 편이 우호관계를 지속될 수 있도록 하게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부터 우선 한일관계에 무엇이 있었는가를 배우는 것부터 시작하고 싶다.
  • 공학분야/여성엔 여전히 “좁은 문”

    ◎과기인력 여성비중 3.6%… 5년새 1%P 늘어/공대 여학생 비율 5%… 미국의 3분의 1 수준 「공학은 남성의 영역」이란 신화는 과연 깨어졌는가.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부설 과학기술정책연구소(소장 김영우)는 12일 국내에서 공학분야는 여성에게 여전히 「좁은문」이 되고 있으며 국가차원의 인력수급 정책 측면에서 여성고급인력의 활용을 위해 적극적인 육성책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여성 공학 교육및 인력 활용에 관한 연구」를 발표했다. 이화여대 물리학과 모혜정교수팀에 의뢰해 수행된 이 연구 결과에 따르면 국내의 여성 과학기술인력 활용도는 무척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먼저 국내 과학기술인력의 성별구조를 보면 여성의 비중은 80년도 2.5%(9만8천8백명중 2천5백명)에서 85년 3.6%(14만9천5백명중 5천3백명)로 제자리걸음 상태다. 공과대학의 여학생 비율도 70년도 1%(2백88명)에서 93년도 5%(1만2천6백46명)로 늘었지만 증가율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이는 92∼93년도 미국 전체 공과대학의 여학생평균비율 17.6%에 비하면 크게 떨어지는수치다. 전공에 있어 성별분리현상이 나타나는것도 문제점으로 나타났다.93년 전국 4년제 공학계열에서 여학생들이 차지하는 비율을 전공별로 살펴보면 생명공학과 환경공학이 각기 19.5%,섬유공학이 12.6%로 여학생이 많은 반면 기계공학(0.3%),전기공학(0.5%),토목공학(0.9%)등 하드웨어 분야 진출은 저조하다. 성별 전공분리는 노동시장에서 근로조건 사회적지위등을 결정하는 성별 직종분리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즉 국내 공학기술분야 인력은 전기 전자 통신공학 기계 조선 항공공학 화학공학등에서 수요가 높으나 여학생들의 이분야 전공은 상대적으로 낮아 인력수요에 부응하지 못함을 알 수 있다. 93년 공학계 대졸여성의 취업률은 43%로 자연계열(40%)에 비해 높은 편이나 남자보다는 15%포인트 정도 낮다.이는 과학기술분야 노동시장이 남성위주로 형성돼 있음을 입증하는 결과이다.공학 전공여성들은 공학교육담당자(교수)나 산업체의 인력담당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모두 남성보다 우수하지 못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어 보수적인 사회통념이 큰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여고2년생 2백4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공학계 전공희망자가 33.7%로 인문사회계(4.3%) 의약학계(25.0%) 이학계(34.8%)에 비해 선호도가 크게 뒤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이들중 대부분은 현재는 남성중심분야에 대한 두려움이나 주위의 압력,취업상 불리함때문에 결국 진로를 바꾸고 있는 실정이지만 앞으로 상황변화에 따라 적극적인 진출도 기대할수 있는 여지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모교수는 『하버드 버클리 스탠포드 카네기멜론등 미국 14개대학의 사례연구 결과,이들은 70년대 초부터 꾸준한 우수 여학생 유치프로그램과 여성취약과목 특강 등의 개설로 여학생비율을 3% 수준에서 18% 수준으로 올린 것으로 조사됐다』면서 우리나라도 우리 실정에 맞는 여성 공학인력 육성책을 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교수가 우선적으로 제시하는 방안은 ▲고교와 대학에서의 평등한 과학기술교육 실천 ▲여성공과대의 정책적 지원 ▲대학의 우수여학생유치 장학금제도 실시 ▲여학생특강개설 ▲산학협동 강화등이다.
  • 일/청년층 실업 급증/53년이후 최고치… 비공식집계 20% 육박

    ◎경기침체로 기업들 신입사원 채용 줄어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 취업문앞에서 일본의 젊은이들이 떨고 있다. 지난 6월 일본의 실업률은 53년 이후 최고치인 3.2%를 기록했다.엔화강세 등에 따른 경기침체의 여파가 유래를 찾기 힘든 실업률 증가로 나타난 것이다.진짜 심각한 문제는 실업의 찬바람이 일본 젊은이들에게만 집중적으로 몰아치고 있다는 사실이다.최근 발표된 다른 통계에 따르면 15세∼24세 사이의 젊은층 실업률이 5.7%에 이르렀다.그러나 비공식통계로는 이 젊은층의 실업률은 거의 20%에 육박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종신고용제를 지키기 위해 기업들이 해고를 안하는 대신 신입사원을 뽑지 않는 방식으로 인원을 줄이고 있기때문이다. 미베 이와코라는 여성은 지난 3월 도쿄의 한 이름있는 2년제 대학을 졸업했지만 여지껏 기업체 응시원서조차 받아보지 못했다.그녀에게 미래는 두려움과 동의어이다.이 대학은 몇년전까지만 해도 졸업생 취업률 98%를 자랑했다.그러나 지금 취업률은 60% 아래로 떨어졌다. 취업률 저하는 각 기업체의 신규채용규모 변화를 보면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지난 91년 닛산자동차는 3천6백26명을 신규채용했다.지난해 이 회사가 뽑은 신입사원은 45명뿐이었다.소니사의 지난해 신입사원은 92년보다 무려 80%나 줄어들었다.전체적으로 보면 대학졸업생을 대상으로 한 신규채용수는 지난해 경우 그 전해보다 33%가 떨어졌고 올해는 거기에서 또 22%나 줄어들었다. 기업체들이 신규채용의 문을 봉쇄하면서 일류회사 입사는 말 그대로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워졌다.이 때문에 일류대학을 나온 졸업생들이 대학원에 입학하거나 해외유학을 가는 식으로 학업을 연장하고 있다.졸업생 가운데는 아예 학력에 맞는 직장 얻기를 포기하고 서비스업쪽에서 일자리를 구하려는 젊은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오랫동안 일본인들에게 기피대상이었던 외국기업도 취업악화와 함께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학력에 맞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느니 차라리 외국기업에 취직하겠다는 태도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특히 일본기업보다 여성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고 있다는 점이여성을 끌어들이고 있으며,능력급제를 채택해 유능한 사람들을 키워줄 수 있다는 점도 의욕있는 젊은이들을 불러들이고 있다. 운 좋게 학력에 맞는 일자리를 잡더라도 문제가 다 풀린 것은 아니다.고용계약서를 다시 써야 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나가타 마사타카씨(26)는 91년 닛산의 국제무역 파트에 입사했으나 지난해 동료 9백여명과 함께 도쿄 서부의 판매대리점 직원으로 강등발령됐다.그는 25개월 동안 판매영업사원으로 근무한 후에야 본사로 복귀할 수 있다고 한다.닛산은 이런 식으로 해서 현재 4만9천명에 이르는 본사직원을 98년까지 7천명정도 감축할 계획이다. 취업이 극히 어려워지면서 집세를 내지 못해 부랑아처럼 사는 젊은이도 늘어나고 있다.구세군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최근 몇년사이에 20대 부랑아가 급격히 늘었다고 한다.또 취업을 못한 젊은이들 가운데 일부는 졸업후 고향으로 돌아가 부모에 의지하여 사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 휴정협정 서명(6·25 내막/모스크바 새 증언:30)

    ◎중국,휴전 앞두고 “마지막 진격” 주장/소선 “미군 상륙작전 감행 두렵다” 반대/해리슨 중장­남일,7월27일 역사적 조인 중국당국은 스탈린앞으로 휴전협상 진행에 관한 상세한 현황보고를 하면서 그에 덧붙여 협상대책까지 건의했다.즉 협상속도를 싸고 미국과 이승만정부 사이에 이견이 있지만 앞으로 미국이 어느 시점에 이르면 이승만에게 더 큰 압력을 행사할 것이기 때문에 휴전성사 가능성은 높다는 게 중국당국의 기본 시각이었다.53년 7월3일자 북경주재 소련대사관이 모스크바에 보고한 전문에 나타난 중국의 협상대책은 다음과 같다.(N17286) ○“미­이승만 불화 조장을” 『이같은 상황에 비추어 다음과 같은 대책을 제시하는 바임.이는 휴전문제를 놓고 이견을 보이는 미·이승만간의 불화를 더 조장하고,미국의 내외여론을 분열시키고 미국으로 하여금 이승만정권에 더 많은 압력을 행사토록 하기 위함임. (1)7월5일자로 클라크앞으로 김일성·팽덕회동지의 답신을 보낼 것.협상재개에 앞서 미국의 입장을 비난하고 앞으로 미국의 유화정책이다시 바뀔 가능성에 대해 경고할 것. (2)휴전협정 서명 전 작전을 전개해 이승만 괴뢰군에게 일격을 가할 것.이는 전선을 조금이라도 더 남쪽으로 내려보내기 위함임.그뒤 휴전협상이 재개되면 이승만정권의 잘못으로 협정체결이 지연됐다고 비난할 것.그리고 상황이 바뀌었으니 휴전개시점을 재조정하자고 요구할 것.미국도 이 요구에 응할 것임.왜냐하면 현재 미국과 이정권과의 관계가 복잡하기 때문임.반대로 상대가 양보 대신 새로운 선전차원의 술책을 펼 가능성도 배재할 수 없음.그럴 경우에는 우리가 적당한 시기를 택해 양보하고 현전선에서 휴전하는 데 동의할 것. ○“최후가지 투쟁은 엄포” …중략…휴전협정체결은 7월15일에 해야한다고 생각함.중국대표단은 다음과 같은 입장을 추가로 밝힐 것.즉,중국정부는 최근 이승만정권의 잦은 도발이 한편으로는 미국으로부터 원조를 한푼이라도 더 받아내고 또다른 한편으로는 중국의용군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나온 것으로 생각함.이런 이유로 이승만은 미국과 상호원조조약 체결을 고집하고 있음.이는 만약 미국이 이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 전병력이 최후까지 싸우겠다고 말하나 우리는 이것이 엄포라고 생각함. 중국정부는 미국의 이승만정권에 대한 지원이 매우 제한적일 것으로 생각함.미국은 이에게 대규모 지원을 할 경우 그가 심각한 모험을 전개해 미국을 끌어들이려할 것을 우려함.미국은 극동지역에서 더이상 대규모 모험에 끌려들려 하지 않고있음. 앞으로 개최될 정치협상 대책에서도 미·이승만간 이견이 있음.이는 이 정치협상 대신 북한에 대한 대규모 공세를 전개,중·조 국경인 압록강까지 진격하려고 함.위 상황을 종합할 때 중국정부는 휴전협정 조인이 평화에 유익하다고 판단함. 당시 중국외무차관은 이 말을 듣고 농담조로 「중국과 미국이 이승만에 반대해 공동전선을 펴고있다」고 말했음.그는 또한 중국정부는 이가 소규모 발악적인 도발을 할 가능성이 있지만 심각한 도발을 하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음』 한편 소련측은 휴전협정 서명을 눈앞에 두고 공산군측 서명당사자의 인선에까지 일일이 간섭했다.유엔군 대표단의 김일성직접서명 요구에 절대 응하지 말 것을 누누히 강조했다.남한정부가 김일성의 신변에 위해를 가할 우려가 있다는 점을 그 이유로 내세웠다. 53년 7월24일 소련공산당중앙위 간부회의는 김일성의 서명식 참석여부에 대한 결의안을 채택해 직접 김일성 앞으로 내려보냈다.(소련공산당중앙위 간부회의 결의안 NP19/9) 『김일성을 위시한 조선동지들에게 다음과 같이 통보함.소련공산당 중앙위는 판문점 휴전협정서명에 북조선대표로 부수상 1명이,중국대표로는 팽덕회동지가 참석할 것을 권고함.누가 참석할지 여부의 결정은 전적으로 중·조 정부에 속하는 사항이기 때문에 절대 미국의 압력에 이끌려가서는 안됨. 현상황에서 김일성의 판문점 여행은 위험부담이 큼.이승만 진영이 김일성에게 어떤 종류의 위해를 가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임.미국의 김일성 참석요구를 거절하는 것이 휴전협정일정에 지장을 초래하지는 않을 것임.팽덕회장군이 참석하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을 것임.만약 미국이 김의 불참을 이유로 협정서명을 거부한다면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을 것임』 ○김일성 위해 우려 이유 북한측 대표는 이렇게 해서 부수상 남일로 결정됐다.53년 7월27일 남일은 유엔군 대표인 해리슨중장과 판문점에서 휴전협정에 서명했다.휴전협정이 정식조인되기 불과 하루 전인 53년 7월26일 북경주재 소련대사는 모스크바로 다음과 같이 휴전협상 관련 보고서를 보냈다.모스크바에서 7월3일자로 보낸 중국정부의 한국전 상황평가에 대한 답신이었다.(N8019) 『본인은 모택동에게 소련정부가 한국전 상황평가에 대한 중국정부의 분석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말했음.이제 한국에서 적대행위를 끝낼 시기가 됐다는데 상호동의한다고 말했음.적도 군사적 이유로 전쟁을 계속할 능력도 의지도 없다고 말했음.모택동은 이와 관련,깊은 사의를 소련정부에 보낸다고 말했음.그러면서 모는 적이 군사적 이유뿐 아니라 정치적·경제적 이유에서도 휴전협정체결에 동의했다고 말했음. 군사적으로 볼때 적은 지난해동안 지상에서 진격은 물론 전선사수조차 여의치 않았다고 모는 말했음.반면 중국군은 현위치 사수는 물론 진격작전 수행에도 자신을 가졌다고 했음.정치적인 면에서는 적들이 제국주의 진영내 내분을 겪고있고 전세계 여론이 전쟁에 반대하고있기 때문에 휴전에 동의한 것으로 모택동은 설명했음.경제적으로도 제국주의진영이 전쟁으로 어려움을 겪고있다고 모는 말했음.즉 전쟁초기 2년간 미국의 독점 군수업체들이 엄청난 수입을 올렸지만 이후 휴전협상이 시작되고 반전여론이 강화되면서 이들의 수익이 격감했다는 것임』 이 보고서 내용중 흥미있는 것은 모택동이 순수 군사적인 면에서 볼때 적이 수세에 있기 때문에 군사작전을 1년 정도 더 계속해 한강주변에 보다 많은 전략거점을 확보하는게 협상에 유리하다고 주장한 점이다.반면 이 보고서를 보낸 중국 주재 소련대사는 남쪽으로의 추가진격이 매우 위험하다는 견해를 덧붙였다.추가 진격을 감행할 경우 동서 해안에까지 전력을 배치해야하는데,그러면 중·조군 후방에 미군이 상륙작전을 감행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였다. ○전후복구 소도움 요청 이렇게 해서 7월27일 판문점에서 휴전협정이 정식조인됐다.휴전이 성사되자 김일성은 즉각 전후복구작업에 들어갔다.김일성은 전후복구 역시 소련의 지원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협정조인 며칠 뒤인 8월5일 김일성은 소련지도부 앞으로 다음과 같은 친서전문을 보냈다.(N20609)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전후 복구·건설계획과 관련 소련 전문가 여단을 초빙키로 결정했음.이들이 조선의 기간 산업체들의 복구,건설에 관한 계획을 수립해주기를 원함』 이틀 뒤인 8월7일 평양주재 소련대사는 다음과 같이 본부에 보고했다.(N20779) 『우리는 소련 전문가들에게 조선의 복구계획을 짜면서 가장 긴급한 문제부터 시작하되 가능한한 조선국내의 자원을 활용토록 지시했음.…중략…그러나 이미 입안된 계획을 보니 조선내부 자원활용에 큰 역점이 주어져있지 않고 대신 소련을 비롯한 여타 인민민주주의국가들로부터의 원조를 극대화하는 데 주관심을 두고있음. ○김일성 다시 모스크바로 또한 경제복구계획의 주안점이 경공업·농업부문 대신 중공업 분야에 주어져있음.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북조선 정부는 정부부처에서 우리 전문가들을 활용치 않고 대신 산업체에다 이들의 파견수자를 늘리고있음.이런 제문제를 협의키 위해 김일성을 모스크바로 초청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함』 이같은 소련의 요청에 따라 김일성은 53년 9월초 전후복구문제를 협의키 위해 모스크바를 다시 방문했다. ◎연재를 마치면서/관련문서 계속 발굴… 속편 준비 이번 30회를 끝으로 「모스크바 새증언」 연재를 일단 마무리합니다.이번 시리즈는 주로 6·25를 둘러싼 스탈린·모택동·김일성 3인의 행적,협조관계등에 초점을 맞추어 기술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하지만 이밖에도 전쟁기간중 중·소·북한 정권 내부의 주요정책 결정과정등 밝혀져야할 「연결고리」는 너무나 많이 남아 있는게 사실입니다.앞으로 관련문서를 더 찾아내 추가집필의 기회가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그렇게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그동안 애독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 대도와 정도로 개혁 계속 추진/김 대통령 강조

    김영삼 대통령은 1일 『국제사회에 놓여 있는 우리 입장의 중요성을 생각할 때 국민의 의식도 바뀌어야 한다』면서 『변화는 반드시 있어야 하며 취임초와 똑같이 변화와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대통령은 이날 상오 청와대에서 민자당 상근당직자및 당무위원들과 조찬을 함께하는 자리에서 『8월25일은 내 임기의 꼭 절반』이라면서 『어디까지나 원칙에 입각,두려움 없이 변화와 개혁을 통해 대도와 정도를 걸어가겠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고 박범진 대변인이 전했다. 이날 청와대 조찬에는 이춘구 대표와 김윤환 사무총장,현경대 원내총무등 상근당직자와 당무위원등 49명이 참석했으며 이승윤 정책위의장등 당무위원 16명은 외유중이어서 참석하지 않았다.
  • 김 대통령 발언을 보는 여권 시각

    ◎민자­“개혁고수” 속뜻 싸고 해석 분분/김총장­“원론일뿐”… 민정계 동요에 더 신경/민주계­“공세에 떠밀려 후퇴 않겠다는 뜻” 김영삼 대통령이 1일 민자당 상근당직자와 당무위원 초청 조찬모임에서 「두려움 없는 변화와 개혁」을 강조한 것을 놓고 민자당은 그 의미를 헤아리느라 종일 긴장된 분위기 였다. 『변화와 개혁은 취임초와 똑같이 추진하겠다』『실제로 금융실명제와 부동산실명제 때문에 겪는 어려움은 없다』는 김대통령의 발언은 지방선거 이후 가장 강력한 「개혁고수」선언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반한 민심의 수습」을 기치로 내걸고 김대통령을 떼밀다시피 해오던 「개혁보완파」는 이날 어수선한 모습으로 생각이 많아 보였다. 김윤환 사무총장은 『개혁정책을 추진한다는 원칙에 변화가 없다는 뜻인데 그것이야 변화하면 되겠느냐』며 김대통령의 발언을 애써 원론적인 것으로 해석하면서도 행여 있을지도 모를 민정계의 동요에 신경을 쓰는듯 했다. 김총장은 이날 조찬후 당사에서 열린 고위당직자회의에서도 『김대통령의 발언이 어느 한쪽으로 오해를 불러일으켜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고 박범진 대변인이 전했다. 김총장은 이 자리에서 전날 청와대에서 한시간넘게 대통령과 독대한 결과를 설명하면서 『김대통령이 많이 알고 계시더라』고 강조했고 김총장에 앞서 대통령을 만났던 이춘구대표도 동감을 표시했다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이 말은 곧 『민심 수습을 위해 선거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을 대통령이 잘 알고 있는 것 같더라』는 뜻이라는 것이 박대변인의 설명이다. 반면 민주계인 김운환 조직위원장은 『김대통령의 말은 공세에 못이겨 후퇴하지 않겠다는 뜻』이라면서 「개혁보완」에 소극적 입장을 나타낸 것으로 해석했다.김영삼대통령 정부의 「트레이드 마크」가 개혁과 변화인데 그렇게 말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당내에서는 김대통령의 발언을 김총장처럼 「개혁보완」,김위원장처럼 「개혁고수」로 해석하는 양론말고도 「개혁과 보완의 절충」으로 파악하는 분위기도 적지않다. 한 당직자는 『정직하게 말해 「개혁보완론」이 터져나온 것은 일부지역의 15대 총선 패배가능성,일부의원들의 공천에 대한 불안감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 아니냐』고 말했다.그런 점에서 김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개혁기조를 유지하면서도 이들의 불안감은 해소해 주겠다는 일석이조의 포석으로 보아야 한다는 해석이다. 그는 김대통령의 『두려움없이 변화와 개혁을 통해 대도와 정도를 걸어가겠다』는 언급과 『내년 총선에서 여러분의 승리를 위해 당은 최선을 다해 노력할 것』이라는 대목에 특히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대도와 정도」가 개혁을 계속 밀고 나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면 「여러분의 승리에 당의 최선」은 공천에 대한 불안감을 없애주겠다는 약속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김대통령의 「청남대 구상」이란 정답이 나오면 누가 대통령의 의중을 잘 읽었는지 점수를 매길수 있게 될 판이다.
  • “8·15특사 생활사범 많이 구제”/야대표등과 방미성과 설명 오찬

    ◎김 대통령/개혁 추진 사심없이 국민과 더불어 김영삼 대통령은 31일 낮 청와대에서 이기택 민주당총재,김종필 자민련총재 등 야당대표들과 황낙주 국회의장 등 3부요인과 오찬을 함께하는 자리에서 『앞으로 나는 계속해서 원칙에 입각해 정도로 나가겠다』고 변함없이 개혁을 추진해 나갈 방침임을 확인하고 『원래 걸어온 길이 그랬지만 사심없이 국민과 더불어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방미 성과를 설명한 이날 오찬에서 또 『8월25일이면 내 임기도 반이 지나가는데 두분 총재가 뒷받침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국정운영 협조를 당부했다. 김대통령은 『지난날 고도성장의 부산물로 불행한 사고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고 전제,『그 때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겠지만 이제부터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안전문제를 철저히 챙기도록 하겠다』며 사고수습등에 대한 야당의 협조도 아울러 당부했다. 이 자리에서 이총재는 『정치적 이유와 이념적 문제때문에 생긴 시국사범과 정치적 이유로 제약받는 사람들을 많이 구제해달라』고 대폭적인 사면복권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김대통령은 『큰 범죄 행위가 아닌데 전과자가 되어있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그런 문제에 대해 총체적으로 검토해 보라고 (내각과 비서실에)지시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는 『8·15 특사의 초점이 「생활사범」을 구제하는데 초점이 맞춰지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하고 『새정부들어 사정으로 사법처리된 인사들을 사면복권하는 「정치특사」는 정부의 개혁의지가 훼손되고 광복 50주년의 의미가 퇴색된다는 점에서 이번에는 실시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생활사범 구제에 있어 주로 도로교통법,향토예비군법등 자신도 모르게 법을 위반해 고통받는 다수 국민들의 불편을 더는 방안이 추진될 것』이라고 말하고 『8·15특사에 일반 시국문제로 형을 받은 일부 공안사범이 포함될 수는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대통령이 야당대표와 만난 것은 지난해 5월 이민주당총재와 청와대회담을 가진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한편 김대통령은 이에앞서 이날 아침 청와대에서 이홍구 국무총리를 비롯한 전국무위원 및 조순서울시장과 조찬간담회를 갖고 방미 결과를 설명한뒤 『이번 8·15는 국민들이 광복 50주년의 의미를 되새기고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해야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구조선총독부건물 철거는 문민정부 출범이후 여론수렴과정을 거쳐 다수 국민의 동의를 얻은 것인 만큼 차질없이 추진토록하라』고 지시했다. 김대통령은 개혁 추진과 관련,『어떤 경우에도 원칙에 입각해 두려움 없이 나아가면 되는 것』이라면서 『우리가 사심없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최선을 다 한다면 그것만으로 만족스러운 일』이라고 강조했다.
  • 러 중앙은총재 장기 공석은 안된다(해외사설)

    두마(하원)가 타치아나 파라모노바 중앙은행총재서리의 임명안을 부결시킨 것은 어느모로 보나 책임있고 정당한 일이 못된다. 파라모노바총재의 임명안은 필요한 2백26표에 훨씬 못미치는 찬성 1백67표로 부결됐다.이제 우리는 하원의 여름휴회기간이 끝나는 10월까지 다시 기다려야 중앙은행총재를 선출할수 있게 됐다.중앙은행총재를 이렇게 장기간 공석으로 두는 것은 우리 경제에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전임 빅토르 게라셍코총재 당시 부총재로 근무했던 파라모노바는 정치색이 없는 순수 경제전문가이다.그런데도 지난해 11월 옐친대통령이 신임총재로 임명하자 야당은 그에게 줄기찬 정치공세를 폈다. 여기에는 은행계의 로비도 큰 작용을 했다.외환교환시 환차액으로 큰돈을 벌어온 은행들로서는 파라모노바가 중앙은행총재로 들어올 경우 루블화 안정,저인플레정책을 펴 환차이익을 남길 여지가 줄어들 것이란 두려움 때문이다.상업은행들이 중앙은행총재의 선출에 로비를 행사하는 일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중앙은행총재직은 전문성과 독립성,안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자리이다.그런데 지금은 너무 정치적이 돼버렸다.두마가 중앙은행총재 임명동의권을 갖는 게 과연 온당한가에 대한 회의론이 곳곳에서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독일의 분데스방크(연방은행)총재는 정부가 직접 임명한다.영국의 중앙은행총재는 여왕이 선출해 총리가 임명한다.러시아에서도 의회가 책임있는 자질을 갖출 때까지만이라도 정부가 은행장회의 같은데의 의견을 참조해 임명권을 갖도록 하는 방안을 고려함직하다. 파라모노바총재임명안에 대한 두마의 결정은 너무 감정적이고 정치적이었으며 너무 무책임했다.
  • 통일독일 「민족동질화」 자신감 가득/「통독 5년」 현장 리포트

    ◎동독 9.5%성장… 후유증 급속 해소/“민족에너지 소모 막고 시장 창출” 공감 「독일 통일의 후유증은 지나치게 과장되었다」 평화문제연구소와 독일 한스자이델재단이 공동주최한 「95년 통독 현장연수」를 통해 독일 현지로부터 전해들은 증언을 토대로 한 기자 나름의 결론이다. 통독후 5년이란 세월이 흐르면서 동·서독 양측 주민들 모두가 동질화에 대한 자신감으로 가득차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동서독 모두 활기 이는 비단 초현대적인 대도시 뮌헨이나 깔끔한 행정도시인 본에서 만난 베시(동독인들이 지칭하는 서독사람)들로부터만 감지할 수 있는 느낌이 아니었다.구동독지역인 작센주의 고색창연한 역사도시 드레스덴과 아직도 사회주의체제의 체취가 물씬 풍기는 켐니츠(옛 칼마르크스시)에서 오히려 통독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는 오시(동독주민)들의 활기찬 움직임을 더욱 진하게 실감할 수 있었다. 『통일 첫해인 지난 90년에는 작센주에서만 한달에 8천명의 인구가 서독지역으로 빠져나갔으나 94년에는 한해에 불과 4천5백명 정도로줄어들었습니다』 ○인구이동률 급감 작센주의 경제성 노정국장인 라이너 루브크씨는 통독의 경제적 후유증이 급속히 치유되는 과정을 이렇게 구체적 수치를 들어 설명했다.경제적 격차가 있는 한 인구이동이 당연히 이뤄진다는 철칙을 감안한다면 인구이동률의 감소는 작센주의 경제성장을 역설적으로 반영한다는 얘기다. 물론 아직도 구동독지역의 생활수준은 서독지역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1인당 소득이나 노동생산성 등 동독지역의 객관적 경제지표가 서독 수준과는 엄청난 격차를 보이고 있다. 드레스덴시의 경우 자동차 보유대수가 과거 서독수준인 인구 1천명당 5백대꼴로 늘어났다.하지만 구동독지역의 주요도시에 아직도 굴러다니고 있는 찌그러진 성냥갑처럼 생긴 동독제 「트라비」 자동차와 서독지역에서 흔해빠진 벤츠나 BMW 승용차가 동·서독인의 삶의 질의 차이를 극명하게 대변하고 있었다. 그러나 작센주 경제성에서 일하는 발터 오르트박사는 동·서독간의 경제적 격차는 예견됐던 것인 만큼 극복하기 어려운 후유증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통독 이후 연방정부의 동독지역에 대한 대대적 사회간접자본 투자와 역사상 유례없는 연 18%의 설비투자 증대로 작센주가 연평균 14%라는 엄청난 실질경제성장률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이 기간동안 동독지역 전체도 연간 9.5%가 넘는 역동적 경제성장률을 달성했다.더욱이 경제수준이 낮은 동독지역에 대한 투자지출 및 사회보장 비용확대등 천문학적 통일비용 소요로 한 때 휘청거렸던 서독 경제도 최근 2.5% 전후의 선진국형 안정성장 기조를 되찾았다. 이 추세가 계속 유지되면 오는 2010년에는 동·서독 지역의 생활수준 격차도 완전 해소된다는 게 오르트씨의 낙관적인 전망이었다. 홍순영 주독대사도 비슷한 시각을 피력했다.『통독의 후유증은 처음부터 대단한게 아니었고,있다고 하더라도 독일은 이미 이를 극복한 바탕 위에서 EU(유럽연맹) 통합의 중심적 역할을 하는데 국력을 경주하고 있습니다』 ○세부담 늘어 불만 물론 그렇다고 해서 토지등 재산환원 문제와 동·서독 주민들간의 정서적 단절감등 통일 후유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일례로 통일전 서독에서 3명의 봉급자가 1명의 연금생활자를 먹여 살려야 했으나 통독 이후 사회보장 비용의 증대로 2명당 1명꼴로 부담해야 할 몫이 커졌다고 한다.세금부담이 늘어난 만큼 일부 불만이 있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사회주의체제에서 좋든 나쁘든 국가가 정해주는 일자리가 보장됐던 동독인들에게 시장경제 체제에서 실업의 두려움을 감수하고 살아야 하는 것도 적잖은 심리적 고통일지도 모른다.그 결과 외국인을 경쟁상대로 여기고 폭력을 행사하는 등의 역기능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기자가 만난 대다수 오시와 베시들은 통일을 이같은 부작용을 감수하고라도 성취할 수 밖에 없었던 엄연한 현실로 인정하고 있었다.더욱이 독일사람들은 통일로 인한 비용도 있지만 새로운 시장의 창출과 냉전적 대결구도로 말미암은 민족 에너지의 소모를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통일의 혜택을 만끽하는 듯한 느낌마저 받았다. 『통일로 향하는 기차가 플랫폼에 도착하면 빨리 올라타야 한다』드레스덴에서 만난 동독출신의 한 기자가 소개한헬무트 콜총리의 은유적 표현이다. ○모든 가능성 대비를 굳이 콜총리의 표현을 빌리지 않더라도 예기치 않은 통일의 기회가 마련된다면 어떠한 후유증을 감수하고라도 통일과업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일 것이다.엄청난 통일비용을 안을 수 밖에 없겠지만 미리부터 모든 가능성에 대비한다면 후유증은 최소화할 수 있다는 교훈을 통독현장은 가르쳐주고 있었다.
  • 「살생부」 등재설 의원 동요/신당 분위기 갈수록 “흉흉”

    ◎3명 “민주당 잔류” 이어 2명 또 이탈조짐 지난 19일 발표된 신당 주비위 지도위원 명단에 유준상 의원의 이름이 빠졌다.지도위란 민주당의 고문과 부총재급 출신으로 구성한 조직이다.민주당 부총재였으므로 당연히 포함됐어야 하나 유독 그는 직제상 지도위보다 낮은 주비위 상임위원 명단에만 올랐다.한편 이날 신당파에서는 박석무·홍기훈·황의성씨 등 전남출신 세의원이 『신당창당은 명분이 없다』면서 민주당 잔류를 선언,신당을 당혹스럽게 했다. 우연인지 모르나 유의원과 이들 세의원은 공통점이 있다.신당분위기를 흉흉하게 하고 있는 이른바 「살생부」에 오른 것으로 알려진 인사들이라는 점이다.살생부란 민주당 운영과 지방선거 과정에서 김대중 아태재단 이사장에게 반기를 들었거나 지구당 운영 잘못 등으로 「미운 털」이 박혀 15대 공천에서 배제될 의원들을 꼽아놓았다고 알려진 명단이다.이름이 오른 인사는 대부분 민주당 「구당모임」의 리더인 김원기부총재계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 살생부의 존재여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13명의 명단이 문서로 만들어져 있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신당반대파의 모략에 불과하다」는 반론도 있다.신당의 박지원대변인은 『15대 공천에서는 현역의원들을 최우선적으로 배려한다는 방침』이라고 거듭거듭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살생부의 존재 자체보다는 「살생부가 있다는 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이 때문에 신당에 참여하고 있는 많은 의원들은 내심 『15대 공천에서 탈락하는 것이 아니냐』하는 일말의 두려움으로 뒤숭숭한 상태에 있다.특히 김부총재계 의원들은 속을 태우고 있다.19일 신당에서 이탈한 세의원도 김부총재계다.홍기훈의원은 신당이탈 직전 김부총재에게 전화를 걸어 『왜 우리에게 말도 않고 민주당에 잔류하셨느냐』고 「원망」하기도 했다고 한다. 김부총재는 20일 『현역의원 한명이 아쉬운 김이사장이 살생부를 만들 입장이냐』고 살생부 존재를 부인했다.그는 그러나 『살생부 때문이 아니라 신당에 명분이 없어 앞으로 추가이탈자가 있을 것』이라고 말해 주목을 끌었다.이와 관련,신당내부에서는 박태영·김장곤의원 등이 조만간 이탈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이들도 살생부에 등재됐다고 알려진 의원들이다. 신당측은 20일 서둘러 이들을 주비위 정책소위와 연락소위 위원으로 각각 선임했다.
  • 사람은 「장자」의 경지로 될수 없기에(박갑천 칼럼)

    「장자」에는 죽음에 대한 말이 많이 나온다.그는 죽음을 태연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지락 편에는 장자의 아내가 죽었을 때의 얘기가 보인다.혜자가 문상갔더니 장자는 두 다리를 뻗고 항아리(분)를 두드리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잖은가.울지않는 것도 지나친데 노래를 부르다니 이 무슨 냉갈령이냐고 다그치는 혜자에게 말한다.『…난들 어찌 가슴아프지 않겠나.하지만 저 사람의 죽음은 춘하추동의 옮겨감처럼 자연스런 변화일 뿐이야.저 사람은 천지 사이의 큰 쉴곳에서 편히 잠들고 있는 걸세』 같은 지락편에는 해골과 말을 나누는 우화도 있다.초나라 가는 길의 장자는 해골을 보고 채찍으로 치면서 너는 어떻게 무슨 까닭으로 죽었느냐고 물은 다음 그걸 베고서 잠이 든다.그러자 해골의 넋이 꿈에 나타나 「죽은자의 기쁨」에 대해 들어보지 않겠냐고 말을 건다.임금도 없고 신하도 없으며 애살스럽게 죽살이쳐야할 일도 없이 유유자적 할수 있는 죽음의 세계.장자가 신에게 부탁하여 살려주겠다고 하자 그 넋은 말한다.『내 어찌 왕자의 즐거움보다 더한것을 버리면서 인간의 고통을 지겠는가』 장자의 이런 글 자체가 사람에게는 삶에 대한 집착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음을 반증한다.장자가 아무리 생사를 하나의 선으로 그으면서 초탈해야 한다고 했어도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면 대체로 죽음을 두려워하고 슬퍼한다.더구나 사람을 더 슬프게 하는 것은 이승에 올때와는 다른 뒤죽박죽의 질서속에 가게 되기 때문이다.어버이를 두고 먼저 가버리는 자식의 경우도 그것이다. 목은 이색이 장단으로 귀양가서 쓴 시 가운데 있는 다음과같은 귀절은 그런 어버이마음을 짐작하게 한다.『…지난해엔 큰자식이 황천으로 갔는데/오늘 아침엔 중씨(둘째형)가 바닷가로 귀양갔네/들으니 셋째자식 탄핵을 당한다니/어이한 하늘인가 어이한 하늘인가』 「패관잡기」에 보이는바 영의정 김전이 그의 아들 제사에 쓴 제문도 가슴을 저민다는 점에서는 같다.『지난 해엔 네가 아들을 잃고 올해는 내가 너를 잃었으니 부자의 정을 네가 먼저 알리로다』 삼풍백화점 참사에서 스물안팎의 남녀들이 절망을 딛고 기적적으로살아났을때 사람들은 내일처럼 환호했다.하지만 그 그늘에는 이색이나 김전의 심경으로 청산 아닌 가슴에 자식을 묻은 어버이도 적지가 않다.어떤 위로로도 서릊어낼수 없는 원한의 멍울.사람은 역시 「장자」의 경지로 될수 없는 존재가 아니던가.
  •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미 상원외교위 증언

    ◎가까운 장래의 미 외교정책 목표/미국은 한·일·중과 불필요한 대결말라 헨리 키신저 전미국국무장관은 13일 미상원 외교위원회에 출석,「가까운 장래의 미국 외교정책목표」에 관해 증언했다.키신저의 증언을 요약한다. 냉전이후의 외교정책 방향을 어떻게 세워야할 것인가의 문제는 진정 미국이 국제사회로부터 받은 역사상 가장 어려운 난제중의 하나이다.냉전 때의 문제보다도 덜 위험하지만 한층 복잡해 거의 모든 기본요소가 동시에 사라져버린 세계에서 방향감각을 되찾는 것과 흡사하다. 너무도 많은 미국인들이 외교적으로 이뤄져야 할 일들이 모두 달성되었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다.그러나 세계는 지금 틀을 짜면서부터 미국이 배제된 결정들이 가면 갈수록 많아지는 추세다.이같은 추세는 피할 수 없는 필연적인 것은 결코 아니다.미국은 건설적인 세계질서의 틀을 잡아갈 능력을 아직도 보유하고 있다. 미국인들은 제한없는 선택의 장으로 외교정책을 여기고 있고 국제적 약속에 대해 참여나 철회의 결정을 언제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선에서 이해한다.냉전에서 이긴 미국인들은 외교란 영원한 승자가 없다는 점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군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은 점점 줄어드는 대신 경제와 기술의 중요성은 급속도로 높아져 간다.현재 세계에는 비군사적 결정에서 힘을 대등하게 겨룰 수 있는 6,7개의 주요국가들이 있다. 이같은 국제질서에서는 한 국가의 지배적 우세 아니면 힘의 균형 등 두가지 길만이 안정을 보장한다.그런데 국민 여론을 통한 미국의 정치는 곤란하게도 이 두가지 접근 모두를 거부하는 경향을 보여왔다.헤게모니는 힘의 소진을,힘의 균형은 끝없는 긴장을 뜻하기 때문이다.새로운 세계질서는 균형개념에 바탕을 두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현실적 판단이다.과거에는 정복을 통해서만 균형의 변화를 끌어낼 수 있었으나 지금은 경제와 기술이 획기적인 변화를 만들어낸다. 미국 뿐아니라 모든 주요국가들은 지금 과도기에 놓여있다.이럴 때 이론적으로 미국은 지난 19세기 최강국 영국이 취했던 「아주 특별한 경우외에는 특정 편을 들지 않고 모두와 좋게 지내고자 한」「멋있는 고립주의」를 추구할 수 있으나 걸림돌이 너무 많다.또 미국은 자신들이 믿는 가치가 전세계에 보편적으로 통용될 수 있다는 신념이 강한 국가다.세대간에 역사적 경험의 상이함이 정책결정의 혼란을 부추기고 있는데 결국 배타적이지 않는 국익바탕 주의냐 아니면 소위 다자간 국제주의냐의 갈등으로 귀결된다고 할수 있다. 클린턴 대통령의 외교노선은 다자간주의 쪽에 기울어져 있다.심한 국수적 고립주의자가 아니라면 국익과 국제 콘센서스를 양 극단으로 구별하지 않는다.실제 세계에선 뉘앙스의 차이일 따름이다.이런 점들을 명심한 뒤 유럽과 함께 현 미국 외교정책의 「사고지역」이라 할 아시아를 살펴보도록 하자. 미국은 최근 수년간 때로 불필요하게 중국·일본등 여러 아시아국가들과 동시에 불화에 휩싸임으로써 아시아정세에서 나오는 이득을 얻는데 실패했다.미국은 아시아 주요국가들과 동시에 대결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외교정책의 좌우명으로 삼아야한다. 현재 거의 모든 아시아 국가들의 정치적 상황은 극도로 취약해지고 있으며 대부분 국가는 과도기에 처해 있고 이같은 변형은 내부적으로 민족주의와 국제주의간의 긴장을 조성한다.기존의 동맹관계도 수정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정치제도의 틀이 근본적으로 바꿔지는 중이며 외교정책의 방향도 똑같이 그럴 전망이다.자신을 낮추고 숨기는 정치시대는 끝나 한층 민족적이 되고 지금보다 훨씬 「정치적」이 될 것이다. 중국은 등소평으로부터 차세대 지도층으로의 권력이행이 거의 완료된 것으로 짐작된다.그럼에도 등이후가 안정되는 데는 수많은 변수의 터널을 통과해야 한다.경제적 성장은 어쩔수 없이 정치체제로 하여금 최소한 산업정보사회에 발맞추는 시늉을 내도록 할 것이다. 한국은 통일에 대한 욕망과 고립에 대한 두려움이 동시에 마음을 휘어잡고 있다. 이같은 변화는 아시아에서 경제의 세계화가 요구하는 국제주의와 정치적 결속에 큰 효과를 발휘하는 민족주의간에 긴장을 야기하고,미국의 정책이 변화의 와중에 있음을 감지한 결과등으로 현존의 동맹및 우방정책에 대한 재고압력을 일으키고 있다. 최후로 남아있는 분단국인 한국은 통일문제에 국가의 온 신경이 집중될 것이다.합법적인 상대로 취급해 주지 않으려는 북한의 전략과 맞서야 하는데 핵문제 때와 같이 북한은 미국과 직접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미국은 북한의 경직성이 세계경제에서 배제된 데서 연유한 만큼 접촉을 통해 그들의 고립감을 풀어줘야 한다는 입장이나 한국은 이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갖고있어 충돌의 소지마저 안고 있다.나아가 한국은 중국 그리고 일본까지 자신의 통일추구에 전적으로 동감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배경으로 해서 민족주의적 성향을 확대하고 있다.따라서 중국과 미국이 계속 지금처럼 사이가 좋지 않다면 한반도의 상황도 나쁜 국면으로 빠질 수 있다. 미·중 관계가 조속하게 회복되지 않고 대립이 심화되면 미국의 일본에 대한 영향력은 극적으로 감소할 것이며,한국은 어쩌면 화염통으로 변할는지 모른다.
  • 넬슨 만델라와 아웅산 수지(임춘웅 칼럼)

    우리는 지난 1주일동안 「20세기 최후의 영웅」 두사람을 만날수 있었다. 한 사람은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의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고 다른 한 사람은 미얀마의 아웅산 수지여사다.만델라 대통령은 우리나라를 직접 찾아와 우리와 만나게 됐고 아웅산 수지여사는 미얀마 정부가 세계여론의 압력에 밀려 6년간이나 끌어온 그에 대한 가택연금을 해제함에 따라 이를 계기로 전세계 매스컴의 각광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영웅들을 만나게 되는 것은 참으로 큰 기쁨이다.사람들은 그들이 보여준 진정한 용기를 통해 인간의 위대함을 배우고 그들의 초인적인 인내와 빛나는 투쟁을 통해 정의의 힘을 되새기게 되는 것이다.우리의 정치현실이 너무나 혼탁하고 지나치게 추악한 터여서 이들과의 만남이 더욱 빛나고 고귀해지는지도 모른다. 지난달 30일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에서는 럭비월드컵대회에서 남아공이 우승한 것을 기념하기 위한 축하 퍼레이드가 열리고 있었다.백인선수들로 이뤄진 남아공대표팀을 흑인들이 국기를 흔들며 열광적으로 환호하는 감격적인 순간이 벌어졌다.이런 장면은 흑인차별통치가 지속된 지난 3백42년동안 한번도 없었던 일이다.백인들이 주로하는 남아공럭비팀이 다른 나라와 싸우게 되면 남아공의 흑인들은 으레 다른 나라팀을 응원해왔던 것이다. 감동적인 이 순간이 실현되는 데는 한사람의 결연한 자기희생이 따랐던 것이다.넬슨 만델라의 생애에 걸친 인종차별정책 철폐투쟁의 결실이었다.그는 27년간이나 감옥생활을 하면서도 타협하지 않았고 끝까지 싸워 이겨냈다. 아웅산 수지여사는 키 1m55㎝의 전형적인 동남아의 가녀린 여인이다.미얀마의 전설적인 건국의 아버지 아웅산장군의 딸이긴 해도 그는 영국에서 공부를 하고 영국인과 결혼해 영국에서 사는 평범한 주부였다.아웅산 여사가 정치에 뛰어들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88년 위독해진 어머니의 병문안을 위해 잠시 귀국했다가 반독재 시위를 벌이던 대학생들이 군사정권의 총부리에쓰러져가는 것을 보고 그는 「민주화가 미얀마의 제2의 독립」이라고 생각하게 됐다.그는 곧 1백여개의 지리멸렬한 야당세력들을 결집해 정치투쟁을 전개했다.그리고 그는 이듬해 가택연금되는 상태에서 고독한 투쟁을 계속하지 않으면 안됐다.아웅산 여사는 6년동안의 연금기간동안 단 한번밖에 허용되지 않은 가족면회,군사정권의 끈질긴 회유와 협박에도 굴하지 않았다. 『투옥에 대한 두려움,고문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를 잃게 되리란 불안,고독의 공포가 항상 주변을 어슬렁 거리고 있다』 『냉혹하면서도 무제한적인 압력 앞에서도 품위를 유지할수 있는 용기야말로 진정으로 가치있는 것』이라고 그는 그의 저서 「공포로 부터의 자유」에서 쓰고 있다.아웅산 수지여사는 한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끝내 지켰다.
  • 생환 류지환양이 말하는 「2백85시간」

    ◎“배고파 미칠 지경일땐 소리 질렀다”/희망 버리지 말라는 어머님 말씀이 큰힘/그간 물한방울 못마셔… 이젠 집에 가고파 11일 하오 극적으로 생환한 유지환(유지환·18)양은 강남성모병원으로 후송된 뒤 2백85시간 40분동안 사투를 벌인 사람답지 않게 비교적 생기있는 모습으로 사고 상황에서부터 구출 순간까지를 더듬거리며 털어놨다. 압사의 두려움에서 벗어난 지환양은 열사흘동안이나 물을 한방울도 마시지 않아 탈수증세를 보이고 있으나 의료전문가들은 열흘 뒤쯤이면 일반병실로 옮길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지환양과의 일문일답 ­지금 심정은 ▲너무 편하고 좋다. ­얼마나 지난 것 같은가. ▲한 일주일쯤 지난 것 같다. ­잠은 충분히 잤나 ▲자다깨다 해서 정확히 기억 나지 않는다. ­가장 하고 싶은 일은 ▲집에 가고 싶다. ­안에 갇힌 동안 무슨 생각을 했나. ▲평소에 부모님께 잘해 드리지 못한게 후회됐다.어려운 입장에 처하니 어머니와 특히 병든 아버지 생각이 간절했다. ­사고당시 상황을 말해달라. ▲하오 6시에서 6시30분까지가 간식시간이었는데 평소보다 조금 일찍 지하3층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고 지하1층 가정용품매장에 도착했다.에어콘이 가동안돼 안이 무척 더웠다.갑자기 조장언니의 「뛰어 뛰어」하는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우왕좌왕하다가 유리파편과 건물더미가 날라가고 몸이 붕 뜨는 것을 느끼면서 정신을 잃었다. ­고립된후 어떻게 지냈나. ▲안에는 먹을게 전혀 없었고 녹 물이 계속 떨어졌지만 구조될 때까지 물은 한방울도 안마셨다.떨어지는 물에 입술을 적시는 정도였다.(그러나 지금까지 11일을 넘게 물을 전혀 먹지 않았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의료진의 말에 비추어 이 대목은 다소 혼란이 있는 듯) ­배가 고프지 않았나. ▲배가 고파 미칠 것 같을 때는 소리를 질러댔다. ­안에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나. ▲아무것도 없는 암흑천지였다.비오는 소리는 들을 수 있었다.가끔 소방대원들끼리 「여기 사람이 있다」고 말하는 소리도 들렸다. ­구조될 것으로 확신했었나. ▲처음에는 무섭고 두려웠다.아무리 힘들어도 희망을 버리지 말라는 어머니 말씀이 떠올라 끝까지 버티면 살아나갈수 있다고 믿었다. ­구조당시 상황은. ▲멀리서 「탕 탕」하고 내리 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이전에도 몇번 들어서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어둠속에서 한줄기 빛이 보였다. ­언제가 가장 힘들었나. ▲포크레인이 내리 찍는 것을 느꼈을 때였다.무너진 콘크리트 천장더미와 머리사이에 처음에는 30㎝의 거리가 있었는데 구조될 때는 코앞에까지 닿아 있어 천장이 무너져 내릴까봐 제일 두려웠다. ­고립된 지역은 어땠나. ▲양팔을 벌리면 닿을 1m30㎝ 정도의 공간으로 다리를 구부리고 있었다.유독가스와 열기는 못느꼈다. ­다른 생존자는 없었나. ▲첫날 주위에서 신음소리를 들었다.그러나 그뒤로는 아무소리도 듣지 못했다. ­아픈 곳은 없나. ▲특별히 아픈 곳은 없고 등이 조금 아프다. ­지금 무엇이 제일 먹고 싶나 ▲원래 면음식을 좋아했는데 지금은 냉커피가 제일 먹고 싶다. ◎류지환양은 누구인가/낙천적 성격의 어척스런 「효녀가장」/아르바이트로 상고졸업… 병상부친대소변 “수발” 11일 하오 3시28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발생 13일만에 극적으로 구조된 유지환(18·여·강북구 수유4동 569의 82)양은 집안에서는 가장이자 효녀였고 회사에서는 활달하면서도 성실한 직장인이었다. 1백62㎝의 아담한 키에 갸름한 얼굴의 미인형인 지환양은 아버지 유근창(52)씨와 어머니 정광임(46)씨 사이에 오빠 세열(서울 서일전문대 2년 휴학)군과 함께 2남매 중 막내딸. 서울 인수중학교를 나와 91년 위례상고에 입학,지난해 졸업했다.1학년때 가정형편때문에 가사장학금을 받았고 장학금이 1학기밖에 주어지지 않자 그 뒤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교를 다닌 「억척이」였다. 성적이 비교적 우수했던 지환양은 졸업전인 94년 11월30일 면접시험을 통해 중소기업체인 삼광유리공업에 입사,곧바로 사고를 당한 삼풍백화점 A동 지하1층 크리스털 도자기 판매점에배치돼 9개월째 근무해왔다. 지환양은 고교 3년동안과 삼광유리에 입사한 뒤에도 단 한번도 결근을 하지 않은 것은 물론 밝고 쾌활한 성격으로 인기를 모았다.한직장 동료는 『회사에서 저녁모임이라도 있으며 스스로 나가 노래를 부를만큼 성격이 밝고 괄괄했다』고 전했다. 고교 2학년때 담임인 김유경(36·여)교사도 『지환이는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항상 농담을 잘해 친구들을 잘 웃기던 밝은 아이였다』면서 『구출됐다니 너무 기쁘다』고 울먹였다. 3학년때 상업을 가르쳤던 안환(48)교사는 『지환이는 성격이 활발하고 명랑한 편으로 친구들 사이에 인기가 좋았다.특별히 운동을 잘하는 것은 없지만 키가 작은 편이었는데도 강단있는 건강체질인 것으로 기억된다』고 말했다. 지환양은 4년전에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버지 유씨에게 퇴근 때마다 들러 대소변을 받아내는 등 효녀이기도 했다.삼광유리에 입사한 뒤로는 기본급 65만원에 보너스 4백%의 수입으로 실질적인 가장의 구실을 해왔다.유씨는 현재 고혈압으로 서울 수유리 대한병원 320호에 입원해 있으며 가족들은 지환양의 실종소식을 처음부터 숨긴 것으로 알려졌다. 어머니 정씨는 『처음 서울교대 실종자대책본부에서 방송을 통해 생존자 신원이 「19살유지선」이라고 들어 긴가민가 했는데 다시 확인해 보니 우리 지환이가 맞았다』며 흐느꼈다. 정씨는 『지환이가 사고나기 전에 「지금까지 모은 저금이 곧 5백만원이 넘는다」며 좋아했었다』고 말했다. 다음달 군에 입대할 예정인 지환양의 오빠 세열군은 이날 집에 가있다가 동생의 구조소식을 듣고 강남성모병원으로 급하게 달려왔다. 어머니 정씨와 지환양의 이모는 그동안 서울교대에서 실종자 가족들과 고통을 함께 하거나 대한적십자사의 자원봉사활동을 지원하면서 지환양의 생환을 애타게 기다려왔다. 또 세열군은 사고직후 구조대원들의 저지로 현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대학친구들과 함께 병원 등을 돌아다니며 지환양의 소식을 수소문해왔다.
  • 평양은 한·미 유대를 시험하고 있다/레스리 겔브(지구촌칼럼)

    ◎핵협상 과정 등 긴밀협력… 북 이간 막아야 북한의 지도자들은 위기를 창출해 내는데 천재적인 솜씨를 갖고 있다.그들은 긴장과 소란을 만들어내고 워싱턴과 서울 사이에 내재된 이견들을 십분 활용하여 오랜 두 맹방을 이간질하며 그들 자신을 위한 훌륭한 협상에 이용해 왔다. 평양의 지도자들은 이같은 훌륭한 협상술과 양보술을 대외무역에서,또 생존수단으로,그리고 자신들의 힘과 독립을 유지해 나가는데 필요로 하고 있다. 미국과 한국은 그들이 그 대가로 또다른 훌륭한 양보를 얻어낼수 있는한,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으로,그들이 긴밀하게 결속돼 있는한 북한에 대해 양보해줄수 있는 힘이 있다. 한반도에서 전쟁의 위험을 증가시키는 한가지 확실한 요인은 워싱턴이 한국에 대한 어떠한 실행의지를 약화시키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또한 평화를 깨지게할 또하나의 분명한 요인은 북한의 눈으로 볼때 워싱턴과 서울이 서로 다른 평화에의 길을 추구하고 있거나 워싱턴이 한국정부의 정통성을 깎아내리려 하는 조짐을 보일 때이다. 미국과 한국간의 기본적인 협력 원칙은 쌍방간의 협력보다 우선하는 북한과의 협정은 있을수 없다는 것이다.그리고 양국간의 동맹관계를 위태롭게 하는 북한과의 협정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것들은 미국과 한국이 한가지 한가지 위기를 헤쳐나가면서 특히 핵문제의 해결과정에서 공통의 모토로 삼고 있는 내용들이다. 예를 들면 지난 6월초 미국과 북한의 관리들이 지난해 10월 미·북한 사이에 체결한 핵협정의 일탈을 막기 위해 제네바에서 만났을때 그들의 한국측 카운터파트들은 힘겹게 넘겨다 보면서 밖에서 머물러 있어야 했다. 그때 일부에서는 북한이 미국과의 평화협상 과정에서 한국의 역할을 무력화시키는데 성공했다는 우려가 제기됐었다.그러나 그같은 우려들은 근거없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측의 우려들은 워싱턴이 평양과 별도의 분리된 회담을 진행시키고 있기 때문에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이 시점에서 그같은 방법밖에는 없다 할지라도 그같은 별도회담 자체만으로도 서울측에 경각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미국과한국 두나라 간의 국익이 핵협정의 수행과정에서 항상 일치하지는 않을 것이다.그러나 이같은 불일치들은 이들 동맹들간에 일치된 협상의 입장을 갖는 것을 해치게 할것이다.두나라는 양국의 반목을 일으키려는 책략들을 피해야 하고 또 잘 피할 것이다. 오직 그래야만 평양측이 자신들의 위험하기 짝이 없는 핵계획을 중단하고 보다 안전한 원자로를 제공받는데 있어 한국의 중심적 역할을 보장케하는 협정을 받아들이게 할 것이다. 또한 북한이 남한으로부터 15만t의 쌀을 받아들이기로한 결정은 환영할만한 일이다.이는 평양측이 공식적으로 남한으로부터 원조를 받아들이겠다는데 처음으로 동의한 것이다.이것이 제대로 진행된다면 양측간 대화의 통로를 열리게 할 것이다.한국의 나웅배 통일원장관도 「화해와 협력의 시대」가 결국 도래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평양의 지도자들은 미국과 한국의 공동 목표를 시험하기를 계속하고 미국인과 한국인들에게 전쟁과 평화의 두려움을 불러일으킴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 할 것이다. 때때로 그들은 전쟁의 위협을가해올 것이다.그러나 자신들을 즉각적인 파멸로 이끌 전쟁을 위한 전쟁을 일으키지는 못할 것이다.또는 때때로 그들은 평화를 약속해올 것이다.그러나 그들의 힘을 부식시킬 평화를 가져오기도 힘들 것이다. 이같은 북한의 전략은 워싱턴과 서울이 서로의 공동이익을 한데 모으고,함께 보조를 맞추고,서로에게 놀랄만한 일을 일으키지 않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상호 확신과 신뢰를 유지케 된다면 효용성이 없게 될 것이다.
  • 인간한계 극복 230시간의 사투/최명석군 사지탈출 기적의 드라마

    ◎“쿵” “꽝” 순간 정신잃어… 깨어보니 암흑만/벽너머 여자 2명 절명… 죽음 공포 엄습/사랑하는 사람 모습 그리며 오기로 버텨 『여기,사람있어요』 생사를 넘나드는 「지옥의 여정」에서 끝내 살아 우리들 곁으로 돌아온 최명석(21)군의 첫마디였다.어쩌면 그는 우리가 기다리던 이 시대의 마지막 초인인지 모른다.인내와 한계를 극복한 2백30시간의 인간승리의 개가가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삼풍백화점 A동 지하1층 매장에 매몰돼 있다 9일 상오 기적적으로 구출된 최군.그의 운명을 가른 것은 지난달 29일 상오 5시50분이었다. 삼풍백화점 A동 지하 1층 수입신발코너 매장.여자친구 유정화 양과 아르바이트자리를 구하러 중학교동창인 이강선(21)군,그리고 여직원 두명과 라면을 먹기 위해 지하3층 식당으로 내려갔다.이런 저런 잡담을 나누다 매장 누나들이 생각나 아이스크림 두개를 들고 지하 1층에 있는 독일제 아동신발코너인 「엘레판덴」으로 올라갔다.왠지 혼자 먹으려니 미안했다.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매장으로 올라가는데 갑자기 몸이 흔들리는 진동이 느껴졌다.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쿵』 『꽝』하는 굉음과 함께 천장이 무너지고 벽이 쩍쩍 갈라지는 것 아닌가. 어디론가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지만 아찔한 현기증이 났고 이내 정신을 잃었다.얼마나 지났을까,답답함과 참을 수 없는 주위의 열기 때문에 깨어났다.옆을 보니 사방이 부서진 콘크리트더미로 가로막혀 있었다.온통 암흑이었다.숨이 막히지 않을 정도인 1m20㎝ 크기의 공간에 내가 갇혀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무것도 볼 수 없었지만 근처에서 간헐적으로 신음소리가 들려왔다.『거기누구 없어요』 비스듬히 누워있는 콘크리트벽을 사이에 두고 여자 두명이 있었다.나도 소리쳤다.평소 안면이 있는 백화점직원 이승연(24)씨와 50대의 아주머니였다.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겨우 『구조대가 곧 올테니 그때까지 참자』고 말해주었다. 얼마가 지났는지는 알 수 없었다.다음날인 30일쯤 일것 같다.이씨와 아주머니는 자꾸 물이 차올라 걱정스럽다고 했다.한참이 지났는데 『꿀꺽』 『꿀꺽』소리와 함께 이씨가 『나먼저간다.소식 전해달라』는 말을 남겼다.그리곤 아무 말이 없었다. 공포가 엄습해왔다.『이렇게 죽는구나』하고 생각하니 온몸에 힘이 빠졌다.그때였다.애인인 정화가 선물로 준 어린이 장난감인 증기기관차가 옆에 있었다.사랑하는 정화,그리고 어머니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살아야 한다』며 마음을 고쳐 먹었다. 위에서 다행히 빗물과 소방대원이 뿌린 물이 흘러 내렸다.웃옷을 벗어 빗물을 받아 짜서 먹었다.배가 고파 사과 포장용 종이상자를 씹어 먹었다.시원한 콜라가 그렇게 먹고 싶었다. 그리고는 무작정 잠을 청했다.깨어 있으면 죽음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며칠이 지났는지 여전히 가늠할 수 가 없었다.다만 하루,이틀이 지났을 뿐 그리 오래 된 것 같지는 않았다. 『구조대는 왜 안오나.에라 모르겠다.안 구해주려면 말아라』 서서히 오기가 생겼다. 그러다가도 간간이 반대편 B동쪽에 사람소리와 함께 빛이 보이면 나는 마구 외쳤다.『여기 사람있어요』 그러나 나의 외침이 이들에게 다가가기에는 너무나 먼것처럼 보였다. 매일 소리를 질렀지만 아무도 와주지 않았다.배가 고파왔다.종이상자를 물에 불려 5㎝ 정도 다시 먹었다.목이 메여 더이상 씹어먹을 수는 없었다.『정화는 살아있을까』 의식이 점차 희미해지면서 문득 정화생각이 났다. 8일 하오 5시쯤이었다.환청이었는지도 몰라도 어딘선가 『작업을 중단한다』는 스피커소리마저 들렸다.실낱같은 희망도 물거품이 되는 것 같았다.두려움이 밀물처럼 밀려오기도 하고.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에 다시 잠을 잤다.『그래,안 구해주려면 말아라』 이렇게 잠든채로 그냥 죽었으면…. 한참을 자는데,잠결에 콘크리트 더미위로 돌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빛이 보였다.『여기 사람있어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소리를 또다시 질렀다. 외침을 들었는지 곧 반응이 왔다.『누가 있소』 『잠시만 기다려요』하며 머리 위로 불빛이 비춰졌다.매몰된지 세번째 보는 불빛이었다. 이때가 9일 상오 6시30분.구조대원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그로부터 2시간이 지난 상오 8시 20분.구조대원들에 의해 들것에 실려 정말 빛다운 빛을 보게 됐다. 눈을 가린 수건 사이로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눈물이 울컥했다.사람들의 박수소리도 들렸다. 『아버지….말을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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