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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진 해일 대재앙] “일행 19명중 12명 돌아와” 피피섬 생환자들 증언

    해일이 섬 전체를 휩쓰는 바람에 피해자가 유독 많았던 태국 피피섬에서 돌아온 국내 여행객들은 28일 오전 인천공항에서 참상의 현장을 생생히 전했다. 입국장에서 만난 박지호(29)씨와 김진옥(27·여)씨의 온몸엔 긴박했던 상황을 말해주듯 해일에 쓸린 상처자국들이 선명했다. 신혼부부인 이들은 생사의 고비를 넘기고도 피피섬에 6시간 이상 고립돼 있었다. 박씨는 “일행 7명과 스노클링을 하기 직전 간이화장실에 앉아 있는데 굉음이 나더니 바닷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수압으로 문이 열리지 않는 바람에 화장실 위로 빠져나온 박씨의 눈에 불과 몇초전까지 아름답던 해변은 ‘비극의 현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는 “바닷물 위로 수십명이 둥둥 떠다녔고, 그 사이에 허우적대는 아내의 모습도 보였다.”고 긴박했던 순간을 증언했다. 다행히 구조된 김씨는 “해일이 잦아든 해변가에는 팔, 다리가 잘린 외국인의 모습이 많이 보였다.”면서 “아름답던 섬은 완전히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고 말했다. 박민정(30·여)씨는 “스피드보트를 타려고 준비하는데 물이 1∼2초 만에 갑자기 차올랐다.”면서 “해일에 방갈로가 무너졌고 일행 19명 가운데 7명이 물에 휩쓸려 사라졌다.”고 몸서리쳤다. 박씨는 “섬에서 6시간가량 두려움에 떨다가 배를 타고 빠져 나왔다.”고 탈출상황을 설명했다. 인천공항으로 입국한 관광객들에 따르면 당시 피피섬에 있던 한국인은 40∼50명으로 추산된다. 박씨는 “현지에서 본 한국 관광객만 50명에 가까웠다.”면서 “한국인 피해자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김모(36)씨도 “피피섬에 함께 있던 일행 19명 가운데 같이 귀국한 인원은 12명에 불과하다.”면서 “한국인 실종자가 적지 않을 것”이라고 가세했다. 이날 오전 9시35분 푸켓발 대한항공 KE638편으로 입국한 한국인은 228명으로, 승객 수십명이 찰과상, 타박상을 입어 입국장에는 휠체어까지 준비됐다. 피피섬은 알파벳 ‘P’자처럼 생겼다고 ‘피피’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세계 10대 섬으로 꼽힐 만큼 경관이 뛰어나고 푸켓에서 20㎞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한국인의 관광명소로 꼽혔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길섶에서] 서리 풍경/심재억 문화부 차장

    겨울 고무신 생각나십니까? 추운 밤, 새도록 댓돌 위에 놓였던 검정 고무신. 이른 아침 맨발로 그걸 꿸라치면 섬뜩한 냉기가 등골을 타고 올라 부르르 온 몸을 떨곤 했습니다. 그러나 밤새 새우등 하고 방광을 부풀린 탓에 더는 버티지 못하고 한기에 닭살 돋은 볼을 비비며 부리나케 측간으로 줄달음쳐야 했습니다. 그 바람에 서릿발 허연 마당에 노루목처럼 발자국 하나 새로 생기고 그 뒤를 바지런한 ‘쫑’이 껑충거리며 따릅니다.‘쫑’이는 용무 중에도 측간 앞에 우두커니 앉아 나와 눈을 맞추곤 했는데, 이 축생 하나가 아직 어둠이 남은 이른 새벽의 두려움을 덜어줘 얼마나 든든했던지요. 그 새 어머니는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계십니다. 향긋한 솔연기를 타고 밥냄새가 퍼져날 무렵, 어머니는 댓돌의 고무신을 부뚜막에 얹어 덥히곤 하셨습니다.“이렇게 신으면 얼마나 뜨뜻하겄냐.”시며 겨우내 신발을 덥혀 주곤 하셨습니다. 지금이야 그렇게 정 쏟을 세상도 아닌지, 새벽녘 애들 잠자리로 슬몃 끼어들었다가 “아빤 맨날 잠만 깨운다.”는 투정에 그만 머쓱해지고 맙니다. 서울에도 서리가 내린 겨울 어느 이른 아침. 심재억 문화부 차장 jeshim@seoul.co.kr
  • 영화 ‘여고생 시집가기’ 임은경

    영화 ‘여고생 시집가기’ 임은경

    조막만한 얼굴에 큰 눈망울. 왠지 톡 건들리면 신기루가 되어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져버릴 것만 같은 그녀는, 그 이미지에 하나둘 피와 살을 붙이고 숨결까지 훅 불어넣었다. 사람이 되기를 꿈꿨던 인형의 소원이 이루어진 날, 그녀는 하늘을 날았고 힘껏 발을 찼으며 몸을 신나게 흔들어댔다. 마치 크리스마스의 꿈처럼 ‘인형 같은 신비소녀’에서 ‘왈가닥 터프 걸’로 변신한 배우 임은경(21). #신비소녀, 왈가닥 ‘쌈짱’으로 변신하다 23일 개봉하는 ‘여고생 시집가기’(제작 더존필름)에서 임은경은 와이어에 몸을 매단 채 발길질을 해대며 불량배 몇 명쯤은 거뜬히 해치우는 여고생 ‘쌈짱’인 평강이 됐다. 평강은 평강공주 귀신이 붙어 16세가 되기 전에 온달을 만나 결혼해 1년 안에 애를 낳지 않으면 죽을 운명이란다. 어느날 온달(은지원)이란 이름의 남학생이 전학을 오고 적극적인 구애작전이 시작된다. 목욕타월만 걸친 채 장미꽃을 입에 물고 온달을 유혹하질 않나, 시집 보내달라고 부모를 협박하질 않나… “갑작스러운 이미지 변신이어서 받아들이지 못하는 팬들도 많은 것 같아요.” 잘 모르는 사람들은 ‘왜 이미 많이 나온 캐릭터로 느닷없는 변신을 하느냐.’고 떠들지 모르지만 사정을 들어보니 이해가 갔다. 영화의 시나리오를 받은 건 지난해 10월쯤.“평강공주와 바보 온달이라는 만화 같은 이야기가 재미있었고, 주변 캐릭터들도 귀여운데다, 활발하고 사람다운 평강 역이 끌려서” 선택했던 영화가 제작에 난항을 겪으면서 1년여를 질질 끌었다. 그 사이 ‘인형사’와 ‘시실리 2㎞’에 출연하면서 인형 같은 이미지는 더 굳어졌고,‘어린신부’‘내사랑 싸가지’ 등 비슷한 소재의 영화들이 우후죽순 쏟아져 나오면서 캐릭터의 독창성마저 위협받게 됐다. 하지만 임은경이 이 영화에서 바랐던 건 ‘변신’만은 아니었다. 그녀가 진정으로 원하는 건 “배우로서 인정을 받는 것”이었다. 배우로서 확고한 자리를 잡는다면 다시 인형이 되든 신비소녀가 되든 문제가 될 건 없었다.CF를 통해 남들이 부여한 이미지의 알을 깨고 배우의 모습으로 거듭나기 위해 변신이 필요했을 뿐. #“연기는 ‘나’를 찾아가는 긴 여정” 임은경은 올 한해 3편의 영화를 촬영하면서 훌쩍 컸다.1999년 TTL 광고로 뜬 여고생 스타에게 그동안 연예계는 도망치고 싶을 정도로 힘든 곳이었다.“제게 갑자기 CF 모델 제의가 들어왔던 것도 알고 보면 행운의 선물이었어요. 하지만 선물을 이용할 줄 몰랐죠. 그냥 내내 힘들다는 생각만 했어요.‘내가 뭐 하고 있지?’란 생각만 했죠.” 어딘지 모르게 주눅이 든 아이처럼 고개만 푹 숙인 채 말없이 앉아 있던 소녀는, 이제 자신의 생각을 똑똑히 말하는 성숙한 성인이 됐다.“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게 됐다.”면서 “나를 잃지 않고 중심을 잡으면서 살고 싶다.”고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한결 여유있는 진심이 담겼다. 이제 스물하나. 조급해하지 않고 긴 호흡으로 걸음걸이를 떼기에 딱 좋은 나이니까. 임은경은 ‘끼’보다는 ‘노력’이 앞선 배우다. 많은 노력으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을 때마다 희열과 자신감이 생긴단다. 다음 작품부터는 캐릭터를 많이 생각하고 즐기면서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그녀에게 가장 하고 싶은 역할을 물었다.“나를 찾을 수 있는 역할요. 앞으론 휴먼 드라마에서 나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인형 같은 모습에서 사람의 향기를 품은 배우로 거듭나려는 그녀의 의지는, 막 날아오른 나비의 날갯짓처럼 아름다웠다.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사진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 꿈꾸는 소녀 임은경의 부모는 알려진대로 청각 장애인이다. 하지만 장애인 부모 밑에서 자란 그녀도 어린시절 다른 장애인들을 보면서 두려움을 느꼈다.“아무도 장애인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았고, 관심 자체가 없었어요. 장애인에 대해 뭔가를 깨달았을 때에도 그 감정은 불쌍하다는 동정에 지나지 않았죠.” 그래서 그녀는 오랜 고민 끝에 동화책 ‘소녀의 꿈’에 자신의 경험담을 녹여내기로 했다. 어린시절 장애인 부모와 함께 살면서 상처를 받고 힘들었던 점을 그녀의 눈으로 솔직히 그려냈고, 장애를 소재로 한 동화를 써온 고정욱 작가가 집필을 했다. 책은 내년 4월쯤 나올 예정이다. 하지만 돈 때문에 책을 낸다는 일부의 비난에 적잖이 힘들기도 했다는 그녀. 지난 1년 내내 가장 큰 숙제였단다.“제겐 정말로 의미있는 일임을 깨달았어요. 엄마와 같이 보면서 함께 느끼고 얘기를 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희망을 주는 저만의 새해 선물입니다.”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한기총 성탄메시지 발표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길자연 목사는 20일 성탄메시지를 발표,“성탄절은 우리 모두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이고 가치 있는 인생인지를 깨달으며 염려와 두려움을 극복하는 놀라운 기적의 날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길 목사는 “고아와 과부를 가장 먼저 배려했던 초대교회의 성도들처럼 교회가 먼저 낮은 자리로 내려와 도움이 필요한 이들과 마음을 함께 할 것”을 당부했다.
  • 소록도는 더 이상 외롭지 않았다

    소록도는 더 이상 외롭지 않았다

    한센인(한센병 환자와 병력자) 700여명이 모여 사는 전남 고흥군 도양읍 소록1리 소록도. 일본 변호사 65명과 한국 변호사 37명이 일제강점기 때 강제 수용돼 노역에 시달린 이곳 할아버지, 할머니 117명을 대리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보상청구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2001년 특별법을 제정, 강제 수용됐던 일본 한센인에게 1인당 800만∼1400만엔씩 보상했지만, 소록도 주민은 내국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절했다. 한·일 변호사들은 지난 8월 일본 정부의 결정에 불복, 보상청구소송을 냈다. 소록도 한센인들에게 재판과정을 보고하러 가는 변호사들을 동행, 취재했다. ■ 日정부상대 소송 소록도 르포 #1. 할머니와 손녀의 상봉 지난 11일 오후 2시. 전남 고흥군 소록도 중앙리 강당을 가득 메운 할아버지, 할머니 50여명이 한국과 일본의 변호사들을 반갑게 맞았다. 한센병을 앓았던 노인들은 불편한 몸으로 휠체어를 타거나 비스듬하게 바닥에 앉아 있었다. 일본에서 온 여변호사들이 손가락이 뭉개진 할머니 손을 다정히 잡으며 “안녕하세요.”라고 서툰 한국어로 안부를 묻는다. 일그러진 얼굴로 눈을 꼭 감은 할아버지를 포옹하기도 했다. 미소를 머금은 할아버지, 할머니는 오랜만에 손녀딸이라도 만난 듯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이날 일본 변호사 5명과 한국 변호사 15명이 보고대회에 참석했다.10차례가 넘게 이곳을 방문한 사람도 있었다. 대한변호사협회 박영립 인권이사가 “첫 재판(10월25일) 때 장기진(84), 강석우(80) 할아버지가 증언했는데 17일 2차 재판 때 김일임(71·가명) 할머니가 증인으로 나선다.”고 말하자 노인들은 투박한 손으로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2. 피와 눈물로 얼룩진 ‘소록도’ 서울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6시간을 달리면 전남 고흥군 녹동항에 도착한다. 섬의 모양이 어린 사슴을 닮았다는 소록도(小鹿島)는 선착장에서 돌을 던져도 닿을 듯 가까이 보인다. 선착장과 소록도 사이 거리는 겨우 600m. 섬은 가운데 자리잡은 중앙공원을 중심으로 오른쪽은 관광객이 북적이는 해수욕장, 왼쪽은 출입이 제한된 한센인 거주지역으로 나뉜다. 김명호(55) 자치회장은 “일제강점기 때 6000여명이 거주하던 섬에는 이제 ‘한센인’ 702명만이 남았다. 평균 연령은 78세이고 한해 노환으로 사망하는 분만 50∼60명에 이른다.”고 말했다. 1936년에 착공돼 3년4개월만에 완공된 중앙공원은 한센인의 피와 눈물로 만들어졌다. 한센인 6만여명이 강제 동원돼 산림을 베어내고,6000여평의 대지를 조성했다. 암석은 완도 등에서 채취, 운반해 왔다. 나무는 일본과 타이완에서 들여왔다. 장기진 할아버지는 “몇 척의 배를 연결해 뭍에서 섬까지 다리를 만들었어. 우리는 목도라는 장대에 길이 2∼3m, 폭 1∼1.5m짜리 돌 수십개를 매달아 옮겼지. 언덕 위를 오르다 쓰러지면 돌 위에 앉은 일본인이 몽둥이로 마구 때렸어.”라고 회상했다. 중앙공원 한쪽에 자리잡은 붉은 벽돌집도 ‘고통의 역사’를 안고 있다. 시체해부실, 감금실, 단종대(斷種臺·남성불임수술대)…. 김 자치회장은 “일제 때 한센인은 다섯 차례 ‘죽음’을 맞이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가족과 생이별하며 호적에서 파내져 한번, 자녀를 낳지 못하도록 단종수술 받으며 또 한번, 목숨이 끊어져 한번, 그 시체를 해부해 또다시 한번, 불에 태워 화장하며 마지막으로 죽는다는 것이다. 감금실은 일제 때 노역을 하지 않거나, 소록도를 탈출하다 잡힌 한센인들이 7∼60일씩 갇혔던 곳이다. 실컷 매를 맞은 뒤 감금되면 음식도 없이 추위를 견뎌야 했다. 결혼을 하려면 단종수술을 해야 하는 규정은 2002년 10월24일 국립소록도병원 운영규칙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유지됐다. #3. 오늘도 고통은 계속된다 한·일 변호사들은 진술서를 작성하기 위해 노인들이 살고 있는 집을 방문, 강제 격리된 상황과 인권침해 실태를 조사했다. 권모(77) 할아버지는 1943년,16살 때 3살 많은 누나와 소록도로 들어왔다고 했다. 경북 안동에 살던 남매는 “소록도에 가면 6개월만에 나병을 고칠 수 있다.”는 일본 순사의 말을 믿고 따라나섰다. 그러나 소록도는 치료는커녕 좁은 방에 10명씩 몰아넣어 강제노역을 시키는 ‘지옥’이었다. 가마니를 짜고, 벽돌을 굽고, 토끼가죽을 만들었다. 당시 한센인들은 한 해 벽돌 140만장, 가마니 30만장, 토끼가죽 1500장을 생산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배고픔에 잠을 잘 수가 없었어. 동상과 고된 노동으로 멀쩡하던 손과 발은 상처투성이로 변해갔지. 그리고 손목, 발목이 절단되더라고….”권 할아버지의 한숨이 이어진다. 1945년 광복 후 강제노역은 사라졌다. 그러나 강제격리 정책은 66년 말까지 계속됐다.92년에야 소록도에 노령수당이 지급됐고, 이듬해 의료보험 대상자로 선정됐다. 장애인 등록은 94년 9월에 가능해졌다.4평 남짓한 단칸방에서 생활하는 소록도 노인들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적용받지 못하고 있다. 병원에서 의식주를 해결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래서 이들의 생활비는 노령수당 3만∼5만원이 전부다. 한센인 할아버지, 할머니의 애달픈 사연을 변호사들은 한글과 일본어로 옮겼다. 이 진술서는 일본에서 진행 중인 보상청구 소송에 주요 자료로 일본재판소에 제출될 것이다. 12일 오후 변호사들은 노인들의 배웅을 받으며 뭍으로 향했다.“고마우이.” 뭉툭한 손으로 등을 쓰다듬던 할머니를 향해 한 여변호사가 돌아섰다. 그는 차별, 편견과 싸우느라 가냘퍼진 할머니의 어깨를 감싸안았다.“우리는 하나인 걸요.” 소록도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소송 앞장 日변호사 구니무네 “인권을 침해당한 한국인도 일본인과 동등하게 보상받아야 합니다.” 일본인 구니무네 나오코(國宗直子·49) 변호사는 2002년 3월부터 소록도 한센인 소송에 앞장서고 있다. 소록도변호단의 일본측 사무국장을 맡으며 14차례 방문했다.12일 한센인 117명에게 받은 진술서를 마무리하던 그를 만났다. 구마모토 출신의 구니무네 변호사가 소록도에 관심을 가진 것은 다키오 에이지(73) 때문이다. 일본 근대사를 전공한 다키오씨는 구니무네 변호사가 1998년 일본 한센인들을 대리해 국가배상 소송을 진행, 승소하자 소록도 얘기를 들려줬다. 1907년 ‘나병예방법’을 제정한 일본은 1996년, 법이 폐지될 때까지 90년 가까이 한센인을 요양소에 강제 격리시켰다. 구니무네 변호사를 비롯한 일본 변호사 200여명은 ‘한센병 예방법 위헌 국가배상 변호단’을 구성, 소송을 냈고 2001년 5월 승소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는 항소를 포기, 한센병 환자 보상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했다. 구니무네 변호사는 “일제강점기 때 한국과 타이완에서도 한센인 강제격리정책이 펼쳐졌다는 얘길 접하고 바로 소록도로 달려왔다.”고 말했다. 국적과 관계없이 국가의 불법행위에 대해선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는 “일본인들에게 많은 고통을 받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나를 반갑게 맞을 때 눈물나도록 고마웠다.”고 털어놨다. 일본 한센인들이 보상금 일부를 기금으로 조성, 소송비용을 내고 있다고 전했다. 언어 장벽 탓에 소록도 노인들의 진술서를 받는 게 쉽지 않던 구니무네 변호사는 한국 변호사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우리 일을 대신해줘서 고맙다.”며 발벗고 나섰다. 한·일 변호사 102명은 지난 8월 도쿄 지법에 보상청구소송을 냈고, 지난 10월25일에 이어 17일 열리는 2차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구니무네 변호사는 “일본 한센인들은 요양소에서 의식주 해결은 물론 매월 8만 5000엔(약 85만원)씩 받아 기본적인 생계를 유지한다. 그러나 한국 한센인들의 생활 여건은 너무나 열악하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한센인이 정당한 대우를 받으려면 일본 정부에 앞서 한국인들의 편견과 오해를 넘어서야 한다.”고 말했다. 타이완 한센인 격리지역인 낙생원의 일본 정부 상대 소송도 돕고 있다. 소록도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한센병에 대한 몇가지 오해 한센인에 대한 두려움과 차별은 오해와 무지에서 비롯된다고 가톨릭의대 채규태 교수는 지적한다. 그는 한센병은 하늘이 내리는 형벌(天刑)도, 전염성이 강해 격리가 필요한 난치병도 아니라고 말한다. 한센병에 대한 몇 가지 오해를 풀어본다. ●한센병은 전염성이 강하다 한센병은 전염병예방법상 가장 낮은 단계인 3군 전염병이다. 결핵의 전염력이 한센병의 2000배를 웃돌 정도다. 특히 일반인은 95% 이상 한센병에 대한 자연 항체를 갖고 있다. 또 리팜피신이란 치료제를 단 1차례 4알(600㎎)만 복용해도 나균의 99.9%는 전염력을 상실한다. 신체는 물론 성접촉, 임신을 통해서도 감염되지 않는다. ●치료하려면 격리조치가 필요하다 1980년대 치료제 리팜피신이 발견되면서 한센병은 통원치료를 받는 병으로 바뀌었다. 전염력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손가락·발가락 등 일부 신체기관의 변형으로 수술이 불가피하면 입원하지만, 장기간 격리는 필요치 않다. ●한센병은 난치병이다 한센병은 약물 복용으로 1∼2년이면 완치된다. 예전엔 치료시기를 놓쳐 변형된 손·발로 살아가는 한센인이 많았지만, 최근 발병한 환자들은 피부 반점 정도만 남는다. 치료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몸속 나균은 전염력을 잃는다. ●한센병은 유전된다 1973년 대한나협회가 조사한 결과, 전국 88개 정착촌에 살고 있는 2세 4157명 가운데 한센병에 감염된 2세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가족 가운데 한센인이 있다 해도 감염은 240만명에 한 명 꼴로 일반인과 다르지 않다고 의학계는 분석하고 있다. ●새로운 한센병 환자가 많다 2004년 1월 현재 한센인은 1만 6801명이다. 대부분 치료가 끝난 사람들이다. 새로운 환자는 해마다 20여명에 불과하다. 소록도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서울광장] 국민소득 2만달러 환상/육철수 논설위원

    [서울광장] 국민소득 2만달러 환상/육철수 논설위원

    해일과 눈보라가 어느날 갑자기 뉴욕을 덮친 뒤 차츰 미국 전역을 꽁꽁 얼게 하는 영화 ‘투모로’의 장면처럼, 그 해 겨울은 말 그대로 엄동설한(嚴冬雪寒)이었다.1997년 11월초,LA출장 중에 1달러가 1000원을 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명색이 경제부 기자면서 금융·통화분야는 워낙 까막눈인지라, 그것이 불과 며칠 후 우리 경제, 우리 나라에 어떤 풍파를 몰고 올 것인지를 헤아리지 못했다. 마음이 뒤숭숭해 취재는 뒷전이었고,1달러라도 아끼려는 심사로 쓰고 싶은 돈을 꾹꾹 참고 돌아왔다. 벌써 7년 전의 일이다. 나라에 달러화가 부족해 일어난 외환위기는 그렇게 우리에게 견딜 수 없는 고통으로 다가왔다.1달러에 970원 주고 바꿔간 돈은 귀국 후 1400원에 팔아 겨우 몇십만원 건졌지만 월급은 순식간에 반토막 났다. 달러당 2000원까지 치솟는 환율을 넋을 잃고 지켜보면서 월급을 달러로 받는 외국대사관과 외국기업 직원들을 쓰린 마음을 참으며 부러워했다. 모라토리엄(지불유예)이니 디폴트(국가부도)니 하는 경제용어를 남의 나라, 남의 기업 얘기하듯 유식한 척 써왔는데, 그게 우리의 처지이고 나라가 곧 망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몸서리쳤다. 약(弱)달러 추세로 원·달러 환율이 7년 전 그 자리로 돌아오고 있는 요즘, 옛날의 뼈저린 아픔을 잊은 채 또 월급을 달러화로 계산하기에 바쁘다. 본전에 대충 가까워져 흡족한 마음이 드는 걸 보면 소시민은 어쩔 수 없다. 담뱃값과 기름값이 물가의 절대기준인 내 입장에서, 그동안 오른 물가를 생각하면 별로 남는 게 없는데도…. 정부는 달러가 너무 많고, 수출경쟁력이 떨어진다고 난리인데 내 지갑 챙기기에 급급한 게 부끄럽기도 하고. 정부는 현재 2000억달러 정도의 외화를 보유하고 있다. 그 가운데 70%가 달러다. 최근 한두달 사이에 달러가치가 10% 떨어졌으니 140억달러(15조원)의 환차손을 앉은 자리에서 본 셈이다. 환율방어에만 연간 5조원을 써야 하니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다. 우리 경제의 주축인 수출도 달러당 1100원선이 무너진 이후 무척 고전하고 있다. 정부는 환율방어에 혈세를 퍼붓고 있는데 달러보유 기업들은 한푼이라도 손해를 안 보려고 내다 팔기에 정신이 없다. 정부와 기업이 손발이 안 맞아 환율불안이 계속되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환율변동으로 올해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4000달러, 내년엔 1만 7000달러, 그리고 2007년이나 2008년쯤엔 2만달러가 넘을 것이라는 제법 희망적인 전망도 성급하게 나온다. 1995년 1만달러를 넘었던 국민소득이 외환위기 때 6000∼7000달러로 뚝 떨어져 온 국민이 고통을 겪었는데, 거꾸로 된 현상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 반겨야 정상인데 선뜻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 우리의 경제상황이 그렇게 한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선공약에서 연평균 성장률 7%를 전제로 임기말인 2007∼2008년 2만달러 시대를 열겠다고 했다. 그러나 경제성장이 대통령의 마음같이 따라주지 않아 현재처럼 4∼5%로 간다면 당초 예상보다 4∼5년 늦은 2012년이 돼야 2만달러는 가능하게 된다. 그런 비관이 환율변수로 인해 당초 공약대로 대통령의 임기말쯤 달성하게 된다면, 참여정부는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서 좋고 국민은 소득이 늘어 좋아해야 할 것 아닌가. 그러나 여기엔 간과한 문제가 숨어있다. 국민생활은 나아진 게 없는데 통계로만 달성되는, 이른바 체감과 다른 통계의 착시현상이다. 축구경기에서 상대팀의 자살골로 승리하면 이기고도 맥이 빠지듯, 내수회복과 일자리 창출, 기술개발이 없는 가운데 환율변동에 힘입어 이루는 2만달러 시대는 그래서 환상일 뿐이다.7년 전 ‘고통’이 ‘환상’으로 바뀐 것 말고는 변한 게 없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20~30대 미혼여성 500명 성의식 조사

    20~30대 미혼여성 500명 성의식 조사

    ‘말로는 혼전 성관계나 동거에 관대한 척 하지만, 정작 자신의 성적 욕구는 말하기조차 꺼린다.’기독교여성상담소가 미혼여성을 대상으로 ‘성의식 실태조사’를 실시한 뒤 내린 결론이다. 미혼여성들이 개방적인 것처럼 보이지만,‘생각’과 ‘현실’은 크게 다르다는 것이다. 이번 조사는 서울시 여성발전기금의 지원으로 전국의 20∼30대 미혼 여성 500명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조사 결과 ‘성(性)’이 ‘내 삶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답한 사람은 72%에 이르렀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섹스’라는 낱말의 느낌을 묻자 ‘황홀한 느낌’이라는 응답은 12.6%에 불과했다.34.6%는 ‘불안하다.’,6.6%는 한걸음 더 나아가 ‘불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미혼여성들이 성 문제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는 것은 무려 40.8%가 ‘아무 느낌이 없다.’고 응답한 데서도 잘 드러난다. ‘성적 욕구를 느낄 때 어떻게 해결하느냐.’는 질문에는 31.2%가 ‘느낀 적이 없다.’고 응답했다. ‘자위행위를 해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도 59.8%는 ‘전혀 안한다.’고 응답했다. 회사원 이모(27)씨는 “여성에게도 성적 욕구라는 것이 없다고 볼 수는 없지만 이를 터부시하는 사회적 분위기 탓에 자신의 욕구를 애써 무시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섹스’라는 말에 ‘황홀한 느낌’ 12.6% ‘순결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는 ‘육체적 순결과 정신적 순결의 결합’이 66.2%를 차지했다. ‘정신적 순결’은 24.2%,‘육체적 순결’은 5.6%였다. 회사원 황모(25)씨는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한번에 한 사람만 좋아하는 것이 순결”이라고 정의했다. 대학원생 김모(26)씨는 “아무하고나, 작은 감정에 휩쓸려, 단지 육체적 욕망으로만 성관계를 맺지 않는 신중함이 순결이 아니겠느냐.”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순결이란 정신적·육체적 순결의 결합 ‘혼전 성관계’는 49.2%가 ‘사랑한다면 가능하다.’,27.4%는 ‘결혼을 전제로 가능하다.’고 응답해 76.6%가 긍정적이었다.‘결혼 후에만 가능하다.’는 20.2%였다. 그러나 ‘혼전 동거’는 반대하는 미혼여성이 찬성하는 사람보다 많았다.‘약간 반대’와 ‘매우 반대’를 합쳐 부정적인 반응이 46.2%인 반면 긍정적인 응답은 ‘약간 찬성’과 ‘매우 찬성’을 포함해 38.6%에 그쳤다. 대학원생 김모(26)씨는 “혼전 동거가 무슨 큰 장점이 있는지 모르겠고 사회의 시선도 두렵다.”고 말했다. 회사원 오모(29)씨도 “상관없다고 생각하지만 감행할 용기는 없다.”고 고백했다. 회사원 한모(30)씨는 “언제든 헤어질 수 있다면 서로가 무슨 노력을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혼전동거에는 ‘부정적 반응’ 46% ‘이성과의 신체접촉 경험’을 묻는 질문에 36.4%는 ‘성관계’를 가졌다고 답했다. 처음 성관계가 이루어진 상태는 ‘서로 합의하에’가 58.8%로 가장 많았고,‘상대가 강하게 요구했다.’가 15.9%,‘술에 취해 있었다.’가 11.5%,‘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였다.’가 9.9%였다. 여성이 주체적으로 결정하지 못한 성관계가 상당수에 이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성관계 뒤 느낌’은 30.2%가 ‘나의 결정이므로 죄책감은 없다.’,19.8%는 ‘사랑이 깊어지는 느낌’이라며 긍정적이었다. 반면 15.9%는 ‘순결을 잃은 것에 대한 후회’,14.8%는 ‘임신에 대한 두려움’,8.2%는 ‘주변 사람들이 알게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7.7%는 ‘사랑 없는 성관계로 후회’를 느꼈다. ●성관계후 임신에 대한 두려움으로 후회도 대학원생 이모(27)씨는 “대학 2학년때 남자친구와 여행을 갔다가 처음 성관계를 경험했다.”면서 “좀 더 친밀하고 편안해지는 느낌이었고, 비록 지금은 그와 헤어졌지만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반면 회사원 최모(29)씨는 “피임 방법 등에 대한 지식 없이 갑작스레 성관계를 갖고 혹시 임신이 됐을까봐 한달 동안 전전긍긍한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이처럼 성문제에 적극적이지 못한 미혼여성들에게 기독교여성상담소 윤귀남 부소장은 “자신의 성을 인정하고 직시하면서 효과적으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훈련이 자신을 보호하고 성적 자기결정권을 갖는 바탕이 된다.”고 조언했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느낌표2로 돌아온 ‘쌀집아저씨’ PD 김영희

    !느낌표2로 돌아온 ‘쌀집아저씨’ PD 김영희

    방금 자다 일어난 듯한 덥수룩한 머리에 두꺼운 뿔테 안경, 수더분한 인상. 겉보기엔 영락없는 동네 ‘쌀집 아저씨’다. 하지만 안경을 넘어 혼탁한 세상을 향해 쏟아내는 눈빛엔 날카로움이 배어있다. 김영희 프로듀서(44)는 그동안 ‘일요일 일요일 밤에-이경규가 간다’‘21세기 위원회-칭찬합시다’‘!느낌표-하자하자’ 코너 등을 통해 오락프로그램이 단순히 ‘재미’만이 아닌 ‘공익’적 역할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수많은 시청자들이 청소년·노인·외국인노동자 등 소외된 이웃의 어려운 현실에 관심을 갖게 됐고, 시민의식을 담은 ‘변화의 메시지’에 사회 전체가 ‘기적처럼’ 바뀌어 나갔다. 지난해 12월 프로그램을 떠나 휴식을 가졌던 김 프로듀서는 11일 7개월만에 새로 부활된 ‘!느낌표’를 통해 다시 한번 세상을 향해 ‘미덕’을 전파한다.2일 타이틀 촬영이 한창인 여의도 MBC 본사에서 그를 만났다. ●시각장애인에 무료 수술·장기기증 의식 변화시킬 것 “새로 선보이는 ‘눈을 떠요’라는 코너를 통해 시각장애인에게 무료 개안 수술을 해주고,‘장기기증’에 대한 우리네 의식을 변화시킬 겁니다.” 그는 쉬는 동안 20만 시각 장애인 가운데 시력 회복이 가능한 2만여명이 기회를 찾지 못해 ‘빛’에서 영원히 소외돼 살아가는 현실을 접하고 이 코너를 기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특히 우리가 장기기증에 대해 갖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이식용 각막 대부분을 해외에서 수입해야 하는 상황도 바꿔보고 싶다고 강조했다.“눈을 뜬다는 것은 엄청난 의미를 담고 있어요. 자신과 세상의 모습은 물론 수십년간 못보던 어머니의 얼굴을 보는 것이죠. 가슴찡한 감동이 사회 전체로 퍼져나갔으면 좋겠어요.” 그는 또 ‘통일 시대’에 대비한 프로그램인 ‘남북 어린이 알아맞히기’라는 코너를 선보인다. 남한 어린이들이 북한 조선중앙TV의 ‘전국 소학교 학생 알아맞추기 경연’프로그램을 보며 퀴즈를 풀고, 화면 합성을 통해 남북한 어린이들이 한 자리에서 퀴즈 경연을 벌이는 것처럼 보이도록 하는 것. 그는 “어린이들에게 북한에 대한 이질감과 문화 차이 극복의 장을 열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밖에 ‘휴대전화 카메라’를 통해 ‘휴대폰 강국’인 대한민국의 현재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찰칵!찰칵!’코너도 마련했다. 지난 86년 입사한 이래 그는 자신의 말마따나 예능국 소속 ‘딴따라 PD’로만 일해왔다. 하지만 그의 머리와 가슴 속에는 늘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이 떠나지 않았다.“TV는 바보상자가 아닙니다. 공적인 영향력이 엄청난 하나의 ‘권력’이에요. 소외된 계층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당연한거죠.” ●사회적 메시지 + 웃음 = 대박 그동안 만든 프로그램들의 성공 비결을 묻자 “‘공익적 요소’가 곧 ‘재미’”라고 말한다.“캠페인성 프로그램이라고 하면 모두 재미가 없을 거라고 ‘넋을 놓고’있는게 보통이죠. 거기에 약간의 웃음을 첨가하면 시청자들은 더욱 재미있게 느끼고, 덩달아 공적인 메시지 전달 효과도 높아지게 되죠.” 그는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한마디로 ‘사람’이란다. 화려한 겉모습이 아닌 인간의 냄새가 솔솔 풍겨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 물론 고민도 있다.“‘과연 내 자신은 얼마나 도덕적인가?’부터 생각해요. 사실 나 자신은 정지선을 잘 안지키고, 칭찬도 잘 할 줄 모르는 그런 사람이거든요. 저부터 변해야지요.”각각 중3·중1인 딸과 아들에게 먼저 자랑스런 아버지로 비쳐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단다. ●“좋은 PD 이전에 좋은 아버지이고 싶다.” 최근 ‘교양 프로그램의 오락화 경향’에 대해 묻자 그의 눈빛이 더욱 날카로와 진다.“사회 전반적으로 ‘장르파괴’가 하나의 추세가 되고 있는게 사실이지만, 교양프로가 오락적 요소로만 덧칠돼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죠. 교양이든 오락이든 자신만의 뚜렷한 색깔과 독창적인 목소리를 가져야 합니다.” 연예인들과 일반인이 함께 만나 ‘세상 이야기’를 나누는 ‘고급 토크쇼’를 꼭 한번 만들어보고 싶다는 그는 이미 다음 캠페인까지 구상해 놓고 있었다.“이번 ‘장기기증’ 다음에는 ‘장묘 문화’를 다룰겁니다. 국토 70%이상이 묘지화되가는 것이 현실이잖아요. 이젠 우리 모두가 ‘화장·납골묘’문화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인 것 같아요.”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데스크 시각] 그들이 國寶다/오풍연 공공정책 부장

    무애(无涯) 양주동(1903∼1977) 선생은 자신이 ‘국보(國寶)’라고 했다. 평생 “인간국보 1호” “걸어다니는 국보”라고 자칭했다. 일화도 많다. 영업용 택시를 탄 뒤 “국보가 탑승했으니 각별히 운전을 조심하라.”고 지시하는가 하면, 노상방뇨를 단속하는 경찰관에게는 “국보를 몰라보느냐.”라고 호통을 쳤다고 한다. 재기와 천재성, 박람강기(博覽强記)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기인다운 행동이다. 사실 무애는 대단한 일을 했다. 신라 향가 연구의 권위자로 ‘조선고가연구(朝鮮古歌硏究)’와 ‘여요전주(麗謠箋注)’같은 역저를 남겼다. 오늘날 향가들을 음미할 수 있는 것도 선생의 덕이 크다. 선생이 향찰(鄕札)과 이두(吏讀)의 뜻을 풀어내지 못했더라면 향가는 서고에서 나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국문학사에 획을 그었으니 ‘국보’임을 자처할 만도 하다. 이건희(62), 황우석(51), 배용준(31). 세 사람 다 국내외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국내 언론은 물론 외국 언론의 표지에도 자주 등장한다. 이들에 대한 비판적인 기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칭찬 일변도로 부러움의 대상이다. 이같은 평가를 받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분명 애국자다. 대한민국이라는 ‘브랜드’를 알리는 최선봉에 서 있기 때문이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국내보다 외국에서 더 경계의 대상이다. 세계 최대 반도체업체인 인텔의 폴 오텔리니 사장은 최근 ‘삼성전자 경계론’을 폈다. 그는 비즈니스위크와 가진 인터뷰에서 “5년 전만 해도 삼성전자는 우리 레이더에 없었다.”면서 “1위 뒤에는 항상 2위가 있기 마련이지만, 지금은 다른 2위인 삼성전자가 있다.”고 말했다. 공격적 경영을 주도하고 있는 삼성전자에 대한 두려움을 피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영국의 경제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가 이 회장을 ‘존경받는 세계의 재계리더’ 21위에 선정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배아줄기 세포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서울대 황우석 석좌교수. 장래 우리나라를 먹여살릴 학자로 꼽힌다. 그런 만큼 전 세계에서 ‘러브 콜’을 받고 있다. 제시하는 액수단위가 조까지 나오는 등 상상을 초월한다. 흔들릴 법도 한데 그는 단호하다.“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그런 황 교수가 자랑스럽다. 정부가 황 교수 지원에 발벗고 나선 것은 잘한 일이다. 그러나 정치권 일각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데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 과학자의 ‘기’를 꺾는 것은 애국심과 거리가 멀다. ‘욘사마’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배용준도 ‘작은 거인’이다. 일본의 상술이 신드롬을 일으켰다는 주장도 있지만 오히려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듯싶다. 실제로 그는 지금까지 일본에서 1134억원의 천문학적인 경제효과를 창출한 것으로 조사됐다.‘욘사마’는 올해 일본을 강타한 최고 유행어로 떠올랐다. 미국 메이저리그에 진출해 최다안타 기록을 경신한 이치로는 물론 고이즈미 총리도 제쳤다. 미국의 유력 일간지 월 스트리트 저널이 ‘욘사마 열풍’을 상세히 소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배용준은 어제 일본을 방문, 또한번 열도를 흔들었다. 이제 ‘인간 국보’는 국내외의 평가를 두루 감안해야 할 것 같다. 밖으로도 눈을 돌려야 한다. 세계와의 경쟁은 피할 수 없다. 앞으론 국가적 차원에서 인간 국보를 보호하고 관리해야 한다. 우리의 미래가 그들에게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풍연 공공정책 부장 poongynn@seoul.co.kr
  • 역사비평 겨울호 ‘역사속의 이순신 인식’

    역사비평 겨울호 ‘역사속의 이순신 인식’

    성웅 이순신이냐, 인간 이순신이냐. 너무 도식적인 구분인가. 그렇다면 합리적인 CEO로서의 이순신, 디지털 시대에 새로운 리더십을 제시한 이순신은 어떤가. 역사적 인물로서 이순신은 한명인데 해석으로 구성되는 이순신은 여러 명이다. 일부 논란이 있었지만 KBS가 상영한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의 영향이 크다. 이순신을 다룬 책들이 잇따라 출간되거나 개정판을 내기도 하고 ‘충무공전’같은 컴퓨터 게임이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이렇게 다양한 이순신에 대한 소비방식은 예전부터 쭉 있어왔던 현상이다. 서울대 한국문화연구소 노영구 연구원은 계간지 역사비평 겨울호에 실린 ‘역사속의 이순신 인식’이란 글을 통해 그 소비방식을 추적했다. 해방이후 독재정권이 이순신을 어떻게 이용했는가는 많이 알려져 있다. 이승만 정권은 정권유지의 한 축이었던 극우청년단체들의 은유로써 화랑도를 선호했다. 박정희 정권 때 비로소 이순신이 민족의 영웅으로 떠올랐는데 이 기간에도 미묘한 변화가 있었다. 국가수호의 영웅에서 선견지명을 갖춘 탁월한 전략가로, 다시 정의·충성·용기를 갖춘 훌륭한 인격자로 다르게 정의되다 마지막으로는 ‘화랑도의 중흥’정도로 격하됐다. 이런 변화는 박정희 정권 초기의 반공주의, 중기의 성장제일주의, 말기의 체제에 대한 자신감이 반영된 결과다. 현대사의 굴곡에 따라 바뀌었던 평가가 조선·일제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순신은 자신의 시대에는 그다지 환영받지 못했다.‘전쟁영웅’은 외려 왕권에 대한 위협일 수 있다. 더구나 이순신을 파직하고 원균을 중용해 조선수군을 괴멸시킨 사람이 바로 선조였다. 임진왜란 뒤 논공행상에서 원균과 똑같이 선무공신 1등의 녹훈을 받았던 것도 이런 정치적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다 인조반정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이순신은 전쟁의 영웅으로 올라선다. 그러다 숙종 때는 중국과 함께 왜구를 물리친 ‘중화문명의 수호자’로 한번 더 업그레이드된다. 이는 청나라가 중국대륙을 확실히 장악하면서 이제 중화문명의 계승자는 조선이라는 조선중화주의에 따른 것이다. 청나라와의 관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영·정조 때는 왕권강화와 복종을 요구하기 위해 충성의 상징으로서 이순신의 쓰임새가 바뀐다. 일제시대에는 다시 이순신이 민족의 영웅으로 올라선다. 이 시기에는 영국의 넬슨제독보다 뛰어나다거나 세계최초의 철갑선인 거북선을 만들었다는 점이 강조된다. 신채호, 박은식 등 민족주의 사학자들의 이런 서술은 서구열강의 압도적인 힘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우리민족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런 시각도 문화통치기간을 거치면서 다소 완화된다. 민족개조론, 실력양성론이 힘을 얻으면서 이순신의 인격과 애국하는 마음이 강조됐다. 이런 평가의 변화에 대해 순천향대 손풍삼 이순신연구소장은 “정치적 상황에 이용당한 측면이 있지만 영웅으로서의 족적은 분명하다.”고 강조한 뒤 “다만 성웅으로 ‘박제화’된 이순신이 상업적으로 이용될 위험만큼은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CEO 칼럼] 동기유발은 스스로 하는것/서두칠 이스텔시스템즈(주) 대표이사 사장

    [CEO 칼럼] 동기유발은 스스로 하는것/서두칠 이스텔시스템즈(주) 대표이사 사장

    일선기업에서 주5일 근무제 시행이 일반화될 무렵, 직장인들이야 덤으로 굴러온 토요일 하루(사실은 한 나절이지만)를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를 구상하는 등 마음이 설을지도 모르지만, 회사를 책임 맡고 있는 경영인에게 그것은 ‘빼앗긴 반 공일’이었다. 일주일에 4시간을 싹둑 잘라내고도 변함없는 경영성과를 유지해야 한다는 중압감은 특히 시간이 돈이나 마찬가지인 제조업 분야의 경영 책임자들에게 더 심했을 것이다. 내가 맡고 있는 회사는 정보통신 부문 장비 제조회사인데, 주5일 근무제가 시행되던 그 무렵이 바로 새로운 광전송 장비의 연구개발이 막바지에 이른 시기였다. 나는 속이 탔지만, 그렇다고 다른 회사 직원들은 금요일 저녁부터 ‘꽃놀이’ 계획을 세우고 있는 터에 연구원들에게 주말 근무를 강요할 염치가 없었다. 개발하고 있던 장비는 통신장비 업계에서 진입장벽이 두껍기로 정평이 난 까다로운 제품인데다, 이미 경쟁업체에서 많은 연구원을 투입해서 유일하게 국산화를 앞둔 상황이었다. 그 개발 프로젝트가 지연되거나 실패한다면 회사 전체의 경쟁력에 큰 타격을 입을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우리 회사도 시류를 거스를 수 없어 일단 주5일 근무제를 공식적으로 시행했다. 그런데, 휴무일인 토요일에 회사에 나갔다가 나는 작지 않은 감동을 맛봤다. 자신이 맡은 일의 스케줄이 미진하다고 판단한 연구원들이 주말인데도 회사에 나와 연구에 매진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 자발적인 근무는 일요일까지 이어졌고, 그들의 열의 덕분에 우리는 소수의 인원으로 광전송 장비의 자체개발에 성공할 수 있었다. 각종 연구조건이 상대적으로 불리했고, 급여도 넉넉한 편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런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원인을 나름대로 추론해 보았다.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보상을 위해 일하는 열 사람보다 재미에 빠져 일하는 한 사람이 더욱 소중하다.’고. 우리 회사가 그 이전에도 3G(세대) 중계기와 최근 휴대인터넷 중계기 개발을 경쟁사에 앞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이런 자발적 참여 덕분이었다. ‘동기 유발’이라는 말은 교육현장뿐 아니라 기업 일선에서도 널리 쓰이는 말이다. 그러나 사람의 심리에 작용해야 유발되는 그 동기를 어떻게 부여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경영책임자나 관리자들이 쉽게 풀 수 있는 숙제가 아니다. 일에 대한 대가를 넉넉히 받고, 내가 맡은 업무를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것, 승진, 칭찬, 특별휴가 등 이런 것이 동기 유발에 영향을 주는 일차적인 요인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런 단순하고 행동유발적인 요인만으로 진정한 동기가 유발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조금 거친 말을 사례로 들자면 위에 열거한 외부조건이 넉넉하다 해도 구성원들이 퇴근 후 술자리에서 “에이, 더러워서 못 해먹겠다.”는 불만을 무시로 쏟아놓는 회사라면 직원들을 조직 안에 붙들어 두는 데에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그들의 일에 대한 열정을 끌어내는 데는 실패했다고 봐야 한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어야 하고, 업무에 대한 욕구가 충만해야 하며, 무엇보다 맡은 일에 대해 성취감을 맛볼 수 있어야 진정한 내적 동기를 끌어낼 수 있다는 것쯤이야 모르는 사람이 없겠으나 ‘이렇게 하면 된다.’는 정답을 제시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결국 강물을 마시느냐 마느냐는 말(馬)이 알아서 할 일이지 마부가 억지로 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러나 구성원 각자의 동기 유발을 저해하는 요인은 짚어볼 수 있을 것이다. 관료주의나 번거로운 형식주의, 감독자와의 충돌과 갈등, 교육훈련의 부재로 인한 업무미숙, 직무수행을 위한 자원과 시간의 부족, 최종 기한에 대한 압박과 불안, 경직된 조직체계로부터 받는 위협 혹은 두려움, 직원들의 기여를 평가하지 않는 감독(관리)자…. 적어도 이런 요인들을 말끔히 걷어낸 그 지점이 바로 스스로 동기유발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서두칠 이스텔시스템즈(주) 대표이사 사장
  • [이경기의 스크린 1인치]할리우드는 커닝의 마법사?

    할리우드는 다양한 소재를 새롭게 녹여내는 용광로다.2004년에도 어김없이 각국에서 히트된 영화 사연을 재빨리 각색해 관객들의 구미를 맞추고 있다. 평범한 중년 남자가 어느날 우연히 댄스 교습소에 들렀다가 삶의 활력을 찾는다는 수오 마사유키 감독의 ‘쉘 위 댄스’(96년)는 늘상 반복되는 일상에서 일탈을 꿈꾸는 남성에게 춤이 인생의 의미를 되찾아 준다는 설정으로 관객들의 환대를 받아냈다. 현재 미국 흥행가를 달구고 있는 리처드 기어 주연의 할리우드 버전에서는 원작의 샐러리맨을 변호사로 직업을 바꾼 것 외에는 대부분의 상황이 원작과 흡사하다. 흥미로운 점은 일본산과 할리우드산에서는 묘한 동서양의 가치관 차이를 엿볼 수 있는 구성 형식을 보여준는 것. 일본 작품에서 춤은 상하 복명의 엄격함에 짓눌려 있는 중년 남자가 자유분망한 춤으로 이러한 억압감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기둥 줄거리. 미국판에서는 ‘지금보다 더 행복하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춤을 탈출구로 선택했다.’는 주인공의 말을 통해 욕망의 문제에 초점을 두었다. 뤽 베송이 제작을 맡은 ‘택시’는 피자 배달부가 택시 운전사로 전업했다가 천부적인 운전 솜씨를 활용해 마르세이유 지역의 소심한 경찰의 사건 수사 파트너로 활약한다는 내용. 힙합 가수 퀸 라티파가 주연을 맡은 미국판 ‘택시’는 스피드광인 수다스런 여자 택시 운전수가 뉴욕의 은행 강도단을 일망타진하려는 형사와 팀웍을 이룬다는 것으로 변경됐다. 맷 데이먼 주연의 ‘리플리’는 유럽에서 방탕스런 생활을 하고 있는 백만장자 아들 디키를 개과천선시켜달라는 부탁을 받은 리플리가 물질적 욕망에 사로 잡혀 친구인 디키를 교살한 뒤 그를 대신해 호화스런 생활을 하다 결국 행각이 탄로돼 법의 심판을 받게 된다.‘리플리’는 60년대 유럽 출신 미남 스타로 주가를 높였던 아랑 드롱 주연의 ‘태양은 가득히’의 미국판. 스위스 출신으로 영국에서 주로 활동했던 여류 작가 패트리시야 하이스미스는 ‘리플리’를 비롯해 ‘리플리 게임’ ‘리플리 돌아오다’ 등의 3부작을 통해 ‘탐욕으로 인해 손에 잡을 수 없는 행운을 잡으려다가 나락으로 빠지는 청춘상’을 묘사해 공감을 얻어냈다. 콜린 세로 감독의 ‘세 남자와 아기 바구니’(85)는 합숙을 하고 있는 3명의 총각이 어느날 문앞에 방치된 갓난 아이의 육아를 떠맡게 되면서 벌이는 해프닝을 다룬 드라마.2년 뒤 ‘스타 트렉’에서 스포크 선장으로 우리에게도 낯이 익은 레오나드 니모이가 메가폰을 잡고 3명의 총각들이 미혼모가 버리고 간 아이를 키우게 된다는 ‘3남자와 아기’로 리메이크 됐다. 파트리샤 브라우데 감독의 ‘네프 무아’(94)는 아버지가 되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 남자가 동거녀가 의도하지 않게 임신을 하게됐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남자는 처음에는 당황하지만 점차적으로 한 생명이 뱃속에서 성장해 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마음에 감추어져 있는 뜨거운 부성애를 찾게 된다. 이 소재는 휴 그랜드 주연의 ‘나인 먼스’(95)로 각색됐다. 흥미로운 점은 프랑스 히트작들이 미국 시장에서 번번이 재활용되고 있다는 것. 이 때문에 프랑스 영화인들은 ‘할리우드의 아이디어 뱅크는 바로 자신들’이라고 자부심을 드러내고 있다.
  • [논술이 술술]거꾸로 읽는 그리스 로마신화/유시주 지음

    [논술이 술술]거꾸로 읽는 그리스 로마신화/유시주 지음

    어느 민족이든 인간은 자신이 어디로부터 왔으며 어떻게 발전하게 되었는지를 신화나 설화로 나타내고 전달해 왔다. 사람들은 그러한 신화나 설화를 통해서 자신들을 묶고 있는 공동의 정신이나 힘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며, 또한 그것을 믿으면서 현재 자신이 서 있는 곳을 확인하게 된다. 비록 신화나 전설이 초자연적인 힘과 비현실적인 이야기와 함께 얽혀 전개되고 있지만, 우리에게 현실적인 힘을 주는 까닭은 이렇듯 신화가 우리들 인간의 꿈과 동경, 운명에 대한 두려움과 삶에 대한 의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화는 우리에게 세계를 바라보고 삶을 이해하는 힘을 준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1855년 토마스 불핀치가 그리스, 로마와 스칸디나비아, 동양 등에 전해 내려오는 고대 고전 문헌 속의 시와 이야기들을 ‘신화의 시대’라는 제목 아래 40여 편의 산문으로 엮으면서 전 세계에 널리 알려졌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는 제우스를 비롯해 올림푸스 산꼭대기에 사는 12명의 신뿐 아니라, 지상과 지하에 있는 다른 수많은 신과 요정들, 그리고 신과 인간 사이에 태어난 영웅들과 수많은 보통 인간들이 등장한다. 이 모든 이들이 서로의 삶 속에 참여하고 간섭하는 가운데 벌어지는 각종 기담과 모험담, 연애담 등이 ‘신화’의 줄거리를 이루고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신은 이 세계의 절대자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흡사한 모습과 본성을 가지고 인간과 함께 생겨난, 그래서 인간과 함께 이 세계의 일에 참여하는 자이다. 따라서 초월적 존재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보다는 오히려 인간에 대한 믿음을 강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리스로마 신화’를 읽다 보면 대부분은 그것이 지닌 재미와 또 이리저리 얽히고 설킨 신들의 계보만 쫓다가 그 의미를 충분히 새기지 못하고 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청소년들이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끔 길잡이 구실을 하도록 만든 책이 바로 ‘거꾸로 읽는 그리스 로마신화’라는 책이다. 그리스·로마의 신화(헬레니즘 문화)는 기독교(헤브라이즘 문화)와 더불어 서구 문화의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두 원류 가운데 하나이다. 더구나 ‘인간의 욕망과 고뇌’를 지닌 그 신화들은 수많은 예술가와 사상가들의 영감을 자극시켜 다양한 상징과 개념들로서 끊임없이 ‘재생’되어 왔다. 이 책은 문학이나 사상 등에서 그리스·로마 신화와 관련되어 파생된 상징이나 개념들을 통해 그리스 로마 신화의 의미를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실마리를 던져준다. 하지만 이 책이 지닌 진정한 미덕은 단지 신화의 해석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신화를 통해서 현대 사회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깊이 있는 성찰로 우리를 이끈다는 점에 있다. 유니드림 대학입시연구소(unidream.co.kr) ■ 생각해보기 ▲이 책에서 설명하고 있는 다음 개념들이 상징하는 것과 의미를 정리해 보자.(프로메테우스의 고난, 판도라의 상자, 아폴론형 문화와 디오니소스형 문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피그말리온 효과, 이카루스의 비상, 미다스의 손, 나르시시즘, 시시포스의 고통) ▲카뮈가 시시포스의 신화를 통해서 나타내려고 했던 ‘생의 부조리’란 무엇인지, 인간이 ‘삶의 주체성’을 회복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을 적어보자. ▲아폴론과 디오니소스는 각기 이성과 감성, 합리성과 비합리성, 질서와 무질서를 상징한다. 우리는 흔히 ‘질서’만을 강조하여 ‘무질서’나 ‘혼란’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곤 하는데,‘무질서’와 ‘혼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현대 문명의 문제와 관련지어 써보자. ▲프로메테우스의 신화를 통해서 참된 지식인의 자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적어보자. ■ 독서 지도시 참고사항 -대상 학년:중1∼고3 -관련 교과:고등 사회, 윤리와 사상, 사회문화 -함께 읽어 볼 책:그리스 로마 신화(토마스 불빈치), 시시포스의 신화(알베르 카뮈), 국화와 칼(루스 베네딕트)
  • ‘한국입양홍보회’ 설립한 해외입양인 최석춘씨

    ‘한국입양홍보회’ 설립한 해외입양인 최석춘씨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I am still hungry)….”월드컵축구대회가 ‘중반 열기’를 뿜던 2002년 6월15일 당시 거스 히딩크 감독이 축구 변방국인 한국에 본선 첫 2라운드 진출의 영광을 안긴 뒤 던진 이 말은, 그 뒤에도 많은 이들이 베껴먹은 ‘명언’으로 남았다. 히딩크는 ‘승리’와 ‘우승’에 배가 고팠지만 우리의 많은 이웃들은 사랑과 그리움에 배고품을 느끼고 있다. 지난 11일 만난 스티브 모리슨(48·한국명 최석춘·미국 캘리포니아주 노워크)도 그 중 한 사람이다. 다리를 저는 장애 소년으로 미국 양부모에 입양된 모리슨, 아니 최씨는 1999년 사단법인 한국입양홍보회(MPAK·Mission to Promote Adoption in Korea)를 설립,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 우주항공연구소(The Aerospace Corporation)에서 14년째 수석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차세대 위성항법시스템(GPS)을 적용한 인공위성을 2012년 발사하는 게 1차 목표다. ●묵호 움막집에서 보낸 유년 시절 그는 이역만리 미국의 한 낯선 가정에 맡겨졌지만 양부모에게 한국에서는 그토록 목말라 하던 ‘사랑’을 듬뿍 받았다. 그러나 그의 눈에는 “아직도 난 사랑에 배가 고프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사람 좋은 모습이지만 어딘가 허전해 보이는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워낙 오래된 일인데다 구절양장(九折羊腸)과도 같은 삶속에서 네살 때인지, 다섯살 때인지 기억도 아련하다. 가난이라는 표현도 사치스러운, 집도 절도 없던 시절이었다. 강원도 묵호역 근처 ‘굴다리’ 밑 움막이 보금자리였다. 그러나 찢어지도록 가난했던 움막생활도 그에겐 큰 아픔으로 남아 있지 않다. 최씨는 “사랑만 있었어도….”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 날의 사건만 없었다면, 늘 술에 찌든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주먹을 휘두르지만 않았다면, 지금껏 피붙이들이 어울려 행복하게 살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아직도 그의 뇌리를 맴돌고 있다. 1960년 어느 날 어머니가 가출했다. 곧바로 무슨 일 때문인지 모르지만 아버지는 경찰서에 붙들려갔다. 낯선 아주머니가 찾아와 두살 아래였던 동생을 데려갔다. 자신은 한 신사의 손에 이끌려 고아원으로 갔다가 62년 당시 서울 은평구 녹번동에 있던 홀트아동복지회로 옮겨졌다. “아버지, 어머니를 용서한 지 오래입니다. 꼭 뵙고 싶어요. 단 한번이라도…. 그러나 솔직히 동생 대천이가 더 그리워요. 너무 어렸던 녀석이라 어떻게 자라났는지 걱정스럽기도 하고….” ●사랑을 준 ‘푸른 눈’의 아버지 14살 때인 1970년 그는 인생의 전환기를 맞는다. 미국인 양부모에 입양된 것이다. 친자식 1남 2녀를 둔 양부모는 지금 80세,79세 됐다. 최씨는 위로 누나 둘, 아래로 남동생 둘을 뒀다. 바로 아랫 동생은 한국인과 미국인의 핏줄을 지닌 혼혈 입양아. 그가 털어놓은 새아버지에게 얽힌 에피소드는 입양에 대한 인식이 우리와 얼마나 다른지, 가족 사랑이 어떤 것인가를 잘 가르쳐준다. 그는 세계최초의 우주인 닐 암스트롱을 배출한 인디애나주 퍼듀(Purdue) 공대를 나온 뒤 항공우주국(NASA) 등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기도 했다. 이어 남가주대학원(USC) 우주항공학과에 진학할 수 있는 장학금을 약속한 항공업체 휴스(Hughes)에 다니며 공부를 계속했다. “새 삶을 일궈준 양아버지가 심장수술을 받게 됐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수술할 날 졸업 시험이 있었지 뭡니까.‘학생은 공부만 해야 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라 찾아뵙지 않고 시험을 치렀습니다.” 이후 졸업장을 들고 아버지를 찾아 갔다. 아버지는 졸업장에 쓰인 글을 한 글자, 한 글자 읽어내려가며 눈물을 글썽였다. 양부모가 은행에서 융자를 받아 학자금을 댔다는 사실도 전혀 눈치채지 못하다 최근 우연찮게 들었다. ●입양아 70%이상이 미국인 품으로 “지금은 아주 많이 달라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당시 한국인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어디 제 정신이고서야 나같은 사람을 입양할 마음을 품었겠습니까.” 그는 한창 사춘기 무렵이어서 예민하고 위험할 수도 있는 14세, 그것도 장애인인 자신을 거둬들인 지금의 부모를 생각하면 정치 경제 등 전 분야에서 세계 초강대국으로 우뚝 선 미국의 저력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건강한 몸으로 태어났지만 움막집에서 지낼 때 다리를 다쳤고 치료를 받지 못해 장애인이 됐다. 얼른 알아채기는 어렵지만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럽다. 한국에 대해 묻자 “한국인들은 부지런하고, 생산력이 엄청나며, 높은 교육열 등 장점이 많다.”면서 말끝을 흐렸다. 정보통신(IT) 강국이고 올림픽과 월드컵을 치른 몇 안되는 나라라지만 입양에 대한 좋지 않은 인식 때문이다. 그가 1999년 11월 한국입양홍보회를 만든 계기는 우리나라의 입양실태와 맞닿아 있다. 국내에서 수많은 사연 속에 버려지는 어린이는 해마다 1만 2000여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다른 나라의 새로운 부모에게 안겨지는 숫자는 2400여명이다. 그 중에서도 70% 이상이 미국인 품으로 돌아간다. 반면 생각이 비슷하고 환경이 같은 우리 국민에게 새 둥지를 트는 아이는 1800여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가 염려하는 것은 우리가 생각해온 것과는 아주 다르다. 해외 입양 자체를 반대하고, 국내 입양이 꼭 바람직하다는 게 아니어서 그렇다. “88서울올림픽 무렵 ‘고아 수출국’이라는 혐오스러운 말이 언론을 통해 지구촌으로 퍼져나갔습니다. 그 뒤로 입양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무섭게 번졌죠. 왜 도와주지도 않으면서,‘고아 수출국’이라는 말로 해외 입양까지 막으려는지 모르겠더라고요.” ●‘영원한 정신적 기둥’ 홀트 어머니, 누나의 일을 본받아 우리나라 안에서 버려지는 아이들을 피부색깔도 다른 나라의 사람이 받아들이는데,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아들은 물론 한인(韓人)과 한국을 위해서라도 이를 고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1995년부터 미국 한인사회를 중심으로 개인적으로 입양홍보 활동을 하다가 보다 체계적으로 뒷받침해야겠다는 뜻에서 홍보회를 만들었다. 그는 “정작 나 자신이 입양아이면서도 미국 홀트국제아동복지회 이사로 일하며 현실을 깨우치게 됐다.”고 말했다.83년부터 16년 동안 이사로 활동한 경험으로 다른 아이들의 아픔을 덜어주는 데 온힘을 다하겠다는 다짐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지난 6일 서울에서 열린 입양 한마당 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입국했다. 입양아들에게 친부모를 공개해야하는 지 여부에 대해서는 “언제 누군가에 의해서라도 길러준 사람이 친부모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기 때문에 공개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잘못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떨치고 일찍 알려줘야만 충격을 견뎌내고 건강하게 자라난다.”는 말도 보탰다. 현재 국내 500여개 입양가정이 가입한 입양홍보회의 취지도 공개입양 절차와 가정끼리의 모임으로 건전한 인식을 심는 데 있다. 국경을 초월한 사랑의 힘으로 버림받은 아픔을 딛고 일어선 그는 지난 14일 “벌써부터 아들 일곱살배기 조지프(한국명 오해성·2000년 입양)과 같은 일곱살인 큰 딸, 다섯살 된 막내딸이 보고 싶어지네요.”라며 가족들이 기다리는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최석춘씨는 1956년 강원도 묵호 출생 1962년 홀트아동복지회에 입소 1970년 미국으로 입양 1979년 퍼듀대 우주항공과 졸업 1981년 남가주대학원 석사 1981년 미국 우주항공연 입사 1983∼1999년 국제홀트회 이사 1999년 한국 입양홍보회 창설 2000년 한국인 오해성(3)입양
  • [의회]이만의 관악구 부의장

    [의회]이만의 관악구 부의장

    ‘100% 순수 지역 일꾼’ 이만의(60·신림13동) 관악구의회 부의장을 주민들과 동료의원들은 이렇게 부른다. 평소 지역사회를 위해 남다른 열정을 쏟고 있는 탓이다. 그는 관악구에서만 30년 넘게 살면서 새마을지도자협의회장, 자유총연맹, 한강감시원 등 지역사회 활동을 활발히 펼쳐왔다. 구의원으로 나서게 된 것도 평소 이러한 그의 성품을 잘 알고 있는 이웃 주민들에게 등을 떠밀려 시작된 것이다.3선의 중진으로서 10여년째 식지 않는 지역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것은 이 의원을 아끼는 주민들의 마음에 보답하는 차원이다. 풀뿌리 민주주의를 정착시켜 보겠다는 의지도 강하다. 요즘은 오는 30일부터 열리는 행정사무감사를 준비하느라 일요일도 없이 자료수집에 열중이다. 평소 의회활동에도 성심을 다하지만 연말 정기회 때는 예산심의 등 중요한 회기인 만큼 준비에 남다른 열정을 쏟는다. 그는 “올해는 신청사 건립문제, 관악산 입장료 폐지 등 굵직굵직한 현안이 쌓여 있다.”며 “시민생활과 밀접한 문제인 만큼 꼼꼼히 되짚어 보겠다.”고 다짐했다. 특히 그는 “최근 집행부가 지나치게 주민여론에 휩쓸려 일을 조급하게 처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면서 “이번 행정사무감사를 통해 신청사 건립을 추진하는 과정에서의 예산낭비문제를 집중 추궁하겠다.”는 각오를 내비쳤다. 그는 또 “설계과정에서의 차질로 1억여원이 낭비된 예산에 대해 구상권 청구를 신중히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구상권 청구가 담당공무원에게는 치명타가 될 수 있으나 주민들의 세금을 아끼는 마음과 두려움을 갖도록 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또 서원어린이집을 옮긴 후 짓기로 한 지하주차장 건설사업이 난항을 겪게 된 과정 등을 되짚어 볼 계획이다. 그는 이와 관련,“민원에 떠밀려 행정이 차질을 빚게 된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정확한 원인과 문제점을 찾아내겠다.”고 벼르고 있다. 무엇보다 예산낭비가 적지 않을 것으로 보고 이 부분을 집중 추궁할 방침이다. 이밖에도 그는 “내년부터 예정된 ‘관악산 입장료 폐지방침’으로 인해 우려되는 자연환경보전의 문제점 등을 깊이있게 살펴보겠다.”며 의정활동에 열정을 쏟고 있다. 이동구기자 yidonggu@seoul.co.kr
  • [정치플러스] 386의원 비판 국회직원 징계 검토

    국회 사무처는 12일 인터넷을 통해 열린우리당의 ‘386세대’ 의원 등을 ‘공산화 주도세력’으로 비판해 파문을 일으킨 국회 사무처 직원의 징계 여부 검토에 들어갔다. 이 직원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입법조사관으로 재직해 오다 지난 7월 미국 연수를 떠난 유세환씨로 최근 정부·여당의 정체성을 노골적으로 비판했다. 유씨는 자신의 개인 홈페이지에서 “대한민국이 공산화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대한민국의 행정권과 입법권을 장악한 현 집권세력의 정체성 의문 때문”이라면서 “많은 사람들이 ‘386’ 집권 세력이 과거 80년대 공산주의 운동을 했고, 이들이 이념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대한민국의 공산화를 주도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 [뒷골목 맛세상]동대문시장 먹자골목

    [뒷골목 맛세상]동대문시장 먹자골목

    머잖아 겨울이다. 강원도의 백두대간 어름에서는 때 이른 첫눈이 내렸다는 소식도 들린다. 그래서 그런지 무심코 지나치는 지하철역이나 지하도, 공원의 어둑한 귀퉁이에 신문지며 얇은 담요 한 장을 덮고 누워있는 홈리스들의 새우등이 새삼스럽게 눈에 시리다. 어디서 대낮부터 소주 한 병이라도 얻어 마신 것일까. 발치께에는 빈 소주병이 나뒹굴고 있다. 나라 전체에 아무리 불황이 깊다지만, 요즈음 들어 부쩍 늘어난 길거리의 새우등들은 결코 예사롭게 흘려 넘길 수 있는 정경은 아니다. 그런 겨울의 초입에, 이를테면 30대의 한 젊은이가 역시 30대의 아내와 초등학교 저학년의 여자아이 그리고 갓 돌이 지난 사내아이를 거느린 채 어느 날 느닷없이 직장을 잃었다고 치자. 직장을 잃는다는 일은 그에게는 어쩔 수 없이 마른하늘에서 벼락이라도 떨어진 것 같은 가공할 충격임에 틀림없을 터이다. 미처 마음의 준비도 없이 맞이한 생존에 대한 두려움은 금방 공포로 변하고, 사랑스러운 처자식마저도 자칫 두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짐으로만 여겨진다. 그런 눈으로 주변을 돌아보면 자신처럼 불행한 사람은 다시 없으리라.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여전히 일상을 즐기면서, 쇼핑을 하거나 여행을 떠나거나 맛있는 집을 찾아서 외식을 하는 등 한껏 행복감에 젖어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 또한 그들처럼 즐기던 일상의 행복감이 벌써부터 까마득한 옛날의 일처럼 기억에 흐리다. 아아, 아침에 일어나 아직 덜 깬 잠을 투정하며 서둘러 세수를 하고 아침밥을 먹고 부랴부랴 지하철역으로 달려가던 일상이 저렇듯 눈부시고 화려할 줄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생각한다. 왜 세상은 이렇게 불공평한가. 어쩌면 나에게 닥친 불행은 결코 내 탓만은 아니다. 뭔가 이 사회의 정치가, 경제가 크게 잘못된 탓이다. 그런 그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상대적 빈곤감과 상대적 불행감이리라. 그이가 직장을 잃든 말든, 그리하여 처자식들이 굶주리게 되든 말든, 세상은 전혀 무관심하게 하루하루 잘도 흘러가는 것이다. 이쯤에 이르면 그는 세상을 향해 기어이 복수심을 드러내고, 끝내는 범죄적 충동에까지 사로잡힐지도 모른다. 그리고 벌써부터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처자식을 버려둔 채 길거리를 방황하는 또 한 명의 새로운 홈리스가 그림자처럼 자리 잡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듯 이제 막 직장을 잃은 젊은이에게 권하고 싶다. 아직은 세상에 대한 복수심이 싹트기 전에, 그렇게 범죄적 충동에 사로잡히기 전에, 그리고 마음속에 홈리스의 그림자가 자리잡기 전에, 처자식과 함께 한번쯤 동대문시장을 가보면 어떨까. 동대문 시장에서도 1950년대의 낡고 허름한 복고풍 건물이며 가게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먹자골목을 찾아가서 마지막 만찬이라도 하듯 처자식과 함께 뜨거운 닭한마리 칼국수를 먹으면서 자신이 서있는 현재의 위치를 다시 한번 확인해보면 어떨까. 지하철 1호선이나 4호선의 동대문역 9번 출구를 빠져나온다. 초등학교 저학년의 여자아이는 걸리고, 사내아이는 가슴에 안은 채 한 손으로는 아내의 손을 잡고서.9번 출구를 빠져나오면 번듯한 빌딩의 동대문종합시장이 나온다. 주로 비단이며 이불 같은 혼숫감을 파는 동대문종합시장 1층의 중앙통로를 빠져나오면 시장의 물건을 나르는 오토바이들이 무슨 사열식이라도 벌이는 것처럼 도열해 있다. 오토바이들을 지나면 곧바로 대학천길이라고 부르는 복고풍의 먹자골목이 시작된다. 대학천길이라고 해서 드넓고 화려한 길을 상상한다면 곧장 실망하게 된다. 네 식구가 한꺼번에 지나치기가 어려워 끝내 앞뒤로 서야 할 만큼 비좁은 골목일 뿐인데, 골목 양쪽으로 처마를 마주 대면서 낡고 허름한 식당들이 줄지어 서있다. 대학천길은 끝에서 광장시장 출입구와 서로 마주보고 있는데, 먹자골목은 대학천길의 중간에서 끝나고 천막상회며 등산장비점 등의 다른 업종으로 바뀐다.100여m쯤 되는 먹자골목에는 주로 닭한마리 칼국수를 위시하여 생선구이, 민물매운탕, 돼지곱창, 이렇게 네 가지 종류의 식당들이 자리 잡고 있다. 먹자골목의 중간쯤에 이르면 한 식당 앞에서 그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출 것이다.‘진할매 원조 닭한마리’라는 상호인데, 유리창에 커다랗게 광고판이 나붙어있다. 그는 무심코 광고판에 눈을 준다. 거기에는 진할매인 듯싶은 유복하게 생긴 할머니의 사진과 함께, 닭한마리 칼국수를 시작하던 무렵의 모진 고생으로부터 마침내 성공하기까지 이러저런 이야기가 입지전적으로 나와 있다. 그가 이야기에 끌려 솔깃한 마음으로 식당 안을 들여다보면, 벌써부터 손님들로 북적거려서 얼핏 빈 자리가 없을 정도이다. 식당 안에 가득한 손님들에 그는 까닭없이 주눅이 드는 기분이어서 그만 발길을 돌리고 만다. 먹자골목을 얼마 걷지 않은 동안에도 벌써 대여섯 군데의 닭한마리 식당을 지나친다. 그러는 사이에 거짓말처럼 닭한마리가 끝나고 이번에는 민물매운탕이며 돼지곱창이 시작되고 있다. 그는 몇번인가 두리번거리다가 ‘원조 소문난 닭한마리’(02-2279-2078)라는 맨 끝집으로 들어선다. 이 골목의 닭한마리집 치고 원조라는 관형어가 붙지 않은 식당이 없지만, 식당 안의 많지도 적지도 않은 손님들이 그의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기실 이 ‘원조 소문난 닭한마리’는 내가 그와 똑 같이 마음이 편하다는 이유만으로 십년 가까이 다니는 단골집이기도 하다.) 자신도 모르게 식당의 한 귀퉁이에 자리를 잡은 그는 닭한마리를 주문한다. 이미 꼬박 하루를 엄나무와 황기, 마늘을 넣고 푹 고와서 전혀 닭냄새가 나지 않는 닭한마리는 육수에 기름기도 찾아볼 수가 없다. 닭한마리에 곁들여 감자와 떡이 들어있는 커다란 양푼냄비가 적당히 끓기 시작하자 그는 우선 아내에게 먹을 것을 권한다. 아내는 새콤달콤한 야채 겨자소스에 닭고기며 떡, 감자 따위를 찍어먹으며 모처럼만에 환한 표정이다. 아내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닭고기보다는 떡이며 감자를 좋아하자 그는 추가로 떡사리를 한 접시 더 시킨다. 닭한마리와 떡사리 한 접시에도 좋아라 신명이 나있는 식구들을 바라보자, 그는 불현듯 눈시울이 뜨거워져 온다. 그는 할 수 없이 소주 한 병을 시킨다. 그리고 말없이 자작으로 한 잔 두 잔 목 안으로 깊이 털어 넣는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돌아 아내에게 잔을 내밀자 아내는 두 말 없이 잔을 받는다. 아내가 단숨에 술잔을 비운 다음에 그에게 다시 잔을 건네고, 그는 또 다시 눈시울이 뜨거워져 온다. 닭고기가 비어지자 이번에는 칼국수를 시켜서 닭한마리의 남은 국물에 끓인다. 아내는 아예 이마에 송글송글 땀방울까지 맺혀가며 아이들 먹이랴, 틈틈이 자신도 먹으랴, 정신이 없다. 칼국수를 먹고 나면 이번에는 공깃밥 한 그릇을 시켜 국물에 볶아먹는 것으로 닭한마리의 전과정을 끝낸다. 가만 있자, 모두 얼마가 들었더라. 닭한마리에 1만 3000원, 떡사리 한 접시 추가 1000원, 공깃밥 1000원, 칼국수사리 2000원, 소주 3000원, 모두 2만원이다. 결국 네 식구의 마지막 만찬에 2만원이 든 셈이다. 닭한마리 식당을 나서며 그는 직장을 잃은 후 처음으로 가슴이 훈훈해져 온다. 그리고 저 밑바닥에서부터 비롯하여 알 수 없는 힘이 솟구쳐 오르는 기분이다. 그는 아내와 아이들을 거느린 채, 공구점이며 공업사, 천막가게, 헌구두며 군복가게들이 줄지어 서있는 전혀 비현실적인 1950년대 복고풍의 대학천길을 걷는다. 그러다가 문득 국화빵이며 붕어빵 같은 각종 빵틀을 파는 가게 앞에서 발길을 멈춘다. 그리고 가격을 묻는다. 둘 다 20만원 정도이다. 그가 아내를 돌아보자 아내가 그에게 눈으로 묻는다.“왜 붕어빵 장사하게요?” 그 역시 눈으로 대답한다.“못할 것도 없지.”내친 김에 냉면 만드는 기계며 통닭 튀기는 기계에도 관심을 갖는다. 뜻밖에도 가격이 비싸지 않아 40,50만원 정도이다. 이번에는 건축자재 가게에서 벽돌 쌓거나 콘크리트 작업할 때 쓰는 쇠손을 만져본다. 가격은 4000원이다. 그는 어쩐지 그런 막일도 못할 것이 없을 것 같은 기분이다. ‘원조 소문난 닭한마리’에서 마주 보이는 골목길을 들어서면 곧바로 왼편에 ‘청천강’(02-2266-7091)이라는 민물매운탕집이 숨어 있다. 그가 만일 닭고기를 싫어한다면, 먹자골목에서 찾을 곳은 당연히 청천강이다. 역시 네 식구가 간다면 메뉴 중에서 메기매운탕을 권하고 싶다. 대중소로 나누어지는데, 각각 2만 5000원,2만원,1만 5000원이다. 이중에서 1만 5000원짜리에도 팔뚝만한 메기 두 마리가 들어있어 네 식구 먹기에는 충분하다. 청천강의 자랑은 2000원짜리 돌솥밥인데, 검은 콩을 넣어 금방 내놓는 돌솥밥은 매운탕에 말아먹어도 좋지만 정갈한 반찬과 함께 맨밥으로 먹어도 찰진 달콤함이 금방 입안에 가득 찬다. 네 식구라도 돌솥밥은 두 솥이면 된다. 청천강에는 메기매운탕 이외에도 추어탕(6000원), 통추어탕(7000원)이 있고, 빠가사리매운탕, 메기빠가사리매운탕이 역시 대중소로 나누어져 각각 2만 5000원,2만원,1만 5000원인데, 주인은 메기빠가사리매운탕을 추천한다. 주인의 말인즉, 메기는 살이 많은 대신 고소한 맛이 덜하고 빠가시리는 고소한 맛은 강한데 살이 없어서 둘을 섞으면 서로의 장단점이 잘 어울린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3만원짜리 잡탕이 있는데 다른 집과는 달리 모래무지며 누치 따위 물고기를 쓰지 않고 메기, 빠가사리에 미꾸라지만을 섞어 진한 맛을 낸 것으로, 네댓 명의 술꾼들이 진한 맛을 즐기며 술안주로 먹기에는 그만이다. 닭한마리에 비하면 1만원쯤 더 들어서 3만원 가까운 가격인데, 그로서는 네 식구의 마지막 만찬이라면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을 터이다. 더군다나 오늘의 만찬으로 인해 가슴 저 밑바닥에서부터 비롯하여 뭔가 정체를 알 수 없는 힘이 솟구쳐 오른다면 결코 비싼 값이 아니다. 어떤가, 먹자골목에 와서 그 정도의 힘을 얻었다면 그동안 몸과 마음에 쌓인 거품을 걷어내고 자신이 선 자리에서 한 단계 아래로 내려가 무슨 일이든 새롭게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 ‘지점 10군데’ 자긍심 대단 ‘진할매 원조 닭한마리’ 는 확실히 닭한마리 업종에서는 출세한 집이다. 이미 10군데에 지점을 내어 닭한마리를 프랜차이즈화시킨 자긍심이 대단하다. 그런 식당의 유리문에는 다음과 같은 광고문이 붙어있다. ‘나는 지금 70노인입니다.1978년 우리 식구가 죽느냐 사느냐 기로에 놓인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 무엇인가 먹는 장사를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여러 가지 연구를 하던 중 닭요리가 생각났습니다. 나는 원래 마음먹은 일을 끝내지 않고는 잠을 이루지 못하는 성질인지라 밤을 새워 고민하면서 닭을 재료로 한 여러 가지 요리를 만들어 놓고는 주위 사람들에게 시식을 시켰습니다. 그렇게 열흘 정도 지나자 한 가지 요리에 열 명 중 칠팔 명이 칭찬을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닭한마리입니다. 모든 음식의 맛은 첫째로 재료의 신선함에서 찾는 것을 원칙으로 알고, 그날그날 항상 물을 끓여놓고 다 낡은 자전거를 타고 중앙시장에 가서 한 마리 두 마리 닭장에서 산 채로 잡아오곤 했습니다. 재고는 절대로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닭한마리 요리를 하면서 땀이 눈, 코, 입으로 흘러내려도 힘들지 않았던 것은 오직 식구들의 목숨이 걸려있는 일이었기 때문이었지요. 당시 닭 한 마리에 1200원에 사오면 1300원에 팔 정도로 마진 없이 오로지 많은 사람에게 시식시킨다는 생각으로 전념한 결과,3년이 지나자 손님이 줄을 섰고, 소문에 소문이 꼬리를 물고 각종 신문잡지며 TV에 실리게 되었습니다….’
  • NASA연구프로젝트 참여’ 남극 가는 박나희씨

    NASA연구프로젝트 참여’ 남극 가는 박나희씨

    별을 사랑하고 우주를 동경했던 소녀는 이제 20대 예비 물리학자로 성장해 별과 우주가 손에 잡힐 듯한 남극으로 간다. 듣기에도 생소한 우주선(宇宙線·Cosmic ray)의 수수께끼를 푸는 것이 남극행의 목적이다. 오는 12일 미국·이탈리아 연구진 20여명과 함께 뉴질랜드를 거쳐 남극의 맥머도 기지로 가게 될 박나희(26·이화여대 대학원 물리학과 박사과정)씨의 마음은 벌써 극점에서 마주할 우주로 향해 있다. ●‘과학소녀’ 남극 간다 연구진은 그곳에서 50일 동안 머물며 미 항공우주국(NASA)의 연구프로젝트를 수행한다. 우주에서 지구로 들어오는 에너지인 우주선의 원소 성분을 파악하는 것이 프로젝트의 목표다. 암호명은 ‘크림(CREAM·Cosmic Ray Energetics And Mass·우주선의 에너지와 성분 분석). 부산에 살던 어린 시절 박씨는 밤하늘의 별만 봐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벅차올랐다고 했다. 밤이 되면 창문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별들과 얘기를 나눴고,‘천체관측회’라는 이름이 내걸린 행사는 장소와 시간을 따지지 않고 쫓아다녔다. 초등학교 3학년 때는 천체망원경을 사달라며 6개월 동안 부모와 실랑이를 벌였다. 한 과학잡지에서 본 예쁜 ‘별나라’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부모 만류에도 꿈 버리지 않아 어린시절 아버지 박삼석(54)씨와 어머니 이경자(53)씨는 “여자 애가 그런 거 사서 뭐하려고 그러냐.”고 면박을 줬다고 한다. 하지만 잡지를 내밀며 망원경의 필요성을 끈질기게 설득하는 딸에게 결국 두 손을 들었다.8일 이화여대 교정에서 만난 박씨는 “돌이켜보면 장난감 수준의 망원경이라 별을 관찰하는 건 꿈도 못 꾸고 겨우 달이 약간 크게 보일 정도라 실망이 컸다.”면서 “하지만 그 망원경이 과학도로서 출발점이 됐다.”고 싱긋 웃는다. 고등학교 때는 진로문제로 또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딸에게 자나깨나 의대가 ‘최고’라고 고집하는 부모, 하지만 딸은 ‘죽어도’ 의대는 싫다고 버텼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결국 박씨의 집념을 꺾지 못했다. ●만만치 않은 과학 현실 하지만 현실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과학도의 꿈을 나누던 친구들은 힘겨운 현실에 꺾여 방향을 틀고, 하나둘 직장을 구해 나갔다.2001년 기초작업이 시작된 이번 프로젝트에 같은 학과 친구 5명이 참여했으나 박씨 혼자 남았다. 박씨도 반도체를 이용한 실리콘 검출기로 우주선 원자에 반응하는 센서를 만드는 과정에서 실패를 거듭해 낙담에 빠지는 나날을 보냈다.“하늘 보고 별만 보면 밥이 떨어지냐.”고 비아냥도 적잖이 들었다. 박씨는 “친구가 하나 둘씩 떠나 홀로 남았을 땐 ‘나도 졸업하면 뭘 하나.’라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땀이 결실로… 하지만 1년 남짓 흘렸던 땀은 이듬해 10월 그 결실을 맺기에 이른다. 실험으로 만들어낸 센서를 스위스에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입자 가속기 연구실에서 5일 동안 임상실험한 결과, 센서가 마침내 원소 입자를 감지했다는 전기신호를 보낸 것이다. 박씨는 “그 순간 ‘내가 하는 일이 저렇게 신기한 결과를 내는구나.’라며 힘들었던 지난 세월을 싹 잊고 연구에 몰입할 수 있었다.”고 뒤돌아봤다. 결국 박씨는 국내 연구진을 대표해 남극 실험에 참여하게 됐다. 박씨는 이번 프로젝트에서 실리콘 검출기를 운영, 관리하는 역할을 맡는다. 박씨는 “우리는 우주가 신비롭다는 막연한 생각만 갖고 있지만 과학자들의 노력에 의해 우주의 비밀은 많은 부분 벗겨지고 있다.”면서 “앞으로 우주선 분야를 계속 연구해 신비로 덮인 우주 구성의 기본 원리와 실체를 밝혀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아, 이게 이렇게 되는 거구나.’라며 ‘생각하는 즐거움’을 즐기는 과학도라면 열악한 우리의 과학 환경도 꿋꿋하게 견뎌낼 수 있을 것”이라며 별과 우주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격려와 용기를 보냈다. 글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사진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 [내가 본 우리팀]모두 아이디어뱅크… 신속한 의사결정 강점

    [내가 본 우리팀]모두 아이디어뱅크… 신속한 의사결정 강점

    서비스 시작 5년 만에 가입자 1100만명 돌파라는 화제를 뿌리며 국내 최고 커뮤니티 서비스가 된 싸이월드를 보면 대견한 마음이 크다. 그러나 서비스 기획자에게 싸이월드의 성공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일 뿐이다. 전체 직원이 600명에 달할 정도로 규모는 커졌지만 우리 팀은 아직도 신속한 의사결정을 자랑하는 벤처 기업의 속성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의사 결정이 빠르려면 그만큼 팀원들은 고생한다. 앉으나 서나 생활의 매순간에도 일 생각에 몰두해야 하기 때문이다. 버스를 타고 집에 가면서도 아이디어 생각뿐이다. 싸이가 버전을 업데이트해 나가 듯 우리는 새로운 것을 만드는 사람, 만든 것을 발전시키는 사람, 이론과 근본을 연구하는 사람을 모토로 삼고 있다. 최근에는 1년여의 연구끝에 싸이 열풍을 끌고 갈 새로운 서비스인 1인형 미디어 ‘페이퍼’를 선보였다. 야심작인 만큼 기대도 크지만 기쁨보다 두려움이 앞선다. 싸이가 사회 이슈로 성장한 만큼 책임감도 크다. 특별한 아이디어나 반짝이는 기획이라고 해서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자부심과 책임감을 느끼며 서비스를 고민할 때 고객 감동이 생긴다. 유행이 아닌 트렌드를 읽어내는 눈, 고객의 욕구를 찾아내는 통찰력,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모든 것을 걸 수 있는 열정 등이 우리의 강점이다. 오늘도 고객 감동을 위해 우리의 고민은 계속된다. 박지영 SK커뮤니케이션즈 페이퍼팀장
  • [내가 본 우리팀] 모델하우스 붙박이… 눈빛만 봐도 ‘척척’

    우리 부서의 가장 큰 특징은 최일선 영업부서의 치열함과 긴장감마저도 인간적인 따뜻함으로 끌어 안고 있다는 점이다. 건설회사의 특성상 분위기가 강압적이고 수직적일 것이란 입사 전의 생각은 출근 첫 날부터 깨져버렸다. 나도 믿지 못할 정도로 짧은 시간에 부서에 밀착될 수 있었던 것은 자유로운 부서 분위기가 만들어주는 포근함 덕분이 아니었나 싶다. 우리 부서의 자유로움은 실수와 걱정 많은 새내기의 가슴에 두려움보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그러한 자유로움이 가능했던 것은 부서원들의 무던함 때문이었다. 사람과 사람들이 부딪치며 살아가는 정글 같은 사회에서 ‘무던하다’는 말만한 칭찬이 또 어디 있을까? 그렇지만 업무에 있어서는 빈틈이 전혀 없다. 모두 아파트 영업의 최일선인 모델하우스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인 만큼 서로 눈빛만 봐도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금세 알아차리는 ‘눈칫밥’ 내공이 장난이 아니다. 이런 내공은 소비자들의 욕구를 파악하는 데에서도 큰 힘을 발휘한다. 부서원의 팀워크와 육십갑자(?)의 내공이 쌍용 스윗닷홈의 분양 성공 신화를 이어주는 밑거름이리라. 일단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분양 계약이 끝날 때까지 몇개월 동안 주말도 없는 생활이 시작된다. 하지만 누구도 군소리 한마디 하지 않는다. 고객을 만족시켰을 때 누리는 희열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김민철 쌍용건설 분양관리팀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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