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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주석 유력한 ‘칼잡이’ 시황제 직계 사단 뜬다

    부주석 유력한 ‘칼잡이’ 시황제 직계 사단 뜬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해 19차 당대회를 통해 마오쩌둥(毛澤東) 이후 가장 강력한 ‘1인 지배체제’를 구축했다. 2018년은 시 주석이 천명한 ‘슈퍼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디딤돌을 놓는 해이다. 서방의 시각에서 보면 독재 회귀로 비칠 수 있으나, 중국 내에서는 강력한 1인 지배체제를 시대의 요구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 이면에는 시 주석에 대한 신뢰와 두려움이 복합적으로 작동하고 있다.우선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공산당 19기 중앙위원회 제2차 전체회의(2중전회)가 이달 말에 열린다는 사실이다. 당대회 이듬해에 열리는 2중전회는 통상 2월 말에 열렸지만, 올해는 한 달가량 앞당겨졌다. 공산당 지도부가 2중전회에서 결의한 사안은 오는 3월 초에 열리는 전인민대표대회(전인대·의회)에서 승인된다. 2중전회와 전인대의 간격을 벌려 놓은 것은 전인대까지 그만큼 준비할 게 많다는 뜻이다. 공산당 정치국은 1월 2중전회 개최 사실을 공표하면서 ‘헌법 개정’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구체적 내용은 나오지 않았지만, 지난해 당대회 때 당장(당헌)에 삽입된 ‘시진핑 신시대 중국특색 사회주의 사상’을 헌법에도 명기하는 작업과 헌법에 2연임으로 제한된 국가주석의 임기를 3연임으로 늘리거나 아예 폐지하는 작업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 같은 내용이 헌법에 들어가면 시 주석의 1인 지배체제와 집권 연장은 당 차원을 넘어 헌법 체계에서도 합법성을 인정받게 된다. 3월 전인대에서는 2중전회가 추천한 국무원 총리와 4명의 부총리, 5명의 국무위원, 중앙부처 부장(장관), 전인대 상무위원장, 전국정치협상회의(정협) 주석 등이 확정된다. 5년마다 한 번씩 돌아오는 중국 최대 인사철이 바야흐로 도래한 셈이다. 국가직 주요 포스트는 ‘시진핑 사단’이 점령할 전망이다. 연임이 사실상 확정된 리커창(李克强) 총리를 제외하면 부총리와 국무위원 및 각부 장관의 물망에 오른 이들 중 대부분이 시진핑 직계다. 특히 시 주석의 최측근이자 경제 브레인인 류허(劉鶴·65) 중앙재경영도소조 판공실 주임이 금융 담당 부총리를 맡아 금융개혁을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가장 주목되는 인물은 반부패 드라이브로 시진핑 1기 체제를 책임졌던 왕치산(王岐山·69) 전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다. 그는 당대회에서 7상8하(67세는 유임하고 68세는 은퇴한다) 내규에 따라 상무위원직에서 퇴직했다. 하지만 그가 이번 전인대를 통해 국가부주석에 오를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20년 만에 처음으로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이 아닌 인물이 부주석으로 선임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리커창 총리보다 더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2인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3월은 한·중 관계에서도 중요한 시기다. 지난해 2월 말 한국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부지로 경북 성주의 롯데 골프장을 결정하자 중국은 곧바로 롯데마트 영업정지, 한국 단체여행 금지 등 경제 보복에 나섰다. 지난해 12월 문재인 대통령의 방중으로 전환점이 마련된 상황에서 중국 정부가 사드 보복 1년을 맞아 어떤 자세로 나오느냐에 따라 한·중 관계의 완전 정상화 여부가 판가름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시 주석은 지난 1일 신년사를 통해 올해의 핵심 국정사업으로 탈빈곤을 천명했다. 이에 따라 경제정책 초점이 도시와 농촌의 격차 해소, 빈부 격차 해소에 집중될 전망이다. 특히 시 주석은 지난해 말 열린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서 양적 고도성장 추구를 끝내고 질적 성장에 매진할 뜻을 밝혔다. 이런 구상은 7월 1일 중국 공산당 창당 97주년을 맞아 정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시 주석은 지난해 당대회에서 2020년부터 2030년까지 전면적 샤오캉사회(小康·의식주가 해결된 중복지 수준의 사회)를 실현해 이를 바탕으로 사회주의 현대화의 기반을 닦고, 2035부터 2050까지는 부강하고 조화로운 현대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중국이 고도성장을 포기한 것은 한국 경제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중 수출을 주도했던 생산재보다는 소비재가 앞으로 중국 시장에서 더 주목받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환경 규제 강화에 따라 기존에 진출한 제조업 기반의 기업들이 어려움에 봉착할 우려가 있지만, 공해 배출과 무관한 서비스 기업 및 창업 기업에는 오히려 큰 기회의 장이 열릴 수 있다. 10월 중순 열리는 3중전회도 눈여겨봐야 한다. 5년 임기 첫해 가을에 열리는 3중전회는 개혁 의제를 확정하는 자리다. 1978년 12월 개혁·개방을 결정한 11기 3중전회가 대표적이다. 더욱이 올해는 개혁·개방 40주년으로 시 주석은 신년사에서 “중국의 문을 더 활짝 열겠다”고 밝혔다. 중국의 개방 확대는 미국 우선주의와 고립주의 노선을 걷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배치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통상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엄포를 놓았을 뿐 행동에 나서지는 않았다. 그러나 올해 중국의 지식재산권 침해 조사가 마무리되고 무역적자와 재정적자 폭이 커지면 실제 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신년사를 통해 ‘국제질서와 자유무역의 수호자’가 되겠다고 공언한 시 주석과 맞붙을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새 국가안보전략(NSS)을 발표하면서 중국을 미국의 안보와 경제를 위협하는 ‘경쟁자’이자 미국식 가치를 전복하려는 ‘수정주의 국가’로 정의했다. 시 주석이 당대회에서 천명한 ‘슈퍼 사회주의’ 건설에 대한 맞대응이었다. 시 주석은 이미 “그 어떤 국가도 중국이 핵심이익 포기라는 쓴 열매를 삼킬 것이라는 헛꿈을 꾸지 말라”고 경고한 바 있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반려독 반려캣] 교회 앞 버려진 견공은 밤새 주인 기다렸다

    [반려독 반려캣] 교회 앞 버려진 견공은 밤새 주인 기다렸다

    지난달 중순 어느 날 밤, 10살쯤 된 골든래트리버 한 마리가 미국 캘리포니아주(州) 샌버너디노에 있는 한 교회 앞에 버려져 있었다. 개는 자신이 버려졌는지조차 의식하지 못해 밤새 주인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으며 지칠 대로 지쳐 걸을 힘조차 없어 제자리를 지키고 앉아만 있었다. 동물전문 매체 더 도도에 따르면, 이튿날 아침 교회에 나온 한 관계자가 개를 발견했다. 개는 나중에 ‘치노’로 불리게 됐다. 치노의 모습은 누가 봐도 도움이 절실해 보였다. 오랫동안 보살핌을 받지 못해 털은 지저분하게 엉켜 있고 벼룩까지 있었다. 눈곱도 가득 끼어 있고 눈동자는 탁해 시력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물론 영양실조로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관계자는 인근 지역 테하차피에 있는 말리스 머츠 도크 레스큐(Marley‘s Mutts Dog Rescue)에 연락했고, 곧 잭 스코라는 이름의 설립자가 찾아왔다. 스코가 처음 본 치노는 두려움 때문에 짖어댔다. 하지만 그의 노력으로 치노는 곧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스코는 “치노는 전혀 보살핌을 받지 못했는데 좋지 못한 환경에 고립돼 있었던 게 분명하다”면서 “눈은 오래전부터 세균에 감염돼 괴사 직전이라서 실명까지도 생각해야 했다”고 회상했다. 치노의 몸을 살핀 수의사 역시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치노의 피부와 눈 외에도 문제가 있었는데 오랫동안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지 못했는지 면역체계가 손상돼 있었기 때문이다. 또 치노는 치아가 추정 나이를 고려해도 손상이 심했다. 금속성 울타리 같이 단단한 물건을 계속해서 물어뜯어온 것처럼 보였다. 경찰 등 조사에서도 치노의 원래 주인은 누구인지 전혀 밝혀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스코는 “치노는 오랫동안 누구에게도 관심을 받지 못했다”면서 떠돌이 신세가 된 이후 사람들과도 거의 교류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치노는 구조 이후 곧바로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그 결과 2주 만에 치노의 상태는 몰라보게 좋아졌다. 의료진의 노력 덕분인지 치노의 눈은 심각한 상태였음에도 어느 정도 시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또 적절한 치료 속에 피부 상태 역시 갈수록 좋아졌다. 스코는 “치노는 2주 만에 완전히 다른 개가 됐다. 처음에는 걷는 것조차 무리일 수도 있겠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제 치노는 밝고 즐겁게 여기저기 관심을 보이며 돌아다닌다”면서 “지금은 그야말로 전형적인 골든 래트리버의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이뿐만 아니라 치노는 두려움에 떨며 짖던 모습 역시 사라졌다. 붙임성이 좋고 침착하다는 것. 이에 따라 스코는 앞으로 치노가 완전히 회복하면 치유 견으로서 양로원이나 병원 등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진정시키게 하고 싶다고 말한다. 현재 치노는 다른 개와 고양이들과 함께 지내고 있다. 하지만 한 달 뒤에는 중성화 수술을 받을 만큼 건강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미 치노의 입양을 원하는 사람들이 생겨 치노는 머지않아 새로운 가족과 함께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사진=말리스 머츠 도크 레스큐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평창올림픽 D-37] 크리스티 “한국 훈련으로 ‘항의 트라우마’ 극복”

    [평창올림픽 D-37] 크리스티 “한국 훈련으로 ‘항의 트라우마’ 극복”

    엘리스 크리스티(27·영국)는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쇼트트랙 선수다. 2014 소치동계올림픽 여자 500m 결승 레이스 도중 무리하게 추월을 시도하다 박승희(26)를 넘어트려 공분을 산 인물이어서다. 크리스티는 실격 처리됐고 우여곡절 끝에 박승희는 동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일부 네티즌들은 크리스티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찾아가 격하게 항의했다. 크리스티는 다음달 열리는 평창동계올림픽 출전을 앞두고 힘들었던 당시를 회고하며 이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밝혔다.크리스티는 1일(현지시간) 영국의 유력 일간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2014년 한국인들의 반응이 너무 무서워 잠도 이룰 수 없었다”며 “너무 극단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당시엔 사람들이 정말로 나를 죽이고 싶어한다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보다 못한 내 코치는 정면 대응을 하자고 했다. 코치는 나에게 한국에서 훈련을 하자고 했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결국 크리스티는 소치동계올림픽을 마치고 몇 달 후 한국 땅을 밟았다. 처음에는 예상대로 공포와 두려움에 가득 찬 상태였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그는 한국에 와서는 처음 2주 동안 말없이 훈련에만 몰두했지만 시간을 거듭하면서 점차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크리스티는 “한국에서는 모두가 내게 정말 친절해서 (시련 극복에) 도움이 됐다”며 “한국 선수들이 모두 나와 함께 훈련하고싶어 했다. 지금까지 인생 최고의 경험 중 하나”라고 말했다. 그는 “그렇지만 힘든 부분도 있었다. 언젠가 기록이 잘 안 나오자 한국 코치가 초시계를 선수들을 향해 던지기도 했다”며 “열두 살 무렵인 선수들이 무거운 가방을 메고 스쿼트를 아침마다 수천개씩 했다. 울먹이는 아이도 있었다. 한국에 왜 이렇게 강한 선수들이 많은지 그제야 깨달았다”고 강조했다. 힘든 시기를 보낸 크리스티는 지난해 3월 세계선수권대회 1000m와 1500m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최민정(20)과 심석희(21)의 강력한 경쟁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크리스티는 “홈 경기라 한국 선수들이 거침없이 나올 테고 아마 내가 그들의 주요 타깃 중 하나가 될 것이다. 500m에선 중국 선수를 주시해야 하고, 1000m와 1500m에선 한국 선수들이 가장 큰 위협”이라며 “소치 이후 나는 정말 비참해졌고 다시는 그렇게 되고 싶지 않다. 그냥 즐길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서민 일자리 없는데 성직자만 배불러” 경제난, 이란 反정부 시위 불 당겼다

    “서민 일자리 없는데 성직자만 배불러” 경제난, 이란 反정부 시위 불 당겼다

    이란의 대규모 반(反)정부·반체제 시위가 겉잡을 수 없는 기세로 확산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28일 시작한 시위로 2일 현재 최소 21명이 죽었다. 시위가 격화한 데에는 서방과의 핵합의(JCPOA) 이후에도 나아지지 않는 척박한 생활에 대한 좌절감, 그 와중에 부를 독점하는 이슬람 성직자에 대한 불만, 만연한 부정부패, 정부 무능력에 대한 실망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AFP통신은 지난 1일 테헤란에서 경찰관 1명이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숨졌으며, 이로써 이번 시위로 지금까지 최소 13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된다고 전했다. 지난해 12월 30일 로레스탄주 도루드 시위 참가자 2명이 군·경의 총격으로 목숨을 잃었고, 이튿날에는 10명이 서부 토이세르칸 등지에서 군 기지와 경찰서를 점거하려다가 사살당하는 등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실업률과 물가 상승에 대한 두려움,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 삭감이 시위의 도화선이 됐다고 전했다. 이란 정부는 지난해 12월 10일 2018년 예산안을 제출했다. 예산안에 따르면 약 3000만명이 현재 받고 있는 정부 보조금이 대폭 삭감된다. FT는 “수치상으로는 이란의 경제가 좋아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란 시민들은 상황이 악화됐다고 느낀다”면서 “핵합의에 큰 기대를 품었지만, 일상은 여전히 어렵다. 실망만 더 커졌다”고 분석했다.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생각한다는 한 이란인 교사는 “돈이 없어서 20년 넘게 탄 차를 최근 팔았다. 기름값이 오르면 다른 물가도 모조리 오를까 봐 걱정”이라고 FT에 말했다. CNN 역시 “이란인들은 2015년 이란이 미국, 중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독일과 핵합의를 체결한 이후 삶의 질이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면서 분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CNN은 또 국제통화기금(IMF) 통계를 인용해 “이란에 일자리가 없다. 15~29세의 청년 실업률은 24%를 훨씬 넘는다. 도시에 거주하는 청년과 여성 실업률은 더 높다”면서 “석유 산업과 관광업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산업군의 형편은 더 나빠졌다”고 전했다. 미 컨설팅기업 유라시아그룹 클리프 쿱찬 회장은 “이란 정부의 예산안에서 종교 기관과 프로그램에 대한 지출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란인들이 여기에 분노한 것”이라면서 “핵합의로 얻은 과실로 일반 시민의 생활 수준을 높이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FT는 “(새 예산안으로) 한 유명한 강경파 이슬람 사제는 10년 전보다 8배나 많은 돈을 받게 됐다”고 지적했다. 미 싱크탱크 민주주의수호재단(FDD) 마크 두보비츠 회장과 레이 타케이 미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은 월스트리트저널(WSJ) 공동기고에서 “이란의 이슬람 신권정치가 실정과 부패로 국민의 기대에 미달해 정통성을 상실했다”고 주장했다. 두보비츠 회장 등은 “이란 성직자와 혁명수비대 등 국정을 장악한 보수파들은 한정된 국가 자산을 경제를 개선하는 데 쓰는 대신 팔레스타인과 레바논, 시리아 등 대외 혁명 활동에 투입해 국민 생활을 핍박에 빠트렸다는 비난을 받는다”면서 “기대를 모았던 하산 로하니 정부마저 정치·경제 개혁에 대한 민중의 열망에 미치지 못하면서 이슬람 정권은 국민을 설득할 정치적 명분도, 요인도 상실했다. 최대의 난국”이라고 평가했다. 이스라엘 일간 하레츠는 “경제난뿐만 아니라 정부의 무능함, 부정부패에 분노한 것”이라면서 “지난해 11월 대지진 이후 이란 정부는 무능력함을 여실히 보여 줬다. 이란인들은 이란 정부가 이란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에 대해 불안감을 갖게 됐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1월 12일 발생한 규모 7.3 지진으로 최소 530명이 숨지고 8000명이 다쳤다. CNBC는 “이번 시위는 주도세력을 특정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란 정부에 위협적”이라면서 “누구와 무엇을 협상해야 할지 방법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로하니 대통령은 1일 의회 수뇌부를 긴급 소집해 대책을 논의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현재 이란의 경제 상황은 어느 나라보다 낫다”면서 “비판과 반대는 옳은 일이지만, 바른 방법으로 표현해야 한다. 이란 국민의 의지와 법에 반하는 구호를 외치고 이슬람혁명의 가치를 훼손하고 공공 기물을 손괴하는 일부 세력을 없애야 한다”고 밝혔다. 전날 로하니 대통령은 폭력 시위의 배후로 미국과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를 지목했다. WSJ는 “이란 정부가 시위대를 강제 진압하면 인권침해를 이유로 이란에 신규 제재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익명의 미 관리들을 인용해 전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그냥 사랑하는 사이’ 원진아♥이준호, 애틋+설렘 선사하는 ‘단짠 로맨스’

    ‘그냥 사랑하는 사이’ 원진아♥이준호, 애틋+설렘 선사하는 ‘단짠 로맨스’

    ‘그냥 사랑하는 사이’ 이준호와 원진아가 치유되지 않은 상처의 흔적을 껴안은 ‘단짠 로맨스’로 애틋함과 설렘을 동시에 선사했다.지난 1일 방송된 JTBC 월화드라마 ‘그냥 사랑하는 사이’에서는 가까워진 강두(이준호 분)와 문수(원진아 분)의 일상을 담아내며 설렘을 자극했다. 그러나 강두와 문수의 일상에는 사고가 남긴 아픔도 여전히 존재했다. 이날 방송에서 강두와 문수는 감춰두었던 상처까지 털어놓으며 마지막 벽까지 허물었다. 문수가 먼저 추모비에 동생 이름이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자 강두 역시 자신도 유가족임을 고백했다. 유가족 명단을 살피며 강두가 홀로 견뎠을 아픔과 깊이를 짐작하던 문수는 강두의 여인숙으로 찾아갔다. 텔레파시가 통하기라도 한 듯 강두는 문수를 만나기 위해 산호장으로 향한 후였다. 그렇게 두 사람은 외로울 때 보고 싶은 사이, 먼저 손을 내밀어주고 싶은 사이가 됐다. 완진(박희본 분)의 집에서 진영(김민규 분)과 실랑이를 벌이다 쓰러진 문수가 정신을 잃자 놀란 강두는 문수를 감싸 안고 다급하게 응급차를 요청했다. 완진은 “전에 머리를 다쳐서 기억이 날아간 적이 있다”며 정신이 든 문수에게 기억이 온전한지 확인했다. 사고 당시 강두와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었던 것. 하지만 여인숙 옥상에서 고기파티를 하던 문수는 이스탄불의 기적이라 불리는 축구 경기를 기억하고 있었다. 이를 들은 강두는 깜짝 놀랐다. 사고 현장에 함께 갇혔을 때 강두가 해준 이야기였던 것. 과거를 회상하던 강두는 “기적 같은 소리 하네”라고 비웃는 다시 시작된 환청에 고통스러워했다. 계단에서 홀로 두려움과 괴로움에 사로잡혀있던 강두를 발견한 문수는 심상치 않은 상태에 걱정스러워했다. 강두는 절절한 눈빛으로 “넌 괜찮아?”라고 물으며 문수를 끌어안아 애틋한 엔딩을 장식했다. 강두와 문수의 달달한 핑크빛 무드는 시청자들의 설렘 지수를 높였다. 함께 있을 때 두 사람은 사고의 피해자가 아니라 서로를 향한 마음을 깨달아가는 평범한 청춘이었다. 그냥 문득 보고 싶어져 집 앞으로 찾아가고 함께 있고 싶은 마음에 밥을 먹었냐는 의미 없는 질문을 하기도 했다. 강두가 다쳤다는 소식에 한걸음에 여인숙으로 달려간 문수가 “놀랐잖아. 내일까지 다 나아서 와”라고 화를 내도 강두는 자신을 걱정해주는 문수가 내심 기분이 좋았다. 재영(김혜준 분)이 강두의 친동생임을 안 문수 역시 슬며시 안도의 미소를 지으며 설렘을 자아냈다. 강두와 문수에게 소소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기에 관심과 애정의 척도를 알 수 있는 사소한 행동조차 설렘으로 다가갔다. 무엇보다 두 사람은 사고의 상처를 담담히 어루만졌다. 서로에게 가장 솔직해지는 강두와 문수는 이제는 산산 조각난 축구선수라는 꿈과 동생 연수를 내심 미워했던 미안한 속내를 밝힐 수 있었다. 속에 감춰두기만 했던 죄책감, 아쉬움, 미안함과 후회를 편하게 나누며 “아깝다. 아까워”라고 털어내는 강두와 문수의 대화가 평범하지만 안쓰러웠던 이유다. 하지만 사고의 그림자는 여전히 드리워있다. 강두는 지독한 환청으로 괴로워했다. 문수의 기억 속에 강두와의 추억이 있긴 했지만 그것이 강두와 연결되어 있음을 알지 못했다. 강두와 끈끈한 유대관계를 보여주는 할멈(나문희 분)의 비밀도 밝혀졌다. 검사 결과 뇌종양이었다. 재영은 수술을 권했지만 할멈은 이를 거부하며 강두에게 절대 알리지 말라고 당부해 불안감이 가중됐다. 한편, JTBC ‘그냥 사랑하는 사이’는 2일 오후 11시에 방송된다. 사진제공=JTBC ‘그냥 사랑하는 사이’ 방송 캡처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아홉수,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

    아홉수,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

    1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역 5번 출구 앞에서 무술년 새해 맞이 고사에 참석한 한 시민이 한 해의 안녕을 기원하는 소망을 적어 띠에 묶고 있다. 고사는 한 해의 액운을 쫓고 풍요와 행운을 기원하는 것으로, 이날 행사는 백말띠인 29살 청년들의 모임인 ‘구공백말띠’가 아홉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곧 서른이 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자는 취지로 개최했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 [불어라 평창 신바람] 평창 오는 모두가 주연급… 관심·참여로 ‘반전’ 꿈꾼다

    [불어라 평창 신바람] 평창 오는 모두가 주연급… 관심·참여로 ‘반전’ 꿈꾼다

    삼수 끝에 지구촌 겨울잔치를 유치한 강원도의 작은 산골마을 평창. 이제 대망의 동계올림픽 개막이 30여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걱정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성공적인 대회 개최를 담보할 나라 안팎의 상황이 여전히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동계올림픽이 평창과 강원도에서 펼쳐지는 한 편의 연극이라고 가정할 때 무대, 배우, 관객이라는 연극의 3대 요소가 충분히 완성되었다고 말하기 어렵다. 10년 이상 공들인 대한민국 역대 두 번째 올림픽이 자칫 멍투성이 속에 끝날 수도 있다. 가장 성공적인 올림픽을 만드는 데 있어 맞닥뜨릴, 그리고 반드시 치워야 할 걸림돌은 무엇일까.지난해 12월 7일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발표한 ‘도핑 러시아’에 대한 제재는 충격 그 자체였다. 물론, 그 어느때보다 강한 조치가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대회조직위원회는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주연급의 출연 배우’들이 반 토막 날 초대형 악재에 조직위는 한 달이 지나도록 전전긍긍하고 있다. 러시아는 동계올림픽 강국이다. 미국 뉴욕타임스(NYT) 집계에 따르면 러시아는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치러질 세부 102개 종목 가운데 32개 종목에 메달권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다. 러시아가 IOC의 제재에 일단 겉으로는 수긍하며 대회 보이콧을 선언하지 않고 개인 자격의 대회 출전을 공식 허용했지만 과연 얼마나 많은 선수들이 평창을 찾을지는 미지수다. 더욱이 일부 스타급 선수들은 자국의 국기 없이 출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단호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2006년 토리노대회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3관왕에 올라 동계올림픽 스타 반열에 오른 뒤 국내 빙상계의 파벌 싸움에 밀려 러시아로 귀화한 빅토르 안(안현수)은 참가 의사를 거듭 밝히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예정일 뿐이다.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의 절대 강자 예브게니야 메드베데바는 IOC의 국가적 차원 출전금지 조치가 나오자 즉각 “나는 러시아가 자랑스럽고 올림픽에 러시아를 대표해 출전하는 것은 큰 영광”이라면서 “러시아 국기와 국가가 없는 올림픽에는 절대 나갈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하기도 했다. 아이스하키는 동계올림픽 일정을 마무리하는 ‘꽃’이다. 그러나 강국 러시아 아이스하키도 참가가 불투명하다.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의 불참 선언으로 인해 러시아대륙간아이스하키리그(KHL)에 기대를 걸었던 평창 입장에선 최악의 시나리오다. 아이스하키는 동계올림픽 마지막 날 결승을 치르는, TV 시청률이 가장 높은 종목이다. 특히 IOC가 가장 신경을 쓰는 북미 대륙의 시청률을 견인했던 터라 걱정은 크기만 하다. 북핵을 놓고 벌이는 미국과 북한의 힘겨루기는 북한이 평창에 참가한다고 해도 악재일 수밖에 없다. 큰 틀에서 보면 미국·북한의 줄다리기 외에도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둘러싼 중국, 이 묘한 상황 속에서 줄타기를 하며 위안부 문제를 놓고 최고위층의 평창 개회식 참석과 거래하려는 일본까지 끼어든 복잡한 상황이다. 평창 입장에서는 말 그대로 ‘고래 싸움에 새우등이 터지는’ 격이다. 다행히 북한이 평창올림픽에 참가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안전에 대한 두려움을 크게 불식시킬 것으로 예상되지만 또 한 차례의 북핵 실험이 강행된다면 ‘참가 불가’ 발언은 언제든 나올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회 기간 한·미 합동 군사훈련 연기를 검토하는 등 북한 달래기에 나서고 있지만 2008년 8월 8일 중국 베이징올림픽 개회식 때처럼 미국을 비롯한 10여개국 정상들이 줄줄이 앉아 있는 광경은 이미 물 건너간 듯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직접 가지는 않겠노라며 가족을 포함한 고위급 대표단을 파견하기로 일찌감치 선을 그었고, 방중 당시 문 대통령이 직접 개회식에 초청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대회 개막 30여일을 남긴 현재까지 묵묵부답이다. 참석 여부는 사드 해결 방향에 따라 자신들의 입맛대로 결정할 것이라는 입장이 명백해 보인다. ‘초대형 도핑’이 발각된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도 혼자 나서기는 뻘쭘한 상황이다. 가장 가까운 나라이지만 일본은 중국보다 더 사정이 나쁘다. 최근 위안부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TF)가 발표한 결과문에는 협상 과정에서의 박근혜 정부 책임이 주로 기술돼 있지만 일본은 일단 두 나라 간 합의된 문제를 다시 끄집어내 도마에 올려놓았다고 못마땅한 표정이다. 아베 신조 총리가 불참할 것이란 보도도 끊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위안부를 포함한 한·일 문제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려는 일본 정치권의 민낯이 얄밉다. 출연진이 반 토막 나고 무대까지 흔들거리는데, 관객들의 관람 태도는 더 못마땅하다. 이른바 ‘올림픽 특수’를 노린 평창, 강릉 등 경기장 주변 숙박업소들의 바가지요금이 원흉이다. 시설이 모텔보다 못한 일부 업소가 하룻밤에 50만~60만원을 부르고, 단체가 아니면 예약조차 받지 않는 ‘배짱 상혼’이 기승을 부리면서 지난해 중순 현재 강원도청이 집계한 이 지역 숙박업소의 대회 기간 공실률은 70%에 이른 것으로 조사됐다. 겁없이 부린 상혼 덕분(?)에 자신들이 던진 돌이 부메랑이 돼 돌아온 것이다. 더욱이 서울과 강릉을 잇는 경강선 고속철도(KTX)가 개통되면서 2시간 내 경기장 도착이 현실화되자 아예 출퇴근 출전 혹은 관람이 가능해졌고, 비싼 숙박료와 제반 경비 때문에 관람을 포기한 뒤 TV를 통한 ‘안방 1열’ 시청을 계획하는 이도 늘어나면서 올림픽 상혼은 ‘소탐대실’의 본보기가 됐다. 그러나 이럴 경우 대회 흥행은 물론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본래의 취지는 퇴색될 게 뻔하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2018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그림자 필경사 (이철주)

    [2018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그림자 필경사 (이철주)

    1. 눈먼 자의 윤리 때론 그림자가 더 많은 말을 건넨다. 긴장 가득 훈련된 표정을 지어도, 무시당하지 않으려 허리를 꼿꼿이 세워도, 불안은 그림자에 투영돼 존재를 누설한다. 가끔 속내를 들켜도, 환멸에 사로잡혀 생이 부대껴도 그림자는 결코 존재를 떠나지 않는다. 뒤틀리면 뒤틀린 대로, 어리석으면 어리석은 대로 한 생을 바쳐 따라다닌다. 삶과 함께 태어나 울고 웃고 몸부림치다 사라진다. 그러곤 어디에선가 누군가를 닮은 모습을 하곤 쓸쓸히 흘러다닌다. 생을 반복하고 따라하며 생이 이곳을 떠나도 홀로 남아 존재를 증거한다. 그림자의 이 헌신엔 쉽게 이름 붙일 수 없는 어떤 맹목이 있다.한편으로 그림자는 왕성한 식욕의 소유자다. 표정도, 색깔도, 음성도, 촉각도, 냄새도 모두 집어삼킨 채 존재의 맹점을 현상한다. 감각이 보증하는 확실성을 제거하고 정체불명의 검은 얼룩을 펼쳐 놓는다. 그림자는 시각 속의 동공이며 감각을 배반하는 충동이다. 그러니 그림자란 본디 외경의 대상인 것이다. 감각과 관념에 잘려 나간 세계가 역으로 이쪽을 바라볼 때, 맹목의 관계는 뒤집힌다. 그림자에 감염되어 마음을 빼앗긴 사람들은 기이한 갈증을 느끼며 한 생을 바쳐 따라다니는데 그들을 시인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들도 그림자와 함께 태어나 울고 웃고 몸부림치다 사라진다. 수억의 생들을 베끼고 반복하며 처연히 이해해 간다. 그림자의 맹목과 시인의 맹목. 어찌할 수 없음으로밖에는 풀이될 수 없는 이 눈멂은, 그러나 역설적으로 가장 진실한 이해의 방법이 된다. 불가해한 생을 끊임없이 반복하고 따라하며 존재의 자세를 닮아 버리는 것. 그 충분한 대가를 치르기 전까진 함부로 대상을 떠나지 못하는 무능이 그들이 가진 윤리이며 능력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한국 시가 과연 이 충분한 맹목의 시간을 통과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2000년대 이후 이어진 일련의 실험적 시들이 관습적 문법의 경계를 뒤흔들고 시의 외연을 확장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다만 그 의지와 선언이 너무 앞선 나머지 관념과 이론이 시를 대신 살아 버린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유행하는 철학적 담론을 잘 소화한 시가 좋은 시가 아니듯, 시와 비평이 근거로 삼은 담론의 윤리성이 시의 윤리와 덕목을 설명해 주는 것은 아니다. 말과 삶에 대한 치열한 응시와 질문. 좋은 시의 윤리와 덕목은 언제나 여기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김소연의 시는 바로 이 점에서 시의 본연에 충실하고 있어 반갑고 소중하다. 무엇보다 우리는 위태로운 추락의 한 시절을 통과하는 중이다. 좁고 피폐한 삶을 지켜 내기 위해 일말의 어둠도 쫓아내기에 급급한 지금, 육박해 오는 생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는 당당한 목소리가 절실하다. 이 눈 맑은 시인은 삶의 도처에 엎어져 있는 상흔을 읽어 내고, 고통의 결과 깊이를 삶의 구체적 언어로 더듬으며 섬세히 응시한다. 그림자가 한 생을 바쳐 삶과 동행하듯, 그의 시 역시 수억의 생을 바쳐 그림자에 한없이 가까워진다. 세상의 모든 그림자들을 성실히 몸에 새겨 넣으며 깊고 단단해진다. 그림자란 본디 맹점이며, 어떤 확신도 불가능하게 하는 절대적 무지의 영역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림자를 보았다고, 보인다고, 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림자로부터 ‘시선’의 능력을 빼앗았기 때문이며, 닮았다는 이유로 전부 이해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속여 온 탓이다. 마음의 눈꺼풀은 그렇게 굳게 닫힌 채 존재가 퍼붓는 질문으로부터 안전하게 물러난다. 김소연의 시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한다. 그림자에게 외경을 되돌려 주고, 세련되고 아름다운 이론과 개념들이 생의 그림자가 될 수 없음을 몸소 증거한다. 김소연은 그림자의 시인이다. 그림자의 언어로, 그림자의 시선에 응답하며, 그림자가 남겨놓은 파문들을 뼛속 깊이 묻는다. 2. 그림자양식장 김소연의 시에서 그림자는 자아 내면의 복수적 형상으로 나타난다. 이를테면 그림자들의 양식장이라 부를 만한 공간에서, 시인은 말들을 먹이로 던져 주며 내면의 그림자들이 불러일으키는 파문을 응시하고 있다. 그림자의 차가운 비늘이 말에 닿아 번지고 마침내 말을 삼켜 버리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끊임없이 불화하는 내면에로 깊이 침잠한다. 차가운 환멸과 단호한 자기 부정은 김소연 시의 근본을 이루는데, 여기에는 뼈아픈 목도만이 있을 뿐 화해의 축이 부재한다. 타협 불가능한 절대적 자세로 삶의 피폐를 건넌다. 무참한 추락이 아무렇지도 않게 전시되는 이곳의 삶에 당당히 맞서 고통의 극한을 살아 낸다. 뜨거움과 차가움을 모두 통과한 그의 목소리는 가장 뜨거울 때조차 차가움을 예감하고, 가장 차가울 때조차 뜨거움을 끌어안는다. 이 현격한 열의 낙차가 일상의 무감각한 관성을 깨뜨리는 뇌관으로 작동한다. 사월은 차갑다/사월의 돌은 더 차갑다/사월의 돌을 손에 쥔 사람은 어째서 뜨거운가/그는 어째서 가까운가//마루 아래 요정이 산다고 믿은 적이 있다/잃어버린 세계는 거기서 잘살고 있다/이 사실만으로도 뜨거워질 수 있다//하나의 문장으로도 세계는 금이 간다/이곳은 차가우므로 더 유리하겠지 - 「열대어는 차갑다」 부분 (『아침』) 돌은 사월의 뜨거움을 기억하기에 더 차갑다. 가장 찬란하고 아름다워야 할 날들이기에, 그렇지 못한 현실을 더 비극적으로 비춘다. 화자는 마루 아래라는 가시성 바깥의 공간에 망각된 세상의 온기를 풀어놓고 있다. 현실과 ‘너머’의 세계가 빚어내는 처연한 온도차를 뜨거움으로 명명하는데, 그러므로 “이 사실만으로도 뜨거워질 수 있다”는 선언은 설익은 화해의 제스처로 읽혀선 안 된다. 세계에 금이 가는 이유는 이곳과 너머 사이의 아득한 거리 때문이지 희망과 열정 같은 추상적 개념 때문이 아니다. 불화를 불화로서 보존하되, 이들이 빚어내는 떨림과 파열을 섬세히 기록하는 것. 김소연 시의 이와 같은 분명한 자세는 화자가 실족의 경험을 구체적으로 노출하는 장면에서 더 아프게 현상된다. 서로가 서로의 치부를 헛짚고 세계의 성감대를 헛짚은. 내리 빗나가던 선택들. 말하자면 기다림으로 독이 남는 자세. 시효를 넘긴 고독. 일종의 모독. 기다려온 우리는 치사량의 관성이 있을 뿐. 부패 직전의 끝물이다. - 「끝물 과일 사러」 부분 (『극』) 말의 파편들이 ‘끝’이라는 날카로운 선 앞에까지 밀려나 있다. 각 행의 끝엔 더 이상 남은 공간이 없다. 마침표조차 제대로 찍히려면 스스로가 끌어온 말들을 다시 과거로 밀어내야 한다. 미루고 미뤘던 삶의 초라한 진실이 단정하고 건조하게 한마디를 건넨다. “우리도 끝물이다.” 단단하게 요약된 이 사랑의 문장은 아프다. “치사량의 관성”으로 버텨온 관계의 맨얼굴, “끝물 과일”이 화자를 바라본다. 언어가 감정을 헛짚고, ‘사랑해’가 ‘미안해’를 대신하며 살을 찌워 갈 때, ‘끝’은 이렇게 언어의 은밀한 구석에 날카로운 뼈를 현상한다. 이럴 때 언어는 잔혹해진다. 한없이 위태로워 길들이지 않을 수 없는 짐승이 된다. 과녁에서 벗어난 말들의 사체가 한동안은 무심히도 쌓였을 것이다. 시인은 이 사랑의 폐허를 떠나는 중이다. 그러나 화자는 이를 “끝물은/아주/달아.”라는 감각적 긍정으로 전환해 낸다. 허위로, ‘헛짚음’으로 유지된 일상을 ‘끝물’에 비유하는 순간, “치사량의 관성”은 역으로 서로의 치부와 세계의 성감대를 더욱 선명하게 발설한다. 부재하는 여기를 정면으로 직시함으로써 몰락한 꿈의 순간들을 발굴해 낸다. 폐허엔 여전히 지독한 허기와 갈망이 어리겠지만 이를 부정하지 않고 생의 언어로 감각해 냄으로써 끝물은 버려야 할 것이 아니라, 도래해야 할 것으로 변모된다. 어떤 환상도 희망도 없이 뜨거움과 차가움을 반복하며 그의 문장은 단단하고 견고해진다. 그가 “차례차례 사랑이었던 것들과 한꺼번에/달디단 혼숙을 하는 것”(「달디단 꿈1」, 『극』)이 꿈이라며 부드럽게 말할 때에도 “이 조용한 숨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게/치욕스럽다”(「학살의 일부12」, 『극』)며 “중무장된 평화”(「학살의 일부1」, 『극』)가 학살이라 선언할 때처럼 단호하게 들리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그의 시는 끊임없이 스스로의 불화와 혼숙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 한 사람은 나를 바로 보지 않는다/소파와 구별되지 않게 소파 속에 있거나/반쯤 열린 문틈 안에서 베개를 돋워 돌아눕는다//한 사람은 나를 보다가 나를 태운다/그 온도는 태양과 다름없고/내 운명은 종이와 마찬가지라/돋보기 같은/그의 눈빛에 나는 새까맣게 타들어간다/대체로 나는 그 앞에서 나는 재만 남는다//또 한사람/꿈을 보기 위해/눈꺼풀을 오려냈다는 이 사람/밤새 두 손을 소담히 오므려서/잠든 두 눈을 나는 덮어주곤 했다// (중략) //축하보다는 축복을 받고 싶은 시월 아침에/오만 잡병의 숙주가 된 육체/속옷 벗듯 벗어둔 채/마음끼리 살을 섞는다 - 「세 사람과 한집에 산다」 부분 (『눈물』) 화자는 텅 빈 폐허 같은 방 안에서 자신의 갈라진 그림자를 응시하고 있다. ‘나’에게는 두 명의 폭군이 있는데, 하나는 나를 지우고 다른 하나는 나를 재로 만든다. 비록 관계의 양상은 다르나 결과적으로 나를 비존재로 만들어 버린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그리고 여기에 ‘또 한 사람’이 더해진다. ‘꿈을 보기 위해 눈꺼풀을 오려 냈다는 사람’은 나에게 어떤 힘도 강제하지 않는다. 하지만 유일하게 나를 존재로 만들어 준다. 화자는 눈꺼풀을 오려 낸 눈이 꿈에 잡아먹히지 않도록 잠든 눈을 가만히 덮어 준다. 이 시가 평범한 시였다면, 이 세 번째 사람에게 시의 전권을 부여했을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이 세 개의 그림자로부터 한발 물러나, 이 셋과의 공평하고도 평등한 혼숙을 명명한다. 물론 이는 화해라는 낭만적 해결과는 거리가 멀다. 세 개의 그림자와 나 사이엔 살을 섞어도 결코 화해될 수 없는 아득한 거리가 여전히 냉정하게 놓여 있기 때문이다. 김소연의 문장은 자신을 거쳐간 수많은 그림자들을 마음에 풀어 놓고 그들이 일으키는 파문들에 눈을 충분히 단련시킨 자만이 얻어 낼 수 있는 ‘말’들을 건져 올리고 있다. 이 위태롭고 어려운 일을 그는 차분하고도 안정된 걸음걸이로 해낸다. 굉장한 내공과 섬세한 마음의 섭생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지나간 마음에 눈을 빼앗겨서도 안 되고, 잊어서도 안 되며, 섣부른 성찰로 도망쳐서도 안 된다. 꼬이고 뒤틀린 존재들이 서로를 밀어내고 뒤엉키며 팽팽한 긴장을 잃지 않는 것. 어떤 불화도 해소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해결될 수 없으리라는 삶의 진실 앞에 스스로를 담담히 열어 놓는 것. 김소연의 시는 이 선명한 규율들을 가슴에 품은 채 치열하면서도 아름다운 보폭으로 사유의 어긋남과 욕망의 비틀림 사이를 뚜벅뚜벅 걸어 나간다. 3. 유실영(影)보호소 김소연 시의 한 축이 자아 내부에 도사리는 복수적 그림자들의 불화를 매개하고 내부의 균열과 긴장을 풀어 놓는 데 있다면, 다른 한 축은 타자의 삶에 깃든 그림자에 대한 섬세한 응시로 나타난다. 그의 시에서 그림자는 철학적이고 개념적인 사유로 환원되지 않는데, 이는 무엇보다 그의 시가 삶의 구체적 실상과 인간의 유한한 조건들에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림자는 새로운 삶을 위해 전시해 놓은 그럴듯한 기념물이 아니라, 매일의 몰락을 견뎌 온 숨겨 온 자세들이 어쩔 수 없이 노출되는 장소이다. 단단하게 고정시켜 놓은 표정들과는 달리 불가피하게 삶의 피폐가 누수되는 공간이며, 모두가 공평히 그런 누수 속에 강제되는 사건이다. 시인은 그렇게 누군가 흘려 버린 그림자들을 데리고 와 사라져 가는 존재들을 거두고 보호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상처의 내력을 짚어 보며 삶이 사라지고 난 이후에도 남아 이곳을 떠도는 그림자들을 위무한다. 그녀는/바다에서 용이 머리를 치키고 올라올 때와 같이/담배 연기를 코로 뿜는다 여의주처럼/담배를 물고 앉아서/성긴 이빨을 자꾸 드러낸다// (중략) /그 노파는 세상 사람들이 그어놓은 줄들을/그런 모양으로 무시하듯 질펀히 앉아서 살아왔다//노오란 양지는 노파를 점점 비켜간다/노파는 그저 햇볕 안에 가만히 앉아 있었는데/햇볕이 얼굴의 반을 부시게 하더니/점점 비껴서/이제는 그늘 안에 노파를 가둔다 - 「학살의 일부 10-이빨이 성긴 노파」 부분 (『극』) 노파는 퇴락한 외모에도 불구하고 자신감 넘치는 태연함 속에 있다. 어느 누구도 함부로 개입할 수 없는 추락의 상흔이 이빨이 성긴 노파의 얼굴에 현상된다. 자신감 넘치는 낡은 몸 안에, 아무도 관심 없던 폐허 몇 개쯤 담담히 갖고 있을 노파의 눈빛이 화자를 응시한다. 함부로 이해해선 안 될 외경이 노파의 그림자에 어린다. 김소연이 “그 얼굴은 얼굴 외에 또 다른 것들이 겹쳐 있었다”(「1937년생」, 『극』)고 말할 때나, “우리 뒤에 깔린 반듯한 비단길을 아무도 걷지 말거라/벼랑 끝 노을이 우리 이마에 새겨주는 불립문자를/아무도 읽지 말거라”(「당신의 저쪽 손과 나의 이 손이」, 『빛』)고 진술할 때, 그가 끌어올린 그림자엔 어찌할 수 없는 외경이 실려 있다. 그가 외경을 표하는 그늘들엔 어쩐지 피 냄새가 짙다. 그늘은 찬란한 빛에 의해서만 어둠을 풀어내고, 어둠이 풀려날 때마다 추락은 반복된다. 수없이 깨지고 터져도 결연히 몸을 털고 일어난 생들은 하나같이 여전히 뜨거운 어둠을 품는다. 그 어둠의 무게가 어깨와 허리를 휘게 만들고, 그림자는 삶을 견디는 그들의 자세를 닮아 버린다. 이승에서 삼십 년/육신을 빠르게 쓰고 저승으로 이사한 아들 사진을//팔십 년째/육신을 아껴 쓰고 계시는 아버지가/느리게 문갑 문을 열어 만지고 계신다// (중략) //계시는 사진 한 장과 없어진 사냥개 사이엔/벽지처럼 살고 있다/앞모습을 보아선 아니 될/가족의 녹슨 얼굴들이 - 「계시는 아버지」 부분 (『눈물』) 여기에는 경솔히 이해해선 안 될 그늘에 머물기 위해 추락의 깊이를 가늠해 보는 시간이 현상돼 있다. 자식의 죽음을 그대로 안고 살아가기엔 상처는 너무 깊고 치명적이다. 그래도 삶은 이어져야 하기에 멍이 곰팡이처럼 들어선 낡은 방에 벽지를 바른다. 벽지를 뜯어내고 나면 그 자리엔 함부로 보아선 안 될 타인의 맨 얼굴이 저마다의 자세로 들어앉아 있다. 행복한 시절의 낙서처럼, 녹슬어 가는 얼굴들을 마냥 덮어 둔 채 가족의 삶은 이어진다. 벽지에 얼룩진 가족의 그림자는 이따금 마음을 괴롭히다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을 것이다. 그런 그림자의 앞모습을 요구하는 것은 폭력이며 불경이다. “엄마가 갑자기 보이지 않을 때에/아기들이나 지을 법한 표정”(「뒤척이지 말아줘」, 『눈물』)을 훔쳐보았다고 타인에 대해 이해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타인에 대한 이해는 그러한 표정을 숨기고 있을 얼굴을 그림자를 통해서 바라볼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한 번 슬쩍 보고 건네는 동정이 아니라, 그림자를 평생 가슴에 품은 채 그림자가 건네는 추락의 내력을 오래도록 살아볼 때만 허락되는 일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시들이 쓰여진다. 살 수 없는 장소에서도 살 수 있게 된 사람이 있었다/ (중략) //그 창문으로 나는 지금 바깥을 내다본다/이토록 난해한 지형을 가장 쉽게 이해한 사람이/가장 오래 서 있었을 자리에 서서// (중략) /할 줄 아는 말이 거의 없는 낯선 땅에서/내가 느낄 수 있는 건 잠깐의 반가움과/오랜 두려움뿐이다//두려움에 집중하다 보면/지배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지배하고 싶었던 사람이/실은 자신의 피폐를 통역하려 했다는 것을/파리처럼 기웃거리는 낙관을 내쫓으면서/나는 알게 된다 - 「여행자」 부분 (『아침』) 화자는 지금 수십, 수백 년 전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 “이토록 난해한 지형”을 바라보던 누군가의 그늘에 머물러 있다. 누구에게도 발설한 적 없는 그늘을 지키기 위해 어떤 삶은 희망이 불가능한 곳으로 자신을 조용히 밀어 넣기도 했을 것이다. 상처를 애써 부정하지 않아도 되는 저녁을 위해 황무지뿐인 창밖을 오래 바라봐야만 했으리라. 화자는 낙관을 하지 않아도 살 수 있다는, 희망을 품지 않아도 충분히 잘살 수 있다는 마음으로 피폐한 문장들을 건져 올리고 있다. 타인의 전생이 한꺼번에 이곳의 삶으로 현상돼 번지고 부대끼는 일. 화자가 매개하고 있는 이 순간은 스스로를 보호하고 있던 “파리처럼 기웃거리는 낙관”을 포기했을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나를 보호하던 관념들을 내려놓은 채 타인의 그늘을 만져 보는 일은 그 이전과 전혀 다른 삶을 살게 한다. 시인이 “기웃거리던 햇볕이 방 한쪽을 백색으로 오려 낼 때//길게 누워 다음 생애에 발끝을 댄다/고무줄만 밟아도 죽었다고 했던 어린 날처럼”(「먼지가 보이는 아침」, 『아침』)이라고 말할 때, 다음 생이란 희망적이고 추상적인 미래의 어느 때를 의미하지 않는다. 타자의 그림자를 밟는 일이란 이미 하나의 생이 끝나고 다른 생이 시작되는 경이로운 순간을 매개하기 때문이다. 김소연의 시는 하나의 그림자에 담긴 무게를 섬세히 읽어 내고 그 무게가 역으로 자아의 무게를 읽어 내는 경계의 순간들을 포착한다. 그의 시를 버림받은 그림자들의 보호소라고 할 때, 화자는 그림자들을 관리하는 주체도 아니고 동정을 베푸는 관광객도 아니다. 그의 시는 하나의 그림자가 다른 그림자를 관통하는 사건의 매개이며, 타인의 그림자로부터 또 하나의 생을 물려받는 상속의 증거이다. 그림자를 이해하며 그림자에 감염되어 스스로 또 하나의 그림자가 되어 간다. 길 잃은 그림자들은 그렇게 다음 생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4. 아포리아인형극 김소연의 시에서 그림자는 배우이고 관객이며, 공기이고 침묵이다. 그림자들에 잠재된 생의 근원적 형상을 발굴하고 혼을 불어넣는다. 잡힐 듯 잡히지 않던 생의 어둠들에 이름을 붙이고, 그들과 연극을 시작한다. 때로는 독백으로, 때로는 방백으로, 그림자인형들 사이에 무형의 그림자가 스미고 번진다. 연극은 비교적 순조롭게 시작된다. 하지만 말이 리듬을 타면 탈수록 그림자는 연출자의 의도를 넘어서 스스로 움직이고 발화하기 시작한다. 오려낸 눈동자의 텅 빈 어둠으로 삶이 역류하기 시작한다. 말에 자기를 꿰뚫리고 거꾸로 그림자에 응시당할 때, ‘이곳’은 어떤 강제성에 내몰린다. 자신에게 찾아온 이 낯선 질문들에 발가벗겨진 채 노출되는 것이다. 일상을 영위하기 위해 몸에 둘렀던 기호와 기표들의 강고함은 물거품이 되어 녹아 버린다. *현재까지 발간된 김소연의 시집은 『극에 달하다』(1996), 『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2006), 『눈물이라는 뼈』(2009), 『수학자의 아침』(2013)까지 총 네 권이다. 인용할 경우 면수는 생략하고 각각 『극』, 『빛』, 『눈물』, 『아침』으로 표기한다. 세상 모든 것들의 표정은 지워지고/자세만이 남아 있다//이따금 나는 무지막지한 덩치가 되고/이따금 나는 여러 갈래로 흩어지기도 한다//그의 충고를 따르자면/너무 빛 쪽으로 가 있었기 때문이다/여러 개의 불빛 가운데 있었기 때문이다// (중략) //그림자 없는 생애를 살아가기 위해/지독하게 환해져야 하는/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 - 「빛의 모퉁이에서」 부분 (『빛』) 그림자 없는 삶을 위해 끌어다 쓴 빛의 피곤이 필연적으로 ‘밤’을 끌어당길 수밖에 없다는 정확한 진술은 이러한 말과 그림자의 본질에 닿아 있다. 단적으로 말해 그림자 없는 삶이란 불가능하다. 가능하다면 그것은 유령의 삶일 것이다. 그림자는 사물의 물성을 증거하면서, 동시에 그 물성을 지워 버린다. 그림자 없는 물성이 불가능하다는 말은 그만큼 물성이라 믿어 왔던 존재의 본질이 허약하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림자를 통해서만 사물의 사물됨을 알 수 있고, 말을 통해서만 자신의 자신됨을 실감할 수 있다. 그림자 없는 물성이 유령의 것이라면, 말을 부여받지 못한 내면 역시 비존재로 내몰린다. 그러나 어떤 그림자로도 어떤 말로도 존재의 본질은 포착되지 못한다. 오히려 그림자와 말은 환영 혹은 오류가 되어 존재의 본질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뿐이다. 그림자가 지닌 이 이중성. 존재의 물성을 실감하게 하면서 오히려 그 실감을 내파해 버리는 모호성에 삶과 말이 지닌 진실이 깃들어 있다. 그러니 시인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림자를 수도 없이 베끼며, 그림자들 사이에서 진동하고 있는 어떤 목소리들에 귀 기울이는 일뿐이다. 밤마다/그녀였던 당신이었던/수많은 아이들이 찾아와요/거친 바람처럼 문을 흔들며 칭얼대요/하나같이 눈은 퉁퉁 부었고 손끝은 차고/고개는 숙였어요// (중략) //지낼 만한 노곤함과/돌아갈 만한 차비를 두 손에 움켜쥐고/칭얼대고 칭얼대다 사라지죠//들어줍니다 두 귀를 여행 가방처럼 활짝 열고서/쓰다듬지요 두 손을 세계지도처럼 판판히 펼쳐서 위로합니다 긴 밤을 꼬박 앉아서// (중략) //번번이 한 아이가 남아 있어요/벽에 걸어둔 시커먼 외투처럼 등 뒤에서/이 아이, 자기가 엄마라고 우깁니다// (중략) /누워서 그녀는 자기 젖을 빨아요/그러면 그녀는 잠이 오지요 - 「그녀의 생몰 연도를 기록하는 밤」 부분 (『눈물』) 김소연의 시에서 그림자는 햇볕이 내리쬐는 한낮보다도 밤의 시간에 더 스스로의 본질에 가까워진다. 낮이 강제하는 빛의 윤곽으로부터 풀려남으로써 그림자는 비로소 ‘경계’의 영역에 서기 때문이다. 그녀였던 당신이었던 수많은 그림자들은 태양의 폭정이 사라지고 난 뒤에야 이미 반쯤은 사라지고 투명해진 모습으로 찾아와 말을 건넨다. ‘그녀’가 그 수많은 그림자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곤 젖을 물리며 그림자들의 해갈될 수 없는 결여에 응답하는 것뿐이다. 이 고된 노동. 그림자들을 위무하기 위해 역시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 ‘그녀’가 스스로의 젖을 빨 수밖에 없다는 운명론적 진술은 삶의 피폐성을 요약한 아포리아에 가까워진다. 그의 시에 잔혹동화와 같은 모티프들이 자주 동원되는 까닭 역시 동화가 압축해 내고 있는 생의 근원적 형식 때문이다. 그가 변용한 동화들 속에서 캐릭터는 오직 ‘자세’만으로 요약되는데, 무수히 많은 말들로 흘려보내도 끝끝내 남아 되돌아오는 ‘그림자’의 맹목적 갈망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 준다. 암늑대가 숲속에서 바람을 간호하는 밤이었대. 바람은 상처가 아물자, 숲을 떠나 마을로 내려갔대. 암늑대가 텅 빈 두 손을 호호 불며, 우듬지에 앉은 지빠귀를 올려다보는 밤이었대. 섭생을 위해서 살생을 해야만 하는 운명에 처한 늑대 이야기에, 한 아이는 밑줄을 긋고 있었대. 바람은 그 지붕 위를 저벅저벅 밟고 다녔대. 암늑대는 노란 지빠귀를 올려다보고, 노란 지빠귀는 늑대를 내려다보았대. 둘은 눈을 떼지 않고 서로를 쳐다보았대. 그래서 겨울밤은 감옥이 되기 시작한 거래. - 「눈물이라는 뼈」 부분 (『눈물』) 아이의 성장통을 비유하고 있을 이 시는 어떤 노래의 전승을 기록하고 있다. 새하얀 벽 위로 그림자들이 생을 공연한다. 섭생을 위해 지빠귀를 노리는 암늑대의 자세는 낮고 단단하다. 단 한 번의 도약으로 먹잇감을 낚아채기 위해 거추장스러운 마음은 모두 잘라낸 채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늑대의 눈빛에 어리는 검은 허공의 시간. 그 시간이 서서히 늑대를 물들여 간다. 암늑대를 내려다보는 지빠귀 역시 흔들림 없이 다가올 운명 앞에 눈감지 않는다. 공포에 몸을 맡겨 둔 채 자신도 그 시간의 일부가 되어 간다. 그리고 이들의 비극을 슬퍼하며 눈물 흘리는 바람과 아이가 있다. 이들이 빛과 어둠 사이에서 얽히고설키며 삶을 요약해내는 동안, 그 단단한 함축을 받아 먹고 돌들이 자란다. 하나의 비극이 있었음을,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생의 굴레에 의연하게 걸어 들어가 견뎌낸 그늘이 있음을 증거하고 제의한다. 김소연의 시는 그림자로 펼쳐 낸 한 편의 아포리아 인형극이다. 이 연극에는 무수히 많은 그림자들이 등장하지만, 주인공은 부재한다. 주인공이라 일컬을 수 있다면 아마도 그건 생 자체일 것이다. ‘삶’이 그려 내는 다양한 스펙트럼과 다변성 속에서도 결코 인간을 놓아 주지 않는 묵직한 생의 중력을 그의 시가 잘 포착해 내는 건 그림자야말로 생의 본질임을 잊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림자는 원상의 형상을 얼마든지 왜곡도 하고 때론 숨어 버리기도 하지만 결코 달아나지 않는다. 원상 내부의 상처와 질곡에 악착같이 달려들어 생의 모서리를 현상해 낸다. 삶을 자유롭게 하겠다는 무수한 그림자 기표들이 망각하고 있는 것은 그림자란 본디 원상의 것도 아니며, 원상과 무관한 것도 될 수 없다는 사실에 있다. 그림자란 한 편의 활시위와 같다. 원상의 중력과 그 중력을 넘어서려는 두 힘이 팽팽하게 긴장하며 휘어질 때, 그림자는 필연적으로 생의 근원에 가까워진다. 김소연의 문장이 지닌 안정된 흡인력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한다. 5. 판화적 글쓰기 인간이 맹점의 존재를 잘 느끼지 못하는 건 맹점에 의한 시야의 어둠을 다른 눈의 시각을 통해 메우기 때문이다. 언어의 눈, 그림자의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 빛을 가득 채워 존재가 현현하는 곳을 봉쇄할 때, 우리의 삶은 점점 더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 감정과 생각이 어긋나고, 말과 빛이 허용하는 사유만이 폭거하는 메마른 불모지로 변모한다. 동일성의 사유에 항거하는 최근의 숱한 철학적 사유들이 그 윤리적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삶의 언어를 구원해 내지 못하는 건 이들 이론과 이미지의 현란함이 맹점의 파쇄가 아닌, ‘보완’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삶의 언어로 충분히 구체화되지 못한, 자신의 손과 발로 직접 일구어 내지 못한 이미지의 언어들은 스스로가 올바른 대체시각이며, 이 강렬한 빛으로 맹점과 어둠을 몰아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 또한 뒤틀린 자만이며 확장된 동일성이다. 그러나 맹점은 우리 삶의 조건이며, 그 종착지이기도 하다. 인간의 조건은 부정되거나 개선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직시하고 함께 살아가야 할, 세계와 인간 사이에 놓인 고유한 매개 방식이다. 그림자가 아무런 음성도 없이 지상에 잠시 내려앉은 검은 입으로 말을 건넬 때, 이를 가장 섬세하게 들어줄 수 있는 방법은 어둠을 어둠인 채로 내버려 두는 일이다. 시선의 한구석에 필연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어둠을 받아들이고, 그 어둠과 대화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어쩌면 인간은 영원히 이 조건을 벗어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렇다하여도 그림자에 마음을 빼앗긴 사람들은 유령처럼 태어나고, 그 절망적인 시도를 되풀이하며 말의 어긋남 속에서 더 진실한 말 하나를 길어 올린다. 이는 시인의 숙명이며, 시의 본질이기도 하다. 이를 김소연의 시적 방법론을 빌려 말하자면 판화적 글쓰기라고 명명해 볼 수도 있겠다. 이 성실하고도 마음 따뜻한 그림자 필경사는 그림자에 각인된 어둠의 지문을 숨죽여 더듬으며 그 굴곡과 깊이를 음화로 찍어 낸다. 어둠의 언어로, 어둠을 끌어안은 채, 어둠 속에서야 비로소 보이는 삶의 근원적 자세들을 현상해 낸다. 안전한 거리에서 시각의 윤곽을 따 옮기는 것이 아니라, 삶의 언어로 어둠에 밀착해 어둠을 살아 내면서 몸으로 찍어 내는 것이다. 그의 판화적 글쓰기에서 그림자는 언제나 모상(模像)이 아닌 원상(原象)일 수밖에 없는데, 시선의 권력을 그림자에게 돌려줌으로써 주체가 만들어 낸 일련의 위계상을 단번에 해체해 버리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시가 지향하는 바와 전략이 너무도 명확한 만큼 쉽게 ‘코드’로 환원될 수 있다는 약점으로 비춰질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의 시는 ‘코드’로 읽히지 않는다. 그림자를 통해서 ‘무언가’를 말하려 하기보다는, 언제나 그림자 ‘속’에서 그림자 자체를 경험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의 시는 구체적인 삶의 시공간을 결코 가벼이 여기지 않는다. 삶의 실경이 굳건하게 뿌리박고 있는 시적 공간에서 그림자의 우화로 그림자의 눈빛에 노출되도록 만들 뿐이다. 태양에 흑점이 많을 때는, 역설적으로 태양의 활동이 가장 ‘극에 달했을’ 상태라고 한다. 내부의 격렬한 균열과 폭풍이 열의 흐름을 방해하여 상대적으로 어둡고 온도가 낮은 부분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라고. 어쩌면 그림자에 대해서도 그와 같은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그림자들은 가장 격렬한 생을 통과한 내상들이며, 그 내상이 건네는 말의 뒤틀린 방식이라고. 김소연의 시는 현실 너머의 추상적 피안이 아니라, 뜨거움과 차가움을 절실히 통과한 이후의 ‘이곳’을 그림자의 형상을 통해 추적해 낸다. 삶을 가장 치열하게 마주한 자의 뜨거움으로 그늘이 품은 울음을 읽어 내고 위무한다. 그러므로 그의 시를 일컬어 이렇게 말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생의 흑점들로 이루어진 점자들이며, 생의 근원적 자세를 찍어 낸 판화들이라고.
  • [2018 서울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당선소감] 자존심과 미래에 흔들렸던 날들… 이제 조금 용기낼 수 있어

    [2018 서울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당선소감] 자존심과 미래에 흔들렸던 날들… 이제 조금 용기낼 수 있어

    얼마 전 일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만족스러운 일터였지만, 계약 기간이 다 되어서 나왔습니다. 자리를 정리하면서, 덤덤할 줄 알았는데 별로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너무 씁쓸해하지는 않으려고 했습니다. 지금부터 한번 제대로 글을 써보자. 더는 미루지 말자. 그랬던 그 밤만큼은 마음 편했습니다.자주 흔들렸습니다. 자존심과 미래가 특히 그랬습니다. 너무 건방지게 맞섰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무런 근거도 가지지 않았으면서, 앞으로 얼마나 무서운 일이 닥칠지 전혀 모른다는 듯이 꿈꿨습니다. 네가 갈 길이었으면 벌써 눈에 띄고도 남았다. 인제 그만 단념하고 살길 찾아라. 제게 던져진, 저를 위한 충고들의 무게에 눌려 있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반박할 수 없어서 여러 날을 마음속으로 울었습니다. 결국 살길에 대한 생각은 서로 다른 거라고, 은밀하게 위로하며 지냈습니다. 당선 소식은 감당하기 어려웠습니다. 자극에 약한 저로서는 그것을 천천히 소화해야 했습니다. 밤이 깊어질 때까지 무력하게 있었습니다. 그리고 외로워졌습니다. 기쁨과 두려움이 한데 엉긴 이 낯선 감정을 가라앉히지 못해서, 나눌 수도 없어서 그랬습니다. 이제 조금 더 용기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깊이 생각하고, 그러면서 더 과감히 나아가고,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 찾아보겠습니다. 가능성을 찾으면, 그냥 흘려보내지 않겠습니다. 주저하지 않고 밀어붙여서 그 결과를 손에 넣겠습니다. 가족, K, 서울과 인천과 춘천 그리고 벳푸에 있을 친구들, 202호 회원들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한결같이 지지해 주어서 쓸 수 있었습니다. ■김민수 ▲1986년 서울 출생
  • [2018 서울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 플랫폼 (김민수)

    [2018 서울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 플랫폼 (김민수)

    사비는 순서를 기다린다. 복도의 고요함은 일부러 꾸며진 듯하다. 문이 닫히는 소리. 누군가 사비를 지나쳐 간다. 전에 본 적 없는 얼굴이지만, 그를 향한 적의가 있다. 사비는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다. 깜빡 졸았던 걸까. 그의 이름이 들린다. 관료, 학자들. 권위로 데워진 공기가 거북하다. 사비가 의자에 앉고도 그들은, 한참 동안 파일을 뒤적거린다. 넘어갔다가 돌아오고, 다시 구겨지는 문서들. 무작위적인 리듬으로, 자기 역할에 몰입한 자들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 사비는 그게 잘 안 된다. 침묵을 깨야 한다면, 그만한 무게를 지녀야 한다. 위원이 말한다. “우리는 첫째로 근무자들의 파견지 이탈 건을 조사하기 위해 당신을 불렀어요. 이 문제에 관해 우리는 당신에게 형식상의 협조를 바랄 뿐입니다.”반응할 틈을 주지 않고 다른 위원이 말한다. “둘째로 최근 보고된 인간 반출 사건을 조사할 겁니다. 이 경우 당신의 위치는 썩 좋지 못해요.” 기관의 배려를 기대했던가. 그래도 사비는 동요하지 않는다. 마음 작용의 세부사항들을 잃어버린 지는 이미 오래다. 그는 위원들의 질문에 답한다. 일정한 어조로 이어지는 질문들. 때로는 위원들의 질문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이탈과 반출. 그것은 사비의 언어가 아니다. 사비와 위원회는 서로에게 원하는 것을 주지 못한다. 위원회는 사비를 의심하고 있다. 그가 아는 만큼 말하지 않고, 교묘하게 말을 돌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비는 그들만큼이나 아는 게 없다. 오히려 그에겐 새로운 질문거리만 가득하다. 심문은 계속될 것인가? 사비는 구금되지 않는다. 위원회에 그럴 권한은 없다. 즉석에서 다음 출석을 예고받는다. 서명하고, 가도 좋다는 허락을 얻는다. 그의 뒤로 문이 닫힌다. 이미 어두워진 복도. 그는 천천히 걸어 나간다. 무수히 많은 창문이 광장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곳을 지나기가 두려워진다. 그는 골목길을 택한다. 그 길은 비밀스럽다. 불규칙한 계단을 내려가고, 곳곳에서 오래된 그림자들을 본다. 골목이 끝나는 지점은 다른 골목과 맞닿아 있다. 사비는 다른 골목에 들어설 때마다 주변을 살핀다. 담벼락은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것 같다. 왼편 불 밝힌 상점에, 진열대 사이로 점원이 보인다. 그녀는 웃고 있다. 웃음은 준비된 기호다. 그녀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미소는 신비한 제안 같아서, 사비는 다른 생각에 물들지 못한다. 달콤하다. 그냥 지나쳐 갈 수는 없다. 진열대에 술병이 빼곡하다. 사비는 화려한 단어들을 본다. 덧붙은 상징들도. 갖가지 색과 형태의 차이를 구별하기 어렵다. 모두 똑같이 중요한 동물들과 도형들. 그는 방향감각을 잃고, 발을 헛디뎌 술병을 모두 깨뜨리게 될 것만 같다. 땀이 맺힌다. 손등으로 땀을 닦는데 불쑥 인사말이 들린다. 사비는 점원의 입을, 눈을 본다. 그리고 미처 감추지 못한 수동성을 엿본다. 그녀의 조화롭지 못한 목소리가 거슬린다. 사비는 짧은 사이 실망을 내비쳤는지도 모른다. 그는 일부러 들릴 듯 말 듯 대꾸한다. 점원은 한발 물러나 웃음으로 돌아간다. 어떻든 그녀는 변함없다. 그녀가 사람이었다면, 사비는 다른 반응을 기대해도 좋았을 것이다. 선택이 한정되어 있고, 외부에서 주입되었더라도 온전히 그녀만의 것으로 머무는 감정들을. 손가락으로 아무 병 하나를 가리킨다. 그녀는 상품을 스캔하고, 가져가 버린다. 사비는 그런 행동이 그녀만큼 시늉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포장이 사비의 손에 들린다. 그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상점을 나선다. 사비는 단조로운 풍경을 내다본다. 버스가 이미 지나온 길도 다시 훑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느리고, 목적지에 갈 마음이 없는 것 같다. 모로를 만나려면 한참 더 외진 곳으로 가야 한다. 그곳은 도시 외곽도 아니고, 마을이라 부르기에도 어중간하다. 기억이 맞는다면 이쯤에서 내려야 한다. 버스가 떠나자 어두워진다. 멀지 않은 곳에 파도가 친다. 사비는 도로를 벗어나 흙길로 들어선다. 길가를 내려다보니 경사가 가파르다. 풀이 자라지 않은 길을 골라 내려간다. 해안이 있고, 움푹 들어간 형태로 숲을 등진 주거지가 보인다. 집은 몇 채 되지 않는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사비는 알 것 같다. 그 집은 모로의 성향과 닮아 있다. 작고, 뽐내지 않는다. 문을 두드려 본다. 모로. 기척이 없다. 사비는 집 주위를 돈다. 창문에 얼굴을 대지만, 안을 볼 수 없다. 사비는 모래사장을 거닐기로 한다. 불을 밝힌 집이 몇 채 보인다. 이편은 어둠이다. 사비는 구두를 벗어 손에 든다. 파도 소리가 불쾌하다. 발가락 사이로 파고드는 차갑고 부드러운 감촉. 그는 갑작스럽게 고향의 선율을 느낀다. 단조로운 흐름이다. 어떤 이유로 연상되는 것일까. 선율은 감각에 새겨졌고, 때때로 통증처럼 거기에 있다. 흐릿하게. 불빛 속에 남자가 보인다. 그는 작은 고깃배 옆에 앉아 그물을 손보고 있다. 사비는 그와 눈이 마주친다. 남자는 그물을 놓고 일어선다. “오늘은 너무 늦었는데.” 사비는 그를 살핀다. 심술궂은 눈. 주름들. 그리고 들쭉날쭉한 억양. 하지만 흐릿하게나마 장난기가 비친다. 관리자의 인상이다. 확신할 수는 없다. “그쪽으로 가봤자 아무것도 없을 거야.” 사비는 고개를 돌려 어둠을 본다. 그의 말이 너무나 당연하게 들린다. “초입에 있는 작은 집을 찾아왔는데 아무도 없어서.” 사비는 손가락을 들었지만, 어떤 것도 가리키지 못한다. 남자는 고개를 젓는다. 실수인 것처럼, 그의 뒤로 현관문이 조금 벌어져 있다. 그가 오랜 시간 홀로 지내왔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남자는 그물을 추스른다. “나도 이곳 사람들에 관해 별로 아는 게 없지만.” 그는 사비를 훑는다. 사비의 손에는 술병이 있다. “들어오겠나?” 그를 따라 들어간다. 다른 차원에 들어서는 것 같다. 사비는 아직도 그런 경험을 잘 설명해낼 수 없다. 테이블과 낡은 의자들과 벽에 붙은 계획표. 책장 위에 술병을 놓는다. 사비는 그가 의자를 권할 때까지 기다린다. 남자는 부엌의 작은 문을 열고 그물을 던져 넣는다. 책장의 지저분한 책들이 눈길을 끈다. 사비는 대부분의 책 제목을 알아보지 못한다. “거기 앉아.” 남자는 술을 따른다. 그는 두꺼운 책을 고른다. 그의 손은 책을 옭아매는 성긴 보금자리 같다. 사비는 술잔을 들어 입을 적신다. 책을 들고 있는 남자의 손마디를 살펴본다. 가늘고 긴 손가락에서 노동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짐작과는 다르다. 어쩌면 그는 오랜 세월 학자로서 지내왔을지도 모른다. 무엇에 관한 학자인가. 언어들? 비밀스럽고, 신비 가득한 형태로 눈을 어지럽히며 우리를 넘어서는 의도를 품고 있을 것 같은 바깥 세계의 소란. 막연히 우상화되는 시인들. 남자는 책장을 넘긴다. 미간을 찌푸린 그가 눈을 치켜뜬다. 사비는 어서 그가 무슨 말이든 해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남자는 다시 책을 읽는다. 한동안 책장이 넘어가지 않는다. 심각한 그의 얼굴이 곧 부서져 버릴 것 같다. “요즘 이곳은 어때?” 사비는 말을 꺼내는 게 도움이 될 거라 믿는다. 남자는 책을 내려놓는다. “예전에는 좋았지. 지금은 뭐라 말하기 어려워.” 흔해 빠진 의견. “여길 떠나는 자들이 늘었지. 그게 뭘 말해주겠나? 전보다 좋아졌다고는 말할 수 없을걸.” 사비는 마지못해 수긍한다. “자네도 누군가를 찾아왔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그런 건 핑계에 불과해. 난 많이 봐와서 잘 알지. 결국엔 떠나는 거야.” “아마 그렇게 되겠지.” “그렇다면 잘 선택한 거야. 여긴 매력을 잃었어. 다신 돌아오지 말게.” 남자는 다시 책을 펼쳐 든다. 사비는 침묵 안에서 흔들린다. 마음을 다잡기 어려워진다. 바깥 그리 멀지 않은 물밑 어딘가에서 불분명한 형체가 지상으로 올라온다. 모래사장에 다다랐을 때 그것은 모습을 드러낸다. 상상조차 해본 적 없던 심해의 생명체가 몸을 비틀며 기어온다. 호흡하는 비늘과 가시들을 과시하면서. 성미 급한 놈이다. 거대한 입속으로 겹겹이 덧난 이빨에는 독이 흐른다. 놈은 모래를 파헤쳐서 구덩이를 만들고 그 속으로 숨는다. 구덩이 위를 지나는 자들을 모두 집어삼키려고. 놈의 입과 뱃속에서 희생자들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모로의 흔적도 그곳에 걸려 있다. 대기는 신음으로 가득해 질식해 버릴 것 같다. 사비는 술잔을 내려놓고, 남자의 구겨진 얼굴을 다시 한번 본다. 그는 가끔 입술을 달싹이는 것 말고는 움직이지 않는다. 사비는 자신의 손과 발을 내려다본다. 시간을 체감하는 신체기관이 있다면, 그건 눈뜨고 볼 수 없을 만큼 흉물스럽게 늘어졌을 것이다. 확장된 외연으로서 발에 차이고 목을 휘감았을 것이다. 사비는 말한다. “그래도 난 언젠가는 돌아와야 해.” “쉽지 않을 거야.” 사비는 그에게 나약한 구석이 있다고 생각한다. “가서 준비해야겠어. 언제 다시 방문하면 될까?” 남자는 손을 내젓는다. 조금 더 기다려 보지만 그뿐이다. 현관을 나선 사비는 바깥 공기에 압도당한다. 사비는 이보다 더 적은 자극을 원한다. 사비의 생각은 몇 차례나 분절된다. 구덩이라니. 잠을 자고 싶다. 잠을 자야만 벌어진 틈을 이어 붙일 수 있다. 그러지 못하면 정신은 점점 파편화되어, 말라죽은 나무의 껍질처럼 떨어져 나간다. 다른 가능성이 물꼬를 튼다. 모로의 작은 집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이 환하다. 아니, 그 집은 모로의 집보다도 좀더 넓고 안락해 보인다. 그럼에도 사비는 그 집이 여전히 모로의 집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사비는 정원을 가로질러 간다. 잘 손질된 정원수. 초인종을 누르자 미소 짓는 점원이 나타난다. 사비는 놀라지 않는다. 그는 초대받은 사람처럼 집 안에 들어선다. 집은 거대한 하나의 침실이다. 사비는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그녀의 유년 시절과 일상, 갈등과 고민에 관한 이야기 속 세부사항을 통해서 그녀가 가짜가 아니라는 점을 확신하고 싶다. 그러나 그녀는 깊은 상처를 간직한 사람처럼 모든 이야기로부터 달아나 버린다. 그녀는 이미 이 세계의 어떤 이야기에도 관심이 없다. 그녀는 오직 행위의 화신으로, 사비에게 미끄러져 들어간다. 그녀가 드리운 그림자 아래에서 근심 따위는 느낄 수 없다. 시간은 이렇다 할 결론을 내지 못한다. 오래도록 평화롭다. 그러나 그녀의 품에서 사비는 결코 잠들지 못한다. 사비는 얌전히 눈을 감고 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의식이 또렷하다. 그는 속으로 진짜를 흉내 낸 것들을 모조리 비웃고 있다. 사비는 구두를 손에 들고 주거지의 불빛들을 지난다. 움푹한 해안선은 인위적이거나, 자연을 뛰어넘는 힘이 가해진 것처럼 보인다. 사비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힘의 작용. 가령 겨울이 길어지고, 낮 동안의 빛은 더욱 희미해지는 것. 예측할 수 없던 변화는 사람들로 하여금 마땅한 이유를 찾아 나서게 한다. 그러나 사비는 그것들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고 싶다. 고향에서는 더 자주 메시지를 보내왔다. 의구심을 품은 자들은 모두 돌아오라고. 사비는 그래도 아직은 끝을 알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시 작고 허름한 집이 보인다. 짐승은커녕 곤충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사비는 문틈에 얼굴을 대고 문을 밀어본다. 열릴 듯이 삐걱거린다. 그뿐이다. 절망이 버티고 있는 것처럼. 다른 감정들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인기척이 있다. 보드라운 목구멍을 갓 넘어온 따뜻한 숨결이 거기에 있다. 사비는 창문을 들여다본다. 소용없는 짓이다. 물러서서 구두를 던진다. 창문이 깨지고, 깨진 틈으로 모로를 찾는다. 아기 울음소리가 들린다. 사비는 창문을 넘는다. 유리 조각에 옷자락이 긁힌다. 사비는 벽을 더듬으며 나아간다. 울음소리가 벽을 타고 온다. 한쪽 구석이다. 구석에서 소리가 난다. 사비는 다가가 몸을 기울인다. 그는 금속으로 만들어진 기계 아기가 불가능할 것 같은 방식으로 몸을 일으켜 세우는 것을 본다. 그것은 기다렸다는 듯 울음을 멈추고, 감춰두었던 예리한 날로 그의 목을 긋는다. 사비는 목을 부여잡고, 고개를 숙이고 움직이지 않는다. 이 순간 생동하는 가능성을 모두 외면하기로 하자. 이미 어둠 안에 놓인 눈앞이 캄캄해진다. 사비는 자세를 낮춘다. 바닥에 무릎을 대고 거의 엎드린다. 아기를 섬기려는 것처럼, 천천히 손을 가져다 댄다. 아기는 울음을 멈춘다. 시큼한 냄새가 난다. 따스하고 보들보들한 감촉이, 놀랍도록 위안을 준다. 손을 떼고 싶지 않다. 파도 소리가 바람에 묻히기도 한다. 사비는 그를 흔드는 손길에 의해 깨어나 돌아본다. 모로가 그를 내려다보고 있다. 짓누르려는 듯이. 사비도 모로를 본다. “사비. 왜 이렇게 늦었어?” 예상했던 반응은 아니다. “창문을 깨고 들어오면 어떡해.”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어.” 그러나 아기는 없다. 감정들이 고스란히 흘러 나간다. 그는 거울을 보는 것 같다. “일행은?” “혼자야. 모두 흩어졌어.” 모로는 실망을 감추지 않는다. “모로, 아기가 실제로 있어?” “있어.” “어디에?” “내 몸에.” 사비는 모로와 아기를 동시에 생각해 본다. 틀림없다. 그리고 이번에는 모로가 실수한 거라고 소리 지르고 싶다. “어쩌려고?” “데려갈 거야.” “그걸 왜?” “왜라니. 기념해야지.” “기념하기 위한 거라면 다른 걸 가져가. 더 적합한 것으로.” 하지만 사비는 더 적합한 것을 떠올리지 못한다. “그냥, 인간들을 내버려 두자.” “이제 와서 그럴 순 없지.” 어떤 말을 해도 소모적일 것 같다. 사비는 문을 열고 내다본다. 반드럽게 깔린 살굿빛 사장과 바다 위로 드넓은 하늘의 풍광이 우연처럼 놓인 것 같다. 관리자의 집은 생각보다 멀지 않다. 고깃배는 보이지 않는다. “모로. 관리자를 만났어? “아니. 그는 통 잠들질 않아.” 그래서 모로는 여태껏 사비를 기다려왔는지도 모른다. 관리자는 찌푸린 눈으로, 어째서 그것이 기념이 되느냐고 묻겠지만. 물러서지 않고 나아가야 한다. 사비는 그에게 이해를 구하지 않고, 그와 멀어져야 한다. 그가 현실의 무미건조함에 사로잡혀 있을 때, 사비는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수평선까지 배 한 척 보이지 않는다. 관리자는 그 작은 배를 타고 어떻게 플랫폼까지 가는 것일까. 사비는 문을 열어 둔다. “그가 거절할 수도 있어.” “넌 그저 꿈에서 깨어나 배를 기다리면 돼.” “이게 얼마나 대책 없는 짓인지 알고는 있는 거야?” “플랫폼에서 만나자.”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어.” 모로는 보이지 않는다. 사비는 동작을 되감는 것처럼 자리로 돌아가 눕는다. 눈을 감고 하늘을 본다. 이해할 수 없는 거짓이다. 인간의 생에 남겨진 일이라고는 끊임없는 불만족뿐이다. 그런 그를 일부러 고통과 마주하게 할 필요는 없는데. 기념이라고? 사비는 잠에서 깨어나 주위를 둘러본다. 게다가, 인간은 우리의 고향에선 살아남을 수 없다. 감각이 환경을 따라가지 못한다. 그렇지만 사비는, 모로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모로는 사비의 첫 작품이다. 모로는 사비와 같으면서도, 그의 바깥에 있다는 점에서 서로 다르다. 모로는 흉내에 불과한가? 모로를 볼 때면 사비의 심정은 늘 복잡하다. 그는 권리를 주장할 수 없지만 막대한 책임감을 느낀다. 모로는 자유롭다. 그건 사비가 줄 수 없는 매혹적인 개념이다. 고깃배가 가까워진다. 사비는 몸을 일으킨다. 관리자가 배에서 내린다. 그의 허리까지 물에 잠긴다. 배 안에는 손님이 있다. 그는 몸 대부분을 가리고 있다. 생김새는 물론 그의 형태마저 제대로 알아볼 수 없다. 먼 곳에서 왔으리라. 손님은 땅에 발을 딛는다. 체구가 크다. 사비는 사구에 올라선다. 그러나 손님은 사비를 의식하지 않고 사구를 돌아나간다. 그는 사비가 그랬던 것처럼, 휴식도 없이 곧바로 어떤 목적을 좇는다. 관리자가 사비에게 손짓한다. 사비는 그를 도와 배를 끌고 올라온다. “인사를 나눴나?” 사비는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다. 대답하는 대신에 눈으로 먼 곳을 좇는다. “뭐, 상관없겠지.” 관리자가 앞서 배를 끌고 간다. 사비는 고물을 민다. 경사진 모래언덕이 난감하다. 사비는 배를 홀로 떠받들고 있는 것 같다. 닳고 부서지고 덧댄 흔적을 본다. 사비로서는 짐작조차 못 할 물밑의 진실을 견디는, 볼품없는 배다. 사비는 때때로 뒤를 돌아본다. 모래사장에는 깊은 족적이 남는다. 관리자는 모래도 털지 않고 그대로 현관을 넘는다. 그는 부엌의 작은 문을 열고 그물을 던져 넣는다. 먼지 앉은 잔에 술을 따르고, 계획표에 문자들을 휘갈겨 쓴다. 사비는 문틀을 붙잡고 관리자의 집 안을 들여다본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는다. 적응하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그는 계단에 버티고 서서 말한다. “우릴 플랫폼에 데려다줘.” 관리자는 반응하지 않는다. “가능한 한 빨리 떠나는 게 좋겠어.” 그 말은 관리자에게 닿기도 전에 허물어진다. 사비는 문턱을 넘는다. 그와 동시에 부엌의 작은 문이 닫힌다. 하지만 관리자는 부엌을 돌아보지 않는다. 관리자의 널찍한 등은 굳어서 움직이지 않는다. 옆에서 본 그는 매끈한 석상이다. 사비는 그를 찔러보고 싶다. 사비는 부엌으로 다가간다. 작은 문 너머로 속삭이는 소리, 고약한 획책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굴욕감이 드는 순간, 사비는 성급하게 문고리를 돌린다. 방 안에는 그물과 비린내와 모래가 뒤엉겨 있다. 굴욕을 만회할 수는 없다. 관리자는 펜을 놓고 돌아선다. “곧 출발할 수 있겠어.” 관리자는 계획표를 보란 듯이 손바닥으로 친다. 사비로서는 내용을 이해할 수 없다. 관리자가 묻는다. “규모는?” “나와 내 동료 모로, 그리고 아기 하나.” 관리자는 술을 한 모금 삼키고 말한다. “인간?” “작은 인간.” “인간은 안 돼.” 가라앉은 관리자의 말투에는 파고들 틈이 없다. “아무 문제 없을 거야.” “얼마 전이라면 그랬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아까 배 타고 들어오는 손님 봤지. 방침이 바뀌었어.” 방침. 애초에 그런 건 없었다. “어디서 온 손님인데?” “무례한 질문이야. 더 나은 질문을 해봐.” 사비는 그가 계속 말을 이어 가도록 내버려 둔다. “이제 단 하나의 인간도 바깥으로 나갈 수 없어. 모두 모아놓고서, 조용히 끝낼 거야. 원래 그랬던 것처럼. 그게 그가 하려는 일이야.” 생각보다 일찍 다가온 절멸 소식이 놀랍다. 그리고 그것이 벅찬 화려함 가운데 섬광처럼 오는 게 아니라 배를 타고 천천히, 거적때기를 뒤집어쓰고 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당혹스럽다. 사비는 미소 짓는 점원을 떠올려 본다. 인간이 아닌 것들은? 그들은 함께 사라지거나, 새로운 주인이 되겠지. 아마도 이 계획에서 기계들은 고려되지 않았을 것이다. 감정들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머물게 하는 능력은 인간 고유의 것일까. 그렇더라도 이제는 그것의 모방만이 넘쳐나겠지만, 그런대로 나쁘지 않다. 그렇게 받아들여야 한다. “아무도 모를 거야.” “인간은 안 돼.” 그 말은 하나의 구호처럼 들린다. 관리자는 거의 즐기고 있다. 짧고 단단한 문장에 부딪혀 박살 나 버리는 다른 빈약한 문장들. 탈취와 도주의 이미지들이 의식에 흘러가도록 내버려둔다. 사비는 이보다 더 큰 말썽에 휘말릴 자신이 없다. 관리자는 벌써 이 일을 문제 삼지 않는 것 같다. 그는 책을 고른다. 그가 신경 쓰지 않기로 한 것은 실제로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관리자는 무한히 여유롭다. 그러나 사비는 그렇지 않다. 사비는 시간을 구체적으로 감각할 수 있다. 사비로서는 관리자와의 불균형 상태를 극복할 수 없다. 작은 인간의 무게가 그만큼 그를 누른다. 몇 가지 짧은 생각이 든다. 작은 인간이 기계로 변환될 수 있는 기술적 가능성은 얼마 없다는 사실. 그리고 손님의 행방. 관리자가 손짓하며 사비의 주의를 끈다. 그는 사비가 마주 앉기를 바란다. 팔걸이가 있고, 등받이가 짧은 의자를 권한다. 그리고 사비에게 술잔을 건넨다. 사비는 한동안 의자에 꺼질 듯이 파묻혀 있다. 그는 턱을 괴고, 손가락으로 얼굴을 문지른다. 알코올 냄새가 올라온다. 어떤 생각을 재촉하려는 듯이. 그는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있다. 관리자가 말한다. “그런데 네 동료는 지금 어디 있지?” “자기 집에서 기다리고 있어.” “난 그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왜냐하면. 사비는 말을 아낀다. 관리자는 사비에게서 대답을 기대하지 않는다. 사비는 부엌의 작은 문을 본다. 아무래도 누군가 더 있는 것 같다. 거기서 감각을 희롱하는 미세한 자극들이 흘러나온다. 관리자는 무릎 위로 책을 펼친다. “이 책을 알아볼 수 있나?” “전혀.” “이건 아주 형편없어. 두서없는 소리로 가득해.” 관리자는 손끝으로 문장을 긋는다. “그런데 여기. 이 대목을 봐.” 처벌에 관한 기록이다. 오래전 일이다. 여기에 선대 관리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지워졌다. 그는 기계에 관한 독특한 관점을 지니고 있다. 무차별. 그것은 경력을 망가뜨리는 불온한 생각이 될 수 있다. 어느 날 해변을 거닐던 선대 관리자는 도망쳐 나온 도시 기계를 맞닥뜨린다. 기계는 인간과 똑 닮아 있으나, 두려움의 표현이 어설프다. 도시 기계는 이보다 더 멀리 도망갈 수 없다. 헤엄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한계를 극복할 수 없다. 선대 관리 자는 도시 기계를 데려와 별장에 숨겨준다. 그는 거기서 인간처럼 지낸다. 먹고 읽으며, 잠들기도 한다. 그러나 그를 추적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피 행각은 발각된다. 선대 관리자는 인간으로부터 원성을 듣는다. 도시 기계의 죄목은? 언급되지 않는다. 고향에서는 적극적으로 나서서 선대 관리자와 인간을 중재한다. 간단하게 합의된 결과로 선대 관리자와 도시 기계가 같은 처벌을 받게 된다. 선대 관리자는 도시 기계로 이식되고, 성공적으로 결합한 그것은 도시로 보내진다. 그것을 뭐라고 부를 것인가?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이후 관리자의 관할이 분명해진다. “뭐라고 쓰여 있는데?” “이 글은 읽을 수 없는 언어로 쓰였다는군.” 관리자는 책을 덮는다. “그럼 지금 읽은 건 뭐야?” “그건 말일 뿐이지.” 너의 꿈속에 있는 것처럼 실체 없는 경험들이지. 눈이 감긴다. 사비는 희미하게, 부엌의 작은 문이 열리는 것을 본다. 배를 타고 들어온 손님이다. 그가 그물을 끌고 사비에게로 다가온다. 사비는 마지막으로 묻는다. 이것은 가능성인가? 손님은 도심에 다다른다. 한낮의 공터에서, 그가 주목받을 이유는 없다. 그는 쪼그려 앉아 동그란 통을 내려놓는다. 단순하게 생긴 물건이지만, 잠금장치가 달려 있다. 그는 잠금을 풀고 뚜껑을 비스듬히 걸쳐 놓는다. 그것은 흐릿한 기운을 방출한다. 화산재가 분화되는 것처럼, 시간이 흐를수록 심각해진다. 바다 한가운데에 어색하게 솟은 지면이 있다. 사비는 생각하지 않고도 그것을 알아본다. 플랫폼이다. 간소하고, 누구도 이용한 적 없는 것처럼 깨끗하다. 사비는 배를 타고 있다. 배는 젓지 않아도 나아간다. 플랫폼 위로 모로와 유모차가 보인다. 모로는 배에 탄 사비가 플랫폼에 오를 수 있도록 돕는다. 사비는 아래를 본다. 수면에 비친 얼굴은 분명 자신의 것이 맞다. 그러나 그 모습은 불안정해서, 곧 다른 얼굴로 바뀌어 버릴 것 같다. 그는 수면을 내려다보지 않기로 하고 발을 디딘다. 플랫폼에 어렵게 올라선다. 그가 타고 온 배는 점점 멀어져 간다. 모로가 말한다. “저걸 타고 여기까지 온 거야?” “그래.” “재주도 많네.” 사비는 뒤돌아본다. 그것은 배가 아니라 가시 돋은 심해의 생명체다. 어떻게 날카로운 등 위로 올라탈 수 있었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모로의 얼굴은 테두리가 불분명하다. 잘못 손대는 바람에 윤곽이 번진 것 같은 모양이다. 그러나 모로를 다른 무엇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모로란, 언제나 모로와 가장 근접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비가 말한다. “이상한 일을 겪었어.” “말해봐.” “배를 타고 들어온 손님을 봤어.” 그런데 사비는 이야기할 의욕을 잃어버린다. 이야기는 선형적으로 정돈될 수 없다. 어느 부분을 이야기하더라도 머리와 꼬리와 몸통이 뒤섞일 거란 확신이 든다. 사비가 무언가를 이야기해야 한다면, 오직 그런 확신에 관해서만 이야기할 수 있다. 모로는 이야기를 기다린다. 사비는 모로의 기다림은 신경 쓰지 않는다. “그게 끝이야?” “그건 아니지만. 이야기할수록 이상해질 거야.” “말해봐. 천천히, 한 마디씩.” 아기 울음소리가 들린다. 유모차의 바퀴가 앞을 향해 움직인다. 그렇게 가다간 바닷속으로 고꾸라질 것 같다. “그는 함정을 팠어.” 플랫폼이 기울면서 경사가 진다. 유모차는 빠르게 굴러간다. “어쩌면 내가 그에게 붙잡혀 있는지도 모르지.” 모로는 지면이 기울어도 휘청거리지 않고 서 있다. 모로는 사비보다 더 큰 목소리로 묻는다. “그가 원하는 게 뭔데?” 유모차가 바다에 빠진다. 사비는 모로를 밀치고 뛰어간다. 물 위로 빈 유모차만이 떠다닌다. 사비는 조금 더 가까이 보기 위해 엎드린다. 아기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사비의 얼굴은 더는 수면에 비치지 않는다. 사비는 물속으로 뛰어든다. 그는 수영하는 법을 익히지 못했다. 숨을 참는 것도 서툴다. 그러나 그것은 문제 되지 않는다. 사비는 물속에서 자신의 몸이 거추장스럽다고 느낀다. 부품을 해체하듯, 그의 기관들을 하나씩 벗어던져 버리고 싶다. 유영에 매혹된 그는 모든 의지를 멈추게 하고 싶다. 사비는 바람 없는 골목을 걷는다. 길가에는 부랑자들이 누워 있거나 벽에 기대어 앉아 있다. 추위와 굶주림에 떠는 그들은, 사비의 구두를 본다. 그의 손에 들린 술병을 본다. 그들은 달그락거리며 바닥을 기어온다. 천천히 손을 뻗어서, 닿지도 않는 사비의 외투 자락을 당긴다. 아버지. 그들 가운데에서 들리는 말. 지금 뭐라고 했소? 사비는 그 말을 잡으려고 성큼 다가간다. 부랑자들의 넝마를 걷어차고 깡통을 뒤집는다. 형제여. 누구요? 사비는 그중 한 명의 머리채를 잡아 올린다. 그늘진 얼굴이 드러난다. 그는 사비다. 사비는 그 점을 단번에 알아챈다. 사비와 그를 구분 짓는 것은 무엇인가. 어떤 재능, 어떤 노력을 발휘해도 알아낼 수 없다. 그는 구두를 벗어던지고, 넝마를 주워 든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에 눕는다. 몸을 웅크리고 얼굴을 가린다. 모로가 이곳을 지난다면, 등을 돌리고 눈을 감으리라. 물속으로 거대한 손이 들어와 사비를 건진다. 사비는 플랫폼에 한쪽 어깨를 걸친다. 관리자가 그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이제 가야 해.” 물속에서 몸을 완전히 빼내기가 힘들다. 도둑맞은 기분. 사비는 주위를 둘러본다. 플랫폼이 갈라지고, 돌덩어리가 솟아올랐다. 은은한 광택을 내는 검고 길쭉한 돌이, 누런 연기에 가려 희미해진다. 안개인가? 아니, 매캐한 냄새가 난다. 벌써 시작된 걸까. 관리자는 분주하다. 사비는 말한다. “내 동료가 여기 있었어.” 관리자는 사비를 플랫폼 위로 끌어올린다. “아니. 우리 둘뿐이야.” 관리자는 사비를 잡아끌어 그의 몸을 돌덩어리에 밀착시킨다. 돌덩어리에서 온기가 느껴진다. 관리자는 긴 벨트로 사비의 몸통을 돌덩어리에 묶는다. 그가 벨트를 잡아당길 때마다 사비의 몸이 들썩인다. 플랫폼의 조각난 지면이 맥없이 물속으로 가라앉는다. 관리자는 돌덩어리의 반대편으로 돌아가 같은 벨트로 자신을 묶는다. 그가 돌을 두들기며 소리친다. 사비는 알아듣지 못한다. 돌덩어리가 한 뼘 정도 떠오른다. 돌의 회전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사비는 처음 이곳을 둘러본 이래로 자신이 추락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는 점점 수가 느는 모조들의 대열을 우려스럽게 바라본다. 이곳을 떠나게 된다면 그 느낌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돌의 깊은 곳으로부터 빛이 새어 나온다. 납빛이다. 그는 순식간에 삼켜지고, 튕겨 나간다. 지면에 부딪힐 때 그는 몸이 조각나는 것 같은 충격을 받는다. 사비는 홀로 엎드려 있다. 얼어붙은 해변이다. 돌덩어리는 보이지 않는다. 몸을 일으키자 이명을 느낀다. 그의 감각들이 적응하지 못한다. 그래도 그는 놀라지 않는다. 사비는 곧장 걸어간다. 해변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걸음걸이에 여유를 가져야 할까. 길가에 자라난 풀들을 본다. 저택을 가리는 담벼락, 교차로에는 행상들이 있다. 사비는 그들의 생기 잃은 표정을 보고 고향에 왔음을 실감한다. 그는 단지 직관만으로 걸어갈 방향을 정한다. 이곳은 그다지 넓지 않아서 금방 목적지를 찾을 수 있다. 훼손된 집들이 눈에 띈다. 그럼에도 몇몇 구조물을 알아볼 수 있다. 그의 보금자리에는 폐기물이 쌓여 있다. 상상력을 발휘해 보면, 그곳이 한때는 집터였음을 어렵게 알 수 있다. 그는 쓰레기 더미에 기대어 앉는다. 그는 시간의 위력을 실감한다. 잠들길 바라지만. 축축하고, 악취가 올라온다. 빗방울의 점성이 높다. 모로는 없다. 사비는 경련을 일으키며 깨어난다. 그 아기다. 그의 발치로 아기가 기어온다. 어렴풋이 전해지는 작은 인간의 의도. 사비는 자세를 낮춘다. 아기는 귓속말로 그에게 꿈에 출석할 것을 통보한다. 흠잡을 데 없는 억양이다. 그러잖아도 사비는 위원회의 통보를 각오하고 있었다. 어쨌든 그는 돌아왔지 않은가. 사비는 아기를 앞장세워 꿈으로 향한다. 아기의 목덜미에는 번호가 적혀 있다.
  • [In&Out] 혁신의 두려움 이기는 제도/성대규 보험개발원장

    [In&Out] 혁신의 두려움 이기는 제도/성대규 보험개발원장

    얼마 전 일본 출장을 다녀왔다. 지난 20년 동안 정체됐다고 들어 온 일본에서 사소해 보이지만 강력한 금융산업의 변화를 목격했다. 일본 내 펫(pet) 보험 1위사인 애니콤이 변화의 주인공이다. 애니콤은 개, 고양이 등 반려동물의 질병과 상해를 보장하는 보험만 전문적으로 판매한다. 창업 10년 만에 보험료 매출 2800억원, 당기순이익 180억원을 달성했다. 우리나라에서 설립 10년 만에 20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한 보험사도, 펫 보험 전문 보험사도 전무하다. 모두 안 된다고 여긴 펫 보험 전업사라는 혁신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슘페터는 ‘혁신은 현재의 틀을 바꾸는 창조적 파괴에서 시작된다’고 했다. 실패에 대한 불안과 위험을 안고 지금을 바꿀 때 혁신이 일어난다. 혁신은 자본과 기술력만으로 달성되지 않는다. 대기업이 아닌 신생기업에서, 시장 선도자보다는 추종기업에서 더 많은 혁신이 일어나는 이유다. 포브스가 발표하는 ‘글로벌 100대 혁신기업’에 우리나라 대기업이 하나도 포함되지 못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애니콤은 펫 보험에 대한 기존의 사고를 깨뜨렸기에 혁신에 성공할 수 있었다. 종전까지 펫 보험시장은 정부가 정하는 동물의료수가가 있어야 하고, 미리 판매망이 확보되어 있어야 한다는 전제에 빠져 있었다. 애니콤은 사업을 시작하기 3년 전부터 동물병원과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치료 통계를 수집하여 자체적인 동물의료수가를 확보했다. 펫이 판매되는 말초조직인 펫 숍과의 제휴로 보험 판매망을 구축했다. ‘시장의 조건이 충족되면 상품을 개발하겠다’는 게 아니라 아예 시장의 조건을 스스로 만들었다. 고정관념을 뒤집는 발상의 전환이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도 혁신에 관한 한 다른 나라에 뒤지지 않는다. 최초의 모방자에서 출발하여 최초의 발명자이자 혁신자로 우뚝 선 사례가 적지 않다. 반도체, 휴대전화, 선박, 철강 등이 대표적이다. 자원이 빈약한 우리나라가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이면에는 혁신에 혁신을 거듭한 노력이 있었다. 하지만 혁신을 어렵게 하는 사회제도적인 환경이 상존함은 부인할 수 없다. 지난해 7월 국방과학연구소가 개발 중인 차세대 무인기가 추락했다. 시험 비행 실패로 무려 67억원의 손해가 발생했고, 연구원들에게 13억원씩 배상하라고 해서 논란이 있었다. 성공하면 월급을 그대로 받고, 실패하면 패가망신할 수 있는 환경에서 혁신을 할 사람은 적을 수밖에 없다. 혁신을 장려하기 위한 제도가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있는 현실은 너무나 역설적이다. 차세대 무인기 비행 실패에 대해 책임을 엄중히 묻는 법과 제도가 현실이다. 민간의 금융보험 영역에 대한 지나친 정부의 규제와 감시도 혁신을 저해한다. 정부 자금이 사업에 직간접적으로 투자될 경우 길고도 철저한 감사가 뒤따른다. 민간 자금일 경우에도 실패에 대한 민형사상 책임이 엄중하다. 보험도 실패에 대해 보상을 해 준 뒤 원인제공자에게 과도하게 구상할 경우 의미가 사라진다.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묻는 제도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문책 제도가 혁신하고자 하는 의지의 싹을 자르고는 있지 않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테슬라 모델 S의 자율주행 중 사망사고에 대한 미국 사회의 대처는 본보기로 삼을 만하다. 실패에 대한 강한 비난 여론이나 정부의 개발규제 조치보다는 오히려 재발 방지를 위한 기술 개발이 촉구됐다고 한다. 거의 모든 사람은 실패가 두렵다. 유구한 종교의 역사가 이를 입증해 주고 있다. 실패의 위험을 줄여 주어야 혁신이 촉진됨은 자명하다. ‘혁신 실패자를 민형사상 엄벌하는 것이 사회 정의’라는 틀을 깨는 혁신은 언제쯤 볼 수 있을까.
  • “부모님 얘기 녹아 있어… 저를 위로하는 영화”

    “부모님 얘기 녹아 있어… 저를 위로하는 영화”

    “‘국가대표’가 천만을 넘었으면 어땠을 것 같냐고요? 5점 만점에 5점을 준 분들이 많았어요. 제 마음속에서는 천만 이상 가는 작품이라 그 정도에 만족해요. 그때 관객이 더 들었다면 거만해지고 기고만장해서 ‘미스터 고’ 같은 영화를 계속 만들지 않았을까요.”판타지 블록버스터 ‘신과 함께: 죄와 벌’의 기세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이르면 내년 초순 1000만 관객이 가능하리라는 전망이 나온다. 2009년 ‘국가대표’로 850만 관객을 끌어모으며 천만 목전까지 갔다가 4년 뒤 300억원을 쏟아부은 ‘미스터 고’로 참패(132만명)를 맛봤던 김용화(46) 감독으로서는 완벽하게 명예 회복하는 셈이다. 이미 촬영을 마무리한 상태로 내년 여름 개봉 예정인 ‘신과 함께2’의 흥행도 벌써 차려진 밥상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솔직히 정말 감사하죠. 하지만 고생에 대한 보상이 천만 타이틀이라고 하면 씁쓸합니다. 영화라는 게 천편일률적으로 모든 사람이 좋아할 수는 없어요. 천만명이 봐도 모두 로열티가 강한 건 아닐 거고요. 흠잡으려면 너무나 흠이 많은 작품이에요. 영화가 ‘터칭’하는 부분이 있어 관객들이 관대해졌다고 생각합니다.” 관객 반응이 폭발적인 것은 영화가 끝까지 진정성을 유지하며 깊은 울림을 주기 때문이다. 저승삼차사의 리더 강림을 연기한 하정우는 시나리오를 보고는 감독의 삶과 많이 겹쳐 보였다고 했다. “아버지, 어머니 두 분 다 건강이 좋지 않아 대학 때 휴학을 했어요. 채석장 돌 캐는 일, 막노동, 운전기사까지 안 해본 일이 없었죠. 생선장사 할 때는 밤늦게까지 수금하고 어머니 병상 옆에서 쪽잠을 자다가 새벽에 나오곤 했죠. 그때는 제 미래가 없는 것 같아 죽고 싶을 정도였어요. 죽어서 저승에 갔을 때 죄를 심판하겠다고 하면 너무 억울할 것 같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죠. 그랬던 저였는데 웹툰을 읽다가 깊은 위로를 받았어요. 저승에 갔을 때 변호해 주고 함께해 주는 존재가 있다는 게 이승에서 치열하게 살았던 삶을 인정받는 것 같아 마음에 와닿았거든요. 저와 부모님 이야기를 섞으면 원작이 주는 감정을 잘 계승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이기적으로 보면 제가 위로받고 싶어서 만든 영화예요.” 원작의 망자 김자홍과 유성연 병장 이야기가 영화에서는 김자홍(차태현)-수홍(김동욱) 형제로 묶이고 거기에 어머니 이야기가 보태지며 전체적으로 드라마가 강해졌다. 일부 설정은 과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형제 이야기로 묶는 것은 시나리오 초고를 받았을 때부터 있던 아이디어였어요. 내부적으로 거부감도 있었죠. 양날의 검이긴 했지만 잘 풀어내면 폭발력이 있을 거라 생각했죠. 그래서 유머를 섞어가며 관객들이 더 깊은 감정으로 빠져드는 것을 막으려 했어요. 설정의 과다함을 피해 적절한 균형미를 찾으려고 몸부림을 친 셈이죠.” 자홍 형제가 드라마의 축이 되다가 막바지에 다시 저승차사 시점으로 돌아오는 게 다소 낯설기도 하다. “사실 영화의 주인공은 자홍 형제가 아니에요. 처음부터 ‘저승차사는 괴로워’가 맞는 시점이라고 생각했어요. 망자를 도와주면 안 되는 직업윤리를 어겨 곤란을 겪는 저승차사의 시점이 1, 2부 전체를 감싸고 있죠. 저승차사 시점의 비율을 높이며 작품을 윤택하게 만들고 싶었는데 그런 부분이 아쉽기는 합니다.” 영화가 전반적으로 신파로 흐르는 것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김 감독은 비판은 겸허하게 받아들인다면서도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제가 영화학도로 배운 신파의 기준은 사건과 플롯에 상관없이 관객을 일방적인 감정에 빠지게 하고 느닷없는 설정을 들이대 말초를 건드리는 것이에요. 하나의 감정 외에 다른 감정이 들지 않게 강요하는 것이 신파지요. 이 작품에서 관객들이 슬픔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거기엔 용서도 있고, 희망과 위로, 구원도 있다고 봅니다.” ‘미녀는 괴로워’에서의 특수 분장, ‘국가대표’도 컴퓨터그래픽(CG)이 만만치 않은 작품이었다. 인간미 넘치는 따뜻한 이야기를 즐기는 감독이 줄곧 시각적 특수효과(VFX)에 천착하고 있다는 점이 이채롭다. 김 감독은 오히려 되물었다. “제임스 캐머런의 작품을 보면 드라마가 세지 않나요? 저는 감정을 잘 전달하기 위한 도구로서 VFX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야기와 따로 떼어 놓고 생각할 수는 없는 거죠.” ‘미스터 고’의 실패 때문에 다시 VFX 작업을 한다는 게 두려움도 있었지만 숙명 같은 게 느껴졌다고 했다. “극장 가서 보는 영화와 극장 가지 않아도 볼 수 있는 영화의 차이는 점점 두드러질 거예요. 훌륭한 플롯이 없는 일부 할리우드 마블 영화에도 관객들이 열광하잖아요. 그런데도 우리는 왜 안 된다고 할까, 거기에 도전하고 외연을 확장하고 싶은 욕구가 가득했죠.” 김 감독은 ‘신과 함께’가 한국 VFX의 시작점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우리 영화가 산업화된 지 20년 남짓밖에 안 됐어요. 조급해하지 않고 꾸준히 시도하고, 또 좋은 결과가 뒤따르면 용기를 내는 분들이 계속 나올 거라고 봅니다. 사실 이런 영화를 만들기에는 우리는 리스크가 큰 시장이에요. 천만, 천만 하지만 인구의 4분의1, 5분의1이 영화를 본다는 게 솔직히 말도 안 되는 일이거든요.” ‘미스터 고’를 만들기 위해 세웠던 덱스터 스튜디오는 그 한 편만 내놓고 문 닫을 뻔했다. 그런데 영화는 실패했지만 외려 투자가 이어졌다. 덱스터 같은 회사는 존속되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이제 김 감독과 덱스터는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있다. 할리우드 진출이다. ‘마블의 아버지’ 스탠 리와 슈퍼 히어로 프로젝트 ‘프로디걸’을 진행한다. “인생은 참 아이러니한 것 같아요. ‘프로디걸’은 예산이 1억 달러까지는 아니지만 그 중간에 속하는 큰 영화예요. 예정대로라면 내년 말 슈팅에 들어갑니다. 세부 사항을 조율 중이지만 당연히 VFX는 덱스터가 하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소말리아 내전 당시 남북한 대사관에서 일어났던 실화를 다룬 ‘탈출’이라는 작품도 준비하고 있는데, 상황에 따라 순서가 바뀔 수도 있지요.”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2017 결산] 올해의 ‘화성남자 금성여자’ 모아보니

    [2017 결산] 올해의 ‘화성남자 금성여자’ 모아보니

    남자와 여자는 뇌 구조부터 다르다는 말이 있다. 같은 듯 상당히 다른 남녀의 차이는 학계에서도 꾸준히 관심의 대상이다. 2017년 한 해에도 남녀 성별에 따른 차이를 과학적으로 입증한 다양한 실험결과가 공개됐다. 앞서 언급한 ‘뇌 구조의 차이’부터 살펴보자. 미국의 신경정신의학 전문 의료기관인 에이멘 클리닉 연구진에 따르면 여성에게서는 알츠하이머나 우울증, 불안장애 등의 질환이 더 많이 나타나는 반면, 남성에게서는 ADHD나 스스로를 절제하지 못해 발생하는 범죄의 비율이 높다. 연구진은 여성이 남성에 비해 감정이입이 더 쉽고 직감이 뛰어난 이유 뿐만 아니라 우울증과 식이장애, 불안 등에 더욱 많이 시달리는 이유 역시 뇌의 특정 부위가 남성에 비해 더 활성화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했다. 해당 부위는 의사결정을 할 때 활성화되는 전전두피질과 분노 및 두려움, 즐거움 등의 감정과 행동, 욕망 등을 조절하는 둘리계통이라고 부르는 부위다. 즉 여성과 남성의 뇌는 각각의 부위에 따라 활동성에 차이를 보이며, 이것이 성별에 따라 다른 행동과 감정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이다. 남성과 여성에게서 차이를 보이는 것은 뇌 활동성만이 아니다. 남녀 성차별과 관련한 논란이 여전히 끊이지 않는 가운데, 한 연구진은 남녀 임금 불평등의 원인이 여성에게 있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지난 3월 영국 배스대학 연구진은 여성 스스로 잠재적인 수입에 대해 부정적 관점을 지니면 임금 인상과 승진 등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즉, 비관론이 남녀 임금 격차를 벌려놓는다는 의미다. 연구진은 “임금 면에서 여성의 낮은 기대감이 비관적 관점에 의해 촉발된 것이라면, 그들은 계속해서 스스로를 과소평가하고 임금 불평등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것이다. 그것은 남녀임금 격차를 다루는 정책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렇기에 직장에서 여성들의 사회진출을 활발하게 만들기 위한 더 나은 조치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여성 스스로 남성이 더 뛰어나다고 믿는다는 연구결과는 또 있다. 지난 1월 미국 일리노이주립대학 연구진의 연구 결과, 아이들은 만 6세부터 성 고정관념이 생기며, 이 시기 여아는 남성이 여성보다 ‘머리가 좋다’고 믿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번 결과는 여성들이 직업을 선택하는 데 성 고정관념이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여성은 일반적으로 물리학이나 철학 등 재능이 필요한 것과 연관된 분야를 피하는 결과로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남녀 성별에 따른 또 다른 차이는 건강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1인 가구가 늘면서 2017년 한 해 역시 꾸준히 화두로 오른 ‘혼밥’의 경우, 혼밥을 하는 남성이 여성보다 혼밥으로 인해 비만이 될 확률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1월 동국대 일산병원과 인제대 일산백병원 등 공동 연구진은 이러한 현상의 원인으로 남성이 여성보다 외로움을 더 많이 느끼고, 이 때문에 정크푸드 등 건강에 해로운 음식을 더 많이 섭취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지난 11월 이스턴핀란드대학 연구진은 뇌 변화의 관찰을 통해 장기간의 음주가 젊은 여성과 남성에 미치는 영향이 각기 다르며, 특히 여성보다는 젊은 남성에게 더 치명적인 결과를 유발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이밖에도 올 한 해 동안 ‘AI 여성성은 성차별적 선입견의 결과물’(2월 25일), ‘헤어진 연인과 친구로? 남녀 심리 분석’(8월 9일) 등 남녀의 차이를 소재로 한 연구와 기사가 쏟아졌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성별의 차이를 인정하고, 이해와 존중을 도울 수 있는 소식이 더 많이 들려오길 기대해본다. 사진=포토리아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구조 기다린 사람들 많이 구하지 못해서…” 제천 참사에 침통한 소방관들

    “구조 기다린 사람들 많이 구하지 못해서…” 제천 참사에 침통한 소방관들

    29명의 목숨을 앗아간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가 발생한지 닷새째인 25일 화마와 사투를 벌였던 소방관들도 침통해 하고 있다. 구조를 기다린 사람들은 많이 구하지 못했다는 자책감 등이다.초동 대응이 부실했다는 논란도 나오면서 화재 현장에서 생명을 걸고 진압·구조 작업에 나섰던 소방관들의 사기도 많이 떨어진 상황이다. 열악한 소방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제천소방서 소방관들은 지난 21일 오후 화재가 발생한 뒤 며칠 동안 제대로 집에도 들어가지 못한 채 현장을 지켰다. 휴식도 소방차, 구조차 등에서 잠시 다리를 펴고 앉아 있는 것이 고작이다. 지금도 15명이 화재 현장에서 상황실 운영, 화재 감식 지원, 현장 통제 등의 업무를 보고 있지만 대부분 감정·심리 상태를 읽기 힘들 정도로 표정이 없다. 취재진이 사고 현장을 오가는 소방관에게 화재 당시의 상황을 묻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긴 한숨만 내쉬었다. 그러면서 “이번 화재로 평소 친하게 알고 지내던 지인도 한 명 숨졌는데… 지금 무슨 말을 하겠느냐”고 연합뉴스를 통해 말했다. 또 다른 소방관 역시 “제천소방서 전체가 ‘멘붕’ 상태”라며 이번 화재에 대해 말하기를 극도로 아꼈다. 충북도 소방본부의 한 관계자는 “소방서 직원 상당수가 한 다리만 건너면 다 아는 좁은 동네인 제천 출신이어서 사망자 가운데 1∼2명은 평소 알던 사람일 것”이라며 “구조를 기다렸던 사람을 많이 구하지 못했다는 것 때문에 침통해 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최근 화재 4시간이 지난 뒤인 21일 오후 8시 1분까지 희생자와 통화를 했다는 유족 등의 주장이 나오면서 초동 대응 부실이라는 논란에 시달리고 있다. 경찰이 전화 통화내역 조사 등을 통해 희생자들의 마지막 생존시간 등을 조사하는 것으로 알려져 결과에 따라서는 소방당국 책임론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한 소방관은 “화재 현장에 출동하면 생명에 위협을 느끼는 두려움 속에서 일한다. 이런 큰 사건을 겪고 나면 트라우마를 겪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점을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화재 진압 과정에 대한 책임은 엄중히 따져야 하지만, 소방차나 굴절사다리차 등을 소방관 1명이 운전하고 출동할 정도로 열악한 소방시스템도 점검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5년째 내전 남수단에 ‘휴전 선물’… 필리핀은 ‘태풍 악몽’

    5년째 내전 남수단에 ‘휴전 선물’… 필리핀은 ‘태풍 악몽’

    성탄절을 앞두고 지구촌 분쟁지 곳곳에서 휴전 선언이 잇따르며 평화를 기원했다. 그러나 한쪽에서는 성탄절 시즌을 겨냥한 연이은 테러 위협으로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필리핀에서는 태풍으로 200명 이상이 사망하는 등 연말연시에도 재해와 사고로 인한 대규모 인명피해가 지구촌에서 끊이지 않고 있다.성탄절을 맞아 가장 먼저 무기를 내려놓은 곳은 남수단이다. 남수단 정부군과 반군은 지난 21일(현지시간)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동아프리카 정부 간 개발기구’(IGAD)가 중재한 회담 후 휴전 합의를 발표했다. 휴전은 크리스마스이브인 24일 오전부터 시작됐다. 지구촌에서 ‘가장 어린 나라’로 불리는 남수단은 2011년 국제사회의 축복을 받으며 수단으로부터 독립했지만 정치세력 간 고질적 불화로 5년간 내전을 겪으며 수만명이 숨졌다. 3년 넘게 내전 중인 우크라이나도 잠시 총성을 멈췄다. 정부군과 반군은 23일 크리스마스 연휴를 맞아 교전을 멈추기로 했다.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서는 2014년부터 중앙정부의 친서방 노선에 반대하는 친러시아 분리주의 반군과 정부군 간 내전이 이어져 1만명 이상 숨졌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도 24일부터 내년 1월 2일까지 열흘간 공산 반군을 대상으로 한 군사작전을 일방적으로 중단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시리아, 리비아, 예멘 등에서는 휴전 합의가 나오지 않아 성탄절에도 내전이 지속될 전망이다. 올해 빈발했던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테러 위협은 크리스마스 축제를 앞두고도 계속됐다. 22일에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유명 관광지 ‘피어39’에서 테러 공격을 기도한 혐의로 IS를 추종하는 전직 해병대원 에버리트 에런 제임슨(26)이 체포됐다. 그는 인파가 가장 많이 몰리는 크리스마스에 피어39 주변에서 폭탄을 터트려 사람들이 한쪽으로 몰리면 살상을 하려는 계획을 세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21일 호주 멜버른에서는 아프가니스탄 난민 출신 32세 남성이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몰고 인도로 돌진해 한국인 3명을 포함해 19명을 다치게 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특히 중동 무슬림 국가에 사는 기독교도들은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선언한 이후 무슬림 극단주의자들의 표적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 이집트는 내년 1월 7일 콥트교의 크리스마스 축하행사를 앞두고 경찰이 교회 주변을 수시로 순찰하기로 했다. 이스라엘도 예루살렘에 있는 기독교도 성지 주변에 경력을 배치하고 순례자들을 호위할 계획이다. 한편 필리핀은 태풍과 사고로 ‘크리스마스의 재앙’을 겪고 있다. 22일 태풍 ‘덴빈’이 휩쓴 남부 민다나오섬에서 홍수와 산사태가 일어나 200여명이 사망하고 160명 이상이 실종됐다. 23일에는 남부 다바오시 NCCC 쇼핑몰에서 불이 나 최소 37명이 숨졌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길 좀 건넙시다”…도시 탐험 나온 펭귄 화제

    “길 좀 건넙시다”…도시 탐험 나온 펭귄 화제

    차들이 쌩쌩달리는 길가에서 '무단횡단'하는 펭귄이 포착돼 화제에 올랐다. 지난 21일(현지시간) 미국 UPI통신 등 외신은 '도시 탐험'에 나선 겁없는 펭귄의 영상을 사연과 함께 소개했다. 영상이 촬영된 지역은 뉴질랜드 최남단 남섬인 블러프로, 이 때문에 주민들이나 관광객들은 운이 좋으면 펭귄을 볼 수 있다. 바다에서 사냥을 마치고 뭍으로 뒤뚱뒤뚱 올라오는 야생 펭귄을 구경하는 것. 그러나 지난 4일 주민들에게 포착된 이 펭귄은 다른 녀석의 행동과는 전혀달랐다. 주민들이 사는 마을로 펭귄이 직접 찾아온 것으로 특히나 펭귄은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전혀없어 주민들을 따라다니는 것은 물론 함께 사진도 촬영하는 여유를 부렸다. 한 주민은 "이 펭귄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면서 "뒤뚱뒤뚱 걸음이 아닌 마치 토끼처럼 깡총깡총 뛰어다녔다"며 웃었다. 이어 "펭귄이 차들이 지나는 국도변을 무단횡단해 경찰까지 나서 교통을 일부 통제했다"고 덧붙였다. 보도에 따르면 이 펭귄은 머리에 특유의 노란 깃털 장식이 있는 피오르드랜드펭귄이다. 원주민 언어로는 타와키(Tawaki)라 부르는 피오르드랜드펭귄은 희귀종으로 몸길이가 약 60㎝에 달한다. 현지언론은 "피오르드랜드펭귄은 성격이 소심한 것으로 유명한데 이 펭귄은 달랐다"면서 "주민들의 집에 들어가 금붕어를 훔쳐먹기도 한다"고 보도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슬기로운 감빵생활’ 제작진 “10화,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특급 반전”

    ‘슬기로운 감빵생활’ 제작진 “10화,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특급 반전”

    거침 없는 시청률 상승세를 달리고 있는 tvN 수목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이 캐릭터들의 막강 케미를 자랑하며 쉴 틈 없는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21일 tvN 수목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연출 신원호, 극본기획 이우정, 극본 정보훈) 10화가 방송된다. 방송을 앞두고 제작진은 “이번 10화는 크리스마스 선물 같이 시청자들을 깜짝 놀라게 할 특급 에피소드로 구성됐다. 시청자들의 예상을 깨는 반전과 캐릭터들 간의 케미가 폭발적인 회차가 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높였다. 예고에서는 해롱이 한양(이규형 분)과 유대위 유정우(정해인 분)의 조합이 눈길을 끌고 있다. 감옥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한양은 교도관, 수용자를 가리지 않고 다짜고짜 반말을 하고 말끝마다 말장난을 하는 탓에 쉽사리 주먹을 부르는 캐릭터다. 유대위는 한양과는 정반대에 있는 인물. 다나까 말투부터 칼각 잡는 행동까지 천생 군인인 유대위는 교도소 사람들과는 가까워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으로 항상 인상을 쓰고, 자꾸 말을 걸어오는 수용자들을 귀찮게만 여긴다. 10화 예고에서는 할 말은 하고 마는 귀여운 저격수 한양이 까칠한 유대위에게도 반말 폭격을 서슴지 않으며 의외의 꿀케미와 웃음을 전해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극에 완벽히 몰입해 개성 강한 캐릭터 연기와 스펙트럼 넓은 감정 연기를 선보이고 있는 이규형, 정해인 두 배우의 활약과 찰떡호흡도 기대포인트다. 한양과 유대위의 티격태격 케미 외에도 풍성한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다. 10화에서 주인공 제혁(박해수 분)은 맹장수술을 마치고 퇴원한 제혁이 구속을 올리기 위한 훈련에 매진한다. 또, 자신을 포함한 중대원 모두가 목격자라고 밝힌 주상병의 증언으로 유대위 사건의 진실이 밝혀질 수 있을지도 관심을 모은다. 한편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지난 20일에 방송된 9화 시청률이 유료플랫폼 전국 가구 기준,평균 7.3%, 최고 8.6%를 기록하며 큰 폭 상승했다. 이로써 또 한 번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고 케이블과 종편을 포함한 순위에서 5주 연속 1위에 올랐다. tvN 타깃인 2049 시청률도 평균 4.6%, 최고 5.6%로 또 다시 상승했다. 특히 지상파를 포함한 전 채널에서 5주 연속 동시간대 1위에 오르며 수목극 절대강자로서 입지를 단단히 했다. (닐슨코리아, 유료플랫폼, 전국 기준) tvN 수목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매주 수,목요일 밤 9시 10분에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제7회 지방행정의 달인<상] “국민 불편 없게” 하수관 관리 신공법 개발

    [제7회 지방행정의 달인<상] “국민 불편 없게” 하수관 관리 신공법 개발

    국민이 과거보다 나아진 행정의 혜택을 누리는 데는 자신이 맡은 역할을 보다 잘하기 위해 노력하는 공무원들이 있기 때문이다. 행정안전부와 서울신문은 해마다 전국 지방자치단체에서 추천을 받아 ‘지방행정의 달인’을 엄선하고 있다. 이들의 각오와 헌신을 공직사회에 널리 알리고 그들의 결과물 또한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해서다. 올해 선정된 ‘지방행정의 달인’들 이야기를 두 차례에 걸쳐 싣는다.대통령 표창을 받은 유동호(41) 강원 인제소방서 소방위는 전국 최초로 차세대 소방정보통신망을 구축했다. 2004년 강원소방본부 전산특별채용에 합격한 그는 줄곧 소방 정보통신 업무만 담당해 왔다. “소방 정보통신에 한 획을 긋겠다”는 일념으로 그는 시·군 단위로 접수되던 119신고를 도 소방본부로 통합해 운영하는 아이디어를 냈다. 난도가 높은 ‘지휘통제프로그램’을 구축하는 일은 아무것도 갖춰지지 않은 환경에서 해내기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전화망을 구축해 신고를 접수하고 지리정보시스템(GIS)을 활용해 재난현장과 가까운 출동대를 자동 편성하는 시스템을 고안했다.경기 부천시 중4동에서 근무하는 정미숙(49·여) 주무관은 ‘지방 회계제도 개혁의 달인’이다. 국무총리 표창을 받은 그는 공무원 복식부기 회계 프로그램 개발에 기여했고 부천시의 우수한 회계제도를 국내외에 전파했다. 회계학과를 졸업한 그는 회계공무원으로 일하면서 주경야독을 했다. 일이 끝나지 않으면 집으로 가져갔다는 정씨는 어느 날 운동하다가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 가기도 했다. 그가 이토록 열심히 일하는 이유는 “두려움에서 벗어나 배우고 익혀서 국민을 더 이롭게 하고 싶다”다.서울 관악구에서 근무하는 이성연(41) 주무관은 ‘하수 안전의 달인’이다. 행안부 장관 표창을 받은 그는 ‘싱크홀’ 현상을 개선하고자 고품질, 저비용의 노후하수관로 정비 기술인 ‘신공법’을 개발했다. 9급 토목직 공무원으로 시작해 20년 넘게 현장에서 일을 배웠다. 그는 “기술 분야의 달인이 되기 위해서 꼭 석·박사를 따야 하는 건 아닙니다. 저는 오히려 20년 동안 공사 부서에서 근무한 경험을 더 어필했습니다. 창의성과 능동성만 있다면 누구라도 좋은 아이템으로 달인이 될 수 있습니다”라고 전했다.행안부 장관 표창을 받은 인천시 장애인복지과의 홍기석(57) 사무관은 ‘비영리법인 허가기준’ 등 법인운영 관련 지침을 만들어 공직자 역량을 강화한 공로로 ‘비영리법인 운영의 달인’에 올랐다. 공직생활 27년째인 그는 지금도 매일 오전 6시 40분이면 사무실에 출근한다. 항상 공직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임한다는 홍 사무관은 “불경기에 상관없이 꼬박꼬박 봉급을 받는 우리는 더욱 국민을 위해 일하는 공직자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전자식관로표지기’를 도입해 상수관로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한 김정환(48) 광주 상수도사업본부 주사보는 ‘상수도 관리 달인’로 뽑혀 역시 행안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이 덕분에 지리정보시스템 구축 사업 시 상수관로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들어가는 굴착 비용 약 400억원이 절감됐다. 또 어떤 상황에서도 수돗물이 중단되지 않는 상수도 환경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 60대 교수, 여제자 성추행에 장학금 갈취까지

    60대 교수, 여제자 성추행에 장학금 갈취까지

    제자를 성추행하고 장학금을 갈취한 60대 대학 교수에게 실형이 선고됐다.전주지법 형사6단독 정윤현 판사는 여제자를 추행하고 결별을 요구하는 내연녀를 협박한 혐의(강제추행·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로 기소된 전북 모 대학교 교수 A(62)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고 20일 밝혔다. 성폭력치료프로그램 40시간 이수도 명령했다. A씨는 2015년 1월 함께 여행을 가자며 여제자 B(20)씨를 연구실로 불러내 “다리에 살이 쪘다”면서 두 손으로 B씨의 허벅지를 움켜쥐며 “탱탱하네”라고 말하는 등 추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조사 결과 A씨는 장학금을 받은 제자가 전화를 걸어 고마움을 표시하자 “원래 나에게 200만원을 다 줘야 하는데 150만원만 가져오라”면서 150만원을 받는 등 수차례에 걸쳐 장학금까지 뜯어낸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자는 수사기관에서 “A씨가 ‘내 뜻대로 하지 않으면 학점이 안 나갈 것이다. 나한테 잘 보여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너 졸업 안 시킬 수도 있어’라고 말해 두려움을 느꼈다”고 진술했다. 그는 2015년 9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결별을 요구하는 내연녀에게 “배신행위에 대한 대가를 맛보게 해주겠다”란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등 197차례에 걸쳐 불안감을 유발하는 문자를 전송한 혐의도 받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대학교수라는 지위를 이용해 학생들의 돈을 갈취하거나 편취했고 강제추행까지 했다”며 “또 내연녀에게 다수의 불안감을 조성하는 문자메시지를 발송해 그 죄책이 가볍지 않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장관의 책상] 공익신고자 ‘해피엔딩’을 위하여

    [장관의 책상] 공익신고자 ‘해피엔딩’을 위하여

    TV 드라마나 영화 등을 볼 때 “불의를 보더라도 참아야 한다”거나 “차라리 눈을 감아라”와 같은 대사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이는 불의에 맞서거나 사회 부조리를 밝힌 이들이 오히려 해를 입거나 곤경에 처하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은밀히 행해지는 부정부패나 공공이익에 반하는 행위를 신고한 내부고발자를 보호하는 것은 현대 국가의 의무다. 우리나라에도 신고자 보호제도가 있다. 공공부문 부패행위를 신고한 자는 ‘부패방지권익위법’에 따라, 민간부문 부패행위(공익침해행위)를 신고한 자는 ‘공익신고자 보호법’에 따라 보호된다. 신고자를 보호하는 제도가 있음에도 “불의를 참으라”는 말이 통용되는 것은 지금 제도에 보완해야 할 점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신고자 보호를 강화하는 내용의 ‘공익신고자 보호법’이 개정됐다. 공익신고 분야를 넓히고 신고자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강화한 것이 골자다. 기존 공익신고는 국민 건강과 안전, 환경, 소비자 이익, 공정경쟁 등 5개 분야에 한정됐지만, 개정법은 ‘이에 준하는 공공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도 신고 대상에 포함해 신고 대상을 넓혔다. 또 신고로 피해를 입었을 경우 긴급 구조금을 지급해 경제적 피해에 즉시 대처할 수 있게 했다. 이 외에도 해고나 계약 취소 등으로 신고자가 손해를 입은 경우 그 손해의 최대 3배까지 배상하도록 하는 규정이 도입됐다. 이번 법 개정으로 신고자 보호제도가 예전보다 강화됐지만 국민 눈높이에 맞추기에는 여전히 부족한 것 또한 사실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런 문제를 인식해 국정과제에 공익신고자 보호 강화를 포함시키는 한편 국가 투명성 강화를 위한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우선 부패행위에 가담했더라도 신고를 통해 더 큰 부패를 예방한 신고자에게는 반드시 형사책임을 감경 또는 면제해 줘 처벌에 대한 두려움 없이 신고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계획이다. 또 현재 279개인 공익신고 대상 법률을 늘려 신고자 보호 범위를 제도적으로 넓히려고 한다. 아울러 신고로 인한 신분 노출 위험을 줄일 수 있도록 변호사 등 전문가를 통한 비실명 신고를 도입하고, 신고자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현실화하고자 공익신고기금을 조성하는 방안도 마련할 예정이다. 공익신고의 혐의 적발률을 높이는 한편 피신고자에게 반론 기회를 주기 위해 권익위가 신고 사건을 조사·수사기관으로 이첩하기 전에 피신고자 진술을 듣는 사실 확인 절차도 신설할 계획이다. 하지만 불의를 보았을 때 양심에 따라 행동할 수 있으려면 법과 제도 강화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신고자를 조직의 배신자나 사회 부적응자로 바라보는 편견이 있다. 신고 뒤 조직에서 따돌림을 당하거나 같은 분야에 더이상 취업하기 힘든 상황에 처하는 사례가 드물지 않다.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이런 편견이 신고를 저해하는 주요 원인의 하나다. 권익위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22.3%가 사회적 편견 때문에 신고를 꺼리고 있는데, 이는 신고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의 필요성을 잘 보여 준다. 권익위는 신고자를 보다 철저히 보호하기 위해 법과 제도를 정비해 뒷받침하는 동시에 신고자가 ‘청렴한국’ 실현의 주체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인식 변화 노력에도 최선을 다할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공익신고자의 날’을 지정해 부패나 공익신고를 한 사람들을 격려하고 공익을 위한 신고 분위기도 확산하려고 한다. 이렇게 내부고발자들을 보호하는 여러 정책을 통해 불의를 신고한 사람이 보복에 대한 두려움 없이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 공헌자로서 당당히 인정받는 ‘해피엔딩’을 맞이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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