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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의 메카로 간 VR·AR…청년 창업 새 활력으로

    창의 메카로 간 VR·AR…청년 창업 새 활력으로

    “성북구의 다양한 역사, 문화를 바탕으로 한 콘텐츠 개발을 기대합니다.”30일 서울 성북구 동소문로에 위치한 1인 창조기업지원센터에서 김영배 성북구청장은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창업 기업가 30명과 자리를 함께했다. 올해 하반기, 센터 2층에는 청년창업자가 수시로 자유롭게 새 콘텐츠를 체험, 개발할 수 있는 공간인 ‘서울 VR·AR 제작지원센터’가 들어선다. 앞서 구는 서울산업진흥원, 한성대, ㈜트러스트스튜디오 등과 구성한 컨소시엄으로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이 추진하는 ‘2018 지역 VR·AR 제작지원센터 구축 사업’에 선정, 36억원의 사업비를 지원받게 됐다. 김 구청장은 “1인 창조기업지원센터와 ‘도전숙’(1인 창조기업인을 위한 임대주택) 등의 사업을 수행할 때 많은 이로부터 협력과 도움을 받았다”며 “서울 VR·AR 제작지원센터 사업에 선정된 것은 여러분의 땀과 노력이 결실을 이룬 것”이라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다양한 요구를 쏟아냈다. AR 교육 콘텐츠 개발 업체인 ‘유니크유엑스’의 나황균씨는 “많은 주민이 AR 기술을 즐기고 체험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해 달라”고 당부했다. VR 개발 업체인 ‘IT스노우볼’의 김덕규씨는 “1인 창조기업들이 실패에 대한 두려움 없이 지속성을 가지고 도전을 계속할 수 있도록 구와 함께할 수 있는 일감을 마련해 달라”고 제안했다. 김 구청장은 “관련 부서와의 협의를 통해 지역 내 VR·AR 기업과의 상생 방안을 모색해 보고 (6·13 지방선거를 거쳐 부임할) 다음 구청장에게도 관련 내용을 전달하겠다”고 답했다. 347.49㎡ 규모의 센터는 앞으로 콘텐츠 제작을 위한 산·학·관 공동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지원한다. 서울산업진흥원은 센터 구축과 사업을 주관하며, 한성대는 VR·AR 기업의 발굴 및 육성 프로그램을 담당한다. 4개 참여기업은 실증화를 담당한다. 센터에는 제작지원실, 레이싱존, 테스트 데모존, 시뮬레이터존 등을 갖춰 스타트업 및 청년창업자가 언제든지 신규 콘텐츠를 체험, 개발할 수 있도록 돕는다. 지금까지 성북구 인근에는 VR·AR 기술을 시험해 볼 만한 장소가 없어서 관련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었다. 구는 또 8월 준공 예정인 도전숙 10호점에 VR·AR 기업 입주를 지원하고 1층 커뮤니티 공간은 VR·AR 체험존으로 구성할 계획이다. 김 구청장은 “성북구에는 대학이 8개나 있어 창의인재가 풍부한 만큼 더 많은 청년이 VR·AR 분야에 도전할 수 있길 기대한다”며 웃었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 허무하게 끝난 ‘조·올의 꿈’… 북·미 18년 만에 다시 꿈꾼다

    허무하게 끝난 ‘조·올의 꿈’… 북·미 18년 만에 다시 꿈꾼다

    2000년 10월 훈장이 주렁주렁 달린 군복을 입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특사가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을 방문했다. 북한 권력 서열 2위로 김 위원장의 최측근이자 군부를 대표하는 실력자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겸 인민무력부 총정치국장이었다. 사상 처음으로 북한 고위급 인사가 미국 땅을 밟은 것이다.조명록은 백악관에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을 예방하고 이튿날 북·미 관계 개선과 평화체제 구축 의지를 밝힌 ‘북·미 공동 코뮈니케’를 발표했다. 뒤이어 같은 달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은 평양을 전격 방문해 김 위원장을 면담하고 북·미 정상회담 개최에 전격 합의했다. 불가능해 보이던 북핵 문제 해결과 북·미 적대관계 청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까웠다. 성사됐다면 한반도의 운명을 바꿨을 역사적인 첫 북·미 정상회담은 같은 시기에 터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 그해 11월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대통령 당선으로 물거품이 됐다. 그후 북한은 6차례 핵실험을 통해 핵무력을 완성했고 지금에 와서야 다시 북·미 정상회담이 극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18년 전의 아쉬움을 뒤로한 채 지금이야말로 북핵 문제를 해결할 마지막 기회라는 얘기가 나온다. 조명록의 뒤를 이어 31일 북한 고위급 인사로는 18년 만에 미국을 방문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은 조명록과 올브라이트가 못 다 이룬 꿈을 이룰 수 있을까. 북·미 정상회담으로 가는 도정의 마지막 단계인 김영철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만남에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18년 전 조명록의 방미가 이뤄진 때는 미국의 ‘페리 프로세스’ 발표로 북핵 위기가 누그러지고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 완화와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 중단 선언에 이어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면서 한반도 문제의 획기적 진전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진 시점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4·27 남북 정상회담과 5·26 남북 정상회담을 열어 북·미 정상회담을 중재한 것처럼, 당시에도 한국 정부의 활약이 빛났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일의 대화 의지를 확인한 김대중(DJ) 당시 대통령은 회담 직후 황원탁 외교안보수석비서관을 백악관에 급파해 클린턴에게 회담 결과를 자세히 설명했다. 그러면서 “북·미 관계를 개선하려면 김정일 위원장과 직접 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반응은 좋았다. 7월 태국 방콕에서 열린 아세아지역안보포럼을 계기로 북·미는 즉각 첫 외교장관 회담을 열어 김정일의 미국 특사 파견 문제를 협의했다. 김정일은 그로부터 석 달 뒤 특사 파견을 결정했다.샌프란시스코를 거쳐 10월 9일 워싱턴 덜레스 공항에 도착한 조명록은 군복 차림으로 클린턴을 만나 김정일의 친서를 전달했다. ‘북한 인민과 군대가 안보에 아무런 위협이 없다고 확신할 수 있다면 미국이 우려하는 안보 문제 해결이 가능할 것’이라며 관계 정상화를 희망한다는 요지의 친서였다. 클린턴을 평양으로 초청한다는 김정일의 메시지도 전달했다. 이에 클린턴은 “먼저 사전 조율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며 올브라이트의 평양 방문을 제안했다. 이런 북·미 공감대를 바탕으로 올브라이트는 미국 고위층 인사로는 처음으로 2000년 10월 23일 오전 7시 평양 땅을 밟았다. 웬디 셔먼 대북정책조정관, 스탠리 로스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 로버트 아인혼 비확산담당 차관보, 찰스 카트먼 한반도평화회담담당 대사, 잭 프리처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아시아담당 국장 등 선발대 50여명과 기자단 57명 등 210여명이 수행했다. 올브라이트의 첫 일정은 김일성 주석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기념궁전 방문이었다. 김정일 면담은 방북 둘째 날 있을 것으로 예상됐으나, 첫날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올브라이트는 회고록에서 “도착 첫날 점심식사를 하던 중 오후에 예정된 모든 일정이 취소되고 김 위원장을 만나기로 됐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올브라이트는 김정일에게 클린턴의 친서를 전달하고 3시간가량 회담했다. 그는 김정일에게 “북한 미사일과 관련한 만족스러운 합의 없이 내가 클린턴 대통령에게 정상회담을 권유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그러자 김정일은 “북한이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고 판단한 것은 잘못이며, 미사일 문제는 진지하게 검토하겠다”면서 “성실하고 진지하게 대화를 나눈다면 우리가 못 해낼 일은 없다”고 밝혔다.이 자리에서 김정일은 시리아와 이란에 미사일을 수출하는 것은 외화벌이 때문이라고 밝혔다. 회담 뒤 올브라이트는 김정일의 안내로 5·1경기장에서 열린 집단체조와 카드섹션 ‘아리랑 공연’을 관람했다. 당시 평양 군중의 일사불란하고 거대한 매스게임을 보고 놀라는 올브라이트의 표정은 큰 화제가 됐다. 공연 중간에 대포동 미사일 발사를 묘사하는 대목에서 김정일은 올브라이트에게 “저것은 우리의 처음 미사일 발사입니다만 마지막이 될 것입니다”라고 했다. 북·미 관계 개선을 향한 복합적인 메시지가 담긴 말이었다. 북·미 회담은 시간문제로 여겨졌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의회를 장악하고 있던 공화당은 클린턴 대통령의 평양 방문을 반대했다. 우파 전문가들도 북·미 정상회담을 반대했다. 올브라이트는 “그간 추진해 오던 미사일방어(MD) 계획을 클린턴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수포로 돌릴 수 있다는 두려움이 깔려 있었다”고 회고했다. 임기 말의 클린턴은 정치적 반대를 물리칠 동력을 상실했다. 더 큰 문제는 중동 평화협상이었다. 12월이 다가오며 클린턴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문제를 매듭짓는 일에 매달려야 했다. 다급해진 미국은 김정일에게 회담 장소를 평양이 아닌 워싱턴으로 바꿀 것을 제안했지만 북한은 거부했다. 결국 클린턴은 북·미 회담을 포기하고 12월 21일 아침, 우리 정부에 “평양을 방문하지 않기로 했다”고 알려왔다. 29일에는 “중동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벌어진 심각한 폭력 사태에 클린턴 대통령이 중재에 나서게 되면서 방북 일정을 잡기가 애매해졌다”며 평양 방문 포기를 공식 발표했다.훗날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은 회고록에서 “웬디 셔먼 대북정책조정관은 나에게 김 위원장의 ‘시간 개념 부족’을 탓했다. 만일 김정일이 조명록의 방미를 한 달만 앞당겼어도 역사는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란 얘기였다”고 밝혔다. 새로 출범한 부시 행정부는 2001년 3월 워싱턴을 방문한 DJ에게 “대북한 정책 검토를 끝내기 전까지는 북한과 협상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이후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했다. 첫 북·미 정상회담 추진은 이렇게 허무하게 끝났지만 18년 전과 지금은 다른 측면도 많다. 당시는 미국 정권 교체기였지만, 지금은 한·미의 대통령이 모두 임기 초반이다. 18년 전보다는 북·미 정상회담 합의를 지킬 ‘시간적 변수’가 유리한 셈이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보는 이도 숨쉴 수 없는 ‘숨막히는’ 영상

    보는 이도 숨쉴 수 없는 ‘숨막히는’ 영상

    ‘1분 43초’의 짧은 동영상.  발생 장소는 시야가 흐릿한 뿌연 바닷속. 물 속 사람이 숨 쉴 때 발생하는 긴박한 물거품 소리만 들린다.  플레이 버튼을 누른 후 영상에 눈과 귀를 고정시킨 순간, 영상이 플레이된 ‘1분 20초’ 동안은 모든 신경이 곧추서 손톱을 깨물며 초초하게 지켜볼 수 밖에 없게 됐다. 숨을 쉴 수도 없었다.  영상 시작 ‘1분 21초’가 지나서야 비로소 숨을 쉴 수 있게 됐다.  지난 23일 외신 케이터스 클립스는 물 속 3미터 깊이에서 산소 탱크가 고장나 목숨을 잃을 뻔한 친구를 살린 ‘숨막히는’ 순간의 영상을 소개했다. 이 모습은 평생 ‘생명의 은인’으로 남을 구조자 친구의 1인칭 시점 영상에 고스란히 담겼다. 영상을 다 보고 나서도 두려움과 무서움이 좀처럼 안도감으로 바뀌지 않는다. 그만큼 무시무시한 순간을 봤기 때문이다.  지난 19일(현지시각) 호주 서부 퍼스(Perth) 연안 탁한 바닷속에서 닉 버크(Nick Burke·37)란 남성이 매트 헨더스(Matt Henderson)의 ‘도움’을 받기 위해 필사적으로 달려오는 모습이다. 친구 앞으로 온 닉은 자신의 고장난 산소마스크를 벗고 친구의 산소마스크를 입에 문다. 그리고 미친 듯이 숨을 쉬는 모습이다.  이 두사람은 30분간 물 속에서 잠수하는 중, 친구 매트의 장비가 고장나 산소를 잃어가고 있는 걸 서로 눈치챘다. 순간 친구 닉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가지고 있던 여분의 비상용 산소 마스크를 꺼냈고, 매트는 필사적으로 그걸 받아 입에 물고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결국 매트는 친구 닉이 제공한 산소마스크 덕에 안전하게 수면 위로 부상할 수 있었다. 위험한 순간을 현명하게 판단하고 지혜로운 대처능력을 보인 두 친구. 앞으로의 인생에 ‘산소’ 같은 친구 이상의 끈끈함이 기대된다. 사진 영상=STORYTRENDER/유튜브 박홍규 기자 gophk@seoul.co.kr
  • 물뱀을 장난감 다루듯 갖고 노는 여성

    물뱀을 장난감 다루듯 갖고 노는 여성

    큰 물뱀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장난감 다루듯 ‘가지고 노는’ 한 미모의 여성이 화제다. 지난 25일 화제의 콘텐츠를 소개하는 유튜브 채널 바이럴호그(ViralHog)는 큰 물뱀을 손으로 잡고 다양한 포즈를 영상에 담아낸, 속된 말로 ‘겁 상실한’ 제시카(Jessica)란 이름의 여성을 소개했다. 지난 20일(현지시각) 미국 아칸소(Arkansas)주 벤턴(Benton) 지역 설린(Saline)강에서 촬영된 영상 속엔 소녀로 보이는 앳된 여성이 얕은 강 물속에서 꽤나 커 보이는 다이아몬드백(Diamondback) 물뱀 한마리를 잡고 있는 모습이다. 놀라운 건 소녀의 표정에선 어떠한 두려움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다이아몬드백 물뱀이 독이 없는 걸로 알려져 있다고 하지만 저 큰 입으로 물리면 아픈 건 당연지사 일터. 하지만 뱀이 입을 쩍 벌리며 소녀를 공격하는 순간에도 여유로운 몸동작을 선보이며 물리지 않는 묘기까지 선보인다. 뱀을 만지는 것 자체만으로 소름 돋는 일반인들에겐 감히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일상 속에서 이런 종류의 경험을 자주 접하지 않았다면 나올 수 없는 동작이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 소녀와 영상을 찍은 가족은 파충류 동물들을 자주 접한 걸로 알려졌다. 모험을 즐기는 가족인 셈이다. 그들은 여러 곳을 탐험하면서 다양한 뱀들을 잡고 다루는 모습을 영상에 담아왔다고 한다.사진 영상=ViralHog/유튜브 영상팀 seoultv@seoul.co.kr
  • 오월 광주의 고통… ‘스무 살 도망자’ 38년 만의 고백

    오월 광주의 고통… ‘스무 살 도망자’ 38년 만의 고백

    갓 스무 살 대학 신입생이던 그는 정치적 상황이나 항쟁의 배경 따윈 이해하지 못했다. 시민들이 계엄군에게 무참히 짓밟히고 끌려가는 장면을 보면서 ‘전쟁’의 소용돌이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다. 1980년 5월 21일 당시 광주 금남로 전남도청앞 시위대 제1선에서 돌멩이로 계엄군과 맞서다가 집단발포 현장에서 리어카에 실린 처참한 떼죽음과 마주쳤다.분노를 넘어 “싸워야겠다”는 의지가 퍼뜩 머릿속을 휘감았다. 두려움에 떨며 금남로를 빠져나온 그는 서구 양동시장 가까이에서 시민군에 편입됐다. 계엄군은 외곽으로 철수했지만 언제 어떻게 그들이 시내로 쳐들어올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카빈 소총을 건네받고 동구 지원동 일대에서 야간 습격에 대비해 초병으로 날밤을 지샜다. 죽음의 공포를 안고 도심과 외곽을 오가던 며칠 뒤 짬을 내 옷을 갈아입으러 하숙집에 들렀다. 때마침 아들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위험을 마다하지 않고 광주로 올라온 부모와 극적으로 마주했다. 다시 항쟁 지도부가 자리한 도청으로 되돌아갈 참이었다. 시민군이 진압된 27일을 이틀 앞둔 터였다. 오십리 길을 한걸음에 달려온 어머니 발바닥에 난 물집을 보고 울먹였다. 고향인 전남 순천으로 내려가자는 말을 뿌리칠 수 없었다. 이후 시민군이 진압된 ‘광주 소식’을 접한 스무 살 청년은 밤낮으로 술에 매달렸다. 약국에 들러 수면제 한 움큼을 산 뒤 순천만과 가까운 하천 다리 밑으로 발길을 돌리곤 했다. 기억이 정지된 상태에서 한입에 알약을 털어넣었다. 주민에게 발견된 그는 사흘쯤 뒤에야 의식을 되찾았다. 록과 헤비메탈 음악에 심취한 풋내기 대학생, 음악다방 DJ가 되겠다는 소박한 꿈은 ’광주의 5월’과 맞닥뜨리며 어두운 기억 속으로 사그라졌다. 5·18 민주화운동 때 ‘탈출’한 자책감에 시달리다 자살까지 시도했던 김담연(필명·57)씨는 ‘스무 살 도망자’(전라도닷컴 펴냄)란 저서에서 38년간 쌓인 트라우마를 잔잔히 녹였다. 그는 29일 “최근 흥행한 영화 ‘택시 운전사’가 나만의 비밀로 여기던 기억을 소환했다”며 희미하게 웃었다. 199쪽 책에는 닷새에 걸친 아린 기록이 고스란히 담겼다. 그는 책을 통해 “그 전쟁(5·18)을 제외하고는 죽음을 기도할 만한 어떠한 사유도 없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현재 개인사업을 하며 독신으로 살고 있다. 오수성 광주트라우마센터장은 추천사를 통해 “5·18 현장을 목격한 누구라도 그 고통의 기억을 지우기 힘들다. 지금도 ‘5월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단면을 나타낸다”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왜 거부 못하냐고요? 우리에게 카메라는 흉기예요”···모델의 하소연

    “왜 거부 못하냐고요? 우리에게 카메라는 흉기예요”···모델의 하소연

    “면접할 때 촬영 콘셉트를 설명하다가 갑자기 ‘터치(스킨십)하게 해주면 시급을 올려주겠다’면서 시급 10만원 이상을 불렀어요. 그러다가 성관계를 요구하면서 ‘시급을 20만원 이상 쳐주겠다’는 거예요. 스킨십을 해야 서로 편한 분위기가 만들어져 촬영 때도 잘 하지 않겠냐면서요.”29일 만난 모델 A씨는 최근 한 사진작가에게서 받은 불쾌한 제안을 털어놨다. 작가는 “딱 2시간만 만나면 40만~50만원을 그냥 벌어가는 거 아니냐”면서 오히려 좋은 제안을 한 듯한 표정이었다. “스킨십을 해서 서로 편한 분위기를 만들어야 촬영도 잘 하지 않겠냐고 하더라고요. 기분이 정말 더러워서 얼른 그 자리를 떴습니다.” 수년 동안 모델 활동을 한 A씨에게 이런 제안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또 다른 사진작가가 비키니 수영복 촬영을 하다가 느닷없이 “개인적으로 소장만 하겠다. 절대 보장한다”면서 상의 탈의를 요구했다. 그때도 A씨는 거절했다. A씨처럼 작가의 요구를 거절할 수 있는 모델은 많지 않다. 이런 제안은 대부분 경력이 짧은 모델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행여 거절했다가 일거리가 사라질까, 해코지를 당할까 두려울 수밖에 없는 약자를 향해 음흉한 손길을 건넨다. 최근 불거진 ‘스튜디오 비공개 촬영회 성폭력 사건’도 이런 구조 속에서 벌어진 일이다. 비록 피해자와 가해자가 진실공방을 벌이는 양상이 됐지만, 비공개 촬영회에서 성폭력은 분명히 존재한다. “이거 다 알고 있던 건데”, “프로 작가들도 아닌데 말해봤자 금방 묻히지”, “워낙 뿌리 깊은 문화처럼 자리 잡았는데 달라지겠어?” 이런 생각 속에서 사진계에 만연한 성폭력 문제는 개선되지 않는다. ‘언젠가 터지긴 하겠지’라면서도 묵인했던 것은 일부 치부가 전체의 문제로 확대되는 것을 우려했을 수도 있고, 자연스럽게 문화로 자리잡아 무감각해졌던 것일 수도 있다. 어떻게 폭력이 발생하고, 왜 성폭력이 은폐됐는지, 무엇이 성폭력 범죄 고발을 어렵게 하는 것일까. 페미니스트 사진작가 모임 ‘유토피아’의 곽예인 대표는 “밀폐된 공간에서는 스튜디오 실장 또는 사진작가가 어떤 짓을 할지 몰라 당장 저항을 할 수 없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고 망설이는 중에 이미 신체 일부가 카메라에 찍혀 ‘사진을 유포하겠다’는 협박을 받는 일이 정말 많다”고 말했다. 페이스북 페이지 ‘미투 대나무숲’에 올라온 한 피해 사례도 여기에 해당한다. 아르바이트 일자리를 찾다가 피팅 모델 구인 광고를 발견한 B씨는 면접을 보러 한 스튜디오를 찾았다. 면접장소는 침대가 있는 촬영실이었다. B씨는 실장에게 짧은 원피스를 받아 들고는 한참을 고민했다고 했다.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실장을 급기야 B씨에게 옷을 벗으라고 요구했고, 성추행과 성희롱이 이어졌다. “다시는 가고 싶지 않았지만 이미 사진이 찍힌 상태였고, 계속 걸려오는 전화에 무서워서 다시 두 번 정도를 갔었습니다. 그때마다 40~50대 정도로 보이는 남성 여러 명이 카메라를 들고 서 있었고, 저는 침대, 소파에서 그들이 요구하는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하지만 사회는 저항하지 않은 피해자가 느낀 혼란을 ‘결국 네가 원해서 한 것 아니냐’는 동의의 증거로 간주하기 일쑤다. 흉기를 들고 있지도 않은데 저항하지 못한 ‘두려움’을 단순히 ‘순응’으로 해석한 것이다. 곽 대표는 “모델들에게는 사진작가의 카메라가 흉기”라고 일축했다. “저항할 수 없게 하는, 억지로라도 웃음을 띠게 만드는 흉기죠. 사진에는 그 미소만 남습니다. 결국 ‘저런 사진도 웃으며 찍는 애’로 낙인이 찍히는 거죠.” 모델들은 사이버 성폭력의 피해자로 이어지기도 한다. 일거리를 찾으러 모델 구직 사이트나 인터넷 카페에 프로필과 사진을 올리면 연락을 해오는 10명 중 9명은 노출 컨셉을 요구한다. 또 성기 또는 특정 애무 행위를 가리키며 성희롱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유토피아’의 김지혜 작가는 “아마추어 모델은 사진계에서 최약체”라고 단언했다. 업계 규모가 좁다보니 소문이 금새 퍼질 수 있는 구조라 모델이 생태계 사슬의 바닥에서 올라오지 못한다. “사진계가 돌아가는 사정에 대해 잘 모르고, 인맥도 없다보니 ‘말을 듣지 않으면 내가 아는 사람들에게 다 말해서 널 데뷔도 못하게 만들어버리겠다’는 사진작가들의 협박이 가능하다”고 김 작가는 부연했다. 모델 일이 생업인 사람들에게는 이런 소문이 앞으로의 커리어에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에, 스튜디오의 도를 넘는 요구에 맞서기가 거의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라는 것이 피해를 호소하는 모델들의 한결같은 사정이다. “보통 촬영 계약서를 안 써요. 요구했다가 ‘까다로운 애’로 찍히면 일을 못 받으니까요. 계약서를 쓴다고 해도 촬영 일자·장소·컨셉까지만 나와 있지 촬영 포즈, 노출 수위까지 적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처음엔 ‘프로필 사진을 찍어주겠다’, ‘네가 특별히 예쁘다’라고 구슬려서 사진을 찍은 다음에 그 사진을 포르노 사이트에 팔아 넘기는 경우도 많아요. 이러면 정말 인생 자체가 끝인 거예요.”3년 전 ‘합정 모 스튜디오 비공개 촬영회’에서 성폭력을 당했다고 지난 17일에 폭로한 C씨도 계약서를 갖고 있었지만, 결국 촬영회 때 찍은 사진은 한 야동 사이트에 유포되고 말았다. 곽 대표는 “정말 놀랐던 것은 중·고교생 등 미성년자를 상대로도 이런 범죄를 많이 저지른다는 것”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최근 유명 사진작가 ‘로타’와 배병우씨의 성폭력 사건이 불거지기 전부터 사진계에서는 성폭력 사건이 계속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사진계에는 성폭력 사건을 처리할 징계 장치와 분쟁 해결 기구가 전혀 없는 실정이다. 김 작가는 “협회(한국사진작가협회·한국프로작가협회)가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움직이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면서 “사진계에 여성 인권 문제를 다루는 별도의 기구나 단체가 없다보니 만일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 사실을 공론화한다 해도 본인이 혼자 다 해결해야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오히려 공론화가 사이버 불링(Cyber Bullying·모바일로 언어폭력을 가하거나 허위 정보를 퍼뜨리는 행위)을 야기할 수도 있다. 괴롭힘과 의심을 받는 쪽은 결국 또 피해자일 뿐이다. 곽 대표는 로타·배병우 작가의 사건을 떠올리면서 “성폭력 가해자가 유명인이라면 ‘이들의 명성을 이용한 악의적인 공격’이라던가, ‘양쪽 말을 다 들어봐야 한다’는 식의 가해자 옹호 발언도 적지 않게 나온다”고 했다.‘스튜디오 비공개 촬영회 성폭력 사건’에 대한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가해자로 지목된 스튜디오 실장이 피해 모델 C씨와 주고 받은 카톡 대화 내용을 언론에 흘렸다. 공개된 메시지에는 일단 E씨가 스튜디오 실장에게 먼저 연락해 촬영 약속을 잡았다는 내용만 보인다. 일부 언론은 강제 촬영이 아니었다는 피의자의 주장만을 강화해 사실장 ‘2차 가해’를 하고 있다. C씨는 또다시 한 언론과 인터뷰에 나서 “실장이 ‘내가 네 사진을 갖고 있다. 생각 잘해라’ 항상 이렇게 얘기했다. 협박으로밖에 안 들렸다”면서 “가장 무서운 건 유출이었다. ‘그러면 내가 저 사람들 심기를 건들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컸다”고 밝혔다. 양측의 진실은 수사를 통해 밝혀질 전망이다. 그러나 ‘사진계의 최약체’ 아마추어 모델을 노리는 업계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성폭력 피해자는 계속 양산될 수밖에 없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北 레짐체인지 없다’ 듣고 싶은 김정은… 트럼프가 확답 안 해

    ‘北 레짐체인지 없다’ 듣고 싶은 김정은… 트럼프가 확답 안 해

    북핵 문제를 둘러싼 한반도 정세가 연일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극적인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돼 65년 만에 한반도에 평화체제가 도래할 것이라는 기대가 한껏 높아졌다가 갑작스런 북·미 정상회담 취소 발표로 분위기가 급속 냉각되는가 싶더니 두 번째 남북 정상회담이 전격적으로 열려 다시 훈풍이 부는 등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고 있다. 자고 일어나면 날아드는 충격적인 뉴스로 한반도의 앞날이 시계제로인 가운데 방한 중인 박한식 미국 조지아대 명예교수를 28일 서울에서 만났다. 북한과 미국을 동시에 잘 아는 대표적 전문가인 박 교수는 이날 인터뷰에서 북·미 정상회담을 둘러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속내, 북한의 핵 포기와 미국의 대북 체제보장이 가능할지 등에 대해 특유의 식견을 드러냈다.→문재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남북 정상회담이 한 달 사이 두 차례나 열렸고, 북·미 정상회담 개최도 논의되는 등 연일 숨가쁜 국면이 펼쳐지고 있다. 현재의 한반도 정세가 과거와 다른 점이 있을까. -무엇보다 정상들이 누구인지가 과거와 다르다. 이런 방식의 정상회담은 과거엔 생각도 못 했다. 정상과 정상이 만난다는 건 사전에 상당한 준비를 해야 한다. 지난 26일 두 번째 남북 정상회담만 해도 준비를 전부 생략하고 정상들이 만났다. 북·미 정상 간 만남도 현재 준비 부족 상태다. 따라서 진통이 있을 수밖에 없다. 참모 중 누구한테 얘기를 듣느냐에 따라 극과 극의 의견 나오니까 트럼프도 지금 정신이 없는 상태다. 트럼프는 이거(북·미 정상회담) 하면 국제적 이목과 찬사를 받겠다 싶은 생각, 어느 대통령도 못한 걸 내가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덕으로 알고 고맙게 생각한다. 물론 결과가 어떻게 날지는 모른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같은 사람이 대통령이라면 공이 어디로 튈지 누구나 안다. 하지만 트럼프는 어디로 튈지 모른다. 그런데 지금은 그게 오히려 낙관적인 요인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취소한다고 했다가 다시 할 수도 있는 것처럼 말하는 등 오락가락하는데 이유가 뭘까. 협상 전술일까. -트럼프는 원래 결정을 못 하는 사람이다. 원래 그런 사람이다. 내가 교수로서 얘기한다면 사고 능력이 굉장히 떨어지는 사람이다. 그래서 진짜 이 회담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자기 혼자 진심으로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다. →북한이 진정으로 핵을 포기할 것으로 보나. -북한은 핵을 포기할 의사가 절대적으로 있다. 조선반도에 핵이 없어야 한다는 게 김일성의 유훈이다. 북한은 지금도 김일성이 지배하는 나라다. 북한에서 김일성의 유훈은 성경 말씀과도 같다. →핵을 포기했다가 나중에 미국이 변심하면 무장해제 상태가 될 것으로 걱정하지 않을까. -북이 핵을 포기한다는 것은 현재 갖고 있는 핵무기와 핵시설을 포기한다는 의미다. 그걸 포기하더라도 핵을 만들 수 있는 기술과 인력, 경험, 자원은 여전히 남는다. 북한은 이미 핵보유국인 것이다. 갖고 있는 핵은 없앨 수 있지만 핵을 다시 만들 능력은 영원히 자기 것이다. 핵보유국이란 핵탄두를 지금 몇 개 보유하고 있느냐가 아니라 핵을 언제라도 만들 수 있는 나라를 말한다. 따라서 북한이 말하는 비핵화는 현재의 핵무기를 없애고 더이상 핵을 만들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완전한 비핵화의 대가로 북한 체제를 보장해 줄까. -미국에게 북한은 악마 내지 불량국가이기 때문에 쉽게 체제보장을 해 줄 수 없을 것이다. 북한 입장에서도 적(敵) 중의 적인 미국한테서 제재받으면서 그 고생을 해 왔는데, 미국이 체제보장을 해 준다는 말을 쉽게 믿겠나. →얼마 전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은 안전할 것이고 계속 북한 지도자로 있을 것”이라며 체제보장성 발언을 하지 않았나. -지금 김정은이 원하는 건 개인적인 신변 보장이 아니다. 국가지도자인데 ‘너 혼자 잘살게 해 줄테니 핵 포기해’라고 하면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김정은을 공격 안 하겠다’는 정도로는 북한을 설득하지 못한다. 북한이 미국에 원하는 답은 ‘레짐 체인지’(정권 교체)를 안 하겠다는 약속이다. 그런데 아직 그런 말을 트럼프가 안 하고 있다. 미국이 북한의 체제를 진정으로 보장해 줄 준비가 안 돼 있는 것이다. →지난 26일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이 비핵화를 할 경우 미국에서 체제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것을 확실히 믿을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을 문 대통령에게 표출했다는데. -나도 트럼프를 못 믿겠다. →그렇다면 북·미 정상회담은 열리지 않을 것으로 보나. -정상회담은 할 거다. 악수는 할 거다. 트럼프 앞에 노벨상이 아른아른하니까. 하지만 최종적인 합의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번 회담에서는 앞으로 잘해 보자는 원론적 합의를 하고 이후 계속 협상을 통해 진전시키는 방법이 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왜 북·미 정상회담을 하려는 걸까. -트럼프는 돈을 최우선시하는 사람이다. 북한을 봉쇄하고 공격하는 데서 오는 금전적 이득과 북한과 거래하고 수교하는 데서 오는 금전적 이득 사이에서 계산을 하는 사람이다. 북한이 갖는 지경(地經)학적 이득이 있다는 판단이 섰으니까 북한과 정상회담을 한다고 한 거다. 특히 나진·선봉 지역과 북한의 우수한 노동력, 지하자원은 상당한 이득이 될 수 있다. 강경론으로 무기를 파는 것보다 더 수익이 난다고 보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트럼프가 북한만 놓고 계산한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마음속엔 (경쟁국인) 중국에 대한 견제가 더 크게 자리하고 있다. 북한 경제를 미국 자본이 개발해 북한을 중국에서 떼어 놓으려는 의도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 취소 발표를 하자 북한이 이례적으로 우호적인 담화를 내며 트럼프 대통령을 달래는 모습을 보였는데, 북·미 관계 개선을 북한이 진심으로 하고 싶은 건가. -그렇다. 북한은 대화를 함으로써 경제제재를 완화시키고, 경제 사정을 좋게 하고 싶어 한다. 그건 북한 입장에서 꼭 필요한 것이다. →이런 국면에서 한국 정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중매 역할을 잘해야 한다. 미국 입장에서 북한을 설득하고, 북한 입장에서 미국을 설득해야 한다. →문 대통령이 ‘한반도 운전자론’으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지 않나. -잘하고 있는 것도 있지만, 한·미 군사훈련 규모를 줄이는 문제 등을 좀더 과감히 해야 한다. 80%대의 압도적인 여론 지지를 바탕으로 보수층의 눈치를 보지 말고 나아가야 한다. ‘촛불혁명’의 의미가 무엇이겠나. 한·미가 연합군사훈련을 할 때 평양에 여러 번 있어 봤다. 한·미가 훈련을 하면 평양은 사이렌이 울리고 등화관제를 하고 마비가 된다. 전쟁이나 다름없다. 자기들이 언제라도 공격당한다는 걱정을 하니까 한사코 군사훈련에 대한 거부감과 두려움을 갖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이 안 되고, 비핵화가 안 되면 북한을 군사적으로 공격할 수 있다고 암시하기도 하는데 가능성이 얼마나 된다고 보나. -얼마든지 있다고 본다. 그 가능성을 없애야 한다. 그게 문재인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이다. →통일이 어느 날 갑자기 벼락처럼 올 것으로 보는가. -어떤 통일이냐에 따라 다르다. 동독이 서독한테 흡수되는 식의 통일이라면 안 된다. 북한 스스로 자본주의화해서 남쪽과 비슷한 국가가 되는 것은 북한이 원하지 않고, 남한이 사회주의 국가가 되는 것도 안 된다. 따라서 연방제 통일이 가장 합리적이다. 김상연 정치부장 carlos@seoul.co.kr ■세계적 北전문가 박한식 교수는 카터-김일성 만남·빌 클린턴 평양행 주선… 50여 차례 방북 1939년 만주에서 태어났다. 해방 시기 평양으로 건너가 피난민 수용소 생활을 하다 분단될 때 할아버지의 고향인 경북 청도로 왔다.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아메리칸대에서 석사, 미네소타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1971년부터 조지아대에서 국제관계학을 가르쳤다. 조지아 주지사였던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을 통해 덩샤오핑을 만났고, 그의 도움으로 평양 땅을 밟은 이후 50여 차례나 방북했다. 이후 카터와 김일성 주석의 만남을 중재했고, 미국 여기자 2명이 억류됐을 때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을 주선해 석방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이처럼 북·미 사이에 깊숙이 관여한 그는 ‘북·미 관계의 설계자’란 별명을 얻었으며, 지금도 BBC, CNN 등 주요 언론에서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는 세계적인 북한 전문가다. 최근 ‘선을 넘어 생각한다’는 제목의 한반도 문제 관련 책을 펴내는 등 왕성한 집필 활동도 계속하고 있다.
  • 50대 중년의 5·18고백 ‘스무살 도망자’ 책 나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때 ‘시민군’으로 참여했다가 ‘탈출’한 50대 중년의 고백이 책으로 나왔다. 항쟁의 중심지에서 벗어난 죄책감에 시달리다 자살까지 기도했던 김담연(57·가명)씨는 ‘스무살 도망자’(전라도닷컴 펴냄)란 책을 통해 자신이 38년간 겪어온 트라우마와 아픔을 잔잔히 전했다. 그는 “최근 흥행한 영화 ‘택시운전사’가 그동안 나만의 비밀로 간직해 온 5·18의 기억을 소환했다”고 말했다. 199쪽짜리 책에는 그가 대학 하숙집에서 처음 목격한 계엄군의 만행과 데모대에 합류한 과정,총을 매고 시민군에 뛰어든 사연,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고향 순천으로 향했던 과정, 자살을 기도한 기억 등이 고스란히 담겼다. 갓 스무살 대학 신입생이던 그는 당시 정치적 상황이나 항쟁의 배경 따윈 이해하지 못했다. 시민들이 계엄군에 무참히 폭행당하고,끌려가는 장면을 보면서 항쟁의 중심으로 뛰어들었다.1980년 5월 21일 옛 전남도청앞 시위대의 제1선에서 돌멩이로 계엄군과 맞서다가 집단발포가 이뤄진 현장에서 시민들의 죽음을 목도했다. 공포와 두려움에 떨며 금남로를 빠져 나온 그는 서구 양동시장 인근에서 시민군에 편입된다. 카빈소총을 지급받고 광주 동구 지원동 일대에서 계엄군의 야간 습격에 대비해 초병으로 날밤을 지새운다. 21일 오후 계엄군이 외곽으로 철수한 이후라서 시민군들이 광주 외곽도로를 지키던 때였다. 언제 어떻게 계엄군이 시내로 쳐들어올 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는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며 대오를 지키다가 옷을 갈아입기 위해 잠시 하숙집에 들렀던 차에 순천에서 올라온 부모의 손에 이끌려 고향으로 내려간다. 5월 27일 전남도청 진압작전이 이뤄지기 2~3일 전이었다. 고향에서 ‘광주 소식’을 접한 스무살 청년은 밤낮으로 술에 매달렸다. 약국에 들러 수면제 한움큼을 산 뒤 수천만이 가까운 하천 다리밑으로 갔다. 때마침 부근을 지나던 주민에게 발견된 그는 3일쯤 이후에 병원에서 의식을 되찾았다. 록과 헤비메탈 음악에 심취한 풋내기 대학생의 꿈은 ’광주의 5월’과 마주하면서 터널속 같은 어두운 기억 속으로 사라졌다. 그는 책을 통해 “(광주에서) 나만 빠져나왔다는 그 심정이 사건을 유발할 정도의 극심한 중압감이 었는지도 여전히 가늠할 수 없다.하지만 그 전쟁(5·18)을 제외하고는 죽음을 기도할만한 어떠한 사유도 없었다”고 고백했다.그는 한때 언론인으로 활동했고, 지금은 개인사업을 하며 독신으로 살고 있다. 오수성 광주트라우마센터장은 추천사를 통해 “5·18현장을 목격한 누구라도 그 고통의 기억을 지우기 힘들다”며 “그는 어렵게 숨겨진 80년 5월의 자기 이야기를 했고,그 순간부터 자기와의 화해가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6·13지방선거 광명시장] 박승원 더불어민주당 후보, “자치분권시대 선도하는 광명시 만들겠다”

    [6·13지방선거 광명시장] 박승원 더불어민주당 후보, “자치분권시대 선도하는 광명시 만들겠다”

    박승원 경기 광명시장 후보는 도의회 더불어민주당 대표의원을 맡아 민생연정을 이끌었다. 지난 2월 당 정책위원회 부의장에 임명돼 정책통이라는 평가도 받는다. 특히 박 후보는 문재인 정부 대통령 소속 지방자치발전위원회 위원을 비롯해 전국자치분권개헌 추진본부 공동대표로 자치분권 개헌 활동을 펼치고 있다. 박 후보는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과 학창시절 특별한 인연이 있다. 박 후보가 한양대 총학생회 사회부장으로 활동할 때 후배인 임 비서실장이 차장이었다. 현재는 더 좋은 나라, 더 큰 나라를 위해 광명과 청와대에서 각자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박 후보는 “임 비서실장과의 인연을 문재인 정부와 연결하는 좋은 인연으로 이어져 광명발전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음은 박 후보와의 일문일답. ⇒왜 광명시장이 되려고 하나. —시민운동과 현실정치에서 쌓은 경험을 살려 광명시를 시민이 당당한 시민자치 공화국으로 만들고 싶다. 시민참여를 늘리기 위해 더 다양한 시스템을 갖추겠다.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사안들은 숙의민주주의제를 통해 결과를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틀로 만들겠다. 광명동의 뉴타운 지역과 뉴타운 해제지역 등 대규모 개발사업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광명시형 지속가능한 발전 목표를 세워 준비하겠다. 지역활동과 정치경험, 시대정신을 꿰뚫는 판단력과 리더십으로 다른 후보들보다 일을 잘할 자신이 있다. ⇒민주당 경선에서 탈락한 후보들을 보듬을 원팀방안은 . —함께 경쟁했던 김경표·문영희·김성순 후보에게도 깊은 위로를 전하겠다. 저 혼자만의 승리가 아니라 세 분 후보 몫까지 해내라는 시민들의 엄중한 명령이다. 우리는 모두 생각과 가치관이 같은 더불어민주당의 원팀이다. 이미 예비후보 등록때 모든 후보들에게 ‘아름답고 깨끗한 경선을 치른 후 결과에 승복하고 민주당의 승리를 위해 모두 원팀으로 하나가 되자’고 제안한 바 있다. 공동정책 개발 등 경선에 참여한 모든 후보가 원팀으로 협력해 나가겠다. ⇒시장 후보로서 장점은 뭔가. —지난 20년간 광명을 떠난 적이 없다. 광명은 정치적인 고향이자 마음의 고향이다. 광명경실련, 광명YMCA 등 시민운동과 평생학습원 사무국장, 시·도의원 등 여러 분야에서 역량과 경험을 쌓았다. 저야말로 지역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잘 해결할 수 있다. 또 시대정신인 자치분권의 전문가이기도 하다. 현재 대통령 소속 지방자치발전위원회 위원과 전국자치분권개헌본부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전문성을 인정받은 자치분권 시대의 적임자다. 경기도에서 남경필 도지사와 더불어 민생연정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경기 민생연정을 통해 통합과 협치를 증명했다. ⇒가장 핵심 공약은. —먼저 서울시립근로청소년복지관 부지 2만평을 광명시민 품으로 되돌려놓겠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서울시와 협의하고 시민의견을 담아 광명 개발구상안을 발표하겠다. 광명동 중심의 맞춤형 도시재생으로 새로운 주거문화를 만들겠다. 또 고교무상교육을 조기에 실시하겠다. 우선 2019년도 고교3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47억원을 투입하겠다. ⇒남북관계가 급진전되고 있다. 대북 관련 교류시책이 있나.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이제 미북정상회담이 다음달 열린다. 곧 역사적 ‘봄날’이 올 것이다. 아시다시피 광명시는 전임 양기대 시장이 유라시아 대륙철도 사업 당위성을 내세우며 KTX광명역을 유라시아 대륙철도의 출발역으로 육성하는 사업을 추진해 왔다. 남북철도를 연결해 유라시아 대륙철도로 이어진다면 평화와 번영의 물꼬를 트는 셈이다. 그러면 남북이 공존·공영하는 새시대에 KTX광명역은 통일철도 시대를 여는 초석이 될 것이다. 광명시가 광명~개성간 유라시아 평화철도 사업과 관련해 북한 측에 개성방문을 요청한 상태다. 시장취임 뒤 성사된다면 기꺼이 개성을 방문해 북측 관계자들과 논의해 나가겠다. ⇒도시재생사업지 곳곳에서 주민집단반발이 거세다. 어떤 대책이 있나. —지역주민과 도시재생 전문가, 행정이 모두 참여하는 민·관 거버넌스식 도시재생기획단을 만들겠다. 도시재생기획단을 통해 주민 참여를 이끌어내고, 기획되고 결정된 사안들의 실행력도 높이겠다. 무엇보다 개발로 인해 원주민들이 떠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개발로 주민 삶과 역사가 사장되지 않고 보존될 수 있는 방안을 고려해 개발하겠다. 주민들이 주체적으로 도시재생 사업에 참여할 수 있게 틀을 만들겠다. 현재 광명시는 도시재생센터를 통해 도시재생사업을 총괄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 ⇒아파트단지에 관련 비리가 발생하고 있다. 이를 감시할 ‘아파트관리클린감사제’가 광명시엔 없다. —아파트 단지에서 관리주체가 저가로 외부감사를 발주해 부실감사가 이뤄지는 상황이다. 관리부실에 대해 면죄부만 주는 비판도 나오는 게 사실이다. 또 인식부족이나 비용문제로 단순 회계장부에 대한 숫자검증 차원에 머물러 있다. 제대로 감사하려면 보수를 적정수준으로 올리고 재무제표 외에 계약 적정성까지 살피는 이행감사를 해야 한다. 다만 취지는 공감하지만 자칫 관리비 인상을 유발할 수 있어 주민 여론을 들어보겠다. 시가 일정 부분을 지원하는 공동주택관리규약 개정 작업을 진행하고 이를 근거로 아파트관리클린감사제를 적극 검토하겠다. ⇒정치입문 계기는. —평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치열한 삶을 존경했다. 김근태 전 민주당 상임고문 덕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중시하는 정치, 행정철학은. —정치에 뛰어든 뒤 평등하고 공정하며 정의로운 세상을 추구하는 노무현·문재인 가치를 이루려고 노력했다. 오직 시민 힘을 믿고 두려움 없이 원칙과 소신을 지키는 정치를 해왔다. 정책 중심, 현장 중심 의정활동을 하며 진솔하게 시민을 만나왔다. 무엇보다 시민이 정치와 행정에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다. 광명커뮤니티 안에 문화·예술·평생교육 커뮤니티 등을 만들겠다. 유관 단체나 관계자들과 소통이 가능하도록 체계를 구축하겠다. ⇒의정기간 대표적 업적이나 성과가 있다면. —경기도의 민주당 대표로서 경기도민을 위한 민생 연정을 이끌었다. 정치적 입장을 달리하는 도지사와 때로 논쟁하고 때로는 협력했다. 민생 연합정치과제 선정시 경기도 집행부와 여야 협상단에서 일주일간 마라톤 회의를 한 연정협상이 기억에 남는다. 288개 과제를 놓고 협상한 것 자제가 우리나라 지방자치 역사상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 중 청년구직지원금제가 있다. 지난해 경기도가 도민들을 대상 설문조사에서 가장 잘한 정책으로 뽑히기도 했다. ⇒광명시장에 나서는 각오 한마디 해달라 . —20년간 시민운동 현장에서, 현실 정치에서 고민했다. 전문가들과 시민이 함께 정책을 정책화하고 있다. 시민 삶과 민생에 밀접한 정책들로 시민들과 만나겠다. 전임 시장 성과는 이어받되 더 큰 광명, 시민이 행복한 광명시를 만들기 위한 광명시의 미래비전을 제시해 시민 평가를 받겠다. 새로운 광명의 변화를 위해 착실히 준비했다. ‘시민의 힘이 광명의 힘이다’라는 믿음으로 광명시민시대를 열어가고 싶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총선 전 집단탈북’ 식당 지배인, CNN 인터뷰서 “국정원 요구로 종업원 속여 탈북”

    ‘총선 전 집단탈북’ 식당 지배인, CNN 인터뷰서 “국정원 요구로 종업원 속여 탈북”

    2016년 총선 직전인 4월 종업원 12명을 데리고 집단 탈북한 중국의 북한 류경식당 지배인 허강일씨가 미국 CNN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집단 탈북은 국가정보원의 요구에 따른 ‘기획 탈북’이었다고 주장했다.허씨는 최근 국내 언론과도 이런 주장을 폭로한 바 있으며, CNN은 폴라 핸콕스 특파원을 통해 허씨의 이런 주장을 상세히 보도했다. 22일 CNN에 따르면 친구 5명이 재판도 없이 처형된 것을 보고 김정은 정권에 환멸을 느낀 허씨는 북한 정권에 두려움을 느끼던 중 2015년 11월 중국 상하이에서 국정원 요원과 접촉했다. 허씨는 국정원 요원과의 계약서에 서명하고 태극기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었다. 이후 국정원 측은 허씨에게 식당 종업원을 데리고 탈북할 것을 요구했다. 허씨는 “(국정원이) 모두를 데리러 오라고해서 너무 위험하다고 했는데, 다 데려오지 않으면 북한대사관에 알려서 나를 죽이게 할 것”이라고 협박했다고 주장했다. 허씨는 또 당시 국정원 요원이 “이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이고, 박 대통령이 큰 계획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라고 덧붙였다. 국정원은 허씨에게 종업원들을 거짓말로 속일 것을 요구했고, 허씨는 결국 종업원들에게 숙소를 옮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허씨는 “짐 싸오라, 우리 옮겨야 한다고 거짓말을 해서 택시 몇 대에 종업원들을 나눠 태웠다. 그리고 택시 기사에게 ‘상하이 공항으로 데려가라’고 말했다”고 말했다.이후 국정원의 지시에 따라 12명의 종업원을 이끌고 말레이시아 한국 대사관으로 갔다는 게 허씨의 주장이다. 허씨는 당시 상황에 대해 “종업원들이 태극기를 보더니 겁에 질리기 시작했지만, 나는 ‘이미 너무 멀리 와서 되돌아갈 수 없다’고 말했다”고 했다. 허씨와 종업원들은 한국 대사관에서 가명이 적힌 한국 여권을 받고 곧장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한국으로 들어왔다. 20대 총선(4월 13일)을 6일 앞둔 4월 7일이었다. CNN은 이를 두고 “대부분의 탈북자들에게 몇 개월이 걸리는 여정을 이들은 단 이틀 만에 끝냈다”라고 지적했다.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열악한 노동환경 못 버틴 실습생, 투명인간 취급당해”

    “열악한 노동환경 못 버틴 실습생, 투명인간 취급당해”

    “누군가 죽었다는 뉴스가 나오면 ‘너네가 공부를 못하니까 그런 곳에서 사고를 당하는 거야’라는 말이 돌아옵니다.”지난 18일 경기 평택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은아(19) 특성화고졸업생노조위원장은 특성화고 학생을 바라보는 세상의 편견을 이렇게 설명했다. 이 위원장은 “우리의 열악한 노동 환경은 누군가 죽었을 때만 잠시 주목받을 뿐”이라며 “잠깐의 관심이 아니라 근본 대책을 마련해 달라는 작은 목소리를 내려 한다”고 말했다. ‘국내 최초’인 특성화고졸업생노조는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출범했다. “노동 현장을 손톱만큼이라도 고쳐 내겠다”는 의지로 출발한 특성화고졸업생노조는 지난 2일 고용노동부 서울서부지청에 설립 신고서를 냈고, 11일 필증을 교부받았다. 특성화고 졸업생들이 노조를 만든 이유는 절박함 때문이다. 특성화고등학생권리연합회가 지난 3월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졸업생(400명)들은 취업후 가장 어려웠던 문제로 강제 야근 등 강제노동(24%), 고졸이어서 받는 차별과 무시(23%), 연장노동수당 미지급(18%), 성추행·성희롱(12%), 임금체불(10%) 등을 꼽았다. 하지만 근로계약서가 무엇인지조차 교육하지 않고 취업률에만 목매는 학교, 아이들을 싼값에 쓰는 부품 정도로 여기는 기업들 사이에서 학생들은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한다. 이 위원장은 “취업해서 겪는 문제를 학교에 이야기하면 ‘그런 것도 못 버티냐’, ‘세상은 만만치 않다. 그러니 버텨라’라는 답만 돌아온다”며 “버티지 못해 학교로 돌아오면 투명인간 취급을 당한다”고 했다. 2016년 5월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 2017년 1월 전주 LG유플러스 고객센터, 같은 해 11월 제주 음료공장에서 사고가 발생했다. 일하다 숨진 이들은 모두 특성화고 졸업생과 현장 실습생이었다. 이 위원장은 “학교를 다니면서 12시간이 넘는 근무시간, 임금체불, 사내 따돌림과 같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뉴스를 통해 접한 동료와 선후배의 죽음은 차원이 다른 두려움으로 다가왔다”며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잠시뿐이었고,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말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메신저를 통해 ‘노조를 만들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전국에서 30여명의 학생이 지난 1일 광화문광장에 모였다. 서로 얼굴조차 모르던 학생들은 광장에서 ‘억울한 죽음을 끝내자’는 팻말을 함께 들었다. 노조 출범 이후 현재까지 특성화고 졸업생 110여명이 가입했다. 대부분 올해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20살이다. 노조는 이달 중으로 조합원 토론회를 거쳐 하반기쯤 정부에 교섭을 요구할 방침이다. 특성화고 졸업생의 노동 환경에 대한 실태조사와 처우 개선 대책 마련을 제안하고, ‘특성화고 졸업생이라는 이유로 차별하지 않아야 한다’는 취지의 특별법 제정을 추진한다. 이 위원장은 “간단한 노동교육조차 하지 않고, 취업 현장으로만 내모는 특성화고의 현실은 1960년 제도가 만들어진 이후 변하지 않고 있다”며 “단순히 현장실습 기간만 줄일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관리를 통해 사람답게 일할 수 있는 노동 현장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글 사진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시골사는 사람, 도시인보다 8배는 더 행복하다” (연구)

    “시골사는 사람, 도시인보다 8배는 더 행복하다” (연구)

    여건이 된다면 도시보다 시골에 사는 것이 좋을 듯하다. 더 행복해지고 싶다면 말이다. 캐나다에서는 시골에 사는 사람들이 도시 거주자들보다 행복한 것으로 드러났다. 세계적인 행복 경제학자 존 헬리웰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UBC) 명예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은 40만 명이 넘는 캐나다 국민을 대상으로 한 건강조사 2건의 통계자료를 자세히 분석해 위와 같은 결론을 도출했다고 미국 전미경제연구소 조사보고서(NBER Working Paper) 온라인판 14일자에 발표했다. 조사자료는 캐나다 전역에 거주하는 12세 이상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캐나다 지역사회건강조사’(CCHS)와 15세 이상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캐나다 종합사회조사’(GSS)에서 나온 것이다. 연구진은 사람들이 얼마나 행복해하는지를 측정하기 위해 조사자료를 행복 척도에 따라 1점부터 10까지 재분류했다. 그러자 대부분 사람들의 행복 점수는 7.04점부터 8.94점 사이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5% 미만의 사람들은 행복 점수가 5점도 채 되지 않았다. 연구진은 평균 행복 점수 범위가 좁다는 점을 고려하면 0.01점의 소수점 차이도 통계적으로 유의하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사람들의 행복 점수를 거주 지역에 따라 분류했다. 그 결과, 시골에 사는 사람들은 도시에 사는 사람들보다 평균적으로 8배 더 행복한 것으로 나타났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평균 급여가 더 높고 교육 수준이 더 높으며 실업률이 더 낮지만, 이런 요인은 행복에 있어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연구진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덜 행복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주로 가족이나 친구들과 정기적으로 교류하지 못하는 사회적 고립이 발생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사회적 고립은 뇌의 화학물질에 변화를 줘 두려움이나 공격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 이번 주 발표된 연구에서 확인됐다. 그뿐만 아니라 도시 거주자들은 소득의 30% 이상을 주거 비용에 지출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스트레스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연구진은 덧붙였다. 한편 자세한 연구 결과는 전 세계 사회과학분야 학술논문 데이터베이스인 ‘사회과학연구네트워크’(SSRN·Social Science Research Network)에서 유료로 내려받을 수 있다. 사진=koldunovaaa / 123RF 스톡 콘텐츠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카레요정’ 김재우, 결혼 5년 만에...“아내 임신 15주차, 태명 ‘강황이’”

    ‘카레요정’ 김재우, 결혼 5년 만에...“아내 임신 15주차, 태명 ‘강황이’”

    코미디언 김재우가 결혼 5년 만에 아빠가 된다.21일 코미디언 김재우(40)가 SNS를 통해 임신 소식을 전했다. 김재우는 이날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내일부터 아빠의 길”이라는 내용의 글과 함께 아내의 임신 사실을 알렸다. 김재우는 “저희가 노력하긴 했지만 여러분들이 주신 선물같아 태명은 ‘강황이’라고 지었어요. 15주 됐습니다”라고 밝혔다. 김재우가 밝힌 태명 ‘강황이’는 평소 김재우 아내 조유리 씨가 그에게 ‘카레’를 자주 해준 것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김재우는 앞서 “카레를 좋아한다고 했더니 아내가 카레 요리를 배워 결혼 후 줄곧 카레 요리만 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SNS에 카레 인증샷을 올리며 ‘카레요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김재우는 이날 임신 소식을 전하면서, 긴 글을 통해 아내에 대한 애정과 태어날 아이에 대한 기대감을 표했다. 한편 김재우는 2003년 SBS 7기 공채 코미디언으로 데뷔, SBS ‘웃찾사’에서 크게 활약했다. 지난 2013년 3월, 2세 연하 은행원과 결혼했다. 그는 SNS를 통해 아내와의 결혼 생활을 공개, 많은 네티즌의 인기를 얻고 있다. 이하 김재우 SNS 글 전문 오늘 당신을 보고 있는 게 그냥 너무 좋았어. 그래서 계속 뚫어져라 쳐다 봤나 봐. 포동포동한 하얀 얼굴이 어찌나 귀여운지. 오빠는 매일매일 설레고 기분 좋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무서워. 아빠가 되는 게. 우린 둘 다 아직 어른이 아닌데. 내가 누군가의 아빠가 될 수 있을까? 하는 그런 두려움. 그런데 오늘 당신 얼굴을 보고 ‘아 난 멋진 아빠가 될 수 있겠구나’하는 확신이 들었어. 이렇게 좋은 엄마가 애기 옆에 있는데. 오빠는 파이팅 넘치는 아빠가 될 거야. 당신이랑 우리 애기한테 부끄럽지 않은 그런 아빠. 오빠만 믿어라! 유리야. 우리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면 꼭 너 같은 사람으로 키워줘. 내가 널 만나서 변한 것처럼 우리 아기도 엄마처럼 바다 같은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어. 시간이 흘러 우리 모습도 많이 변했지만 늘 그렇듯 널 가장 사랑한다. 뚱뚱보 심술쟁이 할아버지와 예쁜 할머니가 하는 목욕탕. 우리 꿈을 위해서 오빠는 열심히 일할게. 잘자. 수요일에 만나요. 사진=김재우 인스타그램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바다 지키는 남편, 바다 건너온 아내

    바다 지키는 남편, 바다 건너온 아내

    해군 잠수함사령부 소속 박위함(1200t급) 작전관 전계현(34) 소령의 아내는 터키 출신 엘리프 전(34)씨이다. 또 해군 1함대 호위함인 부산함(1500t급)의 추기사(기관장비 운용)인 김성중(43) 상사는 중국 출신 김매화(37)씨와 부부의 연을 맺었다.20일 해군에 따르면 전 소령과 김 상사는 각각 터키와 중국에서 자국의 문화를 소개해 주던 여성을 만나 부부가 됐다. 한국외대에서 터키어를 전공한 전 소령은 2013년 앙카라에서 어학연수 중 엘리프씨를 만나 열애 끝에 결혼에 성공했다. 지난해 9월 한국 국적을 취득한 엘리프씨는 “남편이 잠수함을 타고 바다로 나가면 장기간 연락이 되지 않아 늘 걱정과 두려움이 많다”며 “그래도 남편이 대한민국 해군의 일원으로 바다를 지키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김 상사는 중국 여행 중 여행가이드로 환대했던 김씨를 눈여겨본 아버지의 소개로 부인을 처음 만났다. 이후 김씨가 중국인들의 여행가이드로 서울을 찾을 때면 달려가 만나 2005년 부부가 됐고 김씨는 2012년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김씨는 남편의 근무지인 동해에서 시청 관광과 관광통역안내사로 일하고 있다. 박홍환 선임기자 stinger@seoul.co.kr
  • [애니멀 픽!] “괜찮아~” 병원 온 동물 보살피는 ‘너구리 간호사’

    [애니멀 픽!] “괜찮아~” 병원 온 동물 보살피는 ‘너구리 간호사’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함을 우리는 모두 잘 안다. 하지만 쓴 약은 물론 따끔한 주사, 심지어 수술을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병원을 꺼리는 이들도 적지 않다. 마찬가지로 동물들 역시 동물병원에 가는 것이 두려운지 스트레스를 받기 마련이다. 그런데 러시아 로스토프나도누에 있는 한 동물병원에는 환자로 들어온 동물들의 긴장감을 완화해주는 유능한 간호사가 있다. 간호사는 바로 ‘야샤’라는 이름의 미국 너구리 라쿤 한 마리다. 친절한 성격의 야샤는 병원에 온 동물 환자들에게 적절한 조처를 하는 등 바쁜 격무에 시달리고 있는 수의사 알렉세이 크로토프 박사를 돕는다. 이제 동물병원의 마스코트로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됐다는 야샤는 과거 기력이 쇠약해진 채 거리를 떠돌아다니던 중 운 좋게 크로토프의 눈에 띄었다. 크로토프 박사는 “언젠가는 너구리를 키우고 싶었기에 야샤를 가족의 일원으로 맞이하게 됐다”고 회상했다. 그런데 야샤는 보통 너구리가 아니었던 것 같다. 어느 날 크로토프 박사가 야샤를 자신의 병원으로 데려갔는데 야샤는 금세 병원의 모든 동물에게 먼저 다가가 살갑게 대하며 보살피기 시작했다. 어쩌면 야샤는 크로토프에게 도움을 받았으므로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때문에 병원에 온 동물들은 야샤와의 만남에서 심리적으로 치유되고 있다고 크로토프는 말했다. 특히 야샤는 개들에게 인기가 많다. 하지만 고양이들은 야샤를 경계할 때도 있다. 야샤는 병원에 와서 겁에 질린 환자들에게 포옹을 해주거나 마사지를 해준다. 이에 따라 환자들은 금세 긴장을 푼다는 것. 야샤는 어느새 지역 명물로도 자리 잡았다. 이 때문에 야샤를 보고 싶다는 이유로 병원을 찾는 사람들도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알렉세이 크로토프/인스타그램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프랑크푸르트 30년 만에 포칼컵 우승, 1981년 우승 멤버는 누구?

    프랑크푸르트 30년 만에 포칼컵 우승, 1981년 우승 멤버는 누구?

    독일 프로축구 프랑크푸르트가 30년 만에 독일축구협회(DFB) 포칼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프랑크푸르트는 20일(한국시간) 베를린의 올림피아 슈타디온에서 열린 바이에른 뮌헨과의 대회 결승에서 안테 레비치의 전반 11분과 후반 37분 두 골과 추가시간 6분 가시노비치의 쐐기 골을 엮어 레반도프스키의 한 골로 따라붙은 상대를 3-1로 물리치고 감격의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니코 코바치(46) 감독은 하위권을 전전하던 프랑크푸르트를 상대에게 두려움을 안기는 팀으로 변모시켰고 선수들을 따듯하게 감싸면서도 강한 동기를 심어주는 지도력을 인정받아 다음 시즌 뮌헨으로 옮기게 되는데 공교롭게도 대회 결승에서 미래의 제자들과 미리 만나게 됐다. 코바치 감독은 프랑크푸르트를 상위권으로 끌어올린 덕에 여러 빅클럽들의 영입 제안을 받았는데 유프 하인케스 감독이 떠나는 뮌헨으로 옮긴다. 고별전을 멋지게 마무리한 코바치 감독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뮌헨으로 떠나게 됐다. 한편 프랑크푸르트의 포칼 우승은 1973~75 두 시즌과 1980~81, 1987~88 시즌 우승을 차지한 뒤 구단 통산 다섯 번째인데 1980~81시즌 대회 결승 때는 차범근 축구교실 회장이 쐐기골을 터트리며 우승으로 이끈 바 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만성적 외로움이 공격성 유발…이유는 뇌 변화 탓

    만성적 외로움이 공격성 유발…이유는 뇌 변화 탓

    만성적인 외로움이 뇌 생성 화학물질에 변화를 줘 공격성과 두려움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과학자들이 밝혀냈다. 미국 캘리포니아공과대(캘텍) 연구진은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연구에서 장기간(2주) 격리된 쥐들은 뇌에서 두려움과 관련한 특정 단백질을 더 많이 생성하는 것을 발견했다. Tac2/NkB로 알려진 이 물질은 동물들이 위협에 훨씬 더 오래 반응하도록 한다. 그런데 겁을 먹거나 위협적인 자극을 받은 쥐들에게 이 물질의 분자를 표적으로 삼는 약물 ‘오사네탄트’를 주사하자 행동이 반대로 변한 것이다. 이는 사별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이나 폭력적인 행동이 증가한 독방 수감자들을 위한 신약을 개발하는 희망을 안겨준다고 연구진은 말한다. 사실 오사네탄트는 조현병과 심각한 우울증의 잠재적 치료제로 개발됐다. 이 약물은 임상시험에서 사람에게 안전한 것으로 확인됐지만, 효과는 없었다. 공동저자인 데이비드 앤더슨 박사는 “이번 연구는 독방 감금뿐만 아니라 사별 스트레스 또는 다른 유형의 스트레스에서 사회적 고립의 영향과 관련한 다른 정신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이 약물을 재사용할 가능성을 제기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사회적 고립은 쥐들에게 극도의 스트레스를 주는 경험이 돼므로 쥐는 외로움을 분석하는 데 훌륭한 동물 모델이 된다”면서 “쥐는 불안할 때 일반적으로 다양한 부정적 자극에 훨씬 더 크게 반응하고 이런 행동은 오랫동안 이어진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이번 결과가 만성 외로움이 뇌를 난해한 방법으로 변하게 하는 메커니즘(기전) 중 하나를 밝혀준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Tac2/NkB가 초파리의 공격성을 높여 사회적 고립을 초래하는 것을 처음 발견한 초기 연구 이후 진행됐다. 또 이 연구는 뇌 가소성(brain plasticity)으로 알려진 현상인 뇌가 환경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을 강조한다. 기존 연구에서는 장기적인 외로움이 사람들의 뇌에 변화를 일으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덜 맺게 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이번 연구 결과는 세계적 학술지 셀(Cell) 최신호에 게재됐다. 사진=ryanking999 / 123RF 스톡 콘텐츠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다시는 ‘강남역 살인’ 없기를”… 폭우에도 2000여명 추모집회

    “다시는 ‘강남역 살인’ 없기를”… 폭우에도 2000여명 추모집회

    “사건 이후 女 대상 범죄 수면으로 사법부는 솜방망이 처벌에 그쳐” 이철성 청장 강남역 현장 방문 신고접수~종결까지 특별 관리 무관용 원칙 따라 구속수사 확대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 2주기를 맞아 17일 전국에서 추모 집회가 열렸다. 올해 추모 집회에서는 최근 성폭력 경험을 폭로하는 미투 운동의 확산과 맞물리며 성범죄 가해자를 엄벌하고 성차별·성폭력을 근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340여개 여성·노동·시민단체 모임인 ‘미투 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은 이날 오후 7시 서울 서초구 신논현역 6번 출구 앞에서 추모 집회를 개최했다. 아침부터 내리다가 오후 들어 잠시 멈췄던 비가 다시 쏟아졌지만 시민 2000여명은 추모를 상징하는 검은색 옷 위에 흰 우의를 입고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 피해자를 추모했다. 이날 서울 외에도 부산, 대구, 전주, 창원, 제주에서도 추모 집회가 열렸다.추모 이후 미투 발언이 이어졌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의 유승진 활동가는 “2년 전 검·경은 (강남역 사건이) 여성혐오 범죄가 아니라고 했고 2년이 지난 지금은 홍대 불법촬영 가해자에게 남성혐오 문제라고 한다”며 “경찰은 (편파수사 논란을) 피해망상이나 불만이라고 하지 말고 여성의 목소리를 똑바로 듣고 응답하라”고 규탄했다. 스쿨 미투 운동이 거셌던 서울 노원구 용화여고의 졸업생 오예진씨는 “4년 전 교사의 파렴치한 행위로 인해 우는 친구를 두고도 목소리를 삼켜야 했다”면서 “이제는 후배들을 위해, 우리의 상처를 씻어내기 위해 두려움 없이 행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집회에 참석한 대학생 홍모(23)씨는 “최근 항공대 남학생이 성관계 동영상을 유출한 사건에 대해 경찰은 ‘고의성이 없다’며 내사를 종결했다”면서 “강남역 사건 이후 여성 대상 범죄들이 수면 위로 올라왔지만 경찰은 제대로 수사하지 않고 사법부는 솜방망이 처벌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강남역 사건 직후 피해자를 추모하는 포스트잇으로 도배됐던 강남역 10번 출구로 행진해 묵념을 한 뒤 신논현역으로 돌아와 집회를 마무리했다. 주최 측은 사건이 발생했던 노래방 건물이 있는 강남역 번화가를 행진할 예정이었으나 집회 직전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염산 테러를 하겠다는 글이 올라와 경로를 변경했다. 경찰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300여명의 병력을 투입했다. 이날 경찰은 불법 촬영, 데이트폭력, 가정폭력 등 여성 대상 악성 범죄에 대한 집중 단속 100일 계획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철성 경찰청장은 사건 현장 등을 방문해 방범용 폐쇄회로(CC)TV, 여성안심화장실, 공중전화 안심부스 등 여성 안전 인프라를 둘러봤다. 이 청장은 “2년 전 발생했던 가슴 아픈 사건을 되돌아보고 현장을 점검해 여성분들이 좀더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면서 “여성 악성 범죄에 대응하는 단속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다음달 15일까지 여성단체 등과 함께 여성 범죄 사건 처리 실태를 조사한다. 다음달 16일부터는 실태 조사 결과를 토대로 70일간 여성 대상 범죄 단속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여성 타투이스트 ‘판타’ 최한나

    여성 타투이스트 ‘판타’ 최한나

    “타투이스트가 어떤 사람에게 타투를 새겨준다는 건, 타투이스트가 자신의 세계를 전달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또한 타투를 받는 분의 아픔을 서로 나누고 소통하는 과정에서 그 분의 상처를 치유해 주게 되는 긍정적인 면도 있는 거 같아요. 그런 진솔한 나눔의 과정을 통해 그림을 그리고 원하는 부위에 타투를 하게 되는 거죠” ‘판타’라는 예명으로 더 잘 알려진 4년차 여성 타투이스트 최한나씨를 지난 15일 삼성동 부근 그녀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앳되 보이는 소녀같은 얼굴이지만 고객을 대하는 모습 속엔 진지함을 넘어 ‘결연함’까지 느낄 수 있었다. 한 번 잘못하면 돌이킬 수 없고 받는 사람의 인생이 달린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에 더 정성을 들여 작업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녀는 대학에서 판화과를 전공하고 패션디자인을 부전공했다. 지인의 소개로 아기 구두 수제화 브랜드 회사에서 일했지만 디자인이 중심이 아닌 사무직, 서비스업이 주가 되었다. 많은 고객을 응대하고 박스를 예쁘게 포장하는 일까지 하면서 ‘이런 일 하려고 미대 나왔나?’라는 회의감이 그녀의 마음을 무겁게 했고 결국 1년 정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이후 잘 알고 지내던 또 다른 지인 한 분이 ‘그림을 잘 그리니 타투를 한 번 시도해 보면 어떻겠느냐?’며 타투이스트의 길을 제안했다. 하지만 타투는 ’나쁜 사람들‘인 조폭들의 전유물이고 타투이스트들 또한 단순한 기술직으로 생각했던 그녀의 강한 편견에 당시 그러한 제안을 받고 매우 불쾌해 했다고 한다. ’그런 일 할 거면 뭐하러 대학 나오고 미술학원 다녔지?’라는 동일한 생각을 머릿속에서 떨출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읽은 타투이스트들 인터뷰 모음집이 이러한 그녀의 모든 편견을 순식간에 사라지게 만들었다. 그후 타투이스트들을 매우 심오하고 개성 강한 전문직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나쁜’ 것이 ‘좋은 것’으로 바뀌게 된 순간이었다. 타투의 작업과정은 판화 작업과정과 매우 흡사한 면이 있다고 한다. 때문에 타투 시작 초기 그녀는 전공을 ‘충분히’ 살릴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충만했다. 하지만 이론과 현실 사이엔 너무나 큰 벽이 있었다. ‘타투도 그림처럼 그리면 되겠지’라고 생각한 철없는 자만은 비교적 빨리 무너졌다. 진동머신으로 고무판에 첫 연습을 하자 ‘내가 타투를 못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불안감으로 엄청난 좌절을 느꼈다. 머신 진동으로 손에 멍도 많이 났다. 결국 피나는 연습 끝에 비로소 안정적인 선을 그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도 타투에 대해서 ‘아직도 어렵고, 아직도 정답이 없는 거 같다’고 한다. 재밌는 점은 그녀의 ‘첫 손님’이 ‘그녀 자신’이었다는 것이다. 혹시나 망칠 수 있다는 두려움에 자신의 허벅지 부근에 첫 작업을 하게 된 것이다. 본인의 사주에 물보다 불기운이 세다는 말을 듣고 불과 물을 상징하는 열기구와 수증기를 과감히 그려 넣었다. 열기구에 뿔을 그려 넣은 건 단순히 그녀가 뿔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 타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녀는 세밀하고 입체감이 잘 살아난 디자인을 좋아한다. 판타지를 좋하하는 성향 또한 그림에 한 몫 했다. 직업적인 어려움도 많았다. 과거엔 갑자기 꼭두새벽에 문자를 보내서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그녀의 스케줄을 무시하고 무작정 해달라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 타투를 하는 작업도 일종의 육체적 노동과 같이 힘든 일이기 때문에 적절한 휴식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자신의 입장만을 강조하는 배려심 없는 고객들 상대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이라고 말한다. 지금은 그런 손님들에게 “자신은 남에게 타투를 해주는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존중’은 받아야 한다고 ‘까칠하게’ 말해왔기 때문에 그런 손님은 없다”고 웃음짓는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엔 “손 건강이 많이 안좋아서 타투 작업을 줄이고 다른 다양한 작업을 시도 하려고 한다”며 처음 타투를 시작하려는 미래의 타투이스트들에겐 “화려해 보이는 직업 속엔 너무나 힘든 과정과 눈물이 있고, 상대방에게 신뢰감과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사진출처: 판타 인스타그램(@panta_choi) 글 영상 박홍규 기자 gophk@seoul.co.kr
  • “저는 성범죄 피해자입니다” 유튜버 양예원의 고백

    “저는 성범죄 피해자입니다” 유튜버 양예원의 고백

    ‘비글커플’로 활동하는 유튜버 양예원이 3년 전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고 고백했다. 17일 양예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저는 성범죄 피해자입니다. 꼭 한 번만 제 이야기를 들어주세요”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장문의 글과 영상을 올렸다. 해당 글에서 양예원은 3년 전 배우의 꿈을 꾸던 당시 피팅모델을 시켜주겠다는 스튜디오와 계약을 체결했지만, 이후 피팅모델 촬영이 아닌 선정적인 누드 촬영을 강제로 진행해야 했었다고 고백했다. 양예원은 스튜디오에 감금된 상태로 5회에 걸쳐 약 20명가량의 남성들 앞에서 신체 중요 부위들이 드러나는 선정적인 속옷을 입고 성추행을 당하며 촬영을 진행해야 했었다고 폭로했다. 또 양예원은 촬영 이후 3년 만인 지난 5월 8일 성인 사이트에 당시 촬영했던 자신의 사진이 공개됐으며, SNS 등을 통한 조롱 등의 충격에 세 차례 자살 기도를 했다고도 밝혔다. 양예원은 “저를 도와주시고 이러한 일들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으며 앞으로의 피해자들이 안 생기게 이 글을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퍼트려달라”며 “제발 저 좀 살려달라”고 당부했다.● 다음은 양예원의 성폭력 고백 게시물 전문 저는 성범죄 피해자입니다. 꼭 한번만 제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안녕하세요. 양예원입니다. 이렇게 말을 하기까지 수많은 고민을 했고 수없이 맘을 다잡았습니다. 너무 힘이 들고 죽고만 싶고, 눈물만 쏟아지는데 절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얘기했습니다. 넌 피해자라고 숨고 아파하고 도망가지 않아도 된다고, 그래서 용기 내서 말을 해보려 합니다. 대한민국에 얼마나 많은 피해자가 있고 얼마나 나쁜 사람들이 아직도 나쁜 짓을 하고 있는지 말해보려 합니다. 저는 성범죄 피해자입니다. 3년 전, 20대 초반이었던 저는 평범하게 배우를 꿈꾸며 공부하던 학생이었습니다. 성인이 된지 얼마 되지 않았고 재수에 삼수까지 한터라 세상에 대해서는 더더욱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 제가 어느 날 알바몬에서 알바를 구하던 중 피팅모델에 지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같이 일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고 면접을 보려 합정역 3번 출구 근처의 한 스튜디오를 찾아갔습니다. 처음엔 아무런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고 참 깔끔하고 예쁜 스튜디오라 생각할 뿐이었습니다. 제게 연락을 주신 그분은 ‘실장님’이셨습니다. 그분은 절 보자마자 감탄을 하며 너무 예쁘다고 칭찬을 하셨고 아무것도 모르던 그때는 기분이 정말 좋았습니다. 그리고 카메라 테스트를 해보자며 예쁜 배경 앞에서 앞, 옆, 뒤를 촬영했고 카메라에도 잘 나온다며 웃으셨습니다. 그리고 일단 5회 정도만 촬영을 해보자고 했고 촬영은 평범한 콘셉트 촬영인데 여러 콘셉트가 있지만 가끔은 섹시 콘셉트도 들어갈 거라 하셨습니다. 그 말에 이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원 씨는 연기를 할 거면 천의 얼굴을 가져야 한다고.. 여러 콘셉트로 찍는 건 연예인들도 그렇게 한다고.. 연기를 한다 하니깐 내가 그 비싼 프로필 사진도 무료로 다 찍어줄 거고, 아는 PD와 감독도 많으니 잘하면 그분들께 소개해주겠다고.. 그 말에 여기는 정말 좋은 곳이구나 생각을 하고 속았습니다. 정말 바보 같죠.. 그리고 제게 아무렇지 않게 종이 한 장을 내밀었고 거기에 덜컥 제 이름 세자를 적었습니다. 그 후 촬영 일자가 되었고 저는 그 스튜디오를 다시 찾아갔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그 실장님께선 문을 자물쇠까지 채워 걸어 잠그시더라고요. 철로 된 문 이였고 도어록으로 문이 한번 잠긴 것을 또 한 번 손바닥만 한 자물쇠로 걸어 잠갔습니다. 그리고 스튜디오 안에는 20명 정도 돼 보이는 남자들이 모두 카메라를 들고 담배를 피우고 있었습니다. 이때부터 무언가 잘못되었다를 느꼈으며 그 두려움에 주변을 둘러봤지만 창문 하나도 열려있지 않은 밀폐된 공간이란 걸 인지했습니다. 그리고 실장님은 제게 의상이라며 갈아입고 오라고 옷을 건넸습니다. 속옷이었습니다. 그냥 일반적인 속옷이 아닌 포르노에만 나올법한 성기가 보이는 속옷들이었습니다. 이게 뭐냐고 난 이런 거 싫다고 안 할 거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실장님은 제게 협박을 하였습니다. 너 때문에 저 멀리서 온 사람들은 어떡하냐, 저 사람들 모두 회비 내고 온 사람들인데 너한테 다 손해배상 청구할 거다. 고소할 거다. 내가 아는 PD, 감독들에게 다 말해서 널 배우 데뷔도 못하게 만들어버릴 거다. 이런 식으로요. 어린 마음에 너무 무서웠습니다. 분위기도 살면서 처음으로 느껴지는 살벌함과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우리 집은 돈도 없는데 나 이렇게 불효하면 안 되는데.. 고소당하면 어쩌지.. 나 정말 매장당해서 데뷔도 못하면 어떡하지 등등많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오늘만 참자.. 그렇게 옷을 갈아입고 나왔습니다. 20명의 아저씨들이 절 둘러싸고 사진을 찍으면서 한 명씩 포즈를 요청하였습니다. 그리고 포즈를 잡아주겠다며 다가와 여러 사람이 번갈아가며 제 가슴과 제 성기를 만졌습니다. 너무 무서웠습니다. 소리도 지를 수 없었고 덤빌 수도 없었습니다. 머릿속에는 딱 한 가지 생각만 있었습니다. 여기서 내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강간을 당해도 아무도 모르겠구나... 죽을 수도 있겠구나.. 강간만큼은 피하자, 말 잘 듣자.. 여기서 꼭 살아서 나가자..라는 생각이요. 그렇게 그 사람들이 웃으라면 웃었고 손 하트를 하라고 하면 하트를 했고 다리를 벌리고 혀를 내밀어 보라 하면 그렇게 했고 가슴을 움켜쥐라고 하면 움켜쥐었고 팬티를 당겨 성기가 보이게 하라면 그렇게 했습니다. 더 심각하게는 손가락을 성기에 넣어보라고도 했습니다. 왜 싫다고 안 했냐고요? 싫다고 했습니다. 그건 싫어요. 그건 안돼요. 그렇게 하면 항상 분위기가 험악해졌고 제게 욕을 퍼붓고 담배를 피워대며 “저런 년을 왜 데려왔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럼 그때마다 실장님은 제게 너 이런 식으로 할 거냐고 협박을 해왔습니다. 너무 무서웠고 밀폐된 공간에서 이렇게 많은 남자들에 여자라고는 나 하나뿐인데 정말 너무 무서워서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첫 촬영이 끝났습니다. 실장님은 제게 물었습니다. 생각보다 괜찮지 않냐고... 그냥 조용히 끄덕였습니다... 전 그 스튜디오에서 나오자마자 펑펑 울었습니다. 죽고 싶었고 죽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 실장에게 전화해 말했습니다. 하고 싶지 않다고. 안 할 거라고. 그러자 또 협박을 해왔습니다. 네가 이미 사인하지 않았냐, 다음 회차들 회원들 다 예약되어있는데 어쩌라는 거냐, 손해배상 청구하면 너 감당 못한다, 너 이미 찍힌 사진들 내가 다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무서운 건 난 이미 사진이 찍혔고 이게 혹시나 퍼질까 봐,가족들이 볼까 봐 나 아는 사람들이 볼까 봐였습니다. 그렇게 다섯 번의 촬영을 하고 다섯 번의 성추행을 당하고 다섯 번 내내 울었습니다. 그 촬영을 하는 기간 동안은 전 제정신이 아니었고 평생 기억하고 싶지 않은 잊고 싶은 씻을 수 없는 상처의 시간이었습니다. 너무 수치스러웠고 너무 부끄러웠고 그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말할 수 없었으며 너무 무서웠습니다. 그래서 나만 입다물고 모른 척 조용히 살면 난 평생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신고도 하지 못한 채 전 정말 가족에게도 친구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그렇다고 마음이 편한 적은 단 하루도 없었습니다. 혼자 있을 때 자기 전에 항상 인터넷을 뒤져봤고 혹시나 사진이 올라왔을까 봐 매일 불안에 떨었습니다. 배우의 꿈은 당연히 버리게 되었습니다. 나 같은 애는 배우를 할 수도 없고 배우를 하게 된다면 내가 혹시나 유명해진다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건 한순간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3년이 흘렀습니다. 3년 동안 그 일을 잊은 적은 단 하루도 없었지만 3년 동안 아무 일도 없었으니 조금은 안심했습니다. 하지만 5월 8일, 한 야동 사이트에 그 사진이 올라왔습니다. 유명세를 치르길 원하진 않았지만 유명세를 치른 덕에 내 사진이 퍼졌다는 걸 많은 사람들이 알았고 제게 메시지가 왔습니다. 별짓 다했구나, 창녀, 걸레, 잘 봤다 네 보지 등등... 심지어는 남자친구의 인스타 메시지로 제 사진을 캡처해 보내면서 “이걸 보니 기분이 어때요?” 묻는 사람까지 있었습니다. 어떻게 알았는지 사진이 올라오자마자 제 가족, 남자친구, 제 지인들에게까지도 그 사진을 본 사람들이 캡처를 해서 심한 말과 함께 보내더군요 죽고 싶었습니다. 정말로 죽고 싶었습니다. 너무 무서웠습니다. 남자친구인 동민이가 보면 날 어떻게 생각할까부터 엄마가 알게 된다면 아빠가 알게 된다면 얼마나 가슴이 찢어질까.. 또는 내 동생들, 아직 사춘기인 내 남동생이 보게 된다면 얼마나 큰 충격을 받고 날 다시는 보려 하지 않겠지.. 등등 별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일단 동민이에게 헤어지자 하고 가족들에게 편지를 쓴 후 죽으려 마음을 먹었습니다. 죽는 것만이 살 길이였습니다. 3차례의 자살기도, 그리고 실패하자 더 억울했습니다. 죽기도 이렇게 어렵구나 내 인생은 왜 이렇게 모든 게 어렵고 힘들까... 눈물만 흘렀습니다. 너무 억울하게도 사진 속의 제 모습은 웃고 있어서 더 부끄러웠습니다. 사람들은 결과물만 보게 되니깐 분명히 그 사진을 보고 내가 자의적으로 찍었을 거라 생각하겠지.. 이런 생각을 하니 어떤 사람도 만나고 싶지 않았고 이대로 숨어서 아무도 없는대서 혼자 서서히 죽어가기만 기다리는 게 방법이라 생각했습니다. 그 사진은 많은 사람들의 성희롱 대상이 되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은 저를 멋대로 판단하기 시작했습니다. 외모에 대해... 가슴에 대해... 성기에 대해... 나의 행실에 대해... 그렇게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지도 않고 한숨도 잠들지 못했습니다. 수면제 처방을 받아서 겨우 잠들어도 악몽 때문에 깨어나고 약 먹고 잠들고 깨고 잠들고를 반복했습니다. 그러던 중 동민이가 알게 되었고 제 주변 사람들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제게 용기를 주었습니다. 괜찮다고 말해줬습니다. 넌 피해자라고 격려해줬습니다. 이겨 내야 한다고, 싸워야 한다고 말해줬습니다. 그래서 저는 신고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고 제가 용기 내어 이 사건에 대해 세상에 알려 조금이라도 피해자를 줄이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 나쁜 사람들을 잡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그 사람들이 더 이상 그런 짓을 못하게 막고 싶었습니다. 그 사이트에는 저 말고도 수많은 여자들의 사진이 있었습니다. 그 사진들을 보던 중 그 안에서 저와 친하게 지냈던 함께 배우가 되기를 꿈꿨던 언니의 얼굴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언니에게 조심스레 연락을 했고 그 언니도 까마득히 몰랐다고 하더라고요. 제 전화를 받자 그 언니는 죽을 듯이 울었으며 나 정말 살고 싶지 않다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그리고 그 언니가 당한 수법도 똑같았으며 저와 똑같은 마음으로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으며 매일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실체들을 낱낱이 밝혀내고 싶습니다. 그들은 정말 여자를 단순한 상품 취급하며, 그 대상은 대부분 20대 초반의 사회 초년생 여학생들이며, 심지어는 미성년자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처음에는 사탕 발린 말로 정상적인 촬영을 한다고 말하며 촬영이 시작되면 문을 걸어 잠그고 분위기에 압도되도록 겁에 질리도록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처음에는 짧은 원피스를 주며 티 팬티를 줍니다. 왜 티 팬티를 입나요?라고 물어보면 팬티라인이 드러나면 옷이 예쁘게 안 나온다고 말하고 촬영이 시작되면 나중에는 팬티를 벗으라며 강요합니다. 말을 듣지 않으면 협박은 기본이고 성희롱에 성추행까지 합니다. 심하게는 성폭행을 당한 사람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조심스레 해봅니다. 사진을 찍었던 사람 중 하나가 제게 집에 데려다주겠다 한 적도 있었으니깐요. 성희롱은 보통 이상입니다. “예원 씨 가슴이 참 예뻐요, 거기가 참 예쁘네요, 손가락을 대볼래요?” 이런 식 으로요. 그런 속옷이 너무 입기 싫어 생리 중이라고 말하면 템포를 쥐여줍니다. 그리고 “템포 껴 그러면. 템포 끼고 주변에 피는 닦고 나와”라고 말합니다. 제 엉덩이에 뾰루지 흉터가 있다고 보기 좋지 않고 더럽다며 컨실러를 제 앞에 툭 던지더군요, 엉덩이 화장을 하고 나오라고도 했습니다. 얼굴 화장을 대충 하고 온 날엔 얼굴을 보며 화장이 이게 뭐냐고 사진 잘 찍히려면 화장 고치고 나오라며 화를 내기도 합니다. 스타킹을 주고 팬티를 입지 말고 스타킹을 신으라고 합니다. 그렇게 해도 생각보다 잘 안 비친다며 거짓말을 하면서 촬영할 때는 천천히 스타킹을 벗어보라고 합니다. 그때 카메라 셔터 소리가 엄청나게 나고요. 그리고 회원들이 너무 좋아한다며 한번 다시 하자고 신고 다시 벗으라고도 시킵니다. 그리고 촬영할 때 누구와도 연락 못하게 휴대폰은 뺏습니다. 그리고 자기네들 신상을 알려주지도 않으며 회원들이라고 하는 사람들끼리는 닉네임으로 서로를 부릅니다. 00님~00님~ 이렇게요. 촬영을 하던 도중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이 남자들은 모두 일반적인 사회생활을 하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촬영 중 어떤 사람에게 전화가 와서 전화를 받더니 한마디 하고 끊더라고요. “어~ 아빠 일중이야~ 끝나고 전화할게~” 이렇게요. 소름이 끼쳤습니다. 그 자식이 딸이고 나중에 자기 딸이 당하고 있을 수도 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무서웠습니다. 이 사진들을 어떤 용도에 쓰려고 하는 거냐 물어보면 하나같이 입을 맞춘 듯 이렇게 말합니다. 소. 장. 용.이라고, 그리고 회원들이 모인 곳은 인터넷의 한 카페이며 그 카페 회원들은 이미 제 얼굴을 알고 있더라고요. 처음에 면접 시 찍었던 테스트용 사진, 그 사진을 카페에 올리고 가격을 적어놓듯 1번 올 누드, 2번은 세미누드 등 이런 식으로 올려놓고 사진 찍을 사람 신청을 받는 거 같았습니다. 무슨 상품 경매하는 것처럼요. 그리고 촬영하는 여자들끼리는 절대 마주치지 않도록 합니다. 역까지 데리러 오고 데려다주고 하면서요. 그리고 여기 오게 되는 여성들은 대부분이 피팅모델 알바를 하러 왔다가 당하거나, 길거리에서 촬영 문의를 받아서 오게 되거나, 또는 블로그 등에 일반적인 사진들을 올려놓고 촬영 모델 구한다고 해서 왔다가 당하는 경우입니다. 절대 그 여성들은 자의적으로 그 사람들 앞에서 옷을 벗으며 야한 포즈를 취하고 웃는 것이 아닙니다. 압도된 분위기에서 겁먹은 채로 자세 하나하나 디테일하게 시키는 대로 할 뿐이었습니다. 소리를 지를 수도 없고 신고를 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 안에 여자 스텝은 단 한 명도 없으며 다수의 남자들과 걸어잠긴 문 그리고 반나체인 나 밖에 없으니깐요. 그 안에서 무슨 일을 당해도 그냥 죽어도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깐요. 더 무서운 건 그 사람들의 치밀함입니다. 그 사진을 찍고 나서 바로 유포 시키는 게 아니라 몇 년이 지나고 잊힐 때쯤 유포시킨다는 겁니다. 해외 아이피로 되어있는 불법 사이트에요. 그래서 더더욱 추적도 어렵고 잡기도 어렵다고 합니다. 더군다나 그때 그 안에서 일어난 일에 관련한 증거가 아무것도 없으니 그 사람들이 그러지 않았다고 잡아떼면 할 말이 없다는 겁니다. 성추행하지 않았다 하면 그만이고 그런 사진을 찍지 않았다고 폐기해 버리면 그만입니다. 그 사진을 보신 분도 있을 거고 아닌 분들도 있겠지만 저는 이 자리를 빌려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피해자입니다. 원하지도 않았고 너무 무서웠으며 지금도 괴롭고 죽고 싶은 생각만 듭니다. 다른 더 많은 피해자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생기고 있을 겁니다. 질책하지 말아주세요. 저를 포함 한 그 여성들은 모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은 피해자들입니다. 저와 같은 피해자들에게 “왜 신고를 하지 않았냐”, “신고를 안 했다는 건 조금은 원한 거 아니냐”, “싫다고 하지 그랬냐”, “네가 바보 같아서 그런 거다” 이런 식 의 말들은 하지 말아주세요. 그게 바로 2차 피해입니다. 그 말들에 더 상처받고 더 가슴이 찢어집니다. 막상 그 상황이 되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지 못합니다. 그게 얼마나 무섭고 그걸 주변 사람이 알게 될 것도 무섭고 신고하면서 여러 번 진술을 하게 되면서 받을 상처도 무섭고 무엇보다 내가 신고를 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내 사진을 다 유포시킬까 봐라는 생각이 가장 큽니다. 앞서 말했듯이 싫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남자라도 잠겨있는 문에 많은 인원의 남성들이 밀폐된 공간에서 분위기를 조금만 험악하게 만들어도 분명 겁이 날 테니까요. 전 정말 진심으로 강간만 당하지 말자라고 생각이 들었고 살아서 나가자는 생각만 했을 뿐입니다. 지금도 그 야동 사이트를 기점으로 총 5-6군데 사이트에 사진들이 퍼지고 있습니다. 저 뿐만이 아닙니다. 같은 스튜디오처럼 보이는 곳에서 찍었던 다른 여성들의 사진도 너무나 많습니다. 몇 천 페이지가 모두 그런 사진들이며 이들은 대부분 극소수 빼고는 피해자일 것입니다. 이 글을 쓰면서도 과호흡 증세가 찾아오고 눈물이 흐르며 손이 떨리고 그때의 악몽이 떠올라 괴롭습니다. 저를 도와주시고 이러한 일들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으며 앞으로의 피해자들이 안 생기게 이 글을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퍼트려주세요. 부탁드리겠습니다.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형우 기자 hw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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