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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뒷골목 맛세상] ‘분당음식’의 자존심

    [뒷골목 맛세상] ‘분당음식’의 자존심

    1980년대 말 노태우정권이 수도권 4대 신도시계획을 발표하기 전까지만 해도, 성남에서 수원 가는 사이의 도로변에 있는 분당이라는 지명을 아는 이들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서쪽으로는 경부고속도로가 치달리고 동쪽으로는 불곡산 산자락이 막아서서 남북으로만 협곡 비슷하게 길게 펼쳐진 보잘것없는 들판은, 그러나 신도시계획이 발표되면서 급기야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변하여 하루아침에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게 되었다. 1990년대 초에 이르러 거대한 아파트단지로 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부터 분당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서의 맡은바 역할을 충실히 해내었다. 수도권 4대 신도시 중에서도 서울이라기보다는 강남의 위성도시 비슷한 중산층 주거공간의 이미지를 형성하면서, 주로 강남지역에 사는 비교적 경제적 여유가 있는 이들이 너도나도 분당으로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를테면 강남에 살던 이가 20평,30평대의 아파트를 팔아서 분당에 오면 40평이나 50평대의 아파트를 마련하고도 돈이 남아, 여분으로 중형 자가용에다가 골프 같은 레저용품까지 장만할 수 있었다. ●인구 40만 넘지만 자족도시로는 미흡 흔히 도시의 현상을 공부하는 이들은 위성도시가 그 어미도시로부터 단순하게 인구나 기능을 나누어 갖는 데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 충족되는 도시의 기능을 갖는 자족도시로 발전하려면 그 어미도시와 어느 정도 거리가 떨어져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식이라면 고속도로나 고속화도로를 이용하여 불과 10여분 만에 오고갈 수 있는 강남과 분당은 서로 가까워도 너무 가까운 셈이다. 실제의 거리가 그럴진대 그 어미와 자식 사이의 문화적 거리는 어떠하랴. 비록 잠은 분당에서 자지만 그밖에 먹고 마시고 입고 노는 일체의 문화행위는 강남과 한 치의 오차도 없으리만큼 분당은 강남의 판박이였다. 분당은 지역의 특성에 있어서도 일산이나 평촌같은 다른 신도시들과도 달리, 강남 이외에는 주변에 서로 문화를 교류할 수 있는 전통적인 자연부락 따위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고립된 공간 안에 갇힌 셈이다. 경부고속도로와 험준한 불곡산 자락에 동서로 옥죄인 채 남북으로 뻗은 일종의 호로병 형상에 갇힌 분당은 애오라지 강남 한 곳으로만 숨통이 트여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분당 특유의 공간적 폐쇄성이 문화적 폐쇄성에도 한 몫 단단히 거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기실 분당은 행정적으로는 성남시의 일개 구에 불과하다. 그렇듯이 행정상으로는 분명히 성남이 분당의 어미도시이다. 분당은 서울방향 이외에도 용인이나 수원에서 분당을 관통하여 성남으로 빠지는 도로가 있지만, 분당사람들치고 행정상의 어미도시에 대한 문화적 취향 때문에 이 길을 찾는 이들은 거의 없을 터이다. 도대체 성남은 어떻게 태어난 도시인가. 일찍이 1960년대 말 ‘불도저시장’이라고 불리던 김현옥 서울시장이 무허가 판잣집 18만 채 중에서 우선 미관상 가장 볼썽사납던 청계천 일대의 판잣집들을 막무가내로 헐어낸 다음 바로 그들을 몰아붙여 대규모 단지를 조성하면서 만들어낸 도시가 아닌가. 분당 사람들로서는 그런 성남을 어미도시로서 인정하기가 어쩐지 껄끄러운 기분인 것이다. ●강남의 판박이… 고유 음식문화 없어 신도시로서 입주가 거의 완료된 분당은 자체만으로도 이제 인구 40만을 넘나드는 그야말로 큰 도시가 되어 있다. 그런 큰 도시가 자족도시로서의 문화나 사회적 기능이 전무하다면, 어쩔 수 없이 괴물스러울 수밖에 없을 터이다. 그런 괴물스러운 모습은 음식문화 또한 예외는 아니다. 인구 40만의 도시에서 나름대로의 특성이 살아있는 음식문화는 아예 없는 것처럼 보인다. 새마을연수원 입구의 먹자골목, 야탑동 일대의 먹자골목, 서현동 삼성플라자 일대의 먹자골목, 정자동 일대의 먹자골목, 효자촌 일대의 먹자골목…. 어디를 둘러보아도 이것이다, 하고 내보일 만한 분당만의 특색 있는 음식은 보이지 않는다. 애오라지 보이는 것은 분당점이라는 분당만의 희한한 간판이다. 고마다래 분당점, 정성본샤브스끼 분당점, 하야미 분당점, 사누키보레 분당점, 미다래 분당점, 아이스배리 분당점, 무교서린낙지 분당점, 암사해물탕 분당점, 예닮골 분당점, 참치명가 분당점, 천하일품 분당점, 부뚜막왕뚜껑 분당점, 놀부보쌈 분당점, 명동칼국수 분당점, 동경샤브샤브 분당점, 만다린 분당점에서부터 이화주막 분당점, 사발에 술내리고 분당점, 밀밭 사이로 분당점을 거쳐 틈새라면이라는 분식집에 이르기까지 거의 대부분이 어미도시에서 유명한 음식점들의 분당점이란 간판을 달고 있다. 이를테면 음식문화 또한 철저하게 강남이라는 어미도시를 향한 자식도시로서의 역할에 충실한 셈인 것이다. 분당점 일색의 자식도시 분당에서 당당하게 분당 본점이라는 간판을 내건 음식점을 발견한다는 것은 어쩔 수 없이 감격스러운 일일 수밖에 없다. 정자동에 있는 ‘육남매 전주영양돌솥밥전문점’(031-713-9777) 분당본점의 주인 되는 이는 신기종씨인데, 재미있는 것은 육남매라는 상호 그대로 신씨 일가의 6남매가 모두 돌솥밥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1994년 정자동 먹자골목 초창기에 전주영양돌솥밥전문점이라는 상호를 전국에서 처음으로 내걸고 식당을 시작한 6남매 중의 둘째 신기종씨를 비롯해서, 첫째 신기원(031-703-9467)씨가 서현동 분당중앙교회 옆에 1995년 같은 상호의 식당을 내고, 셋째 신기현(031-262-0908)씨 역시 1995년에 분당 건너편에 있는 수지의 상현지구에 같은 상호의 식당을 내고, 넷째 신승희(031-707-7243)씨 역시 1995년에 야탑동 지하철 야탑역의 1번출구 관보빌딩 뒤에 있는 먹자골목에 같은 상호의 식당을 내고, 다섯째 신정희(031-718-9878)씨가 1997년에 수내동에 같은 상호로 식당을 내고, 여섯째 신기천(031-206-6090)씨가 약간 늦은 1998년에 그동안 다니던 LG산전을 그만 두면서 같은 상호의 식당을 낸 식이다. ●육남매 모두 같은 상호로 전문점 운영 이들 신씨 일가가 모두 ‘육남매 전주영양돌솥밥전문점’이라는 상호로 식당을 하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맨 처음 정자동에 돌솥밥 전문점을 차린 둘째 신기종씨의 예상외의 성공이 디딤돌이 되었다. 신기종씨의 부인 최순애씨는 원래 전주출신으로 솜씨가 남달라서 일찍이 한식조리사 자격증까지 땄는데, 최순애씨의 솜씨에다가 전통 전주비빔밥의 특색을 살려낸 영양돌솥밥이 손님들의 입맛에 맞아 호황을 이루자, 이에 고무된 신기종씨가 형제들을 불러 분당 일대에 신씨 일가의 음식왕국을 이룩한 것이다. ‘육남매 전주영양돌솥밥전문점’의 주된 메뉴는 역시 7000원짜리 전주영양돌솥밥이다. 전북 장수에서 나는 곱돌 돌솥에 전북 부안에서 생산된 쌀과 완두콩, 검정콩, 은행, 고구마를 섞어 밥을 해낸 다음에 달걀노른자를 고명으로 얹어내는데, 여느 돌솥밥처럼 다른 비빔그릇에 밥을 퍼내 야채와 함께 비벼먹고 누룽지는 뜨거운 물을 부어놓았다가 식사를 끝낸 후에 입가심으로 개운하게 훌훌 먹는 식이다. 이 집에서 비빔용으로 나오는 야채로는 상추겉절이, 돈나물, 콩나물이 있는데, 이 중에서 상추겉절이가 양념장과 함께 결코 6남매 외의 다른 돌솥밥집에서는 흉내 낼 수 없는 비법이 있는 모양이다. 적당한 크기로 손으로 일일이 찢은 상추에 영양부추와 참나물을 넣고 새콤한 소스로 버무리는데, 이 상추겉절이를 돈나물과 콩나물을 넣어서 고명으로 얹은 달걀노른자에 스윽스윽 비벼 한 입 가득히 넣으면 세 가지 야채의 향기가 오래 남는다. 만일 야채가 부족하다 싶으면 밑반찬으로 나오는 무시래기무침, 취나물무침, 유채나물, 도라지, 연근, 느타리나물 등을 더 넣고 비벼도 좋다. 곁들여서 된장국과 조기구이도 나오는데 조기는 비록 씨알은 적지만 맛은 빼어나서 돌솥밥을 비벼먹는 틈틈이 입맛을 바꾸는데는 부족함이 없다. 이밖에도 전주영양돌솥밥에 불고기버섯전골을 곁들인 ‘육남매정식’(1만 2000원)이 있는데, 정다운 이와 더불어 식사와 술을 겸하는 데는 이것으로 넉넉할 터이다. 성남에서 분당으로 들어오는 야탑동 초입 여수동에 몇몇 갈매기살집들이 있다. 원래 분당이 생기기 전 광주군 돌마면에 속했던 여수동은 여수동이라는 마을 이름보다는 갈매기마을로 더욱 유명하여 자연부락 형태의 30여집이 모두 갈매기살 전문집을 할 정도였다. 이렇듯 여수동이 갈매기마을이 된 것은 다름 아닌, 마을에 있는 도축장 시설 때문이었다. 이 도축장에서 부위별로 육가공 되는 돼지고기 부속물 중에 전혀 돼지고기 같지 않게 맛이 뛰어난 갈매기살만 한 부위만을 메뉴로 하여 식당을 차린 것이 전국에서도 유명한 여수 갈매기마을로 발전한 것이었다. 그 후 분당이 개발되면서 여수동은 대부분 분당으로 편입되는 과정에서 도축장은 물론 갈매기마을도 태반이 사라져버렸지만, 다행히 네댓 집이 남아 갈매기마을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한때 30여곳 성업… 네댓집만 명맥 유지 ‘유명갈매기’(031-752-2393)는 여수동 갈매기마을의 원조답게 옛날부터 내려오는 터전에서 오로지 갈매기살 메뉴 하나만을 고집하며 전통을 지켜오고 있다. 유명갈매기는 주인이 셋인데, 서로 형제 사이로 맏형 김성웅씨를 위시해서 김선호, 김선이씨 세 형제가 오순도순 식당을 꾸려간다. 갈매기살은 손님 취향에 따라 생갈매기살과 양념갈매기살로 나누어져 값은 모두 1인분에 9000원으로 같은데, 맛은 맛대로 뛰어나지만 돼지고기 한 마리에서 나오는 갈매기가 통째로 나오는 양 또한 푸짐하다. 숯불에 굽는 갈매기살은 유명갈매기에서 만들어낸 깻잎전병에 싸먹는 맛이 일품이다. 깻잎 위에 얇게 저미듯 둥글게 썬 무를 얹어, 깻잎과 무를 한 켜씩 정성스럽게 쌓은 다음에 새콤달콤한 소스를 뿌린 것이 깻잎전병이다. 이 깻잎전병에 참기름을 묻힌 갈매기살을 얹고, 마늘과 고추를 된장에 찍고, 파무침으로 마무리한 다음에 한 입 가득히 넣으면, 입안에서 어우러지는 맛의 조화가 가히 절묘하다. 이밖에도 달리 상추며 깻잎, 고구마, 당근, 순무 같은 여러 야채들이 넉넉하게 나오는데, 야채들은 겨울 한 철을 뺀 나머지 세 철에는 집 뒤의 드넓은 텃밭에서 직접 기른 것으로 내고 있다. 여기에 얼음을 동동 띄워 나오는 시원한 동치미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갈매기살과 술 몇 잔으로 배를 불리고 나오면 넓은 정원 가득히 매화나무, 살구나무, 배나무, 복숭아나무, 자두나무, 감나무, 밤나무 등 갖가지 유실수들이 제철마다 환하게 꽃을 매달고 있어 덤으로 꽃구경도 할 수 있다. ■“갈매기살은 가짜없다” 돼지고기의 횡격막에 붙은 갈매기살은 돼지고기 한 마리에서 불과 300g에서 500g 정도밖에 나오지 않는 희소부위다. 이를 아는 어떤 이들은 더러 갈매기살이 가짜가 아닌가 하고 의심도 하는 모양이다.‘유명갈매기’의 사장 김선웅은 어렸을 때부터 선친에게서 물려받은 전문적인 지식으로 그런 의심을 명쾌하게 풀어냈다. 그이의 말에 따르면 전국의 도축장 80여 곳에서 하루에 도축하는 돼지들의 마릿수가 적게 잡아 500마리에서 많게는 2000마리에 이르는데,1000마리를 평균으로 해도 8만마리라는 것이다. 이 8만마리에서 나오는 갈매기살은 합계가 모두 32t에 이르는데, 대부분의 식당에서는 갈매기살을 다른 부위와 함께 팔뿐 갈매기살만을 전문으로 파는 집은 전국적으로 따져도 불과 몇 군데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물량이 얼마든지 남아돌아 갈매기살에 가짜를 쓸 이유가 없으니 안심하고 갈매기살의 쫀쫀하고 고소한 맛을 얼마든지 즐기라는 것이다.
  • [지금 그곳은]의욕 앞선 소나기 마을

    [지금 그곳은]의욕 앞선 소나기 마을

    고(故) 황순원의 단편소설 ‘소나기’의 배경마을인 소나기마을을 재현한다고 해 관심을 끌었던 양평 소나기마을 조성공사가 요원하다. 당초 2006년 완공예정이었으나 예산부족으로 10년은 족히 걸릴 것 같다. 조성공사에 소요되는 비용은 100억원가량이지만 해당 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가 워낙 낮아 전액을 국·도비에 의존하고 있는 데다, 내년에 지원받기로 약속된 금액이 10억여원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양평군은 지난 6월17일 ‘황순원 문학촌-소나기마을’ 조성사업 부지로 서종면 수능1리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군과 자매결연을 맺은 경희대는 지금까지 30여곳을 대상으로 타당성 조사를 실시해 지난 4월 후보지를 3곳으로 압축했으며 두달 뒤인 6월 15일 회의에서 군유지 2만 3000평이 있는 수능1리를 최적합지로 결정했다. 군은 당시 부지가 확정됨에 따라 100여억원의 사업비를 연차적으로 확보하고 실시설계 등을 거쳐 내년 하반기 공사에 착수,2006년 소나기마을을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었다. 또 소나기마을에 소설의 배경인 자갈 깔린 개울과 갈대숲·징검다리·섶다리를 복원하며 허수아비 공원과 참외과수원·원두막·호두나무밭에다 작품에 나오는 마타리 등을 볼 수 있는 들꽃동산도 조성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러나 이같은 장밋빛 꿈은 최근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다. 군 재정이라도 여유가 있으면 경기도 예산지원에 보태 공기를 앞당겨 보겠지만 20%를 밑도는 재정자립도로서는 어림도 없는 일. 내년에 달랑 국비 7억원과 도비 3억 5000만원가량을 지원받기로 통보받았다. 이 상태로라면 수치로만 보아도 10년이 걸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마저 액수가 줄지 않고 지원된다는 가정하에서다. 양평군은 이 예산으로 일단 내년에 실시설계에 착수할 예정이다. 착공은 하겠지만 공사진척은 기대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경희대학교가 발벗고 나섰다. 경희대는 지난 9월부터 제1회 황순원 문학제를 11월30일까지 일정으로 경희대와 교보문고 강남점에서 열고 있다.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 건립 사업의 일환으로 열리는 문학제로 황순원 소설 다시쓰기와 황순원 소설 그림 그리기, 황순원 문학 다시보기, 황순원 도서 특별 전시로 이뤄지고 있다. 양평군도 내년에 세부설계가 끝나는 대로 시민단체들과 힘을 합해 기금마련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영세한 자치단체와 지역주민들로서는 한계가 있어 사회 각계각층의 협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성남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 양평 수능리에 ‘소나기 마을’

    고(故) 황순원의 단편소설 ‘소나기’의 배경마을인 소나기마을의 조성사업 대상부지가 확정돼 착공에 들어간다. 경기도 양평군은 ‘황순원 문학촌-소나기마을’ 조성사업 부지로 서종면 수능1리를 결정했다고 16일 밝혔다. 군과 경희대는 지금까지 30여곳을 대상으로 타당성 조사를 실시해 지난 4월 후보지를 3곳으로 압축했으며 15일 회의에서 군유지 2만 3000평이 있는 수능1리를 최적합지로 결정,이날 공개했다. 군은 이 지역이 반달형 지형에 야산 구릉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1950년대 농촌 풍경과 문학적 향취를 재현할 수 있고 개울 등 소설 속 배경을 갖춘 곳이라고 밝혔다. 군은 부지가 확정됨에 따라 100여억원의 사업비를 연차적으로 확보하고 실시설계 등을 거쳐 내년 하반기에 공사에 착수,2006년 소나기마을을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 소나기마을에는 소설의 배경인 자갈 깔린 개울과 갈대숲·징검다리·섶다리가 복원되며 허수아비 공원과 참외과수원·원두막·호두나무밭에다 작품에 나오는 마타리 등을 볼 수 있는 들꽃동산도 조성된다. 황순원의 문학유품을 보관·전시할 문학기념관과 문예캠프를 열 수 있는 집필공간도 마련된다.또 소년이 소녀를 업고 개울을 건너고 조약돌 줍기를 했던 소설 장면을 탐방객들이 체험할 수도 있다. 군관계자는 “올가을 학생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문학제와 사생대회·사이버영상공모전을 열고 장기적으로 문학세미나와 문예캠프·연극 공연·영화 상영·음악제 등 다양한 문화이벤트를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성남 윤상돈기자 yoonsang@˝
  • 자연체험터 운영하는 교육실천가 조영순씨

    작가 이윤기는 ‘하늘 아래,누구의 고향 아닌 마을이 없다.’고 했다.흙냄새 나는 시골만 고향이 아니라 태어나 자란 곳은 어디든 마음의 안식처라는 얘기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 대부분이 훗날 품게 될 고향의 모습은 삭막한 아파트촌,풀 한 포기 없는 도로다.마음 속에 담아뒀다 꺼내보기엔 뭔가 허전하고 아쉽다.그렇다고 아이들에게 과감하게 자연을 선물하자니 교육이 아쉽다.마냥 순진하게 흙에서 뒹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닌 탓이다. 쉽지 않다고 포기할 수도 없다.누군가는 아니 한 공동체의 모든 사람들은 책임지고 아이들에게 자연과 배움 모두 쥐어줘야 한다.하지만 자신의 아이교육도 힘든데 마을 아이들,세상의 아이들을 생각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경기 양주시 봉암리에는 스스로 이런 책임을 짊어지고 온 사람이 있다.마을의 아이들에게 자연을 돌려주려는 사람,누구에게나 배움의 기회는 고루 주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실천해온 사람,유명한 교육 이론가보다 마을 사람들에게서 존경받는 ‘교육실천가’ 조영순(75)씨다. ●2000여평 포도농장 갈아엎고 자연체험터 마련 “누구든 환영합니다.아이들 손잡고 봄에는 앵두 따러 오시고 가을엔 고구마 캐러 오십시오.” 경기 동두천 시내에서 10여분 떨어진 곳에는 조영순씨 소유의 2000여평 땅이 있다.그만한 땅이라면 사람들은 계산기를 먼저 두드리기 마련이다.하지만 그는 84년 포도농장을 갈아엎고 마을 아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꾸몄다. 직접 톱질과 칠을 해서 그네,평균대,정글짐 등 놀이터를 꾸몄고 절반의 땅에는 각종 나무와 농작물을 심어 체험 농장도 만들었다. 포도농사꾼이 이렇게 생각을 바꾼 것은 ‘아이는 이렇게 키워라’라는 책을 읽은 것이 계기가 됐다.“서양에는 ‘모험의 놀이터’라는 이름으로 된 곳에서 아이들을 마음껏 놀게 하면서 자연을 알게 하고 자립심을 키운다고 합니다.저도 걱정 많이 했습니다.그러다 걱정만 하고 있을 게 아니라,나부터라도 아이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생각은 좋았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지금은 든든한 후원자인 아내도 처음에는 불만을 털어놓았다.생업인 포도농장을 엎었으니.게다가 아이들이 다칠까봐 하루가 멀다하고 농장의 풀베는 일을 혼자 하다 보니 기계소음으로 어느새 자신의 귀가 잘 들리지 않게 됐다. ●환자복 입고 교통안전 교육 ‘신호등 아저씨’ 하지만 후회는 없다. “이곳에서 놀던 아이들이 찾아와 ‘와!내 앵두나무가 아직도 있네.’라고 얘기할 때는 아이들에게 근사한 고향을 만들어 준 것 같아 그저 흐뭇합니다.” 그는 1년에 한 번씩 이곳에서 마을사람들과 함께 어린이 교통안전 교육을 실시한다.서울의 ‘어린이교통안전연구소’에서 마을 사람들과 함께 교육을 받은 후 인근 어린이집 아이들에게 안전 교육을 시켜왔다.신호등과 횡단보도 등은 그가 손수 만든다. 이날 그의 이름은 ‘신호등’이다.아이들에게 다양한 안전교육을 시켜야 하지만 신호등 지키기를 무엇보다 강조하기 위해서다.그래서 그는 아이들에게 ‘신호등 할아버지’로 불린다.또 그는 환자복을 입고 목발을 짚은 채 아이들을 만난다.사고의 위험성을 보다 생생히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서다. 그는 함경도에서 1953년 1·4후퇴 때 가족들을 두고 홀로 월남했다.대구에서 군생활을 시작했고 동두천에서 오랜 군생활을 마쳤다.퇴직금으로 받은 30만원으로 인근 봉암리에 자리를 잡았다. ●안방문고·장난감도서관… 아이들 위한 30년 ‘아이들을 위해 뭔가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히 품고 있었던 그가 구체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된 것은 74년이었다.평소 책읽는 것을 좋아하던 셋째딸이 제법 큰 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받아온 것이다.“딸아이를 보면서 아이들로 하여금 책을 많이 읽게 하면 문화적인 혜택을 덜 받는 곳에 살아도 도시 아이들과의 격차를 줄일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그래서 안방문고를 시작했죠.” 안방문고라는 말 그대로 자신의 집에 책과 책읽는 공간을 마련해 마을 아이들에게 개방하기 시작했다.3년 6개월 동안 지속됐던 안방문고는 마을 사람들을 하나로 뭉치게 했고,마을도서관 건립으로 이어졌다. “책을 접하니 아이들의 말씨부터 달라졌습니다.그걸 보고 마을 사람들이 독서의 교육 효과를 인정했죠.” 그의 욕심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도서실에 형이나 언니를 따라온 아이들이 놀 만한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부산에 장난감 도서관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가서 직접 눈으로 보고 마을에도 비슷한 공간을 만들었다.하지만 결과는 실패였다.시골아이들에게 놀이기구가 드물던 시절이라 아이들이 하나 둘 장난감을 집으로 가져간 것이었다. “문을 닫았지만 아이들이 계속 찾아와 그 앞에서 쪼그리고 앉아 기다리는게 아닙니까.아,이래선 안 되겠다 싶었죠.” 그래서 그는 면마다 하나씩 할당되던 새마을유아원을 봉암리에 유치하는 데 갖은 노력을 했다.84년 마침내 공립 어린이집이 이 마을에 문을 열었다.그는 초대원장을 맡았고 이후 13년 동안 그 일을 계속했다.그는 자신을 ‘머슴’이라고 생각하고 어린이집을 꾸려나갔다.아동교육에 대한 책도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때 읽은 책으로 인해 그는 20년간 생업이었던 포도농장을 교육 공간으로 바꾸기에 이르렀다. 그가 만든 놀이기구 중에는 유독 평균대가 많다. “자연을 체험하게 하는 것,책을 통해 지식을 얻는 것,모두 중요합니다.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자립심’입니다.” 그는 아이들에게 자립심을 키워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놀이 기구가 평균대라고 생각한다.아슬아슬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의 힘으로 외나무 다리를 건너면서 아이는 혼자 서는 방법을 배운다는 것이다. “요즘 부모들은 아이들이 다칠까봐 평균대에서 놀지 못하게 하죠.유아원이나 유치원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입니다.하지만 어른들이 건강을 위해 달리기를 하듯 아이들은 자립심을 위해 평균대 건너기를 놀이로 삼아야 합니다.” ●마을서 자란 아이가 보낸 감사카드에 눈물 쏟아 그는 되도록이면 평균대 운동에 부모가 함께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아이들이 혼자 걸으면서 자립심을 기르고 동시에 부모님의 격려와 박수를 받으면서 자신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수십년간 해온 일을 담담하게 말하던 그가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카드 하나를 내밀었다.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이 마을에서 자란 아이가 보낸 생일카드였다.그 안에는 어린 시절 ‘뻔한 조기교육’ 대신 자연에서 뛰어놀 수 있게 해준 할아버지에게 감사드린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걸 받고서 ‘아,내가 그동안 헛수고한 것은 아니구나.’라는 생각에 눈물이 나더군요.단 한명의 아이일지라도 제 노력으로 회상하고픈 어린 시절을 갖게 된다면 앞으로도 지금처럼 아이들을 위해 살고 싶습니다.” 봉암리의 교육실천가 조영순씨.그는 아이들을 이 학원에서 저 학원으로 내쫓는 이 시대 부모들에게 ‘진정한 의미의 교육’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호두·잣 싹쓸이 “청설모 미워”

    충남 천안,경기 가평,강원도 홍천 등 대규모의 호두와 잣 생산단지 농민들은 최근들어 청설모 탓으로 시름이 깊어가고 있다. ●잣과 호두 종자수확도 못할정도 충남 천안의 명물 ‘천안 호두과자’를 탄생케 한 천안시 광덕면은 1970년대 연간 2000∼3000가마(40㎏짜리)에 이르던 호두 생산량이 최근 300∼400가마로 크게 줄어들었다.광덕면 주민들은 2000년 초 ‘광덕 호두살리기위원회’까지 만들어 청설모 퇴치운동에 나섰다.서태호 위원장은 “청설모가 판쳐 산속에 있는 호두나무는 대부분 관리를 포기하고 있다.”며 “매년 대대적으로 청설모 소탕작전을 벌이고 있지만 잡으면 다른 산에서 또다시 옮겨와 우리 지역만 노력한다고 완전 퇴치가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경기도 가평군 풍천1리 왕광희(49) 이장은 “수확철이 한참 지난 요즘도 잣밭에 가보면 청설모가 싹쓸이할 때는 보지 못하던 빈껍데기 잣송이가 나무에 그대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2시간 만에 송이 하나에 들어 있는 80∼140개의 잣알을 먹어치운다.하루에 2∼3송이가 한마리에 희생되는 꼴이다. ●‘꼬리하나에 5000원’ 포상금 청설모를 포획하는 주 무기는 가는 철사를 동그랗게 만들어 매듭진 올무와 공기총.어떤 곳은 ‘낚싯대 올무’가 등장한다. 광덕 주민들은 청설모 잡기운동이 실효를 거두지 못하자 지난해 최초로 천안시의 지원을 얻어 포상금 제도를 도입했다.‘청설모 꼬리 하나에 3000원’.공기총을 가진 이들이 경찰의 허가를 받아 호두나무숲을 누비며 청설모를 잡은 뒤 꼬리를 속속 잘라왔다.이렇게 해서 지난해 1901마리가 잡혔고 포상금으로 모두 570여만원이나 지급됐다.올해에는 포상금을 마리당 5000원으로 올려 더 많은 포획을 노리고 있다. 국내 최대 잣 생산지인 경기 가평군은 지난해 처음 재배농가에 올무를 보급했다.산지개발담당 직원 박정선(38)씨는 “2002년에는 총생산량이 1만 7521t으로 전년의 14만 5949t보다 급격히 줄어 작황부진에다 청설모 탓인가 싶어 올무를 보급했다.”고 밝혔다. 2570만원을 들여 지난해 4월부터 10월까지 전체 재배면적의 일부분인 190㏊에 나무마다 10∼12개씩 설치,594마리를 잡는 성과를 거뒀다.한마리가 매년 20㎏(1㎏당 1만원)의 잣을 먹어치우는 청설모를 이만큼 잡아내면 연간 1억 1800여만원을 더 벌어들이는 셈이다. 충북 충주시 상모면 수회리에서 경제림 종자보급을 위해 잣밭 24㏊를 운영하는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종자연구소에서도 올무를 쓴다.이 연구소 김종환(52) 박사는 “초기에는 공기총을 쐈으나 잘 맞지 않아 올무를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천안 이천열·홍천 조한종기자 sky@seoul.co.kr˝
  • 속리산 황토방서 칩거중인 도종환 시인

    “봄꽃이 이리저리 피어 있습니다.자두나무의 하얀꽃이 눈이 부십니다.들꽃도 많이 피어 있지요.그래서인지 요즘 글도 많이 쓰여지는 것 같아요.건강도 많이 회복됐어요.” ‘접시꽃 당신’으로 유명한 시인 도종환(50)씨.그는 지난 2월 몸 담고 있던 진천 덕산중학에 불쑥 사직서를 내고는 속리산 기슭의 황토방으로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이유는 피로가 쉽게 오는 신경계 계통의 지병이 좀처럼 낫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현재 머무는 황토방의 문패는 ‘구구산방(龜龜山房)’이다.신문도 없고 TV도 없는 세상과 담쌓은 외딴 산골이다.그는 ‘구구산방’에 칩거하면서 틈틈이 써놓은 글을 모아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라는 산문집을 최근에 냈다.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시인의 맑고 잔잔한 마음을 담았다.벌써 4쇄를 찍을 정도로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이래저래 수소문 끝에 전화를 걸어 근황을 물었다.그는 “4.15총선때 투표를 하기 위해 청주를 다녀 왔을 뿐 줄곧 구구산방 주변에서 멤돌고 있다.”고 건강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총선결과 진보세력들이 국회에 많이 진출했다고 하자 그는 “평소 서민들과 노동자를 진정으로 위하는 사람들이 국회에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부연했다(그는 89년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됐다가 98년에 복직했다). 혼자 황토방에 있으면 외롭지 않느냐고 물었다.돌아오는 대답이 “봄비가 밟고 간 자리마다 푸릇푸릇하다.뒷뜰에도,텃밭에도,산등성이에도 새싹이 움트고 꽃이 더욱 피어나고 있다.”고 하면서 기르는 닭 세마리도 저 즐거워라 뛰놀고 있단다.그러면서 하루 4시간은 텃밭에서 장작패고 채소 가꾸며 노동하고,네시간은 자연과 만나고,나머지 네시간은 읽고 쓰다보면 하루가 후딱 지나간다고 했다. “텃밭에는 근대,고추,아욱 등을 심어 반찬도 하고 닭모이로도 사용합니다.밭에 물 주고 잡초도 뽑아주는 정성을 쏟으면 여름날 먹을 만큼 거두지 않겠습니까.” ‘쓰는 일’에 대해 물었다.봄이 무르익어서인지 들꽃,산꽃을 보면 절로 뭔가 쓰고 싶어진다는 그는 “그때 구슬꿰듯 하루하루 정리해보면 시가 되고 산문이 되는 것 같다.”면서 봄날의 새싹처럼 창작의욕도 솟구치는 것 같다고 부연했다.딱히 정해진 주제는 없지만 깊이 있는 생각,철학이 담긴 글,마음을 비우는 그런 글을 쓰고 있다고 귀띔했다. “요즘에는 유영모 선생의 동양사상에 관한 책을 읽고 있습니다.또 얼마전에 한 지인이 보내온 ‘박헌영 일대기’를 틈틈이 읽곤 합니다.” 황토방 생활을 한지 3개월 가까이 되면서 다행히 건강을 회복했다는 그는 앞으로 생각나는 대로 읽고 쓰고 텃밭을 일구는 일 외에는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완전과 완벽은 인간의 영역이 아닙니다.중요한 것은 오늘 하루 충실한 삶을 살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김문기자 km@seoul.co.kr˝
  • 책 / 딸아 딸아 연지 딸아

    유안진 지음 문학동네 펴냄 “아랫녘 웃녘 새야/전주 고부 녹두새야/녹두밭에 앉지 마라/두류박 딱딱 우여.” 어린아이들의 입을 통해 널리 불려진 ‘녹두새’란 제목의 동요다.여기서 새는 민중이고 두류박은 두류산을 가리킨다.녹두새는 전봉준이 체구가 작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그리고 ‘딱딱 우여’는 날아가라는 뜻이다.전주라는 말에는 전봉준의 전씨가 왕이 되려한다는 의미도 담겼다.그렇게 볼 때 이 동요는 동학혁명을 일으킨 전봉준이 실패하기를 바라는 관변에서 만들어 퍼뜨린 것임을 알 수 있다. 민요는 이처럼 시대상을 반영한다.그런가하면 갓난아이에게 들려주던 자장가,힘든 농사일 중에 부르던 노동요,장터의 각설이타령,세시풍속과 관련된 노래,재치 있는 말장난이 담긴 노래 등 그 스펙트럼이 매우 다양하다. ‘딸아 딸아 연지 딸아’(유안진 지음,문학동네 펴냄)는 시인이자 소설가인 저자(서울대 아동학과 교수)가 30년 가까운 세월에 걸쳐 수집한 우리 노래 209편을 묶은 민요 모음집이다.저자는 민요를 내용에 따라 부녀자들이 불렀던 부요(婦謠)와 남정네들이 불렀던 속요,여자아이들의 동요와 남자아이들의 동요로 나눠 실었다.민요는 우리 삶의 모습만큼이나 다종다양하다.작사자나 작곡가가 따로 없고 소리꾼과 청중도 따로 없다.누군가 지어 부른 뒤 또 다른 사람이 저마다 사연을 보태어 부르면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것이 민요다.저자는 “전래동요와 속요야말로 가장 짙고 야한 바탕색 그대로의 우리 말,우리 혼,우리 넋의 우리 문화”라고 말한다. 저자는 일찍이 우리 말과 민속에 깊은 관심을 보여왔다.‘바람꽃은 시들지 않는다’등 그가 쓴 장편소설이나 ‘월령가 쑥대머리’같은 시집도 모두 민속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저자의 민요 해석은 그런 민속학적 지식에 힘입어 한층 설득력을 더한다.부인들이 부르던 민요 ‘답교’의 한 토막.“정월 상원일에 달과 노는 소년들은/답교하고 노니는데/우리 임은 어딜 가고 답교할 줄 모르난고/이월 청명일에 나무마다 춘풍들고/잔디 잔디 속잎 나니 만물이 희락한데/우리 임은 어델 가고 춘기 든 줄 모르난고….” 답교는 정월 대보름날 밤에다리를 밟던 풍속으로,열두 다리를 밟으면 그 해의 액을 면한다는 이야기가 전한다.그러나 저자의 해석은 사뭇 독특하다.대낮에도 외출이 자유롭지 못했던 부녀자들이 달밤에 다리 위를 건너면서 산책하는 것이 허용·장려된 것은 달빛을 받아 출산력을 강화하고 다리 힘을 키워 건강한 아이들을 자주 임신·출산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나아가 달힘 마시기·달모래 찜질·그네뛰기·널뛰기·탑돌이 등도 부녀자들이 다산력을 얻기 위한 우리 민속이라는 견해를 편다. 민요를 대하면서 얻는 또다른 즐거움은 우리의 맛깔스러운 말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고네기·달구·군디·딩겨·강생이·구무·번들개·거렁·다릉개·나승개….민요에는 듣기만 해도 정겨운 사투리와 옛 말들이 오롯이 남아 있다. “가자가자 감나무/오자오자 옻나무/대낮에도 밤나무/벌건 대낮 밤나무/등 밝혀라 등나무/시퍼래도 단풍나무/죽어서도 살구나무/회초리는 싸리나무/마당쓸어 뱁싸리나무/아무따나 모개나무/멍들었다 자두나무/귀신 쫓는 복숭나무/무덤 둘레 엄가시나무….” 어린 아이들이 한둘 또는 여럿이 선창과 후창으로 불렀던 ‘나무 노래’라는 전래 동요다.나무 이름 하나에도 수많은 이야기와 상징이 담겨 있다.여러 말을 이리저리 이어 붙여가며 유쾌한 말놀이를 즐겼던 옛 사람들의 재치와 상상은 지금 접해도 신선한 데가 있다. 우리 옛 노래 중에는 전란을 당해 특별히 지어 부른 ‘애국 민요’도 있었다.‘쾌지나 칭칭 나네’와 ‘강강수월래’가 대표적인 예다.강강수월래(强羌水越來)는 ‘강한 왜놈 오랑캐인 가등청정이 물을 건너 왔네’라는 뜻.임진·정유란을 겪으면서 왜의 침략을 받은 전라도 지방에서 봉홧불을 못 올리는 상황이 되자 이같은 노래를 불러 한양 조정에 침략을 알렸다고 한다.한편 경상도에서는 ‘쾌지나 칭칭 나네’를 불러 왜군의 침략을 알렸다.‘쾌지나 칭칭 나네’는 ‘왜장 청정(倭將 淸正) 나왔네.’라는 말을 변용한 것이다. 전래 부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시집살이의 고단함을 토설한 노래.“미나리는 사철이요/장다리는 한철이라/메꽃 같은 우리 딸이/시집 삼년 살고 나니/미나리꽃이 다 피었네.”‘미나리와 장다리’라는 이 민요는 원래 조선 숙종이 장희빈을 편애해 인현왕후를 폐서인시킨 내용을 담은 노래다.민씨 성을 가진 인현왕후를 미나리로,장희빈을 초여름에 꽃피는 무씨받이 장다리에 비유했다.인현왕후의 친정집 당파인 서인,그 중에서도 서포 김만중이 지어 아이들에게 퍼뜨린 동요라는 설도 있다.그러나 저자는 이 민요를 시집살이의 고달픔을 그린 노래로 본다.메꽃같이 튼실하게 어여뻤던 딸이 웃자란 미나리꽃 같이 초췌해진 데 대한 안쓰러움,장다리처럼 한 철뿐인 첩실에 대한 원망 등이 생생하게 드러나 있다. 우리와 함께 나고 자란 우리 민요가 오늘날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가는 현실은 무엇보다 안타까운 일이다.저자의 생각 또한 마찬가지다.“우리의 토종 민들레는 본래 하얀 꽃을 피웠습니다.그러나 외래종인 노란 민들레에 의해 도태당해 지금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지요.우리 민요 또한 그런 운명에 처한 것이 아닐까요.” 민요가 사라져가고 옛사람들의 상상력과 아름다운 말들이 고갈되어가는 현실이기에 이 책은더욱 적극적인 평가를 받을 만하다.1만원. 김종면기자 jmkim@
  • [길섶에서] 앵두

    ‘종로에는 사과나무를 심어보자…’ 유행가 가락을 조리며 종로를 지나다 무심코 보신각공원을 들여다보니 빨간 열매가 가득한 앵두나무가 눈에 들어온다.‘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처녀 바람났네…’라는 노랫말이 있듯 공업화가 한창이던 1970년대초 농촌마을 우물가에서 서울로의 줄행랑을 모의하던 시골 처녀들과 함께 앵두나무도 도망왔나 하는 생각에 실없이 웃는다. 조선 초기 성현이 지은 ‘용재총화’에 따르면 세종대왕은 앵두를 무척이나 좋아했다고 한다.해서 효자인 문종은 세자시절 경복궁 안 울타리마다 앵두나무를 심어 앵두를 따다 바쳤다.이에 세종은 ‘다른 앵두가 맛있다 해도 어찌 세자가 손수 심은 것과 같겠느냐.’며 흐뭇해했다고 한다.한양 궁궐의 앵두나무 역사도 간단치 않다는 말이다. 성종때 철정이란 관리가 임금에게 앵두를 진상해 활을 하사받았다는 기록도 있다.앵두 한 쟁반으로 임금의 환심을 샀다는,그야말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얘기다.앵두나무 하나에도 이렇듯 얽힌 사연이 구구하다. 김인철 논설위원
  • 경제 플러스 / 당첨안된 녹색복권 나무로 교환

    산림조합중앙회는 1∼5일 서울 종로2가 탑골공원 앞에서 당첨이 안된 녹색복권 2장과 묘목 한 그루를 교환하는 식목일 행사를 갖는다. 옥향,황금측백,매실,감나무,앵두나무,철쭉,목련,작약 등 정원수와 화분용 나무 등이다.
  • 백화점 끝없는 명품 마케팅/ 호두 한쌍 120만원

    주요 백화점의 ‘명품’ 마케팅이 위험 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한 병에 1200만∼1300만원을 호가하는 꼬냑이 선보인데 이어 급기야 두 알에 120만원이나 하는 ‘귀족 호두(사진)’까지 나왔다. 현대백화점은 정월대보름을 4일 앞둔 10일 압구정 본점과 무역점,신촌점에서 한 쌍(2알)의 가격이 최고 120만원인 ‘귀족 호두’를 전시,판매하고 있다. 이 호두는 전남 장흥에 있는 수령 200년의 돌연변이 호두나무에서만 열리는 것으로 일반 호두에 비해 골이 깊고 단단하다는 게 백화점측의 설명이다. 이에 대해 수요자와 시민단체들은 “백화점들이 해도 해도 너무 한다.”는 반응이다.경실련 관계자는 “일부 부유층을 겨냥한 명품 마케팅은 사행심을 조장하고 사회적 위화감을 부추기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면서 “시장 원리도 중요하지만 정도가 심한 경우 정부 차원의 시장 개입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광삼기자
  • 지혜로운 생활/’궁궐 지킴이’를 아십니까 - 우리 궁궐 소중함 알리는 숨은 일꾼

    우리에게 궁궐은 어떤 의미일까.김밥 싸고 잠시 놀러가는 유원지일까? 20일 오후 3시.사우디아라비아 왕궁에서 한국 궁궐 시찰단에 선발된 청년단원 9명이 서울 덕수궁을 찾았다. ◆ 궁궐 지킴이 =“인샬랴,반갑습니다.사우디는 현재 왕이 다스리는 국가고,대한민국도 과거에는 왕이 다스리던 나라였습니다.이곳은 원래 조선 성종 임금의 친형 월산대군(1454∼1488년)이 살았습니다.임진왜란때 도성 궁궐이 화재로 피해를 입자 선조 임금이 이곳에서 나랏일을 보게 되면서 궁궐로 변모했지요….” ◆ 사우디 청년1 =“그럼 왕 후손들은 지금 어디에 살고 있나요?” ◆ 궁궐 지킴이 =“덕수궁은 우리 민족의 불행했던 근대사의 아픔을 그대로 간직한 곳입니다.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체결됐고 고종 임금이 이곳에서 승하했지요.또 덕수궁에 있던 왕손들이 일본에 볼모로 잡혀가 정략적 결혼 등으로 불행한 일생을 마쳤습니다.그러다 보니 왕손들이 저마다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됐고,지금 그후의 소식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반면 사우디는 압둘라왕세자 등 후손들의 활동이 대단하다지요.” ◆ 사우디 청년2 =“한국 왕궁은 왜 전부 목조건물이죠?”(사우디 왕궁은 목재가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 궁궐 지킴이 =“중국에서 전해내려온 우리나라의 궁궐 건축 기술은 원래 나무를 재료로 하고 있습니다.그러나 우리나라는 중국보다 훨씬 섬세합니다…. ” 주부 박복희(46·서울 양천구 신정동)씨는 매주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덕수궁에 나온다.‘우리 궁궐 지킴이’ 자원봉사 일을 2년째 맡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치원 어린이부터 대학 교수에 이르기까지 덕수궁을 찾는 내외국인을 상대로 우리 궁궐의 소중함과 아픔의 역사를 설명한다. 평범한 주부였던 박씨는 어느날 우연히 궁궐에 들렀다가 궁궐 자체가 역사와 문화의 결정체라는 사실에 매료돼 자원봉사로 나서게 됐다.주말마다 외출하는 박씨에 대한 남편의 시선이 처음에는 곱지 않았지만 지금은 외국 출장때마다 그 나라의 궁궐자료를 일부러 구해 올 정도로 박씨의 일에 적극적이다.그러다보니 휴일때 가끔 가족들이 모여 서로 궁궐을 소재로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한다. 그는 “궁궐은 전국의 장인들이 총동원한 그 시대의 최고 건축물로 기둥 하나하나에 많은 지혜와 철학이 담겨져 있다.”면서 “특히 덕수궁은 우리 근대사의 현장으로 그런데도 고종의 혼전(魂殿)이 있는 자리에 주한 미 대사관 아파트를 짓느니 마느니 하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꼬집었다. 전직 교감 선생님이었던 박상인(61·서울 서초구 반포동)씨는 99년 서울 영등포 장훈고등학교에서 31년간의 교직생활을 접은 뒤부터 창경궁 지킴이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20일 오후 창경궁을 찾은 고등학생들에게 박씨가 풀어 놓는 ‘창경궁의 비밀 보따리’는 마냥 구수하기만 하다. “여러분,궁궐에 왜 개암나무가 많은지 아시나요? 귀신을 쫓기 위해서입니다 …그럼 앵두나무는?귀신을 쫓는다구요?아닙니다.세종대왕이 앵두를 좋아했기 때문이지요.그럼 창경궁이 왜 한때 창경원으로 불렸는지 아세요?” 자원봉사의 길로 나서게 된 동기에 대해 박씨는 “학생들을 데리고 창경궁에 소풍갔을 때 사직찍고 김밥만 먹고 그냥 돌아왔던 교사시절을 생각하면 부끄럽기 짝이 없다.”면서 “지킴이로 생활하는 동안 헤어졌던 제자들과 우연히 만나는 기쁨도 맛보았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현재 궁궐 지킴이 자원봉사자들은 모두 150명.지난 99년 겨레문화답사연합(문화재청 후원)에서 관련 강좌와 교육 프로그램을 개설하면서 본격적인 지킴이 활동이 시작됐다.궁궐에 대한 새로운 인식,즉 단순히 소풍 장소가 아닌 조선시대 역사와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역사 교육의 장으로 접근하자는 취지에서였다. 궁궐 지킴이들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 또한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처음에는 주부가 많았지만 요즘에는 퇴직자와 대학생 등 다양한 계층이 지킴활동에 참여하고 있다.이들은 또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기 위해서”“내 자신이 공부가 되는 일이라서”“늘그막에 손자에게 뭔가 알려주고 싶어서”등 다양한 동기를 밝히고 있다. 강임산 겨레문화답사연합 사무국장은 “서울 도심의 한 복판,옛 도성 둘레 40리 안에 경복궁,창덕궁,창경궁,경희궁,덕수궁,종묘 등이 자리하고 있다.”면서 “지킴이들이 있기에 우리 궁궐은 더욱 빛날 수 있을 것.”이라고 의미 부여를 했다.한편 궁궐 지킴이는 ‘궁궐의 본질과 구조’‘조선 궁궐사’‘궁궐의 상징물들’‘궁궐건축의 역사와 원리’등의 주제로 2개월간의 현 장답사 및 실습교육을 받아야 하며 4개월동안 선배 지킴이와 함께 소정의 현장 수습과정을 마쳐야 수료증을 교부받고 궁궐 지킴이로 나서게 된다.강사진은 이재희 서울대 규장각연구원,이상해 성균관대 교수 등 대부분 대학교수로 이루어지며 1년에 1∼2차례 궁궐 지킴이가 배출된다.문의(02)723-4208 김문기자 km@
  • [2002 길섶에서] 고향

    예전에 살았던 초가집 터엔 2층 집이 번듯하게 들어 섰지만 우물가에 있던 앵두나무에는 여전히 하얀 꽃이 활짝 피었다고 했다.흙먼지 날리던 신작로가 지금은 4차선으로 포장되어 차들이 쌩쌩 달리고,배고픈 줄도 모르고 송사리를잡던 냇물은 생활 폐수로 오염되었지만 물길은 그대로라고했다.대나무밭 주위의 아카시아는 이제 막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했다고 했다. 바로 엊그제였다.개구쟁이 시절을 한 동네에서 보냈던 고향 친구가 느닷없이 전화를 했다.신문에서 이름을 보고 갑자기 생각이 났다며 한 폭의 풍경화 같던 ‘나의 살던 고향’을 잘도 전해 주었다.문득 철없던 시절이 파노라마처럼펼쳐졌다.때를 놓치지 말고 한번 다녀 가라는 친구 얘기에콧등이 시큰해졌다. 생각하면 까맣게 잊고 있던 고향이다.고향을 잊었으니 같이 놀던 친구들인들 잊지 않았겠는가.당장 이번 주말엔 고향에 가기로 했다.잃어버린 시간들이 소중해졌고 찾고 싶었다.고향은 잠시 잊을 수는 있지만 결코 잃어버려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인학 논설위원
  • 천안 호두농가들 청설모와의 전쟁

    “청설모 잡아오면 한 마리에 3000원을 드립니다.” 충남 천안시 광덕면 농민들이 주 소득원인 호두를 마구따먹는 ‘청설모와의 전쟁’에 나섰다. 70년대까지만 해도 광덕면 농민들은 매년 50㎏들이 2000가마의 호두를 생산,전국 생산량의 70%를 차지했었다.그러나 80년대 이후 지금까지 청설모 피해로 호두 수확량은 연간 500가마뿐이어서 전국 생산량의 30% 수준에 그치고 있는 상태다. 이 때문에 충남도와 천안시가 올해 처음으로 과일을 쪼아 먹는 까치 등 유해조수 퇴치 지원금을 예산에 배정하자광덕면 주민들도 호두를 따먹는 청설모에도 예산을 배정해 달라고 강력히 요청하고 있다. 다람쥐 모양의 회갈색 청설모는 호두가 열매를 맺기 시작하는 7월부터 수확하는 9월까지 호두나무를 오르내리며 호두를 딴다.딴 호두를 물고 자기만의 저장장소에 묻었다가껍질이 썩으면 단단한 껍데기를 깨고 알맹이를 꺼내 먹는다.농민들은 “자기가 숨겨둔 저장 장소를 몰라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계속 호두를 따는 바람에 피해가 크다.”고 얘기한다. 광덕면 500여호두재배 농가는 2000년 1월 ‘호두살리기추진협의회(회장 서태호)’를 구성,지난해까지 덫을 놓고청설모 잡기에 나섰으나 별로 효과가 없어 올해 현상금을내걸었다.최근 들어 전국 농가에서 청설모가 기승을 부리는 이유는 살쾡이 등 청설모의 천적이 줄어든 데다 1년에2차례 10여 마리의 새끼를 낳는 왕성한 번식력으로 인해개체 수가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
  • 나무 세기는 인문학 읽기?

    ▲어느 인문학자의 나무 세기(강판권 지음, 지성사 펴냄). “나무를 세면서 역사와 신화 등 인문학을 가르친다.” 일견 엉뚱해 보이는,이 기발한 발상을 실천하는 학자가있다.주인공은 대구대·계명대에서 역사를 강의하는 강판권 박사.그가 펴낸 ‘어느 인문학자의 나무 세기’(지성사)는 나무를 세면서 역사와 신화를 해석하려는 노력을 담고있다. 저자는 나무세기 학습법에 담긴 철학을 이렇게 설명한다. “성리학자들이 추구한 공부 중 하나는 나무를 세면서 그이치를 깨닫는 것이었다. 이들은 그런 방법을 사서의 하나인 ‘대학’에 나오는 팔조목(八條目) 가운데 격물(格物)과 치지(致知)에서 차용했다.성리학자들이 추구한 격물치지는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각각의 물(物)에 이르러 이치를깨닫는 방식이다.내가 선택한 방법도 바로 이런 것이다.” 또 있다.그에 따르면 격물치지가 점진적 공부라면 가까이있는 것을 생각하는 것도 성리학자들의 추구한 다른 공부였다.‘논어’의 ‘자장’편에 나오는 ‘근사’(近思·가까이 있는 것을 생각함)가 공부의 기본이라는 것이다.자연스레 저자는 학생들에게 나무를 세게 했고 자신의 ‘나무독법’을 모아 책으로 냈다. 그는 나무에 얽힌 다양한 일화를 통해 심오한 동양철학을쉽게 풀어낸다. 예를 들어 천연기념물 1호인 측백나무에서서거정의 시(詩)와 논어를 겹쳐 읽는다. 나무를 통한 발랄한 인문학 산책은 어느새 고흐가 자살 직전 그린 측백나무이야기로 이어진다. 또 복숭아나무에서는 중국 춘추시대의 민요를 소개한 뒤‘삼국지’의 도원결의로 독자를 이끄는가 하면 금새 도연명의 ‘귀거래사’로 나아간다.끊임없이 샘물처럼 솟아나는 저자의 해박한 지식은 복숭아에서 ‘서유기’의 손오공,안견의 ‘몽유도원도’,이인로의 ‘파한집’ 등을 스케치하면서 인문학을 즐겁게 맛보게 한다. 이밖에 뽕나무,석류나무,호두나무,자작나무,향나무 등 그냥 스쳐지났던 숱한 나무들이 저자의 ‘인문학적 상상력’을 만나면서 여러 갈래로 가지를 뻗는다.저자의 안내를 따라가다 보면 나무 세기는 인문학 읽기라는 말이 실감난다. 그는 “개인의 정체성,인문학의 정체성,미래 사회의 향방에 대해 고민하는 과정에서 나무라는 존재가 선택됐다”며“나무와 함께 하면서 모든 인문학의 위기가 저의 무딘 감각,편협한 사고에서 비롯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일상적 풍경 안에 숨어 있는 것을 파헤쳐 인문학적 상상력으로 살아 숨쉬게 하는 저자의 행보는 계속 될 것으로보인다.“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미쳐야 한다.”1만3000원. 이종수기자 vielee@
  • “北 가뭄 300년래 최악”

    북한 전역에 274년만에 최악의 가뭄이 몰아쳐 각종 농작물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고 있다고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5일평양발로 보도했다. 지난 3월초부터 90일째 계속되고 있는 이번 가뭄은 1727년대한해(大旱害) 이후 최악의 상황이라고 통신은 북한 기상청 자료를 인용,전했다. 이 통신은 북한의 올 봄 강수량이 예년의 11%인 18.3㎜에그쳤으며,지난해 강수량에 비해서도 17%에 불과하다고 밝혔다.또 평년보다 10∼13도 높은 고온이 계속되고 있고 바람도 심하게 불어 곡식이 뿌리째 뽑히고 살구와 복숭아,자두나무 등 과실수들이 큰 피해를 입고 있다고 보도했다.
  • [Drive & Shopping] 국도3호선(1)이천 가구매장

    *이천 가구매장 '나만의 가구' 골라사는 재미를…. 90년대 초 전원카페의 등장에 발맞춰 하나둘 자리잡기 시작한 국도와 지방도 주변의 창고형 할인매장들이 최근 크게늘면서 나들이 겸 쇼핑명소로 인기를 끌고 있다.서울에서이천으로 빠지는 경충국도와 45번국도(서울∼양평∼홍천),남양주 등 수도권 주요도로 곳곳에 자리잡아 도심속 할인매장들과는 사뭇 다른 정취를 풍기며 행락객들을 유혹한다.값도 싸지만 맑은 공기와 탁 트인 전원속에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재미가 여간 아니다.나들이와 쇼핑을 겸할 수있는 수도권 일대 창고형 할인매장들을 코스별로 살펴본다. 수도권에서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이천시 백사면 산수유마을.서울에서 이곳에 이르는 경충국도(국도 3호선) 주변에는 각종 할인매장이 빼곡이 들어서 거대한 쇼핑단지를 연출하고 있다. 옷과 가구가 주류지만 나름대로 세분화돼 신혼용과 사무용가구, 침대 등 전문매장으로 치장하고 있다. 의류도 신발에서부터 모피코트,스포츠웨어까지 다양하다.최근엔 건축자재할인매장이 크게 늘었고 안전용품 할인매장까지 들어서 만물상을 방불케 한다. 서울에서 수도권 최대 민속시장인 모란시장을 지나 고가도로 공사가 한창인 교차로에서 좌회전하면 경충국도로 들어선다.20분쯤 달리다보면 광주군 인터체인지가 나오고 곧이어 얕은 고갯마루를 지나면 할인매장들이 하나둘씩 눈에 들어온다.여기서부터 도자기촌이 밀집한 이천시 입구까지 7∼8㎞가 할인매장들이 밀집한 쇼핑의 천국이다. 가장 많은 것은 단연 가구매장.작은 곳들까지 넉넉잡아 40∼50곳이 성업중이다.특히 각 매장이 특징을 살린 전문매장을 운영하고 있어 상호이름만 보고 품목을 선택할 수 있다. 가구는 이것저것 다 늘어놓은 종합가구전시장이 있으며 이것이 고유 상호로 자리잡았다.‘소파전시장’ ‘소파공장’ ‘이태리 직수입소파’ ‘한국전통공예’ ‘혼수마트’ ‘사무가구’ 등이 같은 유형이다.수입가구 전문매장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할인폭이 비슷하지만 치열한 판매경쟁으로품목별 차이를 보이기도 해 구입하기 전 3∼4곳을 들러 가격을 비교해보는 것도 지혜다. ●장롱의경우 가장 재질이 좋다는 참죽나무나 목단으로 제작한 12자짜리가 600만원선으로 1,000만원이 넘는 백화점소비자가격에 비해 40∼50% 수준이다.장미목이나 호두나무로 만든 것도 300만∼500만원으로 절반가격이다.모두 수공예품이다. ●목단 화장대는 백화점에서 49만,5000원 가격이 붙어있는동일한 물건이 33만원에 팔린다.소파는 오리지널 물소가죽으로 만든 1-3피스가 160만원으로 역시 백화점이나 도심 할인매장에 비해 20∼40%가량 싸다. ●식탁은 체리목으로 만든 수입 이미테이션이 의자와 탁자유리를 포함해 40만원가량 한다.명동가는 60만원선.철재는12만원에 의자와 유리까지 구입할 수 있다. ●침대는 싱글이 15만원에서 60만원까지 다양하다.더블의경우 싱글보다 20∼30%가량 값을 더줘야 하지만 어느경우나손해보지 않는다. ●거실장세트는 6자 드레스와 장식장,코너장을 포함해 65만원대를 형성하고 있다.시중가격은 95만원선. ●책상은 목조재질로 쓸만한 것이 26만원.인심좋은 가게는의자를 서비스하기도 한다.시중가는 40만원대. 목조가구 ‘솜씨방’ 사장 오세롬씨(45·여)는 “이 일대가구점들은 대부분 직영공장을 갖고 있는데다 도심보다 땅값이 싸 가격할인폭이 크다”며 “그러나 지나친 할인율을적어놓은 일부 업소는 소매가를 부풀리는 경우가 있어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성남 윤상돈기자 yoonsang@
  • [대한광장] 자두나무 아래에서는…

    이하부정관(李下不整冠)이란 말이 있다.자두나무 아래서는 관을 고쳐 매지 말라는 뜻으로서 행여 오해살 행위 자체를 하지 말라는 뜻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자루채 자두를 가득 따간 사람들과,자신이 먹은 자두가 훔친 것인 줄 몰랐다는 사람들 때문에 시끄럽다.그들 중 일부는아직도 그 자두를 가지고 있다니 가관이다.더욱 가관인 것은 바로 그자루가 드러남으로써 범인임이 밝혀진 인물이 ‘야당탄압’이니 ‘정계개편 음모’니 하는 말로 자루 속에 든 자두의 본질을 희석하려는 점이다. IMF시절 어느 술좌석에서 한 대통령이 나라를 망쳤다고 지탄받을 때필자는 “재임 중 한 푼의 돈도 받지 않았다”는 그분의 말을 빌려변호했다가 “그 말을 사실로 믿느냐”는 핀잔을 들은 적이 있다.필자의 순진함을 핀잔한 그분들이 교육이라고는 의무교육밖에 받지 못한 분들이기에 필자는 식자(識者)의 입장에서 이 나라에 가득 찬 불신을 우려했다.그러나 기업인으로부터 돈을 받는 행위를 뛰어넘어 국가예산,그것도 국가안전에 관련된 옛 안기부 예산을 선거자금으로사용했다는 보도는,배우지 못한 그 분들이 이 나라 정치의 본질을 체감하는 데에는 필자보다 백배는 더 뛰어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게 만들었다. 옛날 박정희정권이 구악을 일소하겠다고 나섰다가 곧 ‘구악이 신악을 뺨친다’는 비아냥으로 되돌아왔던 것보다 더한 역사의 전철이,이른바 문민정부 시절에 저질러졌다는 점은 분노를 넘어 이 역사에 절망을 느끼게 한다.그리고 이런 행위를 온갖 궤변으로 호도하는 정치인들을 보면 이들이 대한민국을 다스리기 위해 우주선을 타고 온 외계인들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게 한다. 지금 필자를 비롯한 일반 민초들이 알고 싶은 것은 국민세금이 특정정당의 선거자금으로 지원되었는가 아닌가 하는 점이다.실패한 전직대통령을 옹호할 때 나를 순진하다고 핀잔주었던 사람들처럼 이런 말을 하는 필자를 “정치를 너무 모른다”고 핀잔주면서 ‘정계개편 음모’니 뭐니 할지 모르지만 이 나라의 한 상식인으로서 필자가 알고싶은 것은 외계인들이 벌이는 고도의 정치게임이 아니라 진실일 뿐이며,그 진실에 따라 법의 정의를 세우는 일뿐이다. 이 나라는 자루채 자두를 훔친 외계인들이 온갖 궤변으로 도둑질을변명해도 좋을만큼 만만한 과정을 거쳐 건국된 나라가 아니다.경남밀양 출신의 최수봉(崔壽鳳:1894∼1921)이란 독립운동가가 있다.의열단원인 그는 26세 때인 1920년 12월 밀양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했다가체포되어 사형 당한 분이다. 투탄으로 아무도 다치지 않았음에도 그를 사형시킬 정도로 악독한 일제를 향해,자신의 목숨을 초개같이 내던진 이런 선열들의 무수한 목숨의 대가로 세운 나라가 이 나라이다. 더구나 그 궤변의 옛 여당 사무총장은 이승만정권의 부정선거에 항의하다가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로 바다에 떠올라 온 국민을 궐기케만든 김주열열사의 고장 출신 국회의원이다.김주열열사의,부정선거규탄의 부릅뜬 눈을 기억한다면 감히 건국 이래 초유의 선거부정을‘야당탄압’‘정계개편 음모’운운하는 외계인의 수사(修辭)로 빠져나가려 하지는 못할 것이다. 검찰에게는 이 사건 수사를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는 시금석으로 삼아야 할 책임이 있다.조선시대 검찰 격인 사헌부 관리들은 조회가 끝난 후 다른 관료들이 다 나갈 때까지 기다렸다.다른 관료들과 뒤섞여나가는 자체가 수사의 엄정함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간 정치검찰이란 질타를 받은 검찰은 국기문란 그 자체인 이 사건에서는 어떠한 정치적 배려도 없이 철저히 수사함으로써 국민 신뢰를회복하기를 바란다. 하긴 벌써부터 누구누구는 수사대상이 아니다라는 말이 나오는 것을 보면 이런 기대가 부질없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이덕일 역사평론가
  • 풍수지리 西歐서도 알아준다

    풍수지리설이 서구에서도 인기를 모으고 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베를린무역관은 21일 서구에서 풍수지리학이 자리를 잡으면서 독일에서만 2,000명이 넘는 풍수지리 자문가가 활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가장 활발하게 응용되는 분야는 건축.독일 조립식 건축물 생산업체인 베베르하우스는 풍수지리설에 입각한 건축물을 제작,인기를 모으고 있으며 바이에른주 마싱시는 최근 90만㎡를 개발하면서 풍수지리설에 따라 공단을 배치,많은 업체들의 호응을 받았다. 함부르크의 파크-하얏트호텔은 조화를 강조하는 풍수지리설을 기초로 자두나무와 현무암 등으로 내부를 장식,평균 객실사용률을 지난해63.5%에서 70%로 높였다. 이동통신업체인 오렌지사는 회사제품에 불행을 가리키는 숫자인 ‘4’를 되도록 피하고 행운을 뜻하는 ‘8’을 쓰도록 하고 있으며 종업원들에게도 행운의 색으로 알려진 빨강이나 파랑,검정옷을 입을 것을권장하고 있다. 에데카 슈퍼마켓 담스타트지점은 냉동제품은 신선하게 보이도록 파란색,자연식품은 따뜻하게 보이도록 검정이나 녹색 등의 포장재를 사용,고객유치에 성공했다. 코트라 관계자는 “최근들어 환경과의 조화가 인간생활과 부(富)에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믿는 서구인들이 늘고 있다”면서 “인터넷 검색엔진인 알타비스타에서 12만개의 풍수지리 관련 단어를 검색할 수있는 것만 봐도 그 인기도를 짐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재천기자 patrick@
  • “경의선 타고 고향갈 꿈 부풀어”

    “결국 다시 이어지는구먼.경의선 곳곳에는 내 젊음이 배어 있어” 해방을 전후해 경의선의 휴전선 부근 3개 역에서 근무한 최문행(崔文行·84·서울 용산구 갈월동)씨에게는 남북이 경의선 철도를 잇기로 했다는 소식이남다를 수밖에 없다. 개성이 고향인 최씨는 북한의 형과 동생들을 만나기 위해 이산가족상봉 신청서를 냈으나 상봉단에 포함되지 못해 섭섭한 마음에 며칠 동안 밤잠을 설치다가 경의선 복원 소식을 들었다. 2일 임진각을 찾은 최씨는 전망대에서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개성 시가지를바라보며 회상에 잠겼다. “저 너머 경의선을 따라 올라가면 내가 일하던 장단역과 토성역이 있지.장단 역사 주변에는 호두나무가 장관이었어”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뜬 최씨는 “다시 연결될 경의선을 타고 개성까지 달려가 역에 마중나온 형제들을 만나는 것이 마지막 소원”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지난 77년 서울역 부역장을 마지막으로 40년 8개월의 철도 공무원 생활을마친 최씨는 1937년 4월 조선총독부 철도국에 취직해 고향인 개성역에서 역무원 생활을시작했다. 황해도 토성역에서 광복을 맞았는데 일본인 역장이 일본으로 쫓겨가면서 역장일을 했다.그해 9월 지금은 비무장지대에 속한 장단역장으로 부임했다. 최씨가 가장 신명나게 역무원 생활을 한 것은 바로 토성역과 장단역에서 일할 때였다. “징용갔던 사람들이 저마다 고향을 찾아 남과 북을 오르내렸지.모두 웃는낯이었어.쉬는 날이면 동료들과 임진강에서 낚시도 하고 매운탕도 끓여 먹던때가 엊그제 같은데…” 기쁨도 잠시,소련군과 미군이 북과 남을 가르면서 민족의 ‘대동맥’은 단절됐다.경의선 남쪽 최북단 역인 장단역 주변에는 판문점이 들어섰다.곧 이어질 것 같던 철길은 50년이 넘도록 녹슬어 갔다. 최씨는 47년 말 서울지방철도청 본부로 발령이 나면서 부인과 두 딸만 데리고 서울로 왔다.최씨는 “개성도 38선 이남이기 때문에 형제들과 함께 올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이 평생의 한이 됐다”고 말했다. 최씨는 남북정상회담 후부터는 형제들을 만날 수 있다는 꿈에 부풀어 있다. “이제 면회소도 설치되고 편지 왕래도 이루어질테니 살아만 있다면 우리 4형제가 경의선을 타고 개성과 서울을 오갈 수 있을 것”이라며 밝게 웃었다. 이창구기자 window2@
  • 청와대 산비둘기 새끼 부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청와대 관저 앞에 둥지를 튼 산비둘기 한쌍이 알을 부화시켜 두 마리의 새끼를 기르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25일 “관저 뜰에서 내려다보이는 자두나무 둥지에 6월 초부터 회색 바탕에 청록색을 띤 암수 한쌍이 알을 품다가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기 하루 전인 지난 12일경 부화시켜 건강하게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측은 새끼가 건강한 어미새로 크도록 둥지를 관찰하는 등 보호하고있다.산비둘기는 평화를 상징하며 암수컷이 평생을 같이 살고 해로운 벌레를잡아먹는 익조로 알려져 있다. 양승현기자 yangb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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