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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명근 의원, “평택항 활성화에 필요한 지원할 것”

    오명근 의원, “평택항 활성화에 필요한 지원할 것”

    경기도의회 오명근(더불어민주당·평택4) 의원은 지난 24일 경기도의회 평택상담소에서 경기평택항만공사 항만사업팀 팀장, 물류 마케팀 팀장이 참석한 가운데 평택항 활성화를 위한 항만 인프라 개발 및 지원사업에 대한 주요 업무보고를 받았다고 27일 밝혔다. 경기 평택항만공사 물류마케팅팀 곽정은 팀장은 코로나 19 관련 평택항 피해상황 보고와 함께 평택항을 이용하는 경기도의 중소 수출기업 물류지원과 평택항 화물유치 인센티브 지원 사업에 관해 보고했다. 또 황두건 항만사업팀 팀장은 평택항 항만 배후단지 2-1, 2-3단계(1종) 조성사업의 진행 현황과 공사가 신규 사업으로 검토하고 있는 평택항 수출·입 자동차 복합물류센터 건립계획에 관하여 설명을 했다. 오 의원은 “코로나19로 침체된 경기도 중소기업과 평택항 관련 지원 사업에 최선을 다해 달라”면서 “그동안 사업의 시행을 위해 노력했던 항만 배후단지 2-1단계(1종) 조성사업이 특수목적법인(SPC)이 설립돼 그 결실을 맺게 돼 고무적이며, 2-3단계(1종) 조성사업의 조속한 시행을 위해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50년 이상된 장수 제품… 초기감기에 효과

    50년 이상된 장수 제품… 초기감기에 효과

    액상 감기약 ‘판피린(panpyrin)’은 피로회복제 ‘박카스’와 함께 50년 이상 된 동아제약의 대표적인 장수 제품이다. 1956년 품목허가를 받고 1961년 첫 생산·판매를 시작했으며 1961년에는 알약이었다가 1977년부터 지금과 같은 크기의 병에 담긴 액제 형태로 바뀌었다. 제품명은 통증(pain)의 ‘pan’, 열(pyrexia)의 ‘pyr’에 어미 ‘in’이 조합된 것으로 ‘감기의 대표 증상인 통증·열에 탁월한 감기약’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현재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제품명은 ‘판피린 큐(Q)‘다. ‘큐’는 감기를 빠르게 낫게 한다는 의미로 ‘빠르다(Quick)’에서 따왔다. 날씨가 추워지거나 일교차가 큰 환절기가 오면 많은 사람은 아직도 ‘감기 조심하세요’란 판피린 광고를 무의식중에 떠올린다. 1960년대 말부터 도입한 캐릭터 마케팅 덕분이다. 동아제약은 TV나 지면광고를 통해 두건을 쓴 판피린 인형을 지속적으로 노출해왔다. 이와 함께 캐릭터 인형에 걸맞은 목소리를 가진 성우 장유진 씨를 기용, ‘감기 조심하세요’란 메시지로 ‘감기에는 판피린’이란 것을 소비자에게 각인시켰다. 지난해에는 배우 박보영을 모델로 한 판피린 TV 광고 ‘골든타임’편을 선보이기도 했다. 판피린 큐는 아세트아미노펜 등 6가지 복합성분이 콧물, 코막힘, 기침은 물론 발열, 두통 등 초기감기에 효과를 보인다. 내용물은 액상으로 돼 있어 물 없이 간편하게 먹을 수 있으며 약효 발현이 빠른 편이다. 1병당 용량은 20㎖로 적어 복용 시 부담도 줄였다. 판피린 큐는 일반의약품으로 처방전 없이 약국에서 살 수 있다. 김태곤 객원기자 kim@seoul.co.kr
  • [포토] 마스크와 두건 쓴 북한 노동자들

    [포토] 마스크와 두건 쓴 북한 노동자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5일 “작업 현장에 절약함을 갖추어놓고 최대한 아껴쓰고 절약하는 기풍을 높이 발휘해가고 있는 평양구두공장 종업원들”이라면서 이들의 사진을 공개했다. 신문은 “크고 고결한 애국의 마음이 담겨진 저 절약함들이야말로 보물함이 아니겠는가”라고 평가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 멸종위기 바다표범 철썩 때리고 줄행랑 친 美 남성 논란

    멸종위기 바다표범 철썩 때리고 줄행랑 친 美 남성 논란

    해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멸종위기 바다표범을 때리고 도망간 남성과 이를 촬영해 인터넷에 올린 친구가 미국 환경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 10일(현지시간) 하와이뉴스나우는 세계적인 멸종위기종인 몽크바다표범을 가격한 남성 일행이 미국해양대기청(NOAA)과 하와이국토천연자원부(DLNR)의 조사를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동해안 지역 출신인 것으로 알려진 이들은 지난달 하와이 오아후섬 해변에서 몽크바다표범 한 마리와 마주쳤다. 신기한 마음에 다가간 남성 한 명은 바다표범의 뒤로 다가가 등을 철썩 때린 뒤 낄낄거리며 줄행랑을 쳤다. 한가롭게 누워있던 바다표범은 갑작스러운 봉변에 놀라 벌떡 몸을 일으켜 남성을 쫓았지만 역부족이었다. 이 장면은 다른 친구가 촬영해 인터넷에 올리면서 급속도로 확산됐고, 동물학대 논란으로 번졌다.영상을 촬영해 올린 에릭 머스테보이는 “영상에 등장하는 인물은 내가 아니”라면서 “친구의 장난을 우연히 포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전혀 몰랐다. 그저 바다표범을 찍고 있었을 뿐인데 친구가 갑자기 그런 행동을 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라고 후회했다. 친구 역시 곧바로 자신의 잘못을 인지하고 후회했다고 덧붙였다. 에릭은 “슬쩍 만져본다는 게 그만 바다표범을 때린 꼴이 되었다”라면서 “친구는 손이 닿자마자 바다표범이 자신을 공격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도망간 것”이라고 대신 해명했다. 그는 “바다표범을 만지는 게 불법인 줄 전혀 몰랐다”라면서 실수를 백번 인정하고 친구와 함께 당국의 조사에 성실히 임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쏟아지는 비난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영상을 올린 이후 친구와 가족이 살해 위협까지 받고 있다”라고 괴로워했다.이번 사건에 대해 하와이국토천연자원부는 멸종위기에 처한 몽크바다표범은 법으로 보호되고 있으며, 어떤 형태로든 바다표범을 괴롭히면 처벌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하와이국토천연자원부 제이슨 레둘라는 “몽크바다표범 학대는 최고 15년의 징역형이나 1만 달러(약 1182만 원)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는 C급 중범죄(class C felony)에 해당한다”라고 강조했다. 미국해양대기청은 경계선이 설치돼 있지 않은 한 바다표범과 최소 15m 거리를 유지하라고 권고했다. 몽크바다표범은 마치 두건을 쓴 것처럼 둥근 머리 모양이 승려 같다고 하여 ‘몽크’(monk)라는 이름이 붙었다. 남아있는 개체 수가 1400마리 정도에 불과한 멸종위기종이다. 이 중 60% 이상이 집단으로 서식하던 하와이 이스트섬이 2018년 허리케인 ‘왈라카’ 영향으로 지도상에서 사라지면서 멸종 위기감이 고조됐다. 당시 미국해양대기청은 “사라진 섬이 멸종위기종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수년이 지나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곽민수의 고대 이집트 기행] 국박서 만난 이집트 유물(상)

    [곽민수의 고대 이집트 기행] 국박서 만난 이집트 유물(상)

    지난달 16일, 국립중앙박물관의 이집트실이 문을 열었다. 기존의 아시아관을 세계문화관으로 확장하며 이집트실을 포함시킨 것이다. 그러나 국립중앙박물관은 이집트 유물을 소장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유물을 외부에서 대여할 수밖에 없었고, 그동안 교류를 해 왔던 미국의 브루클린 박물관에서 90점의 유물을 2년간 대여하게 됐다. 고대 이집트 특별전시는 그동안 한국에서도 몇 차례 열렸지만, 이집트 상설 전시관이 한국에 생긴 것은 처음이다. 비록 2년만 전시가 지속되는 ‘일시적인 상설 전시‘이지만, 앞으로 2년은 언제든 한국에서도 이집트 유물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개관은 상당히 큰 의미가 있다. 새롭게 개관한 이집트실의 관람을 돕고자 두 번에 걸쳐 전시되는 주요 유물들을 소개하려고 한다. 전시는 크게 ‘나일강‘, ‘파라오’, ‘이집트의 신들‘, ‘이집트인들의 사후세계관’, ‘문자 및 예술‘ 등의 테마로 구성돼 있다. 아무래도 유물을 대여해 꾸린 전시실이다 보니 유물의 양과 종류가 풍부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이집트 문명을 개괄해 이해하는 데는 크게 부족하지 않다. 먼저 ‘늪지대 풍경’이라 이름이 붙여진 고왕국 시대의 석회암 부조를 통해서 우리는 고대 나일강의 풍광을 엿볼 수 있다. 이 부조에는 배를 타고 나일강에서 물고기를 잡고 있는 남성과 하마가 묘사돼 있다. 하마는 고대 이집트인들이 나일강에서 가장 두려워하던 존재였다. 이와 같이 일상의 생활상을 그린 부조는 대체로 귀족 무덤의 벽면을 장식하던 것들이다.이 유물의 건너편에서는 몇몇 파라오들의 얼굴을 직접 볼 수 있다. 그 가운데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람세스 2세다. 이 파라오의 모습이 그려진 채색 부조는 세계문화관 개관 포스터에도 들어가 있을 정도로, 전시실의 대표 유물이라고 할 수 있다. 아비도스에 있는 람세스 2세의 신전에서 출토된 이 부조 속에서 람세스는 ‘네메스’라고 불리는 의례용 두건을 쓰고 있다. 람세스 바로 옆에는 프톨레마이오스 시대의 파라오 두상들이 있다. 프톨레마이오스 6세와 클레오파트라의 아버지인 프톨레마이오스 12세인데, 이들은 모두 그리스계 혈통의 파라오들이었기 때문에 생김새가 전통적인 파라오들과는 다소 다르다. 프톨레마이오스 6세는 바로 옆에 있는 1000년도 더 전의 파라오인 람세스 2세와 똑같이 네메스를 쓰고 있다. 그런데 프톨레마이오스 12세가 쓴 관은 모양이 다르다. 이 왕관은 상이집트의 왕관과 하이집트의 왕관을 겹쳐 놓은 이중 왕관이다. 이 이중 왕관에서 안쪽에 있는 끝이 동그란 고깔 모양의 관은 원래는 하얀색으로 채색돼 있는 것으로 상이집트의 왕관이고, 그 나머지 부분은 붉은색인 하이집트의 왕관이다. 파라오들은 상이집트와 하이집트의 왕관이 합쳐진 이중 왕관을 쓰기도 했지만, 때로는 각각의 관을 따로따로 쓰기도 했다. 바로 우측에는 ‘세티 1세의 경계비’라는 이름의 유물이 있다. 세티 1세는 람세스 2세의 아버지다. 이 비석에서 세티 1세는 네메스나 상·하이집트의 왕관과는 또 다른 모양의 관을 쓰고 있다. 이 관은 ‘케프레시‘ 혹은 ‘푸른색 왕관’이라 불리는데, 파라오가 전장에 나갈 때 쓰던 일종의 투구다. 첫 번째 전시실의 중앙에는 4개의 신상들이 전시돼 있다. 고양이 모양을 한 바스테트 여신, 사자 머리를 가진 세크메트-와제트 여신, 호루스를 품 안에 앉고 있는 이시스 여신 그리고 이시스의 남편이자 저승의 왕인 오시리스 신이다. 이 가운데 이시스와 오시리스는 이집트 신화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들 사이에 태어난 호루스는 파라오의 왕권과 관계가 깊은 신인데, 살아 있는 파라오는 호루스의 현현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사후에는 호루스의 아버지이자 저승의 왕인 오시리스와 동일시됐다. 전시 유물들에 대한 소개는 다음 회에서 이어지겠지만, 다음 회가 나오기 전이라도 국립중앙박물관을 한 번 다녀오면 좋을 것 같다. 두 번 다녀오면 더 좋고, 세 번 다녀오면 더더욱 좋다.
  • [안녕? 자연] 북극해 사는 물범이 왜 아일랜드에?…지구 온난화의 비극

    [안녕? 자연] 북극해 사는 물범이 왜 아일랜드에?…지구 온난화의 비극

    북극해에 있어야 할 물범들이 아일랜드 해변에서 잇따라 발견돼 관심을 끌고 있다. ‘아일랜드 바다표범 구조대’는 지난 1일(현지시간)과 2일 북극해에 서식하는 두건물범과 고리무늬물범이 아일랜드 남부 해안에서 연이어 발견됐다고 밝혔다. 두건물범과 고리무늬물범 모두 그린란드 등 북극해와 북대서양 고위대 지대에 분포한다. 그러나 아일랜드에서 두건물범이 목격된 것은 2001년 이후 이번이 5번째이며, 고리무늬물범이 목격된 것은 처음이다.지난 1일 각종 물범 출몰이 잦은 아일랜드 코크주의 한 해변에서 평소 보기 드문 두건물범 한 마리가 발견됐다. 길이 2m, 무게 300㎏이 넘는 수컷 물범은 해변에서 버둥거리다 구조대가 접근하자 바다로 모습을 감췄다. 이후 자취를 감춘 물범은 5일 후 처음 목격된 곳과 가까운 해변에서 죽은 채 발견됐다. 구조대는 “물범이 북극해로 돌아가기만을 바랐지만 여의치 않았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부검에 들어간 구조대는 물범 사인과 관련해 플라스틱 섭취나 장기 손상 등 다방면으로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으며, 다음 달이면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덧붙였다.두건물범이 출몰한 바로 다음 날 코크주 바로 옆 케리주 해변에서는 길이 60cm, 무게 9㎏의 새끼 고리무늬물범이 발견됐다. 북극해에 서식하는 고리무늬물범이 아일랜드 해변에서 발견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곧장 새끼 물범 구조에 나선 구조대는 그러나 물범의 거센 저항 탓에 구조에 실패했다.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며 사라진 새끼는 12일 자취를 감췄다가 150㎞ 떨어진 퀼티 해안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지친 듯 해초에 누워 눈만 끔뻑거리던 물범은 처음과 달리 탈진 상태로 보호소에 도착했다. 아일랜드 바다표범 구조대 이사 멜라니 크로스는 “태어난 지 4~5주 정도밖에 되지 않은 새끼로, 한 달 정도는 더 어미와 함께 있어야 했다. 새끼 홀로 발견됐다는 것은 그리 좋은 징조는 아니”라고 우려했다. 새끼의 폐에서 부종이 발견된 데다 너무 빨리 어미와 분리돼 살아남을 수 없을 거란 관측도 있었다. 그러나 구조대는 13일 애초 우려와 달리 새끼 물범 상태가 호전돼 스스로 먹이를 섭취할 정도가 됐으며 심장 박동도 양호하다고 전했다.구조대는 이번에 발견된 물범들이 기후 변화로 인한 해류 변화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지구 온난화로 북극 얼음이 녹아내리면서 북극해의 염도와 비중에 변화가 생겼고, 이 때문에 북대서양과 그린란드 등 유럽 및 북미 연안을 흐르는 해류의 속도와 방향이 달라지면서 물범이 궤도를 이탈했을 거란 추측이다. 현재 북극 인근 그린란드에서는 기록적인 해빙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여름에는 하루 사이 그린란드 얼음층의 40% 이상에서 얼음이 급격하게 녹는 용융 현상이 관측됐다. 이에 따라 20억 톤의 얼음이 사라졌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유시민, 윤석열 검찰체제 전두환 신군부에 비유

    유시민, 윤석열 검찰체제 전두환 신군부에 비유

    조국 부인 정경심 PC 반출 재차 옹호“검찰이 증거 조작 안 하는 기관이냐”“한국당 최교일, 최성해 총장 접촉”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조국 법무부 장관 가족을 수사하는 검찰을 쿠데타를 일으킨 신군부에 비유해 논란이 예상된다. 유 이사장은 또 조 장관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검찰의 압수수색에 앞서 연구실에서 PC를 반출한 것이 검찰의 증거 조작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한 ‘증거 보존’이라는 기존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면서 유 이사장은 정 교수가 딸을 위해 동양대 총장 명의 표창장을 위조했다고 주장한 최성해 동양대 총장이 접촉한 인물이 최교일 자유한국당 의원이라고 밝혔다. 유 이사장은 1일 유튜브 방송 ‘알릴레오’에서 윤석열 검찰총장과 검찰 조직을 맹비난했다.그는 조 장관 가족 수사에 대해 “윤석열 총장이 총리, 법무부 장관을 다 건너뛰고 대통령하고 맞대결 양상으로 수사권과 기소권을 휘두른 것”이라며 “(논란이) 이렇게 커진 근본 원인은 초기 내사자료에 의거한 윤 총장의 확신 또는 예단을 적절한 방식으로 국정에 반영하지 않고 매우 정치적인 방식으로 자기 의지를 관철하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유 이사장은 이어 “이것은 총칼은 안 들었지만 검찰의 난, 윤석열의 난으로 표현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청문회가 진행되는 과정에 (조 장관의 배우자인 정경심 교수를) 기소한 것은 대통령에게 영향을 미치려고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 이사장은 현재의 검찰을 두고 “완전히 정승화한테 대든 신군부랑 비슷한 정서”라고 꼬집었다. 현재의 윤석열 체제 검찰이 지난 1979년 정승화 육군 참모총장을 전격 체포했던 전두환 신군부와 비슷한 정서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유 이사장은 지난 방송에서 정경심 교수의 연구실 PC 반출을 ‘증거보전’이라고 했다가 논란이 일었던 발언에 대해서도 “AS를 해야 할 것 같다”며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는 “검찰과 정 교수는 서로 불신하고 적대하는 상황”이라며 “(증거) 인멸을 하려면 동양대에서 나올 때 하드디스크를 망치로 때려서 가루를 낸 다음에 충주호에 던져버리면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검찰이 증거조작을 안하는 기관이냐. 증거 조작한 사건이 한 두건이 아니다”며 “불신을 하고 있어서 (사본을) 한 벌 떠놔야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 이사장은 자유한국당 인사들이 조 교수 자녀의 동양대 총장 표창장 논란과 관련해 최성해 동양대 총장과 접촉했다는 언론보도에 대해선 “한분은 최교일 의원이고 다른 한 분은 국회의원은 아니고 엄청 중요한 역할을 하셨던 분이고 지금도 하려고 노력하는 분”이라고 말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학교에 주차난이 웬 말? 교내 주차장 부족으로 아이들 사고 위험 증가

    학교에 주차난이 웬 말? 교내 주차장 부족으로 아이들 사고 위험 증가

    초등학교 주차난으로 아이들의 교통사고 위험이 증가하고 있다. 교내 주차장이 부족하다 보니 차량이 운동장을 침범하거나 학교 안팎 갓길, 교육 활동 공간을 점유하게 되고 그 와중에 주의력이 부족한 아이들과 충돌할 위험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서울시의회 서윤기 의원(더불어민주당, 관악2)이 관내 초등학교 시설 현황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초등학교 주차장 평균 면적은 450㎡로 학교 대지 면적의 3.5%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교원 1인당 주차 면수도 0.66면이며, 0.5면 미만인 학교도 227개교(37.9%)에 달했다. 교내 교통안전에 도움을 주는 지하 주차장 설치 학교 수도 29개교(4.9%)에 불과했다. 학교들 간 주차장 면적 편차도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사립 초등학교의 교원 1인당 주차 면수는 1.33면인데 반해 공립학교는 0.65면으로 두 배 이상의 차이를 보여주었다. 개별 학교의 경우, 교원 1인당 주차 면수가 가장 많은 동광초(6.46)와 가장 적은 신목초(0.03) 간의 차이가 무려 215배에 달했다. 교내 주차장을 둘러싼 정책 갈등과 혼선 또한 심각한 수준이다. 지역 주민들의 학교 주차장 개방 요구는 폭증하고 있지만, 학교장 재량에 따라 일부 개방하는 학교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학교도 많다. 그럼에도 서울시교육청의 정책 대안은 전무한 실정이다. 서 의원은 “교내 주차장 부족은 교직원들과 지역 주민들의 애로 사항일 뿐 아니라 초등학생 아이들의 교통안전과도 직결되는 문제이다. 해마다 교내 교통사고 기사가 한 두건씩 보도되는데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교내 교통사고 방지와 함께 교직원, 지역주민 주차난 해소를 위해 학교 주차장을 크게 늘리거나 지하 주차장을 겸비한 복합화시설 건립을 진지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라며 대책을 촉구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371명 ‘벌벌’ 떨게 한 벌

    371명 ‘벌벌’ 떨게 한 벌

    추석 벌초를 앞두고 벌 쏘임 환자가 증가하고 있다. 12일 경북도소방본부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9일까지 371명이 벌에 쏘여 구급차로 병원에 이송됐다. 벌 쏘임 이송환자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4명(13.5%) 늘어났다. 벌집 제거를 위한 119 출동 사례는 지난달 4435건, 이달 2804건으로 올해만 8238건에 이른다. 이달에는 벌집 제거를 위해 119가 하루 평균 312차례 출동했다. 벌이 왕성하게 활동하는 시기인 데다 추석을 앞두고 벌초객이 늘면서 119 출동 사례가 당분간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경북도소방본부 관계자는 “벌초 시 긴소매에 긴바지를 입고 머리와 목을 감쌀 수 있는 모자나 두건을 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안동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혼전 성관계’ 발각돼 회초리 100대 맞은 인니 20대 커플

    ‘혼전 성관계’ 발각돼 회초리 100대 맞은 인니 20대 커플

    혼전 성관계를 가진 인도네시아 남녀가 공개 태형을 당했다. AFP통신은 지난 31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아체 주(州) 록스마웨의 한 경기장에서 20대 남녀 커플의 공개 태형이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혼전 성관계를 하다 적발된 22세의 남녀는 이날 각각 회초리 100대씩을 맞았다. 검은 두건과 복면을 쓴 형 집행자가 회초리를 내리꽂을 때마다 여성은 비명을 질렀으며, 형을 멈춰달라고 울부짖었다. 이 때문에 회초리질은 수차례 중단됐다. 그러나 공개태형에 참관한 의료진의 허가 아래 형 집행은 계속됐고, 여성은 100대의 매질이 모두 끝난 뒤에야 석방될 수 있었다. 수십 명의 주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된 공개 태형에는 미성년과 성관계를 한 19세 남성도 포함됐다. 보도에 따르면 그는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했다가 적발돼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으며, 역시 100대의 태형에 처해졌다. 현지언론은 매질이 끝난 뒤 남성의 흰 색 상의가 피로 흠뻑 젖어 있었다고 밝혔다. 인도네시아 특별행정구역인 아체는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이슬람이 퍼진 지역으로, 무슬림 비율이 98%에 달한다. 이슬람 근본주의가 강한 이 지역은 2003년 이슬람율법인 ‘샤리아’를 합법화한 이후 매우 엄격한 법 집행을 하고 있다. 샤리아법은 음주, 도박, 동성애, 간음, 공공장소에서의 애정행각 등을 금지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를 어길 경우 태형 또는 징역형에 처한다. 게다가 지난해 2월 인도네시아 정부와 하원이 미혼남녀의 혼전 성관계를 불법으로 명시한 개정법에 합의하면서 처벌 범위도 넓어졌다. 이 때문에 지난 2월에는 공공장소에서 포옹하는 등 애정행각을 벌인 18살 동갑내기 커플이 공개태형에 처해졌으며, 12월에는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한 남성 2명이 100대의 회초리를 맞았다. 지난해에는 동성애자에 대한 공개 태형도 처음으로 진행돼 국제 인권단체의 비난을 샀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화산 분화구에 굴러 떨어져 정신 잃은 새신랑 구한 이는 새색시

    화산 분화구에 굴러 떨어져 정신 잃은 새신랑 구한 이는 새색시

    신혼여행 도중 화산 분화구에 굴어 떨어지며 머리를 다친 새신랑이 목숨을 구했다. 그를 부축해 분화구 위로 15m나 끌어올리고 안전하게 하산하도록 도운 이는 다름 아닌 새색시였다. 화제의 주인공은 지난 18일(이하 현지시간) 카리브해 세인트키츠 섬의 리아무이가 화산에 하이킹을 간 클레이 채스테인(미국)으로 새색시 아카이미의 도움을 받아 아찔한 순간을 넘기고 미국 플로리다주 병원으로 후송돼 회복 중이다. 그는 미국 CBS TV와의 인터뷰를 통해 새색시가 분화구 아래로 내려와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고 구역질을 하는 자신을 부축해 15m나 끌어 올려줬다고 털어놓았다. 아내는 남편을 부축해 3.2㎞를 걸어 내려와 그곳에서 비로소 사고 신고를 했다. 채스테인은 “그녀는 정말로 믿기지가 않는다.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었던 내가 그 화산을 내려오게 만든 그녀의 능력은 놀랍다. 이건 기적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정상에서 분화구로 내려가는 길에 설치된 로프를 잡고 내려가다 놓쳐 굴러 떨어졌다. 그가 도와달라고 소리를 질러 아카이미가 달려갔을 때 그는 남편의 전화와 반다나(두건)가 바닥에 떨어져 있고 머리에서 피가 흘러나온 채 누워있는 남편을 발견했다. 주위에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휴대전화도 터지지 않았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스스로 걸어내려왔다. 그렇게 3.2㎞를 내려오는 데 3시간이 걸렸다. 새색시의 체격이 큰 것도 아니었다. 키 157㎝에 몸무게 47㎏ 밖에 되지 않았다. 남편은 계속 아내에게 몸을 의지해야 했고, “얼마나 더 가야 하느냐’고 계속 물었다. 기금 모금 사이트인 고펀드미 닷컴에서는 채스테인이 플로리다주 로더데일의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도록 전세기를 보내는 비용으로 3만 달러 이상을 모았다. 민간 여객기로 이동하면 고도가 높아 뇌에 압력이 가해져 위험한 일이 생길지 몰라서였다. 그래서 낮은 고도로 비행해 뇌에 전해지는 압력을 낮출 수 있는 전세기를 이용했다. 이 모든 과정을 주도한 것이 능력자 아카이미였음은 말할 나위 없다. 의료진은 척수 용액이 코를 통해 흘러나와 머리에 출혈이 있었을 뿐이며 두개골 골절은 물론 어떤 뼈도 부러지지 않아 회복하는 데 문제가 없다고 진단했다고 영국 BBC는 26일 전했다. 아내는 인디애나폴리스 스타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가 그렇게 다치고도 스스로를 지탱할 수 있었던 것은 기적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히잡 벗어던지는 용감한 이란 여성들…“변화는 진행형”

    히잡 벗어던지는 용감한 이란 여성들…“변화는 진행형”

    이란의 젊은 여성들에게는 히잡을 두르지 않고 거리를 단순히 걷은 행위가 저항의 표시다. 걷는 순간마다 도덕경찰에 의해 괴롭힘을 당하거나 심지어 체포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도덕경찰은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시행된 엄격한 복장 규정을 단속한다. “정말, 정말로 겁이 난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어요.” 30세의 소방 컨설턴트는 두려움에 익명으로 왓츠앱을 통해 음성 메시지를 전했다. 그녀는 더 많은 여성들이 히잡 항의에 참여함에 따라 당국이 억누르기가 점점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어 희망적으로 느낀다고 말했다. “도덕경찰은 우리를 쫓지만 잡을 순 없어요. 이게 우리의 변화가 진행형이라고 믿는 이유예요.” 히잡 논란은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가 2015년 서명한 핵합의에서 탈퇴하고 유례없는 제재를 부과함에 따라 이란 사회가 더 극단화됐다고 AP통신이 15일(현지시간) 전했다. 통화 폭락과 집값 폭등을 포함한 경제난 속에서 정부당국이 히잡 의무를 어느정도 단속할 지 불분명하다.많은 여성이 시아파 무슬림 지배층과 보안 기관들의 대응을 간 봄으로서 복장 규정 금지선을 재규정하려는 일화들이 많다. 테헤란의 상가, 공원, 호텔로비 등 부유한 지역에서 9일동안 여성 20여명이 히잡을 두르지 않은 모습이 포착됐다고 AP는 전했다. 또 다른 많은 여성들은 명백한 도전의 바로 직전으로, 색색의 스카프를 느슨하게 둘러 머리 숱이 반쯤은 노출되었다. 심지어 전통적인 옷차림의 여성들이 많이 찾는 테헤란의 그랜드 바자르에서도 대다수 여성 쇼핑객들은 캐주얼한 히잡을 둘러썼다. 반면 상당수의 여성은 검은 옷, 소위 말하는 차도르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꽁꽁 감싸고 있었다. 히잡 의무 착용에 대한 투쟁은 2017년 12월 한 여성이 테헤란 혁명의 거리에 있는 유틸리티 박스 꼭대기에 올라가 히잡을 막대기에 걸치고 휘두른 것이 머리기사로 나오기도 했다. 당시 시위에 참여한 여성 30명 이상이 체포됐으며, 이 가운데 9명은 아직도 구속돼 있다고 미국 뉴욕에 사는 이란 활동가 마시 알리네자드가 말했다.시위자를 침묵시키려 할수록 논란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강력하게 증폭돼 왔다. 지난달에는 보안요원이 히잡을 하지 않은 10대 여성을 붙잡아 경찰차 뒤에 거칠게 밀어넣는 모습의 영상이 온라인을 통해 널리 퍼지면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하산 로하니 대통령과 이란 최고지도자인 아야툴라 알리 하메네이는 공식적인 복장 규정을 준수하지 않는 여성을 향해 다소 부드러운 태도를 견지한다. 반면 그런 완화에 반대하는 강경파들은 이란 핵협상이 비틀거리면서 영향력이 더 강력해지고 있다. 이들은 여성들이 머리를 내보이는 것은 도덕적 부패이며 가족의 붕괴를 허용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채찍질을 비롯한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사법부는 히잡을 하지 않은 여성에 대해 특정 소셜미디어 계정에 사진이나 동영상을 보내 신고하라고 촉구했다. “공공연하게 성적인 방식으로 옷을 입는 여성이 많으면 많아질수록 사회적 평화는 줄어드르고, 범죄율은 더 높아진다.” 준(准)군사조직인 바시지단체 여성분과위원장 미누 마스라이가 지난주 한 행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또 다른 집회에서는 차도르 차림의 여성 수천명이 참석했다. 한 명은 “자발적인 히잡은 적의 계략이다”는 표지판을 들고 있었다.개혁주의자 의원인 파르바네 살라쇼리는 강요하는 것은 효과가 없다고 말했다. “우리가 본 것은 도덕경찰이 실패해 왔다는 것”이라는 그는 종교적 신념에 따라 두건을 두르고 있다. 그녀는 입법을 통해 히잡 규칙을 변경하는 것은 의회의 제약 탓에 될 것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대신 여성들은 비폭력 시민 불복종 운동을 해야 한다고 살라쇼리는 말했다. “천천히 가는 어려운 길이지만 이란 여성들이 결코 포기해서는 안된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란에서 히잡 논쟁은 1930년대 중반 당시 왕인 샤 레자 팔레비의 서구화 정책으로 경찰이 여성의 히잡을 강제로 벗기는 것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아들과 후계자들은 여성이 선택할 수 있게 했고, 서구적 의복 스타일은 엘리트층에서는 흔했다. 활동가 알리네자드는 “이란 정부가 여성들에게 머리수건을 강제로 쓰는 하는 것은 사회 전체를 인질로 잡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히잡 반대 운동이 함의하는 상징적 무게를 보여준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조선 후기 천문시계 ‘혼개통헌의’ 등 10건 보물 지정

    조선 후기 천문시계 ‘혼개통헌의’ 등 10건 보물 지정

    조선 후기 천문시계인 ‘혼개통헌의’, 조선 후기 이인문의 역작 ‘강산무진도’ 등 10건이 보물로 지정됐다. 문화재청은 실학자 유금(1741∼1788)이 1787년 제작한 과학기구인 혼개통헌의를 포함해 모두 10건의 문화재를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했다고 26일 밝혔다. 혼개통헌의는 별 위치와 시간을 알려주는 원반형 모체판과 별을 관측하는 지점을 가르쳐주는 ‘T’자 모양 성좌판으로 구성했다.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제작 사례가 알려진 유물로, 1930년대 일본인 도기야가 사들여 일본으로 가져갔다가 한국으로 돌아와 현재 실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강산무진도는 조선시대 궁중화원 이인문(1745∼1821)이 ‘강산무진’(江山無盡)을 주제로 그린 8.5m 길이의 두루마리 형식 그림이다. 불교 문화재로는 ‘구미 대둔사 삼장보살도’, ‘김천 직지사 괘불도’, ‘고창 선운사 참당암 석조지장보살좌상’이 보물이 됐다. 구미 대둔사 삼장보살도는 18세기 경북 지역에서 활동한 승려화가들이 천상·지상·지하 세계를 관장하는 보살을 그린 그림, 직지사 괘불도는 승려화가 13명이 1803년 함께 완성한 12m 높이 그림이다. 고창 선운사 참당암 불상은 여말선초 시기 유행한 두건을 쓴 지장보살좌상이다. 이외에도 ‘도은선생시집 권1∼2’, ‘도기 연유인화문 항아리 일괄’, ‘이인문 필 강산무진도’, ‘신편유취대동시림 권9∼11,31∼39’, ‘완주 갈동 출토 동검동과 거푸집 일괄’, ‘완주 갈동 출토 정문경 일괄’이 보물로 지정됐다. 보물 지정은 문화재위원회 동산분과위원가 결정한다. 격월 회의가 원칙이지만, 최근 신청이 많아 매월 회의를 열고 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EN스타] 함소원♥진화 딸 혜정, 귀요미 외모 자랑하는 근황

    [EN스타] 함소원♥진화 딸 혜정, 귀요미 외모 자랑하는 근황

    함소원, 진화 부부의 딸 혜정 양의 근황이 공개됐다. 9일 함소원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혜정이~ 잼나게 노넹. 우리 혜정이 두건도 잘 어울리네”라는 글과 함께 사진을 올렸다. 사진에는 두건을 쓴 딸 혜정 양의 모습이 담겼다. 두건을 쓴 혜정 양은 귀여운 외모로 눈길을 사로잡았다. 한편, 함소원은 18세 연하 남편 진화와 결혼해 슬하에 혜정 양을 두고 있다.사진=인스타그램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러닝 히잡 팔면 되겠니” 위협에 데카슬론 판매 유보하기로

    “러닝 히잡 팔면 되겠니” 위협에 데카슬론 판매 유보하기로

    자유 평등 박애의 나라인 프랑스에서마저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세계 최대의 스포츠용품 소매체인인 데카슬론이 무슬림 여성 달림이들을 위한 ‘러닝 히잡’ 판매 계획을 유보했다. 회사는 “연이은 공격”과 “전례 없는 협박”을 받아 부득이하게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일부 정치인들은 러닝 히잡이 이 나라의 세속주의 가치관과 충돌한다고 주장했으며 일부 의원들은 이 브랜드의 보이콧까지 주장했다. 하비에르 리보이레 데카슬론 대변인은 26일(현지시간) RTL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우리는 이 순간 프랑스에서 이 제품을 판매하지 않기로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그는 전에 히잡 판매 계획을 AFP통신에 밝히면서는 자신들의 결정이 “세계 모든 여성들이 스포츠에 접근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머리만 덮고 얼굴은 가리지 않는 가볍고 소박한 두건(헤드스카프)인 히잡은 다음달부터 49개국에서 판매에 들어가며 이미 모로코에서는 시판에 들어갔다. 미국의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는 2017년부터 프랑스에서 스포츠 히잡을 마케팅하고 있어서 새삼스러울 일은 아니다. 그런데도 프랑스인들은 자국 기업인 데카슬론이 러너 히잡을 판매하는 데 대해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데카슬론에 따르면 지금까지 주문은 500건 정도 들어왔지만 점포 직원들이 욕설을 듣거나 심지어 물리적 위협을 받는 등의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아그네스 부진 보건부 장관조차 RTL 인터뷰를 통해 프랑스에서 시판이 금지된 것은 아니지만 “이 여성들의 전망을 공유하지 못하겠다. 차라리 이런 헤드스카프를 프랑스 브랜드로 제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공언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속한 ‘공화국 전진(REM) 당’의 아우로레 베르게(여성) 대변인도 트위터에 “여성이자 시민으로서의 내 선택은 우리의 가치관과 유리된 이 브랜드에 대한 신뢰를 거두는 것”이라고 밝혔다. 데카슬론은 이 트윗에 대해 “우리 목표는 단순하다. 때때로 어울리지 않는 히잡을 쓰고 달려야 하는 여성들에게 맞춤한 스포츠 용품을 제공한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시간이 흐른 뒤에는 “고객들의 요구에 부응하려는 우리의 야망을 넘어서는 폭력적인 반응들이 사라져 평온을 되찾길” 바란다고 밝혔다. 프랑스는 엄격한 세속주의를 택해 종교와 교육을 분리하는데 학생이나 공공부문 노동자가 베일과 같은 종교 상징을 밖으로 드러내면 중립성을 해친다고 보고 금지하고 있다. 따라서 무슬림의 헤드스카프 역시 공공장소에서는 허용되지만 2004년부터 공립학교와 일부 공공건물들에서는 착용하지 못하게 돼 있다. 2016년에 프랑스의 여러 지역들에서는 무슬림의 전신 수영복인 부르키니(부르카+비키니)를 해변에서 입지 못하도록 했다가 대볍원에서 불법이란 판결을 받았다. 이미 2010년에 얼굴 전체를 가리는 부르카를 금지했을 때부터 인권단체들은 자유와 평등, 박애를 존중했던 이 나라가 이슬람무섬증에 젖어 있으며 무슬림 여성들을 자극한다고 비난해왔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36번 광수’의 분노… 그날 이후 난 최룡해가 됐다

    ‘36번 광수’의 분노… 그날 이후 난 최룡해가 됐다

    “도청 못 지키고 살아남아 평생 죄책감… 5월을 모독하지 말라”“그라믄 내가 쩌기 위에(북한) 있어야 할 거 아니여.” 극우 인사 지만원(77)씨로부터 ‘광수’ 36번, 최룡해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으로 지목된 양동남(58)씨는 “내가 광수 중에 서열이 제일 높다. 서열 2위가 뭐 한다고 여기서(한국) 살고 있겠느냐?”며 허탈하게 웃었다. ‘광수’는 ‘광주시민군으로 위장한 북한 특수군’을 지칭하는 지씨의 표현이다. 웃음으로 승화했지만, 그는 39년 전 학살의 현장에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간직하고 있었다. 지난 13일 역사 왜곡에 항의하기 위해 국회를 찾은 그를 만났다. 양씨는 “처음에는 황당해서 사진을 보고 나라고 말도 안 했다”며 “유치한 장난을 계속 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5·18 유공자에 대한 능멸이 계속되자 양씨는 2016년 말 지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양씨는 지난해 서울중앙지법에서 지씨의 변호사가 “왜 광대뼈가 튀어나왔느냐는 질문을 했다”며 “변호사가 법정에서 그게 물어볼 이야기냐”고 황당해했다. 양씨는 재판정에서 이렇게 성토했다고 한다. “당신들도 잡혀가서 한 5개월 두들겨 맞으면서 조사받아 봐라. 한 끼니에 군용 숟가락으로 세 숟가락 뜨면 식사가 끝났다. 하루에 밥을 열 숟가락도 못 먹었다. 그렇게 하면 당신들도 광대뼈가 나올 것이다.”광주 시민군 제1 기동타격대 소속으로 1980년 5월 27일 전남도청을 마지막까지 사수하다 체포된 양씨는 조사를 받을 때 북한군 이야기를 들어본 적도 없다고 했다. 담당 수사관은 “김대중이가 만약 대통령이 되면 너에게 광주경찰서 서장 자리 준다고 했지”라는 질문만 했다. 양씨는 “자기들(김영삼 정권)이 5·18 특별법까지 만들어 놓고 이제 와서 북한군 주장을 하고 있다”며 “지만원이의 뇌 구조를 한번 보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다.앞서 지씨가 광수로 지목한 이들의 안면 분석을 했던 최창석 명지대 정보통신과 교수는 “딱 봐도 아닌데 아니라고만 할 수 없어서 객관적 비교를 했지만 역시 아니었다”고 말했다. 서울신문의 의뢰로 광수 36번, 양씨, 최룡해의 사진을 분석한 최 교수는 “광수 36번과 양씨의 눈썹, 눈, 코밑, 입의 간격이 일치했다”며 “반면 광수 36번의 콧대는 죽어 있는데 최룡해의 콧대는 서 있고, 코도 더 길다”고 전했다. 최 교수는 “광수 36번의 턱이 가려져 있고 두건을 쓰고 있어서 정확하게 보기는 어렵다”면서도 “그러면 최룡해라는 근거도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양씨와 함께 이날 국회를 찾은 5·18 관련 단체들도 북한군 개입설을 반박했다. 김후식 5·18 민주화운동 부상자회 회장은 “1988년 청문회 당시 군과 정부(자유한국당 전신인 민정당 정부)가 내놓은 자료에도 북한군이 내려왔다는 말은 한마디도 없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북한군이 개입됐다면 전두환·노태우·김영삼 정권이 가만히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양희승 5·18 구속부상자회 회장도 “북한군이라고 지목한 무명 열사 묘지를 파헤쳐 DNA 검사를 했는데 5세에서 7세로 나타났다”며 “지씨 말대로라면 북한 특수군이 5~7세에 내려왔다는 얘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북한군 묘지라고 파보면 5~7세 아이들” 1980년 5월 27일 새벽 계엄군은 도청을 장악했다. 새벽 5시쯤 마지막 순간에 시민군 박남선 상황실장은 “니기들이 마지막인 것 같다. 니기들이라도 살아서 최후진술을 해라”고 말한 뒤 총을 빼앗아 복도에 던졌다고 한다. 양씨는 계엄군의 대검에 찔려 체포돼 내란실행 혐의로 기소됐다.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그는 같은 해 12월 29일 군사고등법원에서 형집행정지를 선고받고 석방됐다. 그는 “광주와 관련된 일에 절대 가담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 석방됐다”며 허공을 쳐다봤다. 양씨에게 80년 광주는 평생의 아픔이다. 그는 “마지막까지 도청을 지키자고 다짐했는데, 살아남았다.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을 안고 지금까지 살아왔다”며 고개를 숙였다.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그는 석방 이후 감시를 받으면서도 5·18을 다룬 황석영의 책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와 사진, 영상을 들고 전국을 돌며 광주의 진실을 알렸다. 양씨 같은 피해자들의 노력 덕택에 광주의 진실은 역사에 기록됐다. 그러나 양씨는 지금도 5월이 되면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그는 “취직을 해도 봄이 되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몇 번이나 직장을 그만뒀다”며 “1990년 이후까지 신경안정제를 먹어야 잠을 잘 수 있었다”고 말했다. 양씨는 “바라는 게 없다”고 했다. 그냥 5월을 모독하지만 말라는 것이다. 양씨는 “내 주변에서만 2명이 생활고와 트라우마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며 “제대로 일도 못 하고, 빚을 내어 구입한 안정제로 버티는 이들을 모욕하지 마라”고 했다.●“깡패가 막아도 진실 알려… 두렵지 않다” 어두웠던 양씨의 표정은 딸 이야기에 이르자 비로소 밝아졌다. 이날 아침 고등학교 3학년인 딸이 “신나게 싸우고 오라”고 응원을 해 줬다는 것이다. 국회 쪽으로 걸어가니 태극기 부대가 보였다. 두렵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저런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깡패들이 항쟁 사진전을 막으려고 위협했을 때도 진실을 알렸다”며 웃어 보였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고혜지 기자 hjko@seoul.co.kr
  • ‘1박2일’ 차태현 막내딸 차수진표 샌드위치에 “진흙탕 싸움”

    ‘1박2일’ 차태현 막내딸 차수진표 샌드위치에 “진흙탕 싸움”

    ‘1박 2일’ 멤버들이 아침부터 샌드위치를 두고 진흙탕 싸움을 벌인다고 전해져 사건의 전말이 무엇인지 궁금증을 불러 일으킨다. 오늘(10일) 방송되는 KBS 2TV ‘해피선데이-1박 2일 시즌3’(연출 김성/이하 1박 2일)는 김준호-차태현-데프콘-김종민-윤동구-정준영과 인턴 이용진이 차수찬-차태은-차수진 ‘차차차 삼남매’와 함께 경기도 양평으로 떠나는 ‘겨울방학 특집’ 두 번째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런 가운데 차차차 삼남매의 깜찍 막내 차수진이 복불복 제조 멤버로 새롭게 등극해 이목이 집중된다. 공개된 스틸 속 차태은-차수진은 앙증맞은 두건과 앞치마를 두른 채 샌드위치 만들기에 푹 빠져있는 모습. 샌드위치 만들기가 재미있는 듯 입가에 웃음이 떠나지 않은 차차 자매와 달리 샌드위치를 맛보는 ‘1박 2일’ 멤버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정준영은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자신의 샌드위치를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는 모습. 김종민은 샌드위치 먹을 생각에 입맛을 다시고 있는데 그런 그를 안쓰럽게 바라보는 인턴 이용진의 모습이 보는 이들의 웃음보를 자극한다. 그런 가운데 차차차 삼남매 앞에 펼쳐져 있는 알록달록한 음식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빨갛고 노란 재료들이 한 가득한 것. 이에 과연 ‘1박 2일’ 멤버들과 차차차 삼남매에게 무슨 상황이 벌어진 것인지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이 날 차차차 삼남매는 ‘1박 2일’ 멤버들을 위해 고사리 손으로 복불복 샌드위치 만들기에 나선다. 특히 이 날 제작진이 준비한 재료에는 치즈, 햄뿐만 아니라 고추장, 겨자, 고추냉이 등 복불복 재료들이 지뢰처럼 숨어있어 ‘1박 2일’ 멤버들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는 후문. 더욱이 데프콘은 “노란색이랑 초록색도 넣어줘”라며 애정 하는 멤버들의 샌드위치를 특별 주문까지 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급기야 차수진의 손길이 고추장과 겨자 주변을 맴돌 때마다 터져 나오는 멤버들의 괴성이 촬영장을 압도하는 등 차수진표 복불복 샌드위치를 피하기 위한 멤버들의 진흙탕 싸움이 촬영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과연 삼남매 막내 차수진표 복불복 샌드위치를 맛볼 ‘1박 2일’ 멤버는 누구일지는 오늘(10일) 방송되는 ‘1박 2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농촌 빈곤 목도한 늦깎이 목민관, ‘토지 공개념’ 제시하다

    농촌 빈곤 목도한 늦깎이 목민관, ‘토지 공개념’ 제시하다

    우리 형님 얼굴과 수염 누구를 닮았던고(我兄顔髮曾誰似) 돌아가신 아버님 생각날 때마다 우리 형님 쳐다봤지.(每憶先君看我兄) 이제 형님 그리우면 어드메서 본단 말고(今日思兄何處見) 두건 쓰고 도포 입고 가서 냇물에 비친 나를 보아야겠네.(自將巾袂映溪行) 연암 박지원은 1787년(정조 11년)에 많은 사람을 잃었다. 새해가 되자마자 아내와 사별하고, 7월에 형님상을 당하고, 얼마 뒤에는 며느리까지 떠났다. 이별 가운데 가족과의 이별은 더욱 아프다. 떠나보내고서도 울컥울컥 치밀어 오르는 슬픔 때문이다. 그래서였을까. 아내 잃은 박지원은 죽을 때까지 17년 동안 ‘홀아비’로 살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조선시대엔 흔치 않은 일이다. 그런 박지원은 아버지를 여의고서 아버지가 보고 싶을 때마다 형님의 얼굴을 봤다. 이제, 형도 죽고 없다. 형이 보고 싶을 때면? 시냇물에 비친 자신의 얼굴에서 그려볼 수밖에. 언제나 의관을 정제하고 지내던 형님의 생시 모습이 눈에 선하다. 아버지에서 형으로, 형에서 아우로 이어지는 혈육의 애잔함과 함께 단아하던 형님의 인품까지 단 스물여덟 자로 그려 내는 솜씨가 놀랍다. 조선 최고 문호로 불리는 이유를 짐작할 만하다. 그런 박지원은 1737년(영조 1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반남’으로 부친 박사유의 2남 2녀 중 둘째였다. 그리고 열여섯에 농암 김창협의 학통을 계승한 이보천의 딸과 결혼했다. 명문가의 후예로서 당대 최고의 지성과 학맥을 댄 노론계 일원이었으니 그의 미래는 보장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세 차례의 운명적 만남을 계기로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삶은 굽이쳐 갔다. #첫 번째 만남, 미더운 벗들과의 학문적 우의 박지원도 여느 선비들처럼 한때 과거 공부에 몰두했다. 하지만 파란만장한 벼슬길로 나아갈 것인지, 학문세계에서 자유롭게 노닐 것인지 고민에 빠졌다. 북한산 암자에서 독서할 즈음 스물여섯의 박지원은 사도세자가 죽는 참극을 목도했다. 숙종·경종·영조로 이어지며 벌어지던 숱한 정치적 부침의 결정판이기도 했다.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던 박지원은 마침내 젊은 시절 꿈과 결별한다. 대신 뜻을 같이하는 벗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금강산을 비롯하여 송도 평양 천마산 속리산 가야산 단양 등을 함께 유람했다. 그러던 중 개성 부근의 ‘제비바위골’(燕巖)을 발견하고, 뒷날 은거를 다짐하며 자신의 호로 삼았다. 박지원이 현실 정치 진출을 포기한 데는 평생 벼슬하지 않고 포의로 지낸 부친과 장인의 영향도 컸던 것으로 짐작된다. 장인은 사위가 과거장에서 시험 답안도 제출하지 않고 나왔건만 내심 기뻐했다고 한다. 박지원 자신도 아들에게 “모름지기 수양을 잘해 마음이 넓고 뜻이 원대한 사람이 돼야지 과거 공부에 매달리는 쩨쩨한 선비가 되지 말아야 한다”는 편지를 보냈을 정도였다. 모두가 간절하게 소망하던 과거를 하찮게 치부했던 그들은 참으로 대단하다. 어찌 그럴 수 있었을까? 학문과 그 길을 함께하는 벗들이 벼슬보다 더욱 미더운 삶의 동반자로 여겨졌기 때문이리라. 옛날에 벗(朋友)을 말하는 사람들은 벗을 ‘제2의 나’(第二吾)라거나 ‘주선인’(周旋人)이라 일컬었다. 이런 까닭에 한자를 만든 사람이 ‘날개 우’(羽) 자를 빌려 ‘벗 붕’(朋) 자를 만들었고, ‘손 수’(手) 자와 ‘또 우’(又) 자를 합쳐서 ‘벗 우’(友) 자를 만들었다. 벗이란 새에게 두 날개가 있고, 사람에게 두 손이 있는 것과 같음을 말한 것이다. -박지원, ‘회성원집(繪聲園集)’ 발문 시서화에 뛰어났던 청나라 문인 곽집환의 문집에 써준 서문의 첫 대목이다. 홍대용이 1776년 북경에서 그의 문집을 가지고 왔는데, 박지원이 읽고 서문을 지어줬다. 미지의 중국인에게 건넨 첫 번째 인사가 ‘벗이란 어떤 존재인가’였다. ‘제2의 나’라는 표현이 적실하게 와서 꽂힌다. 박지원만 그리 생각한 게 아니다. 이덕무도 “함께 살지 않는 아내요, 핏줄을 같이하지 않은 형제”라고 했고, 박제가도 “사람에게 하루라도 벗이 없으면 좌우 두 손 잃은 것 같다”고 했다. 그들에게 벗은 타인이 아니라 아내이자 형제와 같았다. 일찍이 마테오 리치가 ‘교우론’에서 갈파한 것처럼 “나의 벗은 타인이 아니라 나의 반쪽이요, 바로 제2의 나”(吾友非他, 卽我之半, 乃第二我也)였던 것이다. 실제로 담론과 음악을 함께 즐겼던 홍대용이 죽자 박지원은 그 이후 음악을 듣지 않고, 갖고 있던 악기들도 모두 남에게 줘버렸다고 한다. ‘지음’(知音)이란 이렇게 절절한 또 다른 자기였던 것이다.#두 번째 만남, 중국으로의 가슴 벅찬 여행 박지원은 많은 벗과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 많기도 했지만, 출신과 개성도 다양했다. 홍대용 유언호처럼 명문가문의 후예,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처럼 서자 출신, 정철조와 같은 과학과 그림의 달인, 백동수와 같은 창검술의 고수 등. “어떤 일을 당했을 때 잘 깨우쳐 준다면 비록 돼지 기르는 종이라도 나의 어진 벗이요, 의로운 일을 보고 충고해 준다면 비록 나무하는 아이라도 나의 좋은 벗”(홍대용에게 보내는 편지 중)이라던 박지원의 우정관은 빈말이 아니었다. 박지원과 그의 벗들은 주로 종로 탑골공원 안의 원각사탑 근처에서 모임을 가져 일명 ‘백탑파’로 불렸다. 그곳에서 “비 뿌리고 눈 날리는 날에도 연구하고, 술이 거나하고 등잔불이 꺼질 때까지 토론”(‘북학의’ 서문)하며 떠들썩한 우정의 향연을 벌였던 것이다. 담론의 주제는 조선을 넘어 드넓은 중국으로 향해 있기 일쑤였다. 1766년(영조 42년) 중국에 다녀온 홍대용은 자신의 견문을 연행록에 담아 과시했고, 1778년(정조 2년) 이덕무와 함께 중국을 보고 온 박제가도 ‘북학의’라는 저작으로 세인의 주목을 받았다. 지적 호기심이 남달랐던 박지원은 무한 부러웠을 터. 마침내 기회가 찾아왔다. 홍국영을 피해 연암에 은거하고 있다가 청나라 건륭제의 칠순을 축하하는 사절단을 따라가게 된 것이다. 1780년(정조 4년)의 일이다. 압록강을 건너 말로만 듣던 중국 땅으로 들어섰다. 열흘을 걸어도 산이 보이지 않는 요동벌판을 바라보며 “참으로 좋은 울음 터로다. 크게 한번 울어볼 만하다”(‘호곡장론’)라고 했던 감격 어린 발길은 마침내 만리장성 너머로까지 이어졌다. 나는 무령산을 돌아 광형하를 건너 밤중에 고북구(古北口)를 빠져나가는데, 때는 삼경이었다. 관문을 나와 말을 장성 아래 세우고 높이를 헤아려 보니 10여길이나 되었다. 붓과 먹을 끄집어내어 술을 부어 먹을 갈고 성벽을 어루만지면서 “건륭 45년 경자 8월 7일 밤 삼경, 조선의 박지원이 이곳을 지나다”라고 썼다. 그리고는 곧 크게 웃으며 “나는 서생으로서 머리가 희어서야 한 번 장성 밖을 나가는구나” 했다. -박지원 ‘밤에 고북구를 나서며’(夜出古北口記) 조선의 사신은 청나라 북경까지 다녀오는 것이 관례였는데, 마침 건륭제가 황제의 별궁이 있는 열하에 머물고 있어 거기까지 가야 했다. 허탈하고 고달프지만,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북경에서 열하로 가기 위해 만리장성의 북쪽 관문인 고북구를 지나가는 경이로운 체험. 조선인으로서는 최초의 발걸음이었던 만큼 감회가 남달랐다. 여느 연행록과 달리 ‘열하일기’라고 명명한 까닭이다. 그 순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물 대신 술로 먹을 갈아 자신의 자취를 장성에 써내려가는 문사의 풍류가 멋들어지게 보이지만, 이내 씁쓸한 헛웃음을 터뜨린다. 대장부로 태어나서 이제껏 좁은 조선 땅에 갇혀 살았다는 회한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던 탓이다. 그때 박지원의 나이 마흔넷이었다. #세 번째 만남, 궁핍해져 가는 농촌 현실 대면 박지원은 중국에서의 견문을 기록해 둔 여행 메모를 고치고 다듬어 1783년(정조 7년) ‘열하일기’를 탈고했다. 그의 문명은 하늘 높이 치솟았다. 하지만 문체가 정통 고문에서 벗어났다거나 오랑캐인 청나라 연호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호된 비난을 함께 받아야만 했다. 심지어 정조의 질책과 함께 원고 전체가 불태워질 위기에 빠지기도 했다. 그런 시비가 분분하던 즈음 박지원은 젊은 날 포기했던 벼슬길에 쉰 살이 되어 나서게 된다. 너무 궁핍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평생의 지기 유언호의 천거로 1878년(정조 10년)부터 관직생활을 시작했지만, 별로 두드러진 업적은 남기지 못했다. 하지만 1792년(정조 16년) 안의현감을 시작으로 면천군수, 양양부사 등 지방관으로 있은 10여년은 박지원의 삶을 재조명하게 하는 각별한 시기였다. 수차, 베틀, 물레방아 등을 제작해 농민의 수고를 덜어주는 한편 왕성한 창작력으로 많은 작품을 짓기도 했다. 특히 1799년(정조 23년)에 지어 올린 ‘과농소초’(課農小抄)의 ‘한민명전의’(限民名田議)는 주목할 만하다. 토지 소유 상한선을 정해 부호들이 토지를 무한정 늘려 가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일종의 토지공개념인 셈이다. 주나라의 정전제나 한나라 동중서의 논의를 이어받은 것이긴 하지만,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극심해지는 농촌 현실을 목도한 목민관으로서 제기한 혁신적 방안임이 분명했다. 그 책을 읽고 감탄한 정조도 ‘농서대전’의 편찬을 맡겨야겠다고 했을 정도다. 하지만 정조의 갑작스런 죽음과 함께 그의 꿈은 빛을 보지 못했다. 1805년(순조 5년) 69세로 생을 마치고 말았다. 정출헌 한국고전번역원 밀양분원장·부산대 교수 ■ 문학·여행·농업 등 망라한 연암집 필사본으로 전승되다 20세기 들어서야 공간됐다. 김택영이 선집 형태로 1900년 6권 2책 ‘연암집’, 1901년 3권 1책 ‘연암속집’, 1917년 7권 3책 ‘중편 연암집’을 간행하고, 박영철이 1932년 17권 6책 ‘연암집 전집’을 간행했다. 제1~10권은 일반 시문, 제11~15권은 열하일기, 제16·17권은 과농소초이다. 연암집 번역본은 우전 신호열 선생과 김명호 교수가 공역으로 2007년 출간했다. 열하일기 번역본은 민족문화추진회(현 한국고전번역원)에서 연민 이가원 선생이 1968년 최초 완역하고서 김혈조 교수가 2017년 개정 신판을 출간했다.
  • 마크롱 대통령에 “개과천선하겠다” 다짐한 청년, 거짓이 된 약속

    마크롱 대통령에 “개과천선하겠다” 다짐한 청년, 거짓이 된 약속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앞에서 다시는 어리석은 짓을 해서는 안 된다는 충고를 듣고 그러겠다고 다짐했던 청년이 3주가 지나기도 전에 유죄 판결을 받았다. 민망한 일화의 주인공은 프랑스의 카리브해 해외령 생마르탱에 살고 있는 22세 흑인 청년으로, 지난달 29일 마크롱 대통령이 생마르탱을 방문했을 당시 민소매 티셔츠에 검은 두건 차림으로 대통령과 대화를 나누면서 매스컴을 탄 인물이다. 당시 마크롱 대통령은 이 청년에게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었고, 그는 “교도소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돼 지금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에 마크롱 대통령이 “어떤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길에?”라고 묻자 이 청년은 부끄러워하며 “조그만 강도질을…”이라고 답했다. 이후 마크롱 대통령은 그가 사는 아파트를 찾아 “이 상태에 머무르면 안 된다. 강도질은 이제 끝이다. 잊지 마라. 당신 어머니는 이보다 더 좋은 대우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충고했다. 대통령의 충고에 이 청년은 그러겠다고 다짐했고, 마크롱 대통령은 옆에 서 있던 청년의 어머니를 힘껏 안아줬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다짐은 불과 3주가 채 되기도 전에 거짓 다짐이 돼 버렸다. 18일(현지시간) 공영 프랑스 TV 등에 따르면 이 청년은 지난 17일 법원에서 마약 소지와 공무집행방해의 죄목으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4개월은 선고받았다. 마약 소지 혐의로 체포된 그는 체포 당시 강하게 저항하며 경찰관에게 위해를 가해 공무집행 방해 혐의까지 추가됐다. 심지어 재판이 진행 중인 닷새 전에도 또 소량의 마리화나를 소지한 혐의로 체포돼 조사를 받고 풀려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고종 빼돌려 을사늑약 체결 막아라” 17

    “고종 빼돌려 을사늑약 체결 막아라” 17

    서울신문은 일제 침략 당시 독립운동가의 활약을 소재로 한 해외소설 두 편을 발굴했습니다. 글쓴이는 미국의 저널리스트 겸 시나리오 작가 로버트 웰스 리치(1879~1942)이고, 두 소설의 주인공은 대한매일신보와 코리아데일리뉴스(KDN)를 창간해 우리 민족 항일의식을 고취한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한국명 배설)입니다. 100여년 전 발간된 이 소설에는 베델뿐 아니라 조선통감부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1841~1909), 을사늑약 직후 자결한 충신 민영환(1861~1905) 등 역사적 인물이 대거 등장합니다. 작가가 실제로 조선과 일본에 머물며 베델 등을 직접 취재해 쓴 이 소설에는 고종의 연해주 망명 시도 등 극비 내용이 담겨 있어 관심을 모읍니다. 서울신문은 이 소설 가운데 하나인 ‘황제 납치 프로젝트’(1912년 12월 출간·원제 The cat and the king)를 번역해 연재 형태로 소개합니다. <17회>나는 오늘 밤 펼쳐질 모험에 큰 기대를 건 베델에게 소녀가 실패할까봐 무서워하고 있다는 말을 차마 전할 수 없었다. 대신 나는 모든 일이 잘 풀리면 앞으로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 지, 또 조선 황제(고종)는 중국에서 어떻게 활동하게 될 지를 물었다. 그러자 조선의 마지막 용사인 대한매일신보(현 서울신문) 사장 베델이 답했다. “오, 이 사람 보게. 우리는 상하이의 멋드러진 바에서 신나는 음악을 듣게 될 거야. 일본이 사람을 고용해서 우리 갈비뼈 사이로 칼을 쑤셔 넣는 일만 없다면 황제와 요트를 타고 서울을 떠나는 거야. 그 사람들(일본인)이 나를 속인 게 한 두 번이 아니라는 걸 자네도 잘 알거야. 그래도 그놈들을 오랫동안 상대한 덕에 이제 난 칼에 찔려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만큼 담이 커졌어.” 이윽고 밤 10시가 됐다. 나와 베델은 인력거에 올라탄 뒤 유령 같은 서울의 거리를 내달렸다. 죽은 듯 웅장한 저택(경운궁)은 이날따라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듯 너무나 고귀하게 느껴졌다. 사원의 검은 박공과 오래된 청동 종, 동굴에 피어난 곰팡이처럼 서울의 모든 집 지붕에서 자라는 버섯도 이젠 다시 볼 수 없겠지...그림자도 없는 컴컴한 거리에는 돌아다니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어떠한 빛도 새어나오지 않아 거리에는 활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도 이런 서울에 어느새 정이 들었나 보다. 여기에서의 마지막 밤이라고 생각하니 슬프고 음울했다. 우리는 북문(숙정문·현 서울 삼청동 소재)에서 인력거를 보낸 뒤 넓게 열린 문을 걸어서 바깥으로 나갔다. 군기빠진 조선병사 두 명이 누가 잡아가도 모를 듯 땅바닥에 앉아 자고 있었다. 원래 사람이 다니지 않는 문이어서 경비가 더욱 허술했다. 저 너머 불에 탄 폐가들 뒤에 민영환 대감이 준비한 말들이 묶여 있었다.우리는 서로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으며 황제를 초조히 기다렸다. 10분...15분...그리고 20분이 지났다. 자갈을 밟으며 달려오는 발자국 소리 하나가 들렸다. 나는 벽 모서리에 몸을 숨기고 누군지 살펴봤다. 두건을 쓴 사람이 혼자서 다가오고 있었다. 그를 자세히 보려고 성벽 그림자에서 빠져나와 앞으로 한 발짝 나갔다. 소녀였다. ”빌리!“ 그녀가 속삭이듯 내 이름을 부르고는 곧장 달려와 손을 잡았다. 소녀는 거칠게 숨을 내쉬며 물었다. “베델은요? 아...여기 계셨네요...다행이에요...그런데 이게 무슨 소리죠?” 그녀의 손이 내 손 위에서 심하게 떨리는 것을 느꼈다. 멀리서 작지만 분명한 군대 나팔 소리가 퍼져나왔다. 경운궁(덕수궁) 쪽에서 들리는 소리 같았다. 이렇다 할 장비하나 갖추지 못한 조선 군대에는 나팔 자체가 없었다. 그렇다면 이는 남산에 캠프를 치고 있는 일본 군대의 소리인데... “친구분들” 그녀가 우리 앞에서 용감하고 자신있는 척 애쓰며 말했다. “아마도 일본인 형제들이 저기서 우리를 부르고 있는 것 같네요. 우리가 너무 보고 싶은가봐요.” 소녀의 말에 대한 화답이라도 하듯 자갈 위로 시끄러운 말발굽 소리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일본군이 우리를 잡으러 온 것 아닌가 불안감에 휩싸일 무렵 그 소리가 갑자기 멈췄다. 민영환 대감의 낮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일본인들입니다. 일본인! 이놈들이 폐하가 탈출하신 사실을 알아챘소. 우리를 찾고 있어요!” 베델과 소녀 그리고 나는 각자 말에 올라 탔다. 우리 뒤에는 무시무시한 후드를 덮어쓴 한 사람이 말의 궁둥이를 때려댔다. 민 대감은 허수아비처럼 보이는 이 사람의 얼굴을 가리려고 먼지싸인 붕대를 칭칭 감아놨다. 미이라처럼 생긴 이 남성은 무척 답답했던지 연신 낑낑거리며 짜증섞인 비난을 내뱉었다. 그가 입에 재갈에 물린 듯 우물우물하는 발음으로 한국어를 내뱉자 민 대감이 경어를 쓰며 깍듯이 응대했다. 민 대감은 그를 어느정도 진정시킨 뒤에 우리에게 말을 건넸다. “황제께서 지금 제 옆에 계십니다. 이 분은 언제든 마음이 바뀌실 수 있소. 어서들 서두릅시다!” 우리는 각자 말을 타고 요트가 있는 쪽으로 서둘러 내달렸다. 배가 있는 포구(앞서 내용으로 볼 때 광나루로 추정)까지는 대략 10㎞ 정도 남아 있었다. 왕의 왼쪽에 베델, 오른쪽에 민 대감이 있었다. 민 대감은 어깨 밑에 커다란 상자 하나를 끼고 있었는데, 이것 때문에 우리 일행이 속도를 내는 데 어려움이 컸다. 황제의 소지품을 담은 금고 같았다. 원래 왕이란 존재는 나라를 빼앗겨 목숨을 걸고 해외로 도망치는 와중에도 자신의 존엄을 드러낼 왕관과 보석은 손에서 놓지 못하는가 보다. ‘황제 납치 프로젝트’는 18회로 이어집니다. 번역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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