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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이슬람국가(IS) 응징하는 ‘저승사자’ 미군 A-10C 공격기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이슬람국가(IS) 응징하는 ‘저승사자’ 미군 A-10C 공격기

    이라크 북부와 시리아 일대를 휩쓸며 닥치는 대로 살육과 약탈을 일삼아 온 광기어린 테러 집단 IS(Islamic State)를 응징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공습이 시작됐다. 미국은 항공모함 전단에서 발진한 F/A-18E/F 슈퍼 호넷을 필두로 F-16과 F-15, B-1B 폭격기는 물론 인류 역사상 최강의 전투기라 평가되는 F-22A ‘랩터’를 공습에 투입했다. 50여 대의 전투기와 폭격기가 동원된 이번 공습에서 미국은 IS와 알 카에다(Al-Queada) 계열 무장조직 호라산 그룹(Khorasan group)의 시설을 파괴했다. 공습을 당한 시설들은 철저하게 파괴됐고, 수 십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하지만 존 커비 미 국방부 대변인 “이번 공습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경고한 것처럼 미국은 IS가 F-22A나 B-1B보다 더 두려워할 카드를 준비하고 있었다. 바로 중장갑 공격기 A-10C 워호그(warthog)였다. 흑멧돼지가 중동으로 날아간 이유 IS는 국가를 표방하고는 있지만 국가보다는 비교적 조직화가 잘 되어있는 대규모 무장 집단에 불과하다. 이들은 이라크와 시리아 정부군으로부터 노획한 전차와 항공기 등을 보유하고는 있지만 제대로 된 관청이나 지휘시설 같은 것은 갖추지 못하고 있다. 과거 미국이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을 공습했을 때 이라크와 탈레반은 정규군이 있었고, 각지에 정규군이 주둔하고 있는 기지와 각종 병참 시설들이 건설되어 있었다. 정규군이었던 이라크군과 탈레반군은 이러한 시설이 파괴되면 작전에 상당한 지장을 받았지만, IS는 다르다. IS는 정규군보다는 ‘마적단’에 가까운 개념이기 때문에 모든 시설은 임시 시설이다. 기존의 학교나 관공서, 아파트를 빼앗아 그곳에 병력이 머물면 막사가 되는 것이고, 탄약과 물자를 보관해 놓으면 병참 시설이 되는 것이다. 이들은 중앙 지도부에서 무기를 구매해 전투부대에 보급하는 것이 아니라 전투를 통해 약탈하고 노획해 무기와 탄약을 조달하고 있기 때문에 과거 이라크군이나 탈레반군처럼 제대로 된 병참 시설이 있을 수 없다. 따라서 미군과 동맹국들이 수십여 대의 전투기를 동원해 정밀 유도 폭탄과 미사일로 표적을 공습한다 하더라도 이들에게는 큰 타격을 주지 못한다. 어차피 빼앗은 건물이고, 물자와 인력은 점령지에서 약탈하고 징발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B-1B와 F-22와 같은 최첨단 전력은 이러한 테러 조직을 상대하는데 적절하지 않다. 미국도 이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첩보활동으로 획득한 IS 지도부 은거지를 초정밀 폭격으로 파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IS 격퇴의 핵심은 소위 ‘테크니컬(Technical)’, 즉 무장 트럭을 타고 떼 지어 몰려다니는 IS 병력을 제거하는데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이들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지상에 전투부대를 보내야 하지만 지난 10여 년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장기전의 늪에 빠졌던 미국이 또 다시 자충수를 두지는 않을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은 의외의 카드 하나를 꺼내 들었다. 바로 A-10C 공격기의 중동 배치였다. 지난 23일(현지시간) 미 국방부는 인디애나주 주방위공군 제122전투비행단 예하 제163비행대의 A-10C 공격기 12대와 병력 300여 명을 다음 달 초까지 중동 지역에 배치하겠다고 발표했다. 미 국방부는 이번 조치가 IS 공습과는 무관하다고 밝혔지만, 현지 언론은 이번 A-10C 중동 배치의 시기가 미묘하다고 꼬집으면서 이 공격기가 이라크 정부군을 지원해 IS를 격퇴하기 위한 임무를 수행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IS와 같은 ‘마적단’에게 A-10C는 과거 냉전시절 불렸던 별명 그대로 ‘죽음의 십자가’ 그 자체다. A-10C의 주무장인 GAU-8 30mm 기관포는 현존하는 거의 대부분의 전차와 장갑차를 파괴할 수 있는 포탄을 분당 4,200발의 속도로 쏟아 부을 수 있다. 이밖에도 JDAM과 헬파이어 미사일은 물론 각종 정밀유도무기를 최대 7톤까지 탑재한다. 막강한 화력만큼이나 방어력도 대단히 강력하다. A-10C는 IS가 상용 트럭에 얹어 운용하는 23mm 기관포로 쉽게 격추시킬 수 없다. 주요부위가 티타늄 장갑재로 되어 있고, 피격되어 유압 장치가 파괴되더라도 기체 조종이 가능하도록 조종간과 조종면 사이에 강철 케이블이 연결되어 있다. 이라크 자유 작전 때 23mm 기관포는 물론 57mm 기관포탄 4발에 직격 당하고도 추락하지 않고 기지로 무사 귀환한 사례도 있었다. 이러한 중무장・중장갑 공격기가 중동 지역에 배치되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지상군 대용’이다. 미국이 지상군을 투입할 수 없으니 지상전투는 이라크 정부군과 쿠르드 자치정부 민병대가 대신하되, 이들의 실력이 못미더우니 강력한 공격기를 지원해 이라크군의 실력 부족을 화력 지원으로 커버하겠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기사회생할까? 사실, 이번 중동 배치와 IS 격퇴 전쟁 참전으로 가장 이득을 보는 것은 A-10C 자신이다. 퇴역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 또 한 번 그 가치를 증명할 기회가 주어진 셈이기 때문이다. A-10은 1970년대 구소련의 대규모 기갑부대를 저지하기 위해 등장한 대전차 공격기였으나, 냉전 붕괴 직후 더 이상 구소련과 동구권의 기갑부대를 상대할 일이 없어지자 조기 퇴역이 추진됐으나 1991년 걸프전에서 눈부신 활약을 보여주며 제2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이후 2000년대 초 또 다시 퇴역론이 대두되었으나, 2003년 이라크 자유 작전에서 눈부신 활약을 보여주며 그 존재 가치를 또 한 번 입증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역할이 끝나자 미 공군은 F-35A 도입을 위해 A-10 퇴역을 추진하고 나섰다. A-10 프로그램을 종료해 여기서 아낀 돈으로 F-35A 프로그램에 투자하겠다는 계획이었지만, 의회가 이를 반대하고 나섰다. 미국 하원은 2014년 국방예산안을 심의하면서 미 공군이 A-10 퇴역을 위해 단 한 푼도 사용하지 못하도록 막아 버렸다. A-10만큼 근접항공지원에 효과적인 기체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미 공군은 Charles Davis 중장을 의회에 보내 “이제 더 이상 티타늄으로 감싼 기체를 저속으로 비행시킬 필요는 없다”면서 “이미 F-16이나 B-52, B-1B가 그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결국 예산안은 미 하원의 결정대로 통과되어 A-10C는 내년도 예산안이 집행되는 내년 상반기까지는 살아남을 수 있게 되었다. 이 때문에 미국 내에서는 이번에 A-10이 IS를 상대로 얼마나 위력을 떨칠 것이며, 그 유효성을 인정받아 또다시 수명을 연장 받을 수 있을지 여부에 과심이 몰리고 있다. A-10C가 IS를 상대로 펼치는 전쟁에서 또 한 번 그 진가를 입증 받는다면 적어도 2020년대 중반까지는 장수할 수 있지 않을까? 이일우 군사 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 10월 1일은 ‘한돈데이’

    10월 1일은 ‘한돈데이’

    한돈자조금관리위원회가 23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국산 돼지고기 한돈나눔축제인 제1회 한돈데이(10월 1일) 개최를 소개하고 있다. 이종원 선임 기자 jongwon@seoul.co.kr
  • 뒷마리만 있는 ‘기형 말’ 출생…민심도 술렁

    뒷마리만 있는 ‘기형 말’ 출생…민심도 술렁

    다리가 달랑 2개뿐인 말의 사진이 공개됐다. 아르헨티나 현지 언론이 보도한 사진을 보면 말은 뒷다리만 2개를 갖고 태어났다. 앞다리는 아예 없다. 다리가 2개뿐인 말은 서지 못해 힘없이 바닥에 누워 있다. 말은 최근 아르헨티나 산티아고 델 에스테로 주의 비날 에스키나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새 가족을 맞이할 준비를 하며 잔뜩 들떠 있던 농장 가족들은 그러나 태어나는 말을 보면서 경악했다. 당연히 있어야 할 앞다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말은 태어났지만 서지 못해 누워만 있었다. 엄마의 젖을 먹지 못한 말은 태어난 지 이틀 만에 숨을 거뒀다. 한편 다리 2개만 가진 기형 말이 태어났다는 소문이 돌자 지역 민심은 술렁였다. ”신의 재앙이 내렸다” , “나쁜 일이 생길 조짐”이라는 말도 돌았지만 환경오염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특히 컸다. 한 농민은 “환경오염으로 눈이 1개뿐인 돼지, 다리가 2개뿐인 말 등 기형동물이 태어나는 것”이라면서 대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사진=엘리베랄 임석훈 남미통신원 juanlimmx@naver.com
  • [정병석의 경제산책] 조선의 진상품과 작은 재정론

    [정병석의 경제산책] 조선의 진상품과 작은 재정론

    드라마 ‘대장금’에 나오는 궁중 요리경연대회를 보면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갖가지 식재료를 사용하여 왕과 왕비를 위해 최고의 음식을 요리하는 장면이 펼쳐진다. 또한 온갖 약재를 써서 왕실의 약을 짓는 모습도 나온다. 이때 쓰이는 식재료와 한약재가 주로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진상품들이다. 본래 진상품이란 특정 지방을 관장하는 수령이 자기 지역의 특산물을 나라의 어른인 왕에게 선의의 선물로 바치던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었는데 그것이 관행으로 굳어져 또 하나의 세금과 같이 운영되었다. 진상품의 목록을 보면 식재료와 약재, 생필품 등 별별 것이 다 들어 있다. 전국 각지에서 사시사철 특산품을 수집하여 왕실에 운반하는 것은 엄청난 물류 유통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왕에게 직접 진상하는 것이므로 최고의 제품을 골라 품질을 유지하면서 운반해야 했다. 진상품에는 갖가지 생물이 망라되어 있었다. 예를 들면 꿩, 사슴, 노루, 돼지 등을 산 채로 잡아 한양으로 운반하고 해산물도 생대구, 생오징어, 생낙지, 생굴, 생문어, 살아있는 게, 생홍합, 산 참조기, 산 쏘가리 등을 진상해야 했다. 도로나 운송수단 등 물류 시스템이 유달리 취약했던 조선 시대에 이런 생물을 조달해야 하는 백성들의 고통이 얼마나 심했을까? 더구나 산 꿩을 진상하는 경우 살이 조금만 상처 나도 납품 관리들이 접수하지 않으므로 매가 잡은 것은 바치지 못하고, 많은 백성들이 산과 들을 에워싸고 맨손으로 꿩을 잡아서 바쳐야 했다. 이것이 전국 각지에서 수시로 벌어지는 일이었다. 심지어 전란 중에도 이런 진상품은 약간 탕감되기는 하였으나 계속되고 있었다. 임진왜란이 진행 중이던 선조 29년(1596년) ‘백성들이 가엾으니, 혹시 손상된 꿩이라도 바칠 수 있도록 허가해 주시도록 진언’하자 이를 왕이 큰 도량으로 윤허하였다고 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도별로 분담된 진상품은 도의 관찰사, 병마·수군절도사가 산하의 각 관청에 배정한다. 산하 관청에서는 일부는 관청에서 직접 조달하고 나머지는 민간에 부과한다. 관청의 진상품을 확보하기 위해 수영과 예하 진영에서 설치한 관설 어장에 수군들을 내보내 진상물을 포획하게 하는 것이다. 진상과 관련된 가장 큰 문제점은 왕실의 소요품을 무상으로 백성들에게 부담시키고 징수했다는 것이다. 유형원이나 유수원 등 실학자들이 주장하듯이 차라리 경제원리를 적용하여 왕실에 일정한 금품을 배정하고 소요 물품을 이 돈으로 시장에서 구매하게 했다면 백성들의 부담도 줄이면서 시장경제의 활성화에 기여했을 것이다. 오늘날 여러 지방에서 과거의 진상품을 찾아내어 왕실에 납품하던 특산품이라고 내세우면서 지역경제 활성화를 꾀하는 것은 역사의 역설이라고나 할지. 정도전을 비롯한 초기 건국자들은 조선을 설계할 때 국민에게 조세 부담을 최소화하고 작은 정부를 지향하여 국가경비를 축소하는 것이 민본국가의 이념에 맞는다고 생각했다. 국가의 재정을 적게 편성하면서 정부의 운영비, 관리의 인건비도 제대로 책정하지 않고 왕실의 식자재, 생필품 등 운영비도 배정하지 않았다. 재정이 부족하면 중앙 정부 관료의 봉급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지방 향리들의 봉급은 대부분 배정하지도 않았다. 권력을 가진 관청에 운영비와 인건비를 주지 않고 알아서 자체 조달하라고 하면 그것이 민간 백성에게 몇 배로 전가되리라는 것은 자명하지 않을까. 작은 정부는 이상적인 정책이었지만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고 오히려 백성들에게 더 큰 부담을 끼쳤다. 최근 담뱃값 인상논란을 보며 문득 조선의 진상제가 떠올랐다. 세율을 올리지 않기 위해 담뱃값을 대폭 올리고 30조원이 넘는 국채를 발행하려는 것은 국민에게 현재의 세금을 늘리지 않는다는 느낌을 줄지 몰라도 결국 실질적 부담이 커지는 것은 아닌지? 국가의 정책은 국민이 이해할 수 있게 투명하게 운영되어야 할 것이다.
  • 미식가들이 모인다? 대구맛집 삼미한우·삼미오리

    미식가들이 모인다? 대구맛집 삼미한우·삼미오리

    경상도 특유의 진하고 와일드한 식도락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대구’는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맛의 도시 중 하나이다. 특히 대구에는 청정자연이 살아있는 경북지역에서 생산하는 우수하고 신선한 한우, 돼지고기, 오리고기를 맛볼 수 있어 고기맛집이 많기로 유명하다. 대구 시민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있는 ‘삼미한우’와 ‘삼미오리’는 고기마니아들에게 사랑 받는 대구맛집이다. 100% 투뿔(1++등급) 국내산 한우와 오리고기는 물론이고 모든 식재료는 국내산만을 사용하는 고집스러움에 저렴한 가격까지 더해져 대구한우맛집, 대구오리고기맛집으로 단골손님들로 넘쳐난다. 특히 가족단위 외식메뉴로 사랑 받고 있는 최상급 생오리고기만을 공급하며, 생오리 한 마리에 파격적인 가격 18,000원으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어 인기가 좋다. 대구 두류네거리와 광장코아 인근에 위치한 가게는 1층 150명, 2층 150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고 대형버스 3대를 주차할 수 있는 넓은 주차장이 완비되어 있어 인근의 직장 회식 및 이월드(구 우방랜드)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의 단체식사 장소로도 사랑을 받고 있다. 무엇보다 삼미한우〮삼미오리는 매장을 1층과 2층으로 나뉘어 인테리어를 달리했다. 한우식당으로 운영되는 1층에서는 격식 있는 모임과 비즈니스, 회식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는 럭셔리한 실내구조와 인테리어를 완비하고 있고, 오리고기, 삼겹살 등의 메뉴를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2층은 편안하고 쾌적하게 식사를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삼미한우’, ‘삼미오리’ 대표는 “인근에서는 두류네거리맛집, 광장코아맛집하면 삼미한우, 삼미오리를 손꼽을 만큼 지역민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입소문을 타면서 인근의 대구 시민들뿐 아니라 관광객들의 발길도 이어지고 있다. 앞으로도 최상급 고기를 저렴하고 합리적인 가격으로 즐길 수 있는 대구맛집으로, 고객들에게 만족스러운 음식과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지역사회를 위해 불우이웃돕기에 적극 나서는 등 지역일꾼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대구의 고기맛집 ‘삼미한우’, ‘삼미오리’ 매장은 뉴대구호텔(구,대구호텔) 맞은편(대구시 서구 내당1동 244-4번지)에 위치해 있다. 예약 및 문의는 전화(053-571-0800)으로 하면 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돼지고기로 코피 치료… 올해의 ‘이그노벨상’

    코피를 흘리는 어린이의 콧구멍에 돼지고기 조각을 넣으면 코피를 멎게 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미국 연구진 등 괴짜 학자들이 올해 ‘이그노벨상’(Ig Nobel Prize) 수상자로 선정됐다. 24회를 맞은 이그노벨상은 미국 하버드대 과학 유머잡지 ‘애널스 오브 임프로버블 리서치’(AIR)가 매년 노벨상 발표에 앞서 재미있고 기발한 과학 연구를 내놓은 연구진에게 주는 상이다. 의학상을 받은 미국 디트로이트 의료센터 연구진은 “생명에 위협이 될 정도로 코피를 쏟는 어린이의 코에 소금에 절인 돼지고기 조각을 넣은 결과 출혈을 막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이 어린이는 출혈이 멈추지 않는 혈소판무력증을 앓는 환자였다”면서 “돼지고기가 감염을 일으킬 수 있으니 일상생활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물리학상은 ‘바나나 껍질의 마찰계수’라는 논문을 통해 바나나 껍질을 밟았을 때의 위험성을 풀어낸 일본 과학자들에게 돌아갔다. 연구에 참여한 기요시 마부치는 “바나나 껍질의 마찰계수는 사람을 넘어뜨릴 만큼 충분히 낮다”고 밝혔다. 체코·독일·잠비아 공동 연구진은 개들이 지구의 남북 방향 자기장선에 일직선으로 몸을 맞춰 배변하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로 동물상을 받았다. 이창구 기자 window2@seoul.co.kr
  • 프랑스 여성, 30kg 상당 동전으로 세금 낸 사연

    프랑스 여성, 30kg 상당 동전으로 세금 낸 사연

    세금이 높다고 불만을 품은 프랑스인 여성이 항의 의사를 표명하기 위해 30kg 상당의 동전을 소득세로 납부했다고 AFP통신 등이 보도했다. ‘오드리 D’라는 이름만 알려진 이 여성(28세)은 지난해 소득에서 산출된 소득 세액이 1107유로(약 148만 7800원)라는 납세 통지서를 받았다. 그해 평균 월급이 1400유로(약 188만 1600원)였지만, 현재는 무직 상태라는 그녀는 “기한 내에 세금을 납부하기 위해서 차를 팔아야만 했다”고 말했다. 프랑스에서는 매년 9월에 전년 소득에 대해 부과하는 소득세가 통지된다. 오드리는 애초 “한 번에 납부하는 것이 마음이 덜 아프다”는 생각에 세무서에서 일괄 납부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세무서 직원이 현금으로 납부하는 것은 하루에 300유로(약 40만 3400원)까지”라고 말해 낙심했다. 이에 그녀는 세무서를 세차례 방문해 300유로씩 납부하고 잔액 207유로(약 27만 8400원)를 다시 납부할 때 항의 의사를 나타낼 계획을 세웠다. 이는 원통형으로 포장된 1센트, 2센트, 5센트짜리 동전과 자신의 핑크색 돼지 저금통에 모아둔 동전을 들고 세무서를 찾은 것. 오드리는 접수처에서 저금통을 깨고 그 안에 있던 동전을 내밀었다. 직원의 태도는 처음에 냉정을 유지했지만, 동전을 세는 동안 웃을 때까지 말을 시켰다. 오드리는 “세금을 내는 것 자체에 전혀 불만은 없다. 그렇지만, 세액이 너무 높다”면서 “우리는 국가를 위한 돈이 되는 나무가 아니다”고 불만을 호소했다. 이런 문제에 더욱 주목하게 된 오드리는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과 미셸 사팽 프랑스 재무장관에 공개서한을 보냈다. 서한에는 “증세와 우리를 바보 취급하고 있는 정부에 항의한다. 난 프랑스인이므로 끈질기게 불평하길 좋아할 뿐 ”이라고 써있었다. 사진=ⓒ포토리아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열린세상] ‘윤리농업’의 때가 왔다/김한호 서울대 농경제학과 교수

    [열린세상] ‘윤리농업’의 때가 왔다/김한호 서울대 농경제학과 교수

    어릴 때 시골집 마당 한편에 서 있던 헛간. 그 안에는 적당히 굵고 기름한 물푸레나무 작대기가 한쪽 벽에 걸려 있었고 옆에는 어설프게 짚으로 엮은 둥지 몇 개가 달려있었다. 닭 서너 마리가 수시로 그 횃대를 오르내리며 그 위에서 잠을 자기도 했다. 때때로 둥지 속에는 따뜻한 온기의 계란이 놓여 있었다. 이따금 닭들은 마당에서 가슴으로 땅을 헤치며 날개를 퍼덕였다. 최근 전문가로부터 들었는데 횃대 오르기, 둥지에서 알 낳기, 모래 목욕은 닭의 생리적 복지 조건이라고 한다. 소득향상과 더불어 계란과 닭고기에 대한 폭발적 수요증가는 공장식 양계업을 유도했고, 점점 닭이 누려할 생리적 복지 조건은 지킬 수 없게 됐다. 공장식 양계업의 대표적 양식은 닭이 거의 옴짝달싹 못하는 크기의 닭장을 길게 나열하고 이를 여러 층 포개놓는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닭의 잠자는 시간까지 조절하며 생산하는 계란과 닭고기는 더 이상 자연 농산물이 아니라 공장 조제품이라는 비판을 받게 됐다. 1999년 유럽연합(EU)은 새로운 닭 사육환경 규정을 공포하고 12년 동안의 전환기간을 거쳐 2012년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새로운 규정은 활동 공간을 조금 확보하고, 둥지, 횃대 등을 겨우 들일 수 있도록 닭장 크기를 약간 키웠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강제 규정이 아니라 회원국 가운데 절반 정도가 농민부담 상승을 이유로 도입을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규정을 채택한 국가에서는 농민들의 불만이 크다. 생산비 상승으로 인해 채택하지 않은 국가의 농민들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비슷한 문제가 미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2008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는 주민 투표를 통해 좀 더 개선된 양계장 환경 규정을 채택했다. 그리고 다른 주 생산 계란에 대해 가격 경쟁력을 우려하는 농민을 위해 주 의회는 캘리포니아에 판매하는 모든 계란 생산자에게 동일한 규정을 적용한다는 법안을 2010년 통과시켰다. 사육환경 전환을 위해 허용된 기간이 금년으로 끝나고 내년부터 새로운 규정이 시행된다. 그런데 최근 캘리포니아 시장에 계란을 판매하는 대규모 양계업을 가진 몇 개 주가 법적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 금년 2월 미주리 주가 소송을 제기하고 곧 이어 아이오와, 네브래스카, 켄터키, 오클라호마, 앨라배마 주가 이 소송에 동참한 것이다. 캘리포니아 2010년 법이 이들 주 농민들에게 엄청난 비용을 수반하게 하는데 이것은 미국 헌법에 보장된 각 주 사이의 통상 원칙을 위배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기존 방식으로 생산된 다른 주의 값싼 계란과 새로운 방식으로 생산된 캘리포니아의 비싼 계란 사이의 선택은 소비자에게 맡겨야 한다는 주장이다. 동물 입장에서는 복지 문제고 인간 입장에서는 윤리농업 문제다. 이 문제가 유럽과 미국에서 국가 혹은 지역 사이 통상 분쟁 원인이 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이러한 윤리농업 문제가 국지적 차원의 쟁점만으로 머물지 않을 수 있다는 메시지가 기업으로부터 나오고 있다. 버거킹, 맥도날드가 동물복지 규정 준수를 장려하는 방향으로 식품원료를 구입하겠다는 방침을 표명한 데 이어 나온 최근 네슬레의 선언은 큰 주목을 받을 만하다. 지난 7월 세계적 식품기업 네슬레는 동물복지 규정을 준수하지 않은 식품원료의 구매 중단을 선언했다. 계란과 닭고기뿐만 아니라 소고기, 돼지고기 등 광범위한 범위에 동물복지 규정의 적용을 요구하고 있다. 기준 준수 여부에 대한 심의는 스위스에 본부를 둔 다국적 민간 농산물 검사 회사 에스지에스(SGS)에 맡긴 것으로 알려졌다. 140여년의 역사와 세계적 권위를 가진 회사인데 네슬레의 의지가 보인다. 세계 7300여개의 식품원료 공급업체를 거느린 네슬레의 선언은 세계 여러 곳에서 윤리농업 실천에 대한 상당한 압력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 기업의 이러한 선언 배경에는 다양한 동물복지 관련 단체들의 활동도 있지만 무엇보다 건강한 식품을 요구하는 소비자의 의식 변화가 가장 크게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배경은 더욱 강하게 지속될 것이다. 거기에 다국적 식품기업이 이끄는 세계화의 힘이 결합돼 윤리농업 실천은 조만간 세계적 대세가 될 것 같다. 따라서 한국 농업도 이에 대한 대답을 준비해야 할 때인 것 같다.
  • 날것 그대로의 초록빛, 구름인 양 머물다 갈까나

    날것 그대로의 초록빛, 구름인 양 머물다 갈까나

    강원 평창 쪽의 대관령 능선에 ‘대관령 하늘목장’이 새로 들어섰다. 그것도 진작부터 유명세가 뜨르르한 삼양목장의 코앞에 터를 잡았다. 두 목장으로 가는 길은 하나. 어느 목장에 발을 디뎌야 할지, 대관령 일대의 초원 구경에 나선 이들로선 고민스러울 법하다. ‘새로 들어섰다’고는 하나 없던 걸 새로 만든 건 아니다. 닫혔던 문을 열었다는 게 보다 정확한 표현이겠다. 대관령 하늘목장은 1974년 조성됐다. 너나없이 어렵던 시절, 축산업 육성에 따른 식량자급을 목표로 이웃한 삼양목장과 함께 개발됐다. 삼양목장은 오래전부터 목축업과 관광업을 병행했다. TV 드라마 가을동화(2000년),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2004년) 등의 촬영지로 알려지며 한층 이름값을 높였다. 반면 하늘목장은 목축에만 힘을 썼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대관령 고원이 올림픽 특구로 지정되면서 지난 1일에야 비로소 빗장을 풀었다. 그 덕에 다듬어지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초원과 마주할 수 있다.하늘목장의 면적은 약 1000만㎡(약 300만평)다. 삼양목장(약 700만평)보다는 작지만, 여의도 면적(제방 안쪽 290만㎡)의 3배가 넘는 거대한 규모다. 하늘목장의 외형은 새의 날개와 비슷하다. 삼양목장을 ‘V’자 형태로 에워싸고 있다. 경쟁 관계에 있는 삼양목장의 전경이 가장 잘 보이는 목장이란 역설도 그래서 생겼다. 하늘목장은 몇 가지 점에서 삼양목장과 구별된다. 먼저 ‘자연순응형 체험목장’이다. 방문객이 울타리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소나 말, 양 등을 직접 만질 수 있고 넓게 펼쳐진 초원을 마음껏 내달릴 수도 있다. 목장 안에 사람 손길 타지 않는 계곡도 있다. 이게 볼만하다. 수정 같은 맑은 물이 쉼 없이 흐르고, 하류 쪽엔 몇 개의 폭포도 만들어뒀다. 계곡 주변에는 꽃무릇 등 가을꽃이 식재돼 있다. 늦가을이면 선홍빛 꽃무릇이 절경을 펼쳐낼 터다. 하늘목장은 1, 2단지로 나뉘어 있다. 양 날개를 펼친 형태 그대로 나눴다. 핵심은 1단지다. 탈것, 체험장 등 놀거리와 계곡, 초원지대 등 볼거리가 몰려 있다. 하늘목장에서는 자동차가 다닐 수 없다. 환경보전을 위해서다. 내방객들은 트레킹 삼아 조붓한 산책로를 걷거나, 트랙터가 끄는 32인승 마차를 타고 목장전망대까지 이동해야 한다. 1단지에는 모두 4개의 산책로가 있다. ‘너른풍경길’은 그중 첫손 꼽을 만하다. 하늘목장에서 저 유명한 선자령(1147m)에 이르는 약 2㎞짜리 산책로다. 목장전망대를 기준으로, 아래를 향해 걷는 다른 산책로와 달리 위를 보고 오른다. 당연히 하늘목장 산책로 가운데 가장 힘든 축에 속하지만, 선자령에 오르는 일반적인 코스, 그러니까 옛 대관령휴게소를 들머리 삼아 오르는 것보다는 한결 쉽다. ‘너른풍경길’을 따라 초지 사이를 걷다 보면 길 중간쯤에서 너른 개활지를 만난다. 여기가 이른바 ‘별맞이 언덕’이다. 푸른 초원으로 직접 들어가 마음껏 ‘초록빛 샤워’를 즐길 수 있다. 물론 풀숲에 들기 전 해충 등에 대비한 옷차림은 필수다. 별맞이 언덕에서 선자령은 그리 멀지 않다. 선자령은 흔히 눈꽃 산행지로 알려졌지만 가을 풍경도 빼어나다. 길섶마다 마타리 등 다양한 가을꽃들이 피고 진다. 선자령 정상에 서면 일망무제의 풍광이 흐른다. 발 아래로 목장의 구릉들이 깔리고, 멀리 강릉과 동해가 손에 잡힐 듯하다. ‘가장자리숲길’은 옛 목부들의 이동로를 따라 계곡과 목장 사이에 형성됐다. 고산지대 특유의 목장 풍경과 만날 수 있다. 영화 ‘웰컴 투 동막골’(2005년) 가운데 초원에서 미끄럼을 타고 멧돼지와 쫓고 쫓기는 장면 등이 이곳에서 촬영됐다. 아울러 목부들이 지름길로 이용하던 ‘종종걸음길’과 우거진 나무숲 터널 사이로 나 ‘숲속여울길’도 걸을 만하다. 하늘목장 2단지는 1단지와 도로를 경계로 마주하고 있다. 입구에서 정상인 ‘하늘채’까지 약 3㎞ 떨어졌다. 1단지와 비슷하지만 풍경의 깊이는 좀 더 나은 편. 다만 외승(야외에서 말을 타는 것)을 즐기는 승마 숙련자들에게만 개방돼 아쉽다. 글 사진 평창 손원천 여행전문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33) →가는 길 영동고속도로 횡계 나들목으로 나온다. 횡계 시내에서 ‘의야지 바람마을’ 쪽으로 곧장 가면 나온다. 외길이라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입장료는 오는 10월부터 받는다. 어른 5000원, 어린이 4000원이다. 목장 입구∼하늘마루 전망대 간 2.2㎞를 오가는 트랙터 마차 탑승료는 어른 4000원, 어린이 3000원이다. 승마, 양 먹이주기 등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332-4888. →맛집 이효석문학관 앞의 ‘메밀마당’(334-3383)은 메밀전과 감자전, 메밀막국수 등이 맛있는 집이다. ‘김가네손만두’는 상호 그대로 만두를 손으로 빚어낸다는 집이다. 차진 만두피와 풍성한 만두소가 잘 어우러졌다. 면온리 피닉스파크 리조트 가는 길에 있다. 332-0930. →잘 곳 가족 단위라면 휘닉스파크 리조트를 추천할 만하다. 슬로프 주변에 가을꽃들이 활짝 피어 산책 삼아 걷기 좋다. 봉평 읍내 인근의 붓꽃섬 캠핑장(www.irispension.co.kr, 336-1771)은 캠퍼들에게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곳. 무의천과 흥정천이 합수되며 만든 섬 위에 조성된 캠핑장이다. 예약제로 운영된다.
  • 때늦은 공포 때잊은 공포

    때늦은 공포 때잊은 공포

    공포영화에는 몇 개의 익숙한 장치가 있다. 무엇보다 낯익은 공간과 시간, 늘 곁에 있던 이에게서 느끼는 낯섦이 일순간 무시무시한 공포로 비약하는 것이다.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공간으로 내던져진 뒤 겪어야 하는 초자연적 현상들로 소스라치게 만들 때도 있다. 서늘함을 넘어 오싹함이 들고 식은땀이 흐른다. 공포영화의 전형적인 매력이다. 또 하나. 영화가 끝나는 순간, 한 번 더 그 매력은 발한다. 2시간여 동안 심장이 쫄깃해지는 긴장감, 공포, 두려움이 스르르 사라질 때의 그 안도감. 아무 일 벌어지지 않는 현실 속으로 돌아왔다는 편안함이다. 전통적으로 무더운 여름철이면 공포영화가 사람들의 선택을 받아온 이유다. 그러나 이제 여름이 아닌, 초가을에 공포영화가 대거 몰려온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기후로 가을철에도 여전히 무더운 탓이 아니다. 올해 여름 영화시장이 ‘명량’, ‘해적’, ‘군도’, ‘해무’ 등 거액의 제작비를 들여 흥행을 노린 대작들 중심으로 이뤄지다 보니 틈새시장을 노리며 나타난 현상이다. 여기에 지난해 가을 개봉한 영화 ‘컨저링’이 예상치 않게 230만명의 관객을 동원, ‘식스센스’가 14년간 유지하고 있던 기록을 깨고 역대 국내 개봉 외화 공포영화 1위에 올라선 데 대한 학습 효과이기도 하다. 올가을 공포영화는 실제 사실에 기초해 만들어진 정통 공포영화들부터 좀비가 등장하는 영화, 단절되는 인간 관계 속에 드러나는 인간 본성 속의 마성 등 내용과 형식도 다채롭다. ‘콰이어트 원’과 ‘애나벨’은 실화에 기초한 공포임을 강조한다. ‘콰이어트 원’은 1972년 앨런 로버트 조지 오언 박사의 주도로 진행된 ‘필립실험’이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과학적으로 입증하기 위한 실험으로, 영화는 ‘내 안에 다른 누군가가 있다’는 이의 고통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고 치료할 수 있다고 굳게 믿으며 시작된다. 치료 과정을 기록하는 카메라의 시선과 함께 영화 자체의 카메라 두 개의 시선이 교차하며 공포의 깊이를 더욱 심화시킨다. 15세 관람가로 18일 개봉한다. ‘애나벨’은 ‘컨저링’의 프리퀄(속편이면서 전편보다 시간상 앞서는 이야기)이다. ‘컨저링’에서 초자연 현상 전문가 워런 부부의 연구실 유리상자에 보관하고 있던, 악령이 깃든 인형 애나벨의 이야기다. 무시무시한 공포를 줬던 인형이 주인공이 돼 ‘컨저링’ 이전 사건들을 보여준다. ‘무서운 장면 없이 무서운 클래식 공포’를 표방했지만 실은 사람을 소스라치게 만드는 장면들이 꽤 된다. 과연 ‘무서운 장면’이 뭔지 싶어진다. ‘애나벨’은 오는 10월 2일 밤 12시에 개봉한다. ‘좀비스쿨’은 한국형 좀비 영화다. 시간을 거슬러가면 무려 1981년 국내 좀비 영화의 시작 ‘괴시’가 있었고,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좀비가 나오는 ‘이웃집 좀비’, ‘미스터 좀비’, ‘인류멸망보고서’, ‘신촌좀비만화’ 등 가뭄에 콩 나듯 띄엄띄엄 좀비 영화가 만들어지긴 했다. 대부분 공포에 코미디를 뒤섞었다. ‘좀비스쿨’은 조금 다르다. 구제역으로 매몰된 돼지가 좀비 바이러스를 퍼뜨린다는 설정이다. 문제아들만 모아놓은 칠성학교에서 돼지는 교사를 물고, 교사 좀비 무리들은 학생들을 공격한다. 상황도 맥락이 없고, 서사도 엉성하다는 평가와 함께 모든 것을 낯설게 하고 일부러 B급 분위기로 만들기 위해 의도한 천재적 감독의 설정이라는 극과 극의 평가가 엇갈렸다. 올여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소개됐고, 오는 25일 개봉한다. ‘마녀’는 지난 11일 개봉해 상영 중이다. 다소 괴팍하지만 평범한 팀장이 있고, 인간 관계에 서툴고 상처받아 온 부하 직원이 있다. 부하 직원에게 일을 채근하던 중 ‘손가락 걸기’ 내기를 한다. 시간 내에 일을 마친 부하 직원은 팀장에게 손가락을 달라며 집요하게 따라다닌다. 다소 우스꽝스러운 상황이지만, 그가 사랑의 결핍과 갈구를 자학적이면서 피학적으로 풀 수밖에 없게 된 ‘마녀’임을 드러내는 과정이 공포스럽다. 나중에는 연민을, 또 마지막에는 알 수 없는 감정을 이끌어낸다. 마지막 부분에서 놀랍게도 잔혹한 장면이 나오지만 개연성이 좀 떨어진다. 딱히 반전은 없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해외여행 | 이탈리아-미술과 음악을 품은 마르케 Marche

    해외여행 | 이탈리아-미술과 음악을 품은 마르케 Marche

    이탈리아 마르케 지역을 다녀왔다. 이름은 생소했고, 미리 구해 놓은 정보도 거의 없었다. 이탈리아에서 약 30년을 살았다는 한국인 가이드는 “마르케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사랑하는 진짜 휴양지”라며 목청을 높였다. 그 진짜 휴양지에는 풍경 이외에 예술과 음식도 풍성하게 깃들어 있었다. 넉넉한 휴양지 마르케 기행문을 작성해야 하는 사람 입장에서 생경한 지역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낯선 곳이 주는 기분 좋은 긴장감과 정보 부족으로 인한 불안감이 공존한다. 이번에도 설렘과 조바심이 끊임없이 교차했는데, 불안정한 마음을 어루만져 준 것은 마르케의 수굿한 풍경과 아슴아슴한 예술이었다. 마르케주는 이탈리아 중북부 동해안에 위치해 있다. 한반도에 비유하면 강원도쯤 되겠다. 강원도가 그렇듯이 마르케도 바다와 산을 함께 거느리고 있다. 자연이 넉넉하게 인심을 썼다. 구릉도 있고 동굴도 있다. 우리가 강원도로 여름휴가를 가듯 이탈리아 사람들도 마르케에서 바캉스를 즐긴다. 마르케에 아예 ‘세컨드 하우스’를 두고 있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한낮 기온이 30도를 육박했지만 습도가 높지 않아 그늘에 들어가면 금방 열기가 수그러들었다. 마르케 여행 첫날, 유람선을 타고 바다로 나아갔다. 감청의 아드리아Adria해가 넘실거렸다. 수영복 차림의 커플 한 쌍이 소형 보트를 몰고 쏜살같이 지나갔다. 개인적으로 세 번째 마주한 아드리아해였다. 첫 경험은 크로아티아에서였다.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이탈리아와 크로아티아가 있는 발칸반도는 아드리아해를 사이에 두고 있다. 이탈리아에 가까운 아드리아해와 크로아티아에 가까운 아드리아해. 바다의 근본적인 성분이야 달라질 것이 없겠지만 어쩐지 느낌이 달랐다. 이탈리아의 아드리아해가 수더분하다면 크로아티아의 아드리아 해는 아롱다롱했던 것 같다. 사랑이 넘쳤던 미남 화가 마르케에서 중요한 도시로 우르비노Urbino가 꼽힌다. 무엇보다 그림 애호가들에게는 성모화의 대가 라파엘로Raffaello의 고향이란 점이 돋보인다. 라파엘로가 활동하던 16세기 초는 르네상스의 전성기로 불세출의 화가들이 한꺼번에 쏟아지던 시기였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비롯해 미켈란젤로와 티치아노 등이 자신들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흥미로운 점은 같은 시대의 공기를 호흡했던 라파엘로가 이들과 여러 면에서 차이를 보였다는 것이다. 우선 성격이 사뭇 달랐다. 어딘가 신비롭고 고독했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나 미켈란젤로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천재 예술가’의 면모를 지녔다면 라파엘로는 성품이 사근사근해서 어딜 가나 사람들과 잘 어울렸다. 활약했던 분야도 상이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가 미술을 넘어 조각과 건축 등에도 재능의 촉수를 뻗쳤다면 라파엘로는 회화에만 집중했다. 라파엘로는 1483년 우르비노에서 태어났다. 첫 번째 미술 선생님은 궁정화가인 아버지였다. 아버지가 세상을 등진 이후에는 페루지아에서 그림 수업을 계속했고, 17살인 1500년부터 자신의 이름으로 작품을 의뢰받기 시작했다. 우르비노는 라파엘로의 고향이기는 하지만 그를 유명하게 해준 성모자상과 초상화들은 1504년부터 거주한 피렌체와 1508년에 입성한 로마에서 그린 것들이다. 14세기에 지어진 라파엘로 생가Casa di Raffaello에 들어섰다. 그가 생전에 사용하던 가구들이 그대로 놓여 있었고, 그가 태어난 것으로 보이는 방에는 성모와 아기 예수 그림이 걸려 있었다. 작은 안뜰과 우물의 존재는 라파엘로의 가정이 당시 꽤나 부유했음을 일러 주었다. 집 안 한쪽에 놓인 라파엘로의 흉상은 그가 상당한 미남이었음을 짐작하게 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얼굴값’을 단단히 했던 모양이다. 많은 여인들을 사랑했는데, 미술가들의 삶을 기록한 전기 작가 조르조 바사리에 따르면 연애가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열병을 초래했다고 한다. 안코나 마르케의 주도다. 안코나항은 아드리아해와 접한 이탈리아의 항구들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 그리스나 크로아티아 등으로 떠나는 페리를 이용할 수 있다. 산 치이라코San Ciriaco 대성당이 대표적인 볼거리다. 몬테펠트로가 정면을 바라보지 않는 이유 우르비노는 1998년 구시가지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중세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우르비노는 르네상스 시대에 활짝 꽃을 피운 도시다. 이탈리아를 비롯해 유럽 각지의 예술가들과 철학자들이 우르비노로 모여들었고 이들이 물을 뿌려 가꾼 풍만한 문화가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특히 페데리코 다 몬테펠트로Federico da Montefeltro가 통치하던 시절(1444년부터 1482년까지)이 우르비노의 최전성기였다. 몬테펠트로는 원래 용병이었다. 남들의 전쟁에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나가 대신 싸우는 것이 그의 직업이었다. 그는 뛰어난 군사 전략가인 동시에 계몽적인 지도자였다. 1444년 공작이 되고 난 후 이름난 사상가와 예술가들이 모이는 장소를 마련하고자 했는데, 그의 바람이 구체화된 것이 바로 우르비노의 중심이자 지금도 최고의 관광자원으로 군림하고 있는 두칼레 궁전Palazzo Ducale이다. 비례와 균형의 미학으로 지어진 두칼레 궁전은 현재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우르비노 태생의 라파엘로, ‘회화의 군주’ 티치아노, 몬테펠트로 부부의 초상화를 그린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원근법에 심취했던 파올로 우첼로 등의 ‘르네상스 컬렉션’을 만날 수 있다. 우르비노를 대표하는 그림이라고 할 수 있는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페데리코 다 몬테펠트로 부부 초상’과 두칼레궁에 소장된 페드로 베루게테의 ‘페데리코 다 몬테펠트로와 아들 귀도발도’를 보면 몬테펠트로의 얼굴이 ‘호감형’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무스름한 피부, 매부리코, 툭 튀어 나온 턱, 거슴츠레한 눈매는 고약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두 그림에는 공통점이 있다. 몬테펠트로의 왼쪽 얼굴만을 보여 준다는 점이다. 1455년 창 시합에서 오른쪽 눈을 잃은 후 정면 대신 늘 왼쪽 측면을 그리도록 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초상화는 사실주의적 묘사가 인상적이다. 또 아들과 함께한 그림에서는 갑옷을 입은 채 책 읽는 모습을 연출함으로써 몬테펠트로가 문무를 겸비한 지도자임을 나타내고 있다. 루벤스를 보려면 페르모로! 페르모Fermo 에도 아퀼라Aquila라는 이름의 극장이 있다. 마르케주에서 두 번째로 큰 극장이다. 1792년 문을 열었으며 1,000석 규모를 자랑한다. 플로어 앞쪽에 앉은 사람들의 관람 편의를 위해 공연 무대를 경사지게 만들었다. 1590년에 완성된 건물 프리오리Priori에는 루벤스를 비롯한 유명 화가의 작품을 소장한 미술관과 1722년에 제작된 거대한 지구본이 눈길을 끄는 시립도서관이 있다. 아퀼라 극장 Via Giuseppe Mazzini, 4, 63023 Fermo, Italy +39-0734-284345 프리오리 미술관 Piazza del Popolo, 63023 Fermo, Italy +39-0734-217140 페사로가 낳은 아들 로시니 우르비노에서 차로 45분 정도 떨어져 있는 인구 9만의 도시 페사로Pesaro를 찾았다. 우르비노의 인물이 라파엘로라면 페사로의 얼굴은 로시니Rossini다. <세비야의 이발사>, <빌헬름 텔>로 유명한 오페라 작곡가 로시니 말이다. 로시니는 1792년 페사로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소프라노였고 아버지는 호른 연주자였다. 아주 어릴 때부터 자연스레 음악을 접할 수밖에 없었다. 6살에 교회 성가대에서 활동했고 14살에 오페라를 만들었다. 그가 첼로와 피아노, 작곡을 체계적으로 배운 곳은 볼로냐 음악학교였는데 지루한 수업을 견디지 못해 학교를 그만뒀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밀라노시에서 그의 동상을 세운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 돈을 내게 주면 매일 서 있을 수 있다”고 말할 정도로 농담을 즐겼다. 그의 익살맞은 성격은 오페라에도 잘 드러난다. 내용은 극적이고 선율은 유쾌하다. 페사로에는 로시니 극장이 있다. 1819년에 설립된 유서 깊은 극장이다. 로시니는 이미 20대에 작곡가뿐만 아니라 극장장과 지휘자로도 맹활약했는데, 로시니 극장에서도 당연히 지휘를 했다. 예전 극장은 음악 감상 이외에 가족끼리 모여 식사를 한다거나 카드놀이를 하는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됐다고 한다. 9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로시니 극장은 5층으로 이뤄져 있는데 계층에 따라 앉는 자리도 달랐다. 2층 중앙석은 최고 권력자를 위한 자리였고 일반인은 4층부터 앉을 수 있었다. 페사로에서는 매년 8월이면 로시니 오페라 페스티벌이 열린다. 올해도 8월10일부터 22일까지 개최되는데, 무대에는 당연히 로시니의 작품을 올린다. 지난해 120만여 명이 관람했을 정도로 축제는 항상 성황을 이룬다. 참고로 티켓 가격은 20~180유로다. 어쨌든 마르케주에만 로시니 극장 같은 곳이 72개가 있다고 하니 이탈리아 사람들의 음악 사랑을 짐작할 만하다. 작업복을 입은 회장 마르케에서 음악과 관련된 도시로 마체라타Macerata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이곳의 상징이 바로 스페리스테리오 야외극장Arena Sferisterio이다. 유럽의 중요한 야외극장 중 하나인데, 스페리스테리오의 공연 역사는 192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공작의 후원으로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가 상연됐던 것이다. 스케일이 엄청났다. 무려 1,000명이 넘는 배우가 투입됐고 낙타나 말 같은 동물들도 출연했다.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17회 공연으로 7만명의 관객을 불러 모았다. 하지만 ‘마체라타 오페라’의 인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이듬해 폰키엘리의 <라 조콘다>를 상연했지만 어쩐 이유에서인지 관객의 호응을 얻는 데 실패했다. 결국 1927년까지 스페리스테리오에서는 공연이 열리지 않았다. 부활의 계기는 1967년에 찾아왔다. 마르케 출신의 카를로 페루치라는 인물이 ‘마르케 오페라 순회 공연단’이라는 단체를 만들고 전국 순회공연에 나섰는데, 마체라타의 차례가 되자 스페리스테리오를 공연장으로 요구했던 것이다. 마체라타측으로부터 새로운 무대와 조명 등의 지원을 받은 페루치는 <오셀로>와 <나비부인> 등을 공연하며 야외극장을 부활시켰다. 1992년부터는 한여름에 스페리스테리오에서 서너 개의 오페라가 공연되는 ‘마체라타 오페라 페스티벌’이 열리기 시작했다. 스페리스테리오는 스포츠 경기장이었다. 주로 15세기부터 유행한 핸드볼 형식의 공놀이 경기와 투우가 벌어졌다. 스페리스테리오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데는 극장의 특이한 형태와 더불어 음향을 완벽하게 전달하는 구조에 있다. 아무런 음향 장치의 도움을 받지 않더라도 소리가 잘 전달된다. 직접 만나 본 아트 디렉터도 “소리가 극장 모든 곳에 동시에 도달하고 원래 소리의 두 배가 되어 돌아온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 등 세계 최고의 성악가들이 스페리스테리오의 무대에 앞 다퉈 올랐다. 이탈리아는 패션의 나라이자 명품의 본고장이다. 전 세계 명품 시장의 절반을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장악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10억 달러 이상 자산가 가운데 무려 53%가 명품 산업 종사자라는 통계도 있다. 협회를 만들어 명품 관리에도 심혈을 기울인다. 패션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마르케에서는 신발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이곳에 프라다Prada, 토즈Tod’s, 체사레 파치오티Cesare Paciotti의 신발 생산 공장이 있기 때문이다. 마체라타에 있는 명품 구두 브랜드 로리블루Loriblu 본사를 방문해 제조 공정을 살펴보았다. 패션 문외한이지만 각 라인을 담당하는 사람들의 진지한 태도와 표정은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한 건물 안에 들어 있는 매장으로 자리를 옮기려는 순간, 우연히 로리블루 회장 부자父子를 마주쳤다. 놀랍게도 그들은 작업복을 입은 채 구두와 씨름 중이었다. 옷에 잔뜩 묻은 검댕이, 구두를 향한 그들의 열정을 대변해 주는 듯했다. 아버지와 아들은 처음 만난 우리 일행을 스스럼없이 대했다. 권위가 권위주의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님을 새삼 깨달았다. 오래 가는 화이트 와인 페사로에 로시니 극장이 있다면 예시Yesi에는 페르골레시 극장이 있다. 맞다. 작곡가이자 바이올린 및 오르간 연주자인 조반니 바티스타 페르골레시Giovanni Battista Pergolesi가 예시 태생이다. 1710년에 태어난 페르골레시는 27살의 나이로 요절했다. 너무 짧은 삶을 살아서였을까. 그는 사후에 훨씬 더 큰 명성을 얻었다. 페르골레시의 작품 중 <마님이 된 하녀>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사이의 음악 논쟁을 촉발하기도 했다. 쉽게 말하자면 프랑스의 궁정 오페라가 우월하냐 이탈리아의 오페라 부파(이탈리아어로 쓰인 가벼운 내용의 희극)가 우월하냐는 논쟁이었다. 2년에 걸친 싸움은 결국 이탈리아측의 패배로 끝이 났지만 역설적이게도 프랑스 희가극인 오페라 ‘코미크’의 탄생에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했다. 1790년 처음 문을 열었다가 1883년 재개관한 페르골레시 극장에서 잠시 시간을 보낸 다음, 와인 테이스팅을 위해 발레아니 광장에 있는 에노테카Enoteca로 자리를 옮겼다. 에노테카는 마르케와인협회에서 운영하는 곳으로 포도 품종의 개발과 와인 생산업자들의 보호 및 육성, 와인 유통 활성화 등에 힘을 보태고 있다. 화이트 와인 2가지, 스푸만테 1가지, 레드 와인 1가지를 시음했는데 역시 베르디키오Verdicchio 품종에 가장 큰 관심이 쏠렸다. 베르디키오는 마르케에서 재배되는 대표적인 화이트 와인 품종으로 상큼한 신맛이 일품이다. 화이트 와인뿐만 아니라 스파클링 와인인 스푸만테 양조에도 쓰인다. 양조장에 따라서는 베르디키오를 늦게 수확하기도 하는데, 이는 산도를 낮추고 당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베르디키오의 특별한 점 중 하나는 탁월한 숙성력이다. 일반적으로 화이트 와인은 레드 와인보다 저장 기간이 짧은 편인데 베르디키오를 이용한 화이트 와인은 빈티지가 좋을 경우 10~15년 정도도 거뜬하다. ‘어린’ 베르디키오 와인에서는 신맛과 살짝 매운 맛이 감돌고 ‘묵힌’ 베르디키오 와인에서는 농익은 사과향이 난다. 마르케에 머물며 접한 음식 중 가장 맛있었던 것이 아스콜라나 올리브Olive Ascolana튀김이다. 아스콜라나는 아스콜리나 지역에서 재배한 올리브로 크기가 커서 씨를 빼고 속을 채워 튀기기에 적합하다. 한 입 베어 물었더니 바삭한 튀김옷과 그 안에 들어 있는 잘게 다진 고기의 식감이 서로 잘 어울렸다. 아드리아 해에 면한 항구도시 세니갈리아Senigallia에서는 미슐랭 스타 셰프인 마우로 울리아시Mauro Uliassi를 만날 수 있었다. 17살이란 비교적 어린 나이에 생계유지를 위해 셰프의 길을 선택한 그는 “사실 처음에는 요리에 대한 열정이 없었다”고 고백했다. 이어지는 그의 말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여자 친구 생일을 맞아 사람들을 초대해 음식을 해준 적이 있어요. 음식을 맛본 사람들이 진심으로 감동한 나머지 저를 경외의 눈으로 바라보더라고요. 그때 요리의 강력한 힘을 알게 됐죠. 지금의 제 아내가 이렇게 얘기해 주었어요. 당신의 손에는 영혼이 있다고.” 그가 준비한 저녁 정찬 메뉴는 단순하면서도 모던함을 추구한다는 그의 요리 철학을 닮은 듯 보였다. 특히 셰프 스스로 ‘육지와 바다의 만남’이라 칭한 생선 위에 올린 프로슈토와 오징어를 넓적하게 썰어 먹물 소스를 끼얹은 요리가 사람들로부터 감탄을 이끌어냈다. 코스 요리와 그에 어울리는 와인 그리고 후식까지 음미하다 보니 시계가 어느새 밤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에디터 손고은 기자 글·사진 Travie writer 노중훈 취재협조 이탈리아관광청 www.enit.it, 마르케 주정부, 알리탈리아항공 ▶travel info Airline 알리탈리아항공의 직항편을 이용해 로마까지 간 다음, 안코나행 국내선으로 갈아탄다. 로마-안코나 구간의 비행시간은 약 1시간 10분. Hotel 산 피에트로San Pietro에 위치한 호텔 몬테코네로까지는 안코나공항에서 차로 25분 정도 걸린다. 해발 550m에 자리하고 있어 아드리아해와 언덕이 만들어내는 멋진 풍광을 조망할 수 있다. 호텔은 원래 12세기 수도원으로 이용됐던 건물이다. 지금도 고풍스런 외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총 50개 객실 보유. via Monteconero 26, 60020 Sirolo (AN), Italy www.hotelmonteconero.it +39-071-9330592 Restaurant 라 토레La Torre 주방에 들어가 셰프가 파스타 만드는 과정을 구경했다. 밀가루에 달걀을 넣은 반죽이 병아리색을 띈다. 탈리아텔레. 우리네 칼국수처럼 면이 길고 납작한 탈리아텔레 파스타는 셰프가 열심히 치대서인지 면이 유난히 쫄깃쫄깃하다. 함께 넣은 조개, 새우 등의 해산물이 파스타의 풍미를 한껏 올려 준다. via la Torre 1, 60026 Numana (AN), Italy www.latorrenumana.it +39-071-933047 우르비노 리조트 레스토랑 우르비노 리조트의 레스토랑에서는 갓 구운 빵과 돼지 뒷다리를 염장한 다음 바람에 말린 프로슈토를 추천한다. 어깨살과 삼겹살도 있는데 부드럽고 짭짤해서 자꾸만 손이 간다. 도톰한 파스타와 부드러운 송아지 스테이크 그리고 카카오 셔벗까지 함께하면 완벽한 점심 정찬. Via San Giacomo in Foglia, 7, 61029 Urbino (PU), Italy www.tenutasantigiacomoefilippo.it/en/urbino-resort +39-0722-580305 Activity 프라사시Frasassi 동굴 | 1971년에 발견된 프라사시 동굴은 종유석과 석순, 석주가 연출하는 지하 세계의 장관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동굴의 규모는 상당하지만 관람객에게는 약 1.5km 구간만 개방된다. 1시간 15분 정도 소요. 총 7개의 홀로 구성돼 있는데, 6·7번 홀은 사전 신청자에 한해 입장이 허락된다. 길이 험하기 때문에 안전 장비를 갖춰야 한다. 동굴 내부의 기온은 연중 14℃로 일정하다. Largo Leone XII, n 1 - 60040 Genga (AN), Italy www.frasassi.com +39-0732-90090 피아스트라 수도원Abbazia Fiastra | 예시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에 위치한 피아스트라 수도원은 여전히 엄격한 계율을 신봉하는 시토 수도회 소속이다. 이탈리아에서 보존 상태가 가장 좋은 수도원 중 하나로 꼽힌다. 수도원 주변은 자연보호 구역으로 둘러싸여 있다. Abbadia di Fiastra , 62029 Tolentino (MC), Italy www.abbadiafiastra.net +39-0733-818638 아스콜리 피체노Ascoli Piceno | 로마보다 오래된 도시 아스콜리 피체노에는 도시의 중심을 잡아주는 두 개의 광장, 포폴로Popolo와 아링고Arringo가 있다. 아링고 광장에는 도시의 수호성인 에미디오에게 바쳐진 산 에미디오San Emidio 성당이 있고 바로 옆에 위치한 시청 내부에는 시립미술관이 있다. 미니 열차를 이용하면 도시의 명소들을 손쉽게 돌아볼 수 있다. 가격은 6€ 다. 로레토Loreto | 가톨릭 신자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띠는 도시가 로레토다. 성가聖家, 즉 성모마리아가 태어난 나사렛 집의 일부(지상 부분의 담벼락으로 추정)가 로레토 성당Basilica di Loreto 안에 옮겨져 있기 때문이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나사렛에 남아 있는 성가의 지하 부분과 로레토 성가의 담벼락이 같은 벽돌을 쓴 것으로 밝혀졌다. 성당과 성가 내부는 기도를 올리는 순례자들과 일반 관광객들로 늘 붐빈다.
  • 60년만에 처음 만나는 백석 시의 고향

    60년만에 처음 만나는 백석 시의 고향

    동화시집/마르샤크 지음/백석 옮김/박태일 엮음/경진출판/264쪽/1만 3000원 ‘돼지 몰이꾼 대답이- “내 말하지-,/당신네 가운데 누가 잘났나,/누구든지 제 힘으로 사는 사람/그 사람이 그거야 더 잘났지!//당신은 임금 없이도 살아갈 텐가?”/“그렇구말구-.” 전사의 대답./“당신은 호위병이 없어도 좋겠는가?”/“원 천만에!-” 임금이 하는 말.’(누가 더 잘났나?) ‘쥐- 따쥐는/가루만 빻고,/개구리는/만두를 굽고,/숫탉은 창문에서/그들에게 손풍금을 타 준다./잿빛 고슴도치는 등을 옹쿠려/잠도 자지 않고 다락집을 지킨다.//갑자기도 갑자기 컹컴한 숲속으로/집 없는 승냥이가 기신기신 찾아왔다./대문을 쾅쾅 두드리며/목 갈린 소리로 노래를 한다-.’(다락집 다락집) 아름답고 쉬운 시어로 러시아 아동문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러시아 시인 사무일 마르샤크(1887~1964). 신기하게도, 그의 동화시를 읽다 보면 고수머리 흩날리던 ‘댄디 보이’ 백석(1912~1996) 시인의 아취(雅趣)가 풍겨온다. ‘개구리네 한솥밥’ 같은 해학과 유머가 어울린 ‘백석표 동시’가 문득 겹쳐 보이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마르샤크의 동시를 일찍이 우리말로 옮기면서 백석은 그에게서 문학적 영감을 크게 얻었다. 백석이 1955년 6월 평양에서 번역해 펴냈던 마르샤크의 ‘동화시집’(경진출판)이 60여년 만에 국내 독자들에게 소개됐다. 박태일 경남대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2년 전 중국에서 백석이 번역한 동화시집 초판을 발굴해 책으로 엮어냈다. 당시 민주청년사에서 펴낸 초판본의 가격은 47원. 초판만 3만부를 찍었고 시인 리용악이 교열을 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태일 교수는 “광복기부터 1950년대 걸쳐 이뤄진 번역 작업은 백석의 삶에서 중핵적일 뿐 아니라 초기 북한문학사의 형성과 전개에 큰 이바지를 했다”며 “특히 이 책은 백석이 1950년대 북한문학 속에서 집중적으로 썼던 동화시와 어린이문학의 탯줄일 가능성이 있다”고 의미를 짚었다. 마르샤크의 작품이 백석의 동화시 창작의 핵심 원천으로 짐작되는 이유로 박 교수는 책이 출간된 2년 뒤인 1957년 시인이 써낸 창작 동화시집 ‘집게네 네 형제’를 지목했다. 편수도 각각 11편, 12편으로 비슷한 데다 두 책 모두 본문에 문자와 맞물린 그림을 싣는 도상텍스트를 선보였다. 마르샤크 시 번역에서 나타난 독자적인 짓본뜬말(의태어), 소리본뜬말(의성어)의 쓰임, 각운과 압운의 적절한 사용, 지역어나 신어 쓰임, 반복과 병렬의 짜임새가 ‘집게네 네 형제’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런 동화시는 북한 어린이문학뿐 아니라 중국 동포문학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백석은 북한 문예지 ‘아동문학’(조선작가동맹출판사) 1957년 11월호에 게재한 ‘마르샤크의 생애와 문학’이란 글에서 그에 대해 “유명한 소련의 시인이며 극작가이며 번역가이며 이론가이며 거대한 아동 문학가”라고 소개한 바 있다. 시집에는 11편의 동화시가 실렸다. ‘불이 났다’, ‘우편’, ‘드네쁘리 강과의 전쟁’ 등은 각각 소방대, 우편배달부, 건설 노동자들의 활약상을 다루며 소비에트 사회의 건실함을 선전하는 동시에 어린이 눈높이에 맞춘 감각적인 표현으로 동화시의 특징을 담고 있다. 앞서의 시편들이 평범한 이들을 영웅으로 그려 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낙관을 심어주었다면 ‘게으름뱅이와 고양이’, ‘미스터 트비스터’ 등은 게으름뱅이 아이와 미국의 인종차별주의자, 대자본가인 부정적인 주인공을 꾸짖고 폭로하면서 공민이 갖춰야 할 윤리와 품성을 깨닫게 한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길섶에서] 들밥/서동철 논설위원

    시골 면 소재지 중국집 간판에 ‘들밥 배달’이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농촌에서도 모내기며 벼 베기를 할 때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시켜먹는다더니 그 얘기인가보다 하고 웃었다. 그렇지 않아도 농촌에서 젊은이를 찾아보기 어려운데 들밥을 지어 들녘으로 나르라고 한다면 몇 남지 않은 며느리조차 줄지어 도망갈 판이다. 얼마 전 찾은 서울 홍대 앞의 작은 식당은 바로 그 들밥이 콘셉트였다. 큼직한 채반에 돼지불고기와 상추쌈, 된장찌개, 제철나물을 담아 내는 집이었다. 제법 들밥의 재미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인지 가게는 손님으로 북적거렸다. 농촌에서는 사라져 가는 들밥이 도시민, 그것도 젊은 세대의 환영을 받고 있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었다. 들밥을 먹으며 희미하게 생각나는 게 있었다. 깊은 정감이 느껴졌던 고려시대 문인 안축(安軸)의 한시(漢詩)였다. 돌아와 다시 찾아 읽었다. 이런 일도 다시는 없을 것 같다. 농사일 새참 준비에 아낙은 끼니 거르고 / 새벽부터 마음은 벌써 여름 밭에 가 있구나 / 한낮 새참 이고서 밭으로 가는 길 재촉하여 / 낭군 배불리 먹이니 신이 나서 돌아가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이리저리 휘돌면 좀 어떤가 구불구불 에돌면 또 어떤가

    이리저리 휘돌면 좀 어떤가 구불구불 에돌면 또 어떤가

    대부분의 지자체마다 ‘길’ 하나쯤은 조성해 뒀다. 여태 기세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걷기 열풍에 부응하기 위해서다. 전북 군산의 구불길도 그런 연유로 조성됐다. 관광안내서에 따르면 ‘이리저리 구부러지고 수풀이 우거진 길을 여유·풍요·자유를 느끼며 오랫동안 머무르고 싶은 여행길’로 만들겠다는 게 조성 목적이다. 구불길은 모두 11개 코스로 나뉜다. 비단강길, 햇빛길, 큰들길, 구슬뫼길, 물빛길, 달밝음길, 탁류길, 고군산길 등 이름만으로도 정겹다. 그 가운데 옥산저수지를 에둘러 돌아가는 구슬뫼길은 구불길의 정수 중 하나로 꼽힌다. 산책이라기엔 발품깨나 팔아야 하고, 트레킹이라 하기엔 다소 난이도가 낮은 길이다. 이 계절, ‘공활한 가을 하늘’ 머리에 이고 사부작사부작 걷기 딱 좋다. 여유… 구슬 꿴 듯한 청암산, 그 품에 안긴 옥산저수지 옥산저수지는 일제강점기인 1939년 조성됐다. 공업용수 확보가 주요 목적이었다. 1963년에는 군산의 제2수원지 노릇을 하느라 상수원보호구역에 지정됐고, 자연스레 사람들의 출입도 통제됐다. 그러다 2008년, 45년 만에 상수원보호구역에서 해제됐다. 호수를 에둘러 아름다운 수변길이 조성될 수 있었던 건 바로 이 때문이다. 옥산저수지 구불길은 ‘구슬뫼길’이라고도 불린다. 한자이름 ‘구슬 옥’(玉)과 ‘뫼 산’(山)을 순우리말로 바꿨을 뿐인데 이렇게 정감 넘치는 이름이 됐다. 공식 명칭은 군산호수다. 구슬뫼길의 전체 길이는 18.8㎞다. 군산역에서 ‘한국의 슈바이처’라 불리는 이영춘 박사 고가와 옥산저수지 등을 지나 남내마을까지, 혹은 그 역순으로 돈다. 마냥 걷기만 해도 6시간 이상 걸리는 긴 코스다. 해서 대부분의 도보꾼들은 옥산저수지 주변을 도는 3~4시간짜리 코스를 선호한다. 원점회귀가 가능하고 걷다 쉬다를 반복하며 호수와 주변 숲의 그윽한 정취를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구슬뫼일까. 현지 주민들은 저수지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작은 산들이 구슬처럼 아름답다 해서 이름 지어졌다고 했다. 옥산저수지 뒤는 청암산이다. 옥산저수지 전체를 큰 팔로 품은 듯한 형상이다. 저수지에 물이 담수되기 전만 해도 여느 산과 다름없는 풍모였겠지만, 물이 들어차면서부터는 확연히 달라졌을 게다. 필경 산자락 중턱 위까지 물에 잠겼을 테고, 산봉우리들만 동글동글하게 남았을 텐데, 그 모양이 꼭 하나로 꿴 구슬처럼 보였을 게다. 옥산면사무소 지나 농로를 따라 100m 남짓 들어가면 논 옆으로 대형 주차장이 나온다. 시골마을과 어울리지 않는 주차장이 언뜻 생뚱맞게 보이지만,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구슬뫼길을 찾는다는 방증일 터다. 주차장 바로 앞은 저수지 양수장관리사무소다. 이곳이 구슬뫼길의 실질적인 들머리다. 풍류… 억새꽃 춤추고 잔잔한 물 위로 산자락 흔들흔들 옥산저수지 주변을 도는 길은 모두 세 종류다. 구슬뫼길(구불 4길), 수변길(13.8㎞), 청암산 등산로(약 7㎞) 등이다. 수변길이 등산로보다 두 배 가까이 긴데, 이는 손가락처럼 생긴 호수 주변을 굽돌아가기 때문이다. 구슬뫼길은 수변길, 청암산 등산로 등과 길을 공유했다 떨어지길 반복한다. 실제 길이는 수변길과 비슷한데 난이도는 약간 더 높다. 이정표에는 ‘구불 4길’로 적혀 있다. 청암산 등산로를 따르는 건 빠르긴 하나, 호수의 그윽한 맛을 느끼기 어렵고 수변길은 편하지만 호수의 다양한 표정을 엿볼 수 없다. 수변길을 따라가다 약 4㎞ 지점의 갈림길에서 청암산 등산로로 바꿔 타길 권한다. 수변길을 따르는 것보다 시간이 덜 소요되고, 호수의 다양한 면을 엿볼 수 있다. 양수장관리사무소 앞 주차장에서 신들메를 고친 뒤 제방에 오르면 길은 양옆으로 갈라진다. 호수를 한 바퀴 도는 길, 어느 쪽으로 가도 결국 같은 곳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오른쪽 제방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자박자박 걷는다. 길 오른쪽엔 물억새가 한창이다. 아직 영글지는 않았지만, 늦가을쯤이면 흐드러진 억새꽃들이 장관을 펼쳐내지 싶다. 길 왼쪽은 호수다. 장판처럼 잔잔한 물 위로 청암산 자락 하나가 떠 있다. 바다 위에 뜬 섬 같다. 아직 일러 철새들은 오지 않았지만, 추수 끝낸 군산의 들녘에 나락들이 흔천일 무렵이면 저 물 위에도 수많은 생명들이 떠 있을 터다. 제방 끝의 정자를 지나며 숲길이 시작된다. 숲은 습하다. 물가라 더 그렇다. 예전엔 흙길이었는데, 수변길을 정비하면서 나무 둥치나 목재데크 등으로 디딤판을 만들어뒀다. 그 덕에 진창길을 걷는 곤욕은 피했지만 습기 듬뿍 머금은 나무 둥치들이 얼음처럼 미끄러워져 넘어질 위험은 높아졌다. 목재데크보다는 나무 둥치로 만든 디딤판을 건널 때 특히 조심하는 게 좋겠다. 자유… 사람 손 타지 않아 사랑스러운 숲과 물의 속살 길은 평이하다. 편백나무 산림욕장도 있고, 지역의 한 자동차 회사에서 사회공헌 사업으로 조성한 숲도 지나지만 각별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얼추 2~3㎞, 30분 가까이 이런 길이 이어진다. 한데 이후 길은 완벽하게 변신한다. 대나무와 왕버드나무, 갈참나무 등이 어우러진 비밀의 숲이 펼쳐진다. 단언컨대 예서부터는 감동할 준비를 해도 좋다. 대숲은 정돈되지 않았다. 전남 담양 일대의 잘 가꿔진 대숲들의 조형미엔 당연히 견주지 못한다. 한데 외려 그 덕에 한결 자연스럽고 웅숭깊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리 휘고 저리 굽은 소나무와 보랏빛 맥문동이 어루러진 풍경도 이채롭다. 길 중간중간 왕버드나무 군락지도 만난다. 초록색 이끼와 거무튀튀한 나뭇가지가 절묘한 대비를 이룬다. 호수는 맑다. 45년 동안 사람의 간섭이 없었던 덕이다. 호수에 깃든 생명들도 건강한 삶을 이어간다. 크고 작은 연꽃들이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꽃들을 틔워냈고, 파스텔톤의 몸통이 예쁜 물잠자리도 곧잘 눈에 띈다. 저수지 둘레 산길은 완만한 편이다. 청암산 정상(115m)을 오를 때 다소 된비알이 있을 정도다. 정상에 서면 호수 전체가 눈에 잡힌다. 윤슬 반짝이는 호수와 너른 만경평야를 굽어보는 것만으로도 그간의 노고는 씻은 듯 사라진다. 산길이 지루하다 싶을 때는 다시 수변길로 내려오면 된다. 주의할 것 하나. 길 중간에 간이매점이나 식당 등은 없다. 이는 구슬뫼길 초입도 마찬가지다. 마실 물, 먹을 것 등은 옥산면사무소 주변의 농협이나 편의점 등에서 미리 사놔야 한다. 글 사진 군산 손원천 여행전문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63) →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 군산 나들목으로 나와 706번 지방도로 갈아탄 뒤 호덕교차로에서 좌회전, 29번 국도를 따라가다 개정교차로에서 우회전, 21번 국도를 타고 옥산 교차로까지 간다. 예서 좌회전, 대위로를 타고 가다 옥산파출소 지나 우회전해 곧장 가면 된다. 내비게이션이 공식 명칭인 군산호수를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엔 옥산면사무소로 검색하면 된다. →맛집 군산 짬뽕(④)이 이름났다. 특히 복성루(445-8412)는 전국의 맛 순례객들이 빼놓지 않고 들르는 집이다. 채 썬 돼지고기와 홍합, 오징어, 바지락 등 해산물들이 풍성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웍(Wok·중화요리에 사용하는 큰 냄비)의 맛, 그러니까 불의 맛과 향이 풍성하게 녹아 있다는 거다. 대개 오후 2~3시면 문을 닫는데 문을 여는 동안엔 늘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인근의 지린성(467-2906)도 맛이나 명성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는 집이다. 두 집 모두 군산항 쪽에 있다. 주전부리 음식 중엔 중동호떡(445-0849)이 이름났다. 옥산저수지 인근에선 향촌국수(461-8111)가 이름값을 높이는 중이다. →잘 곳 옥산저수지에서 10분 거리의 군산시청 주변에 깔끔하고 값 헐한 모텔들이 많다.
  • 꼬박 40시간 햄 썰기…기네스 신기록 수립

    꼬박 40시간 햄 썰기…기네스 신기록 수립

    스페인에서 이색적인 기네스기록이 나왔다. 햄 전문가 그레고리오 페레스가 햄(소금에 절인 돼지 뒷다리) 썰기 세계기록에 도전, 최장시간 작업 기네스기록을 세웠다. 페레스는 5일(현지시간) 칼을 들고 햄 썰기를 시작했다. 1시간마다 5분 휴식을 취하는 규정을 지키면서 그는 꼬박 40시간 연속 햄을 썰었다. 이틀 가까이 칼을 휘두르면서(?) 그가 자른 햄은 모두 36개. 무게는 총 222kg이었다. 기네스는 시간과 작업물량을 확인하고 세계기록 경신을 공인했다. 종전의 최고 기록은 또 다른 스페인의 햄 전문가가 세운 33시간3분이었다. 페레스는 세계기록 수립을 위해 1년 이상 준비를 했다. 40시간 서서 햄을 썰기 위해 체력을 다지다 보니 20kg나 살이 빠졌다. 물리치료사, 심리학자, 영양사, 마사지사 등이 체력관리와 회복을 도왔다. 한편 페레스가 썬 햄은 행사장을 찾은 관람객들에게 무료로 제공됐다. 일부는 행사를 후원한 비정부기구(NGO)에 전달됐다. 사진=디아리오데나바라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과도한 ‘육식’, 환경 재앙 초래할 것”

    “과도한 ‘육식’, 환경 재앙 초래할 것”

    지구상에서 육류소비가 계속될 경우, 돌이킬 수 없는 환경 재앙이 닥칠 수 있다는 과학자들의 주장이 제기돼 파문이 일고 있다. 영국 가디언 지는 케임브리지 대학, 애버딘 대학 공동 연구진이 “지속적인 육류소비는 식량생산 증대로 이어지고 이는 궁극적으로 2050년까지 예상을 크게 초과하는 온실가스 배출로 연결돼 치명적인 환경재앙을 초래할 것”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고 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연구진의 통계조사에 따르면, 현재와 같은 추세로 육류 소비가 진행되면 식량생산을 위한 농경지, 목축지 증가폭이 오는 2050년, 오늘 날보다 42% 더 초과된다. 농경지 경작, 가축 먹이 제공을 위한 비료 사용량 역시 2009년 대비 45% 이상 증가된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현재 남아있는 깨끗한 열대우림 지역이 농경지, 목축지화 되어 35년 내에 모두 사라진다는 점이다. 열대우림 벌채, 비료 사용 증가, 소·돼지 등 육류 공급을 위해 길러지는 가축들의 메탄 배출량이 현재에서 계속 이어진다면 지구온난화를 초래하는 온실 가스 배출량이 지금보다 약 80% 더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고 연구진은 분석한다. 이와 관련해 스웨덴 차머즈 공과 대학 연구진은 식량생산을 위한 산림 파괴가 중단되지 않을 경우, 오는 2070년까지 대기 내 메탄·아산화질소 함유량이 현재의 2배에 이를 것이라는 보고서를 낸 바 있다. 연구진은 육류 소비를 어느 정도로 조절해야 환경재앙을 예방할 수 있는지 가상 시나리오를 구상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가장 효과적인 음식 섭취량은 일주일 기준, 붉은 살코기 90g에 달걀 5개다. 이 정도만 유지해주면 큰 환경파괴 없이 안정적인 식량 공급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케임브리지 대학 키스 리처즈 교수는 “해당 연구결과는 우리 모두 채식만 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을 담고 있지는 않다”며 “균형 잡힌 식단을 구성해 합리적인 양의 육류만을 섭취함으로써 인류의 건강과 환경파괴를 모두 예방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료사진=포토리아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이유리 런닝맨, 연민정 완벽 빙의 “송지효만 좋아하지마” 누구에게?

    이유리 런닝맨, 연민정 완벽 빙의 “송지효만 좋아하지마” 누구에게?

    ‘이유리 런닝맨’ 배우 이유리가 ‘런닝맨’에 깜짝 출연해 악녀 연기를 선보였다. 지난 7일 오후 방송된 SBS ‘일요일이 좋다-런닝맨’에서는 희대의 악녀 6인방 이유리, 최여진, 서우, 유인영, 김민서, 송지효가 나란히 등장했다. 이날 MBC 주말드라마 ‘왔다! 장보리’에서 악녀 연민정 역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리는 극 중 역할에 빙의해 개리에게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거야. 그저 밥 밥 밥! 사람이 밥만 먹고 살아? 당신이 소·돼지야? 당신이 식충이와 다른 게 뭐가 있냐”면서 연기했다. 이어 이유리는 개리에게 “네가 내 인생에 끼어들면서 내 인생에 구정물이 튄 거라고”라면서 물이 든 컵을 들기 시작했다. 당황한 개리는 “설마”라고 외치며 이유리를 말렸다. 하지만 이유리는 “너가 기다리던 게 이거야?”라고 말했다. 이에 개리는 “내가 도대체 잘못한 게 뭐냐”고 억울해 했고, 이유리는 “너는 날 탓할 게 아니라 너가 그렇게 매력 터지는 네 인생을 탓하라고! 송지효만 좋아하지 말란 말이야. 오늘은 나도 좋아해주라고!”라고 말해 폭소를 터뜨렸다. 이유리 런닝맨 방송을 접한 네티즌은 “런닝맨 송지효 이유리 재밌었어” “이유리 런닝맨..너무 웃기다” “송지효 이유리 장난 아니네” “이유리 런닝맨..이유리 악녀 연기 최고” 등의 반응을 보였다. 사진 = 방송 캡처 (이유리 런닝맨) 연예팀 chkim@seoul.co.kr
  • “추석 때 농장 방문은 자제해 주세요”

    최근 의성과 고령 등 2곳에서 구제역이 발생해 어려움을 겪은 경북도가 추석을 맞아 귀성객들의 가축농장 방문을 금지하는 등 종합 대책 추진에 들어갔다. 5일 도에 따르면 추석 귀성이 시작되는 이날부터 10일까지 도내 23개 시·군에 구제역 및 조류인플루엔자(AI) 방역 대책 상황실을 설치, 24시간 운영하도록 했다. 또 이 기간 귀성객들의 농장 방문을 금지하고 방역 및 홍보 활동을 강화할 방침이다. 이미 시·군의 고속도로 진·출입로와 철도역 등 주요 지점 200여곳에 ‘귀성객은 농장 출입을 하지 맙시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현수막을 내걸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마을 방송을 활용한 지속적인 홍보도 벌이기로 했다. 경북에서는 지난 7월 23일 의성군 비안면의 돼지농장에서, 같은 달 27일엔 고령군 운수면의 돼지농장에서 구제역이 잇따라 발생, 각각 692마리와 40마리를 살처분했다. 앞서 3월에는 조류인플루엔자 발병 지역인 경기 평택과 역학적으로 관련돼 예방적 도태를 실시한 경주시 천북면 농장의 닭에게서 AI 바이러스(H5N8)가 검출됐다. 이로 인해 닭과 오리 53만여 마리가 매몰됐다. 도 관계자는 “중국·몽골·러시아 등 주변 국가에서 구제역이 계속 발생하고 있고 겨울철에 주로 발생했던 AI가 여름철에도 재발하면서 국내 토착화에 대한 우려가 큰 만큼 축산농가에서 백신 접종을 소홀히 할 경우 언제든지 재발할 가능성이 있어 귀성객들은 축산 및 방역 당국의 통제에 협조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대구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변신! 동화속 주인공으로

    ‘동화 속 주인공으로 변신해 보세요.’ 마을 도서관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는 송파구에 지역 어린이를 위한 첨단 동화구연 체험관이 문을 열어 눈길을 끈다. 송파구는 3일 구립 글마루도서관에 이 같은 시설을 마련해 운영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 공모사업으로, 지난 4월 전국 870여개의 공공도서관 중 8곳이 시범 선정됐다. 따라서 송파글마루도서관에 서울시 자치구 도서관 가운데 처음으로 체험관을 선보이게 됐다. 동화구연 체험은 대형 스크린을 통해 펼쳐지는 가상공간에서 동화 속 주인공이 되는 신기한 경험을 아이들에게 선물한다. 단순히 책을 읽는 것을 넘어 동화 속 주인공으로 변신하는 것이다. 어린이들은 동화책을 영상과 동화구연 전문가의 목소리를 통해 듣고 볼 뿐 아니라 특수 카메라를 이용, 직접 동화 속 영상으로 들어가는 짜릿한 시간을 갖기도 한다. 체험관은 글마루도서관 1층 버들배움터에 들어섰다. ‘아기돼지 삼형제’, ‘오즈의 마법사’ 등 10종의 동화 콘텐츠를 갖췄다. 동화구연 전문강사가 진행을 맡는다. 평일(화~금요일) 오전 10시~낮 12시, 주말 오후 2~4시에 운영한다. 하루 2회씩이다. 1회 1시간씩 12명의 어린이가 입장할 수 있다. 이용 대상은 6~9세 어린이다. 구 관계자는 “아이들에게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꾸리는 것은 물론 책의 내용에 더욱 흥미를 불러일으켜 독서의 생활화에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꾸준히 즐거운 방법으로 독서습관을 갖도록 이끌어 독서 인구를 확대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 [새 영화] ‘자유의 언덕’ 시간·서사·언어의 해체…역시 홍상수!

    [새 영화] ‘자유의 언덕’ 시간·서사·언어의 해체…역시 홍상수!

    그는 촬영 당일 아침에 배우들에게 대본을 주는 감독으로 악명 높다. 지난달 29일 영화 ‘자유의 언덕’ 언론시사회 뒤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배우 윤여정이 “쪽대본 때문에 너무 힘들었다”고 토로했을 정도다. 대본 속 인물을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연기파 배우들에게는 특히나 힘든 대목이다. 홍상수 감독이 깔아 놓은 고도의 장치다. 영화 속 인물을 존재하는 그대로, 가능하면 일상의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도록, 즉 드라마틱한 연기와 거리를 두라는 주문이다. 1996년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부터 이번 ‘자유의 언덕’ 등 열여섯 번째 작품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배우의 영화’가 아니라 ‘홍상수의 영화’가 되는 근본 이유다. 홍 감독 영화의 미덕은 또 하나, 언어에 있다. 우리네 삶 속에서 주고받는 일상의 언어는 자연스럽다. 하지만 영화 속 일상의 언어는 관객들에게 낯설다. 홍 감독은 일상 언어를 해체해 이를 새롭게 복원시키는 데 탁월한 능력을 선보인다. 배우 캐스팅 단계부터 이미 이러한 의도를 소화할 수 있는 자신의 페르소나를 염두에 뒀음은 물론이다. 18년 동안 꾸준히 함께해 온 김의성을 비롯해 유준상, 김상경, 윤여정, 기주봉 등 배우들의 면면을 보면 연극무대 등에서 오랫동안 다져진 연기력을 자랑하는 이들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번 작품의 주인공인 일본 배우 가세 료 역시 영화 내내 순수하고 말간 얼굴로 복잡한 감정의 극 중 인물(모리)을 ‘모리인 듯, 가세 료인 듯’ 경계 없이 그려 냈다. ‘자유의 언덕’의 서사는 간명하다. 모리(가세 료)가 2년 전 사귀다 헤어진 권(서영화)을 찾아 한국에 온다. 권은 마침 지리산으로 요양을 떠나 있다. 매일처럼 어학원으로, 옛집으로 찾아 헤매지만 만날 수 없었다. 대신 자신에게 애정 표현을 아끼지 않는 카페 여주인 영선(문소리)에게 사랑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모리는 일본으로 돌아가기 전날 권을 다시 만나게 됐고, 함께 일본으로 가서 아들딸을 낳고 행복하게 살았다. 영화 속 서사는 이렇게 단선적이다. 하지만 홍 감독이 이리 밋밋하게 영화를 끌고 갈 리가 없다. 모리는 여러 날에 걸쳐 쓴 편지 뭉치를 봉투에 담아 권이 일하던 학원에 맡겨 둔다. 지리산에서 돌아온 권은 편지를 읽다가 그만 계단에 흩뿌리고, 의도치 않게 권이 접하는 모리의 한국 일상은 그 순서가 뒤죽박죽이 된다. 영화의 장면, 장면이 시간의 순서에 따르지 않고 분절된 채 뒤섞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어지는 장면들은 어지럽고, 시간은 해체됐다. 이어지는 듯 끊어지고, 섞이는 듯 질서 있게 흘러간다. 시간, 서사, 언어 모든 것의 해체는 그 모든 것의 재구성을 염두에 둔 사전 단계다. 나아가 감정 흐름의 재구성으로까지 연결된다. 홍 감독은 이에 대해 “우연하면서도 서로 뒤섞이는 느낌으로 만들고자 했고, 그것을 위한 장치”라고 설명했다. 영화 속 모리는 결국 ‘사랑하는 영선’이 아니라 ‘존경하는 권’을 사랑의 대상으로 선택했다. 하지만 영화의 맨 마지막 장면 속 시간은 모리와 영선 사이에 사랑의 감정이 싹트기 직전이다. 일본으로 떠난 모리의 감정 한구석에는 여전히 영선이 있을 수 있다는 열린 서사로 남겨 뒀다. 베니스국제영화제 오리종티 경쟁부문에 출품돼 해외 관객들의 평가를 기다리고 있다. 4일 개봉. 청소년 관람 불가.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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