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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잇단 ‘효자 태풍’에 가뭄걱정 끝

    올해 태풍은 2개가 한반도를 관통했으나 오히려 여름가뭄을 해소해주는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제6호 태풍 ‘볼라벤’이 31일 부산 등 남도해안지역에 상륙했으나 별다른 피해를 주지 않은 채 여름 가뭄에 시달리던 강원도 영동지역과 경북 동해안 지역에 단비를 뿌리고 떠났다. 게다가 부산 앞바다 냉수대까지 몰아내 31일에는 냉수대주의보가 해제됐다. 이에 앞서 지난달 11일에도 한반도를 관통,많은 피해를 줄 것으로 예상됐던제 4호 태풍 ‘카이탁’도 별 피해없이 소멸했다.카이탁은 오히려 때이르게장마가 끝나 가뭄에 시달릴 뻔했던 중남부지방의 여름가뭄을 해소시켰다. 강릉시 경포동 이기현(李起鉉·67·농업)씨는 “많은 물을 필요로 하는 벼이삭 패는 시기를 맞아 가뭄 때문에 걱정했는데 이번 태풍으로 인한 비로 완전히 해갈됐다”며 반겼다.영동지역은 식수난 해소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강릉시는 고지대를 중심으로 10일부터 제한급수 체제에 들어갈 계획이었으나위기를 넘기게 됐다. 경북도 관계자도 “경주시 감포읍 1,600여가구가 제한급수를 받는 등 큰 불편을 겪었다”며 “이번 비로 감포읍 뿐만 아니라 경북 동해안지역이 완전히해갈됐다”고 말했다. 대구 한찬규·춘천 조한종기자 cghan@
  • 張致赫 전경련 남북경협위원장 “경협은 숙명적 사업”

    “이제는 우리 민족을 위해 겸손한 마음으로 남북경협에 동참하겠습니다” 지난 남북정상회담에서 전경련 남북경제협력위원장으로 수행했던 장치혁(張致赫·67) 고합 회장이 정상회담 수행 이후 처음 말문을 열었다.월남한 사업가로서 지난 10년간 중국을 비롯,북한과 꾸준한 경제교류를 추진해온 장 회장은 그동안 언론의 인터뷰 요구에 “그냥 묵묵히 일할테니 지켜봐달라”며거절했었다.장 회장은 또 최근 고합의 워크아웃 상황에 대해 “정부의 방침대로 기업개선작업 협약을 성실히 진행중”이라며 다소 착찹한 심정을 내비쳤다. ■전경련 남북경제협력위원장으로서 이번 방북의 성과는 남북 서로간의 경협의지를 더욱 강하게 만든 계기가 됐다.경협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물론, 앞으로 구체적인 후속조치를 위해 모든 기업들이 관심을쏟게 됐다. ■방북기간 중 친척 상봉의 소감은 만나러 갈 때만도 서먹했지만 직접 대면 하니 과거는 사라지고 우리는 ‘한핏줄’이라는 생각뿐이었다. 이산가족의 상봉이야 말로 평화통일을 위한 지름길이다.다음달 이뤄질 100쌍의 이산가족 상봉을 통해 ‘화해무드’가 한층 더 고조될 것으로 믿는다. ■방북 이후 남북경협의 전망은 경협은 정부와 재계가 힘을 합해 꼭 이뤄야하는 숙명적인 사업이다. 방북에 참여했던 경제 5단체를 중심으로 경협협의회를 구성,중복투자 및 과당경쟁을 막고 정보교류를 통해 구체적인 경협사업을 추진중에 있다. 특히 지난해 10여명의 월남 사업가들이 설립한 ‘고향투자협의회’의 활동이 활발해질 전망이다.최근 협의회는 서해안 남포와 동해안 신포를 시작으로투자를 확대하기로 결정했다. 앞으로 북한기업들의 자립을 돕고자 하는 사업가들을 중심으로 회원을 60명까지 늘릴 계획이다.투자규모는 처음 1억달러씩2곳에 2억달러 목표를 세웠다. 대기업의 투자못지 않게 작은 회사들이 뭉쳐돕는 것도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고합의 워크아웃이 진행중인데,회생 가능성과 이사회 의장으로서 책임감은 재무개선협정에 따라 워크아웃을 착실히 진행중이다.2년전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약정에 따라 이행한다면 회생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믿었고,지금도그렇다.현재는 이사회 의장일 뿐 경영일선에 관여하고 있지 않다.다만 현 경영진의 지원요청으로 중국 러시아의 시장개척 문제를 도와주고 있다.현재 전문경영인들이 기업개선을 위해 애쓰고 있어 좋은 결과가 기대된다. ■최근 현대사태 등 오너에 대한 시장의 불신이 높아지고 있는데 워크아웃 뿐 아니라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도 정부의 방침대로 이행한다면 시장의 신뢰를 다시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고합도 이사회 구성이나운영 등에서 전문경영인 중심의 선진기업화를 추구하고 있다. 장 회장은 “전경련 남북경협위원장 자리를 ‘봉사직’으로 생각한다”면서 “직책에 연연하지는 않겠다”고 덧붙였다. 김미경기자 chaplin7@
  • 울릉도·포항주변 4곳 알뜰피서를

    “푸른 물결 위에 떠있는 동해의 아름다운 등대에서 한여름의 낭만을 즐기세요.” 포항지방해양수산청(청장·權星遠)은 24일 피서철을 맞아 등대시설을 일반인들에게 개방한다고 밝혔다.등대시설 중 숙박시설과 등대주변 잔디밭 등이피서객에게 야영장으로 제공된다. 개방되는 등대는 동해안 최고,최대의 시설을 갖춘 포항시 남구 대보면 장기곶등대,울릉군 울릉읍 도동리 도동등대,울릉군 서면 태하리 울릉도등대,경주시 감포읍 오유2리 송대말등대 등 4곳이다. 이 가운데 장기곶등대는 방 2개와 거실 및 주방시설을 갖추고 있어 5∼6명이 함께 지낼 수 있다.사용료는 1박당 2만원이다. 나머지 3곳의 등대는 숙박시설은 없지만 등대 주변 100∼200여평 규모의 잔디밭을 야영장으로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 이용을 원하는 피서객은 1주일전까지 포항지방해양수산청 항로표지과(054-245-1551)로 신청하면 된다. 포항 이동구기자 yidonggu@
  • [황석영의 맛따라 추억따라](8)낯선 땅에서

    *'옹심이 수제비'맛보았던 가슴아린 강릉길. 이미 청소년기에 집을 나가 한 해 가까이 남도 곳곳을 싸돌아 다녔고, 장성해서도 남한의 이 구석 저 구석을 헤집고 다녔으니 비록 먹는 이야기라 하여도 한정된 지면에 모두 기억하여 쓸 수는 없을 것 같다. 음식이나 풍속과 말씨에 오래 전부터 동한 서한의 구분이 있어 강원 경상도와 충청 전라도가 한데 묶인다.같은 생선탕도 서해의 조기매운탕과 동해의생태매운탕은 그 맛이 전혀 다르다. 내가 강원도 출입을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일학년부터였는데 첫 학기에 등산반에 들어갔던 탓이었다.당시의 고등학교 등산반은 그냥 산에만 오르고 내리는 게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선배들이 암벽타기 훈련부터 시켰다. 기초는 대개 인왕산에서 슬로프 코스와 침니를 익히고 북한산으로 가서 인수봉의 두코오스를 마치고 틈틈이 오봉과 우이암에서 세밀한 기술을 익힌다.그래서 바위에 자신이 붙으면 도봉산의 선인봉 남측 측면 십자로와 전면을 타고 주봉의 그 유명한 티자 침니를 기어 오른다.그리고는 여름방학이면 벌써설악산으로 가던 것이다.겨울에는 다시 빙벽 훈련을 하러 내설악을 찾아가고 지경을 넓혀 오대산까지 찾아갔다.고등학교 때에 알고 지내던 어린 록크라이머들은 조난으로 죽은 친구들도 있었지만 나중에 유명한 산악인이나 등산지도자로 성장했다. 내가 고교를 자퇴하고 집을 나가서 방랑했던 얘기는 뒤에 하겠지만,하여튼산에 다니면서 나는 당시 일제에서 해방 되었어도 전체주의 교육의 잔재였던규율과 획일화라는 학교감옥에서 놓여나는 기분이 들었다.감수성이 예민하던시절에 벌써 나는 학교와 집과 동네의 울타리를 벗어나는 체험을 원격지 등반을 통하여 익혔던 셈이다. 훨씬 뒤에 아직은 이십대 초반이었지만 아직도 수염이 뻣뻣하지는 못했을 적인데 나는 러시아 문학을 전공 한다는 어느 친구와 함께 강원도를 돌아다녔다.나도 가난했지만 그 친구도 겨우 남의 가정교사로 용돈벌이를 하던 중이었다.그에게는 사랑하던 여자가 있었건만 심중을 털어 놓지는 못했던 모양이었다. 그의 집이 왕십리에 있었는데 우리는 막걸리 한 주전자를 놓고 어느 선술집에앉아 있었다.그는 술이 거나하게 오르자 점점 우울해지는 얼굴로 변해 갔다.이해가 되는 것이 그는 영장을 받아 놓고 있던 터였다.연기를 할 수도 있었건만 집안 형편도 좋지 않으니 얼른 나가서 때우고 와야 할텐데 그네가 마음에 걸린다는 얘기였다.그는 도스또에프스키의 죄와 벌에 나오는 라스꼴리니꼬프처럼 창백하고 마른 인상은 아니었지만 러시아 소설에나 나옴직한 깃넓고 치렁치렁한 검게 물들인 군용 오버코트를 겨우내 걸치고 다녔다. 때는 마침 늦은 봄이라 불행하게도 분위기 있던 외투를 벗어버리고 역시 검게 물들인 미군 쫄쫄이 작업복 차림이어서 볼품은 없었다.그가 갑자기 강릉엘 가자는 것이었다.거리는 이미 어두워져 있었고 봄비가 제법 세차게 내리고 있는 중이었다.청량리 역은 선술집에 앉아서도 기적 소리가 들려올 만큼가까운 거리에 있었다.우리는 비를 맞으면서 역까지 걸었다.거의 통금시간이다 되어 출발하는 강릉 가는 완행열차가 있었다.처음에는 소주에 마른 오징어를 씹다가 서로 기대어 자다가 날이 밝으면서 영주 태백을 지나서삼척에당도하면 거기서부터 철도는 바닷가를 향해 달린다. 바로 철로 아래 흰 포말이 이는 파도와 짧은 백사장이 보이고 저 근사한 해변묘지가 천천히 지나간다.해송이 구부리고 섰는 숲 위로 백로 떼가 날아 앉는다.벌써 상큼한 바다 비린내가 풍겨 온다. 우리는 항구에 도착했다.정박해 있는 배는 마치 잠시 후에는 모든 것을 훌훌털고 먼 바다로 떠나버릴 자유의 상징처럼 보이기도 했다.그가 전화를 건다. 그네는 주문진에서 소학교 선생님으로 있다고 한다. 사범학교를 나와 부임했다니 겨우 우리네와 동갑내기이거나 아래일 것이 분명했다.소녀였지만 그네는 하여튼 선생님인 것이다. 퇴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니까 우리는 강릉으로 되돌아 나가서 하루 종일서성거렸다.그때에는 해수욕장이라곤 경포대 정도 밖에 없었고 요즈음처럼시도 때도 없이 바다를 보러오는 사람도 드물어서 봄철의 바닷가는 거의 인적이 없었다. 그가 주문진으로 그네를 만나러 가기 전에 우리는 선창가 언저리를 돌아다니다가 뱃사람들이나 가끔씩 들를 것같은 구석진 모퉁이의 작은선술집을 발견하고 들어가 앉았다. 거기서 술국과 끼니 대신 먹어본 것이 ‘옹심이 수제비’였다.팟죽에 넣는찹쌀경단이나 조랑떡국의 동그랗게 뭉친 떡 보다는 약간 크고 투박하게 뭉친알심이 들어 있었다.감자 전 지질 때처럼 감자를 강판에 갈아 녹말을 내려서건더기와 함께 반죽하여 수제비 끓일 때처럼 멸치 다시에 호박이며 양파며 풋고추 등속을 넣고 그저 설설 끓여낸 것인데 시원하고 얼큰하고 든든하다. 그때 처음 본 오징어 순대도 신기했지만 나중에는 흔한 음식이 되어 버렸다. 그냥 시장 모퉁이 아무데서나 해장으로 끓여 주는‘곰치국’은 충청도 서해안 지방의‘물텀벵이탕’과 비슷했다.해안가에서 사는 메기 비슷하게 생긴놈인데 살과 뼈가 흐물거리고 무를 함께 넣고 오래 우려낸 국물 맛이 비리거나 기름지지 않고 맑았다. 나는 선창이 멀리 내다보이는 일본식 이층의 여인숙에 방을 정하고 주문진에그네를 만나러 간 친구를 기다렸다. 그는 통금이 되어서도 돌아오지 않더니한 시가 넘어서야 술이 만취해서 방문을 벌컥 열었다.그는 아무 말없이 그무렵에 젊은 여자들 사이에 대유행이던 흰색 하이힐을 비좁은 방 가운데로 던졌다.나는 이불 위에 떨어진 여자 구두를 내려다 보았다.잠이 번쩍 깨는 느낌이었다. 엽기적인 생각과 함께 그가 성공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부러움이 동시에 지나갔던 것이다.그렇지만 그는 사건의 전말을 절대로 얘기하지 않고 취해서 시뻘건 눈으로 자기 청춘의 시대가 이것으로 막을 내렸노라고 중얼거렸다.그는한 달 뒤에 군대에 나갔고 몇 년 후에야 제대한 그에게서 그날 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가 여선생을 만나서 다방에 앉아 청혼을 했다고,그네는 어리둥절하고 놀라서 말을 못하더라는 것,마침 휘영청 달이 밝은데 그가 여선생을 하숙집까지바래다 주겠다고 했고,걷다가 이제는 마지막이니 표적이라도 남기겠다며 그가 입을 맞추려고 덤볐다는 것,바로 길 옆에는 바람에 휘청대는 보리밭이 있었고,장소는 맞춤했지만 술 취한 그 보다 그네가 힘이 더 세었다고,그쪽에서떠미는 바람에 넘어지고, 넘어져서도 두 다리를 잡았다는 것,그래서 그네는콩쥐처럼 신만 남겼다고 한다. 어쩌다가 동해안에 가게 되면 음식들은 모두 관광 일색이 되어 온통 생선회천지가 되었지만 ‘옹심이 수제비’나 ‘곰치 해장국’을 찾으려면 선창을이곳 저곳 기웃거리며 헤매다녀야 한다. 황석영
  • 동해안 해수욕장 대호황

    34∼36도에 이르는 찜통더위가 계속되면서 동해안 해수욕장들이 밀려드는피서객으로 대호황을 누리고 있다. 19일 강원도 해양수산출장소에 따르면 10일 해수욕장이 개장한 이래 제헌절 연휴기간(45만명)을 포함,18일 현재까지 56만여명의 피서객이 찾아 지난해같은 기간의 18만명보다 3배 이상 많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경포·낙산·망상 등 해수욕장 인근 상가들은 최근 3∼4년동안 무장공비 침투와 궂은 날씨 등으로 계속되던 불황을 벗어나게 됐다며 희색이 만면. 양양지역 횟집들의 경우 지난 15∼17일 황금연휴동안 밤 늦도록 불야성을이루며 기록적인 매상을 올렸다.경포대와 강문 등지의 횟집들도 예년보다 2배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등 호황을 맞고 있다. 민박·여관 등 숙박업소들도 호텔·콘도를 미처 구하지 못한 피서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다. 해양수산출장소 관계자는 “600만명 정도의 피서객이 찾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무더위 덕분에 피서객수가 20% 이상 늘 것같다”고 내다봤다. 강릉 조한종기자 bell21@
  • 시원한 계곡 있어 더 짙푸른 東海바다

    바다가 손짓하는 동해안 7번국도는 짐작대로 지난 주말 차량들로 북새통을이뤘다.한밤까지 차량의 행렬이 이어졌고 국도변 해수욕장은 인파로 북적댔다. 영동고속도로를 이용하는 여행객들이라면 강릉까지 간 다음 7번국도를 이용하기 마련.하지만 영동고속도로 대관령 구간이 상습 정체구간이어서 여행의즐거움은 들머리부터 반감되기 십상이다. 이럴 때 영동고속도로 진부I.C를 빠져나와 6번국도를 탄 뒤 7번국도에 올라보자.차량행렬과 인파에 치인 마음을 달래며 계곡에서 야영을 하는 재미와먼 길의 피로감을 씻고 바다로 향하는 즐거움을 안을 수 있다.은은한 향취를자아내는 소나무와 맑고 차가운 계곡물에 몸을 담가보자.바다만을 떠올리는7번국도에서 색다른 체험을 할 수 있는 곳들을 소개한다. ◆진부∼연곡해수욕장 태양이 그 열과 성을 다해 빛과 열을 토해내는 데도이곳은 차가운 기운이,오싹할 지경이다.진부I.C를 빠져나와 월정사 방향으로8㎞ 진행하면 진고개 방향으로 우회전하는 길목에 오대산 자생식물원이 있다. 3,000원을 내면 우리꽃 화분을입장권대신 안겨준다.오대산 자락 3만3,000평에 우리 꽃과 풀 1,000여종을 전시,숲속 길을 따라 걸으며 개미취 제비동자꽃 곰취 부채꽃 등 화려한 여름꽃과 벌써 가을을 준비하는 구절초 같은 꽃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033)332-706910분 거리의 방아다리약수에서 규산 라듐 카리 탄소 등이 듬뿍 든 약수를 한모금 들이키며 피로를 씻는 것도 좋다. 이어 진고개.부드러운 황병산 자락을 ‘좌청룡’으로,웅혼하면서도 품이 넉넉한 오대산을 ‘우백호’로 삼은 이 고갯길은 청량감이 단연 으뜸이다. 바닷바람과 계곡풍이 조화를 이루니 그만이다.그러나 취할 일은 아니다.S자형 길이 계속 이어지기 때문에 내려올 때 브레이크 파열에 주의해야 한다.앞차가 커브를 완전히 돈 뒤,한달음에 내려오는 것도 방법. 성급하게 밀려오는 바닷내음을 잠시 접고 부연동계곡에 들어서보자.지프나겨우 지나갈 수 있는 험한 도로를 따라 전후치고개를 걸어 넘으면 오른쪽으로 희귀 들꽃인 처녀치마가 길손을 맞는다.한참을 내려가면 가마솥처럼 넓은분지에 자리잡은 부연동 마을.외나무다리를 건너는 아찔함을 즐길 수 있고 기암괴석과 잘 어울리는 폭포를 곳곳에서 구경할 수 있다. 이름이 제법 알려진 어성전리와 법수치로 이어지는 계곡길 10㎞를 터벅터벅걸어보는 것도 충분한 준비를 거쳤다면 권할만하다. 금강을 옮겨놓은 듯 오묘한 섭리를 느낄 수 있는 소금강이 또한 지척이다.유연한 산세와 아늑한 계곡,동해 바다로 이어지는 이곳은 산의 깊이와 바다의무한함이 교차하는 아름다움을 지녔다. 진고개길의 카페 ‘산에 언덕에’(www.sane.co.kr·662-0700)는 팬션 하우스를 겸하고 있어 많은 이들이 찾고 있다. ◆연곡해수욕장∼법수치리 연곡해수욕장에서 7번 국도를 따라 북행하다 남애해수욕장을 지나자마자 왼편에 보리수마을 들머리가 보인다.이곳에서 좌회전,10여분을 오르면 300∼400년은 족히 됨직한 노송과 밤나무,감나무위에 눈내린듯 허연 무늬가 확연하다.백로와 왜가리.보통 왜가리가 나무 꼭대기쪽에앉고 백로는 그 아래 얌전히 ‘버틴다’.주민 김용배씨(65)는 “그 수가 전혀 줄지 않았어요.여름에 오는 쇠백로는 이제짝짓기를 마쳐 처서때 떠나지요”라고 일러준다. 다시 7번국도.남애리를 지나 광진리 초입의 언덕길에서 오른쪽으로 차 한대겨우 지나갈만한 샛길을 내려가면 동해안에 이런 곳이 있을까 싶은,작은 바닷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큰바다마을.마을앞 바다 양쪽의 바위가 파도를 잠재워 동해 어떤 바다보다 잔잔하고 왼쪽 바위동산 너머로 해가 기웃거리면이곳의 얼굴은 서해나 남해의 그것으로 탈바꿈한다. 부처인듯 미륵인듯 보이는 오른쪽 바위동산 뒤편으론 200명이 앉아도 족히남는다는 너래바위가 갯바위 낚시꾼을 유혹한다.설악 흔들바위를 조그맣게꾸며놓은 듯한 흔들바위와 거북바위 등이 길손을 반긴다.너래바위횟집(671-6573)이 민박을 겸하고 있고 언덕 꼭대기에 자리잡은 카페 ‘언덕위의 바다’(671-2594)가 재즈음악으로 피서객을 유인한다. 이곳을 빠져나와 인구항에 들어가보자.멸치떼가 앞바다에 몰려들면 아연 활기를 찾는다는 포구 옆에 해수욕장이 자리잡고 있다.모래가 깨끗하고 부드러울 뿐만아니라 수심도 얕아 아이들을 안심하고 바다에 맡길 수있다. 훤히 들여다보이는 물속 모래밭에 발을 넣어 꺼칠한 것이 느껴지면 자맥질,조개잡는 재미에 빠져들면 하루해가 어느덧 넘어간다.민박 문의 양양군 현남면 사무소(670-2605)7번국도를 따라 22㎞를 내달으면 하조대 해수욕장.왼쪽 길로 접어들어 30분을 달리면 법수치계곡.약 4㎞구간만 포장이고 나머지 6㎞이상은 비포장.여름계곡치곤 차지 않은 물이 되레 매력으로 꼽힐만하다.부드러운 계곡이 끝없이이어지고 물속의 자갈들이 고만고만한 게 여간 살갑지 않다. 어성전 들머리의 진선미식당(671-5963)은 남대천에서 건져올린 손가락만한물고기를 넣어 끓인 뚜거리탕으로 유명하다.은어회도 푸짐하다.민박문의 현북면 사무소(670-2604)글 양양 임병선기자 bsnim@
  • 우리가 가꿔가야할 한반도/ 北 환경오염 실태

    북한의 환경문제는 북한 당국 이외 어느 누구도 알 수 없을 정도로 베일에가려져 있다.그러나 일부 귀순자의 증언과 북한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던 인사들이 작성한 자료,그리고 북한의 산업 및 국토 이용 실태 등을 종합적으로분석할 때 북한의 환경 오염과 환경 파괴가 의외로 심각한 수준임을 알 수있다.북한의 환경 오염은 한반도 지형 특성상 남한지역에 영향을 줄 수 있으며,통일 뒤에는 북한지역의 환경 개선이 커다란 정책과제로 대두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북한의 환경문제는 최근 남북 정상회담으로 무르익은 화해 및 협력 분위기 속에서 반드시 주요 과제로 다루어져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편집자주] *북한의 대기 오염. 북한의 대기 오염은 석탄 위주의 에너지 공급체계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석탄 증산정책을 고집스럽게 추진한 결과,대부분 광산이 깊이 파헤쳐져 산림자원이 황폐화되고,저질탄 양산으로 에너지 효율이 전반적으로 악화됨으로써대기 오염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주요 에너지원인 석탄의 질이 떨어져 아황산가스,분진,일산화탄소,질소산화물 등 오염물질이 배출돼 공장지대 및 인근 지역의 대기 질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즉 북한의 대기 오염은 낮은 에너지 이용 효율,저질탄의 과다한 이용에 그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다.석탄이 산업부문에만 이용되고 있는 점으로 보아 대기 오염은 주로 공업지역에서심각한 것으로 추정되며,에너지 공급 부족을 신탄(목탄)소비 증대를 통해 해결함으로써 산림 황폐화를 가속화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에서 대기 오염이 심각한 지역으로는 흥남지구,함흥지구,청진지구,신의주지구,평양지구,신안주지구 등을 꼽을 수 있다.북한의 대표적 공업지역인함흥시 흥남구역의 경우 지난 27년 건설된 흥남비료공장을 비롯해 본궁화학공장,흥남제철소,2·8비날론공장 등 많은 공장들이 있다. 함흥지역에서 의사로 일하다 94년 귀순한 여만철씨는“흥남구역에서는 많은노동자들이 호흡 곤란을 자주 호소하며,맑은 날의 낮에도 1㎞ 앞을 제대로볼 수 없을 정도”라고 증언한 바 있다.또 북한연구소의 95년 2월호 ‘북한’에 실린 ‘북한의 후진형 환경 오염과 주민들의 열악한 환경의식’이란 논문에 따르면 액체화학연료를 생산하는 만포시 훈하공장 등이 위치한 자강도의 별오동 주민들도 대기 오염으로 인한 피해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북한의 대기 오염은 남북한 에너지 사용량과 오염물질 배출량을 비교해 보면 더 뚜렷해진다.94년 현재 연간 에너지 사용량은 남한이 1억3,723만5,000t으로 북한의 2,717만1,000t보다 5배 이상 많다.반면 연간 오염물질 배출량은북한이 1,081만6,000t으로 남한의 452만6,000t의 2.4배에 달한다. 문호영기자 alibaba@. *북한의 수질 오염. 북한의 수질 오염은 우려할 상태에 이르렀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오염이 심한 지역은 광산 및 탄광촌,대형 공업시설 인근,화학공업지구,군사시설물과 군 주둔지,농경지 등이다.서해안에서는 신의주·정주·신안주 일대,남포 및 해주 일대,동해안에서는 청진 일대와 김책시 일대,문평 일대와 원산일대의 수질 오염이 심한 것으로 추정된다.내륙에서는 자강도 강계·전천 일대,평북 구성·삭천·대관 일대,평남 순천 일대,황해도 사리원 일대를 지나는 하천이 심하게 오염된 것으로 보인다. 공업시설 낙후와 공업지대 밀집으로 평양·원산·청진·남포 등 대도시 주변의 강은 수질 오염으로 죽은 물고기가 떠오르는 장면이 수시로 목격되고있다고 한다.북한문제연구소가 93년 발간한 ‘체험자들의 증언을 통해 본 북한의 현실’이란 자료에 따르면 평양을 관통하는 대동강도 심한 수질 오염현상을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대동강 지류이며 평양시내를 가로지르는 보통강도 물이 뿌연 상태로,수면 밑 20∼30㎝를 들여다 볼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북한에서 수질 오염이 가장 잘 알려져 있는 곳은 북한과 중국의 경계를 이루는 두만강이다. 북한쪽에서는 무산철광에서 해마다 1,000여만t의 광산 모래를 강에 흘려보내고,아오지화학공장에서는 날마다 20만㎥의 폐수를 배출한다.중국의 개산툰펄프공장에서는 3,000여만㎥의 폐수를,가야하(河) 하류의 석현종이공장에서는2만800여만㎥의 폐수를 해마다 흘려보낸다.북한의 남양·회령,중국의 연길·도문·훈춘에서 나오는 생활폐수도 두만강으로 흘러든다.이 때문에 505㎞의두만강은 백두산을 흘러내리는 상류 106㎞를 제외하곤 심하게 오염돼 식수로는 물론 공업용수로도 쓸 수 없는 5급수 이하라고 한다. 압록강도 중국과 북한의 탄광,만포시멘트공장과 중강진·혜산·만포·신의주 등 북한 대도시,장백현·임강·집안·단동 등 중국 대도시의 산업 및 생활 폐수가 그대로 흘러들어 식수로 사용할 수 없는 3급수로 전락한 지 오래라고 한다.청천강 역시 상류의 화학공업단지에서 배출되는 폐수 때문에 오염되고 있다. 문호영기자. *북한의 해양 오염. 동해와 서해의 해양오염은 두만강과 압록강 등 주요 강의 심각한 오염과 연관이 깊다.북한 해역 중 오염이 가장 심각한 곳은 원산 앞바다로,매년 5월하순부터 8월 상순에 걸쳐 적조(赤潮)가 빈발해 어패류와 해조류가 멸종된상태로 알려져 있다.지난 91년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이 펴낸 ‘남북 대기의 질 및 환경문제에 대한 기초조사’라는 자료에 따르면,원산 앞바다의 적조 현상은 흥남비료공장,본궁화학공장,2·8비날론공장 등과 합성수지,염료및 도료·제약·화학,모직·방직·제사공장들이 입주해 있는 흥남공단에서배출되는 공업폐수가 남하하는 북한해류에 의해 이동해 문천 유색금속제련공단에서 배출된 폐수와 상승작용을 일으킨 때문으로 분석된다. 북한의 해양 오염 가운데 크게 우려되는 것은 서해안의 간척사업이다.이른바 북한의 ‘4개 지역개조사업’ 중 하나인 이 사업은 황해남도 앞바다 8만정보,평안남도 앞바다 11만 정보 등 모두 30만 정보의 농토를 개척하는 것이다.서해안 간척사업이 바다 오염을 가속화시킬 것은 너무도 뻔하다. 또 서해갑문 건설 뒤 남포지역의 공장 및 기업소에서 나온 폐수가 역류돼악취가 심하게 나고,댐 상류에서는 평균온도가 상승하는 등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또 다락밭에서 유출된 토사가 강 바닥을 높이고,토사가 강하구에 퇴적됨으로써 해양생태계의 파괴도 가속화되고 있다. 문호영기자. *생태계 파괴. 북한의 자연은 군사적 이유,김일성 부자의 우상화 정책,연료 채취,개간사업등으로 훼손되고 있다. 산림 훼손은 휴전선에서 가깝고 개발이 비교적 많이 된 평양∼원산선(線)이남에서 심하다.강원도와 황해북도의 산은 민둥산으로 남아 있다. 청천강 이북은 산림 보존상태가 상대적으로 좋으나,인공위성이 촬영한 개마고원의 식생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일부 지역의 원시림은 파괴돼 태백산일대보다 훨씬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의 자연생태계 파괴실태가 가장 잘 알려져 있는 곳은 두만강·압록강유역이다.백두산의 밀림,두만강과 압록강을 잇는 국경지대 원시림 등이 남벌또는 개간으로 크게 훼손되고 있다.백두산 일대는 야생동물 밀렵과 희귀식물채취 등이 성행해 생태계 파괴가 심각하다. 특히 두만강 유역의 생태계 파괴는 강변 양쪽 주변의 식수난, 농작물 피해,물고기 멸종 등으로 이어지고 있어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중국 학계에 따르면 두만강에는 송어·뱀장어·연어·산천어·붕어·모래무지 등 37종의 물고기가 서식했으나,최근에는 백두산 기슭의 상류 100㎞를 제외한 중·하류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문호영기자
  • 수도권시민 34% “31-새달6일 휴가”

    수도권 거주자 3명중 1명은 오는 31일부터 다음달 6일까지 휴가를 떠날 계획인 것으로 조사됐다. 12일 교통개발연구원에 따르면 최근 수도권 거주자 1,6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34.3%가 오는 31일부터 다음달 6일까지 여름휴가를 떠나겠다고 답했다.20.2%는 8월7∼13일,17.5%는 7월24∼30일 휴가를 갈 계획인 것으로 조사됐다. 목적지는 동해안이 34%로 가장 많았다.그 다음은 제주권 14.6%,강원 내륙권10.7%,해외 7.7% 순이었다. 교통수단은 승용차가 43.5%,항공기 21.8%,기차 13.1%,고속버스 11.6% 등이었다. 이용 도로는 영동고속도로 27.7%,경부고속도로 19.4%,중부고속도로 8.5% 등의 순이었다.국도를 이용하겠다는 응답자도 22%나 됐다. 휴가기간은 2박3일이 38.7%,3박4일 35.3%,4박5일 10.7% 순이었다. 전영우기자 ywchun@
  • ‘동해안 피서’ 우회도로 타세요

    ‘피서철 동해안으로 오려면 우회도로를 이용하세요’ 강원지방경찰청은 동해안 해수욕장들이 10일 일제히 문을 열면서 피서차량이 본격적으로 몰릴 것에 대비해 영동고속도로 등 잘 알려진 도로보다 우회도로를 이용할 것을 당부했다. 영동고속도로의 경우 다음달 15일까지 월정톨게이트∼대관령∼강릉간 41㎞구간에서 상습 정체가 불가피한 만큼 강릉방면으로 가려면 진부IC에서 빠져진고개∼주문진 쪽을 이용하는게 바람직하다. 속초나 설악산 방면으로 가려면 속사IC에서 나와 운두령∼구룡령∼양양 코스를 선택하면 된다. 서울∼홍천∼설악산으로 이어지는 44번국도는 신내4거리∼인제구간(52㎞)에서 상습 정체되기 때문에 속초 방면은 신내4거리∼서석∼구룡령∼양양쪽을이용하는 게 좋다.서울로 돌아올 때는 인제군 원통에서 빠져 광치령∼양구∼춘천(90㎞)간 우회도로를 타면 된다. 춘천 조한종기자 bell21@
  • 4호 태풍 카이탁 북상…오늘 충청이남 영향권

    제4호 태풍 카이탁(KAI-TAK)이 우리나라를 향해 빠른 속도로 북상하고 있다.10일부터 충청 이남지역이 태풍의 영향권에 접어들며 12일까지 전국에 많은 비를 뿌릴 것으로 보인다. 카이탁은 올 여름들어 우리나라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첫 태풍이다. 기상청은 “시속 31㎞로 북상중인 태풍 카이탁이 10일 오후 3시 제주도 남서쪽 약 400㎞ 부근 해상까지 진출하겠다”면서 “10일에는 충청 이남지방이,11일에는 전국이 태풍의 영향권에 들면서 12일까지 전국에 많은 비가 내리겠다”고 예보했다. 10일 예상 강수량은 ▲제주도 40∼80㎜(많은 곳 120㎜ 이상) ▲호남 및 경남 남해안 30∼50㎜(〃 80㎜ 이상) ▲영남 20∼40㎜ ▲충청 10∼30㎜ 등이다. 태풍 카이탁은 중심기압 985헥토파스칼,중심 부근 최대풍속 초속 26m의 중형태풍이다.태풍 중심 반경 약 330㎞ 이내에는 초속 15m 이상의 강풍이 불고있다. 한편 올 장마는 사실상 끝났다. 기상청은 9일 1개월 예보(7월 11일∼8월 10일)를 통해 “8∼9일 일본 동해안을 스치며 열대폭풍으로 변한 제3호 태풍 ‘기러기’의 영향으로 장마전선은 세력이 크게 약화된 채 일본 동해 먼바다로 물러섰다”면서 “카이탁이 지나간 뒤 제주도 남쪽바다에 장마전선이 새로 형성될 것으로 보이지만 한반도에 더이상 영향을 미치기는 힘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지난달 16일 제주도에서부터 시작된 올해 장마는 중부지방은 지난달 30일,제주와 남부지방은 지난 1일 끝났다고 기상청은 설명했다. 기상청은 “올해 여름 태풍의 이동로는 북서쪽으로 치우치는 현상을 보이고있어 우리나라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태풍의 숫자는 평년의 2.4개를 약간 웃돌겠다”고 덧붙였다. 전영우기자 ywchun@
  • [기고] 린다 김과 로버트 김

    린다 김과 로버트 김은 같은 김씨 성의 한국계 미국 교포다.전자는 무기 중개상을 하는 48세의 여인으로 한때 이 나라의 고위 공직자들을 돈과 몸으로사로잡아 떼돈을 벌었다.후자는 군사 기밀 유출 및 간첩죄로 96년 9월 형을선고받아 현재 미국의 연방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60세의 남자이다.그는 미해군정보국 컴퓨터분석관으로 재직 중 조국을 위해 북한 관련 정보를 당시주미대사관 해군무관에게 몰래 넘겨주었던 것이다. 두 남녀는 한국에서 출생,성장해 고등교육까지 받은 뒤 미국에 이민 후 어려운 삶의 길을 개척했는데 전자는 무기 거래 로비스트로,후자는 군 기관의공직자로 자리잡았다.그러나 문제는 그들의 상황이 너무나 대조적이고 불공평하다는 점이다.린다 김은 비록 7일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아 법정 구속되긴했지만 그동안 호화판 삶을 영위했다.1년 뒤 다시 로비스트로 화려하게 재기할 가능성이 짙다.반면 로버트 김은 미국의 유색 인종에 대한 횡포와 편견그리고 한국군의 대미 종속적 정보체제의 산물로 희생양이 된 채 우리 동포와 정부 당국의외면 속에 힘겹게 옥살이를 하고 있다.언제 미국 감옥에서나올지조차 모를 정도이며,가정도 거의 난파선처럼 고통을 겪고 있다. 그가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은 넘겨준 정보가 동해안 잠수함 피침 당시 북한군의 동향에 관한 것으로서 이미 캐나다와 호주에 제공된 정보임에도 한국에만 공식적으로 전파되지 않았으며,군사 기밀로서는 적시성이 없었던 내용이었기 때문이다.미국의 군사기밀보호법에 의하면 누출시에 입게 될 피해에 따라 등급을 분류하게 된다.단순한 피해(Damage),심각한 피해(Serious Damage),예외적으로 중대한 피해(Exceptionally Grave Damage)여하에 따라 3급,2급,1급 비밀로 구분이 된다. 미국 검찰 당국은 로버트 김의 기소장을 공개하지 않음으로써 그가 몇급 비밀을 유출했는지 밝히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설상가상으로 간첩죄를 추가적용하고 있는 데 문제가 있다.간첩죄는 적과 내통하여 돈을 받고 정보를 넘겨주었을 때 성립하는데,로버트 김은 한국의 해군무관 백 대령에게 아무 대가 없이 순수한 민족적 정서에서 자료를 넘겨준 것이다.그렇다고 해도 백대령이 미국의 적이 아닌 바에야 간첩죄를 적용할 수는 없는 것이다.백 대령이간첩행위를 했다면 체포되어야 마땅하나 그는 무사했다. 아무튼 로버트 김은 기밀 유출 및 국방 정보 획득 음모의 간첩죄로 실형 선고를 받고 4년을 복역한 상태이다.미국은 우리의 진정한 혈맹으로서 한국전쟁와 월남전쟁에서 함께 피를 흘렸고,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에 군대를 주둔하여 북한의 침공을 억제해주고 있음은 고마운 일이다.그러나 한국의 안보와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북한 관련 정보를 다른 우방에는 나눠주면서, 한국만빼놓았다면 분명히 한·미간의 군사 정보 공조체제가 파행적 종속성을 면치못하고 있음을 뜻한다. 따라서 한국군은 자주적 전투 정보 생산 없이는 전시작전권 환수가 어렵다. 정보 능력 없이는 전쟁의 계획 및 집행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만약 그 당시미국의 북한 잠수함 관련 정보를 적시에 우리에게 주었다면 군사력의 낭비없이 적을 쉽게 요격할 수 있었을 것이다.군사 정보의 자주화는 위협 평가의열쇠이며,자주 국방의 선결요건이다. 미 연방수사국(FBI)이 그를 미행 끝에 간첩 혐의로 전격 체포함으로써 그와그의 가족은 참으로 큰 고통을 겪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정보 당국은 그가 미국 시민이어서 외교적으로 어찌할 수 없다는 태도로 일관해 왔을 뿐 공식적으로 단 한번도 사면 요청을 한 적이 없다.당국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로버트 김의 사면을 위해 국가 차원에서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李 善 浩 군사평론가
  • ‘타악 퍼포먼스’ 잇단 무대에

    무더위를 한방에 날려버릴 듯한 강렬한 리듬의 타악 무대들이 펼쳐진다.7일오후7시30분 서울 중요무형문화재 전수회관에서 열리는 ‘타악퍼포먼스 하늘,락’과 7∼9일 오후 4시·7시 대학로 열린극장의 ‘발광 타악기퍼포먼스 창단공연’이 그것.‘하늘,락’은 10년 경력의 타악단체 뿌리패예술단이 출연한다.전통가락과 현대리듬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즉흥연주곡 ‘파워코리아’,동해안 무속장단인 푸너리장단을 활용한 ‘풍운’,전통풍물에 뿌리를두고 다양한 진법과 역동적인 동작을 가미한 ‘더 루트’가 레퍼토리.(02)566-7037‘발광 타악기퍼포먼스’는 정통 클래식 타악기 연주자들이 모여 만든 단체. ‘난타’처럼 일상의 에피소드를 묶어 이야기가 있는 연주무대를 꾸민다.1부에선 마치 단원들이 평소의 모습을 보여주듯 밤새 모기에 쫓기다 일어나 아침식사를 준비하고,무대를 청소하는 장면들이 리드미컬하게 펼쳐진다.(02)743-6474이순녀기자
  • [외언내언] 금강산 경제특구

    정주영(鄭周永) 전 현대 명예회장은 지난달 29일 원산에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과 만나 금강산을 ‘특별경제지구’로 설정해 세계적인 도시로 개발하는 종합개발사업에 합의했다고 밝혔다.북한 금강산 일대를 중국의 선천(深 )경제특구와 유사한 특별경제지구로 지정해 관광단지뿐만 아니라 첨단기술,무역,금융,문화지역으로 육성한다는 계획이다.금강산 특별경제지구로종합개발될 곳은 강원도 고성의 해금강 남단에서 통천에 이르는 50㎞의 북한동해안 남쪽지역이다. 나진·선봉 경제특구처럼 법령으로 제정되지는 않았지만 김정일 위원장과 합의된 사업인 만큼 차질없이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금강산 종합개발에는 막대한 소요 재원(財源)을 마련하는 문제가 중요한 과제다.더욱이 최근 자금난으로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대가 과연이 큰 사업을 할 수 있을지 의구심도 생긴다.그러나 많은 국내기업들 및 외국투자가들과 컨센서스를 이뤄 협력이 보장되면 개발투자의 어려움을 극복할수 있을 것이다. 북한이 금강산을 경제특구로 설정한 것은 6·15 정상회담에따른 남북경제협력의 활성화를 촉진하는 가시적 성과로 평가된다. 8·15 이산가족 상봉에 이은 호혜적인 남북협력관계 증진을 위한 실천조치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투자보장 및 이중과세방지 협정 등 남북경협의 활성화를 뒷받침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키로 합의한 것도 큰 성과로 볼 수 있다.금강산 경제특구 설치는 북한경제 재건을 위한 대외개방이라는 측면에서주목할 만한 변화로 인식된다.경제적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이해된다.북한경제가 자본주의 시장경제 지원 없이는 도저히 회생할 수없다는 한계적 인식에서 비롯된 생존의 선택으로도 볼 수 있겠다. 북한체제가 손상받지 않는 범위내에서 제한적 개방을 확대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리고 체제유지의 위험부담 때문에 인내해왔던 경제적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국식 실용주의적 개방을 시도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가능하다.중국이 78년 정경분리의 실용주의를 채택하고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도입한 지20여년 만에 괄목할 만한 경제성장을 이룩한 것은 북한 개방의 소중한 교훈이 되고 있다.현재 중국의 경제특구가 밀집돼 있는 황해연안지역 인구 3억의1인당 국민총생산액(GNP)이 4,000달러를 육박하는 것이 좋은 사례다. 금강산 경제특구 설정은 민족화해와 공동번영의 의미가 큰 만큼 현대는 금강산종합개발사업에서 이윤추구와 독점경영에 집착하지 말고 민족통일사업으로 승화시켜야 할 것이다.금강산의 경제적 개방이 한반도 평화와 민족통일의밑거름이 되기를 기대한다. 張淸洙 논설위원 csj@
  • 계곡·원시림속에 숨은 ‘태고의 쉼터’

    우리 국토에 이런 곳이 남아 있다는 게 신기하고 반가운 원시림과,톡 쏘는맛이 일품인 약수의 어우러짐. 강원도 양양군 서면 황이리의 미천골은 계곡과 원시림,폭포와 물보라가 어우러진 보기드문 장관을 연출한다.설악산과 오대산의 중간지점으로,여름철 적지 않은 이들이 한계령과 미시령을 피해 서울행을 서두르는 56번 국도변에있다.안개가 자욱히 낀 구룡령을 조심스레 넘어 10분을 달리면 미천골 들머리. 곰 입상 두 마리가 포효하며 길손을 맞는 모양이 이곳의 범상치 않은 기운을전한다.이곳 사람들은 아직도 이 골짝에 호랑이와 곰이 산다고 믿는다. 그만큼 울창하다.들머리에서 4㎞를 오르는 동안 계곡은 험준한 바위를 뚫고성난 듯 넘쳐 흐른다.격한 물줄기로 그 위엄을 길손에게 과시한다.산천어 열목어 등이 남대천 줄기를 타고 올라오다 도저히 더 오르지 못해 이름이 붙여졌다는 상직폭포는 물줄기를 내리꽂는 모양새가 기품마저 풍긴다.계곡 곳곳에 이름없는 폭포가 즐비하다. 휴양림 사무소를 지나 3㎞지점에 이르자 왼쪽 돌계단 위에 휑하니 서있는3층석탑이 눈에 들어온다.한껏 자태를 뽐내고 있는 봉우리들을 면벽하듯 앉아있는 선림원지. 신라 선종계열의 절터로 어찌나 컸던지 쌀 씻은 물이 계곡을뿌옇게 수놓았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주춧돌은 건재한데 길손을 반기는 것은보물로 지정된 석탑과 부도,석등 등. 9세기경 절은 산사태로 사라지고 이젠잡풀과 이름 모를 야생화만이 과거의 영화를 대신한다. 여기에서 20분을 더 걸으면 50여년전부터 미천골에서 토봉을 키우며 살고 있는 김금녀씨(0396-673-8820)와 남동생의 토봉장을 만날 수 있다.토봉은 양봉에 비해 작고 검은 색이 두드러진다.피나무 싸리나무 엄나무와 당귀 등 귀한약초에서 꿀을 채취,그 질이 전국제일을 자랑한다. 1.8ℓ 한병에 20만원으로다른 지역에 비해 비싼 편이다. 들머리에서 1시간 올랐을까.계류는 어느새 저 아래 낭떠러지로 몸을 숨기고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수풀의 향연이 시작된다.자동차로는 더 이상 오르지 못한다.곳곳에 커다란 바위가 나뒹굴고 조금만 발을 헛디디면 저 아래 계곡으로 곤두박질할 것 같아 조마조마하다.박달나무 가래나무 참나무 전나무 잣나무 물푸레나무 등 온갖 종류의 나무들이 수십m의 키를 자랑하고 서 있다.그번쩍스러움과 기고만장함이 대견하다.분명 이 계곡의 주인은 나무. 그 거만함은 설악에 견줄만한 단풍이 제 모습을 드러내는 가을에 진가를 발휘한다. 1시간여 땀을 뻘뻘 흘리며 오른 끄트머리 폭포에는 요즘 보기 드문 약수 하나가 있다.불바라기 약수.불바라기란 불바닥이 변한 말로서 약수의 철분성분이 샘 주위를 빨갛게 물들이기 때문에 붙여졌다.암벽 중간에서 새어나오는약수가 바위를 황갈색으로 물들이며 두개의 폭포를 거느린 자태가 사뭇 신비롭다. 한 잔 들이키니 진한 철분 냄새 때문에 역한 기분마저 든다.하지만 기분은상쾌하다.뒤돌아보니 막 퍼붓기 시작한 빗물이 계류의 찬 기운과 만나 물보라를 일으킨다.사이다를 연상시키는 물맛은 이 계곡의 선경과 맞물려 사바세계를 잊게 만든다.아니 그 자체로 피안이다. 길은 끊어질 듯 이어진다.여기서도 25㎞가 더 이어진다고 하니 차라리 수풀의 광란이라 할만하다.그래 저 수풀에 몸을 던지면고스란히 받아주겠지,이런 착각에 빠졌다가 정신을 차린 것은 들머리로 돌아 나와,아스팔트 도로를한참 달려 홍천 땅에서 이틀만의 햇볕과 조우했을 때였다. 양양 임병선기자 bsnim@. ■가는 길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속사IC를 나와 이승복 반공기념관을 거쳐 창촌리에서 우회전,56번국도를 타고 구룡령을 넘는 것과 44번국도로 양평∼홍천∼내면을 거쳐 역시 56번 국도를 이용하는 두갈래 길이 있다.시간이남는다면 돌아올 때 양양으로 나가 주문진을 거쳐 강릉까지 동해안 일주도로를 탄 다음 영동고속도로를 타는 것도 괜찮다. 동서울과 상봉터미널에서 직행버스로 양양까지 온 다음 갈천 가는 버스를타고 황이리에서 내리면 된다.그러나 하루 5회만 운행되는 것이 흠. ■잠잘 곳 김금녀씨의 막내동생 명석씨가 운영하는 불바라기 산장(0396-672-4589)은 계곡의 참맛을 바로 느낄 수 있는 입지와 들꽃들이 잘 가꾸어진 잔디밭,스타인웨이 피아노를 갖춘 내부장식 등으로 찾는 이들이 꾸준하다. 1박 4만원. 미천골 휴양림(673-1806)에는 2만∼6만원의 통나무와 돌집이 있는데 7월은 예약이 완료됐고 8월 예약은 7월1일 오전 9시부터 받는다. 나무로 만든 침상에 텐트를 칠 수 있도록 잘 만든 야영장(100개 수용)도 2,500∼4,000원에 이용할 수 있다. 신경통에 효험이 있는 알칼리온천과 소화기 환자들에 인기있는 탄산온천을갖춘 오색약수가 지척이다. ■먹거리 남대천의 명물 뚜거리탕집으로 천선식당(672-5566)과 돌식당(671-2503) 월웅식당(671-3049)이 유명하다. 양양으로 나와 단양식당(671-2227)에서 수육과 막국수를 즐기는 것도 좋다. 양양장에는 인진쑥 장뇌 송이 산채 목이버섯 고사리 등도 넘쳐난다.
  • 6·15선언과 金대통령 통일론/(상)현주소와 성과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3단계 통일론은 ‘30년의 뿌리’를 갖고 있다.역사적인 6·15 남북공동선언도 김 대통령이 오랜 준비 끝에 도출해 낸 ‘인고의승리’로 보는 시각이 많다.6·15선언과 김대통령의 통일론을 두차례에 걸쳐심층 조명한다. ◆ 3단계 통일론의 전개. 3단계 통일론은 시대별로 발전해 왔다.‘통일론 구상기’인 70년대에 씨를뿌리고 싹을 틔워 갔고 80년대 ‘통일론 발전기’에서 통일의 현실성을 높이며 제도적 접근을 모색했다.이후 90년대부터 ‘통일론 완성기’로 가장 평화적이고 안전한 통일의 길을 찾으며 6·15 선언에서 열매를 맺은 셈이다. 김대통령의 지난 30년은 냉전 수구세력으로부터의 온갖 박해 속에서 자신의통일론을 ‘절차탁마’(切磋琢磨)하면서 구체적 실천방안을 찾았던 인내의시간으로 기록될 것이다.반독재·민주화 투쟁의 험난한 여정을 걸어오면서도 스스로 점진적 평화통일의 신념을 포기하지 않고 이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 온 결실인 것이다. 3단계 통일론이 세상에 첫 선을 보인 것은 71년 대통령 선거였다.당시 김대통령은 ‘평화공존·평화교류·평화통일’이라는 3단계 통일방안을 ‘4대국평화보장론’과 함께 제시했다. 냉전적 반공논리가 지배하는 냉전의 최전선에서 “북한의 실체를 인정하고남북대화를 역설한 것”은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고 그후 김대통령에 대한 용공음해 공작과 덧칠된 ‘색깔론’으로 이용되는 등 정치적 수난의 주요 원인이 됐다. ◆ 3비론(非論)과 통일론. 김대통령은 3단계 통일론 가운데 1단계인 ‘남북연합단계’를 가장 중시했다.평화공존에 이어 남북교류가 이뤄지고 남북이 자유롭게 오가게 될 경우 ‘사실상의 통일’이 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는 것이 측근들의 전언이다. 김대통령의 또다른 통일인식의 주요한 기반은 ‘선(先) 민주화,후(後) 통일론’의 개념이다. 이는 그의 3단계 통일론의 주요 철학인 ‘3비론’(三非論) 즉 비폭력(非暴力)·비용공(非容共)·비반미(非反美)와 맞물려 3단계 통일론의 주요 배경이됐다. 그는 역대 독재정권과의 끈질긴 투쟁 속에서 “민주주의만이 공산세력의 침투를 막는 방패”라고 역설,남한민주화를 위해 싸웠고 지난 대선에서 50년만에 정권교체에 성공,‘통일 대통령’으로서의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 햇볕정책과 통일론 연결. 3비론은 민주화 과정에서의 평화적 정권교체와 공산주의 적화통일의 절대 반대, 자주적 민족통일과 주변국들의 협조 필요성을 제기한 것이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김대통령이 “미국과 일본 등 주변국들과 북한이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북측에 충고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3단계 통일론은 햇볕정책 즉 포용정책 없이는 실현될 수 없었다는지적이 많다.포용정책은 30년간 일궈 온 자신의 3단계 통일론과 6·15 선언의 ‘연결 고리’로서 북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을 남북정상회담장으로이끌어 낸 일등공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오일만기자 oilman@. *남북연합·낮은 단계 연방제 비교. 남북한이 통일방안에 합의하기는 6·15 남북공동선언이 처음이다.남측의 ‘남북 연합’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의 유사점을 인정하고 통일에 대한 공동 모색을선언한 것이다.남북 양측이 통일 논의의 접점과 논의의장(場)을 마련했음을 뜻한다. [유사점] ‘남북 연합’과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남과 북이 별도의 국방·외교권을 보유하며 대등하고 독립된 실체로서 행동한다는 점에서 같다.당장 통일하자는 자세가 아닌 점진적 교류협력을 통해 통일문제를 풀어나가자는 데 합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징] 민족이란 커다란 테두리 안에서 두 국가의 실체를 인정하고 그 가정아래 교류를 추진·심화시켜 나가자는 것이 특징.대외적으론 독립된 실체이자 별개의 국가이지만 내부적으로 보통의 외국관계와 다른 ‘민족내부’란특수관계를 갖는다. 경제·사회·문화의 교류활성화로 사실상 통일 단계인 ‘공동체 형성’을목표로 한다.외국과의 무역관계에선 관세를 물지만 남북끼리는 한 국가안의교역으로 취급한다.남북간에는 수출·수입이란 표현 대신 반출·반입이란 말을 쓰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국가연합과 연방] 일반적인 연방제는 중앙과 지방정부간의 주종·상하 관계를 뜻한다.남북한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남북연합은 국제법상의 연합국가(Confederation),낮은 단계의 연방은 느슨한 형태의 연방(Loose form of federation)으로 정리했다.남북연합은 민족이란 커다란 울타리 안에서 두 실체의 대등한 관계를 강조했다는 점이 일반적인 연방제나 국가연합과는 다르다. [차이점과 전망] 남측이 상정하는 국가연합은 교류를 통한 점진적인 기능 통합을 염두에 둔다.평화공존의 전제 아래 교류를 심화시켜 사실상의 통일 단계를 거쳐 제도적 통일을 이룬다는 것이다.남북연합이란 틀 아래서 정상회의·국회·각료회의 등을 통해 교류의 폭을 넓혀나가는 방법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 북측의 연방제는 정치적 결단만 있으면 국가통합이 언제든 가능하다. 통일국가 전단계로 남측은 2개 주권의 국가연합 단계를,북측은 단일 주권의연방국가를 거쳐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석우기자 swlee@. *한민족공동체 통일안과 '대동소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3단계 통일방안은 역대 정부가 다듬어온 공식 통일방안인 ‘한민족공동체 건설을 위한 3단계 통일방안’과 명칭이다르다. 그러나 명칭만 다를 뿐 내용상의 함의는 큰 차이가 없다.남북이 신뢰·협력의 폭을 넓히면서 단계적으로 완전통일을 지향한다는 기본 개념을 공통분모로 하고 있기 때문. 민족공동체 방안은 화해·협력-남북연합-통일국가 등 3단계로 통일을 추진하는 시나리오다.이에 비해 3단계 통일론은 국가연합-연방-통일국가 등의 단계를 거치도록 돼 있다. 그러나 공동체 방안의 남북연합과 3단계 통일론의 국가연합은 사실상 같은개념.공히 정상회담·각료회의·연합의회 등을 두고 있기 때문. 처음엔 양자간 간극이 있었다.하지만 노태우(盧泰愚)전대통령 시절 국회 상임위에서 이론적 접목이 이뤄졌다.이홍구(李洪九) 당시 통일부장관이 김대통령의 3단계 통일론의 원류인 공화국연방제가 정부안과 취지가 별반 다르지않다고 언급한 것이다. ‘국민의 정부’ 인사들도 3단계 통일론의 연방제는 북한의 고려연방제와는전혀 다른 통일국가의 초기단계라고 설명,혼선을 정리한 적이 있다. 물론 통일방안은 통일이라는 큰 목표로 가는 가공의 설계도일 따름이다.김대통령이 집권 후 통일방안을 구체적으로 강조한 적은 별로 없다.제도적 통일은 훗날의 일이고 당장엔 화해협력 기조 정착이 급선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구본영기자 kby7@. *金대통령 평양회담 소회.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최근 남북정상회담을 마치고 돌아와 “처음 햇볕정책을 추진할 때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것으로 확신했다”고 털어놨다.역사적인 남북 두 정상간 만남을 햇볕정책의 산물로 규정한 것이다. 그러나 햇볕정책 추진과정과 정상회담 협상에 이르는 길에는 숱한 고비와위기가 있었다.지난 98년 6월 동해안 잠수정 침투사건과 99년 6월 서해 연평해전은 국민의 정부의 햇볕정책을 좌초위기로까지 몰고갔다.당시 김대통령은“북한의 태도에 따라 우리가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며 홀로 ‘역풍’(逆風)을 막았다. 김대통령은 이번 단독정상회담때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에게 두 사건을거론하며 섭섭함을 표시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대통령은 또 “회담도중 여러차례 절망을 느낀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김위원장과의회담이 그만큼 어려웠다는 얘기다.무엇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독특한 협상 스타일에 따른 현장 대처가 난제였던 것 같다.김대통령에게최대한 예의를 갖추고 ‘옳다’고 판단되면 즉각 수용하는 합리적인 성품을드러냈으나 그는 거칠 것 없는 북한의 최고지도자였다.김대통령이 얘기하는중간에 가로막고 자기 말만 하는 ‘독선적인 모습’도 간혹 내보여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김대통령은 그래도 김위원장의 말을 묵묵히 듣곤 했다.우리측에선 상상도할 수 없는 일인데도 별로 싫은 기색없이 다 받아들이는 태도를 취했다.‘대선 4수(修)’라는 정치역정에서도 정평이 나 있듯이 탁월한 끈질김과 기회포착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것이다.이는 1,000여쪽에 이르는 북한 자료 숙지등 그의 철저한 준비자세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또 한번도 김위원장의 주장에 ‘노’(NO)라고 하며 의제에서 배제한 적이없었다.한 수행원은 “김위원장의 웅변조 얘기하는 소리가 회담장 밖으로 흘러나왔으나 김대통령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며 설득에 주력했음을 시사했다.공동선언문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라는 문구와 두 정상의 직접 사인,한밤 서명식 등은 김대통령이 일궈낸 작품들이다. 양승현기자 yangbak@.
  • 영화 ‘서편제’ 촬영지 전남 완도군 청산도

    그 섬에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남도 들녘을 지치도록 달린 끝에 완도항에서 60리 뱃길,멀리 푸른 한 점으로 떠오른 청산도가 다가온다.섬 전체를 두른 푸른 기운이 따사롭다.비경이나절경보다는 그저 사람을 오롯이 받아주는 넉넉함이나 갯내음에 실려오는 사람냄새의 그윽함이 눈에 찬다. 높이 300m에 불과한 대봉산과 매봉산은 바닷길을 헤쳐온 이들을 보듬어 안고그 산아래 돌을 쌓아 바람을 막은 계단식 논밭이 정감을 두드린다. 섬 전체가 여행객의 시간개념을 과거로 돌린다.배에서 조금 지체했더니 섬사람들은 모두 길을 재촉해 사라진 뒤.한적한 도청리 포구를 빠져나와 오르막길을 오르니 격랑을 일순 잠재운 도락포의 고요한 해면에 잇닿아있는 구들장논밭이 눈에 들어온다.논에선 쟁기질하는 우공들의 ‘음메’ 소리가 높고 김매는 할머니들의 ‘이바구’도 정겹다.푸른 하늘을 허리에 인 할머니의 도리깨질도 힘차고 저 아래 깎아지른 듯한 황톳길을 힘들게 올라오는 할머니들의바구니에는 막 따낸 굴의 갯내음이 물씬하다. 낯선 길손에게 할머니들은 ‘뉘집 아들인가’ 관심을 보이고 “이 촌구석에뭐 볼게 있다고 먼 걸음을 했소이” 하며 나무라는 체 한다. 해송이 드리운 아래쪽에는 논이 있고 여기에서 위를 올려다보니 한참 멀다. 이웃마을에서 노래를 팔고 돌아온 유봉(김명곤)과 의붓딸 송화(오정해),의붓아들 동호(김규철)가 함께 ‘진도아리랑’을 부르며 덩실춤으로 내려오던 토담길.영화 ‘서편제’를 이곳에서 찍었다. 길을 되짚어 나와 고개를 넘으면 당리마을.바람을 막고 돌아앉은 마을 한가운데 ‘서편제’에 나왔던 초가집이 약간 빛바랜 얼굴로 서있다.살림 냄새는사라진 지 오래인 것 같아 아쉬움이 남았다. 하지만 이 마을 골목길은 사람사는 정내로 가득하다.대문을 달지 않아 골목으로 착각한 길손들은 집안으로 쑥 들어가기 일쑤이다.어두컴컴한 집안 구석에선 흑염소 3∼4마리가 자기 존재를 알린다.무턱대고 들어간 길손에게 “사흘에 한번밖에 물이 안 나오지라” 하면서도 굳이 물을 싸가라고 떠다민다. 다시 당리에서 북동쪽으로 3㎞.마침 뉘엿뉘엿 넘어가기 시작한 낙조가 도락포에 드리운다.그저 붉은 빛의 일몰이 아니다.오렌지 빛,푸른 빛이 배어있는온갖 색들의 잔치. 일몰의 아름다움에 취해 운전자는 핸들을 제대로 잡지 못한다.이 섬에서 가장 많이 찾는다는 지리해수욕장 민박집 뒤 갯바위 동산에 선 나그네들의 탄성이 극성스럽다.그악하다.그네들 가슴엔 불이 붙었다. 밤이 내린 지리해수욕장의 1㎞ 백사장도 일품이다.모래는 설탕가루처럼 곱게날리면서도 자동차가 달릴 수 있을 만큼 견고하기도 하다. 이곳 해송은 동해안의 그것보다 많이 구부러져 있으면서도 키가 크다.낮엔 상큼한 바닷바람과어우러져 그늘을 만들었을 해송 위로 달님이 얼굴을 내민다. 해송 뒤편 논에선 개구리가 합창을 시작한다.코러스는 파도가 넣어준다.‘쏴’하는 소리 사이로 ‘개골개골’. 부드러운 모래밭에 누워 노래를 부른다.‘엄마가 섬그늘에 굴따러 가면 아이는 혼자 남아 잠이 듭니다.바다가 불러주는…’다음날 섬 일주.북동쪽의 비포장 4㎞ 비포장을 포함해 16.5㎞ 남짓.그러나차를 타지 말고 걸을 것을 권한다.걷다 보면 산딸기·비듬이 지천이고 지칠때쯤이면 차가 멈춰선다.함께 타고 가자고.이 섬의 갈대는 키가 작고 보송보송한 잔털이 유난히 푸짐해 나그네를 유혹한다.지리와 도청리 양지바른 곳에있는 초분(草墳)도 나그네를 멈추게 한다. 50㎝ 높이로 돌을 쌓은 위에 죽은자를 넣은 널을 얹고 짚으로 덮어둔 뒤 3년이 지나 뼈만 남으면 묻는다. 섬에 산재(散在)해 있는 고인돌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섬의 북동쪽 진산리엔 이곳 사람들이 갯돌이라 부르는 자갈밭이 600m 정도펼쳐져 있다.파도에 쓸려 나가며 돌들이 내는 ‘사갈사갈’ 소리가 제법 만세소리를 연상케 한다. 원래 청산도는 보리밭과 갯바위 낚시로 유명하다.4·5월 한창 이삭이 팬 보리를 구경하는 재미와 75㎝짜리 감성돔을 낚는 기쁨도 있지만 이제 막 모내기에 한창인 6월의 청산도를 돌아보는 것도 괜찮다.특히 어린이를 함께 데려간다면 물질문명에 눈이 가린 그네들에게 새로운 세계가 열릴 것이다.나그네들은 섬을 떠나며 고개를 끄덕인다.선산(仙山)도 또는 선원(仙源)도라 불렸던 섬의 옛이름이 떠올라서이다. 글·사진 청산도 임병선기자 bsnim@. ◆가는 길 완도는 광주에서 해남보다 강진쪽으로 가는 편이 빠르다.강진에서18번 국도를 타고 가다 813번 지방도로로 접어든다. 서울 강남터미널에서 출발하는 완도행 고속버스 첫차는 오전 7시45분,막차 오후 5시30분,하루 4회운행하며 6시간 걸린다. 완도항(0633-554-3294)에서 청산도행 카페리는 하루 4차례(오전 8:20,11:20,오후 2:30,5:40)이고 청산도에서 나오는 배편도 4차례(오전 6:30,9:50,오후1:00,4:10).어른 왕복 1만1,050원,승용차 도선은 왕복 4만원. 지프 택시(552-8519)를 이용하면 3만원에 섬을 일주할 수 있다. ◆잠잘 곳과 먹거리 지리해수욕장 서쪽 끝에 외롭게 지내는 박달진 할머니(76)의 민박집(552-8891)이 좋다.1m 높이의 돌담 너머로 바다를 오롯이 보며잠자리에 들수 있고 넓은 마당도 있다.근처에 빈집도 상당수 있다. 낚시터로 유명한 권덕리에도 민박집이 많고 선상 낚시도 알선한다.도청항에는 칠성장(552-8507),경일장(554­8517),청운장(552-9988) 등이 있다. 도청리에 자연식당(552-8863)과 경일식당(552-8517) 등이 매운탕,회덮밥,생선회를 내놓는다.그러나 다른 마을과 해수욕장에는 음식점이 없다.
  • [황석영의 맛따라 추억따라](4)잃어버린 먹거리

    6·25전쟁 전에도 쌀이 늘 모자라서 수제비나 국수를 많이 먹었지만 밥을 지어 먹을 때에도 반찬은 한 두어 가지가 고작이었다.동그란 밥상 가운데에 찌개 냄비 올려놓고 김치 한 보시기에 밥 한 그릇씩이 고작이었다. 그러니 밥에다 뭔가 넣어서 해먹으면 양식도 절약이 되고 반찬도 따로 장만할 필요가 없게 된다.나는 요즈음 경양식 집에서 김치와 베이컨과 햄이며 당근 등속을 넣고 버터에 볶은 김치볶음밥은 어딘가 맛이 분명치 않아서 딱 질색이다. 김치가 시어지면 속을 좀 털어내고 송송 썰어서 김치밥을 해먹었고 햇감자가나오면 감자밥을, 고구마가 나오면 고구마밥을,그리고 가을에 김장하고나서남은 무를 넣고 무밥도 해먹었는데,콩나물은 값싸고 가장 흔한 채소라 어느철에도 가끔씩 해먹었다. 영등포의 그 작은 집 뒷뜰에는 화단도 있었고 수돗간과 광도 있었고 광 위에장독대가 있었다. 여름이면 화단에다 일년초의 씨를 뿌렸는데 봉숭아 채송화분꽃 그리고 나팔꽃이 누나들이 매어준 실을 타고 판자 울타리 끝에까지 기어 올랐다.익으면 발간 주황색이되는 유자도 열렸고 수세미 넝쿨도 광의 지붕으로 뻗어 올라갔다.초겨울이 되면 아버지가 광의 뒷편 그늘진 곳에다 땅을 파고 김장독을 묻곤 했다. 어머니가 뚜껑과 짚으로 둥글게 짠 덮개를 열고 웅크리고 한 손을 집어넣어통배추 김치나 절인 무를 꺼내는 모습이 지금도 눈 앞에 삼삼하다. 김치밥은 돼지고기를 써야 더욱 맛이 좋다.돼지 살코기를 다져서 갖은 양념하여 살짝 볶아 놓고 쌀을 앉힐 때 김치와 돼지고기와 쌀을 켜켜로 두어 물을 잡는다.보통 때보다 물을 약간 덜 잡아서 밥을 하면 되지만 약간 질척한듯 짓는 것이 더욱 맛있는 것같다.양념장을 준비했다가 조금씩 밥 위에 두고비벼서 먹는다. 멸치로 다시를 낸 맑은 미역국과 함께 먹으면 다른 찬이 필요가 없다. 콩나물 밥도 짓는 법은 비슷하여 양념이 된 고기를 볶아서 콩나물과 같이 쌀에 앉히는데,더욱 구수한 맛을 내려면 다시마 우린 물이나 멸치 맛국물로 밥물을 잡는다.역시 양념장을 넣고 비벼서 먹는다.국은 재첩이나 조개로 된장국을 끓여서 낸다. 무밥이나 감자밥 고구마밥도 모두 양식이 모자라던 시절의 밥짓기지만,얼마전에 여행길에서 산간에 들어갔다가 감자밥과 막장으로 끓인 호박찌개를 먹고 투박하고 구수한 옛맛이 살아나서 눈물이 날 정도로 반가웠던 적이 있었다.도무지 이런 맛이란 시중의 음식점 어디를 가보아도 없다.요즈음 대중식당의 차림표와 음식은 서울에서 저 남도 끝이며 제주도에 이르기까지 어슷비슷한 맛이다. 의 평준화가 이루어진 셈이랄까.대충 벽에 붙은 차림표대로 주문을 하고나면어디선가 먹은 그 음식이 같은 모양새로 나오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런 밥은 또 어떤가.밤중에 공부를 하다가 아니면 책을 읽다가 귀찮기는 하지만 속이 출출해서 슬슬 부엌에 나가서 뭔가 먹을 것을 찾는다.형제들이 많은 집이면 서로 가위 바위 보를 하기도 하고 제일 굴풋하고 시장한사람이 부엌으로 나가게 된다. 밥이 솥 안에 조금 남아있고 찬장에는 먹던 김치가 있고 고추장 뿐이다.허름한 양은 냄비에다 참기름을 두르고 밥과 고추장과 김치를 넣어 비비면서 볶는다.그대로 숫가락 여러 개를 꽂아서 냄비채로 들고 방으로 돌아오면형제들이 저마다 달려들어 퍼먹는데 밤참의 그 맛이란 세 끼 중에 가장 특별한맛이다. 뭔가 나물이나 김치나 하여튼 먹고 남은 찬을 넣고 비벼 먹는 음식은 어느지방에나 있는데 사람들 추측에 의하면 대개 명절이 지난 뒤라든가 제사를지낸 며칠 후에 ‘먹어 치우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전주 지방의 비빔밥이 유명하지만 안동에서는 원래의 의미대로 헛제사밥이라고 부른다. 어렸을 적에 평양이 고향이던 어머니는 ‘온반’을 제대로 한 적은 없었다. 부모님들은 아마도 수십년 동안을 남쪽에 정착해 살면서도 이곳은 임시 거처려니 여기고 살아온 게 분명할 것이다.더구나 어머니는 농촌 가정 출신이 아니라 개화된 지식인 집안이었고 커서 배운 요리도 거의가 일본식의 개화 음식이었다.아니,그렇다고는 해도 무엇보다도 어머니는 뿌리를 뽑힌 ‘피난살이’의 살림을 의식적으로 벗어날 수가 없었을 게다.내가 중학교에 들어가서몇 대를 서울에서 살아온 토박이 아이들의 도시락 반찬을 보고 깊은 인상을받았던 기억이 난다. 특히 그들이 찬통에 싸온 여러 종류의 장아찌는 기가막힌 맛이었다. 머니는 나중에 아버지와 사별하고부터는 혼자서 벅찬 생업을 감당하노라고더욱 부엌일과 멀어졌고 우리집 식단은 그야말로 가게에서 그날 그날 사다가후딱 조리해서 먹어치우는 식이 되었다. 어머니는 노티를 외우던 것처럼 고향의 온반이 먹고 싶다고 여러번 말했고 비슷하게 만들어 먹기도 했다.그저콩나물 시금치 무나물 등속에다 두어 국물을 부어 만든 것이었는데 우리가보기에는 국밥도 아니고 비빔밥도 아닌 이상야릇한 음식인 듯했다.이렇듯 야릇한 음식으로는 중국집의 울면이 있다.우동이나 짬뽕처럼 시원한 국물도 아니고 짜장면처럼 비비는 것도 아닌 걸죽한 소오스가 아닌가.마치 비벼 먹다가 마음이 변해서 국을 들이부운 것만 같다. 내가 몇 차레 김일성 주석과 나눈 점심에 온반을 먹게 되었다.어느 기록에도보니까 해방후 초기 집권 시절에 부인이 집에서 직접 콩나물 기르는 얘기가나오고 장군(김 주석)이 콩나물 국밥을 즐겨했다고 한다. 이거이 주로 먼길 떠나는 사람들이 먹었디.손님이 많고 일손은 바쁘고 할적에 온반 한 그릇씩 주면 얼마나 편리했겠소.속두 풀리구 든든하디. 온반 역시 설이나 제사 뒤의 비빔밥의 유래와 같은 계통의 음식이었을 것이다. 다만 추운 지방에서는 남은 음식을 차게 먹을 수 없으니 더운 국물을 부어서먹었을 게 분명하다. 이것을 끓인 것으로 온반죽이 있으니 더욱 그럴 듯 하다. 표고버섯과 고기를 볶고 찢어 놓은 고사리며 갖은 양념하여 무친 숙주나물을두고 달걀 지단을 썰어 밥 위에 얹고 녹두전을 부쳐서 밥 위에 얹고나서, 그위에 푹 곤 양지머리 국물이나 닭 가슴 살을 곤 맑은 육수를 부어서 먹는다. 대개는 국물을 자박자박하게 잡지만 나는 뜨거운 국물을 밥과 건더기가 푹잠기도록 부어야 직성이 풀린다.벌겋고 시원하게 담근 깍두기나 고추를 갈아젓과 버무린 배추 겉절이 김치를 곁들여 먹으면 이마에서 땀이 나고 속이후련해진다.과음한 이튿날 속풀이로도 그만이고 별로 입맛이 없는 요즈음의여름 날 점심 때에 땀을 흘리며 먹고나면 이열치열도 될 것이다. 초대소에서도 점심으로 몇번 더 먹은 기억이 난다.요새는 북에서 무슨 국을끓여도 대개는 닭을 고아서 쓰는 모양이었다.내가 된장국의 맛을 내려고 멸치를 찾았더니 주방장은 멸치를 어떻게 국물로 쓰느냐고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내가 자꾸만 된장국이나 야채국에는 멸치를 넣어야 제맛이 난다고 했더니 답답했던지 그가 멸치를 가지고 나와서 내게 보여 주었다.아뿔싸,이북에서는 동해안 멸치가 있긴 있는데 크기가 거의 작은 꽁치만이나 했다.이건비려서 못쓰겠지.이것 보다 작은 게 있어야 한다고 했더니 그건 멸치가 아니라 까나리라고 하는 것이었다. 역시 지방마다 맛과 조리법이 다른 이유는 기후와 풍토,그리고 자연조건에따른 것이다.그러한즉 땅은 작지만 팔도마다 서로 조금씩 다른 말과 음식은얼마나 아기자기한가.
  • 새달15일부터 서울-강릉 카레일 운행

    철도청은 다음달 15일부터 8월13일까지 29일 동안 매일 한 차례씩 서울∼강릉구간에서 카레일(Car Rail)을 운행한다고 20일 밝혔다. 카레일은 피서객들이 승용차를 열차에 싣고 동해안에 도착해 현지에서 승용차를 타고 돌아다니며 피서를 즐긴 뒤 다시 승용차를 열차에 싣고 돌아가는형태의 여객·승용차 복합수송 열차다. 무궁화호 객차 3량과 승용차 수송 화차 5량으로 이뤄진 카레일은 이번 운행기간중 매일 오후 10시30분에 서울 성북역을 출발,다음날 오전 6시에 강릉역에 도착하며 같은 날 오후 10시10분 다시 강릉역을 출발,서울로 오게 된다. 승차권은 내달 1일부터 서울역,영등포역,청량리역,성북역,동해역,강릉역 등에서 만 구입이 가능하다.철도청 홈페이지(www.korail.go.kr)에서 ‘카레일열차 운송신청서’를 다운받아 지정역에 팩스를 보내도 승차권을 구입할 수있다. 김성곤기자 sunggone@
  • 남북 화해시대/ ‘남북 철로복원 유력’접경 4개지역 르포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으로 한반도는 분단과 대결에서 통일과 평화로 나아가는 물꼬를 텄다.특히 반세기 동안 둘로 나뉜 국토의 허리에서 이산(離散)과단절을 체험한 접경지역 주민의 소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접경지 주민들은끊어진 철길이 이어져 금강산이 한나절 거리로 다가오고,북녘 고향땅을 다시 밟을 수 있는 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기대감에 가슴이 한껏 부푼 모습이다. 각종 규제로 묶여 있던 지역개발 사업과 부동산 거래가 활성화될 것이라는전망도 높았다.반면 성급한 개발논리를 경계하고 차분하게 통일시대에 대비해야 한다는 여론도 만만찮았다.대한매일은 남북의 길목인 경기도 파주와 강원도 철원·고성 등을 돌아보고 현지 표정 등을 살펴본다. ◆ 경의선 길목 파주일대. 서울과 신의주를 잇는 철도 경의선이 통과하는 파주시와 통일로 주변에는훈풍이 감돌고 있다. 남북의 교류가 본격적으로 이뤄질 경우에 대비,파주시가 밑그림을 그리고있는 경제특구나 평화시·평화공단의 제1후보지는 민통선 이북 장단면 일대. 이곳 주민들은 파주시의 구상이 현실화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파주시 군내면 원당리 통일촌의 실향민 1세들은 누구보다도 이런 온기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통일촌에 현재까지 거주하고 있는 실향민 1세들은 모두 4명.황해도 수안이 고향인 이영화씨(71)와 이일태(71·신의주),장성동(66·개성),경선봉씨(66·여·황해도 은율) 등은 남북정상회담에 관한 방송을 빠짐없이 지켜보며 귀향의 꿈을 그리고 있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번만은 고향에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남북정상회담은 파주뿐 아니라 연천군에도 큰 기대를 안겨주고 있다.연천군은 본격적 남북교류와 통일에 대비해 연천읍 통현리와 전곡읍 은대리 등에 300만∼500만평 규모의 노동집약적 평화공단을 만들고,청상면·백학면 등지에20만∼30만평 규모의 남북교역거점 유통단지를 조성하려 하고 있다. 경기제2청 조학수 접경지개발담당은 “정상회담의 성공은 오는 7월22일부터발효되는 접경지역지원법과 맞물려 군사보호구역 등에 묶여 크게 낙후됐던연천·파주 등 경기북부지역을 남북의 길목으로 발전시키는 결정적 계기가될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또 “남북의 긴장완화가 이젠 현실로 다가왔다”는 주민들의 믿음이 접경지역 개발의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같은 분위기를 반영하듯 민통선 이북의 땅 수요도 급격히 늘고 있다. 문산읍 문산리 건우공인중개사 사무실 하충용중개사는 “얼마전까지도 민통선내 땅을 중개할 때는 원매자에게 몇시간씩 설명해도 불안해하고 반신반의했으나 요즘엔 위치와 가격 말고는 묻는 말이 없다”면서 “매물은 거의 사라지고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파주 한만교기자 mghann@. ◆ 동해안 최북단 고성군. “금강산 뱃길이 열렸으니 이젠 육로가 뚫릴 차례 아닙니까” 동해안 최북단 강원도 고성군 주민들은 정상회담 이후 불어올 ‘금강산관광’특수를 잔뜩 기대하고 있다.김일성별장에다 한국 불교 4대 사찰의 하나인 건봉사(乾鳳寺),통일전망대 등 풍부한 관광자원을 갖추고 있어 금강산까지 육로만 열린다면 고성군이 금강산∼화진포∼설악산을 연결하는 세계적 관광명소로 부상할 것이라는 희망을 감추지 않았다. 현대측이 복원을 추진하는 금강산철도의 남측 기점이 통일전망대가 돼야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많았다. 고성군에 있는 통일전망대에서 금강산이 있는 북한의 온정리까지는 육로로 20㎞ 거리로 불과 30분이면 갈 수 있다는 점을 들었다.고성군청 기획실 김승태(金承泰)씨는 “육로가 열리면 통일전망대 부근을 이산가족 상봉의 장(場)인 ‘통일광장’(가칭)으로 조성해 남북 교류의 전초기지로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아직은 물밑 움직임에 그치고 있지만 고성군 일대의 투자열기도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다.화진포부동산 권운섭(權雲燮·66)씨는 “평소 매물이 거의 없었지만 요즘은 ‘투자할만한 땅이 있느냐’는 문의전화가 하루평균 4∼5통씩걸려온다”면서 “육로가 뚫리면 금강산 관광의 길목인 고성군 일대 땅값도오를 것”이라고 기대했다. 고성군에서도 가장 북쪽 접경마을인 명파리(明波里) 주민들도 정상회담 이후 불어올 훈풍을 기대하는 모습이 역력했다.134가구 460여명의 주민이 사는이 마을은 6·25 이전 원산까지 이어졌던철로가 남아있는 등 전쟁의 상흔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주민들의 감회는 특별했다.김영수(金永壽·57)이장은 “지금같은 각종 규제에서 벗어나 편하게 농사를 지을 수도 있고 무엇보다 관광객이 몰려들면 생활형편이 나아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해방전 금강산관광때 이용하던 양양∼원산간 동해북부선 기관사였던 강종구(姜鍾求·79·현내면 대진리)씨는 “죽기 전에 기차를 타고 금강산에 다시가볼 수도 있을 것 같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기동취재 소팀 김성수기자 sskim@. ◆ 금강산선 분기점 철원. 철원은 분단의 마을이다.휴전선으로 철원군(郡)이 동강 났고,경원선(서울∼원산)과 금강산선(서울∼금강산)이 갈리는 철원역 부근 철길도 녹슨채 끊어져 있다.남쪽 주민 60% 이상이 북쪽에 고향을 둔 실향민이다. 철원 주민에게 이번 정상회담은 미래와 현재이며,동시에 과거로 다가서고있다.“이번에야말로”라는 설렘과 “혹시나”하는 신중함,여기에 반세기 전금강산선에 몸을 싣던 추억까지 겹쳐 묘한 흥분이 흘렀다. 정상회담 이틀째인 지난 14일 서울에서 승용차편으로 43번 국도를 타고 2시간 남짓 만에 도착한 곳은 철원군 갈말읍.마을 입구에서 만난 한재윤(韓在潤·57)씨는 “다시 금강산 소풍길에 나설 날이 멀지 않았다”면서 “앞으로 10년이면 통일여건이 무르익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갈말읍에서 갈현고개를 넘어 20㎞쯤 북상하면 금강산 철도의 남쪽지역 마지막 역사(驛舍)자리인 근북면 유곡리가 자리잡고 있다.이곳 출신인 철원군 의회 장진혁(張鎭爀·43)부의장은 “북쪽의 노동력과 남쪽의 농기계를 결합,민통선내 유휴토지를 공동개발하는 등 접경지역 활성화 정책이 더욱 힘을 얻을것”이라고 반겼다.철원군청 관광경제과 이창용(李昌龍·43)계장도 “철원은 지정학적으로 한반도의 중심지역”이라며 대규모 물류기지를 건설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북쪽의 철원군 북면이 고향인 철원군 번영회장 이근회(李根澮·60)씨는 “정상회담의 후속조치를 좀더 지켜봐야 한다”며 신중한 견해를 밝혔다.그러면서 “72년 7·4 남북공동성명 때보다는 마을 분위기가 차분한 편”이라고 전했다. 민통선 안쪽 마을인 철원읍 대마1리 이장 김동일(金東日·37)씨도 “좋은얘기들이 금방 현실화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면서 “특히 개발 기대심리로 땅값이 들먹이면 농사짓는 사람으로서는 힘들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철원일대에는 금강산 철길 지역을 중심으로 부동산 투기 조짐이 일고 있다.김화읍 학사리 금화부동산 대표 김세창(金世昌·48)씨는 “실거래건수는 적지만 최근 부동산 매매여부를 묻는 외지인이 하루 10∼20명에 이른다”고 말했다. 기동취재 소팀 박찬구기자 ckpark@. ◆ 철원군 월정리 부근.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인기있는 안보관광코스 중 하나인 강원도 철원군 월정리를 찾은 사람들의 표정에는 요즘 변화와 평화에 대한 기대가 한껏 깃들어있다. 이 지역은 평소 관람객수가 1,000여명에 불과했으나 요사이엔 평일에도 1,500여명의 발길이 이어지는 등 정상회담의 특수(?)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월정리역은 철원에서 원산으로 이어지는 경원선상에 있는 역이지만 6·25로철길은 끊어지고 폭격맞은 철마(鐵馬)만 덩그러니 남아있다.또 월정리를 중심으로 반경 10㎞ 이내엔 백마고지와 제 2땅굴이 있어 그 어느 곳보다 남북간의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지던 곳이다. 그러나 이곳도 정상회담 이후 북측의 대남방송이 끊기는 등 변화가 일고 있다.앞으로 철길을 잇는 작업이 시작되면 안보관광지에서 남북간 협력의 장소로 전환될 가능성 또한 높다. 이곳에서 관광객들을 안내하고 있는 김귀식(金貴植·43)씨는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면 안보관광지인 이곳의 관람객수가 줄 것으로 생각했는데 오히려늘고 있다”고 말했다. 경원선의 남한측 종착역인 연천군 신탄리역 이창재(李昌宰) 역장은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면서 부산에서까지 이곳 관광에 대한 문의전화가 많아졌다”며“철길이 이어지면 이곳을 찾는 관광객은 더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해방후 원산에서 월남한 뒤 백마고지 전투에서 남편을 잃었다는 김명춘(金明春·71·서울 강남구 대치동)할머니는 “몇년전 이곳을 찾아 그 때를 떠올리고 한없이 울었는데 남북정상회담이 성과있게 끝나 감회가 새롭다”면서“이 철길로 고향인 원산에 가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월정리에서 만난 경북 예천군 농촌지도자회 홍승국(洪承國·43·경북 예천군 유천면)씨는 “과거 이곳을 찾았을 때와 달리 관람객이 늘어나는 등 많은변화가 느껴진다”며 “그러나 가장 큰 변화는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한민족은 하나라는 사실을 다시 일깨워준 것이 아니겠느냐”고 했다. 철원 김성곤기자 sunggone@
  • [대한시론] 남북 대결구도 이제 허물때

    분단 반세기가 지난 시점에 김대중 대통령의 평양 방문은 우리가 지금 일대 전환기를 맞고 있음을 알리는 중대한 사건이다.세상은 달라지고,또 달라질수밖에 없다.1945년의 분단,1948년의 남북 이질체제의 공식화,1950년의 전쟁과 1953년의 정전을 거치면서 세계에서 남북의 장벽처럼 철벽으로 분단체제를 고정해온 비극의 현장도 없다.같은 겨레이면서 정전 이후 서신교류나 왕래가 범죄로 금압되어왔다.양측은 서로가 소모적 자멸적 군비경쟁을 해오고있다.결국 그러한 대결구조는 양쪽 모두에게 민주와 복지를 희생시키는 결과를 떠안게 했다. 지금 온 세상이 정보기술혁명으로 탈바꿈하고 21세기의 새로운 구상을 추진해 적응하려고 안간힘을 다하는 때에 우리만이 남북으로 갈려 소모적인 낭비의 자멸을 향한 군비경쟁과 상호불신과 증오의 확산을 꾀해 가서는 살아남을 수 없게 되어 있다.남북의 지도자가 7,000만 동포에게 전쟁의 공포를 걸머지고 살아가게 하는 정책을 그대로 밀고 나갈 순 없다. 김대통령이 통일과 안보의 문제를 특정 정파의 정치적인 이용물로 해선 안된다고 한 것은 일대 결단이다.정권유지나 정권탈취를 위해 수다한 야심가나 정상배가 통일과 안보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난도질을 해왔다.앞으로 더이상 그러한 반민족적 행위는 누구도 할 수 없게 해야 한다. 반백년 만에 남과 북의 책임있는 지도자의 만남이 이루어졌다.그 자체 만으로도 가슴이 터질 듯 감격에 벅차다.나같은 실향민은 가슴이 터질 것 같아할 말을 잃을 지경이다.그래서 기대도 크고,주문도 많게 되리라는 것은 당연하다.그런데 한편으론 냉전시대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세대는 왠지 불안하고 의심스럽기도 하리라.기존 체제에서 최대의 수익자인 기득권층으로선 북쪽 때문에 짊어질지 모를 부담 때문에 심사가 뒤틀릴 수도 있으리라.여기서우리는 바른 세상을 만들려면 남북 사이의 불신과 증오로 서로 소모적인 군사적 대결을 하는 일은 끝장을 내야만 한다.무력에 의해서 남북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은 1953년 정전협정에서 이미 확인된 것이 아닌가? 더욱이지금 분단의 소모적인 남북대결을 지속시킨 채 21세기에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하지 않은가?제살 깎아먹기식의 남북간의 대결구도는 겨레의 이름으로 남북 양측 지도자가 해소토록 결단을 해야 할 시점에 이른 것이다. 남과 북의 교류와 긴장의 완화,나아가서 공존과 분단 해소의 모색은 우리의 일이다.그런데 한편 그것은 우리 주변 나라들과의 일이기도 하다.6.25전쟁당시 중국 참전은 자기나라 주변에 적대국가의 존립과 위협을 용납할 수 없다는 중국나름의 자위책의 성격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지금 북측의 국제관계상의 지위는 정치,군사 이외에 경제면에서도 복잡 미묘하다.미국은 이미 북측과 교류에 꾸준히 노력을 경주해오고 있으며,일본도 북측과 국교정상화를위한 준비를 마무리하고 있다. 그런데 일본의 보수 지배세력은 남북주도의 자주적 교류를 호의적으로만 보고 있지 않은 듯한 인상을 풍기고 있다.러시아도 푸친 대통령의 평양방문을공식일정에 올림으로써 동북아시아에서 그들의 입지를 세워나가고 있다.특히 북측에는 경제면에서 동해안의 철도가 구라파직통의 요지가 되는 지점이고북쪽에 매장된 전략물자인 희귀금속과 천연가스와 석유는 주변국가들의 중대한 관심사가 되고 있다.뿐만 아니라 북쪽의 우수한 노동력,기능공과 기술인력은 선진국 기업의 투자가가 군침을 흘릴 수 있는 인적 자원이다.남북문제는 이처럼 주변당사국이나 제3국의 이해관계가 얽힌 문제이다.결국 남북문제는 우리에겐 민족문제인 동시에 국제문제이다.단순치 않고 실마리를 풀기가대단히 어렵다.그동안 우리가 살아온 역사를 돌아보면 어떻게 하면 우리가의연하고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인가 생각해야 할 문제이다. 지금 남북 정상의 만남 자체가 새 역사의 시작을 여는 것만은 틀림없다.그자체로서 크나 큰 의의가 있다.그래서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하면 보다 차분하게 현실감각을 지니고 멀리 바라보며 참을성 있게 나가자.김대통령 말대로 50여년을 기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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