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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화 못받아 서울대 낙방」 유근이양(조약돌)

    ◎고대 진학땐 “4년 등록금 면제 검토” ○…고려대는 전화요금을 못내 통화정지처분을 받는 바람에 서울대로부터 추가합격통지를 받지 못해 불합격한 유은이양(19·전주 기전여고졸)이 고려대에 진학할 경우 4년간 등록금전액을 면제해주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고려대학의 관계자는 9일 『유양이 이미 통계학과에 복수합격해 등록을 마친 상태』라며 『가정형편이 어려운 점을 감안,교외장학금지급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 한편 유양은 이날 어머니 나순애씨(43)와 함께 이틀째 서울대를 찾아가 선우중호부총장,윤계섭교무처장 등과 면담하고 『서울대 대표전화로 여러차례 문의했지만 무성의한 대답으로 추가합격사실을 알려주지 않은 것은 학교측의 잘못이 아니냐』며 눈물로 구제를 호소했으나 서울대측은 『안타까운 사정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유양이 지원한 가정대 소비자아동학과는 미달인원이 없기 때문에 추가로 합격시켜줄 수 없다』는 원칙론을 되풀이.
  • 민속연구가 심우성(이세기의 인물탐구:91)

    ◎남사당패 쫓아 풍물 놀고 탈 만들고…/현장 찾아 자료 채집·기록… “발로공부” 평가 받아/1인극 「쌍두아」는 인형에 혼을 담은 산무대로/「꼭두각시 놀음」·「발탈」 무형문화재 지정에 큰몫 심우성(민속연구가) 「나는 얼굴에 분칠을 하고/삼단같은 머리를 땋아내린 사나이/초립에 쾌자를 걸친 조라치들이/날라리를 부는 저녁이면/다홍치마를 두루고 나는 향단이가 된다./……산넘어 지나온 저 동리엔/은반지를 사주고 싶은/고운 처녀도 있었건만/다음 날이면 떠남을 짓는/처녀야!/나는 집씨의 피였다./내일은 또 어느 동리로 들어간다냐/ 시인 노천명은 옛유랑 예인집단의 기약없는 인생과 서글픈 족적을 이렇게 노래부르고 있다.몇년전 타계한 예용해씨는 「일수가 좋으면 공청에나 또는 주막집 기역자 판을 끼고 잘때도 있지만 인심이 사나운 마을에서는 처마끝에서 비를 피해야 할 때도 있다」고 남사당패의 일상을 그의 저서에 쓰고 있다. 그러나 누더기에 걸식행각으로 밥을 빌어먹을 망정(걸양) 그들은 「꼭두각시놀음(우희)으로 관중을 웃기고 울리는 소박한 신명에 겨워 살다가」 「어느 낯선 고장에서 길섶 아침이슬처럼」 사라져버린다고 했다. 판소리나 춤이나 연극을 하는 예인들의 대부분은 설날 명절 때 동네에 찾아든 유랑극단이나 광대패의 공연을 구경하다가 그들의 연희에 반해 길을 따라나서거나 부모의 대를 이어받는 수가 흔하다.인형극연희자인 심우성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그러나 그의 예능 기질은 누가 시킨 것도 권한 것도 아니며 집안의 내력을 이어받은 것은 더욱 아니다.단지 그의 마음속에서 끝없이 일고 있던 불가사의한 「끼」에 의해 뒤늦게 연희자로 돌아선 케이스다. ○머슴살던 노인에 영향 그는 언제부턴가 남사당패의 삶을 쫓아 풍물을 놀고 탈과 인형을 만들고 「취발이」나 「미얄할미」나 허세부리는 샌님,미소를 머금은 백정의 탈을 쓴 온갖 인형을 조종하면서 때론 분노로 때론 질타로 어느 때는 주책없고 어느 때는 넉넉하게 인간사의 천태만상을 손끝에서 펼치더니 어느 날 스스로 연희자가 되어 직접 무대에 오르기 ○시작했다. 그가 민속연희중에서도 유독 인형극인 꼭두각시 놀음에 심취하게 된 것은 무대장치 안에서 벌어지는 상황과 무대밖의 공간이 연결되는 극적 공간의 자유로움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그리고 그의 무대는 혼자서 극중인물이면서 등장인물을 소개하는 해설자에다 산받이까지 도맡아 양반들의 어처구니 없는 횡포나 위선위귀를 징치하기도 하고 재난을 물리치는 홍동지의 기개를 앞세우는 등 지배층에 대한 세찬 비판을 표방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른바 「광대」란 역사속에 놓여진 동시대인들의 희로애락을 세상으로 되돌리는 영혼의 울림대이기를 자처한 사람이며 그는 자신의 역할에 완전히 만족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는 충남 공주의 만석지기 외아들로 태어나 서울에서 휘문중에 다니다가 6·25를 만나 고향인 공주군 의당면에 머물면서 김재철의 「조선연극사」를 읽은 것과 집안의 나이든 머슴인 정광진노인으로부터 남사당패들의 내력을 들은 것이 연희자가된 동기다. 한때는 소설가 신문기자가 될뻔도 했고 서울 중앙방송국 아나운서로 활약하기도 했으나 아나운서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걸핏하면지방 방송국에 출장간다는 핑계로 옛 남사당패를 찾아 나섰고 거의 전국을 떠도는 뜬 광대노릇으로 서서히 잊혀져 가던 풍물놀이(농악) 버나(대접돌리기) 살판(땅재주) 어름(줄타기) 덧뵈기(탈놀음) 덜미(인형극 꼭두각시놀음)등 남사당놀이 여섯가지를 재현해 내는데 수많은 돈과 시간과 정열을 들여왔다.가족들에겐 의논도 없이 3년만에 방송국을 집어치우고 나서도 「어디어디 답사,무슨무슨 녹음 촬영」등으로 새벽부터 집을 뒤쳐나가는가 하면 여행과 술에 지쳐 며칠씩이나 대낮에도 이불을 펴고 눕는 것이 다반사였다.오죽하면 그의 부인(권숙현여사)이 「올해도 당신 작년처럼 그렇게 지낼거예요」했다는 말이 이를 단적으로 증명한다. ○방송국 아나운서 출신 그는 가뜩이나 쪼들리는 살림에서 부친이 마련한 집을 팔기도 하고 동해안 서해안으로 다니다가 간첩혐의를 받기도 하고 녹음기와 카메라와 어렵사리 찍은 필름을 빼앗기기도 했다.5·16직후에는 종로 YMCA강당서 남사당창단 기념으로 남사당놀이중 「덧뵈기」를 공연하려 했을 때 「남사당」이 정당이름인줄 잘못알고 종로경찰서에 연행되는 웃지못할 에피소드를 빚기도 했다.59년 8월,전국에 흩어져있는 남사당패를 모아 지금의 남산도서관 자리인 빈터에서 요즘의 약장사처럼 「꼭두각시 놀음」을 공연한 것이 본격적인 해설가의 출발이 되었고 그후 전국각지 순회공연으로 「꼭두각시 놀음」과 「발탈」을 공연한 것이 후에 이 놀이들이 중요무형문화재(3호 7호)로 지정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냈다. 그가 「책이 아닌 발로 공부한 사람」이란 평을 듣는 것은 자료수집에 혈안이 되어 현지에서 이를 확인보충하고 채집·기록한 공적과 실제로 수백여회에 이르는 연희를 주관하고 실연한데서 비롯된 것이다. 심우성.민속예술에서 괴팍한 개성을 보이지 않는 사람은 드믈다.틀이 번듯하고 아나운서 출신답게 우아한 말씨를 쓰지만 그도 어쩔 수 없이 광대기질을 타고난 사람에 틀림없다.이제 그 시절의 남사당패는 사라지고 없으나 유일하게 그 흔적과 체취를 물씬 풍기는 무대가 있다면 심우성의 1인무언극이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다. 『뒤늦게 나마 재혼하는 과부의 설렘으로 무대에 서렵니다』 비장한 인사말과 함께 그가 지난 80년 공간사랑 소극장무대에서 선보인 첫번째 1인극 「쌍두아」는 글자그대로 머리가 둘,손은 넷에다 발이 둘인 전남 구례지방 풍장굿의 비비새놀이에 나오는 접광대를 본뜬 것으로 음악과 인형과 자신의 몸짓만으로 두동강난 조국의 분단된 역사를 상징적으로 드러내고자 했다. 뒤에서 인형을 조종하던 그가 이렇게 무대에 나서게 된 것은 「속되고 다난한 편력으로부터 스스로를 정리하는 전기가 되고 그리고 인형속에 혼을 불어넣는 산무대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며 이는 「연희자가 무대에 나와 인형과 함께 춤춘 최초의 시도」로서 평론가 양혜숙은 「가면극이 인형극으로 거듭나면서 우리 예술사의 흐름을 크게 바꿔놓은 계기다 되었다」고 평하고 있다.지난 88년 초연이래 최근까지 공연되고 있는 「남도 들노래」도 「민족적 아픔과 통일에의 염원」을 담아 분단을 넘어 통일로 가는 길목에서 희생된 한 젊은이의 장례식을 치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민속박물관 5월 개관 「민속이란 고전적이기 때문에 그것을 원형그대로 보존하라」는 강한 비판도 있었으나 그는 「민중의 습속이 시대따라 변하듯이 우리가 추구하는 민속극도 그 모습이 달라질 수 있고 옛 것을 재현하는 연극이 아니라 옛 것을 바탕으로 오늘의 것을 한다」는 의지다. 그는 지난해 고향인 공주에다 오랜 숙원이던 민속박물관 건립을 시작,각종 탈전시에서 모든 농기구에 이르기까지 민속과 관련된 자료전시관및 야외공연장을 오는 5월쯤 개관할 예정이다.가족은 노부모와 부부와 아들 하용씨(27·미캘리포니아대 경제학과 졸업)가 그를 돕고 있다. 호라티우스는 일찍이 「인간은 타인의 끄나풀에 조종당하는 인형 같이 움직인다」고 했지만 그의 인형은 「하나의 굳어버린 표정속에서 눈물을 흘릴 때 웃고 있고 웃어야 할 때 울고 있는」 아이러니와 시니시즘의 묘미를 그 때마다 능란하게 연출해낸다.오늘 그의 소원은 「타고난 광대의 운명」속에서 「피가 흐르고 살아숨쉬는 진짜 인형」이 되어 「인간이 가장 인간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가」를 관중을 웃기고 울리는 소박한 신명으로 핍진하게 이룩하려는 것이다. □연보 ▲1934년 충남 공주출생 ▲53년 서울휘문고졸업 ▲53∼56년 서울중앙방송국 아나운서 ▲58년 홍익대 신문학과졸업 ▲59년 남사당놀이패공연(남산) ▲60년 남사당놀이중 「덧뵈기(탈놀음)」공연(종로 YMCA강당) ▲64년 민속극회 남사당결성 ▲66년 한국민속극연구소 창설 ▲79년부터 극단 서낭당창단,전통인형극 「꼭두각시놀음」「발탈」「만석중놀이」,창작인형극 「홍동지의 나들이」「신경림의 농무」「청개구리는 왜 날이 궂으면 우는가」「우리산 우리강」외 김명수춤판,강만홍 인도무용,이동안 전통무용,이매방 민속무용,김숙자 무속무용,우옥주 만구대탁굿등 공연 ▲80년 1인극 「쌍두아」로 무대데뷔(공간사랑소극장) ▲83년 우리문화연구소장,인형극 「만석중놀이」(문예회관소극장) ▲85년 「문」(산울림소극장) ▲86년 서강대·한양대강사 ▲90년 인도 국제인형극제에서 1인극 「남도 들노래」 참가 ▲91년 프랑스·말레이시아·일본민속극제 참가 ▲93년 「판문점 별신굿」 공연 ▲94년 제주 4·3항쟁추념 「남도 들노래」및 동학농민혁명 1백주년기념 「새야새야」(문예회관대극장)등 3백여회 공연 현재=우리문화연구소장,민학회회장 「남사당패연구」(74년)이후 「한국의 민속극」「한국의 민속놀이」「전통무용용어의 연구」「마당굿 연희본 1·2」,평론집 「민족문화와 민중의식」「꼭둑각시놀음」등 20여권 서울시문화상(인문사회과학부문·79년)
  • 전화요금 못내 통화정지/서울대 합격통보 못 받아(조약돌)

    ○…서울대에 추가로 합격했지만 집안형편으로 전화가 끊겨 합격사실을 통보받지 못한 유은이양(19·전주 기전여고졸)이 미등록으로 합격이 취소된 사실이 8일 알려져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올해 서울대 소비자아동학과에 응시,단 한명뿐인 추가합격자로 합격한 유양은 혼자 노점상을 하며 3남1녀를 뒷바라지 하고 있는 어머니가 전화요금을 내지 못해 20일전 통화정지를 당했다는 것. 유양은 『지원서를 낼때 서울 이모집의 전화번호까지 같이 적어냈고 지난 4일부터 4차례나 학교에 전화를 해 추가합격여부를 물어보았지만 합격자 개별통보가 끝났다는 말만 들었다』며 이날 눈물로 학교측에 호소했으나 학교측은 합격여부를 확인할 책임은 수험생에게 있다는 규정만을 들어 냉담한 반응.
  • 서울대 3.5대 1/29개대 원서마갑

    ◎서강대 4.2­포항공대 3.5대 1/숙명여대는 8.2대 1 서울대는 5일 입학원서 접수를 마감한 결과,모집정원 5천45명에 1만7천8백1명이 지원,평균 3.53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서울대의 이같은 경쟁률은 지난 81년 학력고사제도가 도입된 이후 가장 높은 것으로 특히 3대 1의 경쟁률을 넘긴 것은 88학년도의 3.04대 1 이후 8년만이다. 모집단위별로는 종교학과가 20명 모집에 2백13명이 지원,10.65대 1로 가장 높았으며 40명 모집에 4백15명이 지원,10.38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한 소비자아동학과가 그 뒤를 따랐다. 또 40명 모집에 3백96명이 지원,9.9대 1의 경쟁률을 나타낸 농경제학과를 비롯,국민윤리교육(8.83대 1),지리(8.33대 1),인류(6.61대 1),언어(7.50대 1),고고미술사 (7.65대 1),산림자원학과(8.2대 1) 등의 경쟁률이 비교적 높았다. 반면 법학 2.39대 1,정치 2.82대 1,경제 2.31대 1,영문 2.4대 1,경영 2.8대 1,의예 2.31대 1,컴퓨터공학 2대 1,전기공학 1.52대 1 등으로 모두 평균 경쟁률을 밑돌았다. 또 올해 처음 단일학부로 모집하는 자연과학대학이 2.36대 1의 경쟁률을 보인 것을 비롯,약학(1.98대 1),산업공(1.78대 1),건축(1.42대 1),영어교육(2.57대 1)등도 평균보다 낮았다. 예·체능계에서는 서양화과(여)가 13명 모집에 1백10명이 지원,8.46대 1의 가장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으며 성악과(여)는 7.5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서울대는 이날 원서접수 마감결과 상당수 지원자들이 다른 대학에 복수지원한 것으로 파악됨에 따라 합격자발표 이후 미등록에 따른 결원이 생기면 두차례에 걸쳐 추가합격자를 선발할 방침이나,2월10일 이후의 결원에 대해서는 충원하지 않기로 했다. 이날 서강대는 모집정원 1천21명에 4천2백92명이 지원,4.2대 1의 경쟁률은 보였고 숙명여대는 1천7백69명 모집에 1만4천4백16명이 지원,8.15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나타냈다.1백91명을 모집하는 포항공대는 6백69명이 지원,3.5대 1의 경쟁률을 나타냈다. 한편 이날 접수마감 대학중 충남 천안의 선문대가 1천7백20명 모집에 1만9천6백38명이 지원,11.4대 1로 최고경쟁률을기록했다.
  • 서울대/중하위권 학과 합격점 높아질듯/올 지원경향

    ◎내년 제도개편 부담 「하상」늘어/복수지원 기회 최대한 활용/인기·비인기과 점수차 줄어 올해 서울대 입시의 가장 큰 특징은 복수지원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려는 수험생들의 대거 지원으로 3.53대 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한 점이다.지난 81년 학력고사제도가 도입된 이래 실로 최고 경쟁률이다.지금까지 서울대 경쟁률이 3대 1을 넘어선 것은 지난 88학년도 입시 때뿐이다.그때도 경쟁률은 3.04대 1이었다. 이처럼 높은 경쟁률을 보인 데는 서울대의 본고사 날짜가 연·고대와 달라 연·고대 인기학과 및 상위권 학과 지원자들이 무더기로 서울대 중·하위권 학과에 원서를 냈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이에 더해 97학년도 입시부터 입시제도가 전면 개편되고 특히 국·영·수 위주의 필답고사(본고사)가 없어짐에 따라 그동안 수능시험보다는 본고사에 강세를 보인 수험생 입장에서는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심리도 톡톡히 한몫한 것으로 읽혀진다. 이에 따라 법학·경제학부·정치학과 등 인기학과의 경쟁률이 전체 평균 경쟁률을 밑돌았지만 종교학과와 소비자아동학과 등 비인기학과는 대부분 5대 1을 넘겨 경쟁률 상승을 주도했다. 이같은 비인기학과의 「상종가」 현상은 서울대에 지원가능한 수능점수 1백50점대 이상의 연·고대 상위권 학과 지원자가 합격가능성이 비교적 높은 서울대 중·하위권 학과에 소신지원하고 연·고대 중·하위권 지원자도 복수지원 기회를 마음껏 활용해 상당수가 상향지원한데 기인한다.또 내년 대입제도 개편에 부담을 느끼는 고득점 재수생등이 상위권 학과 지원이 가능함에도 많은 수가 하향안전 지원한 것도 중하위권 학과의 경쟁률을 부추긴 원인으로 풀이된다. 더불어 올해부터 입학정원의 20% 이내에서 전과 기회를 크게 넓힌 교육부 방침도 빼놓을 수 없다. 이같은 인기학과 약세와 비인기학과 강세의 「양극화」현상은 단과대별로도 두드러졌다.따라서 이번 입시에서는 중하위권 학과의 합격점이 높아져 상위권 학과와 중위권 학과간의 합격선 차이가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서울대 홍두승교무부처장은 『연·고대 상위권 학과 지원생들이 서울대 중하위권 학과에 상당수 지원하고 있다』고 말하고 『상위권 학과의 경쟁률 약화로 고득점 탈락 수험생은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 상위권 대학 경쟁률 치솟아/연·고대 4.3대 1

    ◎13개대 원서마감/이화여대 3.7대 1/오늘 마감 서울대 5대 1 예상 전국 1백40개 전기모집대학중 연세대·고려대·이화여대등 전국 13개대가 4일 원서접수를 마감한 결과 연세대와 고려대의 평균경쟁률이 똑같이 4.31대1을 기록하는 등 대부분 대학의 외형경쟁률이 지난해보다 크게 웃돈 것으로 나타났다. 3천2백58명을 모집하는 연세대는 1만4천48명이 지원했고 고려대는 4천83명 모집에 1만7천5백93명이 몰렸다. 연·고대의 지난해 경쟁률은 각각 2.44대 1과 2.57대 1이었다. 연세대와 고려대의 지원율이 4대1을 넘어선 것은 지난 80년 각각 4.21대 1과 8.01대 1을 기록한 이후 16년만이다. 이화여대는 2천5백81명 정원에 9천5백52명이 지원,3·7대1의 경쟁률로 지난해 3.16대 1을 약간 웃돌았다. 또 5일 원서접수를 마감하는 서울대는 원서접수 이틀째인 이날 하오3시 이미 지난해 경쟁률을 웃도는등 서울대와 연·고대등 상위권대학의 「경쟁률인플레」 또는 「거품경쟁률」현상이 두드러졌다. 이는 복수지원기회확대에 따라 수능성적 1백30점대의 중위권 수험생이 대거 연·고대등에 몰리고 1백50점대의 중상위권 수험생도 서울대에 상향지원한 때문으로 분석됐다. 그러나 지방대는 일부 인기학과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지원율이 저조,지난해말 특차모집에 이어 이번에도 서울과 지방대학간의 양극화현상이 나타났다. 또 연·고대등은 일부 비인기학과에 응시생이 많이 몰려 상위권 수험생의 소신지원경향과 더불어 중하위권 수험생의 눈치작전이 여전한 것으로 확인됐다. 연세대의 모집단위별 경쟁률은 성악과가 30명 정원에 3백48명이 지원,11.6대 1로 최고를 기록했고 사회복지학과는 9.46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또 치의예과 8.13대 1,의예과 7.1대 1,교육학과 6.7대 1,생활과학부(자연계) 5.96대 1,상경계열 2.58대 1등이다. 고려대는 서창캠퍼스 사회체육학과가 13.1대 1의 최고경쟁률을 나타낸 것을 비롯,조형미술(10.08대 1),산림자원학과(9.23대 1),지구환경과학과(8.75대 1),토목환경공학과(8.2대 1)등이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이화여대는 보건교육과가 12.08대 1의 최고경쟁률을 보였다. 이밖에 국민대가 10.73대 1의 전국 최고경쟁률을 기록한 것을 비롯,한양대 8.81대 1,경북대 2.27대 1,인하대 4.59대 1 등이며 교대중에서는 광주교대가 8.13대 1로 가장 높았다.단일학과중에서는 국민대 행정학과(야간 일반)가 21명 정원에 무려 1천3백53명이 지원,64.43대 1의 전국 최고치를 보였다. 한편 서울대는 이틀째 원서접수결과 5천45명 모집에 1만3천1백69명이 지원,2.61대 1의 경쟁률로 지난해의 2.26대 1을 이미 넘어섰다.이에 따라 서울대는 개교 이래 최고인 5대1 수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소비자아동학과가 8.03대 1의 최고경쟁률을 보였으며 법학 1.94대 1,의예 1.86대 1,경제 1.59대 1,정치 2.21대 1,영문 1.66대 1이었고 신문·건축·컴퓨터공학·농학 등 4개 단위는 미달이다.
  • 서울대 경쟁률 사상최고 될듯/원서접수 첫날

    ◎78개 모집단위 정원 넘어/연·고대 인기학과도 모두 초과/97학년부터 「3배수」 이내 자격제한 검토­서울대 2일 연세대 고려대 등 17개 대학에 이어 서울대 서강대 숙명여대 등 88개 대학이 원서접수에 들어간 3일 복수지원이 가능한 서울대와 연세대 고려대 포항공대등 주요 대학은 지원자수가 정원을 넘은 반면 나머지 대부분 대학들은 미달되는 「지원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졌다. 원서접수 첫날인 이날 서울대의 원서접수결과 소신 지원자들이 대거 몰려 5천45명 모집정원에 7천1백94명이 지원,1.43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이는 지난해 첫날 1천9명의 지원자에 비해 무려 7배가 많은 것이다. 입시전문가들은 서울대의 최종 경쟁률이 지난해의 2.26대 1을 훨씬 웃도는 5∼6대 1 정도로 입시 사상 가장 높은 경쟁률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전체 1백개 모집단위 가운데 78개 모집단위가 이날 정원을 넘어섰다. 학과별로는 농경제학과가 40명 모집에 1백76명이 지원,4.4대 1로 가장 높은 경쟁률을 보였으며 소비자아동학과가 40명 모집에 1백68명이 지원,4.2대 1을 기록했다. 인문대학에서는 종교학과 3.45대 1,서문학과 3.35대 1,언어학과 3.2대 1,고고미술사학과 3.2대 1로 비교적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사회과학대학은 지리학과 3.97대 1,사회복지학과 2.54대 1,인류학과 2.18대 1,정치학과 1.42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법학과는 2백70명 모집에 3백23명이 지원,1.2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원서접수 이틀째인 연세대는 3천2백58명 모집에 5천8백78명이 지원해 1.80대 1의 경쟁률을 보인 가운데 성악과 4.83대 1을 비롯해 의예과 4.10대 1,사회복지학과 4.04대 1,치의예과 3.46대 1 등을 기록했다.36개 모집단위 가운데 3개는 미달됐다. 고려대는 4천83명 모집에 7천2백89명이 지원,평균 1.79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학과별로는 토목환경공학과가 56명 모집에 2백62명이 몰려 4.68대 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한 가운데 42개학과가 정원을 넘어섰으며 16학과는 정원에 미달됐다. 서울대는 신입생 모집원서접수 첫날인 3일부터 모집정원을 넘어서는 등 올 입시의 경쟁률이 최소 5대1을 넘는 사상초유의 높은 경쟁률이 예상되자 97학년도부터는 「예비사정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예비사정제도는 수능성적과 내신성적 등을 기준으로 3배수 정도의 수험생에게만 응시자격을 부여하는 것이다. 서울대는 이에 대한 구체적 규정을 다음달 말까지 확정할 방침이다.
  • 「데라우치 문고」 135점 돌아온다

    ◎일 대학,11일 경남대에 반환/추사작품 등 조선시대 희귀본 많아 【마산=이정규 기자】 초대 조선총독을 지낸 데라우치 마사타케(사내정의)가 약탈해간 문화재 98종·1백35점이 국내로 돌아온다. 경남대학교(총장 박재규)는 일본 야마구치여자대학 부속 도서관이 소장한 「데라우치문고」 가운데 학술적 가치가 높은 조선시대의 자료를 기증받는다고 7일 발표했다.기증식은 오는 11일 야마구치대학에서 열린다. 국내 반환은 한일의원연맹(한국측 회장 김윤환 민자당대표)과 한일친선협회중앙회(한국측 회장 김수한 민자당고문)가 지난 해부터 공동으로 추진해 맺은 결실이다.일제가 약탈해간 나머지 문화재의 반환에도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반환되는 자료중 추사 김정희의 완당 법첩주눌인서(원당 법첩주눌인서)와 조선 28대 순조임금의 사자인 익종이 지금의 국교와 같은 선동학교에 입학할 때의 의식을 그림과 글로 엮은 정축입학도첩 등 희귀본도 있다. 주로 조선조 17∼19세기의 서한집과 시집류로 인조때 민성휘가 진하부사로 가면서 지은 무진조천별장첩과 이시발의 차정언은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데라우치 문고는 일본 야마구치여자대학 부속도서관이 소장한 개인문고로 한국의 고문서 1천5백여점과 중국과 일본의 고문헌 수천점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자료는 데라우치의 후손들이 야마구치현과 자매결연을 한 경상남도의 대학에 기증하고 싶다는 뜻에 따라 경남대로 오게 됐다.
  • 휴일 늦단풍 행락차량 몸살/내장산 10만 인파

    ◎귀경 고속도 체증 극심 11월 첫째 휴일인 5일 전국 유명산과 관광지에는 막바지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려는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 즐거운 한 때를 보냈다. 이로 인해 고속도로와 주요 국도에는 하오가 되면서 귀경차량들이 한꺼번에 몰려 밤늦게까지 극심한 체증을 빚었다. 전북 정읍 내장산 국립공원에는 올 최대인파인 10만여명의 행락객이 몰려 서래봉을 비롯한 신선봉과 장군봉 등 9개 봉우리 주변에서 빨갛게 물든 장관을 감상했다. 행락객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평소 승용차로 20여분 걸리는 호남고속도로 정읍톨게이트에서 내장산에 이르는 진입로 16㎞구간은 3∼4시간이 걸리는 등 극심한 교통체증을 겪었다. 지리산과 덕유산 국립공원에도 이날 하루 6만여명의 단풍관광객이 몰려 깊어가는 가을의 정취를 즐겼다. 계룡산 국립공원 등 대전·충남지역 유명 관광지에도 모두 8만여명의 단풍 관광인파가 몰렸다.특히 계룡산에는 이른 아침부터 관광객이 몰려 3만5천여명이 동학사와 갑사,신원사 계곡 등 등산로에서 절정의 단풍을 즐겼다. 제주도에도 관광객과 신혼부부들이 서귀포시 중문단지와 성산 일출봉등에 한꺼번에 몰려 크게 붐볐다.
  • 김지하 생명사상 정리 산문집 「님」 출간

    ◎칼럼·강연·시인론 등 올 발표 글 모음/생명사상 해설집 「생명과 자치」도 곧 선보여 김지하 시인(54)이 자신의 생명사상을 설파하는 산문집 「님」을 솔출판사에서 펴냈다.신문칼럼,오에 겐자부로와의 대담,환경부 강연,언론과의 인터뷰,시인론 등 올해 나온 그의 글과 담론을 한데 묶은 책이다. 「님」을 통해 드러난 그의 생명론은 나름대로 꽤 다듬어진 각론에까지 다다른것 같다.생명,즉 삶 자체가 화두인 지은이의 관심은 끝없이 확산된다.그의 생명은 틈,님,기우뚱한 균형,모심 등 스스로를 풀이하고 살찌울 언어를 찾아내고 지자제 선거,세계화,쓰레기 소각장,삼풍붕괴 등 세상만사에 대한 비판적 해설을 풀어내면서 「그물코」처럼 촘촘하게 벼려진다.그는 썩은 벌레를 파먹는 잡새처럼 이 문제에서 저 문제로 겅중겅중 뛰어다닌다. 지은이는 자신의 생명운동의 기초인 「시천주」의 동학을 축으로 충효타령에 그쳐버린 유교와 합리주의의 벽에 부딛친 서양을 끌어안고 넘어설 것을 해법으로 내놓는다.이같은 큰 틀 속에서 그는 한민족의 문화적 원형인 풍류도의 한사상,이제마의 사상의학,김일부의 정역,마당굿판,풍수학 등 버려져 있던 우리 것을 적극적으로 되살려낸다. 세계화의 물결밑에서 움트는 지방자치의 기운을 짚어내는 지은이는 지방화가 곧 창조적 세계화라고 단언하기도 한다.이에 따라 직장생활하느라 삶터를 떠나 있을 수 밖에 없는 남성들보다 지역내에서 내내 살림하며 아이들을 키우는 주부들에게서 생명의 더 큰 가능성을 읽는다.탐라의 뿌리를 캐는 시인 고영기의 「거친 원목과도 같은 자연적 상상력」을 통해 지역 문학의 중요성을 본 시인은 「상상력이 정권을 잡으라!」고 주문하기까지 한다. 이처럼 세상과 생활에 깊이 밀착돼있는 이 책을 관통하는 것은 그러나 여전히 서정시인의 목소리다.개발의 발길이 제주를 무참하게 쓸어버릴 것을 경계하는 한 글에서 시인은 「1993년 겨울과 1994년 가을에 다시 갔을때 아직도 훼손되지 않은 중간산의 오름들,기이한 느낌의 산굼부리,원시의 비자림,흐드러진 갈대밭,한라산의 단풍진 숲들을 보며 내 마음속 제주의 틈이 다시 석류처럼 벌어지고있음을 느꼈다」고 적고 있다. 산문집에 이어 생태사회연구소 문순홍 박사와의 문답을 통해 생명사상을 해설하는 「생명과 자치」도 같은 출판사에서 나올 예정이다.여기서 그는 그간 자신의 운명을 고스란히 반추하는 이름 「지하」를 접으면서 물맑을 「형」을 새 필명으로 선보인다.앞으로 그의 삶과 글을 새 이름처럼 틀지워가고 싶어 하는 지은이의 애틋한 마음이 보이는듯 하다.
  • “노씨 처벌” 시위·서명 확산/시민단체·학생

    ◎“권력형 부패 전면 수사를” 노태우 전대통령의 비자금과 관련한 시위·집회·성명발표·서명운동 등 국민적 공분 표현이 날로 거세어지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공동대표 손봉호)과 「환경운동연합」(사무총장 최열)등 5개 시민·사회단체 회원 50여명은 30일 상오 11시30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 앞에서 「노태우 전대통령 구속수사 및 대선자금 진상규명 촉구대회」를 가졌다. 이들은 『노씨는 물론 과거 권력자들의 부패에 대해 이번 기회에 철저히 사실을 규명하고 사법처리해야 한다』며 『검찰은 노씨를 즉각 구속수사하는 한편 대통령선거자금 비리 등 5·6공의 권력형부패에 대해서도 전면 수사하라』고 촉구했다. 또 「통일시대민주주의국민회의」·「한국민주청년단체협의회」·「통일맞이 7천만겨레모임」 등 3개 재야단체 회원 10여명은 30일 낮 12시 서울 서대문 네거리 조흥은행 앞에서 5·18 특별법제정 및 비자금 관련자 구속촉구를 위한 서명운동과 선전활동을 했다. 이들은 『현 정권과 노태우 전대통령 사이의 정치적 타협을 경계한다』며 『노씨의 구속과 5·18 학살자 처벌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확산시켜 양측의 정치적 타협을 사전봉쇄하자는 뜻에서 서명운동을 벌이게 됐다』고 밝혔다.이들은 오는 11월3일까지 서명운동을 계속할 방침이다. 한편 이날 하오 2시5분쯤 노씨집 부근 실로암 약국 앞에서는 한국대학원생 대표자협의회(상임의장 장재완) 소속 회원 8명이 『비리주범 노태우 구속』 등의 구호를 외치며 피켓시위를 벌였다. 이밖에 경실련은 경기·대전·청주·익산·춘천·강릉·전주 등 각 지역 조직별로 이날 시위·집회·서명운동 등의 활동을 전개했다. 전북지역 40개 시민·사회단체도 이날 하오 전주시 완산구 동학혁명기념관에서 「5·18 특별법 제정 및 비자금 진상규명을 위한 전북지역 공동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책임자 처벌 등을 촉구했다.
  • 「북경대 한국학연구센터」 세미나 중계

    북경대 한국학연구센터(소장 양통방 교수)는 19·20일 이틀동안 중앙도서관에서 「한국의 전통문화 국제학술연구토론회」를 가졌다.한국국제교류재단등이 후원한 이번 세미나에는 김준엽 사회과학원원장(전고대총장),김정배 고대교수등 국내학자,조중병 천진남개대교수 등 중국학자,이등영 인도쿄외국어대학 교수 등 일본학자와 재미학자등 4개국에서 66명의 학자가 참가,한국의 철학·종교·역사·언어 등 3개분과에 걸쳐 이틀동안 토론했다. 이들중 조교수와 서대숙교수의 발표 내용을 요약 소개한다. ◎한국정치사상과 민족의식/서대연 하와이대 교수 한국민족의 고유사상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반만년 역사와 찬란한 문화전통에도 불구,선뜻 대답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어떤 면에서 그것은 한국문명이 고유사상을 독자적으로 발전시켜오는 역사발전 방식보다는 외래문명·사조를 수용·개선하는 방식을 위주로 발전해 왔다는 경향 때문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불교·유교·기독교 및 민주주의로 대변되는 신문명등 한민족의 지배적 사상들도 모두 외래사상이다. 「대한민국」이란 공화국도 한국국민들이 정치혁명을 통한 건립이라기 보다는 외국세력의 점령과 해방등 부단한 이민족 개입을 통해 형성됐다는 설명이 더욱 비중을 갖는다.현재 한반도의 남북한은 각기 독자적인 외래 정치사상을 신봉하면서 대립해 있다. 역사적으로 고려 및 이조시대는 한국역사에서 외래사상의 가장 왕성한 토착기로 이해될 수 있다.한국의 오랜 역사동안 수없는 이민족의 침략을 받으면서도 강한 민족의식을 유지해왔다는데 이견이 없지만 한국의 민족의식을 담은 독특한 정치사상을 발전시켜왔느냐는 질문에는 부정적이다. 조선말 신문명을 수용할 때나 일본의 강점이후 독립운동을 벌일 때에도 한국의 지도자들은 명확한 사상적 제시에는 실패했었다.3·1운동 역시 내재적인 사상적 지도를 받았다기보다는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라는 외래사상에 더 힘입은 바가 크다.이조말기 대한제국이 성립되는 시기와 과정에 있어서 강렬한 민족의식과 선각자들의 활동은 과소 평가될 수 없다.그러나 그들은 한국정치사상과 가치관정립에는 소홀했다는 평가를 면키 어렵다. 역사적으로 한민족의 사상적 특질은 무엇보다 지금 이곳에서 이상향을 건설해야 한다는 하늘과 인간이 동일시 되는 천인합일적인 현세주의로 요약될 수 있다.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19세기말 동학의 인내천 사상은 이러한 한민족의 사상의 정화다.불교는 한국역사에 찬란한 영향을 끼쳤지만 불교사상의 기본축인 평등사상은 한국문화전통에서 하나의 맥을 형성하지는 못했다.한국의 정치학자들도 한국민족의 의식을 체계화하지는 못했다.한국의 민주주의와 북한의 공산주의도 한국민족에게는 외래사상이다.남북한의 평화적인 통일을 위해서는 남북 양쪽 모두가 다 수용하고 긍정할 수 있는 한국민족의 정치사상을 필요로 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이 시대의 한국지도자들의 과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전통문화와 현대화/조중병 중국 남개대 교수 80년대초 일본의 학견화자씨는 근대화및 전통문화 연구·분석에서 통치계층 중심을 벗어나 농민·어민등 민중의 습관,신앙,우주관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이런 측면에서 한국문화는 역사적으로 다양한 층층 구조를 지닌 다차원의 체계라고 정의된다.종교적으로 한국은 다종교 국가이며 세계 제1의 유교국가면서 동아시아 제1의 기독교국가라는 특성도 지니고 있다. 70년대에 3.5∼13%에 불과하던 기독교는 91년 무렵 24.3%로 성장했다.이에대해 미국 하버드대학의 두유명교수는 전형적인 유교국가가 기독교와 결합,새로운 유교윤리를 창조해내고 있다고 말한다.이같은 종교적 변화와 신흥종교의 발흥은 사회적 격변과 전통사회 와해에 따른 충격으로 발생한 것으로 해석된다.그러나 기독교및 신흥종교의 확산이 산업화의 결과이지 동력은 아니었다는 점에서 한국사회의 현대화는 유교적 토양 연구를 통해 규명될 수 있다. 한국사회의 유교적 특징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교육열과 성취지향적인 사고방식이다.유가의 입신출세적 문화전통은 한국의 소득이 90달러였을때 미국의 2백달러 수준의 교육수준에 이르게 했으며 1백달러를 갓 넘었을땐 3백80달러 수준의 교육정도에 도달하게 했다.쌀재배 문명권의 근면한 노동자세와 이같이 강력한 교육열은 우수한 한국노동력의 기초적인 바탕이며 현대화의 토대였다. 한국문화의 핵심을 이루는 집단주의도 공익 우선의 정치문화와 질서존중사상의 확립에 긍정적인 역할을 했고 경제발전을 주도한 정부및 기업·국민 사이의 조화로운 관계를 설정하는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유교적 전통 이외에도 근대 들어 함양된 국민의 높은 저항정신과 비판의식은 정부의 권한남용과 탈선을 막는데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했다.18세기말 조선왕조는 근대화를 지향하는 내적 요소와 맹아를 키우지 못하고 일제의 먹이로 주저앉았다.그러나 지금에 와서도 한국의 유교적 문화전통은 내용·형식의 변화에도 불구하고,기본성격은 유지하면서 한국문화의 기반이 되고 있다.다른 곳에서는 파산적일 수 있었던 군사독재가 근대화의 일익을 담당했던 것도 유교적 정치전통에 힘입은 바 크다.이같은 점에서 한국의 현대화는 외부영향에 의한 수동적 발전이라기보다는 한국특색의 돌진·쟁취형 현대화로 특징지을 수 있을 것이다.
  • 곽재구씨 시집 「참 맑은 물살」 펴내

    ◎최근 3∼4년 작업모아 책으로/소리꾼 할머니의 서글픈 삶 아름답게 묘사 곽재구 시인(41)의 새 시집 「참 맑은 물살」이 창작과 비평사에서 출간된다.지난 81년 신춘문예를 통해 「사평역에서」로 등단한 시인이 최근 3∼4년간의 작품들을 모아 펴내는 다섯번째 시집이다. 15년간의 시작생활을 통해 그는 우리 문단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정시를 쓰는 한사람으로 꼽혀왔다.누더기같은 삶의 쓸쓸함에서 결곡한 아름다움을 길어올리는 그의 한결같은 시구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희망을 놓지않는 시인의 내면풍경을 엿보게 한다. 이번 시집은 시인의 서정성이 남도소리,설화 등 삶에 아직도 얼비치고 있는 우리것에 대한 천착과 맞물리는 모습을 보여준다.태어나면서 한번 들은 강강수월래로 그만 소리의 길에 접어들어버린 진도 할머니나 갈대꽃을 흔드는 진양조의 처연한 만가가락 등에 얽힌 한맺힌 사연이 펼쳐지는가 하면 성수대교와 백화점 붕괴의 현실이 판소리 사설 형식에 담겨 꼬집힌다. (「조공례 할머니의 찢긴 윗입술」중) (「팍큐소전」중) 구겨진 민족의 삶을 찾아 캘리포니아와 용정까지 넘나드는가 하면 시인은 동학의 현장인 전남 고부 메밀꽃밭에선 동족상잔에 순결을 앗기고에 스민을 떠올리기도 했다(「은선리 오층석탑 이야기」) 곡성땅으로 접어들어 인민군으로,국군으로약수물 받으러 온 외지 차량에 사라져버린 한 친구를 통해 우리 현대사의 그늘을 비춰본다(「물봉선 전」). 보잘것 없는 사람들의 흔한 사연을 바라보면서도 시인의 눈은 그러나 시종 따스함을 잃지 않는다. 구차한 삶의 세목에서 향기와 그리움을 읽어내는 이같은 시에는 삶을 보다 아름답게 만들고 싶어하는 시인의 소망이 깔려있다.
  • 명성황후 1백주기… 재조명 활발

    ◎추모식·숭모제·뮤지컬·TV 다큐 등 기념행사 다양 오는 8일은 조선조 말 역사의 회오리 속에서 비극적으로 삶을 마친 명성황후의 1백주기가 되는 날.일본인들에게 무참히 살해당한 그 넋을 기려 다채로운 기념행사가 열리는 한편 그동안 부정적으로 평가돼 온 그의 역할에 대한 재평가 움직임이 일고 있다.명성황후 현창회(회장 민영복)가 5일 추모식을 가진데 이어 한국여성예림회(회장 이온순)는 8일 비극의 현장 경복궁 녹원에서 숭모제를 열고 「독립정신」에 실린 명성황후의 사진을 바탕으로 황후복을 입은 초상화 영정(그림 권오창)을 제작,발표한다.KBS­1TV는 7일 「명성황후 시해의 진실」이라는 특집방송을 하며 뮤지컬 전문 제작사인 「에이콤」은 뮤지컬 「명성황후」를 11월 공연할 예정이다. 역사학자 박성수 교수(정신문화연구원)의 기고문과 뮤지컬·특집방송의 내용을 소개한다. ◎뮤지컬 「명성황후」/일제에 맞서다 참변 당한 국모로 묘사 명성황후(민비)시해 1백주기를 맞아 「국모로서의 민비」에 초점을 맞춘 뮤지컬 한편이 선보인다.소설가 이문열씨의 첫 창작희곡「여우사냥」을 노래위주의 뮤지컬로 꾸민 「명성황후」(11월17∼26일 서울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 이씨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소설 「사람의 아들」이 연극으로 공연된 적은 있지만 이씨가 본격적으로 쓴 창작희곡이 무대화되기는 이번이 처음.이씨는 4년전부터 뮤지컬 전문 제작사인 「에이콤」(대표 윤호진)과 함께 올해로 1백주년이 되는 민비시해 사건을 소재로 한 뮤지컬 공연을 준비해왔다. 희곡「여우사냥」은 이씨가 지난 94년 문학전문지「세계의 문학」봄호에 2백자 원고지 7백장 분량으로 발표했던 것으로 이번 공연을 위해 한국예술종합학교 김광림 교수가 새롭게 각색했다.고종황제의 드센 아내,시아버지 흥선대원군에 맞서는 며느리로서의 민비라는 기존의 도식을 거부하고 민비를 프랑스의 잔 다르크처럼 조국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조선의 국모로 그리고 있는 것이 특징.작가 이씨는 작중인물인 다이장군의 입을 빌려 『온몸으로 껴안으려 한 조국으로부터/오히려 버림받고/홀로 강한 외적과 맞서다/불꽃속에 사라져 간 조선의 잔 다르크』라고 명성황후를 칭송하고 있다. 연출을 맡은 윤호진 교수(단국대 연극영화과)는 『이씨의 창작희곡에서 대사부분을 모두 없애고 이를 노래로 처리해 마치 한편의 오페라처럼 만들어 보고 싶다』면서 『외국의 뮤지컬도 음악과 노래 위주로 흘러가고 있는 추세인 만큼 우리 뮤지컬의 선진화를 위해서도 이런 시도는 바람직한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화씨가 타이틀 롤을 맡았으며 영화 「전태일」을 촬영중인 젊은 연기자 홍경인,뮤지컬 전문배우 김민수,성악가 윤치호씨 등이 출연한다.평일 하오4시·7시30분,토·일 하오3시·6시 공연.3452­9055 ◎K­1TV 다큐 「명성황후 시해의 진실」/사건당시 현장도·증언 통해 진실 추적 1895년 10월 8일 새벽.세계사의 큰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있던 조선 왕조의 국모 명성황후가 일본낭인들에 의해 무참히 시해된다. 1백년을 맞는 이날을 기해 KBS­1TV「역사추리」팀은 그동안 일본에 의해 왜곡된 그날의 현장을 재연하고 명성황후에 대한 재평가 작업을 시도한다.「명성황후 시해의 진실」편으로 방송시간은 7일 하오 8시.제작진은 일본정부에 의해 조직적으로 저질러진 시해사건의 진실을 당시 영국 공사 실리어가 확보하고 있던 「사건현장도」「경복궁 습격도」,시해당시 「일본군위치도」등을 바탕으로 컴퓨터 그래픽화면으로 생생히 되살린다.이를 통해 여전히 시해책임을 부인하고 있는 일본정부의 기만성을 폭로한다는 의도다. 특히 제작팀은 이노우에와 이토 히로부미,야마가타등 당시 일본 천황의 직권을 대행하고 있던 수뇌들이 미우라를 조선에 부임시키고 이어 시해전후 활발한 접촉을 벌인 사실을 증언과 자료집을 통해 제시,일본정치권의 치밀하게 의도된 범행임을 제시한다. 또 당시 미국 다이 장군의 자문으로 활약한 러시아의 건축가 사비틴의 시해당일 상황 증언 테이프를 시청자들에게 공개할 계획.장해랑 PD는 『사비틴 증언의 경우 이미 알려진 사실이지만 시청자들이 그동안 일본역사관에 의한 왜곡된 사실에 너무나 익숙해있기 때문에 이를 수정하기 위해 되도록 많은 증언,사진들을 보여줄 생각』이라고 설명한다. 이와관련,1895년 명성황후 시해전 일본신문에 게재된 삽화 몇점도 소개된다.일종의 「풍속화」로 고종과 함께 외국공사를 알현하는 명성황후를 여우의 얼굴을 한 꼭두각시로 폄하하거나 아예 기모노차림을 한 일본여자로 묘사한 것들이다. 프로그램 중간에 삽화형식의 드라마와 함께 김자영 아나운서가 명성황후 연극현장과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명성황후가 누워 있는 「홍릉」을 찾아 리포트한다. ◎명성황후 1백주기를 맞아/“드센 여자·족벌정치가” 일서 왜곡/한국침략에 방해… 장애물 없애려 살해/박성수 정신문화연구원 도서관장 「중전이 밤중에 적도의 독검에 맞아 시해되었다.세상 천지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저상일월) 지금으로부터 꼭 100년전인 1895년 10월8일 밤 경복궁 구중궁궐 안에서 국모가 일본군에 살해당한다는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다.우리나라 역사상 처음 있는 변란이었다.그러나 실제로 일어나고 말았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돌이켜 보면 1895년은 동학란이 일어나고 청일전쟁이일어난 이듬해로서 지방에는 민란과 콜레라의 병란이 일어나고 중앙에는 일본군이 가득차 마침내 경복궁을 습격하는 변란이 일어나고 말았다. 사변이 일어난지 1세기가 지난 오늘 살인범의 정체가 누구인지 이미 백일하에 들어났다.다름 아닌 서울 남산에 자리잡고 있던 일본 공사관의 주인공들이 범인이었다.일본 공사 미우라(삼포오루)란 자는 살인 전문가였고 하수인인 구마모토파 깡패는 일본 제일의 야쿠자였다. 그러나 아직도 풀리지 않은 것이 있으니 처참하게 살해당한 민비(명성황후로 추존)자신에 대한 우리들의 역사적 평가이다.오랫동안 민비는 시아버지 대원군과 싸워서 정권을 잡은 비정의 며느리요 민씨 일족을 권좌에 앉혀 온갖 부정부패를 자행하게 만든 족벌정치가로서 비난받아 왔다.심지어는 그녀를 청국말년의 여걸 서태후에 비기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혹평 뒤에는 일제 침략자와 이에 뇌동한 친일파들의 모함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그래서 민비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다시 하여야 한다는 의견이 나와 호칭부터 명성황후로 고치고 경복궁 안 침소 옥호루(현재 경복궁 안 민속박물관 옆)자리에 조난비를 세워 그날의 참사를 잊지 않게 하고 일제 침략의 희생자로서의 민비상을 국민에게 보여주고 있다.특히 금년은 광복 50주년으로서 그녀의 위상을 다른 누구보다 바로 잡아야 하게 되어 있다. 먼저 생각할 것은 일제가 왜 민비를 죽이려 들었는가 하는 점이다.동학란을 구실로 한국에 파견한 일제는 처음부터 한국 침략의 야욕을 품고 있었다.즉 청일 전쟁을 도발하기 전에 각의에서 한국의 주권을 빼앗기로 결의했다.그러나 전쟁에는 이겼으나 열강의 강한 견제로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되자 민비를 죽여 한국에 있어서의 일본 세력을 만회하려 했던 것이다.간단히 말해서 민비가 침략에 장애물이기 때문이었다. 민비는 당초에 강화도 조약을 맺고 개항을 결심했던 인물이고 일본에 대해서 처음에는 우호적이었다.그러나 1894년의 갑신정변 이후 일본의 침략 야욕을 간파한 민비는 반일정책을 쓰기 시작했다.일제 침략을 막기 위해서는 청국과 러시아의 힘을 빌릴 수 밖에 없었다.민비의 이러한 대외정책을 지지하는 세력을 수구파라 하고 친일세력을 개화파 또는 독립당이라 부르고 있으나 명칭부터가 잘못되었다. 흔히 구한말 국제정세를 요즘의 국제환경에다 비겨 4강+2약 운운하나 당시의 침략세력은 유일하게 일본이었다고 보아야 한다.친일 개화파는 누가 진정한 적국인가를 알지 못하고 급진적인 개혁을 부르짖어 나라안의 정치싸움을 격화시켰고 외적에게 침략의 틈을 보이고 말았다. 민비가 참살당한 뒤 친일 개화당이 다시 정권을 잡고 단발령을 선포하게 되니 나라안은 뜨거운 솥끓듯 달아 올랐다.그러지 않아도 동학란과 청일전쟁으로 국토가 완전히 폐허로 변했는데 설상가상으로 필요없는 개혁을 시도하여 나라를 어지럽히니 이 나라의 망국이 시작되었다고 모두가 개탄하였다.그래서 전국의 선비들이 무기를 들고 있어났으니 을미의병이었다.을미의병은 독립전쟁의 시작이었다. 만일 민비가 죽지 않고 살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그리고 나서 최근에 나온 「여우사냥」등 소설을 읽어보아야할 것이다.
  • 이강년 선생(이달의 독립운동가)

    ◎구한말 의병장… 「수도탈환 작전」 주도/제천·죽령서 일군 무더기 생포 “전과”/청풍전투서 잡혀 51세로 옥중 순국 「한평생 이 목숨 아껴본 바 없거늘 죽음 앞둔 지금에서 삶을 어찌 구하랴만 오랑캐 쳐부술 길 다시 찾기 어렵구나」 구한말 의병장으로 항일구국운동을 펼치다 옥중순국한 운강 이강년(1858년 12월30일∼1908년 10월13일)선생이 남긴 옥중시의 한 대목이다. 선생은 이 시처럼 일제의 국권침탈만행에 대항해 죽음을 가벼이 여기면서 싸운 애국자였다.선생은 22세 때인 1880년 무과에 급제,선전관등을 지내다 1884년 갑신정변이 일어나자 관직을 사퇴했다.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전개되자 동학군에 투신,심산유곡을 누볐으며 이 경험은 장차 의병활동에 큰 도움이 됐다. 1894년 청일전쟁과 1895년 명성황후시해등 일련의 사건으로 의암 유인석 등이 을미의병전쟁에 나서자 선생도 1896년2월 고향인 경북 문경에서 의병모집활동을 시작했다.유인석은 유학자로서 당시 영남유림의 정신적 지주였다.선생은 우선 가산을 털어 의병을 모으고는 왜적의 앞잡이로 지목된 안동관찰사 김석중 등 3명을 붙잡아 목을 베었다. 이어 선생은 안동의 창의대장 권세연과 함께 고성에서 일본군과 처음 전투를 벌인 뒤 제천으로 이동해 유인석 의병부대에 합류했다.유인석의병장의 유격장이 된 선생은 수안보 병참부대 공격등 많은 전투에서 뛰어난 전공을 세웠다.그러나 유인석선생이 일제와 관군에게 쫓겨 요동으로 건너가자 1897년 뒤따라 요동으로 갔다.요동에서 이주민 정착을 위해 힘을 쏟던 선생은 고국에서 항일의식을 고취하는 일이 더욱 시급하다고 판단,다시 단양으로 되돌아왔다.한동안 단양에서 충주 유림과 함께 의병전술등을 연구하던 선생은 1905년 조선의 외교권등을 박탈하는 을사조약이 체결된 데 이어 1907년 조선군이 해산되자 다시 의병운동에 돌입했다. 원주에서 군사를 모으고 병장기를 갖춘 선생은 기세를 모아 제천으로 진군,민긍호·조동교·오경묵·정대무 등 다른 의병장과 합류해 크게 전투를 펼쳤다.광무황제는 선생의 활약상을 듣고는 선생을 도체찰사에 제수하면서 『의병을 일으키는 초모장으로 임명하니 인장과 병부를 새겨 쓰도록 하고 명을 따르지 않는 자가 있으면 관찰사와 수령을 먼저 베이고 파직해 내쫓으라』는 내용의 밀지를 내렸다. 제천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자 전국 곳곳의 의병이 몰려들어 선생은 도창의대장으로 추대됐다.선생은 이어 충주에 근거하고 있는 일본군을 공격하기로 다른 의병장과 약속하고 진격했으나 공격시기를 놓쳐 충주공격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선생의 의병부대는 그 뒤 단양·영월등지에서 일제 및 관군과 대치,다소 불리한 상황에서 전투를 펼쳤다.선생은 이 가운데 제천과 죽령에서 각각 적 2백여명씩을 생포하는등 큰 전과를 올려 일제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그러나 겨울에 들어서면서 선생이 병에 걸리는 바람에 풍기전투에서 대패,의병운동의 기세가 꺾이게 됐다.진열을 가다듬어 서울 진공작전을 준비하던 선생은 전국의 의병장과 함께 작전을 펼치기로 하고 서울로 행군,경기도경계에서 일제와 여러 차례 전투를 치렀다. 추운 날씨와 적의 거센 반격으로 서울진공에 실패한 선생은 의병부대를 강원도쪽으로 회군,1908년초부터 다시 치열한 항일전쟁을 벌였다.선생은 이해 3월12일 강원도 인제 백담사전투를 비롯,안동·봉화 등에서 일제 수백여명을 쳐부수거나 사로잡았다.선생은 그러나 같은 해 6월4일 청풍 까치봉전투에서 장마비로 화승총을 쏠 수 없게 된 탓에 적의 총에 발목을 맞고 사로잡히고 말았다. 「탄환의 무정함이여,발목을 다쳐 더이상 나아갈 수 없구나,차라리 심장에 맞았더라면 이런 수모를 받지 않을 것을」 선생은 옥중에서 당시 심정을 이렇게 시로 남겼다.선생은 여러차례 재판 끝에 교수형을 언도받고 51세로 의기에 찬 일생을 마쳤다.정부는 선생의 공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 실고생 인문고 전학 허용/고입 「선지원」 3개교로 제한

    ◎내년부터/특수고 입시 97년 필기 폐지/서울시 교육청,교육개혁 일정 발표 내년부터 실업계 고교에서 인문계 고교로의 전학이 허용된다. 또 내년부터 시범실시되는 고교입시 「선복수지원 후추첨방식」에 따른 지망학교의 수는 3개교로 제한된다. 서울시교육청은 20일 「5·31 교육개혁조치」에 따라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교육개혁과제 세부추진일정을 마련해 발표했다. 추진일정에 따르면 교육과정이수에 지장이 없는 범위내에서 학생들에게 진로선택의 기회를 주고 학교간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내년도 1학기부터 인문계·실업계및 특수목적고간의 전학을 전면 허용키로 하고 올해말까지 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한 뒤 새로운 시행기준을 마련하기로 했다. 현행 교육법 시행령은 일반 또는 실업계 고교에서 특수목적고로 전학하거나 인문계 고교에서 실업계 고교로 전학할 때는 2학년 1학기까지,동일계열 고교간에는 3학년 1학기까지 전학을 허용하고 있으나 실업계 고교에서 인문계 고교로의 전학은 불허하고 있다. 시교육청은 또 「선복수지원 후추첨방식」은 96학년도의 경우 서울시청을 중심으로 반경 3㎞이내에 있는 23개교로 공동학교군을 설정해 시범실시하되 당초 무제한지망이 가능하도록 했던 것을 3개교까지로 제한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현재 서울지역에 거주하는 중3년생은 누구나 공동학교군내 학교중에서 3지망까지 자유롭게 지원할 수 있으나 지원자가 해당학교의 정원을 넘어설 경우 교통편의 등을 고려해 배정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학교장 초빙제는 오는 11월까지 정년 또는 전보로 학교장 자리가 비는 학교를 우선으로 하되 국민학교의 경우 3개교,중학교와 고교에서 각각 1개교씩 모두 5개교를 선정해 시범 실시하기로 했다. 이밖에 오는 97학년부터 극심한 입시과열경쟁을 완화시켜 중학교 교육과정을 정상화하기 위해 특수목적고의 학생선발방식을 개선,필기고사를 폐지키로 했다. 시교육청은 아울러 세계화교육과 특수·영재교육을 중점적으로 강화시키기로 했다.
  • DMZ 생태계(외언내언)

    1966년 비무장지대(DMZ)에서 최초의 학술조사가 한국자연보존연구회에 의해 실시되었다.포연이 사라지고 인적이 완전히 끊긴지 13년 뒤 민통선안의 생태계는 엄청나게 달라져 있었다. 옛 마을은 아카시아숲으로 뒤덮여버렸고 흐르는 개울에는 팔뚝만한 메기가 물속을 지배하고 있었다.약육강식이 그대로 드러난 모습이었다. 그뒤로도 비무장지대의 학술조사는 여러차례 실시되었고 그결과 세계 「동식물 자원의 보고」로,「철새의 낙원」으로 널리 알려졌다.인위적으로 사람의 발길을 완전히 차단해놓고 40여년이 지난 「금단의 지역」.그런 땅이 지구상에 또 어디 있을까. 그래서 세계의 생태계연구단체들은 우리의 비무장지대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80년 국제자연보호연맹은 국제자연공원조성을 제의해왔고 91년 유엔환경계획(UNEP)은 국제환경공원안을 제시한 적이 있다.유네스코는 지난해 이 지역을 세계 생태계보호지역으로 지정하기 위해 조사단을 파견하기도 했다. 야생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는 비무장지대는 철새와 희귀동물의 낙원으로 바뀌어졌다.멸종위기에 처한 새들의 마지막 피난처가 된 것이다.세계적으로 희귀한 재두루미 두루미 독수리의 서식지가 비무장지대 안에 있다.전세계에 4천4백마리 남은 재두루미중 절반이 이곳에서 겨울을 난다.몇년째 종적을 감춘 광릉 크낙새도 이곳으로 서식처를 옮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환경부는 비무장지대인근의 생태계 보고중 3곳을 유네스코의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토록 요청하기로 했다고 한다.이와함께 민통선에 대한 남북공동조사를 실시하는 방안도 강구하고 있다는 보도다.그동안 비무장지대의 공동학술조사는 우리측에 의해 여러차례 제의되었으나 북한측은 묵묵부답이다.얼마전 광복50주년 기념사업으로 생태계 및 자원공동조사가 제의됐지만 역시 반응이 없는 상태. 유네스코의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돼 세계적 동식물보호지로 선포되는게 더 급한 일일것 같다.
  • 인터넷 등 컴퓨터 통신망 이용 최첨단 학술제 연다/대학가 화제

    ◎홍익대,10월23일부터 5일간/교수·학생 5명 LAN활용 화상회의/대형스크린 통해 중계… 공간 제한 극복 「첨단 뉴미디어를 이용한 대학학술제」­첨단정보통신망인 인터넷과 화상회의방식의 컴퓨터 영상기법을 도입한 새로운 형식의 학술제가 홍익대에서 펼쳐진다. 국내대학으로는 처음 시도된 이 행사는 강당과 같은 제한된 공간에 한정된 수의 학생이 참가하던 기존의 심포지엄이나 토론회의 폐쇄적인 틀을 깼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특히 학생의 자치기구인 총학생회의 주최로 열리는 인터넷이 접속된 최첨단컴퓨터행사여서 대학문화의 새 장을 여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홍익대 총학생회는 국내 대학에선 첫 시도이고 학생의 인식도 부족한 만큼 우선 이들에게 인터넷과 화상회의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여기에 맞게 행사구호도 「이건 단지 시작일 뿐」으로 내세웠다. 오는 10월23일부터 5일동안 펼쳐질 이 학술제의 꽃은 「모의화상토론회」.교수와 학생 5명이 각각 교수실·체육관등에 떨어져서 근거리통신망(LAN)으로 연결된컴퓨터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담은 화상과 함께 대화하는 방식의 토론회다.아직 교내 근거리통신망이 구축되지 않아 체육관과 대운동장에 설치한 가로 9m,세로 7m의 대형스크린으로 학생에게 중계하는 「편법」을 쓸 예정이지만 과사무실 단위까지 구축될 내년부터는 모든 홍익가족이 참여할 수 있게 된다. 총학생회는 궁극적으로 접속망을 통해 다른 국내대학은 물론 외국대학과도 국경을 초월한 공동학술제도 꿈꾸고 있다.
  • 서울/도심 23고교 공동학군 설정/시 교육청

    ◎「선지원 후추첨」 실시따른 제도 개선/내년부터 거주지 관계없이 지원 가능/10월말까지 최종안 확정 서울시교육청은 9일 고교의 「선지원 후추첨」실시에 대해 내년부터 도심 23개 학교를 공동학교군을 설정,이들 학교에는 거주지역에 관계없이 누구나 지원하게 한뒤 추첨 배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시행여부 등이 교육감에게 완전히 위임된 중학교의 경우 고교의 시범실시 결과를 보고 시행시기와 배정방법 등을 결정하겠다며 시행을 유보했다. 시교육청은 96학년도부터 고교에 「선지원 후추첨」제를 시범실시하기로한 교육부 방침에 따라 이같이 시행하기로 하고 오는 9월 공청회를 열어 여론을 모은뒤 10월말까지 최종안을 확정하기로 했다. 이날 발표된 「선지원 후추첨제」 시범실시안에 따르면 서울시청을 중심으로 반경 3㎞안 도심에 있는 경복·용산·중앙고 등 서울시내 5개 학군의 남고 11개교,여고 12개교 등 23개 인문계 고교를 공동학교군으로 정해 이들 고교에는 서울 전지역에서 누구나 지원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지원방법은 남학생과 여학생은 공동학군안의 남고 11개교와 여고 12개교에 순위를 매겨 지원하도록 해 최대한의 지원기회를 줄 방침이다. 다만 학생 배정결과 어느 학교에 지원자가 넘쳐 수용능력을 초과하면 교통편의·근거리·거주기간 등을 고려하는 현행 추첨배정방법에 따라 학생들을 배정하기로 했다. 중학교는 의무교육인데다 현행 근거리 배정원칙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정착돼 있다고 보고 일단 시행을 미뤘다. 서울시교육청 권영찬 중등국장은 『학부모들의 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해 학생들의 수용에 여유가 있는 이 지역을 우선적으로 시범대상으로 정했다』면서 『시범실시에서 드러나는 부작용들을 개선해 점차 확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공동학군에 지정된 23개 고교는 다음과 같다. ▲1학군=중앙·동성·경신·덕성여·풍문여·혜화여 ▲3학군=장충·계성여·숭의여 ▲4학군=용산·배문·수도여·보성여·신광여 ▲5학군=인창·환일·한성·이화여·금란여·중앙여 ▲6학군=경복·대신·배화여
  • 8월의 문화인물/김구 선생

    ◎조국독립에 평생바친 민족의 거인/저서 「백범일지」 「도위실기」 등 남겨 문화체육부는 8월의 문화인물로 독립운동가 백범 김구(1876∼1949년)선생을 선정했다. 황해도 해주 태생인 백범은 국내에서 항일운동을 벌이다 3·1운동 후에는 상해임시정부 주석으로 독립투쟁을 지휘했으며 해방후 귀국,통일정부 수립에 앞장섰던 민족주의자. 백범은 1884년 18세에 동학에 입교,이듬해 동학군 선봉장으로 활약하다 만주로 가 의병단에 가입했다.21세때 국내에 들어와 왜병중위를 살해한 혐의로 사형이 확정된후 고종황제의 특별사면으로 형집행이 중지됐지만 석방되지 않아 탈옥,공주 마곡사의 승려가 됐다. 1919년 3·1운동 직후 상해로 망명해 임시정부 초대 경무국장,내무총장,국무령을 지냈다.한국독립당을 결성,항일무력 활동을 전개했고 한인애국단을 조직 윤봉길·이봉창의거를 지휘했다.1934년 중칭(중경)에서 한국광복군을 조직,이듬해 임정 주석에 선임돼 일본군에 강제징집된 학도병들을 광복군에 편입시키고 시안(서안)과 안후이성(안휘성)에 광복군특별훈련반을 설치,미육군전략처와 제휴해 한반도 수복 군사훈련을 지휘하던중 광복을 맞았다. 19 45년 12월 모스크바 삼상회의에서 한국신탁통치가 결의되자 반탁운동을 전개했고 48년 남한만의 단독총선을 실시한다는 유엔결의에 반대,통일정부수립을 위한 남북협상을 제창,북한에가 정치회담을 가졌으나 실패했다.이후 정부수립에 불참한채 민족통일 원칙을 주장하다 49년 6월 안두희에게 암살당해 국민장으로 효창공원에 안장됐다.지난 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됐고 서울 남산공원에 동상이 세워졌다.저서로는 백범일지,도왜실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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