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동포
    2026-02-22
    검색기록 지우기
  • SR
    2026-02-22
    검색기록 지우기
  • 3월
    2026-02-22
    검색기록 지우기
  • 비밀
    2026-02-22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9,993
  • 집 찾아온 아버지 흉기로 살해한 30대 중국 동포 검거

    집 찾아온 아버지 흉기로 살해한 30대 중국 동포 검거

    집으로 찾아온 아버지에게 흉기를 휘둘러 숨지게 한 30대 남성이 경찰에 검거됐다. 경기 안산단원경찰서는 존속살해 혐의로 중국 국적인 30대 남성 A씨를 검거했다고 17일 밝혔다. A씨는 지난 15일 오후 1시쯤 안산시 단원구 자택에서 자신을 찾은 아버지 B(60대)씨에게 흉기를 휘둘러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이튿날인 16일 B씨 부인으로부터 “아들 집에 간 남편과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신고를 접수했다. 같은 날 1시쯤 A씨 집으로 출동한 경찰은 소방당국의 도움을 받아 닫힌 창문을 열고 들어갔고, 숨진 B씨 옆에 있던 A씨를 체포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범행 동기에 대해 횡설수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B씨의 정확한 사인을 확인하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시신 부검을 의뢰할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최근 A씨 거주지의 월세 임대 기간이 만료되자 B씨가 A씨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오기 위해 방문했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며 “오늘 중으로 A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한 뒤 구체적인 경위를 파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文대통령, 돌아온 홍범도 장군에게 ‘최고훈장’ 서훈

    文대통령, 돌아온 홍범도 장군에게 ‘최고훈장’ 서훈

    “장군께 드리는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은 대한민국의 영광인 동시에 장군의 정신을 지키겠다는 굳은 다짐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17일 봉오동 전투 전승 제101주년을 계기로 고 홍범도(1868~1943) 장군에게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가 서훈했다. 일제강점기 일본군도 ‘하늘을 나는 장군’이라며 두려워 했던 홍범도 장군에게는 1962년 항일 무장투쟁 공적을 인정해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서훈됐지만, 순국 78년만에 고국 품에 돌아온 것을 계기로 공적을 추가 인정해 59년 만에 건국훈장 최고영예인 대한민국장 서훈이 결정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국빈방한 중인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일린 훈장 수여식에서 “광복절 날 대한민국 독립전쟁의 영웅이자 겨레의 긍지인 홍범도 장군을 마침내 조국에 모셨고 오늘 대한민국 최고의 훈장을 추서하게 됐다”며 우원식 홍범도기념사업회 이사장에게 훈장증을 전했다. 문 대통령은 “1962년 정부는 장군께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수여했지만, 안타깝게도 장군의 후반기 생애는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 국민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1992년 수교 후에야 일제강점기 연해주의 동포들이 중앙아시아에 강제이주될 때 카자흐스탄이 우리 동포들을 따뜻이 품어 주었고 동포들도 카자흐스탄의 발전과 화합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면서 “그와 함께 카자흐스탄은 물론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의 자부심이자 정신적 기둥이었던 장군의 전 생애가 전설 속에서 걸어 나와 위대한 역사적 사실로 우뚝 서게 됐다”고 설명했다 장군에게 대한민국 최고훈장을 수여하게 된 배경에는 일생을 독립운동에 바친 공적 외에 전 국민에게 독립 정신을 일깨워 국민 통합과 애국심 함양에 기여한 공적이 있기 때문이라고 청와대는 설명했다. 또 옛 소련의 스탈린에 의해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한 뒤 동포사회 지도자로서 고려인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긍지를 제고하기 위해 힘썼으며 현재까지도 고려인 사회 내 한민족 정체성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도 감안했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홍 장군과 관련된 2건의 사료를 전달했다. 1943년 순국 당시의 사망진단서 원본과 말년에 수위장으로 근무하셨던 고려극장의 사임서 복사본이라고 청와대는 밝혔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민족 공연단체로 평가받는 카자흐스탄 국립 고려극장은 1942년 크즐오르다로 강제이주된 홍범도 장군의 구술을 바탕으로 홍 장군의 항일 투쟁을 그린 연극 ‘의병들’을 최초로 상연한 곳이기도 하다. 한편 광복절인 지난 15일 국내로 봉환된 장군의 유해는 국민 추모기간을 거쳐 18일 국립 대전현충원에 안장된다.
  • 박노자 교수,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에 문 대통령 왜 비난?

    박노자 교수,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에 문 대통령 왜 비난?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한국학 교수가 16일 홍범도 장군의 유해 봉환 과정에서 고려민족의 여론은 무시됐다고 주장했다. 청와대는 이날 문재인 대통령이 광복절인 전날 저녁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식이 끝난 뒤, 특사단의 황기철 국가보훈처장, 우원식 홍범도기념사업회 이사장, 국민대표 조진웅 배우와 가진 대화를 소개했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우리에게 매우 의미있는 귀환”이라면서, “카자흐스탄의 고려인 사회가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떠나보내서 섭섭해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우 이사장은 “카자흐스탄 고려인들이 지도자를 보내드리게 되어 아주 섭섭해한다”고 답했고, 문 대통령은 고려인의 아쉬움을 달랠 수 있도록 홍 장군 묘역을 공원화하는 방안 등을 제안했다. 홍범도기념사업회 홍보대사로 활동할 예정인 조 배우에게는 홍 장군의 고귀한 뜻을 적극적으로 알리도록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박 교수는 “문제는 ‘섭섭한’ 감정만이 아니라 ‘민주주의’”라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은 홍 장군 유해 봉환 문제에 있어서 카자흐스탄 국가 권력자들과 협의했지 고려인 사회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한 게 아니라고 박 교수는 비판했다. 그는 그동안 대한민국 정부는 소수의견을 무시하고 행정편의주의적으로 행동했는데 이번 정권에서도 달라진 게 없다고 덧붙였다. 박 교수는 “상징 정치와 홍 장군에 대한 예우는 좋다”면서 “홍 장군을 그리 존경한다면 홍 장군 부대원들의 후손들이 포함된 재한 고려인들에게는 예컨대 간이 귀화의 가능성을 열어두면 안될까요”라고 제안했다. 특히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가운데 상당수는 한국으로의 ‘영구 귀국’을 원하는데, 대한민국이 지금 그들에게 해주는 것은 ‘체류권 부여’일 뿐라고 한탄했다. 러시아 출신인 박 교수는 2001년 한국 여성과 결혼해 한국인으로 귀화했으며, 역이민자인 고려인동포들의 삶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다.
  • 文, 배우 조진웅에 “홍범도 장군 고귀한 뜻 적극 알려 달라”

    文, 배우 조진웅에 “홍범도 장군 고귀한 뜻 적극 알려 달라”

    文, 홍 장군 유해 송환에 “매우 의미있는 귀환”“간혹 홍범도 장군 모르는 분 있다” 홍보 당부조진웅, 홍범도기념사업회 홍보대사 활동영화 ‘암살’ 등서 무장 독립투사로 열연많은 고려인들 유해수습, 추모식 지켜봐문재인 대통령이 일제강점기 일본 군대에 저항해 무장 투쟁을 벌였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인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광복절을 맞아 고국으로 돌아온 것과 관련해 “매우 의미있는 귀환”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영화 ‘암살’ 등에서 독립투사 역할을 맡았던 배우 조진웅에게 “항일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홍 장군의 고귀한 생애와 뜻을 적극적으로 알리도록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전날 78년만에 고국 땅으로 돌아온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의 유해는 오는 18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영면한다. 문 대통령은 전날 저녁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식 직후 특사단과 환담한 자리에서 조진웅에게 “국민 중에는 홍범도 장군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하는 분들도 간혹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고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이 16일 서면브리핑을 통해 전했다. 환담에는 특사단인 황기철 국가보훈처장, 홍범도기념사업회 이사장인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 조진웅이 함께 했다. 조진웅은 영화 ‘암살’과 ‘대장 김창수’에서 독립투사의 역할을 맡았으며, 이번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을 위해 국민대표 자격으로 특사단에 포함돼 카자흐스탄을 방문했다.보훈처장 “장군의 키 육척 넘어 보여” 문 대통령은 또 “카자흐스탄의 고려인 사회가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떠나보내 섭섭해 않느냐”고 물었고, 우 의원은 “섭섭해한다. 코로나19로 인한 인원 제한으로 유해 수습과 추모식에 들어오지 못하고 외곽에서 지켜보는 분들도 많았다”고 현지 분위기를 소개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고려인들로부터 워낙 존경을 받으셨기 때문에 섭섭해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라면서 “아쉬움을 달래고 지속적으로 추모의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묘역 공원화 방안 등 후속 작업에 만전을 기해 달라”고 주문했다. 문 대통령이 홍 장군의 유해 수습 과정을 묻자 황 처장은 “전 과정이 순조로웠다”면서 “유해를 수습해보니 장군의 키가 육척장신이 넘어 보였다”고 답했다.홍범도 장군 78년 만에 유해 귀환 지난 15일 오전 고려인 동포 배웅 속에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 공항을 출발한 홍 장군 유해는 서울공항으로 돌아왔다. 문 대통령이 직접 맞이한 홍 장군의 유해는 태극기를 두른채로 오후 11시쯤 국립대전현충원으로 옮겨져 현충관에 임시 안치됐다.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은 사망 연도 기준 78년 만이다. 보훈처는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방역 수칙을 준수하며 16~17일 이틀간 온·오프라인 추모 기간을 운영할 계획이다. 온라인 헌화와 분향을 원하면 보훈처 누리집(www.mpva.go.kr)에서 할 수 있다. 대전현충원 현충탑 앞에 설치된 국민분향소에서 직접 참배 및 승차 참배(드라이브 스루)는 선착순으로 가능하다. 정부는 국민 추모행사 후 18일 대전국립현충원에 장군의 유해를 안장할 계획이다.
  • [이해영의 쿠이 보노] 지정학의 귀환?/한신대 교수

    [이해영의 쿠이 보노] 지정학의 귀환?/한신대 교수

    7월 말 미국의 ‘포린어페어’지에 실린 글이 시선을 끌었다. 글쓴이가 전직 주한미군사령관과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등이기 때문이다. 한미 양국의 전직 고위 장성 출신이 직접 나서 북한 문제에 대한 구상을 밝혔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히 흥미롭다. 글제 또한 얼마나 도발적이고 신선한가. ‘북한을 동맹으로 만들자.’ 기고자 가운데 임호영 전 연합사 부사령관은 어떤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궁극적으로 북한을 동맹이 주도하는 질서에 끌어들이겠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놓고 브룩스 사령관과 몇 차례 토의를 했다. 우리가 군인이지만 전쟁하지 않고 중국에 경제적 의존도가 높은 북한이라는 체제를 우리 측으로 끌어들이면 핵 문제와 통일, 북한 동포의 생활 문제 등을 궁극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큰 전략적 목표를 그렇게 잡은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단순한 비핵화가 아니라 사실상 통일된 거나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물론 과정이 지난할 것이다.” 2018년 6월 12일 김정은ㆍ트럼프 콤비의 싱가포르선언 직후 나는 공교롭게 이런 논평을 한 적이 있다. “6ㆍ12는 이러한 이른바 아시아 회귀, 전략적 리밸런싱이라는 판을 흔드는 대형 이벤트다. 그래서 주류의 역습도 만만치 않을 거다. 미 주류로선 앞으로 6ㆍ12를 깨거나, 아니면 여기에 적응하는 경로 외에 없어 보인다. 후자의 경우 과거 키신저가 그랬듯 중국을 견제ㆍ봉쇄하기 위해 북과 중을 분리·견인하는 지정학적 신사고도 선택지의 하나다. 미국에게 북한이 간절해지는 데 비례해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의 미래가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 ‘북과 중을 분리’하고 북을 아방(我方)으로 ‘견인하는 지정학적 신사고’라면 저 케케묵은 군사동맹도 미래가 있지 않은가. 여기서 두 가지 역사적 사건의 언급이 필요하다. 첫째, 베트남 통일 이후 미국과 베트남 관계 정상화에는 근 30년이 걸렸다. 1973년 파리 평화협정 이후 베트남이 공산화된 뒤 미국의 베트남 봉쇄는 1995년 클린턴 대통령 때 비로소 해제된다. 양국의 경제관계는 국교 정상화 이후 21세기 들어서야 본격화된다. 양국 관계의 급진전 배경엔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대중 견제 전략으로 베트남의 지정학적ㆍ전략적 가치 상승이 있었다. 베트남이 중국의 남진을 견제하는, 그래서 미ㆍ베트남 사이엔 사실상 유사동맹 관계가 조성된 것이다. 둘째는 미중 관계다. 미중은 한국전쟁의 교전 당사자들이었다. 양국 간 적대 관계는 특히 1960년대 초 중국이 핵개발에 나섰을 때 미국이 선제공격을 검토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세계 외교사에는 ‘닉슨 중국에 가다’ 혹은 ‘닉슨 중국에’(Nixon to China)라는 숙어가 있다. 공화당의 강경우파였던 닉슨이 공산주의 중국과의 관계 정상화에 나섰다는 사실, 즉 이념적으로 아무리 멀다 해도 국익을 위해 적과의 동침도 마다하지 않는 국제 관계의 속성을 이르는 말이다. 그래서 닉슨과 그의 안보보좌관 키신저가 대중 관계 정상화에 나선 데에는 중소 분쟁을 활용, 중소를 분리해 소련을 고립시키고, 또 중국을 지렛대로 베트남과의 휴전협상을 가속화시키기 위한 거시 전략적ㆍ지정학적 계산이 작용하고 있었다. 요컨대 미·베트남 관계의 정상화는 중·베트남 분쟁을 활용하려는, 미중 관계의 정상화는 중소 분쟁을 활용하려는 미국의 전략적 이익과 판단이 가장 중요한 기저 동인 중 하나였다는 말이다. 이이제이책(以夷制夷策)이라고 해도 될 이 공식에 따라 보자면 북중을 이간, 틈을 벌려 이 틈새에 자본을 부어 굳힌 뒤 북을 한미동맹 쪽으로 떼어 붙이자는 방도는 지금까지 별무신통했던 낡은 ‘레짐 체인지’론의 새로운 변주로 볼 여지는 차고 넘친다. 작년 12월 미 초당적 재야·재조 아시아통들이 공동의 연구 성과를 묶어 발표하는 이른바 ‘아미티지-나이 보고서’ 2020년판이 나왔다. 지금까지의 경험에 비추어 이 보고서는 미국의 동아시아 초당 외교의 밑그림이라 볼 만하다. 이번 보고서에서 특히 눈을 끄는 대목은 글로벌 앵글로색슨 군사동맹 네트워크인 ‘파이브 아이스’(Five Eyes: 미, 영,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에 일본을 넣어 ‘식스 아이스’로 재편해 일본 리더십하에 동아시아 반중 질서를 구축하자는 것이다. 이 보고서상 주적은 의연 중국이며, 부적(副敵)은 북이라 할 만하다. 따라서 주부(主副)를 갈라 수단 불문하고 북핵만 제거하면 중의 고립은 따 놓은 당상이라는 발상이 그저 또 하나의 미국몽(夢)으로 끝날지 자못 경계하면서 살필 일이다.
  • 태극기 두른 홍범도 장군, 文 ‘최고예우’로 직접 맞았다

    태극기 두른 홍범도 장군, 文 ‘최고예우’로 직접 맞았다

    일제강점기 무장 독립운동사의 가장 빛나는 장면인 봉오동·청산리 전투(1920)를 이끈 홍범도(1868~1943) 장군이 세상을 떠난 지 78년, 연해주로 이주한 지 100년 만에 조국 품에 안겼다. 광복절인 15일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에서 장군의 유해를 싣고 출발한 특별수송기(KC330)는 대한민국 방공식별구역(KADIZ)에 진입한 후 공군 전투기 6대의 엄호 비행을 받으며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에 도착했다. F15K, F4E, F35A, F5F, KF16D, FA50 등 현재 공군이 운용하는 전투기종을 모두 투입해 최고의 예우를 다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서울공항에서 김영관 애국지사 등과 함께 장군을 맞이했다. 김 지사는 한국광복군으로 항일운동에 참여한 후 한국전쟁에도 참전, 1952년 화랑무공훈장과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은 근현대사의 산증인이다. 전날 장군의 유해 봉환을 위해 대통령 특별사절단으로 카자흐스탄에 파견됐던 황기철 국가보훈처장, 여천 홍범도 장군 기념사업회 이사장 우원식 의원, 영화 ‘대장 김창수’, ‘암살’ 등에서 독립군 역할을 소화한 조진웅 배우 등도 함께했다.태극기로 싸인 유해가 내려지는 동안 현장에서는 군악대 성악병이 ‘올드 랭 사인’에 애국가 가사를 붙여 불렀다. ‘올드 랭 사인’은 스코틀랜드 민요에 가사를 붙여 독립운동가들 사이에서 국가처럼 불리던 노래로, 1943년 광복을 보지 못한 채 먼 타향에서 생을 마감한 장군의 넋을 기리기 위해 준비됐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제76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장군은 역사적인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를 승리로 이끈 대한독립군 사령관이었으며 뒷날 카자흐스탄 고려인 동포들의 정신적 지주가 됐다”면서 “유해를 봉환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이 결실을 맺게 돼 매우 기쁘며, 독립 영웅들을 조국으로 모시는 일을 국가와 후대들이 마땅히 해야 할 책무이자 영광으로 여기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문 대통령은 2019년 카자흐스탄 방문 당시 유해 봉환을 요청했고, 16일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의 방한에 맞춰 성사됐다. 당초 봉오동전투 100주년인 지난해 봉환을 추진했지만 코로나19로 미뤄졌다. 추모를 마친 유해는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국립 대전현충원으로 이동했다. 보훈처 누리집(www.mpva.go.kr)에서 온라인 헌화·분향, 16~17일 대전현충원 현충문 앞에 설치된 국민분향소에서 직접 참배 및 승차 참배(드라이브스루) 등의 추모를 거친 뒤 18일 안장된다.
  • ‘봉오동 전투’의 주역 홍범도 장군 유해 조국 품으로

    ‘봉오동 전투’의 주역 홍범도 장군 유해 조국 품으로

    일제강점기 ‘봉오동 전투’의 주역 여천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제76주년 광복절인 15일 국내로 봉환된다. 지난 1943년 10월 이역만리 떨어진 카자흐스탄에서 조국 광복을 보지 못한 채 숨을 거둔 지 78년 만이다.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전날 카자흐 크즐오르다 묘역에서 수습된 홍 장군 유해는 현지 병원에서 하룻밤 임시 안치됐으며, 이날 오전 우리 공군 특별수송기(KC-330 ‘시그너스’)에 실려 국내로 봉송된다. 이를 위해 이날 오전 8시(현지시간·우리시간 낮 12시)쯤 크즐오르다 공항에선 우리 군 의장대가 카자흐스탄군 의장대로부터 홍 장군 유해를 넘겨받는 의식이 진행될 예정이다. 홍 장군 유해를 실은 우리 공군 수송기는 이후 크즐오르다 상공을 3차례 선회 비행한 뒤 서울로 향하게 된다. 홍 장군은 1920년 중국 지린성 봉오동에서 700여명의 독립군 연합부대를 이끌고 일본군 1개 대대를 섬멸, 우리 무장독립운동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 홍 장군은 같은 해 10월엔 지린성 청산리에서 북로군정서를 지휘하던 김좌진 장군과 합세해 일본군을 재차 대파(청산리 대첩)하기도 했다. 그러나 홍 장군은 1930년대 연해주 거주 당시 극동지역 한인들에 대한 소련(현 러시아)의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정책에 따라 카자흐로 이주해야 했고, 숨질 때까지 조국 땅을 밟지 못했다. 우리 정부는 지난 1990년대부터 카자흐 측과 홍 장군 유해 봉환을 논의했지만, 당시엔 현지 고려인(러시아·중앙아시아 지역에 거주하는 한인 동포) 사회 및 북한의 반대로 벽에 부딪혔다. 특히 북한 측은 홍 장군 출생지가 평양이란 이유로 그 유해 또한 북한으로 봉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이런 가운데 우리 정부는 2019년 4월 문재인 대통령의 카자흐 국빈방문을 계기로 홍 장군 유해 봉환을 위한 협의에 본격 착수했고, 그 결과 유해 봉환이 성사됐다. 당초 홍 장군 유해 봉환은 봉오동 전투 100주년이던 작년에 카심 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 대통형의 국빈방한과 함께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 유행 때문에 1년 연기됐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16~17일 우리나라를 찾는다.
  • [인사]

    ■기획재정부 ◇과장급 인사△개발사업과장 김봉준 ■교육부 △사립대학정책과장 박준성△학술진흥과장 하유경△학교안전총괄과장 정윤경△교육부 문상연△금오공과대 사무국장 함석동△한경대 사무국장 이용학△한국교통대 사무국장 이석현△방송통신대 사무국장 정시영△한국해양대 사무국장 김석△한밭대 사무국장 김보엽△경상국립대 가좌캠퍼스 행정본부장 최수진△국립국제교육원 나향욱△코로나19대응 학교상황총괄과장 최보영△반부패청렴담당관 김동안△혁신행정담당관 송선진△국제교육협력담당관 구영실△재외동포교육담당관 원용연△대학학사제도과장 김태경△전문대학정책과장 최화식△전문대학지원과장 이상우△학교생활문화과장 유상범△진로교육정책과장 최윤정△교육통계과장 안웅환△교육공무근로지원팀장 엄진섭△사분위지원팀장 권삼수△체육예술교육지원팀장 신광수△장애학생진로평생교육팀장 정상은△교육부(국외훈련 파견) 차영아△교육부(국내외 연계 교육훈련 파견) 윤혜준△국립국제교육원 김성근△중앙교육연수원 김현진△공주대 송은주△부경대 박상준△충북대 방성수△한국교원대 엄중흠△교육부(영국한국교육원 파견) 안희성△교육부(필리핀한국국제학교 파견) 최경식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장급 전보△국립과천과학관 이제준△연구제도혁신과장 박길재 ■산업통상자원부 ◇국장급 전보△에너지전환정책관 천영길 ■보건복지부 ◇과장급 인사△감사관실 복지급여조사담당관 김희선△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 장기이식관리과장 황영원
  • 월드옥타, 미얀마 양곤지회에 마스크 지원

    월드옥타, 미얀마 양곤지회에 마스크 지원

    월드옥타(세계한인무역협회·회장 하용화)는 코로나19 확산으로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는 미얀마에 마스크 3000장을 양곤지회(지회장 김종환)를 통해서 긴급 지원했다. 월드옥타 양곤지회는 미얀마 현지시간 9일에 현지 월드옥타 본부에서 받은 마스크를 회원들에게 전달하고, 재미얀마한인회에도 마스크 2000장을 건냈다. 양곤지회는 미얀마의 심각한 코로나19 확산 상황에 따라 방역 마스크를 월드옥타 본부에 긴급 요청했다. 김종환 양곤지회 지회장은“미얀마는 지난 6월부터 코로나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외국인은 백신 접종도 하기 어려운 상황에 모든 시설이 락다운되는 등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이다”고 말하면서“한국에 가려고 해도 왕복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어서 현재는 한인사회가 손을 맞잡고 힘든 시기를 이겨내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월드옥타는 지난 4월에 대구·경북지역에 마스크 20만 2천 장 기부했다. 앞선 1월에는 월드옥타 북경지회 등 23개 중국지회와 홍콩·마카오·대만 등 총 26개 도시의 한인사회에 마스크 10만 장을 비롯해서 전 세계 31개국 한인 경제인들에게 5만 장의 마스크를 지원한 바 있다. 이는 전 세계 64개국 138개 도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월드옥타 회원들의 ‘마스크 보내기 성금’으로 마련했다. 하용화 월드옥타 회장은 “지금 전 세계 한인들이 힘들지만, 어려울 때일수록 친 형제들처럼 따듯한 정을 나눠야 한다”고 말하면서 “전달된 마스크가 힘이 되기를 바라면서, 정을 함께 나누는 우리 한민족은 세계 어디에서도 결코 외롭거나 혼자가 아니다”고 전했다. 월드옥타는 전 세계 64개국 138개 도시에 지회를 두고 있는 재외동포 최대 경제단체다. 지난 1980년대 모국상품 구매단을 구성해 모국상품 수출에 앞장섰고, 1998년에는 모국의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해외 금 모으기 운동을 진행하는 등 모국이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때마다 위기 극복 지원에 앞장서 왔다.
  • “나의 직업은 독립운동”… 18년 5개월 수감 생활 최장기 복역수

    “나의 직업은 독립운동”… 18년 5개월 수감 생활 최장기 복역수

    “많은 죄수가 앉아 있을 때엔 마치 콩나물 대가리 나오듯이 되었다가 잘 때에는 한 사람은 머리를 동쪽, 한 사람은 서쪽으로 해서 모로 눕는다. 그러고도 더 누울 자리가 없으면 나머지 사람들은 일어서고, 좌우에 한 사람씩 힘이 센 사람이 판자벽에 등을 붙이고 두 발로 먼저 누운 자의 가슴을 힘껏 민다. 그러면 누운 자들은 ‘아이고, 가슴뼈 부러진다’라고 야단이다.”(김구 ‘백범일지’) “어머니! 밤이면 가뜩이나 다리도 뻗어 보지 못하는데, 빈대 벼룩이 다투어 가며 진물을 살살 뜯습니다. 그래서 한 달 동안이나 쪼그리고 앉은 채 날밤을 새웠습니다. 그렇건만 대단히 이상한 일이지 않겠습니까? 생지옥 속에 있으면서 하나도 괴로워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누구의 눈초리에나 뉘우침과 슬픈 빛이 보이지 않고, 도리어 그 눈들은 샛별과 같이 빛나고 있습니다.”(심훈 ‘옥중에서 어머니께 올리는 글월’) 열악하다 못해 인격을 말살하는 감옥 생활은 그 자체로 고문의 수단이라고 할 만큼 혹독했다. 지옥 같은 감옥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유관순, 이육사, 윤동주, 김동삼, 오동진 등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감옥에서 순국했다. 그런 감옥 생활을 18년 5개월이나 견뎌낸 독립운동가가 정이형 선생이다. 독립운동가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옥고를 치른 사람은 일왕 암살을 기도한 박열로 22년이나 갇혀 있었는데 일본에서 재판을 받고 일본 감옥에서 복역했다. 정이형은 더 악명 높은 국내 형무소에서 수감 생활을 한 최장기 복역수다.“비로소 인정풍속이 다른 만리타국에 왔구나 하는 생각이 나서 장탄일호(長嘆一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 나는 이렇게 쓸쓸한 곳을 급급히 찾아왔을까. 집에 있는 사랑하는 어머니와 처자들은 다 어찌 될까.”(선생의 회고록 중에서)●평북 의주 출신… 장성에서 ‘3·1운동’ 시위 선생은 1897년 9월 16일(음력) 평북 의주 월화면에서 태어났다. 김평식에게서 한학을 배웠는데 그는 복벽주의(復主義·대한제국의 회복을 목표로 하는 독립운동의 이념) 독립군 단체에서 항일 무장투쟁을 했던 인물이다. 친형 정원익도 독립군에 군자금을 제공한 독립운동가였다. 형과 스승의 항일 정신을 이어받은 선생은 1919년 1월 독립운동가 김계순, 서상연을 만나 의기투합해 전남 장성으로 내려갔다. 이주 직후 3·1운동이 발발하고 장성에서도 만세 운동이 일어나자 선생은 동지들과 함께 시위에 앞장섰다. 친형의 지원을 받아 1921년 장성 북하면에 4년제 선룡사립보통학교를 세우고 민족교육 운동에 뛰어들었다. 일제의 감시 대상이 된 선생은 체포돼 취조를 받았고 다행히 풀려났지만, 장성에서 더 활동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고향으로 돌아온 선생은 임시정부의 국내 연락 조직인 연통제에 참여해 의주 군감으로 활동하다가 1922년 11월 만주 망명길에 올랐다. 일경에 체포된 형 원익이 고문 후유증으로 목숨을 잃자 그 길로 떠난 것이다. 총을 들고 싸우고 싶었다. 선생은 관전현에 있던 대한통의부에 들어가 오동진, 김창환을 만났다. 1923년 12월 대한통의부가 군사 체제로 개편되면서 선생은 의용군 사령관 신팔균의 부관을 거쳐 이듬해 가을 의용군 제6중대 제1소대장이 됐다. 첫 임무는 부하 10여명과 봉천성 환인현에서 반(反)통의부 분자를 처단하는 일이었다. 만주 지역 독립운동 단체들의 분열과 반목 속에 일어난 통합 운동으로 대한통의부는 그해 11월 10여개 독립운동 단체와 더불어 군정기관인 정의부로 확대 개편됐고 선생도 참여했다. ●조선인 밀정·친일파 처단 등 임무 수행 정의부는 정부 형태를 갖추고 서간도 한인 동포들을 통치하면서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했다. 일본 육사 출신인 이청천이 군사위원장, 만주의 광복군 총영장을 지낸 오동진이 사령장을 맡아 군사조직을 지휘했다. 선생과 양세봉·문학빈 등 주로 평안도 출신이 중대장과 소대장의 직책을 맡고 있었다. 1925년 3월 18일 선생은 정의부 의용군 제6중대장으로서 제8중대장 김석하, 제6중대 제3소대장 김정호 등과 압록강 건너편에 있는 일제 경찰서 습격 계획을 세웠다. 그날 자정,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선생은 부하 6명과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넜다. 새벽 5시쯤. 목표로 삼은 벽동경찰서 여해경찰관출장소에 접근했다. 안에는 일경 5명이 있었다. 대원들은 건물 안으로 총을 난사했다. 순식간에 니시카와 류키치와 임무, 신현택 등 순사 3명은 절명했고 일본인 순사 1명은 크게 다쳤다. 선생은 대원들과 출장소 건물을 불태우고 총기류 등 군수품을 노획했다. 1926년 3월 정의부 의용군 제1중대장으로 부하 병사 20여명과 지린성 한인 동포들을 상대로 군자금 모금 활동도 하면서 조선인 밀정과 친일파들을 처단했다. 선생은 독립군을 정탐하는 밀정 처단을 일제와 싸우는 일만큼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미쓰야협정’(조선 총독과 중국 측이 독립군 탄압을 목적으로 맺은 협정)으로 군사 활동이 더 어려워지자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복벽주의도 수용하면서 진보주의를 표방한 좌우합작 정당인 고려혁명당이다. “이념 없는 혁명, 이데올로기 없는 독립투쟁은 오히려 무자비한 반동밖에는 초래하지 못한다.” 고려혁명당은 이런 기치를 내세웠다. 천도교 교주 최시형의 아들 최동희도 동참해 1926년 4월 지린성에서 고려혁명당이 출범했다. 만주를 중심으로 100여명의 당원을 확보하고 10여곳에 세포조직을 만들며 세를 키워 나갔다. 그러다 1926년 12월 중앙집행위원 이동락과 당원들이 일제에 체포돼 당의 세력이 위축되고 말았다. 선생은 하얼빈으로 이동해 조직 재건을 꾀했지만 1927년 3월 11일 동지 6명과 하얼빈 일본 영사관 경찰에게 체포되고 말았다. 선생은 1차 공판에서 “나의 직업은 독립운동이다. 하고자 하는 바를 했을 뿐이다”라고 당당히 말하고는 더 입을 열지 않았다. 검사는 사형을 구형했다. 선생은 빙그레 웃으며 조금의 공포의 빛도 없이 태연자약하게 서 있었다. 1928년 4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서대문·마포·대전형무소를 전전하며 옥고를 치르다가 광복을 맞아 출옥했다. ●최시형 아들 최동희 동참해 세 키워나가 “공부하는 이상은 글자만을 배우는 것 아니요. 자기 인격을 향상하기 위하여 하는 것이니 절대로 악습관에 감염되지 말고 오풍속(汚風俗)에 타락하지 말기를 바란다.” 1941년 당시 이화여고보 3학년에 다니던 맏딸 문경씨에게 보낸 옥중 편지에 선생은 이렇게 적었다. 여느 아버지와 다름없이 딸의 앞날을 걱정하고 올바른 품행을 당부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문경씨는 서대문형무소에서 선생과 같이 옥살이를 한 독립운동가 이규창(독립운동가 이회영의 아들)과 결혼했다. 광복 후 선생은 남조선과도입법의원의 관선 의원으로 선임됐다. 1947년에는 친일파를 처벌하기 위한 특별법률조례 제정 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임돼 남다른 의지를 갖고 활동했다. 일제와의 투쟁과 친일파 엄단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생각이었다.●맏딸 정문경씨 독립운동가 이규창과 결혼 “애국자들은 (조선인) 순사들에 의해 죽음에 가까운 고문과 괴로움을 당했습니다. 남한 과도정부는 그런 왜놈 앞잡이와 매국노 편을 드는 듯합니다.” 선생은 미군정사령관 하지 중장에게 편지를 보내 친일파 중용을 비난했다. 하지만 미군정은 친일파 척결 조례를 폐기하며 무시했다. 좌우합작 운동과 남북협상에 참여한 것도 고려혁명당 때부터 지녀온 신념 때문이었다. 이 또한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승만의 눈 밖에 난 선생은 감시 속에 서울 장교동 집에서 유폐와 같은 생활을 하다가 1956년 12월 10일 5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정부는 1963년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 [인사]

    ■산업통상자원부 ◇국장급 전보△전력혁신정책관 이원주△수소경제정책관 양병내 ◇과장급 전보△전력계통혁신과장 정재환△재생에너지보급과장 문양택△수소산업과장 배준형 ■국방부 △국방전산정보원 관리과장 김동비 ■해양수산부 ◇과·팀장급 전보△디지털소통팀장 이인자△평택지방해양수산청장 홍상표△부산지방해양수산청 제주해양수산관리단장 김해기 ■외교부 ◇과장△동남아2과장 정경화△한미안보협력1과장 최다연△중미카리브과장 한리자 △유라시아2과장 최기천△중동1과장 유경진△중동2과장 옥별임△아프리카1과장 박세아△재외국민안전과장 이정우△원자력외교담당관 황원△다자협력·인도지원과장 현미주△유네스코과장 이주원△경제협정규범과장 이준희△에너지과학외교과장 정기원△북핵협상과장 엄태호△국립외교원 외교역량평가과장 임승철△국립외교원 운영지원과장 한상수 ◇팀장△재외공관담당관실 국유재산팀장 홍인영△전략조정담당관실 정세분석팀장 배현진△재외동포영사실 해외안전지킴센터팀장 김설희△다자경제기구과 다자경제기구팀장 김민선 ■서울대 △학생처장 김영오 ■목원대 △기획예산처장 여상수△학생처장 김영호△음악대학장 민경식
  • 치매환자 계좌에서 ‘야금야금’…12억원 빼돌린 간병인 구속

    치매환자 계좌에서 ‘야금야금’…12억원 빼돌린 간병인 구속

    자신이 돌보던 치매 환자의 은행 계좌에서 10억원이 넘는 돈을 빼돌린 간병인과 공범이 검찰에 넘겨졌다. 경기 수원남부경찰서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로 중국 국적의 중국동포 간병인 60대 여성 A씨와 공범인 40대 남성을 구속해 검찰로 송치했다고 4일 밝혔다. A씨는 경기도의 한 요양원에서 생활하는 치매 환자 B씨의 계좌에서 지난 2014년부터 최근까지 수 차례에 걸쳐 돈을 빼내 모두 12억여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A씨는 2007년쯤부터 B씨를 돌봐온 것으로 파악됐다. B씨의 병세가 심하지 않을 때 은행 업무를 돕는 과정에서 계좌 비밀번호를 알게 된 A씨는 B씨의 병세가 심해진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빼돌린 돈을 생활비로 쓰거나 중국에 있는 가족에게 송금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의 범행은 B씨의 친척이 최근 A씨를 의심하고 경찰에 고발하면서 드러났다.
  • 한-우즈벡 외교장관회담 “신북방정책 협력 재확인”

    한-우즈벡 외교장관회담 “신북방정책 협력 재확인”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30일 방한 중인 압둘라지즈 카밀로프 우즈베키스탄 외교장관과 만나 양국 협력 방안과 국제 현안 등 상호 관심사를 논의했다.두 장관은 양국이 1992년 수교 이래 깊은 신뢰를 바탕으로 우호협력 관계를 발전시켜 왔으며, 양국관계가 2019년 4월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된 이후 다방면으로 협력이 확대되고 있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고 외교부는 전했다. 또 내년 수교 30주년을 맞아 다양한 기념사업을 통해 양국 간 문화·인적 교류가 확대될 수 있도록 긴밀히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 장관은 우즈베키스탄이 우리 정부가 추진 중인 신북방정책의 핵심 협력국임을 강조하면서 “우즈벡을 포함한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유라시아 대륙의 공동 번영을 위해 긴밀히 협력해 나가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카밀로프 장관은 우리 정부의 “신북방정책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고 화답했다. 두 장관은 ▲교역·투자 ▲보건·의료·교육 분야 경험 공유 ▲기후변화 대응 등 분야에서 협력을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 정 장관은 특히 지난해 10월 우리 대외경제협력기금(EDCF)과 한국국제협력단(KOICA)·국립의료재단의 협력을 통해 우즈베키스탄 수도 타슈켄트에 개원한 아동병원 등 양국 간의 다양한 개발협력 사업이 우즈베키스탄 사회경제 발전에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우즈베키스탄 내 18만 고려인 동포사회에 대해서도 우즈베키스탄 정부의 지원에 감사를 전하고 “앞으로도 지속적인 관심·지원을 바란다”고 말했다. 카밀로프 장관은 이날 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한국 정부의 노력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 [씨줄날줄] 재일동포 체육인/황성기 논설위원

    [씨줄날줄] 재일동포 체육인/황성기 논설위원

    프로, 아마추어를 불문하고 일본의 스포츠 역사는 재일동포 체육인을 빼고는 말할 수 없을 정도다. 레슬링의 역도산부터 프로야구의 장훈, 격투기의 추성훈 그리고 축구의 정대세, 도쿄올림픽 남자 유도 73㎏급 동메달리스트인 안창림까지 재일동포 체육인은 차고 넘친다. 일제강점기, 그리고 일본의 태평양전쟁 패전 후에도 이어진 차별과 멸시라는 간난을 겪으면서도 재일동포가 일본 사회에 깊숙이 뿌리를 내린 치열한 생명력의 결과다. 머리가 명석해도 일본 국적으로 갈아타지 않으면 공무원이나 의사 같은 국가 자격증을 따기 어려웠던 시절에 재일동포들이 눈을 돌린 곳이 체육계다. 함경남도 홍원군 출신의 역도산(1924~1963년)은 18세에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씨름인 스모에 도전하려 했다. 하지만 조선인은 결코 최상위 지위인 요코즈나까지 올라갈 수 없는 벽을 알아챘다. 얼른 레슬링으로 전환해 패전 후유증으로 피폐해진 일본인들의 국민적 사랑을 받는 전설이 됐다. 경남 창녕 출신의 아버지를 여의고 어린 시절 차별을 겪은 장훈이 조선인의 한계를 실감한 게 프로야구 입문 때였다. 1개 구단에 외국인 2명만 두게 한 규정에 걸린 구단은 그에게 귀화를 권유했지만 “귀화하려면 야구를 그만두라”는 어머니 반대에 부딪쳤다. 장훈 모자의 사정을 들은 구단 사장이 프로야구연맹의 외국인 선수 규정을 고치고 입단을 시켜 장훈은 일본 프로야구 첫 3000안타의 대기록을 세운다. 재일동포 3세로는 축구의 정대세가 꼽힌다. 한국 국적 아버지와 조선 국적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한국 국적을 지녔지만 조선총련 산하 조선학교를 다닌 영향으로 마음의 조국은 북한이다. 신무광이라는 재일동포 저널리스트는 그의 인생을 “역사가 낳은 모순”이라 했다. 북한 대표팀에서 뛰고 싶어 국적을 바꾸려 했으나 여의치 않자 한국 국적인 채로 북한 여권을 취득하고 국제축구연맹(FIFA) 승인을 얻어 국제대회에 출장했다. 수원 삼성에서도 활약한 적이 있는 정대세는 지금은 일본 J2리그 마치다 젤비아에서 현역으로 뛰고 있다. 안창림도 3세다. 아버지 태범씨는 창림을 “1, 2세가 겪은 차별이나 따돌림을 모르지만 가르침을 잘 이어받았다. 재일동포라는 흔들리지 않는 자세가 있다”고 평가한다. 재능을 눈여겨본 일본 대학 유도부에서 귀화를 권유했으나 딱 잘라 거부하고 한국 유학을 결정한 안창림이다. 그가 태극마크를 달긴 했지만 안창림에겐 “재일동포 대표로 승리해 재일동포의 존재를 전하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이 있었다. 안창림이 한일에서 ‘재일동포’를 되새기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 ‘이준석과 유학생’ 간담회

    ‘이준석과 유학생’ 간담회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28일 국회 당대표 회의실에서 줌(zoom)을 통해 ‘이준석과 유학생이 함께하는 이유 있는 이야기’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석기 재외동포위원장, 이 대표, 서범수 당대표 비서실장, 임승호 대변인.
  • 文·김정은 3개월간 극비 ‘친서소통’… 임기말, 북미 신경전은 부담

    文·김정은 3개월간 극비 ‘친서소통’… 임기말, 북미 신경전은 부담

    13개월간 단절됐던 남북연락 채널이 27일 전면 복원되면서 멈춰 섰던 한반도평화프로세스의 초침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특히 연락채널 복원은 남북 정상의 적극적 의지에 따른 ‘톱다운’ 방식으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 내 2018년 ‘한반도의 봄’ 상황에 얼마나 근접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또 남북 관계 재개에 따른 한반도의 긴장 완화가 북미 대화를 추동하는 선순환을 끌어낼지도 주목된다. 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4월 남북 정상회담 3주년을 계기로 친서를 주고받기 시작해 최근까지 10여 차례 속내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 모두 구체적 내용을 밝히지는 않았다. 다만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남북 관계가 오랜 기간 단절된 데 대한 문제점을 공유하고 조속한 관계 복원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면서 “코로나로 고통받는 상황을 하루속히 극복해 나가자고 위로와 걱정을 나눴고, 남북 동포들에게도 안부를 전했다”고 설명했다. 남북이 정전협정 68주년인 이날 친서 교환을 조율된 문구로 동시 공개했다는 점도 눈길이 쏠린다. 석 달가량 정상 간 소통이 이어졌고, 실무 협의도 수반됐다는 방증이다. 정황상 남북교류·협력 복원의 다음 스텝도 가닥이 잡혔을 것으로 보이지만, 청와대는 신중한 모양새다. ‘백신 지원 등에 대한 의견 교환이 없었는가’란 질문에 “논의되지 않았다”면서 “구체적 의제는 다시 열린 대화 통로를 통해 앞으로 협의해 나가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대북특사가 검토되고 있느냐’는 질문에도 “논의되지 않았다. 현재 코로나 여건에서 현실적 한계가 있다고 본다”고 했다. 또 “복원 시점(7·27)에 대한 특별한 고려는 없었다”고 했고, 남북 정상의 대면접촉이나 화상정상회담 가능성에 대해서도 “협의한 바 없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이번 연락채널 복원으로 남북 관계가 지난해 6월 9일 이전 상황으로 회복된 것은 물론 2019년 ‘하노이 노딜’ 이후 교착상황에서 반전 계기를 만든 것은 분명해 보인다. 북측이 국경을 봉쇄하는 등 방역에 민감하다고는 하지만 4차 정상회담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홍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친서가 4월부터 교환됐다는 점으로 볼 때 양 정상이 남북 관계를 마지막으로 활용할 기회에 대해서 공감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고, 7·27을 맞아 발표했다는 건 하반기에 뭔가 해 보겠다는 것”이라면서 “4차 정상회담 가능성은 있다”고 내다봤다. 물론 낙관론은 곤란하다. 북측이 체제 위협으로 여기는 한미연합훈련이 1차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코로나19 대유행과 맞물린 만큼 한미가 훈련중단을 결단하든, 규모가 대폭 축소된 지휘소 훈련이 불가피할 경우 북측이 인내하든 상황 관리가 뒷받침돼야 한다. 문 대통령의 임기가 9개월여 남은 상황에서 북미 간 샅바싸움이 길어지는 점도 걸림돌이다. 결국 한반도평화프로세스가 동력을 얻기 위해서도 문 대통령이 북미 양측을 중재해야만 한다.
  • [뉴스분석]다시 움직이는 한반도평화시계… 4차정상회담 이어질까

    [뉴스분석]다시 움직이는 한반도평화시계… 4차정상회담 이어질까

    13개월간 단절됐던 남북연락 채널이 27일 전면 복원되면서 멈춰 섰던 한반도평화프로세스의 초침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특히 연락채널 복원은 남북 정상의 적극적 의지에 따른 ‘톱다운’ 방식으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내 2018년 ‘한반도의 봄’ 상황에 얼마나 근접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또 남북관계 재개에 따른 한반도의 긴장완화가 북미대화를 추동하는 선순환을 끌어낼지도 주목된다. 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4월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3주년을 계기로 친서를 주고받기 시작했다고 한다. 남북 모두 구체적인 친서 내용을 밝히지는 않았다. 다만,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남북관계가 오랜 기간 단절된 데 대한 문제점을 공유하고 한반도 평화를 위해 조속한 관계 복원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면서 “코로나19로 남북 모두 고통받는 상황을 하루속히 극복해 나가자고 위로와 걱정을 나눴고, 남과 북 동포들에게도 위로와 안부를 전했다”고 설명했다. 남북이 정전협정 68주년인 이날 오전 11시쯤 친서 교환과 남북연락 채널 복원을 조율된 문구로 동시에 공개했다는 점에 눈길이 쏠린다. 석 달가량 남북 정상간 소통이 이어졌고, 실무 협의도 수반됐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복원시점에 대한 특별한 고려는 없었다”고 선을 그었다. 남북 정상의 대면접촉이나 화상정상회담 가능성에 대해서도 “협의한 바 없다”고 했다. 이번 연락채널 복원으로 2019년 ‘하노이 노딜’부터 얼어붙은 남북관계가 반전의 계기를 맞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나아가 북측이 국경을 봉쇄하는 등 코로나 방역에 극도로 민감하다고는 하지만, 문 대통령의 임기내 4차 남북정상회담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홍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친서가 4월부터 교환됐다는 점으로 볼 때 양 정상이 남북관계를 마지막으로 활용할 기회에 대해서 상당히 공감하고 있을 가능성 크고, 7·27을 맞아 발표했다는 건 하반기에 뭔가 해보겠다는 공감대 있는 것”이라면서 “4차 정상회담 가능성은 있다”고 내다봤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남북 정상의 신뢰로 (연락채널이) 복원됐기 때문에 남북정상회담의 신호탄이자 뉴욕 채널 활성화 등 북미 관계에도 긍정정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현실적 여건은 녹록지 않다는 분석도 있다. 당장 북측이 체제 위협으로 여기는 한미연합훈련이 다음달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또 문 대통령의 임기가 9개월여밖에 남지 않았고, 비핵화 협상 재개를 앞둔 북미 간 샅바싸움이 길어지는 터라 남북협력이 급물살을 타기에는 한계가 있다. 결국 한반도평화프로세스가 동력을 얻으려면 문 대통령이 양측을 중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지난해 6월 북한의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에 대해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남북관계의 건강한 발전이 가능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앞으로 협의해 나갈 문제”라고 밝혔다.
  • MBC 또 구설…동메달 안창림에 “우리가 원한 메달색은 아니지만…”

    MBC 또 구설…동메달 안창림에 “우리가 원한 메달색은 아니지만…”

    MBC 도쿄올림픽 중계가 박성제 사장의 대국민 사과 이후에도 또다시 구설에 올랐다. 박 사장은 지난 26일 마포구 상암동 MBC 경영센터에서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갖고 “신중하지 못한 방송, 참가국에 대한 배려가 결여된 방송으로 마음에 상처를 입은 해당 국가 국민들과 실망하신 시청자들께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고 했다. 그러나 박 사장의 사과 당일 또 논란이 일어났다. 이날 재일동포 3세 유도 선수 안창림(27)은 값진 동메달을 획득해 일본 유도의 심장인 일본무도관에 태극기를 올렸다. 안창림은 남자 73㎏급 준결승에서 통한의 반칙패로 동메달 결정전으로 밀렸다. ●“우리가 원했던 색깔의 메달은 아닙니다만…” 이후 체력이 바닥 난 상태에서도 막판까지 투혼을 발휘해 경기 종료 7초전 통쾌한 업어치기 절반승으로 루스탐 오루조프(아제르바이잔)를 물리치고 값진 동메달을 목에 목에 걸었다. 그는 일본 유도연맹의 귀화 요청에도 한국 국적을 유지해 2014년 태극마크를 달았다. 하지만 안창림의 동메달 획득을 생중계하던 MBC 캐스터는 “우리가 원했던 색깔의 메달은 아닙니다만…”이라고 평가해 논란이 일었다. 그는 “선수들이 지난 5년 동안 흘려 왔던 땀과 눈물, 그에 대한 대가로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에 조준호 해설위원은 “동메달만으로도 소중한 결실”이라고 덧붙였다.그러나 ‘금메달’만 강조하는 캐스터의 발언에 인터넷에선 비판이 쏟아졌다. 한 네티즌은 “우리 선수가 소중한 메달을 땄는데 말실수 아니냐”고 지적했고, 또 다른 네티즌은 “투혼을 불사른 선수에게 할 말이냐”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MBC 측은 MK스포츠 인터뷰에서 “금메달을 목표로 노력하는 선수, 또 국민들이 그런 부분을 바라보고 응원하고 있었고 거기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한 것”이라며 “전체적인 맥락은 피 땀 흘려서 소중한 결실을 맺은 선수를 격려하는 뜻이었다”고 해명했다. ●앞서 ‘체르노빌 발전소’ 사진으로 논란 앞서 MBC는 지난 23일 열린 도쿄올림픽 개회식을 생중계하며 우크라이나 선수단 입장 때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진을 사용해 국내외에서 큰 비난을 받았다.체르노빌 원자력 발전 사고는 1986년 4월 26일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접경 지역에 위치한 제4호기 원자로 폭발 사고로 수십만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인류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원전 사고다. 심지어 엘살바도르 선수단 소개 과정에서는 비트코인 사진을, 아이티 선수단 소개에는 ‘대통령 암살로 정국은 안갯속’이라는 자막과 함께 시위 사진을 사용하기도 했다. 25일에도 남자 축구 조별리그 B조 2차전 한국과 루마니아의 경기에서 자책골을 기록한 루마니아 마리우스 마린 선수에 대해 “고마워요. 마린”이라는 조롱 성격의 자막을 넣어 결국 박 사장이 대국민 사과를 했다.
  • 통신선 복원됐지만…청와대 “남북정상회담 논의한 바 없다”

    통신선 복원됐지만…청와대 “남북정상회담 논의한 바 없다”

    청와대는 27일 남북이 통신연락선을 복원하며 대화 재개의 계기를 마련한 것과 관련해 “남북 정상 간 대면 접촉, 화상회담에 대해 논의한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의 서면 질의응답에서 ‘이번 통신연락선 복원을 계기로 남북 정상 간 대면 접촉 또는 화상 회담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문-김, 4월 이후 여러 차례 친서 주고받아”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진난 4월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3주년을 계기로 친서를 교환한 이후 최근까지 여러 차례 친서를 주고받았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양 정상은 남북관계가 오랜 기간 단절돼 있는데 대한 문제점을 공유하고,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는 조속한 관계 복원과 신뢰 회복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부연했다. “코로나19 및 폭우 관련 위로와 걱정 나눠” 또 두 정상의 친서에는 한반도 평화의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입장뿐만 아니라 코로나19 및 폭우 상황에 대한 조기 극복과 위로가 담겼다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 그는 “두 정상은 현재 코로나로 인해 남북 모두가 오래 고통받고 있는 상황에서 하루속히 이를 극복해 나가자고 위로와 걱정을 나눴고, 각기 남과 북의 동포들에게 위로와 안부 인사를 전했다”고 소개했다. 남북 정상 핫라인은 여전히 복원 안돼 아울러 남북이 복원한 통신연락선에 대해 이 관계자는 “통일부와 군이 운영하던 남북 통신선을 우선 복원한 것”이라며 “과거 통신선이 정상 운영되는 상황이 기준이 돼 운영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남북은 이날 오전 10시 서해지구 군 통신선으로, 오전 11시쯤 남북연락사무소 간 통화를 가졌다. 나아가 남북연락사무소 및 동서해 군 통신선을 통해 오전과 오후 하루 두 차례 통화를 재개하기로 했다. 다만 남북 정상의 ‘핫라인’은 복원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 관계자는 “핫라인 통화는 차차 논의할 사안”이라며 “양 정상 간 통화에 대해 협의한 바는 없다”고 밝혔다. “남북연락사무소 폭파 관련 사과나 입장은 없어”아울러 이 관계자는 ‘통신선 복원 협의 과정에서 북측의 일방적인 남북연락사무소 폭파에 대한 사과나 입장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앞으로 협의해 나갈 문제”라고 답했다. 또 이 관계자는 ‘이번 합의가 8월 한미 연합훈련 축소 또는 취소 검토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느냐’는 물음에는 “통신선 복원과 한미 연합훈련은 무관한 사안”이라고 했다.
  • 文 대통령, 남자 양궁 대표팀·안창림에 축전 “국민과 함께 응원”

    文 대통령, 남자 양궁 대표팀·안창림에 축전 “국민과 함께 응원”

    문재인 대통령이 2020 도쿄올림픽 양궁 남자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한국 남자 양궁 대표팀 오진혁, 김우진, 김제덕 선수와 유도 남자 종목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안창림 선수에게 축전을 보냈다. 27일 문 대통령 페이스북에는 “2020 도쿄올림픽 셋째 날 대한민국에 감동을 전해준 양궁 남자단체 오진혁, 김우진, 김제덕 선수와 유도 안창림 선수에게 축전을 보냈다”며 “국민과 함께 응원한다”는 메시지가 공개됐다. 문 대통령은 오진혁 선수에게 “어깨 부상을 이겨내고 런던올림픽에 이어 9년만의 도전에서 만든 값진 결과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며 “개인전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길 바라며, 국민과 함께 응원하겠다. 유찬이와 서아 아빠, ‘파이팅’”이라고 격려했다. 김우진 선수에게는 “양궁의 역사에 김우진 세 글자를 각인시켰다. 이제 ‘양궁 하면 떠오르는 선수’가 되었다”며 남은 개인전에서의 활약을 기대한다고 언급했다. 혼성 단체전에서도 금메달을 목에 건 김제덕 선수에게는 “첫 출전한 올림픽 무대에서 벌써 2관왕의 성과를 이뤄냈다. 힘찬 박수를 보낸다”며 “준결승 접전을 승리로 이끈 마지막 화살은 국민들의 가슴 속에 오랫동안 남을 것이다. 김 선수를 따라 국민들도 함께 ‘파이팅’을 외치며 응원했다”고 했다.문 대통령은 유도 남자 73㎏급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안창림 선수를 향해 “안 선수의 활약은 재일동포를 넘어 5000만 대한민국 국민들의 자부심이 되었다”며 “우리는 조국을 위한 안 선수의 투혼을 기억할 것”이라고 격려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