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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 행정구역·정겹던 옛 지명/달라져도 너무 달라졌다

    ◎분단 반세기만에 펼친 북녘 산하의 지리지/김일성 우상화에 1백여곳 “개명”/50여 차례나 개편,낯선 타향/6도 9개시서 9도 24개시로/237곳은 「노동자구」로 바꿔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다. 달라져도 너무 많이 달라졌다. 광복 46년,분단 반세기를 맞은 북한의 강산은. 자강도·양강도·전승동·해방동.북녘의 산천은 옛모습 그대로일지 모르나 행정명칭과 지역의 이름은 세월의 켜만큼이나 숱하게 고쳐지고 바뀌었다. 북한은 해방이후 모두 50여차례의 행정구역개편을 통해 해방당시의 6도 9시 89군을 1특별시,2직할시,9도 24시,1백47군 1백50읍,4천2백42리(동),2백37 노동자구등으로 바꾸었다. 북한의 수도이며 행정 중심지인 평양은 1946년 특별시로,개성(1954년)과 남포(1980년)는 직할시로 승격됐다. 특히 평양은 해방이후 20여 차례에 걸친 확대개편을 통해 2천㎦가 넘는 광역으로 변모했다. 북한은 또 행정구역개편과 함께 유서깊은 옛 지명을 없애고 엉뚱한 이름을 붙여놓기도 했다. 지난 81년 양강도의 신파군이 김정일의 생모이름을 따 「김정숙군」으로,88년8월 양강도의 후창군이 김일성 망부이름을 따 「김형직군」으로 바뀐 것이 그 예. 북한은 지난 82년10월부터 「문화혁명」이란 그럴듯한 이름아래 학자와 대학생을 동원,지명과 동명 바꾸기 작업을 펴오고 있어 북한지명의 변모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북한의 이같은 행정구역 개편목적은 두가지.첫째는 그들이 줄곧 주장해온 남북협상을 통한 남북한 총선거가 실시될 경우 지역별대표제에 대비한 것이고 둘째는 김일성에 대한 충성심 제고를 위한 것이다.김일성우상화를 겨냥해 바꾼 지명은 지난 82년이후 1백여곳에 달하고 있다. 세계는 지금 대포를 녹여 쟁기를 만드는 평화의 시대에 들어섰다.체제개혁과 개방,상호협력과 화해의 새로운 질서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그럼에도 한사코 북한만은 개방을 거부하며 2천만동포들을 주체사상이란 옹이박이 기둥에 비끄러매놓은채 체제수호를 소리높여 외치고 있다.세계사의 새로운 흐름속에 흔적도 없이 삼켜질 「고독한 외침」을.
  • 체독 성용승군도 입북/안기부

    ◎밀입북 임양·성군 사전영장 받아 【내외】 전대협대표로 베를린에 파견됐던 성용승군(22·건국대 행정4)이 지난 5일 입북한 박성희양(21·경희대 작곡4)에 이어 10일 하오 조선민항편으로 평양에 도착했다고 북한관영 중앙통신이 이날 보도했다. 이 통신은 성용승군이 전대협대표 자격으로 이날 저녁 김일성경기장에서 진행되는 「백두­한라대행진대회」를 환영하는 평양시 군중대회에 참석하는 것을 시작으로 이 대행진에 합류하게 된다고 밝혔다. 한편 국가안전기획부는 10일 「전대협」대표로 「국토종단대행진」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베를린을 거쳐 밀입북한 성용승군과 박성희양에 대해 국가보안법위반(탈출·회합)혐의로 미리 구속영장을 발부 받았다. ○“13일 판문점 귀환” 「전대협」은 10일 하오 「남·북해외동포청년학생통일대축전실무회담」대표로 베를린에 파견했던 성용승군이 이날 하오3시30분쯤 북경발 조선민항기편으로 평양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전대협」은 『오늘 상오 성군으로부터 9일 베를린에서 북경에 도착한뒤 계획대로 평양에들어간다는 전화를 받았다』고 밝히고 『성군은 지난 5일 북한에 가 국토종단대행진에 참가하고 있는 박성희양과 합류,활동한뒤 오는 13일 박양과 함께 판문점을 통해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 외언내언

    9일 저녁 KBS TV 「남북의 창」프로를 통해 평양에 나타난 박성희(21·경희대 작곡과 4년)양을 봤다.공항에 내리면서부터 꽃다발에 파묻혔다.시내로 들어오는 연도에는 많은 젊은이들이 꽃을 흔들고 때로는 차를 막아서며 열렬히 반겼다.물론 동원됐겠지만….평양당국은 제2의 임수경을 서울에 또 하나 심은듯 즐거운것 처럼 보였다.◆회견장면이 연이어 나왔다.박양은 전대협대표로 왔다고 했다.어떻게 왔느냐는 첫질문에 「배낭족을 가장,서울에서 항공편으로 빈에 온후 베를린·북경을 거쳐 왔다」고 했다.돌아가면 구속 될텐데 라고 묻자 「괜찮다」고 했다.그리고 기자들의 요구에 주먹을 흔들며 운동가도 불렀다.◆TV 화면을 보면서 첫째 이 학생은 혹시 배낭족 기분으로 평양에 간것 같은 기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미치다가 그녀의 어머니가 베를린까지 찾아 나섰다가 못만나고 돌아온 사실을 되새겨 봤다.둘째 그녀의 행동에서 자유의 체취가 물씬 풍겼다.이 학생이 지난 45년간의 북한통치의 실상,김일성 1인체제의 비극,그리고 오로지 기아의 유토피아를건설한 김의 주체사상의 실상을 정말 알고 있는 걸 까고 생각해 보면서 이 TV를 봤을 북한 동포들을 생각해 봤다.◆「배낭족」.그게 뭔데 방학때 농촌과 공장에 노력동원에 나서는 북의 대학생들에게 「배낭을 메고 유럽을 마음대로 방랑 3천리 아닌 방랑 3만리를 한다」그뜻을 어이 알고,어떻게 상상할까.◆「귀국후 구속 겁날게 없다」.아니 「온가족이 아오지탄광에 가는데도 무서울게 없다」니 허허,모를소리.아니면 그들도 씩 웃으며 『팔자좋은 소리하는 구먼.복에 겨워서… 아가씨 위대한 수령밑에서 이곳에 살게.대신 나좀 남에 갈수 없겠나.제발…』하고 생각하는지도.
  • 통일대행진 참가기도/대학생 2명 구속

    서울지방 경찰청은 7일 「전대협」이 추진하고 있는 「남북해외동포 청년학생 통일대축전」행사와 관련,판문점에 가려다 붙잡힌 고려대학생 강종오군(25·지리교육과3년)과 서울시립대학생 유중현군(22·환경공학과3년)을 국가보안법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 「주체사상」「김일성주의」로/북한,내년부터

    ◎재미 친척 방문허용도 검토 북한은 오는 92년 김일성의 80회 생일을 기해 이른바 「주체사상」의 명칭을 「김일성주의」로 바꿀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관계당국은 6일 최근 중국의 북한문제 전문가및 방북 재미동포들과 접촉해 입수한 정보에 근거,이같이 밝히고 김일성이 자기 생전에 서해갑문등 대규모 시설물 10개를 세우겠다고 발언한 점등에 비춰 김일성의 권력일선에서의 조기은퇴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북한은 또 다시 돌아온다는 보장만 있다면 북한주민들의 재미 친척방문을 허용할수 있을 것이라고 방북 재미동포들에게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김일성은 『인민들이 잘먹는 정책을 실시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등소평의 지적에 『이 밥에 고기국을 먹으면 됐지 어떻게 더 잘 먹일 수 있느냐』라고 반문하는 등 「인의 장막」에 싸여 북한주민들의 어려운 생활형편에 대해 잘모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은 92년부터 대외무역이 경화결제방식으로 전환됨에 따라 이의 타개책의 일환으로 재일교포와 합작운영하고 있는 평남운산광산(금광)의 금채굴량을 확대하고 있으며 외화벌이를 위해 도·이까지 외화상점을 설치,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 타슈켄트 한인들의「위대한 삶」(본사 송정숙 논설위원 현지탐방:상)

    ◎사막에 일군 「콜호즈」는 타민족의 귀감/만나는 동포마다 “서울 한번 가보고 싶소”/「황성옛터」 부를땐 백발노인 몸떨며 통곡 『나의 조국,대한민국을 사랑하리.영원토록 사랑하리…』 4천석의 좌석은 물론,입석까지 그득히 메운 「레닌인민궁전」극장에서 한국의 가수 태진아는 「사랑하는 나의 조국 대한민국」을 기쁨에 차서 목청껏 불렀다.이틀 연속 공연으로 연인원 1만명이 동원된 관객들은 노래마다 박수로 장단을 맞췄고 무대마다 긴 갈채로 화답을 보냈다. MBC가 기획한 「중앙아시아의 우리 동포를 찾아서」의 타슈켄트공연.레닌동상이 광장마다 서있고 사회주의식 구호가 붉은글씨로 여기저기 붙어있는 이 멀고먼 중앙아시아땅에서 우리의 가수 코미디언들의 공연이 이토록 성황속에 이뤄지고 있다는 일이 믿어지지 않았다. 웃기기 잘하는 가수 김상국씨가 「황성옛터」를 부르던 마이크를 들이댔을때 객석에 앉아있던 성이 「짐가」라는 백발의 노인은 몸을 부들부들 떨며 통곡을 했다.쉽게 감정을 내보이지 않을 것처럼 앉아있던 이 「고려사람」은 「원동」으로부터 그 악몽의 「강제이주」를 당해온 당세대의 한인이다.이곳 중앙아시아의 한인들은 모두가 그때의 당사자거나 그 2세거나 3세였다. 타슈켄트는 소연방 15개 공화국중의 하나인 우즈베크 공화국의 수도다.이 공화국에만 「고려사람」 20만명이 산다.수도 타슈켄트시에만도 5만명이 살고 있다.그들은 애당초 「유랑하는 가축」처럼 살길을 찾아 모국땅을 떠나온 한인들이었다.1900년대 초기부터 부지런하고 쌀농사 재능이 뛰어났던 그들은 혁명러시아의 토지법에 의해 차별과 불이익을 당하면서도 그많은 악조건을 물리치고 성공적인 정착을 해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1937년 9월,그들은 아직도 확연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같은 스탈린의 음모에 의해 들판에 누렇게 익어가는 벼농사도 몽땅 버리고 다시 「가축」같은 신세가 되어 화차에 실린채 맨몸으로 서른날씩 마흔날씩 걸려 이곳 중앙아시아로 실려와 염분섞인 땅,갈대만 우거진 늪지대에 던져졌었다.지금의 중앙아시아에 사는 35만명은 그들과 그 자손들이다. 「치모페이」「웬체슬로바」「와렌티나」「보리스코프」…소련식 이름을 단 그들 「카레이스키」(한국인)2,3세들은 토굴을 짓고 산 할아버지 이야기,고사리와 미나리죽으로 봄기근을 이겨준 할머니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각각의 가슴속에 모두 지니고 있다. 그러나 지금 중앙아시아의 한국인들은 숱하게 많은 다른 소수민족에 비해 한결같이 잘살고 있다.타슈켄트에서도 사마르칸트에서도 알마아타 푸른제에서도 영특하고 지혜롭게 잘살고 웬만한 집에서는 다 아들 딸 모두들 대핵고(대학교)까지 필업(졸업)시켰고 도시의 직장에 진출시켰다. 이유없이 「적성민주」의 딱지를 붙여 공민권을 빼앗고 이주의 자유도 여행의 자유도,친척끼리 모여 사는 일도 허락받지 못했던 시기에도 그들은 사막땅을 일궈 쌀농사를 짓고 목화를 심어 혁명러시아가 산업화해가는데 원자재를 대고 전쟁중에는 인민의 식량을 보탰다.1%도 안되는 소수민족의 신분으로 이만큼 공헌한 사람들은 카레이스키(고려인)들 말고는 없을 것이다. 타슈켄트의 도심을 벗어나면 포리토구역에 잘사는 한인 콜호즈(집단농장)가 있다.많은 사람들이 이 성공적인 콜호즈를 찾아온다.2만1천명이 일하는데 그중 조선인은 4천명밖에 안된다.그래도 이 농장은 「한인콜호즈」로 불린다.애당초 이 농장은 강제이주된 조선인들만으로 만들어졌던 집단농장이다.그들의 「일 좋아하고 부지런한」특성때문에 벼농사 삼베농사 목화농사를 성공적으로 이뤄내 타민족보다 부유해졌다.그러자 1951년 소련정부는 그들을 타민족의 콜호즈와 병합시켜 버렸다.말하자면 가난한 콜호즈와 병합시켜 하향 평준화시킨 것이다.능력없는 민족까지 이끌고 발전시키기를 바랐기 때문일 것이다. 이 콜호즈의 한인마을에는 전용회관이 있다.러시아어간판 옆에 「어서 오십시요」라는 간판도 붙여 놓았다.우리 일행이 찾아갔을 때는 전속 가무단이 공연을 하고 있었다.어린이들이 꼭두각시춤도 추고 아주머니들이 우리말 노래도 불렀다.2∼3년에 한번쯤 평양에서 「선생님」을 모셔다가 지도를 받아오는정도이고 스스로 엮어가는 가무단이라 가무가 약간 국적불명이긴 하다. 박이나겐치부회장의 설명에 의하면 지난해 이 농장의소득은 농사지은 것 모두에 대해 국가가 수매해준 대금 1천7백80만루블이었다.배당하는 방법은 1인당 월급을 2백70∼3백루블씩 받고 그 나머지분을 배당금으로 나누게 된다.지난해에는 1인당 1년에 8천루블쯤 돌아갔다.노동자 평균임금이 월2백50루블이고 고급층 월급이 5백루블이상인 그나라 수준으로는 높은 소득이었다. 소득이 그만못한 또다른 솔호즈(국영농)로 우리를 안내해준 사람은 보리스라브 강씨였다.타슈켄트의 한인문화센터 일을 맡고 있는 건축설계 전문가다.40대초반인 그 역시 「37년 강제이주」한 고려인 2세이고 솔호즈에서 자랐다.그가 자란 곳인 솔호즈 근처에는 「강우주거리」라는 길이 있다.강우주는 바로 그의 아버지라고 한다.15년동안 솔호즈의 회장으로 있으면서 공헌한 것을 평가받아 거리이름을 붙여준 것이다. 솔호즈에 이를 무렵,한집안에서 흥겹게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중앙아시아식 경쾌한 음악에 맞춰 우즈베크계의 농민들이 춤추고 있었다.아마도 그들 민족 전통방식의 결혼식이 있는가보다 했더니 그게 아니었다.그 집의조그만 아들형제가 할례를 받아 그 잔치를 벌인 것이라고 했다.솔호즈 유지자격으로 한인회장도 참석하고 있었다. 예고없이 찾아든 한국인 여행객을 정도이상 반기면서 음식을 안기고 연설을 해라,춤을 춰라 하며 놓아주지 않았다.한인회장도 「시늉이라도 해야」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라며 요령을 일러주었다.간신히 그곳을 빠져나올 때에는 아이들의 큰아버지 할아버지 아버지 친척들이 줄줄이 한참동안을 따라 나왔다.그중의 할아버지뻘인 우즈베크노인 하나는 술에 취한채 조선말로 『우리집에 갑세…』를 연신 외쳤다.그 사회에서의 한국인 위치가 지도자적인 자리임을 느끼게 해주는 분위기였다. 공민권도 뺏고 삶의 터전도 뺏고 어느날 느닷없이 「적성민주」이라는 딱지까지 붙여 열사의 사막 한복판에 실어다 버린 형국이었던 「카레이스키」들이 반세기가 지난뒤 그 선혈섞인 땀으로 이뤄낸 오늘의 위치는 위대한 것이라고 말해서 전혀 과장된게 아니다. 거기다가 새로 떠오르기 시작한 고국 「한국」은 중앙아시아의 몇개 공화국에 사는 「강제이주된 고려사람들」의 지위를 점점 더 높여주고 있다.그래서 만나는 동포마다 은근한 목소리로 『서울에 한번 기차게 가보고 싶소』라고 말한다.
  • 이기백특파원 현지보고(통일이후의 독일:14·끝)

    ◎융화 힘든 의식… 동서 이질감 여전/구서독인 50% 이상이 “동쪽사람 불신”/차기 대통령선출 싸고도 지역별 양분 통일을 계기로 인구 7천9백만명(서독 6천3백만·동독 1천6백만)의 의식변화와 통일평가에 대한 기본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지난해 9월과 올 7월 동서독국민 각 1천명을 대상으로 서독의 비레펠드 엠니드연구소와 동독의 라이프치히 중앙연구소가 조사한바에 따르면 동서독국민들간에는 통일당시보다 이질감이 더욱 커졌으며 통일의 결과에 대한 평가도 크게 차이가 나는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에서는 동서독국민들이 자신의 특성과 상대방의 특성에 대해 어떤생각을 가지고 있는지와 통일후의 과업이 당초 기대했던 것처럼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가 그리고 한민족이 40년동안 분단된 뒤 양쪽국민들이 더 가까워졌는지,아니면 더 멀어졌는지를 물어보았다. 상대방에 대한 친밀감조사에서는 더욱 가까워졌다고 응답한 사람은 서독 51%,동독 45%,더욱 멀어졌다고 답변한 사람은 서독 36%,동독 50%로 나타나 서독국민들이 일반적으로 더욱 가까워졌다고 느끼고 있는 반면 동독사람들은 거리감이 더욱 커가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그러나 서독조사 대상자들의 13%,동독은 5%가 응답을 회피하는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있어 장벽붕괴후 독일국민들을 열광케했던 통일열기가 사라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통일이 이루어진 뒤 비로소 동서독국민들 사이의 이질성을 알게 됐다」는 답변에 동서독국민 대부분이(69%,77%) 동감하고 있다. 다음 대통령으로 누구를 선택하겠느냐는 질문에 서독국민은 60%가 구서독출신의 라우지사를,동독국민은 역시 60%가 구동독출신의 슈톨프지사를 꼽고 있어 지역감정이 반영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동서독국민의 괴리현상이 뚜렷한 부분은 통일독일에서 동독국민은 아직도 2등국민인가라는 설문으로 서독국민들은 이를 부정하고 있지만(그렇다 39%,아니다 45%,모른다 15%) 동독국민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가 지난해 75%에서 84%로 늘어났다. 상대지역동포들에 대한 신뢰도는 동독국민들의 35%가 대부분의 서독동포를 믿을수 있다고 대답했고 서독사람은 42%만이 믿을수 있다고 말해신뢰도는 통일당시와 마찬가지로 개선되지 않고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엠니드연구소는 조사대상자들에게 그들이 통일후 갖게된 상대방국민성을 생각나는대로 기술하도록하는 설문서를 돌려 이중 동독인으로부터 6백75명,서독인으로부터 6백70명의 응답을 받았는데 동독인이 서독인들을 보는 공통점은 다음과 같았다. 『점령자처럼 도도하다.때때로 거만스럽고 우리를 바보취급한다.우리를 아직도 사회주의 규율에 맹종하는 멍청한 국민으로 본다.모든 것을 잘아는 체하며 자신들이 위대한 줄로 착각하고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또 서독사람들이 동쪽동포를 가장 빈도가 많게 표현한 특성은 다음과 같다. 『게으른 성격이 조금도 변하지 않고있다.대접받으려고만 하며 공격적이다.우리처럼 근면하지 못하다.전혀 일할 자세가 돼있지 않다』 그러나 통일이 된것을 유감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것으로 생각하느냐 하는 설문에는 9%만이 많은 사람들이라고 응답,동서독국민 대부분은 다시 장벽과 사회주의 국가,스타시시절로 돌아가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 통일은 바라던 것이고 장벽이 다시 세워진다는 것은 누구나 생각조차 하기싫은 일이지만 1년도 채안된 기간이 40여년동안 갈라져 있던 양쪽 국민들의 의식차를 줄이고 이질성을 해소하기에는 너무나 짧은 기간인 것만은 분명하다.
  • 신형 브래들리장갑차/주한미군에 30대 배치

    주한 미보병 2사단에 배치될 신형 브래들리 보병전투장갑차(IFV)1백55대중 1차분 30대가 31일 상오 동두천에 있는 캠프 케이지에 도착했다고 주한미군사령부가 밝혔다. 이 신형 장갑차는 동두천에 있는 캠프 호비의 제5연대 1대대와 캠프 케이지의 제20연대 5대대에 배치돼 기존의 M113 장갑차와 대체된다. 브래들리 장갑차는 후미에 2대의 M231 기관총 발사대,25㎜ 자동포를 탑재할 수 있는 포탑 등 기본장비와 함께 토 대전차유도미사일 시스템과 M240 기관총이 장착돼 있다. 1차분 30대를 제외한 나머지 1백25대의 신형 브래들리 장갑차는 오는 11월6일까지 미2사단에 배치,완료될 예정이다.
  • 외언내언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깃발을 쓰레기통에 넣어버린 소련에서 「동무」(타바리쉬)라는 공식적인 호칭마저 사라져 색다른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는 소식.모스크바에서 전해온 보도에 따르면 고르바초프소련대통령은 70여년이 넘도록 소련지도자들이 공식적으로 사용해오던 「친애하는 동무들」을 버리고 「친애하는 동포들」이란 새로운 호칭을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이 호칭이 다른 정치지도자들에게도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때문에 소련주민들은 서로가 어떻게 부를지 몰라 약간의 혼란을 겪고 있다는 것.주민들끼리 「동무」라고 부를 수는 있지만 「동포」라고 부를 수는 없을테니까.◆소련에서 「동무」가 공식호칭으로 등장한 것은 1917년10월 볼셰비키혁명직후.같은해 2월 멘셰비키혁명때 「공민」(남성­그라즈다닌·여성­그라즈단카)을 공식적인 호칭으로 통일했으나 이 호칭에는 남녀구별이 있어 남녀구별이 없는 「동무」로 바뀌었고 이것이 전세계의 공산주의국가로 파급됐다.◆소련이 「동무」를 공식호칭으로 정한데에는 그 나름의 정치적인 이유가 있었기때문.만민평등사회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사회계층간의 계급의식이나 가족간의 윤리의식을 타파해야 한다는 논리에 따른 것.그러나 공산주의가 참담한 실패로 끝나면서 「동무」라는 호칭마저 사라진 것이다.◆북한에서는 이 호칭이 언제쯤이나 제자지를 찾을 수 있을까.「아버지 동무」「할머니동무」같은 어처구니 없는 넌센스가 지금은 없어졌겠지만 친근하면서도 아름다운 말뜻을 지닌 「동무」가 공산주의개념의 정치적인 호칭으로 쓰이고 있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또 하나 아쉬운 것이 있다면 북쪽에서 「동무」를 공식호칭으로 쓰는 탓에 우리사회에서 이 말이 사라져 버린 것.국어사전에는 버젓이 살아 있는데도 이 말을 쓰는 사람은 찾아볼 수가 없다.대신 「친구」라는 말을 쓰고 있는데 한자용어인 친구보다는 순수한 우리말인 「동무」가 훨씬 정답고 맛도 있다.북쪽에서야 어떻게 쓰든 이 말을 되찾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 “동무”호칭,70년만에 소서 소멸(세계의 사회면)

    ◎개혁영향… “신사·숙녀” 사용 일반화/고르비·옐친,“…동포들” 표현 애용/스탈린,2차대전중 “형제·자매”로 불러 구설수 지금 소련에는 적절한 호칭이 없다. 1917년 10월 혁명이후 소련의 모든 지역에서 남녀로소를 가리지 않고 쓰여지던 「동무」(타바리쉬)라는 호칭이 공식적,비공식적인 자리를 막론하고 사라져 버린것이다. 「동무」라는 호칭의 소멸은 공산주의를 지고지선의 이념으로 내걸고 등장한 소련공산당이 최근들어 마침내 공산주의를 포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것과도 맥락을 같이하는 것이어서 흥미롭다. 소련에서 호칭이 혁명적인 변화를 겪게된 것은 1917년 10월 볼셰비키 혁명에 앞서 발생했던 1917년 2월의 멘셰비키 혁명을 계기로 한 것이었다. 당시 케렌스키를 수반으로하는 멘셰비키 정부는 이전까지 계층에 따라 구분돼 있던 호칭을 단일화시켜 모든 공식적인 호칭을 「공민」(남성 그라즈다닌,여성 그라즈단카)으로 통일시키는 호칭의 혁명을 단행했었다. 1917년 2월 멘셰비키 혁명을 계기로 단일화라는 또다른 혁명을 달성한 호칭은 이후 같은해 10월 볼셰키기 혁명을 계기로 남성과 여성의 구별이 있던 「공민」이 남성과 여성의 구별이 없는 「동무」라는 단어로 바뀌었을뿐 단일화 체제를 그대로 유지해 나갔다. 단지 이같은 일관성은 독재자로 악명높은 스탈린이 2차대전중 히틀러의 침공을 받아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인 소련을 지키자는 내용의 라디오 연설을 하면서 「형제」「자매들」(브라치야,쇼스트르이)이라는 기독교용어를 사용해 스탈린 자신이 기독교 계통의 학교를 다녔던 경력을 무심결에 드러냈던 단 한번의 예외를 갖고 있을 뿐이었다. 이처럼 공산당이 지배하는 소련에서는 영원토록 부동의 위치를 지킬 것 같이 보였던 「동무」라는 호칭이 흔들리게 된 것은 소련 사회 전체를 뒤흔들고 있는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부터였다. 공산당 서기장 당선이후에 「친애하는 동무들」을 공식 호칭으로 사용하던 고르바초프는 지난해 3월 개정 헌법에 의해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하게되면서 이제까지 70여년이 넘도록 소련지도자들이 공식적으로 사용해오던 「친애하는(경애하는) 동무들」을 버리고 「친애하는(경애하는) 동포들」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고르바초프의 이같은 호칭전환은 물론 다른 정치지도자들에게도 확산돼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인 옐친도 「동포들」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는 상태다. 이런 와중에서 제정러시아 시대때 귀족계층을 일컫던 「신사 숙녀 여러분」이라는 호칭이 소련 사회에서 점차 일반적인 호칭으로서 힘을 얻어 가고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 「통일축전」실무회담/24일 베를린서 개최

    【베를린 연합】 소위 「남북해외동포청년학생통일대축전」을 8월15일 서울에서 열기 위한 준비실무회담이 24일 베를린에서 개최된다고 전국대학생협의회(전대협)의 성용승(건국대 행정4)과 박성희양(경희대 작곡4)을 포함한 이 행사의 「대표단」이 23일 밝혔다.
  • 일 의원단 3백명 방북/「조일의원연」소속

    ◎평양서 대규모 환영집회/“북한·일 조기수교 희망” 【내외】 북한은 21일 4박5일간의 일정으로 방북한 초당파국회의원 26명을 포함,각급의원 3백명으로 구성된 일조우호촉진의원연맹 대표단(단장 회장겸 자민당소속 중의원의원 이시이 하지메)을 환영하는 평양군중집회 및 북한·일간 의원친선협회 전체회의를 열고 쌍방간 친선협력강화 및 수교문제의 원만한 해결을 강조한 것으로 평양방송이 이날 보도했다. 조·일우호친선협회 회장 김양건(당부부장)은 북한·일의원간의 교류에 대한 보고를 하면서 북한·일우호촉진의원연맹대표단의 방북기간중 북한·일우호친선협회 간부들과 전체회의를 비롯,분과회의·정치회담 등을 갖고 ▲북한·일수교문제 ▲재일동포문제 ▲무역경제교류문제 ▲문화·예술·학술·체육 교류문제들에 대해 폭넓은 의견을 교환할 것이라고 밝히고 이번 북한·일간 접촉이 좋은 결과를 낳기를 희망했다. 이에대해 일조우호촉진의원연맹대표단장인 이시이 하지메(석정일)는 『일본이 과거에 저지른 불행한 역사에 대한 반성에 기초해 두나라 사이에 새로운 선린우호관계를 구축해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라고 강조하고 북한을 잘 알지 못해서 생겨난 세계각국과 일본내 일부세력의 대북한 오해·편견을 불식시키기 위해 북한이 적극적인 외교정책을 전개할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 남북이산가족 「영상상봉」 추진/93년 대전엑스포 열리는 3개월간

    ◎통일원등과 협의,곧 대북 제의/북서 불응땐 중·소 동포로 대체/오명 조직위장,기획팀 “조속 발족” 대형 영상화면에 40여년전 헤어진 평양의 8순어머니가 비친다.이어 화면이 반으로 나누어지면서 서울에 사는 초로의 아들이 어머니와 함께 동시에 나타난다. 1·4후퇴때 생이별한 서울의 아들이 떨리듯 울먹이는 소리로 어머니를 부르자 평양의 어머니는 북받치는 설움을 이기지 못하고 주저앉아 엉엉 울부짖는다. 지난 83년 KBS가 6·25 33주년을 맞아 생방송한 이산가족찾기 프로그램을 통해 1만여명이 혈육을 되찾았던 감동과 흥분의 열기를 오는 93년 대전엑스포기간중 재현하기 위한 남북이산가족의 영상상봉계획이 추진되고 있다. 오명 대전엑스포조직위원장은 20일 『오는 93년 엑스포기간동안 우리 카메라가 북한에 들어가 남·북한의 이산가족들이 화면을 통해 서로 만나는 프로그램을 구상중』이라고 밝히고 현재 이 계획을 구체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국토통일원과 외무부·상공부등 관계당국과 협의를 진행중이라고 말했다. 현재 구상중인 남북이산가족 영상상봉추진계획은 대전엑스포가 열리는 오는 93년 8월7일부터 11월7일까지 3개월동안 충남 대덕연구단지의 엑스포회장과 북한내 적당한 장소에 각각 대형 영상판을 설치,여기에서 남북이산가족을 상봉토록 한다는 것이다. 엑스포조직위측은 당초 통일원이 주관하는 남북 한민주관이 개설되면 여기에서 남북이산가족의 영상상봉을 추진할 방침이었으나 최근 통일원의 계획이 무산됨에 따라 정보통신관의 첨단 통신기자재를 활용,영상대화를 시도할 생각이다. 남북 영상상봉계획 추진실무자인 이정재대전엑스포조직위 전시국장은 『남북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대형 영상판은 옥내이든 옥외이든 어디에나 설치가 가능하다』고 말하고 『통일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시점에서 세계인의 경제올림픽이나 다름없는 대전엑스포 기간동안 남북이산가족들이 다시 만날 경우 엑스포의 의의는 물론 남북간 동질성회복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엑스포조직위는 이를 위해 통일원과 외무부·KBS·MBC등 방송관계자들이 참석하는 남북이산가족 영상상봉추진기획팀을 조만간 발족시키는 한편 과거 KBS의 이산가족재회 프로그램의 경험을 참고로 첨단통신기자재를 이용하는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같은 영상상봉계획의 실현여부는 현재 속단하기 어렵다.북한측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일방적인 제의로 끝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엑스포조직위측은 북한측이 이 계획에 응하지 않을 경우 중국과 소련등의 재외동포들과 국내 가족이나 친지들이 만나는 프로그램으로 확대시킨다는 복안을 세워 놓고 있다. 이밖에 해외각지에 있는 우리 동포들,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해외근로자들,원양어선에 타고 있는 어부들이 자기 자녀나 부인과 만날 수 있는 프로그램도 구상하고 있다. 정부는 북한이 대전엑스포에 참가하도록 노력하고 있으나 북한은 이제까지 한번도 엑스포에 참여한 일이 없다. 따라서 정부는 남북이산가족 영상상봉 계획이 확정되는대로 기존의 남북대화 채널은 물론 BIE(국제박람회기구)등 국제기구를 통한 다각적인 경로를 통해 북한의 대전엑스포참가와 함께 이 계획의 성사를추진할 방침이다.
  • “남북 「통일대행진」갖자”/최 부총리,대북 제의

    ◎8·15∼31일… 문화축전행사 함께/국내외 동포 2천명 참가/올 추석엔 70세이상 상호 고향방문/“25일까지 준비위 구성,26일부터 판문점서 논의” 정부는 15일 오는 8월15일부터 31일까지 광복절을 기념하는 「통일대행진」을 갖자고 북한에 공식 제의했다. 최호중부총리겸 통일원장관은 이날 남북대화사무국에서 대북 성명을 발표,남북의 각계 각층과 해외동포 등 2천명이 참가해 광복절 경축행사와 국토종단대행진·통일기원제·통일문화축전 등을 남북이 공동 개최하는 「통일대행진」을 갖자고 제의했다. 정부는 이를 위해 남북이 각각 오는 25일까지 행사준비위원회를 구성한 뒤 26일부터 30일 사이에 판문점에서 각 5명내지 7명의 양측 실무대표들이 참가하는 회담을 열어 구체적인 추진방안을 논의하자고 밝혔다. 정부는 아울러 오는 9월22일 추석을 기해 지난해 민족대교류선언에 따른 방북신청자 가운데 최소한 70세이상의 이산가족들만이라도 고향방문을 할 수 있도록 하자고 북한측에 촉구했다. 정부는 또 「통일대행진」행사와 관련,『만약 북한측이 우리 제의를 전면 받아들이기 어렵다면 이중 선택적으로라도 호응해 나오기를 바라며 북한측의 건설적인 제안이 있으면 이를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최부총리는 이날 성명에서 『동서냉전체제가 붕괴되고 화해와 개방의 새로운 조류가 넘치고 있는 이때 남북간에도 긴장을 완화하고 화해를 이루어 통일을 앞당기는 새로운 돌파구를 시급히 마련해야한다는 것이 7천만 온 겨례의 한결같은 염원』이라고 강조하고 『행사는 민간행사로 추진하되 쌍방 당국의 주선과 지원,그리고 보장하에 실시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 “광복잔치 함께”…교류의 물꼬트기/정부의「통일대행진」대북제의 배경

    ◎정치인 토론등 북 제안 대폭 수용/인적왕래 확대로 신뢰회복 겨냥/북의 대남정책 변화 조짐… 성사 기대 정부가 15일 내놓은 「통일대행진」남북공동개최제의는 노태우대통령의 「밴쿠버지시」(7·6)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제5기 출범회의 개회사」(7·12)의 내용을 구체화한 조치라는 형식을 띠고 있다. 정부당국은 특히 『남북간의 인적왕래와 교류는 상호신뢰와 이해를 증진하고 민족적 유대를 잇는 지름길』이라고 말하고 이번 제의는 「정치인 학자 언론의 대토론회」등 북한이 기존에 내놓았던 제의를 전진적으로 수용한 것이어서 과거의 그 어느 제안보다 성사 가능성이 높다고 밝히고 있다. 뿐만아니라 지난 1년간 남북간에 총리회담이 3차례 열리는등 인적·물적교류가 크게 늘었으며 유엔동시가입결정,우리측 IPU(국제의원연맹)대표단의 방북허용등 북한의 대남혁명노선의 기조가 일부 수정되고 있는 듯한 조짐이 엿보이기 때문에 북측이 이번 대북제의에 호응해 올 가능성도 높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정부당국의 이같은 전향적 기대와 달리 전문가들은 이번 대북제의에 북한측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일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 이유로 첫째 북한이 대남혁명전략으로 구사해온 인민대 인민의 대화(예를들어 범민족대회개최 주장)와 당국간 대화(고위급회담재개 제의)의 병행추진전략을 포기했다는 뚜렷한 증거를 발견할 수 없으며 둘째 남북간 인적교류의 확대가 곧 북한내부체제의 동요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을 토대로 이를 거부해온 북측의 방침역시 쉽게 바뀔 수 없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아울러 우리 정부는 이번 제의를 내놓게 된데 대해 『8·15를 계기로 남북이 함께 하는 경축행사를 공동주최하는 방안을 강구하면서』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이점 역시 이번행사의 공동개최를 어렵게 하는 근본적인 요인이 될수 있다. 즉 우리 당국은 8·15 광복이 우리 민족의 자결노력과 연합국의 승전에 의한 것이라고 보는데 반해 북한은 김일성주석의 항일빨치산활동의 결과라고 주장하는 것과같이 남과북이 근본적으로 역사관의 차이를 보이고 있는 사안에 대해 함께 축하하는행사를 벌일 수 있느냐 하는 의구심이 당연히 뒤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편 정부가 이날 발표한 대북제의의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통일대행진」은 우선 8월15일 판문점에서 거행되는 「광복절을 경축하는 기념행사」로부터 시작된다.「통일대행진」참가자 전원은 이날 판문점에 모여 경축사 행진대선서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한 뒤 31일까지 「국토종단대행진」에 들어간다. 대행진은 15일부터 23일까지의 8박9일은 북측지역에서,23일부터 31일까지의 8박9일은 남측지역에서 진행된다. 「통일문제대토론회」는 행진기간중인 17일과 24일 평양과 서울에서 각 1회씩 두차례 열리며 「통일기원제」는 20일과 28일 백두산과 한라산에서 각각 갖는다. 이어 행진참가자 전원은 「통일대행진」행사의 마지막 날인 31일 판문점에 다시 모여 「향토음식잔치」「민속예술한마당」등의 「통일문화축전」을 연후 해단식을 갖게 된다. ◎「통일대행진」 대북제의 성명 1945년 8월15일은 우리 겨레가 나라를 되찾은 기쁨과 감격의 날이었습니다.그러나 그날은 또한 국토분단과 동족상잔으로 이어진 어두운 역사의 출발이기도 하였습니다. 오는 8월15일은 이 광복의 날로부터 46주년이 되는 날입니다마는 안타깝게도 우리는 아직도 통일조국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국제사회는 동서냉전체제가 붕괴되고 화해와 개방의 새로운 조류가 넘치고있습니다.이와 때를 같이하여 남북간에도 긴장을 완화하고 화해를 이루어 통일을 앞당기는 새로운 돌파구를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7천만 온겨레의 한결같은 염원입니다.이 염원을 받들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제의를 하면서 북한측으로부터 긍정적인호응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우리는 금년 광복절을 기념하는 「통일대행진」을 오는 8월15일부터 8월31일까지 남북공동으로 성대하게 거행할 것을 제의합니다. 우리는 ▲8월15일 판문점에서 「광복절을 경축하는 기념행사」를 여는 것을 시작으로 해서 남북을 종단하는 「국토종단대행진」을 갖는 가운데 ▲평양과 서울에서 두차례의 「통일문제 대토론회」를 개최하고 ▲백두산과 한라산 정상에서 「통일기원제」를 가지며 ▲8월31일 판문점으로 돌아와 향토음식잔치와 민속예술한마당 등 「통일문화축전」을 갖는 것으로 이 행사를 끝맺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 「통일대행진」 행사에 남북의 각계 각층과 해외동포들을 망라하여 한쪽에서 1천명씩 모두 2천명 정도의 인원이 참가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특히 서울과 평양에서 개최되는 「통일문제 대토론회」에는 남북 쌍방에서 각기 50명씩의 정치인·학자·언론인 그리고 해외동포 대표들이 참가하면 될 것입니다. 이상과 같은 남북 공동주최 「통일대행진」은 민간행사로 추진하되 쌍방 당국의주선과 지원,그리고 보장하에 실시해야 할 것입니다.이를 위해 남북 쌍방은 각기 「행사준비위원회」를 조직하고 오는 26일부터 30일 사이에 판문점에서 남북 각기 5명 내지 7명의 실무대표들이 참가하는 회담을 개최할 것을 제의합니다. 우리의 이번 제의는 그동안 제기되었던 북한측의 제안들을 적극 수용한 것으로서 북한측이 이를 받아들이는데 별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아울러 우리는 누구보다 뼈아픈 고통과 불행속에 살아온 1천만 이상가족들의 피맺힌 한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는 작년 「민족대교류」 선언에 따라 6만1천3백55명에 달하는 많은 인원이 북한방문을 신청했던 사실을 상기하면서 금년 추석을 전후하여 이들 가운데 최소한 70세 이상의 이산가족들만이라도 자유왕래의 방법으로 고향방문이 이루어 질 수 있도록 북한측의 성의를 촉구합니다. 우리는 「통일대행진」을 성공적으로 실현시키고 고령이산가족들의 고향방문길을 터서 민족화해와 협력의 시대를 열어 통일의 날을 앞당기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 통일을 위한 대행진(사설)

    「통일대행진」의 남북공동주최와 이산가족의 고향방문을 골자로 한 최호중부총리겸 통일원장관의 7·15대북제의는 우리정부의 통일의지를 적극적으로 표명한 시의적절한 조치로 이 제의가 실현되기를 기원한다.노태우대통령의 「밴쿠버지시」를 구체적으로 다듬은 이 제의는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기 위한 일들을 가능한 것부터 차근 차근 추진해 나간다」는 합리적인 명제를 토대로 하고 있어 북한도 호응해 올 것으로 믿는다.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 남북의 국토를 종단하는 통일대행진은 이미 북한이 제의한 것을 우리정부가 전향적으로 수용한 것이며 이산가족의 고향방문은 순수한 인도적 차원이기 때문이다. 통일대행진에 대한 우리정부의 구상을 보면 남북의 각계각층과 해외동포를 망라한 남북 각1천명씩 2천명으로 통일행진단을 구성하되 쌍방정부의 지원과 보장아래 민간기구의 주도로 추진하게 되어 있다.북한의 「국토종단순례」계획과 거의 같은 내용이다.차이가 있다면 이행사에 대한 정부의 역할이다.북한은 이른바 「범민련」이라는 친북단체를 조종하면서 국토종단 순례행사를 이미 그쪽부터 시작했으며 순례가 끝난뒤 우리정부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서울에서 「범민족대회」를 갖겠다고 고집하고 있다.우리정부가 이를 거부하자 북한 당국은 「민간 통일운동탄압」 운운의 논리를 내세워 극렬한 대남비방과 선동을 일삼고 있다. 우리는 북한의 이같은 태도를 지켜보면서 남북양측 정부의 지원과 보장없이 남북관계 개선이나 민족동질성회복을 위한 행사와 운동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으며 설사 어느 한쪽 정부를 제쳐놓고 이런 행사와 운동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는지 묻고 싶다.오히려 불신과 갈등의 폭만 넓힐뿐이다.따라서 우리는 북한이 지금이라도 국토종단순례계획을 포기하고 우리정부의 제의에 호응해줄 것을 바란다.남북이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고 비방과 선동을 중단한뒤 통일대행진을 함께 추진하고 실현시킨다면 남북한의 유엔동시가입은 크게 빛날 것이며 한반도의 평화정착을 위한 획기적인 기틀도 마련될 것이다. 북한이 내부사정때문에 통일대행진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면 이것을 제외하고 서울과 평양을 오가면서 펼쳐질 「통일문제대토론회」나 판문점에서의 「통일문화축전」등 우리정부의 제의를 선별적으로 수용해도 좋을것이다.우리정부는 남북관계개선과 민족동질성회복을 위한 것이라면 북한의 선별적수정제의도 받아들일 용의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남북이 함께 풀어야할 또하나의 과제는 이산가족의 슬픔을 덜어주는 일이다.지금 남과 북에는 1천만 이산가족이 뼈저린고통과 불행을 겪고 있다.이들의 슬픔을 외면하고서는 통일의 길은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따라서 우리정부가 올 추석(9월22일)을 기해 70세이상의 이산가족만이라도 고향을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게 하자는것은 어떤 명분으로도 거부할 수 없는 인도적인 제의이며 북한도 흔쾌히 호응해야 한다.이제 통일은 관념적인 명분이 아니라 실천적 의미를 갖는 현실적과제로 대두되고 있다.북한의 당국자들도 이 엄연한 현실을 직시해야 하며 이것만이 통일을 앞당길 수 있는 지름길임을 명확히 인식해 주기 바란다.
  • 노 대통령 평통5기 출범 개회사

    ◎“혈육마저 오갈수 없다면 통일은 공허한 외침” 「민주평통」은 온 국민의 지지와 신뢰위에서 겨레의 통일 역량을 결집하여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구심체가 될 것입니다. 지난 2∼3년새 세계는 이 세기를 매듭짓는 혁명적인 변화를 거듭했습니다. 우리 겨레와 국토의 분단을 가져온 냉전체제가 그 바탕으로부터 무너졌습니다. 세계를 바꾸고 있는 이 대변혁의 불길은 이제 우리가 사는 동북아시아와 한반도에도 밀려오고 있습니다. 냉전체제 자체가 붕괴된 상황에서 남북한이 여전히 상대방을 전복의 대상으로 보고 적대적 행동을 계속할 수는 없습니다. 남북은 단절과 대결의 비극을 종식시켜야 합니다. 남북한은 비정상적인 관계를 하루속히 청산하고 대화를 통해 서로가 서로를 돕고 신뢰하고 화해하는 길로 함께 나아가야 합니다. 한반도 문제는 이제 남북한이 스스로 해결의 길을 찾고 이를 실천해 나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남북고위급회담과 여러 통로의 회담과 대화가 지체없이 재개되어야 합니다. 남과 북이 만나 대화를 통해 해결하지 못할문제는 없습니다. 남북동포간의 인도적문제,남북간의 교류협력은 물론 정치군사문제의 해결도 남북간의 협의를 통해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는 남북동포간에 분단의 고통을 덜고 이땅의 평화와 통일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북한측과 논의하고 전진적인 조처를 취할 태세를 갖추고 있습니다. 나는 남북한이 공존공영의 관계를 이루어 평화통일의 여건을 우리 스스로가 성숙시켜 나가기 위해 다음과 같은 일을 하루빨리 실천해 나가야 한다고 믿습니다. 첫째,남과 북은 한겨레로서 민족적 동질성을 회복하기 위한 일들을 가능한 것부터 추진해나가야 합니다. 나는 북한측이 주장해온 것처럼 남북의 동포와 젊은이들이 참가하여 광복절 경축행사를 함께 치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며 올 8월15일을 기하여 그것이 실천되기를 바랍니다. 남북한 공동주관으로 판문점에서 남북한동포가 다함께 모여 공동 경축행사를 개최하고 통일문화축전을 갖는 것은 우리 겨레의 한결같은 통일의지를 스스로 확인함은 물론 이를 온 세계인의 가슴에 심어줄 것입니다. 광복절의 뜻을 기리기 위해 남북의 젊은이들이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 통일대행진을 실시하고 남북의 각계 대표들이 서울과 평량에서 통일대토론회를 갖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 될 것입니다. 남과 북이 40년이 넘는 오랜 단절속에 생활양식과 사고마저 달라지고 있는 가슴아픈 현실에 비추어 민족공동체를 회복하는 구체적인 노력을 이제 본격적으로 해나가야 합니다. 남과 북의 학자와 전문가가 민족문화유산을 공동으로 조사·연구하고 언어의 이질화현상을 해소해가는 일 등을 추진하기 위해 「민족문화공동위원회」를 구성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일 것입니다. 둘째,남과 북은 서로에게 절실하고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가능한 일로부터 교류협력을 추진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가야 합니다. 남북으로 갈라진 부모형제마저 오갈 수도,만날 수도 없는 상태에서 불신의 벽을 허물 수 없으며 이러한 현실을 그대로 두고 통일은 공허한 외침일 수 밖에 없습니다. 남과 북은 무엇보다 나이든 이산가주부터라도 생전에 고향을 찾고 혈육을 만나볼 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남북간의 인적교류는 모든 분야에 걸쳐 이루어지고 촉진되어야 합니다. 나는 남과 북의 동포들이 서로를 올바로 보고 이해하도록 텔레비전 라디오 방송부터 우선 상호교류하고 개방해 나갈 것을 촉구합니다. 서로 다른 송출방식의 문제는 남북한이 비무장지대안에 공동전환시설을 설치운영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습니다. 남북간의 교역과 경제협력,과학기술분야의 폭넓은 교류는 남북한 모두 반대할 이유가 없으며 남북동포 모두에게 혜택을 주는 일입니다. 셋째,남북한간의 정치·군사적 개결을 지양하여 한반도에 긴장의 시대를 종결하고 평화를 정착시켜야 합니다. 우리는 남북한이 오는 9월 유엔에 함께 가입하는 것을 계기로 국제사회에서 남북이 한반도와 국제적 문제에 협조협력하는 관계를 적극적으로 모색할 것입니다. 한반도에 평화를 확고히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실효성있는 불가침 선언을 채택하고 현재의 휴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해야할 것입니다. 새로운 평화체제는 남북한이 당사자가 되어야 하며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관련이 있는국가들도 필요한 협조와 공동의 노력으로 이를 확인하고 보장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 통일은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우리의주도적 노력으로 이루어야 합니다. 분단의 시대는 이 세기안에 막을 내릴 것입니다. 화해와 협력의 물결이 서로를 가르는 모든 장벽을 허물고 있는 이 세계에서 자유와 번영을 이루고 동북아시아와 한반도에 새로운 질서를 이끌고 있는 우리의 역량이 통일의 여건을 성숙시키고 있는 이제 한반도만이 냉전으로 얼어붙은 분단된 땅으로 남아 있을 수 없습니다. 세계의 변혁속에 맞고 있는 이 통일의 기회를 살리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절대절명의 소명입니다. 지금은 통일에 들 비용과 노력,통일과정에서 맞게될 도전에 대비하고 통일한국의 위상을 생각할 때입니다.
  • “남북 「평화체제」로 바꾸자”/노 대통령

    ◎실효성 있는 「불가침선언」채택을/북에 방송교류·개방 촉구/이질화 해소 위해 「민족문화공동위」구성/민주평통 5기출범 개회사 노태우대통령은 12일 『남북한간의 정치·군사적 대결을 지양하여 한반도에 긴장의 시대를 종결하고 평화를 정착시켜야한다』고 말하고 『이를 위해 실효성있는 부가침선언을 채택하고 현재의 휴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해야 할것』이라고 강조했다. 노대통령은 이날 상오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제5기 출범회의에 참석,개회사를 통해 이같이 밝히고 『평화체제는 남북한이 당사자가 되어야하며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관련이 있는 국가들도 필요한 협조와 공동의 노력으로 이를 확인하고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노대통령은 『나는 남과 북의 동포들이 서로를 올바로 이해하도록 텔레비전·라디오방송부터 우선 상호 교류하고 개방해 나갈것을 촉구한다』고 말하고 『남과 북의 학자와 전문가가 민족문화유산을 공동으로 조사연구하고 언어의 이질화현상을 해소해 나가는 일을 추진하기 위해 「민족문화공동위원회」를 구성하는 것도 바람직할것』이라고 밝혔다. 노대통령은 『나는 북한측이 주장해온 것처럼 남북의 동포와 젊은이들이 참여해 광복절 경축행사를 함께 치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며 올 8월15일을 기해 그것이 실천되기를 바란다』고 말하고 『남북의 젊은이들이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 통일대행진을 실시하고 남북의 각계대표들이 서울과 평양에서 통일대토론회를 갖는것도 의미있는 일이 될것』이라면서 북한측에 대해 이의 수락을 촉구했다. 노대통령은 이어 『우리는 이제 통일의 준비태세를 서둘러 갖추어야 한다』면서 『지금은 통일에 들 비용과 노력,통일과정에서 맞게될 도전에 대비하고 통일한국의 위상을 생각해야할때』라고 역설했다. 이날 회의에서 최호중부총리겸 통일원장관은 「통일정책추진에 관한 보고」를 통해 『정부는 이제까지 추진해왔던 남북대화와 교류·협력을 가일층 진전시켜서 이것이 자연스럽게 남북관계개선을 위해 가장 효과적인 남북정상회담으로 이어지도록 추진하겠다』고 밝혔다.최부총리는 이어 『북한이 11일 재개를 제의해옴으로써 다시 열리게 되는 고위급회담이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통일의 날을 앞당기는 생산적인 대화의 장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최부총리는 그러나 정부는 고위급회담에서 남북관계개선을 위한 기본합의서를 먼저 채택하고,불가침의 토대가 마련된후 신뢰할 수 있고 실효성있는 불가침협정을 체결한다는 기존의 입장을 견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 범민족대회 서울서 개최/8월15∼18일,3천명 참가

    ◎남측준비위 밝혀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남측준비위(의장대행 강희남목사)는 오는 8월15일부터 18일까지 서울에서 남·북·해외동포대표 각3백여명,참관인 각 7백여명등 모두 3천여명이 참가하는 「제2차 범민족대회」를 개최하겠다고 9일 밝혔다.
  • 노 대통령 귀국인사 요지

    아흐레 동안의 미국,캐나다 공식방문을 마치고 돌아와 국민여러분께 인사를 드립니다. 미국과 캐나다를 국빈으로 방문하면서 이들 두 나라 정부와 국민으로부터 저는 극진한 예우와 따뜻한 환영을 받았습니다. 저는 그것이 우리 국민 모두가 이 나라를 세계속에 참으로 자랑스러운 나라로 만들어놓은데 따라 베풀어진 높은 대우라는 것을 가슴깊이 새기며 국민 여러분께 경의를 표합니다. 미국과 캐나다… 세계가 보고있는 한국은 엄청난 활력으로 급속한 발전을 거듭하는 나라… 민주주의를 훌륭히 진전시키고 있는 나라… 이 세계의 변화를 스스로 이끌며 더 큰 역할을 해 나가는 떠오르는 나라였습니다. 이번 방문은 이 세계의 혁명적 변화속에서 동북아시아와 한반도에 냉전시대를 종식하고 새로운 질서의 형성을 재촉하는 의미깊고 중요한 여정이었습니다. 저는 이번 미국 방문을 통해 한국의 통일에 외부적인 요인이 장애가 되던 시대는 지났다는 확신을 새로이 했습니다. 부시 미국대통령은 자주적으로 통일을 이루려는 우리의 노력을 확고히 지지하며 통일한국의 꿈을 실현하는데 미국은 모든 지원을 다하겠다는 것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의 통일을 지지하고 세계가 우리에게 분단을 가져다준 냉전체제 자체를 해체하고 있는 이제 우리 겨레 앞에 통일은 현실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미국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보장에 대한 어떠한 도전에도 공동대응할 뜻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미국은 한소관계 발전이 두 나라 뿐만 아니라 미국을 포함한 많은 국가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고 높이 평가하고 소련의 경제·정치적 개혁을 고무하기 위해 한미 두 나라가 함께 노력해 나가기로 하였습니다. 미국은 우리의 가장 가까운 맹방이며 가장 중요한 협력의 동반자입니다. 저는 이번 미국방문이 서로가 서로를 돕는 동반자 관계를 한 차원 더 높여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고 확신합니다. 저는 후버연구소 연설을 통해 새로운 한국이 변화하고 있는 세계에서 어떠한 역할을 해나갈지를 밝혔습니다. 한국은 이제 더이상 냉전시대의 전방국가로 머물지 않을 것이며,동서세계의 화해와 협력·선진국과 개도국간의 공영을 촉진하여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새로운 역할을 수행해 나갈 것입니다. 저의 캐나다 방문으로 선진7개국의 일원이며 거대한 자원보유국인 캐나다와의 실질적인 협력관계는 더한층 강화될 것입니다. 캐나다는 아시아 태평양지역의 협력증진에 큰 관심을 갖고 우리와 함께 노력해 나가기로 하였으며 한반도 문제의 해결을 위해 긴밀히 협조하기로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세기안에 대결과 긴장의 시대를 마감하고 7천만겨레가 한 나라속에 평화롭게 사는 통일을 이룰 것입니다. 저의 이번 미국 캐나다 방문은 통일의 여건을 성숙시켜 그날을 앞당기는 발걸음이 되었다고 믿습니다. 미주동포가 보내는 따뜻한 인사를 국민여러분께 전합니다. 국민여러분의 성원에 감사드리면서 우리모두 민주,번영,통일을 향해 더욱 힘차게 전진할 것을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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