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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를린올림픽직후 일서 제작/손기정옹 육성담긴 음반 발견(조약돌)

    ○…56년전 일장기와 망국의 설움을 가슴에 안고 월계관을 썼던 손기정옹(80)이 당시 마라톤 역주과정을 육성으로 기록한 희귀 음반(SP)이 발견됐다. (주)신나라레코드유통 음원자료실에서 발견된 이 음반은 일제가 손옹을 영원한 일본인으로 기억시키기 위해 올림픽직후인 36년9월 일본까지 데려다 녹음한 것. 일본 콜롬비아 레코드사(제작번호 40773)가 제작한 이 음반에는 또 한국남자가수 채규엽이 레코드회사 관현악단의 반주에 맞춰 손옹과 동메달리스트인 남승룡옹(81)을 찬양하기 위해 부른 행진곡풍의 3분여짜리 「마라손 제패가」도 함께 실려 있다. 손옹은 이 음반에 실린 「우승의 감격」에서 육성으로 그 감격을 증언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일장기가 나를 응원해주는 것이 보였습니다…이 승리는 우리나라 동포여러분의 열렬한 응원의 결정인 줄 생각하는 바입니다』면서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고 있다.
  • 주민들 여름나기 실태와 북녘 명소(오늘의 북한)

    ◎「가족피서」 엄두도 못낸다/여행허가절차 복잡… “집에서 휴식”/원산 송도원·명사십리등 곳곳에 해수욕장/한반도 절경 금강산·백두산도 천혜 관광지 여름 한철,과연 북한주민들은 어떻게 더위를 나고 있을까. 북한에도 피서가 있을까.궁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법적으로는 북한주민들도 연간 14일의 유급휴가를 보장받고 있다.따라서 피서 나들이도 가능하다.그러나 말뿐이지 실제로 북한주민들이 여름철에 휴가를 얻어 가족과 함께 장거리 피서를 간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선 거주지 밖으로 나가려면 여행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이게 여간 까다롭지가 않다.북한 전 지역의 절반이 여행제한지역이어서 누구든 외지로 나가려면 먼저 여행 14일 전에 직장책임자에게 신고,내락을 받아야 한다.최종허가는 4∼5차례에 걸친 신원조회에서 결격사유가 발견되지 않아야 떨어진다.여행목적지에 도착해서도 맨 먼저 현지 인민반을 찾아가 도착「신고」를 해야 한다. 또 휴가를 떠나려면 공장이나 기업소,협동농장의 근로자들은 휴가일분 만큼의 작업량을 미리 달성해 놓아야 하는데 이것 역시 쉽지가 않다. 일반노동자와 사무원의 경우는 분기당 한장씩 배당되는 「휴양권」을 타야 경승지와 온천지역에 설치된 휴양소를 이용할 수가 있다.그러나 소속 노동자수에 비해 형편없이 모자라게 나오는 휴양권을 받기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나 다름없다는게 귀순자들의 증언. 이처럼 집떠나기가 어렵다보니 대부분의 북한주민들은 휴가를 그냥 집에서 쉬는 것으로 대신한다. 북한주민들이 많이 찾고 또 북한당국이 근로자를 위한 정양소나 휴양소를 설치해놓은 북녘의 대표적인 휴양지와 피서지는 다음과 같다. ◇평양주변 ▲대성산유원지와 중앙 동·식물원=18만㎦의 부지 위에 각종 놀이시설이 갖춰져 있으며 대성산성을 비롯,20여개 성문터와 안학궁터등 역사유적들이 있다.6백여종·4천여마리의 동물이 서식하고 있는 동물원이 인기를 끌고 있으며 날씨가 화창한 날엔 5만여명의 인파가 몰리기도 한다. 이외에 능라도 유원지,김일성의 출생지인 만경대에서 그리 멀지않은 갈매지벌과 송산벌에 걸쳐 조성된 만경대유희장도 대표적인 놀이시설.이곳의 부지면적은 60만평에 이르며 하루 수용인원은 10만명,50여종의 놀이기구가 갖춰져 있다. ◇남포지역 ▲와우도해수욕장=항구 서쪽에 위치한 인공해수욕장.원산의 송도원해수욕장과 더불어 북한의 가장 유명한 해수욕장으로 남포·평양주민의 여름철 휴식및 피서지로 이용된다.주변에 숲과 산책로,전망대가 마련돼 있다. 빠징꼬,당구장,디스코클럽 등의 위락시설을 갖춘 외국 관광객용 월드 홀(87년 개관)이 있으며 객실에서 낚시를 할 수 있는 와우도호텔 등이 유명하다.또 남포시 항구역에는 호수와 울창한 소나무, 기암절벽으로 둘러싸인 우산국민휴양지가 있다. ◇원산지역 ▲명사십리=갈마반도 해안에 자리잡은 길이 4㎞ 폭40∼1백m의 모래해변으로 주위의 소나무와 해당화숲,얕고 넓은 해변으로 유명하다.모래알이 곱고 가늘어 맨발로 걸어가면 발아래서 나는 부드러운 마찰음이 흡사 모래가 우는듯하다 하여 「명사」로 불리기도 한다. ▲송도원=북한 제일의 해안휴양지구로 명사십리와 함께 원산 2대명소의 하나.배후지의 소나무와 해당화숲,잔디밭,계곡이 유명.북한은 이곳에 유원지,꽃동산,임간 레크리에이션시설,노천극장,경마장,동방식공원을 조성해놓고 있다. ◇개성지역 ▲박연폭포=황진이 서화담과 함께 송도삼절의 하나로 널리 알려진 명소.폭포위 개울 소인 박연(직경 8m)에서 화강암 벼랑을 타고 떨어지는 이 폭포는 높이가 35m나 된다.그 아래로 직경 40m의 고모담과 근로자를 위한 박연휴양소가 있다. 이외에도 개성지구에는 고려초기에 세워진 유학교육기관 성균관,고려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릉,고려말 충신 정몽주가 절개를 지키다 비극적 죽음을 맞이한 선죽교가 있다. ◇백두산지역 백두산 천지를 비롯,각종 온천휴양지와 삼지연,이명수폭포등이 있다.일망무제의 나무바다속에 자리잡은 삼지연은 백두산의 화산활동으로 나란히 생긴 세개의 자연호수로 그중 가운데 호수가 가장 아름답고 크며 잔잔하다.짙푸른 물,호숫가의 모래와 돌부스러기가 백사장을 이루고 있으며 호반에는 숲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북한은 이곳을 「혁명의 성지」라 일컬으며 삼지연혁명사적관,노동자각,소년단각등을 설치, 김일성 우상화작업을 위한 사상교육장소로 활용하고 있다. ◇금강산지역 한반도의 천하절경으로 그 위치와 독특한 경치에 따라 내금강,외금강,해금강으로 구분된다.여성미를 띠고 있는 내금강의 비로봉 만폭동 명경대,남성미를 갖춘 외금강의 만물상 구룡폭포 상팔담 옥류동,그리고 해금강의 해만물상과 총석정 삼일포등은 경승의 극치를 이룬다. 이밖에 강원도 통천군에는 일광욕장 낚시터 온천장 물리치료실 요양소 등 휴양시설을 갖춘 아름다운 석호 시중호가 있다. ◇묘향산지역 묘향산은 우리나라 5대 명산의 하나.온 산을 뒤덮은 향나무·측백나무의 그윽하고 묘한 향기에서 그 이름이 유래한 것으로 전해진다.만폭동 문수동 상원동 계곡의 무릉과 비선폭포외에 임란 당시 서산대사가 승병5천을 이끌고 왜군과 맞서 싸운 보현사를 비롯, 많은 불교유적들이 있다. 그러나 보현사 윗 계곡에 김일성·김정일이 외국에서 받은 선물을 전시해둔 국제친선전람관이 들어서는 바람에 경관이 크게 망가졌다는게 이곳을 다녀온 해외동포들의 전언.최근에는 김강산에 이어 묘향산 바위들에도 소위 「글발」새기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으며 김일성우상화 비석들도 들어서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황해도 몽금포지역 「심청전」에 등장하는 인당수로 유명한 옹진반도 장산곶과 인접 해변가의 소나무숲과 모래밭,코끼리바위같은 기암괴석들과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고 있다.그러나 아직 관광지나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해수욕장으로 개발돼 있지는 않다.
  • 북한,식량절도 단속 포고령

    【내외】 북한은 최근 만성적인 식량난으로 인해 주민들의 집단항의와 절도사건들이 빈발하자 이를 단속하는 내용의 「포고문」을 발표하고 지난 1일부터 주민들에게 그 내용을 주지시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북한을 다녀온 중국거주 동포들의 말에 의하면 이번에 발표된 「포고문」은 심각한 식량부족으로 인해 올들어 식량배급이 지연되거나 중단되는 일이 잦게 되자 이에 주민들이 집단으로 항의를 하거나 작업거부 및 식량절도사태가 빈발하고 있어 이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 새로 밝혀진 북녘 은어(북한 이모저모)

    ◎김정일 돌망치·올챙이등 10여개/평안북도 북데기/황해도 물렁이/평안남도 깍쟁이/자강도 돌감자/강원도 똥갈매기/함경도 활랑꿍이 북한 사회에서 성행하고 있는 은어가 또다시 밝혀졌다. 최근의 귀순자 등에 의해 이번에 밝혀진 북한사회의 은어는 대략 20개인데 특히 그 가운데는 북한 각 지방의 「별칭」도 포함돼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이번에 새롭게 밝혀진 대표적인 은어와 각 지방별 별칭은 다음과 같다. ▲고급과자=누룽지▲뻥까우리=농촌 출신 병사들▲빵통군대=군인들이 입대할 때 화물열차를 타고 오는데서 비롯▲각일=상등병(계급장 모양에서 유래)▲유보도 대장=바람난 여자를 많은 사람들이 걸어다니는 산책로로 비유한 말▲일등인민·이등인민=일등인민은 북송된 재일동포들,이등인민은 소련에서 돌아온 주민을 일컫고 있는데 이 은어는 이들의 옷차림이 품질면에서 차이가 많다는데서 유래하고 있다▲단독치기=러시아에 간 벌목공이 외화벌이를 위해 모든 일을 혼자서 다 처리한다는데서 비롯됐다▲남이야=「남한출신 사람이야」의 준말▲말찌=사투리▲자유주의자=일은 열심히 하지 않고 껄렁대며 놀기만 하는 사람▲염소대조탕=소금국▲차라병=극도의 영양실조로 아기가 배만 볼록 나오게 되는 병▲북데기=평안북도(털털하고 여유가 있다는 말에서 연유)▲물렁이=황해도(게으르고 느리다는 뜻에서 비롯)▲깍쟁이=평안남도(손해보는 짓은 절대 하지 않는다는 인식에서 유래)▲돌감자=자강도 및 양강도(촌스럽고 아둔하다는 뜻)▲똥 갈매기=강원도(원산 바닷가 생활을 빗댄 말)▲할랑꿍이=함경도(러시아 말처럼 억양이 세 알아듣기 어려운 데서 비롯). 한편 김정일과 관련된 은어로는 10개정도가 많이 쓰이고 있는데 「돌망치」「뻘눈이」「올챙이」「윗분」「햇네기」등이다.
  • 다시 새기는 그 충절/이달의 독립운동가 서일선생

    ◎독립군 양성… 청산리전투 대승 이끌어/31세에 만주로 망명… 한인자녀들 가르쳐/항일투쟁단체 규합,대한군정서 총재로/「김좌진전투부대」의 최고지도자… 흑하사변으로 동지 잃자 자결 선열들의 애국·애족사상을 기리기 위해 서울신문사와 국가보훈처가 마련한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백포 서일선생이 선정됐다.8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서일선생은 만주지역에서의 항일무장투쟁을 가장 적극적으로 전개,청산리전투의 실질적 주도자로 역사에 기록돼 있다.교육자·종교인·언론이기도한 선생은 1921년 소위 흑하사변으로 동지들을 잃자 자결로 민족에 사죄했다.정부는 지난 62년 선생에게 건국훈장독립장을 추서했다.백포의 짧은 생애를 되새겨 본다. 우리 독립운동사에 빛나는 청산리전투를 아는 사람은 많아도 서일선생을 아는 이는 드물다. 일제를 깨부술 수 있는 것은 힘뿐이라고 믿었던 젊은 혁명가,그 힘은 강고한 정신력과 무장을 바탕으로 나온다고 생각한 지휘관이 서일선생이다.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 태어나 교단에서 백묵가루를 마시던 약골의 선비 서일을 무장독립운동가로 변신시킨 것은 무엇인가. 그는 41세의 짧은 생애 강운데 나중 10년을 백두산과 만주벌판을 누볐다.그 마지막 10년동안 흘린 피와 땀과 사자후가 희미하게 역사에 남아 있다. 혁명가 서일선생에 대한 흔치않은 증언과 색깔 바랜 기록들이 아쉽긴 하지만 그의 이름은 청산리전투와 함께 우리 역사에 영원히 남겨질 것이다. 고향과 가족을 등진채 산악과 벌판에서 풍손로숙한 이름 모를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저승에서도 서일선생을 떠받들고 있을 것이다. 선생은 1881년(고종18년)2월26일 함경북도 경원군 안농면 김희동 농가에서 태어났다.호는 백포. ○월북 경원서 출생 처음 이름은 기학이라 했지만 나중에 일로 바꿨다(대종교·보훈처 기록).18세까지 향리의 서당에서 한학을 배우다가 신학문에 뜻을 두고 경성에 있던 성일사범학교를 졸업했다. 이로부터 후학을 기르는데 전념한 것으로 보이나 자세한 기록이 발견되지 않고 있다.나중 그의 행적을 미루어 보아 식민지 젊은이들의 의와 기를 살리는데 앞장섰으리라생각될 뿐이다. 그러나 그의 20대는 날이 갈수록 어두운 색깔로 채색되어갔다.혈기왕성했던 스물다섯에 을사보호조약 체결을 겪었고 서른에는 망국의 경술국치를 감수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국내와 망명지 만주등에는 사립학교 설립이 급증했다.이는 조국광복을 위해서는 교육만이 살길이라고 생각한 선지자들이 많았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 선생역시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했음에 틀림없다.그러나 한계를 느꼈을 것이다.망명후 선생이 교육에 정신(대종교)과 힘(무장투쟁)을 융합시킨 사실이 그 증거이다. 31세때(1911년)선생은 국내에서의 항일투쟁의 어려움과 조국의 암담한 현실을 통분해하며 당시 지사들이 많이 망명해있던 동만주 왕청현으로 떠났다.만주지역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전개된 항일무장투쟁 10년의 시작이었다. 그는 한승점이 설립한 대종교계통의 명동학교(왕청 덕원리소재)에서 물밀듯 이주해오는 한인자녀들을 가르치며 조국독립의 강한 의지를 불붙여 주었다(이 명동학교를 서일선생이 설립했다는 설도 있지만 기록에는 나타나 있지 않다). 이듬해 10월 선생은 대종교에 귀의한다.홍익인간의 이념을 추구·실행하는 대종교 정신은 벌판을 누비던 독립군들에게 막강한 정신력을 주게된다.선생이 단순한 무장독립운동가가 아닌 교육자·종교인·언론인으로도 평가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두만강을 넘어 망명해오는 열혈청년들이 줄을 이을 때 서일선생은 북간도 일대에서 대일항전을 노리는 의병들과 규합,중광단을 조직했다.단장에 취임한 그는 무력항쟁의 기틀을 잡기위한 체제구축에 심혈을 기울이는 한편 대종교의 이념계승에도 몰두했다. ○대종교에 귀의 그는 대종교 입교후 포교에도 나서 3년동안 동만주 북만주 연해주 함경도 일대에서 10여만의 교우를 얻어 「도력이 큰 도사」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서일선생은 교우들중 젊은 청년들은 독립군으로 편입시키고 일반교우에게는 군량 조달등 다른 직무를 부여했다. 독립군에 편성된 청년들의 강고한 정신무장을 위해 한배검에 귀의케한 탓으로 후일 그가 총재로 지휘한 북로군정서(대한군정서)의 장병은 거의가 대종교인이었다.선생은 교도들을 중심으로 독립군 양성에 주력했는데 신도 1만5천명을 모아놓고 「독립군 양성기금으로 1인1원씩 거뒀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대종교를 독립운동의 기지로 삼았음이 틀림없다.이 사이 선생은 「오대종지강연」「도해」「신화강의」「진이도설」「삼문일답」「회삼경」등 경전도 저술했다. 당시 선생은 중광단등을 통해 대일무장투쟁을 추구했으나 재정문제등 조직적 체제가 구축되지 않아 실질적 군사투쟁은 전개하지 못했다.이에 선생은 수많은 독립군및 운동단체 결집을 위해 1918년 김좌진 김동삼 신팔균 손일민 신채호등 39인 연서로 「무오대한독립선언서」를 발표하면서 독립운동에 활기를 불어 넣었다. 이와함께 강도 높은 전투훈련을 실시하는 한편 「일민보」「신국보」등 신문을 발간,『일제와의 항쟁은 혈전을 벌이는 피의 전투 밖에 없다』는 논조를 내세웠다. 이듬해 1919년7월부터 청산리전투가 전개된 1920년10월까지 선생은 중광단을 확대·개편한 대한정의단→대한군정부→북로군정서등 독립군단을 이끌었다.정규병력 1천5백여명을 청산리전투주역인 사관으로 양성하고 러시아·체코군으로부터 3만여정의 무기도 확보했다. 이처럼 군정서가 힘을 갖추기 시작하자 일제는 상당히 겁을 먹고 주목했는데,그들은 「북간도지방의 항일단체 상황」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일제정규군 3천3백여명이 사살 당하는 청산리전투를 짐승처럼 예감하고 있었다. ○일군 3천명 사살 『…군정서는 서대파구에 근거를 두고 서일이 통솔한 단체로서 대부분 단군교도(대종교)이다.…그들 행동은 극히 흉포하여 부단히 선내지에 대한 무력침습을 양언하고 있다.…총재는 서일,부총재 현천묵,사령관 김좌진,부사령관 김성,참모장 나중소등이다.…일단 유사시에는 명령일하 동원소집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청산리전투후 여러개의 독립군단들은 일제의 추격을 피해 러시아영 밀산으로 이동한다.여기에서 북로군정서(서일)·대한독립단(홍범도)등 10개 부대는 전만주 3천5백 병력을 통합한 대한독립군단을 조직했고,선생이 총재로 추대되었다.부대편성을 마친 독립군단은 이듬해 정월 우수리강을 건너 시베리아로 이동했다. 그러나 「소련영토 안에 일본에 대적하는 독립군을 육성하면 양국간 우호관계에 큰 지장을 초래하는 것」이라는 일공사 요시자와의 위협에 소련은 독립군의 무장해제를 강요하는 소위 「흑하사변」이라는 참변이 발발해 독립군은 힘을 잃었다.여기에 토비들의 습격까지 겹쳤다. 수많은 동포와 청년독립군들이 희생을 당했다.비분강개한 선생은 8월28일 마을 뒷산 산림 속에서 대종교의 폐기법으로 자결순국했다.41세 독립운동가가 남긴 유언은 처절하다. 『조국광복을 위해 생사를 함께 하기로 맹세한 동지들을 모두 잃었으니 무슨 면목으로 살아서 조국과 동포를 대하리오.차리라 이 목숨을 버려 사죄하는 것이 마땅하리라』 ◎역사적 평가/독립운동가·교육가로 큰 발자취/신재홍 국사편편찬위 부장 백포 서일선생은 그가 민족운동사에서 차지 하고 있는 위상에 비하여 그리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인물이다. 일찍이 민족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몸소 이를 실천한 교육자이며 또 민족정신 앙양을 목적으로 한 대종교의 간부일뿐아니라 만주에서 일제와 무장항일투쟁을 전개한 독립군 지도자였다. 그의 학력은 함북 경성군에 위치한 성일학교 사범과를 나온 것이 전부이다. 그러나 일찍부터 민족혼을 살리는 길은 교육에 있음을 인식하여 향리에서 교편생활을 하였으며 1910년 일제가 주권을 강탈하자 북만주로 망명하여 그곳에 명동 동일 학성 동신 동화 양성학교를 설립하여 구국인재 양성에 헌신하였다. 뿐만 아니라 일제에 강탈당한 국권을 회복하는 길은 강인한 민족혼의 배양에 있다고 확신하였고 이를 위하여는 국조단군을 숭상하고 홍익인간의 이념을 깨우치는데 있다 하여 민족종교인 대종교에 귀의 하였다.대종교의 포교가 바로 민주운동이요 독립운동임을 믿어 교리연구과 포교에도 힘써 많은 저술을 남긴 민족종교의 지도자였다. 선생의 활동에서 특기할 것은 무엇보다 무장항일운동에 있었다.선생은 일제를 우리 국토에서 구축하고 주권을 회복하는 길은 오로지 일제와의 혈전에 있다하여 무장항일운동 단체인 중광단 대한정의단을 조직,활동하였고 1919년에는 여러 무장단체를규합하여 북로군정서를 설립하였다.이 단체는 민족정신이 투철한 대종교 신자가 중심이 된 단체로서 재만 독립군중 최강의 부대였다.따라서 1920년 이 부대가 이룩한 청산리전투의 위업은 결코 우연히 이루어 지지 않았음을 인식하여야 한다.이것은 선생이 배양한 투철한 민족혼과 강인한 항일의식이 그 밑바탕이 되었던 것이다. 민족교육가이며 민족종교가로서 또한 무장항일운동의 지도자로 선생이 민족운동사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매우 크다는 것을 잘 알수가 있다.
  • 고맙고 대견한 여갑순선수(사설)

    열여덟살짜리 소녀라기에는 너무 침착하고 의젓한 금메달리스트다.자신이 이룩한 공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미처 모르기라도 하는 것같은 그의 경기매너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그의 수훈이 너무 대견하다. 바르셀로나대회의 첫 금메달을 조국에 안겨준 그의 공이 신기하고 고맙다.그의 말처럼 『그저 8강안에만 들어가면 좋겠다』는 정도가 목표였는데 금메달을 따낸 것이다.「8강」을 위해서도 「금메달」만큼 노력해야하는 것이 승리의 이치인 것을 보여준 셈이다. 오만하도록 유럽의 자존심을 과시하는 개막식을 위성중계로 보며 일요일 새벽잠을 설친 고국의 동포들에게 여갑순의 금메달은 참으로 통쾌한 자부심의 회복일 수 있었다.진작부터 올림픽 사격계의 관심과 예측이 쏠려 있던,유럽의 체격뛰어난 선수들 틈에서 당황도,실수도 하지않고,자신의 페이스를 조금도 흩뜨리지 않고 굳건하고 침착하게 과녁을 쏘는 이 자그마한 한국소녀에게 세계가 놀라는 것같았다. 긴장때문에 보는 이도 간이 오그라드는 것같은데 본인인들 안그럴 리가 없건만 당사자는 표정하나도 불안함을 느끼지 않게 했다.그것이 실은 여선수의 정신적 능력임을 수상후의 태도에서 알수가 있다.금메달을 타고도 그는 조금도 나대지 않았고,어떤 메달리스트들이 흔히 그러듯 펄펄 뛰며 링위로 뛰어오르는 따위,경기 매너상 금기로 되어있는 행동을 조금도 하지 않았다. 말도 놀랄만큼 절제하고 태도도 매우 진지한 채 쏘는 탄알 하나하나가 결정적으로 실패하는 법이 없었던 그의 사격기량은 가히 모범적이었다.우리가 여갑순의 우승을 기뻐하고 대견해하는 것은,경기 첫머리를 장식하여 우리의 전체 참가자들에게 자신감을 주고 고국동포를 기쁘게 해준 것에 있지만 그이상 값진 것은,그가 보여준 경기에 임하는 태도이다.메달에 대한 집착을 거의 보이지 않으면서 자신의 최고의 기량을 보이려는 노력에만 온 정성을 쏟는 태도 그 자체가 좋았다.그것이 선수로서 가장 바람직한 모습이다. 우리의 참가선수들중에는 그밖에도 많은 우수하고 빛나는 재목들이 있으므로 얼마든지 더 많은 공적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도 알고 있다.그렇기는하나 우리 선수들이 국제경기에서 가장 많이 실수를 범하는 것은 경기에 임함에 있어 때로 너무 자만하거나,의기소침하여 미리 패배감에 휩싸이거나 포기하는 태도를 지니는 경우가 적지않은 데 있다.그러므로 메달과 관계없이 좋은 경기를 보이는 스포츠정신의 발휘가 빈곤했다. 한나라가 올림픽 개최국이 되는 것은,인류에게 올림픽 정신의 이상을 실현해 보임으로써 세계시민의 정신적 성숙을 돕는 역할의 수행까지를 의미한다.우리에게는 그런 사명도 있다.바르셀로나는 서울의 다음에 온 올림픽이다.여갑순의 금메달은 세계인에게 「서울」을 환기시켰다.그것도 아주 의젓하고 패기있고 호락호락하지 않은 모습으로 되살아나게 했다.이 빛나는 시작에 흠이 가지 않도록 나라 안팎의 모든 구성원이 합심해야 할것이다.다시 한번 우리의 어린 효녀 여갑순을 칭찬하며 또다른 영광의 메달들이 이어지기를 기원한다. 모두가 선전하기를.
  • “모국 발전모델 연변에 적용”/경협모색차 내한한 연길시장 박동규씨

    ◎“서울∼연길 직항노선 중국정부에 요청했다” 『교포들이 많이 살고 있는 연변의 발전을 위해 고국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26일 내한한 중국 연변조선족자치구 박동규연길시장(51)은 모국의 경제발전모델을 연변에 적용시켜 경제발전을 이뤄내는게 자신의 주된 임무라고 소개했다. 그는 지난해 교포 18만명이 살고 있는 연길시가 현지 의란농공단지내에 설립한 만광개발의 한국 합작회사인 기림주식회사의 초청으로 연길시 경제관계자 6명과 함께 왔다. 만광개발은 44㎦의 부지의 대규모 단지에 설립된 중국에서 가장 큰 목장이며 생산품을 식품으로 가공하는 시설을 함께 갖추고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박시장은 『앞으로 이 합작회사를 중국최고의 식품가공회사로키워낼 계획』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또 한국과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서울과 연길을 직접 운행하는 항공노선의 필요성을 절감,올해초 중국정부에 이를 정식으로 요청한데 이어 한국측 관계자에게도 비공식적으로 의사를 타진한 바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국 항공관계자들로부터충분한 시장성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덧붙였다. 박시장은 또 『국제적으로 유엔개발계획(UNDP)을 통한 두만강개발계획 등 동북아 경제협력이 급진전되고 있다』고 전제,『한국기업의 현지 투자는 양국의 발전에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실행하기 위해오는 30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투자설명회를 여는 한편 포항제철 현대중공업 기아자동차 등 국내 기간산업시설과 투자유망중소기업 등을 방문할 계획이다. 『모국동포들의 후원에 힘입어 해외최초의 민족대학이자 중국 첫 사립대인 연변조선족기술대가 오는 9월16일 개교를 앞두고 있다』면서 그는 한국의 후원회에 대해 고마워했다. 지난 1950년 충남 홍성 출신인 할아버지가 만주로 이주하면서 이곳에서태어나 줄곧 살아온 그는 길림화공학원을 졸업했다. 이어 연변의학원 부총장을 거쳐 지난89년 시장으로 선출돼 올해말 임기 4년이 끝나지만 한번 더 이 직책을 맡아 연길시의 발전을 위해 힘쓰고 싶다고 희망했다.
  • 남북경협의 문 일단 열였다/김달현부총리 남녘행 결산과 경협 전망

    ◎교류필요성 인식 넓힌건 큰 성과/「남포」 진전땐 합작투자 가속될듯/업계선 성급한 추진 지양,북 개방 맞춰 완급조정을 북의 고위 경제관료로는 처음 남한을 공식방문했던 김달현부총리가 25일 6박7일간의 공식일정을 마치고 평양으로 돌아갔다. 그가 노태우대통령 예방과 최각규부총리와의 회담,일련의 산업시찰을 통해 남한경제의 실체를 확인함에 따라 그의 이번 방문이 앞으로 남북경협에 새로운 전기가 될것으로 기대된다. 남북경협은 그간 핵문제에 걸려 경제교류에 관한 남북한부속합의서 채택이 지연되고 예정됐던 대우의 남포공단 조사단 방북이 유보되는등 교착상태에 빠져 있었다.때문에 핵이라는 단단한 장벽에 부딪쳐 경협진전이 어려웠던 상황에서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그의 방문은 앞으로 남북경협의 추진은 물론 분위기 개선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평가된다. 북측이 주장한 시범사업과 관련,우리정부가 남포공단의 타당성 조사를 위해 조사단을 파견키로 한 것도 결과적으로 그의 방문성과로 볼 수 있으며 9월 이전으로 예정돼 있는최각규부총리의 방북역시 남북경협의 분위기개선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물론 조사단이 파견된다고 당장 남북경협이 가시화되는 것은 아니다.조사단 파견을 본격경협의 신호로 보기보다는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테두리에서 이루어지는 하나의 과정으로 보는게 오히려 옳을 것이다. 정부는 기본적으로 핵문제의 해결없이는 남북경협이 진전되기 어렵고 핵문제 해결과 더불어 부속합의서 채택등 남북공동위원회의 가동요건이 갖춰져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따라서 이번 남포공단 조사단파견도 김부총리의 서울방문이나 최부총리의 방북과 같이 경협이전의 단계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며 김부총리 방문에 대한 답례성격으로 해석하고 있다. 답례성격이긴 하지만 김달현부총리등 북한내 개방파의 입지를 강화시켜주면서 핵문제해결을 촉구한다는 다목적 차원에서 선택된 카드로 볼 수 있다. 어쨌든 북한은 당면한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해 부심하고 있고 이같은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이번에 김부총리의 서울방문을 결행시킨 것으로 분석된다.즉 남북간예민한 핵문제를 우회하면서 시범사업을 돌파구로 경협을 유도해보려는 전략이 깔려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일성이 김부총리를 통해 노태우대통령에게 남포공단 조성사업을 도와달라고 요청한 것이나 방문기간중 김부총리의 언행이 보여주듯 북한은 남북경협의 필요성이 절실한듯 하다. 지난 20일 경제5단체장과의 만찬과 기업체방문에서 김부총리가 『남한이 중국이나 러시아보다 북한에 우선 투자해주기를 바란다』고 한 것이나 대우자동차 시찰시 방명록에 「대우와 삼천리총회사사이의 협력을 강화하자」라고 서명한 것 등이 이를 잘 보여준다.또 부산의 화승산업 신발공장 시찰때 『바로 화승같은 기업이 남북교류에 적합한 기업이다.왜냐하면 북의 노동력과 남의 기술을 합칠 수 있는 사업이기 때문』이라고 말한 것도 남북경협의 절박성을 내비친 대목으로 볼 수 있다. 김달현부총리의 방문을 계기로 앞으로 핵문제에 대한 북의 태도가 어떻게 변화될지 주목되지만 핵문제가 해결될 경우 남포공단사업을 중심으로 남북경협도 한층 활발해질 전망이다. 남포공단사업은 북한이 역점을 두어 추진중인 사업으로 지난 1월 김우중 대우그룹회장의 방북시 8개 분야의 합작을 합의한 바 있으며 북한은 부지조성에 이미 착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당시 합작에 합의한 분야는 와이셔츠 재킷 신발 가방 블라우스 봉제완구 메리야스 양식기등으로 이번 산업시찰에서 김부총리 일행이 가전과 생활용품에 각별한 관심을 보인데서도 이같은 합작구상의 일면을 읽을 수 있다. 화승산업 시찰때 조깅화를 보고 『구두라고 하기도,그렇다고 운동화도 아니고 뭐라고 해야 합니까』라고 물은 것은 북한생활용품의 수준을 보여주는 상징적 단면이기도 하다. 남포사업은 김우중회장이 합의한 사업을 골격으로 추진될 가능성이 높지만 특정업체가 독점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이번 김부총리의 방문으로 남북한간 경협논의가 당국대 당국으로 격상된데다 정부도 특정재벌에게 혜택을 주지 않겠다는 입장이어서 컨서시엄형태의 진출이 될 공산이 크다.정부는 일단 토지개발공사의 산업기지개발전문가와 대우등 민관합동의 조사단을 구성,8월께 파견한다는 구상이다. 남포사업이 성공적으로 추진되면 남북경협은 나진·선봉등 두만강유역의 합작사업으로 이어질 것이고 금강산개발이나 공동자원개발,제3국공동진출등 우리정부가 구상중인 남북한협력·투자사업으로 점진적으로 발전돼나갈 것이다.특히 핵­경협을 동일티켓으로 고수해온 정부가 이번 김부총리의 방문을 계기로 조사단파견등 경협이전의 사업추진에 유연한 자세를 보임으로써 핵이라는 걸림돌이 해소되면 경협은 상당히 빠른 속도로 진전될 전망이다. 남북경협에 한계는 있다.북한의 개발방식이 체제유지를 목적으로 나진·선봉과 같은 북단지역이나 남포등 남단지역의 개발을 선호하고 있고 개방하더라도 그 폭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급작스런 개방에 따른 체제붕괴의 위험을 최소화하는 선에서 개방을 추진할 것으로 보여 우리기업이 대북진출을 서두를 경우 적지않은 부작용도 가져올 수 있다. 지난20일 경제5단체장 만찬에서 재계인사들이 너도나도 김부총리에게 방북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던 모습도 우려되는 점이다.성급한 기대나 민간기업들의 경쟁적인 경협추진은 절대 금물이다. 김달현부총리의 방문으로 교착상태에 빠졌던 남북경협이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한 것은 틀림없다.그의 방문이 남북교류협력법에 규정된 절차에 따라 이루어짐으로써 남북경협논의가 당국대 당국차원으로 바뀐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로 평가된다.따라서 핵문제에 진전이 있을 경우 남북경협은 남포공단 합작사업을 중심으로 빠르게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시범사업 추진하며 합영법 등 점차 개선”/김달현부총리 귀환 기자회견/“이념달라도 민족이익위해 노력/남측서 핵문제 거론하지 않았다” 김달현북한부총리는 25일 하오2시 서울 힐튼호텔 지하1층 그랜드볼룸에서 내외신 기자 1백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기자회견을 가졌다. 김부총리는 인사말을 통해 『서울 방문기간동안 불편을 겪으면서도 편의와 협조를 해준 시민과 정부·기업 관계자들에게 깊은 사의를 표명한다』면서 『이번 방문을 통해 남쪽의 정·경제계 인사들과 만나 남포경공업기지 설치합의등 민족경제를 깊이있게 논의했고 정견과 이념은 달라도 민족의 이익을 위해서는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은 김부총리의 요청에 따라 한꺼번에 질문을 받고 종합적으로 답변하는 형식으로 진행됐으나 김부총리는 『인사말을 통해 이미 중요한 부분은 모두 밝혔다』면서 간단히 답변해 15분만에 끝났다. ­남포에 공단을 조성하고 투자를 유치하려면 합영법을 개정해야 될텐데 준비는 어느정도 돼 있는가° ­남북합작사업 추진은 당에서 주관하다가 정무원으로 넘어 갔다고 하는데 정무원의 영향력은 어느 정도인가. ­김부총리는 핵문제가 이번 경협과 관련이 없다고 했는데 이는 이동복대변인의 발표내용과 상반된다.원자력 발전을 위한 기술과 자본도 요청했는가. ­남북이산가족고향방문이 제대로 추진되지 않고 있다.김부총리는 돌아가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북의 사유재산 허용여부는.또 김일성주석과의 친척관계는 어떻게 되나. ­(외신기자)북한의 김정일체제가 실용주의로 나갈 것인가. ▲미안하다.통역없이는 답변을 할수 없다.이제부터 답변하겠다.이곳에서 한 사업에 대해서는 합의한대로 다 얘기됐고 그외엔 없다.핵문제는 제기되지 않았고 전제도 없었다.일정한 시간이 필요해서 남포에서 시범을 하자고 했다.나진·선봉지구도 같다. 시범하면서 여러가지 해결할 문제가 많다.불충분한 것만 질문하라. ­이번에 주요 산업체를 모두 둘러 봤는데 소감을 종합적으로 얘기해달라. ▲너무 많은것을 봐서 좀 정리를 해야겠다.그 문제는 나중에 얘기하자. ◎평양 「핵결단」이 열쇠로/핵 의혹 씻는 본질변화 꾀해야/김 부총리 남녘나들이 이후 과제/「정·경 분리」 집착땐 남측도 곤혹 북한의 김달현부총리가 25일 평양으로 귀환했다.6박7일 동안 남한에 머물면서 많은 경제인을 만나고 또 여러 곳의 산업시설을 둘러보긴 했지만 판문점을 넘어가는 그의 손에 정작 쥐어진 「과실」은 없었다.다만 소득이 있다면 24일 청와대방문시 노태우대통령으로부터 받은 「남포조사단」의 방북약속이 유일한 것일 뿐. 그러나 이같은 빈약한 알맹이에도 불구,김부총리의 이례적인 방한은 향후 남북관계에적지않은 파급효과를 몰고올 것으로 예상된다. 김부총리의 이번 방한결과를 보는 시각은 크게 둘로 나뉘고 있다.하나는 김부총리가 받은「남포조사단」방북약속이 성과의 전부라는 것이고 발표내용 행간에 담긴 「함축」을 읽어야 한다는 것이 다른 하나다. 이같은 상반된 시각중 어느 편이 진실에 가까운 것인지를 가리기는 쉽지 않다.다만 분명한 것은 김부총리의 이번 방한이 앞으로 남북관계를 풀어가는데 있어 「경제적인 수요」를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 하는 물음을 남과 북 모두에게 던졌다는 점이다.따라서 향후 남북관계의 질적인 변화여부는 이같은 물음에 양측이 얼마나 근접한 결론을 내리느냐에 달려있다고 봐야 옳을 것 같다. 사실 김부총리의 방한계획이 처음 발표됐을 때 남북관계가 이제까지 논의의 중심축이 돼왔던 정치·군사적인 요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양측에서 동시에 제기되고 있는 경제적 수요에 의해 발전적으로 풀려 나갈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 아닌가 해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었다. 그러나 현재까지 드러난 바로는 핵문제로 대표되는 정치·군사적 현안이 쌍방의 경제적 수요를 압도한 것으로 요약되고 있다. 이에따라 북은 「정치·군사적 수구」와 「경제적 개방」이라는 상반된 정책추구에서 빚어진 논리적 모순을 어떻게 풀 것인가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는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반면 남은 남대로 하부구조(경제)의 변혁이 상부구조(정치)의 변화를 유발할 것이라는 믿음 아래 추진해온 남북교류협력활성화 정책에 물음표를 달고 있는 회의론을 다독거려야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북한은 김부총리의 이번 방한기간중 기회있을 때마다 남북경협사업의 조기실현 열망을 표명하면서도 정치·군사적 대남개방에 대해서는 거부의사를 분명히했다.그러나 북한의 이같은 「정·경분리정책」은 남측 이에따라 북은 김의 평양귀환 이후 상반된 정책추구에서 비롯되는 비효율성을 극복하기 위해 수구논리와 개방논리간 치열한 내부조정을 거칠 것으로 보이며 그 결과는 빨라야 제8차고위급회담이 열리는 오는 9월경에나 가시화될 것으로 관측된다. 반면 남측도 김부총리의 방한을 계기로 남북경제교류·협력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정리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남측은 사실 핵문제가 제기되기 전까지만해도 남북동포들이 다같이 잘살기 위해서는 통일이 이뤄지기 전이라도 남북이 공존공영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왔다.그래서 경제교류와 협력의 활성화를 주요 당면과제로 내세워 이의 선실천을 강력히 주장해온 터였다. 그러나 이에 대한 지금까지의 북한의 대응은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따라서 북한이 최근 취하고 있는 경제개방조치는 어디까지나 체제유지를 위한 경제위기 극복용일 뿐 우리가 기대하고 있는 「본질적 변화」와는 거리가 먼 것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세를 얻고 있는 것이다. 이번 김달현부총리의 방한중에도 간간이 표출된 이같은 인식차를 어떻게 조화시킬것인가도 남측이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다.그러나 어느 편이든 핵고리를 손쉽게 떨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에서 남측의 선택에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이 경우 김부총리 방한이후의 남북관계 역시 북한이 남북관계의 진전를 억누르고 있는 「핵모자」를 어떤 형식으로든 벗어주어야만 획기적인 전기를 맞게 된다는 일반론의 범주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 같다.선택은 북한의 손에 달린 셈이다.
  • 창피하고 부끄러운 「LA 추태」/홍윤기 LA특파원(오늘의 눈)

    「4·29 LA흑인폭동」은 상점이 불타고 전재산을 날린 피해교민은 물론 전체 LA교민의 아픔이자 쓰라림으로 기억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은 이곳 교민사회에 뿌듯한 교훈을 남기기도 했었다. 폐허에서 딛고 일어나 재기하려는 자조노력,10만교포가 모여 서로를 위로하며 화합을 다지던 모습,고국을 중심으로 세계각지에 밀려들던 성금대열….사건이후 보여준 이같은 모습들은 지금까지 뿔뿔이 흩어져 제각각인줄만 알았던 현지교민들에게는 민족적 자긍심을 한껏 드높여줄만한 「또다른 사건」이기에 충분한 것이었다.그래서 이를보는 다른 미국인들은 『역시 한민족은 남다른데가 있어』라며 격려와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성금의 사용방법을 둘러싸고 빚어지고 있는 교포사회의 갈등은 사건이후 보여주었던 그와같은 민족적 긍지와 자존심에 여지없이 먹칠을 하고 있으며 성금을 모아 보낸 많은 동포들에게 전보다 더한 실망과 배신감을 안겨주고 있다. 『피해자들이 똑같이 나누어 쓰자』는 피해자협회측 요구와 『이 성금을종자돈으로 하여 보다 유용하게 사용해야 된다』는 재해대책위측 주장이 엇갈리는 가운데 잡음이 끊이질 않더니 끝내는 영사관점거농성이라는 폭력적수단이 잇따르는 상황에 이르고 말았다.성금은 급기야 「잡음의 씨앗」으로 변질되고 있는 상황이며 이로인해 교포사회의 분열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창피하고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격려와 함께 부러움의 시선을 보내기까지 하던 다른 미국인들에게 이같은 현상은 추태로 비쳐질 수밖에 없다.성금을 모아 보낸 사람들의 뜻이 무시된채 사용돼서는 안된다는 주장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피해자 한가구당 3천여 달러씩 나눠진들 몫돈만 부서질뿐 실질적인 피해복구에는 어림도 없다는 주장도 꽤 설득력이 있다.다급한 일부 피해자들은 단돈 몇백달러도 아쉽다는 주장도 외면키 어려운게 사실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라도 다중시위를 동원한 폭력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처사는 지탄받아 마땅하다.특히 그 돈은 동족의 불행을 함께 나누려는 숭고한 뜻들이 하나 하나 모여 이룩된 「성금」이기에 더욱그렇다.
  • 성금시비는 실망스럽다(사설)

    인종폭동으로 피해 입은 동포들을 위해 모금한 돈 때문에 교민사회에서 알력이 빚어지고 있다는 소식은 실망스럽기 그지없다.돈을 많이 갖고 적게 갖는 문제로 벌이는,다소 치사한 물의여서 더욱 듣고있기 거북하다.수만리 이역땅에서 고국을 아주 떠난 동포들이 벌이는 알력이므로 그런가보다하고 외면해 버리면 그만일 일이기는 하다. 그러나 적든 많든,고국의 동포들이 직접 간접으로 이 돈의 모금에 참여를 했다.그렇다고 「내돈」을 내놨었으므로 참견할 권리가 있다는 생각인 것은 아니다.LA사태가 벌어졌을 때 우리고국의 동포들은 충격속에서 즉각 어떻게 하면 동포애를 발휘할수 있을까부터 생각했고 그 열기가 삽시간에 번져 모여진 것이 「성금」인 것이다.바로 그 성금을 놓고 더 갖고 덜 갖는 문제로 몸싸움까지 벌일 지경이라는 소식은 부끄럽고 서글픈 느낌이다. 성금 모을 때의 뜨거운 동포애를 스스로 기억하는 우리로서는 이런 소식을 접하는 일이 괴롭다.아직도 악몽에 시달리고,피해에서 회복되려면 얼마나 더 세월이 가야할지 캄캄한 느낌에서헤어나지 못하는 동포도 있을 것이다.그런 피해자들로서는 『우리 위해 거둔 돈이니 우리한테 권리가 있다.다 내놔라』하는 심정일 수 있을 것이라고도 생각한다.그러나 성금을 낼때 우리의 심경은 이 성금이 모든 동포들의삶에고르게,그리고 가능하면 근본적인 문제의 대책에 다소나마 도움이 되기를 염원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 뜻에서는 성금을 관리하는 기구가 긴눈으로 성숙하게 동포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 방안을 연구하고 협의를 통해 합의된 결정을 도출하여 집행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적어도 성금이 또 다른 갈등의 불씨가 되어 동포끼리 알력을 빚거나 하는 일은 상상도 하지 않았다.그런데 들리는 바로는 성금을 피해자들에게 일률적으로 나눠주지 않고 일부를 기금으로 하여 운용하자는 대책기구의 의견에 반발하여 일부가 극렬한 행동까지 벌였다고 한다.너무 실망스럽고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지 않아도 이른바 LA사태가 유색인종사이에서 벌어진 부당하고 편견에 찬 불의의 사태였다는 사실에는 모두 공감하지만 우리 동포들의 해외에서의삶의 태도에 조금은 반성할 여지가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상당한 지적이 있었다는 사실도 인정하지 않을수 없다.이같은 지적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없이는 같은 사태의 예방은 가능하지 않다.성금의 배분이 그런 근본적인 접근을 위한 이성적인 결정이었다면 충분히 토의해서 수렴할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또한 전액을 피해자에게 분배한다 하더라도 피해의 정도나 회생능력이나 여건에 따른 차별화를,위원회에서 검토해보고 집행하는 방안도 영 불가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모든 일을 순이로 의논껏 치르는 것이 불행을 극복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뜻대로 안되면 집단 시위부터 벌이고 새로운 분규로 돌입하는 태도는,우선 그곳의 여러 타민주에도 좋지않은 인상을 심을 뿐이다.그곳에서 뿌리를 내려 살 사람들이,걸핏하면 시끄럽게 싸움이나 벌이는 말썽 많은 인종으로 비치는 일은 그들 스스로를 위해 해롭다.이역만리에 동포를 둔 고국 동포들은 그것이 걱정스럽다는 것을 거듭 밝혀 둔다.
  • 범민족대회 준비위 연대서 대표자회의

    「범민족대회 남측 준비위원회」(위원장 강희남)「범민족연합」의장 권한대행)는 20일 하오 서울 연세대 총학생회사무실에서 「범민족대회 남측 추진본부 구성을 위한 제1차 대표자회의」를 가진뒤 『정부가 허락하면 다음달 13일부터 닷새동안 판문점에서 남·북및 해외동포가 참가하는 「범민족대회」를 가질 것이며 허가가 나지않으면 14일부터 사흘동안 중앙대에서 「대회」를 열것』이라고 밝혔다.
  • 북 부총리 방한에 거는 재계인사들의 바람

    ◎“상호실익 가져올 경협 새장 열길”/남북산업구조 협력 통한 보완 모색/투자사업 계속성 제도적 보장 관건/화해분위기 조성… “북의 경제관 개안계기” 기대 ◎박용학 무협회장 경제계는 16일 김달현북한부총리의 방한이 북한의 핵문제로 교착상태에 빠진 남북관계를 개선,남북 경제교류와 협력의 물꼬를 트고 나아가 통일을 앞당기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아직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핵문제등 남북관계개선에 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특히 경제협력의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 지난 3월이후 유보했던 대북투자및 위탁가공등 남북협력사업을 활발히 전개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남북 양측은 또한 김부총리의 방한을 계기로 남북관계 개선에 장애가 돼온 핵사찰문제는 물론 실무협의 과정에서 진통을 겪고 있는 이산가족 고향방문사업등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 원만하게 성사됐으면 한다. ◎최석철 코오롱상사 사장 남과 북의 산업구조로 볼때 상호협력에 의한 보완은 양측에 모두 경제적 실익을 가져다 줄 것으로 믿는다.경협의 실질적인 진전을 위해서는 투자지역에서 사업의 계속성이 제도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는데 지금의 상황은 투자가 수반된 대규모 프로젝트성 사업을 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김부총리의 서울방문을 통해 경제교류협력공동위가 조속히 정상화돼 합영사업에 대한 법적보장및 경영환경 조성에 대한 법령의 제정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우리 기업들도 통일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인식하고 과다한 경쟁보다는 산업별로 국내기업의 특성을 고려,진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송충원 삼선해운 사장 북한의 경제를 담당하는 고위 책임자가 우리의 산업현장과 경제실정을 직접 돌아본다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그렇다고 해서 이번 일로 남북간의 정치나 경제관계에 별다른 진전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저쪽의 체제를 생각해본다면 자명한 일이다.그동안 총리급을 대표로 한 양쪽 대표단들이 여러차례 오갔고 양측이 합의한 성명도 적지 않았지만 가장 간단한 이산가족의 재회문제조차 지금까지 실현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합작공장에 가스관 건설까지 다 좋은 일이지만 이런 일은 우방국 기업간에도 몇년씩이나 걸리는 것이다. ◎박용상 대한상의 전무 북한의 고위당국자가 국내 주요업체를 방문하여 우리의 실상을 알아보고 남북의 경제협력방안을 구체적으로 모색하기 위해 서울에 오는 것을 우선 환영한다.이번 방문이 북한의 경제개발사업에 우리 정부와 기업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면서 상호보완적인 부문에서 투자협력의 분위기를 마련하는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또한 남북간의 현안문제를 해결하고 서로 경제적인 이익을 증진시킬 수 있는 디딤돌 구실을 하기를 희망한다.특히 양측의 경제적 접근이 민족통일의 길로 이어져 금세기내 7천만 동포의 숙원이 실현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홍재형 외환은행장 김부총리의 방문이 남북경제교류의 새 장을 여는 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퍽 다행스럽게 생각한다.이번 방문기간중 한국경제 현황을 바로 인식시키고 시장경제의 장단점을 잘보고 느껴서 북한이 경제우선및 경제개혁에 눈을 돌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더욱 중요한 것은 이번 기회가 상호도움이 되는 실질적 대화와 남북경협의 실질적 진전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현재 남북한의 경제교류는 간접교역의 상태에 머무르고 있으나 앞으로는 직교역을 비롯,자본및 기술투자등으로 확대될 것이다.이러한 경제교류가 원활하게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남북한간의 금융거래가 필수적일 것이며 우리 은행도 북한은행과의 환거래 계약체결등 이 부문에 미리부터 준비하고 있다.
  • 북한 최대 북창 화전 1년반이상 발전중단

    ◎대러 석유수입 격감… 연료난 극심/평양자동차 운행 제한도 【도쿄=이창순특파원】 북한은 심각한 석유부족으로 최대 화력발전소의 가동을 1년반 이상 중단했을 뿐만 아니라 평양에 있는 자동차에 대해 주3일 연료공급을 중지하고 매주 토요일은 운행을 금지시키고 있다고 일본에 있는 북한문제전문가가 15일 밝혔다. 그는 김정일이 가동이 중단된 북한 최대 화력발전소인 평남 북창군 소재 「북창화력발전 연합기소」의 가동재개를 위해 지난 2월 홍성남 정무원부총리,전력공업위원회의 이지찬부장,자원개발부의 김세영부장등 경제지도간부등을 현지에 급파했으나 별다른 해결책을 찾지못했다고 말했다.북한은 러시아로부터의 석유수입 격감등으로 극심한 연료난을 겪고 있다. 이와관련,일본에서 발행되는 통일일보도 김정일이 석유절약을 위해 지난 6월 평양에 있는 자동차에 대해 매주 토요일 운행을 중지시키고 매주 금,토,일 3일간을 자동차의 연료공급을 중단하라는 긴급지시를 내렸다고 15일 보도했다.통일일보는 지난 6월 약1개월간 평양시등을 방문한 조총련계 재일동포의 말을 인용,이같이 보도했다.
  • 북한송환 재일동포 1백여명 “행방불명”/일 주간지 「아에라」 폭로

    ◎강제수용소서 고문받고 아사·동사도/조총련내서 참상폭로등 「조용한 반란」 일본의 아사히(조일)신문이 발행하는 시사 주간지 「아에라」는 7월21일자에서 북한으로 송환된 재일조총련인사중 가수,배우,작곡가,연구원등 지명인사 1백명이상이 행방불명되었으며 강제수용소에서 모습을 감추고 있는 북송자들의 실상이 공공연히 말해지는 「재일조총련의 조용한 반란」이 시작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다음은 아에라가 보도한 북한특집기사의 요약이다. ◇저명인사 1백여명 행방불명=일본에서 북한으로 송환된 재일조총련 인사중 가수,배우,작곡가,연구원등 세상에 이름이 잘알려진 사람만도 최소한 1백명이상이 현재 소식이 끊겼다. 조총련인사들의 북송사업을 담당했던 장명수씨에 의하면 행방불명된 지명인사중에는 일본에서 나가다 겐지로라는 이름으로 오페라가수 생활을 하던 김영길씨,배우 권병순(일본명 나가야마)씨를 비롯,작곡가,화가,탁구선수,도호크(동북)대및 교토(경도)대의 연구원,조총련계학교교사,상공업자등이 포함돼 있다. 재일 조총련중앙본부의 간부를 맡고 있던 사람들중에도 행방불명자가 속출하고 있고 소식이 끊겨진 인사들중에는 강제수용소로 보내져 고문등에 의해 살해됐거나 아사,동사한 사람도 적지않다. 북한측에 거액의 물자를 주고 친족을 「구출」해온 사람들도 있다. ◇재일 조선인의 조용한 반란=도쿄에서 한국음식점을 경영하는 이홍자여인(65)은 북송된 큰아들 광남씨의 처절한 강제수용소생활을 폭로한 편지를 인편을 통해 받았다.편지내용은 다음과 같다. 『산속의 수용소에서 겨울을 지내기 위해 두사람씩 몸을 서로 붙여 상대의 체온으로 따뜻하게 하고 있습니다.상대가 동사하면 감시인은 「산에 버리고 오라」고 말을 합니다.산속에는 버려진 사체가 눈위에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습니다.버려진 상대의 이름은 알수 없지만 언젠가 수용소실상이 폭로되면 이 사람도 영웅이 될 것입니다.밤에 잠을 자다 피가 얼어붙어 죽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감시의 눈을 피해 낮잠을 자고 있습니다』 이 편지를 보낸 광남씨등 4형제는 10대때 북한으로 갔으나 10년후 모두 스파이혐의로 체포됐다.유도를 잘하는 광남씨는 특수훈련을 받은 한국간첩으로 밀고됐다.차남은 강제수용소에서 곧 죽고 4남은 고문으로 한쪽 눈이 멀었다. 북한에 인척을 가지고 있는 재일 북한인들은 친족의 불행에 더 심한 탄압이 가해질 것이 두려워 북한의 실상을 말하는 것을 피해왔었다.
  • 재일동포 교원 3명에 정교사자격 응시불허/오사카시

    【오사카 교도 연합】 일본 오사카(대판)시 교육위원회는 10일 국민학교 교육에 몸담아온 재일동포 3명의 정교사 자격시험 참가를 불허했다. 이에 대해 3명의 교사들은 「인종차별」이란 강한 반발을 보였으며 후원단체들은 시험날인 오는 18일 항의집회를 계획하고 있다.
  • 피살흑인소녀 유족 박순자씨에 소 취하/유족 변호인 시사

    【로스앤젤레스 AP 연합】 지난해 3월 재미 동포 두순자 여인이 경영하는 식품점에서 오렌지주스를 배낭에 넣었다는 이유로 실랑이를 벌이다 두여인이 쏜 총에 맞아 숨진 흑인 소녀 라타샤 할린스의 유가족은 두여인과 소송을 취하키로 합의한 것으로 시사됐다. 고인의 유가족측 변호인은 지난 7일 기자들에게 『어느 정도 문제가 종결된 것으로 본다』고 말해 소송 취하가 합의됐음을 강력히 시사했다. 그는 그러나 더이상 구체적으로는 언급하지 않았다.
  • 창립10돌 신한은,총수신 6조/3년연속 「최우수은행」에 선정

    ◎국내외 123개 점포갖춰 재일동포들이 돈을 모아 설립한 신한은행이 7일로 창립10주년을 맞았다. 신한은행은 지난 82년 이희건회장등 재일동포 실업인들이 국내 경제발전에 보탬이 되고자 2백50억원을 투자,시중은행으로 발족해 10년만에 짭짤한 영업을 하고 있는 모범은행으로 떠올랐다. 89년 11월 공개해 지난 6월말 현재 자기자본 1조1천5백억원에 총수신 6조원을 넘어서는 중견은행으로 발돋움했다. 신한은행은 창립이래 고객서비스우선과 적극적인 영업전략을 구사하며 국내외에 1백23개 점포를 갖췄다. 평소 엄격한 여신심사 때문에 알찬 은행으로 소문나 은행감독원의 경영평가에서 3년연속 최우수은행으로 선정됐으며 지난해는 유러머니지가 세계각국의 은행에 대한 평가에서 국내은행으로는 유일하게 26위로 뽑히기도 했다. 지난해 직원 1인당 이익이 4천8백만원으로 조흥등 5개 시중은행의 평균 2천만원의 두배를 웃돌았으며 1인당 총수신액도 시은의 9억7천만원보다 훨씬 많은 13억7천만원에 달했다. 신한은행은 지난해 대고객서비스 전략으로 펌뱅킹제도를 처음 도입,「안방금융시대」를 연데 이어 시장 통상인을 위해 동전교환용 전동차를 가동하는 기발한 착상으로 고객의 인기를 독차지하기도 했다.
  • 일,「정신대」관련 양면작전

    ◎“「기금」 창설검토” 비치며 “강제동원 근거 없다”/일군,종전후 상부지시로 관련문서 폐기 【도쿄=이창순특파원】 일본정부는 종군위안부에 대한 한국정부 발표와 관련,생존하고 있는 고령의 전종군위안부 생활지원을 위한 기금을 창설,한국정부가 요청한 「적절한 조치」를 구체화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고 도쿄신문이 4일 보도했다. 일본정부는 한국인 원폭피해자의 의료등의 지원을 위해 설립한 기금과 유사한 형태의 기금창설을 구상하고 있으며 다만 지원대상을 전종군위안부 개인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전체를 대상으로 기념사업적인 성격으로 할 것인지는 앞으로의 검토과제라고 이 신문은 전했다. 【도쿄 교도 연합】 가토 고이치(가등굉일)일본 관방장관은 3일 자신들의 수치심에도 불구,정신대의 참상을 세상에 공개한 한국인 피해 여성들의 용기에 경의를 표했다. 가토 장관은 기자들에게 『이들 여성이 스스로 신원을 밝히기가 무척 힘들었을 것』이라면서 『그들이 겪은 고통을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일본 정부도 6일 방위청 등 6개 부처가 공동 작성한 자체 보고서를 공표할 예정이다.이와 관련,일본 관변 소식통들은 보고서의 토대가 된 1백여종의 각종 문서들이 한국 여성 등이 정신대에 강제 동원됐다는 점을 입증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도쿄 연합】 2차대전후 일본군은 상부의 지령에의해 종군위안부와 관련된 서류를 처분한 사실이 거듭 확인됐다고 교도통신이 3일 보도했다. 이같은 사실은 조총련계 재일동포 금병동씨(64)가 각지에서 72점의 종군위안부 기록을 수집,이날 펴낸 「전장일지에서 본 종군위안부 극비자료집」에서 드러났다. 이 자료집에 의하면 「제48사단 전사 자료 병 종전장황」(46년7월)에는 50명의 한인 종군위안부가 있었던 인도네시아 숨바와도에서의 종전처리 상황을 설명,그 중에 「전사 자료는 정전시 그 대부분을 상사의 지령에 의해 처분했거나 나머지도 호주군에 제출함으로써 정확한 자료가 거의 없다」라는 기록이 포함되어 있다.
  • 외언내언

    북한의 김일성주석이 자서전을 시리즈로 펴내고 있다.자서전의 제목은 「세기와 더불어」.지금까지 나온것은 자신이 태어난 1912년부터 35년까지 청소년시절의 얘기를 담은 1·2권인데 오는 8월에는 제3권이 나올 예정.앞으로 몇권이 더 나올는지 알수없지만 우리땅의 절반을 차지하고 북녘동포들을 반세기 가까이 철권으로 다스려온 김일성자신의 목소리를 담았다는 점에서 주목할 가치는 있다고 생각된다.◆그런데 최근 평양을 다녀온 미국의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지 클레이튼 존스기자는 이 자서전이 전반적으로는 김일성생애에 대한 북한당국의 공식견해와 크게 다른 것은 없지만 그가 걸어온길을 「겸손하게 인간적으로」반성한 대목도 있다고 보도했다.◆존스기자가 지적한 대목들은 『나는 한번도 내인생이 비범했다고 생각한적이 없다』『내가 혁명대열에 오른 이후 어머니를 위해 아무것도 한일이 없다』는 식의 술회.그는 또 이 자서진이 『덜 이데올로기적이고 대화체로 기술돼 있어 과거의 선전물보다는 적지않은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그러나 우리의 생각은 다르다.김일성도 살만큼 살았으니까 인생의 막바지 길목에서 자신의 생애를 돌아본 감회가 「인간적」일수도 있겠지만 그의 속성을 잘알고 있는 우리에게는 교활한변명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북한에서 김일성은 신으로 군림하고 있다.동서고금을 통해 어떤독재자도 흉내낼수 없는 「탁월한 수법」으로 인민들을 장악하고 있다.또 적화통일을 위해 동족상잔의 비극을 저지른 장본인이다.그런 인물이 신의자리에서 내려오지도 않은채 「인간적」인 술회를 늘어 놓았다고 해서 그것을 믿을 수 있겠는가.그의 자서전이란 것도 자신의 위상을 더욱 돋보이도록 하기 위한 또 하나의 수법에 지나지 않는다.우리는 그것을 잘 알고 있다.
  • “지방화시대 힘찬 뉴스박동들린다”/독자가 둘러본 본사 대구인쇄본부

    ◎전자동 초고속윤전기에 감탄사가 절로/직원들 눈망울마다 자부심·사명감 가득 서울신문 대구지사로 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서울신문사 대구인쇄본부 준공식에 참석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요즘 학기말 성적사정 등으로 너무 바빠 사양할까 하다가 서울신문이란 바람에 쾌히 수락했다.이유는 내가 1976년도 서울신문신춘문예 출신이어서 평소 누구보다도 서울신문에 대해 큰 관심과 애정을 갖고있는 독자이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나의 당선작이 열흘간 서울신문에 연재되었는데 글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았다는 찬사와 감사의 편지가 전국 각지에서 나에게 쇄도했고 심지어는 일본과 미국 교포에게서도 편지가 왔었다. 나의 글이 실린 10일간의 신문을 모두 읽을 수 있도록 보내달라는 요청이었는데 서울 본사에 연락해 구해서 보내준 일이 있어서 오늘따라 참관기를 쓰게되니 감회가 새롭고 서울신문과는 참 묘하고 깊은 인연이란 생각이 든다. 성서공단에 있는 서울신문사 대구인쇄본부 정문을 들어서서 사방을 휙 둘러보니 멀리 팔공산·비슬산이 보이고옆으로 와룡산이 가로 누워있어 전망이 탁 트여 참 좋았다.넓은 대지위에 주차장·정구장,그 아래 직원식당과 휴게실 등 시설이 잘 되어있었다. 4층 사무실에 들어서니 식장이 매우 넓었으며 화려하게 잘 꾸며져 있었다. 식순에 따라 먼저 서울신문·스포츠서울 제호 제막 현판식이 있었고 테이프 커팅,내외귀빈들의 윤전기 스위치 작동 등의 순서로 진행되었다.식이 끝나자 난 서울신문사 대구공장건설본부의 조충본부장님의 안내를 받아 건물을 돌아보기로 했다.돌기 전 본부장의 건축개요및 경과에 대한 얘기를 들었는데 요약하면 서울신문사 대구인쇄본부는 본사 전국동시인쇄계획의 일환으로 91년 10월30일 대구시 성서공단 1차단지에 입주계약을 체결하여 일을 시작,오늘 준공식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또 이 대구인쇄본부의 규모는 대지 2천평에 건축면적 4백17평,연면적 1천3백30평으로 지상 4층의 건물로서,이곳에 설치된 윤전기는 32페이지기준 시간당 15만부의 인쇄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철골철근 콘크리트 구조에 외벽은 최신공법으로 설계된 샌드위치 패널로 만들어져 첫 인상이 깨끗하고 우아한 분위기를 자아내었다.3층 제판실로 들어서니 최신 프레스 팩시밀리가 눈에 들어왔다.신문제작의 첫 과정으로 서울 본사에서 보내온 전송사진 필름체를 그대로 받아서 신문을 찍어낸다고 한다.두번째 과정인 오토매틱 피에스 프로세서 앞에 섰다.여기서 윤전기에 의해 자동화로 오프셋인쇄를 한다는데 윤전기의 웅장함에 매우 놀라웠다. 스포츠서울의 경우 1면은 대구판을 만들어 대구의 독자들 구미에 맞는 신문을 제작한다니 지방화시대에 걸맞는 언론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는 확신이 든다. 윤전기는 세부분의 역할을 하는데 급지(용지공급),인쇄,절부(인쇄된 신문을 자르고 접는 일)을 자동적으로 하며 컬러오프셋 3대,흑백오프셋 8대,절부오프셋 2대 등 죽 늘어선 초고속 윤전기를 보고 감탄사가 절로나왔다.2층 인쇄부로 내려왔는데 마침 천장을 보니 신문 캐리어에 신문이 한장씩 죽 연결되어 신문이 신문을 물고 돌아가는 모습은 정말 볼만한 구경거리로서 장관이었다.그리고 자동 카운터 스타커에 의해 50부,1백부,5백부 등 필요한 부수대로 카운팅되고 자동포장기에 의해 신문이 포장되며 자동결속기에 의해 절부된다는 얘기에 그저 감탄사만 연발했다.1층으로 내려오니 이 곳이 급지부 즉,종이공급을 하는 곳이라고 했다.8대의 큰 기계가 늘어서 있었다.1대에 3개씩 모두 24개의 권취지가 돌아가고 있는데 롤이 한번 돌면 1만7천 내지 1만8천부의 신문이 인쇄된다하니 정말 놀랍다.이 모든 것이 국내업체에 발주한 자동화시설이라는 본부장의 설명에 나의 열린 입이 닫혀지지 않았다.분주하게 열심히 일하고 있는 직원들을 보니 모두 자신감에 차 있고 항상 좋은 뉴스가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았다.이런 웅장한 시설을 갖추고 단시간에 많은 양의 신문이 서울과 대구 등에서 전국동시 인쇄가 이루어졌으니 우리나라 신문발달사상 획기적인 사건이라 생각된다. 오늘 대구인쇄본부를 참관하고 필자는 서울신문이 항상 정도를 걸어 우리나라 민주화에 언론으로서의 일익을 담당해 주리라 굳게 믿을수 있었다.국민의 소리를 경청하는 국민의 귀,바른 말을 하는 국민의 입,어두운곳을 밝혀 바르게 볼 수 있는 국민의 눈,올바른 비판의식을 심어 바른 여론을 형성하는 인심(양심)의 바로미터,그래서 칼보다 무서운 펜의 역할을 다함으로써 국민으로부터 사랑받는 서울신문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얻고 그 미래의 청사진을 확인할 수 있었던 오늘이었다.오늘은 참 즐겁고 기분좋은 날이다.서울신문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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