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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총련 북송교포에 식품 보내기/식량난에 허덕이는 북한실정 반영

    ◎쌀·참기름·조미료 등 세트로 포장 판매 조총련은 최근 북한의 식량난 심화로 북송동포들의 생활이 어려운 점을 감안,이들에 대한 「식료품보내기운동」을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조총련은 식량과 생필품 등의 부족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북송동포들을 위해 지난 91년 4월부터 북송연고자들에게 식료품을 보내도록 장려해 왔는데 최근 들어서는 이같은 「식료품보내기운동」을 강화,쌀과 설탕 등이 포함된 식료품세트(37×25×35㎝)를 개발해 희망자들의 주문을 받아 송부하거나 판매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총련이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북송동포연고자들에게 판매하고 있는 식료품세트는 무게가 14.3㎏으로 쌀 2봉지(10㎏),참기름 2통(2.8㎏),조미료 1포(5백g),설탕 1봉지(1㎏) 등인데 가격은 휴대방북시에는 1만엔,주문발송시에는 1만1천엔을 받고 있다. 조총련은 이 식료품세트를 니가타(신사)에 소재한 경화상사(대표 이재룡·44)에 판매와 송부를 위탁하고 있는데 현재 매월 약 2백여개의 식료품세트가 판매되고 있는 등 인기가 높다고 밝혔다.
  • 앞으로 180일(93대전엑스포 소식)

    ◎새달부터 세계아동그림 공모/안내원 「도우미」 8백명 추가선발/엠블렘 등 문양 50종 컴퓨터제작 ○해외동포도 뽑아 ◎…박람회장에서 엑스포의 얼굴로 활동할 전문안내원 「도우미」 선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조직위는 지난해 시범적으로 10명을 뽑은데 이어 이달부터 8백여명의 도우미를 선발,안내·통역·의전등을 맡길 계획이다.3월까지 서류심사 및 필기시험(적성검사 포함)을 실시하고 같은 달 하순쯤 최종 면접을 한다.이번에는 해외동포 도우미도 함께 선발한다. ◎…엑스포 공식 문양 50종이 최근 제작·완료 됐다.지난해 4월부터 8개월간의 작업 끝에 완료된 공식문양은 지금까지 개발된 엠블렘·마스코트·컬러시스템·전용서체에 이어 전체 그래픽디자인 시스템의 마지막 작업에 해당된다.공식문양의 주제는 첨단 과학기술,한국의 전통민속등 다양하다. 공식문양은 모두 컴퓨터로 작성한 것으로 조직위 디자인실은 각종 그래픽 매체에 활용할 수 있도록 별도의 흑백원고도 첨부해 놓았다. ○문예전시관 전시 ◎…아시아 문화교류연구소는 다음달1일부터 5월 말까지 「세계 아동미술전」을 공모한다.이 미술전에는 우리나라 어린이 뿐만 아니라 전 세계 1백65개 국가에서 6∼12세 어린이가 참가하는데 작품내용은 참가국의 고유 전통문화,민속놀이 또는 엑스포에 대한 그림을 도화지(4절지 이내)에 그려 내면 된다.입상작들은 엑스포 회장에 건립되는 문예전시관에서 오는 10월11일부터 11월7일까지 전시되며 대상 2명,금상 20명,은상 40명,동상 80명,장려상 4백명,우정상 1천명에게는 푸짐한 부상이 주어진다. ○주제가음악 공모 ◎…조직위는 컴퓨터 애호가의 엑스포 참여 기회를 확대하고 컴퓨터 음악의 소프트웨어 발전을 위해 엑스포 93 주제가 「그날은」에 대한 컴퓨터 연주음악을 공모한다. 컴퓨터로 주제가를 편곡·연주한 내용을 컴퓨터 디스켓에 수록,4월30일까지 조직위에 제출하거나 PC통신 서비스의 꿈돌이동호회 메뉴를 통해 전송하면 된다.
  • 한국은 통일문제 독일서 배워야(해외사설)

    독일이 순조로이 통일의 과업을 성취했다기보다는 항상 새로운 문제에 부딪치며 어려움속에 통일에 이르렀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독일은 「화목한 가운데 동독을 인수」하는데 필요한 모든 원칙들을 무시했다.그들은 동독의 부채와 채무,생산성,동독상품의 시장성 등에 대한 정확한 조사를 게을리했다.지나치게 서두른 나머지(1대1의 화폐교환을 함으로써) 소생이 불가능한 동독회사들을 위해 너무 지출을 많이 한 한편 동독의 재건비용이 엄청나게 들어갈 것이란 점을 간과했다.회계전문가에게 이같은 중대한 사안에 대한 비용산출을 의뢰해 볼 생각을 가졌던 사람이 단 한명이라도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그러나 이 세상에는 다른 국가를 인수하는데 관심을 갖고 있는 국가들이 있으며 이들은 이제 독일로부터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다.예컨대 한국이 그중의 하나이다.한국은 북한의 형제자매들에게 애정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그러나 한국인들의 사랑은 경제적인 면을 망각하는 격정적인 사랑이 아니다.때문에 한국인들은 통일비용에 대한 연구를 의뢰했다.이 연구결과에 따르면 한반도 통일에는 무려 1조5천억마르크가 소요된다고 한다.이같은 수치는 15라는 숫자 뒤에 0이 얼마나 더 붙어야 하는가.휴대용 계산기로는 계산할 수조차 없다. 따라서 이같은 통일비용의 연구를 맡은 기관은 북한을 점진적인 방법으로 인수하도록 건의하고 있다.그것도 북한의 독재자 김일성(80)이 죽은 후 가련한 북한동포들이 중국과 같은 경제개혁을 시작한 후에 인수해야 한다는 것이다.한국인들은 행복한 사람들이다.그 이유는 다음과 같은 국제무역의 원칙을 보면 알 수 있다.국제무역에서 최초의 시행자는 천문학적인 개시비용을 지불해야 하나 두번째 시행자는 심사숙고하면서 최초시행자의 실책을 거울삼아 더 나은 비용계산을 통해 저렴한 비용으로 생산을 할 수 있는 법이다.아시아의 친구인 한국인들은 통일이라는 분야에서 독일을 앞지를 것이다.그들은 아마도 국경의 울타리를 유지하면서 그곳에 「재건을 위해 20년간 폐쇄한다」는 내용의 푯말을 세울 것이다.
  • 외국인투자 3개법 마련/북한

    【내외】 북한은 지난달 31일자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 「결정」을 통해 「외국인투자기업및 외국인세금법」「외화관리법」「자유경제무역지대법」을 새로 채택했다고 관영 중앙통신이 6일 보도했다. 북한이 지난해 10월 채택한 「외국인투자법」「합작법」「외국인기업법」의 후속조치의 성격을 갖는 이들 3개 법령 가운데 「외국인투자기업및 외국인세금법」은 외국투자기업및 외국인세금법의 기본,기업소득세,재산세,상속세,거래세,지방세,제재 및 신소청원등 8개장 57조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법은 북한영역내에서 경제거래를 하거나 소득을 얻는 외국투자기업과 외국인,그리고 해외동포들에게 적용되는데 여기에는 노동보수에 의한 소득세율표,증여에 의한 소득세율표,재산세의 세율표,거래세의 세율표,지방세액표등 6건의 부록이 첨부되어 있다. 「외화관리법」은 외화거래,외화유가증권의 발행과 외화현금,유가증권및 귀금속의 반출입과 관련한 원칙과 질서를 규정하고 있으며 외화관리법의 기본,외화의 이용,외화의 반출입,제재등 4개장 31조항으로 이루어져 있다.
  • MBC,교포사학자 신기수씨 소장 필름·사진 입수

    ◎40년대 재일한인 생활상 생생/징용·학병·조선인 빈민촌 수록/대원군·명성황후 등의 사진도 해방전후 재일 한국인들의 생활상을 파악할 수 있는 희귀영상자료가 MBC방송문화연구소 자료부팀에 의해 발굴되었다. MBC 방송문화연구소(소장 김정환)는 오랜 시도끝에 일본 오사카에서 청구문화원을 운영하고 있는 교포사학자 신기수씨로부터 한국관련 영상자료(약1시간분)와 사진자료를 전격 입수,지난 1일 이를 공개했다. 신씨는 그동안 꾸준히 한국관련 영상사진을 수집,보관해 왔으며 특히 임진왜란에 관심을 가지고 「조선통신사」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도 한 재일 사학자. 이번에 MBC가 입수한 영상필름의 주요내용은 19 40년대 재일동포에 관한 것으로 유바리탄광 징용,학병 징병신체검사,관동대지진등과 60년대초 오무라수용소,재일조선인 거주지였던 하카타 빈민촌,북송자 가족의 이별,니이가타항등이며 서울과 근교의 풍경사진,대원군·명성왕후등 인물사진도 상당수에 이르고 있다.이와관련 자료부의 김세화 부국장은 『일본에는 우리나라 역사와사회상과 관련된 자료가 아주 많지만 자료의 소유자가 주로 조총련계통이어서 접근하기가 무척 어려우며 입수하기는 더욱 힘들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국장은 『이들 자료의 대부분」이 우리 현대사의 중요한 사건과 연루된 것들이어서 계속 수집해 나가야한다』덧붙였다. 한편 MBC자료부는 지난 91년에도 구소연방중앙기록보존소에서 6·25전쟁뒤 북한의 실상과 윤봉길의사 상해의거 현장등을 포함한 2시간 길이의 필름을 입수,「뉴스데스크」를 통해 공개한바 있다.
  • 중국 농수산물 밀수단 적발/공해상서 물물교환/총책 2명 검거 착수

    【삼천포=강원식기자】 중국산 쇠고기 밀수입사건을 수사중인 경남 장승포세관 삼천포출장소(소장 양주백·45)는 3일 이번 밀수의 배후에 전국규모의 밀수조직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조직 계보 파악에 나서는 한편 조직 총책으로 알려진 주모씨(40)와 김인규씨(37)의 신병확보에 나섰다. 이같은 사실은 지난해 12월29일 중국동포인 장태일씨(37·산동성거주)와 짜고 승용차 8대를 밀수출한 대금으로 중국산 잣12t(시가 1억8천만원상당)과 아귀 22t(시가 1억1만원상당)등을 밀수입한 혐의로 삼천포출장소가 지난달 25일 구속한 최정자(39·여)백종암(46)장봉호씨(39·삼천포시 대방동)등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조사결과 이들은 주로 서·남해안일대 공해상에서 어선을 가장해 중국 밀수선과 접촉,물물교환방식으로 중국산 농수산물등을 몰래 들여왔다.
  • 장진홍의사 기념관 동상건립 추진

    ◎일제에 항거…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추모사업회,의거 66주년 맞아 왜관에 1927년 10월 18일,단신으로 조선은행 대구지점에 폭탄을 투척해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 식민지지배에 신음하던 2천만동포들에게 독립의지를 다져준 창려 장진홍의사(1895∼1930년)의 의거 66주년을 맞아 기념관과 동상건립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이번 사업은 장의사추모기념사업회(위원장 박세직)가 지난해 8월 의거65주기에 맞춰 발간한 장의사의 일대기 「창려 장진홍 의사」에 이은 2번째 추모사업.이를위해 관련인사들은 기념사업회재발족준비위원회(위원장 윤복수)를 구성했다.기념관은 경북 칠곡군 왜관읍 석전동에 세워진 기념비각옆에 건립될 계획이며 규모,착공일등 구체적인 세부계획은 아직 마련되지 않은 상태이다. 장의사는 조선은행 대구지점을 폭파한뒤 도피생활 14개월만에 일경에 체포돼 사형을 언도받았으나 사형집행 바로 전날 자결했다.이 사건은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8년전의 3·1운동과 2년뒤의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이어주는 가교역할을 한 장렬한 항일무장투쟁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이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왜관문화원 장재영원장(80)은 『일대기발간을 계기로 뜻있는 사람들끼리 우리 향리를 빛낸 선생의 동상과 기념관을 건립해 후세에 선생의 애국의지를 남기려 하고 있으나 사업비마련에 차질이 생겨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 무연고 사할린 동포/45명 3월 영주귀국

    사할린 거주의 무연고 고령동포 45명이 오는 3월 중순 영주귀국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지난해 9월29일 77명의 사할린거주 무연고고령동포를 영주귀국시켜 강원도 춘원군 서면 안보리에 있는 광림교회부설 「사랑의 집」에 수용한데 이어 2차로 이들의 영주귀국을 주선,사랑의 집에 수용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 대한매일신보에서 서울신문까지(겨레의 맥박으로 89년:6)

    ◎대한매신의 애국계몽/“축채 갚자” 전국적 담배끊기 전개/의연금 기탁자 명단·사연 연일 보도/「반지빼기」계기 여성동참 적극 유도/“통곡으로 실업가에 고한다” 사설로 참여 촉구 1905년 을사조약을 강제로 체결한 일제는 이듬해 통감부를 설치하고 본격적으로 대한제국의 국권을 강탈하기 시작했다.이에따라 1910년 한일합방 때까지 한반도 전역에서 일제의 침략에 맞서 민족의 주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국권수호운동이 활발히 전개됐다. ○신민회 충실 대변 대한매일신보(이하 신보)는 일제가 민족의 목을 죌수록 배일논조를 통해 항일의 기치를 더욱 높이 들었다.그것은 의병운동과 애국계몽운동등을 주도한 민족지도자들과 국민들간의 의사소통수단으로 나타났다.또 국채보상운동과 같이 직접적인 대국민캠페인을 통해 국민운동을 주도해나가기도 했다.특히 1907년 양기탁주필을 총감독으로한 민족지도자들의 비밀결사단체인 신민회가 창립되었을때 신보는 역할 하나를 더맡았다.신민회 주관 각종 국민운동의 충실한 대변지로서 신민회 활동을 날카로운구국언론활동을 통해 뒷받침했다. 국채보상운동은 대구에 광문사라는 출판사를 설립,국민교육운동에 앞장서고 있던 김광제 서상돈등 10여명이 주도하고 나서는 것으로 불을 댕겼다.1907년 1월31일 당시 일본에 빚지고 있던 국채 1천3백만원을 국민성금으로 갚자는 운동이 그것이었다.「국채 1천3백만원 보상취지서」라는 격문을 전국에 발송한데서 발단한 이 운동은 대한제국의 국권을 바로 지키기 위해서는 나라빚을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구국운동 이기도 했다. 그 하나로 2천만동포들이 배를 끊자는 방안이 제시됐다.한사람이 한달 담뱃값 20전을 3개월만 모으면 1천3백만원의 차관을 무난히 갚을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이는 전국민적으로 비상한 관심을 모아 마침내 20여일만인 2월22일 한성에 중앙총괄기구인 국채보상기성회를 결성시켰다.국채보상서도의성회·국채보상부인회·국채보상경남찬성회·동래부국채보상일심회·대구국채담보회·제주의성회·황해도재령군보성소등 전국적으로 지역별뿐 아니라 직능별 단체들이 우후죽순격으로 결성됐다. 대한매일신보는 당시 어느 신문보다도 앞장서서 국채보상운동을 다뤘다.의연금 기탁자의 명단을 보도함은 물론 기탁에 얽힌 사연들도 소개했다.이들 보도 가운데는 어려운 노동자들까지도 동참하는데 정부관리나 부유층들이 외면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그들의 적극적 참여를 유도하는 내용도 있었다.『국채보상을 위해 3개월씩만 단연하자는 서상돈의 발기에 한성안의 병문(길가)노동인이 충분소격에 연초대금을 서로 다투어가면서 모으고 있다는데 현금 정부대신은 노동자 보기가 어떠할 것인가』(1907년 2월24일자). 이 운동이 단시일내 전국적으로 확산될수 있었던 것은 당시 신문들의 이같은 적극적인 보도에 힘입어서였다.그러나 신보는 초기에는 전국 방방곡곡에서 모여드는 의연금을 여러 곳에서 다룸으로써 혼선이 빚어질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그래서 의연금을 한곳으로 모을수 있는 중앙수합처가 결정되기 전에는 수전소 역할을 맡을수 없다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그러면서도 3월1일자에는 「한인충애」 표제의 사설로 이 운동을 『일본으로부터 면탈하려는 인민의 제의』로 규정하고 나섰다.이 큰일의 성취를 돕는 것은 신문이 할수 있는 즐거운 일이라고 적극적인 지지를 밝혔다. 대한매일신보가 이 운동에 적극 참여하게 된 동기는 3월31일자에 특별사고로 다루었다.「이제까지와는 달리 국채보상 의연금을 동사에서 직접 수령키로 했다」는 뜻을 분명히하고 나선 것이다.이에따라 신보는 일부 유지들을 규합,4월1일 국채보상지원금총합소를 결성,그 사무소를 사내에 설치했다.간부진용으로는 양기탁총무를 회계로 하고 윤웅렬소장,김종한부회장,박용규재무등이 추대됐다.전국각지에서 작게는 5전부터 10전·1환·10환,크게는 1백환 이상에 이르기까지 성금이 답지했다.이 운동이 처음 시작된 2월말부터 4월말까지 불과 두달 사이에 4만명이 넘게 참여하는등 큰 호응을 얻었다.신보를 비롯,각 언론기관들도 이들 명단게재및 보도에 호외를 발행하는등 지면을 아끼지 않았다. 한편 남자들을 위주로한 단연운동으로 시작했던 국채보사운동은 5월들어 신보에 의해 시작된 반지빼기운동등 여자들의 참여로 확산돼 나갔다.신보는「국채보상에 나선 여인의 대열」이라는 반지빼기모임 취지문의 논조는 사뭇 흥미롭다.「우리 2천만중 여자가 1천만이요,1천만중 반지있는 이가 반은 넘을 터이니 반지 한쌍 2원씩만 셈하면 1천만원이 여인 수중에 있다할수 있다.이 운동에 동참을 계기로 남녀동권을 찾자」(4월22일자). 통감부는 이 운동 초기에는 흡연을 즐기는 한국인들에게 단연운동이란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는 판단에서 대수롭지않게 비웃었다.그러나 국채보상운동의 열기가 점차 고조되자 통감부는 3월 들어서면서 영문판 기관지인 「서울프레스」를 비롯한 친일지들을 동원,비난의 강도를 높이기 시작했다.신보는 이에 정면으로 맞섰다.「빚진 사람이 압제하는 채주로부터 벗어나려는 것은 당연한 노릇」이라는 논조를 폈다.또 3월24일자 「통곡고대한실업가」 표제의 사설에서는 소극적인 자세로 있던 실업가들에게 자극을 주면서 동참을 촉구했다. 통감부는 급기야 공안을 해친다는 이유로 대한매일신보사장 배설을 영국총영사에게 제소한데 이어 1908년 7월12일에는 의연금 3만환 횡령의누명을 씌워 양기탁을 구속하였다.영국측은 전날 배설 공판때 통감부 외무부장이 영국인피고의 증인으로 출두했던 어떤 한국인도 한제국및 통감부로부터 방해 내지는 탄압을 받지 않는다고 확약한 사실을 내세웠다.그러면서 양기탁의 즉각 석방을 요청,영국과 일본 양국간의 외교분쟁으로까지 비화되었다. ○2백여만원 모금 양기탁은 이른바 국채보상금사기취재사건의 다섯차례 공판끝에 9월29일 증거불충분으로 무죄석방 되었다.그러나 그의 구속과 이후 법정공방으로 비화된 보상금 횡령사건등으로 모금활동은 더이상의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결국 1년반 가까이 계속된 모금운동에서 걷힌 돈은 모두 2백31만9백89원13전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그러나 이 액수는 애당초 목표로 했던 국채 1천3백만원에는 먼 액수였다. *참고문헌:「한국신문사론고」(최준,일조각 1976) 「대한매일신보와 배설」(정진석,나남 1987) 「한국민주독립운동사연구」(신용하,을유문화사 1985) 「대일민주선언」(홍이섭,일우문고 1972)
  • 최익현선생/다시 새기는 그 충절(이달의 독립운동가)

    ◎서울신문사·국가보훈처 공동선정/을사조약 체결되자 “항일의병” 횃불/74세 거유,“조약은 무효” 전북 태인에서 거병/대마도 유배뒤 순국… 전국적 배일투쟁 “점화”/“나라위해 생사초월” 무성서원연설 민족혼 일깨워 노옹의 항쟁은 열하루밖에 되지 않았다.그가 이끄는 의병의 병력과 무기도 보잘 것 없었고,정부측의 반응도 냉담했다.정부는 일제의 눈치를 보느라 오히려 해산명령을 내릴 정도였다. 면암 최익현­1906년 6월4일부터 14일까지의 「뜨거운 날들」은 선생의 이름과 함께 역사에 붉게 각인되어 있다. 그것은 한반도에 요원의 불꽃으로 번지게 한 의병항쟁의 불씨를,선생이 지폈다는 뜻만으로서가 아니다.선생은 「나라가 흥하는 것은 우리의 문화 우리의 마음을 잃지 않는데 있으며,인권도 중요하고 민권도 중요하지만 국권 없이는 모든 것을 잃는다」는 진리를 가르치며 이같은 독립정신을 온몸으로 실천한 민족주의자였기 때문이다. ○경기도 포천 출생 당대 유학의 거봉으로 74세나 된 선생이,국권회복을 부르짖고 구국창의의 깃발을 높이 든 것은 일관된 삶의 자세에서 비롯됐다. 1833년 경기도 포천군 가범리에서 출생한 면암은 일찍이 이항로 문하에서 「애국여부 우국여가」의 사상을 이어받고,그 이념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 철저하였다. ▲1871년 대원군이 서원철폐령을 내리자 그 부당함을 상소 ▲고종의 신임을 얻어 호조참판이 된 뒤,누적된 적폐를 바로 잡으려다 오히려 기득권층의 반발을 받아 제주도로 유배 ▲1876년 병자수호조약을 결사반대하며 지부소(도끼를 가지고 상소를 올리며 답을 기다리는 것)를 올렸다가 흑산도로 유배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고 단발령이 공표되자 청토역복의제소를 올려 항일운동을 전개 ▲1905년 소위 을사5조약이 체결되자 조약의 무효화와 박재순·이완용·이근택·이지용·권중현등 「오적」처단을 주장한 청토오적소를 올린 일등은 흐트러짐 없는 인간 최익현의 한 단면이다. 1906년 3월15일.선생은 가묘에 하직을 고하고 집안 사람들과 이별,집을 떠나기로 결심했다.상소만으로는 안되겠다고 생각한 것이다.그러나 선생은 다시 한번 참담함을 맛보지않을 수 없었다.판서 이용원·김학진·참판 이성렬·이남규등에게 서신을 보내 「함께 국란에 대처할 것」을 바랐으나 한사람도 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때 선생은 애제자 고석진의 소개로 「태인사람 임병찬」을 만나게 된다.임병찬은 임실군수까지 지내다가 왜인들의 정치를 마다하고 사퇴한 올곧은 선비였다. 『호남의 선비들이 장차 의병을 일으키려 하는데 모두 선생을 맹주로 생각하고 있으므로 그곳으로 가셔야 하겠습니다』 이후 두달 남짓동안 거의가 준비됐다.시골 포수들로부터 총칼이 모아지고,2백여명의 우국지사가 모여들었다. 6월4일.태인 무성서원에서 있은 선생의 강회는 항일의병의 역사적 분기점을 이룬 날로 기록된다. 『지금 왜적들이 국권을 농락하고 역신들은 죄악을 빚어내 오백년 종묘사직과 삼천리 강토가 이미 멸망지경에 이르렀다.나라를 위해 사생을 초월하면 성공 못할 염려는 없다.나와 함께 사생을 같이 하겠는가!』 불꽃에 민족혼을 일깨운 의병들은 이날 정읍에 무혈입성,총칼과 탄환을 거두고 군사를 모집했다.또한 일제에 16개 죄목을 들어 국권의 침략과 국제적 배신행위를 통렬하게 지적한 장문의 규탄서를 보내기도 하였다. 그후 정읍에서 흥덕으로,다시 순창 구암사에서 순창읍내로 행군하였을 때에는 의병의 수가 5백여명을 넘게 되었다.힘을 얻은 「면암의병」들은 파죽지세로 곡성을 거쳐 남원으로 밀고 들어 가려 했으나,순창으로 회군할 수밖에 없었다.남원 방비가 워낙 견고했기 때문이었다.그러나 의병은 8백여명으로 불어났다. 6월11일.광주관찰사 이도재가 사람을 보내 고종의 칙지를 전해왔다.선생은 큰 기대를 갖고 이를 펼쳐 보았으나 그 내용은 엉뚱하게도 『의병을 해산하라!』는 것이었다. 면암은 『이미 소장을 올려 의병을 일으키게 된 연유를 말씀 드렸으니,나의 진퇴는 관찰사의 직권으로 지휘할 바가 아니다』는 답장을 보냈다.그리고 다시 남원진입을 꾀했다. ○고종,의병 해산령 그러나 남원을 지키고 있는 부대가 왜군이 아니고 우리측 진위대임이 확인되었다. 진위대(경군)측은 『대감이 민병을 해산시키지 않으면 전진이 있을 뿐』이라는 통보를 세차례나 보내왔다.선생은 괴로워했다. 선생은 임병찬에게 『동포끼리 서로 박해하는 것은 원치 않으니 즉시 해산시키라』고 명령했다.쉽사리 흐트러지지 않던 의병들은 눈물을 머금고 해산되었다.선생 곁에 끝까지 남은 의병은 12명 뿐이었다. 6월14일.선생일행은 서울로 압송되었다.그리고 우리 사법부가 아닌 일제에 의해 재판을 받게 된다. 「대마도 감금 3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선생은 1907년 1월1일 단식 끝에 한많은 적지에서 숨을 거두었다. ○선비정신의 귀표 역사학자 박성수교수(정신문화연구원)는 면암의 항일운동과 관련,『선생은 1876년 개항 이후 줄곧 외침을 경고했으며 이에 맞서 나라를 구하는 길은 오로지 국론을 통일해 일치단결하는 것밖에 없다고 부르짖어 온 분이었다』며 『그러므로 선생이 70고령을 무릅쓰고 무기를 들었다는 소식은 단지 그것만으로도 여간 큰 충격이 아니었는데 외딴 섬 대마도에서 순국하셨다는 소식은 온 국민의 가슴에 칼을 꽂은거나 다름없는 슬픔과 분노를 안겨 주었다』고 평가했다. 선생의 항쟁 이후 호남을비롯한 전국 각지에서는 우후죽순처럼 의병들이 일어난 점만 보아도 당시 선생이 위대한 민족주의자로서,국민들의 정신적 지주였다는 점이 입증되는 셈이다. 선생은 순국직전 임병찬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죽음에 있어 마땅히 죽을 곳에서 죽으면 삶보다 부끄러울 것이 없다.나 이제 죽을 것이니 황상에게 올릴 마지막 소를 비밀히 간직하였다가 본국으로 돌아 가는 날 전해주길 바란다』 고국으로 돌아온 선생의 영구행렬 앞에는 「춘추대의 일월고충」이라는 깃발이 나부꼈다.
  • 한·중수교 등 정세변화에 위기감 고조/북한,폐쇄정책 강화

    ◎미 교포 입국비자 발급 중단/주민의 중국인접촉도 통제 【도쿄·로스앤젤레스=이창순·홍윤기특파원】 북한이 최근 사회주의의 붕괴와 한중수교등 주변환경의 변화에 위기의식을 느낀 나머지 해외교포들의 입국을 금지시키고 국내거주 외국인과 내국인의 접촉등도 철저히 통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7일 미주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교포들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해 12월 중순부터 이지역 교포들에 대한 북한방문비자의 발급을 전면중단하고 있다. 미국에서 교포들의 북한방문 창구역할을 하고 있는 조국통일북미주협의회(약칭 통협·회장 김현환목사)의 한 관계자는 이날 『북한은 지난해 12월 중순부터 이산가족 상봉목적이든 관광목적이든 미주교포들에게 일체의 비자를 발급해주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북한의 미주교포들에 대한 이같은 비자발급 전면중단조치 배경에 대해 『현재 북한내에는 사회주의의 붕괴에 따른 위기의식과 긴장감이 팽배해 있다』고 전하면서 『이에따라 해외동포 영접관계자들에 대한 재교육및 고과평가작업이 진행중이어서 사실상 관광안내도 어렵기 때문에 입국비자 발급을 하지않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북한의 이번 조치는 한미 합동군사훈련인 팀스피리트훈련재개에 대한 일종의 반발적 측면도 있다』고 분석하고 『훈련이 끝나는 3월 중순이후에는 비자발급이 재개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북한 당국은 이와함께 지난해 8월 한중국교수립이후 북한에 거주하고 있는 중국인들과 내국인의 교제를 신중히 하도록 지도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일본의 교도(공동)통신이 26일 북경발로 보도했다. 이 통신은 이날 평양의 서방 소식통을 인용,『특히 올들어서는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를 일반 주민들이 갖고 다니는 것조차 금지시켰다』고 전했다. 서방 소식통은 『북한에 거주하고 있는 중국인 영주자는 현재 평양의 2천명을 포함,약8천명에 이른다』면서 『북한 화교 협회의 한 회원은 「요즘 친했던 북한인 친구들이 중국인 집을 방문하는 일이 없어졌을 뿐만 아니라 중국인들과 솔직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무서워하고 있다」고 호소해 왔다』고 말했다. 소식통은 또다른 한 화교의 이야기라면서 『최근 수개월동안 중국과 북한 국경을 왕래하고 있는 중국인이 밀수업자라는 누명을 쓰고 체포되거나 화물이 몰수되는 등의 사건이 잇따라 일어나고 있다』고 밝히고 『평양주재 중국 대사관도 이같은 사실을 알고 몇차례나 북한당국에 개선을 요망했으나 시정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 새전기「세기와 더불어」허동찬씨의 분석(신고 김일성자서전연구:32)

    ◎소년시절:13/마르크스·레닌서적 탐독설/「자본론」 중국어판 30년에 첫 출간됐는데/“26년 15살때 이미 읽어치웠다” 억지선전/최근들어 “공산당선언만 봤다” 다소 후퇴 김일성이 화성의숙에서 느꼈다는 마지막 세번째의 환멸은 다음과 같다. (ㄷ)민족주의 운동… 상해임시정부의 인사들은 「자치파」니 「독립파」니 하여 서로 치열한 감투싸움이나 세력다툼을 하고 있었고 독립군은 군자금이나 거두며 돌아다녔다.임시정부는 미국등에 대하여 비굴한 「독립청원외교」를 벌이고 있었다. ○“임정인사 세다툼” 적지않은 자산계급출신 운동가들이 「애국지사」로부터 일제의 앞잡이로,민족개량주의자로 굴러 떨어졌다.그들은 「민족개량」「실력양성」의 보자기를 쓰고 「계급협조」「대동단결」「민족자치」를 떠들었다. 이때 김일성은 화성의숙에서는 불가능하였으므로 김시우 집에서 마르크스·레닌의 서적을 읽었다.그리하여 청년들이 찾아올 때 이들에게 새 사조와 소련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착취와 압박이 없는 사회를 선전하였다. 이중 세력다툼이니 군자금 징수니,변절이니,타락이니 하는 것은 김일성이 민족주의를 비판할때 언제나 사용하는 딱지들인데 이러한 단어들은 앞으로 연구할 기회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그가 「김시우 집에서 마르크스·레닌의 서적을 읽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문제를 다루어 보도록 하겠다. 김시우란 임강시대에 백산무사단원으로서 김형직과 관계를 맺은 우익인사인데 김일성은 그로부터 「좌익서적」을 제공받은 것으로 허구를 꾸미고 있다. 화성의숙시대 김일성이 김시우 집에서 공산주의 서적을 읽었다는 선전은 1978년에 발간된 「불멸의 자욱을 따라」부터 시작되었다.그러나 이 책은 그가 「완고한 민족주의자들을 멀리하고 혁명적 출판물들을 많이 탐독하였다」고 썼을 뿐,그가 무슨 책을 읽었는가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없었다. 그런데 82년에 나온 그의 전기에서는 놀랍게도 그가 이 시절 「공산당선언」과 「자본론」「임금노동과 자본」을 읽었다고 주장하였다. ○민족주의자 멀리해 여담이지만 필자는 대학생시절 자본론을 사 보았었다.그러나 마르크스의 문장이 너무 길어서 의미를 파악하는데 애를 먹고 몇 페이지 안가서 읽는 것을 포기하였다.또 최근 오길남박사에 물어 보았더니 『자본론은 독일의 대학교수들도 읽는데 1년 이상 걸릴 정도로 어려운 서적』이라고 하였다.이런 책을 북한에서는 15살짜리 김일성이 읽어치웠다고 선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딴데 있다.김시우의 집에 이러한 서적이 있었더라면 그래도 우리는 이것을 「과대선전」정도로 볼 수가 있다.하지만 이러한 책들은 26년 당시,만주의 오지인 화전현 관가에는 있을 리가 없었다. 일본경찰이 1925∼26년에 동남만에서 압수한 「불온문서」를 보면 그 중 1백권 이상의 것은 「선봉」「거화」「전만동포에게 호소함」「전만혁명동포에게」「노동기념선포문」「노동보」「선포문」「불온문서원고」「국제청년데이」「혁명」「농보」「농민회발기준비서」가 그 전부였다. 모두 팸플릿이나 신문에 지나지 않았고 학술서적이란 없었다. 또 김시우의 집에는 마르크스·레닌의 서적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도없었다. ①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은 1929년 초에 육문중학교에 부임한 김일성의 스승 상월이 중국에서 갈림에 가져온 가능성이 있다.그러나 이 책이 길림보다 훨씬 낙후한 벽지인 화전현 관가에 그보다 3년이나 이전에 들어올 가능성은 없을 것이다. ②「자본론」은 중국에서는 겨우 1930년에 그 제1권 제1분책의 제3장까지가 진계수 등의 번역으로 상해에서 출판되었다.또 그 전역본은 38년이 되어야 나오게 된다.26년에는 읽어야 할 책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창덕학교 5학년 수준인 그의 일본어로는 일본어 번역판도 읽지 못할 것이다. ③마르크스의 「임노동과 자본」을 일본에서 대중이 볼 수 있게 된 것은 1928년이므로 이 책도 중국에서는 출판이 상당히 늦었을 것이다. 이상과 같이 북한에서는 중국말도 일본말도 잘 모르는 소학교 중퇴생인 김일성이 대학생도 익히 알아보지 못하는 마르크스·레닌의 서적들을,이러한 책이 번역 출판되기도 전에 「읽었다」는 억지 주장을 하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해괴한 주장을 85·87년 양년에낸 「김일성 평전」에서 조목조목 분석비판하였다.그래서 그런지 이번에 나온 회고록에서는 화성의숙 시대에 「공산당 선언」단 한가지만을 김일성이 읽은 것으로 하고 있다.나머지 책은 길림시대에 읽은 것으로 약간 그 시기를 늦추고 있는데 이렇게 하여도 서로 상충된 거짓말들을 조절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상충된 거짓말 여전 1925∼26년에 걸쳐서 동남만에서 1∼2점 발견되어 일본경찰이 압수한 공산주의 선전 팸플릿 중에 「공산당의 선언」이란 것이 있다.그러나 소련에서 출판된 이 팸플릿이 공산주의의 침투가 늦었던 화전현에,그것도 우익이었던 김시우의 집에 날아 들어 올 가능성이란 역시 매우 희박할 것이다. ①「세기와 더불어1」154∼157면 ②「불멸의 자욱을 따라1」202면 ③「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전기1」31·32면 ④5·6·8 평전 127∼134면 ⑦하상조번역 「임노동과 자본」암파문고판
  • 15만 정치범 신음… “인권 사각지대”(오늘의 북한)

    ◎억압받는 북녘동포들의 실태를 알아보면/주민성분 51개로 나눠 식량까지 차별/종교자유는 물론,주거·직업 선택권 없고/유명무실 재판에 구금·처벌도 「즉심」으로 김영삼차기 대통령이 지난 8일 이북5도민 중앙연합회간부들과 가진 오찬에서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해 더 이상 침묵하지 않겠다』고 밝힘으로써 지금 이 시간에도 부당하게 억압받고 고통받는 북한동포의 인권문제가 다시 우리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이같은 김영삼차기 대통령의 발언이 앞으로의 남북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예상키 어려우나 어떤 형태로든 북을 자극하게 될 것만은 분명하다.김차기 대통령의 언급을 계기로 북한의 인권 현주소와 유린실태를 알아본다. 북한에서의 인권은 「인권」이라는 말을 사용하기 조차 어려울 정도로 침해 정도가 심각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특히 정치적인 문제와 관련한 인권유린사태는 스탈린치하의 소련을 방불케 할 정도로 세계최악이라는 사실이 미국무부에 의해 확인되고 있다.이와함께 국제사면위원회 미네소타 국제위원회 등의 보고서도 수차례에 걸쳐 적어도 15만명에 달하는 정치범들이 특별독재대상구역 등에 강제로 수감돼 있다고 지적,북한의 가혹한 인권유린 실상을 거듭 확인해 주고 있다. 지난해 함남 오덕지역 수용소에서 탈출,귀순한 안혁 강철환씨 등이 폭로한 수용소의 생활상은 생지옥 바로 그것에 다름 아니었다.당과 정부의 전직 간부와 그 가족들,인텔리계층의 학생 그리고 일본에서 북한으로 송환된 교포등 수용자 5만명은 하루 14시간의 중노동을 강요당하고 있으며 질병과 굶주림으로 매년 40∼50명이 죽어 나간다는게 그들이 밝힌 오덕지역 수용소의 실태였다. 일상생활에서 북한주민이 겪는 인권침해 가운데 우선 꼽을 수 있는 것은 계급주의적인 차별을 들 수 있다.이는 성분분류를 말하는데 북한은 크게는 3가지,세분해서는 무려 51개 등급으로 주민의 성분을 구분,교육·물자공급·오락시설이용 등에 차등을 두고 있다. 특히 문제가 되는 대상은 과거의 지주 또는 자본가,종교지도자,월남가족들이 망라된 「적대계급」으로 이들은 전체 북한인구의 50%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식량배급·직장배치 등 모든 면에서 차별과 박해를 당하고 있다. 두번째로 꼽을 수 있는 것은 거주지 선택의 자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북한이 인간의 가장 초보적인 권리인 거주지 선택의 자유를 박탈하고 있는 것은 ▲정치적인 불안요소 제거 ▲노동력 최대확보 등의 여러 목적에서 비롯된 것인 바 평양거주자의 자격요건을 공식적으로 까다롭게 규정한 것이 이를 입증해 주고 있다. 식량배급에서도 차별을 받고 있다.일반주민들은 쌀과 잡곡의 비율이 3:7정도인데 당·정간부들은 거꾸로 7:3의 비율로 배급을 받는다.또 평양시민과 지방주민들간에도 차이가 커 평양시민은 5:5의 비율로 배급을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병원을 이용하는데도 일반주민들은 거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신분과 계급에 따라 일반주민들은 각지 이단위나 읍 또는 각 구역 및 군단위의 낙후된 인민병원을 겨우 이용할 수 있는데 비해 일부 특권층들은 각도의 중앙병원이나 평양의 남산병원등 비교적 시설이 좋은 병원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범은 말할 것도 없고 일반 범죄자들에 대한 재판과정을 보면 북한의 인권에 대한 인식이 어떠한가가 한눈에 들어온다.북한의 사회주의 신헌법 제159조에는 『재판소는 재판에서 독자적이며 재판활동을 법에 의거하여 수행한다』고 규정돼 있지만 유죄가 입증될 때까지 무죄로 간주되는 권리라든지 기본적인 권리가 침해당했을 경우 효율적인 구제조치가 강구돼야 한다는 사실을 명시해 놓지 않고 있다.따라서 북한에서의 재판은 거의가 유명무실한 요식행위에 불과할 뿐인데 국가보위부의 「즉각심판제도」가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당초 이 제도는 정치범들을 신속히 처벌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만 최근에는 강간 등 일반 강력사범에 대해서도 구금·체포·처벌 등의 독점적 권한을 가지면서 형사재판제도 밖에서 운용되고 있다. 이밖에 종교를 가질 권리 역시 엄격하게 통제되고 있다.북한은 지난 88년말에 평양에 장충성당과 봉수교회를 세워 외국인들의 방문 대상지에 포함시켰으나 실제로는 그 진실성에 대해 의심을 받고 있다.다시 말해 장충성당과 봉수·칠골교회를 열게하고 주일예배를 허용한 것은 북한이 종교를 탄압하고 있다는 세계여론의 비판을 모면하기 위해 취한 「선전 차원」의 제스처일뿐 참된 종교의 자유는 보장되고 있지 않다는 지적이다.
  • 구소한인에의 관심과 외교적 해결책(사설)

    중앙아시아의 32만 한인들에게 또다시 어려운 세월이 닥치고 있다는 소식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1년이상 내전에 시달려온 타지크공화국의 1만3천여 한인들은 절반이 인근국가로 피란을 했고 남은 사람들은 생존의 위협을 당하고 있다.중앙아시아의 독립국가중 가장 많은한인이 살고있는 우즈베크공화국 18만한인들은 93년안에 추방당할 위기에 놓여있다. 이밖에도 카자흐 키르기스 투르크멘등 중앙아시아의 회교권 독립국가들에서 언제 한인배척운동이 일어날지 모를 형편이다.이들 나라들에서는 공통적으로 민족주의 운동이 성하고 있고 또 공통적으로 한인들이 자리를 잡고 살고 있으며 한결같이 한인들은 질시의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중앙아시아에 정착한 한인들은 스탈린시대에 연해주에서 강제 이주된 사람들과 그 후손들이다.애초부터 한인들이 원해서 이주했거나 정착해서 산것이 아니다.그러므로 그곳에 뿌리내리며 50수년을 살아오기 위해 그들이 겪은 고초는 이루 말할수가 없다.그런 그들이 이번에는 회교 민족주의자들에 의해 러시아인이 배척당하는 일환으로 배척당하고 있는 것이다.부당하고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라잃은 시대의 희생으로 그 많은 세월을 떠돌던 우리의 혈육들이 간신히 정착한 땅에서 또다시 핍박받고 뿌리뽑힌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은 너무도 가슴아픈 일이다.그렇기는 하지만 그들을 위해 고국이 해줄 수 있는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그들은 우선 러시아를 「내나라 조국」으로 부르는 타국민이다.내전속의 동포에게 난민구호차원의 손길은 펼수 있지만 직접 해결력을 발휘할 방법은 없을 것이다. 다만 러시아정부가 하루속히 한인 강제이주및 탄압의 책임을 인정하고 한인의 명예를 회복하도록 촉구하는 일은 정부가 할 수 있을 것이다.또한 다른 CIS여러나라에 외교루트를 통해 화해와 경제협력의 장을 마련하여 현지 한인들이 그 중요한 역할을 맡게 하는 길을 여는 일 따위는 가능할 것이다.우즈베크공화국 동방대학에는 한국경제과가 독립되어 있고 한국대학과 자매관계도 맺고 있다.그만큼 한국과의 경제적 동반관계를 원하는 것이 중앙아시아 여러나라의 공통된 관심이다.이런 현실을 효과적으로 살리는 일도 실리 있고 가능성이 높은 방법이다. 러시아 최고회의는 오는 27일 「재러시아 한인 명예회복에 관한 법안」을 본회의에 상정하여 최종 처리하기로 했다고 한다.이 법안이 통과되면 강제이주당한 한인들의 원래의 정착지로의 귀환이 허용되고 농경지 소유및 납세 특전 등의 생계대책도 마련될 것으로 기대된다.이 점에 관한 정부의 외교적 막후 노력이 요망된다.
  • 중앙아 강제이주 한인/러,연해주귀환 곧 허용/원할땐 러국적 취득도

    ◎의회,「명예회복법안」 27일 처리 【모스크바=이기동특파원】 과거 스탈린의 강제명령에 의해 중앙아시아 각지로 분산 이주당했던 한인동포들의 명예가 회복되고 연해주 등으로의 자유로운 귀환이 조만간 허용될 전망이다. 러시아최고회의는 오는 27일 「러시아거주 한인 명예회복에 관한 법안」을 본회의에 상정,최종 처리키로 확정했다고 국제고려인연합회의 김영웅회장이 20일 밝혔다.그는 최고회의로부터 최근 이같은 내용의 통지를 받았다고 전했다. 이 법안의 주요 내용은 ▲강제이주 및 그 이후의 탄압을 불법적 범죄적인 조치로 인정,한인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강제이주전 원래 거주지로의 귀환권리를 부여하며 ▲러시아외 CIS(독립국가연합) 각나라에 거주하는 한인들이 원할 경우 러시아 국적취득권을 주도록 돼있다. 이 법안은 또 원래거주지로 귀환하는 한인들을 위해 농경지소유·납세특전 등 제반 생계대책과 구소련내 한인의 법적지위를 확고히 하도록 하는 CIS 차원의 방안을 러시아정부가 마련,최고회의에 제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와관련,연해주와 하바로프스크당국은 한인들의 집단적이 아닌 개별적인 귀환은 허용할 방침임을 최고회의와 국제고려인연합회에 최근 통고했다.
  • 남북 방송프로 상호개방 추진/8개 기관 청와대 업무보고 내용

    ◎UR·다자간무역협상에 적극 대처/정치참여 확대 등 여성역할 극대화 ▷통일원◁ 「본격적인 남북 화해협력시대의 전개」를 위해 남북고위급회담을 지속적으로 추진,당국간 상설 대화통로로 정례화 한다.또 분야별 「남북공동위」를 조속히 가동,남북 합의사항을 구체적으로 이행·실천해 나간다.이산가족 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위해 판문점 「이산가족 면회소」설치와 「고령이산가족 고향방문단」교환을 우선적 과제로 추진한다. 남북경제교류협력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임가공 등을 통한 직교역을 확대하고 경공업분야의 시범적 경제협력사업의 추진,투자사절단 교환,남북협력기금 확충 등의 사업을 펼쳐 나간다. 또 남북 문화·예술·체육·관광분야교류 실현을 위해 남북공동기념일에 문화예술사절단 교환,국제경기대회 남북단일팀 참가,관광객 교류 등을 추진한다.아울러 북한의 정보자료에 대한 개방을 전향적으로 추진,「북한실상 바로 알리기」를 실질화하며 북한정보 자료의 수집·분석기능을 강화해 남북교류협력 본격화에 대비한다. ▷외무부◁공고한 안보체제를 유지하면서 90년대 중반 선진국진입과 금세기내 통일을 목표하여 경제·통상·기술등 실리외교를 강화하고 국제적 지위에 상응하는 다자협력을 확대한다. 이와 관련,미·일과의 우호협력관계를 심화시키고 러시아·중국과의 협력관계를 구축하며 북한의 학문제해결,동북아 다자안보대화및 협력모색등을 통해 국가안보를 공고히 하겠다. 남북당사자간 대화및 우리의 통일정책에 대한 국제적 지지확보,북한의 정책변화및 개방촉진등을 통해 통일외교를 촉진시키겠다° 우루과이라운드(UR) 다자무역협상에 적극 참여하고 아시아대평양경제협력체(APEC)등을 통한 지역경제블록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등 통상확대및 통상마찰방지를 위한 외교노력을 강화하겠다. 또 선진과학기술도입에 노력하고 새로운 국제환경규범형성에 우리의 입장을 반영하는등 경제·통상·기술·환경분야에서 실리외교를 추진하겠다. 유엔의 국제평화유지활동에 참여하고 적극적인 문화외교를 전개하며 재외국민의 지위향상에 노력하겠다. ▷공보처◁ 금년 상반기중 종합유선방송(CATV)사업허가를 위해 구역분할과 채널구성안및 외국프로그램 방영비율등 제반사항을 준비중이다. 오는 95년 위성방송실시를 목표로 위성방송의 채널주체를 선정하고 위성방송지구국 건설을 추진하겠다. 아와함께 TV난시청 해소사업을 추진,금년부터 97년까지 5백가구 이상 밀집지역의 난시청현상을 우선 해소하고 소출력 TV통합중계시설의 건설을 늘러나가겠다. 남북방송개방추진위원회를 중심으로 TV·라디오방송의 남북상호개방과 교류를 추진해 방송프로를 상호교환하고 남북공동으로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정무장관제1실국◁ 국무회의·차관회의등 각종 공식회의와 비공식경로를 통해 통치권자의 개혁의지가 확산·전파되도록 하고 「깨끗한 정치」를 실현하는데 행정부가 솔선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등 「신한국」건설에 적극 기여하겠다. 고위당정정책조정회의및 각종 당정협의회의는 주요현안이 있을 때 수시로 개최하고 법률안·정책안등에 대한 이견이 발생했을때 적극 조정하는등 기존의 당정협조관계를 보다 효율적으로 운영해 당정협조의 내실화를 기하겠다. 통일시대에 대비,국민단합차원에서 야당과의 관계도 획기적으로 개선하겠다.또 정당법·선거법등 정치관련제도및 정치개혁등을 위한 관련연구에 힘쓰겠다. ▷정무장관제2실◁ 새정부가 지향하는 「신한국」창조에 여성의 역할을 극대화시킬 수 있도록 한다. 이에 따라 여성의 정치·사회참여확대를 지원·촉진하고 불평등 고용관행의 개선등 여성고용확대정책을 강화하겠다. 남녀평등의식교육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여성복지의 내실화를 기하겠다. 특히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시키는 성폭력으로부터 여성을 보호하는데 역점을 두겠다. ▷비상기획위원회◁ 민주화·지방화시대에 상응한 자율적 비상대비기반을 강화하고 전·평시 공히 적용가능한 비상대비능력을 배양하며 비축물자의 평시활용으로 국민경제에 기여하겠다. 또 첨단과학시대에 대비한 비상대비업무체제를 구축하고 군비통제에 대비한 동원체제를 확립하겠다. ▷평통자문회의사무처◁ 전국협의회및 직능분야별 단체를 통한 통일문제간담회·강연회실시등 통일문제에 대한 국민적 합의기반을 구축하겠다. 사회주의권 거주동포의 통일지지세력화및 북한사회개방화를 위한 활동을 지원하는등 통일정책에 대한 해외지지기반을 공고화하겠다.
  • 김영삼 차기대통령­구야원로 대화록

    ◎“법지키는데 솔선수범 하겠다”/김 차기대통령/“이제 민주대 반민주 없어졌다”/구야정계원로 김영삼차기대통령은 19일 이민우 유치송 정해영 고재청 신도환 이충환 고흥문 이철승 이중재 노승환 김원만 송원영 유청씨등 야권출신 정계원로 13명을 여의도 63빌딩으로 초청,오찬을 함께하며 원할한 국정운영을 위한 원로들의 조언과 협조를 당부했다. 다음은 박희태대변인이 전한 이날의 대화내용. ▲김차기대통령=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고향인 거제도의 마을 앞을 가로지르는 중요한 도로가 작년에야 겨우 포장이 됐는데 동네사람들이 30년동안 불평한번 하지 않아 매우 고맙게 생각합니다. ▲이중재씨=야당의 서러움을 아는 대통령이 나왔으니 야당에게도 잘 해줄 것으로 믿습니다. ▲이민우씨=과거에는 여야인사가 구분됐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이제 민주대 반민주의 구도는 없어지는 것 같아요. ▲이중재씨=상품권발행은 못하게 하지만 도서교환권의 발행은 허가한 것은 잘하는 것입니다. ▲김차기대통령=올해는 책의 해가 아닙니까.발상이 좋은 것 같아요. ▲신도환씨=역대 대통령이 법위에 군림한다는 평을 받았는데 문민정부는 법을 지켜야 합니다.법앞의 평등이 구호로 그쳐서는 안되지요.법을 지키는 역사에 남는 대통령이 되기를 바랍니다. ▲김차기대통령=야당하시던 원로들과 자리를 같이해 매우 감회가 깊습니다.여러분들은 모두 한시대 역사의 주인공이 아닙니까.국민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법을 지키는 것입니다.솔선수범하겠습니다. 경제를 살리는 것이 당면과제입니다.국민모두가 새발상으로 새출발해서 열심히 일하는 기풍이 진작되면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통일은 먼길이 아닙니다.임기중 통일을 이룩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정치원로들이 뿌린 민주주의의 씨가 활짝 피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전심전력을 다하는 것이 여러분께 보답하는 것이니 어떤 고언이나 충고도 아끼지 말기를 바랍니다. ▲이철승씨=속담에 산돼지 잡으려다 집돼지 놓친다는 말이 있습니다.총재가 남북정상회담을 서둘지 않겠다고 말한 것은 매우 고무적입니다.건국이념이 퇴색되지 않도록 이념교육을 철저히 해야 합니다.건국과정에서 희생된 3백만 동포들을 잊어서는 안되지요. ▲김차기대통령=감사합니다.앞으로도 이런 모임을 자주 갖도록 하겠으나 나보다는 여러분들이 말을 하는 모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 타지크 한인 6천명 피난/내란 장기화로/현지인 7천여명도 생필품난

    ◎현지대사관,실태 파악… 지원나서 【모스크바=이기동특파원】 중앙아시아 타지크공화국에서의 내란이 발생함에 따라 현지거주 한인동포의 절반이 피난차 외국으로 빠져 나갔으며 남아있는 한인들도 치안불안과 생필품부족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19일 모스크바주재 한국대사관과 국제고려인연합회(회장 김영웅)에 따르면 지난 8월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한 타지크의 내란으로 1만3천여명의 한인 가운데 6천명 가량이 4개월동안 인근 우즈베크,러시아 원동지방과 카프카즈로 이주해갔다. 현재 남아있는 7천여명은 수도 두샨베를 비롯 제2도시 레니나바드및 남부 쿨라브지방에서 집단으로 난민생활을 하고 있는 실정이며 정정불안과 생필품의 절대부족으로 큰고통을 받고있다. 이에따라 대사관측은 지난해 12월과 올 1월 두차례에 걸쳐 관계관을 현지에 파견,한인 실태를 파악하고 이들을 위해 쌀 30t,담요 1천장,의류 7백여점 등 총 1만6천달러 상당의 생필품을 전달했다.
  • 사할린에 어린이도서관 개관 이인표씨

    ◎“해외동포 훌륭한 인물배출 소망”/기업이윤의 사회환원 차원서 시작 『기업이윤의 사회환원차원에서 이 일을 처음 시작하게 됐지요.많은 사회봉사사업 가운데서도 특히 어린이 도서관을 건립하게 된 것은 장학금 마련과 같은 일회성보다는 백년대계를 위한 장기적인 안목에서 입니다』 지난 14일 사할리 유지노사할린스크시에 고려인협회와 공동으로 16번째인 인표어린이 도서관을 개관한 재단법인 에스콰이아 사회과학재단 이인표이사장(71·주에스콰이아회장). 그는 중국과 구소련의 소수민족중에서 한민족이 여러면에서 뛰어난 우수한 민족이 되어 훌륭한 인물들을 더 많이 배출해달라는 의미에서 사할린에 어린이도서관을 세우게 됐다면서 중국 용정과 연길에 이어 해외에는 이번이 세번째라고 말했다. 어린이 전용도서관인 인표도서관은 지난 90년5월 이씨가 사재를 털어 서울 상계동에 처음 설립한 이래 구로공단,태백,전남 진도등 주로 산간벽지와 공단지역 등의 저소득층 어린이들이 밀집해 있는 곳에 문을 연 것이 특징. 오는 연말까지 중국의 하얼빈,심양,도문지역과 카자흐공화국의 알마아타시 등에도 건립,모두 20개가 개관될 예정이라고. 어린이도서관 건립사업을 통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자 애쓰고 있는 이씨는 이같은 공로로 지난 91년10월에 「올해의 독서운동가」로 선정되었으며 지난해 5월에는 「색동회상」을,그리고 10월에는 기업인으로는 처음으로 「문화훈장」을 받기도 했다.
  • 일 최고권위 「기시다」 희곡상/재일동포 유미리씨 수상

    ◎사상 최연소… 여성극작·연출가로 활동/한국인의 가족 붕괴뒤 소생과정을 묘사 일본에서 가장 권위있는 희곡상인 기시다(안전)희곡상 제37회 수상자에 재일동포 2세 여성극작가이며 연출가인 유미리씨(24)가 선정되었다.유씨는 최연소 기시타희곡상 수상자가 되며 수상작은 재일동포의 생활을 그린 「어의 제」. 기시타희곡상은 일본 연극계의 신인극작가 등용문으로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문학소설을 대상으로 한 아쿠타가와상과 대중소설을 대상으로한 나오키상을 혼합한 성격의 희곡부문상이며 일본에서 활약하는 유명한 극작가들은 모두 이 상을 수상했다. 수상식은 다음달 하순쯤 있을 예정이며 유씨는 재일동포로서는 2번째 수상자가 된다.첫번째는 지난 74년 「열해살인사건」으로 이 상을 받은 김봉웅씨. 유씨는 일본인 극작가 미야자와 아키오씨와 함께 수상자가 됐으며 심사위원들은 유씨의 작품이 『문장의 구성력이 우수하고 신인작가로 장래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유씨는 『뜻밖에 상을 받게되어 놀랐다.어려서부터 상을 받아본 적이 없어 상은 나에게 어울리는 것 같지 않다』고 겸손해했다. 유씨의 수상작 「어의 제」는 재일 한국인 가족의 붕괴과정을 재일동포의 시각에서 심도있게 묘사한 「해바라기의 관」의 후속편으로 한 가정의 차남의 죽음과 장례를 통해 붕괴됐던 가정이 다시 소생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어의 제」는 이미 지난해 10월부터 11월에 걸쳐 도쿄,삿포로,나고야등에서 공연되어 호평을 받았으며 울산에서도 번역되어 무대에 올려졌다. 지난 1968년 가나가와현에서 태어난 유씨는 한때 배우가 되려는 꿈을 가지고 있었으나 단념하고 18살때 연극단체 「청춘5월당」을 만들어 연극공연을 해왔다.유씨는 공연할 때마다 배우와 스태프진을 새로 모집해 직접 연출해왔다.유씨는 요즈음도 새로운 작품을 쓰고 있으며 『앞으로 나의 작품을 한국무대에서 연출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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