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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계/구호품·쌀 모으기 운동 점화

    ◎“수해·콜레라로 고통받는 북한동포 돕자”/성금·의약품·의류 등 한적 통해 전달키로/불교­조계종 총무원에 모금본부 설치/가톨릭­서울교구서 헌미헌금운동 전개/원불교­헌금구좌 개설/기독교­약품 모으기 사상 유례없는 극심한 수해와 식량난,콜레라등으로 고통을 받고있는 북한 동포를 돕기위한 운동이 종교계에서 일고있다. 불교 조계종은 16일 서울 견지동 총무원에 남북 수재민돕기모금본부를 설치하고 7천만원이상의 의연금을 모아 이달 말까지 4천만원을 한국적십자사를 통해 북한에 전달할 방침이다. 송월주 총무원장은 이날 『북한 동포 돕기운동은 대자대비한 불교정신의 실천이며 생명존중 사상을 구현하는 것』이라며 『북한의 수재민을 돕기위해 범종단적인 지원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가톨릭 서울대교구(교구장 김수환 추기경)는 수년동안 누적된 흉작과 올해 여름 큰 수해로 식량난을 겪고있는 북한의 형제자매를 돕기위한 대규모 헌미 헌금운동을 편다. 오는 24일부터 연말까지 4개월동안 서울대교구산하 1백75본당별로 북한주민돕기 헌미헌금운동의 의의와 중요성을 강조하는 내용의 미사 강론을 통해 헌미 헌금을 받을 예정이다. 헌미헌금의 액수는 쌀 20㎏ 한포대를 한 구좌로 해서 구좌당 3만원.서울대교구산하 한마음 한몸운동본부가 구좌를 관리하게 된다. 서울교구의 헌미 헌금운동은 자발적인 민간차원의 대중운동이어서 가톨릭의 다른 교구는 물론 개신교등 종교단체와 일반 사회단체에서도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김수환 추기경은 헌미헌금운동을 시작하면서 교구신부들에게 『해방과 분단 50주년을 맞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노력으로 전개되는 북한동포들에게 보내는 헌미 헌금운동에 적극협조해 달라』는 서신을 발송했다. 김추기경은 이 서신에서 『현재 북한의 형제자매들은 극심한 식량난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며 『정부가 북한에 쌀을 보내는 과정에서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고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우리는 북한의 동포들과 나눔의 정신으로 생활하는 종교인의 자세를 늦출 수 없다』고 강조했다. 명동성당은 오는 24일 최창무 주교가 미사를 집전하고 사랑의 쌀 나눔잔치를 열어 이운동을 대대적으로 펼쳐나가기로 했다. 원불교는 지난주 북한 수재민을 돕기위한 헌금구좌를 개설하고 신도들로부터 헌금을 받고있으며 기독교 장로회는 17일 일요 예배를 통해 특별헌금과 구호품을 모금할 계획이다. 예장통합,기장,감리교등 6개 교단이 참여하고있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도 북한주민을 돕기위한 수재의연금 모금과 함께 구호품,의약품 마련 등의 활동을 펴고있다. 교회협은 기독교사회 봉사회와 남북나눔 운동본부 등과 함께 북한 지원활동을 벌일 계획을 세우고 앞으로 각 단체의 실무자 회의를 거쳐 기금 모금을 위한 온라인 구좌 개설 등을 결정키로 했다. 교회협은 모금운동과 함께 콜레라 창궐로 고통을 받고있는 북한 주민을 위한 의약품 제공과 곧 닥칠 겨울에 대비한 대량의 의류를 지원할 계획이다. 불교·개신교·천주교·원불교·유교 등 국내 5대 종교 지도자들과 한국시민단체협의회 등은 최근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남북한 수재민을 돕기위해 범국민적인 모금운동을 전개할 것을 다짐한 바 있다. 종교계에서모금한 북한수재의연금과 의약품,의류,사랑의 쌀등은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북한의 적십자사로 보내게 된다.
  • 한적,북에 수해지원 제의/전통문 안받아 라디오 통해 전달

    대한적십자사 강영훈 총재는 15일 상오 KBS 제1라디오를 통해 대북 수해지원 의사를 표명하고 북한적십자회측에 구체적인 구호물자 전달방법을 논의하자고 제의했다. 강총재는 이날 북한적십자회 이성호 중앙위원장 대리에게 보낸 대북 방송통지문을 통해 『비록 우리 국민들이 수해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으나 더욱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는 북녘동포들도 도와야 한다는 생각에서 의약품과 모포를 귀측에 지원하기로 했다』고 대북 지원의사를 밝혔다. 그는 또 『국민들이 물품전달을 의뢰해 올 경우 이를 모아 귀 적십자회 앞으로 보내고자 한다』며 『물품을 귀측에 보내는 방법에 대한 의견을 조속히 알려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한적은 당초 대북 전화통지문으로 수해지원을 제의할 방침이었으나 지난해부터 우리측 전통문 접수를 거부해온 북측이 그같은 태도를 고수함에 따라 방송통지문으로 대체했다. 강총재는 또 이날 대북 수해지원과 관련,대국민성명을 내고 『국제적십자사 연맹이 13일 각국 적십자사에 북한 수재민을 위한 원조를 호소해와 의약품과모포등 수재구호물자 제공을 북한에 제의했다』고 밝혔다. 그는 『북한에 수재구호물자를 보내려는 한적의 입장을 널리 이해해 달라』며 『국민들이 북한 수재민을 돕기 위한 물품이나 현금전달을 의뢰하는 경우 이를 모아 북한적십자회측에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 북한 수재민 구호의 길(사설)

    엄청난 수재로 북한 국토의 대부분이 피해를 입고 이 때문에 주민이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어 가슴이 아프다.지난 8월29일부터 9월9일까지 북한의 수해지역을 답사한 유엔 인도주의사무국(DHA) 조사단은 북한 국토의 75%인 1백45개 군이 황폐화됐고 이재민도 5백20만명에 이른다는 북한당국의 발표가 과장이 아님을 확인했다.유엔은 이 조사단의 보고를 토대로 긴급구호활동에 나서 인도적인 차원에서의 각국 동참을 호소하고 있고 우리 정부도 북한 수재민을 돕기 위한 방안을 마련했다. 나웅배부총리겸 통일원장관은 14일 대한적십자사가 5만달러상당의 의약품과 생필품을 북한적십자회에 직접 전달키로 했다고 밝히고 『북한의 공식요청이 있을 경우 정부차원의 지원도 적극 검토하겠다』고 말했다.정부차원에서가 아니라 민간차원에서 먼저 북한 수재민을 돕기로 한 것은 정치색이 완전히 배제된 순수한 동포애의 발현이라는 점을 북한당국에 알리기 위한 것으로 보여진다.북한의 권력자들이 겸허한 마음으로 우리의 도움을 요청한다면 우리 정부는 국민적 합의를얻어 보다 적극적으로 도와줄 수 있을 것이다.우리가 먼저 능동적 의사를 표시하기에는 쌀제공등에서 보인 불편함이 아직 남아 있어 걸림돌이 되고 있다. 15만t의 쌀제공과 관련,우리 쌀수송선에 인공기를 강제로 게양시키는가 하면 선원을 감금하는 배은망덕한 짓을 자행했었다.이 때문에 우리의 국민정서가 대북지원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그런데도 대한적십자사가 다시 도움의 손길을 뻗기로 한 것은 수재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이 극소수의 「붉은 귀족들」이 아니라 헐벗고 굶주리는 북한 주민들이기 때문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북한당국은 이러한 우리의 심정을 바로 헤아려야 한다.북한의 수재민구호와 복구사업을 실질적으로 도울 수 있는 것은 한국뿐임을 북한은 빨리 깨달아야 한다.사과할 것은 하고 솔직하게 지원을 요청함으로써 우리 국민 마음속의 응어리를 푸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 「북 수해」 5만불 우선 지원/나 부총리

    ◎한적 통해 약품·생필품 제공 정부는 유엔기구의 현지조사 결과 북한의 수해상황이 극심한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우선 대한적십자사를 창구로 해 1차 구호물자를 지원키로 하는 한편,당국차원의 지원은 북한의 공식요청이 있으면 추후 검토하기로 했다. 나웅배 부총리겸 통일원장관은 14일 하오 기자간담회를 갖고 『우선 대한적십자사가 자체 재정으로 5만달러(한화4천만원 상당)의 의약품,의류,모포 등 생필품을 적당한 통로를 통해 북한측에 전달키로 했다』고 말했다. 나부총리는 종교단체와 민간단체의 지원과 관련,『정부는 국내민간 차원의 구호물자 지원은 대한적십자사로 창구를 일원화해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정리했다』고 밝혔다.그는 또 현재 2백만달러 선에서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진 정부차원의 지원에 대해서는 『북한의 공식요청이 있을 경우 지원시기와 규모·방법에 대해서 시간을 갖고 신중히 검토한 후 당정간의 협의를 거쳐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의 공식적인 지원요청은 아직까지는 없었다며 『정부의 결정은 순수한 인도주의와 동포애에 입각한 것으로서 우리의 수재물자 지원이 북한의 수해복구에 도움을 줄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당초 2백만달러 상당의 의약품과 의류,담요 등을 지원할 계획을 발표할 계획이었으나 이날 상오 열린 당정회의에서 민자당측이 우리자체의 수해복구가 완료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북 지원을 할 경우 문제가 많다며 이의를 제기,구체적인 지원 규모는 계속 협의키로 했다. ◎일 북에 50만불 지원/산케이지 보도 【도쿄=강석진 특파원】 일본 정부는 북한의 수해와 관련해 유엔 인도지원국(DHA)의 요청을 받아들여 50만달러 규모의 자금을 지원하기로 했다고 일본의 산케이신문이 14일 보도했다. 일본정부는 이와 관련,미수교국으로서는 처음으로 정부개발원조(ODA)무상자금을 제공하기로 했다.
  • 당정/북 수해지원 “신중검토”로 가닥/고위당직자 회의서 결론

    ◎한적통한 민간차원 구호 우선/여론 동향 봐가며 정부지원 적극 추진 북한 수해복구 지원 문제를 놓고 정부와 민자당은 「신중 검토」로 1차 결론을 내렸다.정부 차원의 지원은 뒤로 미루고,대한적십자사를 통한 민간차원의 지원부터 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정부측은 당초 북한 적십자사를 통해서든지,유엔을 통해서든 2백만달러 정도를 지원할 생각이었다.나웅배 통일부총리는 14일 민자당 고위당직자회의에 참석,이같은 계획을 설명했다.당과의 협의과정을 거쳐 이날 하오 공식 발표할 예정이었다. 나부총리는 고위당직자회의에서 『유엔 인도사업국에서 북한의 수해상황을 조사한 뒤 유엔회원국에게 협조를 요청했고,국제적십자사에서 대한적십자사에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지원을 요청해 왔다』고 배경을 설명했다.이어 북한의 엄청난 수해실상을 보고한 뒤 『지원해 주어야 되지 않겠느냐』고 제의했다. 민자당측도 지원 원칙에 대해서는 정부측과 궤를 같이 했다.고위당직자회의에 이어 열린 당무회의에서 정재문의원은 『북한은 압록강이 범람하는 등 엄청난 피해를 당한 것만은 틀림없다』면서 『김정일을 돕는 게 아니라 북한동포를 돕는 차원에서 지원하는 것이 옳다』고 강조했고 이웅희의원 등도 동조했다. 그러나 지원을 즉각 실행에 옮기는데 대해서는 제동을 걸었다.대북문제에 있어서는 국민여론 등 여러 여건을 고려해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는 논리가 줄을 이었다.결국 구체적인 결정을 보류,계속 검토키로 하는 선에서 매듭지었다. 민자당의 신중론은 지난번 북한 쌀지원과정에서 나타났던 문제들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쌀을 보냈지만 인공기 게양사건,쌀 수송선 억류사건 등 북한측의 도발적인 태도로 뒤통수만 얻어맞은 격이 되고 말았고 6·27 지방선거에도 결정적인 「악재」로 작용했다는 것이 민자당의 판단이다. 정부도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중부권 지역의 수재복구 대책이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북지원문제를 거론하는 것 자체가 껄끄럽다. 결국 정부는 민자당쪽의 의견을 존중해 주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정부차원에서 지원하는 문제는 계속 논의해 나가되 당정합의 아래 추진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이다. 북한의 태도가 문제가 되겠지만 당정은 앞으로 정부차원의 지원문제도 적극 검토할 것만은 분명하다.하지만 시기·방법의 선택에는 여론의 동향이 결정적인 작용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나 통일부총리 일문일답/북의 정식요청 없으면 추가지원 안해 나웅배 통일부총리는 14일 대한적십자를 통한 5만달러 상당의 1차 대북 수재물자 지원 방침을 발표했다.그는 추가지원여부에 대해서는 『국민의 호응과 성원 속에서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북한의 공식 요청이 오면 당정협의를 거치는 등 절차와 모양을 갖춰 응하겠다는 신중한 반응이었다. ­대북 수해지원 결정 배경은. ▲북한의 대규모 수해에 대해 동포로서 깊은 우려끝에 유관부처 회의와 당·정 협의를 통해 지원을 논의해 왔다.유엔을 통한 참여방법도 생각했으나 동족의 문제이므로 일단 적십자사가 좋겠다고 생각했다. ­추후 지원방안은. ▲현재 전체적인 지원규모를 협의하고 있다.이 경우 일본의 고베대지진과 러시아재난 등 우리가 구호금을 제공했던 다른 나라 재난의 예를 참고하고 있다. ­어떤 절차가 필요한가. ▲북한의 경우 동족이긴 하나 적십자사간의 정상적 대화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따라서 국제사회 일원으로서 호응하는 것은 가능하나 그 이상 큰 지원은 북한의 정식요청이 없으면 곤란하다. ­민간의 모금에 대한 입장은. ▲대한적십자사로 창구를 일원화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본다.또 기업이나 중국 등을 통한 물자 전달이나 언론사의 대북 수재모금 활동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북한의 공식 요청이 있을 경우 추가지원에 당도 찬성할 것으로 보나. ▲당도 이의가 있을 수 없다고 본다.
  • 북한 수재 충격 이상이다(박화진 칼럼)

    천재지변이 인간역사의 방향을 뒤바꾸어놓는 경우는 흔히 있는 일이다.멀리는 공용의 소멸과 노아의 홍수등 전설적인 이야기에서부터 근세의 프랑스혁명등에 이르기까지 인류역사의 큰 변화는 흔히 자연의 조화내지 천재지변과 직간접의 관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프랑스 대혁명만해도 1783년 북구 아이슬란드 대지진 및 화산폭발의 천재지변이 몰고온 수년간의 기상이변과 흉년에 따른 기근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으로 흔히 지적된다.우리역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왕조의 영고성쇄와 각종 민란등에서 흔히 그것을 볼수 있다 새삼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북한이 최근 당했다는 천재지변의 폭우 및 홍수피해가 아무래도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북한 스스로 1백년만의 대홍수라고 발표하고 있다.현지실정을 조사한 유엔인도주의사무국 발표를 보면 지난 7월과 8월 3차례에 걸쳐 북한을 강타한 집중폭우와 홍수는 북한전역에 대한 천재지변적 융단폭격의 인상을 준다. 전국토의 75%가 피해를 입었으며 국민의 4분의 1인 5백20만의 이재민에 GNP 4분의 3규모인 1백50억달러의 재산피해가 발생했다는 것이다.홍수가 아니더라도 2백만t이 부족했을 금년의 식량생산은 1백90만t 추가감수가 불가피해 전체소요량의 80%에 해당하는 3백90만t이 부족하게 된 형편이다.한국 일본 태국의 쌀지원을 받아도 3백만t이 부족하다.댐과 농지는 물론 가옥 상수도 창고 도로 학교등 가뜩이나 빈약한 사회간접자본시설의 유실도 엄청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믿어지지가 않을 정도다.사실이라면 북한의 국가적 존립자체가 어떻게 가능할지 그것이 걱정된다.유엔이 1천5백만달러의 긴급구호원조에 나선다지만 그야말로 긴급구호말고는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당장 금년 겨울 넘길 일부터 큰일이다.그렇지않아도 심각한 경제난의 북한이다.곧바로 복구를 시작한다해도 수년이 걸릴 타격이다.그러나 무슨 돈과 힘이 있어 그나마 원상복구인들 시작할수 있단 말인가. 지나친 속단이며 북한에 대한 모독일지 몰라도 유엔발표가 그대로라면 북한은 이것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것같다는 생각마저 든다.유엔의 구호나 임시변통같은 것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닌 것같기 때문이다.정부가 유엔 긴급구호동참과 함께 동서해안 2곳의 북한난민수용소 건립을 검토한다는 소식이 전혀 황당하게 들리지 않는다.기왕이면 중국과도 협조해서 한만국경에도 세울 필요가 있을 것같다.북한공산정권은 세계적 붕괴와중에서도 유일하게 운이 좋아 용케 살아남아있는 그러나 붕괴된 다른 공산독재정권들과 다를바 없는 평범한 폐쇄공산독재집단이다.성급한 판단일진 몰라도 이번 재난은 그 북한의 난민탈출사태와 숙명적 붕괴를 앞당기는 촉진제가 될 것으로 봐야할 것이다. 『북한의 근본적 해결책은 한국과의 과감한 교류협력뿐이다.지금은 체제동요를 걱정할 때가 아니다.결단을 내려야할 순간이다.북한공산독재는 50년으로 족하다.현체제는 더이상 존재할 이유도 자격도 없다.인민을 먹여살리지도 못하면서 누굴 위한 무의미한 우리식 사회주의고수냐.이번 폭우는 천재인 동시에 치산치수 잘못하고 소홀히한 공산체제의 인재다.모든것 청산하고 획기적인 발상전환으로 한국과의 자유민주체제통일에 나서라.그것만이 살 길이다.무고한 2천만 북한동포의 고통을 하루라도 빨리 덜어주고 21세기로 비약해야하는 한민족공동의 발전에 기여하는 길이다.그것은 오늘의 북한정권에 맡겨진 마지막 역사적·민족적 소임이다』 그런 하늘의 재촉소리가 들리는 것같다.
  • 북한 난민수용소/2곳에 건립검토/수해로 대규모 탈출가능성 대비

    정부는 북한에 대규모 난민이 발생할 경우 현재의 귀순동포보호법등의 제도적 장치만으로는 적절히 대처할 수 없다고 보고 관련법 개정을 포함한 종합 난민대책을 장기적으로 검토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특히 최근 발생한 수해피해와 같은 북한내 재해나 정변으로 인한 재난시 해상을 통한 대규모 난민탈출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동·서해안 인천·속초에 난민수용소 건립등도 장기적 차원에서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13일 『극심한 경제난과 최근 엄청난 수해피해를 입은 북한의 상황을 고려,대규모 난민발생 가능성에 대비해 이들을 수용하고 구호할 수 있는 체계적인 장치를 강구해 놓아야 한다는 판단에서 종합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 “올 북녘추석 우울하고 쓸쓸”

    ◎수재로 상당수 묘지 유실… 전염병 등 「3재」/연휴없고 9·9절 겹쳐 백미 배급이 고작 북녘동포들에게는 올해 추석이 여느 해보다 우울한 민속명절이었을 것이라는 게 북한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올 7·8월 한반도 전역을 휩쓴 수재로 북한이 사상 유례없는 피해를 당했기 때문일 것이다.가뜩이나 어려운 식량난이 더욱 가중된 데다 농약과 기초의약품 부족으로,추석이 지난 현재까지 병충해와 수인성 전염병 비상이라는 이른바 「3재」를 겪고있는 까닭이다. 특히 이번 수재로 북한 곳곳의 도로와 철도들이 피해를 입은 데다 상당수 묘지마저 유실되는 바람에 북한주민들은 더욱 쓸쓸한 추석을 보낼 수 밖에 없었다.북한 선전매체들이 추석을 전후해 주민들의 한가위 맞이 움직임에 대한 별다른 보도를 하지 않고 있는 점이 이를 말해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올 추석이 북한의 정권수립 기념일인 9·9절(47주년)과 겹쳐 주민들은 국경절에 나오는 얼마간의 백미 특별배급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정도이다.이 과정에서 최근 남한과 일본이 제공한쌀이 고위간부급을 비롯한 일부 계층에 공급됐을 공산도 있다는 게 최근 귀순자들의 귀띔이다.북한은 국경절에 1일분의 백미를 지급하는데 노동자는 5백69g,부녀자와 학생은 4백g미만을 받는다. 북한은 6·25 휴전 이후 조상에 대한 제사를 봉건잔재라면서 물자낭비·분파주의·종파주의를 조장하는 관행이라는 이유를 들어 철저히 차단한 바 있다.그러다가 지난 88년에야 비로소 민속명절로 인정해 간단한 제사와 성묘를 허용하고 있는 형편이다.그러나 추석연휴란 있을 수 없어 남한에서와 같은 「민족대이동」현상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더욱이 추석은 다른 민족명절인 구정(음력1월1일),한식(4월6 또는 7일),단오(음력 5월5일)와 함께 하루 대휴로 하여 당일이 평일일 경우는 일요일에 대신 일을 하도록 정해져 있다. 북한은 국가명절과 민족명절을 구분하여 국가명절인 신정(1월1일),김정일 생일(2월16일),김일성생일(4월15일)은 각각 이틀연휴를 허용하고 있다.국제노동자절(5월1일),해방기념일(8월15일),정권창건일(9월9일 9·9절),노동당창건일(10월10일),헌법절(12월27일)도 북한에선 국가명절로 규정돼 있다.
  • 「9·9절」 행사 김정일에 충성 다짐(북녘 뉴스라인)

    【내외】 북한은 9일 정권수립 47주를 맞아 다채로운 경축행사를 갖는 대신 각지 김일성상징물에 대한 대대적인 참배·헌화행사를 진행하면서 김일성·김정일에 대한 「충성불변」을 다짐하는데 주력했다. 북한은 이날 아침부터 평양 만수대언덕의 김일성동상 앞에서 당·정기관 및 사회단체 간부들과 군장병,근로자,청소년·학생들이 참석한 가운데 대규모 헌화행사를 갖고 『김정일의 두리에 철통같이 뭉쳐 해와 달이 다하도록 김정일만을 일편단심 받들고 따를 결의를 다졌다』고 중앙방송이 보도했다. 또한 부주석 이종옥·박성철·김병식등 당·정·군 고위간부들은 그룹별로 나뉘어 휴전협정 40주를 기념해 세워진 전승기념탑을 비롯해 혁명열사릉·애국열사릉을 찾아 화환을 증정한데 이어 김일성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기념궁전을 참배했다고 북한방송들은 전했다. ◎조총련,대북지원 강화키로 【내외】 조총련은 북한의 정권수립 47주년(9월9일)을 맞아 중앙 보고대회,김정일에게 보내는 전문 등을 통해 대북 지원사업 강화를 다짐했다. 조총련은 지난 8일 도쿄에서 의장 한덕수,책임 부의장 허종만 등이 참석한 가운데 중앙 보고대회를 개최하고 『조총련 조직을 김정일의 사상과 영도에 충직한 일심단결된 대오로,애국애족의 기치밑에 굳게 뭉친 공화국(북한)의 해외 공민단체로 더욱 강화 발전시킬 것』을 역설했다고 중앙방송이 9일 보도했다. 조총련 중앙 상임위원회는 또 김정일에 보내는 축하문을 통해 『내나라 내조국을 더욱 부강 발전시키는 위업에 모든 힘과 지혜,애국열성을 다바쳐 나가겠다』면서 북한의 홍수피해에 대한 「전 동포적」 지원사업 등을 다짐했다. ◎김정일,「안전부」 활동 강화 촉구 【내외】 김정일이 최근 정무원 사회안전부에 『사회안전부 일꾼들은 적대분자들에 대해 무서운 맹수가 돼야 한다』며 체제불만세력 색출과 치안유지에 만전을 기해 줄 것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노동당기관지 노동신문 최근호는 사회안전부의 역할과 활동을 강조한 김정일의 이같은 발언내용을 보도하면서 『전체 사회안전원들이 주민들에 대해서는 순한 양이 되고 목숨도 서슴없이 바치는 참다운 충복이 돼야 하지만 적대세력에게는 무서운 맹수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수피해 보도에 이중적 태도 【내외】 북한이 최근 집중호우에 따른 유례없는 홍수피해 보도와 관련,대내외적으로 계속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어 주목된다. 내외통신 분석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 8월중 홍수피해 규모에 대해 해외로 타전되는 중앙통신을 통해서는 이례적일 만큼 비교적 상세히 보도한 반면에 주민들이 청취하는 중앙방송을 통해서는 오히려 서해갑문등 홍수방지시설의 역할로 집중호우에도 끄떡없이 버틸수 있었다며 김일성·김정일의 「업적」선전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지난 8월말 방북,홍수피해 상황을 조사했던 스위스 외무부대표단의 조사활동이나 2일의 유엔조사단 평양도착 사실도 대외보도를 취급하는 중앙통신과 평양방송만을 통해 보도했다.
  • 부산 정치파동(새로 쓰는 한국현대사:35)

    ◎우남,「대통령 직선」 시도… 야서 강력 반대/계엄 선포·민의 조작… 발췌개헌안 통과 1952년 초 한국전쟁은 교착상태에 빠져 있었다.유엔군과 공산군이 51년 11월 판문점 휴전회담에서 양쪽의 접촉선을 일단 군사분계선으로 인정키로 합의한 뒤 큰 전투는 벌어지지 않았다.1월 초 서부전선인 문산 북쪽 두매리고지와 중동부전선의 크리스마스고지에서 충돌이 있었을 뿐 양쪽의 작전은 수색·정찰,간헐적인 포격전 등 일상적인 군사활동에 그쳤다.이 군사분계선은 거의 변하지 않은 채 휴전까지 이어져 지금의 휴전선으로 고정됐다.한편으론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정전회담이 거듭 열려 휴전과 포로교환 문제를 논의했다. 이때쯤 후방은 전쟁의 공포에서 어느정도 벗어나 안정을 되찾아갔고 이런 분위기 속에서 1월19일에는 제32회 전국체전 동계대회가 수원에서 열리기도 했다.그러나 백성의 생활은 극도로 어려웠다.월남 동포 1백20만∼1백50만명을 포함해 전국에서 모두 7백만명가량의 피란민이 발생했고 이들이 대부분 도시로 몰리는 바람에 생필품은 매우부족했다.대한민국 임시수도 부산의 경우 전쟁전 43만명이었던 인구가 1백50여만명으로 늘어났다.52년 초 물가는 「6·25」전보다 13배나 뛰어올라 있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정치권에서는 헌정사에 큰 오점을 남긴 「부산정치파동」이 서서히 싹터갔다.부산정치파동은 1952년 5월25일 계엄령선포에서 7월7일 제1차 헌법개정,이른바 발췌개헌 공포에 이르기까지 부산에서 벌어진 일련의 정치사건들을 말한다.그 발단은 51년 11월 이승만 대통령의 의도에 따라 정부가 발의한 대통령직선제 개헌안에서 비롯됐다. ○첫 표결 압도적 부결 이승만은 개헌발의에 앞서 자유당을 창당,이를 발판으로 국회에서 개헌안을 통과시키려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자유당은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반대하는 원내세력과 지지하는 원외세력으로 갈라져 결국 창당 한달여만에 원내자유당과 원외자유당으로 분리됐다.이런 가운데 헌법개정안은 해를 넘겨 1월18일 국회 표결에 부쳐졌는데 찬성 16,반대 1백43,기권 1표라는 압도적 표차로 부결됐다. 이승만은 자신을 반대하는 국회에더이상 미련을 두지 않는 대신 충성을 다하는 경찰력을 이용,민의를 동원하는 쪽으로 전략을 바꿨다.이때부터 원외자유당 주도로 「개헌안 부결반대 민중대회」가 열리는가 하면 헌법규정에도 없는 국회의원 소환운동을 벌이는 등 갖은 수법을 동원해 국회에 압력을 가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상황은 이승만에게 유리하게 전개됐다.먼저 4월25일 실시한 읍·면의원선거와 5월10일의 도의원선거 등 첫 지방의회 선거에서 여당인 원외자유당이 압승을 거두었다.이승만은 지방의회와 원외자유당을 양대 축으로 삼아 직선제개헌안을 더욱 거세게 밀어붙였다. 내각책임제 개헌에 앞장서던 서민호 의원이 4월24일 육군대위 서창선을 저격한 사건도 반이승만파에게 큰 타격을 입히는 계기가 됐다.서의원은 지방의회선거 감시차 전남 순천에 갔다 숙소에서 술취한 서대위와 시비가 벌어졌다.서대위가 먼저 권총 6발을 쏜 뒤 서의원이 응사했지만,서의원은 살인 혐의로 구속됐다.국회는 서의원의 살인이 정당방위인데도 그를 구속한 것은 내각책임제 개헌을 방해하기 위한 것이라고 판단,서의원 석방결의안을 의결했다. ○대낮 야 의원에 테러 서의원이 5월19일 석방되자 부산 거리에는 이를 항의한다는 구실로 조작된 민의가 활개를 쳤다.민족자결단·백골단·땃벌떼 등 정체모를 집단들이 때를 만난듯 거리를 누비며 대낮에 야당의원들에게 공공연하게 테러를 가했다.이들은 또 「살인 국회의원 석방한 국회는 해산하라」며 정부·국회·대법원 청사를 습격하기도 했다.피란수도 부산시내에는 공포 분위기가 확산됐다.때맞춰 이승만지지파가 주를 이룬 7개 도의회가 국회해산 요구를 결의했고,지방의회 대표는 반민의국회 해산궐기대회를 열었다. 정부의 공세는 5월25일 0시를 기해 부산·경남북과 전남북 일부 지역에 비상계엄을 선포함으로써 절정에 이르렀다.공비소탕을 내세운 계엄을 악용,야당의원을 철저히 탄압한 것이다.계엄당국의 언론 검열이 시작됐고 25일 밤부터 서민호의원 등 내각제 지지의원들을 잡아들였다.26일에는 헌병대가 국회의원 40명이 탄 통근버스를 크레인에 달아 끌고갔다. 사태가 이에 이르자 우방들의 비난이쏟아졌다.맨 처음 반응은 유엔한국통일 부흥위원단(UNCURK)에서 나왔다.언커크는 5월28일 이승만에게 성명을 보내 『한국에서 유엔을 대표하는 본 위원단은…부산시의 계엄령을 즉각 해제하고,현재 체포·구금된 국회의원들을 석방할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트루먼 미국대통령도 항의각서를 보냈지만 이승만은 「계엄령은 공비토벌을 위한 것이며,국회의원 체포는 공산당과의 공모여부를 밝히기 위해서」라고 둘러대며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어 6월25일 반이승만 세력에게 결정타를 먹인 「이대통령 암살미수 사건」이 발생했다.부산 충무로광장에서 벌어진 「6·25기념식전」에서 유시태(당시 62)가 이승만에게 권총 방아쇠를 당겼다.그러나 총알이 발사되지 않는 바람에 이승만은 암살을 면할 수 있었다.이 사건으로 유시태에게 신분증과 옷을 빌려준 민주국민당 김시현의원 등 야당의원 5명이 배후세력으로 체포됐다.「이대통령 암살미수 사건」은 온갖 테러에도 불구하고 이승만의 재집권 야욕을 꺾으려던 야당에게 치명적인 악재로 작용했다. ○장택상의 수정안수용 이처럼 반이승만 세력이 궁지에 몰렸을 때 장택상 국무총리가 제안한 제3의 개헌안이 등장했다.이 개헌안이 바로 정부의 안과 국회의 안을 적당히 절충한 「발췌개헌안」이었다.하지만 대통령직선제·양원제를 뼈대로 한다는 점에서 이승만의 개헌의도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었다.국회안을 몇가지 수용하긴 했지만 이는 야당의원들에게 타협할 명분을 주기 위한 치장에 불과했다.「이대통령 암살미수 사건」으로 기진맥진한 야권은 장총리의 「발췌개헌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1952년 7월4일 밤 발췌개헌안은 기립표결로 통과됐다.출석 1백66명 가운데 1백63명이 찬성했고 3명이 기권했다.정부는 7월7일 개정헌법을 공포함으로써 부산정치파동은 막을 내렸다.이 개헌에 따른 정·부통령 직접선거가 8월5일 실시돼 이승만은 다시 대통령 권좌에 올랐다. 우리 헌정사에 첫 개헌으로 기록된 발췌개헌은 이처럼 불미스러운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고 이후 거듭된 정치파동의 선례가 됐다.역사는 부산정치파동을 「여야간의 정치운영 방식을 폭력을 통한 극한대립 양상으로 바꾸어 놓았으며,헌정사에서 평화적 정권교체의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게 만든 분기점이 됐다」고 평가하고 있다. ◎「부산 정치파동」에 미 직접개입 주장/휴전협상·군사작전에 악영향 판단/한때 이승만 제거·임정수립을 암사 1952년 한국 정정이 부산정치파동으로 위태로워지자 미국은 한때 이승만 대통령의 제거를 고려하는 등 대책 마련에 크게 고심했다.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은 당시 미국 정부의 입장을 보여주는 극비문서를 최근 워싱턴 미 국립공문서보존관리국에 보관중인 「정책수립처 문서」(Records of Policy Planning Staff)더미에서 발굴했다. 국내에 처음 공개되는 이 문서는 「한국에서 정치적 위기의 지속」이라는 제목으로 모두 3쪽분량.미 국무성 유엔과장 힉컬슨이 1952년 6월13일 작성,정책수립처의 니체를 포함해 국무차관보 매튜,극동과의 앨리손과 존슨등 간부들에게 발송한 것으로 돼 있다. 힉컬슨은 이 문서에서 부산 정치파동의 해결책으로 미국의 직접 개입을 주장하고 있다.그는 미 국무성이 제한적인 차원에서 개입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전제아래 위기의 책임을 이승만보다는 그의 측근인 이범석·임영신·윤치영에게 돌렸다.그 까닭은 한국에서 이승만을 대체할 만한 『전 국가적인 명망성』을 지닌 인물이 없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때문에 이승만의 지위는 인정해 주면서도 주변의 추종자를 거세함으로써 그의 독재적 경향을 제어하려 했다고 볼 수 있다.며칠 뒤 발췌개헌안을 내놓은 장택상 국무총리를 미국이 비난대상에서 제외한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당시 미국은 지지부진한 휴전협상보다 한국의 정치적 위기를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였다.미국은 이 위기가 휴전협정 뿐만 아니라 군사작전의 시행마저도 위협한다고 보았다.따라서 이승만을 제거하고 임시정부를 세울 계획이 한때 있었음을 이 문서는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문서는 미국의 개입이 제한적일 수 밖에 없음을 밝혔고 이 내용대로 미국은 발췌개헌안 통과­이승만 재선의 과정을 묵인하게 된다.
  • 북의 성실성에 달렸다(이동화 칼럼)

    엊그제 독자로부터 편지 한통을 받았다.그 내용을 요약하면 『북한의 엄청난 수재피해에 동정이 간다.인도주의와 동족애에 입각하여 도와주는 것이 마땅하다.다만 지난번 쌀 15만t 무상제공과정에서 북한이 보인 일련의 무례한 언동과 그에 따른 우리의 모욕감이 생생하다.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는다는 전제가 있어야 대북지원이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말하자면 북한의 수재피해를 놓고 도와줘야 되겠지만 「쌀주고 뺨맞았다」는 불행한 전철을 밟아서는 안된다는 내용이다.다수국민의 일반적인 정서와 부합한다고 생각해 그 내용을 소개해 보았다. ○북한 수해지원 냉담한 사정 사실 「쌀파문」만 없었다면 북한이 이렇게 엄청난 수재를 당해 곤란을 겪고 있는 상황을 정부나 국민이 지금처럼 외면하지 않았을 것이다.정부나 대한적십자사가 인도주의 원칙에 따라 재빨리 구호품을 보내겠다고 나서고 국민들도 크게 호응했을 것이다.지난번 쌀 무상지원 발표 때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흥분했던 분위기에 비하면 지금은 전혀 다르다. 그 이유는 북한의배은망덕한 장난 때문이다.청진항에 쌀을 싣고 간 우리선박에 인공기를 강제로 달게 하고 또다른 선박은 억류했으며 노동당 대남비서인 김용순은 『마치 서해망둥이가 뛰니까 빗자루도 뛴다는 식으로 일본이 쌀을 보내겠다니까 남측이 자기들 것을 먼저 보내겠다고 한 것』이라고 적반하장의 망언을 늘어놓기도 했다.그리고 마치 남쪽쌀을 가축사료용이나 경공업자재로 쓸 것처럼 거짓말을 해 우리 국민들의 분노를 샀다. ○북한 도울분위기 아직 안돼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생겨난 배신감과 분노가 아직도 생생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심각한 수재를 당한 북한을 돕자는 얘기하기를 마음내켜하지 않고 있으며 그런 얘기가 일부에서 나와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기 일쑤다.다만 대북문제에 적극적인 일부에서 도와주는 것이 마땅하다는 원칙론을 조심스럽게 개진하고 있다. 북한의 소행은 얄밉고 화도 나지만 북한동포들이 겪는 커다란 어려움을 외면만 할수야 있겠느냐는 것이 이들의 문제제기다.여기에 종교계 일각에서도 이에 가세하여 도와주자는 목소리가 서서히 높아지고 있다.그러나 원칙론이나 목소리만 갖고 도와지는 것은 아니다.도와줄 여건과 분위기가 먼저 만들어져야 된다. 다시말해 국민의 배신감과 분노를 누그러뜨려야 한다.그렇지않고 동족애와 인도주의라는 겉포장 때문에 도움에 나섰다가 북한이 또다시 배은망덕의 언동을 한다면 국민의 분노는 가중되고 그 화살은 정부로 향할 것이며 남북관계는 오히려 크게 후퇴할 것이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어설픈 지원 남북관계 훼손 결국 우리가 도와주고 안도와주고는 기본적으로 북한에 달렸다.북한이 어느 정도 성실성을 보이고 최소한의 신뢰라도 얻을 수 있도록 언행을 가다듬어야 된다.그러나 이문제도 아직은 부정적이다.최근 북한은 유엔인도문제사무국(DHA)에 긴급지원요청을 하면서 이재민 5백20만명,1백50억달러의 재산피해가 있었다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2천만명의 인구,2백억달러의 연간GNP를 고려할 때 현실성이 없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현재 DHA조사단이 현지조사중이다.그 결과가 나오면 신뢰성 문제가 다시 제기될 수도 있다.남북간 직접 대화를 통해 북한의 성실성 여부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예정되어 있어 매우 주목된다.오는 27일 북경에서 열릴 예정인 제3차 남북당국자회담이 그것이다. ○국민적 합의 형성 북이 도와야 이 회담과 관련하여 나웅배부총리는 『쌀 추가지원은 국민적합의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며 『국민적합의형성에 북에서 도움을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바 있다.이는 북한의 자세변화를 촉구하는 메시지다.우성호송환,안승운 목사귀환,김용순 발언의 해명,각종 대남비방자제등 북한이 우리 국민감정을 누그러뜨릴 카드는 얼마든지 있다.북한의 성실한 자세를 다시한번 촉구한다. 우리 정부는 북한의 태도변화를 주시하면서 보다 체계적인 전략과 전술을 구사할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특히 과거 대화과정에서 미흡했던 부분을 놓고 적극적 대안을 마련해 줄 것을 당부한다.
  • “저개발국여성 교육 지원”/북경 세계여성대회 기조연설/손명순 여사

    ◎「건전한 가정운동」 제의 【북경=이석우·손정숙 특파원】 한국대표단 명예수석대표로 세계여성대회에 참석한 김영삼 대통령부인 손명순 여사는 5일 세계여성대회 이틀째 본회의에서 한국정부의 여성지위 향상및 국제적 연대를 위한 노력과 정책방향 등에 대해 기조연설을 했다. 이날 기조연설을 통해 손명예대표는 『한국은 여성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협력의 중요성을 인식,저개발국 여성의 교육과 인력훈련을 위한 지원에 특별한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밝혔다. 손명예대표는 또 『아시아 지역 등 전세계 여성의 지역간,국제간 교류 활동을 위한 「여성을 위한 공동포럼」(「여성공동의 장」)을 설립할 계획』이라고 밝히면서 『여성의 눈으로 세계를 볼 때 새로운 발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앞서 손명예대표는 『지금도 지역간·민족간 분쟁과 전쟁,인권침해,여성에 대한 억압과 차별 등이 지속되고 있다』고 전제하고 『21세기를 앞두고 건전한 가정,건강한 사회,푸른 사회를 지키는 운동을 전개하자』고 제의했다. 이날 본회의에서는 힐러리 클린턴 미대통령부인,S 아그렐리 이탈리아 외무장관 등이 기조연설을 했다.
  • 해외지역 평통 자문회의 개막/58국 1천명 참가

    ◎북 인권 개선·남북대화 촉구 제7기 해외지역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가 이홍구 국무총리를 비롯한 관계장관과 전세계 58개국 해외자문위원 1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4일 서울 쉐라톤 워커힐 호텔에서 개최됐다. 이틀간 열리는 이 회의는 ▲한반도 통일문제 대한 기본인식 ▲북한의 개혁·개방노력 촉구 ▲통일 및 대북정책 추진방향 ▲통일을 위한 해외위원 기여방안등을 집중 토의한다. 해외자문위원들은 이날 이총리와 김진현 세계화추진위원장,홍재형 부총리겸 재경원 장관,송영대 통일원차관,이시영 외무차관등 관계장차관으로부터 정부의 세계화추진 및 경제·외교정책 성과와 추진방향 등 국정전반에 대한 보고를 듣고 향후 활동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이총리는 이날 축사를 통해 『통일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남북간 화해와 협력을 실현하고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기 위한 노력을 인내심을 갖고 기울여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자문위원들은 이번 회의에서 북한에 대해 ▲북한동포의 인권개선 노력 ▲남북한기본합의서 및 한반도비핵화 공동선언 이행 및준수 ▲남북대화와 교류 접촉 및 이산가족의 생사확인 ▲핵투명성 보장 등을 촉구할 예정이다.
  • 차이석 선생/독립단체 임정중심 결집 주역(이달의 독립운동가)

    ◎총독 암살기도 사건에 연루돼 변고/상해 건너가 독립신문 기자로 활약 국가보훈처가 9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한 동암 차이석(1881년7월 26일∼1945년 9월9일)선생은 임정요인으로 일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한 애국자다. 20대중반 도산 안창호 선생이 설립한 대성학교를 졸업한 선생은 이 학교 교사로 민족교육을 실시하는 동시에 비밀결사 신민회의 평양지회 평의원으로 활약하면서 애국정신을 키워나갔다. 신민회는 당시 교육기관의 설립과 만주 독립군기지개척등 국권회복을 위한 여러가지 방안을 모색하고 있었다.그 결과 1911년쯤에는 이시영 등 일부 인사들이 만주 서간도에 독립군기지를 개척하는데 성공했다. ○비밀결사 신민회 가입 선생은 안창호선생의 뜻에 따라 교육운동에 헌신하던중 일제가 독립운동가를 탄압하기 위해 조작한 이른바 데라우치(사내)총독 암살기도사건에 연루돼 3년여동안 옥고를 치렀다. 그이후 1919년 평양에서 3·1운동에 참가했다가 보다 적극적인 항일투쟁을 위해 중국 상해로 건너갔다. 상해에 도착한 선생은 임정기관지로주3회 발행되던 「독립신문」기자로 일했다. 1921년 이 신문사의 편집국장으로 임명된 선생은 박은식등과 함께 임정을 구심점으로 삼아 독립운동을 펼쳐야 한다고 강조,애국세력의 결집에 힘을 쏟았다. 임정은 수립초기 국·내외 동포의 지원과 만주지역 독립군 단체들과의 긴밀한 연계등으로 대일항전의 구심체역할을 수행했지만 1920년 외교노선의 실패등에 따른 책임추궁문제에 휘말려 지도체제가 심하게 동요를 겪던 중이었다. 1921년 임정존립의 재검토를 요구하는 국민대표회의의 소집요구가 거세지자 선생은 이동령·김구·이시영·조소앙·이동휘 등 임정 주요인사들과 함께 독립운동계의 대동단결을 역설,큰 반향을 이끌어냈다. 그는 지면을 통해 『임정의 내일은 곧 군주제의 청산이며 민주화의 새출발을 기약하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일사불란하게 전진하고 대동단결하자』고 호소했다. 선생은 특히 「임정무용론」이 대두되던 1922년 임정에 가입,임정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선생은 임정 의정원의원을 지내면서 안창호선생이 이끄는 흥사단 이사로 근무하는등 청년교육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임정은 1930년초 오랜 혼란을 극복,조소앙의 삼균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한국독립당을 기초정당으로 창당,독립운동수행을 위한 체제정비에 성공했다. 선생은 이에 따라 한독당기관지 「상해한문」의 편집인겸 인쇄인으로 임명됐으며 1930년 임정 의정원 부의장으로 선출됐다. ○의정원 국무위원 선임 임정은 이후 1932년 이봉창·윤봉길 의사의 항일투쟁에 이어 1934년 강병학 의사의 홍구공원 폭탄투척사건등을 일으켜 한국인의 독립염원을 세계에 떨쳤다. 그러나 임정은 이 사건의 여파로 14년동안 머물렀던 상해 프랑스조계를 떠나 항주등으로 이동하게 됐다. 1932년 항주 의정원회의에서 선생은 김구·신익희·이동령·조성환등과 함께 국무위원에 선임돼 임정을 이끌었다. 그러나 임정의 시련은 이어졌으며 이때마다 선생은 헌신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1935년 조선민족혁명당이 조직돼 임정요인중 일부가 임정을 떠나 임정와해의 위기가 닥치자 선생은 광동,항주등에 흩어져 있는 독립운동가를 찾아다니며 임정의 임무와 의의를 강조,임정의 명맥을 이어나갔다. 선생을 포함한 임정요인의 노력에 힘입어 임정은 전열을 정비하고 주석 이동령을 비롯,김구와 선생등 국무위원을 선출했다. 이들은 또 민족혁명당의 창립으로 한국독립당이 없어짐에 따라 다시 여당으로 한국국민당을 설립했다. 한국국민당은 창립선언문에서 「국가주권의 완전한 광복으로 민주공화국을 건설한다」고 밝혔다. 이 당은 일제 군사정보수집활동과 청년대원의 국내잠입 및 일제시설파괴,일제 요인제거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해방직후 중경서 별세 임정은 중국내 여러 지역을 거쳐 1935년 중경에 자리를 잡고 직할부대로 한국광복군을 창설,한국독립운동의 최고 통수기관으로 위치를 확보했으며 이 과정에서 선생은 임정을 한시도 떠나지 않고 굳건히 자리를 지켰다. 선생은 중경 임정에서 국무위원과 중앙감찰위원장등을 맡아 대일항전을 지원하다 해방을 맞은 1945년9월9일 임정청사에서 눈을 감았다. 선생의 유해는 이동령의 유해와 함께 국내로 봉환돼 서울 효창원에 안장됐다.정부는 선생의 공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 “수출품 생산 목표 달성” 독려(북녘 뉴스라인)

    【내외】 북한은 최근 무역제일주의방침에 따른 수출계획이 총체적 경제난으로 차질을 빚게 되자 수출품생산의 「정상화」를 강력히 촉구하고 나섰다. 북한은 정부기관지 민주조선 최근호를 통해 『오늘 수출계획을 어김없이 수행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관련분야 종사자들에 대해 『수출계획 수행이 갖는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자기 부문,자기단위에서 맡은 수출품 생산계획을 무조건 지표별로 어김없이 수행할 것』을 요구했다. ◎한총련 청년 상공인회 곧 결성 【◎】 조총련이 20·30대 동포청년상공인을 망라하는 새로운 산하단체인 「재일본조선 청년상공회」(약칭 청년상공회)를 결성할 것으로 알려졌다. 조총련기관지 조선신보 최근호에 따르면 조총련은 재일동포의 세대교체로 인해 3·4세대 동포상공인이 증가하고 있어 이를 조직화할 필요성이 제기됨에 따라 오는 9월6일 「재일본조선청년상공회」를 결성키로 하고 지난달 3일 도쿄에서 결성준비위원회를 발족했다. ◎피폭자 1차조사… 273명 확인 【내외】 북한은 일본과의 전후보상 문제를 겨냥해 올들어 원폭피해자로 구성된 단체를 새로 결성하고 북한내 거주 피폭자들의 현황파악에 나서는 등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사실은 재일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 최근호가 지난달 초 피폭 50주를 맞아 히로시마에서 열린 「원수폭금지 세계대회」에 참석한 북한 대표단과의 인터뷰 내용을 보도함으로써 전해졌다. 이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 2월2일 「반핵과 평화를 위한 조선피폭자협회」를 결성했으며 피폭자에 대한 1차 조사에 나서 모두 2백73명의 피해자가 있음을 확인했다.
  • 북한의 수재 심상치않다(사설)

    북한의 수재가 심각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북한은 1백50억달러의 재산피해에 5백20여만명의 수재민이 발생했다면서 유엔에 긴급원조를 요청했다.중요 곡창지대의 피해가 크다고 한다.그렇지 않아도 심각한 식량난을 겪고 있는 북한에겐 설상가상의 타격이 아닐 수 없다. 북한당국은 유엔인도국(DHA)에 수재구호를,보건기구엔 의료진파견을,그리고 국제아동구호기금엔 식량지원을 각각 긴급요청했으며 유엔조사단이 북한에 파견되었다.자세한 실상은 조사결과 드러나겠지만 북한이 피해를 공개하면서 유엔에 체면불구의 원조를 요청하고 나선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그만큼 사태가 심각하다는 증거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유엔의 구호와 지원이 가능한 한 신속히 이루어져 북한동포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빨리 덜어주게 되기를 바란다.그러나 유엔의 지원에는 한계가 있다.우리도 가능한 한 구호해야겠지만 같이 수재를 당한 처지다.게다가 쌀제공이 준 상처로 적극적인 요청도 없는 북한을 자청해서 지원하겠다고 나설 입장도 아니다. 유엔이나 우리를 비롯한 국제적 지원이 이루어진다 해도 그것은 일시적 미봉책이지 근본적 해결책은 될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북한의 이번 수재는 천재인 동시에 인재적 측면도 강하다.만성적 식량난과 함께 이번 수재의 심각한 피해는 치산치수 등 사회간접투자를 무시해온 폐쇄적 북한 사회주의체제의 구조적 모순에도 큰 책임이 있다.금년은 어떻게 넘긴다 해도 내년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식량부족 등 북한이 안고 있는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은 체제변화 말고 다른 데서 찾을 수는 없다.남북화해와 공존속의 중국식 개방·개혁만이 북한의 살길이다.우리는 천재지변이 인간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고 있다.식량난과 수재는 북한이 고립해서는 살 수 없음을 자각케 하고 외부세계의 도움을 요청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 하늘의 명령이라 할 수 있다.우리는 그것이 북한의 진로 및 한반도정세에 미칠 영향을 예의주시하며 대비해나가야 할 것이다.
  • 북­수해로 식량난 가중 “최악의 위기”/대유엔 긴급 구호 요청배경

    ◎최대곡창 안주·박천평야 홍수피해 막심/「구걸외교」 불가피한 절박한 속사정 입증 최근 한반도를 휩쓸고간 물난리가 그렇잖아도 식량 등 기초 생필품난을 겪고 있는 북한을 더욱더 막다른 벼랑 끝으로 몰아가고 있는 느낌이다. 북한이 올 수해와 관련해 유엔인도적지원국(DHA)에 긴급 구호요청을 한 사실이 이를 적나라하게 말해준다.세계보건기구(WHO)에 의료진 파견을 긴급요청했다는 첩보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이해된다. 사실 기상청의 입수 자료에 따르면 북한지역에는 이달 들어 십수년만에 가장 많은 비가 쏟아진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신의주를 비롯한 압록강유역의 시·군과 대동강유역의 일부 지역의 경우 며칠 사이에 8백㎜ 이상의 집중호우가 쏟아졌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신의주 등 압록강 유역에서만도 2천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것으로 북한방송들도 보도한 바 있다.하지만 불리한 정보를 철저히 차단하는 북한체제의 속성을 감안한다면 실제 피해 상황은 그 이상이라는 추론이다.북한을 드나드는 중국 동포들은 이재민 수가 수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특히 이번 홍수로 북한의 최대 곡창지역의 하나인 안주·박천평야가 큰 피해를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90년대 들어 냉해와 가뭄·수해를 번갈아 겪으며 식량난에 허덕여온 북한당국으로선 엎친데 덮친 격인 셈이다. 이같은 절박한 속사정은 북한당국이 「주체」라는 그간의 구호와는 동떨어진 「구걸외교」를 할 수 밖에 없는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은 이번 수해 이전에도 국제아동기금(UNICEF)에 결식아동 지원명목으로 수만달러 상당의 곡물지원을 요청했다는 소식이다.그러나 UNICEF측이 인도적 차원에서 일부지원한 식량을 북한당국이 「오용」한 사실이 밝혀지자 추가지원을 끊었다는 후문이다. 따라서 북한이 보낸 SOS에 유엔인도적지원국 등 국제기구들이 어느정도 화답할지 여부는 일차적으로 수해상황에 대한 북한당국의 성실한 사실 보고 여하에 달려 있다는 지적이다.
  • 조총련 성묘단 입국/오늘까지 3백23명/사할린동포 78명도 도착

    재일 조총련계 동포와 일제당시 사할린에 강제징용당한 재사할린동포 등 재외동포 모국방문단이 올 추석을 고국에서 맞기 위해 29일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재일 조총련계 교포 모국방문단은 29일 상오 11시30분 교토발 대한항공 721편으로 36명이 입국한 것을 시작으로 30일까지 이틀동안 모두 3백23명이 고국을 찾는다. 이번 해외동포의 모국방문은 해외동포모국방문후원회(회장 강영훈)가 해외동포 모국방문사업 20주년을 기념해 초청한 것으로 3박4일간의 일정으로 경주 독립기념관등 유적지답사와 산업시설등을 돌아본뒤 각자의 고향에서 추석을 보내고 돌아갈 예정이다. 해외동포모국후원회는 지난 75년 9월 순수한 민족애와 인도주의정신및 민족대단결과 남북한간 제반교류차원에서 해외동포모국방문을 주선한 이래 지금까지 재일동포 5만5천5백83명을 비롯해 재미교포 3천5백38명 중국교포 2천9백65명 서독교포 1백명 캐나다동포 7백39명 스웨덴동포 1백21명 러시아동포 4백36명 등 33개국 6만3천7백55명의 해외동포가 고국을 찾았다. 이밖에도 일제강점 당시 징용으로 끌려간 사할린 교포 78명도 대한적십자사(회장 강영훈)의 초청으로 30일 입국해 고국에서 추석을 맞게 된다.
  • “고희 넘어 찾은 조국 가슴벅차”/55년만에 귀국한 정돈기씨

    ◎조총련과 40년 관계 끊고 고향위해 헌신 『나이가 들수록 고국이 그리워지는 것은 너나 할것없이 같은 마음일 겁니다.20대의 창창한 나이에 고향을 떠나 일흔이 넘어 다시 고국을 찾고 보니 실로 감개무량합니다』 해외동포모국방문회(회장 강영훈)가 해외동포 모국방문사업 20주년을 기념해 마련한 「재일동포추석모국방문단」으로 55년만인 29일 낮 12시 김포공항을 통해 고국땅을 밟은 정돈기(75) 이일순(62)씨 부부는 비행기 트랩을 내리면서 설레는 가슴을 감추지 않았다. 『지난날을 생각하면 보릿고개가 먼저 떠오릅니다.그런데 막상 조국땅을 밟고 보니 말로만 듣고 TV에서만 보던 조국의 모습에 가슴 벅찰 뿐입니다.한편으로는 지난 세월이 다소 후회스럽기도 하군요』 경북 구미시 원평동이 고향인 정씨는 1940년 우연히 돈벌이를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 1950년 조총련에 가입한뒤 일본 니가타현 조선인상공연합회 이사장(75년)·회장(87년)등을 역임하며 조총련에 깊이 관여해 왔으나 최근들어 재일동포 민단으로 전향할 결심을 하고 입국했다. 『조총련에 가입한 것은 순전히 사업상 필요했기 때문이었습니다.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조총련에 대한 회의가 들뿐더러 이 길이 제가 갈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습니다』 고향을 찾아 추석성묘를 지낸뒤 하루 빨리 일본으로 건너가 조총련과 손을 끊고 민단에 들어가 마지막 여생을 조국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게 정씨의 소박한 꿈이다. 『물론 조총련의 협박이나 불이익이 있을 수도 있겠죠.사업을 하는 네 아들이 있지만 개의치 않습니다.나이든 제가 무슨 미련이 있겠습니까』 『일개 구미면이 구미시로 바뀌었으니 세월의 무상함을 느낀다』는 정씨는 『해외동포모국방문후원회가 마련한 행사에 참석한 뒤 서울에 사는 누님과 구미시에 살고 있을 남동생 정민기(70)를 만나 하지 못했던 그동안의 얘기를 마음껏 나누고 조카들과 함께 놀러도 갈 작정』이라고 말했다.
  • 「있는지 없는지…」 저자 강성재씨(인터뷰)

    ◎“적대적 대일감정 버려야”/“한·일 상호이해엔 전후세대 역할 중요” 일본에서 개인사업을 하며 「한국 알리기」에 힘쏟고 있는 30대가 일본 비평서 「일본이 있는지 없는지 가봐야 안다」를 냈다(삼진기획 펴냄).지은이는 제목에서 보듯,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일본은 없다」와 「일본은 있다」로 대표되는 양극적인 시각을 모두 거부하고 있다. 책을 쓴 강성재(35·일본 히로시마시 거주)씨는 한마디로 『한국이나 일본이나 고유 문화를 갖고 사는 모습은 똑같다.이제는 적대적인 감정을 버리고 서로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씨는 일본에서 「한일문화교류센터」「한국 친구를 사귀는 모임」등을 설립,일본인들에게 한국을 알리기에 분주한 민간 외교관.그는 또 부산시가 임명한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일본 홍보위원장」이기도 하다.마치 성공한 재일동포의 표본처럼 보이지만,그가 지난 89년 유학차 처음 일본에 도착했을 때는 남들처럼 「한국인의 설움」을 톡톡히 겪었다. 『일본인들의 한국인 차별은 상상보다 더했습니다.그러나 더 참기 힘든 것은 젊은 세대가 한국을 잘 모를 뿐더러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학창생활 동안 만난 일본 친구 가운데는 「한국이 어디 붙어 있는 나란지」「한국인은 주로 뭘 먹고 사는지」를 묻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고 한다.그는 일본인들에게 한국의 참모습을 알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 히로시마 수도대학교 졸업후에도 그곳에 남았다. 강씨는 『일제강점기를 겪지 않은 양국의 젊은이들이야말로 앞으로 진정한 우호관계를 이룩할 장본인』이라고 강조하고,따라서 자신의 책을 우리 청년들이 관심있게 읽어주기를 바랐다.책은 ▲일본에서의 체험기 ▲한국인의 긍지 ▲한일 문화교류의 바람직한 방향 등 크게 세 갈래로 구성했다. 『한일관계가 정부 차원에서 개선되기는 매우 어렵기 때문에 민간교류가 활발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는 일본인 아내와 가정을 이뤄 히로시마에서 한식당을 경영하고 있으며,각종 단체에서의 활동말고도 신문·잡지 기고,강연활동을 통해 일본사회에 한국을 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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