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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미리와 한일(외언내언)

    『내 작품이 서울에서 공연돼 기쁘지만 솔직히 기대와 불안이 엇갈린다.왜냐하면 내 기억속의 한국어는 부모가 싸울때 내지르던 괴성들이니까』 재일교포 작가 유미리씨가 지난 94년 한국을 찾았을때 한 말이다.도박에 빠진 아버지,생계를 위해 밤이면 화장을 하고 카바레에 나가는 어머니 사이에서 실어증에 걸리고 가족이 해체되는 경험과 여러차례의 자살 기도 끝에 연극과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입지를 찾은 그는 일본의 대표적 문학상 아쿠타가와상을 받은후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없음」을 중시한다.나에게 많은 것이 바로 「없음」이다.한국말을 못하므로 한국에 살기 힘들다.일본에서도 위화감을 느낀다.한쪽에 정주기 어려운 형편이다.…풍요로운 일본에선 뭐든 살 수 있다.…그렇기 때문에 더욱 「없음」이 중요하다.없다는 것이 부정적인 의미는 아니다.「없는 것이 있다」는 뜻이다.「없음」을 유지하기 위해 한국국적을 지킬 것이다』 그는 또 한 인터뷰에서 『재일 한국인이라는 것을 특별히 의식한 적은 없었다.일본인도 한국인도 아닌 그런 생각,상황을 중요하게 생각해 나가겠다』고 말한 적도 있다. 이런 그에게 어설픈 민족주의는 발붙일 틈이 없어 보인다.비록 할아버지의 고향 밀양을 찾았을때 『전에 한번 온듯한 느낌을 받았다.자석처럼 왠지 끌리는 느낌을 받았다』고 밝히고는 있지만.「가족」을 일관된 주제로 삼은 그의 작품이나 발언에서는 어떤 정치적 지향도 찾을수 없다.자신의 조건을 있는 그대로 감싸 안는 치열한 작가정신앞에 동포라는 감정을 앞세우는 것이 오히려 부끄럽게 느껴질 정도다. 그의 아쿠타가와상 수상기념 사인회가 일본 우익단체의 협박으로 무산됐다 한다.우익단체는 그가 「조센진으로 일본인을 욕보이는 발언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폭탄과 최루가스 테러 협박을 했다는 것이다.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유미리씨의 지적처럼 그 우익인사들의 지적 수준과 동기가 의심스럽다.민족차별을 넘어선 표현의 자유 침해에 당당히 맞서는 유씨에게 격려의 마음을 전한다.
  • 조계종/3백여 스님 ‘자비의 탁발행사’

    ◎26일 하오 1시∼5시 탑골공원 등 3곳서/「한민족 한생명 하나됨을 위하여」 주제/종단통합후 35년만에 사회복지 차원 부활 불교 비구 스님들이 불우 이웃과 굶주리는 북한동포들을 돕기위한 대규모 거리 탁발에 나선다. 불교 조계종은 송월주 총무원장 등 스님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민족 한생명 하나됨을 위하여」라는 주제로 26일 하오1시부터 5시까지 서울 종로 탑골공원과 압구정동 갤러리아 백화점앞,명동성당앞 등 서울 3개지역에서 동시에 자비의 탁발행사를 거행한다. 이번 탁발은 지난 62년 통합종단의 출범이후 처음 있는 일로 그간 조계종은 수행자가 아닌 사람들이 승복을 입고 목탁을 두드리며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구걸하는 이른바 걸승들의 탁발행위가 성행하는등 부작용이 많아 종단차원에서 소속 승려들의 탁발 행위를 법적으로 금지시켰다.이로써 조계종 승려들의 탁발행위는 35년만에 부활됐으며 앞으로는 사회복지 차원에서 정례화할 계획이다. 서울을 시작으로 하는 이번 탁발은 수원 용주사·공주 마곡사·보은 법주사·김천 직지사·합천 해인사·김제 금산사·구례 화엄사 등 전국 25개 본사에서 26일부터 3월4일 사이 전국 주요도시에서도 거행되며 모금은 총무원에서 일괄적으로 관리한다. 부처님 시대부터 수행과 포교의 방법으로 행해져 현재도 타일랜드·스리랑카·미얀마·라오스 등 남방불교에서 시행되고 있는 탁발은 승려의 밥그릇인 발우(발우)를 들고 집집마다 돌며 음식을 구하는 행위로 간소한 생활을 해야 한다는 수행정신을 담고있다.승려들에게는 청정과 무소유의 정신으로 살아가는 방편이며 중생들에게는 복의 종자를 심어 불교와 인연을 맺어주는 불교의식이다. 총무원이 주최하고 불교방송,불교 텔레비전,불교신문이 후원하는 이번 행사는 식량난으로 고통을 겪고있는 북한동포들과 사기 피해로 어려움을 당하는 중국동포,또 국내의 200만에 가까운 절대빈곤층 이웃들과 고통을 나누기 위해 「이웃과 민족을 위한 자비행」으로 거행된다. 이번 탁발행사는 오는 5월31일 까지 시행되는 불교계의 「한민족 공동체를 위한 성금모금사업」의 하나.조계종 기획실장 성광 스님은 『물질문명의 풍요속에서 매말라가는 사회에 부처님의 자비정신을 확산시키기 위해 이같은 행사를 마련하게 됐다』며 『이번 행사를 통해 승가에는 청정한 수행풍토가 확산되고 나라에는 화해와 민족공동체 실현에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 유미리씨 일 우익 협박에 분노/아쿠타가와상 수상자

    ◎테러위협 사인회 중단… “끝까지 싸울터”/“민족차별 넘어 표현의 자유 강탈행위” 작품 사인회가 우익의 협박에 의해 중단된 올해 아쿠타가와상 수상작가 재일동포 유미리(28·여)씨가 21일 도쿄에서 사인회 주최자인 고단샤(강담사) 가도가와쇼텡(각천서점) 등과 함께 기자회견을 갖고 우익의 협박에 단호히 싸워나가겠다고 밝혔다. 유미리씨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사인회가 협박에 의해 중단된다면 다음에는 작품을 회수하라고 협박할 것』이라면서 『협박은 민족의 차별을 넘어 언론 표현의 자유를 빼앗는 행위다.비열한 행위에 단호히 싸워 나가겠다』고 우익의 협박에 굴하지 않고 싸워 나가겠다는 의지를 강력히 표명했다. 유씨는 도쿄시내 유명 서점에서 20일 사인회를 가질 예정이었으나 우익들이 「사인회를 중지하라」,「조센진으로 일본인을 욕보이는 발언을 하고 있다」,「폭발물을 설치하겠다」는 등 협박 전화가 잇달아 사인회가 중단되고 말았다.
  • 김구와 황장엽(김호준 정치평론)

    1948년4월19일 김구는 역사적인 남북협상의 장도에 올랐다. 이날 경교장에는 이른 아침부터 많은 군중들이 모여 그의 북행길을 막았다. 『못가십니다. 가시면 공산당 놈들에게 붙들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합니다. 생명이 위험합니다』 군중들은 함성을 지르며 발을 굴렀다. 김구의 신변안전이 염려돼 평양행 중지를 호소하는 것이었다. 그가 탈 자동차가 떠나지 못하도록 땅에 드러누운 청년도 있었다. 『여러분! 38선이 굳어지면 민족의 앞날이 불행합니다. 내 나이 일흔셋이니 살만큼 살았소. 민족을 위한 일이라면 주저할 것이 없소. 어서 길을 열어 민족의 운명을 타개할 수 있도록 해주시오』 경교장 베란다에서 군중 해산을 호소하는 김구의 눈은 충혈돼 있었다. 48년초 한반도는 미소의 치열한 각축속에 남북분단의 고착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김구의 북행은 남북에 각기 단독정부가 들어서는 것을 막고 남북총선을 통해 통일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정치협상이 목적이었다. 그러나 협상상대인 김일성 김두봉 등 북의 공산주의자들도 남의 이승만과 마찬가지로이미 단독정부 구성을 추진중이어서 김구의 북행은 실패로 끝나고 16일만에 서울로 귀환한다. 김구는 북행 두달전에 발표한 저 유명한 「삼천만 동포에게 읍고함」이라는 장문의 성명에서 피를 토하듯 통일조국의 건설을 위해 신명을 바칠 각오를 밝힌다. 『나는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가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의 구차한 안일을 취하여 단독정부를 세우는 데는 협력하지 않겠다』는 그의 절규 속에는 확실히 한국민족주의의 고귀한 이상이 담겨 있다. ○통일정부 수립위해 북행 그로부터 꼭 29년후 북한 주체사상의 설계사 황장엽이 남행을 결행했다. 그는 자신의 망명동기에 대해 『우리 민족을 불행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한 문제를 …북을 떠나 남의 인사들과 협의해 보기로 결심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올해 74세의 황장엽은 자기 발로 걸어 들어온 북경주재 한국대사관에서 쓴 자술서에서 『나의 여생은 얼마 남지 않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남과 북의 화해와 통일에 도움을 주고 싶다』고 술회했다. 김구의 북행과 황장엽의 남행은 동기면에서많은 유사성이 발견된다. 그 유사성은 「민족」 「통일」 「여생」의 세 단어로 압축할 수 있을 것 같다. 황장엽의 경우 민족진영의 거두 김구처럼 대표성도 없고 그를 기다리는 협상테이블도 없다. 그럼에도 자신의 망명동기를 거창하게 『민족문제 협의』라고 밝힌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의 망명은 현실도피라기 보다 민족문제에 대한 도전으로 보아야 한다. 우리는 그의 망명에서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평범한 진리에 다시 눈을 뜨고 북한동포의 아픔을 우리 자신의 아픔으로 여기는 각성을 가져야 한다. 북한주민의 굶주림에는 관심이 없이 시위만 벌이는 남한사회에 대해 그는 『이해하기 어렵다』고 힐난했다. 그의 이 원망(?)은 따지고 보면 민족주의와 동의어인 동포애의 갈구다. 황장엽을 김구에 비교하는 것에 불쾌감을 나타낼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공산주의에 붙어 호의호식하던 어용학자를 감히 민족해방과 조국독립에 평생을 바친 큰 지도자와 같은 반열에 올려놓다니 가당치 않은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의 망명이 김구가 생전에 그토록 목말라했던 민족주의, 남북의 대결정책에 짓눌려서 꺼져만가는 그 민족주의의 불꽃을 다시 활활 타오르게 하는 전기가 될 수 있다면 저 세상의 김구도 싫지만은 않을 것이다. ○민족주의 불꽃 다시 지피자 김일성·김정일체제의 사상적 기저를 제공해온 북한 제1의 이론가 황장엽은 자신의 망명이 『고민하고 또 고민한 끝』에 결행된 것이라고 토로했다. 무엇이 그를 그토록 고민하게 만들었으며 그가 협의코자 하는 민족문제의 타개책은 무엇인지 우리는 진지하게 들어보아야 할 것이다. 황장엽은 한반도에 두개의 주권국가가 존재하는 남북간의 국가연합이 북한이 갖고 있는 통일정책의 기본이며 통일의 최종단계라고 밝힌바 있다. 그러나 이번 망명전에 작성했다는 이른바 「귀순결심 서신」에서는 남한을 주체로 한 통일론을 강력히 시사했다. 우리는 그의 통일론이 왜 바뀌었는지를 규명해야 할 것이다. 또 진정한 통일의 길이 무엇인지에 관해 허심탄회하게 토론해야 한다. 그의 망명을 우발적 사건으로 넘겨서는 안된다. 북을 자극하거나 정치적 목적에이용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통일문제를 민족적 토대에서 새롭게 접근하고 해결하는 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김구는 『마음속의 38선이 무너져야 땅위의 38선도 철폐될 수 있다』고 설파했다. 또 공산주의자도 껍질을 벗기면 같은 피를 가진 한 민족임을 일깨우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황장엽의 망명이 김구의 바다같은 민족주의를 오늘에 다시 살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논설위원실장〉
  • 귀순 1년간 24시간 보호/탈북자 신변보호 실태

    ◎최근 망명 급증… 인력·예산 마련 시급/사생활 침해시비 관리 어려움 한몫 이한영씨 피격사건은 당국의 탈북자에 대한 관리에 문제가 있음을 드러내준 사건이다.물론 이씨가 귀순한 지 15년이 넘었고 직업을 가지고 정착했다는 점도 있지만,피격당시 이씨는 안기부의 관리도,경찰의 관찰범위에도 벗어나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당국에서도 탈북자의 신변보호가 중요함을 인정하면서도 인력부족이나 사생활침해라는 문제 등으로 애로를 토로하기도 한다. 현재 탈북자는 「귀순동포보호법」(7월13일이후 「북한이탈주민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으로 대체됨)과 「정보사범 등의 처리업무조정규정」에 따라 당국으로부터 신변보호 및 정착지원을 받고 있다. 신변보호는 크게 귀순→조사→사회적응교육 등 탈북수용단계와 주거지정착이후에 적용되는 사후관리로 구분된다.주거지에 정착하기 전까지 걸리는 기간은 보통 6개월∼1년정도로 이 기간중에는 당국의 24시간 관리를 받기 때문에 별문제가 없다. 그러나 사후관리는 탈북자의 출신과 신분에 따라 다른 기준이 적용된다.KAL기 폭파범인 김현희씨와 특수목적 남파자 등 극히 일부의 경우는 아직까지도 당국이 관리하는 특별한 케이스다.민간인의 경우에는 경찰청이,군인의 경우에는 군기무사에서 관장하고 있다.이 가운데 특별관리는 주거지 이전이후 2년동안 담당자가 배치돼 신변보호 및 동향을 감시한다.그 이후에는 일반관리로 전환돼 분기별 동향파악정도로 그친다.관계당국은 신변보호를 위해 별도로 교육을 하거나 수시로 거주지를 이전시켜줌으로써 안전확보에 신경을 쓰기도 한다. 따라서 한국에 들어온 이후 3년동안은 그런대로 신변보호를 받을 수 있으나 그이후에는 사실상 본인 스스로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실정이다.그러나 일반관리이후는 물론 특별관리기간에도 담당인력 및 예산부족·인권문제시비 등으로 인해 많은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다.물론 이씨와 같은 특별인물에 대해서는 특별관리기간을 연장하거나 주거지 이전 전에 성형수술이나 가명사용 등의 부수적인 보호조치가 뒤따르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그 수혜자는 많지 않다.경찰의 당국자는현재까지 탈북자 77명에 대해 동향파악 등 신변보호활동을 벌여왔다고 밝혔다.그러나 이씨는 관찰범위에서 벗어나 있었다. 오는 7월 「북한이탈주민보호법」이 발효된다 하더라도 이는 탈북자의 증가와 정착에 따른 관리체계의 효율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신변보호에 대한 조항이 강조된 것은 아니다.따라서 당국은 탈북자의 수용·정착과는 별개로 신변보호에 대한 종합적인 대책도 강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엉뚱한 사람들의 세상/문용린 서울대교수·교육심리학(시론)

    세상이 너무 부산스럽다.온 나라가 뒤숭숭하고,흔들리는 배위에서 멀미를 하듯이 어지럽고 짜증스러우며 화가 난다. 작년 연말 이래 연이어 벌어지는 해프닝들이 하나같이 모두 멀미를 부추겨 왔다.안기부법과 노동관련법개정의 절차상의 미숙함도 문제였지만,노와 사간에 당연히 있어야 할 국제규범성의 균형성을 심각하게 헤아리지 못한 여권의 단견과 이 법안의 의미를 제대로 읽지 않고,대권과 연계시켜서 여권 흠집내기의 기회로만 활용해온 야권의 욕심이 더 큰 문제였다. ○정치권 정치적 효과만 노려 안기부법과 노동법의 개정안이 절대선과 절대악의 대립인 것은 물론 아니다.이 두 법안은 시각에 따라 찬성과 반대의 논거를 각각 제나름대로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그래서 이 문제는 정치적 전략의 일환으로서 보다는 이 법안이 갖는 장단점과 예견되는 효과 및 부작용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와 판단을 토대로 열띤 토론과 대화가 있어야 했고,국회가 이런 토론과 대화를 국민들에게 보여주었어야 했다.대화와 토론을 통해서 국민들의 정확한 판단을 유도하고,범국민적 컨센서스를 형성하도록 국회가 여야간에 노력했어야 했다. 그러나 어디 그랬는가? 국민들의 판단과는 상관없이 찬성과 반대를 미리 당론으로 정해 놓고,한쪽은 통과쪽으로 밀어 붙였고,다른 한쪽은 무조건 반대로 밀어 붙이지 않았는가? 그래서 국회에서 여야는 토론 한 번 못했고,법안들은 통과된 것처럼 간주되었으며,이제 야당에서 그 통과가 변칙이라고 고함치고 있다. 두 개정법안이 가져올 실제적인 영향력에 국민들은 관심이 크지만,국회는 엉뚱하게 이 법안의 처리로 얻게될 정치적 효과에 더 큰 관심이 있어 보였고,또 그렇게 행동해 왔다.국민이 바라는 일에 보다는 엉뚱한 일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그곳에 많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두 개정법안을 둘러싼 논의가 2월의 임시국회로 넘어가 한달간의 여유가 생기자 그 새를 못참고 한보사태가 발생했다.국회내에서 국민이 바라는 일을 하지 못하고 엉뚱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증거가 더욱 확실히 드러난 것이다. 엉뚱한 사람들이 어디 그들만인가? 한보라는 기업을 에워싸고,엉뚱한사람들의 행진이 볼만했다.은행장들이 은행일은 하지 않고 엉뚱한 일에 몰두했고,기업을 해야할 사람들이 기업은 하지 않고 엉뚱하게 대출받아서,엉뚱한 일에 써 버리고 말았다.엉뚱한 일을 하는 사람이 많아지만,그 일 때문에 기회를 잃고 손해보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이른바 기회비용의 상실이 엄청나게 크다는 점이다. 엉뚱한 일의 극치는 정작 북경에서 벌어졌다.김정일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꽃구입으로 북경의 꽃시장이 동이 났다는 외신보도를 읽으면서,엉뚱한 사람이 북쪽에도 엄청나다는 생각이 든다. 황장엽 비서의 망명사건으로 남쪽의 우리는 지금 얼마나 긴장해 있는가? 김정일의 친척이었던 이한영씨의 피습사건으로 우리는 지금 남북긴장의 클라이막스를 얼마나 실감나게 느끼고 있는가? 북한 주민의 반 이상이 굶주림에 고통받는 상황에서,주체사상의 한계를 목도하게 되자 망명을 결심했다는 황장엽 비서의 비장감 어린 결행을 보는 우리에게 있어서,북경 꽃시장의 매진 이야기는 엉뚱한 일 중의 엉뚱한 일로 보인다. ○북한 김정일 생일잔치 법석 남과 북에서 엉뚱한 사람들의 행진이 이젠 그쳐야 한다.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엉뚱한 사람중의 하나라는 자각이 필요한데,그렇게 되기가 어렵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외국에서 보기엔 한국인 모두가 엉뚱한 사람들일지 모른다. 북쪽 주민을 동포라고 부르면서,그들 중의 반이상이 기아에 허덕이고 있는 줄 번연히 알면서도 사치성 소비재 수입에 열을 올리고 있는 남쪽 사람들을 어찌 엉뚱한 사람이라고 보지 않을까?
  • 귀순자 테러공포/언제 당할지 몰라 불안감에 떨어

    ◎“외출 겁난다” 신변보호 강화 요구 이한영씨 피격 이틀 뒤인 17일 서울 서초구 방배동 서울 남부보훈지청 3층에 있는 귀순북한동포후원회(회장 오제도 변호사) 사무실에 모인 귀순 북한동포들은 자신들에 대한 북한간첩의 테러 가능성을 불안해하며 당국의 보호조치 강화를 요구했다. 귀순 동포들은 특히 『이씨 피격은 당국의 보호조치 부재가 빚은 예고된 사건』이라고 지적하며 당국에 불만을 표시했다. 북한 정보기관에 근무하다 20년 전에 귀순했다는 김모씨(57)는 『현재 귀순자들에 대한 당국의 보호조치는 정보기관 안가에서 1년,거주지에서 2년을 포함해 3년에 불과하다』며 『귀순자 대부분이 북한 공작원으로부터 언제라도 테러를 당할수 있다는 불안감에 떨고 있다』고 밝혔다. 김씨는 『황장엽 비서가 남한내 고정간첩이 5만여명에 이른다고 밝혔듯 북한당국이 마음만 먹으면 귀순자 누구라도 테러할 수 있다』며 『집 밖에 나가기가 겁날 정도』라고 털어놓았다. 경찰청이 관리하는 귀순 북한동포들의 모임인 숭의동지회 오선석 회장(51)은 『집으로 전화를 걸어 「배반하고 잘 살 줄 아느냐」고 욕을 퍼붓는가 하면 심지어 죽인다고 협박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며 이씨 피격은 북한의 협박이 실행에 옮겨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30년전 귀순했다는 오회장은 그러나 『이 사건을 계기로 관계기관에서 보다 치밀한 귀순 동포 보호대책을 세우지 않겠느냐』며 당국의 보호조치 강화에 대한 기대를 나타냈다. 후원회 부회장 김용철씨(54)는 『귀순 북한동포 700여명 전원에게 연락을 취했으나 50여명 밖에 나오지 않았다』며 『제2,제3의 피해를 막기 위해 귀순자 보호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귀순 북한동포들은 이날 사회복지협의회 이웃돕기운동추진위원회에서 기증한 점퍼·면바지·티셔츠 등 의료 600여 점을 하나씩 가져가라는 통보를 받고 후원회 사무실에 모였다.
  • 한·미 과학협력센터 개원/워싱턴DC 근교 비에너시

    3만여명에 이르는 재미동포 과학기술자와 한국·미국 과학기술자들이 상호교류및 협력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미국에 마련됐다. 과학기술처는 미국 워싱턴 DC 근교인 버지니아 주 비에너시 겔로우즈로 1952번지에 「한·미 과학협력센터」청사를 마련하고 20일 현지에서 이부식 차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개소식을 갖는다. 한·미 과학협력센터는 지난 95년 김영삼 대통령이 미국 방문중 재미 한국 과학기술인 초청 간담회에서 설립을 약속했던 사항으로 과기처가 지난 2년간 50억원의 예산을 들여 대지 2천400평,건평 1천230평규모의 3층 건물을 매입,시설공사를 함으로써 이루어졌다.
  • 북의 전쟁모험 경계해야/황장엽 자술서에 담긴 메시지(사설)

    황장엽 비서의 망명이 우리 분단의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중대 「사건」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비단 북한 권력구조 안에서 그가 차지하고 있던 높은 지위 때문만은 아니다.북한내 사정이 그들의 핵심이념인 주체사상의 창시자가 등을 돌리지 않을 수 없는 모순과 혼돈의 지경에 이르렀다는 점이 더욱 충격적이 아닐 수 없다.이는 북한의 사회주의경제가 벼랑에 몰렸을 뿐 아니라 정신적 지주,이념체계마저 뿌리째 흔들리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황장엽 비서가 망명신청직후 한국대사관에서 작성한 자술서와 망명을 결심하는 과정에서 쓴 서신들은 철들어 50평생을 공산주의선교자로 살아온 한 원로가 오늘날 북한의 모순적 현실에서 느끼는 깊은 회의와 개인적 고뇌를 진솔하게 담고 있다.인생 황혼기에 지난날을 회고하며 자신으로선 순수한 이상을 좇아 정립한 주체사상이론이 한낱 김일성·김정일부자의 세습독재를 합리화시키는 도구로 전락하고 북한이 사회주의 아닌 김부자의 봉건국가가 돼버린 허망한 현실에 깊은 자괴심을 느낀 것 같다.민족 앞에 속죄하는 심정으로 모순투성이 존재가 돼버린 북한실상을 정확히 알려 북의 전쟁도발을 막고 평화적 통일을 가능케 하는데 여생을 바치겠다는 결의에서 망명을 결행했음을 읽게 된다. 그는 자신의 망명동기에 대해 『우리민족을 불행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한 문제를 남의 인사들과 협의하기 위해서』라고 밝히고 있다.공산주의자로서보다 민족주의자로서의 고뇌를 읽게 하는 대목이다. 황비서가 북에 대해 느끼는 갈등은 노동자·농민의 지상낙원을 이룩했다면서 국민을 굶어죽게 만들고 평화통일을 떠들면서 남쪽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며 전쟁준비에 여념이 없는 김정일등의 모순된 언행일 것이다.이런 북의 실정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한눈만 팔고 있는 남쪽 동포도 그를 답답하게 만드는 존재였다.북을 제대로 알고 적절한 대비책을 마련토록 충고해주지 않으면 또다시 동족상잔의 전쟁이 벌어질 것이라는 불행스러운 확신에서 가족과 안락한 삶을 버리고 망명을 결행했음을 그는 고백하고 있다. 우리는 황비서의 메시지를 차분하게 분석하여 통일정책·대북정책의 교훈을 추출해내고 그가 가지고 있을 정확한 정보를 통해 북한실정을 보다 정확히 파악하는 일에 주력해야 한다.북한 최고위급의 망명이라는 외형에 흥분,요란스러운 홍보용 사건으로 만들어서는 안된다.온갖 추측보도와 흥미위주의 내막 까발리기경쟁을 벌이는 언론의 상업주의도 자제되어야 한다. 그의 메시지 가운데 특히 소홀히 다뤄서는 안될 대목은 그의 망명이 북한이 바로 붕괴함을 예고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그는 『독재체제가 너무나 째이고 탄압이 너무나 무자비하다 보니』 농민폭동도 일어나지 못하며 경제가 파탄이 되어도 『민심이 일정한 이념을 가지고 통치의 부당성을 주장하고 나설 정도로 성숙치 못했다』고 지적한다.따라서 북이 경제에 이어 이념적 파산에 직면했지만 붕괴에 앞서 평소 『전쟁밖에 출로가 없다』고 믿어온 김정일 등이 최우선적으로 강화해온 무력으로 전쟁을 도발하는 이판사판의 선수를 칠 가능성이 크다는 경고다.이념적 파탄에 처한 북의 최후의 모험을 사전봉쇄,조만간 평화통일이 찾아올 수 있도록 차분하게 대책을 세우는 것이 황비서의 모든 것을 건 망명의 의미를 살리는 길이 될 것이다.그의 망명이 그의 소망대로 남과 북의 화해와 통일에 도움을 주는 역사적 사건이 되기를 기대한다.
  • 「2억+α」 최고대우 받는다/입국뒤 어떤대우 받나

    ◎망명동기 조사받은뒤 자본주의 교육 황장엽 북한 노동당 당비서는 한·중간 신병인도 협상이 잘돼 한국에 입국하게 되면 다른 귀순 망명자와는 달리 「특별대우」를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황비서는 일단 입국하면 다른 귀순자들과 마찬가지로 「정보사범 등의 처리업무조정규정」의 적용을 받아 신병이 처리되며 현행 「귀순동포보호법」을 근거로 법적인 보호와 지원을 받게 된다. 도착 즉시 관계기관의 합동신문소로 이동,신체검사 등 건강체크를 받은 뒤 합동신문조로부터 망명동기,북한에서의 활동내역 등에 대해 본격적인 신문과 조사를 받는다.조사가 끝나면 한국사회 적응을 위한 기본소양교육을 받게되며 이후 주거지로 옮기게 된다. 이때 호적을 얻고 정착금 및 보로금지원,주택지원 등을 받게 된다. 정착금은 기본금과 가산금으로 구분돼 지급된다.기본금은 3개등급으로 나뉘어 월최저임금(현 28만원)의 20∼40배가 지급되며,연령·건강상태·근로능력 등을 고려해 월 최저임금의 60배까지 주어진다. 전례로 볼 때 황비서는 최소한 2억원이상의 지원금을 받을 것으로 추산되나 그에게는 당국의 정책적 배려가 있을 것으로 보여 최고의 대우를 받게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 “북 정권 토대붕괴 첫신호”/「황장엽 망명」시민·북 전문가 반응

    ◎주체사상 허구성 표출… 급속와해 대비를 북한 노동당 비서 황장엽의 망명 사실이 알려진 12일 저녁 대부분의 시민들은 북한정권이 토대부터 무너지는 신호라는 반응을 보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남북한관계 경색 및 한반도 불안에 대한 걱정의 목소리도 높았다. 서울대 신용하 교수(사회학과)는 『북한체제를 지탱해 온 주체사상 이론을 정립한 인물이 망명한 것은 체제 붕괴가 예상보다 빨라지고 있다는 신호탄』이라며 『북한 이데올로기의 종말을 뜻하는 그의 망명으로 북한 지도이념의 허구성이 그대로 드러난 만큼 무분별하게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남한내 주사파들은 현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영오 여의도연구소장은 북한 지배계층의 균열의 징표라고 전제,『외부세계를 누구보다 잘 아는 황씨가 북한이 세상의 흐름에 역행하고 있는데 대한 개인적인 염증과 좌절,상실 등을 느낀 것 같다』고 망명동기를 분석했다. 한국여성정치연구소 손봉숙 소장은 『정부와 국민들은 북한 체제를 자극하지 말고 조심스럽게 지켜보아야 한다』면서 『특히 한보사태 등으로 인한 정쟁을 자제하고 어려운 시국을 조속히 매듭지어 북한체제의 동요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이용선 사무총장은 『황씨의 망명으로 식량난 등 북한의 경제적 위기가 극에 달했다는 사실이 증명된만큼 정부는 북한 동포 문제에 대해 소극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식량 원조 등 적극적인 지원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녹색연합 최승국 조직팀장은 『주민 탈북 사태에 이은 고위 공직자의 귀순은 경제난의 정도를 알수 있게 하는 것으로 동포적 시각에서 안타까움을 느낀다』면서 『정부는 무조건 북한의 체제 붕괴만을 바랄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남북통일이라는 민족적 대업을 위해 그들과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찾으려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부 정은숙씨(30·서울 도봉구 도봉2동)는 『부족할 게 없을 지위에 있는 인사가 망명한 것을 보면 체제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달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북한이 전쟁을 최후의 수단으로 선택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 북 “탈북자 막아라” 「얼음함정」 설치

    ◎압록강·두만강에 3∼5m 간격 구멍 뚫어/장애물도 설치… 중국 3성엔 색출조 ㅍ견 북한당국은 주민의 탈출사태를 막기 위해 압록강과 두만강의 얼음을 3∼5m 간격으로 깨 해자를 만들고 장애물까지 설치했다고 탈북자조직임을 자처하는 「북조선인민의 생존과 민주를 위한 탈출자연합전선(북민전)」이 9일 밝혔다. 「북민전」은 이날 일부 북경주재 한국언론사 사무실에 보낸 A4용지 2쪽 분량의 유인물을 통해,북한이 학생규찰대요원과 가두인민반 노인으로 구성된 규찰대를 국경일대에 2∼3중으로 배치해놓고도 마음을 놓지 못해 얼어붙은 강물에 해자와 장애물을 설치했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이와 함께 중국 동북3성(길림·요령·흑용강성)에 200명에 달하는 위장탈북자를 보내 탈북자를 추적,연행하는 한편 탈북자를 도운 현지 한국인 및 조선족 동포에게 심각한 위협을 가하고 있다고 「북민전」은 덧붙였다. 「북조선인권투쟁선언문」이라는 북경 「북민전본부」 명의의 이 유인물은 이 조직이 기존의 「탈북자민권협회」,「탈북자반석동지회」 등의 조직과 구성원을 한데 묶어 새롭게 결성된 것이라고 밝히고 국내외적인 「김정일정권계승반대운동」 등 북한의 세습독재체제에 결사항거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 중·대만 정치회담 빨리열자(해외사설)

    중국공산당 총서기이며 국가주석인 강택민이 「조국통일 축전을 위한 중요 담화」를 발표한지 만 2주년이 됐다.강주석의 이 담화는 등소평동지의 「평화통일 및 일국양제(한나라의 두가지 정치체제)」의 정수를 구체화한 것이다.이 담화는 양안관계의 발전방안과 조국통일의 일정을 담았다.이 담화의 핵심은 「하나의 중국정책의 유지」다.대만은 중국의 일부분이다.이 하나의 중국정책은 양안관계 발전및 평화통일정책의 기초임을 다시한번 분명히 한다. 대만당국은 대만과 중국의 대등한 정치 실체임과 국제적으로 분리된 독립상태에서의 통치를 주장하고 있다.중국의 주권과 영토를 분열시키고 두개의 중국,하나의 중국 및 하나의 대만을 영구화하려는 시도다.지난 95년6월 이후 중국은 반독립·반분열의 원칙아래 국토및 주권 보존에 대한 결의와 역량 과시를 통해 대만독립 시도세력에 강력한 타격을 가했다.이는 양안관계 발전과 평화통일 촉진에 중요한 영향을 가져다 주었다.강주석은 담화를 통해 양안교류 및 합작의 대대적인 발전을 시도했으며 정치적인 이견이 경제적인 교류·합작을 방해해선 안된다고 주장했다.중국정부는 어떤 상황에서도 대만 기업인의 정당한 권리보장과 양안의 인적교류 등 「3통」을 실현시켜나갈 것이다. 대만당국은 최근 「국가발전회의」등을 통해 헌법개정 구실로 대만성의 행정체계를 바꾸어 대만독립 조건을 만들려고 획책하고 있다.우리는 대만당국이 중국의 일부분임을 받아들이고 양안 경제교류 및 인적교류등 「3통」을 막는 장벽을 철폐하기를 희망한다.올해는 중국에게 의미있는 해이다.「일국양제」의 원칙아래 홍콩에 대한 주권을 행사하게 된다.99년 마카오 회복에 이은 대만통일이 숙제가 되고 있다.우리는 양안사이의 직접 교류와 인적교류,문화·경제교류 등 「3통」확대를 희망한다.또 양안 정치회담의 조속한 실현을 바란다.중국정부는 대만동포들과의 상호이해를 높이기 위해 더욱 노력해 나갈 것이다.우리는 양안동포들의 공동노력을 통해 올해는 중국과 대만간,양안간의 새로운 발전단계가 이룩될 것으로 확신한다.
  • 한국통신 등 아 13개 업체/멀티미디어 포럼 설립

    【싱가포르 AFP 연합】 한국통신을 비롯한 아시아의 선도적인 13개 전기통신 및 인터넷 서비스 업체들이 이 지역의 멀티미디어산업 개발을 위한 공동포럼 설립에 합의했다고 주최측이 1일 발표했다. 참여업체들을 대표한 싱가포르 테크놀로지스 텔레미디어사는 발표문을 통해 「아시아 멀티미디어 포럼」(AMF)이라고 명명될 포럼의 기본틀이 참여업체수가 더 늘어나게 될 것으로 보이는 금년 2·4분기내에 마련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AMF 참여자는 전기통신업체,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정보제공업체,컴퓨터 최종 사용자 등 관련 분야의 업체들이며 AMF의 목적은 국경을 초월한 컴퓨터 응용기술의 교환과 공동협력이라고 이 발표문은 덧붙였다.
  • 「탈북가족」 회견(외언내언)

    〈같은 사람의 일기 글씨가 왜 다르냐〉 〈그날 일기를 그날그날 쓴 것이냐 아니냐〉 〈어느날 한꺼번에 쓴 것은 아니냐〉 〈옷은 어떻게 그렇게 좋은 것을 입고 왔느냐〉 기자들의 질문은 신랄했다.그럴리는 없겠지만 「적개심」이 담겨 보이기까지 했다.특히 「일기」의 주인공인 소년에게 집중적이었다.잘 살아보겠다고 천신만고끝에 어른들을 따라 탈북해온 소년으로서는 감당하기에 좀 황당했을 것이다. 「한보」의 정씨처럼 산전수전 다 겪고 재계와 정계를 가지고 놀던 노련한 사람도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조언받아야 할 만큼 기자들의 질문은 벅찬 법이다.특히 범법 혐의를 받는 사람에게 퍼붓는 신문같은 질문은 위협스러울 것이다. 이날 기자회견의 질문들은 흡사 그런 「신문」같았다.왜 거기로 왔느냐,도아준 사람의 신분이 무엇이냐,왜 피곤해보이지 않았느냐….다그치듯 물어대는 이런 질문들은 어려운 동포들이 『따뜻한 남쪽나라』로 목표를 삼고 찾아온 곳에서 만나기에는 적절하지 않아 보이는 것이 많았다. 그들은 두만강을 건너 막바로 대한민국으로 온 사람들이 아니어서 그들이 지나온 길에서 있었던 일은 「낱낱이 공개」 할수 없는 일들도 있고 그런 노정도 있다. 그들의 답변에서도 읽을수 있듯 언론의 활약이 막강한 힘이 되고 있는 우리사회에서는 「글」은 아주 수요가 많다.소년의 「일기」는 아마도 심한 경쟁의 대상이었을 것이다.어떻게 생각하면 매체들이 부추긴 급조도 있었을지 모른다.그걸 되려 추궁하는듯한 회견에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그런 황당함을 소년이 겪게 한다는 것은 대접이 아닌 것같다.당분간 우리는 이렇게 찾아오는 북쪽의 혈육들을 맞아야 한다.그들에게 「남쪽의 삶」을 결정적으로 낯가림하게 만드는 이런 분위기의 기자회견은 지켜보는 시민의 마음을 어둡게 했다.
  • 작년3월 어둠 뚫고 두만강 건너 북경도착/두가족 탈출­귀순 경로

    ◎대사관서 망명 거부해 10개월간 유랑생활/조선족 도움으로 밀항선 타 서해서 구조돼 김영진·유송일씨 가족은 각각 지난해 3월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간 뒤 10개월여동안의 유랑생활을 거쳐 지난 22일 꿈에 그리던 남한 땅을 밟을수 있었다.이들은 모두 현지 조선족의 결정적인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했다. 두 가족은 귀순때까지 전혀 모르는 사이였다. 김씨 일가의 탈북 장정은 지난해 3월19일 고향인 평남 문덕군을 떠나 국경에서 가까운 함북 무산 외할머니댁으로 가면서 시작됐다.기회를 엿보다 24일 상오 3시30분쯤 어둠을 뚫고 두만강을 건넜다. 중국땅에 발을 디딘 이들의 목표는 오직 북경에 있는 한국대사관이었다.망명신청을 하면 모든게 해결될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다.생활비 등 치밀한 사전준비를 못했던 이들은 주로 조선족 집들을 전전하며 반 구걸 생활을 했다. 갖은 고생 끝에 5월 북경주재 한국대사관을 찾아갔지만 대사관측은 외교문제 때문에 망명신청을 받아줄 수 없다고 했다. 날품팔이와 식당잡부,벌목공 등으로 근근이 연명하면서기회를 엿보던 중 현지 조선족이 소개한 「박사장」의 도움으로 지난 1월21일 밀항선을 탈 수 있었다. 유씨는 어머니 이의순씨(65)와 부인 이영순씨(39) 등 가족 5명을 이끌고 김씨 가족보다 보름 가량 이른 3월4일 함북 청진을 떠났다. 24년간 군에서 복무했던 유씨는 군복차림에 제대증명서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안전원들의 감시 눈길을 피해 어렵지 않게 국경을 넘을 수 있었다.얼어붙은 두만강을 걸어서 건넌 뒤 곧장 중국 심양으로 향했다. 심양에서 조선족 동포들의 집을 전전하며 숙식을 해결하던 유씨도 북경의 한국대사관을 찾아갔지만 거절당했다. 유씨는 북경역 앞에서 앞으로의 거취를 놓고 부인과 심하게 다퉜고 부인은 그 길로 헤어져 돌아오지 않았다.6월23일에는 어머니마저 힘든 생활을 이기지 못하고 사망했다. 가족들을 잃고 체념상태에서 도피생활을 하던 유씨에게 지난 7일 그동안 도움을 주던 조선족 동포가 찾아와 중국 청도에서 21일 밤 남한행 밀항선이 출발한다는 말을 해주었다. 한 배에 탄 김씨 가족과 유씨 가족 8명은 강풍과 파도속에서 항해를 계속한 끝에 다음날 낮 인천 서남방 75마일 격렬비열도 해상에서 한국 해경정에 의해 구조됐다.두 가족의 10개월간의 대탈주가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 해광군과 여금주양(송정숙 칼럼)

    어떤 환경에서도 아이들은 자라고 그 아이들이 희망임을 확인하게 해준 것이 해광군이다.극도의 굶주림과,부모와 「위대한 지도자의 품」사이에서 고민하면서 자신의 의지를 깊이 천착한 그의 탈북일기는 놀랍고 영특한 기록이다. 그 일기를 통해서는 그의 어린 가슴에 자리잡고 있는 『정든 고향』과 『정다운 동무들』의 아름답고 풍요로운 모습이 보인다.어떤 것은 우리에게서는 진작에 풍화해버려 잊혀진 것들도 있다.그 진솔한 본모습을 북에서 온 어린 소년의 일기에서 읽을수 있다는 일이 신기하다. ○북한 소년의 일기 “진솔” 해광군에 앞서 역시 일가족 탈북의 일원인 여만철씨의 딸 금주양의 이야기를 들은 일이 있다.최근의 일이다.『따뜻한 남쪽』에 와서 몇해를 보냈고 남쪽의 대학생이 된 그가 그동안 「적응」하며 겪은 것들이다. 처음 남쪽의 친구들은 자신을 경계하듯 접근하지 않았다.나중에 안 일인데 남쪽 친구들은 그가 무서웠노라고 했다.『왜서 내가 무서웠는지….오히려 내가 무서웠음 무서웠지…』 지금도 이해가 안되는 대목이라고 했다.남쪽 친구들이 마음을 열어 서로 어울리게 되었을 때는 이런 일도 있었다.『무슨 노래가 좋은가』 묻길래 「설운도씨 노래」를 좋아한다고 했더니 『어쩌면 그런 노인네 노래를 좋아할수 있는가』고 막 웃는 통에 무안했었다는 것이다. 그 노래를 좋아한 것은 북쪽에서부터였고 북쪽의 친구들과 함께 그노래를 좋아했던 시절을 그는 추억으로 지니고 있다.그 추억이 그들의 「남쪽선택」의 기쁨이기도 했고 그때문에도 남쪽의 삶이 행복할 것으로 기대했는데 정작 남쪽에서는 그것이 놀림감이 된 것은 그를 쓸쓸하게 했던 것 같다. 금주양의 초등학생 남동생이야기도 있다.공부가 끝난 하학시간에 체조를 잘하는 남동생은 철봉에 매달려 여러가지 장끼를 남쪽 친구들에게 보여주었다.남쪽친구들은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그런데 어쩌다 동생은 철봉에서 떨어지고 말았다.그러자 박수를 치며 좋아하던 친구들은 모두가 모른척하고 가버렸다.동생은 울며 집으로 돌아왔다. 『북에서 같으면 들쳐업고 병원엘 가든가 어찌라도 했지 그렇게 혼자 팽개치고 가버리지는않았을 것이다』라는 것이 그와 그 가족들이 느낀 슬픈 결론이었다. 여러번 종용한 끝에 얻어낸 남쪽친구들에 대한 금주양의 비판은,학생들의 씀씀이가 많이 헤퍼보이고 허영스런데가 있는 것 같고 삭막한 느낌을 주며 『진실된 면』이 좀 모자란 것 같다는 것이었다. 남쪽을 선택한 「아버지」의 결단에 대해서 『지금이니까 할수 있는 말』은 남쪽을 선택한 일은 잘한 일인것같다는 것이다.그러고나서 그는 좀 망설이다가 아주 조심스럽게 말했다. 『…북쪽에서 보낸 모든 세월은 정말로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인가….하는 의문이 들곤한다』는 것이었다.조그만 목소리로 『고향이랑 친구랑 좋은 사람도 많고 보고싶기도 한데…』 잦아들듯이 덧붙인 뒷부분의 말은 듣는 이의 가슴을 파고 들었다. 해광군의 일기에서 수도없이 되풀이되는 것도 『두고 온 동무들』이다.남쪽에서 「새동무들」을 사귀면 잊혀지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순수한 영혼에 드리운 「그리움」은 잊히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그들이 북에다 두고온 「지난날」을 『배고프고 괴로운 하찮은기억』쯤으로 여기는 남쪽의 무신경과 만난다면 그들은 얼마나 쓸쓸하고 노여울 것인가.『친애하는 지도자의 품』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망하고,국가 목표라는게 국민에게 『하얀 이팝에 고깃국』 정도인 사회가 얼마나 허약한 수준인가를 알게되는 일은 금방 가능하다. ○탈북동포 따뜻이 대해야 그러나 아름답고 고귀한 사람됨의 정신자원은 그것과 별개다.그들에게 그렇게 간직할 소중한 것이 있다는 것을 남쪽사람들도 알아야 할 것이다.그런 뜻에서는 탈북동포들의 남쪽적응만이 중요하고 시급한 것은 아니다.남쪽이 그들을 받기 위해서 적응해야 할 일도 너무 많다.미리부터 대비해야 할 매우 중요한 일이다.〈본사고문〉
  • 청와대 관계자/“한보에 특혜 없었다”

    ◎“봐줬다면 부도 냈겠느냐” 일축/“야당은 추측성 주장 자제해야” 김영삼 대통령의 일본 벳푸방문을 수행한 청와대관계자들은 국내에서 논란이 한창인 한보철강사태에 대해 언급을 자제했다.대통령이 외교로 바삐 움직이는데 누가 될까 우려한 탓이었다.그러나 국내언론과 야당에서 온갖 의혹설을 계속 제기하자 『부도를 냈는데 정부 특혜의혹이 있다는게 앞뒤가 맞느냐』고 흥분했다. 이석채 경제수석은 『특혜의혹이 사실이라면 더 도와줘야지 왜 부도를 냈겠느냐』면서 「특혜설」을 일축했다.다른 고위관계자는 『재벌에 대해 철저한 검증없이 대출을 해주는 금융관행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은 옳을지몰라도 정부특혜로 한보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은 억측』이라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아직 한보사태를 직접 거론하고 있지는 않다.그러나 26일 상오 벳푸 스기노이호텔에서 가진 동포다과회에서 그 어느때보다 문민정부의 청렴성을 강조했다.『취임이후 어느 기업·개인에게 단 1전의 돈도 안받았고 남은 임기동안도 그럴 것』이라는 언급은 김대통령이 자주해온 것이다.하지만 이날은 분위기가 좀 다른 것 같았다.한 관계자는 『김대통령이 정치자금을 안받았기에 모든 일에 떳떳할수 있다』면서 『관계기관이 모든 것을 조사해 의혹의 진실여부를 밝힐 것이니 야당은 추측성 주장이나 흠집내기를 자제해야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 한·일 축구 정기전/5월 서울서 첫 경기/벳푸 정상회담

    ◎2차전은 9월 도쿄서 개최/김 대통령 어제 귀국… “취임후 1전도 안받았다” 김영삼 대통령과 하시모토 류타로(교본용태랑)총리는 26일 아침 벳푸 스기노이호텔에서 조찬회담을 갖고 한국과 일본 정부의 개혁추진문제를 비롯,각자 국내문제에 대해 논의했다. 양국정상은 또 2002년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를 계기로 부활된 한·일 축구정기전 첫 경기를 오는 5월 서울서,그리고 2차전은 9월 도쿄에서 갖기로 했다고 회담에 배석한 반기문 청와대외교안보수석이 전했다. 김대통령은 벳푸정상회담에 이어 적절한 시점에 한국의 명승지에서 실무정상회동을 다시 갖자고 제의했고,하시모토총리도 이를 수락했다. 이어 김대통령은 스기노이호텔에서 동포다과회를 주최한 자리에서 최근의 한보철강사태를 의식한듯 강하게 문민정부의 청렴성을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대통령에 취임한뒤 가장 큰 병폐중 하나가 대통령이 기업·개인으로부터 돈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면서 『따라서 취임직후 어떤 개인·기업으로부터 단 1전도 안받겠다는 약속을 하고 그를 지켜왔으며 남은 1년동안도 그 약속을 지킬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이날 낮 스기노이호텔 팔레스관에서 히라마쓰 모리히코(평송수언)오이타현지사와 이노우에 노부유키(정상신행)벳푸시장이 공동 주최한 오찬에 참석한뒤 1박2일간의 벳푸방문일정을 마치고 이날 하오 귀국했다.
  • 작년 귀순 이철수 대위/총 4억8천만원 받아

    지난해 5월 북한공군 주력전투기인 미그­19기를 몰고 귀순해온 이철수씨(당시 북한 공군대위)가 북한귀순동포위 보호위원회 결정에 따라 최근 정부로부터 정착지원금과 보로금 명목으로 총4억8천만원을 받았다. 정부당국자는 26일 『이 소령은 북한귀순동포위원회 결정에 따라 최근 전투기 및 무형의 정보제공 대가로 지급되는 보로금 4억4천여만원,정착금 및 주택지원비 4천여만원 등 총4억8천여만원을 받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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