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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와대, 남북적십자회담 성공 환영

    청와대 박준영(朴晙瑩)대변인은 30일 남북 적십자회담에서 이산가족 상봉이합의된 것과 관련,“남북 적십자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난 것은 정상회담의 합의정신이 착실히 이행되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이를 환영하는 논평을 발표했다. 또 “앞으로도 남북 정상간 합의한 선언내용이 차분하고 진지하게 하나씩실천되길 기대한다”면서 “이런 실천 과정이 남북 동포들에게 충실히 알려지기 위해서는 충분한 취재 기회가 보장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민족문제 해결과 언론 자유는 이 시대에 포기되어서는 안될 귀중한가치”라면서 “앞으로 이런 문제들이 지혜롭게 해결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양승현기자 yangbak@
  • [황석영의 맛따라 추억따라](5)잃어버린 먹거리

    *북서 먹어본 단고기 별미...겨자로 무쳐 새콤달콤 북에서 먹은 음식 가운데 매우 독특한 찌개가 생각난다.언젠가 전주에 갔다가 ‘오모가리’라는 민물고기로 끓인 일종의 고추장 찌개가 별나다고 생각했던 것과도 같았다. 북에서는 여러 초대소를 다녀 보았는데 그중에 오래 있던 곳이 서재골 초대소와 철봉리 초대소였다.서재골은 외국 사절들이 묵는 곳이어서인지 주방의조리 방식이 다분히 중국 요리나 서양식으로 뒤섞여서 나왔다.장기간 머무는이에게는 일종의 연회 음식이 이내 질리기 마련이다. 철봉리에서는 삼십대의 주방장과 연회가 있을 적에는 노인 한 분이 지원차오곤 했다.주방장의 이름은 잊었지만 황해도 안악이 고향이라는데 나중에 그의 집도 방문했다.그의 어린 두 딸이 고사리 손을 조물거리면서 무용을 하고노래를 하던 모양이 잊혀지지 않는다. 나는 정성스럽게 차려주는 연회 음식 먹기가 지겨워서 나중에는 스스로 외환상점에 나가 일제 카레를 사오거나 라면을 사다가 점심을 직접 해먹기도 하였다. 이런 얘기가 밝혀져도 괜찮을까는 모르지만 북쪽 초대소의 남녀 접대원에서요리사와 운전수에 이르기까지가 모두 호위총국 소속의 군인들이었다.나중에그들과 한 식구처럼 친해진 뒤에야 그들의 계급도 알 수가 있었다. 여성 접대원들은 대개는 소위 중위들이고 때로는 사격 훈련도 한다고 하였다.따라서우리 주방장이 소좌라는 사실도 나중에야 알았다. 선생님,토속으로 자시고 싶다 그거지요?그는 돼지고기 김치 찌개도 만들고 된장 뚝배기도 내왔다.북의 통조림으로나오던 볶은 고추장이 해외동포들에게 인기였는데 나는 아무래도 된장이 더먹고 싶었다.그렇지만 가정식 장독대가 거의 사라져버린 고장에서 맛깔스러운 된장을 구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었다.역시 우리가 예전에 진짜 일본의 미소 된장하고는 다르면서도 왜된장이라고 부르던 공장에서 대량으로 속성되어나오는 된장이었다. 북한 문인들 말을 들어보면 전후 복구에 힘을 쏟던 ‘천리마 운동’ 기간에 가정음식들이 많이 사라졌다고 한다.구역마다 밥 공장과반찬 공장을 두어 단체로 식사를 하거나 타다가 먹었다고 하는데, 경제복구가 끝나고도 직장이나 기업소마다 단체급식을 하는 생활은 남아있는 셈이었다.즉 손님 접대는 연회 음식이 될 수 밖에 없었다. 하루는 주방장이 고심을 했던지 김치도 보다 맵게 담그고 간고등어도 굽고저 유명한 서해안 곤쟁이젓도 내왔는데 못보던 음식이 나왔다.구수하고 짭짤한 것이 입맛이 확 살아났다.이게 뭐냐고 했더니 ‘호박짠지 지지개’라고한다.열무와 호박이 섞여 있는데 애호박이 보통 호박찌개처럼 물컹하지 않고설익은 것처럼 설컹거렸다. 그는 평양에서 한 시간 반쯤 거리인 안악의 고향 집에 다녀왔다고 한다.역시북에서도 장이나 밑반찬 같은 먹거리는 고향 부모님들이 보내준다고 하였다. 이제 노인님들이 다 돌아가시면 젊은 아낙들은 음식을 못해서 큰일이라고사내들마다 걱정인 것은 우리와 같다.그가 안악에 가서 가져온 것은 된장과바로 이 ‘호박짠지’였다. 열무나 배추로 짠지를 담글 적에 호박을 쑹덩쑹덩 썰어서 김치 담그듯이 한켜씩 소금을 뿌려가며 항아리에 담는다.소금에 충분히 절인 다음 풀물이나뜨물을 부어 사나흘이 지나면 대충 익게 된다.호박짠지를 꺼내어 물에 헹구고 된장과 까나리 또는 조개를 넣고 찌개를 끓여내는데 파와 마늘과 풋고추를 썰어 넣으면 된다. 내가 이 음식을 기억하게 된 것은 실로 십 년 만의 일이었다.충청도 덕산으로 이사와서 한 마을에 혼자 사시는 할머니 한 분이 집안 일을 도와 주러 오게 되었는데,곁에서 며칠 동안 나의 식성을 지켜 보고나서 무슨 음식을 냄비에 담아 왔다. 좋아하실까 모르겄지만 한번 잡숴봐유. 그래서 뭐냐니까 충청도 ‘호박김치’란다.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이랬다. 호박짐치는 원래가 찌개 끓여 먹을라구 당그는기유. 어허,가만 있어 봐.어디선가 먹은 기억이 나는데.그제서야 이북에서 먹었던생각이 났다.충청도 호박김치는 늙은호박을 속을 긁어내고 쓰는데 무청이며배추를 섞어서 김치를 담그듯이 갖은 양념하여 새우젓까지 쓴다.그냥 먹기에는 호박이 입 안에서 뱅뱅 맴도는 것이 어쩐지 김치 맛이 나질 않고 찌개를끓여 먹으면 담백하고 구수하다.얼핏 제주도의 갈치 찌개 생각이 나서 이 호박김치에 잔 갈치를 토막 쳐서 넣고 끓였다.역시 호박김치 찌개의 훌륭한 완성이 아닌가. 같은 서해안에 지형과 풍토가 비슷해서 그런가 충청도와 황해도의 음식은 여러 가지로 비슷한 점이 많이 있다. 북에서 먹은 음식 가운데 여러 가지 기억이 나지만 그중에서도 ‘단고기’는아주 특별하다. 개장국은 각 지방마다 서로 다르지만 특히 서울식은 사라져버렸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옛날 개장국은 지금 보다는 맑고 오히려 육개장 비슷했던것 같은데 남도식과 섞여 버렸다.들깨나 깻잎을 많이 쓰는 것이 그렇다. 남도 식은 오리탕도 그렇지만 들깨를 거의 죽처럼 갈아서 넣고 고구마순도 함께 넣는다. 북쪽의 개장국도 평안도쪽과 함경도 식이 서로 다른데 평안도 식이 서울의예전 개장국 비슷하다면 함경도 식은 요즈음 서울의 두루치기와 비슷하다. 하여튼 단고기를 먹은 중에서 대단히 맛이 있었던 것은 가장 부드러운 목둘레의 살을 얇게 저며서 해파리 냉채 무치듯 겨자를 넣고 새콤달콤하게 무친것이었다. 백두산 지방을 돌아다녔을 때 삼수에서 먹은 산천어 구이는 특별했다.두만강상류라고 하지만 폭이 오륙미터 밖에 안되는 개천인데 이쪽은 조선이고 저쪽은 중국이라 하였다.개천에 그물을 쳐두고 기다렸다가 건지면 팔뚝만한 산천어가 걸려서 퍼덕였다.산천어는 송어가 강을 따라서 올라왔다가 붙박이 고기가 된 것인데 백두산 천지에 방류하여 양식에 성공하였다고 한다. 안내인은여러번 해왔던지 부근의 반질거리는 반석 아래 장작불을 때어서 달군 다음에참기름을 두르고 소금을 뿌려 살아있는 산천어를 던졌다.그리고 그 사이사이로 백두산 송이버섯을 얇게 저며 함께 굽는다.꼬리와 머리에 은박지를 감아쥐고 옥수수 먹듯이 산천어를 뜯으며 송이로 입가심을 한다.고기의 살이 솜처럼 부드럽고 향긋한 물비린내가 입맛을 돋구었다. 이런 식의 자연식은 이를테면 해금강에서 먹었던 대합 구이에 비길만 했다. 해금강은 군사분계선 구역이라 무인지경이었는데 주먹만한 자갈이 깔린 바닷속이 온통 대합의 밭이었다.삽시간에 군인들이 두 양동이나 건져 나왔다.해변 자갈 위에 늘어놓고 알콜 한 병을 들이붓고 불을 붙이니 파란 불이 좌악퍼져 나가면서 조개들이차례로 입을 벌렸다.사실은 익히려고 불을 놓는 게아니라 대합의 굳은 입을 벌리기 위해서란다.그대로 초장을 조개 안에 한숫갈 치고는 후루룩,하는데 입안이 가득찬다.그리곤 소주 한 잔 캬아! 하면서넘기고. 황석영
  • “계도기간” 의료계 소극적

    7월1일부터 의약분업이 실시되지만 의료계는 계도기간이라는 이유로 준비에 소극적이다.여야가 자신들의 요구를 수렴해 약사법을 개정할 때까지는 관망하겠다는 입장이다.반면 약계는 처방약을 확보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있다.의약분업 준비상황을 점검한다. ■약계 약국들이 처방약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 28일 대한약사회에 따르면 의료계의 집단 폐업사태로 시행 여부에 확신이서지 않아 제약업체와 도매상이 약품 공급을 늦췄고 약국도 재고 부담이 있는 전문의약품 구매를 일시 중단했었다.이에 따라 전국 1만8,000여 약국 중50% 이상이 처방약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최근 들어 약국들이 처방약 주문을 재개했으나 제약업체와 도매상들이 갑자기 밀리는 주문을 대지 못하거나 소량 판매를 꺼려 소형 약국에는 공급이 잘안되고 있다. 또 의료계가 병·의원들의 처방약 목록을 약사들에게 전달하지 않아 약사회가 의료보험연합회를 통해 목록을 확보하면서 필요한 약의 확인도 늦어졌다. 그러나 조제비 및 약값 청구 프로그램,자동포장기 등 처방약 확보를 제외한 나머지 준비는 대부분 끝낸 상태이다. ■의료계 폐업을 끝냈을 뿐 의약분업 시행을 위해 준비를 해온 것이 사실상없다.특히 일선 의사의 상당수는 여전히 의약분업을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다. 병원급 의료기관들은 원외 처방전 발행시스템 구축 등 나름의 준비를 해왔다.그러나 동네 의원들은 이 시스템을 갖춘 곳을 찾기 어려울 만큼 준비가안돼 있다. 병·의원이 처방전 발행양식 및 진료비 청구 등의 소프트웨어를 갖춘 전산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1개월이 걸릴 것으로 보이는 데다 7월 임시국회에서약사법이 통과할 때까지 지켜보자는 입장이어서 분업 준비는 늦어질 수밖에없을 전망이다. ■정부 대책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최근 제약협회,다국적의약산업협회,의약품도매협회,약사회 등 4단체와 긴급 간담회를 갖고 의약품의 원활한 공급을 독려했으나 대다수 약국이 처방약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는 등 아직 큰 효과를보지 못하고 있다. 식약청 관계자는“제약 회사들이 약품을 본격 출하하고 있으나 약국들이 6월30일까지 필요한 처방약을 모두 갖추기는 어려울 전망”이라고 말했다.복지부는 계도기간인 7월 한달 동안 의·약계의 분업 준비를 독려할 방침이다. 유상덕기자 youni@
  • 색다른 맛… 화제의 평론집 2題

    그동안 수많은 저서를 펴냈던 문화및 문예비평가 이어령이 처음으로 문학이론서인 ‘공간의 기호학’(민음사)을 내놓았다. 청마 유치환의 시 총 599편을 대상으로 ‘문학 공간의 기호론적 분석’을시도한 그는 현재의 문학비평연구가 작가의 전기나 역사적 사회 상황 같은것에 초점을 맞추는 외재적 연구 중심으로 이루어 졌다고 지적하면서 내재적연구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저자는 예컨대 청마의 시 ‘깃발’과 관련, 대부분의 비평가들이 시에서‘기(旗)’를 전기적으로 풀이하거나 시대에 얽힌 역사적인 의미로서 파악하려고 하지만 이는 피상적이라고 비판하고 있다.공간 기호론으로 깃발을 분석했을 때 ‘기’는 하늘과 땅의 중간부분에 위치하는 사물이 되며 어떤 사물이나 이미지가 하늘과 땅의 수직구조에서 그 중간에 배치되어 있는 것이면청마의 ‘깃발’과 동일한 의미를 갖게 된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이론은 시만이 아니라 소설,희곡 등 모든 문학 장르와 회화,건축,그리고 무용 같은 비언어적 예술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적용할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한편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을 따라 남하해서 ‘지리산 유격 지대를 가다’‘바다가 보인다’ ‘우리는 이렇게 이겼다’ 등의 종군르포를 남긴 작가 김사량(1914∼1950)의 평전이 나왔다. ‘김사량 평전’(문학과지성사)은 재일동포 문학평론가 안우식(68)씨의 1972년작(이와나미 문고)을 번역(심원섭 옮김)한 것이다. 평양의 부르주아 집안 출신으로 도쿄제국대학 독문과를 나온 김사량은 1939년 일본어로 쓴 단편 ‘빛 속으로’가 아쿠타가와상 후보작에 올랐다.1945년2월 친일적인 학도병 위문단으로 중국에 파견된 길에 탈출했으며 해방후 재북 작가로 활동했으나 남한은 물론 북한에서도 충분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평전 작가는 김사량의 ‘낭만적 정신’을 주목하면서 ‘성실한 한 명의 민족작가의 모습’을 꼼꼼한 자료를 바탕으로 그려내고 있다. 김재영기자
  • 精文硏 한국학 학술회의… 린튼회장 기조연설

    한국정신문화연구원(원장 韓相震)이 주최하는 제11회 한국학 국제학술회의가 ‘새천년 한국인의 정체성’을 주제로 27일 연구원 대강당에서 막을 올렸다.29일까지 계속되는 심포지엄의 첫날 스티븐 린튼 유진벨재단 회장이 ‘코리안 아이덴티티-남과 북’이란 제목으로 기조강연을 했다.‘북한어린이 결핵퇴치’사업을 하는 린튼회장은 수시로 북한을 방문,구석구석을 둘러본 인물. 게다가 선교사인 증조부가 1895년 이땅에 발을 들여놓은 뒤 4대째 한국과 인연을 맺어왔고 스스로 한국학을 하는 친한(親韓)인사이기도 하다.그가 본 남과 북의 정체성,그 차이와 공통점을 요약한다. 1945년에 일어난 행정상의 분단이 점차 뚫을 수 없는 이데올로기적·정치적인 장벽으로 굳어진 뒤 몇십년 동안 남한사람이 된다는 것은 곧 북한을 반대하고,북한사람이 된다는 것은 남한에 반대한다는 뜻으로 이해되었다. 20세기 중반에 이미 한국은 전통적 아이덴티티로 복귀하기에 늦은 것처럼 되었다.외국세력에게 강요당한 한국의 새로운 상황(분단)은 더욱 근대적인 자아인식을 필요로 하게 만들었다. 한편 한민족의 적어도 10%는 오늘날 해외에서 거주한다.이러한 추세는 더욱늘어날 전망이다. 한국인을 자처하는 사람 중에는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지 않고,문화적으로도 한국인이 아니며,심지어는 ‘순수한’ 혈통을 자랑할 수 없는 이들이적지 않은 지경에 이르렀다.그런데도 본토 한국인들은 아직까지 전통적인 한국인의 정체성을 고집한다.모든 외국적인 것을 거부하는 사례마저 있다.이런상태에서 해외 한인사회, 즉 외국문화와 외국사회에서 소수민족으로 살아가는 한국인들의 상당수는 2세가 되면 본격적인 정체성 위기에 부딪힌다. 한인사회의 주말학교,한인교회의 한국어 강사들은 한인 이민2세를 외국어와외국문화로부터 ‘구하려는’ 사람들이다.그러나 그들이 청소년에게 줄 수있는 최상의 것은 ‘2급 한국인’이라는 아이덴티티 뿐이다.2급의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에는 완전한 한국인이 아니기 때문에 느끼는 죄책감과 불안정성을 포함한다. 좀 더 단순하고 포괄적인 한민족 정체성을 정립하지 않으면 한국은 해외동포사회를 잃는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다. 이는 한국과 외부세계를 잇는 자연스런 ‘다리’를 없애는 일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한국의 입김을 제한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아이덴티티에 대한 전통적인 접근은 남북관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한반도 안에서 한국인들은 더이상 동일한 정부,동일한 정치·사회적 문화속에서 살아가지 않는다.심지어 각 반쪽은 한국역사를 다르게 이해한다. 지난 반세기 동안 그랬듯이 양쪽 모두 스스로가 상대방보다 더 한국적이라고우긴다면 이 문제는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지 모른다. 각자가 주장하는 ‘한국적’의 실체가 상대방을 희생시켜야 정당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인들은 근대화를 서구화로 간주하지만,유럽·미국 문화와 동아시아문화의 현실적인 차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방과 도시문화의 차이다.전통문화와 윤리의 기반이 되는 농촌이 급속히 도시화하는 사회에서는 전통과의 연결고리를 잃어버릴 위험성이 높다. 이와 관련해 남북간에는 차이가 있다.남한에서 농촌사회의 도시화가 진행되었다면 북한에서는 정반대의일이 일어났다. 북한을 방문한 고령자들이 가장 이상하게 여기면서도 익숙하게 느끼는 점이바로 이것이다.사실상 북한은 농업문화가 도시를 지배하는 극소수의 개발도상국 가운데 하나다.20세기 한국의 가장 비극적인 사건인 분단은 궁극적으로축복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근대화로 잃은 부분을 회복할 새로운 기회를 가진 민족이나 문화는 역사상 없었다. 그러나 통일은,물질적 성취에 급급해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을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한국에 가져다 줄지도 모른다. 남과 북이 합치면 한국인들은 전통문화를 회복하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북한을 단순히 남한 방식으로 도시화하기보다는 농촌과 도시문화를 적절히혼합함으로써 통일된 새 한국사회를 이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리 이용원기자 ywyi@
  • [김삼웅칼럼] 언론의 알권리와 역사의식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열릴 때 몇차례 절망적인 ‘고비’가 있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심각한 일이 남한의 언론보도였다고 한다. 지구상의 유일한 ‘냉전의 섬’인 한반도가 화해와 협력시대로 탈바꿈하려는 남북정상회담의 걸림돌이 남한의 군대나 경찰, 정보기관이나 법제가 아니라 동족간의 화해와통일을 선도해야 하는 언론때문이었다는 것에 한없는 비애와 자괴감을 갖는다. 그런데도 정상회담은 ‘고비’를 무사히 넘기고 역사적 만남을 통해 5개항의 합의를 도출하여 국민 90%이상이 지지하는 큰 성과를 얻어냈다. 그러나일부 언론의 문제점은 여전히 남는다. 언제 다시 악재로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물론 북한의 남한언론관을 그대로 수용할 수는 없다. 언론의 기능과 인식에 너무 큰 차이점이 있다. 그렇지만 이와는 별도로 결코 일부 언론으로 인해 남북관계가 다시 비틀어지거나 해빙무드가 결빙되어서는안된다는 대명제에는 이론이 있을 수 없다. 부끄러운 노릇이지만 우리의 민족적 대사에는 반드시 훼방꾼들이 준동했다. 예컨대 기미년3·1항쟁때 이완용 무리는 수차례에 걸쳐 이른바 ‘경고문’을 발표했다. 온 민족이 생명을 내걸고 나선 항쟁을 가리켜 “지각없는 동배(童輩)가 망동하고 다음에는 각 지방인이 문풍역동(聞風亦動)하여 끝이 없다. 일인은 강경책을 쓰게되니, 되지도 않을 독립은 고사하고 동도의 사상을면하기 위하여 진정할 것을 경고한다”고 시위민중을 협박했다. 친일파들에의한 이런 류의 협박이 연일 신문지면을 도배질했다. 망국10년만에 궐기한 3·1항쟁은 외세에 좌초되었지만 분단 55년만에 온겨레가 힘을 모아 한반도의 냉전을 종식시키고 화해협력으로 가는 통일운동은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이러한 민족적 대사에 훼방을 놓거나 딴죽을 거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다. 유취만년(遺臭萬年)의 ‘반통일’로 기록돼 마땅하다. 통일국가 언론(인)의 ‘국익과 알권리 대립’따위는 어느 측면 행복한 갈등일지 모른다. 하지만 분단국가의 경우는 달라야 한다.화해협력과 통일에 저해되는 기사(논평)는 가급적 절제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알권리와 역사의식의 갈등이 따른다. 언론인으로서의 고뇌와 내부의 압력도 물리치기 쉽지않을 것이다. 최근 ‘김정일신드롬’이 확산되는 데는 언론의 책임도 적지않다. 그동안 김정일위원장의 ‘허상’만 보도하다가 ‘실체’가 드러나면서나타난 현상아닌가. 그러나 올 6월12일까지는 그렇다고 치자. ‘주적의 괴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6·15선언 이후부터는 달라져야 한다. 대화협력,평화공존 그리고 통일과정에 함께 가야할 동반자요 반쪽 동포를 대표하는 ‘정상’이기 때문이다. 분단시대 서독언론인들은 동독에 파견되어 무엇보다 ‘동족의식’의 대전제에서 언론활동을 전개했다고 한다. 중국과 대만의 어선이 공해나 영해상에서 충돌하게 되면 중국언론은 가급적 수습이 된 이후에 이를 보도한다고 한다. 국민간의 적대감정을 줄이려는 배려인 것이다. 언론의 ‘알권리’는 소중하다. 하지만 과연 우리 언론(인)이 ‘알권리’에 얼마나 충실했는지는 의문이다. 군부독재의 헌정파괴나 양민학살에 대해 ‘알권리’의 책임을 다했는가. 사주들의 비행이나 언론내부의 비리를 ‘알권리’차원에서 제대로 알렸는가. 정작 알리고 밝혀야 할 때는 침묵하거나 외면하고 반쪽 동포와 화해협력의 과제는 시시콜콜 파헤치고 어깃장을 놓는 것이 과연 바른 언론(인)의 자세일까. 사자 소리에 벌벌 떨다가 사자시체에는 가장 먼저 덤비는 하이에나가 초원의 청소부 역할에는 충실할지 몰라도 대접받는 짐승축에 끼지는 못한다. 그렇다고 걸핏하면 오프 더 레코드(비보도)를 건 관료들의 행태가 정당하다는 것은 아니다. 관리들은 취득한 국가정보를 지키는 것이 본분이고 언론은이를 알리는 것이 책임이다. 문제는 이 대칭점의 어디쯤에서 접점을 찾느냐이다. 분단국가 언론(인)의고뇌이고 갈등이다. ‘6·15남북선언’이후 한때 대세에 편승하던 수구언론이 다시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골수에 젖은 냉전의식의 발로이거나 DJ가 잘하는 꼴은 못보겠다는 ‘놀부 심보’다. 냉전의식이 변해야 하고 놀부심보를 버려야 한다. 그런 연후에 ‘알권리’를 내세우면 설득력을 갖게된다. 통일시대 언론(인)의 역사의식이 아쉽다. 김삼웅 주필.
  • 분당 ‘삼성 미켈란’ 지상 38층 “이런 아파트 보셨나요”

    분당신도시의 마지막 노른자위로 꼽히는 백궁역 주변에 세계적 건축업체들이 공동 참여하는 매머드급 주상복합타운이 들어선다.대교 계열사인 ㈜도시와사람이 시행하고 삼성중공업이 시공하는 ‘삼성미켈란’이다. ‘삼성미켈란’은 지하 4층,지상 38층에 연면적 6만5,000여평의 초대형 빌딩이다. 도시와사람에 따르면 호주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와 홍콩 상하이뱅크의 구조설계로 유명한 ‘오베 아루프’를 비롯해 세계 최고 수준의 건축설계 능력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A그룹’,‘K2A’ 등이 설계부문을 나눠 맡고 ‘희훈’,‘예우’ 등 유수의 디자인그룹이 내외장 및 디자인을 책임진다. 삼성미켈란은 ▲50평형 29가구 ▲57평형 150가구 ▲58평형 75가구 ▲59평형 208가구 ▲62평형 212가구 ▲73평형 29가구 ▲93평형 8가구 등 모두 792가구의 아파트와 근린생활 및 운동시설로 구성된다. 이같은 건축계획에도 불구하고 평당 분양가는 800만∼900만원으로 분당신도시내 구미동 일대 일반아파트 시세와 비슷한 수준이다. 아울러 가구별 환기시스템,음식물자동포집 시스템,중앙집진식 진공청소시스템 등 최첨단 설비와 최첨단 정보통신망을 구축할 예정이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이달말쯤 모델하우스 개관과 함께 분양
  • 적십자회담 참석자 면면

    27일 열리는 남북 적십자회담에선 양측 3명의 대표가 얼굴을 맞댄다. ◆북측 대표 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회의 최승철·이금철 상무위원과 최창훈부서기장 등 3명. 수석대표인 최 상무위원은 대남문제를 통괄하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서기국 국장.해외동포 원호위원회 국장을 겸하며 재외동포 및 이산가족 상봉문제를 주관해 왔다.정상회담 실무접촉 북측 수석대표로 나왔던 최성익 최고인민회의 참사보다 상급자다.93·94 특사교환 접촉에선 박영수 내각참사,최성익 등과 한 팀을 이뤘다. 이번 정상회담 때 민간대표로 구성된 남측 특별수행원들을 영접했다.그러나본인이 적십자사 대표도 겸하고 있다는 말은 하지않아 남측 관계자들은 최대표의 수석대표 기용에 놀라기도 했다는 후문. 이금철과 최창훈 등은 적십자회담에 이골이 난 베테랑들. 이 대표는 86년 6월 남북학생회담 북측대표단 대표를 지냈고 조선학생위원회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최 대표는 지난해부터 조선적십자회 중앙위 부서기장을 맡으며 북한 적십자회의 국제협력및 대외업무도 함께 담당해오고 있다.대외단체인 조선반핵평화위원회 서기장도 겸하고 있다. ◆남측 대표 박기륜(朴基崙) 대한적십자사 사무총장이 수석대표.고경빈(高景彬)·김장균(金將均) 남북이산가족대책본부 실행위원이 대표로 참가한다. 박 사무총장은 73년 적십자사에 들어와 이산가족 교류업무에 종사온 정통 적십자 맨.평안북도 출신의 실향민이다. 고 위원은 남북회담의 차세대 주자 중 한사람으로 꼽히는 대북 전문가.김위원은 97년 베이징(北京) 남북적십자회담 대표 등 크고 작은 적십자접촉에단골 대표를 지낸 베테랑중 베테랑이다. 이석우기자 swlee@
  • 韓·美 동아시아정책 조율 절감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의 한국 방문(23∼24일)은 남북정상회담 이후 한·미관계의 정책조율을 위한 것이다. 중국을 먼저 방문하고 한국에 이어 폴란드도 방문하지만 주요 방문지는 한국이다.남북정상회담 이후 한반도내에서 벌어진 숨가쁜 상황 변화를 직접 보고 들어야 할 필요성이 올브라이트 장관의 방한을 서두르게 한 것이다. 정상회담으로 나타난 한반도 상황 변화를 예상치 못한 데 따라 미국과 외교정책 조율이 필요한 부분이 생긴 것이다.미국으로서 가장 민감한 부분은 대북정책에서 한국이 앞서 나간다는 느낌이다.또 정상회담에서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 사이에 오간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대한 논의 수위도 체크리스트 윗부분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올브라이트 장관 출발 전 국무부 관리가 “중국과 한국의 방문 목적은 정상회담에 대해 우리가 좀더 자세히 알아볼 것이 있는지를 점검하는 것”이라고 말한데서도 잘 드러난다.중국을 거치는 목적도 김정일의 방중 목적과그 결과를 남북정상회담과 연계, 파악하는데 있다고 보인다. 한·미·일 3국공조기구(TCOG)가 있지만 실무급 차원의 정책조율 이전에 장관으로서 직접나서야 할 만큼 정상회담의 내용이 획기적이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또 정상회담 이후 한국이 북한에 대해 동포애를 느끼기 시작한 것과는 달리미국에 대해서는 주한미군 논쟁을 비롯, 매향리 사격장 논란,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 논란이 이는 등 한·미 공조에 불리한 환경이 조성되는 것 또한시급히 해결해야 한다. 큰 틀로 본 올브라이트의 방한 목적에는 북한의 문이 열린 상황을 전제로냉전구도에서 짜인 대북정책 틀을 새로 마련하는 것이 포함된다.지금까지는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대한 투명성 요구가 우선이었지만 앞으로는 러시아와중국까지 고려하는 새로운 동아시아 정책이 필요해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올브라이트 장관의 방한 임무는 한국의 희망과 미국의우려를 최대한 조화시킬 접점을 찾는 것으로 요약된다고 하겠다.
  • [여성 선언] 서울 여성,평양 여성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온 국민, 아니 온 세계의 시선이 평양을향하고 있다.나 역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 순안비행장에서 첫 악수를 하는 것을 본 순간 울컥 목이 멘 이후 약간은 제 정신이 아닌 채 여간해선 TV 앞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분단 55년 만에야 실감나게 가까워진 평양에 대한 내 관심은 솔직히 원초적호기심 수준이다. 사람들의 키가 큰가 작은가,어떤 옷을 입고 어떻게 행동하는가,어떤 집에서 무얼 먹고 사는가 등등.이는 내가 그만큼 북한에 대해 무지하다는 얘기일 터이다. 어쨌거나 여성인 나의 관심은 우선 평양의 여성들에게 쏠린다.순안비행장에나온 환영단의 순박한 중년 여성들, 김 대통령과 대화를 나누는 당당한 고위층 여성,우리와 달리 나이가 지긋해 오히려 신선한 여성 뉴스 진행자…. 이번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다방면에 걸친 남북간 교류가 활발해진다면 분명히 여성간의 만남도 시작될 것이다.그런데 가까운 시일 내에 그런자리가 마련된다면 어떤 모습을 예상할 수 있을까.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서독이 통일됐을 때 양측 여성들은 타의에 의해헤어졌던 친자매가 마침내 합친 것처럼 감격에 벅차 서로를 얼싸안았다.같은독일인이란 동포애에다 여성이란 약자의 동지애까지 더해져 그들의 만남은남성들의 만남보다 성공적일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감격의 순간이 지나고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그녀들은 서로가 친자매라기 보다는 의붓자매인 것같은 느낌을 가지기 시작했던 것이다.우선 사용하는 말부터가 달랐다. 일례로 독일어에는 성별이 있어 직업을 표시하는 명사도 성에 따라 형태가다르다.여성 직업인을 가리킬 경우 여성임을 표시하는 어미가 붙는 것이다. 그런데 동독 여성들은 공산정권 하에서 하던 대로 자신을 소개할 때 남성형직업명사들을 사용했다. 여성임을 표현하는 게 평등이라고 생각한 서독 여성들과 성차를 무시하는게 평등이라고 생각한 동독 여성들은 피차 상대의 표현에 귀가 거슬릴 수밖에 없었다. 서로 너무나 상이한 사회체제에서 수십년간 살아온 결과 가치관이나 삶의형태,인생 계획도 매우 달랐다.서독 여성들은 충분한 보육시설 때문에 보통두 세명의 아이를 뒀던 동독 여성들이 기대와 달리 자신을‘여성’보다는‘엄마’라고 여기는데 실망했고,동독 여성들은 많은 서독 여성들이 커리어를위해 아이를 포기하는 걸 당연시하는 사고에 놀랐다. 그토록 찬양받는 자유가 아이냐 직업이냐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라면 둘 다를 양립할 수 있었던 동독이 훨씬 나았다는 것이다.그러면서도 그녀들은 적극적이고 세련된 서독 여성들에게 주눅이 들곤 했다. 결국 그녀들은 이질적인 상대에게 화를 내게 됐고,서로간에‘동독 아줌마들’‘서독 잘난 것들’이라는 비아냥이 오가면서 무너진 장벽이 다시 쌓이기시작했다. 만약 내가 지금 평양 여성을 만나 내 소개를 한다면 어떨까.페미니스트라는말을 알아들을까. 흔한 우리 말로 여성 운동가라고 한다면? 혹시 운동선수로알아듣지는 않을까.나는 또 그녀의 말을 얼마나 알아들을까.이건 정말 보통일이 아닌 것같다.양자의 거리가 얼마나 먼가는 확연히 구별되는 외모에서도그대로 드러난다. 독일 여성의 경험을 참고로 한다면,남북한 여성간 만남의 경우 먼저 필요한것은‘같은 동포’라는 뜨거운 낭만보다는‘다름’을 인정하는 냉철한 지혜일 것같다.물론 이같은 자세는 여성에게만 국한되는 게 아닐 것이다. ◆ 김신명숙 이프 편집위원·작가
  • 분단이후 남북문단 등단한 유일 작가 정창근씨

    “남북한 정상들이 손을 맞잡은 모습을 TV로 지켜보며 흐르는 눈물을 참을수 없었습니다.죽는 날까지 조국 통일에 도움이 되는 글을 쓰고 싶어요” 재독(在獨)동포였다가 지난 97년 국적을 회복해 현재 전북 정읍시 산외면에서 노년을 보내고 있는 정창근(鄭昌根·70)씨는 분단 이후 남북한 양쪽 문단에 모두 등단한 국내 유일의 작가다. 그는 독일 국적을 갖고 있던 89년 겨울 현지 문인들의 초청으로 2주일간 북한을 방문,조선문인협회에서 발행하는 월간지 ‘문학’에 200자 원고지 160장 분량의 소설 ‘들쥐’를 발표했다.이 작품은 6·25이후 남한에서 사회개혁을 외치던 많은 지식인들이 변절해 제도권에 흡수되는 상황에서 개혁의 뜻을 굽히지 않은 한 젊은이의 좌절을 그리고 있다. 그가 남한에서 발표한 최신작은 95년 독일에서 발표한 ‘포스탐 인터체인지’란 작품을 수정 보완,지난 1월 ‘통일마당’에서 출간한 ‘브란덴부르크비가(悲歌)’다.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소설은 파독(派獨)광부인 주인공이‘남북’두개의 조국에 대해 느끼는 애증과 고뇌,동독 여인과의 사랑을 그리고 통일독일의 문제점을 예리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전북 전주출신인 그는 5·16이후 군정연장 반대추진위원으로 활동하는 등민주화운동을 벌이다 74년 간호사로 취업한 부인과 함께 독일로 건너갔다.그곳에서도 조국의 민주화와 통일운동에 깊이 관여했으며 한국의 근·현대사를 다룬 ‘솟아난 노래’등의 중편과 대하소설 ‘남산위의 저 소나무’등을 발표하기도 했다. 정읍 조승진기자 redtrain@
  • 민족종교 지도자대회

    한국민족종교협의회(회장 한양원)는 20일 서울 천도교 중앙대교당에서 민족종교 대표와 관계자 1,0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민족종교 지도자대회를 갖고종교지도자들이 우리사회의 난국극복에 앞장설 것을 다짐했다. 민족종교 대표들은 이날 ‘국난수습을 위한 결의문’을 통해 ▲평화적 남북통일과 통일한국의 새역사·문화 창조에 앞장설 것 ▲국토사랑운동을 적극전개할 것 ▲민족정신을 선양할 것을 결의했다. 협의회는 또 국내외 동포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통해 “남북간 정상회담으로 통일한국을 향한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가 성숙돼가고 있다”며 “민족화합에 지장을 주는 상극의 분열을 피하고 상생의 대화합을 위해 온 동포가 대동단결해 매진하자”고 다짐했다. 김성호기자 kimus@
  • ‘전통음악부분’은 4일 국악원서

    해외에서 활동하는 교포 예술인을 발굴하고 사기를 높이기 위한 ‘제3회 재외동포 서울예술제’가 오는 7월2∼4일 서울 예술의전당과 국립국악원에서열린다. KBS와 재외동포재단이 주최하는 이번 예술제는 2∼3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의 ‘서양음악부분’ 연주회와 4일 국악원 예악당에서 개최되는 ‘전통음악부분’ 연주회로 나뉘어 펼쳐진다. 첫날은 미국 예일대교수로 이 대학 심포니를 이끌고 있는 함신익의 지휘로소프라노 에스더 옥소리 이(브라질),바이올리니스트 김진수(홍콩),피아니스트 김진희(캐나다) 등 교포 음악가들이 무대를 꾸민다.요한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박쥐’중 ‘아델레의 래피 송’,라벨의 ‘치간느’,브람스의 ‘피아노협주곡 제1번 라단조 작품15’ 등을 연주한다. 둘째날은 재일교포 박태영이 지휘하는 코리안심포니 연주로 트럼펫의 박은도(미국),첼로의 이상경(캐나다),소프라노 루드밀라 남(러시아) 등이 출연,훔멜의 ‘트럼펫 협주곡’,드보르작의 ‘첼로협주곡 나단조 작품104’ 등을 선보인다. 4일 국악원에선 로스앤젤레스에서 활동하고 있는 임미자무용단과 일본의 민족악기중주단,독일 사물놀이단 천둥소리 등이 출연해 ‘부채춤’과 민요 ‘타향의 봄’‘삼도설장고’,단가 ‘백발가’ 등 다채로운 공연을 펼친다.오후 7시30분.(02)3463-6265이순녀기자
  • 金대통령, 본사 초청 국군모범용사 격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19일 “평화를 원하면 전쟁에 대비해야 하고 전쟁에 제대로 대비하는 자만이 평화를 향유할 수 있다”면서 “남북간 평화가이뤄질 때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방심하지 말고 방어태세를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이날 오전 대한매일(사장 車一錫)이 선정한 ‘국군 모범용사’부부 142명을 청와대로 초청, 다과회를 갖고 “완전한 평화가 구축될 때까지북한에 대비해야 한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김대통령은 특히 남북정상회담과 관련,“북한에 가보니 우리는 북한사정을잘 모르는데 그들은 TV와 심지어 잡지 등을 통해 남측 사정을 잘 알고 있다”며 “우리도 북을 바로 알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북한동포들도 남녘동포들에 대한 그리움이 있고,전쟁 없이 평화적으로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전하고 “남쪽하고 잘 지내야겠는데이 정부가 지나면 태도가 바뀔 것에 대한 걱정까지 하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양승현기자 yangbak@
  • [사설] 냉전의식부터 청산하자

    남북정상회담은 우리 사회에 이른바 ‘김정일 쇼크’를 안겨주었다.그동안부정적인 이미지로 각인된 북한과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에 대한 인식의혼란이 온 것이다.그 충격은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하나는 ‘북한것’에 대한 호기심과 선망,이를 이용하는 상업주의 형태이며 또 하나는 정체성 혼란에 대한 당혹감이다.젊은 세대들은 대체로 전자의 경향을 보이고 6·25를 기억하는 나이든 세대들은 후자의 경향을 보인다. 어느쪽이든 이같은 충격은 바로 반세기에 이르는 분단이 가져 온 단절과 냉전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상대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고정관념에 사로잡힌 결과인 것이다.한 정신과 의사가 진단했듯이 겉으로는‘북녘 동포도 우리 민족’이라는 긍정적인 생각을 지닌 이들도 잠재의식 속에서는 북한을 ‘적(敵)’으로 생각하는 냉전의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역사적’이라는 말로도 그 엄청난 의미를 표현하기 힘든 남북정상회담과‘6·15 선언’이 결실을 맺도록 하기 위해서는 우리 국민의식 속에 자리잡은 이 냉전의식과 레드콤플렉스부터 청산해 나가야 할 것이다.그 노력은 남과 북 양쪽에서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남북의 두 정상과 책임있는 당국자간의 지속적 대화와 교류 협력이 아무리 잘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국민의식의 변화 없이는 남북 통일의 길은 가시밭길이 될 수밖에 없다.물론 남북 교류가 이루어지면 국민의식도 자연스럽게 변하겠지만 그것은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회장 金學俊)가 “급작스러운 남북관계 변화에 따라교과서 내용과 현실의 불일치,북한에 대한 교사의 교육지도 혼선 등이 예상된다”면서 정부 당국이 이른 시간내에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교과서내용의 검토 보완과 교사들에 대한 지도 지침 등을 조속히 마련해 제시할 것을 요구한 것은 그런 점에서 바람직한 일이다.교육부도 내년부터 초등학교와 중학교 교과서의 북한 관련 내용을 대폭 개편할 방침이라니 다행이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이 민족사의 대전환,아니 세계사의 대전환을 이루고 통일의 이정표를 세웠지만 이제 출발점에 섰을 뿐이다.앞으로 숱한외부문제와내부문제에 맞닥뜨리게 될 터인데 20세기의 낡은 유산인 냉전적 요소를 말끔히 청산하는 것이 무엇보다 앞서 해결해야 할 내부문제다.북한을 과대평가하거나 성급한 환상을 가져서도 안되지만 북한에 대한 그동안의 잘못된 인식을 하루빨리 바로잡는 노력을 국민 각자가 해야 한다.지리적 분단보다 더 무서운 가슴속 깊은 골을 메우고 증오와 불신을 이해와 믿음으로 바꾸어야 할 때다.남북이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상대방을 인정하는 것이 통일로 향한 가장 효과적이고 탄탄한 지름길이 될 것이다.
  • 프로축구‘꼴찌들의 반란’

    프로축구 정규리그 삼성디지털 K-리그가 경기일정의 3분의 1을 소화한 가운데서도 여전히 종잡을 수 없는 기상 이변을 연출하고 있다. 팀당 27게임 가운데 9게임씩을 마친 18일 현재 팀 순위에서 안양 LG·성남일화·대전 시티즌이 차례로 1·2·3위를 차지하는 이변을 보였다.이들 3팀은 지난해 정규리그에서 나란히 7∼10위에 그쳤던 팀들이다.올시즌 대한화재컵에서도 성남만이 4강전에 나섰을 뿐 안양과 대전은 각각 A·B조 꼴찌를 차지했었다. 특히 지난해 정규리그 9위에 머물렀던 안양은 6경기 승리를 온전히 90분경기 승으로 챙겨 가장 안정된 전력을 유지했음을 보여줬다.‘100만달러 짜리용병’ 드라간이 정규리그 초반까지의 부진에서 서서히 벗아나고 있고 ‘신의손’의 복귀로 수비력이 보강된 탓이다.지난해 꼴찌 성남 역시 재일동포출신 박강조의 영입으로 팀 전체에 활력이 생겼고 대전은 김은중의 부활과함께 뜻하지 않은 선전을 이어가고 있다. 반면 지난해 정규리그 우승팀 수원 삼성과 준우승팀 부산 아이콘스는 각각8·9위로 밀려나 있다.지난해 중위권에서 올시즌 4강으로의 도약을 노리는울산 현대는 일본으로 건너간 김현석의 공백을 메우지 못해 1승8패로 극심한부진을 거듭하고 있다. 수원과 부산은 스트라이커 샤샤와 안정환 등 대표적골잡이들이 부진을 보이면서 동네북 신세로 전락했다. 박해옥기자
  • 정상회담 결산 좌담/ “통일문제 자주적합의 큰 성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 14일 밤 합의, 서명한 5개항의 남북공동선언에 7,000만 민족과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대한매일은 좌승희(左承喜) 한국경제연구원장,전인영(全寅永) 서울대 사범대교수(국제정치학)의 긴급 좌담회를 마련,남북공동선언의 의의와 각 분야별 실천방안을 짚어봤다.좌담은 김삼웅(金三雄) 대한매일 주필의 사회로 진행됐다. □김삼웅 주필 남북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5개항은 무엇보다 한반도 문제를당사자간에 해결하자는데 의의가 있다고 봅니다.한번의 만남으로 이런 정도의 합의가 도출된 것은 세계 정상회담 역사상 초유의 일입니다.더 이상 분단과 분열의 역사를 원하지 않는다는 7,000만 민족의 염원과 소망이 담보돼 이런 결과를 도출해 낸 것으로 생각합니다.공동선언의 의의부터 말씀해 주시죠. □전인영 교수 말씀하신대로 사상 초유의 정상회담이 성사됐다는 데 의미를부여할 수 있습니다.게다가 가시적인 성과를 이뤄내 앞으로 통일의 중요한초석이 될 수 있는 합의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특히김정일이라는 북한의최고 지도자가 전면에 나섰다는 점에 의의를 둘 수 있습니다. □좌승희 원장 남북관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합니다.남북이 적대관계에서 협력관계로 바뀌고,그동안 한반도는 주변 강대국의 입김에 좌우됐으나 이제 당사자 문제로 전환됐습니다.북한 입장은 불투명하지만 남한은 북한을 대화의 실체,대화 파트너로 인정하는 새로운 사회적합의가 이뤄졌다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 □김 주필 각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5개항 중 가장 중요한 문제가 통일문제의 자주적 해결이 아닐까 합니다.이는 한민족이 ‘민족 자주’라는 차원에서남북이 통일과 협력관계를 유지하고,배타적인 의미가 아닌 자주적으로 통일문제를 풀어 나가자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전 교수 중요하지만 어려운 문제입니다.한반도의 통일과 평화는 주변국과미묘하게 얽혀 있고,주한미군 문제는 섣불리 다룰 수 있는 사항은 아니라고생각합니다.이 문제는 시간이 걸리고 많은 진통이 따를 것입니다.자주적 해결을 선언했다고 해서 미국이나 주변국을 배제한다는 자주선언으로 봐선 곤란할 것으로 보입니다. □좌 원장 그렇습니다.분단의 역사에서 보면 주변국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선언적 의미가 있다 하더라도 남북 문제를 새롭게 이끌어가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것으로 봅니다.그러나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는 적대적 관계를 청산하고 평화 공존을 하겠다는 내용이 빠져 아쉽습니다. □김 주필 남한의 연합제(Confederration)와 북한의 낮은 연방제(Loose Form of Federration)가 공통점이 있다고 합의했습니다.남측이 주장하는 ‘국가연합→연방국→통일국가’로 이어지는 3단계 통일론의 첫 단계와 북한의 고려연방제의 초기 단계가 비슷하다고 해서 ‘1단계 연합-북한의 낮은 연방제’의 통일을 지향하겠다는 것인데요. □전 교수 두 방안은 서로 불가분의 관계이기 때문에 이상할 것이 전혀없습니다.이 문제는 초기 단계에 서로 공통점이 많습니다.어차피 이질적인 요소가 많고 특수성을 인정하려면 연방제를 해야거든요.지방자치제도 연방제 요소가 있습니다.앞으로 교육 등 문제가 있고,우리도 많은 연구를 해야 할 것입니다.그동안 터부시하고 우리가 너무 소홀히 해 왔습니다.남북이 서로의공통점을 연계하는 선에서 결과가 나왔다는 데 큰 의의가 있습니다. □좌 원장 우리측의 연합과 북측의 연방제는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전자는 2국 체제를 인정하는 것이고 연방제는 1국가에서 인정하는 것 아니겠습니까.북한의 주장은 정치적 통일을 빨리 하자는 내용이 강하고 연합체는 정치적인 통일이 안돼도 경제 문화 등의 연합이 가능하다는 말입니다.중국과 홍콩간은 ‘1국 2체제’인데 연합과 연방제를 절충하다 보면 그런 형태로 갈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통일을 지향하는 데 있어서 큰 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김 주필 가장 시급하고 실천 가능성이 큰 것이 8·15 이산가족 만남과 비전향 장기수 문제입니다.현재 70세 이상 이산가족은 한해 1만명 이상 사망하고 있어 현실적이고 시급합니다.또 장기수 송환은 이미 상호 공존적인 관계가 이뤄진 만큼 송환에 국민적인 비난은 없을 것으로 봅니다만. □전 교수 이산가족 문제는 이번 회담에서 가장 기대했던 문제입니다.만일김대통령이 해결을 못했으면 ‘뭣하러 갔냐’는 비난이 쏟아질 수 있었습니다.얼마나 빠른 속도로 이뤄질 것인가의 문제가 남았습니다.또 납북어부 문제도 함께 거론돼야 합니다.장기수는 보수적인 세력도 비판할 수 없는 성격의 문제로 조속히 해결될 것으로 보입니다.이산가족 문제는 제도화 시켜야합니다.한번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금강산 관광처럼 어떤 일이 있어도 진행시키는 제도화가 필요합니다.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다른 것도 안될것입니다. □좌 원장 이번 정상의 만남이 너무 솔직하고 있는 그대로 보여줘 명분론이라든지 서로의 자존심을 뛰어넘는 민족의 통합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만큼 생각보다 쉽게 풀릴 것입니다. □김 주필 이번 회담의 성사에는 경제문화교류 활성화가 촉매제가 됐다고 봅니다. 앞으로 민간협력이라든지 해외동포 투자 등이 원활하게 이뤄지려면 이중과세 방지문제,투자문제,상거래 투자협정 등이 마련돼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많습니다. □좌 원장 경협은 정부차원이 아니라 민간주도로 이뤄질 수 밖에 없습니다.남한은 북한과 달리 시장경제이기 때문에 정부가 기업 의사에 반해 경협을강요할 수 없다는 것을 북한도 인식해야 합니다.기업들의 불확실한 진출과관련해 위험부담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기업의 위험을 완화하는 장치를 남북 공동으로 만들어야 합니다.중요한 것은 균형발전입니다.종속관계가 아닌 남북 상호 발전 문제인데 이는 정보화·인터넷·벤처산업이 이끌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북한이 컴퓨터와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앞서 나가는데경제 교류협력이 기존 전통산업보다는 새로운 IT산업에서 장려돼야 합니다. □전 교수남북 균형발전은 통일의 기반 조성과 이질감·적대감 해소에 중요한 요소인데 문제는 재원입니다.10조원을 10년간 투자해 나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해외 자본을 끌여들여 추진하는 방법도 있지만 북한은기대를 많이 하고 우리 능력이 한계있을 때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좀더자유롭게 민간기업이 북한에 들어갈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곧 실무적으로이뤄질 것으로 기대해 봅니다, □김 주필 문화교류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독일은 통일 이전에 브레히트전집을 공동으로 출간했습니다.70년초부터 시작한 이 전집은 이제 34권째 나올 예정입니다.우리도 신채호 전집을 출간한다든지 남북간에 정신적인 교류가 선행돼야 일체감이 형성된다고 보는데요. □전교수 활발한 교류가 예상됩니다.평양교예단이 오고 체육교류가 이뤄 지는 등 이미 시작됐습니다.학술분야도 활발하게 이뤄질 것입니다. □김 주필 조속한 당국간 대화를 개최해야 합니다.상호 비방 중단,연락사무소와 핫라인 설치 등 당국간의 회담이 실천돼야 하는데요. □전 교수 각 분야별 후속조치를 취해 나가야 합니다. 남북기본합의서에서 이미 주장한 것을 이행하는 단계로 들어갈 것입니다.앞으로 양측 정상이 물꼬를 튼 만큼 이제는 직접 가서 대화를 하는 게 중요합니다. □좌 원장 두 정상이 쉽게 대화하고 마음을 열어 앞으로 당국 대화도 쉽게풀릴 것입니다. □김 주필 김 대통령이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을 제안했고 신뢰구축을 위해답방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전 교수 이번 회담에서 가장 놀랐던 것은 북한의 새로운 면을 발견한 것입니다.북쪽도 남한이 열심히 살려고 뛰는 모습을 보면 더욱 달라질 수 있습니다.가능하다고 봅니다. □좌 원장 우리 국민 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김정일 쇼크’에 빠져 있습니다.답방은 김 위원장의 위상을 다시 한번 세계에 확인시켜주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당국 대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적당한 시점을 봐 답방을 결정할 것으로 보입니다. □김 주필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에 신 질서가 형성되고 있습니다.‘한반도문제의 한반도화’가 핵심고리인데 주변 4강의 움직임을 간략하게 설명해 주십시오. □전 교수 새로운 역학 구도형성의 시작 단계입니다.주변 4강은 자국의 국익이 어떻게 영향 받을까 신경쓰고 있습니다.미국은 그동안 추진한 세계 전략구도가 흐트러지는 난처한 입장일 것입니다.기득권자인 미국은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행정협정개정에 대한 요구에 대한 처리가 주목됩니다.중국은 다소 여유가 있습니다.김 위원장이 회담에 앞서 중국을 방문,상호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일본은 이번 회담으로 소외되는 것이 아닌가 초조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일본으로서도 그냥 앉아만 있을 수 없다는 압박에 시달릴 것이고,러시아는 태평양 세력인데도 한반도에서 정책실패로 상실한 영향력을회복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좌 원장 자주적 해결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천명함으로써 ‘승자는 우리’라고 선언한 것입니다.이번 기회로 미국과 일본은 북한과 가까워질 것입니다.미·일로부터 경제제재 해제 등 수혜를 받을 가능성도 큽니다. □김 주필 통일시대로 가는 과제는 무엇일까요. □좌 원장 논의한 모든 이야기가 한반도에 더이상 전쟁은 없다는 가능성을보여 주었습니다.이 점을 분명히 부각시키고 서로를 인정해서 남북 국민에게공존공생(共存共生)의 희망을 안겨주는 것이 필요합니다.비록 산업사회에서뒤졌지만 국가 정보화에 앞서면 선진국이 될 수 있습니다.앞으로 전쟁의 불안이 없고 평화공존의 기틀을 마련하면 세계의 주도국이 될 수 있습니다. □전 교수 우리에겐 참 오랜만의 낭보였습니다.일시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면 안됩니다.과거 7·4 남북공동성명이라든지 남북공동선언 등이 ‘악재’가나타나면 힘을 잃는 악순환을 되풀이 했습니다.7,000만이 안심하고 경제적으로 풍요롭게 살수 있는 계기가 되길 기원합니다. 정리 강동형 조현석기자
  • “공동선언 실천 힘 모으자”

    시민·노동단체들은 15일 일제히 남북공동선언 채택을 환영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참여연대는 성명을 통해 “남북 정상이 상당한 합의에 도달한 것은 냉전적대결의식과 적대감을 넘어서겠다는 전향적인 태도로 받아들여진다”면서 “작은 차이에 연연하지 않고 5개항의 합의사항을 이끌어낸 것은 한반도 평화정착의 획기적 전기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경실련 통일협회는 “전쟁의 위협을 제거하고 항구적인 평화를 정착하려면군비축소 등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시급히 나서야 한다”면서 “국가보안법을 비롯해 우리 사회의 냉전적 요소들을 과감히 청산하는 후속작업도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는 “남북정상회담은 민족의 최대 아픔인 분단을 극복하는 데 있어 전환점이 됐다”면서 “남북 동포 모두는 남북공동선언을 실천하기 위해 지혜와 힘을 모으자”고 호소했다. 한국노총은 “민간 차원의 교류 확대를 상호 신뢰회복의 첩경으로 보고 북한 노동계와의 다각적인 교류를 추진하겠다”면서 “해상산업노련의 외국인선원을 북한선원으로 대체하는 사업,철도노조를 중심으로 한 남북철도사업,예능인노련을 중심으로 한 남북한 예능인 교류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노총도 “오는 8월 서울에서 열릴 예정인 ‘2000 통일염원 남북노동자축구대회’ 성사 등 남북 노동자의 자주교류와 통일의 밑거름을 마련하는 데 적극 나서겠다”면서 “북쪽의 조선직업총동맹과 남북노동자축구대회를 협의하기 위한 회담을 열어 추진계획을 합의할 것이며,축구대회 이전에 남북노동자 통일토론회를 여는 방안을 적극 추진해 남북노동자 자주교류의 폭을 넓혀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밖에 온겨레평화대행진 행사준비위원회,정치개혁시민연대,전국철거민협의회 등도 환영성명을 발표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
  • [사설] 평화선언, 남북지도자를 성원한다

    통일이 이뤄진 한반도에 사는 우리 후세대는 2000년의 6월을 뭐라고 부를까?‘평화’또는 ‘통일’이라고 부를지 모른다.아니면,평화와 통일의 ‘물꼬를 튼 그해 6월’이라고는 부를 것이다.그러나 분단을 안고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는 2000년 6월을 ‘감격’이라고 부르자.남과 북으로 갈린지 55년만에 두 정상이 처음으로 만나 ‘6·15남북공동선언’을 발표하는 ‘기적적인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민족사적으로 한 획을 크게 긋는 이 선언을 우리가 굳이 기적적이라고 표현하는 까닭은 우리가 그동안 역사적 또는 민족사적이라는 용어를 함부로 써왔기 때문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허심탄회하게 논의한 끝에 내놓은 이 ‘6·15선언’은 참으로 ‘역사적’이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새삼스럽게 깨달은 사실이지만 ‘평양’은 비행기로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곳이다.그럼에도 김 대통령은 지난 13일 대한민국과 조선인민공화국의 항공정보기구의 ‘인수’·인계’를 거쳐 평양에 갔다.“민족에 대한뜨거운 사랑과 현실에 대한 냉철한 인식을 가지고 평양에 간다”는 김 대통령을 환송하면서 대다수 국민들은 남북 정상이 만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의미를 두었던 게 사실이다.물론 이러저러한 기대도 있었다.분단 55년인데어찌 그러지 않겠는가.청와대 인근 효자동에서 이북에 고향을 둔 한 노인이김 대통령에게 ‘빛바랜 흑백사진’을 내보이며 “이산가족이 상봉하거나,생사여부라도 확인할 수 있도록 애써 달라”며 울먹이는 광경을 텔리비전을 통해 지켜보았던 국민들 가운데 콧날이 시큰하지 않았던 사람이 있었겠는가.김 대통령의 말 그대로 통일은 우리 남북 동포 모두의 절대명제이자 민족적 숙명이다.김 대통령은 이번 평양회담에서 우리 겨레가 통일로 가는 이정표를세운 것이다. 6·15선언은 통일문제의 자주적 해결·양쪽 통일방안의 공통성 인정·이산가족 8·15 교환방문·경협과 민족경제 균형발전·합의 실천을 위한 당국간대화 조속개최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이번 ‘평양회동’을 남북 정상이 처음으로 만나 서로 의중을 탐색하는것 만으로도 성공으로 기대했던 국민들로서는 남북공동선언은 엄청난 성과가 아닐 수 없다.특히 두드러지는 대목은자주적인 통일문제해결을 비롯하여 이산가족의 교환방문과 당국간의 조속한대화개최,그리고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 답방(答訪)약속이다.이같은 가시적인 성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선언 내용이 과연 실천될것인가’에 있는 것 같다. 실제로 남북문제에 있어 ‘역사적 문건’은 한 두개가 아니다.72년 ‘7·4공동선언’도 있고 92년 ‘남북 기본합의서’도 있다.그러나 그러한 역사적 문건들은 당장은 역사 속에 머물러 있다.그렇게 된 배경에는 남북 대표들이 ‘상부의 명에 의하여’서명했다는 형식상의 문제도 있지만,남북 정권 담당자들이 남북문제를 정권 유지의 방편으로 써먹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6·15선언’은 다르다.남북 정상이 직접 얼굴을 맞대고 오랜시간 논의를 한 끝에 우리민족과 세계 앞에 내놓은 문건이기 때문이다.정부당국은 선언 내용을 차질 없이 실천하기 위해 정치(精緻)한 체제를 마련해야 한다.통일을 향한 희망의 씨앗을 소중하게 키워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6·15선언’을 두고 민주당과 자민련은 물론 한나라당도 “평화와통일을 위한 남북정상의 분위기 조성 노력을 높이 평가하며,이러한 노력이구체적인 실천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는 성명을 냈다. 김 대통령은 평양으로 가기 앞서 “본인의 임기중에 통일을 기대하지 않으며 통일문제에 있어 다음 정권의 몫을 남겨 두겠다”고 확언한 바 있다.‘6·15선언’은 김 대통령의 대북 포용정책의 가시적 성과임이 분명하지만,그 밑바탕에는 오늘날 한반도에 살고 있거나 분단의 한을 품고 이미 세상을 떠난동포들의 염원이 깃들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통일문제는 남북 모두 정권 차원에서 다룰 사안이 아니며,하물며 당리당략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는 뜻이다.그럼에도 한나라당은 ‘6·15선언’의 ‘자주적 통일’부분과 관련해서 북한의 ‘주한미군 철수 주장’과 연계된 것은 아닌지 의혹을 제기하고 나왔다.국민들이 보기에 한나라당의 그같은 의혹 제기는 김 대통령의 통일 노력의 발목을 잡는느낌을 준다.국민들은 통일을 향한 노력에 관한 한 초당적인 뒷받침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6·15 평화선언’의 기적을 이뤄낸 남북 두지도자의 용기와 민족애에 힘찬 박수와 성원을보낸다.
  • 통일기금 1억 기탁 경남 하동 산림경영인 김용지씨

    경남 하동의 전문 산림경영인 김용지(金龍智·72·하동군 하동읍 읍내리 333의1)씨가 통일기금 1억원을 기탁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화제다. 김씨는 지난 13일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역사적인 북한방문을 지켜보다겨레의 염원인 남북통일에 정성을 보태기로 결심하고 1억원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경남지회에 전달했다. 하동읍에서 태어난 김씨는 모진 가난으로 살길이 막막하자 10살 되던 해인지난 38년 무작정 일본으로 건너가 성공하고 돌아온 재일동포.일본인들의 냉대와 멸시 속에서 막노동을 하고 생활했지만 정직과 성실을 생활신조로 삼아 열심히 노력한 끝에 성공했다. 지난 70년 귀국한 김씨는 다른 재일동포들과 달리 육림사업을 시작했다.6·25당시 조국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해있을때 징집적령이 됐지만 외국에 살면서 참전하지 못한 것이 한으로 남아 이를 풀기위해 나무심기에 나섰던 것이다.만약 이때 국내에 살았더라면 전사했을지 모르는데 외국에서 일신을 편히 살았으므로 늦었지만 조국에 보답하기 위해서였다. 그동안 김씨가 심은 나무는 모두 38만여그루로 편백나무와 느티나무,화백나무,낙엽송 등 경제수종이며 면적은 129㏊에 달한다.나무심기에 나선 이후 매일 도시락을 싸들고 조림지를 살펴보고 있으며,특히 산불예방기간에는 하루도 빠지지 않는다. 이같은 공을 인정받아 올해 식목일에는 정부로부터 금탑산업훈장을 받기도했다.김씨는 “온 국민이 열망하는 조국통일에 조그만 보탬이 됐으면 하는생각에서 성금을 냈다”며 “하루빨리 통일이 되어 남북으로 흩어진 이산가족들이 마음놓고 왕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동 이정규기자 j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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