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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실 왜곡·자의적 해석 ‘불통’에 발목 잡힌 朴

    사실 왜곡·자의적 해석 ‘불통’에 발목 잡힌 朴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팩트(사실)에 기초하지 않은 ‘과거사 인식’에 빠져 있다는 의문이 또다시 제기되고 있다. 팩트가 명확한 법원의 판결마저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데다 당내의 어느 누구도 이를 지적하지 않고 소통하지 않는다는 데서 문제가 더 심각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친박(친박근혜)계 의원은 22일 “수차례 법원 판결문을 읽고 관련 학자들과 토론까지 했다.”고 설명했지만, 인혁당 사건의 “두 가지 판결” 발언과 정수장학회 관련 발언을 놓고 볼 때 박 후보의 과거사 인식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다 보니 정수장학회 논란을 마무리 지으려던 자리가 오히려 논란을 확산시키고 인혁당 사건에 이어 거듭 과거사에 발목을 잡히게 되는 계기가 된 것이다. 특히 강압 논란과 부일장학회 승계 거부 발언은 당내에서도 비판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구체적으로 정수장학회 관련 발언을 보면 박 후보의 과거사 인식이 잘못된 팩트에서 비롯됐음이 드러난다. 우선 정수장학회 설립 과정에서의 ‘강압 논란’이다. 박 후보는 “5·16 때 부패 혐의로 징역 7년형을 구형받고 그 과정에서 처벌받지 않기 위해 먼저 재산 헌납의 뜻을 밝혔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재산 헌납 과정에서의 강압을 인정했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후보가 말실수를 했다.”고 해명했지만, 박 후보가 작심하고 마련한 기자회견이라는 점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박 후보는 또 “정수장학회는 부일장학회를 계승한 것이 아니라 새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밝혔고, 특히 정수장학회 재산과 관련해 “김지태씨가 헌납한 재산이 포함된 것이 사실이지만 국내 독지가뿐 아니라 해외 동포들까지 많은 분들의 성금과 뜻을 더해 새롭게 만든 재단”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 또한 사실과 다르다. 참여정부 시절의 과거사정리위원회는 1962년 정수장학회(당시 5·16장학회)의 재산 대부분을 부일장학회 소유의 재산으로 적시했다. 또 정수장학회가 1992년 펴낸 ‘정수장학회 30년사’는 5·16장학회를 부일장학회의 연장선상이라고 언급했다. 박 후보의 발언이 나오기까지 과정을 보면 박 후보가 ‘불통’(不通)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이번 회견 내용은 박 후보와 극히 일부 참모진만 알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회견을 앞두고 한 친박계 의원은 “발표 전문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라는 자조 섞인 말을 했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朴 “김지태, 부패 처벌 면하려 재산헌납”… ‘강탈’ 정면부인

    朴 “김지태, 부패 처벌 면하려 재산헌납”… ‘강탈’ 정면부인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21일 내놓은 정수장학회 논란에 대한 해법은 ‘팩트(사실) 바로잡기’와 ‘단절 선언’ 두 가지로 요약된다. 논란을 더 이상 확대 재생산하지 않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 그러나 ‘국민 눈높이’에 부합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찍힌다. 특히 최필립 이사장이 이날 사퇴 거부를 밝힘에 따라 정수장학회 논란은 확대될 가능성이 커보인다. 박 후보는 가장 먼저 “잘못 알려진 부분이 있다.”면서 야당의 정치 공세에 조목조목 반박했다. 우선 박 후보는 정수장학회와 자신의 연관성에 대해 “저의 소유물이라든가 저를 위한 정치활동을 한다는 야당의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면서 “정부와 교육청의 감독과 관리를 받고 있고 다른 의도를 가진 사업을 조금이라도 벌인다면 관련 기관에 의해 드러날 수밖에 없는 투명한 구조”라고 일축했다. 이어 “저에게 정치자금을 댄다든지 대선을 도울 것이라든지 이런 의혹 제기 자체가 공익재단의 성격을 잘 알지 못하고 말하는 것이거나 알고도 그렇게 주장한다면 그것은 정치 공세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박 후보는 정수장학회의 전신인 김지태씨의 ‘부일장학회 강탈’ 논란에 대해서도 “정수장학회는 부일장학회를 승계한 게 아니라 새로 만들어진 것”이라면서 “김지태씨가 헌납한 재산이 포함돼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국내 독지가뿐만 아니라 해외 동포들까지 많은 분들의 성금과 뜻을 더해 새롭게 만든 재단”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김지태씨는 부패 혐의로 징역 7년형을 구형받기도 했다.”면서 “그 과정에서 처벌받지 않기 위해 먼저 재산 헌납의 뜻을 밝힌 것”이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박 후보는 본인을 옥죄고 있던 역할론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물론 박 후보가 “(정수장학회) 이사진은 명칭을 비롯해 모든 것을 잘 판단해 주셨으면 감사하겠다.”고 언급한 부분은 “법적으로 무관하다.”는 기존 입장에서 진일보한 측면은 있다. 박 후보 주변에서는 “결별 선언”이라는 해석도 내놓는다. 최 이사장의 거취에 대해서도 “이사진이 국민 의혹이 없도록 현명하게 판단해 달라.”고 밝혔다. 이는 최 이사장의 자진 사퇴를 요청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와 관련해 캠프 관계자는 “정수장학회를 비롯한 과거사 문제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야당의 공세에 대한 반박은 ‘직접 화법’으로 채워진 반면 이번 논란에 대한 해결의 공은 정수장학회 측으로 넘기는 ‘우회 수단’을 선택하는 모양새가 됐다. 박 후보 스스로 제시한 해법이 부족하다는 의미다. 이는 국민의 눈높이와도 차이가 있다. 서울신문과 여론조사기관인 엠브레인이 지난 16~17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정수장학회 논란에 대해 ‘박 후보가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43.9%)는 의견이 ‘야당의 정치 공세’(20.1%)라는 견해보다 2배 이상 많다. 이 때문에 박 후보 진영의 의도와 달리 향후 논란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게다가 최 이사장이 이날 ‘사퇴 불가’ 입장을 내놓은 만큼 논란에 대한 해법을 놓고 여야 간 정치 공방이 더욱 거세질 가능성도 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얼굴 반쪽이 암 덩어리인 ‘버블맨’ 충격

    얼굴 반쪽이 암 덩어리인 ‘버블맨’ 충격

    얼굴 반쪽이 암 덩어리로 뒤덮인 채 사는 40대 남성의 사연이 방송을 통해 알려져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16일(현지시각) 미국 디스커버리 교육채널 TLC에 따르면 오하이오주(州) 영스타운에 사는 에드 포트(42)는 왼쪽 얼굴에 커다란 암 덩어리가 달려있다. 이 때문에 그는 ‘코끼리 남성’ 혹은 ‘버블맨’으로 불린다. 포트는 태어날 때부터 남들과 달리 왼쪽 얼굴이 유난히 튀어나와 있었다. 당시 의료진은 그러나 자라면서 빠지게 되는 포동포동한 살(baby fat)일 것이라며 부모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포트의 증상은 전혀 호전되지 않아 정밀 진단을 받게 됐다. 그 결과, 그는 제2형 신경섬유종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이 질환은 신경조직이 계속 자라나 종양을 형성하는 암의 일종이다. 포트의 경우, 얼굴 왼쪽은 거의 모두 암 덩어리다. 암세포는 계속 자라 왼쪽 눈을 거의 덮어 실명 단계다. 심지어 이 종양은 그의 왼쪽 턱까지 확대돼 뼈 일부마저 사라졌고, 왼쪽 귀는 함몰돼 잘 들리지도 않는다. 그는 지금까지 수차례 암 제거 수술을 받았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현대 의학으로도 종양의 뿌리를 완전히 제거하지 못해 그는 암 덩어리와 함께 평생을 살아가야만 할 처지다. 비록 이 종양은 외적인 문제 이외에 특별히 해롭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하지만 만약 신경이나 다른 조직을 압박하면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고 한다. 포트는 이날 방송을 통해 “그래도 삶은 살아야 할 가치가 있기 때문에 절대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나의 소망은 병의 완치가 아닌 머리에 맞는 선글라스와 모자를 써 보는 것”이라고 말해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줬다. 한편 이날 사연은 ‘마이 자이언트 페이셜 튜머’(My Giant Facial Tumor)라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공개됐고 이 방송 이후 현재 미국 각지에서는 포트를 후원하겠다는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TLC 캡처 윤태희기자 th20022@seoul.co.kr
  • [바로잡습니다]

    ●바로잡습니다 서울신문 10월 13일 자 23면 재외동포재단 김경근 이사장 인터뷰 기사에서 지난해 재외한글학교 지원금액을 685억원에서 68억 5000만원으로 바로잡습니다.
  • “싸이 성공엔 동포 활약 커… 유대인·中 같은 결속 필요”

    “싸이 성공엔 동포 활약 커… 유대인·中 같은 결속 필요”

    “세계 곳곳의 우리 동포들도 유대인이나 중국인 못지않은 네트워크를 구축해 모국과 상생해야 한다.” 세계 726만 재외동포와 대한민국 간의 연결 고리 역할을 하고 있는 김경근(60) 재외동포재단 이사장은 11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외교센터 재외동포재단 사무실에서 “전 세계 금융계를 장악한 유대인들은 결속력과 네트워크가 대단해 주요 회사에 빈자리가 생기면 일치단결해 자기 동포를 그 자리에 앉힌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 이사장은 “30여년의 외교관 생활 동안 외국 공관을 두루 거치면서 재외동포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다.”고 덧붙였다. 오는 16일 세계한상대회를 앞둔 김 이사장은 “지난해 아프리카 가나에서 우리 동포들이 한인회관을 건립해 한국인의 위상을 높인 성공 사례도 있다.”고 소개했다. 김 이사장에 따르면 가나에는 수산업과 건설업에 종사하는 우리 동포들이 1000여명 정도 거주하고 있다. 그는 “적은 숫자지만 이분들이 현지에서 활발한 경제활동을 하고 있고 한인회관에서 결혼식장이나 축구장 등을 운영해 현지인의 호응이 높다.”고 밝혔다. 그는 외교통상부 재외국민영사국장과 재외동포재단 기획이사를 지낸 재외동포 전문가다. 올해로 11년째를 맞는 세계한상대회는 한민족의 혈통을 지닌 무역, 외식업, 전문직 등 경제활동 종사자 3000여명이 정보를 교류하는 장이다. 김 이사장은 “2007년 뉴욕 총영사로 근무하던 시절 많은 외국인들이 제가 상관으로 모셨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 대해 물어봐 금방 친해졌다. 성 김 주한 미국대사나 김용 세계은행 총재 등을 배출해 미국 내 한국계의 위상도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국제적인 가수 싸이의 성공에는 개인의 노력도 있었겠지만 한인 명사들의 활약이 밑바탕이 되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30대의 차세대 한인 지도자들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차세대 한인 지도자를 키우기 위해 재외동포재단이 역점을 두는 사업은 모국어 교육이다. 재단은 전 세계 1868개 재외한글학교에 지난해 68억여원을 지원한 바 있다. 김 이사장은 “젊은 세대에 우리 글과 역사를 가르쳐 우리 정체성을 심어주는 게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파독 간호사, 年매출 1400억원 호텔리어로

    파독 간호사, 年매출 1400억원 호텔리어로

    “독일 전체에서 우리 호텔을 모르는 사람은 없어요. 그런데 제가 우리 도시에서는 유일한 한국인입니다. 항상 ‘내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니까 잘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았습니다.” 정명렬(64) 사장은 파독 간호사 출신으로 유럽에서 성공한 동포 경제인으로 꼽힌다. 그는 독일에서 네 번째로 큰 주(州)인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주의 위커문데 시에 있는 호텔 ‘포메른밀러’를 운영하고 있다. 3층 건물에 객실 42개, 고급 레스토랑, 세미나실, 사우나실, 마사지실, 볼링장, 수영장 등을 갖춘 이 호텔은 연간 매출이 1억 유로(약 1432억원)에 이른다. 그는 지난 9일부터 충남 예산군 덕산 리솜스파캐슬에서 세계국제결혼여성총연합회 주최로 열린 제8회 국제결혼여성세계대회에 참가하고 있다. 정 사장은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주 총리로부터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경제상’을 받았고 주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세계한민족여성재단으로부터 ‘세계를 빛낸 여성 사업가 25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경남 진해가 고향인 정 사장은 2남4녀 중 막내로 태어났지만 가난에 찌든 가족을 돕겠다는 생각으로 파독 간호사의 길을 택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에 있는 간호보조학원을 나와 서울 을지로 메디컬센터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다 1970년 1월 29일 서독행 비행기에 올랐다. 1977년 목공소에서 일하는 성실한 남편을 만나 독일에 눌러앉았다. 호텔리어로 변신한 것은 시아버지의 권유 때문이다. “시아버지가 고향인 위커문데 시에 땅을 사서 별장을 짓고 낙향하기로 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계획을 변경해 제게 ‘호텔을 지어줄 테니 한번 경영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을 하시는 거예요.” 1997년 문을 연 뒤 고객을 최우선으로 하는 서비스로 손님이 모이자 정 사장은 독일인들에게 한국 문화를 알리기 위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처음에는 한국 전통문화 공연을 1시간 정도 선보였고 불고기, 김치, 나물, 잡채 등 한국 음식도 뷔페로 제공했다. 매년 11월 첫째주 토요일 한국 문화 행사가 열리는 날에는 호텔 앞 게양대에 대형 태극기를 걸어 놓는다. 올해는 다음 달 3일 행사가 열린다. 또 매년 국제녹색주간 박람회에 참가해 주를 홍보한다. 10년 넘게 화려하고 개성 있는 복장으로 참가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모자 위에는 숲 속의 짐승들, 학, 자전거 등이 치장물로 올려지며 풍차의 모습도 들어 있다. 박람회 기간에 무게가 4㎏이 넘는 모자를 하루 8시간씩 쓰고 다니며 지역광고를 한다. “힘들어도 절대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아요. 우리 지역이 잘살게 되는 일이고 한국도 알리는 일이잖아요. 무척 즐겁습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열린세상] 글로벌 코리아의 힘/유재웅 을지대 홍보디자인학과 교수

    [열린세상] 글로벌 코리아의 힘/유재웅 을지대 홍보디자인학과 교수

    세상 넓은 줄 모르고 좁은 울타리에 갇혀 있는 사람을 빗대어 ‘우물 안 개구리’라는 말을 자주 사용해 왔다. 그러나 이 말이 무색하리만큼 한국이 달라져도 너무 달라졌다. ‘강남 스타일’로 선풍적인 화제를 일으키고 있는 가수 싸이를 비롯,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김기덕 감독, 피겨 스케이팅의 김연아, 수영의 박태환, 프로골프의 최경주 선수 등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한국인 스타들이 손으로 꼽기 어려울 정도로 많아졌다. 특히 전통적으로 서방 선진국들의 전유물로 인식되어 오던 분야에까지 우리가 세계 정상수준임을 보여주는 쾌거들은 대한민국이 이제 경제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선진 일류의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을 국제사회에 심어주고 있다고 하겠다.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이처럼 뛰어난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것은 자랑스럽고 기쁜 일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세계 각국과 치열하게 경쟁하며 더불어 잘살기 위해서는 뛰어난 스타들의 활약과 함께 한민족 전체가 총체적 역량을 결집시켜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돌이켜보면 우리 민족은 평소에는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는 것 같이 보이지만, 국가적 위기에 직면하거나 어떤 계기가 있을 때에는 그 어느 민족도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강한 단합을 보여주었다. 가장 가까운 사례 중 하나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아야 하는 경제 위기로 나라가 백척간두에 서 있을 때 수많은 국민들이 앞다투어 ‘금모으기 운동’에 동참한 일은 위기 앞에서 우리 민족이 얼마나 똘똘 뭉치는지를 국제사회에 여실히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한민족의 단합하는 저력을 위기 때뿐만 아니라 평상시에도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오는 16일부터 사흘간 서울에서 개최되는 ‘세계 한상(韓商)대회’는 한국인의 단합과 단결이 얼마나 중요하고, 이것이야말로 ‘글로벌 코리아의 힘’을 키우는 첩경임을 보여주는 매우 뜻깊은 행사다. 국내외 한국 기업가 4000여명이 참여하며, 해외동포 기업가들도 40여개국에서 찾는 매머드급 행사다. 2000년에 1000명으로 첫 행사를 시작한 이래 10년 사이에 4배 규모로 커졌다. 재외동포재단이 주관하는 이 행사는 한마디로 말해 국내외 한국인 기업가들이 네트워크를 공고히 해서 글로벌 코리아의 힘을 세계에 보여주자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대회는 성공한 동포 기업인들이 금의환향을 자축하는 행사가 아니며, 친목 도모에 머물러 있는 행사는 더더욱 아니다. 전 세계에서 모인 동포 기업인들과 국내 기업인들이 머리를 맞대고 비즈니스의 노하우와 생생한 현지 정보를 공유하고 실질적인 공동 협력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이다. 해외 진출을 모색하고자 하는 국내 기업뿐만 아니라 국내 기업과 협력하고자 하는 해외동포 기업, 또 해외동포 기업 상호간에 서로 윈·윈(Win-Win)하는 협력을 도모할 수 있는 장이기도 하다. 참여하는 기업인들도 다양해, 세계적인 규모로 사업을 일군 최고경영자(CEO)에서부터 40대의 젊은 동포 사업가에 이르기까지 그 폭이 넓다. 참여 국가도 미국 편중에서 벗어나 중남미, 유럽, 아시아 등 전 세계 각 대륙을 망라하고 있다. 지구촌 곳곳에 나가 살고 있는 우리 재외 동포가 700만명에 달한다. 이들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영토를 전 세계로 확장시키는 첨병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민족 자산과 국력을 키우려면 이제 시야를 넓혀 국내에 거주하는 한국인들과 해외동포를 하나로 묶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그 가운데서도 핵심 중 핵심의 역할을 맡아줄 분들이 경제인들이다. 이 같은 노력은 우리 민족만이 하는 일은 아니다. 이미 중국인들은 ‘화상’이라는 전 세계적인 네트워크로 결속하고 있다. 또 인도인들과 유대인들도 유사한 네트워크로 자국의 이익을 도모하고 있다. 요즘 많은 국민들이 국가와 가계 경제를 걱정하고, 불투명한 미래를 염려한다. 그 돌파구를 국제무대에서 찾는 사람이 있다면, 한상 네트워크의 활용이 요긴할 것이다. 특히 해외 진출의 야망을 키우는 젊고 진취적인 기업인이라면 이번 세계 한상대회라는 호기를 놓치지 말기 바란다.
  • “한·일 기업소송 재일동포 변호사 활용을”

    “한·일 기업소송 재일동포 변호사 활용을”

    “한·일 양국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법 제도도 언어도 비슷합니다. 하지만 계약 협상은 영어 위주로 진행해 쌍방간의 의사소통이 충분히 이뤄지지 못한 측면이 있어 재일동포 변호사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재외동포재단이 주관한 세계 한인차세대대회에 참가하고 8일 귀국한 재일동포 3세 김철민(34) 변호사는 한국과 일본 양국 간 기업 관련 소송의 현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영문 계약서는 법리 해석이 영미법이지만 한국과 일본은 대륙법에 뿌리를 두고 있어 분쟁이 생기면 적용이 적합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양국의 계약서는 문구 뜻 그대로 받아들여지지만 영어는 해석이 분분할 수 있어 조목조목 명시해야 합니다.”라고 충고했다. 김 변호사는 최근 맡게 된 한·일 기업 간 소송을 예로 들었다. 한국의 한 중소기업은 일본 기업과 1000만엔 규모의 기계부품 납품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이 기업은 영문 계약서에 납기 지연 시 계약금의 10배에 해당하는 위약금 1억엔을 배상하도록 명시한 것을 모르고 납품을 수개월 지연시켜 불리한 처지에 놓였다. 그는 “계약서를 일본어와 한국어로 작성했더라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도쿄에서 태어나 와세대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후 2002년 일본 사법시험에 합격한 한국 국적의 김 변호사는 일본 6위의 대형 로펌 시티유와 법률사무소에서 인수합병 전문가로 일하고 있다. 그는 2004년 9월 일본 기업 ‘네프로 IT’의 코스닥 상장을 도운 인연으로 2010년 국내 대형 로펌인 김앤장과 태평양 등에서 파견 근무하며 법률 조언을 해 왔다. 현재 재일동포 변호사는 150여명으로 추산되며 대부분 인권이나 개인 민사사건에 종사하고 있다. 그는 “일본에서 한국으로 또는 그 반대로 유학 온 학생들이 자국 로스쿨에 진입해 특화된 변호사로 거듭나면 기업 관련 소송에 잘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재일동포 인권지킴이 선친 유지 이을 것”

    “재일동포 인권지킴이 선친 유지 이을 것”

    “한국의 경제·문화적 위상이 높아짐에 따라 일본 내 재일동포 차별은 많이 없어진 편이죠. 다만 보편적 인권인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일본 정부는 아직 멀었고 진심으로 손해 배상 등의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재외동포재단이 주최하는 세계 한인차세대대회 참가를 위해 방한한 재일동포 김미사(26)씨는 4일 아버지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김씨의 아버지는 일본 내에서 한국 국적을 지닌 첫 법조인이자 ‘재일동포 인권지킴이’로 유명한 김경득(1949~2005) 변호사. 김 변호사의 2남 2녀 중 둘째인 김씨는 아버지의 뒤를 잇고자 일본 게이오대 로스쿨과 사법연수원을 마친 후 현재 게이오대에서 법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으나 원래 꿈은 저널리스트였다. “아버지께서 생전에 변호사가 되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없었지만 19세 때 돌아가시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어요. 같은 직업을 가져서라도 아버지와 계속 이어지고 싶었죠. 아버지께서 자랑스럽게 생각하셨으면 좋겠어요.” 아버지의 길을 따르는 것은 김씨만이 아니다. 오빠 창호(28)씨는 도쿄대를 졸업한 후 사법시험에 합격해 현재 미국 시카고대에서 법학석사(LLM) 과정을 밟고 있고 여동생도 일본 주오대 로스쿨에 재학 중이다. 아버지 김 변호사는 재일동포 차별 철폐운동의 상징이다. 그는 1976년 일본 사법시험에 합격했으나 최고재판소로부터 일본인으로 귀화하지 않는 한 사법연수생으로 채용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3년간의 법정 투쟁 끝에 일본 내 한국인 변호사 1호가 됐고 이후 재일동포 국민연금 소송 등을 주도했다. 김씨의 가족들은 집안에서 한국어를 쓰며 2남 2녀의 국적도 모두 한국이다. “일본에선 한국 국적으로 판사나 검사는 될 수 없어요. 로스쿨을 다니면서 판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아버지가 힘겹게 지킨 국적을 포기할 수는 없었고, 이를 유지할 수 있는 법학자가 돼 한·일관계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김씨는 “일본 내 북한 동포의 어려운 처지는 여전히 과제”라면서 “위안부 문제 등 일본의 반성하지 않는 태도를 보면 일본의 교육을 바꿔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유커 뿔났다] 제주 무자격 중국가이드 기승 왜

    제주가 무자격 중국가이드 천국이 된 것은 ‘싸구려 관광상품’이 빚어낸 일종의 ‘파생품’이다. 3박4일 일정에 50만~70만원 하는 여행상품으로는 정식 가이드를 고용할 수 없는 구조다. 유커(遊客)라고 불리는 중국인 관광객들에게 쇼핑을 강요하든 바가지를 씌우든 알아서 뜯어먹으라는 구조다. ●관광상품 덤핑에 여행사 부담 자격증이 있는 가이드의 경우 하루 10만~15만원의 일당을 줘야 하지만 무자격 중국동포는 5만원이면 쓸 수 있다. 아예 일당을 주지 않고 쇼핑 수수료로 대체하는 여행사도 수두룩한 게 여행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중국 전문 제주 H 여행사 관계자는 “대형 여행사 간 경쟁으로 3000~4000위안(53만~70만원)짜리 저가상품이 판을 치는 바람에 정식 가이드를 고용할 수 없는 게 현재 유커 관광시장의 구조”라며 “관광은 뒷전이고 쇼핑 강요와 바가지 등으로 송객 수수료를 챙기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고 지적했다. 올 들어서만 제주에서는 50여곳의 여행업체가 무자격 가이드를 고용했다가 적발됐다. 두 번 이상 적발된 업체도 적지 않다. 제주도의회 강창수 의원은 “이러다가는 제주가 바가지 쇼핑을 강매하는 3류 여행지로 낙인 찍힐 우려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무자격 가이드 해법을 두고도 정부와 제주도, 통역안내사협회가 서로 딴 목소리를 내고 있다. 폭증하는 유커에 비해 중국어 관광안내사 자격증 소지자가 적어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판단한 제주도는 제주에서만 활동할 수 있는 중국어 가이드를 자체적으로 배출하겠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제주를 방문한 유커는 57만여명으로 356명의 가이드가 필요하지만 현재 중국어 관광가이드는 200여명에 불과해 불법 가이드가 활개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도는 제주특별자치도에 위임된 관광진흥법을 근거로 관련 조례를 제정, 내년부터 자체적으로 관광 안내사 자격증 시험제도를 시행할 예정이다. ●해법 놓고 정부·道 딴목소리 하지만 중앙정부는 현행 국가자격증 소지자와 마찰을 빚을 우려가 있고 국가자격증 관리에도 혼선이 올 수 있다며 난색을 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중국어 관광 가이드들도 발끈하고 있다. 한국관광통역안내사협회 제주지부는 무자격가이드가 판치고 있는 것은 행정 당국의 느슨한 단속과 저가 상품 범람 등이 문제이지 자격증 소지자가 부족해서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김옥임 통역안내사협회 제주지부장은 “제주에는 일거리가 없어 노는 중국어 관광가이드가 수두룩하다.”면서 “자체 자격증 도입은 수준 미달의 무자격자들을 마구 양성화해 제주관광은 물론 국가 브랜드의 이미지에도 악영향을 주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한달새 제작·유포사범 3130명 검거 단속 사각지대 ‘토렌트’까지 뚫었다”

    “한달새 제작·유포사범 3130명 검거 단속 사각지대 ‘토렌트’까지 뚫었다”

    경찰의 아동 포르노 대책팀 사무실이 자리를 잡은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 별관 6층은 지난달 내내 불이 꺼지지 않았다. 전남 나주 어린이 성폭행 사건을 계기로 지난달 6일 발족한 대책팀이다. 아동 청소년을 이용한 음란물 제작, 배포 소지 사범 및 해외 유입 경로 분석 수사의 사령탑 역할을 하는 곳이다. 17명의 팀원을 비롯해 각 지방경찰청에 만들어진 대책팀 등 모두 999명의 경찰은 밤낮 할 것 없이 웹하드와 개인 간 파일 공유 사이트(P2P) 등을 관찰하며 음란물 단속에 혼신의 힘을 쏟아부었다. 그 결과 한 달이 못 돼 음란물 제작, 유포 사범 3130명을 검거했다. 불법 음란물을 올린 웹사이트 253개와 P2P 사이트에 대해선 폐쇄(36건) 및 입건(77건) 조치를 내렸다. 현재 내사 중인 업체도 140개에 달한다. 대책팀의 성과 중 눈에 띄는 것은 ‘토렌트’(개인 보유 파일을 인터넷으로 공유하는 프로그램)에 대한 단속이다. 토렌트는 해외에서 음란물이 유입되는 주요 경로다. 하지만 국내 서버가 별도로 존재하지 않아 추적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음란물 단속의 대표적인 사각지대로 꼽혀 왔다. ●은어 찾아내 헤비다운로더 첫 검거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 소속 이승운 경감은 5년 9개월째 경찰청에서 사이버 테러 및 음란물 수사를 담당하고 있다. 매년 경찰청에서 음란물 집중 단속을 할 때마다 그는 음란물 수사의 베테랑으로서 맹활약해 왔다. 대책팀이 토렌트에서 아동·청소년 관련 음란물을 다수 내려받거나 공유한 5명의 피의자를 검거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인터넷상에서는 적잖은 파문이 일었다. 젊은 네티즌 사이에서 평소 별다른 죄의식 없이 행해지던 야한 동영상 공유, 유포 행위가 형사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실제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피의자들을 잡은 경찰도 놀랐다고 입을 모은다. 이 경감은 “5명을 붙잡고 보니 모두 20대 초중반의 평범한 학생이나 회사원, 휴가 나온 군인 등이었다.”면서 “처음엔 모두들 호기심에 아동 음란물을 접하게 됐다고 말했는데 점점 도가 지나쳐진 경우로, 해마다 아동 음란물을 접하는 사람들의 층이 두꺼워지고 있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 경감은 지난 한 달간 아침 8시에 출근해 거의 자정까지 토렌트에 접속해 아동 음란물을 모니터링하며 하루 일과를 보냈다. 직접 음란물을 내려받기 위해 회원 가입을 하고 실제 공유하는지를 전수 조사했다. 아동 음란물을 발견하면 화면을 갈무리해 증거를 모았다. 또 토렌트에 접속해 아동 음란물을 검색할 수 있는 그들만의 언어 등을 찾아내는 데도 주력했다. 토렌트상에 일종의 은어를 입력하면 해당 음란물 창 밑으로 이를 공유한 사람들의 아이피가 뜨는데 이를 모아 분석하면 음란물을 대량으로 뿌리는 헤비 다운로더를 검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찰이 아동 음란물 단속 대책팀까지 별도로 꾸렸지만 업무 처리에는 어려움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음란물 유포 방법이 진화하고 있어서다. 이 경감은 “정부의 단속이 심해지면서 음란물 수요층 나름대로 자구책을 마련하는 데다 한정된 경찰 인력으로 무한한 음란물 사이트와 이용자들을 단속하다 보니 경찰의 단속이 가끔 ‘우물에서 바가지로 물을 퍼내는 격’이란 생각이 들 때도 있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웹하드서 당나귀·푸르나 등 P2P로 이동 음란물 유통 수단이 계속 변화되면서 풍선효과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도 우려 사항이다. 그는 “경찰 단속으로 웹하드에서는 자정 효과가 많이 나타나는 편인데 웹하드에 대한 경찰 단속이 강화되면서 음란물 유포 경로가 최근에는 당나귀, 푸르나 등의 P2P 프로그램으로 많이 이동했다.”고 밝혔다. 이 경감은 “하지만 경찰은 국내 P2P는 물론 토렌트 등 해외에 서버를 둔 P2P에 대해서도 수사를 계속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기자 kimje@ seoul.co.kr
  • 아동포르노 다운·배포 5명 첫 입건

    경찰청은 지난 6일부터 아동 포르노 대책팀을 구성, 전국 수사 인력 999명을 동원해 음란물 집중 단속을 벌인 결과 음란물 배포 및 소지 혐의로 2627건, 3130명을 검거했다고 28일 밝혔다. 특히 이번 단속에서는 해외 P2P 파일공유 프로그램인 ‘토렌트’(torrent)를 이용해 아동음란물을 대량으로 공유하고 소지해 아동음란물 배포 등의 혐의로 김모(25)씨 등 5명을 입건했다. 토렌트 프로그램을 이용해 음란물을 공유하다 적발된 사례는 처음이다. 개인 보유 파일을 인터넷으로 공유하는 P2P 프로그램인 토렌트는 해외 음란물이 유입되는 주요 경로로 알려져 왔으나 국내 서버가 별도로 존재하지 않아 추적이 어려워 음란물 단속의 사각지대로 인식돼 왔다. 토렌트에서 아동 포르노 음란물을 소지 및 배포한 혐의로 검거된 5명은 모두 20대 초·중반으로 평범한 대학생이나 군인 등이었다. 이들은 적게는 50여건, 많게는 80여건의 아동 포르노물을 토렌트를 통해 소지 및 배포한 상태였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은 지난 3일부터 10일까지 아동·청소년이 등장해 성교, 유사 성교, 자위 등의 행위를 하거나 신체를 노출한 아동 청소년 이용 음란물을 해외 파일 검색 사이트 등을 통해 검색, 토렌트 프로그램으로 다운로드 받은 뒤 컴퓨터에 보관해 오다 적발됐다. 경찰 관계자는 “아동·청소년이 나오는 음란물 다운로더 가운데 다운로드의 횟수가 많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이들의 아이피 주소를 파악한 뒤, 압수수색 영장을 받아 컴퓨터 등을 조사했다.”면서 “5명의 피의자는 대부분 평범했고, 호기심에 아동·청소년 음란물을 접하게 됐다고 털어놨다.”고 전했다. 적발된 이들은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게 된다. 이외에도 경찰은 성인 음란물을 배포한 혐의로 2313건, 2692명을 검거하고 아동음란물은 314건, 438명을 적발했다. 인터넷상에서 음란물을 공유하도록 한 웹하드나 P2P 사이트도 모두 253건이 적발됐다. 경찰은 또 회원수 900여만명으로 국내 최대 P2P사이트 운영자인 김모(45)씨를 붙잡아 조사 중이다. 김씨는 지난 6월 발생한 경남 통영 초등학생 살인사건의 피의자인 김점덕의 컴퓨터에서 나온 아동 음란물 등을 업로드한 회원 16명과 수익을 나눠 16억원의 부당 이득을 취한 것으로 파악됐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Weekend inside] 東아시아 갈등 부추기는 中좌파·日우익

    [Weekend inside] 東아시아 갈등 부추기는 中좌파·日우익

    일본의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국유화 조치를 비난하며 중국 베이징의 일본대사관 앞에 몰려든 1만여명의 중국 시위대는 마오쩌둥(毛澤東) 사진을 앞세웠다. 대열의 선두에는 ‘마오쩌둥 사상만이 중국을 구할 수 있다’는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마오쩌둥 시대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중국의 좌파가 반일 시위의 선봉에 선 것이다. 지난달 한국과 일본 간의 독도 분쟁이 한창일 때 일본 도쿄의 한국대사관 앞에서는 연일 우익단체들의 반한 집회가 개최됐다. 이들은 도쿄 신오쿠보의 코리아타운으로 몰려가 “한국인들은 한국으로 꺼져라.”라고 외치며 일본인들의 반한 의식을 부추겼다. 중국의 좌파와 일본의 우익이 동아시아 영토분쟁의 와중에서 동시에 득세하고 있는 사실은 아이로니컬하다. 중국 좌파와 일본 우익의 실체가 궁금해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中, ‘민족’ 앞세워 反체제 결집 ●‘체제 불만’ 저소득층·젊은이들 관심 커져 좌파가 반일 시위의 선봉에 등장하자 중국 당국은 긴장하고 있다. 실제 이번 반일 시위에서는 마오쩌둥의 초상화가 내걸리고, 좌파의 아이콘인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重慶)시 당서기를 지지하는 구호가 터져나왔다. 마오가 농민과 노동자 계급을 지지기반으로 두었고, 보 전 서기가 ‘홍색(공산당) 캠페인’을 펼치며 분배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이번 시위를 통해 현 체제에 대한 불만을 드러낸 것이란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좌파는 옛좌파, 극좌파, 신좌파 등으로 분류되지만 모두 개혁·개방 노선에 반대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빈부격차 확대 등 양극화 심화와 농민시위 빈발 등 사회문제 대두가 시장경제도입 등 개혁·개방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한다. 때문에 양극화와 실업난으로 고통받는 저소득층과 젊은층이 이들의 목소리에 차츰 귀를 기울이고 있다. 중국에서 좌파는 마오의 ‘홍위병’에서 시작됐다. 대약진운동 실패 등으로 마오에게 위기가 닥치고, 우파의 목소리가 득세하자 마오는 극좌파 홍위병들을 앞세워 체제를 유지했다. 개혁·개방 이후 꼬리를 감춘 좌파는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 이후 우파를 맹공격하며 과거로의 회귀를 주장했지만 덩샤오핑(鄧小平)이 ‘흰 고양이’인 우파 개혁·개방론자들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또 한 번 고배를 마셨다. 지난 15일과 16일 광둥(廣東)성 선전(深?)의 반일 시위는 일본의 중국영토 잠식에 대한 불만과는 전혀 상관없이 사회적 불만을 표출하는 반정부 성격의 장으로 비화됐다. 그리고 이를 통해 좌파가 민족주의를 앞세워 기득권에 불만을 가진 대중들을 결집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중국 개혁·개방의 1번지인 선전은 대표적인 수출 가공 기지로 각지에서 몰려든 농민공만 100만명이 넘는 만큼 빈부격차가 심하고 사회불만도 팽배해 좌파에 대한 지지 여건은 충분한 셈이다. ●당국서도 민족주의 고리로 영토분쟁에 활용 좌파의 주요 목적은 개혁·개방 저지이다.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를 공격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이와 관련, 좌파 이념의 산실 역할을 하는 마오쩌둥 깃발(毛澤東旗幟), 오유지향 등의 인터넷포털에서는 지난달 원 총리의 파면을 요구하는 전·현직 공산당 간부들의 연대서한이 공개됐다. 이들은 원 총리가 개혁·개방이라는 미명 아래 국유기업을 축소, 해체하고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확대시켜 온 탓에 빈부격차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고 비난했다. 한 좌파 지식인은 “중국이 개혁·개방에 나서지 않았더라도 상당한 자산을 갖췄을 것”이라면서 “개혁·개방 이후 중국이 엄청난 성장을 한 것처럼 보이지만 중국이 번 돈은 진짜 자산이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통해서도 지금 못지않은 부를 형성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아직 좌파의 목소리가 주류는 아니다. 하지만 중국 지도부가 영토분쟁 국면에서 민족주의 카드를 꺼내들면서 개혁·개방을 공격하는 좌파와 민족주의라는 공통분모를 갖게 되면서 문제가 커지고 있다. 물론 중국 당국이 좌파를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고 보고 있으며, 이에 따라 앞으로도 민족주의 카드를 견지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하지만 좌파가 민족주의를 내세워 국민들의 반일, 반한 감정을 자극하고 이 과정에서 당국으로선 통제 불가능한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 중국의 빈부격차와 공직부패 등 사회모순이 예전보다 훨씬 심각해졌으며, 3억명이 넘는 중국인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 계정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 지도부는 대일 강경기조를 외치는 국내 여론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중국 지도부가 좌파 기류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日, ‘독도’ 빌미 反韓의식 조장 ●네트워크 활동 탓 ‘인터넷 우익’ 파악 어려워 일본 우익의 기원은 1868년 1월 3일 메이지유신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도쿠가와 막부가 막을 내리고 왕정으로 복귀하면서 황국사관과 국수주의를 주창하는 정치가들이 조직적으로 활동하며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현재는 전국적으로 지부를 설치하고, 광범위하게 활동하는 단체는 없다. 다만 자민당과 민주당 의원 가운데 보수의 목소리를 내는 일부 인사들을 지원하는 단체들이 적지 않다. 우익계의 시민단체는 유신 정당의 계보를 잇는 ‘잇수이카이’(一水會)가 대표적이다. 2000년대 들어서는 ‘재일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모임’(재특회)이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밖에 우익단체 연합체인 ‘전일본 애국자 단체회의’ 등이 있다. ‘애국’이 포함된 단체명을 사용하면 십중팔구 우익단체가 분명하다. 1990년대 중반부터 고용 불안이 심해지면서 ‘인터넷 우익’이라고 불리는 젊은이들이 등장했다. 실체가 분명하지는 않지만 대부분 ‘외국인에게 일자리를 빼앗겼다’는 심한 피해의식을 갖고 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사장 등 재일동포 기업인이 대두하고, 한류 드라마가 인기를 끌자 “(재일) 한국인이 일본을 지배할지도 모른다.”는 과도한 위기감을 내세워 동조자들을 규합하고 있다. 전체 인터넷 이용자의 1∼3%에 불과하지만 ‘2채널’ 등 특정 사이트에 모여들어 발언력을 키워 왔다. 일방적인 주장을 늘어놓을 뿐 공개적인 논쟁을 꺼린다. 한국, 북한, 중국에 거부감을 보이고, 특히 한국에 대한 심한 적대감을 표출한다. 이들은 노골적으로 인터넷에 글을 올려 ‘한국인은 일본에서 나가라’라고 요구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드라마 상영 시간이 길다는 이유로 민영 방송사인 후지TV에 몰려가 한류 반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기존의 우익단체들은 공안 당국에 의해 관리된 측면이 있지만 인터넷 우익은 네트워크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어 당국이 전혀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 현황조차 파악하기 힘든 실정이다. ●보수층서도 극한적 배타의식에 비판적 우익단체들은 지난 2009년 민주당 정권이 들어선 이후 추진했던 외국인의 지방참정권 부여에 반대하는 운동을 벌여 일부 성과를 거뒀다. 최근에는 독도,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쿠릴열도(일본명 북방영토)를 둘러싸고 한국, 중국, 러시아와의 영유권 분쟁이 격해지자 상대국에 대한 반대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일·한 단교 공투위원회’와 ‘유신정당 신풍’, ‘일본청년사’, ‘민족동맹’, ‘힘내라 일본! 전국행동위원회’ 등 인터넷 우익들이 요쓰야의 한국대사관과 도쿄 코리아타운인 신오쿠보의 반한 시위를 주도하고 있다. 주한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옆에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식 명칭)는 일본땅’이라고 적힌 말뚝을 갖다 놓은 스즈키 노부유키는 ‘유신정당 신풍’의 대표이다. 우익 시위대는 최근에도 한국 음식점과 한류 상품점이 즐비한 거리를 행진하며 “한국인은 한국으로 꺼져라.”, “역사상 최대 날조가 위안부 강제연행이다.” 등의 구호를 외치거나 한국 상품을 구입한 일본인에게 “왜 한국 물건을 사느냐.”고 위협을 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의 배타주의적 목소리에 대해서는 일본 내 진보 인사들은 물론이고 보수층조차 거부감을 표시하고 있다. 대표적인 우익 단체인 잇수이카이의 스즈키 구니오 고문은 최근 보수 성향 주간지 ‘사피오’ 기고문에서 “일본의 역사는 중국이나 서구 문명을 무제한적으로 수용해 가면서 발전해 왔다.”며 “한국인 등에 대한 차별 의식이나 배외 의식으로 나라를 지킬 수 있을지 의문이다.”라고 비판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신학 대학원생이…애인의 10대딸 성폭행한 40대 구속기소

    40대 신학대학원생이 애인의 딸을 성폭행했다가 재판에 넘겨졌다.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부장 안미영)는 애인의 딸 A(19)씨를 성폭행 한 이모(42)씨를 강간 혐의로 구속기소했다고 21일 밝혔다. 이씨는 지난 3일 애인 박모씨의 집에 들어와 자고 있던 A씨를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씨는 중국 국적의 동포로 신학공부를 위해 국내에 들어와 C대학 신학대학원에 재학 중이다. 검찰은 이씨가 “A씨를 자신의 애인인 박씨로 오해했다.”며 변명했지만, 사건 당시 시간이 오전 10시였던 점과 A씨의 증언 등을 토대로 이씨가 알면서도 A씨를 성폭행한 것으로 판단했다. 홍인기기자 ikik@seoul.co.kr
  • [씨줄날줄] 펩시와 바퀴벌레/노주석 논설위원

    1898년 창업한 미국 펩시콜라의 태극 로고는 1950년에 처음 등장했다. 펩시콜라 100년사를 보면 음양을 상징하는 태극에서 착안했다고만 기록돼 있을 뿐 정확한 채택 경위는 남아 있지 않다. 펩시의 로고 변천사를 보면 문자보다 문양을 강조하는 쪽으로 계속 바뀌고 있다. 태극기는 1883년 조선의 국기로 정식 채택됐으므로 펩시의 로고와는 어떤 상관도 없음을 알 수 있다. 바퀴벌레는 공룡시대보다 1억년 앞선 4억년 전에 등장해 오늘날까지 생존하고 있는 ‘살아 있는 화석’이다. 빙하기를 견뎌낼 정도로 놀라운 생명력과 번식력을 자랑한다. 전 세계에 4000종이 서식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독일바퀴·일본바퀴·미국바퀴·먹바퀴 등 4종이 주를 이룬다. 최근 3년 사이 일본바퀴의 개체 수가 6배 이상 늘어났다고 한다. 일본바퀴는 보통 바퀴보다 덩치가 갑절이나 크다. 일본에서 유행하는 바퀴 대처법을 보면 ▲신문지로 후려친다 ▲도움을 청한다 ▲일단 도망간다 ▲청소기로 빨아낸다 ▲쫓아낸다 ▲뜨거운 물을 붓는다 등이 있다. 태극기의 태극이 펩시콜라 문양으로, 4괘가 바퀴벌레로 둔갑해 훼손되는 동영상이 유튜브 등을 통해 떠돌아다녀 공분을 사고 있다. 철없는 일본 극우주의자들의 소행이다. 대응할 가치도 느끼지 못하지만, 한때 세계 2위 경제 대국 일본이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는지 모르겠다. 지구상에서 일본인을 우습게 아는 사람은 한국사람밖에 없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이제는 최다 인구와 최대의 시장을 앞세운 중국인의 일본 배척운동 앞에서도 움츠리고 있다. 한 누리꾼의 표현처럼 ‘열등감 대폭발’이라고 해석할 도리밖에 없을 듯하다. 태극기를 펩시마크로 표현한 것은 무식의 소치이고, 우주의 운행원리를 담은 4괘를 바퀴벌레로 표현한 것은 소심한 일본인의 바퀴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이 아닐까. 런던올림픽 때 일본 여자체조선수들이 일제 군기(軍旗)인 욱일승천기를 응용한 유니폼을 입고 출전했다. 도쿄에서 열린 U20 여자월드컵 한·일전에서 일부 관중이 욱일승천기를 들고 응원했다. 이 기는 독일 나치의 상징인 하켄크로이츠처럼 영원히 축출돼야 할 군국주의의 망령이다. 우리 국회는 욱일기 사용과 경기장 반입 금지를 정부에 촉구했다. 또 뉴욕동포를 중심으로 국제올림픽위원회에 진상조사를 요구했다. 어른스러운 행동이다. 일부 일본 국수주의자들이 이웃나라의 국기를 훼손하는 것은 누워서 침뱉기요, 제 눈 찌르기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韓商, 영종도에 관광레저단지 조성

    한상(韓商) 기업인들이 항만 재개발 사업 대상지인 인천 영종도에 1조원 규모의 관광레저단지를 조성한다. 국토해양부는 17일 ㈜세계 한상드림아일랜드가 영종도 준설토투기장에 종합비즈니스관광레저단지 조성을 위한 민간 투자 제안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세계 한상드림아일랜드는 세계한인상공인총연합회 소속 해외 동포 기업인이 출자해 설립한 업체다. 세계 한상드림아일랜드는 인천공항 영종대교 인근에 조성된 총 315만㎡ 영종도 투기장에 1조 1180억원을 투자해 ▲골프장, 스포츠파크 등 체육시설 ▲세계한상비즈니스센터, 호텔 등 비즈니스 관광시설 ▲인천공항과 인천항만을 연계한 복합 물류단지, 해양생태공원 등의 공공시설을 설치하기로 했다. 2016년까지 조사·설계 및 도로, 상하수도 등의 기반시설 공사와 부지 조성 공사를 하고 2018년까지 체육시설, 비즈니스센터, 호텔 등을 지을 계획이다. 이번 제안은 세계한인상공인총연합회 주도로 국내에 투자하는 최초의 대규모 개발 사업이다. 사업이 추진되면 해외 동포 기업인과 국내 기업 간 협력, 교류가 활성화되고 해외 동포의 국내 투자도 활발해질 것으로 국토부는 기대했다. 국토부는 사업 타당성 검토를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에 의뢰할 예정이다. 타당성 검토와 제3자 모집 공고 등을 거쳐 이르면 내년 상반기부터 사업이 본격 추진될 전망이다. 류찬희 선임기자 chani@seoul.co.kr
  • [선택! 역사를 갈랐다] (27) ‘지조’ 황현 vs ‘매국’ 이완용

    [선택! 역사를 갈랐다] (27) ‘지조’ 황현 vs ‘매국’ 이완용

    1910년 9월 8일 밤, 시문(詩文)으로 인근에 조금 알려진 한 시골 선비가 단정한 자세로 앉아 그 평생의 마지막 시가 될 글을 써 내려갔다. “추등엄권회천고(秋燈掩卷懷千古)난작인간식자인(難作人間識字人)” (가을밤 등잔 밑에서 책 덮고 옛일을 되돌아보니, 사람 세상에서 글 아는 이 노릇하기 어렵구나) 시 넉 수를 다 쓴 그는 다시 자식들에게 남기는 유서를 쓴 후 소주에 아편을 타 마시고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다. 당시 그의 나이 56세, 대한제국이 사라진 지 열흘 뒤의 일이었다. ●지조 굽히라는 세상에 날 세운 ‘황현’ 매천(梅泉) 황현(黃玹)은 1855년 전라남도 광양의 몰락한 양반 가문에서 출생했다. 그는 총명하고 배우기를 좋아하는 천품(天品)을 타고 났으나, 재주와 뜻을 펼치기에는 출생시대, 출생지, 가문 중 어느 하나도 그에게 우호적이지 않았다. 여러 대에 걸쳐 서울에서 벼슬을 한 ‘경화사족’(京華士族) 출신이 아니고서는 과거에 합격하기 어렵고, 설령 어렵사리 합격한다 해도 고위직에 오를 생각은 하지도 못하게 된 시대가 이미 100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었다. 그리고 어찌 입신출세(立身出世)의 꿈이 없었겠는가마는 세상은 그에게 꿈을 접으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그가 그런 현실을 확연히 깨달은 것은 나이 30이 넘어 향시(鄕試)에 합격한 뒤였다. 1888년 성균관 생원이 되어 서울에 올라온 그는 말로만 듣던 과거(科擧) 부정이 어느 정도인지 직접 보고 느꼈다. 세도가 자제들이 글 써주는 사람과 글씨 써주는 사람을 다 따로 고용하여 대리시험을 치는 관행은 더 이상 비난거리도 아니었다. 돈과 연줄 없이 과거에 합격하여 벼슬하기를 바라는 것은 고목에서 꽃이 피기를 바라는 것과 같았다. 그는 과거에 더 연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의 인생의 첫 번째 ‘선택’이었다. 이는 자식들도 자기와 같은 출발점에 세우겠다는 절망적인 선택이기도 했다. 그는 서울에서 강위, 김택영, 이건창 등 마음이 통하는 명사(名士)들을 사귀며 배울 수 있었다는 것만 위안으로 삼고 낙향했다. 서울에 올라오기 얼마 전에 구례로 집을 옮겼던 그는, 그곳에서 제자를 가르치고 시를 짓는 한편 자기가 보고 들은 당대의 역사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를 용납하지 않았던 세상, 선비에게 지조를 기르라고 당부하는 대신 지조를 굽히라고 요구하는 세상을 보는 그의 시선은 시퍼렇게 날이 서 있었다. 그가 보기에, 그의 시대를 이끄는 사람들은 모두 부패하고 타락한 자들이었다. 대원군도, 왕후와 그 친척들도, 왕조차도 예외가 아니었다. 부패하고 타락한 자들이 지배하는 세상이 혼탁하지 않을 리 없었다. 그는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을 것이요, 더러우면 발을 씻을 것’이라는 옛 어부의 말대로 처신했다. 그의 귀에는 전기나 기차 같은 문명의 이기(利器)들에 관한 소식이 계속 들려왔지만, 그는 그것들이 세상을 맑게 바꿔주지 못하리라고 생각했다. 나라가 망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생애 두 번째 ‘선택’을 했다. 그를 버렸던 나라이자 그가 경멸하고 증오했던 더러운 자들이 지배한 나라였지만, 그는 이 뒤에 그를 기다릴 세상은 더 더러운 세상일 것으로 생각했다. 그는 자식들 앞으로 남긴 유서에 “나라가 망했으나 내가 죽어야 할 의리는 없다. 다만, 나라에서 500년이나 선비를 길렀는데, 나라가 망할 때에 죽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면 어찌 원통치 않겠는가?”라고 썼다. 그는 나라의 녹을 먹지 않았으니 나라를 위해 죽을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대대로 나라의 녹을 먹은 자들이 나라를 팔아넘기는 데에 앞장서는 세상에서, 그런 자들이 계속 위세를 부릴 세상에서, 더 살아야 할 이유도 찾지 못했다. 그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시구는 “증무지하반연공(曾無支廈半椽功) 지시성인불시충(只是成仁不是忠)”(일찍이 나라를 위한 공이 없었으니, 내 죽음은 다만 인(仁)을 이루고자 함일 뿐 충(忠)은 아니로다)이었다. ●日·러·美 연줄 없던 이완용 처세로 부귀 누려 황현이 목숨을 끊던 바로 그 무렵, 일당(一堂) 이완용(李完用)은 일왕에게서 백작의 작위와 15만원의 은사금(恩賜金)을 받았다. 대한제국 황실과 친인척 관계가 없는 인물로서는 가장 높은 작위였다. 그는 며칠 전까지 대한제국의 총리대신이었으나 어차피 허울뿐인 자리였다. 그에겐 남은 생애를 부귀 속에서 보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족했다. 이완용은 황현보다 3년 늦게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은 서울에서 가까운 편이었으나 가문은 황현 집안보다 그리 나을 것이 없었다. 그 역시 어려서 남달리 총명하다는 말을 들었지만, 그 집에서 그대로 살았더라면 그의 일생도 황현과 그리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11세 때, 그의 운명을 바꿀 ‘기회’가 찾아왔다. 그는 집안 어른들의 ‘선택’에 의해 먼 친척 아저씨인 이호준의 양자가 되었다. 그는 자신에게 새 삶의 기회를 준 양부모를 지극정성으로 모셨으며, 서형(庶兄)인 이윤용(李允用)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1882년, 당시 이조판서이던 양부 덕에 과거에 급제한 그는, 규장각 대교, 홍문관 수찬, 세자시강원 사서 등 출세가 보장된 청요직(淸要職)을 두루 거친 뒤 1886년 신설된 육영공원(育英公院)에 입학했다. ‘나라에서 영재를 기르는 곳’이라는 뜻의 육영공원은 미국인 교사가 영어와 신학문을 가르치는 신식 학교였다. 때는 갑신정변 2년 뒤였고, 조야(朝野)에 개화파에 대한 적개심이 넘치던 때였다. 그러나 그는 모험일 수도 있는 육영공원 입학을 ‘선택’했다. 양부가 비록 고관이었으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가문의 힘이 상대적으로 약하다면, 다른 것으로 만회할 필요가 있었다. 그는 왕의 뜻이 있는 곳, 왕의 시선이 닿는 곳에 있기로 결정했다. 결과적으로 이 선택이 그의 출세길을 활짝 열어주었다. 짧은 기간이나마 육영공원에서 영어를 배운 덕에, 그는 주미 한국공사관 참찬관과 주미 공사 대리로 두 차례나 미국에 다녀올 수 있었고, 국내 정치에서 계속 영향력을 키우던 미국인들과 교분을 쌓을 수 있었다. 1890년 귀국 후 관계에서 승승장구한 그는 1894년 모친상을 당했다. 일본군을 배경으로 수립된 개화파 내각은 그에게 입각(入閣)을 제의했으나, 그는 모친상을 핑계로 일단 거절했다. 이듬해 학부대신으로 내각에 들어갔지만 을미사변(명성황후 살해사건) 이후 실각했다. 친일 내각의 적으로 지목되어 미국공사관에 피신해 있던 그는 일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목숨을 건 정치적 도박에 가담했다. 왕을 미국공사관으로 옮기려던 첫 번째 시도는 실패했으나, 러시아공사관으로 옮기려 한 두 번째 시도는 성공했다. 아관파천을 계기로 그는 왕의 두터운 신임을 얻었다. 그는 외부대신, 농상공부대신 서리 등을 지내면서 한때 독립협회 회장도 맡았다. 독립협회는 애초 영은문 자리에 독립문과 독립공원을 세워 조선이 독립국임을 세계만방과 만백성에게 알릴 목적으로 조직되었다. 그러나 독립협회 회원들이 ‘충군애국’(忠君愛國)을 넘어 내심으로 ‘군민동치’(君民同治)와 ‘입헌정체’까지 요구하기 시작하자, 그는 독립협회를 떠났다. 러시아와도 계속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 못했다. 국왕은 일본을 견제하려고 러시아의 지원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했고, 러시아는 이 기회에 한국을 자기 세력권 안에 넣으려 했다. 미국인들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던 교육, 군사, 경제 각 부문의 주도권이 러시아로 넘어갔다. 그는 러시아의 침탈에 반발했으며, 러시아 공사는 그를 증오했다. 고종은 그를 전라도관찰사로 좌천시켜 안전을 보장해 주었으나, 그 자리조차 오래 지킬 수 없었다. 1901년 양부 이호준이 죽자, 그를 핑계로 낙향하여 시묘살이를 했다. 1904년 초, 러일전쟁이 일어나자 고종은 그를 다시 궁내부 특진관으로 불러들였다. 이때 이완용은 또 한 차례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섰다. 일본도, 러시아도 그의 배경은 아니었다. 그는 자기 배경에 충실한 결정을 내렸다. 미국은 일본 편이었고, 이후의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분명해 보였다. 그는 미국의 선택을 따랐다. 주지하듯이, 을사늑약 이후의 그는 ‘친일 매국노’의 원흉으로 지목되는 삶을 살았다. 그는 이토 히로부미의 신임을 얻어 대한제국의 마지막 총리대신이 되었으며, 그 자격으로 한일병합 조약에 도장을 찍었다. 일제 강점기 공중변소들에는 흔히 ‘이박식당’(李朴食堂)이라는 낙서가 씌어 있었다고 한다. ‘이완용과 박제순이 밥 먹는 곳’이라는 뜻으로, 이들을 똥개 취급한 것이다. 그러나 정작 이완용 자신은 자기가 시세의 흐름을 잘 살펴 처신한 덕에 계속 부귀를 누릴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가 보기에, 역사의 주요 고비마다 그가 한 ‘선택’은 언제나 옳았다. 사실 그는 그 험악한 정변의 시대를 귀양살이 한 번 하지 않고 살아남았다. 그는 이재명의 칼에 맞은 자리가 쑤시고 아플 때마다, 자신이 동포들의 저주 대상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문득문득 깨달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실은 그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스펙·연줄·기회 강조 現사회, 제2이완용 키우나 대형서점 자기계발서 코너에서 아무 책이나 몇 권 집어들어 훑어 보았다. 스펙을 쌓아라, 인맥을 다져라, 시세의 흐름을 살펴라, 기회를 놓치지 마라 등. 다들 이완용처럼 살라고 가르친다. 지조를 지켜라, 기개를 길러라 따위를 가르치는 책은 없다. 누구나 이완용을 욕하면서도 다들 이완용을 본받으려 드는 시대다. 물론 100년 전과 지금은 다르다. 그러나 이완용처럼 살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로 가득 찬 나라가, 모두에게 계속 안전할 수 있을까? 전우용(역사학자)
  • “제주 허씨들을 위한 여행기…5가지 메인 요리로 꾸몄죠”

    “제주 허씨들을 위한 여행기…5가지 메인 요리로 꾸몄죠”

    “새책을 내면 ‘그렇게밖에 못 썼느냐.’는 비난을 받을까 늘 불안에 떨었는데, 미술사 전공자가 제주도의 민속까지 아우르는 책을 냈으니 내가 할 만큼 했다는 생각에 큰 부담이 없다.” 유홍준(63)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는 13일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7- 돌하루방 어디 감수광’을 내놓은 기념으로 연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너스레를 떨었지만, 점심에는 손도 못 대고 계속 책 설명을 하는 모습이 영 부담을 느끼는 것 같았다. 6권까지 나온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올 초 인문서로는 최초로 300만부를 판매하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운 베스트셀러 작가지만, 신간 앞에서는 별도리가 없다. 특히 일본인 인류학자 이즈미 세이이치가 1938년 박사논문으로 쓴 ‘제주도’와, 1966년 증보한 ‘제주도’를 읽은 뒤로 ‘간단히 쓸 수 없겠다. 질 수 없겠다.’는 각오를 했으니 더욱 그러하다. 유 교수는 “1권을 내놓고 1993년에 강연을 갔는데, 제주도 이야기를 써 달라고 하더라.”면서 “‘제주학’의 훌륭한 연구자들이 없었더라면 이 책은 처음부터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책에서는 제주도를 소개하는 5개의 메인디시가 있다.”면서 “동남쪽은 제주시의 역사, 해녀 이야기를 중심으로 동북 쪽은 4·3사건, 서남쪽은 추사와 하멜, 모슬포 등 외지에서 온 사람들 이야기, 서북으로 제주말과 토종닭, 재일동포 공덕비, 감귤과 나비박사 석주명, 이즈미 세이이치의 이야기를 다루고, 마지막으로 한라산을 다뤘다.”고 했다. 서문에서 ‘제주 허씨를 위한 제주도 안내서’라고 말한 것은 렌터카를 타고 내비게이션을 찍어가면서 책에서 소개한 장소를 찾아가 보라는 것이다. 렌터카의 차 번호가 ‘허’로 시작하니 하는 이야기다. 제자들은 그의 원고를 읽고, 제주도 해녀 이야기가 가장 재미있다고 했고, 유 교수는 재일교포들이 귀국하면 반드시 귀국보고회를 한다는 본향단과 본향단 할망에게 바친다는 ‘소지’(흰 한지)를 꼭 놓치지 말고 읽기를 희망한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日 “센카쿠 국유화 철회 없다”… 中 감시선 4척 파견

    日 “센카쿠 국유화 철회 없다”… 中 감시선 4척 파견

    중국과 일본이 12일에도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국유화를 둘러싸고 첨예하게 대립했다. 일본 정부는 센카쿠열도 국유화를 철회하라는 중국의 요구를 즉각 거부했다. 겐바 고이치로 외무상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중국의 센카쿠열도 국유화 철회 요구에 대해 “재검토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중국은 전날에 이어 해양감시선을 센카쿠 해역으로 추가 파견했다. 양국 감시선 간 대치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일본 후지TV는 이날 “중국 감시선 네 척이 센카쿠 주변 해역에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헬기에서 촬영한 화면을 내보냈다. 중국은 전날 감시선 두 척을 파견했다고 밝혔으나 네 척으로 확인된 것이다. 중국 감시선이 이른바 ‘댜오위다오 영해기선’ 안쪽으로 진입할 경우 이를 막으려는 일본 순시선과의 물리적 충돌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훙레이(洪磊)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댜오위다오 국유화 조치는 무효이고 불법이며 즉각 철회돼야 한다.”고 재차 촉구했다. 중국 인민해방군도 기관지인 해방군보를 통해 “전군 장병은 언제든 국가 주권 수호 임무를 완수할 준비가 돼 있다.”며 무력 대응 태세를 강조했다. 이날 베이징, 상하이 등 중국 본토뿐만 아니라 타이완과 홍콩 곳곳에서도 하루 종일 크고 작은 반일 시위가 이어졌다. 중국 국무원 타이완 사무판공실 판리칭(范麗靑) 대변인은 “댜오위다오 주권을 지키는 것은 중화민족 전체의 이익을 지켜내는 것으로서 양안(兩岸·중국과 타이완) 동포의 공통 책임”이라며 중화권이 함께 힘을 합칠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난 기류와 달리 양측 모두 강약을 조절하는 기류도 읽힌다. 일본 정부는 중국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선박 대피항 건설 등 실효 지배 조치는 당분간 하지 않기로 했다. 또 이날 스기야마 신스케 아시아대양주 국장을 베이징에 파견하는 등 갈등 해결을 위한 외교채널을 본격 가동했다. 도쿄 이종락·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rlee@seoul.co.kr
  • [부고]

    ●박정근(한민대 교수)씨 모친상 강호성(세계사이버대학 총장)씨 장모상 10일 청주병원, 발인 12일 오전 10시 (043)224-2897 ●이동포(대성종합상사 대표)씨 모친상 정환(대구CBS 기자)수환(대구 성서초 교사)씨 조모상 10일 대구전문장례식장, 발인 12일 오전 6시 (053)965-7101 ●김도훈(세주인터내셔날 대표이사)씨 부친상 김현태(천주물류 대표이사)황정호(하이트진로 구매팀장)씨 장인상 10일 부산 해운대 백병원, 발인 12일 오전 8시 (051)711-1451 ●이열근(SK텔레시스 홍보팀장)씨 부친상 10일 한전병원(옛 한일병원), 발인 12일 오전 6시 (02)901-3440 ●장판수(극동연쇄점본부 대표이사·전 민속씨름협회 이사)씨 별세 김재남(인터와인 대표이사)최원준(건영주류 이사)전규창(SK마케팅앤컴퍼니 그룹장)씨 장인상 10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2일 오전 7시 30분 (02)3010-2238 ●설경석(미래에셋생명 경영서비스부문장)씨 장인상 10일 이대목동병원, 발인 12일 오전 5시 30분 (02)2650-2743 ●한순홍(시인)씨 별세 박영걸(인하대 명예교수)씨 부인상 박동철(신경정신과 원장)은경(인하대 교수)유경(약사)씨 모친상 조승호(홍익대 교수)최우천(고려대 교수)씨 장모상 9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2일 오전 9시 (02)3410-6903 ●이연희(모아그룹 회장)씨 장모상 오이석(MBN 사회1부 기자)씨 조모상 9일 청주의료원, 발인 11일 오전 9시 (043)279-0150 ●임병태(태평양물산 회장)씨 별세 석원(태평양물산 대표이사)씨 부친상 9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2일 오전 8시 (02)3010-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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