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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외동포재단 이사장에 주철기 前수석

    재외동포재단 이사장에 주철기 前수석

    주철기(70)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외교부 산하 공공기관인 재외동포재단의 제8대 이사장에 내정됐다. 재외동포재단 이사장은 외교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며 임기는 3년이다. 주 전 수석은 2013년 박근혜 정부 초대 외교안보수석을 지냈다. ▲강원 원주 ▲서울고 ▲서울대 서양사학과 ▲외무고시(6회) ▲주프랑스 대사 ▲한불21세기 포럼회장 ▲한중국제교류재단 사무총장
  •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을 찾아서] 근현대사의 산증인 충정아파트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을 찾아서] 근현대사의 산증인 충정아파트

    이 연재에 충정 아파트를 포함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이 있었다. 한국 도시에 지어진 무지개떡 건축, 즉 주거와 다른 기능이 복합된 건물들을 추적하는 것이 이 연재의 골격이다. 그런데 과연 충정 아파트가 그 기준을 충족하는가? 현재의 충정 아파트는 물론 1층에 상점과 음식점 등이 들어가 있으므로 상가아파트다. 그런데 처음부터 그랬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처음부터 상가아파트였다는 확실한 기록은 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정 아파트를 이 연재에 포함하기로 한 것은 두 가지 이유다. 어쨌건 현재 상가아파트로 기능하고 있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다. 그다음으로는 충정 아파트가 한국 최초의 아파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 최초의 아파트 충정공 민영환 이름 딴 거리정작 설계한 일본인 이름 따 ‘도요다 아파트’로 불리워 ‘최고’, ‘최대’, ‘최장’ 등 뭐든지 1등에 민감한 사회에서 ‘최초’가 예외일 리 없다. 아파트가 하도 많아서 ‘아파트 공화국’으로 불리는 한국 사회가 아닌가. 그러니 ‘최초의 아파트’란 타이틀에 대해서 민감한 것 역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그 타이틀을 가져갈 주인공에 대한 합의는 어느 정도 이루어진 듯하다. 적어도 이에 대한 강력한 반대 의견을 아직 보지 못하였다. 다름 아닌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에 위치한 충정 아파트가 그 주인공이다. 을사보호조약 당시 분사한 충정공 민영환의 이름을 딴 거리에, 게다가 같은 이름이 붙은 건물이다. 그러나 정작 건물을 설계하고 지은 것은 일본인 도요다 다네오(豊田種松)였으니 역사의 아이러니다. 그의 이름을 따라 ‘도요다 아파트’ 혹은 ‘풍전 아파트’라고 불렸다고 전한다. 한국 최초의 아파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단 일본의 미쿠니 상사가 조선 주재 일본인 직원들을 위해 지었다고 하는 미쿠니 아파트가 있었다. 심지어 평양에 있었다는 아즈마 아파트까지 이 논쟁에 등장한다. 하지만 회사 직원들을 위한 관사가 아닌 일반 임대용이었다는 점에서 결국 충정 아파트가 우세를 보였다. 주거 연구가인 박철수 서울시립대 교수에 따르면 시기적으로도 1930년에 건립된 충정 아파트가 가장 앞선다. # 영욕의 세월 30년 지상 4층 건립 이후 45년 동포들에 무단 점유 50년 민간인 학살 장소로 한국전쟁 때도 원형 유지 학문적인 논쟁과 별도로 다행스러운 것은, 이 최초의 아파트가 비록 심하게 변형되기는 했으나 21세기에도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아직도 원래의 기능을 수행 중이다. 다만 그 과정이 보통의 건물에 비해 너무나 험난하다. 실로 한 건물의 인생역정이라 할 만하다. 존중하는 의미에서 연도별로 소개한다. 1930년 일본인 도요다에 의해서 건설되었다. 지하 1층, 지상 4층, 연면적 1050평의 철근 콘크리트 구조였다. 당시 이 지역은 갑신정변 당시 일본 공사였던 다케조에 이치로의 이름을 따서(!) 다케조에초로 불렸다. 이후 호텔 혹은 어묵 파는 술집이 되었다거나, 동아기업으로 소유권이 넘어갔다는 등의 내력이 전해진다. 1933년에는 같은 죽첨정 3가 구역에서 일제 강점기의 유명한 살인사건이었던 금화장 문화주택지 단두 유아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1945년 이후 해외에서 귀국한 동포들에 의해 무단 점유되었다는 설이 있다. 1946년 10월 1일 이 지역의 이름이 충정로로 변경되었다. 민영환은 종로구 공평동에서 순국했는데 왜 이 지역에 그의 이름이 붙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1950년 인민군 재판소가 설치되어 지하실에서 민간인을 학살했다고 전한다. 이러한 사실은 충정 아파트에 대한 자료라면 거의 빠지지 않고 나온다. 다만 그 이상의 자세한 이야기가 없다는 것도 공통적이다. 추정하자면 그 기간은 서울 함락에서 수복에 이르는 6월 28일에서 9월 28일 사이의 3개월이었을 것이다. 물론 1951년 1·4 후퇴 당시인 1월 4일에서 3월 14일 사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여러 정황으로 보면 개전 초기였을 가능성이 높다. 정말 인민군 재판소가 여기 있었을까? 그랬다면 이 건물이 당시 우익 인사들이 수용되어 있던 서대문형무소와 마포형무소(지금의 서울지방법원 서부지원)의 중간 지점이라는 것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짐작해 본다. 그리고 그 학살설이 사실이라면 서울대병원 학살 사건 등과 더불어 인민군의 서울 점령 기간과 관련된 중요한 역사적 사실이다. 건축사와 전쟁사가 교차하는 중요한 사례로서 심층적인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하겠다. 이 지역은 한국전쟁 당시 격전지였다. 서울역에서 신촌역으로 가는 경의선 충정로 터널이 인민군의 군수창고로 쓰여 미군 전투기의 공격 대상이 되었다는 증언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충정 아파트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된 것은 바로 한 장의 사진 때문이다. 국방부의 정책 블로그인 ‘NARA’에 따르면 9·28 서울 수복 전날에 촬영된 것으로 보이는 이 사진은 AP통신의 맥스 데스퍼 기자가 촬영한 것이라고 한다. 미 해병대가 땅속에 숨어 있던 북한 저격병을 백린 연막탄으로 공격하는 장면을 담고 있는 희귀한 사진이다. 그런데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 배경에 바로 당시의 충정 아파트가 등장한다. 층간의 가로줄과 굴뚝이 선명하다. 옥상에는 옥탑으로 보이는 구조물과 경사지붕 등이 보인다. 충정 아파트의 원형을 보여 주는 자료이면서 동시에 한국전쟁의 기록이기도 하다. 이렇게 전쟁통에도 원형을 유지한 충정 아파트가 오히려 전후에 여러 번의 변형을 겪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한편 미군은 서울 수복 후 이 건물을 수용하여 ‘트레머 호텔’이란 이름을 붙이고 유엔군을 위한 시설로 활용했다. 1961년 한국전쟁 당시 아들 6형제를 모두 잃었다는 김병조라는 사람에게 불하되어 5층이 증축되었고 이름이 ‘코리아 관광호텔’이 되었다. 그러나 김병조는 사기꾼으로 판명되어 구속되었다. 당시 상황을 담은 뉴스 영상도 존재한다. 이후 이 건물은 국세청 등 여러 소유주를 전전했다. 1975년 서울은행 소유가 되면서 이름이 ‘유림 아파트’가 되었다. 이후 다시 주민들에게 소유가 넘어갔다. 다만 유림 아파트라는 명칭이 사용되었던 시점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도 있다. 1979년 충정로가 8차선으로 확장되면서 건물 전면이 잘려 나갔다. 원래 전면이 계단식 평면으로 된 특이한 건물이었다고 전하나 이 부분이 깨끗하게 일직선으로 잘려져 나갔다. 이 과정에서 52가구 중 19가구 270여평이 헐렸다. 1층 전면의 상가는 어쩌면 이 과정에서 생긴 것인지도 모른다. 2015년 서울시의 미래 유산 후보의 하나로 지정되었다. 건축물 관리대장에 따르면 현재 충정 아파트의 규모는 김병조에 의한 5층 불법 증축과 도로 확장으로 인한 멸실 부분을 종합하여 지하 1층, 지상 5층이다. 5층은 불법 증축 이후 양성화된 것으로 보인다. 연면적은 3550.41㎡, 즉 1074평이다. 도요다가 지었을 때보다 층은 하나가 더 늘었고 연면적은 24평이 늘었다. 총 41가구이다. 물론 오래된 건물들이 종종 그러하듯이, 이러한 공식 기록이 얼마나 현재 상태와 일치하는지는 정밀 실측과 조사를 하지 않고서는 알 수 없다. # 충정 상가아파트? 식당 등 상가 들어선 1층 인도보다 1m 높아 이례적 지하실 채광 위해 올린 듯 녹색 외관도 본래는 타일 현재의 충정 아파트는 상가아파트다. 만약에 처음부터 그랬다면 한국 최초의 아파트는 바로 상가아파트였다는 사실이 확립된다. 지금의 아파트 문화로 보면 매우 생소하게 들릴 이야기다. 즉, 주거동과 상가동이 분리된 요즘의 통상적인 아파트가 아닌 주거와 상가가 한 몸을 이루고 있는, 요즘의 표현을 빌리자면 주상복합 건물에서 한국의 아파트가 시작되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반복해서 이야기하지만 기록이 충분치 않아 단언할 수는 없다. 1층의 경우 현재의 건축물 관리대장에 따르면 일부의 상가를 제외하고는 아직 대부분이 아파트다. 전면이 모두 상가인 것을 감안하면 현실과 기록이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뿐 아니라 처음부터 이 부분이 모두 상가는 아니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도 있다. 그런데 지하실은 이야기가 좀 다르다. 건립 당시부터 지하층은 있었던 것으로 전한다. 건축물 관리대장에 따르면 지금도 이 부분은 ‘근린생활시설’(일반음식점)로 되어 있다. 지하실은 어차피 건물이 세워지고 난 다음에는 팔 수도 없다. 환기나 채광 등으로 인해 주거가 들어가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바로 이 지하실의 존재야말로 한국 최초의 아파트는 상가아파트였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래저래 충정 아파트는 이야깃거리도 많고 역사적 의미도 깊은 셈이다. 충정 아파트를 찾아가면 제일 처음 눈에 띄는 것이 흔치 않은 녹색의 외관이다. 원래는 타일로 마감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그 위에 두껍게 페인트가 발라져 있다. 특이한 색상 때문에 멀리서도 눈에 잘 띈다. 건물 앞이 버스 정류장이라 사람들의 왕래도 활발하다. 그런데 건물과 인도가 만나는 부분이 다소 독특하다. 1층은 모두 상가고 아파트로 들어가는 입구가 별도로 있는데 모두 전면에 1m 정도 높이의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즉 건물이 일종의 기단 위에 올려져 있는 셈이다. 물론 오래된 건물에서 흔히 보는 방식이기는 하다. 그러나 충정 아파트의 경우는 그 높이가 과하다는 느낌이 든다. 특히 상가 입장에서 보면 계단을 올라와 진입하는 것은 매우 불리한 방식이다. 다만 1층이 처음부터 상가가 아니고 주거였다면 그리고 지하실의 환기나 채광을 위한 개구부를 설치하기 위해서 1층을 들어 올렸다면 이해될 수 있는 문제다. 이 역시 건물의 변화 과정을 면밀히 추적해 봐야 풀릴 수 있는 수수께끼다. 나이가 80이 넘었고 풍상을 하도 겪어서 그런지 건물은 매우 낡은 상태다. 그러나 막상 이렇게 써 놓고도 ‘과연 그래야 할까?’라는 의문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건물 나이 80이면 역사적으로 보면 그리 오래된 것도 아니다. 사실 건물의 나이는 현실적으로는 무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구 상 수많은 오래된 건물들이 이를 보여 준다. 물론 애초에 짓기도 잘 지어야 하겠지만 관리가 그 이상으로 중요하다. 이 점에서 건물과 사람은 유사하다. 약골로 태어나도 철저한 자기 관리를 통해 건강하게 오래 사는 사람도 있고, 무쇠 같은 몸을 갖고 있지만 험하게 굴려서 망가뜨리는 사람도 있다.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세계적으로도 긴 편이지만 건물은 오히려 그 반대다. 그런 점에서 충정 아파트는 안타까운 예다. 남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이기는 하지만 이제 이 건물을 제대로 돌봐야 할 때가 되었다. 한국 근현대사의 산증인으로 이만 한 건물도 드물다.
  • 원양어선 ‘선상반란’… 한국인 선장 등 2명 피살

    원양어선 ‘선상반란’… 한국인 선장 등 2명 피살

    우리나라 원양어선에서 베트남 선원 2명이 한국인 선장과 기관장을 살해하는 선상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부산해양경비안전서는 20일 오전 2시쯤 인도양 세이셸 군도 인근 해상에서 조업 중이던 부산 광동해운 소속 광현 803호(138t) 참치연승 원양어선에서 베트남 선원 B(32)씨와 C(32)씨가 선장 양모(43)씨와 기관장 강모(42)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고 밝혔다. 양씨는 조타실에서, 강씨는 기관장방에서 각각 변을 당했다. B씨와 C씨는 다른 선원 10여명과 양주 2병을 나눠 마신 뒤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 직후 가해 선원들은 흉기를 들고 배에 숨어 있다가 항해사 이모(50)씨 등 다른 선원에게 제압됐다. 이들은 배 안에 격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가벼운 상처를 입은 이씨가 곧바로 선사에 상황을 알렸다. 선사는 다시 해경에 신고했다. 항해사 이씨가 배를 운항하고 있으며 약 4일 뒤 세이셸 군도로 입항할 예정이다. 부산해양경비안전서는 이날 수사본부를 구성하고 21일 현지에 수사팀과 유가족, 선사 관계자 등을 보낼 예정이다. 수사팀은 살인을 저지른 베트남 선원 2명에 대해 사건 경위를 조사하고 나머지 인도네시아·베트남 선원 13명에 대해서도 공모 여부를 수사할 방침이다. 선상 살인 혐의를 받는 베트남 선원 2명은 국내로 압송해 추가 수사를 벌일 예정이다. 부산 해경 관계자는 “베트남 선원 2명이 술을 마신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저지른 범행으로 추정되지만, 자세한 경위는 조사해 봐야 안다”며 “국적 선박에서 벌어진 사건인 만큼 수사와 재판을 국내에서 진행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광현 803호 사건은 페스카마호 사건 이후 20년 만의 선상 살인 사건이다. 1996년 8월 2일 사모아 섬 부근 해상에서 조업하던 페스카마호에서는 중국동포 선원 6명이 열악한 작업조건과 폭력에 반발해 한국인 선원 7명을 포함한 선원 11명을 살해한 뒤 시신을 바다에 버린 선상 반란이 발생했었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잊을 만하면 또···끊이지 않는 원양어선 선상반란

    잊을 만하면 또···끊이지 않는 원양어선 선상반란

    한동안 잠잠하던 선상 반란 사건이 또 발생했다. 인도양에서 운항 중이던 우리나라 국적 원양어선에서 베트남 선원 2명이 한국인 선장과 기관장을 살해한 것이다. 현재로서는 베트남 선원들이 술을 마신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저지른 범행으로 추정되지만, 그동안 발생한 선상 반란 사건의 가해자들이 처우나 임금 체불 등에 불만을 품고 범행을 저질렀던 만큼 추가 조사가 필요한 상황이다. 20일 새벽 2시쯤 인도양 세이셸 군도 인근 해상에서 운항하던 부산 광동해운 소속 광현 803호(138t) 원양어선에서 베트남 선원 A(32), B(32)씨가 선장 양모(43)씨와 기관장 강모(42)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선상 살인사건이 나자 인도네시아 항해사가 해양경찰 당국에 신고했다. 이 사건 발생 전에 있었던 대표적인 선상 반란이 1996년 8월 2일 남태평양에서 발생한 ‘페스카마호’ 사건이다. 온두라스 국적의 254t급 원양참치어선인 페스카마 15호에서 당시 중국동포(조선족) 선원 6명이 반란을 일으켜 선박을 장악했다. 이들은 한국인 선원 7명과 인도네시아 선원 2명, 중국동포 선원 1명 등 모두 11명을 무참하게 살해했다. 피해자 일부는 흉기에 찔려 바다에 버려졌으며, 일부는 냉동창고에 갇혀 동사하기도 했다. 주범들은 한국인 실습생 1명과 인도네시아 선원 3명을 위협해 강제로 범행에 가담시키도 했다. 페스카마호 사건의 가해자 선원들은 자신들이 선박 내에서 학대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그 이전인 1996년 1월 31일에는 북태평양 오호츠크 해에서 조업하던 3527t급 원양트롤어선인 제2오양호에서 베트남 선원 등 7명이 어획물 처리반장인 김모씨를 집단 폭행하고 흉기로 찔러 살해하기도 했다. 1990년 6월 21일 전북 어청도 근해에서 조업 중이던 군산선적 25t급 유자망어선 금암호에서도 선상 반란이 일어난 적이 있다. 한국인 선원 3명이 기관장을 둔기로 때려 쓰러뜨리고 선장을 끈으로 묶고서 LP가스통 밸브를 열어 배를 폭발시키겠다고 협박한 사건이다. 1991년 6월 북태평양에서 조업하던 오징어 유자망어선 제102 화동호에서도 선원 6명이 간부 선원을 흉기로 위협하며 3일간 난동을 부린 사건이 발생했다. 같은 달 18일에는 하와이 부근에서 조업 중이던 오징어 유자망어선 88스텔라호에서는 선원 10명이 간부 선원을 쇠파이프 등으로 폭행하고 배를 장악한 이후 선박을 회항시킨 일도 있었다. 선원들의 처우가 다소 개선된 근래에도 선상 반란 사건은 종종 일어났다. 2006년 라이베리아 부근에서 새우를 잡던 98t급 어선에서 외국인 선원들이 임금체불에 불만을 품고 한국인 선장을 배 안에 억류한 사건이 있었다. 1999년 7월에는 울릉도 동북쪽 해상에서 조업하던 67t급 오징어 채낚기 어선 91찬양호에서 갑판원 기모씨가 선장 김모씨와 말다툼 끝에 흉기로 찔러 중상을 입혔다. 선원들은 인근 선박에 구조됐지만, 기씨가 불을 지르는 바람에 배는 침몰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윤빛가람 소속 옌변팀도 시련…올 시즌 최대고비

    윤빛가람 소속 옌변팀도 시련…올 시즌 최대고비

    최근 배우 김민수와의 SNS 폭로극으로 논란의 중심에 선 축구선수 윤빛가람의 소속팀 ‘연변 푸터(富德)가 올 시즌 최대 고비를 맞았다. 이 팀은 박태하 감독이 이끌고 있다. 18일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16년 만에 중국 프로축구 1부 슈퍼리그에 복귀한 연변 푸터팀은 지난달 28일 랴오닝 훙위안(宏遠)팀을 상대로 4대 1로 승리해 기세를 올렸으나 이달 들어서 2경기 연속 1대 0으로 패배, 3승3무7패의 전적으로 리그 중하위권에 머물렀다. 더구나 연변팀은 이날 오후 리그 1위 광저우 헝다(恒大)팀을 상대로 홈경기를 펼친다. 헝다팀은 작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현재 슈퍼리그에서 2위 허베이 화샤(華夏)팀에 5점 앞서 1위를 달리고 있다. 이에 맞서 연변팀은 부상으로 결장했던 주공격수 하태균과 한국축구 국가대표팀에 발탁됐던 윤빛가람이 돌아와 라인업을 형성했고 오랜만에 홈팬들의 응원을 받으며 승리를 다짐했다. 연변일보는 “불굴의 연변팀이 훙위안팀과의 경기 때처럼 필승의 각오로 경기에 임한다면 대가는 따라올 것”이라며 “정신력과 집중력이 살아나고 홈구장 이점을 최대한 살린다면 상대방을 주눅들게 하고 패배로 몰아갈 수 있다”고 보도했다. 길림신문은 “작년 연변팀이 기적같이 2부리그 우승으로 슈퍼리그에 진출했으나 요즘 성적부진을 겪고 있다”면서 “‘이겨도 내 형제,져도 내 형제’라는 말처럼 어렵고 힘들 때일수록 동포 축구팬의 이해와 사랑,지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연변팀이 중국동포 최대 밀집지역인 지린(吉林)성 연변조선족자치주에 기반을 둘 뿐만 아니라 팀 구성 또한 조선족 출신 선수 중심이기 때문에 동포사회는 연변팀 행보에 희비를 맛보고 있다. 2000명에 달하는 연변팀 서포터즈들은 이날 팀컬러인 빨간색 옷차림으로 통일하고 승리를 기원하는 응원전을 펼치기로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문경근의 남북통신] 뜨는 신의주와 지는 원산…북한 지역 간 ‘흥망성쇠’

    [문경근의 남북통신] 뜨는 신의주와 지는 원산…북한 지역 간 ‘흥망성쇠’

    서울과 인접한 ‘인천’의 인구가 300만명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조만간 제2의 도시 ‘부산’을 앞지를 기세입니다. 남북이 38선을 경계로 국경을 맞닿아 있는 현 상황에서 항만과 공항을 보유하고 있는 인천은 다른 의미에서 ‘접경도시’이기도 합니다. 특히 중국의 부상은 인천이 부산을 추월할 수 있는 근거로 지목됩니다. ‘14억 인구’, ‘세계의 공장’, 미국과 더불어 ‘G2’로 불리는 중국과 인접하고 있는 인천은 그야말로 ‘복터졌다’는 표현이 적절해 보입니다. 1970~80년대 부산이 일본의 호황과 맞물려 번성했듯이 지금은 인천이 중국‘덕’을 보고 있습니다. 북한에도 일본의 침체와 중국의 부상으로 ‘희비’가 엇갈리는 지역 있습니다. 바로 ‘신의주’와 ‘원산’ 입니다.  뜨는 신의주와 ‘화교·조선족’ 북한의 대외무역에서 90%이상이 중국과의 교역이고, 압록강 철교를 통한 육로 수송인 점을 감안하면 북한 내 대부분의 무역활동이 신의주에서 이뤄진다고 보면 될 것입니다. 북한이 핵 실험을 지속하면서 신의주 인근 황금평, 위화도 등 대표적인 북중 경협 프로젝트들이 모두 중단돼 현재는 괄목할 만한 개발이 없지만, 핵문제가 어느 정도 진전을 보이면 북중 간 사업들은 봇물 터지듯 재개될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이 뜨면서 덩달아 북한에 살고 있는 화교들과 조선족들의 위상도 높아졌습니다. 전세계에 화교들이 안 가있는 나라가 없듯이 북한에도 많은 화교들과 조선족들이 살고 있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1960~70년 중국 ‘문화대혁명’ 때 정권의 핍박을 피해 북·중 국경을 넘어 북한으로 피신한 사람들로 알려져 있습니다. 북한주민들도 1990년대 ‘고난의 행군’ 당시 살기 위해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간 사람이 3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으니, ‘인생사 돌고 돈다’는 말이 무관치 않아 보입니다. 화교들과 조선족들 대부분은 북·중 국경이 맞닿아 있는 신의주와 룡연, 정주, 선천 등 평안북도를 중심으로 분포돼 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들은 중국이 발전을 시작한 1990년대 친척방문을 통해 북한과 중국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잇점을 활용해 자연스럽게 보짐장사를 하면서 ‘부’(富)를 축적했습니다. 단동-신의주, 신의주-평양 열차를 이용해 봇짐장사를 하는 화교들과 조선족들이 늘어나면서 점차 그들 중심으로 북한의 경제권이 형성돼 갔습니다. 북한이 국제사회로 부터 대북제재가 강화될수록 역설적이게도 중국과의 정상 교역이나 밀무역을 통한 상거래는 더욱 활발해지고, 화교들과 조선족들의 영향력은 확대됐습니다. 중국에서 ‘부’의 상징은 ‘집’입니다. 중국의 문화를 고스란히 옮겨온 화교들은 신의주에서 정원과 주차장을 곁들인 ‘고대광실’(높은 누대(樓臺)와 넓은 집이라는 뜻으로, 크고도 좋은 집을 이르는 말)에서 살고 있습니다.  화교들과 조선족들이 1990년대는 봇짐장사로 부를 늘려나갔다면, 2000년대 들어서는 식당과 상점 등을 통해 북한 상권을 잠식해 갔습니다. 신의주와 룡연, 정주 등지에서 웬만큼 큰 식당들은 화교, 조선족들과 북한 당국간의 합자형태로 인해 생겨난 식당들이었습니다. 신의주를 터전으로 삼고 평양과 남포 등 대도시로 진출한 이들은 고리대금업, 부동산 개발·임대, 당구장, 노래방, 사우나, 오락실 등은 물론 운수업, 광물거래, 자원개발 등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중국경제가 침체되지 않는 한, 북한 내 화교들과 조선족들의 영향력은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지는 원산과 ‘재일동포’ 원산은 남한의 부산과 마찬가지로 항구도시이자 북한과 일본을 연결하는 ‘접경도시’입니다. 원산항을 중심으로 길게 뻗은 항구도시는 1980년대 세워진 북한 내 지방도시 중 가장 화려한 경관을 자랑합니다. 현재는 낡은 아파트들과 상가들이 줄비하지만 과거에는 평양 다음으로 부유한 도시였습니다.  원산은 북한에서 평양을 제외하고 재일동포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지역입니다. 그러나 일본이 2006년 북한인권법을 시작으로 독자 대북제재에 나서기 전까지 일본과 북한을 왕래하던 여객선 ‘만경봉 92호’는 재일동포들의 생명줄이었습니다. 이 배는 사람만 실어나른게 아니었습니다. 일본에 남겨진 재일북송동포 가족들은 가난한 조국에서 고생하는 형제·자매, 친척들에게 갖가지 생필품과 돈을 보내줬습니다. 수많은 물자들이 이 배를 통해 원산항에 도착해 북한전역으로 펴져갔습니다. 또한 일본의 중고제품은 중국 동북 3성 지역에서도 수요가 높아, 북한은 일본과 중국의 중간 교역국가 역할도 했습니다. 덩달아 원산에 거주한 재일동포들은 일본에서 보내온 물자들을 팔아 생계를 꾸려갔습니다. 일제 물건은 북한에서도 ‘최상품’으로 취급돼 고가에 거래됐습니다.  2000년대는 화교와 조선족의 세상이었다면, 1980~90년대는 재일동포들이 ‘부의 상징’이었습니다. 도요타, 니싼, 마즈다, 미쓰비시 등 일제차를 타고, 화려한 옷을 입은 재일동포들은 북한주민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북한 주민들은 재일동포들이 부러운 나머지 “우리 가족이나 친척들은 일제시대 때 왜 일본에 안갔나”며 불평하기도 했습니다. 1970~80년대 일본 내 도쿄, 오사카 지역에서 ‘빠칭꼬’(일본의 도박 게임)와 ‘야끼니꾸’(일본식 불고기), ‘다다미’(일본식 주택에서 쓰는 돗자리) 등 사업을 통해 큰 돈을 번 재일조선인들 중 일부가 북한에 있는 가족들과 합작사업을 하면서 점차 북한에도 부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평양시 중구역에 거주했던 재일동포 배모씨는 1990년대 기준으로 400만 달러(약 45억원)를 ‘조선합영은행’에 예치하기도 했습니다. 재일동포들 중 일부는 일본에서도 비싸기로 소문난 ‘도요다 크라운’ 승용차를 타며, 평양과 원산 등지에 2층 규모의 서양식 단독주택을 짓고 살 정도였습니다. 또 평양과 원산의 고급식당과 호텔 등지에서 돈을 펑펑 쓰며 사치스럽게 살았습니다.  그들 중 몇몇은 ‘만경봉 92호’를 통해 일본에서 중고 자동차, 오토바이는 물론 자전거, TV, 냉장고, 세탁기 등 가전 제품을 들여와 높은 값을 받고 팔아 이익을 챙겼습니다. 특히 일본에서 가장 수요가 높은 ‘기모노’(일본 전통옷)를 들여와 북한 노동자들로 하여금 옷깃이나, 소매에 ‘수예’를 놓은 뒤 일본에 되파는 방법으로 큰 돈을 버는 재일동포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북한의 핵 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일본인 납치문제에 반발한 일본이 독자제재를 시작하면서 북한에서 살고 있는 재일동포들에게도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일본정부는 우선 재일조선인들이 북한 내 가족, 친척들에게 보내는 대북송금을 차단했습니다. 북한 선박의 입항금지는 물론 교역도 중단했습니다. 그러자 직격탄을 맞은 곳이 원산입니다. 원산 주민들 대부분이 일본과의 무역을 통해 먹고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대일 관련 운송, 가공, 판매, 외환거래 등 연계사업들이 하루 아침에 도산하게 되면서 원산은 부유한 도시에서 가난한 도시로 전락했습니다.  일본과의 무역이 중단되자 원산을 중심으로 살던 재일교포들도 길고 긴 ‘동면’에 들어갔습니다. 일부는 그동안 모아둔 재산으로 다른 사업을 통해 현상 유지에 나섰으나, 대부분은 일본에서 주는 돈을 받고 살던 습관을 버리지 못해 생활고에 찌들게 됐습니다. 북한 내 재일동포들은 ‘오매불망’ 일본의 대북제재 해제를 바라고 있지만, 그 바람은 아득히 멀어 보입니다.   앞으로 주목해 볼 지역은? 북한에서 주요 거점으로 뜰 지역은 평양을 제외하면 우선 ‘나진-선봉’(나선)과 ‘남포’가 될수 있습니다. 나선과 남포 모두 항구 도시로서 이미 북한에서는 특구로 지정돼 있습니다. 북·중·러·일 모두와 교역할수 있는 지리적 이점을 가지고 있는 나선은 향후 한반도에서 가장 활발한 무역 거점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나선의 주변에는 청진과 혜산 등 대도시들이 있어 인구 흡수 측면에서도 다른 곳보다 유리할 전망입니다. 일각에서는 나선에 중국과 러시아, 일본 관광객을 상대로 카지노를 비롯한 복합리조트를 건설할 경우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거둘 것이란 전망도 내놓습니다. 실현 여부는 역시 북핵 문제의 진전 여부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  남포 역시 평양과 인접해 있는 항구 도시로 남한의 인천과 비슷한 환경입니다. 바다와 수도를 잇는 항구도시로서 평양과도 2개의 고속도로로 연결돼 접근성 측면에서도 다른 지역보다 유리합니다. 북한 내 몇 안되는 특급시로 인구면에서도 평양 다음으로 많습니다. 정확한 인구는 파악되지 않지만 약 80만 정도로 알려졌습니다. 남포는 정련소, 제강소를 시작으로 철강, 유리, 조선, 화학공업이 발달했습니다. 남포는 현재는 북한 내에서도 유리, 기계, 유색 금속류 중심 산업 지역입니다. 이미 남한의 대우그룹이 세운 남포공단 등 합작기업을 한 경험도 있어, 앞으로 남북 간 경제협력이 활성화 될 경우 첨단 산업단지로 손색이 없습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삼겹살 먹었다고 중국동포 2명 맥주병으로 폭행한 한족 4명 도주

    삼겹살 먹었다고 중국동포 2명 맥주병으로 폭행한 한족 4명 도주

    중국식 샤브샤브 식당을 이용한 한족 4명이 삼겹살 전문점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중국동포(조선족) 2명을 술병으로 때리고 달아나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17일 청주 청원경찰서에 따르면 전날 밤 9시쯤 청주 청원구 우암동에 있는 한 중국식 샤브샤브 식당 앞에서 술에 취한 한족 4명이 중국동포 A(31), B(26)씨를 맥주병으로 때리고 달아났다. A, B씨는 각각 허벅지와 머리를 다쳐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112에 피해 사실을 신고한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식당에서 나오다가 20~30대로 보이는 한족 남성 4명이 시비를 걸더니 우리를 마구 때렸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B씨와 함께 사건 현장에서 가까운 삼겹살집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와 중국어로 대화를 하는 것을 본 한족 4명 중 한 명이 “중국인이 왜 삼겹살을 먹느냐”고 시비를 걸었다는 게 A씨 주장이다. 한국 음식을 왜 먹었냐는 취지다. 경찰은 사건 현장 인근에 주차된 자동차들의 블랙박스와 폐쇄회로(CC)TV를 분석, 달아난 가해자들을 쫓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중국동포 부정적 이미지 어떻게.

    중국동포(조선족)의 부정적 이미지를 바로잡기 위한 민간 모니터링단이 이달부터 활동에 들어간다고 중국동포 지원 단체인 동북아평화연대가 16일 밝혔다. 모니터링단은 미디어 전문가, 시민 단체 활동가 등으로 꾸려지며 오는 29일부터 서울 구로구 구로도서관에서 활동을 시작한다. 오는 7월 말까지 언론 모니터링, 미디어 비평 등을 주제로 강의를 듣고 신문·방송·영화 등 매체 모니터링, 미디어 콘텐츠 제작 등을 실습한다. 이후 중국동포의 왜곡된 이미지를 바로 잡기 위한 콘텐츠를 만들어 이미지 개선 캠페인도 벌인다. 참가 문의는 동북아평화연대 홈페이지(www.peaceasia.or.kr) 또는 전화 1688-7050.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태극마크 달 뻔한 첼시 리, ‘혈통 사기’로 들어나

    태극마크 달 뻔한 첼시 리, ‘혈통 사기’로 들어나

    ‘해외동포 선수’ 자격으로 지난 시즌 국내 무대에서 활약한 데 이어 8월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 특별귀화까지 추진했던 첼시 리(여·27)가 한국 핏줄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중앙지검 외사부는 15일 첼시 리가 한국여자농구연맹(WKBL)과 법무부에 제출했던 자신과 아버지의 출생증명서가 서류가 위조된 것이라 결론 내렸다. 더구나 첼시 리가 아버지라고 주장한 사람은 실존하지 않고 할머니라 주장한 사람에게는 아들이 없었다는 것이다. 첼시 리는 지난 시즌 할머니가 한국 사람인 것으로 인정받아 WKBL 규정에 따라 ‘해외동포 선수’ 자격으로 한국 무대를 밟았다. 부천 KEB하나은행에 앞서 첼시 리 영입을 검토했던 일부 구단에서 서류 조작 의혹을 제기했지만 선수 등록 절차를 마치고 시즌을 소화했다. 미국에서 태어나 4살 때 입양돼 자신도 한국계임을 몰랐지만 해외 진출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할머니가 한국인임을 알게 됐고 ‘해외동포 선수’ 규정을 알고 있던 에이전트를 통해 한국에 진출했다는 것이 첼시 리 측 설명이었다. 첼시 리는 지난 시즌 정규리그 경기당 평균 15.2득점, 10.4리바운드로 활약했고 득점, 리바운드, 2점 야투, 공헌도, 신인상 등을 휩쓸었다. 하나은행은 외국인 선수와 비슷한 신체 조건을 갖추고 있음에도 외국인 선수 쿼터 적용을 받지 않은 첼시 리의 활약을 앞세워 리그 준우승까지 차지했다. 대한농구협회는 리우올림픽을 앞두고 첼시 리를 농구 우수인재 특별귀화 추천 대상자로 선정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귀화 절차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법무부 등 관계 기관에 투서가 들어가면서 혈통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양원준 WKBL 사무총장은 “물의를 일으켜서 죄송하다”면서 “검찰 발표를 신뢰한다.최대한 빨리 재정위원회와 긴급 이사회를 열겠다”고 밝혔다. 양 사무총장은 “구단과 연맹은 에이전트가 제출한 서류를 토대로 국내에서 가능한 절차적 검토 과정을 거쳤다”면서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봐야 하는 상황이다. 혼혈 선수에 대한 제도적 보완책을 논의하겠다”고 덧붙였다. 한종훈 하나은행 사무국장은 “저희도 속았다.물의를 일으킨 것은 죄송하다”면서 “결과적으로 검증이 불충분했다.실체적으로 모든 것이 밝혀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여자농구에서는 지난 2011년 킴벌리 로벌슨이라는 이름으로 국내 무대에서 활약하던 김한별을 특별 귀화시켜 국가대표로 뽑았지만 부상과 팀 적응 문제 등으로 한 경기도 뛰지 못하고 대표팀에서 이탈한 바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와인박사 육철 영동대 교수, 제자 위해 9000만원 기부

    와인박사 육철 영동대 교수, 제자 위해 9000만원 기부

    ‘와인박사’로 불리는 충북 영동대학교 와인발효·식음료서비스학과 육철(56) 교수가 제자들을 위해 통 큰 기부를 했다. 15일 영동대에 따르면 육 교수가 영동대 학교법인 금강학원에 대학발전기금 9000만원을 기탁했다. 금강학원은 이 기금을 영동대학생 장학금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영동대 개교 2년 후인 1996년부터 영동대 교수로 재직한 육 교수는 제자들을 위해 뜻깊은 일을 하고 싶다며 10년 전부터 돈을 모아 온 것으로 전해졌다. 육 교수는 영동군의 포도·와인산업 성장을 주도해 지역에서 ‘와인박사’로 통한다. 그는 1999년 충북 제1호 대학교 벤처기업인 ‘영동대벤처식품’을 설립하고, 와인아카데미를 통해 다수의 와인전문가를 양성하고 있다. 영동포도클러스터 사업단을 이끌며 48억 6000만원의 국·도비도 지원받았다. 또한 육 교수는 영동대벤처식품 운영을 영동대 졸업생들에게 맡겨 10인 이상의 고용인력을 창출하고 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2004년 대한민국 신지식인 선정, 지난해엔 농업·농촌 발전에 이바지한 유공자로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영동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서울포토] 리우 올림픽 우리국민 보호 대책회의

    [서울포토] 리우 올림픽 우리국민 보호 대책회의

    한동만 외교부 재외동포영사 대사가 15일 오전 서울 도렴동 외교부청사에서 열린 ’리우하계올림픽 우리국민 보호 관련 관계부처 대책회의’에 참석하여 회의를 주재하고 있디.강성남 선임기자 snk@seoul.co.kr
  • [길섶에서] 주인과 나그네/구본영 논설고문

    얼마 전 평생 몸담았던 공직을 떠난 지인의 이임 인사에서 잊고 있었던 법어를 접했다.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라는, 중국 선승이 남긴 말이다. 직역하면 “어디를 가든지 주인이 되면, 그곳이 참된 자리다”라고 새겨진다. 성경의 잠언이 다채로운 여운을 남기듯 불가의 법어도 다의적 울림을 준다. 다만 20여년 지기인 그는 지위가 높든 낮든, 보수가 많든 적든 매사에 책임감을 갖고 일해야 한다는 뜻으로 그 법어를 인용했단다. 그도 그런 주인 의식으로 일했기에 대과 없이 공직을 마쳤을 법하다. 지하철 구의역의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19세 청년의 희생이 그래서 안타깝다. 그 청년이야말로 누가 강요하지 않았지만 끝까지 주인 정신으로 최선을 다했지 않았나. 그런데도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공무를 수행했던 청년의 희생까지 정쟁 거리로 삼는 정치권을 보면 여간 딱하지 않다. 대선 주자급까지 가세해 “정부 책임”이라느니 “서울시가 문제”라느니 하며 남 탓 공방이나 하고 있으니…. 문득 일제에 나라를 뺏긴 후 동포들에게 “그대는 주인인가, 나그네인가”를 외쳤던 도산 안창호 선생의 사자후가 생각난다.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 [문경근의 남북통신]택시기사는 평양시민 선망의 직업…외화노린 전문털이범 기승

    [문경근의 남북통신]택시기사는 평양시민 선망의 직업…외화노린 전문털이범 기승

    북한에서 택시기사가 인기라고 합니다. 14일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이 평양에서 택시기사가 인기직업으로 떠오르면서 채용 과정에서 뇌물이 오가기도 한다고 전했습니다. RFA는 최근 벌어진 상황처럼 설명하지만, 이는 과거로부터 계속되온 관행입니다. 1980~90년대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달러를 만질수 있는 직업이 몇 안됐을 당시 택시 기사는 인기 직종이었습니다. 특히 외화 택시기사가 되면 당국에 적절히 상납하고 일부를 착복할 수 있을 수 있어 운전기사들 사이에서는 선망의 직업이었습니다. 과거 정무원, 현재는 내각 산하에 대외봉사총국 소속 택시사업소는 외국인들과 북한 내 부유층들을 상대로 달러를 받고 운행하는 택시를 운영해 큰 돈을 벌었습니다. 2000년대까지 평양 시내를 누비는 택시차량은 1970~80년대 스웨덴에서 500대 가량 구입한 ‘볼보’ 승용차들이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러시아에서 수입한 ‘다찌야’ 승용차들이 내국인용으로 돈을 받고 운영했습니다. 현재는 중국제 차량들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택시 타기는 웬만한 부자가 아니고서는 엄두도 낼 수 없다는 얘기도 있지만, 제 경험으로 비춰볼 때 그다지 부자가 아니어도 택시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물론 큰 장사꾼이나 외화벌이일꾼, 화교, 북송재일교포가 주로 이용했지만, 신흥 부유층이 늘어나면서 지하철이나 버스대신 택시를 이용하는 빈도가 늘어났습니다. 북한 내 전력 사정으로 주요 시내 통행수단인 지하철과 궤도 전차의 운행이 지연되는 사례가 늘어나자 택시 이용도 그만큼 증가했습니다. 택시는 단거리를 이용하거나 도시와 도시를 왕래하는 장거리 운행 서비스는 물론 몇시간 또는 하루종일 대절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때 하루 대절 값은 미화 100달러 정도였으나, 최근에는 가격이 200~300달러 까지 치솟았다는 소식입니다. 요금으로 외화만 받는 택시는 외화택시라고 하고 북한돈을 받는 택시는 내화택시라고 하는데 요즘은 그 경계가 모호합니다. 내화택시도 외화를 선호하기에 따로 구분하는 것이 의미없을 정도라고 합니다. 물론 외화택시가 훨씬 깨끗하고 좋습니다. 미터기도 설치돼 있고, 콜은 기본이며, 카드용 단말기도 설치돼 있습니다. 기본 요금은 1달러 정도이고 1km주행에 1.5달러가 추가됩니다. 미터기를 사용하지 않고 택시기사가 적당히 요금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평양에서 외화택시는 중심가인 고려호텔등에 호텔과 외화상점 주변에 서 있고, 내화택시는 대부분 평양역이나 김일성광장 근처 등에서 손님을 기다립니다. 국가보위부에 근무했던 한 탈북자는 택시기사를 두고 “당 간부보다 수입이 좋다”는 평가를 합니다. 택시기사들은 모두 배경이 좋거나 권력기관과 연줄이 닿아 있어 보위부나 보안성에서 함부로 단속하기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택시기사들은 연료나 자동차 부속품등을 스스로 외화로 사야 하고 운행과정에서 생기는 사고 등의 모든 문제도 혼자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고충도 만만치 않습니다. 우리의 ‘사납금’과 비슷한 외화를 매일 사업소에 바쳐야 하기에 하루를 느긋하게 보낼수 도 없습니다. 택시기사들의 고민은 이 뿐만이 아닙니다. 평양시내 택시 전문 털이범들이 기승을 부려, 피의자 몽따주 전단지를 만들어 택시에 붙이고 다니는 기사들도 있습니다. 아침부터 운행한 택시는 저녁 때쯤 되면 적지않은 외화가 쌓입니다. 이 돈을 노리고 털이범들은 택시기사들을 유인한 뒤 폭행하고 돈을 빼앗기도 합니다. 당국에서 조사와 처벌을 할 것이란 생각을 하지만 보안원들이 생각만큼 빠르게 움직이지 않습니다. 부패한 관료사회이기 때문에 뇌물을 제공하지 않는 한 큰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이렇게 되자 일부 택시기사들은 함정을 파 택시 털이범을 검거 한 뒤 보안당국에 넘기지 않고 모처에서 앙갚음을 하고 놓아줍니다. 물론 ‘법보다 주목이 가깝다’는 식으로 일방 폭행으로 마무리됩니다. ‘죄 지은 자’ 입장에서는 지은 죄가 있으니 택시기사들의 폭행사실을 신고하기가 어렵습니다. 대개 이런 식으로 두루뭉술하게 넘어 갑니다. 북한에서 주요 택시회사는 내각의 대외봉사총국과 해외동포영접국, 인민봉사총국, 노동당 재정경리부 등에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해외동포영접국 산하의 박두선애국차봉사사업소는 재일교포인 박두선씨가 100대의 일제 중고차를 기부해 운영되고 있습니다. 현재 북한 택시는 약 10000대 정도이며, 대부분 평양시내에서 운영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아기들 귀여움 생존 무기였다

    동그랗게 뜬 눈, 포동포동한 볼을 가지고 까르르 큰 소리로 웃는 아기들을 보는 사람은 누구나 귀엽다고 느낀다. 아이들의 이런 귀여움이 사실은 어른들에게 보호를 받기 위해 진화된 생존 전략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영국 옥스퍼드대 정신과와 미국 국립아동보건·인간개발연구소 공동 연구진은 아기들이 갖고 있는 외모와 피부 감촉, 목소리 등 모든 특질이 사람들의 보호 본능을 자극한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신경과학 분야 국제학술지 ‘트렌드 인 코그너티브 사이언스’ 6일자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성인 남녀 40여명을 대상으로 아기의 얼굴 사진을 보여 주면서 컴퓨터단층촬영(CT),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 뇌자기측정법(MEG) 등 다양한 신경촬영방법으로 뇌가 활성화되는 부위를 관찰했다. 그 결과 측위신경핵(nucleus accumbens), 배쪽창백핵(ventral pallidum) 등이 자극된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들은 좋은 음악을 들을 때나 기쁜 경험을 할 때 자극되는 곳으로 주로 행복감과 보호 본능 등을 관장하는 부위다. 또 연구진은 실험 참여자들에게 아기 목소리를 들려주는 한편 직접 만져 볼 수 있도록 하면서 뇌를 촬영했는데 특히 아이들의 보드라운 피부를 만질 때는 ‘양육 호르몬’으로 불리는 옥시토신이 분비돼 보호 본능이 강하게 자극되는 것을 확인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전사자 유해발굴 알리는 ‘혜리 목소리’

    전사자 유해발굴 알리는 ‘혜리 목소리’

    영어판도 만들어 재외 한인에게 소개 “유해 빠른 귀환 위해 힘 모아 주세요” MBC TV ‘진짜사나이’와 케이블TV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출연해 화제를 모았던 걸그룹 걸스데이 혜리가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제작한 프로젝트 영상에서 내레이션에 참여하는 재능 기부를 해 화제가 되고 있다. 혜리와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홍보대사인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7일 이에 관한 홍보 영상을 공개했다. ‘그들을 조국의 품으로’라는 제목의 이 프로젝트 영상은 5분 분량으로, 6·25전쟁의 참상과 전사자 유해발굴 사업의 중요성 등을 대한민국 남녀노소 누구나 이해하기 쉽도록 한국어(http://c11.kr/7cl)와 영어(http://c11.kr/7cm)로 제작해 유튜브에 공개했다. 특히 영어 동영상은 미국과 영국, 호주 등 6·25전쟁에 참전한 21개 국가를 포함한 전 세계 주요 50개국의 한인회 홈페이지와 한인 커뮤니티 등에 공개해 재외동포와 한인 유학생들에게도 유해발굴사업을 적극 홍보할 예정이다. 서 교수는 “지금 이 순간에도 6·25 전사자 유해는 차가운 땅속에서 우리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지만 이런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고, 국가에서 시행하는 의미 있는 사업이기 때문에 영상으로 만들게 됐다”고 제작 이유를 설명했다. 이번 영상에서 내레이션을 재능 기부한 혜리는 “이런 국가적인 중요 사업에 함께할 수 있어서 무엇보다 영광”이라면서 “전사자 유해가 어서 빨리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우리 모두 힘을 모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07년 국방부 직할 기관으로 창설된 유해발굴감식단은 지금까지 국군 전사자 9000여명의 유해를 발굴했고 이 가운데 113명의 신원을 확인해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냈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하멜·한국의 인연’ 예술로 풀어낸 양순열

    ‘하멜·한국의 인연’ 예술로 풀어낸 양순열

    모성을 테마로 작업해 온 중견화가 양순열(57)이 9일부터 3개월간 네덜란드 호린험의 하멜하우스에서 초대전을 갖는다. ‘하멜표류기’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헨드릭 하멜(1630~1692)의 고향집을 박물관으로 만든 하멜하우스에서 열리는 첫 초대전이다. 인간의 꿈과 사랑, 행복, 희망, 존재, 욕망 등을 주된 테마로 작업을 해 온 양순열은 열네 번째 개인전이기도 한 이번 전시에서 한지에 수묵으로 그린 동양화 외에 설치작품, 나무 조각, 홀로그램과 영상작업, 퍼포먼스 등 4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작가는 “동인도주식회사의 선원으로 일본으로 항해 도중 풍랑으로 제주에 표류해 14년간 억류되어 있다가 네덜란드로 귀환한 하멜의 이야기를 예술언어로 풀어내 긴 인연의 고리를 풀고 싶다”고 말했다. 전시 공간을 하늘이자 바다, 변함없는 심원을 상징하는 쪽빛 한지를 이용해 분할하고 각 공간에는 꽃을 주제로 한 동양화 ‘화심’ 8점과 조각 ‘호모사피엔스’ 8점, 홀로그램 ‘호모사피엔스’를 설치할 계획이다. ‘호모사피엔스’는 작가가 인간의 본성이나 감정에 대한 성찰이 떠오를 때마다 빚어왔던 조각 작품이며, 작품 숫자 8은 하멜과 함께 표류했다 귀환에 성공한 네덜란드 선원 8명을 상징한다고 작가는 설명했다. 아울러 이번 전시를 위해 제작한 호모사피엔스 홀로그램 영상은 전통 창호지에 구멍을 뚫어 내부를 들여다보던 옛 한국의 감수성을 불러일으키도록 상자의 조그만 구멍을 통해 감상하도록 했다. 전시장 한쪽에는 하멜이 표류 끝에 처음 도착했던 제주도의 풍광을 담은 영상이 설치된다. 전시 개막식에서는 쪽빛 안동포 치마에 흰 모시 저고리를 입은 작가가 하멜을 상징하는 ‘호모사피엔스’ 조각을 품에 안고 호린험 항구의 배에서 내려 하멜의 집까지 걸어오는 퍼포먼스를 펼친다. “당신이 새라면 날아갈 수 있겠지만 우리는 외국인을 나라 밖으로 보내지 않는다”는 왕의 말을 거듭 들으며 낙담과 탈출 시도를 반복하다 14년 만에 귀향에 성공한 하멜의 마음을 보듬어 안아주는 의식이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무소속 이해찬, 반기문 대망론에 견제구 “외교관, 정치에 맞지 않아···국내 정치 깊이 생각해봐야”

    무소속 이해찬, 반기문 대망론에 견제구 “외교관, 정치에 맞지 않아···국내 정치 깊이 생각해봐야”

    미국 국무부 초청으로 방미 중인 무소속 이해찬 의원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의 비공식 회동을 앞두고 ‘반기문 대망론’에 견제구를 날렸다. 반 총장을 향해 “국내 정치를 하는 데 과연 적합한지 깊이 생각해 봐야한다”고 말한 것이다. 이 의원은 5일(현지시간) 오후 미 수도 워싱턴DC의 인근에 있는 버지니아주 애난데일의 한 식당에서 동포간담회를 가진 후 기자들과 만나 “정치를 오래 했지만 외교관은 정치에 탤런트가 맞지 않다”면서 “정치는 돌다리가 없어도, 물에 빠지면서도 건너가야 하는데 외교관은 돌다리를 두드리고도 안 건넌다”고 밝혔다. 이어 이 의원은 “그동안 외교관을 많이 봤지만 정치적으로 대선 후보까지 간 사람은 없었다”면서 “외교 차원의 정치는 가능하지만 경제, 사회, 정책, 문화, 교육 등 나머지 영역에서는 인식이 그렇게 깊지 않다. (반 총장도) 국내 정치를 하는 데 과연 적합한지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반 총장과 유엔본부에서 회동하는 8일 반 총장에게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지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에 이 의원은 “정치 얘기를 하는 자리가 아니다. 특별한 의미가 있는 자리는 아니다”라면서 “오래 못 봤는데 우리가 미국에 왔다는 얘기를 듣고 반 총장이 ‘차 한 잔 하자’고 연락해와 차나 한 잔 하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반 총장이 노무현정부 시절 인사를 만나는 것은 2007년 제8대 총장 취임 이후 9년 만에 처음이다. 반 총장은 참여정부 시절 외교부 장관을 지냈으며, 당시 이 의원이 국무총리였다. 이런 인연이 작용해 반 총장 선출에 당시 이 의원이 국무총리로서 세계 곳곳을 다니며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반 총장의 방한을 계기로 유력한 대선주자로 부상한 반 총장이 친노계 핵심 인사인 이 의원을 만나는 것을 놓고 친노계와 정치적 신뢰 회복을 시도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최경주 “벙커샷이 끝내줘요” PGA 메모리얼 클래식 3R ‘보기 0’

    최경주 “벙커샷이 끝내줘요” PGA 메모리얼 클래식 3R ‘보기 0’

     최경주(46·SK텔레콤)가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메모리얼 토너먼트 셋째날을 멋진 벙커샷으로 마무리했다.  최경주는 5일 미국 오하이오주 더블린의 뮤어필드 빌리지 골프클럽(파72·7392야드)에서 열린 대회 3라운드에서 보기없이 버디 3개를 골라내 69타를 쳤다. 1라운드~3라운드까지 68-69-69타로 사흘 연속 60타 타수를 쳐 중간합계 10언더파 206타를 적어내 공동 16위에 이름을 올렸다. 이날 특히 18번홀(파4)의 마무리가 멋졌다. 최경주는 티샷을 러프로 보낸 뒤 두 번째 샷마저 그린 옆 벙커에 빠뜨려 이날 유일한 보기를 적어낼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홀까지 11m를 남기고 친 벙커샷을 그대로 홀에 집어 넣었다.  3라운드를 마친 선수 중에는 재미동포 존 허(26)가 5타를 줄여 중간합계 11언더파 205타로 공동 11위까지 올라섰다. 세계랭킹 1위 제이슨 데이(호주)도 4타를 줄여 11언더파 205타를 신고했고 랭킹 3위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는 2타를 줄인 9언더파 207타를 적어냈다. 그러나 2위 조던 스피스(미국)는 2타를 잃고 4언더파 212타를 쳐 공동 58위로 밀렸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韓·佛 지혜 모아 새로운 물결 만들자”

    “韓·佛 지혜 모아 새로운 물결 만들자”

    1대1 비즈니스 상담회에 참석 ICT·바이오산업 등 협력 강조파리서 열린 ‘K콘 2016’ 매진 오늘 올랑드 대통령과 정상회담 프랑스를 국빈 방문 중인 박근혜 대통령은 2일 파리에서 진행되는 한·프랑스 비즈니스포럼과 1대1 비즈니스 상담회에 참석해 에너지 신산업과 정보통신기술(ICT) 융합, 바이오 등 미래 신산업 분야의 협력을 격려하고 현지 업계의 관심을 촉구했다. 박 대통령은 ‘미래를 창조하기 위해 상상보다 좋은 것은 없다’는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말을 인용, “협력의 큰 밑그림을 그리자”고 말해 기립 박수를 받았다. 또 “프랑스 소설가 생텍쥐페리가 ‘배를 만들고 싶다면 넓고 끝없는 바다에 대한 동경심을 키워 주라’고 했다”면서 “지혜를 모아 미래의 새로운 물결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박 대통령이 1대1 상담회장을 찾은 것은 지난해 페루 방문 이후 두 번째로, “한·프랑스 교역이 감소되고 있는 상황에서 중소기업 위주로 수출 품목을 다변화하고 프랑스 등 유럽 지역으로의 수출 확대를 촉진해 나가려는 정부의 의지를 확인시키는 의미가 있다”고 청와대는 설명했다. 프랑스와의 교역액은 2013년 95억 달러에서 2014년 94억 5000만 달러, 2015년 87억 4000만 달러로 감소 추세다. 이날 1대1 비즈니스 상담회에는 우리 중소기업 100여개사가 참석했으며 프랑스의 대형유통기업과 정보통신, 스타트업 지원기관을 비롯해 독일·영국·덴마크·체코 등 유럽 지역 바이어 190여개사가 참석했다. 이어 박 대통령은 2013년 11월 프랑스를 공식 방문했을 때 동포간담회에서 건립을 약속했던 파리 ‘국제대학촌 한국관’의 착공 기념식에 참석했다. 프랑스가 부지를 무상 제공하고 우리 정부가 건축을 담당하는 것으로, 2017년 완공되면 260명 이상의 한국 유학생을 수용하게 된다. 이날 저녁 파리 시내에서 열린 ‘K콘 2016’ 행사는 1만 2500개 관람석이 사전에 매진됐고, 현장에서는 암표까지 거래되는 등 큰 열기를 보였다. 박 대통령은 3일에는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창조경제와 문화융성 등을 주제로 양국 파트너십 강화 방안을 논의하며 양국은 신성장 동력 창출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할 예정이다. 정상회담에서는 ‘수교 130주년 공동선언’도 채택한다. 앞서 박 대통령이 1일 파리에 도착했을 때는 한국 입양아 출신인 장뱅상 플라세 프랑스 국가개혁담당 장관이 공항에 나와 영접했다. 프랑스는 파리 개선문 앞 샹젤리제 거리 등에 두 나라 국기를 나란히 게양, 박 대통령의 방문을 환영했다. 프랑스는 4일 한·프랑스 수교 130주년 기념일을 맞아 1~7일 ‘한국의 해 특별주간’ 행사를 진행한다. 파리 이지운 기자 jj@seoul.co.kr
  • 역사 탐방 나선 사할린 동포들

    역사 탐방 나선 사할린 동포들

    현대오일뱅크는 지난달 31일 충남 서천군에 영주 귀국한 사할린 동포들의 사회 적응을 돕기 위해 역사문화 체험 행사를 진행했다고 1일 밝혔다. 사진은 사할린 귀화 동포들이 한복을 입고 해미읍성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현대오일뱅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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