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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명구 마라토너 임진각에서 15개월의 달리기 멈추다

    강명구 마라토너 임진각에서 15개월의 달리기 멈추다

    이제 그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쉬었으면 좋겠다. 지난해 9월 1일 네덜란드 헤이그를 출발해 유라시아 대륙을 동진하며 16개국 1만 4500㎞를 달려온 강명구(62) 평화 마라토너 얘기다. 강씨는 1일 경기도 파주 임진각 망배단 앞에서 1년 3개월 쉼 없이 달려온 평화와 통일을 위한 유라시아 대륙 횡단 마라톤에 마침표를 찍었다. 사실 그는 지난해 8월 서울 광화문에서 귀국 행사를 가질 예정이었으나 북한 땅 통과라는 숙원을 이루지 못해 후일을 기약하는 차원에서 다음으로 남겨놓게 됐다. 지난 10월 초 중국 단둥에 도착해 신의주를 통해 북한 땅을 밟아 평양을 거쳐 계속 남하해 군사분계선을 넘는 최초의 민간인으로 이름을 남기며 한반도 혈맥까지 뚫겠다는 포부였으나 북한 당국이 입경 허가를 내주지 않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해 배편으로 지난달 15일 강원 동해항에 입항해 20일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군사분계선을 따라 서진해 이날 임진각에 도착함으로써 장정을 마무리했다. 강씨는 15개월 동안 매일 40㎞ 안팎을 꾸준히 달려온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건강한 얼굴과 몸이었다. 그는 성명을 통해 “언제든 북한 통과 기회가 주어지면 만사 제치고 달려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헤이그 출발 전부터 그를 후원해온 유라시아평화마라톤을 사랑하는 사람들(평마사)의 이장희 상임 공동대표는 “장정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온 강명구 선수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며 “국내외 동포, 후원자, 자원봉사자 여러분과 함께 통일의 의지를 다시 한번 되새겼으면 한다”고 말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포토] 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에게 건네는 어린이들의 환영 꽃다발

    [포토] 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에게 건네는 어린이들의 환영 꽃다발

    G20 정상회의 참석차 아르헨티나를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29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 알베라르 아이콘 호텔에서 열린 동포 간담회에 참석했다. 문 대통령은 동포 간담회에 이어 30일부터 이틀간 열리는 G20 정상회의와 각국 정상과의 양자 회담 일정을 이어갈 예정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文 “지구 반 바퀴, 두 계절을 건너왔다”… 아르헨 동포들과의 특별한 만남

    文 “지구 반 바퀴, 두 계절을 건너왔다”… 아르헨 동포들과의 특별한 만남

    1965년 8월 17일 부산항을 떠난 농업이민단 78명은 꼬박 두 달이 걸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했다. 그들이 품고 온 것은 농사지을 호미와 종자, 1인당 500달러가 전부였다. 앞서 6·25전쟁이 끝나고 정전협정을 체결할 당시 북한 송환을 거부하고 중립국 행을 택했던 북한군 출신 반공포로 중 12명이 당시로써는 이름조차 낯설었던 아르헨티나 땅에 첫발을 내디뎠다. 50여년이 흐른 뒤 아르헨티나 동포사회는 약 3만명 규모로 커졌다. 남미에서는 브라질(약 4만명)에 이은 두번째 규모다. 지난해 5월 취임 이후 해외 곳곳에서 동포간담회를 가졌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감정이 남달랐던 배경일 터.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참석차 29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를 방문한 문 대통령은 알베알 아이콘호텔에서 열린 동포간담회에서 “비행기로 와도 짧지 않은 거리였다. 지구 반 바퀴를 돌아왔고, 두 계절을 건너왔다. 이민 1세대는 이 길을 배로 왔다”며 동포들의 지난했던 50년을 격려하고, 위로했다. 문 대통령은 “(아르헨티나 출신)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남북평화를 위해 축복과 기도를 여러 번 보내 주셨고 여건이 되면 방북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셨는데, 한인 동포사회와의 깊은 인연이 바탕에 깔려 있다고 생각한다”며 “아르헨티나 동포가 한반도 평화를 돕는 보이지 않는 힘이 됐다”고 했다. 이어 “교황님이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 보좌주교로 있던 시절 한인 동포사회와 귀한 인연을 맺었다”며 “교황님께서 병원 사목을 위한 봉사자를 찾을 때 한국 성가소비녀회 수녀님들이 달려와 그 역할을 기꺼이 맡았고 문한림 주교님과 동포사회가 다리 역할을 했다. 교황님께서 직접 해 주신 얘기”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 후 한국 수녀님들은 20년 넘게 봉사하시며 현지에서 ‘올해의 사회봉사상’을 수상하기도 했고, 특히 빈민촌의 천사 세실리아 이 수녀님은 많은 아르헨티나인의 존경·찬사를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아르헨티나 한인 동포사회가 대단한 것은 개척정신만이 아니라 나누고 돕고 함께 잘사는 정신”이라며 수익을 반으로 줄이면서 동포들에게 편물을 가르친 조화숙씨와 농작물을 동포에게 절반 가격으로 판매한 문명근씨 사례를 소개했다. 이어 “맨주먹으로 밭 갈고 집 짓던 힘든 시절에도 ‘혼자 잘살겠다’가 아닌 ‘우리 동포가 함께 잘살아야 한다’는 마음이 이런 헌신·희생을 가능하게 했다”며 “그렇게 109촌을 비롯한 빈민 지역 판자촌에서 시작한 아르헨티나 한인 동포사회는 현재 중심 상권인 아베쟈네다 상가 절반가량을 운영할 정도로 성장했고, 올해는 김홍렬 대표께서 외국인 최초로 아르헨티나 섬유재단 회장에 선출됐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아르헨티나 동포사회에 또 하나 감탄하는 것은 다른 지역과 달리 2·3세들이 한국어를 매우 잘한다는 사실”이라며 “몸은 지구 반대편에 있지만, 마음에는 언제나 조국이 담겨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고 언급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북한 개방되면 월드옥타 회원들이 北제품 전세계로 수출...이런 날이 빨리 오길”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북한 개방되면 월드옥타 회원들이 北제품 전세계로 수출...이런 날이 빨리 오길”

    하용화 신임 월드옥타 회장이 말하는 취임 각오“북한에 대해서는 우리 한인 무역인의 할 일이 아주 많을 겁니다. 지금도 합법적인 범위에서 북한과 생활필수품 교역을 하는 우리 교포들이 많습니다. 북한이 개방되면 국가나 대기업이 주도하는 중공업이나 큰 규모를 빼고 가내 수공업 내지 경공업 분야에는 우리의 역할이 자주 클 겁니다. 우리도 여기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특히 중국에서 일하는 분들을 통하면 북한 내부 소식을 실시간으로 들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기대나 역할에 비해 우리 조직이 너무 과소평가돼 있어 안타깝습니다.” 한국을 제외한 전세계 74개국 146개 도시에 지회를 두고 있는 세계한인무역협회(월드옥타)의 하용화(62) 신임 회장의 포부다. 그는 지난달 월드옥타 회장으로 뽑혀 11월 1일부터 2년 임기가 시작됐다. 세계 금융의 ‘전쟁터’인 미국 뉴욕에서 굴지의 보험중걔회사인 솔로몬 보험그룹을 이끌고 있다. 회사 창립 25주년 행사를 미국 프로야구 뉴욕 메츠 홈구장 경기를 스폰서하면서 성황리에 열기도 했다. 지난달 말 경남 창원에서 열린 제23차 세계한인경제인대회에 참석차 귀국한 하용화 회장은 빠듯한 일정 속에서 출국 직전 가까스로 인터뷰에 응했다. “1986년 영어 공부하고자 도미70군데 원서 넣어도 취업 실패7년간 가방들고 나가 보험 팔아곰팡이 피는 반지하서 생활했죠” 그는 “뉴욕에서 기업을 운영하며 먹고 살만하고, 월드옥타 회장까지 됐으니 ‘개천에서 용 났다’는 말이 맞습니다”며 말문을 열었다. “제 이름이 ‘물하(河), 용용(龍), 될화(化)’이니 개천에서 용 났다는 말이 이름대로 증명됐지요.” 그의 고향은 충남 부여군 세도면으로 ‘오지’로 치부된다. 경기대를 마치고 ‘영어 회화’를 익히고자 미국으로 넘어갔다. “안병욱 교수님의 특강을 들었습니다. 21세기에 살려면 세 가지 즉 운전면허, 컴퓨터, 영어회화를 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그래서 영어회화 한 3개월 하면 될 줄 알고 1986년 1월 미국에 넘어왔는데…. 남들은 1년 반 만에 마치는 MBA를 4년이 걸렸습니다. 그게 지금까지 이어졌으니.” ‘어떻게 미국에서 사업을 크게 일구게 됐느냐’는 질문을 던졌더니 하 회장은 잠시 뜸을 들였다. “1986년 미국에 올 때 아무 연고도 없었습니다. 롱아일랜드대학에서 MBA를 마친 한국 동문 대다수는 한국에 들어갔습니다. 한국 경기도 좋았고. 저는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등 집안 형편상 돌아가지 못하고 …. 입사원서를 미국 회사 70군데에 넣었습니다. 영주권이 없으니 다 떨어지고, 마지막에 보험회사에서 ‘일 해보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열심히 일해 성과가 좋으면 ‘그린 카드’(영주권을 지칭)를 받게 해주겠다고 하면서. 그래서 들어가 일한 거지요. 그게 지금까지 이어진 겁니다.”“1992년 설립한 솔로몬보험연간 1억달러 수신고 기록‘100대 중개사’ 진입 목표동남아인 보험가입 권유하면?” 미국에서의 사업 성공 비결을 묻자 그는 “처음엔 한 7년 동안 가방 들고 한인들을 찾아다녔습니다. 보험을 팔았던 거죠. 사람을 많이 알게 되고, 바닥을 다졌습니다. 그러나 미국 사회에서 한국인의 한계는 분명하죠. 그래서 유대인, 팔레스타인인, 이탈리아인, 중국인 등 국적을 가리지 않고 찾아다녔습니다. 이런 말씀 드리면 죄송하지만, 한국에서 동남아 출신 사람이 찾아와 ‘보험 가입하라’고 하면 들겠습니까. 미국은 그게 가능한 나라입니다. 아시아인인 이 얼굴로 가능합니다.” 그의 회사는 직원 70여명 정도지만 연간 수신액이 지난해 기준 1억달러(한화 1126억원 상당)를 넘었다고 한다. 직원당 약 150만달러의 매출을 기록을 한 셈이다. 미국에 보험 중개사가 수십만개 회사가 있지만 그는 회사를 ‘100대 중개사’에 진입시키는 것이 목표다. 회사 직원의 절반 이상이 비(非)한국인, 수신고를 올리는 이들의 95%가 미국인이다. 지난해 5월 창립 25주년 기념행사를 뉴욕 메츠 홈구장인 플러싱에서 가진 것과 관련해 하 회장은 ‘쿨’하게 이야기 했다. “예약만 하면 다 가능합니다. 시구도 할 수 있고요. 직원들 사기는 굉장히 올라갔습니다.” “버핏, 5만달러 주면서 만찬 초청주빈 테이블서 농담도 교환버핏, 돈 잘 쓰는 철학 보여줘다양한 사람 만나는 게 버킷리스트” 초창기 미국 생활을 이야기해 달라는 말에 하 회장은 “보험 가입하라고 명함을 건네면 그 자리에서 제 명함을 쓰레기통에 넣는 사람도 봤습니다. 곰팡이 핀 반지하에서 살기도 했고 …. 처음엔 한인들을 중심으로 만났지만 나중에 세계 각국의 사람을 다 만났습니다.” 그러다 1992년 솔로몬보험 회사를 설립했다. 그 회사가 성장해 미국 재계가 주목하게 되면서 ‘투자의 귀재’로 알려진 워런 버핏(88)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이 2015년 6월 하 회장에게 5만달러(약 5600만원)를 주면서 만찬에 초청하기도 했다. 버핏은 기업공개(IPO)를 하지 않은 보험회사를 소유하고 있는데 이와 관련해 손꼽히는 중개사 최고경영자(CEO)이자 뉴욕한인회장이었던 그를 초대한 것이었다. ‘워런 버핏 회장과의 만남 뒷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하자 하 회장은 “버핏 회장과 한 테이블에 앉았는데, 금언이 되는 말씀을 들려 주셨습니다. 버핏 회장은 자신의 버킷리스트 첫 번째로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것을 꼽았습니다. 기업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음미해볼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언이 필요할 때 누구를 찾느냐’고 질문하니 그는 ‘당신보다 나은 점이 있는 사람과 어울리고 그 사람의 좋은 점을 닮으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들려줬습니다. 자신은 사람을 만나는 것, 특히 지혜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 첫번째 버킷리스트이고, 거래가 크면 클수록 만족도가 높아진다며 직접 투자하는 것을 권했습니다. 취직하면 처음엔 다른 사람을 위해 돈 벌어주고, 다음엔 다른 사람이 나를 위해 돈을 벌어주지요. 마지막엔 돈이 돈을 벌어들입니다. ” ‘기부 왕’인 버핏 회장은 돈을 쓰는 철학에 대해서도 하 회장이 전해줬다. “버핏 회장은 ‘돈을 버는 건 자신 있지만 돈을 잘 쓰는 것은 어렵다’고하더라며 돈을 잘 쓰는 사람에게 자신의 재산을 줄 수도 있다고 하더군요. 그가 말하는 돈을 잘 쓰는 것은 경로당이나 고아원 같은 불우이웃 시절에 거액을 기부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돈을 쓰면서도 세상을 더 좋게 바꾸는 것’이라고 하 회장은 나름대로 해석했다. 그런 결과로 버핏 회장은 5개의 비영리 재단을 만들었다고 봤다.하 회장은 버핏을 만나면서 만찬 비용을 낸 것이 아니라 “인센티브로 5만달러를 받았다”고 자랑스럽게 그리고 살짝 말했다. “초청을 받은 저는 왕복 항공권과 숙박권뿐만 아니라 그가 소유한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의 백화점 상품권도 받았습니다.” 매일 신문 6~7개를 읽는 버핏 회장은 또한 유머가 굉장히 뛰어났다고 그는 기억했다. 그가 들려준 유머다. “내 친구 존이 귀가 안 들린다고 이야기하길래 내가(버핏이) 친구랑 같이 주치의를 찾아갔지요. 병원 의사는 나랑 친구를 몇 걸음 떼어 등을 돌리고 서 있으라고 한 뒤 나에게 궁금한 것을 친구에게 물어보라고 했어요. 내가 ‘GM 주가 어떻게 돼?’를 여러 번 갈수록 큰 소리로 외쳤던 겁니다. 아무 소리도 안들려 의사에게 ‘친구 존이 정말로 귀가 먹었나보다. 내가 큰 소리로 몇 번이나 물었는데도 답이 없다. 큰일이야.’고 하자, 의사는 ‘사도 괜찮다며 친구는 다 답을 했다.’라고 했죠. 하하. 실제로 대화해보니 버핏 회장은 잘 듣고, 대답도 잘 하시더라고요.” 그는 재외동포 중심의 경제단체인 월드옥타가 그 역할에 비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며 옥타 위상의 재정립에 대해 힘주어 말했다. 해외 750만 동포의 경제 중심 단체로서 모국과의 동반성장을 추구하고, 4세대까지 내려간 동포들에게 정체성을 일깨우고 무역실무를 가르치는데 방점을 찍겠다고도 했다. “지난달 창원에서 열린 행사에서 수출 계약금이 6200만달러(약 700억원)였습니다. 수출대국 한국에선 ‘그게 무슨 큰 도움이 되겠느냐’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한 번도 수출해보지 못한 작업 기업들, 중소기업의 입장에서는 수출이라는 큰 발을 내디딘 것이라 생각합니다.” 북한에 대해서도 중국이 처음 개방했을 때 전세계 화상(華商)들이 중국 물건을 보따리 장사로 수출했던 것처럼 머지않아 월드옥타 회원들이 한상(韓商)으로서 북한 제품을 수출할 것이란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청와대에 최근 이와 관련된 조직을 정비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북한 제품을 우리가 수출하는 그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우리 월드옥타 회원들은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그가 장밋빛 성공 가도만 달렸을까. 참척(慘慽)의 고통에 대해서도 되풀이되지 말자는 뜻에서 담담히 털어놨다. “처음엔 누구나 그렇듯이 남들에게 알리지 않고 숨겨 가족끼리만 (장례를) 하려고 했죠. 그래서 실명 대신 ‘H’씨로 보도됐는데 뉴욕지역의 유력 신문이 ‘전 뉴욕한인회장의 딸 투신 자살’이라고 1면 톱으로 보도한 거예요. 그 신문 사장과 ‘x새끼, x새끼’하고 전화로 싸워봤자 이미 다 터져버린거죠. 어쩔 수 없이 빈소를 차리니 조문객이 1200명이 오신 거예요. 부의금이 10만달러였는데 이를 어쩔까 고민하다 3개월이 지나 조문객들을 모아 논의했지요. 그때 마음의 병도 생명을 다투는 병이니 경각심을 주자는 의견이 모였고 그래서 2014년 딸의 이름을 따서 정신건강 비영리단체인 ‘에스더 하 재단 설립했습니다. 자살이나 우울증과 같은 심리 문제에 대해 상담과 소통, 치유 등 힐링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우울증에 적절한 치료를 병행하지 않고 운동과 햇빛이 좋다는 인터넷 이야기는 미친 짓이란 걸 절절이 깨달았습니다.” “갑작스러운 딸 죽음 불행에이름 딴 ‘에스더 하 재단’ 설립한류 열풍에 동포들 자긍심 높아해외 우리 유물 알기 운동도 계획” 이 재단을 만들고서도 뒷말이 많았단다. “재단을 알려야겠기에 처음엔 ‘아이와 사연’ 있는 한국 가수들을 초청해 공연도 했지요. 그랬더니 ‘딸을 팔아서 가수 부른다’고 수군수군했습니다. 이젠 많이 알려졌고, 많은 이들이 재단 프로그램을 이용하고 있어 더는 가수들을 초청하지 않습니다. 또 재단에 연간 20만달러 정도 소요되는데 제가 절반쯤 냅니다만, 재산을 빼돌리려고 재단을 만들었다는 등 뒷말들이 많았는데, 이젠 조용해졌습니다. 진심이랄까 진정성이 통했던 거죠. 지난달 25일엔 뉴욕의 그레이터플러싱 상공회의소로부터 ‘동네 영웅(Neighborhood Hero) 상을 받았습니다.” “딸 아이 때문에 많이 힘들었겠다”고 하자 하 회장은 “처음엔 지옥이었습니다. 사회생활에 무척 바빴던 저는 가정에 소홀했다는 회한, ‘머리가 이상하다’는 딸의 말을 무시하고 강하게 푸시했던 무지, 서로 ‘당신 탓’이라며 원망과 비난으로 끝없는 부부 싸움, 학교를 그만두고 술만 마시며 나이트클럽만 전전한 딸, 아무런 말도 않고 안으로만 들어갔던 아들 … 모든 게 엉망이었고, 가정이 풍비박산이 났죠. 이런 것을 극복하는데 기독교 신앙의 힘이 컸죠. 부의금을 재단의 시드머니로 삼았습니다. 재단을 잘 운영해 한 명의 목숨이라도 건지는 것이 21살, 대학교 2학년 때 간, 가슴에 묻은 딸을 기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의 가족의 상처를 다시 건드릴까봐 쓰지 말까 생각하다 비슷한 고통에 처한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자 해서 기사화했다. 그도 이런 부분을 기사화하는데 동의했다). 그리고 이같은 그의 아픔과 치유 스토리는 미국 보이스오브아메리카(VOA)에 ‘딸의 이름으로’라는 제목으로 지난 9월 29일 심층적으로 보도되기도 했다. “애국가만 들어도 눈물이 나는” 해외 동포들이 요즘엔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닌다고 한다. 방탄소년단(BTS)으로 대표되는 K-팝과 한국 음식, 한국 문화 등 한류 열풍에 힘입은 것이다. “한국 문화가 세계화되면서 현지에 있는 우리 문화재 내지 유물에 관심도 높아진 거죠. 당장 무슨 환수운동을 벌인다기보다는 우리 유물이 어디에 어떤 게 있는지 파악하고, 현지 사람들이 많이 찾는 그 문화재가 한국 것이라고 후세들에게 알려주는 거죠. 그런 것을 통해 문화적 자긍심을 심어주고, 정체성도 일깨워주는 것도 우리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해외 동포들이 우리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게 되면 그곳에 있는 우리 문화재를 다시 한번 찾아가보고 조사해 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해외 취업 ‘전쟁터’라는 각오로아이들 연약하게 키운 부모 책임” 한국의 실업률과 관련해 그는 할 말이 많은 듯했다. 하 회장은 “청년들이 국내에서 취업이 어려우니 외국에 눈을 돌리는데, 그게 해외는 도피처가 아니라 ‘전쟁터’라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전쟁터에 나간다는 마음의 각오를 다져야 합니다.”고 말하며 잠시 쉬었다. “한국 청년들, 소위 말해서 스펙은 무척 좋습니다. 자격증도 많고 토익 점수도 900점대로 아주 높고…. 그러나 인재를 뽑는 기업 입장에서는 이런 것을 원하는 게 아닙니다. 도전적이고 진취적이거나 아주 특이한 분야를 전공한 사람을 찾습니다. 특히 해외에서 취직을 하겠다고 하면 환상을 깨야 합니다. 미국만 해도 전세계의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전쟁터입니다. 우리 청년들이 영국·일본 등 선진국만 찾습니다만 이런 나라에는 야심만마난 전세계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나라입니다.”하 회장은 쓴소리를 이어갔다. “한국의 부모가 자녀를 연약하게 키운 책임이 큽니다. 자라면서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은 아이들이 험한 데서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도 베트남의 경우 하루가 다르게 성장합니다. 몇 년 열심히 투자하면 저보다 몇 배나 더 큰 부를 일굴 수 있을 겁니다. 베트남 등 동남아뿐만 아니라 아프리카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우리 청년들이 한국보다 잘 사는 나라, 좋은 기업, 많은 연봉을 주는 곳만 찾으니 이런 나라에 갈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다행인 것은 한류 열풍에 한국 문화에 대한 수요가 무척이나 많습니다. 한국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 호텔리어, 헤어·의상 디자이너 등등에 수요가 아주 많습니다. 행운이라는 것은 준비된 사람이 기회를 만났을 때 생기는 것이지 하늘에서 곶감 떨어지듯 하는 건 아닙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마음 열면, 다문화도 꽃길 됩니다”

    “마음 열면, 다문화도 꽃길 됩니다”

    “검정 비닐봉지에 쓰레기를 담아 내던 동네가 중국동포 자원봉사단 덕분에 꽃길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마음을 여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걸 여실히 느꼈습니다.”이성 서울 구로구청장은 지난 22일 전국다문화도시협의회 주최·주관으로 진행된 토론회에서 구로구의 다문화 정책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이 구청장은 이번 토론회에 다문화도시협의회장 자격으로 참석했다. 구로구는 다른 자치구에 비해 외국인 인구 비율이 높다. 이는 곧 앞서가는 다문화 정책을 위한 노력으로 이어졌다. 구는 다문화 정책 방향과 과제를 토론하는 열린 토크 콘서트, 다문화 명예통장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또 자녀양육에 관한 방문교육, 통·번역 서비스를 지원하는 다문화 가족지원센터도 운영하고 있다. 이는 이 구청장이 외국인 주민 1만명 이상인 25개 지자체로 구성된 전국다문화도시협의회장을 맡은 이유이기도 하다. 이 구청장은 “구로구 외국인 주민이 4만 8000명으로 전체 구민의 10% 정도”라며 “가리봉동 도시재생 사업, 문화거점 사업 등 주민 모두가 어울릴 수 있는 화합 정책을 펼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화 다양성이 가져다 주는 지역의 경쟁력’을 주제로 진행된 이날 토론회는 박경태 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의 사회로 진행됐다. 다문화 회원도시·기관 관계자와 주민 등 150여명이 참석해 토론회 열기가 뜨거웠다. 김경화 창원시 문화예술과 정책관의 ‘지역의 문화·예술 정책 방안’, 이혜숙 서울연구원 박사의 ‘서울시 다문화 청소년의 교육 방안’에 대한 발표가 진행됐다. 이어진 토론 시간에는 참석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오충근씨는 “다문화 가정이 늘어나면 지역발전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고 질문했다. 이에 이 구청장은 “우리 사회는 다문화 사회를 맞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가리봉동 상인에게 매출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중국동포들은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됐다. 결국 상생 방안에 집중해야 한다”고 답했다. 다문화 가정 자녀의 학업 문제에 대해서는 “다문화가 이유라기보다는 가정형편 등으로 돌봄체계가 부실해 생기는 문제”라며 “단순한 학업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사회의 돌봄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구청장은 “이번 포럼을 통해 지자체 공무원의 시각이 아니라 다양한 시각으로 정책을 바라볼 수 있게 됐다”며 “정책을 수립하는 데 길잡이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재미동포 이산상봉단 포함 추진

    정부가 향후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 때 재미동포 이산가족도 상봉단에 포함하는 방안을 북한과 협의하고 있다고 28일 밝혔다. 성사되면 처음으로 재미 이산가족이 상봉 행사에 참석하게 된다. 백태현 통일부 대변인은 이같이 밝히며 “한·미 간 긴밀한 공조 아래 북측과 협의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전날 자유아시아방송은 미국 국무부 고위 관리가 이달 중순 워싱턴을 방문한 조명균 통일부 장관과 재미 이산가족이 북한 가족과 만날 수 있는 현실적 방안을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그는 2차 북·미정상회담 전에 재미 이산가족이 전화나 영상 형태로 상봉을 할 수 있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남북은 금강산 이산가족 면회소 복구, 화상상봉·영상편지 교환 등을 논의하고자 11월 중 열기로 한 적십자회담 일정을 잡지 못한 상황이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문 대통령, 프라하에서 청산리대첩 ‘소환’한 까닭은?

    문 대통령, 프라하에서 청산리대첩 ‘소환’한 까닭은?

    “2019년은 3·1운동 100주년이자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의 의미 깊은 해다. 체코는 독립운동과도 아주 깊은 인연이 있다. 1919년 극동지역에서 볼셰비키 전투 중에 있던 체코슬로바키아 군대가 우리 임정 대표들과 여러 차례 교류했다. 1차 세계대전을 마치고 체코로 돌아갈 때 그들이 가진 무기를 우리 독립군들에게 매도를 해줬다. 그때 한국 독립군이 체코 군대로부터 매입한 무기를 사용해 크게 이긴게 청산리 대첩(1920년)이다.” 고교 시절부터 역사학도를 꿈꿀 만큼 남다른 관심을 지닌 문재인 대통령은 28일(현지시간) 체코 동포·기업인과의 간담회에서 이처럼 체코와 청산리대첩의 남다른 인연을 끌어냈다. 1920년 10월 청산리대첩에서 독립군이 10여 회의 전투 끝에 일본군 연대장을 포함 1200여 명을 사살하는 등 빛나는 승리를 거둔 이면에는 체코 무기가 있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프라하 힐튼호텔에서 열린 동포·기업인 간담회에서 “청산리대첩이라는 항일운동에서 가장 유명한 그 승리도 체코 무기의 우수성에 도움을 받은 바가 크다. 그런 사실이 청산리전투 참여했던 이범석 장군의 ‘우둥불’이라는 회고록에 기록돼 있다”고 설명하자 참석했던 20명의 교민은 ‘그런 사실이 있었냐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문 대통령은 이어 “3·1운동도 여기 체코 신문에 아주 크게 보도가 돼서 중유럽과 동유럽에 3·1 독립운동을 알리는 아주 큰 역할을 했다”며 “정부는 내년에 3·1 독립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을 남북이 공동으로 하는 온겨레의 축제로 준비하고 있다”며 재외 동포들의 관심과 성원을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자서전 ‘문재인의 운명’에서 “원래 역사를 전공하고 싶었다…처음 변호사 할 때 ‘나중에 돈 버는 일에서 해방되면 아마추어 역사학자가 되리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고 말할 만큼 해박한 역사 지식을 지닌 것으로 유명하다. 문 대통령은 또한 “체코는 아시아 국가 중에 최초로 우리하고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었다”며 “그런 만큼 체코는 우리에게,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대단히 중요한 나라”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체코는 한국전 이후에 ‘중립국감독위원회’의 위원국으로 이렇게 참여한 인연도 있어서 한반도 상황에 대해서도 아주 관심을 가지고 있고 또 잘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당초 문 대통령은 동포간담회와 별도로 현지 기업인과도 만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일정이 맞지 않아 간담회에 기업인들을 초청해 한꺼번에 행사를 진행했다. 간담회에는 체코한인회 임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위원, 체코에 진출한 한국 기업 주재원, 태권도 품새 국가대표 감독, 체코국립극장과 국립발레단 단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중인 동포 20명이 참석했다. 양동환 현대자동차 체코 법인장, 박현철 두산 인프라코어 유럽 법인장 등 체코에 진출한 우리 기업인 등 경제인들도 함께했다. 최춘정 세계한인경제인협회 프라하지회 부회장은 “중유럽 문화의 중심지인 체코에 한국 기업들이 대대적으로 진출했다“며 ”특히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국어, k-pop, 한국 영화 등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고 며 체코인들에게 한국 문화, 역사, 예술을 알리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한섭 프라하 한글학교 교장은 “교민 자녀들이 한-체코 간 소통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우리 문화.역사와 한국어 교육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프라하 국립극장에서 합창단원으로 활약 중인 조원배 테너는 문 대통령 내외를 환영하는 마음을 담아 ‘벚꽃엔딩’과 ‘희망의 나라로’를 부르기도 했다. 프라하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다문화 가정 부모 10명 중 3명 베트남인

    다문화 가정 부모 10명 중 3명 베트남인

    다문화 취학률 초등 97%·고교 53% 다문화 가정의 부모 중 베트남인 비율이 6년 만에 4배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던 일본인 부모는 급감했다. 27일 국회 입법조사처가 발간한 ‘다문화학생의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올 4월 기준 중·고교의 다문화 학생은 전체 학생의 2.2%인 12만 2212명으로 집계됐다. 2012년 4만 6954명에서 6년 만에 2.6배 늘었다. 특히 다문화 가정의 초등학생은 3.4%에 이르렀다. 전체 학생 중 다문화 학생 비율이 높은 지역은 전남(4.3%), 충남(3.3%), 전북(3.2%), 경북(3.0%) 등 농촌이 많은 곳이었다. 부모의 출신 국적은 베트남이 29.1%를 차지해 가장 많았다. 최근 베트남 여성과의 국제결혼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다음은 중국(22.3%), 필리핀(11.5%), 중국 동포(10.2%), 일본(8.5%) 순이었다. 2012년에는 일본 부모 비율이 27.5%로 가장 높았지만 해마다 줄어 올해는 8.5%에 그쳤다. 반대로 베트남 부모는 2012년 7.3%에서 올해 29.1%로 4배가 됐다. 필리핀, 중국 동포 부모도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베트남 이민자는 주로 영남권, 중국은 수도권, 필리핀은 강원·호남권에 많이 사는 것으로 조사됐다. 다문화 학생은 고등교육을 받는 비율이 낮아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초등학교 취학률은 전체 학생이 98.5%, 다문화 학생이 97.6%로 0.9% 포인트 격차였지만 고등학교 취학률은 각각 68.1%, 53.3%로 격차가 14.8% 포인트로 벌어졌다. 황현희 입법조사관은 “사춘기 다문화 학생의 정서 상담과 진로·진학교육을 강화해 고등교육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미 국무부, 2차 북미정상회담 전에 재미 이산가족 상봉 가능성 언급”

    “미 국무부, 2차 북미정상회담 전에 재미 이산가족 상봉 가능성 언급”

    미국 국무부의 고위 관리가 2차 북미정상회담 전 재미교포 이산가족의 전화나 영상 상봉 성사 가능성에 대해 언급했다고 자유아시아방송(RFA)이 27일 보도했다. 이차희 전미이산가족상봉추진위원회 사무총장은 이민 2세대 주축의 재미 이산가족연합인 ‘DFUSA’(Divided Families USA) 대표가 이달 중순쯤 미 국무부에서 북한 관련 정책을 담당하는 고위 관리와의 통화 내용을 알려왔다며 이처럼 밝혔다. 이 사무총장은 “국무부의 고위 관리가 DFUSA 대표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이산가족 상봉 문제를 대북정책의 우선 과제로 재조정했다고 말했다고 한다”면서 “다음 ‘핵무기 회담’ 전에 이산가족 상봉을 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그는 이 고위 관리가 언급한 ‘핵무기 회담’을 내년 초 개최가 예상되는 2차 북미정상회담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국무부 관리가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성사되면 영상이나 전화 상봉 형태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고도 전했다. 이 사무총장은 미주한인회 총연합회와 함께 스티브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북측과 회담을 하기 전에 가족과의 상봉을 희망하는 재미 이산가족의 1차 명단을 작성해 국무부에 전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RFA에 따르면 이 고위 관리는 이달 중순 워싱턴을 방문한 조명균 통일부 장관과도 만나 이산가족 상봉과 관련한 남북 협상의 진전과 재미 이산가족이 북한 가족과 만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에 대해 서로 정보를 공유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명균 장관은 지난달 통일부 국정감사에서 재미교포 이산가족 상봉과 관련된 질의에 대해 “남북 이산가족 상봉 문제 해결에 함께 포함해서 해결하자는 제의를 북측에 공식적으로 해놓고 있다”고 밝혔다. 이달 14일 방미 기간 워싱턴의 한인 대표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조명균 장관이 “기본적으로 해외에 계신 동포들의 이산가족 상봉, 서신 교환, 최근에는 화상 상봉이 (남북 간에) 합의가 됐고, 영상 편지 교환도 합의가 되어서 이런 것에 재미 이산가족도 포함하는 것을 한국 정부가 제안했고 북한도 ‘검토해보겠다’고 답했다”고 설명했다고 RFA는 전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文 대통령, 다음 주 G20 참석…‘한반도 평화’ 지지 호소

    文 대통령, 다음 주 G20 참석…‘한반도 평화’ 지지 호소

    문재인 대통령이 오는 27일부터 다음달 4일까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대해 지지를 호소하고, 세계 경제적 기회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남관표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은 23일 브리핑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은 G20 참석에 앞서 체코를 방문해 안드레이 바비스 총리와 회담을 하고 현지 우리 동포들을 격려할 예정”이라며 “이어서 오는 29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아르헨티나를 방문해 공정하고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한 컨센서스 구축을 목표로 하는 G20에 참석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G20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아르헨티나와 네덜란드,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주요국 정상들과 양자회담을 갖고 우호협력 및 실질협력 증진방안을 협의할 예정이다. 특히 이번 G20 주최국인 아르헨티나의 마우리시오 마크리 대통령과는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이후 14년 만에 한·아르헨 정상회담을 개최하고 양국 간 포괄적 협력동반자관계 강화 방안을 협의한다는 계획이다. 남 차장은 “문 대통령은 G20 의제와 관련한 세계 경제 현안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을 설명하는 한편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지형 및 세계 경제적 기회에 대한 G20 정상차원의 관심과 지지도 요청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또 문 대통령은 다음 달 2일부터 4일까지 뉴질랜드를 방문해 재신더 아던 총리와 정상회담 및 동포간담회를 가질 계획이다. 남 차장은 “이번 뉴질랜드 방문은 9년 만에 이뤄지는 우리 정상의 방문”이라며 “양국 간 우호협력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방향과 우리 신(新)남방정책과 뉴질랜드 신태평양정책이 시너지 효과 내면서 역내 번영과 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구체 협력방안이 논의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청와대는 또 한미정상회담의 개최 여부도 G20이 열리는 아르헨티나 현지에서 최종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아르헨티나 체류 시간이 너무 짧아 어려움이 있지만, 양측이 최대한 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지난 순방 때 문 대통령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 면담도 현지에서 시간·장소가 결정됐는데 이번에도 그럴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회담이 성사되면 2차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기대라든지, 미국 측에서도 그런 과정에서 우리의 역할에 대해 가진 많은 기대를 서로 교환하는 측면에서 아주 좋은 기회가 되리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또 문 대통령은 바비스 체코 총리와의 회담에서 원전 수주 문제도 언급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사전에 조율한 것은 없지만, 가급적 회담에서 언급하려는 것으로 하고 있다”며 “체코의 원전과 관련해서는 여러 가지 변수가 있는데 우리의 강점을 설명하고, 그에 따른 관심도를 높이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시리아 알레포 어린이들의 ‘산타’, 기부금 유용해 철창행

    시리아 알레포 어린이들의 ‘산타’, 기부금 유용해 철창행

    내전으로 얼룩진 시리아 북서부 알레포 어린이들에게 각종 장난감을 나눠줘 ‘알레포의 산타클로스’로 알려진 핀란드인이 기부금을 유용한 혐의로 철창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핀란드 헬싱키 지방법원은 21일(현지시간) 시리아계 핀란드인 라미 아드함(45)에 대해 자신이 세운 자선단체의 기부금을 유용한 혐의로 징역 10개월을 선고했다고 영국 BBC 방송이 전했다. 알레포 시민들은 아드함을 ‘알레포의 장난감 밀수꾼’으로 불렀다. 음식과 약품, 장난감이 가득 든 자루를 등에 지고 알레포를 찾아오는 모습이 밀수꾼 같아 붙여진 별명이다. 하지만 자루를 여는 순간 아드함은 산타클로스로 변신해 인기를 끌었다. 아드함은 알레포에서 태어났지만 10대 때 핀란드로 이민을 가 핀란드에서 줄곧 살았다. 대학 졸업 후 작은 건강식품업체를 운영하던 아드함은 2011년 시리아 내전의 참상을 보고는 “동포들의 고통에 무관심할 수 없다”며 2012년부터 홀로 시리아 구호 활동에 나섰다. 처음에는 사비를 털어 음식과 약품을 사들였다. 아드함은 알레포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전달하게 된 배경에 대해 “3살배기 딸 야스민이 ‘내 바비인형도 전해주고 싶다’고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딸의 말을 들은 그는 즉시 곰인형과 바비인형 60여개를 사들고 터키 국경 근처 난민캠프로 갔다. 알레포 어린이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현재 핀란드에서 시리아 지원단체 ‘수오미 시리아’를 운영하는 그는 두세 달에 한 번씩 시리아를 찾았다. 구호물품과 장난감 구입비는 기부금으로로 충당했다. 시리아 정부군의 포격이 이어지는 알레포로 70~80㎏이 넘는 장난감 자루를 짊어지고 들어가는 일은 위험의 연속이다. 하지만 핀란드 사법당국은 그가 아이들을 돕기 위해 설립한 수오미 시리아에 기부된 돈 일부를 빼돌려 개인적으로 썼다고 밝혔다. 기부금 34만 달러(약 3억 8000만 원) 중 7만 달러(약 8000만원)는 핀란드 한 지역 농장의 오두막을 짓는 데 쓰였고, 또 일부는 터키에서 만든 그의 계좌로 흘러들어간 것으로 드러났다. 법원은 또 그가 모금에 필요한 허가도 받지 않았다고 밝혔다. 아드함이 알레포 아이들에게는 산타클로스였지만, 탈세, 마약 범죄, 폭행 전과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추된 이미지를 회복하긴 쉽지 않아 보인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길섶에서] 조선 국적/황성기 논설위원

    조선 국적 재일동포 지인이 얼마 전 서울에 왔다. 도쿄에 있는 한국대사관에서 ‘대한민국 여행증명서’를 발급받았는데, 까다로운 절차 없이 척척 진행되더란다. 재일동포 출신 유도 국가대표 안창림 선수를 취재하기 위해 한국 땅을 처음 밟았다는 그는 한글을 어릴 때부터 배워서인지 거리가 낯설지 않다고 했다. 조선 국적 재일동포 입국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허가나 금지를 왔다갔다 했다. 그러던 것이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재일동포의 경우 국적을 불문하고 인도주의 차원에서 고향 방문을 정상화하겠다’고 밝힌 뒤 대응이 바뀌었다. 신청을 하면 거의 여행증명서가 발급되고 있다. 조선 국적이라고 하면 마치 북한 사람이나 조선총련계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은데 반드시 그렇지 않다. 일본은 1947년 재일 조선인들에게 조선적을 부여한 뒤 남북 국적을 선택하도록 했는데 어느 쪽도 택하지 않은 동포들은 조선적을 유지하고 있다. 그 인원이 3만명이다. 지인은 입국할 때 살짝 불편한 경험을 했다고 한다. 여행증명서를 처음 본 듯한 입국심사대 직원이 방으로 부르더란다. 차별을 없애자는 조치를 취했으면 입국할 때 동포들이 불쾌한 일이 없도록 배려를 했으면 좋겠다. marry04@seoul.co.kr
  • [미래유산 톡톡] 1970년대 최대 호황 누렸던 가리봉시장, 낯선 中식자재·붉은색 한자 간판 ‘빼곡’

    [미래유산 톡톡] 1970년대 최대 호황 누렸던 가리봉시장, 낯선 中식자재·붉은색 한자 간판 ‘빼곡’

    아직도 서울디지털산업단지라고 하면 아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구로공단이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 구로공단의 중심 가리봉동에는 가산디지털단지역, 구로공단 노동자생활 체험관, 가리봉시장, 디지털단지 오거리, 수출의 다리, 한국수출국가산업단지 등 6곳의 서울미래유산이 집중돼 있다.가산디지털단지역은 1968년에 제1회 한국무역박람회 개최를 위해 구로구 가리봉동에 가리봉역이란 이름으로 조성됐다. 이후 1974년에 1호선이 개통되면서 서울의 전철사와 함께 변화해 왔다. 가산디지털단지역에서 가까운 곳에 구로공단 노동자생활체험관이 있다. 구로공단의 역사와 여성 노동자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전시 체험 공간이다. 그 시대를 살았던 여성 노동자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다. 지하층에는 여공들이 살았던 쪽방의 모습을 복원해 놨다. 가리봉시장은 1970년대에 최대 호황을 누렸다. 주말이 되면 시장 일대는 사람이 밀려다닐 정도로 붐볐다. 박노해 시인은 ‘가리봉시장’이란 시에서 “가리봉시장에 밤이 깊으면/가게마다 내걸어 놓은 백열전등 불빛 아래/오가는 사람들의 상기된 얼굴마다/따스한 열기가 오른다”고 했다. 시장 안에는 ‘마부’, ‘도라도라’ 외에 여러 개의 고고장이 있었다. 지금 가리봉시장은 중국동포들이 메우고 있다. 중국동포 거리가 조성돼 한자로 된 붉은색의 간판이 넘쳐나고 있다. 시장 안에는 중국 식자재를 파는 상점들이 많이 있다. 지난달 시장 현대화 사업이 마무리돼 예전 시장 분위기는 많이 남아 있지 않다.디지털단지 오거리 인도 바닥에는 구로동맹파업 현장이라는 동그란 동판이 설치돼 있다. 예전에는 이곳을 가리봉 오거리라고 불렀다. 가리봉 오거리부터 할인매장이 모여 있는 가리봉 로데오 사거리까지는 노조 탄압 중지를 요구하는 동맹 파업이 벌어졌던 현장이다. 가리봉동의 역사는 신경숙의 ‘외딴방’, 이문열의 ‘구로 아리랑’, 양귀자의 ‘비가 오는 날이면 가리봉동에 가야 한다’ 등 여러 문학작품의 배경이 됐다. 1호선 노선이 지나는 철길 위로 오래된 다리가 있다. 한국수출국가산업단지 2단지와 3단지를 잇는 수출의 다리이다. 구로공단, G밸리는 일하는 사람들의 희망과 함께 변해 가고 있다. 전혜경 서울도시문화지도사
  • [인사]

    ■연합뉴스 △디지털융합본부장 권정상△정치에디터 김현재△동남아총국장 내정 김선한△논설위원 조채희△콘텐츠평가위원 최재석 정규득△산업부장 정주호△한반도부장 장용훈△부산취재본부장 신정훈△전북취재본부장 인교준△충북취재본부장 유택형△제주취재본부장 진병태△동포·다문화부장 황정우△출판부장 권혁창△IT운영부장(보안팀장 겸임) 안철수△편집국 외교안보팀장 조준형△편집국 영문북한팀장 장재순△편집국 독자팀장 이충원△미디어기술국 기획지원팀장 김일중△마케팅본부 신사업팀장 김오성△영상마케팅부 마케팅1팀장 권태일△영상마케팅부 마케팅2팀장 김석환△영상마케팅부 마케팅3팀장 유정우
  • 오사카에 세워진 제주 4·3 희생자 위령비

    오사카에 세워진 제주 4·3 희생자 위령비

    제주 4·3 민주항쟁 70주년을 맞아 18일 오후 일본 오사카 통국사 경내에 희생자 위령비가 세워졌다. 오사카는 ‘4·3’을 전후한 혼란기에 수많은 제주도민이 목숨을 걸고 일본으로 건너가 제주 출신 재일동포들이 가장 많이 사는 지역이다. 재일동포들이 위령비에 붙여 놓은 고향 마을의 돌을 찾아보고 있다. 오사카 연합뉴스
  • 北 위안부 단체, “日 절대 용납치 않고 남녘의 계층과 연대할 것”

    北 위안부 단체, “日 절대 용납치 않고 남녘의 계층과 연대할 것”

    북한의 위안부 단체가 “과거 범죄행위를 전면 부정하며 사죄와 보상을 회피하고 있는 일본의 행위를 절대로 용납하지 말아야 한다”면서 “그 대가를 민족의 존엄과 명예를 걸로 반드시 받아내야 할 것”이라며 남북의 연대를 강조했다.16일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에 따르면 ‘조선 일본군성노예 및 강제연행피해자문제대책위원회’(조대위)는 지난 15일 정대협 28주년을 맞아 남북의 굳은 연대를 강조하는 축전을 보내 왔다. 조대위는 이 축전에서 “정대협이 일제의 반인륜적 죄악청산이라는 대의를 위해 정의기억재단과 조직적 통합을 이루고, 대중적 보폭을 넓혀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한 “우리 민족이 당한 모든 불행과 고통, 손실의 대가를 민족의 존엄과 명예를 걸고 반드시 받아내야 할 것이며, 정대협을 비롯한 남녘의 각 계층과 굳게 연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1990년 11월 16일 일본군 일본군성노예제 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통해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을 회복하기 위해 결성됐다. 지난 7월부터는 2015한일합의 무효화를 위해 정의기억재단과 통합 출범해 ‘정의기억연대’로 명칭을 바꿨다. 북한의 조대위와는 그간 국제 사회에서 일본군성노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대활동을 이어 왔다. 2000년에 개최한 일본군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에서는 남북공동검사단을 구성하여 남북이 하나의 공동기소장을 작성하기도 했다. 한편, 정의연은 이날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서울글로벌 국제회의장에서 ‘북측 생존자들의 기억과 증언, 그리고 문제해결을 위한 남북연대’라는 주제로 창립 28주년 심포지엄을 연다.이 자리에서는 재일동포 2.5세 김영 르포작가가 북측 경흥위안소 답사 내용을 발표한다. 또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인 리경생, 김영실 할머니 등 북한에 남아 있는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논의도 이뤄질 예정이다. 정의연은 “그동안 남북관계 단절로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북측 피해자들과 위안소에 관해 이야기해 볼 것”이라고 밝혔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제주산 귤 선물, 북 청소년·평양 근로자에 전달

    제주산 귤 선물, 북 청소년·평양 근로자에 전달

    문재인 대통령이 선물로 보낸 제주산 귤이 북한 청소년과 평양시 근로자들에게 전달될 것이라고 북한 관영매체 조선중앙통신이 16일 보도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문 대통령이 답례로 보낸 제주산 귤 200t에 대해 이렇게 지시했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조선중앙통신은 “문재인 대통령은 역사적인 평양 수뇌 상봉시기 경애하는 최고 영도자 동지께서 동포애의 정을 담아 송이버섯을 보내주신 데 대한 감사의 표시로 다량의 제주도 귤을 성의껏 마련하여 보내어 왔다”고 전했다.그러면서 “최고 영도자 동지께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남녘 동포들의 뜨거운 마음이 담긴 선물을 보내어 온 데 대하여 사의를 표시하시면서 청소년 학생들과 평양시 근로자들에게 전달할 데 대하여 지시하시었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지난 9월 평양정상회담 당시 북측이 보낸 송이버섯 선물에 대한 답례로 지난 11일부터 이틀에 걸쳐 군 수송기편으로 북한 측에 제주산 귤 200t을 선물로 보냈다. 북측이 귤의 용처를 밝힌 것은 남측 정치권 등에서 귤이 어디로 돌아갈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는 상황 등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우리 측은 북측이 보낸 송이버섯 2t을 미상봉 이산가족들에게 나눠준 바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앤디 김, 하원 확정…영 김은 막판 접전

    지난 6일(현지시간) 열린 미국 중간선거에서 한인 2세 앤디 김(36·뉴저지주 3선거구) 민주당 후보가 연방 하원의원으로 당선을 14일 확정 지었다. 김창준(공화당) 전 하원의원 이후 20년 만이며 민주당 소속 첫 한국계 연방의원이다. 뉴저지주만 놓고 본다면 첫 아시아계 연방 하원의원이기도 하다. ●영 김, 243표차 앞서… 재검표 갈 수도 이날 발표된 최종 결과에 따르면 앤디 김은 최종 득표율 49.9%로, 2선의 공화당 현역 톰 맥아더 후보(48.8%)에 1.1% 포인트 차로 앞섰다. 뉴저지주 3선거구는 한인이 300여명에 불과한 백인 밀집지역이다. 앤디 김은 이번 선거에서 한인 2세가 아니라 미국의 정치 신인으로 평가를 받은 것이다. 김 당선자는 선거 당일 개표율 99% 상황에서는 밀리다가 우편투표 등에서 ‘몰표’를 받으며 역전에 성공했다. 앤디 김과 함께 하원 입성이 유력시되는 한인 1.5세 영 김(56·공화·캘리포니아주 39선거구) 후보는 막판까지 피 말리는 ‘접전’을 펼치고 있다. 영 김은 이날 오후 현재 50.1%의 득표율(9만 7778표)을 기록, 49.9%의 길 시스네로스 후보에게 불과 0.2% 포인트(243표) 차로 앞서 있다. 당선이 유력하지만 우편투표 등의 결과에 따라 재검표 요구와 소송 등이 뒤따를 수도 있다. ●“美정치 신인… 한인 대변 쉽지 않을 듯” 이들은 한인이라는 이유로 미 동포사회와 한국에서 집중 조명을 받고 있지만 실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상당히 제한적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아직 정치 신인인 그들이 하원에 입성해도 의회나 당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앤디 김은 한국어도 거의 못할 뿐 아니라 한인이 300여명밖에 없는 지역에서 당선됐기 때문에 한국 정부의 목소리나 동포사회의 권익 신장을 대변하기는 무리라는 지적도 나온다. 영 김도 마찬가지다. 한인뿐 아니라 히스패닉 등 다양한 인종이 모인 지역구를 가진 그는 최근 인터뷰에서 “나는 코리안 아메리칸이지만 한인사회만을 위해 당선된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이는 지역구를 아우르는 정치인으로서 당연한 발언이다. 워싱턴 한인단체의 한 관계자는 “한인 1세대인 김창준 전 의원과 앤디 김 당선자 등이 동포사회와 고국에 대한 ‘느낌’이 다른 것은 당연한 일”이라면서 “물론 다른 의원들보다 한반도나 한인동포의 상황에 관심이 있겠지만 그들이 미국인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떠날 수도 머물 수도 없었다…해방촌, 찬미와 절망의 동거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떠날 수도 머물 수도 없었다…해방촌, 찬미와 절망의 동거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8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28회 서울의 영화1(유현목의 오발탄) 편이 지난 10일 용산구 용산2가동 해방촌 일대에서 진행됐다. 서울미래유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영화인이 뽑은 ‘한국영화 100선’ 중 당당히 1위로 뽑힌 유현목 감독의 영화 ‘오발탄’의 무대를 누볐다. 영화의 원작인 이범선의 1959년작 단편소설 ‘오발탄’과 1961년작 영화 두 편 모두 서울미래유산 무형유산이다. 영화를 주제로 삼은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는 처음이다. 1950~60년대 한국전쟁 전후 오발탄의 무대인 해방촌이란 지명은 동네의 이미지일 뿐 행정지명이 아니지만 아직도 우리에게 익숙하다. 외국인 거주자와 젊은층을 중심으로 HBC(해방촌의 영문 이니셜)라는 전혀 다른 이름으로도 불린다.●한때 서울에만 20만채 판잣집 이날 오전 10시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 2번 출구에 집결한 투어단은 해방촌 입구의 명물 한신옹기를 지나 보성여고~해방촌 성당~해방촌교회~해방5거리~신흥시장~108계단~용산중·고교 간을 2시간여 동안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내리며 해방과 한국전쟁 전후 시기의 삭막한 풍경을 상상했다. 해설을 맡은 김미선 서울도시문화지도사는 처음 시도한 영화투어에 현장감을 불어넣으려고 안간힘을 쏟았다. 설문응답자들은 “해설 없이 걸었다면 느끼지 못했을 감상에 빠졌다”, “몰라보게 변해버린 서울의 과거사를 떠올린 시간”, “불후의 소설과 영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는 소감을 남겼다.서울은 초거대 도시이다. 1000만명이 606㎢ 안에 살고 있다. 1㎢에 1만 7000명꼴이다. 국토의 0.6%에 인구의 20%가 몰려 있고, 인구의 절반 이상이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 생활권역에 묶여 있다. 서울은 메가시티(Mega City)이면서 인접 대도시와 띠로 연결된 메갈로폴리스(Megalopolice)이기도 하다. 1935년까지 30만명 선에 머물던 서울인구는 일제강점기 대륙침략을 위한 거점도시화하면서 1942년 100만명까지 늘었다. 불과 반세기 만에 10배로 팽창했다.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 100만명이 넘는 월남피난민, 중국과 일본으로 떠났던 해외동포의 귀환, 학교와 일자리를 찾아 상경한 농민들이 마구잡이로 유입됐다. 1959년 수용한도를 초과해 200만명이 몰려들면서 도심과 남산, 인왕산, 북한산, 관악산 아래와 한강 주변에 난민이 대거 자리잡았다. 서울 인구는 1972년 600만명을 돌파한 뒤 1988년 1000만명 시대에 접어들 때까지 ‘브레이크 없는 폭주기관차’ 마냥 마구 몸집을 불렸다. 판자촌은 북한에서 내려온 월남민들이 미군이 가져온 나왕, 미송 등 목재와 루핑, 깡통 등을 이용해 임시거처를 지은 데서 유래했다. 한때 20만채의 판잣집이 서울 곳곳에 달동네를 이루고 있었다. 한 맺힌 디아스포라의 절규이며 우리가 겪은 주거의 사회사이다. ●영화 속 판잣집 소통 불가의 현실 “해방촌 고개를 추어 오르기에는 뱃속이 너무 허전했다. 산비탈을 도려내고 무질서하게 주워 붙인 판잣집들이었다. 철호는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레이션 곽을 뜯어 덮은 처마가 어깨를 스칠 만치 비좁은 골목이었다. 부엌에서들 아무 데나 마구 버린 뜨물이, 미끄러운 길에는 구공탄 재가 군데군데 헌데 더뎅이 모양 깔렸다. 저만치 골목 막다른 곳에, 누런 시멘트 부대 종이를 흰 실로 얼기설기 문살에 얽어맨 철호네 집 방문이 보였다.…비틀어진 문틈으로 그의 어머니의 소리가 새어 나왔다. ‘가자! 가자!’” 원작 소설 속 해방촌 묘사이다. 그러나 백 마디 글보다 영화 한 컷이 더 웅변적이다. 영화에서 보여 주는 철호의 판잣집은 소통 불가의 현실이며, 안식처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공간이다. 로케이션 장면이 많은 영화는 근대적인 거리와 판자촌의 구불구불한 골목길, 공동수도 터, 푸세식 공동변소 등 당시의 모습을 생생히 눈앞에 펼쳐 보인다. 유현목 감독의 리얼리즘은 필설로 설명하기 어려운 해방촌의 가난과 절망을 영상으로 보여 준다. 영화는 군사혁명 당국으로부터 ‘상영 불가’ 판정을 받았다.●해방 후 이북·해외서 온 동포들 용산으로 당시 용산은 일본인의, 일본인에 의한, 일본인을 위한 도시였다. 한양도성 남산구간 바깥에서 한강까지 용산 전체의 20% 가까이 일본군영이 자리잡았고 나머지 지역은 철도부지와 일본인 거주지였다. 해방 이후 이북과 해외에서 들어온 동포와 월남민을 구제하기 위해 이 구역을 내줄 수밖에 없었다. 남산 서쪽 기슭인 용산2가동 일대의 국유림에 정착지를 조성했다. 이때 38선 이북에서 내려온 사람들을 ‘삼팔따라지’라고 냉대했다. ‘3·8’은 화투 도박에서 끗발이 가장 낮은 한 끗이므로 이를 비하해 한 끗짜리 인생이라는 뜻에서 따라지라고 한 것이다. 이들은 해방촌을 비롯해 이촌동, 용두동, 마장동 등지의 피난민촌에 모여 살았다. 해방촌이 자리잡은 남산 서쪽기슭은 인적이 없는 고요한 목장이었다. 김정호의 ‘경조 5부도’에 기록된 것처럼 갑오개혁 때까지 왕실 제사에 사용할 소와 양, 돼지를 키우던 전생서(典牲署) 터였다. 왕이 기우제를 지내던 남단(南壇)이 지척이었다. 이후 일제강점기 일본군 20사단의 사격장으로 변했다. 해방촌의 기원은 해방 직후 용산동 4가 일본군 관사에 무단 거주하던 월남 피난민 50여 가구가 서울에 진주한 미군에게 관사를 비워주고 미군 트럭에 실려 이곳에 내리면서 시작됐다. 1947년 평안북도 선천군 군민 400여 가구도 집단이주, 일본군이 관리하던 경성호국신사를 중심으로 피난살이가 본격화됐다. 일제가 패망하기 직전인 1943년 대륙침략전쟁 당시 전쟁전사자를 추모하고 승전 분위기를 고취시키고자 마지막 발악처럼 건설한 신사가 바로 108계단으로 남은 경성호국신사다. 판잣집은 호국신사 간판과 건물을 떼어다가 지었다고 한다. 당시 신문기사에 따르면 호국신사 자리에 대형 천막을 세워놓고 천막 1개에 5~6가구씩 들어가 생활하다가 한 가구당 5~6평씩 불하를 받았다.●서북청년단·영락교회 영향력으로 탄생 1949년 주민들은 용산동이라는 동명을 해방동으로 바꿨다. 반공으로 똘똘 뭉친 서북청년단의 기세가 해방촌 건설에 한몫했다. 서북청년단의 비호 아래 해방촌은 행정력이 미치지 않는 해방구가 됐다. 해방촌 형성과정에 영락교회의 영향력이 컸다. 영락교회는 분단과 전쟁 과정에서 월남민들 사이에서 ‘이북5도청’이나 마찬가지였다. “산등성이를 악착스레 깎아 내고 거기에다 게딱지 같은 판잣집을 다닥다닥 붙여 놓은 이 해방촌이 이름 그대로 해방촌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멀리 고향 쪽을 바라보며 떠날 수도 머물 수도 없는 철호 가족의 절망이 안타까운 영화에서 해방과 해방촌에 대한 역설이 등장한다. 당시 서울 인구의 반이 정부로부터 극소량의 식량을 배급받아야 하는 절대 빈민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해방촌이라는 지명은 해방을 맞아 몰려든 사람들이 만든 마을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주민들 스스로 이곳에서 벗어나는 걸 해방됐다고 표현할 정도로 터부시 됐던 마을이라는 이중적인 의미로 쓰였다. 해방촌은 디아스포라의 섬이다. 걸어다니는 사람들의 눈에는 차를 타고 풍경을 요약하는 사람들에게서 보이지 않는 것들이 들어온다. 골목길을 어슬렁거리는 도시의 만보객은 현대문명에 반하는 오래된 것들을 찬미함과 동시에 도시 근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낙오된 것들에 대해서도 절망감도 느낀다. 해방촌은 찬미와 절망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우리는 걸으면서 그 시간 속으로 걸어서 들어갔다가 나왔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원장 사진 문희일 연구위원 ●다음 일정 : 가리봉동(구로공단의 신화) ●일시 : 11월 17일(토) 오전 10시~낮 12시 ●집결장소 : 1호선, 7호선 가산디지털단지역 7번 출구 ●신청·안내 :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http://futureheritage.seoul.go.kr)
  • [대동초교 다문화교육] 전교생 대부분 中동포인 ‘한국학교’… “우리 한글·역사 가르쳐요”

    [대동초교 다문화교육] 전교생 대부분 中동포인 ‘한국학교’… “우리 한글·역사 가르쳐요”

    병설유치원도 다문화 자녀 비율 73% 한국어 서툰 학생은 ‘예비학교’ 거쳐야 수준별 일주일 5~10시간 한국어 수업 교사들 학생 지도 언어적 어려움 호소 학운위에 中동포 부모 참여 소통 노력 중국어 교육 추진… “차별·소외감 없어”지난 9일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의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이 한국말과 중국말을 섞어 대화하고 있었다. 바로 전교생 대부분이 중국동포라고 알려져 유명세를 탄 대동초등학교다.대동초는 겉으로 보기에 다른 국내 초등학교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학생들은 학급별로 나뉘어 수업을 받다가 쉬는 시간에는 요란해졌고, 중국동포와 한국인 학생이 구별되지도 않았다. 서로 한국말로 대화하는 학생에게 출생지를 물었더니 한 명은 한국, 다른 한 명은 중국이라고 답했다. 중국에서 태어나 유치원에 입학할 때쯤 한국으로 넘어온 4학년 A양은 “중국에서 왔다고 말하기 전까지 친구들이 전혀 눈치채지 못했고, 그런 사실을 알고도 대하는 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학교 학생들은 누구나 중국동포임을 밝히는 것을 전혀 꺼리지 않았다. 1980년 문을 연 대동초는 4~5년 전부터 중국 출신 학생들이 급격히 늘었다. 2015년에 절반 이하였던 ‘다문화’(국제결혼 및 외국인 부모) 가정은 올해 기준으로 전교생 445명 가운데 318명(71.5%)에 이른다. 이 가운데 부모가 중국 국적을 가진 비율은 95%였다. 중국동포 302명(67.9%), 한국인 127명(28.5%), 동남아 등 기타 다문화 자녀 16명(3.6%)으로, 전교생이 중국동포라는 소문은 사실이 아니었다. 학년별 다문화 자녀의 비율은 1학년 77%, 6학년은 62%로 저학년일수록 높았다. 병설유치원도 다문화 자녀가 73%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배경에서 대동초는 2014년 일찌감치 서울교육청이 지정하는 다문화 중점학교 및 예비학교로 선정돼 한국어 교육과 생활 적응 교육, 문화 교육을 하고 있다.다문화 자녀의 ‘한국학교’ 적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언어다. 학교도 한국어 교육과 관련해 가장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우리말에 서툰 어린이는 한국어 교육을 위한 ‘예비학교’를 거친다. 현재 전체 다문화 아동의 10%가량인 30여명의 학생이 수준에 따라 2개 학급으로 나뉘어 일주일에 5시간에서 10시간씩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 유원연 교감은 “예비학급에 소속돼 있어도 학급 적응을 위해 예체능처럼 언어의 제약이 덜한 과목은 원래 학급에서 가르친다”고 설명했다. 아이들은 보통 6개월에서 1년이면 수업을 따라갈 만큼 한국어를 곧잘 하게 된다. 물론 예비학급을 거쳐도 한국어로 이뤄지는 수업을 완벽하게 따라가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한국의 문화와 역사와 관련된 배경지식이 부족해서다. 맞벌이가 많은 다문화 가정의 특성상 집에서 따로 공부를 봐 주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한 5학년 학생은 “중국에서 공부를 잘하던 친구가 잘 적응하지 못해 돌아간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수업 내용을 통역해 주는 이중언어 교사가 수업 중간에 투입된다. 현재 대동초에서는 3명의 교사가 1개 학급에 1주일에 1시간씩 들어간다. 한국어나 기초교육 수준이 다양하다 보니 교사들은 지도에 어려움을 호소한다. 한 전직 교사는 “수업 내용을 전달하는 데 더 신경을 써야 하고 가정통신문도 중국어 번역본을 제공하는 등 업무가 많은 편”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학교 관계자는 “선생님이 혼을 냈는데 아이가 갑자기 중국어로 말하거나 반말을 해 당황한 경험도 있었다”고 말했다. 학부모와의 소통도 쉽지 않다. 한국어로 말하는 것은 유창해도 글자를 읽지 못하는 부모도 있다. 이럴 땐 오히려 아이들이 교사와 부모 사이에서 통역사로 나선다. 최근에는 학교운영위원회에 외국인 부모가 참여하기 시작했다. 최영남 교장은 “학운위에 중국동포 부모들이 일부 참여해 궁금한 점이나 의견을 내놓는다”면서 “이분들을 통해 다문화 가정의 요구를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공부는 어렵지만 다문화 아이들이 소외감을 느끼는 일은 없다는 게 학생과 교사들의 공통된 얘기다. 한 2학년 학생은 “부모님이 중국동포여도 한국에서 태어나면 한국어만 한다”면서 “중국 친구들과의 소통에 어려움은 없다”고 했다. 차별 없는 분위기가 유지되고 한국 적응을 돕는 교과 과정이 도입됐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대동초는 중국동포 사이에서 ‘명문 학교’로 떠올랐다. 한 동포 학부모는 “아이가 학교생활에 만족해 부모들도 만족하고 있다”고 했다. 다문화 학생이 중심에 놓이면서 고학년이 되면 전학을 가는 한국 학생들도 나온다. 학교는 중국어 능력자가 많은 환경을 장점으로 살리고, 한국 학생들도 그런 장점을 누리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그중 하나로 내년부터 중국어를 1학년부터 교육 과정에 넣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최 교장은 “중국어를 배우러 외국으로 나가는 시대에 학교에서 중국어를 배우고, 중국 문화도 이해하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 사진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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