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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1운동 100년] 100년 전 촛불혁명… 평범한 민초들이 독립만세 외쳤다

    [3·1운동 100년] 100년 전 촛불혁명… 평범한 민초들이 독립만세 외쳤다

    “우리는 지금 조선이 독립한 나라이고 조선인이 자주민이라는 점을 선언한다.”(3·1 독립선언서)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손병희(1861~1922)와 이승훈(1864~1930), 한용운(1879~1944) 등 29명이 경성(서울)의 유명 요리집 명월관의 지점인 태화관으로 모였다. 이갑성(1889~1981)은 조선총독부에 사람을 보내 조선독립에 관한 의견서를 제출했다. 이종일(1858~1925)은 참석자들에게 독립선언서 100여장을 펼쳐 보였다. 한용운이 만세 삼창을 하고 독립선언을 마치자 출동한 경찰들이 민족대표들을 모두 체포했다. 이처럼 3·1운동은 대부분 민족대표 33인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들이 조선 독립 혁명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3월 1일 시작된 만세 시위가 전국으로 퍼져 수개월이나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의 자발적인 참여 덕분이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노동자와 학생, 기생 등 평범한 조선의 민초들에게 이념이나 귀천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라를 되찾기 위해 분연히 떨치고 일어선 이들이야말로 3·1운동의 진정한 주인공이었다.●서울 만세시위 3만명 참가… 평양서도 수천명 “만인이 죽더라도 백만인을 살리는 방법이 있다면 죽음을 불사하겠소.”(만세열전)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를 지방에 전달하는 임무를 맡았던 인쇄소 직원 인종익이 경찰 조사에서 한 말이다. 이처럼 독립선언서를 전국에 배포하고 3월 1일 만세 시위를 알린 것은 인종익과 같은 민중이었다. 독립선언서는 2월 11일 기초가 완성돼 20일부터 이종일이 운영하던 보성사에서 인쇄됐다. 2월 28일부터 함경남도 원산, 전라북도 군산,황해도 해주, 평안북도 평양, 경기도 개성 등 전국 각지로 보내졌다. 3월 1일 새벽 경성에는 ‘파고다공원(현 탑골공원)에서 집회가 열릴 것’이라는 벽보가 거리 곳곳에 붙었다. 중학생들은 시위가 예정된 오후 2시에 맞춰 학교에서 파고다공원으로 모였다. 이들은 집집마다 독립선언서를 나눠 주고 행인에게도 배포했다. 민족대표 33인이 태화관에서 독립 선언을 하고 있을 때 인근 파고다공원에서는 학생과 시민이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조선 독립 만세”를 외쳤다. 시위대는 남대문통(중구 남대문로)과 의주통(종로구 의주로)을 거쳐 미국영사관, 대한문으로 거리 행진을 했다. 당시 일제 헌병 자료에는 “시위에 모인 사람이 3000~4000명”이라고 기록돼 있지만, 판결문 등에는 “파고다공원 앞 군중 5000”이라는 표현이 나온다.3월 1일 파고다공원에서 시작된 시위는 해질 무렵까지 이어졌다. 시위대는 파고다공원 앞에서 동쪽과 서쪽으로 갈라졌다. 한쪽은 덕수궁 대한문 앞으로 가 만세를 외치고 독립 연설을 시작했다. 다른 시위대는 미국총영사관 앞에서 만세를 외쳤다. 이들은 경성우편국 앞에서 독립 만세를 부르짖었고 의주통에 있는 프랑스영사관에서는 영사관 직원에게 조선 독립이 가능한지를 묻기도 했다. 조선총독부 방향으로 가던 3000명 정도의 시위대는 본정통(중구 충무로)에서 행진이 막혔다. 일제가 보병 3개 중대와 기병 1개 소대를 시내 주요 지점에 배치했기 때문이었다. 오후 6시 30분쯤 마포 전차 종점 시위를 마지막으로 서울 곳곳에서 벌어진 시위는 잠잠해졌다. 질서 정연하게 행진한 평화 시위였다. 경찰서나 각국 영사관 앞에 멈춰 만세를 부르고 독립선언서를 보내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이날 서울의 만세 시위에 약 3만명 정도가 참여한 것으로 추정된다. 국사편찬위원회는 “3월 1일 서울 시위 참가자 규모를 정확히 확인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일제 군경의 개람표에는 4000명, 일람표에는 1만명으로 기록돼 있다. 헌병대에서 작성한 문서에는 “종로의 3000~4000명의 학생에 군중이 함께해 수만에 이르렀다”고 기술돼 있고, “이날 지방에서 서울로 들어와 있던 사람들이 십만에 달한다”고도 적혀 있다. 일제는 이날 시위에 참가하거나 인쇄물을 배포한 주동자 134명을 체포했다.이날 만세 시위는 서울뿐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국사편찬위원회의 3·1운동 데이터베이스(DB)에 따르면 3월 1일 하루에만 전국에서 22건의 단체행동(시위·휴학·휴교·파업)이 있었다. 함경남도 원산과 평안북도 선천, 평안남도 평양·안주·진남포, 경기도 개성 등에서 5만 2000여명이 참여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날 평양에서는 2000~5000명이 만세 시위에 참석했다. 외국인 선교사들은 “총에 맞아 부상당한 이들 가운데 최소 5명이 병원에서 숨졌지만 일제의 명령으로 사인을 총상으로 기재할 수 없었다”고 증언했다. 시위대는 경찰서 앞에서 만세를 외치고 독립가를 불렀다. 일제 소방대원들은 시위대에 물을 쏘고 갈고리를 휘둘렀다. 부상자가 나오자 분노한 시민들이 돌을 던졌다. 평양에서만 112명이 검거됐다. ●수개월 1700여건 단체행동에 103만여명 3·1운동은 단 하루로 끝나지 않았다.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민중은 단체행동(시위·휴학·휴교·파업)을 이어 갔다. 2일에도 전국적으로 13건이 발생했고, 3일(42건), 4일(23건)에도 계속됐다. 3월 4일 늦은 밤. 서울 시내 각지에 ‘경고 이천만 동포’라는 문서가 붙었다. 5일 남대문 부근에서 시위를 벌인다는 내용이었다. 실제로 5일 오전 8시 남대문역 앞에서 학생들이 독립 만세 운동을 시작했다. 1만여명이 참여한 시위에서 학생과 시민은 붉은 수건을 팔에 두르거나 구한국기(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외쳤다. 시위대는 남대문시장과 조선은행, 종로 보신각으로 행진했다. 대한문 앞에서 대기하던 경찰이 칼을 휘두르며 돌격해 수백명이 체포됐다. 부상자도 속출했다. 저항의 방법은 시위만이 아니었다. 3월 1일부터 서울의 중등학교 이상 관립, 공립, 사립학교와 전문학교 학생 다수가 학교에 출석하지 않고 동맹휴교에 나섰다. 또 서울의 전차 차장과 운전수는 3월 8일 오후부터 3월 10일 자정까지 동맹파업을 했다. 학생들은 휴학이나 휴교로, 노동자들은 파업으로 일제의 폭거에 맞섰다. 3월 한 달(3월 1일 제외)간 민중의 단체행동 1025건, 참여 인원 66만 1311명이었다. 4월에도 저항은 이어졌다. 4월 한 달간 651건의 단체행동에 모두 31만 4778명이 참여했다. 3·1운동 기간 전체로 보면 시위·휴학·휴교·파업 1732건에 모두 103만여명이 참여했다. “조선 사람이니 독립을 하려고 한 것이오.” 3월 5일 서울에서 벌어진 학생 주도의 만세 시위에 참여한 보성법률상업학교(현 고려대) 학생 강기덕(1886~?)은 왜 독립 운동을 하려고 했는지를 묻는 검사의 심문에 이렇게 답했다. 민중이 3·1운동에 참여한 이유 역시 강기덕과 다르지 않았다. 김정인 춘천교대 사회교육학과 교수는 “3·1운동을 비롯해 독립 운동 관련 판결문을 살펴보면 대다수가 농민과 학생, 노동자”라고 설명했다. 조한성 민족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도 “지도 세력이 아예 없는 상황에서 자발적으로 운동을 주도했던 이들은 바로 민초 자신들”이라며 “몇 달간 1000회가 넘는 시위를 지속적으로 벌일 수 있었던 것은 이름 없는 이들의 헌신 덕분”이라고 말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서울시의원연구모임 ‘+9.5 치매예방운동연구회’, 제3회 포럼 개최

    서울시의회 문병훈 의원(더불어민주당, 서초3)이 대표를 맡고 있는 서울시의회 ‘+9.5 치매예방운동연구회’는 지난 24일 오후,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2019 제3회 +9.5 치매예방운동포럼’ 을 개최했다. 연구회는 김광수, 문병훈, 박기열, 오중석, 오한아, 이경선, 이동현, 이준형, 이호대, 최웅식, 추승우, 한기영 서울시의원이 참여하고 있다. 2018년 제10대 서울시의회 개원과 함께 시작된 ‘+9.5치매예방운동연구회’는 꾸준한 치매예방운동을 통해 치매예방 및 치매를 약 9.5년 늦출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연구회는 치매예방운동 확산 및 시민건강 증진, 관련 산업 일자리 창출에 관심이 있는 서울시의원이 연구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8년 두 번의 정기 포럼 개최를 통해 ‘치매예방을 위한 근거기반 측정평가 및 예방운동 프로그램’, ‘치매예방 운동의 생활화를 위한 점진적 전략’ 에 대한 주제 발표와 토론회를 진행했고, 올해 3회째 포럼을 맞이하게 되었다. 특히 관련 분야를 전공하고, 현장에서 운동을 지도하는 이들의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2019 제3회 +9.5 치매예방운동포럼’ 에서는 치매예방운동연구회 첫 시작부터 매 회 포럼에 함께하고 있는 홍정기 교수(차의과학대학 스포츠의학대학원장)의 ‘치매예방운동의 실제적인 적용’이라는 주제로 노인 체력 향상 및 치매예방을 위한 프로그램 소개와 현장의 이야기를 전달했다. 더불어 박경미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서초을지역위원장)과 이시형 한국자연의학종합연구원장이 축사로 나서 포럼 개최를 축하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세계적 축제 브라질 카니발서 ‘3·1운동 100주년’ 의미 재조명

    브라질 고유의 국민 축제 카니발에서 ‘3·1운동 100주년’의 의미가 조명될 예정이다. 브라질 한국문화원(원장 권영상)은 23일(현지시간) 홈페이지를 통해 다음달 1일 오후 한인타운이 있는 상파울루 시내 봉헤치루 지역에서 3·1운동 100년 역사를 되새기고 양국의 수교 60년 우정을 기념하기 위한 문화 축제 ‘아리랑 카니발’을 마련한다고 밝혔다. 아리랑 카니발은 브라질의 거리 카니발 공연단 ‘블로쿠 푸주에’, 브라질 한인 문화예술연합회 등이 참가한다. 봉헤치루 지역 치라덴치스 지하철역 광장에서 열리는 기념식에 이어 블로쿠 푸주에가 대열을 이끄는 가운데 현지 주민과 한인 동포들이 양국 국기를 흔들고 자유와 평화의 노래를 부르며 거리행진을 펼칠 예정이다. 권 원장은 “카니발 축제를 통해 3·1운동의 숭고한 정신을 브라질 국민과 공감하고 수교 60주년을 함께 기념한다는 취지”라고 밝혔다. 한편 브라질 카니발 축제는 해마다 사순절(예수의 고난과 죽음을 기억하는 교회 절기)을 앞두고 열리며, 전통 가톨릭 행사에 아프리카풍 타악기 연주와 열정적 춤이 합쳐져 생겨났다. 올해 카니발은 3월 5일이며, 10일까지 전국의 주요 도시에서 축제가 펼쳐진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봉건군주제 뛰어넘은 3·1운동… 상하이 임시정부 씨앗되다

    봉건군주제 뛰어넘은 3·1운동… 상하이 임시정부 씨앗되다

    급작스런 고종 서거… 3·1운동에 도화선복벽주의 아닌 왕정 극복한 민족자결주의 19세기말 독립협회 등 민주공화정 꿈꿔 수많은 임정 탄생… 세 키우기 위해 통합우리나라 헌법 전문에는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고 돼 있다. 정부는 중국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임정) 수립일인 4월 11일을 공휴일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1919년 3·1운동의 정신을 계승한 임정의 의미를 기리자는 취지다. 19세기 말부터 우리 민족은 민주공화정에 대한 열망을 서서히 키워 나갔다. 고종의 죽음을 계기로 3·1운동으로 이를 분출했고 상하이에 임정을 세워 계승했다. ●3·1만세운동 도화선이 된 고종의 죽음 “사실 조선 멸망의 최대 원인은 궁정 자체에 있었다.” 1910년 중국의 대표적 개혁가 량치차오(1873~1929)는 사라진 대한제국을 두고 이렇게 개탄했다. 그는 “오늘날(20세기 초) 입헌국에서 군주는 정치적 책임이 없고 약정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전제국가는 이와 다르다. 국가의 운명이 전부 궁정 한 곳에 달려 있다”고 설명했다. 조선이 전제군주제에서 입헌군주제로 탈바꿈하지 못해 망국에 이르렀다는 지적이다. 1910년 8월 29일 일본은 강제로 병탄조약을 맺고 대한제국을 식민지로 삼았다. 육군 대장이 조선 총독으로 부임해 행정과 입법, 사법권을 모두 장악했다. 우리 역사의 최대 암흑기였던 36년간의 일제 통치기간이 시작됐다. 1919년 1월 21일 고종(1852~1919)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한반도 전체가 충격과 비통에 휩싸였다. 건강 하나만큼은 ‘완전체’에 가깝던 그가 돌연사하자 ‘고종이 독살당했다’는 소문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성난 민초들이 고종의 서거를 애도하고자 서울로 향했다. 이런 움직임이 3·1운동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됐다. 하지만 이들이 ‘복벽주의’(나라를 되찾아 왕을 다시 세우겠다는 주장)를 내세운 것은 아니다. 되레 일본으로부터 독립할 새 나라는 대한제국(조선)을 계승하되 국가의 주인은 왕이 아니라 인민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은 24일 “3·1운동 당시 고종에 관한 구호가 아예 없었다”면서 “1911년 중국 신해혁명, 1917년 러시아혁명, 1918년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의 공통점은 황제로 상징되는 절대 권력을 부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민족은 고종의 죽음을 계기로 왕정을 완전히 극복했다. 3·1운동은 과거 봉건군주제를 넘어선 것이기에 가히 ‘혁명’이라고 부를 만하다”고 강조했다. ●1896년 독립협회 때부터 민주공화제 열망 우리 민족은 대한제국 멸망 이전인 19세기 말부터 민주공화정에 대한 열망을 키워 나갔다. 1896년 조선에 기독교인을 중심으로 독립협회가 만들어진 것이 대표적이다. 자주독립과 천부인권 존중, 한글 사용 등을 강조했는데, 배후에는 헨리 거하드 아펜젤러(1858~1902)를 포함해 서양 선교사들이 있었다. 아펜젤러는 배재학당을 만들어 조선인에게 영어와 민주주의를 가르쳤다. 이승만(1875~1965)도 이 학당의 학생이었다. 독립협회는 종종 대중집회인 만민공동회를 열었다. 만민공동회는 관민공동회로 이어지며 국정개혁의 대원칙을 결정하기도 했다. 미국의 한인들이 발간한 신한민보 1910년 7월 6일자 사설에는 독립협회 정신을 계승해 “현 정부(대한제국)가 일본에 투항한 지 오래됐는데, 우리는 인민의 정신을 대표해 우리의 복리를 도모할 만한 정부를 세울 것임을 선언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런 움직임은 일본 병합 뒤 국내외 망명정부 수립으로 이어졌다. 1911년 12월 연해주 한인들은 항일 결사체인 권업회를 세웠다. 이들은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대한광복군 정부를 수립했다. 1917년 12월에는 ‘전로한족중앙총회’를 세워 독자적인 활동에 나섰다.1915년 3월 중국 동포들은 상하이에서 신한혁명당을 결성했다. 1917년 7월 박은식과 신채호, 김규식 등 독립운동가 14명이 대동단결선언을 발표했다. 이들은 독립운동 최고기관으로 공화정제로 운영되는 임시정부를 건설하자고 주장했다. 국내에서도 3·1운동을 준비한 천도교를 중심으로 임시정부수립운동을 펼쳤다. 3·1운동을 계기로 수많은 임시정부가 생겨났다. 이 가운데 러시아 대한국민의회(노령정부)와 중국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서울의 한성임시정부는 힘을 모으고자 하나로 통합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아는 임정의 시작이다. 김정인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추진회’ 기획소통분과위원회 위원장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명시한 임정의 임시헌장은 정당성의 기원을 3·1운동에서 찾고 있다”고 밝혔다. 1920년 1월 임정 신년축하회 연설에서 내무총장 안창호는 민주공화국 탄생의 감격을 이렇게 전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는 황제가 없나요? 있습니다. 과거에는 황제가 단 한 사람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2000만 국민이 모두 황제요. 제군 모두가 황제란 말입니다. 황제란 무엇이오? 주권자의 이름입니다. 지금은 제군이 모두 다 주권자외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자라 화장품 광고에 기미 가진 모델 기용, 중국 여성 욕보이는 것?

    자라 화장품 광고에 기미 가진 모델 기용, 중국 여성 욕보이는 것?

    스페인의 패션 브랜드 자라가 최근 새로운 화장품 광고에 기미를 가진 중국 여자 모델을 기용해 논란이 되고 있다. 일부 중국인들은 중국 여성을 추하게 그리고 싶어하는 것이냐고 자라 쪽에 묻고 있다. 모델업계에서는 ‘징 웬’으로 통하는 리징웬은 새 화장품 시리즈 광고에 기미를 그대로 드러낸 얼굴로 등장해 중국인들 사이에 논란이 되고 있다. 중국에서 발행되는 영자 신문 글로벌 타임스는 기미 때문에 외모가 “독보적이게” 됐다고 지적했지만 중국 소셜미디어 이용자들은 중국인이 기미를 갖기 힘들다며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반면 그녀를 옹호하며 이 나라 사람들은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더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광저우성 출신인 리징웬은 최근 5년 동안 모델계에서 잘나가고 있다. 캘빈 클라인과 H&M 등 유명 럭셔리 브랜드의 모델로 활약했다. 그녀는 이번 논란에 대해 반응을 하지 않았지만 기미가 불편하다고 털어놓은 적은 있다. 2016년 10월 패션잡지 보그와의 인터뷰를 통해 “어렸을 때 정말 싫었다. 왜냐하면 아시아인들은 보통 갖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라며 “고교 때는 늘 감추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괜찮다. 좋아하니 됐다”고 말했다. 깨끗하고 말간 피부는 수십년 동안 중국 뿐만아니라 동아시아 전역에서 더 아름다운 것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그녀가 자라의 광고 시리즈에 등장한 것은 중국판 웨이보 등에서 격렬한 논쟁을 일으켰다. 중국인에 대한 중상이나 명예훼손이란 성난 표현도 등장했고 “기미가 잔뜩 있고 파이 모양 얼굴을 가진 아시아 모델을 기용하는 것은 서구인에게 아시아 여성에 대한 인상을 잘못 심어 인종차별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하는 이마저 있다.중국의 유튜브에 해당하는 피어(Pear) 비디오는 자라 대변인과의 인터뷰를 전했는데 이번 광고는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것이지 중국을 특정해 내놓은 것이 아니라며 “스페인 사람들의 미학은 다르다. 우리 모델들은 모두 순수한 얼굴로만 사진에 나온다. 그래서 사진이 다 똑같다. 그래서 사람들의 눈길을 끌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오히려 중국인들로부터 리징웬이 놀림을 당하는 현실이 안타깝다는 지적을 하는 이도 있었다. 중국인의 열등감이 드러난 것으로 해석하는 이도 있었다. 아름다움이란 것에 대한 관점을 더 폭넓게 가져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일부 누리꾼들은 중국 정부의 애국심 지침 때문에 해외 브랜드의 광고에 필요 이상으로 지나치게 과격한 주장을 늘어놓는 것 아니냐고 일침을 놓기도 했다. 그런데 자라의 광고 캠페인은 지난해 럭셔리 브랜드 돌체 & 가바나가 중국 모델이 젓가락으로 피자를 먹는 광고 사진을 내보내 격렬한 논쟁을 일으킨 것과 여러 모로 비슷하다고영국 BBC는 18일(현지시간) 지적했다. 문제의 모델 주오예는 나중에 이 광고에 얼굴을 내민 것이 “커리어를 망칠 뻔했다”고 털어놓았다. 한 이용자는 기업이나 개인의 중국에 대한 인식이 중국인 전체를 모독하는 것으로 확산되는 트렌드를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이런 현상 역시 열등감의 발로로 보인다는 것이다. 돌체 & 가바나 사건 이후 “외교적 갈등까지 비화됐는데도” 이런 광고들이 다시 등장하는 것은 이런 트렌드를 파악한 광고 캠페인이 의도적으로 겨냥한 것이란 지적이다. 그러나 이런 얘기도 “과잉대응”일 뿐이라며 “우리 동포 중 일부는 그다지 애국적이지 않으며 그들은 단지 (자라를 겨냥한) 포위 공격에 참가함으로써 우리 조국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보여주고 싶어할 따름”이라고 해석하는 이도 있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北노동신문 “김정은, 고르디우스 매듭 끊었다”

    북한 노동신문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비핵화 진정성을 강조하면서 ‘불가역적 비핵화’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나섰다. 불과 1년여 전까지만 해도 ‘핵 무력 강국’을 표방했던 김 위원장이 비핵화 노선으로의 갑작스런 전환에 대한 명분을 주민들에게 적극 설파하고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노동신문은 지난 13일 재일동포 오은서의 이름으로 ‘김정은 장군 평화의 새 역사를 쓰다’란 제목의 장문의 글을 게재했다. 이 글은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와 로켓 발사 시험 중단 같은 ‘과감한 실천적 조치’와 올해 신년사에서 “더이상 핵무기를 만들지도, 시험하지도 않으며 사용하지도, 전파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핵무기 4불(不)’ 입장을 천명한 것은 평화를 향한 현재의 발걸음에서 후퇴하지도, 되돌아가지도 않겠다는 김 위원장의 굳건한 각오를 담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전차를 묶은 매듭을 칼로 내려쳐 끊었다는 ‘고르디우스의 매듭’(복잡한 문제를 단번에 풀어내는 묘수를 의미)을 언급하며 김 위원장의 비핵화 결단이 기성관념에 대한 타파와 지략과 대담성을 가지고 있다고 비유했다.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에 대해 북한 매체가 장문으로 적나라하게 표현한 것은 이례적이다. 북한 최고지도자가 지난해부터 갑자기 노선을 바꿔 미국과 비핵화 협상장에 나선 데 따른 주민들의 의구심과 군부 등 내부 강경파의 반발을 의식해 본격적으로 설득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또 대외적으로 미국 등 국제사회에 비핵화 진정성을 강조하는 측면도 있어 보인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재일충청협회, 2019년도 신년회 개최…도쿄 신주쿠서

    재일충청협회, 2019년도 신년회 개최…도쿄 신주쿠서

    사단법인 재일충청협회는 16일 일본 도쿄 신주쿠 워싱턴호텔에서 유기환 회장과 이찬범 주일한국대사관 총영사 및 소속 회원 등 12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2019년 신년회를 개최했다.신년회에는 협회 상임고문인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롯해 허태정 대전시장, 양승조 충남지사, 이시종 충북지사, 이춘희 세종시장 등이 축사를 보냈다. 조성정 한국충청향우회중앙회 공동대표 및 미국, 호주, 중국, 이탈리아, 칠레 등 각국 향우회 회장들도 참석했다. 신년회 실행위원장인 현동수 부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충청인 향우들의 화합, 단결을 바탕으로 2019년에는 친목단체를 뛰어넘어 한일 우호의 가교가 되는 민간단체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해찬 대표는 “현재 우리는 모국의 국민과 해외동포들이 함께 힘을 모아야 하는 엄중한 시기를 맞고 있다”며 “이 중요한 시기에 해외 충청인들이 한민족 번영에 모범이 되어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단독] “한국은 좋은 나라” 美교포 ‘건강보험 먹튀’ 파문

    [단독] “한국은 좋은 나라” 美교포 ‘건강보험 먹튀’ 파문

    “건강검진도 공짜…우리나라 너무 좋아”미국 여성 영주권자, 최근 건보 허점 공개교포들 “편법 진료 한국에 신고해야” 비판해외이주 신고해야 확인…제도적 보완 필요최근 정부가 외국인과 재외동포 대상의 ‘건강보험 먹튀’ 방지 방안을 마련했지만, 이를 회피할 수 있는 방법이 미국 교포사회에서 공개돼 큰 파장이 일고 있다. 대다수 해외 교민들은 “고국에 피해를 줘서는 안 된다”, “한국 건보공단에 신고하겠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제도적 한계로 일부 사례는 재외동포의 양심에 기댈 수 밖에 없어 근본적인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6일 서울신문 제보에 따르면 미국 영주권자로 추정되는 여성 A씨는 최근 한인 커뮤니티인 ‘미시 USA’에 “건강보험에 관해 내가 알게 된 정보를 알려드리겠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A씨는 “법이 바뀌어서 한국에서 6개월이 지나야 (건강보험 진료가) 가능하다고 했었는데, 결과만 말씀 드리면 남편과 저 둘 다 바로 건강보험을 적용받았다”고 주장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2월 18일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외국인 최소 체류기간을 기존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리는 건강보험법 시행령 개정안을 시행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말부터 외국인과 재외동포는 6개월 이상 체류해야 건강보험 지역가입자에 가입할 수 있게 됐다. 단기체류하면서 값비싼 건강보험 진료나 수술을 받고 출국해버리는 이른바 ‘건강보험 먹튀’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다. 외국인 지역가입자 건강보험 재정 적자는 2013년 935억원에서 2017년 1978억원으로 2배 이상 늘었다. 반면 외국인 직장가입자 건강보험 재정은 2017년 기준으로 2490억원 흑자다. 유독 건강보험 먹튀 사례가 많은 외국인 지역가입자를 위해 제도를 만들었는데, 그 규제를 손쉽게 회피할 수 있다는 것이 A씨의 주장이다.A씨는 “건강보험공단에 대표전화로 연락하면 주민번호를 입력하라고 나오는데, 저희는 유학생으로 나왔다”며 “유학생이나 관광비자로 온 분들이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따고 바로 국적상실 신고를 하지 않으면 (입국) 다음날 바로 건강보험에 연결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하지만 처음부터 한국에서 이민으로 나간 분들은 영주권자여도 (건강보험 혜택을 바로 받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보통 가족들의 건강보험에 이름이 들어가 있다. 그걸 정지시킨 것이었는데 도착 즉시 전화해서 풀면 바로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현행 건강보험제도는 행정안전부에 해외 이주 신고를 한 뒤 출국해 영주권, 시민권을 취득했거나 현지에서 영주권, 시민권을 취득한 뒤 외교부(재외공관)에 해외 이주 신고를 한 사람 중심으로 이주 여부를 파악한다. 건강보험공단 관계자는 “이주 신고를 하지 않으면 국내에서 국적상실 여부를 확인할 수 없어 장기 출국 중인 내국인과 같이 관리된다”며 “내국인이 1개월 이상 출국하면 급여정지 대상이고, 재입국해 급여정지 해제신고를 하면 입국일부터 건강보험 적용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A씨의 주장대로 해외이주 신고를 하지 않으면 건강보험 자격을 정지시켰다가 바로 풀 수 있는 허점이 있는 것이다. A씨는 이런 허점을 악용해 ‘국가건강검진’ 방법까지 알아본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2년마다 건강보험에서 종합검진을 무료로 해주는데 50세가 되면 대장내시경까지도 무료로 된다”며 “건보공단 직원이 당신의 주민번호로 정확하게 다 알려준다”고 전했다. 심지어 그는 게시글에서 “(상담원에게) 내가 시민권자인데 어떻데 가능하냐고 몇 번이나 확인했는데 절대 공항에서 국적상실 신고 하지말고 건강보험에 연결해놓고 하라고 알려줬다”고 주장했다. 다만, 건보공단 상담원이 실제로 A씨에게 이런 꼼수를 알려줬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A씨는 “우리나라 너무 좋다. 친절하고 어떻게든 도와주시려고 알아봐주고 복지가 너무 좋은 것 같다. 남편은 시민권 딴 것을 후회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 글이 공개되자 교포사회에서는 비판 여론이 크게 일었다. 이 내용을 서울신문에 제보한 B씨는 “미국 시민권을 딴 사람은 한국 국적 상실 신고를 의무화해 한국 국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라며 “‘보도라도 나오면 해당 부처가 좀 관심을 가지지 않을까’해서 제보한다”고 밝혔다. 미시 USA에도 A씨의 행동을 질타하는 의견이 빗발쳤다. 한 미국 교포는 “그동안 건강보험료를 내지 않았고 6개월 체류할 것도 아닌데 건강보험 혜택을 받는 것은 잘못 아니냐”며 “이런 정보는 (교포들에게) 유익한 것이 아니라 잘못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교포는 “한국에서 20년 동안 세금 한푼 안 냈으면서 불법으로 건강보험 혜택이나 받을 생각을 하느냐”며 “편법, 불법으로 건강보험 혜택을 받는 사람들을 조치해달라고 한국에 신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여기는 남미] 미성년자 276명 성폭행한 남자에 징역 60년

    [여기는 남미] 미성년자 276명 성폭행한 남자에 징역 60년

    상습적으로 미성년자를 성폭행하고 동영상을 찍어 팔아온 남자에게 법정 최고형이 선고됐다. 콜롬비아 사법부가 미성년자 성폭행 혐의로 기소된 후안 카를로스 산체스(38)에게 징역 60년을 선고했다고 현지 언론이 14일 보도했다. 검찰은 "재판부가 법정 최고형을 선고, 매우 본이 되는 판례를 남겼다"며 결정을 환영했다. 흉악한 늑대'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던 산체스가 꼬리를 잡힌 건 멕시코 경찰이 정보를 넘기면서다. 아동포르노사건을 수사하던 멕시코 경찰은 산체스가 멕시코에 아동포르노물을 상습적으로 판매한 사실을 확인하고 콜롬비아 경찰에 정보를 제공했다. 콜롬비아 경찰이 수사에 착수하자 산체스는 베네수엘라로 피신했지만 2017년 11월 마라카이보에서 수사협조 요청을 받은 현지 경찰에 붙잡혔다. 지난해 1월 콜롬비아로 신병이 인도된 산체스는 14살 미만 미성년자를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에 따르면 지금까지 확인된 피해자는 최소한 276명이다. 산체스는 성폭행 장면을 촬영해 아동포르노물로 인터넷에서 판매했다. 이렇게 활동하면서 사용한 닉네임이 '흉악한 늑대'다. 범행 수법은 언제나 동일했다. 원하는 걸 사주겠다며 어린 아이들에게 접근해 미리 준비한 장소로 데려간 뒤 성폭행했다. 아이들의 사진을 몰래 찍어 카탈로그를 만든 후 아동포르노물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곤 "원하는 아이를 선택하라"고 주문형 성폭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검찰은 "확인되진 않았지만 베네수엘라로 도피한 기간 중에도 현지에서 비슷한 범죄를 저질렀을 가능성이 크다"며 "피해자가 더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범죄경력을 조회한 결과 산체스는 2005년과 2008년에도 성폭행사건으로 수사를 받은 적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자는 모두 14살 미만 미성년자였다. 관계자는 "당시 산체스는 유력한 용의자였지만 공소시효 만료로 자유의 몸이 됐다"고 말했다. 사진=콜롬비아 경찰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10주기 추모도 낮게…약자의 손잡던 바보가 그립습니다

    10주기 추모도 낮게…약자의 손잡던 바보가 그립습니다

    노동 인권·민주화 등 현대사 질곡 관통 ‘세상 속 교회’ 기치로 민주적 가치 실현 분열된 사회, 자비·사랑으로 포용 실천 선종 후 ‘바보 정신’ 재단 통해 유지 이어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둘러싼 자유한국당 일부 의원들의 발언이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다. 여야 4당이 문제 발언을 한 의원 제명을 요구하는 등 강력 반발하는 가운데 역사전쟁으로까지 치닫는 분위기다. 그 와중에 5·18 민주화운동 유족들과 광주 시민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른다. 정치적 입장을 앞세운 발언이라지만 민주화운동 폄훼와 왜곡은 많은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그 5·18 민주화운동을 놓고 김수환 추기경은 이런 입장을 밝힌 적이 있다. “진실을 밝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기에는 무슨 보복이나 원수를 갚는다는 차원이 아니라 역사 바로 세우기를 위해섭니다. 책임자는 분명히 나타나야 하고 법에 의해 공정한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어디 5·18 민주화운동뿐인가. 김 추기경은 생전 약자 편에 선 채 불의에 강하게 맞선 쓴소리와 행동을 주저하지 않았다. “위정자도, 국민도, 여당도, 야당도, 부모도, 교사도, 종교인도 모두 이 한 젊은이의 참혹한 죽음 앞에서 무릎을 꿇고 가슴을 치며 통곡하고 반성해야 합니다.” 1987년 1월 26일 박종철군 추모 및 고문 추방을 위한 미사 강론 중 일부다. 그래서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일들이 생길 때마다 많은 이들은 김 추기경을 떠올린다. ‘김 추기경이 계셨다면 무슨 말씀을 하실까.’ 16일은 김 추기경이 선종한 지 10주기가 되는 날. 그날을 중심으로 추기경의 사랑과 배려 정신을 되새겨 실천으로 옮기자는 행사들이 이어질 전망이다. 추모 미사(16일 오후 2시 명동성당), 추모 사진전(23일까지 명동성당 지하 1898광장), 유품 전시회(16일~6월 20일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 기념 음악회(18일 오후 8시 명동성당), ‘내 기억 속의 김수환 추기경’ 토크콘서트(17일 오후 5시 명동대성당 꼬스트홀)…. 그런데 이어지는 그 추모의 몸짓들이 요란하지 않다. 천주교의 최대 지도자, 시대의 사표, 민족의 양심…. 그 막중한 수식어들만 보더라도 성대한 행사가 있을 법한데 영 딴판이다. 그 조용하고 잔잔한 추모 열기를 놓고 천주교 서울대교구 신부들은 귀띔한다. “일회성 행사가 아닙니다. 그분의 가르침을 본받아 우리 삶 안에서 하루하루 살아 내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그분의 가르침’은 무엇일까. 김 추기경이 서울대교구장을 맡은 30여년간 서울대교구는 48개 본당 신자 14만여명에서 197개 본당 신자 121만여명으로 무려 8배 넘게 교세가 불어났다. 그 종교적 위업에서 비롯된 존경과 추모만일까. 김 추기경의 어록을 다시 뒤져 보았다. “교회가 모든 것을 바쳐서 사회에 봉사하는 ‘세상 속 교회’가 되어야 한다”(1968년 서울대교구장 취임 미사), “항상 가난한 사람들 속에 들어가 살고 싶은 열망을 갖고 살았지만 그러지 못해 답답했다. 추기경이란 직책 때문이 아니라 용기가 없어서 그러지 못했다.”(1998년 서울대교구장 퇴임 소견)김 추기경은 그랬다. 인류 구원을 위해 존재하는 교회는 가난하고 고통받는 약자들 편에 기꺼이 서야 한다고 믿었다. 단순히 종교지도자에 머물지 않고 현대 시민사회의 민주적 가치를 실현하는 데 앞장섰으며 각 개인의 양심을 일깨워 주고 성숙한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그 인권과 노동, 생명 사랑의 족적은 너무 혁혁하다. 경제성장이 지상의 과제였던 1960, 1970년대 추기경은 산업화 과정에서 희생된 노동자들에게 관심을 쏟았다. 1967년 5월 강화도 심도직물의 노조원 해고 사태 당시 김 추기경의 건의에 따라 주교회의는 사회 정의와 노동자 권익 옹호를 위한 교단 공동 성명서을 발표했다. 이 사건은 김 추기경이 처음으로 대사회 메시지를 던진 사건이다. 이것 말고도 유사한 노동 탄압 사건이 있을 때마다 추기경은 노동자 인권을 지키는 데 앞장섰다. ‘교회가 가난한 사람에게 더 적극적인 사목을 펼쳐야 한다.’ 서울 상계동 철거 사태 등 정부 주도의 반강제적 철거로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고 빈민으로 전락하던 무렵 추기경은 스스로 빈민들의 삶의 현장을 수시로 방문했다. 직접 도시 빈민 문제 해결을 위한 공청회에 참가해 당시 정부의 정책이 빈민을 양산하고 있음을 지적하기도 했다. 1987년 4월 28일 도시빈민사목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지금의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는 바로 그 추기경의 의지를 담아 탄생한 단체다. 그렇게 현대 한국 천주교회를 이끈 주역이었지만 그는 교회 안에만 머물지 않았다. 유신독재, 5·18 광주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 등 한국 현대사의 질곡을 외면하지 않고 한가운데서 뚫고 나갔다. 1987년 6월 13일 밤 경찰력 투입을 통보하러 명당성당에 들어온 경찰 고위 관계자에게 던진 말은 아직도 쩌렁쩌렁하다. “경찰이 성당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나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다음 시한부 농성 중인 신부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당신들이 연행하려는 학생들은 수녀들 뒤에 있습니다. 학생들을 체포하려거든 나를 밟고 그다음 신부와 수녀들을 밟고 지나가십시오.”그런가 하면 1971년 12월 24일 전국에 TV로 생중계된 성탄 자정 미사에선 이렇게 소리쳤다. “비상 대권을 대통령에게 주는 것이 나라를 위해서 유익한 일입니까. 그렇지 않아도 대통령한테 막강한 권력이 가 있는데, 이런 법을 또 만들면 오히려 국민과의 일치를 깨고 그렇게 되면 국가안보에 위협을 주고 평화에 해를 줄 것입니다.” 또 1972년 10월 유신 개헌 소식을 로마에서 접하곤 큰소리로 외쳤다. “10월 유신 같은 초헌법적 철권통치는 우리나라를 큰 불행에 빠뜨릴 것이라고 단언합니다.” 그랬던 추기경은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의 장례식장에서 이런 기도를 남겼다. “이제 대통령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주님 앞에서 박정희를 불쌍히 여기소서.”스스로를 ‘바보’라 부르면서 ‘밥이 되고 싶다’고 외쳤던 김 추기경의 아호는 옹기다. “옹기는 먹는 것도 담지만 더러운 것도 담는다. 우리 자신도 여러 가지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되지 않을까.” 그렇게 웃었던 추기경의 유지와 정신을 이은 사랑과 봉사의 물결은 추기경 선종 이후 도도히 흐르고 있다. 박신언 몬시뇰이 설립을 건의해 김 추기경이 사재를 털어 2002년 설립된 옹기장학회와 김 추기경의 바보 정신을 이어받아 2010년 설립된 (재)바보의나눔은 대표적인 단체들이다. 갈라지고 분열된 세상을 사랑과 자비로 포용하려는 김 추기경의 정신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옹기장학회는 통일 이후 북녘 동포들에게 복음을 전할 사제 양성 목적으로 설립됐지만 현재 북한과 중국은 물론 아시아 선교에 뜻을 둔 신학생까지 지원 대상을 확대해 놓고 있다. (재)바보의나눔은 종교와 지역, 계층을 초월해 국내외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지원한다. 형편이 어려운 아동과 청소년 돌봄이 필요한 노인, 편견에 휘청이는 장애인과 다문화가정 등을 돕고 있다. ‘웃음과 유머를 잃지 않는 한편 신자와 국민을 위해 눈물 흘리는 따뜻하고 인간적인 지도자.’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김 추기경이다. 물신주의 팽배와 경쟁 심화, 고통을 호소하는 가난한 사람들…. 그 어두운 모습 탓에 김 추기경이 더 그리워지는 게 아닐까.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 김 추기경의 마지막 유언이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내일 광주 금남로서 시민 1만명 궐기대회

    23일 서울 광화문광장서 규탄대회도 국가폭력 희생자를 모욕한 자유한국당 의원들과 극우논객 지만원(77)씨의 ‘5·18 망언’ 파문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전국시도의장협의회는 15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규탄대회를 연다고 밝혔다. 협의회는 성명을 통해 “5·18의 역사적 진실을 모독하는 발언이 국회의원 회관에서 나왔을 뿐만 아니라 개개인이 헌법기관인 한국당 김진태·이종명·김순례 의원도 ‘북한군 개입’, ‘유공자 괴물집단’ 등의 망언을 쏟아 내며 동조해 참담한 심정”이라고 밝혔다. 협의회는 “김진태 의원 등의 인식과 발언은 1987년 노태우 대통령 당선자가 5·18을 민주화운동으로 규정했고, 한국당 전신인 민주자유당에서 ‘5·18보상법’을 만들었던 자신들의 역사를 부정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들에 대한 의원직 사퇴, 제명, 홀로코스트 부정 처벌법 제정 등을 촉구했다. 성명에는 한국당 소속인 대구와 경북을 뺀 15개 시도의회 의장이 참여했다. 광주지역 110여개 시민사회단체는 15일 오전 10시 동구 금남로 광주YMCA에서 ‘한국당 3인 망언 의원 퇴출과 5·18역사왜곡처벌법제정을 위한 광주범시민운동본부’ 결성식을 갖고 기자회견을 통해 향후 일정 등을 밝힌다. 16일 오후 4시엔 금남로에서 범시민궐기대회를 갖는다. 이용섭 광주시장과 시민사회단체·각계 대표 등 1만여명이 참석한다. 오는 2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리는 규탄대회에도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LA 민주연합, 시애틀 늘푸른연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촛불행동 등 83개 해외동포 단체는 이날 결의문을 통해 “김진태·이종명·김순례세 의원은 사사로운 정치적 목적을 위해 망동으로 국회와 국민을 모독했다”며 “한국당 지도부는 사태의 심각성을 직시하고 모든 국민에게 석고대죄하라”고 촉구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뉴욕에선 주차비 별도 계약하거나 민간 주차장 이용… 일본은 ‘차고지 증명제’ 운영

    미국 뉴욕과 일본 도쿄 아파트의 주차비는 어떻게 책정될까. 뉴욕과 도쿄 등은 차를 소유한 사람만 주차비를 내고 그렇지 않으면 주차비를 내지 않는다. 우리나라처럼 아파트 관리비를 내면 ‘차 1대 무료 주차’가 아니다. 엄격히 말하면 우리나라는 아파트 관리비에 차 1대 주차비가 포함됐다고 볼 수 있다. 뉴욕 맨해튼에 사는 재미동포 이모씨는 12일 “아파트 매니지먼트 오피스에서 아파트 임대 계약을 할 때 차를 소유한 사람은 주차비를 별도로 계약한다”고 말했다. 이어 “맨해튼 중심가인 매디슨 에비뉴에 있는 아파트 주차비는 한 달에 650~800달러(약 73만~90만원)”라고 덧붙였다. 뉴욕 맨해튼은 땅값이 비싸서 아예 주차장이 없는 아파트가 많다. 이럴 땐 길거리에 차를 세워두고 주차비를 내는 ‘스트리트 파킹´을 하거나 민간 주차장을 이용해야 한다. 1시간에 20~30달러(2만 2000~3만 3000원) 수준이다. 뉴욕 맨해튼 내 아파트에 거주하면서 차를 운전하려면 높은 주차비를 각오해야 한다. 일본은 차를 살 때 거주지 반경 2㎞ 이내에 주차할 공간을 마련했다는 증명서를 경찰서에 제출해야 차량 번호판을 받을 수 있는 ‘차고지 증명제’를 운영하고 있다. 도쿄 도심 아파트의 경우 이런 주차장 한 면을 차지하려면 한 달에 3만~5만엔(30만~51만원)을 내야 한다. 일본에서 살았던 최모씨는 “도쿄에선 신축 아파트라도 총가구수의 30% 정도 밖에 주차장을 짓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파트 주차장이 부족해 민간 주차장을 이용해야 하니 주차비 부담이 작지 않다. 홍콩 아파트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최광숙 선임기자 bori@seoul.co.kr
  • “의사소통 어렵다” 69%…건설현장 고령화의 그늘

    “의사소통 어렵다” 69%…건설현장 고령화의 그늘

    “싼 맛에” 외국인력 유입 급증국내 청년인력 유입 활성화 시급외국인력에 대한 반감만 계속 상승 건설현장의 고령노동자 기준인 40세 이상 노동자 비율이 84%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건설현장 고령화 비율은 2000년 59%였지만 17년 만에 25% 포인트나 급등했다. 단순 업무에 임금이 저렴한 외국인을 집중적으로 투입하다보니 젊은층이 더이상 건설현장을 찾지 않고 숙련노동자가 부족해지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올해 국내 인력만으로는 건설현장을 운영하려면 부족한 인원이 2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 반면 외국인 건설노동자는 과잉 공급돼 불법체류자까지 포함해 32만명이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건설업 고령화 17년 만에 25%p 급등 11일 건설경제연구소가 한국산업인력공단에 제출한 ‘2019년도 건설업 취업동포 적정 규모 산정’ 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 기준 40세 이상 건설노동자 비율은 58.8%로 전체 산업 평균(47.5%)보다 11.3% 포인트 높았다. 그러나 2017년에는 40세 이상 비율이 83.7%로 전체 산업 평균(64.3%)과 격차가 19.4% 포인트로 벌어졌다. 연구소는 “고령자를 민간 건설현장에서 강제로 퇴출시키 수는 없기 때문에 젊은층의 신규유입이 고령화 해소의 실질적인 유일한 방법”이라면서도 “비숙련인력이 외국인력으로 대체되다 보니 비숙련인력의 일당이 낮아지고, 숙련인력으로 성장해야 할 내국인력이 줄어들 수 밖에 없어 고령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건설근로자공제회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국인력 임금은 숙련자 17만 8000원, 비숙련자 12만 6000원인데 비해 조선족은 각각 16만 3000원과 12만 5000원, 기타 외국인력은 15만 9000원과 11만 5000원으로 임금 격차가 1만 1000~1만 9000원에 이른다. 건설업체 조사에서는 한국인이 숙련자 21만 5000원, 비숙련자 16만 4000원, 조선족은 19만 7000원과 15만 4000원이었다. 또 기타 외국인력은 숙련자 19만 1000원, 비숙련자 14만 9000원으로 건설근로자공제회 조사에 비해 모두 높았다. 이에 대해 연구소는 “공사비로 책정된 임금 상당액이 소개료 명목으로 빠져나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이런 이유로 사실상 외국인 노동자 없이 국내 인력만으로 건설업을 운영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분석됐다. 올해 건설 노동자 수요는 172만 9301명인데 국내 인력은 152만 9493명으로 19만 9808명이 부족할 것으로 추산됐다. 반면 외국인 노동자는 과잉공급된 것으로 분석됐다. 외국인 노동자는 불법체류자까지 올해 기준으로 32만 2340명이 있어 12만 2532명이 과잉공급될 것으로 추정됐다. ●수도권 지역은 외국인 비율 40% 넘어 심지어 일부 지역에서는 외국인 노동자가 국내 인력보다 훨씬 많아 ‘통역’이 없으면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상황까지 발생하고 있다. 2017년 명지대 산학협력단이 제출한 보고서에서 한 공공아파트 신축현장 관계자는 “하루 투입 인원이 240~250명인데 외국인이 80%”라며 “근로자 구성이 이제 ‘국제시장’이 돼 의사소통도 힘들 지경”이라고 토로했다. 건설현장의 외국인력 비율은 분석한 결과 서울은 44.2%, 인천 48.3%, 경기 38.8%로 인력이 많이 필요한 수도권 지역은 이미 외국인 비율이 40%를 넘어선 것으로 분석됐다. 외국인력은 중국동포가 68.5%, 기타 외국인이 31.5%였다. 이런 현상은 외국인력에 대한 국내 노동자의 반감을 높이는 효과를 불렀다. 2017년 대전지역 건설노조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외국인력 유입으로 건설 일자리가 부족해진다는 응답은 85.4%, 임금 감소는 79.1%에 이르렀다. 노동강도가 높아진다는 응답도 68.9%였다. 이미 의사소통 문제는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5~6월 건설현장 외국인 노동자 실태파악을 위해 내국인 노동자 237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의사소통이 어려워 엉뚱한 부작용이 생긴다’는 의견에 동의하는 비율이 69.2%에 이르렀다. 건설업체 조사에서도 동의 비율이 60.0%였다. ‘숙련도가 낮아 품질 저하 및 산재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에는 노동자 동의가 61.3%, 건설업체는 43.2%였다. 연구소는 외국인 노동자를 적정 규모로 관리하고 내국인력 확대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연구소는 “외국인 취업등록제는 단기적 대안은 될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국내인력을 적정한 규모로 공급하는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외국인력을 불법고용하는 업체에 대해 불이익을 주는 등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부고]

    ●주철기(전 재외동포재단 이사장)씨 별세 건형(디더블유에스자산운용 실장) 종륜씨 부친상 7일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 11일 오전 9시 (02)2227-7500 ●오현석(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씨 모친상 이하중(제일은행 지점장) 김수용(동서물산 부장) 김도균(삼화회계법인 부대표)씨 장모상 6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9일 오전 8시 (02)02-3410-6914 ●민성기(전 한국신용정보원장) 씨 부친상5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9일 오전 7시 (02)3010-2000
  •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우파 독립단체 통합 나선 김구 피격… 만주독립군과 광복군 창설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우파 독립단체 통합 나선 김구 피격… 만주독립군과 광복군 창설

    3부 고난의 행군: 이동 시기 ③ 한국광복군 창설1937년 7월 중·일 전쟁이 터지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여당이던 한국국민당은 항일투쟁에 나서고자 한국독립당·조선혁명당과 우파 연합 전선인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회’를 결성했다. 같은 해 12월 임정의 야당인 조선민족혁명당도 조선민족해방동맹, 조선혁명자연맹 등과 좌파 연합체인 ‘조선민족전선연맹’을 조직했다. 두 세력은 중국 국민당 정부의 승인하에 정규군을 편성하는데, 바로 한국광복군(임정파)과 조선의용대(조선의용군·반임정파)다.중·일 전쟁이 일어난 지 5개월째인 1937년 12월 중국 국민당 정부의 수도 난징이 일본에 함락됐다. 30만명의 중국인이 처참하게 살해된 ‘난징 대학살’도 일어났다. 국민당 정부는 자신들 혼자서 일본군을 상대하기 어렵다고 보고 중국 공산당과 2차 국공합작(1937~1945)을 체결했다. 국민당 주석 장제스(1887~1975)는 그간의 태도를 바꿔 한인들도 항일 전쟁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이 시기 임정은 일본을 피해 다시 한 번 피난길에 나섰다. 1937년 11월 말 난징을 출발해 후난성의 성도(省都) 창사에 도착했다. 김구(1876~1949)는 백범일지에 이곳에 온 이유를 “곡식값이 매우 싼 곳이고 장차 홍콩을 통해 해외와 통신을 이어 갈 계획 때문”이라고 적었다. 김구와 친분이 있던 국민당 핵심간부 장즈중(1890~1969)이 후난성 주석으로 온 것도 큰 힘이 됐다. ‘장천’, ‘장전추’ 등의 가명을 쓰던 김구는 이때부터 은둔 생활에서 벗어나 본명으로 활동했다.●임정, 日 패망 확신… “독립전쟁 성공 시기 왔다” 임정은 중·일 전쟁이 한국 독립에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봤다. 그간 항일 투쟁에 미온적이던 국민당 정부가 일본과의 전쟁에 나설 수밖에 없어 일본의 패망이 앞당겨질 것으로 판단해서였다. 당시 임정이 동포들을 대상으로 발표한 여러 문건에 이런 인식이 잘 드러나 있다. “중·일 전쟁의 시작은 우리의 독립 전쟁이 성공할 시기에 도착하였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적(일본)은 중국의 저항 능력을 과소평가했고 러시아의 내부 모순도 지나치게 자의적으로 판단했다. 영국과 미국, 프랑스가 간섭하지 않을 것으로 망령되게 단정했기 때문에 중국대륙을 침략한 것이다.”(1937년 12월) 1932년 상하이 윤봉길 의거 직후 서울로 압송된 안창호(1878~1938)도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 경성제국대학 부속병원(현 서울대병원)에서 유언처럼 일본의 미래를 예견했다. “일본은 자기 힘에 지나치는 큰 전쟁(중·일 전쟁)을 시작했기에 반드시 이 전쟁으로 패망한다.”●독립운동세력 갈등 극심… 김구 저격 사건 발생 김구는 독립을 준비하기 위해 우파 진영부터 힘을 모았다.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회에 속했던 한국국민당과 한국독립당, 조선혁명당을 통합하기 위해 나섰다. 이들은 1938년 5월 6일 조선혁명당 당사인 난무팅에 모였다. 만주에서 창당한 조선혁명당에서 이청천(1888~1957)과 유동열(1879~1950), 과거 임정의 여당 역할을 한 한국독립당에서 조소앙(1887~1958)과 홍면희(1877~1946), 한국국민당에서 김구와 이동녕(1869~1940)이 각각 참석했다. 한참 통합 논의를 벌이던 때였다. 조선혁명당 당원 이운한(생몰연대 미상)이 회의장에 뛰어들어 권총을 난사했다. 이것이 김구가 첫 번째 저격을 받은 `난무팅(남목청) 사건’이다.현장에서 조선혁명당 간부 현익철(1890 ~1938)이 숨지고 유동열과 이청천이 총상을 입었다. 김구는 가슴 한가운데 총탄을 맞고 곧바로 샹야의원(현 중난대 의과대학 부속병원)으로 옮겨졌다. 중국인 의사는 그가 소생할 가망이 없다고 보고 응급처치를 포기했다. 백범의 장남 김인(1917~1945)에게 사망 통지까지 보냈다. 그런데 총격 발생 4시간이 지나도 숨이 붙어 있자 그때부터 치료를 재개해 기적적으로 살려냈다. 김구는 이 사건으로 수전증이 생겨 마치 흔들리는 곳에서 글씨를 쓴 듯한 필체를 얻게 됐는데, 이를 ‘총알체’라고도 부른다.●이운한, 첫 발 김구 쏴… 일제 밀정 증거는 없어 이운한은 첫 발을 김구에게 쐈다. 애초부터 그를 타깃으로 범행에 나선 것 같다. 중국에 의존하던 한국국민당이 우파 통합을 주도하는 현실에 불만을 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운한은 중국 감옥에 있다가 탈옥한 뒤 종적을 감췄다. 일각에서는 그가 일제의 밀정이 아니었나 의심하지만 이에 대한 증거는 없다. 그가 밀정이냐 아니냐에 관계없이 난무팅 사건은 서로 힘을 모아야 할 한인 독립운동세력 간 갈등이 극에 달해 자해하는 모습을 연출했다는 점에서 부끄러운 역사의 단면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조선의용대·한국광복군 창설… 中과 항일 전쟁 이 시기 임정 안팎에서는 “2차 국공합작으로 중국 공산당이 팔로군을 갖춘 것처럼 조선 민족도 독립된 부대를 조직해야 한다”는 의견이 커졌다. 장제스도 1938년 말부터 독립운동계 대표 격인 김구와 김원봉(1898~1958), 유자명(1894~1985)을 따로 불러 단결을 촉구했다. 한인 세력의 분열을 막고 이들을 무장해 중국의 항일 전쟁 체계에 편입하기 위해서다. 사회주의 계열이 먼저 나섰다. 일본인 반제국주의 혁명가 아오야마 가즈오(1907~1997)가 중국 국민당 정부에 조선의용대 편성 아이디어를 냈다. 조선인 독립부대를 창설해 ‘일본, 조선, 대만 반파시스트동맹’이 지도하게 하자는 것이었다. 국민당이 이를 받아들여 1938년 10월 중국의 임시 수도였던 후베이성 한커우에서 조선의용대를 조직했다. 김원봉이 대장을 맡았다.우파 진영도 군대를 조직했다. 1939년 1월 한국독립당이 세운 당군(黨軍)을 모태로 이청천과 이범석(1900~1972) 등 만주 독립군과 연합해 1940년 9월 쓰촨성 충칭에서 한국광복군을 세웠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첫 정규군 부대로 국군의 모태로 평가받는다. 총사령관은 이청천이었다. 해방 직전인 1945년 4월 작성된 임정 문서에는 광복군 인원이 339명으로 기록돼 있다. 광복군 대원 출신인 독립운동가 김득명(1923~2009)은 “이것도 중국으로부터 더 많은 물자를 타내고자 상당히 부풀려진 수”라고 증언했다. 현재 독립유공자로 선정된 광복군은 600명에 가깝다. 이 때문에 “상당수가 가짜”라는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국가보훈처도 이런 지적을 의식해 올해부터 가짜 독립유공자 색출을 위한 전수조사에 착수했다.●中 남부서 포도 年 4차례 수확… 세계적 산지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취재차 찾아간 후난성 창사의 후난농업대학. 넓은 캠퍼스를 걸어 한참을 들어가니 제2, 제3 강의동 사이 잔디밭에 부드러운 인상의 학자 흉상 하나가 있었다.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남북한과 중국 세 나라에서 모두 유공자가 된 유일한 독립운동가 유자명이다. 캠퍼스 안 그의 옛집 터에는 제자들이 그의 업적을 기리는 전시관을 짓고 있었다. 서울신문 취재에 동행한 이원규(72) 작가는 “유자명은 세계적인 농학자로 중국에서 매우 유명한 인물”이라며 “비유하건대 우리나라에서 우장춘(1898~1959)에 해당하는 국보급 과학자”라고 소개했다.충북 충주 출신인 그는 수원농업학교를 졸업하고 충주간이농업학교(현 충주농업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했다. 스물다섯 살이던 1919년 3·1운동에 가담한 뒤 상하이로 망명했다. 어릴 때 이름은 흥갑, 학생 때는 흥식이었지만 한성임시정부 설립자인 홍면희( 1877~1946)가 “독립운동을 하려면 새 이름이 필요하다”며 자명(子明)이라고 지어 주었다. 무장 투쟁에 뜻을 품고 김원봉이 만든 의열단에 가입해 신채호(1880~1936) 등과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 노선에서 활동했다. 신흥무관학교 출신 나석주(1892~1926)가 1926년 12월 서울의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을 투척하겠다고 하자 톈진까지 찾아가 그에게 직접 돈과 폭탄, 권총을 건넸다. 유자명은 탁월한 어학 능력과 국제 감각으로 좌파 진영을 대표하는 인재로 손꼽혔다. 1930년대에는 조선의용대 지도위원을, 1940년대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학무부(현 문화체육관광부·교육부 등) 차장을 역임했다. 하지만 해방 뒤 한국전쟁 등으로 귀국 시기를 놓치자 후난농업대학에서 교편을 잡았다. 그는 벼의 기원이 중국 남서부 윈구이 고원 일대라는 것을 밝혀냈다. 세계 농학계도 이를 정설로 인정하는 추세다. 중국 남부는 기후가 습하고 병충해도 많아 포도 재배에 적절하지 않았지만 그가 수십 차례 시행착오를 거쳐 신품종을 개발했다. 현재 중국 남부는 해마다 포도를 네 차례까지 수확할 수 있는 세계적 산지로 탈바꿈했다. 그가 개량한 포도로 빚은 와인이 지금도 중국에서 생산된다. 난징·창사·전장·구이린·충칭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개 고양이 먹어” 혐한 발언 일 우익 명예훼손 처벌

    “개 고양이 먹어” 혐한 발언 일 우익 명예훼손 처벌

    재일교포 남성을 대상으로 인터넷에 “개, 고양이를 먹는다”, “사기꾼” 등 혐오 발언을 한 일본 우익네티즌이 명예훼손 혐의로 처벌을 받았다. 인터넷 헤이트스피치(특정 집단을 공개적으로 차별하고 혐오하는 발언)에 명예훼손죄가 인정된 것은 일본에서 이번이 처음이다. 6일 교도통신에 따르면 오키나와현 이시가키 간이재판소는 지난달 인터넷 익명게시판에서 재일교포 남성 A씨에 대해 헤이트스피치를 해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약식기소된 남성 B씨와 C씨에게 각각 10만엔(약 102만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인터넷 상 혐한 발언에 명예훼손 혐의가 적용된 것은 일본에선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가나가와 간이재판소는 지난해 12월 인터넷상에서 재일동포 고등학생을 모욕한 혐의로 약식기소된 60대 남성에 대해 9000엔(약 9만원)을 부과하는 약식 명령을 내렸다. 당시에는 상대적으로 처벌 수위가 낮은 모욕죄가 적용됐다. B씨와 C씨는 인터넷 게시판에 A씨의 실명을 언급하며 익명으로 “재일 조선인 사기꾼”, “개와 고양이를 먹고 있다”는 등의 글을 올렸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월드피플+] 74세 중국계 뉴욕 할머니, 인스타 스타된 비결은?

    [월드피플+] 74세 중국계 뉴욕 할머니, 인스타 스타된 비결은?

    올해 74세의 임란 할머니는 최근 자신이 인스타그램의 유명 인사가 된 것을 알고 매우 놀랐다. 광둥성 타이산(台山) 출신의 임 씨는 불과 몇 해 전 그의 외동딸 리사 양이 살고 있는 미국 뉴욕으로 이주했다. 이후 지인 한 명 없는 뉴욕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임 씨가 생각해낸 것은 중국 전통 요리를 만들어 주변인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었다. 뉴욕 현지에서 중국 전통 요리를 맛보기 어려웠다는 점에서 임 씨의 요리 솜씨에 대한 입소문은 빠르게 퍼졌다. 이후 임 씨와 함께 거주해오고 있는 외동딸 리사 양은 임 씨가 직접 재료를 구매, 요리하는 전 과정에 대해 사진 촬영 후 인스타그램에 게재하기 시작했다. 리사 양이 촬영한 사진과 동영상 속에는 임 씨가 요리하는 방법에 대해 직접 설명하는 장면도 다수 포함돼 있다. 또 해당 요리의 기원과 음식을 먹는 중국의 풍습에 대한 설명도 포함돼 있는데, 이에 대해 현지 네티즌들은 ‘마치 외할머니가 직접 설명해주는 것 같은 감정을 느낀다는 것’이 인기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특히 영상 속에 등장하는 임 씨는 줄곧 ‘타이산화(台山话)’로 요리 과정과 기원 등에 대해 설명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를 영어로 번역하는 것은 딸 리사 양의 몫이다. ‘타이산화’는 중국 남부 광둥성 타이산 지역 방언이다. 임 씨가 등장하는 영상과 사진은 주로 미국에 이주한 중국계 2~3대 자녀들에게 단연 인기가 높다. 어려운 계량 방법 대신 ‘종이컵’으로 쉽게 계량할 수 있는 요리 방식을 고수, 미국에서 출생한 이민 2~3세대에게 중국 요리 조리 방식 전수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또, 중국에서 출생 후 미국으로 이주한 이민 1세대들에게는 임 씨가 요리하는 낯익은 전통 음식과 말투가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달래기에 최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오고 있다.임 씨의 골수 팬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중국계 미국인 ‘길리안’ 씨는 임 씨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중국 방언으로 줄곧 설명하는 임 씨의 영상을 처음 접했을 때 내 귀를 의심했다”면서 “리사 양과 그의 어머니 임 씨 두 사람이 함께 촬영한 영상 속에는 어릴 적 내가 듣고 자랐던 말투와 억양이 담겨 있다. 이런 영상은 미국에서 매우 귀한 것이며, 나와 같은 이민자들에게 무척이나 큰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했다.임 씨의 또 다른 팬 델 양은 “나는 올해 22세로 캐나다 토론토에서 출생 후 줄곧 이 곳에서 생활하고 있다”면서 “부모님들은 모두 타이완 출신으로 어릴 적부터 중국어를 듣고 자랐지만 집 밖에서는 중국어를 사용하는 친구를 만날 기회가 없었다. 리사 양과 임 할머니 두 사람이 대화하며 요리하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나는 마치 진짜 고향에 있는 듯한 기분 좋은 착각을 하게 된다”고 댓글을 적었다. 한편, 임 할머니는 자신에게 쏟아진 관심에 대해 “리사와 내가 만드는 음식에 이렇게 큰 관심이 모아질 줄은 생각도 못했다”면서 “나 같은 늙은 할머니가 사소한 이야기를 하는 것에 관심을 가져 주는 사람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요리를 하는 것이 생각지도 못하게, 해외에 나와서 거주하는 수 많은 동포들에게 따뜻한 감정을 불러 일으킬 수 있었다는 것이 오히려 고맙다”고 했다. 임지연 베이징(중국) 통신원 cci2006@naver.com
  • 귀국길 현금가방 잃어버린 중국동포, 경찰 도움으로 되찾아

    귀국길 현금가방 잃어버린 중국동포, 경찰 도움으로 되찾아

    수년간 한국에서 일해 모은 돈을 두고 내린 중국동포가 경찰의 도움으로 무사히 돈을 되찾았다. 중국동포 A씨(52.여)는 지난 3일 중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김해국제공항에 내린 순간, 택시 안에 가방을 두고 내린 사실을 알게 됐다. A씨는 가족들을 위해 수년간 한국에서 일해 모은 현금 1000만원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에 눈물을 흘리며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다. 경찰은 공항상황실 CCTV를 확인해 택시번호를 확인하고, 택시기사에게 연락했다. 경찰은 출국시간이 다가오도록 택시기사가 공항에 도착하지 않자 항공사에 A씨가 비행기를 탈 수 있도록 미리 협조를 구했다. 마침내 공항에 도착한 택시기사에게 가방을 건네받은 A씨는 눈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중국으로 무사히 출국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우리의 영웅, 잊지 않겠습니다” 세계 곳곳 김복동 할머니 추모 물결

    “우리의 영웅, 잊지 않겠습니다” 세계 곳곳 김복동 할머니 추모 물결

    재일 조선학교 학생들 “정체성 갖고 역사 배워야 한다는 말씀 기억할 것” 호주 분향소 “힘 모아 恨 풀어드리자” 뉴질랜드 위안부 피해 사진전 옆 분향소 美·英 등서도 빈소 운영·추모행사 계획“김복동 할머니는 우리의 영웅입니다. 평화를 위한 할머니의 열정과 노력, 잊지 않겠습니다.” 위안부 피해자이자 여성운동가였던 고 김복동 할머니에 대한 추모 열기가 한국을 넘어 세계적으로 달아오르고 있다. 위안부 문제뿐 아니라 세계 곳곳의 전쟁 피해자들을 도왔던 뜻을 기억하겠다는 다짐이 이어지고 있다. 일본에선 재일조선인들의 추모가 이어졌다. 김 할머니는 일본 정부의 사과를 줄기차게 요구해 온 피해자였지만, 핍박받는 재일조선인과 지진 등 재해를 당한 일본인들에겐 꾸준히 도움을 줘 왔다. 일본 오사카의 나카오사카 조선초급학교의 김채현 교장은 30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우리뿐 아니라 일본 내 여러 학교들이 김복동 할머니의 사랑을 받았다”면서 “교직원과 학생들이 별세 소식에 마음 아파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할머니는 장학재단 ‘김복동의 희망’을 만들어 재일조선인 학생들을 도와 왔다. 지난해 9월 태풍 ‘제비’ 탓에 재일조선인 학생들이 다니는 오사카 지역 학교 곳곳이 무너지자 한달음에 달려가기도 했다. 김 교장은 “학생들이 마음을 담아 편지와 사진을 할머님께 보냈었다”고 했다. 할머니의 병세가 갑자기 악화돼 학생들과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김 교장은 “역사를 배워야 한다”던 할머니의 말씀을 똑똑히 기억한다고 했다. 그는 “아이들이 일본에 살더라도 조선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올바르게 가질 수 있도록 역사를 잘 가르치는 데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재일한국민주여성회 역시 “고귀한 할머니의 삶은 우리 민족의 자랑이며 모범”이라며 추모의 뜻을 전했다.호주 시드니에는 작은 분향소가 차려졌다. 시드니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알리는 ‘평화의 소녀상’ 설치를 위해 힘쓴 시드니 평화의소녀상 실천추진위원회가 마련한 자리다. 갑작스레 마련됐지만 3시간 만에 30여명의 교민이 할머니를 함께 기억하기 위해 모였다. 방명록엔 “끝까지 싸워 일본의 사과를 받아 내겠다. 늦게 펴서 더 아름다운 꽃, 목련 꽃 김복동 할머님 편히 잠드소서”와 같은 교민들의 추모 글귀가 빼곡히 적혔다. 전은숙 시드니 평화의소녀상 실천추진위원회 사무국장은 “위안부 할머님들이 한 분씩 돌아가실 때마다 마음이 쓰인다”면서 “활동을 많이 하신 김 할머니의 빈자리가 큰 만큼 추모의 자리를 만들어 함께 뜻을 기리고 싶다는 교민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전 사무국장은 “해외 곳곳에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동포들이 많다. 함께 힘을 모아 할머니의 한을 꼭 풀어 드릴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각 지역에서도 분향소가 마련됐다. 워싱턴희망나비는 페어팩스에서 이미 빈소를 운영 중이고 시카고여성의전화에서도 곧 분향소를 마련할 예정이다. 샌프란시스코 사회정의교육재단(ESLF)은 정의기억연대를 통해 “할머니는 희망을 잃지 말고 함께 힘을 모아 희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 주시며 국제연대 활동을 해 오셨다”며 추모사를 전달했다. 뉴질랜드에선 위안부 할머니를 위한 사진전 한켠에 작은 분향소가 마련됐다. 이 전시회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전 세계적인 전쟁 성폭력과 연관된 문제임을 알리기 위해 현지 교민들이 오클랜드 시청의 후원을 받아 진행하고 있다. 갑작스러운 비보로 마련된 분향소에는 교민들은 물론 현지 외국인들의 방문도 이어졌다. 해당 전시회를 개최한 더좋은세상 뉴질랜드 한인 모임의 곽상열씨는 2017년 한국에서 열린 수요집회에서 할머니를 만난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사진으로 뵈었을 때보다 야윈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면서 “활동가들을 안아 주며 고맙다고 하신 말씀이 생생하게 기억난다”고 했다. 교민들은 뉴질랜드에서도 평화의소녀상 건립을 위한 활동을 통해 할머니의 뜻을 이어 나갈 계획이다. 영국 런던에선 2월 초 할머니를 위한 작은 추모 행사를 계획 중이다. ‘위안부 피해자에게 정의를(Justice for Comfort Women) UK’에서 활동 중인 대비 김씨는 “위안부 할머님 부고가 들릴 때마다 일본대사관 앞에서 추모 침묵시위를 해 왔다”면서 “이번에도 같은 방식으로 할머니에게 애도를 표할 방법을 계획 중”이라고 말했다.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 “옌벤 조선족 동포 통일 지렛대 활용”

    “옌벤 조선족 동포 통일 지렛대 활용”

    조선족 동포를 남북 통일의 ‘지렛대’로 활용하자는 주장이 나와 눈길을 끈다. 이를 위해 조선족 동포를 향한 우리의 그릇된 시선부터 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홍면기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이런 내용을 담은 ‘연변 조선족 사회와 한반도 평화통일’(동북아역사재단)을 최근 출간했다. 저자는 우선 한반도의 국제정치가 지정학적 논리에 지배받는다는 주장에 관해 “중국과 일본의 역사왜곡이 지정학적 편견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반박한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 놓인 지정학적 처지를 탓하기보다는 통일 공간의 확장과 재구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런 측면에서 옌벤과 조선족 사회가 가지는 의미가 각별하다”고 말한다. 이들이 거주하는 자치주가 상당한 규모인 데다가 북한의 위쪽에 위치한 지리적 입지는 물론이거니와, 조선족이라는 존재가 한·중 관계에서 독특한 위상을 지닌다는 것이다. 저자는 중국의 역사왜곡을 비판하는 우리의 모습과, 간도가 우리 땅이었다고 주장하면서도 조선족 동포에 관해서는 마치 ‘다른 민족’인 듯 바라보는 시선부터 고칠 것을 강조했다. 화교들이 2년마다 ‘세계화상대회’를 연다든가, 유대인 네트워크가 활발한 모금 활동으로 민족을 껴안은 것처럼 우선 끈끈한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들을 통일의 지렛대로 삼자는 주장이다. 그는 이와 관련, “우리가 진취적인 역사관을 전제하지 않으면 미래지향적, 공생적 전략 수립도 어렵다”면서 “감정적인 고토회복론이나 조선족에 관한 근거 없는 우월감이라는 자기만족으로는 미래를 열 수 없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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