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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교 결례’ 감사 통해 관련자 징계한다

    ‘외교 결례’ 감사 통해 관련자 징계한다

    잦은 실수에 전문가 부족·기강해이 지적 강경화 장관 재발방지 시스템 긴급 지시 지난달 감사 착수… 징계 등 결과 곧 발표지난해 말 ‘체코’를 ‘체코슬로바키아’로 잘못 표기하고 문재인 대통령의 한·말레이시아 정상회담 때 인도네시아 인사말을 하도록 해 눈총을 받았던 외교부가 이번에는 발틱 국가를 발칸 국가라는 표현의 보도자료를 내서 해당국의 항의를 받는 망신을 당했다. 미국을 중심으로 4강(미·일·중·러) 일변도의 조직문화를 갖고 있기 때문에 군소국가에 대한 전문가 부족으로 이런 실수가 반복되는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외교부는 지난달 19일 영문 보도자료에서 ‘발틱’(Baltic) 국가인 라트비아·리투아니아·에스토니아를 ‘발칸’(Balkan) 국가로 잘못 기재했다. 표기를 본 라트비아 주한 대사관이 항의하면서 잘못된 표기를 고쳤다. 발틱 국가는 라트비아를 포함한 북유럽 발트해 일대를 말한다. 반면 발칸 국가는 유럽 동남쪽 발칸반도 일대에 있는 불가리아, 루마니아, 크로아티아 등을 가르킨다. 명칭은 비슷하지만 위치는 전혀 다르다. 외교부 관계자는 3일 “한국어 보도자료를 영문으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발틱’을 ‘발칸’으로 잘못 표기한 채로 공개했고 주한 라트비아 대사관이 전화를 통해 지적해 수정했다”고 해명했다. 해당 보도자료는 ‘외교 다변화와 재외동포 보호를 위해 라트비아 주재 한국 대사관의 규모를 격상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중 ‘지금까지는 발칸 지역에서 영사 지원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기술하는 부분에서 발틱을 발칸으로 오기한 것이다. 문제는 외교부의 기강해이로 볼 수 있는 이런 실수가 최근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외교부는 지난해 말 문 대통령의 체코 방문 당시 공식 영문 트위터 계정에 ‘체코’를 ‘체코슬로바키아’로 잘못 표기했다. 또 지난달 13일 열린 한·말레이시아 정상회담에서는 문 대통령이 인사말을 하는 과정에서 인도네시아어인 ‘슬라맛 소르’라고 말하기도 했다. 특히 이번 사건의 경우 강경화 장관이 지난달 20일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안보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문 대통령의 말레이시아 국빈방문 외교 결례 논란과 관련해 “외교부로서는 참 아픈 실수”라며 “심심한 사죄를 드린다”고 직접 사과한 다음날인 21일 외부에 알려졌다는 점에서 뼈아프다. 이 때문에 강 장관은 지난달 22일 열린 간부회의에서 해당 사안이 반복되면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와 관련, 외교부 감사관실은 지난달 하순부터 감사에 착수해 관련자에 대한 징계 여부를 포함한 결과를 조만간 내놓을 계획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장관이 책임 있는 복무태도를 강조하고 재발 방지 시스템을 마련하라고 긴급하게 지시를 내렸다”며 “응당 책임이 따를 거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외교부가 잇따른 실수에 따른 대응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구조적인 문제가 터진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4강 외교에만 매달리다보니 지역전문가 부족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라는 것이다. 외교소식통은 “승진이나 업무중요도 등에서 볼 때 외교부는 미국을 중심으로 4강 일변도의 조직문화를 갖고 있기 때문에 군소국가에 대한 전문가가 상대적으로 적은 것 같다”며 “외교다변화를 감안해서라도 다양한 외교전문가를 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여수 번식장서 구조됐던 ‘7kg’ 리트리버의 건강해진 근황

    여수 번식장서 구조됐던 ‘7kg’ 리트리버의 건강해진 근황

    지난해 6월 불법 번식장에서 7kg의 앙상한 몸으로 구조된 골든 리트리버 ‘복순이’의 근황이 공개됐다. 복순이는 전남 여수시의 한 불법 번식장에서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며 지내다가 대한동물사랑협회 코니(KONI)에 의해 지난해 6월 29일 구조됐다. 당시 복순이가 방치되어 있던 번식장의 비위생적인 환경도 충격적이었으나, 대형견임에도 몸무게 7kg의 비쩍 마른 복순이의 모습은 보는 이들에게 충격을 더했다. 이후 복순이는 구조자에게 입양됐고, 구조자는 1월 14일 인스타그램을 통해 복순이의 근황을 공개하기도 했다. 견주는 “너무나 많은 분들이 복순이를 위해 최고급의 사료와 영양식을 보내주셔서 지금 복순이의 몸무게는 28kg”라면서 “때로는 마당에서 비비안과 뛰어놀기도 하고 때로는 방에 들어와 꾸벅꾸벅 졸기도 하면서 잘 지내고 있다”고 전했다. 공개한 사진에는 몰라보게 예뻐진 복순이의 모습이 담겼다. 살도 포동포동 찌고 털도 예쁘게 자라 사랑받고 있다는 것이 물씬 느껴진다. 복순이 견주는 지난달 28일에도 복순이의 사진을 공개했다. “언제쯤이면 반갑다고 꼬리치며 달려올래?”라는 글과 함께 공개된 사진에는 한층 더 복슬복슬해진 복순이의 모습이 담겼다. 복순이의 건강한 근황을 본 누리꾼들은 “엄청 잘 컸다”, “마음의 상처가 아직 큰 것 같아요. 꼬리치고 웃는 모습도 보고 싶어요”, “잘 보살펴주셔서 감사합니다” 등의 댓글을 달며 복순이를 응원했다. 사진·영상=ssoi_10/인스타그램 김민지 기자 mingk@seoul.co.kr
  • 술집서 시비끝에 동포 흉기로 찌른 러시아인들 검거

    술집에서 어깨를 부딪쳤다는 이유로 시비가 붙자 친구들을 데려와 같은 국적 남성들을 집단 폭행한 러시아인들이 경찰에 붙잡혔다. 경기 안산단원경찰서는 31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공동상해) 혐의로 A(32·러시아 국적)씨 등 3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A씨 등은 이날 오전 5시쯤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 한 편의점 앞에서 간이 테이블에 앉아있던 B(32·러시아 국적)씨 등 4명을 집단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앞서 2시간여 전 인근 한 술집에서 B씨 일행과 어깨를 부딪쳤다는 이유로 싸움을 한 A씨 등 4명은 친구 2명을 더 불러 이 같은 보복 폭행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현재 검거되지 않은 A씨의 친구 3명 중 한 명은 폭행 과정에서 흉기로 B씨의 복부를 찌른 뒤 도주했다. B씨는 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았으며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도주한 3명을 추적하고 있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美한인 독립운동 파차파캠프 연구 장태한 교수 재외한인학회 최우수학술상 수상

    美한인 독립운동 파차파캠프 연구 장태한 교수 재외한인학회 최우수학술상 수상

    ‘도산 공화국’으로 불리며 초기 미주 한인사회에서 독립운동의 싹을 움트게 한 ‘파차파 캠프’를 연구해 온 미국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대학(UC리버사이드) 장태한(사진) 교수가 30일(현지시간) 재외한인학회의 최우수 학술상을 수상했다.로스앤젤레스 동쪽 리버사이드에 있는 파차파 캠프는 샌프란시스코로 입국한 도산 안창호 선생이 1904년 리버사이드에 정착하면서 세운 한인공동체로 한인타운의 효시로 불린다. 안창호 선생은 파차파 캠프에서 한인공동체를 이끌며 공립협회를 세웠고 신민회와 흥사단 창립 기틀을 닦았다. 김영옥재미동포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장 교수는 1908년 뉴욕 산본보험회사 지도에 한인 거주구역으로 표시된 기록을 단서로 안창호 선생과 파차파 캠프 한인들의 활동과 독립운동에 기여한 흔적을 추적해 연구해 왔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北대사관 침입’ 자유조선 활동 일시중단…예일대 출신 에이드리언 홍 창 관심 집중

    자유조선, 2명 이상 美CIA와 접촉설 “탈북민 조직… 김씨 세습 끊어낼 것” 반북 단체 ‘자유조선’이 지난달 22일 스페인 주재 북한대사관 침입 사건이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밝히면서 이 사건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에이드리언 홍 창’의 실체에 관심이 쏠린다. AFP통신은 27일(현지시간) 스페인 법원을 인용해 35세의 멕시코 국적자라고 확인한 에이드리언 홍 창이 ‘에이드리언 홍’이라는 이름으로 미국에 기반을 두고 반북 활동을 해 온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예일대 출신으로 알려진 그는 북한에 대한 지식을 토대로 2005년 캘리포니아에 기반을 둔 탈북자 지원 단체 ‘북한 자유’(링크·LiNK)를 공동 설립했다. 2006년 12월에는 중국 선양 미국 영사관으로 망명을 시도한 6명의 탈북자와 함께 중국 당국에 의해 체포됐다가 열흘 만에 미국으로 추방됐다. 이후 전략자문회사 ‘페가수스’ 대표로서 북한의 인권 실태를 고발하고 정권 교체를 주장하는 활동을 벌였다. 홍 창은 2010년 이후 이화여대에서 인권과 외교 정책에 대해 강의했고, 미국 예일대 연구원으로도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5년에는 뉴욕에 북한의 정권교체를 목표로 하는 반북 단체 ‘조선연구소’를 설립했다. 그러나 홍 창이 자유조선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그가 미국 기반 인권 활동가 에이드리언 홍이라고 단정하기는 이르다는 분석도 있다. 스페인 언론은 당시 대사관 침입자 10명 중 2명 이상이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접촉한 적이 있다고 보도했지만 세계 최고 정보력을 지닌 CIA가 쉽게 노출됐다는 점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대목이다. 로이터통신은 이날 “미 연방수사국(FBI)이 스페인 당국으로부터 대사관 침입자로 추정되는 인물들의 명단을 넘겨받았고 이 사건을 조사 중”이라고 보도했다. 한편 자유조선은 28일 홈페이지를 통해 “우리는 김씨 일가 세습을 끊어버릴 신념으로 결집된 국내외 조직으로 세계 각국 동포와 결집한 탈북민의 조직”이라고 밝혔다. 이어 “북한 정권을 겨냥한 여러 작업을 준비 중이었지만 언론의 온갖 추측성 기사들로 행동 소조들의 활동은 일시 중단 상태”라고 언론에 관심을 자제해 줄 것을 요청했다. 서울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월드옥타 동남亞 지회장들, 모국 중기 수출과 청년 일자리 창출에 적극 나서기로

    월드옥타 동남亞 지회장들, 모국 중기 수출과 청년 일자리 창출에 적극 나서기로

    26~28일 베트남 호치민 회의에 9개국 지회장 참석하용화 회장 “모국 중소기업 수출에 적극적” 주목세계한인무역협회(월드옥타, 회장 하용화)는 26일부터 28일까지 베트남 호치민에서 9개국 9개 지회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2019 월드옥타 동남아 지회장 회의를 개최했다. 이번 회의에는 월드옥타 하용화 회장, 김성학 이사장, 동남아지역 부회장 외에 호치민, 하노이, 마카오, 마닐라, 프롬펜, 타이페이, 방콕, 홍콩, 괌지회 지회장이 참석했다. 회의에서는 월드옥타가 ‘750만 재외동포의 경제중심 단체’로 자리매김하기 위하여 ‘함께하는 옥타, 힘 있는 옥타, 자랑스런 옥타’ 라는 슬로건 하에 뉴비전 실행과제를 공유하는 한편 지회 간 협업 및 지회활성화 방안에 대하여 논의했다. 또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신남방정책이 성공할 수 있도록 각 지회가 힘을 모으기로 하였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 모국청년 해외취업 목표 100명을 초과 달성한 데 이어 올해에는 300명의 모국청년들이 월드옥타를 통해 해외취업할 수 있도록 월드옥타 동남아시아 지회가 앞장서기로 뜻을 모았다. 특히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인 경제인들이 자신의 고향을 방문해 고향기업의 해외진출과 고향 청년들의 해외 일자리 창출은 물론 사회적 책임활동을 위해 마련한 ‘홈커밍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 하기로 했다.하용화 월드옥타 회장은 “최근 해외시장 진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국 중소 수출기업을 위하여 재외동포 한인 경제인들이 힘을 합쳐야 할 때”라며 “월드옥타 회원사들이 중심이 되어 모국 중소기업의 수출 지원을 위해 더 많이 힘쓰는 한편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해 더 많이 뛰어 달라”고 당부했다. 이날 회의가 진행되기 전 월드옥타 임원진과 동남아 지회장은 주호치민 대한민국 총영사와 면담 시간을 갖는 한편 코트라, 코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호치민 지회장 과 간담회를 갖고 국내 중소기업들이 해외시장에 진출함에 있어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협력하기로 했다. 이번 회의는 지난달 유럽지역에서 최초로 개최한 통합 지회장 회의에 이어 두번째로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개최된 것이다. 하 회장은 “글로벌 사회에서 재외동포 경제인들의 국제적 영향력이 날로 증가하고 있으며, 모국 경제발전과 무역증진 및 해외시장 진출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며 “대한민국 경제발전과 혁신성장을 뒷받침하는 주요한 동력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관심이 필요하며 재외동포 정부 포상 확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1981년에 설립된 월드옥타는 현재 전 세계 72개국 146개 도시에 지회를 두고 있다. 정회원 7000여 명을 비롯해 2만여 명의 차세대 회원이 함께하는 재외동포 최대 규모의 경제단체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연해주 독립운동 대부 최재형 러시아 옛집, 독립기념관됐다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로 불리는 독립운동가 최재형(1860∼1920) 선생의 러시아 옛집이 독립운동기념관으로 조성됐다. 국가보훈처는 27일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최재형 선생이 순국하기 전까지 거주한 고택을 독립운동기념관으로 만들어 28일 오전 11시(현지시간) 러시아 우수리스크시 현지에서 개관식을 한다고 밝혔다. 기념관 규모는 대지 약 640㎡, 연건평 100㎡이다. 개관식에는 피우진 보훈처장, 최재형 선생 후손, 러시아 고려인연합회 회장, 연해주 고려인 민족문화자치회장, 최재형기념사업회 이사장, 주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 고려인 동포 등 70여명이 참석한다. 총사업비는 12억원으로 보훈처에서 해당 사업을 진행한 우수리스크 고려인민족문화자치회에 10억원을 지원했다. 전시는 최재형 선생의 삶과 독립운동 공적을 중심으로 구성됐고 입구에는 최재형 선생의 애칭인 ‘페치카’(따뜻한 난로)를 설치했다. 그는 당시 조선인들에게 따뜻한 대부의 역할을 하면서 페치카로 불렸다. 최재형 선생은 독립을 위해 재산과 목숨을 바치며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독립운동가로 평가된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남북 모두 임정 실체 정치적 활용·왜곡… 시기·인물별로 평가해야

    남북 모두 임정 실체 정치적 활용·왜곡… 시기·인물별로 평가해야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 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 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해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대한민국 헌법 전문) “(1919년 3·1 봉기로) 인민이 피흘리고 싸울 때 (일부 민족 운동가들은) 중국 상하이에서 임시정부를 조직하고 미국에 대한 애국운동만 진행했다. 이들은 미 제국주의자들의 지지와 도움으로 나라가 독립할 수 있을 것으로 타산(계산)하고 그들에게 아양을 떨면서 원조를 구걸했다.”(북한 조선전사) 3·1운동은 일본 제국주의의 억압과 수탈, 민족말살 정책에 항거한 전국 단위의 민중 시위였다. 이를 계기로 중국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생겨났고 임정 요인들의 희생 덕분에 광복을 맞이할 수 있었다. 이것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임정에 대한 평가다. 하지만 모든 이들이 임시정부를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건 아니다. ‘나약한 부르주아 혁명가들의 집합소’, ‘우리 민족 독립운동에 숟가락만 얹은 조직’이라며 싸늘한 냉소를 보내는 국내 연구자도 적지 않다. 우리는 임정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봐야 할까.●北·국제사회 “임정 제 역할 못 해…정부 아냐”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대한 가장 큰 논란은 임정이 정말로 한국 독립운동 단체들의 대표이자 정부로서 역할을 수행했는가 하는 점이다. 대한민국 정부와 국사편찬위원회는 임정이 엄연한 정부였고 국내 독립 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고 천명한다. 초·중·고교 역사 교과서에서도 임정을 우리 민족의 반만년 역사상 첫 민주공화국 정부로 소개한다. 하지만 북한에서는 임정을 독립운동 단체로 인정하지 않는다. 식민지 체제에서 일제에 고통받으며 목숨 걸고 저항한 이들은 당시 한반도에 살던 노동자와 농민들이었지 임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해외에서 “힘 없이 외교청원 놀음이나 펼친” 망명가 집단에게 정부 자격을 부여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최근 우리 정부가 3·1운동과 임시정부 100주년 행사를 남북 공동으로 추진하려다가 실패한 데에는 이런 역사 인식 차가 깔려 있다. 북한이 자신의 정통성을 김일성 일가에서만 찾다 보니 임정을 더욱 깎아내릴 수밖에 없는 내막이 있기도 하다. 여운형(1886~1947)을 비롯해 주요 독립운동가들도 임정의 법통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30년 가까이 외국에서 지리멸렬하게 파벌 싸움만 하다가 국내에 별다른 지지 기반을 만들지 못했고 시베리아와 만주 등에 임정보다 훨씬 크고 실력 있는 단체가 존재했다는 이유에서다. 국제사회 역시 임정을 정부로 승인하지 않았다. 국제법상 국가의 3요소인 영토, 주권, 국민이 없던 탓이다. 오직 중화민국(대만)이 임정을 정부로 인정하고자 미국과 영국 등을 설득했지만 열강의 반응은 차가웠다. 1945년 해방 뒤 프랭클린 루스벨트(1882~1945) 미국 대통령은 임정 승인을 요청한 장제스(1887~1975)에게 이렇게 답했다. “한국 독립운동 단체들이 분열돼 있어 임정의 대표성을 인정할 수 없다. 임정은 한반도와 연계가 없다. 중국이 (친중 세력인) 임정을 승인하면 소련도 친소단체를 승인할 텐데 이렇게 되면 갈등이 커질 수 있다.”●‘1919년 건국론’ ‘1948년 건국론’ 대립 임정의 위상에 대한 시각차는 건국절 논쟁으로도 이어졌다. 가장 큰 쟁점은 대한민국 수립 시점이다. ‘1919년 건국론’과 ‘1948년 건국론’이 대립하고 있다. 상당수 역사학자들은 1919년 건국론을 주장하지만, ‘뉴라이트’를 포함한 일부 사회과학자들은 1948년 건국론을 지지한다. 1919년 건국론자들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임시헌장을 통해 국민·주권·영토 등 국가의 3요소를 규정했기 때문에 국가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1948년 건국론자들은 임정이 한국 독립에 이렇다 할 기여를 하지 못했기에 1919년은 진정한 건국이 아니라고 반박한다. 명실상부한 주권을 되찾고 국제사회에서도 합법적으로 승인한 1948년이 진짜 건국이라는 것이다. 1919년 건국론자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독립운동의 연장선상에서 파악한다면 1948년 건국론자들은 국제법적 형식 논리를 더 중시한다고 볼 수 있다. 독립운동사 전문가인 김정인 춘천교대 사회교육과 교수는 27일 “임정 지도자들이 1919년 건국론자 주장처럼 1919년에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그 뒤부터 국가의 완성도를 높여 가는 과정으로 여겼는지 아니면 1948년 건국론자 생각처럼 그저 독립운동을 한다고 인식했는지는 좀더 정교한 사실 규명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임정은 ‘빛과 그림자’를 함께 지닌 조직” 임정은 3·1운동으로 드러난 민족국가·국민주권국가 수립 욕구를 맨 처음 구체화한 조직이다. 3·1운동으로 생겨난 여러 정부를 하나로 묶어 독립운동 대표체로 거듭났다. 이것만으로도 임정은 대한민국의 시원으로서 정통성을 인정받기에 충분하다. 그렇다고 해서 임시정부가 정통성을 독점한 건 아니었다. 수립 초기부터 분열과 무능, 파벌 싸움 등으로 많은 비난을 받았고 일개 독립운동 단체보다 못할 정도로 쇠약해진 시기도 보냈다. 임정은 분명 ‘빛과 그림자’를 함께 지닌 조직이다. 그래서 시기와 인물에 따라 다르게 평가받아야 한다. 전문가들은 과거 냉전 구도 속에서 정권에 따라 임정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다보니 지금의 논란이 생겨났다고 지적한다. 김희곤(65) 안동대 사학과 교수는 “광복 이후 임정의 위상을 두고 정치적 논쟁이 일어나지 않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남한에서는 군사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부족한 정당성을 보완하고자 임시정부를 치켜세우려고 애썼다. 이들은 임정이 독립운동의 최고봉이자 한반도를 장악한 대표 조직으로 과장해 선전했다. 상당수 학계 인사도 이런 분위기에 무비판적으로 편승하며 곡학아세에 나섰다. 하지만 남한과 체제 경쟁을 펼친 북한에 임정은 ‘실패한 망명가 집단’에 불과했다. 1980년대 남한의 운동권 세력도 군사정부에 대한 반발로 북한의 ‘민중사관’을 흡수해 3·1운동 민족대표나 임정 요인을 무시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훗날 ‘뉴라이트’가 돼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부터 대놓고 임정을 부정한다. 언론 역시 이런 상황에 대해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임정에 대한 정치적 논란이 있을 때마다 정확한 사실관계에 근거하기보다는 매체가 지향하는 이념이나 정권 성향에 맞춰 임정을 평가 절상 혹은 절하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지금부터라도 정치적 유불리에 휘둘리지 말고 임정을 있는 그대로 평가하고 인정해야 정확한 사실 전달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비판했다. ●“남북 시각차 인정… 꾸준한 교류로 극복해야” 지금의 한반도 현실이 남한이나 북한 어느 한쪽에만 정통성을 부여하기 어려워진 만큼 지금부터라도 남북이 함께 임정의 정확한 위상을 재평가해 통일을 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스위안화 중국 푸단대 한국북한연구센터 교수는 최근 열린 임정 관련 토론회에서 “(일제강점기 핵심 독립운동단체였던) 김구의 임정 세력, 김일성의 항일무장 세력, 중국 내 조선의용군 세력에 대한 정확한 연구와 평가야말로 남북통일 실현의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에서는 임정을 법통으로 적시했지만 북한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심지어 상하이 임정 청사를 방문하는 것조차 꺼린다. 학계의 교류와 충분한 인내로 이런 간극을 극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냉장고에 현금 보관하라”성남서 보이스피싱 일당 3명 덜미

    공공기관을 사칭해 전화금융사기로 4000여만원을 가로챈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경기 성남중원경찰서는 절도 등 혐의로 중국인 A(30) 씨와 대만인 B(28) 씨를, 사기 등 혐의로 C(63·중국동포) 씨를 구속했다고 27일 밝혔다. A씨는 지난 1월부터 이달까지 성남시 중원구 소재 피해자 2명의 집에 침입하여 냉장고 등에 넣어 둔 현금 3300만원을 훔친 혐의를 받고 있다. 앞서 A씨 등 일당은 전화로 “우체국 직원인데 계좌가 도용됐으니 현금을 안전하게 보관해야 한다”고 피해자들을 속여 현금을 인출해 거실 TV장이나 냉장고에 넣어두고 집 밖으로 나오도록 유도하는 등 범행 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범행 전 모자와 마스크를 착용하고, 범행 후에는 공원이나 화장실에서 입었던 옷을 버리고 미리 준비한 다른 옷으로 갈아입는 치밀함을 보였다. B씨는 환전책으로 A씨로부터 돈을 건네받아 해외로 송금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이들의 이동경로를 추적하여 수거책 A씨와 피해금을 해외로 송금한 전달책 B씨을 발생 2주 만에 모두 검거했다. 또 B씨를 검거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피해자 1명으로부터 1100만원을 가로챈 뒤 해외 송금을 위해 환전소를 찾은 C씨를 붙잡았다. 피해자들은 경비원 등 대부분 노인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A씨 등은 중국 현지 보이스피싱 조직에 고용돼 범행에 가담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C씨로부터 회수한 1100만원은 피해자에게 돌려 주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다른 피해자를 확인하고 있으며 이들과 연관된 다른 조직원에 대해서도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현금 집에 보관하라”는 보이스피싱…주거침입 뒤 돈 훔쳐

    “현금 집에 보관하라”는 보이스피싱…주거침입 뒤 돈 훔쳐

    현금을 집에 보관해야 안전하다는 말로 피해자들을 속여 집에 침입해 수천만원을 빼앗은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일당이 구속됐다. 공공기관이나 금융기관에서는 거액의 돈을 현찰로 뽑아 집에서 보관하라는 전화를 걸지 않는다. 경기 성남중원경찰서는 27일 공공기관을 사칭한 보이스피싱으로 4000만원을 가로챈 중국인 중국인 A(30) 씨와 대만인 B(28) 씨를 절도 등의 혐의로, C(63·중국동포) 씨는 사기 등의 혐의로 각각 구속했다고 밝혔다. A씨의 일당은 전화로 “우체국 직원인데 계좌가 도용됐으니 현금을 안전하게 보관해야 한다”고 피해자들을 속여 현금을 인출하게 한 뒤 집안 곳곳에 보관하도록 유도하는 등 범행을 치밀하게 준비한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지난 1월부터 이달까지 성남시 중원구 소재 피해자 2명의 집에 침입, 냉장고 등에 넣어 둔 현금 3300만원을 훔쳤다. B씨는 환전책으로, A씨로부터 돈을 건네받아 해외로 송금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경찰은 B씨를 검거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피해자 1명으로부터 1100만원을 가로챈 뒤 해외 송금을 위해 환전소를 찾은 C씨를 붙잡았다. 피해자들은 경비원 등 대부분 노인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A씨 등은 중국 현지 보이스피싱 조직에 고용돼 범행에 가담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C씨로부터 회수한 1100만원은 피해자에게 환수 조치했다”고 말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열린세상]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비용/김세정 런던 그린우즈 GRM LLP 변호사

    [열린세상]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비용/김세정 런던 그린우즈 GRM LLP 변호사

    지금 일하는 로펌에 취직한 지 만 8년이 돼 가는데, 얼마 전 화장실 쓰레기통이 바뀌었다. 취직하고 나서 처음으로 있는 일이다. 이게 무슨 대단한 일이냐 싶겠으나 고장이라도 나기 전에는 쉽사리 아무것도 바꾸지 않고 고집스레 기존에 하던 대로 하는 것이 사무실 분위기이고, 대략 영국 사회의 분위기이고 그렇다. 일례로 사무실에는 간식이 비치돼 있는데, 늘 특정한 과자만 넣어 둔다. 하물며 간식을 넣어 두는 통조차 취직한 뒤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쓰레기통은 손을 닦은 종이 수건을 버리는 용도다. 용변 뒤처리를 한 휴지를 쓰레기통에, 그것도 뚜껑이 없는 곳에 버리지는 않기 때문이다. 화장실에서 사용한 휴지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은 한국에서는 꽤나 오랫동안 당연한 일이었지만 영국에서는 절대로 그러면 안 된다. 생리용품이나 종이 수건을 변기에 버리지 않는 것처럼 오물이 묻은 휴지는 비치된 쓰레기통에 버리지 않고 변기에 버려야 한다. 예전 쓰레기통은 크기가 작고 뚜껑이 없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쓰레기통 주변이 어지럽기 시작했다. 누군가 종이 수건을 너무 많이 사용하거나 뭉쳐서 버리지 않고, 심지어는 쓰레기통에 제대로 넣지도 않은 것으로 보였다. 사무실이 작년에 합병이 된 뒤 새로운 인력이 꽤 유입됐는데, 이들 중 범인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전까지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화장실에서 넘쳐 있는 쓰레기통을 보면 정리를 좀 해놓고 나왔다. 종이 수건만을 버리는 용도이니 그리 어렵거나 더러운 일도 아니다. 그래도 내가 해야만 할 일 역시 아니다. 관리나 청소 담당자가 따로 있으니까. 그래도 굳이 치워 놓고 나온 것은 직원 중 나 혼자만 동양인이기 때문이다. 특히 나를 잘 모르는 새로 온 사람들이 내 다음에 화장실에 들어갔을 때 저 몰상식한 소행에 관해 혹시 나를 의심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됐다. 이런 내 걱정을 피해의식이거나 과도한 경계심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입장을 바꾸어 다음과 같은 상상을 해 보라. 당신이 심란한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그전 사용자가 이방인이었다면, 그것도 소위 더 ‘후진’국이라고 생각하는 나라 출신이었다면 당신은 그 이방인이 화장실을 어지른 것이라고 생각하기가 쉽겠는가, 아니면 그가 아니라 우리 동포 중 하나가 그러했다고 생각하기가 쉽겠는가. 원래부터 그 사회에 속해 있지 않은 사람들, 즉 외국인들 내지 이주민들은 쉽사리 신뢰를 얻지 못하고 더 쉽게 비난을 받기 쉬운 것이 사실이다. 이는 불신이나 오해나 편견 때문일 수도 있지만, 한편 새로운 사람들이 익숙하지 않은 사회의 명시적 또는 묵시적 규칙을 잘 알지 못하기에 저지르는 일들 때문일 수도 있다. 오물이 묻은 휴지를 무심코 휴지통에 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한국인들이 특히 잘 방문하는 영국의 한 할인 매장 화장실에 사용한 휴지를 쓰레기통에 버리지 말아 달라는 한국어 안내문이 붙어 있는 것을 본 일도 있다. 영국인들 입장에서는 매우 당황스럽고 싫은 일이었음이 틀림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위 할인 매장에서 한국인들의 화장실 이용에 대해 싫은 기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거나 심지어 금지시킨다면 이는 차별이다. 더구나 사회에 발생한 문제들을 모두 이주민이나 외국인 탓으로 돌리는 것이나, 위협을 가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행위들은 차별일 뿐만 아니라 용납할 수 없는 테러라고 하겠다. 쓰레기통이 크고 뚜껑이 달린 것으로 교체된 뒤 화장실의 문제는 사라졌다. 범인을 색출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끊임없이 잔소리를 하는 것보다 더 간단하고 현명한 해결책이겠다. 다만 대개의 세상 일이 이런 식으로 쉽사리 해결되지는 않는 것이 현실이다. 덧붙여 이같이 해결을 도모하는 것은 사실 여유 있는 좋은 시절에나 너그럽게 행하는 일이라는 것 역시 한계다. 사무실의 정리 담당은 화장실에 이어 탕비실에서도 정리정돈의 문제가 계속 발생하자 드디어 매우 강력하게 꾸짖는 경고 이메일을 전 직원에게 보냈다. 누가 범인인지 알고 있다고 썼더라. 내가 아님은 알고 있나 보다 싶어서 안도가 된 것은 이방인으로서 살고 있는 비용 같은 것이라고 하겠다.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봉오동전투의 잊혀진 영웅, 최운산 장군을 아시나요”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봉오동전투의 잊혀진 영웅, 최운산 장군을 아시나요”

    ‘장군의 손녀’ 최성주가 말하는 잊혀진 장군 ‘최운산’“99년 전 봉오동전투는 당시 세계 최강이라던 일본 정규군과 싸워 이긴 빛나는 전과입니다. 굶주리고 헐벗은 파르티잔 특히 홍범도(1868~1943)·김좌진(1889~1930) 같은 영웅이 화승총으로 매복을 잘 해서 이긴 것이 아니라 우리 독립군이 체계적으로 훈련받고 무기와 군장비를 잘 갖췄기 때문에 이긴 겁니다. 수천 명에 달하는 우리 독립군이 어떻게 무장하고, 체계적으로 훈련받을 수 있었을까요? 여기에는 잊혀진 영웅 최운산(崔雲山·1885~1945) 장군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겁니다. 당시 사진사를 동원해 전쟁 현장을 촬영했던 준비된 전쟁이었습니다. 만주 무장독립운동의 역사를 새롭게 조명해야 하는 이유이지요.”최운산장군기념사업회 최성주(61) 이사를 최근 한 모임에서 우연히 만났다. 자신이 장군의 손녀라며 봉오동·청산리 전투에서의 최운산 장군의 역할에 대해 설명했다. 학교에서 익히 배웠던 ‘홍범도·김좌진 장군의 영웅담’과는 결이 달랐다. 기자만 최운산 장군에 대해 모르나 싶었지만 최 이사는 “역사학자조차 최운산 장군의 역할에 대해 잘 모른다”고 하기에 지난 22일 서울신문사에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에서 최 이사는 노트북을 들고와 현장에 다녀왔던 사진과 관련 서류들을 보여줬다. 이 봉오동 전투의 총사령관은 그의 형인 최진동(崔振東·1883~1941), 참모장은 최운산이고, 홍범도·김좌진은 그 부대의 연대장이었다고 말했다. 최 이사는 “그동안 우리 학계에서는 봉오동 전투 현장이 수몰됐다고 했지만 실제 전투가 있었던 곳은 봉오저수지를 10km 정도 거슬러 올라간 곳”이라고 말했다. 최 이사는 거의 해마다 전투지를 답사한다고 했다. “봉오동전투 사진사 동원한 준비된 전쟁전투 모습 3장…임정에 보냈다는 기록만”- 봉오동전투 당시 현장을 촬영했다고? “대한북로독군부(大韓北路督軍府) 최진동이 국민회에 보낸 공문(‘기안104’) 기록만 남아 있습니다. 그때 찍은 사진은 전해지지 않아 안타깝습니다. 기록을 보면 ‘봉오동전쟁 전황 촬영사진 3매, 상해를 보낼 예정. 별지 전쟁 촬영 사진 3매는 제2남지방의 박준재씨가 전쟁 당시 실시 전황을 보고 촬영한 것이다. 이것은 임시정부로 보내서 석판으로 인쇄하여 세계에 선전하려는 것인데 보신 뒤에 반송하기 바란다.’고 적혀 있습니다. 번역해서 문서로 남아있는 것을 역사자료실에서 찾은 것입니다. 최운산 장군은 당시 종군기자라고 할 수 있는 전문 사진사를 동원해 기록을 남기도록 했던 겁니다. 그만큼 준비가 철저했던 거지요.” - 당시 돈이 있다고 무기를 살 수는 없었을 겁니다. 우리 독립군이 어떻게 무장했을까. “최운산 장군이 러시아와 무역거래를 하고 있던 관계로 지속적으로 무기를 구입해 왔습니다. 그러나 뒷거래로 수천명이 무장할 무기를 확보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을 겁니다. 봉오동·청산리 전투에서 우리 독립군은 소련에 배속됐던 체코 군의 무기로 무장한 겁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소련은 체코군을 동쪽 끝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귀국시킵니다. 이들이 장기간에 걸쳐 러시아 대륙을 횡단해 1918년 말에 동쪽 끝에 도착합니다. 체코군은 무기는 필요 없고, 고향으로 돌아갈 여비가 필요했던 것이지요. 반면 우리 독립군은 대량의 무기 확보가 절실한 상태였습니다. 무기가 있어도 돈이 없었거나, 돈이 있어도 무기를 파는 데가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었겠지요. 하늘의 뜻인지 최운산 장군에게 재력이 있었고, 체코군은 무기보다 현금이 더 필요했지요. 체코군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산 무기로 무장했다고 하니 우리 독립군도 당시로서는 최신의 미국 무기를 갖췄다고 봅니다.” “독립군들, 귀향하는 체코군 무기로 무장독립군들의 무기 구매 대금 출처는 최운산1920년 토지 팔아 5만원 마련… 무기 매입”- 막대한 무기 구입 대금은 어디에서 나왔나. “이 부분이 만주 무장독립운동 연구에서 가장 미진한 부분입니다. 우리 집안에서는 최운산 장군이 지원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의병 수준의 독립군 통합 부대원들을 훈련하고 무장시키기 위해 1920년 1월 최운산 장군이 석현의 대규모 토지를 5만원에 팔아 그 돈으로 대한북로독군부 부대원 전원을 완전무장시켰습니다. 당시 5만원은 전투기 한대 가격이라 합니다. 최운산 장군의 부인인 김성녀(金性女·1894~1975) 할머니가 1969년 남편의 독립유공자 서훈 신청을 하면서 밝힌 장비를 보면 ‘대포 10여문, 기관총 수십정, 수류탄 수천개, 장총 천여정, 권총 수백정, 실탄 수만 발’을 갖췄다고 합니다. 당시 훈련소 격인 사관연성소 병사 1인당 무장 상태를 보면 ‘소총 1정, 실탄 500발, 수류탄 1개, 좁쌀 6되, 짚신 1족이었다’는 일제의 밀정보고서도 있습니다.” - 최운산 장군, 얼마나 부자였나. “간도 제1의 거부였죠. 부를 일군 배경으로 중국이 토지 정리사업을 할 때 엄청난 규모의 황무지를 헐값에 불하받았습니다. 이를 조선 동포들과 함께 개간해 옥토로 바꿔 신한촌(新韓村)을 만들었습니다. 김성녀 할머니가 생전에 말씀하시길 ‘우리 땅은 사흘을 둘러봐도 다 못 본다.’고 하셨습니다. 1960년대 우리가 부산에 살 때 봉오동전투에 참전한 부하 한 사람이 국제시장에서 우연히 아버지를 만났습니다. 그 사람이 할머니께 인사와 우리에게 이야기하길 ‘최운산장군의 땅 면적이 이 부산의 6배였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콩기름공장·국수공장·주류공장·성냥공장·비누공장·과자공장을 비롯한 다수의 생필품 기업을 운영했습니다. 또 대곡상이자 축산업자로 한 번에 수백 마리의 소를 창춘이나 훈춘으로 몰고 가서 팔았답니다. 이 소떼와 곡물은 러시아 군대 식량으로 들어갔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이게 연결될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연해주에서 독립운동을 한 최재형(1858~1920) 선생이 소고기를 러시아군에 공급했다고 하는데 두 분의 관계를 유추해볼 수 있겠습니다. 최운산 장군은 오늘날 삼성과 비견 되는 재벌이었지만 40여년에 이르는 무장 독립운동으로 그 막대한 재산을 거의 다 소진했습니다. 말년에 남은 것이라고는 살고 있던 집과 그에 딸린 수남촌 토성리 일대의 땅 뿐이었습니다.” “최운산… 간도 최고의 갑부이자 대지주부산 6배 넓이 땅 소유…무장투쟁에 소진”- 최운산 장군, 정확한 이름은 어떻게 되나. “일본군의 눈을 속이자면 변장이 필수였습니다. 그래서 이름도 여러 개를 썼습니다. 어릴 때는 최명길(崔明吉), 장작림 군벌에 있을 땐 중국식의 최풍(崔豊), 간도 제1의 거부로서 경제활동을 할 때는 최만익(崔萬益), 무장투쟁을 할 때는 최문무(崔文武)·최빈(崔斌)·최운산(崔雲山)을 사용했고, 러시아에서 무기를 밀매할 때는 최고려(崔高麗), 중국 장사꾼으로 위장해 첩보활동을 할 때 최복(崔福)을 사용했습니다. 8개의 이름을 가졌지만 모두 한 사람입니다. 얼마나 복잡다단한 삶을 사셨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청년 시절, 장작림 군벌서 군사지식 습득중국군 이직시 자위대 조직…私兵 100여명” - 무법천지 만주에서 대규모 재산 지키자면 자위대가 필수였겠다. “최운산 장군은 청년 시절, 중국 동북3성 지배세력인 장작림(張作霖·1875~1928) 군벌에 들어갔습니다. 전투에서 장작림의 목숨을 구해준 적도 있어 장작림의 절대적 신임을 얻었습니다. 이때 형 최진동, 동생 최명순과 함께 3형제가 중국군에 복무하면서 군사 지식과 군조직 운영을 익히며 만주군벌과 혈맹의 관계를 맺은 겁니다. 최운산은 조선인과 중국인의 다리 역할을 하면서 양쪽의 신뢰를 다졌습니다. 그러다가 1912년 최운산 장군이 중국군을 이직하고 마적떼로부터 조선인의 생명과 재산 보호 명목으로 자위부대 구성하겠다고 했을 때 장작림이 기꺼이 허락해준 겁니다. 그가 사병(私兵)을 모집할 때 1개 중대 이상의 병력이 따라 나왔다 합니다. 100명이 넘는 규모라 처음부터 정규 군대와 같은 편제를 갖추었다고 합니다. 어찌보면 몇 명의 중국 사병이 포함된 이 자위부대가 대한민국 국군의 작은 씨앗일지도 모릅니다. 도독부(都督府)의 복장은 중국군과 같은 색깔이어서 잘 구별되지도 않았답니다. 독립군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자 1915년엔 봉오동 산중턱을 벌목하고 개간해 연병장과 막사를 지어 독립군들을 훈련시켰습니다. 이때가 500명이 넘었습니다.” “3·1운동 후 열혈청년들 간도로 몰려 들어6개월 과정 군사학교인 사관연성소도 창설안무·홍범도 등과 함께 대한북로독군부 창설”- 대한북로독군부 창설 과정은. “1919년 3·1운동 이후 임시정부가 상해에서 수립되었습니다. 최운산 장군은 임시정부를 받아들이고 자신이 운영하던 670명의 자위부대를 대한민국 첫 정식 군대 대한군무도독부(大韓軍務都督府)로 재창설합니다. 그때 중국 지방정부에서 일하고 있던 최진동, 최치홍 두 사람도 대한군무도독부에 합류합니다. 사령관인 부장(府長)에 형인 최진동 장군을 추대했습니다. 자신은 참모장으로 재정 등 군대 운영의 전반을 책임졌지요. 병참을 맡은 겁니다. 동생 최치홍도 참모로 활동했습니다. 그리고 최운산 장군은 자신의 소유지인 서대파에 대한북로군정서를 창설합니다. 3·1운동 이후 간도로 들어오는 열혈 청년들은 계속 늘어났습니다. 이들을 모두 받아들여 다음해에 6개월 과정의 군사학교인 사관연성소를 십리평에 설립했습니다. 최운산 장군은 북로군정서 무장과 사관연성소 운영에 필요한 비용을 군자금으로 상당한 규모의 재산을 소진하였습니다. 임시정부는 1920년을 독립전쟁의 원년으로 선언했습니다. 일본군과 본격적인 독립전쟁을 치르려면 대군단을 이루어야 한다는 판단을 한 최운산 장군은 만주의 독립군 모두에게 무기와 식량, 군복 등 군자금 일체를 제공하기로 약조하여 본격적인 대통합을 이뤄냈습니다. 북만주의 대소 독립군부대가 모두 합류했고 최종적으로 안무(1883~1924)의 국민회군, 홍범도의 대한독립군에 최씨 형제의 군대를 합쳐 독립군 통합부대를 만들었습니다. 명칭은 大韓北路督軍府(대한북로독군부)였고, 통합 서약서에 서명 날짜는 대한민국 2년 즉 1920년 5월 19일이었습니다. 국민회, 신민회, 광복단 등을 비롯한 크고 작은 독립부대가 대한북로독군부 기치로 모였습니다. 이들은 대한민국의 군인의 신분으로 전투에 임했던 것입니다.” - 봉오동전투 상황은.“통합을 이룬 대한북로독군부는 두만강을 건너 일본 헌병대를 습격하는 등 국내 진공작전을 펼치며 실전 훈련을 쌓아갔습니다. 봉오동을 중심으로 통합부대 대한북로독군부의 세력이 커지고 있었기에 당시 일제는 독립군 토벌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정보전으로 이를 파악한 우리 독립군은 마을 주민을 미리 대피시키고, 연대별로 각 산에 주둔하고 산능선을 따라 참호를 파고 매복했습니다. 거의 100년이 지난 지금도 봉오동전투 현장에 가면 낙엽이 가득 차있는 참호를 볼 수 있습니다. 1920년 6월 7일 새벽 일본군 1개 연대 이상의 병력이 봉오동으로 쳐들어왔습니다. 봉오동을 둘러싼 산에서 맹렬한 총격전이 벌어졌고 이어서 봉초봉 아래에선 백병전까지 벌어졌습니다. 이때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천둥번개가 치고 비가 억수같이 내렸습니다. 돌멩이만한 우박이 떨어지고 뿌연 안개가 앞을 가렸던 거죠. 우리 독립군이 짙은 안개와 비, 지리적 이점을 이용해 승세를 굳힐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후퇴하던 일본군이 지원부대 일본군을 독립군으로 오인해 서로 총격전을 가해 더욱 많은 사상자가 났습니다.” “봉오동전투서 적군 500여명 사살…기존보다 많아청산리전투는 봉오동전투 연장… 6일간 교전”- 봉오동 전투 전과는. “전과에서도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 차이가 많이 납니다. 김성녀 할머니가 낸 진정서를 보면 ‘적군 사살이 500여명, 중상자 700여명, 경상자 1000여명입니다. 노획물자는 대포 4정, 기관총 수십 정, 장총 500여정, 탄환 수만 발에 수류탄 다수’라고 기록합니다. 홍범도 일지에도 일본군 사망자가 500명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역사의 기록에는 여전히 일본군 전사 157명, 중상 200여명, 경상 100여명으로 축소돼 있습니다. 우리의 피해가 거의 없다고 했지만 독립군도 사망자 수십명과 다수의 부상자를 냈다고 김성녀 할머니가 증언합니다. 총상 환자 치료를 위한 의사가 부족해 애를 태웠고, 용정 제창병원에 의사를 보내달라는 공문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독립군 지도부는 주민들의 무고한 희생을 줄이고, 더 많은 독립군이 편하게 활동하기 위해 연해주로 이동할 것을 결정합니다. 4000여 명에 이른 독립군들이 부대별로 이동하던 중 일본군이 그해 10월 21일 청산리에서 따라 잡아 전투를 벌인 게 청산리전투입니다. 청산리전투는 하루 전쟁이 아니라 대한북로독군부의 여러 부대가 6일 동안 치른 전쟁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저는 청산리전투가 별개의 전투가 아니라 봉오동전투의 연장전이라 생각합니다.” “최운산, 6차례 옥고…이름 8개 사용광복 40일 전 평양 장남 집에서 사망”- 최운산 장군, 역할에 비해 많이 잘못 알려졌다. “만주 무장독립운동이 몇몇의 영웅담 위주로 신화화 한 것이 가장 큰 잘못이라 생각합니다. 굶주리고 헐벗은 파르티잔들이 겨우 화승총으로, 청나라 및 러시아에도 이긴 세계 최강의 일본군에 승리했다는 것이 우리 역사를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역사학계도 언론도 처음의 잘못된 기록을 계속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류의 논문을 낸 역사학자를 직접 만나 물어보면 ‘앞선 논문을 인용했을 뿐’이라고 합니다. 역사학계가 정말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최운산 장군 그 뒤 어떻게 됐나. “연해주에서 자유시참변을 겪고 다시 중국으로 돌아와 무장독립운동을 계속합니다. 1930년대에도 우수리강전투, 나자구전투, 대황구전투, 도문대안전투, 안산리전투, 대전자령전투에 참전했습니다. 그러다가 일본에 유학 중이던 장남 최봉우(일명 최치영·1922~2001)가 학도병 징집을 피해 고향 봉오동으로 돌아왔다가 일제에 붙잡혀 모진 고문을 당했습니다. 그러다 죽을 지경에 이르자 장례나 치르라며 내주었습니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최봉우가 평양으로 숨어들자, 아버지 최운산장군이 아들을 보러 왔다가 고문 후유증으로 해방 40일 전인 1945년 7월5일 평양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최운산장군은 1924년~1926년 3년간 투옥된 것을 시작으로 1939년 일본 경찰서 습격과 군자금 모집, 창씨개명 거부 등으로 10개월간 감옥에 갇힌 것까지 일생동안 모두 6번 옥고를 치렀는데, 매번 심하게 고문을 당해 수레에 실려 나오곤 했습니다. 가족들도 그가 언제 감옥에 갔다 왔는지 정확한 날짜를 기억하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유공자 인정 조건 뒷돈 요구에 주먹 날려1977년 서훈…동생 최치홍은 여태 안 돼”- 정부는 최운산 장군의 역할 일찍 인정해줬나. “1961년 1월 최운산이 독립유공자로 선정됐다는 통보를 정부로부터 받고 총무처로 아버지 최봉우가 갔더니 담당공무원이 ‘뒷돈’을 요구하더랍니다. 평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했고, 모든 가산을 독립군 무장에 썼는데…. 참을 수 없는 모욕감에 아버지가 그 공무원에게 주먹을 날렸습니다. 그 이후론 독립유공자 선정에 번번히 밀려났습니다. 십수년동안 미운털이 박혔던 게지요. 아버지는 생전에 ‘내가 욱하는 성질을 못 이겨 할아버지의 독립운동을 가렸다’며 후회하곤 했습니다. 그 후 할머니가 1969년에 진정서를 냈지만 독립유공자로 선정되지 못하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2년 뒤인 1977년에야 독립유공자로 서훈되셨습니다. 같이 독립운동한 동생 최치홍은 100년이 지난 올해까지도 독립유공자로 선정되지 못했습니다.”- 설명을 듣고 보니 김성녀 할머니도 큰 역할을 했다. “저도 할아버지의 삶을 살펴보다보니 할머니의 역할이 과소평가됐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할머니는 독립운동가를 내조한 차원을 넘어 무장 독립운동의 한 축이었습니다. 할머니가 남편의 독립유공자 선정을 위해 낸 진정서를 보면 독립운동을 내조한 정도에서는 알 수 없는 당시 북로독군부의 조직 현황과 봉오동전투의 전과를 꿰뚫고 있었습니다. 봉오동전투를 바로 앞두고 최운산 장군이 집에 계시지 않을 때 도착한 중요한 정보는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가 없어 직접 산속의 본진으로 올라가 정보를 전달했습니다. 또한 군사들이 없을 때 집으로 쳐들어 온 마적들을 향해 직접 총을 쏘고 일꾼들을 독려해 무장 강도들을 물리쳤다고 합니다. 물론 주민 부녀자들을 동원해 군복제작과 세탁 등 의복을 조달하고 식사를 준비했지만, 한 끼에 3000명분의 식사를 마련한 적도 있다고 합니다. 지난해 김성녀 할머니에 대해 독립유공자 신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장군의 부인 김성여도 무장독립운동 한 축무장독립운동사, 영웅담서 벗어나야 할 때”- 최운산장군기념사업회가 결성됐다. “우리 5남매는 만주 무장독립 운동의 역사가 제대로 정리되기를 기다렸습니다. 후손들의 주장을 통해서가 아니라 역사가들의 연구가 깊어지면 언젠가 역사가 바로 서리라 믿었습니다. 그런데 수십 년이 지난 여태까지 바로잡히지 않고 있습니다. 잘 못된 기록이 반복되고,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저희가 직접 일제 문서를 찾고, 봉오동전투와 최운산 장군의 삶을 역사학자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분들이 반가워하면서 학술적 재조명이 필요한 일이니 기념사업회를 설립하라고 조언해주었습니다. 셋째인 제가 60대입니다. 독립전쟁의 현장을 직접 본 사람의 증언을 들은 마지막 세대일 것입니다. 우리 남매들이 직접 나서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만주 무장독립운동의 역사를 올바로 기록하고자 뜻이 맞는 분들을 중심으로 2016년 기념사업회를 설립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집안 자랑이 아니라 수많은 독립군들이 함께 지켜낸 만주의 무장독립전쟁의 진실을 전하고 싶을 뿐입니다. 영웅담 위주의 독립운동사를 넘어서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내년이 봉오동전투 100주년이다. 계획한 행사는. “사실 최운산 장군이 잘 알려진 분이 아니라 정부 지원금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 5남매가 비용을 갹출해서 학술세미나 개최나 봉오동 답사 등 필요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손주들도 나이가 들어 경제활동에서 물러나 있으니 기념사업회 활동에 필요한 기금을 마련이 어려워 필요한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못하고 있어서 안타깝습니다. 올해는 당시 독립군이 사용한 무기를 살펴보는 학술세미나를 열고 7월 5일 국립현충원에서 순국 74주기 추도식을 개최합니다. 100주년이 되는 내년엔 봉오동전투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행사와 최운산 장군을 연구한 책을 한 권 펴내려고 준비 중에 있습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이희진 부모살해 피의자 김다운 1년간 치밀하게 범행 준비

    이희진 부모살해 피의자 김다운 1년간 치밀하게 범행 준비

    ‘청담동 주식 부자’로 알려진 ‘이희진(33·수감 중) 씨 부모피살 사건’은 피의자 김다운(34) 씨가 1년 가까이 치밀하게 준비한 계획 범행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26일 강도살인과 시체유기 등 5개 혐의로 김씨를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이날 경찰이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사건 윤곽이 대부분 드러났지만 명확한 범행동기 등 아직 풀어야할 의문이 많다. 피의자 김씨는 지난해부터 이씨의 불법 주식거래 등으로 피해를 본 투자자들에게 접근 가족관계 등 정보를 캐내고, 이씨 부모의 귀가 장면까지 동영상으로 촬영하는 등 범행을 계획했던 것으로 경찰 조사에서 확인됐다. 그는 심지어 이씨 아버지 A(62)씨 차량에 추적기까지 달아 움직임을 파악한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김씨의 휴대전화에서 이씨 부모를 촬영한 동영상을 찾아냈다. 특별한 직업이 없는 김씨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자 청담동 주식 부자로 알려진 이씨의 부모가 많은 돈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생각, 범행 대상으로 선정한 것으로 경찰은 추정하고 있다. 인터넷 구인 사이트에서 공범 3명을 고용한 김씨는 범행 당일 구입한 흉기와 범행현장을 치우기 위한 표백제, 청테이프 등을 직접 준비해 현장에 가져간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이런 점을 근거로 범행 이전부터 살인 의도가 있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김씨와 30대 초반의 중국 동포 공범 3명은 서로 역할을 분담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이들이 이씨의 아버지와 어머니 B(58)씨를 따로 끌고 가 살해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동안 궁금해 하던, 아버지 시신만 유기한 이유도 밝혀졌다. 이씨 아버지 시신을 평택 창고로 옮긴 김씨는 범행현장으로 다시 돌아와 어머니 시신까지 유기하려 했으나 여의치 않아 장롱에 감췄다고 진술했다. 또 하나의 의문인 슈퍼카 판매대금을 노린 계획범죄 여부에 대한 조사도 이뤄졌다. 경찰은 슈퍼카 매매계약 이전에 범행 준비한 점, 범행일이 현금 5억원 인도 이전에 결정된 점을 근거로 이를 노린 범행은 아닌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5억원 돈 가방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는 김씨의 진술에 대한 진위 파악이 더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슈퍼카를 판매한 날에 우연히 김씨가 강도살인을 저질렀다고 보기에는 미심쩍은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경찰은 김씨가 강탈한 5억원 중 2억 5070만원을 회수했다. 김씨는 변호사 선임비. 지인증여, 심부름센터 이용, 창고임대 등 비용으로 1억 7942만원을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아들이 차량 판매대금 5억원 외에도 집에 수표와 현금이 더 있었을 것이라고 진술, 경찰은 김씨가 추가로 숨긴 돈이 있는지 또 다른 사용처가 있는지를 확인하고 있다. 범해 후 김씨가 멀리 달아나거나 증거를 없애지 않고 피해자 가족을 만난 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다. 경찰은 김씨가 5억원 돈 가방에서 차량 매매증서를 확인하고 나머지 매매대금을 노려 추가 범행을 준비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김씨가 이씨 어머니 휴대전화로 대신 행세를 하면서 “아들아. 내가 잘 아는 성공한 사업가가 있으니 만나봐라”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이씨 동생과 직접 만나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기 때문이다. 경찰의 수사로 범행 윤곽이 거의 드러났지만 의심을 깔끔히 해소하려면 무엇보다 납득할 만한 범행동기를 밝혀야한다. 김씨는 이씨 아버지가 주식으로 돈을 불려주겠다며 투자를 권유해 약 2000만원을 건냈는데 이를 갚지 않아 회수할 목적으로 범행했다고 진술하고 있다. 하지만 적은 액수 때문에 사람까지 고용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보기에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것이 다수 의견이다. 경찰은 지난 25일 신상공개위원회에서 피의자 신원공개를 결정함에 따라 이날 처음으로 언론에 김씨 얼굴을 공개했다. 중국으로 달아난 3명의 공범에 대해서는 같은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국제공조를 통해 국내 송환을 추진하고 있다. 글·사진 남상인 기자 sanginn@seoul.co.kr
  • ‘이희진 부모 살해’ 김다운 검찰 송치…“1년간 범행 준비”

    ‘이희진 부모 살해’ 김다운 검찰 송치…“1년간 범행 준비”

    이희진(33)씨 부모를 살해한 피의자 김다운(34)씨가 검찰에 넘겨졌다. 경찰은 김씨가 범행을 주도적으로 계획하고 실행했으며 이 계획에는 살인까지 포함돼 있었던 것으로 결론 내렸다. 사건을 수사한 경기 안양동안경찰서는 오늘(26일) 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브리핑을 열고, 김씨를 강도살인 등 혐의로 구속 송치했다고 밝혔다. 해외로 달아난 공범들에 대해선 인터폴 적색 수배와 국제사법공조를 통해 국내 송환한다는 방침이다. 김씨는 중국 동포 A(33)씨 등 3명을 고용해 지난달 25일 오후 4시 6분에서 이튿날 오전 10시 14분 사이 안양시 소재 이씨 부모의 아파트에서 이씨의 아버지(62)와 어머니(58)를 살해하고 사체를 유기했으며 5억원이 든 돈 가방을 강탈한 혐의를 받고 있다. 현재 김씨는 “살인은 공범들이 우발적으로 저질렀다”며 살인 혐의에 대해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경찰은 김씨가 이씨 부모의 아파트에 들어갈 당시 범행 증거를 은폐하기 위해 표백제를 가져간 점 등을 들어 살인까지 염두에 둔 것으로 보고 있다. 김씨에게는 강도 살인과 시체 유기 혐의 외에도 주거 침입, 공무원 자격 사칭(범행 당시 경찰을 사칭), 위치정보법 위반(이씨 아버지 차량에 위치추적기 부착)등 총 5개 혐의가 적용됐다. 범행은 1년 가까이 준비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지난해 4월 이씨로 인해 피해를 입은 투자자들이 가입한 인터넷 카페의 한 관계자를 만나, 이씨의 가족관계 등에 대한 정보를 캐내려 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를 토대로 경찰은 계획적인 강도살인으로 결론짓고, 김씨를 검찰에 송치했다. 한편 범행 당일 중국 칭다오로 출국한 A씨 등 공범들에게는 현재 인터폴 적색수배가 내려진 상태다. 경찰은 중국 공안이 A씨 등에 대한 신병을 확보하면 국제사법공조를 통해 국내로 송환한 후 조사할 계획이다. 이밖에도 경찰은 지난 17일 김씨가 검거되기 전까지 20여일 동안 이씨 동생을 상대로 추가 범행을 준비한 것으로 보고, 강도예비 혐의도 추가해 추후 송치할 방침이다. 곽혜진 기자 demian@seoul.co.kr
  • 김다운, 얼굴 가리고 “이희진 부모, 내가 살해하지 않았다”

    김다운, 얼굴 가리고 “이희진 부모, 내가 살해하지 않았다”

    ‘이희진(33·수감 중)씨의 부모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피의자 김다운(34)씨가 26일 “범행을 일정 부분 계획한 건 있지만 내가 죽이지는 않았다”고 주장하며 혐의를 부인했다. 김다운 씨는 이날 오후 검찰 송치를 위해 경기 안양동안경찰서를 나서며 이같이 말한 뒤 피해자들께 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질문에는 “너무 죄송하고…”라며 말끝을 흐렸다. 신상 공개가 결정된 김 씨는 스스로 얼굴을 가리고 검찰로 이동하는 차량에 탑승하면서 “제가 안 죽였어요”라고 재차 주장했다. 김 씨는 지난달 25일 중국 동포인 A(33) 씨 등 3명을 고용해 경기 안양시 소재 이 씨 부모 아파트에서 이 씨의 아버지(62)와 어머니(58)를 살해하고, 5억원이 든 돈 가방을 강탈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이 씨 부모의 시신을 각각 냉장고와 장롱에 유기한 뒤 이튿날 오전 이삿짐센터를 통해 이 씨 아버지의 시신이 든 냉장고를 평택의 창고로 옮기고, 범행 현장을 빠져나간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16일 이 씨의 동생으로부터 피해자들에 대한 실종 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같은 날 이 씨 부모의 집에서 이 씨 어머니의 시신을 발견,실종 사건을 살인사건으로 전환하고 수사에 나섰다. 경찰은 다음 날인 17일 수원의 한 편의점에서 김 씨를 검거한 뒤 범행 동기 등에 대해 수사를 벌여 이날 강도살인 등 혐의로 검찰에 구속 송치했다. 김 씨는 이 씨 부모를 살해한 이후 20여일이 지난 이달 17일 수원의 한 편의점 앞에서 검거됐는데 경찰은 이 20여일간 김 씨가 이 씨의 동생을 상대로 추가범행을 준비한 것으로 판단, 강도예비 혐의에 대한 수사를 계속해 추후 추가 송치할 방침이다. 경찰은 김 씨가 범행 이후 이 씨의 어머니 행세를 하며 카카오톡으로 이 씨 동생과 연락을 주고받은 점, 어머니로부터 소개를 받은 것으로 가장해 이 씨 동생을 만난 지난 13일 김 씨가 흥신소 직원에게 “2000만원 줄 테니 오늘 작업합시다”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낸 점 등을 근거로 이같이 판단했다. 특히 김 씨가 이 씨 부모에게서 강탈한 돈 가방에 돈과 함께 있었던 부가티 매매증서가 김 씨가 추가범행을 모의했다고 판단하는 데 결정적 근거가 됐다. 이 매매증서에는 부가티의 나머지 판매대금 10억원이 이 씨 동생에게 입금된 내용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김 씨가 이 씨 동생을 상대로 한 추가범행을 결심한 것은 이 씨 부모를 살해한 이후로 보이지만 이 씨 부모를 상대로 한 범행은 1년 가까이 준비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지난해 4월 이 씨의 불법 주식거래와 투자유치 등으로 피해를 본 투자자들의 인터넷 카페모임 관계자를 한 차례 만나 이 씨의 가족관계 등에 대한 정보를 얻어내려 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이 사건을 오랜 시간 준비한 계획에 따라 이뤄진 강도살인 범행으로 결론짓고 김 씨를 검거 열흘 만인 이날 검찰에 송치하는 것으로 사건을 일단락했다. 김 씨에게는 강도살인과 시체유기 혐의 외에도 주거침입, 범행 당시 경찰을 사칭한 공무원자격 사칭, 범행 전 이 씨 아버지의 차량에 위치추적기를 부착한 데 따른 위치정보법 위반 등 모두 5개 혐의가 적용됐다. 한편 범행 당일 중국 칭다오로 출국해 사실상 경찰 수사망을 빠져나간 A 씨 등 공범들에게는 현재 인터폴 적색수배가 내려져 있다. 경찰은 중국 공안이 A 씨 등에 대한 신병을 확보하면 국제사법공조를 통해 국내로 송환해 조사할 계획이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이희진 부모 살해 피의자 김다운 신상 공개

    이희진 부모 살해 피의자 김다운 신상 공개

    경기남부경찰청은 25일 신상공개심의위원회를 열어 ‘강남 주식부자’ 이희진(33·수감 중)씨 부모 살해사건 주범으로 알려진 김다운(34)씨의 실명과 나이를 곧바로 공개했다. 얼굴은 26일 검찰로 김씨 신병을 넘길 때 마스크를 씌워 가리는 등의 조치를 없앰으로써 공개하기로 했다. 경찰 관계자는 “김씨의 범행이 계획 범죄로 보이는 점, 피해자가 다수 발생한 점 등을 고려해 이렇게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현행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엔 범행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 발생 때, 피의자가 그 죄를 범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을 때 신상정보를 공개할 수 있도록 했다. 김씨는 범행 당일 중국 칭다오로 달아난 공범들이 살인을 저질렀다며 혐의를 일부 부인하고 있지만, 경찰은 김씨가 범행 전반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긴 것으로 본다. 가장 최근 공개한 흉악범으론 서울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의 김성수(29), 손님과 말다툼하다 흉기로 살해한 뒤 과천 서울대공원 근처에 유기한 변경석(34), 재가한 어머니의 일가족을 살해한 김성관(35), ‘어금니 아빠’ 이영학(36) 등이 있다. 김씨는 지난달 25일 중국 동포 3명을 고용해 경기 안양시의 이씨 부모 아파트에서 이씨 아버지(62)와 어머니(58)를 살해하고, 5억원이 든 돈 가방을 강탈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씨 부모의 시신을 각각 냉장고와 장롱에 유기한 뒤 이튿날 이삿짐센터를 통해 이씨 아버지의 시신이 든 냉장고를 평택의 창고로 옮기고, 범행 현장을 빠져나간 것으로 조사됐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이희진 부모살해’ 피의자 김다운 26일 마스크 벗긴다

    ‘이희진 부모살해’ 피의자 김다운 26일 마스크 벗긴다

    경찰이 이희진(33·수감 중)씨 부모살해 사건의 주범인 피의자 김다운(34)의 신상을 공개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26일 오후 김씨의 마스크가 벗겨질 것으로 전망된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25일 오후 3시 신상공개심의위원회를 열어 김씨의 실명과 얼굴 등 신상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경찰은 경찰청 공보운영지침 수사공보규칙에 따라 김씨의 실명을 공개하고 언론 노출시 얼굴을 가리는 조치, 즉 마스크 등을 씌우는 등의 조치를 없앤다. 경찰 관계자는 “김씨의 범행이 계획 범죄로 보이는 점, 피해자가 다수 발생한 점 등을 고려해 이같이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특강법)에는 범행수단이 잔인하고, 범행 증거가 충분하며, 국민의 알 권리와 재범 방지 등 공공의 이익에 부합할 때, 미성년자가 아닐 때 피의자의 신상과 얼굴을 공개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최근 경찰이 얼굴과 신상을 공개한 흉악범은 서울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의 김성수(29)와 손님과 말다툼을 벌이다가 흉기로 살해한 뒤 과천 서울대공원 근처에 유기한 변경석(34), 재가한 어머니의 일가족을 살해한 김성관(35), ‘어금니 아빠’ 이영학(36) 등이 있다. 경찰의 신상공개 결정에 따라 김다운의 얼굴은 26일 오후 1시 40분 경기 안양동안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는 과정에 공개될 예정이다. 김씨는 지난달 25일 중국 동포인 A(33) 씨 등 3명을 고용해 경기 안양시 소재 이씨 부모 아파트에서 이씨의 아버지(62)와 어머니(58)를 살해하고, 5억원이 든 돈 가방을 강탈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이씨 부모의 시신을 각각 냉장고와 장롱에 유기한 뒤 이튿날 오전 이삿짐센터를 통해 이씨 아버지의 시신이 든 냉장고를 평택의 창고로 옮기고, 범행 현장을 빠져나간 것으로 조사됐다. 김씨는 범행 당일 중국 칭다오로 달아난 공범들이 살인을 저질렀다며 혐의를 일부 부인하고 있지만, 경찰은 김씨가 이 사건 범행 전반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긴 것으로 보고 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경찰, 이희진 부모살해 피의자 김다운 신상공개 결정

    경찰, 이희진 부모살해 피의자 김다운 신상공개 결정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25일 ‘이희진(33·수감 중)씨 부모살해’ 사건의 피의자 김다운(34)의 신상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경찰은 이날 신상공개심의위원회를 열어 “김씨의 범행이 계획 범죄로 보이는 점, 피해자가 다수 발생한 점 등을 고려해 이같이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경찰은 김씨의 언론 노출시 얼굴을 가리는 조치, 즉 마스크 등을 씌우는 등의 조치를 하지 않는다. 김씨는 지난달 25일 중국 동포인 A(33) 씨 등 3명을 고용해 경기 안양시 소재 이씨 부모 아파트에서 이씨의 아버지(62)와 어머니(58)를 살해하고, 5억원이 든 돈 가방을 강탈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이씨 부모의 시신을 각각 냉장고와 장롱에 유기한 뒤 이튿날 오전 이삿짐센터를 통해 이씨 아버지의 시신이 든 냉장고를 평택의 창고로 옮기고, 범행 현장을 빠져나간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오는 26일 김씨를 강도살인 등 혐의로 검찰에 송치할 방침이다. 김씨는 범행 당일 중국 칭다오로 달아난 공범들이 살인을 저질렀다며 혐의를 일부 부인하고 있지만, 경찰은 김씨가 이 사건 범행 전반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긴 것으로 보고 있다.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특강법)에 따르면 범행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특정 강력범죄의 피의자가 그 죄를 범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을 때 얼굴을 공개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경찰은 강호순 연쇄살인사건(2009년) 이후 2010년 4월 특강법에 신설된 ‘8조 2항(피의자의 얼굴 등 공개)’을 근거로, 흉악범의 얼굴과 실명을 공개하기로 했다. 최근 사례는 서울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의 김성수(29)와 손님과 말다툼을 벌이다가 흉기로 살해한 뒤 과천 서울대공원 근처에 유기한 변경석(34), 재가한 어머니의 일가족을 살해한 김성관(35), ‘어금니 아빠’ 이영학(36) 등이 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3·1운동 100주년 국립여성사전시관 서울특별전

    3·1운동 100주년 국립여성사전시관 서울특별전

    오는 27일부터 다음달 9일까지 2주 동안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국립여성사전시관 특별기획전 서울전’이 열린다. 이번 특별기획전은 경기 고양시 국립여성사전시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2019 특별 기획전 여성독립운동가, 미래를 여는 100년의 기억’과 연계한 사진전이다. 대한매일신보(현 서울신문) 1907년 3월 8일자에 게재된 국채보상운동 독려문인 ‘경고 아부인동포라’(우리의 부인 동포들에게 알린다) 기사도 전시된다. 사진은 안중근 의사와 그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 연합뉴스
  • “통일 대비해 남북 주민 간 법률관계 정비 서둘러야”

    “통일 대비해 남북 주민 간 법률관계 정비 서둘러야”

    “7000만 동포 결집… 하루빨리 통일 실현” “5·18 훼손 발언 위로 대구시장 본받을 만”“통일에 대비해 남북 주민 간 상속 등 법률관계를 정비해야 합니다. 성낙인(69) 전 서울대 총장은 지난 22일 대구시청에서 공무원 300여명을 상대로 한 ‘대한민국의 미래와 생활법치’ 특강을 통해 “7000만 동포의 힘을 결집하고 민족의 웅비를 통한 국가정체성 확립과 규모의 경제 실현을 위해 하루빨리 통일을 실현해야 한다”면서 이렇게 강조했다. 그는 사전 과제로 법률 정비뿐 아니라 유라시아 철도의 한반도 복원, 비무장지대(DMZ)의 평화적 이용, 통일교육의 실질화와 제도화를 제시했다. 더불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한민국호는 위기에 놓였다. 극복하려면 경제발전 추동력과 국민통합을 이뤄야 한다”고 덧붙였다. 기업 및 기업인의 투자의욕 확보와 벤처정신의 제고가 경제발전 추동력 확보를 위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노사는 물론 여야가 투쟁을 벗어나 타협의 정신과 살신성신의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특히 국민통합은 대구·경북이 선도하려고 애써야 하는데 최근 자유한국당 국회의원들의 5·18민주화운동 훼손 발언을 놓고 이용섭 광주시장에게 위로 문자를 보낸 권영진 대구시장 사례를 본받을 만하다고 봤다. 국가 3권에 대한 따끔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그는 “국회의원의 윤리성을 강화하고 정치활동을 정화해 금권정치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면서 “대통령 권력을 합리적으로 통제해 제왕적 대통령제를 극복해야 하며 행정의 책임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사법부는 사회 최후의 보루인 만큼 공정한 잣대로 판결을 내려야 하고 사법관의 자기통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공무원의 적극적인 행정 추진 과정에서 잘못된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고 정치권력으로부터 공무원 보호 방어막을 구축해야 한다”고 밝혔다. 성 전 총장은 또 “권력과 금력, 명예가 조화를 이루고 소통을 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소수를 존중하는 다원성을 인정하고 참여민주주의와 숙의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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