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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4·19 詩 낭독할때 ‘그날의 함성’ 느껴져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4·19 詩 낭독할때 ‘그날의 함성’ 느껴져

    서울의 북서쪽 끝, 강북구에 갔다. 더위가 잠시 주춤해진 국립4·19민주묘지는 흐린 하늘이 무겁게 내리누르고 있었다. 활짝 펼친 손가락 형상의 양편 조형물 중앙에 4·19 기념탑이 하늘 높이 치솟아 자유를 외치고 있었다. 뒤편 묘역을 지나고 계단을 올라 위패와 358명의 영정사진을 모신 유영봉안소로 들어갔다. 중학생 교복을 입은 앳된 영정사진을 바라보노라니 목숨까지 앗아가며 누리려는 권력욕과 너무 쉽게 약속을 파괴하는 탐욕의 무서움이 가슴을 짓눌렀다. 화강석 벽에 적혀 있는 4·19 시를 참석자 2명이 낭독했다. 1960년 4월 19일 그날의 함성이 느껴지는 듯, 떨리는 음성이 무심히 공중으로 휘 뿌려지는 분수대의 물과 뒤섞여 마음에 와 닿았다.4·19 기념관 옥상에는 작은 정원과 벤치가 마련돼 있었고 북한산과 경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북한산 둘레길 중 2구간 순례길이 보였다. 강북구에는 북한산 둘레길이 시작하는 3개 코스가 있는데 유입인구가 지나갈 뿐 이곳에서 소비하지 않는다고 한다. 또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고령인구 비율이 가장 높고, 가구별 소득수준은 하위에 속한다고 한다. 자유에 대한 함성이 자본에 대한 열망으로 변질된 듯하여 씁쓸했다. 윤극영 가옥은 옛 풍금에 반달 악보가 펼쳐져 있고 반달노래가 잔잔히 들리는 작고 고운 곳이었다. 대안 교육을 고민하던 부모들이 의견을 모아 탄생시킨 삼각산재미난학교와 자연과 함께 체험하고 숙박하며 수련할 수 있는 강북청소년수련관을 방문했다. 암벽등반을 하는 학생들의 우렁찬 기합소리를 들으니 싱그러운 젊음이 묻어나는 듯해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시원한 대동천의 맑은 물소리를 따라 북한산 숲길을 걷다 보니 한편에 아나키즘 독립운동가 단주 유림 선생 묘가 있었다. 아나키즘의 어원은 그리스어로 지배자가 없다는 뜻으로, 주권은 누구나 모든 사람에 있어야 한다는 외침이다. 독립운동과 민주화·통일운동의 정신을 함께 만날 수 있는 근현대사기념관 앞에서 답사를 마무리했다. 가까이 있으면 그 가치를 제대로 볼 수 없다. 아름다운 자연과 근현대 위대한 분들의 정신과, 자라는 청소년을 생각하고 이를 실천하는 강북구가 정말 멋진 곳이어서 부러웠다. 이소영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서울미래유산연구팀장
  • 용인시, 수지지역 난개발 막는다.. 아파트 신축 불허

    용인시, 수지지역 난개발 막는다.. 아파트 신축 불허

    한때 난개발의 대명사로 불렸던 경기 용인 수지구에서는 앞으로 임야 훼손이 수반되는 경우 아파트 건립이 전면 금지된다.21일 용인시에 따르면 시는 ‘2035년 용인도시기본계획’을 수립하면서 수지구 지역을 시가화예정용지에서 제외했다. 이는 수지지역이 임야와 농지 등에 아파트가 무분별하게 들어서는 난개발이 이뤄지면서 학교와 도로 등 기반시설이 부족해 주민들이 큰 불편을 겪는 데 따른 조치다. 시가화예정용지는 토지이용계획상 도시 발전에 대비해 장래에 도시지역으로 결정될 용도의 토지를 뜻하며, 주거, 상업, 공업 등의 개발 목적만 정해 두는 지역이다. 용인시 관계자는 “도시기본계획에 시가화예정용지로 지정돼야 임야를 주거지역으로 용도 변경해 아파트를 지을 수 있는데, 수지지역은 시가화예정지역에서 빠져 적어도 2035년까지는 아파트를 지을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수지구에서는 임야를 훼손하지 않고는 아파트 건립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사실상 아파트 신축이 불허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민간사업자가 아파트를 건설하기 위해 도시기본계획에 반영을 요청한 수지구 동천·신봉·성복·고기·상현 등 5개 동, 8곳 64만 1000㎡에서는 아파트 건설이 사실상 불가능하게 됐다. 그러나 이미 기존 도시기본계획에 반영돼 사업이 추진 중이거나 허가를 받은 수지구 신봉·신봉2구역·동천2구역은 아파트건립이 가능하다. 용인시의 ‘2035년 도시기본계획’은 결정권자인 경기도의 승인을 받은 후 내년 3월쯤부터 2035년까지 적용될 예정이다. 정찬민 용인시장은 “수지지역은 아직도 과거 난개발에 따른 부작용을 치유하는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며 “임야를 훼손하는 무분별한 개발사업은 제한하고 녹지를 잘 보존해 주민들을 위한 쾌적한 휴식공간을 확충하는데 중점을 두겠다”고 말했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인사]

    ■대구시교육청 ◇교육장△대구동부교육지원청 교육장 최방미 ◇장학관 △시교육청 초등교육과 임춘우 ◇교육연구관△과학연구원 영재교육부장 이옥희 ◇교장(원장) △동촌초 김태선△죽전초 류춘원△평리초 박숙희△남도초 배남숙△사수초 배이화△신천초 성인순△관음초 신명숙△성산초 이인숙△상인초 이재호△범일초 장영숙△용호초 정우혜△구지초 지승욱△동일초 채영기△동천초 이정숙△남송초 성미나△욱수초 권영국△용계초 금동봉△북부초 박갑용 △용지초 심지용△월암초 안봉철△성동초 안일란△본리초 조영진△세천초 황안섭△대실유 차경순△덕인초 김의주△옥포초 여환주△반송초 정옥희△비봉초 최선화△두류초 최주성△서대구초 함인수△효동초 황시영△새론유 김차균△숙천유 류춘임△화원꽃뜰유 제정희△시지초 윤문수△대구교대부초 이점형△봉덕초 권미숙△한솔초 권오기△용산초 권옥희△경동초 권혜숙 △성지초 김남원△신흥초 김명기△송일초 김수균△사월초 김용주△대명초 김정희△이곡초 박성호△장기초 박수경△율금초 석창섭△동호초 원상연△조암초 이금숙△유가초 전구학△들안길초 정명곤△다사초 정효석△동도초 조문경△운암초 채미련△카이로한국학교 손병철 ◇장학사 △동부교육지원청 변부경 김태완 차국섭△달성교육지원청 차종화△시교육청 교육과정과 신윤섭△시교육청 초등교육과 김은옥 전호진△시교육청 평생체육보건과 장용석△남부교육지원청 민병조 ◇교육연구사 △교육연수원 강혜숙△교육연구정보원 임귀숙 ◇교감 △용호초 권민석△입석초 김금연△강동초 김월연△성동초 김태희△율하초 박광우△경동초 박영춘△동도초 반홍자△수창초 임지희△효목초 최윤성△복현초 김정애△조야초 배미선△교동초 이석수△태전초 최영란△동평초 홍선주△남대구초 김영선△월암초 김충현△내당초 박정숙△죽곡초 김경애△화원초 이경옥△대실초 이민형△중앙초 공영순△동호초 김택호△수성초 류은영△성동초 신귀연△중앙초 강혁주△송정초 김승남△동원초 배경숙△ 범물초 오세영△동대구초 장철숙△지봉초 조태순△공산초 김종희△이현초 김미옥△칠곡초 송경애△문성초 엄재용△관음초 윤은숙△서도초 이종금△태암초 이종숙△서평초 정명환△성북초 정승수△비봉초 최선주△호산초 김준석△한솔초 이화택△유천초 장경희△성곡초 조광미△장산초 김찬수△이곡초 박미정△진월초 이미숙△대명초 이보경△죽전초 황덕근△금계초 이응주 ◇교육국장 △시교육청 교육국장 이희갑 ◇장학관 △시교육청 교육과정과 장성보△시교육청 학교생활문화과 안희원△시교육청 중등교육과장 박재흥△시교육청 과학직업정보과장 장진주△ 시교육청 평생체육보건과장 장순균△서부교육지원청 교육지원국장 황진숙△시교육청 중등교육과 이두희△시교육청 과학직업정보과 송우용△시교육청 평생체육보건과 임오섭△남부교육지원청 중교육지원과장 김경숙△시교육청 중등교육과 장정묵△동부교육지원청 중등교육지원과장 김상도△서부교육지원청 중등교육지원과장 김기호 ◇교육연구관 △교육연구정보원 교육정보평가부장 이칠우△낙동강수련원 운영부장 장재화 ◇교장 △신아중 최남길△구암중 김미자△구일중 서기수△관천중 신영철△경운중 이상훈△성산중 노성현△신당중 박해숙△율원중 송원선△칠성고 이문수△학남고 김동석△대구농업마이스터고 김태헌△대구소프트웨어고 안병규△대곡고 김영탁△서부공고 황용선△강동중 안창영△신기중 임상훈△서진중 우병영△상인중 김동관△북동중 조성철△대구공고 최경묵△대구동중 이인하△시지중 소상호△노변중 손성규△동변중 김제율△ 침산중 변혜경△팔달중 기세희△월배중 박영란△월암중 권영란 ◇장학사 △동부교육지원청 배종열△서부교육지원청 강승구 김봉재 문미양△시교육청 교육안전담당관 김태진△시교육청 교육과정과 김정순 정현욱△시교육청 중등교육과 김석기△시교육청 학교생활문화과 조용득△ 남부교육지원청 중등교육지원과 김영화△ 팔공산수련원 정도영 ◇교육연구사 △과학교육원 우형직△교육연수원 윤준△교육연구정보원 인경수△해양수련원 송성민 ◇교감 △서부고 윤정숙 △대구여고 김미숙△대구공고 이동준△제일중 이경희△매천중 신영선△서진중 김이환△성산중 백명순△상원중 정진태△대진중 김정희△ 월암중 김성호△경혜여중 오미향△대구고부설방송통신중 김두열△강동고 정희석△대구체육고 조대승△대구소프트웨어고 박유현△동부중 김영우△칠곡중 이헌우△대구여고 박현동△포산고 서재용△상원고 이광수△다사고 모갑종△수성중 송선화△대구북중 김희경△상원중 정진태△월암중 김성호△서재중 이창호 ■명지대 △사회과학대학장 권일남△경영대학장 이성구△방목기초교육대학장 정철웅△사회교육대학원장 주재현△사회복지대학원장 권일남△부동산대학원장 김재구△경영대학원장 정다미 ■충북대 △재무과장직 신광수△취업지원과장 홍성길△시설과장직 김관영 ■법제처 ◇고위공무원 △법령해석국장 이강섭 ◇과장급 △법령해석국 행정법령해석과장 안병준 ■보건복지부 △기획조정실 기획조정담당관 황의수△보건의료정책실 생명윤리정책과장 박미라 ■국회도서관 ◇부이사관<승진> △기획관리관실 총무담당관 김승현 ◇서기관<승진> △기획관리관실 기획담당관실 이충주△의회정보실 정치행정정보과 김영주 ◇서기관<전보> △의회정보실 국외정보과장 신경숙 ◇부이사관<파견> △한국고전번역원 양성자 ◇서기관<공로연수> △국회도서관 권용선
  • [서동철 기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덕유산 자락의 ‘아무 곳도 아닌 곳’…불의를 거부한 선비 머문 땅

    [서동철 기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덕유산 자락의 ‘아무 곳도 아닌 곳’…불의를 거부한 선비 머문 땅

    ‘모년(某年) 모월(某月) 모일(某日) 아무개는 모공(某公)·모우(某友)를 따라 모향(某鄕)에서 모서(某書)를 강론하고 드디어 모리(某里)로 갔다. 계회를 마치고 모당(某堂)에서 술을 마셨다. 그리고 모수(某水)·모산(某山)을 배회하다 돌아왔다. 문중의 모군(某君)이 또 모지(某地)·모일(某日)·모사(某事)·모설(某說)을 추급해 기록하여 ‘모리기행록’을 만들었다.…모년(某年) 모월(某月) 모일(某日) 모(某)가 서문을 지음’ 장난 같지만 장난이 아니다. 글을 쓴 사람은 성리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대계 이승희(1847~1916)다.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일제를 규탄하는 성명서를 각국 공사관에 보냈고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을사오적을 참수하고 조약을 파기하라는 상소를 올려 감옥살이를 했다. 1909년에는 이상설과 함께 중국 지린성 황무지에 한흥동(韓興洞)을 세워 한인 청소년을 교육하고 독립정신을 고취시킨 인물이다.모(某)라는 것은 ‘의미 없음’을 말하는 것 같다. 세상이 정지된 상황이니 모든 게 의미 없다는 말이 아닐까 싶다. ‘모리기행록’에서 짐작할 수 있듯 대계는 모리(某里)를 방문하고 이 글을 썼다. 그런데 모리는 지도에 나타나는 마을 이름이 아니다. 창과 칼이 득세하고 의리는 땅에 떨어진 현실을 떠난 ‘아무 곳도 아닌 공간’에 자신을 가두고자 했던 인물이 창조한 가상의 동네다. 주인공은 절의(節義)의 대명사인 거창 선비 동계 정온(1569~1641)이다. 동계는 광해군 시절 선조의 적자인 영창대군이 강화부사 정항에게 피살되자 격렬한 상소를 올려 정항의 처벌과 이른바 폐모론(廢母論)의 부당함을 주장했다. 동계는 제주도 대정에 위리안치된다. 인조반정으로 10년 만에 유배에서 풀린 동계는 병자호란이 일어나고 강화도가 함락되자 오랑캐에게 항복하는 수치를 참을 수 없다며 칼로 자결하려 했지만 목숨은 끊어지지 않았다. 이후 덕유산 골짜기 자신이 명명한 모리에 은거한다. 거창은 경상남도 서북단에 자리잡은 고을이다. 북서쪽은 전라북도 무주, 북동쪽은 경상북도 김천, 남쪽은 동으로부터 경남의 합천, 산청, 함양과 차례로 경계를 이루고 있다. 북쪽과 동쪽, 서쪽은 해발 1614m 덕유산을 비롯한 소백산맥의 고산준령(高山埈嶺)이 가로막고 있고 남쪽에는 992.6m의 감악산이 버티고 있는 커다란 분지(盆地)라고 할 수 있다. 산이 높으니 물이 맑은 것은 당연지사다. ‘영남 제1의 명승’이라는 안의삼동(安義三洞)은 모두 덕유산 아랫동네에 있다. 조선시대 안의현(安義縣)이었던 화림동(花林洞)과 심진동(尋眞洞), 원학동(猿鶴洞)이다. 오늘날 화림동과 심진동은 함양, 원학동은 거창 땅이다. 동계가 태어나고 죽은 원학동은 안의삼동 가운데서도 가장 아름답다고들 한다. 동천(洞天)의 줄임말인 동(洞)이란 신선이 산다는 별천지를 뜻한다. 덕유산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려 온 갈천은 북상면 소재지에 이르러 남덕유산에서 동쪽으로 흘러든 위천과 합류한다. 이곳에서 물줄기를 넓힌 위천이 만들어 놓은 걸작이 수승대(搜勝臺)다. 위천은 거창읍내를 관통한 뒤 황강에 합쳐지고 합천호를 지난 황강은 다시 낙동강에 합류한다. 동계의 흔적을 찾아가는 여행은 자연스럽게 수승대에서 시작하게 된다. 온갖 각자(刻字)가 빼곡히 채우고 있는바위를 비롯해 요수정(樂水亭)과 구연서원(龜淵書院), 관수루(觀水樓)가 아름다운 계류와 조화를 이룬다. 수승대 초입에는 최근 축제극장과 야외극장이 지어졌다. 축제극장 앞에는 셰익스피어의 동상도 세워졌다. 여기서 거창국제연극제가 열리고 있으니 동서양의 문화가 접점을 찾는 시도라고 해도 좋겠다. 28일 개막한 올해 연극제는 8월 13일까지 열린다.동계종택이 있는 강동마을은 수승대에서 1㎞도 되지 않는다. ‘문간공 동계 정온지문’(文簡公 桐溪 鄭蘊之門)이라고 쓴 정문(旌門)이 눈길을 끈다. 인조가 동계의 충절을 기려 내린 것이다. 곧바로 보이는 사랑채에는 충신당(忠信堂)이라는 당호가 보인다. 왼쪽으로 모와(某窩)라는 현판도 걸려 있는데 ‘모리에 은거한 동계가 살던 집’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안채에는 지금도 그의 후손이 살고 있다. 모리재로 가려면 위천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북상면 소재지에서 위천이 돌아드는 대로 왼쪽으로 방향을 꺾어 농암리에 이르면 왼쪽에 모암정(帽巖亭)이 보인다. 다리를 건너 조금 올라가면 강선대다. 동계는 ‘강선대에 올라’(登降仙臺)라는 칠언시를 남겼는데, 이곳을 글자 그대로 신선이 사는 세계로 표현했다. 모리재는 구불구불한 산길로 2㎞ 남짓 올라가야 한다. 시멘트 포장이 되어 있지만 승용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날 만큼 좁다. 게다가 통행하는 차량이 적은 탓에 수풀이 길 중간까지 덮고 있다. 반대편에서 차가 온다면 피할 곳도 없다. 운수가 좋지 않으면 1㎞ 정도를 후진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겠다. 그러니 모리재는 여유를 두고 천천히 걸어 올라가는 것이 좋겠다. 모리재에서는 휴대전화가 터지지 않는다. 얼마나 세상과 동떨어진 동네인지를 알 수 있다. 동계의 시대에는 지금보다도 거리감이 훨씬 컸을 것이다.그런데 모리재에 닿으면 뜻밖에 반듯한 누각이 탐방객을 맞는다. 화엽루(花葉樓)다. 스승의 절의를 기려 제자들이 지은 것이다. 동계는 ‘서숭정십년역서’(書崇禎十年歷書)에서 ‘숭정이란 연호가 여기서 멈추었으니/ 명년에 어떻게 다른 역서를 보리/ 이제 산사람은 더욱 일이 줄어들 터/ 단지 꽃피고(花) 낙엽지는(葉) 것으로 계절 가는 것 알리’라고 읊었다. 명나라 연호로 숭정 10년은 조선이 청나라에 항복한 인조 15년(1637)이다. 실제로 동계는 청나라 책력을 보지 않았다.모리재는 정면 6칸, 측면 2칸으로 제법 규모 있는 집이다. 은거하던 초가집을 동계가 세상을 떠난 뒤 제자들이 다시 지어 선생을 기리며 공부하는 공간으로 썼다고 한다. 정면에서 보면 가운데 ‘모리재’를 중심으로 왼쪽에 구소(鳩巢), 오른쪽에 채미헌(採薇軒)이라는 현판이 나란히 걸려 있다. ‘구소’는 동계 자신의 표현처럼 ‘비둘기집처럼 허술한 집’이라는 뜻이다. 고사리를 캔다는 뜻의 ‘채미’ 역시 백이·숙제처럼 고사리로 굶주림이나 면하면서 살겠다는 의지를 보여 준다.동계는 모리에서 네 해 남짓 살았다. 그의 무덤은 거창 가북면 용산 아래 있다. 동계종택에서 출발해도 무덤까지는 자동차로 30분 이상 걸리는 먼 거리다. 이곳에는 동계의 어머니 진주 강씨가 먼저 모셔졌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동계가 3년 동안 시묘한 움막터에는 순조 8년(1808) 용천정사(龍泉精舍)가 세워져 오늘에 이른다. 거창에 남은 동계의 흔적을 둘러본 뒤 제주에 갈 기회가 있다면 서귀포 대정읍 안성리의 ‘동계 정선생 유허비’도 찾아보면 좋을 것이다. 헌종 8년(1842) 그의 적소(謫所)터에 세웠던 것을 지금은 보성초등학교 앞으로 옮겨 놓았다. 글 사진 dcsuh@seoul.co.kr
  • [함혜리 선임기자의 예술산책] 나치 금서 불태운 땅 위에… 지혜와 자유의 상징 세우다

    [함혜리 선임기자의 예술산책] 나치 금서 불태운 땅 위에… 지혜와 자유의 상징 세우다

    독일 중부에 위치한 인구 20만의 도시 카셀은 5년마다 전 세계에서 찾아온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세계 현대미술의 흐름을 가늠하는 카셀 도쿠멘타가 열리기 때문이다. 도쿠멘타의 해가 되면 6월 초부터 9월 말까지 카셀 시내 전체는 ‘100일간의 미술관’으로 변한다. 그랜드투어의 해인 2017년 14회째를 맞은 도쿠멘타가 열리는 카셀은 여러 방향으로 뻗어가는 화살표를 바탕에 깐 포스터와 배너, 입간판들이 곳곳을 장식하며 도시 전체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주 전시장인 시내 한복판의 프리데리치아눔 건물 꼭대기에서 피어오르는 흰 연기는 축제 분위기를 한 층 고조시켰다. 간편한 복장에 편안한 운동화를 신고 지도를 들고서 전시장을 찾아다니는 방문객들 사이에서 현지인들이 오히려 머쓱해질 정도였다. 2012년 열린 ‘도쿠멘타 13’의 유료 관람객이 90만명을 육박했다는데 뮌스터 조각프로젝트, 베니스 비엔날레가 겹치는 이번 ‘도쿠멘타 14’에는 적어도 100만명이 미술관을 찾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9월까지 전시… 올해 100만명 찾을 듯 도쿠멘타의 실험성과 주제의식은 예술 감독의 성향에 따라 전적으로 결정되게 마련이다. 올해 도쿠멘타의 예술감독은 폴란드 출신의 큐레이터 아담 심칙이 맡았다. 바젤 쿤스트할레 관장을 지냈고 베를린 비엔날레 공동 감독을 맡았던 그는 실험정신과 리서치, 작가들과의 협업을 중시하는 기획자로 알려져 있다. 심칙은 처음으로 그리스 아테네와 독일 카셀 두 도시에서 도쿠멘타를 여는 모험을 감행했다. 전시 주제는 ‘아테네로부터 배우기’다. 아테네에서는 지난 4월 8일 시작해 이달 16일까지 열렸다. 6월 10일 공식 오프닝을 가진 카셀에선 오는 9월 17일까지 160명의 예술가들이 프리데리치아눔 외에 프리드리히광장, 도쿠멘타홀, 옛 기차역 등 30여 곳에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올해 도쿠멘타는 아테네라는 특정 도시를 주제로 하고 있어 접근방식에서 확연히 차별성을 띨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국제무대에서 그리 알려지지 않은 그리스 작가들이 많이 포함돼 있어 생경했고 주제의 전개 면에서도 식상하다는 평가가 대세였다. 아테네국립현대미술관(EMST)의 소장품을 중심으로 한 프리데리치아눔의 전시는 과연 지금 이 순간 독일이라는 나라에서 그리스 현대미술을 보여주는 게 무슨 의미인지 잘 와 닿지 않았다. 이미 국가 간의 경계가 없어진 현대미술에서 서구문명의 출발점인 아테네에서 배우자는 구호가 비서구권 사람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전쟁과 난민문제를 거론하고 학살이나 탄압, 차별, 침략을 고발하는 기록, 사진, 회화, 오브제, 영상 등을 나열한 전시는 지금 이 세계의 문제에 주목했다고 하지만 진부한 느낌이었다.그럼에도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카셀까지 찾아온 보람은 곳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특히 도쿠멘타 14의 대표작품으로 프리데리치아눔 앞 프리드리히 광장에 설치된 마르타 미누힌의 ‘책의 파르테논’은 다른 모든 작품들의 존재가 무의미하게 여겨질 정도로 강렬했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개념미술가인 미누힌은 1983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이와 비슷한 작품을 선보였지만 이번에는 한 층 더 진전된 프로젝트를 내놓았다. 금서 약 10만권으로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에 있는 파르테논 신전 모양의 구조물을 채우고 전시가 끝나면 시민들에 다시 나눠주는 것이다. 기증받은 책을 비닐에 넣어 밀봉한 뒤 전시 구조물에 부착하는데 전시 기간 중에도 시민들로부터 지속적으로 기증을 받아 매일 사다리차가 책을 설치하고 있다. ‘책의 판테온’이 더욱 상징성을 갖는 이유는 바로 이 장소에서 1933년 5월 19일 나치가 ‘독일정신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를 내세워 약 2000권의 금서를 불태웠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나치의 만행을 상기시키면서 시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금서’들을 지혜의 사원에 되돌려 주려는 의도를 작품에 담았다. 신전 앞에는 책을 기증받는 상자가 설치돼 있다. 자전거를 타고 책을 가져 온 헤스타씨는 “알제리 작가의 책 두 권을 상자에 넣었다”며 “오늘날 만연한 폭력과 어딘가에서 계속되는 검열 등 온갖 종류의 편협함에 항거하는 작가의 정신에 공감하기 때문에 동참하게 됐다”고 말했다.●시민 기증 책 10만권으로 신전 쌓아 미누힌은 사회참여적인 이 작품을 통해 집안에 꽂혀 있던 책으로 미술작품을 만들고, 미술작품이 됐던 책을 다시 일상으로 돌려보내는 순환을 시도했다. 미술 작품이 지니는 신비감을 무너뜨리는 동시에 우리가 처한 현실적 문제와 미술이 직접 닿아 있음을 보여준다. 서울미대 서양화과 윤동천 교수는 이 작품에 대해 “미누힌의 기념비적인 작품은 예술이 더이상 엄숙주의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면서 “지난번 도쿠멘타에 비해 규모가 좀 줄어들고 주제전에도 스펙터클한 작품이 적었지만 현대미술이 점차 일상으로 복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많아지는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현상”이라고 평했다. 유한회사인 카셀도쿠멘타가 헤센주와 카셀시의 지원을 받아 주관하는 도쿠멘타는 전위적인 실험미술의 산실로 현대 미술의 흐름을 읽는 데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는 초대형 미술행사다. 도쿠멘타에 초대됐다는 사실만으로도 국제무대에서 인정을 받았다는 것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이런 중요한 행사가 왜 하필 카셀에서 열리고, 전시회를 의미하는 단어들 대신 독일어로 교훈, 기록, 문서를 의미하는 ‘도쿠멘타’라는 단어를 썼을까. 카셀에는 나치 독일의 제9관구 국군사령부가 있었고 독일 최대의 군수회사 헨셸의 공장도 있었다. 1830년 설립된 헨셸은 연합군을 공포에 떨게 했던 대전차부터 항공기, 탱크 등 무기와 운송장비를 생산해 2차대전 당시 연합군의 주요 타깃이 됐다. 1941년 9월 영국공군은 카셀에 폭탄 70여개를 투하했다. 이어지는 폭격으로 도시는 폐허가 됐다. 도시의 90%가 파괴되고 최소 1만명이 목숨을 일었으며 15만명이 집을 잃었다. 전쟁 후 동서독으로 나뉠 때 동독과의 경계를 불과 30㎞ 거리에 둔 카셀은 서독에 속하게 된다. 전쟁으로 잿더미가 된 도시는 미국의 마셜플랜에 힘입어 급속도로 재건됐다. 전쟁이 끝난 지 10년 만인 1955년 전쟁의 상처를 예술로 치유한다는 명목으로 기획된 것이 첫 번째 도쿠멘타였다. ‘반성과 자각의 토대 위에 새로운 예술의 역사를 쓰자’고 제안한 사람은 카셀 국립대학 회화과 교수인 아놀드 보데(1990~1977)였다. 국제정원박람회의 부대행사로 열린 첫 번째 도쿠멘타는 나치에게 ‘퇴폐미술가’로 낙인찍혀 핍박받았던 예술가들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회고전 형식으로 진행됐다. 보데는 자기성찰과 반성의 토대 위에 새로운 현대미술의 역사를 기록한다는 의미로 도쿠멘타라는 단어를 채택했다. 도쿠멘타는 4회부터 유럽 작가들을 수용하면서 현대의 미술 담론을 제시하는 중요한 미술행사로 자리매김했다. 전위적인 실험성을 띠기 시작한 것은 하랄트 제만이 예술감독을 맡았던 5회(1972년)부터이다. ‘도쿠멘타 5’는 68혁명 이후 유럽에 불어닥친 변화의 바람을 적극적으로 반영해 정치적 메시지와 실험성 강한 전시로 국제 미술계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플럭서스 그룹, 아르테 포베라, 개념미술에 참여하는 최전선의 예술가들이 도쿠멘타로 몰려들었다.●떡갈나무 7000그루, 계속되는 프로젝트 독일 전위예술가 요제프 보이스는 그해 100일 동안 매일 시민들과 대화하고 토론하며 ‘사회적 조각’을 스스로 실천함으로써 카셀 도쿠멘타를 국제 미술계에 각인시킨 일등공신이다. 실천하는 예술을 주장했던 보이스는 1982년 열린 ‘도쿠멘타 7’에서 긴급히 복원된 도시 카셀에 7000그루의 떡갈나무를 현무암 기둥과 한쌍으로 심는 거대한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예술의 행위로 카셀에 역사와 자연을 심는 이 프로젝트는 보이스가 사망하고 1년 뒤 열린 1987년 도쿠멘타에서 그의 아들이 7000번째 나무를 심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보이스의 작품은 2012년 ‘도쿠멘타 13’에서 발표한 주세페 페노네의 작품 ‘돌의 아이디어’에 모티프를 제공했다. 청동과 강철로 된 나무가 돌을 떠안고 있고 주변에 묘목을 심은 작품으로 카를스아우에 공원에 설치돼 방문객들을 반기고 있다. 나치가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예술가들에게 저지른 반인륜적 행위에 대한 반성과 자각에서 출발한 카셀 도쿠멘타는 하나의 종결된 미술을 보여주기보다는 지속적이고 변화하는 미술의 흐름을 종합적으로 조명하고 실험하는 장소로서의 역할을 한다. 도쿠멘타의 정신을 오롯이 살린 ‘책의 판테온’, 광장에 서 있는 보이스의 떡갈나무들은 도쿠멘타가 가꿔 가는 현대미술의 살아 있는 역사가 되고 있다. 치밀하게 계획하고 준비하고 미래를 내다보며 역사를 만들어가는 도쿠멘타, 5년 뒤를 기다리게 되는 이유다. 글 사진 lotus@seoul.co.kr
  • 교육·교통·상업시설과 미래의 개발까지 품은 입지, ‘용당 오션골든시티 월드메르디앙’ 주목

    교육·교통·상업시설과 미래의 개발까지 품은 입지, ‘용당 오션골든시티 월드메르디앙’ 주목

    바다와 인접해 오션뷰가 가능한 곳에 생활인프라까지 잘 구축되어 있는 부산의 아파트 사업지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 지역이 가지는 희소성에 교육, 교통, 상업시설까지 갖춰 주택시장의 흥행 돌풍을 예고하는 곳이다. 부산 남구는 지역 내 다른 해변가 주거지와 비교해 볼 때 개발이 시작되는 지역으로 용당동의 ‘용당 오션골든시티 월드메르디앙’(가칭)이 주목받고 있다. 단지는 실수요층이 두터운 중소형 아파트로 전용면적 59㎡, 84㎡, 총 758가구이다. 1차 758가구 외에도 앞으로 2차 1000여 가구도 예정되어 있어 지역 내 주택시장을 주도하는 대단지 랜드마크가 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남구의 용당동은 새 아파트 공급이 많지 않은 곳으로 새 아파트의 등장 소식 만으로도 기대를 모은다. 감만동에는 대규모 뉴스테이 사업도 예정되어 있어 이 일대가 신흥 주거지역으로 새로운 학군 및 주거환경이 마련될 것으로 기대된다. 단지 주변으로 용당초, 동향초.중, 동천초, 감만중, 석포여중, 부경대 등 교육시설도 잘 갖춰져 있어 교육문제가 해결되며 이기대 도시자연공원, UN기념공원, 당곡근린공원 등 다양한 공원 및 문화공간도 있어 주거 여건이 좋은 편이다. 남구는 지역적 개발호재가 풍부해 눈길을 끈다. 사업지 주변으로 북항 재개발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이 사업은 재래부두를 해양관광의 중심지로 탈바꿈시키려는 계획으로 1단계(중앙부두~2부두 구간)는 지난해 말 부지조성이 끝났으며 이후 오페라하우스, 랜드마크 시설, 복합환승센터, 마리나, 영상·IT·전시시설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또 북항 일대 항만물류 기업들이 있어 기본적으로 광역 및 시내 교통 여건이 우수하다는 점도 꼽을 수 있다. 김해, 양산은 물론 부산항대교, 광안대교, 신선대 지하차도, 서부산권 진입로 등을 이용해 부산 전 지역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 한편 지역주택조합 아파트인 ‘용당 오션골든시티 월드메르디앙’ 홍보관은 사업지 인근인 부산시 남구 신선로에 위치해 있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청주 이어 천안도 232.2㎜ ‘물폭탄’…침수 피해 잇따라

    청주 이어 천안도 232.2㎜ ‘물폭탄’…침수 피해 잇따라

    16일 충남 북부지역에 폭우가 쏟아지면서 천안·세종 일대 집과 도로가 물에 잠기는 등 침수 피해가 잇따랐다.대전지방기상청에 따르면 낮 12시까지 천안에 232.3㎜ 비가 내린 것을 비롯해 세종시 연서면 114.5㎜, 아산 91㎜, 당진 28㎜, 서산 14.8㎜ 등 강수량을 기록했다. 천안지역에는 시간당 70㎜ 안팎 비가 쏟아져 비 피해가 이어졌다. 낮 12시쯤 천안시 성환천이 역류해 장천교 인근 성환읍 성환8리 마을이 침수됐다. 성환읍 한솔아파트 지하주차장과 입장면 유리, 신두리 주택 2채에 물이 들어찼다. 또 성환천과 천안천, 용두천, 녹동천 등 하천들이 범람해 주변 농경지가 물에 잠겼다. 입장면 가좌울소류지도 폭우로 넘쳤고 성거읍 천응리 도로, 동남구 북면 은석초등학교 앞 도로가 토사에 유실됐다. 신방동 하상도로와 청수 지하차도는 물에 잠겨 오전 9시 50분부터 차량통행이 통제됐다. 천안시 동남구 수남리 낚시터에서는 오전 11시쯤 산사태가 발생해 낚시객이 긴급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충남도 소방본부 집계 결과 이날 0시부터 낮 12시까지 주택·도로 침수 사례가 550여건 발생하고 가로수가 쓰러지는 등 풍수해 피해 신고가 잇달았다. 세종에도 60여건 침수 피해가 났다. 오전 9시 세종과 천안·아산에 내린 호우특보는 이날 낮 12시 30분에 해제됐다. 대전기상청 관계자는 “충남 북부 내륙지역을 중심으로 쏟아진 장맛비가 현재 시간당 1㎜ 내외로 소강상태를 보인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기록적 폭우 내린 충청지역…청주 무심천 등 한때 ‘위험 수위’

    기록적 폭우 내린 충청지역…청주 무심천 등 한때 ‘위험 수위’

    주말인 16일 내린 기록적인 폭우로 충청지역을 중심으로 집, 도로, 농경지 곳곳이 물에 잠기고 산사태가 속출했다. 특히 22년만의 홍수로 청주시내는 온통 물바다로 변했고 경북 북부와 장마전선이 스쳐간 경기 인천 전북도 피해를 입었다. 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0시부터 오후 2시까지 충북 청주 290.1㎜, 충북 상당 260.5㎜, 증평 225.0㎜, 충남 천안 232.7㎜, 진천 149.5㎜, 괴산 173㎜, 세종 연서 114.5㎜ 등 충청지역에 폭우가 쏟아졌다. 특히 청주의 경우 시간당 91㎜의 물폭탄이 퍼부어 293㎜의 강우량을 기록한 1995년 8월 이후 22년 만의 홍수였다. 청주시의 경우 상당구 용암지하도, 흥덕구 서청주 사거리, 강내면 진흥아파트 사거리, 분평동 하이마트 사거리, 솔밭공원 사거리 등 도심과 무심천 하상도로에 물이 차올라 차량 통행이 한때 전면 통제됐다. 시내를 관통하는 무심천은 한때 위험 수위인 4.4m를 기록, 하류 지역인 신봉동 일대 주민들이 인근 주민센터로 긴급 대피했다.청주 율량천도 범람 위기에 놓여 주민이 대피했다. 상당구 용암동 아파트 단지 앞에서는 하천이 범람해 물이 도로로 역류했다. 충북선 열차 선로도 물에 잠겨 상하행선 운행이 이날 오전 10시 30분부터 전면 중단됐다가 6시간 만인 오후 4시 22분부터 순차적으로 정상화됐다. 청주시 흥덕구 금강 미호천 석화지점에는 한때 홍수경보가 발령돼 초긴장 상태에서 비상이 걸렸다. 지반 약화로 시 전역에 산사태 경보도 내려졌다.월오동 공원묘지와 봉명동 노인요양원에서는 토사가 유출됐고, 오창에서는 산사태가 났다.침수로 청주 흥덕구 복대동·오송읍·옥산면과 서원구 사직동 등 시내 곳곳에서 정전이 발생해 주민들이 불편을 겪었다. 최고 232mm가 넘는 비가 내린 충남지역의 피해도 컸다.충남에서는 천안에 가장 많은 232.3㎜의 비가 내렸고 세종시 연서면 114.5㎜, 아산 91㎜ 등의 강우량을 기록했다.특히 시간당 70㎜ 안팎의 비가 쏟아진 천안지역이 큰 피해를 봤다. 천안 성환천이 역류해 성환8리 마을이 침수됐고 천안천, 용두천, 녹동천 등이 범람해 주변 농경지 수 ㏊가 물에 잠겼다. 경북 북부 내륙에도 많은 비가 내려 야영객이 실종되고 나들이객들의 발이 묶였다.이날 오후 일행 3명과 함께 청계사 계곡에서 야영하던 A(58)씨가 급류에 휘말려 떠내려갔다.경찰과 소방대원, 공무원이 수색작업을 하고 있지만 급격히 불어난 물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 한편 장마전선이 충청 지역을 덮치기 전인 이날 새벽 경기와 인천에서도 많은 비가 내려 도로, 농경지, 주택 침수피해가 잇따랐다. 경기도 안산 부곡동 새마을 지하차도, 만해사거리 등 도로 10곳이 물에 잠겼고, 군포 진건로 반월역 방향 도로와 용인 기흥구 삼막골 터널, 모현면 초부리 45번 국도에도 물이 찼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북항 재개발, 대단위 재개발사업 연이은 남구 눈길

    북항 재개발, 대단위 재개발사업 연이은 남구 눈길

    부산 해운대, 수영구 등 해안과 인접한 곳이 고급 아파트촌으로 탈바꿈되면서 바다와 가까운 주거지가 인기를 끌고 있다. 바다와 접해 있는 곳은 조망권 확보가 유리하고 상업시설, 교통여건이 잘 갖춰진 사례가 많은 편이다. 또 자연이 주는 희소성으로 미래 가치도 높아질 수 있다. 여기에 바다 인근 주거지는 세컨하우스나 투자용으로 수요도 많아 주택시장에서는 높은 몸값을 자랑한다. 최근 10년간(2007년 3월~2017년 2월) KB국민은행의 전국 아파트값 상승률을 분석한 결과, 부산 해운대구가 96.83%의 상승률을 기록하며 가장 집값이 많이 오른 곳으로 손꼽혔다. 10년 동안 해운대구는 고급아파트촌이 형성되어 부산의 대표 부촌으로 성장했고 지속적으로 새 아파트 공급이 활발했다는 데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부산에서도 바다와 접해 있으면서도 개발호재를 품고 있는 남구가 차세대 주거지로 손꼽히고 있다. 인근에 북항재개발구역이 변신을 준비 중에 있으며 각종 재개발, 뉴스테이 사업 등으로 공급이 예정되어 있어서다. 먼저 북항재개발 사업은 부산에서 비중 있게 진행되는 사업으로 무역항으로 역할을 다한 부산북항의 재래부두를 해양관광의 중심지로 탈바꿈시키려는 계획이다. 중앙부두에서 옛 연안여객터미널 사이 바다를 매립해 다양한 관광 인프라를 구축하는 게 목표로 1단계(중앙부두~2부두 구간)는 지난해 말 부지조성이 끝났다. 이후 오페라하우스, 랜드마크 시설, 복합환승센터, 마리나, 영상·IT·전시시설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앞으로 상업·업무, IT·영상·전시, 복합 도심, 해양문화 등이 선보여 부산의 주요 관광 및 산업의 중심지로 도약이 점쳐지고 있다. 또 남구에는 노후 주거단지의 개발사업도 속속 진행되고 있다는 점도 미래가치를 밝게 한다. 대연동에는 크고 작은 재건축.재개발 사업이 진행되고 있으며 감만1구역, 우암1.2구역 등 뉴스테이로 1만5000여 가구가 변신할 예정이다. 이처럼 대형 개발사업이 집중된 부산 남구에서도 새 아파트가 공급을 예고하고 있어 눈길을 모으고 있다. 부산 남구 용당동에서 선보이는 ‘용당 오션골든시티 월드메르디앙’(가칭)은 실수요층이 두터운 중소형 아파트로 전용면적 59㎡, 84㎡, 총 758가구이다. 1차 758가구 외에 2차 1000여 가구도 예정되어 있어 향후 대단지 랜드마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주변으로 용당초, 동향초.중, 동천초, 감만중, 석포여중, 부경대 등 주변 교육시설도 잘 갖춰져 자녀가 있는 가정에서 거주하기 좋은 환경이며 이기대 도시자연공원, UN기념공원, 당곡근린공원 등 다양한 공원 및 문화공간도 있다. 사업지에서 신선대지하차도 및 신선대산복로, 부산항대교, 광안대교 등으로 빠르게 진입할 수 있어 도심 접근성이 우수하다. 또한 ‘용당 오션골든시티 월드메르디앙’(가칭)은 사업부지의 토지사용승낙을 확보한 내용으로 법무사 공증을 받았으며, 원금 안심보장제를 실시하여 조합 가입자들의 불안심리를 해소하였다. 홍보관은 사업지 인근인 부산시 남구 신선로에 위치해 있어 상담이 가능하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잠룡들의 땅… 600년 권력의 용광로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잠룡들의 땅… 600년 권력의 용광로

    서울신문이 서울시 및 (사)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7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3회 ‘서울사방 서촌, 사람을 품다’ 편이 지난 3일 서촌 일대에서 진행됐다. 투어 참가자 30여명은 이날 10시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를 출발, 통의동 백송터-동양척식주식회사 관사-겸재 정선 생가터-청와대 무궁화동산-우당기념관-벽수산장터-노천명 가옥-윤동주 하숙집-수성동 계곡-이상의 집-통인시장-이상범 가옥-배화여대 캠벨기념관-필운대 등 순으로 2시간 30분에 걸쳐 서촌의 골목 골목을 누볐다. 이번 코스 중 서울미래유산은 청와대 무궁화동산, 우당 이회영선생기념관, 노천명 가옥, 이상의 집, 통인시장, 캠벨기념관 등 모두 6곳이다.초여름의 햇살이 따가운지 서울미래유산 로고가 찍힌 빨간색 스카프를 머리에 뒤집어쓴 참가자도 있었지만, 대부분 햇살에 아랑곳하지 않고 목이나 손목, 가방에 스카프를 맵시 있게 장식하며 멋을 냈다. 해설자 한세화 서울도시문화지도사의 구수한 입담에 탄성을 내뱉으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코스는 길고 시간은 짧다 보니, 한 해설자는 지름길을 찾아 꼬불꼬불한 서촌 골목길을 내질렀고, 일행은 선두에 따라붙느라 잰걸음을 놓아야 했다. 부부, 친구, 자매 등 젊은층이 주를 이뤘고, 일본인 여성도 동행해 ‘장안의 핫플레이스’ 서촌의 인기를 실감 나게 했다.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사람은 거주함으로써 존재하며, 거주는 건축함으로써 장소에 새겨진다”고 갈파했다. 사람이 사는 장소와 집이 그 사람을 존재케 한다는 뜻이다. 거주이동의 자유가 보장되면서 집에 대한 관념이 이전처럼 그리 절대적이진 않지만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서촌의 형성사를 알면 애정도 깊어질 것이다. 우리는 서촌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서울을 좀 아는 사람은 ‘북촌보다 서촌’이라는 주장에 암묵적으로 동의한다. 작위적인 북촌에 비해 격은 좀 떨어지지만 서촌의 편안함에 점수를 더 얹는 식이다. 서촌에는 서울말을 사용하는 중류사회의 서울토박이들이 많이 살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외국인 관광객을 안내해봐도 화려한 삼청동, 가회동보다 소박한 옥인동, 통인동에서 오히려 ‘한국을 더 많이 느낀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골목마다 만갈래 사연과 곡절 숨어 서촌의 이 같은 소박함과 자연스러움은 어디에서 왔을까. 투어 참가자들에게 물어보니 북촌은 사대부와 벼슬아치 같은 지배층이 살았고, 남촌에는 퇴락한 선비들이 산 반면, 인왕산 아래 서촌에는 궁이나 관청일을 보는 아전(衙前)계층이나 고관대작의 일을 봐주는 겸인(?人)같은 중인 이하 서민층이 산 동네로 알고 있었다. 서울 걷기 열풍이 불면서 해설자들이 알려준 판에 박힌 답변이기도 하다. ‘오래 묵은 도시’서울의 정체성을 단숨에 설명하기 쉽지 않고, 뾰족한 답도 없는 게 사실이다. 서울의 역사는 교과서에 실리지 않고, 학교에서도 배울 수 없기 때문이다. 도시의 가치는 거대한 랜드마크가 주는 이미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도시 안에 녹아있는 이야기에 있다고 한다. 도시가 안고 있는 기억이 도시의 주인인 셈이다. 그런 측면에서 서촌은 풀어도 풀어도 끝이 없는 ‘거대한 실타래’ 같다. 골목골목마다 천 갈래 만 갈래의 사연과 곡절이 숨어 있다. ●한국전쟁 이후 서촌의 모습 바뀌어 인왕산 기슭 서촌에 대대로 서울의 서민층이 살았을 것이라고 알았다면 그것은 오해다. 조선 초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최고 권력의 핵심 배후지였다. 북촌보다 한 수 위였다. 지금 서촌은 해방 후 한국전쟁의 부산물이다. 월남한 피란민과 일거리와 학교를 찾아 고향을 떠나온 지방민이 무작정 정착한 결과 반세기 만에 오늘의 모습으로 변했다. 서촌의 또 다른 지명인 웃대(상촌·上村)는 경복궁 서쪽 인왕산에서 흘러내린 백운동과 청풍계의 물줄기가 수성동천, 옥류천과 합류하는 위쪽을 말한다. 경복궁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지역으로 임진왜란 이전까지 왕족 이외엔 거주가 불가했다. 태종의 셋째 아들 세종대왕의 잠저가 통인동(옛 준수방)에 있었다는 얘기는, 태조의 다섯째 아들 태종의 집도 그곳에 있었다는 뜻이다. 방원과 왕위를 다툰 배다른 동생 무안대군 방번의 옛집도 자수궁터(옥인동 군인아파트)였다. 퇴위한 정종은 사직단 근처 인덕궁에서 머물렀다. 세종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의 비해당이 수성동 계곡에 있었고, 효령대군이 비운에 간 조카의 집을 이어받았다. 임진왜란으로 경복궁이 불타 버린 뒤 세도가와 중인층이 야금야금 틈입했다. 서촌은 광해군의 잊혀진 영토이기도 하다. 광해군은 ‘왕기가 있다’며 경덕궁(경희궁), 인경궁(사직동과 내자동 일대), 자수궁 등 인왕산 아래 3곳에 3개의 왕궁을 짓느라 민가 수천채를 허물고 공사를 일으키는 바람에 인조반정의 원인을 제공했다. 누각동, 누상동, 누하동이라는 지명은 이때 지은 궁궐의 누각에서 비롯됐다. 답사단이 처음 찾아간 통의동 백송터는 영조가 태어난 창의궁이었다. 영조실록에 따르면 영조는 재위 52년간 무려 247번 이곳을 참배, 바느질 무수리였던 어머니 숙빈 최씨 생각에 눈물을 흘렸다. 영조의 부마집에 입양돼 창의궁에서 자란 추사 김정희는 서촌에 흘러들어온 서당 훈장 천수경이 결성한 문학동인 송석원 시사(詩社)와 인연을 맺어 ‘송석원’이라는 바위각자를 썼다. 인왕산이 백악산과 이어지는 기슭인 지금의 청운동과 효자동, 궁정동은 장동 김씨의 옛 터이다. 안동 김씨 서울파인 장동 김씨가 순조~헌종~철종 3대에 걸쳐 누린 세도정치의 산실이다. 답사단은 경복고등학교 교정 안에 있는 겸재 정선의 옛 집터와 그 집터에 세워진 자화상 ‘독서여가도’ 동판비를 둘러보고 학교 운동장 스탠드에서 인왕산을 바라보는 사치를 누렸다. 300여년전 겸재가 인왕산을 바라보던 바로 그 앵글이다. 한 지도사는 인쇄해 온 한성부 지도와 인왕제색도를 일행에게 나눠줘 이해를 도왔다. 장동 김씨의 후원이 없었더라면 장동팔경첩도, 인왕제색도도 남지 않았을지 모른다.다음 코스 궁정동 무궁화동산은 장동 김씨의 영화를 있게 한 김상용·김상헌 형제의 집터이다. 척화파 김상헌의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가 새겨진 시비와 궁정동 안가, 효자동에 살았던 시인 박목월의 연애담으로 귀가 즐거웠다. 영조의 후궁이자 사도세자의 생모인 영빈 이씨의 사당 선희궁 터에 세워진 국립 농학교와 맹학교를 지나 우당 이회영기념관을 만났다. 인왕산의 또 다른 이름 필운대의 주인 백사 이항복의 직계 11대손이다. 전 재산을 팔아 간도로 독립운동을 떠난 우당과 육형제를 기리는 기념관이 서촌 신교동에 자리잡은 것은 사필귀정이다.서촌 분위기를 깨는 유리건물 GS남촌리더십센터 고갯길을 내려가면 옥인동47번지 옛 벽수산장이 나타난다. 한때 이 땅의 주인이 서촌의 주인인 시절이 있었다. 장동 김씨로부터 권력을 넘겨받은 고종 대의 외척 여흥 민씨에 이어 순종 대의 외척 해평 윤씨 등 조선 말 경화사족(京華士族)들의 권력 각축장이었다. 인왕산을 주산으로 정하려던 무학대사를 물리친 정도전의 후예들이 지향한 신권(臣權)정치의 무대였다. 왕의 산, 인왕산을 차지한 신하들이 왕권을 윽박질러 당파정치, 외척정치, 세도정치를 일삼는 바람에 사화(士禍)와 반정(反正)이 되풀이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문득 했다. ●조선 권력의 배후지, 매국노가 삼켜 인왕산 기슭에서 사직단 북쪽을 일컫는 서촌은 조선초기부터 권력의 배후지이자 왕족의 세거지로 금역이었다. 장차 왕위에 오를 수 있는 잠룡들의 사저이자 왕위에서 배척당한 왕족의 도피처였다. 성종 이후 사대부 세력이 조금씩 틈입해오다 임진왜란 이후 경복궁이 전소되면서 법궁이 창덕궁으로 옮겨가자 통제가 풀렸다. 장동 김씨, 남양 홍씨, 기계 유씨를 비롯한 경화사족들이 청풍계와 백운동, 옥류천을 중심으로 자리잡았으며 이들의 뒤를 따라 천수경을 위시한 중인들이 필운대와 인왕산동을 오가며 송석원시사를 열었다. 이들이 이룬 중인문화가 서촌의 한 축을 형성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는 친일 매국노들의 독무대였다. 옥인동의 절반인 2만평이 윤덕영의 차지였고, 이완용도 옥인동 19번지 4000평을 매집해 못지않은 저택을 지었다. 둘 다 팔지 못할 것(나라)을 팔아서 갖지 못할 것(서촌)을 차지하고 아방궁을 지었다. 옥인동 윗동네는 윤덕영, 아랫동네는 이완용이 나눠 지배했다. 중인문화가 꽃피었던 옥류동 계곡 전체가 개인 사유지가 됐다. 지금의 서촌은 해방 후, 한국전쟁 이후 두 집의 필지를 분할한 수많은 작은 집들이 들어서면서 형성된 것이다. 불과 반세기 전의 일이다. 송석원의 역사는 곧 서촌의 역사요, 서울의 역사이자 한국의 역사이기도 하다. 3대 세도정치를 편 장동 김씨에게서 명성황후를 등에 업은 여흥 민씨에게 넘어갔다가, 순종효황후의 큰아버지 해평 윤씨 윤덕영이 벽수산장을 지어 소유했다. 한국전쟁 시기 서울을 점령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청사로 사용됐고, 미군과 유엔청사로 차례로 쓰였다. 프랑스풍 조선 최대의 건물, 벽수산장은 1966년 화재로 불탔고, 1973년 철거됐다. 유일한 증거가 박노수미술관이다. 청전 이상범의 제자 박노수는 집과 작품, 소장품 1000여 점을 종로구청에 기증했다. 진정한 서촌사람이다. 노주석 (사)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나무 계단 오르며 떠난 100년의 근현대 여행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나무 계단 오르며 떠난 100년의 근현대 여행

    6월의 첫 주말인 지난 3일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탐방단은 차분하면서도 치밀한 최서향 서울도시문화지도사의 해설을 따라 대학로길 100년의 근현대 역사문화여행을 떠났다. 먼저 한국의 대표적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아르코미술관’, ‘아르코예술극장’, ‘샘터사옥’, ‘샘터 파랑새극장’ 등 대학로의 상징인 붉은 벽돌 건물군을 만났다.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4채의 건물은 붉은 벽돌 외양은 물론 내부 역시 골목을 건물이 품에 안는 듯한 특이한 구조가 인상적이었다.마로니에 공원 안 옛 서울대 본관(예술가의 집)은 경성제국대와 서울대 본관으로 사용되다가 1975년 서울대가 관악캠퍼스로 이전하면서 문화예술진흥원(한국문화예술위원회) 청사로 사용됐으며 2010년 사적으로 지정된 근대 건축물이다. 표면의 오차를 막기 위해 줄이 그어져 있는 스크래치 타일이 인상적이었는데 일행들은 스크래치 타일의 독특한 촉감을 직접 만지고 느껴 보았다. 방송통신대 역사기록관으로 사용되는 중앙시험소 청사 건물을 만났다. 근대 유일의 현존하는 목조 양식 건축물은 일행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1910년 조선총독부 공업전습소와 중앙시험소를 거쳐 1916년 경성공업전문학교로 개편되었으며 해방 후 서울공대가 되었다고 한다. 투어를 시작한 지 한 시간이 지날 무렵 옛 흥덕동천을 복원한 개울가에서 휴식을 가진 뒤 대학로를 건너 또 다른 서울미래유산인 서울대병원으로 향했다. 서울의대 본관 뒤편에는 사도세자와 정조의 애틋한 사연이 담긴 경모궁이 숨어 있었는데 본래 함춘원 경모궁 터 한편을 차지했던 서울대병원이 이제는 함춘원과 경모궁을 포위하고 있는 모양새가 가슴 아팠다. 서울대병원 의학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는 옛 대한의원 건물은 고색창연했다. 신바로크 양식의 기계식 시계탑과 태극문양이 격조 있었다. 박물관을 견학할 수 있는 여유로운 시간 배분 덕분에 삐거덕거리는 나무계단을 따라 박물관 내부를 찬찬히 둘러볼 수 있었다. 잠시 후 우리는 민주화 운동의 상징인 학림다방 앞에 멈춰 섰다. 낡은 나무계단과 시계 태엽을 되감은 듯한 색바랜 내부였지만 우리는 이곳을 단순한 찻집이 아니라 서울미래유산으로 기억할 것이다. 마지막 코스는 혜화동 로터리의 혜화동 성당이다. 등록문화재인 이 성당은 서울에서 명동성당과 약현성당 다음 세 번째로 오래됐다고 한다. 이날 코스는 교육과 예술, 건축과 의학의 근대사가 한데 어우러진 코스였다. 평소 스쳐 지나갔던 건축물들에 대한 상세한 해설을 들으며 ‘경험한 자만이 느끼는 작은 사치’를 만끽했다. 오늘 경험한 100년이 100년 뒤 후손에게 물려줄 미래유산으로 남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했다. 김미선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서울미래유산연구팀
  •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성균관 반촌 代 이은 번화가…근대건축 껴안은 서울대의 본향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성균관 반촌 代 이은 번화가…근대건축 껴안은 서울대의 본향

    마로니에 공원을 품은 대학로에는 근대의 향기가 진동했다. 백년 후의 보물, 서울미래유산이 내뿜는 포스 때문이리라. 서울신문이 서울시 및 서울도시문화연구원 등과 함께하는 ‘2017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2회 ‘서울사방 동촌 교육과 예술의 현장, 대학로’편이 지난 3일 대학로 일대에서 진행됐다. 그랜드투어 참가자들은 국가대표 건축가 김수근이 남긴 서울미래유산인 아르코예술극장과 아르코미술관, 샘터사옥과 파랑새극장을 차례차례 둘러봤다. 시멘트와 유리, 철골조가 지배하는 회색 도시의 한편에 서 있는 붉은 벽돌 건물 4채에서 ‘힘과 기’를 느끼는 표정이었다. 예술가의 집으로 변신한 옛 서울대 본관과 근대건축의 요람 경성고등공업학교 옛 터에 서 있는 옛 중앙시험소(한국방송통신대 역사관)에서 타일과 목조로 지어진 근대건축물의 매력에 흠뻑 취하기도 했다. 자연형 실개천 개념으로 복원한 흥덕동천의 마른 물길을 돌아 서울대 의과대학 본관과 옛 대한의원, 함춘원 동산에 세워진 정조의 회한이 서린 경모궁, 유신시대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사랑방 학림다방, 옛 백동성당 터에 세워진 근대성당 건축의 모태 혜화동성당 순으로 대학로를 순례했다. 선선한 바람이 귓가를 스치는 초여름 대학로의 정취를 만끽했다.“이야기가 살아 있는 도시는 흥하고 이야기가 사라진 도시는 멸망한다”라고 했다. 스토리(story)가 곧 역사(history)가 되는 이치다. 대학로는 서울 종로5가역을 시점으로 이화사거리를 거쳐 혜화동로터리까지 이어지는 연장 1.6㎞의 간선도로이지만 우리는 흔히 이화사거리에서 혜화로터리 구간 왕복 6차선 도로 주변을 대학로라고 통칭한다. 누구나 한 번쯤 이곳에서 열리는 문화예술 행사와 공연에 대해 들어봤거나 체험했을 정도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젊음과 예술의 해방구이다. 대학로에 문화예술혼이 깃든 데는 600년 이상 묵은 곡절이 있다. 조선 유일무이의 대학 성균관과 대한민국 최초, 최고의 국립대학 서울대의 본향이기 때문이다. 중세에서 근대까지, 최고 대학 교육의 발상지가 대학로에서 만난다. 괜스레 대학로가 아니다. 경성제국대학을 거쳐 서울대 법문학부가 머문 시기, 이곳은 서울의 유일한 4년제 대학이 있던 지역이었다. 수식어 없이 이곳을 대학로라고 불러도 이의가 없었다. 대학천, 대학신문도 같은 맥락이다.●근대의학 태동지 연건동·근대건축 뿌리 동숭동 근대의학과 근대건축도 대학로를 사이에 두고 연건동과 동숭동 양쪽에서 나란히 꽃피었다. 광혜원에서 싹튼 근대의학의 전통이 옛 대한의원을 거쳐 지금의 서울대 병원으로 이어졌다. 또 방송통신대 역사관 터에 있던 관립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한 테크노크라트들이 우리 근대건축의 개척자가 됐다.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기원을 일제강점기 경성에서 찾아야 한다는 학설이 힘을 받는 이유는 중세 성곽도시 한양이 초거대 세속도시 서울이 된 무한대에 가까운 팽창의 출발점을 경성으로 보기 때문이다. 대학로는 왜 대학로인가. 대학로의 지역 정체성은 무엇인가. 대학로는 1985년 군사정권에 의해 불쑥 급조된 장소가 아니다. 조선시대 한양의 좌청룡 낙산 아래 형성된 동촌(東村)의 역사가 층층이 살아 숨쉰다. 현재의 행정구역으로 보면 낙산 아래 연건동을 중심으로 이화동·동숭동·원남동·연지동·충신동이 동촌에 해당한다. 양반이 살던 4곳의 지역색을 뜻하는 사색(四色) 중 동인은 남인과 북인, 대북과 소북으로 갈라졌는데 18세기 후반의 문인 이가환의 ‘옥계청유첩서’에는 소북가문이 동촌에 살았다고 기록돼 있다. 동산(東山) 아래 동촌에 거주하는 동인의 기질이나 지역색은 성균관과 반촌(泮村)에 의해 영향을 받은 것으로 여겨진다. 반촌이란 반민(泮民)의 거주지인데, 성균관을 반궁(泮宮)이라고 부른 데서 유래한다. 성균관과 유생들의 뒷바라지를 하는 특수신분인 반인들은 성역화된 성균관의 위세를 빌려 소 도살 면허를 독점하면서 부유한 치외법권 주민으로 행세했다. 지금의 대학로 일대가 반촌이다. 400명의 유생을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반촌은 대궐 다음으로 북적거리는 번화가였다. 반민들은 사치스러운 차림새와 호쾌한 기질로 유명했다. 성균관 유생들이 함께 어울린 하숙촌 대명거리(혜화역 4번 출구에서 성대 앞까지)는 1895년 갑오개혁으로 과거제가 폐지될 때까지 ‘원조 대학로’로 흥청거렸다. ●낙산 아래 동인들 모여 살던 동촌 명승지 이화장 동촌의 정체성은 낙산과 혜화문, 낙산 아래 제일의 명당 이화장, 흥덕사와 흥덕동천, 송시열이 살던 송동 집터와 북관묘 터에서 각각 찾을 수 있다. 낙산 아래 이화장 자리는 동촌 제일의 명승지였다. 인조의 셋째 아들 인평대군의 석양루 터였으며 신숙주의 손자 신광한의 집 기재(또는 신대)를 거쳐 왕의 관을 만들던 장생전이 깃들었다. 김홍도의 스승 표암 강세황도 이곳 바위에 글씨를 남겼지만 이화장을 지으면서 땅속에 묻혔다. 현재 서울올림픽기념국민생활관이 흥덕사와 송동, 북관묘의 옛 터이다. 본래 지명은 숭교방이었으며 오늘의 동숭동은 ‘숭교방 동쪽’이라는 뜻이다. 흥덕사는 태조 이성계가 왕이 되기 전 머물던 한양 잠저였고, 본부인 신의왕후를 모신 교종의 본산이었다. 송시열의 집도 이 터에 있다. 흥덕동천은 대학로를 지나 청계천 오간수문으로 흘렀다. 오늘의 대학로 40m 도로는 한때 대학천이라고 불리던 흥덕동천을 복개한 덕에 얻은 길이다. 서울대 문리대생들이 대학천과 다리를 빗댄 센강과 미라보 다리를 오가며 ‘제25의 강의실’이라고 불리던 학림다방으로 건너다녔다. 흥덕동천을 되살린다고 요란하게 선전했지만 옛 물길은 땅속에 묻혔고, 작은 개울만 흉내 삼아 만들어 놓았다. 관운장을 모신 북관묘터는 1882년 임오군란부터 1884년 갑신정변, 1895년 을미사변까지 근대사의 비극이 오롯이 담긴 역사의 기억장치이다. 그러나 아픈 역사는 역사가 아니라며 스스로 지워 버렸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대학로의 근현대 유산이 미래세대에게 전해지도록 소중하게 간직해야 하는 이유를 사라져 버린 동촌의 옛 역사가 시리도록 웅변한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학영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연구위원
  • [서울형 도시재생 공공 디벨로퍼가 이끈다] “1000만명 다니는 도심 속 광장 지하 만들면 또 하나의 도시 탄생”

    [서울형 도시재생 공공 디벨로퍼가 이끈다] “1000만명 다니는 도심 속 광장 지하 만들면 또 하나의 도시 탄생”

    “광화문광장 지하를 캐나다 몬트리올의 ‘언더그라운드시티’처럼 개발하는 방향으로 생각해 보세요. 1000만 시민이 활용할 수 있는 도심 속 광장 지하에 편의시설을 가진 또 하나의 도시가 탄생하는 것이지요.”서울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은 서울 역사도심 보행재생의 핵심이다. 김원 건축환경연구소 광장 대표는 6일 “교통을 지하로 옮기는 광화문광장 재구조화는 지하에 교통 환승센터뿐만 아니라 새로운 도시를 만드는 수익사업이 될 수 있다”며 이같이 소개했다. 김 대표는 최근 서울시에 교통 지하화를 골자로 하는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방안을 제안한 사회적 논의 기구인 광화문포럼을 이끌고 있다. 김 대표는 “언더그라운드시티는 상업시설뿐 아니라 미술관, 정당 등 공공시설까지 겸비한 자족도시”라면서 “광장 지하에 화장실이나 환승센터를 넣으면 편리하고, 여기에 상업·공공시설까지 추가하면 그 가치가 훨씬 커진다”고 말했다. 업계는 포럼이 제안한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에 최소 4000억원 이상의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지만 지하를 분양하면 편의성과 경제성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어 ‘남는 장사’도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는 “강남 영동대로 통합역사 구축 및 지하공간 복합개발 사업처럼 GTX 등이 영동이나 서울역뿐 아니라 광화문광장 밑으로도 지나갈 수 있도록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은 1단계 월대와 율곡로 차도 지하화, 2단계 광장 양쪽 세종로 차도 지하화 및 지하 환승공간 조성, 3단계 청계천과 연결하는 백운동천 및 삼청동천 수변시설 회복 등으로 나눌 수 있다. 1~2단계 사업에서 지하공간은 지상 공간을 보조하고 현실적인 수요에 대응하는 공간으로 꾸미는데 교통뿐 아니라 상업·공공시설도 넣는 쪽으로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서울시가 시청역과 국세청 별관부지 하부에 조성하는 세종대로 역사문화특화공간, 서울신문(프레스센터)·코오롱·서울파이낸스센터를 연결하는 지하 보행공간을 조성하기로 했는데 그는 이를 광화문광장 지하도시와도 연결시키자고 주장했다. 그는 “광화문 앞 월대 복원과 율곡로 차선 지하화 사업은 최장 5년 안에 완성될 수 있다”면서 “단절된 경복궁을 연결해 도시 골격이 회복된 모습을 보면 교통 불편을 감내할 동력을 얻어 사업이 더욱 순항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 박수근길·겸재길… 역사 깃든 종로 도로

    서울 종로구는 지역 6개 지역에 역사적 특성을 반영한 명예도로명을 부여했다고 25일 밝혔다. 명예도로명이 부여되는 길은 지봉로, 필운대로, 자하문로28길, 창덕궁길, 자하문로7길, 대학로11길 등 총 6곳이다. 이들 도로에는 각각 박수근길, 겸재길, 송강길, 고하길, 옥류동천길, 소나무길 등의 명예도로명을 부여했다.구 관계자는 “도로명주소 시행으로 지역의 역사성을 반영한 고유지명이 사라졌다”면서 “종로만의 전통과 역사를 보여 주기 위해 명예도로명을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박수근길의 법정도로명은 지봉로이다. 명예도로명이 부여되는 도로는 지봉로1부터 지봉로29(청계7가 사거리~동묘역 사거리)까지 300m 구간이다. 이곳은 1952년부터 1963년까지 박수근 화백이 거주하며 작품 활동을 했던 집(종로구 지봉로 11)이 있던 곳이다. 집터 앞 도보에는 창신동 집 마루에 앉아 있는 작가의 가족사진을 내용으로 하는 공공미술 작품 ‘기억’이 설치돼 있다. 박수근길이라는 명예도로명은 지하철역 내 안내사인 등에 표기해 시민들이 쉽게 찾아갈 수 있도록 했다. 김영종 종로구청장은 “수백년 역사를 간직한 수도 서울의 자부심을 지키기 위해 앞으로도 역사성이 있는 지역을 계속 발굴해 명예도로명을 부여하겠다”고 말했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 제14회 신일스승상 수상자

    제14회 신일스승상 수상자

    학교법인 신일학원 신일스승상위원회가 지난 13일 서울 성북구 미아동 신일캠퍼스에서 개최한 ‘제14회 신일스승상 시상식’에서 신일중·고교, 서울사이버대 관계자와 수상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윗줄 왼쪽부터 최경호 신일중 교장, 이상균 신일학원 이사장, 조완규 전 교육부 장관, 정원식(전 국무총리) 위원장, 김정하 서울사이버대 명예총장, 신병철 신일고 교장, 이은주 서울사이버대 총장. 아랫줄은 수상자들. 왼쪽부터 마병식 서울인수초 교사, 윤화선 인천지석초 교사, 임강온 동구여중 교사, 김기옥 경기대부중 교사, 김태권 서라벌고 교사, 권기복 경기영북고 교사, 위영순 서울동천학교 교사. 신일학원 제공
  • 밤에 피는 LED 장미… 여심 저격 준비 끝

    밤에 피는 LED 장미… 여심 저격 준비 끝

    중랑천변·중화체육공원 등 일대 70여종 12만 그루 한자리 모여 5.15㎞ 장미터널·소원 꽃등 행사 낙화놀이·음악회 등 볼거리 풍성나는 붉은 장미인 ‘심파시’야. 독일에서 태어났는데 한국에 뿌리내린 지 제법 오래됐어. 내 입으로 말하기 쑥스럽지만 검은 듯, 붉은 잎사귀가 참 매혹적이야. 물론 줄기에는 뾰족한 가시가 돋쳤지. 아름다움을 탐하는 자를 경계하는 새침함이 우리의 매력 아니겠어? 사실 우리 종 가운데 상당수는 5~6월 한철 살다가 꽃이 져 흙으로 돌아가. 짧지만 화려한 생을 즐기려다 보니 친척끼리 얼굴 볼 시간조차 없어. 다행히 매년 5월 서울 중랑구의 중랑천변에서 모임이 열리는데 70여종, 12만 5000그루나 되는 장미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울시의 대표 봄축제로 자리잡은 ‘서울장미축제’지. 2015년부터 열렸는데 지난해에는 77만명이나 우릴 보러 찾아왔어. 왜 중랑구에서 모이느냐고? 사연이 있어.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중랑구는 실업자에게 일자리를 주려고 중랑천 정비사업을 했어. 당시 이 천변은 악취와 오물로 가득했거든. 이곳을 정비하며 우리 장미를 심은 게 축제의 서막이 된 거지. 이후 2005~2007년 장미를 집중적으로 심으면서 명소가 됐어. 올해는 오는 19일부터 21일까지 중랑천변과 수림대장미정원, 중화체육공원 일대에서 축제가 열려.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5.15㎞ 장미터널 등 기존 볼거리도 여전하지만 지난해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계획이야. 회심의 카드는 ‘밤에 피는 장미’지. 발광다이오드(LED)로 만든 장미 조화 등을 활용해 밤에도 볼거리를 만들었어. 축제 전날인 18일 밤에는 LED 장미를 담은 작은 통 1만 1000개를 중랑천변에 띄워 축제의 성공을 기원하는 ‘LED 장미 소원 꽃등’ 행사가 열려. 또 축제 기간에는 형형색색의 장미와 간접조명을 조화시켜 각기 다른 분위기를 낸 ▲신비한 초록장미존(묵동천 장미정원·수림대 장미정원) ▲로맨틱한 꽃길 빨간장미존(중랑천 뚝방 장미터널 일대) ▲다이내믹한 열정의 파란장미존(중화체육공원 아래 둔치) 등이 꾸며진대. 축제 마지막 날인 21일 밤에는 불꽃이 비처럼 중랑천으로 떨어지는 ‘낙화놀이’가 열릴 예정이야. 현장에서 한복도 빌려준다고 하니 기념사진을 남기기도 참 좋고 말이야. 올해도 축제의 핵심 테마는 ‘장미와 여인, 아내’야. ‘여심을 잡아야 축제가 성공한다’는 공식이 있다잖아. 19일에는 ‘장미퍼레이드’와 ‘장미가요제’ 등 낭만을 즐길 만한 프로그램이 열리고, 20일에는 ‘로즈&뮤직파티’, ‘뮤지컬 그리스 갈라쇼’ 등 젊은 연인을 위한 쇼가 준비돼 있어. 마지막 날인 21일에는 ‘가든 디너쇼’와 ‘KBS 교향악단의 장미 음악회’가 열려. 봄날 연인과 중랑천을 걸으며 눈 호강 해보지 않을래?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도심, 책을 품다

    도심, 책을 품다

    “‘순화동천’은 책에 대한 내 인생의 헌사이자, 책을 통해 이성적인 담론을 펼쳐 보고 싶다는 꿈을 담은 공간입니다. 책은 물건이 아니라 정신이니까요.”●“인문·예술·담론의 공간이자 독자들의 아지트” 김언호(왼쪽) 한길사 대표가 24일 서울 중구 순화동에 문을 연 복합 문화공간 ‘순화동천’(巡和洞天)에서 한 말이다. 동네 지명인 ‘순화동’과 ‘평화’를 뜻하는 한자음의 중의적 표현에다 주역의 이상향을 가리키는 ‘동천’이 합쳐진 멋들어진 문패다. 김 대표는 하석 박원규 서예가 등 여러 사람에게 이름값을 빚졌다고 말한다. 김 대표는 “뜻을 풀자면 ‘하늘인 사람들이 무리를 이뤄 평화를 순례하는 이상향’ 정도 되겠다”며 “40년 전 이곳(순화동)에서 출판사를 시작했던 초심을 살려 새로운 인문·예술·담론의 공간이자 독자들의 아지트로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순화동천은 서점과 박물관, 갤러리, 인문학당이 합쳐진 공간이다. 김 대표가 애착하는 공간은 60m에 이르는 긴 복도로 이뤄진 ‘책의 길’(한길사를 의미). 한쪽 벽은 미술작품으로, 다른 쪽 벽은 지난 41년간 한길사가 펴낸 책 4만여권이 들어차 있다.유료인 박물관에서는 개관 기념전으로 19세기 영국의 책 장인인 윌리엄 모리스와 프랑스 삽화가 귀스타브 도레의 ‘북 아트’전과 19세기 프랑스 풍자화가 4인전이 열리고 있다. 갤러리에서는 최은경 이화여대 교수의 조각전 ‘북스’와 목판화가 김억의 ‘국토진경’ 작품전을 볼 수 있다. 인문학당은 ‘퍼스트아트’, ‘한나 아렌트 방’, ‘윌리엄 모리스 방’, ‘플라톤 방’ 등으로 나눠 강연 장소로 쓰인다. ●“디지털 갖고 난리 칠 때 저만은 책을 얘기하고파” 김 대표는 이날 독일 여성 철학자 아렌트의 핵심 사상 ‘악의 평범성’을 강조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부터 김기춘 전 비서실장, 우병우 전 민정수석 등을 보며 든 생각이 ‘우리 사회가 평범한 악에 얼마나 둔감한지’였다”며 “아렌트의 사유는 우리 국가·사회 공동체를 회복하고, 변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순화동천의 공식 개관 전인 지난달부터 다섯 차례에 걸쳐 독자를 대상으로 ‘아렌트 정치사상 특강’을 연 이유다. “서점은 도시의 어둠을 밝히는 별빛 같은 존재라고 하지 않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활자 매체의 위기를 논하며 디지털 갖고 난리를 치고 있지만 그래도 전 책을 얘기하고 싶습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22~23일 순천만서 걷기대회…자연 느끼고 도보 기부 동시에

    전남 순천시는 오는 22, 23일 이틀간 ‘제7회 순천만 ECO 국제걷기대회’를 개최한다. 동천변 코스(5㎞, 10㎞, 25㎞)와 봉화산 둘레길 코스(5㎞, 10㎞, 25㎞)에서 진행한다. 도심 속에 흐르는 아름다운 동천변과 봉화산 둘레길을 함께 걷는 묘미를 느낄 수 있다. 걸으면서 기부하는 행사도 마련했다. 빅워크 앱을 다운받으면 100걸음마다 10원씩 적립된다. 일본, 대만, 중국, 러시아 등 해외 참여자 300여명을 포함해 모두 3000여명이 참가한다. 행사 기간 축하공연을 비롯해 다양한 볼거리도 준비했다. 한국체육진흥회 걷기 강습 및 걷기 홍보관, 스포츠마사지 체험부스, 건강 관련 부스, 그린순천21 빅워크 동참&탄소 줄이기 캠페인 등을 운영한다. 조곡동자치위원회가 간식거리를 만들어 제공한다. 희망자는 행사 당일 현장에서도 신청 가능하다. 코스를 완주하면 완보증과 배지를 준다. 각종 캠페인에 참여하면 봉사활동 인증서를 배부한다. 순천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일산풍동 레아플라체(가칭), 자연 담은 중소형 평형 단지로 인기↑

    일산풍동 레아플라체(가칭), 자연 담은 중소형 평형 단지로 인기↑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풍동지역에 자연을 담은 주택조합아파트 ‘일산풍동 레아플라체’(가칭) 조성이 예정되면서 일산 지역의 부동산 시장이 열기를 띄고 있다. 지난 달 24일 문을 연 주택홍보관에는 실수요자를 비롯한 많은 방문객들이 다녀가 풍동지역주택조합아파트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일산풍동 레아플라체(가칭)는 가장 인기 있는 중소형 평형대인 59㎡A/59㎡B 타입과 74㎡A/74㎡B 타입으로 구성되고 총 1,340여세대가 들어설 예정이다. 자연과 도시를 담은 지리적 환경으로 자연친화적인 입지 조건을 갖춘 레아플라체는 풍동천의 흐름에 따른 지형과 조화를 이루는 탑상형의 선형 배치를 통해 우수한 단지 조망권을 자랑한다. 또한 전 세대는 남향위주 배치로 자연채광을 극대화했으며, 환기통풍에 유리한 4bay 평면타입으로 구성되어 집안의 쾌적한 공기를 제공한다. 단지 내에는 남북을 잇는 보행축 공간 사이에 이웃과의 소통 공간 및 휴게공간을 마련할 예정이다. 또한 어울림마당을 중심으로 입주민들이 쾌적하게 운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여 복리시설에 대한 만족도를 높일 계획이다. 레아플라체(가칭)는 우수한 교통망을 확보하고 있어 서울로의 진입 또한 수월하다. 단지 인근에 버스정류장과 풍산역이 위치하고 있으며, 356번 국도를 이용해 시내 및 시외로의 진출입이 용이하다. 또한 2023년 준공 예정인 GTX A노선 개통으로 서울 진입이 더욱 가까워질 전망이다. 또한 600m 거리에 풍산초등학교가 있으며 약 2km 내에는 초, 중, 고교가 위치하고 있어 우수한 교육환경을 누릴 수 있는 것 또한 레아플라체의 장점이다. 더불어 단지 인근에 동국대학교 일산병원은 물론 대형마트, 영화관 등이 자리잡고 있어 일상생활의 편리성을 더했다. 한편 레아플라체(가칭)의 주택 홍보관은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식사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방문을 통해 주택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소개받을 수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사이먼 세 경기 평균 31.7점 활약 인삼공사 스윕에 일등공신

    사이먼 세 경기 평균 31.7점 활약 인삼공사 스윕에 일등공신

    데이비드 사이먼(KGC인삼공사)의 세 경기 평균 31.7득점 활약이 팀을 챔피언결정전에 올려놓았다. 사이먼은 14일 울산 동천체육관을 찾아 벌인 프로농구 모비스와의 4강 플레이오프(PO) 3차전에서 38분08초를 뛰며 33득점 16리바운드 활약으로 70-61 완승을 이끌었다. 사이먼은 1차전 33득점, 2차전 29득점에 이어 이날도 33득점을 기록해 세 경기 평균 31.7점대 득점으로 챔프전 진출에 일등공신이 됐다. 키퍼 사익스는 14득점 5어시스트로 뒤를 받쳤다. 3연승으로 시리즈를 끝낸 인삼공사는 오는 22일 경기 안양체육관에서 1차전을 치르는 챔피언결정전에 선착, 다섯 시즌 만에 우승을 노린다. 일주일의 휴식이 주어지는 것도 작지 않은 의미를 지닌다. 인삼공사 주장 양희종은 “이동거리 때문에 두 팀 모두 몸이 무거워 보인다”고 짚었다. 인삼공사는 3전승으로 끝내겠다는 조바심 때문에, 모비스는 이 경기를 내주면 시즌을 접는다는 절박감 때문에 야투 성공률이 밑바닥을 헤맸다. 경기 전 유재학 모비스, 김승기 인삼공사 모두 그 점이 걱정된다고 털어놓았는데 그 늪에서 허우적댔다. 보는 이로선 농구 보는 의미를 찾기가 쉽지 않은 한 판이었다. 1쿼터 인삼공사가 12-6으로 앞섰다. 모비스는 2점슛 11개를 던져 3개만 집어넣고, 3점슛 6개가 모두 림을 벗어났다. 인삼공사는 2점슛 13개를 던져 5개 성공하고, 3점슛 3개가 림을 외면했다. 오세근이 자유투 넷을 던져 둘만 넣었다. 두 팀 합쳐 18점은 2010년 3월 10일 LG-동부(6-14)의 20점을 경신하는 역대 PO 1쿼터 최소 득점이었다. 2쿼터 모비스가 24-25로 따라잡았다. 두 팀의 공격은 여전히 뻑뻑했다. 모비스는 2점슛 11개를 던져 6개를 집어넣고, 3점슛 4개가 모두 빗나갔다. 인삼공사도 2점슛 12개를 던져 절반만 성공하고, 3점슛 4개가 림을 모두 벗어났다. 전반까지 두 팀 통털어 최다 득점은 사이먼의 8득점이었다. 3쿼터 양희종의 공언대로 인삼공사가 몰아치기를 해냈다. 양희종이 이날 첫 3점포를 가동하자 네이트 밀러가 맞불을 놓았다. 사이먼이 16점, 사익스가 7점으로 앞장선 인삼공사가 밀러가 9점, 양동근이 4점을 올린 모비스에 54-50으로 달아났다. 유재학 감독은 사이먼과 함께 뛸 때 사익스를 묶는 새 방법을 내놓겠다고 다짐했는데 제대로 풀리지 않았다. 전준범이 종료 20여초를 남기고 3점을 넣은 다음 속공을 허용해 사이먼의 덩크를 허용한 점은 아쉬움을 남겼다. 4쿼터 4~5점 차로 계속 앞서던 인삼공사는 경기 종료 4분40여초를 남기고 양동근에게 3점을 얻어맞고 오세근이 이종현에게 파울을 범해 5반칙 퇴장 당하고 공격권마저 넘겨주는 절대절명의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모비스는 이대성이 5초룰에 걸리는 바람에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위기를 벗어난 인삼공사는 막바지 집중력을 발휘해 점수를 차곡차곡 쌓아 승부를 결정지었다. 모비스는 두 시즌 연속 4강 PO를 세 경기 만에 내주고 시즌을 접었다. 세 경기 연속 외국인 듀오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해 결국 제공권을 물론 20점대 후반의 득점까지 책임 지는 찰스 로드를 퇴출시킨 대가를 톡톡히 치른 셈이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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