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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 대통령­라빈 총리 통화/실종 이스라엘 선원 대책 협의

    김영삼 대통령은 지난 22일 제주도 남방 2백50㎞ 지점의 동지나해상에서 발생한 한진 마드라스호와 라이베리아 선적의 미네랄 담피아호 선박충돌사고와 관련,25일 하오 라빈 이스라엘총리의 전화를 받고 실종된 이스라엘 선원들의 수색작업 등에 대해 협의했다. 김대통령은 20여분간 진행된 이날 통화에서 불의의 선박충돌 사고로 9명의 이스라엘 선원이 실종된데 대해 유감과 위로의 뜻을 전하고 『현재 한국 해군과 해경소속 함정들이 사고해역을 중심으로 수색을 확대해가면서 작업을 펼치고 있다』면서 『새로운 사항이 발견되는 대로 즉시 이스라엘측에 통보하겠다』고 말했다고 윤여전 청와대대변인이 전했다.
  • 지사후보의 「지역감정」 자극/춘천 정호성 기자(표밭에서)

    강원도 도지사 선거전을 지켜보는 도민들의 마음은 씁쓸하다. 막바지까지 혼전을 거듭하며 말 끝마다 지역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후보들의 주무기가 바로 「지역감정」이기 때문이다.그것도 같은 도내의 지역감정에 불을 붙이고 있다. 강원도는 태백산맥을 두고 민심이 번번이 엇갈린다.태백 서쪽의 춘천 일원이 행정,경제,문화 등 모든 분야의 중심이 되면서 동쪽의 영동지역은 늘 소외당한다는 생각을 지녀왔다. 때문에 영서주민과 영동주민은 같은 사안에도 의견이 대립돼 왔다.심지어 「지역세」가 약하다고 느끼는 영동에서는 태백산맥 서쪽에 가까운 지역들을 영동 정서권으로 끌어들이는 노력을 하기도 했다. 이런 지역정서를 노골적으로 선거전에 끌어들인 쪽은 뒤늦게 선거에 뛰어든 자민련의 최각규 후보다.영동 출신의 최후보는 『태백산맥을 사이에 두고 지역감정의 골이 깊어지면서 공직자들의 인사를 비롯해 지역개발에도 차별을 두어 동·서간에 무대접·푸대접론이 제기됐다』며 공세를 취했다. 민자당의 이상용 후보는 현직 시장·군수를 비롯한고위 공직자의 인사에 차별이 없음을 실례를 들어 반박하며 『한때 국정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자리에 있던 최후보는 과연 당시 강원도를 위해 무슨 일을 했느냐』며 즉각 반격했다. 물론 두 후보는 강원도가 낙후지역이므로 민선 도지사가 되면 1백60여만 도민이 힘을 모아 지역발전을 가속화하겠다고 주장한다. 맞대결을 벌이는 한 사람은 건설부 차관으로 국정 운영에 깊숙이 참여했고 두번이나 도지사를 지낸 명사요,또 한 사람은 경제 부총리까지 지낸 인물이다. 그러나 선거판에서는 정책이나 지역발전의 청사진 등은 뒷전에 미뤄놓은 채 지역 감정을 자극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승리를 위해서는 망국적인 지역감정까지 끌어대야 하는 후보들이 과연 자치시대에 단체장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 누가 당선되든,강원도내 지역감정의 골이 더 깊어지겠다는 걱정을 지울 수 없다.
  • 1·4후퇴(6·25내막/모스크바 새 증언:17)

    ◎중국군 파상공세… 2개 사단 서울 재점령/모,김일성에 “북조선군 사단수 감축 필요” 전문/4∼5월 춘계대공세 맞춰 소제무기 증강 촉구 파상공세를 펼치던 중국군은 마침내 51년1월4일 다시 서울을 점령했다.그후 1월8일 모택동은 스탈린앞으로 다음과 같은 전문을 보냈다(전문번호 N15227).바로 팽덕회,김송,박일우등 3명의 전선사령관이 서울점령직후 김일성앞으로 보낸 작전보고서의 사본이었다. 『1.제116보병사단과 117보병사단병력 일부가 오늘(1월4일)서울을 점령했음.적군 병력은 한강이남의 강안으로 패주했음.적은 한강과 산악지대등 자연적인 지형지물을 이용해 잔여병력을 끌어모아 시간을 끌며 이후 전투에 대비할 가능성이 있음. 2.만약 적이 한강이남을 따라 방어선을 펴고 김포공항을 장악하고 제물포항을 이용해 보급품을 조달할 경우 서울은 적의 공습과 포공격의 위협을 받을 것임.이는 아군의 춘계대공세에 매우 불리한 사태를 초래할 수 있음.만약 적을 한강이남지역에서 더 패주시킬 경우 김포공항을 아군이 장악함은 물론 재물포항도 아군수중에 넣을 수 있음.아울러 춘계대공세때 매우 유리한 상황이 되는 것임.적이 남으로 계속 후퇴할 경우 아군은 수원을 점령한뒤 추가 작전지시를 기다리겠음. 1월4일 24시. 팽덕회,김송,박일우』 ○“인민애국세력 승리” 이 전문을 읽은 스탈린은 전문위에다 자필로 다음과 같이 써서 모택동앞으로 보냈다.『본인은 팽덕회를 비롯한 사령관들이 1월4일자로 김일성에게 보낸 작전건의문을 읽었음.필리포프의 견해로는 이 건의가 타당하며 반드시 실행에 옮겨야한다고 생각함.진심으로 서울을 점령한 귀하에게 축하를 보냄.이는 인민애국세력이 반동세력에 거둔 위대한 승리임』 추후 작전전개와 관련,1월16일 모택동은 김일성앞으로 다음과 같은 충고를 보냈다.이 전문사본은 북경주재 소련대사관을 통해 스탈린에게도 보고됐다(전문번호 N15 603). 『현재 중국 동북부에서 훈련중인 10만명의 조선인 신병들은 2∼3개월후면 훈련이 끝남.이들을 인민군 각급 부대에 배치하되 각 중대인원은 1백명이상,사단병력은 1만∼1만명이상으로 구성돼야함.북조선군은 사단,여단급 부대가 너무 많음.모든 병력을 15개정도의 사단으로 나누어 이들에게 소련제무기를 제공할 필요가 있음.그럴 경우 조선문제를 최종 마무리할 춘계대공세(4월∼5월사이)때 이들이 중국의용군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음. 향후 2∼3개월사이 중국의용군과 북조선군은 신병들을 보충해 부대를 새로 개편하는 중대한 대규모 작업을 해내야함.신병들에게 고참병들의 경험을 가르쳐야 하고 무기증강,철도보수,식량 및 탄약저장등을 마무리해야함.앞으로 있을 군사작전에서 적군사령부가 취할 수 있는 대안은 다음의 2가지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됨. 1.아군의 공세에 밀려 크게 저항을 못하고 조선을 떠남.우리의 준비가 완벽하고 전력이 자기들보다 우세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적은 물러날 것임.2.적은 부산,대구지역에서 최후저항을 벌일 것임.하지만 이 경우에도 저항이 무모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조선을 떠날 것임.물론 이를 위해선 우리도 충분한 준비를 갖추어야됨.그렇지 않을 경우 1950년 6월에서 9월사이 북조선군이 저질렀던 실수를 되풀이할 것임. 객관적인 상황에 비추어 2월에 공세작전을 한번 펼친뒤 다시 휴식을 취하며 마지막 대작전에 대비한 병력재편성에 착수해야함.중국과 조선동지들은 인내를 갖고 필요한 준비에 임해줄 것을 바람』 이렇게 1·4후퇴를 계기로 김일성,모택동,스탈린 3인은 다시 한번 한반도무력통일이 임박했다는 벅찬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아울러 중국군의 대공세를 계기로 작전의 거의 모든 전권을 어느덧 모택동이 행사하고 있음도 이 전문은 보여주고 있다. 이 전문을 받아본 김일성은 곧바로 중국군 전선사령관 팽덕회를 만나 후속문제를 논의했다.팽덕회는 김과의 회담결과를 1월19일 모택동에게 보고했다.이 전문도 물론 북경의 소련대사관을 통해 1월21일자로 즉각 스탈린에게 보고됐다(전문번호 N15974). ○모,작전 전권 행사 『김일성과의 회담결과를 다음과 같이 보고함. 1.김일성을 비롯한 북한동지들은 미군과 그의 괴뢰군들을 남쪽으로 패주시키기 위해서는 북조선군 병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고 말했음.북한동지들은 최소한 2개월은 휴식을 취하며 병력재편성에착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음.박헌영은 이와 다른 입장을 보였으나 본인의 추가설명을 들은뒤 수긍했음.소련군사고문관도 앞으로 있을 추가 대공세는 결정적인 마무리작전이 돼야하기 때문에 북조선 당정치국의 뜻에 따라 완벽한 준비를 갖추는게 바람직하다는데 동의했음. 2.해안방어 관련.소련으로부터 기뢰1천개,대전차 지뢰를 비롯한 각종 지뢰 20만개를 제공받았음.이중 10만개는 해안방어에 사용키로 했고 기뢰는 제일 중요한 항구들의 방어에 사용키로 했음. 3.5개군 편성건.각 군은 3개사단으로 편성키로 결정했음.현재 1군을 제외한 나머지 군들은 모두 4∼5개사단으로 편성돼있음.그러나 이들 사단들은 모두 3천∼5천명의 병력만 보유한 불완전한 사단임.본인은 남조선군포로들중 2만명을 5개군에 골고루 배치해 넣자고 제의했으나 북조선동지들은 이에 반대했음. 4.새로 해방된 지역에서 일할 장교숫자가 부족함.서울인구는 이전에 1백50만이었는데 현재도 1백만이 남아있음.식량,연료난이 극심함.피란민,실업자들에 대한 보조가 전무함.인민군,중국의용군이 보유한 식량도 최저수준임』 팽덕회는 이 전문에서 이밖에도 크고 작은 각종 문제를 북한측과 협의해 시행에 옮기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그중 몇가지만 더 소개한다.점령지역 통제강화,적군 사기저하를 위해 노력,북한주민들의 봄파종 지원,피란민 지원대책,미군·남조선괴뢰가 일시점령중인 지역에 대한 정치선전공세강화,적의 후방에 침투할 특수부대창설 등등.하지만 이런 일들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수행할지에 대해서는 추후 재차 협의키로 했다고만 밝히고 있다. 하지만 1·4후퇴를 계기로 한껏 고조됐던 중국군,북한군진영의 축제분위기는 1월말을 고비로 눈에 띄게 수그러지기 시작했다.그리고는 곧이어 불안,공포,때에 따라선 엄청난 히스테리현상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관련문서들은 또한 중·소간에도 불협화징조가 커져가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스탈린은 계속해서 소련군의 직접개입을 피하려 했다.소련군사고문단,조종사를 비롯한 군병력 일부를 한국전에 파견하기는 했지만 매번 모택동,김일성 양자로부터 몇차례씩 간곡한 파견요청을 받은 후에야 마지 못해 이에 응했다. 스탈린은 또한 병력지원뿐 아니라 무기,탄약지원에도 모,김일성 두사람이 요청한 것보다 훨씬 못미치는 양을 지원해 주었는데 이는 한편으로는 소련의 형편 역시 크게 넉넉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휴전협상은 시간벌기 51년 1월28일자로 모택동은 스탈린앞으로 전문을 보내 제4차 공세작전을 펼 뜻을 밝히고 이에 대한 스탈린의 의중을 물었다.이 전문에서 모택동은 같은 날짜로 전선의 팽덕회장군앞으로 보낸 작전지시문을 동봉했다(전문번호 N16052.51년 1월29일 모택동이 스탈린앞으로 보낸 전문). 다음은 모택동이 팽덕회에게 보낸 전문의 주요내용.『서울과 재물포인근 지역으로 진격한 적군 2만∼3만명을 격퇴시키기 위해 제4차 공세작전준비에 즉각 착수할 것.대전­안동 북부지역을 점령할 것.재물포와 서울,그리고 한강이남지역을 확고히 장악한뒤 전선을 남하시킬 것.중국군,북한군 병력을 15∼30㎞북쪽으로 후퇴시킨뒤 임시휴전협상에 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음.적들은 우리병력이 북으로 물러나고 한강을 자기들이 장악한 뒤에 군사행동을 중지하고 싶어하기 때문임.4차 공세가 끝나면 적들은 한반도문제의 해결을 위한 평화협상을 제의할 것임.그렇게되면 이 협상은 중국,북조선에 유리하게 됨.이후 아군은 2∼3개월 휴식과 준비기간을 거쳐 결정적인 제5차 대공세를 감행할 것임』 어떤 경우에도 불리한 상황에서 휴전협상에 임하지 않는다는 것과 휴전협상은 추가 대공세를 펴기 위한 시간벌기로 이용할뿐이라는 점을 전선사령관에게 주지시키기 위한 작전지시문이었다.
  • 선거전 어록/말… 말… 말잔치

    ◎“이번선거 우유회사 모델 뽑는것 아니다”/“여당조직은 돈만큼 쓸수있는 공중전화”/“멍청도를 똑청도로·핫바지를 칼바지로” 선거가 말의 향연이라지만 「돈은 묶이고 입은 풀린」 이번 선거 유세전에서는 어느 때 보다 풍성한 말잔치가 펼쳐졌다. 오뉴월 뙤약볕에 자리를 지킨 청중들에게는 한줄기 소나기 같았을 후보 및 지원연사들의 걸쭉한 입담들을 정리해본다. ▷민자당◁ ▲서울시청을 대통령선거본부로 삼을 위험이 있는 인물(박찬종 후보를 지칭)에게 서울시장을 시험삼아 맡긴다면 서울시는 불과 몇년사이에 파산하고 말 것이다.(이춘구 대표·서울 도봉유세) ▲듣기좋은 노래도 한두번이다.흘러간 물은 돌이킬 수 없다.서산에 지는 해에 우리 운명을 맡길 수 없듯이 늙어지면 후배에게 자리를 물려주는 것이 당연하다.(김덕룡 사무총장·서울 잠실유세) ▲JP(김종필 자민련총재)는 일어나지 않아야 할 때 일어나고(5·16),동조하지 않아야 할 때 동조하고(3선개헌),추종하지 않아야 할 때 추종하고(유신),싸워야 할 때 싸우지 않고(5공),머물러야 할 때 머무르지 않고(민자당 탈당),퇴진해야 할 때 퇴진하지 않고 자민련을 만들었다.(임정규 부대변인·논평) ▲JP가 충청도민을 자신의 안주머니에 있는 조약돌 정도로 여겨 편리할 때 꺼내쓰려 해서는 안된다.(박중배 충남도지사후보·기자회견) ▲호남사람들은 김대중선생 한분을 위해 20∼30년 동안 헌신해 왔지만 세상에는 천리가 있다.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가을이 가면 겨울이 온다.이것은 인간이 몸부림치고 거부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김덕룡 사무총장·전남 나주유세) ▲정 민자당이 싫으면 자민련이나 민주당을 찍어라.그나마 아무일도 못하는 무소속보다는 일을 조금 더 할 수 있다.(정호용 대구시지부위원장·대구유세) ▲서울시장에 당선되면 선거일인 6월27일을 기념하는 「6·27전화」를 개설,시민의 소리를 직접 듣겠다.(정원식 서울시장후보·광진구유세) ▲이번 선거는 지역의 살림꾼을 뽑는 것이지 우유회사 모델(박찬종 후보를 지칭)을 뽑는 것이 아니다.(이세기 서울시지부위원장·송파구유세) ▲내 키는 1백63㎝로 중국대륙을 호령한 등소평보다 9㎝나 더 크다.고양이가 쥐만 잘잡으면 되는 것 처럼 도지사가 도정만 잘하면되지 키나 색깔이 무슨 소용이 있나.(전석홍 전남지사후보·광양유세) ▲JP가 충청도 충청도 하지만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겨우 꼬드바리(꼴찌)해 충청도 망신시킨 것 밖에 더 있나.이제 일선에서 물러나야 한다.(황명수 충남도지부위원장·충남 연기유세) ▲「대구정서 대구정서」하고 대구가 마치 딴나라인 것 같이 이야기하는 정치인들은 놀부처럼 제비다리를 부러뜨려 놓고 치료하려는 사람들이다.(강재섭 의원·대구유세) ▷민주당◁ ▲3당통합에 내가 따라갔으면 최소한 2인자는 했을 것이다.민자당 대표나 국무총리를 하고 있거나 지냈을지도 모른다.(이기택 대표·부산유세에서) ▲대통령은 세차례,노벨평화상 수상은 10여차례나 떨어져 세계 낙선대회에 나가면 1등은 내차지다.(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전남 하의도에서) ▲16년간에 걸친 망명·연금·감옥생활 등으로 정상적인 나이를 먹지 못해 내나이는 사실상 54세다.(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의정부 유세에서) ▲김영삼 대통령은 빈말이라도 「내가 대통령이 됐으니 다음에는 당신(DJ)이 할 차례」라고 말하는 것이 30년 정치동지로서 점잖은 행동이다.(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청량리역 앞 유세에서) ▲김영삼 대통령을 따라가지 않은 낙동강 오리알 두개중 하나인 김정길이가 또다른 오리알 노무현을 부산시장으로 부화시키기 위해 지원유세에 나섰다.(김정길 전최고위원·부산유세에서) ▲위험하고 잘난 척만 하는 무소속의 박찬종 후보는 「앙꼬 없는 찐빵」에 불과하다.(박지원 대변인) ▲여당조직이란 공중전화,함잡이 조직으로 돈을 넣은 만큼 통화할 수 있고 돈을 깐 만큼 걷는 조직이다.(박지원 대변인) ▷자민련◁ ▲나를 욕하는 사람들은 실향사민이 아니냐.고향이 없어 지지해 줄 사람이 없으니 자꾸 트집이다.성질고약한 말이 뒷발질하는 것으로 여기겠다.(김종필 총재·충남 금산유세) ▲가수 박미경의 노래 「이유같지 않은 이유」의 「이제 내 가슴에는 네가 설자리가 없다」처럼 김영삼대통령도 이제 국민의 가슴에 설자리가 없다.(박준규 최고고문·대구유세) ▲김대통령은 호랑이굴에 들어가 호랑이를 잡았다고 하는데 그럼 그 안에 있던 사람이 호랑이였나.(김동길 고문·춘천유세) ▲자민련후보를 압도적으로 당선시켜 「멍청도」를 「똑청도」로,「핫바지」를 「칼바지」로 만들자.(주병덕 충북도지사후보·청원유세) ▲원주시민들이 적극 밀어준다면 머리가 깨지도록 종을 쳐 보은했다는 설화속의 치악산까치처럼 시민들에게 보답하겠다.(최각규 강원도지사후보·원주유세) ▲무소속후보는 동네 청상과부와 같다.남정네들이 이쪽저쪽에서 당기고 집적대니 세파에 시달릴 수 밖에 없다.무정당후보는 혼자 정절을 지킬 수 없다.(구자춘 부총재·경북 경주 지원연설) ▷무소속◁ ▲물태우정권때는 대구에 비라도 많이 왔으나 김영삼 정권에서는 지난 겨울 0·3㎜밖에 오지않았다.(문희갑 대구시장후보·두류운동장유세) ▲6월27일 날씨가 좋아 젊은층이 모두 놀러가거나 장마로 비가 억수같이 와야 내가 낙선된다고 정당지도자란 사람들이 말한다.그렇게 보기 싫으면 아예 죽으라고 하지.(박찬종 서울시장후보·여의도유세) ▲나보고 경험이 없어 안된다고 그러는데,그러면 아내나 며느리 고를 때 애도 서너명 낳고 과부도 되어 본 경험이 있는 여자를 고르지 그러느냐.(김호길 원주시장후보·합동연설회)
  • 6·25격전지 칠곡 다부동지구/「구국용사 충혼비」 오늘 폐막

    ◎육균 50사단 낙동강방어선 일대 수색/무명용사 유골 31구 발굴,45년만에 안장 6·25 당시 최대격전지였던 경북 칠곡군 가산면 다부동 전적기념관 앞 광장에 무명용사의 넋을 기리는 「구국용사충혼비」가 24일 제막된다. 이 충혼비는 육군 50사단이 6·25 때 나라를 위해 장렬히 산화한 무명용사들의 유해를 45년만에 발굴,안장하고 그 넋을 기리기 위해 칠곡군의 협조를 받아 세웠다. 높이 4·4m의 충혼비에는 「여기 자유의 제단에 조국 위해 목숨 바친 영령을 모시노라.가신 임의 짧은 인생은 겨레와 함께 영원히 살아가리」라는 비문이 새겨졌다. 무명용사들의 유해는 육군 50사단이 지난해 9월26일부터 지난 4월7일까지 6개월동안 연 3천8백여명의 장병을 동원,낙동강방어선 격전지를 대상으로 6·25 당시 실종된 선배전우의 유골 및 유품찾기작업을 펴 찾아냈다. 발굴작업이 진행된 지역은 다부동지구를 비롯,경북 왜관·신녕·안강·기계·군위·영천지구 등 낙동강방어선 격전지 7개 지역이다. 장병들은 참전용사들의 증언과 자문,전사에 나오는 병력배치 등을 토대로 당시 격전지의 진지와 교통호를 수색해 유골 31구와 수류탄·탄피·박격포날개·철모 등 37종 3백89점의 각종 유품을 발굴했다. 50사단은 올 연말까지 낙동강방어선에서 유골 및 유품찾기작업을 계속할 계획이다.
  • “빈말이라도 나에게 대통령 권해야”/여 야 수뇌부 지원유세 현장

    ◎「JP의 강원 푸대접론」 누워 침뱉기­민자 이 대표/“여서 개발공약 남발” 한풀이식 연설­자민련 김 총재 여야 수뇌부는 투표일을 나흘 앞둔 23일 전국의 유세장을 찾아 막판 대세몰이를 위한 강행군을 계속했다. ▷민자당◁ ○…이춘구 대표는 이날 강원도 강릉과 동해시에서 영동·영서의 단합을 강조하며 혼전양상에 빠진 강원도지사 선거에서 민자당 후보를 지지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대표는 특히 자민련 최각규 후보의 출신지인 강릉유세에서 이른바 「영동정서」를 의식한듯 『압도적 지지를 당부한다』며 청중들에게 큰 절을 올려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대표는 자민련의 김종필 총재와 최각규 지사후보를 겨냥,『손바닥만도 못한 한반도의 15분의 1을 다시 영동·영서로 가르는 동서대립을 부추기고 있다』고 비난하고 『공화당 때부터 30여년동안 2인자요,경제부총리등 요직에 있던 사람들이 강원푸대접론을 얘기하는 것은 누워서 침뱉는 격』이라고 공격했다. ○…김덕룡 사무총장은 광주와 제주를 찾아 『능력있는 후보가 당선돼야 지역발전이이루어질 수 있다』는 논리를 펴며 지지를 호소했다. 김총장은 광주공원 유세에서 『이제 과거에 집착해서 특정정당과 특정인물에 무조건적 지지를 보내는 것은 지역발전에 도움이 되지않는다』고 강조하고 『특히 특정정당의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생각에 현대판 매관매직까지 성행하고 있는 것은 호남인 전체를 모욕하는 기만행위』라며 민주당을 비난했다. 김총장은 또 『이번 선거전에서 DJ(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와 JP(김종필 자민련총재)가 힘을 얻으면 지역분할을 바탕으로 반드시 내각제로 자신의 야욕을 관철하려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지역할거주의로부터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는 표를 한쪽으로 몰아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이기택 총재는 전날에 이어 이날도 경남의 울산·양산과 경북 포항등지를 돌며 막바지 득표전을 벌였다. 전날 자신의 지역구였던 부산 해운대 집회에 3천여명의 청중이 모인데 크게 고무받은 듯 이총재는 이날 『지난 14대 대통령선거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청중 수와 열기가 대단했다』고 자평하고 『부산·경남에서도 현정권의 실정에 대한 실망감이 크다는 것을 피부로 절감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은 이날 충주에 이어 서울의 도봉상고와 청량리역앞 광장,뚝섬경마장등 동북부 지역에서 지원유세를 갖고 세대교체 주장을 반박하는 등 여권을 강력히 비난했다. 김이사장은 유세에서 『세대교체는 국민이 결정할 문제』라며 김영삼 대통령을 겨냥한 뒤 『인위적인 세대교체 주장은 나와 JP(김종필 총재)를 정치권에서 나가지 말라는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김영삼 대통령은 30년 정치동지로서 빈말이라도 「내가 대통령이 됐으니 다음에는 당신이 대통령 할 차례」라고 말해야 한다』며 은연중 대권 재도전 의사를 내비친뒤 『정략적인 차원에서의 세대교체 주장은 5·16 군사정권의 독재적 발상』이라고 반박했다. ▷자민련◁ ○…김종필 총재는 이날 최각규 후보의 지지기반인 강원도 영동지방의 속초와 강릉·삼척을 찾아 막판 이탈표를 막기 위한 지원유세를 펼쳤다. 김총재는 『김대통령은 입만 열면 공명선거를 이야기하는데 지금 돈 쓰는 당이 어떤 당이냐』며 민자당을 겨냥한뒤 『민자당은 강원도에서도 도저히 실현불가능한 지역개발 공약들을 남발하고 있다』고 민자당을 향한 「한풀이」식 연설을 했다.
  • 중국군의 대공세(6·25 내막/모스크바 새증언:16)

    ◎중,핵전초기 소총 실탄 모자라 고전/36개 사단에 6개사단 분량뿐… 모,소에 지원 요청/주소 중대사­그로미코 「38선 재돌파 여부」도 논의 중국군 파병문제를 논의키 위해 모스크바로 극비 파견된 주은래는 10월15일 모택동 앞으로 다음과 같이 짧막한 전문을 보내왔다.『필리포트 동지는 조선에 군사적 개입을 결정한 중국공산당 중앙위 정치국 결정에 반대하지 않았다』(10월18일.노신이 고강의 말을 인용해 스탈린에게 보고한 전문) 이 전문을 보낸 이후 중국지도부 내에서는 한국전 참전 여부를 둘러싸고 논란이 있었다.당시 러시아인사들과 친분이 두텁던 고강이 이같은 사실을 목단 주재 소련총영사관 직원들에게 알렸다.중공당정치국 내에서 이같은 논란이 있었다는 사실을 전해들은 목단의 소련총영사관 직원인 레도프스키,바즈노프장군은 이를 즉각 본부에 보고했다.다음은 10월25일 레도프스키 총영사가 모스크바에 보고한 전문. ○“즉각 조선파병” 주장 『조선전쟁 참전과 관련한 주은래의 전문보고가 있은 뒤 중국의 참전 여부를 놓고 중국지도부내에서 열띤 토론이 있었다고 함.고강은 팽덕회에게 즉각 조선파병을 실행할 것을 모택동에게 함께 청하자고 주장했음.두사람은 당장 중국군을 파병치 않으면 미군이 한반도 전역을 차지해 중국 뿐아니라 국제적으로 매우 위험한 상황이 초래된다고 말했다고 함.두사람은 첫째로 미군이 조선전역을 차지한 뒤는 중국군 파병명분이 없어진다는 점과 둘째로 미군이 국민당을 무장시켜 조선·인도차이나를 점령하고 나아가 중국까지 공격할 것이라며 즉각 파병을 주장했음. 다른 중공당 지도자들도 고강·팽덕회 두사람의 입장에 동조해 당정치국은 조선파병을 결정했다고 함』 한편 노신 대사가 입수해 보고한 이날의 회의 분위기는 파병을 둘러싼 찬반논쟁이 보다 뜨거웠음을 보여준다.『10월24일 조선파병 문제를 논의키 위해 민주 제정당 대표와 정부대표가 참석한 특별회의가 열렸고 주은래가 공식보고를 했다.참석자 다수는 정부의 입장에 동조했다.하지만 일부는 미국이 강한 반면 중국은 약하기 때문에 미국과 싸우면 중국이 패할 것이라고 우려했다.어떤 참석자는 미국이 조선,나아가 만주까지 점령하더라도 중국은 이를 받아들이자고 주장했다.그 경우 소련과 미국이 전쟁을 할 것이기 때문에 중국은 직접 개입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어떤 참석자들은 왜 소련이 중국과 함께 조선파병을 않는가고 따졌다.회의 끝 무렵에 모택동이 발언을 했다.그는 조선은 중국의 관문이며 일본도 과거에 조선을 점령,이를 발판으로 삼아 중국을 공격했다고 말했다.따라서 중국정부는 미국이 조선을 점령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중국에 심각한 위협이 되기 때문이라고 모택동은 말했다.모는 또 소련은 중국과 매우 우호적이고 진실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직접 병력을 조선에 보낼 필요가 없으며 1950년 2월1일 체결한 중·소조약에 의거한 의무를 다할 것이라고 설명했다.최종결정은 이렇게 내려졌고 이어서 중국군이 한국전에 참전했다. 노신 대사는 10월27일 인민해방군이 조선에서 참가한 최초전투에서 남조선군 1개 대대를 궤멸시키고 수개 산봉우리를 점령했다고 보고했다.평양의 슈티코프 대사도 같은날 같은 내용의중국군의 최초전투 참가를 보고했다. 중국군의 참전으로 스탈린과 김일성은 크게 고무됐다.중국군이 전선에서 계속 승리를 거두면서 스탈린은 매우 의기양양해 했다. ○스탈린,중 참전에 고무 시일이 지나면서 중국군은 무기,특히 탄약부족으로 다소의 어려움을 겪었다.11월7일 모택동은 스탈린 앞으로 전문을 보내 소총·자동소총 실탄의 긴급지원을 요청했다.(소련군총참모부 제2총국.전문번호 N26 637) 『조선에 파견된 우리 군은 주로 적에게서 노획한 무기를 갖고 싸우고 있음.따라서 무기의 종류와 구경이 각양각색이라 탄약 생산에 큰 어려움이 있음.특히 소총과 자동소총의 탄약 공급이 문제임.중국의 군수공장은 필요한 탄약의 생산능력이 매우 낮음.…중략…현재 중국의용군은 36개 사단으로 편성된 2개 병단임.그러나 확보된 탄약은 6개 사단이 쓸 분량밖에 없음.51년1월∼2월까지 36개 사단이 쓸 무기를 공급해주기 바람』 이와 함께 장황하게 쓴 필요 무기목록이 첨부됐다. 12월1일 스탈린은 모택동 앞으로 격려전문을 보냈다.이 전문에서 그는 중국군의 선전을 치하하고 『현대장비를 갖춘 미군과 싸우는 기회를 통해 중국군도 현대화된 강한 군대로 거듭 태어날 귀중한 경험을 쌓을 것』이라는 등 장황한 칭찬을 늘어놓았다.(전문번호 N97 68.소련군총참모부 제2총국) 50년 12월4일 모스크바주재 중국대사 왕자향이 그로미코 외무차관을 면담했다.중국정부의 입장을 대신해 왕대사는 한국전 상황을 전하면서 계속되는 패배로 미국·영국 진영에 불협화음이 들리고 있고 특히 미정부의 입장이 매우 난처한 지경에 빠져들고 있다고 말했다.왕대사가 그로미코를 찾은 목적은 연일 승리의 행진을 계속하는 중국군이 38도선을 넘어 계속 남으로 진격을 계속할 것인지 여부를 의논키 위함이었다.그로미코가 기록해 대통령문서소에 보관돼 있는 이날 대화내용 일부를 소개한다.(문서번호 N517.그로미코와 왕자향대사의 대화 비망록) 『나(그로미코)는 외국 언론매체들에도 영국과 미국간 불화에 관한 보도들이 있다는 그(왕자향)의 분석에 동의했음.그리고 최근 들어 맥아더가 취하는 행동과 트루먼 대통령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높아가고 있다는 점을 나는 지적했음.본인은 또 미국은 한반도에서 이같은 불리한 상황 전개로 인해 매우 당황해하고 있다고 말했음.왕대사는 이같은 상황에서 미국이 소·중과 한반도문제와 관련,협상에 임할 것으로 보는지 나의 견해를 물었음.나는 아직 미국측으로부터 한국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어떤 협상 제의도 없었다고 답했음.미국의 본심을 알 수는 없다고 본인은 말했음. 왕대사는 철저히 비공식적인 사견임을 전제,중국군이 38도선을 넘어 계속 전진하는 게 과연 정치적으로 바람직할 것으로 생각하는지를 물었음.이에 대해 본인 역시 사견임을 전제,중국은 현재의 유리한 상황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고 답했음.이에 대해 왕대사는 자신도 같은 생각이라고 말했음』 개전 초기 때처럼 38도선을 돌파해 남한 전역을 점령하자는데 두 사람의 의견이 서로 일치한 것이다. ○유리한 상황활동 공감 두사람의 대화는 다음과 같이 계속된다.『왕대사는 본인(그로미코)에게 예를들어 미국이 장개석군에 대한 지원을 강화한다든지 아니면 장개석군과 함께 남조선에 대한 상륙작전을 감행할 가능성에 대해 본인의 입장을 물었음.본인은 이에 대해 그와 관련한 정보가 없기 때문에 제대로 답하기 곤란하다고 말했음.이에 대해 왕대사는 전선에서 보내온 병사들의 편지내용을 인용해 미군병사들은 일본군보다도 더 형편없는 군대라고 혹평했음』 12월7일 스탈린은 주은래 앞으로 전문을 보내 향후 휴전협상과 관련 중국이 취할 입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문했다.(전문번호 N23343) 『휴전과 관련 귀하가 내건 조건들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함.이 전제조건들이 충족되기 전에 군사행동이 중단돼서는 안된다고 우리는 믿고 있음.동시에 우리는 실질적으로 미국의 조종을 받고 있는 3개국(영국·스웨덴·인도를 일컬음) 대표 앞에서 우리의 카드를 너무 솔직하게 펴보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함.서울이 해방되기 전에 중국이 카드를 먼저 내보여서는 안됨.더구나 미국이 중국이 내건 이 조건들을 유엔의 결정을 이끌어내는데 이용할 수도 있음.미국에게 이런 기회를 제공해서는 안됨.따라서 현상황에서 우리는 다음의 2가지 카드만 내보여야 함. (1)중국정부는 영국·스웨덴·인도대표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의 군사행동 종식을 환영함.중국은 남조선과 중국이 관련된 군사행동을 가능한한 빨리 끝내도록 최선을 다하겠음. (2)따라서 우리는 휴전에 관한 유엔과 미국의 입장을 알고 싶음』 ○“서울 점령선 협상말라” 스탈린의 의도는 중국군이 서울을 점령하기 전에 섣불리 휴전협상에 임하지 말라는 당부였다. 새해를 맏은 51년 1월4일 모택동은 팽덕회가 1월3일자로 전선에서 보내온 전문사본 1부를 스탈린 앞으로 보냈다.중국군의 대공세와 국군의 후퇴를 담은 전선상황 보고였다.(전문번호 N15120.모택동이 스탈린에게 보낸 전문) 『우리 군은 동부전선의 양강에서 서부전선의 문천에 걸쳐 공세를 계속해 적의 수비선을 돌파했음.저항은 강하지 않음.적은 신속히 남으로 후퇴해 큰 손실은 입지 않았음.51년 1월3일 낮 12시까지 우리는 포로 3천명,1백50대의 차량과 탱크,포 1백문 이상을 노획했음.…중략…이같은 공세작전으로 서울·제물포·수원·홍천 등을 재점령한 다음 아군은 일단 공세를 멈추고 휴식을 취해 전력을 재정비,강화하겠음』 중국군의 의도는 휴전이 아니라 38도선 이남으로 공세를 계속하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새로 밝혀진 사실/「중국 참전」 주도인물은 고강·팽덕회/모,전선상황 스탈린에게 직접 통보 중국군의 참전에 대한 내부의 논의와 관련하여 누가 과연 참전을 주도하였느냐는 문제는 오랫동안 논란거리였다.이번 자료는 이에 대해 고강과 팽덕회가 그 중심 인물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이는 앞으로 중국측의 자료와 비교 검토하여 더 상세한 규명이 필요한 부분이다.또한 이번 자료에는 소련은 왜 중국과 함께 파병하지 않느냐는 불만이 중국내에서 상당했었으며,이를 소련이 이미 알고 있음도 공개되어 있다. 이번 회의 내용에서 또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중국이 참전을 결정한 뒤에도 스탈린이 무기를 별로 제공해주지 않았다는 점이다.11월7일의 모택동 전문은 이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그들은 36개사단병력에 고작 6개사단분량의 무기,즉 필요량의 6분의 1밖에 가지고 있지 못했던 것이다.이는 소련이 실제의 약속과는 달리 적어도 초전에는 무기를 거의 대주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준다. 또한 중국의 주소대사가 중국군의 38선 월경을 문의하고 있음도 처음으로 밝혀졌다.이는 중국군의 38선 월경이 소련과의 합의에 의한 것이라는 점을 보여준다.그리고 당시 일부에서 운위되고 있던 휴전논의에 대해서조차 스탈린은 직접 개입하여 군사적 우위를 확보한 뒤에 이에 응할 것을 주은래에게 권고하고 있음도 밝혀졌다.이러한 권고와 함께 모택동이 전선의 상황을 직접 스탈린에게 통보하는 데서 우리는 스탈린이 이 전쟁의 전개에 얼마나 깊숙이 직접 들어와 있었는지를 확인하게 된다.이번 회를 통해볼 때 전쟁은 스탈린과 모택동이 공동으로 치르고 있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박명림
  • 우체국·농수축협∼은행 내일부터 송금 서비스

    ◎PC·팩스이용 수표도 조회/우체국 현금자동지급기 8원 가동 24일부터 우체국과 농·수·축협의 단위조합에서도 다른 은행으로 송금(타행환)할 수 있게 된다.현금자동지급기(CD)와,전화·PC·팩스 등을 이용한 수표조회 등의 자동응답서비스(ARS)도 이용할 수 있다. 금융결제원은 22일 전국의 우체국과 농·수·축협의 단위조합을 금융전산망에 접속,24일부터 이같은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농·수·축협이나 여타 은행 점포들이 들어가지 않은 읍·면지역 주민들도 전자결제 시스템을 통한 각종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된다.현재 특수은행인 농·수·축협은 타행환·현금자동지급기·자동응답서비스 등의 이용이 가능하지만 우체국과 단위 조합은 금융전산망과의 접속이 되지 않아 이용이 불가능하다. 자동응답서비스란 거래사실·계좌잔액·사고수표 등의 조회,각종 통지,계좌이체 등을 점포에 나가지 않아도 전화·팩스·PC로 확인해주는 제도이다.우체국의 현금자동지급기 서비스는 오는 8월부터 실시될 예정이다.
  • 서울 「빅3」 유세 전략(“열전” 6·27선거/D­4일)

    ◎자녀교육·여성취업 확대 집중 제지­정원식/DJ연설 빼 박 후보 반사이익 차단­조순/출퇴근시간 「게릴라식 유세전」 주력­박찬종 민자당의 정원식,민주당의 조순,무소속의 박찬종 후보 등 서울시장 후보 가운데 「빅3」는 22일 정당연설회와 길거리 유세,시장방문 등으로 막바지 세몰이를 나섰다.세후보는 이번 주말의 선거운동이 부동표 향방을 결정지을 것으로 보고 전략수립에 부심하고 있다. ○세대교체 강력 촉구 ▷정원식후보◁ ○…이날 노원·송파·강동 등 세 곳에서 정당연설회를 가진데 이어 장애인협회 행사,가락동 농수산물시장,택시·버스·화물운송사업조합 방문 등으로 표다지기를 계속했다. 정후보는 갈수록 연설회에 참석하는 유권자들이 급증하는데 고무된 듯 자신있게 공약을 제시하며 목청을 높였다.특히 참석자의 대부분이 주부층임을 감안,주부층의 관심사항인 자녀교육 문제와 청소년대책,여성인력 취업확대 등의 공약을 집중적으로 제시했다. 정후보는 이날 노원구 유세에서 『지난 대선 때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으면서 김영삼 대통령은 나에게 빚을 졌다』고 말하고 『서울시장에 당선되면 김대통령에게 서울시의 부채를 인수하여 빚을 갚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또 송파구 유세에서는 연설하기 직전 로고송인 「마지막 승부」의 노래가 울려퍼지자 연단에 선 채 음악에 맞춰 손뼉을 치고 어깨를 들썩이며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이날 송파와 강동지역 유세에서 김덕룡 사무총장과 노원유세에서 백남치 의원은 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을 『나이가 들어 총명이 흐려진 것인지,권력에 눈이 멀어 노추를 보이는 것인지 안타깝기 짝이 없다』고 비난하고 『꽃노래도 한두번이고,흘러간 물은 물래방아를 돌릴 수 없다』며 세대교체를 강력하게 촉구했다. ○…정후보 진영은 이번 선거전의 승패는 30% 정도로 추정되는 부동표의 향방에 달린 것으로 보고 24일 서울 전역에 당원 1백만명을 대거 동원,선거전단을 배포할 계획이다. 정후보 진영은 그러나 당초 25일 장충단공원에서 서울시지부 주관으로 10만명 정도를 동원,막판 기세를 올리기 위해 계획했던 대규모 군중집회는 열지 않기로 했다. 정후보는 대규모 집회가 지금까지 자신이 주장해 온 지역의 살림꾼을 뽑는 생활자치와 무관한 정치성 집회가 될 수 밖에 없고 시민을 위하겠다면서 도리어 시민들에게 불편을 줄 수 있다며 재고를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후보 진영은 대신권역별 정당연설회와 현장방문 등 지자제의 정신을 살리는 선거운동 방식을 끝까지 고수,정치적 공방에 치중한 다른 후보와의 차별화를 꾀하기로 했다. ○경제시장 부각시켜 ▷조순후보◁ ○…22일 강남,서초,성동,광진구를 끝으로 서울의 광역권 유세를 모두 마쳤다.23일에는 TV토론회에 참석하고 주말에는 젊은 층과 행락인파를 겨냥해 시내 중심가와 부도심,철도역사앞,시민공원 등에서 정대철·이부영·홍사덕·이철·이해찬 의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거리유세를 가질 예정이다. 24일에는 하오 2시부터 청량리역과 신촌 그레이스백화점앞에서 유세를 한 뒤 국립보훈병원을 방문한다.25일에는 아침부터 도봉산과 용산가족공원,한강시민공원을 차례로 방문,시민들의 지지를 호소한 뒤 하오 5시에는 서울역앞에서 대규모 정당연설회를 갖는다. ○…조후보는 유세에서 「경제시장」으로서의 차별성을 부각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면서 이번 선거가 단순한 지방선거가 아닌 현정권에 대한 중간평가임을 강조,야당표 확산에 진력한다는 전략이다.여야 맞대결로 「판」을 짜,무소속의 박후보는 「끌어내리고」 민자당 정후보의 막판 약진을 「차단하는」 양공법을 구사한다는 것이다.전력시비와 관련,전력 자체보다는 전력을 숨기거나 거짓말하는 후보의 비도덕성을 꼬집는 「하하실실」전법을 구사할 계획이다. 따라서 주타겟도 「추락하는」 박찬종후보에서 「뜨는」 정원식후보로 전환하고 「야권대표」임을 강조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시민과 함께 하는」 유세를 한강시민공원과 서울역앞 등에서 잇따라 갖고 막판 표다지기에 주력할 생각이다.특히 일요일인 25일 서울역앞 광장에서는 25개 구청장후보와 광역의원이 대거 참여하는 「패키지 유세」를 벌여 민주당의 「얼굴 알리기」와 「막판 세몰이」로 승세를 굳힌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반호남표를 의식,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의 연설은 빼고 박찬종후 보나 정원식 후보의 인신공격에 대해서는 가급적 맞대결은 피하되 「치고 빠지는」 발빠른 행마로 응수할 예정이다.이는 「양금」 대결로 비쳐지는 데 따른 박후보의 반사이익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 ○“전력 운운 중상모략” ▷박찬종후보◁ ○…강동구 풍납중학교 사거리와 삼성동 무역센터 분수대광장,압구정동 갤러리아백화점앞,모래내 시장,신촌그레이스백화점 앞 등에서 유세를 가졌다.박후보는 이날 유세에서 유신지지등의 전력시비와 관련,『중상과 모략』이라고 반박하고 『목적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비이성적 작태를 계속한다면 하늘이 외면할 것』이라고 민자·민주당 두 후보를 싸잡아 공격했다.박후보는 특히 조후보를 겨냥,『공정한 선거를 다짐해 놓고는 다른 사람을 내세워 나에 대한 인신공격과 음해를 퍼붓고 있다』고 말하고 『이같은 이중적 태도를 시민들이 심판할 것』이라고 주장했다.박후보는 이어 『깨끗한 정치풍토를 마련하기 위해 세대교체와 시대교체가 이뤄져야 한다』고 「시대교체론」을 제시했다.○…박후보측은 김대중 이사장의 등장으로 정당대결구도가 형성된 속에서도 다른 후보를 %면에서 두자리수로 앞서고 있다고 주장한다.따라서 막판유세전략도 이같은 우위를 그대로 유지,당선으로 연결시키는 쪽으로 짜놓고 있다. 남은 문제는 20·30대 젊은 층의 투표율이다.박후보진영은 20대의 60%,30대의 40% 지지를 각각 목표로 세워두고 있다.전체유권자의 32%와 28%를 각각 차지하고 있는 이들이 평균 65%이상의 투표율만 유지해 준다면 젊은 층에서만 1백50만표 이상을 얻어 당선권인 2백22만표를 무난히 달성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따라서 남은 유세를 통해 유권자의 투표참여를 적극 홍보한다는 방침이다.또 가두유세는 대규모 집회대신 주로 출·퇴근 시간을 이용,지하철역과 터미널,대형건물,쇼핑센터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을 찾아다니는 「게릴라식 유세전」을 편다는 생각이다.
  • 광역표밭 판세(“열전” 6·27선거/D­4일)

    ◎충북/2강 1중… 막판 「JP바람」이 변수 민자당 김덕영 후보와 자민련 주병덕 후보,민주당 이용희 후보가 3파전을 벌이고 있는 혼전지역이다.선거전 초반 민자당과 자민련이 2강,민주당이 1중을 형성하고 있던 데 비하면 이후보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충북은 다른 어느 지역보다 부동층이 두텁다.주후보진영은 부동층의 상당수가 JP(김종필 자민련총재)에 정서적 연대감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이 점에 대해서는 김·이후보진영도 어느 정도 동감한다.따라서 선거전 막판 「JP바람」의 강도가 이번 선거의 결정적 변수가 된다는 것이 현지의 분위기다. 김후보는 초반부터 지켜온 우세가 상당히 잠식당하기는 했지만 투표당일까지 근소한 격차를 지켜나갈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물론 경쟁상대는 주후보다.따라서 주후보에 대한 대응논리를 세우는 데 힘을 쏟는다.무엇보다 야당이 당선되면 재정자립도가 30%선밖에 안되는 상황에서 가뜩이나 낙후한 도의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주장을 편다.또 상대적으로 경찰경력에 치우친 주후보에 비해 도지사에걸맞는 행정경험을 쌓았다는 점을 강조해 공감을 얻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후보는 민주당조직과 자신이 그동안 닦아놓은 사조직을 활용한 득표전략이 기대이상의 성과를 거둔데다 20∼30대의 젊은층과 서민층의 지지로 선두대열에 합류했다고 분석한다.또 이후보는 『나를 찍지 않아도 좋으니 민자당만큼은 찍지 말라』는 강한 야성이 득표에 도움을 주고 있다고 판단한다. 주후보는 신민당과의 합당으로 신민당 출신 인사들이 상당히 도움을 주고 있다고 본다.최대의 승부처인 청주에서 김현수 전의원이 시장선거에 나서 세몰이를 하고 있고 이후보의 지지기반인 보은·옥천에도 어준선 전의원이 포진해 이후보의 민주당표를 잠식하고 있다는 자체분석이다. 여기에 투표 바로 전날인 오는 26일 김총재가 청주에서 대규모 지원유세를 가짐으로써 막판대세를 가름한다는 계획이다. 이밖에 윤석조·양성연·조남성 후보가 각각 자신의 지지기반을 중심으로 활발한 득표전을 벌이고 있으나 4등싸움이라는 것이 현지의 평가다. ◎강원/민자­자민련 팽팽한 줄다리기 양상 민자당의 이상용 후보와 자민련의 최각규 후보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다.최근까지 각종 여론조사마다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처음 선거전에 뛰어들 때만 해도 낙승을 장담한 이후보로서는 갈수록 어려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결정적인 이유는 민주당의 이봉모 후보가 후보등록 직전 후보직사퇴와 함께 같은 영동 출신인 자민련 최후보를 지지한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양분되어야 할 영동지역표가 최후보쪽으로 대거 쏠리는 결과를 빚게 된 것이다. 최후보측은 여기에다 경제부총리와 농수산·상공부장관등을 지낸 화려한 공직경력에 힘입어 이미 이상용 후보를 추월했다고 환한 표정이다.반면 민자당측은 최후보의 지지율이 급상승한 것은 인정하면서도 이제는 한계에 이르렀고 아직도 3∼4%가량 이기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1백54만명인 강원도 인구를 태백산맥을 기준으로 갈라보면 영동·영서는 각각 75만명과 79만명으로 집계된다.그러나 인구 16만명의 영월·평창·정선등 세곳은 영서쪽에 속하면서도 중립지대적 성격을 띠고 있어 이번 선거의 변수로 꼽힌다. 그러나 최대의 변수는 역시 인구 23만명인 원주라는데 두 후보측은 이견이 없다.강원도에서는 독특하게 25%안팎의 친야고정표를 지켜온 원주는 교통의 요지이면서도 「춘천권」에 많은 것을 양보해야만 했다는 「불만」을 은연중 내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최후보는 이 점을 활용,원주에 마련한 선거사무실을 중심으로 「50만인구의 거점도시육성」등 공약과 「정당보다 인물」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워 원주를 집중공략하고 있다. 민자당도 기초단체장 공천후유증 등으로 조직분규를 보이던 원주권에 이번주초 특별감사반을 파견한 데 이어 이춘구 대표가 직접 지원유세에 나서는등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다. 이후보는 특히 동서고속전철건설,영동고속도로 4차선 조기확장,중앙고속도로개통등 동서를 아우르는 지역개발공약을 통해 지역대결구도를 타파하고 「중앙과의 조화론」을 설파해가면 충분히 승리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 무르익는 중국군 참전(6·25내막 모스크바 새 증언:15)

    ◎“중국 파병 결정” 주북경 소대사 본국에 급전/모스크바 잇단 요청에 중공당 중앙위 태도 바꿔/스탈린,「북조선정권 북한철수」 지시 황급히 취소 중국내부에서 참전논의가 무르익을 무렵 스탈린도 나름대로 북조선군에 대한 지원확대방안에 대해 고심하고 있었다.이런 가운데 50년9월30일금일성이 소련군의 직접출동을 간곡히 요청한다는 전문보고가 평양으로부터 있었고 이어 10월1일스탈린은 모택동 앞으로 중국군 5∼6개 사단을 파병해줄 것을 정식으로 요청했다. 스탈린은 필리포프라는 가명으로 로신대사에게 이 전문을 보내며 첫머리에 「모택동과 주은래에게 즉각 전달하라」는 별도지시문을 덧붙였다(국가문서소 보관.전문번호 N4581). ○5∼6개사단 파병 촉구 『본인은 지금 모스크바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휴가중인 관계로 조선사태에 관해 계속 보고받지 못했음.(편집자주=스탈린은 당시 흑해연안 소치에서 유가중) 하지만 오늘 모스크바로부터 받은 정보를 토대로 판단하건데 조선동지들이 처한 상황이 심각함을 알 수 있음.우리는 지난 9월16일북조선동지들에게 미군의 인천상륙작전이 심각한 사태이며 북조선군 제1,제2병단을 북쪽의 후방으로부터 고립시키기 위한 작전이라고 경고했음.그래서 남쪽에서 최소한 4개 사단을 즉각 철수시켜 서울 북동쪽에 전선을 형성할 것과 이후 남쪽에 있는 주병력을 점차 북으로 이동시키라고 요구했음.그렇게 38도선을 확고히 하라는 뜻이었음.그러나 제1,제2병단은 병력을 북으로 후퇴시키라는 김일성의 명령을 이행치 않았음.이로 인해 이들은 미군에 의해 고립,포위됐음.북조선동지들은 서울지역에 병력이 없어 저항을 못하고 38도선 방향은 사실상 무방비상태임. 만약 이 시점에 중국동지들이 북조선에 대한 지원확대를 고려중이라면 지체치 말고 최소한 5∼6개 사단을 38도선으로 이동시켜 중국군의 엄호하에 북조선군 병력이 38도선 이북으로 빠지도록 도와주기 바람.중국군은 물론 중국사령관이 지휘하되 의용군으로 위장하기 바람.본인은 조선동지들에게 이같은 사실을 알리지 않을 방침임.하지만 그들도 이 사실을 알면 분명히 기뻐할 것으로 믿음. 답을 기다리며. 필리포프』 이틀 뒤인 10월3일 로신대사는 이 전문에 대한 모택동의 회신과 이와 관련한 자신의 견해를 스탈린에게 보고했다(전문번호 N25199.총참모부 제2총국). 『처음에 우리는 적이 38도선을 넘어 북으로 진격하는 즉시 수개 의용군사단을 북조선에 투입할 계획이었음.그러나 상황을 면밀히 검토한 결과 그럴 경우 매우 심각한 부작용이 따를 것으로 생각함.첫째 수개 사단으로는 한국문제를 풀 수 없음(우리 병력의 장비는 매우 취약해 미군과 싸워 승리할 수 있을지 의문임).둘째 미국과 중국간 공개충돌이 야기될 것임.그러면 소련 역시 전쟁에 개입하게 돼 문제가 매우 커짐. 중국공산당의 많은 동지가 매우 신중한 고려가 필요하다는 의견임.물론 우리가 병력을 파견하지 않을 경우 북조선동지들로서는 심각한 일임.하지만 우리가 수개 사단을 보내고서도 적에게 쫓기고 그뿐 아니라 미·중간 공개충돌까지 야기한다면 평화적 해결을 위한 우리의 계획 전체가 무산되는 것임.조선국민 다수가 불행을 겪게 됨. 따라서 지금은 병력파견보다 전력을 키우며 보다 적합한 시기를 기다리는 편이 더 좋음.조선으로서는 일단 패배를 하고 있으니 전술을 바꾸어 게릴라전을 펴는 게 바람직함.우리는 현재 당중앙위 전체회의를 소집중임.파병문제에 대한 최종결정은 아직 내려지지 않았음.동지께서 원한다면 주은래와 임표를 비행기편으로 동지의 휴양지로 보내 이 문제를 협의토록 하겠음. 회신을 기다리며.모택동』 로신대사는 모택동의 서신 뒤에 다음과 같이 자신의 견해를 덧붙였다. 『(1)모택동의 답신내용은 조선문제에 있어 중국지도부가 초기의 입장을 바꾼 것을 뜻함.지금까지 모택동이 유딘·코토프·코노프장군에게 말한 내용,그리고 유소기가 본인에게 말한 내용에서는 중국군을 파병할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이었음.(2)중국정부는 5개 사단이 아니라 그 이상의 전투사단을 파견할 능력이 있음.물론 그 경우 대전차무기,대포류 등 전투력을 어느 정도 보강시킬 필요는 있음.중국이 입장을 바꾼 이유는 분명치 않음.아마도 국제정세,남조선내 전황악화등이 작용했을 것으로 생각됨.영·미가 네루를 통해 중국측에다재난을 막기 위해 인내심과 자제력을 발휘토록 요청한 것도 한 요인으로 생각됨.로신』 ○모“전력증간 긴요” 거부 이와 같이 스탈린의 당초 희망은 중국군이 38선까지 내려와 인민군이 38도선 이북으로 철수하는 것을 돕고 전선을 38도선으로 옮겨 이를 지키자는 전략이었다.그런데 모택동이 갑자기 마음을 바꿔 병력파견을 거부하고 나선 것이다. 스탈린은 이 때문에 병력파병을 요청한 김일성의 9월28일자전문에 대해 열흘이 다 되도록 답을 하지 못했다.10월8일스탈린은 김일성에게 다음과 같이 해명성 전문을 보냈다(대통령문서보관소.스탈린이 소련대사를 통해 김일성에게 보낸 전문). 『귀하의 요청에 답신이 늦어진 것은 이 문제를 놓고 소련·중국간 협의가 계속됐기 때문임.10월1일 본인은 모택동에게 5∼6개 사단을 즉시 보내달라고 요청했음.모택동은 여러 이유를 달아 이 부탁을 거절했음.본인은 다음 점을 들어 중국군 파병을 거듭 요청했음.(1)미국은 한반도에서 대규모전쟁을 치를 준비가 안돼 있음.(2)일본은 아직 군사력 복구가 안돼 미국에 군사원조를 할 여력이 없음.(3)이런 점 때문에 미국은 한반도문제에 관한 한 소련의 지원을 받는 중국에게 양보할 수밖에 없음.(4)같은 이유로 미국은 대만을 포기해야 될 뿐아니라 일본제국주의를 부활시켜 이를 자신들의 극동군사교두보화하겠다는 계획을 버려야 함. 중국은 수동적으로 기다려서는 이같은 양보를 다 얻어낼 수 없음.심각한 투쟁과 자신들의 힘을 강렬하게 과시할 필요가 있음.그리고 미국은 비록 대규모전쟁을 수행할 준비가 안돼 있다고 하나 자신들의 체면유지를 위해서 전쟁에 임할지 모름.물론 이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음.중국은 소련과 상호원조조약으로 연결돼 있고 미·영보다 우리가 더 강함.만약 전쟁이 불가피하다면 수년 뒤가 아니라 지금 하는 게 유리함.몇년 뒤 일본의 군국주의가 재건돼 미국의 동맹역할을 할 것임.그리고 미·일이 이승만정권의 도움으로 대륙으로 진출할 군사적 도약대를 마련할 것임』 ○수동적 입장 신랄 반박 스탈린은 이같이 모택동의 수동적인 입장을 김일성에게 매우 신랄히 반박했다.그러나 스탈린은 이 서신에서 모택동이 9월7일자서신을 통해 『6개 사단이 아니라 9개 사단을 파병하되 파병시기는 지금이 아니라 중국대표단을 모스크바에 보내 이 문제를 충분히 협의한 뒤 결정하겠다』고 했음을 상기시켰다. 10월12일 스탈린은 모택동이 또다시 파병을 거부했음을 김일성에게 알리고 조선영토에서 철수,가능한 한 신속히 북으로 이동할 것을 지시했다.그런데 바로 이튿날 중국으로부터 새로운 전문이 모스크바에 날아들었다(전문번호 N25629.로신이 스탈린 앞으로 보낸 전문.50년 10월13일). 『중공당 중앙위가 조선문제를 재검토,중국군의 불충분한 장비에도 불구하고 조선동지들에게 군사지원을 확대키로 결정했다고 모택동이 본대사에게 말했음.모택동은 말하기를 「우리의 지도적 동지들은 만약 미군이 중국국경까지 진출할 경우 조선은 우리에게 심각한 위협지대가 될 뿐아니라 동북아시아는 계속 심각한 위협하에 놓이게 된다고 생각한다」고 했음. 이전에 망설인 것은 국제정세에 대해 분명한 판단이 안 섰고 또한 소련으로부터 공군지원여부에 대한 의문 때문이었다고 함.모택동은 이제 이런 의문들이 풀렸기 때문에 병력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음. 1차로 9개 사단을 보내고 아울러 2차파병을 신속히 준비하겠다고 했음.모택동은 자기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공중지원이라고 했음.늦어도 2개월이내에 공군지원부대가 도착하기 바란다고 했음.모택동은 아울러 무기지원과 관련,이를 현시점에 현금으로 결제할 수는 없고 이를 차관형식으로 제공해줄 것을 요청했음.결론적으로 모택동은 중국공산당 중앙위의 지도적 동지들은 어려운 투쟁을 벌이는 조선동지들을 도와야 한다고 믿으며 이와 관련,주은래가 필리포프동지와 다시 협의해야 한다고 말했음.로신』 ○중 참전·북 철수 갈림길 스탈린은 이 전문을 받은 즉시 김일성에게 급전을 띄워 북조선정권의 완전철수를 지시한 10월12일자 전문을 황급히 취소했다.『본인은 방금 모택동으로부터 중국공산당 중앙위가 북조선에 대한 추가무력지원을 결정했다는 전문을 받았음.따라서 10월12일자로 보낸 전문에서 지시한 북조선으로부터의 철수와 병력의 북으로 후퇴는 이행을 보류함』 중국군참전이냐,김일성정권의 북한철수냐의 기로에 놓인 가장 긴박한 이틀은 이렇게 지나갔다. ◎모택동 처음엔 중국군 참전을 꺼려/스탈린은 김일성에 “모가 거절” 전문(새로 밝혀진 사실) 중국군의 참전결정과 과정은 아직 많은 것이 베일에 가려있다.이번 자료를 통해 우리는 새로운 많은 사실을 상세하게 알 수 있게 되었다.먼저 10월1일 스탈린의 전문은 중국군의 참전에 대한 스탈린의 요구가 매우 적극적이고 구체적이라는 점을 보여준다.그는 중국군이 참전할 때 의용군으로 위장하라는 세세한 권고까지 하고있다.물론 스탈린의 이러한 권고는 실제의 참전에서도 관철되었다. 이에 대한 모택동의 대응은 최초에는 명백히 참전을 꺼리는 입장이었다는 점이 이번 문서에 분명하게 밝혀져 있다. 소련의 개입가능성을 들어 참전을 미루려 하고 있는 점은 모택동이 스탈린의 2중전술을 간파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흥미있는 것은 모택동이 북한지도부에게 게릴라전을 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답변하고 있는 점이다.이새로운 사실에 따르면 모택동은 가능한 한 개입하지 않고 김일성 자신에게 전쟁을 맡겨두려 하였던 것이다. 10월8일 스탈린이 김일성에게 보낸 전문의 내용은 이번에 처음으로 공개되는 전혀 새로운 사실이다.스탈린은 이 전문에서 자신은 중국에 적극적인 참전을 권고하고 있으나 모택동이 이를 거절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는 10월12일에도 같은 내용을 김일성에게 보냈고,또 김일성의 후퇴를 권고하고 있음이 이번 자료에 밝혀져 있다.그의 전형적인 2중전술이었던 것이다.그러나 그의 끈질긴 권고와 압력때문이었는지 모르지만 다음날인 10월13일 중국군의 참전소식이 알려졌고 스탈린은 이에 전날의 전문을 황급히 취소하고 있다.이번회의 자료를 통해 우리는 중국군의 참전 직전 하루이틀 사이에 숨가쁘고도 심각한 논의와 결정적인 전환이 있었음을 상세히 확인하게 된다.박명림
  • 광역표밭 판세:4(“열전” 6·27선거/D­6일)

    ◎광주/부동표가 절반… 민자 막판 추격 치열 민주당 송언종 후보의 강세가 지속되고 있다.민자당 김동환 후보가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좀처럼 송후보와의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오히려 19일 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의 방문이후 「황색바람」이 일기 시작하면서 송후보의 승세가 굳어지는 모습이다. 송후보측은 처음 목표대로 이번 선거가 정당대결구도로 흐르면서 완전한 승기를 잡은 것으로 보고 있다.특히 김이사장의 지원유세 이후 상당수의 부동층이 민주당에 돌아섰다는 분석이다.아울러 3차례의 TV토론을 통해 민자당 김후보를 압도했다고 자신하고 있다. 송후보측은 이에 따라 『득표율을 80%로 끌어올리는 것만이 남은 과제』라고 호언하고 있다.단순히 승리하는 정도가 아니라 압승을 거둠으로써 한때 당내 갈등과 공천후유증 등으로 인해 흔들렸던 민주당의 지역기반을 확실히 다진다는 계획이다.송후보측은 이를 위해 남은 기간 유권자들의 기권을 막기 위해 투표참여를 독려하는 방향으로 선거운동을 펼 계획이다.이와 함께 이번 선거를 현정권에 대한 중간평가로 몰아 철저한 정당대결의 장으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이에 맞서 김후보측은 힘겨운 싸움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아직 전체 유권자의 절반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는 부동층에 기대를 걸고 있다.김후보측은 김이사장의 방문이 외형과 달리 큰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고 보고 있다.부동층의 약 10%정도 만이 송후보측으로 기울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때문에 남은 기간동안 조직력을 풀가동해 부동층을 집중 공략한다면 의외의 성과도 거둘 수 있다는 생각이다.특히 김이사장의 정치재개에 염증을 느끼는 지식인층과 상대적으로 소득향상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저소득층을 파고든다면 만만치 않은 싸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이에 따라 김후보측은 대규모 군중집회를 생략하고 시장과 공원,역광장 등을 찾아다니며 20∼30명을 상대로 한 소규모 유세를 통해 한표 한표씩 챙겨나가겠다는 전략이다. ◎전남/“행정가출신 대 정치인” 여 야 맞대결 민주당 허경만 후보측이 필승지세라고 낙관하고 있는 반면 민자당 전석홍후보진영은『한번 해볼 만한 싸움』이라며 막판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허후보측은 선거가 막바지에 이르면서 민자당대 민주당간의 철저한 정당대결구도가 형성됐다고 보고 승리를 낙관하고 있다.광주와 마찬가지로 김대중 이사장의 호남방문으로 상당수의 부동층을 흡수한 것으로 보고 있다.한 관계자는 『김이사장의 방문이후 민주당 지지열기가 확 달아올랐다』면서 『이런 추세로 나간다면 지난번 14대 총선 때의 전남지역 평균득표율인 75%선은 무난히 달성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허후보측은 이같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남은 기간동안 자신의 선거운동보다 기초단체장 및 광역의원들에 대한 선거지원에 진력한다는 방침이다.특히 광양과 여천 등 외지인이 60%에 이르는 일부 지역은 자칫 민자당에 내줄 수도 있다고 보고 각급 후보들의 연대운동을 통해 이들 취약지역 후보들의 선거운동지원에 주력할 계획이다. 민자당의 전후보측은 일반의 분석과 달리 허후보와 박빙의 접전을 벌이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김이사장의 방문에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아직 유권자의 60%가 부동층이기 때문에 승패를 예상할 수는 없다』는 주장이다.특히 인지도 면에서는 3년5개월동안 도지사를 지낸 전후보가 허후보를 앞서고 있다며 행정가대 정치인의 대결구도를 잘 활용한다면 파란을 일으킬 수 있다고 호언하고 있다.민주당이 완전 장악한 지난 91년 지방의회가 도민들에게 많은 실망감을 안겨준 것을 최대한 활용,변화를 바라는 유권자들의 심리를 파고든다면 승산이 있다는 것이다.한 관계자는 『전남이 변한 모습을 선거결과를 통해 알게 될 것』이라며 『절대 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후보측은 이에 따라 남은 선거운동 기간동안 30여차례의 유세를 강행,특유의 업무추진력과 청렴성을 부각시키며 인물대결구도로 몰고간다는 방침이다.아울러 TV토론을 통해 상대적으로 지역사정에 어두운 허후보의 약점을 최대한 공략할 계획이다.
  • 6·25 45돌/진상 규명 서적출간 활발/주목받는 국내외 3개역저

    ◎일 공산주의자가 본 북침설의 허구­한국전쟁/미 육군 작전상황 기록한 공식전사­밀물과…/미 정책결전과정 분석한 「한국전쟁과 미국」도 나와 광복 50주년을 맞는 올해에는 우리의 근현대사를 다룬 서적들이 많이 나와 지나간 역사를 되돌아 보게 한다.이런 흐름의 하나로 6월 들어 「6·25」를 분석한 국내외 역저 몇권이 선보였다.이 가운데 대표적인 책들이 국내 학자가 쓴 「한국전쟁과 미국」,미 육군성에서 낸 「밀물과 썰물」,그리고 일본 저널리스트의 저서 「한국전쟁」등이다. 「한국전쟁」(한국논단 펴냄)은 「6·25가 미군과 한국군이 일으킨 북침」이라는 김일성과 조선노동당의 주장이 허구로 가득 찬 것임을 그들의 문서를 통해 입증했다.지은이 하기와라 료(추원료)는 이를 위해 미국 워싱턴에 있는 국립공문서보관서에 소장된 「북한문서」1백60만쪽을 2년 반에 걸쳐 열람했다.이와 함께 「6·25」 당시 조선인민군 중장이었던 유성철,옛소련 공산당 간부 허진등 관계자들의 증언으로 뒷받침했다. 이에 따르면 김일성은 49년 초 중국공산당에게 조선계 군인 3만여명을 지원해 달라고 요청해 받아들인다.50년 6월23∼24일에는 인민군 전체 7개 사단중 5개 사단이 38선에서 수㎞이내에 집결한다. 지은이는 인민군 2사단,3사단,6사단등에서 낸 작전명령,병력배치도,작전일지등 각종 자료를 이용해 남침 상황을 생생히 그려냈다.예컨대 6사단 문화부(정치부)가 6월13일 예하부대에 보낸 극비문서 「전시 정치 문화사업」에는 38선 인근에 집결해서부터 남진명령의 접수,진공,점령지 활동에 이르기까지의 행동지침이 5단계로 분류돼 자세히 지시돼 있다.지은이는 이밖에도 「김일성이 가짜」라는 사실과 북한 주둔 소련군의 쌀 수탈등 만행도 공개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책의 지은이는 공산주의자.하기와라는 일본공산당 기관지 「아카하타」의 평양특파원을 지낸 기자 출신으로 지금도 일본 공산당에 몸담고 있다.그는 책을 쓴 이유를 『한국전쟁은 남북한만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의 진로에도 중대한 연관을 지녔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한국전쟁과 미국」(평민사 펴냄)은 국방대학원 교수이자 한국전쟁연구회 회장인 김철범박사가 저술했다.미군이 남한에 진주한 19 45년부터 53년 「6·25」종전까지 미국의 한반도정책이 결정되는 과정을 분석한 연구서이다.지은이는 당시 미국의 정책은 장기적인 점령아래 적극적인 경제원조를 하자는 국무부측과,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낮게 평가해 조속한 철군을 주장한 군부가 대립했던 것으로 보았다.새롭게 「관료정치적 모델」을 분석틀로 삼은 점이 돋보인다. 이에 견줘 「밀물과 썰물」(대륙연구소 출판부 펴냄,모스맨 지음)은 「6·25」과정 중에서 50년11월∼51년7월 부분을 다루었다.미군의 대규모 작전은 물론 대대 단위의 부분적 전투도 상세하게 소개·분석했다.미 육군의 공식 전사로서 객관적인 사실 기록에 치중했다.재무부장관을 지낸 백선진 예비역 육군소장이 우리말로 옮겼다.
  • 장진홍 의사(이달의 독립운동가)

    ◎대구 조선은행 폭파 “미완의 거사”/일제만행 철저히 조사… 국제사회 고발시도/동경경시청 테러 모색중 붙잡혀 순국자살 『육체는 죽는다해도 영혼은 한국의 독립과 일본제국주의 타도를 위해 지하에 가서라도 싸우겠다』 창려 장진홍 의사(1896년 6월6일∼1930년 6월5일)가 일제에 의해 사형이 확정된뒤 대구 옥중에서 일제총독에게 보낸 서한문의 한 대목이다. 의사는 35년의 짧은 생애를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몸바쳐 싸운 독립투사였다. 경북 칠곡 출신인 의사는 19세때인 1914년 조선보병대에 입교,2년동안 군사지식을 배우고는 제대해 곧바로 독립운동단체인 광복단에 가입했다. 국내에서 일경의 감시가 심해지자 의사는 1918년 만주 봉천(심양)을 거쳐 연해주로 건너가 광복단 동료들과 함께 한인 청년 80여명을 규합,군사훈련을 실시했다. 그러나 일본군의 시베리아출병으로 훈련이 어렵게 되자 다시 귀국,국내에서 3·1독립만세운동을 맞았다. 의사는 일제가 독립만세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제암리 학살사건등을 저지르자 일제의 만행을 철저히 조사,국제사회에 고발코자 전재산을 정리해 한국인 피해조사작업을 펼쳤다. 서적행상으로 가장해 전국곳곳을 돌아다니며 일제의 학살·방화·고문사실등을 기록한 「조사문」을 작성,인천함대에 근무중인 친구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이후 의사는 국내 독립운동이 미약해지자 전국을 돌아다니며 일제에게 타격을 가할 기회를 기다렸다. 마침내 1927년 4월 의사는 동료의 소개로 한국의 독립에 우호적인 일본인 폭약전문가 굴절무삼낭을 만날 수 있었다. 의사는 굴절로부터 폭탄제조법을 배웠으며 만주와 국내에서 다이너마이트·뇌관등을 구입했다. 의사는 이어 1927년 8월 시험적으로 제조한 2개의 폭탄을 칠곡 산중에서 터뜨리는 폭파시험을 가졌다. 폭파위력을 확인한 의사는 혼자 거사하기로 결심하고 폭탄투척장소를 경북도청·경찰부·조선은행 대구지점·대구 부호가등 5곳으로 선정하는등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 의사는 거사를 위해 다시 6개의 폭탄을 제조,1927년 10월18일 거사에 나섰다. 이날 상오 9시쯤 자전거에 폭탄을 싣고 대구시내 덕흥여관으로찾아온 선생은 『길전상점 점원인데 이 여관에서 며칠간 묵게 됐다』고 신분을 위장하고 투숙했다. 선생은 이어 상오 11시30분쯤 폭탄을 4개의 벌꿀상자속에 넣어 싼뒤 여관점원에게 『이웃 조선은행 대구지점에 이 선물상자를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점원은 대구지점의 한 일본인 은행원에게 이 상자를 전달했으나 이 은행직원이 폭탄폭발 직전 상자를 열어보는 바람에 폭탄임이 들통났다. 은행원들은 서둘러 폭탄 도화선을 자르고 다른 3개는 길옆으로 내다놓았다. 그러나 11시50분쯤 길옆의 폭탄 3개가 폭발,신고를 받고 쫓아온 일경등 5명이 중상을 입었으며 은행창문 70여장이 부서졌다. 이 거사로 대구시내는 심한 혼란상태에 빠졌고 일경은 총비상이 걸렸다. 의사는 미리 여관을 나와 선산군의 한 동지집으로 피신해있었다. 일경은 범인을 찾을 수 없자 전에 독립운동을 벌였던 이정기등 8명을 검거,고문으로 거짓조서를 받아 공판에 회부했다.민족저항시인 육사 이원록 선생(건국훈장 애국장)도 이 때 사건에 연루돼 무고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의사는 이어 1928년 다시 영천경찰서등에 폭탄을 투척하는 계획을 세웠으나 일경의 수사망이 좁혀오자 아예 일본땅에서 거사를 할 생각으로 일본에 건너갔다. 일본에서 11개월동안 이곳저곳 폭탄투척장소를 물색하던 의사는 동경 일제 중의원과 경시청을 가장 좋은 곳으로 선정하고 거사후 일본을 탈출할 계획까지 치밀하게 짰다. 그러나 일제는 의사에게 이미 혐의를 두고 검거작전을 비밀리에 진행중이었다. 일제는 거사를 며칠 남겨둔 1928년 2월13일 의사가 묵고있던 대판시내 안경점을 급습,의사를 체포했다. 체포된뒤 대구로 압송된 의사는 일경의 심문과정에서 『조선은행 폭탄사건은 혼자 한 일』이라고 강조하고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자 『대한독립만세』를 외쳐 동포들의 가슴을 뜨겁게 울렸다 의사는 사형이 확정되자 자결순국했다. 정부는 의사의 공을 기려 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
  • 훔친 신권 여관비 지불 “덜미”/여관주인 신고

    ◎“용돈 궁해 범행… 유흥비 썼다” 자백 【영동=이천열 기자】 충북 옥천 조폐창의 지폐 유출사건의 범인은 이곳에 근무하는 기능직 여사원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건을 수사중인 청주지검 영동지청은 16일 보충권 화폐를 훔쳐 유흥비 등으로 사용한 옥천조폐창 인쇄부 활판과 기능직 직원 황경순(23·대전시 동구 내동1의13)씨를 붙잡아 범행일체를 자백받고 한국조폐공사법 위반과 절도혐의로 구속했다. ▷검거◁ 미혼인 황씨는 이날 유부남인 애인 조규태씨(33)와 함께 투숙해오던 대전시 동구 용전동 남일파크여관 주인 박형수씨(35)의 신고로 붙잡혔다. 박씨는 황씨가 지난달 31일과 지난 1일 숙박비로 지급한 10만8천원과 1만8천원 등 모두 12만6천원 가운데 1천원권 화폐뭉치가 신문기사에서 본 도난지폐의 일부 번호와 같은 것을 발견,대전 동부경찰서에 신고했다.두사람은 지난 3월18일부터 이 여관 209호실에서 투숙해왔다 박씨로부터 압수한 돈은 도난화폐번호 9050001부터 9051000 사이에 포함된 20장이다.황양은 이날 회사에서 일하다 검거됐다.▷범행 및 동기◁ 황씨는 지난 달 31일 하오 5시30분쯤 화장실을 다녀 오는데 사무실인 인쇄부 활판과 컷팩실에 아무도 없어 1천원 보충권 보관함에 있던 지폐 1백장 묶음 10개를 훔쳐 쇼핑백에 넣었다.하오 6시쯤 탈의실로 와 동료 여직원 1백여명과 함께 옷을 갈아입고 통근버스로 대전 중구 동양백화점에서 내렸다.탈의실에는 여자 청경 1명이 있었으나 아무런 몸 수색을 하지 않았다. 황양은 지난 2일 대전 모 커피숍에서 1천원권 1백장을 1만원짜리 10장으로 바꿔 닉스 청바지를 샀으며 4일에는 친구에게 믿돈으로 40만원을 줬다.나머지 돈은 잡비와 애인과의 식사비·여관비 등으로 사용했다.황양은 용돈이 궁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수사◁ 검찰은 이날 황씨의 회사 사물함과 집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였으나 나머지 화폐는 찾지 못했다. 배후세력 및 공모여부와 이전에도 지폐를 빼돌렸을 가능성에 대해 계속 수사를 벌이는 한편 애인 조씨를 긴급 수배했다. ▷범인 주변◁ 황씨는 옥천조폐창 운전사로 일하다 정년퇴직한 황모씨(60)의 1남3녀중 막내로 충남 K여고를 졸업한 지난 91년 아버지(60)의 소개로 입사,총무과에서 근무해오다 93년 8월21일부터 인쇄부 활판과로 옮겨 타자직으로 일해왔다.
  • 「북 지원」 기우는 북경(6·25내막 모스크바 새 증언:14)

    ◎중 수뇌 “혁명 완성위해 참전” 당위성 역설/러국위문서보관소 미공개자료 9백50건으로 엮는 시리즈/유소기 “이제 중국이 북조선 도울 차례” 개입 지지/중·소 인천상륙작전 이후 긴밀하게 작전 협의 미군의 인천상륙작전이 감행된 사흘뒤인 50년 9월 18일 주은래는 북경주재 로신소련대사와 소련군사고문단의 코토프,코노프 장군을 불러 한국전 상황에 관해 의견을 나누었다.크게 당황한 모습의 주는 이들에게 중국은 인천상륙작전을 신문보도와 평양라디오방송의 보도를 통해서야 알았다고 불평했다. ○주,인천상륙에 당황 로신대사가 같은날 스탈린에게 보고한 이 면담내용에 따르면 주는 북조선동지들과 중국군의 연락이 매우 어렵다고 밝혔다.그는 북조선군의 작전계획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다고 말하고 북조선과의 국경지대에 있는 군사관구에서 중국군 대표를 북한에 파견해 현지상황을 파악토록 하겠다는 요청을 보냈는데도 북조선에서 아무 회신이 없다고 불평했다. ○“모충고 무시” 큰 불만 이와 함께 주은래는 지금까지 모택동이 수차례 해준충고와 예견을 북조선 지도부가 모두 무시했다며 큰 불만을 표시했다.심지어 평양주재 중국대사가 작전관련 정보를 받지 못해 제때에 본국에 보고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따라서 중국정부는 인천의 진짜 상황을 모르며 그 때문에 일관성 있는 입장을 취하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그는 이와 함께 공식적인 보고에 의거해 다음과 같은 작전관련 주문을 내놓았다.(로신 대사가 스탈린앞으로 보낸 보고전문) 『1.만약 지금 북조선이 서울과 평양지역에 병력 10만명을 보유하고 있다면 충분히 상륙작전으로 들어온 적을 궤멸시킬 수 있다.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주전력을 전선으로부터 북으로 후퇴시킬 필요가 있다.전선에는 적의 진격을 저지할 일부의 병력만 남긴다.미군을 방어지역에서 밀어내 전전선으로 분산시킨 다음 치밀한 작전을 통해 이들을 하나하나 분쇄할 필요가 있다. 2.주공격부대를 창설해 이를 결정적인 전투에 대비,비밀리 유지할 것』 이같은 주문을 한 다음 주은래는 소련정부가 한국전상황에 대해 갖고 있는 정보를 공유해줄 것을 모택동을 대신해로신대사에게 부탁했다.그는 최근 한국전상황이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갑자기 중국의 유엔가입문제를 끄집어냈다.미국이 대통령선거를 치르기까지는 중국의 유엔가입을 계속 반대할 것으로 본다며 미국이 입장을 바꾸는 즉시 중국은 유엔에 가입할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이었다. 주는 또한 미·영·불이 소련·중국의 한국전 무력개입 가능성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왜냐하면 이들 나라들은 한국에서 장기적인 대규모 전쟁을 벌일 준비가 안돼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주는 이같은 두려움을 더욱 강화시킬 필요가 있다며 중국이 중국남부 주둔 병력 일부를 만주로 이동시키자 미·영정부가 크게 겁을 먹었다고 말했다. 로신 대사는 주가 소련측에 요청한 사항은 즉각 본국에 보고하겠다고 말하고 중·북조선간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중국대표단이 북조선을 방문하는게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한편 9월 20일 스탈린은 로신대사의 이 보고내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시했다.『북조선지도부가 중국동지들에게 조선전쟁 상황에 대해 제대로 알리지 않은 것은 물론 잘못이다.하지만 우리는 김일성이 고의로 그랬을 것으로 생각지 않음.아마도 전선과의 통신불량으로 인한 문제로 생각됨.모스크바도 평양주재 대사로부터 이따금씩 그것도 낡은 정보를 보고받고 있음.모두가 북조선인민군이 창설된지 얼마되지 않고 경험이 없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들임.인민군 사령부와 전선병력사이의 통신이 아주 불량한 수준임.전선의 보고수준이 불량해 제때 분석이 안됨. 거듭 말하거니와 북조선 당·군 모두 미숙함.불과 3개월의 전쟁경험밖에 없는 북조선군이 완벽한 장비를 갖춘 외국군대를 맞아 그정도 인상적인 전과를 올렸다는게 오히려 놀라운 일임.제물포(인천)의 패배는 인민군이 이승만뿐 아니라 영·미군을 함께 상대해야 하기 때문에 당한 것임.만약 이승만정권만 상대했다면 조선반도의 반동세력을 오래 전에 일소했을 것임』 ○스탈린,중·소 공조 다짐 스탈린은 이와 함께 다음의 4가지 사항을 모택동에게 전달했다.『1.대대·연대가 개별적으로 적과 싸우는 전략은 잘못됐음.이는 전략손실만 자초할뿐임.2.주전선에서 병력을 대부분 철수시켜 서울 동북부에 강력한 방어선을 새로 만들어야 함.3.인천상륙작전으로 인해 한국문제의 평화적 해결은 더 힘들어졌음.소련대표단이 유엔에서 중·소의 평화해결방안을 계속 역설하겠음.4.미국은 중국의 유엔가입 거부입장을 계속 유지할 것으로 보임.소련대표단은 국민당대표의 유엔축출을 계속 요구하겠음』인천상륙작전으로 인해 어려워진 전황을 반전시키기 위한 작전변경과 함께 중·소의 국제적 공조체제를 재다짐하는 내용이었다. 이 무렵 중국측에서는 장기전에 대비해야 한다는 의견과 함께 국면타개를 위해 어차피 중국측이 어느 정도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개진되기 시작했다.로신대사는 스탈린의 지시를 전하기 위해 주은래를 다시 만난뒤 이같은 중국측의 분위기를 9월 21일 스탈린에게 보고했다. 중국쪽의 참전지지 분위기를 보다 분명히 표시한 사람은 유소기였다.이날 유는 소련아카데미 회원 유딘을 위해 자신이 주최한 만찬에서 한국전 상황을 상세히 분석한 뒤 중국사회 각층의 이같은 참전지지 분위기를 이야기했다.9월 22일 로신대사가 본국에 보고한 전문중에서 유소기의 발언중 참전관련 부분만 소개한다. ○일부선 개입에 반대 『노동자,농민,혁명적 지식인들 다수는 중국혁명이 진행되는 오랜기간 동안 북조선이 중국을 도왔다고 믿고 있다.이제 중국이 북조선을 도울 차례라고 말한다.이들 다수는 미제국주의를 증오한다.민주정당 지도자들도 정부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물론 일각에서는 3차세계대전이 일어나 중국이 다시 고통을 당할까 두려워한다.활발한 정치선전 덕분에 중국군내 장교·사병 다수는 사기가 충천하다.필요하다면 미제국주의와 맞서 싸우겠다는 기세이다.미군의 사기는 크게 높지 않다는 판단이다. 물론 조선전쟁에 개입하지 말자는 의견도 있다.오랜 전투를 치르다보니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도 많다.그러나 이런 분위기는 극소수일뿐이다.중국공산당 지도부에서는 미제국주의를 분쇄하기 전에 중국혁명은 완성되지 않는다고 믿고 있다.미국이 북조선을 위협하는한 중국은 북조선 동지들을 도와야 한다고 지도부동지들은 믿고 있다』 중국혁명의 완성을 위해서라도 한국전에 참전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역설한 것이다. 이 전문보고와 같은 날인 9월 22일 모택동이 유딘을 불러 역시 중국의 참전 필요성을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로신대사가 스탈린에게 보낸 전문.9월22일). ○“미,장기전 준비 미비” 『트루먼이 6월말 남조선과 대만에 미군을 보내기로 한 결정은 큰 실책이었다.그 때문에 영국의 입장이 난처해졌다.영국은 한편으로는 남조선에서 미국의 입장을 지지해야 하고 한편으로는 중화인민공화국을 인정했기 때문에 미군의 대만파병을 지지할 수 없는 입장이다.현재 남조선에서 미군의 군사활동을 보면 그곳에서 장기적인 대규모 전쟁을 치를 준비가 안돼 있다.그들이 하는 것은 소련·중국의 반응을 떠보고 군사력을 시험하는게 목적인 것 같다.모택동은 미군이 큰 분쟁을 일으키지 않고 다시 타협할 명분을 찾을지 모른다고 했음.이와 관련,미국이 중국의 유엔가입 가능성을 모색할 수도 있다고 모는 보았음.미국이 중국의 유엔가입을 반대하고 대만에 병력을 파병한데 대해 인도·필리핀같은 나라가 반대한 것이 이런 가정을 뒷받침한다고 모는 주장했음』 모는 이와 함께 『적어도 미국과 외교관계가 수립되고 유엔가입이 허용될때까지 중국은 아시아에서 미제국주의에 맞서 공개적으로 투쟁할 명분을 갖고 있다』며 한국전 참전을 시사한것이다.
  • 배고픈 지식인(두만강 7백리:16)

    ◎콩나물 장수만도 못한 의사·작가 수입/자금난에 출판사들 잇달아 문닫고/문인들은 천직 버리고 장사꾼 전업/이욱·윤동주시인 후대들에 「우리정신」 심어줘 이욱의 시비를 찾아 덕화로 가는 산길을 걸었다.그의 시비는 북한땅 무산이 바라다 보이는 두만강가 산 언덕에 서 있었다.이욱은 1907년 러시아 극동지역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태어났다.숨을 거둔 곳은 연길이었는데 그해가 1984년이다. 시비 앞에서 옷깃을 여미고 한동안 묵도를 올렸다.나는 그와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시비 앞에서 경건해질 수밖에 없었다.그리고 추모하는 마음이 간절하게 들었다.그는 문화대혁명 당시 반동학술 권위자로 몰려 연변대에서 쫓겨났다.그래서 화룡시 서성진으로 하방되었다.시인 이욱을 그때 만났다.어린 중학생이었던지라 시인이 쌓아놓은 책들을 목마른 사람 물 마시듯 탐독했다. ○반동학술로 몰려 수난 이욱 시비의 정면에는 19 57년에 쓴 시가 새겨있다.「칠순/할아버지/나무를 심으며/어린 손자를 보고/싱그레 웃는/그 마음/그 마음/그 마음」이라는 시비의 시에서 어떤 명언을 떠올렸다.내일 세상이 망하는 일이 있더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민족의 선각자들은 후대를 위해 사과나무와 같은 정신을 심어왔다.이상설,김약연,윤동주 같은 분들이 그들이다. 용정시 백금향의 최몽필 문화잠장의 말에서 오늘날 조선족의 문화,선인들이 뿌린 정신의 씨앗이 열매를 맺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부친은 가수였디요.광복 전에 회령 음악 콩쿠르에서 1등을 해서리 축음기와 판 20장을 상으로 받았다고 기래요.아버님은 김정구 이화자 백년설 남인수와 같이 목단강에 가서 공연했다는 말도 들었시요.공연기간이 끝나기 전에 소련 홍군이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 진격하는 바람에 다른 사람들은 다 귀국했는데 이화자만 남았다는 거디요.이화자가 못떠난 것은 전염병에 걸렸기 때문이라고 합데다.데려다 치료를 해준 어떤 한족의 은공을 못 잊어 이화자는 한족과 살다가 문화대혁명 때 결국 잘못되었다는 겁네다』 이렇듯 고급문화나 대중문화 모두가 한반도에 뿌리를 두었다.그러나 광복후 소련의 영향을 똑같이 받은 중국과 북한의 문화가 연변 조선족 문화를 좌우했다.19 58년에 일기시작한 문화대혁명의 대우파 투쟁에서는 또 사정이 바뀌어 북한의 문화가 밀려났다.그 이후 70년대 초에는 중국과 북한관계가 다시 개선되었다.조선어는 평양을 기준 삼아야 한다는 주은래의 담화가 나올 정도였다.따라서 언어규범이 북한을 닮아갔고 모든 분야의 문화가 중국과 북한의 혼합형으로 변했다. 그러다 80년대 후반에는 더 큰 변화를 맞았다.그것은 한국문화였다.한국문화를 닮아보려는 노력을 무던히 했고,실제 한국문화는 급속도로 번져나갔다.이에 대한 투쟁도 만만치 않아 한중수교가 이루어진 해에도 한국노래의 범람을 경계하는 광대극을 놀았다. ○북한의 언어규범 닮아 문화의 목적은 인간이 중시되어 세상이 보다 편리하게 열리는데 있다고 한다.연변의 원로작가 김학철선생은 미발표 소설 「20세기의 신화」가 문제되어 옥살이를 한 분이다.그가 연변 작가모임에서 들려준 이야기를 감명깊게 들은 적이 있다.반우파투쟁 당시 북경에서 실제 본 목격담이었는데 내용은 대강 이러하다.북경의 한 단위모임에서 어느작가를 우파로 몰아붙이고 있을 때 다른 작가가 발언권을 얻었다.발언에 나선 작가는 『이 분은 좋은 사람입니다』라는 단 한마디의 말로 당하고만 있는 작가를 변호하고 6층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는 것이다. 용정시 고급중학교 운동장에는 시인 김성휘의 시비가 서 있다.1933년 용정시 백금향에서 태어나 1990년 작고한 이시인의 시 「시냇물의 흐름을/천천히 보아라/천리만리/먼먼 길도/자신 만만타/흐르고/흐르고/내처 흐르며/한생을/말숙하게/가는 나그네」.역대를 살면서 민족과 영혼을 팔아먹고 편히 살아온 좌파들의 양심을 두드리는 소리다.성급한 투쟁은 역사에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다는 사실을 일깨우고 있다. 정치투쟁은 이제사 끝났다.하지만 문인들은 요즘 경제사정에 충격을 느끼고,또 고민하고 있다.수술칼을 손에 쥔 의사가 면도칼을 든 이발사 수입만도 못하고 교수나 작가의 수입이 콩나물장수를 못 따라간다.그래서 많은 지성인들이 천직을 버리고 장삿길에 나서는 이른바 하해로 뛰어드는 것을본다.더구나 출판업이 곤경에 빠져들어 문인들의 수입이 줄어들고 있다. 연변인민출판사는 국가로부터 해마다 1백90만원의 자금을 지원받는다.그럼에도 1백43명의 재직자와 50여명의 퇴직자들의 인건비,기타 경비를 빼고나면 책을 찍어낼 돈이 남지 않는다.내가 근무하는 아리랑편집부에서 80년대 초에 1년에 30여종 문예도서를 발간했는데 지난해는 계획도서가 겨우 4종 뿐이었다.다른 몇종은 위탁출판으로 돈을 받고 대신 출판한 것인데 그것마저 몇종 안된다.그래서 한문도서를 찍어 번 돈으로 조선어책을 발간하고 있지만 그것도 근근득식이다. ○출판은 하늘이 별따기 요즘 작가들은 글을 써도 발표할 수가 없다.장편소설 한권을 발간하는데 자비로 1만5천원을 내야 하는데 그것은 교수급 지식인의 거의 2년 노임이니 개인으로는 엄두도 낼 수 없다.혹시 정부나 기업인들의 찬조를 받는 경우가 있어도 그것은 하늘의 별따기다.아무리 좋은 명작이고 좋은 글이라도 그것은 원고상태에서 죽어가는 형편이다.그리고 민간예인과 민담가들이 발굴되지 못한채 인생을마치는 경우도 있다. 이에따라 책을 통한 출판문화가 사라지는 경향이다.연변신화서점은 우리 민족도서가 가장 많은 곳인데 조선어책이 열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종수가 적다.그리고 변강 향진의 상점엔 책이라곤 전혀 없다.그만치 농촌의 문화생활이 고갈되고 있는 것이다. 화룡시 덕화진에서는 원래 1년에 한번씩 운동대회를 열어왔다.지금은 2년에 한번으로 줄어들었다.그리고 70년대까지만 해도 영화가 있는 날이면 영화관이 관중들로 꽉 찼다는 영화관이 문이 다 떨어져 나간 폐물로 되어 버렸다.용정시 백금향은 원래 문화보급이 잘되어 소문난 곳이었는데 지금은 문화잠은 있어도 문화활동은 없다.용정시 개산툰진 문화잠 책임자의 말에서 그 실상이 잘 드러났다. 『촌의 노인협회,부녀회,청년회의 활동차수로 보면 가관입네다.모여서 트럼프를 쳐도 통계에 넣으니깐요.경비난으로 지난해부터 문화활동이 정지됐지 뭡네까.촌마다 문화실이 있고 손풍금이 있지만 손풍금을 칠 사람이 없고 더구나 활동을 조직할 만한 청년 골간은 더욱 없습네다.똑똑한 사람들은 도시로 들어갔디요.연말회보를 하면서 이것저것 숫자는 많이 말하게 됩니다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한것이 없다 이말입네다』
  • 민주­민자/DJ유세 참여 이렇게 본다

    ◎「말 바꾸는 정치인」 재확인 김대중씨의 정계복귀는 그가 끊임없이 말을 바꾸는 정치인이라는 세간의 비난을 다시 확인해 주었다.더구나 누가 보더라도 정치활동인 선거유세에 나서면서 그것은 정치재개가 아니라고 우기는 모습은 많은 사람들을 어리둥절케 하고,정치권 전반에 대한 불신을 깊게하는 원로답지 못한 처신이다. 김씨는 1992년 12월19일 『평범한 한 시민으로 돌아가 정치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겠다』고 눈물까지 글썽이며 스스로 정계은퇴를 선언한 바 있다. 또 1994년에는 아·태재단을 설립하면서 국내 정치문제에는 일절 관여치 않고 오로지 민족화합과 남북통일을 위한 연구에만 몰두하겠다고 공언한바 있다. 그 후 많은 국민은 김씨가 정계원로로서 후진을 양성하고 정치발전에 이바지하기를 기대하였다.오늘 그의 정치 복귀를 보면서 실망을 넘어 환멸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김씨는 정치재개의 발판을 마련하고자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있다.그는 개혁의 걸림돌로 지목해 온 김종필씨와 연대까지 시도하고 있다.눈앞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고자 지역끼리 가르고 대결시킨다면 어떻게 남북통일을 이루겠는가.또 정치적으로 상극인 사람끼리 지역을 근거로 무리를 지어 손을 잡고 정치를 한다면 정치의 발전과 세대교체는 결코 실현될 수 없을 것이다. 김씨의 정계복귀는 국민을 속이는 행동일 뿐만 아니라 통일을 앞두고 국론을 분열시키는 구시대적 지역할거주의로 복귀하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30여년만에 처음으로 전면적인 지방자치 선거를 맞아 주민자치 생활자치 실현의 계기를 맞이하고 있다.그런데도 김씨는 이번 선거를 김종필씨와 함께 정치를 오염시키고 지방 구석구석까지 정치싸움을 확산시키고 있다.이러한 시대착오적인 행태는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수 없다. 성숙한 우리 국민들은 김씨가 정치적 야욕을 채우려는 데 더이상 들러리가 되지 않고 냉철히 심판할 것이다.이제 김씨는 자신이 오판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당원자격으로 나서는 것” 역사적인 6·27지방선거를 앞두고 김대중 아태재단 이사장의 지원유세 참가에 대하여 민자당이 명분없는 비난에 나섰다.그렇지 않아도 열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는 지방선거에서 김이사장이 지원유세에 나설 경우 치명적인 패배를 당할 수밖에 없다는 절박감에서 비롯된 이성을 잃은 처사인 것이다. 이번 지자제 선거는 과거 김 이사장의 13일간의 목숨을 건 단식투쟁끝에 실로 34년만에 부활되는 선거라는 점에서 김이사장에게는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김 이사장으로서는 이런 지자제의 중요성과 함께 전국적으로 쇄도하는 열화와 같은 후보자들의 요청과 민주당의 당내 사정을 십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특히 지역패권주의의 극복을 통하여 온 국민이 동질의 권리와 의무를 향유할 수 있는 「지역 등권」의 실현과 통일기반 조성이라는 민족적 과제의 성취를 위해서는 지자제의 성공적인 정착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판단하였고 이에 따라 정당연설원으로의 등록을 통한 합법적인 지원 유세에 참가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런 충정에서 비롯된 김 이사장의 지원유세를 두고 민자당의 대표와 사무총장,대변인이 모두 나서서 오만불손한 헐뜯기에 여념이 없다.민자당과 정부의 국정의 최대의 목표가 마치 「김대중 죽이기」라도 되는 것 같다.과거 군사정권이 악법과 정보기관을 통하여 김 이사장을 탄압하였다면 김영삼정권은 언론이라는 교묘한 수법을 이용하여 김 이사장을 음해,모략하고 있는 것이다. 김 이사장은 지난날 『앞으로 한 당원으로서 힘 닿는데까지 당과 동지 여러분의 발전에 미력하나마 헌신·협력할 것을 다짐』한 바 있다.김 이사장은 이러한 국민과 당원에 대한 약속에 따라 정계의 원로이자 당원으로서의 자격으로 지원유세에 참가하는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온갖 저질스런 발언으로 명분없는 비난을 일삼는 것은 「정치 모리배」임을 자인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헌법상 보장된 개인의 권리와 정당법상의 당원의 자격으로 자당의 선거 승리를 위하여 지원 유세에 참가하는 것마저 비난하는 것은 민자당 스스로가 현대 민주주의 정치의 총아인 정당의 존재를 부인하는 자가당착적인 행태인 것이다.
  • DJ유세/수도권 고전우려 정치행보 당겼다/정치활동 재개 안팎

    ◎6·27선거 발판 정계복귀 수순/지역감정 자극 유세 득될지 의문 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이 14일 지난 92년 12월 대선패배 후 정계은퇴를 선언한 지 2년6개월만에 정치활동을 사실상 재개했다.이번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유세에 본격적으로 나서겠다고 공식 선언한 것이다.본인은 정치재개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선거유세 자체가 가장 분명한 정치활동이라는 점에서 설득력은 없다.이번 지원유세가 지방선거 이후 명실상부한 정계복귀로 이어지리라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김 이사장이 국민에 대한 약속위배라는 비난을 무릅쓰면서까지 직접 선거를 챙기고 나선 데는 우선 지방선거 결과에 대한 위기감이 작용한 때문으로 풀이된다.당초 김 이사장은 이번 선거를 통해 서울과 수도권,호남을 장악함으로써 중부권의 자민련과 함께 여소야대의 「반민자」연합전선을 구축하는 정국구도를 짜놓았었다.그러나 경기지사 경선파동 등으로 자신이 구상했던 조순­이종찬 「환상의 콤비」 포진계획도 무산되고 또 선거전열이 흐트러지면서도저히 「이기택체제」로는 안되겠다는 판단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서울과 수도권에서 패배한다면 당의 승패를 떠나 자신의 향후 행보가 결정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는 점을 우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자민련의 부상도 김 이사장의 전면복귀에 상당한 영향을 준 것으로 볼 수 있다.김종필 총재가 충청권의 지역정서를 업고 나오면서 상대적으로 김 이사장이 호남정서에 기대기가 수월해졌다는 풀이다.김이사장이 얼마전 주창한 「내각제개헌 검증론」과 「지역등권론」도 장기적 포석일 뿐 아니라 이번 선거를 철저히 지역대결구도로 몰아가겠다는 전략이 깔린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김 이사장의 지원유세는 결국 지난 대선 때 얻은 8백만표를 고스란히 챙기겠다는 「내표 지키기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자신의 전면 등장에 대한 반발표를 감안하더라도 서울과 수도권에서 30% 안팎의 고정지지표만 확실히 얻는다면 승리할 수 있다는 생각인 것이다. 김 이사장은 앞으로 서울과 수도권,특히 한강 이남의 경기지역을 집중 지원한다는 방침이다.하지만 김이사장의 이런 판단이 선거에서 현실로 나타날지는 미지수다.호남표의 결속으로 비호남표의 이탈이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되는데다 민주당에 쏠리던 「반민자」야권표의 상당수도 돌아서리라는 관측이 우세하다.당장 서울시장선거에서도 김이사장의 행보에 대한 비호남지역 유권자의 반감이 무소속후보에 대한 지지로 몰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 이사장의 지원유세로 이번 지방선거는 불가피하게 「3김대결」의 성격을 띠게 됐다.그리고 민주당이 서울과 수도권에서 선전한다면 김이사장의 향후 행보는 대권 도전 또는 내각제 개헌 등의 수순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정치관측통들은 전망한다. 이와 함께 민주당의 역학구도에도 큰 변화를 몰고 올 전망이다.지방선거 이후 김 이사장이 당의 전면에 나서고 이 총재는 이에 반발,그와 결별하는 상황을 쉽게 그려볼 수 있다.이 총재가 김이사장의 지원유세에 대해서는 환영의 뜻을 나타내면서도 지역등권론과 내각제 문제 등을 강력히 비난한 것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 ◎김대중씨 유세 아태재단 발표문 김대중 이사장은 오늘로써 지자제 선거유세에 참가하기로 결정했다.김 이사장이 이같이 결정하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34년만에 부활된 지자제의 중요성이 너무나 크고 앞으로 이 나라의 민주주의와 각 지역의 등권실현,통일기반조성에 절대적 필수요건이라고 판단되어 유세에 나서게 된 것이다. 둘째,민주당의 어려운 당내 사정과 후보자들의 빗발치는 요청에 대해 당원으로서 도리를 다하기 위해 나선 것이다. 셋째,정부가 지금 조성하고 있는 자유로운 선거분위기 저해,야당탄압 등에 비추어 적은 힘이나마 보태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넷째,김대중 이사장은 30여년에 걸쳐 지자제 실현을 위해 분투했으며 13일간의 목숨을 건 단식투쟁까지 했다.그와 지자제는 분리할 수 없는 일심동체이다.그러므로 성공적인 지자제 실현을 위해 유세에 참가하게 된 것이다. 다섯째,김 이사장의 지자제 선거유세 참가는 1992년 12월19일의 정계은퇴 성명,즉 『앞으로도 내가 몸담았던 민주당의 발전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그 범위내에서행해지는 것이다. 여섯째,김 이사장의 지자제 선거운동 참가는 요즈음 논의되고 있는 「정계복귀」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지금은 오직 민주당의 승리를 위하여 최선을 다하고 훌륭한 지자제 실현을 위해 정성을 다 바치겠다는 것 이외에 아무런 계획도 없다. ◎92년 정계은퇴 선언 저는 또다시 국민여러분의 신임을 얻는데 실패했습니다.저는 이것을 저의 부덕의 소치로 생각하며 저의 패배를 겸허한 심정으로 인정합니다. 저는 김영삼 총재가 앞으로 이나라의 대통령으로서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서 성공하여 국가의 민주적 발전과 조국의 통일에 큰 기여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오늘로써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 평범한 한 시민이 되겠습니다.이로써 40년의 파란많았던 정치생활에 사실상 종막을 고한다고 생각하니 감개무량한 심정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이기택 대표와 당원동지 여러분께서는 오랜 세월동안 저에 대하여 이루 말할 수 없는 협력과 성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당원 여러분이 베풀어준 태산같은 은혜를 무어라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앞으로 한사람의 당원으로서 힘닿는 데까지 당과 동지 여러분의 발전에 미력이나마 헌신협력할 것을 다짐하는 바입니다. 이제 저는 저에 대한 모든 평가를 역사에 맡기고 조용한 시민생활로 돌아가겠습니다.국민여러분과 당원동지 여러분의 행운을 빕니다. ◎은퇴서 「유세」까지/김대중씨 발언록/이제 정치선 떠났다… 돌아오지 않는다­93년1월/민주당일에 개입하는 것은 주제넘는일­93년7월 ▷92년◁ ▲12월19일.대선종료후 민주당사 기자회견에서 정계은퇴 선언 ▷93년◁ ▲1월26일.영국출국에 앞선 김포공항 환송연 및 기자간담회=이제 정치는 떠났다.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6개월 후가 아니라 영원히 정치는 하지 않을 것이다. ▲2월24일.베를린에서의 세미나=선거 패배 이후 정계를 은퇴한 것은 잘했다.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6월2일.영국에서 새정부 1백일 평가=몇몇 분야에서 성과가 있다.국내정치는 더 이상 개입하지 않겠다. ▲7월5일.동교동 자택=민주당의 운영에 다시는 개입하지 않겠다.민주당 일에 개입하는 것은 주제넘는 일이다. ▲12월10일.자서전 에세이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다시 돌아올 뜻을 감추고 작전상 은퇴한 게 아니다.그런 생각이 있다면 국민을 속이고 역사를 속이는 것이다. ▷94년◁ ▲5월10일.대전일보 회견=정치 안한다는 생각은 변함없다.만약 정치를 다시 한다고 해도 민주당이나 계파를 등에 업고 하지는 않겠다.언제까지 침묵할지 나도 잘 모른다. ▷95년◁ ▲4월16일.일본에서의 기자간담회=지방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를 지원하겠다.그러나 당내 경선에는 개입하지 않겠다. ▲5월27일.여수강연=각 지역마다의 권리를 찾는 등권주의,대등한 권리를 갖고 서로 협력하는 지방화시대로 가고 있다.(지역등권론 제기) ▲5월31일.시사저널 인터뷰=내각제 개헌과 관련,여론의 검증이 필요하다.내년 총선에서 권력구조 문제가 큰 이슈가 될 것이다. ▲6월14일.아태재단=김이사장이 서울과 수도권 선거 유세에 나선다고 발표.
  • 우체국 창구 자동화/「무인 시스템」 도입

    ◎2000년까지 전국 1500여곳 전산망 구축 앞으로 우체국을 찾는 고객은 은행에서 처럼 한 창구에서 필요한 업무를 모두 처리할 수 있게 된다.또 우체국에 현금자동지급기 처럼 우편물 접수 및 요금납부 업무를 24시간 자동으로 처리해주는 「무인자동우편창구시스템」도 가동된다. 정보통신부는 14일 우체국이용자의 편익증진을 위해 올해부터 오는 2000년까지 총 2백40억원을 투입,전국 1천5백91개 우체국에 자동화창구시스템을 도입하는 「우체국창구 전산화」를 추진하기로 했다. 이 계획에 따르면 전국 84개 구·시단위 우체국은 오는 97년부터 한 창구에서 모든 업무를 볼 수 있는 「만능창구시스템」과 우편창구업무를 24시간 무인처리해주는 「자동우편창구시스템」을 도입,서비스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 서비스는 또 98년 1백45개 군단위 우체국으로 확대되며 99년 8백93개 시 소재 우체국,2000년에는 기타지역 4백69개 우체국으로 늘리는 등 전국의 1천5백91개 일반 우체국에 보급된다. 내년부터 시험운용에 들어갈 「만능창구시스템」은 고객이 은행에서 처럼 어느 창구에서나 원하는 우체국업무를 볼 수 있게 한 것으로 PC,전자저울,바코드리더등으로 이뤄져 있다. 고객이 우편물을 전자저울위에 올려 놓고 서비스의 종류 및 행선지를 입력시키면 우편요금이 스크린에 나타나게 된다.이어 신용카드나 현금으로 결재를 하면 요금증지·바코드·요금영수증이 인쇄되어 나오며 고객은 요금증지와 바코드를 우편물에 붙여 우편물투입구에 넣으면 된다. 김동선 정통부 우정국장은 『오는 97년 체신공사설립을 앞두고 우정사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창구업무 전산화를 추진하게 됐다』고 밝히고 『자동시스템이 가동되면 고객의 창구 대기시간 단축과 인력 및 운영비 절감등 많은 부수효과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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