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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중앙통신 보도문 요약

    北중앙통신 보도문 요약

    전체 당원들과 인민군장병들과 인민들에게 고함 우리의 전체 당원들과 인민군장병들과 인민들,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와 조선로동당중앙군사위원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내각은 조선로동당 총비서이시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위원장이시며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이신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께서 주체100(2011)년 12월 17일 8시 30분에 현지지도의 길에서 급병으로 서거하시였다는 것을 가장 비통한 심정으로 알린다. 김정일 동지께서 뜻밖에 서거하신 것은 우리 당과 혁명에 있어서 최대의 손실이며 우리 인민과 온 겨레의 가장 큰 슬픔이다. 김정일 동지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조국통일유훈을 실현하실 철석의 의지를 지니시고 온 겨레를 자주와 민족대단결의 길로 이끌어오시였으며 우리 민족끼리의 숭고한 리념이 실현되는 6·15통일시대를 열어놓으시였다. 오늘 우리 혁명의 진두에는 주체혁명위업의 위대한 계승자이시며 우리 당과 군대와 인민의 탁월한 령도자이신 김정은동지께서 서 계신다. 우리는 김정은 동지의 령도따라 슬픔을 힘과 용기로 바꾸어 오늘의 난국을 이겨내며 주체혁명의 위대한 새 승리를 위하여 더욱 억세게 투쟁해나가야 한다. 김정일, 질병과 서거원인에 대한 의학적 결론서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심장 및 뇌혈관질병으로 오랜 기간 치료를 받아오시였다. 강성국가건설을 위한 초강도강행군의 나날에 겹쌓인 정신 육체적 과로로 하여 주체100(2011)년 12월 17일 달리는 야전렬차안에서 중증급성 심근경색이 발생되고 심한 심장성 쇼크가 합병되였다. 발병 즉시 모든 구급치료대책을 세웠으나 주체100(2011)년 12월 17일 8시 30분에 서거하시였다. 주체100(2011)년 12월 18일에 진행된 병리해부검사에서는 질병의 진단이 완전히 확정되였다. 전당, 전군, 전민이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서거에 가장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하며 깊은 경모의 마음으로 추모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결정하였음을 알린다. 1.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령구를 금수산기념궁전에 정중히 안치한다. 2.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를 추모하여 주체100(2011)년 12월 17일부터 12월 29일까지를 애도기간으로 하며 주체100(2011)년 12월 20일부터 27일 사이에 조객들을 맞이한다. 3.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령구를 바래우는 영결식은 주체100(2011)년 12월 28일에 혁명의 수도 평양에서 엄숙히 거행한다. 4.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를 추모하는 중앙추도대회는 주체100(2011)년 12월 29일에 진행한다. 5. 애도기간에 전국의 모든 기관, 기업소들에서 조의행사를 진행하며 평양시에서 중앙추도대회가 진행되는 시간에 각 도, 시, 군들에서 추도식을 진행한다. 6. 애도기간에 기관, 기업소들에서는 조기를 띄우며 일체 가무와 유희, 오락을 하지 않도록 한다. 7. 외국의 조의대표단은 받지 않기로 한다. 주체100(2011)년 12월 17일(끝)
  • 김일성 사망때처럼… 낮 12시 ‘특별방송’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은 북한이 19일 오전 10시부터 조선중앙TV와 조선중앙방송, 조선중앙통신 등 매체를 통해 낮 12시에 ‘특별방송’ 및 ‘중대보도’를 하겠다고 거듭 밝히면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돌았다. 특히 북한이 ‘특별방송’을 한 것은 1994년 7월 9일 김일성 주석 사망 때뿐이었다는 점에서 김정일 위원장의 신변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제기됐다. 북 방송들은 특별방송에 앞서 김 위원장의 활동을 담은 화면을 계속 내보냈으며, 여성 아나운서가 울먹이는 모습도 잠시 등장했다는 얘기가 돌면서 분위기는 한층 어두워졌다. 탈북자단체 NK지식인연대는 오전 11시 40분쯤 홈페이지에 ‘김정일 사망 예견’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예고를 하는 방송원이 매우 비통한 어조와 표정으로 특별방송을 알리고 있다. 1994년 김정일 사망 당시를 연상시킨다.”고 전했다. 조선중앙통신은 낮 12시 ‘전체 당원들과 인민군장병들과 인민들에게 고함’이라는 제목의 ‘중대보도’를 시작했다. 통신은 “우리의 위대한 김정일 동지께서 너무도 갑자기, 너무도 애석하게 우리곁을 떠나시였다.”고 밝혔다. ‘너무도 갑자기’라는 표현으로 미뤄볼 때 북 당국에서도 김 위원장의 사망을 갑작스러운 사건으로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또 “김정일 동지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조국통일 유훈을 실현하실 철석의 의지를 지니시고 우리 민족끼리의 숭고한 리념이 실현되는 6·15통일시대를 열어놓으시였다.”며 2000년 6월 제1차 남·북 정상회담 등 김 위원장의 활동과 역할을 부각시켰다. 통신은 또 “오늘 우리 혁명의 진두에는 우리 당과 군대와 인민의 탁월한 령도자이신 김정은 동지께서 서 계신다.”며 “우리는 김정은 동지의 령도 따라 슬픔을 힘과 용기로 바꾸어 오늘의 난국을 이겨내며 주체혁명의 위대한 새 승리를 위하여 더욱 억세게 투쟁해나가야 한다.”며 김 위원장의 유고에도 후계자 김정은을 중심으로 한 단결을 강조했다. 대북 소식통은 “김정은 후계가 안정적이지 못한 상황에서 김 위원장의 사망은 북한 전체에 불안과 위기감을 조성할 수 있다.”며 “이를 막기 위해 김정은을 여러 차례 언급한 것 같다.”고 말했다. 북한 당국이 김 위원장의 사망을 51시간 30분이나 극비에 부친 것은 열차 이동 중 발생한 상황에서 부검이 늦어졌고, 내부 동요를 막기 위해 발표 과정 및 장례 절차 등에 시간이 상당히 소요됐기 때문인 것으로 관측된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김정일의 삶, 통치, 그리고 권력

    김정일의 삶, 통치, 그리고 권력

    17일 사망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정권을 세운 아버지 김일성 전 국가주석의 사망으로 권력을 승계받은 뒤 17년간 봉건시대를 능가하는 절대 군주로 군림했다. 김정일 정권이 공식 출범한 것은 1998년으로 그가 국방위원장에 재추대된 뒤부터지만 실질적으로 북한을 통치한 것은 그가 1974년 후계자로 공식 내정된 이후부터다. 불우했던 유년 북한 당국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1942년 2월 16일 양강도 백두산의 항일빨치산 밀영(密營)의 귀틀집에서 김일성과 그의 전처인 김정숙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그러나 출생연도와 출생지는 북한의 발표와 다르다는 것이 정설이다. 실제 출생연도는 1941년으로 알려진다. 북한 당국은 김 위원장이 김일성의 후계자로 내정된 1974년부터 주민들에게 그의 출생연도를 1941년으로 홍보하다가 후계자로 공식 추대된 2년 뒤인 1982년 김일성의 70회 생일 때부터 1942년으로 선전했다. 출생지에 대해서도 북한은 1980년부터 백두산이라고 선전하면서 대대적인 성역화 작업에 나섰다. 그 이전에는 김일성이 러시아 극동지역에서 항일투쟁을 했다는 경력 때문에 러시아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의 아명도 러시아식으로 ‘유라’로 불렸다. 김 위원장은 북한 최고지도자의 장남으로 태어났지만 유년시절은 불행했다. 그는 김일성이 평양으로 입성한 지 2개월여 지난 1945년 11월 생모인 김정숙과 그의 빨치산 동료와 함께 소련 함정을 타고 함경북도 웅기항을 통해 북한에 처음 발을 디뎠다. 그러나 남동생 슈라가 익사한 데 이어 7세에 어머니를 여의고 이듬해 6·25 전쟁으로 중국으로 피란살이를 가야만 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계모 김성애의 손에서 성장한 유년시절은 김 위원장의 모성애 결핍을 낳았고 계모와 이복형제에 대한 반감은 후에 후계자를 둘러싼 치열한 권력투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냉혹함을 보이게 했다. 휴전 이후 김 위원장은 평양으로 돌아와 삼석인민학교와 제4인민학교 등을 거쳐 남산고급중학교를 졸업하고 1960년 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 정치경제학과에 입학해 이듬해 7월 노동당에 입당했다. 1964년 6월 대학을 졸업하고 노동당 조직지도부에서 지도자로서의 첫 걸음을 내디뎠다. 후계자 발돋움 김 위원장은 1967년부터 당의 핵심 부서인 조직지도부 과장을 거쳐 1971년 부부장으로 승진했고 1973년 중앙당 문화예술부장을 거쳐 당 조직 및 선동선전담당비서라는 막강한 지위에 올랐다. 그는 김일성의 장남이라는 유리한 신분을 이용해 김일성 정권에 불만을 느끼거나 권위에 도전하는 인물들을 적발해 김일성에게 보고하고 숙청하는 데 앞장섰다. 김일성의 신뢰를 얻은 김 위원장은 생모의 항일빨치산 동료인 원로 간부의 후원을 등에 업고 권력 2인자인 삼촌 김영주 당시 당 조직지도부장, 정치적 힘을 과시하던 계모 김성애, 김일성의 남다른 사랑을 받았던 이복동생 김평일을 물리치고 1973년 후계자 자리인 당 조직 및 선전비서에 올랐다. 이어 다음해 2월 제5기 8차 당 전원회의에서 김 주석의 공식 후계자로 내정됐다. 이 때부터 ‘지도자 동지’ ‘당 중앙’이라고 호칭됐으며 1975년 ‘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았다. 후계자 내정을 앞둔 1972년 12월 북한은 최고인민회의 제5기 1차회의에서 주석제를 핵심으로 하는 헌법 개정과 국가기구 개편을 단행했다. 또 주체사상탑과 김일성 동상, 혁명사적지 등 북한 각지에 두 부자와 그 가계를 선전하는 시설물 건설과 외국에서의 주체사상 홍보 등에 막대한 재원을 쏟아 부었다. 김 위원장은 당과 군부 등 국정을 전반적으로 장악하도록 체제를 정비한 뒤 1980년 10월 제6차 당대회를 통해 정치국 위원, 정치국 상무위원, 당 중앙군사위원으로 선출되면서 후계자로서의 자리를 굳혔다. 호칭은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로 변경됐다. 이후 1990년 5월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1991년 12월 최고사령관, 1992년 공화국 원수에 추대된 데 이어 1993년 김일성으로부터 국방위원장직을 공식 승계함으로써 권력 승계에 따른 절차를 모두 마무리했다. 17년 1인 독재 1994년 7월 8일 김일성이 사망하면서 본격적인 김정일 시대가 열렸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3년상을 빌미로 ‘유훈통치’에 전념했다. 당시 북한의 상황이 엉망이었기 때문이다. 북한 스스로 ‘고난의 행군’이라고 명명한 이 시기에 국가경제와 식량배급제가 붕괴해 수백만명의 아사자가 발생하면서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통제기능은 마비된 무정부 상태와 같았다. 김 위원장은 김일성 3주기를 마친 뒤 1997년 9월 추대형식으로 당 총비서에 올랐고 이듬해 10월 제10기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최고 권력기관으로 자리매김한 국방위원회의 수장으로 재추대되면서 김정일 시대가 공식 출범했다. 김정일 시대의 군부통치는 ‘선군정치’로 명명됐고 이는 강력한 통치구호로 자리했다. 1998년 10기 최고인민회의는 사회주의 헌법 개정을 통해 경제난 속에서 변화된 사회상을 반영했으며 세대교체를 통해 젊은 기술관료를 내각에 등용했다. 2002년에는 7·1 경제관리개선조치를 통해 시장을 확대하고 임금과 물가를 현실화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강성대국론·신(新)사고론·실리주의 등 미래를 향한 새로운 비전을 내놓기도 했다. 그의 외교적 행보는 파격적이라고 평가받는다. 1994년 미국과 담판을 통해 북·미 기본합의를 이끌어낸 김 위원장은 1998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자 금강산 관광사업 등 남북교류를 추진했다. 2000년 6월 13일에는 반세기 만의 남북 정상회담을 열어 6·15 공동선언에 직접 서명했다. 동시에 미국과도 적극적인 관계 개선에 나섰다. 2000년 10월에는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을 특사로 미국에 파견하고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미 국무장관과 클린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도 추진했다. 2002년에는 일본의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를 평양으로 불러들여 일본인 납치 피해자 문제를 시인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하는 ‘고백외교’를 통해 북·일수교에 이어지는 일본의 경제적 지원을 겨냥하기도 했다. 한동안 소원했던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방문외교를 재개하고 개혁개방을 통해 경제적 성장을 이룬 이들 국가의 노하우를 받아들이려는 노력도 이어갔다. 그러나 북한의 대서방 관계개선 노력은 ‘자위적 억제력을 보유해야만 체제를 보위할 수 있다.’는 선군정치 논리에 묻혀 핵과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WMD) 문제를 풀지 못한 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2006년 10월에는 핵실험을 통해 군사적 위력을 과시했지만 국제적으로는 고립을 심화시키는 계기가 됐다. 그는 2008년 8월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부터 국정운영에 초조감을 드러냈다. 2009년 1월 셋째 아들인 김정은을 후계자로 내정하고 2010년 9월에는 노동당 대표자회에서 김정은을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에 선임하면서 후계체제 구축에 속도를 냈다. 경제적으로는 2009년 11월 화폐개혁이라는 무리수를 강행해 경제적 어려움을 격화시켰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는 동안에도 김 위원장은 지난해 5월과 8월, 지난 5월 등 1년여 동안 세차례나 중국을 방문해 황금평과 나진 특구 건설에 뜻을 모았으며 지난 8월에는 러시아 극동지역을 방문해 남·북·러 3국을 관통하는 가스관 연결사업 등에 합의했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김정은 ‘3년상’ 치르며 ‘유훈통치’로 권력 다질 듯

    김정은 ‘3년상’ 치르며 ‘유훈통치’로 권력 다질 듯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갑자기 사망함에 따라 후계자인 김정은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최고지도자로 연착륙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일단 북한은 김정은을 제1권력자로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북한은 이날 232명의 ‘김정일 국가장의위원회’ 명단을 발표하고 김정은을 장의위원장으로 호명함으로써 권력서열 1인자임을 분명히 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장의위원회 명단은 대부분 실질적 권력서열과 일치한다. 김 위원장도 1994년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을 때 장의위원회 명단 첫 번째에 이름을 올려 북한의 1인자로 자리를 굳혔다. 북한 관영매체들도 일제히 새 지도자로 김정은을 지목했다. 조선중앙방송은 이날 김 위원장의 사망 소식을 발표하며 “존경하는 김정은 지도자의 영도를 충직하게 받들자.”고 ‘충성 맹세’를 했다. 북한이 김정은에 대해 ‘영도자’라는 표현을 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정은은 ‘3년상(喪)’을 치르며 이른바 ‘유훈통치’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 위원장은 김 주석이 사망한 뒤 3년상을 치르고 1997년 10월 당총서기에 취임하면서 권력의 전면에 등장했다. 하지만 후계구도가 아직 불안정한 상황에서 권력 공백기가 오래갈 경우 당과 군부의 실력자들이 지분을 요구하고 나설 가능성에 대비해 일정이 앞당겨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3년상을 마치기 전, 당 총비서 등 새 지도자에 걸맞은 직책을 거머쥘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도체제 안착을 위해선 고모부이자 후견인인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국방정책, 공안업무뿐만 아니라 최근 나선 및 황금평 특구 개발을 담당하는 북·중 공동지도위원회 북측위원장을 맡아 외자 유치 사업에도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경우에 따라선 김정은을 제치고 권력을 틀어쥘 수도 있는 독보적인 인물이다. 장성택이 돕는다면 김정은 체제는 일단 연착륙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일부에선 장성택이 스스로 절대 권력을 틀어쥐고자 김정은을 견제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친중파’인 장성택이 역시 친중파인 장남 김정남을 새 후계자로 지지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다만 군부에 리영호 인민군 총참모장이 버티고 있는 한 독자행동에 나서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리영호는 지난해 9월 당대표자회에서 김영춘 인민무력부장을 제치고 후계자 김정은과 나란히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에 올랐다. 김 위원장이 김정은의 군부 조력자로 낙점한 ‘러닝메이트’인 셈이다. 군부에는 김영춘 인민무력부장, 현철해 국방위원회 국장 등 원로그룹도 포진해 있다. 전문가들은 군에 대한 김정은의 장악력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김정은은 사실상 김 위원장과 북한을 공동 통치해 왔고, 2009년 상반기부터 김정각 조선인민군 총정치국 제1부국장의 지원하에 군부 장악에 착수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군부에 리영호가 있다면 당에는 유망주로 떠오른 신진그룹 최룡해 비서가 버티고 있다. 리영호는 장의위원회에 4번째로 이름을 올렸고 김영춘은 5번째, 고모 김경희는 14번째, 최룡해는 18번째, 장성택은 19번째에 호명됐다. 김정은의 측근 그룹이 모두 권력 서열 20위에 포함된 것이다. 다만 김정은의 친형인 김정철은 명단에서 제외됐다. 이현정기자 hjlee@seoul.co.kr
  • 北 “과로 따른 심장 쇼크사”… 김일성과 닮은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직접적인 사인은 중증급성 심근경색과 심장쇼크 합병이었다고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19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김정일 동지의 질병과 서거 원인에 대한 의학적 결론서’ 제목의 보도를 통해 “겹쌓인 정신·육체적 과로로 지난 17일 야전열차 안에서 중증급성 심근경색이 발생되고 심한 심장성 쇼크가 합병됐다.”고 밝혔다. 이어 “발병 즉시 모든 구급치료 대책을 세웠으나 17일 오전 8시 30분에 서거하셨다.”고 덧붙였다. 통신은 또 “18일 진행된 병리해부 검사에서 질병의 진단이 완전히 확정됐다.”고 전했다. 북측 발표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쇼크 즉시 응급치료에 들어갔지만 결국 돌이키지 못하고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이를 사망 시점인 지난 토요일 아침 이후 만 이틀이 지나서야 공식화했다. 때문에 그의 죽음이 내부 권력투쟁으로 인한 것은 아닌지 의문도 제기된다. 그럴 경우 향후 북한 체제를 좌우할 중요 변수가 될 수 있다. 정부 당국과 전문가들은 일단 북한의 발표를 믿을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정부 외교·안보라인이 북한의 공식 발표 전에 김 위원장의 사망 사실 자체를 인지하지 못했던 탓도 크다. 북한 당국 역시 외부 의심을 불식시키려는 듯 병리해부 검사 결과까지 상세하게 발표했다. 국회 정보위원장인 한나라당 권영세 의원은 “정보당국에 따르면 타살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권 의원은 “17일을 전후해 북한에선 김 위원장의 행적이 크게 보도되거나 돌출되지 않은 채 매우 조용했다.”면서 “암살 등 타살 계획이 있었다면 그렇게 조용했을 리 없고 어떤 식으로든 사전에 감지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한 북한 전문가는 “김 위원장은 뇌졸중 후유증에다 당뇨를 앓고 간도 안 좋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추운 날씨에 과로까지 겹쳐 사망했을 개연성이 크다.”며 부친인 고(故) 김일성 국가주석과 동일한 사인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실제로 김 위원장의 행적은 사망 이틀 전인 15일까지 포착되는 등 활발했다. 그는 이날 평양 광복거리상업중심(대형마트)과 하나음악정보센터를 현지지도하며 조선중앙TV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7일 오전 8시30분 급병으로 사망했다고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매체들이 19일 일제히 보도했다. 69세. 이로써 1998년 김일성 주석 사후 국방위원장으로 김정일 시대를 연지 13년 만에, 1974년 후계자로 공식화된 지 37년 만에 김 국방위원장의 철권통치가 막을 내렸다. 조선중앙통신 등은 ’전체 당원과 인민군 장병과 인민에게 고함’이란 제목의 발표문에서 “김정일 동지께서 주체 100(2011)년 12월17일 8시30분에 현지지도의 길에서 급병으로 서거했다.”고 밝혔다. 북한은 당 중앙위원회, 당 중앙군사위원회, 국방위원회,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내각 공동명의로 발표문을 발표했다. 중앙통신은 ‘김정일 동지의 질병과 서거원인에 대한 의학적 결론서’에서 “17일 달리는 야전열차 안에서 중증 급성 심근경색이 발생되고 심한 심장성 쇼크가 합병됐다.”면서 “발병 즉시 모든 구급치료대책을 세웠으나 17일 8시30분에 서거하셨다.”고 밝혔다. 이어 “18일에 진행된 병리해부검사에서는 질병의 진단이 완전히 확정됐다.”고 덧붙였다. 북한은 김정은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등을 포함해 232명으로 장의위원회를 구성했으나 북한 매체는 김정은의 이름을 제일 먼저 호명해 사실상 위원장 역할을 할 것임을 시사했다. 장의위는 공보를 통해 김 위원장의 시신을 금수산기념궁전에 안치하고 28일 평양에서 영결식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또 오는 29일까지를 애도기간으로 정하고 중앙추도대회는 29일 개최할 계획이지만 “외국의 조의대표단은 받지 않기로 한다.”고 장의위는 전했다. 장의위는 또 ”애도기간에 전국의 모든 기관,기업소들에서 조의행사를 진행하며 평양시에서 중앙추도대회가 진행되는 시간에 각 도, 시, 군에서 추도식을 진행한다.”며 “애도기간에 기관, 기업소에서는 조기를 띄우며 일체 가무와 유희, 오락을 하지 않도록 한다.”고 알렸다. 한편 중국 신화통신은 “김 위원장의 사인 규명을 위해 부검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조선중앙TV 역시 김 위원장의 부검 사실을 전했다. 하지만 이번 부검 결정이 김 위원장의 사인에 의문을 풀기 위함인지 의례적인 부검인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34) 하얀 피부와 사후강직이 일러준 토막살인의 진실 전철역 화장실에 유기된 30대女의 시신 33) 억울한 10대 소녀의 죽음…두줄 상처의 비밀 추락에 의한 자살? 몸을 통해 타살 증언하다 32) 살해된 20대女의 수표에 ‘검은 악마’의 정체가 담기다 완전범죄를 꿈꾸던 엽기 살인마 31) 최악의 女연쇄살인범 김선자, 5명 독살과 비참한 최후 청산염으로 가족, 친구 무차별 살해 30) 동거女 잔혹하게 살해한 30대, 시신이 물속에서 떠오르자… 살인후 물속으로 던진 사건 그후 29) 살인자가 남기고 간 화장품 향기, 그것은 ‘트릭’이었다 강릉 40대女 살인사건의 전말 28) 소리없이 사라진 30대 새댁, 알고보니 들짐승이… 부러진 다리뼈가 범인을 지목하다 27) 40대 여인 유일 목격자 경비 최면 걸자 법최면이 일러준 범인의 얼굴 26) 목졸리고 훼손된 60대 시신… 그것은 범인의 속임수였다 ‘파란 옷’ 입었던 살인마 25) 그녀가 남긴 담배꽁초 감식결과 놀라운 사실이 살인 현장에 남은 립스틱의 반전 24) 택시 안에서 숨진 20대 직장女 살인범은 과연… 돈 버리고 납치한 이상한 택시 강도 23) 살인현장에 남은 별무늬 운동화 자국의 비밀 60대 노인의 치밀한 트릭 22) 70% 부패한 시신 유일한 증거는 ‘어금니’ 억울한 죽음 단서 된 치아 21) 자다가 갑자기 세상을 뜨는 젊은 남자들…누구의 저주인가? 청장년 급사증후군의 비밀 20) 아파트 침대 밑 女 시신 2구…잔인한 ‘진실게임’ 결과는? 누명 벗겨준 거짓말 탐지기 19) 자살이라 보기엔 너무 폭력적인 죽음…왜? 가해자·피해자는 하나였다 18) 헤어드라이어로 조강지처 살해한 50대의 계략… 몸에 남은 ‘전류반’은 못 숨겼네 17) 물속에서 떠오른 그녀의 흰손…토막살인범 잡고보니 바다에서 건진 시신 신원찾기 16) 이태원 옷집 주인 살인사건…20대 여성이 지목한 범인은? 찢어진 장부의 증언 15) 무참히 살해된 20대女…6년만에 살인범 잡고보니… 274만개의 눈이 잡은 연쇄살인범의 정체 14) 백골로 발견된 미모의 20대女, 성형수술만 안 했어도… 가련한 여성의 한 풀어준 그것 13) 車 운전석에서 질식해 숨진 그녀의 주먹쥔 양팔 12) 불탄 시신의 마지막 호흡이 범인을 지목하다 화재사망 속 숨어있는 타살흔적 증거는 11) 자살한 40대 노래방 여주인, 살인범은 알고 있었다 생활반응이 알려준 사건의 진실 10) 소변 참으며 물 마시던 20대女, 갑자기 몸을 뒤틀며… 생명을 앗아가는 ‘죽음의 물’ 9) “그날 조폭은 왜 하필 남진의 허벅지를 찔렀나?”… 칼잡이는 당신의 ‘치명적 급소’를 노린다 8) 변태성욕 30대 살인마의 아주 특별한 핏자국 혈흔속 性염색체의 오묘한 비밀 7) 정자가 수상한 정액…씨없는 발바리’ 과학수사 얕봤다가 정관수술까지 한 연쇄 성폭행범 6) 천안 母女살인범, 현장에서 대변만 보지 않았더라도… ‘미세증거물’ 속에 숨은 사건의 진상 5) 강간 후 살해된 여성, 그리고 부검의 반전 죽을 때까지 여성이고 싶었던 여성의 사연 4) 살해당한 아내의 눈속에 담긴 죽음의 비밀… 흔해서 더 잔인한 위장 살인의 실체는 3) 친구와 함께 차안에서 아내에 몹쓸짓 한 남편 …사고로 위장한 최악의 선택 2) 죽음의 性도착증 ‘자기 색정사’ 혼절직전의 성적 쾌감 탐닉…‘질식에 중독되다’ 1) 데이트 강간을 위한 ‘악마의 술잔’ 한모금에 블랙아웃…24시간내 검사 못하면 미제사건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전체 시리즈 목차보기 (클릭)
  • AI 발생땐 출입·이동 전면금지

    앞으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하면 모든 가금류 축산농장과 작업장으로의 출입과 이동을 전면 금지한다. 농림수산식품부는 18일 “AI 긴급행동지침(SOP)을 개정, 초동 대응 체계를 강화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번 개정으로 앞으로는 고병원성 AI가 발생하면 위기경보 수준이 현행 ‘주의’ 단계에서 ‘경계’ 단계로 높아진다. 모든 가금류 축산 농장과 작업장 등에 가금류·사람·차량의 출입이 일시적으로 금지되는 ‘전국 일시 이동제한’ 조치가 발령된다. 전국 시·군 단위로 가축전염병 기동방역기구를 구성해 AI가 발생하는 즉시 현장에 투입, 이동통제와 소독·매몰지원·역학조사 등을 실시한다. 오염·위험지역 내 공장에서 생산되는 사료는 바이러스 검사와 가축방역관의 지도·감독하에 반출을 허용하도록 했다.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주말 영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MBC 일요일 밤 11시 50분) 1592년 임진왜란 직전의 조선. 전쟁의 기운이 조선의 숨통을 조여 온다. 민초들의 삶이 갈수록 피폐해져 가던 선조 25년. 정여립, 황정학(황정민), 이몽학(차승원)은 평등 세상을 꿈꾸며 ‘대동계’를 만들어 관군을 대신해 왜구와 싸운다. 하지만 조정은 이들을 역모로 몰아 대동계를 해체시킨다. 대동계의 새로운 수장이 된 이몽학은 썩어 빠진 세상을 뒤엎고, 스스로 왕이 되려는 야망을 키워 친구는 물론 오랜 연인인 백지(한지혜)마저 미련 없이 버린 채 세도가 한신균 일가의 몰살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반란의 칼을 뽑아 든다. 한때 동지였던 이몽학에 의해 친구를 잃은 전설의 맹인 검객 황정학은 그를 쫓기로 결심하고, 이몽학의 칼을 맞고 겨우 목숨을 건진 한신균의 서자 견자(백성현)와 함께 그를 추격한다. 15만 왜구는 순식간에 한양까지 쳐들어 오고, 왕조차 나라를 버리고 궁을 떠나려는 절체절명의 순간. 이몽학의 칼 끝은 궁을 향하고, 황정학 일행 역시 이몽학을 쫓아 궁으로 향한다. ●하바나 블루스(KBS1 토요일 밤 12시 55분) 쿠바 아바나의 무명 뮤지션인 루이와 티토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고 생활고에 시달리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 하나만으로 살아 가는 젊은이들이다. 자신들의 열정을 담은 첫 콘서트를 기획하던 중 실력 있는 신인을 찾으러 온 스페인의 유능한 음반 프로듀서를 만나게 되고 스카우트 제의를 받게 된다. 꿈에 부푼 두 사람은 평생 나가 보지 못했던 쿠바를 떠나 스페인 큰 무대에서 활동할 수 있다는 설렘으로 음반 준비를 시작한다. 그러나 자신들의 계약이 노예계약과 다름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루이와 티토는 고민에 빠진다. 루이는 부인과도 이혼의 위기에 놓이고 나라를 버려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린다. 하지만 티토는 자신들의 인생에 찾아온 절호의 기회를 잡아야 된다고 하면서 갈등을 빚게 된다. ●꼬마 유령 캐스퍼(EBS 일요일 오후 2시 30분) 유령이 출몰한다는 대저택 ‘윕스태프’에 두 소년이 잠입한다. 이들은 이 으스스한 곳에서 증명 사진을 찍어 친구들에게 자신들의 용기를 증명하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 유령이 나타나자 혼비백산해서 도망친다. 사실 이곳의 터줏대감은 꼬마유령 캐스퍼와 그의 삼촌들인 유령 삼총사다. 캐스퍼는 사람들과 친해지고 싶지만 다들 캐스퍼가 나타나기만 하면 기겁하고 도망치는 바람에 늘 외롭다. 그러던 어느 날 저택의 상속자인 캐리건과 그녀의 오른팔 노릇을 하는 딥스가 이곳에 숨겨진 보물을 찾기 위해 찾아온다. 그러나 이들도 역시 캐스퍼와 짓궂은 유령 삼총사의 등장에 기겁을 하고 도망친다. 그렇게 캐리건과 딥스는 유령을 쫓아내기 위해 ‘고스트 버스터스’에 철거반까지 동원하는데….
  • 유시춘·시민 남매 엇갈린 ‘통합’

    유시춘·시민 남매 엇갈린 ‘통합’

    유시민(오른쪽)-유시춘(왼쪽) 남매가 각각 다른 통합의 대열에 합류했다. 동생 유시민 대표는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 통합연대가 참여한 통합진보당의 공동대표로, 친누나인 유시춘 진보통합시민회의 상임대표는 친노무현계가 주축이 된 시민통합당에서 민주당과의 합당을 준비 중이다. ‘정치적 동지’이자 친남매인 두 사람이 각각 다른 울타리에서의 정치적 행보를 택한 것이다. 유시춘 대표는 이번 결정을 “(남매가)양 날개를 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통합진보당과 야권통합정당이 양 날개를 펼쳐 국민의 요구를 더 넓게, 더 많이 받아낼 수 있도록 만들고 싶다고 소망했다. 유시춘 대표가 동생을 지원하는 대신 민주당과의 합당을 택한 것은 진보정당보다 국민들에게 더 익숙하고 편한 정당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익숙함과 편안함을 토대로 청년 문화를 수용하고, 온·오프라인이 결합된 정당을 만들면 더 큰 그릇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반면 친노계의 대표주자였던 유시민 대표는 익숙한 길과의 결별을 선언하고 진보정당을 선택했다. 그는 인터뷰 등을 통해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가지 않은 길을 가겠다.”고 공언해 왔다. 남매가 정치적 행보를 달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7년에는 유시춘 대표가 당시 범여권 대선주자였던 이해찬 전 국무총리의 캠프에 홍보위원장으로 합류하면서 온갖 정치적 해석을 낳았다. 당시는 유시민 대표의 대선 출마설이 나돌았었다. 두 남매는 또다시 엇갈린 길을 가게 됐지만 유시춘 대표는 “솔직히 동생 유시민 대표가 있는 진보정당이 더 잘되기를 바란다.”고 속마음을 살짝 드러냈다. 통합진보당과 야권통합정당이 선거연대를 할 경우 남매는 총선·대선 현장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이현정기자 hjlee@newsis.com
  • 300억 든 ‘마이웨이’ 직접 보니…관전 포인트는?

    300억 든 ‘마이웨이’ 직접 보니…관전 포인트는?

    강제규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한·중·일 대표배우가 집합한 초대형 블록버스터 ‘마이웨이’(My Way)가 드디어 베일을 벗었다. 지난 13일 서울 광진구의 한 멀티플렉스에서 열린 언론시사회에는 국내 뿐 아니라 일본·중국 언론까지 몰려 관심을 입증했다. 제2의 손기정을 꿈꾸는 조선 청년 준식(장동건)과 일본 최고의 마라톤 대표선수 타츠오(오다기리 조)의 국적과 역사를 초월한 우정을 그린 ‘마이웨이’ 는 형식면에서 높은 점수를, 구성 면에서는 다소 기대 이하의 실망감을 안겨줬다. ●‘스케일’ 하면 역시 강제규 감독 대한민국 영화 역사를 새로 쓴 ‘쉬리’부터 천만 관객 신화를 이룬 ‘태극기 휘날리며’까지, 강제규 감독에게는 ‘대형 스케일’이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 붙어왔다. ‘마이웨이’ 역시 전쟁을 다룬 할리우드 영화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탄탄한 연출과 스케일을 자랑한다. 특히 영화가 클라이맥스에 달하는 노르망디 상륙전 장면에서 그의 ‘웅장한 스케일 전문’ 연출력은 빛을 발한다. 노르망디 상륙전 연출의 ‘바이블’이라 할 수 있는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비교될 것을 염려했는지, 고심한 흔적이 역력한 클라이맥스다. 여기에 라이벌이자 동지로서 극 전반을 함께 이끌어가는 장동건과 오다기리 조의 균형도 잘 맞는 편이다. 두 사람의 카리스마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거나 과하지 않고, 조화롭게 전개되는 것 역시 강제규 감독의 역량으로 평가할 수 있다. ●오다기리 조, 왜 출연했을까? ‘마이웨이’는 일본이 조선과 중국을 억압하던 시대를 배경으로 시작된다. 전 세계적으로 평화를 강조하는 현 시점에서, 당시는 지배당한 조선, 중국 뿐 아니라 일본에게도 매우 굴욕적인 역사다. 영화 초반에는 일본을 향해 저절로 주먹이 불끈 쥐어질 만큼 성질을 돋우는 장면이 다수 등장한다. 영화를 보다 보면 일본을 대표하는 배우인 오다기리 조가 현지 언론의 뭇매를 맞을지도 모른다는 걱정과 함께, 왜 이 영화를 선택했는지가 궁금해진다. 하지만 엔딩신에 가까워질수록, 그리고 영화가 무엇을 말하는지에 귀를 기울일수록 궁금증은 서서히 풀린다. 역사, 과거, 국적을 넘은 우정과 결국은 타인에게 공격받고 피 흘리면서 느끼는 동병상련, 정(情)에서도 가장 끈질기다는 미운정이 극중 준식과 타츠오를 화해하게 한다. 또 한편으로 오다기리 조의 출연은 일본을 대표해 한국 역사에 사과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의미를 내포한다. 무차별한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어려운 현실 속에서 함께 손잡고 헤쳐 나가자고 말하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두 배우가, 양국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영화 한 편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뻔한 스토리와 캐릭터, 휴머니즘의 한계 할리우드에 뒤처지지 않는 전투신과 역사적 의의를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이웨이’는 뻔한 스토리와 캐릭터로 다소 실망감을 안겨준다. 중국 출신 명사수(판빙빙)의 캐릭터는 영화 ‘고지전’의 김옥빈을 연상케 하고, 노르망디 상륙전을 제외하고 엄청난 물량과 러닝타임이 소비된 전투신은 재방송을 보는 듯 긴장감 없이 흘러간다. 반전에 익숙한 최근 관객들에게 예측 가능한 결말 또한 마이너스로 작용될 수 있다. 또 전쟁을 통한 휴머니즘의 자각은 이미 전 세계 영화계가 도돌이표처럼 써 먹는 콘텐츠이다 보니 별 다른 감흥이 없다. 여기에 2시간 30분에 달하는 러닝타임의 압박 역시 불편함을 준다. 전쟁 속에서 신념을 잃지 않는 준식과 전쟁으로 점차 변해가는 타츠오 등 주변 인물들의 모습은 ‘태극기 휘날리며’의 플롯을 고스란히 반복하는 느낌을 준다. 다만 역사 속 희비극을 한 몸에 껴안고 심리적 충돌을 잘 표현한 김인권은 충무로 대표 씬스틸러라는 수식어에 걸 맞는 최고의 연기를 선보였다. 강제규 감독 연출, 장동건, 오다기리 조, 판빙빙, 김인권 등 아시아 대표 배우가 총출동하고, 제작비 300억 원이 투입된 블록버스터 ‘마이웨이’는 오는 22일 개봉한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허광태 서울시의장 자전에세이 출간

    서울시의회는 오는 15일 오후 2시30분 종로구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허광태 의장의 자전에세이 ‘뿔난 서울, 고삐를 죄다’ 출판 기념식을 갖는다고 12일 밝혔다. 책에는 지난해 의장으로 취임한 이후 무상급식 추진과 주민투표 실시, 서울광장 개방 추진, 토목·전시·홍보행정 예산을 사람중심·민생예산으로 편성한 ‘2012년도 예산’ 등 그동안 논란이 됐던 서울시 정책현안에 대해 의장으로서의 소회를 담았다. 전북 진안군 상전면 구룡리에서 태어나 중학교 학생회장 도전에 얽힌 에피소드, 독재정권에 항거한 ‘연청(민주연합청년동지회) 활동, 36세에 시의원 도전과 실패, 의장이 되기까지 삶의 궤적도 그렸다. 허 의장은 4·5·8대 서울 양천구의원을 지냈고, 지난해 7월 제8대 서울시의회 의장으로 선출됐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울릉도 그리고 독도 느린 시간 속에 머물다

    울릉도 그리고 독도 느린 시간 속에 머물다

    독도 바람에 풍화되고 파도에 깎여져도 굳건히 제자리를 지키는 것이 있다. 대한민국 최동단의 섬, 독도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울릉도 그리고 독도 느린 시간 속에 머물다 습관처럼 뜨거운 커피 생각이 났다. 울릉도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도동항을 샅샅이 뒤져도 ‘시럽 뺀 아메리카노’를 찾을 수 없었다. 허름한 다방 앞에 서서 그때서야 내 착각이 한참 심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문명의 파도에 아랑곳 않고 제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은 섬 중의 섬 울릉도, 그리고 독도인 것이다. 글·사진 전은경 기자 취재협조 코레일 관광개발 섬이란 곳은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 감정은 어른이 되어 처음으로 떠난 섬 여행에서 출발한다. 사실 그 섬에 대해선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과감무쌍하게 돌아가는 배가 뜨지 않길 바랐던 것만은 기억한다. 그것은 무단외박을 소망하던 어린 날의 혈기만은 아니었다. 스스로 고립된, 그리하여 찾아오는 사람마저 고립되게 만드는 ‘섬’의 특성에 매료되었던 탓이다. 이번 울릉도, 독도 여행에서 죽도竹島(울릉도의 44개 부속섬 중 가장 큰 섬)를 바라보며 그날의 기억이 문득 떠오른 것은 단지 우연이 아닌 듯했다. 울릉도의 대표 관광지이지만 실제 주민은 단 한 명뿐이며, 물이 전혀 나지 않아 빗물을 모아 사용하는 섬. 죽도는 첫 섬 여행에서 채우지 못했던 환상이 고스란히 구현된 곳이었다. 마치 외로운 두 사람이 만난 것 같은 동지애가 든든하게 차올랐다. 사실 울릉도 도동항에 도착하던 날, 비가 올 것이라던 일기예보와 달리 햇빛이 반짝 났다. 배에서 내린 사람들은 청명하게 갠 하늘을 보며 함박 웃었다. 파도가 제법 높긴 하지만 독도까지 가는 것도 무리가 없을 것이란다. 아마 이번 여행도 무사히, 섬에 갇히는 일 따위 없이 귀환할 것 같다. 섬에서의 일정은 내가 아닌, 하늘이 결정한다. 그래서 섬 여행은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자연을 고스란히 간직한 풍경 포항을 출발한 배가 3시간을 달려 도동항에 도착했다. 사실 서울에서 울릉도까지 오는 길이 녹록치만은 않았다. KTX와 버스, 여객선을 갈아타며 반나절 내내 멀미에 시달리는가 싶더니 배에서 내리자마자 불어온 갑작스런 강풍이 끈적거리는 머리를 봉두난발 헝클어트렸다. 그러나 육지에 발을 내딛어 몇 걸음 나아가자, 더 이상 바닥이 울렁이지 않는다는 안도감에 온몸에 뭉쳐있던 긴장감이 풀리기 시작했다. 그때, 어디선가 훅하고 바람이 불어왔고, 순간 여행의 세포가 온전히 돌아왔다. 그것은 비릿함이나 끈적거림이 없는 청정해안 울릉도의 상쾌한 바람이었다. 울릉도의 첫인상은 산과 돌이다. 울릉도를 여행하다보면 울릉도에 많다는 다섯 가지-돌, 바람, 물, 미인, 향나무-가 괜히 나온 말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산중으로 갈수록 풍경은 울창한 숲과 화산암벽으로 압도되고, 인적을 찾는 일은 무의미해진다. 심지어 울릉도에는 모래사장으로 이루어진 해수욕장이 단 한 곳도 없다. 모두 검은 자갈이나 몽돌로 이루어져 있다. ‘모래사沙’자를 쓰는 사동해수욕장마저 물속으로 들어가야만 고운 모래를 볼 수 있을 정도다. 그 매끄러운 몽돌을 기념품 대신 챙겨온 것은 역시 탁월한 선택이었다. 울릉도는 동해에 솟아난 거대한 화산암 지역이다. 섬의 중앙부에 솟아 있는 울릉도 최고봉인 ‘성인봉(984m)’, 울릉도의 유일한 평야지대라고 부를 만한 화산분화구 ‘나리분지’ 등은 지질학적으로도 꼭 한번쯤 관심을 가져 볼 만하다. 그러나 울릉도는 언제 어디서나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아니다. 1년 중 쾌청한 날이 약 55일밖에 되지 않고 1년에 서너 차례 울릉도를 덮치고 가는 태풍이 가뜩이나 좁은 문지방을 한껏 높인다. 그러나 울릉도가 문명의 색에 완전히 물들지 않은 이유도 바로 약간 모자란 그 접근성 때문이다. ‘신비의 섬’ 울릉도는 고맙게도 우리에게 자연 본연의 모습을 그대로 선사한다. 또한 도시와 결별하고 과거와 만나는 경험을 안겨준다. 백화점은 고사하고 5층 아파트가 최고층인 이곳에서는 프랜차이즈 식당이나 커피전문점 대신 곳곳에 소박한 밥집과 다방이 성업 중이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울릉도에서 여행자들은 오징어와 호박엿, 그리고 추억을 양 손 가득 들고 돌아온다. 작고 소박한 바닷가 마을을 가다 울릉도는 44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에서 사람이 사는 곳은 고작 4개 섬에 불과하다. 마을의 개수는 25개나 되지만 인구는 고작 1만명이라 각 마을마다 옹기종기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다. 해안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이 작고 소박한 마을의 사람 사는 풍경을 보게 된다. 울릉도의 최대 항구 도동항이 있는 ‘도동마을’, 어업전진기지가 들어선 저동항이 있는 ‘저동마을’ 등 제법 북적이는 마을이 있는가 하면 평온한 바닷가 ‘태하마을’, 울릉도 최고의 오지 ‘천부마을’ 등도 있다. 이 외에도 겨울이면 3m씩 눈이 쌓이는 ‘나리분지’나 울릉도에서 가장 따뜻한 마을 ‘남양’, 수심 1,500m 앞바다에서 해양심층수를 생산하는 ‘현포’, 비좁은 골짜기에 자리잡은 갯마을 ‘통구미’ 등 저마다의 특징을 간직한 마을들이 한데 모여 오만가지 조화로운 색상으로 울릉도를 이루고 있다. 사실 이 마을들을 잇는 울릉도 일주도로는 한 바퀴 둘레가 56.5km인데, 그중 4.4km가 아직 완공되지 않아서 완전히 한 바퀴를 돌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 덕에 울릉도 최대 관광지인 나리분지 바로 옆에 관광객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고요한 ‘천부마을’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태하마을의 오징어 말리는 풍경 태하마을은 일명 ‘달팽이탑’이라 불리는 전망대에서 감상하는 평온한 바닷가가 인상적인 곳이다. 그러나 태하마을에서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해변을 따라 죽 늘어뜨린 오징어였다. 예전에는 ‘황토구미’라고 불리었던 이곳은 울릉도 다른 지역에 비해 경작여건이 좋아 한때 논농사를 지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바람이 유독 세게 불어 오징어 건조에 유리하기 때문에 뭐니뭐니 해도 오징어 말리는 풍경을 빼놓을 수가 없다. 태하마을을 방문한 시각, 때마침 불어온 바닷바람이 석양노을을 머금고 태하마을의 오징어를 한껏 무르익게 만들고 있었다. 오징어 말리는 풍경 속을 걷다 보면 그 속에서 정성스레 오징어를 돌보는 사람들도 만날 수 있었다. 오징어 한 축의 가격을 물었더니 가격보다 중요한 게 오징어 ‘고르는 법’이라 한다. 건네준 오징어에는 상표와 동네 이름이 찍혀 있다. 울릉도에서 잡은 오징어임을 증명하는 방법이다. 뿐만 아니라 오징어는 살아있을 때 등이 검붉은 게 좋은 상태라는 것, 잡은 뒤 하루나 이틀 안에 건조시키지 않으면 맛과 향이 떨어진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렇기에 반드시 ‘당일바리’ 오징어를 사야 한다는 귀띔까지. 가격은 오징어 한 축에 5만원 정도다. 예전에 비해 가격이 많이 올랐다고 볼멘소리를 했더니 몇 년 전만해도 오징어배 조업일이 일 년에 120~130일 정도 됐었기 때문에 가격이 쌌지만 작년엔 오징어가 안 나서 고작 50일밖에 조업을 나가지 못한 탓이란다. 독도로 가는 배에서 멀미를 방지하기 위해 오징어를 질겅질겅 씹는 사람들을 제법 봤다. 사실 배멀미에는 심이 없어 부드럽고 향이 없는 것이 특징인 울릉도 더덕이 더 좋다. 그러나 항구에서 배를 기다리며 다리 한 짝, 몸통 한 쪽 찢어가며 먹는 오징어는 울릉도를 추억하게 만드는 가장 인상적인 심심풀이 ‘오징어 땅콩’이다. 1 통구미 마을의 망망대해를 지키는 것은 한결같이 우뚝 서 있는 화산암이다 2 오징어는 마르는 동안 울릉도의 바닷바람을 머금는다 3 태하마을 황토굴 입구에서 붉은 황토 암석층을 볼 수 있다 4 울릉도 더덕은 심이 없어 부드럽고, 향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5 청정 지역인 울릉도에서 잡힌 오징어는 중금속이 함유되어 있지 않다 6 홍합밥은 홍합을 넣어 지은 밥에 각종 울릉도 자생 나물을 곁들여 먹는 음식이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신비의 섬’의 비밀을 찾아서 사실 울릉도도 사람이 제법 많이 살았던 때가 있었다. 1970년대에는 대략 3만명으로 최대 인구를 기록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고작 1만명 정도가 모여 살 뿐이고, 그나마도 항구마을에 밀집되어 있다. 어딜 가든 한 무리의 관광객이 빠져나간 곳에는 도통 인적을 찾기가 힘들다. 그 때문일까, 울릉도 해변은 텅 빈 공간을 거북이바위, 새바위, 코끼리바위, 악어터널 등 바다 위 오롯이 솟아오른 바위들이 채우고 있다. 바다 깊숙한 곳부터 뿌리를 박은 조면암, 안산암, 직지암. 이들은 마치 오랜 세월 울릉도를 지켜 온 수호신처럼 한결같은 모습으로 이방인들을 받아들인다. 얼마 전, <론리 플래닛>은 울릉도를 ‘2011년 지구에서 가장 흥미로운 비밀의 섬 10곳’ 중 하나로 선정했다. 수심을 헤아릴 수 없는 검푸른 바다, 깎아지른 해안절벽, 그 꼭대기에 홀로 자라난 향나무를 바라보며 느끼는 경외감은 말이 필요 없는 확실한 증거이다. 그러나 그 어떤 것보다도 해안절벽을 따라 걷는 한 걸음, 원시림을 헤치고 가는 한 걸음 한 걸음에서 울릉도의 신묘한 아름다움이 온몸을 따라 아로새겨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리분지를 찾게 되나 보다. 성인봉 북쪽의 칼데라화구가 함몰하여 형성된 화산분화구. 특이한 점이라면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사람이 사는 분화구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곳은 화산재로 덮여 있어 보수력이 약하기 때문에 밭농사를 할 뿐, 논농사는 불가능하다. 그런데다가 농작물의 피해가 크고 겨울에는 3m 이상의 눈이 내릴 뿐만 아니라, 흘러드는 물이 외부로 나갈 출구가 없어 집중적인 호우에는 일시적으로 호수로 변한다. 사람이 살기엔 너무나 척박한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16가구의 주민들이 여전히 이곳에 살고 있다. 이곳 주민들은 이러한 자연조건 속에서 빙설에 대비한 ‘너와지붕(기와 대신 얇은 나무 조각이나 돌조각을 얹은 지붕)’과 ‘우데기(옥수숫대 등으로 집 바깥을 둘러친 외벽)’라는 합리적인 가옥 구조를 만들어내고, 주로 더덕·취·삼나물 등의 산채나물과 약간의 옥수수와 감자를 재배하며 살아 왔다. 근래에는 나리분지를 찾는 관광객이 부쩍 늘어나 민박이나 식당 등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관광객을 위해 만들어놓은 민속촌이 아니고서는, 이제 더 이상 울릉도 고유의 가옥인 우데기집을 찾아보기도 힘들어졌다. 울릉도는 서서히 변하고 있다. 4.4km의 도로가 이어지면 자동차로만 온전히 울릉도를 일주할 수 있게 된다. 육지에서 비행기를 타고 한 시간 만에 섬에 도착하는 날이 그리 멀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직 울릉도는 가본 길보다 가보지 않은 길이 더 많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은 그대로의 모습만으로도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이며, 자연을 뒤엎고 세워 올린 건물보다 항구의 노점상이 더 친근한 동네다. 울릉도를 떠나는 날, 멀미약 하나를 단숨에 들이켜고 배를 기다리던 중 울릉도에 이주한 이장희씨와 마주쳤다.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한잔의 추억’ 등을 부르며 한 시대를 풍미한 스타라기엔 무척이나 소박한 모습이었다. 자신의 보금자리에 ‘울릉 천국’이라는 이름을 붙일 정도로 울릉도에 흠뻑 매료된 그는 꾸미지 않은 울릉도 풍경처럼 자연스레 그 속에 녹아있었다. “나 죽으면 울릉도로 보내 주오. 나 죽으면 울릉도에 묻어 주오.” 그가 최근 발표한 ‘울릉도는 나의 천국’ 노래가사가 계속 귓가에 맴돈다. 신선이 사는 섬, 독도 생각하면 먹먹해지는 몇 가지가 있다. 독도를 떠올리면 한번쯤은 그런 먹먹함에 빠지게 된다. 울릉도에서 87.4km 떨어진 독도. 대한민국 최동단에 홀로 우뚝 선 이 섬은 사람이 살지 못하는 척박한 땅이다. 그래도 우리는 독도를 찾아간다. 볼거리라곤 양 옆으로 솟아난 두 개의 섬, 동도와 서도 그리고 주변에 흩어져 있는 89개의 바위섬밖에 없지만 독도에 발을 디딘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떤 여행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감정의 동요를 느낀다. 그것은 어쩌면 지켜내야 할 것을 지키지 못한 미안한 마음 때문일 것이다. 돌섬. 울릉도 개척 당시 입도한 주민들이 사방이 온통 돌뿐인 이 섬을 ‘돌섬’이라 부르기 시작하였고 훗날 ‘독섬’을 거쳐 ‘독도’라 불리게 되었다. 문헌에 따르면 독도는 인간이 사는 섬이 아니라 신선이 사는 섬이다. 독도에 대한 사람들의 환상을 드러내는 한편, 역설적으로 사람이 살기에 적당하지 못한 섬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신선의 섬에 갈 시간이다. 울릉도 저동항에서 출발한 배가 독도에 도착하는 데 걸리는 예정시간은 1시간 30분. 배가 작아 멀미가 수반될 것이라는 안내방송이 객실에 울리자, 사람들은 재빨리 위생봉투를 챙기고 억지로 잠을 청한다. 사실 독도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10분, 길어도 30분뿐이다. 게다가 기상의 영향으로 일 년 동안 독도에 접안할 수 있는 날은 채 60일이 되지 않는다. 독도에 근접해서도 차마 밟아 보지 못하고 주위만 맴돌다 돌아와야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래도 사람들은 여행의 반나절을 온전히 독도 방문에 바친다. 독도에 휘날리는 태극기를 그려보고, 독도 주민 김성도, 김신열 부부와 엄태명, 하호규 독도 등대원을 만나는 상상을 한다. 척박한 땅 독도에는 ‘우리’라는 동질감이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1 나무 조각 위에 돌조각을 올려 놓은 전통 가옥구조인 너와지붕 2 9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부드럽고 통통한 울릉도 오징어가 잡히는 시기 3 원없이 보게 되는 바다와 바위는 울릉도를 떠나서도 결코 잊을 수 없는 풍경이다 4 밤낮으로 독도를 지키는 독도수비대의 또 다른 의무는 끝없는 촬영 요청에 응하는 것일지도 5 독도의 동도. 서도보다는 작지만 비교적 꼭대기가 평탄하여 등대와 경비초소 등의 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울릉도와 독도를 한번에! ‘독도 지킴이 여행’ 기차, 버스, 배를 꼬박 두 번 반복해서 타야 하는 울릉도행 여정. 번거로움을 조금이나마 덜고 싶다면 표 예매는 물론이고 2박 3일 일정까지 알차게 잡아주는 투어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울릉도 구석구석을 여행하는 한편, 향토음식인 홍합밥, 씨껍데기술, 산채전 등을 맛볼 수 있다. 둘째 날 우리 땅 독도를 방문하고, ‘명예독도주민증’을 받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다. 여행상품 ‘아름다운 우리 땅 독도지킴이 수호대 여행’ 출발 방침상 독도 방문은 올 11월 중순까지만 진행되며 내년 2월에 재개된다. 요금 2박3일 29만9,000원(왕복 교통 및 여객선비, 숙식료, 관광비, 여행자 보험 포함) 문의 코레일 관광개발 www.korailtravel.com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문화마당] 껍데기는 가라/주원규 소설가

    [문화마당] 껍데기는 가라/주원규 소설가

    아침 7시.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을 꺼내 트위터를 시작한다. 오늘의 날씨, 하루의 다짐, 일일 스케줄 등을 비몽사몽간에 들춰내는 것으로 하루의 시작을 알린다. 직장으로 향하는 지하철 속에서도 쉼 없이 검색하고 입력한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들은 친숙한 팔로어들이 1차 수신자이겠지만 엄밀히 보면 익명의 대상을 향해 자신을 공개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그물망 속에서 끊임없이 헤쳐모여를 반복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사사로운 행위를 통해 서로를 발견하고 다양한 정보를 생산해 낸다. 점심 메뉴에 대한 고민을 나눌 때, 누군가 맛있게 먹었던 맛집을 이야기한다. 그러면 다른 팔로어가 또 다른 맛집에 대한 의견을 말하거나 맛집의 위치, 가격, 서비스 등 소소하지만 필요한 정보를 친절히 내놓는다. 상대가 자신의 사사로움을 밝힌 것처럼 상대를 대하는 SNS의 또 다른 동지들도 자신의 사사로움 꺼내놓기를 전혀 주저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 사사로움은 단지 소통의 매개가 사적 공간이라 해서 그 주제까지 사사로움의 형틀에 얽매이는 것은 아니다. 하루를 시작하는 스케줄, 점심메뉴를 이야기하는 것뿐만 아니라 국내외 정세 문제, 정치적 현안, 경제 문제, 교육, 복지와 관련된 정부 정책에 대한 나름의 의견 피력까지, 예전엔 거대담론으로만 여겨졌던, 그래서 라디오나 신문 사설, TV 토론 프로에서나 접함직한 주제들까지 SNS의 장(場) 속에서 무한 융합과 이종(異種) 증식을 반복하는 것이다. SNS 메시지의 융합은 위로부터의 거대 담론이 아닌, 아래로부터 위로 확산되는 독특한 특성을 갖고 있다. 이는 문화의 형성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문화적으로 특출한 경향의 태동은 위로부터, 다시 말해 정책의 방향이나 제도 수립으로 인해 형성되지 않는다. 아래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주고받은 다양한 감성의 공유로 인해 퇴적되는 흐름의 취합이 제도가 되고 정책을 수립하게 되는 특성을 갖는 것이 바로 문화적 현상인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SNS의 영향력은 태생부터가 아래로부터 위로 솟구치고, 그렇게 솟구쳐 오른 담론이 제도나 정책이 되어 다시 아래로 흐르는 순환구조를 열망하는지도 모른다. 그러한 순환구조의 흐름이 SNS 자체가 갖고 있는 새로움의 용광로가 아니겠는가. 한 가지 우려되는 점이 있다. 바로 껍데기에 대한 그릇된 열망과 집착이다. 껍데기에 대한 의식은 우리 사회 저변을 집요하게 잠식하는 오만과 파렴치로 회칠된 위선이다. 우리가 사사로움을 표현하는 것, SNS의 사적 공간을 통해 사적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는 전제에는 사람과 사람 간의 신뢰가 합의되어야 한다. 이는 약속을 지키는 것, 비밀보장 같은 차원의 문제와는 또 다르다. 사적 공간에 대한 예의를 말함이다. 사적 공간의 의미를 가치 폄하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이와 듣는 이가 합의하는 대전제, 사람에 대한 기본적 신뢰, 그를 바탕으로 한 솔직함의 교감이 SNS 소통의 궁극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신뢰의 토대 위에서 의견에 대한 비판과 반대의견의 교류가 이뤄져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껍데기에 대한 열망은 사적 공간의 평등성을 주장하면서도 그 사적 공간에서조차 계급을 나누고 편을 가르고 상대를 짓밟는 무대로 활용하고자 하는 졸렬함을 잉태한다. 자신을 따르는 팔로어의 규모, 이슈 메이커가 되고자 하는 집착, 사적 공간에서 도리어 공인으로 대우받길 원하는 인정욕구, 그러한 비루한 욕망이 마침내 아래로부터 시작된 문화 혁신을 가로막는 소통의 장애가 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오늘의 SNS 시대는 신동엽 시인이 ‘껍데기는 가라’를 외쳤을 때의 알맹이를 전례 없는 치열함으로 구현해낼 수 있는 마지막 시대이기도 하다. 바라건대 권력과 위선의 탈을 벗어 던진 솔직함이 빚어낸 담론 문화가 형성되어, 이제야 제대로 알맹이를 말할 수 있게 되었다는 기쁨의 탄성이 터져 나오길 기대해 본다.
  • 영동지역 다기능 첨단헬기 배치

    영동지역 다기능 첨단헬기 배치

    산불 진화는 물론 병충해 방제까지 가능한 다기능 최첨단 중형헬기 1대가 강릉산림항공관리소에 새로 배치됐다. 산림항공본부는 5일 첨단 기능을 갖춘 산림헬기 AS-350B2 기종의 중형헬기 취항식을 갖고 동해안 지역의 산불임무에 본격 투입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배치된 헬기는 프랑스 유로콥터가 제작한 기종의 7인승으로 엔진 출력이 최대 732마력, 시속 180㎞이며 비행시간은 최대 3시간 20분이다. 인양 능력은 750㎏에 이르고, 800ℓ와 500ℓ짜리 물탱크도 장착돼 있어 산불진화는 물론 항공방제에도 효과적이다. 이 헬기는 산불조심 기간에는 주로 산불발생 취약지역 감시활동 및 공중 계도방송에 이용되며, 실제 산불발생 시에는 공중 지휘기로, 평상시에는 소나무 재선충과 밤나무 항공방제에 투입된다. 김주현 강릉산림항공관리소장은 “이번 중형기 배치가 내년 봄 대형산불 예방은 물론, 초기 진화에도 많은 기여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릉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중국軍 ‘항모 공로자’ 추모 이유는

    “류화칭(劉華淸) 동지의 위대한 뜻을 잊지말자!” 중국 군 기관지 해방군보는 지난 1일 1면과 2면에 걸쳐 올 초 세상을 떠난 ‘중국 항공모함의 아버지’ 류화칭 전 중앙군사위 부주석을 기리는 장문의 글을 게재했다. 후진타오 주석과 시진핑(習近平) 부주석에 이은 군 서열 3, 4위 인사인 궈보슝(郭伯雄), 쉬차이허우(徐才厚) 중앙군사위 부주석 공동명의의 글이다. 1만자 분량의 추모글에서 궈 부주석과 쉬 부주석은 해군사령관을 역임한 류 전 부주석의 해군 현대화 공로와 항모 프로젝트에 대한 공헌에 찬사를 보냈다. 중국의 첫 번째 항모 바랴크함이 두 번째 시험운항에 나선 상황에서 군 최고수뇌부의 ‘류화칭 추모’는 중국 군의 독자항모 보유 욕구와 대양 해군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실제 류화칭은 1970년 중국에서 처음으로 항모 보유의 필요성을 제기했던 인물이다. 그는 “중국이 항모를 만들지 않으면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할 것”이라며 항모 확보에 강한 집념을 여러 차례 드러냈다. 지난 1월14일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중국 언론들이 “중국 항모의 아버지가 중국 최초의 항모 진수식을 못 보고 세상을 떠났다.”며 안타까워했을 정도다. 중국은 우크라이나에서 수입해 개조한 바랴크함과는 별도로 2015년쯤 독자기술로 건조한 첫 번째 국산 항모를 진수시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Weekend inside] 은행가 ‘이방인 손님 모시기’ 경쟁 치열

    [Weekend inside] 은행가 ‘이방인 손님 모시기’ 경쟁 치열

    “해외에서 쓸 수 있는 비자 현금입출금기(ATM) 카드가 필요해요. 지금 한국에 있는데 좀 도와주세요.” “고객님, 국제 체크카드를 발급하시면 됩니다. 그전에 몇 가지 당부 사항을 알려 드릴게요.…” 지난달 18일부터 외환은행이 국내 거주 외국인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페이스북(www.facebook.com/kebforexpats)에서 오간 대화다. 국내 등록 외국인 수가 100만명(10월 말 기준 99만 6676명)에 이르면서 이들을 고객으로 유치하려는 은행들의 마케팅 경쟁도 한층 치열해지고 있다. 외환은행은 2008년 7월 외국고객영업본부를 국내 은행 중 처음으로 만들었다. 외교관, 주재관, 대기업 연구인력, 원어민 교사 등 국내거주 외국인 및 법인을 대상으로 효과적인 마케팅을 펼치기 위해서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타깃 고객층인 18만명의 약 30%인 5만 8000명이 외환은행과 거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은행은 외국인 고객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 4월 영문으로 운영하는 페이스북을 개설하고 주요 공지사항을 전달하거나 이벤트를 여는 수단으로 활용한다. 또 외국인 고객이 환율에 민감한 점을 고려해 매주 환율 전망보고서를 제공한다. 이와 함께 국내 은행 중 유일하게 애플사의 매킨토시 운영시스템에서 쓸 수 있는 인터넷뱅킹인 ‘맥 뱅킹’을 개발했다. 미국과 유럽 등에서 온 외국인들은 매킨토시를 탑재한 컴퓨터를 흔히 쓰지만, 국내 은행의 인터넷뱅킹 시스템은 마이크로소프트 윈도 체제만 지원해서 불편을 겪어 왔다. 또 외국어 능통자를 전국 22개 외국인 전략점포에 배치하고 있다. 이 중 고객의 70% 이상이 외국인인 서울 이태원지점과 한남동, 강남 스타타워지점 등 3곳은 자산이 많은 외국인 VIP 고객을 위한 프라이빗뱅킹(PB) 점포 형태로 운영 중이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일본인이 많이 사는 서울 이촌동지점에는 일본인 직원을 파견하고 프랑스인들이 모여 있는 서래마을 인근의 반포동지점에는 프랑스어에 능통한 직원을 배치했다.”고 말했다. 하나은행도 국내에 방문 취업한 중국동포, 베트남 근로자 등을 대상으로 집중적인 마케팅을 하고 있다. 2008년 3월 서울 구로동을 시작으로 경기 안산 원곡동, 신길동, 대림동 등을 외국인 전략점포로 개설했다. 특히 구로동지점과 원곡동 출장소는 평일에 바쁜 고객들을 위해 일요일에도 문을 열고 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구로동지점의 신규고객이 지난해 상반기에는 월 170명씩 늘었는데 올해 상반기엔 200명으로 증가했다.”면서 “특히 일요일 내방고객이 100명으로 평일보다 많다.”고 전했다. SC제일은행도 서울 광화문, 연희동 등 10개 지점에 외국인 전용 창구를 마련하고 영문으로 쓴 상품 안내장과 약관을 비치하고 있다. 외국인 전용 인터넷뱅킹과 텔레뱅킹 서비스도 운영 중이다. 오달란기자 dallan@seoul.co.kr
  • [특파원 칼럼] 정말 먹을 수 있나요?/이종락 도쿄특파원

    [특파원 칼럼] 정말 먹을 수 있나요?/이종락 도쿄특파원

    며칠 전 일본학교에 자녀를 보내는 한국 학부형이 분노한 사연을 들었다. 학교 측으로부터 아이들의 급식에 방사능 검사를 통과한 후쿠시마 채소를 사용할 것이라는 통지를 받았다고 한다. 그러잖아도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사고 이후 먹거리에 대한 우려가 커질 대로 커져 있는 상황에서 학교 측의 방침을 이해할 수 없었단다. 즉시 전화를 걸어 학교 측에 후쿠시마현에서 생산한 재료로 만든 음식을 아이들에게 제공할 경우 급식을 거부하겠다고 통보했다는 것이다. 이 학부형의 항의 소식이 알려진 다음 날부터 일본 학부형들의 전화가 이어졌다. 그러잖아도 급식에 후쿠시마현 채소를 사용한다는 게 꺼림칙했는데 자신들을 대신해 항의를 해 줘서 고맙다는 말들을 해 왔다고 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에서 먹거리에 대한 공포는 이만저만이 아니다. 평소 남을 의식해 드러나는 행동을 잘 하지 않는 일본인들도 학교 급식 대신 자녀들에게 도시락을 손에 들려 보내는 학부형들이 늘고 있다. 원전 사고 이후 생수 판매율도 급증했다. 많은 사람들이 음료용은 물론 생수로 밥을 짓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생수뿐만 아니라 프랑스, 독일, 한국 생수들이 불티나게 팔린다. 생수 등 음료수의 경우 수입식품에는 일본어 표시 라벨 부착을 의무화하고 있다. 하지만 동일본 대지진 이후 법 규정까지 완화해 외국산 생수가 자국 상표와 라벨 그대로 수입된다. 슈퍼마켓이나 쇼핑센터에서 삼다수, 진로생수, 스파클 등 한국 상표를 부착한 생수와 음료수를 만날 수 있다. 일본 생수업체들은 원천수를 지하 100m 이하에서 퍼올리기 때문에 관동지역에서 채수된 생수도 방사능 물질에 오염될 가능성이 적다고 주장한다. 그런데도 소비자들은 더 이상 업자들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기자도 한국 업체로부터 생수를 주문·배달시키고 있다. 매달 생수값만 약 6000엔(9만원)이 든다. 후쿠시마현과 가까운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과 채소는 거의 팔리지 않는다. 일본의 장래를 걱정하는 일부 소비자들은 이들 지역의 생산품을 구입해 먹지 않고 그대로 버린다는 얘기도 들린다. 더욱이 일본방송계에서 국민적 아나운서로 인기를 끌고 있던 오쓰카 노리카즈(63)가 ‘급성림프성백혈병’으로 병원에 입원한 것이 방사능 때문이라는 괴담도 돌고 있다. 그는 지난 4월부터 원전 피해 소문을 불식하기 위해 TV 프로그램에서 후쿠시마산 아스파라거스, 버섯, 토마토, 완두콩 등으로 요리한 음식을 직접 먹으며 후쿠시마를 응원해 왔다. 세계에서 가장 순종적인 국민이라는 평가를 받는 일본인들은 이제 누구도 믿으려 하지 않는다. 일본 정부와 지방 자치단체에 대한 신뢰도는 바닥에 떨어진 지 오래다. 후쿠시마현의 사토 유헤이 지사는 지난 10월 쌀의 방사성물질 조사 결과 벼농사 금지구역을 제외한 후쿠시마의 쌀이 안전하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지난달 후쿠시마현 오나미 지구와 다테시 농가에서 생산한 쌀에서 기준치(1㎏당 500베크렐)를 넘는 방사성 세슘이 검출됐다. 노다 요시히코 총리는 후쿠시마 농작물의 안전성을 홍보하기 위해 후쿠시마에서 생산된 쌀을 먹겠다고 밝혔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냉소를 보낼 뿐이다. 일본 내 먹거리에 대한 우려는 빈부간 갈등도 빚고 있다. 생활보호대상자들이나 워킹푸어(연수입 200만엔 이하 정사원 및 정사원급 직원의 세대)들은 쌀과 음료수를 지역에 따라 골라 먹는 ‘호사’를 누릴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일본 내 생활보호 대상자가 지난 7월 말 현재 205만명을 넘어서 세계 제2차 대전 이후 사상 최대 규모에 달했다. 워킹푸어층의 하루 식비는 평균 768.2엔(약 1만원)인 것으로 조사됐다. 먹거리에 대한 공포는 불신을 낳고 계층 간 갈등을 낳는다. 또 다른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셈이다. 먹거리 걱정이 없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를 도쿄 하늘 아래에서 실감하는 요즘이다. jrlee@seoul.co.kr
  • 1899년 고종때 첫 개교… 산업화 인력 공급

    1899년 고종때 첫 개교… 산업화 인력 공급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직업교육 학교는 1899년 고종의 칙령에 따라 세워진 관립 상공학교로 농·상공업을 가르쳤다. 1904년 농공상학교로 이름을 바꿨고, 1906년 농과와 상과를 분리해 각각 다른 학교를 세웠다. 이때의 공과는 지금의 서울공고, 상과는 선린인터넷고, 농과는 서울대 농대로 계보가 이어졌다. 1960~1970년대 공고와 상고는 산업 발전에 필요한 인적자원의 핵심적인 공급처였다. 특히 집안 사정이 어려운 인재들은 졸업 뒤 곧바로 취업 전선에 뛰어들 수 있는 실업계 고교를 주로 선택했다. 그 결과 실업계 고교는 사회 각 분야를 이끄는 다양한 인재를 대거 배출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은 각각 목포상고(현 전남제일고), 부산상고(개성고), 동지상고(동지고) 출신이다. 최종영 전 대법원장(강릉상고, 현 강릉제일고), 고영구 전 국정원장(체신고), 이학수 삼성물산 고문(부산상고), 이성태 전 한국은행 총재(부산상고) 등 법조·경제계에도 실업계 출신 인사들이 두루 포진돼 있다. 정부는 1980년대 중반 이후 경기호황으로 제조업 분야 인력 수요가 크게 늘 것으로 예상, 1990년 들어 일반계·실업계 학생수를 균분하는 ‘5:5 정책’을 도입했다. 실업계 학교와 학생 수를 늘리려는 취지였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제조업 취업 규모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비정규직 문제에다 학력 및 대기업·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가 심해졌다. 여기에 고학력 바람까지 불면서 실업계 고교는 존치마저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렸다. 2000년대 초반에는 실업계 고교 대량 미달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이에 ‘직업교육=이류교육’이라는 낙인이 찍히자 2007년부터 실업계고의 명칭을 ‘전문계고’로 바꾸기에 이르렀다. 이런 와중에 변화가 태동했다. 공고와 상고 중심의 실업계고 사이에서 인터넷고, 조리과학고, 로봇고 등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 특성화고는 우리 산업이 다양한 분야로 분화되는 시대 흐름에 맞춰 필요한 인재들을 길러냈다. 정부는 2008년부터 취업률 100%를 목표로 산업계 수요와 직접 연계된 맞춤형 고교인 마이스터고를 선정했다. 현재 마이스터고는 에너지, 반도체, 자동차, 모바일 등 각 분야별로 전국 21개가 운영되고 있다. 내년 3월에는 7개교가 새로 문을 연다. 전문계열로 분류되던 전문계고, 특성화고, 마이스터고는 지난해부터 전문계고와 특성화고를 묶어 특성화고로 일원화됐으며, 마이스터고는 특수목적고로 분류돼 운영되고 있다. 신진호기자 sayho@seoul.co.kr
  • [부고]

    ●이병오(태안 해양경찰서)병규(인도네시아 거주)씨 부친상 백명륜(관세사)장명기(전 외환은행 수석부행장)김영호(한광중 교감)정용길(세연테크 연구소장)씨 장인상 25일 분당 서울대병원, 발인 28일 오전 6시 (031)787-1503 ●김수홍(인천대교 대표)씨 부친상 25일 서울성모병원, 발인 27일 오전 11시 (02)2258-5979 ●김영길(전 제주은행 감사)씨 모친상 경희(SBS 사회부 차장)병희(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간호사)씨 조모상 25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 27일 오전 5시 (02)2227-7556 ●구철회(전 대한미용성형외과학회장)씨 별세 현남(구현남안과 원장)씨 부친상 김영진(김영진성형외과 원장)김덕용(사업)김성완(김성완이비인후과 원장)서영훈(퍼스트라인피부과 원장)씨 장인상 25일 부산 해운대백병원, 발인 28일 오전 8시 (051)711-1451 ●김세형(매일경제신문 상무·논설실장)씨 모친상 이승균(기업은행 서초3동지점장)씨 장모상 25일 전남 고흥종합병원, 발인 27일 오전 (061)830-3300 ●정운용(농수산물유통공사 수출전략처장)씨 부친상 25일 부산의료원, 발인 27일 오전 8시 (051)607-2654 ●박용기(전 상일여고 교장)씨 별세 광배(충북대 교수)씨 부친상 25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7일 오전 9시 (02)3410-6903 ●전경배(한양대 건축학과 명예교수)씨 별세 종헌(한양대 의과대학 교수)종철(올림푸스한국 이사)씨 부친상 이진(바이올리니스트)심원필(아리랑방송 방송본부장)씨 장인상 25일 한양대병원, 발인 27일 오전 7시 (02)2290-9453 ●김철호(비본 마케팅부장)영조(현대증권 랩운용부 차장)씨 부친상 조성록(스킨푸드 자재관리부장)최대영(SMMT 대표)씨 장인상 25일 순천향대병원, 발인 28일 오전 6시 30분 (02)792-1420 ●김동정(전 현대종합상사 상무)씨 부친상 이사철(한나라당 국회의원)씨 장인상 25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영결식 27일 오후 4시 (02)2227-7587 ●이권휴(피닉스AMC 대표이사)씨 모친상 김종현(어울림종합건설 대표이사)김병만(거제대 교수)도완수(한국전력 과장)씨 장모상 25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8일 (02)3410-6915
  • 최원병 농협회장 재선임

    최원병(65) 농협중앙회 회장이 18일 차기 농협중앙회 회장에 재선출됐다. 이로써 지난 2007년 12월 이후 농협중앙회를 이끌어온 최 회장은 오는 2015년까지 향후 4년간 더 농협중앙회를 맡게 됐다. 하지만 상대 후보 측은 이번 선거에서 불거진 최 회장의 자격 시비 논란과 관련, 소송까지 불사하겠다는 입장이어서 선거 후폭풍이 예상된다. 최 회장은 이날 실시된 선거에서 전체 대의원 289명 중 288명이 참석한 가운데 191표를 얻어 97표를 얻은 김병원 전남 나주 남평조합장을 압도적인 표차로 제치고 연임에 성공했다. 최 회장의 현 임기는 오는 12월 26일까지다. 회장 임기가 12월 이후 만료되는 경우 다음해 정기총회일까지 임기가 연장되는 농협중앙회 정관에 따라 최 회장의 차기 임기는 내년 2월로 예정된 정기총회 다음날부터 시작된다. 최 회장의 당면 과제는 내년 3월로 예정된 농협중앙회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을 분리하는 사업구조개편 작업을 마무리하는 것이다. 농협은 금융부문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경제사업을 활성화해서 농협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기 위해 내년 3월을 목표로 금융지주와 경제지주를 분리하는 사업구조개편을 추진중이다. 하지만 이 작업은 난관에 봉착해 있다. 농협중앙회는 사업구조개편을 위한 부족자금 6조원을 지원해줄 것을 정부에 요청했지만, 정부는 2조원을 삭감해 4조원만 지원하기로 했다. 이에 농협은 정부의 4조원 지원 방침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고, 정부도 당초 방침에서 물러서지 않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동지상고 후배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아온 최 회장은 이번 선거에서 자격 시비 논란을 빚었다. 정관에 따라 농민신문사 회장직을 후보 등록 90일 이전에 사퇴하지 않아 후보자격이 없다는 게 농협중앙회 노조와 김병원 후보 측의 주장이다. 홍희경·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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