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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마당] 올여름 북캉스/송정림 드라마 작가

    [문화마당] 올여름 북캉스/송정림 드라마 작가

    “여름휴가 어디로 가?” “여행 어디로 갔다 왔어?” 최근 자주 들은 안부 인사다. 긴 기간 준비한 드라마를 지난봄에 방송하고 난 뒤라 충전을 위해 멀리 여행을 다녀왔을 거라고 추측한 지인들 문자였다. 그 문자에 대한 답은 이렇게 보냈다. “북캉스 다녀왔어. 장소는 세 군데. 내 방, 식탁, 그리고 동네 카페.” 올여름 나는 북캉스를 길게 보냈다. 책(Book)과 여름휴가(Vacance)의 합성어인 북캉스를 채워 준 동지들은 그동안 드라마 쓰느라 미뤄 뒀던 읽고 싶은 작가의 신간, 언제 읽어도 감동인 고전, 그리고 주로 여름에 하게 되는 선택인 스릴과 추리가 들어 있는 소설이다. 드라마 작가로서 읽어야 할 책들이 아니라 그냥 읽고 싶은 책들을 본다. 즐거운 바캉스니까. 드라마 쓰면서도 동네 서점에 나가 책 사는 일은 거르지 않았기 때문에 사 놓고 읽지 못한 책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영하, 정유정, 스티븐 킹, 밀란 쿤데라로 폭염의 낮을 건넜고, ‘비하인드 도어’, ‘마지막 패리스 부인’, ‘퍼펙트 마더’ 등의 이야기로 열대야를 달렸다. 습관 중의 하나인데, 책을 꺼내 들 때마다 책장 사이에 놓아 둔 그림을 본다. 르누아르의 ‘독서하는 여인’, 한 소녀가 책을 들고 열심히 그 속에 몰입하는 그림이다. 볼 때마다 궁금하다. 저 소녀는 무슨 책을 읽고 있을까? 어느 작가가 어떤 글로 소녀의 두 볼에 햇살을 스며들게 했을까? 그 옆에 ‘독서하는 두 소녀’라는 그림도 있다. 긴 머리를 머리핀으로 묶은 소녀와 그 옆에 머리를 단정하게 위로 틀어 올린 소녀가 책 한 권을 보고 있다. 장소는 풀밭이다. 한 소녀는 책 내용이 흥미로운 듯 손을 입가에 대고 흠뻑 빠져들어 있다. 또 한 소녀 역시 책 내용에 완전히 몰입돼 두 볼이 빨개졌다. 두 소녀가 보고 있는 책은 어쩌면 시집이 아닐까? 읽고 있는 시는 로맨틱한 사랑을 꿈꾸는 시는 아닐까? 즐거운 상상을 해 본다. 그림 속 소녀들은 책의 내용이 스며들어 빛을 머금은 얼굴이 됐다. 지금 눈으로 보고 있는 그것이 바로 나 자신이 된다고 했던가. 시를 보고 있으면 시가 얼굴로 스며들고, 철학을 읽고 있으면 철학이 얼굴로 스며든다. 그러니 책을 읽는다는 것은 천천히 지성적인 얼굴로 성형하는 일이다.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독서 장소를 바꿔 볼 생각이다. 동네 풀밭이든 공원이든 강변이든 나가서 햇살 속에 앉아 책을 읽고 싶다. 르누아르 그림 속 소녀처럼…. 그러면 햇살이 나의 두 볼에도 스며들어 주지 않을까. 어느 날인가는 종일 책만 읽다가 노을빛까지 스며든 얼굴로 마지막 책장을 넘겨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퍽퍽한 현실을 잊게 하는 수단은 다양하다. 한 편의 영화 속으로 들어가는 기쁨도 있을 테고, 스포츠에 몰입하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런데 어쩐지 책 속에 파묻혀 현실을 잊는 맹렬 독서파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지하철에서 독서 삼매경에 빠진 사람, 버스 속에서 책을 읽다가 내릴 정류장을 지나치는 사람, 비행기에서 책 읽는 재미에 몰입해 있는 사람, 공원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 사람, 카페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며 독서하는 사람, 가족을 기다리는 식탁에서 책을 보는 사람…. 그런 독서광이 그립다. 동네 서점에 들러 책 한 권씩 고르는 재미는 절대 놓치고 싶지 않은 내 인생의 낙이다. 전자책도 있지만 종이로 된 책의 독특한 냄새와 감촉이 좋다. 읽고 나서 책장에 꽂아 두면 추억이 된다. 누군가에게 그 책을 건네는 것도 좋다. 작정 없이 동네 서점에 들러서 좋아하는 사람에게 선물할 책을 고르는 일은 내가 다섯 손가락에 꼽는 일상의 행복 중 하나다.
  • 정세 오판과 사욕이 빚은 비극. ‘자유시 참변’의 진실

    정세 오판과 사욕이 빚은 비극. ‘자유시 참변’의 진실

    ‘자유시 참변’ 또는 ‘자유시 사변’은 1921년 6월 28일 한인부대들과 극동공화국 인민혁명군이 자유시에서 무장충돌한 사건을 말한다. 이 결과로 수십명에서 수백명까지의 한인들이 사망했으며 독립운동이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냉전시기에는 이 사건이 러시아에서 발생하고 한 쪽이 주로 러시아인들로 구성된 부대이었다는 이유로 공산당이나 러시아가 한인을 속여 독립군을 죽였다는 주장이 강했다.하지만 1990년대에 러시아의 문서보관소가 개방됨에 따라 러시아 연구자들과 임경석, 윤상원 등 한국근대사 연구자들은 러시아 자료를 사용하여 자유시사변의 원인과 과정에 대한 우리의 지식을 넓혔다. 1990년대 이후 나온 연구에 따르면 자유시사변의 주요 원인은 민족해방운동 내부의 권력 투쟁 (특히 이르쿠츠크파와 상해파 공산당 간의 갈등)과 정치 조직 간의 소통 문제 등이었다. 이에 따라 오늘날 학계에서 “독립군을 공산당이 죽였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완전히 잃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의 잔재는 야인시대 같은 예술작품에도 나오고, 누리꾼들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애용하는 인터넷 백과사전에도 자주 등장한다. 예를 들어, 자유시 참변은 위키백과에는 “러시아 적색군이 대한독립군단 소속 독립군들을 포위, 사살한 사건”으로 규정되었고 나무위키에는 “독립군을 포함한 한인 무장 병력과 소련 적군이 교전을 벌인 사건”으로 나오며 심지어 신뢰성이 비교적 높은 한민족문화백과사전에도 비슷한 서술이 있다. 하지만 1921년에는 소련이 아직 설립되지 않았고 극동지역에는 붉은군대가 없었다. 하지만 자유시 참변은 무엇보다도 권력 욕심과 정세 오판의 위험성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하다.제1차 세계대전 도중 1917년 러시아에서 10월 혁명이 발생하였으며 러시아공산당(볼셰비키)를 비롯한 좌익세력들에 의해 소비에트 정권이 수립되었다. 1918년, 소비에트 정권을 지지하는 세력과 반대하는 세력(백위파) 간의 내전이 벌어졌다. 러시아에 커다란 피해를 가져온 제1차 세계대전의 참전을 끝내려는 볼셰비키의 결정을 막기 위해 연합국은 군대를 파견해서 러시아 내전에 개입했다. 일본은 이를 구실로 내세워 1918년 4월 5일 밤 블라디보스토크에 파병함으로써 러시아에 쳐들어왔다. 일제의 시베리아 출병의 영향을 받은 러시아 지역 한인들은 빨치산부대를 결성하여 볼셰비키의 붉은군대와 함께 항일투쟁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하지만 최신 무기로 무장한 전투력이 뛰어난 일본군을 무력으로 쫓아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전쟁으로 경제가 폐허가 된 상황에서 일본과의 전쟁을 피하려는 소비에트 정부는 극동지역에서 소비에트 정권을 수립하는 것을 공식적으로 포기하고 1920년 4월 멘셰비키와 사회주의혁명당 등과 함께 극동공화국이라는 완충국가를 설립하기로 하였다. 극동공화국은 이에 극동에 있던 붉은군대의 부대들과 빨치산 부대, 그리고 극동공화국 정부 편으로 넘어간 전(前) 백위파 부대들으로 구성된 혼합 인민혁명군을 창설했다. 극동공화국은 극동지역의 대부분을 점령한 일본군의 철수에 외교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일제가 지원하는 백위파 군대와 싸우는 데 집중했다. 이러한 전략 때문에 일본은 극동지역의 군사 점령을 더 이상 정당화할 수 없게 되었으며 주둔군을 유지하는 것도 경제적 손실로 이어졌다.이와 동시에 무장부대 통합운동이 전개되고 있었다. 봉오동 전투 이후 일제가 실시한 대대적 토벌작전 등으로 한인부대들이 간도에서 러시아령으로 넘어가기 시작하였다. 러시아공산당 극동국 한인부는 민족해방운동을 강화하기 위해 1921년에 중국과 극동지역에서 무장투쟁 부대 대표 회의를 열어 단일 지휘체계의 구축, 군사학교 설립 등 문제를 논의할 것을 결정했다. 이와 동시에 1921년 1월 15일 코민테른은 극동지역대표부를 설치하고 보리스 슈먀츠키를 대표로 임명하였다. 슈먀츠키는 한인부대를 가능한 한 빨리 극동공화국으로부터 벗어나서 조선 쪽으로 이동할 계획을 세웠으며 무장부대들을 통합하기 위해 창설된 고려혁명군정의회의 위원장으로 조지아 출신인 깔란드라쉬빌리를 파견하였다. 깔란드라쉬빌리는 극좌 무정부주의자로서 전략적으로 사고하는 것보다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편이었다. ‘극동의 나폴레옹’을 꿈꾸던 그는 슈먀추키와 이르쿠츠크파 빨치산부대장 오하묵, 최고려 등과 함께 한국 국내에서 무장투쟁을 공공연하게 벌이려고 했다. 하지만 무기도 병력도 열세인 상태에서 조선을 향해 진격하는 것은 자살행위에 다름없었다. 그 뿐만 아니라, 통솔권을 독점하려던 깔라드라쉬빌리와 오하묵 등 사람들의 비타협적인 태도는 자유시에 집결한 빨치산 부대들의 항의를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상황에서 소비에트러시아 외무인민위원장 치체린은 1921년 6월 9일 러시아공산당 중앙위원회 앞으로 보낸 서한에서 한인 빨치산들을 비밀리에 반드시 지원해야 하지만 지금은 (일제에) 공공연한 적대행위를 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였다. 6월 10일, 볼셰비키의 지도자인 레닌은 이 서한을 보고 당분간 공공연한 행위를 하지 말고 비밀행동에 초점을 맞추라고 하였다. 같은 날 러시아공산당 중앙위원회는 ‘한인부대들은 러시아 영토에 머물면서 적극행동에 나서기 위해 적절한 기회를 기다려야 한다’는 치체린의 제안을 채택했다. 다시 말하자면, 볼셰비키들은 한인빨치산들을 지원하는 것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일제가 극동지역에서 철수한 후에야 군사행동을 계획해도 좋다고 주장한 것이며 사실상 깔란드라쉬빌리의 모험을 중단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이 결정은 깔란드라쉬빌리 행동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으며 참변은 불가피해졌다. 통솔권을 독점하려는 깔란다리쉬빌리는 최고려 등 사람들의 지도를 거부한 한인빨치산들로 구성된 사할린부대와 몇 차례의 타협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이에 깔란다리쉬빌리는 6월 28일 극동공화국 인민혁명군 소속 자유시 수비대에게 사할린부대를 무장해제시킬 것을 요청하였다. 인민혁명군의 최후통첩을 받은 사할린부대 책임자들은 무장해제하지 않고 깔란드라쉬빌리 사령부에서 ‘미움받는 사람들’을 축출하면 항복하겠다고 대답했다. 양측은 7시간동안 동안 이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결국, 오후 2시 20분 인민혁명군 병력 1000명과 깔란드라쉬빌리 사령부에 속한 한인 병사 300명은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공격을 시작했다. 그러나 30분만인 오후 3시쯤 전선은 평정되었다. 3시 50분 반항하는 병사들이 진압됐고 4시 사랄린부대의 한인들은 백기를 들고 항복하기 시작했다. 오후 8시 17분 전투는 거의 정리되었다. 자유시사변의 사망자는 최소 36명에서 최대 400명으로 추측되지만, 사상자에 대한 신뢰성이 높은 자료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자유시 참변으로 빨치산부대 통합운동은 완전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글 사진: 바실리 V 레베데프(고려대 사학과 석사)
  • DJ “日의 방만무도 시정돼야 친선 기초 가능”

    DJ “日의 방만무도 시정돼야 친선 기초 가능”

    망명 당시 “日, 지배·종속밖에 몰라” 메모 옥중서신엔 “다음세대 화목한 이웃으로”“한일국교의 새로운 판국에 처해서 우리는 단호히 일본의 옳지 못한 태도의 시정을 얻음으로써만이 진실로 영원한 양국 친선의 튼튼한 기초를 닦을 수 있는 것.” 김대중 전 대통령은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이 13일 최초 공개한 1953년 10월 ‘한일우호의 길’이란 제목의 기고에서 “공산 침략으로부터 양국 민족을 구하기 위해서는 일체의 난관을 극복하여 양국민의 우호단합이 엄숙히 요청된다”면서도 “현재의 방만무도한 태도마저 눈감은 채 악수의 손을 내민다는 것은 민족의 자존심이 불허함은 물론 양국의 우호협조를 위해서도 결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바는 못 되는 것”이라고 했다. 일본의 경제보복에 따른 한일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도서관은 ‘김대중전집 전30권 출판기념회’를 열고 김 전 대통령의 대일 인식을 엿볼 수 있는 생전 사료들을 공개했다. 1953년 기고에 대해 도서관 측은 “냉전 시기 한국의 안보와 국익적 관점에서 한일 관계 정상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며 “이렇게 되려면 과거사 문제에 대한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실천이 필요하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유신 정권에 맞서 일본에서 망명 투쟁을 하던 김 전 대통령은 1973년 4월 10일 친필 메모에서는 “일본의 경제력, 팽창-재군비, 핵무장-대국야욕, 그들은 지배냐 종속밖에 모른다. 연결될 것인가?”라고 적었다. 1983년 ‘옥중서신’ 일본어판 서문 친필 초안에서는 박정희·전두환 군사정권으로부터 정치적 박해를 받았던 시절 본인의 구명운동을 전개했던 일본 인사들에게 감사를 표하며 “몇 겹으로 닫힌 한일 양국민 사이의 문을 뜻 있는 동지들과의 협력으로 하루속히 열어젖혀야 한다”며 “우리의 다음 세대만이라도 서로 이해와 협력 속에 화목한 이웃으로서 살아가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서관 측은 “진정한 한일 연대를 지향하는 일본 내 양심적 세력들이 영향력을 발휘해 우경화를 저지하고 동북아 평화를 위해 일본이 건설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자 했다”면서 “이런 인식은 현재 한일 관계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시사점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평화당 분당’ 정계개편 3대 시나리오

    ①탈당파, 바른미래 호남계와 ‘제3지대 빅텐트론’②바른미래 호남계·안철수계 합류 땐 의원 수 26명… 교섭단체 지위 확보 ③탈당파+바른미래 전체 통합 신당, 잔류파 총선까지 독자 생존 분석도 민주평화당의 ‘변화와 희망의 대안정치연대’ 소속 의원 10명과 김경진 의원이 12일 탈당하면서 제3지대발 정계 개편의 서막이 열렸다. 이들의 탈당이 바른미래당을 자극해 바른미래당이 연쇄적으로 갈라질 가능성 등 다양한 시나리오가 난무하고 있다. 평화당 탈당 사태의 가장 큰 이유가 1~2%에 불과한 지지율과 20석이 안 되는 비교섭단체로는 내년 4월 총선에서 전멸할 수 있다는 위기감인 만큼 생존을 위한 ‘제3지대 신당’ 구성이 주된 목표일 수밖에 없다. 이들이 염두에 두는 우선 통합 대상은 바른미래당 호남계 의원들이다. 주승용·박주선·김동철 의원 등 9명으로, 옛 국민의당 동지들이다. 이들은 분당 후에도 소통을 지속하며 ‘제3지대 빅텐트론’을 주장해 왔다. ‘보수 빅텐트론’에 맞서 범진보와 범보수를 아우르는 중도 세력을 형성하자는 것이다. 대안정치는 이날 탈당 회견에서 “새로운 대안정치 세력은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의 국정 운영에 실망한 건전한 진보층, 적폐세력의 ‘부활’로 역사가 후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합리적 보수층, 국민 40%에 육박하는 중도층과 무당층의 지지를 하나로 모을 비전과 힘, 능력을 갖춰야 한다”며 중도층의 결집을 강조했다. ●유승민계·안철수계 한국당 입당 가능성 이 경우 바른미래당의 유승민계 및 안철수계 의원 15명이 갈라져 나와 자유한국당에 입당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렇게 되면 한국당이 희망하는 범보수 대통합의 그림이 그려진다. 최근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가 유승민 의원에게 러브콜을 보냈고, 같은 당 홍문표 의원도 “안철수 전 의원까지 우리가 야당이라는 큰 틀에서 같이 간다면 좋지 않겠나 하는 희망 사항이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평화당 잔류파가 총선 때까지 독립적으로 남을지도 관심사다. 이와 달리 대안정치와 바른미래당의 호남계·안철수계까지 제3지대 신당에 합류한다면 의원 수가 26명으로 교섭단체 지위를 얻게 된다. 대안정치 측에 총선 흥행몰이를 할 대선주자급 간판스타가 없다는 점에서 지난 20대 총선에서 호남을 중심으로 ‘녹색바람’을 불러일으켰던 안철수 전 의원은 힘이 될 수 있다. 이 경우 바른미래당 유승민계 의원 8명은 한국당에 입당할 가능성이 있다. ●섣부른 예측 금물… 한국당도 예의주시 마지막으로 대안정치와 바른미래당 전체(호남계, 안철수계, 유승민계 망라)가 통합해 신당을 만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한국당의 보수 빅텐트론은 힘을 받기 힘들어진다. 한국당은 일단 공식적으로는 평화당의 분당 사태에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이날 민경욱 한국당 대변인은 “총선을 앞두고 가치와 이념이 아닌 지역주의에 기대 이합집산을 하려 한다면 민주정치의 퇴보만 불러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한국당 내부적으로는 이번 탈당 사태가 정계 개편의 신호탄이 될 가능성을 예의주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중진 의원은 “예전의 탈당과 통합이 잠룡들이 판을 보고 움직이는 것이었다면 이번에는 의원들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성향이 크고 총선까지 8개월이나 남아 있어 섣부른 예측이 힘들다”면서도 “야권 개편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관심 있게 보고 있다”고 밝혔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포토] 北, 신형 지대지 전술미사일 추정 발사

    [포토] 北, 신형 지대지 전술미사일 추정 발사

    조선중앙통신은 11일 전날 새벽 함경남도 함흥 일대서 단행한 무력시위 관련, “김정은 동지께서 8월 10일 새 무기의 시험사격을 지도하셨다”고 밝혔다. 통신은 무기 명칭이나 특성 등은 언급하지 않은 채 발사 장면 사진만 여러 장 공개했다. 사진은 중앙통신이 홈페이지에 공개한 사진으로, 북한판 전술 지대지 미사일이라는 추정이 제기된다. 2019.8.11 연합뉴스
  • 한미 연합훈련 시작…북 “즉각 중단하라” 비난 성명

    한미 연합훈련 시작…북 “즉각 중단하라” 비난 성명

    11~20일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워게임 진행올해 처음 한국국 대장이 사령관, 美는 부사령관북 외무성 “군사연습 해명 전엔 남북 접촉 어려워”한미 연합 군사훈련이 11일 본격 시작된다. 북한은 외무성 국장 명의 담화를 내고 이번 연합훈련을 직설적으로 비난했다. 한편 북한 매체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전날 ‘새 무기 시험사격’을 지도했다고 보도하면서 구체적인 무기 이름은 언급하지 않았다. 북한은 한미 연합 훈련에 반발하며 지난달 25일 이후 5번에 걸쳐 ‘발사체 무력시위’를 해왔다. 11일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이날부터 오는 20일까지 ‘후반기 한미연합지휘소훈련’이 진행된다.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에 초점을 맞춘 연합 훈련이다. 합참은 이번 연습을 “전작권 전환에 대비한 (한국군의) 기본운용능력(IOC)을 검증하고 확고한 군사대비 태세를 제고하는데 중점을 두고 시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훈련에는 한국군 합참, 육·해·공군 작전사령부와 한미연합사령부, 주한미군사령부, 미군 인도·태평양사령부 등이 참가할 것으로 보인다.한반도 전시상황 등을 가정해 1, 2부로 나뉘어 진행되는 이번 연습은 병력·장비가 실기동하지 않고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진행하는 워게임 형태다. 특히 올해 처음으로 한국군 대장이 사령관을, 미군 대장이 부사령관을 맡는다. 이에 따라 최병혁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대장)이 사령관을 맡아 전체적으로 연합위기관리 상황에 따른 임무를 수행하고, 주한미군을 비롯한 전체 군을 지휘할 것으로 알려졌다.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 사령관(대장)은 부사령관 역할을 수행한다. 북한은 한미 연합지휘소훈련 첫날인 11일 남측을 비난하는 외무성 국장 명의 담화를 내고 한미훈련을 즉각 중단하거나 이에 관한 해명 등을 하기 전에는 남북 간 접촉 자체가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외무성 권정근 미국담당국장은 이날 담화에서 “군사연습을 아예 걷어치우든지, 군사연습을 한 데 대하여 하다못해 그럴싸한 변명이나 해명이라도 성의껏하기 전에는 북남사이의 접촉 자체가 어렵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특히 자신들의 잇단 무력 시위에 대해서는 “미국 대통령까지 우리의 상용무기개발시험을 어느 나라나 다 하는 아주 작은 미사일 시험이라고 하면서 사실상 주권국가로서의 우리의 자위권을 인정하였는데 도대체 남조선당국이 뭐길래 우리의 자위적 무력건설사업에 대해 군사적 긴장격화니, 중단촉구니 뭐니 하며 횡설수설하고 있는가”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정경두 국방장관의 실명을 거론하며 “체면이라도 좀 세워보려고 허튼 망발을 늘어놓는다면 기름으로 붙는 불을 꺼보려는 어리석은 행위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권 국장은 담화에서 “앞으로 대화에로 향한 좋은 기류가 생겨 우리가 대화에 나간다고 해도 철저히 이러한 대화는 조미(북미) 사이에 열리는 것이지 북남대화는 아니라는 것을 똑바로 알아두는 것이 좋을 것”이라며 “남조선 당국의 처사를 주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도 10일(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자신에게 보낸 친서에서 한미연합 군사훈련이 종료되는대로 협상 재개를 희망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공개, 북미 간 실무협상 재개가 임박했음을 시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김 위원장이 한미훈련이 끝나면 미사일 시험 발사도 멈출 것이라고 말했다고 밝혔다.북한은 매체를 통해 전날 발사체 시험발사도 김정은 위원장이 지도했다고 밝혔다. 조선중앙통신은 전날 새벽 함경남도 함흥 일대에서 단행한 무력시위에 대해 “김정은 동지께서 8월 10일 새 무기의 시험사격을 지도하셨다”고 보도했다. 다만 이들은 무기의 이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반면 통상 발사 다음 날 관영매체를 통해 발사 사실을 발표해온 북한은 지난달 25일 함경남도 호도반도에서 신형전술유도무기를, 지난달 31일 원산 갈마반도와 지난 2일 함경남도 영흥 지역에서 각각 신형 대구경조종방사포 사격을 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앞서 합동참모본부는 전날 “우리 군은 오늘 오전 5시 34분경, 오전 5시 50분경 북한이 함경남도 함흥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발사한 단거리 탄도미사일로 추정되는 발사체 두 발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지난 6일 단거리 탄도미사일 두 발을 쏜 이후 나흘 만이자, 올해 들어 일곱번째 이뤄진 북한의 단거리 발사체 발사다. 한편, 우리 군은 한미 연합연습이 본격적으로 개시된 만큼 북한의 추가적인 무력시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경계감시 태세를 강화할 방침이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고양시···전철 연장 민원 위해 ‘특별적립금’ 마련

    고양시···전철 연장 민원 위해 ‘특별적립금’ 마련

    경기 고양시가 전철노선 연장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매년 수백억원씩 특별적립을 하겠다고 밝혔다. 고양시는 9일 “출퇴근길 교통난 해소를 위해 ‘고양시 철도사업 특별회계’ 조례를 만들어 광역철도망 구축을 보다 원활하게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고양시는 3기 신도시(창릉지구) 발표에 따라 고양선(새절역∼고양시청역)의 식사지구 또는 풍동지구 연장, 대곡∼소사선의 일산역 연장 등 광역철도망 연장 민원에 시달리고 있다. 여기에 고양선과 인천2호선의 일산역 연장, 출퇴근길 이용객이 많은 경의선의 증차와 상시 급행화, 대화역이 종점인 3호선의 가좌지구~덕이지구~운정신도시 연장을 추진 중이다. 이들 내용은 올해 6월 대도시권광역교통위원회 간담회에서 고양시가 국토부에 공식 건의한 사항이다. 그러나 철도망의 원활한 구축을 위해서는 사업비 확보가 필수적이다. 지하철의 경우 1㎞를 건설하는 데 보상비를 포함해 평균 1000억원이라는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며, 이 중 15∼20%는 고양시가 부담해야 한다. 고양시는 철도망 연장 사업비는 일시에 조성할 수 없는 천문학적 비용인 만큼, 별도의 특별회계 운영을 통해 연간 수백억원씩 적립해 차근차근 확보하려는 의도라고 밝혔다. 특별회계 설치를 위한 조례는 다음 달 열리는 고양시의회 제234회 임시회에 상정된다. 고양시는 관련 조례안이 통과되면 9월 추가경정예산편성을 통해 약 100억원의 재원을 확보할 예정이다. 고양시 관계자는 “철도망 구축은 자족시설 확충과 더불어 도시의 역동성을 높이기 위한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시의원들은 “계획도시 조성 당시 이미 광역교통대책 분담금을 걷어 사용했는데, 특정지역 주민들을 위해 고양시민 전체가 낸 세금 수천억원을 사용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부정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한기영 서울시의원, 무중력지대 강남 개회식 축사

    한기영 서울시의원, 무중력지대 강남 개회식 축사

    서울시의회 한기영 시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은 지난 8일 강남구 개포디지털 혁신파크에서 열린 ‘무중력지대 강남’(센터장 조아나) 개소식에 참석해 축하의 말을 전했다. 무중력지대는 서울시 청년활동을 지원하고 청년의 자발적인 움직임을유도하여 청년정책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조성된 공간으로, 청년을 구속하는 사회의 중력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무중력지대 강남’은 구로구, 동작구, 양천구, 도봉구, 성북구, 서대문구 등 6개 지역 자치구 무중력지대에 이어 7번째로 문을 열게 됐다. ‘무중력지대 강남’은 서울시로부터 ‘임펙트 스테이션(대표 송상훈)’이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다. ‘무중력지대 강남’은 강남청년활동지원, 청년 어반디지털 프로젝트(IT기술을 활용하여 청년 자립 지원 및 소셜벤처 사례 공유), 공유청년지대(강연 및 워크샵 프로그램, 개포 스토리텔링 아카이브 구축 등) 등 청년 지원사업과 역량강화 사업을 실시할 예정이다. 한 의원은 축사를 통해 “무중력지대 강남은 강남구 청년들이 삶의 방향을 설정하고 어떻게 살 것인지를 고민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면서 “서울시 시민들의 세금으로 만들어준 이 기회를 청년들이 지혜롭게 사용하여 자신과 사회에 유익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서울시 청년들이 ‘무중력지대 강남’을 통해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제공 받을 수 있도록 내실 있는 성과를 바란다”라며 당부의 말을 전했다. 한편 ‘무중력지대 강남’은 개포동역 인근에 위치하고 있으며, 커먼스페이스, 미팅룸, 공유주방, 휴식공간, 편집실, 녹음실 등 청년들이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각종시설들로 구성되어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폐광의 기적, 일제의 흔적을 지우다 - 광명동굴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폐광의 기적, 일제의 흔적을 지우다 - 광명동굴

    #일제의 만행 #창조적 변신 #한여름 피서공간으로 “당시 조선총독부는 대한제국 고종황제를 압박하며 '광상조사기관'을 설치하고 금ㆍ은광산을 발견해서 이를 독점하려고 안간힘을 쏟았다. 광명동굴 역시 1912년 고바야시 토우에몬 일본인의 이름으로 광산 설립이 되었고 '광상조사기관'을 앞세운 일제의 광업권 침탈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광명동굴 소개글, 광명시>한 여름 밤의 꿈을 꾼다. 한국관광 100선에도 선정되었다. 광명동굴만한 도심 피서지가 따로 있으랴. 7.8㎞ 길이의 갱도, 수도권 유일의 인공 동굴, 3만 1천 400㎡의 공간을 부딪쳐 돌아 나오는 지하 서늘한 바람은 계절없이 늘 섭씨 12도를 유지한다. 반드시 점퍼나 스웨터를 들고 가야한다. 동굴 안에는 ‘뜬금없이’ 늦가을 내음도 난다. 춥다. 폭염 푹푹 내리쬐는 이 시기에 광명동굴은 광명 시민들에게는 축복이다. 일제강점기 수탈의 역사를 이겨내고 도심 속 복합 문화 예술 공간으로 멋지게 탈바꿈한 광명동굴로 가 보자.경기도 광명시 가학동 도고네 마을 가학산(山). 광명동굴의 시작은 일제 강점기 침탈과 자원 수탈의 생생한 기억에서 출발하며, 최초의 흔적은 1903년 5월 2일 가학리에 「시흥광산」이 설립되었다는 기록에서 확인된다. 일제는 조선통감부 설치 직후인 1906년 7월에 「광업법」과 「사광채취법」을 제정하여 금광 채굴권을 독점하였고 광명동굴 역시 ‘가학광산’이라는 이름으로 1912년부터 본격적인 채굴을 시작하였다. 1915년 12월 24일 일제는 한국의 지하 자원을 약탈하기 위하여 조선광업령(朝鮮鑛業令)을 공포하여 우리나라 국토 곳곳은 흡사 들쥐가 논바닥 헤집어 놓은 듯 알맹이만 쏙쏙 빼 빠져 버린다.#아직도 황금은 가득히 #다채로운 동굴 풍광 #연인들 데이트 코스 광복 후에도 근대화, 산업화라는 명목 아래 1972년까지 광명동굴에서는 금, 은, 구리, 아연과 같은 수많은 광물들이 채굴되었다. 특히 광명동굴은 황금광산으로 개발되었던 탓에 1955년부터 1972년까지 총 52kg의 황금이 나왔으며, 광산채광을 시작한 1912년부터 1954년까지는 수백kg 이상의 황금이 채굴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더구나 1972년 광명동굴 폐광의 원인이 자원 고갈이 아닌 홍수에 따른 환경 오염과 가학동 인근 논밭의 보상문제였기에 지금도 상당량의 황금이 동굴 안에는 묻혀 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광명동굴은 폐광된 이후 인근 소래포구나 안산, 강경, 전북 군산 등지에서 올라와 서울로 들어가는 새우젓, 토하젓, 멸치액젓 등속을 보관하는 장소로 사용되다 2011년 광명시가 매입하여 현재와 같은 역사ㆍ문화 관광명소로 탈바꿈되었다. 현재 광명동굴은 산업유산으로서의 가치와 문화적 가치가 결합된 대한민국 최고의 동굴테마파크라는 찬사를 받고 있으며 연간 1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세계가 놀란 폐광의 기적을 이룬 곳으로도 이름나 있다. 광명시는 현재 동굴 안 총 길이 2.4㎞를 개발하여 관광객들이 접근할 수 있는 공간으로 동굴 안을 꾸며 놓았다. 동굴 안에는 분당 1.4t의 물이 쏟아져 내리는 황금 폭포를 비롯하여, 공연 및 전시가 가능한 예술의 전당, 황금궁전, 소망의 벽, 황금의 방, 불노문(不老門), 와인터널 등 다채로운 장소 등이 마련되어 있어 관람객들의 동굴 탐험(?) 맛을 느끼게 한다.또한 동굴 밖을 나가면 전망대와 아이샤 숲, 체험 놀이터 등이 있어 자녀들과 함께 온 가족들에게는 편안한 휴식 공간이 또 한 번 제공된다. 특히 아이샤 숲에는 각종 재활용품을 활용한 벤치와 아이샤의 친구들 조각상이 있어 아이들이 맘껏 뛰어놀 수도 있기에 가족 단위 관람객들에게는 항상 인기 만점인 장소이기도 하다. <광명동굴에 대한 방문 10문답> 1. 방문 추천 정도는? - ★★★☆ (★ 5개 만점) - 시원함을 넘어 춥다. 반드시 점퍼나 스웨터를. 2. 누구와 함께? - 가족 단위. 혹은 연인끼리도 좋다. 추워서 두 손 꼭잡고 포근히 안으면서. 3. 가는 방법은? - 광명시 가학동 가학산 산 17-1 - 주말의 경우 교통 체증이 심하다. 대중교통은 화영운수 17번 (개봉역-철산역-광명시민체육관-광명역-광명동굴) 4. 특징은? - 일제강점기 자원수탈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창조적인 변신이 놀랍다.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 중화권 관광객을 비롯하여 내국인 관광객들도 많이 오고 있다. 주말은 인산인해. 6. 꼭 봐야할 장소는? - 와인터널, 황금폭포, 예술의 전당, 바람길 7. 토박이들이 추천하는 먹거리는? - 원조광명할머니빈대떡, 선매떡볶이, 홍두깨칼국수, 진미칼국수 8. 홈페이지 주소는? - 요금 및 운영 관련 자세한 내용은 http://www.gm.go.kr/cv/index.do 으로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 구름산, 서울푸른수목원, 충현박물관, 광명업사이클아트센터, 광명가학동지석묘 10. 총평 및 당부사항 - 광명동굴은 인공동굴이다. 석회동굴과는 달리 동굴 벽 곳곳에는 노동자로 끌려온 우리 민족의 흔적이 선명히 남겨져 있다. 일제 자원 침탈의 아픔을 우리 힘으로 멋지게 복원해 놓은 곳이다.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강남시대를 연 제3한강교… 서울의 생명줄이 흐른다

    강남시대를 연 제3한강교… 서울의 생명줄이 흐른다

    서울신문이 서울시,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9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15회 한강 밤마실(동호에서 반포까지)’ 편이 지난 3일 한강공원 잠원 및 반포지구에서 열렸다. 장마와 불볕더위를 피해 오후 6시부터 진행하는 혹서기 야간투어 프로그램의 두 번째 순서였다. 폭염과 장맛비가 오락가락하는 와중에도 40여명의 참석자는 압구정역 6번 출구에 어김없이 집결했다. 시위대가 진을 치고 있어서 집결 장소를 지하역사 안으로 변경한 데다 3호선 전철이 신호장애로 연착해 일부 참가자가 지각하는 소동이 빚어졌지만 무사히 함께 모여 출발할 수 있었다. 투어는 압구정 현대백화점과 동호대교 사이 육교를 타고 올라가 동호대교 아래에 이르는 아슬아슬한 다리 체험으로 시작됐다. 동호대교~한남대교를 거쳐 반포대교와 잠수교로 이어지는 야경을 바라봤다. 달빛무지개분수쇼는 장관이었다. 한강공원 잠원~반포지구에서 강 건너 남산과 한남동 일대에 펼쳐진 한강 북쪽의 경관을 즐겼다. 해설을 맡은 이준섭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강과 한강다리에 얽힌 스토리를 꼼꼼하게 짚었다. 사전에 보내 준 답사노트는 호평을 받았다.서울 강북 사대문 안이 ‘조선의 수도’였다면 강남은 ‘대한민국의 수도’라고 말할 수 있다. 제3한강교(한남대교)는 강남 탄생을 알린 기념비적인 다리다. 1969년 12월 25일 이 다리가 준공되면서 서울의 폭발적 확장을 예고했다. 제3한강교는 경부고속도로·서울고속버스터미널과 함께 강남시대를 연 ‘삼총사’였다. 1985년 한남대교로 이름을 바꾼 이 다리는 본래 한강대교라고 명명해야 옳았다. 다리가 놓인 조선시대 나루가 한강나루~새말나루(사평나루) 구간의 한강진(한강나루)이기 때문이다. 한강나루는 조선시대 한강에 있던 20여개의 나루 중 ‘서열 1위’였다. 1900년에 건립된 인천~서울역 간 한강철교와 1917년 일제 경제 침탈용으로 지어진 제1한강교(한강대교)가 이름을 선점하는 바람에 쪼그라들었다. 왜곡된 지명의 역사를 다시 바로잡을 기회가 있다면 한강대교는 노량대교, 한남대교는 한강대교라고 제 이름을 찾아 줘야 한다. 용산구 한남동과 강남구 신사동을 연결하는 한남대교는 지금도 한강의 모든 다리 중 하루 평균 자동차 통행량 1위를 기록하고 있다.한남대교 남단 새말나루는 한양과 삼남(충청·전라·경상)지방을 연결하는 선상에 위치한 수상과 육상의 교통 요충지였다. 고산자 김정호의 ‘경조5부도’를 보면 한양의 각 나루에서 삼남지방으로 이어지는 여러 길 중 도성에서 강남을 거쳐 용인으로 통하는 길은 두 갈래였다. 광희문~한강나루~사평리~양재거나 광희문~서빙고나루~사평리~양재였다. 두 길 모두 사평리(새말나루)를 통한 것을 알 수 있다. 한양의 한강나루나 서빙고나루를 출발한 나룻배는 강을 건너 경기도 광주 사평리에 도착한 뒤 양재와 용인을 거쳐 청주나 충주로 하향 길을 떠났다. 사평리에는 길손들이 쉬어 가는 사평원이라는 숙소가 있었다. 이곳에 주막과 장터가 섰다. 지금의 신사동 간장게장골목을 비롯한 먹자골목 기원이 사평원에서 시작됐다. 9호선 사평역과 6호선 녹사평역이라는 명칭 역시 사평나루와 사평원에서 땄다. 경조5부도에 새말나루라는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 것은 새말나루가 신생마을이기 때문이다. 서울지명사전에서 ‘새말’이라는 동명을 찾아보면 무려 26개의 동일한 지명이 등장한다. 동대문구 신설동, 서대문구 신촌 또한 신생마을 즉 새말이다.행정구역 개편이 이뤄진 1914년 이후 새말나루와 사평나루가 신사도선장으로 통합됐다. 새말나루가 있던 곳은 한남대교 남단 아래고, 사평리는 지하철 3호선 신사역 근처다. 1970~1980년대 두 차례 한강종합개발계획 때 강을 메워 아파트를 지어 엄청난 지형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에 예측하기 어려우나 한강나루와 사평나루가 직선상에 위치한 것은 분명하다. 신사동이라는 동명은 새말의 한자지명 신촌의 신(新)자와 사평리의 사(沙)자를 각각 따서 만든 합성지명이다. 한남대교 남단에 세워진 새말카페는 한때 번성했던 새말나루터를 기억하는 공간이다. 애초에 ‘레인보우 카페’라는 국적불명의 이름을 사용하다가 옛 지명을 기억하자는 취지에서 바꿨다. 본래 한강나루(한강진)는 한강진에 강남 쪽 새말나루와 사평리를 합친 개념이었다. 조선시대에는 강북 쪽 나루만 인정했을 뿐 강 건너 강남 쪽 나루는 부속품으로 여겼다. 18세기 이후 한강이 기존의 5강 체제에서 8강, 12강으로 분화·확장하는 과정에서 ‘조선 제일 나루’의 위상이 다소 위축됐다. 18세기 이전까지 3강(한강, 용산강, 서강) 체제를 유지했지만 상업 발달에 따라 18세기 중엽에는 5강(3강+마포, 양화진)으로, 18세기 후반엔 8강(5강+두모포, 서빙고, 뚝섬)으로 분화됐기 때문이다. 19세기 이후 12강(8강+연서, 왕십리, 안암, 전농)까지 뻗어 나갔다. 강남은 경부고속도로와 제3한강교의 개설로 말미암아 갑자기 솟아난 도시가 아니다. 고속도로 노선이 이곳을 통과하게 된 것이나 ‘말죽거리신화’라는 강남발 부동산 신화가 양재에서 불붙은 것 또한 우연이 아니다. 수로의 중심 새말나루터는 서울의 강남과 강북을 잇는 최단거리 지름길 한남대교가 됐고, 육로의 중심 양재역은 서울과 지방을 잇는 경부고속도로의 시발점이 됐다.오늘의 강남 지형을 만든 ‘요술 방망이’는 공유수면매립과 아파트지구 지정 두 가지였다. 우리가 올림픽대로(88도로)와 강변북로라고 부르는 한강 남쪽과 북쪽의 강변도로는 1970년부터 16년에 걸쳐 구간별로 쪼개 만든 뒤 붙인 수해 방지 목적의 제방도로였다. 제1한강교에서 여의도 입구~영등포 서울교 남단까지 3720m 길이의 강변1로가 우리나라 최초 자동차전용도로이자 유료도로였다. 이후 제방 건설과 매립, 도로 건설과 병행해 강변2로부터 강변8로까지 부분적으로 지은 도로를 통합해 강남 쪽은 올림픽대로, 강북 쪽은 강변북로라고 각각 명명한 것이다. 제방과 도로 건설을 위해 1962년 법률로 제정, 공포된 공유수면매립법이 오늘의 압구정, 반포 아파트지구를 만든 일등공신이다. 한강의 섬과 백사장을 메워 아파트 택지로 둔갑시켰다. 1976년 건설부 고시 제131호에 따라 반포지구와 압구정동지구, 청담지구, 도곡지구, 잠실지구, 이수지구 등 강남권 6개 지구를 포함한 서울 11개 지구에는 아파트와 부속건물밖에 지을 수 없게 됐다. 듣도 보도 못한 기상천외의 ‘아파트지구 지정’이 오늘날 아파트 40만 가구, 거주율 80%를 자랑하는 강남아파트 시대의 닻을 올렸다. 진정한 강남시대의 개막은 ‘강남 삼총사’ 중 막내인 서울고속버스터미널이 완공된 1981년 10월 20일 이후라고 할 수 있다. 1970년 7월 7일 경부고속도로 전 구간, 1973년 호남고속도로, 1975년 영동고속도로가 속속 개통했지만 터미널은 1978년 호남선과 영동선, 1981년 경부선터미널이 따로 지어졌다. 1985년 3호선 고속터미널역이 생길 때까지 대중교통이 없는 ‘불구’ 터미널이었다. 지난해 말 기준 서울 한강 수계에 있는 다리는 모두 28개다. 1900년 한강철교가 처음 준공된 이래 1950년대까지 한강대교와 광진교 등 3개밖에 없었다. 1970~1980년대 강남 개발과 함께 14개 다리가 집중 건설됐고, 2000년 이후 9개가 추가됐다. 구리암사대교가 가장 최근인 2014년 준공됐다. 상암동~양평동 구간 월드컵대교와 노량진~노들섬을 잇는 보행 전용교 백년다리가 2021년 개통될 예정이다. 한강나루의 대를 이은 한강다리가 서울의 생명줄 노릇을 하고 있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 北 “평양 지나 동해 목표물 타격”…이스칸데르 실전배치 임박

    北 “평양 지나 동해 목표물 타격”…이스칸데르 실전배치 임박

    김정은·당 중앙위 간부 대거 발사 참관 전문가 “전력화 마쳐 조만간 양산화할 듯” 北, 최근 4차례 방사포·유도탄 구분 규정 軍선 사거리 감안 모두 탄도미사일로 봐북한이 지난 6일 쏜 발사체가 ‘북한판 이스칸데르’ 신형 단거리 탄도미사일(KN23)인 것으로 7일 확인됐다. 신형 탄도미사일은 내륙을 횡단해 목표점에 떨어지는 정확성을 확보한 만큼 조만간 실전배치를 앞두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동지께서 6일 새벽 신형전술유도탄(미사일) 위력시위발사를 참관하셨다”면서 “우리나라 서부작전비행장에서 발사된 전술유도탄 2발은 수도권(평양) 지역 상공과 우리나라 중부내륙지대 상공을 비행해 조선 동해상의 설정된 목표섬을 정밀타격하였다”고 밝혔다. 이어 “위력시위발사를 통하여 새형의 전술유도무기체계의 신뢰성과 안전성, 실전능력이 의심할 바 없이 검증됐다”고 덧붙였다. 미사일은 평양을 스치듯 비행하면서 황해남도 과일군 일대에서 약 450㎞ 떨어진 함경북도 화대군 무수단리 인근 해상의 작은 바위섬을 타격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는 탄도미사일의 안정성과 정확성을 확보했다는 대내외적 자신감을 표출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동엽 경남대 교수는 “이번 발사의 핵심은 무기의 신뢰성 검증과 자랑에 있었다고 본다”며 “결국 어제 발사를 통해 이스칸데르급 탄도미사일의 최종 개발과 전력화를 마쳤고 조만간 작전배치와 양산화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 사무국장은 “지난달 25일(고도 50㎞·사거리 600㎞)보다는 사거리와 고도를 줄여 저고도 침투능력을 시연한 것 같다”며 “평양 인근 상공 비행 등 대내 긴장조성을 위한 결속 차원의 성격도 있다”고 했다. 이번 발사에 박봉주, 리수용, 김평해, 오수용 등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들이 참관했다는 것은 실제 전력화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북한은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지난달 25일과 마찬가지로 이날 ‘유도탄’이란 표현을 사용하면서 ‘신형 대구경조종방사포’와는 명확히 선을 긋는 모습이다. 북한은 탄도미사일로 확인된 지난달 25일과 6일 발사체를 유도탄으로, 지난달 31일과 2일 발사체는 방사포로 규정해 구분했다. 북한의 주장대로라면 비슷한 기간 동안 방사포와 탄도미사일을 섞어 가며 쏘고 있는 셈이다. 신 사무국장은 “두 종류의 무기를 섞어 발사하는 것은 북미 실무협상을 앞두고 북한이 미국에 보내는 더욱 강한 압박 메시지로 읽힌다”고 했다. 반면 군 당국은 북한의 탄도미사일과 방사포를 모두 탄도미사일로 규정했다. 300㎜ 이상의 신형 방사포가 탄도미사일과 같이 유도성능을 장착한 비행 특성을 보이면서 구분이 모호해졌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이미 2017년 방사포의 사거리인 50~300㎞의 발사체를 근거리 탄도미사일(CRBM)로 규정했는데 현재 한미 정보당국의 평가도 이와 맞닿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류성엽 21세기군사연구소 정보분석관은 “북한이 탄도미사일과 방사포의 유사한 특성을 이용해 군의 정보탐지 능력을 시험하기 위해 방사포 발사 장면을 공개한 것”이라고 했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이종락의 기업인맥 대해부](88) 시너지 극대화와 글로벌 사업에 도전하는 카카오 경영진들

    [이종락의 기업인맥 대해부](88) 시너지 극대화와 글로벌 사업에 도전하는 카카오 경영진들

    여민수 대표, 카카오 수익개선 앞장조수용 대표, 디자인브랜드 총괄남궁훈 대표, 김범수 의장과 평생동지지난 2010년에 창업한 카카오는 회사의 역사를 세 시기로 구분한다. 카카오 1.0이 카카오톡을 출시하며 모바일이라는 큰 시대적 흐름에 누구보다 빠르게 진입했던 시기, 카카오 2.0이 메신저를 뛰어넘어 콘텐츠와 교통, 은행 등 생활 전반으로 카카오 서비스의 영역을 확장한 단계다. 카카오 3.0은 카카오가 제공하는 다양한 서비스들간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해 블록체인과 글로벌 사업에 도전하는 시기로 나눈다. 조수용·여민수 공동대표는 지난해 3월 취임해 카카오 3.0 시대를 이끌고 있다. 두 공동대표는 2000년대 중반 당시 NHN 대표였던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과 함께 일했다. 여 대표는 2000년부터, 조 대표는 2003년부터 김 의장과 인연을 쌓았다. 조수용(45) 대표는 신목고와 서울대 산업디자인학과, 서울대 대학원 산업디자인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99년 프리챌 디자인 센터장을 거쳐 2003년부터 2010년까지 네이버의 전신인 NHN에서 디자인과 마케팅을 총괄했다. 네이버의 녹색 검색창, 네이버 사옥인 그린팩토리를 만들고, 광화문 D타워 디자인을 맡는 등 디자인과 브랜드 감각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브랜드 및 디자인 컨설팅 전문기업 JOH를 설립해 운영하며, 국내에서 처음으로 브랜드 전문 잡지인 ‘매거진B’ 를 발행해 주목받았다. 카카오에는 2016년 브랜드 디자인 총괄 부사장으로 합류했다. 조 대표는 지난 3월 가수 박지윤(37)씨와 결혼식을 올렸다. 박지윤씨는 1994년 해태제과 광고로 연예계에 데뷔한 뒤 1997년 ‘하늘색 꿈’으로 가수의 길에 들어섰다. 그 뒤 ‘성인식’, ‘스틸어웨이’, ‘가버려’ 등을 내놓고 큰 인기를 누렸다.여민수(50) 대표는 강서고와 고려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메사추세츠공과대학 경영대학원에서 MBA 과정을 거쳤다. 오리콤과 LG애드 등 광고업계에서 일하다 2000년 네이버의 전신인 NHN에서 eBiz 부문장, 검색본부장을 맡으며 네이버의 검색광고사업을 이끌었다. 이후 이베이코리아를 거쳐 2014년 LG전자에서 글로벌마케팅부문을 총괄하다가 2016년 카카오의 광고사업부문 총괄 부사장으로 합류했다. 여 대표는 카카오의 광고 사업을 대대적으로 개편하고, 새로운 광고 플랫폼을 선보이는 등 카카오의 수익성 개선을 위한 기반을 다지는데 큰 역할을 했다. 카카오톡의 월간 이용자 수(MAU)가 4300만명에 이르는 만큼 카카오톡에 인공지능(AI)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광고모델을 본격적으로 도입할 계획이다. 카카오는 적극적 인수합병을 통해 2015년 9월 49개였던 계열사 수를 올해 1분기 현재 73개로 불렸다. 카카오가 제공하는 다양한 서비스들간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한다는 취지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카카오는 올 2분기 영업이익이 작년 2분기보다 47% 증가한 405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24% 늘어난 7330억원이었다. 주요 자회사중에는 카카오게임즈가 대표적이다. 글로벌 멀티플랫폼 게임 기업인 카카오게임즈는 2016년 엔진과 다음게임의 합병을 통해 출범한 카카오의 게임 전문 자회사다. 남궁훈·조계현 공동대표로 운영되고 있다. 남궁 대표는 카카오게임즈에서 투자, 인수합병, 상장 등 굵직한 경영활동과 내부개발 및 신사업부문을 총괄하고, 조 대표는 게임 서비스사업부문을 담당한다.남궁훈(47) 대표는 수산청 파견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어린 시절을 태평양의 사모아와 하와이에서 보냈다. 귀국해 경복고와 서강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어린 시절 해외에 체류하면서 약소국의 설움을 느껴 우리나라가 부국이 돼야 한다고 생각해 경영학을 전공했다고 한다. 삼성SDS에 입사했으나 입사 1년6개월 만에 외환위기를 맞아 명예퇴직했다. 창업기회를 찾던중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이 한양대 앞에 차린 PC방을 방문하면서 같이 일을 하게 됐다. 김 의장과 함께 한게임을 창업하는 등 평생 동지로 지내는 측근이다. 한게임은 네이버컴과 합병해 NHN이 됐는 데 남궁 대표는 NHN에서 한국게임 총괄과 미국법인 대표를 맡았다. CJE&M의 넷마블, CJ인터넷 대표를 맡으며 CJ그룹의 게임사업을 총괄하기도 했다. 엔진이 카카오에 인수되면서 카카오의 게임사업총괄 부사장에 컴백했다. 카카오게임즈의 게임개발 자회사인 프렌즈게임즈의 대표도 맡고 있다. 활기차고 유쾌한 성격으로 소통을 잘한다는 평을 듣고 있다. 서강대 경영학과 시절 1학년 때부터 택시 운전과 여행사 가이드 등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면서 경험을 쌓았다. 자전거 타는 것을 즐기는 ‘자전거 덕후’로 알려졌다. 조계현(49) 대표는 대전과학고와 카이스트 경영과학과, 카이스트 테크노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퍼블리싱 사업부문을 총괄하고 있다. 조 대표는 네오위즈 COO, 위메이드 엔터테인먼트 사장에 이어 2016년부터 카카오게임즈 전신인 ㈜엔진 사장을 맡고 있다. 카카오모빌리티는 카카오택시, 드라이버, 내비, 주차 등을 운영하는 카카오모빌리티 사업부문이 독립한 회사다. 현재 카카오T앱에서 택시, 대리운전, 공유자전거, 주차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정주환·류긍선 공동대표 체제다. 정주환(41) 대표는 안양고,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서울대 대학원 기술경영학 석사과정을 마쳤다. SK커뮤니케이션즈와 네오위즈게임즈에서 사업전략과 기획, 신사업 개발을 담당했다. 이후 벤처기업 써니로프트를 세워 소셜 데이팅 애플리케이션(앱) 사업을 운영했다. 써니로프트가 카카오에 인수되면서 카카오에 합류했다. 카카오의 택시사업에 기획단계부터 참여해 카카오택시 출시와 내비게이션앱 ‘김기사’ 인수를 주도하는 등 카카오 내부 핵심 인력이라는 평가다. 아버지가 은퇴 뒤 택시기사로 일해 사업상 조언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류긍선(42) 대표는 서대전고, 서울대 전산학과를 졸업했다. 2000년 모바일 콘텐츠 제공기업인 다날에 입사해 세계 최초로 휴대폰 결제시스템을 개발했고, 다날 대표이사에도 올랐다. 다날 유럽 최고경영자를 역임하고 지난해 카카오모빌리티에 전략부문 부사장으로 합류했다가 지난 6월 공동대표로 승진했다.카카오 커머스는 카카오톡 선물하기, 카카오 쇼핑하기, 카카오스타일, 카카오장보기, 다음쇼핑 등을 운영하며 중소상공인들과 스타트업 등 다양한 사업 파트너들과 협업을 강화해나가고 있다. 홍은택(56) 대표는 중경고와 서울대 동양사학과, 미국 미주리대 저널리즘 석사과정을 마쳤다. 동아일보 기자 출신으로 워싱턴 특파원까지 역임했다. 2006년 네이버 전신인 NHN에서 네이버 뉴스캐스트와 에코시스템 테스크포스팀(TFT)담당 부사장으로 활동하다 2012년에는 카카오 콘텐츠 서비스 부사장으로 선임됐다. 2017년 4월 출범한 ㈜카카오페이는 카카오의 테크핀 전문 자회사다. 단순한 결제를 넘어 카카오톡에서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생활 금융 플랫폼을 구축하며 언제 어디서나 스마트폰만 있으면 경제 활동을 펼칠 수 있는 ‘지갑 없는(Walletless) 사회’를 실현하고 있다. 2014년 대한민국 최초의 모바일 간편결제 서비스를 시작으로 온·오프라인 결제, 송금, 멤버십, 청구서, 인증 등 기존 금융 활동의 불편함을 해소하는 혁신적인 생활 금융 서비스를 잇따라 선보였다. 지난 3월 기준 가입자 2800만명으로 거래액은 20조원이다. 류영준(42) 대표는건대부고와 건국대 컴퓨터공학과 건국대 대학원(정보통신학)을 나왔다. 국내 통신시장에 큰 반향을 가져온 카카오 보이스톡 개발을 주도한 인물이다. 국내 최초 간편결제 서비스인 카카오페이를 성공시키며 우리나라에 생소했던 핀테크 산업이 영역을 넓히는 데 중요한 이정표를 세웠다. 이후 카카오 페이먼트사업부 본부장, 다음카카오 핀테크 총괄 부사장, 카카오 핀테크 사업 총괄 부사장을 역임하며 핀테크 전문가의 길을 걸었다. 2017년 4월 자회사 출범 후 결제, 송금, 멤버십, 청구서, 인증 등 서비스 전 영역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이끌었으며 2018년 5월에는 QR코드·바코드를 기반으로 한 오프라인 모바일 결제 서비스를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카카오페이지 서비스는 카카오의 대표 콘텐츠 플팻폼으로 웹툰, 만화, 소설, 영화까지 총 6만개 이상의 작품을 제공하고 있다. 누적 매출 1억원 이상 작품이 1256개에 달한다. 이진수(46) 대표는 단국대 부속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NHN 네이버마케팅 센터장, 아이위랩 부사장을 지냈다. 2010년에 창업한 포도트리(현 카카오페이지)가 2015년 말 카카오의 자회사로 편입돼 2016년 카카오 콘텐츠사업부문 총괄 부사장을 맡았다. 카카오M은 음악과 영상 콘텐츠의 유통, 제작 및 배우와 아티스트 매니지먼트를 아우르는 전문 콘텐츠 기업이다. 카카오 공동체가 보유한 IP(지적재산권)를 활용해 글로벌 콘텐츠 시장으로 영역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카카오M은 투니버스 방송본부장, 온미디어 대표이사, CJENM 대표이사 등을 역임한 김성수(57) 대표가 이끌고 있다. 김 대표는 성동고와 고려대 불문과, 고려대 대학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다. 이종락 논설위원 jrlee@seoul.co.kr/
  • 김정은 “한미연습 경고”…정부는 “북한과 충분히 소통”

    김정은 “한미연습 경고”…정부는 “북한과 충분히 소통”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최근 잇따라 쏘아올린 단거리 발사체에 대해 ‘한미연합연습’에 대한 경고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우리 정부는 “9·19 남북군사합의 위반이 아니다. 북한과 충분히 소통하고 있다”고 설명했지만, 북한의 무력시위 성격이 분명해짐에 따라 정치권의 논쟁이 격화될 전망이다. 북한은 지난 6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관한 가운데 신형전술유도탄 위력시위발사를 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7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이번 발사가 현재 진행 중인 한미연합연습에 대한 경고 성격임을 분명히 했다. 중앙통신은 “김정은 동지께서 8월 6일 새벽 신형전술유도탄 위력시위발사를 참관하셨다”며 “우리나라 서부작전비행장에서 발사된 전술유도탄 2발은 수도권 지역 상공과 우리나라 중부내륙지대 상공을 비행하여 조선 동해상의 설정된 목표섬을 정밀타격하였다”고 전했다. 이어 “위력시위발사를 통하여 새형의 전술유도무기체계의 신뢰성과 안전성, 실전능력이 의심할 바 없이 검증됐다”고 밝혔다. 합동참모본부은 6일 “군은 오늘 오전 5시 24분경, 오전 5시 36분경 북한이 황해남도 과일군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발사한 단거리 탄도미사일로 추정되는 발사체 2발을 포착했다”고 발표했었다. 앞서 북한은 지난달 25일 강원도 원산 호도반도에서 신형전술유도무기를, 지난달 31일 원산 갈마반도와 지난 2일 함경남도 영흥 지역에서 각각 신형 대구경조종방사포 시험사격을 진행했다.이에 대해 중앙통신은 “김정은 위원장께서는 신형전술유도탄 위력시위발사가 목적한 바대로 만족스럽게 진행되었다고 높이 평가하면서 오늘 우리의 군사적 행동이 미국과 남조선당국이 벌여놓은 합동군사연습에 적중한 경고를 보내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한미는 지난 5일부터 하반기 한미 연합연습에 돌입했으며, 북한은 연합연습이 ‘군사적 적대행위’라며 반발하고 있다. 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이 위력시위발사를 성공적으로 단행한 국방과학 부문 간부, 과학자, 군수노동계급을 만나 기념사진을 찍었다고 전했다. 이번 발사 참관에 당 부위원장들이 대거 참석하고 김 위원장이 관련 과학자 노동자들과 기념촬영을 했다는 점에서 그동안 북한이 개발해온 무기 시험 발사를 마친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한편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전날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최근 북한의 단거리 발사체 발사가 9·19 남북군사합의 위반이 아니라는 게 우리 정부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정 실장은 또 “북한과 여러 채널을 통해 이 문제(발사체 발사)를 포함해 충분히 소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 실장은 ‘북한이 우리 정부의 미사일 발사 중단 촉구에 반응하느냐’는 추가 질의에는 “북한과의 소통 내용을 다 밝힐 수는 없지만, 충분히 우리 입장을 전달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글로벌 In&Out] 공산당이 독립군 죽였다던 ‘자유시 참변’의 내막/바실리 V 레베데프 고려대 사학과 석사

    [글로벌 In&Out] 공산당이 독립군 죽였다던 ‘자유시 참변’의 내막/바실리 V 레베데프 고려대 사학과 석사

    ‘자유시 참변’은 1921년 6월 28일 한인부대와 극동공화국 인민혁명군이 자유시에서 한 무장충돌이다. 이 결과 수십~수백명의 한인이 사망해 독립운동이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냉전시기에는 소련 공산당이 한인을 속여 독립군을 죽였다는 주장이 강했다. 하지만 1990년대에 러시아 문서보관소가 개방돼 임경석, 윤상원 등 한국근대사 연구자들의 연구 결과 자유시 참변의 원인은 민족해방운동 내부의 권력투쟁(특히 이르쿠츠크파와 상하이파 간의 갈등)과 정치조직 간의 소통 문제 때문이었다. 1917년 러시아에서 10월 혁명이 일어나 러시아공산당(볼셰비키)에 의해 소비에트 정권이 수립됐다. 1918년 러시아 내전이 벌어졌다. 러시아에 큰 피해를 준 제1차 세계대전의 참전을 끝내려는 볼셰비키들을 막으려던 연합국은 군대를 파견해 러시아 내전에 개입했다. 일본은 1918년 4월 5일 밤 블라디보스토크에 파병했다. 일제 시베리아 출병의 영향을 받은 러시아 지역 한인들이 빨치산부대를 결성해 볼셰비키의 붉은군대와 함께 항일투쟁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하지만 최신 무기로 무장하며 전투력이 뛰어난 일본부대들을 무력으로 쫓아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소비에트 정부는 1920년 반(反)볼셰비키 일부 세력과 손잡고 극동공화국을 설립하고 붉은군대의 부대들과 빨치산 부대, 극동공화국 정부 편으로 넘어온 전(前) 백위파 부대들로 혼합 구성된 인민혁명군을 창설했다. 극동공화국은 극동지역의 대부분을 점령한 일본군의 철수에 외교적인 노력을 기울였고 인민혁명군은 일제가 지원하는 백위파 군대와 싸우는 데 집중했다. 이와 동시에 무장부대 통합운동이 전개됐다. 봉오동전투 이후 대대적인 토벌작전 등으로 한인부대들이 간도에서 러시아령으로 넘어갔다. 러시아공산당 극동국 한인부는 민족해방운동을 강화하기 위해 1921년에 한인부대 대표회의를 열어 통합 문제를 논의하자고 했다. 동시에 코민테른은 극동지역 대표부를 설치하고 슈마츠키를 대표로 임명했다. 슈마츠키는 한인부대를 빨리 조선 쪽으로 이동할 계획을 세웠으며 무장부대 통합을 위해 창설된 고려혁명군정의회의 위원장으로 조지아 출신인 칼란드라시빌리를 파견했다. 칼란드라시빌리는 극좌 무정부주의자로서 전략적으로 사고하기보다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편이었다. 극동의 나폴레옹을 꿈꾸던 그는 슈마츠키와 오하묵, 최고려 등과 함께 한국 내에서 무장투쟁을 공공연하게 벌이려 했지만, 무기도 병력도 열세였다. 또 통솔권을 독점하려던 칼란드라시빌리는 자유시에 집결한 빨치산 부대들의 항의를 불러일으켰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 외무인민위원 치체린은 1921년 6월 9일 러시아공산당 중앙위원회 앞으로 보낸 서한에서 ‘한인 빨치산들을 비밀리에 반드시 지원해야 하고, 지금은 공공연한 적대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6월 10일 러시아공산당 중앙위원회는 ‘한인부대들은 러시아 영토에 머물면서 적극 행동에 나서기 위해 적절한 기회를 기다려야 한다’는 치체린의 제안을 채택했다. 그러나 이 결정은 칼란드라시빌리 행동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그는 6월 28일 극동공화국 인민혁명군 소속 자유시 수비대에 사할린부대를 무장해제시킬 것을 요청했다. 최후통첩을 받은 사할린부대 책임자들은 무장해제하지 않았다. 양측은 7시간 동안 이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결국 오후 2시 20분 인민혁명군 병력 1000명과 칼란드라시빌리 사령부에 속한 한인 병사 300명은 더는 기다리지 않고 공격을 시작했다. 오후 4시 사할린부대의 한인들은 백기를 들고 항복했다. 자유시 사변의 사망자는 최소 36명에서 최대 400명으로 추측된다. 이 자유시 참변으로 빨치산 부대 통합운동은 완전히 실패했다.
  • 책벌레들이 또래에 추천한 책, ‘청소년도서 100권’ 읽어볼까

    책벌레들이 또래에 추천한 책, ‘청소년도서 100권’ 읽어볼까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이 청소년들이 감명 깊게 읽은 책을 직접 또래 친구들에게 추천하는 ‘2019 청소년추천도서 100권’을 선정해 6일 발표했다. 도서관이 진행하는 청소년 독서문화프로그램 ‘1318 책벌레들의 도서관 점령기’에 참여한 중·고교 독서동아리 ‘책벌레 리더스’ 학생들이 직접 읽고 선정했다. 어른 눈높이가 아닌 또래 눈높이에서 본 책이어서 더 친근하다.100권은 총류 2권, 철학 9권, 사회과학 17권, 자연과학 13권, 기술과학 11권, 예술 6권, 언어 2권, 문학 29권, 역사 11권이다. ‘공부머리 독서법’(책구루)을 비롯해 ‘선생님, 제 마음이 왜 이렇게 힘들죠?’(바이북스), ‘이제껏 너를 친구라고 생각했는데’(인플루엔셜), ‘누가 뭐래도 내 길을 갈래’(사계절), ‘급식체 사전’(학교도서관저널)처럼 청소년들의 생활과 직접 연관된 책들이 많았다. 가장 많은 추천책 목록이 있는 문학 분야에서는 구병모 작가의 ‘버드 스트라이크’(창비)와 같은 성장 소설은 물론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문학동네), 백세희 작가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고양이’처럼 가볍고 읽기 편한 작품, 베스트셀러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 역사서에서는 만세운동 100주년을 맞아 ‘나는 여성이고, 독립운동가입니다’(우리학교), ‘만세열전’(생각정원), ‘일제강점기 그들의 다른 선택’(피플파워)과 같은 책이 포진했다. 도서관 측은 “학교와 공공도서관은 물론 부모들이 청소년 독서지도 시 목록을 유용하게 활용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추천 도서 목록은 도서관 홈페이지(nlcy.go.kr)의 ‘독서문화 활동지원’→‘1318 책벌레들의 도서관 점령기’에서 받을 수 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건설사 0.6%가 ‘신도시·공공택지’ 독식… 실종된 국민 선택권

    건설사 0.6%가 ‘신도시·공공택지’ 독식… 실종된 국민 선택권

    “3년 전 공공택지지구에서 분양받을 때 가장 이상했던 점은 고를 수 있는 아파트 브랜드가 몇 개 없다는 겁니다. 제가 분양받은 경기 고양시 향동지구는 3개 건설사 브랜드가 전부였거든요. 우리나라 건설사가 몇 천개라고 들었는데, 선택권이 극히 제한적이라는 게 너무 이상하지 않습니까.”(향동지구 입주자 김모씨) “신도시나 공공택지지구에서 분양하는 아파트는 국민 선택권이 없다고 봐도 틀린 얘기가 아닙니다. 몇몇 건설사들이 ‘벌떼 입찰’(수십개의 자회사가 입찰에 참여해 아파트용지를 낙찰받는 것)을 통해 땅을 싹쓸이하기 때문이죠.”(A건설사 관계자) 정부가 그린벨트를 헐고, 개인 사유재산을 수용해 개발하는 신도시와 공공택지지구 아파트는 무주택자에겐 ‘내 집 장만’을 할 수 있는 가장 큰 기회다. 비록 서울이 아니더라도 정부가 계획을 세우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택지를 조성하는 만큼 다른 민간택지지구에 비해 가격이 저렴한 것은 물론 교통, 학교, 편의시설, 공원 등 각종 인프라가 빠른 시간 안에 갖춰지기 때문이다. 특히 높은 녹지비율과 쾌적한 환경은 신도시와 공공택지 개발 소식에 사람들이 귀를 쫑긋 세우게 하는 이유다. ●신도시 아파트용지 경쟁률 최고 수백대1 이런 이유로 신도시·택지지구에서 아파트를 분양하면 수십대1의 경쟁률을 보이는 경우가 흔하다. 한마디로 아파트 용지만 분양받으면 이후부터는 ‘땅 짚고 헤엄치기’라는 얘기다. 때문에 신도시·택지지구의 공동주택용지를 확보하기 위한 건설사들의 경쟁도 치열하다. 이는 LH가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매각한 신도시·공공택지의 공동주택용지 473필지의 입찰과 낙찰업체 현황을 살펴봐도 그렇다. 필지 473곳 입찰에 건설사들의 총 입찰 참여 누계는 3만 8856건으로, 한 필지당 평균 82.1대1의 경쟁률을 보였다. 특히 2013년 박근혜 정부가 ‘4·1 부동산 대책’을 통해 향후 5년간 신규 택지 지정을 하지 않겠다고 밝힌 이후 건설사들은 택지지구에서 땅이 나온다고 하면 ‘묻지마 입찰’에 들어가고 있다. 2009년 11월 진행된 화성 동탄2신도시 A-22블록 입찰에 참여한 건설사는 4곳에 불과했는데, 지난해 11월 나온 동탄2신도시 A-62블록의 입찰 경쟁률은 156대1이었다. 지난 4월 LH가 분양에 나선 경기 양주시 옥정지구 17-1블록에서는 611개 업체가 입찰에 참여했고, 같은 지구 17-2블록의 경우 550개 건설사가 투찰했다. 건설사 관계자는 “최근 몇 년간 수도권 주택 공급 부족으로 분양시장이 호경기를 보이면서, 공공택지 분양시장도 활황세”라면서 “수도권에서는 입지가 그럭저럭 괜찮다는 평가만 나와도 수백대1의 경쟁률을 기록한다”고 설명했다. ●향동지구 일반분양 5개 중 3개, 호반이 건설 여기서 이상한 점이 있다. 최고 수백대1의 경쟁률을 보이는데 막상 아파트를 분양받으려고 하면 선택할 수 있는 아파트 브랜드가 몇몇 중견 건설사밖에 없어서다. 실제 향동지구에선 5개에 불과한 일반분양 아파트 중 3개를 호반건설이 지었고, 화성 동탄2신도시에서는 반도건설 아파트가 10개 단지나 된다. 이는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LH가 분양한 아파트 용지의 낙찰 현황에서도 드러난다. 이 기간 중흥건설(47개), 호반건설(44개), 우미건설(22개), 반도건설(18개), 제일풍경채(11개) 등 5개 건설사에 돌아간 필지가 142개로 전체(473개) 30.0%를 차지했다. 참고로 대한주택건설협회에 등록된 건설사 수는 7827개다. 계산하면 전체 건설사의 0.6%가 신도시·공공택지지구 아파트 용지 3분의1을 독식했다는 것이다. LH의 신도시·공공택지의 공동주택용지는 국민들의 주거 안정과 특정기업 편중을 막기 위해 추첨으로 낙찰 업체를 정한다. LH 관계자는 “최고가 입찰제로 진행하면 아파트 분양가격이 올라갈 수 있다”면서 “또 특정업체가 너무 많은 사업지를 가져가면 국민 선택권이 제한되기 때문에 추첨제로 택지를 분양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 5개 건설사는 페이퍼컴퍼니에 가까운 수십개 자회사를 만들어 입찰에 참여하는 꼼수와 편법으로 이를 무력화했다. 이 기간 LH 아파트용지 입찰에 참여한 계열사 수는 중흥건설이 49개로 가장 많았고, 호반건설 43개, 우미건설 32개, 반도건설 27개, 제일풍경채가 17개 순이었다. 입찰 참여 횟수도 중흥이 2516회로 가장 많았고, 호반이 2204회로 두 번째로 많았다. 특히 호반건설은 입찰에 참여한 필지가 191개에 이를 정도로 땅 욕심을 냈다. ●LH 입찰 기준·전매 규정 강화도 소용 없어 이처럼 신도시·공공택지 공동주택 분양이 과열 양상을 보이자 LH는 입찰 참여 조건과 전매 조건을 강화하고 있다. LH는 페이퍼컴퍼니의 입찰 참여를 제한하기 위해 기존에 주택건설사업 등록만 하면 참여가 가능했던 자격 조건을 2017년부터 주택건설사업 등록과 함께 300가구 이상의 준공 실적, 대한주택건설협회가 확인해주는 시공능력 확인서 등을 요구하고 있다. 입찰 참여 조건을 강화한 결과 2015년 146대1, 2016년 93대1이었던 LH 공동주택용지 평균 경쟁률은 2017년 39대1, 지난해 77대1, 올해 6월 기준 56대1로 떨어졌다. LH가 공급한 공동주택용지로 ‘땅 장사’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전매 규정도 강화하고 있다. LH는 2007년 4월 건설사들이 낙찰받은 공동주택용지의 전매를 완전 불허했다가 2009년 6월에는 LH 공급가격 이하로만 전매를 할 수 있게 풀어줬다. 2015년 8월부터 추첨하는 공동주택용지의 경우 분양가 이하로도 전매를 제한했다가 건설사 민원이 빗발치자 2017년 12월부터 잔금 납부를 마쳤거나, 계약금을 낸 지 2년이 지나면 공급가격 이하로 전매하도록 규정을 고쳤다. LH 관계자는 “벌떼 입찰과 편법 전매를 막기 위해 규정을 강화하고 있지만, 건설사들이 이면계약을 할 땐 막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건설사 관계자는 “입찰 규정이 강화됐지만 호반건설을 비롯한 몇몇 중견 건설사들은 지난 몇 년간 주택시장 호황기를 이용해 계열사들이 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 조건을 맞춰놨다”면서 “또 입찰 참여 조건은 되지만 전매 금지 조건에는 시공능력 등이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계열사 간 택지거래를 통해 편법 승계를 하는 곳도 있다”고 꼬집었다. ●국토부도 3기 신도시 설계 공모 도입 논의 전문가들은 신도시·공공택지지구 공동주택용지 분양시스템을 개선하지 않으면 3기 신도시 개발 사업도 몇몇 중견 건설사들의 배를 채우는 결과만 낳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일각에서는 설계 공모 방식을 포함해 도시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신도시와 공공주택용지의 배분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추진하는 강동구 강일지구 1·3·5·10블록에서는 기존 추첨제가 아닌 설계 공모 방식으로 추진할 예정이다. 새로운 주거 문화를 만들고 주변 환경에 적합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국토교통부도 최근 3기 신도시 필지 배분에 설계 공모 방식을 도입하는 것을 심도 깊게 논의하고 있다. 국토부 고위 관계자는 “모든 공동주택용지 배분을 설계 공모 방식으로 하기는 어렵지만, 도시 경쟁력 강화와 특정 건설사 집중을 막기 위해 설계 공모 방식이 효과적일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승효상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장도 지난달 30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3기 신도시는 공급자 아닌 수요자 중심으로 관점을 바꿔야 한다”고 밝혔다. 3기 신도시의 필지 배분과 설계 공모 방식에 대해선 “백지 상태에서 시작할 것”이라면서 “설계 공모 방식을 포함해 각 상황에 맞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세종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청년구직지원금 요건 맞으면 바로 지급

    청년구직지원금 요건 맞으면 바로 지급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취업준비생에게 정부가 월 50만원씩 최대 6개월간 지급하는 청년구직활동지원금 지원 대상이 이달부터 대폭 확대된다. 지원 요건만 충족하면 우선순위를 고려하지 않고 바로 받을 수 있다. 상반기 제도 운영 과정에서 일부 수급자들의 ‘도덕적 해이’도 있었던 것으로 나타나 하반기에는 정부가 제도를 더욱 촘촘히 설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6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청년구직활동지원금 제도를 처음 시행한 지난 3월부터 6월까지 총 3만 9310명의 청년이 혜택을 받았다. 정부가 올해 계획한 지원 규모가 총 8만명(1582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하반기에는 다소 여유가 있는 셈이다. 청년구직활동지원금 신청 요건은 만 18~34세 청년 중 대학(원)을 졸업·중퇴한 지 2년 이내이고 기준 중위소득 120% 이하 가구에 속한 사람이다. 지방자치단체의 청년수당 등 유사한 사업의 지원을 받은 뒤 6개월이 지나야 한다. 고용부는 지난 4개월간 꼭 필요한 청년부터 지원하고 졸업 후 기간 등을 기준으로 우선순위를 정해 지원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요건만 갖추면 바로 지원하겠다는 방침이다. 고용부는 “상반기 지원이 시급한 청년들의 수요는 많이 해결됐다”면서 “하반기 채용이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졸업생들의 구직 활동도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돼 지원 대상을 늘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청년구직활동지원금 수급자는 매달 자신이 지원금을 어디에 썼는지 보고서를 내야 한다. 고용센터에서 운영하는 취업 지원 프로그램도 참여할 수 있다. 고용부는 상반기 청년구직활동지원금을 제대로 활용한 우수사례 몇 가지를 제시했다. 경기 안양고용센터에서 지원을 받은 A씨는 ‘정보보호’ 분야 취업이 목표였다. 진입장벽이 다소 높지만 정보보안기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기업 공고문도 나올 때마다 꼼꼼하게 스크랩했다. 이 과정에서 A씨가 청년구직활동지원금으로 기본적인 의식주 걱정 없이 취업 준비에 몰두할 수 있었다고 고용부는 강조했다. 그러나 지원금이 항상 바람직한 곳에만 쓰이지는 않았다. 상반기 제도를 운영하면서 구직 활동과 크게 관련이 없는 곳에 사용한 사례가 전해져 논란이 되기도 했다. 고용부가 김학용 자유한국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5월 청년구직활동지원금 사용내역 가운데 게임기(40만원), 문신 제거(33만원), 에어컨(49만 5000원) 등도 확인할 수 있었다. 30만원 이상 일시불로 지출하면 수급자는 반드시 구직 활동과의 연관성을 소명해야 한다. 고용부는 “소명한 내용이 부실한지 검토한다”면서도 “범위를 좁게 판단하거나 사용내역을 일일이 통제하는 것은 정책 취지와 맞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하반기에 제도가 확대되는 만큼 지원금이 엉뚱한 곳에 쓰이지 않도록 지원금 사용내역과 구직 활동과의 연관성을 정부가 꼼꼼하게 확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 태풍 프란시스코 7일 새벽 안동 인근서 열대저압부로 소멸

    태풍 프란시스코 7일 새벽 안동 인근서 열대저압부로 소멸

    제8호 태풍 프란시스코가 일본 가고시마 북북서쪽 약 200㎞ 부근 육상을 시속 28㎞의 속도로 북서진하고 있는 가운데 6일 오후 부산 남쪽 90㎞ 해상까지 근접한다. 당초 태풍 예상경로에 따르면 강원도 속초지역을 빠져나간 뒤 열대저압부로 약화돼 소멸될 것으로 전망됐지만 이보다 빠르게 경북 안동지역에서 열대저압부로 변할 것으로 전망됐다. 기상청은 “8호 태풍 프란시스코는 경북 안동지역에서 열대저압부로 바뀌겠지만 비구름대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경상지역에 특히 많은 비가 내릴 것”이라고 6일 예보했다. 태풍의 영향으로 7일에는 전국적으로 비가 내리겠지만 특히 동부지역에 많은 비가 내릴 것으로 보인다. 태풍 프란시스코는 일본 큐슈 육상에 상륙해 많은 비를 뿌리면서 약화된 상태에서 북상하고 있어 기상청은 태풍 진행방향 서쪽에 위치한 일부 전라도와 충청도의 태풍 예비특보를 강풍 예비특보로 변경했다. 태풍 프란시스코는 열대저압부로 바뀌기는 하지만 많은 비구름을 갖고 있기 때문에 경상도와 충북, 강원도 지역에 50~150㎜, 경상해안 지역에는 200㎜의 많은 비가 내릴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지난 4일 필리핀 마닐라 인근 해상에서 발생한 제9호 태풍 레끼마는 6일 오전 일본 오키나와 남쪽 해상을 지나고 있다. 바닷물 온도가 높아 레끼마는 점차 강한 중형태풍으로 성장해 시속 14㎞ 속도로 북서진해 8~9일 타이완을 거쳐 10일 오전 중국 내륙 푸저우 지역에 상륙한 뒤 상하이를 거쳐 지나갈 것으로 보인다. 현재 경로상으로는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할 것으로 기상청은 전망하고 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명동성당 앞에서 비수로 거사… 공범 묻자 “2000만 동포가 도왔다”

    명동성당 앞에서 비수로 거사… 공범 묻자 “2000만 동포가 도왔다”

    한자까지 똑같은 동명이인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알아도 이재명 의사(李在明 義士)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완용을 처단하려다가 실패한 독립운동가 정도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 드물다. 이 지사는 우연히도 의사의 의거일이 자신의 생일과 같은 날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매국노를 죽이려다 스물셋 꽃다운 나이에 교수형을 당한 의사에 대한 인식과 대접이 이렇다. 의사에게는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됐지만, 직계 후손이 없어 훈장을 국가보훈처가 보관하고 있었다. 고향도 평북 선천이라 생가나 일가붙이를 찾을 수도 없다. 형이 집행된 후 시신도 수습되지 않아 유골의 행방도 묘연하니 묘소도 있을 리 없다.잊혀진 의사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것은 종친회였다. 이 의사의 본관은 진안인데 진안 이씨는 전북 진안을 비롯해 의사의 고향인 평북 등지에 집성촌이 있다. 또한, 진안 마이산은 1907년 이석용이 조직한 호남 의병 창의동맹단의 집결지였다. 진안에는 1925년 유림들이 일제에 항거해 순국한 의사와 열사 등 79위를 배향한 사당인 이산묘(耳山廟)도 있다. 말의 귀를 닮은 마이산 두 봉우리의 서쪽이다. 이산묘 영광사(永光祠)에는 안중근· 윤봉길· 이봉창 의사 등과 더불어 이 의사도 모셔져 있다.그런 인연으로 의사의 동상과 기념관이 고향에서 천 리 길이 넘는 먼 곳 진안에 자리잡게 되었다. 진안군청에서 마이산도립공원으로 들어가다 보면 도로 오른쪽에 이재명 의사 기념관이 있다. 2001년 종친회와 정치인들이 이재명 의사 추모사업회를 결성해 진안읍 군하리 6500여㎡ 부지에 조성한 시설이다. 그러나 금요일에 찾아간 기념관과 사업회의 문은 자물쇠가 굳게 채워져 관람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홍살문은 나무가 삭아 홍살이 떨어져 뒹굴고 있고 마당에는 잡초가 무성했다. 이러니 방문객은 있을 리도 없고 간혹 지나가다 들러도 관람을 할 수 없다. 몇 해 전 수리를 요청하는 민원이 제기됐지만, 군청에서는 토지보상금 사용 승인이 나지 않았다고 답했다. 뜻을 모아 거액을 들여 지은 기념관이 보상금 갈등과 무관심, 예산 부족으로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기념관 옆 타향 땅에 세워진 의사의 동상은 더 쓸쓸해 보였다. 이 의사는 1887년 10월 16일 선천에서 태어나 8살 때 평양으로 이사 가서 그곳에서 성장했다. 의사는 평양 일신학교를 졸업하고 1904년 미국 노동 이민회사의 모집에 응해 미국 하와이로 갔다. 1906년 3월에는 공부를 더 할 목적으로 미국 본토로 옮겨가 안창호가 중심이 돼 창립한 공립협회에 가입했다. 이듬해 일제는 고종을 강제 퇴위시키고 ‘정미7조약’을 체결하는 한편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시켰다. 이에 공립협회는 매국노 처단을 결의하고 실행자를 선발했는데 거기에 지원한 사람이 바로 이 의사다.●이토 암살 실행 무산되자 이완용 죽이기로 의사는 그해 10월 9일 일본을 거쳐 고국으로 돌아왔다. 때를 엿보던 의사는 1909년 1월 평안도 순시를 떠난 한국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려고 평양역에서 기다렸다. 그러나 거사를 실행하지 못했다. 안창호가 이토와 함께 다니던 순종 황제의 안전을 위해 만류했기 때문이었다. 이토는 10월 26일 안중근 의사에게 하얼빈역에서 사살됐다. 의사는 원래 목표대로 을사 5적을 비롯한 매국노들을 처단할 계획을 세웠다. 여러 동지와 야학당에 모여 이완용은 이 의사와 김병록· 이동수가, 이용구는 김정익이 죽이기로 했다. 그러던 중 이완용이 12월 22일 종현 천주교당(명동성당)에서 벨기에 황제 레오폴드 2세의 추도식에 참석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당시 양심여학교 학생이던 아내 오인성씨와 마지막 작별의 밤을 지냈다. 오씨는 울지 않았고 남편의 거사를 만류하지 않았다고 한다. 날이 새자 김병록, 이동수와 함께 의사는 명동성당으로 향했다. 그날 오전 11시 30분쯤 의사는 성당 밖에서 군밤장수로 변장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이완용이 인력거를 타고 앞으로 지나갔다. 의사는 비수를 들고 달려들었다. 인력거꾼 박원문이 제지하려 하자 그를 찔러 숨지게 하고 이어 이완용의 허리 쪽을 공격했다. 혼비백산한 이완용이 달아나려 하자 다시 3곳을 더 찔렀다. 거사 직후 의사는 현장에서 일경에게 체포됐다. “오늘 우리의 공적(公敵)을 죽였으니 정말 기쁘고 통쾌하다”고 외치며 만세를 불렀다. 그러나 이완용은 치명상을 입지는 않고 목숨을 건졌다. 이완용은 자신의 집으로 가서 의사를 불러 응급 치료를 받았다. 일본 경찰은 이 의사를 이완용의 집으로 데리고 갔다. 그곳에 와 있던 농상공부대신 조중응이 “네가 흉행(兇行)을 한 자냐”고 물었다. 이에 의사는 눈을 치켜 뜨며 “너 조중응은 귀중한 인사를 이 모양으로 하대하느냐”며 오히려 추상과 같이 꾸짖었다. 그러면서 옆에 있던 일경에게 “더러운 냄새가 코를 찌르니 권연초 한 개를 가져오라”고 하여 유유히 피웠다.●“내 목숨 빼앗을 수 있으나 충혼은 못 빼앗아” 경시청에서 조사를 받은 의사는 일경이 “공범이 있느냐?”고 묻자 “이러한 큰 일을 하는데 무슨 공범이 필요하냐. 공범이 있다면 2000만 우리 동포가 모두 나의 공범이다”고 말했다. 이듬해 4월 열린 재판에서도 “도와준 자를 말하라”는 일본인 재판장 스가하라에게 “이완용을 죽이는 것을 찬성한 자는 우리 2000만 동포 모두며 방조자는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엄숙한 목소리로 역적 이완용의 8개 죄목을 거론하며 통렬하게 비판했다. “공평치 못한 법률로 내 목숨을 빼앗을 수는 있으나 나의 충혼, 의혼(義魂)은 절대 빼앗지 못할 것이다. 한번 죽음은 슬프지 않다. 생전에 이루지 못한 일이 한심스러울 뿐이다. 내 결코 죽어서 그 원한을 갚을 것이다.” 의사는 1910년 5월 18일 경성지법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 의사는 사형 선고를 받고 꼿꼿한 자세로 재판장을 꾸짖으며 이렇게 최후 진술을 했다. 부인 오씨는 ‘국적 이완용이 아직 죽지 않고 살았는데 우리 가부(家夫)는 왜 사형에 처하느냐’며 눈물을 흘렸다. 의사는 총독부 체제 발족 바로 전날인 1910년 9월 30일 순국했다. 의사는 의거를 공모한 사람들은 아무 관련이 없다고 보호하면서 끝까지 단독 범행임을 주장했다. 그러나 김병록 등 동지 10여명도 최고 징역 15년형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이 의사는 부인 오씨를 성모여학교 교사인 함마리아의 소개로 만나 1907년 겨울 부부의 연을 맺었다. 오씨도 경찰에 끌려가 혹독한 심문을 받았다. 그러면서도 변호인을 선임하는 등 남편 뒷바라지에 열성을 다했다. 남편이 죽은 뒤 오씨도 독립운동에 뛰어들어 중국 길림성과 상해 등지로 돌아다니며 독립운동을 도왔다. 1919년 3·1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오씨는 귀국했다가 일경에 체포됐다. 증거와 단서가 없어 석방되었지만, 미행과 감시를 받았다. 오씨는 다시 망명을 도모하다 병을 얻어 29세에 요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인 외과 의사의 집도로 수술을 받은 이완용은 53일 동안 입원했다. 순종과 고종은 이완용이 퇴원하는 날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시종을 보내 안부를 묻고 거액의 위로금을 보냈다. 전국의 관찰사와 군수들로부터도 위로금이 답지했다고 한다. 퇴원 후 충남 온양에서 휴양을 한 이완용은 총리직으로 복귀해 데라우치 통감과 한일합방조약에 서명했다. 그 4일 후 순종 황제로부터 대한제국 최고훈장인 금척대수훈장을 받았다. 이완용은 일제의 보호 속에 백작 작위를 받고 호의호식하면서 부귀영화를 누리다 1926년 68세로 사망했다. 사인은 의사의 칼을 맞아 폐를 다친 후유증이었다고 한다. 글 사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인사] 숭실대, 고양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법무부

    ■ 숭실대 △ 지식정보처장 김명호 △ 사회과학대학장 노혜련 △ 아동청소년교육센터장 전주성 ■ 고양시 ◇ 3급 전보 △ 덕양구청장 윤양순 ◇ 4급 전보 △ 기획조정실장 김운영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 과장급 전보 △ 과학기술정책과장 임요업 △ 정보보호담당관 구영섭 △ 디지털방송정책과장 엄지현 △ 디지털소통팀장 박병현 △ 연구성과일자리정책과장 조선학 △ 소프트웨어산업과장 박준국 ■ 법무부 ◇ 전보 △ 서울고검 검사 안권섭(서울특별시 파견) △ 부산고검 검사 박용호 △ 광주고검 검사 김환 신현성 박영준 △ 서울중앙지검 중경1단 부장 최헌만 △ 서울동부지검 인권감독관 정규영 △ 〃 중경단 부장 이성일 △ 〃 형사3부장 장성철 △ 서울남부지검 인권감독관 나병훈 △ 〃 중경단 부장 김대룡 △ 서울북부지검 중경단 부장 유종완 △ 서울서부지검 인권감독관 최성완 △ 〃 중경단 부장 박병규 △ 〃 부부장 이병대(국민권익위원회 파견) △ 의정부지검 인권감독관 김정호 △ 수원지검 인권감독관 황성연 △ 〃 형사1부장 정진웅 △ 안산지청 차장 고경순 △ 대전지검 형사1부장 옥성대 △ 〃 형사3부장 윤진용 △ 안동지청장 최성필 △ 부산지검 인권감독관 최성국 △ 부산서부지청 형사1부장 김경우 △ 울산지검 형사1부장 이형관 △ 광주지검 형사1부장 정연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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