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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상] 아직은 따뜻한 세상…동전 대신 장난감 내민 훈훈한 동심

    [영상] 아직은 따뜻한 세상…동전 대신 장난감 내민 훈훈한 동심

    멕시코의 길에서 포착된 연출 없는 한 편의 드라마처럼 사회에 감동을 주고 있다. 한창 학교에서 공부할 나이지만 돈벌이 나선 어린이, 그런 어린이에게 동전 대신 선뜻 자신의 장난감을 내민 또래의 어린이가 만들어낸 흐뭇한 감동의 스토리다. 멕시코 일간 압스트락토가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공개한 영상을 보면 허름한 옷차림의 한 어린이가 걸레로 신호에 걸린 자동차를 닦고 있다. 신호에 걸려 잠깐 정차한 자동차의 유리창이나 차체를 닦아주고 동전을 받는 아이다.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지만 아이는 기껏해야 초등학교 1~2학년 정도로 보인다. 어린이가 자동차를 걸레로 닦으며 뒤쪽으로 다가섰을 때 자동차 오른쪽 뒤편 유리창을 내리면서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한 아이가 얼굴을 내민다. 아이는 걸레로 자동차를 닦는 친구 뻘 아이에게 장난감 자동차를 내민다. 약간은 겸연쩍게 장난감을 받은 아이는 즉각 길에서 자동차를 굴리며 놀기 시작한다. 그런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자동차 속 아이는 이번엔 덩치가 훨씬 큰 장난감 포크레인을 내준다. 잠시 망설이다 장난감 포크레인을 받아 갖고 놀던 아이는 자동차 속 아이에게 장난감을 돌려주려 하지만 아이는 손을 내젓는다. 대화가 들리진 않지만 제스처를 보면 "아니야, 됐어, 내가 줄게, 너 가져"라고 말하는 듯하다. 뜻하지 않게 동전 대신 장난감을 선물로 받은 거리의 아이는 어디론가 달려가더니 과자가 잔뜩 담긴 비닐봉투를 들고 돌아와 자동차 속 아이에게 건넨다. 선물을 줘서 고맙다는 감사의 표시다. 일간 압스트락토는 "거리의 아이는 신호에 걸린 차를 닦으면서 틈틈이 과자를 판다"며 "장난감을 준 아이에게 감사의 표시로 자신이 파는 과자를 선물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바뀐 신호를 받고 자동차가 움직이면서 거리에 펼쳐진 아이들이 주인공인 감동스토리는 막을 내린다. 이런 상황은 뒤쪽에 서 있던 한 운전자가 영상으로 촬영해 제보하면서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불우한 환경의 또래 아이에게 선뜻 자신의 장난감을 선물하는 아이, 선물을 받고 감사의 표시를 하는 거리의 아이가 대본 없이 만든 드라마 같은 영상은 SNS에서 큰 화제가 됐다. 네티즌들은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영상",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는 게 후손들에게 남겨줄 수 있는 최대의 유산", "영상에 나오는 아이들이 어리지만 최고의 챔피언들"이라는 등의 댓글로 두 아이에 대한 응원과 칭찬을 대신했다.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달서구, 대구 최초‘유니세프 아동친화도시 인증’획득

    달서구, 대구 최초‘유니세프 아동친화도시 인증’획득

    대구 달서구가 유니세프 한국위원회로부터 대구 최초 ‘유니세프 아동친화도시’인증을 받았다. 유니세프 아동친화도시는 18세 미만 모든 아동이 살기 좋은 도시로 유엔아동권리협약의 기본정신을 잘 실현하는 도시를 대상으로 선정한다. 아동친화도시 인증은 유니세프 한국위원회가 유엔아동권리협약 이행에 필요한 10가지 원칙을 바탕으로 세부항목을 평가해 선정하며, 인증기간은 4년이다. 달서구는 18세 미만 인구가 8만3320명(지난해 12월말 기준)으로 전체 인구의 14.8%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 아동학대문제 등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어 아동복지에 대한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의 선제적인 대응을 위해 2019년 2월 아동친화도시 조성 기본계획 수립을 시작으로 아이들이 건강하고 행복한 아동친화도시 인증을 목표로 제도적 기반 마련, 아동 참여체계 구축 등 분야별 사업을 내실있게 추진해 왔다. 그 성과를 바탕으로, 지난해 11월 ‘유니세프 아동친화도시 인증’을 신청하였으며, 서면심의(1차, 2차), 지방자치단체장 화상인터뷰 등을 거쳐 최종 인증을 획득했다. 대구 지역에서 아동친화도시 인증은 달서구가 최초이며, 7월 아동친화도시 달서 선포식을 개최할 예정이다. 달서구의 아동친화도시 조성을 위한 주요사업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체계적인 아동정책 추진을 위한 중장기계획 수립·추진했다. 달서구는 체계적인 아동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아동친화도시 4개년 계획(2021~2024년)을 수립?추진한다. ‘놀이터 같은 도시, 친구 같은 달서구’를 비전으로 아동이 행복하고, 안전하게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도시 조성을 목표로 7개 중점과제, 29개 세부사업을 추진하며 총 사업비는 242억9400만원이다. 앞으로 달서아이꿈센터 건립, 아동친화모니터단 확대 운영, 통학로 흡연규제 캠페인, 정기적인 아동권리·친화 교육 확대 운영 등을 중점 추진할 계획이다. 다음은 제도적 기반 마련이다. 유니세프 아동친화도시 지방정부협의회(19.5월)에 가입하고 아동친화도시 조성에 관한 조례 제정과 아동친화도시 추진위원회 및 아동친화 모니터단을 구성?운영하고 유니세프 및 민간기관(`20.4.)과 업무협약 등 민?관 협력체계를 구축하였다 또 2020년 3월 아동영향평가 및 4개년 추진계획 수립 연구용역을 실시하고 지난해 5월 아동권리 옹호관(옴부즈퍼슨)을 위촉하는 한편 아동권리 향상을 위한 교육?캠페인 등을 펼쳐왔다. 아동 참여체계 구축 및 아동권리 증진 노력을 해 왔다. 영유아부터 청소년까지 아우르는 아동참여체계 구축을 위해 아동친화모니터단, 청소년참여위원회, 청소년운영위원회, 청소년위원단(각 동별 10명 내외)을 구성?운영하고, 아동관련 정책?사업에 주도적으로 아동들이 참여하고 아이디어를 제안, 반영할 수 있도록 다야한 기회를 마련하고 있다. 또한, 2021년 5월 아동보호주간(5. 24. ~ 5. 28.)을 운영하여 실종아동사진 전시 및 아동인권, 아동학대예방 등을 위한 거리캠페인을 실시하는 한편, 지역아동센터 등을 대상으로 찾아가는 아동학대 예방교육, 아동심리 치유프로그램 운영 등 아동권리 증진을 위한 활동에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아동 안전확보를 위해 노력했다. 달서구는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고 있는 아동학대 및 아동폭력 예방에도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이고 선제적인 대응으로 아동학대 없는 도시 조성을 위해서도 노력해 왔다. 2020년 9월 대구시 최초로 아동보호팀을 신설하여 아동학대 조사 공공화사업을 선도적으로 추진하여 왔으며 그 결과 보건복지부 주관 공공아동보호체계 구축 평가 대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또 등하교 어린이 안전확보를 위해 관내 초등학교 57개교에 가방안전덮개를 5,300여개를 제작?배부하는 한편 옐로카펫을 설치하고, 2019년부터 현재까지 송현초등학교 외 23개소 어린이보호구역 정비사업(사업비 20억원)을 추진하였으며 앞으로도 지속 추진할 계획이다. 자연친화 놀이 체험공간 및 아동전용 공간 조성을 위해 노력했다. 아동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자연친화 놀이체험공간 등 아동전용 공간확보사업도 추진한다. 2020년 달서별빛캠프와 선원공원, 길우어린이공원에 숲속?생태놀이터를 조성하고 가족을 위한 달서가족문화센터 및 도서관을 건립(2018.4월), 운영하는 한편, 영어도서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독서생활 기반확대를 위해 달서영어도서관(2019.7월)도 운영중이다. 달서구청 직원 자녀들을 위해 직장어린이집(진천동 소재)도 별도운영하고 있다. 현재 죽전동에는 도시재생사업과 연계하여 구 징병검사장 부지 내에 지하1층, 지상 4층 규모의 아동전용시설인 ‘달서아이꿈센터’를 2022년 상반기 개관을 목표로 건립중이다. 선사문화체험관·청소년문화의집 복합시설도 대천동에 2022년 4월 준공예정으로 건립중이다. 지하 1층 지상 5층, 연면적 4759.04㎡규모이며, 선사문화체험관은 2만년의 선사유적을 체험할 수 있는 체험시설과 전시관, 놀이시설 등으로 구성되며, 청소년문화의집은 청소년수련활동을 실시할 수 있는 시설 및 설비를 갖추고 정보ㆍ문화ㆍ예술 중심의 수련시설로 활용할 예정이다. 또 놀이방, 어린이를 위한 메뉴, 어린이를 위한 프로그램 등이 갖춰진 아동친화시설이 갖춰진 곳을 인증하는 ‘아동친화 인증매장’사업이 진행중이며, 7월10개소를 선정, 아동친화매장 인증매장 현판을 제공할 예정이다. 이태훈 달서구청장은 “초저출산시대! 아동은 우리의 희망이자 보물이다. 아동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도시가 살기 좋은 도시라는 생각으로 시작하였다. 그 결실로 대구 최초 ‘유니세프 아동친화도시’로 인증을 받게 되어 매우 기쁘다.”며, “앞으로도 아동이 건강하고 행복한, 꿈을 키울 수 있는 달서구가 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며, 더 나아가 구민 모두가 행복한 살기 좋은 달서구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정책 가는 길의 반대편/이지운 국제부 전문기자

    [세종로의 아침] 정책 가는 길의 반대편/이지운 국제부 전문기자

    청와대와 정부를 놀라게 할 조사다. ‘주변국에 대해 느끼는 감정 온도’ 측정. 미국 57.3도, 일본 28.8도, 북한 28.6도, 중국은 맨 꼴찌로 26.4도였다. 다음은 ‘주변국 국민에 대한 감정 온도’. 미국사람 54.6도, 북한 사람 37.3도, 일본 사람 32.2도, 중국 사람 26.3도. 조사를 수행한 주간지 ‘시사인’은 “중국 싫고, 중국인은 더 싫다”로 정리했다. 코로나19 이후 대중국 인식이 악화되고 있다는 건 주지된 일이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는 지난해 10월 그래프로 보여 줬다. 주요 국가에서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역대 최고치였다. 조사 대상 14개국 가운데 스페인과 이탈리아를 제외하고 모두 70%가 넘었고 호주·일본·스웨덴은 80% 이상이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최근 “사랑받을 만하고 신뢰할 만하며 존경받을 수 있는 외교”를 언급했을 때, 이런 점들이 고려됐을 것이라고 서방 언론들은 평가했다. 한국인이 느끼는 온도는 그때나 이때나 비슷했는데, 눈길을 끄는 건 그 이유다. ‘중국 관련 역사적 사건 12개, 행위(이슈) 14개’ 등 26개 문항 가운데 부정적 인식을 갖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황사·미세먼지 문제였다. 89.4%로, 심지어 코로나19 발생 87.3%, 코로나19 대응 86.9%보다 높았다. 한한령 등 사드 보복은 78.9%였다. 우리가 중국에 대한 황사·미세먼지 책임론을 이 정도로 인식해 오고 있었다니, 놀라는 이들이 많다. 처음부터였을까, 아니면 변곡점이 있었을까. 동일선상 비교는 어렵지만 앞선 5월 한 신문사의 조사에서도 코로나 피해보다는 황사·미세먼지에 대한 반감이 더 컸다. 사실 정부는 ‘책임’을 중국과 적극적으로 나누려 했다. ‘책임은 한국에도 있다. 대기 질 개선을 위한 노력을 우리부터 해야 한다’고 강조했었다. 보령화력 1·2호기를 폐쇄하는 등 석탄발전 가동을 축소했고, 노후 경유차를 줄였다. 미세먼지 ‘계절관리제’ 같은 것도 도입해서 공장 가동률도 조정했다. 정부 문서는 ‘국외 배출 영향’ 등의 표현으로 화살이 중국을 향하지 않게 하느라 무던히 애썼다. 그러나 이런 노력은 국민 인식에도 반영되지 않았다. 그러니 ‘행정 행위의 효용성’ 측면에서도 이 일을 바라보게 된다. 마침 일본 관련 수치를 들여다보니 동전의 앞뒷면이다. ‘정부가 혐일(嫌日)을 조장한다’는 논란이 일만큼 험한 분위기를 조성했던 일을 떠올리면, 대일 감정온도는 ‘과하게’ 높다. 냉장실 또는 와인 저장고 수준의 온도여야 하지 않을까. 2019년 하반기 이후 조금씩 상승하더니 북한을 넘어섰다. 정부가, 온 나라가 그토록 열심을 낸 결과가 이 정도인가, 누군가는 허무를 느낄 것도 같다. 성과가 이토록 낮다면 독에 큰 구멍이 난 것이다. 정책이 늘 민심과 일치할 수만도 없고, 여론만 좇을 수도 없다. 그러나 이쯤 되면 한 번 헤아려 봐야 한다. 황사·미세먼지에 대한 국민들의 고통이 어떠한 정도였는지. 우리 주머니에서 털린 먼지만 탓할 뿐, 뿌연 먼지 싣고 오는 바람에는 아무 대응도 없고 대책도 내놓지 못하는 것에 대한 절망도 담겼을 것이다. 무엇보다 정책 역량을 쏟아부었는데, 왜 민심은 정책 가는 길의 반대편에 섰을까. 출산 정책, 부동산 정책에 얼마전 ‘민둥산 사태’까지. 정책 수립과 집행에 억지를 부린 때문은 아닌지, 애당초 현실적이지 않거나 현실에서 구현되기 어려운 것들은 아니었는지. 사람이 먼저라는데, 사람들의 마음도 ‘먼저’였는지. 군 복무기간 단축에 봉급 인상과 각종 처우 개선, 휴대폰 사용까지 온갖 배려에도, 왜 ‘20대 남자’의 마음은 반대편에 서 있는지. 살필 게 많다. 정책마다 가는 길의 반대편을 돌아볼 때다. 내년 초 대선 아닌가. jj@seoul.co.kr
  • 손잡은 2·4위… 민주 뉴욕시장 경선 끝까지 안갯속

    손잡은 2·4위… 민주 뉴욕시장 경선 끝까지 안갯속

    22일(현지시간) 열리는 미국 뉴욕시장 후보 민주당 경선을 앞두고 각축전이 이어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진보 성향이 강한 뉴욕에서는 민주당 경선 승자가 사실상 본선 승자로 여겨지는데, 선두권을 이룬 유색인종·여성 후보들의 막판 경쟁이 치열해 순위는 안갯속으로 빠져들었다. ●가르시아·양 “1·2위로 지지를” 동맹 뉴욕타임스(NYT)는 19일 “경선을 앞둔 마지막 주말에도 빌 더블라지오 시장의 뒤를 잇기 위한 경쟁 결과는 예측하기 어렵고, 신뢰할 만한 여론조사는 드물다”고 전했다. 최근 WNBC방송과 폴리티코의 여론조사에선 뉴욕경찰(NYPD)을 역임한 흑인 후보인 에릭 애덤스 브루클린 구청장(24%)이 지지율 선두에 오르고 뉴욕시 보건 책임자였던 캐스린 가르시아(17%)와 인권변호사인 마야 와일리(15%) 등 두 여성 후보가 추격하는 3파전 양상이 나타났다. 첫 아시아계 뉴욕시장 가능성으로 기대를 모았던 앤드루 양(13%) 후보는 4위로 다소 밀렸다. 애덤스 후보의 선전에 2위, 4위를 기록한 가르시아와 양 후보는 이날 뉴욕 퀸스와 맨해튼에서 합동 선거유세를 열었다. 두 후보는 서로의 사진과 이름이 나란히 담긴 팸플릿을 배포하며 “우리를 1·2위로 지지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들이 공동전선을 구축한 까닭은 이번 뉴욕시장 경선이 후보 한 명에게만 투표하는 게 아니라 선호하는 후보를 5위까지 줄 세울 수 있도록 개편됐기 때문이다. 1위뿐 아니라 2, 3위 등 나머지 표라도 받는 게 경선 승리에 중요한 변수가 됐다. ●후보 5위까지 선택… 경선 주요 변수 NYT는 “가르시아와 양은 애덤스의 상승세를 막으려는 중도파 의원들로, 이번에 바뀐 순위 선택 투표 이후 첫 주요 동맹”이라며 “둘이 연합하며 유권자들에게 애덤스를 순위권 안에 넣지 말라고 설득하면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애덤스가 즉각 “흑인, 유색인종이 뉴욕시장이 되는 것을 막으려 한다”며 견제하자, 양이 다시 “나는 평생 아시아인이었다”고 받아치는 등 치열한 기싸움이 이어지는 모양새다. ●1위 애덤스 “흑인 시장 막으려 한다” 견제 1~4위 중 누가 민주당 후보가 되더라도 ‘백인 남성 뉴욕시장’의 정형성에선 벗어난 결과가 되는 게 이번 뉴욕시장 경선의 특징이다. 코로나19 봉쇄 조치가 풀리고, 경제가 서서히 활기를 띠기 시작하는 상황에서 선거를 치르게 되면서 유권자들이 후보의 명망보다 현안 해결 능력을 중시한 결과로 보인다. NYT는 “공중보건 시스템과 악화된 경제 상황, 주택과 일자리, 범죄, 치안 등 겹겹이 산적한 각종 문제를 해결할 열쇠를 누가 쥐느냐에 따라 도시의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고 봤다. 애덤스의 높은 인기 역시 올봄 급증한 총기 난사 사건과 공공장소에서의 폭력 사태, 아시아계 미국인 등에 대한 인종차별 문제가 불거지며 경찰 출신에 대한 기대가 높아진 측면이 있다. 하지만 최근 몇 주간 부동산 재산과 납세 내역이 불투명하다는 지적과 함께 관련 조사가 이어지는 상황이라 애덤스에 대한 지지율이 떨어질 가능성도 크다고 NYT는 전했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이천·수원·용인·성남·화성·평택·안성…“스마트 반도체벨트 도시연합이 뜬다”

    이천·수원·용인·성남·화성·평택·안성…“스마트 반도체벨트 도시연합이 뜬다”

    ‘엄태준 표 스마트 반도체벨트 도시연합’이 뜬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본사와 공장을 비롯한 IT관련 산업단지가 있는 경기도 7개 시가 정책업무협약 (MOU)을 맺고 ‘스마트반도체벨트도시연합’을 출범시킨다. 엄태준 이천시장이 제안한 스마트 반도체벨트 도시연합은 수원·용인·성남·화성·평택·안성·이천시가 참여를 결정함에 따라 오는 24일 오후1시에 용인시청에서 7개 지자체 단체장이 함께 모여 협약서에 서명하게 된다. 이 도시연합이 출범하게 된 취지는 코로나19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최우선과제인 국민안전이 무사하게 극복되고 있지만 서민경제가 침체되고 있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기 위한 지혜를 모으겠다는 단체장들의 의지가 결집되어 시작되었다. 또 4차 산업혁명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과정에서 장밋빛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기술혁신으로 인한 일자리 감소 등 4차 산업혁명의 그늘이 깊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현장에서 부작용을 최소화하겠다는 고민 또한 담겨있다. 나아가 반도체 산업이 대한민국의 글로벌 경쟁력을 뒷받침한다는 점에서 관련 산업정책이 지역과 현장중심일 때, 반도체산업의 정책효과가 서민경제에 미칠 수 있다는 취지에서 정책연합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기 때문이다. 7개시 단체장들이 보여주기 식 단순 업무협약을 지양하자는 것을 실무협의의 제1지침으로 합의함에 따라 도시연합 실무진은 협약식을 앞두고 실무회의를 6차례 연합도시를 순회하며 개최했고, MOU 이후에는 지방균형뉴딜정책, 일자리정책, 미래도시 정책분야 등 3개 분야에 공동정책을 추진하고 필요에 따라 공동조례도 발의하기로 합의했다. 이러한 도시연합은 행정혁신 차원에서도 K-모델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스마트 반도체벨트 도시연합 전략적으로 도시 간 연대하는 스마트 정책연합의 첫 모델이 되기 때문이다. 이번에 스마트 반도체벨트 도시연합은 최소 2~3개 도시부터 전체 7개 도시까지 유연하게 시민을 위한 정책공동전선을 맺어나가면서 협업을 할 구상이라고 밝혔다. 향후 도시연합이 성공적인 안착이 이뤄지면 K-벨트에 속한 충청 일부도시들까지도 확대가 예상된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이승만·트루먼 동상 설치 논란 다시 불붙을 듯

    이승만·트루먼 동상 설치 논란 다시 불붙을 듯

    민간단체에 의해 제작된 뒤 수 년째 설치 장소를 찾지 못하고 있는 이승만 전 대통령과 트루먼 미국 전 대통령의 동상을 경북 칠곡에 세우는 방안이 추진되면서 논란이 다시 불붙을 조짐이다. 17일 경북도 등에 따르면 ‘이승만·트루먼 동상건립추진 모임’(이하 동추모) 측은 최근 이철우 도지사를 만나 이승만·트루먼 동상 설치 협조를 요청했다. 이에 이 도지사는 공감을 나타낸 것으로 알려졌다. 설치 장소로는 6·25 전쟁 당시 최대 격전지였던 다부동전투를 기리는 칠곡군 가산면 다부동전적기념관이 물망에 올랐다. 다부동전적기념관은 월 5만 명, 연 60만여 명이 찾는 지역의 대표적인 호국기념시설이다. 이에 따라 경북도는 칠곡군과 협의 등을 통해 후속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이런 가운데 그동안 이승만 전 대통령 동상 제막에 반대 입장을 보여온 4·19민주혁명회와 4·19혁명희생자유족회 등 4·19단체와 민족문제연구소 등 시민사회단체들의 움직임에 귀추가 주목된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은 “독재자 이승만의 동상 건립은 헌법정신 뿐만 아니라 4.19 정신에 위배되는 것으로 절대 반대한다”면서 “공공부지에 독재자의 동상을 함부로 세워서는 안된다” 고 강조했다. 동추모는 그동안 서울 등 유명 거리 중 한 곳에 두 동상을 설치하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이들 단체의 반대 여론 등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동추모는 2017년 이승만·트루먼 두 전직 대통령의 정신을 바르게 평가하고 후손에게 계승하기 위해 동상을 제작했다. 조갑제닷컴의 조갑제 대표가 동추모의 대표 직책을 맡고 있으며,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류석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등이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위원으로 참여 중인 조각가 김영원(전 홍익대 교수)씨가 높이 4m 20㎝, 중량 약 3t인 청동 조형물 2개를 제작했다. 김 전 교수는 광화문 세종대왕상을 조각한 인물로 유명하다. 경북도 관계자는 “6·25전쟁 ‘낙동강·다부동 지구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대한민국을 구한 대표적 호국의 고장인 칠곡에 두 전직 대통령의 동상이 건립되면 대한민국 건국과 호국, 애국정신을 되새기는 상징성이 배가될 것”이라며 “훌륭한 관광자원으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한편 트루먼 제33대 미국 대통령은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소집하고 참전을 결정한 인물이다. 안동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이스라엘 새 정권, 가자지구 첫 공습… “폭탄풍선 대응”

    이스라엘 새 정권, 가자지구 첫 공습… “폭탄풍선 대응”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내 가자시티와 칸유니스의 하마스 군 시설 등을 공습했다고 16일(현지시간) 로이터 등이 보도했다. 이스라엘에 새 정권이 들어선 지 나흘 만의 첫 공습으로 지난달 21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휴전한 지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재개된 공격이다. 이스라엘군은 전날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 쪽으로 폭발물을 단 풍선이 날아온 일에 대응해 공습했다고 밝혔다. BBC는 공습에 무인기가 동원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군은 성명에서 “가자지구로부터 테러행위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전투 재개를 비롯한 모든 시나리오에 대비했다”고 밝혔다. 요르단강 서안(웨스트 뱅크)에서는 한 팔레스타인 20대 여성이 이스라엘 군인들을 향해 차량으로 돌진한 뒤 사살되는 일도 벌어졌다. 여성은 차로 들이받고 칼을 휘두르려 했지만, 군이 총을 쏴 숨지게 했다. 이번 사건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긴장이 고조된 상황에서 발생했다. 전날 동예루살렘에서는 5000여명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국기를 흔들며 예루살렘 구시가지에서 ‘깃발 행진’을 벌였다. 깃발 행진은 1967년 3차 중동전쟁(6일 전쟁) 승리로 요르단 영토였던 동예루살렘을 장악한 것을 기념하는 행사로, ‘예루살렘의 날’인 지난달 10일에 열릴 예정이었다. 당시 이스라엘 당국은 근처 이슬람 성지인 알아크사 사원 등에서 벌어진 팔레스타인 주민 시위 등을 고려해 행사를 불허했다. 행사는 취소됐지만, 이슬람 라마단 기간 동예루살렘 알아크사 사원에서 시위대와 이스라엘 경찰 간 충돌이 격화되면서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11일 전쟁으로 이어졌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서 각각 13명, 260명이 숨졌다. 예정보다 한 달가량 늦게 열린 행사는 베냐민 네타냐후 전 총리가 승인했고, 새롭게 출범한 나프탈리 베네트 총리도 반대하지 않았다. 하마스는 깃발 행진이 열리는 이날을 ‘분노의 날’로 정하고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 깃발 시위에 저항할 것을 촉구했다. 이지운 전문기자 jj@seoul.co.kr
  • 우익 ‘깃발 행진’→ 팔측 ‘폭발물 풍선’→ 이스라엘 또 가자지구 공습

    우익 ‘깃발 행진’→ 팔측 ‘폭발물 풍선’→ 이스라엘 또 가자지구 공습

    이스라엘이 16일(이하 현지시간) 새벽 다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공습에 나섰다. 열하루 동안 무력 충돌이 이어지다 지난달 21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조건 없는 휴전에 합의한 지 한 달이 채 안돼 다시 양측의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이스라엘 군은 자국 전투기가 가자 시티와 칸 유니스에 있는 하마스의 군사시설을 공격했다고 밝혔다. 아직 어느 정도로 인명 및 재산 피해가 발생했는지 알려지지 않고 있다고 영국 BBC는 전했다. 이날 공습은 몇 시간 전 가자지구에서 폭발물을 장착한 풍선을 이스라엘을 향해 날린 것에 대응한 것이라고 이스라엘 군은 밝혔다. 풍선이 터지면서 이스라엘 남부에서 20여건의 화재가 발생했다. 이스라엘 군은 성명을 내고 “가자지구로부터 테러행위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전투 재개를 비롯한 모든 시나리오에 준비돼 있다”고 밝혔다. 베냐민 네타냐후 전 총리가 물러나고 나프탈리 베네트 총리가 이끄는 ‘무지개 연정’이 출범해 군과 정부의 대응에 허술한 점이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씻어내겠다는 의지가 묻어난다. 하마스 대변인은 트위터 성명을 통해 “우리의 모든 땅에서 점령자를 몰아낼 때까지 용감히 저항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스라엘이 잠자코 있는데 팔레스타인 쪽에서 폭발물 풍선을 날린 것은 아니었다. 전날 이스라엘 우익단체가 ‘깃발 행진’을 벌인 직후에 이에 대한 보복 행동에 나선 것이었다. 1968년 3차 중동전쟁 끝에 동예루살렘을 요르단으로부터 탈환한 것을 축하하며 이스라엘 국기를 들고 예루살렘 엣 시가지를 행진하는 이 행사는 지난달 15일 치러질 예정이었다가 취소됐는데 기어이 강행한 것이었다. 동예루살렘을 빼앗긴 팔레스타인이나 아랍권 입장에서는 치욕이자 도발로 받아들였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나토 집단방위 내세워 北·中·러 동시 압박… “바이든의 외교 승리”

    나토 집단방위 내세워 北·中·러 동시 압박… “바이든의 외교 승리”

    ‘동맹차원 안보 대응’ 나토조약 5조 강조나토 정상 “北, CVID·대미 협상 나서라” 美·EU 17년 무역분쟁 휴전… 대중 공조이 와중에 美 항모전단, 남중국해 진입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이어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에서도 반중 스크럼(여럿이 힘을 모아 상대방을 차단하는 대열)을 짜는 데 성공했다. 외교와 군사 채널을 모두 활용해 ‘중국 견제’ 합종연횡 구도를 완성했다. 중국에 대해 단호한 태도를 보이고 동맹국들과 공동전선을 마련하길 원한 바이든 대통령의 외교적 승리라는 평가다. 나토의 30개국 정상들은 14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 본부에서 정상회의를 마친 뒤 공동성명에서 “우리의 연대와 단결을 재확인하고 대서양 양안 관계의 새 장을 열고자 모였다”고 선언했다. 직전 회의인 2019년 12월 정상회의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나토 무용론’을 토로하며 탈퇴 가능성까지 거론해 ‘파투’ 분위기였던 것과 180도 달라진 모습이다. 앞서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일방주의’로 반발이 커진 서구 정상들의 마음을 돌리고자 취임 이후 첫 해외 순방지를 유럽으로 잡았다. G7과 나토에서 “미국이 돌아왔다”고 설득해 이들의 마음을 돌리고 세를 규합했다. 결국 베이징의 강한 반대에도 ‘중국 압박’이라는 공동 기조를 구축할 수 있었다. 온화한 이미지의 바이든 대통령이 중국 문제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보다 훨씬 능숙하게 대처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과 나토의 화해는 나토 조약 5조에 대한 약속을 재확인한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나토 조약 5조는 나토의 회원국 가운데 한 나라가 공격을 받으면 이를 나토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해 동맹 차원에서 대응하도록 규정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나토 조약 5조는 신성한 의무”라며 “모든 유럽 국가들은 미국이 늘 함께 있다는 걸 알기 원한다”고 말했다. 나토 역시 바이든의 노력에 화답하듯 북한에 대해서도 강한 목소리를 냈다. 나토 정상들은 북한을 향해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촉구하며 “미국과 의미 있는 협상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2019년 정상회의 때 북한을 따로 언급하지 않았던 것과 천양지차다. 바이든 대통령은 서방세계의 지지를 기반으로 러시아에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다만 일부 정상들은 중국 문제에 대해 신중한 접근을 강조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누구도 중국과 신냉전으로 가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우려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중국에 늘 대화의 문을 열어 둬야 한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로널드 레이건함이 이끄는 미 해군 항공모함 전단이 15일 남중국해로 진입했다. 남중국해는 영유권 문제로 중국과 동남아 국가들이 갈등을 빚는 곳이다. G7 및 나토 정상회의를 통해 서방세계가 중국 압박 기조를 공식화한 뒤 나온 움직임이어서 의도가 주목된다고 로이터통신은 밝혔다. 또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미·EU 정상회의 후 성명을 내고 “오늘 미국과 EU은 16년 이상을 끌어온 보잉과 에어버스 무역분쟁에 중대한 돌파구를 마련했다”며 5년간의 관세 유예 합의를 자찬한 뒤 “우리는 중국의 기업에 불공정한 이득을 주던 이 분야에서 중국의 비시장적 관행에 맞서고 대응하기 위해 협력하기로 합의했다”며 대중 공조를 강조했다. 베이징 류지영·워싱턴 이경주 특파원 superryu@seoul.co.kr
  • 나토, 反中 첫 명시… 中 “위협론 과장 말라” 반발

    지난 13일 폐막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이어 14일(현지시간) 열린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에서도 ‘대중 견제’ 기조가 공식화됐다. 미국과 유럽의 집단방위 기구인 나토는 중국을 ‘구조적 도전’으로 규정하고 “질서를 지키며 책임감 있게 행동하라”고 비판했다. 중국은 “자국 위협론을 과장하지 말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을 비롯한 나토 30개국 정상은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정상회의를 마치고 공동성명을 통해 “중국의 야심과 강력한 자기주장은 규칙에 기반한 국제 질서와 동맹 안보에 구조적인 도전을 불러온다”고 밝혔다. 이어 중국을 향해 “국제사회의 약속을 준수하고 우주·사이버·해양 분야 등에서 보다 책임 있게 행동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나토가 중국에 대해 명시적으로 강경 입장을 보인 것은 1949년 창설 이후 처음이다. 2019년 12월 정상회의 때는 중국을 ‘기회이자 도전’으로만 언급했다. 코로나19 확산을 계기로 중국의 강압적 외교 행태에 대한 서구세계의 반감이 인내의 한계를 넘어섰음을 보여 준다. 나토는 중국의 도전에 대응하고자 내년까지 새 전략 개념인 ‘나토 2030’을 추진하기로 했다. 나토가 ‘중국 포위’ 태세를 본격화하자 유럽연합(EU) 주재 중국 사절단 대변인은 15일 기자 문답 형식의 입장문에서 “올해 중국의 국방 예산은 2090억 달러(약 234조원)지만 나토 30개국 군비 총액은 1조 1700억 달러에 달한다. 이는 중국의 5.6배”라고 반박했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정례 브리핑에서 “소집단을 만들어 진영 간 줄서기를 강요하는 것은 역사의 조류에 위배된다.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맞받았다. 자오 대변인은 1999년 나토군의 유고슬라비아 주재 중국대사관 폭격 사건을 거론하며 “중국 인민에게 빚을 진 사실을 잊지 말라”고 했다. 베이징 류지영 특파원 superryu@seoul.co.kr
  • [사설] ‘反中’ 부각된 미국 주도 G7과 한국의 과제

    영국 콘월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가 현지시간 13일 폐막했다. 지난해 코로나19로 미국 개최를 건너뛴 G7 정상회의는 중국 문제, 코로나 대응을 비롯해 기후변화, 북한·이란 핵문제 등 다양한 국제사회 현안을 논의하고 공동성명으로 정리했다. 성명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서방 시각에서 본 중국 문제를 총망라해 ‘대중 전선’에 각을 세운 점이다. 또한 2022년으로 설정한 코로나 종식을 위해 백신 공급에 노력하고,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북한 비핵화(CVID)를 촉구한 점이 손꼽힌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 주도의 색채가 두드러진 G7 회의였다. 미국은 일부 국가의 중국 관련 이해상충이 있었음에도 신장위구르자치구의 인권 존중, 홍콩의 자치권 인정, 대만해협·남동중국해의 평화와 안정, 코로나 바이러스의 기원 조사 등 중국에 민감한 이슈에 관한 의견을 성명에 담았다. G7 정상회의 공동성명에 중국 문제가 담긴 것은 처음이다. 중국이 ‘스몰 서클’이라며 G7의 대중 공동전선을 평가절하했지만, 미국 주도의 선진국 연합을 과시한 것은 바이든 행정부로선 큰 성과이며 중국에는 타격이다. 중국의 경제영토 확대 구상 ‘일대일로’에 맞서는 중·저소득 국가들에 대한 40조 달러 규모의 인프라 투자 또한 중국으로선 압박일 것이다. 한국은 호주, 인도 등과 게스트로 초대받아 국제사회 현안에 참여함으로써 대중 관계에 부담을 지게 됐다. 한국이 서명한 ‘열린사회 성명’에는 국제사회가 민주주의 가치를 위협받고 있으며 권위주의 정부 등에 대응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중국을 겨냥한 듯 보이지만 청와대는 특정 국가를 겨냥한 게 아니라고 부인했다. 하지만 G7의 G10이나 G11으로의 확대 개편이 거론되는 마당에 대중 전선 합류는 불가피성이 있다. 반중 성명에 신중했던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를 참조해 정교한 외교전략을 짤 필요가 있다. 한국이 G7에 초대받은 것은 국가 위상이 높아진 데 따른 결과다. G11 확대론이 주춤해졌지만 한국의 참여는 시간문제다. G7은 선진국 카르텔에서 벗어나 국력을 감안한 재조정이 있어야 한다. 일본이 한국의 G11 참여에 반대하며 ‘아시아 유일의 G7 국가로서 영향력 유지’라는 논리를 내세웠다면 어불성설이다. 또한 일본은 한국이 제안했던 영국에서의 약식 한일 정상회담 약속을 취소했다는데 협소한 일본 측 판단은 정말이지 유감이다. 마지막으로 G7 정상들이 촉구한 대북 외교도 재가동돼야 한다. 한미는 8월 연합훈련을 취소하거나 대폭 축소해 북미 대화의 문을 열 지혜를 짜내길 기대한다.
  • 왜곡된 교과서·영화… 봉오동전투서 사라진 영웅 최진동·최운산

    왜곡된 교과서·영화… 봉오동전투서 사라진 영웅 최진동·최운산

    “아니, 어찌 이러오? 봉오동 독립전쟁도 청산리전투도 우리 아버지 최운산이 창설한 부대가 치른 전쟁이고, 총사령관은 큰아버지 최진동이지 않소? 어찌 한국에서는 봉오동 전쟁 총사령관은 홍범도라고 하고 청산리 전투 사령관은 김좌진이라고 하오?” 중국에 살던 최운산의 첫째 딸 청옥은 1990년대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 TV를 보고 이렇게 흥분했다고 한다. 역사가 왜곡되거나 폄하되는 일은 드물지 않게 일어난다. 독립운동사도 사료 불충분에 정치적인 이유가 더해져 그런 일이 적지 않게 발생했다. 그중에서도 봉오동 전투는 진실과 괴리된 측면이 많다. 홍범도만 영웅이 된 데는 정치적 배경도 있고 잘못된 교과서의 탓도 크다. 극적 효과를 추구한 영화 ‘봉오동 전투’는 왜곡의 정점을 찍었다.●독립운동사 사료 불충분·정치적 이유로 왜곡 청옥의 말처럼 봉오동 전투는 사령관 최진동과 동생인 참모장 최운산이 지휘한 대한북로독군부가 이끈 전투였다. 김좌진과 홍범도는 각각 제1연대장, 제2연대장이었다. 교과서는 홍범도가 사령관으로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고 가르쳤다. 국민의 뇌리에 두 사람만 화석처럼 굳어져 남아 있는 이유다. 봉오동·청산리 전투에서 홍범도와 김좌진의 활약은 분명히 있었지만, 그들만을 영웅화하면서 최진동·최운산은 사라져 버렸다. 굳어진 인식은 바뀌기 어렵지만 그래도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후손이 있는 경우는 다르다. 최운산의 맏아들 최봉우는 광복 후 평양방송국 아나운서로 일하다 전쟁을 피해 부산으로 내려왔다. 그의 딸 최성주씨가 큰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파묻힌 역사를 추적하고 있다. 최씨는 지난해 ‘최운산, 봉오동의 기억’이라는 책을 펴내 진실을 세상에 알렸다. 최씨를 만나 독립운동에 바친 비운의 가족사를 들었다. 최진동 형제의 아버지 최우삼은 함북 온성이 고향으로 1860년에 태어났고 1880년 무렵 만주 옌볜 도태(道台)로 봉직했다. 도태는 조선 말기에 옌볜 지역을 다스리던 관리였다. 일제가 조선을 강점하자 최우삼은 일가를 이끌고 봉오동으로 이주, 한인 마을을 건설했다.최진동은 중국인 부호 밑에서 일해 큰 재산을 물려받았다고 한다. 만주 군벌 장쩌림 부대에 있었던 최운산은 장쩌림의 목숨을 구해 주는 등의 각별한 인연으로 봉오동 일대에 부산 면적의 6배나 되는 땅을 갖고 있었다. 또 국수 공장, 콩기름 공장, 양조장, 성냥 공장, 비누 공장을 운영했다. 대규모 목장도 소유해 러시아 군대에 곡물과 소를 수출하는 등 간도 제일의 거부(巨富)였다. ●홍범도 영웅 묘사한 영화 봉오동전투 ‘정점’ 형제는 1912년 비적들로부터 동포들을 지킬 목적으로 독립군의 모태가 되는 100여명 규모의 자경단을 만들었다. 또 봉오동 사관학교와 사관연성소를 창설해 독립군 지휘관들을 양성했다. 1915년에는 연병장과 막사를 만들고 두께가 1m가 넘는 토성을 건설해 독립군 기지를 구축했다. 3·1만세운동이 일어난 1919년이 되자 최진동 형제는 670명 규모의 대한군무도독부를 창설해 본격적으로 독립전쟁을 시작했다. 임시정부가 출범하고 통합 논의가 일어 1920년 대한군무도독부를 비롯한 북간도 일대의 독립군 부대는 조직을 합쳐 대한북로독군부로 거듭났다. 최진동이 부장(府長·사령관), 둘째 최운산이 참모장, 셋째 최치흥이 참모가 됐다. 막대한 재력을 가진 최운산은 각 부대에 주둔지를 제공하고 식량과 피복을 지급했다. 또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연해주까지 진출했던 체코군의 무기를 사들였다. 독립군들은 신형 무기로 체계화된 군사훈련을 받았다. 독립군들은 1920년 초부터 봉오동 전투가 일어나기 직전인 5월까지 두만강을 건너 일제의 관서를 수십 차례 공격했다. 일제는 대대적인 토벌 작전에 나섰다. 최진동 형제는 보름 전 전투 준비를 완료하고 적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한 달 전부터 주민들도 이주시켰다.대한북로독군부는 참호를 파고 의무부대도 후방에 배치하는 등 만반의 대비를 했다. 1920년 6월 7일 새벽부터 일본군은 봉오동을 습격했지만 그들의 패배는 예고된 것과 마찬가지였다. 157명의 사망자와 300여명의 부상자를 내고 패주했다.총사령관 최진동 등 지휘부는 최고봉인 봉초봉에 자리잡고 전투를 지휘했다. 전체 작전은 사령관 최진동과 참모들이 세웠다. 뒤늦게 합류한 홍범도는 작전을 준비할 위치도 아니었고 시간도 없었다. 홍범도도 격렬히 싸웠지만 어이없는 결정을 내렸다. 갑자기 그가 이끌던 2중대를 퇴각시킨 것이다. 이 바람에 자리를 사수하던 신민단 대원들이 수적 열세로 전사하고 말았다. 일종의 전술일 수 있지만 최진동은 항명이라며 홍범도를 엄벌하려 했고 동생 운산이 말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당시 독립군은 영화에서처럼 찢어진 군복을 입고 굶주린 게릴라가 아니라 기관총과 대포로 무장했으며 사격술이 뛰어난 정예군이었다. 전투가 끝난 후 일본군은 “적(독립군)은 전부 러시아식 소총을 갖고 탄약도 상당히 휴대하였으며 사격도 상당히 훈련되어 있다. 거리 측량이 불확실한 700~800m 거리에서도 사격을 하며…”라고 ‘봉오동부근전투상보’에 썼다. 거기에는 최운산의 부인인 김성녀와 봉오동 주민들의 헌신이 있었다. 김성녀는 수천 독립군의 식사를 제공하고 군복을 제조한 병참 책임자였다. 재봉틀 8대로 군복을 만들었다고 한다. 군복 모자에는 태극 견장이 달려 있었고 매화형 금장이 박힌 견장을 단 예복이 있을 정도였다. 최운산은 1930년대에도 무장 세력을 유지하며 우수리강 전투, 대황구 전투, 안산리 전투, 대전자령 전투 등을 이끌며 독립 투쟁을 계속했다. 1945년까지 대황구삼림지역에서 무장독립군을 양성했다. 1937년에는 보천보 전투의 배후로 지목돼 투옥됐다. 광복 직전까지 6번이나 감옥에 갇히고 고문을 받았다. 매번 극심한 고문을 당해 수레에 실려 나오곤 했다고 한다. 최운산은 광복을 한 달 열흘 앞둔 1945년 7월 5일 평양으로 갔던 길에 고문 후유증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떴다. 최진동은 일제와 싸우는 동안 부인과 맏아들, 맏며느리를 잃는 아픔을 겪다가 1941년 일제의 압박과 감시 속에서 병마로 사망했다. 최진동은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3등급)을 받았다. 공훈에 비해 등급이 낮다. 최운산은 1977년에야 서훈(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5등급)으로 서훈이 올려졌지만 역시 너무 낮다. 홍범도는 2등급인 대통령장, 김좌진은 1등급인 대한민국장을 받았다. 왜 이렇게 최진동 형제는 낮은 서훈을, 그것도 늦게 받고 공적이 파묻혔을까. 최운산의 손녀 최씨는 이렇게 말했다. “1961년 보훈 업무 담당 직원이 최운산에게 서훈을 주는 대가로 뒷돈을 요구하자 격분한 아버지(최봉우)가 주먹을 날렸답니다. 그 바람에 서훈도 취소됐다고 합니다.” ●부인 김성녀, 군복 제조 병참 책임자 활동 또 최운산의 부인 김성녀는 정부에 낸 진정서에서 이렇게 썼다. “독립운동 당시 하급 지휘관 및 졸병으로 생존한 독립인사가 자신의 공적을 과대 선전하기 위하여 허무맹랑한 사실과 왜곡되고 과장된 조작 사실로 인하여 오점을 남겼으며 일생을 독립운동과 조국 광복을 위해 생명과 재산을 총투입하여 투쟁하였으나 공적이 뒤바뀌어져 있기에 독립운동을 하시고 생존해 계시는 분들의 양심에 호소합니다.” 이때가 1969년이다. 하급 지휘관이란 철기 이범석을 지칭한다. 이승만과의 친분으로 광복 후 초대 국무총리와 국방부 장관을 지낸 이범석은 ‘우둥불’이라는 제목의 책에서 자신을 청산리 전투의 영웅으로 과장하고 최진동 형제의 공적을 깔아뭉갰다. 이범석은 당시 20세의 군사학교 교관이었다. 최씨에 따르면 최진동의 자녀가 역사를 소설처럼 써서 왜곡했다며 출판을 말리고 이범석과 다투기도 했다고 한다. 최씨는 “얼굴을 보면 최운산의 서훈을 거절하지 못할 것 같아 엄마(최운산의 며느리)가 당고모(최진동의 딸)와 세 번 찾아갔는데 만나 주지 않았다”고도 했다. 최진동 형제의 공적이 매장된 배후에는 이범석이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최진동의 후손들은 중국과 미국에 살고 있다. 일부는 한국으로 들어와 어렵게 살고 있다. 최운산의 자녀들도 만주와 북한으로 흩어졌고 최운산의 부인과 아들 최봉우만 남한으로 내려왔다. 최봉우는 1984년 KBS 이산가족찾기 방송을 통해 만주에 있던 누나, 동생들과 극적으로 상봉했다. 최운산의 딸 계순과 아들 호석은 한중 수교 후 한국으로 들어왔다. 거부였던 최진동 형제가 모든 재산을 독립운동에 쏟아붓고 빈털터리가 되었는데도 중국에 남았던 후손들은 지주의 자식이라는 굴레를 쓰고 핍박을 받으며 힘든 삶을 살았다. 대부분의 독립운동가 후손들처럼.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손가락만 한 새장용 꽃병도 백자로… 중세에도 지극한 해외명품 사랑

    손가락만 한 새장용 꽃병도 백자로… 중세에도 지극한 해외명품 사랑

    1975년 전남 신안 앞바다에서 옛 선박이 발견되면서 한국 학계에는 수중고고학과 문화재보존과학이 태동하기 시작했다. 신안선은 학문 영역을 확장했을 뿐만 아니라 중세 동아시아 문화상을 보여 준다는 의미도 크다. 40여년이나 됐지만, 신안선 유물은 여전히 연구할 게 많다. 그야말로 ‘현재진행형’인 셈이다. ●중국에서 일본으로… 2만6000여점 공예품 실린 ‘보물 같은’ 무역선 신안선은 1323년 중국 경원(현재의 닝보)을 출발해 일본 하카타로 가던 중 한국의 신안 증도 해역에서 침몰한 원나라 무역선이다. 배에는 일본 사찰인 후쿠오카 조자쿠암, 교토의 도호쿠지, 후쿠오카의 신사 하코자키궁으로 보낼 물품들이 실려 있었다. 수중 발굴한 유물은 압수한 도굴품 2000여점 등을 포함해 모두 2만 6000여점이나 됐다. 중국·일본·고려의 도자기, 다양한 금속 공예품, 자단목, 동전, 주석과 백동으로 만든 금속 기물, 각종 향신료와 약재 등이다. 특히 배에서 발견한 다양한 공예품은 당시 중국과 일본에서 유행했던 문화를 보여 준다. 이들과 활발히 교류했던 고려의 문화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신안선의 공예품은 중세 동아시아 생활문화를 이해하는 ‘코드’인 셈이다. 당시 중세 동아시아에서는 차를 마시고, 향을 피우고 꽃을 감상하는 문화가 매우 발달했다. 차, 향, 꽃과 관련한 의례나 장식용 도자기부터 접시, 발 등 일상 생활용기와 같은 다양한 종류의 공예품이 제작됐다. 공예품은 특히 도자기로 만들어지면서 점차 퍼졌다. 금속은 재질의 특성상 형태 제작에 한계가 있었지만, 도자기는 비교적 자유자재로 만들 수 있어서다. 중국은 세계 최초로 자기 제작에 성공한 나라다. 도자기 제작에서 기술성과 예술성이 당시 최고로 꼽혔다. 신안선에서는 중국 도자기가 2만여점 이상 발견됐다. 대부분 원나라 때 만들어진 것이었고, 일부는 송대의 도자기였다. 송대의 도자기는 골동품으로 사용되다가 배에 선적한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도자기는 당시 주요 해외 수출상품이었던 청자와 백자, 흑유자(검은색을 띠는 자기), 도기 등이다. 주로 중국 남쪽과 북쪽의 여러 가마에서 만들었다.●명나라서 쓰던 백자 새 모이통·꽃병, 일본 항구도시에서도 발견 신안선의 중국 도자기에는 새를 기르고 즐겼던 문화를 보여 주는 물건이 있다. 새 먹이를 주려고 사용한 새 모이통과 새장 안에 넣는 꽃병이다. 새 모이통은 당시 새를 기르는 문화를 잘 보여 준다. 송나라 황실에서는 감상과 유희의 목적으로 새를 즐겨 길렀다. 북송의 휘종은 궁중에서 각종 진귀한 새를 길렀다. 남송의 고종은 100여 마리 앵무새를 길렀다고 전해진다. 민간에서는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서 새를 싸움에 붙여 돈을 걸게 하거나, 새를 이용한 공연 등 돈벌이의 목적으로도 이용됐다. 상류층이 새를 기르다가 점차 민간의 풍속으로 자리했다. 신안선에서 발견된 새 모이통 도자기는 백자로 만들었다. 둥근 항아리 형태로 바닥은 편평하고, 겉에는 구멍이 뚫린 작은 고리가 달렸다. 입구가 조금 넓어 새가 그릇 안으로 부리를 넣어 모이나 물을 먹기에 무리가 없었을 것이다. 이 도자기는 장시성의 징더전요나 푸젠성의 가마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나무 마디를 표현한 통 모양 청백자는 징더전요에서 만들었다. 세로로 길쭉하지만 크기가 작다. 속은 비어 있어 안에 무언가를 담거나 꽂았던 용도로 보인다. 하지만 높이가 약 6.3㎝ 정도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작다. 새장 안에 넣어 장식하는 꽃병으로 알려졌다. 이런 부류의 꽃병은 명나라 황실에서 사용하기 위해 만든 가마에서도 청화백자 형태로 발견됐다. 원나라 이후에도 즐겼던 문화임을 알 수 있다.일본에서는 새 모이통 도자기가 유적 발굴조사 과정에서 발견됐다. 중세 무역을 담당한 항구 도시인 후쿠오카현 하카타 유적, 15~16세기 해상을 통해 활발히 중계무역을 했던 류큐왕국의 슈리성 궁전터 등이다. 일본 중세시대 그림에는 새장을 들고 가는 남성의 모습을 그린 것도 있다.●신안선에서 나온 청자 주전자… 유목민 생활 보여준 다목호 유행 도자기로 된 다목호는 원대에 새롭게 생겨나고 유행했다. 다목호는 티베트와 몽골 사람들이 우유나 양젖을 담는 데 사용하던 유목민들의 생활용기다. 원나라 자체가 몽골 민족이 세운 나라인 만큼 티베트와 몽골 유목민의 특성이 강하게 반영됐다. 원래 나무나 다른 재질로 만들었는데, 점차 도자기, 금속기로도 제작했다. 청나라 황실에서는 티베트 불교를 중시하고 불교와 관련된 의례 등에서 고승에게 이 다목호를 하사할 만큼 황실의 사랑을 받았다. 신안선에서 나온 청자 다목호는 주전자다. 통 모양으로 되어 있고 손잡이와 물을 따르는 주구가 달렸다. 겉면 손잡이 위쪽에는 꽃 모양의 관을 쓴 것과 같이 위로 뻗은 형태가 연결됐다. 신안선에서 나온 청자 다목호에는 없지만, 원대 이후에 만들어진 기물을 살펴보면 뚜껑을 덮게 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몽골에서는 다목호를 지금까지 일상에서도 사용한다. 몽골 시장이나 대형 마트 등에서도 볼 수 있고, 작은 장식용 기념품으로도 만나볼 수 있다.●중국산 흑유 찻잔… 일본의 수입품 ‘가라모노’의 대표 ‘가라모노’라는 말은 9세기 일본 사료에 처음 등장할 정도로 오래된 단어다. 일본어로 수입한 외국산 물품을 뜻하는데, 당시엔 대개 중국산을 의미했다. 신안선을 운영하던 일본 중세시대에는 중국산 물품이 특히 유행했다. 신안선에는 청자, 백자와 함께 검은색을 띠는 흑유자기도 발견됐다. 그중에서도 흑유 토기는 모두 548점으로, 이 가운데 66점이 젠요(푸젠성에서 흑유자기를 생산한 가마)의 찻잔이다. 이 젠요의 흑유 찻잔은 송나라 황실에서 사용될 만큼 귀하고 명성이 높았던 차 도구였다. 송나라 때 차를 우리는 방법인 점다법(분말 형태로 된 가루차를 찻잔에 넣고 끓인 물을 넣어 찻솔로 휘저어 거품을 내는 방식)으로 사용했는데, 송대의 차 문화를 대표하는 물건이다. 흑유 찻잔은 차를 즐기는 모습을 그린 송대 회화에도 등장한다. 이 흑유 찻잔은 사실, 신안선이 출항할 당시 중국 원대에는 더는 생산하지 않았던 도자기다. 송대에 다시 제작돼 골동품으로 유통됐다. 당시 일본에서는 선종이 유행했는데, 선종 사찰에서는 여전히 점다법으로 다례를 행했다. 이후에도 이러한 차 음용법이 이어졌다. 가마쿠라 막부 시기 사찰에서 시작한 차 문화는 당시의 권력층인 무사계층, 권문세가로 확산하면서 그들 사회에 깊숙이 스며들었다. 이때 사용한 찻잔은 자연스럽게 유명해지고, 비싼 가격에 팔렸다. 원나라에서는 더는 사용하지 않는 찻잔이 일본에서는 오히려 크게 유행하면서 골동품으로 귀한 대접을 받게 된 것이다. 15세기 후반부터 16세기 초까지 무로마치 장군가의 연회 공간의 방에 장식된 물건들을 기록한 ‘군다이칸소초키’에는 젠요의 흑유 찻잔이 있다. “피륙(베나 무명, 비단 등의 천을 이르는 말) 삼천필의 가치가 있다”고 쓰여 있을 정도다. 14~16세기인 무로마치시대에 어느 부잣집을 묘사한 그림에도 용천요 청자, 흑유 찻잔, 칠기가 장식됐다. 당시 흑유 찻잔이 부와 권력을 상징했음을 보여 준다. 15세기 말, 나라와 교토를 중심으로 물가를 비교했을 때, 차를 마실 때 찻물을 끓이는 솥이 당시 화폐 2000문(文)이라면, 이 흑유 찻잔은 8000문이나 됐다. 고가의 흑유 찻잔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한정돼 있었다. 결국 일본에서 도기를 생산했던 주요 가마인 세토와 같은 가마들에서 이를 모방한 흑유잔을 만들어 내기까지 이르렀다. 오늘날 해외 명품이 인기가 있는 것처럼, 고급품을 갖고자 하는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심리를 보여 준다. 이명옥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
  • ‘강동 서당’ 찾은 개, 입질 사라진다

    ‘강동 서당’ 찾은 개, 입질 사라진다

    구, 사람·동물이 함께 행복한 정책 추진리본센터, 사회화·전문가 교육에 앞장 소음·배변 등 반려견 문제 해결해 인기 “바둑아, 공부하러 가자.” 반려동물가구 천만 시대, 서울 강동구가 사람과 동물이 함께 행복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 적극적인 반려동물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찾아가는 공동주택 반려견교육, 반려견 행동전문가 양성 등 다양한 반려동물 분야 교육 콘텐츠를 무료 운영하며 올바른 반려동물 문화 조성에 앞장서고 있다. 2017년 11월 전국 최초로 문을 연 도심형 유기동물 분양센터인 ‘리본센터’는 기존 동물 보호소에 대한 선입견을 걷어내면서 유기·유실 동물 문제 해결사로 떠올랐다. 13일 현재 480여 마리의 유기 및 유실견을 주인에게 인도하고 공공분양을 통해 소중한 생명을 살렸으며, 반려견 사회화 교육, 초등학생 대상 동물학교 운영 및 반려동물 분야 청년 직업교육 등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특히 2017년부터 추진하는 반려견 사회화 프로그램인 ‘강동서당’은 구를 대표하는 인기교육 프로그램으로 현재까지 700여명이 참여했다. 교육 신청자는 참여 순서를 기다려야 할 정도로 주민들의 관심이 뜨겁다. 올해는 반려동물 연관 산업 성장 추세에 맞춰 미래지향적 직업교육 기회제공 및 일자리 창출을 위해 ‘서울시 일자리창출 공모사업’에 응모해 ‘반려견 행동전문가 양성과정’을 공공서비스와 연계해 운영한다. 아파트 등 공동주택을 직접 찾아가 반려견 갈등문제를 해결하며 반려견과 반려인을 위한 사회화 교육 공공서비스도 제공한다. 아파트단지 내 발생하는 반려견 소음, 입질, 배변처리 등 문제행동에 대한 고민을 찾아가 직접 해결해주는 ‘찾아가는 공동주택 반려견교육’은 단지별로 신청 가능하며 공동주택 유휴공간에서 교육이 이뤄진다. 참여하는 주민의 만족도가 높아 교육 횟수가 늘어나길 희망하기도 한다. 상·하반기 연2회 실시하는 ‘반려견행동전문가 교육과정’은 18~39세 청년이면 누구나 무료로 참여할 수 있고, 서류전형과 면접을 통해 교육생을 선발하며, 하반기 교육은 다음달 모집해 12월까지 진행한다. 자세한 교육 프로그램과 내용은 강동구유기동물분양(리본)센터 홈페이지(reborncenter.org)에서 확인하거나, 사회적경제과 반려동물팀(02-3425-6010)으로 문의하면 된다. 이정훈 강동구청장은 “앞으로도 사람과 동물이 어울려 살아가는 생명 존중 도시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교육 등을 계속 진행해 나갈 계획이다. 관심 있는 청년을 비롯한 반려주민의 참여를 바란다“고 말했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동전보다 작네…빛나는 ‘형광 전갈’ 생후 11주 새끼들의 자태

    동전보다 작네…빛나는 ‘형광 전갈’ 생후 11주 새끼들의 자태

    호주 시드니야생동물원이 생후 11주 된 새끼 전갈들을 선보였다. 11일 호주ABC뉴스는 시드니야생동물원에서 태어난 새끼 전갈 12마리가 대중에 공개됐다고 보도했다. 동물원 사육사 애슐리 웜비는 “길이 8㎜로, 동전보다 작은 새끼 전갈들 모두 건강하다. 어둠 속에서 빛을 내는 것도 정상적”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어둠 속에서 자외선을 받은 새끼 전갈들은 환한 초록빛을 뿜어내며 시선을 사로잡았다. 사육사는 “전갈의 투명한 껍데기층(히아린층)에 녹색 형광 단백질이 포함돼 있어, 자외선에 노출되면 청록색을 띤다”고 설명했다.이런 형광 현상이 관찰되는 이유에 대한 과학자 의견은 분분하다. 야행성인 전갈이 먹이를 유인하기 쉽도록 진화한 결과라는 의견과 동족을 식별하고 짝을 찾기 위함이라는 가설이 존재한다. 형광 단백질이 일종의 자외선 차단제로 작용해 전갈을 보호한다는 주장도 있다. 현재 지구상에 서식하는 전갈은 약 1100종에 이른다. 거미강 중에서는 기원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생대 실루리아기(약 4억4370만년 전~4억1600만년 전) 때의 화석도 존재한다. 대부분 독을 지니고 있으나, 사람에게 해를 끼칠 만한 독을 지닌 전갈은 20여 종에 불과하다. 사육사 애슐리 웜비는 전갈이 독을 품고 있긴 하지만 해충을 잡고 곤충 개체 수를 유지하는데 일조하는 생태계의 중요 동물이라고 설명했다.교미 후 수컷을 잡아먹은 암컷은 5~9개월, 길게는 사람처럼 10개월의 임신 기간을 가진다. 수정란이 모체 안에서 부화하여 나오는 난태생(ovoviviparous)이며, 태어난 새끼들은 곧장 어미 등에 올라가 살다 2주 후쯤 유체가 되어 내려온다. 성체가 되면 뿔뿔이 흩어지는데 만약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면 형제에게도 잡아 먹힐 수 있다. 한편 전갈은 태국과 미얀마, 중국 등 아시아권에서 예부터 음식재료나 약재로 사용됐다. 인도에는 전갈에게 쏘였을 때 그 전갈을 잡아먹으면 낫는다는 미신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양육비라며 8만개 동전 갖다부은 찌질한 아빠, 좋은 곳에 기부한 모녀

    양육비라며 8만개 동전 갖다부은 찌질한 아빠, 좋은 곳에 기부한 모녀

    지난달 21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버지니아주에 사는 에이브리 샌퍼드(18)는 집 앞에 트럭이 멈춰설 때 어떤 모습을 보게 될지 짐작도 하지 못했다. 몇 분 뒤 그 트럭에서는 8만개 이상의 동전을 한꺼번에 길거리에 쏟아부었고 안마당에까지 쏟아져 들어왔다. 차 밖으로 나온 사람은 몇년 동안 말도 붙여본 적 없는 아빠였다. 그는 버럭 “네게 주는 마지막 양육비”라고 외쳤다. 친딸에게 양육비를 주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동전으로 일일이 바꿔 전 부인의 집 마당에 쏟아붓고 버럭 소리를 지른 것이다. 모녀는 잠시 황당해 어쩔줄 모르다 정신을 수습하고 동전들을 일일이 깨끗이 씻은 다음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여성과 어린이들 돕는 단체에 기부하기로 결정했다. 리치먼드의 돌봄센터 ‘세이프 하버’가 가정폭력이나 성폭력, 인신매매, 기타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이들을 돕고 있는데 샌퍼드 모녀의 동전들이 기부된다고 일간 워싱턴 포스트는 전했다. 이 센터의 캐시 이스터 사무국장은 10일 “모녀가 부정적인 경험을, 특히 딸이 그 과정을 모두 목격했는데 이렇게 긍정적인 일로 바꿨다”면서 “그들은 일을 올바르게 만드는 방법을 알고 절망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황당한 일이 벌어진 날 헨리코 카운티 경찰은 샌퍼드의 어머니가 신고해 현장에 달려왔다. 한 경관은 집 밖에 “동전이 수북히 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면서 물론 가정폭력과 연관된 일이긴 했지만 누구도 기소하거나 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샌퍼드는 친아빠가 벌인 이런 무람한 행동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입거나 창피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다른 누군가를 도울 수 있어 행복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녀는 현지 방송 WTVR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국면을 바꿔 돈이 필요한 엄마들과 아이들에게 기부할 수 있어 결과적으로 긍정적인 일로 바꾸게 됐다. 여러분도 이 얘기로부터 교훈을 얻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남녀 후배 성희롱·협박한 해군 부사관 감봉 징계는 정당”

    “남녀 후배 성희롱·협박한 해군 부사관 감봉 징계는 정당”

    후임 부사관을 성희롱하고 욕설, 협박한 해군 부사관의 감봉 3개월 징계는 정당하다는 판결이 나왔다. 제주지방법원 제1형사부(재판장 김현룡 수석부장판사)는 제주해군기지 전대장을 상대로 징계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한 부사관 박모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10일 밝혔다. 2002년 해군 부사관으로 임관한 박씨는 2016년 3월부터 2020년 3월까지 제7기동전단 부사관으로 근무했다. 박씨는 2019년 11월11일 같이 근무하는 후배 부사관 A중사와 B 여중사를 상대로 성희롱 메시지와 욕설, 모욕, 협박 등의 행위를 해 품위유지의무 위반으로 정직 1개월의 중징계를 받았지만 항고해 지난해 2월21일 감봉 3개월로 감경됐다. 박씨는 이에 불복해 징계처분 취소 소송을 제주지방법원에 제기했다. 박씨는 재판 과정에서 “B중사와 평소에도 성적인 농담을 주고받았고, C중사에게는 업무태도를 지적하거나 평판이 좋지 않은 전 남자친구와 교제한 사실에 안타까움을 표했던 것”이라며 “이는 징계 사유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박씨는 “여러 표창을 받는 등 모범적으로 근무했고 탁월한 업무능력으로 해외파견 3회를 포함해 18년 동안 성실히 근무했던 점을 고려하면 설령 해당 행위들이 징계 사유가 된다고 하더라도 해군이 재량권을 남용한 것”이라는 주장도 폈다. 하지만 재판부는 “원고가 A 중사에게 보낸 메시지는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줄 수 있는 내용이며 B 중사에 대한 멸시와 적대감, 분노는 업무상 적절히 훈계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감봉 3개월 징계는 재량권 일탈이나 남용의 위법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 원고 청구를 기각했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액면가 94만 배...무려 211억원에 낙찰된 美 20달러 금화

    액면가 94만 배...무려 211억원에 낙찰된 美 20달러 금화

    액면가 20달러의 금화가 94만 배가 훌쩍 넘는 천문학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세계적인 경매업체 소더비에 따르면 1933년 주조된 이 금화는 미국에서 발행된 마지막 금화로,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도 희소가치가 매우 높은 동전으로 알려져 있다. '더블 이글'이라고 불리는 동전의 한 면에는 미국을 상징하는 독수리가, 또 다른 면에는 자유의 여신상이 새겨져 있으며, 동전 발행 시기를 뜻하는 ‘1933’도 함께 새겨져 있다. 이 동전은 뉴욕에서 열리는 소더비 경매에 나온다는 소식이 알려졌을 때부터 수집가들의 관심과 기대를 모았다. 액면가 20달러(현재 환율로 2만 2000원)의 금화는 1000만~1500만 달러(약 111억 5100만~167억 2600만 원)에 낙찰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었다. 그러나 실제 경매에서는 더욱 뜨거운 관심이 쏟아졌다. 결국 88년 전 주조된 금화 하나는 액면가의 94만 6500배에 이르는 1893만 달러(한화 약 211억 890만 원)에 낙찰됐다. 이번 경매 기록은 현재까지 경매에서 가장 비싸게 팔린 동전의 세계 기록을 거의 2배로 앞지른다. 수집가들이 이 금화에 눈독을 들이는 다양한 이유 중 하나는 ‘기구한 역사’ 때문이다. 해당 금화는 현지에서 83년간 유통돼 왔지만 1933년 당시 대공황으로 발행이 중단됐다. 금 가치가 치솟자 미국 정부는 아예 주조 중단 결정을 내렸고, 해당 연도에 만들어진 금화는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보내진 2점을 제외하고는 모두 반환돼 녹여졌는데, 이때 소수의 동전만이 녹아 내려지는 ‘운명’을 피할 수 있었다. 세상 밖으로 나온 당시 금화는 누군가에 의해 도난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미국 재무부와 소유주 사이의 법정 분쟁에 따라, 개인 소유가 합법적이라는 재판부의 판결을 받은 뒤, 해당 금화는 유통되지 못하고 사라진 비운의 동전이자, 개인이 합법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유일한 표본이 됐다. 이를 경매에 내놓은 사람은 유명 신발디자이너인 스튜어트 와이츠먼으로, 2002년 당시 역대급 낙찰가인 760만 달러(한화 84억 7100만 원)에 이 금화를 손에 넣었다. 다만 거액에 금화를 낙찰받고 새 주인이 된 사람의 신원은 공개되지 않았다. 와이츠먼은 이날 엄청난 가치의 금화와 함께 미국 최초의 항공우편 세트도 경매에 내놓았다 그는 “이번 경매로 거둬들인 수익금은 의료연구와 디자인 학교 등 자선 사업 지원에 활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물러나는 네타냐후 “우파 깃발 행진 무슬림 구역 통과 허용”

    물러나는 네타냐후 “우파 깃발 행진 무슬림 구역 통과 허용”

    곧 물러나는 이스라엘 내각이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강경 시위를 촉발시킨 예루살렘 올드시티(구시가지)에서의 우익 단체 행사를 다시 허용해 우려를 낳고 있다. 이스라엘 총리실은 8일(이하 현지시간) 내놓은 성명을 통해 오는 15일 예루살렘에서 깃발 행진 행사가 열릴 것이라고 밝혔다. 1967년 3차 중동전쟁(일명 6일 전쟁)에서 승리해 요르단의 영토였던 동예루살렘을 장악한 것을 기념하는 국경일인 ‘예루살렘의 날’을 제대로 기념해보겠다는 취지다. 원래 예루살렘의 날은 지난달 10일이었다. 하지만 당시는 깃발 행진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이슬람 4대 성지 가운데 하나인 알아크샤 사원에서 팔레스타인 주민들과 이스라엘 경찰이 유혈 충돌을 빚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의 올드 시티는 기독교와 이슬람, 아르메니아 정교 발원지이며 이들이 거주하는 구역이 뒤섞여 있다. 이스라엘 극우 인사들이나 정통 유대교도들이 이스라엘 국기를 휘저으며 행진하면 무슬림과의 충돌은 불보듯 뻔하다. 행사 당일에도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로켓 공격과 이스라엘의 보복 공습이 이어지면서 취소됐다. 그런데 양측의 충돌로 11일 동안 가자지구에서 242명, 이스라엘에서 13명이 사망했는데도 이스라엘 우익 단체는 10일 올드시티 다마스쿠스 게이트 광장에서 행사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당장 하마스는 이런 시도가 긴장을 촉발할 수 있다는 경고를 내놓았고, 이스라엘 경찰 역시 행진이 팔레스타인과의 충돌을 재점화할 수 있다며 금지했다. 그러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허용하겠다고 밝히면서 다시 논란이 불거졌다. 총리실은 다만 파장을 의식한 듯 “주최 측과 경찰이 합의한 형식으로 행사가 진행될 예정”이라고 밝혀 행진 경로가 변경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또 네타냐후 총리가 나중에 번복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행사 이틀 전인 오는 13일 의회(크네세트) 신임 투표에서 8개 야권 정당이 참여하는 반(反) 네타냐후 연정이 통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야미나 당의 나프탈리 베네트 대표가 순번제 총리 직에 오르면 행사 진행 여부를 다시 결정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극우파 사이에서는 당초 예정대로 오는 10일 행사를 진행하자는 강경한 목소리도 나온다. 극우 성향 정치인으로 꼽히는 이타마르 벤-비에르는 트위터를 통해 행진을 연기하는 것은 하마스에 대한 항복으로 비춰질 수 있다며 10일 예루살렘 올드시티에서 깃발을 휘날리며 행진하겠다고 다짐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일본군 1명 사망” 날조된 역사 ‘봉오동 전투’ [밀리터리 인사이드]

    “일본군 1명 사망” 날조된 역사 ‘봉오동 전투’ [밀리터리 인사이드]

    일본이 만든 ‘봉오동부근전투상보’독립군에 포위됐지만 ‘전사자 1명’양민 학살해 ‘독립군 사살’로 둔갑일제 역사왜곡에 휘둘리지 말아야1920년 6월 7일. 일본군은 한반도 강점 이후 처음으로 무장 독립군에 패배했습니다. 장소는 중국 지린성 봉오동. 바로 ‘봉오동 전투’입니다. 1919년 ‘3·1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한 일제는 독립군의 승전 소식이 대형 항일독립운동의 도화선이 될까봐 전전긍긍했습니다. 그래서 일제는 전투를 역사에서 지워버렸습니다. 패배를 ‘승리’로 둔갑시켰습니다. 그런데 조작 기록이 어설펐습니다. 억지로 역사를 바꾸다보니 실수가 있었던 겁니다. 사정이 이런데도 일제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봉오동의 공적을 무참히 깎아내리고, 당시 대승을 알린 임시정부를 헐뜯기까지 합니다. 자랑스러운 무장 독립운동의 역사를 부정하는 이들입니다. 그래서 6일 현충일을 맞아 학술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에 실린 ‘봉오동부근전투상보를 통해 본 봉오동전투’(이상훈 육군사관학교 교수) 논문을 바탕으로 그날의 진실에 다가가 보려 합니다. 일제가 날조한 역사의 진실을 마주하면 여러분도 저처럼 울컥할 지 모릅니다.●패배한 일본군, 역사를 조작하다 봉오동 전투를 날조하기 위해 일제가 남긴 기록은 ‘봉오동부근전투상보’입니다. 일본군 추격대장 야스카와 사부로 소좌가 작성했습니다. 독립군·일본군의 상태와 지형, 날짜별 전투 진행과정, 병참과 통신수단, 전투에 대한 소견까지 꼼꼼하게 남겼습니다. 이 기록에 따르면 일본군 전사자는 불과 병사 1명, 부상자는 병사·경찰 각 1명입니다. 반대로 독립군은 봉오동 전투에서 무려 24명이 전사한 것으로 돼 있습니다.당시 일제는 독립군을 ‘불령선인’이라고 불렀습니다. ‘정부 지시에 불응하는 조선인’이라는 뜻으로, ‘불한당’ 같은 나쁜 의미로 쓰였습니다. 정규군인 일본군이 불령선인에게 일격을 당한 것은 치욕스러웠을 겁니다. 그래서 패장이 나선 겁니다. 그럼 독립군 전사자 24명은 어디서 나왔을까. 승리했다던 일본군은 ‘날씨 악화’, ‘후속부대 부족’ 등의 이유로 전장 정리를 제대로 못했다고 변명합니다. 꼼꼼하게 적었던 다른 기록과 달리 사살한 독립군의 신원 기록이 없습니다. 꽁지가 빠지게 도망쳤는데, 전공이 있을리 없습니다. 일본군은 당시 인근 양민 23명을 학살했습니다. 일본 경찰과 중국 지방정부가 기록을 남겼습니다. 청년은 1명도 없었고 모두 힘없는 노인이나 10세 이하 아이들, 여성들이었습니다. ●양민 24명 학살해 “독립군 전사자” 한춘보씨 일가족 7명 중에선 12세 손자 1명만 용케 부상을 입고 살아남았습니다. 일본군은 한씨 손자도 죽은 것으로 보고 24명을 독립군 전사자로 둔갑시켜 상부에 보고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전투 사흘 뒤인 6월 10일자 매일신보에는 “조선사람의 손해는 미상이나, 내어버린 시체가 24요”라는 문구가 등장합니다. 일본군의 전사상자 기록도 의심스러운 부분이 한두군데가 아닙니다. 우선 봉오동부근전투상보의 ‘전투사상표’를 보면 두만강을 건너 독립군을 추격한 ‘월강추격대’ 병력은 장교 10명, 준사관 이하 230명, 헌병 11명, 경찰 11명 등 262명으로 표기돼 있습니다. 그런데 230명을 기록한 공간에 처음엔 180명으로 썼다가 두줄로 긋고 다시 오른쪽에 220명, 240명으로 표기했다가 다시 지운 뒤 마지막으로 230명을 기록한 흔적이 있습니다.또, 봉오동 전투 하루 전인 6일 오후 9시 30분 두만강을 건너려고 준비할 때 병력은 250명이었는데, 강을 건너 북상한 7일 새벽 3시엔 209명으로 줄었습니다. 심지어 이 인원도 신빙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두만강 너머 출발 전 주둔 병력은 기관총 소대를 포함해 495명이었습니다. 매일신보는 10일 “일본군 12명이 사상했다”고 보도했다가 21일엔 “전사자 1명, 부상자 1명”으로 정정했습니다. 일제의 공식 발표가 19일에 있었는데, 이후 사상자 발표를 통제했을 가능성이 있는 겁니다. 최종 전사상자 수도 군 보고서인 봉오동부근전투상보와 거의 일치합니다. ●日, 임시정부 “157명 사살” 발표에 발끈 반면 상해 임시정부 군무부는 일본군 전사 157명, 부상 300명, 독립군은 전사 4명, 부상 2명이라고 발표했습니다. 그러자 조선총독부는 “상해의 가짜 정부가 불령선인단이 봉오동에서 참패했음에도 오히려 ‘대승’으로 바꿔 여러차례 불온문서를 발표했다”고 발끈했습니다. 대승한 나라가 발끈하다니, 이상합니다. 조작 기록이 들킬까봐 조마조마했던 것은 아닐까요.추격대장 야스카와 소좌는 참고 자료에서 독립군이 전원 ‘러시아 소총’으로 무장하고 있었다고 썼습니다. 체코군단이 지원한 최신 ‘모신나강’ 소총입니다. 권총과 탄약도 많았고, 심지어 쌍안경과 ‘폭탄’까지 확보하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상당한 사격훈련을 했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반면 자신들의 상황에 대해선 “고지가 높아 불리하다”, “지형을 잘 몰라 주력을 놓쳤다”, “도로가 험준하다”, “유력한 노획품을 버리고 왔다”고 둘러댔습니다. 맹색이 ‘대승 지휘관’인데 불리했던 상황만 궁색하게 늘어놓은 것입니다. 전투 상황은 “4면에서 공격받아 전황이 불리했지만, 각 부대가 용감히 조치해 점차 전황이 유리해졌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기록도 거짓으로 봅니다. 사방으로 둘러싼 445, 503, 504, 735 등 4개 고지에 매복한 독립군이 도로를 따라 오다 덫에 걸린 일본군에 큰 피해를 입혔다고 보는 것이 상식적입니다. ●일본군, 남쪽으로 공격? 실제는 ‘퇴각’일본군은 남쪽에 위치한 735고지로 ‘공격’해 들어갔다고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북동쪽으로 진군하던 대규모 병력이 돌연 남쪽을 공격하는 건 논리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또 당시 독립군 주력이었던 홍범도·최진동 장군 부대가 북쪽과 동쪽에 포진해 있었습니다. 그럼 진실은 무엇일까요. 공격이라는 일본의 기록을 ‘퇴각’으로 바꾸면 깔끔한 설명이 가능해집니다. 실제로 일본군은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인근 마을에서 정비한 뒤 곧바로 두만강을 넘어 후퇴했습니다. 일제는 우리의 독립 의지를 꺾기 위해 이런 악랄한 방법으로 독립군 승전을 숨겼습니다. 오늘 독립군의 헌신과 희생을 떠올린다면, 일제의 날조된 주장에 동조해선 안 될 겁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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