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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사 퍼레이드 줄이고 평화 모드로…전쟁기념관서 첫 국군의날 기념식

    다음달 1일 제70주년 국군의날 기념식이 사상 최초로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평화의광장에서 열린다. 한반도 평화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상황에 맞춰 국군 장병과 참전 용사를 위한 행사는 늘리고 대북 무력시위 형태의 행사는 줄였다는 평가다. 국방부 관계자는 27일 “국군의날 기념식을 전쟁기념관에서 개최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밝혔다. 주로 오전에 계룡대 연병장에서 진행했던 과거와 달리 이번 행사는 최초로 저녁시간대 서울 시내에서 열린다. 기념식은 지상파 3사가 80분 동안 생중계하고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는 첫 야간 축하비행에도 나선다. 1956년 제정된 국군의날은 공군이 창군한 1949년 10월 1일을 육·해·공군 창설이 완성된 시점으로 지정해 기념하고 있다. 과거 국군의날 행사는 동대문운동장이나 여의도 등에서 군사 퍼레이드 형식으로 진행되기도 했다. 지난해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은 제69주년 국군의날 기념식을 대규모로 진행했다. 최초로 경기 평택 해군 제2함대 연병장에서 진행된 기념식은 현무2 계열 탄도미사일, 현무3 순항미사일, 에이태킴스(ATACMS) 지대지 미사일, 패트리엇(PAC2) 요격미사일, 중거리지대공미사일(M-SAM) 등이 등장해 무력시위 형태로 치러졌다. 반면 올해 행사는 대북 무력시위 형태를 제거하고 국군 장병과 참전 용사를 위한 행사로 채워졌다. 당일 오전 10시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서는 국군 유해 봉환행사가 열린다. 1996년부터 2005년까지 북·미가 공동 발굴한 유해 중 한·미 공동 감식을 통해 국군 전사자로 확인된 유해 64위가 봉환된다. 수송기가 영공에 진입하면 공군 F15K 전투기와 국산 FA50 전투기가 호위에 나서 호국 영웅에 대한 예우를 다한다. 점심에는 유엔군 참전 용사 25명과 그 가족, 보훈단체 유족회 대표, 유공 장병 등 200여명이 참석하는 경축연이 청와대 영빈관에서 진행된다. 오후 6시 30분부터는 전쟁기념관에서 기념식을 비롯한 다채로운 국민 참여 행사가 열린다. 가수 싸이와 걸그룹이 축하공연에 나서고 육군 K9 자주포와 K2 흑표 전차 등 무기 장비도 전시한다. 공군 전투기 시뮬레이터 탑승, 패러글라이딩 가상현실(VR), 비행복 착용 체험과 육군 드론봇과 워리어플랫폼 체험부스는 오는 29일부터 마련된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달콤한 사이언스] 학업성취도 높이려면 나무를 심어라

    [달콤한 사이언스] 학업성취도 높이려면 나무를 심어라

    학업 성취도가 높은 학교와 낮은 학교의 차이는 교정의 나무 숫자와 관련있다는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나왔다. 미국 일리노이 어바나샴페인대 환경보건연구실, 가상현실연구실, 정보학연구실과 미국 산림청 공동연구팀은 나무를 비롯한 각종 식물로 녹화가 잘돼 있는 학교 학생들의 성적이 그렇지 않은 학교 학생들보다 우수하다는 사실을 규명했다고 27일 밝혔다. 이번 연구결과는 심리학 분야 국제학술지 ‘심리학의 최전선’ 26일자에 실렸다. 이번 연구에는 한국인 과학자 이강재 정보학연구실 연구원이 참여해 지리정보 분석을 도왔다. 연구팀은 시카고 내 공립초등학교 318개를 대상으로 교정 녹화정도와 학업 성취도 사이의 연관성을 조사했다. 연구팀이 대상으로 삼은 학교들은 저소득층 아이들이 주로 다니는 학교로 인종 구성은 백인은 8.7%에 불과하고 45%가 흑인, 43%가 히스패닉, 3%가 아시아계 등으로 이뤄져 있다. 연구팀은 고해상도 항공 사진을 이용해 학교 운동장과 학교 주변 지역의 녹화 상태를 정량화한 다음 일리노이주에서 실시하고 있는 학업성취도 평가 ISAT의 읽기와 수학 성적을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는 학교 학생들의 성적이 그렇지 않은 학교 학생들보다 높다는 것이 밝혀졌다. 특히 교정 내 나무 비율에 따라 수학성적에서 큰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는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그렇지 않은 학교의 학생들보다 평균 수학점수가 18점 이상 높게 나온 것이다. 연구팀은 읽기와 수학 성적은 학생 개인의 잠재력을 발휘하는데 중요한 요소일 뿐만 아니라 고등학교까지 정규 학교과정을 이수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학교에 나무를 심는 비교적 간단한 방법만으로도 학생들의 잠재력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밍 쿠 일리노이대 환경자연과학과 교수는 “이번 연구는 아이들이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교의 조경상태가 학업성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분석한 첫 번째 사례”라며 “자연이 사람의 육체적 건강 뿐만 아니라 정서적 건강에도 영향을 미침으로써 학생들의 지적 능력 발달에 도움을 준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전사 학생 명단에 오라버니 이름이… 하염없는 눈물과 통곡만”

    “전사 학생 명단에 오라버니 이름이… 하염없는 눈물과 통곡만”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기 15회 6·25 한국전쟁 당시 6년제 인천상업중학교 3학년생이었던 이경종(85) 씨는 6·25 전쟁에 자원입대하기 위해 1950년 12월 18일 인천에서 출발해 부산까지 500㎞를 매일 25㎞씩 20일간 걸어갔다. 1951년 1월 10일 부산육군 제2 훈련소(부산진국민학교)에 도착했으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입대가 불허됐다. 결국 실종 군인의 군번을 부여받아 편법으로 입대했고 4년 동안 참전한 후 1954년 12월 5일 만기 제대했다. 1996년 7월 15일 이경종 씨는 큰아들 이규원 치과 원장과 함께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이하 6·25 편찬위)를 창립해 198명의 참전 학생과 참전 스승(신봉순 대위)의 육성을 녹음하고, 흑백 참전 사진과 참전 관련 공문 등을 수집해 인천 중구 용동에 ‘인천학생 6·25 참전관’(오른쪽 사진)을 세웠다. 6·25 편찬위(위원장 이규원 치과 원장)는 부산까지 걸어가서 자원입대한 인천 학생 약 2500명과 참전 스승의 애국심을 기억하고, 전사한 인천 학생 208명과 스승 1명(심선택·1926년 10월 25일 인천에서 태어나 서울대를 졸업하고 해병 소위로 참전하여 1950년 11월 12일 24세 때 전사)을 추모하기 위해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기’를 시리즈로 본지에 기고한다. 편집자 주----------------------------------------------------------------------------------------------- 아래의 글은 6·25 참전 전사 인천학생 송용식의 유골을 대전 현충원으로 이장(移葬)한 기록문으로 송용식 참전기를 대신한다. 6·25 전사 인천학생 묘가 인천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그중에는 비석도 없고 봉분이 점차 사라져가는 현실을 되돌아보고, 이제는 고향 인천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잊혀져가지만, 후대에 그들의 나라 사랑 정신을 기억해 달라고 이 참전기를 기록한다.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 활동 1996년 7월 15일 창립된 인천학생스승6·25 참전사 편찬위원회(위원장 이규원 치과 원장)가 인천지역 6년제 중학교 학생들의 6·25 참전 역사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최종적으로 확정한 6·25 참전 전사 인천학생은 208명이고, 전사 스승은 심선택 해병 소위 1명이다. 23년 동안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가 제보를 받거나 혹은 기록을 찾아서 이름과 출신 중학교 등을 확인한 전사 인천학생은 105명뿐이다. 나머지 103명의 전사 인천학생은 이름조차도 알 수가 없다. 전사 학생 기록의 정확성을 기하고자 여러 차례 서울 동작구 현충로 국립묘지를 찾아 전사자 위패와 묘 그리고 고향 인천 여기저기 묻혀있는 묘를 확인하였다. 그리고 관련 지방자치단체에 기록되어있는 호적 제적등본을 일일이 다 떼어서, 최종적으로 전사를 확인한 결과 그 전사자는 105명이다. 6·25 전사 인천학생 명단에서 오빠의 이름을 찾아보고 통곡하던 할머니 자매 2001년 6월 1일부터 6월 15일까지 인천 중구 자유공원 내 맥아더 장군 동상 앞에서 인천학생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 주최로 제3회 인천학생 625 참전 기록사진 전시회를 개최 중일 때 있었던 일이었다. 첫날 두 분의 할머니께서 인천학생스승6·25 참전사 편찬위원회 이경종 편찬위원에게 다가와 울면서 “저기 우리 오라버니 이름이 있습니다”라며 따라가 보니까 전사 학생 명단이 있는 참전 전시판에 할머니들이 가리키는 이름은 송용식이었다.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 이경종 편찬위원이 “송용식 전사자의 묘가 따로 있는가?”라고 물었더니 “지금 오라버니는 서구 검암동 간재울 고향 땅에 묻혀 있으며 우리들은 동생 송옥림·옥란 자매입니다”라고 말하면서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시면서 서럽게 통곡을 하는 것이었다. 6·25 참전 사진 전시회가 끝나고 본 편찬위원회에서는 송용식 전사자의 묘지를 확인하기 위해 두 자매의 안내로 서구 검암동으로 송용식 전사자의 묘지가 있는 인천광역시 서구 검암동 438-18번지를 찾아갔으나 묘지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왜 묘지가 보이지 않는가?”라고 물어보았더니 “우리들이 어릴 때 군에 입대한 오빠가 전사하여 유골로 돌아와 아버지께서 이 근방 양지바른 곳에 묻고 봉분을 잘 만들어 해마다 제사를 드렸었는데,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이후 아무도 돌보지 않아 봉분이 깎여 이리됐다”하면서 흐느껴 우는 것이었다. 그래서 본 편찬위원회에서는 “송용식 전사자 묘를 국립묘지로 우리가 옮겨 주겠으니 이장하겠는가?”라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두 자매는 그리하겠다는 뜻을 밝혀 이때부터 묘지 확인 작업을 위해 현장에 직접 검암동 동직원과 같이 유골이 묻혀 있는 지번(인천 서구 검암동 438-18)을 확인하였다.6·25 전사 학생 송용식 이장(移葬)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에서는 육군본부에서 이장 허가서를 발급받았다. 2003년 5월 27일 아침 일찍부터 6·25 참전 전사 인천학생 송용식의 유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경건하게 6·25 참전 전사 학생 고(故) 송용식의 유골(遺骨) 발굴 작업을 시작하여 어렵게 유골을 찾아 수습한 후 유골함에 담아 제(祭)를 올렸다.전사한 친구여, 이제는 편히 쉬게나! 2003년 5월 27일 오후에 대전 현충원 봉안관 임시안치소에 모셨다가 2003년 6월 26일 유가족들의 오열 속에 이제는 편안히 잠들 유택(대전 현충원 2묘역 16129)에 안장되었다. 2003년 6월 26일 유골 이장에 참석하신 아버지(6·25 참전 인천학생 이경종)께서 송용식 전사자 묘에서 “중학교 3학년 때 나와 같이 부산까지 걸어가서 참전하여 전사한 친구여, 자 이제는 편히 쉬게나!”라고 말씀하신 것을 나(이경종 큰아들 이규원 치과 원장)는 들었다. 고향에 돌아온 6·25 전사 인천학생들 유골 6·25 사변 발발 후 한창 전쟁 중일 때 전사한 전사자들은 그 당시 전투가 워낙 치열했기에 정부에서는 일정한 묘지를 정하지 못하고, 화장을 한 뒤에 유골을 직접 유가족에게 전하였다. 한 줌의 재가 되어 돌아온 아들의 유골을 받은 부모님들께서는 가슴이 베이는 심정으로 대성통곡하시고는 집 근처 아들이 놀던 양지바른 동산에 곱게 묻었다. 글 사진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참전기 15회를 마치며 한때 인천에 6년제 중학교에서 공부하던 중학생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국가의 징병 모집에 대하여 한참이나 어려서 입대할 필요가 없었던 어린 중학생이었습니다. 송용식이 학창시절을 보낸 옛 6년제 인천공업중학교(현재 인천기계공고)의 넓은 운동장은 아직도 송용식을 기억합니다. 송용식과 같이 부산까지 걸어가서 입대하셨던 저의 아버지께서는 언젠가 송용식이 공부했던 인천기계공고 운동장 한편에 송용식을 기리는 추모비를 건립하고 싶다고 하십니다. 이제 고향 인천에서는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지만, 이 참전기에 그 이름 송용식을 6·25 참전 전사 인천학생으로 기록합니다. 이규원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장 ●6·25 참전 전사 인천학생 송용식 ▲인천공업중학교 3학년 때 자원입대 ▲육군 통신병으로 참전·전사송용식 전사자는 인천 서구 검암동에서 태어나, 인천공업중 3학년 재학 중이던 1950년 12월 18일 인천에서 출발하여 부산까지 20일간 걸어가서 1951년 1월 10일 부산육군통신학교에 자원입대 후 육군통신병(군번 0243043)으로 참전하여 1951년 5월 30일 강원도 양구에서 전사함.
  •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천국과 지옥 오간 광희문… 그 굴곡진 삶 더듬다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천국과 지옥 오간 광희문… 그 굴곡진 삶 더듬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8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20회 신당동(광희문 주변) 편이 추석 연휴 첫날인 지난 22일 진행됐다. 이날도 서울미래유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몰렸다. 추석 연휴 특별 프로그램 신청 창구인 서울미래유산홈페이지가 지난 17일 오픈 즉시 매진될 정도였다. 추석 프로그램은 26일에 이어 29일에도 계속된다.이날 오전 10시 지하철 5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7번 출구를 출발한 투어단은 중앙아시아거리~국립중앙의료원~동대문패션타운 관광특구~동대문운동장기념관~이간수문~옛 서산부인과~광희문~장충초등학교~신당동 성당~범삼성가주택~터키대사관~종이나라박물관~태극당 코스를 타박타박 걸었다. 이날 서울미래유산 해설사로 처음 데뷔한 윤현경 서울도시문화지도사는 한양도성 성곽의 안과 밖을 넘나드는 난코스에도 당황하지 않고 설득력 있는 해설로 답사단의 마음을 잡았다. 한양도성에는 4대문과 4소문이 있다. 동서남북 사방에 4개의 큰 문을 세우고 그 사이에 4개의 작은 문을 뒀다. 도성의 정문인 숭례문부터 남쪽으로 광희문·흥인지문·혜화문·숙정문·창의문·돈의문·소덕문이 그것이다. 8개의 크고 작은 문의 역사는 생각보다 복잡하다. 숭례문은 남대문, 흥인지문은 동대문, 돈의문은 서대문같이 해당 방위에 따라 쉽게 불렀지만 숙정문을 북대문이라고 부르지는 않았다. 숙정문은 태종 때 풍수가 최양선의 건의에 따라 대부분 닫혀 있었기에 문의 역할을 하지 못한 탓이다. 4소문의 경우 혜화문은 동소문, 소덕문은 서소문이라고 방위를 따서 쉽게 불렀다. 그러나 창의문은 북소문이라고 부르지 않고 자하문 혹은 장의문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숙정문이나 창의문은 도성의 통행문이 아니라 방위에 맞춘 형식적인 문이었다. 창의문 바깥 숲과 계곡을 ‘자줏빛(紫) 노을(霞)의 동네’라고 해 자하동이라고 불렀기에 문 이름도 자하문이라고 통용됐다. 창의문 바깥 동네를 ‘자문밖’이라고 했고, 창의문이라는 정식 이름보다 자하문이라는 별칭을 더 즐겨 썼다.이날 투어단이 밟은 광희문은 4소문 중 하나다. 도성의 동남쪽 문이기는 하나 남소문은 아니다. 남소문은 별개의 문이다. 혜화문이 동소문이고, 소덕문이 서소문이며, 창의문이 북소문인 것과는 딴판이다. 숙종실록(1690년 7월 19일)에 보면 “동국여지승람을 살펴보면 동남에 광희문이 있다 했는데 이게 남소문의 이름인 듯합니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예나 지금이나 남소문과 광희문을 구별하지 못한 사례가 잦았다. 남소문은 남산 아래에 사는 사람들의 도성통행 용도로 세조 3년에 세워졌지만 건립 12년 만인 예종 1년(1469년)에 문을 닫은 뒤 다시는 열리지 않았다. 실제 조선시대 인문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예전에 광희문 남쪽, 목멱산 봉수대 동쪽에 남소문이 있었다”고 적혀 있다. 남소문은 세조의 장남 의경 세자의 죽음이 “도성 동남쪽에 문을 낸 탓”이라는 풍수독설 때문에 폐쇄의 운명을 맞았다. 남소문을 열면 왕가에 황천살이 열려 세자가 요절하고, 임금도 시름시름 앓는다는 불길한 풍수설이 나돌았다. 또 개문파와 폐문파로 나눠 “남소문을 열면 남인이 득세하고, 닫으면 서인이 권세를 잡는다”는 당쟁의 대상물이 됐다. 남소문은 물자와 사람이 가장 많이 오가는 한강나루(한강진)를 거쳐 도성을 통과하는 최단거리 지름길이었다. 장충단공원에서 국립극장 길로 올라가다 보면 한남동으로 통하는 오르막길의 보도 왼쪽에 남소문터를 알리는 표석이 서 있다. 국립극장과 반얀트리호텔 사이쯤이다. 남소문과 함께 한양도성과 북한산성을 연결하는 지점에 세워진 홍지문(한북문)도 4소문에 해당하지 않는다. 결국 한양도성은 4소문 체계로 시작했지만 새로운 통로에 대한 수요가 생기면서 5~6소문 체계로 운영됐다고 할 수 있다. 광희문은 천국과 지옥을 오간 문이다. 한양풍수의 핵심 중 하나인 수구문(水口門)에서 불명예의 대명사인 시구문(屍口門)으로 명칭과 용도가 오락가락했다. 명실상부한 남소문이면서 12년간 잠깐 존재한 또 다른 남소문에 의해 위상을 위협받아 단 한번도 대접받지 못했다. 다산 정약용은 다산시문집에서 “도성의 모든 하수 모여드는 곳, 조그만 바위구멍 광희문이네, 사람의 혈맥 같은 수많은 개천 밤낮으로 이곳을 새어나가고…”라고 광희문의 풍경을 읊었지만 광희문은 대개 ‘물의 출구’라는 명예로운 지위 대신 시체가 나가는 문이라는 불명예를 뒤집어썼다. 한양은 흠잡을 데 없는 천하의 명당은 아니었다. 명당수가 부족하고, 경복궁 좌우 지맥이 허약하며, 태자의 위상을 뜻하는 동쪽 낙산의 지세가 서쪽 인왕산보다 낮고, 물이 흘러나가는 청계천 출구가 열려 있는 게 문제였다.그래서 물과 함께 기가 빠져나가지 않도록 인공산(假山)을 만들거나, 옹성을 쌓거나, 사당을 지어 보호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훈련원 동북쪽에 인공산을 쌓았으니 땅의 기운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함이다”라는 기록이 이를 뒷받침한다. 광희문을 통해 기가 빠지는 것을 막고자 지금의 동대문역사문화공원과 국립의료원 옆에 가산(방산시장)을 조성했고, 동대문에 옹성을 둘러쌓고, 수구(水口)와 한양의 좌청룡에 해당하는 낙산의 기를 돋우려고 동묘(관운장묘)를 세웠다. 이 모든 게 ‘풍수성형’ 즉 비보풍수(裨補風水)의 장치였다. 광희문은 시구문의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했다. 지독한 유교 논리가 판친 조선사회는 관혼상제(冠婚喪祭) 중 죽음의 비중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 탓이다. 시구문을 빠져나간 상여 행렬은 숭인동과 황학동 사이 청계천변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다리’ 영도교(永渡橋)를 지나 창신동 동망산(東邙山)을 향했다. 왕족이나 사대부는 영도교를 건너 뚝섬이나 광나루를 거쳐 왕릉이나 선산으로 나아갔다. 조선시대 서울 사대문 안에서는 매장이 엄격하게 금지됐기에 1909년까지 사람이 죽으면 광희문이나 서소문을 통해 시신이 나갔다. 성저십리(성 밖 십리)에도 묘지를 쓰거나 나무를 베거나, 돌을 캐는 게 금지돼 시신은 주로 광희문 밖 금호동, 남대문 밖 이태원과 용산, 서대문 밖 아현과 홍제원 바깥에 묻었다. 일제강점기 경성부에 설치된 19곳의 화장장과 공동묘지는 대부분 조선시대 이후 공동묘지였다.신당동의 행정구역은 18세기 이전 한성부 남부 두모방 신당리계였다. 광희문 주변인 현재의 신당동, 광희동, 장충동 일대는 군병과 유민, 걸인이 거주하는 빈민 지대였다. 광희문은 시체와 상여가 나가는 문이었기에 문밖 신당동은 장례를 치르는 무녀와 승려가 몰려 살았다. 신당동(新堂洞)이라는 동명이 신당(神堂)에서 유래됐다고 보는 근거다. 북이나 장구, 징, 꽹과리 등 무구와 목기나 철기를 제작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오간수문 밖은 개천변을 따라 버드나무가 늘어서 있어서 버드나무를 이용해 가재도구를 생산하는 사람들이 터를 잡았다. 훈련도감 군병과 가족들이 부업 삼아 시장을 열었다. 동소문 밖 동부 연화방(성북구 동소문동)에 있던 동활인서가 광희문 옆으로 옮겨 왔다. 활인서는 전염병이 돌 때 무당으로 하여금 역귀를 쫓거나 구호 활동을 하는 공공의료기관이다. 가난한 사람을 돕는 구휼 업무와 무당을 단속하고 세금을 거두는 기관의 역할도 맡았다. 광희문 앞에는 신당동 화장터와 금호동 공동묘지로 가는 고개가 있었는데 길이 꼬불꼬불하고 넘기 힘들다고 하여 아리랑고개라고도 불렸다. 도둑이 많아 순라꾼들이 야경을 돌면서 “번도”라고 소리쳤는데 이 말이 변해 ‘버티고개’(6호선 버티고개역)로 변했다는 설이 있다. 한강을 중심으로 시가지가 개편된 현대 서울에서도 신당동의 서울 동남 방면 관문 역할은 변함이 없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문희일 연구위원 ●다음 일정 : 서초동(우면산의 가을) ●일시: 9월 29일 오전 10시~낮 12시 ●집결장소: 서울시교육청 교육연수원 앞(사당역 1번 출구에서 5413번 버스 환승) ●신청(무료):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 [흥미진진 견문기] “동대문운동장기념관, 옛 영화가 세월에 잠든 느낌”

    [흥미진진 견문기] “동대문운동장기념관, 옛 영화가 세월에 잠든 느낌”

    명절을 앞둔 주말이었지만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단은 ‘대가족’이었다. 싱글벙글 환한 얼굴의 윤현경 해설사는 화창한 날씨에 어울리는 밝은 톤의 목소리로 투어단을 이끌었다.중앙아시아 골목의 사마르칸트 식당 앞에서 커다랗고 둥근 빵을 파는 젊은이의 사람 좋은 웃음 뒤에 고향에 대한 향수가 짙게 배어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렸다. 동대문시장을 오가며 자주 보았지만 국립의료원 바로 옆이 이순신 장군이 과거시험을 보다 말에서 떨어졌던 장소인 훈련원공원이란 것을 오늘에야 알게 됐다. 역시 아는 만큼 보게 되는가 보다. 한국전쟁 때 21개 지원국에서 온 의료진이 210만명의 부상자를 치료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국립병원에서 의료봉사의 고귀함을 느꼈다. 특히 1958년부터 10년간 현대 의료서비스를 제공한 스칸디나비아 3개국에는 큰 빚을 진 것 같다. 일행은 물이 흐르듯 유연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건물을 따라 이간수문으로 흘러갔고, 조명탑 아래 동대문운동장기념관으로 내려섰다. 이곳은 스포츠뿐만 아니라 국가의 큰 행사와 공연을 치른 문화의 중심지였다. 옛 영화가 세월 속에 잠든 느낌이었다. 즐비한 빌딩 뒤 좁은 골목길을 지나 광희문 도심 성곽길을 걸었다. 한양도성 성곽이 끊겼다 이어졌다 하는 골목에서는 성곽을 집의 축대로 지은 광경도 볼 수 있었다. 한양도성의 가치를 지켜 내지 못한 행정의 아쉬움과 함께 집 한 채 지을 공간을 차지하려고 치열하게 투쟁했을 전 시대인의 팍팍한 삶이 그려졌다.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인 태극당을 끝으로 투어를 마쳤다. 쇼핑을 위해 자주 오는 곳이지만 한 발짝만 물러나면 전통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 많다는 것을 알게 해 준 투어였다. 세계인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삶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공간들이 많았다. 김은선 책마루 연구원
  • 금천, 추석 김치 500㎏ 소외 이웃 전달

    서울 금천구는 추석 연휴기간 소외된 이웃들에게 따뜻한 정을 전달하기 위한 김치 나눔 행사를 가졌다고 26일 밝혔다. 금천구 독산1동 복지협의체 회원, 중장년 자조(자기의 발전을 위해 스스로 애쓰는 일) 모임 회원, 동주민센터 직원 등 20여명은 지난 19일 김장김치 500㎏을 손수 담가 혼자 지내는 노인, 중증 장애인, 한부모가족 등 소외계층 100가구에게 전달했다. 이인식 독산1동 복지협의체 위원장은 “작지만 따뜻한 마음으로 소외된 주민에게 작으나마 힘을 전달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정일수 독산1동장은 “주민들 스스로 김치나눔 행사에 참여해 뜻을 더한다”며 웃었다. 또 “이웃이 이웃을 돌보는 행복한 마을 공동체를 만들도록 노력하겠다”고 입을 앙다물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강동구 에너지 자립마을 모집… 새달 10일까지 공동주택 대상

    강동구 에너지 자립마을 모집… 새달 10일까지 공동주택 대상

    서울 강동구는 다음달 10일까지 공동주택을 대상으로 ‘강동형 예비 에너지 자립마을’을 모집한다고 26일 밝혔다. 에너지 자립마을은 에너지 절약과 태양광 보급 등을 적극 추진해 에너지 자립도를 향상시키는 마을로 매년 서울시 공모를 통해 선정된다. 강동구는 에너지 절약과 실천교육, 우수 에너지 자립마을 탐방, 환경시설 견학, 온실가스 진단과 컨설팅 등 체계적인 지원을 통해 ‘예비 에너지 자립마을’을 조성할 계획이다. 선정 기준은 에코마일리지 가입률, 태양광 미니발전소 설치 대수 등으로, 에너지 관련 공감대가 조성된 공동주택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현재 강동구에는 전체 70%가 태양광을 설치해 에너지 자립률이 47%에 달하는 천호동 십자성마을 등 8곳의 에너지 자립마을이 운영되고 있다. 사업 1년차인 올림픽파크 한양수자인 아파트는 최근 아파트 공용부문 발광다이오드(LED) 조명 교체, 승강기 회생제동장치 설치 등을 완료하기도 했다. 다음달까지 전기차 충전시설도 설치할 계획이다. 이정훈 강동구청장은 “강동형 예비 에너지 자립마을 선정과 체계적인 강동 특화 에너지 자립마을 인큐베이팅을 통해 친환경 에너지 지역공동체를 만들어 가겠다”고 말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귀성길 안전 챙겨요”... 추석맞이 차량용품 판매 ‘불티’

    추석을 앞두고 귀성·귀경길에 오르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차량 안전·편의용품 판매가 두드러지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25일 오픈마켓 옥션에 따르면 추석 직전 일주일(9월 10~16일)동안 자동차용품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품목별로 최대 5배 이상 증가했다. 특히 자동차의 안전 및 성능 향상에 필요한 용품의 판매가 늘었다. 품목별로는 엔진부품의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300%, 제동장치가 157%, 서스펜션이 150% 각각 증가했다. 타이어 관리용품도 스노체인이 256% 증가했고, 휠이 200%, 휠캡이 401% 각각 늘었다. 정전기 방지용품이 279%, 가스·화재감지기와 차량용 소화기가 각각 119%, 25% 증가하는 등 차량 관련 안전용품 판매도 증가했다. 이밖에도 첨가제·플러싱 오일이 72%, 부동액·냉각수가 47%, 브레이크 오일이 33% 늘었다. 차량용 무선 충전 거치대 판매량도 546%, 블루투스·핸즈프리도 64% 각각 늘었다. 옥션 관계자는 “특히 최근에는 자동차 화재 사고가 잇따르는 등 차량 안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추석 귀성길을 앞두고 다양한 안전용품 수요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고 말했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반려견과 맘껏 노세요”...경기 곳곳에 ‘반려견 전용 놀이터’

    “반려견과 맘껏 노세요”...경기 곳곳에 ‘반려견 전용 놀이터’

    경기도내에 반려견과 마음껏 뛰어놀수 있는 공간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23일 도내 각 지자체에 따르면 안산시는 지난 7월 단원구 성곡동 696 일대 3100여㎡에 성곡반려견 놀이터를 개장했다. 1억 4900만원을 들여 조성한 반려견 놀이터는 반려견 운동장과 운동시설, 격리장, 배변봉투 공급함및 수거함, 음수시설 등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안양시도 만안구 석수동 1만 1900여㎡에 삼막애견공원을 조성, 지난 7월 개장했다. 반려견 놀이터, 보호소, 쉼터 등을 갖추고 있다. 애견 공원은 당초 동절기를 제외하고 3월부터 11월까지만 운영할 계획이었나 시민들의 요청에 따라 연중 운영하기로 했다. 하루 평균 200여명, 휴일에는 450여명이 찾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내년에는 조명과 그늘막 등 편의시설을 확충할 계획이다. 최대호 안양시장은“반려인구 천만시대를 맞아 사람과 동물이 공존하는 올바른 반려동물 문화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시민들의 목소리를 반영해 연중 운영하고 편의시설을 확충하겠다”고 말했다.앞서 수원시는 지난달 권선구 올림픽공원 내에 722.5㎡ 규모로 반려견과 반려인을 위한 놀이 공간을 조성했다. 수원시에는 광교호수공원, 금곡동 매화공원, 곡선동주민센터 앞 등 3곳에도 반려견 놀이터가 조성돼 운영 중이다. 용인시는 지난해 4월 기흥호수공원에 국내 최대 규모의 반려동물 놀이터를 조성했으며 성남시도 지난 5월 분당구 율동·중앙공원 내 반려견 놀이터 2곳을 새로 단장해 재개장했다. 경기도는 2020년 개장을 목표로 여주시 상거동 16만 5000여㎡ 부지에 반려동물 테마파크 조성을 추진 중이다. 이밖에도 김포 1곳과 용인 2곳, 부천 1곳, 화성 1곳 등에 지자체 시행 반려견 놀이터 조성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이같은 반려견 놀이터 조성에 경기도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재명 도지사는 후보시절 반려동물이 목줄 없이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를 확충하고 ‘경기도형 펫티켓’을 만들겠다고 약속한바 있다. 경기도형 펫티켓은 공원이나 인도 등에서 반려동물 동행으로 인해 불거지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행동 교육을 지원하는 정책을 말한다. 현재 도와 시·군이 사업비를 절반씩 부담해 조성했거나 조성 중인 반려견 놀이터는 현재 모두 9곳이다. 도는 앞으로 시·군의 반려견 놀이터나 공원 조성사업 지원을 확대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도는 현재 도내 전체 가구 중 20% 정도가 다양한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도 동물보호과 관계자는 “반려견 놀이터를 2020년까지 100개소를 조성하고 올바른 반려동물 문화 정착을 위한 캠페인과 교육 프로그램도 늘려나갈 방침이다”라고 말했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박상구 서울시의원, “강서구민을 위한 체육시설 절실” 호소

    서울특별시의회 도시계획관리위원회(위원장 김인제)에서 의정활동을 하고 있는 박상구 의원(더불어민주당, 강서1)은 지난 9월 19일, 마곡 유수지 복개 사업 현장을 방문하여 강서구청 관계 직원, 서울주택도시공사 현장 담당자, 시공사 KCC건설 관계자로부터 사업추진 현황과 현안 사항, 그리고 향후 전망 등을 보고받고, 마곡 유수지 복개 공사가 진행 중인 현장을 둘러보면서 공사관계자들을 격려하였다. 이번에 방문한 마곡구역 도시개발사업 3공구 기반시설조성공사 (2단계)는 강서구 마곡동에 위치한 마곡유수지 일부(50%)를 복개하여 다목적구장, 공원 등을 조성하는 공사이다. 2016년 3월부터 2019년 12월까지 약 551억 원이 투입되며, 한강나들목, 한강연결보행로, 양천로47길 확포장 및 자전거도로 신설 등이 예정되어 있다. 박상구 의원은 이 자리에서 “현재 강서구민들은 마땅한 체육시설이 없어 구민 체육행사조차 양천구의 제1공수여단 운동장에서 진행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지금 강서구의 현실”이라고 지적하며, “대다수 주민들이 요구하는 유수지 추가 복개와 체육시설을 단순히 사업비 문제로 진행하지 못하겠다는 것은 마곡지구가 위치한 강서구를 무시하는 처사”라고 말했다. 끝으로 박 의원은, “주민들이 유수지로 인한 악취 문제, 미관 문제 등을 감수해왔던 것은 유수지의 공익적 기능에 따른 것인데, 복개에 문제가 없다면 그간 피해를 입은 주민들을 위해서라도 추가 복개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 앞으로 강서구와의 긴밀한 협력과 시의회 차원에서의 지원 등을 통해 추가 복개 및 체육시설 조성에 앞장서 나가겠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중국 독극물 교실에 유치원생 코피 쏟아

    중국 독극물 교실에 유치원생 코피 쏟아

    “우리 아들이 일주일에 3번 코피를 흘렸는데 처음엔 체질 탓이라고 생각했어요. 나중에 같은 반의 많은 아이들이 기침을 하고 코피를 자주 흘린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어요.” “내 아이가 있는 반은 30명도 안 되는데 코피 흘리는 학생 7명은 모두 입학한 지 오래된 아이들이에요.” “우리 아이는 기침을 한 지 3~4개월이 지났는데 약을 먹어도 호전되는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어요.” 중국 장시성 교육국은 지난 19일 유치원 교실에 사용된 독성 물질 때문에 자녀가 아프다는 학부모들의 항의에 정밀 조사를 지시했다. 장시성 난창의 한 어린이집에서는 120명의 학생 가운데 50명이 기침을 하고 코피를 흘리는 증상을 보였다. 학부모들은 학교 교실의 지나치게 높은 포름알데히드 수치를 질병 원인으로 지목했다. 하지만 학교 측은 위와 같은 학부모들의 항의에도 이들이 단지 소문을 만들어내고 있다며 어떤 조사도 거부했다. 최근 중국의 각 지역 언론에서는 9월 새학기가 시작하자 교실의 해로운 실내 공기 때문에 아이들이 질병을 앓고 있다는 보도가 여러 차례 게재됐다. 장시성 난창의 어린이집 측은 중국장시망 기자에게 2016년 말 실내 인테리어 공사를 완료하고, 지난해 9월 개원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개원 초에 우리는 이미 포름알데히드 수치를 검사했고 그렇지 않으면 유치원을 운영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코피를 흘리는 아이들은 학부모들의 주장처럼 전체 원생의 3분의 1이 넘는 50명이 아니라 단지 3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지난 4일 선전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전날 새학기가 시작하자마자 몇몇 학생들이 통증을 호소했다. 학부모들은 새로 지은 학교 건물의 지나치게 높은 포름알데히드 수치 때문에 자녀가 등교하자마자 구토를 했다고 주장했다. 학교 측은 모든 건물이 제3자 조사를 통과했다고 밝혔으며 부모들이 독성 교실을 우려해 자녀들을 집단 등교거부시켰다는 보도를 부인했다. 후베이성 초등학교에서는 9월 신학기가 시작하자 100명의 학생이 코피, 구토, 습진 증세를 보였다. 새로 지은 초등학교에 등록한 1200명의 학생 가운데 132명이 교실과 운동장, 놀이터 등의 독성 물질 때문에 아프기 시작했다고 부모들은 항의했다. 항저우에서 환경기술 측정 회사인 ‘대디 랩’을 운영하는 웨이웬펑은 “현재 중국의 운동 시설에 대한 검사 기준은 단지 8개의 화학 물질 수치만 조사하는데 제조사가 이 가운데 하나를 어린이들에게 해로운 물질로 대체할 수 있다”며 “학교 운동장의 달리기 트랙과 같은 아동 시설에 대해서는 국가 기준과 다른 검사가 시행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학대견 구조위해 드론까지 띄웠죠” SM엔터테인먼트 1호 가수 현진영

    “학대견 구조위해 드론까지 띄웠죠” SM엔터테인먼트 1호 가수 현진영

    ‘현진영씨, 당신 아주 바닥까지 끌어 내릴 거니깐 어디 두고 봅시다’라는 협박에 “내가 여기서 더 이상 내려갈 데가 어딨습니까. 끌어 내리세요. 전 그런 거 두렵지 않으니깐요.”, “아무리 동물이지만 생명에 관계된 일에 내가 정당하다고 판단하고 행동한 일에 누가 해코지 하는 거, 저는 두렵지 않아요.” “유기견 센터를 한 번 갔다 오면 그 트라우마 때문에 열흘에서 2주 정도 밥을 제대로 못 먹어요. (학대 받았던) 개 모습들이 자꾸 눈에 아른거려서요. 자주 가긴해야 하는데 얘들을 보게 되면 너무 힘들어서 한편으론 힘들어요. 개들 학대하는 사람들 보면 정말 똑같이 해주고 싶은 마음 밖에 안 들어요.” 28년 전, 이수만 현 SM엔터테인먼트 대표의 눈에 한 젊은이가 들어왔다. 젊은이가 가진 목소리에 매료됐던 그는 독특한 춤을 결합해 기획사 설립 1호 가수를 탄생시켰다. 그가 바로 ‘흐린 기억속의 그대’란 노래로 ‘현진영 고(Go) 진영 고(Go)’를 대한민국 전역에 울려 퍼지게 한 재즈힙합 아티스트 현진영씨다. 당시 대중에게 조금은 낯선 힙합음악과 춤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고 90년대 국내 가요계의 한 획을 그은 가수로 성장했다. 대중에게 받았던 과분한 사랑이 부담스러웠던 것일까?. 그 후 수차례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고 정상까지 쌓아 올렸던 인기는 한순간 물거품이 됐다. 하지만 대중의 외면에도 불구하고 그가 가진 음악에 대한 열정 유전자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지금의 현진영씨는 ‘데뷔 28년 차’의 진가를 다시금 대중에게 서서히 인식시키고자 28년 전 당시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은 맘일 수도 있을 게다. 그런 그를 지난 13일 김포 자택 근처 한 카페에서 만났다. 현진영씨의 반려동물관에 초점을 맞춰 인터뷰를 시작했다. 첫 질문을 던지기 전, 요즘 근황을 물었다. 그는 “수 년 전부터 1인 방송에 대한 비전을 봐왔다. 현재 하고 있는 팟캐스트도 어떤 콘셉트 안에서 꾸미지 않은 내 자신의 진솔한 모습을 청취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이 많이 좋아해 주고 있다”며 매주 목요일 진행하고 있는 1인 팟캐스트 활동 ‘현진영 데이’ 소식을 전했다.그에게 반려견은 ‘과거, 현재, 미래를 볼 수 있는 눈 그리고 그가 웃을 수 있는 원동력과도 같은 존재’다. 14년째 함께 하고 있는 반려견 ‘엄지’ 엄마인 ‘꾸꾸’가 죽었을 땐, 정말 오열했고 신체 하나를 잃은 것과도 같은 고통을 겪고 한 달 넘게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슬펐다고 한다. “제 인생의 5가지 행운이 있어요. 부모님 만나서 동생 낳아 주신 것, 사랑스런 아내, 이수만 선생님, 기독교 그리고 삶의 배움과 기쁨을 주는 꾸꾸와 엄지예요” 그만큼 반려견은 그에게 소중한 존재다.1인 방송에 대한 관심과 반려견에 대한 남다른 사랑은 지난해 9월 한 때나마 사회적 이슈가 됐던 ‘김포 학대견 구조사건’이 세상에 알려지는 데 톡톡히 한 몫 했다. 우연히 한 애견운동장 뒤편 개인소유지 뜬장 속 개들의 열악한 환경에 대해 듣게 됐던 그는 참기를 거부하고 드론까지 띄워 현장을 확인하는 집념을 보였다. 현장에 대한 참혹한 ’물증(?)‘을 확인한 그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1인 방송을 통해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모았다. 당시 개 주인이 현장에 나와 개 밥그릇을 걷어차며, “신경 끄시고 어차피 육견으로 넘길 거니깐 그냥 가세요”라는 말을 듣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끼쳤고 이대로 그냥 두어서는 안 되겠단 결심을 했다고 한다. 결국 개 주인 뿐 아니라 한 동물구조단체와의 격한 갈등을 겪게 되는 수고로움이 있었지만 그러한 것들을 지혜롭게 잘 봉합하고 10마리의 개들을 구조했다. 그 중 5마리는 현재 그가 입양해 키우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한 마리는 손을 가까이 대려고 하면 뒷걸음친다며 사람을 믿게 하는 훈련을 시키는 중인데 여러모로 힘든 부분이 많다고 한다. 기대치 않았던 ’부담‘도 생겼다. 그의 1인 방송을 통해 김포 학대견들의 생생한 구조현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던 많은 사람들의 입소문 탓일까. 여기저기에서 유기된, 혹은 학대받는 반려동물을 구조해 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다. 그는 “제가 동물구조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도 아니고 동물보호캠페인을 하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기 때문에 직접 나서서 하기엔 좀 애매하다”며 “대신 제가 맡은 일, 하고 있는 일, 앞으로 해야 할 일 열심히 해나가면서 만일 그러한 현장들이 제 눈에 보이면 그냥 지나가는 일은 결코 없을 거다”라고 말했다.현씨는 틈나는 대로 유기견 관련 캠페인에 참석하는 건 물론, 공들여 직접 주최까지 하고 있다. 반려견들과의 힐링시간을 갖자는 취지로 기획한 ‘풀파티’ 행사도 그 중 하나다. “저는 큰 (동물관련)단체에 기부 안해요. 대신 개인이 힘들게 꾸려가고 있는 유기견 보호소들을 골라가면서 지원해요. 그리고 물질적인 지원을 통해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유기견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한 일들을 더 많이 하려고 노력해요”라며 “유기견들에게도 일반 가정견들처럼 똑같은 관심과 사랑을 준다면 ‘유기견은 더러워’, ‘유기견을 어떻게 키워’라는 고정관념도 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유기견을 입양하려는 분들에게 “내가 즐겁기 위해서 얘들을 데리고 사는 것이 아니라 나도 즐겁고 얘들도 즐겁고, 나도 행복하고 얘들도 행복하기 위해서 삶을 공유한다는 생각으로 아이를 입양했으면 좋겠다”라며 “그렇게 됐을 때 내가 갖게 되는 행복감이 진정 더 커진다”고 했다. 장소협조: 사카페(SA.4CAFE) 글 박홍규 기자 gophk@seoul.co.kr 영상 박홍규, 문성호, 김민지 기자 sungho@seoul.co.kr
  • 호날두 퇴장, 눈물 글썽이며 억울함 호소 ‘머리에 손을?’

    호날두 퇴장, 눈물 글썽이며 억울함 호소 ‘머리에 손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3ㆍ유벤투스)가 이적 후 챔프전 첫 경기에서 개인 통산 첫 퇴장을 당했다. 호날두는 20일(한국시간) 스페인 발렌시아의 에스타디우 데 메스타야에서 열린 2018~19 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H조 1차전 발렌시아(스페인)전에서 전반 29분 만에 레드카드를 받고 운동장을 떠났다. UEFA 챔피언스리그 154경기에 출전한 호날두가 경기 중 퇴장 당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호날두 퇴장이 정당한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전반 29분 유벤투스의 공세 상황에서 페널티 지역으로 쇄도하던 호날두는 이를 막는 발렌시아의 헤이손 무리요와 엉켜 넘어졌다. 별다른 몸싸움도 없이 넘어진 무리요를 향해 호날두는 항의하듯 왼손으로 그의 머리를 움켜쥐며 만졌다. 이 광경을 지켜본 발렌시아 선수들이 강하게 심판에게 항의하면서 잠시 두 팀 선수들이 감정싸움을 벌였고, 주심은 골대 옆 부심에게 상황을 물어본 뒤 호날두를 불러 레드카드를 내밀었다. 호날두는 운동장에 누우면서까지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판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호날두는 눈물을 글썽이면서 아쉬움 속에 그라운드를 떠났다. AP통신은 “UEFA 상벌위원회가 호날두의 반칙을 ‘심각한 도발 행위’로 판단한다면 출전정지 징계가 늘어날 수도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한편 이날 유벤투스는 호날두의 퇴장 이후 더욱 치밀한 수비를 구사, 2골을 넣으며 상대팀 벨렌시아를 완벽하게 제압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14년째 나눔사랑 작은실천” 부천 중3동 자치위 ‘사랑의 쌀독’ 행사

    “14년째 나눔사랑 작은실천” 부천 중3동 자치위 ‘사랑의 쌀독’ 행사

    경기 부천의 한 동 주민자치위원회가 한가위를 앞두고 어려운 이웃들에게 사랑의 쌀 지원행사를 14년째 이어오고 있어 훈훈한 감동을 주고 있다. 부천시 중3동 주민자치위원회는 19일 오후 2시 덕유복지관 앞에서 ‘찾아가는 사랑의 물품’ 전달식을 가졌다고 20일 밝혔다. ‘나눔사랑 작은실천’을 슬로건으로 나눌수록 커지는 사랑의 기적을 실천하는 중3동 주민자치위원회의 이날 행사는 조병순 주민자치위 부위원장 사회로 진행됐다. 사랑물품 전달식에는 안치완 중3동장을 비롯해 조연희 주민자치위원장, 김경문 순복음중동교회 담임목사, 천종수 대청마루 대표, 김영찬 굿모닝차이나 대표, 양경미 주민자치위 고문, 지역주민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2005년 관내 아파트단지와 학교 등에 쌀독 120개를 설치한 이후 해마다 훈훈한 사랑의 물품이 모아졌다. 14년째인 올해 기록적인 폭염에도 아파트단지 1087㎏, 학교에서 138㎏을 전달했다. 또 순복음교회 중동성전과 하나저축은행 상동지점에서 1000㎏씩, 반석사회교육센터와 덕유사회복지관 200㎏씩, 강서실업에서 100㎏ 등 쌀 3905㎏, 라면 20박스가 지원됐다. 아이스피부과와 예수마을교회 등에서 총 888만원의 성금도 들어왔다. 지난해에 이어 지원물품은 쌀과 라면 등 생필품으로 나누어 수혜자들 요구에 맞춰 지원할 예정이다. 이날 전달식이 끝난 뒤 어려운 658가구에 사랑의 물품을 주민자치위원과 자원봉사자들이 전달했다. 행사를 주관한 조연희 위원장은 “어려운 경제 여건속에서도 어려운 이웃에게 이렇게 따뜻한 온정을 나눠 준 주민들과 모금에 협조해준 주민자치위원 등 자생단체원들이 너무 고맙다”며, “앞으로도 주위의 따뜻한 손길을 기다리는 틈새계층에게 희망의 디딤돌이 돼 달라”고 전했다. 이어 안치완 동장은 “순복음교회를 비롯해 지역병원, 학교, 아파트주민 등 관내 많은 분들이 참여해주시어 감사드리고 한가위가 바로 눈앞에 다가오고 있는데 훈훈한 정을 나누는 추석명절이 되기 바란다‘고 말하고, “우리 중3동이 이웃들과 함께 정답게 살아가는 살맛나는 지역이며, 이번 사랑의 쌀모으기행사로 주민들 간 깊은 배려와 관심이 많다는 게 입증된 셈”이라고 말했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흥미진진 견문기] 매장·수장 거듭하며 현재까지 온 뼈아픈 역사 ‘삼전도비’

    [흥미진진 견문기] 매장·수장 거듭하며 현재까지 온 뼈아픈 역사 ‘삼전도비’

    유년 시절과 학창 시절의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종합운동장으로 가는 발걸음은 가을여행을 떠나는 소녀의 마음처럼 설다. 가을바람을 타고 올림픽주경기장으로 향한 일행은 경기장 내부에서 이지현 해설사가 준비한 스포츠시설과 체육관에 대한 설명과 더불어 당시의 국민가요 ‘손에 손잡고’를 들으며 1988년 9월 17일 그날의 감동을 떠올렸다. 88서울올림픽은 마스코트였던 호돌이나 굴렁쇠 소년도 유명하지만, 167개국의 올림픽 회원국 가운데 160개국이 참가한 성공적 올림픽이라는 점도 의미가 크다고 한다. ‘한강의 기적’과 자부심을 확인할 수 있었던 ‘화합과 전진’의 슬로건에 맞는 세계적 축제로 남아 있다.올림픽 전시관에서 관련 영상을 시청하고 주경기장을 돌아 나오는 길에 이곳에서 얼마 전 세계적 케이팝 스타 방탄소년단(BTS)이 8만명의 관객을 이끌며 콘서트를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같은 공간에 대한 세대별 다른 기억의 존재가 새삼 놀라웠다. 지하철을 타고 잠실역으로 이동했다. 공사시작 전부터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높다는 ‘롯데월드타워’를 등지고 잠실대로변의 골목길에 들어서자 한국광고문화회관 안 한국광고박물관이 나왔다. 깔끔한 구조로 광고의 역사를 찬찬히 둘러볼 수 있는 공간이었다. 게다가 ‘광고’라는 낱말의 첫 기록이 1883년 한성주보였고, 그 당시 ‘광고’라는 말 대신 ‘고백’이라는 말이 쓰였다는 설명에서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거대한 광고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잠실사거리를 지나 석촌호수 서호 쪽에 위치한 ‘삼전도비’를 만났다. 땅속에 묻히고, 물속에 수장되기를 거듭했지만 그때마다 다시 나타났다는 뼈아픈 비석의 역사를 들으며 가슴이 아팠다. 하늘마저 눈치챈 걸까. 때마침 내리는 부슬비를 맞으며 석촌동 고분군에서 4세기 근초고왕으로 추정되는 돌무지무덤을 살펴보았다. 백제의 숨결을 느끼기에 깔끔한 공원이었다. 오늘의 역사적 가치를 절실하게 느끼며 송파 여정을 마무리했다. 김미선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연구원
  •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30년 전 서울올림픽 열렸던 그곳… 2000년 전 한성백제의 고향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30년 전 서울올림픽 열렸던 그곳… 2000년 전 한성백제의 고향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8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19회 차 송파(백제의 꿈) 편이 가을이 익어가는 9월의 셋째 주말인 지난 15일 진행됐다. 이날 투어는 30년 전 우리 가슴을 뛰게 했던 서울올림픽에 대한 기억을 소환하는 행사였다. 투어 일정을 서울올림픽 개막일에 최대한 가깝게 맞췄고 마침내 ‘D-2’에 투어를 가질 수 있었다. 참가자들은 서울을 전 세계에 알린 1988년 9월 17일 역사적인 개막식을 떠올리며 메인스타디움을 찬찬히 둘러봤다. 또 88올림픽기념전시관에서 상영하는 굴렁쇠 소년의 영상을 보면서 감회에 젖었다. 투어 내내 30년 전 그날로 되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었다.이날 오전 10시 지하철 2호선 종합운동장역 6번 출구를 출발한 투어단은 서울올림픽 주경기장 메인스타디움에 들어가서 본부석과 성화대, 관중석을 걸었다. 88올림픽기념관에서 메달리스트들의 영광스런 얼굴과 유니폼을 보면서 그날의 열기를 체감했다. 입장료는 연구원이 일괄 부담했다. 한국광고박물관~삼전도비~석촌호수~석촌동 고분군 코스가 이어지는 잠실까지 걸어서 이동하는 것은 시간상 무리라고 판단해 종합운동장~잠실 구간은 지하철로 이동했다. 이지현 서울도시문화지도사는 재치 넘치는 해설로 투어를 안정감 있게 이끌었다. 대부분의 참가자가 처음 방문한 한국광고박물관은 좋은 반응을 얻었다. 참가자들은 박물관을 둘러보는 데 만족하지 않고 답사가 좀 늦게 끝나더라도 해외광고제 수상작을 시청하길 원했다. 광고의 역사는 물론 수준 높은 외국 광고를 접할 기회였다. 희망에 따라 20분짜리 광고 영상을 시청, 이날 투어는 낮 12시 30분에 종료됐다. 추석 연휴를 맞아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는 22일(토)은 물론 26일(수), 29일(토)에도 진행될 예정이다. 30년 전 대한민국의 맥박을 뛰게 했던 서울올림픽에 관한 기억은 흐릿해졌지만 도시에는 뚜렷한 흔적을 남겼다. 올림픽 개최는 ‘한강의 기적’이라는 경제성장, 선진 시민의식의 성숙과 함께 도시공간의 뼈대를 바꾼 일대 사건이었다. 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조성된 한강개발, 체육시설과 잠실아파트단지, 올림픽공원이 거대한 도시의 구조물로 남았다. 올림픽은 서울이라는 도시공간의 발전을 앞당긴 기폭제이자 촉매제의 역할을 해냈다. 현대도시 서울의 변혁은 한강종합개발사업과 더불어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67~1970년 시행된 제1차 한강종합개발사업은 홍수 피해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1차원적인 몸부림이었다. 한강변에 쌓은 제방 위에 강변북로를 만들고 공유수면 매립 사업으로 얻은 동부이촌동과 압구정동, 여의도, 잠실에서 귀중한 택지를 조성했다. 제2차 한강종합개발사업은 1981년 한강 고수부지에 체육시설을 만드는 사업으로 시작, 1986년 5월 올림픽대교 개통으로 마무리됐다. 36㎞의 수조가 정비됐고 연중 2.5m의 수심이 유지됐으며 60여만평에 체육공원이 들어서는 등 지금 한강의 얼개가 이때 완성됐다. 19세기까지 천하절경을 유지했던 구불구불한 한강물길은 사라졌지만, 자연재해로부터 안전한 현대적 의미의 한강이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올림픽을 계기로 1000만 시민을 수용할 수 있는 메트로폴리스의 도시네트워크가 갖춰진 것이다.올림픽을 전후로 서울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1981년과 1989년을 비교해 보면 ‘올림픽의 힘’이 느껴진다. 1981년 867만명이던 인구는 1989년 1000만명을 돌파했다. 서울시 예산도 1조원에서 3조 5000억원으로 3배 이상 증액됐다. 지하철의 경우 9.5㎞ 1개 노선이 115㎞ 4개 노선으로, 차량은 20만대에서 77만대로 크게 불었다. 도로 총연장은 6600㎞에서 7200㎞, 시설공원은 550곳에서 943곳, 가로수는 14만 그루에서 24만 그루로 늘었다. 상수도 생산량은 9억 4000t에서 16억 2000t, 하수처리시설은 하루 36만t 처리 규모에서 300만t 처리 규모로 뛰었다. 공중화장실은 1700곳에서 8300개로 늘어났다. 이렇게 빠른 속도로 현대화된 도시는 전무후무하다고 한다.올림픽의 성공과 잠실의 탄생은 거저 얻은 게 아니다. 잠실지구 종합개발계획은 1970년 12월 수립됐다. 15만평의 종합경기장을 포함한 210만평 규모의 사업계획이다. 여름철이면 홍수로 범람하던 잠실섬의 강남 쪽 물길을 막아 매립한 83만평과 토지구획사업으로 얻은 127만평을 합친 땅이다. 위대한 구상이었다. 1970년 서울에서 개최키로 한 제6회 아시안게임 개최권을 반납하는 수모 끝에 절치부심해서 얻은 국제경기장 공공부지이기도 하다. 그때 우리에겐 대회를 치를 국제경기장이나 도시기반시설이 없었다. 1971년 오늘의 석촌호수로 흔적이 남은 한강 물막이공사가 잠실을 상전벽해로 변모시켰다. 조선 500년 동안 서울의 동쪽 관문과 광주를 잇던 송파나루와 삼전나루는 사라지고 뭍이 되었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서울의 역사는 600년이었다. 1994년 ‘정도 600년’ 행사를 성대하게 치르면서 남산한옥마을에 타임캡슐을 묻었다. 서울 정도 1000년이 되는 2394년에 개봉하기로 했었다. 서울은 4대문을 중심으로 한 강북도시라고 배웠고, 그렇게 믿었다. 그러나 잠들어 있던 한성백제의 역사가 1997년 무렵 깨어나면서 600년 설은 깨졌다. 서울의 기원은 삼국사기에 기술된 기원전 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서울의 역사는 2000년으로 수정되었다. 역사교과서는 새로 쓰였다. 2000년 전 한성백제가 처음 터를 잡은 땅은 강북이 아니라 강남이었다. 송파구 풍납동 풍납토성은 한성백제의 대성(大城)이자 북쪽성(北城)이었고, 방이동 올림픽공원 안 몽촌토성은 남쪽성(南城)이었다. 그리고 두 성의 배후지대인 석촌동 고분군은 왕릉이었다. 한성백제는 전형적인 강남 왕국이었다. 3세기 중반부터 4세기 중반 이전에 100만명 이상의 인력을 동원해 길이 3500m, 높이 11m, 너비 43m의 거대한 토성을 한강변 동서남북 사방에 쌓았다. 강 건너 아차산에 진을 친 고구려와 세력을 다퉜다. 현재 동벽과 북벽이 도로로 8토막이 난 채 남았다. 한강 쪽 서벽은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유실됐다. 풍납동 대동아파트 옆 경당지구와 지금은 풍납백제문화공원으로 옷을 갈아입은 미래지구가 풍납토성 안 한성백제의 왕궁과 신전이 자리한 핵심지대로 여겨진다. 풍납토성은 일제강점기인 1936년 고적 제27호로 지정됐지만 토성 성벽만 지정해 토성 안에 민가가 들어서는 것을 막지 못했다. 해방 후 1963년 사적 제11호로 지정하고, 1964년 성 안을 발굴했지만 잠들어 있던 백제혼을 깨우지 못했다. 1997년 세 줄의 깊은 해자 즉 삼중환호(三重環濠)와 여(呂)자형 집터 등 74기의 유구와 수천 점의 백제유물을 수습, 백제왕도의 단서를 찾아내기 전까지 온조가 도읍을 정한 하남 위례성이 풍납토성이라고 확신하지 못했다. 몽촌토성은 서울올림픽 덕분에 개발 압력을 이기고 현 상태로나마 보전될 수 있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몽촌토성의 존재감이 올림픽공원의 훼손을 막았다고 보는 게 정확할지도 모른다. 올림픽공원 부지는 1960년대부터 미래의 국제경기장 부지로 지정돼 있었다. 메인스타디움을 비롯한 주요 경기장 시설이 잠실종합운동장에 먼저 건설된 탓에 올림픽공원은 단순 체육시설 부지에서 몽촌토성, 상징조형물과 올림픽회관, 야외공연장, 체육학교, 공원 등 복합 체육문화시설단지로 개발 방향이 전환됐다. 한성백제의 왕릉이라고 할 수 있는 석촌동 고분군도 200여기의 돌무덤이 5개밖에 남지 않은 상태로 무참하게 훼철됐다. 사적지 내부에 민가가 들어서면서 3호분과 4호분 사이로 35m의 차도가 뚫리기도 했다.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에 쏠린 관심이 고분 안 민가를 이전철거하고 관통도로를 지하화하면서 모양새를 살렸다. 송파는 2000년 전 한성백제의 고향이다. 갓 깨어난 백제 혼이 살아 숨 쉬고 있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원장 사진 문희일 연구위원 ●다음 일정: 신당동(광희문 주변), 정동(대한제국을 기억하며) ●일시: 9월 22일(토) 오전 10시~낮 12시, 9월 26일(수) 오전 10시~낮 12시 ●집결장소: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7번 출구 앞, 시청역 4번 출구 앞 ●신청(무료):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 [미래유산 톡톡] 백자 곡선미 담은 주경기장·37년 전 인공호수 된 석촌

    [미래유산 톡톡] 백자 곡선미 담은 주경기장·37년 전 인공호수 된 석촌

    지난 15일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팀이 찾은 송파 일대의 서울미래유산은 잠실종합운동장과 석촌호수 등 2곳이었다. 1981년 9월과 11월에 제24회 올림픽경기대회 및 제10회 아시아경기대회의 서울 개최가 확정되면서 잠실종합운동장 건설사업에 박차를 가하게 됐다. 1982년 7월 5만명 수용 규모의 야구장에 이어 수 용인원 10만명의 주경기장도 1984년 9월에 개장, 국내 최대 스포츠 경기장이 완성됐다.서울 송파구 잠실1동 일대 59만여㎡에 펼쳐져 있는 이 경기장의 총수용 인원 수는 20만명에 이른다. 올림픽 주경기장을 비롯해 잠실체육관, 잠실수영장, 잠실학생체육관, 잠실야구장 등 시설과 1만대 이상의 주차장 시설을 갖췄다. 주경기장에서는 서울올림픽 개막식·폐막식·육상·축구경기가 거행됐다. 출입구를 54곳으로 분산 배치해 10만명의 관객들이 30분 내에 퇴장할 수 있도록 과학적으로 설계했다. 주변 경기장을 원활하게 내왕할 수 있도록 주변에 연결 광장도 설치돼 있다. 단순미와 조선 백자 모양의 곡선미를 조화시킨 건축가 김수근의 작품이다. 2013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됐다. 석촌호수는 원래 송파나루터가 있던 한강의 본류였으나 1971년 4월 한강 공유수면 매립사업 후 물길이 바뀌면서 1981년 인공호수로 변했다. 송파나루터라는 표석과 정자가 석촌호수 동호에 세워져 있다. 석촌호수 가운데로는 송파대로가 지나간다. 석촌호수는 이 길에 의해 동서로 같은 모양의 동호(東湖·10만 5785㎡)와 서호(西湖·11만 2065㎡)로 나뉘어 있으며 동호와 서호를 합친 호수 둘레는 2.5㎞에 달한다.서호의 서울놀이마당은 1984년 준공됐다. 1988년에 롯데월드가 개관하면서 매직아일랜드가 서호 중앙에 자리잡았다. 한동안 수질 악화와 악취로 외면받았으나 2001년부터 2009년까지 대대적인 정비사업을 벌인 후 수질이 개선됐다. 2.5㎞의 호안 중 1.88㎞의 콘크리트 호안시설을 철거하고 대신 수생식물을 심어 생태호안으로 바꿨다. 한강물 순환체계를 구축함으로써 생태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도심공원으로서 보전가치가 높은 점이 인정돼 2015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됐다. 서울미래유산연구팀
  • 성남시 추석 귀성객 1만2665대 주차 공간 확보

    경기 성남시는 추석 연휴인 22일부터 26일까지 기간에 차량 1만2665대를 주차할 수 있는 167곳 공간을 확보했다고 19일 밝혔다. 시는 귀성객들의 주차 편의를 위해 수정, 중원 지역 초·중·고·대학교와 협의해 46곳 학교 운동장 3732면을 개방하기로 했다. 길 위의 노상 주차장을 포함한 121곳 공영주차장 8933면도 무료 개방한다. 이 가운데 건물식 등 41곳 노외 공영주차장 6851면은 23일~25일 사흘간 무료 운영하는 등 주차장별로 시민 개방 시간이 다소 탄력적이다. 대중교통 대책도 마련해 이동 편의를 돕는다. 시는 21일~26일 14개 노선, 230대 버스의 배차 간격을 단축해 운행횟수를 111회 늘린다. 모두 1441회 운행한다. 증편 운행 노선 중 분당구 야탑동 성남종합버스터미널을 오가는 6개 노선, 92대 버스의 운행횟수는 33회 늘려 571회 운행한다. 하늘누리 제1·2추모원이 있는 중원구 갈현동 영생관리사업소를 경유하는 4개 노선, 80대 버스의 운행횟수는 21회 늘려 431회 운행한다. 야탑동 분당메모리얼파크를 운행하는 4개 노선, 58대 버스의 운행횟수는 57회 늘려 439회 운행한다. 시 담당자는 “시민들이 이번 추석 연휴 기간에 안전하고 편하게 고향을 오갈 수 있도록 교통대책 마련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청주 도심에 지어질 브랜드 아파트 ‘청주사직 쌍용예가’, 2차 조합원 모집 돌입

    청주 도심에 지어질 브랜드 아파트 ‘청주사직 쌍용예가’, 2차 조합원 모집 돌입

    브랜드아파트 ‘사직 쌍용예가’ 건립 사업이 충북 청주시 도심에 본격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올해 조합설립인가를 마무리 짓고 이번 달부터 2차 조합원 모집에 돌입하면서 사업에 대한 불확실성이 대부분 제거 됐기 때문이다. 지난 해 1차 조합원 모집들 단기간 내에 끝낸 만큼 2차 조합원 모집도 순조로울 것으로 기대된다. 이 아파트는 청주시 서원구 사직동 일원에 지하 3층~ 지상 29층 8개 동 600여가구 규모로 지어진다. 전용면적은 선호도가 높은 59~84㎡형 중소형으로만 구성돼 실수요자들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사직 쌍용예가’는 주변 교육환경도 우수해 학부모들의 마음을 자극할 전망이다. 단지에서 한벌초등학교와의 거리가 도보 3분 거리에 불과해 어린 자녀들이 안전한 통학이 가능할 전망이다. 또,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중,고교 및 초등 영어체험센터 등을 5분 내외로 이동할 수 있다. 주변 생활편의시설도 풍부하다. 청주종합운동장을 비롯해 청주예술의전당과 청주의료원, 홈플러스, 청주시청, 충청북도청, 서원구청, 고인쇄박물관, 수영장 등 생활편의시설이 주변에 밀집해 있다. ‘사직 쌍용예가’는 입지적으로 우수한데다가 조합원 모집가격이 주변시세보다 저렴해 주택수요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전 세대 남향위주로 단지를 배치하고 판상형으로 설계해 채광성 및 통풍성을 극대화했다. 또, 동과 동간 거리를 넓게 배치해 통풍성을 높이고 개방감도 살렸다. 일부 동에는 1~2개 층 높이의 필로티구조를 적용해 저층 세대의 사생활 침해를 사전에 방지하도록 했다. 주민들과 어린 자녀들의 안전을 위해 지상에 차가 없는 아파트로 꾸며진다. 주차장을 지하화하고 지상의 넓은 공간을 활용해 조경시설과 커뮤니티시설 등을 다량 설치할 계획이다. 이 아파트는 평면도 특화 시켰다. 각 세대에 알파룸 및 주방펜트리 공간을 확보해 공간효율성을 높인 점이 돋보인다. 또 채광성 및 통풍성이 우수한 4베이 구조를 적용해 쾌적하고 여유로운 주거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양면 발코니가 있는 타워형 구조의 두가지 타입을 공급하여 다양한 수요자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 고층아파트의 취약점으로 손꼽혀 왔던 화재 대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층간 옥외용 피난사다리까지 설치해 입주민의 안전을 꼼꼼하게 챙겼다. 또한 첨단 세대별 맞춤 시스템 제공으로 입주자 편의를 위해 전자경비, 택배, 주차관제, CCTV 등 종합보안서비스를 제공하고 지능형 비디오 분석으로 외부침입에 반응하며 빅데이터분석을 통한 개인 세대별 맞춤 시스템을 제공한다. 단지 내 지상에는 차가 다니지 않는 친환경아파트로 곳곳에 조경시설과 휴게시설, 어린이 놀이터 등을 설치 했다. 각 동별로 특화된 감성적 테마가 적용된 다양한 조경시설 등을 마련해 세대별 맞춤 휴식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경부고속도로 청주IC와 중부고속도로 서청주 IC, 오창IC 등이 연계된 다양한 교통망으로 서울, 수도권 및 지방으로 쉽게 이동할 수 있다. 게다가, 청주의 중심에 위치해 있어 대중교통 이용도 수월하다. 사직동은 청주의 중심에 위치한 구도심으로 사직동 일대 16,000세대의 재개발이 추진 중이다. 그 중 가장 먼저 속도를 내어 추진 중인 곳이다. 지역주택조합 아파트의 조합원 자격은 충북 내 6개월 이상 거주한 무주택 세대주이면서 전용면적 85㎡이하 1채를 소유한 세대주를 청약통장에 관계없이 20세 이상 성인에게 주어진다. 주택홍보관은 청주시 서원구 분평동에 마련됐다. 중도금 무이자 및 발코니 무상 확장 등 다양한 혜택이 조합원들에게 제공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백파의 자전적 육필수기 ‘삶과 운명’] “60·70년대 많은 기업인 상담… 세종시는 국운 견인할 구심점”

    [백파의 자전적 육필수기 ‘삶과 운명’] “60·70년대 많은 기업인 상담… 세종시는 국운 견인할 구심점”

    ‘한강의 기적’이라고 부르는 대한민국의 근대화 내지는 산업화 시기는 빈곤 문제를 해결한 시대로 이해되고 있다. 대한민국은 1962년부터 시작된 경제개발 계획에 따라 초고속 경제 성장을 이뤘고,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던 동아시아의 작은 나라는 ‘아시아의 용’으로 세계시장에 화려하게 부상했다. 현재 한국경제를 대표하는 대기업의 모태가 된 수많은 신생기업도 나름의 역량을 축적하며 비상할 준비를 갖춰갔던 시기이다. 그리고 그들이 인재 등용과 사업 방향 등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순간에 ‘운명을 내다보는 혜안’으로 상담 활동을 펼치며 커다란 영향을 끼친 인물이 바로 백파 윤대현 원장이다. 백파 원장은 근대화의 경제성장기 밑거름이 된 각종 국가 기간산업과 기업들의 대규모 사업부지 선정, 사업전략 수립에 ‘수경학에 기초한 예언적 상담’으로 깊이 관계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이 대표적이다. 세종시도 빠뜨릴 수 없다. 그에 따르면 미래를 바꾸는 힘은 ‘기적’이 아니다.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는 지혜와 앞을 내다보는 혜안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예정된 ‘희망’이다. 희망을 위해 운명을 내다보는 혜안으로 대한민국 근대화의 산증인 삶을 이어 온 백파 원장의 활약상을 정리했다. 편집자 주“대한민국 국운, 세종시가 구심점 될 것”백파 원장이 최근 주목하고 있는 것은 행정중심복합도시인 ‘세종시’이다. 이미 1973년도부터 지금의 세종시가 들어선 자리인 당시 공주군 장기면, 의당면, 연기군 금남면, 남면 등 일대에 나라의 수도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의견을 박정희 전 대통령 등 정계에 전달해 왔던 백파 원장. 당시의 복잡한 사정에 의해 수도 건설은 미뤄졌지만, 이 일대는 항상 수도 이전 최적지로 정치권의 관심을 받아왔고,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에 이르러 현실로 이어지게 되었다. 세종시가 자리한 땅은 1500년 전 백제의 두 번째 수도였으며, 조선 건국기에는 서울보다 유력한 왕도의 후보지로 거론되기도 했다. 이후 남도의 물자를 한양으로 연결하기 위한 금강 뱃길의 종착점 역할을 했으며, 대한민국 건국 후에는 남북을 잇는 중요도로와 철도가 지나는 요충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백파 원장은 “역사적 배경을 보더라도 세종시의 탄생은 결코 한시적 요구에 의한 것이 아닌, 수천 년의 시간을 거쳐 준비해 온 필연적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세종시야말로 대한민국의 국운을 견인할 구심점이 될 것입니다”라고 강조했다. “세종시가 수도 이전 최적지임을 전달” 오늘의 시대, 백파 원장의 세종시와 깊은 인연은 박정희 대통령과의 만남으로부터 시작됐다. 부산 군수기지 사령관으로 부임해 근무 중 육영수 여사가 백파 원장의 소문을 듣고 찾아와 상담을 한 것이 계기가 됐다. 당시 산소를 주로 상담했는데, 수경학 역술가로 정평이 나는 역할을 했다. 백파 원장은 “그때부터 인생이 이렇게 달라지는구나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군인 몇 명이 찾아 왔다. 나중에 알았지만, 5·16 군사정변을 일으킨 사람들이었다. 정변을 일으킬 날짜를 받았는데 처음에는 1월 1일 날 받았다가 2월 9일로 받았고, 여의치 않자 5월 16일로 확정해 군대를 동원했다. 그 당시는 정보부 시절이었기 때문에 일반 손님을 받지 못했고, 감금 아닌 감금으로 오직 그분들만 상담하도록 했다. 하지만 이로써 정보부장인 이후락 씨도 상담하러 오는 등 “상당히 높은 사람으로 성장”했고, “수도 이전 부지로 세종시가 최적지임을 박정희 대통령에게 전달하기도 했다”고 백파원장은 회고했다. 대기업 창업 1세대들과의 인연 백파 원장에 따르면 1960~70년대 우리나라 기업들이 성장을 일구어 나갈 때 수많은 기업인이 백파 원장을 찾았다. 사업상 진행과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때다. “그 당시 대기업 혹은 그룹이라는 말은 상상도 못 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굴지의 기업들로 성장하는 것이 놀라웠다”며 “그분들의 도움으로 지금까지 살아올 수 있었다는 생각에 고마운 마음”이고, 가장 기억에 남는 분들 중 한 분을 꼽으라면 ‘고 정주영 회장님’이라고 말했다. 정주영 회장이 자동차 공업사를 차려놓고 기름 담는 드럼통을 잘라 자동차 보닛을 고치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 정 회장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태국의 고속도로 건설사업에 뛰어들었다가 공사비를 받지 못했는데, 어느 날 찹쌀 2박스를 사가지고 찾아왔다. 그리고는 “오야, 백 선생 내가 한 가지 부탁이 있다. 당신이 윗분(박정희 대통령)에게 말씀을 잘 드려서 태국에 공사한 것이 돈을 못 받게 되었으니 그곳에서 도로공사에 사용하던 장비를 한국으로 가져오면 참 좋겠다. 정말 내가 말하기는 망설여지는데 백선생이 애로를 이야기해주면 좋겠네”라고 했다. 다행히 순조롭게 되어 정 회장은 태국에서 장비를 가져올 수 있었고, 그 후 연대에서는 60년대 초에 충북 단양군 매포면 삼곡리 가평산에 처음으로 시멘트 공장을 착공했고, 현대 시멘트상표는 호랑이 얼굴 상표로 하자고까지 결정했다. 백파 원장에 따르면 정 회장이 울산시 동구 양정동에 자동차 공장을 만들기 위해 그 일대를 그 당시 동장이던 유태영 씨를 통해 공장 부지를 매입했다. 그곳은 개흙이 많아 고기 붕어가 아주 많던 곳이었다. 그 당시 자동차 공장을 만들어 정주영 씨와 함께 많이 다녔기에 그 당시 윤병기 씨, 이양섭 씨, 유태윤 씨 등 많은 분이 백파 원장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연포 현대조선소를 만들 때도 제 발이 안 닿은 자리가 없었을 정도라고 회상했다. 조선소를 만들어 초대 조선소 사장인 백충기 씨는 정 회장이 믿었던 분이다. 경부고속도로를 만들 때는 지리학적으로 산맥을 자르지 않으려 하다 보니 커브길이 많이 생기게 됐다고 말했다. 백파 원장은 “누구보다도 정 회장을 좋아했다”고 말했다. 그런 정 회장과의 인연으로 백파 원장은 “지금도 아산병원에서 저를 많이 돌봐주시고 치료비 한 푼 받지 않는 도움을 받고 있으니 대단히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산병원의 무료 치료에 감사” 전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과의 인연은 한성실업이라는 자그마한 회사를 창업할 때였다. ‘앞으로 무슨 사업을 해야 되겠느냐’는 상담이 계기가 됐다. 당시 백파 원장은 “당신은 머리는 좋으나 항상 시초는 목(木)에 대한 사업을 하여야 한다”고 했고, ‘목 사업은 무엇입니까’하고 묻기에 “옷 장사를 하라”고 했다. 그러자 김 회장은 웃으면서 ‘옷 장사를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고 물었고 백파 원장은 “다음에 다시 만나 뵙도록 하자”고 하고 헤어졌다고 그때를 회고했다. 백파 원장에 따르면 그 후 김 회장은 ‘와이셔츠 장사를 하려는데 사업이 되겠느냐’고 왔고, 그 사업을 하라고 했지만 사업자금이 부족했다. 이때 김 회장과 경기고 동창인 이우복 씨가 자신의 경기도 수원 밑 병점 집을 팔아 도와주었고, 김 회장은 와이셔츠 장사부터 반짝이 배월남치마 등을 작업해 사업을 상당히 성장시킬 수 있었다. 그렇게 대우 그룹은 만들어졌고 그 인연으로 이우복 씨는 대우 그룹 부회장이 되었다. 백파 원장에 따르면 그 당시 우리나라 건설업이 한창 성장할 때 자동차 회사마다 덤프트럭의 수요를 공급이 미처 따라가지 못했다. 그렇다 보니 덤프트럭을 주문하면 보통 1년 이상을 기다려야 출고가 될 정도였다. 그때 백파 원장 주위에서 건설업을 하는 분들이 덤프트럭이 빨라 나와야 차질 없이 공사를 할 수 있다고 하기에 김 회장에게 부탁을 하게 됐다. 그러자 김 회장은 김용섭 사장에게 바로 연락해 3일 만에 5대를 출고시켜 줬다. 백파 원장은 김우중 회장이 펴낸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는 자서전을 보면 자신과의 인연 관계도 언급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아까운 분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개탄스러운 마음뿐”이라고 대우그룹 해체를 안타까워했다. 정리 홍의석 객원기자 hong5960@seoul.co.kr ▶다음호에 계속 ※이 연재 내용은 필자 개인의 주장임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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