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동유럽
    2026-08-07
    검색기록 지우기
  • 첫 득점
    2026-08-07
    검색기록 지우기
  • 개막
    2026-08-07
    검색기록 지우기
  • 실점
    2026-08-07
    검색기록 지우기
  • 선수
    2026-08-07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980
  • 소의 “나토잔류 수락” 의미

    ◎「완전통독」의 마지막 장애물 넘다/서독 30억불 경원이 결정적 계기/유럽 새질서 구축의 이정표 세워 소련이 통일독일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가입을 허용함으로써 통독 가도에 놓여있던 마지막 장애물이 제거됐다. 전후 40여년간 동서 냉전체제하에서 바르샤바조약기구의 최전선이었던 동독을 서독측에 「내주고」 이어서 통일독일을 나토에 「넘겨주기로」한 것은 일단 소련의 엄청난 양보로 풀이되고 있다. 소련은 그동안 나토와 바르샤바조약기구의 세력균형,통일독일의 군사적 위협 등을 이유로 통일독일의 나토가입을 꾸준히 반대해왔다. 통일독일의 두기구 동시 가입,동시 탈퇴,범유럽 새 안보기구 구성 등 일면 일관성이 결여된 대안들을 번갈아 제시하면서 통일독일의 나토가입만은 반대해 왔던 것이다. 따라서 소련이 왜 나토가입을 허용하는 쪽으로 입장을 바꾸게 되었는지 그 배경에 대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관측통들은 고르바초프가 종전의 완강한 반대입장을 버린 직접적인 동기로 7월초 연이어 열린 런던의 나토 정상회담,휴스턴 G­7 서방선진국 정상회담의 결과를 들고 있다. 이달초 영국 런던에서 개최됐던 나토 정상회담에서 16개 회원국들은 동서 양진영이 이제 더이상 적이 아니라는 평화선언과 불가침선언을 바르샤바조약측에 제의했다. 또한 기존 나토군사전략의 기본축이었던 핵억지원칙을 대폭 완화,핵은 최후의 수단으로만 사용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군사동맹체로 유지돼온 나토의 성격에 큰 변화를 예고한 것이다. 16일 통일독일의 나토가입 허용을 발표하면서 고르바초프대통령은 그 배경설명에서 나토의 성격이 바뀌었고 동서 군사동맹이 서로 「적이 아님」을 곧 공동선언할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서방측은 또 G­7 정상회담을 통해 페레스트로이카(개혁)에 대한 지지,그리고 국가간 의견차는 있었지만 대소 경제원조에 원칙적인 합의를 이끌어냈다. 특히 헬무트 콜서독총리는 1백50억달러에 달하는 대소 차관지원을 동맹국들에게 촉구했다. 서독은 이외에도 독자적으로 30억달러의 차관제공을 약속해 놓고 있다. 16일 소련과 서독 두 정상이 발표한 내용중에는 앞으로 정치 경제안보 문화 등 양국관계 전반에 우호협력 조약이 체결될 것이라는 대목도 들어있다. 이는 콜총리가 이번 두 나라 정상회담에서 별도의 추가 원조계획을 소련측에 제시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낳게 하는 것이다. 그외에도 서독은 동독영토에 주둔하는 소련군에 대한 경비지원까지 이미 약속한 바 있다. 이같은 잇단 경원제의는 독일통일의 보장받기 위해 서독이 소련에 대해 기울인 노력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유럽대륙에서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안보분위기는 기존 양대 군사블록의 존립기반 자체를 흔들어 놓고 있다. 다시 말하면 통일독일의 나토가입 여부가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소련의 양보는 넓게 보면 이런 맥락에서의 설명이 가능하다. 이번 양국 합의사항중 군사부문을 보면 동독주둔 소련군의 점진적인 철수,동독영토에 나토군 주둔 불허용,서독군의 단계적 감축등을 담고 있다. 특히 감군부문은 현재 빈에서 진행중인 유럽재래무기 감군협상과 보조를 맞춘다고 되어 있다. 이는 군사동맹으로서의 나토에 통일독일을 귀속시킨다기 보다는 비군사화된 나토에의 가입을 뜻하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나토의 성격변화가 전제돼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역설적이긴 하지만 이번 소련의 양보는 오히려 현 나토의 재편을 가속화시킬 계기가 될 가능성이 있다. 이런 논의는 소련의 개혁,동유럽의 변화 등에 따라 동서군사 대결이 약화됨에 따라 나토회원국내에서 이미 제기돼온 터이다. 더구나 군사대결의 상대인 바르샤바조약은 이미 회원국의 탈퇴등으로 해체의 길을 걷고 있다. 서독도 통일독일의 나토가입을 관철시켰지만 기본적으로는 새로운 범유럽안보기구가 구성돼 기존의 두 기구를 흡수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독 영토에 배치돼 있는 단거리 핵미사일등도 동서군축 협상이 마무리되면 철거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재 나토 방위전략의 바탕은 미국의 역할을 중심으로 한 대소방어와 핵억지전략이다. 그러나 지금 유럽에서 태동되고 있는 새로운 질서는 이 두원칙의 설득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통일독일의 나토가입은 이런 의미에서 새유럽안보체 구성을 향한 출발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소련은 앞으로 나토와 바르샤바기구의 상호불가침선언,과도기간 동독영토주둔 소련군의 군사지위협정,철수 시한,통일독일의 병력규모 등을 싸고 서방측과의 협상을 통해 두 군사동맹체의 사실상 무력화를 진행시켜 나가려 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집권이후 꾸준히 내세워온 「유럽공동의 집」과 궁극적으로는 맥을 같이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편 미국ㆍ영국은 소련의 잠재적 위협,거대독일의 재무장 등을 들어 현 나토체제의 비군사화에 여전히 미온적인 입장을 보일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통일독일의 나토가입 시기와 방법을 놓고 소련은 신경전을 벌이려 할 것이다. 새안보체 구상과 관련,주목되는 것은 35개국으로 구성된 유럽안보협력회의(CSCE)의 활동이다. CSCE가 현재의 단순협의체 수준을 넘어 구체적인 기구구성을 갖춰 새 유럽안보협의체 기능을 갖도록 하자는 논의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 「통일 독일」의 나토가입(사설)

    소련이 마침내 통일독일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에 동의했다.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은 콜 서독수상과의 정상회담을 끝내고 16일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통일독일의 나토가입에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것은 서독과 서방세계의 통일독일 나토가입 주장에 완강히 거부해온 소련의 중요한 태도변화 내지는 양보를 의미한다. 그것은 또 독일 조기통일작업의 마지막 걸림돌이 제거되었음을 알리는 신호이며 이로써 이미 통화ㆍ경제ㆍ사회통합을 달성한 동ㆍ서독이 오는 12월2일의 동시자유총선을 통해 정치통합의 완전통일을 이루는 길이 순조롭게 되었다. 동ㆍ서독의 통일은 유럽대륙에 거대한 게르만민족국가가 탄생하는 것을 의미하며 그것은 2차대전의 악몽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미국과 유럽은 물론 소련에도 불안한 걱정거리를 안겨주는 현상의 변화를 뜻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과 서유럽은 통일독일을 나토의 테두리속에 묶어둠으로써 거대독일의 탄생이 제기하는 위험을 최소화하려 하고 있으며 소련은 거대독일의 나토가입이 소련에제기하는 안보상의 위험을 들어 그것을 반대해 왔다. 이같은 안보상의 위험 외에도 소련은 통일독일의 나토가입을 반대해야 할 이유들이 많았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5년간의 개방ㆍ개혁에도 불구하고 경제를 개선시키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의 신사고외교는 동유럽의 상실만 초래했다는 보수파의 비판이 이번 공산당대회에서도 제기되었을 정도다. 소련은 2차대전당시 나치스 독일과의 싸움에서 2천7백만명의 인명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동독을 포함하는 동서유럽의 국경선은 그러한 소련의 희생에 대한 보답이란 것이다. 그것을 이렇다할 대가도 없이 상실한다는 것은 어떤 이유로든 설명이 안되는 것이다. 고르바초프는 통일독일의 나토 가입반대로 서독과 미국등 서방으로부터 경제지원등의 양보를 최대한으로 받아내려했던 것이다. 콜 서독수상은 이미 30억달러의 차관제공을 결정했으며 미테랑 프랑스대통령과 함께 1백50억달러의 대소지원을 서방세계에 촉구하고 있다. 서방선진국 정상회담에서도 대소 경제지원 원칙이 확인되었으며 그에 앞선나토정상회담에선 소련을 적이 아닌 잠재적인 우방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콜총리는 이같은 경제지원 약속과 나토등 서방세계의 대소 인식변화를 기초로 고르바초프대통령을 설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고르바초프는 회견에서 나토등 서방의 대소 인식변화에 고무되어 반대를 철회했다고 밝혔다. 이번 독소 정상회담에서 급부상된 통일독일과 소련간 새 조약 내지는 협정구상도 고르바초프의 결심에 큰 도움을 주었을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 공산당대회에서 고르바초프의 권력기반이 강화되어 대외문제에 관한 입지가 보다 자유로워진 것도 중요요인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이같은 유럽정세의 바람직한 방향으로의 전개에 안도하면서 그것이 한소수교등 아시아와 한반도 정세의 올바른 전개에도 기여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고르바초프 신사고외교에 있어 독일다음에 해결해야 할 중요문제는 세계유일의 냉전유산이 되어버린 한반도 분단문제라 생각한다.
  • “지자제에 「정치오염」 안된다”/최연홍(세평)

    한국정치는 그동안 타협의 모습을 보이더니 이 여름에 들어서는 최근의 불쾌지수만큼 대결과 폭력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결과 폭력의 정치는 거의 정치 전면에 나타나고 있지만 그 중심은 「지방자치」로 보인다. 언뜻 보기에 민자당은 지방자치를 원하지 않고,평민당은 「지자제가 안되면 그 어느 것도 안된다」고 단언할 정도로 지자제를 원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 보면 민자당 역시 지자제를 원하고 있다. 민자당과 평민당은 지자제선거의 방법론에서 동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정치인플레 현상 심각 이 방법론은 한국정치를 위험수위에 이르게 할 만큼 양당에 중요한 것인가. 필자의 답은 긍정적이다. 지자제의 방법론은 한국정치의 지나친 인플레 현상을 더 확산하느냐,현상유지하느냐의 정치철학적 문제를 제기한다. 한국정치는 지나친 인플레이션 현상을 보여왔다. 권위주의적 정부와 타협할 수 없는 양심,정의의 반체제 세력사이의 극한 투쟁은 한국을 「정치적인 나라」로 만들었다. 해외의 한국인들도 한국의 「정치」를 「즐겨」 말하곤 했었다. 이제 대결의 정치가 더이상 존재할 필요조건이 없어졌다. 민주주의적 선거로 출발한 노태우정부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국회와 그 안의 야당과 대결의 정치를 펼 이유가 없다. 그러나 한국정치는 타성때문인지 「정치」의 폭을 넓히려 한다. 「정치」는 「법」과 「상식」 「합리적인 사유」가 아닌 법 「위」의 정치,비/반합리적 정치를 의미한다. 정치는 시적 비상이라고 정의되기도 하나 마키아벨리의 권모술수로 정의되기도 한다. 한국정치는 시적 비상이라기 보다 권모술수적이었다. 법의 지배를 우회했고,쓸데없는 신화라도 만들어 내려는 마술사의 꽃같은 것이 한국의 정치가 아닌가 생각한다. 「정치」는 모든 일들을 「정치적」으로 처리하려 한다. 경제도 국방도 문화도 사회도 과학기술도 모두 「정치적」으로 풀려한다. 어느 면에서 북한ㆍ중국ㆍ소련공산당의 「정치」와 근사하다. 정치의 한계가 소련과 동유럽의 개혁을 불가피하게 한 것 아닌가. 아직도 북한과 중국은 「정치적」으로 두 나라의 문제를 처리하려 한다. 10억 인구의복지행정을 추구하기 보다 「똑같은 평등의 가난」을 추구했던 모택동의 「정치」,그것이 중국을 가난하게 만들었다. 문화혁명은 쓸데없는 「정치」의 대표적 예가 된다. 오히려 모택동의 마지막 정치는 중국의 역사를 10년ㆍ20년 후퇴하게 했다. ○정치 안보일수록 좋아 한국의 「정치」는 인플레되어 있다. 「전화 한 통화」로 법을 우회하고,내야 할 세금을 내지 않는 정치가 만연되어 있다. 「전화 한 통화」로 특혜분양이 있다. 일본이 2000년대 이후를 생각하며 사는데 한국은 아직도 광주의거를 마무리짓지 못하고 있다. 그것이 한국 「정치」의 비애다. 한국일간지ㆍ주간지ㆍ월간지들이 정치중심이고 정치편중이다. 일간지 첫페이지,둘째페이지,셋째페이지에도 정치와 정치에 관련된 기사가 가득하다. 기사가 될 필요가 없는 사사로운 정치인들의 일정이 아까운 지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한국 정치발전은 정치가 일간지의 면을 줄여가는 데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지자제가 정당기초의 선거를 치른다면 한국정치는 인플레 정도가 아니라 폭발적인것이라는 예측이 무리가 없다. 정치가 시ㆍ군 단위까지 확산된다면 정치는 그만큼 「낭비」적인 것이 된다. 미국 지방자치단체 선거에는 정당이 없다. 길을 닦고,다리를 놓고,국민학교,중ㆍ고등학교를 운영하는 데 민주당과 공화당의 차이가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미국의 지방정부는 시지배인(manager),군지배인에 의해서 운영된다. 시장이나 시의원들,군수나 군의원들은 아마추어 정치인들로 회의에 나올때 쓰는 거마비나 받는다. 그들은 의사들이거나,대학교수이거나,건설업자이거나,가정주부들이다. 미국의 지방정부의 개혁­지배인 중심의 체제는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정치에 염증을 느끼기 시작한(Sick and Tired of Politics) 미국인들의 개혁의지로 나타났었다. 오늘의 한국인들도 20세기 초엽의 미국인들 만큼 정치에 식상하고 있다. 한국 지자제에 정치가 끼여들 필요가 없다. 정치가는 안보이는 것일수록 더 좋다. 누구가 대통령인지,시장인지 모를때 한국정치는 발전된 것이라고 본다. 정치는 합리적인 것이 아니다. 막스 웨버는 정치는 명예를열정적으로 추구하는 직업이고 행정은 합리적인 직업이라고 정의했었다. 명예를 열정적으로 추구하는 정치가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현대사회는 합리적인 사회로 변했기 때문에 정치 그 자체에 존재의 「문제」가 생기게 된다. 그 정치의 「문제」는 바로 신화나 시의 문제가 되기도 한다. 결국 정치와 신화와 시는 점점 사라져가는 것 아닌가. 그러나 그 어느 것도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그 영역이 축소될 것이다. ○미 지자제 교훈삼아야 야당은 정치의 영역을 애써 확장하려 하고,민자당은 축소하려 하는 듯하다. 민주주의의 나라 미국에서 지방자치론을 오래 가르쳐온 필자는 정치가 없는 미국의 지방정부에서 오히려 정치가 있는 지방정부에서 보다 더 멋있는 민주주의가 보여지고 있음을 알리고 싶고,한국의 정치인들이 정치가 없는 미국의 지자제에서 의미있는 중요한 교훈을 얻기 바란다.
  • 고르비 당내입지 강화/28차 소 공산당대회 결산

    ◎보수파제거 불구,개혁세력 분열돼 타격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은 자신의 진로 및 소련의 전반적인 향방이 달린 제28차 소련공산당대회에서 「완승」을 거두었다기 보다 차라리 「고르바초프의 건재」를 과시했다. 상처뿐인 영광인 셈이다. 이번 전당대회는 원래 「페레스트로이카」의 운명을 좌우할지도 모르는 중대국면에서 열렸다. 급진 개혁파와 예고르 리가초프를 정점으로 하는 보수파가 정면 충돌할 위험성과 고르바초프 자신이 보수파의 집중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매우 컸다. 그러나 고르바초프는 리가초프의 정치적 생명을 종식시켜 당내 보수세력을 일단 잠재우는데 성공했다. 고르바초프는 또한 정치국의 개편을 통해 정치국의 전력을 약화시키는데 성공했으며 그 자신이 당서기장에 재선됐고 보수파의 거두 리가초프의 부서기장 진출을 저지,온건개혁파인 이바시코를 부서기장에 당선시키는등 「페레스트로이카」의 지속을 위한 당내 기반을 굳히기도 했다. 그러나 이같은 그의 개인적인 승리에도 불구,당을 떠나는 급진개혁파를 잡아 두는데는 성공하지 못했으며 결국 레닌이래 처음있는 소련공산당의 분당사태는 막지 못했다. 급진개혁파 보리스 옐친과 사실상 그가 이끌고 있는 민주강령그룹의 탈당은 비록 숫적으로는 큰 타격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 정치적 의미는 대단히 크다. 옐친은 그의 탈당이 소련의 개혁과 민주화를 앞당기는 계기가 될것으로 판단한것 같다. 고르바초프는 옐친의 탈당에 따른 파급효과를 극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옐친의 인기가 날로 커가고 있어 소련정국이 어디로 흘러갈지는 가늠하기 어렵게 됐다. 이번 전당대회에서는 또 「페레스트로이카」의 이념담당 메드베데프,야코블레프,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등 고르바초프의 측근들이 보수세력들로부터 집중적인 공격을 받았다. 대회기간동안 군부 대의원석에서는 『저들이 동유럽을 팔아먹었다』는 고함이 터져 나왔다. 이처럼 보수파와 급진 개혁세력의 협공에 직면한 고르바초프는 앞으로 2년내에 그의 개혁정책이 성공하지 못하면 지도부가 사임한다는 마지막 카드를 내밀어 타협의 길을 선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고르바초프는 그의 시장경제개혁이 방해받을 경우 소련사회가 붕괴할 것이라는 엄중한 경고와 정치적 수완을 적절히 구사해 강경파 반대자들을 억누르며 소련공산당 사상 가장 긴 이번 28차당대회를 장악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가 이번 대회에서 강경 보수파의 반기를 제어할 수 있었던 것은 보수파를 설득했거나 힘으로 눌렀다기 보다 보수파내에 고르바초프를 대체할 「대안」이 없었다는게 보다 더 적절한 설명이다. 보수파는 숫적으로 아직도 당내 제일의 세력이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고르바초프는 보수파와의 대결과정에서 개혁파의 지원을 받은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혁파의 상당수가 떨어져 나갔다. 옐친과 민주강령파 대의원들이 탈당을 선언한데 이어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시장 마저도 이에 가담함으로써 고르바초프는 최대공화국과 함께 2대 도시를 비공산계 지도자의 수중에 내주는 손실을 입었다. 따라서 그는 향후 2년간 급진개혁파의 지원없는 상황에서 보수파와 싸워야하는 무거운 짐을 안게됐다. 「페레스트로이카」는 이처럼 내외의어려움 속에 처해 있지만 이번 당대회는 소련사회에 내재해있던 다양한 정치적 목소리를 표출시켜 어차피 가야할 소련의 다원화에 커다란 기여를 했다고 볼 수 있다.
  • 외언내언

    「스탈린이라면 당장에 그를 총살해버렸을 것이다. 흐루시초프였다면 연금생활자로 만들어 시골 별장에 유폐했을 것이고 브레즈네프였다면 어딘가 먼 나라의 대사로 보내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웠을 것이다. 그러나 고르바초프는 그를 자신의 주변에 둘 생각인 모양이다. 소련개혁의 향방은 이 두 사람의 기묘한 줄다리기에 따라 좌우될 것이 틀림없다」 ◆지난 6월초 소련공산당 급진개혁의 「민주강령파」 지도자 옐친이 러시아공화국 최고회의의장에 선출됐을 때 미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옐친을 두고 한 말이다. 방미 길의 캐나다에서 소식을 들은 고르바초프는 『대결의 양상이 보여 걱정이다. 그가 정치적 장난을 하려 든다면 우리는 아주 곤란한 시기를 맡게 될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었다. ◆그가 12일 마침내 공산당 탈당의 폭탄선언을 했다. 고르바초프와의 타협과 협력을 비치기도 하고 갑자기 그를 공격하기도 하는등 종잡기 힘든 태도를 보여온 그가 마침내 정치적 장난을 치기 시작한 것인지 모른다. 이번 공산당대회에서 고르바초프가 수적 우세의 보수파에 밀려 당대회를 보수파가 원하는 방향의 타협으로 마무리해가는 데 대한 반발이요 견제의도임에 틀림없다. ◆고르바초프의 개혁을 지원하는 효과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동유럽에서와 같은 공산당의 완전 몰락을 원하는 것이 옐친의 「민주강령파」들이다. 개혁의 가속화를 위한 것이라 해도 당장의 소 공산당 몰락은 위험천만의 모험일 것이다. 소련은 동유럽과 다르고 너무 크고 복잡한 나라다. 서방세계도 점진적인 고르바초프 방식을 동정하는 눈치다. ◆작년에 13만6천6백명,금년 1·4분기만 8만2천여명이 탈당했지만 아직도 1천9백여만 당원의 소 공산당이다. 민주강령파는 50만 당원의 사회민주당 창당을 표방하고 있으나 대중기반이 약하다. 지난 2월 공산당 1당독재 포기 후 소련엔 이미 60여개 군소정당이 생겨났으나 공산당과는 상대가 안되는 잡당들이란 평이다. 옐친과 민주강령파의 탈당이 공산당을 상대할 수 있는 강력 야당을 탄생시킬 것인지 주목거리다.
  • “평양에 변화 조짐”외신보도를 보고/박봉식교수 서울대ㆍ정치학박사

    ◎거스를수 없는 「1989년의 혁명」/고르바초프 실각 기다리는 시간 벌기 아닌지… 프랑스혁명 200년만에 유럽은 예기치 않았던 큰 격동을 맞이하게 되었다. 1789년의 프랑스혁명은 1792년에 이르러 혁명전쟁으로 발전하였고 뒤이어 나폴레옹전쟁으로 번져 전후 25년동안 전유럽을 뒤엎는 전화를 당하게 되었다 작년에 일어난 유럽의 혁명이 200년전의 그것과는 달리 어떤 형태든 전쟁을 몰고올 가능성은 없다고 보아진다. 왜냐하면 그 혁명을 적극적으로 저지하겠다는 세력이 없기 때문이다. 있다고 하더라도 혁명의 진원지와는 거리가 먼 아시아의 중국과 북한뿐이다. 유럽에서는 혁명을 거부하는 인사들은 고르바초프의 손에,또는 그 나라국민들의 손에 의하여 제거되고 말았다. 그리고 서유럽에서는 소련과 동유럽의 변혁을 막아야할 이유는 없었다. 혁명은 전쟁을 낳고 전쟁은 혁명을 완성시킨다는 말이 있었다. 이 말은 1차대전과 2차대전의 경우 비슷하게 적중되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이번의 경우는 좀 다른 것 같다. 고르바초프의 개혁운동은 이미 폴란드와 헝가리에서 시작된 혁명의 조용한 진행을 가속화시켰고 이것을 바르샤바 탈소동맹국 모두에 확산시켰다. 그래서 동유럽내에서는 여기에 저항할 세력이 없는 셈이다. 따라서 1989년에 유럽을 휩쓸고 또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 혁명은 큰 분쟁을 일으키지 않고도 넘어갈수 있을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역사에 없는 일이 아닌가 생각된다. 위에서 본대로 프랑스의 혁명이 전쟁을 몰고 왔고 1차대전과 2차대전은 패전국이나 패전국의 지배하에 있던 지역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그러나 이번 동유럽의 혁명은 전쟁과 관계없이 일어나 예외적인 일이다. 한편 시각을 달리해 보면 한국전쟁으로 인해 동서냉전체제의 격한 대립이 체제화되어 지속되는 과정에서 소련이 군사대국으로서의 능력을 더 지탱할수 없는데서 생긴 일이라 할수 있다. 이렇게 보면 냉전에 패배한 소련에서 고르바초프주도의 혁명이 일어 났다고 할수 있다. 냉전도 전쟁이고 보면 소련이 서방측과의 냉전에 패한 것이며 그 결과 소련은 그의 지배하에 있던 바르샤바 탈소동맹국들에대한 지배권을 포기하게 되고 따라서 이 지역에 혁명이 일반화 되었다고 하겠다. 소련은 냉전에 패배한 것을 각성한 고르바초프의 지도하에 혁명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혁명은 결코 조용할수 없는 모양이다.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는 결국 소련 제국의 해체를 가져 올 것이며 소련제국을 해체해 가면서 까지 고르바초프는 그의 개혁을 정당화할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고르바초프의 개혁운동은 중도에서 머뭇거리게 될 것이며 그러는동안 그는 정치적생명을 잃고 말 것이다. 그런데 고르바초프가 도중에서 하차한다고 하여 한번 시작한 개혁을 어느 선에서 정지시킬수 있을 지가 의문이다. 시장경제체제와 민주화라고 하더라도 서유럽식으로 되기는 어려울는지 모른다. 체코나 헝가리 등은 서구화가 가능할지 모르나 소련은 서유럽을 완전히 본받기는 어려울 것 같다. 마치 한국이 구미의 영향을 40여년간 받고 있으면서 잘 흉내를 내지 못하는 것과 같으며 선진화됐다고 하는 일본이 일본식 자본주의를 갖추듯이 소련식 개혁과 소련식 시장경제가 불가피하리라 생각된다. 그런데 200년전 20여년의 전쟁으로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 제국을 쳐부순 유럽이 혁명전의 정치명분을 되찾고 구질서를 회복하려 했으나 죽 전쟁이 승리했음에도 그 혁명의 영향은 막지 못하였던 예를 본다. 따라서 중국과 북한이 유럽서 시작된 또는 사회주의의 종주국에서 시작된 혁명의 바람을 거역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물론 프랑스혁명의 바람을 보수주의국가인 러시아 프러시아 오스트리아 제국들이 협력하거나 이합집산하면서 근 100년가량 막아왔으나 1차 세계대전으로 이들 제국 스스로가 망하고 말았다. 중국과 북한은 동유럽과 소련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을 힘이 없다. 오늘날 소련과 동유럽 변화의 물결은 소련의 변화하고 있는 힘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단순한 바람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 변화를 거부하려 할 때 분쟁이 생기게 마련이다. 이 분쟁은 때로는 생사를 걸고 하는 분쟁일 수 있다. 동독의 호네커나 폴란드의 야루젤스키는 고르바초프의 전화 한통화와 면담 한번으로 대권을 내 놓거나 국내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조치를 취하였다. 그러나 중국의 등소평이나 북한의 김일성은 그럴 처지가 아니다. 이들 아시아 공산주의자들은 고르바초프의 실각을 기다려 그들의 정치노선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하고 있는 것이 기본자세인것 같다. 물론 변화의 움직임에 전술적으로는 적응하는 자세를 취하기 시작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김일성은 그의 왕국을 고르바초프의 말한마디에 공중에 날려 버리게 될 짓을 할 사람이 아니다. 방법이 있다면 무리를 해서라도 그의 왕국을 지키려 할 것이다. 여기에 우리의 딜레마가 있다. 온 세계는 데탕트를 구가하고 있는데,한반도에서 만은 냉전의 기본은 오히려 되살아날 가능성이 없지 않다. 결국에 가서 그도 별도리없이 역사의 흐름앞에 무릎을 꿇고 말겠지만 그 사이 버티려고 몸부림 치는 동안 우리 민족의 성원들은 어떤 고통을 겪어야 할지가 확실치 않다. 많은 낙관론들이 난무하고 있으나 필자는 선뜻 이 낙관론에 동조되지 않는 것이다. 월남의 경우 연 30억달러의 원조를 받고있고 이것이 반으로 줄어들전망이라 캄란만을 도로 미군이 사용할 것을 제의하고 있다. 수십년에 걸친 전쟁과 인명ㆍ재산ㆍ역사의 희생이 무엇때문이었던가를 월남의 경우 돌이켜 보게 된다. 북한은 6ㆍ25의 범죄적인 과실을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란다. 1989년 동유럽의 혁명이 아시아에도 제대로 바람을 일으켜 온 인류가 환호하고 역사의 대열에 우리도 동참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 외언내언

    월남전이 한창이던 무렵에 낯익었던 용어로 성역(Sanctuary)이란 말이 있다. 원래의 뜻은 중세의 국왕이나 법의 지배력이 미치지 못한 사원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월남전에서 베트콩이 월남에서 작전을 하고 도망가면 미군이나 정부군이 추격할 수 없었던 캄보디아영내의 기지를 두고 쓰던 말이다. 국력면에서 비교가 안된 월맹과 베트콩이 미국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이 성역의 덕분이라고 한다. ◆그러나 성역은 공산주의자들을 위해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월남전이 공산주의자들의 승리로 끝난 지 15년이 지난 지금 동유럽 공산국이 이 성역으로 고전을 치르고 있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인지도 모른다. 작년 11월9일 베를린장벽의 붕괴를 가져온 직접적인 도화선은 동독국민들의 외국대사관 피신사태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주재국의 주권이 미치지 못하는 대사관도 말하자면 일종의 성역인 것이다. ◆그리고 그 바람은 마침내 발칸반도로 옮겨 동유럽의 마지막 개방과 개혁의 거부국 알바니아를 강타하고 있다. 알바니아 주재 10여개국 대사관에 6천여명이 몰린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알바니아도 결국은 이 바람에 굴복,개혁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11일엔 이 바람이 대서양을 건너 쿠바에도 상륙했다니 카스트로의 발등에도 불똥은 튀기 시작한 셈이다. ◆바람은 동유럽에서 한동안 잠잠해지는가 했으나 알바니아·쿠바의 경우는 그렇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꾸준히 불고 있었으며 결국은 끝장을 보고야말 기세인 것이 분명하다. 두 나라는 북한과 함께 개혁과 개방을 완강히 거부하고 있는 나라들일 뿐 아니라 북한과 친밀하고도 닮은 데가 많다는 점에서 특별히 주목된다. ◆북한은 루마니아사태 때보다 더 심한 충격과 우려의 눈으로 사태를 지켜보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 어떻게 해서든 이 고비만 넘기면 무사할 것으로 생각하며 바람잘날만 기다린다면 그 보다 더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이다. 평양에도 서방대사관은 없으나 서방화된 소·동유럽 대사관들은 있다.
  • 「신질서」모색하는 유럽의 내일/해외특별기고

    ◎「통합유럽」 21세기를 주도한다/국경없는 무역… 5억인구에 번영 약속/「사회주의 결별」 동구 가세로 저력 “탄탄” 사회주의는 명백하게 유럽에서 그 막을 내렸다. 유럽의 미래에는 서구식 시장경제체제가 개인의 자유와 다당제,그리고 사적소유권의 인정 등에 기반을 둔 보다 나은 경제원칙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이것은 결국 이른바 「본 선언」의 주요 골자인 것이다. 「본 선언」은 지난 4월중순 유럽에 있어서 경제협력에 관한 3주간의 회의(CSCE)를 끝마친뒤 유럽 33개국과 미국ㆍ캐나다 등에 의해 채택됐다. 소련 대표로 「본 회의」에 참석했던 스테판 시타란 소련 부총리조차 앞으로의 경제정책에 있어서 통제,혹은 계획경제의 가능성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또 다른 소련 대표는 『칼 마르크스의 생각은 이론상으로 훌륭하지만 실제에 있어 제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유럽의 공산정권 붕괴 이후 유럽인들이 칼 마르크스와 사회주의에 대해 작별을 고하고 있다. 이는 물론 자신들의 행위를 합리화하는 것이다. 그러나실패한 이념의 시도로 야기된 충격이 치유되기 까지는 오랜기간이 걸린다. 아마도 그것은 우리시대에 있어 수많은 지식인들로 하여금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와 같은 이념을 신봉케 만든 유토피아에 대한 유럽인의 특별한 사랑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그 사람들이 지구상 그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 이념적 환상을 최초로 포기하고 삶의 수준은 물론 성공에 까지 이르게 됐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혹자는 개인의 자유와 시장경제가 단순히 자본주의 이념과 이론자체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차이점은 시장경제와 민주주의,그리고 개인의 자유가 1세기 이상동안 정치엘리트나 지식엘리트만을 위해서가 아닌 모든사람을 위해서 성공과 번영을 이루게 했다는 것이다. 실패한 정치체제를 즐기는 것은 결코 득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의 체제가 왜 실패했는가 분석하는 것은 가치가 있을 것이다. 지난 4월초 암스테르담에서 「유럽인연구회」에 의해 주관된 「세계토론회」는 바로 그러한 목적으로 시도됐다. 토론회의 연설은 최근의 정치ㆍ경제적 발전에 대한 중요한 증언들이었다. 브레즈네프시대에는 「매파」의 일원이었으며 현재는 소련 최고회의 의원인 역사가 조지 아바토프는 여기서 『한 개인의 지식습득 과정이 고통스럽듯이 현재 소련사회는 고통의 길을 걷고 있으며 또한 그러한 고통은 소련에 도움을 주고 있다』며 변혁과정을 설명했다. 그리고 냉전의 주요 이념가들로 부터 전혀 새로운 신호의 실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소련은 막대한 자원을 낭비하고 있으며 우리는 지금 위험스러우면서도 해결하기 어려운 난관에 봉착해 있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우리 스스로 깨달아야지 다른 그 누구로부터도 배울 수가 없다. 서구사회는 우리의 이같은 문제를 이해해야 하며 또한 전쟁이란 팽팽한 줄을 당기던 양자 가운데 어느 한쪽이 갑자기 줄을 놓을때 어떤 일이 생길지 생각해 봐야 한다. 물론 그같은 일이 발생한다면 줄을 계속 잡고 있던 쪽은 승리하겠지만 엉덩방아를 찧고 말 것이다. 인생은 우리에게 국제정치에 있어서는 「승리」나 「패배」라는 개념이 적절치않다는 것과 소련에 나쁜 것이 결코 서구사회에 좋은 일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암스테르담 토론회에서 서구정치가의 연설을 듣고 난뒤 조지 아바토프는 냉소적인 미소를 머금은 채 이렇게 말했다. 『아마도 소련은 유럽의 안보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토의 일원이 돼야 할지도 모른다』 위에서 지적됐듯 말만으로 모든 것이 되는건 아니다. 왜냐하면 말은 전혀 다른 목적을 은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럽의 상황은 민주주의쪽으로 유리하게 변화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서구유럽은 그러한 변화를 즐기지도,승리로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전 서독수상 헬무트 슈미트도 토론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유럽의 역사는 우리에게 함께 뭉칠 것을 가르쳐 줬다. 우리는 동유럽과 소련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EC의 형태로 함께 해야한다. 보다 강하고 밀접한 EC국가들의 결속은 단일통화와 정치단일화를 통해 보다 나은 유럽의 미래를 만들 것이다. 모든 국가간의 문화교류와 인적자원의 교류는 오래전에 이루어졌다. 앞으로는 유럽의 일방적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지구상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는데 보다 강한 단결을 보여야 한다』 헬무트 슈미트 또한 나토의 계속보존과 나토안에 거대 통일독일의 유지를 강조했다. 전일본수상 야스히로 나카소네는 토론회에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경쟁은 끝났으며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의 글라스노스트ㆍ페레스트로이카 정책으로 인해 새로운 세계질서가 마련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중국ㆍ북한ㆍ베트남 등은 동구와 소련의 발전에 충격을 받았으며 물에 관한 오랜 격언인 「물이 돌과 만나면 물은 돌을 밀어내든지 넘어가기 위해 잠시 기다린다」는 교훈을 실감했다』고 했다. 올해 봄에 우리는 점차 증대되는 유럽인의 자존심과 낙관주의를 목격했다. 어제의 적들은 아지랭이 속에서 사라지고 새로운 적들이 수평선에 그 모습을 나타내는듯 하지만 유럽인들이 자신들의 힘과 중요성을 신뢰하는 경향은 점점 더 명백해 지고 있다. 완전한 EC통합과 소련의 꼭두각시 정권이었던 동유럽을 포함한 새로운 유럽의 개념을 위해 통일독일은 새로운 요소이다. 다른지역,특히 일본과 같은 나라는 철옹성같은 유럽이 자급자족하는 지역으로 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그같은 가능성은 거의 없으며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자기모순이다. 유럽의 무역과 산업은 국경없는 자유무역을 그 근본으로 삼고 있다. 이미 미국내 유럽 EC국가의 투자는 유럽내 미국의 투자를 능가하고 있다. 일본의 인구 1억2천5백만,소련 2억8천만,미국 2억3천만명에 비교해 볼 때 유럽의 인구는 5억이다. 그리고 낙관적으로 볼 때 유럽은 현재 사회주의에 작별을 고하고 난뒤 가장 성공적인 시기의 시작단계에 있다. 암스테르담 토론회에 참가한 세계경제학자들의 주요 발언내용은 바로 이것인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서독 상업은행 도이체은행 총재이자 저명한 재정고문관인 헤이코 디에메의 말이다. 『경제학은 앞으로 무엇이 있을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유일한 과학이다』〈아스거 라슨 덴마크 욜란드 포스텐지 회장〉
  • 한국어 통일 국제회의의 의미(사설)

    우리는 단일민족으로 일컬어져 온다. 역사와 문화를 함께 하며 이 땅에 살아 내려온 것이다. 그것을 가장 극명하게 설명해 주는 것이 단일언어이다. 지구상의 어떤 나라들과 같이 하나의 나라를 이루었으면서 종족이나 민족따라 말을 달리하는 복수언어 국가가 아니다. 함경북도의 사람이 전라남도나 제주도에 가서도 의사소통을 할 수가 있는 것이 우리나라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자기에게 주어져 있는 행복에는 둔감해진다. 우리 겨레가 하나의 언어로써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행복에 대해 둔감한 것도 그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행복한 나라도 많지는 않다. 한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가보고 싶어하는 나라 가운데 으뜸으로 꼽은 것이 스위스였다. 그 스위스만 해도 모어말고 공용어만 4개를 쓴다. 독일어ㆍ프랑스어ㆍ이탈리아어ㆍ레토 로만어가 그것이다. 행정은 말할 것 없고 일상생활이 얼마나 불편할 것인가는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이러한 나라와 우리나라의 언어생활을 비교해 볼때 우리의 행복은 금방 느껴질 것이다. 물론 우리에게도 방언이라는 것이 있다. 지역에 따라 억양ㆍ어휘에서 차이를 보이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큰 틀에서 차이를 보이지 않는 그 단일언어를 숱한 역사의 수난속에서 지켜 내려온다. 그 점에서 남북 아메리카나 아프리카 대륙을 비롯한 지구촌의 수많은 종족이 강자의 지배를 받으면서 제 겨레 말을 잃고 강자의 언어를 공용어화하고 있는 현실과는 엄청나게 다르다고 아니할 수 없다. 우리는 그렇게 자랑스러운 겨레인 것이다. 그런 자긍의 역사를 가졌으면서 2차대전후 남과 북으로 갈려 언어의 이질화 현상까지 심화시켜 온 것은 우리의 커다란 불행이다. 그 이질화 현상은 이념ㆍ체제의 차이로 해서 더 심화ㆍ가속화했다고 볼 수도 있다. 얼마전 국어연구소가 남과 북의 대표적 국어사전을 놓고 분석한 바에 의하면 북한이 쓰는 단어 38%가 남한에서는 알아듣기 어려운 것이라는 결론이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남북회담도 통역을 세워야 한다는 우스개가 현실화 할 것인지도 모른다. 오는 12∼15일 중국 연변대학에서 열리는 우리말 통일작업을 위한 국제학술회의는 그래서뜻이 더욱 깊다. 이런 회의는 본디 남이나 북에서 열리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겠으나 그러지 못한 상황에서 한중 등 세계 6개국 언어학자 1백25명이 참가하여 우리말의 통일방안을 모색한다는 것은 내일에의 디딤돌을 놓는다는 것만으로도 의미 부여가 충분하다 할 것이다. 사실,우리말은 한반도의 남과 북만이 이질화해 가는 것은 아니다. 북한의 영향권에 사는 중국ㆍ소련의 우리말이 북한어화 해가는 것과같이 자유우방으로 번져난 남한 영향권의 한국어는 남한어화함으로써 지구촌의 한국어를 양분화해간다고 볼 수도 있다. 오늘날 동유럽 각국이 개방되면서 미영 양국이 「미국식 영어」와 「영국식 영어」 수출에 경쟁을 이루고 있음을 보면서 「양분화 한국어」를 보는 시각도 착잡해지기만 하는 것이다. 세계의 한족어를 통일한다는 것도 중요하지만,이 과정에서 우리 겨레의 잃어버린 어휘찾기운동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는 것도 제언해 둔다. 모국에서는 잃어버린 말을 외지에 나간 사람들은 고이 간직하면서 써내려 오는 경우도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회의에 북한도 참석했으면 한다. 민족동질성의 근본바탕은 동일언어에 있는 것이다.
  • 선진국 정상회담과 세계의 변화/한반도에도 깊은 관심을(사설)

    전후 45년간에 걸친 미소 냉전구조의 세계질서를 청산하고 화해와 공존의 다양화된 새 국제질서를 모색하고 정립하기 위한 국제적 노력이 활발하다. 5월말과 6월초에 걸친 미소 정상회담과 우리의 대미·일·소 정상외교에 이은 소·동유럽 바르샤바조약기구 정상회담,그리고 6일 폐막된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정상회담과 9일 개막되는 서방선진7개국 정상회담 등은 모두가 고르바초프 소련의 개혁·개방과 신사고 외교에서 비롯되고 있는 세계적인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국제적 노력의 일환으로 주목되고 있다. 특히 나토정상회담에 연이어 열리는 서방선진7개국 정상회담은 그러한 일련의 세계적인 정상외교를 총정리하고 결산하는 서방선진국 정상회담이란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미국 휴스턴에서 2일간 개최되는 이번 정상회담은 또한 통독의 가속화와 함께 소·동유럽의 민주화개혁및 동서냉전질서붕괴 이후 처음 열리는 서방선진국 정상회담이란 점에서도 역사적인 의미를 갖는 중요한 회담으로 평가되고 있다. 75년부터 시작해 이번으로 16회째가 되는서방선진7개국 정상회담은 그동안 동서대립이 격화되었던 70년대 말에서부처 80년대를 통해 항상 소련에 대항하는 것이 기본 과제였으며 서방세계의 대소 결속을 다지는 것이 최대의 관심사였다. 그러나 이제 상황은 변해 버렸으며 소련은 이미 대항해야 할 상대가 아닌 지원해야 할 대상으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어떻게 하면 그러한 상황의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그것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유도해 나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야말로 이번 정상회담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라 할 수 있다. 그동안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번 정상회담에서도 오늘의 국제 정치·경제·기타 상황에 대한 기본적 인식이 개진되고 그것을 종합한 선언문들이 채택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것은 새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역사적인 것이 될 것이며 앞으로 전개될 정치·경제 양면에 걸친 새 세계질서 구축의 방향을 예고하게 될 것으로 주목되고 있는 것이다. 실무급 준비회담등을 통해서 이미 윤곽이 드러나고 있는 정치선언등의 내용을 보면 소련·동유럽을 비롯,아시아·중남미·중동 등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치개혁등 민주화 움직임을 민주주의의 범세계적 규모에서의 진전으로 규정,바람직한 변화로 받아들이면서 그러한 움직임에 대해 선진국으로서 경제협력을 포함하는 공동의 일치된 지원을 다짐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또 범세계적인 민주주의의 승리가 선언되고 그러한 민주화의 흐름을 촉진시키기 위한 공동의 노력이 약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소련의 위협이란 표현이 선언문에서 사라짐으로써 정상회담 성격의 변화가 극적으로 과시될 가능성도 높은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다만 총론적인 국제정세 인식면에서의 시각 일치에도 불구하고 경제지원 문제에 대해서는 견해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 주목된다. 구질서의 붕괴에 환호를 보내면서도 새 체제의 구축에서는 각국이 그들 나름의 국익에 부합되는 방향으로의 전개를 원하는 데서 오는 분열인 것이다. 소련의 고르바초프 집권기간내의 조기통일 달성을 바라는 서독과 유럽통합의 주도권을 노리는 프랑스의 즉각적이고도 대규모적인 대소 경제지원주장과는 대조적으로 군축등에서 보다 많은 소련의 양보를 원하는 미국에 프랑스의 독주를 견제하려는 영국,그리고 소련이 점령하고 있는 북방 4개도서의 반환을 갈망하는 일본 등은 신중론을 펴고 있다. 결과적으로 경제지원문제는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를 위한 지적 정보의 제공을 공동 다짐하는 한편 금융지원문제는 각국의 자유재량에 맡기는 선에서 합의가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르바초프 없는 소련의 출현」을 현단계에서 바라는 서방국은 하나도 없다는 점에서 이번 정상회담이 민족분쟁·경제곤란·공산당분열의 궁지에 몰려 있는 고르바초프를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 주목된다. 끝으로 이번 정상회담은 물론 지난 1년간의 국제정세 흐름의 변화와 관련,우리가 특별히 주목하고 주의를 환기시키고 싶은 것은 지나친 유럽중심주의 경향이다. 그리고 아시아 특히 이제는 세계유일의 냉전유산적 분단의 땅이 되어버린 한반도에 대한 선진 각국의 깊은 관심과 이해를 촉구하고 싶은 것이다. 이번 정치선언에서는 아시아의 민주화 흐름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의 의지도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정상회담에 참석하는 일본수상과의 전화를 통한 의견교환에서 일본수상이 한국을 포함하는 아시아 신흥공업국들의 입장도 적극 반영시켜주기를 희망한 우리 대통령의 요청에 주목하면서 일본수상의 노력과 결과도 관심깊게 지켜보고 싶다.
  • 한반도 군축가능성 “노크”/스탠퍼드대 학술회의 결산

    ◎고위회담 앞두고 상대방 의중만 탐색/“통일의 전단계”… 공약수 도출이 과제로 내외의 관심을 모았던 미 스탠퍼드대 주최 남·북한·미 3자간 군축학술회의는 군축에 접근하는 근본적 입장의 차이로 뚜렷한 합의점을 도출해 내는 데 실패한 채 서로 상대방의 입장을 타진,이해의 폭을 넓히고 향후 군축논의를 계속한다는 합의만을 이끌어낸 채 7일 막을 내렸다. 그러나 이번 회의는 비록 큰 성과는 없었다 할지라도 3개국 학자가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여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완화와 평화정착 방안을 논의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며 앞으로 군축실현의 가능성을 연 작은 시작이라는 데 그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한국전 종전이후 계속된 치열한 군비경쟁과 남북한간에 뿌리깊게 박혀있는 적개심과 불신,그리고 군축문제가 안고 있는 복합성 때문에 남북한간의 군축이 빠른 진전을 이루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일 것이며 군축에 가시적인 성과를 얻기까지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단 남북한이 비록 민간학자들의 모임이라고는 하지만 서로 상대방의 의중을 어느 정도 탐색했으며 또 이것이 결국은 정책당국자들에게까지도 전달될 것인 바 이를 바탕으로 남북의 양 당사자가 상대방의 입장중에서 어느 선까지는 수용이 가능한지,또 자신의 입장중에서 변화의 소지가 있는 것은 어떤 것인지를 결정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은 틀림없다. 또 이번 학술회의 말고도 곧 고위급회담 본 회담이 개최될 전망으로 있는등 남북한 당국자들간의 대화가 재개되는 추세에 있고 이번 회의에서 그 시기가 결정되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이같은 회의를 계속하기로 합의했으므로 만남의 횟수가 많아질수록 처음의 광범한 의견차 속에서도 하나씩 접근점을 찾을 대목이 나타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이같은 전망은 물론 남북한 양측이 장기간에 걸쳐 성의있는 대화를 계속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이번 회의에서 새삼 다시 한번 확인된 것은 군축에 접근하는 남북한의 입장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우선 북한은 지난 5월31일 발표한 한반도 평화안 10개항을 공식입장으로 해여기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이 평화안은 군축을 모든 것의 전제조건으로 삼고 있어 군축이 이뤄지지 않고서는 남북한 사이에 신뢰를 구축할 수 없고 통일을 위한 대화도 성공시킬 수 없으며 협력과 교류도 실현할 수 없고 조국의 평화통일도 이룩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군비통제가 군사적 긴장을 해소하고 평화에 도달하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과다한 군비가 있기 때문에 서로를 의심하고 자신의 안보를 위협하는 적대세력으로 인식하게 된다는 게 북한의 입장이라면 불신과 적대감이 군비의 과대를 부른다는 게 한국의 입장인 것이다. 이같은 기본 입장의 큰 차이 때문에 이번 회의도 역시 과거의 많은 남북한간 회의와 마찬가지로 서로 자신의 주장만을 되풀이하다 끝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같은 입장차이가 단 한번의 회의로 해소되리라 기대한 사람은 처음부터 아무도 없었을 것이며 큰 격차를 보이는 남북한 입장중에서 어떻게 최대공약수를 찾아내 둘을 하나로 접합시키느냐가 앞으로 남북한이 풀어야 할숙제로 남게 됐다. 이번에 스탠퍼드대학에서 남북한 군축학술회의가 열릴 수 있었던 데는 미소간의 냉전종식에 따른 화해와 개방의 조류가 동유럽을 거쳐 동북아까지 그 여파가 밀려오는등 한반도 주변정세의 급변에 힘입은 바 크다. 이제 남북한간에 군축문제를 논의할 분위기가 점점 무르익고 있다. 멀지 않아 개최될 총리급 고위당국자회담 본회담에서도 군축문제가 논의될 것이지만 군축은 이제 통일에로 이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치지 않으면 안되는 절대명제인 것이다. 한반도의 군축논의는 따라서 앞으로 좀더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같은 군축논의가 과거 남북회담 예에서 보듯이 단지 몇번의 만남만 유지하다가 종식되지 않기 위해서는 작은 시작에서 군축이란 큰 열매를 맺기까지 다양한 밑거름을 주어야 한다.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군축에 임하는 남북 양 당사자들의 진지한 태도일 것이다.〈스탠퍼드=유세진특파원〉
  • “나토 군사전략 수정”확인의 대좌/런던 정상회담 의미와 전망

    ◎동구 변혁ㆍ통독 따른 새질서 모색/미ㆍ유럽안보 전면 재편의 분수령 런던에서 열리고 있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담은 냉전시대 이후를 대비한 나토의 위상변화를 논의한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회담은 특히 나토의 구조개편과 함께 새 유럽안보체제 창출을 위한 하나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나토체제가 하루아침에 바뀔 수 없는 것이며 소련등에 아직도 불확실성이 잠재해 있기 때문에 결국 큰 성과없이 끝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나토는 지난 49년 소련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창설된 이후 가장 중요한 전환점에 와 있다. 소련의 위협이 현저하게 감소되고 동유럽의 민주화로 새로운 유럽안보질서의 정립이 요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나토정상들은 따라서 급격한 정세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나토의 기본전략을 전면 재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나토는 특히 현재 진행중인 소련공산당대회에서 고르바초프의 입지를 강화해 주기 위한 전략으로 서방 안보체제가 소련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고 나토의구조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바뀌고 있음을 보여줄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관련,나토와 바르샤바조약기구간의 상호 불가침선언제안이 이번 회담에서 채택될 것으로 보인다. 불가침선언은 그러나 두 기구간에 일괄적으로 이루어질지 각국별로 개별적인 형식을 취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나토정상들은 또 40년전 아이젠하워대통령때부터 계속 유지돼온 나토의 기본 군사전략을 재검토할 것으로 예상된다. 즉 소련의 재래식 공격을 나토의 동부국경에서 격퇴시킨다는 「전진방위」전략과 바르샤바조약기구의 재래식 공격에 대해 핵무기를 선제사용한다는 「신축반응」전략을 재검토한다는 것이다. 부시미대통령은 이미 핵무기는 「최후수단」이어야 한다고 선언하고 유럽배치 핵포탄의 철수를 제의,나토군사전략의 변화를 시사한 바 있다. 영국은 그러나 나토 핵전략의 변경을 반대하고 있다. 나토 정상들은 통일독일의 나토가입에 대한 소련의 동의를 얻기 위해서도 소련에 대한 양보와 함께 나토 군사전략의 변화를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서구안보를 군사적 개념에서탈피시키고 다원화된 국제정세에 보다 효과적인 경제적 정치적 장치에 의존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토의 정치적 장래에 대해서는 회원국들간에 이견을 보이고 있다. 미국은 나토의 정치적 역할의 확대를 강조하고 있으나 서독과 프랑스는 이같은 구상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프랑스는 특히 나토의 정치적 역할의 확대에는 충분한 협의가 있어야 한다며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프랑스와 서독은 유럽안보협력회의(CSCE)의 안보ㆍ정치적 역할 강화를 주장하고 있다. 소련도 CSCE의 역할 증대를 적극 지지하고 있다. 전유럽기구인 CSCE가 새로운 유럽안보체제의 기본틀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나토회원국들은 이에 반대하고 있다. 유럽의 안보는 나토가 중심이 되어야 하고 CSCE는 유럽의 인권신장이나 인종분규의 해결을 위한 중재역할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유럽에서의 지도력을 시험받게 될 것이다. 미국은 가장 강력한 나토회원국이라는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유럽에서의 미국역할이 점차 축소될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동유럽의 변혁과 독일통일이라는 격변기에 열리는 이번 정상회담은 나토의 기본전략의 변화와 함께 미국의 지도력이 시험받는 무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 치열한 보혁 대결… 안개속 크렘린 권력판도

    ◎공산당대회 계기로 본 인맥과 노선/고르비 정점으로 「신사고 개혁」추진 개혁파/옐친 주도… 과감한 군ㆍ경제 개편 촉구 급진파/군ㆍKGB,“개혁이 실업등 초래”비난 보수파 제28차 당대회를 계기로 소련공상당내 보수ㆍ혁신간의 노선대립이 표면화 되고 있다. 소련은 현재 두세력중 어느쪽도 완전히 세력장악을 못한 일종의 「권력공백」상태에 처해있다. 당정치국의 기능이 사실상 정지되고 신설된 대통령자문위가 모든 정책입안을 담당하고 있지만 지방당은 여전히 각종 행정업무를 관장하고 있다. 새의회(인민대표회의)가 구성돼 실질적인 정책토의를 벌이고 있지만 의회내 보수세력의 존재 또한 만만치 않다. 여기에 덧붙여 「개혁2세대」격으로 급진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점차 커지고 있다. 보수ㆍ급진 양세력으로부터 협공을 당하는 양상인 소련의 현지도부가 과연 어떻게 이번 당대회를 이끌어갈지 주목된다. 새롭게 드러나고있는 각 세력의 노선ㆍ인맥을 정리해 본다. ▷개혁파◁ 고르바초프대통령을 중심으로 실질적으로 개혁 개방정책을 입안,실행에 옮기는 사람들이다. 현정치국내에도 다소 포진하고 있지만 지난 3월 신설된 대통령자문위가 이들의 활동기반이다. 「고르바초프의 분신」으로 통하는 알렉산더 야코블레프(66)가 핵심인물. 정치국원이며 대통령자문위원이다. 세계경제국제관계연구소(IMEMO)소장을 거쳐 87년 정치국원이 되었으며 페레스트로이카,글라스노스트의 이론적 바탕을 마련한 사람이다. 고르바초프에게 대통령직을 맡도록 권고한 장본인으로 알려지고 있다. 예브게니 프리마코프(60)는 「신사고」외교정책을 입안한 장본인으로 외교정책에 관한한 고르바초프의 최고위 측근이다. IMEMO소장을 지냈으며 현대통령자문위원으로 최고회의대의원. 지역분쟁의 평화적 해결과 국방비 삭감,동유럽에 대한 불간섭을 지론으로 내세운다. 대한 정책에도 실질적으로 고르바초프의 대행역을 하는 인물이다. 셰바르드나제외무장관(62)도 측근중의 측근. 그외 경제개혁추진과 함께 급부상한 경제 전문가들이 대통령자문위에 대거 기용돼 있다.국가계획위(고스플란)의장인 유리 마슬루코프(53)와 경제학자인 스타니슬라프 사탈린은 집권초기부터 고르바초프의 경제개혁을 보좌한 인물. 니콜라이 리슈코프총리와 레오니드 아발킨부총리는 「자문위」내에서 경제개혁팀을 이끌었으나 5월에 발표한 개혁안이 의회승인을 받지 못한 뒤 「희생양」으로 실각설이 나돌고 있다. 현내무장관이며 대통령자문위원인 바딤 바카틴(53)과 대통령개인보좌관인 게오르기 사크나자로프(65)는 정치구조개편을 주장하는 측근. 사크나자로프는 특히 정치국의 개편과 다당제 도입을 적극 주장하는 인물로 외교에서도 프리마코프와 한팀을 이뤄 「신사고」이론을 개발한 장본인이다. ▷급진개혁파◁ 러시아공화국 최고회의 의장이 된 보리스 옐친은 자타가공인하는 이파의 대표인물이다. 의장당선직후 러시아공화국의 주권선포를 했으며 당대회를 앞두고 고르바초프의 서기장직 사임을 주장하기도 했다. 고르바초프에 맞설 유일한 인물로 꼽힌다. 최근 급격히 부상한 인물은 4월 모스크바시장에 선출된 가브릴 포포프(53)와 5월 레닌그라드시장이 된 아나톨리 소브차크(53). 포포프는 급진적인 경제개혁을 주장하는 경제학자로 의회내 야당세력인 「지역간 그룹」의 발기인. 리슈코프의 개혁안이 미흡하다고 신랄히 비난하고 경제부처의 전면 폐지를 주장하며 모스크바시의 독자적인 경제개혁추진을 내세운다. 소브차크시장 역시 「지역간 그룹」대표로 리슈코프개혁을 맹비난하는 급진개혁파이다. 최고회의 대의원으로 경제법학자,현공산당의 지위에 법적으로 의문을 제기하는 인물이다. 당내 야당세력인 「민주강령」파의 세력도 점차 확산일로에 있다. 옐친을 비롯해 블라디미르 리센코,소브차크 레닌그라드시장 등이 지도자들이다. 이들이 내세우는 강령은 다당제,당간부 특권폐지,당소유재산 반납,군ㆍKGB내 당세포조직 해체 등이다. 모스크바시내 곳곳에서 개혁요구 시위를 벌이는 일반시민들도 무시못할 이들의 지지세력이다. ▷보수파◁ 정치국원인 예고르 리가초프(70)를 필두로 이번 당대회서일대반격을 개시하고있다. 당ㆍ군부내 지지세력을 업고 반사회주의ㆍ반공산주의 세력에 맞서 당재건을 다짐하고 있다. 새로러시아공화국공산당 제1서기에 선출돤 이반 폴로즈코프(55)도 자타가 공인하는 정통마르크시스트. 정치국원으로 KGB의장인 블라디미르 크루츠코프(66)도 고르바초프의 측근이면서 이번 당대회연설에서 보수로 회귀한 듯한 발언을 해 주목을 받고 있다. 마르크스 레닌주의에 입가,개혁정책이 빈부격차와 실업ㆍ범죄ㆍ마약사범 증가등 부작용만 가져왔다고 현지도부를 통박한다. 드미트리 야조프(67)국방장관도 군부개혁과 관련,지도부를 비난했다. 군부내 당세포를 폐지하려는것은 부당하다는 공식입장을 밝히고 있다. 대통령자문위 소속의 베니야민야린(50),보리스 그로모프(46)도 보수노선을 고집하는 인물. 현역 육군중장으로 키예프군관구사령관인 그로모프는 군은 정치와 분리될수 없다며 개혁정책이 지금같이 계속 혼란을 가져온다면 군이 움직일수 밖에 없다는 주장을 펴는 인물이다.
  • 외언내언

    동서독의 통화·경제·사회통합에 쏠렸던 세계의 이목이 다시 소련으로 옮아가고 있다. 2일부터 10일간 예정으로 열리고 있는 모스크바의 제28차 소련공산당대회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그 결과는 소련뿐 아니라 세계의 내일까지도 결정적으로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갖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와 신사고 외교의 결과로 동유럽의 공산당들은 작년 후반부터 금년 초반에 걸쳐 완전히 몰락했다. 한때 「전지전능」의 대명사였던 공산당이 이제는 「무지무능」의 상징으로 전락했으며 증오와 기피의 대상이 되고 있다. 소련에서 동유럽으로 불어닥친 이 바람이 이제 다시 소련으로 되돌아가는 「부머랭」 현상을 일으키며 원조의 공산당을 뒤흔들고 있는 것이다. ◆소련의 공산당은 무사할 것인가. 소련에서도 공산당의 인기는 땅에 떨어진 지 오래다. 소련신문의 독자여론조사에 따르면 소련공산당이 본래의 기반인 노동자·농민의 이익을 위한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고 보는 사람은 6%에 불과했으며 85%가 당관료의이익만을 추구하고 있다는 비판적 견해를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련에서는 이 공산당을 대신할 조직적인 정치세력이 없다. ◆이번 당대회에 임하고 있는 고르바초프대통령의 고민도 바로 여기에 있다. 지난 5년동안 공산당은 그의 개혁추진의 발목을 잡는 중요한 걸림돌이 되어 왔다. 소련사회의 구석구석까지 스며있는 공산당조직은 기득권의 옹호를 위해 개혁의 진행을 방해하고 지연시키는 데 큰 몫을 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공산당을 버리든가 개혁하지 않고는 소련개혁의 앞날은 절망이란 것이 옐친등 개혁파는 물론 고르바초프의 생각이다. 개혁을 거부하는 보수파를 향해 이미 시작한 개혁의 길을 재촉하든지 보수세력주도의 암흑시대로 돌아가든지 선택하라는 고르바초프대통령의 개막연설 위협도 이런 배경위의 절규인지 모른다. 한반도의 운명과도 무관할 수 없게 된 소련 공산당대회의 귀추가 주목된다.
  • “통독 급진전 축하”/노대통령,콜 서독총리에 전화

    노태우대통령은 2일 하오 서독의 헬무트 콜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콜총리의 영도아래 독일통일이 급진전되고 있는 데 대해 축하한다』고 말하고 『분단국인 한반도에도 평화통일이 오도록 콜총리와 독일국민의 성원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노대통령은 이날 동서독이 경제·통화·사회통합 협정이 1일로 발효된 것과 관련,이같이 축하하고 오는 9일부터 미국휴스턴에서 열리는 선진 7개국 정상회담에 대해 『한국은 동유럽및 소련의 개혁을 중시하고 특히 사회주의 국가가 시장경제와 민주화로 이행하는 데 대해 강력히 지지한다』면서 한국의 입장을 전달해 줄 것을 요청했다. 10여분동안 계속된 이날 양국 정상간의 통화에서 콜총리는 『40년간 분단의 고통을 겪은 우리에게 독일의 통일은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고 창조하는 것이며 우리 역사에 있어 큰 사건』이라고 말하고 『독일국민은 특별한 관심을 갖고 한국의 조속한 통일을 위해 지원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 동독 교두보확보 겨냥/서독과 경협확대 추진/상공부

    정부는 동서독의 통화 및 경제통합과 관련,단기적으로는 상품수출 확대방안을 추진하고 장기적으로는 투자진출로 동독및 주변국가와 경제협력 교두보를 확보토록 추진할 방침이다. 상공부는 2일 동서독 통화 및 경제통합과 동독시장진출방안에서 앞으로 서독의 대동독 및 대동유럽영향력이 커지고 서독을 중심으로 거대한 통일경제권을 형성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서독과 경제협력을 확대해나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상공부는 이 방안에서 구체적인 진출방안으로 상품수출은 경제통합이후 동독의 특수와 경제개발계획 등을 감안,동독이 필요로하는 물자를 파악하고 기존 거래선과 유대를 강화해야 한다고 전제,동독에서 앞으로 고가의류 혁제품,승용차 및 부품,냉장고 접시 세척기 세탁기 오디오 TV VTR등 가전제품,기호식품류 등의 특수가 일어날 것같다고 내다보았다.
  • 서유럽배치 미 핵포탄 전면 철수/나토,5일 정상회담서 발표

    【브뤼셀 로이터 연합】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는 오는 5일 런던에서 열리는 회원국 정상회담을 통해 서유럽에 비치된 모든 미국 핵포탄의 철수를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고 브뤼셀의 나토 소식통들이 1일 밝혔다. 이 소식통들은 현재 나토는 동유럽 배치 소련군 병력의 완전철수를 조건으로 대부분 서독에 배치돼 있는 핵포탄을 철수시키겠다는 미국측의 제안을 계속 논의중이라고 말하고 합의가 나오면 런던 정상회담에서 이에 관한 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들은 이어 이같은 조치가 실시되면 서유럽의 나토측 핵군사력은 약 50% 감소될 것이라고 말하고 이에따라 소련에 대해서도 통일독일이 나토 회원국으로 가입하더라도 군사적 위협요소가 되지 않을 것임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 노대통령 「국민과의 대화」 서두연설

    ◎“민주ㆍ번영ㆍ국민통합이 통일의 바탕”/북한물자 직반입 전면허용/불로소득ㆍ상속재산 중과세/복지요원 4천명 배치… 저소득층 자립지원 3년전 오늘,온 국민의 열화와 같은 뜻을 받들어 「6ㆍ29선언」을 발표한 것을 시발로 한국의 정치적 민주화는 시작되었습니다. 민주화의 과정은 법질서가 흔들리고 지켜져야 할 가치와 권위마저 훼손되는 전환기적 현상을 거쳐야 했으나 우리에게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북한변화 대비할 때 앞으로는 자율에 따라 전개되는 새로운 상황을 새로운 의식으로 대응해야 하는 사회전반의 변화가 이루어졌으며,밖으로 한국은 거리낄 것 없는 민주국가로 세계속에 새로운 위상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하고 번영하는 나라가 되었기 때문에 동유럽의 많은 사회주의 국가와 수교를 하고 지난날 생각할 수 없던 한소 정상회담도 하게 되었다고 믿습니다. 이제 소련과 중국,사회주의국가와 우리나라의 관계가 정상화되고 있는 현실은 우리가 사는 한반도에 평화와 통일을 열 중대한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는 점을 말해줍니다. 90년대는 우리가 평화통일을 이루는 연대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북한의 변화와 통일의 전기가 어느때 우리앞에 닥치더라도 이에 대비할 태세를 이제 구축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 경제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고 국민 각 계층의 갈등을 해소하여 화합된 사회를 이루는데 모든 힘을 결집해야 합니다. 우리가 90년대에 이 두가지 과제를 성취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통일과 21세기 우리 민족의 장래가 결정될 것입니다. 90년대 한 단계 더 높은 발전과 국민통합을 우리가 이루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일을 해내야 합니다. 첫째,평화적 통일을 지향하고 통일에 대비하는 경제체제를 이루어가야 합니다. 우리는 민족성원 모두의 행복과 번영을 이룰 수 있는 경제력을 키워가야 합니다. 경제분야에 있어서는 정치성을 초월하여 남북한간에 서로가 필요로 하는 물자ㆍ기술ㆍ자본을 교류하고 경제협력을 추진할 것입니다. 이를위해 북한을 통해 들어오는 항공기와 선박을 비롯한 수송수단과 물자의 반입을 제한없이 허용할 것입니다. 소련ㆍ중국 등 사회주의 국가와의 경제협력은 우리의 통일과 번영을 실현한다는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추진되도록 지원,권장해 나갈 것입니다. ○물가상승 한자리로 둘째,우리 경제가 정부주도의 개발단계를 벗어남에 따라 기업ㆍ근로자ㆍ소비자와 정부 등 모든 주체가 역할을 분담하여 경제의 선진화를 이끌어가야 합니다. 정부는 물가상승률을 한자리수에 머물게 하는데 정책의 우선을 두고 건실한 성장이 이루어지도록 모든 정책적인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시장경제체제에서 번영을 이루는 주체는 민간부문의 기업이며 경제활동에 종사하는 모든 국민일 수밖에 없습니다. 기업은 첨단ㆍ선진산업과 기술ㆍ인력개발에 더 많은 투자를 해나가야 하며,근로자는 생산성을 향상해야 합니다. 이처럼 기업과 근로자 그리고 정부가 힘을 모아 경쟁력을 강화하여 수출을 늘리고 연간 8∼9%의 건실한 성장을 해가면 1997년까지 국민소득 1만달러를 달성할 수 있습니다. 우리 경제의 앞날은 산업평화에 달려 있습니다. 셋째,발전의 기반을 확충하고 국민 모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과제를 본격적으로 해결해가야 합니다. 경부선의 고속전철화 사업,교통혼잡을 빚고 있는 경인ㆍ경수간 등의 고속도로 확충,서해안 고속도로 건설 등은 국민생활의 편익뿐 아니라 경제발전을 위해 당장 해야할 일입니다. 넷째,이 사회의 계층간ㆍ부문간 갈등의 요인을 해결하여 국민의 통합기반을 튼튼히 하지 않고서는 더이상의 발전이 어렵다는 인식하에 땀흘려 일하는 모든 국민에게 더 밝은 내일을 보장해 주는 「희망의 사회」를 이룩해야 합니다. 정부는 자유시장경제의 창의와 효율이 최대한 발휘되도록 규제와 간섭은 대폭 축소하면서 시장기능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분배와 사회정의를 적극적으로 실천해 나가야 합니다. 이를위해 정부는 불로소득과 상속재산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도록 세제를 개혁하고 주택ㆍ의료ㆍ교육분야에 과감한 투자를 해나가는 한편 소외계층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 나갈 것입니다. 올 가을 세제개혁을 통해 근로소득에 대해서는 세금을 줄이는 대신,땀흘리지 않고 번 소득과 상속재산등에 대하여는 세금이 무겁게 부과되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세제개혁에는 집이 없는 저소득 근로자에 대한 특별공여제도를 마련하여 전ㆍ월세값 인상에 다른 근로자의 부담을 덜어주고 의료비 공제혜택을 넓혀 서민의 의료비 부담을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주택문제가 우리 근로자와 서민들의 가장 절실한 소망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근로자주택등 공공부문에서 짓는 90만호의 서민주택 입주가 올 가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어려운 계층의 주택사정은 눈에 띄게 나아질 것입니다. 국민들이 집값이 올라 어려움을 겪는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부동산투기는 이번 기회에 반드시 근절되도록 하겠습니다. 대기업이 내놓은 불요불급한 부동산은 반드시 처분이 되도록 하고,기업이 비업무용 부동산을 사들이지 못하도록 철저히 대처해 나갈 것입니다. 현재 강력한 대책으로 부동산 투기가 진정되었다고 정부는 방심하고 있지 않으며,부동산 거래를 실명화하는 법률을 제정하여 투기행위를 제도적으로 봉쇄할 것입니다. 작년부터 전국민 의료보험이 실시된 이후 국민의 의료복지는 획기적으로 향상되었습니다. 병실부족을 개선하기 위해 앞으로 3년간 2만개의 병실을 늘리도록 민간병원의 신증설을 지원하는 방안을 강구하고,응급환자가 언제 어디서나 즉시 치료받을 수 있도록 내년까지 응급의료체제를 완비하겠습니다. ○응급의료체제 완비 잘사는 농어촌을 만들기 위한 종합발전대책은 작년에 발표하여 많은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당장 영세농어가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일이 시급하기 때문에 이들의 농외취업 직업훈련을 확대하고 추곡등 정부수매는 이들 농어가에 대해 우선적으로 실시할 것입니다. 우리들 주변의 어려운 소외계층을 돕는 일은 국민화합의 바탕입니다. 오는 92년까지 대학에서 사회복지 분야를 전공한 전문요원 4천명이상을 채용,전국의 저소득층 밀집지역 읍ㆍ면ㆍ동에 배치하여 가구별로 실정에 맞는 자립책을 지원할 것입니다. 국민 모두가 소외됨이 없는 복지사회는 우리 사회가 안정위에서 발전을 이룩하는 굳건한 바탕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남은 임기 2년반동안 복지사회의 모든 것을 이룩할 수 없다고 해도 반드시 균형된 사회의 바탕은 이룩해 놓을 것입니다. 다섯째,국민이 안심하고 생활을 영위하며 신뢰를 나누는 사회를 이룩해야 합니다. ○민생치안확립 다짐 정부는 민생치안의 확립을 다짐하고 범죄와 폭력에 대해 강력히 대처하고 있으나 전환기를 거치면서 아직은 새로운 질서가 자리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언론의 자유,국민 각계의 거침없는 목소리로 부정과 비리는 그 설 자리가 좁아졌으나 우리 사회 일각에는 아직 지난날의 타성이 잔재해 있습니다. 정부는 이 모든 문제에 대해 결연한 의지로 대응해나갈 것입니다. 이 모든 사회적 불안을 제거해 가는데 있어서도 민주주의의 새로운 환경속에서 국민의 참여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맞고 있는 이같은 일을 해결하여 선진국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사회 각계의 의식에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자기의 몫을 주장하기 전에 자기가 할 일을 생각하고 자제하고 협조하여 그가 맡은 직분을 다할 때 민주주의와 발전,국민의 화합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몇년동안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선진국이 될 수 있느냐,없느냐… 통일을 이룰 수 있느냐,없느냐가 결정될 것입니다. 저의 임기 절반에 가까워 옵니다만,저는 남은 임기,저의 모든 것을 바쳐 겨레의 소망을 이루는 데 앞장설 것입니다.
  • 다시는 전쟁을 말하지 말자/6ㆍ25 40주년에(사설)

    한반도를 둘러싸고 새로운 국제기류가 조성되고 있는 가운데 6ㆍ25동족전쟁 발발 40주년을 맞는다. 40년전 그날은 일요일이었고 40년후 오늘은 월요일이다. 같은 민족끼리 벌였던 열전의 포성은 멎어있지만 지금 한반도에서 전쟁의 그림자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40년전 그들은 남쪽에 대고 포탄을 퍼부으면서도 그들의 대남스피커는 평화와 민족과 해방만을 선전했다. 지금 상황이 그때와 크게 다를 바 없다. 동서 양대진영간의 해빙과 군축추세에도 불구하고 분단 45년,전쟁발발 4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남북한간의 불신과 긴장은 이렇듯 끝없이 지속되고 있다. ○왜 전쟁은 일어났는가 진실은 하나다. 결코 둘일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민족사 최대의 비극인 6ㆍ25를 놓고 전통적인 남침설에 대항하는 북침설에 남침유도설까지 나돌면서 진실이 가려지려할 때가 있었다. 따라서 6ㆍ25동족전쟁에 관한 한 누가 왜 전쟁을 일으켰는가,그리고 전쟁의 결과는 어떠했는가,우리는 그것을 문제로 삼아야 한다. 역사는 바로 봐야 한다. 6ㆍ25가 남침이냐 북침이냐는 문제는 이제 논쟁거리조차 될 수 없는 역사의 사실로 확정되었다. 6ㆍ25남침의 움직일 수 없는 증거와 사실들은 결과적으로 그 남침을 부추겼고 무력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소련 내부로부터 걷잡을 수 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지금 북한에서는 「6ㆍ25」를 전후하여 갖가지 조직적 사업을 통해 주민들에 대한 대한ㆍ대미 선전선동과 적개심 고취가 한창이라고 들린다. 북한 당국자들에게 있어 6ㆍ25는 지금껏 북침 전쟁이다. 그 한국이 지금 자기들의 가장 큰 지원자였던 소련과 관계를 개선하고 정식 수교마저 눈앞에 두고 있다. 소련으로부터는 남침 전쟁도발이래 유일독재체제를 유지해온 김일성의 정체가 폭로되고 있고 남침의 움직일 수 없는 증거들이 제시되고 있다. 그가 전쟁을 통해 확보하고 유지했던 유일체제가 흔들리는 것을 아마 김일성은 두려워하고 있을 것이다. 6ㆍ25전쟁의 비극이 누구에 의해서 비롯됐는가는 전세계가 다 알고 있다. 그 원흉은 김일성이며 북한 공산주의자들은 그 공범자들이다. 부질없는 논쟁은 그만두고 동족전쟁의 책임자는 이제 역사와 민족앞에 사죄해야 한다. ○전쟁의 결과는 무엇인가 생각하면 부모형제가 총부리를 겨눠야 했던 40년전 6ㆍ25의 상흔은 아직도 우리 가슴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3년1개월동안 치러진 그 전쟁은 이 민족 모두를 희생자로 만들었다. 전쟁이래 40여년간 지속돼온 동족간의 첨예한 군사적 대결은 서로의 장벽을 보다 높이 쌓아올렸고 의식의 골마저 깊게 패어져 역사상 경험한 바 없던 동족간의 심각한 이질화 현상마저 초래하기에 이르렀다. 전쟁은 참혹했다. 조상이 물려준 한 땅덩어리에서 사생결단으로 총부리를 겨눈끝에 국군과 유엔군의 병력손실만 사망ㆍ실종ㆍ부상 등을 합쳐 1백15만에 달했다. 민간인 피해는 1백만명,전재민 4백만명,전쟁미망인 30만명,전쟁고아 6만명이라는 엄청난 인명피해를 남겼다. 재산피해는 또 어떠했는가. 결코 잊혀질 수 없는 전쟁의 실체들은 전체국민의 30%남짓한 전쟁체험세대들에겐 아직도 여러 모습으로 남아 있다. 휴전선과 판문점,국립묘지의 묘비들이 그것이고 40년만에 이 땅을 다시 찾아 전쟁의참혹성을 증언하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전쟁의 실체인 것이다. 직접적인 전쟁의 상흔이나 실체 이외에 6ㆍ25가 우리에게 남긴 더 큰 상처는 분단의 굴레를 우리민족 가슴속에 깊이 내면화시켰다는 사실이다. 거기에 더하여 전쟁에 대한 위기적 인식을 생활화시켰다는 점이다. 국민의 76%가 북한의 재침가능성을 우려하고 있으며 6ㆍ25에 대한 인식도와 관련하여 국민의 45%가 또다른 6ㆍ25의 재발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굴레를 벗어버리지 않으면 안된다. ○북한,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6ㆍ25전쟁 40년이 지난 뒤에도 그 전쟁의 도발자는 살아있다. 그러나 그 북한의 김일성은 아직껏 단 한번도 전쟁도발의 과오와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동족전쟁 그 자체가 그의 한반도 무력적화통일 전략에서 비롯된 민족자해행위였음이 명백한데도 그는 아직도 평화를 원하지 않는다. 그에게 있어 남한은 아직 해방되지 않은 남반부이며 분단상태의 해결수단은 무력이외에 다른것이 아닌 것이다. 즉 정확히 말해 김일성은 아직도 전쟁적 방법으로 한반도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 대비해야 한다. 세계는 지금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있다.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국가들의 자유개방물결은 기존의 국제질서를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미소의 화해는 동서양진영의 긴장과 군사적 대립의 상징이었던 나토및 바르샤바조약기구의 근본적인 변질을 가져왔다. 강대국의 팽창주의는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40년전 6ㆍ25 그날에 그들은 조국의 통일,민족의 해방을 외치면서 소련제 탱크,전투기와 막강한 기계화부대를 앞세워 38선을 돌파했다. 40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에도 그들은 엄청난 병력과 화력의 70%이상을 휴전선 일대에 전진 배치하고 있다. 세상이 이렇게 변하고 그들의 관심이 온통 한반도에 쏠려있는 오늘 북한은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이제는 평화를,그리고 통일을 얘기해야 한다. 40년전 전쟁의 아픔을 잊는 길은 그것뿐이다.
  • 본사 6ㆍ25 40주맞아 성인남녀 1천명 의식조사

    ◎서울신문 6ㆍ25 40주 특집/조사방법/현대리서치연구소 최근 6ㆍ25에 대한 다각적인 조명이 활발히 전개되는 가운데 서울신문사는 현대리서치연구소(대표 박종선)와 공동으로 우리 국민들의 6ㆍ25관ㆍ대북관ㆍ통일관 등에 대해 전국 전화여론조사를 실시하였다. 이번 조사는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 20세이상 성인남녀 1천명을 상대로 지난 현충일 전후 사흘동안 매일 저녁 6시부터 9시반까지 실시되었다. 이번 조사는 조사대상을 시도별 인구비례로 각 시도에 할당한 다음,해당 시도의 전화국번을 일렬로 나열하고 난수표로 할당된 표본수만큼 전화국번을 추출하였다. 이렇게 추출된 전화국번에 대하여 난수표로 네자리 숫자를 부여하여 그것을 전화번호로 삼았다. 그리고 대상 가구에서는 전국인구 구성특성에 따라 남녀ㆍ연령을 할당하여 최종적인 조사대상자를 선정하였다. 이번 조사의 응답자 구성은 지역별로 서울 2백50명,경기ㆍ인천 1백65명,강원 40명,충청ㆍ대전 1백5명,전라ㆍ광주 1백34명,경상ㆍ부산ㆍ대구 3백6명,제주 10명이다. 성별로는 남자 5백3명,여자 4백97명이며 연령별로는 20대 3백48명,30대 2백39명,40대 1백76명,50세이상 2백37명이다. 이번 조사의 표본추출이 완전 무작위 추출이라고 보면 오차는 신뢰수준 95%에서 ±3.1%이내이다. 이번 조사에서는 6ㆍ25에 대해 조금이라도 경험이나 기억이 남아있을 만45세이상을 6ㆍ25세대,만44세이하를 전후세대라고 규정해 분석개념으로 사용하였다. ◎“한반도서 전쟁가능성 점차 줄고 있다” 66%/“그 상흔 아직도 잊을 수 없어” 61%/전쟁발발 책임은 북한ㆍ소ㆍ미ㆍ일 순/6ㆍ25세대 40%만 “북한은 공동번영의 동반자” 간주… 전후세대는 53%가 긍정적/“김일성후 김정일 권력승계” 57%/“통일정책 더 과감히 추진을” 44% ○가슴속에 응어리로 6ㆍ25가 일어난지 올해로 40년이 지났는데 과연 국민들의 마음속에 어떤 상처가 남아 있을까. 우선 6ㆍ25의 상처나 피해가 자신에게 남아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대해 응답자의 29.3%가 「많이 남아 있다」는 생각이고 31.9%가 「약간 남아 있다」는 반응을 보여 전체적으로 우리 국민의 6할이상(61.2%)이 현재 6ㆍ25의 상처를 간직하고 사는 것으로 드러났다. 세대별로 보면 6ㆍ25세대는 상처가 남아 있다는 응답이 무려 79.3%(많이 50.3%,약간 29%)인데 비해 전후세대는 53%(많이 19.9%,약간 33.2%)에 머물고 있다. 더구나 6ㆍ25세대는 「상처가 많이 남아 있다」는 반응이 월등히 많아 6ㆍ25세대에게 6ㆍ25는 아직도 대단한 상처로 마음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전후세대도 6ㆍ25세대보다는 적지만 전체적으로 두사람 중 한 사람이 6ㆍ25의 상처가 자신에게 남아 있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향민 아픔은 계속 6ㆍ25의 상처나 피해가 자신에게 남아 있다고 응답한 사람들에게 구체적으로 상처나 피해의 내용을 물은 결과 가족이나 친지의 부상이나 사망이 32.3%,실향이나 이산가족이 21.5%,분단고착이 17.9%,나라발전 저해가 16.4%,재산피해 10.3% 등으로 나타났다. 인명피해나 재산피해 등 좀더 직접적인 요인에 대해서는 6ㆍ25세대의 상처가 더 깊으며,분단고착이나 나라발전 저해 등의 간접적인 상처는 전후세대에 약간 더 많다. 반면실향이나 이산가족이라는 반응이 6ㆍ25세대(14.7%)보다 전후세대(26.1%)에 더 많은 점이 주목된다. 직접적인 상처는 시간과 세대가 경과하면 어느정도 줄어들고 있지만,고향을 잃어버리고 혈육이 나뉘어진 아픔은 세대가 바뀌어도 오히려 증폭되는 경향이 엿보인다. 「남북대화」하면 우선 이산가족이 떠오르는 것도 이번 조사에서 나타난 민족정서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보여진다. ○남침은 엄연한 사실 최근 6ㆍ25 책임론에 대해 여러가지 주장이 제기되고 있으며 일각에서는 북침설까지 운위되는 실정이다. 이번 조사에서 6ㆍ25발발에 책임이 무거운 나라를 두나라 지적하게 한 결과 역시 북한이 56.0%로 가장 많고 다음으로 소련(51.9%) 미국(34.1%) 일본(22.3%) 남한(17.1%) 중국(11.9%)이며 「모르겠다」는 응답도 6.7%이다. 이 결과를 보면 최근의 다양한 전쟁책임론이 다투고 있지만 6ㆍ25는 역시 북한과 소련에 의해 야기된 전쟁이라는 인식이 국민들 사이에 광범위함을 알 수 있다. 또한 미국이라는 지적도 34.1%에 이르러 최근의 대미감정이 부분적으로반영되고 있다고 보여진다. 반면 6ㆍ25에 직접개입한 중국이 전쟁발발에는 가장 책임이 없는 나라로 인식되는 점도 흥미롭다. 세대간에도 인식의 차이가 있어 6ㆍ25세대는 주로 북한과 소련에 책임을 묻고 있는데 비하여 전후세대는 북한ㆍ소련ㆍ미국ㆍ남한 등에 책임이 상대적으로 분산되어 있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특히 전후세대에서는 북한이라는 지적이 상대적으로 낮아지며 반대로 미국ㆍ남한이라는 지적이 높아지고 있어 부분적이나마 젊은 세대의 의식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북녘 얼음도 녹을 것 최근에 소련이나 동구의 개방화는 우리의 커다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것은 크게는 공산세계의 변모를 예고하는 일이고 좀더 직접적으로는 대북관계,나아가 통일문제에 직결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번 조사에서 소련이나 동구의 개방화에 대해 북한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물어본 결과,「개방화로 갈 것」이라는 전망이 53.2%에 달하며 「변화없을 것」이라는 의견이 23.7%이다. 반면,「더욱 폐쇄적으로 갈 것」이라는 생각은 15.8%에 불과하다(「모르겠다」는 7.3%). 이러한 결과는 북한은 변하기 어려운 사회라는 인식이 일각에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결국은 북한도 개방화의 물결에 합류할 것이라는 전망이 주류를 이루고 있음을 보여준다. 세대별로 보면 북한도 개방화로 나아갈 것이라는 전망이 6ㆍ25세대(47.7%)보다는 전후세대(55.7%)에 더 많다. ○동반자 인식이 우세 현재 우리사회에는 북한에 대한 양면적 시각이 갈등을 겪고 있다. 하나는 공동번영의 동반자라는 인식이고 또 하나는 대립적인 적대세력이라는 인식이다. 과연 일반국민들의 인식은 어떠한지 물어본 결과 동반자로 보아야 한다는 의견이 48.7%이고 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의견은 32.5%로 나타났으며 『꼭 어느쪽이라고 할 수 없다』는 의견도 18.8%였다. 이처럼 북한은 기본적으로 동반자라는 인식이 우세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적이라는 인식도 적지않다. 이러한 결과는 북한을 기본적으로 어떻게 대해야 하느냐는 문제가 우리 사회내에서 당분간 더 논란을 벌일 것이라는 점을 시사해 주고 있다. 특히 이러한 인식의 격차는 세대별로 더욱 크다. 6ㆍ25세대는 북한이 적이라는 의견이 47.4%,오히려 동반자라는 인식(40.0%)을 앞서고 있다. 반면 전후세대는 동반자라는 인식(52.6%)이 적이라는 인식(25.8%)을 크게 앞지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꼭 어느 쪽이라고 할 수 없다』는 의견이 6ㆍ25세대(12.6%)보다 전후세대(21.6%)에서 많은 점도 흥미롭다. ○「세습체제」수용 자세 한반도 장래에 관한 문제 중에 「김일성 이후」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그리고 김일성 이후 문제의 핵심은 김정일이 권력을 이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한 우리 국민의 의견을 물어본 결과,김정일이 권력을 이을 것이라는 전망이 56.6%로,권력을 잇지 못할 것이라는 의견(34.5%)을 크게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모르겠다」는 8.9%). 세대별로 보면 권력을 계승하리라는 전망이 6ㆍ25세대에서는 50.0%인데 비해 전후세대에서는 59.6%에 달하고 있다. 한편 권력을 계승한다는 응답자(5백66명)중에서 북한이 앞으로 개방화로 나갈 것이라는 의견이 45.4%인데 비해 권력을 계승하지 못한다는 응답자(3백45명)중에는 개방화 전망이 65.2%이다. 이처럼 우리 국민은 김정일의 권력계승이 북한의 개방화에 약간 부정적인 것으로 보고 있는데,이는 김정일 체제를 김일성 체제의 연장으로 인식하는 일반적 통념에 근거한다고 보여진다. 이번 조사결과는 그러한 부정적 인식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의 거의 6할이 「김일성이후는 김정일 체제」라는 점을 현실적으로 수용하려는 자세를 보인다고 해석된다. ○전쟁 재발성은 희박 6ㆍ25와 그 이후의 격렬한 대립의 시대를 지내온 우리 국민들은 최근 급변하는 내외 정세 속에서 한반도에서 전쟁 가능성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물어본 결과 「전쟁 가능성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의견이 66.0%로,「전쟁 가능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는 반응(17.9%)을 압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그대로」 6.1%,「모르겠다」 10.0%). 더구나 이러한 의견은 세대간에도 거의 차이가 발견되지 않아 한반도에서 전쟁의 그림자가 걷히고 있다는 인식이 상당히 광범위한 셈이다. 최근 소련과 동구의 개방화로 촉발된 동서 해빙물결이 우리 사회에도 밀려왔고 특히 지난번 한소정상의 만남이 그런 물결을 더욱 가깝게 느끼도록 했다고 보여진다. ○성급한 평화분위기 이처럼 유례가 없는 평화분위기 속에서 우리 국민들은 통일정책의 추진속도를 어떻게 인식하는지 물어본 결과,43.7%가 「지금보다 더 과감하게」라는 의견인 반면,37.4%는 「지금보다 더 신중하게」라는 주문이다(「지금처럼」8.0%,「모르겠다」10.5%). 이러한 결과는 국제적 해빙물결,북한의 개방기대,한반도의 평화분위기 등에 비추어 보면 의외로 신중론이 많다고 볼 수 있다. 세대별로 보면 6ㆍ25세대는 적극론(35.6%)보다는 신중론(41.3%)이 오히려 우세하며 전후세대는 적극론(47.4%)이 신중론(35.7%)을 앞서고 있다. 이처럼 한반도의 전쟁가능성,북한의 개방 가능성 등 현상적인 문제에 대한 인식에서는 어느 정도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지만 그를 바탕으로 한 정책방향에 대해서는 여론이 양분되어 있다. 이런 양분된 의견이 자유롭게 토론되어 하나의 국민적 대안으로 제시되고 추진되는 일이 무엇보다 긴요한 과제일 것이다. ◎설문 내용ㆍ응답 ▲올해로 벌써 6ㆍ25가 발발한지 40년이 지났습니다. ○○님께서는 어떤 형태이든지간에 6ㆍ25로 인한 상처나 피해가 현재 ○○님 자신에게 남아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①상처나 피해가 많이 남아 있다(29.3%) ②약간 남아 있다(31.9%) ③상처나 피해가 없다(38.8%) ▲○○님께서는 6ㆍ25발발의 가장 커다란 책임을 져야할 나라가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 다음 중에서 책임이 큰 나라를 두나라만 말씀해 주십시오. ①남한(17.1%) ②북한(56.0%) ③미국(34.1%) ④소련(51.9%) ⑤중국(11.9%) ⑥일본(22.3%) ⑦모르겠다(6.7%) ▲○○님께서는 현재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점차 커지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①점차 줄어들고 있다(66.0%) ②점차 커지고 있다(17.9%) ③그대로(6.1%) ④모르겠다(10.0%) ▲우리 사회에는 「북한이 적」이라는 주장도 있고 「동반자」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님께서는 북한을 우리의 적으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아니면 동반자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①적으로 보아야 한다(32.5%) ②동반자로 보아야 한다(48.7%) ③꼭 어느 쪽이라고 할 수 없다(18.8%) ▲최근에 소련과 동유럽에서 이른바 개방화 물결이 일고 있는데,○○님께서는 이러한 변화에 대해 앞으로 북한이 어떻게 반응하리라고 생각하십니까? ①더욱 폐쇄적으로 갈 것이다.(15.8%) ②개방화로 갈 것이다(53.2%) ③별다른 변화가 없을 것이다(23.7%) ▲○○님께서는 만약 김일성이 사망하면 김정일이 권력을 물려받으리라고 생각하십니까,물려받지 못하리라고 생각하십니까? ①물려받을 것이다(56.6%) ②물려받지 못할 것이다(34.5%) ▲○○님께서는 앞으로 우리나라가 통일정책을 어떻게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①지금보다 더 과감하게 추진해야 한다(43.7%) ②지금보다 더 조심스럽게 추진해야 한다(37.4%) ③지금 정도가 알맞다(8.0%) ④모르겠다(10.5%) ◎“6ㆍ25세대­전후세대의 인식차 좁혀야”/조사를 마치고/박종선 현대리서치연 대표 6ㆍ25가 일어난지 거의 한세대가 바뀐점에 비추어 이번 조사는 세대간의 인식차이가 어떠한가에 주목했다. 우선 6ㆍ25로 인한 상처나 피해가 자신에게 남아있는가,6ㆍ25 발발의 책임있는 나라는 어디인가,북한의 본질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통일은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 등에 대해서는 6ㆍ25세대와 전후세대 간의 인식의 차이가 크다. 6ㆍ25세대가 6ㆍ25로부터 파생된 피해의식이나,북한에 대한 적대감을 전후세대보다 강하게 느끼고 있다. 반면 한반도에서 전쟁가능성은 어떠한가,북한이 개방할 것인가,김정일이 권력을 계승할 것인가 등에 대해서는 세대간의 차이가 비교적 작거나 거의 없다. 이러한 결과는 한반도 현실에 대해서는 피해의식이나 적대감에 연연하지 않고 말 그대로 오늘날의 현실에 근거하여 냉정히 인식하려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을 나타내 주고 있다. 이런 결과들을 종합해 보면 기성세대는 보수적이고 완고하며 젊은 세대는 진보적이고 유연하다는 식의 단순논리가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다. 6ㆍ25의 피해의식,북한에 대한 좀더 적대적인 이해 등에서 6ㆍ25세대는 전후세대보다 완고하지만 한반도의 보다 현재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전후세대와 별 차이없이 유연하고 실용적인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또한 전후세대도 6ㆍ25세대보다는 전향적이고 진취적인 자세가 돋보이지만 일반적 통념보다는 훨씬 절제되고 냉정한 인식을 보이고 있다. 최근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기존의 6ㆍ25관을 새롭게 해석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한 것으로 비쳐지고 있지만 실제 조사결과를 보면 전후세대도 6ㆍ25가 북한과 소련에 의해 도발된 전쟁이라는 인식에는 이의가 없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통일정책의 추진방식에 있어서도 「지금보다 더 과감하게」라는 의견(43.7%)이 우세한 편이지만 「지금보다 더 신중하게」라는 의견(37.4%)도 결코 적지 않다. 전후세대 역시 6ㆍ25세대와 대립적인 입장이 아니라 기본적인 인식을 공유하면서 점진적으로 그들 특유의 진취적 가치를 가꾸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이번 조사를 통해 세대간의 차이와 일치가 공존해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우리 사회는 세대간의 일치만 존재하는 것보다 훨씬 건강하고 활력있는 사회라고 볼 수 있다. 앞으로 세대간의 토론과 대화를 통해 공감대를 넓혀 나가면서 간격을 좁혀 나갈때 우리사회는 좀더 성숙한 사회로 전진할 것이다. 이번 조사결과가 바로 그런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