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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독의 첫 자유선거를 보며(사설)

    통일된 독일은 2일 전독의회의원을 선출함으로써 통일을 정치적으로 마무리하는 작업을 끝낸다. 5천9백90만명의 독일 유권자들은 이번 총선에서 총리를 비롯 6백56명의 연방하원(분데스타크)의원을 뽑는다. 이번 선거는 지난 32년의 라이히스타크(구 제국의회) 이후 58년 만에 치러지는 첫 전독자유선거인 동시에 새로 태어나는 의회와 정부에 과거 동독지역의 경제재건과 내부화합을 통해 진정한 민족통합을 완수할 막중한 과업이 맡겨진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또 독일의 통일을 평가하고 앞으로 독일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결정한다는 뜻도 겸한다. 첫 재상에게는 통일작업을 마무리짓는 방향타가 주어진다. 통독의 사실상 첫 총리에는 헬무트 콜 현 총리가 재선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가 통일을 실현시킨 견인차라는 점이 높이 평가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그에게 다시 대임을 주어 동독실업·인플레 등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토록해 통일후유증을 씻어내자는 안정추구 의식이 국민들 속에 자리잡고 있는 것도 큰 이유의 하나라고 한다.「고통도 전쟁도 없는 통일」을 이룩한 콜 정부에 역사 재창조의 기회를 주려한다는 것이다. 라퐁텐 후보가 이끄는 사민당은 통독에 소극적인 발언으로 국민의 지지도가 떨어졌으며 옛 동독공산당인 민사당은 동유럽개혁여파로 곤경에 빠져 있다. 독일 유권자들은 분단의 어두웠던 시절을 잊고 싶어한다. 베를린장벽이 허물어진 이후 여러 차례의 환희와 감격을 맛본 독일인들은 이번 총선을 단순한 「통과의례」로 보고 있다. 그럼에도 이번 선거는 독일 역사의 새 장을 장식할 것이다. 새로 탄생하는 새 정부는 동독에서 지난 40년간 발생한 체제의 갖가지 병증을 재빨리 치유해야 할 것이며 대외적으로 유럽 및 세계의 새로운 질서개편에 적극 대응하는 책무를 떠안게 될 것이다. 독일 총선을 보면서,같은 분단민족으로서 통일을 지향하고 있는 우리는 동서독이 통합했던 지난 10월3일의 「통독의 날」을 되새기지 않을 수 없다. 통독 스케줄을 컴퓨터처럼 착착 진행시키고 있는 그들의 지혜가 부럽기까지 한 것이다. 「어떤 나라든지 그 나라 문제에 대해 자신있게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은 그 민족 뿐」이라는 말은 아마 독일사람을 두고 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 말을 떠올리면서 과연 우리는 우리 문제인 통일에 관해 무슨 말과 행동을 하고 있는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할 것 같다. 남북한과 독일의 분단상황이 극히 다르다는 것을 인정치 않는 바는 아니다. 분단상황에서 우리는 오랫동안 정치 경제 문화 및 인적교류가 전면 중단됐었다. 그러나 우리도 뒤늦게나마 통일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을 제거하는 노력을 꾸준히 전개하고 있다. 주변정세도 남북한 관계발전에 긍정적으로 흐르고 있고 국제관계도 더 이상의 대결이 아닌 평화해결방식을 택하고 있다. 남북한이 해야 할 일은 무엇보다도 상호 불신의 벽을 허무는 일이다. 거기에는 호양의 미덕이 필요하다. 이를 바탕으로 한 양측의 대화와 만남은 계속되고 그렇게 돼야 한다. 이러한 과정이 없었다면 독일의 통일이 그렇게 빨리 올 것이라고 믿은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됐을까.
  • 대 이라크 금수로 멍드는 교역국들(세계의 사회면)

    ◎“벙어리 냉가슴”… 관련국의 속사정/무기공급 동구국들 대금 못받고/영·불·독·이사 등 수십억불씩 물려/미 농산물도 수출길 막혀 농민들 울상 페르시아만사태가 3개월을 훨씬 지나면서 이라크와 쿠웨이트가 크게 타격을 받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지만 이 두 나라와 거래를 갖고 있는 나라들과 기업들도 적지 않은 타격을 받고 있다. 더욱이 이라크의 침략을 제재해야 한다는 국제여론이 높아 이들은 드러내 놓고 불만을 토로할 수 없는 처지여서 벙어리 냉가슴 앓듯 지내고 있는 형편. 타격을 가장 심하게 받고 있는 곳 가운데 하나는 미국의 쌀경작자들. 이라크는 미국산 상등미를 후한 값에 구입해 왔었다. 지난해에만 해도 1억4천3백만달러 어치의 쌀을 구입,미국 쌀 수출액의 25%나 차지했었다. 올해 수확기를 앞두고 이미 쌀값이 지난해보다 28%나 떨어진 데다 경제봉쇄조치가 발표되자 쌀 선물시장 가격이 대번에 18.4%나 떨어져 버렸다. 주름살이 지어지는 농민은 쌀 경작자뿐만이 아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이라크는 미국산 밀 옥수수 보리 콩 등을 3억5천만달러어치,캐나다산 곡물은 2억7백만달러어치 구입했었으나 올해는 꽝이다. 이라크에 무기와 탄약을 공급하던 동유럽국가들도 대 이라크 제재 참여로 돈받을 길이 당장은 막연한 형편이다. 대 이라크 경제제재 조치가 이라크와의 교역도 중지시켰지만 아울러 이라크의 대금지불도 유예시켜 버렸다. 이로 인해 체코는 8억달러,폴란드는 5억달러가 잠겼다. 어려운 경제로 고생하고 있는 불가리아와 루마니아도 각각 12억달러와 17억달러가 몰린 상태다. 소련 과학아카데미의 알렉산더 아르바토프 박사도 소련이 이라크에 대한 무기와 농산물 수출중단으로 약 10억달러 정도를 손해보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돈 빌려주고 못받는 사연도 속출. 일본의 무역회사들은 이라크가 발행한 어음을 50억달러 상당액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고 독일 은행은 40여군데가 거래는 끝났으나 돈은 지불받지 못한 20억달러 규모의 채권을 갖고 있다. 독일 은행의 경우 이 가운데 8억달러는 독일정부의 수출보험제도인 헤르메스 신용보험에 의해 보상을 받게 되지만나머지 12억달러는 피해보상이 힘든 상태다. 다이믈러­벤츠나 페로슈탈 같은 재벌형 대기업이야 충격을 흡수할 수 있겠지만 비교적 작은 기업들은 어려움에 허덕이고 있는 실정으로 일부 의원들의 지원을 받아가며 정부의 대책마련을 조르고 있다. 영국의 경우 지난해 대 이라크 수출액은 7억3천만달러. 이 가운데 6억3천만달러를 정부가 지불보증을 해줬었다. 올해에는 영국 정부가 「이라크 경제의 장기적 전망이 밝기 때문에」 보증규모를 2배나 늘린다고 발표했었는데 현재로는 개점휴업 상태다. 프랑스도 6억달러 정도는 손해를 감수해야 될 형편. 지난 8월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기 몇주전 프랑스 유수의 통신회사인 알카텔사가 이라크 바스라지역의 전화망 가설을 7천6백만달러에 계약했었는데 이 계약서는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휴지가 돼버렸다. 속타는 사정은 터키도 마찬가진데 올해 식료품 철강제품을 중심으로 6억달러 정도는 수출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터키의 수출품에 대해서 미국와 유럽국가들이 엄격한 쿼타제를 적용하는 데다가 터키제품이 뚫고 나가야 하는 수출시장은 이미 포화상태여서 수출선 변화가 쉽지 않은 형편. 터키 정부는 이 가운데 75% 정도는 못쓰게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밖에 이탈리아도 줄잡아 40억달러의 채권과 물품대금이 대추나무 연 걸리듯 물려있고 프랑스 향수의 최대 고객이었던 쿠웨이트의 몰락으로 해마다 2천만달러 정도를 팔던 프랑스 향수회사들도 손해를 보는 것은 피할 수 없을 듯.
  • 국익 위하는 정론의 길/창간 45주년에 다시 다짐한다(사설)

    서울신문은 오늘 창간 45주년을 맞는다. 조국광복의 환희와 그 소용돌이 속에서 고고의 소리를 울린 서울신문은 광복 후 조국의 운명을 그대로 짊어진 채 45개 성상을 겪어 내려오고 있다. 그런 만큼 영욕의 교차가 무상한 궤적이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국익과 공익을 위한 정론의 길을 걸어 오늘의 성장에 이르렀음을 자부한다. 또 오늘을 맞는 우리는 앞으로도 그 길을 위해 매진해 나갈 것을 한번 더 다짐한다. ○어려운 시대상황의 극복 오늘의 우리는 참으로 어려운 국면을 살고 있다. 맨 먼저 들 수 있는 것이 발전된 민주사회를 지향하는 갖가지 진통의 분출이다. 그것은 오늘의 문제이면서 40여 년을 두고 억눌려 쌓인 불만과 울분의 반작용이기도 하다. 그것이 분별력을 잃고 때로눈 초법적인 형태로 폭발되면서 우리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위협하기도 한다. 행정이 강력한 제어력을 잃고 자제·자중을 잃은 각종 욕구만이 분출되고 있는 사이 독버섯처럼 사회 각계에 번져난 것이 반사회·반가치 행위이다. 그 중에서도 우리 모두를 불안하게 하는것은 잔인해지고 흉포해진 범죄의 확산현상이다. 그렇건만 정치는 오히려 국민이 걱정을 해야 할 정도로 넌더리나는 전철을 거듭해 온다. 이 체제의 유지 발전에 앞장서야 할 가진 자들은 더욱 몰염치해 가고 지도층은 양식을 잃어간다. 무역수지는 악화하고 있는데도 통상압력은 갈수록 거세어져만 간다. 동유럽 쪽의 변화와 동서독일의 통일을 보면서는 성급한 혹은 감상주의에 치우친 통일론이 대두되고 일부의 과격한 언행은 그 길을 가로막는 요소로 되기도 한다. 그 사이 일각에서는 복고풍을 일으켜 시대의 진운에 역행하는 움직임도 보인다. 이 모두가 오늘의 어려운 상황을 말해 주는 것에 다름이 아니다. ○양적 팽창과 신문의 사명 겪어야 할 진통은 겪어야 한다. 또 그것은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을 때 내일에의 밑거름이 되어 우리 사회를 더욱더 다양하고 풍요로운 것으로 승화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해야 하고 또 그렇게 되게 하기 위하여 지혜를 모아 나가는 자세가 소망스럽다고 할 것이다. 여기에 언론의 힘이 크고 서울신문또한 그 반열에 있음을 생각하면서 지워진 책임의 막중함을 느끼게 된다. 오늘날 신문은 양적인 면에서 엄청난 신장세를 보여 준다. 민주화 바람을 불러 일으킨 6·29선언 전후의 숫자를 들여다 보면 이 양적인 팽창 또한 그와 무관하지 않음을 알게 된다. 지난 3월15일 현재 전국 일간신문 수는 60개인데 88년 이후 새로 발간된 것이 그 중 28개에 이르기 때문이다. 그뿐이 아니다. 이 신문들이 발행하는 면수도 엄청나게 늘어났다. 87년까지는 한결같이 72면이던 것이 88년 후 늘어나기 시작하여 지난 8월 현재 평균 1백46면으로 되고 있다. 배증한 셈이다. 더구나 증면 경쟁은 끝났다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우리가 이 시점에서 자성해 보고자 하는 것은 이와 같은 양적인 팽창에 비해 과연 질적인 향상이 그를 따르고 있는 것이냐 하는 점이다. 그동안 지면의 부족을 느껴온 것이 사실이었다고 하더라도 증면함에 따라 충실화·심층화를 기함에 있어 얼마만큼 노력을 기울였느냐에 대해서는 많은 의문점을 남긴다는 것이 사실 아닌가 한다. 그런 가운데도 크게 성찰해야 할 대목은 상업성을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공기임을 잊고 빠져든 선정주의라고 할 것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자유주의국가에서 펴내는 신문은 상품이다. 그래서 고객의 선호하는 바가 무엇인가에 대해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은 현실이다. 그러나 그 선호하는 바의 건전성에 유념해야 하는 것이 신문이 지녀야 하는 양식이다. 오늘의 어려운 상황을 함께 아파하고 고민하면서 밝은 우리의 내일을 위한 지표를 비추는 자세가 저급한 영합보다는 소중한 사명으로 되는 것이다. ○정신이 건강한 사회를 위해 서울신문은 이를 성찰하는 가운데 앞으로도 국익과 공익을 무엇보다 우선하는 제작 지표로 삼아 나가고자 한다. 국익과 공익은 정권적인 차원을 넘어선다. 그것은 우리나라와 겨레를 위하는 길이 무엇인가를 뜻함이다. 그 관점에서 출발하는 시시비비는 언제 어느 경우에 있어서고 떳떳할 수 잇다. 증면한 구석구석이 하나같이 소중한 지면으로 되게 하기 위하여 널리 알리고 깊이 파헤치기에 배전의 노력을 다해나갈 것이다. 서울신문이 지향하는 우리 사회는 경제적으로 풍요롭되 정신이 또한 건강한 삶의 모습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말해 밝은 삶이다. 이기의 패각에서 벗어나 이타하며 오순도순 정을 나누는 사람다운 삶의 모습이다. 서울신문이 그동안 우리 사회의 밝은 면을 더 많이 조명하여 온 것은 그같은 삶을 귀감삼아 나가자는 뜻을 담고 있다. 앞으로도 이와 같은 보도 자세는 더욱 확대 심화시켜 나갈 것이다. 정치적·경제적·사회적인 여러 형태의 범죄를 본원적으로 다스리는 길이 정신건강의 회복에 있다 함은 누누이 지적해온 터이다. 그것은 도덕성 회복이며 인간성 회복이다. 사실,정신이 건강하지 못한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 하여 각종 범죄가 끊이지 않고 몰염치해지며 양식이 마비된다면 경제의 풍요나 문명화의 혜택도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창간 45주년을 맞은 서울신문은 사람이 사는 사람다운 삶을 위하여 그같은 건강한 사회로의 가치관 정립에 앞장서 나갈 것을 거듭 다짐한다.
  • 「CSCE」 이틀째 이모저모

    ◎동구정상들 “경제장막 제거” 호소/“페만이견이 냉전종식 의미 축소” ○…역사적인 유럽안보협력회의(CSCE) 정상회담 이틀째를 맞아 폴란드 헝가리 등 동유럽국가 지도자들은 냉전이 사라지자 부유한 나라와 가난한 나라를 구분하는 「경제적 철의 장막」이 구축되고 있다고 말했다. 마조비에츠키 폴란드 총리는 동유럽의 경제발전이 유럽의 안정과 통합에 열쇠라고 전제하고 『만약 유럽에서의 국가별 빈부의 격차를 극복하지 못하면 유럽의 장래는 밝지 못하다』고 말했다. 안탈 헝가리 총리도 동유럽의 경제발전을 바탕으로 한 유럽의 통합을 역설했다.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으로는 처음으로 아이슬란드가 소련이 요구한 해군에 대한 군축 제의를 지지하고 나섰다. 그러나 나토의 핵심국가인 미국과 영국은 해상 항로의 안전이 필요하다며 소련의 제의를 거부했다. ○소에 식량지원 약속 ○…CSCE 정상회담에 참석한 각국 지도자들은 소련이 심각한 식료품 및 생필품 부족을 겪고 있다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소련에 대한 긴급 식량원조를 서두르고 있다. 헬무트 콜 독일 총리는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에게 즉각적인 식량원조의 제공을 약속했으며 유럽공동체(EC) 국가들도 소련에 대한 긴급 식량지원을 제공하기로 합의했다. 미국도 소련을 지원하기로 했으나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마련하지 않았다. ○발트 3국,불에 항의 ○…발트해 연안의 소련 3개 공화국은 소련이 이들 공화국의 CSCE 정상회담 참석에 항의한 뒤 공식적으로 정상회담 참석이 배제됐다고 알그리다스 사우다르가스 리투아니아 공화국 외무장관이 밝혔다. ○…CSCE 정상회담이 전후 냉전체제를 공식 종식시켰으나 페르시아만 위기를 둘러싼 이견,발트해 연안 소 공화국들에 대한 의견불일치 등이 역사적인 CFE협정 체결에서 오는 행복감을 감해주고 있다. ○콜,“통일지지에 감사” ○…헬무트 콜 독일총리는 유럽안보협력회의(CSCE) 정상회담에 참석하고 있는 33개 유럽 및 북미 지도자들에게 독일통일은 지난 75년 CSCE 1차 정상회담에서 제시된 원칙이 없었다면 이처럼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전제,통독을 위한 이들국가들의 지지에 대해 진정한 감사를 피력.
  • 유럽안보회의 냉전종식 선언의 함축

    ◎「동·서 45년 적대」 청산… 새 동반자시대로/19세기 「빈회의」 맞먹는 역사적 대전환/「화해의 신 국제질서」 창출 기대 부풀게 전후 세계사의 중심이었던 유럽에서 냉전이 종식됐다. 그리고 새로운 질서의 틀이 짜여지고 이제는 「안정과 평화」위에 새로운 국제질서가 자리잡게 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아니 새로운 국제질서는 이미 태동하고 있다고 해도 괜찮다. 19일부터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고 있는 유럽안보협력회의(CSCE)에 참석하고 있는 34개국 정상들 가운데 미국·영국·프랑스·독일 등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 16개국과 소련 등 바르샤바조약기구(WTO) 회원국 6개국은 개막에 앞서 유럽재래식무기(CFE) 감축협정에 서명했다. 이들은 CFE협정 정치선언에서 「40년 이상 지속됐던 분열과 대결의 시대가 종식되고 이들 국가들간의 관계가 개선됐으며 이것이 모두의 안전에 기여했다」고 선언,냉전이 끝났음을 공식 확인했다. 아울러 「이같은 발전이 보다 더 단결된 유럽구조를 건설하기 위한 지속적인 상호협력 과정이 돼야한다」고 천명,단순히 냉전이 끝난 것이 아니라 유럽의 대대적인 역사적 변화가 눈앞에 다가와 있음을 천명했다. 지난해 초부터 동유럽의 변화와 함께 동서대결의 분위기가 급격히 무너지고 지난 10월3일 역사적인 독일통일로 이미 냉전체제는 붕괴됐었지만 이번 회담은 이를 재확인하고 새 국제질서의 창조를 선언함으로써 전후 세계사의 한 시대를 구분짓는 중요한 회담이 되고 있다. 그래서 일부 논자들은 이번 회담을 1814년 나폴레옹 몰락이후 빈에서 열려 구체제(Ancien Regime)를 부활시켰던 빈회담에 비교하기도 한다. 물론 빈회담이 구체제의 부활을 가져온 반면 이번 파리회담은 새로운 질서의 출발점이 되고 있어 직접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시대를 가르는 역사성이라는 면에서는 경중을 가르기가 쉽지 않을 정도라고 평가해 무리가 없다. 「1945년 이래 가장 의미깊은 국제적 행사」라고 불릴 정도로 높이 평가되는 이번 회담은 단순선언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구체적 조치에 합의함으로써 신질서의 초석마련에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군사적 측면에서는 CFE감축에 합의가 이루어졌다. CFE협정의 내용은 복잡하지만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선제공격이 불가능할 정도로 각 군사블록 및 각국의 군사력을 제한하고 이를 현장검증하기 위해 불시 사찰을 받아들이고 있다. 아직도 유럽에서의 군축과 화해를 보다 증진시키기 위해 새로운 신뢰조치의 구축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CFE협정이 타결되고 핵무기 감축문제의 논의를 시작키로 합의함으로써 전쟁의 위협을 대폭 감소시키는데 거보를 내디뎠다. 또 ①정상과 외무장관회담의 정례화 ②상설 행정사무국의 설치운영 ③분쟁방지센터의 설치 ④회원국의 자유선거 관리기구 신설 ⑤의회위원회의 설치 CSCE의 상설기구화가 이루어지게 됐다. 현재까지등 유럽질서의 양대 축인 나토와 바르샤바조약기구의 해체와 의미축소의 공백을 전유럽국가들이 참여하는 CSCE의 상설기구화로 보완함으로써 신질서의 밑받침이 마련된 셈이다. 이 점과 관련해서는 미국이나 영국이 유럽대륙에서의 영향력 감퇴를 우려,나토의 역할 축소에 반대하고 있으나 「하나의 유럽」 혹은 「유럽 공동의 집」이라는 유럽통합의 구상이 점차 세를 얻어가며 구체화될 전망이다. 하지만 넘어야할 산이 더 남아 있다는 점도 지적돼야 할 것이다. 첫번째로 추가군축과 나토의 위상 재정립,상설기구의 권한과 위치 등 중요한 것에서부터 사소한 것에 이르기까지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문제들이 남아 있다. 다음으로 지적될 수 있는 것은 지금까지 군사분야와 정치분야에서는 꽤 진전이 이루어졌고 합의도 이루어졌지만 경제적 통합을 이룰 수 있을 만큼 동서 유럽국가들간의 경제력 차이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 만일 동유럽의 경제 사정이 혼미상태를 빨리 벗어나지 못하면 그만큼 화해와 평화,안정과 번영의 틀은 훼손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여기에 세포분열 현상을 보이고 있는 동유럽의 민족문제도 새 질서에 위협을 줄 가능성을 남기고 있다. 하지만 유럽국가들이 대소 어려운 점들을 극복하면서 파리회담에서 합의한 것처럼 신국제질서를 창조해내고 그것이 아시아·중남미·아프리카 등으로 확산된다면 전후 냉전체제가얄타체제로 불렸듯이 화해의 신국제질서는 파리체제로 불리게 될지도 모른다.
  • CFE협정 개요

    ▲나토와 바르샤바조약기구가 보유하는 재래식무기는 탱크 2만대,야포 2만문,장갑차 3만대,전투기 6천8백대,공격용헬기 2천대로 각각 제한. ▲각국은 국가 자체의 한계를 가지며 어느 한 국가도 잔여장비 가운데 3분의 1 이상을 보유할 수 없으며 협정의 대상지역은 여러지구로 세분화된다. ▲병력감축문제는 향후 빈에서 열릴 추가협상의 의제가 될 것이지만 이미 미국은 중부유럽에 19만5천명 이상의 병력을 두지 않을 것을 다짐했고 통일독일은 군대를 37만명으로 제한키로 동의. 한편 소련은 1만9천대의 탱크를 퇴역시켜야 하며 동유럽주둔 소련군 병력은 94년말까지 철수. ▲향후 검증은 40개월 동안 군사시설에 대한 수백회의 사찰이 허용. ▲협정은 공식적으로 22개국간에 맺은 것이며 두 동맹간에 맺은 것은 아니다. 이는 현재 진통중인 바르샤바조약기구가 마침내 붕괴하더라도 그 회원국들이 여전히 협정조항에 의해 구속받게 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협정은 무한정 지속되며 CSCE(유럽안보협력회의) 34개 회원국 외의 다른 국가들이 92년까지 보다 많은 군축협상에 동참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협정은 양대 블록의 회원국이 더이상 상대방을 적으로 간주하지 않는 선언이 부수돼 있다.
  • 외면 당하는 볼셰비키혁명/73돌 맞아 소서 옛「영광」 퇴색

    ◎라트비아공등서 경축일 공식 폐지/군 반대속 일부 시선 반정시위 허용/“혁명 아닌 테러”… 시민단체들,희생자 추모행사 벌여 볼셰비키혁명이 7일로 73주년을 맞는다. 위대한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레닌의 볼셰비키혁명은 그러나 사회주의의 퇴조와 함께 「빛바랜 영광」으로 그 의미가 축소되고 있는 느낌이다. 볼셰비키혁명은 지난 1917년 멘셰비키의 임시정부를 무너뜨린 10월 혁명으로 소련 최대의 국경일로 경축되어 왔다. 혁명지도자 레닌은 소비에트 사회주의공화국 연방을 창설하며 소련국민의 절대적 존경과 흠모를 한몸에 받아왔다.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도 소련사회를 개편하는 「평화적 혁명」을 주도하면서도 레닌이즘만은 결코 포기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는 성대한 볼셰비키혁명 기념행사를 위해 지난달 10일 포고령을 발표하기까지 했다. 소련 군부와 공산당의 보수파 지도자들도 혁명이념의 계승 발전을 위해 위엄있고 화려한 기념행사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소련의 사회구조 변화와 동유럽의 공산주의체제 붕괴 등동구의 대변혁 이후 사회주의 실험이 시작된 볼셰비키혁명은 소련과 동구에서 이제 더이상 최대의 국경일이 아니다. 발트해 3국중의 하나인 라트비아공화국은 지난날 3일 볼셰비키 혁명기념일을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라트비아공화국은 더 나아가 이날을 「공산주의 공포에 희생된 날」로 지정했다. 리투아니아,에스토니아공화국과 함께 아르메니아공화국도 이날을 평일로 만들었다. 15개 공화국중 거의 절반이 올해 볼셰비키혁명 기념행사를 취소하기로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급진개혁파 지도자들은 악화된 경제상황을 감안,올해의 기념행사가 취소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모스크바시 의회 집행위원회는 지난 1일 모스크바시내의 군사퍼레이드와 함께 모스크바 유권자동맹의 항의시위도 동시에 허용하기로 결정했다. 개혁파인 포포프시장이 이끄는 모스크바시의 이같은 결정은 볼셰비키혁명 기념일이 더이상 소련국민 모두가 함께 축하해야할 소련 최대의 국경일이 아님을 공개적으로 선언한 것이다. 모스크바 유권자동맹은 이날을 「정치적 희생자를 기억하는 날」로 정하고 공산당본부가 있는 스타라야 광장에서 기념식을 갖고 반체제 핵물리학자 고 사하로프박사가 살던 치가로와 거리의 아파트까지 행진할 예정이다. 소련 제2의 공화국인 우크라이나의 시민단체인 「루프」도 당국의 군사퍼레이드에 항의,반군사 시위를 계획하고 수도 키예프에서 「공산당 테러 희생자를 추모하는 날」 행사를 갖는다. 백러시아,타지크,우즈베크,카자흐,키르기스공화국은 공식적인 군사퍼레이드가 예정되어 있으나 민족분규와 생필품 부족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팽배하고 있어 진정한 축하행사가 될지 의문시 되고 있다. 각 공화국에서 볼셰비키혁명 기념행사에 대한 거부운동이 확산되자 소련정부는 모스크바시 군사퍼레이드 규모를 축소했다. 군사행진에 동원되는 군병력을 지난해의 9천3백명에서 8천6백명으로 줄이고 행사시간도 1시간에서 35분으로 단축시킨 것이다. 볼셰비키혁명 기념행사의 이같은 변화와 함께 일부에서는 10월혁명은 「국가적 비극」이며 많은 피를 흘린 쿠데타라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레닌이즘은이제 더이상 모든 소련인들의 마음의 고향이 아니며 소련의 다당제 채택과 시장경제로의 전환으로 볼셰비키혁명의 역사적 의미는 점점 퇴색하고 있다.
  • 북한,대일 개방땐 김일성체제 붕괴/홍콩지 보도

    【홍콩 연합】 북한이 일본에 대해 비록 제한적인 개방을 한다고 해도 이것이 북한으로 하여금 점차 세계적인 평화추세에 따르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며,이로 인해 김일성의 철의 장막에 의한 전제적 통치체제도 더 오래 유지될 수 없을 것이라고 홍콩의 명보가 1일 말했다. 명보는 「김일성,평화 변혁에 항거」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전세계 공산국들이 민주화를 이룩했거나 민주화와 평화를 향해 변혁의 길을 달리고 있으나 북한과 중국 및 쿠바 3개국만이 고유의 공산주의적 입장을 고수,평화를 향한 변혁의 추세를 외면하고 있다고 말했다. 명보는 소련과 동유럽 및 중국이 북한에 대한 경제원조를 점차 줄이거나 단절한 데다가 이들 국가가 한국과의 관계를 강화함에 따라 김일성은 부득이 존속을 위해 변화에 응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고 논평했다. 이 신문은 그러나 두 차례에 걸친 남북한총리회담을 살펴보면 김일성의 책략이 ▲주한미군의 철수를 요구함으로써 한국측의 「자유왕래와 물자교류」 제의를 가로막아 북한의 「철의 장막」체제를유지하려 하고 ▲일본의 경제원조와 합작을 원하면서도 한국으로부터의 원조를 거절하며 ▲내용이 공허한 「일국양제」방식의 통일안을 내세워 남북분단의 장기화를 유지하는 한편 북한을 「평화를 향한 변혁의 길」로 유도하려는 한국의 노력을 무산시키려는 것 등임을 명백히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 「탈사회주의」이후의 변화/헝가리학자 바코스의 진단

    ◎“동구 시장경제 이제 걸음마… 서방도움 절실”/파,개혁후 수출 계속 늘고 경제도 회복세/서방,산업구조조정 차원서 경원 했으면/한국 자본과 헝가리 노동력 결합형태의 경협 추진해야 동구 대변혁이 시작된지 1년이 지났다. 동유럽 공산정권들을 일거에 무너뜨린 이 변혁의 대물결은 전후 냉전의 한 시대를 마감하고 화해에 기초한 새세계질서의 태동을 알리고 있다. 본지는 동구변혁의 선두격인 헝가리의 저명한 경제학자 구보르 바코스박사와 특별 인터뷰를 통해 이 변혁의 현주소를 진단해 보았다. 바코스박사는 이 회견에서 정치적 민주화와 시장경제체제로의 이행을 골자로 한 동구 각국의 개혁프로그램에 대해 신중하지만 낙관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경제회복이 조속히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새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감이 조성될 것이라는 우려를 갖고 있었다. 바코스박사는 이와 함께 서방측에 대해 동구경제의 구조개편을 돕는다는 거시적인 안목으로 지속적인 투자를 해줄 것을 당부했다. □구보르 바코스 □1945년생 □부다페스트 경제대 졸업 □헝가리 과학아카데미 경제학박사 □현 헝가리과학아카데미 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 □저서:「사회주의 경제체제」「코메콘의 대외무역 운용」「비교우위 경제론」 ­역사적인 동유럽의 대변혁이 시작된지 1년이 지났다. 변혁의 정도와 속도를 두고 나라별로 차이는 물론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지난 1년의 동구변혁을 어떻게 평가하겠는가. ▲바코스=정치와 경제 두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정치적으로는 전체주의 공산정권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공산정권을 전복하고 민주적인 새 지도부를 탄생시켰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특징은 소련이 이들에게 체제선택의 자유를 맡겼다는 점이다. 또한 소련은 헤게모니 추구를 포기하고 국제분쟁의 평화적 해결방식을 택함으로써 동구변혁의 유리한 외적분위기를 만들었다. 경제적으로는 시장경제로의 급속한 이행이 이루어지고 있다. 10여년동안 동구경제는 내리막길을 걸었기 때문에 이를 되살리기 위한 변혁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폴란드ㆍ헝가리ㆍ체코 등의 새 민간정부 대부분이 시장경제 체제로의 이행원칙을 결정했다. 그러나 전환의 구체적인 전략에서 뚜렷한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언제쯤이면 가시적인 결과가 나올 것인가. ○국민들도 전폭 지지 ▲사실은 종합적인 개혁방안이 마련돼 이미 시행에 들어갔다. 소련도 샤탈린안을 토대로 한 급진적 시장화 방안을 우여곡절끝에 채택했다. 계획은 섰고 국민들로부터 지지도 얻고 있다. 시행에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가격 자유화를 이미 실시한 폴란드ㆍ헝가리의 경우 엄청난 인플레로 사회적 긴장이 드높다. 내 경우 금년도 봉급이 10% 인상됐다. 반면 헝가리의 금년 인플레율은 30% 이다. 실제생활은 더 못해진 것이다. 아직은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높은 편이다. 몇년 뒤에도 경제가 나아지지 않을 땐 새정부의 정책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것이다. ­국민의 지지를 받는 정부가 들어섰다지만 개혁정책이 실패하고 생활상태가 더 나아지지 않으면 사회적 불안이 가중될 것이다. 그럴 경우 자칫 진행중인 민주화과정 전반이 위협받을가능성도 일각에선 지적되고 있다. 근거없는 우려일까. ▲정치적으로 과거의 압제정권으로 회귀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본다. 유일한 대안은 민주화ㆍ시장화를 더 확대추진하는 것이다. 초기의 부작용은 곧 극복될 것이다. 나름대로 보완장치들도 마련되고 있다. 헝가리의 경우 현재 실업수당이 통상임금의 70%까지 지급된다. 실직기간이 1년이 넘으면 재교육해 타직종으로 전환시켜준다. 이외에 최저생계보장책 등이 마련돼 있다. ­폴란드는 사정이 특히 더 어려운 것 아닌가. 바웬사가 차기 대통령직에 도전하겠다고 나섰는데 정치적 불안만 가중시킬 우려는 없는지. ▲소련ㆍ루마니아 시민들은 빵사기 위해 줄을 서야 한다. 폴란드는 그렇지는 않다. 바웬사에 대한 인기는 아직 높다. 그 사람 때문에 정치적 불안이 야기되지는 않을 것이다. 경제적으로 충격요법 도입 이래 사정이 좋아지고 있다. 실업자와 인플레는 늘었지만 경제구조는 상당히 튼튼해졌다. 수출이 늘었고 서방투자가들의 관심도 늘었다. 무엇보다도 폴란드 화폐 즐로티의 암시장 환율이 공식환율과 같아졌다. 사실상 화폐의 태환화가 이루어졌다는 이야기가 된다. ○자본 투자방식 시급 ­동구경제 재건을 위해선 서방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많다. 서방의 원조는 어느정도 이루어지고 있는가. ▲서방의 도움은 단순한 원조차원이 아니라 경제 제도개혁을 도와주는 것이어야 한다. 단순한 차관제공만 되풀이되면 소비를 조장하고 재정구조를 오히려 취약하게 만든다. 서방의 도움은 자본참여를 통한 산업근대화에 기여하는 것이어야 한다. 폴란드ㆍ헝가리ㆍ체코 모두 외국자본투자 문호를 개방해 놓고 있다. 외국 투자자에게 기업을 매각하고 1백% 지분차지도 보장해 준다. 이들 나라에 진출한 외국기업이 서방판매조직을 이용해 제3국에 대한 수출까지 맡아주도록 허용하고 있다. 그러면 수출도 늘지 않겠는가. 이것이 가장 효과적인 동구 지원 방안이다. ­대부분의 동구국들이 심각한 외채부담을 안고 있고 이것이 경제회복에 큰 장애가 된다는 지적이 있다. 서방 채권국들과 국제경제기구의 구체적인 구조방안이 있는가. ▲시장화 초기 몇년간만이라도 외채상환을 중지시켜 줘야 한다. 외채상환 일정을 재조정해 상한기일을 늦추어 주도록 요청하고 있으나 만족스런 반응이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동구경제가 이렇게 낙후된 것은 상당부분 실패로 끝난 공산체제의 탓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지역의 많은 나라들이 공산화 이전에도 지금의 서구와는 다른 역사와 문화를 가졌다. 이러한 과거사가 현재 상황과 어떤 연관이 있다고 보지는 않는지. ○EC와는 협력유지 ▲동구는 지리적으로 서유럽과 아시아세력의 교차점에 위치해 외세의 시달림을 많이 받았다. 헝가리는 1백50년 터키의 지배를 받았고 불가리아는 그보다 더 오랜 지배를 받았다. 1차대전뒤에는 독일ㆍ오스트리아,그리고 2차대전 다음에는 소련의 세력권에 편입됐다. 이러한 과거사가 부정적인 영향을 계속 미쳐온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소련이 동구를 동등한 파트너로 인정하고 협력관계로 보고 있다. 앞으로 동구는 민주정부로 계속 존속 발전될 것이다. 거대 통일독일의 등장에 대한 우려는 있다. 하지만 앞으로 전유럽안보체제가 구축되면 독일의 독주는 견제될 것으로 본다. ­전후질서의 재편으로 앞으로 세계질서는 미소 양극 체제에서 주요세력권을 축으로 하는 다극화 양상을 띨 것이란 분석이 많은데. ▲나는 세계가 궁극적으로 하나의 국제안보체제시대로 갈 것이란 견해를 갖고 있다. 그 틀속에서 모든 나라는 각자 독자적인 문화를 유지하고 조화를 이루며 살게 될 것이다. 간혹 필리핀의 게릴라 준동,라틴아메리카의 군사쿠데타,그리고 페르시아만 사태같은 돌발사태가 벌어지기야 하겠지만 모든 지구문제가 전세계 차원서 해결될 것이다. ­동구변혁을 처음부터 주도한 인물이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었다. 물론 이 변혁의 전과정이 그의 통제하에서 이루어진 것은 아니지만 그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다. 노벨평화상이 그에게 수여된 것도 바로 이러한 점 때문일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에 대해 이와는 상반된 평가도 있는게 사실이다. 당신의 평가는 어떤가. ▲페레스트로이카로 시작된 소련 국내외의 정치ㆍ경제 개혁과정에서 고르바초프는 장기간 가장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나는 특히 그가 이 과정에서 보여준 탁월한 조화ㆍ화합의 능력을 높이 평가한다. 미국 대통령과 가진 수차례의 정상회담,콜 서독 총리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여러지도자들과 수시로 만남으로써 그는 자신의 노력이 진정한 것임을 설득시키려 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그에게 노벨평화상이 수여된 것을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물론 소련 국내에서 민족문제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앞으로도 고르바초프라는 인물은 동구변혁의 궤도를 지탱시키는 「안전장치」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EC의 시장단일화가 목전에 와 있다. 세계 최대시장,교역주체가 될 거대 EC의 등장이 동구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지. ▲우리는 EC 단일시장이 장벽이 아니라 경협증진의 기회를 줄 것으로 희망한다. 헝가리ㆍ체코ㆍ폴란드는 EC에 이미 회원가입신청을 했다. 물론 가까운 시일에 정회원국이 되기는 힘들겠지만 5년내에는 가입이 이루어질 것이다. 이 5년은 동구 스스로도 시장화를 위해 필요한 시간이다. ○코메콘 해체 불가피 ­EC와의 협조체제가 구축되면 현 코메콘은 어떻게 되는가. ▲코메콘은 소련경제를 중심축으로 한 방사선형태의 협조체이다. 따라서 소련경제가 흔들리면 협조망이 흔들리는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소련의 에너지공급에 차질이 생기기 시작한 80년대말부터 코메콘은 와해징조를 보였다. 헝가리는 국내소비 원유의 95%를 소련서 공급받는다. 그런데 금년들어 벌써 몇차례나 1∼2주일씩 이 원유공급이 중단됐다. 코메콘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더라도 보다 유연한 형태로의 전환이 이루어질 것이다. 지난해부터 소련ㆍ헝가리ㆍ체코ㆍ폴란드가 무역결제를 달러로 하기 시작했다. 벌써 유연화되고 있다는 증거이다. ­헝가리는 지난해 2월 동구국가중 최초로 한국과 국교를 맺었다. 두나라간 교류는 어느 단계에 와있는지,경협의 방향에 대한 의견도 말해달라. ▲삼성과 헝가리 오리온사가 합작으로 컬러TV 생산공장을 건설,현재 생산을 시작했고,한국산 전자오븐ㆍ토스터 등이 헝가리 시장에서 팔리고 있다. 교역규모도 급격히 늘었고 특히 문화교류는 아주활발하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헝거리의 인적자원과 한국의 자본이 결합되는 것이다. 우리는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만들 수 있는 우수한 고급인력을 많이 확보하고 있다. 헝가리 정부는 수주 전 20여개 국가기업을 공개매각키로 했다. 이런 곳에 한국자본이 참여하면 좋을 것이다. 이를 위해 합작투자촉진회 같은 것을 서울이나 부다페스트에 설치하는 것도 좋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한국의 은행이 헝가리에 진출,이러한 투자진출을 도와주기 바란다.
  • 아주국서 청년층이 줄고 있다/미 CIA 보고서 밝혀

    ◎15∼24세층 인구 15%에도 못미쳐/유럽국가의 노동인구 감소도 심각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와 유럽의 태평양 연안 국가들은 「청년부족현상」을 맞을 것이며 이는 미래의 인력부족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미 중앙정보국(CIA)이 24일 한 보고서를 통해 지적했다. CIA는 이날 발표된 「청년부족:새로운 인구문제」라는 제목의 연구보고서에서 대부분의 공업국에서 지난 70년대초의 이후 태어난 어린이의 수가 너무 적어 장기적으로는 인구감소현상을 막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일자리는 적고 급속한 인구증가가 이루어지고 있는 중동과 아시아지역 주민들이 이같은 부족현상을 완화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15∼24세 연령층이 전체 인구의 15%에 미달하는 나라들은 어느 나라든 청년부족현상을 맞을 것이며 29개국이 이에 해당된다고 밝혔다. 이 보고서는 오는 2000년까지 중국에서 청년부족 현상이 일어나게 될 것이며 한국과 대만이 그후 10년안에 같은 현상을 겪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일본은 2010년까지 세계에서 가장 낮은 10%의 청년인구 비율과 함께 15∼64세의 노동연령층 인구도 현재의 8천6백20만명에서 8천1백70만명으로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CIA는 오는 2010년에서 2020년 사이에 동유럽에서는 2백만명,서유럽에서는 근 1천만명의 노동연령층 인구 감소현상이 일어나게 될 것이며 14개 서유럽 국가들은 앞으로 10∼20년 안에 청년층 인국가 전체의 12% 이하,동유럽이 12%를 간신히 웃도는 선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 바 기구 정상회담/소 요청으로 연기

    【빈 로이터 연합】 다음달 부쿠레슈티에서 열릴 예정이던 바르샤바기구 정상회담이 소련의 요청으로 연기됐다고 동유럽 외교관들이 23일 말했다. 빈에서 열리고 있는 재래식 무기 감축협상에 참가중인 동구 외교관들은 소련이 이유를 밝히지 않은채 회담개최가 사정상 어렵다며 오는 11월3ㆍ4일에 개최될 바르샤바기구 정상회담을 연기해주도록 요청해 왔다고 말했다. 한편 체코슬로바키아와 헝가리 등은 바르샤바조약기구 탈퇴의사를 그동안 밝혀왔다.
  • 이란,동구에 원유 수출/내년부터 소 영토 통해

    【니코시아 로이터 연합 특약】 이란은 내년부터 소련영토를 통과해 원유를 동유럽국가들에게 수출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란 관영 IRNA통신은 18일 모센 노르바크시 이란 재무장관의 말을 인용,『이란은 불가리아 체코 루마니아 유고슬라비아 등이 원유수입을 희망하고 있어 이같이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 소 IMEMO 연구관 쿠나제가 본 평양회담

    ◎“북한체제 변혁없인 통일 어렵다”/“정상회담 성사 낙관못해/소,한국 유엔가입 거부권행사 안할 것” 소련은 한국이 유엔가입을 신청할 경우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게오르기 쿠나제 소련 세계경제 및 국제관계연구소(IMEMO) 일본ㆍ한국 부장이 18일 말했다. 일본을 방문중인 쿠나제부장은 이날 아사히(조일)신문과의 회견에서 이같이 밝히고 한국은 소련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는 만큼 단독가입을 해오면 안보 이사회에서(소련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을 것은 거의 확실하다고 말해 소련 관계당국자로선 이 문제에 처음 견해를 나타냈다. 그는 제3차 남북한 총리회담이 열리는 12월까지 한국측은 사태추이를 지켜보다가 유엔총회 폐막직전 단독가입을 신청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한국이 가입신청을 하면 중국만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보도는 사실에 가까운 것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쿠나제씨는 이어 북한 주석 김일성이 남북 수뇌회담에 전향적인 자세를 보였다고 해서 이것이 반드시 전진으로 이어진다고 볼 수 없으며독재정권인 북한은 최고지도자가 정말로 움직이지 않으면 결과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현 단계선 결과를 예측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한소 수교에 감정적으로 반발,소련과의 관계가 일시 냉각할지 모르나 관계악화의 객관적 증거는 없다고 밝혔다. 쿠나제씨는 양국관계가 후퇴할 수 없는 것은 북한의 수입 원유중 70%가 소련산이기 때문이라고 지적,소련은 동유럽제국에 대해 내년 4월1일부터 외화지불 조건하에 시장가격으로 석유를 공급키로 통고했으나 아직 시장경제체제에 들어가지 못한 북한에는 2ㆍ3년의 유예기간을 주어야 하지 않을까 본다면서 북한은 하루빨리 경제개혁을 단행,시장가격으로 원유를 수입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쿠나제씨는 한국의 체면을 고려,고르바초프 대통령이 내년 4월 일본방문을 전후해서 한국에 가는 것이 좋을 듯 하다고 밝히고 한소 수교가 예상외로 빨랐던 것은 한국이 민주주의 방향으로 나아가 소련이 승인하지 않을 아무런 이유도 없다고 소련정부가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편 그는 남북한이 서로 접근하지 않는한 통일은 불가능하다면서 한국은 노태우 정권 발족후 민주화의 길을 걷고 있으나 북한은 여전히 시대에 뒤떨어진 체제로 이것이 변하지 않으면 전진은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북한언론의 반응/“성과부진”… 한국측에 책임전가/주석궁면담 이례적 신속보도 북한방송들은 18일 제2차 남북고위급회담이 이렇다할 합의를 보지 못한 채 끝난 것에 대해 그 책임을 한국측에 전가했다. 당기관지 노동신문도 19일 논평을 통해 이번 회담이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평가하고 한국측의 대화자세를 비난했다. 중앙방송과 평양방송은 18일 강영훈 국무총리가 김일성을 방문,면담한 사실을 이례적으로 신속히 보도했으나 김일성의 발언내용만을 일부 전했을 뿐 강총리의 발언은 한마디도 밝히지 않았다. ○…중앙방송과 평양방송은 19일 상오 10시 뉴스를 통해 제2차 남북고위급회담에 참가했던 한국측 대표단이 이날 상오 평양을 떠났다고 간략하게 보도. ○…당기관지 노동신문은 19일 제2차 남북고위급회담이 『오는 12월11일부터 서울에서 제3차 회담을 가질데 대해 일단 합의를 본 것 외에 다른 아무런 합의점도 찾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이에 대해 유감의 뜻을 피력했다. 이 신문은 이어 제2차 남북고위급회담에 대한 한국측의 대화자세에도 시비,『회담장 밖에서는 화해협력이요 완화요 말했지만 회담장안에서는 우리를 적대시하며 싸움을 걸어왔다』면서 『이것은 총리를 단장으로 하는 고위급회담의 격에 어울리지 않을 뿐 아니라 회담전도에 어두운 그림자를 던지는 무례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 외언내언

    1975년 소련의 핵물리학자 안드레이 사하로프 박사가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90년도 노벨평화상은 소련의 대통령 미하일 고르바초프에게 주어진다. ◆이 15년 간격의 두 수상은 좋은 대조를 보인다. 15년 전의 사하로프 박사는 당시 솔제니친과 함께 반소체제의 양대 산맥. 체제 속에서 짓밟히고 있는 숱한 인권을 위해 투쟁하는 기수였다. 수상하기 5년 전에는 인권옹호위원회를 창설하고,그 자신 「수폭의 아버지」이면서도 소련의 「범죄적 성향을 띠는 핵개발」에 대해 맹렬히 비난했던 평화주의자. 반체제에의 수상이었다. ◆그런데 고르바초프는 체제의 우두머리. 사하로프 때의 레오니드 브레즈네프 서기장의 맥을 잇고 있는 사람이다. 친체제네 뭐네 할 것도 없이 오늘의 소련체제의 핵. 시대의 흐름을 느끼게 하는 극과 극의 수상이다. 15년 전의 사하로프는 동서 데탕트의 장애물은 소련의 체제라고 못박았었다. 그 소련의 체제를 허물고 동서 데탕트의 물꼬를 트고 있는 사람이 고르바초프. 온세계가 「너무도 당연한」 고르비의 수상을 환영ㆍ축하하고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노벨평화상위원회는 『위원회가 주로 고려한 것은 고르바초프의 국제적인 역할이었으며 국내문제는 관심밖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발트 연안 3국의 독립 요구를 거부하고 있는 위에 소련 내의 인권문제 전반을 생각할 때 부적격하다는 일부 의견에 대한 해명같아 보인다. 설사 국내문제에 미흡함이 있다 해도 그는 지구촌에 엄청난 변혁을 몰고온 해빙의 공로자. 그의 「신사고」는 『국민을 동물처럼 조련하는 병든 사회』(사하로프의 「내 조국과 나」) 또한 차츰 「건강사회」로 이끌어나갈 것을 확신한다. ◆그의 수상에 대해서는 동유럽 사람들이 가장 기꺼워하는 것 아닐까. 정작 모스크바 시민들은 냉담한 편이라고 외신은 전한다. 겪고 있는 경제난 때문인 듯. 시큰둥하기는 북녘 집권층도 마찬가지 아닐지.
  • “동서화해의 조율사” 고르비/올 노벨평화상 수상 공적

    ◎신사고 앞세워 동구대변혁 촉발/핵감축등 실현,평화분위기 조성/독립요구ㆍ경제난 등 내홍겪기도 노벨상이 수상자 개인에게 가져다 주는 영광과 명예는 몇십만 달러의 상금으로 측정되어질 성질의 것이 아니다. 노벨상이 갖는 권위와 함께 수상자 선정과정의 비밀성,의외성이 곁들여져 무명의 수상자까지도 하루아침에 최상의 명예를 누리게 된다. 그러나 금년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의 경우는 이러한 명예와 감동이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는 느낌이다. 그의 수상으로 오히려 노벨평화상의 권위가 더 빛나게 됐다고나 할까. 몇몇 후보자가 거론됐지만 금년도 평화상이 그에게 돌아간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 금년초 미 시사주간지 「타임」은 지난 10년을 마감하며 그를 「80년대의 인물」로 선정했다. 당시 타임은 『세계역사의 무대에 기적이 펼쳐지고 있다. 견고했던 냉전의 껍질이 깨지고 새로운 세계가 전개되고 있다. 이 기적의 물꼬를 튼 기적의 마술사. 그가 바로 미하일 고르바초프다』라고 선정이유를 설명했다. 이 설명은 노벨평화상의 경우에도 그대로 합당하다. 동유럽 전역을 휩쓴 사회주의권의 대변혁과 그에 이은 역사적인 독일통일,미소관계는 물론 유럽ㆍ아시아에까지 밀어닥친 화해의 대기운속에서 그는 처음부터 이 모든 과정의 훌륭한 지휘자였다. 지난 85년 당서기장으로 집권한 이래 그는 개혁을 통한 사회주의의 재생을 기치로 사회주의 혁명 70년의 낡은 유물들을 몰아내기 위한 일대운동을 전개했다. 그 결과 소련은 전임 서기장들 시대의 암울하던 모습을 벗고 점차 새로운 힘을 되찾아가게 됐다. 이 새로운 기운은 동유럽 전역으로 번져가 증폭된 힘으로 동유럽의 거의 모든 사회주의 정권을 일거에 무너뜨리는 무서운 힘으로 발전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놀라운 균형감각을 발휘,급진 보수의 양극단을 적절히 조절하며 「무혈」 변혁을 유도해냈다. 물론 국내적으로는 개혁에 따른 많은 부작용들을 겪게 되었다. 발트해 연안 공화국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분리독립요구는 점차 그 기세를 더하고 있고 개혁의 실질적인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데 불만을 품은 시민들의 항의시위등으로 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발트해 3국의 독립요구를 거부하고 있는 그의 태도는 소련내의 전반적인 인권문제와 함께 수상자 선정과정에서 결격요인으로 지적되기도 했다. 하지만 새로운 세계질서의 탄생과정에서 그가 보여준 결단은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을 것이다. 미소 중거리핵무기(INF) 감축협정,아프간 주둔 소련군 철수 그리고 소련군의 대규모 일방감축선언 등은 냉전시대를 마감하고 동서화해의 새시대를 여는 중요한 견인구실을 했다. 그의 이러한 노력은 86년 블라디보스토크선언,88년 크라스노야르스크선언 등을 통해 아시아지역으로 영역을 넓히기 시작했다. 지난 6월 노태우 대통령과 가진 역사적인 한소 정상회담과 그에 이은 두 나라의 수교는 고르바초프의 극동중시 아시아정책과 우리정부의 북방정책이 맞아 떨어진 극적인 결과로 평가되고 있다. 59세로 31년 남부러시아 프라볼르노 태생. 모스크바대서 법학을 전공했으며 78년 농업담당서기로 당중앙위에 진출,80년 정치국원이 됐다. 지난3월 헌법을 개정,임기 5년의 대통령직에 선출돼 현재 당서기장직과 겸직하고 있다. ◎노벨평화상위가 밝힌 수상 이유 노르웨이 노벨평화상위원회는 90년 노벨평화상을 오늘날 국제사회의 중요한 부분들을 특징지우는 평화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수행한 미하일 세르게예비치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에게 수여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수년동안 동서관계에서는 수많은 극적 변화들이 일어났다. 대입이 협상으로 전환됐으며 오랜 역사를 지닌 유럽의 많은 민족국가들이 자유를 되찾았다. 군비경쟁의 속도가 둔화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는 군축과 무장해제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확실하고도 능동적인 진전상황을 목격하고 있다. 일부 지역분쟁들이 해결됐거나 마침내 타결을 향해 접근해가고 있으며 유엔은 법에 의해 지배되는 국제사회에서 수행해야 할 창설 당시의 본래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하고 있다. 이같은 역사적 변화들은 몇가지 요소들로부터 파생된 것이나 90년 노벨평화상위원회는 이같은 역사적 변혁과정에서 수많은 결정적 역할을 한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을 치하하고자 한다. 그가 소련사회에서 일으킨 엄청난 개방물결은 국제적 신뢰를 증진시키는 데도 크게 도움을 주었다. 노벨평화상위원회의 견해로는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지대한 공헌을 한 이같은 일련의 평화과정이 이데올로기ㆍ역사ㆍ문화적 갈등으로 점철된 수많은 난제들을 해결하려는 세계사회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 것으로 평가한다.
  • 노벨평화상 고르바초프/냉전종식… 화해의 새 질서 구축

    【오슬로 AP 로이터 연합】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동유럽의 개혁을 선도하고 냉전종식에 기여하는 등 오늘날 국제사회의 중요한 특징인 평화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공로로 90년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게 됐다고 노르웨이 노벨상위원회가 15일 발표했다. 노벨상위원회는 이날 성명을 통해 『지난 수년 사이 동서관계는 극적인 변화를 겪었으며 대결은 협상으로 대체되었다』고 전제하고 『구유럽국가들은 그들의 자유를 되찾았으며 군비경쟁이 둔화되면서 우리는 군비통제 및 군축이 결정적이고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본다』고 말했다. 고르바초프는 지난 1901년 노벨평화상이 제정된 이래 공산국가 지도자로서는 사상 처음으로 이 상을 수상하는 것이며 강대국 지도자로서는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이 수상한 이후 두번째다. 청동메달ㆍ상장 및 71만달러의 수표가 주어지는 노벨평화상은 오는 12월10일 오슬로에서 수여된다.
  • “중국과 관계개선의 기폭제”/노대통령,아주게임 선수단 격려

    노 대통령은 10일 상오 제11회 북경아시안게임 선수단과 응원단을 청와대 녹지원으로 초치,금메달 수상자 등 유공자들을 포상한 뒤 다과를 함께하며 격려했다. 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소련ㆍ동유럽 여러 나라와 외교관계를 맺는데 서울올림픽이 결정적인 전기가 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번 북경대회는 중국과의 관계개선에 기폭제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하고 『오늘날의 스포츠는 나라와 나라,민족과 민족 사이를 이어주는 매개의 역할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이번 대회에서 남북 체육인들이 만나 남북 통일축구대회를 평양과 서울에서 개최키로 합의한 것은 남북고위급회담 및 각종 남북 교류와 함께 한반도에 화해와 협력의 시대를 열어가는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다과회에는 한국선수단 6백75명을 비롯,경기단체장 등 7백18명이 참석했으며 카누 3관왕인 천인식 선수 등 7명이 체육훈장 거상장을,펜싱 금메달리스트 탁정임선수 등 76명이 체육훈장 백마장을,레슬링의 김상규 선수 등 37명이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 내언외언

    알프 소메르펠트. 노르웨이 오슬로대학의 장로격 언어학자였다. 노르웨이가 나치스 지배로 들어갔을 때는 런던에 둔 망명정권의 문교부 장관을 지내기도 한다. ◆20세기 후반기 언어학사에 남을 논문들을 실은 것으로 유명한 「워드」지의 창간호에 그가 권두논문으로 쓴 글이 「언어문제와 평화」. 프랑스어로 쓴 이 글에서 그는 『민족이 언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언어가 민족을 만든다』고 하는 피히테나 훔볼트 유의 생각을 「위험을 안은 독일적인 언어관」이라면서 공박한다. 언어가 의사 전달기능 이상의 것일 수는 없다는 주장. 『언어란 인종과는 별개의 것으로서 사회적 성격을 띠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국가ㆍ민족과 언어의 문제를 두고는 학자들 사이에 끊임없이 논쟁이 있어 온다. 한 언어와 그 언어를 쓰는 민족 사이에는 「신비스런 연계성」이 있다 없다 하면서. 그러나 학자들의 학문적인 논쟁이야 어떻든 간에 현실적으로는 「민족­언어」가 붙어다닌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려워진다. 개혁바람의 소련쪽에서 민족문제가 대두될 때마다 덩달아 나오는 것은 그 민족어 문제 아니던가. EC어로서 영어가 채택된 것에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은 왜 화를 냈던가. 캐나다에서도 「영ㆍ프랑스어권」 싸움은 정치적으로 심각성을 띤다. ◆지구촌의 흐름은 점점 더 공동체의식을 언어에서 구하는 경향인 듯하다. 외국에 나갔을 때 문득 자국어ㆍ자국문자와 대하면서 뿌듯한 감회에 젖는 것은 누구나 느끼게 되는 원초적인 마음. 뿌리가 같은 「영어」인데도 동유럽으로 수출함에 있어 「영국어」와 「미국어」가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말은 민족의 자존심이다. 힘의 상징으로 비치기도 한다. 그래서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서는 눈에 띄게 안띄게 「언어전쟁」이 벌어진다. ◆우리의 말과 글을 생각해보자는,오늘이 한글날. 가꾸고 맑히는 노력이 많이 모자란다는 생각 속에 맞는다. 말이 달라지면 「남」이 되는 것. 국토의 통일에 대비하여 남북한 말의 이질화 폭도 좁히게 돼야겠다.
  • “슈퍼 게르만”…새로운 열강으로 부상/독일통일과 국제질서에의 파장

    ◎경제력 바탕,마르크화 블록 형성할 듯/안보리 상임국 확실… 정치입김도 막강 독일통일로 세계사의 한 시대가 막을 내렸다. 2차대전후 지금까지 동서냉전체제와 세계질서는 독일의 분할과 이에 기초한 유럽의 분할에 근거한 것이었다. 때문에 동독의 소멸과 새로운 통일독일의 출현은 독일이 냉전 이후 세계질서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할 것인가,그리고 새로이 탄생되는 세계질서는 어떤 모습일까에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독일은 지난 1년간 그들의 힘과 영향력을 어떻게 구사할지에 대해서 거의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않았다. 그것은 거의 전적으로 지금부터의 일이다. 독일통일을 바라보는 시각은 거대 독일출현이 또 다시 침략의 역사로 이어지지 않을까라는 우려의 시각과 이제는 독일이 세계경제와 평화에 이바지 할 것이라는 긍정적 시각으로 나뉘고 있다. 1871년 프로이센에 의한 독일통일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지고 1933년 히틀러의 나치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는 점이 우려를 낳는 배경. 즉 통일된 독일은 우세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또 다시 중부유럽 더 나아가 유럽과 전세계를 제패하는 패권국가를 꿈꿀지 모른다는 것이다. 한편 통일독일이 과거와 같은 행동을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세계경제발전과 평화유지에 주도적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긍정적 시각도 폭넓게 제기되고 있다. 1ㆍ2차대전 당시 독일은 후발선진공업국으로서 영ㆍ불이 독점하고 있는 제국주의시장에 뛰어들기 위해서는 무력사용이 불가피했지만 이제는 독일도 국제무대에서 상당한 몫을 차지하고 있으며 냉전체제는 무너지고 신질서는 창조되지 않아 독일의 역할에 따라서는 몫을 훨씬 늘릴 수 있을 만큼 국제환경이 바뀌었다. 또 당시와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집단안보체제가 확립돼 있기도 하다. 아울러 사회경제적 불안과 건전한 시민사회의 결여가 전체주의 정권출현의 배경이 됐던 것과는 달리 현 독일은 「독일의 유럽」이 아니라 민주화된 「유럽의 독일」로 재탄생 했다는 점도 지적된다. 지난 1년간 독일이 통일과정에서 주변국의 우려,특히 국경선문제에 민감한 폴란드와 안보이익을 우선시하는 소련에대해 평화유지에 명확한 태도를 취해 온 것도 독일통일에 대한 우려를 덜어주는 요인이 되고 있다. 지금까지 독일통일이 냉전체제의 종식과 신질서 대두의 신호탄이라고 일컬어져 왔으나 아직 앞으로 창조될 새 국제질서의 모습은 구체적으로 그려진 적은 없다. 따라서 통일독일이 새 국제질서 창조에 어떤 역할을 수행할지는 국내외적 요인과 사회경제적 여건을 쫓아 가늠해 보는 수 밖에 없다. 독일통일은 무엇보다 사회주의권의 패배와 연결되고 있다. 사회주의권내의 모범국가였던 동독이 서독과의 체제경쟁에서 완전패배,서독체제의 동으로의 확산을 받아들임으로써 앞으로 사회주의 국가들이 국제정치면에서 약세를 면치 못할 것이 분명하다. 사회주의권의 약세는 소련 내부 개혁과정과 맞물려 유럽내 세력관계의 완전한 기축이동 및 냉전체제하의 동서 균형상태의 절폐를 의미한다. 이미 지난 6월 바르샤바조약기구(WTO)가 군사적 집단안보기구에서 정치기구로 전환한데서 보듯이 동서 군사대결의 시대는 지나갔다. WTO의 최전선국가이자 핵심국가인 동독이빠져나감으로써 WTO는 눈동자를 잃은 셈이 됐으며 이의 반사작용으로서 NATO 또한 목표와 구조의 변화가 불가피 하다. 동독등 동유럽지역으로 부터 소련군이 철수함으로써 독일에 대한 군사적 압력은 크게 덜어지고 집단안보의 필요성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통일과정에서 독일은 고르바초프의 「유럽공동의 집」구상이나 중립화방안을 거부하고 나토잔류를 선택했다. 하지만 동유럽의 안정도 약속함으로써 독일이 앞으로 동서유럽의 교량역할을 수행할 가능성을 높여 주었다. 물론 독일의 교량역할 수행에는 경제력의 뒷받침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인구 8천만,GNP 1조3천억 달러의 경제력은 유럽경제의 기관차로 유럽통합을 가속화시키는 한편 동구의 개방과 때맞춰 중부유럽에 마르크화 경제권을 형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동서 블록경쟁시대로부터 평화공존의 시대,다변화시대로 접어듦으로써 개별국가간의 협조가 중요성을 더할 것이며 독일은 우수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동유럽내에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할 것으로 보인다. 향후 독일의 행보를 결정짓는 데는 이밖에 독일내의 정세에 의해서도 크게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독일은 지난 1년동안 소련의 전승국으로서의 간여를 유명무실하게 만들고 나토잔류 결정을 내려 독자성을 과시해 왔다. 미ㆍ영ㆍ불도 점령국으로서의 권한행사보다는 독일의 주권을 존중하는 자세를 견지해 왔다. 이런 점에서 오는 12월에 치러지는 전독선거는 향후 독일정세를 결정짓는 시금석이 될 것으로 보여 주목된다. 지난 동독선거에서 참패,서독 정치지도에서처럼 균형자로서의 역할을 계속할지 의문시 되는 겐셔 외상의 자민당,서독지역에서 대두 가능성을 키워 온 공화주의 극우세력 등이 얼마나 지지를 획득하느냐,기민당이 걷고 있는 대서양주의(Atlanticism)를 사민당도 계속 수용할 것인가 등등 향후 유럽질서에 영향을 미칠 요소가 많다. 여기에 동독지역은 서독과는 달리 동독이 독일민족의 고유한 문화,진보적 전통 등 긍정적 요소를 계승한 국가라는 민족주의적 정치선전과 반서방 반나토적인 정치선전이 되풀이 돼 왔기 때문에 중립화를 선호하는 경향이 꽤 남아있는 상태다. 이 모든 요소들이 선거를 통해 보여주는 결과는 독일이 장래에 크든 작든 영향을 줄 것이다. 국제무대에서 독일의 발언권은 벌써부터 높아지고 있다. 이미 소련은 독일을 UN안보리의 6번째 상임이사국으로 천거,각국으로부터 긍정적 반응을 얻고 있다. 이미 확보된 국제적 지위,중부유럽을 뒷마당으로 만들 수 있을 만큼 거대한 경제력,45년간 과거와 단절한 채 쌓아온 민주적 기본질서 등 독일이 국제질서의 파괴자라기 보다는 신질서 창조의 주역으로 활동할 배경은 충분히 갖춰져 있다.
  • 「분단 41년의 벽」누가 허물었나(새 독일 탄생:2)

    ◎꾸준한 교류가 조기통일의 길 열어/동구변혁을 양독 재결합 호기로 이용/대소 경원등 통해 주변국의 우려 불식 불과 1년 전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독일보다는 한반도의 통일이 먼저 이루어질 것이란 생각을 했다. 독일이 통일되는 것을 원치않는 주변 국가들의 입장을 지나치게 염두에 둔 생각이었다. 그러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독일의 통일은 하루 아침에 누구도 거스릴 수 없는 대세가 돼 버렸다. 이렇게 거센 통일의 큰 흐름을 이루어낸 원동력은 과연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독일통일의 원동력을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설명한다. 하나는 소련을 시발로 동유럽 전역을 휩쓴 개혁과 개방의 흐름이 통독의 외적 장애요인들을 제거함으로써 독일통일의 움직임들이 비로소 가능케됐다는 설명이다. 또다른 하나는 통독을 기본적으로 동서독 국민들의 계속된 통일노력의 결과로 보는 시각이다. 물론 외적 환경들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동독 국민들의 공산정권에 대한 저항,그리고 서독경제력에 대한 매력,여기에 덧붙여 양쪽 국민들이 꾸준히유지해온 민족적인 동질의식 등이 통독을 가능케한 주 원동력이었다는 것이다. 역사적인 베를린장벽 개방을 단행한 에곤 크렌츠 전 동독 공산당서기장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당시 소련이 자신의 장벽개방조치를 전혀 반대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통독을 기본적으로 「유럽공동의 집」이란 큰 테두리안에서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이었다는 것이다. 소련의 이러한 입장변화가 없었다면 통독은 사실 극히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외적 환경의 변화를 감안하더라도 독일국민들이 한 역할이야말로 통일을 이루어낸 결정적인 원동력이었음을 부인키 어려울 것 같다. 제일 먼저 꼽을 수 있는 공로자들은 지난해 5월부터 반년여에 걸쳐 서방으로 탈출해나간 수십만의 동독시민들이다. 전재산과 생활기반을 하루아침에 버리고 떠남으로써 이들은 가까이는 베를린 장벽을 허물어냈고 멀리는 흡수통합이라는 독일형 통일방식의 기틀을 잡은 셈이 됐다. 이들의 탈출은 동독의 사회주의 40년이 실패했음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준 드라마였다. 10월과 11월 동베를린,라이프치히 등 동독 전역에서 벌어진 반정부 시위 또한 통독과정의 큰 분수령이었다. 수많은 반정부 단체들이 지하활동을 계속했고 동베를린의 알렉산더광장에서는 매주 월요일이면 공산당 타도집회가 개최됐었다. 반정부 집회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히 통일을 외치는 분위기로 바뀌어 갔다. 길거리에서 공산당 타도와 통일을 외치는 국민들의 요구는 동독정부는 물론 주변국 누구도 대항키 힘든 큰 힘을 보여주었다. 역사는 소수의 지배층이 아니라 국민의 힘에 의해 움직인다는 사실을 동독국민들은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동독국민들은 지난 3월 분단 이래 처음 실시된 자유총선에서 조기 통일을 슬로건으로 내건 우파연합에게 50%에 가까운 압도적인 지지를 보냄으로써 통일과정을 다시 한번 앞당겨 주었다. 당시 우파연합의 압승에 대해 장벽개방 후 날로 악화되는 경제사정에 지친 동독국민들이 서독 마르크화를 선택한 것이라는 분석들이 많이 나왔었다. 동독 마르크를 가능한한 1대1의 비율로 서독 마르크로 바꾸어 주고동독경제의 조속한 부흥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콜 서독총리의 지원유세가 크게 주효했다는 설명도 나왔다. 그러나 동독 유권자들이 공산정권을 몰아내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재야세력까지 제치고 우파연합에게 표를 몰아준 데는 이러한 경제적인 고려뿐만 아니라 당시 국내외 정세의 호기를 놓치지 않고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는 민족적인 공감대가 그들 사이에 널리 퍼졌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통독과정에서 동독국민들이 보여준 이러한 적극적인 역할을 근거로 어떤 학자들은 통독을 동독이 서독에 「흡수」된 것이 아니라 「가입」했다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민족자결의 원칙에 입각해 장기적인 안목으로 통일을 위한 제도적인 뒷받침을 꾸준히 마련해온 서독정부의 노력도 크게 돋보인다. 서독은 독소 불가침조약,1975년 헬싱키 선언,그리고 동서독 기본조약 등에서 이 원칙을 관철,국경선이 민족자결 원칙에 입각해 평화적으로 변경(통일)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이로 인해 통일은 서독 기본법 23조에 의거,동독이 서독으로의 편입을 선언함으로써 자동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게 됐다. 인적ㆍ물적 교류를 통해 사회적인 통합을 이루고 그 다음 경제통합,마지막으로 정치ㆍ군사통합을 이룬다는 서독의 기능주의적 통일정책이 결실을 맺었다고도 할 수 있다. 초기 서독정부의 통일정책은 이산으로 인한 양쪽 국민들의 인간적인 고통을 줄이기 위한 인적 교류에 모든 역점을 두어 왔었다. 동방 정책입안자들은 일찍이 동독정부는 통일을 원치 않지만 동독 국민들은 통일을 원한다고 판단,이같은 인적교류를 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72년의 동서독 기본조약 체결 이후 이러한 인적,물적교류는 꾸준히 증가돼 왔다. 물적교류는 사실상 서독의 동독에 대한 경제원조의 성격이 강했다. 서독은 주택,도로건설,환경보호 등 앞으로 동독의 재건에 소요될 수천억 달러 상당의 소위 통일비용도 선뜻 부담하겠다고 나섰다. 동독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서독의 튼튼한 경제력 또한 통독의 무시못할 공로자인 셈이다. 독일의 분단은 지난 40여년간 동서냉전의 상징같은 성격을 같고 있었다. 이 냉전이 와해돼가는 과정에서 서독은 끝까지 소련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엄청나게 신중한 자세를 유지했다. 소련의 경제재건에 대한 지원을 약속했고 동독 주둔 소련군의 철수비용까지 부담하겠다고 했다. 중부유럽에서 거대 독일의 등장에 대해 불안한 시선을 지우지 못하고 있는 주변 국가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배려도 돋보인다. 폴란드에 대해서는 현 독일­폴란드 국경을 준수키로 약속했다. 독일의 분단이 그랬듯이 독일통일도 넓게 보면 유럽 내지 세계질서의 큰 테두리 안에서 그 단서가 잡힌 것임을 부인키 어렵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역시 돋보이는 것은 이 주변 정세의 호기를 놓치지 않고 통일로 연결시켜낸 독일민족 내부의 힘이다. 이 힘을 바탕으로 앞으로 이루어낼 독일민족의 「제2의 도약」에 전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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