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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수와 약물복용/최창신 축구협 수석부회장(굄돌)

    국가대표선수들을 대상으로 금지된 약물 복용여부를 가리기 위한 조사결과,몇몇 선수가 양성반응을 보였다해서 큰 물의가 빚어지고 있다.이로 인해 바르셀로나 올림픽 출전을 목전에 둔 우리 선수단이 여러가지 모양으로 타격을 받을 것이라 짐작되어 마음이 무겁다. 운동선수가 특수한 약물의 힘을 빌어 경기력을 크게 높여 보려고 시도했던 것은 옛 소련과 동유럽 일부 국가들이 원조라 할 수 있다.스포츠를 이른바 과학화한답시고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다 보니 그런 좋지 못한 꾀가 생겨난 셈이다. 지금은 그 방법론의 일부가 다른 나라에까지 침투되어 가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이 약물복용이라고 하는 것이 그리 단순하지가 않다.작은 지면으로는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지만 간단히 줄이면 이렇다. 역도 레슬링과 같이 집중적인 힘이 필요한 종목 선수들은 스테로이드라는 호르몬제를 복용하여 근력을 강화시키고,일반 구기종목 선수에게 필요한 약물은 컨디션 상승을 겨냥한 흥분제 종류이며 몸무게를 빼거나 몸매를 날씬하게 유지해야 되는 체급경기 종목및 체조선수들은 이뇨제(이뇨제)를 복용하는 수가 있고 사격·양궁 등과 같이 심리적 안정이 요구되는 선수들은 신경안정제가 도움이 되는 식이다. 그런데 문제는 감기 몸살에 먹는 약을 비롯,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여러가지 일반 약품가운데 이런 금지된 약물이 조금씩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흔하다는 점이다. 또 많은 선수들이 체력관리를 위하여 즐겨 먹는 보약돌 중에도 문제의 성분이 섞여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번에 적발된 몇몇 선수들의 경우에도 금지된 약물을 직접적으로 또는 상습적으로 복용한 경우는 별로 없으리라는 생각이 든다.왜냐하면 관계당국이 이 문제와 관련,전문가를 데려다가 수시로 교육을 시켜 왔을 터이고 우리나라 검사기관의 수준은 서울올림픽 당시 1백m 달리기 우승자 벤 존슨(캐나다)을 적발,금메달을 박탈시켜 세계를 놀라게 했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적발된 우리 선수의 경우,덮어놓고 흥분하지 말고 옥석을 잘 가려 합당한 대책이 세워지길 바란다.
  • G7은 소극적 대외정책 버려야(해외사설)

    『러시아 경제문제를 해결할 만한 충분한 돈이 세상에 있는지 모르겠다』 뮌헨에서의 선진7개국(G­7)정상회담이 끝난 8일 조지 부시 미대통령이 말했다. 그의 말이 옳았다.돈은 러시아문제 해결책의 일부분일 뿐이다.부시의 말은 더넓은 의미에서도,그가 의도하지 않았던 의미에서도 역시 옳았다.G­7 지도자들은 궁색한 꼴만 보였다.돈이 없는게 아니라 슬기가 모자랐다. G­7은 이번 회의에서 거시적 세계경제협력의 불씨를 되살리지 못했다.러시아와 구소련지역 나라들에 대해 아무런 새 약속도 하지 못했다.옛소련지역의 핵시설철거를 위한 비상대책도 마련하지 못했다.존 메이저 영국총리의 노력에도 불구,막다른 골목의 우루과이라운드에 대한 해결책도 내놓지 못했다. 회의에서 크게 잘못한 것이야 없지만 더 잘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7개국 사이의 많은 차이 때문에 거시경제협력은 적절치 않을 수도 있다.그래도 무역문제나 옛소련및 동유럽 지원과 관련된 문제들이 좀더 다뤄져야 했다. G­7은 정말 그다지도 가난한가.이들의 국내총생산은 90년에 14조달러가 좀 덜되는 액수였다.이 해에 일곱나라 정부는 5조달러를 지출했다.옛소련의 공격에 대한 방비가 대부분인 방위부문에 쓴 돈은 약 5천억달러다.미국만 하더라도 40년대 유럽재건을 위한 마셜계획에 오늘날 생각해봐도 많은 돈을 썼는데 지금 이 나라 국내총생산은 네곱이 되었다.돈은 있다.뭘 먼저 하고 나중해야 할지를 가리는 분별력이 없을 따름이다. 무역부문에서도 마찬가지다.91년 런던회의때 이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그들은 당시 『협약이 92년말 이전에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고 했다.그런 기대정도는 아무라도 할수 있다. G­7은 세계 모든 나라들을 시장경제로 나오도록 불러내고 있다.여기에는 요구되는 조건이 많았다.무역자유화에 대해 G­7 정상회의에서 제시된 것들은 우루과이라운드에서 요구되는 것보다 비교적 조촐하다. G­7은 오늘날 세계문제를 해결할 돈도 능력도 지니고 있다.다만 지도자들이 필요한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그들이 계속 죽쑨다면 G­7중 일부국가의 국민들이 다른 지도자를 찾기 시작한다 해도 놀랄 일은 아닐 것이다.
  • 「유럽평화군」 나고르노 첫 파병/헬싱키 CSCE 1차 정상회담

    ◎1백명의 감시단 파견 최종 결정/역내 분쟁지 개입등 역할 확대 【헬싱키 UPI AFP 로이터 연합】 유럽안보협력회의(CSCE)52개 회원국 정상들은 9일 헬싱키에서 1차 정상회담을 갖고 동유럽에서 확대되고 있는 민족분규를 진정시키기 위해 다국적 평화유지군을 창설하며 구소 최대의 민족분규지역인 나고르노­카라바흐에 평화유지군을 최초로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CSCE에 파견된 빌헬름 호인크 독일대사는 CSCE 회원국의 고위 관리들이 나고르노­카라바흐에 약 1백명의 「푸른 헬멧」감시단을 파결할 것을 원칙적으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CSCE의 현의장국인 체코슬로바키아의 한 관리는 나고르노­카라바흐에 파견될 휴전 감시단 성격의 평화유지군 대표에 이탈리아 외교관이 임명됐다고 전했다. 이와관련,만프레트 뵈르너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사무총장은 CSCE 정상들이 평화유지군으로 나토군을 사용하기를 희망한다면 『우리는 나토군을 그들이 사용할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CSCE 정상들은 특히 이번 정상회담에서 군축문제를 비롯,동구에서의민족 분규해소방안을 집중논의했으며 CSCE의 중재 권한을 더욱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변화의 도전」이라는 선언문을 채택할 예정이다. 서방국가들은 또 유고에 대한 유엔의 제재를 강화하고 인도적인 구호물자 수송을 위해 해군을 통한 유고 해안의 봉쇄를 준비중이다.CSCE 정상회담에 참석중인 서구동맹(WEU)과 나토 회원국 외무장관들은 10일 회담을 갖고 유고에 대한 군사행동의 실질적인 선택방안을 결정할 예정이다. CSCE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분쟁을 방지하거나 해결을 지원하고 또 평화유지군을 창설하는 등의 광범위한 권한을 부여받는 새로운 조치들을 채택할 예정이다.
  • 인권에 정통한 교수 출신/폴란드 새 총리 수호츠카 여사

    【바르샤바 AP 연합】 레흐 바웬사 대통령은 8일 민주동맹소속의 한나 수호츠카의원(여·46)을 신임총리로 임명했다.폴란드 최초의 여성총리가 된 그녀는 헌법과 인권문제에 정통한 법학교수출신이다. 수호츠카는 조직력과 책임감,합리적인 일처리 등 뛰어난 의정능력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를 받아왔으며 오히려 혼미한 정국에 직접 개입하지 않음으로써 깨끗한 이미지를 유지,80년대 공산정권에 항거했던 폴란드자유노조 연합 출신 정당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그녀는 공산연정에 가입된 민주당의 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던 지난 80년 동유럽 최초의 자유노조인 폴란드 자유노조연합에 가입,이후 법률전문가로서 노조운동과 인권운동을 벌여 왔다.
  • 「G7 정치성명」 주요내용

    ▲유럽의 민주혁명은 세계의 정치상황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유럽,아시아­태평양 및 기타 지역에서 분할된 책임을 가진 새로운 동반자 관계를 위한 길을 열었다. ▲중·동유럽국가들과 독립국가연합(CIS) 소속 국가들은 전례없는 기회를 잡을 수있으나 또한 엄청난 도전에 직면해 있으며 개혁을 위해 우리는 이들을 지원할 것이다. ▲유럽공동체(EC) 12개 회원국들이 서명한 마스트리히트조약은 유럽통합을 향한역사적 발걸음이며 이 조약의 이행은 정치적 안정을 증대시킬 것이다. ▲북대서양협력회의의 창설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와 중·동유럽국가 및 CIS 소속 국가들간의 관계를 강화시켰으며 서유럽동맹(WEU)은 동유럽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구유고연방과 구소련 그리고 세계 다른 지역에서 수많은 살상과 대량파괴를 야기하는 민족,인종,종교,지역 분쟁들은 힘에 의해 해결되고 있다. ▲유럽안보협력회의(CSCE)는 유럽의 안보와 안정을 위해서 필수적인 것이며 CSCE는 갈등을 막기 위해 그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우리는 일본과CSCE간의 정기적이고 생산적인 대화의 진전을 지지한다.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각료회의 같은 아시아­태평양지역 조직은 평화를 증진시키는데 중요하다. 우리는 캄보디아의 현상황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러시아가 외교정책에서 법을 준수하는 것은 영토문제 해결을 통한 러시아­일본 관계 정상화를 위한 길이다. ▲동서 대결의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핵무기확산방지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핵확산금지조약(NPT)의 가입 확대는 이를 위한 중요한 조처이다. ▲G7은 모든 국가들이 미사일기술통제협정(NTCR)의 지침을 채택하도록 노력한다.유럽재래식전력(CFE) 감축협정의 이행은 유럽에서 새로운 안보협력구조를 만들게 될것이다. ▲G7 지도자들은 부트로스 갈리 유엔사무총장의 유엔 개혁 노력을 지지한다. ▲인권은 개별 국가들 또는 이들 국가의 정부들의 자의적인 문제가 아니다.인권은 어떠한 정치,이데올로기,종교 체제의 지배에 종속될 수 없다.인권의 보호와 촉진은 국제사회의 주요 과제들중 하나로 남아 있다.
  • 문민정치의 기반다졌다/하토리 다미오/「6·29」5주(해외특별기고)

    ◎노 대통령,다양한 이해의 조정자역 훌륭히 수행 노태우대통령이 87년 민정당대표위원 당시 발표한 「6·29선언」으로 부터 5년동안 한국사회에는 많은 변화가 나타났다.다른나라에서는 10년이 경과해도 나타나기 어려운 큰 변화들이 계속 되었다.민주화·서울올림픽·북방외교의 성공·남북회담과 유엔동시가입·급속한 경제발전등 외국인으로 볼때 당혹스러울 정도의 큰 변화였다. 이같은 많은 변화를 가져온 한국인들의 놀라운 활력과 적응력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이러한 큰 변화는 국제적으로 냉전체제의 붕괴라는 역사적 변혁기의 와중에서 나타났다.그러나 동·서화해시대의 새로운 국제질서가 정착되더라도 세계질서변화에 대응할만한 경제력의 축적이 없었다면 한국의 큰 변화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때 한국의 경제력 축적은 결정적 의미를 갖는다. 노대통령의 민주화 선언은 한국정치의 중요한 전환점이었다.노대통령은 지난 88년 권위주의 청산이라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취임했다.그는 급속한 자유와 개방의 물결속에 각계각층의 민주화 요구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많은 과제들을 처리해 가면서 한국의 정치를 권위주의 체제에서 민주주의 체제로 전환 시켰다. 그 과정은 불안한 상황의 연속이었지만 결국 문민정치 실현의 기반을 마련해 냈다. 한국의 민주화는 경제의 대외개방과 민간부문의 자율화를 가져오고 경제적 평등화의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근로자들의 임금면에서 평등화 현상은 뚜렷하다.통계로 볼때 학력별 또는 직종별 임금격차는 급속히 감소되고 있다.저학력 근로자의 실질임금 상승률과 지금까지 임금수준이 낮았던 제조업 분야의 임금상승률이 크게 개선됐다. 그러나 이같은 임금상승에는 우려되는 부분도 있다.과거에는 기업규모별 임금격차가 일본보다 적었으나 민주화이후에는 오히려 확대되는 조짐이 보인다. 민주화에 따른 경제자유화는 기업의 경영능력을 시험하고 있다.경제의 고성장하에서 나타나고 있는 적지않은 결손기업의 출현과 전반적인 이익률 감소는 앞으로 산업구조변동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근로자의 임금상승은 내수를 촉진하여국내시장을 확대시키는 긍정적인 면이 있다.경제성장의 상당부분을 내수가 차지한다는 것은 수출의존적인 한국경제가 한층 성숙화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그러나 문제는 소비자의 높아진 구매요구수준을 만족시킬만큼 산업기술수준이 높아지지 않는데 있다.또 임금이 상승,상품가격이 인상되었으나 제품의 품질은 그만큼 향상되지 않아 국제경쟁력이 떨어졌다.임금상승은 한국민주화의 가장 비싼 대가였다.국민들이 자유로이 말하고 권리를 주장하며 산업현장에서는 임금인상 요구가 분출됐다. 많은 한국근로자들은 열심히 일하기 보다는 생활을 즐기려는 경향이 짙어졌으며 이같은 현상도 민주화의 대가이다.한국은 민주화의 비용을 치르고 있다.그 비용의 대부분은 국민들 스스로 부담하지 않으면 안된다. 다행히 한국에는 아직 충분히 활용되지 않은 커다란 무형의 자원이 있다.그것은 「보통사람들의 보통두뇌」이다.보통두뇌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제도가 필요하다.기업의 경우 의사결정이 경영진에 의해 이루어진후 하부조직에 일방적으로 지시된다면 보통의두뇌활용은 불가능하다.권한을 하부조직에 위임함과 동시에 하부조직 의사가 경영진에 전달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업무의 분담은 산업민주화라 할수 있다. 한국기업중에는 우수한 두뇌를 소수만 확보하고 그밖의 생산현장이나 판매일선에는 단순노동자만 고용하는 경우가 있다. 한국에서는 지금까지 우수한 두뇌를 어느정도 잘 활용해 왔다.그러나 산업이 다각화 되고 상품과 시장이 다양화 되는 상황아래서는 어떤 우수한 두뇌도 전체를 모두 파악하기는 불가능하다.다양한 현대의 경제구조하에서는 다수의 보통두뇌가 정보교환을 잘할 경우 소수의 우수한 두뇌를 능가할 수 있다. 사회도 마찬가지다.사회가 고도화되고 복잡해지면 경우에 따라서는 공조할 수 없는 사상을 주장하는 단체도 등장할지 모른다.그러나 그것이 민주주의다.한국사회는 6·29선언이후 언론의 자유가 크게 신장되고 다양화 되고 있다.민주화의 정도는 보통사람들의 보통두뇌의 활용과 정보의 공유정도,의사결정과정에 걸리는 시간등의 척도에 의해 측정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보통사람들의 시대」를 선언한 노대통령의 임기는 내년초 끝난다.노대통령은 민주화 선언이후 공정한 선거과정을 통해 당선된 지도자로서 통치의 정통성을 확보했다.외교면에서는 특히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했다.그가 취임이후 펼쳐온 북방외교는 한국외교의 새지평을 열며 구소련 및 동유럽 국가들과 국교정상화를 이룩했다.또 남북한 유엔동시가입을 실현시켰으며 남북통일의 길목을 열었다. 노대통령은 외교면에서의 지도력 발휘와는 달리 내정면에서는 지도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았다.그러나 노대통령은 지도력이 부족하기 보다는 강력한 지도력의 발휘를 자제했다고 할 수 있다.노대통령은 민주화이후 「초대」대통령으로서 권위주의시대와 같은 지도력 발휘를 억제하고 다양한 이해의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자임해 왔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민주화시대에는 강력한 지도력이나 지배력의 발휘가 반드시 바람직 스러운 것은 아니다.시간이 걸리더라도 설득과 타협이 필요하다. 한국의 민주화는 얼마간의 시행착오를 경험하며 성숙화의 방향으로 발전할것으로 보인다.노대통령은 한국의 정치가 보다 성숙한 민주주의 제도화로 발전할 기반을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 문화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나(「6·29」그후 5년)

    ◎“탈이념물결”… 다양한 소재·목소리 분출/등록제실시로 출판사 3천곳 신설붐/월북작가 해금… 「해방공간」문학사 복원/사전검열 폐지따라 공연예술의 자유 만끽/TV방송 공·민영시대로… 지나친 상업주의 경계해야 문화는 자율성과 다양성의 토양위에서 꽃을 피운다.강압적 권위주의 시대에서 민주화·자유화시대로의 길을 연 6·29선언은 바로 기름진 문화의 토양을 제공했다.6·29선언 이후 지난 5년동안 우리 문화는 그동안의 편협성과 경색에서 벗어나 폭넓고 자유로운 창작활동의 꽃을 피웠다.월북작가작품 해금,무용 및 연극대본에 대한 사전심의제도 폐지,출판활성화 조치등이 6·29선언의 정신에 따라 이루어졌고 예술가의 상상력을 억압하던 온갖 금기에서의 해방과 함께 탈이데올로기 현상을 겪으며 우리 문화는 비로소 참된 다양성을 획득해 냈다. ▷문화부기자 방담◁ 김정열차장(부장급) 이헌숙기자(차장급) 윤석규기자 김성호〃 백종국〃 김균미〃 김동선〃 ­6·29선언은 문화·예술계에도 민주화의 바람을 몰고 왔습니다.문학·출판·미술·공연·방송·영화등 각 분야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특히 공연대본에 대한 사전심의 및 출판물납본제도 등을 통해 실질적인 사전검열이 행해져왔던 출판계와 공연예술계에 대한 영향은 대단했습니다. ­88년7월19일에 단행된 월북작가 작품 해금 조치는 그중 가장 뚜렷한 성과였습니다.6·29선언을 뒷받침하기 위한 88년 7·7선언의 후속조치로 나왔던 월북작가작품 해금조치는 박태원 이태준 임화 등 그동안 남한에서 접근과 출판이 용이하지 않았던 1백20여 월북문인들의 8·15이전 작품의 공식출판을 허용하는 획기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운동권」 예술성 회귀 ­6·29선언은 20년대 이후 해방에 이르는 한국문학사의 공백을 메워 불구의 문학사를 고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습니다.또 문화 각 부문에 만연했던 「정치적 기준」을 「문화적 기준」으로 대체하는 상징적 조치로서 이후 보다 개방적인 문화 흐름을 선도하는 이정표가 되었습니다.운동권 문학에 있어서의 문학성의 강조경향,포스트모더니즘 문학 열기 등도 국제정치환경의 변화와 함께 6·29선언으로 인한 자유화의 진전등 국내상황변화에 크게 힘입은 사례들로 지적될 수 있습니다. ­출판계의 민주화는 먼저 출판사의 폭발적인 증가로 나타났습니다.87년10월이 지나면서 명실상부한 등록제가 된 것입니다.신고만 하면 출판사를 설립할 수 있게 된 거지요.80년이래 허가제의 내용을 갖는 이름뿐인 등록제가 자리를 잡은지 8년만의 일입니다.이를 계기로 6·29선언이 있기 전해인 86년말 2천6백여개에 그쳤던 출판사 수가 87년말 3천4개,88년말 4천3백97개,89년 5천97개로 늘었으며 현재는 2배에 가까운 6천개에 육박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88년12월 문화부는 공연법 시행령을 고쳐 20년동안 표현의 자유 시비를 불러 일으켜온 무용 및 연극대본에 대한 사전심의제도를 폐지했습니다.마침내 공연예술계가 공연소재와 표현방식 등 공연물에 대한 자율성을 실질적으로 확보하게 된 것입니다.이는 공연당사자들이 공연작품에 대한 한계를 미리 설정해 놓고 작품을 구상·준비해 오던 때와 비교해 볼 때 한결 자유롭게 하고 싶은 작업을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것입니다.작업에 대한 자율성 확보와 함께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책임을 져야하는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이 비로소 적용될 수 있게 된 셈이지요.이에따라 체제비판적이거나 외설적인 내용 등을 이유로 공연이 금지됐던 「오장군의 발톱」(박조열작)「금지된 장난」(김훈작)「춤추는 인형들」(엄한얼작)등과 같은 작품들이 공연돼 공연의 다양화를 가져왔습니다. ­각 대학의 학생미술운동도 6·29선언을 계기로 활성화됐습니다.또 문예진흥원 등 관계당국은 행정적인 차원에서 과거 「민중미술」을 이끌어온 「현실과 발언」,민중미술협의회 등에 전시지원을 했습니다.6·29선언 이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지요. ○군·빨치산소재 등장 ­영화와 방송분야도 6·29선언의 덕을 톡톡히 누리게 됩니다만 다른 분야에 비해 두드러진 대중성 때문에 표현의 자유가 제약을 받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출판·학술 분야의 민주화는 분명 6·29선언에서 시작되었으나 구소련 및 동유럽 공산주의 국가들의 몰락 또는 개방까지기다려야 했습니다.출판사들의 등록이 자유로워졌고 이에따라 각종 출판물이 물밀듯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에 실정법 위반 시비는 당연한 것이기도 했습니다.정치적인 결단인 6·29선언에 따른 입법조치가 아직 완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공연예술계는 자율화의 혜택을 크게 누렸습니다.정부는 제도권 밖의 「민족극」극단의 활동에도 관용을 보였습니다.이에따라 그동안 제도권내에서 유일하게 사회비판적인 내용의 창작극만을 공연해온 극단 연우무대가 설 자리를 잃고 새로운 위상을 모색해야 하는 재미있는 일도 벌어졌습니다.어떻든 공연여부로 화제를 모았던 극단 아리랑의 「아버지의 해방일기」와 「격정만리」등도 무난히 관객들의 앞에 올려졌습니다. ­6·29선언에서 비롯된 문화 전반의 민주화·자율화 분위기는 결국 문화의 다양화에 기여했습니다.문학·방송·미술·공연·출판·학술 등 모든 분야에서 다양한 목소리들이 분출되고 있습니다. ­문학의 경우만 해도 많은 소설가들이 그동안 금기로 되어왔던 소재를 다루고 있습니다.김신의 「쫄병시대」,복거일의 「높은 땅 낮은 이야기」,고원정의 「빙벽」등 88년부터 쏟아져 나왔던 군병영을 소재로 한 소설들이 군의 비리까지도 일정부분 소설화했던 현상은 6·29선언 이전과는 확연히 차이나는 것입니다.그리고 분단이나 빨치산을 소재로 한 문학작품에서 좌익의 시각을 과감하게 수용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이밖에 운동권 문학에서도 문학성을 강조하는 추세로 돌고 있습니다. ­6·29선언 뒤 몇년동안 북한원전과 기행문,마르크스·레닌 원전 등은 출간붐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그 결과 탈이데올로기 현상이 빚어졌고 동유럽 공산국가의 몰락으로 이념서적의 인기가 급락하고 말았습니다. ­90년대 들어 미술분야에서는 「민중작가」가 아닌 일반작가들도 통일문제를 들고나와 나름대로 이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소재로 삼는 대상이 다양해진 것이지요.이에 비해 「민중미술작가」들은 과거에 비해 그림들이 예술적으로 순화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철학적·미학적으로 자기반성하는 자세를 가지면서 과거처럼 급진적이고 지나치게 선동적인 모습은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오랫동안 금기로 여겨왔던 사회고발영화와 농도짙은 성애영화가 대거 등장한 것도 이 시기입니다.5공의 비리를 핵심권부에 맞춰 그린 정치소재의 「서울무지개」(감독 김호선)와 성을 소재로 한 「매춘」(감독 유진선)이 대표적인 작품입니다.또 「전쟁과 평화」「모스크바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국두」 등 구소련과 중국영화들이 국내극장가에 처음 나붙게 됐습니다.6·29 이후 본격화된 북방정책의 결과이지요. ○특수방송 잇단 설립 ­외형적으로 공영체제가 허물어지는 흐름에서 평화방송 교통방송 불교방송 등 특수방송이 잇따라 설립됐으며 지난해 서울방송 라디오·TV개국으로 공·민영 혼합체제가 구축됐습니다.또 토론프로그램이나 코미디·드라마 등에서 비판금지대상이나 소재의 벽이 허물어져 다양한 프로그램의 제작이 가능해졌습니다. ­통일을 바라보는 시점에서 민족동질성의 뿌리를 찾아내기 위한 당국의 배려도 이젠 많이 늘어났다고 봅니다.올상반기 예술의 전당 미술관에서 열린 대규모 북한미술전이 그 한 예입니다.북한의 화가들이 작업한 수많은 원화들을 일반인들이 여과없이 접할 수 있었다는 건 큰 변화가 아닐 수 없죠. ­공산권의 붕괴와 함께 북방과의 문화교류도 활발히 이루어졌는데 종교계의 경우 지나친 북방선교가 문제가 될 정도로 적극적인 북방진출이 이루어졌지요. ­자율화 민주화 과정에서 지나친 상업주의에 의한 문화왜곡등 부작용도 없지 않았습니다.올해들어 방송위원회가 대폭 개정한 방송심의규정은 자율화·민주화의 한계는 과연 무엇일까 하는 점을 생각하게 해줍니다.이번 개정에서 오히려 내용이 강화된 것으로 ▲인권 보호 ▲방송언어의 순화 ▲광고의 국민건강을 위한 규제가 들어 있습니다. ­아무튼 6·29선언은 그 시행과정에서 많은 과제를 노정시켜왔으나 문화의 다양화 작업을 가능케했으며 탈이데올로기에 따른 한민족 문화의 뿌리 찾기등 값진 성과를 이룬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이같은 변혁은 바로 우리 문화의 총량을 제고하는 귀중한 계기였다는데 아무도 이의를 달 사람은 없습니다. ◎전문가 평가/김윤식 문학평론가/자율성의 참뜻 되새길때 6·29선언이 5공화국에서 6공화국으로 넘어가는 징검다리였음은 모두가 아는 일이다.8개항으로 된 이 선언을 검토해보면 한갓 시국수습안의 일종이었음이 드러난다.이점에서만 보면 그것은 시류적인 성격에서 벗어날 수 없는 문건이다.그러나 좀 자세히 살펴보면 거기에는 국민대단합이라는 커다란 명제가 놓여있다.국민대단합이라는 명제를 내걸었다는 것은 그것이 당시의 제일 중요한 과제였음을 새삼 말해주는 터이다.무엇이 국민대단합을 저해하고 있었던가.8개항의 수습책이 달성되지 않는 한 국민대단합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 8개항을 수습할 수 있는 기본항이랄까 원칙이란 무엇일까.이렇게 물을 때 우리는 쉽사리 그것이 자율성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사회 각 부문의 자치와 자율은 최대한 보장되어야 합니다.각 부문별 자치와 자율의 확대는 다양하고 균형있는 사회발전을 이룩하여 국가발전의 원동력이 된다고 믿습니다」라고 말해진 것은 8개 수습항목중 6번째에 해당되는 것이다.그러나 이 항목이 실상 6·29선언의 으뜸 항목임은 일목요연하다. 자율성의 원칙이 모든 문제해결의 기본항을 이룰 때 어떤 사회도 상당한 혼란을 면하기 어렵다.국가권력이라는 이름의 폭력에 의해 사회적 욕망분출이 조정되던 사회보다 자율성으로 그것을 해결하는 사회가 한층 바람직한 것이라면 그 바람직한 사회의 도래를 위해 상당한 기간의 혼란은 불가피한 법이다.이 원칙이 세계사의 변화라든가 후기 산업정보사회의 급속한 진전과 더불어 5년간을 두고 알게 모르게 실천되었음은 모두가 아는 일이다.이 자율성의 달성이 얼마나 소중한 과제였는가는 6·29선언에서도 지적된 물가안정이라든가 흑자경제 등 5공화국의 치적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위협받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음을 보아도 알 수 있는 터이다.6·29선언이 단순한 시국수습책에 멈추지 않는,역사적인 문건으로 평가되는 참뜻이 여기에 있을 것이다. 자율성을 기반으로 하는 역사전개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분야가 문화(문명)쪽이라는 사실은 새삼 강조해둘 필요가 없을까.문화란 개성에 바탕을 두는 것이며 따라서 무정부주의적인 성격으로 규정된다.자율성이 조금도 억압되지 않는 사회만들기야말로 문화의 방향성이라 함은 이를 가리킴이다.이 점에서 6·29선언은 우리 사회의 문화적 지향성의 표현이었다.기업문화,정치문화,교통문화 등의 표현이 가능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그렇다면 새삼 무엇이 문제인가. 문제는 이러한 자율성이 후기 산업사회 속에서 얼마나 지켜질 수 있느냐에 있다.그동안의 자율성의 옹호가 문화의 특성을 유감없이 드러내었음이 사실로 인정되지만 동시에 그것에 포위되어 위기를 맞이하고 있음도 사실로 인정되는 터이다.문화창출의 자율성이 문화유통의 자율성(상업주의)에 의해 좌우될 때 문화가 도리어 위협받게 되는 것,이 이율배반 앞에 놓인 것이 자율성을 기반으로 한 6·29선언의 한가지 귀결이다.자율성,그것은 문화쪽에서 보면 해결하기 어려운 일종의 배리가 아닐 수 없다.
  • 평화통일의 토대 닦았다/「6·29」 5주(해외 특별기고)

    ◎비탈리 이그나텐코·이타르타스 통신사장 전 소대통령 대변인/한­소수교로 동북아해빙 서막올려 한국은 전쟁의 잿더미에서 살아남은지 30년 되던 해부터 세계 10대 무역국으로 성장했다.뿐만아니라 세계평화수호에도 큰 기여를 하는 빼놓을 수 없는 나라가 됐다. 냉전이 남긴 비극의 마지막 장인 한반도에서 동서의 운동선수들이 모두 참가해 치러진 지난 88년의 서울올림픽은 경제면에서는 물론 세계평화에 한국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보여준 좋은 예가 됐다. 1987년 6월 29일 지금의 노태우대통령이 주도한 『민주개혁에 관한 선언』은 경제발전수준에 걸맞는 민주화를 갈망하던 한국민의 욕구를 충족시켰다.6·29선언으로 한국은 급속한 속도로 민주화를 이루어나갔다.한국사회는 과거의 권위주의체제를 청산하고 진정한 민주주의를 정착시켰다.지난 5년간의 민주화과정을 통해 자유와 자율의 기풍이 사회 모든 분야에 퍼져나갔고 새로운 민주질서가 확립됐다. 과도기간중 사회각계각층의 욕구가 분출돼 사회의 안정과 질서가 침해됐던 것도 사실이다.몇몇 과격단체들이 폭력적인 수단을 동원해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려했던 사실은 이곳 모스크바에서도 잘알고 있다.우리는 TV화면을 통해 관공서와 경찰관서까지 대상으로 삼아 벌어지는 폭력적인 행동들을 자주 목격했다. 민주주의는 법질서 준수의 바탕위에서만 얻어질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알고있다. 전두환씨가 1988년 자신의 통치기간중 저질렀던 전횡을 시인함으로써 한국에서 박정희식 통치 체제는 사실상 끝났다.나는 그 시점이 바로 한국의 민주화에 중요한 한 전환점이라고 생각한다.바로 이때 한국은 세계전역에서 전개되던 사회·정치의 진보적인 새 조류를 과감하게 받아들였던 것이다. 앞으로 한국민은 다음의 3가지 과제를 우선적으로 완결시켜야 한다.첫째,노대통령이 시작한 자유민주주의를 모든 생활면에서 안정적으로 이루어야 한다.둘째,계층간 격차를 점차적으로 해소해 복지국가를 건설하는 일.세번째로는 한반도에서의 냉전해소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남북한간 대결을 끝내고 평화통일의 길을 닦아나가는 것이다. 이 일들은 매우힘겨운 과제임이 분명하지만 그 토대는 이미 만들어져 있다. 노대통령이 대외정책부문에서 이룬 성과들은 물론 전세계적인 데탕트와 동유럽 및 구소련땅에서 스탈린주의체제가 붕괴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하지만 한국은 강대국들의 갈등이 빚은 자신들의 역사적 비극상황을 이 주변변화의 기회를 이용해 바꾸었다. 소련은 당시 한국이 급속한 속도로 변화를 해주었기 때문에 한국에 접근하게 됐다.물론 한국의 경제발전은 이때 소련이 접근하게한 중요한 계기가 됐다. ◎88올림픽 성공적 개최… 세계평화에 기여 구소련 공화국들은 한국의 경제적 잠재력을 높게 평가,한국과 밀접한 경제관계를 맺기 위해 힘쓰고 있다.소련에서 한국에 대한 접근필요성이 최초로 제기된 것은 주간 「노보예 브례미야(신시대)」를 통해서였다. 당시 「노보예 브례미야」는 사설에서 『1970년대 중국이 일본에 접근했던 것과 같이 한국은 소련의 중요한 경제파트너가 될수있다.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경제통합 분위기로 말미암아 소련과 한국의 접근은 자연스럽고도 당연한 것이 됐다』고 썼다. 한국은 이제 자신들이 경제·정치면에서 어떤 나라와도 경쟁이 아니라 협력관계를 유지할수 있음을 전세계에 보여주었다. 특히 모스크바 당국자들을 감동시킨 것은 한국의 민주화였다.당시 소련언론들은 『한국은 1987년 대통령선거를 통해 합헌적이고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이루어냈다.이제 두나라 관계발전에 정서적 장애는 모두 제거됐다. 한국은 권위주의체제로부터 민주적체제로 성공적으로 이행한 경험을 가진 나라다.행정정치면에서 중앙통제체제를 청산하고 다원화 사회를 이루어야 할 소련으로선 유사한 과제를 이루어낸 한국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6공화국의 주요업적으로 「북방정책」도 빼놓을 수 없다.북방정책은 소련­한국관계 발전을 가능케한 한국측 새 정치상황의 주요한 한 요인이다.북방정책의 덕분으로 한국과 소련은 1990년9월 30일 『양국간 우호관계와 전면적인 협조를 기대하면서』외교관계를 수립했다.이 역사적 결정은 9월30일 유엔본부에서 있은 양국외무장관 공식회담에서 결정됐다.1904년 당시 조선과 러시아제국이 외교관계를 단절한 지 꼭 86년만의 일이었다.당시 필자는 미하일 고르바초프대통령의 대변인으로서 이 뜻깊은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볼수 있었다. 한국으로서도 소련과의 외교관계수립은 큰 외교적 성공이었다.이는 40년 이상 전쟁상태에 놓여있던 양국관계의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두나라의 관계정상화는 나아가 동북아시아에 남아있는 냉전의 한 조각이 녹기 시작했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동북아지역 안보상황의 중요한 변화를 예고하는 한 사건이었다.다시말해 한소관계 정상화는 바로 동북아지역에서 대결을 종식시키고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는 첫 페이지를 장식했다. 5년전 노대통령의 6·29선언은 바로 이 대단원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 6월 베스트셀러/「단야」·「스칼렛」 10위권 진입

    ◎문학대 비문학 7대3으로 문학우세/인문사회분야선 경제서적 강세 여전 6월의 베스트셀러 10위권안에 「소설 목민심서」「벽오금학도」「단야」「붉은 폭풍」「스칼렛」 등 소설 5편이 새로 모습을 나타냈다.이에 따라 이번 달은 문학 대 비문학의 비율이 7대3으로 문학쪽이 우위에 섰다. 상위에 오른 소설 가운데 「단야」는 요즈음 강세를 보여온 많은 역사인물소설과는 다른 정통 소설이라는 점이 독자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구한말부터 일제 중기까지를 배경으로 우리 강토를 침략해 들어오는 일제에 의해 민중들이 수탈당하는 모습과 이에 대한 민중들의 저항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전7권으로 된 이 소설은 지난 1월 나온 제1권이 이미 11만부가 넘게 팔리는등 모두 80만부는 무난하게 돌파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지은이 정동주씨는 이 소설을 구상,취재한뒤 원고지에 옮기는 도중 구소련을 비롯한 동유럽 공산국가들의 몰락과 문호개방을 맞게 된다.정씨는 그동안 일본측의 자료에 주로 의존했으나 만주와 연해주의 정보를 접한뒤 애당초 마음먹은대로소설을 전개시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소설 목민심서」(삼진기획)는 그동안 인기를 누려온 「소설 토정비결」「소설 동의보감」등과 맥락을 같이 하는 역사인물소설.황인경 지음. 「벽오금학도」(동문선)는 그동안 작품활동을 중단해왔던 이외수씨가 10년만에 낸 소설이라는 점에서 독자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이 소설은 선계를 다룬 설화적 소재를 현실적 삶과 대비시켜 그려낸 구도소설. 「붉은 폭풍」(잎새)은 이슬람교도와 NATO 연합군이 시베리아 서부 유전과 정유시설을 둘러싸고 벌이는 전쟁을 가상하여 쓴 소설(전3권).톰 클랜시 지음 주한일 옮김. 「스칼렛」(교원문고)은 영화와 소설을 통해 잘 알려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속편(전3권).알렉산드라 리플리 지음 장왕록·장영희 옮김. 한편 인문·사회분야는 경제관련서들이 상위권을 틀어쥐고 있는 가운데 「발굴 한국현대사 인물」(한겨례신문사)이 외롭게 버티고 있다.이 책은 89년10월∼92년2월에 걸쳐 신문에 연재됐던 우장춘,용성스님,조영래 등 1백2명의 인물전기를 다루고 있다. 자연과학분야에서는 스티븐 호킹의 「시간은 항상 미래로 흐르는가」(우리시대사),「시간의 역사」(삼성이데아) 등과 프레드A울프의 「과학은 지금 물질에서 마음으로 가고 있다」(고려원),스즈키 다쿠지의 「시간의 패러독스」「즐기면서 배우는 물리학 산책」(팬더북) 등이 인기를 끌었다.
  •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42년이 지난 「그날」아침에/이형근

    6·25전쟁 3년1개월은 평생을 군인으로 일관한 나에게는 한마디로 치욕적인 전쟁이었다. 군인이 싸우면 이기든지 지든지 둘중에 승부를 내야 하는데 4백만명의 동족이 숨지고 1천만명의 이산가족을 만든 전쟁이 휴전으로 끝이 나고 아직도 통일을 이루지 못한것은 수치스러운일이 아닐 수 없다. 휴전협정이 조인된지 39년이 지난 지금에도 휴전선일대에는 남·북한 1백여만명의 장병들이 대치하고 있다. 1백55마일 휴전선에는 세계에 유례가 없는 긴 휴전의 역사가 계속되고 있으며 단위면적당 가장 많은 장병과 무기가 집결되어 있다. 소련이 와해되고 동유럽권이 붕괴되는 등 세계사적인 변혁이 일어나고 있으나 한반도 안보상황만은 변화가 없다. 이런 의미에서 전쟁은 아직도 계속중이며 진행중이다. 통일을 하는데는 반드시 상대방이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북한의 김일성이 진정으로 조국의 평화적인 통일을 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북은 경제적인 형편이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핵개발과 무력증강을 계속하고 있다.북한은 외교적인 압력에도 불구하고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려 하지 않고 있다. 남북기본합의서가 발효됐는데도 지난 5월22일에는 북한의 무장침투조가 군사분계선을 넘어 침투해 왔으며 북한은 유엔군측의 군사정전위원회 개최제의도 묵살하고 있다. 휴전협정에 명시되어 있는 군사정전위원회 기능이 1년이상이나 정지되어 있다. 세계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는데도 북한 위정자들의 대남적화통일전략은 변하지 않고 있다. 최근 젊은 세대들의 성급한 통일논의와 함께 과격한 시위에서 인공기가 등장하는 사실을 보고 전쟁을 지휘한 군인의 입장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6·25 전쟁기간동안에 학생들이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군번도 없이 종군,7만여명이 죽어갔다. 42년전 낙동강 전선에서 이름없이 숨져간 수많은 학도병들의 애국심이나 현재의 대학생들의 애국심이나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 체제수호를 위해 숨져간 학생들과 적화통일도 좋다는식의 감상주의적인 통일론을 펴는 학생들과의 의식의 차이는 대단한 것이다.통일은 반드시 자유민주주의 체제로의 통일이 되어야 한다. 적화통일도 좋다는 식의 성급한 생각은 필경 우리 모두를 공산주의의 노예로 만든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소련과 동유럽국가들도 버린 사회주의·공산주의 체제는 북한에서도 멀지않아 붕괴될 운명에 처해 있다. 6·25당시 우리 국군의 병력은 9만5천명밖에 안되는데다 소총과 수류탄도 별로 없었다. 북한은 만주와 소련에서 전투경험을 한 직업군인들을 중심으로한 병력 20만명과 전차 2백42대,포 7백28문,전투기 2백11대로 국군과는 비교도 되지않는 우세였다. 당시 북한이 보유한 소련제 T34탱크는 공산권이 가진 가장 우수한 탱크였다. 장갑능력도 뛰어나고 기동력도 우수하며 소형이어서 좁은 길이나 험준한 산악지역에서도 훌륭히 작전을 수행할 수 있었는데 우리가 가진 중기라고는 고작 M8장갑차 27대뿐이었다. 6·25 발발당시 대전의 2사단장이었던 나는 이날 상오 육군본부의 김백일참모차장으로부터 북한이 38선을 돌파,남침했으니 부대를 의정부로 옮기라는 명령을 받았다. 당시 2사단은 사단본부만 대전에 있고 청주·천안·온양에 1개연대씩 주둔하고 있는 향토사단이었다. 사단본부 병력을 인솔하고 노량진을 거쳐 용산에 도착해보니 국군은 이미 패주중이고 북한군은 탱크를 앞세우고 파죽지세로 남진하는 상황이었다. 부대를 잃은 패잔병과 지휘소를 잃은 부대장,고향을 잃은 실향민,부모와 자식을 잃은 고아와 가장들의 비참한 행렬이 이어졌다. 전선이 무너진 상황에서 후방의 병력을 전선에 투입한다면 계속해서 먹힐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육본에서는 무기도 장비도 없이 후방의 병력동원에만 열중했다. 전선에 병력이 투입되면 궤멸되어 없어지고 다시 병력을 모으고 하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사이 대전·대구까지 밀리게 됐다. 50년 9월은 내 생애에서 가장 비참한 달이었다. 사랑하는 아내가 전쟁중 영양실조로 숨지고 막내동생인 이상근준장이 청송전투에서 전사해 집안이 풍비박산이 됐다. 50년 10월에 초대 3군단장에 취임해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과 서울수복에 이어 38선을 돌파,북진대열에 참가하게 됐다. 3년전쟁의 결과는 국토의 초토화와 폐허뿐이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는 국방력과 경제력 두 가지 힘을 길러야한다.
  • 서울 온 고 사하로프박사 미망인/보네르 사하로프여사

    ◎“스탈린치하 체험엮은 회고록집필”/CIS·동구권 민족자결권 인정돼야/구소붕괴 필연… 민주체제 전망 불투명 구소련의 반체제 물리학자 고안드레이 사하로프박사의 미망인 보네르 사하로프여사(70)가 남편의 한국어판 회고록(도서출판 하늘땅 펴냄)출판기념회에 참석하기 위해 23일 하오 KAL기편으로 서울에 왔다. 사하로프 여사는 서울 도착후 김포공항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독립국가연합(CIS)은 물론 동유럽 각국의 민족자결권은 인정돼야 하며 이와 관련된 모든 사태는 평화적으로 해결돼야 한다』고 말했다.그는 최근 극심한 민족분규를 겪고 있는 유고슬라비아는 물론 체코와 CIS의 몰도바·아제르바이잔 공화국내 소수민족들에게 자치권을 인정해야 하며 모든 사태가 평화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요즘 하는 일은. ▲과거 사하로프를 포함한 반체제인사들이 썼던 문서들을 발굴,책으로 출판하고 있다.또 10대 중반 스탈린체제 아래서 겪었던 경험들을 회고록으로 쓴다.제목은 「어머니와 딸들」(Mothers And Daughters)이며 한국에서도출간되길 바란다. ­최근 CIS의 변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한마디로 구소련의 붕괴는 긍정적인 사태다.그러나 그 다음은 어떻게 될지 부정확,불확실하다.CIS국가들 상호간의 관계가 복잡하며 앞으로 서로 적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각 공화국의 자치가 바람직하다고 보는가. ▲구소련의 붕괴는 각 공화국의 자치와 같은 말이다.그러나 각 공화국간 협조와 원조는 지속돼야 한다.최근 우크라이나·몰도바 공화국과 러시아공화국간의 유혈사태는 진정한 민주체제에 대한 전망이 별로 밝지 않음을 알려준다. ­앞으로 인권활동을 어떻게 펼칠 것인지. ▲어려운 질문이다.CIS의 미래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신생공화국들이 아직 헌법을 마련하지 못한 상태이므로 인권을 어떻게 보장할지 알 수 없다.최소한 소송제도를 구소련과 달리 새롭게 마련해야 하며 감옥에 대한 인식과 시설도 바뀌어야 한다. 53년 레닌그라드의학연구소를 졸업하고 인권활동을 하다가 72년 사하로프박사와 결혼,의사이자 사회운동가로서 남편과 함께 구소련의 폭정에 대항해반체제활동을 펼쳐 온 보네르 사하로프 여사는 『남편이 추진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나의 일이었다』고 밝혔다. 사하로프 여사는 서울에 머무는 동안 김영삼 민자당 대표최고위원 초청오찬(25일),김대중 민주당 대표최고위원 환영만찬회(25일),이종찬의원 초청만찬회(27일)등에 참석하고 26일 하오6시 세종문화회관(1층 세종홀)에서 열리는 사하로프회고록 출판기념회에 참석한다.29일 출국예정.
  • 멀고도 험한 「유럽통합의 길」/박강문(특파원수첩)

    덴마크 국민의 마스트리히트조약 비준거부로 유럽은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다.지난해 12월 조인된 마스트리히트조약은 유럽공동체(EC)12개국의 정치·경제통합 시간표를 정한 것이었다.이 시간표가 제대로 지켜질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음은 물론이다.결국 유럽통합은 회원국간의 보조 불일치 때문에 「다중속도」로 진행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이와 함께 동유럽에서 보는 분열과 혼돈이 서유럽에서도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마저 일고 있다. 유럽 통합의 가장 적극적인 추진 세력인 프랑스에서는 이 조약비준을 위한 헌법개정을 하원이 결의했고 상원에서 토의중이었다.프랑수아 미테랑대통령은 지난 3일 갑자기 이를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발표했다.영국도 의회에서의 토의를 연기하기로 했다.덴마크 사태가 당장 몰고 온 결과이다. 프랑스와 독일의 지도자는 『유럽 통합을 확고하게 추진할 것』이라는 결의를 보였으나 이러한 사실 자체가 유럽 통합의 어려운 앞날을 뜻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유럽통합 노정에서 프랑스와독일을 중심으로 한 통합 적극파는 빠른 속도로,영국 네덜란드 등 신중파는 느린 걸음으로 나가게 될 것이라는 전망을 표현한 이른바 「다중속도 공동체」라는 말이 생겨났다. 유럽공동체는 회원국의 축출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않아 당장 덴마크가 회원 자격을 잃지는 않는다.덴마크 정부 또한 국민투표 결과와 관계없이 유럽공동체와의 관계를 지속하기를 희망하고 있으며 다른 회원국들을 상대로 마스트리히트조약의 수정을 위한 협상을 제의할 계획이다. 그러나 순번제 의장국인 포르투갈의 아니발 카바쿠 실바총리는 『덴마크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조약의 재협상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말했다.회원 자격 문제에 대해서는 포르투갈의 피네이루 외무장관이 『유럽공동체의 기본 목적을 받아들이지 않는 국가가 계속 회원자격을 지닌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고 말했다.그리고 신문들은 벌써 유럽 공동체를 뜻해오던 「열둘」이라는 말 대신 「열하나」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다.실질이야 어떻든간에 덴마크는 심정적으로 소외되기 시작했음을 볼 수있다. 덴마크로 말미암아 유럽공동체의 확대 전망도 불투명하게 되었다.오스트리아 핀란드 스위스 스웨덴에 대한 가입 토의가 내년에는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돼 왔으며 동유럽의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등을 받아들이는 것도 긍정적으로 검토되고 있었다.그러나 이런 계획은 이제 주춤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프랑스가 마스트리히트 조약 비준을 국민투표에 부쳐 만일 부결된다면 유럽 통합은 완전히 허물어질 것이다.현재로서는 가을에 있을 국민투표가 그렇게 우려할 만한 정도는 아니다.다만 현정부에 대한 인기도가 떨어지게 되고 극우파들의 반대 움직임이 먹혀들게 되면 상황은 달라질 수도 있다. 마스트리히트조약에 따르면 93년부터 유럽공동체 역내 사람·물자이동을 자유화하고 1999년까지는 단일통화 사용,공동 외교및 방위에 도달하는 것으로 돼 있다. 통화단일화문제에 대해서는 독일안에서 반대하는 소리도 높아가고 있다.동서독 통일비용으로 혼나고 있는 터인데 다시 유럽 통합비용으로 희생당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다. 공동 외교및 방위문제는 국가 주권의 포기라는 점 때문에 여러 나라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특히 일부 작은 나라들은 통합유럽의 중앙집권체제에 자국의 독자성이 함몰될 것을 두려워하고 있으며 덴마크의 결과도 이런 우려가 크게 작용한 것이었다. 그러나 크게 보아 덴마크의 이탈이 그동안 유지됐던 서유럽의 안정이 혼돈으로 바뀌는 또하나의 조짐이 아닌가하는 불안감도 표출되고 있다.런던의 국제전략 문제연구소 프랑수아 하이스부르 소장은 『서방 세계의 가치와 결속이 위기를 겪고 있다』고 말했다. 유럽 통합은 이상이며 이제는 이념과도 같다.그 실현의 길이 험난함을 유럽은 체험하고 있다.
  • 걸핏하면 점거/화염병·각목…/「전대협」 시위악순환 언제까지

    ◎「연방제통일」 주장은 위험한 발상/인공기자극등 탈법 호응 못얻어/과격투쟁 자제,안정된 남북대화 지원을 1천만 시민의 생활터전인 서울 도심에 걸핏하면 화염병과 돌멩이가 날고 학생들이 휘두르는 쇠파이프와 각목에 경찰이 쫓겨다니는 악순환이 좀처럼 그치지 않고 있다. 그동안 우리사회의 민주발전에 나름대로 기여해온 공적은 인정된다 해도 과연 이와같은 격렬한 투쟁양상이 이제는 재고돼야 하지 않느냐는 목소리들이 갈수록 높아가고 있다. 지난 29일 「전야제」부터 3일동안 한양대에서 이른바 「제6기 출범식」을 가진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는 마지막날인 31일 하오 기어이 서울 도심 곳곳을 점거,도시교통을 마비시키는등 휴일나들이 시민들에게 엄청난 불편과 불안을 안겨줬다. 「전대협」이 이처럼 과격폭력시위를 일삼고 수만명의 학생들을 동원해 대규모 집회를 갖는 것은 현정부를 「친미사대주의 세력」으로 보고 현재로서는 「민중이 중심이 되는 통일」을 달성하기 어려우므로 이른바 「민주정부」를 수립하자는 것이다.이어 북한이 주장하는 통일방안인 「연방제통일」을 달성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이에 따라 「전대협」은 지난달 8일 부산 동아대와 광주 전남대,13일 서울 건국대에서 있은 「조통위 출범식」집회에서 북한의 「인공기」를 게양해 시민들의 관심을 끌려다 여론의 비난에 부딪히자 이를 스스로 철회했다. 「전대협」은 동유럽의 공산주의 붕괴와 소련의 공산주의포기 등에 따라 위축된 세력을 만회하고 일반의 관심을 끌기위해 「제6기출범식」이라는 대규모 세과시에 나섰던 것으로 여져지고 있다. 이들은 5만여명에 이르는 많은 학생을 동원하기 위해 전국의 각대학에 참석을 독려,지난 29일엔 「광주·전남지역총학생회연합」소속 대학생 9백여명이 철로에 불을 지르고 열차를 강제정차시키는 탈법을 저질렀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투쟁방법설정에 골몰하고 있는 「전대협」은 시민은 물론 운동권그룹 자체에서도 내부 분열상을 보이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기도하다. 이같은 학생들의 과격집회에 이은 도심폭력시위에 대해 관악구 봉천1동에 사는 주부 오수옥씨(59)는 『민주화가 진전되고 있고 남북고위급회담에 따라 고향방문단교환이 예정돼 있는등 정치·경제·사회적 안정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점에서 시민들에게 불편만 주는 과격시위를 중지하고 쇠파이프대신 펜을 들고 장차 나라를 이끌고 갈 학문연구에 힘써야 할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이용필교수(59·정치학)는 『과격한 구호와 폭력시위는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학생운동권의 고립을 자초할수 있다』면서 『정치는 정치인에게 맡기고 사회에 진출한뒤 국가·사회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소양을 닦는 것이 사회변혁의 한부분을 담당할 학생의 본분』이라고 말했다. 조영황변호사(53)는 『평화적 시위문화가 정착되어야 할때에 폭력시위가 또다시 발생해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 『이유야 어쨌든 최루탄과 쇠파이프가 난무하는 불행한 사태로 시민들이 도심지를 몽땅 뺏겨버리는 불행한 일을 방지하고 생업에 안심하고 종사할 수 있도록 시위문화가 하루빨리 개선돼야 할것』이라고 말했다.
  • 대학 서클활동 실용위주로 변모/이념모임 시들… 새회원 작년의 절밤

    ◎외국어 회화·컴퓨터·음악반은 “성시” 대학가 동아리(서클)활동이 크게 달라지고 있다. 지금까지는 이념서클들이 많은 회원을 확보,과격한 활동을 펴왔으나 이념활동은 시들해지는 반면 컴퓨터·외국어회화·연극등 실용적인 부분에 학생들이 몰려들고 있다. 이념서클들은 회원가입이 지난해 절반수준에도 못미치자 회원모집에 안간힘을 쓰고 있고,취미및 실용성을 띤 서클룸은 회원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이같은 대학문화의 변화는 동유럽의 몰락 이후 대학가에서 탈(탈)이데올로기 경향이 널리 퍼지고 있는데다,신입생들이 날로 실용적·개인주의적 성향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고려대는 전체 86개 동아리중 정치경제학연구회·독일철학강좌회·한국근현대사연구회등 16개의 이념서클이 있는데 이들은 지난해 2백40명 가량 새내기(신입회원)를 확보했으나 올해는 절반이상 줄어든 1백여명에 지나지 않았다. 이에대해 총학생회 한간부는 『과(과)학회활동이 활성화되면서 사회과학적인 지식을 이념서클이 아닌 곳에서도 충족할 수 있게된데다 특정집단에 소속돼 제약을 받지 않으려는 개인주의적 성향이 두드러졌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반면 컴퓨터클럽,뉴스위크,타임반,실용영어회화반등 실용서클은 지난해보다 훨씬 많은 새내기들이 몰려들어 가입을 제한하느라 진땀을 빼는 현상을 빚기도 했다. 경영에 관한 정보교환을 하는 경영대산하 창영반의 경우 50명의 신입회원이 가입,한 서클당 5∼7명이 가입한 이념서클과 대조를 이뤘다. 이같은 상황은 서울대도 마찬가지여서 학술·이념서클들은 자기네 동아리의 특성을 내세우지 않는 대신 기타교습·고전읽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신입생들에게 손짓을 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이처럼 동아리 활동이 크게 변모하자 서울대 당국은 총학생회를 지원한다는 차원에서 활동이 우수한 서클에 지원금 또는 장려금을 지급하는 인센티브까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세대도 이념서클은 회원들이 줄어들어 고교동문회등을 통해 신입회원 확보에 힘을 쓰고 있는 반면 컴퓨터·음악·악기연주·합창등 실용·취미서클은 회원가입의 폭주로 서클룸이 비좁을 정도다. 이념서클이 신입회원을 확보하지 못하자 운동권 학생들도 비상이 걸렸다. 이는 그동안 이념서클 새내기들이 각종 시위에서 선봉부대로 활동해온 전위대였기 때문. 교육부 한 관계자는 『전대협이 출범식에서 올해의 주요행사로 「92학번 뽐내기 한마당」을 계획하고 있는 것도 신입생들의 장기자랑을 통해 참여의 폭을 넓히기 위한 것』이라면서 『교내 축제도 지난해까지 사용한 「대동제」라는 명칭 대신 「축전」(축전)또는 「축제」라고 변경한 것은 신입생들에게 거부감을 주지않기 위한 배려』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연세대 박흥수교수는 『사회주의 이념이 퇴색하고 국내적으로 민주화가 이루어지면서 그동안 이념을 중심으로 활동해왔던 많은 학생서클들이 설 땅을 잃게 됐다』며 『한국사회발전의 과도기에서 일시적으로 나타났던 이념서클 과잉현상은 이제 실용·실리를 추구하는 서클에 밀릴 수 밖에 없게 됐다』고 말했다.
  • CIS·동구 코콤 가입/미·독서 적극 추진/WP지 보도

    【워싱턴 AFP 연합】 미국과 독일은 대공산권 수출통제위원회(코콤)에 독립국가연합(CIS)과 동유럽국가의 가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고 워싱턴 포스트지가 31일 보도했다. 포스트지는 제임스 베이커 미국무장관이 코콤가입 서방국가들에게 서한을 보내 핵·화학및 생물무기와 같은 가공할 무기에 관한 기술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소련과 동유럽국가들과 「협력위원회」를 신설하도록 촉구했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또 최근 자국기업이 이라크와 리비아등에 군사기술을 판매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독일도 베이커장관의 이러한 제의를 지지했다고 전하고 이같은 제의가 1일 파리에서 열리는 코콤회의에서 첫 공식 의제로 채택될 것이라고 말했다.
  • 프라그 주한불대사 「통상정책」 연설요지

    ◎“EC,UR타결땐 관세 대폭 인하”/역내시장 완성돼도 「대외적 호혜」 유효 한국 행정연구원(원장 노정현 전연세대교수)은 28일 힐튼호텔에서 베르나르 프라그 주한프랑스대사를 초청,「유럽경제공동체의 행정제도와 통상정책」이란 주제의 정책포럼을 개최했다. 프라그대사는 이날 주제연설을 통해 『예정대로 올해말 EC 역내시장이 완성 되더라도 EC와 제3국 사이에 존재하는 다양한 호혜조치들은 여전히 유효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이러한 진전은 제3국 기업들에 12개 EC 전체회원국 시장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상당한 이익을 보장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프라그 대사는 77년부터 83년까지 EEC(유럽경제공동체)상설대표부 상무참사관,89년부터 90년까지 EEC상설대표부 경제 및 상무담당 공사를 역임한 프랑스 정가의 EC문제에 정통한 외교관이다. 프라그 대사의 주제연설 요지는 다음과 같다. 통합된 유럽을 향한 움직임은 2차대전때 국가적 이상이 흔들렸던데 대한 보장의 시도로서 생겨났다.EC는 유럽에 영토의 관념을 부여하고 중앙집권적 의사결정기구를 수립하려는 유럽제국의 제국주의적 성향,그리고 경제적 관점,나아가 정치적 관점에서 볼 때도 강력한 실체를 형성했으면서도 영토의 연속성에 대해서는 아무런 단서도 달지않았던 중세말 북유럽의 「한자(HANSA)동맹」의 성향이 결합해 탄생한 것이다. 현재 유럽에는 EC테두리 안에서 부유지역에서 빈곤지역으로의 재정적 이전을 통해 농업등 기반하부구조의 균형적 발달을 추구하는 보호주의적인 지역접근법,「지역우대」라는 제한적 원리에 구애받지 않는 「한자동맹」의 시각이 병존하고있다.제3세계에 대한 관세장벽과 상업보호정책을 중시하는 영역에서 개방적인 「한자동맹」의 관점이 보호주의적 지역접근법보다 우위에 서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한 것같다. 전반적으로 「성역화된 유럽」이라는 미국의 정치적 선전활동에도 불구하고 EC의 타국과의 교역규모가 EC역내 총생산(GDP)의 25%를 차지하는데 반해 일본이 10%,미국이 8%를 점하고 있다는 통계는 경제강대국들 가운데 EC가 가장 개방적이라는 사실을 잘 증명해준다.EC의 관세율은 그 자체로서 매우 낮을 뿐아니라 제3세계국가의 상품에는 적용되지 않고 있고,우루과이라운드(UR)가 성공적으로 타결되면 지금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 될 것이다.또 92년말 EC역내시장이 완성된다해도 EC와 제3국들 사이에 존재하는 다양한 호혜조치들은 여전히 유효할 것이다. 동유럽 공산주의의 몰락은 EC의 지리적 확장이라는 새로운 문제를 야기시켰다.EC의 중심부에 위치한 프랑스로서는 스웨덴·오스트리아가 주도하는 유럽자유무역연합(EFTA)회원국과 특정정책에 관해서는 EC의 규율에 복종하지 않으려 하는 일부 국가군,스스로를 EC와 관련시키려고 하면서도 그들이 처한 예외적인 경제상황에 상응하는 특별한 지위를 유지하려고 하는 동구권국가군 등 3그룹이 모든 공동체의 규정과 정책을 계속해서 준수하는 핵심국가들의 주위를 맴도는 성운의 형태를 갖는것을 원치 않는다.
  • 북한등에 첨단무기·기술 이전 봉쇄/미,CIS·동구와 협력 추진

    ◎새달 대공산권 수출통제위서 【본 로이터 연합】 미국은 서방세계에 잠재적 위협을 던져주는 북한·리비아를 비롯한 제3세계국가들에로의 민감한 기술이전과 첨단무기유출을 막기 위해 구소련 및 동유럽국가들과 협력하기를 원하고 있다고 독일 경제부소식통들이 27일 전했다. 이 소식통들은 미국이 오는 6월1일 파리에서 열리는 대공산권수출통제위원회(COCOM)회의에서 이들 국가와의 협력을 제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북한·리비아·이라크와 같은 국가들로부터의 잠재적위협에 대한 방지책으로 이같은 협력을 모색해 왔으며 구소련공화국들이 전략무기를 제3세계국가들에게 수출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우려하고 있다. 이 소식통들은 또 독일정부는 미국의 제안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다고 전했다.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자이퉁지는 최근 워싱턴의 외교소식통들을 인용,제임스 베이커 미국무장관이 COCOM 회원국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이같은 제안의 개요를 설명했다고 보도했었다.
  • 대학가 인공기… 이철승씨는 말한다

    ◎「김일성왕국」 찬양은 국제적 조소거리/「김부자 초상화」는 나붙지 않을지…/사상교육강화,반역사세력에 대처해야 『안팎으로 위기에 몰려있는 김일성부자의 왕조구축전략에 우리 학생들이 말려들고 있습니다』 철저한 자유민주체제 수호론자인 이철승 자유민주총연맹총재는 지난 8일 부산 동아대와 광주 전남대에 북한의 「인공기」가 내걸린데 이어 13일 서울에서도 인공기가 게양된데 대해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이씨는 『한참 발전해 나가는 한국에서 일부 친북세력이 경제·교육·사상등 사회의 모든 부분에서 혼란을 주도하고 있는데 대해 전세계의 식자들이 불가사의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한다. 『더욱이 옛소련과 동유럽에서도 볼셰비키즘과 마르크시즘이 무너지고 자유시장경제체제를 추구해가는 상황에서 역사의 흐름에 반역해 고립왕국을 유지해 가려는 김일성부자에 우리학생들이 동조하는 것은 세계의 조소거리가 되고 있다』고 이씨는 안타까워했다. 그는 최근 대학가에 인공기가 내걸린 것은 『정부가 통일노선을 선택하고 진행하는 과정과 학생들을 교육하고 학원문제를 다루는 방식에서의 오류가 오랜 세월 누적되어 일어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부가 북한과의 교류를 성공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좋지만 그 과정에서 북한에 대한 기본인식을 흔들리게하는 것도 사실』이라는 지적이다. 제7차 남북총리회담에서 북한대표들이 이산동포의 고향방문등 몇가지 합의를 도출하고 돌아간뒤 곧바로 이런 사건이 터진 것은 그들의 일면협상 일면투쟁의 양태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씨는 『해방을 전후한 미 군정시대에도 남로당의 조직이 사회 각계각층에 잠입해 있었고 학생들도 공산당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며 간헐적으로 붉은 깃발을 들고 기습시위를 벌였지만 수천 수만의 학생들이 길 한복판에 북한기를 걸어놓는 행위는 없었다』면서 『당시에는 좌경화된 학생과 사회세력에 맞서 대항할 학생및 사회세력이 있었으나 최근의 대다수 학생들은 통일과 안보문제에는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힐난했다. 이씨는 이어 『50년동안이나 암흑속에서 억압과 탄압을 받아온 북한주민들이 해방되어야 할 이 시점에서 엉뚱하게 준동하는 반체제세력에 대항할 세력이 하나도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면서 『이는 국가와 민족에 대한 우리의 책임감이 미군정 때보다 떨어지고 사상교육이 후퇴했기 때문』이라고 개탄했다. 이씨는 이와함께 『학원가에 인공기가 게양된 사태는 정부가 학생운동을 적절한 교육을 통해서가 아니라 최루탄만으로 해결하려 한데서도 비롯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최루탄만으로는 수만명 「주사파」의 돌팔매는 막을 수 있어도 그들의 마음은 돌릴 수가 없다』면서 『최루탄이 없으면 그들의 행동을 아무런 제재없이 방치할 것이냐』고 이씨는 반문했다. 이씨는 이어 『이러한 상황에서도 정치를 이끄는 여야지도자들은 대권싸움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국기를 흔드는 이런문제가 대통령선거운동의 쟁점이 되어야 하는데도 정치지도자들은 학생들에게 아부하느라고 입을 다물고 있다』는 것이다. 정원식국무총리가 『정부와 치안당국은 학원가의 인공기 게양문제를 단호한 의지를 갖고 대처하겠다』고 밝힌데 대해 이씨는 『이 문제는 총리가 아니고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씨는 『학원가에 「인공기」가 내걸린 사태는 몇년전부터 지적해온 사실이기 때문에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면서 『그러나 좌경화된 학생들의 행동을 이대로 방치한다면 몇년후에는 대학가에 김일성의 동상이 들어서고 김정일의 초상화가 나붙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 김윤식씨,문학기행집 「환각을…」 출간

    ◎작품·지역 관련성 살핀 20편 수록 문학평론가 김윤식씨(56·서울대교수)가 문학기행집 「환각을 찾아서」를 세계사에서 펴냈다. 「환각을 찾아서」에는 「채만식론」「「상록수」를 위한 5개의 주석」「사르트르의 무덤을 찾아서」「도스토예프스키·루카치·카프카」등 문학작품과 특정지역과의 관련성에 주목하여 문학작품을 살핀 20편의 글이 수록됐다.「「상록수」를 위한 5개의 주석」은 동서문학사 주최 문학유적답사에 참여,심훈·추사·미당의 고향에 들러 그들에 대한 감회를 적은 글이며 「채만식론」은 대학원 현대문학반 답사로 전주 군산 등에 들렀던 체험을 바탕으로 채만식의 「탁류」「처자」등의 작품을 생동감있게 해석하고 있다. 또한 「사르트르의 무덤을 찾아서」는 프랑스여행 길에 전후세대로서 사르트르와 카뮈에 대해 느꼈던 상념을 자유롭게 펼쳐가고 있으며 「도스토예프스키·루카치·카프카」는 세미나 참석차 독일에 갔다가 들러본 동유럽에의 감회를 동구 대문호에 대한 상념으로 연결지어 서술하고 있다. 이같은 문학기행에 대해 김씨는 머리말에서 『작품을 떠나 작품과의 거리를 두는 방식』이라고 말했다.이는 작품과의 직접적인 대면이 아닌 「우회」를 통해 작품과 대화하는 방식이라는 것.그는 그러한 방식을 작품에서 작가나 작중인물의 목소리 또는 작가와 작중인물간의 대화하는 목소리가 아닌 자기자신과 대화할 수 있는 「제4의 목소리 찾기」라고 이름붙였다.하지만 「제4의 목소리」는 가장 확실한 울림같은 것이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서 이를 찾기란 「환각 찾기」에 다름아니라는 김씨는 이를 통해 작품을 꿰뚫고 마침내 그것을 초월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때문에 자신의 작업성과를 그러한 「헤맴의 한 보고서」라고 요약한 김씨는 『작품을 읽는 최종적 이유가 그것의 초월에 있기에 이 환각찾기란 열정적이자 지속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김씨가 이미 펴낸 「문학과 미술사이­현장에서 본 예술」(1979)「황홀경의 사상」(1984)「작은 생각의 집짓기」(1985)「낯선 신을 찾아서」(1988)와 동일 연장선상에서 김씨의 열정적 책읽기의 한 모습을 엿보게 해준다.
  • 해외교포 5백만… 연구서적 적다

    ◎「재미 한국인」·「캐나다…」등 10여종 불과/학술서 3권뿐… 가벼운 읽을거리 위주/한인사회에대한 체계적인 연구 아쉬워 미국LA에서 일어난 흑인폭동사건으로 해외 한국인과 한국인사회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제국주의에 의한 식민지 확장이 불가능해진 현대에선 이민이 곧 영토확장이란 주장도 있고 보면 해외 한국인과 한국인 사회는 우리 영토와 사회의 연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해외 한국인들에 대한 정책적,학문적 접근은 미진한 상황으로 시중서점에 나와 있는 관계 서적은 10종을 넘지 못하고 있다.해외동포 규모가 남한인구의 10%를 넘는 5백만명으로 추산되고 있고 최근 구공산국가들의 문호개방으로 이들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지식수요에 비해 지식공급이 달린다는 지적을 면할 수 없다.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해외 한국인 관련 책자는 「재미 한국인」「뉴욕 한인사회」「재일 한국인」「지구촌 한 민족」「캐나다 이민 20년 한국인이 뛰고 있다」 등이 있다.이 가운데 앞의 세 책은 학술서이고 나머지는 부담없는 읽을 거리들. 그나마 최근 우리에게 문호가 개방된 독립국 연합(CIS)을 비롯한 동유럽권과 중국에 사는 한국인들에 대한 저서는 아직 없다.「재미 한국인」과 「재일 한국인」을 잇달아 펴낸 서울대 이광규교수(인류학)가 CIS의 한국인 사회에 대한 연구서를 다음달쯤 내놓을 예정. 이교수는 지난해 사할린,블라디보스토크 등 극동지역을 돌아본데 이어 올해 모스크바,레닌그라드,알마타,타시겐트 등지를 순회하며 연구한 결과 이곳 한인들에게서 미국과 일본지역으로 이주한 한인들과 다른 특징,즉 이주시기,목적,경험 등을 밝혀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특히 중앙아시아의 우즈베크공화국 타시겐트시 포리토젤 집단농장(콜호즈)에 사는 한인들은 주변 유목민족의 삶의 방식을 따르지 않고 쌀등 곡식을 경작하며 농경민족으로서의 동질성을 유지하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일조각에서 발간된 「재미 한국인」과 「재일 한국인」은 곧 출간될 「재소 한국인」과 함께 이광규교수의 해외 한국인 실태조사연구 시리즈를 구성하게 된다.「재미 한국인」과 「재일 한국인」은 89년과 83년에 각각 초판이 나왔는데 90년대 들어 재외 한국인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중판을 찍었다. 특히 「재미 한국인」은 「미국사회의 편견」이란 하나의 장을 따로 설정,미국이란 다민족사회에서의 한인들의 적응문제를 다루고 있다.이교수는 『적극적으로 미국사회에 참여하여 미국화된 한국민족 정체성을 재생산하는 것』만이 편견을 최소화할 수 있는 길이라고 말했다. 「뉴욕 한인사회」(노출판)는 미국 뉴욕시립대 김일수교수(사회학)가 한인 이민사회가 어떻게 경제적으로 자리잡혀 가고 있는지를 사회학적으로 분석한 책.이 책은 마치 이번 LA의 흑인폭동을 예견한듯한 사례들도 포함하고 있는 점이 눈길을 끈다.즉 뉴욕지역에서 한인과 흑인사이의 분규등 여러가지 심각한 사건이 일어날 것에 대비,대학생층과 젊은 세대를 대상으로 교육활동을 벌여가면서 얻은 값진 결과들도 인용하고 있다. 「지구촌 한민족」(한국일보사)은 한국일보 취재진이 5대양 6대주의 한국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취재하여 신문에 장기 연재했던 것을 미국,중국,일본편만을 따로 모아 펴낸 책. 「캐나다 이민…」(조선일보사)은 지난 75년 캐나다로 이민간 송광호씨(46)가 캐나다에서 열심히 뛰고 있는 교포 53명을 인터뷰하여 현지의 「민중신문」「조선일보」와 한국의 「강원일보」에 실었던 것을 지난해 책으로 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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