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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NS 많이 쓰는 사람, 신체사이즈에 더 민감” (연구)

    “SNS 많이 쓰는 사람, 신체사이즈에 더 민감” (연구)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 SNS를 자주 사용하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외적 이미지에 대한 고심을 더욱 많이 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미국 피츠버그대학교 연구진은 2014년 미국의 19~32세 성인 1765명의 SNS사용자를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했다. 이들이 주로 사용하는 SNS플랫폼은 총 11가지로, 페이스북과 유튜브, 트위터, 인스타그램, 스냅쳇, 레딧 등이 포함돼 있다. 연구진은 설문조사 및 자체 프로그램을 통해 실험참가자들의 SNS 사용패턴과 식이장애 위험, 불안증, 식욕이상 항진증(폭식을 하고 토해내기를 반복하는 증세), 폭음이나 폭식의 습관 등을 조사하고 분석했다. 그 결과 하루동안 SNS 사용량이 많은 군에 속하는 사람은 이보다 적게 사용하는 사람들에 비해 섭식장애를 겪을 위험이 2.2배 더 높았다. 또 일주일 단위로 봤을 때 로그인 빈도수가 높은 사람은 낮은 사람에 비해 같은 질병을 겪을 위험이 2.6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를 이끈 제이미 E. 시다니 박사는 “우리는 패션 매거진이나 텔레비전 등 전통적인 미디어에 노출되는 것이 섭식장애 또는 자신의 신체사이즈나 외모 등에 대한 우려를 높인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마른 모델이나 셀러브리티들의 모습을 긍정적인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소셜미디어 역시 기존의 미디어 매체와 마찬가지로 이용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신체 사이즈에 대해 더 많이 걱정하게 하고, 이것이 결국 거식증이나 식욕이상항진증 등 섭식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 “SNS를 사용하는 젊은 사람들은 섭식장애를 유발할 만한 더 많은 이미지와 메시지에 노출된다. 여기에는 사용자들의 성별이나 나이, 인종, 수입 등이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 특징”이라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한 자세한 연구결과는 국제 학술지인 ‘영양ㆍ식이요법학회저널(Journal of the Academy of Nutrition and Dietetics)’에 발표됐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SNS 자주 쓰는 사람일수록 폭식, 폭음 위험 높다” (연구)

    “SNS 자주 쓰는 사람일수록 폭식, 폭음 위험 높다” (연구)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 SNS를 자주 사용하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외적 이미지에 대한 고심을 더욱 많이 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미국 피츠버그대학교 연구진은 2014년 미국의 19~32세 성인 1765명의 SNS사용자를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했다. 이들이 주로 사용하는 SNS플랫폼은 총 11가지로, 페이스북과 유튜브, 트위터, 인스타그램, 스냅쳇, 레딧 등이 포함돼 있다. 연구진은 설문조사 및 자체 프로그램을 통해 실험참가자들의 SNS 사용패턴과 식이장애 위험, 불안증, 식욕이상 항진증(폭식을 하고 토해내기를 반복하는 증세), 폭음이나 폭식의 습관 등을 조사하고 분석했다. 그 결과 하루동안 SNS 사용량이 많은 군에 속하는 사람은 이보다 적게 사용하는 사람들에 비해 섭식장애를 겪을 위험이 2.2배 더 높았다. 또 일주일 단위로 봤을 때 로그인 빈도수가 높은 사람은 낮은 사람에 비해 같은 질병을 겪을 위험이 2.6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를 이끈 제이미 E. 시다니 박사는 “우리는 패션 매거진이나 텔레비전 등 전통적인 미디어에 노출되는 것이 섭식장애 또는 자신의 신체사이즈나 외모 등에 대한 우려를 높인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마른 모델이나 셀러브리티들의 모습을 긍정적인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소셜미디어 역시 기존의 미디어 매체와 마찬가지로 이용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신체 사이즈에 대해 더 많이 걱정하게 하고, 이것이 결국 거식증이나 식욕이상항진증 등 섭식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 “SNS를 사용하는 젊은 사람들은 섭식장애를 유발할 만한 더 많은 이미지와 메시지에 노출된다. 여기에는 사용자들의 성별이나 나이, 인종, 수입 등이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 특징”이라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한 자세한 연구결과는 국제 학술지인 ‘영양ㆍ식이요법학회저널(Journal of the Academy of Nutrition and Dietetics)’에 발표됐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그린에서 만난 사람] ‘골프 해설가’ 변신 김영

    [그린에서 만난 사람] ‘골프 해설가’ 변신 김영

    18세에 프로에 데뷔해 이후 18년을 필드에서 살았다. 국내는 물론 미국과 일본 무대에서도 두루 우승을 경험한 프로골퍼 김영(36)이 옷을 갈아입었다.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였던 ‘버킷 모자’를 벗어 던지고 깔끔한 방송사 유니폼으로 단장했다. 그는 지난해 말 미여자프로골프(LPGA) 투어를 뒤로 하고 소리 소문 없이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지난 6일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교촌 허니 레이디스 대회 1라운드가 열리고 있던 전북 군산의 군산컨트리클럽. 7년 전 마지막으로 국내대회에 나섰던 김영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예전에 봤던 김영은 양궁선수를 연상케 하는 일명 ‘벙거지 모자’ 탓에 약간은 보이시한 외모에 헌칠한 체격이었고, 반소매 아래로 드러나는 흰 살결 때문에 남성 팬이 유독 많았다. 김영은 프로선수로 18년을 살았다. 어른이 되기 전에 골프를 배우고 어른이 되기까지 걸린 시간만큼 프로로 살았다. 그리고 이제는 다시 어린아이 같은 새내기다. 그는 이제 골프전문채널의 해설가다. 이날 1라운드는 그의 ‘방송 데뷔전’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큰 목청 덕을 봤다. 여기에 시나리오를 달달 왼 듯 또박또박한 말투까지 더해져 5시간에 걸친 첫 중계해설을 큰 실수 없이 마쳤다. 나고 자란 곳이 춘천이다. 김영이 골프를 시작한 건 1990년 춘천 봉의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그런데 골프채를 잡은 이유가 놀랍게도 살을 빼기 위해서였다. 원래는 3학년 때 “우유 같은 것을 많이 준다”는 꼬드김에 농구를 시작했다. 1년쯤 하다 보니 힘이 들었다. 운동을 그만두자 몸이 금세 불었다. 부친 김정찬씨는 통통해진 딸의 손을 잡고 레인지로 나갔다. 운이 닿았는지 남춘천여중에 입학한 직후 골프부가 창단됐다. 3학년 때 중고대회 단체전 1위를 하면서 우승이란 게 어떤 맛인지 알게 됐다. 강원체고 2학년 때는 나가는 시합마다 우승했고, 고3이 되자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았다. 1998년 경희대에 진학하면서 프로로 전향했고 2년 차이던 이듬해 내셔널타이틀 대회인 한국여자오픈에서 박세리와 안니카 소렌스탐, 낸시 로페즈 등 당대 최고의 스타들을 제치고 우승하면서 당시로는 파격적인 연 1억 2000만원에 신세계와 후원 계약을 맺었다. 이후 김영은 7년 동안 신세계가 후원하는 유일한 선수로 이름을 올렸다. 2001년 LPGA 2부 투어에 뛰어들어 1승을 올린 뒤 이듬해 퀄리파잉스쿨 공동 4위에 올라 꿈에 그리던 LPGA 투어 풀시드권을 움켜쥐었다. 지금도 김영이 가장 기억하고 싶은 순간은 2003년 후원사 대회였던 신세계배 KLPGA선수권에서 우승할 때였다. 챔피언 조에서 마지막 라운드를 시작해 18번홀 두 번째 샷이 하필이면 그린 너머 이명희 회장이 앉아 있던 의자 쪽으로 굴러갔는데 김영은 거기서 플롭샷(볼을 높게 띄우는 샷)으로 깃대 1m 거리에 공을 붙였다. 결국 연장에서 5m짜리 버디 퍼트를 떨구어 넣고 우승했다. 2007년 5월 코닝클래식 우승 이전까지 김영은 준우승만 19차례 했다. 6년 동안 우승은 없었다. 그러다 폴라 크리머와 엎치락뒤치락 접전 끝에 3타 차로 따돌리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우승했다. 기쁨과 서러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한없이 눈물을 뿌렸다. 그의 벙거지 모자는 이미 후원사의 로고가 떨어져 나간 ‘빈 모자’였다. 김영은 “골프선수로서 18홀 라운드가 다 끝났다고 생각한다”면서 “골프 인생이 100점 만점이라면 98점을 줄 정도로 열심히 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는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걸 찾아보고 싶다. 어디에 행복해할지, 즐거워할지는 아직 잘 모르지만 올해는 뭐든 새롭게 도전해보고 싶다”며 활짝 웃었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김영 프로필 ■1980년 2월 2일 강원 춘천, 강원체고·경희대 ■1998년 프로 데뷔 ■국내 우승 기록: KLPGA 5승 1999년 롯데컵 스포츠투데이 한국 여자오픈 , 2002년 파라다이스 여자오픈, SBS 프로골프 최강전, 2003년 신세계배 KLPGA선수권, SBS 프로골프 최강전 ■해외 우승 기록: 2001년 LPGA 퓨처스투어 바로나 크릭 위민스골프 클래식, 2007년 LPGA 투어 코닝클래식, 2013년 JLPGA 투어 니치이코 레이디스
  • 집도 없고, 귀도 없지만… ‘인터넷 스타’된 고양이

    집도 없고, 귀도 없지만… ‘인터넷 스타’된 고양이

    독일 베를린의 한 동물보호소에 사는 고양이 한 마리가 독특한 외모로 네티즌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의 3일자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독일 베를린의 동물보호소로 들어온 수컷 유기묘 데릭(10)은 발견 당시 심각한 영양실조로 인해 건강이 매우 위독한 상황이었다. 뿐만 아니라 데릭은 귀에 심한 통증을 느끼고 있었고 이 때문에 자꾸 귀에 발을 가져다대거나 문지르는 등의 이상행동을 보였다. 동물보호소 측 수의사에 따르면 이 고양이는 귀 전체가 심하게 부어 있는 상태로 가라앉지 않았고, 지나치게 오랫동안 방치한 탓에 치료가 어려운 지경에 이르러 있었다. 수의사는 이대로 둘 경우 귀 뿐만 아니라 눈과 코까지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판단하고, 귀를 절단하는 수술을 감행했다. 이 수술로 데릭은 청각을 거의 잃었지만 더 이상 통증은 느끼지 않게 됐다. 처음 동물보호소에 왔을 때에는 다른 동물들과 어울리지 않고 혼자 있으려하는 성격이 강했지만, 귀의 통증이 사라진 뒤부터는 다른 동물들 및 수의사, 간호사와도 스스럼없이 어울리기 시작했다. 동물보호소 수의사는 “귀가 없는 독특한 외모 탓에 같은 보호소에 있는 고양이들의 따돌림이 시작됐다. 하지만 도리어 개와 함께 지내는 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면서 “현재 데릭은 건강을 되찾아가는 중이며, 새 주인을 찾을 때까지 보호소의 보호를 받을 것”이라고 전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혹시 외계 생명체? 이런 해파리 보신 적 있나요

    혹시 외계 생명체? 이런 해파리 보신 적 있나요

    최근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이 유튜브에 해파리 영상 하나를 공개했다. 공개된 해파리 영상은 지난 4월 24일 태평양 마리아나제도 부근에서 찍혔다. NOAA 연구진은 수중 이동 탐사선 ‘딥 디스커버러’(Deep Discoverer)를 이용해 인근 해저를 탐사하던 중 3.7km 심해에서 독특한 외모를 한 해파리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냈다. 영상에는 그동안 우리에게 친숙한 해파리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히드로 해파리’의 모습이 담겼다. 외계 생명체를 연상케 하는 그 독특한 생김새하며 머리 부분을 통해 영롱한 빛을 내는 해파리의 모습은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끼게 한다. 사진·영상=oceanexplorergov/유튜브 김형우 기자 hwkim@seoul.co.kr
  • 예비 작가들에게 메인 작가가 전하는 ‘복면가왕’의 비밀

    예비 작가들에게 메인 작가가 전하는 ‘복면가왕’의 비밀

    복면을 쓴 채 자신의 정체를 감추고 노래하는 사람들. 외모, 인지도 등 각종 편견을 가리고 자신이 누구인지 구애받지 않고 오로지 목소리와 노래를 통해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방식은 시청자들에게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MBC 예능 프로그램 ‘일밤-복면가왕’의 이야기다.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복면가왕’의 메인 작가인 박원우 작가가 지난 28일 서울예술실용전문학교(서예전)에서 특강을 진행했다. 박원우 작가는 ‘일요일 일요일 밤에’, ‘느낌표’, ‘뮤직뱅크’, ‘스펀지’ 등 많은 사랑을 받았던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베테랑 방송작가다. 지난해 MBC 방송대상 작가상과 방송협회 작가상을 잇따라 수상하기도 했다. 이날 특강에는 방송작가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펼쳐져 더욱 뜨거운 열기 속에서 이뤄졌다. 박 작가는 방송국 3사에서 모두 거절당하고 3년 동안 떠돌던 기획인 ‘복면가왕’이 어떻게 기획되고 제작에 이르게 되었는지, 방송 출연진 섭외를 비롯한 다양한 프로그램의 뒷이야기까지 전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를 통해 방송작가로서 가져야 하는 마음과 프로그램 기획의 실전까지 방송작가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다양한 조언을 했다. 서예전 방송작가학과에서는 박 작가 뿐 아니라 다양한 프로그램의 스타 작가들을 초청해 강연을 진행하며 학생들에게 현장의 목소리를 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졸업 후 구성작가, 드라마작가, 영화시나리오작가 등 다양한 분야로 진출이 가능하다. 한편 서울예술실용전문학교는 현재 2017학년도 신입생 우선선발을 진행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포토] ‘오월이’ 송하윤, 깜찍하고 사랑스러운 ‘동안 미모’

    [포토] ‘오월이’ 송하윤, 깜찍하고 사랑스러운 ‘동안 미모’

    배우 송하윤의 메이크업 화보가 패션 매거진 쎄씨 5월호를 통해 공개됐다. 민낯으로 스튜디오에 등장한 송하윤은 86년생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깜찍하고 사랑스러운 동안 외모로 스태프들을 깜짝 놀라게 했고, 촬영 내내 모델 출신답게 남다른 눈빛과 포즈로 주변 스태프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모델 활동할 때 쎄씨 표지도 찍었어요.”라며 쎄씨와의 인연을 수줍게 고백했다. 화보를 함께 한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도화지 같은 얼굴이라 어떤 메이크업을 해도 잘 어울린다.”며, 특히 립 메이크업에 최적화된 도톰하고 볼륨감 있는 입술이라 어떤 립 컬러를 발라도 예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송하윤의 입술을 더욱 돋보이게 만든 건 부드러운 우윳빛 컬러의 디올 어딕트 밀키 틴트 . 송하윤은 웹드라마 ‘널 만질거야’에서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꿈꾸는 여자 진희영 역으로 2PM 멤버 옥택연과 함께 출연할 예정이다. 사진 제공=쎄씨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모바일 픽!] 시리아女 헤어스타일로 본 100년史

    [모바일 픽!] 시리아女 헤어스타일로 본 100년史

    오래 지속된 내전과 이슬람국가(IS)의 준동으로 중동 국가 시리아에 대한 세계의 관심은 전에 없던 수준으로 높아졌다. 그러나 이런 관심은 알아사드 대통령 가문의 2대에 걸친 철권통치, 정부군과 반정부군의 오랜 내전 등의 이슈로 인해 정치 및 군사 측면에 집중된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국민 생활상의 사소한 변화가 국가의 흥망을 가장 잘 비추는 거울이 되기도 한다. 미국의 영상 전문 웹사이트이자 유튜브 채널인 ‘컷닷컴’(Cut.com)이 시리아 여성들의 지난 100년간 스타일 변화상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동영상을 제작해 시선을 모았다. 이번 영상은 컷닷컴이 연재하고 있는 동영상 시리즈 ‘미용의 100년’(100 years of beauty)의 20번째 에피소드로 마련된 것이다. 그간 컷닷컴은 이 시리즈를 통해 남북한의 스타일 변화상을 서로 비교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해온 바 있다. 영상의 기본 형식은 1명의 모델을 기용, 특정 국가 여성들의 패션 트렌드 변화를 10년 단위로 연이어 보여주는 것이다. 이번 영상은 시리즈 중에서도 가장 ‘정치색’이 짙은 작품으로 평가된다. 시리아 국민의 민의를 대변하면서 동시대 여성들의 정신과 외모에 큰 영향을 미쳤던 상징적 인물들을 선정, 그들의 스타일을 중점적으로 소개하고 있기 때문. 컷닷컴에 따르면 시리아 여성들의 스타일이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오스만 제국의 시리아 통치 말기인 1910년대부터다. 영상 속에서는 회색 스카프로 머리를 가린 채 옅은 화장과 보수적 헤어스타일로 꾸민 모습으로 묘사된다. 20년대 1차 세계대전 종결 이후 유럽 열강은 중동에의 식민지배에 나서자 프랑스 또한 시리아 내 시아파 분파인 알라위파와 연합, 시리아인 사이에 분란을 조장하며 식민통치를 시작했다. 이 시기 시리아의 주권확립과 여성인권 신장을 위해 싸우며 ‘아랍의 잔다르크’로 불렸던 ‘나지크 알아비드’의 스타일은 당대 여성들에게 귀감이 됐다. 알아비드의 패션은 시리아의 전통과 주권국가로서의 미래를 동시에 표현하는 것이었다고 컷닷컴은 평가한다. 30년대로 넘어와 시리아는 프랑스의 식민통치에 대한 분노정서에 휩싸여 있었으나, 동시에 집중적으로 서양문물에 노출됐다. 당시 활동한 대표적 여가수 아스마한은 이 모순적 상황을 잘 대표하는 인물이다. 서구식의 화려한 헤어스타일로 치장한 그녀는 프랑스의 억압에 적극 저항하던 가문의 일원이기도 했다. 40년대에도 아스마한의 영향력은 여전했다. 이 시기 그녀는 이전보다도 짙은 입술 색, 진주목걸이, 머릿수건 등을 포인트로 삼았는데, 이는 프랑스의 지배에서 벗어나 시리아 수니파 정부가 정권을 잡으면서 일시적으로 안정됐던 당시 정세를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안정세는 50년대에 깨지고 만다. 49년부터 54년까지 시리아에서는 다섯 차례의 군부 쿠데타가 발생하는 등 혼란상이 발생했었다. 이시기의 미의 기준이 된 인물은 52년 시리아 미인대회 수상자 레일라 티브리즈 토우마다. 63년, 아사드 가문이 이끄는 바스(Ba’ath)당이 군부 쿠데타를 일으키고 사회주의 정권이 자리를 잡는다. 이러한 억압적 분위기에 시리아 국민들은 타국가 국민들과 유사하게 예술적 저항을 시작하는데, 진한 눈 화장과 두건으로 꾸민 당대 소설가 가다 알사만의 강렬한 스타일도 이런 경향을 따른 것이다. 상대적으로 평화로웠던 70년대를 지나 80년대에는 하페즈 알아사드가 이끈 인종청소가 시작됐으며 수천 명의 희생자를 발생시킨 82년 하마(Hama) 학살 등 거대 규모의 참극이 벌어졌다. 하페즈 정권은 90년대가 끝날 때까지 지속됐다. 이 시기동안 여성들의 스타일은 과거에 비해 급격히 수수해진 모습을 보여준다. 2000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정권을 잡은 바샤르 알아사드는 지금까지 독재정치를 이어나가고 있다. 2000년대를 상징하는 여성상으로는 아사드 정권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인 여배우 파드와 솔리만이 꼽혔다. 2010년대, 중동 전역을 물들였던 아랍의 봄 운동에 영향을 받아 시리아에서도 반정부 평화시위가 시작됐다. 그러나 알아사드가 이를 무력으로 잔인하게 진압하며 내전이 시작됐다. 컷닷컴이 2010년을 대표하는 시리아의 얼굴로 꼽은 것은 반정부 시위에 나서 시리아 국기가 그려진 손가락을 내뻗고 있는 한 어린 소녀다. 사진=ⓒ컷닷컴/유튜브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굴곡진 100년史와 함께 변천한 시리아 여성 패션

    굴곡진 100년史와 함께 변천한 시리아 여성 패션

    오래 지속된 내전과 이슬람국가(IS)의 준동으로 중동 국가 시리아에 대한 세계의 관심은 전에 없던 수준으로 높아졌다. 그러나 이런 관심은 알아사드 대통령 가문의 2대에 걸친 철권통치, 정부군과 반정부군의 오랜 내전 등의 이슈로 인해 정치 및 군사 측면에 집중된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국민 생활상의 사소한 변화가 국가의 흥망을 가장 잘 비추는 거울이 되기도 한다. 미국의 영상 전문 웹사이트이자 유튜브 채널인 ‘컷닷컴’(Cut.com)이 시리아 여성들의 지난 100년간 스타일 변화상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동영상을 제작해 시선을 모았다. 이번 영상은 컷닷컴이 연재하고 있는 동영상 시리즈 ‘미용의 100년’(100 years of beauty)의 20번째 에피소드로 마련된 것이다. 그간 컷닷컴은 이 시리즈를 통해 남북한의 스타일 변화상을 서로 비교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해온 바 있다. 영상의 기본 형식은 1명의 모델을 기용, 특정 국가 여성들의 패션 트렌드 변화를 10년 단위로 연이어 보여주는 것이다. 이번 영상은 시리즈 중에서도 가장 ‘정치색’이 짙은 작품으로 평가된다. 시리아 국민의 민의를 대변하면서 동시대 여성들의 정신과 외모에 큰 영향을 미쳤던 상징적 인물들을 선정, 그들의 스타일을 중점적으로 소개하고 있기 때문. 컷닷컴에 따르면 시리아 여성들의 스타일이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오스만 제국의 시리아 통치 말기인 1910년대부터다. 영상 속에서는 회색 스카프로 머리를 가린 채 옅은 화장과 보수적 헤어스타일로 꾸민 모습으로 묘사된다. 20년대 1차 세계대전 종결 이후 유럽 열강은 중동에의 식민지배에 나서자 프랑스 또한 시리아 내 시아파 분파인 알라위파와 연합, 시리아인 사이에 분란을 조장하며 식민통치를 시작했다. 이 시기 시리아의 주권확립과 여성인권 신장을 위해 싸우며 ‘아랍의 잔다르크’로 불렸던 ‘나지크 알아비드’의 스타일은 당대 여성들에게 귀감이 됐다. 알아비드의 패션은 시리아의 전통과 주권국가로서의 미래를 동시에 표현하는 것이었다고 컷닷컴은 평가한다. 30년대로 넘어와 시리아는 프랑스의 식민통치에 대한 분노정서에 휩싸여 있었으나, 동시에 집중적으로 서양문물에 노출됐다. 당시 활동한 대표적 여가수 아스마한은 이 모순적 상황을 잘 대표하는 인물이다. 서구식의 화려한 헤어스타일로 치장한 그녀는 프랑스의 억압에 적극 저항하던 가문의 일원이기도 했다. 40년대에도 아스마한의 영향력은 여전했다. 이 시기 그녀는 이전보다도 짙은 입술 색, 진주목걸이, 머릿수건 등을 포인트로 삼았는데, 이는 프랑스의 지배에서 벗어나 시리아 수니파 정부가 정권을 잡으면서 일시적으로 안정됐던 당시 정세를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안정세는 50년대에 깨지고 만다. 49년부터 54년까지 시리아에서는 다섯 차례의 군부 쿠데타가 발생하는 등 혼란상이 발생했었다. 이시기의 미의 기준이 된 인물은 52년 시리아 미인대회 수상자 레일라 티브리즈 토우마다. 63년, 아사드 가문이 이끄는 바스(Ba’ath)당이 군부 쿠데타를 일으키고 사회주의 정권이 자리를 잡는다. 이러한 억압적 분위기에 시리아 국민들은 타국가 국민들과 유사하게 예술적 저항을 시작하는데, 진한 눈 화장과 두건으로 꾸민 당대 소설가 가다 알사만의 강렬한 스타일도 이런 경향을 따른 것이다. 상대적으로 평화로웠던 70년대를 지나 80년대에는 하페즈 알아사드가 이끈 인종청소가 시작됐으며 수천 명의 희생자를 발생시킨 82년 하마(Hama) 학살 등 거대 규모의 참극이 벌어졌다. 하페즈 정권은 90년대가 끝날 때까지 지속됐다. 이 시기동안 여성들의 스타일은 과거에 비해 급격히 수수해진 모습을 보여준다. 2000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정권을 잡은 바샤르 알아사드는 지금까지 독재정치를 이어나가고 있다. 2000년대를 상징하는 여성상으로는 아사드 정권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인 여배우 파드와 솔리만이 꼽혔다. 2010년대, 중동 전역을 물들였던 아랍의 봄 운동에 영향을 받아 시리아에서도 반정부 평화시위가 시작됐다. 그러나 알아사드가 이를 무력으로 잔인하게 진압하며 내전이 시작됐다. 컷닷컴이 2010년을 대표하는 시리아의 얼굴로 꼽은 것은 반정부 시위에 나서 시리아 국기가 그려진 손가락을 내뻗고 있는 한 어린 소녀다. 사진=ⓒ컷닷컴/유튜브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좋은사람 우희진 “유쾌한 아침 기대하세요” 믿기지 않는 방부제 피부

    좋은사람 우희진 “유쾌한 아침 기대하세요” 믿기지 않는 방부제 피부

    ‘좋은사람’에 출연하는 배우 우희진이 놀라운 동안 피부를 뽐냈다. 21일 오후 서울 상암동 MBC 사옥에서 열린 ‘좋은사람’ 제작발표회에는 배우 장재호, 우희진, 현우성, 강성미가 참석했다. 이날 화사한 컬러의 민소매 원피스로 봄 느낌을 물씬 풍긴 우희진은 전성기 시절 외모를 그대로 유지한 ‘방부제 미모’를 자랑하며 보는 이들을 감탄케 했다. ‘좋은사람’에서 우희진이 맡은 윤정원은 꼼수를 부리지 않는 정직한 보험설계사로서 사람을 잘 믿고 우직한 인물이다. 우희진은 “유쾌하고 시원한 아침 시간 만들어드리겠다”고 새 작품에 임하는 각오를 전했다. 한편 ‘좋은사람’은 사람에게 받은 상처와 아픔을 사랑으로 치유하고 결국엔 ‘사람이 희망’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드라마. 5월 2일 오전 7시50분 첫 방송된다. 사진=스포츠서울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일상 속 꿈을 디자인하다…김영세 이노디자인 회장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일상 속 꿈을 디자인하다…김영세 이노디자인 회장

    그는 서울에서 나고 자랐고, 우리 나이로 67세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고향은 대한민국이고 나이는 모른다”고 말한다. 전 세계를 상대로 일하는데 좁은 한국 땅에서 고향이 어디인지가 무슨 의미가 있겠으며, 일에 빠져 사는데 생물학적 나이가 뭐가 중요하냐는 게 그의 지론이다. 나이보다 열 살은 적어 보이는 외모에 젊은이 못지않은 패션 감각. 김영세 이노디자인 회장에게 평범함은 ‘끝’을 의미한다. 지난 15일 2시간 가까운 열정적인 인터뷰가 끝난 뒤 지친 것은 일흔을 몇 년 앞둔 그가 아니라 40대 초의 기자였다. -“그래, 김 교수. 내가 뭘 해 주면 되겠어?” 1983년 봄 어느 날 서울역 앞 대우그룹 사옥 꼭대기층 회장실. 김우중 회장이 지긋이 날 바라보며 말문을 열었다. “세계 일류 디자인 회사를 제 손으로 꼭 한번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미국에 회사를 세우려고 하는데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게 전부인가?” “한 가지 청이 더 있습니다. 제가 회사를 차리면 당장은 일거리가 없을 겁니다. 대우그룹 사업 프로젝트들을 일단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골똘히 생각해 보던 김 회장은 나에게 수정 제안을 했다. “김 교수가 당장 회사를 만들어 운영하기는 힘들 거야. 일단은 우리 대우그룹 계열사 형태로 디자인 회사를 하나 만들어 줄 테니 운영을 해 봐. 경영을 잘해서 3년 뒤에도 살아남으면 그때는 당신한테 그 회사를 온전히 넘겨주지.” 그때는 둘 다 젊었다. 김 회장은 마흔일곱, 나는 서른셋이었다. -당시 나는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학생들에게 산업디자인을 가르치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은 온통 창업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어떻게 하면 회사를 차릴 수 있을까.’ 밤낮으로 궁리를 거듭하던 차에 우연히 한국의 신흥 재벌인 대우그룹이 전자와 자동차 사업에 뛰어든다는 소식을 접하게 됐다. “바로 이거야!” 전자와 자동차야말로 결정적으로 디자인에서 승부가 갈리는 산업 분야가 아닌가. 원래 나는 생각을 하면 바로 실행에 옮기는 성격. 잠시의 지체도 없이 서울의 대우그룹 회장실 전화번호를 수소문했다. -“이거 미국에서 전화드리는 건데요, 저는 일리노이대에서 교수로 있는 김영세라고 합니다. 조만간 한국에 갈 일이 있는데 들어간 김에 회장님을 한번 뵙고 싶습니다.” 한국에 갈 일이 있다는 건 알량한 자존심에서 나온 거짓말이었다. 그쪽에 너무 매달리는 것처럼 비치고 싶진 않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회장 비서실의 회신은 며칠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강의에서 돌아오면 전화기만 쳐다봤다. 며칠 후 연락이 왔다. 김 회장이 너무 바빠서 평일에는 도저히 안 되고 일요일에만 시간을 낼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얼마 후 김포공항에 내렸고, 곧장 대우빌딩 꼭대기층으로 달려갔다. 일요일인데도 김 회장은 계열사 사장, 임원 등 10여명과 함께 날 기다리고 있었다. 1시간 넘게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동안 흐뭇하게 나를 바라보던 김 회장의 표정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렇게 해서 그해 여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에 세워진 것이 나의 첫 회사 ‘ID포커스’다. 흰색뿐이던 색깔을 7가지로 만들어 ‘컬러풀, 원더풀’이라고 광고했던 냉장고 시리즈도, ‘대한민국 첫 100만대 생산’을 기록했던 대우통신의 퍼스널컴퓨터 디자인도 다 그때 내가 했던 것들이다. 당시 나는 ID포커스 대표와 대우전자 디자인 총괄이사를 겸직했는데 그룹에서 가장 어린 임원이었다. -어느덧 김 회장이 약속했던 3년이 흘렀다. 1986년 어느 날 우리 둘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남을 가졌다. 일종의 담판이었다. “회장님, 3년 전에 하셨던 약속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지요?” 그는 말이 없었다. 김 회장으로서는 확고히 자리를 굳힌 디자인 전문 계열사를 선뜻 나에게 내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의 입장이 이해됐다. ID포커스가 대우를 떠나는 게 아니라 내가 대우를 떠나야 하는 상황이었다. 얼마 후 미국 실리콘밸리에 나만의 회사가 차려졌다. 회사 이름은 ‘이노디자인’. ‘혁신’을 뜻하는 ‘이노베이션’에서 따왔다. -나는 어려서부터 뭔가를 규칙적으로 준비하고 움직이는 걸 아주 싫어했다. 학생 때는 정해진 시간에 등교해야 하는 게 싫었고, 어른이 돼서는 출퇴근 시간에 얽매이는 게 싫었다. ‘수업은 왜 시간을 정해 놓고 하지?’ 덕수초등학교 3학년 때 운동장이 내다보이는 창가에 앉아 밖에서 축구하는 애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칠판지우개가 정통으로 얼굴을 때렸다. 내내 딴짓만 하고 있으니 선생님께서 부아가 치미셨던 것이다. 그런 폭력적인 훈육도 나를 바꾸지는 못했다. ‘말로 하면 될 것을 왜 저러실까.’ -당연히 공부를 잘할 리가 없었다. 그런데 초등학교 6학년 어느 날 어머니께서 나를 앞에 앉히셨다. “사람 구실 하려면 경기중학교에는 꼭 들어가야 한다.” “엄마, 거기 가려면 전교 400명 중에 못해도 40등은 해야 되는데 저 절대로 그렇게 안 돼요.” 어머니는 아들의 말에 눈물을 떨구셨다. 내 마음이 너무 안 좋았다. 그날 이후 정말 코피를 쏟으며 공부했다. 나의 경기중 합격은 당시 우리 반에서 ‘인생 역전 드라마’라도 되는 양 화제가 됐다. -인생의 전환점은 중3 때 찾아왔다. 초등학교 때부터 ‘개구쟁이 클럽’이라고 해서 같이 어울리는 악동들이 있었다. 그중에 어마어마하게 넓은 마당에다 지하에 당구장까지 갖춘 집에 사는 ‘금수저’ 친구가 한 명 있었다. 그 집은 먹을 것도 많고 놀거리도 많아 늘 우리들 놀이터였다. 어느 날 지하에서 당구를 치는데 별 재미가 없어 혼자 그 집 2층에 올라갔다. 한 층의 절반 정도가 서재였는데, 벽 한쪽이 책으로 가득했다. 우연히 한 권을 툭 뽑아 들었는데 자동차 디자인에 관한 사진이 가득 실려 있었다. ‘인더스트리얼 디자인’이라는 미국 잡지였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훑어보고 책을 덮는 순간 심장이 콩닥콩닥 뛴다는 게 이런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 이런 걸 만드는 사람들은 누구야. 세상에 이런 직업이 다 있구나.” 그때부터 영화, 자동차, 기차, 건물, 인테리어, 패션, 가구 등 모든 걸 디자인의 관점에서 보는 습관이 들었다. 결심한 게 또 하나 있었다. “난 반드시 미국으로 갈 거야. 저 큰 나라 미국에서 내 인생의 승부를 걸어 볼 거야.” -“저 미술대학 갈래요.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요.” 고3 어느 날,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폭탄선언을 했다. 두 분은 기함을 하셨다. 요즘과 달리 당시는 미술을 한다고 하면 ‘환쟁이’라고 무시하던 때였다. 아버지도 예외일 리 없었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의 아버지 표정은 잊혀지지 않는다. “그래서 밥은 먹고 살겠니.” 더이상 말씀은 없으셨다. 황당해서 혼낼 생각도 없으신 듯했다. 하지만 내가 의지를 꺾지 않자 얼마 후 아버지는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속설을 실천하셨다. “네 인생 네가 결정하는 것이니 미대 가는 것 더이상 반대하지 않겠다. 대신 나중에 먹고살기 힘들다고 나한테 손 벌려도 한 푼도 없을 줄 알아.” -미술만큼이나 좋아했던 게 음악이었다. 고2 때 친구들과 ‘다이아몬드 포(4)’라는 그룹사운드를 만들어 활동했다. 경기고 학교 마크가 다이아몬드 모양이었고 당시 인기를 끌었던 영국 밴드 ‘비틀스’를 흉내 내 4명이 모였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었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고등학생이 만든 최초의 그룹사운드가 아니었을까 싶은데, 확실한지 자신은 없다. 고2 여름에는 서울시민회관(현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을 했는데 광고 포스터 디자인을 내 손으로 직접 했다. -나의 미대 동기 중 한 명이 ‘아침이슬’의 김민기다. 경기고 동창이긴 하지만 그때는 잘 몰랐고 대학 가서 친해진 케이스다. 신입생 환영회 때 목소리 좋은 민기가 고등학교 동창이란 걸 알게 됐다. 선배들이 장기자랑을 하라고 해서 둘이서 노래를 했는데 반응이 좋았다. 이후로도 장기자랑 때마다 둘이서 같이 했는데 결국 ‘도비두’라는 포크팝 듀엣을 결성했다. 선배들이 우리를 표현했던 ‘도깨비 두 마리’의 준말이었다. 도비두는 정식 앨범 녹음도 했다. 김인배씨가 편곡한 크리스마스캐럴집이었는데, 우리는 앨범 B면 첫 번째와 두 번째 곡인 ‘친구’와 ‘세노야’를 함께 불렀다. 지금 생각하면 캐럴집으로는 뜬금없는 곡들이었다. -도비두 덕분에 아내를 만났다. 다른 학교 학생이던 아내가 학교에 놀러와 내 앞을 지나가는데 그 모습이 영화에 나오는 정지 화면처럼 느껴졌다. ‘내 인생의 짝은 바로 저 여자야.’ 마침 그날 저녁 서울 명동 YWCA에서 공연이 있었고 “구경 오라”고 했는데 그녀가 선뜻 응해 줬다. 이전의 그 어떤 공연보다 멋있는 척을 하려고 애썼다. 공연이 끝난 후 곰 인형을 선물했는데 그때 인연으로 지금까지 함께 산다. 도비두 활동은 1년 정도 하다가 그만뒀다. 민기는 음악 활동을 계속하고 나는 디자이너라는 길을 걸었다. 서로 바쁘게 살다 보니 제대로 못 만나고 있다가 2004년 민기가 자신의 노래를 묶은 패키지 앨범(Past Life Of KIM MIN’GI)을 낸다는데 내가 앨범 디자인을 하겠다고 나서면서 30년 만에 호흡을 맞췄다. -중학교 때 품었던 뜻대로 미국으로 유학을 할 때만 해도 나름대로 설정했던 인생 로드맵을 차근차근 밟아 나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공부(일리노이대 석사과정)를 마치고 나니 사정이 달랐다. 디자인 회사들이 서로 모셔 가겠다고 할 줄 알았는데 현실은 냉혹했다. 수십 군데 지원을 했는데 죄다 떨어졌다. 간신히 GVO라는 디자인 회사에 자리를 잡았다. 2년쯤 일하다 보니 다른 곳에서 새로운 경험을 쌓아 보고 싶었다. 때마침 모교인 일리노이대에서 산업디자인 분야 교수를 뽑는다고 해서 지원했는데 뜻밖에 합격을 했다. 하지만 교수 생활 2년 동안 언제나 마음은 ‘창업’이라는 콩밭에 가 있었다. 회사를 차려 떠날 사람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학생들한테도 미안하고 마음이 편치 않았다. -대우그룹을 떠나 이노디자인을 세운 후 처음으로 여행용 플라스틱 골프백 ‘프로텍’이라는 제품을 만들어 디자인계의 아카데미 시상식이라고 불리는 ‘IDEA’에서 동상을 받았다. 생애 첫 번째 수상이라 애착이 많이 간다. 사람들이 ‘당신이 만든 최고의 작품은 무엇이냐’고 묻는데 아직 그런 작품은 나오지 않았다. 디자인에서 ‘최고의 작품’이란 있을 수 없다. 디자인은 계속 진화하는 것이고 디자이너의 작업은 항상 현재진행형이다. -내 아이디어는 사람, 문화, 공간 세 곳에서 나온다. 내가 포함된 문화와 공간, 그곳에서 생활하는 사람이 디자인의 원천이다. 아이디어는 누군가를, 또 무언가를 봤을 때 어떻게 도와주고 편리하게 만들어 줄까 하는 배려심에서 나올 수 있다. 사람을 생각하지 않고 단순히 보기에만 아름다운 작품은 절대 생명력을 가질 수 없다. 그런 아이디어를 사장시키지 않기 위해 나는 끊임없이 메모를 하고 또 한다. -우리 회사는 회의 시간이란 게 없다. 그냥 눈에 띄는 사람들을 불러 즉석에서 미팅을 하는 게 전부다. 국내 기업들의 회의는 획일적이다. 위에서 “이따가 오후 2시에 회의를 하겠습니다. 신제품 콘셉트에 대해 준비해 오세요”라고 하고, 아래에서는 “이따가 이런 얘기를 해야지”라고 하며 머리를 싸맨다. 그 결과로 갖고 오는 아이디어들은 절대로 팔딱팔딱 뛰는 활어가 될 수 없다. 죽어서 썩둑썩둑 썰려 나온 생명 없는 회라고나 할까. 죽은 아이디어는 디자이너에게 필요 없다. 미대 시절 소주병 들고 작업실에 들어가 몇 날 며칠 머물면서 마음 내키는 대로 그림을 그리는 선배가 있었다. 예술가로서 디자이너는 그런 자유로움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직원들에게 그걸 보장해 주고 싶다. 그건 나를 위해서이기도 하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김영세 이노디자인 회장 ‘한국 디자인계의 구루(GURU·스승)’, ‘산업디자인의 미다스’로 불린다. 서울대 응용미술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일리노이대에서 산업디자인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6년 한국인 최초로 미국 실리콘밸리에 디자인 전문기업 ‘이노디자인’을 설립했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이 극찬한 ‘아이리버’ MP3 플레이어와 삼성전자의 ‘가로 본능’ 위성DMB폰, LG전자 스마트폰 등의 디자인이 그의 작품이다. ‘디지털디자인 A to Z’ ‘12억짜리 냅킨 한 장’ ‘트렌드를 창조하는 자, 이노베이터’ ‘퍼플피플’ ‘이매지너’ 등 틈나는 대로 펴낸 책들이 매번 베스트셀러가 됐다. ▲1950년 서울 출생 ▲미국 일리노이대 산업디자인 교수(1980~1982년) ▲이노디자인 회장 ▲미국산업디자이너협회 IDEA 금상(1993년), 한국 굿디자인전 대통령상(1999년), 독일 레드닷 디자인어워드 디자인상(2005년), 독일 iF디자인 어워드 디자인상(2007년) 등.
  • [뷰티 정보] 내 얼굴형에 맞는 눈썹 모양은?…‘눈썹문신·화장’ 꿀팁

    [뷰티 정보] 내 얼굴형에 맞는 눈썹 모양은?…‘눈썹문신·화장’ 꿀팁

    눈썹은 얼굴의 다른 요소보다 인상에 큰 영향을 미친다. 자신의 얼굴형에 맞게 눈썹을 그려야 외모를 더 돋보이게 만들 수 있다. 최근 한 TV방송프로에서 메이크업 아티스트 임미연씨가 전수한 ‘얼굴에 맞는 눈썹 그리기 방법’이 19일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다시 화제다. 임씨는 당시 방송에서 갈매기형 눈썹의 눈썹산 각도를 완만하게 그려 유한 인상으로 바꾸고, 옅은 눈썹을 더 도톰하게 그려 어려보이게 만드는 동안 메이크업 등을 선보였다. 임씨는 “달걀형은 어떤 눈썹 모양도 잘 어울리며 긴 얼굴형은 일자모양의 눈썹, 각진 얼굴형은 둥근 눈썹, 갸름한 얼굴형은 갈매기 눈썹이 잘 어울린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눈썹을 제대로 그리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직장 여성들의 경우 출근 준비로 바쁜 아침에 눈썹을 섬세하게 그리기가 어렵다. 최근 매일 아침 눈썹을 그리는데 시간을 뺏기는 대신에 반영구 눈썹문신을 하는 직장 여성들이 늘어나는 이유다. 눈썹문신은 일반적인 문신과 다른 반영구 화장법이다. 눈썹은 물론 아이라인, 입술 등의 표피 및 진피에 색소를 주입하는 화장술로 유럽에서 처음 개발된 ‘컨투어메이크업’이다. 이정민 압구정 비앤미의원 원장은 “반영구 화장은 문신과 달리 천연 색소를 사용해 표피층의 최하부에 시술하기 때문에 약 2년이 지나면 서서히 사라진다”면서 “비교적 안전하고 간편한 시술”이라고 설명했다. 싼 값에 현혹돼 무허가 시술소를 찾으면 부작용으로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크다. 무허가 시술소에서는 정체불명의 색소와 마취연고 등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 원장은 “반영구 화장은 피부에 직접 색소를 주입하는 시술이기 때문에 반드시 의료기관에서 올바른 제품으로 시술을 받아야 부작용이 발생할 확률을 현저하게 낮출 수 있다”고 당부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잠깐의 인기… 한류 스타 아니지 말입니다”

    “잠깐의 인기… 한류 스타 아니지 말입니다”

    대사 오글? 제 색깔로 융화하려 노력 1년 만의 회생 설정, 멜로 강해져 뭉클 KBS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 특전사 대위 유시진 역을 맡아 열연한 송중기(31)가 15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널리 회자되는 작품을 만든 것 같아 뿌듯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또 “잠깐 인기 있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한류 스타가 됐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는 진정한 한류 스타로 극 중 멜로 연기를 펼친 송혜교와 절친 이광수를 꼽기도 했다. ‘태양의 후예’는 지난 14일 마지막 방송에서 전국 38.8%, 서울 44.2%의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종영했다. 송중기는 대사가 오글거렸다는 평가가 많다는 지적에 대해 “취향 차이겠지만 저는 그렇게 느끼지는 않았다”며 “제 색깔로 융화하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많은 여성 시청자분들이 왜 유시진이라는 캐릭터를 좋아했는지 알 것 같다”며 “유시진이라는 인물에게 ‘아, 이렇게 해야 내 여자가 좋아하는구나’ 하는 점을 많이 배웠다”며 웃었다. 유시진이 갖은 재난과 위기 상황에서도 ‘불사조’처럼 기사회생한 것을 놓고는 “멜로를 강화시키기 위한 것들이라 만족스럽다”고 평가하며 “그 덕에 (1년 만에 살아 돌아온) 15회에서는 굉장히 뭉클했다”고 돌이켰다. 그는 “다만 4회 와인 키스 장면의 경우 너무 빠르고 가벼워 보일까 봐 걱정을 많이 했는데 시청자들이 외려 좋아해 줘 다행이었다”고 덧붙였다. 최근 초심에 대해 스스로 많은 질문을 하고 있다는 송중기는 “변하면 안 되는 것들은 제가 살아오는 동안 제 성격 안에 다 포함돼 있지 않을까 싶다”며 “그냥 하던 대로 살아가려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어쩔 수 없이 책임져야 할 것들이 늘어나는 등 여러 의미에서 그릇이 커졌는데 마냥 초심에만 머물러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얘기다. 그는 “꽃미남이라는 수식어를 버리고 싶은 생각은 절대 없지만 외모만큼 속도 가꾸겠다. 제 안에 좀 서늘한 면이 있는데, 더 나이 들기 전에 스릴러 같은 장르를 해 보고 싶다”며 간담회를 마무리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커버스토리] “셋째까지 회사가 책임진다는데…안 낳을 이유 있나요”

    [커버스토리] “셋째까지 회사가 책임진다는데…안 낳을 이유 있나요”

    3년 전 미국 사회를 발칵 뒤집은 책 ‘프랑스 아이처럼’의 저자 패멀라 드러커맨은 프랑스 엄마를 이렇게 묘사했다. “아이가 행복하기에 행복한 것이 아니라 그저 여자로서 행복한 모습이다. ‘엄마’이기를 거부하고 ‘여성’으로서만 부각되기를 원하는 게 아니라, 엄마와 여성의 역할이 잘 융합돼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 기자 출신인 드러커맨은 미국 엄마를 향해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하는 엄마는 불행한 아이를 만들 뿐”이라고 꼬집었다. 한국 엄마는 미국 엄마와 프랑스 엄마 중 어느 쪽에 가까울까. 단언컨대 프랑스 엄마와는 거리가 멀다. 우리 사회 현실이 그렇다. 자녀 한 명까지는 어떻게 견뎌 봐도 둘을 낳는 순간 ‘직장맘’으로서의 삶 자체가 애달프다. 그런데 자녀 셋을 낳고도 멀쩡히(?) 회사를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도 장거리 비행이 많아 며칠씩 집을 비워야 하는 악조건 속에서 이들은 자녀 셋을 키우며 일을 한다. 여성친화기업인 아시아나항공의 승무원들 얘기다. 이 회사 승무원들 사이에서 자녀 한 명은 명함도 못 내민다. 적어도 둘째를 낳고 복직해야 ‘워킹맘’ 세계에 합류할 수 있다. 자녀 둘을 낳은 승무원 수만 518명(13%)이다. 세 자녀를 둔 승무원도 18명(5%)이나 된다. 프랑스 아이는 엄마가 아닌 온 나라가 함께 키운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육아와 비행을 함께 할 수 있었을까. 그 비결을 듣기 위해 지난 11일 서울 강서구 오쇠동 아시아나항공 본사에서 세 자녀를 둔 ‘슈퍼맘’ 승무원 5명(이영진 사무장, 김소라·박성미·권진영·최송아 부사무장)을 만났다. 이들의 솔직담백한 ‘수다’를 대담 형식으로 풀어 본다. →자녀 셋을 낳고 회사로 돌아올 때 망설임은 없었나. -권진영(이하 권) 아이 셋을 낳고 6년을 쉬다가 지난달 복직했다. 100% 복직이 가능하기 때문에 눈치 보지 않고 돌아왔다. -김소라(이하 김) 복직할 때 자신감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회사에 돌아와 보니 ‘애국자’ 대접을 해 주더라. “나라를 위해 좋은 일 했다”고 독려해 줘서 걱정을 덜었다. -이영진(이하 이) 셋째를 낳고 지난해 10월 복직했다. 20년 비행하면서 단 한 번도 그만두겠다고 생각한 적 없다. 복직 후 교육을 받고 있는데 회장님(박삼구 회장)이 잠깐 나와 보라고 하더니 안아 주시더라. 진짜 고생 많았다고. 앞으로도 엄마로서 더 열심히 하라고 격려해 주셨다. -최송아(이하 최) 회장님이 자녀 세 명까지는 “내가 책임지겠다”고 단언했다. 사장님도 아니고 회장님이 말씀하셨는데 무슨 걱정이 있겠나. →그래도 위기의 순간이 있었을 텐데. -이 다들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아이가 아플 때 옆에 같이 있어 주질 못하니. 하지만 이것 말고는 큰 어려움은 없었다. 회사를 그만둔 뒤 평범한 주부가 된 내 모습을 받아들이기도 어려웠고. -최 그만두고 싶을 때가 많았다. 그럴 때 회사에서 “힘들면 그만둬라”가 아니라 “이 순간만 넘기자”고 했다. 지금 그만두면 후회한다고. 조금만 지나면 괜찮을 거라고. 가족 같은 분위기라 가능했던 것 같다. -권 선배가 한번은 “힘든 게 10이라면 얻을 수 있는 건 100”이라고 말했다. 일하면서 좋은 점도 많기 때문에 참고 견딜 수 있었다. -김 행복한 엄마가 행복한 아이를 만든다고 믿는다. 육아휴직 기간 동안 아이들과 매일 집에 함께 있으면서 느낀 것은 옆에 같이 있어 준다고 100% 좋은 엄마가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절대적인 시간보다 짧은 시간이라도 얼마만큼 사랑을 주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복직하고 아이들에게 사랑을 줄 수 있는 마음이 더 커졌다. →장거리 비행을 나가면 아이는 누가 돌보나. -최 24시간 상주하는 아주머니가 계신다. 중간에 잠깐 헤어지기도 했지만 벌써 10년째 같은 ‘이모님’이 아이들을 봐 주신다.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계셔서 그런지 아이들에게는 ‘엄마’ 같은 존재다. -김 셋째 낳고 아이 돌봐 주실 분을 찾을 때 어려움이 많았다. 다들 애가 셋이라고 하니 거절하더라. 그때 처음으로 사직 생각을 했다. 다행히 예전에 돌봐 주시던 분이 오신다고 해서 위기를 넘겼다. -박성미(이하 박) 진짜 이모가 돌봐 준다. 아직 결혼을 안 한 여동생이 “조카들은 내가 책임지겠다”고 해서 도움을 받고 있다. 유아교육을 전공하고 유치원 교사 경력도 있어 우리 집 최고 ‘실세’로 통한다(웃음). -권 남편이 해외에 파견 나가 있어 친정 부모님이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오셨다. 비행 일정상 새벽에 출근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막내 아이는 부모님이 데리고 주무신다. →휴직 제도가 궁금하다. -이 임신 사실을 아는 순간부터 휴직이 가능하다. 출산 전이라도 비행을 하면 몸에 안 좋을 수 있어 회사에서 산전휴직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최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산전휴가부터 육아휴직 기간까지 최장 2년을 쉴 수 있는데, 모두 쓰지 않고 중간에 복직한 뒤 남은 기간을 쪼개서 사용한다. 이를테면 아이가 유치원에 가면 적응 기간이 필요한데 이때 유용하게 쓴다. →육아휴직은 만 8세 이하 자녀에게만 쓸 수 있어 학부모가 되면 상황이 다를 텐데. -이 쌍둥이가 초등학교에 갈 때 셋째가 태어났다. 그래서 1년 동안 학부모 생활을 맘껏 해봤는데 직장맘이 전혀 소외감 느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아이들이 혹시 소외될까 봐 다른 엄마들에게 ‘우리 아이 좀 끼워 달라’ ‘무슨 일 있으면 연락 달라’고 하는데 아이들은 생각보다 씩씩하다. 엄마가 너무 잘해 주려고 하면 아이들에게 오히려 안 좋을 수 있다. -박 같이 있어 줄 시간이 많지 않아 미안한 마음이 크긴 하다. 다행스러운 점은 아이들이 엄마가 유니폼을 입고 출근하는 모습을 자랑스러워한다는 점이다. 학교에 가서도 친구들한테 “우리 엄마는 승무원이야”라고 자랑스럽게 말한다고 하더라. →승무원으로서 장점은. -권 고된 비행을 마친 뒤 쉴 수 있는 날이 한 달에 열흘은 된다. 새벽에 귀국하거나 밤늦게 비행이 있을 때도 남는 시간을 활용할 수 있다. 결혼 전에는, 아이를 갖기 전에는 몰랐던 소중한 시간이다. -박 외국에 나가면 자유시간을 가진다. 쉬기도 하고 운동을 하기도 하고. 혼자만의 시간이 큰 힘이 된다. -김 일부러 휴가 내지 않고도 여행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최대 장점이다. 계속 일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 →남편의 역할은. -이 셋째를 낳기로 결심한 것도 남편의 외조 때문에 가능했다. 요리도 나보다 잘하고, 주말에 비행 나가면 혼자서 셋을 돌본다. 남편이 “나를 인터뷰해야 되는 게 아니냐”고 농담할 정도다. -박 남편과 약속을 했다. 주말 중 하루는 온전히 남편이 아이들을 돌보고, 대신 남은 하루는 운동을 하든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했다. -최 무엇보다 내 일에 대한 남편의 이해가 중요하다. 와이프가 승무원 생활 하는 것을 좋아하면 마음에서 우러나와 육아에도 적극 동참하지 않을까. →세 자녀 어머니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외모다. -박 자녀가 한 명이면 열 시간을 움직여야 한다고 했을 때 셋이면 그 이상 시간이 들어간다. 집에서 편히 쉴 시간이 없다. 계속 집안일을 하다 보니 살이 안 찌는 것 같다. -김 주전부리를 일절 안 한다. 과자도 안 먹고 야식도 끊었다. -최 회사에 복직할 때 뚱뚱한 모습을 보이기 싫었다. 후배들이 얼마나 많은데. 유니폼이 안 맞는 것도 스트레스가 되고. 복직 3개월 전부터는 식이조절을 한다. 단, 보약은 안 먹는다. (이구동성으로) 살찔까 봐.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유독 길어 보이는 얼굴, 부위별 비율 진단 필요

    유독 길어 보이는 얼굴, 부위별 비율 진단 필요

    나이보다 어려 보인다는 말이 아름답다는 말만큼이나 큰 칭찬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역사적으로도 동안이 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던 권력자들의 일화를 살펴본다면 아름다움을 판단하는 데 어려 보이는 외모가 차지하는 영향력을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다. 어려 보이는 얼굴에는 다양한 조건이 존재하지만, 그 중 전체적으로 갸름하면서 길이가 짧은 얼굴을 대표적인 조건 중 하나로 손꼽기도 한다. 실제로 사람이 성장할 때 두상의 크기가 함께 성장하기도 하고 얼굴뼈 역시 나이가 들면서 피부처럼 아래로 처지게 되는데, 길이가 짧고 작은 얼굴은 노화의 흔적이 상대적으로 적게 나타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대체로 얼굴이 작고 갸름하다면 동안으로 보이는 편이다. 그러나 작은 얼굴임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나이 들어 보인다면, 얼굴 길이의 비율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성형외과적 관점으로 볼 때 얼굴은 상안, 중안, 하안의 세 부위로 나누어 볼 수 있으며, 각각의 비율이 1:1:0.8을 이룰 때 이상적인 비율이라 알려져 있다. 그런데 상안이나 중안, 하안 중 일부의 비율이 유독 긴 경우 작은 얼굴임에도 나이에 비해 노안으로 보이기 쉽다. 이 경우 멀티긴얼굴축소와 같은 방법으로 얼굴의 각 부위를 복합적으로 축소할 수 있다. 주걱턱은 긴얼굴의 대표적인 원인으로 지목 받는 부위이다. 때문에 하안의 길이를 확실하게 줄여주는 T절골술로 턱의 길이와 너비, 모양까지 개선해 확실한 축소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중안이 길어 보인다면 인중의 길이를 살펴보는 것이 좋다. 인중이 긴 얼굴은 눈부터 입까지의 거리가 길어져 중안이 길어 보이게 하는 원인이 된다. 따라서 인중축소술과 같은 방법으로 중안의 길이를 줄여 이상적인 얼굴 비율을 완성할 수 있다. 만약 넓고 광활한 이마 때문에 상안이 길어 보인다면 이마축소술이 좋은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아이디병원 성형외과 정승일 원장은 “작은 얼굴도 얼굴의 각 비율에 따라 나이 들어 보이는 원인이 될 수 있으며, 얼굴을 세분화해 문제가 되는 부위의 비율을 조정하는 멀티긴얼굴축소를 통해 동안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동안 외모 인기에 ‘V라인’ 효과 기능성 화장품 불티

    동안 외모 인기에 ‘V라인’ 효과 기능성 화장품 불티

    성형외과 V라인 시술, 닥터그랜드 마스크팩 등 기능성 화장품에 관심↑ 남녀를 불문하고 동안 외모가 각광받으면서 작고 갸름한 얼굴형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크고 또렷한 눈매와 오똑한 콧날 못지않게 이른바 ‘V라인’이 미의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이를 방증하듯 최근 성형외과에서는 리프팅 시술, 안면윤곽 수술 등이 인기다. 이런 추세에 맞춰 화장품 시장에서도 각종 주름개선과 리프팅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기능성 화장품들이 대거 출시되고 있다. 이런 제품중에 그랜드성형외과의 코스메틱 브랜드 닥터그랜드가 내놓은 ‘V 픽서 리모델링 마스크’가 사용자들 사이에 많이 언급되고 있다. 리프팅 효과를 내세우는 이 제품의 특이한 점은 얼굴선을 당겨 귀에 걸 수 있게 만들어진 하단부 시트에 있다. 고농축 하이드로겔 패치가 얼굴선에 밀착돼 탄력 잃은 피부 윤곽을 잡아즈는 효과를 높여준다. 닥터그랜드 관계자는 “브이라인 얼굴형을 완성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성형이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은 사람들은 리모델링 마스크와 같은 각종 팩이나 롤러 등 홈케어 제품을 활용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프로듀스 101’ 최종 11인의 닮은꼴 집중 분석

    ‘프로듀스 101’ 최종 11인의 닮은꼴 집중 분석

    Mnet <프로듀스 101>의 최종 순위가 지난 1일 발표됐다. 국민 프로듀서의 선택을 받은 최종 11명은 이제 아이오아이 (I.O.I)라는 새로운 그룹으로 활동을 시작한다. 그동안 참가자 101명 중에서도 특히 사랑받았던 소녀들인 만큼 닮은꼴 스타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이들이 도플갱어라고 불릴 정도로 닮은 스타가 누군지 순위별로 살펴보자. 깨끗하게 올라가는 고음으로 <프로듀스 101>의 대표적인 보컬 라인이었던 유연정은 동양적인 홑꺼풀과 부드러운 얼굴선 때문에 배우 라미란을 떠올리게 한다. 포지션 평가 때 타샤니의 ‘하루하루’를 부르면서 김주나와 센터 자리를 놓고 신경전을 벌인 이후로 팬들 사이에서 굴하지 않는 ‘센터 본능’이란 질타 섞인 별명도 붙었다. 매회 방송마다 흔들림 없이 침착한 태도와 무표정으로 일관해서 ‘스톤 나영’이란 캐릭터를 얻었던 임나영은 큰 눈망울과 오뚝한 콧대가 배우 엄현경과 닮았다. 최종 순위에서 10등을 차지한 뒤, 프로그램 참가 지원서에 10등이 목표라고 적었던 게 뒤늦게 밝혀져 자기 등수를 자기가 맞춘 ‘모태계획꾼’, ‘돌스트라다무스’ 같은 애칭도 새로 생겼다. 과즙이 톡톡 터질 것 같은 상큼한 매력의 소유자 강미나는 ‘김준현 닮은꼴’로 유명하다. 활짝 웃는 얼굴이 개그맨 김준현과 닮았다는 것. 강미나는 카메라에 부각됐던 팔뚝 살을 빼기 위해 식이조절 하는 장면이 많이 나왔는데 이를 본 네티즌들이 <프로듀스 101> 공식 ‘다이어터’로 인정해주었다. 다이어트로 힘든 시간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무대마다 청초한 매력을 드러냈던 김도연. 도톰한 애교살과 시원한 입매 탓인지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등장해 화제가 됐던 FD 권도우 씨를 닮았단 굴욕(?) 섞인 이야기도 들었다. 하지만 큰 키와 마른 몸매, 긴 생머리가 전지현을 생각나게 한다는 의견도 많다. 콘셉트 미션에서 ‘같은 곳에서’를 부르며 아련한 표정의 엔딩으로 남심을 사로잡은 바 있다. 정채연은 순정만화에서나 볼 법한 비주얼로 미쓰에이의 수지와 자주 비교되곤 했다. 하지만 어벤저스 무대라고 일컬었던 ‘다시 만난 세상’ 무대를 준비하면서 안무를 헤매는 모습을 보이거나, 자주 멍한 표정을 짓고 엉뚱한 행동을 해서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댕채연’(멍청하다와 비슷한 글자인 ‘댕청하다’에서 따온 말)이란 애칭으로도 통한다. 아이오아이의 비주얼 담당일 정도로 또렷한 이목구비와 이국적인 분위기가 매혹적인 주결경이지만, 얼핏 보면 젝스키스의 김재덕이 떠오를 때가 있다. <프로듀스 101> 참가자들 사이에서는 외모와는 다르게 ‘비글미’가 돋보이는 장난기 많은 캐릭터라고. 센터 자리에 설 기회는 많았지만, 번번이 놓쳐 팬들을 아쉽게 만들었다. 최종 순위는 6등. 김소혜는 원래 배우 지망생이었다. 아이돌이 되기엔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출연했던 그녀는 첫 방송 등급 평가에서 가장 낮은 F등급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안무 트레이너였던 가희의 말처럼 100% 노력이기에 더 예쁜 그녀는 결국 최종 11인에 들었다. 눈을 끔뻑이는 습관과 활짝 웃는 입매가 심슨 캐릭터와 닮아서 관련 패러디물도 많이 만들어졌다. 김청하는 포지션 평가 때 ‘뱅뱅’ 창작 안무를 주도하면서 뛰어난 댄스 실력을 보여 단번에 주목받았다. 오직 실력만으로 4위까지 올라간 케이스. 도드라진 광대와 살짝 올라간 눈매가 가수 김범수와 매우 흡사하다. 마지막 방송에서 참가자들이 서로 닮은 연예인을 말하던 중에 스스로 김범수의 ‘보고 싶다’를 부르면서 당당히 김범수의 도플갱어임을 밝혔다. 평소엔 소심해서 낯을 가리지만 무대에만 올라가면 완벽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최유정은 동글동글한 얼굴과 깜찍한 표정이 <꼬마 마법사 레이>의 마죠리카를 생각나게 한다. 첫 방송에서 예상치 못하게 낮은 등급 평가를 받으면서 같은 소속사 연습생들과 헤어지게 돼 의기소침한 모습을 보인 적 있다. 팬들은 오히려 ‘찐따미’가 있다며 귀여워한다. 가창력과 외모, 시원스런 성격까지 겸비해 ‘갓세정’으로 불렸던 김세정은 특유의 털털함으로 ‘아재미’(아저씨 같은 매력)을 발산했다. 김소혜를 다정하게 가르치는 모습으로 ‘세정쌤’이란 별명도 얻었다. 팬들은 커다란 눈망울과 찡긋 웃는 모습이 배우 천우희와 닮았다고 한다. 초반엔 압도적인 표차로 1위를 지켰으나 후반으로 가면서 전소미와 엎치락뒤치락하다가 아쉽게도 2위에 머물렀다. Mnet <식스틴> 출연으로 이미 많은 팬을 얻었던 전소미는 <프로듀스 101>이 시작하던 순간부터 주목을 받았다. 초반엔 기대보다 낮은 퍼포먼스로 주춤했지만, 막판 뒷심으로 최종 1위에 올랐다. 열다섯 어린 나이답게 발랄하고 장난기가 많아서 팬들 사이에선 ‘비글미’로 사랑받고 있다. <프로듀스 101>의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하기도 했다. 하얗고 갸름한 얼굴이 이국적이어서 이다도시와 자주 비교되었다. 프로그램은 끝났지만 아이오아이는 이제 시작이다. ‘우리는 꿈을 꾸는 소녀들’로 시작하는 <프로듀스 101>의 첫 곡 ‘PICK ME’의 가사처럼 소녀들은 간절했던 꿈을 품은 채 또다시 앞으로 씩씩하게 나아갈 것이다. 닮은꼴은 팬들이 애정을 담아 부르는 별명 같은 것으로 스치듯 보이는 표정과 작은 움직임도 관심 있게 지켜본단 뜻이다. 누구를 닮았더라도 ‘프로듀스 101’의 소녀들이 예쁘고 사랑스러운 건 변함없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상생의 동양문명이 세계평화 이끈다…그 중심은 한반도”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상생의 동양문명이 세계평화 이끈다…그 중심은 한반도”

    검은 갓, 흰 도포에 꼬장꼬장한 말과 몸짓…. 종교지도자 모임이나 국경일 행사 기념 촬영 때면 나란히 선 인사들 속에 독특한 외모의 한 노인이 유난히 눈길을 끈다. 지난 31년간 줄곧 국내 민족종교를 이끌어 온 한양원(93)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회장 말고도 그가 가진 직함은 아흔을 넘긴 노인에겐 과하다 싶을 만큼 수두룩하다.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 공동대표,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 공동회장, 겨레얼살리기국민운동본부 이사장, 갱정유도 도정(대표), 한국서당문화진흥회 이사장…. 그중에서도 민족정기와 겨레얼 살리기는 평생을 바쳐 천착한 으뜸의 숙제다. 서울 답십리 사무실에서 기자를 만난 한 회장은 자타 공인의 ‘민족종교 대부’답게 대면부터 민족정기와 겨레얼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민족종교협의회를 31년간 이끌어 왔다. 민족종교협의회는 어떻게 시작됐나. -1983년 염보현씨가 서울시장으로 재임하던 무렵이었다. 당시 민족지도자인 안호상 박사에게 사직공원에 단군궁을 건립하는 데 20억원을 기부하겠다는 제의를 했다. 개천절, 삼일절, 광복절 행사를 함께 치르며 민족정기를 고취해 보자는 취지였다. 그런데 거의 성사를 앞두고 일부 개신교 측 반대로 무산되고 말았다. 당시 내가 갱정유도 총무를 맡고 있었는데 문제가 많다 싶었다. 그래서 당시 명맥만 유지하고 있던 민족종교친목회를 확대해 1985년 지금의 한국민족종교협의회를 탄생시켰다. 당시 34개 민족종교 교단이 참여했다. →지금 민족종교계의 형편은 어떤가. -흔히 알려진 대로 일제강점기 애국애족 운동에 누구보다 앞장선 게 민족종교였다. 3·1운동을 시작한 게 천도교였다면 임시정부에 가장 큰 공헌을 한 건 대종교였다. 독립군 양성을 위해 북만주에 무려 11개의 학교를 세운 것도 모두 민족종교였다. 조선총독부의 미움을 샀던 민족종교는 일제가 물러간 후에도 잔재가 남은 탓에 사이비 종교 취급받기 일쑤였다. 이런저런 탄압을 받거나 운영난으로 교세가 위축된 민족종교들이 적지 않게 도태됐다. 지금은 원불교, 천도교, 대종교, 갱정유도 등 12개 교단이 참여하고 있다. 이런 민족종교들은 교리와 운영 면에서 모두 잘 유지하고 있다. →한 회장이 대표로 있는 갱정유도는 일반인에겐 좀 생소하다. 어떤 종교이며 어떻게 인연을 맺었나. -선(仙)·불(佛)에 바탕하면서 인륜의 도리를 유도로써 밝혀 나가는 유불선 삶의 병행이 핵심이다. 기미년 독립만세운동 당시 태극기 300장을 직접 만들어 순창시장 사람들에게 나눠 주며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도조 강대성이 해방 3년 전 전남 순창 회문산에 갱정유도회 본부를 만든 게 시작이다. 강 도조는 일본에 대적해 독립운동을 제대로 하자는 뜻을 세웠었다. 나는 해방 이듬해인 1946년에 입도했다. 내 인생의 좌표를 정한 시기였다. 좌우익 혼란기엔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회문산의 갱정유도에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평생을 겨레얼 살리기에 천착해 살아오셨다. 왜 그렇게 겨레얼 살리기를 중시하는가. -일제강점기엔 우리말과 글을 못 쓰고 배우지 못하게 했다. 한마디로 우리 문화 죽이기다. 일본이 패망해 쫓겨 간 뒤엔 미국과 소련이 주둔한 채 민족이 반 동강 났다. 지금은 어떤가. 세계적으로 우수한 우리말과 글을 두고도 남녀 노소가 모두 영어 배우기에 혈안이다. 외래 문화가 판치고 그것을 우리 것으로 알고 가르친다. 건국 이념과 우리 문화, 역사를 다시 살려야 한다. 겨레얼살리기국민운동본부는 현재 외국에 17개 지부를 두고 있다. 그런데 국내에서보다 외국의 동포들이 더 겨레얼 살리기 운동에 적극적이다. 웃지 못할 현상 아닌가. →민족종교가 그 일을 주도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 건강한 우리의 정신문화를 바탕으로 물질문명을 병행시키자는 것이다. 물질문명이 고도로 발달했는데도 정신문화는 반대로 추락한다. 정신이 퇴폐해진 가운데 경제만 성장하면 싸움과 다툼이 만연하고 안정된 평화를 찾을 수 없다. 과거 서당, 서원만 있던 시절에도 성현군자와 영웅호걸이 나와 세상을 밝혀 나갔다. 지금은 어떤가. 유치원부터 대학원까지 다양한 교육시설과 기관이 있는데도 정신문화는 날로 쇠락해만 가는 현실이 안타깝다. →민족종교계를 이끌어 오면서 다른 종교인들과 폭넓게 교류한 것으로 유명한데. -갱정유도 총무로 일하면서 많은 이들과 만나 조언을 듣고 함께 일했다. 서울에 처음 올라와 초대 성균관대 총장을 지낸 유교의 심산 김창숙 선생 비서로 일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작고한 통일교 문선명 총재와는 주역 공부를 놓고 가까워진 적이 있었다. 불교의 경봉·효봉·청담 스님, 개신교의 강신명·한경직 목사와도 허물없이 자주 만났다. 그 때문인지 지난해 금강산에서 남북 종교인 만남 때 북측 대표로 나온 강지영씨가 7대 종교 지도자 중 아는 사람이 나뿐이라며 분위기를 좀 풀어 달라고 주문했었다.(웃음) →요즘 종교의 가치 전도가 공공연하게 회자된다. 종교계를 어떻게 평가하나. -종교가 본질을 벗어난 채 자꾸 외도로 빠져드는 것 같아 안타깝다. 공자나 예수, 석가가 하신 말씀 그대로를 모르는 사람에게 전해서 하늘의 이치를 깨닫게 하고, 진리를 알게 하도록 하는 게 종교 아닌가. 황금에 매여 진리와 복음을 제대로 못 전해 사회가 어두워진 탓이 크다. 정치 사회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지도자들이 먼저 부패해졌으니 자기가 썩은 줄 모르고 국민이 썩은 줄만 알고 있다. 일반인들도 각성해야 한다. 옛날 배고프고 어렵던 시절에도 나와 내 가정보다 사회와 나라 걱정을 먼저 했다. 나 혼자 잘 먹고 잘살겠다는 생각에서 물러나 이웃도 나와 같이 잘 먹고 잘살 수 있는 길을 솔선해 살펴야 한다. →남북 관계가 꽁꽁 얼어붙었다. 지금의 위기 상황을 어떻게 보나. -우리 민족은 본디 피와 언어, 사상, 건국이념이 모두 하나였다. 지금 남북 관계가 유례가 없을 만큼의 경색국면이라고들 한다. 우리 본래의 민족정신을 빨리 되찾느냐 못 찾느냐가 관건일 것이다. 겨레얼을 먼저 살리자는 것이다. 통일은 미국, 중국, 러시아의 것이 아니다. 남이 해 주기를 바라서야 되겠나. 남과 북 모두 외세 주도를 벗어나 하루속히 우리끼리 손잡고 뜻과 힘을 모아야 한다. 이미 한참 전에 냉전이 끝났는데도 남북한만 갈라져 있다. 강대국들이 제 이해관계를 따져 통일 후 한반도에도 간섭하려 든다면 또다시 식민지가 되고 말 것이다. →역대 대통령의 당선 점괘를 봐 주는 등 주역에도 통달한 종교인으로 유명하다. 통일 전망을 한다면. -그동안 서양이 상극의 전쟁·물질 문명에 편승해 세계를 좌지우지하며 동양까지 끌고 다녔다. 이제 동양으로 운이 넘어왔다. 지금까지는 도적질 잘하는 사람(서양)이 성공했지만 앞으로는 상생과 평화, 그리고 도덕을 우선시하는 동양문명이 세계 평화를 이끌어 갈 것이다. 그리고 세계 중심국은 한반도가 될 것이다. 우리의 건국이념이 바로 온 인류가 함께 유익하게 살자는 ‘홍익인간’ 아닌가. 세계에서 1000여회의 외세 침략을 받으면서도 단 한 번 남을 침략해 본 적이 없는 나라다. 마지막까지 남북한이 시험을 겪는 중이다. 다시 말하면 임신부가 세계를 이끌어 갈 옥동자를 낳기 위한 산고의 순간으로 보면 된다. 내가 보기엔 통일의 기운이 10년 전후에 들었다. 과학문명의 발달 속도가 빨라지는 추세를 감안하면 통일이 더 앞당겨질 수 있다고 본다. →여생에 꼭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일제강점기와 해방을 넘어 온 나라가 외래 문화에 휩쓸린 지 100년이 넘었다. 우리 것을 살려 낼 인재 양성이 시급하다. 그래서 수도권에 민족문화대학을 하나 세우는 게 꿈이다. 반만년 역사의 우리 문화와 정신을 제대로 알고 국민에게 오롯이 전달할 인재를 무료로 교육하는 구심체가 될 것이다. 또 하나는 예절 교육의 터전인 서당문화마을을 호남권에 꼭 하나 만들고 싶다. 전통서당문화진흥회와 갱정유도가 매년 한 차례씩 전북 남원에서 열고 있는 대한민국 서당문화한마당은 그 모태가 될 것이다. 이달 초 15회 서당문화한마당 행사엔 외국인을 포함해 1500명이 참여해 성황을 이루었다. 고무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한양원 회장은 ▲1923년 전북 남원 출생 ▲1933년 광의보통학교 졸업 ▲1937년 순천서당 및 용담서숙 수학 ▲1943년 지리산 입산 수도 ▲1946년 민족종교 갱정유도 입도 ▲1976년 갱정유도 총무·도무원장 및 도정(대표·현) ▲1985년 한국민족종교협의회 창립회장(현) ▲1991년 사단법인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회장(현) ▲1997년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 공동대표(현) ▲1999년 민족정기선양협의회 공동대표(현) ▲2001년 한국종교인평화회의 공동회장(현) ▲2002~2003년 개천절민족공동행사 공동위원장(남측대표) ▲2003년 겨레얼살리기국민운동본부 창립대표 ▲2005년 겨레얼살리기국민운동본부 이사장(현)
  • 인상 강해보이는 ‘사각턱 콤플렉스’ 개선 방법은?

    인상 강해보이는 ‘사각턱 콤플렉스’ 개선 방법은?

    청소년 시절은 어느 때보다 외모에 대해 신경을 많이 쓰는 시기다. 드세보이거나 투박하고 노안으로 보이는 이미지 탓에 놀림을 많이 받았던 사람은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로 자신감이 저하되어 그 후유증이 평생을 가기도 한다. 특히 V라인처럼 작고 매끄러운 얼굴형이 미인의 조건이 되면서 사각턱은 청장년층에게 스트레스 요인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아래턱이 발달된 사각턱은 정면에서 봤을 때 얼굴이 넓어 보이고, 남성적이고 강한 인상을 준다. 이에 자연스러운 V라인 얼굴형을 가지기 위해 사각턱 수술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하지만 입안 절개를 통해 수술이 이뤄지는 만큼 음식 섭취의 문제나 출혈의 위험 부담이 있어 꺼려지는 것이 사실이다. 보톡스나 윤곽주사와 같은 주사시술을 통해 사각턱의 고민을 덜 수 있지만, 이 또한 시간이 지나 주기적으로 다시 주사를 맞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발생한다. 쿠키성형외과 대표 정성모 원장은 “기존에 많이 시행되어 왔던 입안절개를 통한 안면윤곽축소수술방법이 점차 진화하고 있다”며 “위험성을 최소화한 귀뒤사각턱 축소술이나 퀵광대축소술 등의 퀵안면윤곽수술이 환자 상태에 따라 폭넓게 시행되는 추세다”고 전했다. 귀뒤사각턱축소술은 귀뒤에 1.5cm정도 최소절개를 통해 내시경을 이용하여 충분한 시야확보로 수술부위의 신경손상 및 과다출혈, 이차각 등을 예방하고 각진 사각턱 뼈 부위를 수면마취하에 30분정도의 짧은 수술시간동안 부드럽게 절제해 내는 방법이다. 무엇보다 이차각없이 귀밑에 각진 사각턱 뼈를 더욱 갸름하고 부드럽게 절제하여 만족도 높은 수술결과를 위해서는 수술전 체계적인 검사 후 정확한 진단 및 그에 따른 안전한 수술계획이 수립되어야 한다. 거기다 수술을 시행하는 전문의 의료진의 풍부한 안면윤곽수술경험과 응급 시 대처방법 등이 갖춰져 있는 곳에서 수술 받는 것이 중요하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신개념 안티에이징 디바이스 ‘링클엠디’ CJ오쇼핑서 첫 론칭 방송

    신개념 안티에이징 디바이스 ‘링클엠디’ CJ오쇼핑서 첫 론칭 방송

    최근 집에서 직접 피부를 관리하는 `셀프 뷰티족`들이 늘어나며 홈케어 미용기기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미용기기 시장의 판매량은 2012년 대비 50% 가까운 성장세를 기록했다. 이렇게 홈케어 미용기기 시장이 성장하는 이유는 최근 경기불황과 맞물려 피부과나 에스테틱에서 받을 수 있는 피부관리를 집에서 저비용으로 할 수 있다는 장점과 동안열풍 등 외모관리에 대한 관심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기 때문. 이러한 가운데 보톡스·필러를 집에서 대신할 수 있는 안티에이징 디바이스가 출시되어 관심을 끌고있다. 뷰티 디바이스 전문기업 JK 메이세븐(대표 김면옥)에서 새로 출시한 신개념 뷰티디바이스 ‘링클엠디(Wrinkle MD)’를 오는 7일(목) 18시 40분부터 55분간 CJ오쇼핑을 통해 첫 론칭방송을 진행한다. 링클엠디는 탄력 및 보습력이 뛰어난 히알루론산(Hylauronic)과 펩타이드(Peptide) 성분을 직접 피부 속으로 깊숙이 침투시켜 잔주름은 물론 굵은 주름까지 개선하는 안티에이징 디바이스다. 하이드로겔 인퓨저·링클메디 디바이스·유스세럼으로 구성된 링클엠디 안에는 첨단 과학이 숨어있다. 이미 미국 UCSF 의대 하워드 마이바흐 교수 연구팀의 임상 실험을 통해 흡수율과 주름 개선 효능을 입증한 바 있으며, 고가의 시술과 비교해 안전하면서도 뛰어난 효과를 자랑한다. 하이드로겔 인퓨저와 링클메디 디바이스를 연결하면 펄스자극을 통해 미세전류를 발생시켜 피부 노화를 막는 히알루론산과 펩타이드를 피부 속까지 전달한다. 이른바 ‘이온 인퓨전(Ion-infusion) 기술’로 피부에 직접 바르는 제품에 비해 흡수율이 8배 이상 높은 것이 특징이다. 하이드로겔 인퓨저 사용 후 유스세럼을 바르면 수분 공급을 유지시켜 거칠어진 피부를 매끄럽고 촉촉하게 채울 수 있다. 링클엠디는 주름이 많이 생기는 이마, 눈가, 입가 모양에 맞게 3종류로 구성돼 있어 고민 부위에 따라 선택해 사용할 수 있다. 패치를 해당 부위에 붙이면 자동으로 펄스자극을 30분동안 느낄 수 있으며, 부작용이 없어 모든 피부 타입에 사용하기 적합하다. 또한 세안 후나 자고 일어난 후에도 변화가 없어 다른 뷰티 디바이스들과 차별화된다. JK메이세븐의 김면옥대표는 “기존 미세전류만을 활용한 뷰티디바이스가 3세대라면, 리프팅, 볼륨업, 피부톤까지 개선하는 ‘링클엠디’는 4세대 신개념 뷰티디바이스다.”라며, “이 제품은 미국 MIT 공대, 샌프란시스코 의대(UCSF), 스탠포드 대학사이언스 세 분야 전문가들이 7년간의 합작으로 만들어낸 제품으로 안정성 측면에서도 신뢰 할 수 있고 보톡스·필러의 효과도 누릴 수 있을 것”이라 전했다. 한편, 링클엠디는 영국 헤롯 백화점, 미국 블루밍데이즈, 노드스트롬 등 해외 유명 백화점이나 리츠칼튼, 포시즌호텔등 럭셔리 스파뿐 아니라 국내 롯데백화점 본점에 입점되어 호응을 얻고 있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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