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동안 미모
    2026-05-30
    검색기록 지우기
  • 19세기
    2026-05-30
    검색기록 지우기
  • 노점상
    2026-05-30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683
  • X은 묻지마 발바리? 10~50대 무차별 성폭행

    “나는 미모나 연령을 따지지 않습니다.그냥 치마만 두른 여자라면 모두 좋은 ‘사냥감’이죠.” 중국 대륙에 한 20대 남성이 모색이나 나이에 상관하지 않고 무차별 성폭행하는 이른바 ‘잡식성 묻지마 발바리’가 등장,충격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중국 동북부 헤이룽장(黑龍江)성 다칭(大慶)시에 살고 있는 20대 남성은 지난 10년동안 10대∼50대 여성 40여명을 무차별 성폭행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혀 영어(囹圄)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활보(生活報)가 최근 보도했다. 이 ‘잡식성 묻지마 발바리’는 다칭시 두얼바이터 몽골족자치현에 살고 있는 자오페이(趙非·29).키꼴이 설멍한 그는 모색이 해사하고 반반한 탓인지 ‘얼굴값’을 톡톡히 해냈다.특히 조신한 아내까지 두고 있는 멀쩡한 유부남이다. 경찰 조사결과 ‘종자’는 장장 10년 가까이 다칭시 전역에서 1년에 4∼차례씩 무려 40여명의 여성을 성폭행했다.아직 꽃망울도 피우지 못한 14살까지 소녀 등 10대 초반부터 50대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상대 여성의 미모나 연령에 상관없이 무차별 범행을 자행했다. 그가 ‘발바리’ 길로 들어선 것은 10년 전인 지난 1997년.중학교 때부터 공부는 하지 않고 도색잡지와 소설,영화에 빠진 ‘종자’가 집에서 핀둥거리던 19살 때였다.혈기방장한 그는 성충동을 억제하지 못하고 10대 후반의 소녀를 덮친 게 ‘잡식성 묻지마 발바리’로 ‘양명(揚名)’하는 도화선이 된 셈이다. 10년 가까이를 요리조리 미꾸라지처럼 법망을 잘도 빠져나가던 자오가 붙잡힌 것은 성공에 따른 지나친 자만심이 화근이 됐다.같은 여성에 대해 여러차례 성폭행을 자행하다가 덜미를 잡힌 것이다. 지난해 8월 27일 오후 7시쯤 다칭시 두얼바이터현.종자는 길거리서 늘씬한 몸매에 미니 스커트를 입은 천훙(陳紅·가명)씨를 보고 한눈에 반해 뒤를 살금살금 밟았다.그녀는 홀로 사는 싱글족이어서 ‘희생의 제물’에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몰래 문을 밀고 들어가 자오는 고대 문을 닫아걸고 그녀를 덮쳤다.힘에서 밀린 천씨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다.이때 천씨는 “만일 다음에도 오면 경찰에 신고해버리겠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종자는 이를 비웃으며 또다시 그녀를 덮치자,분노한 천씨가 경찰에 신고하는 바람에 차디찬 쇠고랑을 차게 됐다.다칭시 중급인민법원은 죄질이 악랄한 자오페이에게 강간죄를 적용,무기징역형을 선고했다. 온라인뉴스부 김규환 기자 khkim@seoul.co.kr
  • [entertainment·information] 송정연 방송 25시

    [entertainment·information] 송정연 방송 25시

    글 송정연 방송작가, 청소년 소설작가 연세대 출신들은 건배할 때 ‘위하세’라고 하고, 고려대 출신들은 ‘위하고’라고 한다는데, 2007년 새해를 맞으면서 우리 라디오족들은 ‘위하라’라고 건배했다. 라디오니까 위하라! 라디오방송은, 보이지 않는 매력이 큰데, 요즘은 라디오방송도 ‘보이는 라디오(줄여서 ‘보라’)라고 해서 인터넷으로 볼 수 있게 제작하는 추세다. 우리 프로그램도 수요일마다 보이는 라디오방송을 하고 있다. 보이는 방송이 확대돼 가면 라디오의 뒷얘기들이 많이 사라지지 않을까 싶다. 음악 나가는 동안에 마이크가 꺼진 상황에서 진행자들은 어떤 얘기를 하고, 어떤 모습인지 궁금해 하는 청취자들은 이제 인터넷을 통해서 음악 나가는 동안 화장하고 대본 보고 준비하는 DJ들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보이는 라디오에서 진행자들이 화면을 의식하고 하는 행동과, 보이지 않을 때의 행동은 차이가 있다. 모 진행자인 경우, ‘ON AIR’불이 켜지면 분위기 있는 목소리로 차분하고 사색적인 방송을 하는데, 노래가 나갈 동안, 이 진행자는 돌변한다. “에이씨. 이 노래 누가 만든 거야? 이렇게 라디오에 틀 거, 길게 만드는 놈은 다 사형시켜야 돼. 지루해서 미치겠잖아, 이거!” 터프하게 소리치던 이 미모의 진행자. 음악이 끝나고 스튜디오에 불이 켜지면 얼른 음성을 바로 잡는다. “아, 음악이 왜 이렇게 마음을 파고드는지요”라고 멘트한다. 음악 나가는 동안, 주식시세를 보고 오는 디제이도 있고, 음악 나가는 동안 문자 보내고 받는 진행자도 있다. 이숙영 씨의 경우는 커피를 좋아해서 좀 긴 음악이 나올 때는 라운지에 뛰어가서 커피를 가져오기도 한다. 어떤 DJ는, 음악이 오버랩 돼서 나가는 동안, 사온 옷을 입고 패션쇼를 벌이기도 한다. 9시 진행자인 김창완 씨는 종종 산악자전거 타고 강남 집에서 목동까지 오느라 스판으로 된 운동복(우리는 ‘쫄바지’라고 부른다)을 입고 스튜디오로 들어서기도 한다. 지금은 그만두었지만, 소설가 김영하 씨가 SBS 책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는, 김영하 씨도 종종 그런 산악자전거 복장으로 스튜디오에 들어선다. 어떤 때는 김창완 씨와 김영하 씨 둘 다 그런 차림으로 마주치면 우리는 그 그림 자체가 재미있어서 킥킥대고 웃는다. 그러면 김창완 씨는 지난 주말에 남도까지 갔다왔다며 자전거 여행담을 아이처럼 자랑스럽게 쏟아낸다. 진행자들의 이런 모습들은 스튜디오를 훈훈하게 하는 양념거리가 되어 같은 채널에서 일하는 우리들을 즐겁게 한다. 음악이 나가는 동안 스태프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경우도 많다. 두 사람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인 경우, 둘 사이가 좋지 않은 경우가 꽤 있다. 둘이 서로에 대해서 안 좋은 감정일 때, 스튜디오 안의 온도는 영하 50도처럼 춥다. 예전에 커플 진행으로 유명한 A와 B 진행자의 경우, 사연 읽을 때는 할 수 없이 사이 좋은 척 장단 맞추다가도 사연 읽는 게 끝나고 음악이 시작되면, 얼른 서로 다른 쪽을 향해서 쌩, 하고 찬바람 나게 돌아앉는다. 음악이 끝나고 다시 사연 읽을 때는, 다시 돌아앉아서 사연 읽다가 다시 음악이 시작되면 쌩 하고 다시 돌아앉아서 서로의 불쾌한 기분을 나름대로 상대에게 표시한다. 둘의 사이가 그렇게 차가운 것도 모르고 어떤 청취자는, 둘이 부부냐고 물어왔다. 너무나 둘이 호흡이 잘 맞는다는 것이다. 모 방송에서 더블 진행 프로그램을 섭외하는데, C가 조건을 걸어왔었다. D랑 같이 한다면 진행하겠다고. 그래서 D를 섭외해서, C와 D, 더블 진행으로 방송을 시작했다. 그리고 1년후. C와 D는 서로 사이가 나빠져서 급기야는 프로그램을 그만두었고, 그리고 이제 C는 D랑 하라면 다시는 안 하겠다고 선언했다. 문제는, 녹음 스케줄 때문에 벌어졌다. C가 갑자기 해외에 일주일 가게 되자 급히 녹음해야 하는데, D의 스케줄도 꼬였다. D가 짜증냈고, C는 그게 서운했다. “예전에 지가 보름 간 해외 갈 때 그때 내가 아무 말 안 하고 스케줄 다 조정해 가며 해주었는데, 아, 이럴 수 있는 거예요?” 앞에서는 말 못하고 우리를 붙잡고 하소연 하는데, 그 호소 들어주고 나면 뒷날은 또 D의 하소연을 들어줘야 한다. “자판기 커피 한 잔 안 사는 저런 노랭이는 처음이에요, 사연 읽는데도 지만 좋은 거 읽으려고 하고, 못돼도 한참 못됐어. 아, 이렇게 내가 희생해 가며 녹음해 주면 그거 고마운 줄 모르는 사람이라구요. 내가 한마디 했다고 삐져서 저렇게 밴댕이같이 구는 사람, 아, 정말 마누라가 불쌍해. 어떻게 사나 몰라.” 두 사람이 진행할 때 서로가 잘 지내려면 서로에 대한 희생과 배려가 필요하다. 내 우선이기보다는, 내가 손해 봐야지, 하는 자세가 아니면 둘의 사이가 삐걱거리게 돼 있다. 그래도 방송이 시작되면, 서로 웃는 척 방송하는 것을 보면, 참 대단하다 싶다. 프로 근성일 수도 있고, 야, 저러니까 연기하고 사는구나 싶기도 하다. 이렇게, 라디오에서 들리는 목소리의 느낌과 실제 진행자의 모습이 아주 판이하게 다른 경우도 적지 않은 것이다. 반대로 방송에서 느끼는 그대로인 진행자들도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강석과 김혜영 씨. 두 사람이 오랫동안 방송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서로 적당한 거리를 두고 하나의 프로그램을 같이 만들어 가는 방송동지로 잘 지내고 있다는 뜻이다. 몇 달 전, 김혜영 씨 집에 초대돼서 저녁을 먹으면서 담소를 나누는데, 강석 씨 얘기가 우연히 나왔다. 김혜영 씨가 중간에 몸이 아팠을 때 강석 씨가 보여준 우정어린 마음씀에 대해서 진실로 감동했다고 한다. 내가 생각할 때 김혜영 씨도 평소에 정겹고 다정한 성품이 배어나는 사람이라, 강석 씨나 김혜영 씨나 서로가 배려하고 있다는 뜻이다. 배려라는 것은, 감정에서 가장 고감도인, 어려운 것인데, 음악 나가는 동안 이렇게 하나하나 이해하고 감싸주는 DJ는, 방송도 오래 가기 마련이다. DJ들이 말하는 대본을 쓰는 작가도 그 진행자를 생각하면서 가능하면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쓰게 되니까 방송은 좋아질 수밖에 없다. 새해가 밝았다. 돼지띠 해를 맞으면서 돼지띠에 대한 멘트를 쓰는데, 돼지띠가 되지띠로 오타가 나왔다. 그래, 올해 돼지띠는 모든 게 잘돼서 ‘되지’띠라고 회상하도록 열심히 뛰어야지. 보이는 데서 일하는 게 아니라, 안 보이는 데서 더 열심히 일하는 게 라디오작가들이니, 올해도 내밀한 열정으로 새로운 도전과 성취에 젊음을 불사르고 싶다.     월간 <삶과꿈> 2007.01 구독문의:02-319-3791
  • [월드이슈] 프랑스 겨울축제 ‘니스 카니발’ 현장을 가다

    [월드이슈] 프랑스 겨울축제 ‘니스 카니발’ 현장을 가다

    |니스 이종수특파원|‘고엽’의 시인 자크 프레베르는 “축제는 계속된다….”고 노래했다. 그의 시처럼 지구촌은 1년 내내 축제가 거의 끊이지 않는다. 봄·여름·가을에는 연극, 영화, 마임, 길거리 연극제, 현대·고전 무용과 음악 등 다양한 모습으로 변주된 축제와 페스티벌이 방문객을 유혹한다. 겨울이 되어도 ‘인류의 열정’은 끝나지 않는다. 유럽·남미 등 곳곳에서 카니발로 흥분을 이어가면서 대중들은 늘 ‘일상의 전복’을 꿈꾼다. 중세시대에 시작돼 오늘날까지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프랑스 니스 카니발(2월16일∼3월5일) 현장을 가봤다. 프랑스 남쪽 니스의 쪽빛 바다가 카니발 열기로 뜨겁다. 브라질의 리우, 이탈리아의 베니스 카니발 등과 함께 세계 3대 카니발로 불리는 니스 카니발이 지난 16일(현지시간) 개막됐다.7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지만 근대적 형태의 카니발로는 123회를 맞은 니스 카니발은 올해의 왕(인물)으로 ‘럭비복장의 자크 시라크 대통령’을 선정했다. ●‘올해의 왕´ 자크시라크 대통령 선정 개막 첫날. 저녁 8시부터 관람객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7시30분부터 개막식인 ‘왕의 도착’을 위해 교통이 통제된 상태다. 9시가 되자 해안가에 만든 관람석은 벌써 꽉 찼다. 축제에 참여한 네 그룹의 학생들이 형형색색의 옷을 입고 관객들 앞에서 흥을 돋운다. 이들이 신명난 음악 속에 군무를 펼치자 관람객 어깨도 들썩거렸다. 9시30분이 되자 거대한 시라크 대통령 인형을 태운 마차가 움직였다. 화려한 조명이 켜지면서 환호성이 터진다.17일 동안 도시를 ‘흥분의 난장(亂場)’으로 만들 축제가 시작된 것이다. 그 앞에 다양한 색상의 옷을 입은 선무단 1000여명이 열정적 춤을 추며 행진했다. 흥을 못이긴 관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춘다. 반대편 거리의 방문객들도 신명난 모습이다. 여기저기서 봄브(실 모양의 고체 스프레이)와 콩페티(종이꽃가루)가 날린다. 순간을 담으려는 듯 플래시도 쉼없이 터진다. 아이 둘을 데리고 영국에서 왔다는 주부 빅토리아는 “영국 카니발보다 더 재미있다.”며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흥분의 30분이 지났다.‘열기의 밤’이 저물고 있다. 그러나 열정을 식히지 못한 부부나 연인들은 거리에서 춤을 추면서 ‘그들만의 잔치’를 즐기고 있다. 니스시 공무원이라는 스코르시파 부인은 “일상생활에 눌린 흥을 발산하는 잔치”라며 “개막식이 짧은 게 늘 아쉽다.”고 말한다. 이어 “알롱 당세(춤을 춥시다).”라며 남편 손을 끌고 춤을 이어갔다. ●벨기에·덴마크 거리극단도 참여 지난 27일. 카니발의 백미인 ‘꽃 전투’가 펼쳐지는 산책로 ‘프롬나드 데 장글레’가 꽃밭으로 변했다. 화훼장식가 20명이 자기가 만든 ‘꽃수레’를 다듬느라 여념이 없다. 수레에는 화사하게 분장한 1인 혹은 2인의 모델들이 다양한 국적의 옷을 입고 있다. 오후 2시30분이 되자 열기가 고조된다. 아를에서 온 8명의 기마대가 꽃마차 행렬의 길을 열어준다. 체코 군악대, 벨기에 마법사단 등도 따라온다. 그 뒤를 브라질·아프리카·아시아 복장을 한 무희들이 민속춤을 추면서 열기를 고조시킨다. 마침내 관객들의 환성 속에 20대의 마차가 움직였다. 관람석을 지나면서 이들은 미모사꽃 등을 던진다. 두번째 거리를 돌 때는 수레에 장식된 모든 꽃을 던진다. 관객들도 내려와 꽃받기에 여념이 없다. 역사학자이자 카니발 조직위원인 안 시드로(50)는 “이 지역 전통 행사 가운데 하나인 ‘꽃 전투’를 재현한 것인데, 요즘엔 그냥 관객에게 던지기만 한다.”며 “세계에서 유일한 프로그램”이라고 설명했다. 밤 9시가 되자 15만개의 전구가 메세나 광장을 밝혔다. 카니발의 하이라이트인 ‘빛의 행렬’이 시작된 것. 조직위가 선정한 20명의 인물을 닮은 거대한 인형을 태운 수레 20대가 관객들 앞을 지나갔다. 올해 왕인 시라크 대통령의 마스크를 비롯, 집권당 대선 후보 니콜라 사르코지, 사회당의 세골렌 루아얄을 풍자한 대형 인형도 보인다. 그 앞을 덴마크·벨기에 등 다양한 나라에서 온 거리극단과 뮤지컬단이 재주를 뽐낸다. 광장을 한바퀴 돈 이들은 관객 속으로 들어와 함께 어울렸다. 배우와 관객이 하나가 되고 무대가 따로 없는 순간이다. 대형 인형 퍼레이드와 전시회, 길거리 퍼포먼스와 공연 등이 재연되면서 잔치는 5일까지 계속된다. vielee@seoul.co.kr ■ 세계의 겨울 축제 어떤게 있나 |니스 이종수특파원|일상생활과 단절하려는 인간의 ‘끼’는 겨울에도 쉬지 않는다. 세계 각국에서 카니발 등 크고 작은 축제가 펼쳐진다. 부활절 40일 전인 사순절 금욕기간 전에 고기를 먹어치우며 지배층을 조롱하고 억눌린 욕망을 분출하는 풍습에서 비롯한 카니발은 원래 종교적 색채가 강했으나 이후 점차 세속화됐다. 대표적인 것은 브라질의 리우 카니발. 화려한 의상의 무용수와 휘황찬란한 퍼레이드, 흥겨운 삼바 음악과 춤이 특징이다. 주로 2월 말부터 3월 초 사이에 4일 동안 열리는데 새벽까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축제를 벌인다. 브라질 국민들은 리우 카니발을 즐기기 위해 1년을 일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모든 국민의 사랑을 받는 축제다. 지난 20일 막을 내린 이탈리아의 베니스 카니발도 세계적 명성을 자랑한다. 일명 ‘가면축제’로 불릴 만큼 다양한 모양의 가면을 쓰고 화려한 의상을 입은 인파들이 거리를 가득 메운다. 또 산마르코 광장을 비롯, 거리와 골목마다 무도회와 뮤지컬, 연극, 춤 등이 펼쳐진다. 이밖에 프랑스의 샤랑트, 벨기에 뱅슈 등 유럽의 크고 작은 도시에서 카니발이 이어진다. 카니발은 아니지만 2월의 대표적 축제로 프랑스 남부 망통의 레몬 축제도 볼거리가 풍성하다. 또 캐나다 빅토리아에서 2월 말부터 8일 동안 열리는 ‘꽃송이 세기 축제’와 1월 말∼2월 초에 열리는 ‘카니발 드 퀘벡’도 이색적인 잔치다. 아시아의 겨울 축제로는 지난 24일 시작한 ‘타이완 등불축제’,3월에 시작하는 인도의 ‘구디 파드마 축제’ 등이 있다. vielee@seoul.co.kr ■ 베르나르 모렐 조직위원장 인터뷰 “말하고 싶은 것 풍자… 자유정신 구현” |니스 이종수특파원|“현대는 자유의 시대입니다.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고, 풍자하고 싶은 것을 풍자할 수 있죠. 여기에 니스 카니발의 본질이 담겨 있습니다.” 니스 카니발의 베르나르 모렐(60) 조직위원장. 성공적인 행사를 위해 정신없이 분주한 그를 27일 니스 관광사무국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올해 니스 카니발의 인물인 ‘스크럼을 짠 거대한 왕’에 대해 “프랑스의 올해 주요 행사는 세계 럭비대회와 대통령 선거다. 공통점이 있다. 승리를 위해 전력투구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두 이벤트를 아우르는 게 올해 니스 카니발의 주제라고 말했다. 특히 시라크 대통령 인형에 대해 “그의 인형을 잘 봐라. 웃고 있지 않으냐. 어떤 상황에서도 웃으면서 ‘좋은 게 좋다.’는 제스처를 취하는 그의 근거없는 낙관주의를 꼬집은 것이다. 카니발을 찾은 사람들은 저 모습을 보고 원없이 웃으며 카타르시스를 느낄 것이다.”고 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베니스 카니발,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 카니발과는 다른 니스 카니발만의 독창성을 물어보았다.“베니스는 전통적이고 연륜이 오래됐다. 우리보다 유명하고 세련됐다. 리우 카니발은 열정적인 게 특징이다. 반면 니스 카니발은 비판과 미학정신이 결합됐다. 그래서 해마다 주제를 정할 때 고심한다. 또 모든 프로그램이 거리와 광장에서 이뤄지는 것이 특징이다.” 준비기간을 물었더니 “1년 내내”라고 말한다. 이어 “카니발이 끝나자마자 내년 준비에 돌입한다.”며 “거의 세 달은 겨울잠을 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바로 조직 정비, 다음해 주제선정 등 정신없이 바쁘다.”고 했다. 이어 “올해도 프랑스와 외국의 유명한 만평가들이 60점의 작품을 보내왔다.”며 은근히 자부심을 드러낸다. 이 가운데 20작품을 선정해 대형 인형의 주인공으로 삼는다. 시라크 대통령은 물론 니콜라 사르코지, 세골렌 루아얄 등 유력 대선 후보들도 포함됐다. 이들의 대형 마스크를 태운 마차가 조명 속에 행렬하는 프로그램이 니스 카니발의 백미 가운데 하나다. 니스 카니발의 예산은 500만유로(약 60억원). 입장권 등 자체 수입 200만유로를 확보하고 나머지는 니스시가 주로 지원하고 소액의 후원금이 보태진다. vielee@seoul.co.kr
  • [씨줄날줄] 클레오파트라/우득정 논설위원

    영국 뉴캐슬 대학의 학자들이 2039년 전 클레오파트라와 연인 안토니우스의 옆얼굴이 새겨진 은화를 공개하면서 클레오파트라는 굽은 코에 이마가 좁은 추녀에 가까웠다고 결론을 내렸다. 기원전 32년의 로마시대에 주조된 이 은화는 미인의 대명사처럼 인용돼온 클레오파트라에 대한 환상을 깨기에 충분할 정도다. 하지만 당시 제작된 대리석상이나 클레오파트라가 통치한 이집트에서 주조된 동전에 새겨진 인물은 코가 약간 굽은 것은 사실이나 이마는 훨씬 더 넓다. 눈에 띌 정도로 미인은 아니지만 추녀도 아니다. 왜 그럴까. 학자들이 충분한 고증을 거친 끝에 내린 결론이겠으나 은화 주조 당시의 시대상황이 클레오파트라를 추녀로 만든 게 아닌가 추론해본다. 기원전 32년은 로마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로 더 잘 알려진 옥타비아누스가 ‘이집트 침공 최고사령관’에 임명돼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를 상대로 전쟁 준비에 들어간 해다. 이듬해 ‘악티움 해전’에서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연합군이 대패한 뒤 안토니우스는 기원전 30년 7월31일, 클레오파트라는 다음날 독사에 물려 자살한다. 이로써 303년 동안 존속한 그리스계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몰락하고 이집트는 로마의 ‘황제 속주’로 편입된다. 이런 맥락으로 볼 때 당시 로마의 공적이었던 두 사람을 추녀, 추남으로 깎아내렸던 게 아니었을까.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는 클레오파트라의 최대 매력이자 무기를 풍부한 유머 감각으로 꼽았지만 52세의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첫눈에 혹했을 정도로 미모에서도 출중했던 것으로 추정한다. 그때가 기원전 47년, 클레오파트라가 21세 때였다. 키케로와 함께 당대 최고 지성을 다퉜던 카이사르는 이집트 정국을 평정한 뒤 로마로 개선하지 않고 두달 동안 클레오파트라와 함께 나일강을 유람하며 휴가를 즐겼다. 기원전 41년 27세가 된 클레오파트라는 새 연인 안토니우스 앞에 금빛 장막이 드리워진 옥좌에 앉은 사랑의 여신 비너스로 분장해 나타난다. 여왕의 좌우에서는 큐피드로 분장한 여자노예들이 부채춤을 췄다고 한다. 학자들의 주장처럼 클레오파트라가 추녀라면 도저히 연출될 수 없는 장면이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1번가의 기적’ 철거촌 무명복서역 하지원

    ‘1번가의 기적’ 철거촌 무명복서역 하지원

    인터뷰도 연기(?)일까. 비록 짧은 시간 만났지만 그녀의 커다란 눈, 검은 눈동자는 아주 많은 것을 보여주었다. 때론 슬픔, 유쾌, 열정, 외로움, 공허함. 변하는 감정의 선을 그대로 드러내며 삶과 영화에 대한 마음을 풀어놓았다. ‘색즉시공’ ‘다모’ ‘형사’ ‘황진이’까지만 이야기해도 누구를 말하는지 알아차릴 것이다. 바로 배우 하지원(28)이다. 에어로빅, 검술과 무술은 물론 전통 춤과 거문고까지. 연기를 위해 못하는 것이 없는 그녀가 영화 ‘1번가의 기적’에서 ‘복싱’을 들고 나타났다. 달동네 사람들이 제각기 다른 꿈과 희망을 품고 사는 철거촌인 1번가에 10년차 철거 깡패가 들어오면서 믿을 수 없는 사랑과 웃음이 시작되는 휴먼코미디 영화 ‘1번가의 기적’에서 하지원은 가난한 여성 무명 복서 명란으로 나온다. #자기를 만들어 가는 배우 하지원을 조금 아는 사람들은 ‘작품을 고르는 눈이 있는, 아니 운이 좋은 배우’라고 말하지만 그녀와 한번이라도 작품을 같이 한 사람이라면 ‘어떤 배역이든 스스로 만들어 갈 수 있는 배우’라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드라마건 영화건 ‘필’이 꽂혀야 작품을 해요.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보고야 마는 성격이라 대충대충 하는 꼴을 못 봐요. 그래서 매번 작품마다 저의 모든 것을 던져 오로지 작품 속의 인물로 거듭나려고 발버둥치지요.” 그녀의 커다란 눈동자가 초롱초롱 빛난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라는 만화 ‘캔디’의 주제곡처럼 항상 어려움을 딛고 일어서는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는 그녀는 “지금까지는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를 좋아한다.”며 “돈, 명예, 미모 등 모든 것을 갖추고 있는 역할은 재미가 없지 않냐.”고 반문한다.“명란은 자신이 정말 해보고 싶었던 캐릭터였다.”는 그녀는 그래서 시나리오도 보지 않고 윤제균 감독의 설명만 듣고 바로 출연을 결정했다고 했다. 하지원은 전형적인 청순가련형도,S라인의 섹시함도, 완벽한 미모의 배우도 아니다. 오로지 ‘연기’로 승부하고 ‘근성’으로 스스로를 만들어 가는 배우다. #멍들고 힘들어서 정말 많이 울었어요 동양 챔피언이었으나 지금은 몸도 마음도 가누지 못하는 아버지에 대한 미안함과 사랑으로 가득찬 가난한 복서 명란. 맞아도 맞아도 다시 일어서는 작고 가녀린 체구의 그녀가 죽어가는 아버지를 위해 펼치는 권투 시합은 정말 인상 깊었다. 이번 영화를 위해 3개월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8시간씩 복싱 연습을 했단다. 단순히 펀치 자세를 잡는 것이 아니라 실전을 방불케 하는 스파링을 수십 차례 했다.“집에서 멍이든 얼굴을 볼 때 마다 속이 상하고 아파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얼굴로 먹고 산다는 여자 배우 중에 이렇게 얼굴을 막 굴릴(?) 수 있는 여자 배우가 또 있을까. 그녀는 사흘 동안 시합 장면을 찍은 뒤 10일 동안 이빨이 아파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가슴 따뜻한 코믹 영화 ‘1번가의 기적’을 복싱 영화나 코믹물로 생각하면 오산. 재개발로 곧 없어질 철거촌 사람들의 꿈과 희망이 어우러진 가슴 따뜻한 영화다.“보고 나면 정말 기분 좋은 영화예요. 힘들어서 우울한, 하고 싶은데 포기하려고 하는 분들은 꼭 보세요. 웃음과 희망을 얻을 수 있을 거예요.” 최근 상업영화에서 사회적 약자를 향해 이렇게 따뜻하고 진지하게 접근했던 작품은 보기 드물다. 연기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는 그녀도 이젠 이십대를 훌쩍 넘겼다.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곁에서 들어주는 사랑하는 사람은 없어도 나는 행복하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아직 사랑보다 새로운 것을 찾아 도전하고 싶다는 배우. 다음 작품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글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직접 끓인 떡국 혼혈아들과 나누고 싶어”

    미국 NBC의 TV 게임쇼 ‘딜 오어 노딜(Deal or No Deal)’에서 뛰어난 미모와 입담으로 미국인들을 사로잡고 있는 한인 혼혈 모델 우르슐라 메이스(27·한국이름 이영미)가 어머니 나라인 한국을 찾는다. 오는 11일 방한하는 우르슐라 메이스는 4박5일 동안 혼혈아동 보육시설을 방문해 만두를 빚고 떡국을 만들며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에게 후원물품을 전달하는 등 봉사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방한 기간 얻은 수익금 전액을 혼혈 어린이돕기에 기부한다. 미국 풋볼 스타 하인스 워드 방한 당시 혼혈스타로 국내에 소개됐던 우르슐라 메이스는 주한미군이었던 독일계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6살까지 한국에서 성장했다. 방한을 앞둔 그녀는 “어렸을 때 설마다 어머니가 끓여 주시던 떡국 맛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며 “한국을 찾아 직접 끓인 떡국을 어린이들과 함께 맛보고 양로원 등을 방문해 어른들께 세배도 드리며 따뜻한 한국의 정을 느끼고 싶다.”고 전했다. 또한 “하인스 워드나 문블러드 굿 등 글로벌 스타들이 펼치고 있는 한국 혼혈아동 돕기 활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예정이며 앞으로도 한국 혼혈 아동들을 후원하기 위해 방한할 것”이라고 말했다.세계적 남성잡지 ‘맥심(MAXIM)’의 표지모델 선발대회 3위에 입상하며 미국 연예계에 입문했다.지난해 미국 피플지가 선정한 ‘100인의 가장 아름다운 사람’에 안젤리나 졸리, 할 베리, 줄리아 로버츠 등과 함께 뽑히는 등 미국내 새로운 대중문화 아이콘으로 주목받고 있는 신세대 스타다.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여성&남성] 성형 다이어트 필요악?… 남녀의 속셈은

    현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은 슬림하고도 섹시한 ‘몸짱’ 몸매에다 ‘동안(童顔)’처럼 어려보이는 외모, 연예인급 스타일을 갖춘 패션감각 등을 요구받으며 매일매일 스트레스 속에서 살아간다. 영화 ‘미녀는 괴로워’에 등장하는 뚱뚱한 체격의 소유자 ‘한나’가 다이어트 성형으로 ‘교통사고 당한 사람이 넋을 놓고 쳐다보다가 병원가기를 잊을 만큼 황홀한 미녀’로 재탄생하는 과정에 많은 여성들이 공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실제 남자들은 대부분 예쁜 여성을 보고 환호성을 지르면서도 다이어트 성형에는 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여자와 남자, 평행선처럼 영원히 다를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 다이어트 성형에 대한 견해는 또 어떤 차이가 있을까. ■ 남성 “내 여친 DIE~t 안돼!” 상당수의 남자들은 여자친구의 ‘다이어트 성형’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날씬한 여자를 요구하는 사회’에서 다이어트 성형을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남자들의 의견도 적지 않았다. ●돈쓰고 힘든 다이어트 성형은 절대 반대 회사원 문모(28)씨는 성형 다이어트보다는 자신과 함께 농구 등 스포츠를 함께하며 다이어트를 하라고 여자 친구에게 권한다는 생각이다. 그는 평소 외모보다는 에너지도 많고 열심히 살아가는 여성에게 보다 더 매력을 느껴왔기 때문에 단순히 예뻐지려고만 하는 다이어트 성형수술은 절대 반대다. “무조건 빼빼 마른 여자보다는 통통해도 청바지를 맵시있게 입을 수 있으면 만족합니다. 다이어트 성형보다는 운동으로 건강까지 유지할 수 있는 여자친구가 더 좋아요.” 공무원 석모(25)씨는 더욱 완강하다. 그는 다이어트 성형을 하는 여자는 스스로에 대해 자신감이 없고 당당하지 못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일 여자친구가 성형을 고집하면 헤어지는 것도 감수하겠다고 말한다. “단순히 보여지는 외모보다는 마음씨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내 여자친구라면 뚱뚱하고 못 생겼어도 다이어트 성형은 하지 않는 게 더 좋아보입니다. 위험하고 부작용도 많다는 데 굳이 할 필요가 없지요.” 회사원 고모(30)씨도 이에 동의한다. 그는 앞의 두 남자와 달리 예쁜 여자를 좋아한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그에게는 단순히 예쁜 외모보다 예쁜 여자가 되는 과정도 함께 중요하다. “남녀 누구나 자신을 절제하면서 자기관리를 할 필요가 있는 사회이기 때문에 꾸준하게 자신을 가꾸는 사람이 매력적으로 보여요. 그렇지만 여자친구가 그냥 다이어트를 하면 적극적으로 돕겠지만 성형 수술은 반대합니다.” ●다른 여자는 ‘YES’, 내 여자친구는 ‘NO’ 컨설팅회사에 다니는 이모(26)씨는 여자들이 다이어트 성형 수술을 받고 삶의 자신감을 찾는 건 굳이 반대하지 않는다. 예쁘고 날씬한, 이른바 섹시한 여자와 함께 있는 걸 즐기는 건 남자들의 본능과 같은 심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막상 자신의 여자친구가 다이어트 성형을 한다면 고개를 저을 생각이다. “엄청난 비용을 들여서 수술을 하기보단 옷이나 화장품 구입으로 외모를 빛나게 하는 것이 더 경제적일 것 같아요. 수술로 살을 급히 빼면 건강 문제도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요가나 밸리 댄스 등을 통해 원천적으로 살을 빼도록 유도할 생각입니다.” 대학생 송모(26)씨도 여자친구가 자신과 만나기 전에 이미 성형을 해서 예뻐졌다면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이미 사귀고 있는 사람이 다이어트 성형을 하는 건 결사 반대다. “만나는 사람이 갑자기 외모가 급변한다면 아무리 긍정적으로 변했다고 하더라도 여자친구와 어색해지는 걸 막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예전 여자친구 모습이 생생히 남아있는데 모습이 예뻐진 여자친구를 보면 당장 기분이야 좋겠지만 불편해서 결국은 싫어질 것 같아요.” ●다이어트 성형 역시 엄연한 자기관리 하지만 다이어트 성형을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남자들도 있다. 회사원 김모(27)씨는 다이어트 성형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기본적인 경제력에다 예쁜 외모까지 갖춘 여성인데다 다이어트 성형 역시 엄연한 자기관리에 해당하기 때문에 대찬성이라는 입장이다. “근육 강화제를 먹어가며 근육키우기에 여념이 없는 남자들과 다이어트 성형을 하며 예뻐지려는 여성이 다를 게 뭐 있나 싶어요. 지금 사회가 날씬하고 예쁜 여자를 요구하면서 다이어트 성형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본다는 건 그만큼 우리 사회가 여성들에게 이중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는 증거죠.” 취업준비생 양모(25)씨도 여자친구가 스스로에 대해 더욱 만족하며 살아갈 수 있는 다이어트 성형을 굳이 말리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겉모습이 변하는 거지 사람이 변하는 게 아니잖아요. 여자라면 예뻐지고 싶은 건 당연한 욕구이고 여자친구가 더 예뻐진 스스로의 모습에 만족한다면 저 역시도 함께 기뻐할 것 같아요.” 회사원 박모(30)씨 역시 찬성론자. 박씨가 다이어트 성형에 찬성하는 이유는 운동을 통한 다이어트가 얼마나 힘든지 자신이 몸소 경험해봤기 때문이다. “한때 몸무게가 100㎏ 넘게 나가서 죽을 듯이 운동해 20㎏ 정도 감량한 적이 있었죠. 그런 경험을 여자친구가 하게 되면 성격이 이상해질 정도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것 같아서 차라리 함께 적금이라도 부어 다이어트 성형을 받게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여성 “운동해서 빼야죠” 당사자인 여자들 역시 “살을 빼고 싶다.”며 한목소리를 내면서도 다이어트 성형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었다. 그렇지만 영화 ‘미녀는 괴로워’의 주인공과 같이 살을 빼 성공이 보장된다면 성형을 할 생각이 있다는 의견도 많았다. ●성형보다는 운동으로 살빼는 것이 우선 ‘미녀는 괴로워’ 주인공에 버금갈 정도로 획기적인 다이어트에 성공했던 직장인 홍모(29·여)씨. 성형은 하지 않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미친듯이’ 다이어트를 했다는 그는 “성형을 하고싶을 정도의 절박함은 이해하지만 갑작스럽게 살을 빼면 후유증이 크다.”고 조언한다. “살이 눈에 띄게 빠질 때는 자신감도 생기고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죠. 하지만 누군가 시작하려 한다면 말리고 싶어요.” 그는 “친구의 남자친구가 밥을 산다고 해서 나간 자리에서 밥을 먹은 뒤 화장실에서 운동을 하고, 하루 최소한 3시간은 운동을 했다.”면서 “지금 생각해보면 갑작스럽게 몸무게가 준 뒤 강박관념 때문에 정상이 아니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회사원 이모(25)씨는 건강에 문제가 생길 경우에만 성형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이어트 성형을 위해 많은 돈을 들이기 보다는 충분히 운동하고 음식을 조절해야 한다는 게 정석 아닌가요. 건강 문제도 문제지만 ‘돈만 있으면 살쯤이야’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신이나 남들 모두에게 별로 좋지 않은 것 같아요.” 그는 특히 “뭐든 마음먹기에 달려 있는데 수술은 어쩔 수 없을 때 기대야 하는 게 아니냐.”면서 “미용을 위한 성형이라면 자제하는게 옳다. 정작 성형이 필요한 사람은 전문의를 찾기 힘들어 지는 부작용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공을 위한 성형은 마다할 이유가 없다 성형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평범한 몸매를 가졌다고 말하는 대학생 최모(23·여)씨는 다이어트 성형을 ‘부분적으로는’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아무리 운동을 해도 팔뚝 살만큼은 빠지지 않아 여름에도 민소매 티셔츠를 입지 못해 은근히 스트레스를 받고 자신감이 없어진다.”면서 “부분적으로 간단하게 할 수 있는 수술이라면 특별히 반대할 이유는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회사원 김모(27·여)씨는 성형 비용 대비 효과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영화에 나오는 김아중씨처럼 남자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을 수 있는 미모를 보장받을 자신이 있다면 돈을 벌어서라도 다이어트 성형을 할 생각은 있다.”면서도 “성공할 확률도 낮은데 많은 돈을 쓰는 등 무리를 해가며 다이어트 성형을 굳이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또 “최근 7㎏ 정도 몸무게가 불어서 고민이지만 운동을 해서 빼야겠다는 생각이 훨씬 크다.”며 고개를 저었다. 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 [토요영화]

    ●블러디 선데이(EBS 오후 11시) 우리나라에 5·18 민주화운동이 있었다면 북아일랜드엔 ‘블러디 선데이(피의 일요일)’란 사건이 있다. 공교롭게도 두 사건은 모두 일요일에 벌어졌다. 시민들의 평화적 시위에 군사작전이 전개되었고 무고한 시민들이 무장세력이라는 누명을 쓰고 쓰러진 이유 또한 같다. 그리고 여전히 그 날의 유혈사태에 대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것도 빼닮았다. 17세기 영국은 청교도 혁명 이후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를 굴복시키면서 개종을 요구했고, 아일랜드는 수백년 동안 토지를 몰수당하고 소작농으로 살게 된다.1차 세계대전을 통해 아일랜드 독립운동이 시작되었으며 1921년 자치령을 획득한다. 하지만 영국은 다수의 신교도들을 북아일랜드에 이주시키며 독립에서 제외시켰다. 영화는 영국정부의 차별에 반대하고 시민권을 주장하기 위해 평화행진을 벌인 북아일랜드 데리시의 모습을 담고 있다. 영국에 대항해 오랜 투쟁을 벌이기 시작하는 계기가 됐던 1972년의 ‘피의 일요일’ 사건을 다룬 영화이다. 역사적 순간에 대한 질문을 제기하는 작품을 즐겨 만드는 폴 그린그래스 감독은 1972년 1월31일, 북아일랜드의 도시 데리에서 벌어진 유혈사태를 세심하게 추적한다. 이 사태에서 평화롭게 시위하던 아일랜드 시위대들은 영국 군대의 총격에 사살되었다. 북아일랜드를 둘러싼 논쟁은 이 사건으로 전대미문의 잔혹한 복수극으로 이어진다. 그린그래스가 영국-북아일랜드 갈등의 배경은 그다지 문제 삼지 않고, 영국 군대의 진압과정에 초점을 맞춘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하루빨리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역사적인 영화가 개봉되길 기대한다.2004년작.110분. ●테이킹 라이브즈(OCN 밤 1시) 자신이 살해한 사람의 신분으로 위장한 정체불명의 연쇄살인범과 그를 쫓는 미모의 FBI 프로필 분석관 사이의 심리대결을 그린 사이코 범죄 스릴러. 캐나다 몬트리올시 한 건설현장에서 시체가 발견된다. 강력계 형사들은 평범치 않은 연쇄 살인사건임을 직감하고 FBI의 도움을 요청한다.FBI 수사요원 일리아나 스콧(안젤리나 졸리)은 기존의 범죄수사 방식에 의존하지 않고 직관으로 살인사건을 풀어나가는 1급 프로필 분석관. 그녀의 수사방식은 살인범들의 알 수 없는 심리를 풀어나가는 데 있어 때로 유일한 돌파구가 된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엽기 남편? 아내에게 성형수술 강요한 사내

    엽기 남편? 아내에게 성형수술 강요한 사내

    “돈은 얼마나 들어도 상관없어요.내 아내를 먼저 열명길에 오른 전처 모습으로 성형수술을 해주면 됩니다.” 중국 대륙에 한 30대 초반의 사내가 성형외과를 찾아 자신의 아내를 죽은 전처의 얼굴 모습으로 성형수술을 해달라고 요구해 화제의 주인공으로 떠올랐다. 화제의 주인공은 중국 중부 충칭(重慶)직할시에 거주하고 자오강(趙剛·32·가명)씨.인테리어 회사를 경영하는 중소기업 사장이다.그는 아내 차이(蔡·23)모씨를 데리고 충칭시 시내 가오신(高新)구 인민병원 성형미용과를 찾아 사망한 전처 루(盧)모씨의 사진을 내보이며 루씨의 모습과 비슷하게 차이씨의 얼굴을 고쳐달라고 요구하는 ‘엽기’적인 일이 발생했다고 중경상보(重慶商報)가 24일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자오씨는 전처 루씨와 캠퍼스 커플이었다.자오-루 커플은 양쪽 집안의 반대가 심했지만 모든 고난을 극복하고 5년전 어렵사리 결혼식을 올렸다.결혼은 쉽지 않았지만 이들 부부의 금실만은 주변 사람들이 모두 부러워할 할 정도로 좋았다.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아내 루씨와 함께 인테리어 사업에 뛰어들었다.이들 부부의 사업은 날로 번창했다.하지만 하늘도 이들 부부의 원앙과 같은 금실을 시샘한 탓일까.지난 2003년전 어느 비오는 날 밤,청천벽력같은 일이 일어났다. 회사 일을 끝내고 아내 루씨와 함께 귀가하던중 교통사고를 당했다.자오씨가 몰고가던 승용차가 브레이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바람에 앞서가던 지프차를 들이받아 루씨는 그 자리에서 숨지고 자오씨는 6개월 동안 입원하는 대형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다. 청천 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자오씨는 한동안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고 자살 일보 직전까지 가는 등 우울증 증세를 보였다.이때 부모들은 생때같은 자식을 죽일 것같아 죽을때 죽더라도 결혼하라고 권유했다. 죽기 전에 2세를 보고 죽으라고 새 장가 가기를 종용하자,부모의 권유를 거절하는 것도 한 두번이지 매번 거절하는 것이 부담이 된 자오씨는 결국 새 장가를 들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들어 그는 여러 명의 미혼 여성들을 소개받았다.인테리어 사업으로 제법 돈을 모은 덕분이다.하지만 관심을 가질만한 여성을 만나지 못했다.그런 가운데 미모의 차이씨를 만났는데,한눈에 반해버렸다. 그가 차이씨에게 반한 것은 다름아닌 그녀가 전처 루씨와 너무나 닮았기 때문이다.차이씨가 농촌 출신이고 가게 여종업원이었지만 자오씨는 조금도 주저없이 아내감으로 낙점했다.그리고 그해 8월 결혼식을 올렸다. 혼인 후 차이씨는 아내 노릇을 톡톡히 잘해냈고 자오씨도 아내를 살갑게 보살펴 이들 부부의 금실도 전처 루씨때 못지 않게 좋았다.자오씨는 죽은 아내 루씨로부터 적게 받은 사랑을 지금의 아내로부터 보상받는구나라고 생각하고 차이씨를 더욱 더 사랑했다. 그런데 1주일여전인 지난 17일 몇년 동안 못만난 고향 친구 한 명이 자오씨에게 “지금 아내 차이씨를 보니까 전처 루씨와 너무나 많이 닮았다.”며 “약간 얼굴을 손보면 전처 루씨와 쌍둥이처럼 닮게 될 것”이라고 농담삼아 지껄였다. 한데 이 말이 가시처럼 뇌리에 와 박힌 자오씨는 한동안 잊혀지지가 않았다.며칠 동안을 고민한 그는 끝내 차이씨에게 루씨의 얼굴처럼 고치는 게 어떻겠느냐고 한마디 슬쩍 던졌다.차이씨는 이 말이 너무 황당했지만 사랑하는 남편 자오씨의 간곡한 요청이기에 결국 수락했다. 자오씨는 23일 당당한 모습으로 차이씨와 함께 인민병원 성형미용과 장롄펑(張蓮鳳) 주임을 찾았다.그는 루씨의 사진을 꺼내보이며 차이씨를 루씨 모습과 똑같게 성형수술을 해달라고 졸랐다. 그러나 장 주임은 이들 부부에게 다시 한번 재고해보라고 일단 집으로 돌려보냈다.장 주임은 “자오씨의 성형수술 이유가 너무 맹목적이다.”며 “성형수술이 결코 부부관계나 감정을 가장 좋게 해주는 것은 아니다.”고 조언했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산너머 남촌에는’의 박재란(1)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산너머 남촌에는’의 박재란(1)

    박재란씨는 가창력, 좋은 노래, 외모까지 3박자를 모두 갖춘 ‘만능가수’이자 여러 리듬에 따라 다양한 창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했던 실력파 가수.‘항상 웃음을 띤 얼굴’로 기억되는 가수 박재란은 건강한 보이스 컬러에 경쾌한 노래들로 특히 어려웠던 시절, 삶에 지친 많은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안겨 주었다. 마치 남쪽에서 불어 오는 남풍처럼 화사하고 따뜻한 이미지로 남겨져 있는 가수 박재란. 그 역시도 불우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수시로 잔병치레를 할 정도로 몸이 허약해 전염병이라면 누구보다도 먼저 앓았고 특히 일곱 살 나던 해에 걸린 ‘뇌염’으로 인해 가망이 없다며 장례 치를 준비까지 했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의사를 불렀을 때 다행히도 살아났다. 아울러 초등학교 시절,6·25전쟁 중이던 그의 나이 열 살 때 철도국에 근무하던 부친마저 여읜다. 그러나 대중 앞에서는 누구보다도 밝은 모습으로 나섰다.‘럭키 모닝’,‘푸른 날개’,‘해피 세레나데’ 등 초기 히트곡을 시작으로 희망의 메시지를 방방곡곡 전파하며 사회 분위기를 밝게 리드해 나갔다. “저는 트로트풍의 노래를 거의 부르지 않았어요. 대신 대부분 노래들이 폴카나 트위스트, 부기우기, 룸바, 탱고, 삼바, 차차차 등 신나는 멜로디였죠. 때문에 무대에 서면 관객들이 매우 즐거워했어요. 물론 한꺼번에 여러 멜로디를 동시에 불러야 하는 어려움도 따랐지만 정말 보람을 느끼던 시절이었죠.” 그의 회고처럼 최초 히트곡 ‘럭키모닝’을 시작으로 ‘푸른 날개’, 민요풍의 ‘맹꽁이 타령’, 그리고 ‘님’,‘둘이서 트위스트를’,‘산 너머 남촌에는’,‘소쩍새 우는 마을’,‘아나 농부야’,‘밀짚모자 목장아가씨’,‘행복의 샘터’,‘진주조개 잡이’,‘강화도령’ 등 SP시대에서 출발해 LP시대를 수놓았던 그의 히트곡들은 얼추 손꼽아 봐도 템포가 사뭇 제각각이다. 이처럼 다양한 리듬을 자유자재로 소화했던 가수는 우리 가요계에서 찾아보기 쉽지 않다. 바이브레이션을 별로 사용하지 않는 깨끗한 창법으로 장르에 따라 발성을 달리하는 뛰어난 가창력은 작곡가 입장에서 보면 탐이 날 수밖에 없다. 가수 박재란은 불과 열여섯 살 때, 처음 무대에 발을 디딘다. 본명은 이영숙. 교회에서 오르간 반주를 하던 부친 이수천씨와 성가대원이었던 모친 유순남씨 사이의 1남5녀 중 4녀로 서울에서 출생했다. 네 살 때 철도국에 근무하던 부친이 전근함에 따라 가족 모두 천안으로 이사했다. 천안 제일국민학교(지금의 천안초등학교), 천안여중을 거치는 동안 그는 음악적 재능이 남달랐다. 학교에서건 집에서건 당시 인기 있던 유행가를 전파시킨 메신저 역할은 늘 그의 몫이었다. 특히 백난아씨가 부른 ‘망향초 사랑’을 즐겨 불렀다고 기억한다. 이러한 그의 음악적 재능을 한 눈에 알아보고 무대 활동을 적극 권유한 인물이 당시 인천경찰악대장 박태준씨. 그의 추천을 통해 육군본부 산하 군예대(KAS) 3기생으로 발탁되면서 대구에서 첫 무대 활동을 시작한다. 이후 수양아버지까지 되어 주는 박태준씨로부터 받은 예명이 박재란. 일선 장병들의 사기진작을 위한 위문공연이 주 임무였던 군예대에서 그에게 주어진 역할은 말 그대로 ‘일인다역’. 노래는 물론 무용, 악극 등 쇼에 관한 한 모든 걸 소화해야 했던 어린 재란은 대구에서 2년, 서울에서 2년간의 군예대 생활을 거치는 동안 무대에 빠르게 적응해 갔다. 군예대 시절, 대구에서 첫 취입해 발표한 노래는 나화랑 작곡의 ‘뜰아래 귀뚜라미’와 김학송 작곡의 ‘코스모스 사랑’. 그러나 큰 반응을 얻지는 못했다. 이후 악극단으로 자리를 옮겨 첫 히트곡 ‘럭키모닝’이 발표될 때까지 무명인 채로 ‘희망악극단’과 ‘무궁화악극단’ 그리고 ‘반도악극단’ 등을 옮겨가며 무대 활동을 계속한다. 그러는 사이 그의 가창력과 미모는 입소문을 타고 전국으로 퍼지면서 뭇 남성들의 ‘흠모의 대상’이 된다.(계속) 대중음악평론가 sachilo@empal.com
  • 카이저 美 前부차관보 1년형

    미국 전 국무부 부차관보가 타이완 ‘여성 스파이’에게 기밀정보를 유출한 혐의가 인정돼 실형을 선고받았다. 미 버지니아주 연방법원은 22일(현지시간) 도널드 카이저(64) 전 국무부 부차관보에게 1년 1일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그는 형기만료후 2년 동안 감시를 받게 되며 2만 5000달러 벌금을 내야 한다. 타이완 일간 둥썬(東森)신문도 카이저 부차관보에게 예상보다 낮은 징역 1년형이 선고됐다고 보도했다. 카이저 전 부차관보에게 최고 13년의 징역형 선고가 예상됐지만 전·현직 국무부 관료들이 대거 법원에 탄원한 결과, 형량이 낮춰진 것이라는 설명이다. 카이저 전 부차관보는 지난 2004년 타이완 정보기관인 국가안전국 요원 청녠츠(程念慈·34)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기밀 문건을 건넨 혐의로 기소됐었다. 카이저는 2004년 9월 워싱턴 근교의 레스토랑에서 청녠츠 등 타이완 정보요원 2명에게 문건을 건네다 잠복하고 있던 미 연방수사국(FBI) 요원들에게 체포됐다. 50만달러의 보석금을 내고 풀려난 카이저 전 부차관보는 수사 과정에서 기밀문건을 불법적으로 컴퓨터에서 내려받은 혐의가 추가됐다. 또 2003년 9월에는 타이완을 4일 동안 방문, 청녠츠와 만났고 부적절한 관계를 미 정부 당국에 숨긴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자신의 혐의 대부분을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무부에서만 30년을 근무한 카이저는 ‘중국통’으로 국무부 동아시아국의 2인자로 워싱턴 정계에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 카이저는 1965년 메릴랜드 주립대학을 졸업하고 조지 워싱턴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공부했다. 그는 1972년 국무부에 들어간 후 베이징 주재 미 대사관에서만 3차례, 도쿄에서 2차례 근무했었다. 미모의 여성요원인 청녠츠는 사건 후 타이완에 복귀, 유럽지역에 파견된 것으로 알려졌다.안동환기자·연합뉴스 sunstory@seoul.co.kr
  • [23일 TV 하이라이트]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SBS 오후 6시50분) 1년 전 시청자들을 놀라게 했던 아이들. 밖에서는 민폐행동, 집에서는 TV중독. 장소를 불문하고 무조건 내 맘대로였던 민폐보이, 권동현. 그리고 이불집착에 이어 머리를 찧는 자해행동까지 보였던 이불공주 민정이. 하이라이트 스페셜 1년이 흐른 지금, 동현이와 민정이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한자퀴즈王(EBS 오후 8시) 각기 다른 색깔의 우정으로 뭉친 다섯 팀이 열띤 대결을 펼친다. 다섯 팀 중 빼어난 미모와 실력을 자랑하는 ‘해어화’와 15년 우정으로 똘똘 뭉친 동명이인 ‘양(兩)성호’가 2회전에 진출했다. 물러설 수 없는 승부. 당찬 ‘해어화’팀이냐, 패기 넘치는 ‘양(兩)성호’팀이냐? 결정전에 오를 한 팀은 누가 될 것인가?   ●하늘만큼 땅만큼(KBS1 오후 8시25분) 명자와 태식에게 못내 서운한 순임은 우연히 만난 봉례에게 집안 속사정까지 털어놓으며 하소연하고 봉례는 그런 순임을 위로해준다. 한편 무영은 상현이 제대 축하주를 사주겠다는 말에 은주를 소개받을 수 있을 거라고 잔뜩 기대하며 나가지만 상현과의 말다툼으로 술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상상+(KBS2 오후 11시5분) 최장 공연 기록 보유자, 라이브의 황제 이승환. 수상 트로피가 700개, 발라드의 황제 신승훈. 그동안 볼 수 없었던 가요계 황제들의 특별한 만남, 그들이 말하는 공연장 실수담과 비화가 공개된다. 본격대결, 어른들은 알지만 10대들은 모르는 말. 과연 10대들의 71%가 모르는 이 말은 무엇일까?   ●세계 세계인(YTN 오전 10시40분) 니카라과의 최고 술맛을 가리는 경연대회에서 칵테일 ‘마쿠아’가 1위를 차지했다. 럼주를 기본으로 구아바주스와 레몬주스, 설탕, 얼음이 첨가된다. 마쿠아를 만든 미란다 박사는 가족들의 조언에 따라 술의 비중을 줄여 여성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열대지방에 사는 작은 새 ‘마쿠아’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   ●주몽(MBC 오후 10시50분) 현토군을 축출하기 위한 전쟁을 선포한 주몽. 다물군은 기습 매복 훈련과 함께 각 진법에 대한 훈련을 강도 높게 실시하고, 주몽은 말갈족 족장과 흉노족에게 연통을 해 요동군의 합류를 막는 등 전쟁준비에 만전을 기한다. 한편, 대소는 세작을 통해 졸본이 현토군과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 배갈 36병을 2시간에 마신 미녀 4명의 그후

    ‘미녀 4걸이 술과 한판 승부를 벌이다.’ 중국 대륙에 늘씬한 몸매의 미녀 4명이 모여 술 시합으로 벌이며 곤죽이 되도록 마시는 추태를 부려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중국 중부 충칭(重慶)직할시 주룽포(九龍坡)에 살고 있는 젊은 늘씬한 여성 4명이 2시간 동안 ‘얼궈터우술(二鍋頭酒) 을 무려 36병이나 마셨다가 모두 병원 응급실로 실려가는 사건이 발생,‘화제의 주인공’으로 떠올랐다고 중경상보(重慶商報)가 최근 보도했다. ‘얼궈터우술’은 곡류를 원료로 해서 당화 발효를 거쳐 증류하는 방법으로 제조한 대표적인 중국 서민들의 술이다.11년간의 숙성시켜 출시하는 만큼,향미(香未)가 향긋하고 온화한 느낌이다. 특히 색깔은 무색이고 지방분이 많은 중국 음식에 안성맞춤이다.도수는 55∼56%이며,가격은 보통 음식점에서 2∼3위안(약 240∼360원,125㎖ 기준)으로 비교적 싸기 때문에 서민들이 많이 즐기고 있다. 구랍 29일 밤 11시쯤,충칭시 주룽파 한 훠궈(火鍋·샤브샤브 요리와 비슷)전문 요리점에 쭉 빠진 몸매를 자랑하는 미녀 4명이 들어섰다.이들 미녀 4명이 음식점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식당 안에서 음식을 먹고 있던 모든 손님들의 눈이 한꺼번에 이들에게 쏠렸다.이들 미녀 4인방이 원체 늘씬하고 미모가 뛰어난 까닭이다. 붉은 스웨터에 스키니 진을 입어 팔등신 미녀임을 한껏 자랑하는 한 아가씨가 “라오판(老板·주인이나 사장),여기 얼궈터우술 12병!”하고 호기롭게 소리쳤다.술을 주문한 이들은 곧 “하하”,“호호” 웃으며 수다 떨기에 바빴다. 잠시 후 훠궈 요리와 얼커토우술 12병이 나오자마자,이들 미녀 4인방은 마치 누가 빼앗아 마시기라도 하는 것처럼 조그마한 잔에 따라 빠른 속도로 들이켰다. 이들은 30분도 채 되지 않아 훠궈 요리는 손에 대지 않은 채 얼궈터우술 12병만을 깨끗이 비워버렸다.라오판은 물론 옆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손님들도 하나같이 이들의 주량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 술병의 크기는 125㎖에 불과하지만,도수가 55∼56도짜리여서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사람은 한 두잔만 마셔도 취해버리는 엄청난 독주이다. 따라서 독주를 마셔보지 않은 사람이 마시면 마치 목구명이 타들어가는 것 같아 도저히 삼킬 수도 없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반시간이 지나자,붉은 스웨터의 아가씨는 또다시 “라오판,여기 24병 추가!”라고 왜장쳤다.깜짝 놀란 주인 장(張)모씨는 “벌써 술을 너무 많이 마신 것 같다.사고날지 모르니 그만 먹는 것이 어떠냐?”고 권고했다. 이에 한 아가씨는 “우리를 뭘로 알고 이러느냐?”며 버럭 화를 냈다.그녀는 “우리 4명은 누가 술이 센지 시합하고 있다.”며 “주량이 적은 사람이 지는 것으로 승부를 내고 있다.빨리 술을 갖다달라.”고 말했다. 장씨는 할 수 없이 24병의 얼궈터우술을 내놨다.그리고 1시간쯤 흘렀을까.또다시 테이블 위에 놓인 24병의 얼궈터우술이 동나버렸다.다 마신지 10분여쯤 지나자 이것으로 ‘미녀 4인방’은 완전히 ‘시체’가 돼 버렸다. 한 아가씨는 온몸에 요리를 쏟아 화려한 옷이 얼룩덜룩 보기 흉했고,옆에 있던 한 아가씨는 얼굴에 핏기 하나없이 창백했으며,또 한 아가씨는 연신 구토를 하고,마지막 한 아가씨는 술이 너무 과해 입에서 피까지 토하는 위험한 상황에 이르렀다. 이를 보다 못한 주인 장씨는 곧바로 경찰차를 불러 병원 응급실로 보냈다.이틀이 지난 이들 ‘미녀 주당 4걸’은 다행스럽게도 생명이 위험한 순간을 넘겨 병원에서 퇴원,집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007 카지노 로얄

    운동으로 단련된 탄탄한 근육질 몸매에 격투기 선수처럼 수없이 매맞고 피흘리는 ‘파이터’ 제임스 본드. 깔끔하고 젠틀한 폭력을 휘둘렀던 본드를 생각하면 얼핏 상상이 되질 않는다. 게다가 여러 여인들과 ‘원나잇 스탠드’를 즐겼던 능수능란한 바람둥이가 한 여인에게만 순정을 바치는 인간적인 007로 변신했다? 개봉을 앞둔 영화 ‘007 카지노 로얄’은 이처럼 예전의 제임스 본드에서 기름기를 쫙 뺀 새로운 인물설정이 포인트다. 본드의 임무수행을 돕던 신무기나 비키니차림의 본드 걸, 첩보국장 ‘M’의 비서 마니페니 등 예전 007 시리즈의 필수 아이템들은 과감히 없앴다. 대신 그 자리에 거칠고 현실적인 액션들을 가득 채웠다. 특히 영화 초반부에서 올림픽 메달리스트 출신의 세바스찬 푸캉과 벌이는 ‘자유 질주’장면은 다시보고 싶을 만큼 압권이다. 하지만 이야기 전개가 다소 지루하고 끊어지는 느낌을 주는 것이 흠. 007시리즈 중 가장 많은 1억 5000만 달러(약 1395억원)의 제작비를 쏟아부은 덕에 돈냄새가 물씬 풍길 만큼 풍부한 볼거리를 자랑한다. 체코의 프라하와 카를로비바리, 이탈리아 베네치아와 코모호수, 바하마 군도, 미국 마이애미, 그리고 영국 등에서 돈을 뿌려가며 찍은 영상이 화려하기 그지없다. 007시리즈로는 21번째 작품. 기존의 시리즈에서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각오로 만들었단다. 영국 첩보국 MI6의 평범한 요원이었던 제임스 본드가 살인면허인 ‘00’번호를 부여받은 뒤, 첫번째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과 미모의 재무부 요원과의 애절한 사랑이야기를 그린 액션 블록버스터다. 지난달 17일 전세계 33개국에서 개봉해 2주동안 1억달러 가까이 벌어들이며 흥행몰이 중이다. 이달 중순쯤엔 제임스 본드역을 맡은 다니엘 크레이그가 방한해 한국팬들과 만날 예정이다. 국내 개봉은 21일. 상영시간 145분.15세 관람가.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총각선생 신세망친 미인계(美人計)

    총각선생 신세망친 미인계(美人計)

    남편과 짜고 바람기와 미모, 춤솜씨를 재산으로 정조를 팔아 교사·공무원 등의 등을 쳐온 희대의 사기꾼 부부가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남편은 돈을 위해 아내의 장조를 내놓았고, 아내는 남편의 묵인 아래 마음껏 육욕을 채운 치사한 부부의 행각은. 강변3로 정(鄭)인숙양 피살사건으로 「뉴스」의 촉각이 온통 「세브란스」 병원으로 쏠렸던 3월 19일 하오 서울 동부경찰서 형사과 안(安)모형사는 앞에 앉아 있는 30대 여자의 얼굴에 침이라도 뱉어주고 싶은 것을 꾹 참고 달래기를 7시간. 미모의, 그러나 유들유들한 이 여인은 마치 외상값이라도 받으러 온 술집 「마담」만큼이나 태연하게 앉아 「윙크」와 교태를 부리고 있었다. 이 여인이 바로 남편과 공모, 연하의 고아 출신 국민학교 교사 윤(尹)모씨(28)의 일생을 송두리째 짓밟은 이경자(李慶子) 여인(34). 李여인과 尹씨가 처음 만난 것은 지난해 11월 28일. 직장에서 배운 어설픈 춤솜씨로 찾은 것이 서울 용산구 한강로에 있는 한강 「카바레」. 난생 처음 가본 「카바레」, 휘황찬란한 불빛 속에 멍해있던 尹씨는 화사한 30대 여인의 「프로포즈」를 받고 들뜬 기분에 「홀」안을 몇 바퀴 돌았다. 그러자 李여인은 홍조된 얼굴로 수줍은듯 사랑을 고백했다. 『사랑은 첫눈에 느껴야 한다』- 정말 선생님 같은 남성미 1백%의 남자는 처음 봤다면서 결혼했으면 원이 없겠다는 말까지 곁들였다. 『나이도 많은 과부가 염치 없는 부탁이죠』 하는 달콤한 말에 尹씨도 마음이 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향도 부모도 없는 천애고아가 고학으로 국민학교 교사가 된 尹씨는 그처럼 따뜻한 인정을 맛본 것도 처음이었다. 만난지 한달만인 12월 28일 이들 부부 아닌 부부는 서울 영등포에 尹씨가 모아둔 돈중에서 10만원을 꺼내 전셋방을 얻고 살림을 시작했다. 30대의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여체와 계획적인 교태에 尹씨는 완전히 녹초가 됐다. 둘이 춤추러 가는 일 이외에는 외출도 않고 방학동안을 꼬박 그들의 밀실에서 보냈다는 尹씨. 『그 여자가 필요 이상의 돈을 요구했지만 아까운 줄도 몰랐읍니다. 첫 남편과 헤어진 뒤 부유한 친정 덕으로 남부럽지 않게 살았던 아내의 불편을 될 수 있는한 덜어주고 싶었어요. 보시다시피 나한테 반할 여자가 어디 있겠어요…』- 과부가 느끼는 어쩔 수 없는 공허를 자기한테 의지하는 것 같아 동정한 것이 사랑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이여인은 친정이 부자라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가끔 친정이라는곳에 전화를 했다. 그러나 그것조차 모두 거짓이었다. 李여인과 결혼할 계획이었던 尹씨는 TV, 전축, 선풍기를 들여 놓았다. 이들의 꿈같은 행복은 개학과 함께 일장춘몽. 외출이라고는 않던 李여인이 개학날인 2월 1일 친정에 간다면서 나갔다가 밤늦게 돌아왔다. 2일에는 출근한 尹씨에게 청전벽력 같은 전화가 걸려왔다. 사실은 본 남편이 있는데 둘 사이를 알고 찾아왔으니 며칠 동안 집에 돌아오지 말라는 것이었다. 4일에는 학교로 찾아왔다. 남편이 가재도구를 모두 가져가겠다니 『두사람의 행복』을 위해 잠시 줬다가 조용해지면 찾아오자는 것이었다. 李여인을 알토란 같이 믿었던 尹씨는 사흘 뒤인 7일 살림집으로 찾아가 보고 깜짝 놀랐다. 전셋돈 중 5만원과 TV, 일제 석유난로, 은수저 3벌, 식기, 선풍기 등 가재를 모두 가지고 도망해버린 것이다. 사랑에 속고 돈에 운 尹씨에게 제2의 시련이 닥쳤다. 5일 뒤인 12일 李여인의 남편인 모장(毛章)씨(39)로부터 만나자는 전화를 받고 다방으로 나갔다. 모(毛)씨는 尹씨가 살림집에 놔둔 책 한권을 가지고 나와 『이것이 네 책이지, 내 처하고 간통했다는 물증이다. 네 목을 자르겠으니 저녁6시에 종로 S다방으로 나오라』 고 사뭇 위협했다. 자리에서 毛씨는 『나는 전에 군기관에 근무했는데 앞으로 내 처와 만나지 않을 것과 내가 가져온 물건에 대한 소유권 일체를 포기한다는 각서와 간통사건을 재론안겠다는 각서를 교환하자』고 제의했다. 安형사가 이사건을 처음 안것은 지난 2월 11일 영등포 다방가가 이들의 이야기로 떠들썩 했을 때. 그 뒤 이들 부부의 꼬리를 잡기 위해 꼭 35일을 보낸 安형사가 이들의 집을 덮친 것이 3월 18일. 아이들이 학교 가고 난 뒤인 아침 9시쯤 서울 중구 도동53 남산 아래 있는 2층집을 덮쳤을 때도 이들은 태연했다. 오히려 『尹씨로부터 소유권 포기 각서까지 받았는데 경찰이 무슨 참견이냐』고 대들기까지 했다. 남편 毛씨는 화장실에 간다고 핑계, 뺑소니까지 치고. 李여인의 기나긴 사기행각은 이렇게 끝났다. 그러나 李여인이 구속됐다는 소문에 피해자들이 꼬리를 물고 나타났다. 모부처에 근무하는 이(李)모씨(37·서기관), 정(鄭)모씨(31·사무관) 그리고 모국민학교 교사 박(朴)모씨(31) 등…. 李여인의 음흉한 손길은 딸의 담임교사에게까지 뻗쳤었다. 맏딸 금옥양(12·가명)이 다니는 OO국민학교 5학년 O반 담임 李모교사(34)는 몇달 전까지만 해도 가끔 학교로 찾아와 춤을 추러 가자거나 혹은 맥주를 사달라고 졸랐지만 돈이 없다고 거절, 보냈던 여인. <김선중(金瑄中) 기자> [선데이서울 70년 4월 5일호 제3권 14호 통권 제 79호]
  • 정인숙(鄭仁淑)-그여자의 일생

    정인숙(鄭仁淑)-그여자의 일생

    3월 17일 밤 11시30분께. 서울 강변3로서 울린 3발의 총성은 죽은 정인숙(鄭仁淑)양의 신원이 밝혀짐에 따라 뜻밖의 파문을 몰고 왔다. 저명인사들과의 접촉이 잦았으며 아버지의 이름이 밝혀지지않은 3살짜리 어린애를 가진 처녀 엄마라고해서 이러쿵 저러쿵 파다한 후문을 일으킨 것. 타고 난 미모 하나로 밤의 요화로 군림, 각계 실력자들과 어지러운 관계를 가졌던 정인숙(鄭仁淑)양. 45구경 권총탄환 2개로 26세의 나이로 비명에 숨져야했던 그녀의 「짧고도 긴 생애」는 어떤 것이었을까? 다음은 가족 ·친구들의 말을 바탕으로 한 「정본(正本) 정인숙전(鄭仁淑)傳).」 옛 이름은 정금지(鄭金枝). 해방되던 해인 1945년 2월 13일 대구시 남산동 681의 2에서 전 대구부시장을 지낸 정도환(鄭道換)씨(65)의 외동딸로 태어났다. 인숙(仁淑)양의 아버지 정(鄭)씨는 12살 때 일가 중 후손이 없었던 정남수(鄭南洙)씨의 양자로 입양했다. 그러나 입양한 해에 양부 정남수씨가 돌아가자 정(鄭)씨는 호주상속을 받아 바로 그해 11월 인숙양의 어머니인 전(全)씨(61)와 결혼했다. 당시 정씨가 살던 곳은 경북(慶北) 김천(金泉)군 (금릉군) 개영(開寧)면. 정(鄭)씨 일가는 해방되기 전 해까지 줄곧 이 곳에서 살며 슬하에 4형제를 두었다. 이 4형제 중 4남이 바로 인숙양 살해혐의를 받고 있는 종욱(宗旭)씨다. 생전 인숙양이 주장하던 것처럼 「뼈대있는 집안」은 아니었다는 게 김천(金泉)일대 주민들의 말이다. 정씨는 행정관리로 출발, 대구(大邱)부시장의 자리에까지 오른 자수성가형. 인숙(仁淑)양의 출생에 관해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즉 아들만 넷을 둔 정씨의 부인은 어떻게든 딸을 보고 싶어 절에 다니며 『딸자식 하나만 낳게 해달라』고 불공을 드렸다는 것. 과연 불공의 효험이 있었던지 45년 정씨의 아내 전씨는 딸 자식을 낳았다. 그것도 인숙양 하나가 아닌 딸 쌍동이였다. 그래서 바라던 딸을 한꺼번에 둘이나 얻게 되자 「금이야 옥이야」기르며 이름조차 금지(金枝)·옥지(玉枝)로 지어주었다. 아들 4형제의 막내딸로 태어난 금지·옥지 두 쌍동이는 온 집안의 귀여움을 독차지 하며 자라났다. 그러나 생후 1년 반만에 옥지는 죽고 금지만 살아 남게 되었다. 옥지가 죽은 다음해 정씨는 자식을 또 보았으나 이번 역시 아들. 그래서 금지의 외동딸의 위치는 변함이 없었고 그녀를 아끼는 일가의 귀여움을 독차지. 특히 어머니 전씨가 금지를 위하는 것은 딴 가족들보다 더 심했다. 이렇게 어려서부터 귀여움을 받으며 자라난 인숙(仁淑)양이 자존심 강하고 오만한 성격을 갖게 된 것은 무리가 아니다. 인숙(仁淑)양이 대구(大邱)서 국민학교 다닐 시절 인숙(仁淑)양에게 몸종이랄 수 있는 여자아이하나를 따로 두었다. 학교 갈때 따라가는가 하면 세수할때, 밥먹을때 등 노상 인숙(仁淑)양의 옆에 붙어 잔심부름과 시중을 들게 했다. 인숙(仁淑)의 성격은 더욱 오만해 졌다. 인숙(仁淑)양의 윗 오빠 네 사람은 이런 인숙(仁淑)양을 가리켜 『어머니가 너무 쟤만 위해 주니까 계집애가 버릇이 나빠진다』며 불평, 이따금 여동생 인숙(仁淑)에게 기합을 주었으나 그때마다 인숙(仁淑)양을 감싸고 도는 어머니 때문에 인숙(仁淑)양의 성격을 끝내 뜯어 고치지 못했다는 둘째오빠 종구(宗九)씨의 말이다. 국민학교를 졸업한 인숙(仁淑)양은 대구(大邱) S여중에 진학했다. 이 때 아버지 정(鄭)씨는 경북(慶北)도청의 고급 관리로 집안형편이 넉넉할 때였다. 인숙(仁淑)양의 오만한 성격은 더욱 심해지고 이에 따라 오빠들과의 의는 점점 나빠졌다. 호랑이같은 오빠 4명이 인숙(仁淑)양이 조금만 늦게 귀가해도 때리고 꾸지람하기 일쑤. 이래서 정(鄭)씨집은 오만한 인숙(仁淑)양의 기를 꺾으려는 오빠 4명과 인숙(仁淑)을 편들어 주는 어머니 전(全)씨와 인숙의 두 패로 갈리게까지 되었다. 대구 S여고시절 인숙(仁淑)양의 학교성적은 중 이하. 그러나 영어실력만은 대단해 이때부터 이미 외국손님이 오면 안내역을 맡곤 했다. 인숙(仁淑)양이 영어에 능하게 된 데는 오빠들의 도움이 컸다. 현재 일본「도꾜」 의 「아까사끼」서 전기 부속품상을 하고 있는 큰오빠 종원(宗源)씨나 H무역의 대표로 현재 「인도네시아」에 있는 세째오빠 종인(宗仁)씨가 모두 영어라면 귀신. 이런 오빠 밑에서 익힌 인숙(仁淑)양의 영어실력이 뒷날 요정 「선운각」 에서 외국인들에게 술을 따르며 쓰이게 될 줄이야. S여고에 남은 인숙(仁淑)양의 학적부를 들추어보면 『명랑하고 성실하나 안일하고 책임감이 없다』고 되어있다. 인숙(仁淑)양이 S여중 3학년에 올라갔을 때 4·19가 터졌다. 대구 부시장으로 있던 아버지 정(鄭)씨가 관직에서 물러나게 되자 가세는 기울기 시작. 이 때무터 인숙(仁淑)양의 집 살림은 어머니 전(全)씨가 계 등으로 꾸려 나갔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실직은 인숙(仁淑)양에게도 심한 충격을 주었다. 낭비벽 심하고 화려했던 인숙(仁淑)양의 생활은 집안 형편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쪼들리기 시작했다. 살고 있던 대구(大邱) 남산(南山)동 집을 팔고 삼덕(三德)동으로 이사, 집 규모를 줄여야 하는 등 집안형편이 어려워지면서부터 인숙(仁淑)양의 성격도 비뚤어지기 시작. 62년 S여고를 졸업한 인숙(仁淑)양은 E大 영문과에 진학하겠다면서 서울로 올라왔다. 당시 서울엔 인숙(仁淑)양의 세째오빠 종인(宗仁)씨가 S 무역에 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응시했던 E大 영문과 입시에서 인숙(仁淑)양은 깨끗이 낙방. 세째 오빠 종인(宗仁)씨가 주는 돈으로 M초급대학에 입학했으나 등록금만 내고 학교에는 나가지 않았다. 아버지의 실직, E大 낙방 등의 겹친 불운은 콧대 센 아가씨 인숙(仁淑)양의 자존심을 꺾어놓기에 충분했다. 집안의 외동딸로 귀여움을 독차지 하며 자라온 인숙(仁淑)양이 두차례에 겹친 좌절끝에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라곤 태어날 때부터의 타고난 미모뿐. 콧대 꺾인 방년 19세의 아가씨 인숙(仁淑)양은 마지막 남은 재산인 미모를 마음껏 이용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러나 당시로선 요정의 「호스테스」란 생각지도 못했고 『나 정도의 얼굴이면 영화배우가 될 수 있지 않느냐?』하는것. 그래서 인숙(仁淑)양은 등록한 M여대엔 나가지도 않고 서울 충무로 영화가를 기웃거렸다. 이 때 만난 사람이 「시나리오」작가인 장(張) 모씨. 당시 장(張)씨는 KBS에 『태양은 늙지 않는다』란 연속극을 집필하고 있었는데 인숙(仁淑)양은 친구들을 만나면 자주 『우리 애인은 유명한 작가야』하며 뽐냈다. 張씨 자신도 張씨가 인숙(仁淑)양의 첫 애인이었음을 부인하지 않았다. 콧대꺾였던 인숙(仁淑)양의 자존심은 유명작가를 애인으로 둠으로써 어느 정도 보상을 받은듯 했다는게 그녀 친구들의 이야기다. 당시 인숙(仁淑)양은 친구를 만날 때마다 張씨를 자랑했다고. 인숙(仁淑)양은 1년남짓 장(張)씨와 동거생활을 하기도 했다. 친구들에겐 『장(張)씨와 약혼한 사이며 곧 영화에도 출연하게 될 것』이라고 비치기도했다. 장(張)씨와 동거할 때도 인숙(仁淑)양의 타고난 사치벽은 버리지 못했다. 이래서 이따금 장(張)씨와 말다툼을 하고 장(張)씨 집을 뛰쳐나온 인숙(仁淑)양은 친구들 집을 찾아 하룻밤씩 자고 가기도. 그러면서 옛날 외동딸로서 귀여움을 독차지하던 것을 잊지 못해 어떻게든 상처입은 자존심을 되살리기 위해 몸부림쳤다. 이 때 인숙(仁淑)양이 알게 된 것이 지금 신촌(新村)모처에서 비밀요정을 경영하고 있는 K「마담」. K 「마담」은 한때 배우 윤(尹)모씨와 동거, 「패션·모델」생활도 한적이 있는 멋장이 「마담」으로 인숙(仁淑)양은 K 「마담」의 소개로 「디자이너」조(趙)모씨를 통해 「패션·모델」로 몇차례 나서기도 했다. 인숙(仁淑)양과 K 「마담」의 관계는 그뒤 줄곧 계속되어 K 「마담」이 경영하는 한남(漢南)동 비밀요정에 인숙(仁淑)양은 1급 「호스테스」로 나갔었다. 인숙(仁淑)양은 몇차례 「패션·모델」로 나가는 한편 동거하던 장(張)씨의 소개로 S영화사와 접촉이 되어 2,3편의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신촌(新村), 수유리등을 전전하며 하숙생활을 하던 인숙(仁淑)양과 장(張)씨의 동거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인숙(仁淑)양의 타고난 허영과 장(張)씨의 사업실패가 두 사람의 사이를 갈라놓은 원인이 되었다. 결혼까지 생각했던 두 사람의 사이는 동거 1년만에 끝장을 보고 말았다. 그러나 장(張)씨가 인숙(仁淑)양으로선 첫 남자였던 만큼 장(張)씨를 향한 인숙(仁淑)양의 마음은 어지간히 강했었다. 피살되기 한달전 인숙(仁淑)양을 만난 한 친구는 『여러가지로 골치 아픈 일이 많아 못 살겠다』면서 『그래도 장(張)씨가 제일 잊혀지지 않고 그립다』고 털어 놓기도 했다. 장(張)씨와 헤어진 인숙(仁淑)양이 다음에 발 디딘 곳이 바로 요정 선운각(仙雲閣). 타고 난 미모와 영어실력이 그녀를 선운각(仙雲閣)의 1급 「호스테스」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선운각(仙雲閣)에서 인숙(仁淑)양이 만난 사람이 바로 A씨. 미남이자 이름이 알려져 있는 A씨라 인숙(仁淑)양의 허영을 채워주기에 충분했다. A씨를 만나면서부터 인숙(仁淑)양은 저명 인사들의 노리개감으로 전락, 밤의 꽃으로서의 진면목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A씨와 인숙(仁淑)양의 관계는 석달남짓 계속되었다는게 당시 인숙(仁淑)양 동료들의 이야기다. A씨를 알게 될 때 인숙(仁淑)양을 가운데 두고 A씨와 역시 A씨만한 실력자 B씨가 한달 남짓 열띤 각축전을 벌였다는 소문도 있다. 그 뒤 인숙(仁淑)양은 선운각(仙雲閣)을 떠나 활동무대를 비밀요정으로 옮겼다. 전부터 아는 K 「마담」이 경영해 오던 한남(漢南)동 비밀요정을 주무대로 2류급 여배우들을 잘 불러내는 것으로 소문난 S 「마담」집등에 단골로 불려 다녔다. 그러나 비밀요정 「호스테스」로 나가는 동안에도 인숙(仁淑)양은 콧대가 높아 반드시 「마담」들에게 그 날 참석자들을 알아보고 웬만한 이름이 아니면 응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이다. 이렇게 밤이면 이름있는 사람들과 접하는 인숙(仁淑)양은 낮이면 필동2가에 자리잡은 집에서 어머니와 단 둘이 지냈다. 어렸을 적부터 인숙(仁淑)양 편이었던 어머니 전(全)씨는 남편 정(鄭)씨가 일가를 이끌고 서울로 올라와도 남편집에서 살지 않고 인숙(仁淑)양과 단둘이 살며 딸의 뒷바라지를 해 주었다. 필동에서 살때 인숙(仁淑)양은 아들(3)을 낳았다. 인숙(仁淑)양의 가족들은 그 아이가 인숙(仁淑)양의 아이가 아니고 인숙(仁淑) 양의 배다른 동생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①가족 주장대로 배다른 동생이며 대구(大邱)서 낳아 서울로 데려다 길렀다면 최소한 5살은 되었어야 하는데 3살이라는 점 ②배 다른 동생이라면 미국 갈때 굳이 인숙(仁淑) 양이 아기를 함께 데리고 가야 할 이유가 없다는 점등을 보면 인숙(仁淑) 양의 아이로 볼 수 밖에 없다. 그럼 이 아이의 아버지는 누구일까? 시체해부에서도 드러났듯이 인숙(仁淑) 양은 임신중절 수술을 받은바 있다. 더우기 비밀요정가에선 「호스테스」가 아이를 낳는 것은 「터부」로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숙(仁淑)양이 아기를 낳았을 때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는 얘기다. 그 충분한 이유란 사후보장. 처녀(?)가 호적에도 올리지 못할 아기를 낳을땐 어딘가 굳게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란건 틀림없는 일이다. 워낙 남자관계가 복잡한 인숙(仁淑)양이라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냐 하는 것은 인숙(仁淑)양 자신만이 알 일이지만 항간에선 일본에서 요정을 경영하고 있는 갑(甲)씨, 을(乙)씨, 병(丙)씨등 알만한 이름들이 나돌고 있다. 그러나 인숙(仁淑)양이 아이를 낳은 후부턴 『내 말 한마디면 안되는 일 없다』혹은 『 서교동집도 아기 아빠가 사준 거야』등의 말을 한 것으로 보아 세사람중 한사람일것이라는 소문. 68년 12월 30일자로 발급된 수속서류 없는 회수여권 MA 10647이 발급된 경위만 하더라고 웬만한 실력자가 아니고선 어림도 없는 일이란 것. 어쨌든 아기를 낳은 인숙(仁淑)양의 주변은 전보다 눈에 띄게 달라졌다. 우선 본거지인 비밀요정에 잘 나타나지 않았다. 68년 8월엔 싯가 7백만원이 넘는 단층 석조주택을 사 서교동으로 이사했다. 평소 친하던 K 「마담」 이외엔 좀체로 그녀를 만날 수 가 없었다. 비밀요정 대신 「타워 · 호텔」, 「사보이 · 호텔」, 반도 ·조선 「아케이드」에 자주 나타났다. 69년 봄 일본에 다녀온 인숙(仁淑)양은 그해 5월에 K 「마담」의 소개로 한남동 조(趙)모씨로 부터 문제의 「코로나」를 사들였다. 이 때 부터 인숙(仁淑)양은 다시 남성편력을 시작했다. 이번엔 전과는 달리 주로 돈 잘쓰는 사람들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재일교포인 갑(甲)씨 등 적지않은 사람들이 인숙(仁淑)양을 거쳐 갔다. 아마도 『 아이를 낳고 보니 무엇보다 돈 걱정이 앞섰던것 같다』는게 인숙(仁淑)양을 아는 친구와 「마담」족의 중론이다. 지난 69년 10월 10일 인숙(仁淑)양은 아기를 데리고 미국행을 했다. 이 때 인숙(仁淑)양이 친구에게 밝히기론 『 잠시 골치아픈 일이 있어 외국에 나갔다 와야겠다』는 것. 인숙(仁淑)양은 미국서 석달 있다가 되돌아 왔다. 1월21일 다시 돌아온 인숙(仁淑)양의 주변은 의문투성이뿐. 『 곧 미국에 갈테니 차를 팔아야 겠다』는가 하면 『 돈 달라는 사람 많아 귀찮아 죽겠다』고 하기도 했고 한때는 『 이젠 미국 안갈래』하기도 했다. 사건당일만 해도 자동차매매업소에 나타나 「시보레」6기통 짜리 흥정을 했다는데 미국에 갈 생각이었다면 한국에서 차를 바꿀 이유가 없다. 이래서 그녀의 주변에서 『 미국에 가 있으라』는 「그이」의 요구와 이를 선뜻 응낙치 않은 인숙(仁淑)양의 태도에 이번 사건의 수수께끼가 숨어 있지않나 보기도 했다. 어쨌든 3월 17일밤 11시 20분 한강변에 울린 3발의 총성으로 한때의 요화(妖花)정인숙(鄭仁淑)양은 비명에 갔다. 아빠 이름도 모르는 아이를 홀로 남겨 놓은채. [선데이서울 70년 3월 29일호 제3권 13호 통권 제 78호]
  • 세계 육상 스타, 그들이 왔다

    ‘미녀새’ 옐레나 이신바예바,‘황색탄환’ 류시앙,‘땅콩 스프린터’ 로린 윌리엄스….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는 육상의 ‘왕별’들이 한국에 대거 몰려 온다. 오는 28일 대구에서 열리는 국제육상대회에 세계 25개국에서 정상급 선수 60여명이 출전, 육상의 진수를 선보이는 것. 한국도 12월 도하아시안게임 대표팀을 총출동시켜 메달 가능성을 타진한다. 세계기록보유자인 여자장대높이뛰기의 이신바예바(24·러시아)와 남자 110m허들 류시앙(23·중국)이 일찌감치 25일 입국, 열기를 고조시켰다. 류시앙은 입국 뒤 “상하이육상대회를 마치자마자 대구국제육상대회에 참여하게 돼 약간 피로하지만 최선을 다하겠다.”면서 선전을 다짐했다. 대구 육상은 사실상 올시즌을 마무리하는 대회여서 출전 선수들의 각오는 남다르다. 또 내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일본 오사카,2008년 올림픽은 베이징에서 열리는 등 아시아에서 연달아 ‘슈퍼매치’가 열리는 데다 대구가 2011년 세계선수권대회를 유치중인 것도 관심을 높이는 대목이다. 가장 눈에 띄는 선수는 이신바예바. 여자선수로는 유일하게 마의 5m벽을 넘어 5m01의 세계기록(2005년)을 갖고 있다. 세계 기록을 18차례나 갈아치우는 등 현재로선 적수가 없다.‘미녀새’로 불릴 만큼 미모도 빼어나 폭넓은 한국팬을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올시즌 기록은 신통치 않다. 물론 시즌 랭킹 5위까지의 기록을 독식했지만 최고기록이 4m91에 그쳤다. 때문에 이번 대회에서 명예 회복을 다짐해 신기록의 기대를 부풀린다. 류시앙도 세계기록 경신에 나선다. 그동안 단거리는 아프리카계 흑인들의 전유물이었지만 2004아테네올림픽 허들에서 금메달로 ‘황색돌풍’을 일으킨 주인공이다. 지난해엔 세계기록(12초88)까지 작성, 명실상부한 ‘지존’의 자리에 올랐다. 컨디션은 절정이다. 지난 9일 독일 월드어슬레틱스파이널대회에서도 초속 0.6m의 역풍에도 불구,12초93의 호기록을 세웠다. 이들 외에도 아테네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이 줄줄이 나선다. 여자 100m 은메달리스트인 단신(157㎝) 스프린터 윌리엄스(23·미국), 남자높이뛰기 우승자 스테판 홈(30·스웨덴) 등도 출전한다. 한국의 관심사는 27년 동안 잠자고 있는 남자 100m 한국기록(10초34) 경신 여부. 한국 단거리의 간판 전덕형(22·충남대)은 최근 비공인 10초39를 기록, 한국 기록에 바짝 다가섰다. 대회조직위는 세계기록(9초77) 보유자 아사파 파월(24·자메이카)을 초청하려 했지만 무산됐다. 대신 미국의 레너드 스콧(9초94)이 9초대의 스피드를 자랑할 전망이다. 박준석기자 pjs@seoul.co.kr
  • 26군데 성형수술 한다면 얼마나 예뻐질까?

    26군데 성형수술 한다면 얼마나 예뻐질까?

    맑고 초롱초롱한 두 눈,오똑한 콧날,부드럽고 하얀 피부에 정교하게 자리잡은 오관(五官),적당하게 들어가고 나온 요철(凹凸)이 뚜렷한 몸매,쭈∼욱 뻗어내린 두 다리…. 지난 24일 오전 11시쯤 중국 중부 산시(陝西)성 시안(西安)의 탕청(唐城)의원 앞에는 미녀 한 사람이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녀가 나타나자마자,예제없이 “정말 아름다운 여인!”이라는 탄성이 쏟아져 나왔고,보다 좋은 장면을 포착하기 위해 사진 기자들이 우루루 몰려드는 바람에 현장은 금세 아수라장으로 바뀌었다. 취재 기자들 앞에서 두 손을 흔들며 아주 여유있는 모습으로 나타난 미모의 주인공은 중국 제1의 성형미인으로 불리고 있는 20대 여성이라고 화상보(華商報)가 25일 소개했다. 그 여성은 바로 지난 5개월동안 50만 위안(약 6000만원)을 들여 신체의 26개 부분에 칼을 대 새롭게 태어난 양민(楊敏·22)씨.전방위 성형미인인 양씨는 시안 당청의원이 자사 성형수술 기술을 널리 홍보를 위해 뽑은 무료 성형수술 모델이다. 당청의원은 앞서 5년간 자사 홍보대사직을 맡아야 하고,시안을 떠날 수 없으며,10년동안 성형미인 관련 활동에 참가해야 하는 등의 조건을 내걸고 무료 성형수술 모델을 선발했다. 궈융화(郭永華) 시안 당청의원 부원장은 “양씨는 크게 2기로 나눠 성형수술이 이뤄졌으며,제1기 수술은 지난 4월 19일,2기 수술은 최근에 끝나 대외적으로 공개하게 됐다.”고 밝혔다. 양씨의 제1기 수술은 주로 안면 성형수술로 이뤄졌는데,▲쌍꺼풀 수술 ▲광대뼈 깎기 수술 ▲아래턱 깎기 수술 ▲코 높이기 수술 ▲위아래입술 성형수술 ▲유방 성형수술 등.제2기 수술은 대부분 하체 부분의 살을 빼는 성형수술로 진행됐는데,▲하복부 지방흡입 수술 ▲허리 지방흡입 수술 ▲엉덩이 지방흡입 수술 등이다. 다음은 제1 성형미인 양민씨와의 일문일답 요지. -미인으로 변모한 뒤 당신의 삶에는 어떤 변화가 있나. ▲아직까지 큰 변화가 없다.나는 내 삶이 변화하기를 바란 적도 없다.앞으로도 나의 본업인 간호사 업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관련 공부를 계속해 나갈 작정이다. -성형수술 전 당신이 가장 관심을 둔 부분은. ▲수술 전에 나는 나의 입술과 코에 가장 불만이 많았다.학교 다닐때나 친구들과 성형수술에 대해 말할 때면 언제나 이 부분을 고치고 싶다고 말했다.하지만 성형수술을 받을 수 있는 돈이 없었다.그런데 무료 성형수술 모델로 뽑혀 수술을 받게 된 것을 정말 행운으로 생각하고 있다. -수술하면 아플텐데,얼마나 아팠나.먹을 때도 많이 힘들었을텐데…. ▲수술할 때 많은 아팠다.그러나 참을 수 있었다.많이 아플 때는 후회하기도 했으나,지금은 한점도 후회를 하지 않는다. -남자와 약속이 많겠죠. ▲(매우 부끄러운 듯이) 사실대로 말하면 최근 남자와의 약속이 많이 늘어났다.그러나 나는 단순히 미모만으로 남자친구를 사귄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주위의 사람들은 당신이 성형수술을 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이번 수술로 예뻐진 것 외에도 당신이 변화했다고 생각하는 점은. ▲어머니와 동생은 나를 전폭적인 지원을 보내고 있다.이번 수술은 나를 많이 성숙시켰다.성형수술에 대한 나의 주관도 뚜렷해졌다.무엇보다 내운명은 나 자신이 개척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딸자랑] 변호사申淳彦씨 둘째딸 善華양

    [딸자랑] 변호사申淳彦씨 둘째딸 善華양

    변호사 신순언(申淳彦)씨는 주위에 다복한 가장(家長)으로 소문이 나 있다. 미남 미녀의 자녀를 그것도 6남매나 두고 효도(孝道)를 받는다는 것이다. 그 중에도 지금 가장 효도 삼매경의 처지에 있는 게 둘째따님 선화(善華)양. 대학 졸업 후 2년동안 줄곧 아버지 시중을 들고 있다. 『우리 집은 요새 부모답잖게 효도만은 마음껏 받고 있죠. 일하는 사람들이 있어도 부모 밥상만은 꼭 딸들이 차려서 저희들이 들고 들어와서 권합니다』 신순언(申淳彦)씨는 흐뭇한 표정이다. 3남3녀 중에 순서로는 다섯째, 딸로는 둘째 딸인 선화(善華)양은 청덕여고를 거쳐 덕성여대 상과를 졸업한 1946년생. 바로 위가 언니인데 CPA 의 「스튜어디스」. 효도하는 버릇은 이 언니에게서 부터 실천되던 가풍(家風)이란다. 『고등학교만 들어가면 부엌에 나가서 일하는 걸로 돼있어요. 제 언니때부터』웬만하면 불평들을할텐데 재미가 나서들 한다고 어머니 손(孫)여사도 늘 기특해 하고 있다. 『정성을 들여서 그런지 얘 요리솜씨가 이 아버지 입에는 썩 맛있어요. 어떤 때는 요리책을 보고 창작을 하는데 잘 만들거든요. 음식점 것 보다 낫다고 칭찬을 해주죠』 그래서 아버지 신순언(申淳彦)씨에게는 사무실과 자택이 하루의 직행 「코스」로 결정돼 있다. 고교 때부터 부엌일 돕고 아빠 시중 잘드는 글래머 『아버지께선 보수적이시고 대하기 어렵지만 정말 가정적이세요. 친구들과 어울려서 밖에 나왔다가도 아버지께서 들어와 계실 시간이면 얼른 들어가 시중 들어드려야 한다고 서두르니까 친구들에게 핀잔을 받죠』 방안을 온통 환하게 만들어 버릴 것처럼 화사하게 웃으면서 선화(善華)양은 아버지 자랑을 한다. 『그렇다고 무취미한 아이도 아니어서 신통합니다. 어려서 부터 예술방면에 소질을 보였어요. 고전무용으로 무대에도 더러 섰지요』 본업으로 삼게하고 싶지않은 부모 뜻에 좇아서 이제는 무용쪽은 폐업을 했단다. 『덕성여대 졸업반 때는 학교에서 「퀸」을 정하는데 뽑혔더군요. 그리고 나니까 여기저기 불려 다니고 나중에는 무슨 영화사에서 출연교섭이 와요. 아예 안된다고 호통을 쳐 주었지요』 대학(大學) 땐 「퀸」으로, 영화출연 교섭받기도 67년 연방영화사에서 몇편의 영화를 갖고 한동안 교섭이 왔었단다. 부모뜻을 어겨본 일이 없는 선화(善華)양은 미련도 없이 거절했다. 역시 재학시절이지만 TBC-TV 아침방송 『생활의 지혜』사회도 한동안 맡았었다. 그런 쪽에서 탐내는 것도 무리가 아닌 미모의 아가씨다. 1백 64cm, 체중 53kg, 체위 35-23-36「인치」니까 수준이상의 「글래머」. 『양재학원에 다니면서 바느질도 배우고 틈틈이 수(繡)를 놓는 것이 요즘 얘 일과입니다』 『효도 받는 것이 흐뭇한 한편 우리 내외는 어깨가 무겁습니다. 막내딸은 아직 어리지만 선화(善華)까지 합쳐서 위의 5남매가 모두 매사에 「부모 뜻 대로」하라는 순종형이에요. 연애할 생각도 한번 안 하거든요. 그러니 걱정은 안 시켜서 좋으나 좋은 배필 구해줄 책임이 여간 무겁습니까? 한창 나이인데 무단외출 한반 안하니까요』 [선데이서울 70년 1월25일호 제3권 4호 통권 제 69호]
  • [송두율칼럼] 몸과 사회

    [송두율칼럼] 몸과 사회

    최근 한국의 인터넷 매체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들 가운데 ‘몸짱’과 ‘얼짱’이 있다. 거의 매일 날씬한 몸매나 멋진 남녀들의 사진과 함께 등장하는 몸짱과 얼짱에 관한 기사 없이는 신문이나 포털이 존재할 수 없을 것처럼까지 보여진다. 물론 이런 현상이 유독 한국적 현상은 아니지만 정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몸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아 죽을 때까지 우리의 존재를 지탱하는 유일한 장소다. 따라서 몸의 생물학적 의미는 우선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몸은 동시에 사회적 그리고 문화적 상징으로서도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몸은 건강이나 질병과 연관되어 일차적으로 문제되지만, 사회-문화적 가치와 규범, 그리고 이념체계에 의하여 생산되며, 또 몸은 일을 통해서 사회적 현실을 적극적으로 구성한다. 즉 몸은 사회적 산물이며 동시에 사회관계를 새롭게 구성하는 힘이다. 그러나 몸의 사회적 의미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랫동안 잊혀졌다. 1970년대에 들어서서 몸의 문제는 격리나 감금, 또는 고문과 같은 체벌(體罰)과 관련시켜 근대이성의 폭력적 구조를 고발한 프랑스의 철학자 푸코의 연구를 필두로 해서, 그리고 1980년대에 들어서서 여성해방운동과 접목되면서 사회, 문화, 정치적 맥락 속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되었다. 여성의 몸이 사회적으로 생산되는데 있어서 남성위주의 몸에 대한 이해가 자리잡고 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런던의 빅토리아와 앨버트(Victoria & Albert)박물관에는 1800년경에 그려진 작자미상의 ‘아름다움을 위한 학교’라는 그림이 걸려 있다. 우락부락한 남성들이 여성을 천장에 매달고 목을 강제로 늘이기도 하고 여성들의 몸매를 자로 재어 보고 야단치며 조련시키는 장면들을 이 그림은 보여주고 있다. 몇년 전 어느 일본의 대기업이 영국에서 여직원을 채용할 때 미모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했다가 사회적으로 말썽을 일으킨 적이 있고, 중국과 한국에서도 많은 여성이 직장을 얻기 위해서 성형수술까지 한다는 내용의 기사가 이곳 언론매체에 종종 등장하는 것도 여성 몸의 사회적 생산이 아시아사회에서 여전히 심각한 문제라는 생각을 들게끔 한다. 한국적 맥락에서 여성의 몸을 구성하는데 있어서 전통적인 가부장적 사회에서 살아 온 남성의 욕망이 지배적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동시에 민족국가 단위의 경계를 허물고 오늘날 지구적 범위에서 움직이는 자본과 이를 연결시키고 있는 정보의 그물망이 한국여성의 몸을 엮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한국여성의 몸을 서양의 유행산업이 경쟁적으로 개발해온 여성미학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욕망을 포함한 모든 상징적인 것이 상품과 정보로서 생산되고 소비되고 있는 오늘날, 지구적 범위에서 우리의 삶을 생산하는 ‘제국(帝國)’의 ‘생물학적 권력’을 문제삼는 네그리와 하트의 견해에 주의를 돌릴 필요가 있다. 건강과 아름다움을 표출하는 몸이 사회적 생산과정에서 심하게 왜곡되고 있는 경향에 맞서 진정한 ‘몸의 귀환(歸還)’을 내세우며 여성주체로서의 몸을 정립하려는 서양의 많은 담론이 한국사회에서 몸의 사회적 의미를 비판적으로 재구성하는 노력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되겠지만 몸짱과 얼짱으로 현재 도배되는 정보와 광고의 바다를 헤쳐나가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을 것처럼 느껴진다. 건강과 아름다움이라는 이름 밑에 몸에 가해지는 폭력과 전횡(專橫)이 그리 쉽게 사라지지 않겠지만, 앞으로는 몸짱과 얼짱에 대한 공허한 이야기보다는 ‘마음짱’에 대한 따뜻한 이야기를 더 자주 접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보며 서양과 달리 오랫동안 몸과 마음을 하나로 여기고 진정한 몸사랑(愛身)을 가르친 동양의 사상적 전통을 새삼 떠올려 본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