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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병규 한국신문협회장 재선임

    이병규 한국신문협회장 재선임

    한국신문협회는 22일 정기총회·이사회를 열어 이병규 현 회장(문화일보 발행인)을 제46대 회장으로 재선임했다고 22일 밝혔다. 이 회장 임기는 2020년 정기총회 때까지다. 이 회장은 현대그룹 명예회장 비서실장, 현대백화점 대표이사 사장 등을 역임하고 2004년부터 문화일보 대표이사 발행인으로 있다. 협회는 부회장으로 임채청 동아일보 발행인, 홍준호 조선일보 발행인, 김교준 중앙일보 발행인을 선임하는 등 22명의 새 임원도 함께 선출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안희정 근황, 수도권 야산 컨테이너서 ‘속죄’ 생활

    안희정 근황, 수도권 야산 컨테이너서 ‘속죄’ 생활

    ‘#미투’로 성폭행 의혹이 불거진 안희정(53) 전 충남지사는 지난 9일 검찰 조사 이후 줄곧 수도권의 한 야산에 있는 컨테이너에 머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곳은 대학 동창 A씨 집에 딸린 거처로, 안 전 지사는 검찰 출석 때 외에는 거의 바깥에 나오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20일 동아일보에 따르면 안 전 지사는 검찰 자진 출두 후 열흘 간 거의 말을 등 불안한 심리 상태를 보였다. 2차 고소 후 안 전 지사의 변호인단이 이곳을 방문했다. 측근들에 따르면 안 전 지사는 칩거하는 동안 자신에 관한 뉴스를 거의 보지 않았다고 한다. 정치인으로서의 생명이 끝난 상태에서 뉴스를 보는 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대신 하루 한두 명씩 친구가 찾아왔다. 대부분 1980년대 함께 학생운동을 했던 지인들이라고 한다. 안 전 지사는 밤에 술을 마셔야 잠을 청할 수 있을 만큼 괴로워한다고 한다. 그나마도 새벽에 혼자 깨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안 전 지사의 부인과 아들 역시 줄곧 이곳에 와 있었다. 가족은 컨테이너 옆에 있는 A씨 집에 따로 머물렀다. 안 전 지사는 구속 가능성에 대비해 가족과 시간을 보내며 속죄의 시간을 가지려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컨테이너에서 따로 지내는 안 전 지사는 식사 때 부인과 마주 앉는다고 A씨는 전했다. A씨는 “(안 전 지사가) 소박한 식단으로 하루 한두 끼 정도 먹었다. 매 끼니 밥을 반 공기도 먹지 않았다”고 말했다고 이 매체가 전했다. 안 전 지사는 평소 A 씨를 ‘동지’라고 불렀지만 칩거 기간에는 ‘친구’라고 부른다고 한다. 안 전 지사는 종종 A 씨에게 “아이고 내가 이렇게까지 돼 버렸다, 친구야”라고 말했다. 한편 검찰에 두번째 소환 조사를 받은 안 전 지사는 20일 오전 6시 20분쯤 서울서부지검을 나서면서 “성실히 조사에 응했다. 그 말씀만 드리겠다”고 하고 돌아갔다. 안 전 지사는 전날 오전 10시 서울서부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부장 오정희)에 출석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그때의 사회면] 복권 이야기

    [그때의 사회면] 복권 이야기

    지난해 복권 총판매액은 4조 1538억 2000만원으로 집계됐다. 온라인 복권, 인쇄 복권, 전자 복권 판매액을 더한 금액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복권은 1947년 12월 발행한 올림픽 후원권이라고 한다. 복권 발행으로 모은 경비 8만 달러로 선수단은 이듬해 제16회 런던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었다. 이후 6·25 전쟁 중이었던 1951년 7월 임시수도 부산에서 애국복권이 발매됐다. 전쟁 이재민을 구호하려는 목적으로 부산 국제시장 등 판매소 10곳에서 발매했는데 팔기도 전에 군중이 몰려 “새치기 말라”고 소리치는 등 대혼잡을 빚었다. 이에 질서를 잡느라 교통순경까지 출동하기도 했다(동아일보 1951년 7월 12일자). 1차 애국복권은 4회에 걸쳐 발행됐다. 처음엔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복권은 시간이 지날수록 잘 팔리지 않았다. 워낙 삶이 궁핍하던 때라 떨어지면 적은 돈이라도 날린다는 생각도 있었을 것이고 사행행위라는 부정적 인식이 존재했다. 복권 인기가 떨어지자 당국은 복권을 사자는 가두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부산극장에서 밴드와 무용수, 가수들을 불러 놓고 추첨 행사를 거창하게 열기도 했다. 복권 당첨자는 실명과 함께 사연이 신문에 소개됐다. 3회 당첨자는 7명의 가족을 거느린 30대 철공소 직원 박모씨였다. 1등 당첨금은 1000만원으로 복권값의 1만배였다. 지금 돈 가치로는 수천만원 정도로 추정할 수 있다. 서울로 환도한 뒤에는 1956년 2차로 애국복권을 발행했지만 역시 인기를 얻지 못했다. 복권 판매가 지지부진하자 당국은 공무원들 봉급에서 강제로 복권판매금을 떼는가 하면 동사무소로 복권 판매를 할당해 비난을 샀다. 게다가 복권 부정 사건도 발생했다. 발행 기관인 조흥은행 직원들이 복권 수만 장을 횡령한 것이다. 발매 부진과 부정 사건의 여파로 2차 애국복권은 1956년 말까지만 발행했다. 1959년 1월 단 한 차례 더 발매해 총 10회 발행됐다. 애국복권은 액면가 100환의 추첨식 말고도 200환의 개봉식과 100환의 피봉식도 발행됐다. 즉석복권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1960년대에는 극장복권이라고 있었다. 5·16 이후 군사정부가 탈세를 방지한다는 목적으로 극장 입장권을 복권화한 것인데 입장권의 절반을 추첨을 통해 복권 형식으로 운용한 것이다. 1970년대까지 극장복권은 남아 있었는데 극장 입장권을 사면 괄호 안에 복권이라고 쓰인 글씨를 볼 수 있었다. 명실상부한 복권의 발행은 1969년 주택복권으로 재개됐다. 처음에 주택복권 한 장 가격은 100원이었고 당첨금은 300만원이었다. 그러나 주택복권 역시 판매가 부진해 발행액의 70% 정도밖에 팔리지 않았다. 정부는 9회차부터 당첨금을 500만원으로 올려 판매를 늘려 나갔다. 사진은 여러 종류의 애국복권. 손성진 논설주간 sonsj@seoul.co.kr
  • 안희정 “어떤 일을 당하든 아내 곁에 있어주고 싶다”

    안희정 “어떤 일을 당하든 아내 곁에 있어주고 싶다”

    수행비서를 성폭행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검찰 조사를 마친 후 “저를 고소한 분께는 정말 죄송하지만 제 아내가 더 힘들지 않겠습니까”라고 발언한 것으로 전해졌다.12일 동아일보에 따르면 안 전 지사는 지난 10일 9시간30분가량 검찰조사를 마치고 돌아가던 길에 “이후 어떤 일을 당하든 아내와 가족들 곁에 조금 더 있어주고 싶다. 내가 버티는 유일한 이유는 가족 때문이다. 아내가 얼마나 힘들어하겠는가. 잘못의 책임은 나에게 묻고 가족들은 괴롭히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지난 월요일(5일) 관사를 나온 후 옷을 한 번도 갈아입지 못했다. 어제까지는 아내가 있는 곳에 머물렀는데 며칠째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면서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어 아무 데도 갈 곳이 없다며 흐느끼기도 했으며, 기자에게 악수를 청하며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주차장을 서성이며 연달아 담배를 피우는 등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고 매체는 전했다. 안 전 지사는 지난해 6월부터 올해 2월까지 러시아·스위스·서울 등에서 수행비서였던 김지은씨를 네 차례 성폭행하고 수시로 성추행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그때의 사회면] 성폭력과 성희롱

    [그때의 사회면] 성폭력과 성희롱

    성폭력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성 문제는 그 자체가 입에 담기조차 민망한 주제여서 언론에서도 단편적인 사건으로서만 다루었을 뿐 1970년대까지는 사회문제로 거의 거론하지 않았다. 형법상 강간죄, 강제추행죄에 의한 성범죄 처벌은 있었지만 사회적 시선을 두려워한 피해자들이 신고를 꺼리는 일도 많았다. 강간과 강제추행에 대한 친고죄(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는 죄)가 폐지된 것도 2013년 6월로 겨우 5년 전이다.성폭력이라는 용어를 쓴 토론회는 ‘여성의 전화’ 주관으로 1985년 열린 ‘성폭력 간담회’가 처음인 것 같다. 올해로 창립 35주년을 맞는 ‘여성의 전화’가 성폭력을 사회문제로 부각시킨 최초의 구심점이 됐다. 하소연할 데도 없이 ‘쉬쉬’했던 성폭력을 상담을 통해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것이다. 토론회에서는 직장 상사의 성추행과 여상 출신 어린 학생들의 직장 내 성희롱 고민도 기사화됐다. 특히 평화시장의 봉제업주가 다른 직장으로 옮기지 못하도록 미성년 미싱사들을 한 사람씩 성폭행했다는 충격적인 폭로도 있었다(동아일보 1985년 9월 27일자). 성폭력(sexual violence)이 법적 용어가 된 것은 1993년 성폭력특별법 제정 이후다. 직접적인 성폭력이 아닌 언어와 신체 접촉에 의한 성희롱(sexual harassment)이란 개념은 1976년 무렵 미국에서 처음 언급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980년대에 성희롱, 성적 모욕이란 용어가 간헐적으로 쓰였다. ‘성적 모욕’이란 용어는 1986년의 ‘부천서 성고문 사건’에서 사용됐다. 당시 검찰은 “권인숙씨에 대한 성적 모욕이 없었다”고 허위로 발표하고 문귀동 경장을 기소유예 처분했지만 2년 후 법원이 재정신청을 받아들여 문 피고인은 징역 5년형을 받았다. 우리나라에서 성희롱이 명백한 범죄행위로 규정된 것은 ‘서울대 우 조교 성희롱 사건’의 영향이 크다. 이 사건은 1993년 서울대 화학과 실험실에서 유급 조교로 근무하던 우 조교가 신모 교수로부터 지속적인 성희롱을 당하고 민사소송을 제기해 승소한 사건이다. 이 사건의 변론은 박원순 변호사가 무료로 맡았다. 성희롱 문제가 사회문제로 부각된 것은 여성들의 사회 진출 증가와도 연관이 있다. 1990년대 초반에 이미 직장 여성의 75%가 성희롱을 당한 경험이 있다는 보도가 있다(경향신문 1992년 5월 30일자). 우 조교 사건 이후 1995년 제정된 ‘여성발전기본법’에 성희롱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했다. 성희롱의 구체적인 개념은 1999년 2월 8일 제정된 ‘남녀차별 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에서 규정됐다. 성폭력은 성폭행, 강제추행, 성희롱을 포괄하는 의미로 다뤄지고 있다. 손성진 논설주간 sonsj@seoul.co.kr
  • [부고]

    ●홍지일(전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전무)씨 별세 인기(푼다프로그래밍 팀장)인아(KEB하나은행 파리지점 주임)씨 부친상 7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0일 오전 9시 (02)3010-2000 ●김봉호(전 동아일보 심의실장)씨 별세 진형(이오테크닉스 과장)세형(지써티 이사)영수씨 부친상 하재성(KT 차장)씨 장인상 8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 10일 오전 6시40분 (02)2227-7563 ●고윤웅(전 대한의학회장)씨 별세 7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 10일 오전 9시 (02)2227-7500 ●김의구(대한상공회의소 기획팀장)미정씨 부친상 8일 대구 가톨릭대학교병원, 발인 10일 오전 7시, (053)655-4502 ●김병철(전 고려대 총장, 동아일보 이사)병제(재미)병준(강남대 교수)동순(울산의대 명예교수)창희(재미)씨 모친상 박정의(성균관대 명예교수)씨 빙모상 김명희(이화여대 명예교수)씨 시모상 8일 고대 안암병원, 발인 10일 오전 8시30분 (070)7816-0229
  • 김창원 서울시의원 발의 ‘보행권 확보-환경개선 조례개정안’ 통과

    김창원 서울시의원 발의 ‘보행권 확보-환경개선 조례개정안’ 통과

    서울시의회 김창원 의원(더불어민주당, 도봉3)이 대표 발의한 「서울시 보행권 확보와 보행환경 개선에 관한 기본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이 7일 제279회 임시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서울특별시 보행권 확보와 보행환경 개선에 관한 기본 조례’가 개정되어 횡단보도 보행 시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시민들의 주의가 요구된다. 조례안은 ‘모든 시민은 횡단보도 보행 중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스마트폰 등의 전자기기 사용에 주의해야 한다’는 조항을 신설해 시민의 보행 중 안전사고 예방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조례안은 시민의 의무를 부과하고 있지는 않으나, ‘보행 중 안전사고 예방에 관한 사항’을 시장의 책무로 규정해 서울시가 관련 사업을 펼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했다. 이를 근거로 서울시는 안전캠페인, 표지판 부착 등 보다 적극적으로 사업을 실시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하여 7일 오전 10시 서울시의원회관 제1대회의실에서는 ‘안전한 보행환경 조성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주제발표를 맡은 이수일 박사(현대해상교통기후환경연구소)는 “2017년 조사 결과 보행 중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국민은 28.3%로 조사됐다”며 “최근 5년간 보행 중 스마트폰 관련 차대인 사고가 1.5배 증가했다”고 연구 결과를 밝혔다. 이 박사는 “보행 중 스마트폰 사용으로 인해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아차사고의 경우 응답자의 21.7%가 경험했다”며 실제 실험 결과를 통해 보행 중 스마트폰 사용 시 인지거리가 50%, 시야폭은 56% 감소하며 전방주시율이 15%로 나타났다는 결과를 발표해 경각심을 높였다. 이 박사는 “해외 관련 안전대책 및 법 제도 검토 후 국내에도 보행 중 스마트폰 관련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주제발표자 오주석 박사(도로교통공단)는 “이용자들의 40%는 보행 시 단순한 음악 청취 외 동영상 시청이나 인터넷 검색 등 다른 기능도 함께 사용하고 있다”며 “이 경우 청각+시각 자극을 동시에 차폐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 박사는 “65.2%에 달하는 응답자들이 보행 중 스마트기기 사용의 위험성은 알고 있지만, 강제적인 법, 제도적 조치에 대해서는 반대하고 있고, 교통안전 홍보, 교육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다수가 공감하고 있다”며 이와 관련한 적극적인 교육 및 홍보가 필요함을 설명했다. 오 박사는 이와 함께 “‘보행 중 스마트기기 사용은 사고 위험이 높은 일이지만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는 왜곡된 인식 또한 바꿀 동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정 토론을 맡은 고준호 교수(한양대학교 도시대학원)는 “세계적 흐름을 볼 때 서울시에서도 보행자 안전을 위한 보다 적극적인 정책을 펼칠 필요가 있다”며 이를 위해 △보행 중 휴대폰 이용과 사고와의 보다 명확한 인과관계를 인지하고 △해외 물리적 시설 개선 사례를 좀 더 연구하여 강제적 규제방식과 어느 것이 효과적인지 판단하고 △벌금부과를 위한 행정비용을 고려하여 정책을 펼쳐줄 것을 당부했다. 서형석 기자(동아일보 사회부)는 “이번 조례 개정을 계기로 보행 중 스마트폰 사용 문제에 대해 폭넓게 다루는 것은 필요하다”며 “‘도로 외 구역’에 대한 문제, 도로 환경 및 시설 문제인지 개인 부주의에 따른 문제인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시민의 입장에서 의견을 제시한 이충민 씨는 “현재 사고 시 보험 과실 비율을 정할 때 여러가지 요소가 존재하는 데 조항에 스마트폰 및 전자기기 조작 등으로 인한 전방주시태만의 사유가 인정되는 경우, 보행자에게 일정 이상의 과실을 적용하는 방법도 고려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서울시는 최대한 시민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줄 수 있는 다양한 홍보 및 경고물을 활용하고 나아가 의무를 부과하는 방법을 법제화한다면 사고 예방의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이에 백운석 과장(도시교통본부 보행정책과)은 “서울시는 2016년부터 5곳에 스마트폰 사용 제재 관련 표지문을 설치하고, 올해 이것을 확대하고자 계획 중”이라며 “오늘 토론회가 전환의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앞으로 보행 중 스마트폰 사용과 관련한 사고 예방 캠페인을 펼치고, 간접적으로 사고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이 사안에 대해 강제적으로 접근할 것인지, 간접적으로 접근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규제 방법이 생긴다면 전면적으로 실시할지, 부분적으로 실시할 지도 고려해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안희정 신상 문제, 지난해 여름부터 도의원들 사이 오르내려

    안희정 신상 문제, 지난해 여름부터 도의원들 사이 오르내려

    성폭행 의혹을 받고 있는 안희정 지사에 대한 둘러싼 불미스러운 이야기가 이미 지난해부터 충남도 의원들 사이에서 오르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8일 동아일보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충남도의원 A 씨는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에게 ‘경고’를 하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고 말했다. 그는 전 비서 김지은 씨가 안 전 지사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하자 ‘터질 게 터졌구나’ 싶었다는 것이다. 민주당 도의원들은 그런 조짐을 지난해부터 감지했다고 한다. A 씨는 민주당 대선 경선이 끝난 직후인 지난해 초여름 도의원들 사이에서 “안 지사가 여성 직원을 따로 부르는 일이 많다더라”, “여성 직원에게 스킨십을 했다더라” 등의 말이 돌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시 도의원 가운데 누구도 안 전 지사에게 사실관계를 확인하거나 문제를 제기하지 못했다고 한다. 당내 위상이 높은 안 전 지사의 비위를 건드리는 게 부담스러웠기 때문이었다. 늘 소통을 강조하는 안 전 지사였지만 주변에 흉금을 터놓고 지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소문이 더 무성해지자 A 씨는 안 전 지사와 만나는 일정을 잡았다. ‘조심하라’는 직언을 하기 위해서였다. A 씨는 “당시 도의원으로 일하면서 동고동락한 지 8년이나 됐는데 어떻게든 얘기를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선 경선 이후 더 바빠진 안 전 지사는 면담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A 씨는 다시 비서진에 연락을 했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 A 씨는 “안 전 지사의 성폭행 폭로를 접하고 지난해 떠돌던 소문이 거의 다 맞는 얘기였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같은 당 B 의원도 “지난해 여름 안 전 지사와 여성이 얽힌 소문이 나돌 때 여성 지지자가 많다 보니 이런저런 억측이 많나 보다 하고 넘겼다”라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박진성 시인 “고은 시인의 성범죄 현장 목격했고 방관했다”

    박진성 시인 “고은 시인의 성범죄 현장 목격했고 방관했다”

    고은 시인이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성추행 의혹과 관련 “부끄러울 행동을 한 적이 없고, 집필을 계속 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가운데, 박진성 시인이 고은 시인의 추행에 대해 증언하는 글을 썼다.박진성 시인은 5일 자신의 블로그에 ‘고En 시인의 추행에 대해 증언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저는 추악한 성범죄 현장의 목격자이자 방관자”라며 “지난날의 제 자신을 반성하고 증언한다”며 글을 시작했다. 박진성 시인은 고은 시인의 성추행이 지난 2008년 4월 C대학교에서 주최한 강연회 이후에 벌어졌다고 주장했다. 박 시인은 “당시 H대학의 문예창작과 교수 K로부터 이 자리에 참석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면서 “고En(고은)을 만날 수 있는데다 뒤풀이도 있다고 들어 전날 밤잠을 설칠 정도로 설레고 떨렸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오후 5시 술기운에 취해서였는지 원래 그런 사람이었는지 고En 시인이 참석자 중 옆자리에 앉은 한 여성의 손을 만지기 시작했고 팔을 만지고 허벅지를 만졌다. 당시 20대였던 여성은 고En 옆자리에 앉았다는 이유 만으로 그런 ‘추행’을 당했다”고 설명했다. 박진성 시인은 K교수에게 “안 말리고 뭐하는 것이냐”라고 말했지만 K교수는 “가만히 있으라”고 답했다. 박 시인은 “K교수에게 밉보일가 두려웠고 문단의 대선배 고En 시인에게 밉보일까 두려웠다”면서 “고은 시인이 여성 3명 앞에서 지퍼를 열고 자신의 성기를 꺼내 흔든 뒤 자리에 다시 앉아 ‘너희들 이런 용기 있어?’라고 말했다”고 폭로했다. 박진성 시인은 “2018년 ‘30년 전 격려 차원에서 그랬다’는 고En 시인의 변명을 보고 또 한 번 경악했다.‘부끄러울 일 안 했다, 집필을 계속하겠다’는 고En 시인의 입장 표명을 보고 다시 참담함을 느꼈다”면서 “그의 추행과 희롱을 보고 겪은 시인만 적게 잡아 수백 명이 넘는다. 문단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을 왜 노(老) 시인은 부정하는 것인가”라며 강조했다.또한 박진성 시인은 “고En 시인에 대한 증언은 정말 수도 없이 많다. 그는 이 세계의 왕이자 불가침의 영역이자 신성 그 자체였다. 고En 시인의 진정한 사과를 바라며 이를 묵살하지 말기를 바란다. 저 역시 방관자로서 석고대죄하는 심정으로 쓴다”고 끝맺었다. 앞서 최영미 시인은 지난해 12월 인문교양 계간지 황해문화를 통해 시 ‘괴물’을 발표했고, 시에 등장하는 ‘En선생’이 고은 시인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관련 기사 ▶‘괴물’ 시엔 “노벨상 후보 En선생” 최 시인은 지난달 27일 1992년 겨울에서 1994년 봄 사이 서울 탑골공원 인근 한 술집에서 가진 선후배 문인들과의 술자리에서 고은 시인이 저지른 추태를 고발하는 글을 동아일보에 기고했다. 그러나 이 글에는 반박글도 올라왔다. 해당 술집 여주인으로 알려진 한모씨는 자신의 SNS에 글을올려 “최 시인이 언급한 고은 시인은 그런 부류가 아닌것으로 기억한다”고 주장했다. 관련 기사 ▶시인 고은의 성추행 #미투에 반박하는 ‘술집 마담’ 화제의 글 일각에서는 고 시인이 한 달 가까이 국내 언론과의 접촉을 피해오다 외국 언론을 통해 첫 입장을 밝힌 것은 노벨상 후보로서 해외 여론의 악화를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성추행 논란이 불거지자 고은 시인은 수원시에서 마련한 ‘문화향수의 집’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서울시는 그의 서재를 본따 만든 ‘만인의 방’의 철거 결정을 내렸고 교육부 등에서는 교과서에 실린 그의 시들을 삭제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한국작가회의는 오는 3월 10일 이사회를 통해 고은 시인에 대한 징계안을 상정 및 처리할 예정이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최영미 시인 “괴물 성추행 사실”…고은 시인 “부끄러운 짓 안했다”

    최영미 시인 “괴물 성추행 사실”…고은 시인 “부끄러운 짓 안했다”

    최영미 시인은 자신이 폭로한 고은 시인의 성추행은 사실이라는 입장을 밝혔다.최영미 시인은 4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제가 괴물에 대해 매체를 통해 한 말과 글은 사실이다”라며 “나중에 문화예술계 성폭력을 조사하는 공식기구가 출범하면 나가서 상세히 밝히겠다”고 말했다. 고은 시인은 지난 2일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보낸 성명서를 통해 자신에게 제기된 성추행 의혹을 부인했다. 고은 시인은 성명서에서 “최근 의혹에 이름이 거론된 것에 대해 유감이며 의도하지 않은 (피해자들의) 고통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한다”고 말했다.그러면서고 고은 시인은 “시간이 지나 진실이 밝혀지고 논란이 잠재워지길 기다린다. 사실과 맥락을 쉽게 접할 수 없는 외국 친구들에게 부인과 나 자신에 부끄러운 어떤 짓도 하지 않았음을 밝힌다”고 강조했다. 최영미 시인은 지난해 12월 인문교양 계간지 황해문화를 통해 시 ‘괴물’을 발표했고, 시에 등장하는 ‘En선생’이 고은 시인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관련 기사 ▶‘괴물’ 시엔 “노벨상 후보 En선생” 최 시인은 지난달 27일 1992년 겨울에서 1994년 봄 사이 서울 탑골공원 인근 한 술집에서 가진 선후배 문인들과의 술자리에서 고은 시인이 저지른 추태를 고발하는 글을 동아일보에 기고했다. 그러나 이 글에는 반박글도 올라왔다. 해당 술집 여주인으로 알려진 한모씨는 자신의 SNS에 글을올려 “최 시인이 언급한 고은 시인은 그런 부류가 아닌것으로 기억한다”고 주장했다. 관련 기사 ▶시인 고은의 성추행 #미투에 반박하는 ‘술집 마담’ 화제의 글 일각에서는 고 시인이 한 달 가까이 국내 언론과의 접촉을 피해오다 외국 언론을 통해 첫 입장을 밝힌 것은 노벨상 후보로서 해외 여론의 악화를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성추행 논란이 불거지자 고은 시인은 수원시에서 마련한 ‘문화향수의 집’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서울시는 그의 서재를 본따 만든 ‘만인의 방’의 철거 결정을 내렸고 교육부 등에서는 교과서에 실린 그의 시들을 삭제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한국작가회의는 오는 3월 10일 이사회를 통해 고은 시인에 대한 징계안을 상정 및 처리할 예정이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그때의 사회면] 우골탑의 비애/손성진 논설주간

    [그때의 사회면] 우골탑의 비애/손성진 논설주간

    우골탑(牛骨塔)이라는 말은 소를 팔아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느라 내다 판 소의 뼈다귀로 세운 탑, 즉 대학을 빗댄 말이다. 지금도 대학 등록금은 학부모들의 큰 부담이 되고 있지만 살기 어려웠던 시절에는 어떠했으랴. 1957년 지방 소도시에 있는 K사범대학에서는 전교생 850명 중 524명이 등록금을 내지 못해 무더기 제적을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농촌 사정이 얼마나 어려웠으면 그랬을까. 이듬해에는 부산의 S대학에서 같은 이유로 학교 측이 125명을 제적하자 학생들과 교직원 사이에 난투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1959년에는 서울의 명문 K대학에서 등록금을 내지 못한 신입생 41명의 입학이 취소된 일도 있었다. 그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대학에 합격했는데 등록금을 마련할 길이 없음을 비관해 자살한 예비 대학생들이 속출한 일이다. 등록금을 마련하려고 강도 등의 범죄를 저지른 신입생이나 재학생의 기사가 심심찮게 등장했다. 사회 각 분야에서 시위가 잦아진 1960년에는 비싼 등록금 문제 등을 둘러싸고 학내 분규가 동시에 벌어졌다. 등록금 인하를 요구하는 학생들은 시내까지 나와 과격한 시위를 벌였고 연행된 학생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경찰서를 습격한 사건도 벌어졌다.(동아일보, 1960년 10월 9일 자)1960년대에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1964년 2학기의 재학생 등록률을 보면 서울대, 연세대 각각 42%, 고려대 50%였다. 대학들은 추가등록의 기회는 주었지만 학생들이 요구하는 분납제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등록금은 해마다 대폭 올랐다. 1967년 대학들은 등록금은 20%, 수업료는 35~39% 인상했다. 당시 입학금은 6000원, 수업료는 2만원 정도였다. 대학 운영을 등록금에 의존하다 보니 대학과 학생들의 충돌은 끊이지 않았다. 정부는 정부대로 등록금을 억제하려 했지만 큰 효과가 없었다. 1969년에 이르면 신입생 등록금은 6만 6000원으로 크게 올랐다. 1967년 기준으로 하면 현재의 대학 등록금은 약 250배 오른 셈이다. 대학 등록금은 고사하고 그보다 금액이 적은 중고교 입학금을 마련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안타까운 사연들이 신문 사회면에 실렸다.(경향신문, 1957년 4월 8일 자) 대학보다는 적다 해도 당시 중고교 등록금은 대학의 절반가량일 정도로 지금보다는 비싼 편이었다. 대학은 소를 팔아야 한다지만 중고교 입학금은 그보다 적으니 입학철만 되면 붐비는 곳이 전당포였다. 금붙이, 옷, 라디오, 재봉틀까지 전당포에 맡기고 돈을 변통해 썼다. 등록철만 되면 전당포에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 일손이 달릴 지경이었다. 금은방에서는 금붙이를 팔려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 돌려보내는 데 애를 먹기도 했다. 사진은 교육비 급등을 다룬 1971년 2월의 신문기사.
  • 시인 고은의 성추행 #미투에 반박하는 ‘술집 마담’ 화제의 글

    시인 고은의 성추행 #미투에 반박하는 ‘술집 마담’ 화제의 글

    원로 시인 고은씨에 대한 충격적인 ‘미투(#metoo) 폭로’에 대한 반박의 글이 올라왔다. 1993년 언저리 서울 종로구 한 술집에서 여성이 포함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위 행위를 했다는 최영미 시인의 폭로에 대해 해당 술집 여주인으로 알려진 한모씨가 “소설”이라고 반박했다.한씨는 지난달 28일 오후 늦게 자신의 SNS 계정에 글을 올려 “최영미 시인이 언급했던것 처럼 문단에도 성추행 성희롱 성폭행 만연해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면서도 “그러나 최 시인이 언급한 고은 시인은 그런 부류가 아닌것으로 기억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분은 승려출신이라는 자긍심이 항상 있었고 입으로는 수없이 기행적인 행동과 성희롱 발언을 언급 했을지언정 의자 위에 등을 대고 누워 바지 지퍼를 내리고 자신의 아랫도리에 손을 넣고 만지고 그런 추태적 성추행 기행을 했던 기억은 아닌것 으로 안다”며 “그 시대 그시 절에는 성희롱이란 개념없이 노상방뇨도 하고 횡단보도 옆에 두고 차도로 뛰어다니고 질서와 상관없이 쾌쾌한 담배연기 속에서 질퍽한 밤 문화를 보내기도 했던 미성숙했던 문화적 흐름을 지금의 잣대로 처벌을 하는 건 심한 것 같다”고 주장했다. 특히 최영미 시인의 폭로 글에 등장한 “누워서 황홀경에 빠진 괴물을 위에서 내려다보더니 술집마담이 묘한 웃음을 지으며 한마디 했다. ‘아유 선생님두’”라는 대목에 대해서도 “최 시인이 고발장에서 마치 내 말인 것 처럼 인용한 글 ‘아유 선생님두’라는 말은 한적도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최영미 시인 그대가 원하는게 무엇인지 질문하고 싶다. 탑골 공원 주변 정확한 장소명과 그 자리에 함께 동행한 인물명 그리고 고은시인의 추태 목격자 문인을 거명해달라”며 “문단에 물과기름 처럼 겉도는 최영미 시인 평소 욕심이 남다르다는건 알지만 문단의 거목을 낭설만 가지고 진흙탕으로 끌어들여 매장시키려하는 저의가 무엇이냐”고 되물었다.또 “ 문단에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 그런 사실이 없었다는건 아니다”면서도 “알맹이들은 빼고 껍데기를 논하면서 실체없이 허무하다. 그 시절은 남자 문인들보다 젊은 20~30십대 여성들이 문단에 등단 하고 싶어서 어떻게들 했는지 묻고싶다. 명망 높은 출판사에 시집 출간내고 싶어 어떻게들 했는지? 그러고서들 시대가 바뀌니 모든 책임들을 강자 약자로 분류를 한다면 그건 아닌것 같다”라고 주장했다. 한씨는 자신에 대해 “나는 최영미 시인이 동아일보에 쓴 고발장에서 언급한 ‘1992년 겨울에서1994년 봄 사이 탑골공원 인근의 한 술집’ 인 ‘탑골’을 운영 했던 주인”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 시절만 하여도 탑골은 가난한 문인들이 낭만을 노래하고 배고프고 술고픈 문인들이 가난하지만 인정이 넘치고 눈물이 넘치던 순정이 어우러지는 문화적 공간”이라며 “있을수 없는 가공의 소설은 삭제하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다음은 한씨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 전문이다. 성추문 으로 사회가 요동을 친다. 썩거나 앓던 이는 언젠가는 뽑게 되어있다. 힘의 논리로는 강자가 약자를 추행하면 힘없이 당한자는 일생을 과거의 어두운 그림자로 인하여 멍에로 끓려 다닌다. 성추행 폭로 고발자의 용기에 위로와 격려를 보내고 싶다 화이팅!~ 하라고, 최영미 시인이 언급했던것 처럼 문단에도 성추행 성희롱 성폭행 만연해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최시인이 언급한 고은시인은 그런부류가 아닌것으로 기억한다. 그분은 승려출신이라는 자긍심이 항상 있었고 입으로는 수없이 기행적인 행동과 성희롱 발언을 언급 했을지언정 의자 위에 등을 대고 누워 바지 지퍼를 내리고 자신의 아랫도리에 손을 넣고 만지고 그런 추태적 성추행 기행을 했던 기억은 아닌것 으로 안다. 고은 시인은 시인이며 입답꾼 재담가다. 30년전 그시절 문화는 섹시하다. 입술이 매력적이다. 맛있게생겼다. 그런 농을 침을 흘려가면서 위안 삼아 많이들 입에 오르내리며 순정이있던 밤문화 시절이 있었다. 최루탄 가루에 콧물 눈물 흘리고, 암울했던 6월 항쟁과 민주화 투쟁의 연장선에서 시대의 아픔과 새희망을 노래하며 뜻을 함께 하는 문인들이 모여 그시대 그시절에는 성희롱이란 개념없이 노상방뇨도 하고 행단보도 옆에 두고 차도로 뛰어다니고 질서와 상관없이 쾌쾌한 담배연기 속에서 질퍽한 밤문화를 보내기도 했던 미성숙했던 문화적 흐름을 지금의 잣대로 체벌을 하는건 심한것 같다. .... 8살만 되어도 아이 손에는 핸드폰을 들려주고 각가정에는 승용차 성인1대씩 소유하고 전국 팔도를 자유자재로 유람하고 세계여행을 내땅 밟듯이 자유로이 문화생활을 즐기는 최첨단 문화왕국에서 금연지역 시각으로 희뿌연 30여년전 벌어졌던 성희롱 발언들을 어떻게 부풀려도 너무 부풀려 마녀사냥 하듯 죽일 죄인을 만드는것 해도 해도 너무 한것 같다. 최영미 시인 그대가 원하는게 무엇인지 질문하고 싶다. 탑골 공원 주변 정확한 장소명과 그자리에 함께 동행한 인물명 그리고 고은시인의 추태 목격자 문인거명요함. 문단에 물과기름 처럼 겉도는 최영미 시인 평소 욕심이 남다르다는건 알지만 문단의 거목을 낭설만 가지고 진흙탕으로 끌어들여 매장시키려하는 저의가 무엇인지? 그래야만이 자신이 주목받기 때문인지? 아니면 성희롱 내지 성추행 또는 성폭행을 직접적 으로 당한적은 있는지? 펙트로근거를 올렸으면 한다. 여론에 휘말려 매장 당하게 하지 말고 정획한 펙트가 아니면 소설 그만 쓰고 반성할게 있으면 지금이라도 반성하고 사죄하길 바란다. 그렇게 소설 쓰면서까지 자신을 홍보하고 싶나? 문인이면 문인답게 좋은글로 독자들에게 평가 받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설설설 갖으고 진실인 처럼 모든이의 눈과 귀를 어둡게 하지 말기를 ... 그렇다하여 문단에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 그런 사실이 없었다는건 아니다. 알맹이들은 빼고 껍데기를 논하면서 실체없이 허무하다. 그시절은 남자 문인들보다 젊은 20~30십대 여성들이 문단에 등단 하고 싶어서 어떻게들 했는지 묻고싶다.?... 명망 높은 출판사에 시집 출간내고싶어 어떻게들 했는지? 그러고서들 시대가 바뀌니 모든 책임들을 강자 약자로 분류를 한다면 그건 아닌것 같다. 거두절미 하고 소설은 그만 쓰고 고은시인이 사회에서 지탄 받을 만큼 근거있는 기행 펙트로 밝혀 주기를... 다시 말하지만 이번 일간지에 1000자 분량 올린글은 최영미 소설 이였다가 펙트다. ㅡ참고로 나는 최영미 시인이 동아일보에 쓴 고발장에서 언급한 <1992년 겨울에서1994년 봄 사이 탑골공원 인근의 한 술집> 인 <탑골>을 운영 했던 주인 으로서 ( 최영미 표현에 따르면 “ 술집마담 ” ) 최영미가 고발장에서 언급한 고은 시인의 그러한 자위행위 장면은 전혀 목격한 적이 없으며 10년을 넘게 그분을 지켜 보았어도 그런적은 없었다. 그리고 여기자들과 인터뷰하실때도 농담을 흘리기는 했을지언정 잡스럽거나 추행은 일절없이 목소리를 깔고 젊잖으셨다. 도저히 이해가 안간다. 그러기에 최시인이 고발장에서 마치 내 말인 것 처럼 인용한 글 ㅡ“ 아유 선생님두” 라는 말은 한적도 없다는 것을 밝힌다. 소름끼친다. 나의 성격이 곰살부리는 여우도 아니고 거친 야생마 기질이 강한 내가 섹기 부리듯 ... 헐 ㅡ참고로 나는 중앙일보 <남기고 싶은이야기들>에서 [풍류탑골] 2000년4월부터 50회가량 민족문학인들의 뒤이야기를 연재 하기도했다. 고은시인이 만약 그러한 기행을 했다면 그 재미난걸 왜 내가 연재할 당시 추가시키지 않았겠는가. 최영미가 언급한 1992년겨울~1994년 봄 최시인이 문단에도 등단하기 전에 잘나가는 명망 높은 출판사 사람들 틈에 끼여서 왔던 기억도 생생하고 그는 고은 선생님과 함께 동석한 적도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시절만 하여도 탑골은 가난한 문인들이 낭만을 노래하고 배고프고 술고픈 문인들이 가난하지만 인정이 넘치고 눈물이 넘치던 순정이 어우러지는 문화적 공간이였지 있을수 없는 가공의 소설은 삭제하기 바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문수 서울시의원 “고려대 내 인촌 김성수 동상 철거해야”

    김문수 서울시의원 “고려대 내 인촌 김성수 동상 철거해야”

    성북구청장 출마를 선언한 김문수 서울시의원(더불어민주당·성북2)은 대법원에서 친일 행위가 인정된 동아일보 창업주 인촌 김성수(1891~1955)씨 동상을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려대학교에 설치돼 있는 친일파 김성수 동상을 철거하고 김성수 호로 지은 성북구 인촌로 도로명도 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지난해 4월 인촌 김성수 증손자인 김재호 동아일보 사장과 인촌기념회가 당시 행정자치부 장관을 상대로 낸 친일반민족행위 결정처분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패소를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인촌의 친일행적을 인정한 것이다. 후속조치로 정부는 지난 13일 국무회의를 열어 인촌이 1962년 받은 건국공로훈장 복장(현재 대통령장·2등급)을 취소 의결하며 56년 만에 서훈을 박탈했다. 김 의원은 이와 관련, “자랑스러운 모교이지만 대학시절부터 가장 부끄러웠던 것이 고려대 본관 앞에 세워진 김성수 동상이었다”면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대법원 판결과 서훈까지 취소된 김성수 동상은 후배들에게 자랑스러운 ‘민족고대’라 말하기 민망하게 만드는 걸림돌”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성북구 인촌로 도로명 주소 역시 같은 이유로 즉시 개정돼야 할 것”이라면서 “한용운 선생님을 비롯해 항일독립운동가들이 활동했던 유적지에 친일파의 호를 딴 도로명이 있다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김 의원은 “국공유지는 법이나 조례로 친일반민족행위자에 대해 어느 정도 강제할 수 있지만 학교는 사유지이다 보니 현행법상 어렵게 돼 있다”면서 “강제 철거 등 폭력적인 방법 대신 고려대가 자발적인 방법으로 (철거)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 최영미 시인 “고은, 손으로 아랫도리 주무르며 신음소리”

    최영미 시인 “고은, 손으로 아랫도리 주무르며 신음소리”

    고은 시인(85)의 성추문을 처음 폭로했던 최영미 시인(57)이 자필 고발문을 통해 고 시인의 성추행 행태를 상세히 공개했다.27일 동아일보는 “성추행 악습에 대한 문단의 반성을 촉구하는 최 시인의 의사를 존중해 원고 전문을 공개한다”며 다음과 같은 글을 보도했다. 최 시인은 앞서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제 입이 더러워질까봐 말하지 못하지만 때가 되면 제가 목격한 괴물선생의 성추행 상황을 세상에 알리겠다”고 말했다. 최 시인은 1993년경 서울 탑골공원 인근의 한 술집에서 직접 목격한 고 시인의 성추행 행태를 1000여 자 분량으로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최영미 시인 원고 전문 내 입이 더러워질까봐 내가 목격한 괴물선생의 최악의 추태는 널리 공개하지 않으려 했는데, 반성은커녕 여전히 괴물을 비호하는 문학인들을 보고 이 글을 쓴다. 내가 앞으로 서술할 사건이 일어난 때는 내가 등단한 뒤, 1992년 겨울에서 1994년 봄 사이의 어느날 저녁이었다. 장소는 당시 민족문학작가회의 문인들이 자주 드나들던 종로 탑골공원 근처의 술집이었다. 홀의 테이블에 선후배 문인들과 어울려 앉아 술과 안주를 먹고 있는데 원로시인 En이 술집에 들어왔다. 주위를 휙 둘러보더니 그는 의자들이 서너개 이어진 위에 등을 대고 누웠다. 천정을 보고 누운 그는 바지의 지퍼를 열고 자신의 손으로 아랫도리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난생 처음 보는 놀라운 광경에 충격을 받은 나는 시선을 돌려 그의 얼굴을 보았다. 황홀에 찬 그의 주름진 얼굴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아- ” 흥분한 그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들렸다. 한참 자위를 즐기던 그는 우리들을 향해 명령하듯,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야 니들이 여기 좀 만져줘.” ‘니들’ 중에는 나와 또 다른 젊은 여성시인 한명도 있었다. 주위의 문인 중 아무도 괴물 선생의 일탈행동을 제어하지 않았다. 남자들은 재미난 광경을 보듯 히죽 웃고….술꾼들이 몰려드는 깊은 밤이 아니었기에 빈자리가 보였으나, 그래도 우리 일행 외에 예닐곱 명은 더 있었다. 누워서 황홀경에 빠진 괴물을 위에서 내려다보더니 술집마담이 묘한 웃음을 지으며 한마디 했다. “아유 선생님두-” 이십 년도 더 된 옛날 일이지만,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처치하기 곤란한 민망함이 가슴에 차오른다. 나도 한때 꿈 많은 문학소녀였는데, 내게 문단과 문학인에 대한 불신과 배반감을 심어준 원로시인은 그 뒤 승승장구 온갖 권력과 명예를 누리고 있다. 공개된 장소에서,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물건’을 주무르는 게 그의 예술혼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나는 묻고 싶다. “돌출적 존재”인 그 뛰어난(?) 시인을 위해, 그보다 덜 뛰어난 여성들의 인격과 존엄이 무시되어도 좋은지.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방카, 출국 전 뽀로로 인형 구입…한글로 “고맙습니다” 트윗

    이방카, 출국 전 뽀로로 인형 구입…한글로 “고맙습니다” 트윗

    이방카 트럼프 백악관 보좌관이 한국을 떠나기 전 아이들을 위해 ‘뽀로로’ 장난감을 사간 것으로 전해졌다.세 자녀를 둔 이방카 보좌관이 26일 출국하기 전 국산 애니메이션 ‘뽀로로’ 장난감을 사전 주문해 공항에서 받아갔다고 동아일보가 27일 보도했다. 뽀로로는 북한의 삼천리총회사가 제작에 일부 참여해 한때 미국의 대북 제재 대상에 오를 뻔 했다가 미국 정부가 “뽀로로처럼 대중에 널리 보급된 제품은 예외 조항”이라며 제재에서 풀어 미국에서 더 유명해진 바 있다. 이방카 보좌관은 한국의 교육에도 관심을 보였다고 보도는 전했다. 이방카 보좌관이 정부 관계자들에게 한국의 교육열을 연급하며 아이들 교육비로 보통 얼마나 쓰는지 물어봤다는 것. 한국의 치안 환경에 대해서도 물었다. 최근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발생한 고교 총기 참사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우리 측 수행원이 “(한국은) 세계적으로 손 꼽히는 안전 국가”라고 답하자 이방카 보좌관은 “북한의 안보 위협보다 당장 밤에 안전한 것이 더 중요하지 않느냐”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방카 보좌관은 한국 방문 소감에 대해 트위터에 한글로 ‘고맙습니다’라고 쓰며 감사의 뜻을 표시하기도 했다. 이날 출국에 앞서 이방카 보좌관은 “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 그리고 한국 국민들잉 보여준 따뜻한 보살핌에 감사하다”면서 한글로 “고맙습니다”라고도 적었다. 이방카 보좌관은 출국길에 만난 취재진에게 “멋진 첫 방문이었다. 다시 방문할 날을 고대한다”고 말했다. 외신들은 이방카의 첫 방한 중 보인 모습에 호평을 내렸다. CNN은 “이방카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마찬가지로 북한 대표단에 눈길을 주지 않았지만 남북 선수들이 경기장에 입장할 때 기립해 박수를 쳤다”고 보도했다. USA투데이도 “줄곧 앉아만 있던 펜스와 대조된다”고 평가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고은 성추행 추가 폭로... 20대 대학원생 허벅지 만져

    고은 성추행 추가 폭로... 20대 대학원생 허벅지 만져

    성추행 논란에 휩싸인 고은 시인이 20대 대학원생을 성추행했다는 폭로가 추가로 나왔다.27일 동아일보는 고은 시인(85)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성폭력을 일삼았다고 주장하는 제보자의 증언을 보도했다. 문인 A씨는 지난 2008년 4월 지방의 한 대학 초청 강연회에 참석한 고은 시인이 뒤풀이 자리에서 20대 여성 대학원생에게 성추행을 했다고 폭로했다. 당시 고은 시인은 “이름이 뭐냐”, “손 좀 줘봐라”라며 대학원생의 손과 팔, 허벅지 등 신체 부위를 만졌다. 누구도 이를 말리지 못했고, 술에 취한 고은 시인은 노래를 부르다 바지를 내리고 신체 주요 부위까지 노출했다. A씨는 “그는 이 세계의 왕이자 불가침의 영역, 추앙받는 존재였다. 그런 추태를 보고도 제지할 수 없어 무력함을 느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 밖에 고은 시인이 자신의 시집 출판 계약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중소 출판사 여직원의 손과 팔, 허벅지 등을 주물렀다는 증언도 이어졌다. 한편 고은 시인은 최근 미투 운동(Me Too·성폭력 피해 고발) 확산으로 조명된 최영미 시인의 시 ‘괴물’ 속 주인공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며 세간의 비난을 받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박기열 서울시의원 ‘유관순열사 상 제막식’ 참석

    박기열 서울시의원 ‘유관순열사 상 제막식’ 참석

    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 박기열 의원(더불어민주당, 동작3)은 26일 오전 11시 동작구 사당3동 삼일공원에서 열린 ‘유관순열사 상(像) 제막식에 참석했다. 유관순열사 상(像) 제막식 행사는 한국여기자협회와 동작구가 주최·주관 했으며 국가보훈처 서울남부보훈지청이 후원했다. 이 날 참석자는 박기열 의원을 비롯해 이창우 동작구청장, 류정우 유관순열사기념사업회 회장, 채경옥 한국여기자협회장 등 내빈들과 지역주민들 100여명이 함께 자리했다. 이번 유관순열사 상은 3·1운동기념테마공원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제작·설치됐다. 건립위치는 동작구 사당3동 삼일공원이며 사업주체는 한국여기자협회이다. 총 사업기간은 2017년 4월부터 12월 까지였다. 박기열 의원은 “제99주년 3·1절을 맞아 동작구 사당3동 삼일공원에 유관순열사 상이 세워진 것에 대해 동작구민의 한 사람으로서 환영한다. 3·1 운동의 정신을 기리는 삼일공원은 한국최초 여기자 최은희씨가 동아일보에 독립공원 설립을 기고하면서 세워진 공원이다. 이번 유관순 열사 상이 세워져 더욱 의미가 깊어졌다. 앞으로 동작구의 명소 중 하나로 발전하기를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또 박 의원은 “이곳 3·1공원이 앞으로 동작관악교육지원청의 지원을 받아 유치원생 및 초·중등학생들에게 3·1운동 정신을 교육하는 교육장소로 거듭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그때의 사회면] 1960·70년대 은어(隱語)

    [그때의 사회면] 1960·70년대 은어(隱語)

    지난해 7월 이용호 북한 외무상이 ‘역대급’이라는, 우리 국어사전이나 북한의 ‘조선말대사전’에도 없는 신조어를 사용해 화제가 됐다. 신조어, 은어, 속어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모양이다.“재순이(재수생) K양은 주다야싸(주간 다방 야간 살롱)에서 가리지날(가끔 만나는 남자)을 만나 양서를 함께 보고(맥주를 함께 마시고) 발바닥도 비볐다(고고춤을 추었다). 고팅(고고 미팅)에서 만난 가리지날은 약간 등대지기(성관계를 밝히는 사람) 기질이 있는데 K양과는 누가봐 데이트(삼각관계) 중.”(동아일보 1978년 4월 21일자) 지금 ‘뇌섹남’이 있다면 1962년 무렵엔 ‘미스터 마가린’이 있었다. ‘수목(樹木)처럼 산뜻하고 멋있는 신사’라는 뜻이었다. 마가린이 식물성 식용품이어서 그런 말이 생겨났다고 한다(경향신문 1962년 7월 13일자). 비슷한 시기에 생겨난 ‘원투(일리) 있어’, ‘솥뚜껑 운전수’(식모), ‘재건 데이트’(돈 안 들이는 데이트), ‘KBS’(갈비씨) 등의 은어는 차라리 애교스럽다고 하겠다. ‘생고무 셔츠’(웃통을 벗은 남자), ‘부속물’(남자들이 놀러갈 때 함부로 따라가는 여자), ‘포장공사’(화장), ‘12시’(데이트: 시곗바늘이 서로 만나므로), ‘잠수함’(국속에 든 멸치), ‘엄마 자장가’(여선생의 강의), ‘청춘복덕방’(교회), ‘속도위반’(결혼 전 임신), ‘루트3’(난해한 애인편지), ‘박호순’(순호박), ‘새발의 워커’(당치도 않은 소리), ‘스팀 아웃’(김샜다) 등의 은어는 신조어를 무분별하게 쓰는 청소년들을 보고 혀를 끌끌 차는 어르신들이 고등학교에 다녔던 1960년대 중반에 썼던 유행 은어들이다(동아일보 1964년 9월 24일자). 그런가 하면 ‘검은 도서관’(영화관: 도서관 이상으로 영화관을 좋아하고 그 속에서 뭔가 배운다는 뜻) 같은 풍자형 은어도 있고 ‘애플두’(사과해), ‘1414’(왔네 왔네), ‘33두’(삼삼하다), ‘2분의1’(반했어), ‘드라이문’(건달)은 현재의 인터넷 신조어와 크게 다를 것도 없다. ‘쩨’(외제), ‘EDPS’(음담패설), ‘칸트’(고민), ‘스키타다’(키스하다), ‘4·8작전’(커닝), ‘오촌오빠’(여자의 애인), ‘18금’(데이트비용 공동 부담시키는 남자), ‘아르데이트’(아르바이트 겸 데이트), ‘교양필수과목’(미팅), ‘ABCD’(남자의 4대 조건: 술, 당구, 담배, 데이트)는 1970년대 대학생 사이에서 유행한 은어들이다. ‘꺾자’(술 마시자), ‘설 푼다’(말을 많이 하다), ‘형광등’(반응 속도가 느린 사람), ‘지방방송’(옆에서 떠듦), ‘코스모스 졸업’(후기 졸업), ‘섬씽’(연애사건) 등은 수십 년도 더 지난 지금도 쓰인다. 사진은 1966년 당시 여고생들의 은어 사용 실태를 보도한 기사. 손성진 논설주간 sonsj@seoul.co.kr
  • 조용중 전 서울신문 국장 별세

    조용중 전 서울신문 국장 별세

    조용중 전 서울신문 편집국장이 24일 새벽 별세했다. 88세. 고인은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를 거쳐 서울신문과 경향신문 편집국장, ABC(발행부수공사) 협회장, 연합통신(현 연합뉴스) 사장 등을 역임했다. 유족은 부인 백영숙씨, 아들 재신(ASE 부사장)·동신(출판인)씨, 딸 현자·현임(세종벌키물류 이사)씨, 사위 문희철(송원그룹 부회장)·이인규(세종벌키물류 대표)씨가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27일 오전 7시. (02)3410-3151.
  • 오달수가 밝힌 연희단거리패 3대 원칙

    오달수가 밝힌 연희단거리패 3대 원칙

    곽도원 “이윤택 때문에 연극 못 하게 돼…영화계 진출”이윤택 “이민정 남달리 예쁘고 예의 발랐다”이희준, 윤제문, 최무성, 황석정도 연희단거리패 출신 연극계 대부 이윤택의 성추행·성폭행에 대한 폭로가 연일 이어지는 가운데 그가 이끈 연희단거리패 출신 유명 배우들도 주목을 받고 있다. ‘이윤택 추문’으로 최근 해체된 연희단거리패는 실력파 배우를 배출하는 ‘연극사관학교’로 불렸다.연희단 출신 배우들이 말하는 이윤택과, 이윤택이 평가한 연희단 출신 배우들을 과거 인터뷰를 통해 짚어봤다. 오달수는 지난 2016년 2월, 연희단의 창단 30주년을 기념해 ‘스승’ 이윤택과 함께 씨네21 인터뷰에 응했다. 오달수는 “자신의 극단을 운영하면서 몸담았던 ‘연희단의 미덕’을 가져오게 됐다”며 연희단의 3가지 규칙을 소개했다. 그는 “약속시간 엄수, 상호비방 금지, 지금은 크게 완화된 걸로 아는데 연애 금지”라면서 “스승의 좋은 정신을 가져왔다”고 했다.이에 이윤택은 “당시 극단원들이 연애를 하도 해 연극이 안 될 정도라 연애를 금지시켰는데 몰상식한 짓이었다”면서 “요새는 연애 권장”이라고 말했다. 오달수는 연희단에서 연출을 하며 단원들의 따돌림을 받았던 기억도 떠올렸다. 그는 “연희단에 있을 때 단원 훈련용으로 ‘쓰레기들’을 연출한 적이 있다. 연습이 끝나고 으레 단원들이 있겠다 싶은 단골 술집에 들렀는데 아무도 없었다. 이상해서 보니까 다들 신발을 숨기고 날 따돌렸다”면서 “나는 연출하면 안 되는구나 느꼈다. 남한테 상처나 주고 나도 상처받고…. 능력도 안 됐다. 외로워서 연극을 시작했는데 스스로 더 외로워지는 무덤을 파고 있었다”고 말했다.배우 곽도원은 이윤택과의 악연(?)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지난 2012년 8월 씨네21과 인터뷰에서 “선배들 말을 안 듣는다고 연희단에서 쫓겨 났었다. 앞이 캄캄했다”면서 “이윤택 대표는 대한민국 연극계에서 가장 높은 분이고 내가 어느 극단에서 연극을 해도 ‘저놈은 잘라’ 하면 잘리는 정도의 파워를 가진 분이다. 그러니 이제 연극을 못하게 된 거다”라면서 이 일로 밀양에서 만나 4년 사귄 여자친구와 헤어졌다고 했다. 곽도원은 “여자친구한테 복수를 하고, 나를 연기 못하게 한 이윤택 대표에게 떳떳하게 나서고 경제적으로 힘든 걸 극복하자고 마음먹었다”면서 “그러려면 영화를 해야 한다는 결론이 났다”며 영화배우로 방향을 전환한 계기를 설명했다. 곽도원은 연희단 출신인 오달수를 찾아가 ‘키워달라’고 부탁했으나 오달수가 ‘나는 못 키운다’고 거절한 일화도 소개했다. 이윤택도 곽도원에 대한 인상을 지난 2016년 7월 월간지 ‘브라보 마이 라이프’와의 인터뷰에서 얘기한 바 있다. 그는 “곽도원은 7년 반을 여기(연희단)에 있었는데 굉장히 게을렀다. 여기는 아침에 일어나서 단체생활을 해야 하는 곳인데 말이다”라면서 “대신 순발력이 굉장히 뛰어난 배우였다. 연극보다는 영화가 훨씬 어울렸다”고 말했다.배우 이병헌과 결혼한 이민정도 한때 연희단에 몸을 담았다. 성균관대 연기예술학과에서 연출을 배우던 이민정은 지도교수의 눈에 띄어 연극을 통해 연기에 입문했다. 이민정은 2004년 부산 가마골 소극장에서 연극 ‘서툰 사람들’의 화이 역을 맡았다. 이윤택은 2012년 10월 매일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민정에 대해 “남달리 예쁜 배우 지망생이 밀양연극촌에서 연기를 열심히 배웠는데 그때 이미 될성부른 나무라는 것을 직감했다”면서 “미모도 타고났지만 똑 부러진 연기와 예의 바른 생활태도로 더 주목받은 배우”라고 회상했다. 이윤택은 앞선 브라보 마이 라이브와 인터뷰에서 이민정이 출연한 서툰사람들에 대해 “관객들이 장난이 아니었다. (이민정이) 너무 예쁘고 너무 잘해서였다. 어떻게 이런 배우가 부산에 있느냐고 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영화 1987에서 윤상삼 동아일보 기자를 연기한 이희준은 연희단 9기 출신이다. 이희준은 2016년 씨네21 인터뷰에서 “2002년 무렵 서울에서 열린 연기 워크숍에서 처음으로 이윤택 선생님을 뵀다”면서 “선생님이 ‘연극이 그렇게 좋니? 하루 종일 연극을 하게 해 주겠다’며 알려주신 곳이 밀양연극촌 워크숍이다. 8개월 동안 정말 마음껏 연극만 했다”고 말했다. 이희준은 “하루 3시간 남짓 자고 연습하고 연기했든 그 시절만큼 카타르시스를 느낀 적이 없다”고 회상했다.이밖에 배우 윤제문도 1996년 연희단 산하 우리극연구소에서 연극에 입문했다. 그는 연희단에서 같이 공연한 여배우를 아내로 맞았다. ‘응답하라 1998’에서 택이(박보검) 아빠를 연기한 최무성과 개성있는 조연인 황석정도 연희단 출신이다.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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